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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해방/여성해방을 위한 115주년 메이데이 평가
0. 왜 평가를 제출하는가
우리는 이 세계의 사물과 현상을 해석할 때 언제나 계급적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계급사회에서 어떤 개인은 계급적 이해관계를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다. 따라서, 이 사회의 모순을 제대로 분석하고 그 해결을 모색하는 사람이라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착취받고 억압받는, 하지만 동시에 생산의 주역이며 역사 발전의 원동력인 노동계급의 이해를 옹호하고 그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아야 한다. 지난 5월1일 충북 노동절 집회를 보자. 당시 집회에서는 집회 대오와 전투경찰의 커다란 충돌이 있었고 노동자들은 심지어 주유소를 거점 삼아 투쟁을 벌이기까지 했다. 경찰 측에서는 노동자들이 화염병과 쇠파이프를 동원해 공장 진입을 시도하는 등 불법폭력시위를 일삼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몇 백 일이 넘어가는 투쟁과정은 사내하청노조 조합원들에 대한 하이닉스 매그나칩 자본의 부당한 정리해고와 노동탄압, 그리고 그를 옹호하는 전투경찰의 지속적인 과잉진압과 폭력진압이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사실로부터, 또 자본주의 이래로 이어져 온 노동계급에 대한 폭력적인 탄압과 착취의 현실로부터 우리는 경찰의 선전이 투쟁 대오를 매도하기 위한 비열한 왜곡이며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은 너무나 정당한 것임을 자연스럽게 인식한다.
우리는 “여성문제”에 대해서도 이렇게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이 사회의 심각한 문제로 대두된 비정규직 노동자의 절반 이상을 여성이 차지하고 있다. 여성노동자들은 남성노동자보다 더 심한 고용불안에 시달리며 더 낮은 임금을 강요받는다. 또한, 일상적인 성희롱과 성폭력에 노출되어 있다. 자본주의 사회는 여성노동자들을 착취하고 여성을 상품화하여 이윤을 불리는가 하면 전근대적 가부장적 의식을 활용하여 남성노동자에게 허위의식을 유포하고 그를 통해 여성노동자와 남성노동자의 계급적 단결을 방해하고 있다. 한편, 이른바 진보적이라 불리는 운동진영 내에서도 여성에 대한 차별과 성폭력이 존재하고 있으며 성평등은 확립되어 있지 않다. 우리는 노동운동 혹은 진보운동 내에서 벌어졌던 성폭력 사건들을 접하면서 이러한 현실을 직시한다. 그렇기 때문에 여성문제를 다루거나 성폭력에 대한 문제제기를 접했을 때 우리는 함께 투쟁하는 여성 동지들의 문제제기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그 입장에 서서 실천해야 한다. 이것은 일반적으로 성폭력 사건을 해결할 때 피해자의 관점에 입각해서 해결해야 한다는 주장과도 일맥상통한다.
노학연은 지난 115주년 메이데이를 맞아 4월30일, 5월1일 이틀간 힘차게 노동계급의 투쟁에 연대하고자 하였다. 이틀 간의 활동을 평가하면서 투쟁 속에서 여성 동지들에 대한 차별과 폭력이 존재하지는 않았는지, 성평등을 실천하고자 하였는지에 대한 반성이 제기되었다. 이른바 계급적인 운동진영,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부위들 내에서도 여성문제에 대한 이해는 그리 높지 않다.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실질적인 여성문제의 해결은 계급모순을 타파하는 가운데서 이루어질 수 있지만, 또 한편으로는 일상적인 문제제기와 고민, 실천을 통해서 노동해방과 함께하는 여성해방은 보다 앞당겨지고 구체적인 과제로 다가올 수 있음을 우리는 확신한다. 따라서 제기된 평가들을 적극적으로 토론하고 고민하여 우리의 실천을 변화시키고 보다 강화시켜야 한다. 이것은 앞으로의 투쟁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또 우리는 우리의 문제의식을 함께 메이데이에 참가했던 학생동지들과, 또 계급운동 속에서 치열하게 투쟁하는 동지들과 공유하고자 한다. 따라서 메이데이 기간 동안 접수된 문제의식들을 이렇게 정리하여 공개한다. 이를 바탕으로 동지들 사이에 논의가 확대되고 적극적인 실천의 변화가 존재하길 바라며, 성평등한 노동계급운동이 확장되고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
1. 언어를 통한 성차별과 성폭력
성폭력이란 것은 꼭 강간과 추행처럼 신체접촉이 이루어져야만 성폭력인 것은 아니다. 우리들이 사용하는 말이란 것이 여성에게 차별, 무시, 배제 당했다는 소외감과 불쾌감을 던져 주고, 부당한 여성억압의 현실을 재생산하는 역할을 한다면 그것은 성폭력이다.
이틀 간의 일정 동안 출정식, 중간 정리집회, 총정리집회 등 메이데이에 참가한 학생들의 투쟁결의를 고취시키고 활동을 평가하기 위한 자체 약식 집회가 많이 있었다. 그런데 학생들이 발언을 하기 위해 앞으로 나올 때, 특히 새내기들이 앞으로 나올 때 대오 내에서 여학생들에게는 “예쁘다!”, 남학생들에게는 “잘 생겼다!” 등의 발언이 있었다. 물론, 격려하려는 의도로 그런 발언을 하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발언들은 여성은 ‘예쁘고, 아름다워야’ 하고 남성은 ‘잘 생겨야’한다는 고정관념을 재생산하고 이어간다. 특히 여성을 외모로만 판별하는 것은 성차별에 해당하며 ‘여성은 이래야 한다’는 식의 고정된 성역할을 강요하는 것으로까지 나아갈 수 있다.
한편, 사회자가 새내기들을 소개하면서 “새내기들이 우리의 꽃과 같다”는 발언을 하였는데 이에 대한 논의도 있었다. 사람을 꽃에 비유하는 것은 칭찬하고 격려하는 의미가 있기는 하다. 하지만, 동시에 ‘꽃’이라는 단어는 주로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는 데 많이 쓰이기 때문에 이는 부적절한 발언이었다. 보통 여성은 아름다움의 상징인 ‘꽃’에 비유된다. 이것을 뒤집어 생각해 보면 여성은 꽃처럼 아름다워야 하고, 누군가 꺾어주거나 와서 보아주길 기다리는 것처럼 수동적이고 순종적이어야 한다는 관념이 내재되어 있으며, 사실상 여성들을 사물로 비하하는 것이다. 여성들이 모여 있는 모습을 보고 “여기는 꽃밭이네”하는 얘기나 남성들만 모여 있는 장소에 “꽃꽂이 좀 해야겠다”는 얘기들은 이런 배경에서 나온다. 이렇게 여성들을 성적 대상화하고, 고정적인 여성의 모습을 강요하는 것은 ‘예쁘지 않은’, ‘적극적인’, ‘행동적인’ 여성들을 배제하고 소외시킨다. 단적으로 여성노동자들이 자본가들에게 항의하고 투쟁을 시작하면 “여자들이 감히”라는 식으로 탄압이 자행되지 않는가? 불법파견 정규직화를 외치는 현자 울산공장의 중년 비정규 여성노동자들은 “아줌마는 집에 가서 밥이나 하고 애나 보지 왜 나대냐”는 식으로 무시받는다. 또 의외로 많은 남성 노동자들이 이런 생각에 젖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여성노동자들은 투쟁 속에서도 동지라고 불리기보다 ‘아줌마’ 혹은 ‘예쁜 동생(후배)들’로 지칭되기도 하고 같이 투쟁하면서도 소극적인 존재라는 인상을 남긴다. 이 때문에 투쟁의 주체를 남성만으로 한정시키는 효과를 낳는 ‘노동형제’라는 표현도 지속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따라서, 여성 동지들에게 고정적인 모습과 역할을 강요하는 것이 될 수도 있으므로, 사람을 ‘꽃’에 비유하는 것은 자제해야 한다.
