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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 공개, 미국의 '초토화 작전…한국전쟁 유독 민간인 사망자 많은 이유

[시사회] 이미영 감독 "참혹한 역사 되풀이되면 안된다는 마음으로 만들었다"

이재호 기자  |  기사입력 2022.10.14. 09:21:02

 

북한의 연이은 미사일 발사에 미국의 전술핵 재배치가 다시 거론되는 등 한반도 긴장이 또 고조되고 있다. 어떻게든 상대를 꺾어버리려는 말과 행동이 이어지는 가운데, 전쟁이 많은 민간인의 목숨을 앗아가는 재앙이라는 점에서 한반도를 둘러싼 모든 행위자들의 자제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런 가운데 최근 미군의 비밀자료가 공개되면서 한국전쟁 당시 미군의 폭격 및 조준 사격으로 인해 수많은 민간인들이 희생됐다는 것이 알려졌다. 이미영 감독의 신작 다큐멘터리 <초토화작전>은 미군의 기록과 증언을 통해 이같은 한국전쟁의 비극을 다루고 있다.

13일 서울 외신기자클럽에서 열린 언론시사회에서 공개된 <초토화작전>은 미군이 왜 민간인을 사살했는지에 대한 설명부터 시작된다. 미국은 당시 피난민 중 일부가 공산당원이나 북한군으로 위장해 자신들의 후방을 노린다고 판단, 이같은 작전을 벌였다. 

미 당국은 한국전쟁이 발발한지 한 달도 지나지 않은 1950년 7월 20일 민간인에 대한 폭격을 승인했다. 이후 한반도의 주요 도시 및 길목에서 적게는 수십 명부터 많게는 수천 명을 상대로 공습 및 총기를 활용한 조준 사격 등이 실시됐다.

▲ 한국전쟁 당시 미국 전투기가 포탄을 떨어뜨리고 있다. ⓒ<초토화작전> 갈무리
 군사작전이 시작되자마자 1950년 7월 서울 용산 인근에 위치했던 조차장에 400톤의 포탄이 떨어져 수많은 민간인이 피해를 입었다. 이후 1950년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이 있었던 당일, 인천과 대전역 일대가 융단폭격을 받으면서 많은 민간인들이 사망했다.

뿐만 아니라 1950년 12월 흥남에서 미군은 피란민들과 함께 후퇴하면서 현지에 남아있는 건물을 포함해 모든 시설을 폭파시키고 물자를 불태우는 등 사실상 지역을 남김없이 파괴했다. 

<초토화작전>을 만든 이미영 감독은 언론시사회에서 "미국 내에서 당시 어떻게 초토화시킬 것인가를 두고 논쟁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원자폭탄을 터뜨리는 것은 국제사회의 여론이 좋지 않았다"며 "그래서 마을 전체를 태워 없애버리는 초토화 방식을 택했다. 여기에는 군인과 민간인을 가리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같은 미군의 작전은 1951년에도 계속됐다. 1월 1일에는 임진강을 건너 남하하는 4000명의 피난민을 조준 폭격했고 1951년 1월 5일 홍천 인근에서도 유사한 작전이 벌어졌다. 당시 폭격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시신을 밟지 않으면 그곳을 빠져나올 수 없을 정도였다고 증언하기도 했다. 

이 감독은 "홍천과 횡성 사이에 삼마치터널이라는 곳이 있는데 그 고개를 넘어가는 3000명의 민간인들에게 미군이 네이팜탄을 쏘면서 수많은 사상자가 나왔다"며 "시신을 밟지 않고 넘어갈 수 없었다는 기록이 있는데, 기록 자체도 많지 않아서 현장에 직접 찾아갔고, 지역에 계신 분들로부터 상당히 많은 증언을 확보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 이미영 감독이 미군 문서들을 통해 발견한 민간인 상대 작전 관련 사항들. ⓒ<초토화작전> 갈무리

미군의 초토화작전은 38선을 두고 양측이 일전일퇴의 공방을 벌이면서 더욱 자주 일어났다. 미군은 중공군과 북한군의 결집을 막고 시간을 벌기 위해 무차별적인 공습을 가했다. 일례로 용인에서는 미군이 불과 50미터 상공에서 민간인을 조준 사격하기도 했다. 

이 감독은 이러한 사실들을 미 공군 조종사 업무일지와 증언, 미군의 자료 등을 통해 확인했고  이를 통해 서울과 대전, 김천 및 북한 지역에 대한 미국의 융단폭격 영상, 전투기를 활용해 민간인을 사살한 총격 영상 등을 발견해냈다.

또 그는 미 공군이 폭격을 위해 100만 회 이상 출격했으며 남북한 대부분의 도시와 마을, 산업 시설들을 무차별적으로 폭격했음을 미군의 자료를 통해 보여줬다. 

이 감독은 "총을 이용해 민간인을 사격한 횟수는 1억 회가 넘는데, 이건 총알 개수가 아니라 말 그대로 사격의 횟수다. 실제 얼마나 많은 사격이 있었는지는 상상하기도 어려울 정도"라며 "증언된 (민간인 사격만) 100건이 넘는다"고 말했다.

한국전쟁 3년 동안 최소 200만 명의 민간인이 사망한 것으로 전해지는데, 이 사망의 요인 중 하나로 미군이 벌였던 초토화작전을 거론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한국전쟁 당시 피난길에 오른 사람들. ⓒ<초토화작전> 갈무리

이 감독은 이같은 작전으로 자신의 할머니도 피난길에 세 명의 자녀를 잃었다면서 "이 다큐멘터리가 무고하게 희생된 분들과 유가족들, 그리고 한국사회에 추모와 애도의 한 걸음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내년 정전협정 체결 70주년을 맞이하는 시기에 긴장관계가 상존하는 한반도에서 민간인들의 (전쟁) 경험을 보여주는 다큐멘터리가 나와서 좀 더 균형 있는 시선으로 (한국전쟁에 대해) 보고 들을 수 있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며 지난 4년동안 다큐멘터리를 만들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이 감독은 "진보, 보수 등의 이념을 떠나 이런 참혹한 일이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된다는 마음으로 작품을 만들었다. 이 땅에 더 많은 평화가 있길 바란다"고 전했다. 

▲ 미군 전투기가 한국전쟁 기간 출격한 횟수는 104만 708회(위). 총으로 사격한 횟수는 1억 6685만 3100회. ⓒ<초토화작전> 갈무리

■ 이미영 감독은  

1980년 사북항쟁 다큐 <먼지, 사북을 묻다> 등 강원도 탄광 노동자들과 다큐 작업을 시작으로, 1996년부터 노동, 인권, 환경, 여성에 관한 기록영화들을 연출 제작해왔다. 

영화들은 서울인권영화제 '올해의 인권영화상' 서울독립영화제 '집행위원 특별상' 등을 수상했으며, 부산국제영화제, 토론토 핫닥스, 야마가타국제다큐영화제, 마르세유국제다큐영화제, 암스텔담국제다큐영화제, 소르본대, 베이징 필름 아카데미, UCLA 등에 초청됐다. 

고려대학교 독문과, 캐나다 몬트리올 콘코디아 대학원 영화제작과를 졸업했고,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과 캐나다 NSCAD 대학 미디어학부에서 여러 해 영화를 가르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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