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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1신]북 부모들, 딸들 접견권 민변에 위임, 12명 이름과 사진도 공개

[긴급1신]북 부모들, 딸들 접견권 민변에 위임, 12명 이름과 사진도 공개
 
 
 
이창기 기자 
기사입력: 2016/05/18 [08:31]  최종편집: ⓒ 자주시보
 
 
▲ 가족들과 대담하는 민족통신 특파원     © 자주시보

 

▲ 통곡과 분노를 금치 못하는 북 부모들     © 자주시보

 

▲ 딸의 걱정으로 비통한 심정을 감추지 못하는 북 부모들     © 자주시보

  

 

 

평양에서 취재 중인 민족통신 노길남 특파원은 집단입국한 북 류경식당 여 종업원들의 부모들과 긴급 인터뷰를 가졌다.

부모들이 자신의 딸들이 남측 당국에 의해 납치된 것이라고 주장하며 그 석방과 접견을 '민주화를 위한 변호사 모임(자주시보에서 정한 임시 담당, 장경욱 변호사)'에 위임한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보도했다. 

 

부모들과 가족들은 대담 도중 통곡과 분노를 표하면서 자신의 딸들을 하루빨리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내줄 것을 절규했다고 한다.

 

통신은 남측 정부에서 죽지 않았다는 입장을 밝혔으에도 불구하고 이번 명단 공개시에서 서경아 양은 사망한 것으로 확인되었다고 다시 확인 보도하였다. 미국에 있는 민족통신은 자체의 확인 결과 서경아 양이 공화국으로 돌려보내달라며 단식 투쟁 중 사망했음을 확실하게 확인한 것으로 판단된다.

 

민족통신 평양 특파원은 부모들이 영상대담을 통해 민변에 접견과 석방을 위한 활동을 모두 위임한다는 입장을 밝혔다며 곧 그 영상을 민족통신과 민족통신 페이스북을 통해 공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북 부모들이 남측에 납치되었다고 주장하며 밝힌 딸들의 이름과 생년월일 그리고 민족통신 상보 보도 관련 민족통신의 안내, 그리고 민족통신이 페이스북에 올린 기사 전문이다.

 

 

*한국독자들은 페이스 북:  https://www.facebook.com/Minjogtongsin/ 혹은 트위터, 민족통신 www.minjok.com 으로 들어가 상보들을 열람해 주시기 바랍니다.-편집실

 

 

▲ 북 부모들 납치된 딸이라며 12명의 사진과 이름 전격 공개     © 자주시보

 


*김설경(1994.1.1생)

*김혜성(1991년11.11생)

*류송영(1992년4.13생)

*리봄(1991년2.11생)

*리선미(1990년5월18일생)

*리지혜(1991년1.1생)

*리은경(1979년1.23생)

*박옥별(1993.3.7생)

*전옥향(1992.7.16생)

*지정화(1992.82생)

*한행복(1989.12.3생)

*서경아(1994.1.1생-가족품으로보내달라 단식투쟁중사망한 것으로확인)

 

[속보]민족통신 특파원,납치여성들 평양가족 특별대담

 

[로스엔젤레스=손세영 민족통신 편집위원/김백호 편집위원]현재 평양에 체류중인 노길남 민족통신 특파원은 남녘 국정원 요원들에 의해 중국에서 강제납치된 12명 피해자들을 접촉하여 이들의 근황을 알아보기 위해 노력하던 중 5월17일 체류중이...던 평양호텔 면담실에서 긴급하게 주선하여 대담할 수 있었다고 하면서 우선 납치된 북식당 종업원들 12명의 사진들과 대담 일부장면을 담은 사진들을 본사에 보내왔다.

 

민족통신 편집위원들은 피해가족들 심정과 함께 북녘동포들의 이에 대한 반응들을 취재해 달라고 요청했다. 지금 노길남 특파원은 평양에서 떠나야 할 날이 임박하여 민족통신 취재진이 촬영하여 제작중인 동영상과 함께 상보를 보도하려고 준비중에 있다.

 

또한 17일 남녘의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약칭 민변) 변호사들이 통일부를 찾아 피해자들을 면회하려고 하였으나 이런저런 구실로 이를 거부하는 과정에서 평양의 가족들 승인서나 위임장이 있으면 가능하다고 말해 민족통신 특파원에게 그것을 부탁했다. 동영상으로라도 승인한다는 의사표시가 있으면 그것을 위임장으로 인정할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그래서 곧 나올 동영상에 그 질문도 했고 그들이 민변에 적극적으로 위임한다는 답변들을 얻어냈다.

 

동영상 제작이 완료되는 대로 현지소식을 보도하려고 한다. 노길남 특파원은 피해가족들과 대담하는 동안 준비한 질문을 다 하지 못할 정도로 피해자들 가족들은 눈물을 쏟고, 소리치며, 분노하고 증오심마져 폭발하는 등 이날 특별대담은 너무 어려웠다고 고백한다. 그내용들을 준비되는대로 독자여러분과 시청자 여러분에게 소개할 것이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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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표범 복원 청신호…연해주 '표범 땅' 번식 순조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6/05/18 11:46
  • 수정일
    2016/05/18 11:46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한국표범 복원 청신호…연해주 '표범 땅' 번식 순조

조홍섭 2016. 05. 17
조회수 2068 추천수 0
 

인터뷰 러시아 '표범의 땅' 국립공원 타티아나 바라노브스카야 원장과 엘레나 살마노바 과학국장

밀렵단속 성과 지난해 새끼 8마리 등 80마리로 불어

2013년엔 러서 중국 거쳐 북한 향한 발자국도 발견

 

le1.jpg» 세계에서 마지막 남은 한국표범(아무르표범) 서식지인 러시아 연해주 '표범의 땅' 국립공원 타티아나 바라노브스카야 원장(왼쪽)과 엘레나 살마노바 과학국장. 사진=조홍섭 기자

 

표범은 고양이과 대형 포식자 가운데 특별하다. 우아하고 아름다운데다 은밀하고 적응력이 뛰어나 강인한 인상을 준다. 표범 서식지는 아프리카 사바나부터 사막과 태평양 섬나라, 고산지대에 걸쳐 있다. 또 뭄바이나 요하네스버그 같은 대도시에 종종 모습을 드러내기도 한다. 자칫 표범이 아직 흔하다는 오해를 부른다. 

 

그러나 최근 전 세계 표범 서식지의 실태를 조사한 앤드류 제이콥슨 영국 런던동물원 연구원 등의 연구결과를 보면, 표범의 서식지는 과거에 견줘 25%밖에 남지 않았다. 특히 동북아의 한국표범(아무르표범)은 역사적 서식지의 98%를 잃어버려 세계적으로 가장 심각한 멸종위기에 놓여 있다. 현재 확인된 한국표범의 유일한 서식지는 러시아 연해주에 있는 ‘표범의 땅’ 국립공원이다. 

 

map.jpg» 한국표범의 역사적인 서식지 변천. 회색은 과거 서식지, 연두색은 서식 가능 지역, 초록색은 현 서식지. 그림=제이곱슨 외(2016) <피어제이>

 

한-러 어린이 호랑이 그리기 대회 시상식에 참가하기 위해  방한한 타티아나 바라노브스카야 원장과 엘레나 살마노바 과학국장을 16일 이항 서울대 수의대 교수 연구실에서 만나 4년이 지난 표범 국립공원의 현황과  한국표범의 미래에 관해 들었다.

 

먼저, 기존에 흩어져 있던 3~4개 보호구역을 묶어 북한산국립공원 30개 넓이에 설정한 ‘표범의 땅’이 성과를 거뒀는지 물었다. “밀렵단속 강화 등 덕분에 50마리이던 표범의 수가 80마리로 늘어났다”라고 바라노브스카야 원장이 말했다. 

 

두만강 너머 중국과 러시아의 국경지대인 이곳의 보전은 중·소 국경분쟁 덕을 봤다. 잣나무와 신갈나무가 뒤섞인 원시림에서 마지막 표범 집단이 한국호랑이 10여 마리와 함께 살아 남았다. (관련 기사연해주에 ‘표범 나라’ 생겼다)

 

male of leopard_foto by cameratrap_ copyrigh LLNP_s.jpg» 무인카메라에 찍힌 '표범의 땅' 수컷 표범. 사진=LLNP

 

“지난해엔 새끼가 9마리 태어났어요. 모두 크고 통통한 게 건강상태가 매우 좋지요.” 바라노브스카야 원장의 얼굴에 미소가 퍼진다. 성공적인 번식은 표범의 미래를 위해 좋은 징조다. 이런 사실은 무인카메라를 통해 확인했다. 

 

사실, ‘표범의 땅’은 애초 한반도였다. 1919~1942년 사이 일제가 포수를 동원해 잡아죽인 표범의 수는 기록된 것만 624마리이다. 연해주에선 해마다 1~3마리가 잡힌 것과 대조가 된다. 어쨌든 한반도와 연해주의 표범은 같은 종이다. 

 

밀렵꾼을 막는 것은 호랑이와 마찬가지로 표범 보전에도 핵심 과제다. “공원 감시원 23명이 3명씩 조를 짜 매달 갱신하는 감시지도를 바탕으로 순찰을 합니다. 지난해 모두 17건을 적발했는데 모두 러시아인이었지요. 중국 밀렵꾼도 오는데 밤중에 은밀하게 행동해 잡기가 쉽지 않습니다.”라고 바라노브스카야가 말했다.

 

le2.jpg» 바라노브스카야 '표범의 땅' 국립공원 원장. 사진=조홍섭 기자

 

뜻밖에 이들의 표적은 표범이 아니다. “사슴과 멧돼지가 주 목표이고 운이 좋으면 호랑이를 노리지요. 표범을 잡다가 잡히면 처벌이 엄해 건드리지 않습니다. 한약재 수요도 없고요.” 중국인 밀렵꾼은 다른 걸 노린다. “강에 약을 풀거나 겨울잠을 자는 곳을 파헤쳐 개구리와 물고기를 잡아갑니다. 또 한국인이 많이 찾는 산삼을 캐러 오기도 하지요.”

 

바라노브스카야 원장은 “표범은 이제 극동 러시아의 상징동물”이라고 했다. 푸틴 대통령 등 최고권력자들도 큰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표범으로부터 가축 피해를 입은 농가에는 지체 없이 보상을 해 주는 제도도 시행 중이다.

 

■ 무인 카메라로 찍은 한국표범의 사슴 사냥 모습(동영상: '표범의 땅' 국립공원)

 

 

 

■ 무인 카메라에 잡힌 새끼 두 마리를 데리고 있는 어미 표범(동영상: '표범의 땅' 국립공원)

 

 

 

해방 이후에도 한국표범은 보호를 받지 못했다. 표범을 용감하게 때려잡았다거나 모피를 비싸게 팔았다는 신문기사가 드문드문 이어졌다. 1962년 경남 합천에서 마지막으로 표범이 산 채로 잡혀 1974년 창경원에서 죽었다.(■ 관련 기사한국 마지막 표범 뱀가게에 팔렸다) 한국표범은 한반도에서 부활할 수 있을까.

 

leo8.jpg» 1963년 경남 합천에서 진돗개와 함께 새끼 표범을 돌로 잡은 주민 네 명이 동네 주민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

 

살마노바 과학국장의 말이 희망을 준다. “2013년 러시아에서 중국으로 넘어간 표범 발자국을 확인했는데, 그 발자국은 중국에서 다시 국경을 넘어 북한으로 향했습니다. 몇 마리가 북한으로 갔는지 등은 아직 잘 모릅니다.” 

 

지난해 10월15일 “러시아 정부가 북한에 아무르표범의 개체수 확인 작업에 참여해 달라고 요청했다”라고 <타스통신>이 보도한 데 대해 바라노브스카야 원장은 “그냥 기다릴 뿐”이라며 말을 아꼈다.

 

le3.jpg» 엘레나 살마노바 '표범의 땅' 국립공원 부원장 겸 과학국장

 

연해주의 표범 개체수가 충분히 불어나면 누가 말리지 않아도 중국과 북한, 나아가 남한으로 퍼져나갈 것이다. 살마노바 국장은 “표범 복원에 가장 중요한 건 먹이동물이 풍부하고 어미가 숨어 새끼를 기를 수 있는 은신 공간을 확보하는 등 서식지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나라 전문가들은 장차 표범 복원의 유력한 후보지로 강원도 화천·양구의 백암산·백석산 지역과 비무장지대를 잇는 지역으로 꼽는다.(■ 한국표범 복원이 두만강과 DMZ 수호신 될까)

 

바라노브스카야 원장은 “한국표범은 대부분의 다른 아종과 달리 혹독한 추위에 적응했고 덩치가 가장 작은 편인데다 사람을 공격하지 않는 습성을 지녔다”라며 “서식지 복원에 앞서 표범을 공존해야 할 우리의 동물로 받아들이는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연구자와 시민 차원의 교류와 협력이 중요하다는 얘기다. 

 

그는 생태관광과 교육의 일환으로 ‘표범의 땅’ 국립공원 안에 남아있는 100~150년 전 조선인 문화유적을 복원해 ‘코리아 트레일’로 조성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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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을 위한 행진곡>, 더 이상 청원하지 말자

 

5.18 민주화운동 36주기... 누가 5.18을 조롱하고 있는가

16.05.18 07:06l최종 업데이트 16.05.18 07:06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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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일 오후 광주광역시 광주공원에서 5.1유가족, 야당 정치인, 시민들이 참석한 가운데 '제36주년 5.18민중항쟁 전야제 민주대행진'이 열리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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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민주화운동 36주기를 맞았다. 올해도 변함없이 가장 핵심적인 '5.18 문제'는 '<임을 위한 행진곡>을 5.18기념식에서 제창하는가, 합창하는가'가 되고 말았다. 5.18이 국가기념일로 지정된 이후 줄곧 제창해왔던 노래를, 이명박·박근혜 정권은 국론분열을 이유로 부르지 못하게 하고 있다. 한국 수구정권의 수준을 보여주는 유치하고 졸렬한 처사다.   

그 부당한 처사에 대해서 광주시민은 물론 야권세력, 심지어 여당까지 바로잡기를 요구해왔다. 하지만 돌아온 답은 '국론분열이 우려되니 안 된다'는 것이었다. 다람쥐 쳇바퀴 돌 듯 해마다 5.18주간이 다가오면 온 야당이 나서서 정부여당에게 노래 부르게 해달라 청원을 하고, 정부여당은 기다렸다는 듯 거부하는 희한한 사태가 반복되고 있다.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오월 문제는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하는 것 말고는 모두 해결됐는가? 오월 문제의 핵심은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느냐 마느냐'인가? 

 

1993년 한국의 시민사회단체들과 5.18관련 단체들은 '5·18문제 해결 5대 원칙'을 합의한다. 그동안 '폭동'과 '사태'로 취급당하던 오월항쟁을 '역사바로세우기' 차원에서 민주화운동으로 성격 규정하려는 김영삼 문민정부와 궤를 같이 하는 흐름이었다.

'5·18문제해결 5대 원칙'은 ▲ 진상규명 ▲ 책임자 처벌 ▲ 명예회복 ▲ 집단 배상 ▲ 기념사업이다. 이 가운데서도 5·18당사자들과 시민사회가 가장 중요한 과제로 꼽은 것은 ▲ 진상규명 ▲ 책임자 처벌 ▲ 명예회복이었다.

명령받아 학살 가담한 자는 있는데 명령자가 없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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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12 및 5·18 선고공판이 열린 지난 1996년 8월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이 피고인 신분으로 재판시작에 앞서 기립해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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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5.18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학살의 진상은 제대로 규명됐는가. 1995년 12월 '5·18특별법'이 제정된 후 검찰은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을 비롯 5·18 학살관련자 16명을 기소했다. 1997년 4월 대법원은 전두환·노태우·황영시씨에게 '내란죄'를 적용, 무기 등 중형을 확정 판결했다. 