한편으로 발언이나 구호에 성기나 강간 같은 성행위를 빗댄 욕설을 섞어 사용하는 것 역시 성폭력이 될 수 있다. 덤프연대 파업출정식에서 발언한 어느 동지가 “x나게.. x같이..” 등의 표현을 사용하는 것이나 혹은 행진 중에 노동자 동지들이 구호를 외치다가 끝에 “죽여 밟아 묻어 씨x" 등의 끝 구호를 붙이는 것이 그것이다. 앞에서 지적했듯이 여성들은 사회적으로 차별받고 있으며 사회에 만연해 있는 성차별주의와 남성우월의식은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고 성폭력의 피해자로 만들고 있다. 이것의 가장 극단적인 사례는 일본군 성노예이며 감금 상태에서 화재로 목숨을 잃은 성매매 여성들이다. 언론에서는 매일 같이 강간, 성추행 (그리고 그와 이어지는 살인) 등의 범죄가 보도되는데 이는 여성들이 성폭력을 당하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에 전전긍긍하게 만든다. 이런 이유로 여자들은 함부로 밤길 늦게 다니지 말라거나 옷을 야하게 입지 말라는 등의 반응이 일반적인데 성폭력이 만연하는 원인 자체를 문제삼지 않는 이러한 태도는 다시금 여성들의 활동을 제약하고 차별하게 된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성기나 성행위를 빗댄 욕설은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여성 동지들에게 불쾌감과 고통을 가져다 줄 수 있다. 또, 꼭 여성이 아니더라도 이러한 문제의식에 동감하는 누구에게나 그렇게 다가갈 수 있다. 그런데 자본가들을 향한 분노를 표출하는 것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지 않겠느냐, 혹은 남성들에게는 욕설 사용이 의도적인 게 아니라 하나의 자연스러운 문화라서 어쩔 수 없지 않냐는 반론도 있다. 하지만, 적들을 향해 표출하는 분노의 욕설이 자신의 곁에 있는 동지에게 피해로 다가간다면, 그리고 그것이 그 동지를 투쟁으로부터 내모는 결과를 초래한다면, 다른 방식으로 분노를 표출하는 것을 진지하게 고민해 보아야 한다. 우리가 이야기하는 남한의 1500만 노동자계급, 혹은 800만 비정규직 노동자들 중에는 남성만 있는 것이 아니라 여성도 있고 장애인도 있다. 자본가들과의 싸움을 위한 계급적 단결과 연대를 위해서는 옆에 있는 동지에 대한 배려는 기본 중의 기본이다.
언어를 통한 성차별과 성폭력은 일상적인 대화 속에서 나타나기도 하지만, 집회나 행사 도중에 나타나는 경우들이 많다. 이 경우에는 행사를 진행하는 사회자가 적절히 지적하여 언어 성폭력을 예방하거나 문제의식을 확산시키는 효과를 꾀할 수 있을 것이다.
2. 여성 동지들을 위한 공간적 배려
우리는 4월30일에 기존에 연대하던 인쇄노조 성진애드컴 투쟁집회부터 시작하여 서울지역 비정규직 차별철폐 대행진에 참가하였다. 차별철폐 대행진을 마치고 민주노총 전야제로 이동하기 전에 대행진 전체 대오가 식당에서 식사를 하였다. 그런데 식당 화장실이 남녀 공용인데, 설비가 낡아 문이 잘 잠기지 않았다. 그 때문에 여성 동지들이 화장실을 이용하기에 불편했다는 평가가 있었다.
비장애인 중심의 현재 사회에서 장애인들의 이동권을 보장하기 위한 설비는 열악하기 짝이 없다. 때문에 장애인들은 생존권이나 다름없는 이동권을 쟁취하기 위해 투쟁을 벌인다. 비장애인 중심으로만 설계되어 있는 교통수단, 설비나 공간을 장애인들이 차별 없이 이용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이 문제는 공간을 마련하고 사용하는 것에서도 차별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비단 화장실 문제 뿐만 아니라 MT, 수련회, 현장방문단에서의 숙소 문제 등에서 공간 문제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즉, 여성들이 공간의 사용에서 소외되거나 불편을 느끼지 않도록 배려하는 것이다. 기존에 학생운동 내에서 일어난 성폭력 사건들은 생활방 내에서 잠들어 있는 도중에 벌어진 경우들이 많았다. 또한, MT에서도 부득이하게 한 방을 쓰는 가운데 성폭력이 일어나기도 한다. 따라서 성폭력을 예방하고, 여성들이 불편을 느끼지 않도록 여성들이 독립적으로 사용하거나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할 수 있어야 한다. 대학 내 여학생 휴게실은 그런 측면에서 좋은 사례라 할 수 있다. 그런데 공간 문제는 보통 비용과 조건 등의 문제로 덮어두고 가는 경우가 많다. 공간 보장을 요구하려는 여성 동지들도 비용 문제를 고려해 그냥 넘어가는 경우가 있고, 특히 여성 동지들이 남성에 비해 현저하게 소수일 때에는 요청하기 더욱 어려워진다. 그렇다 할지라도 이것을 함께 논의하고 실천하는 것은 커다란 의미를 가진다.
3. 민주노총 주최 노동절 본집회의 걸개그림
노동절 이후 민주노총 자유게시판과 참세상 속보게시판에는 쏘냐라는 명의로 [민주노총 노동절 대회의 반여성주의 - 세상을 바꾸지 못할지언정 거꾸로 돌아가진 말지어라!]라는 글이 올라왔다. 글의 내용은 노동절 집회 걸개그림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었다. 걸개그림에 투쟁조끼와 머리띠를 착용한 남성노동자를 그리고 그 오른쪽에 분홍색 티셔츠를 입은 여성을 배치함으로써 남성만이 투쟁의 주체로 보일 수 있도록 했다는 지적이다. 같은 맥락에서 노동형제라는 남성만을 투쟁 주체화하는 표현 역시 사용하지 말아야 하며, 각성을 촉구하는 글이었다.
이 글은 내용에 동의하는 한 동지에 의해 노학연 홈페이지로 옮겨졌다. 그런데, 옮겨진 글에 한 사람이 반박하는 내용을 올렸고 쏘냐의 글에 동의하는 사람이 재차 반박하면서 짧은 논쟁이 진행되었다. 비판의 내용은 “문제제기가 너무 주관적이다. 과도한 해석이다.”라는 것이 주였다.
우리는 쏘냐가 제기한 문제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투쟁조끼와 머리띠는 노동자들에게 투쟁의 상징이다. 우리는 비장한 각오로 투쟁을 결의하는 모습을 종종 ‘머리띠를 묶는 것’으로 묘사한다. 작년 LG칼텍스 노조가 파업에서 패배한 이후, 회사는 관리자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조합원들에게 투쟁조끼를 가위로 절단할 것을 강요했다. 노조를 철저하게 짓밟고 다시는 노동자들이 회사에 대항하지 못하도록 인간적인 모멸감과 수치심, 패배감을 안겨 주려는 비열한 탄압이었다. 그런데, 걸개그림은 남성에게만 투쟁조끼와 머리띠를 착용케 하고 여성에게는 분홍색 티셔츠를 입혔다. 투쟁조끼와 머리띠의 상징성을 고려했을 때 이러한 그림은 남성만을 투쟁주체로 형상화한다. 또 색상의 선택에도 문제가 있다. 남성들은 파란 티셔츠와 파란조끼를 입고 있으며 여성은 분홍 티셔츠를 입고 있다. 일반적으로 분홍색 계열은 여성들에게 어울리고, 파랑색은 남성들에게 어울리는 색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런데 이것은 어떤 근거도 없다. 여성들이 태어날 때부터 분홍색을 좋아하기 때문에? 아니다. 여성에게 분홍색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은 앞에서 지적한 것처럼 ‘여성은 이래야 한다’는 식의 성차별주의로부터 파생된 것이다. 그래서 남성이 투쟁조끼를 입고 힘차게 팔뚝질을 하고 있고, 분홍색 티셔츠를 입은 채 그를 보며 웃는 여성이 그려진 그림은 기존의 남성과 여성에 대한 성차별적 고정관념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앞에서 우리는 성폭력의 기준으로 불쾌감에 대해서 이야기 하였다. 사실 그것 역시 주관적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문제제기가 너무 주관적이다”라는 주장에 대해 이야기 하지 않을 수 없다. 보통 성폭력에 대해서 문제제기 하면 이런 반응들이 돌아온다. “너무 주관적인 것 아니냐, 객관적인 시야에서 보아야 한다, 오버하는 거다” 등등. 이런 얘기를 하는 사람들은 문제제기하는 사람 혹은 성폭력의 피해자를 주관적 감정에 너무 치우쳐 있다고 비판하면서 자신은 ‘객관적’임을 내세운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그 객관이란 것은 여성들이 차별받고 억압받는 현실, 성폭력이 존재하는 현실을 반영하는 객관이다. 따라서 성폭력이 제기되었을 때 객관성 혹은 중립성을 따지는 것은 사실상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잘못된 현실에 손들어 주는 결과를 낳는다. 이는 사실상 현실을 외면하는 것이다. 따라서 성폭력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주관적이라고 지적하는 사람들은 그 자신이 주관적인 태도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닌지 반문해 볼 일이다.
