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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노역 아냐” 오리발, 정부 일본 꼼수 몰랐나?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15/07/08 04:20
  • 수정일
    2015/07/08 04:20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일제 만행 현장이 세계유산? 정부의 외교적 야합이자 굴욕
 
육근성 | 2015-07-07 15:42:08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1940년대 일부 시설에서 수많은 한국인과 다른 국민이 징용되어 가혹한 조건으로 강제 노역을 했다.” (사토 구니 유네스코 일본대사 / 세계유산 등재 결정 직전)

“강제징용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불법적 형태로 강제노동을 한 것은 아니다.” (일본 관방장관-외무장관 / 등재 결정 직후)

“일본정부가 강제노역을 인정한 것은 전방위적 외교 노력이 이룬 값진 성과...우리의 우려가 충실히 반영된 형태로 (등재가) 결정된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 (윤병세 외교부장관 / 등재 결정 직후)

 


결정 전 “강제노역” 결정 후 “아니다”

일본 군함도 등 23개 근대산업시설의 세계유산 등재 결정을 위한 막바지 회의가 열렸던 제38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등재 결정 심사가 진행되자 “조선인 징용시설의 세계유산 등재를 막겠다”던 한국정부는 일본대표단과 절충을 벌였다.

일본대표단이 전체 회의석상에서 ‘한국인이 자신들의 의사에 반해 끌려와 가혹한 환경에서 일하기를 강요받았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고, 이 발언 내용을 등재 결정문에 넣어 달라는 게 한국정부의 요구였다. 일본정부는 이런 요구를 들어주는 척하며 꼼수를 부렸다.

일본은 그 내용을 본문이 아닌 ‘주석’에 반영하자고 했고, 한국정부는 이를 받아들였다. 일본의 페이스에 말려든 것이다. 양측이 절충한대로 사토 구니 유네스코 일본대사가 ‘강제 징용과 노동’ 문구가 들어간 발언문을 읽어 내려갔다. 그리고 유네스코는 일본의 요구대로 23개 시설에 대한 세계유산 등재를 최종 결정했다.


일본의 오리발… 외교부 일본 꼼수 몰랐나?

결정이 되자마자 일본은 숨겼던 발톱을 드러냈다. 일본정부 대변인 스가 관방장관은 ‘유네스코 일본대사의 발언문 내용이 조선인 강제노동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을 바꿨다. 그러면서 ‘조선인 강제노동이 국제노동기구(ILO)가 금지한 노동에도 해당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기시다 후미오 외무상 역시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곳에서) 조선인이 강제 노역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며 “강제징용 배상은 한일청구권 협정으로 최종 해결된 것”이라고 다시 못 박았다. 일본 외무성은 공식 입장 발표를 통해 “조선인이 의사에 반해 일본에 온 것은 부정하기 어렵지만 강제노동을 한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등재 여부를 결정하는 세계유산위원회에서는 강제징용과 강제노역을 인정해놓고 등재가 결정되자마자 완전히 말을 바꾼 것이다. 단물만 쏙 빼먹고 오리발 내민 일본... 한국정부가 또 당한 건가? 아니면 짜고 친 건가?

“a large number of Koreans and others who were brought against their will and forced to workunder harsh conditions in the 1940s...” (일본측 발언문/영문)

강제징용과 노역을 인정하는 문구(against their will, forced to work)가 일어판에는 ‘의사에 반해 일본에 와서 일하게 됐다’ 등의 유화된 표현으로 둔갑해 있었다.


그래도 국민 앞에선 자화자찬

이러는 동안 한국 외무부는 자화자찬에 열을 올렸다. ‘강제노역’ 사실이 등재문에 포함됐다며 “값진 성과”라고 평가했다. 또 “일본정부가 강제노역을 인정한 것은 정상외교와 장관회담, 국제사회 공조를 비롯한 전방위적 외교 노력이 거둔 성과”라고 자랑하기 바빴다.

황당하다. 본문도 아닌 각주에 강제징용을 의미하는 영어단어 한 둘을 넣은 게 그토록 대단한 성과란 말인가?

일본정부의 ‘오리발’이 논란이 되자 외교부는 “영문표현(forced to work)은 국제 관례상 ‘강제성’을 뜻하기 때문에 영어원문 그대로만 믿으면 된다”는 해명을 내놓았다. 일본은 아니라는데 우리만 그렇다고 믿으면 된단다. 어떻게 이 따위 말을 하나. 이러니 한국외교가 국제무대에서 조롱거리가 되는 거다.

외교부의 ‘지독하게 순진한 해명’은 계속됐다. 이런 일본이 등재 결정 직전 밝힌 ‘강제노역 사실을 알리는 정보센터 개설’ 약속을 지키겠느냐는 질문에 “후속조치 이행 여부는 일본 양심의 문제”라고 답했다. 외교부가 일본정부에 맞설 카드가 전혀 없다는 얘기다.

‘둔하고 답답한 외교부’가 화들짝 놀랄 일이 벌어진다. 6일 일본정부가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시설에서 조선인 강제노동은 없었으며 일본대표의 발언도 강제노동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라는 주장을 논리화해 적극적으로 해외 홍보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앉아서 부인하는 수준에서 머물지 않고 발로 뛰며 홍보전을 벌이겠다는 얘기다. 외교부는 그제야 허둥지둥 움직임을 보였다.

<자화자찬하던 외교부, 비판 쏟아지자 부랴부랴 '팝업창' 띄워 국민설득에 나섰다.>


황당한 외교부… 당했나? 짜고 쳤나?

7일 외교부는 홈페이지 팝업창에 “일본 근대산업시설 등재에 ‘의사에 반하여 강제로 노역한 역사’를 반영”이라는 한글로 된 게시물을 올렸다. 영문본에는 ‘강제징용과 강제노역’이라는 문구가 들어있다는 주장이다. 일본정부와 드잡이를 할 것이지 왜 국민을 설득하려 드나?

결국 잔혹한 착취와 비인간적 만행이 자행됐던 강제노역 현장이 “인류를 위해 보존해야 할 보편적 가치의 장소”로 둔갑했다. 이러는데 한 몫을 한 게 바로 박근혜 정부다. 일본 우익이 염원해온 ‘과거사 지우기’에 한국정부가 나서서 거들어 준 셈이 됐다.

<이국언 대표 페이스북>

‘근로정신대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대표 이국언)은 “일제 강제징용 시설이 세계적 관광지로 부상할 수 있도록 그 시설물들의 부가가치만 높여준 꼴을 자처했다”며 “이번 결과는 역사 인식 빈곤이 부른 박근혜 정권의 외교적 야합이자 굴욕”이라며 울분을 토했다.

1938년부터 조선인 강제징용 야욕을 드러낸 일제는 1941년 노무조정령과 총동원연맹, 1942년 근로보국대 창설, 그리고 마침내 국민징용령 확대적용(1944년)을 통해 약 800만 명에 달하는 조선인들을 강제 동원했다.

하지만 박정희는 한일국교정상화(1965)에 서명하면서 103만 명에 지나지 않는다는 일본의 주장을 그대로 수용했다. 그러더니 그의 딸은 국민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강제징용 현장이 세계유산으로 등재되는 데 동의해 줬다. 굴욕적이다.

아무리 말 바꾸기 잘하는 일본이라도 외교적 합의를 단 몇 분 만에 뒤집을 수는 없다. 그렇게 해도 뒷탈이 생기지 않을 거라는 어떤 '확신'이 있다면 몰라도… 이런 확신을 일본 정부에게 준 이가 누굴까? 어떻게 일본이 외교적 상식을 깨도 그만이라는 자신감을 갖게 된 걸까?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22&table=c_aujourdhui&uid=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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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저균 소굴 오산미군기지 폐쇄 촉구 기자회견

탄저균 소굴 오산미군기지 폐쇄 촉구 기자회견
 
 
 
이창기 기자 
기사입력: 2015/07/08 [00:42]  최종편집: ⓒ 자주시보
 
 
▲ 오산미군기지 탄저균 시설 폐쇄 시민행동단의 오산 미군기지 항의방문     © 자주시보
▲ 오산 미군기지     © 자주시보

 

주권방송 보도에 따르면 7일 오전 K-55 오산미군기지 앞에서 ‘오산미군기지 탄저균 시설 폐쇄 시민행동단’의 기자회견이 진행되었다.

 

주권방송 바로가기: http://www.615tv.net/

 

시민행동단은 기자회견에서 ‘탄저균 시설 공개조사, 책임자 처벌, 세균전 부대 폐쇄 3대 국민 요구안’을 밝힌 후 요구서한을 주한미군 측에 전달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주한미군은 기자회견이 진행되는 동안 기지 정문을 봉쇄하고 서한 접수 자체를 거부하였다.

 

탄저균은 100kg 한포대만 살포해도 90만명의 시민들이 몰살당하는 핵무기보다도 10배 심지어 100배 더 파괴력이 큰 생물무기로 국제협약에 따라 그 개발이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다.

 

약학 박사이기도 한 서울대 우희종 수의학과 교수는 탄저균 백신 개발이라면 죽어있는 세포에서 DNA를 추출하여 개발하는 것이 일반화된 방법이라며 살아있는 탄저균을 미군이 한반도에 도입했다면 더 치사율이 높은 생물무기를 개발하기 위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미군 사령관은 생 탄저균 배달 사고에 대해 사과만 했을 뿐, 얼마나 들여왔고 어떤 실험을 했으며, 어떻게 폐기했는지 전혀 우리 국민들에게 공개조차 하지 않고 있고 박근혜 정부도 이를 수수방관만 하고 있어 국민들과 각계의 분노를 사고 있다.

 

한편 얼마 전 영자신문 제4언론에서 시마추 기자 한국의 메르스 전염병도 용산미군기지에서 실험을 하다가 유출된 것으로 일반 메르스가 아닌 생물무기로 개발된 전염병이라고 보도하여 누리꾼들 사이에서 분노를 사고 있다. 이는 본지 이정섭 기자가 처음 소개한 바 있다.

 

기사바로가기: http://www.jajusibo.com/sub_read.html?uid=22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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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새누리당 소속 국회의원들이 표결에 불참했는가

‘양심을 팔아야 산다’ 새누리당 의원들의 생존기
 
 
 
임병도 | 2015-07-07 09:48:49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국회법 개정안이 투표 불성립으로 자동폐기 될 가능성이 커졌습니다. 7월 6일 국회 본회의는 박근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돌아 온 ‘국회법 개정안 재의결 안건’을 상정했습니다. 그러나 130명만이 표결에 참석, 의결 정족수 미달로 처리되지 못했습니다.

‘국회법 개정안 재의안’은 표결되지 못했기 때문에 국회에 남아 있다가, 19대 국회가 끝나는 내년 5월말이면 자동으로 폐기되게 됩니다. 만약 여, 야가 합의해서 다시 재의결하면 통과될 수 있지만, 그럴 가능성은 매우 희박합니다.

법안을 투표로 통과시키는 국회에서 아예 표결조차 하지 못했다는 사실은 굉장히 충격적입니다. 왜 새누리당 소속 국회의원들이 표결에 불참했는지 그 이유를 알아보겠습니다.


‘이탈표를 막기 위해 표결을 원천봉쇄한 새누리당’

새누리당이 국회법 개정안 재의안에 불참한 가장 큰 이유는 새누리당 내부에 있는 이탈표 때문입니다. 국회법 개정안 재의안을 통과시키기 위해서는 먼저 재적의원의 과반수가 표결에 참여해야 합니다.

현재 대한민국 19대 국회의원은 총 298명입니다.1 재적의원 과반수인 149명이 최소한의 재의 표결 가능 숫자입니다. 재적의원 과반수가 참석하고 출석 의원 3분 2 이상이 찬성하면 국회법 개정안은 통과됐을 것입니다. 그러나 새누리당은 아예 표결 자체에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새누리당이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이유는 만약 14명 정도의 새누리당 이탈표가 발생했다면, 국회법 재의안이 표결까지 이어질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제 새누리당 소속 의원 중 표결에 참여한 사람은 정의화 국회의장과 정두언 의원뿐입니다. 이외 유승민 원내대표 사퇴 압박을 반대하는 새누리당 의원들이 있었기 때문에 무기명투표로 표결에 참여했다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었습니다.

새누리당은 아예 이탈표를 막기 위해 '표결 불참'을 당론으로 정하고, 표결 자체를 원천봉쇄한 것입니다.


‘야당 때문이야, 야당 때문이야. 국회법 개정안 무산은 야당때문이야’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국회법 개정안 재의안이 무산되자, 국회에서 입장을 밝혔습니다. 김무성 대표는 ‘국회법 개정안이 오늘 본회의에서 투표 불성립으로 사실상 폐기된 데 대해 과정이야 어찌 됐든 국민 여러분께 송구하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습니다.2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국회법 개정안 내용과 관련해 새누리당은 강제성이 없다고 해석했지만, 야당이 강제성이 있다고 계속 주장함으로써 갈등과 혼란이 지속돼 왔다’면서 이번 사태의 책임이 오히려 야당에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김무성 대표의 말은 38일 전 본인을 비롯한 새누리당 의원 96명이 찬성표를 던진 국회법 개정안을 뒤엎는 발언입니다.3 만약 강제성이 있고 없고를 판단하려면 여야 대표가 모여 다시 논의하던지, 표결을 통해 새누리당의 입장을 보여주면 됐습니다.

자신들이 표결에 동참조차 하지 않고, 야당 때문이야를 외친 김무성 대표의 말이 큰 덩치와는 어울리지 않아 보였습니다.


‘헌법의 가치를 확인? 법안은 아직 폐기되지 않았다’

국회에서 국회법 개정안 재의안이 무산됐다는 소식이 나오자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은 ‘오늘 국회의 결정은 헌법의 가치를 다시 한 번 확인한 것’이라는 논평을 냈습니다.

민경욱 대변인이 기자들에게만 보낸 ‘국회법 개정안 무산이 헌법의 가치를 확인했다’는 메시지는 지금 상황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말입니다.4

현재 국회법 개정안은 정족수 미달로 인한 ‘투표 불성립’이지 ‘국회법 개정안’이라는 법안은 여전히 국회에 남아있습니다. 새정치민주연합이 다시 재의를 요청하고, 정의화 국회의장이 찬성하면 또다시 표결할 수 있습니다.

국회법 개정안이 진짜 위헌이었다면 정당하게 표결을 통해 ‘부결’ 여부를 결정하여 제대로 폐기하면 됩니다. 새누리당은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갈 수 없으니 표결에 동참하지 않았습니다. 이를 ‘헌법의 가치를 확인했다’는 식으로 말하는 자체가 헌법을 무시한 발언입니다.

국회의원에 당선돼5 국회에 들어가 ‘국회의원’ 선서를 합니다. 국민의 뜻에 따라 국회의원의 직무를 양심에 따라 성실히 수행하겠다는 다짐과 약속입니다.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 및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위하여 노력하며 국가이익을 우선으로 하여 국회의원의 직무를 양심에 따라 성실히 수행할 것을 국민 앞에 엄숙히 선서합니다.’(국회의원 선서)
 
새누리당 의원들이 국회법 개정안 재의안 표결에 불참한 이유는 국가이익도, 국회의원 직무 때문도 아닙니다. 오로지 청와대에 있는 박근혜 대통령의 말에 따르기 위해서였습니다.

‘양심을 팔아서라도 살겠다’고 발버둥 치는 새누리당 의원들의 모습을 보면서, 그들이 대한민국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의원인지, 박근혜 대통령의 국회의원인지 헌법재판소에 묻고 싶을 지경입니다.


1. 대한민국 국회, 국회의원 현황
http://www.assembly.go.kr/assm/memact/congressman/memCond/memCond.do 
2. 국회기자회견,’국회법 개정안 관련 새누리당 입장 발표 브리핑’
http://w3.assembly.go.kr/multimedia/jsp/press/pressPop.do?cmd=pressPop&p_idx=36227 
3. 진선미 의원의 국회법 개정안 재의안 찬성토론 2015년 7월 6일
4. 靑 “헌법가치 재확인” 연합뉴스tv 2015년 7월 6일.
http://www.yonhapnewstv.co.kr/MYH20150706014900038/
5. 비례의원직을 승계하는 경우도 포함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13&table=impeter&uid=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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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염병과 전쟁


<기획> 세균전의 나라 미국
곽동기  |  tongil@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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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7.06  17: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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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동기 / 우리사회연구소 상임연구원

 

[연재를 시작하며]

주한미군으로의 탄저균 반입이 뜨거운 논란이다. 전쟁의 목적은 승리이고 이를 위한 수단에는 제한이 없다고 했던가. 하지만 군사적 목적을 위해 인간에게 치명적인 세균을 사용한다는 것은 너무나 잔인한 발상이다.

세균무기는 오늘날 “가난한 나라의 핵무기”라고 불리고 있지만, 원래는 제국주의 침략세력에 의해 처음으로 개발되었다. 이번에 벌어진 주한미군 탄저균 논란도 미국이 어떠한 입장과 목적에서 살아있는 탄저균을 이 땅에 반입하였는지 철저히 규명해야 할 것이다.

탄저균 반입 사건의 중요성과 위험성을 제대로 알리기 위해 <세균전의 나라 미국>이라는 연재를 준비하였다. / 필자 주

<차례>

1. 전염병과 전쟁 
2. 일본 731부대의 세균실험 
3. 6.25와 세균 
4. 쥬피터 프로그램이란? 
5. 끝내 터진 사고 
6. 세균, 방어용인가? 공격용인가? 
7. 진화하는 세균전 
8. 불안한 한국사회 
9. 대안은 무엇인가?

 

전쟁은 자신의 의지를 상대방에게 무력으로 관철시키는 행동이다. 전쟁에는 역사적으로 인류에 커다란 피해를 끼쳐왔던 세균이 개입되었다. 세균이 규명되고, 바이러스성 질환의 정체가 드러나면서 인간은 세균을 정복하고 제압하였으며, 이를 무기화하였다.

역사적으로 세균은 침략무기로 사용되었다. 전염병은 언제나 한 지역을 완전히 초토화시켜 전투력을 약화시켰기 때문이다. 세균은 가장 혐오스런 공격무기이며 군인과 민간인을 가리지 않고 심지어 적군과 아군도 가리지 않으므로 눈이 없는 공격무기라고 할 수 있다.

누가 이런 치명적 세균의 덕을 가장 많이 보았는가? 바로 제국주의 침략세력들이었다.

세계를 휩쓴 전염병들

전염병은 세균이나 바이러스 등 병원체에 의해 감염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옮아가는 질환이다.

인간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전염병이 창궐할 때마다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전염병이 걸린 환자는 따로 모아놓고 사망하면 사체를 불사르는 것 이외에 할 수 있는 방역대책은 없었다. 전염병에 대한 예방백신과 치료제가 개발되기 이전, 인간이 목숨을 잃는 사망원인 중 1위는 단연코 전염병이었을 것이다.

전염병은 특히 한번 창궐하면 그 일대 지역을 완전히 초토화시켰기 때문에 사람들은 전염병을 매우 두려워하였다.

서기 165년경에는 로마제국에서 변방이었던 시리아 지역에서 근무하던 병사들이 근무지에서 돌아오면서 이른바 안토니우스 역병이 창궐하였다고 한다. 이 역병의 정체는 오늘날 아시아와 무역 과정에서 옮은 천연두로 짐작된다는데 이 때로부터 15년 동안 유럽 전역에서 500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이어 541년부터는 이집트에서 전파된 유스티아누스 역병이 창궐하였는데 콘스탄티노플(지금의 터키 이스탄불)에서는 하루에 1만 명이 죽기도 했다고 한다. 이는 오늘날 페스트로 추정된다.

14세기에 유럽대륙을 휩쓴 페스트는 1347년부터 4년 만에 유럽인구 2500만 명을 사망케 하였는데 이는 전 유럽인구의 1/3에 달하는 규모였다고 한다.

페스트는 쥐벼룩에 의해 감염되는데 환자의 피부가 검게 변하면서 사망한다고 해서 흑사병이라고도 불린다. 유럽에서는 페스트가 창궐해 영국과 프랑스 간의 백년전쟁이 중단되기도 하였으며 유럽대륙의 노동력 감소를 가져오기도 하였다.

최근에 인류에게 심각한 피해를 야기한 전염병은 1918년에 발생한 스페인 독감이다. 1918년부터 1920년까지 2년 동안 전 세계에 걸쳐 2500만에서 5000만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고 추정되고 있다. 스페인 독감은 스페인이 아니라 1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에 주둔하고 있던 미군병영에서 환자가 발생하였다고 이야기되고 있다. 전쟁이 끝나고 병사들이 귀환하면서 스페인 독감은 미국 전체에 퍼졌다. 1918년에 총 50만 명의 미국인이 스페인 독감으로 사망하였다고 한다. 스페인 독감은 식민지 조선에도 창궐하여 대략 14만 명이 사망하였다고 추정된다.

전염병은 우리 역사에도 공포스러운 기억으로 남아 있다. 역사서는 대체로 나라에 망조가 들면 각종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으면서 공통적으로 역병이 돌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전염병을 줄인 말이 바로 염병이다. “이런, 염병할!”이란 말에서 볼 수 있듯 전염병은 우리 문화에서도 함께하기 싫은, 매우 혐오스러운 대상으로 통용되었다.

전쟁과 전염병

전염병이 특히 기승을 부릴 때는 바로 전쟁 상황이다. 사람의 목숨이 오가는 전쟁터에서 보건위생은 아무래도 뒤쳐질 수밖에 없다. 적군이 몰려오는 위급한 상황인데 물을 끓여 마실 시간은 없다. 전사한 적군을 땅에 묻어 줄 여유도 없다. 집단생활을 하는 군대에서 빨래와 샤워를 정기적으로 하면서 싸우는 것은 21세기 현대에도 힘든 일이다. 하물며 고대와 중세기, 근대의 전쟁은 이루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무더운 여름철이면 살이 썩는 냄새가 진동하는 전쟁터에서 죽고 죽이기를 반복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세균이 증식하고 이들이 군인들의 신체를 감염시키는 것은 다반사이다.

역사적으로 전염병에 의해 전쟁이 좌우되었던 사례는 기원전 430년경 고대 그리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있었다. 당시 아테네가 이끌던 델로스 동맹과 스파르타가 이끌던 펠로폰네소스 동맹 간의 싸움이 한창이었는데 기원전 430년과 429년, 427년에 걸쳐 아테네에서 역병이 돌았고 이 역병으로 당시 아테네 군인과 민간인 4분의 1이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역병으로 약해진 아테네는 결국 스파르타 중심의 펠로폰네소스 동맹에 패하게 된다. 투키디데스의 기록에 따르면 환자의 증상에 미루어볼 때 당시 역병은 장티푸스였다는 설이 유력하다고 한다.

전쟁과정에서 전염병은 때로는 교전보다 훨씬 더 많은 목숨을 앗아갔다. 그 대표적 전염병이 바로 티푸스이다. 티푸스는 벌레에 기생하여 살아가는 리케차에 의해 감염되는데 바로 이와 쥐벼룩, 빈대 등에 의한 감염이다. 온 몸에 붉은 점이 나타나는 발진티푸스가 가장 흔한 병종인데 머리를 감지 못해 생기는 이와 위생적이지 못한 환경에서 서식하는 쥐에 의해 일파만파로 감염되었다.

1489년, 유럽 스페인에서 무슬림을 몰아낼 당시 스페인 남부 그라나다에서는 마지막으로 항거하는 무슬림에 대한 그리스도교도들의 최후의 공격이 준비되고 있었다. 그런데 그 당시 그리스도교도 진영에 티푸스가 창궐했고 이로 인해 1만 7천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1812년, 나폴레옹이 러시아 원정에서 실패하고 퇴각길에 올랐을 때, 정작 프랑스 군대를 전멸시킨 것은 바그라티온 장군이 이끄는 러시아군도 있었겠지만 주된 요인은 동장군과 더불어 프랑스 군대 내에서 만연했던 티푸스였다.

이런 티푸스는 포로수용소와 같이 위생시설이 열악할 수밖에 없는 지역에서 창궐하곤 하였다. 1차 세계대전 이후였던 1918년에서 1922년 사이, 티푸스는 300만 명의 환자를 죽음으로 몰아갔다고 하고 2차 대전 당시 유태인들은 나치의 강제수용소에서 티푸스에 의해 죽어갔다. <안네의 일기>로 유명한 안네 프랑크도 수용소에서 티푸스에 걸려 사망하였다.

아메리카 대륙을 휩쓴 유럽인들의 세균

특히 아메리카 대륙에서는 유라시아 대륙으로부터 건너 온 전염병에 의해 인디언의 태반이 목숨을 잃었다. 아메리카 대륙에는 예로부터 대규모 전염병이 기록되지 않았는데 16세기에 유럽인들이 아메리카 대륙으로 몰려 들어가면서 대규모 전염병이 줄을 이었다.

