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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병이 전투식량에 입맛을 맞춰야 하는 한국군의 현실

문형철 2015. 10. 23
조회수 29 추천수 0
 

  가을은 그 어느때 보다 먹거리가 풍성한 계절이지만 수확의 기쁨은 잠시일뿐, 군대는 곧 다가올 겨울을 대비하기 위한 고민을 해야한다. 특히 비상사태를 대비해 전투원의 전투력 보존을 위한 식량과 식재료를 어떻게 가공하고 보존할 것인가라는 문제는 전쟁의 승패를 좌우할 수 있는 중대한 문제다. 어떤 상황에서든 충분한 식사와 영양공급 없이 군인들이 전쟁을 치를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비스코티? 비스켓? 전투식량의 유래
 
 정확한 전투식량의 유래를 말하는 것은 쉽지않다. 하지만 건빵과 같이 현대에 까지 내려오는 가공식 전투식량을 이야기한다면, 고대로마의 비스코티가 유명하다. 비스코티는 오늘날의 건빵과 달리 비스켓의 형태에 가까은 바삭한 빵의 한 종류이다.
 비스코티는 빵처럼 밀가루로 반죽하여 만드는데, 일반적인 빵과 달리 두 번 구어 만드는 것이 특징이다. 라틴어로 비스(bis)가 두 번 이란 의미고 켓 또는 콕(coctus)은 굽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오늘날 비스켓의 어원이 비스코티라고 할 수 있다. 원래 비스코티는 물과 밀가루, 소금이 주 원료로 맛은 오늘날의 비스켓처럼 좋지 않았다. 딱딱한 특성으로 인해 물에 불려먹거나, 오트밀같은 죽처럼 끓여먹는 방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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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스코티: 오늘날의 비스코티는 비스켓 처럼 견과류와 설탕을 첨가해 커피와 잘 어울리는 형태로 발전했다
 

 로마제국의 영역이 넓어지자 갈리아지역에 살고있던 골족과 게르만 용병이 로마군으로 유입되었다. 곡물과 치즈, 생선을 주식으로 하던 로마인과 달리 유입된 이민족 군인들의 주식은 육류가 많았으며, 이 육류를 보존하기 위한 염장식품이 로마군의 주된 전투식량이 되기도 했다.
 동양의 경우는 서양과 달리 쌀과 콩과 같은 곡물이 주식이었기 때문에 쌀을 주원료로 한 보존식이 전투식량으로 사용되었다. 찐쌀을 말려서 데운물에 풀어서 먹거나 쌀과 콩을 등을 빻아 미숫가루 형태로 휴대하기도 했다. 맛을 내기 위해 베와 같은 섬유에 간장을 적시고 말리기를 반복한 천을 물에 풀어 맛을 내기도 했다. 몽고가 중국과 유럽을 휩쓴 중세에는 육포와 같이 말린 육류가 전투식량으로 사용되기도 하였고. 식초와 소금에 절인 밥이 급조된 식사로 활용되었다. 
 하지만 이런 식사들의 문제는 균형잡힌 영양의 제공이 어려워 괴혈병과 같은 질병을 불러오기도 했다. 물론 맛 또한 엉망이었다. 과학기술과 함께 근대화된 군 장비와 함께 전투식량도 발전하게 된다.

 

 병조림에서 3분요리까지

 

 1804년 나폴레옹은 맛과 영양을 제공하면서도 식품을 장기간 저장할 수 있는 기술이 필요했고, 12,000프랑의 상금을 걸고 기술공모를 했다. 당시 제과업자였던 니콜라 아페르(Nicolas Appert)는 유리병에 조리한 음식물을 담아 코르크 마개로 덮고, 파르핀으로 밀폐시켜 비교적 장기간 음식물을 보관 할 수 있는 병조림으로 공모에 당선되었다. 보관기관이 길었던 병조림 효과는 컸다. 프랑스군이 뛰어난 기동성과 원활한 보급을 통해 각 국과의 전쟁에서 연전연승을 거둘 수 있는 한 요인이 되었다.
 프랑스와 라이벌 관계였던 영국은 병조림 보다 뛰어난 전투식량을 개발한다. 피터 듀런트(Peter Durand)는 주석을 이용해 깡통을 만들어 통조림의 발명 특허를 낸다. 통조림은 병조림보다 장기간 음식물 보관이 가능했고, 파손되기 쉬운 병과 달리 견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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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식 건빵의 원조인 건면포와 구일본군의 주먹밥 

 

  이후 통조림은 병조림을 대체해 각국의 전투식량이 되었고 전선을 넘어 가정의 식탁에까지  오르게 되었다. 앞서 이야기한 비스코티의 발전형태인 건빵 또한 비슷한 시기에 전투식량에 포함되게 된다. 건빵은 십자군 전쟁을 거치면서 유럽으로 흘러 들어오게 되고, 수분이 매우 적어 보존성이 좋아 선원들과 각국 해군에서 애용되었고. 1801년 미국으로 건너간 건빵은 남북전쟁 당시 규격화된 형태로 만들어지게 되고, 북군에 배급되면서 전투식량의 하나로 자리잡게 된다. 오늘날 우리군이 사용하는 건빵은 유럽과 미국의 건빵과 달리 말린 빵의 형태로 러일전쟁에서 일본군이 사용하던 말린 떡에서 유래된 것이다. 초창기 일본군의 건빵은 쌀과 밀의 가루를 반죽으로 빚어 말린 것이었으나 파손되기 쉬워 이동 중에 가루가 되어버리기 십상이었다. 물을 부어 죽처럼 먹어야하는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빵에 구멍을 뚫어 말린 형태로 만들게 되었고 건빵과 함께 별사탕을 보급하기도 했다. 
  별사탕은 원래 1569년에 포르투갈인 선교사 루이스 프로이스(Luís Fróis)가 선교 허가를 위해 오다 노부나가에게 이를 선물한 것에서 유래가 되었고 포루투갈어로 사탕을 의미하는 confeito가 일본식 한자(金平糖:コンペイト) 콘베에토로 변환되었다. 

  통조림과 건빵이 전투식량으로 보급되면서 전투식량은 세트로 패키지화 되게 된다. 1,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통조림과 사탕, 쵸콜렛, 비스켓, 인스턴트 커피와, 캔따개와 성냥 등이 포함되는 레이션이 등장하게 되었고 이러한 통합전투식량은 군인 이외에도 식량과 물자가 부족하던 민간인들에게 구호물품으로 활용되기도 하였다. 특히 미군의 C 레이션은 세계 각국의 전투식량 개발에 표준 모델로 자리잡게 되고, 이후 미군 전투식량은 명칭이나 메뉴 구성품에는 변화가 있었지만 C 레이션의 기본 구성 자체는 한국전쟁과 베트남전까지 이어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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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8년도에 개발하여 1980년까지 보급했던 미군 전투식량 MCI(Meal Combat, Individual) 2차 세계대전때의 C-Ration(Combat Ration)을 업그레이드 시킨 것으로 12가지의 메뉴로 돼 있었다

 

  통조림 전투식량은 무게가 무거워 병사 개인이 전체를 휴대하기 힘들었다. 특히 통조림은 제작 단가도 비쌌다. 이러한 문제점을 최초로 해결한 것은 스웨덴 군이었다. 레토르트라고 불리는 주머니 형태의 용기를 끓는물에 넣어 데워먹는 방식은 전투식량의 형태를 획기적으로 변화시켰다. 통조림의 등장으로 스팸이라는 인스턴트 햄이 나왔듯, 레토르트 전투식량은 오늘날 ‘3분요리’라고 부르는 레토르트 식품을 민간에 상용화하는 것에 큰 영향을 주게되었다. 일본의 오오츠카 식품(大塚食品)은 1968년 본카레를 출시하면서 세계최초로 민간에 판매하게 되었다. 이러한 추세와 함께 미군은 1960년대부터 통조림을 대체하면서 음식을 장기간 보관 할 수 있는 신형 용기 개발에 나선다. 1981년 미군은 레토르트 식품을 응용한 새로운 형태의 전투식량 MRE(Meal, Ready to Eat)를 개발했고, 1992년에는 물만 부으면 발열이 되는 발열 팩이 추가되면서, 불 없이도 따뜻하게 전투식량을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전투식량은 맛이 없어야 하는가?


 미군의 이 전투식량(MRE)은 다양한 메뉴들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첫 등장 당시에 12가지 메뉴였지만, 그 종류는 갈수록 늘어 2000년대 들어서는 24종류까지 늘어났다. 심지어 채식주의자용 메뉴나 회교도용 메뉴 등 병사 개개인의 개성을 고려한 메뉴까지 선보이고 있다. 전투식량은 전투를 하기 위해 영양분을 공급받기 위한 수단이다. 하지만 단순히 영양만을 제공하는 식사는 전투에 지친 전투원의 사기를 올리기에는 부족하다. 미군의 MRE는 종교와 식성을 고려한 다양한 메뉴를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미국의 요리사와 미군들의 평은 그리 좋지 못하다.
 미국 유타주의 솔트레이크 시티의 지역 일간지인 <솔트레이크 트리뷴(The Salt Lake Tribune)>의 조사에 따르면 요리사 3명에게 미군 MRE 18종을 10점 만점으로 평가를 하도록 했는데 5.7점을 받은 것이 최고점이었고 최하점은 1.3점이었다고 한다. 군대 짠밥은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라고 생각이 들지 모른다. 그러나  꼭 그렇지만은 않다. 
  2차대전 당시 미국은 합리적이고 실용적인 국민성의 영향인지, 삶은 감자 정도의 당도를 유지하면서도 고칼로리를 지닌 맛 없는 쵸콜렛을 전투식량으로 채택했었다. 하지만 요리가 맛있기로 유명한 이탈리아군은 자국의 식문화 탓인지 2차대전 당시 최고의 맛을 자랑하는 전투식량을 보급했다. 롬멜장군의 부관이었던 슈미트 중위는 “북아프리카 전선에서 이탈리아군이 젤라또(아이스크림)를 즐기는 모습은 충격이었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심지어 이탈리아는 총탄보다 와인의 보급을 중요시 할 정도로 군인의 식사에 신경을 많이 썼는데 이와 관련해 유명한 일화가 두 가지 있다.
  이탈리아군의 주요보급품으로 와인을 이야기하는데, 이탈리아군의 와인에는 이런 경고문구가 있었다고 한다. “한 잔의 와인은 우리를 용감하게 한다. 하지만 취하지는 마라” 또 다른 일화는 이탈리아군에 포로로 잡힌 영국군 파일럿의 이야기다. 영국군 파일럿이 이탈리아군에 포로로 잡혔는데 영국군 파일럿은 자신에게 제공된 식사를 보고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놀랐다고 한다. “이렇게 양질의 맛있는 식사를 제공하다니, 이것이 나의 최후의 만찬일 것이다”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이탈리아군 장교가 급하게 찾아와 그에게 “미안하다. 장교에게는 장교용 식사가 제공되어야 하는데, 실수로 병사의 음식을 제공했다. 우리의 실례를 용서해 달라”고 이야기 했다는 것이다. 물론 이탈리아는  패전국가였지만, 자국의 식문화를 반영한 훌륭한 식사를 통해 장병의 사기를 증진했었다. 현대 이탈리아군 역시 프랑스, 스페인과 함께 최상의 군대식사를 누리는 군대로 유명하다. 이탈리아군의 전투식량 중에는 코르디얼 샷이라는 술이 든 디져트가 포함돼 있다. 전세계 전투식량중 단연 1등의 맛이라고 불리는 프랑스는 전투식량에 민간에서 인기가 많은 제품들을 활용하고 있다. 스페인 군도 모츠라고 불리는 내장요리와 마드리드풍 먹물조림 등 자국민의 인기요리를 전투식량으로 제공하고 있다. 고된 군생활을 식사를 통해서 풀라는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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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투식량 중 가장 맛있기로 유명한 프랑스군 전투식량(RATION DE COMAT)

 

  맛 대신 전투적 합리성을 중요시하는 미국도 전투식량의 맛을 꾸준히 개선하고있다. 미국의 매사츄세스주에 위치한 나틱(NATIC) 연구소는 1954년부터 군이 사용, 소비하는 아이템의 대부분을 연구하고 있다. 이 연구소의 급양감독부는 레이션(전투식량)을 포함한 포장기술, 제조설비를 연구개발하고 있다. 미군의 전투식인 MRE도 매년 이 연구소에서 메뉴를 변경하고 장병들의 선호도를 기준으로 맛을 개선하고 있다. 최근에는 ‘TTI’라고 불리는 회기적인 기술로 전투식량을 열지 않고도 취식 가능여부를 알수 있는 소형 칩을 부착하고 있다. 나틱연구소는 또 전투식량의 질과 맛 개선을 위해 매년 장병들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장병 입맛은 고려하지 않는 업체선정

 

 한국군은 어떤가? 지난 9월10일 새정치민주연합 김광진 의원(국방위)은 국방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토대로 국군복지단이 2013년 육군훈련소 장병 증식용(간식) 단팥빵 업체 선정과정에 비리혐의가 드러났음에도,  국군복지단 담당 기무사 정 모 중령과 국군복지단 업체관리과장 곽 모중령에 대한 처벌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을 지적했다.
  업체선정 과정 당시 육군훈련소는 ‘여름철 내용물(단팥 등)로 인한 변질 우려가 있는 품목 제외’라는 요구조건을 내세웠지만 업체 관리과장 곽 중령은 이를 무시하고 임의변경했고  맛 40, 중량 40, 기타 20으로 수치화된 평가방식을 임의 변경하여 무자격 업체가 단팥빵 납품에 선정되게 했다. 선정업체는 당시 단팥빵을 생산하지도 않았고 자격조건도 없었지만 문서를 허위로 작성했고 국군복지단 담당 기무사 정 중령이 입찰에 개입했다. 정 중령은 자율적 납품수량 주문방식을 20% 이상 이상 납품이라는 터무니 없는 규정으로 바꿔 장병의 선호도와 관계없이 주문량을 확보하도록 특혜를 주었다.
 그나마 기무사 정 중령은 위계공무집행방해, 방실침입 등으로 고작 벌금100만원의 의견으로 기소돼 1심이 진행 중이지만, 곽 중령은 국군복지단의 제 식구 감싸기 식 처분으로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비록 전투식량은 아니지만, 훈련중에 허기를 달래며 고된 훈련의 위안이 되는 장병용 간식이 이렇게 허술하게 선정된다는 것은 군의 사기와 신뢰를 떨어뜨리는 중대한 이적행위다. 군이 앞장서서 장병의 입맛을 맞추려고 하는 외국의 군대와  달리 장병들이 업체에  입맛을 맞추라고 하는 것은 전근대적 수준에 머물러 있는 군대의 현실을 여실히 보여 준다. 비롯 단팥빵 뿐만이 아니라 PX에 불량식품을 납품하거나 납품기일을 지키지 않음에도 대표자 이름만 바꿔 납품하는 실체가 없는 군출신 통판들의 횡포도 무시 할수 없는 상황이다. 장병의 높은 사기와 군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장병의 먹거리부터 확실하게 바뀌어야 한다. 업체선정의 공정성을 위해서는 미군처럼 장병 선호도 조사와, 민간평가단의 공정한 평가가 뒷받침 되어야 할 것이다. 미국의 나틱연구소 처럼 장병들이 소비하는 물자에 대해서는 군이 더 적극적으로 나와야 할 것이다.

   
 문형철 기자 captin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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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피스는 과격하다'고? 직접 타보니 이랬다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5/10/23 04:14
  • 수정일
    2015/10/23 04:14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인터뷰] 그린피스 '레인보우 워리어'호 무지개 전사 3인방

15.10.22 21:51l최종 업데이트 15.10.22 21:51l

 

 

국제적인 환경보호단체 그린피스의 환경감시선 '레인보우 워리어 호'는 지난 19일 오후 8시 부산에서 출발해서 꼬박 3박 4일을 항해한 후 22일 낮 12시경 인천에 도착할 예정이다. 원전사고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고 원전 2기 추가건설을 막기 위해서 한국을 방문한 이 배에는 현재 나를 포함해서 총 33명이 승선하고 있다. 이 중 다국적 선원이 17명, 이번 캠페인의 그린피스 서울사무소 관계자와 한국 시민을 합쳐서 16명이다.

