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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녹색연합(http://www.greenkorea.org/) 박경화님이 글
팍팍한 먼지 날리는 흙길에 남루한 옷을 걸친 한 여인이 작은 물동이를 이고 지고 걸어가고 있었다. 몇 달째 빗방울 하나 떨어지지 않은 인도의 어느 남부지방, 우물이 있는 곳까지 먼길을 허위허위 걸어 여인이 떠온 물도 그리 맑지 않은 흙탕물이었다. 먹을 물을 부엌 항아리에 조심스럽게 옮겨 붓고 여인은 곧 아이를 목욕시켰다. 대야바닥에 겨우 찰랑이는 정도의 적은 양으로 아이 몸을 그저 닦아내듯 씻겼다. 흐린 물로 두 번, 맑은 물로 한번 헹군 뒤 목욕은 끝나고, 그 물에다 가족들의 옷을 빨았다. 그리고, 바닥이 보이지 않을만큼 더러워진 물을 그냥 버리지 않고 마당의 흙을 잘 개더니 무너진 흙벽을 정성스럽게 발랐다. 그 장면을 보고 얼른 주방으로 달려가 수도꼭지에서 똑똑 떨어지는 물을 얼른 잠갔다.
20세기는 석유 전쟁이었지만 21세기는 물 전쟁이라는 이야기를 자주 들었다. 물에 관한 이야기를 늘 이렇듯 우울하지만 해결책이 없는 것은 아니다. 바로 하늘에서 떨어지는 빗물이 있기 때문이다. 강이나 댐으로도 다 가둬둘 수 없었던 빗물을 집집마다 모았다가 활용하면 도시의 홍수도 예방하고 먹을 물도 얻는,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을 수 있다.
비 오는 어느 하루에 10만큼의 비가 온다면 7 정도는 땅에 스미고 3 정도가 흘러간다. 그러나 콘크리트로 둘러싸인 지금 도시에서는 2~3 정도가 땅에 스미고, 7~8 정도가 강으로 흘러가 버린다. 도시의 홍수가 자주 생기는 것도 빗물이 곳곳에서 스며들지 못하고 갑자기 많은 빗물이 강으로 집중되기 때문이다. 또, 지하수마저 하수도관으로 빠져나가 버려 도시 열섬현상 같은 이상기후가 더 심해진다고 한다. 뜨거운 여름날 마당에 물을 뿌려주면 시원하듯 지하수위를 일정하게 유지하면 지금처럼 숨막히게 덥지는 않을 것이다.
조선시대에는 '물독대'를 따로 두어 사시사철 내리는 천수(天水)를 받아두었다가 집안 일에 썼다. 입춘 전후에 받아 둔 빗물을 '입춘수'라 하여 이 물로 술을 빚어 마시면 아들 낳고 싶은 서방님의 기운을 왕성하게 해준다고 믿었다. 또, 가을 풀잎에 맺힌 이슬을 털어 모은 물을 '추로수'라 하여 이 물로 엿을 고아 먹으면 백 가지 병을 예방한다고 했다. 또, 이른 새벽 백화(百花)에 맺힌 이슬을 털어 얼굴을 씻으면 기미도 없애고 살결이 부드러워진다고 한다. 그 뿐인가? 삼국시대에 이미 김제 벽골제, 제천 의림지, 밀양 수산제 같은 저수지들이 있었고, 조선시대 세계 최초의 우량관측기인 측우기를 발명해서 관상감(觀象監)과 각 도의 감영(監營)에 설치해 놓고 빗물을 측정하도록 했다.
․빗물을 활용하는 법
시설이나 기술이 그리 복잡하지 않다. 지역마다, 건물마다, 빗물저장 탱크나 유수지를 설치하면 된다. 종합운동장, 실내체육관 같은 지붕면적이 큰 시설물을 새로 지을 때는 빗물이용시설을 설치하도록 하고 있는데 인천, 대전, 전주, 서귀포 같은 월드컵 경기장에서 이미 빗물이용을 하고 있다. 의왕시 갈뫼중학교에서는 빗물을 모아 정원을 가꾸는데 쓰고 있고, 빗물이용에 관한 자료를 모은 빗물자료관도 열고 있다. 물이 귀하고 물값이 비싼 독일이나 일본, 대만에서는 지붕에서 빗물을 받아 집안의 저장탱크로 물을 모은다. 이 곳에 자동펌프를 달아 화장실 용수나 세탁물로도 쓰고, 정원수로도 쓰고 있다.