사실 무기의 파괴력이 극대화되지 않은 16세기에 스페인 정복자들이 제 아무리 발군의 전투력을 보인다 하더라도 수십만, 백만에 육박하는 인디언을 모두 도륙하고 정벌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1518년 멕시코에 상륙한 스페인의 정복자 에르난 코르테스 휘하의 부하는 고작 800명에 불과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그들이 3년 후 인구 30만 명의 도시 테노츠티틀란을 침공했을 때에는 전투가 아니라 그들이 옮긴 천연두에 의해 무려 15만 명의 인디언들이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16세기에는 카나리 군도의 전 인구가 천연두로 전멸했으며, 히스파뇰라에서는 원주민의 절반이 천연두로 죽었다고 한다.

호주지역의 원주민들도 영국인들과 함께 들어온 전염병 균에 원주민 중 50%가 죽었다고 한다.

오늘날 미국이 있는 북미대륙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초기 북미대륙의 뉴잉글랜드 지역에 유럽인들이 정착하였을 때에는 인디언은 백인들에게 우호적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유라시아 대륙에서 함께 건너온 각종 병원균들에게 인디언족들은 전혀 무방비상태였고 전염병의 지속적인 창궐로 인디언 인구는 계속 감소했다고 한다.

북미대륙 전체에 걸쳐 1000만 명 규모였을 것으로 짐작되는 인디언들이 오늘날 수십만 명에 불과한 채로 미국정부가 규정한 보호구역에 사실상 갇히게 된 것도 미국이 자행한 수많은 인디언 토벌정책도 원인이겠지만 기본은 유럽인들이 안고 들어온 병원균에 의한 감염과, 또 하나의 원인은 인디언들의 주된 식량원천이었던 아메리카 들소를 백인들이 마구잡이로 잡아들인 것이었다.

식량원천을 없애고 역병을 계속 퍼뜨리니 인디언들이 남아날 재간이 없었다. 살아남은 인디언에게는 이주를 명령하고, 저항하는 인디언은 도륙하였다. 지구상의 한 대륙에서 인디언이라는 인종이 사실상 멸종하게 된 데에는 전염병이 하나의 커다란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백신 덕택에 무기로 연구된 세균

인간이 전염병에 대해 과학적으로 대응한 첫 사례는 1798년 제너가 종두법으로 천연두를 예방한 것이다. 당시 제너는 종두에 걸린 사람은 천연두에 걸리지 않는다는 민간의 이야기를 과학적으로 추적하였으며 그 과정에서 종두로부터 천연두를 예방하는 백신을 얻어 접종하였으며 백신을 접종한 아이는 천연두를 접종해도 발병하지 않는다는 것을 입증하였다.

나아가 파스퇴르는 전염병을 일으키는 원인이 병원균이란 것을 과학적으로 완전하게 밝혔다. 각종 발효식품에 파스퇴르란 이름이 등장하는 이유가 그가 이 업적으로 지금까지 “미생물학의 아버지”로 불리기 때문이다. 파스퇴르는 1885년, 광견병 병원균을 다른 토끼에게 수차례 감염시켜 그 감염력을 현저히 떨어트린 후에 사람에게 주사하여 광견병을 치료하였다. 그는 1880년 무렵에 탄저균을 연구하기도 하였는데, 오늘날처럼 세균무기로 개발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인간에게 치명적인 탄저균 백신을 개발하기 위해서였다.

파스퇴르가 세균성 전염병의 정체를 완전히 규명하고 백신으로 이를 퇴치한 이후로 전염병은 우리에게 절망적인 질환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오늘날 현대인들은 암과 뇌졸중 같은 병을 중증질환으로 두려워하지 장티푸스, 콜레라, 결핵에 감염되었다고 절망하지 않는다. 이는 전적으로 초기 미생물학자들의 연구 덕택이다.

이제 인간이 전염병을 통제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되자, 인간은 전쟁무기로 세균을 본격 개발하기 시작하였다. 그 대표적 경우가 일제 관동군 휘하 731부대가 벌였던 끔찍한 세균전 실험이다. 그리고 그들의 자료는 미국으로 건너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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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족 외세군대 미군 능욕, 언제까지 참아야 하나

이민족 외세군대 미군 능욕, 언제까지 참아야 하나
 
 
 
이창기 기자 
기사입력: 2015/07/07 [00:04]  최종편집: ⓒ 자주시보
 
 

주권방송 동영상 보기:http://www.615tv.net/?p=1262

 

▲ 주권방송과 미군 탄저균 사고 관련 대담을 진행하고 있는 우희종 교수     © 자주시보

 

서울대 수의대 우희종 교수가 3일 주권방송과의 대담에서 미군 생 탄저균 배달사고의 심각성을 조목조목 지적하여 주목을 끌고 있다.

 

약학 박사이기도 한 우희종 교수는 먼저, 백신 개발은 살아았는 균주가 아닌 죽어있는 균주로도 DNA를 추출하여 얼마든지 할 수 있기 때문에 미국이 살아있는 탄저균을 한국에 보냈다면 명백하게 방어용 백신개발이 아니라 공격용 생물무기를 개발하려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탄저균 생물무기는 그 파괴력이 핵무기보다 열배 백배 더 강한 무기로 군인만이 아니라 시민들까지 무차별적으로 대량학살을 자행할 수 있는 무기이기 때문에 국제적으로 절대 개발을 하지 못하게 되어 있다. 미국도 그 생물무기개발 금지 협약에 가입되어 있는 상태이다. 미국 내에서도 방어를 위한 백신 개발 등도 완전히 투명하고 공개적으로 진행되도록 법으로 엄격히 통제하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탄저균은 활동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보호막을 만들어 그 안에 들어가 100년이 지나도 죽지 않고 견딜 수 있는 매우 무서운 균이다.

 

이라크 후세인이 전 세계 연합군의 공격 목표가 된 가장 중요한 이유가 이 탄저균무기를 포함한 생화학무기 개발 즉, 대량살상무기 개발이었다. 물론 그 증거를 찾지 못하기는 했지만 그랬을 것이라는 의심만으로도 공격을 했던 것이다. 우희종 교수는 따라서 우리나라에서 탄저균을 이용한 무기 개발을 하고 있다는 것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전 세계가 연합군을 만들어 우리나라를 공격해도 할 말이 없다고 지적하였다. 그만큼 탄저균무기개발은 국제적으로 심각한 문제라는 것이다.

 

▲ 탄저균에 감염된 코끼리 코, 석탄처럼 살이 까맣게 썩어가게 하는 균이라고 해서 탄저균이다.     ©자주시보

 

▲ 위쪽 사진은 탄저균을 전자현미경을 통해 촬영한 것이고, 아래쪽 사진은 탄저균감염증에 걸린 사람의 팔이 패혈증으로 괴사되는 상처부위     ©자주시보

 

다음으로 우희종 교수는 페덱스라는 민간배달업체를 통해 그 생탄저균이 왔다는 점이 문제가 아니라 그 민간배달업체가 왜 우리 정부에 생탄저균 배달 사실을 신고하지 않았는지가 문제라고 지적하고 법정 전염병으로 지정된 균주의 경우 그게 살아있는 것이건 죽어있는 것이건 무조건 우리 정부에 신고하도록 되어 있는데 정부가 전혀 페덱스로부터 신고를 받지 못했다면 이건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는 것이다.

 

10KG의 분말만으로 90만 명의 생명을 앗아갈 수 있는 치사율 90%의 이 위험한 탄저균이 우리 정부가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유통된다는 것은 국가의 검역 안전 주권이 완전히 무너졌다는 것이기에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페덱스에서 왜 신고하지 않았는지 정부는 반드시 조사하고 타당한 이유가 없다면 엄중한 법적 처벌을 가해야 함에도 정부에서 페덱스에 대해 어떤 조사도 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 더욱 심각한 문제라는 것이다.

 

그 다음으로 우희종 교수는 주한미군이 국내에 생 탄저균을 반입한 사실을 시인하고 사과했다면 주권국으로서 당연히 그 생 탄저균을 얼마나 들여왔으며 그것으로 무슨 실험을 했는지, 폐기는 어떻게 했는지 등등을 우리 정부에서 당연히 철저히 검사하여 그 내용을 국민들에게 투명하게 공개하고 확고한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해야 함에도 우리 정부는 미군으로부터 어떤 답도 듣지 않았음에도 조사 요구를 전혀 하지 않고 있는데 이는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다고 지적하였다. 다시 말해서 이는 주권포기 행위이며 국민의 생명을 미군에게 내 던지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는 심각한 우려 표명인 것이다.

 

우희종 교수는 결론적으로 미군이 우리나라 용산과 같은 수도의 한 복판에서 생 탄저균을 가지고 생물무기개발을 해도 정부에서 아무런 말도 할 수 없는 한미행정협정은 전면 재검토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하지만 한미행정협정 즉, 소파를 개정한다고 해서 과연 이런 문제가 해결될 것인가. 자국에서도 하지 못하는 생 탄저균을 이용한 무기개발을 우리나라에서 몰래 자행한 주한미군에게 국방을 의지하여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내 맡기는 일은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맡기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

 

국제관계에는 공짜란 없다. 미군이 이 땅에 주둔하는 것은 자국의 이익을 위한 것이지 우리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주자는 것이 결코 아니다. 그들은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우리 국민이 죽건 말건 결코 상관하지 않는다. 한국전쟁에서 인민군이 민간복장을 하고 피난민에 섞여 있을 수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어린 아이와 할머니들임을 눈으로 보고도 비행기와 기관총을 동원하여 무리로 학살했다. 노근리 쌍굴다리에서는 지금도 그 원한의 총탄자욱을 생생하게 목격할 수 있다. 빨치산이 의거할 있다는 이유만으로 강원도에서 경상도, 전라도로 이어지는 태백산맥 노령산맥 주변의 마을을 닥치는대로 폭탄을 퍼붓고 캘리버50 기관총 몰사격을  가해 초토화시켰다. 아이들이 뛰어놀고 주민들이 우글우글 생활하고 있는 것을 눈으로 보면서도 무지막지하게 포탄을 퍼부어댔다.


미군은 남베트남에서 고엽제를 마구 뿌려대어 밀림을 초토화는 과정에 수많은 주민들에게 고엽제 중독을 일으켜 온갖 질병으로 죽어가게 했고 헤아릴 수 없는 기형아 등 피해액을 계산할 수 없을 정도의 피해를 야기했다.
이라크전쟁에서는 자녀들 보는 앞에서 엄마를 집단 윤간하고 그 엄마를 죽이고 초등학생 딸까지 집단 윤간하는 등 차마 금수도 고개를 돌리 악마와 같은 짓은 수도 없이 자행하였다.

 

미군에게는 어제도 오늘도 오직 태평양에서 자국 이권을 지키기 위해 한반도 땅이 필요한 것뿐이다. 미군 기지와 양공주가 필요할 뿐이다.

 

어서 남북관계를 개선하여 통일을 이루어 이런 외세 군화발에 유린당하는 치욕을 하루라도 빨리 씻어내야 할 것이다. 외세 군대에 의존한다는 것 자체가 너무도 치욕스럽고 우리 민족에게 온갖 만행을 가해온 미군에게 정부차원에서 항의 한 번 제대로 하지 못하고 지금도 미군 주둔비를 매년 섬겨바치는 것을 생각하면 이가 갈리고 치가 떨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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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신자 박근혜’의 탄핵을 얘기하자

 
 
 
정운현 | 2015-07-07 08:53:41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정치권에서 때 아닌 ‘배신자’ 논란이 일고 있다. 발단은 박근혜 대통령이다. 박 대통령은 지난 25일 국무회의에서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국민 삶을 볼모로 이익을 챙기려는 구태 정치” “배신의 정치에 대한 국민 심판” 등 과격한 표현을 쏟아냈다. 이날 국무회의 참석했던 모 인사는 한 언론 인터뷰에서 “오싹했다”고 분위기를 전한 바 있다. 배신자에 대해서는 응징과 복수가 이어지는 법이니 장차 정치권에 피바람이 불 지도 모를 일이다.

대통령도 사람일진대 개인적인 감정을 표현할 수는 있다. 문제는 때와 장소다. 메르스 사태로 온 나라가 뒤숭숭한 이 마당에 메르스 책임자에 대한 국민심판도 아닌 이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란 말인가. 혹자는 박 대통령이 겪은 ‘배신 트라우마’가 과도한 집착으로 이어져 복수심으로 발전한 게 아니냐는 우려 섞인 분석을 내놓기도 한다. 자칫 국가적으로 위험한 사태를 초래하는 건 아닌지 걱정스럽다.

▲박근혜 대통령이 25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국회와 여야를 비판하며 굳은 표정으로 국회법 개정안 거부권 행사 발언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박 대통령이 배신자로 지목한 사람은 ‘여당의 원내사령탑’, 즉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다. 유 원내대표는 한 때 박 대통령의 최측근 인사로 불리던 사람이다. 그런 사람을 두고 박 대통령은 “배신의 정치는 반드시 선거에서 국민들께서 심판해 주셔야 할 것”이라며 유 대표의 지역구인 대구 유권자들이 내년 총선에서 그를 떨어뜨려 줄 것을 공개적으로 천명했다. 현역 정치인에게 이보다 더한 저주와 복수는 없다.

박 대통령의 입에서 ‘배신의 정치’라는 말이 나온 걸 두고 말이 많다. 진짜 배신자는 유승민 원내대표가 아니라 박 대통령 그 자신이라는 지적이 그것이다. 집권 3년 차를 맞고 있는 박 대통령의 그간의 행적을 보면 수긍이 간다. 지난 대선 때 박근혜 후보는 ‘국민행복시대’ ‘경제민주화’ ‘복지’ 등 온갖 미사여구를 동원해 국민들의 환심을 샀다. 여기에 국정원 등 공권력 동원에 박정희 후광까지 입어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러나 대통령이 된 후 박 후보는 완전히 딴 사람이 됐다. 이룰 다 셀 수도 없을 만큼의 장밋빛 공약들은 모두 휴지통에 처박히고 말았다. 대표적 복지공약인 기초연금제는 원안에서 대폭 축소됐으며,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공약도 파기됐다. 또 진보진영 공약을 베껴 내놓았던 ‘경제민주화’는 눈 가리고 아웅 식으로 끝나버렸으며, 이를 주도했던 인사들은 모두 ‘팽’ 당하고 말았다. 이들 가운데 한 명인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는 최근 “석고대죄라도 해야 할 판”이라고 토로한 바 있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겠다던 취임선서는 ‘아몰랑’이 되고 말았다. 야당의원 시절인 2004년 7월 김선일 씨 피랍 사건이 발생하자 “국가가 국민을 보호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국가가 아니다. 우리 국민 한 사람을 못 지켜낸 대통령은 자격이 없으며 나는 용서할 수 없다”며 핏대를 세웠던 그였다. 그러나 지난해 세월호 참사가 발생했을 때나 금년에 메르스 사태를 맞아 그가 보인 태도는 완전히 딴판이었다. 무능과 무대책, 무반성 ‘3무’였다.

이런 마당에 대체 누가 누구를 두고 배신자라 목소리를 높이는가? 진짜 배신자는 애당초 실천의지도 없는 공약을 남발하여 국민을 속이고 또 공권력을 동원해 불법선거로 당선된 박근혜 대통령이 아닌가? 정상적인 국가에서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런 일이 노무현 참여정부에서 발생했다면 새누리당은 벌써 ‘탄핵 카드’를 들고 나왔을 것이다. 국회와 국민들은 이제 ‘배신자 박근혜’를 응징해야 한다. 지금이야말로 ‘박근혜 탄핵’을 얘기해야 할 때인 것이다.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11&table=wh_jung&uid=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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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전 스님, 신영복 교수 등 올해 만해대상 수상

 
조현 2015. 07. 06
조회수 398 추천수 0
 

 

 

만해대상 신영복 교수, 청전 스님 등 6명 수상

 

 

독립운동가이자 시인이자 승려였던 만해 한용운의 뜻을 기리는 올해 만해 대상에 청전 스님과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 등 6명이 올해 수상자로 선정됐다.

 

5일 만해축전추진위원회에 따르면 지난 5월 일본군 위안부 등에 대한 역사왜곡을 비판하는 역사학자들의 성명 발표를 주도한 알렉시스 더든(46) 미국 코네티컷대 역사학 교수가 평화대상을 수상한다. 일본의 역사지우기를 정면 공격하는 더든 교수의 주도로 세계적 학자들이 동참해 아베 총리의 미국 상하원 합동 연설 직후 발표된 이 성명엔 5월말 현재 참여자가 460명으로 늘어났다.

 

만해대상 실천부문상은 27년간 히말라야 오지 마을에서 빈민구제활동을 해온 청전 스님(62)과 광주에서 발달장애인을 위한 그룹홈 활동을 해온 아일랜드 출신 천노엘 신부(83)가 이끄는 무지개공동회가 공동수상자로 결정됐다.

 

또 문예대상엔 오래 동안 인간과 생명, 평화와 공존의 참 의미를 전달해 온 교육자이자 저술가인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74)와 가야금 명인인 황병기(79) 이화여대 명예교수와 정현종 시인(76)이 공동수상하게 됐다.

 

만해대상은 시상식은 만해축전 기간 중인 12일 오후2시 강원도 인제 하늘내린린센터에서 열린다.

 

지금까지 만해대상은 넬슨만넬라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 달라이 라마 티베트불교 지도자, 김대중 대통령, 두봉주교, 김성수주교, 함세웅 신부, 법륜 스님, 리영희 선생 등이 수상했다. 조현 종교전문기자cho@hani.co.kr

 

이번 수상자들의 공적 사유는 다음과 같다.

 

 

◇평화부문대상:알렉시스 더든(46세. 미국 코네티컷대 역사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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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정부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제의 야만적 성착취 시스템 하에서 고통을 겪은 일본군위안부에 대해 일본과 다른 국가의 역사교과서 기술을 억압하려는 기도에 경악을 금치 못한다.”

 

2015년 2월 미국 역사학자 19명은 일본 아베 정권의 미국 역사교과서 왜곡시도를 고발하는 집단 성명을 발표했다.

이때만 해도 역사학자들의 움직임은 ‘찻잔 속의 태풍’처럼 여겼다. 특히 일본 정부는 그랬다. 그렇지만 일본의 아베 총리가 미국 상하원 합동연설을 마치고 귀국한 이후인 2015년 5월, 이번에는 187명의 세계적 저명한 역사학자들이 다시 한번 성명을 발표했다. 내용은 역시 종군위안부에 대한 정부의 책임을 회피하는 일본 정부를 질타하는 내용이었다.

 

이번에는 세계의 저명 역사학자 187명이 ‘일본 역사학자를 지지하는 공개서한’이란 제목의 성명을 발표했다.

성명 참가자들의 면면은 2월 성명과 질과 양에서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였다. 태평양전쟁에 히로히토 일왕이 깊숙이 관여했다는 내용을 다룬 ‘히로히토 평전-근대일본의 형성’으로 퓰리처상(2001년)을 받은 허버트 빅스 빙엄턴대 명예교수, 전후 일본의 변화와 성장을 규명한 ‘패배를 껴안고’로 역시 퓰리처상(2000년)을 받은 존 다우어 MIT명예교수, ‘넘버원일본’이란 저서로 유명한 아시아연구의 대가 에즈라 보겔 하버드대 명예교수, ‘한국전쟁의 기원’의 브루스 커밍스 시카고대 교수 등 보수와 진보를 망라한 학자들이 나섰다. 일본계 학자들도 33명이나 참여했다. 미국 외에도 캐나다 영국 독일 스위스 오스트리아 호주 싱가포르 등의 역사학자들도 동참했다. 2015년 5월말 현재 460여명으로 참여자가 늘어난 이 성명 역시 주도자는 더든 교수였다.

 

역사학자들의 잇따른 성명을 이끌어낸 주인공은 미국 코네티컷대 알렉시스 더든 교수이다. 미국 컬럼비아대를 졸업하고 시카고대에서 역사학 박사학위를 받은 더든 교수는 한국과 일본의 독도, 중국과 일본의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그리고 러시아와 일본의 쿠릴 열도 분쟁에 얽힌 역사적 실체와 국제조약을 집중적으로 탐구하고 있다. 일본 릿교대와 게이오대, 한국의 서울대와 연세대에서 공부한 적이 있어 한국과 일본 모두에 대해 정통하다. 그의 연구실에는 독도 사진이 걸려 있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독도를 두 차례 방문하기도 한 그는 독도를 “너무도 아름다운 섬”이라고 말하지만 기본적으로 “한국과 일본 모두 사랑한다”고 말하는 이다. 그랬던 더든 교수가 한일간에 첨예하게 인식차이를 보이고 있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놓고 역사학자들의 서명까지 이끌어낸 것은 학자적 양심 때문이다.

 

더든 교수는 역사학자들이 뭉치게 된 이유에 대해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이미 논쟁거리가 아니라 전 세계가 인정하는 ‘사실’임에도 일본 정부는 정치적 목적으로 이를 바꾸거나 역사에서 지우려 한다”며 “특히 일본 정부가 미국 역사교과서에 대해 수정을 요구한다는 것은 학문 자유에 대한 직접적 위협으로 역사학자들이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실천부문대상:청전 스님(62세. 히말라야 빈민구제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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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에서 빈민구제활동을 하는 청전스님은 특이한 이력을 가진 승려다. 1953년 전북 김제시에서 태어난 스님은 처음에는 교사가 되려 교육대학(전주교대)에 다녔다. 그러나 10월유신에 연류돼 12월 자퇴하고 1973년에는 가톨릭 신부가 되려 대건신학대를 다녔다. 가톨릭신부 수업을 받던 중 인생에 대한 의문이 생겨 송광사로 출가 송광사에서 구산 스님에게 1978년 사미계를, 1979년 비구계를 수지했다.

 

스님의 인생에서 결정적인 전환이 생긴 것은 1987년 5월엔 동남아시아로 불교 순례길에서였다. 인도에서 가톨릭 테레사 수녀를 만난데 이어 그 해 8월 1일 히말라야 다람살라에서 달라이 라마를 만났다. 당시 35살이었던 그는 히말라야 기슭에서 많은 사람들을 가르치는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 달라이 라마에게 큰 감명을 받았다. 그는 달라이 라마의 제자가 되어 인도에 정착한 이후 그곳에서만 27년간 수행해오고 있다.

 

그는 조계종 소속 승려이고, 달라이 라마의 제자로서 티베트불교 수행자이지만, 히말라야 오지인들에겐 ‘산타 멍크’(산타클로스 스님)로 불리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인도에 머물기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 한 해도 빼지 않고 히말라야 오지들을 다니며 보시행을 이어오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주로 가는 지역은 인도와 중국(티베트쪽) 접경 지역인 라다크와 잔스카르, 스피티 지역이다. 이 고을들은 각자 예전에 한 왕국이 있었을 만큼 지역적으로 넓다. 그러나 워낙 고지대에 있는 척박한 땅이어서 거주자는 많지 않다. 그 지역 대부분이 해발 3천~5천미터 고지대에 있고 마을이 수킬로씩 떨어져 있어서 병원도 약국도 학교도 찾아보기 어렵다. 따라서 아이들은 동자승이 되어 절에 살면서 학교를 다니고 있다.

 

그들은 1년 중 절반가량이 눈과 얼음 때문에 고립된 삶을 산다. 날이 풀리는 여름이면 청전 스님은 지프차를 빌려 한 차 가득히 한국에서 보시 받은 영양제인 삐콤과 치료제 등 약품, 돋보기와 시계 등 생활필수품을 싣고 오지로 떠나 한 달 간 보시 순례를 한다. 오지에서 아무런 의료 혜택을 받지 못하는 마을 주민들은 매년 한차례씩 청전 스님이 오는 날만을 손꼽아 기다린다. 청전 스님은 각 마을에서 스님과 주민들 한 명 한 명의 병명을 듣고 거기에 맞는 약품을 전해준다. 시력이 약한 노인들에겐 돋보기와 시계를 준다. 청전 스님의 그런 보시 여행이 연차를 거듭해가면서 그 지역에선 청전 스님이 약을 주면 모두 낫는다는 믿음까지 생겨서 더욱 더 청전 스님을 손꼽아 기다리게 됐다. 그렇게 살아온 세월이 벌써 20여년이다.

 

오지마을 학교 학생들도 영양 결핍으로 고통 받기는 마찬가지다. 오직 학교에는 보통 10~30명의 학생이 있는데, 한 학교에 젖소 한마리만 있으면 전교생이 그 젖소에서 짠 우유로 영양 문제가 크게 개선된다고 한다. 현지에서 젖소 한 마리는 한국 돈으로 1백만 원 가량이다. 라다크와 잔스카라, 스피티에 동자승 학교가 있는 곳 중에 스님이 젖소를 사주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다.