레인보우 워리어 호는 네덜란드 국적의 선박으로, '그린피스 인터내셔널'이 있는 암스테르담을 출항해서 전 세계 곳곳을 돌며 그린피스 지역사무소와 함께 환경보호 캠페인을 벌인다. 선원들의 국적도 정말 다양한데, 전 세계 곳곳의 14개국(네덜란드·스페인·이탈리아·독일·프랑스·불가리아·루마니아·우크라이나·미국·콜롬비아·호주·터키·인도네시아·대만)에서 모인 17명의 선원이 배의 운항에 필요한 각자의 임무를 맡고 있다.

그리고 태평양의 섬나라 '팔라우'에 있던 레인보우 워리어 호를 무사히 부산으로 인도하라는 특명을 받고, 지난 9월 25일에 한국에서 파견된 사람도 있다. 그는 바로 그린피스 서울사무소의 박태현(26) 해양보호 캠페이너다. '딴거하자 투어'(원자력과 석탄 발전 대신 깨끗하고 안전한 재생 가능 에너지를 확대하기 위한 캠페인)를 위해 지금까지 꼬박 한 달간 환경 감시선에 탑승 중이라는 그와 만나 얘기를 나눠봤다.

'과학자를 꿈꾸던 학생', 그린피스 서울사무소 박태현 캠페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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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린피스 서울사무소 박태현 해양보호 캠페이너
ⓒ 정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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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현 캠페이너는 그린피스에서 일한 지 이제 10개월째에 접어든 젊은 활동가다. 중학교 때 영국으로 건너간 이후 스코틀랜드에서 해양생물학을 공부하고, 독일·스페인·벨기에 등지에서 해양생물 다양성과 보존학 석사 과정을 마쳤다. 그는 "원래 과학자가 되는 게 꿈이었는데, 관련 공부를 하면 할수록 점점 더 지구의 해양환경에 대해 답답한 마음이 커졌다"고 한다. 그래서 마침내 환경운동에 관심을 두게 됐고, 올해부터 그린피스 캠페이너로서의 삶을 새롭게 시작했다.

최근까지 원양어선 선원의 인권 문제와 대만 참치 어선 실태조사에 참여했고, 이번에는 레인보우 워리어 호와 그린피스 서울사무소 간의 소통을 담당하고 있다. '딴거하자 투어'의 지향점에 대한 물음에 그는 "위험한 원전이나 시대착오적인 석탄이 아니라 재생 가능한 에너지로의 전환이 충분히 가능하다는 긍정적인 메시지를 전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유럽에서 수년간 살다가 한국으로 돌아온 박태현 캠페이너는 한국의 해양자원 보존을 위해 가장 중요한 건 '자연과 사람이 어우러지는 해양보호구역 설정'이라며, "연안자원은 비교적 잘 관리되고 있지만, 원양어업은 지금도 허점이 많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는 지속 가능한 원양어업 정책과 불법어업 근절 캠페인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박태현 캠페이너는 한국의 대표적인 참치 기업들이 원양어선 선원 학대로 국제사회에서 큰 문제가 된 사례를 들며, "영국은 모든 참치를 채낚기로 공급하는 100% 지속 가능 어업을 실제로 시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지속 가능한 어업을 한국에서도 분명히 할 수 있다고 했다. 레인보우 워리어 호의 항해에서 자신도 "환경 파괴의 현장에서 직접 행동을 하며 가는 곳마다 긍정적인 변화를 일으키는" 선원들에게 많은 자극을 받았다고 한다.

그래서 바로 세계적인 환경 감시선의 수장, 피터 윌콕스 선장의 얘기도 들어봤다.

북극해 지키려 시위하다 두달 구금, 피터 윌콕스 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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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린피스의 환경감시선 '레인보우 워리어' 호의 선장 피터 윌콕스
ⓒ 정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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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윌콕스(Peter Willcox, 62)는 그린피스 환경 감시선의 역사에 있어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존재다. 1985년 7월 10일 프랑스의 정보기관이 침몰시킨 첫 번째 레인보우 워리어 호의 선장도 그였으며, 당시 사건이 있기 3개월 전 미국의 피폭 실험(히로시마와 나가사키 방사능의 1000배 이상에 노출) 대상이었던 300명의 원주민을 이주시킨 마셜 아일랜드 이주작전도 주도했다. 그가 환경보호 활동을 한 지도 이제 42년이나 됐고, 그린피스에서만 1981년부터 지금까지 35년을 일했다.

최근에는 2013년에 북극해 원유 시추에 반대하는 직접행동에 나섰다가 러시아 국경수비대에 억류되기도 했다. 피터는 북극을 지키려는 지구촌 사람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려고 비폭력 시위를 벌이다 2달 넘게 감옥에 구금됐고, 전 세계적인 석방운동을 통해 가까스로 풀려날 수 있었다. 당시 사건에 대해 말하면서도 피터 윌콕스 선장은 "감옥에 간 게 이슈화되면서 많은 사람이 이 문제에 관심을 두게 됐지만, 그래도 오랫동안 감옥에 가는 건 정말 피하고 싶다"는 농담까지 했다.

미국 뉴욕이 고향인 그는 언제나 항해와 함께하는 가문에서 태어났고, 물 위에서의 삶인 '항해' 자체가 가장 즐거운 일이라고 한다. 그린피스는 '3개월 근무-3개월 휴식'이 원칙인데, 피터 선장은 쉴 때조차도 (항해가 취미인) 95살의 아버지를 돌보며 요트 경주를 즐길 정도로 천부적인 바다 사나이다. 그는 유머감각도 뛰어나지만, 선장으로서의 권위와 카리스마도 남다른 인물이다.

피터 윌콕스는 당사자 앞으로 가서 대놓고 얘기하는 그린피스의 '직접행동'이 효과적인 소통 방식이라고 생각하며, '그린피스가 과격하다'는 일부의 지적에 대해서는 "그런 시선을 이해는 하지만, 비폭력에 기반한 활동이다. 그린피스의 직접행동에는 나름대로 제한과 규정이 있다"고 말했다. 레인보우 워리어 호 선장으로서 그가 가장 중시하는 건 모두의 안전과 승선한 구성원의 협력이다. 또한 즐기면서 일하는 환경이 되면 다른 일들은 자연스럽게 해결된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피터 선장의 배에 타보니, 분위기가 무척 화기애애하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에게는 딸이 둘 있는데, 장녀 역시 환경단체에서 일하고(얼마 전 뎅기열에 걸려 스페인에서 치료 중이라고 한다) 차녀는 해양생물학을 공부했다. 둘 다 레인보우 워리어 호에 승선한 적이 있고, 피터 선장은 아이들의 미래와 그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항상 고민하며 그것이 큰 동기부여가 된다고 말한다. 이미 40년 넘게 활동한 그는 향후 10년은 더 활동하길 원한다며 이렇게 말했다.

"(내가) 부모라는 것. 그것이 바다에 나가서 나를 버티게 하는 유일한 힘입니다."

바로 이 피터 윌콕스의 후예가 한국인 중에도 있다. 곧 그린피스의 다른 환경 감시선인 '에스페란자' 호의 항해사로 일하게 될 김연식(33)씨를 인터뷰했다(그는 한국인 최초로 환경 감시선의 정식 선원이 된다).

환경 감시선 최초 한국인 정식 선원, 김연식 항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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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환경감시선 '에스페란자'호의 선원이 될 김연식 항해사
ⓒ 정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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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피스에는 총 3대의 환경 감시선이 있는데(레인보우 워리어, 에스페란자, '쇄빙선' 악틱 선라이즈), 이 중에서 가장 크고 빠른 배가 에스페란자 호다. 김연식 항해사는 다소 특이한 경력의 소유자인데, 그는 20대 중반에 <인천신문> 기자로 3년간 일했다고 한다. 이때 "해양경찰청에 출입하면서 선원 출신의 해양경찰들을 자주 만났는데, 이들이 뱃사람의 삶에 대해 다양한 얘기를 들려줬다. 그로부터 많은 감명을 받았고, 새로운 인생을 생각하게 됐다"고 한다. 피터 윌콕스가 천부적인 바다 사나이라면, 김연식씨는 20대 후반에 큰 용기를 내어 자신의 삶을 스스로 개척한 대한민국의 젊은이다.

우선 그는 부산 영도에 있는 한국 해양수산연수원에 들어가 해기사 양성과정을 마쳤고, 이어서 12개월의 상선 실습에 나섰다. 부모님의 반대도 있었지만 김연식씨는 자신의 목표로 이 길을 선택했고, 이후 4년이라는 시간을 더 부정기 화물선 선원으로 보냈다. 총 36개국 48개 항구를 다니며 '잃어버리는 시간이 없는' 배에서의 24시간에 큰 매력을 느꼈고 자신의 선택에 확신을 하게 됐다(그의 항해기록은 <스물아홉, 용기가 필요한 나이>(2015, 예담)라는 책으로도 출간됐다).

그러던 중 김연식씨는 항해하며 전 세계 시민들과 가까이서 어울렸다. 그러면서 환경 이슈를 피부로 느끼며 활동할 수 있는 그린피스의 환경 감시선에 관심을 두게 된다. 긍정적인 에너지로 의미있는 삶을 살기 위해서 그는 이 배의 항해사에 지원하기로 결심했다. 수많은 우여곡절 끝에 운 좋게도 합격 통지를 받는 데 성공한다. 이와 동시에 김연식씨는 '1등 항해사'로 진급을 포기했으며, 대부분의 한국 젊은이들이 끝까지 망설일 '절반 이하의 연봉'을 순순히 받아들였다고 한다.

레인보우 워리어 호에 잠깐 탑승한 김연식씨는 이 배가 인천에 도착하면 곧바로 그린피스 인터내셔널 사무실이 있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으로 떠난다. 그곳에서 환경 감시선 항해사로 정식 계약을 하고, 에스페란자 호 승선을 위해 멕시코 시티로 간다. 앞서 말했듯 그린피스의 '3개월 근무-3개월 휴식' 원칙에 따라, 2016년 2월쯤 귀국할 예정이다. 그는 환경 감시선의 항해사로서 앞으로도 계속 일하길 원하며, 적어도 자기 삶의 시간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잃어버리는 시간이 없이" 살아갈 준비는 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린피스, 24일 인천항 제1부두서 행사 예정

나는 지난 19일 저녁에 부산에서 인천을 향해 출발하는 그린피스의 환경 감시선에 탑승했고, 세월호 침몰현장 부근을 지나서 계속 항해 중이다. 현재 레인보우 워리어 호는 지극히 평온하며, 문제의 바로 그 지점을 통과하고 있다는 얘기를 전해 들은 나의 마음도 이제 평화를 되찾았다.

레인보우 워리어(Rainbow Warrior)는 지구가 파괴되는 날 이를 구하기 위해 '무지개 전사들(Warriors of the Rainbow)'이 나타난다는 북미 원주민의 전설에서 유래한 이름이라고 한다. 나는 이 배 선원들의 밝은 얼굴과 건강한 에너지를 통해서 긍정적인 자극과 치유를 느꼈다.

그린피스는 24일(토)과 25일(일)에 인천항 제1부두에서 오픈 보트 행사를 열고, 시민들에게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제공할 예정이다(직접 승선하여 갑판·조타실·선미 등 배 안의 주요 시설 관람, 환경 티셔츠 만들기, 페이스 페인팅, 공연 등). 행사에 시민 누구나 신청할 수 있으니, 가족·친구들과 함께 무지개 전사들의 힘을 한 번 느껴보길 바란다. 요즘 한국에서 평소에 일상생활을 하며 접하기 쉽지 않은 좋은 에너지를 다들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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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J Kang 방북기57]모란봉에서 만난 친절한 인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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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교과서 전쟁 와중에 ‘비밀 광복군’ 둔갑 박정희

이장우“박정희 비밀광복군” 정운현 “어불성설”
 
역사왜곡의 극치, 역사교과서 전쟁 와중에 ‘비밀 광복군’ 둔갑 박정희
 
임두만 | 2015-10-22 08:43:04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박근혜 정권이 추진하고 있는 역사교과서 국정화 정책에 대해 ‘역사전쟁’으로 명명했다. 지난 17일 새누리당 중앙위원회 산악회 발대식 축사에서 “이제 역사전쟁이 시작됐으며, 우리 학생에게 올바른 역사를 가르치기 위해 절대 물러설 수 없는, 꼭 이겨야만 하는 전쟁”이라고 말했다.

김 대표는 특히 이 자리에서 “지금 대한민국의 국사학자들은 90%가 좌파로 전환돼 있다”면서 “그들에 의해 쓰인 중·고교 교과서는 현대사를 부정적 사관으로 기술하고, 패배한 역사라고 가르치고 있다” 강변하여 국사학자들과 국사 교사들에게 강한 반발을 사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이장우 새누리당 대변인은 20일 “지난 2004년 노무현 정부와 당시 여당인 열린우리당은 ‘친일진상규명법’ 개정안을 추진하며 한나라당을 ‘친일’로 압박했다”며 “그러나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는 박정희 전 대통령을 친일파로 분류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오히려 독립운동을 한 공로로 건국훈장 독립장을 받은 백강 조경환 선생님께서는 박 전 대통령을 독립군을 도운 군인으로 기억했다는 증언을 했다”고 말했다.

이어서 이 대변인은 “야당이 자신들의 왜곡된 역사관을 고수하기 위해 10여 년 전과 같은 우를 범하는 일이 없기를 진심으로 바란다”며 “새누리당은 현존하는 그 어떤 정당보다 사실을 바탕으로 한 역사를 존중하고 있음을 자신 있게 말씀드린다”고 강변했다. 따라서 이들의 교과서 국정화 목표가 무엇인지 그 검은 속내가 점차 드러나고 있다.

때문에 이 같은 이장우 대변인의 논평이 나오자 당시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사무처장을 지낸 전 언론인 정운현씨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박정희의 비밀광복군 설에 대해>라는 글을 올려 이 대변인의 논평을 조목조목 반박하고 나섰다.

1959년 경남 함양에서 출생했으나 대구에서 성장, 경북대학교 문헌정보학과를 졸업한 정운현 전 사무처장은 출신성분으로 보면 TK다. 이런 그는 중앙일보를 시작으로 대한매일(현 서울신문)에서 기자로 활동했으며, 오마이뉴스 편집국장까지 약 20여 년을 기자로 살았다.

이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사무처장을 지낸 뒤 한국언론재단 연구이사 등을 지내는 과정에서 특히 한국근현대사의 어두운 부분인 친일파문제와 일제 강점기 역사 등을 추적, 이에 대한 글을 발표했으며 여러 권의 현대사 관련 저서를 냈다.

그의 대표적 저서로는 <친일파-그 인간과 논리>(김삼웅/정운현 공저, 학민사)를 시작으로 <친일파 2> <친일파 3> <창씨개명> <친일파 죄상기> 등을 공저 또는 편역의 방법으로 출간하여 후세들에게 친일파의 역사를 알리는데 심혈을 기울였다.

이후에도 그는 <서울시내 일제유산답사기> <중국대만 친일파재판사> <호외, 백년의 기억들> <학도여 성전에 나서라> <잃어버린 기억의 보고서-증언 반민특위> <나는 황국신민이로소이다> <실록 군인 박정희> 등을 펴냈으며 최근에도 <임종국 평전>을 펴내는 등 일제 강점기 이후 우리의 근대사를 계속 추적, 책으로 남기고 있다.

따라서 정운현씨 입장에서 보면 ‘박정희 비밀광복군’설은 도저히 용납되지 않는 역사왜곡이며 특히 자신이 사무처장을 지낸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박정희를 친일파가 아니라고 면죄부를 줬다는 발표는 더욱 그를 나서지 않을 수 없도록 한 것으로 보인다.

아래는 정운현 전 처장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의 전문이다.

 

<박정희의 ‘비밀광복군’설에 대해 -정운현->

이런 주장이 왜 안 나오나 싶더니 결국 나오는군요. ‘박정희 미화’의 극치가 드디어 실체를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세월이 지나면 이런 식으로 ‘거짓 역사’가 ‘사실’로 둔갑되고 또 특정인 영웅 만들기에 악용되기도 합니다.

저는 현역기자 시절 박정희의 해방 전후 친일 및 좌익 활동을 취재한 적이 있습니다. 또 참여정부 시절에는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에서 사무처장으로 근무하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관계자’랄 수 있는 제가 아는 범위 내에서 박정희의 '비밀광복군 설'에 대한 진실을 밝힐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 간단하게나마 몇 자 적습니다.

