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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3/26
    사랑은(2)
    은수
  2. 2007/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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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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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2007/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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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슨 말을 할 수 있었던 걸까(4)
    은수
  8. 2007/03/02
    Good body(25)
    은수

사랑은

사랑. 사랑. 사랑이 뭘까?

 

한 눈에 반해버리는 사랑

미칠듯이 가슴뛰는 사랑

 

그런 건 사랑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그동안 규정해왔던 건,

알면 알수록 family같고

친구에게는 말하지 못하는 것들도 애인에게는 말할 수 있는

그런 '편안함'의 제일 관계.

난 어쩌면 그런 사랑이야말로 '진짜'라고 생각해왔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경계야말로 우습다.

생각할수록.

그 경계란 어느 누구도 아닌 내 스스로가

나를 합리화하고 상처로부터 방어하기 위해 만들어놓은 것이니까.

 

 

친구가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정치적 타당성을 떠나서 제일 중요한 건 사랑하는 사람에게 상처주지 않는 거 같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The break up,에 이런 대사가 나왔다.

"중요한 건 내가 혹은 당신이 원하는 걸 하는게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과 뭔가를 함께 한다는 거야"

어쩌면 가장 단순하고 고전적인 사랑의 정의를 난 잊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의외의 마지막 장면을 보면서 '봄날은 간다'가 묘하게 겹쳐왔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만남과 헤어짐에서 cool,이란 무엇일까. 

뭐가 쿨한거지. 어떻게 하면 쿨한거지. 아니, 왜 쿨해야 되는건데.

 

sex  and the city의 마지막 시즌에서인가

미란다가 애인에게 I love you를 말하지 못하다가, 

정말로 우연히 자기도 모르게

스티브에게 말해버리는(말한다기보다 내뱉어버리는) 그 장면.

그 장면을 떠올리면서 그건 '낭만적 사랑의 각본' 일뿐일까,

아니면 정말 그럴때가 있을까, 그 감정이란 무엇일까...

 

알수 없는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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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론

나침반님의 [요즘 고민] 에 관련된 글.

 

나도 고민. 고민. 고민.

엊그제는 머리가 터져버릴 것 같아서 열심히 떠들면서 술을 왕창 마셨다.

 

늘 나오는 "현실론" 얘기 말이다.

어쩔 수 없는 현실, 당장의 대안이 없는 현실, "그러니까...."라고 시작되는 그것.

근데 그 현실에 대한 판단에서부터, 대안으로 등장하는 현실론이라는 건

너무나 자의적인 생각인 것 같다.

 

우리은행 직군제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고 있었다.

여성주의의 '딜레마'-한계와 가능성이라고도 표현되면서 말이다.

하지만, 직무급 평가는 그렇다치더도,

애초에 연대임금제와 같은 발상에 대해서는 도대체 동의할 수가 없었다.

그게 어떻게 비정규직화를 막을 수 있다는 걸까?

설사 노사가 합의해서 연대임금제를 해서, 비정규직 임금이 올라간다 한들

그게 비정규직의 empowerment와 도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내가 볼 땐 그들의 현실론이 전혀 현실론이 아니었다는거다.

"노동운동의 힘이 없으니까.."라는게  이유라면

차라리 "노동운동의 힘을 기르자.."고 해야 되는 거 아닌가?

물론 답답한 부분이 있다.

당장에 눈에 보이지 않고, '구체화된 계획' 은 커녕 '의지'조차 없어보일때,

희망이란 현실이 아닌 것이다.

"여성노동자를 조직화하자."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누가?

이런 질문들.

 

또 한가지는 상품화와 소비에 대한 것이었다.

자본주의가 고도로 발달하면 할수록 거의 모든 것들이-친밀성의 영역까지도 '상품화'되고 있다.

제사대행, 베이비시터부터 시작해서, 애인대행 서비스까지.

주로 여성의 감정노동, 돌봄노동에 해당되었던 영역의 상품화를

소비와 소외로 연결시켜 악순환이라고 보는 건 당연하다.

Hochschild라는 학자는 '감정의 제국주의적 지배'라고도 했는데

선진국의 중산층에서 사라진 감정, 돌봄노동들이

'제 3세계' 여성들의 이주를 통해, 그녀들의 노동으로 전가된 현상 말이다.

하지만  이런 상품화에 대한 비판을 어떻게 (정규직 남성)노동자들의 '구매력'과 연결을 시킨단말인가.

완전히 수요-공급론에 맞춰서, 구매력이 있으니까 소비한다. 사는 사람이 있으니까 또 파는거지.

남성노동자들은 사게 되고, 여성노동자들은 팔게 되고. 그러니까 결론은..구매력을 줄이자?

만약 내가 결국 자본주의적 생산의 문제와 분리해서 볼 수 없는 문제다, 라고 한다면

"넌 정말 비현실적이라고" 할까? "그래서 니 대안이 뭔데?" 라고 할까?

할 수 있는게 뭐야.

 

답.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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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독점적 다자연애

쓰고보니, 이 말 한번 거창하네. '비독점적 다자연애'

다른 말로 표현하면 뭐지, 폴리? 자유연애?

아무튼 저 유식한 표현은 <아내가 결혼했다>에서 본건데

그냥 '비독점적'에 꽂혀서 쓰는것 뿐이다.

 

아무튼.

내 애인이, 그는 남자이고 우리는 연애한지 2년 다 되어간다,  

며칠전 '비독점적 다자연애' 에 '동의'했다.

동의라는 말이 막 내가 심하게 요구해서 그런 응답을 이끌어낸것 같지만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다.

 

그러니까 최초에 "거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에 대한 물음을 내가 던진 건 맞다.

자세하게 표현하면, "내가 다른 사람을 좋아한다고 하면 우린 어떻게 되는거냐" 뭐 이런 얘기들?

콜론타이를 보면서, <아내가 결혼했다>를 보면서, 우린 배타적 연애관계에 대한 얘기를 많이 나누었다.

 

그러던 중, 내가 "xx이 참 괜찮은 거 같아. 넘 예쁜 거 같애. 막 보고 싶다니까."

나는 사람에게 '관심'과 '호감'을 잘 갖는편인데, 그게 오래가지는 않지만,

암튼 나는 내 애인에게 내가 가진 관심들을 잘 말하는 편이라서, 그런 말을 했다.

