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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에서 찾기계획을 하고 떠난 여행과 그 여행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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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4/05
    여행2 김성수 별장
    풀소리
  2. 2007/04/03
    선운사(8)
    풀소리
  3. 2007/01/15
    친구들과 함께 한 북한산 산행(2)
    풀소리

여행2 김성수 별장

전편에서도 얘기했지만, 선운사는 동백꽃으로도 유명하다.

그러나 나처럼 번잡한 걸 싫어하는 사람들은 선운사 경내에서 동백꽃을 가까이 구경하기가 쉽지 않다.

절 안으로 물밀듯이 밀려온 관광객들은 대개 동백꽃 울타리 앞으로 몰려가 단체사진을 찍어 매우 번잡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망할 필요는 없다.

아주 한적하게 선운사 동백꽃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 있으니까 말이다.

 

김성수 별장의 호화로운 꽃담

 

선운사에서 마애석불 쪽으로 방향을 잡고, 선운사 담이 막 끝나는 지점에, 오른 쪽으로 작은 오솔길이 있다. 보통 관광객들은 이곳으로 눈길조차 주지 않으니 길이 있는지도 모를 것이다.

 

이 길은 친일파로도 유명한 김성수의 별장에서 끝난다.

별장으로 오르는 길 오른 쪽 산비탈은 선운사 뒷동산 동백숲과 어어지는 곳으로 온통 동백숲 천지이다.

더욱이 이곳은 철책도 없어, 숲속으로 들어가보고 싶은 사람들은 들어가도 누구하나 제지하는 이 없다.

김성수 별장으로 가는 길 옆의 동백숲/ 동박새 소리가 가득하다.

 

꽃이 한창인 요즈음은 이곳은 새소리로 가득하다.

동백꽃은 겨울에 피어 벌과 나비 대신에 새들이 수정을 돕는다고 하는데, 동백꽃의 꿀을 찾아 수정을 돕는 대표적인 새가 동박새라고 한다.

 

동박새(오마이뉴스) 워낙 작고 숨길 잘 해 소리는 들려도 모습은 보기 힘들다.

 

동박새는 워낙 은밀하게 숨어 있어, 경쾌한 울음소리가 숲에 가득해도 눈에 띄지 않는다.

그래도 동박새의 경쾌한 울음소리는 기분마저 가볍게 해준다.

 

김성수 별장.

김성수 가문은 친일과 뗄 수 없는 관계라고들 한다.

그리고 지역의 유력한 지주로써, 선운사의 대시주 중 하나였다고 한다.

얼마나 큰 시주였는지 모르지만, 김성수 가문에서 선운사에 올 때 묶었다는 별장이 있으니, 적어도 큰 시주였음에 틀림 없을 것이다.

길가까지 가득한 시들지 않고 뚝뚝 떨어져 있는 동백꽃/ 누군가는 굽히지 않고 저항하다 스러저간 젊은 전사의 모습 같다고 했던가...

 

김성수 별장은 솟을대문에, 유약을 입힌 기와로 지붕을 하고, 꽃담을 두른 당시로는 호화로운 집이었다. 예전에 왔을 땐 대문을 꼭 잠가놓고 보호를 하였는데, 이번에는 대문이 열려 있었다.

왠일인가 들어가보니 본채가 텅 비어 있었다. 자세히 보니 근자 불이 났었나보다.

무너진 집터를 보니 흥망성쇠는 필연인가보다. 내 생애에 내가 원하는 흥망성쇠를 다 볼 수 있을지 어떨지는 모르지만...

 

불타 주춧돌만 남은 김성수 별장

 

김성수 별장 뒤로는 김성수 할아버지의 무덤이 있다.

부잣집에 장가들어 그 집안이 유력한 지주로 성장하는데 초석을 놓은 이라고 전해오는 이다.

 

김성수 별장 뒷산에 있는 김성수 할아버지 무덤/ 문인석이 당당한 크기에 비해 형식과 전혀 맞지 않는 게 졸부의 허세를 그대로 나타내고 있는 것 같다.

 

김성수 집안은 풍수지리에서 말하는 명당자리에 집착하는 것으로 유명하여, 조상들 묘소마다 전국의 내로라하는 풍수쟁이들의 답사가 끊이지 않느다고 한다.

김성수 할아버지 묘소도 유명한 명당자리라고 하는데, 글쎄 난 모르겠다. 명당이 누구를 위해서 있는 건지.

 

하늘은 무심하다고 했는가. 누가 잘 되어야 하고 못 되어야 하는지는 사람들이 알아서 결정해야겠지. 마애불의 비기를 꺼내든, 죽창을 들든...

 

김성수 별장 굴뚝 옆에 자라고 있는 꽃무릇/ 상사화의 일종으로 선운사의 또 다른 명물로 쳐주기도 한다.