1. 이장우 새누리당 대변인은 20일 국회에서 브리핑을 열고 “지난 2004년 노무현 정부와 당시 여당인 열린우리당은 '친일진상규명법' 개정안을 추진하며 한나라당을 '친일'로 압박했다”며 “그러나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는 박정희 전 대통령을 친일파로 분류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 맞습니다. 당시 친일규명위에서는 박정희를 친일반민족행위자로 선정하는 문제를 논의한 적이 있습니다. 군인은 '소위 이상'이었기에 해방 당시 만주군 중위였던 박정희는 당연히 대상이 되었습니다. 다만 최종 선정 때 박정희는 빠졌습니다. 그 이유는 친일규명위가 ’증거주의‘를 엄격하게 채택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박정희의 만주군 장교 복무는 분명한 사실이지만 독립군을 사살한 행위와 같은 구체적인 증거자료를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친일행적은 분명하지만 증거가 없어서 최종 선정에서 제외시킨 사례는 수도 없이 많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위원회가 최종 선정한 명단에 박정희가 빠졌다고 해서 그의 친일 행적마저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박정희는 친일파 맞습니다.

2. 이장우 대변인은 이 자리에서 “오히려 독립운동을 한 공로로 건국훈장 독립장을 받은 백강 조경환(‘조경한’이 맞음) 선생님께서는 박 전 대통령을 독립군을 도운 군인으로 기억했다는 증언을 했다”고 강조했다고 합니다.

==> 백강 선생의 발언은 그 출처가 어디인지 저로선 정확히 알지 못합니다. 생전에 ‘국립묘지에는 친일파가 여럿 누워 있다’며 국립묘지 안장조차도 거부하신 백강 선생께서 언제 어디서 그런 말씀을 하셨는지 이 대변인은 출처를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박정희의 ‘비밀광복군’ 설은 박정희가 집권한 1960년대 이후부터 제기돼 오다가 1984년 장창국(전 합참의장)씨가 <육사졸업생>이란 책에서 ‘광복군 비밀요원설’을 주장하면서 처음 활자화됐습니다. 이어 2년 뒤 <월간조선> 1986년 8월호에 실린 ‘박정희의 만군인맥’이라는 기사에서는 박정희가 버젓이 비밀광복군으로 둔갑했습니다.

위 두 글의 출처는 박영만이 1967년에 출간한 <광복군>(상·하 2권, 협동출판사)이 그 원전이랄 수 있습니다. 지난 97년 박정희 취재과정에서 저는 이 책의 내용이 거짓임을 관계자들의 증언을 통해 확인했습니다. 오죽했으면 박정희조차도 이 책의 저자 박영만에게 호통을 쳤겠습니까? 이런 점에서는 박정희가 일말의 양심은 있다고 하겠습니다.

 

▲사진출처 : 정운현 페이스북

 

위 사진은 ‘박정희 비밀광복군’ 설을 처음 유포시킨 문제의 책 <광복군>(상.하 2권, 협동출판사). 이 책은 박영만이란 자가 1967년에 펴낸 것으로 97년 박정희 취재과정에서 우연하게 입수했습니다. (<광복군> 책 사진 '펌' 무방함)

아래 사진은 필자가 2004년에 펴낸 <실록 군인 박정희>(개마고원) 표지이며, 다음 사진은 이 책에 실린 <월간조선> 86년 8월호 기사인데요, 박정희를 비밀광복군으로 둔갑시킨 엉터리 조작기사입니다.

 

▲사진출처 : 정운현 페이스북

 

 

▲사진출처 : 정운현 페이스북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28&table=c_flower911&uid=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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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외교, 널뛰기도 이런 널뛰기 없다"

 
[정세현의 정세토크] 미국 가서 중국 자극…이게 균형외교인가?
이재호 기자 2015.10.21 11:54:01
 
박근혜 대통령의 미국 방문을 두고 정부와 일부 언론은 한국이 중국에 경도돼있다는 이른바 '중국 경사론'을 해소시키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중국 경사론을 불식시키기 위해 박 대통령이 너무 과도하게 미국에 경도된 언행을 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박 대통령이 "한-미 동맹은 미국의 아시아 태평양 재균형 정책의 핵심축"이라고 발언한 부분을 문제 삼았다. 정 전 장관은 "미국의 '아시아 재균형' 정책의 핵심이 미국을 최상위에 두고 그 아래 중국을 무릎 꿇게 만들겠다는 건데, 여기에 한 축이 되겠다고 이야기했으니 중국에 이걸 어떻게 설명할 거냐"고 따져 물었다. 

박 대통령이 이렇게까지 미국 편을 든 이유는 무엇일까? 정 전 장관은 지난 9월 박 대통령이 중국 전승절 기념 열병식에 참석한 '죗값'을 톡톡히 치르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중국과 가까워지려는 한국에 미국이 발끈했고, 이런 미국을 달래기 위해 중국을 자극할 수 있는 발언을 쏟아냈다는 것이다. 

정 전 장관은 "그런데 중국이랑 가까워지는 것처럼 비춰진 것이 뭐 그렇게 대역죄인가? 한-미 동맹과 한-중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를 균형 있게 가져가는 것이 박근혜 정부 동북아 외교의 기조 아닌가"라며 "중국 경사론을 적당히 불식시키면되는데, 이걸 불식시킨답시고 너무 미국에 경도된 셈이다. 앞으로 중국에 가서 어떤 말을 할 수 있을지 벌써부터 걱정"이라고 우려했다. 

한편 정부에서는 한국과 미국이 '북한에 관한 한-미 공동 성명'을 채택한 것을 두고 "북한만을 다룬 최초의 양국 공동 성명"이라면서 그 의미를 부여했다. 하지만 정 전 장관은 이 성명이 "유통기한이 지난 물건을 가지고 와서 먼지만 털고 난 뒤에 새로운 물건인 것처럼 속인 것에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정부는 이 성명을 6월부터 준비했다고 설명했다. 당시에는 북한이 노동당 창건 70주년인 10월 10일에 맞춰 장거리 로켓이나 핵실험을 할 가능성이 높다는 예측이 지배적이었다. 그래서 사전에 경고하는 의미로 북한에 강한 메시지를 보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6월과 상황이 많이 다르다"고 설명했다. 

지난 6월 이후 남북은 8.25 합의를 이뤘고 북한은 장거리 로켓 발사와 핵실험을 하지 않았으며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지난 10일 연설을 통해 주변정세를 안정시켜야 한다고 밝혔다. 성명에 이러한 변화된 상황이 반영되지 않은 채 예전에 작성했던 것을 그대로 가져다 썼다는 것이 정 전 장관의 진단이다.

그는 "최근 북한의 메시지는 6자회담을 하고 평화협정을 다시 이야기하자는 것"이라며 "문제는 미국과 우리가 이 행간의 뜻을 읽어주느냐에 달려 있다. 한-미가 북한의 뜻을 이해하고 6자회담 추진 쪽으로 정책 방향을 틀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자각이 있어야 하는데 지금 박근혜 정부에서 가능할지는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인터뷰는 지난 20일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 박인규 이사장과 대담 형식으로 진행됐다. 다음은 인터뷰 주요 내용이다.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박근혜 대통령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졌습니다. 이번 회담을 통해 한국이 중국에 치우쳐있다는 이른바 '중국 경사론'을 불식시켰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외교'를 했다는 것이 정부의 설명인데요. 

정세현 : 박근혜 대통령이 "나 중국 편 아니야. 미국 편이야"라는 것을 제대로 보여주기 위해 미국에 간 건 맞습니다. 그런데 퍼포먼스를 너무 세게 했습니다. 널뛰기도 이런 널뛰기가 없습니다. 

박 대통령은 이번 방미 일정 중 지난 14일(현지시각)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 우호의 밤' 행사에서 "한-미 동맹은 미국의 아시아 태평양 재균형 정책의 핵심축"이라고 밝혔습니다. 미국의 아시아 재균형 정책이 뭡니까? 중국이 미국 중심의 국제 질서에 도전하는 것을 재조정하겠다는 것 아닙니까? 미국이 최상위에 있고 그 밑에 중국을 무릎 꿇게 만드는 것이 아시아 재균형의 핵심인데, 여기에 한 축이 되겠다고 자진해서 이야기했으니 중국에 이걸 어떻게 설명할지 참 난감해졌습니다. 

여기에 박 대통령은 16일(현지시각) 미국 '전략 국제문제 연구소'(CSIS) 연설에서 한-미 동맹을 한반도 전역으로 확대해 나가야 할 때라고 밝혔습니다. 이건 한국과 미국이 손잡고 압록강과 두만강까지 올라가자는 이야기인데, 북한이 놀랄만한 발언이기도 하지만 중국도 대단히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는 발언입니다. 

여기에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쐐기를 박았습니다. 16일(현지시각) 정상회담 직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중국이 국제규범을 준수해야 하며 이에 실패한다면 한국이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중국에 줄 서지 말고 자기 쪽으로 오라는 메시지입니다. 

대체 박 대통령은 왜 중국이 발끈할만한 발언들을 쏟아낸 것일까요? 일단 미국에서 중국 경사론이 나오기 시작하면서 한국에서도 보수 중심으로 중국에 경도돼있다는 지적이 나왔다는 점을 꼽을 수 있습니다. 박 대통령의 지지 기반인 보수에서 이런 지적이 나오다 보니 집토끼를 지켜야 한다는 마음에 미국에 경도된 발언을 내뱉은 것일 수 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전승절 참석에 대한 '죗값'을 치르고 있는 측면도 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천안문 망루에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 주석,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함께 올랐는데요. 미국이 여기에 불편한 기색을 보이면서 한국이 미국보다 중국과 더 가깝다고 불만을 제기했을 겁니다. 미국에 저지른 잘못을 바로잡고, 중국 경사론을 불식시키기 위해 먼저 나서서 중국을 견제하는 미국의 입장에 동참하겠다는 식의 발언을 한 것입니다. 

그런데 중국이랑 가까워지는 것처럼 비춰진 것이 뭐 그렇게 대역죄입니까? 한-미 동맹과 한-중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를 균형 있게 가져가는 것이 박근혜 정부 동북아 외교의 기조 아닙니까? 중국 경사론을 적당히 불식시키면 되는데, 이걸 불식시킨답시고 너무 미국에 경도된 셈입니다. 앞으로 중국에 가서 어떤 말을 할 수 있을지 벌써부터 걱정됩니다. 

프레시안 : 박 대통령의 이런 발언은 의도적인 것일까요, 아니면 저 발언의 의미가 무엇인지 모르고 좌충우돌한 것일까요? 

정세현 : 미-중 간 균형을 잡기 위한 발언이었다고 생각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저런 발언이 엄청난 후과를 몰고 올 수도 있다는 점을 고려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이건 사실 대통령보다는 참모들의 책임이 큽니다. 

외교·안보 분야의 경험이 없는 대통령이 어떤 이야기가 어떤 파장을 불러올 것인지 상세하게 알기는 힘듭니다. 결국 연설문을 써주고, 예상 질의 응답을 작성한 참모들이 잘못한 겁니다. 왜 모범답안을 저렇게 써줬느냐는 겁니다. 

대통령의 발언은 곧 정책입니다. 따라서 대통령 자료를 챙기는 수석 비서관들은 정말 꼼꼼히 검토해야 합니다. 김영삼 대통령은 대통령 후보 시절 강릉에서 "쌀 시장 문제는 대통령직을 걸고 막겠다"고 연설했습니다. 그런데 취임 후 미국의 압력이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 되자 쌀 시장을 개방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당시 그 연설문에 원래는 '대통령 직을 걸고'라는 표현이 없었다고 합니다. 중간에 들어간 건데요. 김 전 대통령은 이런 표현을 쓴 사람이 누구냐면서 관계자를 색출하기까지 했습니다. 

이번 방미 당시 박 대통령의 발언은 북한이 문제가 아니라 중국을 기분 나쁘게 했습니다. 향후 외교·안보·경제적 측면에서 문제가 될 수도 있습니다. 후속 조치 계획을 가지고 있겠지만, 혹시 그렇지 않다면 앞으로 감당하기 어려워집니다. 이런 부분을 생각했을 때 박 대통령을 보좌하는 사람들이 보통 수준의 직무유기를 한 것이 아닙니다. 

 

▲ 박근혜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16일(현지 시각) 정상 회담 직후 백악관에서 기자 회견을 가진 뒤 악수하고 있다. ⓒAP=연합뉴스


한-미 공동 성명? 유통기한 지난 상품에 불과

프레시안 : 박근혜 대통령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북한에 관한 한-미 공동 성명'을 채택했습니다. 이를 두고 정부에서는 "북한만을 다룬 최초의 양국 공동 성명"이라면서 대단한 성과를 거둔 것으로 이야기하고 있는데요. 어떻게 보십니까? 

정세현 : 성명의 내용을 보고 평가해야 합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유통기한이 지난 물건을 가지고 와서 먼지만 털고 난 뒤에 새로운 물건인 것처럼 속인 것에 다름없습니다. 

정부는 이 성명을 6월부터 준비했다고 설명했습니다. 당시에는 북한이 노동당 창건 70주년인 10월 10일에 맞춰 장거리 로켓이나 핵실험을 할 가능성이 높다는 예측이 지배적이었습니다. 그래서 사전에 경고하는 의미로 북한에 강한 메시지를 보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6월과 지금은 상황이 다릅니다. 북한이 장거리 로켓도 발사하지 않았고 핵실험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게 강하게 이야기할 하등의 상황적 근거는 없습니다. 

게다가 이번 성명에서 8.25 합의는 전혀 반영되지 않았습니다. 8.25 합의를 이뤄낸 것도 중요하지만, 앞으로 어떤 식으로 이 합의를 풀어나갈지에 대해 한-미 정상회담에서 후속 이야기를 해줘야 하는데, 통일부와 외교부 간 협조가 제대로 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뿐만 아니라 노동당 창건일 열병식에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연설을 했습니다. 이 연설에 대한 반응 역시 성명에는 반영되지 않았습니다. 그냥 '우리가 하고 싶은 이야기만 하겠다'는 식입니다. 

미국 역시 전혀 바꾸려는 생각을 하지 않은 겁니다. 오바마 대통령이 임기 말이라 정책을 바꿀 수 없다는 생각에서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전략적 인내'라는 단어를 쓰지 않았을 뿐이지, 사실상 북한을 압박하는 내용으로 가득 찼습니다.

김 제1위원장은 이번 연설에서 핵-경제 병진 노선을 직접적으로 거론하지 않았습니다. 인민들의 생활 수준을 향상시키기 위해서 경제 발전을 해야 하고, 그러려면 주변 정세를 안정시켜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도 하지 않았습니다. 

북한이 이 정도까지 나왔다면 미국과 한국은 "그래 그럼 6자회담 하자. 대신 6자회담 하려면 최소한 너네도 이 정도는 해야 한다"라는 식으로 문턱을 좀 낮춰줄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 성명을 보면 북한을 6자회담 테이블로 끌어내려는 것보다는, 오히려 북한이 6자회담에 나올까 봐 겁이 나서 사전에 조치를 취하려는 것 같아 보입니다. 북한이 6자회담에 나갈 용의가 있다는 이야기를 할 수 없도록 사방에 장벽을 쌓고, 오히려 반발을 유도하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계속 평화협정 이야기를 거론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북한은 한-미 정상회담 종료 이후 하루가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외무성 성명을 냈는데, 여기에서 '북한에 관한 한-미 공동 성명'에 대한 내용은 일체 언급이 없었습니다. 그러면서 평화협정 이야기를 한 것인데, 이는 비핵화 의지를 드러낸 것입니다. 

2005년 9.19 공동성명에서 북한과 미국은 비핵화와 평화협정을 맞바꾸기로 했었습니다. 비핵화에 대한 대가로 미-북 수교와 일-북 수교를 하기로 했는데, 미-북이 수교하려면 평화협정을 체결해야 합니다. 전쟁 상태를 끝내지 않고 수교할 수 없지 않습니까? 

2006년 북한의 1차 핵실험 이후 2007년 2.13합의가 나오기 전에, 미국과 북한은 2006년 11월 사전 합의의 틀을 마련했습니다. 미국과 북한이 판을 짜놓고 6자회담의 나머지 국가들에게 사후 승인을 받는 식이었습니다. 

북한은 이번에도 평화협정 문제를 우선순위로 해서 미-북 간 협상을 해보자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겁니다. 이는 2009년 오바마 정부 1기 때 당시 국무장관이었던 힐러리 클린턴이 1년 동안 노래를 부르고 다녔던 방법입니다. 힐러리는 북한이 비핵화를 실행할 용의가 있다면 미-북 수교와 평화협정 문제 논의를 우선적으로 해주겠다고 했습니다. 

