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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5/11/15
    <메콩델타> 국경을 넘다.(12)
    제이리
  2. 2005/11/15
    <카오다이-구찌> 또 투어를 가다(5)
    제이리
  3. 2005/11/15
    <호치민> 베트남의 마지막 도시로 오다.(2)
    제이리

<메콩델타> 국경을 넘다.

 

결국 일행들의 일정에 따라 예정보다 하루 빨리 베트남을 떠나기로 한다. 메콩델타를 돌아보는 투어는 메콩델타를 지나 캄보디아 국경을 넘는 것으로 대체하기로 하고 1박 2일짜리 투어를 신청한다. 이렇게 되면 사람들이 육로로 흔히 넘는 목바이 국경이 아니라 쩌우독 국경을 넘어야 하는데 이 국경은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비자 발급이 안된단다. 1달러를 수수료로 내고 캄보디아 비자를 대행한다. 오토바이를 타고 대사관에 갔다오는 비용이나 수수료나 거기서 거기긴 하지만 배낭여행자 의식(?)이 발동 잠시 이래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다가 가볍게 뭐 어때 그럴 수도 있지.. 생각을 바꾼다. 점점 게을러지는 것이 이젠 어디가 1달러라도 싸나 하면서 다니는 발품도 팔기가 싫어지는 게 다 더운 날씨 탓이지 싶다.


일행이 있어서인지 베트남 남부 지방부터는 시간이 너무 빠르게 흘러간 것 같다. 막상 호치민을 떠나려니 뭔가 두고 온 것 같기도 하고, 이렇게 가면 안 될 것도 같은 게 묘한 아쉬움이 느껴진다. 그래도 짐을 싸고 투어 버스에 올라탄다. 버스는 두어시간을 달려 메콩강가에 사람들을 내려놓는다. 거기서 다시 보트를 갈아타고 코코넛 캔디를 만드는 곳이며, 라이스 페이퍼를 만드는 곳이며 -죄 가내수공업 수준의 제작 공정이다- 몇 군데를 보여주더니 다시 보트에 태워 메콩강을 흘러간다. 메콩강은 중국, 라오스, 캄보디아, 베트남을 거쳐 흐르는 거대한 강인데 이것이 베트남으로 와서 바다에 이르기 전 거대한 삼각주를 형성하게 되는데 이것이 메콩델타라 부른다고 한다. 메콩강이라면 이전 라오스에서 스피드보트-말이 스피드보트지 나룻배에 모터를 장착한 매우 작고 시끄러운 배다- 7시간이나 탄 경험이 있어 그런지 강가의 풍경들도 그만그만하다. 배는 육지에 닿고 다시 버스로 갈아타 서너시간을 달리니 국경도시 쩌우덕이다.


배에서 본 메콩델타1


배에서 본 메콩델타2


쩌우덕 가는 길은 이때까지 본 베트남들의 모습들과는 사뭇 다르다. 군데군데 강이 펼쳐져 있어서 그런지 수상 가옥들도 종종 눈에 띄고, 벼가 자라는 마을이며, 동네 어귀에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며, 강가에서 빨래를 하는 모습이 그저 70년대쯤의 우리네 시골로 시간을 돌려놓은 것 같다. 버스를 향해 손을 흔드는 어린 아이들의 웃음도 그저 맑기만 하다. 쿠의 비웃음이 눈에 선하지만 별 쓸 말이 없는 고로 가이드북에 나와 있는 고향이 쩌우독인 한 시인의 시를 인용하기로 한다. 물론 가이드북에는 해석도 되어 있지만 여러분들의 영어실력을 너무 무시하는 행위가 될까봐 해석은 생략하오니 알아서 해석하시도록..


