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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채구> 물빛이 장난이 아니다

 

결국 구채구를 간다. 청두에서 10시간이나 걸리는 거리이긴 하지만 어차피 청두에서 갈 수 밖에 없는 곳인데다 그 고질병.. 지금 아니면 언제 또 가겠어 하는 맘이 결국 구채구로 가는 버스를 타게 만든다. 가는 길에 아주 송판까지 들렀다 올 예정이다. 송판은 말트레킹으로 유명한 곳인데 대체 어찌된 일인지 중국 여행 석달 동안 말을 한 번도 못 탄데다 앞으로 갈 티벳도 말 탈일은 없어 보여 한번은 타 보자 하는 맘이다. 코끼리는 태국에서, 말은 중국에서, 낙타는 인도에서^^ 그래도 한번씩은 타봐야 하지 않겠냐 말이다. 무엇보다 애매한 건 비자인데 라오스에서 받은 두달짜리 비자가 어느덧 만료 기간이 두 주 앞으로 다가온 것이다. -리장에서 너무 놀았다니^^- 바로 티벳으로 떠나면 두주 안에 티벳을 떠나야 한다. 티벳에서는 비자 연장이 짧으면 삼일, 길어야 일주일이라는데 네팔의 정치 상황도 불안정하다는데 비자까지 빠듯하면 맘이 더 조급해질 것 같고 청두에서 연장하자니 만료 기간이 일주일 정도 남아야 비자 연장이 가능하다니 비자를 연장하자면 일주일 정도는 더 기다려야 하는 셈이다. 이래저래 티벳 가는 길은 참 멀기도 하다.


구채구 가는 길도 절대 만만한 길은 아니다. 게다가 이제 진이 다 빠졌는지 10시간 버스 타는 일이 곤혹스럽기만 하다. 창 밖도 보는 둥 마는 둥 꾸벅꾸벅 졸다가 깨다가 구채구 입구에서 내린다. 요금은 4월 1일부로 성수기 체계로 바뀌었다는 데 저녁 무렵이라 그런지 숙소로 가득한 구채구 입구는 한산하기 짝이 없다. 날씨도 청두보다는 훨씬 더 추운 것 같다. 결국 버스 내리는 데서 삐끼를 따라 60원짜리 호텔에 들어간다. 썰렁하긴 해도 뭐 호텔은 호텔인 듯 시설은 그럭저럭 봐 줄 만한데 시간제로 나온다는 온수가 영 시원찮다. 결국 처음엔 더운물이다 중간에는 미지근한 물로 바뀌어버린 온수 앞에서 샤워를 하다 말고 대략 난감해진다. 역시 삐끼는 따라오는 게 아닌데 방 돌아보는 것이 귀찮아 따라나선 것이 결국 이 모양이다. 그래봐야 하루 밤이긴 하지만 방도 왠지 썰렁한 것이 영 춥다.


다음날 구채구 내에서 하루밤 묵을 요량으로 짐을 모두 들고 숙소를 나선다 -원래 청두에 짐을 맡겨 놓고 작은 배낭 하나만 지고 오긴 했지만 이것도 무게가 꽤 나간다- 입장료 비싸기로 유명한 중국 중에서도 구채구는 거의 최고의 입장료를 자랑하는데 공원 내의 교통비를 포함해 무려 310원(4만원 정도다)이나 한다. 가짜 학생증을 내미니 50원이 할인된다.^^ 이 표로 이틀을 볼 수 있는데 다음날도 보겠다고 미리 말하면 다른 사람들이 쓰지 못하도록 입장권에 디카로 찍은 사진을 대문짝만하게 인쇄해서 준다. 입장권을 끊고 들어서니 공원 입구에 버스가 대기해 있다. 공원은 한 길로 쭉 이어지다가 중간쯤 되는 지점에서 동쪽과 서쪽으로 갈라진다는데 이 버스가 어느 쪽으로 가는지는 모르니 그저 운에 맡기기로 한다. 버스는 원래 하루를 묵으려고 했던 중간지점을 지나 동쪽으로 들어선다. 그러더니 한참을 달려 동쪽 끝 호수 입구에서 사람들을 내려준다. 멀리 설산이 보이고 산 아래 예의 그 쪽빛 호수가 펼쳐져 있다. 사진에서 본 그 물빛 그대로다.


