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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안에서의 인생의 자유

요한이 기록한 기쁜 소식 8:31-32
"너희가 내말대로 살면 참으로 내 제자가되어 진리를 알게 될 것이며,
그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주님의 말씀은 자신에게 멀기만 느껴질때가 있다.
그때는 말씀을 읽어도 마음에 스쳐지나며, 자신의 기억에서 곧 사라진다.
그말씀을 들어도 자신의 마음에 부딪치지 않아 메아리로 남았다가 이내 잊어버리게 된다.
말씀을 붙잡았다고 생각하고 마음안에 되새김질해도 그 말씀의 맛이 둔탁하기만 한다.

자신의 마음에 주님의 말씀이 머물곳이 없을 정도로
자신의 의식안에는 가득세상의 언어로 꽉차있다.
자신의 생각에는 주님의 말씀을 넣어둘 의식의 창고가 없다.
세상의 잡다한 사상이나, 규칙들이 자신을 얽어매어,
영적으로 맹인이 되게 하고, 자신의 몸에서 나오는 육적인 소리에 한눈을 팔아,
말씀의 언어에 귀를 기울이지 못한다.

예수님은 말씀이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세상에 오셨다.
그는 말씀 그 자체이며, 그 말씀은 하나님이시다.
그는 근본 인생에게 생명을 주는 영생의 말씀이시며,
그는 세상을 말씀으로 창조하신 하나님의 말씀이셨다.
그는 하나님이 육신이 된 말씀으로 이세상에 오셔서,
인간세상에 계시되고 알려진 하나님의 말씀으로 임하셨다.

오늘날, 예수님은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으로 나타나있다.
창세기로부터 계시록에 이르기 까지 말씀의 주제와 목적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촛점이 맞추어 져 있다.
성경을 어디나 펴서 읽어도 쉽게 주님의 음성과 흔적을 발견할수 있다.

시초부터 시말까지 전개된 계시된 말씀은
인간세상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의도를 알려주는 메시지로 일관되게 기록되어 있다.
그 기록된 말씀은 일점일획이라도 떨어지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약속하신 모든 예언들이 때가 되어 이루어 진다.
예수님 그는 또한 선포되어진 말씀으로 세상 어느 곳에 든지 복음의 메시지가 전파되는 곳마다,
선포되어지는 그 말씀안에 주님은 그의 임재하심과 역사하심으로 나타난다.
말씀이 알려지는 곳에 예수님이 계신다.

그 말씀은 사람들에게 죽음을 경험하는 이에게 생명의 메세지로,
병들고 찌들린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치유와 부요한 삶을 주는 능력의 언어로,
어둠에 처한 인생들에게 빛의 전파로,
실패로 점철된 삶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성공에 대한 강한 의욕의 언어로,
낙심한 사람들에게 용기와 격려의 메시지로,
절망하는 이웃에게는 소망의 닻으로 다가온다.

주님이 계시는 말씀이 역사하는 곳에 주님의 영이 임하신다.
주님의 영은 선포되어진 말씀을 통해 따르는 표적으로
듣는 사람들에게 감동과 자극과 격려와 치유로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나타나며,
그의 임재하심을 동반한 말씀의 선포을 통해,
더 명료하고 강하게 사람들의 마음에 다가온다.

예수님은 따르는 무리들에게 자신의 말씀에 거하는 자가
자신을 따르는 자들이라고 하신다.

예수님을 믿고 그를 인생의 주님으로 받아들인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거하는 사람이며 그들은 어디서나 언제든지,
주님안에 있는 사람들이며, 모든 일에 대해 주님의 음성을 듣는 사람이며,
이 세상속에서 특별하게 주님의 뜻과 하나님 나라의 정신을 실천하는 제자가 된다.

진리는 단지 언어이며, 이성이다라고 여기는 경우는
진리를 받은 자신의 신앙이 이성에 따라 움직이고,
이성의 판단을 좇아 신앙의 신비의 부분이 상실된다.
그리고 이성을 좇아 진리를 추구하다보면
자신속에 있는 진리는 자신의 이성의 규격된 틀안에서,
진리의 맛은 잃어지고, 그 진리의 보석의 가치는 화석이 되며,
자신을 율법화된 종교인으로 전락하는 경우에 지나지 않는다.

진리는 원리이다라고만 여기는 경우는 다음과 같다.
자신은 자신이 받은 원칙대로 영적인 원리나
혹은 교훈으로 받은 가르침을 따라 행동을 하지만,
진리에서 나오는 인격적인 관계나 개인적인 교제는 성립이 되지 않고,
더이상 진리와 주고 받는 살아있는 인격인 하나님과의 신앙의 깊은 단계로 나아가지 않는다.

