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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프 서영석 인터뷰 "지방대 중심 새로운 글쓰기 주류 발굴"

인터뷰/데일리서프라이즈 서영석 전문기자-“지방대 중심의 새로운 글쓰기 주류 발굴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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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작성일: 2004-09-22

“나는 보수주의자이다. 예를 들어 나는 공산주의나 사회주의처럼 분배의 시스템을 모두 바꾸자는 입장이 아니라는 것이다. 어느정도 자유경쟁을 보장하고 개인의 능력의 격차를 인정하고 그 능력의 차이에서 오는 문제는 사회적 시스템이 보장해 주고 하는 내가 생각하는 정도다. 이정도면 건전한 보수주의자 입장이다. 나 같은 사람이 보수주의자라고 할 때 우리 사회는 바뀐 것이라고 본다.”
송복남 편집장


"시대상황이 바뀌면 역할은 끝나는 것이다.”
웹진 서프라이즈의 서영석 전대표는 최근 데일리서프라이즈의 창간과 관련해 자신의 입장변화를 이렇게 말했다. 웹진 서프라이즈와의 관계청산은 특별한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2002년 대선 당시“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되므로써 내 역할이 끝났고 생각했는데, 의회의원들의 주체라는 문제가 남아있어 목숨이 연장된 것”뿐이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따라서“새로운 대통령 새로운 국회가 등장함으로써 새로운 출발을 위한 인프라 구축이 끝났기 때문에”자신의 역할은 끝났다고 봐야 한다는 것이다. 즉 웹진 서프라이즈 대표로서의 서영석이 아니라 데일리서프라이즈의 전문기자로서 자신의 역할을 찾아나섰다는 얘기다. 아울러 그는 웹진 서프라이즈와 데일리서프라이즈의 역할 분담만은 분명하게 선을 그었다. 그래서 웹진서프라이즈의 필진을 데일리서프라이즈로 영입하지도 않았다. 웹진서프라이즈의 영역과 역할은 그대로 놔두고 데일리서프라이즈는 새로운 글쓰기의 논객 즉 지방대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글쓰기 주류를 만들어 낸다는 계획을 실천하고 있다. 물론 서영석씨로서는 웹진서프라이즈의 논객들이“굉장히 좋은 분들이 많고 아깝”고 또“개인적으로는 쓰고 싶은 마음이 없지않”다. 그러나 데일리서프라이즈가 등장함으로써 서프라이즈의 영향력이 쇠퇴하지 않을까는 우려 때문에 역할분담만은 분명하게 지키고 데일리서프라이즈는“새롭게 모든 영역을 만들어 간다”는 원칙을 세웠다.

또 조선일보를 타겟으로 한 것이 아니냐는 의문에 대해서도 그는 단호하다. 오히려 조선일보에 대한 호의적인 부분이 있다는 점도 숨기지 않는다. “나는 조선일보가 갖고 있는 장점과 단점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다”라는 말에서도 드러나듯이“안티조선이라는 것은 목적을 가지고 있는 사회운동”이고 데일리서프라이즈는 언론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언론으로서의 데일리서프라이즈는“사회를 긍정적으로 변화해야 한다는 큰 목적은 가지고 있지만, 그것을 변화시키기 위해 그(조선일보) 조직을 죽여야 한다는 목적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는 것이다. 또“그럴 이유”도“없다”. 함께 그는 데일리서프라이즈의 오프라인으로의 확대계획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밝혔다.


서영석씨는 자신의 이념적 포지션에 대해서도 스스로 보수주의자라고 당당하게 밝히고 있다. “어느정도 자유경쟁을 보장하고 개인 능력의 격차를 인정하고 그 능력의 차이에서 오는 문제는 사회적 시스템이 보장해 주고 정도”가 그가 생각하는 사회변화의 정도다. 따라서 자신 같은 사람이“보수주의자라고 할 때 우리 사회는 바뀐 것이라고”본다고 말했다. 나아가“노무현정권은 중도우파인 보수주의정권이며, 보수주의자라는 이유로 나쁘다라고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다음은 지난 8월9일 데일리서프라이즈에서 그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데일리서프라이즈, 오프라인 계획 있다


서프라이즈에서의 입장정리가 끝났는데 그간 서프라이즈의 역할에 대해 자평해 달라.

“시대상황이 바뀌면 역할은 끝나는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되므로써 내 역할이 끝났고 생각했는데, 의회의원들의 주체라는 문제가 남아있어 목숨이 연장된 것이다. 이제 새로운 대통령 새로운 국회가 등장함으로써 새로운 출발을 위한 인프라 구축이 끝났기 때문에 내 역할은 끝났다고 봐야 한다. 계기가 없었는데 이번 일이 계기가 되서 정리를 하게 된 것이다. 서프라이즈는 앞으로 영구불멸하지는 않겠지만 상당히 오랫동안 나아갈 것이고 그런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다. 그러나 서프라이즈 속에서의 내 역할은 이제 이미 정리가 됐다. 나는 새로운 역할을 찾아 나아가야 한다. 과거에 연연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서프라이즈는 내가 없어도 새로운 개혁적인 담론들이 만들어지고 그런 것들이 전파될 것이고, 계속 지금도 성장하고 있잖은가.”

하지만 서전대표가 서프라이즈에 있고 없고의 차이가 있을 것도 같다.

“그게 서프라이즈 초창기 같으면 그럴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별 상관없다고 본다.”

데일리서프라이즈에 웹진 서프라이즈의 논객들이 옮겨오지 않는가?

“기본적으로 데일리서프라이즈는 웹진서프라이즈의 논객을 쓰지 않는다. 굉장히 좋은 분들이 많고 아깝다. 또 개인적으로는 쓰고 싶은 마음이 없지는 않은데 안 쓰는 이유는 행여 데일리서프라이즈가 등장함으로써 서프라이즈의 영향력이 쇠퇴하지 않을까는 우려가 있다. 그래서 역할분담을 시키는 것이다. 그 부분은 우리가 포기하는 것이다. 그것은 서프라이즈의 것이고 우리는 새롭게 모든 영역을 만들어 갈 것이다. 새로운 필자를 발굴하고 있고 이미 글쓰는 사람이 존재하고 있지만 우리는 새로운 글쓰기를 하는 사람을 발굴하는 것이 목적이다. 지금 서프라이즈는 자발적인 글쓰기를 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데일리서프라이즈는 언론으로서의 역할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인위적으로 숨어있는 새로운 글쓰기를 하는 사람을 발굴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흔히 글쟁이라는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들 말고 전혀 새로운 사람들을 발굴 등용할 것이다. 서프라이즈에서 글쓰는 사람을 데려오는 일은 없을 것이다.”
필진들의 이동은 자연스럽게 생기는 것이 아닌가.

“인위적으로 막을 수는 없지만, 인위적으로 막는다는 것이 어폐가 있지만, 어쨌든 서프라이즈의 논객들은 구조화 되어 있다. 그 자체가 움직이게 놔두는 것뿐이다. 우리는 칼럼리스트라는 현 글쟁이들이 주류를 배제하고 새로운 글쓰기를 하는 새로운 주류를 만들어낼 것이다. 제도권에서 현재 담론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이 아닌 지방대중심으로 한 글을 쓸만한 사람을 소개도 받고 접촉을 하고 있다. 우리는 사설이 없다. 사설을 쓸만한 사람이 없어서이다. 그렇다고 우리 형편에 논설위원을 초빙해서 할 수는 없다. 그래서 시론과 칼럼 위주로 해나갈 것이다. 기획하고 있는 게 4가지다. 첫째는 14명을 선정해 7명씩 나눠서 매주 1편씩 쓰게 하면 매주 2편의 칼럼이 나온다. 시론은 300명 정도의 투어를 구성해 시론을 쓰게 할 것이다. 또 하나는 우리가 정치전문이라고 하는 데 그건 아니고 데일리서프라이즈의 케치프라이즈가 중소기업을 살리자이다. 중소기업을 살릴 수 있는 방안들이 많이 논의되고 있는데, 중소기업 CEO들이 직접 글을 통해 자신들의 얘기를 하게 할 것이다. 한 60명에서 120명 정도의 CEO들을 구성해 두 달에 한 번 혹은 한 달에 한 번 씩 이들의 중소기업을 살릴 수 있는 현장의 목소리를 전달 할 생각이다. 그들이 중소기업의 활성화에 대한 대안까지 제시할 수 있는 CEO칼럼이 될 것이다.”

데일리서프라이즈가 오프라인으로 발전할 수도 있다고 보는데?

“오프라인 계획을 가지고 있다.”




데일리서프라이즈는 언론개혁 차원이다


웹진 서프라이즈에서 데일리서프라이즈에 필진들으로 참여하겠다는 사람이 있나?

“지금까지 그런 사람은 없고, 인터뷰전문기자 지승호씨는 같이 일할 것이다. 1주일에 한 번 정도이며 대가를 지불하게 된다.”

정치기자들이 중심으로 국회를 바탕으로 취재를 해나가겠다고 했는데.

“모든 사회문제 해결책을 고민하는 사람들이 국회의원들이다. 이들이 이런 역할을 하고 우리는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다. 이들이 취재의 바탕이다.”

기자 출신이고 잔뼈가 언론에서 굳었다. 진정한 언론이란 뭐라고 생각하는가?

