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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복희씨]노년에 돌아서 돌아보니 삶의 아이러니가 보이네

박완서 저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10월
 



'친절한'으로 시작하는박찬욱 감독의 복수 시리즈 영화가 있었다. 친절하기는 친절했는데, 그 친절함이 상식적이고 일반적인 '친절'은 아니었다. 그래서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를 만들어 냈다.

 

박완서의 '친절한'은 박찬욱의 '친절한'과는 사뭇 다르다. 박완서의 친절함에는 어수룩함이 포함되어 있다. 그래서 이 어수룩함으로 인해 이용당하고, 이용당한 만큼 멸시당한다. 그래도 복희 씨는 알고 있다.

'이건 아닌데'

현실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있으되, 왜인지에 대한 논리적 인식은 안 보인다. 박완서는 여기서 멈춘다. 하기야 그래야 되지 않겠나 싶다. 어디 인생이란게 분명한 이유가 있겠나. 나같은 젊은이야 그 이유에 목말라 헤매이기도 하고 방황하기도 하고 뭄부림 친다지만, 삶을 회고할 시점에 선 작가의 시각에서 이유라는 게 뭐 그닥 중요하겠나. 그리고 너무 많이 일러주는 것이 반드시 '약'이 되는 것만도 아니지 않나.

 

우리 반 학생 중 한 명이 국문과 면접을 가게 되었다. '친절한 당탱씨'는 그 대학의 기출 구술 면접 문제를 뽑아서 교육하고, 예상 문제를 몇 문제로 압축해서 공부를 시켰다. 말하기가 어렵다고 해서 예상 문제의 그럴싸한 답안 문장까지 작성해서 교육을 시켜 보냈다. 친절한 담탱이답게.

면접을 마치고 나온 그 학생이 전화를 해왔다. 운다.

"서..언..새..님"

꺼이꺼이거리는 분명치 않는 말을 대충 요약해보면 이렇다. 내가 예상한 구술 면접 문항이 그대로 나와서 대답을 하려고 했는데, 선생님이 정리해준 그 말이 생각이 안 나서 버벅버벅하다가 나왔다는 것이다. 그렇게 친절하게 구술면접을 준비시켜 주셨는데, 제대로 못해 죄송하고, 이미 준비한 것조차 대답 못한 자신이 한스럽다는 정도의 얘기를 휴대폰이 뜨거워지도록 했다.

그 후로 나는 학생들 전공 면접 시 예상 문항은 얘기하되 정답을 작성해주거나 하지는 않는다. 과도한 친절은 '독'이다.

 

소설집이다.

단편 소설들의 삶의 전반을 속도감있게 훑어간다. 단 하루만에 읽혀 내려가는 힘은 '수다'에 있다. 박완서는 화자를 통해 수다를 싫어하느냥 작품에서 언급하지만 실제로 수다를 즐기고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순전히 내 생각이지만. 나는 이런 삶의 수다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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