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게시물에서 찾기계획을 하고 떠난 여행과 그 여행기입니다.

52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7/01/10
    강화도(1)
    풀소리
  2. 2006/11/04
    가을, 그리고...(4)
    풀소리
  3. 2006/08/06
    전쟁같은 휴가(5)
    풀소리

강화도

1.

케메라 케이블을 여러 날 잃어버렸다 찾았다. 케이블이 없으니 자연히 사진을 찍지 않게 되었는데, 그것도 제법 편했다. 사실 기록할 만한 일들은 많았지만 마음으로 기쁜 일은 없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케이블을 찾아 사진들을 컴퓨터로 옮기니 지난 12월 24일 강화도에 다녀온 사진들이 나온다. 그러고 보니 다녀온 지도 벌써 보름이 넘었구나...

 


보문사가 있는 정족산성 동문

 

2.

지난 12월 24일은 크리스마스이브이기도 하였다. 운수산별노조 및 통합연맹을 앞두고 휴일이고 뭐고 없는 기간이었지만, 속상하는 일도 많고, 굳이 내가 회의에 참석하지 않아도 되어서 아내가 가자는 대로 강화도에 향했다.


강화도는 내게 참으로 추억이 많은 곳이기도 하다. 80년대 혼자 바람 쐬러 버스를 여러 번 갈아타며 왔던 적이 여러 차례이고, 그 후에도 수시로 왔었다. 기쁜 일도 있었고, 아린 아픔도 있었고...

 


본문사가 있는 정족산성 안은 나무들이 잘 가꿔져 있어 산책하기에도 좋다.

 

80년대 강화도는 참으로 예뻤다. 꼬불꼬불한 2차선 도로 옆으로는 아카시아나 참나무들이 가로수마냥 빽빽했고, 개발이 안 된 자연스런 풍경이 끝없이 이어졌었다. 바다가 있고, 들이 있고, 산이 있고...


지금도 강화도는 다른 곳보단 예쁘지만, 이곳도 막개발의 흔적을 가리고 볼 풍경이란 넓은 갯벌밖에 없을 정도라 눈이 거슬리는 곳이 한두 곳이 아니다.

 


보문사의 정문 역할을 하는 정족산성 남문/ 성벽은 전쟁을 위해 만들어 놓은 것임에도 소박하고, 아름답다.

 

3. 

지금 강화도 가는 길은 굉장히 여러 갈래이다. 강화도로 건너가는 다리는 2개이지만 그 다리까지 다다르는 길도, 그리고 그 다리에서 이어지는 길도 거미줄처럼 여러 갈래이다.


우리는 느지막하게 길을 나서 초지대교를 건너는 길을 택했다. 동행한 사람들은 나, 아내, 성연, 이웃의 경희, 그 아들 상유 이렇게 다섯이다. 딱히 어디를 가야겠다는 목적지가 없는 탓에 난 전등사로 사람들을 안내했다.


아이들이 있으니 우리의 일정은 물에 빠진 게으른 소처럼 굼뜰 수밖에 없다. 전등사를 행선지로 먼저 고른 건 산책길이 좋기도 하거니와 제일 먼저 떠오른 곳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4.

전등사는 정족산성 안에 있는 절로, 역사가 긴 만큼 전설도 많다. 특히 이 절 대웅전 지붕을 떠받들고 있는 나부상(裸婦像)은 전설의 백미이기도 하다.

 


대웅전 지붕을 받치고 있는 나부상/ 지붕 네 귀퉁이에 하나씩 있다.

 

전등사가 처음 세워진 것은 서기 381년이라고 한다. 고구려에 불교가 전파된 이후 햇수로 10년 만에 세워진 절이니, 한반도에 현존하는 절 중에 가장 오래된 절이라고 한다.


그동안 여러 차례 화재가 있어 예전 건물들은 모두 불탔고, 지금의 대웅전 또한 광해군 시절에 불에 타 다시 세운 것이라고 한다.