마당에 연못이 있는 집이라면 지붕에 물받이를 달아 연못으로 연결해도 되고, 물탱크에 물을 모으고 펌프와 수도꼭지를 달아 꽃밭이나 텃밭에 물을 주고, 세차나 청소용으로 쓰면 된다. 빗물에는 빨래도 아주 잘 된다. 처음 내리는 빗물은 산성이 강하지만 씻겨 내려간 다음, 비가 내린 지 15분 뒤에는 순수한 빗물이 되어 pH 5.6 정도가 된다. 우리가 사용하는 빗물은 대기에서 떨어진 빗물이 아니고, 지붕을 거쳐서 떨어진 빗물이라 산성도가 중화되기도 한다.
이렇게 모은 빗물에 뚜껑을 덮어두고, 햇빛을 쏘이지 않으면 좀처럼 썩지 않는다. 이물질이 들어가지 않으면 유기물도 없고, 그것을 분해할 세균도 없기 때문이다. 섬 지방에서는 빗물을 모아 몇 달동안 먹는 물로 쓰기도 한다. 우리나라는 수돗물 값이 싸기 때문에 빗물을 이용해서 절약할 수 있는 돈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러나 빗물을 이용하면 도시의 홍수도 막을 수 있고, 우리 집 물세도 줄일 수 있다. 땅 위의 물은 오염시켜 놓고 땅 속의 물에만 관심 갖지 말고 흘러내리는 빗물에 관심을 갖는 건 어떨까?
․빗물에 관한 자료가 있는 곳
빗물이용연구회 rainwater.snu.ac.kr
빗물이용 지구사랑 / 대한상하수도학회 출판
진보누리 - "꿈꾸는 사람"의 글
매춘을 도덕적인 시각에서 보면, 아주 명쾌하다. 몹쓸 짓이다. 그런데 과연 매춘이 근절될 수 있는가? 과연 역사상의 어느 시기에 매춘은 한번이라도 근절된 적이 있는가? 즉 매춘의 역사를 보면, 이 문제는 참으로 난감한 사실을 가져다 준다. 아마도 매춘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와 함께 나란히 걸어왔고, 또한 앞으로도 나란히 걸어갈 것 같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과연 지금 제정되려고 하는 성매매 금지법이 성공할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은 하나의 우문이 되고 말 것이다. 금지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 아마도 대강의 확실한 현실 예측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어째란 말인가? 그대로 두자는 말인가? 라는 질문들을 누가 던진다면, 사실 나로서는 난감하다. 그저 문제의 어떤 지점에 대해서만 한번 생각해보자는 의미에서밖에는, 이 문제에 대해 말을 할 수가 없다.
우선 성매매의 금지를 바라고, 자발적인 경우에는 성매매 여성(성노동자)까지 처벌하자는 여성계의 요구는 무엇을 위한 것인가? 성 착취의 대상인 성 매매 여성들을 위한 것인가, 아니면 여성주의라는 시각에 기인한 것인가, 또 아니면 어떤 완강한 성적 도덕성과 가족 윤리의 확립을 위한 것인가, 이것도 아니라면 어떤 종교적 신념의 한 발현인가, 그저 휴머니즘의 한 차원인가, 그것도 아니라면 사회 정화의 한 수순인가?
사실상 좀 접해본 이 법에 대한 정보들을 훑어보면, 대략 어지럽다. 과연 이 법이 누구를 위한 법인가, 그리고 이 법의 성격이 기반한 윤리적 기반이 무엇인지에 대해 아주 많이 헷갈린다.
이 문제는 다음의 문제와 관련이 있다. 즉, 형식적 자발성과 강제성의 이면에 놓인, 성매매 여성(성노동자)을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사회적 구조의 문제 말이다. 물론 형식적 자발성이 이전의 성매매보다는 많이 늘어난 것이 사실이다. 이는 개인적 수준에서, 그리고 그 성매매가 이루어지는 현상의 표면에서 보면 그러다. 그러나 그가 성매매를 하나의 돈벌이 수단으로 삼게 된 일련의 사회적 과정에서 보면, 자발적이다 강제적이다는 구분은 사실 모호해진다고 할 수 있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많은 여성들이 돈벌이의 수단으로 성매매를 선택하고 있는 것이 현 사회의 구조이다. 이것이 자발적이든 강제적이든 말이다. 그런데 과연 이러한 구조적 접근이 없이, 성매매의 표면적 삼각 구조를 형성하는 성 구매자와 성 판매자와 성 거간꾼만을 처벌한다고 해서, 이 성매매의 현실이 사라질 수 있는가이다.
