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게시물에서 찾기지친 이들이 쉬어갈만한 작은 얘기들입니다.

208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9/06/29
    먼 곳에서부터(12)
    풀소리
  2. 2009/06/20
    허수경 밤나무(3)
    풀소리
  3. 2009/06/07
    캠핑(4)
    풀소리

먼 곳에서부터

1.

 

오늘은 문득 황매(黃梅)가 보고 싶었다.

정독도서관 정문에서 왼편으로 있는,

얼핏 보면 시멘트와 돌담벼락이 황량한 곳,

그곳이 황매가 늘 피어있는 곳이다.

 

담벼락에 핀 황매

 

 

맘이 편치 안아서인가.

아님 지하철 냉방이 너무 세서인가.

지하철을 벗어나니 비온 뒤끝이라 6월 햇볕이 쨍쨍 내려 쬐는데도

몸은 으실으실 춥다.

 

그래도 풍경이 좋은 북촌을 지나니 다행이었지만,

이곳에 다다르니 이제 몸이 쑤시면서 열이 난다.

 

 

2.

 

이곳의 길 이름은 「그대에게 가는길」이다.

 

「그대에게 가는길」 - 작가 김학량이 황매를 새겼다.

 

「그대에게 가는길」/ 황매가 새겨진 골목에는 시인들의 시들도 군데군데 걸려있다.

시인들 표시 오른쪽이 정독도서관이다.

 

 

예전에도 왔었는데,

그래서 시들을 예전에도 보았는데,

오늘은 여러 시인들의 시 가운데 김수영의 「먼 곳에서부터」가 눈에 뛴다.

 

김수영의 시 「먼 곳에서부터」

 

 

김수영.

난 그의 소시민적 감수성이 가슴에 와 닿는다.

 

시를 보니 아마도 시인은

1년이라는 세월에 그 무슨 일이 있었나보다.

그것은 4.19혁명을 뒤엎은 5.16쿠데타일 수도 있고,

순전히 개인적인 기억일 수도 있겠다...

 

열 나고, 욱씬거리는 몸으로 이 시를 보아서인가,

아님 혼란스러운 심사 때문인가.

어찌됐든 이 시가 가슴에 와 닿는다...

 

 

3.

 

황매가 피어 있는 이 길은

물론 황매만 피어 있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꼬들빼기가,

때로는 장미가,

때로는 수국이,

때로는 능소화가 함께 피어 있다.

 

화강암 축대 돌 위에 선명히 핀 황매 한송이

 

담벼락에 간신히 매달려 피어 있는 꼬들빼기

 

황매 맞은 편 담장 위에 피어 있는 능소화

 

져서 골목길에 떨어진 능소화

 

 

그러나

황매든,

꼬들빼기든,

장미든,

수국이든,

능소화든,

그것을 보는 사람이든,

 

... 이름 없이 홀로 피었다 지기도 한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허수경 밤나무

1.

 

기말고사가 끝났다.

정상적으로는 오늘부터 방학이어야 하지만, 보충수업이 있기 때문에 담주 수요일까진 연수원에 나가야 된다.

그래도 뭐 방학인 셈 치자...

 

 

2.

 

기말고사를 준비하면서 도서관 다니는 길을 바꿔봤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을 덜 만나는 길을 고를까? 하는 고민에서 선택한 길인데,

다니다 보니 너무 좋다.

다름 아닌 철로를 따라 가는 길이다.

 

이제는 여객열차가 다니지 않고, 역사도 폐쇠된 원릉역/ 나는 이번 기말고사를 준비하면서 원릉역을 지나 기차길을 따라 도서관을 다녔다.

 

 

3.

 

우리 동네 고양시 원당은 지금은 새도시 고양시에서 가장 낙후된 동네이기도 하다.

그러나 1980년대에 현대적 의미의 새도시로써 최초에 가깝게 설계된 곳이기도 하다.
 

이곳은 '원당가는 길'로 유명한 허수경 시인이 살았던 동네이기도 하다.

 

기차는 간다.

    - 허수경

 

기차는 지나가고 밤꽃은 지고

밤꽃은 지고 꽃자리도 지네

오 오 나보다 더 그리운 것도 가지만

나는 남네 기차는 가네

내 몸 속에 들어온 너의 몸을 추억하거니

그리운 것들은 그리운 것들끼리 몸이 닮아 있었구나

 

허수경의 시에서 나오는 밤꽃의 주인공은 이 나무인 것 같다. 밤나무만 보면 대단히 큰 거목인데, 고층 아파트에 끼어 커보이지 않는다.

 

 

4.

 

원릉역 앞에는 커다란 밤나무가 있다.

나는 이 나무를 참 좋아한다.

 

산뜻한 봄날씨처럼 달콤한 향내가 진동하던 아카시아꽃에 비해

초여름의 후텁지근한 날씨처럼 결코 좋다고만 할 수 없는 비릿한 밤꽃 냄새가 진동을 하지만,

그래도 한 시대를 풍미한, 내가 좋아하는 감성을 지닌 허수경 시인도 이 나무와 밤꽃과 기차와 철로를 보면서 많은 사색을 했을 거라는 생각에 나도 많은 애착이 간다.

 

그래서 이 나무를 오랫동안 보존했으면 하고,

나아가 이 나무에게 '허수경 밤나무'라는 이름도 붙여주고 싶다.

 

좀 더 예산을 쓴다면 비록 폐역이 됐지만, 원릉역도 '허수경 역'으로 바꿔 조그마한 기념관으로 꾸몄으면 한다.

