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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는 말

철학사를 서술하는 데에 있어서는 여러 가지 관점이 가능할 것이다. 어떤 하나의 일관된 관점으로 철학사를 서술한다는 것 자체가 단순히 내용을 기술하고 나열하는 것을 넘어서는 학적 체계 혹은 이론마저도 제시하는 작업에 다름이 아니다. 이 관점을 역사적 내용에 관통시키는 것이 바로 다름 아닌 학문성을 완수하는 작업니다. 그 여러 관점 중 가장 쉽고 간편하게 적용 가능하면서 시원에 있어서 포괄성에 있어서 가장 풍부하고 게다가 중립적이기까지 한 관점으로 서술하라면 바로 보편과 개별의 상관관계로서 철학사를 서술하는 것이 가장 좋을 것이다. 보편과 개별의 문제는 철학사뿐만이 아니라 우리가 부대끼며 살아가는 인생에 있어서도 가장 거시적인 조망의 기초가 됨은 물론이다. 이제 가장 교과서적이면서 가장 가치중립적인 관점으로 철학사의 가장 커대한 분기를 이룬 세 철학자에 관한 철학사를 서술해보고자 한다.

철학사를 관찰해 보면 재미있는 사실을 하나 발견한다. 무수히 복잡하고 다양하며 중층적으로 전개되는 사유의 모험 속에서도 그 구체적 담지자인 철학자들은 하나의 통일적 유형으로 서로 엮여질 수 있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대립과 통일이다.

한 번 나열해 보자

최초의 그리스 자연철학자들<->소피스트, 소크라테스/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 아우구스티누스<->토마스 아퀴나스, 데카르트<->로크, 버클리, 흄, 그리고 바로 칸트<->헤겔 이다. 그런데 아마 칸트와 헤겔, 맑스를 엮는다면 맑스의 위치는 이 구도에서 마지막 저수지라는 의도로 진행될 밖에 없을 것이다. 즉 맑스 이전의 관념론적 서양철학 전체와의 대결로서 말이다. 굳이 대비한다면 방금의 구도에 불참했던 플로티누스라면 아마도 맑스의 반대 극에 모셔드릴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사실 이러한 도식은 서양철학사를 관통하는 하나의 율동으로서 파악해야 함을 있어서는 안된다. 대립 안에서도 대립 철학자 각자가 이중성과 내적인-관계적인 모순을 지니면서 중층적으로 전체를 형성하기 때문이다. 도식의 개념은 이렇게 보다 섬세해져야 하고 구체성의 날을 세움과 동시에 전체적인 윤곽에 있어서 모서리를 다듬은 형태로 인식되어야 할 것이다. 바로 이것이 맑스를 진정으로 마지막 저수지라 가정했을 때의 바로 그 변증법적 근거이다.

그럼 이제 철학사를 관통하는 보편과 개별의 인드라망 속에서 하나의 소우주적 모델로 칸트와 헤겔, 맑스의 삼박자 구도를 그려보고자 한다. 이 구도는 보편과 개별 그리고 양자의 지양이 다시 보편이 되어 끊임없이 전개해나가는 生의 율동이다.

 

Kant

어느 철학사에서나 칸트를 칭송하는 문구로 많이 경험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철학사의 물줄기는 모두 칸트로 흘러들어갔으며 이후 철학사는 바로 칸트로부터 시작한다’는 말일 것이다. 이는 데카르트로부터 시작된 근대성의 맹아가 칸트에 이르러 기존 서구 형이상학의 한계 설정을 통해서 근대성의 이념을 정립했음을 시사한다.

그러면 이러한 분수령으로서의 칸트를 지칭하는 키워드는 무엇일까. 바로 인식이다. 그리고칸트가 철학사에서 새로운 보편의 정립으로 자리하는 이유가 바로 보편성의 성립 가능근거로서 인식 이론이다. 칸트 이전의 서구 형이상학이 존재론 특히 신학적 존재론에 머물러 있었다면 데카르트와 영국경험론의 대립 과정에서 전개된 인식의 문제가 칸트에게서 드디어 진정한 의미의 인식론으로 성립된 것이다. 그리고 이 인식론은 바로 인간학적 인식론이다.