그러나 검찰이 작성한 10만여 쪽에 달하는 신문조서 그 어디에도 '발포 명령자'는 없었다. 군인이 쏜 총에 맞아 죽은 사람은 수백 명인데 총을 쏘라고 명령을 내린 자는 없다니…. 광주 금남로 등 도처에서 학살을 직접 실행한 현장 지휘책임자들이 단 한 명도 기소당하지 않았던 것은 이들이 '상부 명령에 따라 행동했다'고 진술했기 때문이다. 명령을 받아 학살에 가담한 자는 있는데 제 나라 국민을 죽이라고 명령한 자는 없다니…. 

지난 17일 발간된 <신동아> 6월호에 따르면, 전두환 전 대통령은 "그때 어느 누가 국민에게 총을 쏘라고 하겠어, 바보 같은 소리 하지 말라고 그래"라면서 "사실 광주사태하고 나하고는 아무 관계가 없다"라고 말했다.

민주화운동으로 규정된 5.18을 여전히 '광주사태'라고 칭하는 그는 "역사적 책임감으로 사과할 의향은 없느냐"는 질문에 "광주에 내려가 뭘 하라고요"라고 반문했다. 이 짧은 반문에 가득 차있는 5.18에 대한 조롱을 본다. 섬뜩하다, 제대로 진상규명하지 못한 결과다.

진상규명이 엉망이니 책임자 처벌도 엉망

진상규명이 제대로 되지 않았으니 책임자 처벌이 제대로 됐을 리 없다. 책임자 처벌은 곧 발포명령자를 처벌하는 것이다. 하지만 앞서 밝혔듯이 광주학살과 관련돼 기소돼 처벌 받은 자는 단 한 명도 없다. 군대 위계에 따라 살상을 저지른 충실한 군인만 있을 뿐, 제 나라 국민을 도륙한 학살자들은 단 한 명도 처벌받지 않았다. 

발포 명령자도 밝혀내지 못하고 책임자도 한 명 처벌하지 못했는데 명예회복이라도 제대로 됐겠는가. 전 전 대통령이 침묵을 깨고 그토록 민감해하던 '광주 문제'를 언론을 통해 공공연하게 떠벌일 수 있는 것은 아직도 '광주민주화운동'을 '광주사태'로, '광주시민'을 '폭도'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일베'라 불리는 '우익 꼴통'들이 광주희생자들을 홍어로 조롱하는 짓거리와 큰 차이 없는 역사에 대한 조롱이다.

우리가 정부여당에게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하게 해달라고 청원하고 있는 사이, 저들은 한 패가 돼 광주를, 오월을 조롱하는 영역을 확대해왔다. 학살진상이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광주시민을 학살하라고 명령한 자를 아직도 밝혀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천금 같은 가족과 이웃을 도륙한 살인마들을 단 한 명도 처벌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유감스럽게도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논란은 오월 문제 해결의 가장 중요한 원칙이자 과제인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을 희석시키는 물매가 되고 말았다. 우리가 노래를 부르게 해달라고 청원하는 사이, 우리들의 청원을 집권세력이 유치한 논리로 거부하는 사이, 학살에 책임 있는 자들은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며 골프를 치고 돌아다니고, 이 피맺힌 오월에 언론과 인터뷰를 하며 "(나보고) 광주에 내려가 뭘 하라고요"라며 실컷 조롱을 하고 있다.   

'학살자'들을 처벌의 심판대에 세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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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을 위한 행진곡' 목청껏 부르는 5.18유가족들 17일 오후 광주광역시 금남로에서 열린 '제36주년 5.18민중항쟁 전야제'에서 유가족들이 '임을 위한 행진곡'을 목청껏 부르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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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탁컨대 이제 더 이상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게 해달라고 청원하지 말자. 5.18기념식에서 노래 제창하는 것이, 광주를 학살한 발포명령자 한 명 밝혀내는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은 아니지 않는가. 

제발 광주여, 오월이여. 더 이상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게 해달라고 구걸하지 말자. 오월 광주는 저들이 쳐놓은 외로운 죽음의 수렁 속에서도 빵을 나누고 주먹밥을 나누며 행복했다. 노래 부를 힘을 모아 학살자들을 끝까지 추적해 처벌의 심판대에 세우자. 

세월은 흘러갔다. 강산도 변했다. 그러나 밝혀진 건 하나도 없고, 바뀐 건 역시 없다. 이것이 2016년 5.18 민주화운동 36주기의 민낯이다. 다시 금남로에서 <오월의 노래>를 불러야 하는 이유다.

"꽃잎처럼 금남로에 뿌려진 너의 붉은 피
두부처럼 잘리워진 어여쁜 너의 젖가슴
오월 그 날이 다시 오면 
우리 가슴에 붉은 피 솟네. 

왜 쏘았지 왜 찔렀지 트럭에 실려 어디 갔지
망월동에 부릅뜬 눈 수천의 핏발 서려있네
오월 그날이 다시 오면
우리 가슴에 붉은 피 솟네.

산자들아 동지들아 모여서 함께 나가자.
욕된 역사 고통 없이 어찌 깨치고 나가랴
오월 그날이 다시 오면
우리 가슴에 붉은 피 솟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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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소설 ‘채식주의자’로 한국인 최초 맨부커상 쾌거

한강, 소설 ‘채식주의자’로 한국인 최초 맨부커상 쾌거
등록 :2016-05-17 07:14수정 :2016-05-17 09:33

 

‘2016 파리도서전‘에 한국 대표 작가로 초청된 소설가 한강이 18일(현지시간) 행사장에서 프랑스 독자를 대상으로 사인회를 진행했다. 최근 맨부커상 후보에 오른 한강은 "진짜 담담하다. 앞으로도 계속 조용히 진지하게 글을 쓰겠다"는 소감을 밝혔다. 2016. 3. 18 연합뉴스
‘2016 파리도서전‘에 한국 대표 작가로 초청된 소설가 한강이 18일(현지시간) 행사장에서 프랑스 독자를 대상으로 사인회를 진행했다. 최근 맨부커상 후보에 오른 한강은 "진짜 담담하다. 앞으로도 계속 조용히 진지하게 글을 쓰겠다"는 소감을 밝혔다. 2016. 3. 18 연합뉴스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수상…한국 소설로는 처음
억압 받는 내면 등 인간 본성 다뤄 높은 평가 받아와
“수치·욕망 등 모두의 불안정한 시도들에 관한 소설”
한강 소설 <채식주의자>가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상을 수상했다.

 

<채식주의자>는 한국 시각 17일 오전 6시(현지 시각 16일 저녁) 영국 런던 빅토리아앤알버트 박물관에서 터키의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오르한 파무크, 중국 작가 옌렌커 등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최종 후보 작가와 번역가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공식 만찬 자리에서 올해의 수상작으로 선정되었다. 맨부커 인터내셔널 상은 영국에서 영어로 출간된 단행본 소설을 대상으로 삼는다. 한국 소설이 이 상을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수상자 한강과 번역자 데보라 스미스에게는 2만5천 파운드(한화 약 4천300만원)씩이 주어진다.

 

지난해 1월 영국에서 번역 출간된 <채식주의자>는 극단적으로 육식을 거부하고 차라리 나무가 되고자 하는 주인공 영혜를 주변 인물 세사람의 시선에서 그린 연작 세 편으로 이루어진 소설이다. 아버지가 자신의 입에 강제로 고기를 집어 넣으려 하자 손목을 긋는 영혜를 지켜보는 남편, 영혜의 엉덩이에 아직도 몽고반점이 남아 있다는 말을 듣고 영혜의 몸을 욕망하게 된 비디오아티스트 형부, 정신병원에서 식음을 전폐하고 링거조차 거부하는 영혜를 찾아간 언니 인혜의 눈에 비친 영혜를 통해 작가는 폭력과 욕망, 그리고 그에 의해 억압 받는 내면 같은 인간의 본성을 다룬 것으로 평가된다. 특히 원작의 시적인 분위기를 잘 살린 데보라 스미스의 번역도 영국 내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맨부커상 선정위원회는 “불안하고 난감하면서도 아름다운 소설 <채식주의자>는 현대 한국에 관한 소설이자 수치와 욕망, 그리고 타인을 이해하려는, 갇힌 한 육체가 다른 갇힌 육체를 이해하려는 우리 모두의 불안정한 시도들에 관한 소설”이라고 수상 사유를 밝혔다.

 

<채식주의자>가 지난해 1월 영국과 올 2월 미국에서 번역 출간된 뒤 <뉴욕타임스> <파이낸셜타임스> <가디언> 등 현지 언론들에서는 이 소설의 시적 아름다움과 보편적 주제의식 등을 높이 평가하는 서평이 이어졌다. 지난달 16일 맨부커 인터내셔널 상 최종 후보 6작품이 발표된 뒤 아일랜드 일간지 <아이리시 타임스>는 <채식주의자>가 상을 받아야 한다는 칼럼을 실었고, 미국의 해외문학 전문지 <월드 리터러처 투데이> 5월호도 메인 인터뷰로 한강을 다루는 등 해외에서 좋은 반응이 이어져 수상 가능성이 점쳐져 왔다.

 

김성곤 한국문학번역원장은 17일 수상 직후 <한겨레>와 통화에서 “한강 <채식주의자>가 세계 3대문학상 중 하나인 맨부커상을 수상한 것은 한국문학의 쾌거”라며 “이 수상을 계기로 전 세계가 한국 문학을 주목하게 돼서 노벨문학상에 한걸음 더 다가가게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김 원장은 “<채식주의자>는 세계가 테러를 비롯해 폭력에 시달리며 그에 관심을 지니고 있을 때 바로 그 문제를 다루었다. 전체 3부가 각각 가부장적 폭력과 눈에 보이지 않는 교묘한 폭력, 제도적 폭력을 다룬 것이다. 특히 폭력이 인간과 인간 사이 이해 부족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포착한 것이 주효했다”고 분석했다. 그는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이 원작자와 번역자를 함께 시상하는 상이라는 점에서 특히 번역자 데보라 스미스의 기가 막히게 좋은 번역을 높이 평가한다”며 “<설국> 작가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노벨상 수상 배후에 에드워드 사이덴스티커라는 좋은 번역자가 있었다면 한국문학에는 드디어 데보라 스미스라는 번역자가 나타났다”고 말했다.

 

한편 80년 5월 광주를 다룬 한강의 후속작 <소년이 온다> 역시 <채식주의자>를 옮긴 데보라 스미스의 번역으로 올 1월 영국에서 출간되어 <채식주의자> 못지 않은 반응을 얻고 있다. <가디언>은 2월 한강 인터뷰를 실었으며 <파이낸셜타임스>도 서평을 실었다. 20대 젊은 번역자이며 한국어를 배운 지 6년밖에 되지 않은 데보라 스미스 역시 배수아의 <서울의 낮은 언덕>과 <에세이스트의 책상>을 번역 중이며 김연수와 황정은 등의 소설 역시 번역 출간하기로 했다.

 

소설가 한승원의 딸로 1970년 광주에서 태어난 한강은 1993년 연세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같은 해 <문학과사회> 겨울호에 ‘서울의 겨울’ 등 시가 당선되어 시인으로 먼저 등단했다. 이듬해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단편 ‘붉은 닻’이 당선되어 소설가로도 활동을 시작해 <검은 사슴> <그대의 차가운 손> <희랍어 시간> 등 장편 6편과 <여수의 사랑> <내 여자의 열매> 등 소설집 3권을 냈으며 이밖에도 시집 한권과 산문집 여럿을 냈다. 이상문학상, 동리문학상, 황순원문학상을 수상했으며, 특히 1988년 이상문학상을 수상한 부친과 함께 부녀가 이 상을 나란히 수상하는 최초의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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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민중항쟁은 아직도 폭동인가?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16/05/17 10:52
  • 수정일
    2016/05/17 10:52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광주민중항쟁은 아직도 폭동인가?
 
언제쯤이면 억울하게 희생된 이들의 원혼이 편히 잠들까?
 
김용택 | 2016-05-17 09:09:01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내일이 광주민중항쟁이 일어난 지 36번째 맞는 날이다. 1980년 5월 18일… 국가권력에 의해 광주시민이 무차별 학살을 당한 날이다. 국민의 재산과 생명을 지켜야 정부가 언론을 장악하고 어린이와 여자 그리고 임신부를 비롯한 학생, 노약자에 이르기 까지 백주대낮에 무참하게 학살당한 사건이 5,18 광주민중항쟁이다.

사망자 165명, 사망인정 실종자 70명, 사망비인정실종자 300여 명, 상이후 사망자 376명, 부상자 3,139명, 구속 및 구금 피해자 1,589명, 사망자 수천 명… 전체 희생자 가운데 여성이 21.1%, 10세 이하의 어린이가 5.6%, 61세 이상의 노인이 6.2%를 차지하고 있다.

가해자인 전두환, 노태우일당은 김영삼정권 때 ‘12·12, 5·18 재판’으로 “반란수괴”, “반란모의 참여”, “반란중요임무 종사”, “상관살해”, “내란수괴”, “내란모의참여”, “내란중요임무종사”, “내란목적살인” 등의 혐의로 사형, 무기장역 등의 실형을 선고받았지만, 피고인 14명 모두 복역 8개월 만에 특별 사면됐다. 

당시 광주시민을 학살하라고 발포명령을 내렸던 이희성(92세) 당시 계엄사령관은 “나는 5·18과 관련해 죄가 없소. 당시 내가 가장 윗선에 있어 형식상 (유혈진압을) 결제하고 승인했을 뿐 실제로는 일선 참모들이 결정한 것이오. 지휘 체계상 내가 책임지지 않을 수 없어 기소된 것일 뿐이오.” 라며 당당하게 천수를 누리고 있다.

대통령을 지낸 전두환은 전두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임이라는 ‘전사모’라는 단체가 있고 전두환의 고향인 경남합천에는 그를 기리는 ‘일해공원’이 있으며, 그의 모교 대구공고에는 국민의 혈세 20억을 들여 ‘자랑스런 동문 전두환 대통령 자료실’이라는 문구와 상반신의 흉상이 있다.

살륙과 민중의 저항… 이런 한의 역사가 어디 광주뿐일까? 1947년 3월 1일에서부터 무려 한 달여 동안 경찰과 미군에 의해 2만~5만여 명의 제주도민이 도륙을 당한 4·3 제주민중항쟁은 아직도 제주 폭동이다. 또 있다. 1950년 한국전쟁 중에 대한민국 국군·헌병·반공 극우단체 등이 국민보도연맹원이나 양심수 등을 포함해 공식적으로 확인된 4,934명과 10만 명에서 최대 120만 명의 양민들이 학살당했다는 보도연맹사건.

헌법이 있으나 현실은 법전에나 있고 무력한 국민들은 정부의 보호를 받기는커녕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희생물에 불과했던 지난날… 다시 광주민중항쟁 36주년을 맞지만 광주항쟁은 끝난 게 아니다. 국가보훈처가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 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 동지는 간데없고 깃발만 나부껴 / 새날이 올때까지 흔들리지 말자…’라는 ‘임을 위한 행진곡’조차 5.18행사 때 제창을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언제쯤이면 억울하게 희생된 이들의 원혼이 편히 잠들까? 

임을 위한 행진곡 - 어느 결혼식

광주민주항쟁의 역사-1 ☜
광주민주항쟁의 역사-2 ☜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30&table=yt_kim&uid=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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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 출신 백혜련 당선인 "검찰 내부를 수사하라"

 

[장윤선·박정호의 팟짱 인터뷰] 백혜련 더불어민주당 당선인

16.05.16 14:54l최종 업데이트 16.05.16 17:08l

 

 

 
▲ [전체보기] 백혜련 "홍만표-정운호게이트, 공판간여 현직검사 싹 다 수사해야"
ⓒ 오마이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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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혜련 더불어민주당 당선인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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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은 권력의 향배에 민감합니다. 지금까지 검찰의 행보를 보면 권력 누수가 시작됐을 때 권력의 중심부를 향해 다시 칼을 들이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대선 국면에 접어들지 않아서 지금까지는 박근혜 대통령의 가이드라인이나 청와대 눈치 보기를 하지만..."

16일 <장윤선·박정호의 팟짱>에 출연한 더불어민주당 백혜련 당선인은 장윤선 오마이뉴스 정치선임기자와의 인터뷰를 통해 어버이연합 게이트와 정운호 게이트 등 굵직한 현안에 대해 입을 열었다. 