최근 북한의 메시지는 바로 이때로 돌아가자는 겁니다. 핵이라는 단어는 쓰지 않고 있지만 6자회담 하자는 이야기입니다. 마치 한-미 공동 성명이 6자회담 이야기를 일체 하지 않으면서도 6자회담에서 논의돼야 할 문제인 핵 문제에 대해 굉장히 강하게 북한을 압박해 들어가듯이, 북한 역시 이런 식으로 6자회담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표명한 겁니다. 

문제는 미국과 우리가 이 행간의 뜻을 읽어주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한-미가 이렇게 세게 나갔는데, 북한이 이렇게 나온 것은 6자회담을 하겠다는 이야기다, 따라서 6자회담 추진 쪽으로 정책 방향을 틀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자각이 있어야 하는데 지금 박근혜 정부에서 가능할지는 의문입니다. 

북한은 미국과 만나서 평화협정을 논의하고 비핵화로 가겠다는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이것 없이 김 제1위원장이 연설에서 밝힌 주변 환경이 안정되기 힘들고, 그러면 경제 발전도 어렵기 때문입니다. 북한 내부의 이같은 절박한 필요 때문에 북한은 미국과도, 남한과도 관계를 개선하고 싶어 합니다. 여기에 우리가 맞장구를 쳐줄지는 미지수입니다. 

 

▲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10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노동당 창건 70주년 열병식에서 연설하고 있다. ⓒAP=연합뉴스


프레시안 : 6자회담이 의미가 있으려면 미-북 간 사전 밑그림이 있어야 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현재 오바마 정부는 그럴 겨를이 없는 것 같아 보입니다. 임기가 채 1년 정도밖에 남지 않았는데요. 

정세현 : 그런 측면도 있지만 부시 정부도 임기 말을 코앞에 두고 2.13 합의를 만들어냈습니다. 이어 집권한 오바마 정부에서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은 부시 정부 때 만들었던 9.19 공동성명의 틀 안에서 북한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습니다. 내년 대선에서 누가 대통령이 될지 모르겠지만 정권이 바뀐다고 해도 정책의 연속성은 가져갈 수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한편으로 오바마 대통령은 갚아야 할 '외상'이 있습니다. 2009년 핵무기 없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연설로 노벨 평화상을 받지 않았습니까? 그럼 북핵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최소한의 디딤돌이라도 놓고 가야 평화상을 받을 자격이 있는 겁니다. 북핵 문제 해결의 좁은 문이라도 열어놓고 나가야지, 안 그러면 노벨 평화상 반납해야 합니다. 

프레시안 : 오바마 대통령을 움직이려면 남한이 움직여야 할 필요도 있지 않을까요? 

정세현 : 이번 회담에서 박 대통령이 오바마 대통령에게 계속 이야기했어야 합니다. "북한의 핵 능력과 미사일 능력이 고도화되는 것 미국이 더 잘 알고 있지 않냐, 그대로 두면 우리는 어떻게되냐, 미국이야 북핵이 늘어나도 걱정할 건 없지만 우리는 북핵 능력이 높아지면 그만큼 국민들의 불안감이 커지는 절박한 상황이다"라고 호소했어야 합니다. 

북한이 핵 폐기 의지를 표현하는 수준에서 6자회담을 시작하도록 문턱을 낮추자고 미국에 제안하고 설득하는 작업도 필요합니다. 하지만 오바마 대통령과 철 지난 성명만 발표하고 온 겁니다. 

이산가족 이후 남북관계는? 

프레시안 : 우려했던 이산가족 상봉이 예정대로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대로면 이번 상봉은 무난히 치러질 것 같은데요. 상봉 이후 남북관계는 어떻게 될까요? 

정세현 : 북한은 이번 상봉을 무사히 끝내고 8.25 합의에서 약속했던 남북 당국회담을 어떻게 해서든지 살려보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남북 당국회담이 돼야 미국과 협상 테이블에 앉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 북한은 뉴욕 채널 통해 혹시라도 미국이 자신들의 제안에 호응해나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은근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남한도 별다른 반응이 없고 미국도 호응이 없다면 북한은 남한과 대화도 하지 않은 채 악을 쓰고 나설 것입니다. 

따라서 남한이 8.25 합의에 근거한 당국 회담을 공식적이고 공개적으로 북한에 제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 북한이 한-미 공동성명에도 불구하고 평화협정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분명 남한, 미국과 대화 의지가 있다는 겁니다. 따라서 당국 회담을 제안해서 남북, 미-북 대화가 같이 가도록 유도해야 합니다. 이를 통해 남북관계 개선과 북핵 문제 해결을 동시에 추진해야 합니다. 

실제 이 시나리오가 실현될 수 있도록 임기가 2년 남은 박근혜 정부가 임기 1년이 남은 오바마 정부를 끌고 가야 합니다. 오바마 정부 임기가 1년밖에 남지 않았는데 뭘 할 수 있겠느냐는 인식이 아니라, 이렇게라도 만들어 놓으면 다음 정부가 최소한 북핵문제 해결의 문은 열린 상태에서 집권할 수 있다는 점을 자각해야 합니다. 

 

▲ 지난 20일 제20차 이산가족 상봉에서 65년 만에 다시 만난 남측 부인 이순규(왼쪽) 씨와 북측 남편 오인세 씨 ⓒ연합뉴스


통일부는 이런 분위기를 만들고 실제 실행하는데 노력해야 합니다. 세계 평화회의 같은 학술행사를 할 것이 아니라 실제적인 남북문제, 북핵 문제 해결에 힘을 써야 합니다. 한반도 평화도 제대로 만들지 못하면서 무슨 세계 평화를 논하고 있는 겁니까? 

예전에 남북 대화가 한창일 때, 1년에 서른 번 이상 회담을 했을 때는 회담 사무국 예산이 모자라서 정책실, 교육원 등등에서 가져다 쓴 적도 있습니다. 통일부가 세계평화회의를 한다는 걸 보니, 예산에서 불용액 남기지 않으려고 그런 것 같은데, 예산을 거기에 쓸 것이 아니라 당국회담을 열어서 실제적인 남북관계 개선과 북핵문제 해결에 써야 합니다. 

프레시안 : 그런데 북한은 여전히 이산가족 상봉을 부담스러워 하고 있습니다. 박근혜 정부는 상봉 정례화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북한이 여기에 호응하기는 쉽지 않아 보이는데요. 

정세현 : 20일부터 시작된 1차 이산가족 상봉 인원을 보면, 남한은 389명인데 비해 북한은 141명입니다. 총 96가족 만남에 141명이 나왔다는 이야기는 동반하는 가족이 없이 혼자 오는 사람이 적어도 절반은 된다는 뜻입니다. 북한이 이산가족 상봉 사업을 굉장히 어려운 일로 생각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렇다고 북쪽 가족들이 남쪽 가족을 만나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닙니다. 주민들의 생사를 확인하는 것이 북한의 행정력으로는 쉽지 않고, 또 설사 만나고 싶어한다고 해도 북한은 아무나 내보내지는 않습니다. 내보낼 수 있는 상태가 돼야 명단이 나옵니다. 

예를 들어 상봉 대상자의 건강 상태가 나쁜 경우 북한은 절대 내보내지 않습니다. 상봉 나가는 가족들 옷도 따로 준비해줄 정도입니다. 그런데 그동안 남한의 대북 지원이 없지 않았습니까? 없는 돈 모아서 억지로 상봉을 준비하는 것이라 북한은 반대급부가 없다면 정기적인 상봉은 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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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부·통일부를 출입하면서 주로 남북관계를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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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국무부 종교 보고서는 사실을 말하고 있을까?

 
 
 
 
 

지난 10월 14일 미국 국무부는 '2014 국제 종교자유 연례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에서 미 국무부는 북한을 15년째 '종교자유특별우려국' 명단에 올렸다.

보고서는 "북한의 헌법과 법률 등에는 종교의 자유를 보장한다고 돼 있지만, 실제론 종교의 자유가 전혀 없는 상태"라며 "개인이 종교적 신념을 선택하고 밝힐 수 있는 권한을 북한 당국이 지속적으로 제한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보고서는 탈북자의 증언을 인용해 "북한에선 종교 서적을 소지하는 것 자체가 불법이고 적발 시 수감 등 혹독하게 처벌하고, 일부 경우엔 사형에 처해진다"고 주장했다.

미 국무부의 주장은 사실일까?

미 국무부의 보고서는 북한을 직접 방문해 북한 종교의 실태를 살펴본 것이 아니다.

일부 탈북자의 증언이 있다고는 하지만 그동안 있었던 거짓 증언 논란으로 탈북자의 증언을 곧이곧대로 믿기도 어렵다.

예를 들어 2004년 이순옥이라는 탈북자는 북한이 기독교인들에게 철물을 부어 화형시킨다고 미국 하원에서 증언했으나 나중에 거짓말인 것이 드러나기도 했으며 최근에는 탈북자 신동혁 씨가 자신의 증언 중 일부가 거짓임을 고백하여 파문을 일으키기도 했다.

이와 관련 송지영 싱가포르 경영대학교 교수는 10월 4일 NK NEWS에 기고한 '일부 탈북자들의 증언이 무너지는 이유'라는 글에서 "16년 동안 탈북자에 대해 연구하며, 필자는 모순적인 이야기와 고의적인 생략, 거짓말을 수없이 많이 경험했다. 또한 사기와 불법행위에 연루된 일들을 목격하기도 했다. 한 번은 연구를 더 이상 진행할 수 없을 정도로 신뢰를 잃은 적도 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북한 종교생활의 실제 모습은 어떨까?

2014년 9월 북한을 방문해 북한의 종교 시설을 돌아보고 신앙생활 실태를 살펴본 재미동포 최재영 목사는 북한이 종교에 대한 자유가 없다고 하는 미 국무부의 보고서와 반대되는 이야기를 했다.

최재영 목사는 지난 2014년 10월에 있었던 본지와의 인터뷰를 통해 북한에는 사역교회, 사적지교회, 다용도교회, 직장교회, 대학교회 등이 있으며 500여 개의 가정교회가 있다고 밝혔다.

 

북한의 가정교회 신자들과 한국 교회 관계자들이 함께 찍은 사진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북한 가정교회 신자들과 한국 교회 관계자들이 함께 찍은 사진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최재영 목사의 말에 따르면 북한의 교회에서는 가정교회가 핵심이라고 한다. 북한의 교인들은 대체로 십자가가 달려있는 예배당 건물이 아닌 일반 가정집에서 주일예배를 드리는 데, 이것을 가정교회라고 부르는 것이다. 가정교회교인들은 10명에서 12명 정도의 인원이 주일날(일요일) 10시-11시에 모여서 빙 둘러앉아서 예배를 하는데, 피아노와 풍금없이 아코디언으로 찬송가를 반주하는 가정교회도 많다고 한다.

최재영 목사는 북한도 지하교회에 대해서는 제재를 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는 지하교회인들이 종교생활을 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공식적인 교회와 가정교회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외부 세력과 음성적이며 조직적인 세력을 구축하는 것이 정상적인 신앙생활이 아니라 반정부활동, 체제전복활동에 가깝다고 보기 때문이라고 한다. 북한은 사회주의 헌법 68조에서 "종교를 외세를 끌어 들이거나 국가사회질서를 해치는 데 이용할 수 없다"고 규정해놓은 바 있다.

실제 북한사역목회자협의회장 오성훈 목사는 2015년 8월 있었던 광복 70주년 연합컨퍼런스에서 '1995년과 2000년에 발생한 선교사 납북사건', '최근 선교사 억류사건' 등 몇 가지 선교사례가 정황상 정보기관과 연결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고 밝히기도 했다. 즉, 외부에서 북한선교를 활용해 북한 내 반정부활동을 한 정황이 있다는 것이다.

 

자신이 북한에 대한 국가정치테러에 가담했다고 밝힌 김국기 선교사. 사진 출처 : MBC 캡쳐

자신이 북한에 대한 국가정치테러에 가담했다고 밝힌 김국기 선교사. 사진 출처 : MBC 캡쳐

반정부활동이나 체제전복활동에 대해서는 미국도 강력한 처벌규정을 마련해두고 있다. 헌법에 규정된 반역죄는 '누구든지 미국을 상대로 전쟁을 꾀하거나 적과 유착해 미국 내외에서 도움을 주는 자는 사형 또는 5년 이상의 징역, 1만 달러 이상의 벌금형에 처한다'고 되어 있다.

만약 미국이 반역죄를 저지른 특정 종교인들을 체포하게 된다면 미국도 종교 탄압국이 되는 것일까?

결론적으로 최재영 목사는 "성공회가 영국 여왕을 교회의 수장으로 삼는 독특한 구조를 갖고 있어도 개신교의 주요 교단 중 하나이듯이, 북한 교회도 북한 체제와의 관계를 볼 때 낯선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그 교회가 가짜 교회라고 말할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북한 정부가 가진 종교에 대한 입장은 무엇일까?

2015년 7월 11일자 통일뉴스에 따르면 사회과학원 주체사상연구소 소장 박승덕은 주체사상은 사람중심의 방법론에 기초하여 종교에 나쁜 점만 아니라 좋은 내용이 있다는 것을 밝히고 그것을 응당하게 평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인간의 본성적 요구를 반영하고 있는 종교의 좋은 점을 긍정하고 그것을 더욱 조장 발전시켜 나가도록 종교인들을 도와주는 것이 북한의 방침이라고 주장했다고 한다.

500개에 달하는 북한 가정교회에서 예배를 보고 성경을 읽는 교인들은 "북한에선 종교 서적을 소지하는 것 자체가 불법이고 적발 시 수감 등 혹독하게 처벌하고, 일부 경우엔 사형에 처해진다"는 주장에 대해 뭐라고 이야기할까?

미국이 일부 증언을 인용하여 북한을 종교탄압국으로 규정한 것이 신빙성이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동훈 기자  NKtoday21@gmail.com    ⓒNK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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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가 하나되길 소망, 자주적으로 통일할 수 있는 힘 있어> ... 평화미국원정단 68일째

  • <코리아가 하나되길 소망, 자주적으로 통일할 수 있는 힘 있어> ... 평화미국원정단 68일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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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화미국원정단은 미국원정을 시작한지 68일째인 20일 오후4시반부터 백악관 앞에서 평화적인 피켓시위를 전개했다.
     
    원정단이 피켓시위를 시작하자마자 백악관 앞에 대기중이던 경찰은 <윗선에 보고해야 한다>며 단체이름이 무엇이고 몇명이 시위를 하는가, 어떤 내용으로 피켓시위를 진행하며 얼마나 진행할 것인지 등을 구체적으로 묻고 메모해 보고했다.
     
    각지에서 온 관광객들은 백악관 앞에서 진행하는 원정단의 피켓시위에 관심을 보이며 사진을 찍고 질문하며 때때로 토론을 벌였다.
     
    백악관 앞에 몰려있던 군인들은 원정단이 피켓시위를 시작하자 피켓의 내용을 꼼꼼이 읽으며 사진을 찍거나 동료들끼리 대화를 나눴다. 어떤 군인은 원정단 가까이 다가와 미군의 탄저균배달사실에 의아해하며 오바마 사과와 북침전쟁연습 중단을 요구하는 원정단의 시위에 경의를 표했다.
     
    인도네시아에서 온 관광객은 사진을 함께 찍자며 <모든 국가는 자주권이 있고 그것을 행사할 권리가 있다. 그러나 미국은 어느나라건 침입의 계기를 만든 다음 간섭하고 자기의 이익을 관철하며 세력을 넓히려고 한다. 미국은 이런 행위를 당장 중단해야한다.>면서 <70년동안 분단된 코리아가 꼭 스스로의 힘으로 통일하길 바란다.>며 원정단을 지지했다.
     
    잠시후 워싱턴관내 초등학교5학년 40여명의 학생들과 부모들이 백악관 앞 체험학습을 진행하며 피켓시위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잠시동안 주어진 자유시간에 어떤 한 현지인부자는 원정단에게 다가와 <나는 전직교사출신이고 지금 직업은 변호사다. 코리아, 일본, 중국의 역사를 공부했다. 코리아가 얼마나 아픈 역사를 지니고 있는지 잘 안다. 1950년대 코리아전이후 미국이 남코리아를 점령해 지금까지 분단돼 있는 현실이 너무나 안타깝다. 코리아는 진실된 역사를 되찾아야 한다. 코리아가 하나되기를 소망한다. 코리아는 충분히 자주적으로 통일할 수 있는 힘이 있다.>며 <북코리아를 침략하기 위한 합동군사연습을 벌이는 미군은 남코리아에서 당장 나가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옆에 있는 아들에게 원정단과의 대화내용을 하나씩 설명해주고 나서 <원정단의 투쟁을 적극 지지한다. 백악관 앞에서 시위해 줘서 고맙다. 계속 전진하길 바란다.>고 힘찬 응원을 보내며 악수를 청했다. 
     