 

생각을 조금만 바꾸면 못 할 것도 없는데, 고정관념에 가득 찬 기성 정치인들에게는 참 잘 안 되는 게 이런 일 같다.

하긴 산오리가 그렇게 좋아하는 '소진로'도 시에서는 공식적인 이름을 붙이지 않고 있으니 말이다.

 

원릉역 플랫폼/ 여객기차가 끊긴지 오래되어 풀랫폼은 여기저기 깨져있고, 기찻길엔 담배꽁초와 쓰레기가 잔뜩이다.

 

철로변 땅들은 이런 짜투리 땅을 포함해 모두 알뜰하게 개간되어 있다. 역시 자연보다 인간이 더 경이롭기도 하다.

 

허수경의 시 '원당가는 길'에 나오는 '757 버스' 종점 터/ 얼마 전까진 텅빈 빈터였는데, 지금은 주차장으로 이용되고 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캠핑

1.

 

지난 금요일(6월 5일) - 토요일 이틀 동안 가족캠핑을 다녀왔다.

캠핑장은 장흥에서 일영으로 가는 들머리에 있었고,

굉장히 큰 농원인데, 농원과 산 일부를 캠핑장으로 꾸며놓았다.

 

장군 막사처럼 큰 텐트에는 별실도 있다. 전문 캠핑족인 후배 재요는 전기담요도 가지고 다닌다.

 

 

캠핑. 낯선 낱말이다.

그러고 보니 가족캠핑을 한 것은 이번이 첨이다.

 

성연이 학교 다녀온 뒤에 출발했는데,

캠핑장에서는 후배 재요가 땀을 뻘뻘 흘리며 텐트를 치고 있었다.

 

우리가 캠핑준비를 하는 동안 성연이와 상유는 지들끼리 흙을 가지고 놀고 있다.

 

 

짐은 왜 그리 많은지...

그리고 할 일도 참 많다.

옆에서 조금씩 도우면서, 나같이 게으른 이들은 결코 할 수 없는 게

캠핑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잘 할 줄 모르니, 심부름이나 하는 조수역할로 만족... ㅎ

그래도 장작은 제법 만들었다.

 

캠프장 위쪽 물이 쫄쫄쫄 흐르는 작은 또랑이 있다./ 가재도 살고 있다.

 

 

2.

 

주변 또랑에는 가재도 있어

아이들에게 보여주기도 했다.

 

캠핑장 옆이라고는 하지만, 자연은 잘 보존되어 있었다.

주변을 돌아다니니 나도 잘은 모르지만, 나물들이 꽤 많은 거 같았다.

잔대도 있고, 마도 있고, 당귀로 보이는 식물도 있다.

 

마 줄기

 

잔대싹/ 잔대 뿌리는 비슷해도, 싹은 참 여러종류다.

 

당귀? 아닌가???

 

 

아이들은 벌써 배고프다고 난리다.

우리는 밥을 하고, 찌게를 끓이고, 불을 피워 고기와 해물을 구웠다.

밥도, 찌게도, 고기도, 해물도 참 맛있다.

아이들도 즐거워하고, 우리들 수다도 제법 길다~

그러는 사이 짧은 땅거미가 지고, 사방은 갑자기 어두워졌다.

 

저녁부터 밤이 될 때까지, 그리고 밤에도

넓은 농원이 가득 차도록 캠핑족들이 계속 들어왔다.

흠... 일찍 와서 자리잡는 게 이런 이유구나...

우리는 일찍 와서 좋은 자리를 넓게 잡았으니 말이다.

 

그나저나 지금이 여름 맞나?

밤이 되니 한겨울처럼 춥다.

숯불을 걷고, 장작을 넣어 불을 지펴도

앞은 뜨겁고, 등은 춥다... ㅎ

 

싸리꽃

 

열매맺은 산딸기

 

산길에 핀 개망초꽃

 

 

3.

 

아이들이 일찍 잠자리에 든 건 좋았는데,

일찍 잠자리 든 것 만큼 또 아침엔 일찍 일어났다.

 

일찍 일어난 녀석들은 어른들을 못 살게 한다.

그렇잖아도 밤 새워 이야기를 나누던 이웃 텐트의 남자들 때문에 잠을 설친 이들은

아이들 성화에 하나들 나왔고,

하나같이 얼굴이 부어있었다.

 

캠프장에서 개울 가는길

 

 

나는 성연이를 데리고 주변 산책을 갔다.

캠프에서 조금 걸어가니 커다란 개울이 나왔다.

장흥계곡에서 내려온 개울인데, 보기에는 물이 맑다.

 

개울과 징검다리

 

징검다리/ 징검다리 위쪽 물속에 보이는 수초가 '말'이다.

 

개울 상류쪽 풍경

 

 

징검다리가 있고,

징검다리 옆 물속에 수초가 있어서 자세히 보니 '말'이다.

말은 깨끗한 물에서 자라는 수초로

말려서 튀겨먹으면 참 맛있는 반찬이 되기도 한다.

 

'말'/ 말려서 볶으면 아삭아삭한 게 과자같기도 하다.

 

 

어렸을 때 보고 이제서 보니 너무나 반가워 조금 뜯어서 맛이라도 보고싶건만,

수질 상태를 알 수 없어 포기하고 말았다.

 

 

epilogue

 

나는 약속이 있어서 아침만 먹고 나왔다.

 

나중에 들어보니 성연이가 엄마랑 같이 개울에 가서

위에 있는 '말'을 비롯하여 여러가지 '설명'을 해줬다고 한다.

 

같이 한다는 것은, 그렇게 '추억' 이상의 뭔가를 남기는 것 같다.

특히 엄마, 아빠랑 함께 한다는 것은...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