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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1/31
    <다합2> 다이빙을 하다(7)
    제이리
  2. 2007/01/31
    <다합1> 시나이산을 가다(5)
    제이리
  3. 2007/01/14
    <와디럼> 베두윈 텐트에서의 하루밤(10)
    제이리
  4. 2007/01/14
    <페트라> 페트라에서 길을 잃다(6)
    제이리
  5. 2007/01/14
    <베들레헴> 팔레스타인 지구를 가다(7)
    제이리
  6. 2007/01/14
    <예루살렘>갈수록 태산이다(7)
    제이리
  7. 2007/01/14
    <암만>유령의 도시, 암만(2)
    제이리
  8. 2007/01/14
    <다마스커스> 라마단이 끝나다(4)
    제이리
  9. 2007/01/14
    <레바논남부> 사이다-알키암-티레(6)
    제이리
  10. 2007/01/14
    <베이루트> 중동의 파리, 베이루트(3)
    제이리

<다합2> 다이빙을 하다

시나이산 투어를 다녀 온 후 일행들이 같은 숙소에 묵고 있는 한국인 강사에게 다이빙을 신청한다. 초보자들이 신청하는 다이빙 코스는 일반적으로 4일짜리 오픈워터 코스와 2일짜리 어드밴스 코스 두 가지이다. 오픈워터 코스만 수료할 경우는 18m까지 잠수가 가능하고 어드밴스 코스까지 수료하면 30m까지 잠수가 가능한데 오픈워터 코스만 신청할 수도 있지만 대부분은 두 코스를 한꺼번에 신청하는 경우가 많다. 일행들은 이미 다합에 오기 전부터 다이빙을 하겠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고 이제 돌아갈 날도 얼마 남지 않아 빨리 다이빙 코스를 마치고 이집트를 돌아본 후 떠나야 하는 상황이다. 원래 이 친구들과 다이빙을 같이 하려고 했다가 상황이 여의치 않아 다음 기회로 미룬다. 나야 어차피 있는 건 시간밖에 없다. 이 친구들의 코스가 끝나기까지 일주일간을 기다렸다 다이빙을 시작한다. 다행히 남자 친구 두 명이 새로 신청을 해 강사, 조교, 수강생 셋, 모두 다섯 명이 다이빙을 시작한다.


아시는 분은 아시다시피 나 겁 무지 많다. 게다가 수영이라곤 여행 오기 전에 두 달 동안 실내수영장 다닌 게 전부다. 그럼에도 내가 다이빙을 배우기로 한 건 뭐 주요 다이빙 포인트마다 뛰어 들어 보겠다는 야무진 꿈을 꾸고 한 짓은 결코 아니다. 그저 앞으로 살면서 해변 갈 일은 많을 텐데 물에서도 겁 좀 안내고 재미있게 놀아보고 싶다는 소박한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그 소박한 꿈도 이 코스를 마쳐야 이루어질 터 어찌어찌 한다고는 해놓고 시작 전부터 걱정이 태산이다. 첫날은 이론 교육과 필기시험이니 물에 안 들어가도 되는 상황이라 그럭저럭 하루가 지나간다. 둘째 날부터는 장비를 착용하고 물에 들어가게 되는데 당연하게도 다이빙을 하는 게 아니라 물 속에서 각종 스킬을 배우는 게 하루 일과다. 일단 물밑으로 내려가 바닥에 앉아서 호흡기 뺐다 다시 끼기, 마스크 물빼기, BCD-부력조절기구인데 구명조끼처럼 생겼다- 입었다 벗기 뭐 이런 걸 돌아가면서 해보는 건데 스킬은 둘째 치고 바닥에 앉아 있기도 쉽지 않다. 게다가 그놈의 짠물은 호흡기 뺐다 끼면 입속으로 들어오지, 마스크 물빼기 하면 눈으로 들어오지 아주 죽을 맛이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양호한 수준이다. BCD 벗었다 입기에서는 거의 패닉 상태가 된다. BCD벗었다 입기는 물속에서 한 번, 수면에서 한 번, 모두 두 번을 하는데 물속에서 어찌어찌 하고 나서 이제 오늘 수업은 다 끝났겠거니 하고 올라와 보니 마지막으로 수면에서 다시 한 번 한단다. 어째 수면이 물속보다 더 무섭다. 그도 그럴 것이 일단 발이 안 닿는 곳에서 구명조끼 벗는 거나 마찬가지인데 어찌 그런 생각이 안 들겠냐 말이다. 안 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 결국 벗는 것까진 했는데 다시 입기는커녕 강사를 붙잡고 정신없이 비명을 질러댔으니 지금 생각해도 그런 망신이 없다^^. 결국 발 닿는 곳까지 끌려 나와서야 정신이 살짝 되돌아오는 게 느껴진다. 내가 어쩌자고 다이빙 수업은 신청을 했더란 말이냐.., 후회가 몰려온다. 사실 맘 같아선 코스비고 뭐고 다 물어주고서라도 그만두고 싶은 생각뿐이다. 하지만 지금 그만두면 내 평생 다시는 물에는 안 들어갈 것 같으니 그만두기도 쉽지 않고 내일이 오는 게 두렵기만 하다.

 

물속에서 후프 통과하는 것도 수업 과정의 하나다

 

다이빙 끝나고 나올 때가 제일 좋다, 왼쪽이 조교 안드리아스.


그래 일단 오픈워터만 하자. 그만두고 싶은 맘을 간신히 달래며 사흘째 다이빙을 시작한다. 이런 상황은 셋째날도 별로 달라지지 않아 죽지 못해 간신히 물에 들어갔다 나오니 이번엔 장비 다 벗어놓고 스노클과 오리발만 끼고 바다 수영을 해야 한단다. 바다에 떠 있는 두 부표 사이-한 오십 미터쯤 된다-를 두 번 왕복해야 한다니 눈앞이 깜깜해지긴 하지만 어차피 이판사판이다 하고 뛰어들긴 했는데... 막상 해보니 이것도 죽을 맛이다, 둥둥 떠서 가는 것까지는 하겠는데 스노클에 물이 들어 올까봐 고개를 들지를 못하니 방향을 잡을 수가 없다. 옆에서 다른 친구들이 방향을 잡아줘서 간신히 끝까지 간다. 또 다른 문제는 도무지 쉴 수가 없다는 건데 바닥에 발이 닿질 않으니 그냥 서 있기는 그냥 무섭고 부표를 잡고 버둥거려도 힘만 드니 그냥 쉬지 않고 왔다 갔다는 게 더 낫지 싶다. 결국 어찌어찌 목표량을 채우고 나와선 완전히 뻗어버린다. 


넷째날엔 본격적인 다이빙이 시작되는데 스킬 배울 때보다 조금씩 재미있어지긴 하지만 이것 역시 만만치 않다. 일단 다이빙을 하려면 물밑으로 내려가야 하는데 이것도 쉽지 않다.  예전엔 물에 빠지기만 다 가라앉을 줄 알았더니 것도 아니다. 막상 가라앉으려니 별 짓을 다해야 한다. 그럼 가라앉기만 하면 만사 오케이냐 그도 당연 아니다. 막상 다이빙을 시작하면 적당한 부력을 유지해야 하는데 이거 잘못하면 바닥을 박박 기거나 갑자기 물 위로 떠오르는 수가 생긴다. 한번은 공기를 빼야 하는 시점에서 버튼을 잘못 눌러 공기를 넣어버렸더니 느닷없이 몸이 하늘로 솟구치는 느낌이 든다. 정신을 차려보니 혼자 수면 위에 둥둥 떠 있는 게 아닌가.. 해변까지 가자니 너무 멀고 혼자 내려가자니 밑에 아무도 없을 것 같고 아,, 어찌하나 하고 있는데 저쪽에 사람 하나가 보인다. 스노클링하는 사람인가 싶은데 그 와중에도 다이빙복 입고 물위에 떠 있는 게 쪽팔린 생각이 들어 괜히 아무렇지도 않은 척 하이하고 인사를 건네 본다. 근데 분위기가 이상하다. 헉 자세히 보니 우리 조교다. 결국 조교에게 끌려 다시 물밑으로 내려간다.