사실 성매매가 쉽게 돈을 번다고 볼 수는 없다. 다른 직업군과 비교하여 성매매가 지닌 상대적 위험성은 엄청나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성이라는 것이 가진 쾌락성에 초점을 두어, 이 직업이 가진 위험한 노동의 성격을 오도해버리는 경우가 있다. 몇몇은 그런 경우가 있을 수 있지만, 즐거움이 아니라 돈벌이를 위해 성을 파는 경우, 이미 쾌락의 요소를 거의 상쇄되어 버린다고 보면 정확할 것이다. 그리고 치명적인 성병과 제대로 된 사회성과 사회적 관계 형성의 마비 등까지를 고려한다면, 이 성매매가 가진 직업으로서의 노동으로서의 치명적인 위험성은, 엄청나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왜 그들은 그 길을 갈 수밖에 없을까? 즉 성매매 금지법은, 그들을 통념적으로 정상적인 노동이라 여겨지는 길이 아니라, 성매매의 현실로 유인하는 사회적 요인(혹은 구조)에 대한 성찰과 개선의 종합적 대책은 과연 마련하고 있는가?
쉽게 말해서, 성매매가 금지된 여성 성노동자들은, 과연 이 일을 그만두었을때,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이 법에는 담겨 있는가이다. 지금 노동 현상에서 여성들이 맡을 수 있는 것은, 거의 비정규직의 보잘 것 없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하물며 성매매에 종사하던 여성들은, 과연 어디에서 일을 할 수 있으며, 얼마마한 정도의 노동 임금을 받을 수 있을까?
70년 이전부터 그 이후까지 지속적으로 변하지 않는, 갱생 교육으로서의 미싱, 미용 등의 전혀 갱생적이지 못한 프로그램을 아직도 들이밀고 있는 것은 아니가? 혹시 그것으로 갱생 프로그램이 완벽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이미 포화되었더나 사양화된 몇 개의 기술을, 완벽한 갱생 프로그램으로 생각하면서, 겁도 없이 이 법을 추진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말이다. 아니면, 그냥 우리는 단속만 해서, 사회적 성적 청결만을 유지하면 되니, 나머지는 니들이 알어서 하라고, 성매매 여성들을 몰아치고 있는 것은 아니가?
결국 이전의 현실에서도 드러나듯이, 그렇게 강제로 사회에 귀한된 많은 여성들은, 더욱 열악하고 위험스러운 상황에서, 다시 성매매업소로 흘러들어갔다. 그들이 왜 그곳으로 다시 흘러들어가게 되었을까? 순진한 도덕론자나 심성론자들이 주장하듯이, 천성이 그렇기 때문에, 아니면 외골수 종교론자들처럼 마녀들이기 때문에, 아니면 유전적 병적인 유전자의 영향으로 인한 치유될 수 없는성적 도착증 때문에.....
내가 왜 이런 말을 하는가? 성매매가 장려할 만한 사회적 현상이기 때문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매매는 역사와 함께 존재하여 왔다. 그리고 이 성매매는 사회의 도덕적 타락이 아니라 사회적 구조의 하나로서 형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성매매 금지법이 만들어졌다. 과연 이 법률을 만든 사람들은, 이상의 성매매가 위치한 사회적 구조와 성매매의 깊은 역사적 성격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있었느냐는 것이다.
성매매에 종사할 수밖에 없거나, 성매매를 돈벌이로 선택하고 있는 이 여성들은, 과연 어디로 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현 우리 사회가 이들을 통념적으로 정상적인 노동으로 복귀키실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혹시 저임금-장시간 노동의 노예 충원이 필요하여, 이들 성매매 여성들을 과잉-실업자 풀로 유입시키려는 것은 아닌가? 아니라면 혹시, 그들이 돌아갈 사회적 위치나 선택할 노동의 성격 혹은 실업의 고통 등에 대해서는 아무 고민도 없이, 그저 사회의 성적 청결도를 높이기 위한 청교도적 발상의 하나로 이 법을 만든 것인가?
나는, 진지하게 이 법을 보고 싶다. 그러나 이 법이 대상으로 삼아야 할 가장 중요한 존재들인, 성매매여성들에 대한 입장과 그들에 대한 고려가 이 법에서는 찾아보기가 힘들다. 그래서 상당히 우려스러운 입장으로 이 법을 볼 수밖에 없다. 성매매 여성들은 남성들에 의해서건, 같은 여성들에 의해서건, 사실 주체들이 아니라, 그저 불량스럽고 추방하거나 교화해야 될 대상으로서만 다루어지는 느낌이다. 그리고 성매매 금지법에서도 역시 그렇게 다루어지는 것 같다.