나부상에 대한 전설은 이때 생긴 것이다. 전설에 의하면 당시 절을 짓던 도편수(건설총책임목수)가 절 밑 마을의 주모와 정분이 났다고 한다. 서로 장래를 약속한 사이로 발전하여 도편수는 주모를 믿고 그동안 받은 임금을 모두 주모에게 맡겼다고 한다. 그런데, 대웅전이 거의 다 지어질 무렵 주모는 도편수를 배신하고, 모아 놓은 재산을 모두 가지고 도망갔다고 한다. 이에 배신감을 느낀 도편수는 도망간 주모의 벌거벗은 상을 만들어 지붕을 짊어지는 저주를 한 것이라고 한다. 또 다른 전설은 기존 전설에 더하여, 도망간 주모가 벌을 받으면서 또 한편으로는 법당의 설법을 들으며 죄를 뉘우치고 극락왕생하라는 기원도 함께 한다는...

 


죽은 사람을 관장하는 명부전(冥府殿)의 지옥의 심판관 시왕(十王)

 

4.

전등사 들머리부터 아이들은 바다가 안 보인다고 불만이었다. 아이들의 불만은 집요한 것이어서 우리는 서둘러 동막해수욕장으로 향했다.


동막해수욕장은 겨울에도 사람들이 많아 한가롭게 여행하기 어려운 곳이지만,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갯벌 중 이곳이 가장 크다는 곳이기에 애착이 가는 곳이기도 하다.


관광지의 값만 비싸고 내용은 부실한 해물칼국수를 먹으면서도 난 불만을 토로하기보단 이곳 특산인 인삼막걸리를 한 병 시켰다. 뭐니 해도 갯벌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시원하게 트인 창문이 맘에 들어서였다.

 


동막해수욕장에서 본 갯벌과 일몰

 

동막해수욕장은 말이 해수욕장이지 갯벌 끝에 모래밭이 조금 붙어 있는, 해수욕장으로는 초라하기 그지없는 곳이다. 다만 갯벌이 좋아 우리는 밥을 먹고 곧바로 갯벌로 나갔다.


바다나 갯벌이나 다 좋아하는 성연이는 눈밭에 뛰노는 강아지처럼 좋아 어쩔 줄 모른다. 그것만으로 좋지 뭐...

 


갯벌에서 조개와 게를 찾는 아내와 아이들

 

5.

강화도가 더 망가지기 전에 계획을 잡고 한번 찬찬히 돌아보고 싶다.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래도 ‘꿈꾸지 않는 건 현실이 되지 않는다.’는 선현들의 말씀대로 꿈이라도 멋지게 꿔봐야겠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가을, 그리고...

출퇴근 길목에 덕양산 행주산성이 있다는 건 내게 행운이다.

사철 계절의 변화를 늘 내게 보여주기도 하고, 퇴근길에 또는 출근길에 느닷없이 오르고 싶은 로망의 여지를 늘 주기 때문이다.

 

단풍이 한창인 덕양산 중턱


아침 출근길에 본 덕양산은 가을이 깊어가고 있었다. 결국 난 참지 못하고 퇴근길에 덕양산 행주산성으로 올랐다.

 

며칠 전부터 기상청은 오늘부터 비가 오고 추울 것이라고 겁을 주었다. 그러나 엷은 안개만 꼈을 뿐 화창하고 온화한 날씨는 일기예보를 멋지게 배반하였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게 아마 지적 활동과 사색하기에 가장 적합하다는 18도 전후의 기온이리라.

 

하루 이틀 온화하고 화창하다고 해서 계절을 돌이킬 수 있는 건 아니다. 이미 낙엽을 모두 떨군 나무들이 이 산의 미래를, 그것도 가까운 미래를 예언하고 있다. 그렇다. 이미 계절은 가을의 끄트머리, 겨울의 초입으로 접어들고 있다.

 

잎새를 거의 다 떨군 벗나무/ 이 산의, 나무들의 머지 않은 미래를 보여주고 있다.

