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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dern Times

찰리 채플린 'Modern Times'를 보고 
이성래    2005.04.06 19:56스크랩:2  
 


1.
"사회주의는 인간 영혼의 가장 고귀한 감정의 항거에서 태어난다.
사회주의는 비참함, 실업, 추위, 배고픔과 같은 견딜 수 없는 광경이 성실한 가슴에 타오르는 연민과 분노와 만나 태어난다.
한쪽엔 호화, 사치가 있는가 하면 다른 쪽엔 궁핍이, 또 한쪽엔 견딜 수 없는 노동이 있는가 하면 다른 쪽엔 거만한 게으름이 있는, 이 터무니없고도 서글픈 대비에서 사회주의는 태어난다."
- Leon Blum


2.
하지만 그런 정의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역사를 통해 그러한 대비에서 오는 연민과 분노가 자본주의 시스템이 존속하는 한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그저 패자의 질투심, 울분 정도로만 인식된다는 깨우침을 얻는다.
그리고 그 순간 노동자에 대한 연민과 분노에 객관적인 이성을 부여한 이가 바로 마르크스다. 그로 인해 사회주의는 단순한 정서적 작용에서 탄탄한 이론의 과학으로 그야말로 멋지게(!) 탈바꿈 한다.

짧게 요약했지만 이러한 역사적 과정을 살펴본다면 사회주의란 '정서를 재료로 한 과학'임을 쉽게 알 수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현실의 사회주의는 그러하지 못했다.
현재의 사회주의 몰락과 체제의 붕괴는 사회주의가 정서적인 과학에서 감정이 생략된 과학으로 잘못 전달되면서 생긴 필연적 결과였다.
연민과 분노가 사라진 사회주의 이론과 사상은 유물론적 세계관 만이 남기때문에 무척 차갑게 느껴질수 밖에 없다. 거기에 설상가상으로 러시아와 동구권에서 보여진 왜곡된 일인독재 사회주의는 그 체제의 최대 수혜자여야 마땅한 노동계급 인민들에게 조차 억압적이고 살벌한 시스템으로 인식되곤 했다.
(하물며 자본주의 국가의 인민들에겐 두말할 것도 없다. 자본가들과 권력자들이 공모한 반공주의와 짝퉁 사회주의 국가의 실패들을 목격하면서 사회주의 공산주의는 사회악으로 인식이 된다. 이는 인류문명의 발전으로 보았을때 너무도 끔찍한 비극이었다)


3.
그런 인간적인 요소가 거세된 사회주의 체제 아래서 '사회주의 리얼리즘 예술'의 역사는 과학과 이론이 인간의 정서를 지배하고 그로인해 선동적이지만 마음보다는 머리로 이해되는, 앙상하고 냉정한 결과물을 양산해내는 과정을 보여준다.

서론이 많이 길었지만 아마도 찰리 채플린의 '모던 타임즈'는 과학으로서가 아닌, 정서에 기본을 둔 자본주의 비판이 존재하는, 또 낭만적 사회주의의 유토피아를 제시하는 거의 유일한 영화가 아닌가 생각된다.

영화 전반에 걸쳐 나오는 "터무니 없고도 서글픈 대비"의 전적인 희생자인 외로운 방랑자는 자본주의의 가장 거대한 폭력인 '소외된 노동'과 '인간의 부품화'를 놀라운 비주얼과 씁쓸한 코미디로 묘사해낸다. (영화 초반 찰리는 공장의 컨베이어 벨트에서 열심히 볼트를 조이고 있지만 그도, 관객도 그가 무얼 만들고 있는지는 끝까지 알지 못한다(!). 결국 그는 그 반복적인 작업에 실성하여 기계안으로 뛰어들고 기계와 하나가 된다. 자본주의의 모순과 기계화에 대한 놀랍고 직설적인 묘사들!!)

그리고 찰리가 공장에서 나온 뒤(쫒겨난 뒤) 집없는 소녀 (폴렛 고다르)를 만나면서부터는 그들의 행보를 통해 채플린이 꿈꿔온 낭만적 사회주의의 전형이 제시된다(그들의 행복한 가정을 상상하는 장면은 자급자족형 사회주의의 이상향을 묘사하고 있다).

 

4.
영화내내 등장하는 실업자들과 가난한 사람들을 바라보는 채플린의 시선은 한없이 따뜻하다. 그는 가난한 사람들을 그저 무능한 사람들로 그리지 않으며, 오히려 거대한 시스템의 선량한 희생자들로 바라본다. 그 시선은 인간적인 연민의 감정이 느껴져 무척 감동적이다(채플린은 그가 경비를 서던 백화점을 털러온 도둑떼들을 악인이 아닌 그저 배가 고픈 사람들로 묘사하는데 철저하게 약자의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보는 이 대목은 진심으로 가슴을 울린다..).

이번에 다시 본 '모던 타임즈'에는 글로 옮기기가 어려울 정도로 그의 행동 하나하나, 미장센 하나하나에 수많은 상징들이 숨어있었으며 그가 가지고 있는 자본주의에 대한 염세적인 태도가 녹아있다.

'모던 타임즈'는 영화사적으로 보기 드물게 시스템에 대한 문제 제기와 작가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해결방안이 공존하는 사려깊은 영화며 동시에 대공황을 온몸으로 헤쳐가는 시대와 체제의 희생자들인 노동 실업자들을 눈물이 날 정도로 따뜻하게 바라보는 영화이다.


5.
그 자신을 자정할 아무런 능력과 의지가 없는 자본주의를, 세상사람 모두가 인류가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체제라고 생각하며 그 모든 기근과 실업, 불평등을 힘들게 감내하고 있을때 채플린은 자본주의를 그 자체로 인간의 존엄과 지성에 대한 모욕이라 여기며, 오늘 인류가 미래를 희망하는 일이란 바로 '자본주의라는 괴물을 어떻게 극복하는가의 문제'라는 사실을 확실히 인식하고 있었으며 그러한 화두를 한없이 가볍게만 느껴지는 코미디 영화로서 대중에게 편안하게 제시하고 있다.

채플린은 자신의 비전을 담는 영화적 화법조차 교육을 덜 받은 노동계급에 어울리는 희극장르를 택했으며, 그 자신이 세상의 현상과 사회이론에 대한 수준 높은 이해를 하고 있던 지성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영화는 절대로 현학에 빠지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을 더욱 더 바보같이 낮추고 넘어지고 뒤뚱대면서 많은 사람들을 웃기고 울린다. 그러한 대중적 코드속에 세상에 대한 날선 비판을 펼쳤던 그는 이 시대가 만들어낸 '천재적인 광대 사상가'였다


6.
아마도 그는 사회주의가 '정서를 재료로 한 과학'임을 잊지 않고 실천하고 있는 거의 유일한 아티스트라 할만 하며 그것이야 말로 그와 그의 영화가 위대한 모든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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