진리는 과연, 이성이나 원리일까? 라고 생각하는 경우를 넘어서,
진리는 인격이며, 생명이며, 우주를 말씀(진리)으로 창조한 하나님이며,
우주의 원리를 세운 창조주이며,
인간과 인격적으로 관계를 맺으며 교제를 나누며, 대화를 하기를 원하는 주님이다.
그 진리이신 주님을 아는 자가 진리안에 거한다.
진리는 단지 두뇌의 이성이나 지적인 활동으로 아는 것뿐 아니라,
일회적이든 다양하고 다차원적인 경험으로든 자신의 오감에서 오는 경험으로 알며,
인격이신 진리와 의 인격적인교제의
인생경험의 일정한 역사(길든지 짧든지 그러나 대개는 연결되어가는) 인생의 과정속에서 알아가는 것이다.

진리를 알아가려는 사람들은 진리이신 하나님은
늘 자신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통해 오신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하며,
자신의 과거에 머물러 그분을 판단하지 말것이며,
과거의 습관이나 패턴으로 오늘의 진리경험을 왜곡하지 말며,
오늘의 경험의 한계에서 미래에 다가올 진리이신
그분의 거대한 역사(이루어지지 않은 많은 예언을 기록된 성경은 포함하고 있다)를
외면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미래를 머물 예언이나 약속에 붙잡힌 채로
엄연한 현실로 다가오는 오늘의 진리이신 주님의 숨결이나
손길이나 발자취를 자신의 삶을 스쳐 지나가는 우연으로 여겨서도 안될 것이다.

신앙은 자신에게 이루어지는 우연의 일들을 필연으로 해석하여,
진리를 알며 진리안에서 살아가는 자신의 삶의 의미를 발견하고,
자신의 가치를 창출하는 것이다.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하리라.
사람들은 삶을 살아가면서 가지가지의 삶의 얽매이는 현장속에서 살아간다.
먼저는 인간의 시조가 범한 원죄의 속박은 인류모두에게 죄의 구속으로 얽어매어
사람은 태어날때부터 죄의 갇혀진 삶의 환경안에서 살아간다.
그 죄는 인생의 현장에 불합리와 불법과 저주와
형벌을 가져오는 인생의 굴곡안에 인생자신을 갇히도록 하였다.

그리고는 죽음과 멸망으로 달음질하는 처절한 절망하는 삶으로 전락되게 되었다.
그러므로 진리이신 주님은 인간을 갇히게 하는 모든 것을 해방하기 위해 이세상에 오셨다.
그분은 인간을 대신하며 죄의 댓가인 죽음의 형벌을 받아,
모든 갇힘으로부터 인간해방과 자유를 주셨다.
그 진리안에 죄와 그영향력의 모든 속박으로 부터 벗어나는 자유의 기쁨이 있다.

그 기쁨을 맛보고 진리를 따르는 사람들에게 자유가
가져다 주는 인생의 능력과 삶의 만족이 있다.
진리를 알고 따르는 자들은 인생자체의 무지로부터 자유로울수 있다.
인생의 생사화복에 대한 무지로부터 벗어나 인생이 알수 있는
삶의 비밀의 지식을 알고, 자신이 겪는 모든 인생경험에 대해
올바른 이해와 판단의 지식을 갖게 된다.

그리고 진리를 따르는 자들은 모든 인생이 겪는 불안과
형벌받음에 대한 두려움에서 해방을 받아,
스스로 알수 없는 미망이나 미혹에서 건짐을 받아,
세상의 그 누구로부터에서도 얻지 못하는 마음의 평안함과
자신을 삶의 목적을 두고 세상으로 내어놓은
하나님으로부터 인정받은 인생의 안식에 이르게 된다.

그리고 무능한 인생의 탄식을 바꾸어주는 유능함으로 그분안에서 발견한다.
진리안에 있는 사람들은 인생에서 겪는 여러 종류의 유혹이나 좌절이나,
시련이나 절망에서 자신을 일으키는 진리의 능력을 경험할수 있다.
진리를 품고 있는 사람이 절망적인 인생의 환경을 자신안에 있는 희망으로 다가갈수 있으며,
여러가지 인생자신을 무능하게 하는 요소(자아감상실에서 오는 혼란과 방향상실,
자기무력감에서 오는 불안과 내면의 고통, 혹독한 환경의 역경과 시련,
인생의 쓰디쓴 실패와 좌절,
내면의 분노와 갈등을 일으키는 인간관계의 상처들)들을 극복하게 한다.

유한한 자원의 세상에 살고 있으면서
그 세상의 유한성에서 겪는 모든(육체적, 정신적, 그리고 영적인 차원들)
가난과 궁핍으로부터 자유를 얻는다.
진리이신 주님은 부요한 창조주로 그에게 있어서
모든만물을 무에서 유로 이루어놓은 것을 통해
(오늘도 개인이나 인간의 역사를 통해 하나님은 재창조의 역사를 이루어 가고 있다)
그는 진리안에 있는 자들에게 그분안에 있는 모든 부요와 풍성함을 맛보며 살도록 한다.
진리를 믿고 따르는 신앙만이 세상의 모든 궁핍
(삶의 왜곡이나 인생고통의 질곡에서 오는 불만족한 인생의 상태)으로부터
진정한 승리를 맛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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