며칠 뒤에 애인이 나에게 말했다.

"생각해보니 역시 독점적인 감정은 이성애주의, 혹은 일부일처제와 관련이 있는 거 같다"

내가 말한 그 xx은 여자였는데,

만약 '남자'였다면 자신이 속상하고 질투하고 그랬을 것 같은데

xx이 여자라는 사실 때문인지 그런 감정이 들지 않았다는거다.

그래서 다시 생각해보니,

이성애주의/일부일처제가 배타적 연애, 혹은 독점적 감정과 엄청나게 연결되어 있고,

(다른 '남자'만을 경쟁상대로 느끼도록)

결국 독점적 감정, 사랑이라는 건

태초에 인간 모두에게 있는 '자연스러운 감정'이 아니라는 걸 새삼 느꼈다는거다.

 

내가 보기에 애인은 이런 단계를 거쳐거쳐, (머릿 속에 더 많은 생각이 있었겠지만)

"니가 다른 사람을 사귀더라도 괜찮을 것 같아. 그 사람 역시 연애관계를 독점하려 하지 않는다면"

라고 말했던 것이다.

물론 현재 나에게 연애할만큼의 감정을 갖고 있는 사람이 '또' 있는 건 아니지만

지금 당장 '비독점적 다자연애'를 실행할 수 있는것도 아니지만

그냥 기분이 좀 신나서, 주변인들에게 얘기를 했다

그랬더니 사람들의 반응이 아주 가지각색이었다. 진짜 재미있다.

 

-차라리 바람을 피우지 그래. 왜 꼭 넌 '연애'를 하려는거니? 힘들지도 않아?

-육체적 관계가 필요하면 원나잇스탠드를 해라.

-걔(내 애인)가 널 너무 좋아해서 마지 못해 해준 거 아냐? 걔도 참 (너같은 여자 만나서) 안됐다.

-걔가 동의해준건, 걔한테 다른 사람이 생겼다는 의미일 수도 있어. 보통 남자들이 자기 바람나면 부인한테 관대하잖아. 의심해봐.

-너 지금은 그렇게 말해도 일단 '다른 사람' 나타나면 그렇게 할 수 있을 것 같아? 절대 못해.

-하면 나한테 꼭 말해줘, 너무너무 궁금해.

-여자? 남자?

-걔가 동의해준건, 걔가 남자라서 그래. 자기가 그래도 first라는 거지. 다음 사람은 second고.

-걔 이제 군대가지? 위기감 아닐까?

-셋, 혹은 넷이서도 만날꺼니, 그건 정말 비추다.

-넌 진정한 폴리가 아니야.

 

 

하하하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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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

늦은 밤이었다. '그 사람'에게서 온 전화였다.

그 시간에 그 사람이, 게다가 군대에서 며칠 안되는 휴가나온 사람이,

술을 먹고 전화했을때, 난 직감할 수 있었다.

그가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은지를.

빙빙 돌려 한시간 동안 얘기했지만, 처음부터 알수가 있었다.

 

오랫동안 정말 진지하게고민해왔다.

"난 왜 그 사람을 싫어하는가"

이유는 정말이지 여러가지가 있었다.

 

'그 일'에 얽혀있다는 것, 그 때 그의 입장의 문제?

그것만으로는 절대 설명할 수 없는 거였다.

 

그 사람은 너무나 똑똑하다.

요즘따라 '똑똑'을 남발하는 경향이 있지만,

정말 사전적 의미에서 그 사람은 머리가 잘났다.

그런데 왜 그 사람은 여성주의에 그렇게 관심이 없을까.

왜 그 사람에게 여성주의는 늘 이차적인걸까.

내 주변에 다른 남성들은 그래도 '노력'하는 남성들인데,

왜 그 사람은 그 노력조차 안하는 걸까? (못본건지는 알 수 없지만)

그 사람이 말할때 난 마치 레닌전집을 읽는 것 같은 느낌,이었는데.

언제나 당당하고 자기 확신에 차있으며 논리적이면서도 거칠고 배타적이다.

내가 그 사람에게 정말 제대로 '논박'할 수 없다는 걸 몇차례 느꼈을때

내가 언어가 없기 때문인건지, 논리가 없기 때문인건지, 아니면 내 생각자체가 틀린건지

불쾌한 감정을 설명할 수 없는 그  상실감이 나에게로 오지 않고,

그 사람에게로 가서 '싫어한다'가 되었을런지도 모른다.

누구말대로 '말해도 변하지 않을 걸' 아니까, 더 이상 말하지 않게 되었을런지도.

사실 그 사람은 '전형적인 운동권 마초' 스타일은 아닌데도

자꾸 그 사람에게 그런 원망과 분노들을 투사시켰던 것 같기도 하다.

 

그 사람은 나에게 "넌 정말 똑똑하다"고 아주, 자주 얘기했는데.

생각해보니 한편으로 난 누구보다도 그 사람이 날 인정해주는게 좋았던 것 같다.

그 사람은 "내가 다시 운동했으면 좋겠다"고 말하면서

자신 역시 나에게 '두 가지 감정'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나에게 불만스러운 지점은

"내가 지나친 '인정욕구'를 갖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운동을 할때 어떤 측면에서 필요한 "'희생적인 태도'가 나에게는 없었다는 것"이다.

 

역시, 그 사람은 머리가 너무 좋아 사람에 대해서도 정확하게 파악하고

또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줄 안다.

그래서 난 그 사람이 싫으면서도, 그 사람이 좋았던거다.

난 너무나 '인정욕구'가 강하다. 모든 사람들에게 있는거지만, '유난히' 강하다.

그게 나를 지금까지 이렇게 성장시켜온 동력이기도 했다. 한 측면에서는.

하지만 때때로 보다 자주, 그게 나를 너무 힘들게 한다는 걸 나도 잘 알고 있다.

나처럼 자의식이 강해보이는 사람이 이런 생각을 갖고 있다는 건 다들 잘 모르지만.

"남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가"가 나를 거꾸로 지배할때,의 그 기분 말이다.

난 끊임없이 망상을 만들어낸다.

내 스스로 만들어낸 언어, (저 사람들은 나를 이렇게 생각할까?)

