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지들계 올리는 글

2006/07/27 11:24
동지들께 올리는 글

 
 계속되는 무더위와 폭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묵묵히 맡은 바 최선을 다하는
조합원 동지 여러분의 노고에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뜨거운 찬사를 보냅니다.

 지금 우리 노동조합은 사측으로부터의 심각한 도전 상황에 직면해 있습니다.
지난 4월 KBS비즈니스로부터 파견 형식을 빌려 본사(방송차량서비스)
관리팀장으로 근무 중인 유호 팀장 임명 이후 경영개선이란 미명하에 갖가지
악랄한 방법으로 우리 비정규노동자의 마지막 남은 피 한 방울까지도 쪽쪽 빨아
수익을 극대화하려고만 하고 있습니다.
KBS와 KBS비즈니스에 잘 보여서 목숨부지 내지는 출세하려는 의도로 밖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구체적 내용을 살펴보면,
3년간 임금동결 요구, 3년간 인원 10% 감축 요구, 연차유급휴가보상수당
미지급(근로기준법 위반), 주5일제에 따른 토요근무제도 일방적 변경
시도(임협․단협 위반), 김성권 조합원 임금체불(근로기준법 위반, 사측의
경영상 오류로 인한 부담을 조합원에 전가), 2004년 발생한 시간외 수당 소급 분
지급 지연(근로기준법 위반), 여비․출장비 축소 요구 등등이 그것입니다.
정말로 치사하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입니다.

 존경하는 조합원 동지 여러분!
우리가 누구입니까? 사회적으로 소외되어 극빈생활을 하는 가난한
비정규(불안정)노동자입니다.
이런 우리에게 저렇게까지 얼굴에 철판 깔고 뻔뻔한 행태를 자행하는 회사는 인간
거머리라 부를 수밖에 없습니다.

 유호 팀장의 연봉은 약 8천 5백만 원에 이른다고 합니다.
 물론, 우리가 받아야 할 돈이 팀장 연봉으로 지급되고 있겠죠.
KBS와 총액계약을 체결했기 때문에 적자를 예방하려면 비용을 줄여야 한다고,
우리에게 고통전담을 요구하면서, 정작 그 한정된 회사 예산으로 팀장 연봉과
성과급까지 챙겨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게 말이 되는 일입니까?
 2005년 임․단협 투쟁에서 조합원 동지들이 목숨 걸고 투쟁해서 쟁취한
피맺힌 돈이 유호 팀장에게 흘러들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동지들은
동의하십니까?
팀장 연봉에 값하려는 일련의 경비절감 행태는 우리를 더욱 분노케 합니다.

 그러나 사측은 그것도 모자라서 아예 우리 노동조합에 무조건적인 투항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발가벗고 항복하라고 강요합니다.
 KBS분회가 어떤 노동조합입니까?
단군 이래 최고의 악법, 파견법 하에서 피눈물 삼켜가며 머리 터져가며, 이빨
부러져가며 여기까지 지켜온 노동조합입니다.
 그 선봉에 주봉희 위원장이 있었습니다.
 박성희 사장은 7월 24일자 공문을 통해 주봉희 위원장을 협박하는
부당노동행위를 자행했습니다.
위원장과 관리장 중 하나만 선택하라는 최후통첩을 일방적으로 통보했습니다.
법치국가인 대한민국에서, 엄연히 노동조합의 조직․운영에 개입하여
노동조합을 와해하려는 사측의 의도는 가히 기상천외하기까지 합니다.

 노동조합은 동지들의 뜻대로 운영하는 것입니다. 사측의 뜻대로 흘러가도록
해서는 절대 안 됩니다.
우리들 손으로 자주적이고 민주적인 노동조합으로 온건히 지켜내야 합니다.
우리가 사측의 사악한 의도에 온몸으로 투쟁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주봉희 위원장에 대한 조합원 동지들의 평가는 서로 다를 수도 있겠지만, 그것을
사측이 부당하게 개입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이번 투쟁은 「인간 주봉희」가 아니라 우리의 「지부 위원장」을 지키기 위한
동지들의 역사적인 투쟁이 되는 것입니다. 감히 단언하건데 여기서 우리의
위원장을 지켜내지 못한다면 우리의 미래는 없습니다.

 사측의 다음 목표는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KBS분회입니다.
KBS분회를 공중분해 시키기 위한 사전 공작이 아닐 수 없습니다.
동지들이 하나로 단결하여 우리 노동조합을 온 몸으로 지켜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노동조합의 제반사항은 우리 스스로 결정하고 집행해야 합니다.
사측의 의도대로 관철되는 그 순간 우리는 죽음 그 자체입니다.
올해 임금협상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말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고 시키면 시키는
대로 주면 주는 대로 받아야만 하는 개, 돼지만도 못한 암흑의 세상만이 우리를
기다릴 뿐입니다. 단 한걸음만 물러나도 천길 암흑의 낭떠러지입니다.

 회사는 오래전부터 치밀하고 잔인하게 노조와해 공작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결국 이런 식으로 마각을 드러낸 것입니다.

 
 동지 여러분!
 절대 사측 논리에 넘어가지 않으리라 믿습니다.
집행부의 의지는 단호합니다. 믿어주십시오. 승리하겠습니다.
끝까지 오직 투쟁! 투쟁! 투쟁!

                 전국언론노동조합 방송사비정규직지부 KBS분회장 박철수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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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총파업은 경고 한번 하는것

2006/07/14 15:32
특별취재팀 
한미FTA 저지를 위한 언론노동자 총파업 결의대회가 4시 30분 이후 막바지에 접어들면서 상징의식과 선언문 낭독으로 언론노조 조합원들의 분위기가 고조되었다.

상징의식은 한미FTA 협상단의 협상테이블을 부수는 동시에 언론노조 조합원들이 ‘한미FTA를 저지하겠다는 투쟁의지를 담은 종이비행기 날리기로 마무리되었다.

이후 2000여명의 조합원들은 국회까지 행진을 벌였고, 국민은행 앞에서 현덕수 YTN지부 위원장이 ‘국회의원에게 보내는 공개서한’ 낭독으로 통상절차법 제정 등을 촉구했다.

안동운 조직쟁의실장은 '참세상'과의 인터뷰에서 “오늘의 총파업은 한 번의 경고에 불과한 것”이라며 “방송과 신문이 멈출 수도 있다는 것을 지속적으로 보여가며 한미FTA 반드시 저지하겠다”고 앞으로의 투쟁 방향을 밝혔다.

