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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6/04/03
    <캉딩>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10)
    제이리
  2. 2006/04/03
    <리탕> 샹청을 지나 리탕까지(7)
    제이리
  3. 2006/04/03
    <중덴> 론리 너무하다!!!(6)
    제이리

<캉딩>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새벽에 눈을 떠 창밖을 살펴보니 캄캄한 거리 너머로 하얗게 쌓인 눈이 보인다. 망했다. 밤새 눈이 더 내린 모양이다. 일단 버스정류장으로 나가 보기로 한다. 버스가 안 다니면 어쩔 수 없는 노릇이고 다닌다면 다닐만 하니까 다니겠지.. 이 동네 눈 한 두 번 오는 것도 아닐 텐데.. 생각하기로 한다. 대체 이 동네는 버스들이 왜들 이리 꼭두새벽에 떠나는지 중덴에선 7시 30분, 샹청에선 7시 그리고 리탕에서 6시 30분 출발이란다. 게다가 중국은 전역이 베이징 표준시에 맞춰져 있어 해가 늦게 지는 대신 대략 7시가 넘어야 조금 밝아지는 정도라 6시면 거의 꼭두새벽인 셈이다. 배낭을 메고 나서니 게스트하우스 앞마당에 눈이 뽀얗게 쌓여 있다. 그새 얼었는지 밟으니 미끌한다. 랜턴을 꺼내들고 눈길을 걸어 터미널로 향한다.


다행히 버스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 표를 팔고 있다. 잠시 고민하다 표를 끊는다. 뭐 내일이라고 더 낫겠어.. 그새 눈이 녹을 것도 아니고.. 다 운이야 운.. 그런 생각이다. 버스를 타니 온기가 느껴진다. 히터를 튼 모양이다. 아니 중국 버스가 난방이 안 되는 게 아니었잖아.. 에이 진작 좀 틀어주지 싶으면서도 따뜻하니까 당장 기분이 좋아진다. 터미널앞 식당에서 얻어 온 더운 물로 커피를 타고 혹시 몰라서 비상식량으로 사놓은 빵이며 과자들을 꺼내 먹으며 차가 출발하기를 기다린다. 이렇게 눈이 오는데도 버스는 사람들로 거의 찬다. 눈탓인지 해가 얼핏 밝아진 7시가 넘어서야 버스는 터미널을 떠난다.


캉딩가는 버스


세상이 온통 흰 눈으로 덮여 있다


같은 버스에 탄 할머니


리탕을 벗어나자 마자 버스는 다시 눈덮인 산길을 달린다. 처음엔 그나마 마을이며 집들이 드문드문 보이더니 한시간쯤 지나자 그저 하얗게 눈덮인 산들뿐이다. 어느 지점에선가 체인을 감은 버스는 내 걱정과는 달리 서너 시간을 별 문제 없이 달려 준다. 이러다가 제시간에 도착하는 거 아닌가 하는 야무진 생각이 날 무렵 결국 버스가 멈춰 선다. 반대편 도로에서 차 한대가 도로를 대각선으로 가로 막고 멈춰서 있다. 체인없이 올라오다 미끄러진 모양인데 그래도 도로에 멈춰서길 다행이다 싶다. 다행히 차가 고장난 건 아니라 한시간 여를 체인을 감고 수선을 피우더니 다시 도로가 열린다. 그 뒤로도 오랫동안 버스는 눈쌓인 협곡을 굽이굽이 달려 저녁 7시쯤 캉딩에 무사히 도착한다. 정확히 12시간 걸린 셈이다.



 캉딩 가는 길1


캉딩 가는 길2


그 와중에 사진도 찍고^^


캉딩 역시 제법 높은 산들 사이에 형성된 도시인데 내 바램과는 달리 리탕 못지않게 춥다. 게다가 눈이 내리는 건지 산위의 눈이 날리는 건지 여튼 아직까지 눈발이 분분하다. 이젠 가이드북에 나와 있는 숙소를 찾을 힘도 없어 그냥 삐끼를 따라 터미널 앞에 있는 숙소에 들어간다. 그만그만한 방이다. 밥 먹으러 나가기도 귀찮아 나머지 비상식량을 저녁삼아 털어먹고 일찌감치 자리에 눕는다. 며칠 샤워도 못하고 머리도 못 감았는데 더운물이 나온다는 이 숙소에서도 씻을 엄두는 나질 않는다. 캉딩 구경이고 뭐고 내일 아침에 그냥 성도로 떠야겠다는 생각뿐이다. 추운 게 사람을 이리도 무기력하게 만들다니.. 앞으로 티벳이며 네팔 트레킹은 어찌해야 할지 아득한 생각이 든다.