언어가 실재를 만들어낸다. (저 사람들은 나를 이렇게 생각하고 있다.)

그 때 또 다시 발동되는 인정욕구, (저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다)

그런 악순환.

정말이지 단순한 진리지만, "모든 사람에게 인정 받을 수는 없잖아?"

근데 왜 나는 편하게 마음을 먹지 못할까.

웃긴건 그렇게 '인정'받고 싶어하면서도

운동하는 사람들에게 요구되는 '희생적' 태도가 나한텐 없었단거다.

(쓰다보니 '희생'이라는 말이 굉장히 거슬려서 설명하고 싶은데 잘 못하겠고

난 그 사람이 무슨 뜻에서 그런 얘기를 하는지 알겠다.)

아니다, 또 생각해보면 그런 노력을 안해본건 아니네, 결국 실패했지만.

 

아무튼 그 사람과 통화하고 또 다시 우울해졌다.

맞다, 그 사람이 싫은 이유 중의 또 하나에는 그 사람과 만나면 우울해진다는 게 있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은 보통들 하지 않는 말들,

당신의 단점, 당신에게 부족한 점들을 너무나 적나라하게 까발려서

'나의 현재상태'와 직대면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분석은 하나하나 틀린 것이 없어서

그 사람에게 기분이 나빠지는게 아니라, 내가 우울해졌던 것 같다.

이번에도 며칠, 보다 오래 가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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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들

어떤 식으로든 느낀 것들을 기록하려 했으나 결국 또 늦었다.

기사를 뒤적이다보니 다시 그 날의 기억이 떠오른다.

 

그날이 '얼굴들'을 두번째로 본 날이었다.

참으로 놀라운 건,

이 다큐가 지금까지 4번밖에 상영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나마 그 중 한번은 조합원들 내부에서 상영한 것이라

실질적으로 상영된 것은 3번에 불과하다.

 

어떤 이가 그런 질문을 했다.

만약 어떤 남성들의 노조에서 6년간 이만큼의 투쟁을 했다면

그리고 그 투쟁과정을 다큐로 만들었다면

이렇게까지 민주노총에서 지원이 없었을까 싶다고.

 

얼굴들,은 감독의 문제의식이 빛나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아쉬운게 있다면 그 문제의식이

조합원들과 소통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어렵다.

'가족', 더군다나 '우리' 가족을

거리두고 바라보기는 정말 어렵다.

나만 해도 가끔 엄마 없는 삶을 생각해보면

지금 하고 있는 '짓'들을 다 때려치고 싶을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가족에 대해, 그것이 사랑이든 애증이든 증오든 간에

무자르듯 뚝 잘라질 수 있는 감정도 아니며

가족주의 혹은 정상가족이데올로기를 비판한다는게

"가족에게 정 주지 말자" 는 것도 아니잖아?

다만 내 '어머니의 삶' '내 아버지의 삶' '내 동생의 삶'을

조금은 다른 위치에서 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일테다.

 

실은 나도, 우리도 잘 못하면서

노동자들에게 너무 성급하게 다가갈 때가 많았던 것 같다.

"온정주의는 단호하게 끊으세요"  막 이런거지.

 

하여튼 가족으로 들어가기 시작하면

무지하게 복잡해진다.

'정의'조차 어려운 가족.

도대체 무엇이 어디까지가 '가족'인거고

사람들은 왜 '가족'을 꾸리려하는건지

나를 대입해 생각해볼수록 어려워진다.

 



기사원문 : http://sanosin.jinbo.net/Publish/labor.php?ex=article&b_fn=RD&gotopage=1&pkno=803

그녀들은 조금씩 전진하고 있었다
시그네틱스 여성노동자들에 대한 영상다큐《얼굴들》

  
   

  지난 2월 10일, 노동해방학생연대에서는 시그네틱스 여성노동자들의 투쟁, 그리고 그녀들의 가족에 대한 다큐멘터리 《얼굴들》상영회와 시그네틱스 노동자들과의 간담회를 진행했다. 《얼굴들》은 시그네틱스 여성노동자들이 영풍자본에 대해 투쟁했던 기록만이 아닌, 가족 내에서의 그녀들의 위치와 여성노동자로서 이 땅에서 살아가기 위해 또 무엇과 싸워야 했는지를 얘기했던 다큐멘터리였다. 이른바 ‘이중의 굴레’. 시그네틱스 여성 노동자들은 자본과의 투쟁에 나서면서도 한편으로는 싸우기 위해 집을 비우는 것에 대한 남편의 ‘허락’을 구해야 했고, 또 한편으로는 아이들에게 밥을 챙겨주지 못한 자괴감을 가슴 한 켠에 놓아두어야 했다.
IMF 이후, 구조조정의 광풍이 몰아치던 2001년은 시그네틱스 투쟁만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당시 비정규직 투쟁의 선봉이었던 한국통신계약직 투쟁이 한창이었고, 부평에서는 1750명의 정리해고에 맞선 대우자동차 노동자들의 투쟁, 울산에서는 효성, 태광산업, 고합 화섬 3사 노동자들의 구조조정 반대투쟁이 있었다.

그 수많았던 노동자들의 투쟁 속에서 시그네틱스 여성노동자들의 투쟁을 다시 꺼내든 것은 우리가 아직까지도 제대로 받아안지 못했던 평가지점들이 놓여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 때 놓쳐버린 그녀들의 투쟁은 당시 우리가 보아야 했던, 그리고 아직도 제대로 보지못하고 있는 것을 얘기해준다.

시그네틱스 투쟁에서 보여졌던 여성노동자들의 굴레들, 다큐멘터리 《얼굴들》을 소개한다.

 

2001년 염창동에서 2007년 파주까지

시그네틱스 노조의 투쟁은 2001년 7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97년부터 이어진 경영난에 어용노조는 임금동결과 성과급 반납까지 약속했지만 98년, 결국 한국시그네틱스(주)는 영풍자본으로 인수되었고 염창동 공장에서 파주공장으로 이전하게 되었다. 민주노조가 건설되었던 2000년 말, 영풍자본은 갑자기 약속을 바꾸어 안산공장으로의 일방적인 이전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파주공장에 민주노조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뜻이었다. 2001년 7월, 시그네틱스 노조는 안산공장은 언제 문닫을지 모르는 창고라는 사실을 알고 원래 공정이 이전된 파주공장으로의 고용승계를 요구하며 투쟁에 나섰다. 그리고 6년이 지난 지금도 싸우고 있다.