    이어 또다른 학부모는 원정단이 피켓을 높이 들고 시위하는 장면을 보고 관심을 보이며 다가왔다. 그는 <왜 Korea가 아니고 Corea를 쓰는가>를 물은 뒤 원정단의 차분한 설명을 듣고 <처음에는 원정단이 잘못표기한 줄 알았다. 몰랐던 사실을 알게 돼 기쁘다. 다음부터는 꼭 Corea를 쓰고 사람들이 물어보면 알려주겠다. 코리아가 통일되고 Corea국호를 꼭 되찾기를 바란다.>고 진심을 전했다.
     
    원정단이 피켓시위를 마무리할 즈음 경찰은 백악관 바로 앞에서 피켓시위를 하지 말고 옆으로 비켜서서 진행할 것을 통보했으며 관광객들에게는 <보안>상황을 이유로 백악관 바로앞 울타리주변에서 떨어지라고 소리쳐 관광객들의 불평불만이 이어졌다. 
     
    한편 경찰은 지난달부터 가로등아래 감시카메라를 더 많이 설치해 인권을 침해하는 것도 모자라 전날 오후3시경부터 백악관 앞과 라파예트공원의 상당부분에 철제울타리를 쳐놓아 지나가는 관광객과 시민들에게 큰 불편을 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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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세기민족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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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5남측위, 정부의 실무접촉 불허에 규탄성명 발표 (전문)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15/10/22 06:24
  • 수정일
    2015/10/22 06:24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정치적 성격’ 운운 불허는 이중적.선별적 규제”6.15남측위, 정부의 실무접촉 불허에 규탄성명 발표 (전문)
김치관 기자  |  ckkim@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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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10.21  17: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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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상임대표의장 이창복)는 정부가 ‘6.15남측,북측위원회 실무접촉’을 불허한데 대해 21일 규탄성명을 발표, 불허 조치 철회를 촉구했다.

통일부는 전날 6.15남측위원회가 ‘6.15공동선언실천 북측위원회’(위원장 김완수)와 22일 개성에서 실무접촉 갖겠다며 제출한 방북 신청을 불허했다.

6.15남측위원회는 성명에서 “민간교류 활성화를 합의하고도 남북 사회문화교류를 부당하게 규제하려는 정부당국의 태도를 강력히 규탄한다”며 “통일부는 민간교류에 대한 부당한 규제를 중단하고 지금이라도 불허조치를 철회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나아가 “상호 교류와 협력을 촉진하고자 했던 남북교류협력법의 정신과 민간교류 활성화에 대한 8월 남북고위급접촉 합의에 따라 각계 민간교류를 전면적으로 보장해야 한다”면서 “6.15남측위원회는 앞으로도 부당한 통제와 불허조치에 맞서 남북 민간교류를 전면적으로 복원하기 위해 꾸준히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6.15남측위원회 등 민간단체들은 지난 8월 남북고위당국자 접촉에서 합의한 ‘8.25합의’에 따라 민간교류 활성화를 요구하고 있지만 정부는 선별적 대북접촉과 방북 만을 허용하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이번 6.15남측위원회 방북은 물론, 6.15남측위원회 산하 언론본부, 여성본부 등이 북측 파트너와 실무접촉을 추진하기 위해 제출한 북한주민접촉 신청도 승인하지 않고 있어 6.15여성본부가 통일부 앞에서 1인 시위를 진행하고 있다.

성명은 “정부가 남북공동선언을 존중하겠다고 말하면서도, 6.15남측, 북측위원회 간 교류에 대해 ‘정치적 성격’을 운운하며 불허하는 것은 이중적이고 선별적인 규제로서 비판받아 마땅하다”며 “남북교류협력법이 보장하고 있는 각계 교류에 대해 정부가 ‘정치성’이라는 자의적 잣대로 허가 여부를 판단하겠다는 것은 앞으로도 민간교류를 정부 입맛대로 통제하고 처리하겠다는 선언에 다름 아니다”고 비판했다.

통일부는 이번 실무접촉을 ‘남북관계를 고려하여’ 불허했고, 민간교류 활성화에 대한 남북 간 공식 협의가 진행되지 않았고, 6.15관련 단체의 교류는 ‘정치적 성격’의 것이므로 허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취했다.

통일부 관계자는 21일 <통일뉴스>에 “접촉 목적에 ‘남북 간의 8.25합의 6항에 따른 민간교류 활성화를 협의한다’고 하는데 이는 당국에서 먼저 협의해야 할 일”이라며 “노동자 통일축구처럼 구체적인 교류 사안이 없었다”고 불허 사유를 밝혔다.

성명은 “그동안 정부는 국회비준도 없는 5.24조치를 근거로 남북교류협력법이 보장하고 있는 민간교류나 협력사업을 전면적으로 차단해 왔고, 남북관계는 악화일로를 걸어왔다”며 “남과 북이 민간교류 활성화를 약속한 이 마당에서까지 불허를 거듭하는 것은 더욱 납득할 수 없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앞서 ‘6.15공동선언실천 북측위원회’(위원장 김완수, 이하 6.15북측위원회)는 15일 팩스를 통해 “우리는 귀 위원회에서 개성실무접촉을 10월 22일에 진행하자는데 대해 동의한다”면서 6.15남측위원회 실무접촉 대표단 명단과 도착 시간을 알려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따라 6.15남측위원회는 상임대표인 정인성 원불교 사회문화부장과 정책위원장인 이승환 민화협 공동의장 등 7명의 명단을 알려줬고, 6.15북측위원회는 19일자로 이들에 대한 초청장을 보내왔지만 정부가 최종 불허했다.

이승환 6.15남측위원회 정책위원장은 “다시 접촉신청을 낼 것이고, 통일부 장관 공식 면담을 요청할 것”이라고 밝혔다.

 

<성명>6.15남측,북측위원회 실무접촉 불허를 철회하라!
민간교류 활성화 합의를 이행하라!

통일부가 22일 개성에서 예정되었던 6.15공동선언실천 남측,북측 위원회 사이의 실무접촉을 불허하였다.

통일부는 이와 관련하여 ‘남북관계를 고려하여 불허하였다’면서, 민간교류 활성화에 대한 남북간 공식 협의가 진행되지 않았고, 6.15공동선언실천 민족공동위원회의 교류는 ‘정치적 성격’의 것이므로 허용할 수 없다고 밝혔다.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는 민간교류 활성화를 합의하고도 남북 사회문화교류를 부당하게 규제하려는 정부당국의 태도를 강력히 규탄한다.

그동안 정부는 국회비준도 없는 5.24조치를 근거로 남북교류협력법이 보장하고 있는 민간교류나 협력사업을 전면적으로 차단해 왔고, 남북관계는 악화일로를 걸어왔다. 각계교류가 차단된 상태에서는 상호 이해와 신뢰를 촉진하는 게 불가능하며, 오히려 불신과 대결, 군사적 긴장만 높아질 뿐이라는 것을 지난 8년의 현실이 입증하고 있지 않은가.

더구나 남과 북이 민간교류 활성화를 약속한 이 마당에서까지 불허를 거듭하는 것은 더욱 납득할 수 없는 일이다.

정부가 남북공동선언을 존중하겠다고 말하면서도, 6.15남측, 북측위원회간 교류에 대해 ‘정치적 성격’을 운운하며 불허하는 것은 이중적이고 선별적인 규제로서 비판받아 마땅하다.

남북교류협력법이 보장하고 있는 각계 교류에 대해 정부가 ‘정치성’이라는 자의적 잣대로 허가 여부를 판단하겠다는 것은 앞으로도 민간교류를 정부 입맛대로 통제하고 처리하겠다는 선언에 다름 아니다.

6.15공동선언실천 남측, 북측위원회간 접촉은 민간교류 활성화에 대해 정부가 얼마나 성의있게 노력할 것인지를 가늠 할 시금석이다,

통일부는 민간교류에 대한 부당한 규제를 중단하고 지금이라도 불허조치를 철회해야 한다.

상호 교류와 협력을 촉진하고자 했던 남북교류협력법의 정신과 민간교류 활성화에 대한 8월 남북고위급접촉 합의에 따라 각계 민간교류를 전면적으로 보장해야 한다.

6.15남측위원회는 앞으로도 부당한 통제와 불허조치에 맞서 남북 민간교류를 전면적으로 복원하기 위해 꾸준히 노력할 것이다.

2015년 10월 21일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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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갖고 있나요?

박정희가 만든 고교 국정교과서에도 유관순은 없었다
 
 
 
임병도 | 2015-10-21 08:41:01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교육부가 국정교과서를 ‘올바른 역사교과서’라 부르며 홍보에 나서고 있습니다. 교육부는 ‘올바른 역사교과서-유관순 열사편’이라는 동영상을 제작해 배포하고 있습니다. 교육부가 제작한 동영상에는 ‘2014년까지 일부교과서에는 유관순은 없었습니다.’라는 자막과 함께 ‘유관순은 2014년까지 8종의 교과서 중 2종은 기술이 안되었고, 2종은 사진 없이 이름 등만 언급되었습니다’라는 문구가 있습니다.

이 문구만 보면 마치 현행 대한민국 검인정 교과서가 유관순을 아예 기술하지 않은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8종의 교과서 중 유관순을 기술한 교과서는 6종입니다. 교묘하게 말을 바꾸어 현행 검인정 교과서가 문제가 있으니 국정교과서로 바꾸어야 한다는 논리를 펼치기 위한 무리수입니다.


‘박정희가 만든 고교 국정교과서에도 유관순의 이름은 없었다’

교육부가 논리대로 1979년 박정희 정권이 만든 국정교과서를 확인해보겠습니다. 과연 유관순이 있었을까요?

1979년 발행된 고등학교 국사 국정교과서 ‘독립운동의 방향과 3.1 운동편’을 봐도 유관순이라는 이름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1919년 3월 1일, 손병희, 한용운,이승훈 등 33인이 민족 대표의 이름으로 조선 독립 선언서를 선포하면서 3.1운동의 봉화를 올렸고, 시위가 전국 방방곡곡에 파급됐다’는 말만 나옵니다.

혹시나 해서 국사교과서 뒤편에 있는 ‘찾아보기’ 항목을 조사해봤습니다.

1979년 국정교과서 찾아보기 항목을 보면 ‘유길준’, ‘유득공’, ‘유몽인’, ‘유성룡’ 등의 이름은 있었지만, 유관순이라는 이름은 없었습니다. 즉 박정희 유신정권에서 발행한 고등학교 국사 국정교과서에는 ‘유관순’은 없었던 것입니다.


‘유관순이 있고 없고가 역사교과서의 잣대는 아니다’

1979년 박정희 정권이 펴낸 고등학교 국정교과서에는 유관순이라는 항목이 없었지만, 중학교 국사 교과서에는 짧게 유관순이라는 이름이 나옵니다.

중학교 국사교과서 268쪽을 보면 '어린 여학생 유관순의 순국 등 일제의 포악한 무력 탄압으로 인한 사상자는 2만 명이 넘었으며'라며 유관순이라는 이름이 나옵니다.

유관순이 있고 없고가 올바른 역사교과서의 잣대가 된다면 박정희가 만든 중학교 국사교과서는 올바른 역사교과서가 되고, 고등학교 국사교과서는 잘못된 교과서가 되는 것입니다.


‘초. 중, 고교별로 배워야 할 역사도 차이가 있다’

교과서를 만들 때마다 교육부는 ‘주요 학습 요소’를 제시합니다. 어느 시기에는 어떤 내용이 꼭 들어가고, 이 내용만은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한다는 공교육의 지침입니다.

교육부가 지난 9월 23일 발표한 ‘초중등학교 교육과정 총론 및 교과 교육과정 고시’를 보면 초등학생은 ‘일제의 침략과 광복을 위한 노력’에서 ‘광복을 위하여 힘쓴 인물 이회영, 김구, 유관순, 신채호 등’을 배우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중학교와 고등학교 학습요소에는 빠져 있습니다. 대신 중학생은 ‘민족자결주의’를 고등학생은 ‘무단통치’. ‘토지조사사업’ 등을 3.1운동과 함께 공부하게 되어 있습니다.

왜 초등학교에는 유관순이 들어 있고 중, 고등학교 교과서에는 없을까요? 바로 공부하는 수준의 차이입니다. 초등학생은 덧셈, 뺄셈을 배우고 중, 고등학생은 미분, 적분을 배웁니다. 고등학생에게 구구단을 가르치는 일 자체가 어리석은 일입니다. 유관순 열사는 이미 초등학생 때 다 배우고 왔다고 가정하고 고등학교에서는 조금 더 깊이 있는 일제강점기의 역사를 배우는 것입니다.

중학생들은 북한 관련 주요 학습요소로 ‘7.4 남북 공동성명’, ‘남북 기본 합의서’, ‘6.15남북 공동 선언’을 배웁니다. 그러나 고등학생처럼 ‘주체사상과 세습 체제’, ‘천리마운동’ 등은 배우지 않습니다. 이유는 무엇일까요? 중학생들이 배우고 판단하기에는 ‘주체사상’등은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교육부는 교과서 집필의 지침을 내려주고, 우리 아이들이 꼭 배워야 할 항목과 사건을 제시해주는 역할을 합니다. 그런 교육부가 유관순이 있고 없고를 올바른 역사교과서의 잣대로 삼고 있다는 자체가 두렵습니다. 이런 수준이라면 우리 아이들이 나중에 외국인들과 어떻게 역사를 가지고 토론할 수 있겠습니까?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갖고 있나요?
 
‘현재 역사교과서는 다양한 출판사에서 총 9개의 역사교과서가 나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부가 이거를 국정교과서로 만들어 버리면 아무리 객관적으로 바뀐다고 해도 정치적인 색채를 띄게 될 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또한, 역사는 다양한 관점과 다양한 의견이 모아져 이루어지는 학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국정교과서를 만들게 되면 저희 학생들은 편향된 역사교과서로 역사를 배울 수 있을 것 같아서 이렇게 나오게 되었습니다.’ 국정교과서 반대 1인 시위 삼성고등학교 2학년 이다혜 학생
 
우리 아이들은 어른들보다 훨씬 똑똑합니다. 이 아이들에게 정치인들이 만든 역사교과서가 아닌, 제대로 된 역사를 가르쳐야 합니다.

대한민국 헌법에는 ‘모든 국민은 학문과 예술의 자유를 가진다’고 되어 있습니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학문의 자유가 없다면 자유민주주의 국가라고 부를 수 없습니다. 대한민국은 김일성의 사회주의 조국이 아니라 ‘민주공화국’입니다.


[진실의길. 기고 글&기사제보 dolce42@naver.com]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13&table=impeter&uid=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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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열병식에 정말 1조 원이나 썼을까?

북한 열병식에 정말 1조 원이나 썼을까?

 
 
 
 
 

북한이 당창건 70주년을 맞아 진행한 역대 최대 규모의 열병식에 많은 이들이 관심을 모았다.

심지어 국내 한 종편 방송은 열병식 전체를 생중계하기도 하였다.

 

ⓒ 신은미

ⓒ 신은미

한국은 과거 국군의 날(10월 1일)에 열병식을 진행했는데 2004년부터 중단됐다가 건군 65주년인 2013년에 한 번 진행하였다.

한국에서 열병식을 구경하기 힘들어서인지 한국에서는 북한 열병식을 북한의 상징처럼 여기곤 한다.

군인들은 열병식 선발을 선호해

북한은 주요 기념일 가운데 '꺾어지는 해'(5년, 10년 주기)에 주로 열병식을 한다.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지만 열병식은 국방력을 포함한 국력을 과시하며 국민들에게 국방에 대한 관심과 자긍심을 심어주기 위한 목적에서 진행된다.

북한은 특히 선군정치를 내세우고 있기 때문에 열병식을 매우 중요하게 보고 있다.

2013년 7월 7일 채널A '이슈 와이드/평양 스토리' 방송과 2014년 4월 29일 MBC '톡톡 북한 이야기' 방송에서는 북한 열병식의 내면에 대한 이야기들이 나온다.

방송에 따르면 열병식 참가는 북한 최고지도자 앞에 설 수 있기 때문에 "가문의 영광"으로 여겨지며 군인들이 열병식에 선발되는 것을 무척 기뻐한다고 한다.

또 일반 병사는 참가할 엄두도 못 내고 중사, 상사들 가운데 핵심만 선발된다고 한다.