“나는 기본적으로 언론개혁차원에서 접근하고 있다. 데일서프라이즈를 준비하면서 새로운 지식층을 만드는 것도 언론개혁과 같은 맥락이다. 중소기업을 살리자는 것도 마찬가지다. 중소기업을 살릴 수 있는 여러 방안이 많이 있지만 중소기업을 실제 운영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음으로써 정책결정자들이 정책에 반영하고 실천하게 하는 것이 중요한 것처럼 언론개혁을 해야한다는 말을 많이 하지만 언론개혁의 주체자들은 언론사 혹은 언론인들인데 그것이 여러 가지 제약조건 때문에 고쳐지지 않는다고 보고 있다. 그래서 우리가 이 일을 함으로써 스스로 고쳐지는 모습을 보이고 이것이 독자들에게 와닿고 인기를 얻고 영향력을 가짐으로써 다른 언론사들을 계인하자는 솔선의 목적이 있다. 언론사의 가장 큰문제점은 언론 자체가 권력화 되어 있다는 점이다. 언론이 권력화 되어 있다는 것에 대해 반대하는 사람도 있는데 나는 언론계라는 카테고리 자체가 권력이라고 본다. 왜 권력이냐 하면, 언론은 여론을 주도하고 있고 이 카테고리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자격조건이 제한이 되어 있다. 언론고시라는 게 괜히 나온 것이 아니다. 일단 들어가면 먹고사는 데 지장이 없고 지금 언론계는, 100% 그렇지는 않지만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서강대 외대 성균관대 등 5-6개 대학을 제외하면 들어가기가 힘들다. 이런 카테고리 속에서 들어가는 데 있어 기득권이 형성되어 있고 기득권 속에 들어가기만 하면 먹고사는 데 지장이 없고, 들어가고 나서는 취재도 잘 안하고 하는 많은 문제점이 생긴다. 그래서 우리 스스로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고 그런 카테고리에 들어가 있지 않은 제 3,4의 대학출신을 많이 포용해서 훈련을 시키고 열심히 취재하는 언론 내부의 개혁을 해보자는 목적이 있다. 그래서 우리는 언론사 간에 꺼렸던 언론사 이야기 기자들의 이야기도 쓸 것이다.”

그렇게 되면 영역의 침범 즉 사생활침해로 인한 명예훼손이라든가 하는 문제가 발생하지 않겠는가?

“법률자문단을 구성할 것이다. 5-6명 정도의 언론 관련 변호사를 구성해서 자문을 받아 나갈 것이다. 특히 언론과 관련한 기사는 대상이 있는 것이기 때문에 철저하게 자문을 받을 것이며 그것이 허용하는 범위내에서 할 것이다. 나는 소송에 관해 전문가다. 전체 5,60 건의 소송을 당해봤는데 단 한 건도 패소하지 않았다.”

기자의 자질은 뭐라고 보나? 기자는 다른 직업과 다른데, 국민들도 기자라는 직업에 대해 받아들이는 것이 다르다. 그래서 기자들의 글쓰기에 대한 고민이라든가, 취재의 성실성 등 기본적 기자로서의 정도가 있지 않겠나?

“글쎄, 기술적인 문제의 자질은 별 의미가 없다고 본다. 신문에 나오는 기사가 100% 사실이라고 믿는 것은 오산이다. 기사는 검증 시스템을 거치게 된다. 기자가 쓴 기사는 데스크의 손이 거쳐지기 때문에 기자가 쓴 것이 그대로 나오는 경우는 드물다. 우리 기자들 같은 경우 경력이 없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글쓰기에 문제는 있을 수는 있겠지만 훈련을 하고 있고 데스크진이 구성되면 별 문제는 없다고 본다. 오늘날의 기자는 생활인으로서의 위치를 무시할 수는 없다고 본다. 직업인으로 직장인으로서의 기자의 문제가 발생할 수는 있다고 보는데 다만 기자의 글이 사회적 영향을 끼친다는 점을 볼 때, 우리 사회의 변화를 긍정적으로 주도하는 데 기여하자는 공동의 목적을 가져야 한다고 본다. 이런 공공의 목적이 있기 때문에 기사를 생산하는 것이지 특별히 누구와 무슨 원한관계에 있어 기사를 쓰는 것이다. 조선일보 같은 경우 못할 짓을 많이 하기 때문에 응보를 받을 언론사이지만 우리가 꼭 그걸 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조선일보도 언론사라는 카테고리 안에서 다룰 뿐이다. 다만 조선일보가 사회적 영향력이 크고 사회적 해악이 크기 보다 좀더 다른 언론사 때문에 많이 다룬다는 차이점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조선일보를 유독 타겟으로 생각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조선일보 죽이기 위해 데일리서프라이즈 있는 것 아니다

그러나 조선일보와의 이념적 대립각은 있지 않겠는가?

“나는 조선일보가 갖고 있는 장점과 단점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다. 장점보다 단점이 많기 때문에 장점이 상대적으로 가려지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객관적 입장에서 조선일보를 바라보고 있다. 안티조선이라는 것은 목적을 가지고 있는 사회운동이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사회를 긍정적으로 변화해야 한다는 큰 목적은 가지고 있지만, 그것을 변화시키기 위해 그 조직을 죽여야 한다는 목적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우리로서는 그럴 이유가 없다. 조선일보는 스스로 무너진다든가 시민운동으로 인해 타격을 받을 수는 있지만, 우리가 조선일보를 죽이기 위해 등장한 것은 아니다.”

아직 사이트 오픈 전이지만, 취재가 진행됐을 텐데, 특종이랄 기사는 있나?

“그건 우리 영업비밀이기 때문에 말 할 수는 없고, 뭐 너무 어렵게 큰 기대를 하지 않는 것이 좋다. 한 번 나온 것을 보고 기대를 하고 기대를 접고 그럴 필요는 없다고 본다. 우리는 유난을 떨지도 않을 것이고 처음에 굉장히 많은 기대를 한 사람들에게는 실망이 될 수도 있을 것이고 반대로 야 좋다라고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루 이틀에 평가 받을 수 있는 게 아니라, 장기적으로 평가를 받아야 한다고 본다. 하루 이틀의 평가를 위해 특별한 것을 준비하고 있지는 않는다.”

기자들은 온라인 출신인가 오프라인 출신인가?

“오프라인 출신들이 대부분이다.”




마지막으로 전문기자로서 일하고 싶다

웹진 서프라이즈하면 노빠라고 부르는데, 이런 대중적 이미지가 데일리 서프라이즈에도 그대로 인식되어지지 않을까 하는데.

“서프라이즈는 정론이다. 대중의 인식이 잘못된 것이다. 개혁을 하자 그랬는데 그 개혁의 주체가 노무현대통령이어서 그것을 지지한다고 노빠라고 부르는 것 자체가 문제다. 80%이상은 노빠와 관련이 없다. 그건 기사가 말해 줄 것이다. 내가 스스로 노빠다 아니다 말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본다. 우리가 하루 이틀 하고 말 것도 아니고 장기적으로 할 것인데.”

데일리서프라이즈에서 서대표의 역할은 무엇인가? 경영자도 영입을 하고 편집국장도 영입한다고 하는데 구태여 서대표가 중책을 맡지 않아야 할 이유가 있나?

“구태여 그렇게 할 필요가 없다고 보는 사람도 있고 그럴 필요가 있다고 보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그런 것과는 상관없이 내가 스스로 결정한 것이다. 나는 책임있는 역할을 맡는 것이 싫고 지겹다. 또 한다고 생각하니까 캄캄했다. 나는 기자로서의 역할을 더 하고 싶다. 전문기자로서 더 활동을 하고 싶은 뿐이지 나는 남의 얘기를 듣는 사람이 아니다. 이외에는 다른 이유가 없다. 다만 이 계획을 진행하면서 마지막으로 기자로서 일을 더 하고 싶다는 욕망이 강했다. 언론개혁이라든가, 친일문제라든가 이런 기획시리즈를 계획하고 있는데 이런 것이 내가 해야 할 일이 아닌가 하는 느낌이 많이 들었다. 그러나 전반적인 부분은 능력있는 편집국장에게 맡기고 나는 세부적인 부분을 맡아 심도있게 일하는 게 낫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나는 내가 없어도 돌아갈 수 있는 시스템을 빨리 만들어놓고 앞으로 평생 놀고먹을 것이다. 내 소원이 평생 놀고 먹는 것이다. 그걸 위해 최선을 다 할 것이다.”

열린우리당의 총선 이후 개혁추진을 어떻게 보는가?

“열린우리당에 대해서는 섣부른 판단은 금물이다. 지금 노무현대통령이 하고 있는 것도 그렇고 열린우리당이 하는 일도 그렇고 우리 사회의 수십 년의 틀을 바꾸는 일이다. 어쩌면 이일은 끝까지 가야하고 다음 정권까지 가야 하는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쉽게 단기간에 표가 나고 평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의 방향과 수순이 제대로 되고 있는가를 봐야 하는데 그런 면에서는 긍정적이다. 어떤 일을 목적으로 갈 때는 여러 과정을 거치는데 돌아가기고 하고 곧바로 가기도 한다. 앞서간다고 좋아할 필요도 없고 돌아간다고 비난할 필요도 없다. 중요한 것은 그곳으로 가고 있는 가이다. 어떤 한 가지 일을 놓고 판단을 하는 것은 숲은 안보고 나무만 보는 것과 같다.”


이런 질문을 하고 싶었다. 이 시대의 진보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글쎄, 진짜 어려운 질문인데.”

나도 몰라서 묻는 것이다.

