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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반대 궐기' 행진에 물대포... 수십 명 연행

 
[현장] 청계광장 1만여 명 '박근혜 반대' 집회
14.06.28 16:22l최종 업데이트 14.06.29 09:09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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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8일 서울 종각역 앞에서 경찰이 시위대를 해산시키기 위해 살수차로 물을 뿌리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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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신: 28일 오후 9시 20분]
집회 주최측 경찰 연행자 22명 집계

거리 행진 중 경찰이 물대포를 쏘고 집회 참가자를 연행했던 28일 '박근혜 정부 반대 총궐기'와 세월호 추모 촛불집회 등 청계광장에서 열린 각종 집회가 오후 8시 50경 마무리됐다. 

집회 주최측은 이날 거리행진 중 경찰 연행자를 22명으로 집계했다. 농민·노동자 대오는 행진 뒤 대부분 해산했다. 

매주 토요일 열리던 세월호 추모 촛불문화제는 오후 7시 10분부터 약 1시간 열렸고, 이어 '2014 대한민국 세월호 버스' 참가자들의 마무리 집회가 열렸다. 이 행사는 당초 '무박 2일' 문화제로 계획됐지만 기대만큼 참가자가 많지 않아 이날 짧은 집회 뒤 오후 8시 50분경 모임을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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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쌀 전면개방 반대·민영화 저지·노동기본권 쟁취 범국민시국대회'가 28일 오후 서울 청계광장에서 전국빈민연대, 민주노총, 전국농민회총연맹, 민중의 힘 등 공동주최로 열리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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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신: 28일 오후 7시 36분] 
집회 참가자들 보신각 앞 도로 점거...경찰, 물대포 쏘며 해산명령


쌀 관세화 전면개방, 전교조 법외노조화, 의료민영화, 철도민영화, 공무원 연금개혁, 노동탄압 등 박근혜 정부의 정책에 반대하는 이들이 도로를 점거하고 나서자 경찰이 물대포를 쏘고 참가자들을 연행했다. 

청계광장에서 궐기대회를 열고 있던 노동자들과 3보1배를 마치고 청계광장으로 합류한 농민 등 1만여 명은 오후 5시50분 경부터 청계광장-광교-보신각-종로2가-서울시청을 거쳐 청계광장으로 돌아오는 행진을 시작했다. 

오후 6시 40분께 집회 참가자들이 보신각 앞 도로를 점거하자 경찰은 광화문 쪽 도로를 막고 물대포를 쏘면서 해산을 명령했다. 집회 참가자들이 10여 분 뒤에도 해산하지 않자 경찰은 물대포를 피해 인도로 올라가던 집회 참가자 18명을 경찰버스로 연행했다. 

이에 앞서 철도노조·보건의료노조·전국공무원노조·공공운수노조 등 조합원들이 민주노총 6·28 노동자 총궐기대회로 청계광장 집회를 이어나갔다. 

신승철 민주노총 위원장은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고 난 뒤 16개 연맹 중에 투쟁을 하지 않은 곳이 없다"며 "이제는 투쟁을 하나로 모아야 할 때다. 7월 22일 제도와 법을 바꾸기 위한 민주노총 정치파업에 모두 함께하자"라고 호소했다. 

이날 노동자들 앞에 선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은 마이크를 잡고 "박근혜는 끝났다"고 단언하고 "왜 끝난 걸 아직 매듭을 못짓고 있느냐. 여기 모인 여러분이 벌떡 일어나 비정규직 600만의 손을 잡아 끌어야 한다. 농민과 시민들을 한데 묶어야 한다"고 말했다. 

백 소장은 "이 싸움을 매듭짓기 위한 운동본부를 열어야 한다. 집회만 산발적으로 열어서도 안되고, 자신이 권력을 쥐겠다는 사람에게 맡겨서도 안되고 시민들에게 맡겨야 한다"며 "'거짓을 몰아치는 양심의 바람 운동'을 일으키자"고 제안했다. 

오후 5시경 3보1배 행진을 마친 농민들이 돌아왔고, 행진시작 시점에 대오는 청계광장 시작점부터 모전교까지 가득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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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쌀 전면개방 반대 범국민대회 28일 오후 서울 청계광장에서 '쌀 전면개방 반대! 식량주권과 먹거리 안전을 위한 1차 범국민대회'가 열리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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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쌀 전면개방 반대 범국민대회 28일 오후 서울 청계광장에서 '쌀 전면개방 반대! 식량주권과 먹거리 안전을 위한 1차 범국민대회'가 열리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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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신: 28일 오후 3시 40분]
박근혜 정부 반대 '궐기의 토요일' 시작

2014년 전반기 마지막 토요일, 박근혜 정부의 정책에 반대하고 세월호 참사 책임과 수습실패를 규탄하는 농민·노동자·공무원·의료인과 시민들이 청계광장으로 속속 모여들고 있다. 

개시는 농민이 맡았다. 28일 오후 2시 전국 각지에서 버스를 타고 청계광장에 도착한 농민들은 밀짚모자를 쓴 대학생들과 3000여 명의 대오를 이뤘다. 이들은 청계광장에서 '쌀 전면 개방 반대! 식량주권과 먹거리 안전을 위한 1차 범국민대회'를 열었다. 

김영호 전국농민회총연맹 회장은 연단에 올라 정부가 추진 방침을 밝힌 쌀 관세화 전면 개방을 "우리 집 살이 우리집 부엌이 아니라 미국에 가 있고 중국에 가 있게 하는 것"이라며 "이걸 하고 나면 다음엔 미국과 중국에 쌀을 구걸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쌀 관세화 전면 개방이 국내 쌀 농업기반을 붕괴시킨다는 얘기다. 

김 회장은 "이제는 농민만 아니라 서울시민이 함께 우리 식량주권을 지킬 때가 왔다"며 "농민과 시민이 함께 싸워나가자"고 호소했다. 전농은 정부에 ▲ 쌀 관세화 전면개방 추진 중단 ▲ 개방만 고집하는 통상관료 전면 교체 ▲ 국회-정부-농민의 3자 합의체 구성 등을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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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쌀 전면개방 안돼!" 삼보일배 28일 오후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쌀 전면개방 반대! 식량주권과 먹기리 안전을 위한 1차 범국민대회' 참가자들이 삼보일배를 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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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쌀 전면개방 안돼!" 삼보일배 28일 오후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쌀 전면개방 반대! 식량주권과 먹기리 안전을 위한 1차 범국민대회' 참가자들이 삼보일배를 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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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들은 3보1배를 하는 대표단을 앞세워 광교, 서울시청을 거쳐 청계천으로 되돌아오는 행진을 시작했다. 농민집회가 계속되는 동안 서울역광장에서 '철도·의료민영화 저지를 위한 2차 상경집회'를 연 보건의료노조와 철도노조 3000여 명은 행진 뒤 청계광장으로 합류할 계획이다. 

정부의 공무원연금 개혁안에 반대하는 전국공무원노조는 오후 3시부터 청계 한빛광장에서 집회를 연 뒤 청계광장으로 합류한다. 오후 4시엔 충북 옥천 유성기업, 전주 신성여객, 밀양 송전탑 농성장 등 전국에서 출발한 노동자와 시민이 광화문에 도착해 청계광장에 합류할 계획이다. 

민주노총은 이날 오후 4시부터 농민·노동자·의료인들이 합류한 가운데 청계광장에서 시국대회를 연다. 오후 6시부터는 매주 계속해 온 세월호 참사 촛불집회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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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실장-만만회-식물총리 뒤 웅크린 박근혜, 레임덕 시작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14/06/29 13:52
  • 수정일
    2014/06/29 13:52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비선조직 내 알력싸움과 비선조직 밀쳐내려는 저항이 균열 불러
 
육근성 | 2014-06-28 13:16:15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당연히 물러날 줄 알았던 식물총리가 살아서 돌아왔다. ‘정홍원 사퇴가 유임으로 둔갑되자 여당 내에서도 이러면 안 된다라는 목소리가 나온다박 정권을 줄곧 비호해왔던 여권 인사들도 지나친 것 아니냐며 불만을 터뜨린다.

왕실장’ 김기춘의 통제권에 있는 식물총리’ 정홍원

인사 참사에 대해 책임지고 물러나야 한다는 여론이 비등해도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은 여전히 건재하다외풍이 아무리 거세게 불어도 끄떡없다심지어는 새누리당 중진들까지 나서 김기춘 책임론을 제기해 보지만 왕실장을 흔들기에는 역부족이다.

식물총리’ 정홍원은 ‘왕실장을 상전으로 모실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모든 면에서 왕실장의 새까만 후배이기 때문이다. ‘왕실장이 나이도 훨씬 많을뿐더러 검찰 대선배이기도 하다. ‘왕실장의 검사임용이 식물총리에 비해 10년 빠르다검찰에 근무하며 손발을 맞춘 적도 있다김기춘이 법무부연수원장으로 재직할 때 정홍원은 연수원 기획과장이었다.

인연도 남다르다둘 다 경남 출신으로 경남중학교 선후배 사이다정 총리를 천거한 게 김 실장이라는 설도 있다정 총리에게 김 실장은 깍듯이 모셔야 될 큰 형님’ 같은 존재다고향 선배이자 학교 선배이고검찰 대선배이자 한때 상관과 부하관계였다.

총리가 왕실장의 통제권에 있으니 왕실장을 조종할 수 있다면 정부의 공식라인을 접수하는 셈이 된다김기춘을 움직일 있는 그룹이 있을까있다는 소문이 파다하다새정치연합 박지원 의원이 거론한만만회가 그것이다문고리권력의 핵심인 이재만 청와대 총무비서관과 박 대통령의 동생인 박지만,그리고 박 대통령 보좌관 출신이자 박 대통령과의 미스터리 관계로 널리 알려진 고 최태민의 사위인 정윤회를 지칭하는 작명이다.

왕실장을 움직일 수 있는 힘 만만회

이들이 인사에 깊숙이 개입한다는 설이 있다여권 사정에 정통한 박관용 전 국회의장은 내부적으로 박 대통령과 가깝에 의논하는 사람들은 따로 있다고 말했다대통령 주변에 막강한 이너서클이 있다는 얘기다박지원 의원은 한술 더 떠 문창극 전 총리내정자 추천을 비선라인인 만만회에서 했다는 말이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청와대 안살림을 총괄하는 이재만 총무비서관은 대통령 의전 수행을 담당하는 정호성 제1부속비서관과대통령 가족 의전을 담당하는 안봉근 제2부속비서관 등과 더불어 문고리 권력 3인방으로 불린다. 이들은 박 대통령이 국회의원에 당선됐던 때(1998)부터 줄곧 함께 해왔다이들 ‘3인방의 위세는 대단한 것으로 알려졌다심지어는 왕실장도 비서실장 임명 초기에는 대통령에게 할 보고를 이들에게 먼저 했다는 얘기도 있다.

이들 ‘3인방을 통제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 ‘최태민의 사위가 바로 그다. ‘3인방을 박 대통령에게 소개해 보좌관으로 발탁되도록 도왔으며 사실상 오랫동안 이들의 상관 역할을 한 게 바로 정윤회다. ‘박근혜 비선조직으로 알려졌던 신사동팀(강남팀)’을 이끌어 왔다는 설도 있다.