백 당선인은 "총선 민심이 여권에 등 돌린 상태고, 대선 국면이 아니어서 (검찰의 태도는) 더 지켜봐야 한다"며 "20대 국회가 시작되면 어버이연합 게이트 수사도 속도를 낼 수 있다"고 진단했다.
 
 
전 국민의 공분을 사는 옥시 사태나 정운호 게이트보다 어버이연합 게이트가 수사 진척을 내지 못하고 있다. 지난달 언론사 오찬 간담회에서 박 대통령은 "(어버이연합 관련) 보고를 받았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라고 보고 받았다"는 일종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상태라 검찰의 신속한 수사를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백 당선인은 어버이연합 게이트 수사와 관련해 쟁점이 될 만한 사안들을 짚었다. 특히, CJ나 SK와 같은 국내 대기업이나 재향 경우회 같은 일반 단체에서 어버이연합에 돈을 대줬다는 의혹에 주목했다. 

어버이연합에 돈을 대준 곳들은 차명계좌를 통해 돈을 전달했기에 금융실명제법 위반은 명백한 상황이다. 조사에 따라 업무상 배임 혐의도 뒤따를 것으로 보인다. 특정한 목적 없이 합법적인 절차를 어기면서까지 어버이연합을 지원한 사실이 드러난다면 업무상 배임죄가 적용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연관 관계를 명백히 밝힐 필요가 있다. 백 당선인은 "(어버이연합에 돈을 지원한 것이) 자발적으로 한 것인지 확인해야 한다"며 "전경련이나 기업들은 어버이연합 같은 보수 단체와 고리가 없는 곳인 만큼 중간에 누군가 역할을 했는지 밝혀야 한다"고 지적했다. 

중심에는 '추선희'가 있다 

'그 중심이 누구냐'에 대한 의혹은 추선희 어버이연합 사무총장을 가리키고 있다. 최근, 탈북단체 관계자가 모 언론사와의 인터뷰를 통해 "추 사무총장이 '자기가 뭐든 할 수 있다', '국정원과 연결할 수 있다'는 말을 했다"고 밝힌 바 있다. 추 사무총장 본인 입으로 청와대, 국정원 간의 우호 관계를 강조해온 것이다. 

추 사무총장이 어버이연합에 들어온 뒤로 단체의 성격이 바뀌고 있다는 주장도 있다. 백 당선인은 "어버이연합 초창기 시절과 이번에 동원 집회를 추진하는 시기 사이에 변화가 있는 것 같다"며 "추선희 사무총장이 (어버이연합에) 들어오면서 국정원과 연결하고, 탈북 단체를 끌어들이면서 단체 성격이 한 단계 변화, 발전하는 게 있는 것 같다"고 의문을 제기했다.

"예전에 공안대책회의라는 게 있었습니다. 공안대책회의라는 게 청와대부터 경찰까지 연결된 구조거든요. 청와대, 국정원, 검찰, 경찰이 공안대책회의에서 망라됩니다. 그런 어떤 시스템이 구축돼 있어서 별개로 움직이진 않았을 거로 생각합니다." 

결국, 어버이연합 게이트의 컨트롤 타워는 국정원, 청와대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백 당선인은 "(국정원, 청와대) 양자가 분리될 수는 없다"며 "국정원 단독으로 움직일 수 없고, 청와대도 직접 움직이기보다는 국정원을 통해 움직이는 게 편해서 (서로) 연계돼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예상했다. 

그 인과 관계를 정확하게 밝혀내는 일은 쉽지 않다. 어버이연합은 2006년 5월 출범한 단체다. 어버이연합 게이트를 조사하려면 오랜 기간 그들의 활동을 일일이 주목해야 한다. 어버이연합 단독이 아니라 돈을 건넨 여러 단체까지 개입돼 있어서 수사가 길어질 전망이다. 

백 당선인은 "국민의당까지 나서서 (어버이연합 게이트를) 해결해야 한다고 본다"며 "검찰 수사를 더 지켜보겠지만, 진척이 없다면 청문회, 국정조사, 특검까지 어떤 방식으로든지 문제를 제기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검찰 내부 수사가 없다면..."

"왜 3년의 구형이 2년 6개월로 깎였는지 공판에 간여한 검사들에 대한 수사가 진행돼야 합니다. 최유정 변호사의 동기가 공판 부장검사인데 그를 찾아갔다는 보도도 본 것 같아요. 그 과정에서 로비가 이뤄진 것인지... 그 부분에 대한 수사가 진행돼야 한다고 봅니다." 

백 당선인은 법조계를 흔들고 있는 정운호 게이트에 대해서는 '검찰 내부의 조사'를 강조했다. 엄청난 금액의 수임료나 전관예우 등 법조 비리와 관련된 문제들이 쌓여 있지만, 핵심은 '검찰 내부에 있다'는 얘기다. 

정운호 네이처리퍼블릭 대표가 해외 원정 도박을 다녀온 혐의로 기소됐을 때 1심에서 징역 3년을 구형받았다. 하지만, 2심에서 2년 6개월로 감형된 점이 석연치 않다. 2심으로 가면 선고 형량이 늘어나는 것이 일반적인데 오히려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100억 원의 수임료를 받아 가며 이 사건을 맡은 최유정 변호사가 공판 간여 검사를 상대로 로비를 벌여 감형을 이끌어 냈다는 의혹이 제기된다.  

앞서, 최 변호사가 선임되기 전에 정 대표의 변호인으로 있었던 홍만표 변호사에게도 로비 의혹이 있다. 홍 변호사는 정운호 대표의 2014년, 2015년 두 차례나 무혐의 처분을 받아내기도 했다. 당시 정 대표는 이미 무혐의 처분을 받아 입증할 필요가 없는데도 관련 자료를 검찰에 제출하는 등 수상한 행동을 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홍 변호사가 정 대표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받아낸 것도 검찰과 모종의 관계가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문이 남는다. 

백 당선인은 "이대로라면 홍만표 변호사는 탈세 혐의로, 최유정 변호사는 사기죄로 끝날 것으로 보인다"고 추측했다. 홍 변호사가 검찰을 상대로 로비를 벌였다는 증거를 찾지 못하면 거액의 수임료를 받았다는 죄를 물을 수밖에 없다. 최 변호사도 검찰 내부 수사 없이는 의뢰인을 속여 수임료 액수를 불려서 받았다는 사기죄만 적용받게 된다. 

검찰 내부를 향한 수사가 있어야만 정운호 게이트를 제대로 파헤칠 수 있다. 백 당선인은 "검찰에서 의지를 갖추고 '수사를 하느냐, 마느냐'는 '검찰 내부를 수사할 거냐, 마느냐'로 판단해야 한다고 본다"며 "최유정 변호사나 홍만표 변호사 처벌에 그치면 검찰은 '제 식구 감싸기', '용두사미 수사'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고 일갈했다. 인터뷰 전체 내용은 <장윤선·박정호의 팟짱>에서 들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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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변, 북 12명 여성 종업원 접견 신청...국정원 거부


“북 가족 동의하면 ‘인신보호구제신청’으로 구금 풀겠다”
이승현 기자  |  shlee@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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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05.16  18:2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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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변 통일위는 16일 국정원이 운영하는 북한이탈주민보호센터에서 12명의 북한 해외식당 종업원들을 접견하기 위한 긴급 기자회견을 갖고 향후 대응계획을 밝혔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통일위원회(위원장 설창일 변호사, 이하 민변 통일위)는 16일 오후 경기도 시흥시 조남동 북한이탈주민보호센터(구 중앙합동신문센터)에서 북한 해외식당 종업원 리은경 외 11명을 긴급 접견하기 위한 기자회견을 갖고 향후 대응계획을 밝혔다.

민변 통일위는 이날 권정호·김용민·김자연·설창일·신윤경·양승봉·오민애·장경욱·채희준·천낙봉 변호사가 리은경·한행복·리선미·리지혜·리춘·금혜성·류송영·전옥향·지정화·박옥성·금설경·서경아 등 북한 해외식당 종업원 12명을 접견하기 위해 북한이탈주민보호센터 민원실을 통해 접견신청서를 제출했으나 접견은 불허됐다.

변호인단은 접견이 불허될 경우에 대비해 12명의 종업원에게 그간 경과를 기록할 수 있도록 일기장과 편지지, 펜 등 물품 세트와 변호사들의 도움글 및 바깥소식을 적은 서신을 전달하려 했으나, 센터측은 “변호사들의 서신을 포함해 외부로부터 들어오는 모든 물품은 유해물질일 수 있어서 반입되지 않는다”며, 민원접수 절차를 밟도록 했다.

변호인단에 따르면, 국정원은 현재 센터 내에 12명의 종업원이 있는지, 변호사들이 자신들을 접견하기 위해 신청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지, 이들이 변호사와의 접견을 원하고 있는지 등 변호인단의 질문에는 “확인해 줄 수 없다”고 대답했다.

앞서 지난 13일 민변 통일위가 센터 운영 당사자인 국가정보원에 이메일로 보낸 접견신청서에 대해서도 이날 오전 민원처리 결과 통보서를 통해 접견불허 결정을 통보했다.

국정원은 회신문을 통해 “당 원의 탈북민 관련 시설은 ‘북한이탈주민의 보호 및 정착지원에 관한 법률’에 근거, 북한 테러 등 신변위협에 대한 보호시설이지 구금시설이 아니다”라며, “또한, 북 식당 종업원 12명은 자유의사에 따라 보호를 요청한 북한 이탈 주민으로, 난민이나 형사피의자 등 변호사 접견 대상이 아니다”라고 회신해 왔다.

   
▲ 민변통일위는 이날 국정원이 접견 거부를 통보해 옴에 따라 앞으로 행정소송과 국가배상 소송, 인신보호구제신청 등 합법적인 모든 방법을 동원하겠다고 밝혔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이에 대해 권정호 변호사는 “‘북한이탈주민 보호법’에 따르더라도 국정원은 이들을 조사할 권한만 있지 이들의 행동의 자유를 제약하거나 변호인의 접견을 거부할 수 없다”며, “국정원의 태도는 탈법적이고 반인권적이며, 국내법·국제법 모두 안중에도 없다는 듯한 무모한 조치”라고 비판했다.

더욱이 최근 보도에는 이들 종업원 중 10대도 포함돼 있고 조사에 항의에 단식 중 사망자가 발생했다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어 변호사 접견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권 변호사는 “국정원이 계속 접견신청을 거부한다면 위법·부당한 조치에 대해 행정소송, 헌법소원은 말할 것도 없고 국가배상, 나아가 인신보호법에 따른 인신보호구제신청을 제기할 것이며, 유엔인권이사회를 통한 진정 등 모든 합법적 방법을 동원해서 사실관계를 확인해 이들의 의사에 맞게 신변조치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천낙붕 변호사는 국정원이 이들 여성 종업원들의 법적 지위를 형사피의자도 난민도 아니라면서 접견을 거부하고 있고 구금시설이 아니라 보호시설이라고 통보한데 착안, “시설 운영 주체는 구금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당사자나 당사자 가족은 구금이라고 주장하면서 의견이 엇갈릴 때 ‘인신보호법’에 입각해 구금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 경우에도 변호인이 접견해 당사자가 원한다면 ‘구금’또는 ‘보호’시설을 자기 의사로 나오도록 할 수 있으며, 대표적으로는 2013년 4월 조작 간첩사건으로 드러난 유오성의 동생 유가려 씨가 인신보호구제신청으로 센터를 나온 후 가혹행위를 폭로한 바 있다.

   
▲ 민변 변호사들과 기자들로 북적이는 북한이탈주민보호센터 정문 앞.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변호인단에 따르면, 사회복지법인이나 병원에 강제 입원한 환자 등의 경우 인신보호법에 따라 인신보호구제신청을 할 수 있으며, 신청만 하면 법원의 명령에 따라 2~3일 내에 재판기일이 잡히게 된다. 앞서 유가려 씨의 경우에는 당일 바로 나왔다고 한다.

장경욱 변호사는 이 경우 가족의 위임이 있어야 한다는 어려움이 있는데, 남과 북의 소통이 끊긴 상태에서 언론 보도를 통해 북측 가족들의 의사가 확인된다면 즉시 시행해 볼 수 있는 방법이라고 밝혔다.

신윤경 변호사는 지난 13일 접견신청이 이날 오전 거부되고 이날 직접 신청한 접견도 거부됨에 따라 변호인단은 행정신청과 국가배상 소송을 직접 제기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 변호인단이 접견신청서 등을 제출한 후 민원실을 나서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경기도 시흥시 조남동 '북한이탈주민보호센터'.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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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로동당 제7차 대회에서 제시된 통일방략

[개벽예감204] 조선로동당 제7차 대회에서 제시된 통일방략
 
 
 
한호석(통일학연구소 소장) 
기사입력: 2016/05/17 [02:38]  최종편집: ⓒ 자주시보
 
 

 

<차례>
1. ‘기어이’라는 낱말이 반복적으로 사용된 까닭
2. 김정은 당위원장이 계승한 ‘주체적 통일로선’
3. 김정은 당위원장이 제시한 통일방략

 

▲ <사진 1> 조선로동당 제7차 대회가 2016년 5월 6일부터 9일까지 평양에서 진행되었다. 36년만에 열린 당대회였다. 남, 북, 해외 전체 민족의 비상한 관심과 기대, 그리고 전 세계 정치계와 언론계의 이목이 그 대회에 집중되었다. 위의 사진은 조선로동당 제7차 대회 주석단을 촬영한 것이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1. ‘기어이’라는 낱말이 반복적으로 사용된 까닭

 

내외언론보도를 통해 알려진 것처럼, 조선로동당 제7차 대회가 2016년 5월 6일부터 9일까지 평양에서 진행되었다. 조선로동당 제6차 대회가 1980년 10월 10일부터 14일까지 진행되었으므로, 제7차 대회는 36년 만에 열린 것이다. 일반적으로, 한 세대를 30년으로 잡는데, 이번에 조선로동당 제7차 대회는 한 세대가 지난 뒤에 개최된 것이다. 그러하였으니 남, 북, 해외 전체 민족의 비상한 관심과 기대, 그리고 전 세계 정치계와 언론계의 이목이 그 대회에 집중되지 않을 수 없었다. <사진 1>


김정은 조선로동당 위원장은 조선로동당 제7차 대회 개회사에서 대표자 3,667명과 방청자 1,387명이 대회에 참가하였다고 언급하였다. 평양에 있는 4.25문화회관에서 3박4일 동안 진행된 대회는 5,054명이 참가한 대정치회합이었던 것이다. 조선의 언론보도에 따르면, 조선로동당 제7차 대회는 “1.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사업총화, 2. 조선로동당 중앙검사위원회 사업총화, 3. 조선로동당 규약개정에 대하여, 4. 경애하는 김정은 동지를 우리 당의 최고수위에 높이 추대할데 대하여, 5. 조선로동당 중앙지도기관 선거” 순으로 진행되었다고 한다.


조선로동당 제7차 대회에서 중요한 공식문건들이 보고되고, 토론되고, 채택되었는데, 조선의 언론에 보도된 공식문건들만 해도 방대한 분량이다. 그 공식문건들에는 지난 36년 동안 조선을 영도해온 조선로동당의 모든 사업실적과 그에 대한 평가가 담겨있고, 앞으로 조선로동당이 추진할 전략, 방침, 계획이 제시되어 있다.


그 방대한 분량의 공식문건들을 전반적으로 고찰하기에는 나의 필력이 너무 부족하므로, 이 글에서는 김정은 당위원장이 당중앙위원회 사업총화보고에서 언급한 조국통일문제에 대해서만 고찰한다. 김정은 당위원장은 장장 3시간에 걸쳐 당중앙위원회 사업총화보고를 하였는데, 조선의 언론에 보도된 그 전문을 읽어보면 아래와 같은 체계로 서술되었음을 알 수 있다. 