만약 자본주의가 폐지되고 실제로 성별에 관계 없이 평등한 사회가 수립된다면 이러한 문제는 더 이상 논란이 되지 않을 것이다. 계급사회의 폐지가 여성해방의 필요조건인 것은 사실이나, 그렇다고 하여 의식적인 실천을 방기할 수는 없다. 끊임없는 문제제기를 통해 변화를 이끌어 내는 가운데서 여성해방과 성평등은 보다 가깝게 다가 올 수 있다. 남성만을 투쟁 주체로 형상화하는 걸개그림에 반대하고 남성 여성 모두가 투쟁의 주체로 그려지는 그림을 선택하는 실천 속에서 말이다.
4. 마치며
전 사회적으로 만연한 성차별과 성폭력은 운동 진영 내에서도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다. 물론 최근 들어 이에 대한 각성과 변화의 움직임이 도처에서 보이고 있다. 그 흐름에 노동해방 학생연대도 자리잡고자 한다. 한편으로는 이 더딘 흐름을 더욱 크고 넓게 확산시켜야 한다는 것이 우리의 생각이다. 더 이상 성폭력으로 인한 여성 동지들의 피해가 묻혀 버리지 않도록, 그래서 운동으로부터 밀려나고 소외받는 일이 없도록, 70년대 서슬퍼런 군사독재 치하에서 격렬하게 저항했던 여성노동자들의 투쟁 전통을 노동운동 위기의 시대에 복원하기 위해서, 그럼으로써 해체된 계급적 단결을 복원하고 노동해방 투쟁으로 더욱 힘차게 진군하기 위해서 말이다! 이 글을 읽는 모든 이들의 진지한 고민과 토론을 기대한다. 또 앞으로 우리는 이러한 비판 작업을 꾸준히 수행하며 실천할 것을 약속한다. 투쟁!
2005. 5. 18
사회주의 정치 실현을 위한 노동해방 학생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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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멕시코와 한국 -
임 영 일 (경남대 사회과학부)
1. 머리말
멕시코와 한국은 역사, 정치, 경제, 문화적인 모든 면에서, 그리고 여기에서 비교해보고자 하는 노동체제나 노동운동에 있어서도 둘 사이에 가로놓인 지리적 거리만큼이나 큰 차이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동안 실제로 멕시코에 대한 관심은 별로 크지 않았고, 학계에서도 멕시코를 연구하는 학자의 수는 극히 제한되어 있었다. 그러나 1997년 말 한국에서 발발한 IMF 경제위기를 계기로 멕시코에 대한 많은 관심이 일었다. 멕시코는 한국에 앞서 이미 두 차례의 대규모 외환위기를 경험했는데, 특히 1982년 외채위기 때와는 달리 1994년의 외환위기를 불과 1년여만에 신속하게 극복한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이 주목의 대상이었다. 1994년 멕시코 외환위기의 성격은 여러 가지 점에서 한국의 1997년 외환위기와 유사한 것이었고, 그 대응에 있어서도 다른 어느 나라보다도 적극적으로 IMF의 처방을 받아들였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나아가 그 결과도 매우 유사하여, 두 나라 모두 1년여만에 외환위기를 종식시키고 마이너스 성장을 플러스 성장으로 반전시켰다.
IMF의 정책 기조를 충실히 따르는 신자유주의적인 경제정책의 구사와 그 결과에 있어서만 두 나라가 유사성을 갖는 것은 아니다. 비록 그 내용과 정도에 있어서는 많은 차이가 있으나, 이러한 경제정책이 초래한 사회정치적 결과에 있어서도 두 나라는 많은 유사성을 보이고 있다. 시간적 선후의 차이는 있으나 경제환경과 경제정책의 변화에 따라 경제적 불평등의 증대, 고용구조의 악화, 실질 소득의 후퇴와 빈곤화, 공동체와 가족 해체의 가속화, 범죄를 비롯한 사회문제의 증폭 등의 현상이 공통적으로 확인되고 있으며, 나아가 정치체제 및 노동체제의 변화 조짐도 나타나고 있다. 이 변화가 앞으로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으로 진행될 것인지는 아직 예측하기 힘들지만, 두 나라 모두에 있어서 이 변화는 단기적인 것이 아니라 장기적이고도 구조적인 여파를 미치게 될 것이다.
여기에는 이 중에서 특히 위기 상황에서 노동운동의 대응 및 노동체제의 변화 문제에 초점을 맞추어 두 나라의 사례를 비교해보려 한다. 두 나라의 노동운동은 모두 위기 상황 속에서 노동운동의 전략적, 전술적 과제를 해결하는 데 실패했거나 실패하고 있으며, 그 결과 심각한 조직 약화와 노동운동의 위기에 직면했다. 국가와 자본은 기존의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을 통해 노동운동의 조직적 기반을 약화시키고 나아가 기존의 노동체제를 해체하거나 재편하려는 강한 압력을 가하고 있으며 노동운동은 적극적인 동원화 전략으로 이에 맞서지 못한 채 수세에 몰려 있다. 이 과정에서 두 나라 모두에서 기존의 노동체제는 급속히 부식되고 있다. 국가 코포라티즘의 한 전형을 보여 온 멕시코의 노동체제는 두 차례의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그 기반이 부식되어 완만하게나마 보다 다원적이고 갈등적인 노동체제로 이행하고 있으며, 멕시코에 한 발 앞서 다원적 갈등체제로 전환했던 한국의 노동체제는 경제위기 속에서 급속히 그 기반이 부식되고 있다. 서로 다른 조건 속에서 신자유주의의 공세에 직면하고 있는 두 나라 노동체제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변화해 나갈 것인지의 문제는 두 나라 뿐아니라 유사한 고민을 안고 있는 여타의 제 3세계 노동운동에 대해서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2. 기존 노동체제의 특징: 국가 코포라티즘과 '1987년 노동체제'
1) 멕시코의 국가 코포라티즘
멕시코는 제 3세계 나라들 중에서도 가장 전형적인 국가 코포라티즘 체제를 장기간에 걸쳐 형성시켜 왔다. 멀리는 1910-17년간의 멕시코 혁명에 그 뿌리를 두고 있고, 가까이는 1930년대 까르데나스 대통령 시대에 그 틀이 잡힌 이 노동체제는 그 정교함과 높은 제도화 수준, 이데올로기적 통합력, 그리고 그것이 포괄하는 노동자의 규모 등에 있어서 제 3세계의 노동체제 중에서는 가히 유례를 찾기 힘든 것이었다. 국가-당(제도혁명당, PRI)이 사실상 일원적으로 통합된 속에서 노동조직은 이 당의 한 핵심 부문으로 통합되었으며, 멕시코 혁명의 이념인 혁명적 민족주의가 통합 이데올로기로 기능하고 국영 기업과 사회보장제도를 이에 결합시켜 대중 통합의 물질적 기반으로 활용한 이 체제는 수십년에 걸쳐 정교하게 제도화되었으며 또 실제로 운영되어 왔다.
까르데나스는 당시의 대표적 노동조합조직인 '멕시코노동자지역총연맹(CROM)'을 배제하고 이 조직을 이탈한 소수파 노조인 '멕시코노동총동맹(CTM)'과 연합하여 정부-PRI/CTM을 긴밀한 상호적 수혜-후원의 관계로 유기적으로 통합한 유례없는 코포라즘 체제를 구축했다. 1980년대까지 본질적 변화 없이 유지된, 그리고 현재까지도 기본 틀을 유지하고 있는 이 관계는 다음과 같은 특징을 지니는 것이었다.
우선 정부 혹은 PRI가 공식노조에게 제공하는 후원관계를 보면,
첫째, 정부는 노조 등록제를 활용하여 친정부적 '공식노조(official union)'를 인정, 후원, 보호하고 그렇지 않은 노조들은 배제, 억압한다. 여기에는 배타적 단체교섭권, 조합원 축출권의 부여도 포함된다. 초기에 이 공식노조는 곧 CTM이었으나, 정부는 CTM과는 대립 혹은 경쟁관계에 있더라도 친정부적인 노조인 경우에는 이 틀 속으로 이끌어 들였다.
둘째, 정부와 PRI는 이 공식노조에 대하여 여러 형태의 제도화된 후원을 제공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 공식노조 조직에 대한 재정지원과 그 간부들에 대하여 제공되는 PRI와 정부의 각종 정치적, 행적적 직위들이다. 예컨대 PRI는 선거 때마다 하원과 상원, 그리고 주지사 등 지방선거직에 이르기까지 PRI의 '노동부문'을 대표하는 공식노조 간부들에게 일정 비율의 후보직을 할당해왔다. 정부가 제공하는 행정적 지위에는 정부 기구 뿐아니라 국가소유의 각종 공기업과 사회보장 기구 등에서의 고위직들이 포함된다.