최태민의 사위와 문고리권력

최태민 사위의 권세가 대단한 가보다재미교포 언론인 선데이저널은 정윤회씨가 지난해 10월 박 대통령의 인도네시아 순방 기간 중 인도네시아를 방문해 청와대 내 몇몇 인사들을 접촉했다고 보도하면서 이 회동이 있는 직후 박 대통령이 성낙인 서울대 교수와 김희욱 동국대 총장을 감사원장 후보로 낙점했던 것을 뒤집고 황찬현 대법관으로 방향을 틀었다며 정씨가 감사원장 인선에 관여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있다고 주장했다.

만만회가 인사 개입뿐 아니라 비정상적인 국정운영을 부추겨 온 것으로 보인다. ‘채동욱 검찰총장 찍어내기’ 공작도 이들의 소행일 가능성이 높다채 전 총장 개인정보를 유출한 장본인으로 알려진 조오영 행정관의 상관이 바로 이재만 총무비서관이다.

왕실장과 만만회와는 어떤 관계일까갈등도 있겠지만 필요한 부분에서는 서로 도움을 주는 관계일 가능성이 높다. ‘만만회는 청와대 공식적 2인자이자 인사위원장까지 겸하고 있는 김 실장의 협조가 필요할 테고김 실장은 대통령과 매우 가까운 만만회로부터 도움을 받을 일이 잦을 수 있다.

정홍원 유임은 왕실장’-‘만만회의 의기투합?

이번 정홍원 총리 유임도 이들의 합작품일 가능성이 높다. ‘왕실장과 만만회’ 사이에 상부상조적 의기투합이 이뤄졌을 수도 있다. 식물총리의 귀환은 양쪽 모두에게 결코 나쁜 패가 아니기 때문이다.새 총리후보자 물색하는 번거로움을 덜 수 있고 활용하기 편하니 식물총리를 유임시키는 게 낫다는 쪽으로 결론 내지 않았을까.

 

정권 중반도 지나지 않았는데 비선조직 내에서 파열음이 들린다정윤회와 박지만 사이에 암투가 벌어졌다는 소문도 있다작년 말 정윤회 측 사람이 박지만을 미행했고 이를 눈치 챈 박지만이 청와대 비서실에 항의했으나 이 사건을 조사하려던 민정수석실 경찰 간부가 갑자기 인사 조치됐다는 내용이다언론에도 보도된 바 있다.

정윤회-이재만의 보좌진 그룹과 박지만의 가족그룹 간 발생한 알력으로 비선조직 중 가장 막강한 이너서클인 만만회에 균열이 생기고 있다는 얘기다.

새누리당에도 균열이 발생했다. ‘공신들이 목소리를 낼 자리에 비선조직이 끼어들어 인사 개입 등 노획물을 챙기니 참다못해 불만이 터져 나오는 것이다. ‘문창극 불가론에 불이 지핀 건 서청원김무성,이재오 등 새누리당 중진들이었다친박 진영에서 저런 사람 누가 데려왔느냐라는 볼멘소리가 나올 정도다. ‘만만회’ 등 비선조직이 인사에 개입하는 걸 더 이상 좌시하지 않겠다는 얘기다.

왕실장’ ‘만만회’ ‘식물총리’ 뒤에 웅크린 박근혜

당권주자인 서청원김무성 의원은 외부인사를 인사위원회에 참여시켜야 한다고 주장했고여당 의원 일부는 비선 인사들이 총리나 장관 후보자 추천하는 일 없어야 한다고 목청을 높였다박 대통령이 만만회’ 등 비선조직 의존에서 벗어나지 않을 경우 청와대와 일전을 불사하겠다는 의지를 내보인 것이다.

문고리 권력과 가족들이 주축이 된 비선조직이 인사나 국정에 개입하게 되면 엄청난 부작용을 빚게 된다비선조직 내 알력싸움뿐만 아니라 비선조직을 밀쳐내려는 당내 저항이 심각한 수준으로 비화될 수 있다이렇게 되면 정권 조기 레임덕은 피할 수 없게 된다.

왕실장’ ‘만만회’ ‘식물총리’ 뒤로 웅크린 박 대통령이미 박근혜 정권의 앞마당엔 레임덕의 그늘이 짙게 드리워지고 있다.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22&table=c_aujourdhui&uid=3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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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빗이끼벌레'가 보내는 '환경파괴'의 경고

게시됨: 업데이트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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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산강 광주구간에 대량 번식중인 외래종 큰빗이끼벌레.

 

 

 

이 징그럽게 생긴 생물에 대해 본 적이 있는가.

이름조차 생소한 외래종 태형동물인 '큰빗이끼벌레'가 전라남도 영산강 광주구간에서 대량 번식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광주환경운동연합은 지난 26일 “4대강 사업 이후 영산강에 큰빗이끼벌레 등 외래종 태형동물이 대량 번식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단체는 “4대강 사업 이후 영산강에 나타나는 이상 징후”라면서 “강물을 막아 수질이 나빠지고 유속이 느려지자 수질이 나쁜 호수에서 번식하는 큰빗이끼벌레가 번지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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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환경운동연합은 "영산강은 현재 조류(녹조)가 대량 번성하고 있고 악취도 심해졌으며 수질도 나빠진 결과를 보이고 있다"며 "그럼에도 정부는 4대강 사업에 대한 평가나 검증을 제대로 하지 않고 있고 피해를 키우고 있다"고 지적했다.

오마이뉴스에 따르면 영산강에서는 하천 수질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양서·파충류, 저서무척추 동물의 종이 줄어들고 있다. 또한 여울성 토종 어류 역시 개체 수 감소 현상을 보인다. 반면 정수성 외래 어류는 급격히 늘고 있다.

이에 대해 한 수질 전문가는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명박 정부를 제외한 역대 정권은 모두 4대강 수질 관리에 막대한 예산을 쏟는 등 신경을 많이 써왔는데, 박근혜 정부는 아예 손을 놓고 있다"라면서 "국가의 기본적인 책무도 도외시한 한심한 처사"라고 비판했다.

'큰빗이끼벌레'의 존재 자체가 당장 수질에 직접 영향을 주지 않지만 과다 번식할 경우 물고기 서식지를 빼앗고, 생태계를 파괴할 수도 있는 문제점이 지적된다.

최재석 강원대 교수는 KBS와의 인터뷰에서 "축구공 이상 크기로 자라게 되면 속이 썩게 된다"며 "썩게 되면 암모니아가 발생이 되고, 독성이 생긴다. 그때부터는 어류에 더 안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캐나다가 원래 서식지인 큰빗이끼벌레는 돌이나 바닥 등에 부착해 살기 때문에 물이 흐르는 강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게 특징이다. 이 때문에 그동안 국내에서는 춘천호, 의암호 (2008년), 옥천군 보청천(2010년) 등 저수지나 호수에서 주로 발견되다 최근 금강(2014년) 등 강에서도 심심찮게 발견되고 있다.

강원대학교 환경연구소 최재석 교수팀이 지난 2008년 강원 춘천시의 연구용역을 받아 작성한 `민물 태형동물 번성으로 인한 어류 피해조사 및 제어방안' 중간 보고회에서 "태형동물은 고착해서 생육하기 때문에 흐르는 물에서는 발견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결국 '큰빗이끼벌레'가 나타난다는 것은 흐르는 강의 물이 갇혀있고, 점점 썩어간다는 것을 방증하고 있다. 어쩌면 '큰빗이끼벌레'는 우리에게 보내는 환경파괴의 마지막 경고가 아닐까.

이하는 광주환경운동연합이 밝힌 ‘큰빗이낄벌레’에 대한 설명이다.

위 사진들은 영산강에서 발견된 큰빗이끼벌레라는 외래종 태형동물입니다.

돌이나 바닥 등에 부착하여 살기 때문에 물이 흐르는 강에서는 쉽게 볼수 없는 생물입니다. 저수지 같은 호수에서 발견되곤 합니다 영산강에서 이렇게 번식하고 있는 모습은 예전에는 볼수 없는 현상입니다. 영산강에 나타난 이상징후라 할 수 있는데요, 4대강사업으로 강을 막아버린 결과로 판단 됩니다.

개충 하나하나는 아주 작으나, 이들이 분비불을 내어 서로 엉겨붙어 큰 덩어리로 커지게 되고, 서식환경에 맞아 떨어지면 이렇게 무리지어진 모습으로 번식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는 눈에 띄는 특정 생물종의 출현이라는 변화만이 아니라, 영산강의 전반적인 수생태계의 변화, 강 생태환경이 악화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징후입니다.

실지 4대강사업 이후 영산강의 생태 변화가 적지 않습니다. 당장 하천수질 상태도 전반적으로 나빠져서, 하천수질의 직접적 영향을 받은 양서․파충류, 저서무척추 동물 등의 종이 감소하였습니다. 또 플랑크톤이 대량 늘었습니다. 다. 또한 서식환경에 따른 생물종의 변화로는 저서무척추 동물을 비롯한 어류의 경우, 저수성 및 외래종이 급격히 늘고, 여울성 토종 생물종은 감소추세입니다. 하천변 식물 또한 생태계교란종과 외래종이 증가하였습니다.

수질도 말할 것 없이 나빠졌습니다.

강바닥에 유기물이 쌓이고 썩게 됩니다. 보로 막힌 강은 살수가 없습니다. 외부에서 유입되는 물이 들어와서 정화되는 정도이지, 자체 정화능력은 확 떨어집니다.

녹조도 심각하게 번성을 하고, 수질을 나타내는 수치도 악화되었습니다. 4대강사업으로 인한 폐해가 계속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정부는 4대강 사업에 대한 평가 나 검증을 제대로 하지 않고 있고 피해를 키우고 있다. 지자체도 손을 놓고 있는 셈입니다. 더 이상의 피해, 재앙을 막기 위해서라도 4대강사업에 대한 검증을 제대로 하고 영산강을 다시 강으로 다시 복원해야 합니다.

영산강에 이상 징후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큰빗이끼벌레라는 외래종 태형벌레가 영산강에 번성하고 있는데요, 4대강사업 이전에는 없던 현상입니다. 강이 아닌, 호수생태계로 완전히 바뀐 것을 알 수 있는 징후이기도 합니다.

 
 

한편 장마를 앞두고 무더운 날씨가 계속 되면서 영산강의 녹조도 비상이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영산강 녹조류 농도(클로로필-a)는 승촌보 66.0㎎/㎥, 죽산보 48.5㎎/㎥를 보이고 있다. 승촌보는 '관심' 기준치(70㎎/㎥)에 육박했으며 죽산보도 수온이 올라감에 따라 농도가 상승할 기미를 보이고 있다.

105㎎/㎥ 이상이면 '주의', 140㎎/㎥보다 더 높으면 '경계', 175㎎/㎥ 이상이면 '심각' 단계이다.

7월부터 장마가 시작되면 녹조류 농도는 조금 떨어질 것으로 기대되지만, 장마 이후 무더위가 찾아오면 수질이 더 나빠질 것으로 우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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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퇴진, 그걸로는 너무 부족합니다

숨죽여 살핀 레이더 속 괴물체 분석했더니 경악!
 
장유근 | 2014-06-27 14:59:39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수면 위로 부상한 세월호 침몰원인
-숨죽여 살핀 레이더 속 괴물체 분석했더니 경악!-

“순간적으로
단원고 학생들이 떠 올랐다.

세월호를 침몰시킨
괴물체가 잠수함이라면...
누가,
왜,
아무런 죄도 없는
우리 아이들을 공격했을까!…”

어제(26일) 저녁 JTBC 뉴스를 보는 순간 켑쳐해 둔 영상을 살펴보며 숨이 턱턱 막혀왔다. 세월호 항적이 고스란히 담긴 영상을 살펴보는 순간 일반에 알려진 증언들이 빛을 발한 것이다. 세월호의 침몰원인은 정부와 친정부 언론들이 주목한 ‘세월호의 적폐’와 크게 동떨어져 있었던 것이다. 지난 4월 16일 세월호가 침몰하기 전까지 세월호는 문제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천-제주를 부지런히 왕복하며 청해진해운에 매출을 올려주었던 것.