 

1. 주체사상, 선군정치의 위대한 승리
1) 사회주의위업의 승리적 전진을 위한 투쟁
2) 강성국가건설에서 이룩한 자랑찬 성과
3) 혁명위업의 빛나는 계승


2. 사회주의위업의 완성을 위하여
1) 온 사회의 김일성-김정일주의화
2) 과학기술강국건설
3) 경제강국건설, 인민경제발전전략
4) 문명강국건설
5) 정치군사적 위력의 강화


3. 조국의 자주적 통일을 위하여

 

4. 세계의 자주화를 위하여

 

5. 당의 강화발전을 위하여

 

▲ <사진 2> 김정은 당위원장은 조선로동당 제7차 대회에서 "우리는 필승의 신념과 락관에 넘쳐 위대한 수령님들의 애국애족의 숭고한 뜻과 념원을 실현하기 위하여 힘차게 투쟁함으로써 이 땅 우에 기어이 존엄높고 번영하는 통일강국을 일떠세우고야말 것"이라고 말하며 조국통일을 향한 자신의 확고한 의지와 결심을 천명하였다. 위의 사진은 김정은 당위원장이 조선로동당 제7차 대회에서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사업총화보고를 하는 모습이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김정은 당위원장은 ‘조국의 자주적 통일을 위하여’라는 중간제목을 붙인 서술부분에서 “조국통일을 실현하는 것은 나라와 민족의 운명을 책임진 우리 당 앞에 나선 가장 중대하고 절박한 과업”이라고 지적하고, “위대한 수령님들의 필생의 뜻과 유훈을 관철하여 조국의 자주적 통일을 기어이 이룩하려는 것은 우리 당의 확고한 결심이며 의지”라고 언명함으로써 조국통일을 실현하려는 조선로동당의 확고한 결심과 의지를 밝혔다. <사진 2>


조국통일을 실현하려는 조선로동당의 확고한 결심과 의지는 곧 김정은 당위원장 자신의 확고한 결심과 의지로 된다. 조국통일을 실현하려는 김정은 당위원장의 확고한 결심과 의지에 대해서는 조선의 언론매체들만이 아니라 한국의 언론매체들도 보도한 적이 있는데, 김정은 당위원장은 자신의 그런 확고한 의지와 결심을 이번에 당 제7차대회에서 또 다시 아래와 같이 천명하였다.


“조국통일의 앞길에는 의연히 장애와 난관이 가로놓여있지만 조국통일의 력사적 위업을 완수하기 위한 우리 당과 인민의 투쟁을 그 누구도 막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필승의 신념과 락관에 넘쳐 위대한 수령님들의 애국애족의 숭고한 뜻과 념원을 실현하기 위하여 힘차게 투쟁함으로써 이 땅 우에 기어이 존엄높고 번영하는 통일강국을 일떠세우고야말 것입니다.”


여기서 주목하는 것은, 위의 두 인용문들에 ‘기어이’라는 말이 각각 들어있다는 사실이다. ‘조선말대사전’에서 ‘기어이’라는 낱말을 찾아보면, 그 말뜻이 “어떤 일이 있더라도 반드시”라고 풀이되었다. 조국통일문제를 언급한 문장들에서 ‘기어이’라는 낱말이 그처럼 반복적으로 사용된 것은, 조국통일을 실현하려는 김정은 당위원장의 의지와 결심이 얼마나 확고한지를 말해주는 것이다.  


김정은 당위원장은 조국통일을 실현하려는 자신의 확고한 의지와 결심을 천명한 것과 함께 통일조국의 미래상에 대해서도 말했다.


“조국이 통일되면 우리나라는 8천만의 인구와 막강한 국력을 가진 세계적인 강대국으로, 민족의 강의한 정신과 뛰여난 슬기로 세계를 앞서나가는 선진문명국, 동북아시아와 세계평화를 선도하는 정의의 강국으로 그 존엄과 위용을 만방에 떨치게 될 것입니다.”


지금으로부터 1,600여 년 전 광개토왕이 영도한 최전성기의 고구려는 ‘동방의 강대국’으로 위용을 떨친 바 있었는데, 위의 인용문에 따르면 김정은 당위원장이 전망하는 통일국가는 ‘동방의 강대국’보다 더 강한 ‘세계적인 강대국’이고, ‘선진문명국’이며, ‘정의의 강국’인 것이다.

 

▲ <사진 3> 조선이 '고난의 행군'으로 모진 시련을 겪고 있었던 1996년 11월 24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조국분단과 민족분열의 고통이 응축된 판문점을 시찰하면서 김일성 주석이 제시한 조국통일 3대 원칙, 고려민주련방공화국 창립방안, 전민족대단결 10대 강령을 조국통일 3대 헌장으로 정립하였다. 조선에서는 조국통일 3대 헌장을 '민족공동의 통일강령'으로 부른다. 위의 사진은 2001년 8월 14일 평양에 건립된 조국통일 3대 헌장 기념탑을 촬영한 것이다. 평양에서 판문점을 지나 서울로 통하는 남행 고속도로가 시작되는 평양시 락랑구역 통일거리 어귀에 그 기념탑이 서 있다. 기념탑의 높이는 30m이며, 너비는 6.15공동선언을 의미하여 61.5m로 하였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2. 김정은 당위원장이 계승한 ‘주체적 통일로선’


김정은 당위원장은 조선로동당 제7차 대회에서 조선로동당의 ‘주체적 통일로선’에 대해 언명하였다. 그 언명에 따르면, “조선로동당의 조국통일로선은 위대한 수령님들께서 제시하신 주체적 통일로선”이며, “조선로동당의 주체적 통일로선은 위대한 수령님들께서 밝혀주신 조국통일 3대 헌장에 전면적으로 구현되여 있”는 것이다. 김정은 당위원장의 언명에 따르면, 조선로동당의 ‘주체적 통일로선’은 조국통일 3대 헌장에 “전면적으로” 구현되어 있는데, 조선에서는 조국통일 3대 헌장을 ‘민족공동의 통일강령’으로 인정하면서,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힘쓰고 있다. <사진 3> 


조국통일 3대 헌장은 무엇인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1996년 11월 24일 조국분단과 민족분열의 고통이 응축된 판문점을 시찰하면서 “위대한 수령님께서 내놓으신 조국통일 3대 원칙, 고려민주련방공화국 창립방안, 전민족대단결 10대 강령은 조국통일의 3대 기둥, 3대 헌장”이라고 밝혔는데, 조선에서는 조국통일 3대 헌장을 ‘민족공동의 통일강령’으로 부르고 있다. 북에서 조국통일 3대 헌장을 ‘민족공동의 통일강령’으로 부르는 까닭은, 통일원칙과 통일방안이 조국통일 3대 헌장에 완벽하게 밝혀져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김정은 당위원장은 당 제7차 대회에서 “우리 당은 조선의 통일을 달가와하지 않는 반통일세력의 방해책동을 물리치면서 위대한 수령님의 주체적 통일로선을 일관하게 견지하여 조국통일운동을 줄기차게 전진시켜왔”다고 지적함으로써 김일성 주석이 제시하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정립한 조선로동당의 ‘주체적 통일로선’이 계승되고 있음을 밝혔다. 김정은 당위원장의 언명에 따르면, 1972년부터 1993년에 이르는 기간에 김일성 주석이 제시하였고, 1996년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정립한, 조국통일 3대 헌장에 담겨있는 조선로동당의 ‘주체적 통일로선’은 오늘 김정은 당위원장 자신에 의해 전면적으로 계승되고 있는 것이다. 김정은 당위원장이 계승한 조선로동당의 ‘주체적 통일로선’에 대해 아래와 같이 설명할 수 있다.


첫째, 조국통일의 원칙은 7.4남북공동성명에서 천명된 조국통일 3대 원칙과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에서 천명된 우리민족끼리의 원칙이다.


조국통일 3대 원칙은 1972년 7월 4일 남과 북이 평양에서 합의, 발표한 7.4남북공동성명에 천명되었는데,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의  원칙이 그것이다.


우리민족끼리의 원칙은 1948년 4월 19일부터 30일까지 평양에서 진행된 남북정당사회단체연석회의에서 만장일치로 채택된 ‘전 조선동포에게 격함’이라는 제목의 공식문건에 처음으로 나왔는데, 당시 남북연석회의 참가자들은 그 격문에서 “우리 조국강토에서 외국군대를 철거하고 어떠한 외국의 간섭도 없이 우리 민족끼리 우리의 문제를 해결할 것을 요구하라”고 명시한 바 있다. 그로부터 52년이 지난 2000년 6월 15일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김대중 대통령이 평양에서 상봉하고 6.15공동선언을 채택, 발표하였는데, 그 공동선언은 제1조에서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문제를 그 주인인 우리 민족끼리 서로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해 나가기로 하였다”고 명시하였다. 이러한 역사적 맥락을 이해하면, 우리민족끼리의 원칙은 조국통일의 제4원칙으로 제시된 것이 아니라, 자주의 원칙과 민족대단결의 원칙을 시대적 요구에 맞게 통합적으로 재확인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남과 북이 합의하여 민족의 통일염원 앞에 바친 1948년 남북연석회의 격문, 1972년 7.4남북공동성명, 2000년 6.15공동선언에서 일관되게 천명한 조국통일 3대 원칙은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이다. <사진 4>

 

▲<사진 4> 남과 북이 합의하여 민족의 통일염원 앞에 바친 1948년 남북연석회의 격문, 1972년 7.4남북공동성명, 2000년 6.15공동선언에서 일관되게 천명한 조국통일 3대 원칙은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이다. 맨위쪽 사진은 1948년 4월 김일성 주석과 김구 선생이 평양에 있는 모란봉극장에서 열린 남북연석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걸어가는 모습이다. 가운데 사진은 1972년 7월 김일성 주석이 평양에서 7.4남북공동성명을 채택한 직후 대통령 특사로 평양에 갔던 이후락 당시 중앙정보부장을 접견하는 모습이다. 맨아래쪽 사진은 2000년 6월 평양에서 상봉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김대중 대통령이 6.15공동선언을 채택, 발표한 뒤 맞잡은 손을 치켜들고 환호하는 참석자들에게 답례하는 모습이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김정은 당위원장은 조선로동당 제7차 대회에서 자신이 조국통일 3대 원칙을 계승하고 있음을 아래와 같이 밝혔다.


자주의 원칙에 대해서는 “민족자주는 조국통일 3대 헌장에 관통되여있는 기본정신이며 통일운동의 생명선”이라고 하면서 “나라의 통일을 남에게 의존해서가 아니라 우리 민족 자신이 책임지고 온 겨레의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이룩할 데 대한 우리 당의 통일로선은 투철한 민족자주정신에 기초하고 있는 가장 정당한 로선”이라고 말하였고, 평화통일의 원칙에 대해서는 “조선반도의 평화와 안전은 우리 민족의 운명과 관련되는 사활적인 문제이며 조국통일의 필수적 전제”라고 말하였으며, 민족대단결의 원칙에 대해서는 “민족대단결이자 곧 조국통일이며 통일강국”이라고 하면서, “우리는 민족의 분렬이 가져온 온갖 오해와 불신, 대립과 갈등을 극복하고 조국통일의 천하지대본인 민족대단결을 이룩하기 위하여 적극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은 당위원장이 이처럼 조국통일 3대 원칙을 계승하고 있음을 밝힌 것은, 내외반통일세력의 강압과 폭력으로 조국분단과 민족분열이 고착화되어가던 1948년에 우리민족끼리의 기치 아래 추진되기 시작되어 오늘까지 지속되어온 장장 68년에 이르는 조국통일운동의 장구한 역사를 계승하고 있음을 천명한 것으로 해석된다. 


둘째, 조국통일은 조국분단과 민족분열을 극복하고 통일국가를 건설하는 민족사의 최대 과업이다. 따라서 통일방안은 통일국가를 건설하는 방안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남과 북이 통일의회에서 통일헌법을 제정하고, 통일헌법에 따라 통일정부를 수립하고, 통일정부가 통일국가를 선포하는 일련의 국가건설과정을 정해놓은 방안, 바로 그것이 통일방안인 것이다.

 

▲ <사진 5> 통일학에서 말하는 조국통일개념은 통일정부수립과 통일국가건설을 뜻한다. 통일헌법에 의해 수립된 통일정부의 주권 아래서 남과 북이 단일국호와 단일국기, 단일화폐와 단일여권을 사용할 때, 조국통일이 실현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위의 사진은 2002년 9월 29일 부산에서 열린 아시아경기대회 개막식에 남북선수단이 단일선수단으로 함께 입장하여 민족의 통일열기를 만방에 시위하는 장면이다. 거기에는 남도 없었고 북도 없었다. 오직 하나로 단합된 민족의 뜨거운 감격과 환호만 있었다. 코리아라는 국호가 임시국호를 대신하였고, 통일기가 임시국기를 대신하였다. 먼 훗날 사람들은 역사의 사진첩에서 이 사진을 꺼내볼 때마다 분단시대를 피와 땀과 눈물로 적셨던 겨레의 통일열망에 대해 감회깊이 추억하게 될 것이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사람들은 조국통일에 대해 말할 때 남과 북이 하나가 된다는 문학적 표현을 흔히 사용하지만, 통일학에서 말하는 조국통일개념은 통일정부수립과 통일국가건설을 뜻한다. 그러므로 통일정부를 수립하고, 통일국가를 건설하기 전에는 조국통일이 실현되었다고 말할 수 없다. 다시 말해서, 통일헌법에 의해 수립된 통일정부의 주권 아래서 남과 북이 단일국호와 단일국기, 단일화폐와 단일여권을 사용할 때, 바로 그러할 때 조국통일이 실현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사진 5>


이런 맥락을 이해하면, 서로 다른 국호와 국기, 서로 다른 화폐와 여권을 사용하는 영국연방(Commonwealth of Nations)과 유사한 국가연합체제를 건설하려는 것은, 남과 북이 서로를 주권국가로 각각 인정하여 남북관계를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로 변질시키는 분단합법화의 완결 이외에 다른 게 아니다. 남북관계의 본질을 이해하기 쉽게 부부관계에 비유하면, 부부싸움으로 별거에 들어간 남과 북은 이혼에 이르지는 않고 서로 반목, 대립하며 지내왔는데, 국가연합체제를 건설하자는 것은 별거 중인 부부를 이혼시켜 완전히 갈라서게 만들자는 것이다. 
지금 한반도에는 한국과 북한이라는 두 개의 나라가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조선과 남조선이라는 두 개의 나라가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남은 한반도에 대한민국이라는 하나의 나라만 존재한다고 인정하고, 북은 조선반도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 하나의 나라만 존재한다고 인정하는 것이다.


그런데 통일정부가 주권을 행사하는 통일국가에서 단일국호와 단일국기, 단일화폐와 단일여권이 사용된다고 해서, 남과 북에 현존하는 사회경제체제가 단일화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지난 70년 동안 상호격폐된 상태에서 극단적으로 이질화된 남의 자본주의체제와 북의 사회주의체제를 급진적으로 단일화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어느 나라에서나 사회경제체제의 변화는 점진적으로 일어나는 법이다. 사회경제체제의 급진적 변화에는 반드시 강압과 폭력이 동반되기 마련인데, 설령 사회경제체제가 강압과 폭력에 의해 변화되었다고 해도, 급진적인 변화과정에서 발생한 내부모순이 격화되어 체제가 와해되는 비극적 종말을 맞게 될 것이다. 그래서 사회경제체제를 점진적으로 단일화하는 길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면, 통일국가가 건설된 이후 남과 북 두 지역의 사회경제체제는 20~30년 동안 점진적으로 단일화되어야 하고, 또 당연히 그렇게 진행될 것으로 예견된다.


남과 북의 지역자치정부가 각각 자기 지역에서 관리하는 상호이질적인 두 개의 사회경제체제가 단일중앙정부의 통제와 조율에 따라 공존하는 통일국가, 그리하여 분단체제에서 유래한 상호이질적인 사회경제체제가 한 세대에 걸쳐 점진적으로 단일화되어가는 통일국가, 그런 통일국가를 통일학에서는 연방국가라 부른다. 하나의 중앙정부와 두 개의 지역자치정부를 가진 연방국가를 건설하는 통일방안을 통일학에서는 연방제통일방안이라 부른다.