그래도 이제 하루만 더 지나면 성도에 도착이니 일단 티벳 가는 길의 반은 온 셈이다. 결국 예정과는 3박 4일을 거의 버스만 타고 달려 온 셈이지만 어느 곳보다 아름다운 풍경을 본 여정이기도 하다. 하루 평균 9시간 정도 버스를 탔지만 지루하거나 빨리 도착했으면 하는 생각은 들지 않았고 리탕에서 5시간 반 만에 내릴 땐 왠지 좀 아쉽기도 했는데.. 여튼 버스 안에서 많이 행복했던 시간들이었다. 하지만 한 번이면 충분하다. 다음부턴 어지간하면 비행기 타고 다니고 싶은 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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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탕> 샹청을 지나 리탕까지

 

일반적으로 중덴을 윈난의 마지막 도시라고들 한다. 더 위로 올라가면 신장성 즉 티벳땅인데 현재 외국인이 이곳을 육로로 가는 것은 매우 비싸거나 불법이거나 둘 중 하나이다. 가끔 불법을 무릅쓰고 육로로 라싸에 갔네 하는 글들이 인터넷에 올라오긴 하지만 그것도 간뎅이가 부은 인간들이나 하는 짓이고 나처럼 소심하기 그지없는 인간은 그저 돌아가는 길을 택하기로 한다. 티벳땅을 눈앞에 두고도 다시 오른쪽으로 살짝 꺾어 사천성 성도까지 가는 기을 택한 이유는 합법적인 루트 중 성도에서 비행기를 타고 티벳으로 가는 것이 가장 싸다는 것이 첫 번째 이유요, 성도까지 가는 들르는 사천성 서부의 도시들이 이전 티벳 땅이었던 고로 현재 한족들이 점령하다시피 한 라사보다 훨씬 더 티벳스럽다는 소문이 두 번째 이유되겠다. 중덴을 지나 샹청-리탕-캉딩을 찍어야 성도로 갈 수 있는 이 길 역시 만만치 않은데 3월까지는 시도 때도 없이 눈이 내린다는 고로 무지 춥거니와 눈 때문에 길이 막혀 한없이 발이 묶일 수도 있다는 게 첫 번째 난관이요, 해발이 높아-특히 리탕의 경우 해발이 4,680m에 이른다- 고산병의 위험이 뒤따른다는 것이 두번째 난관이다.


중덴에서 잠 못 이루는 밤을 보낸 새벽에 짐을 꾸려 터미널로 나선다. 그리 따뜻하지도 않은 잠자리를 떨치고 일어나기는 왜 그리 힘든지..  간만에 느끼는 새벽 추위다. 택시를 타고 터미널에 도착하니 어렴풋이 해가 밝아오기 시작한다. 이놈의 나라는 한겨울에 영하 20도까지 내려간다는 도시에도 도무지 난방이라는 게 없다. 버스라고 예외는 아니어서 버스 안이나 밖이나 온도는 비슷하다. 버스는 터미널을 떠난 지 100m를 못가고 고장이다. 기사가 내려가서 몇 분을 뚝닥거리더니 이번엔 정비소로 향한다. 한 시간이나 차를 고치고 나서야 다시 출발이다. 그나마 산길에서 고장 안난 걸 다행으로 여겨야 할 판이다. 중덴을 벗어나자 마자 굽이굽이 산길이 이어진다. 아직 햇살이 채 퍼지지도 않은 길은 끝도 없는 산길로 이어진다. 높은 해발 탓이지 채 자라지도 못한 관목숲 사이를 두어시간 달리더니 이젠 까막득한 협곡을 아래에 두고 눈도 채 녹지 않은 산길로 이어진다. 눈앞에 설산이 펼쳐진다. 장관이긴 한데 여기서 덜컥 고장이라도 나면.. 아찔한 생각이 든다.


샹청 가는 길1


샹청 가는 길2


어느덧 점심시간이 되자 딱 그만한 거리에 산장이라고 쓰여진 건물이 한 채 보이고 거기서 모두들 밥을 먹는다. 별로 식욕은 없지만 그래도 먹어둬야지 하는 맘에 푸슬거리는 밥위에 기름기 가득한 고기볶음을 덮어 꾸역꾸역 밀어 넣는다. 아.. 체하지나 말아야 할 텐데.. 점심을 먹고 좀 더 달리니 슬슬 산 아래로 티벳식 집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한족의 집들은 기와 비슷한 것을 얹어서 익숙한 느낌이 드는데 비해 티벳식 집은 지붕이 따로 없고 진흙으로 만든 네모반듯한 건물이다. 단순한 구조에 비해 창문 주변을 화려하게 치장한 것이 인상적이다. 다시 산길을 내려서니 벚꽃이 화사하게 피어 있는 티벳식 마을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한다. 한차례 검문을 거치고 나니 사천성이다. 드디어 한달 만에 운남성을 벗어난 것이다.