드디어 인간은 존재의 영역에서 인식의 영역으로 진보의 발걸음을 내딛은 것이다. 우리가 향유하는 첨단의 과학적 혜택은 바로 근대의 인식론적 진보의 귀결이다. 근대 이전에는 우리 즉 인간이 과연 무엇을 알 수 있는가에 대해 도대체가 진정한 물음을 제기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 점이 바로 칸트가 3대 비판서로서 전개한 비판철학의 핵심이다.

칸트 이전의 철학은 보편성 즉 이론적 체계화, 근거의 모델을 존재에게서 찾았었다. 그리고 존재에 대한 인식은 단지 정신적 직관과 사유의 형태로서 접근 가능한 것이었다. 그런데 데카르트에 이르러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는 정식화를 통해 제시된 인간적인 주체의 최종근거는 드디어 진리의 근원을 존재, 신에게서 인간 자신의 발견하게 된다. 이제 새로운 진리의 근거이자 기준이 되는 사유하는 자아가 정립되자 이 자아 즉 주체와 대립되는 외부의 경험적 사물과의 관계가 정립된다. 근대 이전의 철학은 어떤 의미에서 바로 몰주체적인 인식을 다루었다면 근대에서부터는 정립된 주체와 대상과의 관계라는 새로운 보편과 개별의 대립구도가 탄생한 것이다. 이제 데카르트가 주체의 영역을 설정하였다면 영국경험론은 대상의 영역을 설정한다.

칸트의 유명한 말이 있다. “직관(내용)이 없는 사고는 공허하고, 개념이 없는 직관은 맹목적이다.” 이 말은 칸트가 대륙합리론과 영국경험론을 종합하고자 하는 목적을 핵심적으로 표현한 명제이다. 하나의 보편(이성)과 개별(경험)의 통일성의 원리를 획득하고자 한 것이다. 이 문장은 순수이성비판의 오성범주 연역 부분에 등장하는 말로서 선천적 종합판단의 성립 가능성을 증명함을 통해 이성과 경험을 통일시킨다. 이성은 곧 주체이며 주체와 대상의 통일에 다름이 아니다. 논리적인 명제 분석을 통해 이를 증명하는데, 분석명제와 경험을 지칭하는 단어가 종합명제를 통해 통일됨을 증명함으로써 경험론과 합리론을 화해시킨다.

칸트가 이성과 경험을 종합해가는 과정은 앞에 이야기한대로 인식의 성립 과정이다. 게다가 비판철학적 목적을 가지기에 인식 이론의 전개를 통해서 기존의, 인식론이 뒷받침되지 않는 형이상학의 한계 지점을 밝히는 동시에 선험적 오성에 기반한 인간 인식의 한계까지도 도달한다. 이 한계는 바로 칸트의 선험적 원리의 도달 한계이면서 동시에 이성과 경험 양자의 통일성이 획득될 수 있는 가능 영역의 한계이기도 하다.

칸트의 핵심 개념은 선험이다. 사실은 초월이라고 번역해야 더욱 뜻이 정확하기도 하다. 적어도 오성의 종합 능력에 있어서는 선험의 의미를 가지지만 이성적 인식의 영역에 있어서는 일종의 초월론적 인식의 근거로서 주체의 초월성을 설정하게 된다. 여기서 초월적이라 함은 동양적인 의미에서의 정신적 고양이나 깨달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올바른 인식, 종합적 인식의 가능조건이 경험계를 초월에서 독자적으로 존재한다는 의미이다. 이런 의미에서 칸트의 초월론적 주체는 고대 플라톤의 전통을 충실히 계승하고 있다. 사실 보편과 개별(구체성)의 종합이지만 그 핵심적 실마리는 보편적인 원리 즉 초월론적 이성에 있는 것이다. 그래서 칸트의 모든 진리의 가능근거로서 인간의 주체는 초월론적 이념의 성격을 가진다.

