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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6/04/12
    <송판> 결국 싸우고 헤어진다(9)
    제이리
  2. 2006/04/12
    <구채구> 물빛이 장난이 아니다(5)
    제이리
  3. 2006/04/12
    <청두> 다시 봄날이다(5)
    제이리

<송판> 결국 싸우고 헤어진다

 

송판으로 떠나는 버스는 아침에 한번 밖에 없어 열한시경에 택시를 탄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주자이거우나 한나절 더 보고 오후에나 떠나면 되는 건데 이래저래 처음부터 일이 꼬인다. 주자이거우에서 송판까지는 대략 2시간, 택시에서 내내 이 군인아저씨 떠난 사람들 욕이다. 하루 밤이지만 내가 보기엔 고사리 아저씨, 그리 나쁜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는데 사정을 잘 알지는 못해도 나로서는 군인 아저씨의 일방적인 얘기가 그리 신빙성 있게 들리지는 않는다. 건성건성 예예 하기도 참 보통 일이 아니다. 게다가 이 아저씨도 변함없이 말이 많다. 정말이지 이제 자기 이야기만 하는 사람들은 지긋지긋하다. 이건 뭐 아줌마들 반상회도 아니고 도무지 남의 말이라곤 듣지를 않으니 여행 다니는 사람들이 외로워서 그런 건지 내가 만나는 인간들만 그런 건지 모를 일이지만 이 인간들 실컷 자기 얘기만 해놓고 미안한지 끝에는 꼭 한마디 한다. 참 과묵하시네요.. (내가 과묵한 인간이라니 소가 웃을 일이다^^)


송판에는 다행히도 한국식당이 있어 그나마 위로가 된다. 당근 론리에는 나오지 않는데 언젠가 다른 여행자들에게서 얼핏 들어본 기억이 있어 물어물어 찾아간다. 이야기를 들을 당시에는 송판에 갈 생각이 없어서 염두에 두지는 않았지만 <나쁜 삼촌>이라는 식당이름이 인상적이라 다행히 기억이 난다. 중국 간판은 호숙숙 뭐 대략 좋은 아저씨쯤 되는데 뭐 한국어로 된 간판에도 나쁜 삼촌이라고 되어 있다^^. 송판에 내려 그곳에서 간단하게 점심을 먹고 있는데 나쁜 삼촌이 나타난다. 다행히 상태가 괜찮아 보인다. 식당만으로는 운영이 힘들어 다음날이면 돈벌러 몇 달간 심천에 간다는데 하루 먼저 오길 다행이다 싶다. 술 무척이나 좋아한다는 이 양반이 담궈 놓은 각종 희귀주들을 마시며 간만에 맘 편하게 술을 마신다. 나중에 족보를 따져보니 학교 선배이기도 하다. 학번은 거의 10년 차이가 나지만 중간 중간에 아는 이들도 있어 군인아저씨가 사이사이 놓는 삑사리를 이리저리 피해 이러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담날 일찍 나쁜 삼촌은 심천으로 떠나고 우리는 말트레킹을 떠난다. 전날 밤에 이미 1박 2일로 예약을 해 둔 터다. 말트레킹은 1박2일짜리부터 일주일짜리까지 다양한 프로그램이 있는데 2박3일 코스가 일반적이라고 한다. 하지만 다양한(?) 트레킹 경험에 의해 모든 트레킹은 밤이 매우 춥고 긴 관계로 일행이 마땅치 않을 경우 상당히 힘든다는 걸 이미 알고 있는 나로써는 이 아저씨와 2박 3일은 결코 가고 싶은 맘이 없다. 1박 2일 코스도 쉬운 코스와 힘든 코스 두 가지가 있는 모양인데 쉬운 코스는 반나절 가량 말을 타고 가서 오후에는 국립공원 하나를 돌아보고 담날 돌아오는 코스인데 비해 힘든 코스는 반나절 말을 타고 산을 하나 넘은 뒤 점심을 먹고 다시 산을 하나 더 넘어 갔다가 돌아오는 코스라고 한다. 그 무섭다는 말을 하루종일 탈 자신은 없어 또 쉬운 코스를 택한다.   