지금 다이빙 중

다이빙 동기들, 나(지진아), 체육부장, 반장


결국 안한다, 안한다 하면서도 어드밴스 코스까지 마치고 그도 모자라 먼저 다이빙을 한 친구들과 펀 다이빙까지 다녀오고서야 다이빙은 끝이 난다. 죽을 고생을 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하고 나니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 아직까지 물이 무섭지 않은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이제 물에서 첨벙거릴 수는 있을 것 같다. 다이빙을 또 할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다이빙을 끝내고 바로 떠난다던 일행들은 결국 이집트 여행은 포기하고 다합에서 세월을 보내다 아웃하는 날을 이삼일 남겨두고 카이로로 떠난다. 그 친구들과 같이 체육 부장과 반장도 함께 떠난다. 같이 갈까 하다가 그냥 다합에 눌러 앉는다. 이집트 다음에는 어디를 가든 비행기를 타고 나가야 하는데 연말 연초에는 항공권 가격도 오른다니 지금 카이로로 가는 건 아무래도 좀 이른 것 같다. 그냥 다합에서 한동안 머물다 12월 중순 경에나 움직일 생각이다. 일행들이 한꺼번에 떠나고 나니 다합이 텅 빈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내가 찍은 건 아니지만) 홍해 바다 속1

 

(내가 찍은 건 아니지만) 홍해 바다 속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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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합1> 시나이산을 가다

 

다합에서는 거의 빈둥거리는 일로 시간을 보낸다. 원래 다합이라는 곳이 딱히 볼 게 있거나 갈 데가 있는 곳도 아닌데다 이곳에 오기 전부터 다합에 가면 좀 길게 쉬어야지 -사실 뭐 한 게 있다고 쉬어야 하는지 좀 민망스럽지만서두^^- 하고 맘먹고 온 터라 숙소를 정하고 나서 한 일이라곤 그저 한국인들이 많이 간다는 레스토랑에 진을 치고 앉아 수다를 떨거나 숙소에서 이북이나 읽는 것이 하루 일과의 전부가 된다. 여행자들의 3대 블랙홀이라는 명성답게-한번 들어가면 빠져나가기 어렵다는 뜻으로 태국의 카오산, 파키스탄의 훈자, 이곳 다합을 흔히 꼽는다- 아직 여행 성수기는 아닌데도 숙소에는 서너 명의 한국인 여행자들이 보이고 이삼일에 한번씩은 새로운 얼굴들이 등장했다 사라지곤 한다.


아닌게 아니라 다합은 장기 체류하기엔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일단 물가가 싸다. 숙박비의 경우 도미토리에 묵으면 천원 정도, 싱글룸도 좀 저렴한 곳에 묵으면 이천원 정도면 되고 식비도 제법 잘 나오는 아침식사가 천오백원 정도, 점심이나 저녁도 이천원 정도면 충분하니 하루에 만원 정도면 넉넉하게 지낼 수 있다. 게다가 날씨도 따뜻해서 한낮엔 별다른 장비 없이도 스노클링을 즐길 수 있고 굳이 스노클링을 하지 않더라도 그저 바다만 바라보고 있어도 하루가 금방 지나가 버린다. 여행자가 많으니 편의 시설도 잘되어 있는 편이고 이집트의 여느 곳에 비해 호객 행위나 바가지도 비교적 적은 편이니 그야말로 쉬었다 가기엔 이보다 좋을 순 없다.


숙소에 한국 사람들이 제법 있으니 저녁엔 주로 밥을 해 먹는다. 수제비나 라면 같은 간단한 음식에서 시작한 저녁밥이 점점 발전해 백숙은 기본에다 근처 베드윈 마을까지 가서 쇠고기를 사다가 불고기를 만들어 먹는 것도 모자라 새우나 게를 사다가 해물탕까지 끓여 먹는다. 숙소 마당 가운데 천막으로 둘러싼 휴식 공간이 마련되어 저녁을 먹고 나면 모닥불 가에 앉아 물담배를 피우거나 감자나 고구마를 구워먹는다. 이럴 때 맥주 한잔이 빠질 수 없다. 맥주를 마시면서 서로의 여행이야기나 하다가 그것도 시들해지면 누군가의 배낭에서 화투가 나오고 결국 점당 0.5파운드짜리 내기 고스톱판이 벌어진다. 고스톱판이 으레 그렇듯 왁자한 분위기는 새벽까지 계속되고 결국 오전이 다 지나서야 다음날이 시작된다.

 

해변을 따라 늘어선 레스토랑

 

 

사실 이곳 해변은 모래사장이 따로 없어 바다를 보려면 레스토랑마다 마련해 두고 있는 썬베드를 이용해야 한다

 

다합에 온지 이틀 만에 시나이산을 다녀온다. 시나이산은 모세가 십계를 받았다는 산으로 다합에서 두시간 가량 떨어져 있는 곳이라 투어로 다녀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숙소에서 만난 한국인 친구 서너 명이 시나이산을 가는데 우리 일행까지 같이 가면 투어 가격이 더 싸진다며 같이 가자는 제의를 해 온다. 좀 빠르다 싶긴 하지만 언제가도 갈 예정이니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는 맘으로 어영부영 따라 나선다. 아직까지도 산에 가는 일정은 어지간하면 피하고 싶은 게 솔직한 맘이다. 게다가 시나이산 투어는 보통 밤늦게 출발해 한밤중에 산에 올라 일출을 본 뒤 돌아오는 일정으로 진행되는데 산에 오르는 것도 그렇지만 해가 뜨기를 기다리는 시간동안 극심한 추위를 견뎌야한다. 결국 옷이란 옷은 다 껴입고 그도 모자라 장갑에 목도리까지 완전 무장하고 침낭이며 랜턴까지 가방에 챙겨 넣고 밤 열한시가 넘어서 버스를 탄다. 버스는 두어 시간을 달려 매표소 입구에서 우리를 내려놓는다.


정상까지 올라가는 길은 낙타를 타기로 한다. 달이 휘영하니 밝은 게 산길을 오르는 것도 운치는 있어 보이지만 어차피 낙타에서 내려도 한 시간 가량은 더 걸어 올라가야 한다니 미리 힘을 뺄 필요는 없지 싶다. 걸어 올라간다는 친구 둘을 제외한 여섯 명이 낙타를 타고 산길을 간다. 여행 다니면서 낙타는 처음 타보는데 조금 높기는 해도 보기보다 무섭지는 않다. 낙타에서 내려 한시간 가량 계단을 오르니 정상이 나타난다. 정상에 오르고 난 시간은  네 시 반이 조금 넘은 시간이니 이제부터는 추위와의 싸움이다. 해가 언제 뜰지 모르니 그저 침낭을 둘러쓰고 기다리는 거 외에는 별다른 도리가 없다. 바람은 계속해서 불고 더 이상 추위를 참을 수 없을 무렵이 되어서야 동쪽 하늘이 서서히 붉어지더니 해가 그 모습을 드러낸다. 나무 하나 없는 산을 붉게 물들이는 해를 보고 싶었는데 이번에도 날이 좋지 않다. 해는 먹구름 속에서 고개를 비죽이 내밀고 그나마 사람들은 해가 떠오르기 무섭게 내려갈 채비를 한다. 가파른 돌계단을 두시간 가량 내려가니 다시 매표소가 나온다. 돌아가는 차는 9시에 문을 연다는 성까뜨리나 수도원까지 보고 오라는 뜻으로 열시나 되어서야 온다는데 우리는 수도원이고 뭐고 그냥 싸가지고 온 빵이나 먹으며 근처 카페에서 노닥이는 걸로 시간을 보낸다. 

 

 

시나이산의 일출

 

정상에서 바라 본 시나이산

시나이산을 다녀와도 시간은 여전히 지천으로 남아 있다. 다시 고민이 되기 시작한다. 이집트 이후에 어디를 가야할 것인가. 남미를 가자니 돈이 없고 아프리카를 가자니 이것저것 걸리는 게 많고 유럽을 가자니 날씨가 너무 춥고.. 이전부터 했던 고민인데도 더 이상 진전이 되질 않는다. 카이로에 가면 이집트를 돌아보기 전에 비행기표라도 끊어놔야 할 텐데 대략 견적이 나오질 않는다. 조금 천천히 돌아서 이집트에서 겨울을 났어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후회가 들기는 하지만 그랬다면 터키나 시리아에서 추위에 떨어야 했을테니 이러나 저러나  마찬가지다, 카이로에서 인도 가는 비행기표가 싸다니 인도나 들러서 두어 달 있다 한국으로 가는 게 지금으로선 가장 현실적인 방안인데 왔던 길을 되돌아간다는 게 아무래도 내키질 않는다. 내 이럴 줄 알았다. 안 풀리는 문제는 시험 끝나는 종 쳐도 안 풀리는 거다. 이럴 땐 찍는 수밖에 없는데 마지막 순간에 몇 번답을 찍을 지는 지금 나로서도 알 수가 없다. 어째 떠나는 것보다 돌아가는 길이 더 힘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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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디럼> 베두윈 텐트에서의 하루밤

다음날 와디럼으로 향한다. 전날 본의 아니게 걸어다닌 후유증으로 삭신이 쑤시긴 하지만 이미 숙소에서 와디럼 투어를 예약해두었으니 안 갈수도 없는 노릇이라 새벽부터 죽을 맛이다. 투어를 신청하긴 했지만 투어 지프는 와디럼에서 출발한다니 새벽 버스를 타고 와디럼으로 가야 한다. 페트라에서 와디럼까지는 두시간 남짓 걸린다고는 하지만 이 놈의 버스는 이 호텔, 저 호텔로 사람들을 픽업하러 다니더니 예정 시간을 한시간이나 훌쩍 넘기고서야 와디럼으로 출발한다. 이럴 줄 알았으면 꼭두새벽부터 서두르지 않아도 되는 건데 버스에서 꾸벅꾸벅 졸다 생각해도 약이 오른다.