 

그런데 그의 보시는 다른 자선단체와 달리 정부나 기관의 지원을 받는 법인이나 재단을 설립하지 않고, 개인차원에서 이뤄지고 있다. 그는 조직을 만들면 보시도 자칫 사업이 될 수 있다며 조직을 만들지 않고 개인 차원에서 보시행을 이어가고 있다. 청전 스님이 1년에 보시 받거나 인세 수입 등을 모두 합쳐 연간 총 수입은 6천만원가량이다. 다람살라에 달라이 라마의 법문을 들으러 온 이들이 통역을 한 그에게 보답한 것이거나 한국의 도반과 소수의 지인들이 십시일반 보태준 보시금이다. 그의 보시 여행엔 늘 한국에서 간 순례자들이 적게는 2~3명, 많게는 4~5명이 매년 동행해왔는데, 동행자들은 청전 스님이 보시 받은 돈을 대부분을 이웃에게 보시에 사용하는데 놀라곤 한다. 동행자들이 특히 놀라는 것은 한국인 한명의 연봉에 불과한 그 돈으로 우리나라의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 정도의 크기에 해당하는 방대한 지역 오지인들 대부분에게 직접적인 혜택을 주고 있다는 점이다. 동행자들은 청전 스님이 한 수행자의 노력만으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고통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다는데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그는 가난하고 힘겹게 살아가는 ‘민초들이 나의 부처’라고 여기면서, “10년 수행하면 20년 봉사할 수 있고, 20년 수행하면 40년 봉사할 수 있다”는 스승 달라이 라마의 말대로 수행과 봉사의 삶이 둘이 아닌 하나로 회통되는 삶을 이어가고 있다.

 

 

◇실천부문대상:무지개공동회(발달장애인 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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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 출신 천노엘 신부(83)가 대표인 무지개공동회는 광주광역시를 기반으로 국내에서 최초로 발달장애인을 위한 그룹홈을 시작하면서 발달장애인을 우리 사회 안에서 떳떳한 일원으로 살아갈 수 있게 도운 단체이다.

 

무지개공동회 대표인 천 신부는 장애인을 위해 한 일로 상을 받는 것을 극도로 거부한다. 1990년대부터 여러 차례 장애인단체, 인권단체 등에서 상을 수여하려 했으나 “나는 그들과 친구”라며 수상을 거부했다. 2014년 포스코청암상도 그래서 무지개공동회 이름으로 받았다.

 

그러나 무지개공동회의 활동을 천 신부를 빼놓고는 설명할 수 없다.

천노엘 신부는 아일랜드 출신 성골롬반외방선교회 사제. 1957년 처음 한국에 온 천 신부는 20여년간 광주와 전남지역에서 일반 성당 사목을 했다. 그랬던 그가 당시엔 정신박약자로 불리던 발달장애인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1979년 한 무연고 발달장애인 소녀의 죽음이 계기가 됐다. 성당 신자들과 가끔 봉사활동을 가던 광주 무등갱생원에서 만났던 당시 19살짜리 ‘김여아’라는 아이가 갑자기 위독하게 됐다는 전화를 받고 병원으로 달려가 임종한 것. 그가 손을 잡아주자 김여아는 어눌한 목소리로 “고맙다”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숨졌다. 그런데 병원에서는 “장례를 잘 치러드릴 테니 시신을 연구용으로 기증해달라”고 했다. 그는 “19년 동안 인간 대접 받지 못하고 살다가 떠난 여아를 그렇게 보낼 수는 없다”고 생각해 거절하고 광주 양산동 천주교 묘원에 매장했다. 지금도 그가 세운 비문에는 “사회를 용서해주시렵니까”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그리고 천 신부는 요즘도 매년 명절 때면 김여아의 묘를 찾아 벌초를 하면서 초심을 되새긴다.

 

천 신부는 이 사건을 계기로 수용시설이나 집안에서만 살아온 발달장애인을 위한 활동을 결심한다. 알코올중독자나 다른 신체 장애인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의사표현할 수 있지만 발달장애인은 그마저도 쉽지 않은 현실을 보면서 발달장애인을 위한 헌신을 다짐한 것이다.

 

그는 1981년 유엔이 정한 ‘세계 장애인의 해’에 안식년을 얻어 유럽과 호주, 미국, 캐나다 등을 다니며 발달장애인 돌봄의 현장을 확인했다. 결론은 “장애인도 산 속의 대규모 시설이 아니라 일반인들과 함께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광주대교구에 사제가 부족한 상황을 알고 있었지만 천 신부는 당시 윤공희 대주교의 허락을 받아 특수사목을 시작하게 됐다. 첫 결실은 1981년 광주 시내 주택가를 빌려서 문을 연 그룹홈이었다. 장애인시설에 있던 무연고 여성과 봉사자와 함께 그룹홈을 열자 여기저기서 “미쳤다”고 했다. “장애인은 시설에 있는 게 가장 좋다”고도 했다. 그러나 천 신부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지역사회 안으로 데려와 ‘거주, 여가, 직업’을 함께 하도록 이끌어낸다.

 

현재 무지개공동회는 광주 시내 6곳 아파트에 위치한 그룹홈과 엠마우스복지관, 엠마우스산업, 유치원에까지 이른다.

그렇게 시작한 살림이 하나씩 늘어 현재 그룹홈 6곳에 복지관, 산업체, 유치원에까지 이른다. 특히 1991년 하남산업단지에 입주한 엠마우스산업은 40여명의 발달장애 근로자가 화장지와 양초를 생산하며 자립을 꿈꾸는 사회적 기업이다. 양초는 연간 10만개를 생산해 국내 각 교구의 성당에 전례용으로 공급되며, 화장지는 2년 연속 인천국제공항에 납품하고 있다.

 

만 35년간 그룹홈에서 발달장애인들과 함께 생활했고 현재도 20~60대 장애인 4명과 함께 생활하고 있는 천 신부의 꿈은 더 크다. 장애인들이 그룹홈에서도 독립해 직장생활하면서 자립하는 것이다. 발달장애인들이 비장애인들과 어울려 배드민턴, 축구, 볼링동아리에서 활동하는 것, 엠마우스복지관 등 출신 130여명이 하남공단에서 비장애인들과 함께 일반 공장에서 일하는 것 등이 그에겐 자랑거리다.

 

 

◇문예부문대상:황병기(79세. 가야금 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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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금 명인 황병기(79) 이화여대 명예교수는 중학교 때 처음 접한 가야금을 필생의 업(業)으로 삼아 명인의 경지에 이른 우리 창작음악의 1세대다. 이화여대 한국음악과 교수로 있다가 2001년 정년퇴임했고, 국립국악관현악단 예술감독을 지냈다.

 

황 명인의 업적은 우선 가야금 연주와 창작 분야에서 빛난다. 스승에게 어깨 너머로 배우는 것으로 알았던 가야금 음악을 익힌 후, ‘숲’ ‘영목’ ‘고향의 달’ ‘미궁’ ‘산운’ ‘하마단’ ‘침향무’ ‘비단길’ 등 수많은 가야금 레퍼터리를 짰다. 1974년 유럽 공연을 앞두고 신라 음악을 되살린 ‘침향무’와 신라 고분에서 발견된 페르시아 유리그릇에서 영감을 얻은 ‘비단길’, 백제가요 ‘정읍사’에서 소재를 딴 2007년 작 ‘달하 노피곰’까지 그의 작품을 들어보면

우리 소리의 유산을 껴안고 있으면서도 현대적인 감각을 갖춘 걸작들이다.

 

작년에도 여섯번째 창작 음반 ‘정남희제(制) 황병기류(流) 가야금 산조’를 낼 만큼, 여전히 현역으로 활약한다. 황 명인의 스승인 김윤덕 선생이 1946년 정남희(1905~ 1984)에게 배운 47분짜리 가야금 산조를 바탕 삼아 황 명인이 다스름, 진양조, 중모리, 중중모리, 엇모리, 자진모리, 휘모리, 단모리 등 8부분으로 구성한 곡이다. 보통 가야금 산조의 2배 가까운 70분 분량이다. 여섯 장의 창작 음반을 낸 황 명인은 “내 작품은 똑같은 것이 하나도 없다. 자기 복제는 하지 않는다”고 말할 만큼, 엄격하게 자기 관리를 한다.

 

황 명인은 국악계의 간판스타로 국악을 세계에 알리는 데도 앞장서왔다. 1965년 하와이에서 열린 ‘20세기 음악예술제’에서 초청받아 연주했다. 이 때 호놀룰루 심포니와 협연하고 녹음한 음반(LP)에 대해 음악전문지 ‘스테레오 리뷰’는 ‘하이스피드 시대의 현대인에게 정신적 해독제와 같은 음악’이라고 극찬했다. 이를 시작으로 뉴욕 카네기홀을 비롯, 미국, 영국, 네덜란드,핀란드,일본,중국,프랑스,알제리,이탈리아,스위스 등 전 세계 주요 공연장에서 연주활동을 펼쳤다. 1990년엔 평양에서 열린 범민족 통일 음악회에 남측 대표로 참가했으며, 같은 해 서울에서 열린 ‘송년 통일음악회 집행위원장으로 활동했다.

  

◇문예부문대상:정현종(76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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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종(1939~ ) 시인은, 1965년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하여 50년 동안 한국 시의 사유와 감각에 신생의 탄력을 부여해온 한국 문단의 대표적 시인이다. 시인은 그 특유의 철학적 사색과 섬세한 감각으로 독자적인 시세계를 형성해왔는데, 그 세계는 육체성에 대한 발견과 생명에 대한 매혹으로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사유와 감각을 밀도 있게 결속해온 그만의 영역이라 할 것이다.

 

그는 첫 시집 《사물의 꿈》(1972) 이래 《고통의 축제》(1974) 《나는 별아저씨》(1978) 《떨어져도 튀는 공처럼》(1984)에서 인간적 비극의 결핍 상태 곧 죽음이라든가 실존적 비극성에 대한 형이상학적 천착을 노래해왔다. 

 

정현종 시인은 ‘꿈’과 ‘사물’이 궁극적으로 하나라는 사실, 시인의 꿈꾸기에 대한 욕망이 그치지 않는 한 사물들은 살아 움직이고 그 꿈이 다하면 사물들도 죽음의 그림자를 짙게 드리운다는 믿음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생명력에 대한 갈망은,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그 섬에 가고 싶다”(〈섬〉)라는 절창으로 이어진다. 이때 우리는 ‘섬’의 의미가 무엇인가를 명시적으로 따진다는 것이, 마치 만해(萬海)의 ‘님’이 무엇인가를 산문적으로 따지는 것만큼 공허한 일임에 상도한다. 말하자면 그리움의 대상(“섬”)보다는 그리움 자체(“가고 싶다”)가 중요하다는 것, 그래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대상 획득이 아니라 대상을 향한 끊임없는 꿈이라는 것을 시인이 에둘러 강조한 것임을 알게 된다.

 

시인은 삶의 불모성과 비극성을 푸는 방법론으로 ‘육체에 기반을 둔 사랑’ 곧 에로스의 시적 발견에 힘을 쏟았다.

그 후 1990년대 들어서 발표한 시집들에 줄곧 담긴 명징하고도 구체성 있는 생명의 시편들은 그의 시 안에 담겨 있는 철학성의 본질을 새삼 되묻게 만들었고, 그 결과는 한국 시의 자기 전개 과정에서 빚어진 의미 있는 진경이라는 평가를 불러왔다. 이러한 생각은 그의 후기 시편들에서 집중적인 생태적 상상력을 낳는 원동력이 된다. 그래서 그의 후기시는, 시적 진리에 이르는 길이란 과거로부터 물려받은 모든 지식과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워진 상태에서 사물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고도의 집중력을 가지고 바라보는 데 있다는 것이라는 착상에서 비롯하여, 그것을 두루 실험하고 완성하는 구체적 실감으로 이루어지게 되었다. 그만큼 그의 시편들은 우리로 하여금 감관(感官)을 자극하게끔 하고 인지적, 정서적 충격과 반응을 풍부하게 가지게끔 하는 ‘언어의 샘’이 되어주었다. 그 점에서 정현종은 우리 문학사에, 생명의 황홀을 노래하는 우주적 상상력의 참모습을 보여준 범례로 길이 남을 것이다.

  

 

◇문예부문대상:신영복(74세. 교육자, 성공회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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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복 교수는 오래 동안 인간과 생명, 평화와 공존의 참 의미를 전달해 온 교육자이자 저술가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강의를 들으며 삶의 좌표를 가다듬었고 많은 독자들이 그의 책을 읽으며 깊은 성찰의 메시지를 전달받았다. 그는 또한 아름답고 깊은 울림을 가진 글씨와 그림을 통해 수많은 사람들이 부박한 일상 속에서 생의 가치와 의미를 새롭게 반추하는 감동을 느끼게 해 준 서화작가이기도 하다.

 

신영복 교수는 1941년 경남 밀양에서 출생해 1959년 부산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 상대 경제학과에 진학했다. 대학을 마치고 대학원을 졸업할 때까지 학생서클의 구심점이자 지도자로 활동했던 그는 육군사관학교 교관으로 근무하던 중 1968년 이른바 통일혁명당 사건에 연루되어 구속되었고 20년 20일 동안 영어의 세월을 살아야 했다. 1988년 가석방된 신영복교수는 주변 친구들의 배려 속에 1989년부터 성공회대학교에서 강의를 하며 교수로서의 삶을 시작했다. 그는 1998년 사면복권되면서 정식으로 성공회대학교 사회과학부 교수가 되었고 2006년 정년퇴임한 후 현재 성공회대학교 석좌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그는 글과 강연으로 많은 사람을 각성시키고 감동을 주었다. 감옥에서 가족들에게 보낸 편지를 모은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은 그를 대중적으로 널리 알린 책이다. 그는 감옥에서의 신산한 삶을 오히려 따뜻한 위로와 성찰의 메시지로 담아 가족들에게 전했고 1988년 이 편지글이 한 권의 책으로 묶여 출간되었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은 수많은 독자들에게 감동을 주었고 지금도 꾸준히 새로운 독자들을 만나고 있다. 이 책은 신영복이 현실과 민중을 만나며 창백한 지식인의 관념성에서 벗어나 자신의 의식과 삶을 재구성하며 낮지만 깊은 지혜의 세계로 나아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신영복 교수는 두 번에 걸쳐 국내와 국외 기행기를 신문에 연재한 바 있는데 그 결과로 나온 책이 국내 여행기인 <나무야 나무야>(1996)와 해외 여행기인 <더불어 숲>(1998)이다. 이 두 책은 단순한 여행기가 아니라 깊은 역사의식과 창의적 상상력으로 역사 속의 인물과 장소를 ‘지금 현재’의 역사성 속에서 새롭게 해석하고 그 의미를 포획하는 놀라운 지적 통찰의 기록이다.

 

신영복 교수가 쓴 또 하나의 명저는 <강의>(2004)다. 나의 고전독법이란 부제가 붙어 있는 이 책은 그가 오래 동안 강의해 온 동양고전들에 대한 그 나름의 해석이 담겨 있다. 경제학을 전공하던 사회과학자가 오랜 수형 생활 속에서 새롭게 동양 고전을 공부하고 사유하며 이루어낸 장강과도 같은 지혜가 이 책 속에 있다. 유려하고 짧은 단문으로 마치 화두를 던지듯 쓰여진 그의 글들은 긴 여운을 남기며 끊임없이 사색의 실마리를 제공한다.

 

신영복 교수의 지혜와 사상이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친 것은 단지 그의 책들을 통해서만이 아니다. 짧지만 놀랍도록 함축적인 지혜가 담긴 그의 글씨와 그림은 그의 사상을 접할 수 있는 또 하나 중요한 매개체다. 신영복 교수는 어릴 적 한학에 깊은 조예를 가진 조부와 부친으로부터 한문과 서예를 배웠다. 물론 그가 좀 더 깊은 공부를 한 건 감옥에서다. 글자 하나하나가 마치 어깨동무를 한 듯 기대고 있는 그의 독특한 글씨는 시민단체들의 현판과 벽을 장식하고 있다. ‘처음처럼’ ‘더불어 숲’ 등 평범하고 단순해 보이는 문장에 특유의 통찰과 지혜를 담아내는 그의 서화작품들은 시민들

에게 평화와 민주, 생명과 공존, 화해와 연민의 메시지를 전하는 잠언들이다. 신영복 교수는 탁월한 강연자이기도 하다.

 

오래 전부터 그는 전국의 수많은 지역과 단체, 학교에서 그의 말에 귀 기울이는 많은 시민들에게 낮고 고요하지만 치열하고 풍요로운 성찰과 희망의 언어를 전하고 있다. 신영복 교수의 사상은 ‘더불어 숲’이라는 글귀에 상징적으로 함축되어 있다. ‘나무가 나무에게 말했습니다. 우리 더불어 숲이 되어 지키자.’ 힘과 대결, 경쟁과 승리의 이데올로기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공존과 평화의 의미를 전하는 그의 언어는 책을 통해, 강연을 통해 이 시대의 등대가 되어주고 있다.

 

신영복 교수는 우리 사회가 급격한 자본주의화로 잃어버린 공동체성을 회복하도록 일깨워주면서, 공동체적 삶을 조용히 실천해왔다. 몇 번의 서화전을 통해 얻은 수익금을 기부하기도 했으며 또 ‘처음처럼’이란 소주 글씨를 써주고 받은 1억원을 대학에 장학금으로 내놓기도 했다.

 

지난 2008년 청명문화재단이 제정한 임창순상을 받았는데 당시 청명문화재단은 선정이유를 “다양한 개인과 계층과 문화가 서로를 살리고 북돋우는 사랑과 화합의 공동체를 향해 나아가는 신영복의 따뜻한 분노가 우리 사회에서 더욱 큰 울림과 더욱 넓은 어울림으로 번져 가리라 믿는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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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급소’는 제4작전구역에 있다

미국의 ‘급소’는 제4작전구역에 있다
 
한호석의 개벽예감 <166>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기사입력: 2015/07/06 [10:29]  최종편집: ⓒ 자주시보
 
 

<차례>
1. 조선은 또 다시 위성을 쏘아올린다 
2. 미국은 이번에도 미친 듯이 반발할 것이다 
3. 20,000~36,000km의 고도에 떠 있는 미국의 ‘급소’
4. 위성요격미사일 시험발사를 거듭하는 중국
5. 최후결전의 시각에 위성요격미사일 발사할 조선인민군 전략군
6. 미국의 군사위성들은 무방비상태에 있다

 

▲ <사진 1> 이 사진은 2015년 5월 평양에 신축된 위성관제종합지휘소에 전시된 조선의 위성들이다. 왼쪽부터 1998년 8월 31일에 쏘아올린 광명성-1호, 2009년 4월 5일에 쏘아올린 광명성-2호, 2012년 12월 12일에 쏘아올린 광명성-3호 2호기다. 조선은 당창건 70주년을 맞은 올해 10월 초에 또 다시 위성을 쏘아올릴 것인데, 이번에는 통신위성을 쏘아올릴 것으로 보인다.     © 자주시보

 

 

1. 조선은 또 다시 위성을 쏘아올린다 

 

2015년 6월 28일 한민구 국방장관은 취재기자들과 오찬간담회를 진행하면서 오는 10월 10일 조선로동당 창건 70주년을 전후하여 조선이 “전략적인 의도를 가진 도발을 할 가능성이 있다”고 예견하였다. 군부의 수장인 그는 조선에 대해 적대감을 품고 있기 때문에 조선이 당창건 70주년이 되는 날을 전후하여 “전략적 의도를 가진 도발”을 할 것으로 예견했지만, 조선에 대한 적대감을 내려놓고 객관적으로 말하면 그가 예견한 것은 조선의 ‘도발’이 아니라 인공위성발사다. <사진 1>


올해 당창건 70주년을 맞은 조선이 오는 10월 10일에 즈음하여 자기의 국력을 내외에 과시할 중대사변을 준비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한민구 국방장관만이 아니라 내외언론매체들도 인정한다. 예컨대, 일본 <교도통신> 2015년 5월 19일 보도에 따르면, 올해 초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당창건 70주년이 되는 2015년 10월 10일에 맞춰 인공위성을 발사하라는 지시를 국가우주개발국에 직접 내렸다고 한다. 2015년 5월 2일 김정은 제1위원장은 평양에 신축된 국가우주개발국 위성관제종합지휘소를 시찰하면서 “주체조선의 위성은 앞으로도 당중앙이 결심하는 시간과 장소에서 련이어 우주를 향하여 날아오를 것”이라고 “힘주어” 말하였다.


조선의 위성발사계획과 관련하여 얼마 전 국가우주개발국이 표명한 공식입장을 읽어볼 필요가 있다. 김정은 제1위원장이 평양에 신축된 위성관제종합지휘소를 시찰한 날로부터 엿새가 지난 2015년 5월 8일 국가우주개발국은 “불순적대세력들의 온갖 준동을 짓부시며 선군조선의 평화로운 우주개발은 더욱더 기운차게 추진될 것이다”라는 제목의 대변인 담화를 발표하였는데, 그 담화에서 조선의 “종합적인 국가우주개발계획”에 따라 “각종 위성들”이 이미 제작되어 있다고 밝힘으로써 멀지 않아 인공위성을 발사할 것임을 강하게 암시하였다. 조선국가우주개발국이 위성들을 발사할 준비를 갖추었다는 사실은 2015년 7월 3일 평양에서 진행된 미국 텔레비전방송 <CNN>과의 언론대담에서 국가우주개발국 과학연구개발부 현광일 국장의 발언에서도 확인된다.


그런데 위에 인용한 한민구 국방장관의 오찬간담회 발언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그가 올해 10월 초에 있을 것으로 예견한 조선의 위성발사를 전략적인 위성발사라고 표현하였다는 점이다. 위성발사를 두고 전술적이니 전략적이니 하는 말은 일반적으로 쓰지 않지만, 한민구 국방장관은 군사용어에 익숙한 군부의 수장이라서 그런지 전술적 위성발사와 전략적 위성발사를 구분하였는데, 그 양자는 어떻게 서로 다른 것일까?


전술적 위성발사와 전략적 위성발사를 구분하는 기준은 인공위성이 어느 궤도에 진입하는가 하는 것에 의해 정해진다. 두 종류의 궤도는 저지구궤도와 정지궤도인데, 전술적 위성발사는 위성이 저지구궤도에 진입하는 것을 뜻하고, 전략적 위성발사는 위성이 정지궤도에 진입하는 것을 뜻한다. 저지구궤도는 지표면으로부터 160~2,000km 고도에 위치하고, 정지궤도는 지표면으로부터 20,000~36,000km 고도에 위치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한민구 국방장관이 예견한 조선의 전략적 위성발사는 조선이 이번에 위성을 20,000~36,000km 고도의 정지궤도로 쏘아올릴 것이라는 뜻이다.

 

▲ <사진 2> 2015년 5월 28일 조선국가우주개발국 과학연구개발부 백창호 부국장과 윤창혁 부국장은 평양에 주재하는 미국의 에이피통신 텔레비전방송 취재기자와 언론대담을 진행하였다. 이 사진에 나온 사람은 백창호 부국장이다. 그들의 언론대담을 통해서 조선국가우주개발국이 통신위성을 개발하고 있다는 사실이 세상에 알려졌다.   ©자주시보


한민구 국방장관의 그런 예견은 조선국가우주개발국 관계자의 발언내용과 일맥상통한다. 조선국가우주개발국 과학연구개발부 윤창혁 부국장은 2015년 5월 28일 평양에 주재하는 <APTV(에이피통신 텔레비전방송)> 취재기자와 진행한 언론대담에서 조선국가우주개발국이 통신위성을 개발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사진 2> 통신위성은 정지궤도에 떠 있는 고고도위성이며 휴대전화, 방송, 인터넷 등 민간통신에도 사용되고, 군사통신에도 사용된다.


위에서 인용한 한민구 국방장관의 오찬간담회 발언과 윤창혁 부국장의 언론대담 발언을 연결해서 읽으면, 조선은 오는 10월 초에 자기의 첫 통신위성을 정지궤도로 쏘아올릴 것으로 예견된다. 
조선이 통신위성을 정지궤도로 쏘아올리려면, 지표면으로부터 20,000~36,000km 고도에 도달할 신형 위성운반로켓에 그 위성을 실어 쏘아야 한다. 2012년 12월 12일 광명성-3호 2호기를 저지구궤도에 올려놓은 위성운반로켓 은하-3호는 그렇게 먼 우주공간까지 날아갈 수 없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면, 오는 10월 초 조선은 은하-3호보다 훨씬 더 큰 신형 위성운반로켓에 자기의 첫 통신위성을 실어 정지궤도로 쏘아올릴 것으로 예견된다.


 
2. 미국은 이번에도 미친 듯이 반발할 것이다


조선이 통신위성을 발사하면, 보나마나 미국은 미친 듯이 반발할 것이다. 조선이 2012년에 지구관측위성을 중형 위성운반로켓에 실어 저지구궤도에 쏘아올렸을 때도 미국은 미친 듯이 반발하였는데, 이번에 조선이 통신위성을 대형 위성운반로켓에 실어 정지궤도까지 쏘아올리면, 미국의 반발은 격해지다 못해 미친 듯이 폭발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다른 나라의 인공위성발사는 예사롭게 여기고, 자기와 적대관계에 있는 이란의 위성발사에 대해서도 반발하지 않는데, 유독 조선이 위성을 발사할 때만 그처럼 이성을 잃고 미친 듯이 반발하였다. 미국은 이란의 위성발사에 대해서는 반발하지 않으면서 어째서 조선의 위성발사에 대해서만 그처럼  반발하는 것일까? 미국이 유독 조선의 위성발사에 대해 미친 듯이 반발하는 데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작용하는데, 두 가지 원인을 지적할 수 있다.