‘노동자’와 ‘아내,어머니’의 사이

다큐《얼굴들》은 해고판결을 내린 중앙노동위에 항의하는 와중에도 수화기를 통해 아이들을 달래는 윤민례 지회장의 모습부터 시작한다. ‘보통’의 경우, 아들과 통화하는 어머니의 모습이 그리 이상할 것은 없는데 왜 그럴까? 그것은 투쟁하는 ‘노동자’와 남편과 아이들을 챙겨야하는 ‘아내, 어머니’ 사이에서 끊임없이 동요하고 갈등했던 시그네틱스 노동자들의 투쟁의 시작점이었다. 《얼굴들》의 질문들은 거기서부터 시작했다.

투쟁에 나서기 전에도, 후에도 집안일과 아이들을 돌보는 일은 항상 여성노동자들의 몫이었다. 여성노동자들은 하루종일 일하고 집에 돌아와서 피곤한 몸을 뉘우기는 커녕, 가족의 식사와 뒷바라지를 해야했다. 그런데 투쟁이 시작된 후, 집회, 상경투쟁, 철야농성등의 일정들은 가족 내에서 이러한 여성노동자들의 위치와 역할에 균열을 일으켰다. 이러한 균열들은 여성노동자들이 투쟁과정에서 겪는 가족과의 갈등들로 나타났다.
그러한 갈등들을 해결하는 것은 순전히 여성노동자들의 몫이었다. 그리고 그 해결책은 대부분 집안일과 아이 돌보는 일을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그 자신 또한 남성노동자인 남편의 ‘허락’이었다. 대부분 기혼이고 자식들이 있었던 시그네틱스 여성노동자들은 투쟁 초기부터 남편에게 이러한 ‘허락’을 구했다.

시아버지의 68세의 생신에 참석하는 대신 집회에 오기 위해 남편의 ‘허락’을 구했던 조합원부터, 철야농성을 하고 밤늦게 온 조합원에게 바람을 폈다는 등의 얘기를 하는 시부모와의 갈등, 노조활동을 하지 말라는 말을 듣지 않자 남자 말을 무시한다며 화를 내는 남편과의 갈등들을 봉합하느라 애썼던 조합원들까지. 그녀들이 자본과 투쟁하는 과정은 가족 내의 자신의 위치와 역할에 대한 투쟁이기도 했다.


“남자들은 서울에 2박3일 농성한다고 하면은 같이 직장생활해도 보통 마누라가 챙겨주는 양말이랑 짐싸가지고 올라와서 일보고 내려가고.. 애들이 어떻게 학원을 가고 밥을 먹는지 솔직히 대부분은 신경안쓰는데 여성들 같은 경우는 그것까지 다 대책을 세우고 신경쓰지않으면 (농성이나 상경투쟁하는) 그 2박3일 집을 나온다는 것 자체가 힘든 여건이니깐”

시그네틱스지회 교육선전국장


그녀들을 옭죄었던 건 남편과의 갈등만이 아니었다. 조합원 개인마다 깊고 얕음의 차이는 있었지만 철야농성, 구속수배, 집회참석 때문에 아이들을 챙기지 못해 느꼈던 ‘어머니’로서의 죄책감은 그녀들을 더욱 가정에 얽매이게 했다. “우리도 그렇게 커왔으니깐..”이라며 그녀들을 옭아매고 있는 ‘어머니 역할’에 대한 무언의 강요는 그녀들로 하여금 ‘어머니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함으로써 느끼는 죄책감을 더욱 가중시켰다.

자본과의 투쟁 속에서 그녀들은 ‘어머니, 아내 노릇’과 ‘노동자 역할’ 사이에서 자신을 끊임없이 조율해야 했다. 한 조합원과의 인터뷰 중 어디선가 들려온 “물 좀..”이라는 남편의 목소리에, 여성노동자로서 겪는 투쟁의 어려움을 얘기하던 ‘여성노동자’는 어느새 ‘아내’로 돌아가 남편에게 물을 가져다주기 위해 냉장고 문을 열었다. 그 모습에서 수년에 걸쳐 투쟁현장과 가족 사이를 오갔던 그녀를 발견한 것은 그저 착시에 불과했을까.
남편과 자식들의 밥을 챙겨주지 못하는 것에 대한 남편으로부터의 허락, 가족 내에서 위치하고 있는 ‘아내, 어머니 역할’을 방기함으로써 가지는 죄책감, 그리고 투쟁의 정당성 사이에서 그녀들은 끊임없이 동요하고 갈등해야했다.


가족대책위, 서로 다른 의미

노동자들이 투쟁하게 되면 보통 가족과의 연대가 수면으로 떠오른다. 그런데 그 ‘연대’는 남성노동자들과 여성노동자들에게 서로 다르게 규정된다. 가족대책위의 조직과 활동은 그것을 잘 드러내었다.
노동운동에서 가대위 투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이후, 남성노동자들의 투쟁에서 가대위는 주로 남성노동자의 ‘가족과의 연대’를 위해, 자본의 이데올로기 공세에 맞서기 위해, 때로는 실질적인 투쟁동력으로 활동하였다. 노동자 투쟁에 대한 지지와 지원이라는 측면에서는 공동대책위등의 기구와 같았지만, 그 구성원이 투쟁하는 노동자들의 가족이라는 측면은 가대위 운동을 특징지었다. 가대위가 조직되었던 것은 남성노동자들의 사업장이 대부분이었고, 그 주목을 받은 것은 특히 98년 현대자동차 투쟁이나, 01년 대우차 투쟁, 02년 발전노조 대공장 남성 정규직 노동자들의 경우였다. 여성노동자의 경우는 남성노동자와는 달리 조직이 거의 불가했고, 그나마 손에 꼽을 정도였다. 비정규직 투쟁에서도 하이닉스매그나칩, 현대하이스코, 포항건설노조 투쟁등 남성노동자들의 가대위가 많았다.