 

게다가 이 놈의 버스 차장은 차비 이외에 1디나르의 짐값까지 별도로 요구한다. 우리가 무슨 이삿짐을 실은 것도 아니고 짐 값을 따로 받겠다니 그것도 1디나르씩이나 -말이 1디나르지 1,500원쯤 되는 돈이다- 무슨 소리냐며 따졌더니 짐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니 자리값을 내야 한단다. 어쩐지 첨부터 짐칸에 짐을 못 넣게 하고 뒷자리에 싣더니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내라 못낸다 실갱이가 오가고 약이 오른 일행들이 자기 배낭을 무릎 위에 얹는다. 아제 됐냐고 물어보니 아무 말이 없다. 뭐 나야 도저히 배낭을 무릎에 올려놓을 처지니 아니니-무릎 나간다^^-그냥 뒷자리에 실어두었으나 일행들의 재치로 그냥 묻어간다.

 

우리가 투어지프를 탄 것은 아침 10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다. 우리 일행 넷과 미국애 하나, 그리고 가이드 겸 기사가 일행의 전부다. 와디럼은 사막은 사막인데 모래사막이 아니라 붉은 바위와 흙으로 이루어진 사막이다. 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의 배경이라는데 뭐 아라비아의 로렌스를 이때까지 아라비아의 로맨스로 알고 있던 나로서는 뭐 이러나저러나 마찬가지다. 지프는 사막 아닌 사막을 달려 조그만 모래 언덕에 우리를 내려 준다. 아무리 모래사막은 아니어도 조그만 사구가 있다. 모래가 발목까지 빠지는 사구에서 미끄럼을 타고 논다. 이럴 땐 비료 푸대가 제격인데.. 아쉽긴 하지만 가이드가 끌어주는 미끄럼도 제법 속도가 난다. 내려올 땐 신나지만 발이 푹푹 빠지는 모래 언덕을 다시 올라가는 일은 그리 쉽지 않다. 대체 내가 몇 살이란 말이더냐... 간만에 애들처럼 놀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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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디럼 사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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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디럼에서 일행들과

 

사구를 내려와 다시 지프를 타고 몇 군데를 더 들른다. 차를 타고 다니긴 하지만 동선은 그리 크지 않은 듯 하다. 사막에서 점심을 먹고 베드윈 텐트에서 차도 마시고 세시가 조금 넘어 숙소에 도착한다. 커다란 바위 옆에 천 한자락 둘러놓은 것이 오늘 밤 우리의 숙소란다, 뭐 당근 지붕은 없다. 아직 그렇게 추운 날씨는 아니지만 밤은 좀 다를텐데.. 걱정은 되지만 설마 얼어 죽으랴 싶다. 숙소 근처를 쏘다니다 해질 무렵 돌아오니 저녁 식사가 준비되어 있다. 또 닭이다. 대략 파키스탄부터 아니 인도부터 고기라곤 거의 닭만 먹었으니 내 평생 먹은 닭보다 이 기간에 먹은 닭이 더 많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감자랑 토마토를 함께 넣어 항아리에 넣고 찐 닭은 그간 먹었던 것보다는 맛이 있다. 저녁을 먹고 나서 모닥불 옆에서 수다를 떨다가 긴 밤을 맞는다. 불을 피우고 잘 수는 없으니 침낭에다 담요까지 꽁꽁 덮어쓰고 눕는다. 생각보다 춥지는 않다, 멀리 하늘에 떠 있는 별들도 보이고.. 그저 아침까지 화장실 가고 싶은 생각만 안들었음 좋겠다는 게 유일한 바램이다.

 

바깥에서 본 숙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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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 내부

 

아침 일찍 차가 버스 정류장까지 우리를 데려다 주는 것으로 와디럼 1 2일 투어는 끝이 난다. 이제 아카바로 가서 이집트로 가는 배를 타면 요르단 여정도 끝이 난다. 12시에 떠나는 배니 시간은 충분하다. 결국 버스를 타고 아카바에 내려 항구까지 다시 택시를 탄다. 배표를 끊고, 얼마 안되는 요르단 돈을 이집트 파운드로 바꾸고, 출국 신고를 하고 배를 탄다. 열두시에 떠난다는 배는 두시가 넘어 출항하더니 여섯시쯤 이집트 누웨이바 항구에 도착한다. 다시 배를 내리는데 걸리는 한시간, 입국 신고하는데 삽십분 가량을 소비하고 여덟시가 넘어서야 항구를 나선다. 다시 택시를 타고 밤 열시가 넘어서야 다합에 도착한다. 집 떠난지 1 2개월 만에 여행의 마지막 목적지, 이집트에 도착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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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트라> 페트라에서 길을 잃다

이스라엘에서 돌아온 우리는 암만을 그냥 지나쳐 바로 페트라로 향한다. 이제 바이람도 끝났으련만 암만에서 하루를 더 묵고 싶은 생각은 더 이상 들지 않는다. 요르단은 그리 크지 않은 나라라 어두워질 무렵 페트라가 있는 마을, 와디무사에 도착한다. 와디무사 역시 페트라로 몰려드는 관광객들을 보고 사는 마을일 뿐 마을은 별로 볼 것도 없고 인심이 좋지도 않는 소문인데 그나마 게스트북을 읽고 나니 더욱 정이 가길 않는다, 게스트북의 내용이라야 온통 어느 가게는 바가지고 어느 호텔은 어떻게 사기를 치고 하는 내용뿐이다. 어차피 페트라를 보려고 온 마을이니 페트라만 보고 떠나면 그 뿐이긴 하지만 말이다.

 

원래 계획은 그랬다. 페트라의 입장료가 좀 비싸긴 하지만 그래도 학생할인 된다니 이일권을 끊자. 그리고 나서 오늘은 저녁 늦게 도착했으니 다음날은 마을이나 어슬렁거리다 오후쯤 표를 끊어 페트라에 들어가자. 첫날은 분위기나 살펴보고 어디 한갓진 데 앉아서 일몰이나 보고 나와 그 다음날 나머지 부분을 천천히 둘러보자 뭐 이랬던 것이다. 하지만 막상 오후가 되어서 매표소에 도착하니 학생할인제도는 한시적인 거라 지금은 시행하지 않는다고 한다. 일일권의 가격도 21디나르 거의 3만원이 넘는 가격이다. 바로 계획이 수정된다. 일몰 보자고 만오천원이나 되는 돈을 더 낼 수는 없다. 결국 다음날 다시 오기로 하고 그냥 숙소로 돌아온다. 숙소에서는 페트라의 배경이 되었다는 영화, 인디아나 존스를 틀어준다. 언젠가 TV에서 본적이 있는 것도 같은데 다시 보니 이 영화, 배우고 특수효과고 할 것없이 촌스럽기 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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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디무사의 야경

 

다음날 비록 빵나부랭이이긴 하나 점심까지 싸들고 일찌감치 페트라로 향한다. 간만에 맘을 단단히 먹고 나선 길이다. 비록 하루지만 구석구석까지 살펴보리라 맘먹고 매표소에서 나눠준 지도룰 살펴보며 동선까지 짜본다. 음 이렇게 저렇게 다니면 되겠군.. 입구에 들어서 바위로 둘러싸인 좁은 협곡을 지나 그 유명한 신전이 협곡 사이로 모습을 드러냈을 때만 해도 뭐 굉장한 장면이라도 숨겨져 있을 것 같았으나 보이는 모습은 더도 덜도 아닌 딱 사진에서 본 그대로다. 그럼그렇지 하면서도 드디어 패트라에 오긴 온 모양이다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협곡을 지나자마자 보이는 검붉은 바위산들로 둘러싸인 페트라는 상상했던 것만큼 넓어보이진 않는다. 첫 번째 포인트인 왕들의 암굴 무덤을 둘러보고 두 번째 포인트인 수도원으로 갈 때까지만 해도 별 문제는 없었다.

 

페트라에서 가장 유명한 사진, 뒤로 보이는 것이 인디아나 존스에 나오는 그 신전이다

 

그저 수도원까지 가는 길이 좀 가파르다는 거 정도였을까.. 하지만 한시간 가량 올라가는 정도니 그리 힘들 것도 없다. 수도원을 돌아보고 다시 되짚어 내려오니 어느새 점심 먹을 시간이다. 싸가지고 온 빵을 나눠 먹고 나도 아직 두시가 채 안된 시간이다. 세 번째 포인트는 일몰 지점이라는 데 너무 빨리 가도 기다려야 하니 뒤쪽 길로 슬슬 돌아기보자고 제안한 건 나다. 일행들도 페트라가 생각보다 작다고 느꼈는지 순순히 동의를 해 준다. 일단 돌아가는 길이라고 짐작되는 길로 들어서자마자 그 많던 사람들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어쨌든 길은 이어져 있으니 어디로든 닿겠지... 세 번째 포인트라고 생각되는 지점을 향해 슬슬 걸어가기 시작한다. 처음엔 그저 산책이라도 하는 기분이었다. 어차피 여기는 입장료 내고 들어온 울타리 있는 관광지니 길은 어디로든 통할 거리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두시간쯤 시간이 흐르자 슬슬 불안해지기 시작한다.