트레킹 코스 중에 있는 산의 정상, 이 길부터는 걸어 내려가다 아스팔트가 나오면 다시 말을 탄다.


군인 아저씨의 권유로 털모자도 샀다. 따뜻은 하더라만 모양새는 영^^ 글구 전날 술 먹다 카메라 배터리 충전하는 걸 깜빡해 말트레킹 사진은 거의 못 찍었다는ㅠㅠ 

 

 아침에 약속 장소로 나가보니 트레킹을 떠나는 사람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비수기라 마부 하나에 우리 둘 달랑 세 명만 떠나는 길이다. 말이 생각보다 무섭다는 말은 많이 들어 제법 긴장이 된다. 처음 30분은 이걸 왜 하겠다고 했나 싶게 무섭더니 조금씩 나아진다. 산위로 올라가니 주변으로는 채 녹지 않은 눈들이 나뭇가지를 하얗게 덮고 있고 멀리 설산이 보이는 것이 조금씩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길 주변이 낭떠러지라 아찔하기는 하지만 조금씩 재미가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 군인아저씨 잠시도 입을 그만두지 않는데 입만 열었다 하면 지난 일행들 욕 아니면 자기 자랑이다. 듣기 좋은 소리도 여러 번 들으면 듣기 싫은 법인데 욕 아니면 자랑이니 아주 듣기 싫어 돌아버릴 지경이 된다. 자랑의 수준도 어찌나 유치 찬란인지 자기가 한손으로 말고삐를 잡고 다른 한손으로는 빵을 먹으며 여유 있게 말을 탔다는 자랑을 그날 하루 종일 스무번쯤한다. 네네 잘 타시네요를 하다하다 그 담엔 아예 못 들은 척 한다.   



모닝구라는 이름의 풍경구(우리로 치면 국립공원쯤 되지 싶은데 아직 채 녹지 않은 눈이 쌓여있다)



구채구를 안봤으면 모를까 그냥 그만그만하다


서너시간 말을 타고 모닝구라는 호수 공원에 도착한다. 어려운 코스를 택하면 산을 하나 더 넘어야 한다는데 쉬운 코스를 택하니 오후에는 공원 구경이나 하며 보낸다. 인터넷에서 본 트레킹 정보에 의하면 초원에서 천막을 치고 잔다는데 잠자리도 공원 내에 있는 쓰지 않는 건물에 마련된다. 아무래도 이곳이 덜 춥긴 하겠지만 아무래도 운치는 좀 떨어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점심은 수제비로 저녁은 감자와 양고기 볶음을 먹고 일찌감치 잠자리에 든다. 술을 가져가긴 했지만 그 전날 숙취도 숙취려니와 도무지 이 아저씨랑 긴 시간을 보내고 싶지 않다. 결국 아침은 오고 6시부터 들락이던 이 아저씨 결국 10시에 떠난다는 마부에게 부득부득 9시에 떠나자고 해서 일찌감치 길을 나선다. 참 피곤한 양반이다.



점심에 먹은 수제비, 우리나라 수제비랑 거의 같은 맛이다.


송판에 돌아오는 길에는 또 나쁜 삼촌 욕이다. 그전에도 이런저런 소리를 하는 걸 못 들은 척 했는데 결국 내가 못 참고 싫은 소리를 한다. 나는 그전 일행에 대해서도 나쁜 삼촌에 대해서도 그런 생각이 안 드니 제발 그렇게 생각하시더라도 나한테 동의는 구하지 말아달라고 일침을 놓는다. 도대체 자기 이외의 모든 사람은 다 나쁜 사람이니 나랑 헤어지고 또 나는 얼마나 나쁜 년이 되어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랬더니 삐졌는지 내려오자마자 이번엔 비행기를 타고 가겠다고 한다. 원래 청두까지는 같이 가지고 한 길이었지만 차라리 잘됐다 싶다. 하지만 운도 지지리 없는 것이 이번엔 비행기가 없다는 거다. 어차피 청두까지는 같이 가야 하나 보다 싶다.