셋째, 공식노조들은 연방과 주 수준에서 헌법과 노동법에 명시된 각종 위원회들에 참여한다. 특히 노 사 정 3자위원회인 '알선조정위원회'는 노사관계에서 사실상 최고의 권위를 가지는 판결기관이다.
넷째, 정부는 공식노조 조합원들에게 다른 조직의 노동자나 비조직노동자들, 그리고 나아가 일반 민중과 구분되는 각종의 사회경제적 특혜를 배타적으로 배정한다. 예컨대 이들은 정부가 출연하여 설립하고 노 사 정 삼자가 공동운영하는 사회보장기구인 멕시코사회보장원(IMSS)의 정식 등록할 수 있다. IMSS는 이들에게 연금, 의료, 가족계획 등의 사회복지를 제공한다. 국가부문 노동자들은 IMSS와 별도로 설립된 '정부노동자사회복지원(ISSSTE)'에 등록한다. 대체로 전체 노동력의 30%를 약간 상회하는 정도인 이 등록인원이 대체로 멕시코의 공식부문(formal sector) 고용을 말해준다. 멕시코 노동자들 중 이들은 그나마 보다 나은 임금과 고용조건, 후생복지, 최소한의 사회복지의 수혜자이다.
정부와 PRI로부터 주어지는 이러한 후원의 대가로 공식노조들이 정부와 PRI를 위해 수행하는 기능들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첫째, 공식노조들은 경제발전을 위해서 최대한 파업을 억제하도록 요구된다. 실제로 CTM을 위시한 공식노조들은 그 동안 이 기능을 충실히 수행했으며, 특히 경제적 위기의 시기 동안 노동자들의 요구를 억눌러 '위기 극복'에 크게 기여한 바 있다.
둘째, 지배적 노동정치로서의 "혁명적 민족주의"를 내세우고 있는 공식노조들은 그 이데올로기의 지속적인 부식과 퇴락에도 불구하고 이를 통해 멕시코 노동운동과 노동자계급이 보다 급진적인 이념과 의식으로 무장되지 못하게 가로막는 안전판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셋째, 중요한 정치적 고비 혹은 위기 때마다 공식노조들은 정부(PRI)를 지지함으로 강력한 정치적 후원을 제공해왔다. 1968년 학생시위에 대한 멕시코 정부의 유혈진압에 대한 지지성명, 1982년 은행 국유화에 대한 대규모의 지지 시위, 그리고 경제위기 속에서 1987년부터 10여 년간에 걸쳐 진행된 소위 '사회협약(social pact)' 등, CTM을 중심으로 한 멕시코 공식노조는 많은 경우 산하 조직의 반발이나 조합원에 대한 심각한 불이익을 감수하면서도 정부에 대한 단호한 지지를 표시함으로써 멕시코 코포라티즘의 효능을 입증해왔다.
넷째, 공식노조는 연방, 주(州), 그리고 지방의 모든 정치적 선거 과정에서 집권 PRI에 후보를 제공하고, PRI 후보를 재정적으로 후원하고, 선거운동을 도우며, 대중들의 '표'를 동원하는, 잘 준비된 선거기구로 기능한다. 선거 과정에서 벌어지는 집회, 행진, 유세, 대규모 시위 등 모든 대중행사들은, 노동절(메이데이) 행사가 매년 그러하듯이, 노동조합과 집권 PRI의 유대를 과시하는 기회로 활용된다.
다섯째, 노동조합과 정부(PRI)의 이러한 결합은 멕시코 정부가 "멕시코 혁명"의 정부, 민중의 정부, 노동자의 정부라는 이데올로기적 신비화 효과를 수반한다. 노동조합의 정부 지지는 멕시코 국가의 가장 중요한 이데올로기적 정당성의 기반이 되고 있는 것이다.
멕시코의 이러한 국가-노동간의 긴밀한 유착관계는 과거 권위주의적 포퓰리즘 정치체제 하에서의 아르헨티나나 브라질 등 남미 국가들, 그리고 권위주의 정권 하의 한국과 대만 혹은 싱가포르의 계급정치 구조와 구분되는 매우 독특한 것이었다. 가장 중요한 차이는 국가가 노동부문에 대하여 정당을 매개로 해서 상징적 수준을 훨씬 넘어서서 실질적으로 유의미할 정도의 정치적 대표성과 정책적 참여의 권한을 부여했고, 이것이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을 제도적 기반이 확보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게다가 80년대 경제위기 이전까지는 적어도 노동계급의 핵심부문을 이 체제의 정치적 지지기반으로 안정적으로 확보하고 필요할 경우 이들을 직접적으로 동원할 수 있을 만큼의 실질적인 경제적 혜택을 부여하고 있었다는 점(국가가 이를 위한 경제적 자원-국영기업-을 지니고 있었다는 점)도 중요한 차이이다.
여타 제3세계 권위주의 정권들과 매우 다르게 멕시코의 이 코포라티즘 국가는 군부가 배제된 민간 기술관료들 중심의 정치적, 행정적 엘리트 지배체제를 이루어 왔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력한 물리적 통제력과 경제적 자원을 기반으로 장기간에 걸쳐 매우 안정적인 지배체제를 형성해왔다. 이 구조는 아래의 그림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멕시코 국가 코포라티즘의 기본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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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부문(자본) ------- 국가(정부) -------------- 당(PRI)
| +------------+ | |
+------+ 3자위원회 +--+ |
+------+-----+ +------------------+--------------+
| | | |
+---------노동(공식노조) 농 민 공공부문
(공식부문 노동자층) (공무원 국영기업)
노동인구 25-30% 대표 노동인구 3-5% 대표
IMSS 등록 ISSSTE 등록
2) 한국의 '1987년 노동체제'
멕시코의 이 노동체제는 한국의 노동체제와는 크게 다른 것이다. 외형적으로 보면 이 체제는 예컨대 1960-70년대의 권위주의 정권 하에서의 '배제적 국가 조합주의' 체제와는 몇 가지 유사한 측면이 있어 보인다. 한국노총을 유일노조로 강제하는 노조 등록제(신고제), 이에 대한 정부의 재정적 후원과 그 상층 간부들에 대한 독점권의 보장 및 특혜의 부여, 정부에 대한 충성과 하부 조직에 대한 통제를 주요 기능으로 하는 노조관료제, 노조 대표의 주기적인 정치적 호선(co-optation), 통제 이탈자에 대한 정부의 물리적 억압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 체제는 멕시코의 경우와는 달리 후원자-수혜자의 통합관계가 아니라 최상층부 노조간부에 대한 최소한의 혜택만이 부여되는 일방적인 배제와 통제의 체제였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그나마 한국의 이 노동체제는 1980년대 급진화의 시기를 거치면서, 그리고 결정적으로는 1987년 노동자대투쟁을 계기로 사실상 해체되었다. 한국노총과 정부와의 관계는 여전히 유지되어 왔으나, 민주노총으로 결집한 새로운 노동운동(new unionism)이 출현하여 급성장함으로써 한국의 노동체제는 형식적으로는 각각 통합과 배제의 대상이 된 두 세력의 이중주의(dualism) 체제로, 실질적으로는 현장 노동운동을 주도하는 민주노조 운동 세력과 정부-사용자 간의 격심한 대립과 갈등으로 특징지어지는 대립적 노동체제로 바뀌게 된 것이다. 편의상 이 체제를 '1987년 노동체제'로 부를 때 우리는 그 특징을 다음과 같이 정리해볼 수 있다.
첫째, 이 체제는 매우 제한적이고 불균형한 제도화를 그 특징으로 한다. 노사관계의 층위를 정치적 수준과 사회적 수준, 그리고 작업장 수준으로 나눌 때, '1987년 노동체제'는 작업장 수준에서의 노사관계만이 비교적 안정적으로 제도화되고 있었을 뿐, 사회적, 정치적 수준에서의 노사관계 제도화는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다. 게다가 작업장 수준의 노사관계 제도화 역시 매우 제한적이어서, 주로 기업단위 노조들이 상대적으로 안정화될 수 있는 조건을 가지고 있었던 부문들(대기업들, 공공부문, 그리고 일부 성장산업 중소기업들)에 국한된 것이었다.
