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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5/11/20
    <프놈펜2> 다시 혼자가 되었다.(7)
    제이리
  2. 2005/11/20
    <프놈펜1> 첫날부터 우울한 풍경이 계속된다.
    제이리
  3. 2005/11/20
    베트남여행경비 총정리(6)
    제이리

<프놈펜2> 다시 혼자가 되었다.

다음날 일행들이 아침 일찍 일행들이 앙코르와트로 떠난다. 잠시 따라갔다가 다시 돌아와 시하눅빌쪽 국경으로 빠질까 하는 생각도 안해 본 건 아니지만 언제 헤어져도 헤어질 건데 이삼일 더 같이 있는 게 뭔 소용이랴 싶어 그냥 혼자 남기로 한다. 창문도 없는 3불짜리 싱글룸으로 방을 옮기고 우두커니 침대에 앉아 있자니 괜시리 마음이 쓸쓸해지는 것 같아 좀 덥더라도 움직여 보기로 한다. 캄보디아로 넘어오니 날씨가 제대로 더워지기 시작하는데 한낮에는 움직이기가 쉽지 않다. 거리로 나서니 햇살이 따갑다. 그저 그늘을 골라 밟으며 지도대로 왕궁이 있는 곳으로 걸어가 본다.


먼저 나란히 붙어있는 박물관과 왕궁을 둘러본다. 박물관은 그 외관부터 앙코르의 유적인 반따아이 스레이를 본떠서 만들었다는데 내용물도 거의 앙코르와트의 유적들로 채워져 있다. 그저 조상의 유적으로 먹고 사는 나란가 싶은 게 어제의 영향인지 맘이 곱게 먹어지지가 않는다. 그 맘은 왕궁까지 이어져 제법 규모있게 지어진 왕궁을 보고도 국민들을 죽어가는 데 지 혼자 잘 먹고 잘 살았네 하면서 비아냥거리는 맘만 든다. 다음에 프놈펜에 오는 분들은 킬링필드와 뚜얼슬랭은 마지막날 가시기를 권해드린다. 뭘 봐도 겹쳐 보이는 게 후유증 생각보다 오래 간다--;: 왕궁을 나와서도 계속 걷는다. 걷다보니 프놈펜이라는 수도 이름의 유래가 되었다는 왓프놈 사원이 나오고 호수 주변에 형성되어 있다는 조그만 여행자 거리도 나온다.


국립박물관. 외관이 반띠아이 스레이와 비슷하다.


왕궁 내에 있는 실버파고다. 바닥이 은으로 깔려 있어 그렇게 부른단다.


근데 이놈의 호수도 참 문제인 게 도대체 주변에서 호수를 바라볼 수가 없게 되어 있다. 어느 나라건 호수 주변은 벤치도 놓여 있고 사람들도 좀 나와 앉아 있고 하기 마련인데 호수를 주변으로 건물이 빙 둘러서 있어 도무지 호수 쪽으로 진입이 가능하지 않을 뿐더러 거기 호수가 있는 지 없는 지도 모르게 되어 있더라는 거다. 여행자 거리 쪽으로 한참을 들어가 카페에 들어서고 나서야 호수가 눈에 보인다. 콜라 한병을 시켜놓고 앉아있으니 호수가 전부 시야에 들어오는 게 풍경이 그만이다. 호수 주위에 건물이 있는 사람들이야 이보다 좋을 순 없겠지만 다시 뭐 이런 나라가 있나 싶어진다. 후유증 오래 간다니^^


호수 주변의 까페들


마침 내가 머문 기간이 캄보디아 최대의 축제인 워터페스티발이 시작되는 날이라 담날은 강변으로 나가 본다. 워터 페스티발은 각 지역에서 모인 사람들이 카누같은 배를 저어 누가 빠르나 경주하는 게 주 내용인데-TV에서 생중계도 한다- 이미 강변에는 노점상이며 응원하는 사람들로 한창 축제 분위기다. 나야 경기에는 관심이 있을 리 없고 그저 축제분위기에 휩쓸려 이리저리 다녀본다. 가족들의 손을 잡고 나온 나들이객이며, 삼삼오오 몰려다니는 젊은이들이며 모두 환한 표정들이다. 프놈펜에 도착하고 나서부터 누군지에게 모르게 화가 났던 마음이 조금씩 풀리기 시작한다.