그럭저럭 외면 수습은 하고 저녁을 먹다 -사실 무슨 일이 있어도 하루만 참자 다짐하면서 먹은 저녁이었는데- 결국 내가 폭발한다. 만나고 나서부터 자기가 젊어 보인다느니, 잘 생겼다느니 하는 이야기를 열 번쯤은 했는데 이번엔 식당에서 일하는 어린 중국 여자친구들에게 자기가 몇 살쯤 되어 보이느냐고 묻는다. 뭐 대략 사십 후반이라는 대답이 나온다 -아마 오십 초반의 나이인 것 같다- 그랬더니 하는 말이 가관이다. 쟤들이 저렇게 대답하는 건 나쁜 삼촌이 자기 나이를 이야기해서이고 모든 중국 사람들은 자기를 삼십대 후반으로 본단다. 그러면서 중국 친구들에게 자기 근육을 만져보라고 난리다. 더는 도저히 봐줄 수가 없다. 오십대로 보이시거든요 그리고 그만하세요 한두 번도 아니고. 입만 열면 자기 자랑 아니면 남 욕이니 참 같이 다니기 힘든 분이시네요. 해 버린다. 결국 저녁 먹는 분위기는 썰렁해지고 담날 새벽에 버스를 타러 나가니 이 아저씨 사람을 본 척도 않는다. 에구 차라리 잘됐다 싶은 게 청두까지 대략 8시간 동안 그 수다를 듣느니 그냥 모른 척 해주는 게 고마운 일일지도 모르겠다. 결국 버스에서도, 버스를 내려서도 데면데면 헤어진다. 맘이 불편한 건 아닌데 그래도 여행 다니면서 이렇게 헤어지는 사람도 있구나 싶은 게 기분이 썩 좋지는 않다. 그래도 이쯤에서 놓여났으니 한편으론 발걸음이 가볍다.


이번에 청두에 도착해서는 바이러스의 동생이 강력 추천하는 심스코지 게스트하우스에 묵는다. 바이러스 동생이 <궁극의 게스트하우스>라고 극찬한 이곳은 여행자들의 편의를 최대한 생각해 운영되는 곳인 듯 여러모로 편리한 점이 많은데다 교통빈관보다 거의 모든 가격이 저렴하다. 게다가 인터넷은 랜선만 이용할 경우는 무료이고 주위에 대형마트와 공안국도 있어 필요한 것은 거의 걸어가서 해결할 수 있는 점도 마음에 든다. 무엇보다 티벳행 비행기 가격이 교통빈관의 여행사보다 250원이나 싸서 완전히 본전을 뽑는 느낌이다. 일단 도착해 샤워를 마친 후 빨래를 돌려놓고 저녁을 먹으니 다시 마음이 상쾌해진다.


심스코지 게스트하우스 입구


심스코지 게스트하우스 식당


다음날 비자 연장하러 공안국으로 간다. 흑 그러나 비자를 연장하는데 걸리는 시간이 휴일 빼고 5일이나 걸린다는 소리에 막막해진다. 여기서 비자를 연장하려면 오늘이 수요일이니 무려 일주일을 넘게 기다려야 하는 셈이다. 다른 여행기에서 읽은 바로는 징홍이나 캉딩에서는 하루 만에 연장이 된다고 해서 여기서도 그런 줄 알았더니 생각지도 못한 복병에 발목이 잡힌 셈이다. 어쩔까 고민하다 그냥 티벳행 비행기표를 예약한다. 아직 비자 기간은 일주일쯤 남아 있고 라싸에서 일주일 정도 연기가 가능하다니 티벳은 2주 만에 빠져 나오는 수 밖에 없다. 정 안되면 비행기로 카트만두까지 가거나 여행사를 통하면 기간을 조금 더 연장할 수도 있다고 하니 라싸에 도착하자마자 비자 문제부터 알아봐야 할 것 같다. 여튼 내일 떠나는 비행기를 예약해 두었으니 우여곡절 끝에 티벳 가는 길로 접어드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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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채구> 물빛이 장난이 아니다