p.s) 글이 길어져서 이 성매매 금지법이 가진 다른 문제들에 대한 언급은 생략한다. 다만, 과연 이 성매매 금지법이, 미성년 여성들의 성적 착취나 성매매업 안에서 일어나는 일반적인 갈취와 폭력, 그리고 그들의 인권에 대한 진지한 고민에서 출발하고 있는지, 아님 생각하기 귀찮은 성매매의 모순들을 법적 강제에 의해, 한꺼번에 위생 정리하고자 하는 편의주의의 산물은 아닌지도 사실 우려가 된다.진보누리 - "꿈꾸는 사람"의 글
"소득과 다른 모든 조건이 동일한 다른 직업이 보장된 상태에서 매춘이라는 직업을 선택해야 "자발적"으로 매춘을 직업으로 선택했다는 발언이 가능하다"
- 진보누리의 어느 리플에서 앞뒤 욕 빼고 발췌
이는 여성노동이 사회에서 가지는 의미를 파악함으로써 더욱 명확해진다. 즉 ① 성 노동자의 절대다수는 여성이고 ② 남한 노동자의 60%가 비정규직이고 비정규직 노동자의 70%가 여성 노동자라는 사실에서 우리는 가사노동에 전념할만한 여건이 되지 않는 한 여성노동자는 어쩔 수 없이 노동시장에 진입하고, 상당수 여성들은 이른바 성매매와 같은 ‘주변부 노동’으로 밀려나게 된다는 사실이다.
- 진보누리 새질서님의 글 발췌
김치고등어조림
1. 고등어는 싱싱한 것으로 골라 대가리를 자르고 찬물에 우선 씻는다.
2. 씻은 고등어는 꼬리, 지느러미, 내장을 제거하고 다시 찬물에 깨끗하게 씻는다.
3. 손질한 고등어는 5cm로 길이로 토막을 내고 무는 나박하게 썬다.
4. 배추 김치는 먹기 좋은 길이로 썰고 대파와 풋고추, 홍고추는 어슷썰기 한다.
5. 냄비에 무를 깔고 김치, 고등어를 올린다.
6. 고춧가루, 설탕, 다진생강, 다진마늘, 후춧가루, 간장, 소금을 섞어 양념장을 만든다.
7. 양념장을 고등어 위에 끼얹고 물을 붓는다.
8. 센불로 끓이다가 끓어 오르면 불을 줄여 끓인다.
9. 국물이 거의 조려지면 대파, 풋고추, 홍고추를 넣고 양념이 잘 들도록 졸인다.
비릿내를 없애는 법
: 1. 씻은 고등어에 식초를 뿌린다. 2. 다 조려지면 식용류를 한스푼넣고 좀더 조린다
From North Carolina Independence Cen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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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low the Belt
by danyele mcpherson • Tuesday February 10, 2004 at 03:07 PM
On Friday, January 30th, Shira EtShalom brought her touring menstrual health workshop to the Internationalist Bookstore in Chapel Hill to educate local menstruators and non-menstruators alike on the alternatives and problems with corporately produced tampons.
Shira, a resident of Philadelphia has been teaching menstrual health workshops and sewing homemade cloth menstrual pads which are available for purchase on her website for over 3 years. Her tour, aptly titled the Below the Belt Tour began January 24th at the 7th annual National Conference on Organized Resistance (NCOR) in Washington D.C.
Shira spoke to a group of approximately 11 women in her Chapel Hill workshop, detailing the many options available for menstruators and offering the pros and cons of each.
She stressed environmental, health, and social concerns as an impetus to seek alternatives to tampons made by Tampax, Platex, o.b. and other corporate tampon producers.
Waste was cited as a major concern of disposable menstrual products on the environment. "The average woman may use up to 15,000 tampons in her lifetime [and] that's a lot of waste for the environment," claims www.thekeeperstore.com. This website is dedicated to selling The Keeper, a tampon alternative that is reusable with a life of approximately 10 years. The Keeper is made of natural gum rubber, so it has a severely reduced impact on the environment when compared to traditional tampons.
Shira mentioned The Keeper, sea sponges (not vegan), and reusable cloth pads as alternatives which create less waste for the environment.
Also harmful for the environment and menstruators alike, Shira discussed the use of rayon and the bleaching process employed in the production of corporately produced tampons. Shira stated that rayon, a synthetic fiber made of wood pulp, caused small cuts on the vaginal walls, which increased bleeding. She also noted not only do these tampons cut the vaginal walls, but that they leave behind fibers which as a result of the bleaching process can increase chances of endometriosis and cancer.