Thinh's story


when I think of Vietnam

I don't think of naplam

I don't think of a war

when I think of Vietnam

I just think of Chau Doc

where I grew up


길에서 만난 아이들


쩌우독에서 하루밤을 묵고 다시 보트를 탄다. 투어의 일정이 아직 안 끝났는지 이번엔 작은 나룻배를 타고 액젓 만드는 곳과 쌀로 만드는 강정 따위를 만드는 공정을 보여준다. 나룻배는 주로 두명씩 태우고 여자들이 뒤에서 배를 저어 가는데 이미 땀꼭에서 경험한 바 팁을 요구할 것 같은 불길하나 예감이 든다. 그러나 베트남동은 이미 죄다 담배로 바꿔버려 한 푼도 없는데다 담배를 팁으로 줄 수도 없는 노릇이어서 일행에게 돈을 좀 빌려야 하나 하고 있는데 먼저 내린 배에서 배젓는 아낙네 하나가 이만동 짜리를 양손에 하나씩 들고 흔들고 있다. 또 어떤 정신 나간 서양애가 팁을 저렇게 많이 줘서 사람 난처하게 하나 투덜거리면서도 일단 돈이 없으니 그냥 내린다. 어차피 그 보트가 몇군데 들리니 팁을 주더라도 마지막에 줘야 할 것 같은 생각도 있다. 그런데 다음 목적지로 가니 다른 아낙네가 똑같은 짓을 한다. 아.. 작전이었구나 싶다. 결국 마지막에 일행에게 빌려서라도 팁을 좀 주려던 마음을 바꿔먹고 그냥 내린다. 참 가지가지 하는 나라다.


나룻배, 사람이 직접 젓는다.


이제 국경을 넘을 시간이다. 다시 큰 보트로 갈아타고 잠시 내려 국경을 넘는다. 대략 짐작은 했지만 새까맣게 몰려있는 구걸하는 애들과 환전상들을 헤치고 강가에 있는 소박한 국경사무소에서 간단히 국경을 통과하고 이번에는 캄보디아 보트로 갈아탄다. 보트에 적혀 있는 코카콜라 2000에 뭔 물가가 이리 싸나 잠시 당황하다 아.. 단위가 동이 아니라 리엘이구나 생각하니 국경을 넘은 실감이 조금씩 나기 시작한다. 보트는 하염없이 메콩강을 달려 어느 선착장에 사람들을 내려놓고 이번에는 다시 버스로 갈아타란다. 버스의 상태는 베트남이나 캄보디아나 거기서 거긴데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사뭇 다르다. 게다가 도로의 상태도 말이 아니어서 포장도로이긴 하나 군데군데 패인 곳이 많아 덜그럭거리는 짐들과 억, 억 하는 사람들의 비명소리를 들으며 날이 다 저물어서야 최종 목적지인 프놈펜에 들어선다. 


베트남측 국경 모습


캄보디아에서 갈아탄 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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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오다이-구찌> 또 투어를 가다

호치민의 대표적인 투어 상품은 <카오다이-구찌> 일일투어와 <메콩델타> 투어인데 메콩델타는 캄보디아를 넘어가는 일정과 연계하기로 하고 혼자서 일일투어를 다녀온다. 일행이 둘다 별로 내켜하지 않아 그저 구찌만 반나절 갔다오려다가 메신져에서 만난 일산주민의 “되게 웃겨” 한마디에 맘을 바꿔 카오다이까지 들러보기로 한다. 카오다이 투어는 베트남산 반외세 민족주의를 표방하는 종교인 카오다이교의 사원을 둘러보고 매일 거행되는 정오 예배를 관람하는 투어인데 투어를 가다가다 못해 이제 남의 종교 의식까지 구경을 가는가 싶지만 시간도 남아도는데다, 1불만 더 내면 되는 것을, 게다가 되게 웃기기까지 한다는데 굳이 안갈 이유도 없지 않은가 말이다.


버스는 정확히 11시 40분에 카오다이 사원에 내려준다. 별다른 문화재라거나 눈에 띄는 사원 하나 제대로 없는 베트남에서 오래 되어 보이지는 않지만 그래도 제법 외관을 갖춘 건물이 시야에 들어온다, 신발을 벗고 들어가니 실내는 더 으리 번쩍하다. 용이 휘감고 있는 여러 개의 기둥이 떠받치고 있는 사원에는 이들의 상징인 카오다이 즉 하늘의 눈이 정면에 자리를 잡고 있다. 유교, 불교, 도교와 기독교가 혼합된 교리를 가진 종교답게 하늘의 눈 아래에 공자님, 부처님, 에수님 그리고 노자 내지 장자님으로 추정되는 사람들이 사이좋게 부조되어 있는데 총 8명인 그 부조들의 나머지 4명을 두고 같은 버스에 탔던 한국인 일행 2명과 추측을 해보았으나 별로 아는 사람도, 그나마 아는 이름의 얼굴도 가물가물해 결국 훌륭한 사람이겠지 뭐 하고 포기하고 만다^^