 

결국 구채구를 간다. 청두에서 10시간이나 걸리는 거리이긴 하지만 어차피 청두에서 갈 수 밖에 없는 곳인데다 그 고질병.. 지금 아니면 언제 또 가겠어 하는 맘이 결국 구채구로 가는 버스를 타게 만든다. 가는 길에 아주 송판까지 들렀다 올 예정이다. 송판은 말트레킹으로 유명한 곳인데 대체 어찌된 일인지 중국 여행 석달 동안 말을 한 번도 못 탄데다 앞으로 갈 티벳도 말 탈일은 없어 보여 한번은 타 보자 하는 맘이다. 코끼리는 태국에서, 말은 중국에서, 낙타는 인도에서^^ 그래도 한번씩은 타봐야 하지 않겠냐 말이다. 무엇보다 애매한 건 비자인데 라오스에서 받은 두달짜리 비자가 어느덧 만료 기간이 두 주 앞으로 다가온 것이다. -리장에서 너무 놀았다니^^- 바로 티벳으로 떠나면 두주 안에 티벳을 떠나야 한다. 티벳에서는 비자 연장이 짧으면 삼일, 길어야 일주일이라는데 네팔의 정치 상황도 불안정하다는데 비자까지 빠듯하면 맘이 더 조급해질 것 같고 청두에서 연장하자니 만료 기간이 일주일 정도 남아야 비자 연장이 가능하다니 비자를 연장하자면 일주일 정도는 더 기다려야 하는 셈이다. 이래저래 티벳 가는 길은 참 멀기도 하다.


구채구 가는 길도 절대 만만한 길은 아니다. 게다가 이제 진이 다 빠졌는지 10시간 버스 타는 일이 곤혹스럽기만 하다. 창 밖도 보는 둥 마는 둥 꾸벅꾸벅 졸다가 깨다가 구채구 입구에서 내린다. 요금은 4월 1일부로 성수기 체계로 바뀌었다는 데 저녁 무렵이라 그런지 숙소로 가득한 구채구 입구는 한산하기 짝이 없다. 날씨도 청두보다는 훨씬 더 추운 것 같다. 결국 버스 내리는 데서 삐끼를 따라 60원짜리 호텔에 들어간다. 썰렁하긴 해도 뭐 호텔은 호텔인 듯 시설은 그럭저럭 봐 줄 만한데 시간제로 나온다는 온수가 영 시원찮다. 결국 처음엔 더운물이다 중간에는 미지근한 물로 바뀌어버린 온수 앞에서 샤워를 하다 말고 대략 난감해진다. 역시 삐끼는 따라오는 게 아닌데 방 돌아보는 것이 귀찮아 따라나선 것이 결국 이 모양이다. 그래봐야 하루 밤이긴 하지만 방도 왠지 썰렁한 것이 영 춥다.


다음날 구채구 내에서 하루밤 묵을 요량으로 짐을 모두 들고 숙소를 나선다 -원래 청두에 짐을 맡겨 놓고 작은 배낭 하나만 지고 오긴 했지만 이것도 무게가 꽤 나간다- 입장료 비싸기로 유명한 중국 중에서도 구채구는 거의 최고의 입장료를 자랑하는데 공원 내의 교통비를 포함해 무려 310원(4만원 정도다)이나 한다. 가짜 학생증을 내미니 50원이 할인된다.^^ 이 표로 이틀을 볼 수 있는데 다음날도 보겠다고 미리 말하면 다른 사람들이 쓰지 못하도록 입장권에 디카로 찍은 사진을 대문짝만하게 인쇄해서 준다. 입장권을 끊고 들어서니 공원 입구에 버스가 대기해 있다. 공원은 한 길로 쭉 이어지다가 중간쯤 되는 지점에서 동쪽과 서쪽으로 갈라진다는데 이 버스가 어느 쪽으로 가는지는 모르니 그저 운에 맡기기로 한다. 버스는 원래 하루를 묵으려고 했던 중간지점을 지나 동쪽으로 들어선다. 그러더니 한참을 달려 동쪽 끝 호수 입구에서 사람들을 내려준다. 멀리 설산이 보이고 산 아래 예의 그 쪽빛 호수가 펼쳐져 있다. 사진에서 본 그 물빛 그대로다.