연방제통일방안은 한반도에서만 실현되는 특수한 통일방안이 아니다. 중국도 일국양제(一國兩制)방안으로 자기 나라의 통일을 실현하려고 한다. 통일국가 안에서 상호이질적인 사회경제체제를 점진적으로 단일화하는 연방제통일방안은 모든 분단국가들이 추진하는 평화통일정책에 전적으로 부합된다.

 

▲ <사진 6> 김일성 주석은 1980년 10월 10일 조선로동당 제6차 대회에서 '고려민주공화국 창립방안'을 제시하였다. 김일성 주석이 제시한 연방제통일방안은 남과 북이 합의하여 연방국가를 건설한 뒤에 남과 북에 존재하는 상호이질적인 사회경제체제를 강압과 폭력을 배제하고 점진적으로 단일화하는 평화통일방안이다. 위의 사진은 김일성 주석이 조선로동당 제6차 대회에서 연설하는 모습을 촬영한 것이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세상에 널리 알려진 것처럼, 연방제통일방안은 김일성 주석이 제시한 것이다. 김일성 주석은 1960년 8월 14일 조국해방 15돐 경축대회 연설에서 사상 처음으로 ‘남북련방제’를 통일방안으로 제시하였고, 1973년 6월 23일 평양시 군중대회 연설에서 ‘고려련방공화국 통일방안’을 제시하였고, 1980년 10월 10일 조선로동당 제6차 대회에서 ‘고려민주련방공화국 창립방안’을 제시하였다. 김일성 주석이 제시한 연방제통일방안은 남과 북이 합의하여 연방국가를 건설한 뒤에 남과 북에 존재하는 상호이질적인 사회경제체제를 강압과 폭력을 배제하고 점진적으로 단일화하는 통일방안이다. <사진 6>


연방국가를 건설한 뒤에 남과 북에 존재하는 상호이질적인 사회경제체제를 점진적으로 단일화한다고 할 때, 그 점진적 단일화가 남의 자본주의체제로 단일화된다는 뜻인지 아니면 북의 사회주의체제로 단일화된다는 뜻인지는 누구도 속단할 수 없지만, 우월한 사회경제체제로 단일화될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어떤 학자는 두 체제의 수렴통합론을 주장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분단현실에 부합되는 과학적인 이론이 아니라 분단현실과 동떨어진 몽상에 가까워 보인다.


북에서는 ‘인민대중 중심의 우리 식 사회주의체제’가 우월하다고 주장하고, 남에서는 남북의 체제경쟁에서 자유민주주의체제가 승리하였다고 주장한다. 사회과학에서 말하는 사회경제체제라는 개념은 사회주의체제와 자본주의체제로 분류되는 것이므로, 남에서 말하는 자유민주주의체제는 자본주의체제를 자유와 민주주의라는 말로 대체한 것이다. 세계자본주의발전사를 보면, 남의 자본주의체제는 유럽과 미국의 자본주의체제와 달리, 미국에 의해 이식, 육성된 특수한 자본주의체제이므로 미국식 자본주의체제라고 말할 수 있다.


만일 남측 정부가 주장하는 것처럼, 남북의 체제경쟁에서 미국식 자본주의체제가 승리하였다면, 연방국가를 건설한 뒤에 북의 사회경제체제가 남의 사회경제체제로 단일화될 것이므로, 남에서는 연방제통일방안을 적극 찬성해야 마땅하다. 그런데 남측 정부는 연방제통일방안이라면 질색을 할 뿐 아니라, 연방제통일방안을 공개적으로 논할 자유마저 허락하지 않고 금압한다. 이런 현실은 남북의 체제경쟁에서 자유민주주의체제가 승리하였다는 남측 정부의 주장과는 모순되는 억압이 아닐 수 없다.


김정은 당위원장은 조선로동당 제7차 대회에서 김일성 주석이 제시한 연방제통일방안을 계승하고 있음을 명백히 천명하였다. 김정은 당위원장은 자신이 김일성 주석의 연방제통일방안을 전면적으로 계승한다는 점을 아래와 같이 밝혔다.

 
“우리는 인민대중 중심의 우리 식 사회주의가 가장 우월하지만 그것을 남조선에 강요한 적이 없으며 강요하려 하지도 않습니다.”
“북과 남은 전민족적 합의에 기초한 련방제방식의 통일을 실현하기 위하여 공동으로 노력하여야 합니다.”
“북과 남은 상대방에 존재하는 서로의 사상과 제도를 인정하고 용납하는 기초 우에서 온 민족의 지향과 요구에 맞게 련방국가를 창립하는 길로 나아가야 합니다.”

 

▲ <사진 7> 2016년 5월 8일 조선로동당 제7차 대회에서 채택된 '조선로동당 제7차 대회 결정서'에 따르면, 김정은 당위원장은 당 제7차 대회에서 "조국의 자주적 통일을 이룩하기 위한 가장 정당한 통일방략을 제시"하였다고 한다. 김정은 당위원장은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제시하고 정립한 통일원칙과 통일방안을 계승하는 한편 새로운 통일방략을 제시한 것이다. 위의 사진은 평양에 있는 4.25문화회관에서 진행되는 조선로동당 제7차 대회 회의장을 촬영한 것이다. '백전백승 일심단결'이라는 구호가 보인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3. 김정은 당위원장이 제시한 통일방략


주목하는 것은, 김정은 당위원장이 조선로동당 제7차 대회에서 조선로동당의 ‘주체적 통일로선’에 기초한 통일방략을 제시하였다는 사실이다.  통일방략이라는 말은 2016년 5월 8일에 채택된 ‘조선로동당 제7차 대회 결정서 -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사업총화에 대하여’에 들어있다. 그 공식문건에는 “경애하는 김정은 동지께서는 보고에서 조국의 자주적 통일을 이룩하기 위한 가장 정당한 통일방략을 제시하시였”다고 기록되었다. <사진 7>


방략이란 말은 무슨 뜻인가? ‘조선말대사전’에서 그 낱말을 찾아보면, “어떤 일을 수행하기 위하여 내세운 방침이나 책략”이라고 풀이되었다. 이런 말뜻을 이해하면, 통일방략이란 통일위업을 수행하기 위하여 내세운 방침과 책략임을 알 수 있다.


김정은 당위원장이 제시한 통일방략의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 아래와 같이 설명할 수 있다.


44년 전에 나온 7.4남북공동성명에서는 “통일은 서로 상대방을 반대하는 무력행사에 의거하지 않고 평화적 방법으로 실현하여야 한다”고 하면서 평화통일을 강조한 바 있는데, 이번에 당 제7차 대회에서 김정은 당위원장은 평화통일이라는 말을 쓰지 않고 자주적 통일 또는 자주통일이라는 말만 썼다. 자주적 통일이 평화적으로 실현될 수도 있고, 통일전쟁으로 실현될 수도 있기 때문에 평화통일이라는 말을 쓰지 않은 것으로 생각된다. 그래서 김정은 당위원장은 당 제7차 대회에서 “나라의 통일을 이룩하는 데는 평화적 방법과 비평화적 방법이 있을 수 있”다고 하면서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다 준비되여있다”고 밝혔던 것이다. 이것은 지금 조선이 평화통일준비도 완료하였고, 통일전쟁준비도 완료하였음을 지적한 것이다. 이런 사정을 살펴보면, 김정은 당위원장의 통일방략에 평화통일과 무력통일이 모두 포함되었음을 알 수 있다. 평화와 전쟁은 상호배타적인 개념이지만, 평화통일과 무력통일은 상호배타적인 개념이 아니다. 왜냐하면 조국통일은 평화적으로도 실현될 수 있고, 통일전쟁으로도 실현될 수 있기 때문이다.


김정은 당위원장은 자신의 통일방략을 언급한 대목에서 “조국강토에서 전쟁이 일어나고 조선민족이 또다시 전쟁의 참화를 당하는 것을 바라지 않기 때문에 평화적 통일을 위하여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하여 왔다”고 하면서 “우리가 련방제통일을 주장하는 리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고 밝혔다.


김정은 당위원장의 통일방략에는 평화통일방도와 무력통일방도가 모두 내포되었지만, 무력통일방도에 강조점이 찍힌 것으로 보인다. 다시 말해서, 조선로동당은 이제껏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기울여 평화통일을 실현하려고 힘써왔지만, 내외반통일세력이 평화통일(연방제통일)을 끝내 거부하고 체제통일(제도통일)을 추진하면 통일전쟁을 벌여서라도 조국통일을 기어이 실현하겠다는 것이 김정은 당위원장의 통일방략에서 중심내용으로 되는 것이다. 그래서 김정은 당위원장은 “만일 남조선당국이 천만부당한 <제도통일>을 고집하면서 끝끝내 전쟁의 길을 택한다면 우리는 정의의 통일대전으로 반통일세력을 무자비하게 쓸어버릴 것이며 겨레의 숙원인 조국통일의 력사적 위업을 성취할 것”이라고 말한 것이다. 북에서는 제도통일이라는 말을 쓰고, 남에서는 체제통일이라는 말을 쓰는데, 그 두 낱말의 뜻은 같다.


김정은 당위원장은 당 제7차 대회에서 “남조선당국은 겨레 앞에 다진 공약과 우리의 성의있는 노력에 등을 돌려대고 언제 가도 실현될 수 없는 허황한 <제도통일>에 집요하게 매달리고 있다”고 비판하였다. 이런 비판은 지금 박근혜 정부가 체제통일을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을 드러낸 것이다.


박근혜 정부가 체제통일을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은 한국의 언론보도에서 확인된다. 대통령 직속 통일준비위원회의 정종욱 부위원장은 2015년 3월 3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진행된 새누리당 특강에서 박근혜 정부가 체제통일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그의 발언에 따르면, 박근혜 정부는 통일준비작업에 관한 예비조사를 2014년에 이미 끝냈고, 앞으로 본격적인 실현단계로 들어갈 것이라고 하면서 “2~3년 내에 통일준비작업을 끝낸다는 계획”이라는 것이다. 그가 말한 통일준비작업이란 체제통일준비작업을 뜻한다. <사진 8>

 

▲ <사진 8> 위의 사진은 박근혜 대통령의 주재 아래 청와대에서 통일준비위원회 회의가 진행되는 장면이다. 통일준비위원회 위원장은 박근혜 대통령이다. 위의 사진을 보면, "함께하는 통일준비 함께 누리는 평화통일"이라는 구호가 벽에 붙에 있지만, 지금 통일준비위원회는 체제통일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을 부정한 박근혜 정부는 연방제통일에 관한 논의조차 금압하고 있으며, 무력을 사용한 체제통일을 준비하고 있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정종욱 부위원장은 2015년 3월 10일 서울에서 진행된 어느 토론회 연설에서 박근혜 정부의 체제통일준비작업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밝혔다. “체제-흡수통일은 하기 싫다고 해서 일어나지 않는 건 아니다. (박근혜 정부는 남북 간의) 합의가 아닌 다른 형태의 통일도 준비하고 있다. 통일과정에는 여러 가지 로드맵(실현경로라는 뜻의 외래어-옮긴이)이 있으며 비합의통일이나 체제통일에 대한 팀(실무진이라는 뜻의 외래어-옮긴이)이 우리 조직(통일준비위원회를 뜻함-옮긴이)에 있다. 정부 내 다른 조직에서도 체제통일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통일준비위는 평화통일을 전제로 한 조직이지만 밖으로 공개하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 이런 작업을 하고 있다. (체제통일이 실현되면) 북한의 엘리트계층(지도층이라는 뜻의 외래어-옮긴이)을 어떻게 할지에 대해 정부는 구체적으로 대책을 가지고 있다. 북한 엘리트 숫자도 상당하고 노동당원 등 성분이 다양하기 때문에 구분해서 처리해야 할 것이다.”


박근혜 정부는 이처럼 체제통일준비에 박차를 가하는 것만 아니라, 평화협정 체결을 한사코 거부하는 미국의 대조선적대정책을 따르며 대규모 합동공격연습까지 벌이고 있다. <아시아경제> 2016년 3월 7일 보도에 따르면, 한국군과 미국군은 2016년 3월 7일부터 4월 30일까지 진행된 사상 최대 규모의 ‘키리졸브-독수리연합훈련’ 중에 조선의 최고수뇌부, 군사작전지휘부, 대량파괴무기가 배치된 군사기지 등을 선제타격하기 위한 ‘작전계획 5015’를 연습하였으며, 조선 각지에서 새로 선정한 700여 개소의 ‘합동요격지점(JDPI)’을 파괴하는 정밀타격을 연습하였고, 전쟁이 종료된 후 조선을 점령, 통치하기 위한 ‘지역안정화작전’도 연습하였다. 명백하게도, 이러한 공격연습은 박근혜 정부가 무력을 사용하는 체제통일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이처럼 박근혜 정부가 무력을 사용한 체제통일준비에 박차를 가하는 것은,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가 각각 북과 합의하였던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을 모두 부정하고, 평화통일의 길을 완전히 가로막아버렸음을 의미한다.

 
김정은 당위원장은 조선로동당 제7차 대회에서 자신의 통일방략에 대해 언급하면서 “상대방의 사상과 제도를 부정하고 일방의 사상과 제도에 의한 통일을 추구하는 것은 결국 통일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며 전쟁을 하자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지적하고, 미국과 박근혜 정부의 무력을 사용한 체제통일준비에 대응하여 통일전쟁준비를 갖추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김정은 당위원장은 조선인민군과 조선인민이 미국과 박근혜 정부의 무력을 사용한 체제통일준비에 대응하여 아래와 같이 세 방향에서 통일전쟁준비를 갖추었다고 말했다. 


첫째, 지금 조선인민군은 통일전쟁준비를 완료하고 고도의 격동상태를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김정은 당위원장은 당 제7차 대회에서 “인민군대에서는 우리 공화국을 반대하는 미제와 남조선호전세력의 무모한 전쟁도발책동에 대처하여 고도의 격동태세를 견지하며 적들이 전쟁의 불을 지른다면 침략자들을 무자비하게 징벌하고 조국통일의 력사적 위업을 이룩하여야” 한다고 말했다.


조국평화통일위원회는 2016년 3월 23일에 발표한 ‘중대보도’에서 조선인민군의 통일전쟁준비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우리 전략군의 실전배비된 초정밀타격수단들의 첫째가는 타격대상이 청와대를 포함한 남조선지역 안의 모든 적소굴들이라는데 대해서는 이미 선포한 상태이다. (줄임) 남반부작전지대에 투입될 우리의 적후부대들은 임의의 시각에 청와대를 비롯한 주요대상들을 단숨에 깔고 앉아 박근혜와 괴뢰군부호전광들을 무자비하게 죽탕쳐버릴 폭풍작전, 번개작전에 진입할 만단의 준비태세에 있다.”


둘째, 지금 조선에서는 전체 인민이 전민항전을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김정은 당위원장은 당 제7차 대회에서 “전체 인민이 결전의 시각에는 전민항전으로 조국통일성업을 이룩할 결사의 각오로 심장의 피를 끓이고 있”는 오늘, “온 사회에 군사중시기풍을 세우고 전민항전준비를 갖추어야” 한다고 하면서 “전체 인민이 우리의 철천지원쑤인 미제국주의자들과는 반드시 결판을 내야 한다는 각오를 가지고 일단 전쟁이 일어나면 침략자들을 격멸하고 조국통일을 이룩하기 위한 전민항전에 한사람같이 떨쳐나서야”한다고 말했다. <사진 9>

 

▲ <사진 9> 김정은 당위원장은 당 제7차 대회에서 "온 사회에 군사중시기풍을 세우고 전민항전준비를 갖추어야" 한다고 말했다. 조선에서는 로농적위군과 붉은청년근위대가 전민항전의 주력군이다. 로농적위군 병력은 570만명이고, 붉은청년근위대 병력은 100만명이다. 로농적위군은 비정규 민간무력이지만, 지대공미사일, 대구경포, 방사포, 휴대용대전차미사일, 고사총 등으로 중무장하였으니 웬만한 나라의 정규무력보다 훨씬 더 강한 화력을 가졌다. 위의 사진은 2013년 9월 9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창건 65돐 열병행진에 등장한 로농적위군 방사포부대의 행진장면이다. 협동농장에서 밭갈이할 때 쓰는 '뜨락또르'가 240 mm 18관 방사포를 끌고 있다. 방사포 탑재차량이 가지 못하는 좁고 험한 길을 바로 저 '뜨락또르 방사포'가 갈 수 있다고 하니, 더욱 놀랍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1959년에 창설된 로농적위군은 지대공미사일, 대구경포, 방사포, 휴대용 대전차미사일, 고사총 등으로 중무장하였는데, 그 병력은 570만명에 이르고, 로농적위군 산하에 상설전투부대로 편성된 인민보위대의 병력은 10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또한 1970년에 창설된 붉은청년근위대의 병력은 100만명에 이른다고 한다. 이것은 조선의 통일전쟁에서 110만명의 정규무력이 참가한 공격전과 670만명의 민간무력이 참가한 전민항전이 동시에 전개될 것임을 예고한다. 조선에서 통일전쟁을 왜 통일대전이라고 부르는지 알 수 있다.