정오 예배가 시작되자 흰옷을 입은 카오다이교 신도들이 열을 지어 사원 안으로 들어오고 정확히 간격을 맞추어 자리에 앉는다. 이 모습은 이층에 마련된 관광객 전용으로 보이는 난간에서 볼 수 있는데 그 움직임이 무슨 매스게임이라도 하듯이 일사불란하다. 가이드북에 따르면 이들은 선한 본심과 평등을 추구하며 이상 사회를 건설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고 되어 있는데 교리는 얼마나 훌륭한가 말이다. 종교란 그 교리대로 산다면 혹은 살기 위해 노력한다면 누구를 믿든지 간에 나쁠 건 없다는 생각은 드는데 외형적인 질서가 주는 일사불란함 때문인지 무슨 사이비 종교 행사나 보는 듯한 기분이 든다. 무슨 입장료를 받는 것도 아니고 어쩌자고 자신들의 종교적 의식을 구경거리로 만드는지 알 수가 없다. 글쎄, 이것도 넓은 의미의 선교 활동일지도 모를 일이다^^


카오다이교 사원


카오다이교 정오 예배 모습


예배가 채 끝나기도 전에 버스는 사람들을 태우고 구찌로 향한다. 정확하게는 구찌지역 주변에 있다는 여러 개의 지하터널 중 하나를 보러 가는 것이다. 구찌터널은 프랑스 식민통치 시대에 지방게릴라들이 파기 시작한 것을 베트남전 당시에 미국에 대항하기 위해 보수하고 확장하게 되었다는데 총연장 250km에 지하 30m 지점까지 마치 개미굴같은 땅굴이 만들어져 게릴라전에 사용되었다고 한다. 물론 미국도 가만히 있지만은 않아 이 지역 주변에 하루 80톤의 폭탄을 쏟아붓는가 하면 그걸로도 모자라 고엽제 7,200만 리터를 살포해 지금까지 도 그 후유증이 심각하다고 한다.


그러나 터널이란 지하에 있는데다가 워낙 넓은 지역에 분포되어 있어 모형단면으로나마 짐작할 수 있을 뿐 막상 구찌 터널에서는 그 입구 몇 개와 실물 크기의 인형을 제작해 재연해놓은-우리 나라의 민속박물관을 떠올리면 된다- 몇 개의 모형이 있을 뿐이다. 뭐 한 20미터 가량 터널 속을 들어갔다 나오는 체험코스도 있긴 하지만 이도 관광객을 위해 실제보다는 약간 넓게 되어 있다고 하고, 부분부분 조명이 설치되어 있어 그저 투어의 이벤트 정도로 느껴진다. 물론 구찌 자체가 대단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반나절 구찌투어라는 상품이 그렇다는 말이다. 터널을 빠져나오면 베트남전 당시 베트콩들이 먹었다는 파피오카라는 고구마 비슷한 음식을 시식하게 되는데 육이오때 전쟁기념관에서 열리는 주먹밥먹기 행사를 연상시키는 데가 있다. 차이가 있다면 시식 이후 판매가 있다는 정도일 것이다. 뭐 물론 사는 사람은 거의 없다^^ 코스의 마지막은 실탄 사격을 하는 것이다. 물론 돈을 내고 신청한 사람에 한해서인데 다행히 우리 투어에서는 신청한 사람이 없어 그 꼴은 안 봐도 되긴 했지만 투어 내내 들리는 총소리는 묘한 아이러니를 느끼게 하기에 충분하다.


땅굴입구,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넓이가 아니다^^


 땅굴체험, 길진 않지만 폐쇄공포증이 있는 분들은 삼가하시는 게 좋겠다. 아울러 덩치 큰 분들도 가급적 자제하시기를..