그러나 세월호 항적이 고스란히 담긴 레이더 영상을 분해하고 변조해 본 결과 세월호는 한 순간 괴물체와 맞딱 뜨리며 급변침하는 모습이 나타난 것이다. 이때 눈여겨 봐야 하는 건 세월호 옆에 있는 괴물체의 모습이다. 구체적인 모습은 드러나지 않았지만, 08:48분부터 급변침된 세월호의 항적에는 괴물체가 동행(?)하고 있었던 것. 괴물체는 세월호 우현에서 (세월호가 자빠진)좌현쪽으로 떠미는 형상이었다.

세월호가 급변침 한 순간부터 (엔진이 멈추거나 어떤 이유로 동력을 상실한 듯)세월호의 속도는 누군가 떠미는 듯한 매우 느린 6노트의 속도로 4분동안 이동하고 있었다. 이동거리를 대략 환산해 보면, 수백 미터에서 1km 내외일 정도로 매우 짧은 거리. 이후 세월호는 동력을 상실한 채 표류를 하며 침몰의 순간을 맞이하고 있었던 것이다. 세월호가 표류하기 직전에는 이미 엔진이 멈춘 상태로 판단되고, 세월호가 서서히 표류할 때부터 괴물체는 레이더 영상에서 사라진다.

이 같은 모습은 세월호 승객과 승무원의 증언을 토대로 재구성했는데 만약 세월호를 침몰시킨 괴물체가 잠수함이라면 (해상)교통사고일까 아니면 일반의 의혹처럼 누군가 주도한 ‘학살극’인 것일까. 머리 속이 하얘지며 한동안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동네 한바퀴를 배회하며 복잡한 머리를 간략하게 정리했다.

공교롭게도 이날 아침에 [긴급제보]세월호 프로펠러는 왜 휘어졌을까!라는 포스팅을 통해 세월호의 항적을 뒤돌아 봤다. 그곳에서 세월호가 급변침한 이유를 넌지시 이해하게 된 것이다. 이때 세월호의 항적과 변침 시간 등을 계산해 보면 불과 4분만에 급변침 한 것인데 세월호의 전장 145m와 급격히 줄어든 속도(14노트-6노트)를 감안하면 도무지 있을 수 없는 일(급변침이 불가능)로 판단되는 것이다. 선박이든 자동차든 급변침이나 급회전을 하려면 엔진의 동력(추력,推力)이 충분히 뒷받침 되어야 한다는 건 주지의 사실이다.

* 자료사진은 [긴급제보]세월호 프로펠러는 왜 휘어졌을까에 실린 세월호 우현 프로펠러가 크게 휜 모습. 관련 포스트의 일독을 권한다.

그러나 세월호의 항적을 살펴보면 특정 시점(08:48)부터 속도가 14노트에서 6노트로 크게 준 이유에 대해 한 생존자의 증언은 결정적이라 할 수 있다. 생존자의 증언에 따르면 선수(뱃머리)쪽에서 ‘쿵’ 하는 소리가 들린 직후부터 세월호가 좌현쪽으로 급격히 기울었다는 것. 이같은 증언을 참조하면 20노트로 순항하던 세월호가 괴물체를 발견하면서 속도를 줄인 직후 괴물체와 추돌하며, 마치 자동차가 급브레이크를 밟은 것처럼 속도가 현저히 줄어들며 급변침 된 것(조타수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으로 보인다.

그게 위 ‘세월호 떠민 괴물체의 정체는?’이라고 쓰여진 한 장의 그림(레이더영상)을 분석해 보며 내린 결론이다. 그렇다면 영상에서 어느 순간부터 사라진 괴물체의 정체는 잠수함이란 말일까. 이 같은 의문에 대해 정부와 친정부 언론들은 급변침 과정에서 세월호 갑판에 쌓아둔 컨테이너가 쏟아져 내리며 세월호의 복원력을 무너뜨린 것 등으로 설명했다. 따라서 JTBC 손석희 앵커는 이 부분에 대해서 '컨테이너가 아닌 듯' 정도로 넘어갔지만, 속으로는 괴물체의 정체에 대해 (잠수함이 아닐까 싶은)의문을 가지지 않았을까.

우리는 천안함 사건을 통해 ‘합리적 의문’을 가진 국민 1인이 정부로부터 고발을 당한 사실을 잘 기억해 두어야 한다. 그는 우리가 잘 아는 신상철 전 민군합동조사단 민간위원(진실의 길 대표)이다. 당신은 특정 사건에 대해 전문적이고 해박한 지식을 가진 죄(?) 하나만으로 4년째 지긋지긋한 천안함 재판(현재 25차)을 하고 있다. 적지않은 분들이 이같은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진실을 밝히는 일에 대해 쉬쉬하고 있는 실정 아닌가. 그러나 당신의 아들 딸들이 (혹은 당신이)아무런 죄도 없이 ‘가만히 있으라’는 어른들의 지시 하나만으로 목숨을 잃었다면, 그때도 가만히 있는 게 인간의 도리일까.

날강도나 도둑놈들이 노리는 점은 그런 심리라 한다. 자기만 안 다치거나 자기 것만 안 털린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 (그러나 언제인가 당신이 그 대상이 될 것.) 그런 생각이 대한민국을 속절없이 침몰시키고 있다면, 그 원흉을 찾아 반드시 문제를 해결해야 하지 않겠는가. 세월호의 항적이 고스란히 담긴 레이더 영상에서 두 개의 물체가 담긴 게 확인된 건 큰 수확이다. 정부가 검경을 내세워 그토록 유병언 검거에 나서며 사건의 본질을 흐린 이유가, 잠수함처럼 서서히 수면위로 부상하고 있다. 세월호 국정조사에서 괴물체의 정체를 밝힐 차례다

*세월호 침몰원인 관련 포스트➲ [긴급제보]세월호 프로펠러는 왜 휘어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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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면 위로 부상한 세월호 침몰원인

숨죽여 살핀 레이더 속 괴물체 분석했더니 경악!
 
장유근 | 2014-06-27 14:59:39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수면 위로 부상한 세월호 침몰원인
-숨죽여 살핀 레이더 속 괴물체 분석했더니 경악!-

“순간적으로
단원고 학생들이 떠 올랐다.

세월호를 침몰시킨
괴물체가 잠수함이라면...
누가,
왜,
아무런 죄도 없는
우리 아이들을 공격했을까!…”

어제(26일) 저녁 JTBC 뉴스를 보는 순간 켑쳐해 둔 영상을 살펴보며 숨이 턱턱 막혀왔다. 세월호 항적이 고스란히 담긴 영상을 살펴보는 순간 일반에 알려진 증언들이 빛을 발한 것이다. 세월호의 침몰원인은 정부와 친정부 언론들이 주목한 ‘세월호의 적폐’와 크게 동떨어져 있었던 것이다. 지난 4월 16일 세월호가 침몰하기 전까지 세월호는 문제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천-제주를 부지런히 왕복하며 청해진해운에 매출을 올려주었던 것.

그러나 세월호 항적이 고스란히 담긴 레이더 영상을 분해하고 변조해 본 결과 세월호는 한 순간 괴물체와 맞딱 뜨리며 급변침하는 모습이 나타난 것이다. 이때 눈여겨 봐야 하는 건 세월호 옆에 있는 괴물체의 모습이다. 구체적인 모습은 드러나지 않았지만, 08:48분부터 급변침된 세월호의 항적에는 괴물체가 동행(?)하고 있었던 것. 괴물체는 세월호 우현에서 (세월호가 자빠진)좌현쪽으로 떠미는 형상이었다.

세월호가 급변침 한 순간부터 (엔진이 멈추거나 어떤 이유로 동력을 상실한 듯)세월호의 속도는 누군가 떠미는 듯한 매우 느린 6노트의 속도로 4분동안 이동하고 있었다. 이동거리를 대략 환산해 보면, 수백 미터에서 1km 내외일 정도로 매우 짧은 거리. 이후 세월호는 동력을 상실한 채 표류를 하며 침몰의 순간을 맞이하고 있었던 것이다. 세월호가 표류하기 직전에는 이미 엔진이 멈춘 상태로 판단되고, 세월호가 서서히 표류할 때부터 괴물체는 레이더 영상에서 사라진다.

이 같은 모습은 세월호 승객과 승무원의 증언을 토대로 재구성했는데 만약 세월호를 침몰시킨 괴물체가 잠수함이라면 (해상)교통사고일까 아니면 일반의 의혹처럼 누군가 주도한 ‘학살극’인 것일까. 머리 속이 하얘지며 한동안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동네 한바퀴를 배회하며 복잡한 머리를 간략하게 정리했다.

공교롭게도 이날 아침에 [긴급제보]세월호 프로펠러는 왜 휘어졌을까!라는 포스팅을 통해 세월호의 항적을 뒤돌아 봤다. 그곳에서 세월호가 급변침한 이유를 넌지시 이해하게 된 것이다. 이때 세월호의 항적과 변침 시간 등을 계산해 보면 불과 4분만에 급변침 한 것인데 세월호의 전장 145m와 급격히 줄어든 속도(14노트-6노트)를 감안하면 도무지 있을 수 없는 일(급변침이 불가능)로 판단되는 것이다. 선박이든 자동차든 급변침이나 급회전을 하려면 엔진의 동력(추력,推力)이 충분히 뒷받침 되어야 한다는 건 주지의 사실이다.

* 자료사진은 [긴급제보]세월호 프로펠러는 왜 휘어졌을까에 실린 세월호 우현 프로펠러가 크게 휜 모습. 관련 포스트의 일독을 권한다.

그러나 세월호의 항적을 살펴보면 특정 시점(08:48)부터 속도가 14노트에서 6노트로 크게 준 이유에 대해 한 생존자의 증언은 결정적이라 할 수 있다. 생존자의 증언에 따르면 선수(뱃머리)쪽에서 ‘쿵’ 하는 소리가 들린 직후부터 세월호가 좌현쪽으로 급격히 기울었다는 것. 이같은 증언을 참조하면 20노트로 순항하던 세월호가 괴물체를 발견하면서 속도를 줄인 직후 괴물체와 추돌하며, 마치 자동차가 급브레이크를 밟은 것처럼 속도가 현저히 줄어들며 급변침 된 것(조타수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으로 보인다.

그게 위 ‘세월호 떠민 괴물체의 정체는?’이라고 쓰여진 한 장의 그림(레이더영상)을 분석해 보며 내린 결론이다. 그렇다면 영상에서 어느 순간부터 사라진 괴물체의 정체는 잠수함이란 말일까. 이 같은 의문에 대해 정부와 친정부 언론들은 급변침 과정에서 세월호 갑판에 쌓아둔 컨테이너가 쏟아져 내리며 세월호의 복원력을 무너뜨린 것 등으로 설명했다. 따라서 JTBC 손석희 앵커는 이 부분에 대해서 '컨테이너가 아닌 듯' 정도로 넘어갔지만, 속으로는 괴물체의 정체에 대해 (잠수함이 아닐까 싶은)의문을 가지지 않았을까.