둘째, 매우 높은 수준의 정치적 산업갈등을 수반하는 체제였다. 이 갈등은 무엇보다도 1987-88년의 개정 노동법이 여전히 사회적, 정치적 수준의 노사관계 형성 혹은 제도화를 전면적으로 부정하고 있었음으로 인해 빚어진 '정치적 갈등'을 말함이다. 한국의 노동운동을 '국가에 도전하는' 사회운동적 성격을 강하게 지닌 예외적인 노동운동으로 파악하는 것도 이 문제와 관련된다.
셋째, 기업별노조와 기업별 교섭구조 속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제도화 수준을 보이고 있었던 작업장 노사관계 역시 매우 높은 수준의 산업갈등을 보여 왔다. 배제적 노동통제가 지속되는 가운데 노동운동의 지도부(리더쉽)들은 필연적으로 현장의 평조합원 노동자들과 높은 수준의 호응성관계를 추구할 수밖에 없다. 지도부와 현장조합원의 높은 수준의 호응성에 기반한 대중동원화 전략은 한국의 노동운동 지도부, 특히 1987년 이후 노동운동을 주도해온 민주노조운동 지도부에게는 거의 유일한 선택이었다. 작업장 수준에서 촘촘히 짜여진 활동가들의 공식적, 비공식적 그믈망 조직의 존재는 한국의 민주노조운동에 있어서는 '강력한 노동조합'의 바로미터로 여겨져 왔다.
넷째, 그러나 '1987년 노동체제'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이것이 기업별노동조합이라고 하는 매우 분산적인 노동조합 조직체계를 기반으로 한 것이었다는 점에 있다. 한국의 기업별노조는 일본의 그것과도 성격을 달리하는 매우 독특한 것이다. 일본의 기업별노조가 기업조합주의(enterprise corporatism)의 틀 내에서 노사협조적인 '종업원조직'으로서의 성격을 강하게 지니고 있는 것과는 달리, 사실상 직종간 분리에 기반하여 조직된 한국의 기업별노조는 기업수준에서의 강한 대립적 노사관계를 특징으로 해왔다.
한국 '1987년 노동체제'의 기본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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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정부)-----------------------------자본(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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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배제 |저항 대립
| 통제 억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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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동(민주노총)---------------------------개별노조
조직노동의 1/3 대표
3. 노동체제 전환의 압박: 신자유주의 공세
노동체제는 축적체제의 한 구성 부문이며 따라서 노동체제의 전환은 기존 축적체제의 위기와 그 재구축의 동학 속에서 구체적인 계기가 주어진다. 축적체제의 위기는 기존 체제의 효율성에 지배계급의 확신 약화, 그리고 체제 정당성에 대한 피지배계급의 신뢰의 철회를 야기하며 타협의 물질적 기반을 약화시켜 계급 주체들간의 명시적, 묵시적인 갈등과 투쟁을 격화시킨다. 이 체제 전환의 방향과 내용, 속도는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의 계급역량(class capacity)의 대비에 의해 좌우된다. 예컨대 전후 서구의 포드주의적 축적체제와 사민주의 노동체제의 구축이 서구 지배계급의 계급역량 약화와 노동계급의 계급역량 증대가 맞물려 빚어 낸 타협의 계급정치의 산물이라면, 멕시코의 통합적 국가 코포라티즘이나 한국의 배제적 국가 코포라티즘의 형성은 노동계급의 취약한 계급역량 위에서 구축된 것이라 할 수 있다.
1982년 남미 공황은 멕시코 뿐아니라 거의 모든 남미 국가들에게 심각한 축적 위기를 초래했다. 멕시코의 지배계급은 이를 계기로 오랜 기간 계속된 수입대체산업화 전략을 수출지향 산업화 전략으로 전환시켜 나갔다. 그러나 기존의 통합적 국가 코포라티즘 노동체제는 완만한 부식 과정을 거치기는 했으나 큰 변화 없이 계속 유지될 수 있었다. 그 가장 큰 이유는 마찬가지로 멕시코 노동계급의 취약한 계급역량이었다. CTM을 중심으로 한 주요 노조 조직들은 수십 년에 걸쳐 기존 노동체제 내에 과잉통합된 상태에 있었고, 외형적인 조직규모와는 상관없이 구조적, 조직적 계급역량 모두가 매우 취약해진 상황이었다. 일부 전략산업의 투쟁적 노조들은 산발적이고 고립적인 투쟁 역량을 발휘할 수는 있었으나 대안적 축적체제나 노동체제를 추구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지는 못했고, 노동세력 내에서라도 독자적인 세력을 구축할 수 있는 역량도 발휘하지 못했다. 멕시코 노동체제 전환의 계기는 1994년의 공황에 의해 주어졌다고 말할 수 있다. 싸빠띠스타 해방군(FZLN)의 무장봉기가 가져다 준 새로운 대안적 이데올로기 구심의 출현, 독립노조 세력의 새로운 연대조직의 형성과 그 확산, PRI 일당독재 체제와 어용노조 세력의 분열 및 입지 약화, 제도 야당들의 득세를 통한 다원적 정치구조로의 이행 등의 커다란 변화가 1994년 공황 이후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의 '1987년 노동체제'는 매우 독특한 것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이는 기존 축적체제의 심화된 위기를 배경으로 형성된 것이 아니라 민주화 이행과정에서 빚어진 국면적 정치위기를 배경으로 노동계급의 조직적 계급역량이 일시적으로 분출함에 의해 빚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이 노동체제의 과도기성도 여기서 유래한 것이다. 즉 이 체제는 기존 노동체제의 중요한 요소들을 그대로 간직한 채(노동시장, 노동조직, 노사관계 등) 주로 노동정치의 구조 변화만을 수반한 것이었다. 따라서 이 체제는 1987년을 계기로 형성되었으나 그 형성의 과정은 동시에 보다 본질적인 체제전환의 압박이 가중되는 과정이기도 했다. 1997년 공황의 발발은 지체된 체제전환의 모순을 일거에 드러낸 계기가 되었고, 이 전환의 방향과 내용을 둘러싼 노자간의 치열한 공방전이 진행되고 있다.
많은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 걸음 물러서서 보면 멕시코와 한국 모두 체제 전환을 압박하고 있는 가장 큰 요인은 동일한 것이다. 약간의 시차가 있기는 하나, 그리고 정도의 차이가 있기는 하나, 두 나라 모두 1980년대에 접어들면서 범세계적 경제개방과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의 압박 하에 놓여 있었다. 멕시코의 경우 1982년이 결정적인 고비가 되었던 것에 비해 한국의 경우에는 1979-80년의 커다란 정치위기가 심화되고 있었던 경제위기를 덮는 효과를 발휘했다. 따라서 한국에서는 칠레의 경우처럼 재강화된 군부 권위주의 정권에 의한 통제된 신자유주의적 개방화와 구조조정의 과정이 진행되었지만 지배적인 쟁점은 정치적 민주화였고, 노동운동 역시 뒤늦은 정치적 급진화의 과정에 돌입했다. 한국의 노동정치가 남아공이나 브라질, 필리핀 유사한 양상을 보였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정치적 급진화의 거품효과가 소진되어 갔고 있었던 1990년대에 들어서 작업장 수준에서 진행된 소위 '신경영전략'을 둘러싼 노자간의 공방은 격렬한 대립적 노동정치의 이면에 자리잡고 있었던 체제 전환의 진정한 압박요인이 무엇인지를 잘 말해주는 것이었다. 이 작업장정치의 양상은 1982년 이후 멕시코 자동차산업을 중심으로 진행된 유연화투쟁과 거의 동일한 것이다. 수출산업화로 방향전환을 하고있었던 멕시코의 자동차 산업체들은 수출경쟁력 향상을 위한 유연생산체제의 구축과 노동조합의 약화를 동시에 추구하였고, 노동조합은 이를 저지하기 위한 투쟁을 전개했다. 기존의 어용노조 상층부는 경제위기의 상황 속에서 정부 및 사용자들과 맺은 허구적인 사회협약의 틀 속에 안주했으나, 현장 노조들은 장기 파업투쟁을 포함하여 강력한 저항을 전개했다. 그러나 이 투쟁은 사용자들의 생산입지 전환 전략, 그리고 정부의 탄압에 의해 좌절되었다. 한국의 경우 민주노총 소속의 주요 대공장 사업장들을 중심으로 합리화 반대 투쟁이 계속되었고, 사용자들이 입지 전환 전략을 구사할 수 있는 조건을 지니지 못하여 기업 수준에서 부분적인 양보와 타협이 진행되고 있었다는 점 정도가 차이일 수 있겠다.