 

▲ <사진 10> 김정은 당위원장은 당 제7차 대회에서 "조국통일대전의 진군길을 열어제낄 정밀화, 경량화, 무인화, 지연구개발하여야능화된 우리 식의 현대적이고 위력한 주체무기들을 더 많이 " 한다고 말했다. 조선로동당 제7차 대회를 앞두고 조선에서 진행된 '70일 전투' 기간 중에 6종의 '주체무기'들이 등장하여 세계를 놀라게 하였다. 위의 사진은 2015년 10월 10일 평양에서 진행된 조선로동당 창건 70주년 열병행진에 등장한 새 형의 대륙간탄도미사일 화성-14호의 행진장면이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셋째, 지금 조선에서는 현대적이고 위력적인 ‘주체무기’를 더 많이 연구, 개발하고 있다고 한다. 김정은 당위원장은 당 제7차 대회에서 “국방과학부문에서는 국방공업의 주체성과 자립성을 강화하고 현대화, 과학화수준을 높이며 그에 토대하여 조국통일대전의 진군길을 열어제낄 정밀화, 경량화, 무인화, 지능화된 우리 식의 현대적이고 위력한 주체무기들을 더 많이 연구개발하여야” 한다고 말했다.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장은 2016년 3월 10일 평양에서 진행된 ‘조선로동당 제7차 대회 경축 평양시 군중대회 및 군중시위 연설’에서 ‘70일 전투’ 중에 등장한 현대적이고 위력한 6종의 ‘주체무기’들에 대해 이렇게 언급하였다. <사진 10>


“소형화되고 정밀화된 각종 핵무기들과 전략잠수함수중탄도탄, 새 형의 대륙간탄도로케트들, 우리식의 위력한 반땅크유도무기와 신형 대구경방사포, 새 형의 반항공요격유도무기체계를 비롯한 최첨단 수준의 무장장비들의 연속적인 개발과 그 시험에서의 대성공은 적들의 이른바 수적, 군사기술적 우세를 휴지장으로 만들어버리고, 주체의 국방공업을 튼튼한 토대로 하는 세계적인 군사강국, 핵강국의 위용을 남김없이 과시한 특대사변들이였습니다.”


요즈음 미국 군부는 조선에서 새로 개발된 6종의 최첨단 ‘주체무기’들이 속속 등장할 때마다 ‘실패설’을 유포하여 조선의 군사력을 과소평가하려고 애쓰면서 다른 한편에서는 대조선공격연습에 열을 올리고 있지만, 780만 대군으로 편성된 조선의 정규무력과 민간무력은 김정은 당위원장이 제시한 통일방략에 따라 최첨단 ‘주체무기’를 틀어쥐고 통일전쟁을 개시하기 위한 고도의 격동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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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대권주자 능력을 기대한다

박원순, 대권주자 능력을 기대한다
 
耽讀  | 등록:2016-05-16 08:57:53 | 최종:2016-05-16 08:59:31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박원순 서울시장 노컷뉴스

“뒤로 숨지 않겠다”, “역사의 대열에 앞장서겠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지난주 광주 방문 기간 중 전남대 강연에서 한 말입니다. 언론들은 이 말을 두고, 박 시장이 2017년 대권행보를 시작한 것이라고 해석했습니다. 조금 섣부르다고 할 수 있지만, 그는 분명히 야권 대선주자 자질과 능력을 갖추었습니다.

지난해 메르스 사태 때는 대선주자 1위에 오르기도 했지만, 1년 지난 지금 6-9%를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지난 13일 한국갤럽 조사는 6%로 4위 였습니다. 1년 사이 10% 이상이 빠졌고, 순위도 4단계나 떨어졌습니다.

그럼 희망이 없을까요? 아닙니다. 1년 사이 박 시장과 함께 1위를 다툰 사람은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입니다. 하지만 그도 지난 총선 참패로 한국갤럽 같은 날 결과 5%였고, 박 시장 이어 5위였습니다. 지금 그 자리는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20%), 문재인 전 더민주 대표(18%)가 1위와 2위를 다투고 있습니다. 1년 사에 네 사람 위치가 완전히 바뀐 것입니다. 이 같은 결과는 1년 뒤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대권은 실력도 중요하지만, 실수와 삽질을 얼마나 적게 하느냐에 달렸습니다. 박 시장은 성격상 실수할 가능성은 매우 낮습니다. 하지만, 시민단체 활동과 서울시장을 통해 보여준 행정가로서 자질은 보여주었습니다. 이제 그가 할 일은 국가지도자로서 갖추어야 할 능력과 자질 그리고 비전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박 시장은 자신이 가야 할 길, 이루고 싶은 목표를 전남대 강연에서 보여주었습니다. 강연이 아니라 현실에서 어떻게 이루어갈 것인지 보여주고, 사람들을 모아야 합니다. 그는 “불평등, 불공정, 불균형, 불통으로 국민의 삶의 현장은 피폐하고, 민주적 가치는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다. 국민들은 수단과 도구가 된 지 오래”라며 “민주주의를 복원하고, 민생을 되살리고, 정의를 바로 세워 공동체 회복을 위해 다시 싸워야 한다”며 정치분야에서 우리가 가야 할 길이 무엇인지 제시했습니다.

경제 분야에 대해서는 “박정희 정부가 했던 국가 주도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따라 하는 수동적 흉내 내기로는 안 된다”며 “현 정부가 하는 창조경제 핵심정책인 ‘1사 1지역 창조경제혁신센터’에는 창조도 혁신도 없다”며 박근혜정권 경제 정책을 비판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경제아전데가 무엇인지는 정확하게 제시하지 않았습니다. 비판은 잘할 수 있지만, 어떻게 할 것인지는 매우 어렵습니다. 박 시장이 해야 할 일입니다. 

그는 남북정책 관련해 “평화와 통일 역시 1980년 광주가 꿈꾸었던 민족의 미래였다”며 “북한 주민의 삶의 문제를 도외시한 지난 10일 7차 북한 당 대회의 ‘핵-경제 병진노선’은 한반도 평화를 해치며, 개성공단 폐쇄로 가뜩이나 냉각기인 남북관계를 더 경색시키는 잘못된 결정이다. 어떤 경우에도 한반도의 핵은 용납하기 어렵다”며 북한 핵를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 아래에서 이루어진 금강산 관광, 개성공단마저 원점으로 되돌려버린 정부의 남북정책 역시 비판받아 마땅하다”고 박근혜 정권 대북 정책도 비판했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어떤 남북정책을 가졌는지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대한민국 대통령이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능력과 자질 중 하나가 경제 다음으로 남북관계입니다. 역시 자신이 추구할 남북정책이 무엇인지 보여주어야 합니다.
 
아무튼 박원순 시장은 대권 주자로서 자질과 능력을 기대합니다. 박원순, ‘대통령’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만들어가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본글주소: http://www.poweroftruth.net/news/mainView.php?uid=4003&table=byple_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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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강제출국 당한 이종현 선생 지병 악화

14일 저녁, 두이스부르크 자택에 도착 성명서 발표 (전문)
독일=이은희 통신원  |  tongil@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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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05.16  07: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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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일 독일 두이스부르크 기차역에 도착한 이종현 선생과 부인 우줄라 리 여사. [사진제공 - 한민족유럽연대]

5.18 기념행사 초청을 받고 귀국하였으나 입국 거부와 추방을 당한 이종현 선생은 정신적 충격으로 지병이 악화된 것으로 드러났다.

이종현 선생은 13일 17시에 아시아나 항공으로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도착하였으며 연락 받고 나온 의학박사이나 내과의사인 동포가 모시고 가서 진단하고 휴식을 취하게 하였다. 의사에 따르면 정신적 충격으로 지병이 악화되었다고 한다.

이를 전해들은 동포들은 한국정부의 비인간적 조치에 분노하며 비행기 속에서 문제가 없어서 다행이지만 재외동포에게 고국이 할 짓은 아니었다고 하였다.

이종현 선생 부부는 다음날 오후에 두이스부르크로 귀가하였다. 소식을 들은 동포들이 기차역으로 꽃과 피킷을 들고 마중했다.

우줄라 리 여사는 여행 가방 하나를 가리키며 친척 손주들에게 줄 선물로 차 있는 가방이라고 설명하였다.

두이스부르크에 도착한 후 이종현 선생은 이번 추방사태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히며 재외동포를 분단의 희생양으로 삼지 말 것을 경고했다.

성명서는 ‘입국금지 사유를 밝힐 것’과 ‘강제출국 조장한 국정원 사과’와 ‘해외동포의 자유로은 고국방문을 허용’하라는 세 가지 요구를 담고 있다.

 

<독일 도착 성명서>

사랑하는 나의 조국, 대한민국!

내 인생 마지막 고국 방문으로 여기며 설렌 가슴으로 도착한 인천공항.

그러나 현 공안정부는 저희 부부에게 부당한 입국 불허를 명하고, 급기야는 강제추방 하였습니다.

해외 동포의 입국을 아무런 명분 없이 가로막은 것은 반인권적이며 반민족적 작태임이 분명합니다.

평생 조국의 평화를 염원하며 실천한 저희 부부에게는 정체성 그 자체가 파괴된 듯한 아픔과 실망이 엄습해 있습니다. 이는 인간 존엄성을 무자비하게 파괴한 국가 권력의 큰 범죄로서, 자유민주주의 윤리를 거스른 세계적 비난의 대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저희 부부는 5.18기념재단의 공식 초청으로 재유럽 한인 민주세력을 대표하여 당당하게 입국하였습니다. 올해 만 팔십을 맞이하는 저는, 심장 주치의사의 장거리 여행 만류에도 불구하고, 36년간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치러 온 재유럽오월민중제를 알리기 위해 고국 방문을 결정했었습니다.

하지만, 현 정권은 우리를 조국에 “해를 끼칠 위험이 있는 자”로 분류하여 공항에서부터 가로막았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장시간 여행한 우리를 2일간 억류하였습니다.

저는 1965년 파독 광부로 와서 독일인 처를 만나 가정을 일구어 살며, 한시도 조국을 잊은 적이 없습니다. 또한, 광주로부터 비롯된 자유와 민주에 대한 우리 민족의 열망이 해외에서도 널리 알려졌음을 자랑스럽게 공유하고, 뼈에 사무치도록 사랑하였기에, 나의 고국 땅을 마침내 밟고자 했습니다.

그런 나의 조국이 어찌하여 저희 부부를 강제 출국시켜야만 했단 말입니까?
저의 강제 출국은 반민주적인 박근혜 정권이 해외동포를 탄압하기 위한 비열한 수단이자 올해 5.18 광주 행사를 방해하려고 하는 무지한 술법임에 분명합니다.

저는 국내 양심에 호소합니다.

해외 동포를 분단의 희생양으로 제발 삼지 말아 주십시오.

조국이 부끄럽고, 우리의 처지가 억울하여 이렇게 항의합니다 !!

1. 현 정부는 저희 부부 입국불허 사유를 명백히 밝혀라!
2. 강제 출국을 조장한 국정원은 사과하라!
3. 해외동포의 자유로운 고국 방문을 허용하라!

저의 강제 출국을 보도하여 주신 국내 언론과 입국을 위하여 수고하여 주신 5.18 기념재단에 감사드립니다. 저의 호소문을 널리 알려 주십시오.

이번 충격적 사태에도 불구하고, 저희 부부는 조국의 평화와 번영을 위하여 남은 일생을 더욱 불꽃처럼 태우며 살아갈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2016년 5월 14일
이종현, 우줄라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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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심한 대학생', 이재명 시장에게 직접 물어봤습니다

 

[청년 시민기자, 이재명 성남시장을 만나다 - ①] '한심한 대학생' 논쟁에서 대권 도전까지 묻다

16.05.16 07:22l최종 업데이트 16.05.16 07:33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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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명 성남시장-청년 시민기자와 함께하는 청년정책 소통 인터뷰 지난 11일 오후, <오마이뉴스> 상근기자 두 명과 청년 시민기자 세 명(권순민, 이찬우, 유종헌)이 이재명 성남시장을 마주했다. 인터뷰를 마친 후 권순민 시민기자가 이재명 성남시장과 함께 손가락 하트 셀카를 찍고 있다.
ⓒ 고강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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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 그 '20대 개새끼론'에 대해선 시원하게 풀린 게 아닌 거 같아요. 더해도 돼요. 한 번만 더 합시다. 저 친구 표정을 보니 여전히 무언가 남아 있어.(웃음)"

이재명 시장은 주저하지 않았다. 지난 총선 당시 논란이 불거졌던 '한심한 대학생' 발언을 비롯해 정부의 지방 재정 개혁안, 어버이연합과 국정원 커넥션 등에 대한 생각을 거침없이 쏟아냈다. '사이다' 같으면서도 위험 수위를 넘나드는 발언이 이어졌다.

'대권 도전'에 대한 질문도 예외는 아니었다. "정치 언어가 너무 간접적이고 우회적"이라고 말문을 연 그는 "어떻게 생각이 없을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물론, "가능한 상황이 되어야 한다"는 말을 덧붙인 채. 
   
지난 11일 오후, <오마이뉴스> 상근기자 두 명과 청년 시민기자 세 명(권순민, 이찬우, 유종헌)이 이재명 성남시장을 마주했다. 지난 3월, 이 시장이 SNS에 올린 '한심한 대학생' 발언이 발단이었다. 

 

이 시장이 올린 '선거날 MT를 가는 H대 ㅊ학과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한심하다'는 내용의 글에 '전형적인 20대 개새끼 프레임론'이라는 지적이 흘러나왔다. <오마이뉴스>에도 이를 비판하는 청년 시민기자들의 기사가 올라왔다. 투표 날 MT를 가는 H대 ㅊ학과가 있는지 직접 전수 조사한 이도 있었다. 이재명 시장도 해당 기사를 SNS에 직접 공유하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논쟁은 총선 이후까지 이어졌다. 투표 날 MT를 간 H대학 ㅊ학과가 한군데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 진실 공방이 오갔지만, 문제의 본질에 대한 논의는 부족했다. 

'청년층의 정치 참여'에 대해 터놓고 묻기 위해 비판 기사를 쓴 권순민(이재명 시장이 말한 'H대 ㅊ학과', 검증해봤습니다), 유종헌(이재명 시장님, 정치인의 본분을 고민하세요), 이찬우('한심한 대학생'이 이재명 시장님께 쓰는 편지) 시민기자가 직접 이 시장과 마주했다. '한심한 대학생' 논쟁에서 시작된 인터뷰는 현재 이 시장이 처한 정치적 상황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졌다.

인터뷰 참여 : 권순민·유종헌·이찬우 시민기자, 이민선·김예지 <오마이뉴스> 기자

"'한심한 대학생' 발언? 청년 문제 논쟁의 장 만들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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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명 성남시장-청년 시민기자와 함께하는 청년정책 소통 인터뷰 지난 11일 오후, <오마이뉴스> 상근기자 두 명과 청년 시민기자 세 명(권순민, 이찬우, 유종헌)이 이재명 성남시장을 마주했다.
ⓒ 고강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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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장은 '한심한 대학생' 논쟁에 대해 "예상하고 한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모든 사람이 동의하는 반론의 여지가 없는 주장이나 정책은 확산이 안 된다. 그래서 일부러 반론의 여지를 살짝 넣는다"라며 "격렬한 논쟁을 통해 사회적 이슈를 만들고, 사람들이 모이면 대중들이 해당 사안에 대해 판단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심한 대학생' 발언은 청년층의 정치 참여 문제에 대한 논쟁을 유도하기 위한 전략이었다는 것. 