동쪽 끝의 호수인 장해


오색 연못, 비수기긴 해도 사람은 여전히 많은 것 같은데 성수기엔 발디딜 틈도 없단다.

 

호수를 따라 이어진 길을 걸어 또 다른 호수를 둘러보고 다시 버스를 타고 중간 지점으로 내려온다. 이쯤에서 숙소를 정하고 배낭이나 맡길까 하고 중간 지점 근처에 있는 장족 마을 근처를 둘러본다. 가이드북에 따르면 침대 하나당 20원 정도면 된다는데 마을 안은 여전히 비수기인 듯 사람의 그림자도 찾아볼 수 없다. 아서라.. 여기도 해지면 많이 우울하겠다 싶어 그냥 공원 앞에서 하루 더 묵기로 맘을 바꿔먹는다. 중간 지점에서 33원짜리 뷔페로 점심을 먹고 이번엔 서쪽으로 가는 버스를 탄다. 가이드북에 따르면 서쪽 길이 볼거리가 더 많다는데 과연 올라가는 길 주변이 온통 푸른빛의 호수다. 끝까지 가서 천천히 걸어 내려와야겠다 생각하고 올라간 꼭대기 호수에서 한국 남자 둘을 만난다. 한국사람 없는 동네에선 인사만 해도 무척 반가워한다. 이 둘도 조합은 좀 이상한 조합인데 여튼 숙소에 방도 남는다며 잘데 없으면 재워준다고도 하고 다음날 신선지라는 현지인들만 아는 근사한 장소에도 같이 가자고 뜻밖의 호의를 보인다. 안 그래도 내일 그냥 송판으로 갈까 어쩔까 생각하던 참이라 신선지나 따라갈까 싶다. 여튼 그 양반들이 동쪽을 안 봤다고 해서 저녁 무렵에 공원 입구에서 만나기로 하고 헤어진다.


서쪽 길에 있는 호수 중 하나, 물에다 무슨 짓을 했길래 빛깔이 저런지 모르겠다^^


여기도 마찬가지.. 사진보다 직접 보는 게 더 이쁘다.


접니다요^^


원래 이틀을 보려고 설렁설렁 다니던 발걸음이 바빠진다. 서쪽 호수 끝에서 걸어 내려오니 시간이 꽤 걸리는데 아직 중간지점에서 입구에 이르는 길도 못 가봤는데 벌써 약속시간이 다 되어간다. 괜한 약속을 했나 싶기도 해서 중간에 내려 호수와 폭포를 하나 더 보고 약속시간을 제법 넘겨 입구에 도착한다. 갔으면 그만이다 싶은데 어라 이게 웬일인지 기다리고 있다. 결국 그 양반들이 묵고 있다는 호텔까지 같이 간다. 현지에서 고사리를 수거해서 한국에서 파는 아저씨와 퇴역군인 -이 둘은 중국으로 오는 배에서 만났단다- 그리고 고사리 아저씨의 중국 운전기사 셋이 일행이다. 원래 방을 셋 잡았는데 하나를 비워준다. 어지간하면 그냥 돈내고 따로 방을 잡을까도 싶었지만 그 호텔 방값이 200원이나 한다기에 그럴 엄두도 나지 않아 못 이기는 척하고 그냥 그러기로 한다.