우리는 천안함 사건을 통해 ‘합리적 의문’을 가진 국민 1인이 정부로부터 고발을 당한 사실을 잘 기억해 두어야 한다. 그는 우리가 잘 아는 신상철 전 민군합동조사단 민간위원(진실의 길 대표)이다. 당신은 특정 사건에 대해 전문적이고 해박한 지식을 가진 죄(?) 하나만으로 4년째 지긋지긋한 천안함 재판(현재 25차)을 하고 있다. 적지않은 분들이 이같은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진실을 밝히는 일에 대해 쉬쉬하고 있는 실정 아닌가. 그러나 당신의 아들 딸들이 (혹은 당신이)아무런 죄도 없이 ‘가만히 있으라’는 어른들의 지시 하나만으로 목숨을 잃었다면, 그때도 가만히 있는 게 인간의 도리일까.

날강도나 도둑놈들이 노리는 점은 그런 심리라 한다. 자기만 안 다치거나 자기 것만 안 털린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 (그러나 언제인가 당신이 그 대상이 될 것.) 그런 생각이 대한민국을 속절없이 침몰시키고 있다면, 그 원흉을 찾아 반드시 문제를 해결해야 하지 않겠는가. 세월호의 항적이 고스란히 담긴 레이더 영상에서 두 개의 물체가 담긴 게 확인된 건 큰 수확이다. 정부가 검경을 내세워 그토록 유병언 검거에 나서며 사건의 본질을 흐린 이유가, 잠수함처럼 서서히 수면위로 부상하고 있다. 세월호 국정조사에서 괴물체의 정체를 밝힐 차례다 

*세월호 침몰원인 관련 포스트➲ [긴급제보]세월호 프로펠러는 왜 휘어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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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410~660㎞ 밑, 바다 3배의 물 있다

 
조홍섭 2014. 06. 27
조회수 7707 추천수 0
 

지하 410~660㎞ 맨틀 암석에 수분 1% 함유 밝혀져

바다 탄생이 혜성 충돌 아닌 지구 자체 기원설 뒷받침

 

ma1.jpg» 지구는 3분의 2가 바다로 덮인 물의 행성이다. 눈에 보이는 것보다 더 많은 물은 땅속에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사진=나사

 

지구는 푸른 물의 행성이다. 바다는 지구 표면의 3분의 2를 덮고 있다. 그런데 땅속 깊숙한 곳에 지표의 대양보다 큰 ‘지하 바다’가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
 

물론 그 바다는 지구 표면과 같은 형태는 아니다. 지각과 핵 사이에 있는 맨틀이란 곳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엄청나게 압력과 온도가 높은 그곳에서 물 형태를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브랜든 슈만트 미국 뉴멕시코대 지진학자 등 연구진은 지난 12일치 과학저널 <사이언스>에 실린 논문에서 지구 내부에 지표 해양의 3배에 해당하는 막대한 물이 저장돼 있음을 알아냈다고 밝혔다.
 

ma4.jpg» 지구의 내부 구조. 그림=위키피디아

 

지질학자들은 지진파를 통해 상부 맨틀과 하부 맨틀의 경계층인 지하 410~660㎞ 지점의 암석에 다량의 수분이 포함돼 있음을 알고 있었다. 지진파는 젖은 암석을 통과할 때 속도가 늦어진다. 연구진은 미국 전역에서 2000개 이상의 지진계로 측정한 자료를 분석해 북아메리카 지하 맨틀 경계층에 방대한 수분 함유층이 있음을 확인했다.
 

지각의 해양판이 대륙판 아래로 파고들어 맨틀로 내려가는 섭입 과정에서 다량의 수분을 함유한 암석이 지하로 내려간다. 그러나 2000도 가까운 온도와 엄청난 압력 때문에 수분은 암석 결정 속에 결합된 형태로만 존재한다.

ma2.jpg» 초고압 고온 상태에서 형성되는 광물인 링우다이트. 수분을 풍부하게 함유한다. 사진=스티브 제이콥슨, 노스웨스턴대

 

연구진은 실험실에서 레이저와 다이아몬드를 이용해 맨틀 경계층과 비슷한 조건을 만든 뒤 맨틀의 성분인 감람석과 물을 넣었다. 그 결과 ‘링우다이트’라는 푸른빛 광물이 형성됐는데, 그 결정 속에 1% 이상의 물 성분을 함유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실제로 그래엄 피어슨 캐나다 앨버타 대 지질학자 등 연구진은 지난 3월 <네이처>에 실린 논문에서 브라질의 화산 분출 때 맨틀에 있다가 지상으로 분출된 다이아몬드 속에서 링우다이트 광물을 찾아내고 약 1%의 수분을 함유하고 있음을 밝힌 바 있다.
 

ma3.jpg» 브라질 화산에서 발견된 맨틀에서 온 다이아몬드(a)와 그속에 포함된 링우다이트 광물(b). 사진=피어슨 외, <네이처>

 

이번 연구는 그때 발견된 링우다이트가 일반적으로 분포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또 상부맨틀이 하부맨틀로 이동하다가 경계층 밑바닥에서 수분이 밖으로 빠져나오고, 하부에서 상부로 올라가는 맨틀은 수분을 흡수하는 사실을 밝혔다. 경계층의 수분은 안정된 저장소 기능을 유지하는 것이다.
 

연구자의 하나인 스티븐 제이콥슨 미국 노스웨스턴대 지구물리학자는 “이로써 우리는 지구 전체의 물순환을 알게 됐다. 이를 통해 우리가 사는 지구 표면의 방대한 액체 물을 설명할 수 있게 됐다.”라고 이 대학이 배포한 보도자료에서 말했다.
 

지구 맨틀에 다량의 물이 있고, 이것이 판의 이동에 따라 순환한다는 이번 발견은 바다의 생성과 유지에 관한 오랜 수수께끼를 풀 단서를 줄 것으로 기대된다.
 

이제까지 바다의 기원에 관한 정설은 원시지구가 식은 뒤 얼음을 포함한 혜성이나 소행성이 지구에 충돌하면서 바다가 생겼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구의 바다는 혜성의 얼음보다 중수소의 함량이 낮고, 소행성보다는 백금 등 희귀금속의 비율이 낮다는 반론에 부닥친 상태이다.
 

그러나 최근 우주 먼지의 감람석에 결정 형태로 들어있던 수분이 지구 형성 과정에서 수분이 되어 풀려나 바다를 이뤘다는 연구결과가 나오는 등 지구 자체 기원설이 나와 주목되고 있다. 
 

제이콥슨은 이와 관련해 “이번 연구는 지구의 물이 지구 내부에서 기원했다는 좋은 증거가 된다. 또 숨겨진 물은 바다가 수백만년 동안 비슷한 규모를 유지할 수 있도록 완충 구실을 했을 수 있다.”라고 <뉴사이언티스트>와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Brandon Schmandt et. al., Dehydration melting at the top of the lower mantle, Science 13 June 2014: 1265-1268. DOI:10.1126/science.1253358
 
D. G. Pearson et. al., Hydrous mantle transition zone indicated by ringwoodite included within diamond, Nature 
Volume: 507, Pages: 221~224, doi:10.1038/nature13080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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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의 '표적'이 된 전교조, 진보는 어떻게 할 것인가?

한겨레의 전교조 비판을 통해 본, 대중조직에 대한 흔한 관성
한윤형 기자  |  a_hriman@hotmail.com
 
 
 

 

입력 2014.06.27  15:11:28

현 정부의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에 대한 공세가 점입가경이다. 26일 교육부는 세월호 참사 이후 청와대 홈페이지 게시판 등에 대통령 퇴진을 촉구하는 ‘시국선언’을 실명으로 올렸던 교사 200여명을 모두 검찰에 고발했다고 밝혔다. 

시국선언과 조퇴투쟁을 둘러싼 갈등
 
   
▲ 27일자 동아일보 1면 기사
 
교사들은 지난달 청와대 게시판에 두 차례에 걸쳐서 각 43명, 80명이 실명으로 정권 퇴진을 요구하는 글을 올렸고 지난 12일엔 161명이 비슷한 내용의 신문 광고를 게재했다. 청와대 게시판 선언 참여자 중 상당수가 신문 광고에 동참했지만 교육부는 아직 정확한 인원을 파악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국선언 참여 교사 중 상당수는 전교조 출신이라고 한다.  
 
또 교육부는 전교조가 법외노조 지정에 항의하는 취지로 27일 오후 3시 서울역에서 여는 ‘조퇴 집회’에 대해서도 강경하게 대응하고 있다. 교육부는 26일 시·도교육청에 공문을 보내 “각급 학교에서 교원들이 집회 참가를 위해 조퇴·연가 신청을 할 경우 불허하라”면서, “학생들의 학습권이 침해되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교원 복무관리에 철저를 기해달라”고 주문했다. 
 
교육부는 조퇴투쟁 참여 교사들에게는 법에 따라 엄중한 조치를 내릴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검찰과 경찰은 전교조의 집단행동이 국가공무원법 위반 및 형법상 업무방해에 해당한다고 보고 있다.
 
시국선언 징계와 조퇴투쟁과 관련한 정부와 전교조의 갈등은 27일자 언론에서도 다뤄졌다. <조선일보>는 12면과 14면 기사에서, <동아일보>와 <한겨레>는 1면 기사에서 다뤘다. 오늘자에 실린 것은 아니지만 <중앙일보>는 25일 <조퇴투쟁한다는 전교조, 법 위에 있나>란 제목의 사설로 전교조를 비판한 바 있다.
 
   
▲ 27일자 경향신문 10면 기사
진보언론들은 전교조의 입장을 일정 부분 대변했다. 27일자 <경향신문>은 10면의 두 기사에서 <교육부, 선제 강공… ‘세월호 시국선언’ 교사 전원 고발>과 <수업 조정한 조퇴투쟁 / 학습권 침해 해당하나>란 제목으로 전교조의 입장을 어느 정도 대변했다. 특히 하단의 <수업 조정한 조퇴투쟁 / 학습권 침해 해당하나>란 제목의 기사에서 조퇴투쟁에 관해 “학교별 참여인원 조정, 오전·오후 교환수업 등을 통해 수업결손은 없다. 학교 현장을 있는 그대로 보면 알 것”, “조퇴투쟁은 정부의 부당한 조치를 비판하기 위한 최선의 준법행위”라는 전교조의 입장을 소개했다. 
 
<경향신문> 보도는 서울역 조퇴투쟁엔 “많아야 1500명 정도 참석”하고 “1만3000여개 학교에서 10개 학교당 1명꼴로 참석하는 셈”이라며, 공문을 보내 교장과 교사의 마찰을 일으키는 교육부가 학교 혼란을 조장하는 것이라는 전교조의 입장을 소개했다.
 
한겨레가 만들어낸 어떤 논란 
 
<한겨레>의 경우 최근 지면에서 전교조의 투쟁 기조에 대한 여러 입장을 반영했다. 25일자 31면에 실린 <한겨레> 김의겸 논설위원인 <전교조 변해야 산다>가 화제가 되어 26일자 33면엔 해직교사인 송원재 전교조 편집실장의 <‘말리는 시누이’>란 반박 칼럼이 실렸으며 27일자 29면에는 김의겸 논설위원 칼럼에 대한 시민들의 상반된 반응이 보도되었다.
 
김의겸 논설위원의 <전교조 변해야 산다>의 주요 부분을 추려보면 다음과 같다.
 
   
▲ 25일자 한겨레 31면 김의겸 논설위원의 칼럼
 
“(...) 세월호 아이들의 목숨과 맞바꾼 진보 교육감 때문이다. 그 소중한 싹이 법외노조를 막아보겠다는 전교조의 총력투쟁 열기에 자칫 말라버리는 게 아닌가 걱정이 앞선다. 
 