동쪽 끝의 호수인 장해


오색 연못, 비수기긴 해도 사람은 여전히 많은 것 같은데 성수기엔 발디딜 틈도 없단다.

 

호수를 따라 이어진 길을 걸어 또 다른 호수를 둘러보고 다시 버스를 타고 중간 지점으로 내려온다. 이쯤에서 숙소를 정하고 배낭이나 맡길까 하고 중간 지점 근처에 있는 장족 마을 근처를 둘러본다. 가이드북에 따르면 침대 하나당 20원 정도면 된다는데 마을 안은 여전히 비수기인 듯 사람의 그림자도 찾아볼 수 없다. 아서라.. 여기도 해지면 많이 우울하겠다 싶어 그냥 공원 앞에서 하루 더 묵기로 맘을 바꿔먹는다. 중간 지점에서 33원짜리 뷔페로 점심을 먹고 이번엔 서쪽으로 가는 버스를 탄다. 가이드북에 따르면 서쪽 길이 볼거리가 더 많다는데 과연 올라가는 길 주변이 온통 푸른빛의 호수다. 끝까지 가서 천천히 걸어 내려와야겠다 생각하고 올라간 꼭대기 호수에서 한국 남자 둘을 만난다. 한국사람 없는 동네에선 인사만 해도 무척 반가워한다. 이 둘도 조합은 좀 이상한 조합인데 여튼 숙소에 방도 남는다며 잘데 없으면 재워준다고도 하고 다음날 신선지라는 현지인들만 아는 근사한 장소에도 같이 가자고 뜻밖의 호의를 보인다. 안 그래도 내일 그냥 송판으로 갈까 어쩔까 생각하던 참이라 신선지나 따라갈까 싶다. 여튼 그 양반들이 동쪽을 안 봤다고 해서 저녁 무렵에 공원 입구에서 만나기로 하고 헤어진다.


서쪽 길에 있는 호수 중 하나, 물에다 무슨 짓을 했길래 빛깔이 저런지 모르겠다^^


여기도 마찬가지.. 사진보다 직접 보는 게 더 이쁘다.


접니다요^^


원래 이틀을 보려고 설렁설렁 다니던 발걸음이 바빠진다. 서쪽 호수 끝에서 걸어 내려오니 시간이 꽤 걸리는데 아직 중간지점에서 입구에 이르는 길도 못 가봤는데 벌써 약속시간이 다 되어간다. 괜한 약속을 했나 싶기도 해서 중간에 내려 호수와 폭포를 하나 더 보고 약속시간을 제법 넘겨 입구에 도착한다. 갔으면 그만이다 싶은데 어라 이게 웬일인지 기다리고 있다. 결국 그 양반들이 묵고 있다는 호텔까지 같이 간다. 현지에서 고사리를 수거해서 한국에서 파는 아저씨와 퇴역군인 -이 둘은 중국으로 오는 배에서 만났단다- 그리고 고사리 아저씨의 중국 운전기사 셋이 일행이다. 원래 방을 셋 잡았는데 하나를 비워준다. 어지간하면 그냥 돈내고 따로 방을 잡을까도 싶었지만 그 호텔 방값이 200원이나 한다기에 그럴 엄두도 나지 않아 못 이기는 척하고 그냥 그러기로 한다.


그때부터 일이 복잡해진다. 뭐 처음 사연이야 내 알바 아니지만 중국으로 오는 배에서 만나 이런저런 사유로 일주일가량 일을 겸해 같이 다닌 이들은 이미 서로 감정이 상할 대로 상해있는 상태다. 고사리 아저씨는 어차피 일 때문에 다른 곳으로 가야 하는 상태라 퇴역 군인 아저씨가 송판 간다는 내게 신선지에 들렀다가 같이 송판으로 가자는데 싫다고 할 수도 없어 그러자고 한다. 다음날 아침 일어나보니 전날밤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신선지에 들렀다 가는 일정도 이미 어긋나 있고 고사리 아저씨는 제 갈 길로 가고 군인아저씨는 바로 송판으로 가자고 한다. 좀 황당하지만 어차피 가는 길이니 큰 문제는 아니다 싶어 그러기로 한다. 결국 끝이 좋지 않다, 거의 싸우다시피 헤어지는 일행을 보니 이 군인아저씨랑 같이 다닐 일이 걱정이 된다. 에구.. 그래도 말트레킹 하려면 일행이 있는 게 낫겠다 싶어 일단은 같이 송판으로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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