 

페트라, 붉은 바위산 곳곳에 왕의 무덤과 신전들이 숨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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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단을 따라 한시간쯤 걸으면 수도원이 나타난다

 

아무리 가도 세 번째 포인트로 짐작되는 곳은 나오지 않고 사방은 온통 바위산이다. 시간은 막 네시를 지나고 있으니 한시간 반쯤 지나면 해가 질 시간이다. 가장 현명한 벙법은 왔던 길을 되짚어 나가는 것이지만 이미 두시간이나 걸어온 우리는 나가는 시간이 엇비슷하게 걸리는 길을 되돌아가고 싶지는 않다. 길을 물어볼 만한 사람은 하나도 보이질 않고 우리 일행은 다시 아마 이쪽일거라고 생각되는 지점으로 방향을 잡아 협곡 사이를 계속해서 걸어간다. 협곡의 끝에는 뭐라도 있지 않을까하는 막연한 기대가 되돌리는 발길을 잡은 셈이다. 협곡은 계속 깊어지더니 마침내 몇 개의 바위가 앞을 가로막는다. 이제 와서 돌아갈 수도 없으니 서로의 손을 잡아주며 바위를 넘는다. 저기 보이는 끝지점까지 가면 큰 길이 나올 거라는 막연한 믿음을 가지고.. 하지만 우리가 끝지점이라고 생각했던 곳은 커다란 바위로 가로막혀 있다. 도저히 넘어갈 수도 없지만 넘어본들 그곳에 길이 있을 리도 만무하다.

 

슬슬 긴장이 되기 시작한다. 이제 조금 있으면 해가 떨어질 시각이다. 벌써 해는 저녁 특유의 황금빛을 뿌리고 있다. 다들 말을 안 하지만 긴장된 표정이다. 결국 어두워지더라도 아는 길로 가는 게 낫다는 결론을 내린다. 지금은 다섯 시가 넘었으니 돌아간다면 세 시간 남짓, 어두워지더라도 아는 길이니 헤맬 염려는 없고 여덟시까지 처음 지점으로 돌아가면 아홉시까지는 매표소를 나갈 수 있으리라는 계산이다. 온 길을 되짚어 나간다, 누가 뭐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모두들 발걸음이 빨라진다. 어느새 주위는 캄캄해지고 되짚어 가는 길이라도 이곳인지 저곳인지 길들이 헷갈리기 시작한다. 다행이라면 그마나 달빛이 좀 있다는 정도일까.. 모두들 말없이 걷기만 한다, 한참을 정신없이 걸어나오다 보니 멀리 큰길이 보인다. 차가 다니는 길이니 아마 매표소로 연결된 길일 것이다. 비로소 한숨을 돌린다. 시계를 보니 7시다., 세 시간에 들어간 길을 두 시간만에 되짚어 나온 셈이다.

 

큰길을 따라 걸으니 익숙한 길이 나온다. 하지만 아직 매표소까지는 한 시간 가까이 걸어야 한다. 결국 매표소에 도착한 시간은 여덟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나 오전에 패트라를 돌아본 시간을 제외하고도 거의 6시간을 쉬지 않고 걸은 셈이다. 이렇게 매표소까지 버젓이 있는 곳에서 길을 잃어버라다니.. 그것도 일헹이 넷이나 되면서.. 좀 황당한 생각은 들었지만 그나마 노숙 신세를 면한 개 어디냐 싶다, 다들 매표소를 나오고서야 한마디씩 한다. 입 밖에는 내지는 않았지만 다들 최악의 경우 하루밤 잘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던 모양이다. 나 역시 이런 날씨라면 춥긴 하겠지만 얼어 죽지는 않겠다는 생각부터, 물은 얼마나 남았나 그래도 라이타가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까지 온갖 생각이 머리 속을 지나갔으니 말이다. 그때는 노숙 안하게 된 것만으로도 행복한 마음이었는데 요즘은 이런 생각이 든다. 대체 페트라에게 길 잃어버린 띨띨한 인간들이 우리 말고 또 있었을까.. 아무래도 없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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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들레헴> 팔레스타인 지구를 가다

세 번의 삽질 끝에 숙소를 옮긴 뒤 침낭까지 빨고 나니 긴장이 쫙 풀리는 게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다. 그나마 예루살렘성 주변의 교회 몇 군데를 둘러보고 나니 딱히 더 가고 싶은 곳도 없다. 일행들을 슬쩍 떠 본다. 이스라엘에서 사해간다며... 차비가 너무 비싸요, 마사다성은 안 갈래? 관심 없어요, 내 일행들도 그저 지치는 모양이다. 더구나 부엌 있는 숙소로 옮긴 뒤부터는 밥만 해 먹어도 하루가 정신없이 흘러간다. 그냥 예루살렘 주변만 보고 떠나지 뭐 하는 생각을 하다가도 다른 생각 하나가 뒤꼭지를 잡는다. 팔레스타인 지구에 가봐야 하는데.. 사실 예루살렘성이야 아랍지구, 유대지구, 기독교지구 등으로 나뉘어 있고 지금 내가 묵고 있는 숙소도 아랍 지구에 있으니 팔레스타인 사람들이야 지겹도록 보는 셈이지만 왠지 그 곳에 한번은 다녀와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어차피 가자 지구는 현재 외국인은 출입이 금지되어 있다니 들어갈 수 없고 그나마 서안 지구 중에서는 베들레헴이 가장 들어가기가 그나마 쉽다고 하니 그곳에나 가볼까 하는 생각이 든다. 베들레헴이 워낙 유명한 성지이다 보니 팔레스타인 지구에 위치해 있으면서도 출입이 자유롭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한편으론 이런 생각도 든다. 또 뭐가 보고 싶은 거냐고,. 결국 팔레스타인 지구라는 곳을 관광하고 싶은 게 아니냐는 생각으로부터 자유롭지는 못하지만 그저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눈으로 한번 보고 싶은 것뿐이라고 애써 위안을 한다. 일행들에게 같이 가지 않겠느냐고 물어보니 세 명의 기독교인들에게 돌아온 대답은 귀찮아요... 뭐 그 기분도 이해가 된다. 간만에 혼자 설렁설렁 걸어다니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버스를 타고 팔레스타인 지구 앞에 내린다. 눈앞에 긴 담장이 쳐 있고 담장 위로는 군데군데 감시초소까지 설치되어 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사는 전 지역을 저런 담장으로 둘러칠 예정이라더니 얼핏 봐도 수용소가 따로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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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 지구를 둘러싸고 있는 장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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곳곳에 있는 포스터들, 이스라엘과의 싸음에서 죽은 이들을 기리는 포스터라고 한다.

 

국경도 아닌 곳에서 다시 여권 검사를 받고 팔레스타인 지구 안으로 들어선다. 다행히 별다른 제지는 없다. 이곳부터 예수가 탄생했다는 교회까지는 택시를 타야 한다. 입구부터 늘어서 호객 행위를 하고 있긴 한데 부르는 택시비는 만만치 않다. 어차피 교회가 목적은 아니니 슬슬 걸어가 보기로 한다. 도로를 따라 걸어가다 현지인 아저씨에게 예수탄생교회 가는 길을 물으니 자기 차에 태워준단다. 탈까 말까 망설이고 있으니 공짜라며 다시 타라고 재촉이다. 에라 모르겠다, 길도 모르는데 지금은 그냥 타고 올 때 걸어오면 되지 싶다. 예루살렘에서 교사 생활을 한다는 이 아저씨의 차를 얻어 타고 예수탄생교회까지 간다. 체크포인트에서 교회까지는 그리 먼거리가 아닌 듯 몇 마디도 나누지 않았는데 차는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한다. 차를 타고 올 때는 한산하기만 하던 거리가 어느새 관광객으로 가득차 있다. 대부분 관광버스를 타고 와 교회만 들러보고 떠나는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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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탄생교회

 

예수가 탄생한 자리란다

 

예수가 탄생한 마굿간 위에 세웠다는 교회에 들렀다 교회 주변을 걸어 다녀본다. 시장도 집들도 아랍 국가들에서 본 여느 거리와 별로 다르지 않다. 다만 이스라엘과의 싸움에서 목숨을 잃은 듯한 젊은이들의 사진이 여기저기 걸려 있는 것이 차이라면 차이랄까.. 동네를 둘아 보고 오던 길을 되짚어 걸어온다. 교회 부근은 벗어나자 시내는 다시 사람의 흔적도 없이 조용해진다. 그러다 어디쯤에서 길을 잃는다. 그리 먼 곳도 아니었으니 걸어가다 보면 어딘가 나오겠지 하고 그냥 아무데로나 걸어가 본다. 한참을 걸어가다 보니 아까 내린 곳은 아니지만 예루살렘 가는 버스를 타는 곳이 나온다. 하긴 저 장벽을 통해서 다녀야 한다면 이곳 사람들은 차를 몰고는 밖으로 나갈 수 없을테니 어딘가 도로가 연결되어 있어야 할 것 같긴 하다. 그러나 차를 타고 나가는 길 역시 결국 검문을 피할 수는 없다. 도로에 있는 검문소에서는 차에서 사람을 죄다 내리게 한 뒤 사람 따로 차 따로 다시 검사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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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들레헴 시장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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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들레헴 시장2