(...) 싸움은 꼬리에 꼬리를 물 태세다. 처음은 해고자 9명이 문제였지만, 이들을 구하려다 노조 전임 72명이 잘려나갈 처지다. 72명을 구하려면 또 얼마나 많은 희생을 치러야 하는가 
 
(...) 애초 해직자 9명을 끌어안고 가는 게 현명한 전략이었나 하는 의문마저 든다. 
 
(...) 4년은 결코 길지 않다. 교육감과 전교조가 한 몸이 돼 경쟁교육과 특권교육의 한 귀퉁이를 허물어내는 데도 빠듯한 시간이다. 관성의 궤도를 벗어나야 한다. 진보 교육감들도 부담을 느끼는 듯하다. 
 
(...) 거꾸로 작은 일에 지나치게 힘을 쓰다 보면 큰 걸 놓친다. 전교조는 나이스인지 네이스인지에 매달리다 정작 중요한 교육개혁은 한 발짝도 떼지 못한 경험이 있다.
 
지금 전교조의 경쟁 상대는 박근혜 정부가 아니다. 남은 임기 3년 반짜리를 상대로 아옹다옹하기에는 사반세기의 역사가 아깝다. 탄압을 하든 구박을 하든 교실의 학생만 보고 묵묵히 나가기 바란다. 최소한 10년, 20년을 내다보고 우리의 교육 틀을 다시 짜야 한다. (...)“ 
 
이에 대한 송원재 전교조 편집실장의 반론에 해당하는 글인 <‘말리는 시누이’>란 내용의 글을 추려보면 이렇다. 
   
▲ 26일자 한겨레 33면 '왜냐면'에 실린 송원재 전교조 편집실장의 칼럼
“(...) 나는 전교조 해직교사다. 정부가 ‘전교조 노조 아님’ 통보를 할 때 이유로 삼은 9명의 해직교사 중 하나다. 전두환 정부 때 억울하게 징계받은 학생을 두둔하다 처음 해직이 됐고, ‘87년 민주항쟁’으로 복직했지만 전교조 출범 뒤 탈퇴각서를 내지 않아 다시 ‘거리의 교사’가 됐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2008년 처음 교육감직선제가 도입돼 ‘미친 교육’을 바꿔보자고 시민사회와 함께 진보교육감 후보를 추대하고 선관위 유권해석을 받으며 선거자금을 모금했다가 세번째로 교단에서 쫓겨났다.
 
(...) 칼럼은 ‘애초 해직자 9명을 끌어안고 가는 게 현명한 전략이었나 의문’이 든다고 했지만, 그것을 선택한 것은 총투표에 참여한 6만 조합원의 70%였다. 그 선택이 현명한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전교조는 그렇게 길을 선택하고 길이 없는 곳에 길을 만들며 여기까지 왔다.
 
(...) 조합원 총투표와 대의원대회에서 어려운 결정을 내리고 가시밭길을 가려는데 미련하다고 윽박지르며 ‘가만히 있으라’고 다그치는 게 온당한지 의문이다.
 
전교조의 앞길은 누가 대신 갈 수 없다. 해직교사들은 자신의 생목숨과 맞바꾼 진보교육감의 성공을 누구보다 바란다. 전교조도 진보교육감의 성공을 위해 협력적 동반자로서 책임과 의무를 다할 생각이다.“ 
 
전교조가 변해야 하는 건 맞겠으나… 
 
진보매체의 독자들 사이에서도 이 논란에 대한 반응은 엇갈린다. 27일자 <한겨레> 지면의 <[댓글 중계] ‘전교조 변해야’에 “정부 트집잡기 모르나” VS “할말하는 용기 응원”>에 따르면, 김의겸 논설위원의 칼럼을 비판하는 이들은 “한겨레의 동지애는 어디 가고 금전적인 관계로만 전교조를 이해하려 하는가”, “내가 그 아홉 명 중 하나였다면, 그래서 동지들로부터 버림받았다면 어땠을까”, “해고자 문제는 노조 말살을 위한 정부의 트집 잡기에 불과하다는 것을 김 위원은 모르는 것이냐”라고 반응했다. 
 
반면 김 논설위원의 칼럼을 옹호한 이들은 “해고자분들이야 노조 상근 형태로든 함께할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다양한 대안을 논의하기보다 관습적인 투쟁 전술을 택해온 전교조도 변해야 한다”, “전교조가 박근혜 정부 내내 전교조 지키기 싸움 하다 보내겠다”, “강한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한겨레라고 전교조에 우호적인 말만 한다는 편견을 버려야 한다. 바꿀 부분은 바꿔야 한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를 응원한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전교조 변해야 산다>라는 김의겸 논설위원의 칼럼 제목의 당위에 반대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한국갤럽조사연구소에서 매주 실시하는 ‘한국갤럽데일리오피니언’ 6월 4주차 조사결과에 따르면, 지역·연령·성·정치성향을 고려한 1000여명 표본의 RDD 여론조사에서 평소 전교조에 대한 느낌은 '좋지 않다'가 48%로 '좋다'라고 응답한 19%와 의견유보 34%보다 훨씬 컸다. 또 전교조 법외노조 판결에 대해서도 '적절하다'가 39%로 '적절하지 못하다'라고 응답한 30%와 의견유보 31%에 비해 다수였다. 
 
이들은 ‘진보 교육감 시대’를 열어젖힌 바로 그 유권자들이다. 같은 조사에서 이 표본은 다수의 진보 성향 교육감 당선에 대해 '잘된 일'이라 답변한 이들이 45%, '잘못된 일'이라 응답한 이들이 23%, 의견유보가 32%의 분포를 보였다. 시·도 교육감 선출방식에 대해서도 '선거로 선출해야' 한다는 이들이 59%로 '다른 방식으로 임명해야' 한다는 31%나 의견유보한 9%를 압도했다. 
 
전교조에게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 있다면, 이 표본 중 초·중·고 자녀를 둔 200여명은 평소 전교조에 대한 느낌에 ‘좋다’라고 응답한 층이 33%로 상대적으로 우호적이었다는 것이다(‘좋지 않다’는 38%). 이들은 전교조 법외노조 판결에 대해선 42%가 '적절하지 못하다'로 응답하여 ‘적절하다’라고 응답한 37%에 비해 다수였다. 
 
그러나 김의겸 논설위원의 주문은 무언가 본말이 전도되어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전교조는 스스로 박근혜 정부를 견딜 수 없어서 투쟁하는 것이 아니다. 지방선거의 진보교육감 선전에 크게 고무되어서 투쟁하는 것도 아니다. 해직자 9명의 조합원 지위를 유지하는 결정은 선거 전에 총투표를 통해 결정된 것이다. 당시엔 오히려 이 사안을 굳이 총투표에 부치는 집행부가 너무 조심스러운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왔다. 현 전교조 집행부의 대응은 오히려 최대한 절차를 밟는 수비적인 것에 가깝다. 
 
또 박근혜 정부 시대 전교조가 향후 한동안 법외노조의 지위를 감수해야 한단 건 주어진 현실이겠으나, 이 정도 사안에 노동조합이 항의 한 번 하지 않고 물러선다는 것도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전교조가 쓸 수 있는 카드는 어차피 제한되어 있는데, 그 제한된 수준의 항의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것이 현 정부의 태도다.  
 
   
▲ 27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열린 전교조 대국민 선전 퍼포먼스에서 참석자들이 '참교육 25년 전교조를 지켜주세요'라는 문구가 담긴 홍보물을 펼치고 있다. (연합뉴스)
 
선출 권력의 편리만 걱정하는 한겨레적 관성
 
김의겸 논설위원은 “지금 전교조의 경쟁 상대는 박근혜 정부가 아니다. 남은 임기 3년 반짜리를 상대로 아옹다옹하기에는 사반세기의 역사가 아깝다. 탄압을 하든 구박을 하든 교실의 학생만 보고 묵묵히 나가기 바란다”라고 주문했다. 그의 칼럼에 동의한 누군가는 이에 대해 “전교조가 박근혜 정부 내내 전교조 지키기 싸움 하다 보내겠다”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정부가 결사단체의 존속을 달가워하지 않는 시대에 대중조직의 첫 번째 목적은 ‘지키기’가 될 수밖에 없다. 전교조가 지금 최우선적으로 고민해야 할 것은 법외노조가 되더라도 조합원이 줄어들지 않고 늘어나게 할 방법이 무엇이냐다. 조합원의 권익이든, 교육개혁이든, 진보교육감 지원이든 그 조직력이 전제되어야 할 수 있는 일이다. 
 
오히려 전교조가 반성하고 성찰해야 할 일이 있다면 그간 합법노조의 지위에 있었기에 애써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영역이 무엇인지를 따져보는 것일 게다. 그 영역들을 살피고 그 부분을 결사의 범위 안에 끌어들이기 위한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김의겸 논설위원의 견해는 철저하게 학교현장의 시선이 아닌 선출된 진보교육감의 정치의 영역에 머물러 있다. 전교조가 진보교육감에게 방해가 될까, 짐이 될까 전전긍긍이다. 여기서 우리는 ‘민주정부 10년’ 동안 <한겨레>가 노동조합 등 대중조직에 대해 가졌던 태도를 돌이켜보게 된다. 
 
김 위원의 태도는 대중조직이 선출된 진보권력에 짐이 될까봐 전전긍긍했던 <한겨레> 내 보수파의 태도를 반영하는 듯하다. “나이스인지 네이스인지에 매달리다 정작 중요한 교육개혁은 한 발짝도 떼지 못한 경험”이라는 다소 경악스러운 시선이 보여주는 것이 그것이다.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 문제는 학생인권 문제이기도 했지만, 교사들에겐 노동조건 문제이기도 했다. 이 시스템 전후를 겪은 교사들은 시스템 시행 이후 업무량이 폭증했다고 증언한다. 또 우리는 이 시스템이 고위공무원들이 채동욱 전 검찰총장의 혼외자녀 의혹을 불법적으로 사찰하는데 이용되었음을 이미 경험했다. 이런 것들이 중요하지 않다면,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대체 무엇일까.
 
물론 현재의 진보교육감들은 대체로 과거 민주당의 교육정책 노선보다 훨씬 진보적인 노선을 추구한다. 그러나 그렇더라도 진보교육감의 길과 전교조의 길이 온전히 포개지지는 않는다. 진보교육감이 가진 권한과 권력자원의 한계 때문에 전교조의 입장에 온전히 동의할 수 없다면, 전교조 역시 마찬가지다.
 
   
▲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공공운수노조 전회련학교비정규직본부 등으로 구성된 전국학교비정규직연대회의 회원들이 24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전교조 법외노조판결을 규탄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연합뉴스)
 
 
대중조직 바탕 위에 진정한 권력교체 가능할 수 있음을 인지해야 
 
당장 여론에 도움이 안 될 수 있어도, 전교조와 같은 대중조직이 약화된 교육현장은 진보교육감에게도 더 험난한 공간이 될 수 있음을 생각해야 한다. 비유하자면 노동조합이 충분히 결사되지 않아서 진보정부가 들어서더라도 할 수 있는 일이 제한적인 것인데, 그 상황을 여론으로 돌파하기 위해 노동조합의 약화를 감수하라고 윽박질러서는 안 된다. 
 
보수정부는 이쪽의 역량을 약화시키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매우 정확하게 아는데, 정작 <한겨레>는 그 부분의 중요성을 모르는 것 같아 걱정이 된다. <한겨레>의 관성이 이렇다면 교육문제를 넘어선 사회문제에서도 잘못된 진단을 내릴 수 있다. 
 