너무 이야기가 나아갔다. 다시 되돌아가면 사실 대상의 인식에 있어서 선험적인 오성판단은 하나의 중요한 한계를 시사한다. 바로 오성적 인식에 있어서는 대상이 우리에게 주어지는 현상의 범위를 벗어날 수 없다는 점이다. 선험적 오성은 단지 주어진 경험의 잡다를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인식의 원리로 가공하는 역할밖에 하지 못한다. 여기서 유명한 칸트의 물자체 가설이 등장한다.

물자체란 즉 우리가 알 수 없는 것에 대한 총칭이다. 우리가 알 수 없는 이유는 우리의 사유가 인식론적으로 도달할 수 없는 대상 자체의 경계 너머가 있다는 말이다. 이것은 인식의 한계이면서 동시에 경험의 한계이기도 하다. 하지만 칸트는 그 한계를 넘어서는 근원으로서의 물자체가 분명히 존재한다고 인정한다. 물자체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우리 경험의 유한성에서도 도출되며, 우리 인식의 범주적 성격이 제한되어 있다는 사실에서도 도출된다. 우리의 경험의 밖과 우리의 인식의 형식의 밖에 분명히 풍부한 영역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칸트는 이 영역을 신, 영원성, 자유의지, 필연성 이 네 가지 이념이 인간의 이성적 판단에서는 이율배반에 빠질 수 밖에 없을 증명함으로써 남겨 둔다.

사실 진리의 빛에 있어서 가장 결정적인 본질은 물자체적 성질에 감추어져 있는 것이다. 여기는 예지계의 영역이라고 한다. 이제 칸트는 오성적 인식의 한계를 설정하였으므로 이 인식의 한계를 넘어서는 영역에 대한 본격적인 접근 방법을 모색한다. 바로 그러한 방법이 바로 실천이성의 능력과 판단력이 발휘되는 과정이다. 그래서 칸트의 비판이론은 윤리적 문제에 대한 실천적 요청으로서의 이성과 미적 판단력의 가능근거로서의 공통감에서 완성된다. 그 구도의 핵심은 바로 초월론적 이성이다.

 

Hegel

우리가 인생의 기준을 완벽하고 지고지순한 곳에 두고 본성의 선량함을 순수하게 지키며 살아가고자 한다면 그는 바로 칸트의 추종자가 될 것이다. 그는 완전한 이상에 대해 믿고 동경하며 초월적인 이념을 기준으로 자신을 돌아본다. 그러므로 자신의 불완전성과 나약함을 비판적으로 겸허하게 음미하며 살아가게 된다.

하지만 우리가 앎이라는 것을 완전성과 초월적 절대성에 두지 않고 지금 이 순간에서 한 발짝 나아가는 현실적인 진보를 진정한 앎으로 여긴다면 그는 헤겔의 제자가 된다. 그러기에 인생에 있어서 어떠한 실질적 사업을 성취하고 사람과 부대끼면서도 마음에 들지 않는 타자까지 포용하기에는 헤겔적인 정신이 보다 긍정적으로 작용한다. 칸트는 지키는 데 강하고 헤겔은 이룩하는 데에 강하다. 그래서 헤겔의 후계자인 맑스는 현실적인 사회주의를 꿈꿀 수 있었고 실재로 레닌에 의해 사회주의는 현실적으로 실현되었던 것이다.

칸트와 헤겔의 사진을 본 사람이라면 관상만으로도 이러한 흐름과 자연스럽게 연관지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에 칸트는 모 아니면 도라는 명료하고 깨끗한 성품으로 지조와 절개를 지키며 조용히 살아갔던 것이고, 헤겔은 모순덩어리인 인생의 고뇌와 세상의 풍파를 얼굴 가득 찡그린 표정 속에 짊어지고 묵묵히 진득하게 한 발 한 발 걸어갔던 것이다. 헤겔의 학창 시절 별명이 그래서 노인이라고 불리워지게 된 점도 재미있다.