 

<다음은 곰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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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운사

선운사는 꽤나 유명한 절이다.

갑오농민혁명군이 비기를 꺼냈다는 거대한 마애석불에, 노래도 있고, 동백도 유명하고, 욕을 먹는 미당과 관계가 있기도 하고,

한참 답사열풍을 일으킨 유홍준의 [나의문화답사기]의 '완당과 백파선사와의 인연', 추사가 쓴 '백파선사비', 완당이 한 때 아주 싫어했던 '이광사가 쓴 편액'

거기다가 '풍천장어'와 '복분자주'까지...

 

그러나 이번 내 여행길에서 선운사는 곁들여 가는 여정일 뿐이었다.

 

선운사 부도밭/ 백파선사비는 어디로 옮긴 것 같다. 화려한 부도탑보다 난 이런 소박한 부도에 마음이 더 끌린다.

 

선운사는 내게도 늘 기억되는 절이다.

아주 옛날 여자친구랑 밤차를 타고 새벽에 정읍에 내려 버스를 여러 번 이어타며 선운사로, 마애석불을 지나 산을 넘어 해리로, 거기에서 다시 흥덕으로, 거기서 줄포로, 또 곰소로, 거기서 내소사로 하루 종일 다녔던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때는 이월이라 아직도 살얼음이 지피는 계절이었지만, 잘 보호된 참나무 군락들은 봄물이 올라 부풀어오른 잎눈들로 엷은 희뿌연 안개를 덮고 있었지... 마치 새벽서리를 맞은 것처럼...

 

선운사 계곡 냇물/ 건너편은 차밭이고, 개울가에는 오래도록 자연상태로 자란 나무들이 빽빽하다. 긴 협곡을 따라 냇물과 나란히 난 산책길이 매력적이기도 하다.

 

이번 여행은 후배 태하가 날 배려한 여행이다.

한미FTA협상이 막바지에 이르고, 투쟁이 고조되고 있지만, 난 눈을 꾹 감고 미리 예정된 여행을 떠났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떠날 때부터 황사가 가득한데, 남쪽으로 내려갈수록 더욱 짙어졌다. 급기야 선운사에 갔을 때는 호남지역에 황사경보까지 내렸다.

 

황사 때문인지 고속도로도 국도도 모두 한가하여 한적한 여행이 되나보다 했는데, 선운사 들머리부터 그런 기대가 깨지기 시작했다.

그러고보니 선운사 동백이 한창이구나.(아님 끝물인가?) 넓은 주차장은 차량들로 가득하고, 특히 중년 남녀들을 태우고 온 관광버스들이 많았다.

 

선운사 입구 벗꽃 가로수/ 막 꽃을 피우기 시작하고 있었다.

 

주차장에서 선운사에 이르는 길은 말 그대로 난장이다. 막 터지려는 꽃몽우리 가득한 벗꽃길 양쪽으로는 복분자술, 막걸리 등 먹거리를 파는 포장마차가 줄줄이 늘어서 있다.

 

사람들도 번잡하기는 마찬가지다. 사람들이 하도 많아 모래 대신 깔아놓은 잔 자갈을 밟고 지나가는 소리가 귀에 거슬릴 정도로 크다.

 

근처 사람들은 선운사를 별로 쳐주지 않기도 하는데, 아마 사람들이 많아 시장 분위기가 나서 그러하리라. 찾는 사실 사람들이 별로 없다면 나름대로 운치가 있는 절이리라.

 

당당한 법당/ 고색창연하고, 뒷산 동백숲과 목백일홍, 단정한 축대까지 사람들만 많지 않으면 제법 운치있을 것이다.

 

난 이 절집에서 만세루라는 건물을 가장 좋아한다. 건축을 모르니 건축학적으로 말하는 건 아니고, 내게 와 닫는 느낌이 그렇다는 것이다.

 

법당을 마주보고 있는 만세루는 멀리서 보면 아주 크고 당당한 건물이다. 그러나 가까이 가 보면 기둥이며, 서까래, 들보 할 것 없이 빼뚤빼뚤 제멋대로다.

 

만세루는 절집을 짓고 남은 목재를 가지고 지은 집이라고 한다. 물론 전에 있던 목재를 재활용하기도 하고 말이다. 그런 목재를 가지고도 이런 번듯한 집을 지었으니 '재능이나 빈부와 관계없이 모든 인간을 존중'하는 그런 종교관을 표현하는 집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들게 한다.

 

  만세루 기둥/ 삐뜰기는 기본이고, 이어 쓴 기등도 있다.