Tampax's website directly addresses these accusations stating, "Rayon...has been used in Tampax tampons for more than 25 years. Extensive testing by a number of leading scientists at Harvard, Dartmouth, University of Minnesota, and Centers for Disease Control has demonstrated that rayon and cotton are equally safe materials. Fibers can come off any tampon. The natural cleansing process of the vagina removes these fibers with a short time. Medical literature recognizes this process and [it] does not represent a health risk." (tampax.com)
With regard to the bleaching, endometriosis and cancer risks noted by Shira, Tampax maintains their tampons are tested by "the most advanced government approved methods available" and they "contain no dioxin (a cancer causing agent). There is absolutely no scientific evidence that tampons lead to the development of endometriosis or cancer." (tampax.com) Shira counters this stating that the "government approved testing methods" referenced by Tampax were not developed to test for minute dioxin levels and their effects in sensitive areas like the vagina.
Other environmental and health concerns like pollution from tampon production and yeast infections were also discussed in the workshop.
These issues intersected with social and cultural concerns over corporately produced tampons. Participants in the workshop noted that commercials for menstrual products often convey a sense of shame to the menstruator, that it is something which should be hidden from the world. The new Tampax Compak indeed illustrates this point as it was designed to fit in the palm of one's hand, "for maximum discretion." (tampax.com) In a recent commercial, this tampon is designed so small that a woman's boyfriend mistakes it as a sugar packet.
Tampax reminds women that an advantage to wearing tampons is, "you can wear any type of clothing from body hugging workout gear to mini skirts and no one will know." (tampax.com) Another advantage Tampax cites is with tampons, "you stay clean and feel fresh" intimating that menstruation is naturally unclean.
Emphasis on secrecy is obviously part of Tampax as well as other corporate tampon producers marketing strategy. All of these advertisements and minaturized products work together to tell women the same message: menstruation is unnatural and unclean therefore, it should be concealed. Shira and workshop participants rallied against these corporately created norms yelling "tampon" in unison.
Shira presented the alternatives in order of her least to most favorite providing information on organic tampons, sea sponges (not vegan), The Keeper, and cloth reusable menstrual pads like the ones she makes and sells.
Her pads are made of 100% cotton, come in various sizes, and are machine washable. Since they are used externally and made from cotton, risks of cancer, endometriosis, and yeast infections are avoided and their reusability prevents harmful effects on the environment.
Environmental, health, and social concerns all intersected in the Below the Belt workshop, making it clear that menstrual product alternatives must be sought and education on these issues must continue.
If all this weren't enough to cause some uneasiness in the feminine care product aisle once a month, Shira hit us in the pocket. Her cloth reusable pads are $3-$10 sliding scale. The Keeper with a life of 10 years is $35 and even offers a 3 month trial with a money back guarantee. Sea sponges also offer a similar value as they can be used up to 4 cycles and cost well under the price of a box of Tampax.
All things considered, we can't afford not to give up corporately produced tampons.
Shira can be contacted at belowthebeltshira@yahoo.com
You can purchase menstrual pads and obtain relevant information on menstruation at her website, www.deadletters.biz/belowthebelt/
맑스코뮤날레 제2차 쟁점토론회
<계급 그리고 시민, 민중, 다중>
참관기
-깨철이
1. 계급
맑스코뮤날레 토론회에 다녀왔다. 토론회의 취지는 계급적 관점에서 시민, 다중, 민중을 어떻게 볼 것이고 변혁의 새로운 주체성을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토론회의 기본 발제문도 그렇고, 발제자도 그렇고 그런 토론회의 취지에 정확히 부합했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시민’에 대해 발제문을 작성한 신광영만이 취지에 부합했고, 김세균의 ‘민중’은 ‘다중’에 대한 비판과 비교에 많은 부분을 할애했다.
토론회를 보면서 가장 먼저 든 문제의식은 ‘계급’에 관한 것이었다. 시민, 민중, 다중에 대한 개념적 규정은 서로 이야기되었지만 계급에 대한 개념규정은 사전에 이미 전제되고 합의되었다는 듯이 진행되었다. 맑스레닌주의의 계급개념은 크게 세 가지 기준에 의해 형성되었다. 그것을 정리하면, ‘①착취의 정도 ②생산수단의 유무 ③생산관계에서의 역할’이라 할 수 있다. 이 세 가지 요소 중 계급을 가르는 가장 중심적인 요소는 ②이며, 나머지는 보조적 기준이다.
맑스레닌주의의 계급개념에서 생산수단의 유무가 차지하는 비중이 큰 것은 생산관계에서 착취가 생겨나고 지배가 형성되기 때문이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생산관계’라고 하는 영역이다. ‘생산관계’를 공장이라고 하는 협소한 틀로 한정지어 생각하면, 가치와 잉여가치는 공장에서만 생산되며 잉여가치의 착취 또한 공장 내에서만 가능한 것이 된다. 그 외의 영역에서는 생산도 착취도 없다. 이렇게 생각한 것이 기존의 전통적 맑스레닌주의가 아니었나 생각한다.