첫째, 우주개발능력의 수준차이가 그런 원인들 가운데 하나다. 우주개발능력에서 조선이 이란보다 크게 앞서 있기 때문에 미국은 조선의 우주개발을 저지해보려고 그처럼 미친 듯이 반발하는 것이다. 만일 조선의 우주개발능력이 이란과 비슷한 수준이라면, 미국은 조선이 위성을 발사할 때마다 그처럼 미친 듯이 반발하지 않을 것이다.  

 

▲ <사진 3> 조선이 쏘아올릴 통신위성은 지표면으로부터 20,000-36,000km 떨어진 정지궤도에 떠 있는 고고도위성이다. 통신위성은 민간-군사겸용이다. 조선이 자기의 통신위성을 어떤 목적으로 사용할 것인가 하는 것은 조선이 자주적으로 결정할 내정문제다. 미국은 조선의 위성문제에 대한 내정간섭을 자행하여 무력충돌위기를 고조시키는 어리석은 행동을 하지 말아야 한다.     © 자주시보


둘째, 미국이 조선의 위성발사에 대해 미친 듯이 반발하는 까닭은, 인공위성이 민간-군사겸용이기 때문이다. 조선이 2012년 12월 12일에 쏘아올린 지구관측위성 광명성-3호 2호기를 보더라도, 그 위성을 국가산업발전에 사용할 수도 있고, 군사정찰활동에 사용할 수도 있는데, 그와 마찬가지로 통신위성도 민간-군사겸용이다. <사진 3> 물론 인공위성만 그런 게 아니라, 다른 생산물도 그렇다. 예컨대, 조선의 제철소들이 생산한 철강재 중에서 산업생산에 사용되는 것은 민간자재로 되고, 무장장비생산에 사용되는 것은 군수물자로 되는 것이며, 조선의 협동농장들이 생산한 양곡 중에서 인민들에게 공급되는 것은 민간식량으로 되고, 군부대에 공급되는 것은 군수물자로 되는 것이다.


어떤 나라가 자기 위성을 어떤 목적으로 사용하는가 하는 문제는 그 나라가 자주적으로 결정하는 법이다. 조선이 자기의 위성을 어떤 목적으로 사용하는가 하는 문제도 조선이 자주적으로 결정할 내정문제이지 미국이나 다른 나라가 이래라저래라 간섭해서는 안 된다. 더욱이 다른 나라의 내정간섭이라면 털끝만큼도 용납하지 않는 역사와 전통을 지닌 조선이 자기의 위성문제에 대한 미국의 내정간섭을 조금이라도 허용하리라고 생각하면 그보다 더 큰 착각과 망상은 없다. 미국이 위성문제를 가지고 조선의 내정을 간섭해보려고 어리석게 행동할수록, 조선의 최후결전은 더 앞당겨질 것이다. 미국은 조미관계가 격전전야에 있다는 조선의 말을 무심히 듣지 말아야 한다. 

 

 

3. 20,000~36,000km 고도에 떠 있는 미국의 ‘급소’


지금까지 우주는 미국을 비롯한 몇몇 우주과학선진국의 독무대였다. 그런데 놀랍게도, 미국을 “조선인민의 철천지원쑤”라고 규정하고 미국과 최후결전을 벌여 우리나라를 통일하겠다고 벼르는 조선이 오는 10월 초에 바로 그 독무대에 진출하려고 하는 것이다.
조선이 정지궤도에 통신위성을 쏘아올리는 것은 지표면으로부터 가장 높은 고도에 위치한 궤도에 진출하는 것이며, 또한 그것은 조선이 최후결전을 우주공간으로까지 확대할 우주작전능력을 가졌음을 내외에 과시하는 것이다.


우주는 육지, 바다, 하늘에 이어 제4작전구역이다. 현대전에서 우주무기의 역할은 결정적이며, 우주작전능력을 가진 나라가 군사강국이다. 오는 10월 초 조선이 통신위성을 쏘아올리면, 조선은 제4작전구역에 자력으로 진출하는 우주강국으로 등장하게 되는 것이다.


나는 조선에서 말하는 최후결전에 대해 집필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세 가지 중요한 사실을 지적해왔다.


첫째, 조선은 멀지 않아 반드시 최후결전을 벌일 것이라는 점. 
둘째, 조선은 무징후선제기습타격으로 미국의 ‘급소’를 찔러 미국의 전쟁능력을 단숨에 마비시키고 최후결전을 72시간 안에 속결할 것이라는 점.
셋째, 조선이 최후결전을 그런 식으로 속전속결해야 전쟁 중에 발생하는 피해를 최소화하고 미국의 항복을 신속히 받아낼 수 있다는 점.

 

▲ <사진 4> 정지궤도에 떠 있는 미국의 군사통신위성과 미사일경보위성은 미국의 급소 중에서 가장 취약한 급소다. 최후결전의 시각 조선이 무징후선제기습타격으로 그 두 위성을 파괴해버리면, 미국은 더 이상 전쟁을 하지 못한다.     © 자주시보


그런데 주목하는 것은, 최후결전의 시각 조선이 무징후선제기습타격으로 파괴할 미국의 ‘급소’가 제4작전구역에 있다는 사실이다. 제4작전구역은 지표면으로부터 20,000~36,000km 고도의 정지궤도를 뜻한다. 정지궤도에 떠 있는 미국의 군사통신위성과 미사일경보위성이야말로 미국의 급소 중에서 가장 취약한 급소다. <사진 4> 최후결전의 시각 조선이 무징후선제기습타격으로 미국의 군사통신위성과 미사일경보위성을 파괴해버리면, 미국은 더 이상 전쟁을 하지 못한다.


미국의 군사통신위성이 파괴되면, 미국군의 전략통신체계는 마비되고 전술통신체계만 작동하게 될 것이며, 미국의 미사일경보위성이 파괴되면, 미국군의 전략미사일방어망은 마비되고 국지적 전술미사일방어망만 작동될 것이다. 미국이 전술통신체계와 전술미사일방어망만 가지고 조선과 맞붙은 전쟁에서 이길 방도는 전혀 없다. 군사통신위성과 미사일경보위성에 대한 미국의 의존도는 사람들이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막중하기 때문에 그 두 종의 군사위성이 파괴되면, ‘급소’를 강타당한 사람이 그 자리에 맥없이 쓰러지는 것처럼 미국은 꼼짝없이 항복하게 될 것이다.

 

 

4. 위성요격미사일 시험발사를 거듭하는 중국

 

위성요격미사일은 궤도에 진입하여 적국의 위성을 요격, 파괴하는 우주무기이므로, 위성을 궤도에 진입시키는 능력과 미사일을 요격하는 능력을 결합시키면 그런 우주무기를 가질 수 있다. 조선은 위성을 궤도에 진입시키는 능력과 미사일을 요격하는 능력을 모두 갖추었으므로, 위성요격미사일을 쏘아올리는 우주작전능력도 가졌다. 


우주작전능력을 가진 군사강국들 가운데서 위성요격미사일 시험발사를 진행하는 중국의 움직임을 주시할 필요가 있다. 중국은 2007년 1월 11일 위성요격미사일 시험발사를 진행하였는데, 그 시험발사는 자행발사대(TEL)에서 위성요격미사일을 불시에 발사하여 이미 수명이 끝난 자국의 위성 펑윈(風雲)-1C를 요격, 파괴하는 식으로 진행되었다. 펑윈-1C는 지표면으로부터 865km 떨어진 저지구궤도에 떠 있던 질량 750kg의 기상관측위성이었다. 중국이 발사한 위성요격미사일은 그 기상관측위성이 비행하는 정반대 방향에서 초속 8km로 돌진하여 정면충돌하는 식으로 그 미사일을 파괴하였다. <사진 5>

 

▲ <사진 5> 2007년 1월 11일 중국은 자행발사대에서 위성요격미사일을 불시에 발사하여 이미 수명이 끝난 자국의 기상관측위성 펑윈-1C를 파괴하였다. 이 사진은 위성요격미사일이 펑원-1C에 명중하는 장면을 컴퓨터그래픽으로 그린 상상도다. 그런데 그 기상관측위성이 파괴되면서 3,000여 개가 넘는 작은 파편들이 우주쓰레기가 되어 궤도공간에 흩어졌다.     © 자주시보


그러나 그 날 중국의 위성요격미사일 시험발사는 반쪽짜리 성공이었다. 왜냐하면, 위성요격미사일이 기상관측위성을 파괴하는 순간, 3,000여 개가 넘는 작은 파편들이 우주쓰레기가 되어 궤도공간에 흩어졌기 때문이다. 저지구궤도에는 적국의 군사위성들만 떠 있는 게 아니라 중국에 적대적이지 않은 여러 나라의 민간위성들도 많고, 중국의 민간위성도 있다. 현재 저지구궤도에 떠 있는 세계 각국의 인공위성은 670기나 되는데, 중국이 쏘아올린 위성요격미사일이 그처럼 교통량이 많은 궤도공간에 3,000여 개가 넘는 파편을 흩어놓았으니, 위성과 파편이 충돌할 위험이 조성된 것이다. 
정면충돌하는 요격방식으로 적국의 군사위성을 파괴하여 수많은 파편을 흩어놓는 식으로는 우주작전을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없다고 판단한 중국은 파편을 흩어놓지 않으면서도 적국의 군사위성을 파괴하는 새로운 개념의 위성요격미사일을 개발하게 되었다. 


2014년 7월 23일 중국이 저지구궤도에 쏘아올린 신형 위성요격미사일이 새로운 개념의 위성요격미사일인데, 이 신형 위성요격미사일의 특징은 공격대상위성에 정면충돌하는 식으로 파편을 흩어놓지 않고 물리적으로 제압하는 것이다. 미국 국방부는 정면충돌하지 않고 적국의 위성을 물리적으로 제압하는 중국의 신형 위성요격미사일의 요격방식이 어떤 것인지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미국 국방부가 그처럼 정보를 은폐한 것은 그들이 중국의 신형 위성요격미사일이 출현한 것으로 하여 상당한 불안과 우려를 느꼈음을 말해준다.


중국이 2014년 7월 23일에 쏘아올린 신형 위성요격미사일의 이름은 뚱능(動能)-1호다. 비밀전략병기인 뚱능-1호에 관해 알려진 것은 거의 없는데, 미국의 군사전문가들은 그 미사일이 4단형으로 설계된 것으로 추정하였다.


그런데 <워싱턴자유횃불(WFB)> 2013년 8월 26일 보도에 따르면, 중국은 뚱능-1호를 쏘아올리기 1년 전인 2013년 7월 20일 소형위성들인 꺼신(革新)-3호, 쉬옌(實驗)-7호, 쉬젠(實踐)-15호를 창정(長征)-4C 위성운반로켓에 실어 발사하였는데, 그 가운데 쉬젠-15호는 뻗었다가 접을 수 있는 로봇팔이 달린 특수위성이었다. 그래서 미국의 군사전문가들은 중국의 신형 위성요격미사일 뚱능-1호에도 쉬젠-15호처럼 뻗었다가 접을 수 있는 로봇팔이 달려있는 것으로 추정하였다. 이것은 지구궤도에 쏘아올려져 적국의 군사위성에 접근한 뚱능-1호가 로봇팔로 그 위성을 망가뜨릴 수 있음을 의미한다. 적국의 군사위성을 로봇팔로 망가뜨리면, 파편을 흩어놓지 않고서도 파괴할 수 있다. 소형위성과 로봇기술을 결합시킨 중국의 신형 위성요격미사일 뚱능-1호는 전형적인 비대칭전략무기인 것이다.

 

 

5. 최후결전의 시각에 위성요격미사일 발사할 조선인민군 전략군


위성요격미사일을 누구보다 절실히 요구하는 나라는 미국과 최후결전을 앞두고 격전전야에 진입해있는 조선이다. 조선이 로봇식 위성요격미사일을 실전배치하였는지 아니면 전자기파(EMP)방출식 위성요격미사일을 실전배치하였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외부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으나, 조선의 로봇기술은 이미 1980년대부터 발전하기 시작하여 오랜 기간 동안 기술축적을 계속해왔고, 광명성-3호 2호기 발사에서 입증한 것처럼 고도의 위성조종기술도 보유하였기 때문에 조선이 로봇식 위성요격미사일을 쏘아올리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또한 조선에서는 전자기파 생성기술도 매우 높은 수준으로 발전되었으므로, 조선이 전자기파방출식 위성요격미사일을 쏘아올리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특히 주목하는 것은, 조선에서 위성요격미사일을 운용하는 군종이 조선인민군 전략군이라는 사실이다. 아래에 서술한 몇 가지 정보를 살펴보면, 조선인민군 전략군이 위성요격미사일을 운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2012년 3월 3일 조선의 언론매체들은 김정은 제1위원장이 전략로케트사령부를 시찰한 소식을 전하였다. 그 소식을 통해 조선인민군에 전략로케트군이라는 제4군종이 존재한다는 놀라운 사실이 세상에 처음으로 알려졌다. <사진 6>

 

▲ <사진 6> 2013년 3월 29일 김정은 제1위원장은 조선인민군 최고사령부 작전회의실에서 미국에 대한 전략타격계획서에 서명하였다. 이 날로부터 조선인민군 전략군 대변인 담화가 발표된 2014년 3월 5일까지 1년 중 어느 날 전략로케트군은 전략군으로 명칭을 바꾸었다. 이러한 명칭변경은 조선인민군 전략군이 대륙간탄도미사일만이 아니라 위성요격미사일도 운용하고 있음을 말해주는 변화였다.     © 자주시보


그런데 주목하는 것은, 김정은 제1위원장이 광명성-3호 1호기를 쏘아올리기 한 달 전에 전략로케트사령부를 시찰하였다는 점이다. 당시에는 알지 못했지만, 조선의 위성발사를 한 달 앞두고 김정은 제1위원장의 전략로케트사령부 시찰소식이 세상에 처음 공개된 것은 미국이 조선의 위성발사를 물리적으로 방해하는 경우 조선인민군 전략로케트군이 미국의 방해행위를 무력으로 제압할 것임을 강하게 암시한 것이다. 조선은 2012년 4월 13일 광명성-3호 1호기를 탑재한 은하-3호를 쏘아올렸는데, 상승비행을 하던 이 위성운반로켓이 120km 고도에 이르러 갑자기 고장을 일으키자 조선의 위성관제종합지휘소는 그 위성운반로켓에 장착된 자동폭파장치를 가동하여 서해에 추락시켰다.  


미국이 조선의 위성발사를 방해하려고 한 것은 그 때가 처음이 아니다. 조선이 2009년 4월 5일 인공위성 광명성-2호를 탑재한 위성운반로켓 은하-2호를 쏘아올렸을 때도 미국은 조선의 위성을 요격하겠다고 공갈한 바 있다. 미국의 공갈로 조선과 미국 사이에 일촉즉발의 무력충돌위기가 조성되었을 때, 미국의 위성요격기도를 파탄시키기 위한 조선인민군의 기습타격준비를 총지휘한 반타격사령관은 김정은 당시 당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이었다. 이에 관해서는 2012년 1월 23일 <통일뉴스>에 실린 나의 글 ‘북미 담력전 55일의 기록’과 2015년 4월 6일 <자주시보>에 실린 나의 글 ‘붉은 매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에서 상세히 논한 바 있다.


위에 언급한 나의 두 글에 서술된, 2009년과 2012년에 있었던 조선의 위성발사경험이 말해주는 것처럼, 미국은 조선이 위성을 쏘아올릴 때마다 위성을 요격하겠다는 공갈로 무력충돌위기를 조성하였고, 조선은 그에 대응하여 전면타격준비태세에 돌입하였다. 주목하는 것은, 2009년과 2012년에 조선이 미국의 위성요격기도를 파탄시키기 위한 전면타격전을 준비할 때, 전략로케트군이 가장 중심적인 역할을 수행하였다는 사실이다. 


2012년 4월 15일 평양에서 성대하게 진행된 태양절 100주년 열병식에서 김정은 제1위원장은 “영용한 육해공군 및 전략로케트군 장병들과 조선인민군 내무군 장병들, 로농적위군과 붉은청년근위대 대원들, 전국의 근로자들과 평양시민 여러분, 남녘의 겨레와 해외동포 여러분, 동지들, 벗들”이라는 말로 경축연설을 시작했는데, 이것은 조선의 최고영도자가 전략로케트군의 존재를 사상 처음 공식적으로 언급한 것이다. 김정은 제1위원장의 경축연설 직후 진행된 열병식 분렬행진에서 전략로케트군이 대륙간탄도미사일 화성-13호 6발을 8축16륜 자행발사대 6대에 실어 공개하였는데, 그것을 본 군사전문가들은 조선의 전략로케트군의 전시작전임무가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발사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지만, 조선인민군 전략로케트군의 전시작전임무는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에 한정되지 않는다.


그렇게 판단하는 까닭은, 조선인민군 전략로케트군이 자기의 명칭을 전략군으로 바꾸었기 때문이다. 2014년 3월 5일 조선인민군 전략군 대변인이 발표한 담화에서 전략로케트군이라는 기존 명칭이 전략군이라는 새로운 명칭으로 바뀌어 있었다. 전략군 대변인은 담화에서 “지난 2월 21일부터 3월 4일까지의 기간에 우리의 전략군부대들은”...“우리의 힘, 우리의 기술로 만든 다종다형의 첨단로케트들의 성능이 남김없이 검증된 로케트발사훈련을 성과적으로 진행하였다”고 밝혔다.


조선은 왜 전략로케트군이라는 명칭에서 로케트라는 말을 빼놓은 것일까? 전략로케트라는 말은 핵탄을 장착한 탄도미사일을 뜻하므로, 전략로케트군이라는 명칭을 쓰면, 그 군종의 전시작전임무가 핵탄을 탑재한 탄도미사일을 사용하는 것에 한정된다. 그런데 전략로케트군이라는 명칭에서 로케트라는 말을 빼면, 그 군종의 전시작전임무가 핵탄을 탑재한 탄도미사일을 사용하는 것만이 아니라 다른 전략무기도 사용하는 것으로 확대된다. 전략군이 전시에 사용할 다른 전략무기가 바로 위성요격미사일이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면, 조선인민군 전략로케트군이라는 기존 명칭이 전략군이라는 새로운 명칭으로 바뀐 것은 그 군종이 대륙간탄도미사일과 위성요격미사일을 모두 운용하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6. 미국의 군사위성들은 무방비상태에 있다


현재 미국이 운용하는 각종 군사위성은 160기인데, 전시에 조선은 그 많은 군사위성을 일일이 요격할 필요도 없고, 그렇게 할 수도 없다. 전시에 조선은 미국의 ‘급소’라고 할 수 있는 군사통신위성과 미사일경보위성만 요격하면 된다. 
미국의 군사통신위성과 미사일경보위성은 지표면으로부터 20,000~36,000km 떨어진 정지궤도에 떠 있다. 전시에 조선인민군 전략군이 위성요격미사일을 정지궤도로 발사하여 미국의 군사통신위성과 미사일경보위성을 요격하는 것은 제4군종이 제4작전구역에서 수행하는 필수적인 작전으로 된다. 이와 관련하여 아래에 서술한 정보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첫째, 정지궤도에 떠 있는 군사위성은 정해진 방향으로, 정해진 속도로 비행하고, 몸집도 매우 크다. 예컨대, 미국의 미사일경보위성은 높이 10m, 지름 6.7m, 질량 2,380kg으로 몸집이 매우 크고, 가격은 엄청나게 비싸서 4억 달러나 된다. 비행방향과 비행속도가 고정된 대형 군사위성을 요격하는 것은 비행방향과 비행속도를 알기 힘든 소형 탄도미사일을 요격하는 것보다 훨씬 더 쉽다.


둘째, 저지구궤도에 떠 있는 저고도위성은 초속 8km로 비행하는데 비해, 정지궤도에 떠 있는 고고도위성은 초속 3km로 비행한다. 정지궤도에 떠 있는 미국의 군사통신위성과 미사일경보위성의 비행속도는 그처럼 상대적으로 느리므로 조선인민군 전략군이 위성요격미사일로 요격하기가 수월하다.


셋째, 군사통신위성 3기가 남북극지역을 제외한 지구전역의 위성통신을 보장하고 있으며, 미사일경보위성 3기가 남북극지역을 제외한 지구전역을 적외선감지장치로 감시하고 있다. 그러므로 전시에 조선인민군 전략군은 미국의 군사통신위성 3기 중에서 아시아태평양지역의 위성통신을 보장하는 군사통신위성 1기와 미국 미사일경보위성 3기 중에서 아시아태평양지역의 미사일발사상황을 감시하는 미사일경보위성 1기만 요격하면 될 것이다. 


미국의 군사통신위성은 전시에 미국 본토의 전쟁지휘부, 하와이의 태평양사령부, 괌-일본-알래스카-한국을 연결하는 야전사령부들 사이의 전략적 위성통신을 보장해주는 유일한 통신수단이다. 그런데 전시에 조선이 그처럼 중요한 군사통신위성을 파괴하면, 미국 본토의 전쟁지휘부, 하와이의 태평양사령부, 아시아태평양지역에 배치된 야전사령부들 사이의 전략통신망이 끊어져 전쟁을 더 이상 계속할 수 없게 될 것이다. 
그것만이 아니다. 전시에 조선인민군 전략군이 위성요격미사일로 미국의 미사일경보위성을 파괴하면, 미국은 조선이 발사하는 각종 탄도미사일들이 언제, 어디서, 얼마나 많이 날아오는지 알 수 없게 되므로 그냥 앉아서 얻어맞는 수밖에 없다. <사진 7>

 

▲ <사진 7> 이것은 미국이 자랑하는 해상배치 X-밴드레이더다. 이 거대한 레이더는 길이 116m, 높이 85m, 배수량 50,000t이며, 가격은 자그마치 9억 달러나 된다. 미국은 이 레이더를 태평양에서 몰고 다니며 조선이 발사한 미사일을 요격하겠노라고 큰 소리를 치지만, 최후결전의 시각에 조선인민군 전략군이 불시에 위성요격미사일을 발사하여 정지궤도에 떠 있는 미국의 미사일경보위성 1기만 파괴하면, 9억 달러짜리 X-밴드레이더는 바다에 떠도는 고철덩어리로 될 것이다.     © 자주시보


아닌 게 아니라, 2014년 1월 7일 미공군 우주사령관 윌리엄 쉘튼(William Shelton)은 미국의 군사위성들이 무방비상태에 있다고 지적하면서, 적국이 미국의 군사위성을 요격하면 “미국의 첨단전쟁능력에 거대한 구멍이 뚫리게 될 것”이라고 심히 우려하였다. 미공군 우주사령관이 심히 우려한 ‘거대한 구멍’은 전략적 군사통신체계와 전략적 미사일경보체계가 파괴된 절망적 상황을 뜻하는 말이다. 


미공군 우주사령관이 우려한 것처럼, 최후결전의 시각에 조선인민군 전략군은 위성요격미사일 2발을 불시에 발사하여 아시아태평양지역에서 운용되는 미국의 군사통신위성과 미사일경보위성을 파괴함으로써 우주공간에 ‘거대한 구멍’을 뚫어놓을 것이다. 조선인민군 전략군이 그 ‘거대한 구멍’으로 각종 탄도미사일을 쏟아 부으면, 아시아태평양지역에 전진배치된 미국군 266,000명, 각종 작전기 1,741대, 각종 전투함선 152척은 대파될 것으로 보인다. 이것이야말로 미국이 흰 기를 들고 조선에게 항복할 패전씨나리오다. 


우주안보불안정의 수준이 급속히 높아지자 미국 국방부는 자기의 군사위성을 방어하기 위한 긴급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 러시아의 온라인 언론매체 <스뿌뜨니끄(Sputnik)> 2015년 6월 29일 보도에 따르면, 미국 국방부는 합동우주작전센터를 지원하는 새로운 우주작전센터를 앞으로 6개월 안에 증설할 것이고, 2016년도 미국 국방 및 정보예산 가운데 50억 달러를 우주안보강화에 배정하였는데, 거기에는 미해군 통신위성운영비 2,100만 달러, 정찰위성운영비 1억 달러, 미공군 우주경보체계운영비 3,200만 달러가 포함되었다.


하지만 미공군 우주사령부는 수많은 첨단군사장비들과 40,000명 병력을 운용하고 연간예산을 50억 달러나 쓰면서도 제4작전구역에 있는 군사위성을 방어하지 못하는 무능을 드러냈다. 최후결전의 시각에 조선인민군 전략군은 무능에 발목이 잡혀버린 미국군의 허를 찌르는 위성요격미사일을 쏘아올려 정지궤도에 떠 있는 미국의 ‘급소’를 파괴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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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가난한 사람은 ‘보수’가 되고, 부자에게 투표하나

 
 
계급 투표가 아니라 투표할 이유를 만들어 주지 못하는 정치 또는 정당 체제
 
임병도 | 2015-07-06 08:41:46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EBS에서 ‘지식채널 e’를 기획 연출하다 뉴스타파로 옮겨 ‘미니다큐 5 Miutes’을 연출하고 있는 김진혁 PD가 책을 냈습니다. ‘5분, 세상을 마주하는 시간’입니다. 이 책은 2013년부터 뉴스타파에서 방송된 ‘미니다큐 5 Miutes’ 49편 중 대표작 19편의 이야기와 이론적 배경을 담고 있습니다.