 

겨울을 손꼽아 기다리는 사람들은 정말 행복한 사람이다. 물체와 색감이 지고 또 사라지는 것처럼 가을은, 그리고 겨울은 상실의 계절이기 쉽기 때문이다.

 

몇 년을 무난하고 덤덤하게 이 계절을 맞았던 난, 올 해는 그렇지 못할 것 같다. 100일 치 쑥과 마늘을 짊어지고 토굴로 향하던 '곰 할머니'의 비장한 각오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나도 어쩜 쑥과 마늘을 짊어지고 깜깜한 망각의 토굴로 향해야 할 지 모르겠다. 아니, 벌써 향했는 지도 모르겠다. 11월 1일, 2일, 3일, 4일 ...

 

그렇지만 최악의 경우가 닥치더라도 너무 절망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내 혈관에 흐르고 있는 피의 절반은 바로 '곰 할머니'로부터 받은 것이니, 잘 하면 겨울잠을 자면서 100일을 버틸 수도 있을 터이니 말이다.



카메라 배터리가 간당간당하여 많은 사진을 찍지는 못했다. (결국 중간에 나갔다는...)

 

행주산성 출입문 밖에서 본 은행나무

 

대문을 들어서면 이런 풍경이

 

조금만 올라오면 벌써 단풍이/ 요기쯤 올라오니 어떤 할아버지 한분 하시는 말씀. '지난 주 가본 내장산 보다 좋다!' - 내 얘기 아니니 책임은 못 짐.

 

토성 위로 난 산책 길

 

노란 잎새를 거의 떨군 엄나무



내가 너무나 좋아하는 칡꽃이 피었던 자리에는 어김없이 열매가...



덕양산 정상에서 바라본 한강 하류/ 바다처럼 넓다. - 떠나고 싶은 유혹이...

보통 때는 막아놓기도 하는 중간 계곡, 계단 코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전쟁같은 휴가

1.

어쨌든 다녀왔구나. 못 간 사람들도 많은데...



올 여름휴가도 처가가 있는 진주로 갔다. 지난 8월 1~3일.

아내는 성연이와 함께 전날 먼저 진주로 갔다. 난 다음날인 8월 1일 화정터미널에서 10시 버스를 타고 뒤따라갔다. 내가 사는 고양시는 잔뜩 흐리고 기온도 그리 높지 않았는데, 부천을 지나면서 구름도 별로 없고 햇살이 강하다.


한창 휴가철이라서인지 고속도로가 막히고, 여기저기 찌그러진 사고차량과 다친 사람이 널브러져 있어 휴가 첫날부터 왠지 마음이 흉흉하다.


버스 안은 아이들이 가득이다. 내 주위로만 6명이 몰려 있어 떠들고, 장난치고, 도무지 잠잘 분위기가 아니다. 창문은 햇볕이 들어 커튼을 쳐야 했기에 바깥 풍경을 구경할 수도 없었고, 책을 들어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더욱이 여기저기서 걸려오는 전화는 끝이 없다. 심지어 휴가지인 진주에서도 빨리 내려와 달라고 성화다. 진주에는 내려가는 당일 투쟁 중인 한국노총 소속 사업장 한 곳이 우리 노조로 조직변경을 하겠다고 한 날이어서, 나에게 도와달라는 요청이다.


‘저~, 휴가니까 급한 일 아니면 자체적으로 해결하세요.’

‘예...’


그러나 마음은 편치 않다.

 


삼천포 어시장 해물 좌판

 

2.

진주에 도착하니 아내는 처형네 가족과 삼천포에 다녀오자고 한다. 삼천포는 해물이 풍성하기도 하고, 마침 성연이 체험학습에 사진도 제출하여야 하므로 겸사겸사해서이다. 내가 아내가 기대한 시간보다 워낙 늦게 와 주변 구경도 못하고 곧바로 어시장으로 갔다.


(참고로 삼천포 인근에는 남해로 가는 멋진 다리가 놓여 있고, 남해 본 섬에 이르기까지 3-4개의 섬 주변 풍경도 참 아름답다. 고성 쪽으로는 공룡 발자국 화석으로 유명한 상족암이 있고...)