과연 전교조는 진보교육감의 승리에 도취하여 투쟁노선을 내세우는 것인가. 혹시 승리에 도취된 것은 전교조가 아니라 김의겸 논설위원이 아닐까. 기층현장에선 바뀐 것이 없고 나날이 상황이 안 좋아지고 있는데도, 선거로 인한 상층부의 권력교체에 열광하고 그들을 위해 다른 걸 희생해야 한다는 그 태도를 볼 때 말이다. 김의겸 논설위원과 같은 태도가 90년대 이후 한국 사회운동의 쇠퇴를 뒷받침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교육현장의 권력교체는 진보교육감의 승리만으로 이루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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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우리에게 누구인가?

[연재150] 제3세계의 눈으로 식민지 한국을 파헤친다- 안녕하지 못한 미국의 하나님 어이할꼬
 
유태영 목사 
기사입력: 2014/06/27 [16:15]  최종편집: ⓒ 자주민보
 
 
         
▲ 세월호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다 눈물을 흘리는 박근혜 대통령, 국민들 앞에서는 반성의 눈물을 흘리지만 실제 반성하는 내용은 하나도 없다. 오히려 국민통합은 내던져 버리고 불통정치를 더 고집하면서 오직 친미반민족 보수정책으로만 일관하고 있다.     ©자주민보


          
역사학자들의 역사에 대한 이해와 해석은 조금씩 각각 다르다. 하지만 모든 역사학자들이 역사를 분석하고 평가하는데 있어서는 공통점이 있다. 그 공통점이 무엇인가하면 <절대적 권력은 절대로 망한다>라고 주장이다.

스페인이 라틴 아메리카에서 식민지를 시작한 것은 콜럼버스가 1492년에 남미에 상륙한 때부터 시작됐다. 원주민들은 총과 칼이 무엇인지조차 모르고 칼날을 쥐다가 손을 베이기도 했다.  스페인은 주장하기를 “총과 칼을 가진 50명만 있으면 라틴 아메리카 대륙을 마음껏 정복할 수 있다.”라고 주장했다. 

스페인은 1492년-1763년까지 271년 동안 라틴 아메리카를 통치했지만 전성기를 뒤로하고 쇠퇴하여 멸망했다. 뿐만 아니라 스페인은 유럽에서 영국과의 전쟁에서도 패전하여 완전히 멸망하고 말았다.

대영제국은 어떠했는가? 대영제국은 1607년에 미국 버지니아 제임스타운에 처음 상륙하여 북아메리카 식민지를 시작했다. 1620년에는 영국 청교도들이 성경책을 들고 와서 뉴잉글랜드에서 식민지를 건설하기 시작했다.  
영국은 1607-1776년까지 169년 동안 북아메리카 전역에서 식민지 통치를 했다. 뿐만 아니라 영국은 아프리카와 아시아 등 지구상에서 해가 지지 않는 광대한 식민지를 보유하고 있었다. 
영국은 미국에서 막강한 위력을 과시하면서 본토의 원주민 7천만 명을 깡그리 학살했다. 영국은 아프리카에서 흑인 노예들 1,400만 명을 미국으로 끌고 와 흑인노예무역을 시작했다. 대영제국은 지상에서 최대 최악의 강국이었다. 

기원전 2,700년에 엘람 제국의 패망, 페르시아 제국의 패망, 기원전 27년의 로마 제국의 패망, 기원 후 509년에 프랑크 왕국의 패망, 그리고  2천 년대에 이르러서 러시아 제국과 일본제국과 나치 독일 제국의 패망 등으로 5000년 역사에 105개의 제국들이 흥망성쇠의 역사를 남겨 놓았다.
 
미국의 초창기 역사에 의하면 13개주가 단결하여 합중국을 형성하고 영국을 대항하여 독립전쟁을 일으켰다. 미국은 독립전쟁에 승리하여 1776년에 미국 합중국의 독립을 선포했다. 영국은 아메리카 대륙에서 169년간 식민 통치하다가 결국 미국에 패망하고 영국으로 쫓겨 돌아갔던 것이다.

<절대 권력은 절대로 망한다>라는 말은 제국주의 나라들이 멸망하는 비극적인 역사 속에서 필연적으로 터져나온 발언인 것이다. 
 
1. 멸망의 위기에 처한 오늘의 미국


지난 230여 년 간 미국의 경제력은 눈부신 성장을 했다. 미국 초창기 경제발전의 기반은 노예제도였다. 1700년대 미국의 목화 생산량는 1년에 1,000톤에 불과했다. 하지만 1800년대에 들어서서 미국의 목화 생산량은 1년에 100만 톤으로 급증했다. 미국의 목화생산량이 급증한 이유는 오직 흑인 노예 수가 기하급수로 급증했기 때문이었다.

미국의 헌법은 <모든 사람을 위한 민주주의와 평등>을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의 헌법을 제정한 초창기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이 모든 사람은 <백인만을 위한 모든 사람 (WASP)>이었다. 미국에서 노예가 되고 있는 1,400만 명의 아프리카 흑인들과 7천만 원주민 유색인들은 백인들이 자유와 평등을 누릴 수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한 민주주의와 평등>에 포함되지 않았다. 

지난 230여 년 동안 미국을 강대국으로 만들고 지켜준 미국의 경제만능주의시대는 지나갔다. 오늘 미국을 강대국으로 지켜주는 것은 경제력이 아니라 막강한 군사력뿐이다. 

제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끝낸 미국의 위대한 군사력은 원자무기를 소유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6.25 한국전과 월남전을 비롯하여 아프칸 등 제3세계에서 미국 이 무소불능의 위력을 과시하면서 많은 국지전들을 계속하여 일으키고 있는 것은 오로지 미국이 원자무기를 대량 소유하고 있는 막강한 군사력 때문이다.

하지만 의심의 여지없이 오늘 미국의 막강한 군사력인 원지무기의 소유권은 급속도로 헝클어지고 있다. 고금을 막론하고 군사력을 과시하는 강대국들은 생태학적으로 결국은 조만간 몰락하는 법이다. 

그런데 미국의 부시 대통령은 2003년에 무분별한 강대국의 만행을 저지르면서 원자무기의 위력으로 이락을 마구 침공하여 중동뿐만 아니라 제3세계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오늘 전 세계를 불안하게 만드는 미국의 패권주의는 필연적으로 몰락의 위기에 처해 있다.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미국 국무부의 막대한 외교 중요문건에서 폭로된 자료들에 의하면 미국의 임박한 몰락에 대하여 워싱턴 정가에서 떠도는 이야기들을 살펴보는 것은 매우 흥미롭다.  



2. 미국이 정말 제3세계에게 우방국인가?

제3세계 나라들이 미국과 <우방국가>가 되는 것은 미국에 대한 신뢰 때문이 아니라 두려움 때문이며 필요성 때문에 할 수 없이 우방국이 되고 있다.

미국 CIA가 말하는 우방은 지정학적 현실주의에 기반하여 국제적 시각에서 볼 때 미국이 제3세계를 착취하고 이익을 추구하는데 필요불가결한 우방국들이다.
미국이 한때 빛나고 과시했던 “세계안보”의 명성이 이제는 빛을 잃었다.  제3세계 나라들은 오늘 미국이 뭐라고 말하든 관심이 없으며 미국을 신뢰하는 시대를  이제는 꿈도 꾸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의 미래 역사가들은 부시 행정부가 2003년에 무모하게 이라크 침공을 감행한 때부터 미국의 몰락은 시작됐다고 평가한다.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은 21세기 미국의 몰락을 자초한 전쟁이며 경제와 군사력의 붕괴를 사이버전이 확산되면서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미국의 저명한 역사학자들은 미국의 치명적 몰락은 2025-2030년에 몰락의 위기의 종말을 맞이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미국은 세계적 영향력을 유지하려고 2020년까지 제3세계에 군사력을 집중하겠지만 그것은 다만 제국주의적 마지막 오만일 뿐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연두교서에서 “미국이 2등국으로 전락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겠다”라고 억지의 주장으로 역설했다. 하지만 최근에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미국인들 65%가 미국의 미래에 대하여 <쇠퇴하고 몰락하는 국가>라고 대답했다.

미국의 몰락을 3가지로 진단하는데 “교역량의 감소” “기술혁신에서 퇴조” 그리고 “달러의 특권적 지위의 종말” 등이다.  미국의 대학 졸업자의 수준이 세계 최고였지만 2012년에는 세계 12위로 떨어졌다. 미국의 과학 분야에서 대학 졸업자 중 절반 가까운 수가 외국인이며 이들은 고국으로 돌아간다.

끊임없는 제3세계 전쟁으로 인하여 미국정부의 부채는 점점 태산처럼 불어난다. 미국 국채의 가치가 추락됨으로서 세계에 800개 이상의 해외 미군기지를 유지하는 것이 이제는 감당할 수 없게 됐음으로 단계적인 철수시킬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미국이 제3세계에서 이러한 환멸과 절망으로 정치적 종말에 이르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오직 어리석은 한국의 박근혜 정권만이 미국에 대한 환상에 매달이고 있다. 
한국의 박근혜 대통령은 온갖 화려한 수사를 총동원하여 환상적인 친미종속과 반민족적 정치노선을 강조하면서 정권을 유지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친미종속의 정권의 명줄을 유지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으로서 과시하는 방법은 무인가? 왜 어찌하여 박근혜 대통령은 천안함과 세월호의 침몰사건의 진상과 원인을 끝까지 은폐하고 있는가? 
그것은 패망하는 미국의 운명과 패망하는 박근혜 정권의 운명이 <동반자살>자들과 다를 바 없다. 
              
3. 러시아와 중국의 부상으로 인한 미국의 몰락 

ㄱ) 러시아의 부상이 미국의 몰락에 지대한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크림반도가 러시아로 귀환된 사건은 그것이 우리 한반도에게 “강 건너 불구경”이 절대로 아니다. 크림반도의 사건은 분단된 우리 한반도에서도 어떤 파장을 가히 기대할 수 있는 사건이다.

크림반도는 1853-1856년 전쟁에 러시아가 패함으로 서방에게 강제로 빼앗겼던 것이다. 하지만 21세기에 이르러서 크림반도가 러시아로 귀속되어 원상복귀 되었다. 
뿐만 아니라 우크라이나가 서방의 압력에 속아서 핵무기를 포기한 과거의 큰 잘못된 처사를 이제라도 제 정신을 차리고 깨닫고 친미친서방 노선에서 탈피하고 자주하는 국가로 복귀하려고 반서방 반미투쟁을 맹렬히 전개하고 있는 것이다.  

크림반도 사건과 또한 우크라이나에서 반미 내전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는 것은 냉전시대 이후에 동유럽권 나라들에서 놀라운 변화의 물결이 요동치고 있는 것을 뜻한다. 이것은 냉전해체 이후에 오랜만에 미국주도의 세계질서가 크게 요동치고 있음을 분명히 말해주고 있는 현상이다.
오늘 푸틴 대통령의 강력한 지도력은 옛소련의 코르바초크-엘친이 망처 놓은 러시아 본래의 위치를 다시 회복시키고 있다.

러시아 푸틴 대통령은 미국주도의 <나토>를 대항하고 견제하는 <유라시아연합>을 창건하는 구상을 발표했다. 우크라이나, 아르메니아, 카자호스탄을 비롯하여 동유럽권의 9개 나라들이 <유라시아연합, EAU>의 회원국이 되여 2015년 1월에 공식으로 발족한다.  