시식용 파피오카. 고구마랑 감자를 섞어놓은 맛이 난다.


여느 투어와는 이번 가이드는 나이가 지긋한 아저씨다. 당연히 베트남전 즈음에는 열혈 청년의 나이이었을 그는 나만 그렇게 보였는지 몰라도 뭔가 묘한 표정을 짓고 있는 듯 보인다. 한때 자신들의 생존 기지였을 땅에서 그 적들의 나라에서 온 관광객을 상대로 가이드를 하는 기분이라니.. 그는 투어 내내 알 수 없는 미소를 흘리더니 마지막으로 한마디 한다. 베트남에 평화가 온 것은 그저 30년 정도의 세월일 뿐이라고, 전쟁 기간 중에 사람들은 고통스러웠으며, 아직도 그 고통은 계속되고 있지만 지금 찾아온 이 평화가 지속되기를 바란다는 말도 잊지 않는다. 며칠 들렀다 가는 관광객의 눈에는 보이지 않아도 이 나라 어디에나 전쟁의 상흔은 마을마다, 거리미다 그리고 사람들의 가슴마다 남아 있을 것이다. 그 상처의 깊이를 내가 짐작이나 하겠는가 그저 베트남에도, 한국에도 그리고 전세계 어디에도 전쟁이라는 광기의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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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치민> 베트남의 마지막 도시로 오다.

또다시 도시 한복판으로 들어와 버렸다. 호치민은 하노이보다도 훨씬 크고 번화한 듯 보인다. 여행자 거리도 하노이보다는 넓어 보이는데 오토바이의 절대량은 호치민이 많을지 몰라도 길이 넓은 탓인지 하노이보다는 덜 복잡해 보인다. 아님 그 사이에 오토바이에 좀 익숙해져 그렇게 보이는 건지도 모르겠다. 베트남에서 두 달 살았다는 친구의 자취방에서 하루밤 신세를 진다. 여행자 거리에서 그리 멀지 않은 자취방은 생각보다 깨끗한 건물에 위치해 있다. 방세는 한달에 백불이라는데 아마도 외국인이라 시세보다는 비싸게 내고 있는 것 같다고 한다. 친구의 싱글 침대에서 둘이 하루밤을 자고 나니 더는 신세를 질 수도 없고 므이네에서 하루늦게 출발하는 친구의 친구와 방을 같이 쓸 요량으로 베트남에선 처음으로 에어콘룸을 잡아둔다.  


친구의 친구는 므이네에서 만났던 벨기에 남자를 결국 달고 온다. 내 그럴 줄 알았다.. 어쩐지 하루 더 있겠다고 할 때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니^^ 약간은 어색한 분위기에서 같이 술을 마신다. 그놈의 영어가 참 이상한 게 다른 사람에게 말하는 건 들리는데 나한테 말하는 건 안들리는 이유는 도대체 뭐란 말인가. 하긴 들려봐야 대답도 안되는데 들리면 또 뭐 한단 말인가^^ 결국 몇마디 주고받지도 못하고 눈이 마주치면 씨익 웃기만 한다. 벨기에 친구는 비오는 노천에서 꼬막 삶을 걸 안주로 놓고 먹는 술이 익숙지 않은지 웃고는 있지만 불편한 얼굴이다. 게다가 이 친구 해물을 전혀 못 먹는단다. 결국 까페로 자리를 옮긴다. 대략 호치민 여행자 거리의 물가는 하노이 두배다. 그냥 노천이나 길거리 음식 가격은 그만그만한데 까페나 식당의 메뉴가 그렇다는 건데 마지막으로 ATM으로 돈을 인출하고 나니 나가는 날까지 부족하지 않을까 신경이 쓰인다.