더 확대해석한다면 깨끗하게 자기를 지키는 자는 조용히 처박혀서 편안하게 일생을 즐길 수가 있고, 이상과 현실과의 간격이 큰 만큼 그 간격의 중간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 다만 너무나 깨끗하고 순수한 이상을 기준으로 삼기에 큰 실수는 하지 않고 무난하게 살아간다. 그러나 이상과 현실 사이의 간격에서 모순을 안고 끌어안고 나아가려는 자는 세상을 개척해나가는 동시에 어느 순간 물들고 타락하기 쉬게 마련이다.

사실 너무나 이분법적이고 희화화된 구분일 수 있지만 진정 칸트는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철학이고 헤겔은 밑바닥에서 높은 곳을 향해 전진해나가는 철학이다. 바로 보편과 개별의 대립 구도이다.

헤겔의 주저는 정신현상학이다. 정신의 현상 즉 현상해 나가는 정신(知)에 대한 학이다. 사실 헤겔의 이후 평생에 걸친 학적 업적은 이미 이 정신현상학에서 포괄적으로 예비 아니 조망되었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다. 아니 사실 변증법이라는 개념의 운동은 그 정신현상학 서론에서 이미 전개가 시작되었고 예술, 종교, 정신이라는 최후의 목적을 향한 작업이 이미 예정되었다고 보아야 정당하다. 그래야만이 헤겔 변증법의 역동적 힘의 본질을 올바로 평가할 수 있다.

헤겔의 저작에서도 마찬가지로 보편과 개별의 문제는 핵심적 주제로 다루어진다. 기원은 사실 플라톤에서 시작된다고 봐야 하는데, 보편적 이데아가 자신을 세계에 분유하면서 자기동일성이 파괴되는 모순을 주제로 한다. 즉 헤겔의 표현대로는 동일성과 비동일성(차이)의 통일성의 문제이다. 왜냐하면 현상계는 무수한 비동일성의 세계가 펼쳐져 있는데 그것을 정신이 파악하는 원리는 동일성 즉 통일성의 원리이여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학으로서의 체계라는 이념이 실현되며 세계를 파악할 수 있다. 그러므로 동일성은 비동일성을 통일성 속에서 끌어안아야 하는 것이다.

핵심적인 키워드는 아마 플로티누스plotinus의 一者 설일 것이다. 사실 자기동일성의 문제에 대해 희랍철학은 선의 이데아라는 애매한 가능성만을 남김으로서 자신의 한계를 드러내었기 때문이다. 결국 초월적 이념 우위의 철학은 이러한 논리적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서 플로티누스와 같은 존재를 초월하는 존재를 넘어서는 곳으로 숨을 수 밖에 없다. 존재를 넘어서면서 존재의 근거인 것이 바로 一者이다. 이 일자는 헤겔에게서 정신적 生으로 변모하고 내적 모순을 통한 개념적 운동의 원인이 된다.

칸트가 이런 난점을 인식의 한계설정을 통한 현상계와 예지계의 명확한 구분을 통해서 해결하려고 했다면 헤겔은 과감하게 형식논리의 모순율을 어기고 하나의 존재 안에 긍정과 부정의 계기를 동시에 통합시킨다. 존재는 이제 자신 스스로 안에 모순을 끌어안게 되는 것이다. 여기에 플로티누스의 존재 너머라는 초월의 의미가 영향을 준다.

이러한 모순이 한 존재 안에서 구현 가능하기 위해서 헤겔은 관계 즉 계기를 주목한다. 핵심적인 표현으로 헤겔의 철학은 본질적 탐구가 아닌 개념의 탐구이다. 칸트까지는 세계의 본질로부터 현상계를 연역하는 전통이 크게 영향을 미쳤으나 이제 헤겔에서부터는 낮은 단계의 현상 그 자체가 정신적 진보를 향해 한 발작 한 발작 나아가는 도정 즉 발전의 진리 개념을 제시하면서, 근대의 이념인 주체와 객체의 통일이라는 인식의 도야를 향해 나아간다. 개념은 끊임없이 운동하는 것이며 이런 세계사적 정신의 구현으로서 개념의 현 주소가 바로 진리 그 자체이다. 유명한 “이성적인 것은 현실적이고 현실적인 것은 이성적인 것이다”가 그것을 말한다. 본질이 아니라 개념을 인식의 실마리로 삼는 것은 그 운동성과 관계성의 개방적 성격에 있다. 이제 철학은 시대정신을 말하기 시작한다.