이에 따라 자본주의내에서는 크게 자본가 계급과 노동자 계급만이 있으며, 자본주의의 발전정도에 따라 그 사이에 자유주의적 부르주아나 쁘띠부르주아와 같은 중간계급이 있을 수 있으나 자본주의의 발전 경향은 중간계급이 소멸될 수밖에 없고 주요한 두 계급으로 된다는 것이다. 좀 더 설명을 보태자면 여기서 중간계급은 그 불안정성으로 인해 계급으로서의 동일한 이해를 가질 수 없고 그래서 자기계급으로 조직되기도 힘들다. 따라서 중간계급은 고유한 자기계급으로 형성되지 못하고 자본가계급이나 노동자계급에 흡수된다.
생산수단이 없지만 생산관계에서 주도적 역할이 없는 실업자, 학생, 여성 등은 ①과③의 기준에 의해 실업자, 학생, 여성 등은 산업예비군이나 룸펜프롤레타리아 등으로 불렸으며, 이들 또한 독자적인 이해를 지닌 계급으로 조직될 수 없고 노동자계급에 흡수된다. 기존에 우리가 불렀던 ‘민중’이라는 것은 노동자계급을 중심으로 한 착취의 정도와 생산관계에서의 역할 등에 의해 노동자계급과 가까운 피지배자 일반을 통칭하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나는 이런 계급구분에 대해 다음의 의문을 가진다.
첫째, 계급을 가르는 기준인 생산관계의 ‘영역’에 대한 의문이다. 과연 생산은 공장에서만 진행되고, 착취는 공장안에서만 발생하는가? 이것은 자본주의의 생산의 발달과 생산지형의 변화에 대한 분석을 필요로 한다.
둘째, 자본주의 발달은 과연 전통적인 계급인 자본가계급과 노동자계급으로 가속화되고 중간계급은 소멸하고 있는가? 즉, 전통적인 계급구분의 기준에 의해 그렇게 되어가고 있는가? 그렇게 되지 않는다면 그 이유는 무엇이고, 두 개의 계급으로 경향적으로 나눠질 수밖에 없다는 명제를 우리가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셋째, 과연 정치경제학적 이해관계의 측면에서 실업자, 학생, 여성 등등은 자기를 변혁이라는 사회적 전망을 지닌 고유한 계급으로 조직될 수 없는가? 가령, 실업자는 노동자가 되어야만 그리고 비정규직은 정규직이 되어야만 계급으로 조직될 수 있는 것인가?
각각의 의문들은 계급구분에 대해 서로 다른 층위를 지니는 의문들이다. 이 세 가지 의문 속에서 나는 전통적인 계급개념에 반대한다.
첫째, 현재의 생산은 공장이라는 틀을 뛰어넘어 생산의 사회화가 삶 전반으로 확대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그/그녀가 공장에 있던 오피스텔에 있던 가정에 있든 학교에 있든 거리에 있던 생산하고 있으며, 그러므로 착취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둘째, 실업자, 학생, 여성 등등이 생산에 참여하고 있으며 착취당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즉, 그런 의미에서라면 자본주의가 발달할수록 자본가계급과 노동자계급이라는 두 개의 계급으로 나눠지는 것이 경향적으로 가속화된다는 명제를 받아들일 수 있다. 다른 말로 ‘사회적 노동자’라는 새로운 주체성을 발견할 수 있을 때 이 명제는 타당할 수 있다.
셋째, 현실에서 노동자라고 하더라도 정규직의 이해와 비정규직의 이해가 동일하지 않다. 그렇다면 우리는 동일한 이해로 자기를 조직하는 계급이 다양하게 분화되고 있다고 해야 하거나, 전통적인 노동계급의 동일성의 이미지가 종말을 맞았다고 해야 한다. 반대로 실업자나 여성 등등은 공통의 이해를 통해 자기를 조직할 수 없다는 가정은 점점 현실과 맞지 않고 있다. 따라서 우리가 이 현상을 통해 변혁의 주체인 계급개념으로 분석해내고 조직해내야 한다면 우리는 계급에서 동일성의 이미지나 단일성의 이미지를 지워내야 한다. 다양한 자기조직화를 통해 공통의 이해를 향해 나가는 주체성으로서의 계급이라는 재정의가 필요하다.