열병식에 참가한 군인들은 휴가는 기본이고 공로메달과 전사영예훈장 등을 받으며 우선 입당 대상자가 된다고 한다.

열병식장에는 다양한 색깔의 종이꽃을 들고 배경을 만드는 주민들과 거리 환영인파, 관람객까지 포함해 20만 명 이상이 참여하며 열병식 끝나면 군인들이 평양 시내를 한 바퀴 돌면서 평양 시민들의 환영을 받는다고 한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열병식은 군인들의 사기를 높이고 주민들이 군대에 대해 호감을 갖도록 하는 작용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에서 열병식은 이제 더 이상 군대 행사가 아닌 일종의 문화 행사가 되고 있다.

이번 열병식에도 현역 군인이 아닌 로농적위군, 붉은청년근위대 등 한국으로 따지면 예비군 성격의 부대가 참가하는가 하면 백두산영웅청년돌격대, 조선소년단처럼 아예 민간인이 열병식에 참가하기도 하였다.

또 열병식에 이은 평양시 군중시위와 청년 횃불행진은 전부터 하나의 묶음으로 진행되는 행사들이다.

열병식 행사 비용이 1조 원이 넘는다고?

한편 10월 10일자 연합뉴스는 보도를 통해 북한이 열병식 행사에 1년 예산의 3분의 1인 1~2조 원에 달하는 예산을 투입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구체적으로 "각종 건설사업, 전시용 무기 준비, 주민 동원, 행사 도구 마련, 외신 초청 비용 등"에 예산이 소요되었다고 한다.

여기에는 두 가지 함정이 있다.

첫째는 건설이나 무기 준비가 열병식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올림픽 유치를 위해 경기장을 지으면 올림픽이 끝난 후에도 철거하지 않고 계속 경기장으로 활용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특히 열병식을 위해서는 별도의 건물이 필요하지 않고 광장이나 도로는 이미 존재하는 것이므로 추가 건설 비용이 얼마나 들었을지도 의문이다.

무기 역시 전쟁에 대비해 어차피 군대가 개발, 보유해야 할 무기들이지 열병식만을 위해 무기를 개발하는 나라는 없을 것이다.

주민 동원 역시 일당을 줘가며 주민들을 모을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군인들이 열병식 참가를 선호하듯 주민들 역시 열병식장 가까이에서 구경하는 걸 선호할 가능성도 있다.

중국과 비교해도 말이 안 된다

둘째는 중국 전승절 열병식 예산과 비교해도 납득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9월 3일 열린 중국 열병식에는 10개국 군인 1만2천여 명이 참석해 역시 역대 최대 규모로 진행되었다.

일부 언론들은 중국이 전승절 열병식 때문에 3조8700억 원이 넘는 예산을 투입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구체 항목을 살펴보면 청명한 날씨, 이른바 '열병식 블루(blue)'를 위해 20일 동안 2천여 개 공장 가동을 중단시킨 경제손실이 3조4600억 원으로 90%를 차지한다.

베이징의 공기가 매연 때문에 너무 탁해 공장 가동을 중단시키면서까지 대기 오염을 정화했다는 것인데 중국은 대규모 국제 행사를 할 때 종종 이런 극단적인 처방을 한다.

그러나 평양을 방문한 이들 가운데 매연이 심각하다고 이야기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

북한이 열병식 때문에 공장 가동을 장기간 중단시킬 이유가 없는 것이며, 실제 그런 징후도 없었다.

설사 북한이 평양 공장을 장기간 중단시켰다고 해도 중국처럼 수 조 원의 경제손실을 보지는 않을 것이다.

따라서 중국 전승절 열병식 예산의 절반 가까이를 북한이 소비했다는 것은 합리적 분석으로 보기 어렵다.

이처럼 제대로 된 근거도 없이 북한이 열병식에 1~2조 원의 막대한 돈을 사용한 것처럼 보도하는 것은 북한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심어줄 수 있어 주의해야 할 것이다.

문경환 기자  NKtoday21@gmail.com    ⓒNK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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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교육 '민주화'? 새누리가 일베 용어를 쓰다니

 

[주목! 이 현수막] '전쟁' 발발시킨 여당의 왜곡된 현수막 문구들

15.10.20 19:48l최종 업데이트 15.10.20 19:48l

 

 

국정교과서 강행 후 정부 여당은 적극 여론전에 나섰습니다. 온라인 선전은 물론 대문짝만하게 신문광고도 게재했죠. 이 외에 주요 홍보 수단이 바로 현수막입니다. 신호등 앞에 서서 무심결에 바라보게 되는 현수막을 통해 국정교과서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강렬하고 뇌리에 꽂히는 문구를 만들려는 욕심에서 일까요. '왜곡된' 표현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김일성 주체사상을 우리 아이들이 배우고 있습니다' 문구입니다. 

시민단체는 이 문구가 검정 한국사 교과서를 만든 출판사와 집필진, 이를 검정한 교육부의 명예를 훼손시켰다며 새누리당을 검찰에 고발했죠. 해당 문구는 커뮤니티 <오늘의 유머>를 중심으로 "새누리당의 거짓과 세뇌의 현수막에 맞서, 진실의 현수막을 달겠다"는 '현수막 전쟁'( 관련 기사 : "주체사상 문구 끝판왕, 새누리당 여기까지 왔구나")을 촉발하기도 했습니다. 

여기서 주목할 만한 새누리당 현수막이 또 있습니다. 바로 '역사교육의 민주화 국민통합 역사교과서로'입니다. 

집단 멘붕 초래한 새누리당 현수막 문구 '역사교육 민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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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천 역곡역 앞에 내 걸린 새누리당 현수막.
ⓒ 박현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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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아한 부분이 있으신가요? 바로 '민주화' 대목 때문일 텐데요. 우선 사전적 의미의 민주화부터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 정의한 민주화는 "정치, 경제, 문화를 포함한 사회 전 영역에서 자유와 평등을 포괄한 민주주의의 원리들이 확산되고 심화되는 과정"입니다. 자유와 평등의 원리가 널리 퍼져나가는 것, 간단히 표현하면 이렇습니다. 

그런데 국정교과서는 '하나의 역사'만을 진실이라 가르치겠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47개 대학 역사 관련 학과 교수 323명(20일 정오 기준)이 입을 모아 "한국사 교과서의 국정화가 한국 사회의 보편가치인 학문의 자유와 교육의 자주성 그리고 사상과 양심의 자유 등 민주적 기본가치를 훼손할 우려가 있다"며 반대 뜻을 밝히고 있습니다. 즉, 민주화에 역행한다는 겁니다.

오죽하면 일본 외신기자가 정부에서 개최한 '역사교과서 관련 브리핑'에서 "역사 교과서 국정화는 오히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논리에 어긋나는 것 아니냐"며 "자유민주주의는 다양성을 보장하는 것이고 시장경제는 선택권을 주겠다는 것인데, 국정화는 공급을 단일화시켜서 이것만 보게 하겠다는 것이어서 시장경제 원리에 어긋나는 것 같다"라고 지적 했을까요. 

누리꾼들은 '멘붕'을 호소합니다. 트위터 이용자 '@gclef*****'는 "'역사교육의 민주화, 국민통합 역사교과서로' 새누리당의 이 현수막 문구를 보면서 멘붕이..."라고, '@mind****'은 "새누리당이 국정교과서를 추진하면서 민주화라는 용어를 쓰다니...이명박이 환경운동하고 이완용이 독립운동한다는 말과 똑같군요"라고 비판했습니다.

"일베에서 사용하는 '민주화' 의미로 해석하면 정확"

새누리당은 어떤 의도로 '민주화'를 사용한 것일까요? 누리꾼들은 그 해법을 인터넷 커뮤니티 '일간베스트 저장소', 즉 일베에서 찾았습니다. 트위터 이용자 @neop****는 "역사교육을 '민주화'시키겠다고? 이 현수막은 일베에서 사용하는 그 '민주화'의 의미로 해석하면 정확한 해석이 된다"고 꼬집었습니다. 

커뮤니티 '엠엘비파크' 자유게시판 '불펜'에는 해당 현수막을 알리는 글이 올라온 후, "일베에서 쓰는 의미로 현재 역사교육이 시궁창이라는 뜻으로 쓴 거"(眞田**), "저렇게 공개적으로 일베용법을 쓰다니..."(vlrhsg****), "정당도 하나로 만들고 민주화라 하겠네"(han***)라며 개탄의 댓글이 줄지어 달렸습니다. 

실제 '일베'에서 민주화는 본래 뜻과는 정반대로 '억압하다' 등의 부정적 의미로 쓰이고 있습니다. 현재 일베 게시판에는 국정교과서 반대 대자보에 낙서를 한 후 "대학교 빨갱이 선동 대자보를 민주화시켜 보자"라는 글이 베스트 게시물로 올라와 있기도 합니다. 

이렇듯, 누리꾼들은 새누리당이 얘기하는 '민주화'가 일베의 '민주화'라고 해석할 정도로 국정교과서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불펜'에서는 역사교육 민주화를 두고 "역사교육의 유신화"(불가사**), "역사교육의 종북화겠지"(alles***), "역사교육의 독재화 아닌가"(건*)라며 문구 수정에 나서기도 했습니다. 

부정적 역사관? "아베 총리의 자학사관과 같은 것... 모독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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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천터미널과 삼각지역 인근에 걸린 '부정적 역사관' 현수막.
ⓒ 김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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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현수막을 볼까요. '우리 아이들을 부정적 역사관에서 구해내야 합니다.' 이 현수막도 시내 곳곳에 붙어있습니다. 현재 교과서가 부정적인 역사관, 자학사관을 심어주기 때문에 국정교과서를 추진해야 한다는 논리입니다. 

이에 대한 반박논리는 차고 넘칩니다. 도종환 새정치민주연합 한국사교과서국정화저지특위 위원장은 지난 13일 <민중의 소리>와의 인터뷰에서 "극우단체가 만든 대안교과서를 보면 김구는 테러리스트라고 나오는데 이런 걸 만들어서 자기들이 원하는 역사관으로 가르치고 싶은 것"이라며 "'독립운동가는 3대가 못 산다'는 이야기를 하는 건 '자학사관'이라고 가르치고 싶은 것이다, 아베 일본 총리가 말하는 '자학사관'과 같은 것"이라고 비판했습니다.

국사편찬위원장을 지낸 바 있는 이만열 숙명여대 명예교수는 "자학사관은 아주 모독적"이라고 일갈합니다. 

"김무성 대표가 자학사관이다 얘기하는데, 1995년 무라야마 사회당 당수가 총리가 되면서 무라야마 담화가 나오지 않습니까? 당시에 거기에 가장 반발한 게 아베 신조를 중심으로 한 자민당의 극우세력이었습니다. 

극우세력이 반성적인 역사를 두고 자학사관이라고 그랬습니다. 그게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으로 만들어지고 2001년 후소샤 교과서로 나오게 됩니다. 일본에서 그렇게 써먹은 것을 왜 우리 역사를 비판하는 데 써먹느냐? 아주 모독적입니다." (지난달 16일 <CBS 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인터뷰)

독일 디스터벡(Diesterweg)사 역사 교과서는 근현대사 분량의 1/5을 나치 독일에 대해 다룹니다. 나치 독재 체제 큰 단원의 이름이 '기만, 유혹, 그리고 폭력'일 정도로 히틀러와 나치의 악행을 가감없이 드러내고 있습니다. 

홀로코스트에 대해서도 "나치가 치밀하게 준비한 것"이라며 있는 그대로 담고 있습니다. 과거에 대한 반성을 통해 현재와 미래를 제대로 일궈나갈 수 있다는 믿음에서 기반한 것이지요. 

이런 독일에서도 "역사교육은 국가의 부정을 목표로 하는 좌파들의 영향력을 일소해야 한다. 역사는 '올바르게 해석된' 공정성에 기초해야 한다"는 교육강령을 내건 적이 있었습니다. 물론, 70년 전 나치 시대 일이었죠. '진실'을 알리는 게 결코 '자학'은 아닐 것입니다.


○ 편집ㅣ홍현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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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 국정원 직원 94일만에 내사종결.. 자살 결론

 

경찰 “단순 자살 명백”.. 네티즌 “의문만 남기고 종결처리?”나혜윤 기자  |  balnews21@gmail.com
 

국가정보원에서 해킹 프로그램 관련 업무를 담당하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국정원 직원 임모 씨 사건이 94일 만에 단순자살로 종결됐다.

언론 보도 등에 따르면, 20일 경기 용인동부경찰서는 “검찰로부터 최종 내사종결 지휘가 나옴에 따라 이날 중으로 내사 종결할 계획”이라며 “조사결과를 보면 단순 자살이 명백했다”고 말했다.

앞서 임씨는 지난 7월 18일 낮 12시께 용인시 처인구 이동면 화산리 한 야산 중턱에서 자신의 마티즈 승용차 안에서 번개탄을 피워 숨진 채 발견됐다.

   
▲ 7월 18일 국정원 해킹 의혹과 관련해 유서를 남기고 숨진 국정원 직원 임모 과장이 발견된 빨간색 마티즈 차량. <사진제공=뉴시스>

경찰은 임씨의 유서, 행적, 번개탄 등 구입경로, 휴대전화 통화내역 등을 분석하고,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부검 결과를 바탕으로 “사인은 ‘일산화탄소 중독사’로 전형적인 자살사건”이라고 발표했다.

그러나 당시는 국정원에서 구입한 해킹 프로그램이 논란이 거세었던 터라 업무를 담당했던 직원 임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자 차량 번호판 조작설 등 각종 의혹들이 제기됐다. 경찰과 소방당국의 해명에도 차량 폐차 과정, 소방 구급대원들의 무전 내역 등에 대한 의혹들이 추가로 제기됐다.

이에 따라 검찰은 사건을 내사종결 지휘하지 않고 경찰에 추가 조사를 지시했고, 마무리되는데 3개월이 넘게 걸렸다.

해당 소식을 접한 네티즌들은 경찰의 ‘내사종결’ 발표에도 의문을 표하는 등 다양한 반응들을 보였다.

   
   
   
   
   

 

이들은 “내사종결? 억울한 면이 있지 않을까?”(루비**), “국정원은 왜 코너에 몰릴 때마다 직원이 자살하나?”(아**), “수사 참 단순하네. 예상은 했다만 여러 가지로 안타까운 수사며 나라꼴”(이**), “조용히 잊혀지는군”(행복***), “잘못한 거 없는데 유서 쓰고 하트도 그리고 죽었다던 국정원 직원”(저**), “탁 치니 죽었다?”(2050*****), “이번에도 의문만 남기고 종결처리”(익명****), “단순해서 좋지?”(게오**), “껄그러우면 모두 묻어버리는군”(가람**) 등의 반응들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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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달 만에 헤어져 65년만에 만난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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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10.20  17: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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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년을 함께 살다 헤어져 65년의 세월이 지난 뒤에야 만나 부부는 여전히 정다웠다. 북측 오인세(83) 씨는 아내 이순규(85)를 만났고 헤어질 당시 복중에 있던 아들 오장균(65)씨와도 극적인 상봉을 했다. [사진-사진공동취재단]

북측 아버지는 상봉장에 들어서자마자 남쪽 아들을 한눈에 알아보고 들어 올리려는 듯 부둥켜 안았다. 남쪽 아들은 아버지에게 “아버지의 자식으로 당당히 살려고 노력했다”며 큰절을 했고 아버지는 곁에 있던 아내에게 “가까이 다가앉으라”며 자리를 내주었다.

20일 오후 3시(현지시간, 서울 3시 30분)부터 제20차 남북이산가족 상봉행사 첫째 날 단체상봉 행사가 금강산지역 이산가족면회소에서 열렸다.

북의 아버지 오인세(83) 씨는 남에서 간 아들 오장균(65) 씨와 아내 이순규(85) 씨를 만나 흔치 않은 부자상봉, 부부상봉의 모습을 연출하며, 감동을 자아냈다.

아버지는 헤어질 당시 복중에 있어 이날 처음 보는 아들과 손을 포개면서, 또 얼굴을 맞대면서 연신 “닮았지”라고 말했다.

아들은 “65년을 떨어져 있었어도 낯설지 않다”며, 살아계신데 제사를 지냈다는 후회와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불과 반년을 함께 살다 생이별을 한 부인 이순규 씨는 “살아있는 것만 해도 고맙다”며, “65년 동안 얘를 키우고 했으니 벌금내야지”라며 웃음을 짓기도 했다.

시간이 좀 지나자 오 씨는 쑥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 65년만에 만난 아내에게 과자 하나를 입으로 건네주었고 아내는 웃으면서 받아 물었다. 아내 이순규 씨도 남편에게 똑같이 입으로 과자를 건넸고 남편도 웃으며 받아 들었다.