주봉희 KBS본부 비정규직노조 위원장 인터뷰
오늘 총파업 어떠했나?

한미FTA는 정규직, 비정규직을 막론하고 고용불안과 생존권 박탈을 야기하는 것이다. 그러나 초반 언론노동자들은 한미FTA가 언론노동자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몰랐던 것도 사실이다. 최근 조직적인 교육과 한미FTA에 반대하는 여론이 확산되면서 언론노동자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비정규직이 확산될 것이라는 우려의 시각이 번져나가기 시작했다.

비정규직 노조는 앞으로도 한미FTA 뿐만아니라 근로기준법, 노동조항관계조정법까지 정규직노조와 함께 하며 투쟁을 전개할 것이고, 한미FTA가 기폭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KBS 비정규직은 어느 정도 규모이고, 타 사업장 등 상황은 어떤가?

총 1만 여명의 비정규직 언론노동자가 있을 것으로 추산된다. KBS의 경우, 약 2600명 중 360명이 조합원으로 가입되어 있는데, MBC나 SBS의 경우 일괄 도급화가 되면서 조직률이 현저히 감소한 것으로 알고 있다.
KBS의 경우, 지난 2000년, 2002년, 2004년까지 2년마다 해고통지를 받았는데, 올해는 KBS가 자회사를 만들어 파견을 면하고 해고도 면하게 되었다. 그나마 상황이 나은 것이다. 그렇더라도 MBC 400명, SBS 500명 등 지역민방은 여전히 비정규직 언론노동자들이 존재하고 있다.

아직 완전한 산별체제가 갖추어지지 않았는데, 앞으로 산별을 강화하면서 한조직에 모두 모아낼 수 있도록 투쟁해 나갈 것이다.

'죽음의 거래 한미FTA를 막아라' 상징의식이 진행되고 있다.

상징의식 중 미국과 한국의 협상단을 언론노동자가 막아서는 장면

한미FTA 저지를 위한 투쟁의지 희망 날리기-조합원들이 종이비행기를 날리고 있다.

국회로 행진 시작

신학림 위원장 등 선두그룹이 행진을 하고 있다.

이날 조합원들의 분위기는 굿~

국회를 눈에 두고 조합원들은 국민은행 앞에서 경찰이 지정한 폴리스라인에서 멈췄다.

질서유지선 앞 언론노조 대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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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사 파견노동자 수천명 우리 어떡해'

2006/07/06 17:25
방송사 파견노동자 수천명 ‘우리 어떡해’
7월 1일 파견법 시행 8년…“해고만 양산”
2006년 07월 05일 (수) 16:59:44 정은경 기자

지난 1일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하 파견법)’이 시행된 지 꼭 8년째를 맞았다.
파견법은 지난 98년 7월 1일부터 파견근로자를 ‘보호’하기 위한 취지로 시행됐으나 ‘파견된 지 2년이 지난 파견노동자는 정규직으로 간주한다’는 6조 3항 규정이 악용되면서 오히려 주기적 해고를 위한 수단으로 전락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 전국언론노조는 지난달 29일 오전 11시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비정규직 차별 철폐를 촉구했다. ⓒ정은경 기자  
 
방송사비정규지부 주봉희 위원장은 “파견업체를 통해 사무보조를 비롯 자료조사요원, 카메라 보조, 오디오맨, 편집기사 인력을 파견 받은 방송사들은 이들을 정규직으로 채용하지 않기 위해 입사 일자를 철저하게 관리해 2년이 되기 전에 해고를 통보한다”고 전했다.

파견 노동자들이 해고된 자리에는 2년 뒤 해고가 예약된 파견직 노동자들로 또다시 채워지고 있다.
파견 노동자들은 고용불안과 함께 저임금에도 시달리고 있다. 같은 일을 하면서도 정규직에 비해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절반도 안 되는 임금을 받고 있는 게 현실이다.
게다가 파견 노동자들의 경우에는 임금의 25~50%를 파견업체에서 ‘수수료’ 명목으로 떼이기 때문에 실제 임금은 더 줄어든다.

전국언론노조 김성근 조직쟁의실장은 “더 큰 문제로 파견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을 만들 수 없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파견직의 경우 고용주는 파견업체이지만 사용 사업주는 이들을 파견 받은 방송사이기 때문에 어느 쪽과도 협상을 할 수가 없는 상황이다.

김성근 실장은 “극단적으로 파업이라도 할 경우, 사용사업주가 파견업체에 손해배상을 청구하게 되면 경영상의 위기를 이유로 정리해고를 할 수 있기 때문에 파견직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전국언론노조(위원장 신학림·언론노조)는 지난달 29일 비정규직 차별철폐를 요구하는 집회에서 “비정규직 중 파견노동자만 KBS 600명, MBC 400명, SBS 400명이 넘은 지 오래”라고 밝혔다. 그나마 이 조차 정확한 집계는 아니다. 언론노조는 “EBS, YTN을 비롯한 대부분의 방송사와 신문 출판 업계도 예외 없이 그 수가 증가되고 있는 추세”라고 말했다.

언론노조는 “현재 입법예고돼 있는 ‘기간제등단시간근로자보호등에관한법률’,‘파견근로자보호등에관한법률’이 그대로 통과될 경우 비정규직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이라고 비정규직 확산을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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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견법보다 독한 파견노동자 주봉희

2006/07/03 09:53
파견법보다 독한 파견노동자 '주봉희'
[인터뷰] 계란으로 바위 깬 방송비정규노조 위원장
문형구 기자    메일보내기

  노동운동판에서 주봉희를 모르면, 그는 '가짜'거나 '초짜'다.
  
  주봉희는 어느 노동운동단체의 명망가나 끝발있는 대공장 노조 위원장의 이름이 아니다. 그는 아마도 머리에 파견철폐라는 붉은 글씨를 새기고 다녔던 파견노동자, 파견법보다 더 독하게 싸워서 결국 현장으로 돌아간 노동자로 기억되고 있을 것이다.
  
  2000년 6월 해고자가 된 그는 '대가리를 박고 싸워서' 결국 4년 1개월만에 현장을 되찾았다. 알고보면 2차 하청이였지만, 그의 싸움을 지켜 본 이들에게 주씨의 복직은 어느 정규직화 투쟁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니들도 비정규직으로 살아봐라'
  
  파견법이 시행된 98년 이전에도, 파견직이 없었던 건 아니다. 주봉희 위원장은 해고 당시 6년이 넘게 KBS에 근무해 왔는데, 다만 간간히 파견업체만 바뀔 뿐이었다.
  