2. 다중과 민중, 시민
민중과 시민은 주권 속에서 표현해낸 주체 개념이다. 우선 민중은 앞서 이야기했듯이 계급적 구분 속에서는 노동자계급을 위시한 피착취 대중들을 가리킨다. 이때 노동자계급과 일반대중을 나누는 기준은 앞서 이야기했듯이 생산력의 발전에 따른 생산관계에서의 분석, 그리고 생산관계에서 각 역할에 대해 전통적인 분석을 그대로 따른 것이다. 이에 따라 노동자계급의 헤게모니가 관철되는 계급적 민중이 주권적 주체로 설정된다.
시민개념은 민중과 다르게 계급적 표현이 아니다. 시민은 기본적으로 생산관계와 독립적으로 설정된 생활영역 속에서 주권적 주체를 설정한 것이다. 이것은 민중이 그렇듯이-생산관계를 공장으로 한정하고 그 외의 영역(생활영역)을 생산영역으로 포함하지 않으며 구분하듯이-시민개념 또한 그러한 영역의 구분(생산영역과 그 외의 영역)을 받아들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민중이 생산관계의 측면에서 본 주권주체라면, 시민은 생활영역에서 본 주권주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민중과 시민의 구분법은 ‘사회적 노동자’라는 주체성의 출현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는 시대착오적인 것이 된다.
김세균씨는 ‘노동자계급의 헤게모니가 관철된 민중’을 그대로 고수하며, 민중권력의 국가를 달성해야한다는 것을 고수한다. 신광영씨는 계급운동으로부터 자신을 나누었던 기존의 시민운동과는 다르게 그 둘의 결합을 주장했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어떤 의미에서 신광영씨 자신이 철저하게 의식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기존의 노동운동과 기존의 시민운동이라는 영역의 구분이 점점 좁혀지고 있으며, 통합된 영역을 만들어내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것을 신광영씨는 계급불평등이 심화됨에도 불구하고 계급정치가 탈구된다는 것으로 표현한다. 그렇게 되는 이유에 대해 그는 “세계화는 노동계급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빈곤층의 증가와 부의 불평등 심화, 실업자 증가, 환경파괴 심화 등 다양한 사회 영역에서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이러한 변화에 대한 대응은 생산현장에 중심을 둔 전통적인 노동운동의 변화를 촉구하고 있다. 세계화의 피해자들이 생산현장 뿐만 아니라 외부에 더 많이 존재하기 시작했다”고 지적한다.
신광영씨는 현실의 변화에 대해 나름대로 인정하고 적절하게 지적했다고 본다. 그러나 그가 생산영역과 사회영역(생활영역)을 여전히 구분하면서 ‘세계화가 노동계급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분석하는 것은 일정한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세계화가 사회전체에 영향을 미치고 빈곤을 만들어낸다면, 그것은 세계화가 기존의 한정된 생산영역을 스스로 파괴하고(넘어서서) 사회 전체로 이미 생산영역을 확대한 체계를 바탕으로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노동운동이 시민운동의 요구를 포함하고, 시민운동이 노동운동의 요구를 포함하는 식의 방법으로는 자본의 착취에 저항하는 현실 주체성의 변화를 제대로 포착하기 어렵게 만든다.
이는 신광영씨가 “실업, 비정규고용, 저임금 등으로 인한 빈곤층의 확대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현상이 국민국가 내적인 요인보다는 초국적 금융자본의 이출입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경우가 빈번하게 나타나고 있다....전통적으로 계급관계가 국민국가 틀 내에서 형성, 발전되었던 과거와는 달리, 국민국가 외부에 존재하는 지구적 금융자본이 계급성원들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도 여전히 국민국가의 주권적 주체인 ‘시민’이 변혁의 주체가 되기 위해 어떤 변화를 수반해야 하는지 언급할 수 없는 것에서도 알 수 있다.
적어도 나는 신광영씨의 지적으로부터 변혁의 주체를 국민국가적 틀을 넘어서는 주체성 속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으로 나아갈 때 의미가 있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그것은 국민국가적 틀을 넘어서는, 주권적 주체성을 넘어서는 것에서 우리는 변혁의 주체를 구성해야 할 것이다.
민중은 말할 것도 없고 신광영씨에 의해 제기된 시민은 다음의 한계를 지닌다.
첫째, 생산영역과 사회영역을 구분하고 있음으로 인해 생산의 사회화, 그리고 지구화 수준에서의 변화와 새로운 주체성의 등장을 포착하지 못하고 있다.
둘째, 여전히 국민국가의 주권적 주체를 변혁의 주체로 설정함으로써 지구화된 자본주의에 제대로 저항할 수 없다.