“나는 노무현대통령의 표현이 딱 맞다고 본다. 우리사회가 어떤 방향으로든지 앞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데 이 틀을 바꿔서 가자는 사람과 반대로 아니다 그대로 가도 된다라는 사람이 있는데, 이 둘이 싸우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바꾸고 나가자는 사람이 진보이고 그냥 가자는 사람이 보수라고 본다. 그러나 이념적으로 보면 굉장히 다르다. 이념적인 측면에서 보면 바꾸고 나가자는 사람도 보수일 수 있다. 나도 보수주의자이다. 왜 보수냐. 우리 사회의 주류를 바꾸자는 데는 변함이 없지만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틀을 완전히 뜯어고치자는 입장은 아니다. 예를 들어 공산주의나 사회주의처럼 분배의 시스템을 모두 바꾸자는 입장이 아니라는 것이다. 어느정도 자유경쟁을 보장하고 개인 능력의 격차를 인정하고 그 능력의 차이에서 오는 문제는 사회적 시스템이 보장해 주고 하는 정도가 내가 생각하는 것이다. 이정도면 건전한 보수주의자 입장이다. 좌파의 시각으로 보면 보수주의가 맞지만 보수주의자라는 이유로 나쁘다라고 할 수는 없다고 본다. 노무현정권도 보수주의 정권이다. 역시 노무현정권도 보수주의인데 보수주의이기 때문에 나쁘다고 욕을 먹을 이유는 없다고 본다. 노무현 정부는 중도우파정권이다. 이런 측면에서 나도 중도우파다. 자칭 우파 입장에서는 좌파고 자칭 좌파입장에서 보면 우파이다. 한나라당은 절대 보수가 될 수 없다. 그들은 수구이다. 나 같은 사람이 보수주의자라고 할 때 우리 사회는 바뀐 것이라고 본다.”

역사는 진보한다고 보는가?

“명백하게 진보하고 있다. 역사가 진보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노무현이 대통령이 되고 열린우리당이 다수당이 됐겠나. 느리지만 꾸준히 나가고 있다. 우리나라 사람이 만만한 사람들이 아니다. 외국에 나가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우수하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게 된다.”

개인적 화두는 무엇인가?

“아무 생각없이 놀면서 살자는 목적을 향해 지금까지 일하면서 살아왔다. 무위도식을 최상의 가치로 생각하고 산다. 무위도식을 위해 일을 해야 한다는 아이러니 속에서 살아왔다.”

무슨 선문답하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니다. 진짜 그렇다. 나는 책임감 같은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사람이다. 지금부터 내 생의 최대 목표는 빨리 손을 털고 약간의 돈을 가지고 읽고 싶은 책을 읽고 쓰고 싶은 글을 쓰면서 사는 여건을 만드는 데 노력할 것이다. 나는 남의 시선은 전혀 신경쓰는 사람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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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스트]중-일, 적인가 동지인가

가깝고도 먼 中-日, 적인가 동지인가?
이코노미스트誌 특집기사   
기동훈련 중인 일본의 해상자위대


[이코노미스트誌 특집기사]

일본과 중국. 일반적으로 두 나라는 옛날부터 가깝고도 먼 나라로 알려져 있다. 더욱이 근세에 들어서는 양국은 처절하게 전쟁을 벌인 적대 국가이기도 했다. 그 후유증은 오늘날까지 치유되지 않고 남아 있다. 영국의 시사경제전문지인 이코노미스트(Economist)는 특집기사(4월1일자)를 통해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일본과 중국의 영토*역사분쟁을 심층 분석했다. 이에 본지는 기사의 전문을 소개한다.<편집자주>

日中, 경제적 상호 의존관계

만일 아시아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진 두 나라(일본, 중국)가 서로 가까워지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고자 한다면 이를 뒷받침하는 증거는 쉽게 찾을 수 있다. 실제로 지난해 중국은 홍콩을 포함할 경우 미국을 제치고 일본의 제1위 교역대상국으로 부상했으며 일본은 미국과 함께 중국의 가장 중요한 교역대상국이다.

90년대까지만 해도 일본의 기업인들은 중국과의 경쟁을 우려했다. 그러나 이는 기우에 불과했다. 일본과 중국의 경제관계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상호 의존관계로 바뀌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인들은 중국의 값싼 물건을 사들이고 있으며 중국인들은 일본의 정교한 장비를 자국으로 들여와 공장을 가동시키고 있다.

한편 일본과 중국은 동남아시아와 동북아를 아우르는 동아시아공동체 구축에도 함께 참여하고 있으며 달러 환율의 하락을 막는데 있어서도 서로의 이해관계를 공유하고 있다. 특히 지난 2000년에 일본과 중국은 외환위기를 피하기 위해 ASEAN 국가들과 함께 외환위기가 있을 경우 각국은 자국의 보유외환을 상호 교환한다는 ‘치앙마이협정’을 약정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증권거래자들과 음모이론가들 사이에서는 일본과 중국이 경제뿐만 아니라 조만간 국제문제에 있어서도 공조체제를 갖출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물론 이와 같은 전망은 여러 정황으로 봤을 때 충분히 설득력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동안 일중양국은 고위급 군사회담을 갖기도 했으며 90년대 말까지만 해도 중국의 지도자들은 중국이 본받아야할 경제 모델로 일본을 꼽았다.

日, 中의 군사력 팽창 우려

그러나 최근에는 이와는 반대되는 전망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즉 지난 세기 쓰라린 라이벌 관계였던 일본과 중국이 여전히 긴장관계를 지속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일례로 지난해 11월 10일 일본 최남단 오키나와(沖繩)현 사키시마(先島)제도의 일본 영해를 중국의 한(漢)급 원자력 잠수함이 세 시간 동안 휘저었다. 이 때문에 일본에는 비상이 걸렸다. 핵 잠수함이 사전에 아무 통보 없이 영해에 들어왔다면 이는 공격이나 다름없는 행위였기 때문이다.

이 사건은 결국 일주일 뒤 중국이 일본에 유감을 표명하면서 해프닝으로 끝나는 듯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중국이 잠수함 함대의 규모와 전력, 활동범위 등을 확대하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이런 사건이 계속 발생할 게 확실시된다고 지적하고 있다. 중국이 현재 보유하고 있는 잠수함은 70여대로 2010년까지 20대가 추가된다. 증강 분은 첨단 장비를 갖춘 스텔스형 잠수함이다. 이 중 3대가 원자력 추진이다.

이렇게 되면 중국은 비록 성능 면에서는 뒤질지라도 수치상으로는 미국보다 더 많은 잠수함을 갖게 된다. 이러한 중국의 ‘잠수함 세 불리기’는 이웃 나라들을 자극하고 있다. 동북아시아의 상품 수출과 에너지, 원자재 수입에 이용되는 해상 수송 항로를 사실상 중국이 장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일본은 최근 미국과의 합동 안보 성명서에, 대만에 대한 중국의 점증하는 위협을 우려하는 구절을 공개적으로 포함시켰다.

이에 대해 중국은 일본이 대만문제에 관여하는 것은 내정간섭이자 헌법을 개정한 뒤 군사력을 증대하기 위한 상징적 움직임이라며 일본을 비난했다. 지난 12월 발간된 일본의 방위백서는 중국을 자국에 대한 ‘위협’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에 중국은 국방비 증액으로 맞서고 있다. 중국의 올해 국방비는 지난해보다 12.6% 늘어난 2500억 위안(약 30억 달러)에 달한다. 이는 지난 1996년 이후 연 10년째 이 어지는 두 자리 수 증액이다.

중국의 올해 국방비는 물론 미국의 4000억 달러(400조원), 일본의 470억 달러(47조원)에 비하면 아직 절대액수에서 적다. 그러나 다른 예산에 숨겨진 것으로 의심되는 유사 국방비 항목을 따질 경우 상황은 달라진다. 현재의 최대 4배, 최소 2배는 된다는 것 이 일반적인 평가다.

한편 일중 양국의 고위급 외교 관계자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지난 2001년 이후 일본의 고이즈미 총리는 중국을 공식적으로 방문한 적이 없다. 물론 중국도 지난 1998년 장쩌민이 일본을 방문한 이후 공식적인 중국 지도자의 일본 방문이 없는 상태다. 이는 지난 1972년 양국의 외교관계가 정상화된 이후 가장 긴 양국간 외교관계의 공백기라고 할 수 있다.

센카쿠 제도를 둘러싼 영토 분쟁

특히 일본과 중국은 영토분쟁중이다. 양국간 영토분쟁의 핵심은 센카쿠제도(釣魚島*중국명 댜오위다오)를 둘러싼 영유권 분쟁이다. 갈등의 1차적인 씨앗은 석유자원이다. 5개의 무인도로 구성된 이 섬에서 1970년대 석유 매장이 확인되면서 양국간 영토분쟁이 끊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일본이나 중국 모두 역사적인 근거를 들이대며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특히 중국의 경우 시민단체 회원들이 지난 20년 동안 수시로 센카쿠제도에 상륙해 시위를 벌여왔다.
일본과 중국의 영토분쟁

현재 일본 방위청은 센카쿠제도의 경계 태세를 강화하기 위해 이 섬에서 가까운 사키시마(先島) 제도에 육상자위대 200명을 주둔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일본 정부는 지난 2월에도 센카쿠제도에 설치된 등대를 국유화해 중국의 반발을 샀다. 대만 역시 센카쿠제도가 일본의 식민통치를 받기 전부터 대만 동부 이란(宜蘭)현에 속한 지역이라며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동중국해의 중국*일본 중간수역에서 벌어지는 천연가스 확보 분쟁도 현재진행형이다. 이는 중국의 춘샤오(春曉) 천연가스전 개발을 둘러싼 갈등으로 이 지역은 일본과의 경계해역에서 불과 5㎞ 떨어졌다. 일본은 중국이 이미 1986년 해저지질조사를 통해 일본과 배타적 경제수역(EEZ)이 겹치는 중간지점을 넘어서까지 엄청난 천연가스와 석유가 매장되어 있음을 파악했다고 보고 있다.