‘5분, 세상을 바꾸는 시간’에서 김진혁 PD는 ‘오랫동안 5분짜리 프로그램을 만들면서 과연 이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 회의를 품고는 했다’면서 자기 일이 ‘그저 개인적 욕심을 채우기 위한 몸부림 같았다’는 고백을 했습니다. 그러나 ‘23시간 55분을 모두 쏟아 부어 만들어 낸 게 총천연색 풍경은 아닐지라도, 5분으로 인해 모조리 흑백은 아니었음을 보여준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밝힙니다.

‘미니다큐 5 Miutes’이 모든 것을 알려주거나 담지는 못합니다. 김진혁 PD는  5분이라는 시간을 통해 ‘자연스러운 생각의 고리’가 될 수 있기 바라는 마음으로 미니다큐를 고민하며 만들었습니다.

‘5분, 세상을 바꾸는 시간’ 중 아이엠피터가 가장 기억에 남는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지배계급은 왜 보수가 되는가’

2014년 7월 30일 방송된 ‘가난한 이들은 왜 보수적이 되는가’는 소스타인 베블런의 ‘유한계급론’과 토마스 프랭크의 ‘왜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를 위해 투표하는가’라는 책을 배경으로 만들어진 미니다큐입니다.

‘가난한 이들은 왜 보수적이 되는가’에서 베블런의 ‘유한계급론’이 등장한 이유는 지배계급이 왜 보수성향을 갖고 있으며, 그들이 어떻게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지를 설명하기 위해서입니다.

김진혁 PD는 베블런의 유한계급론을 통해 ‘생산적 노동을 하지 않으면서도 비생산적 소비생활과 여가를 즐기는 자본가 계급을 포함한 지배계급’이 우리 사회의 법과 제도를 유지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돈과 권력을 소유한 이들은 세상의 변화에 큰 압력을 느끼지 않습니다. 세상을 변화시킬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유한계급은 보수 성향을 보입니다. 이들의 보수성향은 상류층의 존경할만한 특징으로 오히려 다른 계급이 모방하거나 닮고 싶은 ‘베블런 효과’1를 나타냅니다.

유한계급은 자신에게 유리한 법과 제도를 만들고 유지하기 위해 ‘개혁’을 하층계급의 현상으로 비하합니다. 여성참정권 도입이나 재산 상속의 제한과 폐지 등의 작은 변화마저도 ‘사회 구조를 뿌리째 흔들고, 사회를 혼란에 빠뜨리고 도덕성의 기반을 파괴하고, 자연의 질서를 교란하는 것’이라며 비난합니다.

대한민국에서 ‘올바른 정치와 노동, 인권. 평등’등을 포함한 상식적인 이야기를 하면, 왜 ‘사회적 혼란을 일으키는 불온세력’이 되는지 그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은 왜 보수적이 되는가’

부와 권력을 쥔 유한계급이 보수성향을 띄고 있는 이유는 알았습니다. 그렇다면 왜 가난한 사람은 보수성향을 보일까요?

생산직 노동에 종사하며 가난한 삶을 살아가는 하위 소득계층이 ‘현 제도와 생활양식의 변화를 원할 것이다’라고 사람들은 믿었습니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들은 “오히려 기존의 방식에 적응하는 데 모든 에너지를 소모함으로 기존 방식에 순응하는 ‘보수주의’ 성향”을 보입니다.

한 마디로 현재의 삶을 지키기에도 급급한 가난한 이들은 변화와 개혁을 할만한 힘이 없습니다. 그저 지배계급이 만들어 놓은 사회적 구조에서 살아남기에도 벅찹니다.

가장 진보적일 거라 생각되는 20대, 그러나 현재 대한민국 젊은이 앞에는 ‘높은 대학 등록금’, ‘저임금 비정규직 아르바이트’, ‘부족한 일자리’ 등으로 일상의 생존에 모든 에너지를 쏟아 부어야만 하는 현실의 고단함뿐입니다.

저임금 비정규직 아르바이트를 통해 겨우겨우 비싼 대학 등록금을 내고 졸업을 해도 직장을 구할 수가 없는 젊은이, 그들에게 개혁이나 진보는 먼 나라, 그저 이론 속의 이야기에 불과합니다.

베블런의 주장이 현재의 대한민국에도 적용되고 있는 셈입니다.


‘왜 가난한 사람은 부자를 위해 투표하는가’

김진혁PD의 미니다큐 ‘가난한 이들은 왜 보수적이 되는가?’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5분, 세상을 바꾸는 시간’에는 ‘계급배반투표’라는 글이 있습니다. ‘왜 가난한 사람은 부자를 위해 투표하는가’를 쓴 토머스 프랭크가 지적한 미국의 가난한 캔자스 지역의 투표 이야기와2 한국의 대선 투표 결과가 포함돼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은 왜 박근혜를 찍었나’고 묻고 있는 ‘계급 배반투표 현상’은 16대 대선보다 18대 대선에서 더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16대 대선에서 저소득층의 이회창 후보 지지는 51.8%였고, 노무현 후보에 대한 지지는 46.1%였습니다. 18대 대선에서는 저소득층의 60.5%가 박근혜 후보를. 39.5%가 문재인 후보를 지지했습니다.3
 
대선 투표 결과만 보면 가난한 사람들이 무조건 보수정당에 투표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한귀영 연구위원은 “실제 뚜껑을 열어보니 소득수준을 기준으로 40대 이하에서는 가난할수록 민주당 등 야당 후보를 지지하고, 부자일수록 보수정당을 지지하는 경향이 나타났다”고 밝혔습니다.

‘계급 투표’나 ‘계급 배반 투표’가 항상 뚜렷하게 나온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지역주의’나 ‘박정희 향수론’ 등의 변수가 선거를 좌우할 경우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요컨대 가난한 사람들이 부자를 위한 정책 정당을 지지하는 이유는, 그들이 부자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부유함이나 풍요로움 같은 부자의 가치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또한 그와 함께 수반돼 연상되는 보수적 언어를 ‘옳은 것’으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누가 혹은 어떤 정당이 서민을 대변하고 말고는 고려대상이 아니다. 사람들은 부자를 보면 박탈감을 느끼지 않는다. 성공신화에 매료될 뿐이다. 부와 이익이라는 (그들이 생각하기에) 긍정적인 에너지에 박수를 보낼 뿐이다.” 4

 

핵심은 가난한 사람들이 부자들이 만드는 사회구조의 부당함보다 그들이 가진 보수적 언어와 부유함을 옳은 것으로 인식하거나 부러워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사회 구조의 현실이나 선거의 결과를 명확하게 규정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왜 가난한 사람이 보수성향을 보이고 보수정당에 투표하는지, 그 배경과 이유를 정확히 알고, 그들에게 접근할 수 있는 '진보의 언어'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5
 
‘대한민국 정치사회 지도’의 저자 손낙구는 ‘문제는 계급 투표가 아니라 투표할 이유를 만들어 주지 못하는 정치 또는 정당 체제에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습니다.6

현실의 고단함을 뛰어넘을 수 있는 것은 발걸음을 잠시 멈추고 5분 동안만이라도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구조가 어떻게 이루어지고 움직이는지 생각해보는 시간이 아닐까요?7


1. 비싼 물건일수록 잘 팔리거나, 다이아몬드처럼 가격이 높을수록 수요가 늘어나는 현상
2. 가난한 캔자스의 노동자들이 2000년 대통령 선거에서 공화당을 지지한 이유를 설명한 부분. ‘왜 가난한 이들은 부자를 위해 투표하는가’ 토머스 프랭크 지음. 갈라파고스 출판사. 
3. 가난한 사람들은 박근혜 지지? 주간경향. 2013년 12월 17일. 
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artid=201312101530291&code=113 
4. 가난할수록 현상 유지. 선관위, http://nec1963.tistory.com/ 
5.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선거 명예기자 이종배. 
6. 손낙규의 세상공부 http://blog.ohmynews.com/balbadak/category 
7. ‘5분, 세상을 바꾸는 시간’ 프롤로그 중에서, 김진혁 지음. 문학동네 출판.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13&table=impeter&uid=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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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보] 그리스 국민투표 ‘반대’ 압도적…‘채권단 긴축안’ 거부

등록 :2015-07-06 06:55수정 :2015-07-06 09:215일(현지 시각) 그리스 제2의 도시 테살로니키에서 반대 투표 지지자들이 반대가 압도적으로 나온 국민투표 결과에 환호하고 있다. 테살로니키/AP 연합뉴스
5일(현지 시각) 그리스 제2의 도시 테살로니키에서 반대 투표 지지자들이 반대가 압도적으로 나온 국민투표 결과에 환호하고 있다. 테살로니키/AP 연합뉴스
‘반대’ 61% vs ‘찬성’ 39%…박빙 예상 뒤집고 20%p 격차
치프라스 총리 “연대와 민주주의의 유럽에 대한 찬성” 환영
유럽연합 “유감…유럽에 대한 거부는 아닐 것” 입장 표명
메르켈-올랑드 7일 유로존 정상회의 소집…중대 고비 될 듯
국제채권단의 구제금융 수용 여부를 묻는 그리스 국민투표가 부결됐다.

 

그리스는 5일(현지 시각) 실시된 국민투표에서 긴축정책의 지속 등을 요구하는 국제채권단의 구제금융 제안을 압도적으로 거부했다. 개표가 거의 완료된 오전 3시(현지 시각) 현재 약 61% 이상이 거부, 찬성은 39%라고 그리스 내무부가 발표했다.

 

그리스 국민투표의 부결에 대해 유럽연합 쪽은 유감을 표시했으나, 이 결과가 유로존을 거부한 것은 아니라는 반응을 보였다. 긴축정책을 조건으로 한 구제금융을 제안한 유럽연합 쪽은 이번 국민투표는 유로존 잔류 여부를 묻는 것이라는 입장이었다.

 

장 클로드 융커 유럽연합 집행위원장은 그리스의 ‘거부’가 “유럽에 대한 거부는 아닐 것이다”는 반응을 보였다. 유로존 재무장관의 모임인 유로그룹의 의장인 예룬 데이셀블룸 네덜란드 재무장관은 “매우 유감”이다고 반응했다. 그는 그리스 경제는 회복하는 데 매우 힘든 정책들에 직면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리스 국민투표 결과를 주목한다”며 “이 결과는 그리스의 미래에 매우 유감스런 일이다”고 말했다. 그는 “그리스 경제의 회복에서 어려운 정책들과 개혁들은 불가피하다”며 “우리는 지금 그리스 당국의 조처들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자신을 포함한 19개 유로존 국가의 재무장관 동료들은 유로존 지도자들의 특별 정상회의에 앞서 7일 긴급 회의를 열어 “현 상황에 대해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알렉시스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가 5일(현지 시각) 수도 아테네의 투표소에서 국제채권단의 구제금융 협상안에 대해 찬반을 묻는 국민투표에 참가해 한 표를 행사하고 있다. 아테네/AP 연합뉴스
알렉시스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가 5일(현지 시각) 수도 아테네의 투표소에서 국제채권단의 구제금융 협상안에 대해 찬반을 묻는 국민투표에 참가해 한 표를 행사하고 있다. 아테네/AP 연합뉴스

 

알렉시스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는 그리스 국민들은 “연대와 민주주의의 유럽”에 대해 찬성 투표를 했다고 환영했다. 그는 “오늘 부로 그리스는 협상 테이블로 돌아갈 것이고 우리의 우선 사항은 우리 나라의 금융 안정을 재확립하는 것이다”고 개표 결과가 확정된 뒤 텔레비전 연설에서 말했다. 그는 또 “지금 부채는 협상 테이블 위에 있다”며 이번주에 발표됐던 국제통화기금의 보고서는 “채무 재조정이 필요하다는 그리스의 견해를 확인했다”고 말해, 채무경감과 긴축정책 철회를 채권단에 거듭 요구했다. 국제통화기금은 그리스에는 부채 경감과 추가적인 자금 지원이 필요하다는 보고서를 지난달 26일에 내고, 이를 지난 3일 공개한 바 있다.

 

그러나 시그마르 가브리엘 독일 부총리는 그리스와의 새로운 협상은 상상하기 힘들다고 말해, 강경한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그리스 국민투표는 사전 여론조사에서 찬성과 반대가 각각 44%와 43%로 1%포인트 안팎의 차이로 결과를 예측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막상 개표가 시작되자 초반부터 거부가 앞서나가며 큰 차이로 부결됐다. 유럽연합 쪽은 이번 투표는 그리스의 유로존 잔류 여부를 묻는 투표라고 그리스 국민들에게 구제금융 찬성표를 던지라고 요구했었다. 반면 치프라스 총리 등 현 정부는 이번 투표는 유로존 잔류 여부와는 상관없고, 부결이 나올 경우 더 좋은 조건의 구제금융안을 위한 협상력이 제고될 것이라고 주장했었다. 그리스 국민들도 이번 국민투표를 통해서 더이상의 긴축정책 지속은 거부한다는 입장을 명백히 한 것이다.

 

7일 열리는 유로존 정상회의는 그리스와의 부채협상에서 중대한 고비가 될 것으로 보인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은 이날 전화 통화에서 7일 정상회의를 소집했다. 이들은 전화 통화에서 일단 그리스 국민들의 의사를 존중한다는 뜻을 밝혔다.

 

그리스는 현재 유럽중앙은행에 긴급유동성지원(ELA) 확대를 요청해놓고 있다. 유럽중앙은행은 유로존 지도자들이 향후 그리스에 대한 정책의 얼개를 확정하기 전까지는 긴급유동성지원을 확대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유럽중앙은행의 긴급유동성지원이 확대되지 않을 경우 그리스 은행들은 국내에서 사실상 지급 불능 상태에 빠지게 돼 위기는 더욱 격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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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청년배당, 걱정 마. 성남이 한다"

 
[1995+20, 풀뿌리 리더십을 찾다] ③ 이재명 성남시장
 
 
올해로 민선 지방자치제가 20주년을 맞는다. 지난 95년 6월 27일 첫 지방선거를 통해 단체장들이 선출됐다. 이들 단체장들의 임기가 시작된 1995년 7월 1일을 온전한 지방자치의 출발일로 삼는다면 올해가 꼭 20주년째가 된다. 지난 6월 메르스 사태로 중앙정부의 리더십이 사실상 붕괴된 상태에서 지역주민들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지는 모습을 일부 지방자치단체장들이 보여주면서 지방자치의 존재와 의미가 새롭게 주목 받고 있다. 새로운 리더십을 통해 우리 정치의 희망을 보여주는 지방자치단체장들을 만나 자치와 분권의 현실을 되돌아보고자 하는 취지로 기획된 '1995+20, 풀뿌리 리더십을 찾다' 세번째 주인공은 이재명 성남시장이다. 
 
이재명 시장의 별명은 '사이다 시장'이다. 일부 네티즌들이 붙여 준 별명이다. 소통도 소통이지만, '그 말투나 논리가 시원하다', '가려운 곳을 정확히 찾아내 긁어준다'는 이유 때문에 붙은 별명이다. <프레시안>과 인터뷰에서도 이 시장은 현 정국을 명쾌하게, 또 경쾌하게 짚어냈다.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이 사실 당연하지 않았다는 것을, 반박할 수 없는 논리로 풀어냈다. 
 
많은 사람들이 내가 살고 있는 지방자치단체장 이름 쯤은 알고 있다. 그러나 이 시장은 그것을 넘어선 것 같다. 인터넷에는 경계가 없다. 심지어 여론조사에 대권 주자로 이름이 오르락내리락 한다. 인구 100만 명이 채 안 되는 성남의 시장이 대권 주자로 거론된다는 것은, 그 자체로 특별한 현상이다. 
 
'대한민국이 못해도, 성남은 합니다' 민선 5기를 거쳐, 6기로 넘어오며 내건 이 시장의 선거 캐치프레이즈이기도 하다. 이 시장은 입담만 주목받는 게 아니다. 무상급식에 이어 무상교복, 무상공공산후조리원, 성남시(공공)의료원까지, 시행하는 정책마다 센세이션을 일으켜왔다. 무상이라는 말의 논란에 대해서도 그는 '공짜'가 아니라고 정리한다. 국민이 정당하게 세금을 내고 먹는 것인데 왜 공짜인가. 그는 "성남으로 이사가자"라는 말이 요새 유행어가 되고 있다고 자부했다. 
 
이게 전부가 아니다. 이 시장은 "청년들을 대상으로 청년배당 도입을 위한 정책연구를 진행하고 있다"고 최근 밝혔다. 국민(지자체나 정부)이 소유한 공공재에서 생긴 이익은 국민에게 배당돼야 한다는, 기본소득(혹은 시민배당금)의 개념을 성남시에서 최초로 도입하겠다는 것이다. 어디에선가 "공산주의자가 나라를 말아먹으려 한다"는 비판이 들리는 것 같다. 그러나 황당한 계획이 아니다. 이 시장은 "제가 하면 실현되는 것"이라고 자신감 있게 말했다. 
 
이 시장은 재정 상황 등과 관련된 일각의 우려에 대해 "걱정 말라. 그렇게 많이 주지 않는다"며 웃었다. 이 시장의 설명에 따르면 성남시에서 통용되는 지역화폐를 지원, 청년들이 자신의 능력에 투자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지역 화폐이므로 지역 경제에도 도움이 된다. 청년들이 커피숍에서 커피 마시며 정치, 사회, 문화에 대해 토론할 수 있도록 주머니를 채워주자, 또 청년들이 책을 사볼 수 있고, 적은 돈을 가지고 무전 여행이라도 떠날 수 있도록 최소한의 지원을 해주자는 취지라고 한다. 
 
이것은 사실 '기초노령연금'과 닮은 꼴이다. 노령연금은 일정 나이가 되면 그냥 주는 것이다. 청년배당도 마찬가지다. 노령연금이 고생한 노인들을 위한 보상이라면, 청년배당은 고생할 청년들에 대한 투자라는 게 이 시장의 논리다. 
 
이 시장과 인터뷰는 7월 1일 성남시청 2층 시장실에서 전홍기혜 편집국장이 진행했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이다. 
 

▲이재명 성남시장 ⓒ프레시안(손문상)

중앙정부나 지방정부나 '국민'을 위해 존재한다. 그런데
 
프레시안 : 총선 출마 안하신다는 입장 발표를 하셨더라. 
 
이재명 : 누가 자꾸 총선 나간다, 보궐 선거 나간다고 하길래, 꿈 깨라고 했다. 자꾸 뭘(성남시장) 해먹으려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다.(웃음)
 
프레시안 : 7월 1일, 지방자치 20년이다. 소회를 말한다면?
 
이재명 : 대한민국 정권 교체(헌정 사상 첫 수평적 정권 교체인 1997년 김대중 전 대통령 당선)의 기반이 된 게 지방자치다. 지방자치가 없었으면 정권 교체가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방자치가 민주주의의 초등학교다. 실제로 그런 역할을 한 것 같다. 국민들이 정치를 가깝게 느끼고, 선택에 따라 내 삶이 바뀔 수 있다는 것을 국민들이 한번 체득하는 과정이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아, 대한민국 권력도 바꿀 수 있다. 바꾸면 혜택이 있다' 이런 게 커졌던 것 같다. 그것 때문에 김대중 전 대통령이 단식 투쟁을 해서 이 제도를 관철시킨 것 아닌가. 
 
프레시안 : 이번 메르스 정국을 통해 지방정부, 또 지방자치단체장들이 얼마나 많은 일을 할 수 있는지, 시민들이 많이 느꼈을 것 같다. 반대로, 국가, 정부는 도대체 나를 위해 뭘 할 수 있나 하는 고민도 생겼을 것 같다. 
 
이재명 : 전염병을 막는 방역 활동이 실제 정부에서 직접 할 수 있는 게 없다. 기초 지방자치단체, 즉 시, 군, 구에 집행 구조가 다 몰려 있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대민행정이 그렇다. 이번 (메르스 방역) 과정에서 정부가 과연 존재하느냐, 그리고 중앙 정부의 컨트롤타워가, 우리나라 전체를 통할하는 시스템이라는 게 과연 존재하는가 의문을 (시민들이) 갖게 됐지 않나. 위가 없고, 아래쪽만 살아있으니, 아래쪽이 사람들의 눈에 띤 것 같다. 머리가 전혀 기능을 안 하니까 손은 손대로, 팔은 팔대로, 독자적인 시스템을 가동할 수밖에 없다. 그나마 이것(지방 정부)마저 없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지방자치제도가 없었으면 중앙 정부의 부속품으로, (지방 정부 역시) 완전히 '올스톱' 상태로 됐지 않았을까. 생각하면 끔찍하다. 
 
프레시안 : '비밀주의'의 중앙정부에 맞서, 지방정부가 투명하게 정보를 공개하고, 향후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등을 보여줬던 것 같다. 처음에는 정부 방침에 반기를 든 모양새로 보였는데, 지나고보니 다들 올바른 결정이었다는 평가를 내고 있다. <프레시안>도 정부 방침에 반대, 병원명을 처음으로 공개했다.  
 
이재명 : 삼성의료원(삼성서울병원)을 박원순 시장이 (처음에) D병원이라고 하던데, (웃음) 우리도 삼성병원을 공개할지 고민을 했다. 그런데 이미 언론에서 다 보도하고 있더라. 정부보다도 언론이 먼저 국민을 위해 행동을 한 것이다. 언론도 위험한 결정이었지 않았겠나. 영업권 침해라고 할 수도 있고, 삼성이라니 제재당하거나 피해를 볼 수 있다는 걱정도 했을 것이다. 그런데도 (언론은) 이미 (병원명을) 쓰고 있더라. 제가 사실 조금 부끄러웠는데, 민간 언론보다도 우리가 용기가 적었던 것인가 하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도 과감하게 D 병원이라고 하지 않고 삼성의료원을 지칭했다. 
 
프레시안 : 정부의 입장에 반하는 정치적 행위로 해석되기도 했다. 
 
이재명 : 지방정부가 중앙정부에 반기를 든 게 아니다. 중앙정부 관료들이 국가에 반기를 든 것이다. 이것은 법률상으로도 공개하게 돼 있다. 감염병 발생 상황 예방 및 대응 체계를 보면, 국민에게 관련 정보를 공개해서 알려줄 의무가 있다. 법에 있는 의무다. 국가는 곧 국민이다. (정부의 대응은) 그 국가에 대해 공무원이 지고 있는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것이다. 결국은 국민들 뜻에 따라서 자기들(중앙 정부)도 공개를 하기로 했지 않나. 국가의 의무 중에 제일 중요한 것이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것이다. 국가는 외침으로부터 국민을 지키기 위해 국방을 한다. 그것과 비슷한 게 전염병, 질병, 재난재해 사고다. 이 4가지 (위협으로부터) 국민을 지키는 게 국가다. (우리나라가) 국방은 열심히 한다. 국방에는 열심히 돈을 쓴다. 그런데 방역에 대해서는 돈을 안 쓴다. 방역은 민간 병원에 맡겨놓고 있다. 그리고 삼성병원을 야단친다. 야단칠 일인가? 국민을 위험 속에 몰아넣어서 돈을 벌고 있는 형국이다. 그래서 세월호 참사가 난 것 아닌가. 왜 그럴까? 방역의 부실함도 그런 현상의 일부가 아닐까. 
 
프레시안 : 당시 메르스 확산 상황에 대한 판단을 했을 때, <프레시안>도 병원명 등 정부가 알리지 않고 있는 것을 공개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했다. 이미 시민들은 SNS를 통해 정보를 공유하고 있었다. 
 
이재명 : 이미 저보다 (언론과 시민들이) 더 빨리 알고 있었다. 정확하게 객관적인 정보를 제공하고, 공유하는 게 중요한 일이다.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서 질문이 들어오더라. 어느 초등학교에 환자가 생겼다고 하는데 맞느냐, 하고. 나중에 보니까 맞더라. 그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를 둔 엄마가 양성으로 판명이 났다는 보고를 받았다. 저보다 정보가 더 빠르다. 이런 상황에서 숨긴다? 숨기면 의혹만 증폭된다. 잘못된 정보로 불안과 공포만 심화된다. 제가 일일이 답변하기 귀찮아서 확 알려드렸다.(웃음) 결국은 그게 혼란을 줄이는 더 좋은 방법이었던 것이다. 그 생각이 났다. 전쟁이 났는데 이승만 전 대통령이 한강 철교 끊고 본인은 도망가 버렸다. 방송을 통해 '걱정 말라, 서울은 사수한다'고 했다. 의료 기득권 살자고 국민들에게 정보를 숨기고, 그래서 병원을 통해 병이 퍼지는 모습을 보니까, 이승만과 한강 철교가 생각났다. 
 

▲ 리더십도 있지만, 더 근본은 국민에 대한 애정, 사명감이 있느냐, 없느냐다. 공직자가 가진 기본적인 태도의 문제다. 뭘 해먹으려고 공직자를 하느냐, 시민들의 행복을 위한 공직자의 길을 가느냐, 딱 그 차이다. ⓒ프레시안(손문상)

프레시안 : 사실 이번에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다른 대응, 거기의 핵심은 리더십이었던 것 같다.  
 