  98년 7월 1일, 파견제가 합법화됐다. 달라진 점은 파견이 점차 늘어났다는 점이고, 2년마다 해고가 발생한다는 사실 정도다.
  
  연차를 거듭할수록 7-8배까지 차이가 나는 임금에 대해 KBS 파견직 노동자들은 숙명처럼 받아들였는지도 모른다. 사실 그보다 피부로 느껴지는 차별은 다른데 있었다.
  
  "정규직 기사들 대기실이 따로 있고 파견 대기실이 따로 있는데, 정규직 대기실은 개인 탁지라든가 의자, 옷장, TV도 칼라로 세대씩 있었지. 냉장고 공기청정기 에어콘 빵빵하고."
  
  

△"시골에 보면 그거 벼 날리는 선풍기 있잖어. 이따만한 거. 왱왱 방아찍는 소리나는 그 거" ⓒ민중의소리 김철수

  "우리방은 50평에 54명이 바글바글했는데, 17인치 흑백 로타리 TV에, 시골에 보면 그거 벼 날리는 선풍기 있잖어. 이따만한 거 왱왱 방아찍는 소리나는 그 거 틀어놓고 있고. 의자는 옛날 극장식 의자에 앉아있다가 마이크로 부르면 나가곤 했는데. 우리는 채널도 MBC KBS SBS만 고정돼 있었는데. 한번은 박찬호가 경기를 하는데 못보는 거야. 정규직들 방에 몰래 보다가 걸리면 '야 용역' '야 렌트카' '나가 시키야' 물 먹다 걸려도 '니네 방에서 사먹어 시키야' "
  
  그래서 파견직들은 한달에 2천원씩 돈을 걷어서 물을 사먹었다고 한다. "아까워서, 돈이 없으니까, 파견 노동자들끼리도 물을 먹는 것만 허용하기로 하고, 떠 가지는 못하게 했지"
  
  출장 중에 정규직 노동자를 추월이라도 하면 도착지에서 불려다녀야 했다. 정규직한테 아침에 인사를 안 하고 고개를 돌리거나, 고분고분 하지 않아도 불러다녔다. 이튿날 동료가 보이지 않으면 으례히 교체된 걸로 여겼다. 파견 노동자들이 당시에 제일 무서웠던 건 사용자도 파견업체도 아니라 가까이 있는 정규직이었다.
  
  IMF 이후 정규직에 대한 강제 명예퇴직이 실시됐고, 그 자리를 파견 노동자들이 채웠다. 99년 KBS는 정규직 노동자 3백명을 정리해고 했는데, 파견 노동자들의 속이 후련했을 법도 하다. '니들도 비정규직으로 살아봐라'
  
  "파견으로 다시 온 사람들이 있었고. 그 당시에 울화통 터지게 얘기했지. 당신들 정규직으로 있을 때 얼마나 설움을 줬냐. 생각나냐."
  
  짝수해, 파견노동자의 시련
  
  지금도 그렇지만, 파견노동자에게 짝수 해는 시련이었다.
  
  파견법이 시행되고 만 2년을 앞둔 2000년 6월, 운전직·카메라 보조·오디오맨·웹디자인 등 방송사 파견노동자들에게도 계약해지가 들이닥쳤다. SBS 437명을 시작으로 MBC 160명, KBS에서도 227명이 해고됐다. 전체적으로는 5천명 가량의 파견노동자가 그 해 계약해지된 걸로 추정된다.
  
  6년 넘게 근무한 주씨를 비롯해, 파견노동자들은 5년에서 길게는 15년까지 KBS에서 일해 왔었다. '이렇게 오래 있었는데, 자르진 않겠지'라는 믿음은 여지없이 깨졌다.
  
  
ⓒ민중의소리 김철수

 " KBS는 '우리는 꼭 쓰고 싶다. 그런데 법적으로 문제가 생기니 2년 후에 다시 오면 써주겠다. 파견법을 원망해라' 그랬어. 우리는 법을 몰랐는데, 아 파견법이 2년에 한번 쓰고 버리는 건가 보다 그때 알았지."
  
  KBS 운전직은 씨랜드 참사 당시, 현장을 촬영한 필름을 입수하고 삼풍백화점 붕괴 때도 인도를 타고 가서 특종을 만드는 등 뉴스보도에 큰 공을 세워왔다 실상 성수대교, 인천호프집 화재, 연천댐 붕괴 등 모든 특종은 운전직이 아니었으면 불가능했을 거라고 한다. 처음 모인 파견노동자들은 운전직이었다.
  
  "그렇게 일했는데도 우리는 칭찬 한번 못받고. 전부 해고된 거지. 처음엔 딱 열명을 만들었어. 그런데 모인 친구들이 안할라 그래. '나는 하루 벌어 하루 먹는 사람이라고' 그래서 노조를 만들어야 못 받은 연월차라도 받는다고 설득을 했어. 나도 이렇게 까지 올 줄 몰랐지. 골탕이나 먹이고 가자. 10년을 있었는데 KBS가 책임지는 게 뭐냐."
  
  방송사비정규노조, 화장실을 접수하다
  
  '비정규'라는 이름을 넣고 노조를 만든 건 이들이 처음이었다. 난데없이 한글학회에서 전화가 오기도 했단다. '한글을 똑바로 알자. 국어 사전에 비정규 노동자라는 건 없다. 불안정 노동자로 고쳐야 한다' 주봉희 위원장은 '군대도 정규군이 있고, 빨치산 같은 비정규군이 있지 않냐"며 이 이름을 고집했다고 한다.
  
  주봉희 위원장도 처음부터 조합원 없이 싸운 건 아니다. 초기 400가까운 조합원은, 경찰특공대가 롯데호텔노조를 '작살'냈던 6월 29일에 방송사비정규직노조도 야간에 '습격'을 받고 27명으로 줄었다.
  
  남은 이들은 투쟁을 할래도, 사무실도 투쟁기금도 없었다. 해고자들에겐 당장 깃발 하나를 살래도 '돈'이었다. 현장에 있을 때도 기본급 72만 5천원에, 식대 5만원. 시간외 근무만 100시간을 해야 겨우 100만원을 채웠던 인생들이었다.
  
  "여의도에서 15일을 보냈지. 회의하러가자 하면 여의도야. 그 땐 나무도 없고 그늘도 없어서. '형님 마포대교 갑시다'하면 거기 가서 회의하고 일정 짜는 거야. 2시에 대학로에 롯데호텔 집회 갔다가, 이랜드 집회 갔다가 저녁엔 다시 서강대교 밑으로 와서 막걸리 한잔 하고."
  