워터페스티발, 경기 준비가 한창이다.


응원도 한창이고


거리는 축제 분위기다.


거리에는 여전히 팔다리 잘린 구걸하는 아저씨들이며, 아이를 주렁주렁 달고 배가 고프다는 시늉을 하는 아낙네들이며, 하루 종일 팔아도 돈 될 것 같지 않은 조악한 기념품 따위를 파는 열 살도 안 됐을 것 같은 아이들로 넘쳐나지만 그래도 사람들은 그저 살아가고 있고 살아가려고 애쓰고 있는 것이다. 그리 생각하니 심하게 귀찮다 싶은 오토바이 아저씨들의 호객행위도 그럭저럭 견딜만해진다. 그러고 보니 캄보디아에 들어오고 부터는 숙소비니, 차비니 따위에 크게 신경이 곤두선 적이 없는 것 같다. 사람들은 눈에 띄게 친절하진 안하도-베트남인의 아니 베트남 상인의 친절은 너무 속이 빤히 보여 그리 좋게 느껴지진 않았다- 어딘지 모르게 순박한 구석이 느껴진다. 한나절을 강변에서 보내고 숙소로 돌아오는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워터페스티발에서 만난 캄보디아 소녀의 웃음이 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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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놈펜1> 첫날부터 우울한 풍경이 계속된다.

프놈펜에 도착한 날 구찌 투어에서 만난 여자친구 2명이 합류해 일행이 다섯이 된다. 그래봐야 넷은 하루정도 프놈펜을 돌아본 뒤 모두 앙코르와트로 갈 예정이라 일행으로 같이 보낼 시간은 단 하루다. 일행은 도착하자마자 시내와 근교를 포함한 하루투어를 신청한다. 시간이 없을 땐 비용이 좀 들더라도 투어를 신청하는 편이 시간을 절약하는 방법이긴 하다. 나야 어차피 이삼일에 슬슬 돌아볼 생각이라 그냥 숙소에서 쉴까하고 있는데 인원수가 안 차서 투어가 무산되었단다. 프놈펜의 볼거리 중에서 유일하게 걸어갈 수 없는 거리에 있는 킬링필드를 툭툭을 섭외해 간다길래 나중에 혼자 갈 생각 하니 그도 썩 내키지는 않는데다 같이 움직이는 편이 비용면에서도 나을 것 같아 킬링필드와 뚜얼슬랭 박물관만 동행하기로 하고 일행을 따라나선다.


킬링필드로 가는 길에 바라본 ,프놈펜 시내는 한나라의 수도라기보단 그저 지방도시 같다. 한나라의 수도에 시내버스도 미터택시도 없고, 길도 중앙도로 몇 개를 제외하면 대충 비포장도로다. 그나마 아침에 두어시간 내린 폭우로 군데군데 도로가 잠겨 있다. 그래도 우리를  태운 툭툭은 물웅덩이를 이리저리 피해 한 삼십분을 달린 끝에 킬링필드 앞에 내려준다. 킬링필드로 불리는 이곳은 프놈펜에서 약 15킬로 떨어진 곳에 있는 쯔엉아익이라는 곳으로1980년에 발견된 폴폿 정권의 집단학살지인데 이곳에만 약 8,900여구의 시신이 집단 매장되어 있었다고 한다. 킬링필드에 들어서면 일단 위령탑이 먼저 눈에 들어오는데 80m 높이의 위령탑 가득히 유골이 전시되어 있다. 마음이 서늘해지는 한편으로 굳이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 맘이 복잡해진다.