그때부터 일이 복잡해진다. 뭐 처음 사연이야 내 알바 아니지만 중국으로 오는 배에서 만나 이런저런 사유로 일주일가량 일을 겸해 같이 다닌 이들은 이미 서로 감정이 상할 대로 상해있는 상태다. 고사리 아저씨는 어차피 일 때문에 다른 곳으로 가야 하는 상태라 퇴역 군인 아저씨가 송판 간다는 내게 신선지에 들렀다가 같이 송판으로 가자는데 싫다고 할 수도 없어 그러자고 한다. 다음날 아침 일어나보니 전날밤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신선지에 들렀다 가는 일정도 이미 어긋나 있고 고사리 아저씨는 제 갈 길로 가고 군인아저씨는 바로 송판으로 가자고 한다. 좀 황당하지만 어차피 가는 길이니 큰 문제는 아니다 싶어 그러기로 한다. 결국 끝이 좋지 않다, 거의 싸우다시피 헤어지는 일행을 보니 이 군인아저씨랑 같이 다닐 일이 걱정이 된다. 에구.. 그래도 말트레킹 하려면 일행이 있는 게 낫겠다 싶어 일단은 같이 송판으로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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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두> 다시 봄날이다

 

다행히도 청두 가는 버스는 꽤 여러 대가 있는 모양이다. 숙소에서 물어보니 8시 차가 있다고 해서 간만에 여유 있게 길을 나선다. 해도 뜨지 않은 새벽길을 게다가 추위에 떨면서 나서는 일은 당분간은 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 캉딩의 아침은 여전히 춥지만 다행히 터미널은 코앞에 있다. 버스가 떠나자 이번에는 사뭇 다른 풍경이 이어진다. 늘 어느 산으론가 올라가기만 하던 버스가 이번에는 산과 산 사이로 이어진 계곡을 따라 달린다. 좁은 계곡을 끼고 형성된 마을도 끊임없이 이어진다. 해발이 높지 않아서일까.. 주변은 온통 유채밭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제주도 신혼여행지의 대명사인 유채꽃이 여기서는 당당히 밭작물의 하나다. 어린 순은 볶아 먹기도 하지만 아무래도 주 목적은 기름을 짜는데 있는 것 같다. 하루 사이에 겨울과 봄을 넘나들고 있다.



청두 가는 길에 만난 유채밭, 봄빛이 완연하다.


버스는 이제 고속도로에 접어들더니 드디어 커다란 빌딩들이 즐비하게 서 있는 대도시로 들어선다. 드디어 청두에 도착한 것이다. 대도시에서 내리면 항상 숙소를 찾는 일이 고민인데-대부분 그냥 택시를 타긴 하지만 택시 기사도 숙소를 잘 찾는 편은 아니다- 여기서는 고민할 새도 없이 내려보니 그 유명한 교통빈관이 바로 눈앞에 보인다. 잠깐이지만 온통 봄날인 길을 혼자 겨울옷을 바리바리 입고 숙소에 들어선다. 다행히 교통빈관은 그 유명세답게 도미토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서비스나 운영의 수준이 거의 호텔을 방불케 한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도미토리가 있는 호텔인 셈이다. 먼저 더운물로 샤워를 하고 그간 입었던 겨울옷들을 세탁기에 돌려 널고 나니 비로소 한숨이 돌려진다. 호텔 앞 여행자 식당에 들러 간만에 맥주도 한잔 마시고 인터넷도 접속해본다. 여행을 다니면서도 도시에 와야 맘이 편해진다는 건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다음날은 그냥 청두 시내를 돌아다닌다. 살 물건이라고 해야 매번 샴푸니 치약이 고작이지만 그래도 쇼핑센터나 백화점에서 이것저것 고르는 일은 나름 재미가 있다. 이번에는 로션과 스킨이다. 여행 떠날 때 그 큰 걸 들고 간다고 구박구박을 받으면서도 들고 왔는데 어느새 새로 살 때가 된 것이다. 로션은 샴푸랑은 달라서 한번 사면 꽤 오래 써야 하는데다 피부에도 맞아야 해서 좀 비싸더라도 익숙한 외국제품을 사야 하나 백화점을 기웃거리고 있는데 이게 웬일인가.. 늘 쓰던 한국 제품 매장이 백화점에 있는 게 아닌가. 반가운 마음에 들러 보니 한국 제품은 그대로 다 있다. 문제는 물건값이 한국이랑 거의 같다는 건데 한국에선 별 생각 없이 쓰던 물건이 여기 가격으로 환산되어 있으니 왜 그리 비싸게 느껴지는지 살까 말까 잠시 망설여진다. 결국 로션과 스킨 두 개를 508원(6만5천원 정도)을 주고 산다. 손이 떨린다.^^게다가 여기는 샘플 화장품 하나, 화장솜 하나도 더 얹어 주는 게 없다ㅠㅠ.