호치민은 전체의 넓이가 서울의 3배라는데 이곳 역시 볼만한 관광지는 대략 걸어 다닐만한 거리에 모여 있다. 시내를 한 바퀴 둘러본다. 호치민에서 올라왔던 친구들은 죄다 무지 덥다고 입을 모았는데 비가 내린 탓인지 그리 덥지는 않다. 시장을 지나 한때 대통령 관저였다는 통일궁을 지나 전쟁기념박물관에 들어선다. 주로 사진 위주로 전시가 되어있어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사진이 주는 실물감 때문인지 베트남전의 참상이 그대로 전해지는 듯 하다. 베트남전 여기서는 미국전이라 불리는 전쟁에 대해 내가 무슨 말을 하겠는가.. 그저 여행자일 뿐이라고.. 이런 소모적안 감상 따위가 무슨 소용이겠느냐고 애써 외면하려해도 왠지 모르게 마음이 불편하다. 


통일궁에서 바라본 베트남 시내, 좌측에 보이는 것이 다이아몬드 플라자다


전쟁기념박물관 입구의 포스터


오후에는 폭우가 내려 역사박물관이나 가보려던 계획은 무산되고 그저 잠시 들렀다가려던 다이아몬드플라자에서 발이 묶인다. 다이아몬드 플라자는 포스코에서 지었다는 주상복합건물인데 백화점이며 오락실, 볼링장 따위가 영업중인 곳이다. 샴푸니 바디샴푸 등이 떨어질 때가 되어 슈퍼나 얼쩡거린다. 베트남산 샴푸와 다국적 기업의 샴푸를 들고 잠시 고민하다 중국에서 샀던 중국산 치약의 씁쓸하고 뻑뻑한 맛이 떠올라 그냥 펜틴을 들고 나온다. 누구말대로 상품을 소비하는 게 아니라 기업의 이미지를 소비하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베트남산 상품에는 선뜻 손이 가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비는 계속 내리고 백화점을 두어바퀴 더 돌아도 별로 할 일은 없다. 게다가 누가 한국백화점 아니랄까봐 가격도 한국에서의 가격과 맞먹는다--;: 언젠가 이곳에서 떡볶이를 판다는 말을 들은 기억이 있어 찾아봤지만 보이지 않는다. 한국에선 거의 먹지도 않던 롯데리아에서 햄버거를 먹는다. 우리돈으로 이천원 남짓이지만 이곳에선 그리 싼 가격도 아니다.


저녁무렵 비가 그치고 다시 거리로 나가 사이공강 쪽으로 걸어가 본다. 다이아몬드 플라자와 사이공강을 잇는 동코이 거리는 호치민 최대의 번화가인데 그 명성에 걸맞게 프랑스식으로 지어진 건물들이며, 카페, 꽤 비싸보이는 상점들이 즐비하다. 거리도 제법 널찍해서 그저 서울 시내 어디쯤을 걷고 있는 것 같다. 이때까지 간 도시마다 강이건 호수건 아님 바다라도 꼭 물을 끼고 있다. 하긴 인류문명도 강을 중심으로 발생했다니 -기억들 나시나.. 티크리스강, 유프라테스강.. 지명도 생소한 4대 문명 발생지를 외우던 시간들이- 어지간한 대도시는 다 물 옆에 자리잡고 있게 마련이긴 할터, 그런데 이 사이공강은 특이하게도 유람선이나 떠다니는 강이 아니라 제법 화물선도 보이는 것이 도로망이 미비한 베트남에서 화물 운송의 기능을 담당하고 있는 듯도 싶다. 그래서 그런지 강이 아니라 연안부두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다.

 


시인민위원회앞에 있는 호치민 동상


해질 무렵 사이공강


도시를 돌아 다시 숙소로 돌아온다. 친구의 친구는 벨기에 남자와 데이트중인지 아직 돌아오지 않고 있다. KBS월드라는 한국TV가 나오는 덕분에 뒹굴뒹굴 최진실이 신파를 떠는 드라마나 보며 시간을 죽인다. 그래, 눈 큰 남자친구가 생길래도 의사소통이 되고 볼 일이다. 다들 열심히 영어공부들 하시라 뭐 짬짬이 피부 관리에도 신경 쓰면 그보다 좋을 순 없겠고^^ 그도 저도 귀찮으면 가까이 있는 한국말되는 남자를 잽싸게 찍어 버리든가 할 일이다. 특히 조커와 일산 주민은 새겨들으시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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