 

결국 몇 시간도 채 되지 않아 예루살렘으로 다시 돌아온다. 이스라엘 내에서 가장 안전하다는 팔레스타인 지구를 눈으로 한번 스쳐 지나왔을 뿐인데 무슨 숙제라도 한 것처럼 이제 떠나도 되겠다 싶은 생각이 드는 건 뭔지.. 대체 내가 뭘 보러 다니는 거지.. 답도 없는 물음에 며칠을 씁쓸한 맘으로 보내다 다시 요르단으로 돌아온다. 6시간 만에 들어온 예루살렘을 나가는 데는 채 5분도 걸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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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갈수록 태산이다

다음날 아침 일찍 이스라엘 국경으로 가는 택시를 탄다. 택시는 암만에서 두시간 가량을 달려 요르단과 이스라엘의 국경이 있는 킹후세인 다리에 도착한다. 아시는 분은 다 아시겠지만 이스라엘과 여타의 중동 국가들은 사이가 엄청 좋지 않다. 고로 여권에 이스라엘 출입국스템프가 있는 경우 입국이 불가능한 중동 국가들이 꽤 된다. 나야 입국이 불가능한 나라들인 파키스탄이나 이란, 시리아 등은 이미 거쳐 왔고 앞으로 가게 될 이집트나 갈지도 모르는 모로코 등은 비록 중동 국가라도 입국이 가능하니 스템프를 받아도 큰 상관은 없지만 그래도 혹시 만에 하나 가게 될지도 모르는 수단을 대비해 별지에 스템프를 받을 생각을 하고 있다. 이 경우 단지 이스라엘의 출입국 스템프만 별지에 받으면 되는 것이 아니라 요르단의 출입국까지 별지에 받아야 흔적이 남지 않는다. 다행히 요르단 출국 스템프는 별말없이 별지에 찍어준다. 삼엄하기 이를데없는 국경을 넘어 출입국 사무소로 들어가니 분위기가 사뭇 달라진다.

 

이스라엘 출입국 업무는 거의 여군들이 처리한다. 비록 군복은 입었지만 이제 갓 스무살을 넘긴 듯한 여성들이 일하고 있는 모습은 일하는 여자들을 거의 볼 수 없는 중동 국가를 다닌 뒤라 그런지 꽤 새삼스럽게 느껴진다. 여권을 출입국 심사대에 밀어 넣고 심호흡을 해본다. 다른 중동국가를 다녀 온 흔적이 있으면 꽤 까다롭게 군다는 이야기는 이미 들어온 터다. 아닌게 아니라 계속 질문이 이어진다. 처음엔 이름이 뭐냐, 여행 목적이 뭐냐는 그저 그런 질문이 점차 파키스탄은 언제 갔냐, 이란은 왜 갔냐 하는 쪽으로 바뀐다. 남이야 가든 말든 웬 참견이냐고 되묻고 싶지만 그럴 수도 없는 노릇이라 고분고분 대답을 한다. 한참 질문 공세가 계속되더니 대기 장소에서 기다리란다. 기회는 이때다 싶어 조심스레 스템프를 별지에 받을 수 있겠냐고 물어봤더니 한마디로 거절이다. 여권에 스템프를 받던지 아님 그냥 이 자리에서 그냥 돌아가라며 여권까지 다시 내민다. 태도가 사뭇 고압적이다, 잠시 갈등이 생긴다. 그냥 확 돌아가 버릴까 싶은 생각이 들긴 하지만 일행도 있는데다 아무래도 수단까지는 갈 것 같지도 않으니 그냥 스템프를 받아도 상관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결국 그냥 스템프를 받기로 한다

 

여기까지 와서 그냥 돌아가기도 뭣해 그냥 스템프를 받기로 한 것도 약이 오르는데 사무실로 들어간 여권은 나올 줄을 모른다. 두시간이 넘게 흐르는데도 그저 기다리라는 소리뿐이다. 나보다 훨씬 늦게 와서도 먼저 여권을 받아 나가는 사람들을 보면 사람이 많아서 그런 것 같지는 않고, 불러다 뭘 물어보는 것도 아니니 뭔가 조사할 일이 있어서도 아닌 것 같고  그저 시간만 보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냥 엿먹어라 이외에 다른 의미를 찾아내기가 힘들다. 세 시간쯤 지나자 일행들의 여권이 나오는데 여전히 내 것만 나오질 않는다. 일행들은 시리아가 다녀온 중동 국가의 전부지만 나야 이란에다 파키스탄까지 다녀 와 괘씸죄가 더 적용되는 모양이다, 시간은 점점 흐르고 창구가 하나둘 닫히더니 대기실에 우리 일행 밖에 남지 않았을 때야 내 이름이 불리고 여권에 스템프가 찍힌다. 결국 국경에 도착한지 6시간 만에 제일 마지막으로 여권을 받아 쥔다. 입에서 욕이 절로 나오지만 어쩌랴.. 어차피 아쉬운 쪽은 나다.

 

출입국 사무소를 빠져나가니 이번엔 예루살렘까지 가는 버스가 없다. 지들 말로는 원래 없다는데 그런 건지 아님 끊긴 건지 어쨌든 국경엔 우리 일행뿐이다. 날은 조금씩 어두워오고 결국 엄청나게 부르는 택시 요금을 깍고 깍아 예루살렘으로 향한다. 예루살렘 성앞에 있는 한국인 선교사가 묵고 있다는 허름한 호텔에 짐을 푼다. 굳이 선교사가 있는 곳을 찾아간 이유는 뭐 하나님의 말씀이 그리워서는 아니고  그 선교사가 호텔에서 제공하신다는 공짜밥에 대한 소문 때문이다. 소문인즉 한국인 선교사 한분이 그 호텔에 묵으면서 호텔에 온 배낭여행객에게 공짜로 밥을 해주신다는 것이다. 단 얼마 뒤에는 한국에 가실 예정이니 지금은 계실지 안 계실지 확률은 반반이라는 거다. 공짜밥도 그렇지만 그게 한국 음식이라면 50%의 확률도 그리 쉽게 무시할 소문은 아니니 계시면 좋고 안계셔도 그만이다 하는 맘으로 호텔을 찾아간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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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성에 있는 여러 개의 성문 중에서 가장 유명한 다마스커스 게이트, 처음 숙소는 이 성문 앞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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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밖에서 바라본 예루살렘 성, 멀리 보이는 것이 황금색 지붕이 바위돔이다

 

호텔에 선교사님이 계시긴 했다. 하지만 며칠 뒤에 한국에 갈 예정이라 오늘 저녁부터 밥하는 걸 그만두셨다고 한다. 우리 팔자가 그렇지 뭐 하고 있는데 이것저것 물어보시던 선교사님.. 그래도 한국 친구들이 왔는데 하시며 우리의 말리는 제스쳐도 뿌리치고 기어이 밥을 하신다. 결국 저녁으로 된장국에 고추장까지 비벼먹은 우리들을 앞에 두고 선교사님의 기나긴 인생 역정이 이어진다. 나를 제외한 나머지 셋은 교인이 아니던가.. 길 잃은 어린 양을 향한 관심이 부담스러워질 무렵에야 선교사님에게서 놓여난다. 역시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이다^^. 담날은 선교사님이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오르셨다는 비아 돌로로사, 일명 탄식의 길을 안내해 주신다. 선교사님과 골고다 언덕에 있는 성묘교회까지 둘러본 뒤 선교사님은 호텔로 돌아가시고 우리는 이어서 유대인들의 성지인 통곡의 벽과 이슬람의 성지인 일명 황금돔이라는 불리는 바위돔까지 내처 둘러본다. 모두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있는 제각기 누구에게도 양보할 수 없는 성지들이다. 에구.. 땅도 넓은데 어쩌자구 이놈의 성지들은 이리도 다닥다닥 붙어있는지 아무리 봐도 대책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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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가 십자가 못 박혀 죽었다는 골고다 언덕에 세워진 성묘교회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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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들이 그들의 성지인 통곡의 벽에서 기도를 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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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4대 사원 중의 하나인 바위돔에서 만난 팔레스타인 가족, 바위돔 내부는 무슬림이 아니면 들어갈 수 없다.

 

저녁에 다시 선교님의 설교를 들으며 저녁을 먹고 있는데 팔 부근에 온통 붉은 반점이 보인다. 어쩐지 가렵더라니 싶어 다른 곳도 살펴보니 다리와 목 부분도 여기저기 물린 자국이 보인다. 아무래도 모기는 아닌 것 같은데 얼핏 머리 속으로 빈대다 싶은 생각과 함께 이제 죽었다 싶은 생각이 동시에 든다. 사실 이 글에서 쓰지는 않았지만 파키스탄에서 거의 오백방 가량 물려서 거의 한달을 죽을 고생을 터라 반대라는 생각이 들자마자 짜증부터 확 밀려온다. 빈대라는 게 모기와 달라서 제대로 박멸하지 않으면 나도 모르는 새에 물린 흔적이 기하급수적으로 느는데다 그 가려움증이며 남는 흉터 등은 차마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같은 방에서 잔 일행들은 별 증세가 없다. 그래도 혹시나 싶어 방으로 가본다. 사실 방이 너무 지저분해서 아침에 숙소에 굴러다니는 빈대약을 슬쩍 뿌리고 나간 게 생각이 나서다. 설마하고 침대를 들춰보니 빈대 열댓 마리가 까맣게 죽어 있다.