이재명 : 리더십도 있지만, 더 근본은 국민에 대한 애정, 사명감이 있느냐, 없느냐다. 공직자가 가진 기본적인 태도의 문제다. 뭘 해먹으려고 공직자를 하느냐, 시민들의 행복을 위한 공직자의 길을 가느냐, 딱 그 차이다. 생각 자체가 다른 것이다. 국민이 얼마나 불안할까, 국민이 얼마나 위험할까, 이런 생각을 했으면 정부가 과연 그랬을까. 기득권 눈치를 보느라 국민을 위험에 빠뜨린 것 아닌가. 
 
프레시안 : <프레시안> 편집국에 전화가 왔다. 독자가 '메르스 의심증세가 있다'고 해서 보건소에 알아보니 '알려진 메르스 증상과 달라서 검사를 할 수가 없다'고 했다더라. 그래서 본인이 알아본 결과 성남에서는 본인 부담을 하면 보건소에서 해준다고 하더라. 그래서 성남으로 이사가고 싶다는 말을 했다. 
 
이재명 : 그게 요새 유행이다. 성남으로 이사가자.(웃음) 지금도 묘한 것이 있다. 성남에 양성 환자가 4명이 나왔다. 그런데 이 4명은 사전에 통보받지 못한 사람들이었다. 즉 격리 대상자가 아니었던 것으로, 정부의 통제선 밖에 있는 사람들이 환자가 된 것이다. 황당했다. 관리가 안 되고 있다는 얘기다. 운수에 따라 검사 받게 된다는 거다. '혹시 병원 간 일 있어요?' 물어서 '삼성의료원에 갔다' 그러면 검사를 해준다는 식이다. (일반 사람들은) 검사를 안 해준다. 이것은 무엇을 말해주나. 혹시 이 사람이 지역감염이 됐다고 해도 확인이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메르스 발병) 병원에 가거나 접촉한 사람만 검사했기 때문이다. 지역감염은 확인이 불가능하게 해 놓고, (정부는 지역 감염은) 없다고 우기는 상황이다. 위험한 것 아닌가. 그래서 우리가 따로 민간 검사 기관을 확보해서 검사를 했다. 102건 검사했는데, 100% 음성이어서 다행이었다. 한 건이라도 양성이 나왔으면 큰일 날 뻔 했다. 
 
프레시안 : '접촉력'이 없는 사람은 정부에서 검사를 안해줬던 것 같다. 
 
이재명 : 그래서 우리가 했다. 원래 성남시는 정부와 같이 하려고 했었다. 그런데 정부에서 '만약 성남시가 같이 검사하면 자기들은 안한다'는 취지로 버티더라. 그래서 (정부와 함께 하는 것은) 할 수 없이 포기했다. 왜 못하게 할까? 자신들이 내린 결론과 다른 결론을 낼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게 정보 독점이다. (국가 시스템을) 전면적으로 재점검 해봐야 한다. 시스템 자체가 없다시피 하다. 심각하다. 이 부분에 관한 한 정부는 없었다. 
 
청년배당·기본소득? 성남은 한다. 그러면 실현된다
 

▲ 정부의 존재 이유라는 게 국민의 생명을 지켜주는 것, 그리고 좀 더 나은 삶의 환경을 만드는 것 아닌가. 그것을 위해 시민들이 세금을 낸다. 세금은 최대한 아껴서 국민들의 삶을 개선하는 데 쓰여져야 한다. 4대강 사업 하고, 자원 외교 한다고 세금 가져다 버리고, 방산 비리 저질러서 세금 빼먹고…. 나쁜 짓이다. ⓒ프레시안(손문상)

프레시안 : 최근에 성남시가 중앙 정부와 갈등을 빚고 있는 게 무상 공공산후조리원 문제다. 복지부 입장에서는 다른 지역과 편차 때문에 안 된다는 것이고, 성남시는 계속 하겠다는 입장이다. 어떤 계기로 산후조리원을 무상으로 하겠다고 했고, 왜 이게 시급한 정책 과제가 됐나? 
 
이재명 : 정부의 존재 이유라는 게 국민의 생명을 지켜주는 것, 그리고 좀 더 나은 삶의 환경을 만드는 것 아닌가. 그것을 위해 시민들이 세금을 낸다. 세금은 최대한 아껴서 국민들의 삶을 개선하는 데 쓰여져야 한다. 4대강 사업 하고, 자원 외교 한다고 세금 가져다 버리고, 방산 비리 저질러서 세금 빼먹고. 나쁜 짓이다. 저는 최대한 비용을 아껴 시민들에게 돌려줘야 한다는 측면을 본다. 하나 더 있다. 지금 우리 사회는 개인의 책임만 강조되고 공공성은 약화되고 있다. 무한경쟁, 각자도생, 승자독식, 등 야만사회로 가고 있다. 그러나 국가는 국민에게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이 가능한 환경 속에서 공정한 기회를 누리도록 해줘야 한다. 그래야 그 사회가 발전하고 그 구성원들에게 희망이 생긴다. 그 조건을 만드는 게 정부다. 정부가 정해준 세액 범위 내에서 최대한 아껴서 시민들의 삶의 조건을 개선해주겠다는 것인데, 그리고 그것을 하려고 지방자치를 하는 것인데, (공공산후조리원을) 하지 말라고 하면 황당한 것이다. 이것은 지방자치를 침해하는 것이다. 
 
프레시안 : 정부가 내놓는 근거는 무엇인가. 
 
이재명 : 법에도 하지 말라는 얘기는 없다. 협의하라고 돼 있다. 특정 계층만 주고 특정 계층은 빠지면 안 되지 않나. 그런데 다른 자치단체와 균형이 안 맞다? 다른 데 못하니까, 너희도 하지마? 이런 태도는 지방자치를 부인하는 것이다. 차이가 생기고 불균형이 생긴다니. 공감하지 않는 것은 아닌데, 아니, 선별복지 하라면서.(웃음) 똑같이 복지하지 말라면서 보편복지를 안하기 때문에 안 된다는 말 아닌가? 거기에 덧붙여서, 이번에 거짓말을 했다. 선착순으로 운영하기 때문에 안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저소득층, 다자녀 가구 등 정책적 배려가 필요한 사람들, 하위 10~15%만 이용하도록 하고 나머지는 현금으로 주겠다고 했다. 정부 방침에 맞춰서 하는 것인데, (논리가 부족하니까) 성남시가 선착순으로 운영을 한다고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성남시가 아무리 그래도 수백만원이 드는 복지 정책을 하는데 '줄서!' 해서 선착순으로 하겠나? 그래서 제가 복지부장관에게 사과하라고 했다. 성남시가 그렇게 무식한 곳이 아니라고 했다. 재정적 어려움이 있다면 못 하는데, 우리는 준비를 다 해 놓았다. 전임 시장 빚 갚고도 예산을 확보해 놓았다. 새로 빚을 내서 하는 것도 아니다. 중앙정부에 손 벌리지도 않는다. (재정이 올바로 쓰여서) 배 아파 죽으려고 하는 사람 많이 있다. '야, 저거 내가 해먹을 수 있는데'라면서.(웃음) 
 
프레시안 : 최근에 예고한 성남시 복지 정책 중 하나가, 기본소득과 청년배당 이야기다. 많이 알려지지 않았는데, 이 이야기를 들으면 이사 가고 싶은 사람이 많아질 것 같다. 실현 가능성이 있나?
 
이재명 : 제가 하면 실현되는 거죠. (웃음) 지금 2차전이 준비되고 있는 셈이다.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공동의 재산으로부터 생기는 이익은 공평하게 나눠 갖자는 것이 기본 개념이다. 그게 부분적으로 실행되고 있는 게 하나 있다. 바로 기초노령연금이다. 65세 넘었다는 이유로 돈을 주고 있다. 그것도 기초소득의 일종이다. 부분적 기초소득이다. 그런데 우리는 청년에게 해주자는 것이다. 노인만 되고 청년은 왜 안 되나. 어린 게 죄는 아니지 않나. 노인은 고생을 해왔다. 그래서 일종의 후배당 개념이다. 우리는 (청년들에게) 선투자하자는 것이다. 청년들이 취업도 못하고 자기 수련도 못한다. 청년들의 역량이 성장하지 않으면 그 사회 전체의 손실이다. 그러니 거기에 선투자를 하자. 
 
프레시안 : 벌써부터 비판을 하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다. 
 
이재명 : 일각에서는 '그것 주면 일을 안 할 것 아니냐'고 하는데, 걱정 하지 마시라. 그렇게 많이 주지 않는다.(웃음) 20살부터 29살까지 잡는다고 하면 10만 명이다. 10만 원씩만 줘도, 1년에 120만 원, 1200억 원 정도 된다. 그렇게 주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런 현실적인 것도 고려해야 한다. 청년들이 자기 역량을 기르고, 찌들지 않게 책도 사보고, 무전여행도 가고, 커피 마시면서 토론도 하고, 이 정도만 조건을 만들어주자는 것이다. 그래야 내가 우리 사회 구성원이구나, 하는 것을 느끼지 않겠나. 청년들이 중동을 가겠다고 하는데, '시장님 때문에 안 갑니다' 할 수 있도록 조금이라도 기여를 해보자는 게 취지다. 재정 상황도 따져봐야 한다. '청년 선투자'라는 정책 목적만 실현토록 하면 아까우니까, 지역 경제 활성화와 같이 갈 수 있도록 할 수 있다. 이를테면 (청년배당금을) 지역 화폐로 주는 것이다. 지금 성남사랑상품권이 있다. 그런 것으로 (청년들에게) 주면 지역 경제에도 도움이 된다. 몇 가지 정책을 믹스해서 시행할 것이다. 저는 말 하면 한다. 그냥 넘어가는 것은 없다. 
 
프레시안 : 최근에 성남의료원도 주목받는데, 시장님이 정치를 하게 된 계기가 성남의료원 때문이라고 하던데?  
이재명 : 제가 두 번째 전과가 생긴 계기가 있다. 대한민국 최초의 주민 발의 조례가 만들어지고 난 후 첫 사례로 성남의료원을 발의했다. 1년간 모든 노력을 다 해서 그렇게 발의했는데 (시의회에서) 47초 만에 (부결로) 날치기하고 도망가더라. 그 때 방청객들이 항의했고, 저도 소리를 좀 질렀다. 그러니까 특수공무집행방해, 즉 시의회를 점거했다고 하더라. 사실 내가 거기에서 울었었다. 정말 서럽더라. 시민이 원하고, 시민이 시민의 세금으로 하는 것인데도 권력이 없으니, 1년짜리 프로젝트가 시의원들이 방망이 소리에 없어져버리더라. 그래서 우리가 직접 하자고 했다. 그게 2004년 3월 28일 오후 5시다. 2004년에 그렇게 결심하고 2006년에 성남시장 선거에 나왔다가 떨어졌다. 2010년에 당선되서, 10년만인 2013년에 성남시의료원이 착공됐다. 2017년에 완공이 된다. 의료 공공성이라는 것 때문에 제 정치인생이 시작됐으니까, 저는 각별히 그 부분에 관심이 있다.  
 
프레시안 : 메르스 사태 겪으면서 공공의료원이 중요하게 부각된 것 같다. 성남의료원의 음압병상이 32개로 설계돼 있더라. 민간병원이 하지 않는 것들을 커버하는 부분 쪽으로 된 것 같다. 우리나라 전체 음압병상 숫자(99개)에 비하면 3분의 1에 해당하는 숫자다. 
 
이재명 : 그게 (언론의) 눈에 띤 것 같다. 공공의료 지출을 옛날에는 적자라고 해서 소홀히 했다. 공공의료라고 하면 당연히 재정 투자가 돼야 하는 것 아닌가. 돈을 남길 수 있는 분야는 삼성이 하겠죠. 그런데 삼성이 안하지 않나. 돈이 안 남으니까. 그러면 당연히 재정 투자가 돼야 한다. 이것을 적자라고 비난하니까 공공의료 시스템이 (메르스 사태에서) 이렇게 (무너지게) 된 것이다. 이것은 재정 투자다. 손해가 아니다. 이번 사태를 지나면서, 공공의료의 중요성, 즉 적자냐, 투자냐, 하는 논쟁에서 '투자다'라고 말하는 입장이 우위를 갖게 됐다. 이를테면 국방은 적자다. (굳이 따지면) 37조 적자 아닌가. 그런데 공공의료에 대한 투자는 1년에 20억~30억 원, 많게는 50억 원 적자가 난다고 비판한다. 공공의료에 1년에 100억 씩 투자하면 안 되나? 이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데. 앞으로는 그런 공격이 좀 약해질 것 같다. 
 
프레시안 : 홍준표 경남도지사는 진주의료원을 적자라고 해서 없앤 일이 있다. 
 
이재명 : 제가 그렇게 말했다. 그러면 거가대교를 없애라. 적자 나니까. (웃음) 공무원 문화시설, 체육시설, 운동장, 다 적자다. 그것 왜 하나. (메르스 사태와 성남의료원 논쟁이) 이게 우리나라의 공공의료에 대한, 또 공공투자에 대한 시각을 바꾸게 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적자를 잘 내는 게 살림을 잘하는 것이다. 재정 수지 균형, 즉 수입이 들어오면, 딱 그만큼 쓰는 게 제일 잘하는 것이다. 문화센터에 공연하면서 180억 원 없애는 것, 어디 체육시설 한 개에 130억 원 써서 없애는 것은 괜찮은데, 50만 명이 이용하는 공공의료에 50억 원 쓰는 것은 죽어도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게 훨씬 중요하고 효율적인 일이고 우리가 가야 할 길이다. 공공성 강화에 들어가는 비용을 적자라고 하면 안 된다. 안 그러면 국방부도 적자라고 해라.(웃음) 
 
야당 혁신, 국민은 답을 알고 있다. 실천이 문제다.
 

▲ 저는 이 정권이 보수정권이라고 생각 안 한다. 이게 무슨 보수인가. 무능한 집단이라고 본다. 보수는 이렇지 않다. 보수가 지향해야 할 가치가 얼마나 중요한가. 균형, 정의, 형평, 평화, 이게 다 보수의 가치다. ⓒ프레시안(손문상)

프레시안 : 이번 메르스 사태 겪으면서 정부가 우왕좌왕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잠깐 이야기했는데, 공공 시스템에 무딘 보수 정권이기 때문에 더 대응을 못했다고 볼 수도 있을까? 
 
이재명 : 저는 이 정권이 보수정권이라고 생각 안 한다. 이게 무슨 보수인가, 보수냐, 진보냐 따질 수준에 미치지 못한, 무능한 집단이라고 본다. 보수는 이렇지 않다. 보수가 지향해야 할 가치가 얼마나 중요한가. 균형, 정의, 형평, 평화, 이게 다 보수의 가치다. 그게 아니고 만날 해먹기나 하고, 무능하고 무책임한 '왕 놀이'나 하고 있다. 정부는 제일 중요한 게 시스템이다. 지휘 체계다. 이 지휘 체계가 없으면 아무리 유능한 집단이라도 무너진다. 만화에 머리를 손으로 들고 다니는 캐릭터가 있다. 머리가 몸을 통제해야 하는데, 머리를 들고 다니는 것이다.  
 
프레시안 : 박근혜 대통령이 통치 스타일이 바뀌지 않으면 이런 위기가 계속될 것으로 보나?
 
이재명 : 계속 그럴 것이다. 저는 이런 일이 반복될 것이라는 불행한 예측을 가지고 있다. 더 크게, 더 위험하게. 아마 안 바뀔 것이다. 
 
프레시안 : 박 대통령이 어떤 부분, 특히 정치적인 부분은 결단력이 있는 것 같다. 이번 거부권 정국에서 그런 게 또 나타났다.
 
이재명 : 그런 것은 잘 한다. 그런데 (국정에는) 관심이 없다. 대통령 일이, 자기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장관이 할 일이고 신하들이 할 일이지, 하는 식이다. 야단을 치더라도 자기들끼리 숨어서 야단을 쳐야지, 책임은 다른 사람에게 넘기고 권한은 나에게 있다? 문제다. 만날 유체이탈 화법이 나오는 이유다. 왜냐 하면 인식 자체가 그렇다. 다른 사람은 (대통령의 행동을) 이해를 못한다. (대통령) 본인도 다른 사람이 왜 이해를 못하는지 이해를 못한다.(웃음) 원래 책임과 권한은 공존하는 것이다. 공무원 야단치는 것까지는 그렇다 치자. 그런데 병원장은 왜 야단치나. 돈벌이 하려고 열심히 하는 사람을 왜 야단치나? 그것은 국민을 야단친 것이다. 정말 이해가 안 된다. 물론 내가 이해가 안 된다는 것을 (대통령은) 이해를 못하겠죠. (웃음) 
 
프레시안 : 국민들이 보기에는 병원장이 고개를 숙인 것을 보면서 만감이 교차했을 것 같다. 또 언론도 최근 문화일보의 '오보'를 지적했는데, 병원과 언론 등이 사회적 공기로서 역할을 하고 있는지, 국민들은 여러 가지 의문들을 가졌을 것 같다. 
 
이재명 : 다 책임이 있는데, 책임의 종류가 다르다. 삼성의료원은 국민에 대한 기업 윤리 차원에서의 책임이다. 대한민국 최고의 기업이 어떻게 저럴 수가 있나. 그래도 (책임의 크기가 상대적으로) 세지 않다. 언론도 마찬가지다. 언론이 어떻게 저럴 수 있는가 하지만, 그것도 기업 윤리에 가까운 부분이다. 그런데 정부는 다르다. 정부는 법률상 책임이다. 윤리와 다른 영역의 법적 책임이다. 국민들이 월급을 준다. 그런데 엉터리로 했다. 그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는 것에 대한 비판은 병원이 잘 못했다는 비판과 차원이 다르다. 
 
프레시안 : 메르스 정국을 지나오는 과정에서 야당 소속 자치단체장의 활약이 돋보인 게 사실이다. 그런데 과연 야당(새정치민주연합)은 역할을 잘 했나 하는 것을 봤을 때. 국민들은 미흡하게 느끼는 것 같다. 야당이 국민에게 신뢰를 주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이재명 : 공감한다. 야당이 정책적 능력이 많이 부족한 것이다. 대안 제시 능력의 부족이다. 성남시도 사실 처음 겪는 일이니까, 뭔가 해야 할 것 아닌가. 그런데 공무원들이 가진 한계가 있다. 변화를 안 주려고 한다. 보건소 하나를 비워놓으라고 했는데, 의사가 없다는 거다. '민간 병원에서 데려다 써라. 돈 줘도 된다'고 했다. 그런데 안 온다고 하더라. 그레서 제가 나중에 성질을 확 내면서 '안 오면 그 병원에 다 보낸다고 해라. 거부하면 다 단속해서 행정처분 한다고 하라'고 했다. 비상 사태라 강제로 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 그러니까 움직이더라. 정부 기관 책임자가 성남에 와서 '성남 잘 하고 있네. 왜 이리 잘하느냐' 하면서 베껴갔다. 어느 부처의 모 차관이 성남시를 보더니, '중앙 정부가 이렇게 따라해야 하겠네' 하고 갔다더라. 그래서 내가 속으로 '아이고, 이거 매뉴얼에 다 있다'고 했다. 이런 방식으로 '대안'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하는데 (야당은) 그냥 '(정부가) 잘 해라' 하고 있으니까. 이것은 애들 보고 공부 잘해라 하는 것과 똑같다. 구체성 있는 대안을 제시하고 공감할 수 있도록 국민과 소통을 늘려가야 한다. 물론 (야당이) 안을 많이 내도 (언론은) 안 써주지 않나? <프레시안>은 쓰겠지만, 조중동(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은 안 쓴다. 그러면 전달이 안 된다. 그렇다고 한탄만 하고 있어야 할 일이 아니다. 소통을 직접 해야 한다. 국민과 접촉을 늘려야 한다. 제가 잘 한다고? 아니다. 소통을 많이 하니까 사람들이 뭘 하는 것처럼 인정해주는 것이다. 다른 시군에서 하는 것을 베껴서 하는데, 저만 하는 것처럼 돼 있는 것도 많다. 홍보가 안 되면, 저는 눈 터지게 댓글 써주고 한다. 접촉과 소통을 늘리고 구체성이 있는, 공감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이게 차곡차곡 쌓이면 국민 지지율도 올라가지 않겠나. 야당이 나쁜 사람들도 아니고, 잘 하려고 하고 있다.
 
프레시안 : 새정치연합이 혁신위를 꾸려서 혁신을 하겠다고 하는데, 그게 공감을 얻을 수 있을까?
 
이재명 : 그것은 조금 다른 측면의 문제다. 정치 집단은 일단 소통이 잘 돼야 신뢰를 얻는다. 그 다음에는 내용이 있어야 한다. 내용이 없으면 욕먹는다. 그 다음에 근본적으로 당의 체질을 바꾸는 방식으로 혁신을 하는 것이다. 사실 혁신안은 수없이 많다. 답은 국민이 다 알고 있다. 문제는 문제는 행동할 수 있느냐, 없느냐다. 용기와 결단의 문제다. 
 

▲ 야당이 정책적 능력이 많이 부족한 것이다. 대안 제시 능력의 부족이다. ⓒ프레시안(손문상)

홍준표와 나는 스타일이 비슷하다. 단, 정 반대 의미로!
 
프레시안 : 많은 분들이 능력을 가진 성남 시장이라면 조금 더 큰 정치를 계획했으면 하는 기대를 걸고 있는 것 같다. 총선은 안 나가신다고 하는데?
 
이재명 : 그걸 왜 나가나.(웃음)
 
프레시안 : 그러면 뭘 할 것인가?
 
이재명 : 저는 대통령, 국회의원, 도지사, 시장, 별 차이가 없다고 본다. 물론 굳이 놓고 고를 수 있다고 한다면 더 역할이 큰 것을 고르는 게 맞다. 그런데 역할이라는 것은 제가 마음대로 고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다만 현재 상태에서 최선을 다하면 길은 생긴다고 확신한다.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왔다. 시장하려고 산 것도 아니고, 변호사 되려고 대학 간 것도 아니다. 사실 대학교도 가려고 해서 간 것도 아니다. 최선을 다해서 가던 길인데, 이 자리까지 왔다. 좀 더 많은 영향력, 많은 권한을 가지면 좋죠. 그러나 그것조차도 내 뜻대로는 안된다. 그래서 제 기본 작전이 있다. 머리를 잡는 것은 어렵다. 꼬리를 잡는 것은 쉽다. 그러면 꼬리를 잠아서 몸통을 흔들어보자. 그런데 요즘은 몸통이 조금씩 움직이고 있는 것도 같다.(웃음) 
 
프레시안 : 더 큰 꼬리를 잡으면 어떨까? 
 
이재명 : 더 큰 꼬리를 잡으려고 쫒아다니면 지금 잡은 꼬리에 대해서도 최선을 다하지 못하게 된다. (웃음) 이런 얘기가 있죠. 멍멍이가 먹이를 입에 물고 가다가 물 속에 있는 자신을 봤다. 그것까지 먹으려고 입을 벌리다가 물고 있는 것도 떨어뜨렸다. 내가 성남시장 역할을 하는데, '시장 말고 뭘 해야지' 마음속으로 확정하게 되면, 지금 하고 있는 역할을 거기에 맞추게 된다. 그러면 현재 상태에서 최선을 다 하지 못하게 되고, 결국 나쁜 결과를 낳게 된다. (목표를 위해 시장직을) 이용하려고 하게 된다. 그러면 속된 말로 스텝이 꼬인다. 그러면 모든 것을 다 놓친다. 
 
프레시안 : 넘어지는 사람이 많았던 것 같다. 
 
이재명 : 확실하게 길이 생길 때까지 현재에서 최선을 다하는 게 좋다. 그 길을 막을 필요도 없다. 김어준 씨가 얼마 전에 '대통령하고 시장, 둘 중에 뭐 할 건데'라고 해서 '그러면 대통령 해야지' 했다. 단순한 질문이라면 그렇게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내 뜻대로 거기에 맞추는 (오히려) 그 길이 봉쇄될 수가 있다. 지금 단계에서는 제가 이렇게 복잡하게 얘기해야 해요.(웃음) 
 
프레시안 : 단순하게 말하면 그게 제목으로 나간다. 
 
이재명 : 그렇게 나는 절대 안하죠. (웃음) 아이가 몇 살이에요? 성남으로 빨리 이사 오세요. 성남시의 직간접적인 '시민의 권리'를 더해보자. 아이 낳으면 얼마 준다. 차액보육료 지원한다. 도서관 엄청나게 많다. 시내에 어린이집 많고, 학교 가면 밥 주고, 장난감 공짜로 빌려주고, 체험학습도 다 지원해준다. 그런 데가 어디 있나. 학교에서 학부모 모임하면서 식사하는 것도 지원해준다.(웃음) 
 
프레시안 : 시장이 바뀌면 어떻게 되나? 
 