12시간 걸린다고 했으니 아직 두어 시간은 더 가야 겠다 생각하고 있는데 멀리 협곡 사이로 제법 큰 마을이 보인다. 이런 데 저렇게 큰 마을이 있구나 생각하고 있는데 여기가 샹청이라고 내리라고 한다. 길이 그새 무슨 조화를 부렸는지 9시간 만에 샹청에 도착한 것이다. 어차피 리탕까지 하루 만에 갈 수는 없는 길이라 이곳에서 하루를 자야 한다. 터미널에 내리니 게스트하우스 안내판을 든 언니가 반겨 준다. 가리키는 쪽을 보니 전형적인 티벳탄 스타일의 집이다. 터미널에서도 멀지 않아 안성맞춤이다. 어차피 그저 하루 묵고 낼 새벽에는 떠나야 할 곳이 아니던가. 짐을 풀고 잠시 동네를 둘러본다. 다행히 생각보다 날씨가 춥지 않다. 아마 이곳은 해발이 그리 높지 않은 곳인지도 모르겠다. 여튼 산과 산 사이에 이만한 마을을 이루고 사는 것도 보통일을 아니지 싶은데 마을 전체가 공사 중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온통 새 건물을 올리느라고 정신이 없다. 전형적인 티벳탄식의 건물들도 마을 뒤쪽에서나 찾아볼 수 있을 뿐 큰길가는 온통 국적을 알 수 없는 현대식 건물이다.


샹청 메인거리


샹청에서 묵었던 티벳식 숙소


그 숙소의 방.. 알록달록 나름 예쁘다^^.


이곳에서 하루를 보내고 새벽에 다시 리탕행 버스를 탄다. 어제는 산길의 연속이더니 이제는 눈 덮인 고원이 이어진다. 버스를 타는 거야 시시각각 변하는 창 밖 풍경 덕에 그리 힘들지 않은데 리탕의 고도가 슬며시 걱정이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고산병이라도 나면 내려가기도 쉽지 않은데 어쩌나 싶다. 일행을 만들어서 왔어야 하나 생각해 봐도 없는 일행을 만들어 낼 재주야 없지 않은가 말이다^^. 어제의 일을 교훈삼아 리탕까지 10시간 걸린다고 했으니 한 7시간쯤이면 도착하겠다 생각하고 있었더니 이번엔 5시간 30분만에 리탕터미널에 도착한다. 아침 7시에 떠났으니 12시 30분에 터미널에 내린 셈이다. 그래도 가지고 있는 가이드북이 그거 밖에 없으니 다시 론리 숙소편 첫줄에 있는 센허빈관을 찾아간다. 여기도 손님은 나 혼자다. 몇 날을 팔자에 없는 싱글룸 신세다. 여기도 전기장판 하나가 위로가 될 뿐 추워서 방에 앉아 있을 수도 없다.


리탕, 눈이 내린다.


리탕의 거리에서 만난 아이들


리탕에 이틀쯤 머물 생각이었지만 오후에 두어 시간을 둘러보고 나니 딱히 갈 데도 없다. 다행히 고도가 꽤 높다는 데도 아무런 변화를 느끼지 못한다. 에이.. 괜히 걱정했잖아 싶으면서도 한편으로 안도의 한숨이 나온다. 이곳은 전형적인 티벳탄 마을인 듯 전통적인 복장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며 주황색 장삼을 입은 라마 승려들이 많이 보인다. 조금 덜 추우면 그저 길에서 사람들만 바라봐도 재미있을 것 같은데 도무지 추워서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 그나마 유일하게 난로가 보이는 티벳식 찻집에 앉아 버터티를 홀짝인다. 버터를 더운 물에 녹여 소금 잔뜩 탄 것 같은 이 버터티는 티벳 지역의 대표적 차라는데 입에 맞을려면 꽤 많은 시간이 흘러야 될 것 같다는 예감이 든다. 두어 시간을 그렇게 앉아 있으니 창밖으로 눈이 내린다. 어.. 눈이다. 올해는 눈 못 보는 줄 알았는데.. 하다가 생각해보니 내일 캉딩으로 갈 수나 있을런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숙소에 돌아와 삼인실 도미토리 가득 알아듣지도 못하는 중국 TV를 켜놓고 하염없이 창밖을 바라본다. 눈은 점점 더 많이 내리는데 내일 버스가 안 다니면 여기서 뭘 하며 보낼까 한숨만 나온다. 하우아시아가 캉딩가는 버스에서 하루밤을 보냈다고 했던가.. 만일 버스가 다녀도 타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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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덴> 론리 너무하다!!!