 

매니저를 불러 어떻게 할 거냐고 따졌더니 새 시트를 하나 가져다준다. 황당하다. 그러면서 니들이 방문을 잠그고 가서 청소를 못해서 그렇다는 둥 딴소리다. 아니 빈대가 청소 하루   안한다고 생긴단 말인가. 게다가 언제부터 지들이 매일 청소를 했다고 그 따위 소리를 하는 지 열이 뻗친다. 그저 미안하다고 하고 방이나 바꿔주면 그냥 참으려고 했는데 하는 짓이 가관이다. 그나마 화나는 걸 가라앉히고 방을 바꿔달라고 했더니 딴방을 보여주긴 하는데 이번엔 침대가 두 개뿐이다. 일행이 넷인데 침대가 두개뿐이면 어떻게 하냐고 했더니 느물느물 웃으며 물린 건 너 하나 아니냐는데 더 이상은 참을 수가 없다. 결국 짐을 싸서 나온다. 나가면서 방값을 못주겠다고 했더니 느물느물하던 태도는 오간데 없고 방값을 안내면 절대 못나간단다. 이렇게 되면 결국 싸움이 된다. 방값 받으려면 병원비부터 달라, 당장 병원 가자.. 고성이 오가고 나서야 결국 주인이 두 손을 든다.

 

결국 조금 더 비싼 호텔로 옮겨 빈대 후속 조치에 들어간다. 사실 빈대는 물린 데가 심하게 가렵고 흉터도 오래 가서 물린 것만으로도 상당히 괴롭지만 후속 조치도 만만치 않다. 어디에 옮겼는지 모르니 옷이란 옷은 죄다 삶아야 하고-그게 힘들면 햇볕에 살균이라도 해야 한다- 그러고도 한동안 추이를 살펴야 한다. 넷이서 옷이란 옷을 죄다 빨고 그도 모자라 살균제까지 사서 가방이랑 신발에 뿌리고 시트까지 소독을 하고 나서야 빈대 소동은 끝이 난다. 하지만 우리는 결국 숙소를 한 번 더 옯기고 만다. 두번째 숙소는 깔끔하긴 한데 부엌이 없어 밥값 비싼 이스라엘에서는 오래 묵기가 상당히 곤란하다. 결국 사흘 만에 숙소를 세 번이나 옮기는 삽질을 한다. 예루살렘에서의 첫 사흘은 그렇게 삽질과 함께 지나간다. 삽질 끝에 남은 거라곤 피로와 가려움증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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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만>유령의 도시, 암만

결국 바이람의 축제 기분 한번 제대로 느껴보지 못하고 암만으로 이동한다. 내가 굶은 것도 아니면서 라마단이 끝났다고 축제 운운 하는 게 좀 그렇긴 하지만 그래도 중동 국가에서 온전히 라마단을 보냈으니 그 축제라는 것도 좀 보고 싶었는데 막상 도착한 암만은 유령도시가 따로 없다. 이건 어떻게 된 일인지 축제는커녕 택시기사 몇몇을 제외하고는 통 사람들을 볼 수가 없는 것이다. 게다가 길거리의 상점도 거의 문이 닫혀 있다. 이들이 축제라는 건 우리나라의 추석이나 설명절 같아서 죄다 고향으로 떠나고 아무도 없는 건지.. 당최 점심 한끼를 먹을래도 문 연 가게조차 보이지 않는다. 이러다 라마단 잘 지내고 바이람때 굶어 죽는거나 아닌지 모르겠다며 숙소부터 찾아보기로 한다.

 

우리가 처음으로 찾아간 숙소는 암만에서 배낭여행자들에게 가장 유명하다는 곳이다. 뭐 시설이 좋아서 유명한 건 아니고 그 호텔?매니저가 친절하기로 유명한 곳인데 막상 찾아가보니 숙소는 지저분하기 이를 데 없다. 방이라고 보여주는데 이건 창고보다 조금 나은 수준이다. 매니저가 아무리 친절해도 저런 방에서는 못 자겠다며 일행들이 도리질을 친다. 뭐 나도 마찬가지다. 덜 친절해도 좋으니 그 시간에 청소나 좀 하지 하는 마음이 절로 든다. 두 번째로 찾아간 숙소는 그전 숙소보다는 시설이 조금 나아 보인다. 하지만 방이라고 보여주는 곳은 거기가 거기다. 으이구.. 도대체 이 나라는 물가도 비싼 나라가 왜 이런 거야 싶지만 배낭여행자들 사이에 가장 유명하다는 숙소가 둘다 이 모양이니 다른데 가 봐도 마찬가지일 듯 하다. 일단 짐을 풀고 욕실을 들여다보니 이건 더 가관이다. 도대체 청소를 언제 했는지 도무지 들어가고 싶은 맘이 생기질 않는다.

 

닫혀 있는 가게들을 뒤져 사온 샌드위치로 요기를 하고 나니 우리가 처한 현실이 눈앞에 보이기 시작한다. 도무지 눕고 싶지 않은 침대와 샤워는 꿈도 꾸기 싫은 욕실 그리고 텅빈 도시.. 이제 축제에 대한 기대는 둘째치고 뭐 먹을 거라도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이런 맘은 시내를 한바퀴 돌고 와도 별로 달라지지 않는다. 어차피 암만 시내는 별로 볼 것도 없지만 그나마 죄다 문이 닫혀 있다. 언덕 위에 있는 성채나 올라갈까 하다가 그도 저도 귀찮아진다. 암만 근처에 제라쉬라는 유적이 있다는데.. 이제 유적도 지겹구요, 아님 사해라도? 사해는 이스라엘에서도 갈 수 있다는데.. 다들 암만에 오래 있고 싶은 생각은 없는 듯 하다. 결국 하루밤만 자고 그냥 이스라엘로 떠나기로 한다. 아무래도 암만은 내가 기억하는 최악의 도시가 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그나마 암만에서 이 사진 한 장 찍었다. 문 닫힌 로마시대 원형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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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마스커스> 라마단이 끝나다

다시 시리아도 들어왔다. 그래도 시리아는 한 이주쯤 있었던 곳이라 그런지 다마스커스는 처음 오는 도시인데도 그리 낯선 느낌은 들지 않는다. 시리아의 수도인 이 도시는 다른 도시들보다는 제법 번화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구시가지 성벽 안에 있는 4대 이슬람 사원의 하나라는 우마이야드대사원-나마지 세 개는 사우디아라비아의 메카와 메디나 그리고 이스라엘의 바위돔이라고 한다-과 그 주변에 있는 수크-시장-를 돌아보면 오랜 세월 동안 아랍 교역의 중심 도시였다는 다마스커스의 오랜 전통이 한눈에 느껴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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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마스커스 신시가지

다마스커스 구시가지 골목길

 

며칠을 그저 다마스커스 구시가지를 어슬렁거리며 보낸다. 수크를 돌아보다 지치면 우마이야드 대사원에 들어가 기도하는 사람들을 구경하거나 -뭐 그 사람들은 우리를 구경한다^^- 아니면 구시가지 찻집에서 수다나 떨면서 시간을 보낸다. 어차피 돌아볼 곳이 많은 곳은 아니다. 저녁 무렵 다시 들러 본 사원은 사람들로 붐비고 있다. 낮시간에는 사원의 마당을 개방하지 않아서 저녁에 다시 들러본 길이었는데 예상외로 많은 사람들로 얼떨떨해 진다. 사원 마당에 들어서니 안내하는 사람들이 빽빽이 모인 사람들 틈에 자리를 마련해 준다. 게다가 먹을 것과 음료수까지 챙겨다 준다. 어리둥절해 있으려니 누군가 설명을 해준다. 라마단 기간에는 이렇게 음식을 나눠 먹는 것이 풍습이란다. 그런 얘기를 듣기는 했지만 실제로 공짜 음식을 얻어먹어 보기는 처음이다.