  한번은 비가 '억쑤로' 쏟아진 날, KBS로 들어가려다가 여의치가 않자 여의도 공원 남자 화장실을 접수하게 됐다.
  
  "거기서 전략회의 했어. 우리는 아주 판이 이상해.. 조합원 꿔서 집회하고, 화장실에서 생쥐같이 비맞고 냄새나는데 회의하고 그랬어"
  
  조합원도 없는 노조위원장
  
  
ⓒ민중의소리 김철수

  구차하고 승산없게 보이는, 비정규직의 싸움. 조합원들은 하나둘 떠나게 되고 결국 두달 후엔 주씨와 송진수(가명) 총무국장 이렇게 둘만 남게 된다.
  
  "나중엔 미안하더라고. 9월 15일인가 비가 무지 많이 왔는데. 롯데호텔 투쟁에서 '너 들어가라. 벌어야 하지 않냐' 그 놈이 딸만 둘인데 내가 깃대를 뺐었지. '보고 싶으면 핸드폰으로 전화해라' 비 쫄딱 맞고 막걸리 한잔 하고 울고 갔지. 삼각지까지 걸어가면서 임을 위한 행진곡 부르고 거기서 헤어졌어. '형도 좀 있으면 들어갈 거다' "
  
  당시를 떠올리는 듯 주씨의 눈 언저리가 발갛다.
  
  "그 동지 가고 나 혼자 딱 남았잔아. 허망하더라구. 아무도 없는거야."
  
  조합원도, 사무실도, 당장의 차비도 없었던 주씨는 굶기를 밥먹듯 했고 잠자리조차 해결하기가 쉽지 않았다.
  
  "김종철이 당시 부대변인이었어. 그 친구가 파견철폐공대위 집행위장이던 윤애림 동지 선배야. 애림이가 연락을 해서 당 회의실 하나 줄 수 없겠냐고 해서 책상을 들어내고 그렇게 시작했지"
  
  잠자리가 해결되도 배가 고픈 건 여전했다. 한창 더운 여름에 해고된 터라, 먹는 것도 시원찮은데 '꼭 나같은 비정규직의 피를 빨아먹는' 모기가 그는 그렇게 미웠다고 한다.
  
  "오늘은 어떻게 밥을 먹나. 집회가서 동지들 따라가는데. 그 동지 못쫓아가면 밥 못먹는 거고. 지하철도 많이 몰래타고. 어떻해. 집회는 가야하고. 조끼 입고 쪽팔리기는 하는데"
  
  2000년 12월까지 민주노동당에서 더부살이를 하면서 이랜드, 한통계약직노조와 식구처럼 지내던 주 위원장은 겨울에 용두동에 있던 민주노총 서울본부를 '접수'했다.
  
  2001년에는 굶지 않으려고 50을 바라보는 그가 명동성당 농성장 사수대를 자원했다. 당시 명동성당에는 단병호 민주노총 위원장 차봉천 초대 공무원노조 위원장 등이 수배상태로 농성중이었다. '싸워야지, 여기오면 어떻하냐'는 단 위원장의 질문에 주씨는 '여기와서 싸우면 되요'라고 했지만 실은 '밥 세끼를 먹을 수 있다'는 게 중요했다. 그렇게 명동성당에서 자고 새벽같이 마이크 차를 끌고 나와서 혼자 집회를 했다.
  
  레미콘 노조원들을 꿔서 집회를 하다
  
  혼자 남은 주씨에게는 사실상 '연대'가 없는 희망이란 없었을게다. 복직하던 날, 그가 떠올린 얼굴들은 그래서 참으로 많을 수 밖에 없었다.
  
  2001년 여의도를 접수했던 레미콘 노동자들은 기꺼이 주봉희 위원장의 조합원이 되어주었다. 주봉희 위원장의 표현을 빌자면 그는 "사람 참 좋은 장문기 위원장에게 조합원을 꿔서" 집회를 했다.
  
  경찰의 '도끼진압'으로도 유명한 레미콘 노동자들은, 그래서 경찰서에 끌려갈 때면 "왜 KBS 앞에 가서 그러느냐"는 질문을 받게 됐다.
  
  "하루도 안빼고 여의도에 갔는데. 내가 특이하잖아. 대가리에 파견철폐를 쓰고 다니니. 금방 알아보는 거야. 나는 돈이 없으니 옆에 쭈그리고 앉아서 얻어먹는 거지. 조합원 꿔다가 아침 집회 한 놈은 나밖에 없을 거야. 아침에 방송차 끌고가면 조별로 쭈욱 밥먹고 있어 그럼 '조합원 좀 꿔조' 그러면 KBS까지 쌀자루 뒤집어 쓰고 밥그릇 뚜들기면서 와.. 50명이고 200명이고 거의 한달을 꿔다 썼네."
  
  한국은 월드컵 열풍이 불면서 바디페이팅도 붐이 일었지만, 주 위원장은 이미 바디페인팅엔 전문가였다. 머리에 '파견철폐'라는 붉은 글씨를 쓴 주봉희 위원장이 집회장에 없으면, 사람들이 궁금해 할 정도였다. 주씨는 머리카락은 0.7cm 정도가 가장 글씨가 뚜렷하게 나온다고 설명한다. 더 길어지면 글씨가 드러눕게 되어 '파견'이 '파전'이 된다고.
  
  "한달 되면 깎아야 하는데.. 돈이 있어야지. 그래도 돈 생기면 밥은 굶어도 이거부터 했어. 사실 파견법 철폐라는 프랑카드, 구호하나 먼저 걸어주는 데가 없었지. 노동계에서도. 2003년에 경제특구법에 파견이 들어갔을 때 넣기 시작했지.. "
  
  박상윤, 김주익, 배달호, 이용석, 정종태..
  
  주봉희 위원장은 웃는 날보다 우는 날이 더 많다. 특히 주씨에겐 고 박상윤 서울본부 사무처장이 가장 오랫동안 지워지지 않을 아픔일 것이다.
  
  
ⓒ민중의소리 김철수

 "상윤이가 굉장히 애썼지. 상윤이가 살아 있을 때, 서울본부에서 주사모(주봉희를 사랑하는 모임)라는 걸 만들었어. 서울본부 대의원들하고 당시 한 삼심명 모집해서 CMS로 한달에 25만원에서 30만원씩. 집회 나갈 때 차비하고 밥먹으라고."
  