 

리장에서 퍼진 이유야 그저 쉬고 싶었다는 것이 가장 크겠지만 다음 일정이 엄두가 안 났다는 것도 그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추위와 더불어 고도와의 힘겨운 싸움 역시 조금 뒤로 미루거나 아님 피해갈 방법이 없을까 하는 맘도 컸었는데 결국 여러 가지 고민 끝에 그냥 원래 일정대로 움직이기로 한다. 나란 인간도 꽤 융통성이 없는 것이 매번 고민은 하지만 나중에 보면 꼭 원래 루트대로 움직이고 있는 것을 알게 된다^^ 여튼 중덴은 무지하게 춥다는 여러 여행자들의 조언에 따라 가지고 있는 옷 중에서 두꺼운 것들은 죄다 꺼내 입고 버스를 탄다. -다행히 겨울옷은 징홍에서 태국으로 내려간 세아이 엄마에게 미리 얻어둔 게 있었다는- 리장에서 중덴까지는 4시간.. 두시간 정도는 제법 봄 들녘이 이어지더니 호도협 입구인 처우터우를 지나자마자 황량한 겨울 풍경이 이어진다. 창문 틈으로 불어오는 바람이 예사롭지 않다.


중덴의 티벳식 사원식 송찬림사(송짠린쓰)


티벳식 기도 깃발인 타르초가 보이기 시작한다


송짠린쓰 가는 길에 만난 할머니, 점심 공양하러 가신단다.


버스가 북쪽으로 올라갈수록 괜히 왔나 싶은 게 풍경은 우울하기 그지없다. 도무지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 중에 봄빛은 하나도 감지되지 않는다. 그래도 시간이 흐르자 버스는 여지없이 중덴 터미널에 도착한다. 듣던대로 중덴의 날씨는 꽤 쌀쌀하다. 그래도 한참 추울 때는 영하 20도까지 내려가기도 하고 3월 중순까지 눈이 내린다는 소문에 비하면 견딜만한 정도다. 일단 다음 행선지인 샹청 가는 버스를 알아보니 아침 7시 반에 한대 있단다. 론리에는 삼사일에 한대씩 있다고 되어 있는데 그새 변했는지 매일 있는 모양이다. 배낭을 메고 택시를 세워 론리 숙소편 젤 앞줄에 나와 있는 친절하고 깨끗하다는 티벳 호텔로 가자고 한다. 말이 호텔이지 저가의 도미토리도 있는 곳이다. 다행히 기사가 그 곳을 알고 있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택시를 내리고 보니 황당 그 자체다. 호텔에 들어서니 방은 거의 삼사십 개는 되어 보이고 식당이며 카페 간판은 보이는데 도무지 사람의 흔적이 보이질 않는다. 리셉션에도 아무도 없다. 뭐 여행자 거리도 아닌 것 같은데 나가서 다시 택시를 타야 하나 고민하고 있는데 누군가 핼로우 하고 인사를 한다.


다행히 영업은 하는 모양인데 이렇게 손님이 없다니.. 그새 사람이 그리워진 나로서는 우울하기 그지없는 노릇이다. 4인실 도미토리에 짐을 풀어도 손님은 달랑 나 하나다. 저녁이라도 먹으려고 식당을 기웃거려 보니 아까 인사하던 그 친구가 식당은 영업을 안하니 나가서 먹으란다. 다행히 근처에 가격은 좀 비싸지만 여행자를 대상으로 하는 식당이 눈에 뛴다. 조금 더 나가볼까 했지만 썰렁한 거리 풍경에 질려 그저 밥만 먹고 돌아온다. 론리에는 공용 욕실이 깔끔하고 저녁 8시 이후엔 더운물도 나온다고 되어 있는데 게스트하우스 사상 처음 보는 문 없는 화장실에, 수도 꼭지하나 덜렁 있는 샤워실에, 더운물은 밤 10시 이후에나 나온다고 하니 도무지 씻을 엄두가 나질 않는다. 간신히 이만 닦고 방에 들어오니 그나마 전기장판이 위안이 된다. 생각 같아서는 내일 당장 중덴을 뜨고 싶지만 담부터 가야 하는 곳이 거의 이 수준이거나 이것보다 나쁠 것이 뻔한데 싶어 하루 더 머물기로 한다.