그는 "투표하지 않는 행위에 대해 문제제기 하는 걸 좀 극렬한 방식으로 했다, 여기에 상처를 받은 사람이 좀 생긴 것 같다"고 인정하면서도 "투표는 단순한 권리가 아니고 공동체를 위한 하나의 의무이자 책임이 수반되는 하나의 권한"이라고 강조했다. "(성남시 차원에서) 투표 참여하는 시민에게 인센티브를 주는 방안과 관련한 용역을 맡겼다"고 밝히기도 했다.

청년 배당을 비롯한 청년 정책의 필요성에 관해 말할 땐 유독 설명이 길어졌다. "정부가 성남시가 하고 있는 일 중에 제일 부담을 느끼는 것이 청년 배당"이라는 이 시장은 "이번에 성남시에서 청년 배당 받은 사람들에게 설문 조사를 해봤더니 배당금을 대부분 생활비로 썼더라, 이걸로 술 사 먹고 이런 게 아니"라고 설명했다. 

이어 "우리 스스로도 (청년 배당 도입을) 망설였다. '돈 낭비한다고 좀 깨지겠다'고 각오하고 한 일인데 청년층으로부터 상당한 지지를 받게 되었다"며 "청년이 처한 상황이 우리가 판단한 것보다 훨씬 심각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여소야대인데, 정부 태도는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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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명 성남시장-청년 시민기자와 함께하는 청년정책 소통 인터뷰 지난 11일 오후, <오마이뉴스> 상근기자 두 명과 청년 시민기자 세 명(권순민, 이찬우, 유종헌)이 이재명 성남시장을 마주했다.
ⓒ 고강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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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22일 정부가 발표한 지방 재정 개혁안에 대해선 날 선 비판을 내놓았다. 그는 "정부에서 이번 선거에서 압도적으로 여권이 이길 것으로 상정하고 만든 정책인 것 같다"고 평했다. 이어 "이 개정안이 시행될 경우 지금 하는 3대 복지 정책(청년 배당, 산후조리, 무상교복)은 물론이고 교육지원 정책, 노인 일자리 정책, 국가 유공자 보훈 수당 지원, 사회복지 종사자 처우 개선 사업, 시립 의료원 건립 등이 완전히 좌초될 수 있는 심각한 위기 상황"이라는 우려를 나타냈다. 

이 시장은 "정치 지형 여소야대의 선거 결과 나왔음에도 정부는 정권이 심판당한 게 아니라 국회가 심판당했다, 양당체제가 심판당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며 "(여소야대 상황이) 전체적으로 도움이 되지만 정부의 태도는 변한 것이 없다"고 일갈했다. 

최근 논란인 '어버이연합 게이트' 관련, 국정원과 커넥션 의혹을 강하게 제기했다. 이 시장은 2014년 6.4 지방선거 당시 추선희 어버이연합 사무총장이 그의 사생활을 담은 녹음 파일을 활용해 원정시위에 나선 것에 대해 "명확하게 정치적 목적이 있는, 악의적 행위"라고 평하며 "어버이연합이 나랑 무슨 원수를 졌다고 성남까지 와서 원정 시위를 벌이느냐"고 반문했다.

이어 "대한민국의 나쁜 짓의 모든 근원은 국정원에 있다고 본다"며 "해서는 안 되는 나쁜 짓만 골라서 한다. 간첩 조작과 대선 개입 등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민주공화국에서 국가 권력을 구성하는 문제에 국가기관이 개입한 것은 쿠데타"라고 일갈했다.

"대권, 어떻게 생각이 없을 수 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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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명 성남시장-청년 시민기자와 함께하는 청년정책 소통 인터뷰 지난 11일 오후, <오마이뉴스> 상근기자 두 명과 청년 시민기자 세 명(권순민, 이찬우, 유종헌)이 이재명 성남시장을 마주했다.
ⓒ 고강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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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한겨레>와 인터뷰 이후 화제가 된 '대권 도전' 발언에 대해서도 머뭇거리지 않고 답했다. 이 시장은 "정치적으로 조언하는, 이름만 얘기해도 알만한 '원로'들이 '점잖게 가만히 있는 게 좋다'고 지적했지만 저는 좀 생각이 다르다"며 "다른 사람 같으면 '아이 뭐, 생각 없습니다' 할 테지만 그런 거짓말 하면 안 된다, 어떻게 생각이 없을 수 있느냐"고 되물었다. 

그는 "그런 차원에서 나는 가능하면 하겠다고 말하는 것"이라며 "다만 가능한 상황이 될 수 있을지 나도 잘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한방으로 세상이 바뀌는 것도 아니고, 나한테 기회가 한 번만 주어지는 것도 아니"라며 "마라톤에선 페이스메이커가 완주해 우승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사람 일은) 모르는 것"이라고 여지를 남겼다. 

[청년 시민기자, 이재명 시장을 만나다 ②] "열 받아 일부러 싸웠다, 청년 얘기하라고" 
[청년 시민기자, 이재명 시장을 만나다 ③] "대권, 어떻게 생각없을 수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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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망월동 가서 무조건 무릎 꿇어라

 

[김종철 칼럼] 전직 대통령 예우, 신변보장 요구는 파렴치의 극치

김종철 자유언론실천재단 이사장 media@mediatoday.co.kr  2016년 05월 15일 일요일

올해 5월 18일은 ‘광주민주화운동’(정부의 공식 용어) 36주년이 되는 날이다. 그 운동의 이념을 기리고 민중항쟁의 정신을 이어받기를 다짐하는 노래인 ‘임을 위한 행진곡’을 박근혜 정권이 아직도 공적으로 인정하지 않겠다고 고집하는 가운데 뜻밖의 사건이 벌어졌다. 지금도 ‘전직 대통령’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있는 전두환이 광주를 찾아가서 희생자들과 유족들에게 ‘유감의 뜻’을 표명할 의사가 있다는 뉴스가 언론에 보도된 것이다. 그의 ‘측근’이라는 김충립(한반도프로세스포럼 대표, 전 특전사 보안대장)은 지난 13일 JTBC 기자에게, 최근 ‘광주 방문’을 전두환에게 건의했음을 인정하면서 그와 나눈 대화 내용을 구체적으로 밝혔다.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김충립: 광주도 36년이라는 세월이 지났는데, 이대로 끝나기를 원하지 않으니 당신이 사과하고 또 광주에 다녀오는 것이 중요하다.

전두환: 아, 내가 발포 명령자로, 발포자로 되어 있는데 어떻게 사과를 하느냐?

김충립: 발포는 다른 사람이 했지만, 그것까지 감싸 안고 총체적으로 유감을 표한다고 사과를 하시죠.

전두환: 그것 좋다. 그것 좋다. 그렇게 하자. 지금 (광주) 가고 싶다. 그러나 못 간다. 첫째 광주 민심이 두려워서 못 가고, 둘째 신변보호가 안 되니까 못 가고, 셋째, 전직 대통령의 예우가 안 돼 있기 때문에, 넷째 그 추종하던 사람들이 전부 다 피해를 받고 있는데 연금문제도 해결이 되고 사후에 국립묘지도 가고 훈장 받은 것도 (되돌려) 받아야지.

김충립: 그럼 이 네 가지가 해결되면 가실래요?

전두환: 당연히 가야지.”

5월항쟁의 최일선에 나서 싸우다가 신군부’ 하수인들의 총칼에 목숨을 잃은 ‘영령들’, 그리고 평생 장애인으로 살고 있는 부상자들과 가족이 전두환과 김충립이 나눈 대화를 전해 듣는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당시 광주 상황을 목격한 시민들은 틀림없이 아래와 같이 반문할 것이다.

‘전두환이 발포 명령자도 발포자도 아니라고? 그는 신군부의 수괴로서 1980년 5월 17일 쿠데타를 일으키면서 김대중을 비롯한 재야인사들을 내란음모 혐의로 체포했다. 바로 이튿날 전남대 학생들이 그런 폭거에 항의하는 뜻으로 시위를 벌인 것이 5월항쟁의 시발점이었다. 전두환의 지시가 없었다면 특전사령관이나 보병사단장이 자의적으로 발포 명령을 내렸단 말인가? 그야말로 서천 소도 웃을 소리이다.’

신군부의 1·2인자였던 전두환과 노태우는 김영삼 정권 시기인 1996년 1월 14일 내란 및 반란 등 혐의로 구속, 기소되었다. 전두환은 그 해 8월 26일 서울지방법원에서 사형선고를 받았다가 12월 16일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었다. 이듬해 4월 17일 대법원은 전두환과 노태우 등이 저지른 어마어마한 범죄행위를 인정하고 2심 판결을 확정했다. ‘반란수괴, 반란모의 참여, 반란 중요임무 종사, 불법진퇴, 지휘관계계엄지역수소 이탈, 상관살해미수, 초병살해, 내란수괴, 내란모의 참여, 내란목적 살인, 특정범죄가중처벌법 위반’ 등.

전두환은 사형 집행을 당해도 죄 값을 모두 치를 수 없었지만, 당시 대통령 김영삼의 ‘정치적 계산’ 덕분에 사면을 받아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이런 인물이 ‘5월 광주’의 희생자들과 유족, 그리고 부상자들을 다시 농락하고 있다. 망월동 ‘민주묘역’과 ‘구 묘역’에 묻힌 ‘열사들’의 무덤 앞에 무릎을 꿇고 ‘저의 죄를 용서하십시오. 이제부터라도 영령들의 고귀한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백배 사죄하는 마음으로 살아가겠습니다’라고 말해도 모자랄 텐데 말이다.

전두환은 천하가 다 아는 ‘파렴치한’이다. 그는 1997년 대법원의 최종 판결에서 특정범죄가중처벌법 위반으로 2,205억원의 추징금을 선고받았다. 그가 대통령 재임 기간에 위법적으로 형성한 ‘비자금’은 무려 9,500억여원으로 추정되었다. 전두환은 대법 선고 이후 13년 동안 추징금 총액의 24.2%인 533억원 만을 납부했다. 그러다가 2010년 10월 11일 미납 추징금 1,672억원 중 겨우 3백만원을 납부했다. 당시 그는 자기 지갑에는 ‘29만원밖에 없다’고 엄살을 부려 세상 사람들의 비웃음을 샀다. 그 3백만원조차 2011년 3월로 끝나는 추징금 납부 시효를 앞두고 강제집행에 따른 재산 압류를 피하기 위한 짓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전두환은 현재 연금, 비서관 및 운전기사 임명, 사무실 제공 등 전직 대통령 예우는 받지 못하지만 2014년에만 ‘사저 경호비’로 6억7천만여원을 정부 예산에서 지원받았다. 그는 요즈음도 ‘측근들’을 데리고 골프를 즐기거나 해외여행을 다닌다고 한다.

광주의 한 시민단체는 “사실상 자체 경호가 가능한 상황에서 ‘광주 방문, 유감 카드’로 노리는 것은 전두환 자신과 측근들의 사면”이라고 분석했다. 김충립도 5월 15일 <뉴시스>와의 통화에서 전두환이 광주를 방문하려는 ‘숨은 목적’이 무엇인지를 이렇게 암시했다. “유감의 뜻을 표하고는 싶지만 혼자 살 수는 없지 않은가. 추종자들이 같이 가야 하는데, 그들도 아직까지 형을 받고 있다. 연금도 못 받고 국립묘지도 못 가고 훈장도 반납하고 아직은 사면이 덜 된 상태이다. 그런 여러 가지 문제가 있다. 광주 시민들이 이해해주고 마음이 풀어져야 한다.”

전두환은 1979년 10월 26일 대통령 박정희가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의 총탄에 맞아 세상을 떠난 뒤 주권자들의 합법적 결정에 따라 새 정부가 세워지는 것을 막고 그 해 12월 12일의 군사반란과 이듬해 5월 17일의 쿠데타를 통해 민주주의 부활의 숨통을 끊어버린 ‘반역도당’의 우두머리였다. 그는 박정희의 유신독재에 못지않게 야만적인 군사독재를 자행하면서 7년 동안 한국사회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것도 모자라서 이른바 ‘호헌’을 통한 장기집권을 꾀하다가 6월항쟁에 밀려 권좌에서 밀려나고 말았다. 그는 국가를 ‘조폭집단’의 사조직처럼 움직이면서 정보수사기관을 앞세운 고문과 용공조작을 일삼고 자신과 친족의 부정축재에 몰두했다. 전두환은 이승만과 박정희의 반민주·독재체제 후계자로서 이명박, 박근혜와 더불어 국가와 민족공동체를 파탄 상태로 몰아넣은 데 대해 엄중한 심판을 받아야 한다. 전두환은 ‘광주 방문, 유감 표명’ 같은 말을 다시는 입에 담지 말고 법적 시효에 관계없이 남은 추징금을 하루라도 빨리 내는 것이 역사 앞에 조금이라도 속죄하는 길이라는 것을 왜 깨닫지 못할까?

 

 

올해 5월 18일은 ‘광주민주화운동’(정부의 공식 용어) 36주년이 되는 날이다. 그 운동의 이념을 기리고 민중항쟁의 정신을 이어받기를 다짐하는 노래인 ‘임을 위한 행진곡’을 박근혜 정권이 아직도 공적으로 인정하지 않겠다고 고집하는 가운데 뜻밖의 사건이 벌어졌다. 지금도 ‘전직 대통령’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있는 전두환이 광주를 찾아가서 희생자들과 유족들에게 ‘유감의 뜻’을 표명할 의사가 있다는 뉴스가 언론에 보도된 것이다. 그의 ‘측근’이라는 김충립(한반도프로세스포럼 대표, 전 특전사 보안대장)은 지난 13일 JTBC 기자에게, 최근 ‘광주 방문’을 전두환에게 건의했음을 인정하면서 그와 나눈 대화 내용을 구체적으로 밝혔다.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김충립: 광주도 36년이라는 세월이 지났는데, 이대로 끝나기를 원하지 않으니 당신이 사과하고 또 광주에 다녀오는 것이 중요하다.

전두환: 아, 내가 발포 명령자로, 발포자로 되어 있는데 어떻게 사과를 하느냐?

김충립: 발포는 다른 사람이 했지만, 그것까지 감싸 안고 총체적으로 유감을 표한다고 사과를 하시죠.

전두환: 그것 좋다. 그것 좋다. 그렇게 하자. 지금 (광주) 가고 싶다. 그러나 못 간다. 첫째 광주 민심이 두려워서 못 가고, 둘째 신변보호가 안 되니까 못 가고, 셋째, 전직 대통령의 예우가 안 돼 있기 때문에, 넷째 그 추종하던 사람들이 전부 다 피해를 받고 있는데 연금문제도 해결이 되고 사후에 국립묘지도 가고 훈장 받은 것도 (되돌려) 받아야지.

김충립: 그럼 이 네 가지가 해결되면 가실래요?

전두환: 당연히 가야지.”

5월항쟁의 최일선에 나서 싸우다가 신군부’ 하수인들의 총칼에 목숨을 잃은 ‘영령들’, 그리고 평생 장애인으로 살고 있는 부상자들과 가족이 전두환과 김충립이 나눈 대화를 전해 듣는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당시 광주 상황을 목격한 시민들은 틀림없이 아래와 같이 반문할 것이다.

‘전두환이 발포 명령자도 발포자도 아니라고? 그는 신군부의 수괴로서 1980년 5월 17일 쿠데타를 일으키면서 김대중을 비롯한 재야인사들을 내란음모 혐의로 체포했다. 바로 이튿날 전남대 학생들이 그런 폭거에 항의하는 뜻으로 시위를 벌인 것이 5월항쟁의 시발점이었다. 전두환의 지시가 없었다면 특전사령관이나 보병사단장이 자의적으로 발포 명령을 내렸단 말인가? 그야말로 서천 소도 웃을 소리이다.’