킬링필드내의 위령탑


위령탑 가득 유골이 들어있다. 정작 캄보디아인들은 영혼이 좋은 곳에 가지 못한다고 해서 좋아하지 않는다는데 무슨 마음으로 유골을 저리 쌓아 둔 것일까  


위령탑 근처의 들판에는 여기저기 웅덩이가 패여 있고 적게는 수십 구에서 많게는 수백 구까지 시신이 발견된 곳이라는 팻말이 붙어있다. 그나마 아직 수습되지 않은 혹은 수습하지 않은 옷가지며 뼈들이 바닥에 그대로 방치되어 있어 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등골이 서늘해진다. 그나마 학살지 여기저기에 유남히 까만 캄보디아 아이들이 관광객들을 따라다니며 “핼로핼로원투쓰리스마일.. 핼로핼로원투쓰리스마일..” 하며 표정도, 억양도 없이 계속 중얼거리는데 -통역하자면 사진을 찍혀줄테니 돈을 달라는 소리다- 거짓말 안 보태고 그 소리 그대로 따다가 단편영화 사운드로 쓴다면 어지간한 괴기영화 한편쯤은 사운드만 가지고도 제작이 가능하겠다 싶은 게 영 오싹하다. 그나마 학살의 현장을 이렇게라도 남겨두고 교훈을 삼으려는 것일까.. 시간이 조금 더 되었다 뿐이지 만만치 않은 학살의 역사를 가졌으나 어느 한곳도 제대로 보존은커녕 진상조차 밝혀지지 않은 우리나라의 근현대사가 문득 겹쳐진다.    



아직 수습하지 않은 뼈들이 땅위에 그대로 드러나 있다.


한때 집단 매장지였던 웅덩이에 이제 나팔꽃이 핀다.


무거운 마음으로 킬링필드를 나와 찾아간 곳은 뚜얼슬랭 박물관이다. 말이 박물관이지 이곳역시 학살의 현장이다. 이곳은 원래 뚜얼슬랭 고등학교였던 곳을 크메르루즈가 21보안대 건물로 사용한 곳으로 전 정권의 관리들에 대한 심문장소와 고문장소, 그리고 나중에는 정적들을 숙청하기 위한 곳으로 이용되었던 곳이라고 한다. 크메르루즈의 통치 기간인 1975년 4월에서 1979년 1월까지 2만명이 들어가서 불과 6명이 살아 나온 악명 높은 장소였단다. 뚜얼슬랭 박물관 입구에 도착하니 다시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비는 내리는데 철조망이 쳐진 건물의 스산함이라니.. 들어가니 심란함이 하늘을 찌른다. 사진 위주로 전시된 전시관에는 고문의 흔적이 역력한 시신들의 사진을 필두로 이곳에 끌려와서 찍힌 듯한 사람들의 사진이며 심지어 사형집행 직전의 사진까지 온갖 사진들이 건물 한층을 가득 메우고 있다. 전시야 이후 정권이 했겠지만 사진을 찍은 사람들이야 가해자 당사들일텐데 무슨 마음으로 이렇게 생생한 사진을 낱낱이 찍어 놓았을까.. 옆건물로 옮기자 고문실로 쓰인 곳이 나온다. 교실크기의 반 정도 되는 방에는 철제 침대와 고문 도구가 놓여 있고 벽에는 그 침대 위에서 죽어간 시신의 사진이 걸려 있다. 이런 고문실이 일층에만 7-8개가 있고 그것도 모자라 이층으로 이어진다. 더는 보지 못하고 그냥 건물을 나온다.


뚜얼슬랭에서 희생된 사람들의 사진. 남녀노소가 따로 없다.



고문실. 시신의 사진이 걸려있다.


나머지 건물들도 그저 우울하고 음산하기만 하다. 방 하나에 한사람이 간신히 들어갈 있을 만큼 벽돌로 칸을 나눠 둔 감금실이며, 한때는 유골들로 캄보다아 지도를 채워 전시했다가 비난 여론에 밀려 이제는 그저 캐비넷에 담아둔 유골들을 돌아보다가 마지막 방에 이르자 살아나온 사람들의 지금의 모습이 담긴 사진이 걸려 있는 방이 나온다. 끌려 온 사연도 가지가지지만 대부분 영문도 모르고 끌려왔다 모진 고문 끝에 운좋게 살아남은 사람들이다. 여기서 죽어간 사람들도 살아있다면 그저 보통사람들로 늙어 갔겠거니 싶은 게 마음 한켠이 아려온다.    