뭐 모든 여행기에 나와 있듯이 중덴은 중국 정부가 <샹그릴라> -뭐 이상향, 그런 뜻인데 제임스 힐튼이라는 작가의 소설 <잃어버린 지평선>에 나오는 배경이 된 곳이라고 우기는 모양이다- 라고 개명하고 대대적으로 관광객 유치에 힘쓰는 곳이라는데 샹그릴라는 커녕 을씨년스럽기가 무슨 유령의 도시 같다. 옥룡설산에서 만났던 가이드의 말에 따르면 티벳의 험준한 여러 도시들을 거쳐 중덴에 도착하면 마침내 넓은 초원이 펼쳐지고 그때야 비로소 샹그릴라로서의 중덴의 참맛을 알 수 있다는데 티벳의 험준한 도시는 커녕 따리와 리장의 아기자기한 고성을 거쳐 온 나로서는 도무지 실감이 나질 않는 이야기이다. 


중덴에도 규모는 작지만 고성이 있긴 하다


누구말대로 할머니들이 관광 자원이다. 고성 앞 광장에서 관광객들을 상대로 민속춤을 추시는 할머니들


담날도 거의 씻지도 못한 채로 시내로 나선다. 이 동네 아저씨들 머리가 떡져 있다고 은근 흉봤더니 남의 일도 아니다. 아시다시피 내 머리 하루만 안감아 주면 기름이 자르르 흐르는데다 날도 추워 이불 속에서 비비고 잤더니 뭐 거의 이 동네 아저씨 머리와 별다를 바가 없다. 에고.. 환경이 사람을 만든다더니.. 앞으로 남 흉보지 말아야겠다 싶다. 중덴에서 유일한 볼거리인 티벳식 사찰인 송찬림사에 들렀다가.. 중덴 시내를 걸어서 한 바퀴 돌고.. 아직 남아 있다는 구시가지를 돌아보니 얼추 하루가 간다. 다음 행선지인 샹청도, 리탕도 여기 보다 환경이 나쁘면 나빴지 좋을 리는 없는데 그렇담 머리는 언제까지 떡져서 다녀야 하나 고민이 된다. 그렇다고 얼음짱같이 찬물에 머리 감을 엄두는 전혀 나질 않는다. 물론 더운물이 나온다는 밤 10시 이후까지 기다릴 생각은 더더욱 안난다.


고민하고 있는데 미용실이 눈에 뛴다. 그래, 미용실에서 머리를 감으면 되는구나 생각하다가 내친 김에 아마추어의 손길이 완연한 머리를 나름 프로에게 맡겨보기로 한다. 일단 말이 안 통하니 손짓으로 감고 자르려고 한다 했더니 알아듣는다. 일단 머리를 감겨 주는데 샴푸를 머리에 바르더니 머리 밑을 확실히 손톱으로 문질러준다. 그것도 매우 여러 번 꼼꼼히.. 손톱으로 머리 밑을 문지르면 피부가 죄다 상한다는데.. 그래도 시원은 하다만 우리나라 미용계 인사가 알면 기절할 일이다. 그 다음 커트에 들어가는데 이 꽃미남 되다만 남자 미용사 조금만 잘라달라는 사인을 조금만 남기고 다 잘라달라는 소리로 알아들었는지 성큼성큼 가위질이다. 후회가 몰려온다. 그냥 감기만 할 걸 어쩌자고 이 시골 프로에게 머리를 들이밀었단 말인가^^ 그래도 이 친구 이 가위 저 가위 심지어 이 면도기 저 칼까지 동원해 공을 들인다. 원래 머리 자를 때는 안경을 벗는 법이라 내 머리 몰골이 어찌 되어 가는지 과정은 보이지 않는데 여튼 이 친구가 이리 공을 들이니 맘에 안 들어도 웃어줘야지 굳게 다짐한다. 막상 안경을 쓰니 헉!! 이건 완전히 <영구업따>다. 그러나 어쩌랴 머리야 자라는 거고.. 억지로 웃어준다. 머리감고 깍은 값이 6원, 우리 돈으로 780원이다. 에구 가격대비 화낼 계제도 아니다.


다시 숙소로 돌아온다. 뭐 어제와 그대로 아무도 없다. 그리고 여전히 춥다. 론리 숙소편 첫줄에 있으면서도 도무지 손님이 안 드는 이유를 모르겠지만 여전히 도미토리는 내 싱글룸이다^^ 앞으로 여정이 만만치 않으니 일찍 자두어야 할 텐데 잠은 오지 않고 밤만 깊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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