미국은 <유라시아연합>의 발족에 위협을 느끼면서 옛 소련제국의 부활이라고 맹비난을 하고 있다. 하지만 푸틴 대통령의 기습적인 용단으로 <유라시아 연합>을 창설하는데 대하여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은 속수무책이다. 크림반도의 러시아에 귀환과 우크라이나의 빈미와 친로적 내전 등으로 인하여 동유럽에서 미국의 1극의 위치가가 이제는 더 이상 유지할 수 없게 됐으며 포기할 수밖에 없게 됐다. 

독일 주간지 “슈퍼겔”은 앞으로 미국과 러시아간에 <나토>와 <유라시아연헙>을 무대로 하여 치열한 경쟁이 계속할 것 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면서 “슈퍼겔”은 미국이 흑해에서 군사적 이익을 완전히 포기하지는 않겠지만, 그러나 미국이 이제는 유럽에 직접 개입할 의지는 약화되어 결국 퇴진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국이 더 이상 국제경찰 노릇을 포기한 상황에서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의 성공적인 지도자로서의 역할을 세계적으로 과시하는 것이 최대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

ㄷ) 중국의 부상과 세계 G2 시대의 도래가 눈앞에 전개되고 있다. 

미국의 군사력이 아직은 중국을 압도하고 있다고 보는 견해가 있다. 하지만 중국의 경제력의 규모나 아시아국가들에 대한 정치외교적 영향력에 있어서 중국은 이미 미국을 능가하는 강대국으로 등장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중국은 미국을 추월하여 세계 최대의 외화보유국이 됐으며 세계 최대의 무역국으로서 80여개 국가들과 최대의 무역상대국이 되고 있다. 크림반도의 러시아 편입처럼 대만이 중국으로 편입되는데 대한 전망이 세계적으로 고조되고 있다. 

중국의 시진핑의 지도력이 국제적으로 부상하는 것은 잠자던 사자가 깨어나면서 강대국으로서의 역할을 강화하는 것으로 세계적으로 인식되고 있다. 이와는 정반대로 미국은 크림반도에서 이미 보여준 것처럼 국제경찰의 역할을 더 이상 수행할 능력이 없음을 세계에게 그대로 드러내 보이고 있다.

세계는 지금까지의 미국의 21세기를 이제는 ”<아시아의 세계 21세기>라고 부르게 된 것은 다름 아닌 중국의 눈부신 부상 때문이다.

과거 수세기동안 세계는 “워싱턴 컨센서스” 를 신봉했다. 하지만 오늘 세계는 중국에 대하여 <베이징 컨센서스> 라는 중국의 권위주의를 미덕으로 여기고 있다. 이것은 중국이 경이적으로 경제적 발전과 군사적으로도 미국을 추월하고 있음을 뜻한다.
오바마 대통령은 중국의 비위를 맞추기 위하여 티베트의 달라이라마와의 면담을 거절했다는 사건이 발생하여 미국은 세계에 웃음거리가 됐다. 그리고 미국이 일방적으로 추진하는 “기후변화협약”과 “환율조정안”등 미국의 주장은 실패했다.
그럼으로 지난 60-70년간 미국을 중심하여 구축된 동북아 안보의 지형이 오늘 중국의 부상으로 인하여 근본적으로 요동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중국은 건국 100주년을 바라보는 장기적인 선진국가로서의 기반을 다지는 과정에서 매우 신중한 대미정책을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중국은 미국과의 관계에서 <경쟁과 협력>과 동시에 병행하면서 국력신장에 전력을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이것이 중국이 세계 최대의 강국으로 추구해 나가는 길이 될 것이다. 

2011년 1월에 21세기 새로운 10년을 시작하는 시점에 중국과 미국이 정상회담을 하여 집중적 관심은 <상호존중> <호혜공영협동동반자관계>라는 두 나라의 새로운 비젼으로서의 키워드를 제시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과 미국 양국관계는 안정과 협력관계라고 단정할 수 없다. 왜냐하면 “대만문제” “티베트 문제” “일본과의 센카쿠열도 문제” 그리고 “북핵문제” 등에 대하여 미국과 중국은 조금도 변함없이 “동상이몽”의 주장으로 여전히 맞대항하여 상호 대립과 고집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이 미국을 대항하여 강대국으로 부상하는 것은 특히 동북아시아 지역의 안보에 대해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 지난 60-70년간 미국을 중심하여 구축된 동북아시아 안보지형이 근본적으로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일본이 제아무리 미국편에 서서 미일관계의 밀착을 강조하지만 중국의 부상을 일본이 어찌할 수 없다. 일본은 미국과의 밀착과 한편 중국의 부상으로 인하여 섬나라의 근성을 버리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다.

중국과 조선의 혈맹관계에 대하여 일본이 제아무리 미국편에 서서 파괴공작을 시도한다고 할지라도 미국은 일본과의 관계에서 패전전국이라고 하는 과거의 역사를 절대로 망각하지는 않고 있다.  미국은 또한 최근 일본의 아베 신조 총리가 야스쿠니 신사참배 사건에 대하여 유구무언이지만 속으로 불쾌감을 감추지 못했다.  

중국과 미국의 통상분쟁에 있어서도 역시 마찬가지다. 미국이 중국에 대하여 통상압력을 가하면 중국은 즉시 보복성 무역조치를 취하여 비국에 강경대응을 한다. 중국과 미국의 무역마찰은 곧 글로벌 각축구도로 확대되어 세계적으로 정치적인 문제로 발전한다. 
중국과 미국의 통상분쟁은 불공정 조치문제 대립의 복잡한 다양한 문제 발생에 대하여 중국은 책임이 없으며 오직 미국 때문이라고 중국은 강력히 주장한다.

특별히 중국의 부상에 대하여 최근 호주의 토니 애벗 총리는 중국의 국제적 부상에 대하여 놀라운 발언을 하여 주목을 받고 있다.  
애벗 호주 총리는 뉴욕에 있는 호주-미국협회의 회의석상에서 연설을 통하여 다음과 같이 역설했다. <중국의 부상은 세계를 위하여 좋은 일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다른 나라에서 생산한 물건들을 살 수 있게 됐다. 부자가 된 중국은 10억 명의 경쟁자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10억 명의 고객을 의미하는 것이다. 중국의 부상은 위험이 아니라 기회이다>

이와 같은 호주 애벗 총리의 연설은 지금까지 미국이 주도하는 “아시아 중심축”이 붕하고 있다고 하는 회의적 시각을 반영한 발언으로 해석된다. 뿐만 아니라 애벗총리는 <이시아의 세기가 도래하는 것을 기대한다>라고 했다. 
이것은 중국의 부상에 대하여 태평양의 맹주로서의 호주의 공식적인 변화인 동시에 또한 호주의 미국에 대한 인식의 변화와 관계의 전환이라고 해석된다.

그런데 오늘 한국은 미국과의 관계에 어떠한가? 한국은 미국과 동반의 관계를 자랑하면서 오직 한국이 미국의 낡은 무기를 무진장 수입하는 <최대무기수입국>이 되고 있을 뿐이다.  

중국은 한국에게 최대 교역국, 최대 투자대상국, 최대 인적교류국이 되고 있다. 중국의 부상은 동아시아의 정체성과 전략적 내실화에 있어서 미국을 따돌리고 있으며 중국은 한국과의 관계에서 실질적으로 이득을 거두어 드리고 있다. 

중국의 한반도에 대한 전략적 최고 목표는 한반도에서 <한미일 3국 침략적야욕>을 중국이 절대로 허용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시간이 갈수록 중국의 한반도에 대한 전략적 최고의 목표는 한국에서 미국을 따돌리는 전략이 더 밝혀질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미주의 중병에 걸린 구제불능의 이명박근혜의 정권은 미국오바마 대통령이 언급한 <이명박는혜정권은 이전의 지도자들 (김대중 노무현)보다는 더욱 더 돈독합니다.> 라는 칭찬 한 마디 말에 푹 빠져 미국을 절대적으로 의존하면서 정권의 사활의 명줄을 걸고 있다. 


4. 미국은 우리에게 누구인가

제1세기에 지중해지역에서 막강한 권력을 행사한 로마의 황제 아우구스투스의 시대를 <팍스로마나>라고 명명했다. 아우구스투스 황제는 두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한편으로 무서운 식민지지배의 권력을 팽창하면서 또 다른 얼굴은 기독교의 선교를 통하여 자비의 미덕을 과시했다.

<팍스로마나>시대는 무기와 전쟁의 기술 등으로 유럽문명에 지대한 영향을 준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팍스로마나>는 로마제국이 통치하는 통치 200년에 이르러서 알렉산더왕이 살해를 당하는 비극의 역사가 발생했다. 

그 후에 약 50년 동안에 26명의 황제들이 교체되고 난립하는 정권이 위태로운 시대가 계속하여 <팍스로마나>는 군인황제들이 통치하는 시대가 시작됐다.  
그리하여 화려한 <팍스로마나>는 <신성>과 <세속>이 혼재하면서 독재와 부패로 얼룩진 역사가 또다시 약 2백 년 동안 계속됐다. 결국 로마제국은 동서로 분열되어 완전히 멸망하고 말았다. 
<팍스로마나>의 21세기 버전이 미국의 <팍스아메리카나, Pax Americana>라는 명칭으로 다시 태어났다. 멸망한 로마제국처럼 미국제국주의도 두 개 얼굴을 가지고 등장했다. 

미국은 제3세계에 무서운 침략자이면서 또 다른 얼굴은 자선과 봉사의 구제물자를 공급하는  UN의 “평화의 사신”으로 둔갑하는 두 얼굴을 가지고 있다. 

한국에서도 역시 친미반통일주의 얼굴과 기독교의 장로의 위선의 두 얼굴을 가진 이명박 정권이 출현하여 진리의 혼돈과 흑백의 혼돈으로 한국을 큰 혼란에 빠뜨리고 있었다. 그런데 이명박 정권의 두 얼굴을 그대로 이어받은 것이 또한 바로 박근혜정권이다.

박근혜는 무서운 유신독재정권의 유산을 지닌 얼굴과 다른 한편에 여성의 부드러운 모습으로 변장한 얼굴을 미끼로 삼아 두개의 얼굴로 정치를 하고 있다.

박근혜 정권이 친미주의적 종속의 정치를 하는 것은 오직 정권유지를 위한 유일한 방법이다.  그런데 친미주의적 종속의 정치는 본래 이승만 때부터 시작하여 오늘에 이르기까지 계속되고 있는 정치방식이다. 그럼으로 친미 종속정치의 형태는 한국의 정치맥락에 있어서 불변의 전통이 되고 있다.

미국에 종속된 정권이 아니라면 한 발자국도 앞으로 전진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지난 70년 동안 한국 정치의 반민족적인 역사이다.
며칠 후에 2014년 6월 25일이 되면 6.25 전쟁(1953-56) 64주년을 맞이한다. 
 
세계적으로 동서냉전시대가 시작된 것은 바로 한반도에서 6.25 전쟁을 계기로 시작됐다. 또한 6.25전쟁은 일본의 식민지 통치의 연장선상에서 한국이 미국의 손아귀에 들어가는 계기로 되었다.
6.25 전쟁 3년 동안 미군이 한국 땅에 비행기 폭격을 퍼부은 상황에 대하여 미군 윌리암 딘 소장은 그의 목격담을 솔직히 말해다.  

<도시들과 마을은 대부분 모조리 돌무더기로 폐허가 되거나 휜 눈에 덮인 듯 희뿌연 황무지로 보였다.>

그리고 폭격에 총지휘 책임을 맡았던 르메이 장군의 증언은 더욱 뻔뻔스럽고 듣기에 치가 떨린다.  