경제위기는 이 사용자 공세를 총자본 수준에서 강제할 기회로 이용되었다. 멕시코의 경우 주로 1980년대 말 이후 공기업의 광범위한 민영화 조치가 이루어졌고, 이후 1994년 위기를 거치면서 대외 개방의 확대와 광범위한 외자 유치, 공장 폐쇄와 설비 이전을 포함하는 구조조정, 기업활동에 대한 규제 완화, 임금삭감과 고용 축소, 복지 재정 축소를 포함한 긴축재정 정책 등이 계속되었다. 그 결과 멕시코 경제는 다시 성장세를 회복하였으나, 노동자와 하층 민중들의 생활조건은 대폭 후퇴되었다. 코포라티즘 체제하에서 장기간 유지되어 왔던 노사정 합의 구조는 급속히 약화되었으며, 1987년 이후 10여 차례에 걸쳐 추진된 사회협약은 위기 극복을 위한 노사정합의 체제의 가동이라는 성격보다는 기왕에 존재해온 합의 구조의 약화 혹은 폐기를 대체하는 이데올로기적 치장물에 불과했다.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과 사회적합의주는 본질적으로 상호 모순되는 것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경우에도 경제 위기를 계기로 한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 정책은 정도의 차이, 시차의 차이가 있을 뿐 멕시코의 경우와 거의 다를 바 없는 내용으로 진행되고 있다. 차이가 있다면 크게 두 가지 정도이다. 우선, 1982년 이후의 멕시코와는 달리 한국의 경제위기는 높은 인플레이션을 수반하였던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는 당시 멕시코가 수입대체 산업화 전략에 의존했던 것과 달리 한국은 이미 수출지향 산업화 전략을 장기간에 걸쳐 채용해왔다는 축적체제상의 차이를 반영했던 것이다. 그러나 멕시코도 1994년 위기는 이미 수출지향 산업화 전략으로 전환한 이후 발생한 것이어서 급속한 페소화 가치하락에도 불구하고 과거와 같은 초 인플레를 수반하지는 않고 있다. 두 번째로, 한국의 기본 노동체제는 조직노동자의 통합을 특징으로 하는 것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따라서 한국의 경우 멕시코와는 달리 일방적인 긴축재정을 운영하지는 않았다. 해고와 실업의 증대를 수반하는 고용조정의 과정에서 정부는 정치적인 이유에서라도 확대재정 정책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정부 재정적자의 대부분은 구조조정 과정에서 자본 보조적 공적 자본 투입에 대부분 충당되고 있지만, 제한적인 범위에서, 일시적으로나마, 정부의 복지재정 지출 역시 급격히 증대했다. 그러나 이 차이 역시 큰 의미를 갖는 것은 아니다. 정부 정책의 기조가 초기부터 '생산적 복지'로 정향되어 있었다는 점, 그리고 위기 상황에서 팽창된 정부재정과 외자 도입은 앞으로 인플레를 수반하면서 긴축 재정 정책으로의 선회를 강제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복지 문제와 관련하여 정부가 그것의 제도화에는 지극히 냉담하면서 일시적인 구호자금 확대 정도로 위기를 넘기려 하는 점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두 나라 모두 경제위기를 매개로 한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의 압박은 기존 노동체제의 지속가능성을 크게 위협했거나 하고 있다. 그리고 이는 사실상 1980년대 이후 진행되고 있는 범세계적인 현상의 일환이다. 이 변화를 주도하고 있는 (초국적)자본의 관점에서는 유럽의 사민주의적 노동체제든 멕시코와 같은 국가 코포라티즘 체제든 혹은 한국과 같은 대립적 노동체제이든 그 특수성과는 상관없이 유연 노동체제를 뒷받침할 수 있는 탈계급화된 다원주의적, 원자적 노동체제로 전환되기를 강압하는 것이다. 유럽에서는 사민주의적 노동체제를 해체하는 것, 멕시코의 경우에는 어용노조이든 무엇이든 상관없이 국가-노동의 후원-수혜 관계를 해체시키는 것, 한국의 경우 대기업을 중심으로 포진해있는 강력한 투쟁적 노동조합을 약화시켜 '1987년 노동체제'의 노동 측 골격을 허무는 것이 그 목표라 하겠다. 노동시장 조건으로는 이미 높은 유연성을 지니고 있었던 한국 노동시장의 유연화=정리해고제의 도입이 위기 초기에 그토록 중요했던 까닭이다.
4. 노동운동의 대응: 조직역량의 취약성과 위기
한국과 마찬가지로 멕시코의 좌파 정당이나 정치조직들, 다양한 민중운동체들, 그리고 노동조합 세력들은 신자유주의 공세에 맞서는 투쟁을 줄곳 전개해오고 있다. NAFTA 협정을 계기로 미국과 캐나다의 진보적 노동조합 조직이나 사회운동 단체들과의 연대 투쟁도 활발하다. 그리고 싸빠띠스타 세력은 비록 남부 치아빠스의 해방구에 갇혀 있기는 하지만 신자유주의에 저항하는 민중운동의 이데올로기적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1982년 이후, 그리고 1994년 이후에도 이러한 저항운동이 폭넓은 대중운동으로 조직되고 있다는 조짐은 별로 없다. 멕시코의 좌파 정치세력들은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대중적 기반이 별로 없는 상황이며, 도시 빈민이나 가난한 농민들의 공동체 운동도 활발하기는 하지만 고립적이고 국지적인 운동의 차원을 크게 넘어서고 있디 못하다. 싸빠띠스타는 멕시코 정부와의 평화협정으로 작은 해방구 안에 갇혀 있고, 이 해방구 밖의 지역에서는 무장활동이 아닌 공개 정치조직 활동을 전개하기로 합의하여 1997년 FZLN이라는 정치조직을 결성한 바 있으나 그 결과는 대실패로 끝나 버렸다. 앞에 언급하였듯이 자동차 부문의 노동조합들이 산발적으로 강력한 투쟁을 전개하기는 했으나 초국적 자동차 산업체들이 기존 공장을 폐쇄하거나 생산축소를 단행하면서 북부 저임금 지역으로 새로 공장을 지어 옮겨가는 입지이전 전략을 추진하면서 결국 무력화되어 버렸다. 그나마 투쟁적인 자동차 노조들은 CTM이 아닌 CROC 소속이 다수였는데, CROC가 CTM보다 더 진보적인 노동조합 조직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따라서 신자유주의 정책에 반대하는 대중운동이 노동조합에 의해, 그나마 기존의 어용노조 세력인 CT와 그 중심 노조인 CTM에 의해 주도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멕시코 민중운동의 이러한 취약성 때문이다. 1997년 여름 97세의 나이로 사망한 벨라스께스가 반세기 이상 위원장으로 있었던 CTM은 1982년이래 적어도 외형적으로는 줄곳 정부의 신자유주의적 경제정책과 사회정책에 반대하는 입장을 취해 왔다. 국가 코포라티즘 노동체제의 한 중심 축이었던 멕시코의 공식노조 세력들, 그 중심인 CTM으로서는 신자유주의 정책이 지니는 반민중성 보다는 그것이 기존에 그들이 누려 왔던 여러 가지 특권들을 축소하고 조직 내부적으로도 어용 지도부에 대한 하부 조직원들의 충성을 약화시킬 가능성을 가장 두려워했던 것이다. CTM은 민영화, 임금 삭감, 최저임금 인상 억제, 구조조정 등 1982년 위기이래 계속된 마드리드-살리나스-쎄디요 정권의 일관된 신자유주의 정책에 반대하면서 노사정 협상 테이블에서의 철수, 파업 위협, 선거에서의 PRI 지지 철회 위협 등을 반복해왔으나 그 한계는 너무도 분명했다. 모든 것은 위협의 제스츄어에 그쳤으며 결과적으로는 항상 협상 테이블로 복귀했고 선거 시마다 정부와 PRI에 대한 지지로 돌아섰으며 실제 파업투쟁을 조직한 바도 없었다. 그러나 CTM의 지도부에 대한 정부와 PRI의 정치적, 경제적 혜택은 계속 축소되었고, 조직노동자들의 임금, 고용조건, 복지 혜택은 지속적으로 축소되었다.
