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이 둘은 이번에 그 과정을 내동댕이쳤다. 지귀연은 듣도보도 못한 논리로 윤석열을 풀어줬고 심우정은 검찰의 가장 중요한 권리를 내팽개치면서까지 즉시항고를 포기했다. 논리고 뭐고 윤석열을 풀어줘야 내란 폭도들에게 잘 보여 떡고물이라도 얻어먹을 수 있다는 심산이었는데, 나는 이때 정말 충격을 받았다.
이게 왜 중요한 현상이냐? 8학군은 그냥 지역 명칭이 아니라 이 나라의 보수 엘리트 세력을 양산하는 지역적 계급적 집합체이기 때문이다. 여기 사는 사람들은 알게 모르게 네트워크로 연결돼 있다. 자녀 교육을 공유하는 모임이건, 의사들끼리의 친목 도모 클럽이건, 고위 관료들의 식사 모임이건 다양한 커뮤니티가 존재한다.
그리고 8학군 우파는 이런 소사이어티를 목숨처럼 중요하게 여긴다. 여기서 모든 중요한 정보가 거래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돈 좀 많다고 아무나 끼워주지 않는다. 이 커뮤니티에 맞는 교양(?)이 있어야 한다. 8학군 우파 엘리트들이 교양을 목숨처럼 중요하게 여기는 이유다.
폭도들에게 살려달라고 비는 꼴
20세기 가장 위대한 사회학자 부르디외는 이런 교양을 아비투스(Habitus)라고 부른다. 프랑스어로 ‘습관’이라는 뜻인데, 어떤 계급에서만 통하는 묘한 아우라, 혹은 그들만이 갖고 있는 교양이라는 뜻이 담겨있다. 말투, 복장, 취미, 학벌, 교육관 등이 이 아비투스를 구성한다.
이들이 노무현 전 대통령이나 이재명 민주당 대표에 거의 광기에 가까운 적의(敵意)를 보이는 이유가 바로 이런 거다. 말투나 행동이 자기들 귀족과 안 맞는다는 거다. 아비투스가 다른 자를 상전으로 모실 수 없다는 게 이들의 기본 생각이다.
교양 있는 척하는 걸 목숨만큼 중요하게 생각하는 8학군 우파에게 아비투스는 자신들의 정체성이다. 부르디외는 그것을 문화자본(culture capital)이라고 불렀다. 그래서 나는 8학군 우파가 지금 길거리에서 난동을 부리는 폭도들과 일정 정도 거리를 둘 것이라 생각했다. 자기들의 가장 큰 무기인 문화자본을 버리면서까지 폭도들과 어울릴 수 없을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 내 생각이 완전히 틀렸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앞뒤 맞추는 것을 평생 업으로 산 8학군 서울법대 출신 초엘리트들이 교양이고 아비투스고 다 집어치우고 폭도들 앞에 딸랑거리기 시작했다. 이게 왜 가능했겠나? 지귀연이나 심우정이 평소 저런 짓을 했다면 8학군 커뮤니티에서 개망신을 당한다. “폭도들 비위나 맞추고!”라는 욕을 먹는다.
하지만 저들이 이짓을 했다는 것은 이렇게 해도 8학군 커뮤니티에서 욕을 안 먹는 분위기, 혹은 칭찬을 받는 분위기가 형성됐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8학군 우파가 교양이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윤석열과 폭도들 편에 찰싹 달라붙기로 한 것이다.
이게 얼마나 큰일이냐? 매우 큰일이다. 보수 사이에서 힘의 균형이 완전히 길거리로 넘어갔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내란 수괴 윤석열이 조선일보를 안 보고 유튜브를 본다는데, 8학군 우파의 아비투스를 목숨처럼 여기는 조선일보가 결국 항복을 선언하지 않았나?
아무튼 윤석열이 참 대단한 일을 했다. 이 나라 보수 엘리트들의 교양있는 척을 깡끄리 때려 부수고 “살고 싶으면 우리하고 같이 내란을 선동해!”라고 강짜를 부렸는데 이게 먹혔으니 말이다.
8학군 우파는 2025년 봄을 치욕의 계절로 기억해야 할 것이다. 평소 그토록 무시하던 길거리 폭도들에게 목숨을 구걸했던 그 비열한 시기를 말이다. 윤석열이 보수를 결집한 것 같지만 그 결집은 알고 보면 폭도들이 다른 보수들을 찍어서 꿇린 것이다.
이런 현상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모르겠지만 이게 고착화되면 대한민국은 더 이상 말로 정치를 하고 법전으로 재판을 하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멀어질 것이다. 길거리에서 고래고래 소리지르는 놈들에게 판사도, 검사도, 정치인도 다 무릎을 꿇는 판에 정치는 뭐에 쓰고 재판은 뭐에 쓸 것인가? 진짜 나라가 100여 일 만에 멍멍이판으로 전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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