  "숙소가 서울본부 였는데, 3층이 내 방이야. 돈이 없어서 아침에 라면 반쪽에 고추장 풀어서 끓여먹고 책상위에 놓으면, 저녁에 와보면 박상윤, 여성호가 다 끓여먹고 없는거야. 어쩔 때 보면 스프 흔들어서 아작아작 먹고 있어. 내가 뭐라 했지."
  
  고 박상윤 사무처장은 노동절은 있어도 생일은 몰랐던 주봉희 위원장에게, 새벽같이 몰래 끓여놓은 미역국과 초코파이를 챙겨 주기도 했다.
  
  '아침부터 소주 한잔 했던 생각 나네.' 그는 정말 무지하게 울었다. 주봉희 위원장은 '그래도 민주노조운동의 발목을 잡고 있는 건 그런 활동가들, 내 숨을 던진 활동가들'이라고 믿는다.
  
  "김주익 동지는 손이 이 만해. 키도 크고. 2002년 8월에 부산에 갔더니 '위원장님 파견철폐 왜 지웠어요' '아. 머리가 빠져서' 다음달에 다시 쓸 거라고. 그게 마지막이었지. 2001년 배달호 열사부터 시작해서 당시엔 참 울다가 지쳤어. 이용석 동지는 하필 내 옆에서 분신했어.. 불이 확 올라오더라구. 몇 십초 순간이야. 내가 멎었어. 심장도 멈추고, 머리도 뭘 해야 할지 생각이 안 나. 피켓을 막 뽑아서 불을 끄고 난 다음에는 화기를 다 먹었어. 그 동지 그렇게 보내고 이듬해 복직되고 나니 이용석 열사가 돌아가셨잖아. 기가 막히더라구. 그렇게 아들 아들 하더니 서른 살 나이에.."
  
  주봉희 위원장은 '이용석 동지는 전태일의 혼이 다시 살아난 것'이라고 말한다. 주씨가 걸어 온 길에는 그렇게 '힘에 겨워 굴리다 못 다 굴린' 덩이를 맡은 이들이 많았다.
  
  "정종태 동지도 잊을 수가 없지. 그 동지한테는 참 미안해. 내가 참 구박 많이 했어. 이문동 옥탑방에 살았는데 여름엔 30도 겨울엔 영하 20도. 요만한 이불 하나에 치약 치솔 밖에 없었다니까. 지가 입던 옷하고. 걔도 나만큼이나 굶었어. 저녁에는 결국 장충단 공원에 올라가서 소주. '너 조직 관리 그렇게 못하냐' 내가 많이 혼내고. 내 생각엔 4천 대오 있을 때를 일깨워 주려고 했는데. 밥이라도 제대로 먹고 건강관리 했다면 더 살았을텐데."
  
  계란으로 바윗돌을 쳐서 이겼지. 다 할 수 있다고
  
  주봉희 위원장은, 그의 표현대로 하자면 한때 '도망'쳤었다.
  
  "2002년이 제일 힘들었던 때인데. 한통계약직 깃발 내리고 나서. KBS, MBC 다 무너지고. 나도 이제 여기서 끝내자. 그만 하고 내려가야겠다. 연세대에서 같이 보따리를 쌌어. 한통 동지들이랑 같이 울고 그 길로 온양으로 내려간거야. 농사를 짓든 다른 진로를.."
  
  주씨는 그러나 깃발을 내리지 못했다. 그를 붙잡은 것은 고 박상윤 사무처장과 같은 그런 '동지'들이었다.
  
  "누나네서 한달 반 정도 있다가 핸드폰을 꺼놨었는데, 받지 말았어야 하는데, 파견법 시행 5년이라고 철폐연대 서울본부 민변에서 뭘 하는데 발언해 달라고. 그게 계기가 되서 김혜진 동지나 이런 동지들이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 죽기야 하겠냐' 여성호 박상윤도 '아 형님 도망갔다'고 난리를 피워서 2002년 말까지만 간다고 했는데 거기서 붙잡힌 거지."
  
  47살에 해고된 주봉희 위원장은 결국 52살에 복직했다. 다른 게 있다면 그가 운전직이 아닌 사무직으로 배차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주씨는 이제 실제 조합원들이 있는 방송사비정규직노조의 위원장이라는 점이다.
  
  "당시에 어떤 사람들은 계란으로 바윗돌치기라고 그랬지. 내가 계란으로 바윗돌을 쳐서 이겼지. 다 이길 수 있다고. 당신들 어차피 우리같은 사람 필요한 거 아니냐는 거지."
  
  
ⓒ민중의소리 김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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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2001년.생각난다

2006/07/01 00:10
비정규직철폐와 정리해고분쇄를 위한 전국대장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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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봉희 | 방송사 비정규직노동조합 위원장
단결·연대·투쟁·승리로 뭉친 전국순회투쟁단

비정규노동자들로 구성된 전국순회투쟁단은 방송사비정규직, 한국통신계약직, 인사이트코리아, 볼보코리아, 이랜드노조 등 붙박이 비정규노조원들로 이루어졌다. 투쟁단은 투쟁팀·연대팀·승리팀·단결팀 등 4개조로 나누어졌으며 각 팀마다 학생연대팀 또한 자발적으로 투쟁대오에 합류하였다. 그러나, 실제 투쟁계획에서 투쟁일정과 시간 등에서 미숙한 점이 현장에서 조금씩 불거지기 시작했다.

방송사 비정규직팀은 투쟁팀으로 합류해 전북지역과 광주지역을 목표로 시작된 3박4일간의 현장투쟁을 시간이 아까울 정도로 외치고 뛰었다. 제일 먼저 도착한 곳은 전주 114안내국이었다. 새벽 눈보라 속을 가르며 힘찬 시동을 걸었지만, 제일 먼저 맞이한 것은 비정규조합원이 아니라 방패와 곤봉으로 무장한 경찰이었다. 우리 또한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전북본부에서 새벽부터 우리들을 맞이하느라 전북본부 본부장과 조직부장들이 방송차량을 대기시켜놓고 후위에 오들오들 떨고있는 모습에 우리는 다시한번 아랫배에 힘을 주고 대오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전주에서의 첫집회여서 그런지 동지들의 모습이 조금은 움츠려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조심스러워 하는 자세가 역력히 보였다.