헤겔의 변증법적 구도는 일종의 원환구도이다. 흔히 생각하는 한 방향으로의 발전만은 아닌 것이다. 왜냐하면 현상해 나가는 知의 역정은 최종 도달된 정신의 고양에 이르러서 어느덧 자신이 원래 출발했던 자아 자기 자신에 다름이 아님을 자각하기 때문이다. 칸트적 의미라면 최초의 출발에 이미 모든 것은 완벽하게 완성되어 있고 구체적이 내용이 구현되어 있는 것이겠지만 헤겔이 있어서는 최초의 출발은 힘이자 운동 즉 가능성이지 내용적 현실성은 아니다. 내용적 현실성은 知가 자신의 동일성의 모순으로부터 소외되어 외화의 역정을 거치면서 점차 풍부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헤겔의 변증법적 전개는 사실 종착점이 없다. 이 점은 기독교 철학과 차별되는 점이다.

헤겔의 엑기스를 변증법으로 보느냐 체계로 보느냐에 대해 분분한 이론이 많이 있어왔다. 하지만 위의 논의를 따른다면 헤겔의 엑기스는 변증법임에 분명하다. 설사 헤겔 스스로조차 분명히 자각하지 못했을지라도 말이다. 체계가 엑기스라면 절대정신에 이르러 헤겔의 체계는 완성되고 더 이상 도달해야 할 세계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나폴레옹의 몰락과 사회주의 실험의 실패에서 주는 교훈은 헤겔의 철학이 변증법적 역동성과 개방성에 있음을 증명한다. 헤겔에게서는 한 발 나아가는 것이 중요한 것이며 그 나아가는 힘과 방법이 중요한 것이다. 그래서 절대정신에 이르는 길은 수많은 갈래가 있으며 정신현상학에서 보여준 역정은 그 갈래의 하나의 예시일 뿐이다. 우리는 그 예시에서 우리 자신의 현실적 삶의 길을 걸어가는 방법과 지혜를 얻어내야 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어떤 학자는 정신현상학의 가장 높은 경지는 마지막 절대정신이 아니라 바로 전 종교 장에서 이미 완성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이러한 개방성과 열려진 모순을 끌어안는 논리는 헤겔에게 미친 동양사상의 영향을 추측케 하기도 한다. 대논리학에서 A와 ~A의 개념적 이중화를 통한 존재와 무의 통일은 불교의 공의 논리와 친화력을 갖는다. 하지만 헤겔 자신은 동양사상의 영향에 대해 인정하지는 않으며 오히려 동양적 정신을 아직 이성의 단계에도 고양되지 못한 즉자적 정신으로 폄하한다. 하지만 헤겔이 서술한 철학사에서 소개되는 중국 고대 사상이나 불교논리학에 대한 이해는 많이 피상적인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러므로 굳이 헤겔과 동양을 엮어 보려는 노력은 별로 영양가가 없을 것이다.

현상知가 점진적으로 현상한다는 사상. 이것은 칸트의 물자체 개념과도 중요한 연관이 있다. 물자체가 비록 알 수 없는 것이지만 현상은 물자체의 현상에 다름이 아니기 때문이다. 미지의 것에 대해서는 칸트처럼 미지의 것을 지각하는 초월적인 특별한 능력을 바라는 것보다 현상으로 드러나는 미지의 베일이 펄럭이는 율동을 관조하는 것이 오히려 현명하다고 헤겔은 판단한 것이다. 이러한 사상은 후에 후설의 현상학과 가다머의 변증법적 해석학에도 이어진다.

이제 헤겔에 이르러 보편 속에 개별이 연역되거나 포함되는 것이 아니라 보편이 개별로 전개해나가는 전체성의 운동 자체가 진리라는 인식에 이르렀다.