남성노동자들의 가대위는 투쟁의 정당성을 가족에게 얘기하고 설득하는 과정이었기도 했지만, 돈을 벌어오는 가장에 대한 가족의 지지와 지원의 의미가 더 컸다. 하지만 시그네틱스 여성노동자에겐 조직된 가대위는 ‘아내, 어머니 노릇’을 못하는 것에 대해 남편이 ‘허락했다 혹은 양해했다’는 의미였다.


“남성사업장들이 싸울 때는 가족대책위 역할이 더 감성적인 호소, 내 남편이 싸우고, 내 애들의 아빠가 싸우고 그런 감성적인 호소를 하고.. 근데 시그네틱스 경우는 부인들이 자기 아내인 조합원들이 하는 일을 허락한다는 느낌? 좀 그런 게 없잖아 있었던 것 같애요. 허락하고 같이 도와줄 건 도와줘야지. 이런 느낌?”

시그네틱스지회 교육선전국장

 


시그네틱스 부지회장은 인터뷰에서 “투쟁에 결합을 할려면 전보다 더 잘해야 하는거야. 우리 결혼한 조합원들은. 집에서 모범이 되야 하는거야. 반찬도 더 맛있게 하고.. 그렇게 조합원들에게 교육했고, 조합원들도 그렇게 했고... 그래야 투쟁에 결합할 수 있으니깐.”이라고 얘기했다. 가족에게 허락을 받기 위해 시그네틱스 여성 노동자들은 이전보다 ‘아내, 어머니 노릇’을 더 열심히 해야했다.
이렇듯, 남한 노동운동에서 가대위는 남성노동자와 여성노동자에게 서로 다른 의미였다.


‘가족주의’에 기댄 호소

“대책없는 정리해고 우리가정 파탄난다” <98년 현대자동차 가대위>

“처자식 걱정 뚝! 돌아오지 마세요! 승리의 그날까지”, “가정을 지키는 발전노동자의 투쟁에 승리의 순간까지 힘내세요” <02년 발전노조 가대위>

“우리 남편 살려주세요” <06년 현대하이스코 가대위>

2001년, 자본의 구조조정 공격이 전 방위에 걸쳐서 들어오던 당시, 시그네틱스 투쟁도 그 한가운데 서있었다. 시그네틱스 가대위 활동양상도 다른 투쟁에서의 가대위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가자 파주로! 꼭 가야한다!” 시그네틱스 여성노동자들의 즐겨하는 구호였다. 그녀들이 가야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임금동결, 성과금 삭감까지 감내하며 살려냈던 회사에서 하루아침에 쫓겨난 노동자는 분명 자신의 정당한 권리를 되찾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시그네틱스 여성노동자들의 투쟁에서도 ‘가족’에 기댄 호소가 나오기는 마찬가지였다. 《얼굴들》에서 보여진 시그네틱스 여성노동자들의 발언은 이를 잘 말해준다.


 

 

“저희 기혼율이 80%입니다. 여기 있는 노동자들 다 아줌마입니다. 집에 아이들 있습니다. 아이들 챙기지 못하고, 가정 챙기지 못하고. 약정서, 약속지키라고 지금 이 자리에 있습니다.”

한강대교 고공농성 중, 한 조합원의 발언


노동자 투쟁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자본과 언론의 이데올로기 공세에 대응하여 노동자들은 가대위를 통해 동정적 여론에 호소했다. 남편을 살려내라는 아내의 절규, 아빠를 일하게 해달라는 어린 자식의 외침, 혹은 어머니가 없어 아이들이 불안해한다는 남편의 말, 집에 있어야할 가정주부들까지 투쟁에 나섰다는 발언은 가대위 뿐만 아니라, 남한의 노동운동에서 자주 쓰였던 구호였다. 이는 남성노동자를 가족의 생계 주체로 놓은 “정리해고=가족생계파탄” 등식의 구호를 외침으로써 ‘남성 위주의 가족’을 신성시하는 지배적 이데올로기의 동정에 기댄 것이었다.

‘남성노동자=가족의 생계주체’라는 등식은 ‘남성노동자에게 주는 임금으로 남편, 아내, 자식으로 구성된 정상 가족이 먹고 살 수 있는’ 가족임금제가 통용되던 현대자동차, 발전노조등 대공장 정규직 남성 노동자들에게는 일면 사실일 수 있다. 하지만 대공장 정규직 남성노동자를 제외한 대부분의 노동자 가족은 남성노동자의 임금만으로는 생계를 꾸려나가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또한, 현장에서 일하는 여성노동자들의 수는 끊임없이 증가해왔고, 2006년에는 50.1%의 여성들이 경제활동에 참여했다.(2006. 7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 추이”, 통계청) 이러한 현실은 결코 남성노동자만이 가장이 아니라는 것을 얘기해준다.

물론, 노동자들의 가족이 투쟁하고 있는 노동자들을 지지하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그 ‘사실’의 이면은 남성노동자가 생계주체로서 여성의 무급가사노동에 기대 자신의 노동력을 재생산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에 기반한 구호들은 ‘남성=가장, 여성=주부’라는 가족 내의 성역할을 고정시키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그 ‘가족 내의 성역할’은 여성에 대한 일방적인 희생에 기대 노동력을 재생산하고 있는 남성과 그렇게 함으로써 재생산비용을 노동자 계급에게 전가하려는 자본의 이데올로기일 뿐이다. 이러한 이데올로기에 기대한 구호들은 여성노동자들의 투쟁을 더욱 어렵게 했다.


투쟁에 족쇄가 되어 돌아온 가족주의

보통 남성 노동자는 투쟁 중에 돈을 벌어오지 못하면서 생기는 가족에 대한 미안함을 가지는 한편, 여성노동자는 투쟁 중에 집안일과 아이들을 돌보지 못하는 것에 대한 부담을 가지고 있었다. 이것은 각각 가대위를 조직하는 것에도 일정한 영향을 미쳤고, 투쟁과정에서 외쳐졌던 가족주의, 동정주의에 호소했던 구호들도 이와 연관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똑같은 부담일 수 없고, 또한 같은 결과를 초래하지도 않는다. 남성노동자들의 부담은 사회적으로 ‘사회생활을 하는 남성’이기 때문에 희석되었고, ‘노동자의 정의를 외치는 주체로서’ 보상받는다. 그러나 여성노동자의 ‘아내, 어머니 노릇’은 그녀들의 투쟁에서 있어서 확실한 제약이 되었다.
이 땅의 여성노동자에게 ‘아내, 어머니 역할’은 분명 자본의 착취와 가족에 대한 희생을 동시에 강요당하는 ‘이중의 굴레’였다. 그리고 여태까지 외쳐온 ‘가족’ 또는 ‘어머니’에 관한 구호는 여성의 ‘이중의 굴레’를 숭고하게(?) 포장함으로써 남성노동자들에게는 가정에서의 남성의 지배를, 여성노동자들에게는 ‘이중의 굴레’를 더욱 강화시키는 이데올로기로서 작용하였다.