청두 시내. 시내 한가운데 모택동의 동상이 서 있다.


그 다음날은 가이드북을 뒤져 시내 여기저기 가볼 만한 곳을 찍는다. 참 오랜만에 해 보는 일이다. 가고 싶은 몇 곳을 버스 노선과 동선을 고려해 정한 뒤 숙소를 나선다. 가장 먼저 들른 곳은 청두에서 가장 크고 보존이 잘된 절이라는 문수원이다. 절을 한 바퀴 둘러본 뒤 경내에 있는 찻집에 앉아 봄볕을 즐긴다. 그저 사람들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흐른다. 천천히 절을 빠져 나와 버스를 타고 청양궁으로 자리를 옮긴다. 이번에는 도교 사원이다. 뭐 그만그만하다. 다시 걸어서 두보초당으로 옮겨 본다. 다들 두보는 아실 것이다. 당나라때의 시인인 그는 20세 때 세상을 보기 위해 고향을 떠나 천하를 유람하다가 반란군을 피해 청두에서 4년간 살면서 200수가 넘는 시를 지었다고 한다. 말이 당나라 때지 우리나라로 치면 고구려쯤인데 그가 살았던 흔적이야 있을 리 만무하고 그저 잘 꾸며 놓은 정원에 복원해 놓은 초당이며 두보의 흔적을 모아 놓은 전시실이 군데군데 있는 곳이다. 간만에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니 여행 초반 죽어라고 돌아다니던 기억이 새로워진다.


문수원 내의 찻집


청양사내의 탑, 단 하나의 못도 사용하지 않았다는 탑으로 도교 철학의 건축적 성과를 보여 준다는데 그게 그리 어려운 일인지 모르겠다.


이 양반이 두보다. 중국 동상들은 근엄하지 않아서 좋다 -모택동 동상은 빼고^^-.


하루는 판다를 보러 간다. 중국의 동물 대사라는 판다는 청두 근처에 있는 판다 번식 연구센터라는 곳에서 연구와 서식을 함께 하고 있는데 일반 동물원과는 달리 제법 자유롭게 판다를 만날 수 있는 곳이라고 한다. 단 판다의 습성상 아침 일찍 가야 하는데다 -아침을 먹고 나면 주된 소일거리인 잠을 자러 우리로 돌아가 버린단다- 대중 교통편도 없어서 여행사의 투어를 이용해야 하는데 갈까 말까 고민하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실제로 판다를 한 번도 본적이 없다는데 생각이 미친다. 결국 반나절 투어를 신청한다. 아침 7시에 떠나 시내를 한바퀴 돌아 오늘의 투어 시청자를 죄다 싣고 공원에 도착하니 8시가 조금 지나 있다. 몇 개의 우리들을 둘러보며 판다를 구경한다. 생각했던 것 보다 조금 크긴 하지만 하는 짓이 제법 귀여워 한참을 우리 주변에서 서성이다 센터 내에서 보여주는 판다의 일생쯤 되는 영화도 한편보고 돌아오니 여전히 오전이다.



판다들, 무지 먹는다


누워서도 먹고..


아님 늘어져 자고..


이제 청두에서 할일은 거의 마친 셈인데 바로 티벳으로 가야할지 아니면 그 유명하다는 구채구와 송판을 들렀다 가야할지 여전히 고민이다. 특히 구채구는 한번 가보고 싶긴 한데 가는 길도 만만치 않은데다 여전히 춥다는 소문에 계속 망설여진다. 대체 움직이기 전날까지도 일정을 결정하지 못하다니 여행이 계속될수록 점점 더 고민만 많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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