 

만세루 들보와 서까래

 

법당 뒤로는 동백이 한창이다. 선운사는 동백의 북한계에 해당한다고 한다. 물론 해안을 따라 더 북쪽에서도 피고, 온난화 때문에 더 내륙에서 피기도 하지만, 어쨌든 오랬동안 북한계였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선운사 동백은 수령이 5-600년 되었다고 하는데도 생각만큼 크지 않다. (물론 작다는 얘기는 아니다.)

 

선운사 동백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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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과 함께 한 북한산 산행

1.

오랜만이었다.

고등학교 친구들을 만난 게...

물론 이래저래 따로 만난 친구들은 있었지만, 고등학교 때부터 한결같이 만나왔던 친구들을 함께 만난 건 진짜 오랜만이다.

 

연말, 그 흔한 망년회 자리도 못 만들었던 우리는

신년 산행이나 하자고 하였고, 드디어 어제(1월 14일) 북한산 산행을 했다.

 

오전 9시에 불광역에서 모여서, 구기터널 방향으로 가다 왼쪽 산동네로 올라갔다.

지금은 까마득한 옛날이 되었지만 '장산곶 매'라는 등산패와 산행을 할 때 자주 올랐던 코스이다.

 

비봉/ 응달에는 아직도 눈이 그대로 있다.



2.

옛날을 생각하면서 올라가는데, 등산객이 하나도 없다.

조금 오르니, 산으로 이어지는 달동네는 사라지고 아파트 공사장이 가로막고 있다.

이런! 어디로 오른담...

 

겨우 산쪽으로 비비고 올라가니 온통 새로 만든 철조망이 가로막고 있다. 자연보호 차원에서 등산로를 폐쇄한 것이다.

 

돌아가기엔 너무 멀리왔다. 우리는 그냥 철조망을 넘기로 했다. 마침 우리 같은 사람들이 만들어 놨음직한 사다리가 있다.

 

철조망을 넘으니 곧바로 커다란 암벽이 가로막는다. 처음부터 힘겹고 위험하게 올라 이 길은 안내한 난 미안함 마음이 가시지 않는데, 친구들은 너무나 좋다고 감탄을 한다. 다행이다.

 

본격적인 등산로에 접어들자 일요일이라 역시 사람이 많다.

쪽두리봉은 북한산의 손꼽는 난코스 중의 하나이다. 일단 정상에 올라보니 봉우리를 넘어가는 이가 없다. 겁많은 난 우회하기로 했다. 사실 이곳은 우회등산로도 상당히 험하다.

 

3.

처음 3시간만 산행을 하자는 내 제안에 '뭔 소리냐. 백운대까지 가야한다.'고 우기던 친구가 이제는 땀을 뻘뻘흘리며 지친 기색이 역력하다.

 

비봉까지 가는 길은 북한산 정상까지 가는 길로 치면 초입이지만, 그래도 제법 등산하는 맛이 난다. 오르고 내리는 길이 변화무쌍하고, 암벽과 흙길이 잘 어울리기 때문이다.

 

우리는 가져간 김밥을 가볍게 먹고 하산하기로 했다. 나의 지론인 '비겁한 산행'에 친구들은 흔쾌히 동의했다.

 

고등학교 친구들/ 이 둘이 이번 산행을 같이 한 친구들이다.(2005년에 찍은 사진)

 

4.

우리는 이북 5도청이 있는 구기터널 쪽으로 내려왔다. 이곳으로 내려온 가장 큰 이유는 손두부에 막걸리를 먹기 위해서이다.

 

큰길가에 있는 '할머니집'은 우리가 일찍 내려와서인지 사람이 사람이 없다. 두부김치에 담근 막걸리를 한 주전자 시키니 친구들이 너무 맛있어한다. 하긴 내가 먹어봐도 손두부나 막걸리 모두 일품이다.

 

우리는 오랜만에 만난 탓인지 얘기가 끝없이 이어졌다. 이러저러한 서로 사는 얘기로 시작하여, 세상 돌아가는 얘기로 나아갔다.

 

전에는 서로 사는 방법도 다르고, 서로에 대하여 존중하였기 때문에 우리들은 사실 세상 일에 대한 얘기는 별로 하지 않았었다. 그러나 이제는 자연스럽게 얘기를 할 수 있었다. 그만큼 세상이 어렵기도 하고, 나이가 들어가는 만큼 융통성도 늘고, 좀 더 둥그러졌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이야기기 길어지니 생두부를 하나 더 시키고, 황태찜을 더 시키고, 막걸리를 한통 더 시켰다. 그러는 동안에 할머니집 넓은 객실이 꽉 찼고, 자리가 없어 들어온 손님들이 다시 나가는 이들도 있을 정도다.

 

모두가 만족이다. 좋다. 좋은 김에 매월 한번씩 산행을 하자고 약속을 했다. 약속 지켜질 지는 두고봐야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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