 

Marx

포이에르바하와 독일고전철학의 종말에서 맑스는 이렇게 말한다. “헤겔에서는 이성적인 것이 현실적이고 현실적인 것이 이성적이었지만, 이제는 현실적인 것이 이성적이고 이성적인 것이 현실적이다.” 이것은 유명한 “철학은 이제 세계를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변혁하는 것이어야 한다” 라는 맑스의 힘찬 선언으로 이어진다.

맑스는 한 마디로 유물론자다. 철학의 출발을 이성이 아니라 현실로 대체한 위의 선언에서 그의 표현대로 헤겔을 거꾸로 뒤집은 유물론적 근본 입장이 드러난다. 하지만 변증법의 정신은 다른 물적 토대 속에서 맑스에 의해 그대로 실현된다.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라는 격한 말과는 달리 맑스는 실제로 문학과 예술, 그리고 인간적인 의미의 신성성에 깊이 애착을 가지는 사람이었다. 그가 구상한 사회주의 이상사회는 단지 경제적 평등만이 전부가 아니라 경제적 평등을 통한 최소한의 인간적 삶의 조건을 확보함으로써 인간이 자신의 본질과 자유, 그리고 미적 취향을 그야말로 인간성을 실현하는 사회였다. 하지만 시대적 한계로 인하여 산업혁명기의 가장 잔인했던 노동에 대한 착취의 현실에 직면해서는 맑스의 문화적 취향은 사람들의 관심에서 많이 소외되어 읽혀졌다.

어떻게 보면 가장 현실주의자이면서도 목표로 하는 정점은 가장 고상하고 순수한 인간성의 솔직함에 고향을 두고 있다. 왜냐하면 경제적 평등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인간성의 외면이자 소외된 형태인 돈이 인간의 인문적 자유의 가능성을 억압하는 측면을 비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맑스에게는 순수 예술과 현실 참여 예술이 진정성이라는 측면에서 결합한다. 이 점은 현대에서도 예술에 있어서 상업주의와 예술적 창조력의 자율성의 관계라는 측면에서 깊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제 맑스에게서 개별자는 관념적 영역의 개체성이 아니리 실제로 존재하는 현실적으로 만져지는 물질의 개체를 뜻하게 된다. 당연히 이러한 시각의 전환은 현대의 우리에게는 당연하게 느껴질지라도 수천 년의 기독교 문명의 세례 속에서 살아온 서구인들에게는 과학의 혁명적 발전이 아니었더라면 상상하기 힘든 당연함이었다. 어떻게 보면 사실 현대인은 그야말로 유물론자들이다.

철학의 출발을 현실에서 시작한다는 명제는 관념론과 유물론의 대립이라는 세계관적 투쟁에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사실 사회주의가 실패하고 맑스주의 철학이 인기가 없어진 지금에도 격변의 시기에 맑스주의의 세례를 받은 선배 학자들은 학문적 방법론에 있어서 맑스에게 힘입고 있는 바가 매우 크다. 그것은 바로 물적 토대가 상부구조를 결정한다는 교훈이다. 지금의 학문적 풍토가 발전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중요한 요소 가운데가, 바로 논문을 쓰거나 저작을 내거나 할 때 비록 맑스주의와 결별하고 포스트주의적 작업을 진행한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역사적, 물적, 경제적 토대를 무시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확대해석한다면 정말 학문적인 엄밀한 작업들도 고증적 방법이나 문헌학적 방법, 역사적 배경을 반드시 논문에 제시하는 방법을 통해 맑스의 교훈을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학계 외적인 영역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논술시장에서 과거 운동권 출신으로 맑스주의 사회과학 서적을 많이 접한 세대들이 현실과의 생생한 접합점을 찾고 오히려 더 참신하고 구체적인 발상들을 발휘하고 있다. 출판 분야에서도 이런 사회주의 운동의 세례를 받은 세대들의 역량은 두드러지게 발휘되고 있다. 상아탑 속에서의 관념적 자기 만족을 극복하고 있는 것이다.