문어 6마리 2만원, 전어 썰어서 2팩 가득 1만 5천원, 꼬막 한 자루 5천원, 도합 4만원에 혼자 들기 힘들 정도로 푸짐하다. 역시 삼천포는 싸고, 싱싱하고, 푸짐하며, 바가지가 없다.


마침 지역 민주노총에서 내 사정을 고려해 다음날 만나자고 한다. 다행이다. 저녁을 먹고, 문어를 삶고, 전어를 풀고, 술상을 벌였다. 우리 가족, 처형네 가족, 처남네 가족, 푸짐한 술상에 오랜만에 회포를 풀었다.

 

해마다 여름휴가에 물놀이 가는 산청/ 멀리 튜브 타는 이가 아내다.

 


물놀이하는 아내와 성연

 

3.

다음날인 2일. 우리 가족과 처형네 가족은 매년 가는 산청 지리산 계곡에 좋은 자리를 잡겠다고 6시 30분에 출발했다. 난 오전 10시에 있는 신일교통지부 비상대책위원들과 회의가 있어 점심 때 가기로 하고 혼자 남았다.


회의를 마치니 11시를 조금 넘은 시간이다. 회의가 생각보다 일찍 끝났다. 비상대책위원 전원이 모였고, 비로소 각자 할일이 생겼다는 느낌이다. 내가 아니라 그들이 그렇게 느끼는 것 같다는 말이다.

 

물속에서도 숨쉴 수 있는 장비를 쓰고 좋아하는 성연(위)과 수수미꾸리(아래)/ 이 녀석들이 갑자기 물뱀이 있다고 뛰쳐나와 가보니 수수미꾸리 떼가 보를 오르기 위해 몰려 있었다.

 

나는 시협 최희태 사무차장에게 가족들이 가 있는 산청 대원사 계곡으로 데려달라고 했다. 몇 번 만나면서 다른 이들보다 격이 없어진 편이기 때문이다.


가족들이 있는 곳은 의외로 한산했다. 그곳은 지리산 대원사 계곡 국립공원이 시작되는 시점에서 하류로 조금 내려온 지점에 있는 관개용 보 밑이다. 물이 맑은 편이라 이맘때면 물놀이 하는 사람들, 옆에서 고기 굽고 술 마시는 사람들이 빼곡했었다.


‘일찍 온 보람이 없었네.’

‘우리 오니까 아무도 없었어.’

내 물음에 대한 아내의 답변이다.


4.

정말 그렇겠구나. 내가 도착했을 때에도 다른 이들이라야 한 가족밖에 없다. 최희태 차장은 아프다는 핑계(?)로 돌아가고 우리는 곧바로 점심상을 차렸다. 고기를 굽고, 상을 차리고 아이들을 불렀다. 이 녀석들은 발라준 썬크림도 무색하게 이미 아프리카 원주민이 되어 있다.


함께 간 동서와 술 한 잔 하고 있는데, 아내와 성연이가 자꾸 물로 들어오라고 한다. 못 이기는 척 가봤더니 정말 물이 맑다. 예년에도 맑았지만 최근에 내린 장마 덕에 더 맑은 것 같다.

 


물놀이에서 돌아오는 길에서 본 지리산 연봉/ 해가 막 넘어가고 있다.

 

가족들은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물놀이에 신났다. 저녁 시간이 다 되어서야 주섬주섬 짐을 챙기고, 처갓집으로 돌아와 저녁을 먹으니 처남이 왔다. 처남과 이별주를 마시고, 기다리고 있는 진주시협 관계자들을 비롯하여 신일교통지부 투쟁관련 인사들이 모여 있는 횟집으로 가 또 한 잔.


다음날 한낮의 땡볕을 피해 5시 버스를 타고 집으로 오니 밤 10시가 넘었다. 휴가 끝이다. 전쟁같은 휴가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