이재명 : 그것은 운명이다. 일단 혜택을 주면 뺏기는 어렵다. 홍준표 지사 정도의 '용감함'이 없으면 못하는 거다.(웃음) 주민들을 괴롭히는 게 자기에게 표가 되는 상황을 만들었다. 황당한 거다. 홍 지사와 나는 비슷한 스타일이다. 단 '방향'이 완전히 다르다. (웃음) 그냥 인간적으로만 보면, 홍 지사는 남을 갑자기 배신하거나 하는 분은 아니다. 담백하고 인간적인 매력이 있더라. 
 

▲ 홍 지사와 나는 비슷한 스타일이다. 단 '방향'이 완전히 다르다. ⓒ프레시안(손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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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통일씨] '증오'대신 '관심'...발전적 활용 모색 필요
이승현 기자  |  shlee@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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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7.06  00: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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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은미 씨 페이스북 화면. [캡처사진 - 신은미 페이스북]

지난 1월 정부 당국에 의해 강제출국 조치를 당했던 ‘재미동포 아줌마’ 신은미 씨가 최근 평양에서 올리는 페이스북의 내용에 신경이 거슬리는 사람들이 많은 모양이다.

신은미 씨는 지난달 2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일본 강연을 마치고 지금 북한에 와 있다며 “틈나는 대로 북녘 동포들의 모습을 전하겠습니다"라고 보낸 후 진짜로 이날 오후 장충성당 미사, 옥류관 쟁반국수 점심을 시작으로 실시간 북녘 소식을 전해 주었다.

지난 3~4일에는 평양-원산간 이동 모습이 보이더니 5일에는 평양 칠골교회에서 진행된 주일 예배 모습이 올라왔다.

‘증오심’으로 가득한 댓글도 댓글이지만 신 씨의 평양행 자체를 문제 삼고 댓글을 중계하는 방식으로 증오를 증폭하는 일부 언론의 보도는 여간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 방북 중인 신은미 씨가 18시간 전에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2015년 7월 5일 평양시 만경대구역 칠골교회' 예배 모습. [캡쳐사진 - 신은미 페이스북]
‘국가보안법’도 있고 그에 앞서 모든 다른 생각을 때려잡을 듯한 ‘증오심’이 엄존한 가운데 페이스북으로 북녘의 모습이 실시간으로 전해지는 게 놀랍다.

 

거꾸로 그렇게 북녘의 모습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다는 사실과 또 다른 우리의 현실을 지배하는 국가보안법 및 ‘증오심’과의 상관관계가 너무나 비현실적이어서 놀랍다.

나아가 이런 기막힌 일들이 광복70년, 분단70년을 맞는 나라에서 여전히 벌어지고 있다는 것은 너무나 끔찍한 일이다.

“나는 이번 방북 체류 중에 평양에서 서울로 틈틈이 카톡을 보냈다.”

지난해 9월 25일부터 10월 6일까지 북한을 방문한 후 지난 2월 <통일뉴스>를 통해 방북기를 연재한 재미 최재영 목사는 ‘평양에서 서울로 카톡을 보내다’라는 제목으로 올린 글의 첫 문장을 이렇게 시작했다.

평양에서 보낸 카톡을 서울에서 받은 사람들은 답장에서 ‘국가보안법 위반’을 언급했다고 하면서 최 목사는 “21세기 첨단 사이버 세상에 살면서도 70년을 남과 북으로 나뉜 우리 민족은 언제까지 구석기시대처럼 살아갈 것인가를 생각하면 억장이 무너진다”고 심경을 밝혔다.

그러니 카톡은 자유로울 망정 우리는 국가보안법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고 그렇지만 국가보안법이 엄존하더라도 카톡은 날아다닐 것이라고 해야 할까?

고려호텔 화재 사진 등 평양발 ‘카톡’으로 전송

   
▲ 지난달 12일 외신을 통해 공개된 고려호텔 화재 장면. 카톡을 통해 유통된 것으로 사건 발생 하루가 지나 몇몇 언론사에 제공된 것으로 알려졌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 지난달 16일 평양 김일성경기장에서 열린 '2018년 월드컵 경기대회 아시아지역 예선전' 북한 대 우즈베키스탄 간의 예선 경기장면. 경기장 주변에 북측 브랜드 간판이 노출된 장면이 보도됐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지난달 12일 외신은 평양을 방문하는 외국인들이 주로 머무는 고려호텔 꼭대기에 검은 연기와 화염에 휩싸인 사진과 함께 “화재는 11일 오후 5시30분께 호텔 36층 복도에서 발생했다”는 소식을 타전했다.

또 지난달 21일에는 평양 김일성경기장에서 열린 ‘2018년 월드컵경기대회 아시아지역 예선전’ 북한 대 우즈베키스탄 간의 예선 경기(16일 진행) 장면 사진과 함께 ‘련못무역회사’, ‘맑은 아침’ 등 북한의 무역회사와 연합기업소의 광고판이 10여개나 처음으로 선을 보였다는 기사가 나오기도 했다.

고려호텔 화재 장면이나 북측 브랜드 간판이 노출된 월드컵 예선 경기 사진은 모두 카톡을 통해 유통된 것이며, 하루 또는 며칠이 지난 후 몇몇 언론사에 제공된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북한 주민들이 카톡을 사용하는 것은 아니며, 북한 내에 있는 외국인이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는 환경에 접했을 때 휴대폰 카톡을 하면 남측으로도 들어오는 것이다.

오랫동안 관련 사실을 주의 깊게 파악해 온 한 관계자는 최근 비공개 세미나에서 “북한에 머물고 있는 한국계 외국인 교수나 외교관들이 인터넷을 할 때 (카톡을)보내며, 물론 그것도 다 검열이 되고 있지만 자연경관 등을 올리는 것은 (북측 당국에서)눈감아 주는 상황”이라며, “우리(한국) 신문에 나오는 사진들이 북측 현지에서 실시간으로 들어오는 것은 분명하지만 주민들이 보내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카톡 서비스를 운영하는 다음카카오 측이나 정보 당국에서는 남북사이에 무선인터넷 등을 이용한 SNS통신이 기술적으로 가능하며, 북에서 해외로 나가는 데이터 통신의 전체 용량만 체크하는 것 같다고 파악하고 있다.

北, 중국도 허용않는 트위터 등 허용

신은미 씨의 경우,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SIM 카드를 샀더니 인터넷, 국제전화 모두 가능하네요”라고 말한 바 있다.

   
▲ 북한주민들과 관리들이 스마트 폰으로 노동신문을 읽고 있는 모습(2014년 9월). [자료사진 - 통일뉴스]

앞서 최재영 목사의 경험은 더욱 구체적이고 상세하다.

최 목사는 지난해 9월말d서 10월초까지 자신이 평양에서 겪은 바를 전하면서 “내가 이번에 사용한 북한의 인터넷 속도는 미국이나 한국과 전혀 차이가 없이 매우 우수한 성능이었으며, 특히 평양시내에서의 무선 와이파이(WiFi)는 매우 강력하게 터졌다”고 말했다.

나아가 “인터넷을 사용하는 도중에 버퍼링이나 끊김 현상도 전혀 없었으며, 차안이나 길거리를 걸으면서도 메신저와 국제전화를 불편함 없이 사용할 수 있었으며, 내가 거주하는 미국 보다 오히려 더 잘 터졌다”고 덧붙였다.

최 목사에 따르면, 평양에서는 아직 외국인에게만 허용하는 한계가 있긴 하지만 평양 통신국의 휴대전화 신호가 잡히는 곳이면 어디서든 외부세계와 자유롭게 통신할 수 있으며 아직 중국도 허용하지 않고 있는 트위터와 SNS 서비스를 북한에서는 무한 제공하고 있다.

북한에서 WCDMA(광대역 부호분할다중 접속) 휴대폰은 모두 사용할 수 있으며, 고려링크의 SIM카드를 꽂으면 한국을 제외한 전 세계 주요 국가들과의 국제전화가 가능하다.

요금은 가입비 204달러(심카드 구입비 84달러, 인터넷 가입비 120달러)와 매월 사용료 22달러(심카드 사용료 8달러, 인터넷 사용료 14달러)이며, 인터넷 데이터 요금은 50MB를 기본 제공하고 1MB 초과할 때마다 0.1유로를 월 기본 사용료와 별도로 납부해야 한다.

요금 충전은 북에서 통용되는 일종의 직불카드인 ‘나래카드’로 해야 하며, 요금 충전이 돼 있지 않으면 전화나 인터넷 연결이 전혀 되지 않는다고 한다.

   
▲ 고려링크사의 모바일 전용 심카드의 뒷면. [자료사진 - 통일뉴스]

평소에는 호텔 객실에 연결된 유선 인터넷을 노트북 PC와 연결해서 30분당 얼마의 사용료를 지불하고 사용하는 방법도 있다.

지난해 마식령스키장을 여행한 재미동포전국연합회 조명지 중남부 회장은 방북기에서 “마식령호텔에는 와이파이(WiFi)시스템이 설치돼 있어서 인터넷과 국제전화를 사용할 수 있었다”고 소개하기도 했다.

휴대폰 이용자 300만명, 인터넷 이용은 제한

이 같은 변화는 최근 몇 년 사이에 급격히 이뤄진 일이다.

지난 2013년 1월 7일 전까지만해도 평양공항의 수화물 검색대를 통과하는 외국인과 해외동포들은 갖고 있던 스마트폰이나 전화기를 무조건 공항요원들에게 반납해야 했다. 반납한 기기는 밀봉 처리된 후 특정 장소에 보관되었다가 출국하는 날 항공 티켓과 함께 되돌려 주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더욱 눈에 띄는 변화는 평양을 비롯한 북 전역의 휴대폰 사용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것.

현재 북측에서 적용하고 있는 3세대(3G) 무선이동통신 서비스는 지난 2008년 12월 ‘고려링크’라는 이름으로 조선체신회사와 이집트 오라스콤이 공동으로 시작한 것으로 2009년 평양 전역에 기지국이 세워져 시내 통신망 구축이 완성, 서비스 개시 1년 4개월만인 2010년 4월에는 이용자가 12만명을 넘었다.

그해 말까지 평양-향산, 평양-남포 고속도로를 비롯해 평양을 기점으로 한 주요 도로와 철도구간, 각 도 소재지는 물론 시·군소재지의 통신망을 정비, 60만 명에 육박할 만큼 이용자를 단기간에 확대했다.

   
▲ 보통강호텔 국기게양대 아래에 자리 잡은 통신기지국 안테나 모습. [자료사진 - 통일뉴스]

2015년 현재 북의 휴대폰 이용자는 약 300만 명에 달하며, 3G망을 통해 서비스할 수 있는 음성통화와 SMS(Short Mail Service, 단문자서비스) 뿐만 아니라 화상통화(TV전화), 음악배신(스트리밍 서비스) 등 대용량 고속통신을 확대하고 있다.

평양 거리에서 휴대폰으로 통화를 하는 주민들의 모습은 이제 더 이상 새로운 소식이 아니며, 휴대폰 화면을 터치하면서 거리를 걷는 사람들은 주의해야 한다는 보도가 나오는 상황이다.

안전상의 이유로 이미 북에서도 운전 중 휴대폰 사용에 대해서는 엄격하게 통제하고 있다. 

또 아직 북측 주민들이 국제전화를 걸거나 받을 수는 없으며, SNS 등을 통해 국제 인터넷 망과 연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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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돈으로 지뢰 제거했더니 불법이랍니다

 

DMZ 일원 실질적인 법규가 없다

15.07.05 19:18l최종 업데이트 15.07.05 19:18l

 

 

지난 6월 초의 일이다. 늦은 오후, 파주시에서 한 통의 전화가 왔다. 녹색연합에는 전국각지에서 수많은 문의전화가 온다. 본인의 답답함과 억울함을 토로하는 분들이 대부분이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제보를 해 오시는 분들이다. 

연락을 하신 분은 파주시 민간인통제구역(이하 민통선)에 출입하며 콩 농사를 짓는 분이었다. 여느 전화와 마찬가지로 답답한 마음이 한가득 수화기 건너에서 느껴졌다. 자신의 농토에서 지뢰를 발견해서 지뢰제거를 자비로 했는데, 국방부와 관할 부대에서는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도리어 불법을 저질렀다며 엄포를 논다는 것이다.

물론 처음 발견했을 때는 관할부대에 지뢰제거를 요청했으나 부대 여건상 불가하다는 통보를 받았다고 한다. 그래서 최근에서야 민간지뢰제거업자를 통해 자비를 들여 제거를 했는데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200여 발의 지뢰가 발견되었다고 한다. 관할부대에 수거라도 요청을 했지만 불법을 저질렀다는 황당한 답변만 돌아왔다는 것이다. 

우연치 않게 며칠 동안 DMZ 일원의 지뢰 지대 자료를 정리하던 중이었다. 1968년부터 민통선에는 민간인들의 정착이 시작되었고 부분적인 출입을 통해 영농이 가능하게 되었다. 민통선 정착 1세대들은 "전쟁과 같은 개척을 통해 땅은 옥토로 변해갔다"라며 한 잡지사와 한 인터뷰에서 그 시절을 회상한다. 안타깝게도 현재 민통선 주민들의 어려움은 예전과 별반 다르지 않다. 며칠 후 파주시 장단으로 급히 발길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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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일대교 통일대교의 끝자락이다. 저 너머 관문을 지나면 민간인통제구역이다. 파주시 장단면이다.
ⓒ 녹색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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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뢰 제거가 군인의 임무 아닙니까?"

자유로를 쉴 새 없이 달려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는 통일대교 끝자락까지 왔다. 민통선 출입절차를 마치고 차량내비게이션에는 표시되지 않는 도로를 20여 분 남짓 지나 한적한 농지에 도착하게 되었다. 여느 농촌 농지들과 다름없어 보였지만 곳곳에는 얇은 철조망과 함께 역삼각형의 붉은 안내판에 '지뢰, MINE'라고 적혀있다.  

그곳에서 제보전화 주인공을 만날 수 있었다. 본인을 예비역 중령 출신이라고 소개한 이 분은 누구보다 지뢰와 군 시설에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계신 분이었다. 우리 일행을 반갑게 맞아주시는 것과 동시에 본인의 답답함을 연신 토로하기 시작했다. 이야기 중간중간에 우리와 동행한 군 관계자들에게도 뼈있는 일침을 놓는 걸 잊지 않으셨다.

"군인이면 군인답게 행동해야 할 것 아닙니까! 지뢰를 매설하는 것도 또 제거하는 것도 군인의 임무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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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뢰지대표시 제보농민의 농지 바로 옆에 위치한 지뢰지대 표식이다.
ⓒ 녹색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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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의 사유지 VS 군사시설 

제보를 한 농민의 입장과 이 지역을 관할하는 군 당국의 입장은 엇갈렸다. 문제의 논점은 이러했다. 

- 제보농민의 입장
"민통선 이내에서 농사를 짓고 있지만 엄연히 개인의 사유지이다. 설사 그 안에서 미확인지뢰가 발견되었다 하더라도 군에서 제거를 해주어야 한다. 관할사단과 국방부에 지뢰제거를 수차례 요청했고, 해당 지자체와 지적공사에 행정조치를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위험을 무릎 쓰고 스스로 지뢰제거를 한 것이다. 지뢰제거를 해야 해당 농지에 대한 재산권을 제대로 행사할 수 있기 때문에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군사시설을 자꾸 운운하는데 그렇다면 사유지가 안에 있으니 보상을 해주어야 하는 것 아닌가?"

- 군 당국의 입장
"해당 농민이 문제를 제기한 농지는 최초 민원이 접수된 2010년에 미확인지뢰지대로 확인되었다. 해당 지역의 미확인지뢰지대는 군사시설로 분류되고, 민간인의 생명과 안전을 위해 출입금지를 권고했었다. 미확인지뢰지대는 군 작전상 보호되어야 하고 군인들만이 공식제거장비를 통해 제거할 수 있다. 민간업자에 의해서 군의 통제 없이 지뢰를 제거한 것은 군사시설을 훼손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군사기지 및 군사시설보호법 24조 1항에 의거하여 군사시설을 손상시킨 자는 3년 이하의 유기징역에 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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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밭 = 지뢰밭? 제보농민이 지뢰를 제거한 밭이다. 96년부터 제보농민은 지뢰의 존재를 모른 채 15년 이상 콩농사를 지어왔다.
ⓒ 녹색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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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확인지뢰지대 = 군사시설? 

양측이 팽팽히 맞서는 가운데, 명백히 서로 동의할 수 있는 지점은 있었다. 이 지역이 미확인지뢰지대는 확실한데 군사시설보호법에 따라서 미확인 지뢰지대를 군사시설로 볼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맞다, 아니다" 서로 주장은 하고 있지만 그 판단근거를 확실히 이야기하는 사람이 없었다. 지뢰를 두고 유관법률을 적용함에 있어 분명한 공백이 있었고, 입법상의 미비함이 분명히 드러나는 지점인 것이다.

하지만 군은 판단근거로 이야기하고 있는 '군사기지 및 군사시설보호법'을 두고 명확한 유권해석 없이 자의적인 해석만을 해왔다. 합동참모본부(이하 합참)의 법리해석과 군교본 상의 정의를 두고 불법을 운운하고 있었던 것이다. 법무부의 공식적인 견해도 없었고, 명확한 판례도 없었다. 

'해당 미확인지뢰지대는 군 작전상 보호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현재 관할 사단은 고수하고 있다. 하지만 2010년 당시에는 작전성이 소멸된 지역이라고 밝힌 바 있다. 관할사단 내부에서도 지뢰지대를 명확한 현황파악 없이 관리하고 있음을 간접적으로 말해준다. 또한 군에서 설정한 지뢰지대 안에는 실제로 지뢰가 존재하지 않는 경우도 상당하고, 지뢰지대로 규정하지 않은 이 같은 곳에 지뢰가 더 많이 산재해 있다는 것이 동행한 민간지뢰제거업자의 주장이었다. 실질적인 조사 작업 없이 문서상으로 인수인계만 60여 년 동안 해오다 보니 발생한 부작용이라는 것이다.

군당국은 해당 지역을 지목상으로 '임(임야)'로 분류하고 있다. 하지만 등기부등본상에는 '전(밭)'으로 분류하고 있다. 민통선 안은 군 전체가 관할하는 지역이 아니다. 행정부가 관할하는 곳이기도 하고 명백히 민간인이 재산권을 행사할 수 있는 곳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지뢰지대에 대한 국방부와 행정부 간에 유기적인 관리 가이드라인도 없을뿐더러, 가장 기본적인 문서에서조차 손발이 맞지 않아 보인다. 

"제거를 하기에는 군의 능력이 부족하다"라면서 군이 보낸 공문은 모든 사안을 종식시킨다. 시간과 예산의 문제이다. 광활한 지역을 모두 처리하는 데 시간도 오래 걸리고 예산도 많이 든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지뢰를 제거하는 데 약 400년이나 걸린다는 것이다. 합참의 지뢰제거예산 상에는 평당 20만 원이 드는 것으로 나와 있다. 하지만 민간지뢰제거업자들은 평당 3만5천 원의 공임비를 받고 있다. 제거 시간도 현격히 차이난다.

군의 장비로는 하루에 10m 정도를 탐지(제거) 할 수 있지만 민간의 기계장비로는 하루에 200평을 평균적으로 탐지할 수 있다는 것이 업자의 주장이다. 물론 편차는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상식적으로 이해 안 되는 현격한 편차이다. 비용과 시간을 어려움으로 이야기하고 있지만 군 당국에서 가용한 지뢰제거기술과 기준을 모두 적용하였는지 또는 상식적인 비용산출이 되었는지 의문이 드는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군 당국과 정부의 의지문제가 이 사안에서는 더 두드러져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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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농지와 도로, 그리고 지뢰지대 지뢰지대는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서로 위태롭게 공존하고 있다.
ⓒ 녹색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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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왜 시민단체에까지 연락을 해서 이 난리 피는 줄 아느냐?" 

1시간 여의 논쟁 끝에 제보 농민이 마지막으로 이야기한다.

"내가 왜 시민단체에까지 연락을 해서 이 난리를 피우는 줄 아느냐? 여기 주위에 사람들! 서부전선 전체에서 나처럼 미확인지뢰지대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많아요. 이렇게 어렵게 농사짓고 있어요. 어떤 이야기인가 하면, 민간인들은 지뢰가 있다고 신고 안 합니다. 그냥 묻어 버려요. 신고가 들어가는 순간, 경계병 2명 데리고 와서 테이프치고 아무 것도 못 하게 해요. 농사 못 짓게 하는 거예요. 지뢰제거를 돕지는 못할망정, 막는 것만이라도 하지 말아주세요."

오늘과 같은 일은 흔치 않은 사례다. 해당 민원인이 예비역 육군공병출신이어서 군 관련 지식이 있고 또한 의지를 가지고 대응을 해왔기에 적어도 관할 부대 측과 논쟁이라도 가능했다. 하지만 민통선 내에서 경작하는 주민들은 지뢰와 엮이면 쉬쉬하는 것이 보통이다. 군대에 밉보일까 벙어리 냉가슴 앓는 주민들이 대부분인 것이다. 실제로 제보농민의 밭 건너에서 지난달에도 폭풍지뢰(M14 대인지뢰)가 터졌으나 신고가 된 건 없었다. 

지뢰사고 피해자들이 신고를 하지 않는 이유로 ▲ 보상 및 배상에 대한 절차를 몰라서(128명) ▲ 군부대에 밉게 보이면 불이익을 당할까봐(33명) ▲ 사고가 나도 본인 책임이라는 각서 때문(11명)이라는 내용이 발표된 바도 있다(평화나눔회 2011년 조사, 228명 대상). 심지어 지뢰사고 피해를 당해도 이 정도인데 이외의 일들은 오죽할까. 60여 년 동안 이어져 온 국방부의 근거 없는 불도저식 대응에 주민들은 벙어리로 살아온 것이다.

잿밥에만 관심 있는 정부, DMZ 일원 교통정리부터 서둘러야

앞서 언급한 것처럼 지뢰는 군인만 제거할 수 있다고 한다. 물론 이 또한 명확한 법률적 근거는 없다. 국방부의 주장이다. 어디까지나 군 당국의 자의적인 해석에 근거한다. 하지만 때에 따라 민간제거업자에게 용역을 맡기고 대대적으로 지뢰를 제거한 사례는 쉽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경의선 개발사업이 대표적인 예이다. 또한 최근에는 DMZ생태평화공원을 만들겠다며 대규모 지뢰제거용역사업도 진행되고 있다. 일관성 없는 정부의 의지와 의도가 어디에 쏠려 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155마일, 248km의 군사분계선을 경계로 2km씩 한계선을 설정한 지역이 DMZ이다. DMZ 외곽의 민간인통제구역을 포함해 DMZ 일원이라고 부른다. 철책선을 따라 이어진 DMZ 일원은 60여 년의 분단역사가 만들어 놓은 지구상 유례없이 특수한 생태계를 간직하고 있다. 백두대간, 연안·해양과 함께 보전해야 할 3대 생태축중에 하나이다.  

하지만 정부는 겉으로 평화적인 생태계 보전이라 말하고 그 안에는 다른 속셈을 늘 갖고 있은 듯하다. 생태계 보전이라는 구호만 흩날리고 있고 생태평화적인 가치를 빙자한 대형개발사업들만이 DMZ 일원에서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 와중에 정전이 만들어 놓은 수많은 부작용들은 정부의 뒷전에서 계속 쌓여가고만 있다. 제보농민이 겪고 있는 군사보호구역과 민간이용지역의 충돌문제가 대표적인 정부의 관심 밖 사안이다.

DMZ 일원에 대한 정부의 일관성 없는 입장과 실질적인 법규의 부재로 인해 국방부는 자의적으로 기존 법규들을 해석하고 있다. 근거 없이 주민들의 사유지에서 엄포를 놓고있는 것이다. 호랑이 없으니 여우가 왕 노릇 하는 꼴이다. 생태계 보전의 가치, 대북평화적인 가치, 주민들의 삶이 모두 고려되는 정부의 일관성 있는 입장과 조치가 필요한 시점이다.

DMZ생태계 보전적 가치는 정부가 이용할 할 잿밥이 아니다. 오롯이 그 생태적 가치로 바라보아야 하는 것이다. DMZ 일원 주민들의 삶 또한 국방부가 좌지우지 할 사안이 아니다. 정전 후, 60여 년 동안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정리되어 온 것이 없다. 정부는 무엇이 먼저인지 교통정리부터 서둘러야 한다. 지뢰지대의 등기부등본부터 제대로 파악하고 군부대의 문서부터 제대로 파악하길 바란다. 

메르스가 온 나라를 들쑤셨다. 정부가 국민들을 셀프방역으로 내몰았는데 셀프의 범위는 어디까지일까? 지뢰 제거도 셀프시대인가?


○ 편집ㅣ손병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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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단체, 7.4공동성명 이행 미군 철수집회

"자주없이 통일없다, 미국 탄저균 들고 떠나라"
 
시민단체, 7.4공동성명 이행 미군 철수집회
 
이정섭 기자 
기사입력: 2015/07/04 [21:29]  최종편집: ⓒ 자주시보
 
 

 

▲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코리아연대가 주최한 7.4공동성명 이행 촉구와 박근혜 퇴진을 위한 집회에서 박근혜 정권을 퇴진 시키고 미국을 몰아내야 7.4공동성명에서 천명한 자주. 평화 . 민족대단결에 의한 통일이 이루어 질 수 있다고 확인했다.     © 자주시보 이정섭 기자

 

시민사회단체 회원들과 시민들이 7.4남북공동성명 발표 43돐을 맞아 박근혜 정부에게 7.4공동성명 이행을 촉구하고 미국은 더 이상 전쟁 분위기를 조성하지 말고 탄저균을 갖고 떠라고 요구했다.