그리고 조금씩 자각하는 여성노동자들

오랜 투쟁으로 돈을 벌지 못해 아이들의 급식비 8만원을 주지 못했던 시그네틱스 여성노동자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나가서 돈 벌어서 한달에 두명에 (애들 급식비) 8만원 주면 되는데, 그걸 (학교에다가 사정설명하고) 공짜로 달라고 얘기해야 되는 거잖아. 하지만 8만원 벌려면 이걸(투쟁하는 걸) 그만둬야 하거든. 그게 싫은거야. 나가서 (투쟁)하는게 낫지. ..(중략).. 왠지 고만두면 내가 나한테 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거 있잖아. 그게 너무 싫거든. 그래서 그걸 지킬려고 무지 애를 쓰고 있는데 ○○아빠가 옆에서 계속.. 불을 지르고 있거든. 그래서 ○○아빠 마음도 안정을 시키면서 나의 자존심도 지켜가면서. 어떻게 할 것이냐. 이게 요즘에 나의 고민이야.”

《얼굴들》중, 한 조합원의 인터뷰


그녀는 자신이 외치고, 돌아가려 했던 가족에서의 “어머니, 아내 노릇”이 오히려 투쟁에 걸림돌이 되는 것을 발견했다. 남성노동자들에게는 ‘자신을 지지해주는 든든한 버팀목’이었던 ‘가족’이 여성노동자 자신들에게는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하나하나 챙겨주지 못한 데서 오는 아이들에게 가지는 미안함, 저녁밥을 지어주지 않아 느끼는 남편의 불만등 노동자로서 정당한 자기권리를 찾고자하는 여성들의 걸림돌이 되고 있는데 여성노동자들은 “가정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얘기할 수 있을까.

그녀들은 투쟁하면서 생기는 가족 내의 갈등들을 봉합하고 다시 ‘가족’으로 돌아갈 것인가, 아니면 ‘가족’을 자신이 진정으로 돌아갈만한 공간으로 재구성할 것인가. 가족주의에 기댄 구호들이 스스로를 얽매이게 하는 게 아니냐는 감독의 질문에 대한 윤민례 지회장의 대답은 자신이 돌아가야 할 공간이 바뀌어야 하는 곳임을 얘기한다.


 

“그러니깐 바뀌어야 되는 거고. 난 집에서부터 투쟁한다(고) 그러거든? 노력 중이고 투쟁 중이라고 생각해. 꼭 시그투쟁 뿐만 아니라, 시그투쟁 끝나고도”

윤민례 지회장

 



《얼굴들》이 쏘아올린 작은 공

△ <얼굴들> 상영회에는 투쟁 중인 새마을호 승무원등 많은 동지들이 참여했다
△ 간담회 중인 시그네틱스 윤민혜 지회장

 



2001년의 “얼굴들”과 2007년의 “얼굴들”을 서로를 마주한다. 그 대면은 비단 여성노동자들만의 것은 아니다. 어머니와 아들의 마주함, 남편과 아내의 마주함, “얼굴들”은 여성노동자들의 가족 문제가 더 이상 여성만의 개인적인 문제가 아님을 알려준다.

상영회가 끝난 뒤, 간담회에서 그녀들은 이 다큐멘터리가 이런 내용인 줄 몰랐다고 했다. 이 영화를 본 가대위의 남편들은 영화를 잘못 찍은 것이 아니냐고 했고, 여성노동자들은 투쟁 내용이 많이 나오지 않아 아쉬웠다고 했다. 그러나 그녀들은 영화를 보고 ‘생각’하게 되었고, 더 ‘고민’하게 되었다고 했다. 아주 조금씩이지만, 그녀들은 ‘전진’하고 있었다.
 
글 : 이강우 needle@jinbo.net
등록일 : 2007.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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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

권인숙씨가 쓴 <선택>이라는 책을 뒤늦게 읽게 되었다.

권.인.숙.이라는 이름 석자만으로도 가지게 되는 무게가 있는데,

이 책은 그런 그녀를 다르게 보게 만든다.

그녀가 비정치적이라던가, 그런 의미에서가 아니다.

100%페미니스트, 100%맑스주의자 같은 건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어떤 이들을 만날때 경외심을 갖게 된다.

그/녀들에게는 내가 매순간 느끼는 좌절감과 나약함 같은건 없을 것만 같다.

권인숙이라는 여성투사같은 이미지도 그 중의 하나다.

그런데 책을 읽으며

그녀 역시 끊임없는 자기모순 속에서

살아나가는 한 개인이라는 너무도 당연한 사실을 '새삼' 알게 되었다..

물론 그녀는 그런 자신을 직면하고 세상에 드러낸다는 점에서

나보다 훨씬 더 용기있고 성찰적인 분이다.

 

....

글이 참 좋다.

어려운 말들을 쓰지 않아도 구절구절 공감이 간다.

글을 쓰는 과정이 스스로에게도 얼마나 해방적인 것이었을까,

부러워진다.

 

나도 그런 글을 쓰고 싶다.

글을 쓰면서 내가 자유로워지는 느낌을 받고

글을 쓰면서 내가 보기 싫어하는 나를 성찰하게 되고

그러면서도 내가 아닌 이들과 소통할 수 있는.