처음 방송을 잡은 것은 투쟁팀 대오를 이끌고 있는 한통계약직 팀장이었지만, 새벽잠을 설치고 4시간동안 달려온 탓에 여독이 풀리지 않은 듯 힘있는 한통비정규노동자의 모습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필자는 대오에서 뛰쳐나와 마이크를 잡고 거침없이 토해내기 시작했다. 비정규직 양산하는 김대중정권 퇴진하라! 비정규직 완전철폐 정규직화 쟁취하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맺힌 한과 피눈물나는 지난 세월, 노동자 속에서 노동자계급을 다시 양산하는 현실에 굴욕감과 처절함, 뱃속의 허전함도 잊은 채 우리는 뭉쳤고 또한번의 동지애를 확인하며 외쳤다. 비정규직도 인간이다! 인간답게 살고 싶다!


더많은 비정규노동자들을 만났어야 했다

아침 출근하는 전주시민들은 묵묵히 우리들을 지켜보며 침통한 얼굴로, 걱정스런 모습으로 비정규노동자들의 절규하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한 60대노인은 나에게 이렇게 물었다.
"아니, 젊은이, 우리 선생님이 댁들한테 크게 잘못한 게 있남? 어렵게 대통령 됐는디 자꾸 물러나라면 워뜩혀 이 사람들아! 그리고, 비정규가 뭐여, 그것도 회사여? 비정규회사가 망한겨? 전화국하고 합작했남? 전화국 앞에서들 지랄하게, 잉? 시끄러워 못살겠네."
그렇다. 대다수 국민들과 노동자들은 그 분이 영원한 선생님으로 남길 원했고, 영원히 우리들의 가슴속에 맺혀있길 간절히 바랬는지도 모른다. 세명의 군사독재 정권하에서 모진 고문과 탄압은 그를 형장의 이슬로 사라질뻔한 세월도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그 분을 민주화의 상징으로 영원한 선생님이기를 원했는지 모른다. 1992년 어느 일간지와의 인터뷰기사가 생각난다. 모든 정치의 원동력은 서민과 노동자와 국민 속에서 정책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요지의 말씀. 이는 작금을 살아가는 비정규노동자들과 갈수록 부익부빈익빈이 심화되는 지금은 해당되지 않는다고 부인하지는 못하리라.

점심시간이 훨씬 넘게 전주 114안내국 앞에서의 집회는 114안내동지들과의 결합이 실패로 돌아갔다. 강인한 인내력과 투지넘치는 학생연대 동지들에게서 미래의 노동자 희망을 얻을 수 있었고, 공부하는 학생의 탈에서 벗어나 비정규 노동자들의 현실을 투쟁으로 각인하는 학생들의 모습에서 대견함을 발견할 수 있었다. 참으로 흐뭇한 마음으로 뭉클한 가슴들을 접할 수 있었다.
다만, 전국순회현장투쟁단의 이름과 걸맞게 짜임새 있는 계획과 좀더 많은 비정규투쟁사업장을 방문하지 못한 게 아쉬울 뿐이다. 타격투쟁 또한 한국통신에만 국한된 투쟁이어서 불만이 없지 않았다. 전주에서의 일정 또한 여성노동자대회, 전주화성섬유, 동산사내하청 등 비정규관련단체들과 좀더 많은 시간을 갖는 데 할애했어야 했다.


비정규직 완전철폐의 그날까지

특성상 지역 비정규노동자들과 충분한 토론과 현장상황을 좀더 적확히 파고들어 비정규노동자들의 연대와 동질성에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시간 또한 부족한 것이 흠이다.
군산의 개정병원 동지들, 2년이 넘도록 힘겹게 싸우는 여성노동자들로 구성된 노동조합이다. 한시간 남짓한 연대집회는 개정병원 동지들에게 도움을 주기는커녕 아쉬움만 남겨주고 말았다. 군산 노동부 앞마당의 집회는 대우차동지들과 개정병원 동지들 그리고 현장투쟁단 등 합동연대집회 후 거리행진을 하며 정규직, 비정규직이 한마당을 이루었다. 이 끈끈한 연대집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들을 실망하게 만들고 말았다. 마무리까지 함께 해주기를 원했던 군산 개정병원의 동지들이 아쉬워하며 우리들의 등뒤에서 끝까지 서서 떠나는 우리를 지켜보는 모습.

그 모습은 안타까움에 비정규들만의 아집과 고집을 그대로 보여주는 우리들의 모습이 아닌가 생각된다. 군산에 왔으니 바다구경하자는 의견이 있었고, 군산시내에서 선전전을 하자는 의견이 있었다. 물론, 후자는 끝까지 이 곳에서 남아 마무리집회를 하길 원했지만, 결국 전국순회투쟁단은 아름답지 못한 모순을 남기고 말았다.
광주에서도 대우캐리어동지들과의 만남 역시 그 지역의 노동자들을 흥분하게 만들었고, 그들은 기대감으로 우리를 맞이하였다. 그렇지만, 결국 시간관계상 30분집회에 사내하청 동지들과 대화조차 하지 못하고 떠나야 했다.

민주노총에서 주관을 했건 공공연맹에서 주관을 했건, 계획과 예산, 시간일정 등 충분한 검토 없이 출발한 것이 아닌가 싶다. 물론 전북본부와 광주본부 등 관계자들의 심적 고충 또한 빼놓을 수 없다. 잠자리에서 식사까지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신 전북본부장님과 관계자 그리고 광주지역 본부장님께도 감사의 말씀드리며 다음 그런 기회가 나에게 주어진다면 다시한번 힘찬 투쟁의 정신으로 전남·북지역의 비정규동지들과 함께 외칠 것이다. 비정규직 완전철폐, 정규직화 쟁취하자! 노동자해방 쟁취하는 날까지 투쟁!

방송사 비정규직노동조합 위원장 주봉희
2001년03월31일 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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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견근로 보호법은 파견해고 위한 법"

2006/06/29 15:03
"파견근로 보호법은 '파견해고' 위한 법"
7월1일 '파견법' 시행 8년…언론노조, 비정규직 차별철폐 기자회견
2006년 06월 29일 (목) 13:32:56 정은경 기자

오는 7월 1일 '파견근로자보호등에 관한 법률' 시행 8년을 앞두고 전국언론노동조합(위원장 신학림)이 다시 한번 비정규직 차별 철폐를 촉구했다.

언론노조는 29일 오전 11시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입법예고돼 있는 '기간제등단시간근로자보호등에관한법률' '파견근로자보호등에관한법률'이 그대로 통과될 경우 비정규직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이라고 우려했다.