맑스가 주목한 것은 바로 이러한 실물적 대상들이 움직이는 변즉법적 운동의 원리였다. 그래서 그 시대에 그리고 지금에서도 아직 완전히 해결되지 못한 노동에 대한 정당한 권리 획득의 문제를 자본이라는 즉 돈이라는 실물의 운동 매커니즘을 분석함으로써 해결하려고 노력하였다. 그러한 과업의 결정체가 바로 자본론이며, 헤겔에서의 현상지와 같은 역할을 자본론에서는 상품 장에서 대표적으로 분석한 자본이 대신하고 있다.

맑스를 바라보는 관점으로 대표적인 것을 꼽으라면 인간학적인 실존주의적인 맑시즘과 과학적 맑스주의를 든다. 전자는 사르트르가 대표하며, 후자는 알튀세르가 대표적이다. 시기상으로도 전자의 입장은 주로 공산당선언으로 대표되는 맑스의 청년기 초기 저작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고, 후자의 입장은 자본론에서 확인된다. 전자는 당시 노동 현상의 처절한 인권유린의 실태 속에서 인간의 실존적 권익 확보에 중점이 맞춰져있고 후자는 사회주의 이상사회를 건설하기 위한 구체적이고 주도면밀한 이론적 근거를 과학의 이름으로 정당화하는 과정이다. 그래서 초기의 저작은 변증법적 유물론으로서의 소외이론이 중심을 이루고 후기는 자본주의의 경제적 운동 기제를 파악하기 위한 정치경제학적 노동가치론이 중심을 이룬다.

맑스주의의 키워드를 말하자면 소외와 착취이다. 초기 저작에서 소외란 자신이 자신의 본질인 바의 스스로로부터 소외되는 것이다. 예를 들면 노동이란 본래 인간성과 능력을 실현시키는 성스러운 활동이었던바 본래적으로 인간은 노동 속에서 즐거움과 자아실현의 기쁨을 만끽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고대에서는 노예제라는 신분적 제약 속에서 근대 산업혁명 이후부터는 대량생산과 분업, 노동과 기획의 분리 과정을 통해 노동이 인간성의 실현으로부터 멀어지는 소외의 비극을 낳았다. 그래서 사회주의라는 평등에 기초한 계획 경제만이 인간성으로부터 노동이 소외되지 않는 대안으로 제시된 것이다.

더 나아가 착취의 측면이란 후기의 자본론에서 본격적으로 논구되는 대상으로서 자본주의의 본래적 속성이 착취에 기반하고 있음을 경제학적으로 증명함으로써 자본주의 자체가 결국은 노동 계급의 투쟁에 의해 저절로 붕괴될 것임을 하나의 필연적인 역사적 법칙으로 제시한다. 여기에는 노동가치설에 근거한 불변자본과 가변자본으로 이루어진 자본 구성을 분석하고 자유 시장경제의 본원적 속성에 근거한 평균이윤율 저하법칙을 통해 주기적 공황을 통한 자본주의의 종말과 공산주의 사회의 필연적 도래를 증명하고자 노력하였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증명된 현실을 논외로 하더라도 자본주의는 끊임없는 기술 혁신에 힘입어, 그리고 케인즈 이론에 입각한 사회주의적 복지 체제의 복합적 운용 마지막으로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맑스의 제한된 성찰로 비롯하여 아직도 건재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여기서 새삼스럽게 되새겨지는 철학의 거시적 문제는 바로 세계의 모습의 전체성과 이중성이다. 헤겔에게서 드라마틱하게 전개된 보편과 개별의 변증법적 전개는 전체로서의 세계의 모습이 보편의 전개에 있어서 어느덧 개별의 제약을 겪고 다시 개별을 지양하고 통일한 보편이 사실은 이미 어느덧 개별에 불과하게 되는 세상의 끊임없는 원환운동을 보여준다. 이제 이러한 세계의 무궁무진한 율동 속에서 일견 붙잡으려 해도 붙잡을 수 없는 듯한 신비 속에서 우리는 과연 무엇을 선택하고 결단해야 하는가라는 과제가 과중한 책임으로 다가온다.

출처
[직접서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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