일본은 그동안 사실관계를 중국 측에 문의하는 한편 상세 데이터 제출을 재차, 삼차 요구했으나 중국은 공동개발 제안만 되풀이하고 있는 상태다. 일본과 중국 정부는 지난 99년부터 ‘해양법문제에 관한 중*일 협약’ 체결 협상을 시작했지만 이것도 진전이 없다. 이처럼 점증되는 일본과 중국의 긴장관계는 결국 두 나라의 경제적 의존관계가 심화됨에 따라 사라지게 될까? 현실주의적 관점에서 보면 두 나라의 관계는 동전의 양면과 같다.

상호의존과 상호경쟁 관계

전문가들은 중국과 일본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맹주 자리를 놓고 서로 치열하게 경쟁하면서도 동시에 순망치한(脣亡齒寒)의 의존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상호의존과 상호경쟁의 양면을 지닌 관계’로 보고 있다.

역사를 보면 중국은 19세기 이전 까지만 해도 일본에 대한 승자였다. 그러나 20세기 들어와 일본은 정치경제적으로 중국을 앞질렀다. 일본은 대만과 조선을 속국으로 만든 후 중국을 침략 했다. 특히 2차 세계 대전 이후 일본이 60~70년대 고도의 경제성장을 달성한 반면 비슷한 시기 중국은 경제적으로 낙후돼 있었으며 문화대혁명의 여파가 사회 전반을 휩쓸고 있었다.

그러나 지난 30년 동안 중국의 등소평은 중국의 경제 체제를 계획경제에서 자본주의경제체제로 바꾸어 놓았다. 이에 따라 중국이 다시금 일어서고 있다. 현재 대부분의 선진국들은 중국의 경제성장을 기회로 보는 동시에 우려하고 있다. 일본의 경우 현재까지 경제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아직까지 중국을 다른 나라들처럼 경계하고 있지는 않다. 이유는 앞서 말했듯이 일본과 중국의 경제관계가 상호의존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일본과 중국이 장기적으로 자원 확보를 둘러싸고 상호 경쟁관계에 들어설 것으로 보고 있다.  

치열한 日中간 자원 확보전쟁

일례로 중국은 지난해 일본을 제치고 미국에 이어 세계 2위의 원유 수입국이 됐다. 이 때문에 지난해 일본과 중국은 러시아가 건설하게 될 사상 최초의 시베리아 석유 파이프라인(송유관)이 자국을 경유하도록 하기 위해 서로 경쟁했으나 러시아는 결국 일본의 손을 들어줬다.

양국학자와 관료들은 오늘날 일본과 중국 사이의 대립관계가 생기게 된 근본적인 원인을 20세기 역사에서 찾는다. 역사적 관점에서 보면 양국의 대립은 상호 불신(mistrust)에서 비롯된 것이다. ‘중국사회과학원’의 가오 헹(Gao Heng)박사는 일본의 정치인들 중 일부는 여전히 대만을 속국으로 만들기를 원하는 것 같다며 대만의 군인들이 일본에서 비밀리에 훈련을 받는 것을 예로 들었다.

그러나 가오 박사의 경우 일본에 대한 선입견을 가지고 있다. 그의 부모는 과거 일본군을 피해 지하 굴에 숨어 살았으며 박사 자신도 이 시기(1939년)에 태어났기 때문이다. 한편 최근 나고야에서 열린 비공개 경제 단체장들의 모임에서 일본의 한 경제인은 최근 동아시아에서 중국이 보이고 있는 영토적 야심 그리고 자원 확보에 대한 야망은 1930년대 히틀러가 추구했던 ‘레벤스라움’(Lebensraum*게르만 인종을 위한 영토 확보)과 다를 바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중국의 이와 같은 야심을 일본은 어떠한 희생을 치러서라도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양국의 자존심과 불신의 대결은 군중집회나 인기에 영합하는 정치판에서 쉽게 접할 수 있다. 지난해 8월 베이징에서 개최된 아시안컵 축구대회에서 중국의 젊은 관중들은 일장기를 태우고 일본의 외교관 차량을 파손시키는 등 한바탕 난동을 부렸다. 이와 같은 난동은 얼마 전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전범(戰犯)들의 신위가 모셔져 있는 도쿄의 ‘야스쿠니신사’를 고이즈미 총리가 방문했을 때에도 발생했다.  

당시 일본의 경제 인사들은 중국과의 경제관계를 고려해 고이즈미 총리의 신사 참배를 만류했다. 그러나 고이즈미 총리는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사람들은 존경받아 마땅하다며 재계 인사들의 충고를 뿌리쳤다. 고이즈미 총리의 발언은 일본이 더 이상 중국의 압박을 좌시하지 않겠다는 것으로서 매우 함축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아시아에서 중국만이 유일하게 고이즈미 총리의 신사참배에 항의하는 나라는 아니다. 한국도 중국과 같은 입장을 취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 그동안 중국처럼 집단적인 대규모 반일 시위는 없었으며 대부분 한일 양국 정부관계자들의 유감표명으로 끝나곤 했다.  이처럼 아시아에서 일본과 중국의 관계는 유럽에서 독일과 프랑스의 관계와 같다고 할 수 있다.

차이가 있다면 일본과 중국에는 아직까지 지난 1984년 베르덩(Verdun)에서 “다시는 역사에 과오를 남기지 말자”면서 함께 손을 잡았던 독일의 헬 무트 콜과 프랑스의 프랑수아 미테랑 같은 지도자가 없다는 점이다. 특히 독일과 프랑스가 1945년 이후의 역사를 왜곡한 사례가 없는 반면 일본의 경우 역사교과서를 통해 20세기 초반 일본의 중국 침략을 정당화 하는 한편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이 중국에 가한 최대 잔혹행위의 하나인 난징대학살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다.

민주주의-공산주의의 대립

중국도 역사를 왜곡하기는 마찬가지다. 중국은 지난 1989년 천안문 사태 당시 비무장 상태의 시위대를 무력 진압했던 중국 공산당의 과오를 감추기 위한 하나의 방편으로 역사교과서를 통해 반일감정을 고취시키고 있다. 이처럼 일본과 중국의 긴장관계는 서로가 정치*경제*역사적 이해관계를 너무나도 잘 인식하고 있는 가운데 발생하고 있다. 특히 양국의 긴장관계는 공산주의(중국)와 민주주의(일본)를 기반으로 하고 있는 양국의 정치체계가 바뀌지 않는 한 앞으로 계속될 것이다.

이 때문에 유럽연합(EU)과 같은 동아시아 공동체를 구성하려는 양국의 노력은 필연적으로 한계에 부딪칠 수밖에 없다. 실제로 동아시아공동체와 같은 연합체제는 기본적으로 어느 정도의 국가 주권을 공동체에 양도하려는 의지가 수반되어야 한다. 그러나 중국의 경우 어느 한 순도간도 자국의 주권을 양도하는 것에 대해 고려해 본적이 없다. 물론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일본과 중국도 현재 쟁점이 되고 있는 국가주의적 성향을 버리고 새로운 역사를 창조하고자 하는 노력을 기울인다면 양국의 긴장관계는 완화될 것이다.

이를 실현키 위해 일본은 야스쿠니 신사의 지위와 관련된 문제, 그리고 과거 전쟁피해자들에 대한 보상 문제를 진지하게 검토해봐야 할 것이다. 중국의 경우 일본과 관련된 중국 역사를 학자들이 충분한 토의를 거친 후 서술할 수 있도록 장려하여 반일 감정을 부추기는 행동을 자제해야 할 것이다. 특히 중국은 현재 심각한 갈등을 야기하고 있는 해양주권문제와 관련해 일본과 진지한 협상을 시작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야스쿠니 문제의 해법은 2006년 선출될 신임총리가 고민해야 한다. 고이즈미 총리는 국가의 자존심이란 차원에서 일본의 알링턴 국립묘지 격인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야스쿠니 신사는 1940년대부터 민간종교시설이기 때문에 정부는 그곳에 안치된 전범을 옮기라고 명령할 헌법상의 권리가 없다고 고이즈미 총리는 말했다. 이점은 사실이나, 알링턴이나 프랑스의 무명용사 묘지처럼 총리가 논란의 여지없이 참배할 수 있는 정부가 운영하는 묘지를 설치하는 것이 해법이 돼야 함을 의미한다.

한편 모든 전시 배상은 1951년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으로 해결되었다는 것이 일본의 공식적 입장이라는 것이 보상 이슈의 핵심이다. 하지만, 최근 독일이 강제노동에 대해 보상을 재개하기로 한 것처럼, 일본도 강제노역이나 전시의 정신대 여성들에게 포괄적인 보상을 제공하라는 압력을 계속 받을 가능성이 크다.

전시 동기 및 행위에 관한 일본 내부의 논의가 발전의 징표인 것만은 틀림없다. 다원적인 사회에서, 일본이 잘못한 것이 뭐가 있냐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그와 같은 소수의 견해가 중국의 발전에 따라 일본도 힘이 필요하다는 선동과 정치적 감정과 결합할 경우 힘을 얻게 된다. 따라서 일본과 중국의 경우 패권추구 대신 화해를 추구할 때만이 긴장은 가라앉을 것이다.