 

 

 

 



...인간이 올바른 사회의식을 키워나가기 위해서는 얼마나 전면적인 검토가 필요한가 하는 점도 생각나게 하는 일화이다. 그래서인지 이글거리는 자의식에 짓눌리는 나를 버리고 새 인간이 되어야 한다는 절박감은 컸다. 그러나 나를 너무 부정하다보니 나는 운동의 명분에 모든 것을 내맡기듯 살고 있었다. 한편으로는 내가 갖고 있는 개인주의적 창의성, 정치감각이 온통 눌리는 느낌을 받았다. (p.31)

 

...사람들이 어떻게 다들 이런 아픔, 부채의식을 한 곁에 감당하고 살 수 있는지 그 지혜와 힘이 놀랍기도 하고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물론 어느 하나의 감정과 고통과 기쁨이 대변하기에는 너무 복잡한 것이 우리 삶이고, 그래서 무수한 나날들을 이겨낼 수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근원적 슬픔과 보답하지 못하는 갈증을 상대하면서 살아가는 것 또한 삶인 것 같다. (p.77)

 

...그러나 굳이 내가 받은 가장 의미있는 교훈을 꼽아보라면, 사람 하나하나를 존중하는 의미와 실천이 단순히 앞으로 그래야지 맘먹는다고 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끊임없이 관찰하고 반성하면서, 작은 원칙과 작은 가치를 동반해서 쌓아나갈때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80년대, 큰뜻을 위해서 사심없이 나 자신의 기득권을 버렸지만 남녀의 관계, 동지간의 관계, 선후배의 관계, 여타 모든 인간관계에서 우리가 주장하는 큰 뜻이 어떻게 모순없이 관철될 수 있는지 크게 고민하지 못했다. (p.109)

 

...여성운동은 '사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라는 슬로건을 전면에 내세워왔다. 여성억압의 실체를 이야기하기 위해 써온 말이다. 즉 여성에 대한 억압이 사적이고 개인적으로 보인다 하더라도 사회, 정치적 억압의 한 부분이다. 그리고 사적이라고 믿는 말과 행동이 그런 구조적 억압을 만들고 유지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일상성을 이야기하고 사적 공간의 성역을 허물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렇다면 그런 일상적인 억압행위를 의도적이든 아니든 저지르는 사람들의 책임을 어떻게 물을까? 또 정치적, 도덕적으로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정고미라는 "그런데 내 생각에, '사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라는 페미니즘의 명제는 사적영역에서의 억압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지 사생활에 대한 새로운 규범을 강요하기 위한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나도 이 생각에 동의한다. 한 개인의 세세하고 복합적인 삶과 존재의 가치가 몇가지 정치적으로 옳은 명제로 판단될 수는 없기에 과연 한 개인의 복잡한 일상을 일관성 있는 기준으로 판단하는게 가능한가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도 든다. (p.251).. 사실 한 개인이 모든 차별에 대해서 같은 깊이와 넓이로 일관되게 대응할 수는 없다. 우선 한 사람이 경험하고 반응할 수 있는 폭이 한계가 있다. 또한 사고방식과 능력, 어릴적부터 키워온 감수성의 차이에 의해서도 각각의 차별에 대한 반응정도가 다르다. 설혹 민감한 감수성을 가졌다고 하더라도 늘 실수하고 생각이 못 미치는 듯한 발언을 할 적도 많다...(중략) 개인의 불완전함뿐만이 아니더라도 사적인 공간에서 한 행동을 정치적으로 옳은가 아닌가 판단하는 그 자체도 위험하다. 개인성이 워낙 복합적이기 때문이다.....(중략) 그러나 외모차별의 현실에 비판하는 만큼이나 아름다움을 즐기고 싶고, 판타지의 세계에서 대리만족하고 싶은 욕구가 있다. 나 개인의 공간에서 반환경적이거나 정치적으로 틀린 일들을 하고 싶기도 하고, 긴장을 풀기 위해서 대중문화에 편하게 탐닉하고 싶은 마음과 당위에서 벗어나고 싶은 욕구도 있다. 즉 가치관을 일관성 있게 실천하는 면뿐 아니라, 다양한 욕구와 일탈과 모순의 복합체인 개인성의 영역이 분명히 있다. 물론 개인의 복합성을 이유로 개인적 영역에서 뭐든지 해도 괜찮다는 것은 아니다. 사적 영역에서 반복되는 일상적 각종 폭력이나 차별이 늘 편하게 용서되고 이해되야 하는 것은 더욱 아니다. 사회적으로 각 시기마다 역사적 맥락 속에서 옳은 것, 금지해야 할 것, 바꿔야 할 것 등에 대한 합의는 존재해야 한다. 그런 가치관을 개개인의 삶 속에서 또는 집단적으로 실천하면서 사회는 진보한다. 다만 각 개인에게 선택의 여지없이 단일한 기준을 적용하거나 강요하는 실천은 안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사적 억압의 실체를 벗겨내야 하지만, 그것은 개인적 차원에서 사적억압을 일거에 다 극복한 상태와는 다르다. 또한 정치적으로 올바름을 실천하는 개인만을 요구하는 것과도 분명 다르기 때문이다.(p.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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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말을 할 수 있었던 걸까

오늘 내가 아는 한 선배가 군대를 간다.

지금쯤 논산으로 향하고 있겠다.

어제 마지막으로 그를 만났는데 우연히 머리 깎는데까지 따라갔다.

참으로 기분이 묘했다.

 

그는 초조하고 불안해보였다.

스물여덟의 나이, 때문은 아닌 것 같다.

 

그는 군대를 두려워하고 있었다.

알 수 없는 모든 것을.

 

어제 한 언니랑 

정말 내가, 언니가, 남자로 태어났다면

진지하게 병역거부를 고민하지 않았을까

그런 얘기를 나누었는데.

 

'그'라고 해서, 그가 '남자'라고 해서

난 괜찮을거라고 생각했던 걸까.

 

그러면서 후회가 되었다.

군대가는 그에게 <대한민국은 군대다>와 같은 책을 권한 게 과연 잘한 일인걸까.

남자친구가 "군대가기 싫다"고 말했을때 그저 어리광 정도로 받아들인 것도

후회가, 되었다.

 

그래도 오랜기간 운동을 하고 여성주의를 접한

'그' 남자들에게

그 남자들이 군대를 갈때

무슨 말을 해줘야 할지 모르겠다. 

 

박노해의 '썩으러 가는 길' 같은 시가 더 싫다.

'사나이로 태어나서' 그런 구절 때문만은 아니다.