자기 조직의 유지, 혹은 조직에서의 어용 지도부들의 입지 유지를 위해서라도 투쟁하지 않으면 안될 때에도 실제로 투쟁에 나서지 못하고 곧바로 휴지조각이 되어 버리는 '사회협약'에만 매달릴 수밖에 없었던 멕시코 공식노조의 이 취약성은 예컨대 한국의 한국노총의 처지와도 매우 유사한 것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CTM은 공식적으로는 600만에 가까운 조직원을 가진 거대 노조이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통계상의 숫자일 뿐, 실제로 그 내부를 드려다 보면 조직적 취약성은 바로 드러난다. 우선, CTM은 주로 지역노조들의 연합체로 구성되어 있고, 이 지역노조들은 핵심적 공공부문 노조나 대규소 사업장이 아닌 중소 및 영세 노조들을 포괄하는 조직이다. 지역노조들은 CTM 중앙조직과 다를 바 없이 지역 차원에서 정부와 PRI, 그리고 사용자들과 결탁하고 있는 어용 노조간부들에 의해 장악되어 있고, 이들은 조합원들의 참여와 지지를 자기 권력의 기반으로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통제하고 지배하고 억압하는 것을 주요 업무로 하고 있는 자들이다. 조합원들의 조합비는 자동 공제되어 이들의 수중으로 넘어 가나 그 액수는 별 의미가 없다. 이들은 '보호계약'의 대가로 사용자들로부터 임금을 지급받는 존재에 불과하다. CTM 중앙조직은 재정의 10% 미만(6% 정도일 것으로 추산됨)만을 조합비와 의무금에 의존할 뿐 대부분의 재정은 정부의 보조금에 의해 충당된다. 요컨대 조직 자체가 동원화와 투쟁의 조직이 아니라는 노동자 통제조직으로 자리잡고 있다는 원천적인 한계가 있고, 설사 정부와의 갈등이 심화되어 투쟁에 나서야만 할 때가 되더라도 지도부는 실제 동원능력에 대한 자신이 없고 그 효과도 기대할 수 없으며, 그보다 대중동원화가 초래할 통제능력의 상실에 대한 우려가 더 클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멕시코의 독립노조 세력들은 1994년 위기 이후 독자적 조직화의 노력을 강화하였고, 그 결과 1997년 새로운 독립노조 연합체인 전국노동자연합(UNT)을 결성하기에 이르렀다. 조합원 수로는 대략 150만 정도를 대표하는 UNT는 공식노조와는 달리 정치적으로는 야당인 PRD와의 연대를 지향하고 정부에 반대한 대중동원 전략을 구사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1994년 위기 발발로 3년간 중단되었던 노동절 행사가 다시 재개된 1998년 5월 1일에 이들은 실제로 쏘칼로 광장에 30만에 달하는 조직원들을 동원하여 대규모의 항의 시위를 조직한 바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이들이 현장 수준에서의 대중동원 투쟁, 즉 파업투쟁을 적극적으로 조직한 바는 없다. 그리고 UNT에 참여하고 있는 주요 노조와 간부들은 CTM이나 CT를 탈퇴하지도 않고 있으며 PRI 당적을 버리고 있지도 않다. UNT 조직 내에서 분명한 독자 노선을 지닌 독립노조 세력은 민중연대조직체인 진정한 노동전선(FAT) 소속으로 UNT에 가입해있는 금속노조(STIMACH) 정도인데, FAT의 조직원이라야 모두 4만 여명, STIMACH은 1만 8천에 불과하여 아직 그 세력은 미미하다. UNT 소속 조직들이 과거의 경험처럼 정부와 PRI로부터 일정한 반대급부를 보장받는 대가로 다시 공식노조 대열에 합류할 가능성은 과거보다는 크지 않다. 절대적 지배 정당으로서의 PRI의 입지가 많이 약화되어 있고, 그보다 더 큰 이유는 신자유주의 정책의 지속적인 추진으로 인해 조직노동부문을 통합할 수 있는 정부-PRI의 물질적 기반 자체가 크게 약화되어 있기 때문에 과거와 같은 유인(incentive) 제공 능력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CTM이 그러했듯이 '더 많은 떡'이 아니라 '덜 적은 떡' 조차도 어용노조 간부들에게는 커다란 유인이 될 수 있는 것이므로 아직은 상황을 낙관할 수 없다. UNT에 비판적인 태도를 취하는 급진 좌파계열의 노조운동이 메이데이 노조협의체(CIPM)로 남아 있으나 그 세는 더욱 작고 게다가 이 조직은 노조 조직이라기보다는 급진 좌파 이념을 가진 민중운동 조직체의 연합으로 아직은 그 힘이 매우 미약한 상황에 머물러 있다.
현장 수준에서의 유연화 공세가 수년간 지속된 연장선상에서 전개된 한국 노동운동의 1996-97년 노동법 총파업 투쟁은 신자유주의에 적극 대응하는 대중투쟁의 모습으로 비추어져 전세계적인 각광을 받은 바 있다. 그러나 냉정히 관찰할 때, 이 투쟁은 '1987년 노동체제'의 틀 내에서 전개된 대중동원 투쟁의 마지막이 되었다. 이 투쟁은 그것이 목표로 했던 것 두 가지 모두를 획득하지 못했다. 우선, 이 투쟁은 '1987년 노동체제'를 해체하려는 정부와 자본의 시도를 저지하지 못했고, 유연 노동시장 체제를 구축하려는 시도를 저지하는 데에도 실패한 셈이 되었다. 민주노총이 총력을 기울여 조직한 이 투쟁은 '어설픈 신자유주의 정권'의 몰락의 기폭제가 되었고 '1987년 노동체제'의 해체 시기를 다소 연장시키는데 그쳤을 뿐이다. 1997년 봄의 노동법 개정은 이를 구체적으로 확인하는 절차가 되었다.
1997년 말 경제위기의 발발과 한국의 민주노조운동은 총체적인 위기 속으로 빠져 들었다. 의사 코포라티즘적인 노사정위원회 참여와 정리해고를 수용하는 '사회협약' 체결, 이에 대한 조직 내 반발로 인한 지도부 사퇴, 강경파 지도부의 재선출과 총파업 등 강경투쟁 노선으로의 선회, 파업 실패와 노사정위원회로의 복귀, '사회협약' 불이행에 항의하여 다시 철수, 거듭된 총파업 선언과 철회, 노정교섭 요구, 현대자동차에서의 대규모 정리해고와 파업투쟁, 그리고 그 이후의 조직분열, 만도기계에 대한 정부의 공권력 투입. 1998년 한 해 동안 한국의 민주노조운동은 혹자의 표현에 의하면 '지그재그 노조주의'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이며 급속히 위축되었고, 1999년에 접어들어서는 사실상 거의 조직 마비 상황에까지 처하게 되었다.
'1987년 노동체제'의 실질적인 노조 조직의 축을 이루어 왔던 민주노총은 이 과정에서 실제 동원가능한 내부 조직역량의 현실적 한계에 부딪히게 된 셈이다. 경제위기 발발 이후 한국노총이 보여 준 모습이 멕시코의 CTM과 거의 유사한 것이었음은 양자가 매우 비슷한 성격의 노조 조직체라는 점으로 설명될 수 있다. CTM이 산하 조직과 노동자들의 반발을 무마하기 위하여, 그리고 동시에 노조간부의 특권 축소에 대한 반발로 주기적으로 파업의 위협과 협상 테이블로의 복귀를 반복하였던 것과 한국노총의 전략은 거의 같은 것이었다. 양자는 모두 '덜 작은 보상'을 추구하는 전략을 취한 셈이다. 그러나 민주노총의 경우는 문제가 다르다. 민주노총은 사실상 한국 노동계급의 계급역량을 대표하는 조직이다. 구조적 역량의 측면에서 보면, 민주노총은 조직의 크기에 있어서는 전체 조직노동자의 1/3, 조직대상의 4% 정도를 대표하는 작은 조직이지만, 핵심 산업부문의 장악력이라는 지표에서는 매우 강력한 조직이다. 그러나 조직적 역량의 측면에서 보면 민주노총은 기업별노조라고 하는 고도의 분산적 조직체계를 골간으로 하는 매우 취약한 조직이다. 민주노총은 낮은 조직적 집중성을 투쟁성, 이념적 결집성, 헌신적인 리더쉽이라고 하는 추상적 요소로 보완해온 조직이라 할 수 있다. 노동의 이익을 사회적, 정치적 차원에서 방어할 제도적 장치가 전무했고, 양보할 수 있는 조직 자원도 없었으며, 양보의 대가로 약속된 보상의 실현을 확신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민주노총은 다시 이 추상적 운동성에 거의 전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경제위기와 대량실업의 상황 속에서 급격히 위축된 대중의 자발성, '사회협약'에 대한 조직 내부의 반발, 산업과 업종과 사업장 수준에서의 서로 다른 조건과 이해관계의 차이, 이를 극복하고 재동원화를 준비하기 위한 전략과 시간의 절대적인 부족 등을 추상적인 운동성만으로는 극복하기 힘들었던 것으로 보인다.