살아나온 사람들, 왼쪽 아래가 끌려간 당시고 큰 사진이 현재의 모습이다. 


박물관을 나오자 비는 어느새 그쳐 있다. 일행들도 마음이 무거운지 말이 없다. 그저 다른 소리나 하다가 밥을 먹고 일행들과 헤어져 숙소로 돌아온다. 혼자 있는 오후 내내도 마음이 편치 않다. 프놈펜에서의 우울한 첫날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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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여행경비 총정리

 여행경비 총정리시리즈 2탄 되시겠다. 뭐 여행씩이나 다니는 와중에 돈정리 따위나 하고 있나 하는 생각하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그저 취미 생활이겠거니 이해하시라. 그래도 나름 재미있다니.. 못 믿겠거든 오늘부터 가계부라도 써 보시든가.. 아님 그러려니 하시라.


먼저 베트남비자 중국에서 받았다. 중국돈 400원

우리 돈으론 5만 2천원쯤 된다.

근데 이게 이상한 게 캄보디아에서 받으면 30달러니까 3만원쯤인데 중국과 뭔 차이가 이리 많이 나는지 도대체 비자피의 기준이 뭔지는 모르겠다. 그 나라 소득 수준과 연관이 있는 것일까 아님 나라마다 상대적으로 금액을 책정하는 것일까.. 아무래도 후자일 듯 싶은데 그렇다면 한국인은 한국에서 발급받는 금액을 동일 적용해야 하지 않나.. 잘 모르겠다. 


각설하고 베트남에서 머문 총 29일 동안 쓴 돈은 7,185,300동이다. 뭐 기분상은 한 칠백만원 쓴 것 같지만 베트남은 돈단위가 너무 커서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그리 많은 금액은 아니다. ATM 수수료 포함해서 대략 10,000동을 우리 돈 700원쯤으로 계산하니 얼추 맞아 떨어지는데 이렇게 계산하면 대략 500,000원 정도를 쓴 셈이 된다. 이걸 29로 나눠 보면 하루에 만칠천원 조금 더 쓴 셈인데 중국보다는 조금 덜 들었다. 그래도 에어컨룸은 아니라도 거의 싱글룸으만 다녔고 먹는 것도 베트남이 좀 나았다는 걸 감안할 때 중국보다는 베트남 물가가 조금 싸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이번에도 분류 들어간다.


1등은 중국에서 1등을 차지했던 교통비를 제치고 투어비가 차지한다. 이건 중국에서는 없던 항목인데 대략 교통비, 식비, 입장료 등이 섞여있는 항목되겠다 1,990,700(약 139,349원)

2등은 숙박비가 차지한다. 1,626,400동(약 113,848원)

3등은 식대 및 간식 그리고 음료비가 차지했는데 1,536,000동(약 107,520원)이다. 날짜가 베트남이 며칠 적은데도 중국과 비슷하게 나온 걸 보면 중국에서는 거의 먹지 않던 과일쥬스나 커피 등의 음료에서 차이가 난게 아닌가 싶다.

4등은 교통비다. 1,143,000동(약 80,010원) 이건 사실 교통비의 일부이고 나머지는 투어비에 포함되어 있다고 봐야하며 이 비용은 그저 도시간의 이동이나 오토바이 비용 정도의 합산이라 할 수 있다.


그 외 잡비들

담배 및 맥주 477,900(=33,453)

인터넷 104,000(=7,280)

생필품 99,400(=6,958)

말 그대로 잡비 : 세탁, 전화, 팁 등등 207,900(=14,553)


뭐 전체적으로 베트남도 원래 생각했던 비용보다는 조금 덜 든 셈인데 동남아시아는 대략 비슷한 수준이 아닐까 싶다. 이 정도면 한국에서 쓰는 용돈 정도의 비용으로 먹고 자고 한 셈인데 어떠신가들.. 이 정도면 하던 일 때려치우고 날아오셔도 괜찮지 않겠는가? 아니다. 날아오는 비용이 만만치 않겠구만^^


달랏의 광쭝저수지. 별 짓을 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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