누군가의 인격을 파멸시킬 수도 있는 그 공간에서

운동적 관점에서 인내하고 노동의 의미를 배우라는

그 말이 더 싫다. 싫다. 싫다.

 

도대체, 난, 무슨 말을 할 수 있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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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od body

 

연극을 보고 

 

참으로 오랜만에 연극을 봤다. 제목은 굿바디.

'버자이너 모놀로그'로 유명한 이브 앤슬러의 작품이란다.

연극을 보고나서야 생각해보니,

전에 대학로에 갔을 때 버스정류장에선가 

이 튀는 포스터를 보고 무슨 내용일까-"모 아니면 도잖아"-궁금해했었던 기억이 났다.

 

연극은 이브 앤슬러가 만났던 여러 여성들의 'body'에 대한 이야기들을

인터뷰 형식으로 꾸며놓았다.

사실 이런 형식, 딱히 '재미가 있다'고 말하긴 어려울 것 같다.

그리고 너무나 많은 여성들의 입이 되어 '쏟아내는' 방식이 다소 정신없고

관객의 입장에서는 진부하게 느껴지지 않을까("니 몸을 사랑하라!") 싶기도 하다.

 

하지만,

연극이 끝나고 나오자마자 대학로를 뒤덮고 있는 광고들을 보면서

미친듯이 '착한 몸매'- 44사이즈에 대문자 S라인-를 포교하는 이 세상을 생각해보면

여전히 '다른 목소리'를 드러내고 진부할정도로 강조할 필요가 있잖아, 라고 생각했다.

 

연극은 무엇보다 나부터 성찰해보는 계기가 되었으니까.

쪽팔리지만, 내 얘기를 끄적여보자면.

 

 

나는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skinny 라고 말할 정도로

아주 마른 여성들을 '예쁘다'라고 생각해왔다.

나는 그 사실을 내 친구가 말해줘서 알게되었는데, 그러고 생각해보니,

내가 좋아하는 배우, 모델들의 공통점이었다.

마른 그녀들은 내 눈엔 '뭘 입어도' 매우 스타일리쉬하다.

물론 그렇다고 내가 세상 모든 사람들이 'skinny' 하길 바란다던가

내 스스로 그렇게 되고 싶어 다이어트 같은 걸 해본적은 없다.

그렇지만 내 사고가 정말 문제가 있는 것 같다.

요즘 들어 그런 생각을 자꾸 하게 된다.

"예쁘다고 생각되는 걸 어떡해" ....아님 "사회적 시선이 내면화된것" 일뿐인걸까.

 

생각해보니 나도 그런 스트레스를 안 받은 건 아니다.

나는 술 취한 남자들의 시비거리가 될 정도로 키가 매우 큰편인데 그것도 문제다.

아무리 요즘 키 큰 사람들이 잘나간다 해도, 여자는, 남자보다는(!) 크면 안된다.

한편으로는 그렇게 큰 내가 마른 몸을 갖고 있어서 사람들도, 나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왜냐하면 키큰데 살까지 있으면  '덩치있어보인다' '한 등발 한다'는 이유다.

하지만 여자가 덩치있으면 왜 안되나. 키 크면 덩치 있는게 당연한데 말이다.  

키가 크면 발도 커서 큰 신발을 신어야 하는데도 구두는 250 사이즈도 찾기가 힘들다.

미국 중산층 여성들은 마놀로 블라닉,지미추를 신으려고 발을 깎는다는데

난 길거리에서 파는 만원짜리 구두를 신으려다가 발이 꺾인다.

심지어 얼마전에 등산화를 사러갔는데도 여성용은 245까지밖에 안나오더라.

등산화는 5mm에서 10mm를 크게 신어야하는걸 감안해보면 235까지만 여자란 말이냐. 

 

나는 외모에 관심이 많은 편이다.

이 기준은 매우 상대적인 거지만, 또 알고보면 사람들은 모두 자기 방식으로 '꾸미지만',

운동을 할때에도 전형적인 '운동권 여성'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있었던 것 같다.

(이건 두가지 측면이 있을 것 같은데 그런 '전형'stereo type을 설정하는 인간들도 문제이고,

여성들을 남성화/무성화하는 운동권 문화도 문제다..)

 

재미있는 건 페미니스트-여성학/운동 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미지도 '전형'이 있다는 거다.

계속 그런 전형에서 '빗나가고' 있는 내 자신을 맞추어보려고도 했지만,

그건 이미 내가 아닌 것 같아, 그런 쓰잘데기 없는 시도는 이제 완전히 단념했다.

 

그래도 계속 이런 고민은 든다.

"나는 왜 화장을 하는 걸까? 그걸 정말 단순히 자기 만족이라고 할 수 있는건가?

다른 사람들을 내 잣대로 보고 있지 않나? 나도 내 몸에 불만을 갖고 있는가?

나는 도대체 뭐야!"

 

내 몸은 내 자신이다

 

여자, 여자의 몸을 갖고 있다는 건 한편으로 참 슬픈 일이다.

내 몸이 어떻게 생겼는지, 내 보지를 내가 제대로 본 적도 없는데

내 몸에 만족하고 내 몸을 사랑한다는 건, 더더욱 어려운 일이다.

자신이 원하지 않아도 누군가의 시선의 대상이 되어야 하며,

게다가 그 시선은 아주 짜증나게 이중적이니까.

가슴이 없으면 절벽, 크면 머리가 비어보인다 그러고. 화장은 하되, 한듯 안한듯 해야하고...

그런 시선에서 완벽하게 벗어난다는 것 자체가 미션 임파서블이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그만큼  일종의 '자기 검열'을 부단히 해야하고

내 몸을 내 자신으로 받아들이도록 노력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생각을 하더라도 잘 안되는 어려운 일이다.

 

모 대학에서 여성학 강사를 하고 있는 언니가 외모 컴플렉스에 대한 수업을 진행하면서

자기가 들은 외모에 대한 코멘트를 100개 적어오라는 과제를 내준적이 있다고 했다.

놀라운건 그때 어떤 학생은 하루에 들은 내용만 100개가 넘었다고 했다.

"차려입었네, 어디 가?" "오늘따라 초췌해보인다"

무심히 내 던지는 말들과 시선들이 실은 외모에 대한 코멘트이며

누군가에겐 분명 스트레스일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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