김필재 기자 spooner1@


김필재기자  2005-04-05 오후 4: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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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문제 관련 일본 좌파 입장

“노무현정권 동정은 신자유주의에 대한 가담”
독도문제와 관련된 일본진보정당과 좌파단체의 최근 입장

 

최백순 기자 redsqure@dreamwiz.com

 

   
 ▲ 일본공산당 기관지 적기(赤旗). 일본공산당은 독도문제에 다소 애매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최근 민주노동당 최고위원회 명의로 발표된 ‘독도군대주둔’ 성명으로 당 내부에서 치열한 논쟁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일본의 진보정당과 좌파단체들이 독도문제에 관한 입장을 속속 피력하고 있다. 이들은 독도문제와 관련해 다소의 차별화된 입장을 발표하고 있지만 공통적으로 일본정부의 태도는 동북아 평화에 대한 심각한 도전행위로 규정하고 있다.

상호주권을 인정하고 교섭을 통해 해결해야

민주노동당과 공식적인 교류관계를 가지고 있는 일본 신사회당은 기관지를 통해 “노무현대통령의 3.1절 기념연설을 지지하고 연대”한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구체적으로 독도문제를 언급한 것은 아니지만 ‘일제침략의 사과와 배상’을 주장한 노대통령의 발언을 지지하는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일본사민당의 입장이 발표되지 않고 있는 것은 다소 의외.

일본공산당은 구체적 입장을 속속 발표하고 있다. 일본공산당은 ‘교섭에 의한 해결’이 당론인 것이 확실해 보인다. 3월 6일 당 기관지인 적기를 통해 “다케시마의 날 강행은 교섭에 의한 해결을 어렵게 만든다”라는 공식적인 입장을 밝혔다.

3월 6일자 적기는 시마네현(縣) 의회의 ‘다케시마의 날’ 제정과 관련하여 공산당 소속의 미촌(尾村) 현의원의 질의내용을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미촌 현의원은 현의회 질의에서 “다케시마는 1905년의 영유 수속 이전에도 일본의 문헌 등에 일본의 실효 지배를 나타내는 내용이 있어 역사적으로도 일본에 다케시마의 영유권이 있다는 주장은 근거가 있다”고 지적했다

미촌 현의원은 계속해서 “한국은 일본의 영유권 주장은 조선의 식민화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진 것이라 무효라고 주장하고 있어 검토해야할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즉, 교섭에 의한 해결이 당론인 점에서도 보듯 공산당 의원들의 입장은 다소 애매한 양시론 성격을 보여주고 있다.

다리를 밟는 쪽은 잊어버리지만, 밟히는 쪽은 기억 한다”

미촌 현의원은 이어서 “다케시마에는 1905년 문제 등 복잡한 경과와 배경이 있어 그 올바른 해결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상호의 주권을 존중하고 평화 우호의 정신과 원칙을 관철하면서 끈질기게 교섭해 해결해야 마땅하다”며 이러한 조례 제정 강행은 교섭에 의한 독도 문제의 해결을 어렵게 만든다며 우려를 표했다.

가즈오 공산당위원장은 3월 16일 국회기자회견에서 “독도 문제의 올바른 해결을 위해서는 양쪽 모두 일방적인 조치를 취해서는 안 된다”라며 “선린우호의 관계 속에 공동의 노력으로 해결하는 자세가 요구 된다”고 교섭에 의한 해결이라는 당론을 재차 확인했다.

3월 18일 공산당 소속의 오가타 국회의원은 대정부 질문을 통해 다케시마 문제는 “식민지배의 피해를 받았던 한국의 국민감정을 고려해 문제 해결에 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입장을 밝히고 답변을 요청했다. 마츠쿠라 외상은 “지적한 대로다”라며 “교섭에 의한 해결을 모색하고 싶다”고 답변했다고 적기(3월 19일자)는 소개했다.

외상은 20여회 방한한 사실을 거론하며 “다리를 밟는 쪽은 잊어버리지만, 밟히는 쪽은 기억 한다”는 속담을 들어 독도영유권문제와 침략문제는 별개라는 입장을 피력했다.

“영토 약탈은 침략전쟁의 시작”

독도문제와 관련해 일본의 좌파단체들은 보다 적극적이고 분명한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제4인터내셔날 일본지부(혁명적 공산주의자동맹)는 4월 4일자로 발행되는 당 주간지 ‘다리’를 통해 “다케시마의 날 조례는 국수주의자가 현 의회를 포위한 상황 속에서 채택되어 일본제국주의의 이익을 위한 것이 드러났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일본의 독도영유권 주장이 일본의 침략행위라고 강력하게 비난하는 동시에 노무현 정권의 반일 강공정책은 “동북아의 평화와 번영이라는 기본구상이 정치, 경제 환경 속에서 파탄 났음을 선언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또 부시와 고이즈미의 과도함을 이유로 노정권을 동정하는 것은 “노정권이 진행하는 무자비한 신자유주의 정책에 가담하는 것을 의미”한다며 한국과 일본의 노동계급이 연대해 신자유주의 파고를 독도문제로 돌리려는 양국 정권에 저항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제4인터내셔널 일본지부는 이러한 민족주의 강공이 “노무현 정권에 대한 노무현의 두뇌 역할을 하는 한국 민중운동의 “옛” 투사들이 반일 기운을 이용해 한국과 일본의 노동자 민중을 분리하기 위해서 달콤한 말로 포장한 이번 [성명]을 만들어낸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청와대 참모진에게 직격탄을 날렸다.

일본의 주요 좌파단체인 혁마르파(혁명적공산주의자동맹 맑스주의파)와 중핵파(혁명적공산주의자동맹 중핵파)도 각각 기관지 해방과 전진을 통해 ‘국제연대’를 강조했다. 특히 중핵파는 4월 4일자로 발행되는 기관지를 통해 “일본은 최근 평화 헌법개정의 움직임과 함께 평양 선언에 반하는 대북 적대정책의 지속이라는 군국주의 망동을 즉각 중단해야 마땅하다”는 민주노총의 성명을 소개하고 있다.

 

2005년 04월 0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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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를 차리려면?

출판업은 관할등록청(구청)에 신고하여야 하는 사업입니다. 신고를 하지않고 출판업을 영업하는자는 300만원이하의 과태료에 처하게 됩니다.

우선 사업을 시작하시려면 사업에 필요한 여건에 대하여 다시한번 신중히 검토(판로,자금, 인력확보 등)하셔야합니다. 그리고 나서 성공에 대한 확신이 있으시면 사업의 실체를 만드셔야 합니다. 즉 개인기업 또는 법인기업을 설립하셔야 합니다. 사업의 체에대한 인적구성과 물적구성(자본구성, 사업장확보)준비가 되시면 법인기업은 상업등기소에 등기를 하여야 합니다.

다음으로 출판사등록신청을 관할구청에 하시야됩니다. 이때 등록신청서와 사업장매매계약서(임대차계약서), 법인등기부등본(법인기업인경우)을 제출하셔야 합니다.

출판사신고필증을 받으신 후 관할 세무서에서 사업자등록을 합니다. 이후 사업을 진행하시면 됩니다.

출판업은 부가가치세법상 면세사업자이어서 부가가치세법상 사업자로서의 의무는 가벼운반면 이후 사업목적이 추가되면 면세사업과 과세사업을 분리하여 관리하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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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반제국주의를 생각한다 -장석준

 

다시 반제국주의를 생각한다

장석준


최근 들어 ‘반미자주화’투쟁이 다시 힘을 얻고 있다. SOFA개정투쟁이 광범한 지지를 얻고 있는가 하면, 매향리 미군사격장반대투쟁은 공중파에 1시간 짜리 르포로 보도되기도 했다. 또한 녹색연합이 폭로한 용산 미군기지 포름알데히드방류사건은 미군 당국의 사과 거부로 국민적인 분노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 동안 한총련 학생들의 철없는 구호로만 여겨져왔던 ‘주한미군철수’ 요구는 이제 전혀 그렇게 다가오지 않는다. 과연 지금 한반도에는 ‘반제국주의 직접투쟁’의 르네상스가 도래하고 있는 것인가?

그러나, 이러한 움직임의 이면에는 이와는 다소 모순되는 듯이 보이는 또 다른 변화도 감지된다. 남북정상회담 이후 북한 당국이 천명하고 있는 주한미군문제에 대한 ‘전향적’ 접근이 그것이다. 북한 당국은 주한미군문제를 남북회담의 기본전제로 내세워왔던 그 동안의 태도를 백팔십도 바꿔, 이제는 단순히 주한미군문제 거론의 유보 정도를 넘어서서 주한미군의 장기간 주둔까지도 수용할 수 있다는 언질을 흘리고 있다. 이에 따라 남한 통일운동 일각에서도 미묘한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최근 진보진영의 통일 관련 토론회석상에서는 일부 통일운동 활동가들이 북한의 입장 변화에 따라 남한 통일운동 진영도 주한미군문제에 대해 신축적인 입장을 가져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을 제기하는 모습이 눈에 띠었다. 한편에서는 주한미군철수 요구가 모처럼 대중적인 슬로건으로 등장하고 있고, 다른 한편에서는 이제까지 주한미군문제에 대해 가장 강경한 입장을 보여왔던 통일운동 내부에서 소위 ‘유연한’ 입장을 이야기하기 시작하는 이런 모순된 상황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것인가?