신군부의 1·2인자였던 전두환과 노태우는 김영삼 정권 시기인 1996년 1월 14일 내란 및 반란 등 혐의로 구속, 기소되었다. 전두환은 그 해 8월 26일 서울지방법원에서 사형선고를 받았다가 12월 16일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었다. 이듬해 4월 17일 대법원은 전두환과 노태우 등이 저지른 어마어마한 범죄행위를 인정하고 2심 판결을 확정했다. ‘반란수괴, 반란모의 참여, 반란 중요임무 종사, 불법진퇴, 지휘관계계엄지역수소 이탈, 상관살해미수, 초병살해, 내란수괴, 내란모의 참여, 내란목적 살인, 특정범죄가중처벌법 위반’ 등.

전두환은 사형 집행을 당해도 죄 값을 모두 치를 수 없었지만, 당시 대통령 김영삼의 ‘정치적 계산’ 덕분에 사면을 받아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이런 인물이 ‘5월 광주’의 희생자들과 유족, 그리고 부상자들을 다시 농락하고 있다. 망월동 ‘민주묘역’과 ‘구 묘역’에 묻힌 ‘열사들’의 무덤 앞에 무릎을 꿇고 ‘저의 죄를 용서하십시오. 이제부터라도 영령들의 고귀한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백배 사죄하는 마음으로 살아가겠습니다’라고 말해도 모자랄 텐데 말이다.

전두환은 천하가 다 아는 ‘파렴치한’이다. 그는 1997년 대법원의 최종 판결에서 특정범죄가중처벌법 위반으로 2,205억원의 추징금을 선고받았다. 그가 대통령 재임 기간에 위법적으로 형성한 ‘비자금’은 무려 9,500억여원으로 추정되었다. 전두환은 대법 선고 이후 13년 동안 추징금 총액의 24.2%인 533억원 만을 납부했다. 그러다가 2010년 10월 11일 미납 추징금 1,672억원 중 겨우 3백만원을 납부했다. 당시 그는 자기 지갑에는 ‘29만원밖에 없다’고 엄살을 부려 세상 사람들의 비웃음을 샀다. 그 3백만원조차 2011년 3월로 끝나는 추징금 납부 시효를 앞두고 강제집행에 따른 재산 압류를 피하기 위한 짓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전두환은 현재 연금, 비서관 및 운전기사 임명, 사무실 제공 등 전직 대통령 예우는 받지 못하지만 2014년에만 ‘사저 경호비’로 6억7천만여원을 정부 예산에서 지원받았다. 그는 요즈음도 ‘측근들’을 데리고 골프를 즐기거나 해외여행을 다닌다고 한다.

광주의 한 시민단체는 “사실상 자체 경호가 가능한 상황에서 ‘광주 방문, 유감 카드’로 노리는 것은 전두환 자신과 측근들의 사면”이라고 분석했다. 김충립도 5월 15일 <뉴시스>와의 통화에서 전두환이 광주를 방문하려는 ‘숨은 목적’이 무엇인지를 이렇게 암시했다. “유감의 뜻을 표하고는 싶지만 혼자 살 수는 없지 않은가. 추종자들이 같이 가야 하는데, 그들도 아직까지 형을 받고 있다. 연금도 못 받고 국립묘지도 못 가고 훈장도 반납하고 아직은 사면이 덜 된 상태이다. 그런 여러 가지 문제가 있다. 광주 시민들이 이해해주고 마음이 풀어져야 한다.”

전두환은 1979년 10월 26일 대통령 박정희가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의 총탄에 맞아 세상을 떠난 뒤 주권자들의 합법적 결정에 따라 새 정부가 세워지는 것을 막고 그 해 12월 12일의 군사반란과 이듬해 5월 17일의 쿠데타를 통해 민주주의 부활의 숨통을 끊어버린 ‘반역도당’의 우두머리였다. 그는 박정희의 유신독재에 못지않게 야만적인 군사독재를 자행하면서 7년 동안 한국사회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것도 모자라서 이른바 ‘호헌’을 통한 장기집권을 꾀하다가 6월항쟁에 밀려 권좌에서 밀려나고 말았다. 그는 국가를 ‘조폭집단’의 사조직처럼 움직이면서 정보수사기관을 앞세운 고문과 용공조작을 일삼고 자신과 친족의 부정축재에 몰두했다. 전두환은 이승만과 박정희의 반민주·독재체제 후계자로서 이명박, 박근혜와 더불어 국가와 민족공동체를 파탄 상태로 몰아넣은 데 대해 엄중한 심판을 받아야 한다. 전두환은 ‘광주 방문, 유감 표명’ 같은 말을 다시는 입에 담지 말고 법적 시효에 관계없이 남은 추징금을 하루라도 빨리 내는 것이 역사 앞에 조금이라도 속죄하는 길이라는 것을 왜 깨닫지 못할까?

· 이 글은 <뉴스타파>에도 함께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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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집단납치 의혹 서경아 양 단식 중 사망 확인

[급보] 북, 집단납치 의혹 서경아 양 단식 중 사망 확인
 
 
 
이창기 기자 
기사입력: 2016/05/15 [18:41]  최종편집: ⓒ 자주시보
 
 

 [북에서 제일 처음 공개한 부모 대담 동영상이 서경아 씨 부모였다.]

 

▲ 북에서 공개한 서경아 씨 사진     © 자주시보

 

▲ 서경아 양은 얼굴이 예쁘고 공부도 잘하고 예의도 밝아 부모뿐만 아니라 할머니 할아버지, 동네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그렇게 예뻐했다고 한다.     © 자주시보

 

▲ 서경아 씨와 어머니     © 자주시보

  

▲ 경아를 돌려달라며 통곡하는 부모들     © 자주시보

 

국정원에 의해 강제 납치당했던 북 여성식당 종업원 12명중 한명인 서경아양이 북으로 송환을 요구하며 단식투쟁을 하던 중 사망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15일 오늘 1시간 전 민족통신이 페이스북을 통해 올린 급보에 의하면 집단납치 의혹 사건의 중국 류경식당 북 여성종업원 12명 중 한 명인 서경아 양이 "우리들 모두를 공화국으로 보내달라"고 단식투쟁을 하던 중 사망한 사실이 민족통신 공동취재진의 추적에 의해 오늘 15일 확인됐다.

그러나 청와대를 비롯 국정원, 통일부 등 관계기관들은 쉬시하며 입을 다물고 당황하고 있는 상황으로 알려졌다.

 

단식투쟁 중 사망한 서경야 양은 강제납치 의혹 피해자들 중 가장 나이가 어린 종업으로 확인된 상황이지만 한국의 국정원을 비롯한 통일부, 청와대 등은 이같은 엄청난 사실을 쉬쉬하며 숨기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민족통신은 이 사실을 확인하고 현재 평양특파원으로 체류 중인 노길남 특파원을 통해 피해자 가족을 비롯 집단유괴납치의혹 사건에서 탈출한 가족들과도 인터뷰를 준비 중이다.

 

민족통신은 며칠 전에도 단식 중인 북 여종업원 중 한 명이 사망했다는 이야기가 퇴직한 국정원의 모 간부의 입에서 나왔다는 속보를 전한 바 있다.

 

이를 보도한 자주시보의 보도 기사만 1만여 건이나 조회하는 등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보이고 있고 6.15남측위원회언론본부, 청년단체, 민권연대, 민변 등에서 조속한 진상 공개를 통일부에 요구했지만 통일부는 이렇다 저렇다 아예 입장 자체를 발표하지 못하고 있어 더욱 의혹이 커가던 상황이었다.

 

이런 흐름을 종합해 볼 때 서경아 양의 사망 사건은 사실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더큰 우려는 단식 중인 다른 여성들의 건강상태이다. 가장 어린 서경아 양이 그렇게 강력하게 저항했다면 다른 여성들도 마찬가지로 단호한 단식투쟁을 전개할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물과 소금까지 먹지 않는 단식투쟁을 전개한다면 1주일을 버티지 못하고 사망에 이를 수밖에 없기에 더욱 우려가 크다.

 

박근혜 정부는 꽃다운 우리 혈육, 우리 동포, 우리 북녘 여성들의 건강이 상하지 않게 하루 빨리 이번 사건에 대한 진상을 밝히고 가고 싶어한다면 그들의 의사를 존중하여 여성들을 모두 보내주고 사죄와 성근한 피해 보상을 해주어야 할 것이다.

 

북은 이미 북 공민들을 다치게 할 경우 기어이 보복하겠다는 성명까지 발표한 상황이다. 이런 남북관계도 문제이지만 앞날이 구만리 같은 저 꽃다운 여성들의 머리 한 올이라도 다치게 한다는 것은 인도적 입장에서도 용납할 수 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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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이 아닌 선생님들…

[스승의 날]“선생님, 알바에요? 여기요! 저기요!”
▲ 성과급에 관한 집단소송을 제기하는 자리에 탈을 쓰고 나와야만 했다. 얼굴 공개는 곧 해직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었다. [사진제공 : 교육희망]

학교에는 선생님 아닌 선생님들이 있다. 4만8천여명(교사의 10%)의 기간제 교사와 20만 학교비정규직 얘기다. 선생님이라 불리지만 '선생님'과는 다르다.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는 옛말은 무색해지고, 교권이 땅에 떨어졌다. 정교사도 이럴진데 기간제·비정규직 교사의 사정이야 오죽할까.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한 기간제 교사는 “복도에서 마주쳐도 인사 안 하고 지나쳐요. ‘선생님 알바예요?’, ‘계약직, 계약직!’ 이러면서 뒤에서 놀리는 학생들도 있어요”라고 했다. 지난해 말 기간제 교사가 학생들에게 빗자루로 폭행당한 사건도 있었다.

기간제·비정규직 교사에 대한 차별은 면접 때부터 시작된다. 기혼 여성의 경우 계약기간 중 임신이나 출산을 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요구하는 학교가 많다. 당연히 육아 휴직은 없다. 학교를 계속 다니려면 결혼하지 않거나, 아이를 낳지 말아야 한다. 무엇보다 재계약의 불안 속에서 일해야 한다는 점이 가장 힘들다.

기간제라는 사실을 학생들에게 알리지 않는다. 사실을 알게 되면 선생님을 대하는 태도나 존중하는 정도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선생님의 힘이 약해 불이익이 온다 생각할까봐 떳떳하게 말도 못한다. 학교비정규직노조 관계자는 “기간제는 그야말로 계약직이다. 민원이 들어오면 재계약은 없다”며 “학부모가 부당한 대우를 하더라도 일자리를 잃을까봐 학교측에 알리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 유치원 기간제 교사가 무기계약을 요구하는 기자회견 [사진제공 학교비정규직노조]

일은 두배 임금은 절반

정규직 선생님들에 비해 기간제 선생님들은 두 배 많은 행정업무를 한다. 업무 분담은 주로 교장, 교감 선생님에 의해 학기 초에 이뤄진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한 기간제 교사는 “업무 분담을 할 때 ‘누구 선생님, 내년에도 같이 일하시겠습니까’라고 먼저 물어본다. 그러면 ‘이런 이런 일을 우리가 맡기기로 했는데 이거 하시겠습니까’라고 한다. 받거나 떠나거나. 둘 중에 하나이기 때문에 선택권이 없다”고 한탄했다.

초등학교 스포츠 강사는 더 심하다. 초등학교에 남자 교사가 적다보니 온갖 시설관리 업무가 주어진다. 페인트 칠, 정수기 청소, 형광등 교체는 물론 각종 행사 때 힘쓰는 일을 도맡아야 한다. 그래도 스포츠 강사를 ‘무기계약’하지 않는다. 퇴직금을 안주려고 계약기간을 11개월로 한다. 여기에 임금은 초임기준 절반도 안 된다.

세월호 참사 김초원, 이지혜 교사 순직 인정 불가

세월호 참사 당시 학생들을 구조하다 세상을 떠난 고 김초원(당시 26세)ㆍ이지혜(당시 31세) 교사의 순직 인정이 거부당했다. 유족은 지난해 6월 순직신청서를 인사혁신처와 교육부에 제출했다. 인사혁신처는 심사대상에조차 올리지 않고 반려했다. 기간제 교사는 ‘공무원’이 아닌 ‘민간근로자’이기 때문에 공무원연금법상 순직유족급여 청구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두 선생님의 유족들은 “보상 없이 순직 인정만이라도 해달라”고 요구했지만 지난1월 ‘불가’ 통보를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교육부는 대법원 확정판결을 기다리겠다는 입장이다. 1ㆍ2심 재판부가 “기간제 교사는 공무원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는 의견을 내놓았지만, 대법원 판결 전까지 정규 교원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두 선생님의 순직 인정에 대한 후속조치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교무실무사, 과학실무사, 전산실무사, 교육복지사, 돌봄전담사, 사서, 학교보안관, 스포츠강사, 방과후과정강사, 영어회화전문강사, 영양사, 조리사, 조리원, 전문상담사, 특수교육지도사, 평생교육사, 시설관리, 매점관리, 청소원, 통학차량. 이렇게 많은 교육업무 종사자들이 학교에 있다.

그러나 이들은 “여기요!, 저기요!”로 불린다.

오늘은 스승의 날이다.

[사진제공 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사진제공 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사진제공 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사진출처  : 부평구청]

강호석 기자  sonkang11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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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5.18민중항쟁 해외에 알린 재독동포 입국 거부 ‘강제 출국’

 

SNS “대한민국 민주주의 척도 여실히 보여주는 사건…5.18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김미란 기자  |  balnews21@gmail.com
 

5.18민주화 운동을 해외에 알린 재독동포가 5.18기념식 참석차 입국했다가 정부로부터 강제 출국 당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일고 있다.

5.18기념재단은 “독일 교민 이종현(80) 한민족유럽연대 상임고문이 지난 12일 오전 항공편을 이용해 인천공항에 도착했지만, 석연찮은 이유로 인천공항출입국관리소에 억류됐다가 이튿날 낮 12시 30분 항공편으로 강제 출국됐다”고 13일 밝혔다.

인천공항출입국관리소는 ‘대한민국의 이익이나 공공의 안전을 해치는 행동을 할 염려가 있다고 인정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사람’의 입국을 금지한다고 규정한 출입국관리법 11조에 근거, 이 상임고문의 입국을 불허한 것으로 알려졌다.

   
▲ 13일 오전 광주 북구 용봉동 전남대학교 용지관에서 5·18기념재단 차명석 이사장(왼쪽)과 김양래 상임이사가 5·18민주화운동 36주년 기념주간에 초청돼 광주에 들어오려 한 독일 거주 동포 이종현(80)씨가 입국을 거부당한 것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이에 5.18기념재단은 긴급 성명을 내고 “이 상임고문이 해외에서 조국 통일과 민주화를 위해 활동해 온 것은 사실이지만 이 같은 활동이 왜 대한민국의 이익과 공공의 안전을 해친다는 것인지 납득할 수 없다”며 강력 항의했다. 재단 측은 사실 관계를 조사해 당국에 해명을 요구할 것이라는 입장이다.

이 상임고문은 5.18민주화운동 36주년을 맞아 광주에서 열리는 2016 광주 아시아포럼과 5ㆍ18 기념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5ㆍ18기념재단의 초청을 받아 재유럽오월민중제 대표 자격으로 한국을 찾았다.

한국 정부의 이 같은 조치에 재유럽오월민중제 36주년 준비위원 일동은 앞서 12일 성명을 내고 “왜 국가행사에 공식적으로 초청받은 우리 대표를 입국하지 못하게 하는가”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이들은 “1997년 이래 5.18 민주화운동은 국가기념일로 지정되고 정부가 주관하는 기념식에 공식으로 초청받은 인사가 공항에서 입국이 거절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한국 정부에 이 상임고문에 대한 구체적인 입국거부 사유를 밝힐 것과 해외동포의 자유로운 고국 방문을 허용하라고 요구했다.

이들은 “이 같은 요구가 즉각 이뤄지지 않을 경우, 국내외 양심인들과 연대하고 세계여론에 호소하면서, 이러한 부끄러운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모든 조치를 강구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이 같은 소식에 온라인상에서는 “5.18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등 성토가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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