 

음식은 양고기 볶음밥과 빵 그리고 쥬스, 생수 그리고 요구르트까지 제법 푸짐하다. 사원 바닥에 둘러 앉아 식사를 한다. 군데군데 외국인들도 더러 보이지만 대부분은 보통 사람들로 가족 단위로 둘러 앉아 식사를 하고 있다. 식사가 끝날 무렵이 되자 몇몇 사람들은 남은 음식들을 거두어 비닐봉지에 담는다. 옷차림으로 봐선 끼니 잇기도 쉽지 않은 사람들 듯한데 이렇게 챙긴 먹거리는 이들의 며칠 양식거리가 되는 것 같다. 원래 라마단의 목적이 금욕과 절제 뿐 아니라 먹을 것을 이웃과 나눈다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다고 하니 이런 행사야 말로 라마단의 의미를 살리는 일일텐데 별 도움되는 일도 안한 주제에 밥만 얻어먹으려니 살짝 미안한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공짜밥 이후에 뭔가 의식이 더 있을까 했으나 그걸로 그만이다. 사람들은 가족들과 함께 미련없이 돌아가고 저녁마다 여기와서 공짜밥이나 먹을까 농담을 하면서 우리도 일어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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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사원에 모인 사람들

공짜로 먹은 양고기 볶음밥

 

이제 슬슬 라마단도 끝나가고 있는 모양이다. 숙소 스텝에게 라마단이 언제 끝나느냐고 물어보나 이삼일 안에 끝이 난다고 한다, 정확한 날짜를 물어보니 달의 움직임을 보고 결정하는거라 지금은 정확하게는 모른단다. 말은 그렇게 하는데 지가 정확히 모르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쬐금 든다. 라마단이 끝나면 바이람이라는 축제기간이 시작된다는데 이 기간에는 많은 사람들이 이동을 하기 때문에 차표 구하기도 쉽지 않다고 하니 바이람이 끝나고 시리아를 떠야 하나 그전에 떠야하나 의견이 분분하다, 하지만 말이 사흘 축제지 거의 일주일이나 계속된다는 바이람 축제에 걸리기 전에 요르단으로 넘어가자는 의견이 더 우세하다. 라마단 시작했던 날을 기억해내서 라마단 끝날이라고 짐작되는 날 요르단으로 가는 표를 예매해둔다. 좀 아쉽지만 바이람은 요르단에서 보기로 한다.

 

하지만 라마단은 우리의 예상보다 하루 일찍 끝이 난다. 떠나기 하루 전날 여느 때와 다름없이 시장을 돌아다녀 보니 여느 때보다 사람들이 많다. 이상하다 했더니 오늘 저녁부터 라마단이 끝난다는 것이다. 라마단 기간 동안 낮시간의 시장은 문을 닫은 가게도 많고 늘 활기가 없었는데 오늘은 조금 다른 모습이긴 하다. 조금 일찍 저녁을 먹으러 찾아간 식당에서도 오늘은 여섯시 이후에 와야 하지만 내일부터는 아침부터 문을 연다고 아무 때나 오라고 한다. 결국 그날 저녁 폭죽터지는 소리-소리만 그랬을 뿐 실제 폭죽이 터지지는 않았다-와 함께 한달 간의 라마단 기간이 끝이 난다. 그날 저녁 활기찬 저녁거리를 기대했던 우리는-뭐 사실 라마단 기간에도 저녁엔 엄청 활기차긴 했다만- 조금 의아해진다. 뭐 다른 날과 별다를 바가 없는 분위기인 것이다. 바이람이 원래 이런건지 누구 물어볼 만한 사람도 없으니 그냥 숙소로 돌아온다. 내일부터 재미있어 지려나 생각해 봐도 별로 그럴 것 같지도 않다.

 

다시 활기를 찾은 시장 사람들1

다시 활기를 찾은 시장 사람들2

 

이 예감은 다음날에도 계속된다. 오늘부터 바이람 시작이니 표도 없을거야.. 예약하길 잘했지.. 뿌듯해하며 도착한 터미널은 사람이 그리 많지도 않은데다 심지어 버스에는 빈자리까지 드문드문 있다. 현지인들이 버스에서 음식물을 먹는 걸로 봐서 라마단이 끝난 건 확실한데 아무래도 축제분위기는 아니다. 뭐 이건 국제버스라서 그럴꺼야 아무리 바이람이라도 국경을 넘는 사람들이 많겠어 하고 생각해봐도 이건 아니다 싶다. 사실 아직도 잘 모르겠다. 바이람이란 축제에 대한 기대가 과했던 건지 아님 내가 축제 현장만 피해다닌 건지 말이다. 여튼 이런 썰렁한 분위기는 암만까지 쭈욱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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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바논남부> 사이다-알키암-티레

원래 레바논 남부는 시돈-현지인들은 사이다라고 부른다-과 티레만 돌아볼 생각이었다. 그러나 게스트북에서 본 글, 그러니까 레바논 남부에서 내륙 쪽으로 더 들어가면 이스라엘 국경과 면한 알키암이라는 지역이 나오는데 그곳엔 이스라엘의 폭격으로 사람이 살지 않는 마을이 있고 팔레스타인 난민촌도 볼 수 있다는 글이었는데 사이다의 경찰서에서 허가증을 얻으면 갈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이왕이면 비슷비슷한 도시들보다는 그쪽으로 가볼까 하는 마음에 호텔 매니저에게 가는 길을 물어보았더니 어차피 허가증을 개인적으로 받더라도 그쪽으로 가는 대중교통 수단은 없으니 아예 이곳에서 택시를 대절해서 가는 게 더 나을 거라는 답변이 돌아온다. 먼저 사이다를 둘러보고 알키암 지역을 들렀다가 티레를 둘러 돌아와도 하루면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이다. 일단 그렇게 하기로 한다.

 

아침 일찍 사이다로 떠난다. 비가 약간씩 추적이는 거리를 택시는 잘도 달린다, 레바논의 남부 쪽은 북부 쪽과는 다르게 도로며 다리가 온통 무너져 있다. 이스라엘의 폭격 때문이라고 기사아저씨가 설명을 한다. 그러고보니 교차로와 교량마다 폭격의 흔적이 역력하다. 폭격으로 무너진 교량은 암시로 이어져 있고 미처 복구가 안 된 도로는 이면 도로로 둘러가게 되어 있다. 기사아저씨의 안내에 따라 사이다의 경찰서에서 허가증을 받는다. 여권을 제출하고 간단한 질문 몇 가지를 하더니 의외로 쉽게 허가증을 내준다. 알키암으로 가기 전에  잠시 사이다를 둘러본다. 이곳 역시 중세 십자군의 성이 남아 있는데 특이하게도 바다 위에 세워져 있다. 아마 바다를 통해 오는 적을 막기 위해 세워진 듯한데 지금은 몇몇 관광객만 눈에 뛸 뿐 한산하기만 하다.

사이다의 해양성채

 

알키암으로 가는 내륙으로 접어드니 곳곳에 폭격의 흔적이 남아 있다. 베이루트와 그 북부 쪽만 보면서 몇 달 전에 전쟁이 끝난 나라 같지 않다고 여겼던 것들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한다. 군인들이 봉쇄를 하고 있다는 알키암 지역에 들어서자 폭격의 흔적은 더욱 역력해진다. 이미 무너져 버린 집들이며 허물어진 담벽에 보이는 총알자국이 이곳에서의 교전의 흔적을 말없이 보여주고 있다. 한때 마을 주민들이 거의 피신해서 유령마을로 불리웠다는 이곳에는 몇몇 주민들이 돌아와 다시 삶의 터전을 가꾸고 있다. 기사아저씨는 연신 이스라엘 나쁜 놈들이라며 열을 올리고 우리도 이스라엘 안 좋아한다며 맞장구를 쳐보지만 폭격의 흔적이 역력한 마을을 둘러보면 볼수록 뭐 보려고 이 마을까지 온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전쟁의 상흔마저도 관광하고 싶었던 건 아닌지 택시를 타고 창밖을 바라보는 내 모습에 새삼 마음이 불편해진다

 

마을 곳곳에 무너진 건물들이 보인다

 

마을을 가로질러 올라가니 완전히 폐허가 된 건물터가 보인다. 이곳에서 보이는 건너편 땅이 이스라엘이라고 한다. 이곳은 한때 이스라엘군이 운영하던 포로수용소였다는데 무너진 건물 잔해들 사이로 이곳에서 사망한 젊은 군인들의 사진이 곳곳에 걸려 있다. 한때 그 자신이 이곳 포로수용소에 수감되어 있었다는 중년의 아저씨 한 분이 안내를 해준다. 그는 영어를 거의 못하는 대신 건물 잔해 곳곳을 다니며 몸소 그때의 상황을 재현해 보여 주신다. 그 옆에서 기사 아저씨가 이건 전기고문실이었고 이건 일인 독방이었고 하면서 간단한 설명을 덧붙인다. 우리와 함께 간 기사도 영어가 긴 편은 아니니 이게 언제쯤 있었던 것이고 언제쯤 탈환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폐허 곳곳에 그 흔적이 생생하게 남아있다. 캄보디아에서 보았던 한때는 학교였다던 포로수용소가 겹쳐 떠오른다. 인간이 서로에게 저지른 광기의 흔적들을 보고 있으려니 그저 마음만 착찹하다. 그러나 착찹한 마음은 마음일 뿐 결국 우리의 하루 관광은 돌아오는 길에 티레에 들러 유적지를 하나 더 보고 나서야 끝이 난다.