이러한 작금의 혼란스러운 모습은 그 동안 우리 민중운동의 큰 흐름 속에서 제 위치를 찾지 못했던 반제국주의투쟁이 그 뿌리부터 새롭게 인식되어야 할 필요성을 웅변한다. 사실 민중운동 내 비NL 진영이 주한미군철수 요구 등에 대해 비판하면서 내세웠던 가장 강력한 논거는 그것이 해당 국면에서 지극히 몰정세적이라는 데 있었다. 그러나, 현재의 반미투쟁은 그러한 비판의 사정권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 있다. 


반미제국주의투쟁의 새로운 가능성


사실 미군문제가 불거지고 있는 것은 한국만의 특수한 상황은 아니다. 이미 제도 언론에서도 관심있게 보도하고 있는 것처럼 남미의 미국 식민지인 푸에르토리코 비에케스섬에서도 미군사격장에 대한 반대투쟁이 활발하게 벌어지고 있으며, 일본의 오키나와에서는 이미 몇십년의 전통을 갖고 벌어지고 있는 미군기지반대운동이 최근 일련의 미군 범죄를 계기로 다시 한 번 크게 불붙고 있다.   

하지만, 이뿐만이 아니다. 단순히 미군문제에만 한정하지 않는다면, 반미투쟁의 물결은 전 세계적인 흐름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남미에서는 냉전 붕괴 이후 미국 자본의 경제 침투와 미국 정부의 대(對)남미 직접지배전략이 노골화되면서 반미제국주의투쟁이 새로운 부활을 경험하고 있다. 반미 민족해방투쟁을 핵심 강령으로 삼았던 체 게바라와 카스트로주의는 더 이상 단순한 저항의 아이콘만이 아니라 하나의 노선으로 다시 부상하고 있다. 

이러한 전 세계적인 상황은 현실사회주의 붕괴 이후 유일 강대국으로 떠오른 미국의 세계지배전략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미국은 경제, 정치, 군사를 막론하고 말 그대로 총체적으로 지구 전체를 옥죄고 있다. 우리가 흔히 자본의 세계화라고 부르는 현상의 이면에서는 사실 전 세계의 미국화라는 또 다른 진실이 자리잡고 있다. 앵글로색슨 자본주의를 보편화시키고 있는 세계은행과 IMF의 뒤에는 미국의 금융자본과 초국적자본이 웅크리고 있고 이들의 집행기관이 바로 미국 정부다. 미국 재무부 장관이 한국 차기 정부의 경제정책을 검열했던 97년의 상황은 이제 월스트리트 자본이 아르헨티나 대통령 후보들을 미국으로 소환해 ‘검증’ 절차를 거치는 것으로까지 발전했다. 걸프전이 그래도 UN이라는 껍데기를 걸쳤다면 코소보 폭격을 계기로 미국은 이제 그마저도 거추장스러워 하고 있다. 프랑스와 같은 선진자본주의 국가마저도 저항의 대열에 불러들이고 있는 반미투쟁의 전 세계적인 확산은 결국 이러한 도도한 흐름에 대한 필연적인 반작용인 셈이다. 

우리의 경우, 반미투쟁의 전통은 주로 NL 진영에 의해 견지돼왔다. 그런데, NL 경향은 주로 ‘민족자주화’와 ‘조국통일’이라는 민족주의 담론에 기반해 반미투쟁을 지속해왔다. 반면 NL 경향의 이러한 측면을 비판한 남한 민중운동의 여타 흐름들은 상대적으로 반미제국주의의 문제를 소홀히 해왔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세계적으로 미제국주의의 문제가 다시 부각되면서 NL 전통은 반미투쟁의 자원으로서 새롭게 활력을 되찾고 있다. 이에 반해 IMF 위기 이후 ‘신자유주의 반대’라는 다소 추상적이며 합의가 덜된 구호에 열중하던 운동 세력들은 반미문제에 관한 한 여전히 소극적인 입장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낡은 논의 지형을 벗어나 2000년의 세계 상황을 직시하는 가운데, 반미제국주의 문제는 진보진영 전체의 적극적인 과제로 부각되어야만 한다. 앞질러 이야기하자면, 이 과제에 대한 진지한 고민은 NL-비NL 분열 구도의 일정한 극복 가능성까지 내포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NL 전통의 여전한 모순


하지만, 여타 진영으로부터 NL 진영에 가해졌던 비판의 쟁점들은 여전히 문제거리다. 하나의 ‘국가 공동체’(물론 통일을 통해서만 완성될 미완의 공동체)로 전제되는 ‘민족’ 관념이 반제국주의의 근거를 이루고 있다는 점이 그것이다. 어쩌면, 반미투쟁의 호기에 등장한 통일운동 내부의 일정한 혼란 역시 이와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NL 경향은 반제국주의투쟁의 근거를 ‘민족’에서 찾고 이 ‘민족’을 통일민족국가의 건설로 완성되는 무엇으로 상정한다. 반미‘자주화’라는 말 자체가 민족국가에 대한 관념을 깊숙이 깔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반미제국주의 과제란 것도 통일민족국가의 건설이라는 과제에 통합되어서만 의미를 갖게 되며, 통일을 앞당기기 위한 성취들이 다른 어떤 것보다도 우선적인 중요성을 갖게 된다.  

그런데, 동아시아 정세의 급격한 변화는 한편으로 반미투쟁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면서 동시에 이러한 NL 경향의 전통적인 관념에 기반한 반미투쟁에 일정한 혼란을 초래하고 있다. 즉, 한편에서는 동북아시아 주둔 미군의 존재가 냉전 해체 이후 줄곧, 그리고 남북정상회담 이후 더더욱 그 정당성을 상실해가고 있다. 이 점에서 최근 오키나와와 매향리 투쟁의 부각은 동아시아 정세의 변화를 객관적으로 반영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이미 위에서 말한 것처럼 북한 당국은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하여 오히려 주한 미군의 장기 주둔 가능성을 언급하고 있다. 북한 당국은 베를린 합의 이후 열린 잠정적인 평화 국면을 북한 국가의 경제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여유 시간으로 최대한 활용하려는 것으로 보이며, 이를 위해서 미군 문제 등에 대해서는 일정하게 양보할 수 있다는 입장인 것으로 생각된다. 물론 이는 흡수통일 가능성의 차단을 위한 북한 국가의 지속과 발전이라는 점에서 현실정치상의 가능한 한 선택이다.

하지만, 이러한 북한 국가의 선택이 동아시아 전체 차원에서 과연 장기적으로 긍정적인 영향만을 지니는 것인가? 동아시아 차원에서 미군 문제는 이미 북한과 미국의 대치라는 수준을 넘어섰다. 미국의 세계지배전략 아래서 동아시아 주둔 미군은 미국의 최대 가상적국인 중국에 대한 무력 견제 장치로 존재한다. 미군의 존재가 일본 군사력에 대한 일정한 견제력이 된다는 일부의 궤변은 그야말로 궤변일 따름이다. 일본의 군사력은 미국의 대(對)중국 전략파트너로서 육성돼왔고, 지금 판은 정확히 그렇게 돌아가고 있다. 동아시아에서 미군철수투쟁은 중․러 대 미․일의 신제국주의 분열 구도를 낳고 있는 미제국주의의 전략 사슬의 한 고리를 끊는다는 것이며, 따라서 전 세계 반미제국주의 투쟁의 가장 중요한 부분들 중의 하나를 이룬다.

어쩌면 민족주의적 공산주의 정권(중국, 베트남, 북한 등의)이 반미제국주의의 핵심 주체를 이루던 시기는 한 획을 그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북한 국가의 선택과 동아시아에서의 반제국주의 과제가 꼭 일치를 보인다고 말할 수 있는 시대도 한 획을 그은 것이다. 사태가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NL 노선의 한 논리적 귀결은 통일민족국가 건설을 위해 북한 정권이 취했다고 생각되는 정책 노선의 추종을 위해 동아시아 차원의 반미제국주의 과제를 소홀히 할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특정 정권의 선택과는 상관없이 동아시아 각국의 민중운동에 기반한 반미제국주의 역량의 성장은 북한 정권이 주한미군문제를 양보하면서까지 확보하려 한 평화국면 그것을 위해서도 북한 정권의 현재의 정책 노선보다 오히려 더 근본적인 중요성을 지닌다. 진보세력은 현재 이 국면을 주도하는 것이 각국 정부 당사자들이라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장기적으로 동아시아의 평화와 민주주의를 확고히 할 것은 각국 정부가 아니라 반제국주의 평화․민중운동 역량이라는 점을 확신해야 한다. 역사의 불가역지점을 넘어선 듯이 보이는 남북정상회담 국면조차도 단기적으로는 부시 공화당 정권과 한나라당 정권의 출범 가능성에 의해, 장기적으로는 중․러-미․일의 신냉전 구도에 의해 충분히 교란될 수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대안적인 상상력을!


SOFA개정투쟁과 매향리투쟁은 확실히 반미투쟁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매향리의 경우, 어떤 추상적인 이념으로부터가 아니라 피해 대중들 자신의 투쟁의지에서 비롯되고 있다는 점이 주목된다. 앞으로 주한미군반대투쟁은 계속해서 이러한 대중적 이성에 기반해 발전해야만 한다. 요구사항이 SOFA 개정이어야 하느냐 철폐여야 하느냐, 혹은 주한미군의 단계적 철수냐 즉각 철수냐 하는 것은 순전히 논리적인 쟁점일 뿐이다. 어떻게 하면 중간적인 요구의 적절한 활용을 통해 투쟁의 대중적인 발전을 이루느냐가 관건이다.

