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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그리고 느림보 컴퓨터

아침에 왜관에서 부산으로 가려했던 계획을 취소할 수 밖에 없었다. 너무 늦었기 때문이다. 요며칠 잠을 제대로 못 잔 탓에 뒷풀이하면서 눈이 껌벅껌벅 감기니 가서 자라는 한 동지의 말에 얼른 가서 잤는데 알람소리도 못듣고 깨보니 7시30분이었다. 그런데 얼른 챙겨서 나가면 되었을 텐데 나의 느림보가 작동했다. 대충 1시간 반정도면 가겠지하면서 아침밥먹고, 오전 8시30분 지나 차 국장의 강의가 시작되서야 맘놓고 가방을 둘러매고 나왔다. 그런데 쫌 늦었다. 그래도 차얻어 타고 왜관역에 가서 부산에 내려 가신 아빠에게 전화했다. "11시40분이 되어야 부산에 도착하겠는데요" 그랬더니 아빠께서는 "그럼, 너무 늦으니 볼일 보고 그만 올라가라"하신다. 그래도 표 끊고 동대구역까지 가서 아빠에게 또 전화를 드렸다. "어디야, 너무 늦고, 다 끝났어. 집에 가라"하신다. 결국 부산에 가는 것을 그제서야 포기하고 동대구터미날에 가서 인천행 티켓을 끊었다. 그 자리에서 곰곰히 생각해보니 '이게 나구나'란 생각을 했다. 굳어질 대로 느림보가 되어 버린 나. 마음만 있는 거 가지고 되는 게 아닌데...느려터져서는 할일을 제대로 못하고, 늦게 불붙어서 할 수 있는 방법을 다 동원해서 부리나케 정신없이 달려가거나, 아니면 제대로 끝내지 못하고는 항상 뒤에서 고치고 또 고치거나 속상해 하는 내 버릇. 여유가 없는 이유를 다시 알거 같았다. 정확한 내 자신을 진단을 하지 못하는 거, 내 생각 욕심이 너무 많아 이것 저것 많은 것들을 담아 놓고는 제대로 꺼내지 못하는 거, 막연히 잘 되겠지하는 안일함. 이런 게 똘똘뭉친 느림보 아닌가. 오는 길에 한겨레21에서 읽은 글쓰기의 힘이란 특집에서 보았듯이 내 일기장에도 후회와 후회가 산처럼 쌓여 있다. 어쩌면 나는 글쓰기를 통해 잘못을 속풀이하면서 자기 위안을 삼아왔기 때문에 그것이 고쳐지기 보다는 원래 그런거로 고착화되는 게 가는 게 아닌가 싶다. 노동운동을 하겠다고 길 나선지 십오년이 남짓...나의 일기장에는 항상 "나는 무엇을 할까"를 써왔더랬다. 내가 뭘할지 노력하지 않고 말로만 떠든 격이다. 그래서 요모양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 내가 한참을 걸려 컴퓨터 커고, 메일검색하고 하는 데 1시간반 넘게 지났다. 오랜 구닥다리 컴퓨터를 끼우고 고치고 해서 기능은 다 되는 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 느려터진 내 모습같은 컴퓨터. 업그레이드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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