 

포로수용소 전경 

곳곳에 희생자의 사진이 붙어 있다

 

다시 시리아로 돌아가는 날이다. 다마스커스 국경을 넘기 전에 발벡 신전을 들러서 가기로 한다. 이제 신전들이 조금 지겨워지기는 하지만 그래도 레바논에서 가장 오래된 신전이라니 그냥 지나치기는 좀 아쉽다. 다마스커스로 가는 길에 발벡을 들르는 조건으로 택시를 대절한다. -아무리 일행이 넷이라고는 하지만 지금 생각해도 레바논에서 택시 무지하게 타고 다녔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막상 발벡에 도착해보니 신전은 규모가 그리 크지도 인상적이지도 않다. 그나마 우라가 가진 정보라곤 고대 페니카아인들이 섬겼던 태양신 발백을 모신 신전이라는 게 전부다. 에그.. 그저 무식이 죄지,, 그래도 왔으니 두 시간 가량 신전을 둘러보고 다시 택시를 타고 다마스커스로 떠난다. 아주 패키지가 따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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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루트> 중동의 파리, 베이루트

택시를 타고 세시간 정도를 달리니 어느새 레바논 국경에 도착한다. 국경은 여느 나라들과 큰 차이가 없다. 적당히 외지고 그러면서도 적당히 붐비는 모습인데 느낌이 그래서일까 다른 국경들보다는 군인들이 더 많은 듯도 하다. 입국 스템프를 받고 다시 베이루트를 향해 달린다. 하마 국경에서 베이루트까지는 레바논의 북부 도시들을 거쳐 가게 되는데 거의 모든 도시들이 해안가에 자리 잡고 있어 말 그대로 해안도로를 달리는 셈이다. 레바논의 도시들은 다른 중동 국가들과는 느낌이 사뭇 다르다, 해안가를 따라 들어선 현대적인 건물들이며 시내를 달리는 차들을 보고 있으면 유럽의 어느 도시에라도 온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얼마 전에 전쟁이 끝난 나라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거리는 활기차고 번화하다.

 

베이루트 터미널에 도착하니 택시들이 우르르 몰려든다. 우리가 가려고 했던 호텔 이름을 대니 5달러를 부른다. 레바논의 물가는 주변 나라들에 비해 상당히 비싼 편이라고 듣긴 했지만 택시비는 시리아에 비해 거의 10배다. 잘 깍이지도 않는 택시비를 그래도 네 명이니 일인당 1달러 해가며 4달러에 깍아 택시를 탄다. 어차피 지도도 없고 호텔의 위치도 모르니 방법이 없다. 막상 택시는 터미널에서 채 300미터도 인되는 곳에 우리를 내려 준다. , 호텔이 이렇게 가까운 곳에 있을 줄이야.. 택시 기사를 원망스런 눈초리로 쳐다보지만 약속은 약속이니 별 수 없이 정해진 차비를 건네준다. 늘 나라가 바뀌면 한번씩 바가지를 쓴다. 좀 아깝지만 어쩌랴.. 정보가 없으면 돈이 나가는 법이다^^.

 

우리가 짐을 푼 곳은 이 호텔의 4인실 도미토리다. 일행이 4명이니 말이 도미토리지 그냥 일반실을 쓰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게다가 이 호텔은 주방을 자유롭게 쓸 수 있고 숙소에서 15분가량 걸어가면 거의 우리나라의 이마트에 버금가는 슈퍼마켓이 있어 대부분의 끼니를 숙소에서 해결할 수 있다고 한다. 짐을 풀자마자 슈퍼를 찾아 나선다. 숙소에 있는 게스트북에는 친절하게 슈퍼의 지도까지 그려져 있어 슈퍼를 찾기는 어렵지 않다. 과연 중동 최대의 슈퍼마켓이라는 명성답게 없는 물건이 없다. 중동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정육 코너에서는 돼지고기까지 팔고 있다. 일행 중 하나가 중국산 김을 발견하곤 희희낙락이다. 김밥을 만들어 도시락을 싸자는 둥 의견이 분분하다가 누군가 가격을 확인한다. 10장 묶음의 김이 거의 9,000원 돈이다. .. 김밥은 바로 포기다. 해물 스파게티. 야채 볶음밥, 부대찌개, 수제비라면.. 그래도 해먹을 수 있는 품목이 줄줄이 이어진다.

 

담날은 베이루트 근교를 다녀온다, 중동 최대의 석회 동굴이라는 제이타 동굴과 베이유니에에 있는 하라사 성모상을 보고 비블로스의 유적까지 다녀오는 일정이다. 레바논은 나라 전체의 크기가 우리나라의 경기도 보다 조금 큰 정도라고 하니 말이 도시간의 이동이지 이동 거리는 그리 멀지 않다. 먼저 버스를 타고 제이타 동굴 입구까지 간 뒤 동굴까지는 택시를 타고 간다. 제이타 동굴은 걸어서 돌아볼 수 있는 윗동굴과 배를 타고 돌아봐야 하는 아랫동굴로 이루어져 있는데 중동 최대라는 찬사에 걸맞게 그 규모가 상당하다. 특히 아랫동굴은 석회동굴 사이로 흐르는 물을 따라 배를 타고 돌아볼 수 있게 되어 있어 상당히 이색적인 경험을 할 수 있다. 중국에서 본 여러 석회 동굴들이 거의 조명발이었던 데 비하면 이 동굴은 아직 자연의 순수함이 남아 있는 듯싶다.

 

제이타 동굴을 둘러본 뒤 다시 택시를 타고 하라사 성모상이 있는 베이유니에로 향한다. 사실 이곳은 성모상을 보러가는 것이 아니라 해변에서 성모상이 있는 언덕까지 연결된 케이블카를 타러 가는 것이다. 뭐 남산에서도 안타던 케이블카를 타러 간다는 게 좀 우습긴 하지만 뭐 이것도 여행의 묘미가 아니겠는가.. 델레프릭이라고 불리는 이 케이블카를 타고 언덕위에 오르면 멀리 베이루트까지 해변을 면해 자리잡고 있는 레바논의 도시들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케이블카를 타고 오른 언덕에서는 멀리 푸른 바다가 내려다보인다. 성모상의 발치에서 싸가지고 온 점심을 먹고 한참을 쉬다가 비블로스로 향하는 버스를 탄다. 비블로스의 바닷가에는 한때 십자군의 성이었다는 유적이 남아 있다. 성은 몇백년의 세월이 흘렀음에도 아직 그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바다가 보이는 성곽에 앉아 있으니 그저 한가롭기만 하다. 해가 질 무렵 다시 베이루트로 돌아오는 버스를 탄다.

케이블카에서 바라 본 베이유니에

십자군성에서 바라 본 비블로스

 

그 다음날은 아침부터 비가 추적거린다. 원래 이날은 레바논 남부 쪽을 돌아볼까 했는데 막상 비를 보자 이 빗속을 헤치고 다니고 싶은 마음이 사라진다. 오전엔 그저 숙소에서 놀다가 비가 그친 오후에 베이루트 시내를 둘러본다. 베이루트를 중동의 파리라고 했던가.. 중심가로 나가보니 유럽풍의 건물들이 이어져 있고 그 앞으론 노천카페가 즐비하다. 거리를 걸어걸어 서쪽 해안가까지 가본다. 중심가를 조금 벗어나니 제법 사람 사는 동네 같은 느낌이 난다. 가족 단위의 나들이객이며 데이트 나온 커플들도 심심치 않게 눈에 뛴다. 바닷가에 왔으니 해물이라고 먹어보자며 주변을 돌아다녀도 보이는 건 온통 패스트푸드점 뿐인데 그 와중에 새우전문 패스트푸드점이 눈에 띈다. 그릴 새우, 새우튀김, 새우버거.. 새우로 만들 수 간편식은 모두 모여 있는 것 같다. 여기까지 와서 결국 패스트푸드를 먹어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조금 느끼한 걸 제외하고는 그럭저럭 먹을 만했다. 아무리 패스트푸드지만 그래도 새우 아닌가 말이다^^

베이루트 시내

베이루트 서쪽 해안의 비둘기 바위

 

이박삼일만 있다 가려고 했던 일행들이 일정을 이삼일 늘리고 일주일쯤 있다 가려 했던 나는 일정을 이삼일 줄인다. 어차피 이집트까지는 같은 루트이다. 아무래도 이스라엘, 요르단은 일행이 있는 편이 여러모로 편한 것이 사실이다. -이렇게 해서 대학 동기라는 여자친구 셋과는 결국 다합까지 동행을 하게 된다- 이곳 베이루트에서 북쪽으로 더 올라가면 레바논 북부의 최대 도시인 트리폴리와 그 유명한 레바논 삼나무의 산지이자 레바논이 낳은 세계적 작가인 칼릴 지브란의 고향이 있다는 부카레가 나온다는데 그곳은 그냥 포기한다. 그저 남부의 도시인 시돈과 티레 그리고 그 유명한 발벡신전을 둘러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할 것 같다. 사실 삼나무 숲이야 꽤 끌리긴 하지만 뭐 다른 도시들은 그저 비슷비슷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늘 그렇듯 하나를 얻으면 하나는 버려야 하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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