바로 이러한 발전을 위해서도 우리는 반제국주의 과제에 대해 보다 적극적으로 다가가야 함과 동시에 반제국주의 투쟁의 근본적인 혁신을 시도해야 한다. 그 중 하나는 진보세력들이 반미투쟁 구호가 몰정세적이고 기계적이라고 비판만 할 게 아니라 대중운동과 반제국주의 과제를 유기적으로 결합시키기 위해 앞장서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우선 미제국주의의 경제지배전략과 정치․군사지배전략을 총체적으로 비판할 수 있는 제국주의 비판의 새로운 전개를 요구하는 것이다. 그리고, 해외매각반대투쟁 등의 노동자 투쟁을 반제국주의 인식과 분명히 연결시켜야 한다. 이 점에서 IMF 위기 당시에 ‘전태일을 따르는 민주노조운동연구소’ 등이 현실적 전술로 제시했지만 노동운동 주류에 의해 비현실적인 것으로 치부됐던 모라토리움 요구 같은 것을 재평가해보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다.

또 다른 과제는 반미투쟁의 근거인 ‘민족’의 내포와 외연을 새롭게 하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민족=민족국가’라는 제한을 넘어서는 게 관건이다. 여기에서 오키나와 기지반대투쟁과의 연대 가능성은 단순한 전술적 중요성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동아시아에서 미군의 존재 의의가 의문에 부쳐지는 가운데 이뤄지고 있는 동아시아 차원의 미군반대 국제연대는, 민족주의적 공산주의 정권들이 미제국주의에 반대하는 주된 주체는 아니게 된 현재의 상황에서 반미제국주의의 새로운 주체가 형성될 가능성을 암시해주는 것이다.  

지금 반미투쟁은 민중운동의 중요한 화두로 등장하고 있다. 진보진영은 각자의 과거 노선과는 상관없이 이에 주목해야 하며 그 일부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는 지난 세기의 민족해방투쟁과 그것의 민족주의적 편향과는 다른 근거를 찾는 가운데에서 이뤄져야 한다. 이것이 필자의 문제제기의 핵심이다. 20세기 민족해방투쟁의 와중에서도 그 단초를 보여준 바 있었던 동아시아 국제연대를 한 핵심으로 하는 진보적 민주주의 정신은 이러한 문제제기에 대한, 결코 빈약하지만은 않은 실마리임에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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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신자유주의와 진보의 용광로 -장석준

 

동아시아, 신자유주의와 진보의 용광로

- 백낙청 외, ꡔ21세기 한반도 구상ꡕ, 창비, 2004.



장석준 (기획부장, newer@jinbo.net)


요즘 ‘동아시아’가 난리다. 서점의 인문․사회과학 서가에 가보면 ‘동아시아’를 제목으로 단 책들이 수십 권은 나와 있다. 대체로 한 세기 전의 격동기를 다룬 역사 연구서들이 많지만, 걔 중에는 지나간 과거가 아니라 앞으로의 미래를 다룬 책들도 있다. 특히 올해 들어서는 ‘동아시아’를 열쇠말로 해서 한국 사회의 미래 청사진을 그리는 책들이 잇달아 나와 주목을 받고 있다. 하영선 엮음, ꡔ21세기 한반도 백년대계ꡕ(풀빛)나 한국동북아지식인연대 엮음, ꡔ동북아공동체를 향하여ꡕ(동아일보사)가 바로 그런 책들이다.   

평자는 최근에 나온 이런 류의 책들 중에서 비교적 ‘진보적’ 시각에 바탕을 두었다고 평가받는 책으로 백낙청 외 지음, ꡔ21세기 한반도 구상ꡕ(이하 ꡔ구상ꡕ)을 살펴보려 한다. 이 책은 계간 <창작과 비평>에 2003년 여름호부터 겨울호까지 세 호에 걸쳐 실린 기획특집 논문들을 모아놓은 것이다. <창작과 비평>은 본래 문예지이지만 창간자인 백낙청(전 서울대 영문학과 교수)을 중심으로 현실 문제에 적극적으로 발언해왔고 사회과학 논문에도 상당한 지면을 할애해왔다. 해외에서는 이 잡지를 한국의 대표적 ‘좌파’ 저널로 보기도 하는 것 같다.

그럼 ꡔ구상ꡕ은 ‘동아시아론’의 홍수 속에서 진보적 분석과 대안의 실마리를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는가? 결론부터 말하면, 답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ꡔ구상ꡕ의 구상들은 현재 동아시아 담론 일반이 그런 것처럼, 혼란과 모순을 날 것 그대로 보여줄 뿐이다.  


왜 지금 ‘동아시아’인가?


우선 이야기하고 넘어가야 할 것은 왜 하필 지금 ‘동아시아’가 이렇게 문제냐는 것이다. 우리 역사에서 동아시아가 화두가 되었던 시기가 언제였는가를 회상해보면 우회적으로 그 답을 얻을 수 있다. 그 때는 정확히 100년 전 19세기와 20세기의 교체기였다.

백낙청이 ꡔ구상ꡕ의 서문에서도 밝히고 있는 것처럼 이 당시 동아시아 각국에서는 격변하는 세계 질서에 어떻게 적응할 것인가, 더 나아가서는 어떻게 하면 그 혼돈 속에서 역사의 새로운 가능성을 길어낼 수 있을 것인가를 놓고 탐색과 논란이 계속되었다. 국사 교과서에도 나오는 황쭌셴(청의 외교관)의 ꡔ조선책략ꡕ이 당시 상황을 말해주는 대표적인 책이다. 청, 일본, 조선이 러시아, 영국, 미국 등 서구 세력에 대해 적절히 대응하기 위해서는 어떤 식으로 합종연횡해야 하는지가 이 책의 주된 관심이었다. 그리고 이 문제를 놓고 당시 조선의 지식인들은 위정척사파부터 온건 개화파, 급진 개화파까지 어지러이 이합집산했다. 기층 민중들의 세계에서도 동학운동이 나름대로 이러한 초국가적 격변에 대해 대안의 밑그림을 제시하려 했다.   

세월은 흘러 20세기와 21세기의 교체기를 살고 있는 우리 시대에 이르렀다. 그런데 지금 상황은 100년 전과 놀랍도록 닮아 있다. 그것은 단순히 외면상의 유사성만은 아니다. 역사의 기본 구조 측면에서도 유사점을 이야기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100년 전에 동아시아의 격변을 낳은 세계자본주의의 운동이 지금의 세계자본주의 양상과 구조적으로 일치하는 면이 있다. 당시의 세계자본주의는 오늘에 와서 ‘제국주의’라고 불린다. 그것은 독점자본주의 단계에 도달한 서구 자본주의의 축적 모순을 함포외교를 통한 식민지 해외시장의 확보와 열강간의 극한 대립으로 풀려던 시대였다. 오늘날 자본주의는 다시금, 투자 배출구를 찾지 못하는 금융독점자본 때문에 홍역을 앓고 있다. 그리고 이들 금융자본을 중심으로 ‘세계화’라는 운동이 진행되고 있다. 이제는 군함과 해병대 대신 해외 주식시장을 누비는 기관투자가와 IMF 고위 관료의 서류가방이 이 운동을 주도하고 있지만, 100년 전 제국주의와 작금의 세계화 사이의 유사성은 결코 좌파만의 강박관념은 아니다. 

동아시아는 이제 다시 이런 역사적 소용돌이 한 복판에 놓여 있다. 아니 어떻게 보면 동아시아가 전 세계의 행로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100년 전의 그것 훨씬 이상이다. ꡔ구상ꡕ에 실린 글들에서도 반복적으로 강조하고 있듯이 그 가장 중요한 이유는 중국시장의 부상이다. 중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국가들이 세계자본주의의 사슬 속에서 가장 성장 가능성이 높은 경제로 부상했다. 그러면서도 이들 국가는 예를 들어 유럽에 비해 훨씬 불안정한 국가 체제, 그리고 국가간 체제를 형성하고 있다. 북핵 위기로 집약되는 한반도의 지속적 불안정성은 그 한 가지 사례일 뿐이다. 한 마디로 세계자본주의의 장래 한, 두 세대를 좌지우지할 지역이면서 또한 어디로 튈 지 알 수 없는 가장 불안한 곳 중 하나라는 것이다.  

그리고 무슨 천형(天刑)인지 우리는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바로 그 한 가운데에 있다.


ꡔ구상ꡕ의 동아시아론은 과연 진보적인가


하지만 ꡔ구상ꡕ을 비롯해서 ‘동아시아론’을 특징짓는 음조가 꼭 비관적이고 착잡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동아시아가 세계의 새로운 중심으로 부상하고 있는 상황에서 잘만 하면 한국이 그 흐름의 주된 수혜자 중 하나로 떠오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 많은 이들을 들뜨게 하고 있는 듯하다.

그 대표자가 바로 노무현 정권이다. 노무현 정부는 전임 김대중 정부에서 비롯된 ‘동북아 비즈니스 중심 국가’ 구상을 더욱 발전시켜 ‘동북아 경제 중심 국가’라는 비전을 제시했다. 중국 시장을 배후로 한 소위 ‘거점 경제’(hub economy)를 구축하기만 하면 한국이 2류 소국에 머무는 대신 동아시아 경제의 중심으로 부상할 수 있다는 게 그 골자다. 다만 ‘거점 경제’의 주축을 놓고 노 정권 내에서도 ‘금융 중심’이냐, ‘물류 중심’이냐, 아니면 ‘연구개발(R&D) 중심’이냐는 강조점의 차이가 있다고 한다.  