남편이 북에서 결혼해 다섯 명의 자녀를 두고 있다는 사실 따위가 중요하지는 않은 듯 보였다.

아버지 오 씨는 이미 노년에 접어든 아들과 함께 온 며느리도 처음 만났고 93세의 형수 이동임 씨와도 상봉했다.

   
▲ 20일 오후 3시(현지시간, 서울 3시 30분)부터 제20차 남북이산가족 상봉행사 첫째 날 단체상봉 행사가 금강산지역 이산가족면회소에서 열렸다. [사진-사진공동취재단]

며느리와 함께 상봉행사에 나온 북의 채훈식(88) 씨는 남에서 온 부인 이옥연(88) 씨를 만나 연신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아주었다. 아들 채희양(65) 씨와 며느리, 두 손자가 남북으로 갈라진 세월을 살아온 부모의 모습을 말없이 지켜보았다.

옆 테이블에서는 북의 아버지가 남의 딸을 만나 다시는 헤어지지 않겠다는 듯 두 손을 꼭 잡고 놓지 않았다.

휠체어를 타고 지팡이를 든 채 면회소에 입장하는 리흥종(88) 씨를 멀찌감치에서 알아본 이는 여동생 이흥옥(80) 씨였다. ‘오빠’라고 부르고는 멀리서부터 달려가자 이내 알아본 리 씨의 눈시울이 금세 벌겋게 붉어졌다. 옆에 있는 이정숙(68) 씨를 가리키며 “딸이야 딸”이라고 알려주자 리 씨는 입까지 떨었다.

휠체어를 테이블 근처로 끌어와 의자에 앉히면서도 눈물만 뚝뚝 흘리고 딸은 아무 말도 못한 채 60여년 만에 만난 아버지를 챙기면서 눈시울이 붉어진 모습이다.

   
▲ 이정숙(65)씨는 아버지와 잡은 손은 맡겨놓은 채 한손으로 그리운 아버지의 얼굴을 감싸쥐고 눈을 쳐다 보면서 아버지가 못 들을새라 귀에 대고 잘 들리도록 한참을 이야기했다.[사진-사진공동취재단]

아버지 리 씨는 오른손으로는 동생을, 왼손으로는 딸을 꼭 부여잡았다. 딸은 아버지와 잡은 손은 맡겨놓은 채 한손으로 그리운 아버지의 얼굴을 감싸쥐고 눈을 쳐다 보면서 아버지가 못 들을 새라 귀에 대고 잘 들리도록 한참을 이야기했다.

딸: 아버지, 나 딸 정숙이 보고 싶었어요? 아버지 딸 정숙이 어떻게 생겼어?
아버지: 소원 풀었어...
딸: 딸 보니까 좋아요?
아버지: 끄덕
딸: 내가 할아버지 사진을 보면서 아버지 생각을 했었는데 할아버지랑 아버지 얼굴이 똑같아.
아버지:(잘 못알아들은 듯... 말없이 눈물 닦음)
딸: 아버지, 엄마 생각하셨어요?
아버지: 미안해서...미안해서...

리 씨와 동반해 온 북의 맏아들 리인경(55) 씨는 남의 누이가 “생활은 넉넉하고?”라고 묻자 “살만 하다”고 하면서 자리에 앉아 손을 꼭 잡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80세를 훌쩍 넘긴 고령의 이산가족들이 만나 서로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하는 안타까운 상황도 여기저기서 벌어졌다.

동반가족 없이 혼자 도착한 북의 김남동(83) 할머니는 남에 사는 오빠 김남규(96) 옹과 만나 손만 맞잡은 채 한동안 있다가 “김남규 오빠가 옳은가(맞나)?”라고 물었지만 남측 최고령 상봉자인 할아버지는 그 말도 잘 못 알아들었다. 조카 김경숙(여, 63)씨는 “고모가 할머니와 많이 닮았다”며, “할머니는 고모가 곧 올 거라고 하면서 고모 시집보낼 때 쓰려고 도포(삼베로 만든 옷)와 이불 천 같은 것을 오랫동안 간직하고 계셨다”고 말했다.

▶“엄마는 돌아가셨어”...영정으로 만난 어머니

북의 오빠는 남의 누이동생을 만나 비로소 돌아가신 어머니의 얼굴을 사진으로 만났다. 문정옥(문창순, 여, 77) 씨는 손수건으로 연신 눈물을 훔치면서 품에서 꺼낸 사진을 북에서 온 오빠 문창수(83)씨에게 보여주었다. “어머님 사진이에요.”

문창수 씨도 눈물을 흘리면서 사진 속 어머니를 어루만졌다.

함께 오지 못한 문 씨의 아들은 A4 크기의 종이 양면에 친필로 편지를 보냈다. “고모님께 문안인사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상봉입니다....통일의 그날 온 가족이 함께 만나자는 것을 약속합니다.”

남쪽 동생 박문수(남,71) 씨는 북측 누이 박문경(박문자, 여, 83)을 만나 챙겨온 선물을 하나하나 설명하며 살뜰하게 누이를 살폈다. 어머니의 사진을 꺼내며 “엄마다, 기억나나”고 묻자 누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훔쳤다.

북쪽 오빠는 13살이나 어린 남쪽 여동생을 만나 “엄마는 죽었어?”라고 물었고 동생은 얼굴이 발갛게 달아오르면서 “돌아가셨지”라고 말하며 눈물을 흘렸다.

오빠는 “됐어, 그만 울어”하면서 동생을 달래다가 정작 자신도 눈물이 그렁그렁해졌다.

휠체어를 타고 면회소에 입장하는 오빠 남상복(85) 씨를 보고 남상순(72) 씨는 통곡하며 끌어안았다. 상복 오빠는 어리광부리듯 우는 동생을 “됐어, 됐어”라며 달랬고, 상순 동생이 계속 통곡하며 “오빠 맨날 책 봤잖아. 그 모습이 계속 떠올랐어”라고 하자 옛 추억에 잠겨 웃음을 짓기도 했다.

오빠는 여동생과 함께 온 제부의 인상이 마음에 들었던지 “시집 잘 갔구나”라고 덕담을 건넸다.

앞서 단체상봉을 10분 앞두고 이산가족면회소에 먼저 들어와 있던 남측 상봉단 389명은 기대와 긴장에 찬 표정으로 북측 가족들이 들어올 입구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3시께 북측 가족들이 입장하자, 면회소 테이블 곳곳에서 울음이 터졌다.

상대적으로 고령자가 많은 남측 상봉단에는 휠체어를 이용하는 가족들과 부축을 받으며 입장한 가족이 눈에 띄었고 10여분 뒤에 입장한 북측 방문단은 남측에 비해 휠체어를 이용하는 가족들이 거의 없었다.

북측 방문단이 도착하자 남측 단장인 김성주 대한적십자사 총재는 북측 단장에 꽃다발을 증정하기도 했다.

이날 단체상봉은 오후 3시부터 5시까지 이산가족면회소에서 열렸으며, 저녁 7시부터는 같은 장소에서 2시간 동안 남측 주최의 환영만찬이 진행될 예정이다.

▶단체 상봉 이모저모

대한적십자사 관계자에 따르면, 이산가족 단체상봉이 이뤄진 면회소 대연회장으로 참새가 날아들었다고. 모두 이를 좋은 징조로 받아들이는 분위기.

금강산지역 날씨가 지난 14일쯤부터 풀려서 한 북측 안내원은 점퍼도 많이 가져왔는데 입지 못하고 그대로 가져갈 것 같다고 말하기도.

이산가족 단체 상봉장은 남북 이산가족면회소 1층 대연회장. 각 가족별로 한 테이블씩 총 96개의 테이블이 다닥다닥 붙어있어 시간이 좀 지나자 엄청난 열기가 연회장을 가득 채웠다.

북측 가족들은 대부분 복장이 동일했다. 여성의 경우 남청색 또는 짙은 자주색 치마저고리에 반짝이 꽃무늬 한복과 녹색 버버리 체크무늬의 가벼운 겉옷을 입었으며, 남성은 회색 양복에 대부분 검정색 중절모를 하고 있었다.

오후 5시 상봉이 끝나고 상봉장인 면회소 대연회장에서 북측 가족이 먼저 나오고 남측 가족은 그 뒤에 10가족씩 순서대로 나왔다.

상봉장을 떠나는 북측 버스를 향해 남측 가족들이 손을 흔들어 주었으며, 버스 안에는 손수건으로 입을 가린 채 훌쩍이는 할머니도 보였다.

남측 가족들은 지원단의 안내에 따라 버스로 이동했으며, 차분한 가운데 대체로 얼굴에 웃음을 머금으며 만족스러워하는 표정이었다.

북측 기자들은 단체상봉 초반에 잠시 있다가 대부분 밖으로 나가 담배를 피며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누었다. 남측 상봉가족, 적십자 관계자들과도 스스럼이 없었다.

이번 이산상봉 취재를 위해 북측 기자들은 총 13명이 왔으며, 평양을 출발해 전날 금강산에 도착했다고 한다.

북측 기자들은 주로 40~50대의 남자 기자가 많고 이들은 대부분 카메라를 들고 있었다고 한다. <민주조선> 기자는 최근 한국의 국정교과서 논란에 대해 관심을 보이며 왜 역사학자들이 반대하는지를 묻기도 했다.

(추가3.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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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조 3천억짜리 예우받고 돌아온 대통령과 김관진

우리 함께 갑시다? 외교와 안보는 그런 순진함으로 안 된다
 
임병도 | 2015-10-20 08:44:31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청와대가 KFX 사업의 기술이전 실패 책임을 물어 주철기 외교안보수석을 경질했습니다. KFX(Korean Fighter eXperimental)은 대한민국의 차세대 전투기 개발 사업으로 일명 보라매 사업이라고도 부릅니다. 노후된 전투기를 신형 전투기로 교체하면서 록히드 마틴사의 F-35를 도입했는데, 기술이전이 불가능해지자 주철기 외교안보수석을 경질한 것입니다.

기술이전 실패의 책임을 지고 주철기 외교안보수석이 경질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왜 김관진 국가안보실장이 빠졌느냐는 부분입니다. 주철기 외교안보수석은 박근혜 정권 출범 초기부터 함께 한 인물입니다. 이에 반해 김관진 국가안보실장은 MB정권이었던 2010년부터 박근혜 정부까지 국방부 장관을 했습니다. 즉, KFX사업은 김관진 실장의 주도하에 있었다고 봐야 하기 때문입니다.

KFX 사업은 2001년 김대중 대통령이 공군사관학교 졸업식에서 “늦어도 2015년까지 최신예 국산 전투기를 개발할 것”이라고 선언하면서 시작됐습니다. 참여정부에서는 양산이 불가능하다는 결론이 나와 차기 정권에서 추진하기로 결정했습니다. MB정부에서는 4대강 사업과 미국에 의존하는 국방예산 축소로 백지화됐다가 2010년 인도네시아와 전투기 공동개발에 관한 양해각서를 체결하면서 다시 진행됐습니다.

KFX 사업의 진행 과정을 보면 제일 많이 관여했던 사람이나 전문가는 주철기 외교안보수석이 아니라 김관진 국가안보실장이었습니다. 그런데 주철기 수석은 경질됐지만, 김관진 실장은 살아남았습니다. 도대체 무슨 이유일까요? 지금 언론이 얘기하는 방위사업청이 미국 기술이전을 숨겼고, 주철기 외교안보수석이 박근혜 대통령에게 보고하지 않았기 때문일까요?
 

‘방위사업청이 기술이전 실패를 숨겼다?’
 
대다수 언론은 방위사업청이 미국의 기술이전을 계속 숨겼고, 기술이전이 가능할 것처럼 홍보했다고 보도했습니다. 그러나 방위사업청은 국회 및 방추위(방위사업추진위원회)에 기술이전이 가능한 기술은 21건이라고 설명했다고 밝혔습니다.

2013년 방위사업추진위원회는 차기 전투기 사업 기종으로 미국 록히드마틴의 ‘F-35A’ 구매를 결정했습니다. 당시 위원장은 국방부 장관이었던 김관진 현 국가안보실장이었습니다. 방위사업청은 이때에도 방추위에 분명하게 21건의 기술은 이전이 가능하지만, 4건은 불확실하다고 보고했습니다.

김관진 국방부 장관은 이미 2013년 F-35A를 구매 결정하는 시기에 4건의 기술이전이 불가능할 것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이유는 4건의 기술이 KFX 사업에서 가장 중요한 기술이지만, 세게 어느나라에도 승인한 사례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방사청이 미국 승인을 기대하며 록히드 마틴과 조건부로 계약한 기술은 ‘다기능 위상배열 레이더 (AESA: 많은 표적 동시에 포착)’, ‘적외선 탐색 장비 (IRST:기상악화 시에도 표적 감지)’. ‘전자광학 추적 장비 (EO TGP:영상 선명성 강화)’. ‘전자전 제어 (RE JAMMER:적 전자체계 무력화)’ 등입니다.
 
기술이전이 불가능한 것은 장비가 아니라, 4개의 장비를 전투기와 하나의 시스템으로 통합하는 기술입니다. 우리가 설사 독자적으로 이 기술들을 개발해도 체계통합 기술이 없으면 전투기에 도입하기는 불분명합니다.  
 

‘순진하게 한미동맹만 믿고 추진한 기술이전’

F35A를 도입할 당시 김관진 국방부 장관이 지금 문제가 되는 핵심 기술 이전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느냐는 당연합니다. 왜냐하면 이 기술을 다른 나라에 이전할 수 있도록 미국이 승인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록히드 마틴은 이미 계약을 할 때부터 4개의 기술 이전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밝혔습니다. 왜냐하면, 승인 사례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방위사업청이 미 정부의 승인을 전제로 한 조건부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즉, 동맹국이라는 허상만 믿었던 것입니다. 당연히 록히드마틴은 계약위반을 한 것이 아닙니다. 자신들은 처음부터 불가능하다고 얘기했고, 우긴 것은 한국이기 때문입니다.

미국이 계약위반이나 기술 이전에 대한 말을 바꾼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한국이 순진하게 미국이 해줄 것이라는 환상만 가지고 F-35A를 도입한 것입니다.


‘우리 함께 갑시다? 외교와 안보는 그런 순진함으로 안 된다’

미국은 한국의 생각처럼 무엇이든 한국에 퍼주는 나라가 아닙니다. 미국이 방위사업에 대한 경쟁국이 될 수 있는 한국에 무턱대고 기술이전을 해줄 것이라고 기대하는 자체가 초등학생이나 믿을뻔한 생각입니다.

미국의 자국 우선 실리 정책을 보여주는 대목이 지난해 9월 김관진 국가안보실장이 미국을 방문했지만, 미국 국무장관과 국방부 장관을 만나지 못했던 현실입니다.
 
4개 항전장비(AESA 레이더, EO TGP, IRST, RF Jammer) 체계통합 기술에서 가장 중요한 미국 정부의 승인을 위해서는 미국 국무장관이나 국방장관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김관진 안보실장은 만나지 못했습니다. 2015년 8월에 한민구 국방부장관과 공군 참모총장이 기술 이전 승인 협조 요청 서한을 미국에 발송했지만, 결과는 '불가'였습니다.

미국을 방문 중이었던 박근혜 대통령이 미 국방성 펜타곤을 찾았습니다. 당시 한국 언론들은 최고의 예우를 받았다고 보도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함께 갑시다 (We go together)’를 외쳤습니다.

아무리 박근혜 대통령이 함께 가자고 외쳐도 미국은 자국의 기술을 함부로 이전하지 않습니다. 한국과 미국은 엄연하게 다른 국가이며, 언제든 국익 앞에서는 자국의 이익을 우선시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만나서 예우를 해주는 것과 사업은 엄연히 다릅니다. 감정적으로 자기 생각만으로 사업하는 사람은 절대 성공하기 어렵습니다. 특히 국익 앞에서는 양보할 수 없는 것이 세계 지도자들의 공통된 모습입니다.  

미국이 기술이전을 해줄 것처럼 하다가 해주지 않았으니 나쁘고 배신당했다고요? 원래 미국은 기술이전을 해줄 생각도 그런 원칙도 없었습니다. 괜히 한국이 혼자서 북 치고 장구 쳤을 뿐입니다. 문제는 이를 주도했던 김관진 국가안보실장이 그런 사실을 알고도 국민에게 알리지 않은 점입니다.