 

코리아 연대가 4일 오후 4시 미국대사관 인근에서 주최한 자주평화통일민족대단결 실현 박근혜반통일정권퇴진 촉구집회에는 민가협 어머니들과 양심수 후원회 기독교계 목사들이 참여한 가운데 진행 되었다.

 

범민련 남측위원회 이천재 고문은 "7.4 공동성명은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의 3원칙으로 된 가장 정당했던 통일의 이정표가 되었다"면서 "박근혜 정부는 외세의 개입없이 자주적으로 전쟁을 일으키지 않는 평화적 방법으로, 민족의 일부가 아닌 8천만 모든 겨레가 손잡고 나아가는 민족대단결 정신을 존중해 남북관계를 개선하고 통일을 위한 길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 양심수 후원회 권오헌 명예회장이 조국통일 3대헌장과 남북불가침협정, 6.15. 10.4 남북정상은 우리민족에게 가장 합리적인 통일 방안이라며 박근혜 정부가 이를 이행하야한다고 강조했다.     © 자주시보 이정섭 기자



두 번째 연설자로 나 선 문대골 목사는 "함석헌 선생은 통일을 조심스럽게 이야기하라고 장준하 선생에게 말했다."면서 "그러나 장준하 선생은 모든 통일은 좋다고 본다고 말했다."고 통일의 중요성을 상기했다.

 

문대골 목사는 "7.4 공동성명은 크게 3가지를 말하고 있다"며 "첫째는 외세 개입없이 우리 스스로가 한다는 것이다. 둘째는 전쟁없이 평화적으로 통일을 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전쟁연습을 계속하고 있고, 우리민족을 향해 탄저균과 독성이 10만배나 강한 보톨리늄을 남쪽 5군데에서 시험하고 있다. 이는 평화통일 정신에 어긋나는 것으로 우리는 줄기차게 평화를 주구해 나가야 한다. 마지막으로 정치사상, 정견과 신앙을 초월한 민족대단결 정신에 의한 통일이다. 남과북 8천만 겨레가 대동단결하여 통일을 이루어 나가자."고 호소했다.

▲ 우리사회 연구소 권오창 이사장은 7.4공동선언 이행으로 조국의 자주 평화통일을 이룩하자고 호소했다.     © 자주시보 이정섭 기자

 

양심수 후원회 권오헌 명예회장은 "우리가 분단 된 이후 단선단정 반대 투쟁에 이어 제정당 사회단체 연석회의가 우리민족의 통일운동 시작이었다"며 입을 연 뒤 "결정적으로 통일운동을 촉진한 것은 7.4 남북 공동성명이었다. 7.4 공동성명은 남북불가침 선언과 6.15남북공동선언, 그리고 10.4 선언으로 맥을 이어왔다."고 7.4 공동성명의 중요성을 피력했다.

 

권오헌 명예회장은 "자주를 빼 놓고 통일을 생각할 수 없다. 우리가 전쟁을 겪은 것도 우리민족의 싸움이 아니라 외세에 의해 벌어진 것이다"라며 "어느쪽이든 흡수통일이나 전쟁으로 통일을 이루려 한다면 우리 모두는 발 벗고 막아 나서야 한다."자주적이고 평화적인 통일을 역설했다.

 

권 명예회장은 "7.4 공동성명은 또 사상과 이념, 체제를 초월해야 한다. 분단 70년 세월을 지내 온 남과북은 하나의 체제로 통일되기는 어렵다 서로의 체제와 이념을 인정하는 가운데 이루어 져야 한다. 흡수통일은 전쟁을 전제로 한것이기 때문에 이를 경계해야 한다."고 민족대단결의 중요성을 거듭 피력했다.

 

그는 "우리민족의 통일 희망은 7.4 공동성명.  6.15선언, 10.4선언에 있다"며 "정부 당국은 이미 남북 정상들이 합의하고 선포한 합리적인 통일 방안들을 이행하고 우라모두는 이 기치를 높이들고 조국통일을 위해 나서야한다"고 촉구했다.

 

▲ 코리아 연대 김경구. 이미숙 회원이 탄저균 갖고 미국은 떠나라는 현수막을 펼치고 미국대산관 진격 투쟁을 벌이다 경찰에 연행 됐다.     © 자주시보 이정섭 기자

 

우리사회 연구소 권오창 이사장은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로 조국통일을 이룩해야 한다."는 구호로 발언을 시작했다.

 

권오창 이사장은 "박근혜 대통령이 불법으로 당선 되고 나서 민주주의는 짓 밟히고 독일에 가서 드레스덴 선언을 하고 나서는 자주통일에 엄중한 난관이 조성 되었다."고 비난했다.
권 이사장은 "박근혜 대통령은 통합진보당 성원들을 구속하고 미국에서 탄저균을 들여 오더니 북인권사무소를 서울에 설치했다. 통일대박을 말하면서 통일인사들을 마구잡아들이고 5.24 조치를 존치시키고 있다. 5.24조치와 드레스덴 선언이 같은지 다른 것인지 박근혜 대통령은 대답해야 한다. 대답 여하에 따라 통일이 대박인지 쪽박인지 가늠할 수 있다."고 꼬집었다.

 

그는 "박근혜를 퇴진 시키는일이 조국통일을 앞당기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집회 참가자들은 7.4 공동성명을 이행하고 남북관계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이번 8.15민족공동행사를 보장하느냐 마느냐에 있다며 민족공동행사 실현을 위해 투쟁해 나가자고 결의했다.

▲ 문대골 목사가 대사관 진격 투쟁을 막는 경찰들에게 우리국민 다죽이려는 미국을 경찰이 옹호하느냐며 강력항의해 나섰다.     © 자주시보 이정섭 기자

 

한편 이날 오후 3시40분경에는‘자주통일과 민주주의를 위한 코리아연대’가 ‘탄저균 가지고 미국은 떠나라’라고 적힌 현수막을 펼친 채 전단을 뿌리며 광화문 미국 대사관 정문으로 진격 투쟁을 벌였다.

 

이들이 미국 대사관 정문에 도착하자 경찰이 막아서며 대치가 시작되었다. 경찰과 대치 끝에 이 단체 소속회원 이미숙씨(39.여)씨와 김경구(38)씨가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체포돼 관악경찰서로 연행됐다.

 

이 광경을 목격한 기독교평화연구소상임고문 문대골목사는 경찰이 "박근혜를 위할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을 위해야 한다. 국민 다 죽이려는 탄저균 들여오는데 경찰이 국민을 위해야지, 미군 위하는 거냐"며 경찰에 강력 항의해 나섰다.
 

이날 집회 참가자들은 미국 대사관 앞을 떠나 광화문 세월호 농성장을 지나 통일부 앞까지 행진을 마친 후 자진해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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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권력욕 꺾은 뒤 총선, 진보는 왜 참패했나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 <106> 조봉암과 진보당, 열네 번째 마당
김덕련 전 기자2015.07.04 07:21:21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쉽게 흔들리지 않는 법이다. 사회 전반의 분위기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이른바 진보 세력 안에서도 부박한 담론이 넘쳐나는 이 시대에 역사를 깊이 있게 이해하는 것이 절실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러한 생각으로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를 이어간다. 서중석 역사문제연구소 이사장은 한국 현대사 연구를 상징하는 인물로 꼽힌다. 매달 서 이사장을 찾아가 한국 현대사에 관한 생각을 듣고 독자들과 공유하고자 한다. 열 번째 이야기 주제는 조봉암과 진보당이다.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 

[이야기 마당 1∼3] 한국전쟁 

[이야기 마당 4∼8] 친일파 

[이야기 마당 9∼15] 학살 

[이야기 마당 16∼31] 해방·분단 

 

[이야기 마당 42535.16쿠데타 

[이야기 마당 5462] 제3공화국 

프레시안 : 조봉암이 세상을 떠난 지 1년도 되지 않아 이승만 정권은 무너진다. 4월혁명 시기에 조봉암이 살아 있고 진보당이 건재했다면 상황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울러 4월혁명 시기에 나타난 여러 운동은 조봉암과 진보당이 추구했던 새로운 대한민국을 향한 꿈과 이어져 있다고 볼 수 있다. 그 부분을 하나하나 짚었으면 한다.


서중석 : 조봉암은 1959년 7월 31일 교수대에서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그로부터 아홉 달 후에 4월혁명이 일어나 1960년 4월 26일 이승만이 물러난다. 일반적으로 사형수의 경우 바로 형을 집행하지 않고 보통 1년에서 3년 정도는 놔두지 않나. 9개월만 사형을 집행하지 않았더라면 조봉암이 4월혁명 시기에, 그리고 이승만 하야 이후에 얼마나 중요한 활동을 했겠나. 그러나 조봉암은 죽었다. 조봉암이 죽은 상태에서 진보 세력이 과연 얼마만큼 일을 잘해나갔는가, 조봉암의 평화 통일론이라든가 피해 대중을 위한 정치의 본뜻을 얼마만큼 잘 살려갔는가 하는 걸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물론 4월혁명 시기에 엄청난 변화가 이뤄지고 새로운 분위기가 생기기는 했다. 그러나 혁신계가 거기에 부응할 만한 활동을 했는가 하는 것에 대해서는 더 많은 연구, 논쟁이 있어야 할 것 같다.

어쨌건 이승만 정권이 붕괴하면서, 1958년 2.4파동 때 문제가 됐던 그 국가보안법이 1960년 5월 30일에 개정되고 6월 15일에는 내각 책임제로 개헌한다. 내각 책임제로 이제 총리가 행정을 맡는다는 것 못지않게 이 개헌에서 중요했던 건 법관 선출제를 도입하고 헌법재판소,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등을 새롭게 헌법 기관으로 하는 것 같은 다른 제도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예컨대 법관 선출제에서는 대법원장과 대법관을 선거인단에서 뽑게 돼 있었다. 실제로 1961년 5.16쿠데타가 나기 직전에 그 선거인단을 구성하기 위한 작업에 들어갔었다. 법관은 대법관 회의에서 결의하는 것에 따라 대법원장이 임명하도록 돼 있었다. 5.16쿠데타가 일어나면서 실현되지는 않았지만, 그야말로 법원을 독립시키는 헌법을 만들어낸 것이다. 아울러 헌법재판소를 상설 기구로 만들었고 중앙선거관리위원회도 헌법 기관으로 만들었다. 그러면서 언론, 출판, 집회 등에 대한 여러 가지 자율 조치가 이뤄지게 된다.

4월혁명 후 총선에서 혁신계가 참패한 이유

프레시안 : 이승만이 국민들에게 쫓겨난 후 석 달여가 지난 1960년 7월 29일 총선이 실시된다. 4월혁명을 계기로 진보 세력은 상승 국면에 접어들었고, 때로는 후보 등록조차 어려웠던 그 이전 선거들에 비하면 여러모로 나은 조건에서 선거를 맞이했다고 볼 수 있다. 혁신계는 이 선거에 어떻게 대응했나.

서중석 : 7.29총선은 우리나라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실시된 양원제 선거였다. 여러 사정을 고려해 민의원과 참의원을 동시에 선거하도록 했다. 이 선거에서 처음에는 '혁신계가 30석 정도 확보할 것'이라고 신문에 보도되고 그랬다. 그렇지만 조금 지나니까 '이 선거에서 혁신계는 별 볼 일 없고 성적이 별로 좋지 못할 것'이라고 계속 보도되는 걸 볼 수 있다.

당시 혁신계는 몇 개로 난립해 있었다. 제일 큰 건 사회대중당이었다. '사대당'이라고 불렸는데 서상일, 최근우, 별 성(星) 자 쓰는 김성숙, 그리고 김달호와 윤길중 같은 진보당계가 다 여기 들어왔다. 최근우는 예전에 근로인민당에서 활동한 사람으로 여운형 계통이다. 그다음에 장건상을 대표로 한 혁신동지총연맹, 전진한과 이룰 성(成) 자 김성숙이 중심이 된 한국사회당이 있었고 고정훈은 구국청년당을 만들었다. 이렇게 혁신계가 갈라졌다는 점도 있었지만, 사회대중당 내에서도 서상일계하고 진보당계는 원수 사이였다. 아주 사이가 나빠서 상대방을 서로 떨어뜨리려고까지 했다. 진보당 사건 때 서상일이 아주 나쁘게 증언했기 때문인데, 그런 것이 4월혁명 후 활동에도 작용한 것이다.

이 선거에서는 민의원이건 참의원이건 민주당에서 압도적으로 당선됐다. 조직도 잘돼 있었고 자금도 풍부했지만 '자유당 때 너무 당하고 불쌍하지 않았느냐', 이런 것도 큰 역할을 했다. 그래서 그야말로 압도적인 다수가 됐다. 그렇지만 사실은 민주당의 신파와 구파는 정당을 같이할 사람들이 아니었기 때문에 거의 반반으로 쪼개진 정당이 된다고 볼 수 있다.

이와 달리 진보 세력은 '정말 이렇게 무력할 수 있느냐'고 이야기할 정도로 선거 결과가 아주 나빴다. 233명을 뽑은 민의원 선거에서 사회대중당 4명, 한국사회당 1명밖에 당선되지 못했다. 참의원은 58명을 뽑았는데 사회대중당, 한국사회당, 혁신동지총연맹에서 각각 겨우 1명씩 됐다. (이 선거에서 민주당 당선자는 민의원 175명, 참의원 31명에 이르렀다. '편집자') 2004년에 민주노동당이 10석을 확보하는 것과 비교하면 이때는 민의원과 참의원을 다 합쳐도 그만큼에도 미치지 못한 것이다. 그런 면에서도 2004년 민주노동당 국회의원 10명 당선은 상당히 의미가 있는 일이었다. 그런데 4월혁명기에 혁신계가 이렇게 적게 당선됐어도 영향력은 사실 민주노동당보다 훨씬 컸다.

프레시안 : 혁신계가 참패한 이유는 무엇인가. 민주당이 압승한 이유 중 하나로 '이승만 정권 때 많이 당했다'는 것을 들었는데, 그때 당한 것으로 치면 혁신계가 훨씬 심하지 않았나.

서중석 : 왜 이렇게까지 혁신계가 무력했느냐. 우선 혁신계에서 정책으로 내세운 것을 민주당이 같이 내세운 게 많았다. 복지 정책 같은 걸 민주당이 막 내세우고 그랬다. 그래서 혁신계에서 내건 것하고 그렇게 큰 차이가 나지 않았다는 점이 작용했다. 또 혁신계에서 통일 문제에 대해 약간 주장하자, 예전에 자유당이 했던 수법 그대로 민주당이 혁신계를 용공 세력으로 몰아친 것도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이때 통일 문제와 관련해 혁신계에서 그렇게 강하게 주장한 것도 아닌데, 민주당은 서상일이나 장건상의 주장에 대해 그런 식으로 공격했다.

무엇보다도 혁신계는 감옥소에 많이 드나들어서 이미 무력한 존재가 돼 있었다. 혁신계 인사들 중에서 나이 먹은 할아버지들은 수염이 허옇고 그랬는데, 지방에 있던 사람들은 자기 지역에 대한 영향력도 별로 없었다. 말하자면 혁신계의 대다수는 지명도도 별로 높지 못했다. 그리고 조직력, 자금 이런 데서는 워낙 떨어졌다.

사실 4월혁명 공간으로 새로운 사회가 열리고 커다란 변화가 일어난다고 하지만 그건 지식인, 학생 같은 세력을 중심으로 일어났다. 농민들을 포함해 다수의 일반 서민들에겐 1950년대에 반공주의가 오히려 내면화·체질화되고 있었다. 그렇게 된 데에는 조봉암과 진보당, 진보 세력이 이승만 정권 때 당했던 것, 그에 더해 한국전쟁 시기에 주민 집단 학살이 그토록 심했던 것들이 영향을 끼쳤다고 볼 수 있다. 그런 속에서 반공주의가 내면화·체질화되고 있었던 것이 7.29총선에도 영향을 끼쳤다고 할 수 있다.

예컨대 윤길중이 강원도 원성군(오늘날 원주)에서, 서상일이 대구에서 당선은 됐지만 이 사람들이 무소속으로 나왔으면 표를 더 많이 얻었을 것이다. 그런데 혁신계로 나왔기 때문에 주민들이 두려워하는 면이 있었다. 이런 여러 상황을 볼 때 혁신계는 과연 살아남을 수 있겠는가 하는 기로에 놓여 있었다.

 

▲1960년 4월혁명 후 치러진 7.29총선에서 혁신계는 기대를 모았으나 결과는 그에 한참 미치지 못했다(사진은 2012년 18대 대선 당시 투표 모습). ⓒ프레시안(최형락)

 

 

이승만이 쫓겨난 후 수면 위로 떠오른 민간인 학살 문제

프레시안 : 7.29총선이 치러진 지 얼마 후 지방 자치 선거가 실시된다. 혁신계는 어떤 모습을 보였나.

서중석 : 혁신계의 몰락을 더 확실하게 보여준 것이 1960년 12월 네 차례에 걸쳐 치러진 지방 자치 선거였다. 우리나라 역사상 처음으로 실시된, 그리고 1995년 김영삼 정권 때 지방 자치 단체장 선거까지 치러지기 전에는 실시되지 않았던 전면적인 지방 자치 선거였다. (지방 자치 선거는 5.16쿠데타 후 사라진다. 그 후 1991년 지방 의회 선거가 부활하고, 1995년 지방 자치 단체장 선거까지 실시된다. '편집자') 이때 서울특별시장 선거는 기명식 투표, 그러니까 자신이 찍으려는 시장 후보의 이름을 써넣어야 하는 전무후무한 방식으로 치러졌다. 이 선거에서 혁신계는 정말 완전히 몰락했다. 사회대중당에서 도의원이 2명 정도 된 것을 빼놓으면, 당선됐다고 내세울 만한 걸 찾아보기가 어려웠다. 총선 때보다도 훨씬 더 몰락한 모습이 지방 자치 선거에서 나타난 것이다.

그런데 그때쯤 해서 혁신계가 새로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 비록 분열은 됐을망정 김달호를 중심으로 사회대중당이 새롭게 출범했고, 장건상과 진보당의 젊은 사람들이 혁신당을 만들었으며, 옛날에 여운형과 함께했던 근로인민당 계통이 중심이 돼서 사회당을 만들었다. 그리고 서상일, 윤길중, 고정훈, 그리고 한자를 달리 쓰는 두 김성숙 같은 명망가들이 이동화를 당 대표로 해서 통일사회당을 만든다. 통일사회당은 혁신계에서 가장 지명도가 높은 당이었는데, 1961년 1월에 출범한다. 총선과 지방 자치 선거에서 몰락했던 혁신계가 1961년에 들어가면서 영향력을 상당히 확대하는 데에는 통일 운동하고 2대 악법 반대 투쟁이 큰 역할을 했다.

프레시안 : 극우 반공 세력의 위세에 눌려 진실을 밝힐 수 없었던 사안들이 4월혁명을 계기로 각계에서 제기된다. 대표적인 것 중 하나가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 문제다.

서중석 : 한국전쟁 시기는 물론이고 이승만 집권기 전체에 걸쳐 억울한 일, 잘못된 일이 굉장히 많지 않았나. 그렇기 때문에 이승만 정권 붕괴 후 그런 것들의 진상을 규명하려는 운동 같은 것이 벌어지는 건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1951년 학살 당시 경남 거창 신원면장이던 사람이 1960년 5월 11일 타살되는 것을 계기로 주민 집단 학살 문제가 수면 위에 떠오르게 된다. 이때 서울에 있던 중앙지들도, 지방 신문들도 이 문제에 대해 보도를 많이 했다. 그때만 하더라도 학살된 지 10년 정도밖에 안 된 시점이었기 때문에 버려진 유골 모습 같은 것들이 아주 생생하게 사진으로 찍혀 신문에 나오고 그랬다. 그러자 자유당과 민주당으로 구성된 '양민 학살 사건 특별 조사 위원회'가 생겨나고, 각지에서 유족회가 만들어져 진상 규명, 명예 회복, 유골 안치 등을 요구하는 활동을 펼치게 된다. 이때 유족회는 대부분 경상남북도와 제주도 쪽에서 만들어졌다. 전라도의 경우 함평 정도를 제외하면 눈에 띄는 것이 별로 없었다.

학살 문제뿐만 아니라 이승만 집권기에 발생했던 다른 사건들 즉 김구 암살 사건, 조봉암 사건, 김성주 고문 사망 사건, 장면 부통령 저격 사건도 아주 크게 쟁점이 됐다.

"비겁합니다! 선생님" 제자들의 질타에 새로 태어난 교사들
 

ⓒ오월의봄

프레시안 : 이승만 정권이 무너진 후 노동 운동도 활발하게 전개된다. 이 시기 노동 운동을 대표하는 것이 교원 노조라는 점이 눈길을 끈다.

서중석 : 교원들은 당시 최대의 지식인 집단이었다. 해방 직후도 비슷했지만 1950년대에 지식인들이 취직할 수 있는 데가 그리 많지 않았다. 이 사람들은 대개 교사가 됐는데, 그게 제일 쉬웠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교사가 지식인 집단으로는 제일 큰 집단이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 1950년대 이승만 정권의 동원 정책, 부정 선거에 참 많이 동원됐다. 북진 통일 운동 현장에도 학생들을 이끌고 얼마나 많이 가야 했나.

그래서겠지만 이승만 정권이 붕괴하고 나서 이틀 후인 1960년 4월 28일 대구 중·고등학교 교원들이 교원 노조를 발기했다. 그걸 시작으로 각지에서 교원 노조 결성을 위한 활동이 전개됐다. 그러자 허정 과도 정부는 교원 노조를 해체하라고 지시하고, 용납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취했다. 그러면서 법정 싸움이 벌어지고, 교원 노조 간부들이 극한투쟁을 벌이고, 정부에서는 교원 노조 간부들을 전보 배치하는 등의 사건이 연달아 신문 지면을 장식한다. 그렇지만 장면 정부 수립(1960년 8월 23일) 다음다음 날인 8월 25일 대구고등법원에서 '교원 노조 조직 자체는 합법'이라는 판결을 했다. 그러자 장면 정부는 '결성권은 인정한다. 그러나 쟁의권은 인정할 수 없다'는 것으로 방침을 정리한다.

1960년 8월말 기준으로 초·중·고 교사 7만5000명 가운데 2만2000명이 교원 노조에 소속된 것으로 돼 있다. 경남에서는 교사들의 90퍼센트, 경북에서는 70퍼센트가 조합원이었다. 교사들의 90퍼센트, 70퍼센트면 압도적인 것 아닌가. 이렇게 교원 노조의 대부분은 영남 쪽에 존재했고, 다른 지방의 경우 그렇게 많지는 않았다.

(교원 노조원이 급격히 늘어난 바탕에는 이승만 정권 때처럼 살지는 않겠다는, 다시 말해 자괴감을 곱씹으며 정권 유지 도구로 살아가지는 않겠다는 교사들의 각오가 있었다. 아울러 4월혁명 때 피 흘린 제자들을 잊지 않겠다는 마음도 담겨 있었다. 1960년 4월 대구의 교사들이 전국의 교사들에게 교원 노조 결성을 호소하며 발표한 글의 다음 대목에서도 이를 느낄 수 있다.

<"선생님! 정의와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생명을 바쳐 싸워야 한다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하고 정열에 불타던 그 눈동자! "비겁합니다! 선생님" 하고 외치던 그들의 울부짖음! 그들의 모습! 우리는 여기 양심의 가책과 자괴가 없을소냐. 전국의 교원 동지들이여! (…) 침체한 자리를 박차고 우리들도 진정한 교원의 권리를 찾자. 그들이 갈망하는 민주 학원을 건설하여 이 나라 민주주의의 교두보를 구축하자.> '편집자')

 


서중석 : 대한노총에서도 변신의 움직임이 있었다. 1959년 김말룡을 중심으로 한 전국노동조합협의회, 이걸 전노협(또는 전국노협)이라고 그 당시에 불렀는데 전노협 설립 준비 위원회가 4월혁명을 맞으면서 대한노총을 변신시키려고 노력했다. 그렇지만 내분이 끊이지 않았다.

이 시기에 노동 쟁의도 그전에 비해서는 활발하게 일어나고 새로운 노조 결성 움직임도 나타났다. 그렇지만 대개 사무 노조, 금융 노조, 언론 노조, 중소 사기업 노조의 결성이 많았고, 산업 노동자의 경우 아직은 상당히 제한적이었다. 그쪽(생산직을 중심으로 한 산업 노동자)에서는 노조 활동이라는 것이 많이 제한돼 있었다. 교원 노조를 비롯한 일부 노조는 1961년에 전개되는 여러 정치 투쟁에 참여하기도 했다.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 백일곱 번째 편도 조만간 발행됩니다.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 1·2권 서평 바로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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