이러한 한계들은 현실투쟁에서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이주노동자들의 투쟁은 전통적인 노동운동인가, 아니면 시민운동인가? 전통적인 노동운동을 고수하는 입장은 그들이 구분한 전통적인 사회영역이라 불려지는 곳에서의 이주노동자들의 많은 문제들에 대해 무능하다. 전통적인 시민운동은 인권의 문제로 이주노동자 문제에 접근하고 있으나 ‘비시민’인 이주노동자들의 권리에 대해 한계를 인정하고 있다. 이주노동자 문제가 우리에게 제기하는 것은 노동운동과 시민운동이 구분하는 것처럼 사회적 생산과 착취의 심각성에 있어 생산영역과 사회영역을 구분할 수 없다는 것이다.
조금 신랄하게 말하자면, 노동운동 활동가들은 이주노동자 투쟁을 사업장 내의 문제로 축소시키며 이주노동자들을 한국의 파업현장과 투쟁현장 즉, 사업장으로 끌고 다니기에 바빴다. 그러나 이런 투쟁에도 불구하고 상호연대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주노동자투쟁을 노동운동의 강화라는 노선에 맞춘 이러한 투쟁들은 전체 이주노동자들의 관점에서 볼 때 심각한 문제를 낳았다. 무엇보다 이주노동자들의 문제를 사회적 의제로 만들고 유리한 정국으로 이끌어나가는데 실패한 것이다. 또한 특징적인 것은 전통적으로 노동운동이 아닌 새로운 주체들이 이 투쟁에 결합했는데 그것을 조직하는 것을 방기하거나 회피했으며 단순동원체계로 전락시키려함으로써 연대에 있어 완전한 실패를 맛보았다. 이것은 계급에 대한 전통적인 구분법을 고수한 결과이며 투쟁에 있어 새로운 주체성들의 등장에 대해 둔감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또 다른 예로 반전투쟁을 들 수 있다. 민주노총에서 반전투쟁에 나서겠다고 선언했지만 노동조합을 비롯한 기층의 노동자조직은 반전투쟁에 무관심하다. 노동운동진영의 많은 좌파 활동가들이 ‘반전투쟁의 우경화’를 지적하고 있지만, 이 지적의 타당한 측면에도 불구하고 노동운동진영의 무관심에 대한 변명처럼 들린다. 이것은 지금까지 ‘반세계화 투쟁’이라 불려 졌던 많은 의제들에 대해 조직된 노동자들의 냉담한 반응에 대한 후퇴적 변명의 반복이며, 그 투쟁을 전통적인 노동운동이 주도하지 못했다는 이유를 들어 그 투쟁의 새로운 주체성들을 의심하는 방향으로까지 나아가는 징후를 보이는 것이다.
‘사회운동적 노조주의’는 노동운동과 시민운동의 결합이라는 문제의식에서의 긍정성에도 불구하고 ‘국민과 함께 하는 노동운동’과 같은 개량화된 노선으로 나타난다. 여기에 바로 노동운동과 시민운동의 결합이라는 관점이 지닌 한계가 드러나는 것이다. 노동운동이 시민운동의 문제의식을 받고, 시민운동이 노동운동의 문제의식을 받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변혁의 주체성을 새롭게 구성해야 한다. ‘사회적 노동자’라는 새로운 주체성과 더불어 새로운 조직형태가 등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중’은 공장을 뛰어넘는 사회적 노동자를 가리키면서 국민국가적 틀을 뛰어넘는 비주권적 주체성을 가리킨다. 여기에 전통적인 노동운동, 사회운동의 이분법적 도식은 존재하지 않는다.
*맑스코뮤날레의 이번 토론회는 그 주제의 현실밀착성에도 불구하고 발제자들의 의도는 전혀 그렇지 못했다. 사전에 토론회 주제와 의도에 대한 충분한 사전토론과 숙지, 그리고 합의가 있어야 하리라 본다. 그냥 대충 주제만 정하고 자기 마음대로, 편의대로 주제에 대해 써와서는 토론이 되기 힘들다.
1. 국물은 멸치국물이나 조개국물을 이용
2. 콩나물을 넣고 국물이 끓어 오르면 파, 다진마늘, 국간장을 넣고 간한다.
고춧가루를 넣어 시원한 맛을 낸다.
옵션: 잘게 다져놓은 마른 표고버섯
배추 신 김치
청양고추
1. 고추장, 설탕, 맛술, 물, 물엿, 마늘을 섞어 조림장을 만든다.
2. 조림장을 끓인 뒤에 불을 끄고, 다듬어 놓은 오징어채를 팬에 넣어서 양념을 골고루 뭍혀 주세요
3. 통깨를 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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