   
  ▲ 전국언론노조는 29일 오전 11시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비정규직 차별 철폐를 촉구했다. 왼쪽부터 언론노조 신학림 위원장, 민주노동당 문성현 대표, 언론노조 방송사비정규지부 주봉희 위원장, 민주노총 최은민 부위원장,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정지현 사무처장. ⓒ정은경 기자  
 
방송 비정규직, 동일노동에 임금은 절반도 안돼

언론노조는 "지난 2004년 3만5000명의 파견노동자가 해고된 데 이어 2년이 지난 오늘 또다시 6만 명의 파견노동자가 해고를 기다리고 있다"며 "비정규직의 문제는 언론사도 예외가 아니어서 제작현장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정규직과 하는 일이 다르지 않음에도 정규직의 반에 반도 안 되는 저임금 속에 살고 있다"고 고발했다.

이어 언론노조는 "비정규직 중 파견노동자만 KBS 600명, MBC 400명, SBS 400명이 넘은 지 오래이며 EBS, YTN을 비롯한 대부분의 방송사와 신문 출판 업계도 예외 없이 그 수가 증가되고 있는 추세"라며 "언론사에서 무차별적으로 확대되고 있는 비정규직 문제를 사회적 의제로 상정하고, 비정규직 차별 철폐를 위한 투쟁의 대오를 정비할 것"이라고 밝혔다.

방송사비정규지부 주봉희 위원장은 "지방사를 포함해 수 천 명의 파견 노동자들이 해고되고, 그 자리는 2년  뒤 해고가 예약된 파견직 노동자들로 또다시 채워지고 있다"며 방송사의 직접 고용을 요구했다.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정지현 사무처장도 '파견근로자보호등에관한법률' 피해사례를 발표하며 "파견 노동자를 보호하겠다는 법이 오히려 주기적인 해고의 빌미를 주고 있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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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견법 시행 8년 무엇을 남겼나

2006/06/28 13:50
우리가 매일 보며 즐기는 TV 프로그램은 수천 수만의 비정규직의 피와 눈물로
만들어진다.
이미 프로그램 제작현장에는 정규직보다 비정규직이 많아진지가 오래다. 그들은
자료조사요원 카메라 보조, 오디오맨, 편집기사, 사무보조라는 이름으로 일하고
있으며, 이들이 하는 일은 정규직이 하는 일과 다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정규직의 반에 반도 되지 않는 저임금속에 살고 있다. 그들은 항상
해고(계약해지)에 노출되어 있으며, 대한민국 헌법이 보장하는 노동3권으로부터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 이같은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은 신문 출판계도 별반
다르지 않다. 

   2004년 8월 이미 전체노동자의 55.9%를 넘어, 천만 비정규직 노동자가 시대가
다가오는 가운데 가장 공영적이고 공익적이어야 할 방송사에서조차 비정규직중
파견노동자만 KBS-600명 MBC-400명 SBS에도 400명이 넘은지 오래다. 방송의
공공성 공익성, 언론보도의 공정성의 기치아래 인간이하의 삶을 살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를 더 이상 놓아둘 수 없다.

   파견법 시행 8년, 또 다시 6만명의 파견노동자가 계약해지 통지서를 기다리고
있다. 
언론노조는 사회양극화를 심화시키고 인간의 존엄성을 짓밟는 비정규직 차별
철폐를 위한 기자회견   을 통해 국회에 계류중인 비정규직 법안을 저지하고 더
이상의 개악입법이 이루어지지 않도록 투쟁   할 것이다. 
                             
                                             - 다    음 - 

  o 기자회견 : ‘파견법 시행 8년 ,비정규직 차별철폐 언론노조 기자회견’
  o 주요 참석자: 문성현 민주노동당 대표
                신학림 언론노조 위원장
                이태형 민주노총 비정규직 투쟁위원회 위원장
                정지현 불안정 노동철폐연대 사무처장
                주봉희 방송사 비정규직 위원장
  o 일시 및 장소 : 2006. 6. 29(목) 오전 11시 국회의사당앞(국민은행 앞)
  o 관련문의 : 언론노조 조직쟁의실(정영홍 017-522-9685)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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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견법으로 인한 테러

주 봉 희 | KBS방송사비정규직 노조위원장


파견근로자보호등에관한법률(파견법이라 한다)이 98년 2월 25일에 제정되었을 때 법에 무지한 우리들은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십수 년을 용역으로 이중파견으로 단련된 우리였기에 파견법으로 해고될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고, 오히려 은근히 기대를 하였는지도 모른다.
일부 동지들은 '세월아 빨리 가라'며 들뜬 기분으로 하루를 영위하는 모습도 보인다. 하루가 우리 자신들을 바구미 쌀 파먹듯 자신들의 삶을 파먹는 줄도 모르고 히히덕 거리던 세월은, 차곡차곡 쌓아놓았던 여린 꿈이 산산이 부서지는 줄도 모르고 잘도 지나간다.
설마가 사람 잡는다더니 눈 앞에 닥친 현실을 추스릴 땐 이미 꿈은 분노가 되었고 살아온 인생이 왜 그리도 원망스럽고 본전 생각이 나던지. 50줄을 바라보던 2000년. 사형선고나 다름 없는 파견법에 의한 정리해고가 시행될 시점에 난 정말 많은 갈등에 빠진다. KBS에 근무하면서 쌓아놓았던 사측관리자들과의 좋은 인연으로, 비록 비정규직이었지만 서로의 신뢰는 형님 아우 사이가 되어 있었다. 옛말에 물길 속 열길은 알아도 사람 마음 알 수 없다더니 관리자들의 끈질긴 유혹은 뿌리치기가 영 힘이 들었다. 파견법이 오랜 인연도 원수로 만드는 법이로구나 하고 생각할 때는 이미 우리는 철전지 원수가 되었고 으르렁거리며 살쾡이가 발톱을 세우고 서로를 할퀴고 있었다.
파견법이 낳은 웃지 못할 에피소드 한 가지 이야기 하나 할까 한다. 어느 날, "형님, 파견법이 정확하게 어티기 된 법이래유." 충청도 당진이 고향인 성욱이는 유난히 사투리가 심하지만 느릿느릿하면서도 유머가 꽤 있던 친구였다. 지나 나나 파견법이 뭔지 아나. 그래도 내가 반장이라도 하고 있으니 좀 유식해보였는지도 모른다. "글세. 파견근로자보호등에관한법률이니께, 동물보호법 같은 거 아니겠냐." "아니, 형님. 우리가 그럼 동물이란 말유?" "그럼 자슥아, 우리가 개돼지보다 못한 동물이지, 우리가 사람이냐. 사람이면 보호등에관한법을 굳이 만들겠냐."
그 땐 왜 그렇게 여유가 있었는지. 아까운 시간이 흐르고 있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파견법이 인간과 인간 사이를 이간질 시키고, 오랜 세월을 정을 나누었던 팔도에서 모인 여리디 여린 그 많은 동지들과 헤어지게 만들고, 50줄을 바라보며 노후를 설계를 하여도 짧은 시간인데, 황폐해질대로 황폐해진 중늙은이 부랑아로 만든다. 아무리 인생은 공수래공수거라 하지만 화려하게 피었다가 지는 꽃이라고 내년에는 피지 말라는 자연의 법칙이 있는가? 그래서인지 파견법은 매년 파견노동자를 잘라놓고 심고 자르고. 그것을 자본은 즐기고 있는가.