김관진 국방부 장관은 국방 전문가로 박근혜 대통령 옆에서 국가안보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기술 이전에 대한 실패를 묻는다면 주철기 외교안보 수석과 함께 김관진 국가안보실장도 경질돼야 마땅했습니다. 그러나 왜 그는 경질되지 않았을까요?
 
받지도 못할 기술 이전을 운운하며 한미동맹을 외치는 수준의 국방 외교로는 대한민국의 실익은 전혀 없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펜타곤에서 받은 최고의 예우는 결국 7조 3천억 원짜리인 셈입니다.


[진실의길. 기고 글&기사제보 dolce42@naver.com]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13&table=impeter&uid=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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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과 이스라엘은 왜 닮았을까?

북한과 이스라엘은 왜 닮았을까?

2015. 10. 19
조회수 77 추천수 0
 

  부승찬 연대 정외과 박사는 북한과 이스라엘의 생존전략 비교를 박사학위 논문의 주제로 삼았다. 그에 따르면  북한과 이스라엘은 주변국에 포위돼 있다는 불안과, 동맹국을 믿지 못하는 불신에서 놀라울 정도로 닮아있다.  이러한 국가의 심성이 생존전략에서의 유사성으로도 구체화된다는 것이다. 부 박사가 직접 자신의 논문을 요약해 보내온 글을 재정리해서 싣는다.

 

부1.jpg

팔레스타인 시위대를 강제로 해산하고 있는 이스라엘 군

                                                

버림받고 포위된 국가, 북한과 이스라엘

 

  북한과 이스라엘은 '따돌림을 당해 고립돼 있는 국가들(pariah states)'이다. 엄밀히 말하면,  이들의 생존전략이 자주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두 국가는 ‘자주성’을 생존전략 수립과 집행의 ‘신조(credo)’로 여긴다. 동맹이나 집단안보체제 등 대외적 수단에 의존하기 보다는 자체 군사력의 강화를 통해 생존을 보장받고자 하며, 국제사회의 압력과 제재에도 핵무기 개발을 단행했다. 군사전략에 있어서도 공세적인 성향을 보인다. 생존전략만 놓고 보면, 이들은 결코 약소국이 아니다. 오히려 강대국에 가깝다. 
  두 국가의 이러한 자주적 생존전략은 '포위 심성(siege mentality)'에서 비롯된 결과다. 포위 심성은 자신들에 대한 국제사회의 의도와 행태가 항상 부정적이라고 인식하는 집단적 심리상태를 의미한다. 포위 심성에 사로잡힌 국가들은 항상 자신들이 국제사회로부터 버림받았다고 여기기 때문에 생존의 위협에 직면해서도 외부의 지원을 기대할 수 없으며, 기대해서도 안 된다고 인식한다. 포위 심성은 부정적인 정서(emotion)인 불신(distrust)과 두려움(fear)으로 구성돼 있다. 북한은 한국전쟁과 8월 종파사건을 경험하면서, 이스라엘은 홀로코스트와 독립전쟁을 경험하면서 후견국이나 국제사회에 대한 불신과 적대국의 위협에 대한 두려움을 갖게됐다. 적대국의 위협에 대한 두려움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자신들의 생존을 보장해 줄 것이라 믿었던 존재에 대한 불신마저 생긴다면, 스스로의 힘으로 자신들의 생존을 보장받는 자주적 생존전략이 이들이 생존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될 수밖에 없다. 
  두 국가는 자신들이 국제사회로부터 버림받았다고 인식하기 때문에 자신들의 생존전략을 군사우위, 자기의존, 그리고 행동자유의 원칙에 따라 규율(프레이밍) 한다. 첫 번째 원칙인 군사우위의 원칙은 국가안보를 군사안보와 동일한 개념으로 인식하고, 자신들이 직면한 위협도 군사 사상에 따라 그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적대적인 세계에 둘러싸여 있다고 항상 느껴 왔던 북한과 이스라엘 사회에서 군사담론의 중요성은 두말할 필요조차 없으며, 국가 방위를 위해 존재하는 군이 국가안보의 역사·사회·정치적 토대로 여겨지는 것은 어찌 보면 너무도 당연한 것이었다. 전 사회적으로 포위심성이 하나의 집단적 정체성을 이루고 있는 상황에서 군은 상시적 위협을 예방할 수 있는 가장 전문적이고 신뢰할 만한 행위자였다.  

 

 

부2.jpg 
 선군정치를 내세우기도 하고 군사력 과시를 위해 열병식 등 군사 퍼레이드를 벌이는 북한군

 

 

동맹을 맺지 않는 자기의존 국가

 

  두 번째 원칙인 자기의존의 원칙은 글자 그대로 ‘자신의 생존은 스스로 지킨다’는 의미다. 아무리 군사담론이 사회 제 분야를 지배한다고 할지라도 위협에 직면해 이를 격퇴하거나 억제할 수 있는 힘이 없으면, 결국 국가 생존은 또 다시 외부세계에 의해 좌우될 수밖에 없다는 논리다. 이는 김일성이 생전에 지속적으로 강조해 왔던 데서도 확인된다. 이 논리를 따를 경우 자기의존의 원칙은 자연스럽게 자주적 국방력 건설로 귀결된다. 국가 붕괴나 존립의 위기상황을 경험하면서 두 국가는 어느 국가도 자신들의 생존을 담보해주지 못했으며, 오히려 적대적이거나 무관심으로 일관했다고 인식한다. 이러한 역사적 경험을 고려할 때, 두 국가의 생존전략이 자기의존의 원칙에 입각하는 것은 어찌 보면 너무도 당연한 결과라 할 수 있다.  
  마지막 원칙인 행동자유의 원칙은 동맹정책과 관련돼 있다. 약소국과 강대국 간의 동맹은 구조적으로 '안보 제공과 자율성의 교환'이라는 비대칭적 성격을 지닌다. 강대국의 안보 제공을 담보로 약소국이 자신들의 국가자율성 일부를 내주는 것이다. 하지만 두 국가는 국제사회나 강대국들에게 자신들의 안보를 의존하는 것은 국가의 자율성을 약화시키고, 국가 존립 자체를 위태롭게 할 수 있다고 인식한다. 따라서 자신들에게 우호적인 강대국일지라도 이들과의 동맹을 꺼리고, 동맹 관계를 맺더라도 형식적인 관계에 머물려고 하며, 외국 군대의 주둔이나 연합훈련 등과 같은 실질적인 군사적 동맹행위도 국가 위기상황에서 행동의 자유를 제한한다는 이유로 거부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는 북한과 이스라엘이 자신들이 적대적으로 인식하는 국가들에 대한 공세적 군사행위를 감행하는 것이나, 국제사회의 반대에도 핵무기를 개발하는 데서도 명확히 나타난다. 이와 관련 김일성 주석과 이스라엘 베긴사다트 전략문제연구소(BESA Center) 소장인 이프레임 인바(Efraim Inbar) 교수는 다음과 같이 강조한 바 있다.

  우리는 이미 다른 나라들과의 조약체결 당시에 이것을 명백히 천명하였던 것입니다. 우리의 정권은 인민의 총의에 의하여 자유롭게 수립된 자주적인 인민의 정권입니다. 우리는 그 어느 때에도 외세에 의존한 일이 없으며 정치, 경제, 군사, 문화 등 모든 방면에서 완전한 독립을 이룩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대내외 정책은 어떠한 외국의 간섭도 허용하지 않는 완전히 자주적인 정책입니다(김일성 저작집 19, 1982).

 이스라엘은 방위조약을 미국과 체결한 적이 없습니다. 종이는 무용지물입니다. 한국과 미국은 수많은 공식 조약을 체결했습니다. 오로지 종이 한 장만 믿으라는 조언은 하지 않겠습니다. 미국이 대만과도 방위 조약이라는 문서 조약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후 미국은 대만이 우리의 이해관계가 아니라고 천명했습니다. 이것이 생생한 국제정치이고 국제관계입니다. 국제정치는 영원한 사랑을 약속하는 결혼이 아닙니다...(중략) 이스라엘은 안보 우산보다는 행동의 자유를 선택했습니다(세종연구소 초빙 특강, 2014년 7월).

 

 행동의 자유 - 핵개발

 

  이처럼 두 국가는 생존전략의 본질적인 측면에서 군사우위, 자기의존, 그리고 행동자유의 원칙에 입각한 자주적 생존전략을 추구하는데 있어서 유사성을 보인다. 하지만 행태적 측면에서는 서로 다른 양상을 보인다. 북한의 경우, 위협 엄포(bluffing)를 실제 군사적 행동으로 옮기지는 않지만, 실제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능력과 의지가 있다는 점을 상대방에게 전달함으로써 억지의 신뢰성을 극대화하는 ‘억지적 자주전략’을 표방한다. 이에 반해, 이스라엘은 임박한 위협이든 미래의 잠재적 위협이든 자신들에게 위협이 될 것이라고 판단되면, 위협 엄포를 실제 군사적 행동으로 옮기는 ‘능동적 자주전략’을 추구한다. 행태적 측면에서의 이러한 차이는 두 국가의 대외적 안보환경과 국내정치체제의 특성에서 비롯된 결과다.  
  우선 두 국가의 대외적 안보환경에 대해 살펴보면, 북한은 전략종심이 짧아 적의 공격 시에 효과적인 기동 공간 확보, 방어, 그리고 반격 등 작전준비에 필요한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전략종심이 짧다는 것은 북한이 상시 위협으로 간주하는 미국의 침략에 대응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보장해주지 못한다는 점에서 상당한 취약성으로 작용한다. 이스라엘의 경우는 북한에 비해 더욱 심각하다. 이스라엘의 영토는 북한의 1/6 수준에 불과하다. 전략종심이 짧은 것을 넘어 아예 부재하다. 두 국가 모두 적의 침략에 대해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시간적인 여유가 존재하지 않는 지리적 취약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대외적 안보환경에 있어서 상이성도 존재한다. 국력 면에서 북한은 주변국들에 비해 절대적으로 열세인 반면, 이스라엘은 역으로 주변국들보다 절대적인 우세를 보이고 있다. 주변국의 적대적 인식 차원에서도 상이성이 존재한다. 북한의 주변국들 모두 북한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북쪽에 위치한 러시아와 중국의 경우, 북한이 불신하기는 하지만, 국제사회에서 북한에 우호적인 몇 안 되는 강대국들이다. 게다가 중국은 형식적이기는 하지만 여전히 북한과 동맹관계를 유지하는 국가다. 이에 반해 이스라엘의 주변국 모두는 이스라엘의 존재 자체를 거부하는 적대국들이며, 현재까지도 이들 국가와 전쟁을 지속하고 있다. 이처럼 두 국가의 대외적 안보환경의 상이성은 두 국가로 하여금 서로 다른 행태의 생존전략을 추구하도록 하고 있다. 북한의 경우, 최대 위협국은 세계 패권국인 미국이다. 이러한 미국을 상대로 위협이 된다고 판단되면 선제공격이든 예방공격이든 마다하지 않는 능동적인 자주전략을 추구할 경우 자칫 체제 생존 자체가 위태로워질 수 있다. 체제 생존을 위해 억지에 기반한 자주적 생존전략을 추구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인 한계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스라엘의 경우는 다르다. 이스라엘은 주변 아랍국들과의 모든 전쟁에서 승리한 경험이 있다. 이라크와 시리아에서 건설 중인 원자로에 대한 예방공격도 성공적으로 수행한 바 있다. 게다가 국력의 절대적 기준에서 주변 아랍국들은 이스라엘에 열세를 면치 못하는 상대적 약소국들이다. 이러한 대외적 안보환경이 이스라엘이 억지적 자주전략보다 위협으로 판단되면 즉각적으로 실제 공격으로 옮기는 능동적 자주전략을 추구하도록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행태적인 측면에서 생존전략이 상이성을 보이는 또 하나의 요인은 국내정치체제의 특성이다. 북한은 근본적으로 최고 지도자 중심의 유일지배체제를 근간으로 하는 권위주의적 독재국가로 모든 정책결정이 최고 지도자 1인 혹은 소수 지배 엘리트들에 의해 비밀리에 이뤄지기 때문에 의회나 대중이 정책결정과정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여지가 전혀 없다. 최고 지도자 중심의 유일적 지배체제에서의 국가 생존은 최고 지도자의 생존과 직결된다. 자칫 무모한 군사행동은 정권 수립 이후 약 70년간 유지해온 체제를 일거에 무너뜨릴 수 있다. 따라서 북한의 생존전략은 외부 위협을 사전에 제거하는 선제공격이나 예방공격 등을 감행하는 능동적인 공격전략 보다는 군사력 사용의 위협을 통해 상대방이 군사력의 선제 사용을 거부하도록 하는 억지적 자주전략에 기초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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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 중 유대교 의식을 치르는 이스라엘 군. 이스라엘은 이슬람 국가 사이에서 자기 고유의 종교인 유대교를 유지하고 있다

 

국내체제가 다른 국가의 대외정책 유사성

 

 이에 반해 이스라엘은 민주주의 국가로 정책결정과정에서 의회나 국민의 영향력이 상당하며, 정기적인 선거를 통해 국민들이 정부 정책에 대해 책임을 물을 수 있어 국가의 생존전략은 국민적 지지 없이는 효율적으로 추진하기 어렵다. 특히 내각제라는 정부형태의 특성 상 정책결정자들은 의회보다는 국민 여론이라는 국내 정치적 요인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선제공격이나 예방공격, 그리고 전쟁 등과 같이 위험부담이 큰 공세적이고 능동적인 자주전략을 추구하는 경우, 정책결정자들이 위협(공약)을 실천하지 않음으로써 부담해야 할 국내 청중비용뿐만 아니라 국민들이 부담해야할 비용이 상당히 높은 관계로 국민적 지지가 동반되지 않은 상태에서 정부가 독단적으로 이를 행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바꿔 말하자면, 이스라엘이 국가건설 이후 현재까지 능동적 자주전략을 추구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국민들의 절대적 지지가 뒷받침돼 왔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포위 심성의 인식체계가 적대국의 위협에 대한 두려움과 국제사회 혹은 후견국에 대한 불신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을 고려할 때, 북한과 이스라엘의 자주적 생존전략은 두 국가가 취할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라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결론은 분단이후 70년 동안 지속되고 있는 군사적 도발, 미사일 시험발사, 그리고 핵 개발 등의 북한문제 해결에 있어서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하겠다. 그동안 우리 정부는 북한문제 해결을 위해 현안 위주의 특정 목표(가령 북핵문제, 북한인권 해결 등)를 설정하고, 보수나 진보 정권에 따라 이를 달성하기 위해 수단(압박 vs 협력)을 달리 하는 접근방법을 취해왔다. 이러한 정책의 한계는 그동안의 대립과 반목으로 점철된 남북관계의 역사가 증명하고 있듯이 아무런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포위심성이 북한의 자주적 생존전략을 결정하는 근원적인 원인이라면, 북한문제도 포위심성을 점차적으로 완화시키거나 제거해나가는 방식을 통해 해결을 도모해야 할 것이다. 북한의 포위심성은 미국의 위협에 대한 두려움과 후견국에 대한 불신으로 구성돼 있다. 이러한 포위심성이 북한으로 하여금 내적균형을 강화하게 하고, 핵무기를 개발하도록 유인하고 있으며, 지속적인 군사적 도발을 자행하도록 하고 있다. 북한에 내재된 포위심성을 단계적으로 완화시키고, 종국적으로는 이를 없애야만 70년 간 대립과 반목으로 점철된 남북관계가 해소될 수 있다는 얘기다. 북한에게 미국의 군사적 위협에 대한 두려움의 정도가 후견국에 대한 불신 정도보다 더욱 심하기 때문에 우선적으로 후자를 완화시키는 방향으로 정책을 추진해야 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공고한 한미동맹 하에서 단기적으로는 후견국인 중국으로 하여금 북한을 압박하도록 하는 '우회 압박전략'보다는 중국이 북한에 대해 협력적으로 관여할 수 있는 '우회 관여전략'의 추진을 통해 북한이 후견국에 대한 불신 정도를 낮추도록 유도해야 한다. 중기적으로는 미국의 위협에 대한 두려움을 완화시키기 위한 초보적 수준으로 한국이 북일수교를 포함한 북일관계 개선에 적극적인 중재자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한미일 3각 관계가 북한을 위협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는 점을 북한에 각인시킬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는 북미수교를 통해 한반도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시켜야만 북한이 내재된 포위심성도 완전히 제거될 수 있으며, 종국적으로는 남북관계도 대립과 반목에서 벗어나 평화공존의 시대로 전환될 수 있을 것이다.

 

 정리 디펜스21+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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