5. 신자유주의와 계급연합, 혹은 대안의 부재
남미 군부독재를 분석한 한 논자는 이것이 신, 구의 중간계급 출신 엘리트 장교 집단에 의해 주도되었고 또 같은 계급적 기반 위에 선 것이었음을 지적한 바 있다. 군부 권위주의 정권 하에서 시작되고 민간정부 하에서도 지속성을 가지고 추진되고 있는 개방화, 시장자유화의 신자유주의적 정책은 부르주아, 민간 기술관료층, 그리고 도시 중간계급을 그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분석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신자유주의적 경제정책, 사회정책의 지속은 도시 중간계급 역시 날카롭게 균열시킨다. 소득 분배 구조의 변화를 지표로 하더라도 그 중 소수의 상층 지식계급 엘리뜨를 제외한 나머지 중간계급의 고용조건과 생활조건은 가파르게 악화되고 있음을 어디서나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구 체제에 대한 신뢰가 극도로 저하되는 위기 발생의 초기 국면을 경과한 이후에도 이들이 신자유주의의 계급적 지지 기반으로 남아 있으리라 가정할 수는 없을 듯하다.
신자유주의는 본질적으로 경제 뿐아니라 사회 자체를 해체하는 파괴적 본질을 지닌다. 따라서 그것이 어떤 계급(연합)적 기반을 가진 것이든, 지지 계급(들) 자체도 신자유주의적 경제정책과 사회정책이 초래하는 결과들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며, 나아가 시간이 경과할수록 그것을 우려하고 두려워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복구, 혹은 현재의 고수가 그에 대한 대안이 될 수 없고, 나아가 체제 전환의 급진적 변혁의 과제를 새롭게 제기하거나 그것을 추진할 수 있는 사회세력도 존재하지 않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신자유주의는 이 대안 부재의 세계적 공간을 누비고 있는 것이다. 아무도 신자유주의를 적극 지지하지 않으나 누구도 그것을 제어하기 힘든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세계적 차원에서 볼 때 신자유주의는 서구의 사민주의, 아시아 신흥공업국들의 국가주도 개발주의와 날카로운 대치 전선을 형성하고 있다. 남미의 주요 산업국들의 경우 1982년 외채위기를 계기로 신자유주의는 이미 압도적으로 지배적인 조류가 되었다. 이들 남미 나라들에서 신자유주의는 이미 파괴적인 사회해체의 결과들을 빚고 있고, 그것을 조율하거나 제어할 사회제도적 장치나 조직화된 사회세력의 교두보들을 재구성한다는 것은 상당 기간 동안 불가능할 정도의 상황에까지 도달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싸빠티스따에 대한 과잉 관심과 과잉 기대는 그것이 어떤 대안을 형성할 수 있어서라기보다는 절박한 한계 상황에 내몰린 멕시코와 멕시코 민중의 절박한 처지를 극적인 모습으로 상징화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이성형의 표현을 빌자면 그것은 "제도화의 결핍에 대한 시민사회 최후의 응답"이다. 미들브룩은 1982년 공황 이후 신자유주의 공세에 대한 멕시코 노동운동과 민중운동의 무기력한 대응을 '침묵의 소리'라 묘사한 바 있다. 최근 수년에 동안 국가 코포라티즘의 해체 현상, 정치적 다원화의 진전, 독립노조운동 세력의 성장 등의 모습이 나타나고 있지만, 멕시코 민중운동이 신자유주의의 추세에 거스르는 강력한 연대운동의 전선을 복구할 수 있기를 기대하기는 당분간 불가능한 듯하다.
신자유주의가 사민주의와 주 전선을 이루고 공방을 계속하고 있는 서구와는 달리 사민주의 혹은 복지국가의 제도적 교두보를 가지지도 못했고, 동아시아 국가들과 같은 발전주의 국가의 전통도 가지지 못했으며, 시민사회의 형성과 발전도 크제 지체되어 있는, 그리고 급진 계급주의 세력의 영향력도 매우 미미한 남미 나라들에서의 남아 있는 유일한 대안은 전통적인 공동체주의적 민중연대 전선의 구축뿐인 듯하다. 멕시코의 경우는 바로 이 점을 말해주는 대표적인 사례인데, 그 전망은 결코 밝지 못하다.
멕시코와 비교한다면, 한국의 경우 신자유주의 공세가 본격화하기 이전의 시기에, 그리고 경제위기에 직면하기 이전에, 정치적 재민주화의 과정이 시작되고 시민사회의 활성화가 진행되었으며 특히 배제적 국가 코포라티즘 노동체제에 균열을 일으킨 노동운동의 급진화가 진행되었다는 차이가 있다. 그러나 기존의 민중연대는 급속히 해체되어 반신자유주의 전선 구축의 과제는 거의 온전히 노동운동의 몫으로 주어져 있다. 새로 성장하고 있는 시민운동 세력들과 더불어 새로운 민중연대를 재구축하기 위한 노력이 진행되고 있으나, 이는 한국의 시민운동이 그 자체의 급진화, 진보화의 운동 단계를 우선 경과하지 않으면 안된다. 경제위기 이후 민주노총의 외로운 투쟁은 한국의 상황을 '침묵의 소리'는 아니게 만들었지만, 그것이 '메아리 없는 외침'의 상황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도 이러한 정황 때문이 아닌가 한다.
멕시코의 경우도 마찬가지이지만, 한국에서도 신자유주의 정책을 지속적으로 지지하고 그것을 뒷받침하는 사회계급적 기반을 찾아내기는 힘들 듯하다. 결국 문제는 반신자유주의 정책연대, 운동연대를 구축할 수 있는 사회운동의 역량에 달린 것이라 할 수 있다. 신자유주의 반대투쟁의 딜렘마는 그것이 기존의 계급구조 혹은 계급연대를 해체하고 다차원적으로 분해하며 사회구성원들의 연대와 결속의 끈을 잘라 내어 그들에게 개별자적 대응을 모색하도록 강압한다는 점에 있다. 한국의 경우 과거의 민중연대는 이제 거의 해체되었으며, 새로 대두하고 있는 시민운동 세력들은 기층 대중을 조직화하지 못하고 있을 뿐아니라 다양하고 분산된, 그리고 많은 경우 상호 모순적인 쟁점들의 분화선에 따라 흩어져 있다. 노동운동에 대해서도 많은 경우 적대적이거나 무관심하거나 혹은 이중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어 상호 연대는 쟁점별로 형식적인 결합을 이루는 수준을 넘지 못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것(세계화와 신자유주의의 광풍)은 일시적으로 고삐풀린 자본주의라 느끼고 있다. 그들은 그들의 대표들이 이에 대해 무엇인가 행동을 취하기를 바란다. 나는 그들이 이것이 현재와 같은 시장 경제의 논리적 귀결이며 자본주의 국가들이 그런 신자유주의 정책을 밀어붙이는 구조적 이유가 있음을 직시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이 힘에 진정으로 맞서고자 한다면 반자본주의적 시각으로부터 수혈받는 운동을 건설해야 함을 직시하기 바란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반대자들이 모두 이런 시각을 공유하고 있지도 않다는 것이 또 다른 도전이 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중요한 사실은 자본주의 자체가 점점 더 나쁜 대안과 선택지들을 만들어 내고 있다는 사실에 대하여 많은 노동대중들이 이를 인식하고 분개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Martin Hart-Landsberg)
아직도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한지 모른다. 그러나 그 시간 동안이라도 교두보 역할을 해내어야 할 책임이 그나마 노동운동에게 지워져 있는 것이 멕시코와 한국 모두의 상황이다. 누구도 그 전망을 쉽게 밝게 보지 못하고 있지만, 양국의 노동운동은 어떻든 기존의 노동체제를 해체하고 스스로 새로운 노동체제를 형성해 나가려는 노력을 기울이고는 있다. 멕시코의 신노동운동인 UNT가 해체되어 가고 있는 국가 코포라티즘 체제를 대신하는 새로운 모델을 형성해낼 수 있을지도 불확실하고, 한편으로는 분산적 노동조직 체제의 골간인 기업별노조를 해체하고 집중적 산별노조 체제를 건설하려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노동자 중심의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 작업에 애쓰고 있는 한국의 민주노조운동이 어떤 식으로든 미래 운동의 교두보를 확보해 나갈 수 있을지도 불확실하다. 그러나 대안의 확보가 가능하다고 한다면 어떻든 그런 노력 속에서만 비로소 찾아질 수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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