‘위기’를 ‘기회’로 살린다는 변증법적 낙관주의라는 점에서는 ꡔ구상ꡕ도 노 정권 못지 않다. 사실 <창작과 비평>이 애초에 이런 기획을 내놓은 것도 노 정권의 ‘동북아 경제 중심 국가’론에 화답하고 그것에 나름대로 개입하려는 취지에서였다. 한 마디로 노 정권의 구상을 상수(常數)로 놓고 그것에 훈수를 두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ꡔ구상ꡕ은 노 정권의 구상과 만나기도 하고 엇갈리기도 한다. ꡔ구상ꡕ의 필자들이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백낙청 등 <창작과 비평> 단골 필자들은 ‘동아시아론’을 단순히 한국 경제의 생존 전략 차원이 아니라 사회 변혁의 차원에서 바라본다. 이러한 관점은 다음과 같은 백낙청의 언급에 잘 드러나 있다. 


  끊임없는 자본축적이라는 자본주의의 절대적 요구가 인류문명의 발전이나 존속과 양립하기 힘든 성격이라고 한다면, 장기적으로 자본주의 에서의 대안보다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대안을 찾을 필요가 절실해진다. (23쪽, 강조는 원저자의 것)


그렇다면 동아시아 변혁과 노무현 정권 식의 구상은 과연 어떻게 만날 수 있는가? ꡔ구상ꡕ의 가장 야심찬 목표는 바로 이 질문에 대답하는 데 있다. 그리고 이를 해명하는 데 얼마나 성공했는가에 따라 ꡔ구상ꡕ의 대안이 과연 ‘진보적’인지 아닌지가 판가름될 것이다. 그런데 평자가 보기에 이 목표는 성공했다고 볼 수 없다.

이 책에 실린 12편의 논문과 1편의 긴 좌담을 다 읽어봐도(물론 이중에는 한국 사회 정치개혁의 현 주소와 방향에 대해 날카로운 시각을 보여주는 김종엽의 「정치개혁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등 썩 괜찮은 글들이 포함되어 있다) 동아시아의 변혁과 ‘동북아 경제 중심 국가’론이 서로 어떻게 만날 수 있는지 분명하지 않다. 한 가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이 책의 필자들 중 다수가 동아시아 차원의 변화가 한반도 분단 체제를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경로를 제시해준다는 데 주목한다는 점이다. 남한과 북한, 두 국가의 관계로만 놓고 볼 때 항상 막막함만을 던져주던 분단 체제도 동아시아 다자 질서를 염두에 두고 보면 해결의 출구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남북 경제협력이 중요하게 다뤄지고, 그것이 중국, 일본, 러시아로까지 확장될 수 있는 매개로서 동아시아 차원의 에너지 협력(천연가스관 등)․사회간접자본 협력(대륙횡단철도)이 반복적으로 강조된다.

물론 북핵 위기나 동북아의 신냉전 가능성에 비하면 이런 식의 경제협력 전망은 분명히 긍정적 측면이 있다. 그러나 이것이 노 정권의 ‘동북아 경제 중심 국가’론 전반을 긍정하는 근거가 될 수는 없다. 그런데도 ꡔ구상ꡕ은 그러한 위험한 줄타기를 시도한다. 한편에서는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극복해야 한다면서도 다른 한편에서는 그 일환으로 추진되는 노 정권의 정책 방향을 일방적으로 긍정한다는 인상을 준다. 그래서 김원배(국토연구원 선임연구원)의 「동북아중심 구상의 재검토」 같은 글이 ‘자본주의를 넘어선 대안’을 주장하는 글들과 나란히 한 책에 실리게 되는 것이다.   

김원배의 글은 그야말로 노 정권의 정책 지향의 대변에 다름 아니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주장은 아주 전형적이다.


  다시 말하면 현재 제조업 제품의 수출을 통한 발전전략이 한계를 노정하고 있는 만큼 써비스 수출로 전략수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255쪽)

 

김원배는 한국 경제가 물류를 중심으로 하고 금융과 연구개발을 보조축으로 하는 ‘거점 경제’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점에서는 우정은(미시건대학 정치학과 교수이며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인 부인이기도 하다)의 글 「한국의 미래를 비추는 세 개의 거울」 역시 마찬가지다. 동북아 금융․물류 중심이 되기 위해서는 분단 모순의 극복이 필요하다는 점을 의식적으로 강조하는 대목이 김원배와 다를 뿐, 노 정권의 구상을 기본적으로 받아들인다는 점 자체는 다르지 않다.      


전장(戰場)으로서 ‘동아시아’


여기에서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게 있다. 평자가 동아시아 차원의 경제협력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한국 경제가 앞으로 동아시아 경제 공동체 속에서 자신의 미래를 찾아야 한다는 주장에 반대하는 게 결코 아니다. 동아시아 차원의 경제순환구조의 형성이 분단 체제의 극복에 결정적 의의를 지닌다는 주장에도 분명 고개가 끄덕여지는 구석이 있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경제․사회 통합의 전망이 항상 신자유주의 교과서를 뒷문으로 불러들이는 방식으로 논의되고 추진되어선 안 된다는 것이다. 오히려 시장지상주의에 충실하고 사회적 권리들에 배치되는 정통파 경제학의 낡은 교과서를 따를 때 경제․사회적 통합은 실패하고 만다. 각국 국민의 구체적 이해들과 충돌하는 자유무역협정의 일정들만이 남게 되고, 대규모 건설 프로젝트를 수주한 ‘동아시아산(産)’ 초국적 자본이 등장하게 될 뿐이다. 

노 정권의 구상은 이미 이러한 모순과 한계를 내포하고 있다. 거점 경제를 이야기하지만, 그 거점 경제가 내수와 어떠한 선순환 구조를 이룰지, 다수 노동 대중은 어떻게 소득과 복지를 확보할 수 있을지, 아무런 대안이 없다. 오직 인천과 광양 같은 몇몇 도시가 부흥하면 국민 모두가 ‘2만 달러’의 소득을 누리게 될 것만 같은 환상만이 덧칠돼 있을 뿐이다. 수출은 호황인데도 내수는 침체하고 국민 전반의 소득은 정체되거나 하락하는 현재의 ‘이중 경제’ 상황이 ‘동북아 물류․금융 중심’의 구축을 통해 극복되어야 할 과도기가 아니라 그것이 영구화할 우리의 미래가 아니냐는 의구심에 대해 ‘동북아 경제 중심 국가’ 전략은 아무런 답도 던져주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 점에서 보수 언론이 제시하는 ‘우리 내부에 고립될 것인가, 아니면 바깥으로 향할 것인가’라는 구도는 쟁점을 고의적으로 왜곡한 것이다. 참된 쟁점은 차라리 우리의 눈을 동아시아로, 세계로 돌리되, ‘어떤’ 방향으로 돌리는가에 있다.  

가령 김석철(명지대 건축학과 교수)이 ꡔ구상ꡕ의 기획좌담에서 한 다음과 같은 발언은 ꡔ구상ꡕ의 필자들이 가진 현실 인식이나 평자의 그것이나 서로 크게 다르지는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현재 한국 사회에서 제일 큰 문제는 인력과 금융자본의 과잉입니다. 4백조가 굴러다니고 있어요. 몇몇 분야의 기술수준은 제가 보기에 최강입니다. 중동에서 가장 제대로 된 도시를 건설한 사람들, 그리고 조선과 전자 및 자동차에서 한국을 세계 최강으로 만든 사람들이 밀려나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이렇게 올 때까지 참여했던, 또 그런 과실로 생긴 금융과 인력들이 놀고 있거든요. 잉여금융은 지금 투기자본화해 자본시장․노동시장을 왜곡하고 있어요. (346쪽, 강조는 인용자의 것)


그럼 그 ‘400조’를 어떻게 투자로 돌릴 수 있을 것인가? 백낙청이나 김석철은 ‘황해도시공동체’의 건설을 주장하는데 그런 식의 새로운 발전 전략을 추진하려면 결국 누가 나서야 하는가? 열린우리당이나 한나라당이 제시하는 것처럼 경제특구를 만들고 규제철폐경쟁을 벌여 ‘바닥을 향한 경주’라는 신자유주의의 전형적 시나리오를 따라가야 하는가? 아니면 노동자 농민 운동의 목소리가 관통하는 민주화된 국가기구가 경제 활동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투자 계획의 주역으로 나서야 하는가?

이러한 물음에 적절히 대답하지 못한다면, 아무리 ‘동아시아’라는 새로운 전망을 제시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결코 ‘새로운’ 무엇일 수 없다. 말하자면 ‘동아시아’는 결코 그 자체 해답의 실마리일 수 없다는 것이다. 그것은 오히려 서로 다른 대안이 각축하는 또 다른 전장(戰場)일 뿐이다.

ꡔ구상ꡕ은 비록 ‘진보적’ 동아시아 담론을 제시하려는 시도로서는 성공작이라 할 수 없지만, 우리에게 적어도 이 전장의 중요성을 환기시킨다는 점에서는 유용한 입문서라 할 수 있다. 적어도 우리의 ‘동아시아 구상’이 정리되어 나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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