파견법의 위해성은 파견노동자로 일해 본 노동자가 아니고는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파견법은 그동안 무엇을 남겼나? 파견법으로 채용하고, 파견법으로 해고당하고, 파견법으로 착취한다는 '파견근로자보호등에관한법률'. 파견법이 시행되고 법으로 보호한다고 큰소리 쳤지만 보호받은 자 누구인가? 오히려 파견법으로 5년, 10년, 18년 근무하던 방송사에서 쫓겨났다면 아무리 무지한 노동자일지라도 분노하지 않는 자 어디 있겠는가? 십수 년 동안 쥐꼬리 만한 월급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이중착취와 중간착취에 시달리면서도 가족들의 안위와 자신들의 미래를 자신하던 사람들의 꿈과 희망 미래를 산산이 찢어놓고, 흩어진 낙엽처럼 짓밟으며 조그만 삶도 무참히 밟아버린 법이 파견법 아닌가. 가끔 십수 년을 함께 했던 동지들을 만나 소주잔이라도 기울이며 쓴 웃음 속에 이야기한다. 파견법이 아니었다면 아마 지금도 KBS에서 근무하고 있을까 라고.

파견법은 우리에게 철전지 원수 같은 법이 되고 말았다. 도대체 정권과 자본에 의해 2년에 주기적으로 파견법으로 테러를 당해야 하니 도대체 언제까지인가. 아무 검토 없이 준비 없이 파견법 통과를 시킨 일등 공신들은 어디에 있나? 그들을 아직도 용서하지 못하고 원망하는 것은 파견법으로 이 사회가 무참히 짓이겨지고 있기 때문이다. 정말 기가차고 뚫리지도 않는다. 심하게 말한다면 김대중정권, 거대 자본, 노사정위원회, 양대노총한테 사기를 당했다고 하면 과장된 말일까?

3년 동안 이렇게 '파견법을 철폐하라'고 또라이가 되어 내 온몸을 불살랐지만 당신들은 날보고 이렇게 말하겠지. "우리가 죄인이 아니고 신자유주의가 그렇게 만들었다고." 날고 기는 이 땅의 노동운동가들. 술잔을 기울이면 어김없이 전노협이 어쩌고 하면서 대한민국의 노동자를 위해서 자신을 던졌노라고 자신 있게 말들 한다. 난 처음 그들이 그렇게 이야기할 때 경의적인 투쟁에 감탄을 하곤 했다. 그러는 지금 신자유주의 노동유연화 광풍이 불어닥치고 있지 않은가. 어디에들 숨어 계신지. 전체 노동운동하신 대선배들을 매도하는 건 아니라는 걸 전제로. 오해가 없기를 바랍니다.

파견법 시행 기간 동안 정말 무엇을 남겼나? 정말 파견법의 본질을 이해하는데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렸냐고 묻고 싶다. 파견법 1조부터 48개 조항을 들여다보라. 어디 한군데 파견노동자를 위한 조항이 있는가. 이제 자신을 이야기하자. 잘못을 가리기 전에 자성을 하자. 파견법의 문제를 솔직히 이야기해야 한다. 왜 이 땅이 불법파견이 판을 치는지, 끊임없이 자행되는 착취의 근원을 이야기할 때마다 등장하는 것이 파견법이다. 고용을 안정시켜주는 법이 아니라, 불법파견의 주범이며 오히려 파견노동자들을 갈취하고 탄압하는 수단이 바로 파견법이라는 걸 정확하게 알려야 한다. 파견노동자들의 발목을 잡는 악법 중에 악법 파견법의 본질을 감추지 말자.
파견법이 이 땅에서 사라지고 폐기될 때까지 저는 맨 앞에 서 있겠습니다. 투쟁!

* 이 글은 2003년 9월에 방송사비정규노조 주봉희 위원장님이 쓰신 글입니다. 오랜 해고투쟁 끝에 지금은 KBS 자회사로 복직을 하셨습니다. 주봉희 위원장님과 KBS 비정규노동자들은 비록 파견노동자로서 지속적인 고용불안은 모면했지만 여전히 고용불안과 장시간 노동에 쫓기는 비정규직 노동자로서 '방송사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고용안정과 인간다운 삶, 그리고 비정규직 철폐를 위해 오늘도 끈질기게 투쟁의 현장을 지키고 있습니다.

 

                                          전국불안정철폐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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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 거짓말

2006/06/14 22:22

거짓말  거짓말 하지마 네 가슴 타 들어 가는줄 모르고 속 감추지 말아 줘

 

속을 대로 속아 버린 내 가슴은 이제 텅~ 비었다오

 

담을래야 담을 곳이 없어 이리 저리 빈자리 찿아 눈을 흟켜

 

당신들 의 말 말 주머니 찿는 중이 라오

 

감추어 주고 싶은 말 말

 

내 가슴 타 들어가도 입은 꾸욱 다물어 버리렵니다

 

군독네가 나도록 입 다물어 버리고

 

입이 썩어 묻들어 져도

 

난~~~~~질끊 눈을 감고

 

고개 숙인 해바리기

 

할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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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쟁 의 목 마름이여

2006/06/14 20:05

마디 마디 움켜 죈 몸 뚱아리 속에 갇혀 있는 뼈 마디가 욱신 거린다

 

흐트러 지며 갈기 갈기 찠어진 노동의 육신이여

 

시커먼 피 덩어리 쏬아 부으며  투쟁의 목 마름이 솟구쳐 오른다

 

세상은 들석 거리며 화산처럼 불거진 피 오라 한다

 

쓰레기 처럼 살아

 

휴지처럼 태워져 버린 너

 

붉은 머리 띠 동지가 있어 투쟁의 목마름

 

태우리라 불살라 버리 리라

 

마지막 남은 투쟁의 목마름 마저

 

아낌 없이

 

태워 목 마름

 

더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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