<3년이라는 기간 동안에 우리는 북한의 인구의 거이 30%에 달하는 인구를 죽였다. 북한에 있는 모든 마을들을 불태워버렸고, 남한에 있는 것도 다 불태워버렸다. 믿을 수 있는 사실은 3년 동안 38선 이북에서 8, 9백만 명의 인구에서 3분의 1에 달하는 인구가 죽임을 당했다> 

신동아 2000년 5월호 기사에 의하면 6.25 전쟁으로 한국에서 230만 명, 북한에서 290만 명이 죽은 것으로 추정했다. 
위의 여러 가지 부정할 수 없는 확실한 자료들 한국에 미국 군인들이 대량으로 주둔하고 있는 상황에서 발생한 사건들을 정확이 기록에 확실한 사건들이다. 

하지만 총살, 총격사망, 살인, 의문사, 절도와 방화, 강간과 미군에 의한 교통사고사 등 기록에 없는 사망자의 수는 1년에 평균 1,500-2,000명이 된다. 이것들은 1945년 9월 8일에 미국군이 한국에 첫 진주한 날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줄 곧 벌어지고 있는 현실인 것이다. 
 
6.25전쟁이 일어나는 것을 사전에 알고 있던 미국 첩보부대 ASIS와 그리고 미국 CIA는 6.25전쟁에 대한 문건 1195를 워싱턴에 보냈다. 하지만 워싱턴은 꿈적도 하지 않고 오히려 6월 23일에 육군참모총장이었던 채병덕 장군 (당시 29세)을 설득하여 비상계엄령을 해제하도록 하였으며 유군본부에서 댄스파티를 열도록 미국 고문단장이 역할을 했다고 한다. 

미국은 한국에서 도대체 누구인가?  미국은 한국이 아무것도 할 수 없도록 만들어 놓고 한국에 38선 분단정책을 시작했다. 이러한 미국이야 말로 <악의 축>이다.  
더 이상 우리를 슬프기 하지 말라고 호소한 한국의 민중이 부르짖은 소리는 70년이 지난 오늘에도 메아리치며 들려온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박근혜 정권은 민족분단의 고통을 전혀 느끼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오히려 박근혜는 분단 고착을 유지함으로서 정권의 안전을 강화하는 이득을 챙기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민중에게 “역사건망증”을 부추기는 정치를 한다.

빅근혜 대통령의 통일대박론은 무엇인가? 그것은 6.15동선언실천정신을 깡그리 무시하고 오직 미국이 <핵 가진 자와는 악수를 하지 않겠다.>라고 주장하는 미국을 추종하면서 냉전의 유산인 반통일주의 정책만을 드리대고 있다. 

박근혜는 북한의 핵무기 보유를 반대하면서 한편으로 미국에게 핵무기 방위부담금으로 천문학적 거액의 돈을 해마다 퍼주고 있다.

한국에서 미군을 몰아내고, 남북대결을 끝장내고, 민족통일의 길로 전환하는데 있어서 최선의 길은 무엇인가?  

그것은 60-70년이 된 정전협정을 페기하고 평화협정을 하루 속히 체결해하는 것이다. 그리고 한미합동북침전쟁연습을 완전히 폐기해야 한다. 그래야만 미국이 저지른 천안함 침몰과 세월호 침몰사건 같은 불행한 사건들을 또 다시 일으키지 않도록 방지할 수 있는 것이다. 

지난 6월 4일의 지방선거의 결과는 박근혜 대통령의 일방적인 친미보수주의에 대한 민중의 심판인 동시에 천안함과 세월호침몰 참사의 진실을 감추고 있는 박근혜 정권에 대하여 결정타를 던진 것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의 문제는 민중의 뿌리가 없으며 오직 미국을 의존하는 반민족적 권위주의로 정권을 유지한다. 

NLL비밀대화록을 왜곡유출하여 불법적인 방법으로 당선된 대통령의 지도력은 결코 오래 가지 못하고 끝장나고 말 것이다.

미국은 중동에서 엄청난 달러와 군사력을 투입하였는데도 불구하고 오늘 오바마 대통령 정권은 속수무책으로 중동정책의 완전한 실패를 자인하고 있다. 특별히 오늘 현재 이라크는 3등분으로 분열되는 위기에 직면하고 이지만 미국은 어떤 대안이 없이 난관에 봉착하고 있다.  
미국이 오늘 이라크에 생각하고 있는 파병은 불가능하고 오직 무차별 폭격으로 대량살상의 방법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아시아에서 중국과 러시아가 급부상하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역시 아무 대안이 없다, 오바마 대통령과 케리 국무장관 그리고 라이스 국가안보 보좌관들은 모두 이구동성으로 말하고 있는 바는 무엇인가?

그것은 제3국들과 특히 동남아시아 나라들이 미국만 의존하려하지 말고 제각기 자기 나라들이 안보의 책임을 지는 안보의 분담이다.  

미국의 이러한 긴박한 사정은 무엇을 말하는가? 그것은 <미국의 하나님이 안녕하지 못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아와 같은 긴박한 시기에 우리 민족은 <위기는 기회이다>라는 엣 격언을 기억해야 하겠다.  중국과 러시아의 급부상으로 인하여 미국이 제공해 주는 안보는 위기에 처해 있다. 하지만 <위기는 기회이다>라는 지혜의 뜻을 따라 우리 민족은 오직 우리민족끼리 <6.15공동성언실천>을 힘차게 전개함으로서 <위기를 기회>로 삼아 민족통일을 성취해야 하겠다. 

이 글을 맺으며...

지난 6월 4일 지방선거를 3일 앞둔 6월 1일 일요일에 정몽준과 남경필 두 후보자는 여의도순복음 교회에서 C목사의 안수기도를 함께 받았다. C목사는 정몽준과 남경필 후보자를 교인들에게 소개하여 <하나님이 우리나라에 복 주시려고 이 좋은 두 인물을 보내신 것에 감사하다>라고 했다. 두 후보자 부인들은 권사들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큰 실수로 인하여서 두 사람 중 한사람만 당선되고 다른 한 사람은 낙선되었다. 하나님의 불공정한 큰 실수였다. 여당의 서울시장 후보자가 당연히 당선되어 하나님께 큰 영광 돌릴 것을 기대했다. 하지만 C목사의 기도의 효과는 51/49%로 남경필만 당선 되고 말았다.

언론에 보도되고 있는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도 역시 교회의 장로이다. 뿐만 아니라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 사건으로 마음이 복잡한데, M교회 주일예배에 참석하여 그 교회의 K목사의 설교에 큰 은혜를 받은 모양이다.

 K목사의 설교는 <하나님이 대한민국을 침몰시키지 않기 위하여 세월호를 대신 침몰시켰으니 하나님께 감사를 드려야 한다.>라는 설교로 박근혜를 위로했다.
대중선동주의와 시장경제만능주의도 문제이지만 한국 교회의 물질주의적 이론이 훨씬 더 심각하다. 
세월호 침몰의 국가적 비극과 분노 속에서 치려진 6.4 지방선거이기에 박근혜 정권은 응당 선거의 참패할 것으로 필자는 확신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지방선거 결과는 C목사의 열렬한 기도가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기도의 응답효과는 여당과 야당이 49/51%의 근소한 차이로 오히려 야당이 근소한 차이로 겨우 이기는 결과가 나타났다. 
만일 세월호의 침몰참사 사건이 없이 이번 지방선거를 치렀다면 박근혜정권의 불통 수구보수 정치는 더욱 기고만장했을 것이다. 

이것은 무엇을 말해주는가? 이것은 대한민국에서 C목사와 K목사 식의 사고방식이 한국사회를 지배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한국교회들이 섬기는 하나님은 무조건 <무소불능>의 하나님이 결코 아니다. 이번 지방선거에 나타난 하나님은 겨우 <49/51%의 하나님> 이시다.

신약성경 요한복음 2장 19절에 예수는 그때 당시 예루살렘 교회를 헐어버리라고 책망했다. 왜냐하면 첫째, 예루살렘 교회는 화려한 건물위주의 교회이었다. 둘째, 예루살렘 교회는 로마 정권을 추종하면서 정권과 야합한 타락한 교회이었다.

오늘 한국 교회는 <예수는 없고 목사만 있는 교회>들이 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한국 교회는 돈과 명예와 권력의 단맛에 취해서 독재와 부정선거로 당선된 대통령에게 축복기도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타락한 교회들이 오늘 한국의 세속사회에 차고 넘치게 있으면서 주동적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럼으로 신약성경의 예수는 오늘 한국 교회를 향하여 크게 외치신다.
<예수는 없고 목사만 있는 교회>는 헐어버리라고 단호히 명령하신다.(6/20/14, 유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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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길 안철수 대표에게 드리는 글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4/06/27 11:41
  • 수정일
    2014/06/27 11:41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이제야말로 진검승부를 할 때입니다
 
임두만 | 2014-06-27 10:02:40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세월호 참사, GOP총기난사의 참사… 이 두 가지 사건은 우리 한국이 지금 어떤 상황인지를 알게 해주는 바로미터였습니다. 안전사고는 어떤 정권에서나 있습니다. 배가 뒤집힐 수도 있으며 열차가 추돌할 수도 탈선할 수도 있습니다. 대형 교통사고로 많은 인명이 피해를 볼 수도 있으며 지진 수해 태풍 등의 자연재해로 수많은 인명과 재산피해를 낼 수도 있습니다. 특히 이번에 발생한 동부전선 GOP의 임병장 총기난사 사건 같은 우발적 안전사고는 언제 어떤 정권에서든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국민들은 이런 사건에 대하여 정권의 책임을 묻는 것일까요? 그것은 사고가 문제가 아니라 사고 후 수습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동일본 대지진 후 일...본은 정권 자체가 바뀌었습니다. 60년 자민당 정권을 교체했던 민주당 정권은 동일본 대지진의 와중에서 이를 제대로 수습하지 못하고 일본 국민들을 속이는 등 불안하게 했으며 국제사회의 지탄을 받았습니다.

이후 치러진 총선에서 일본 국민들은 당시 일본 집권당이던 민주당 정권에게 책임을 물었습니다. 자민당은 정권을 빼앗긴지 4년 만에 빼앗기기 전의 의석보다 많은 압도적 다수의석을 확보하는 것으로 정권을 탈환했습니다. 그리고 지금의 아베정권이 들어섰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떻습니까? 이명박의 실정에 실망한 국민들이 이명박 집권 3년차에 이미 이명박 정권을 비토했습니다. 그것이 2010년 지방선거입니다. 이 지방선거에서 집권당은 참패라는 말이 전혀 이상하지 않을 패배를 했습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그 후 2년 동안 정권은 정신을 차리고 국리민복을 위한 정치를 했어야 하나 그러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2012년의 양대 선거 당시 여론은 당연히 야당의 승리일 것으로 예측했습니다. 하지만 야당은 이런 국민적 여망에 보답하지 못했습니다. 간단하게 말하면 정권을 담보할 세력으로 야당이 인정받지 못한 것입니다. 권력을 맡을 준비가 되지 않는 세력이었던 것입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정권과 여당이 국민의 눈 밖에 났음에도 야당이 대안세력임을 인정받지 못한 것입니다. 왜일까요? 여러 이유야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야당 자체의 일사분란이 되지 않은 때문이었습니다.

계파전쟁, 크게는 친노와 비노싸움이었으나 친노는 범친노 주류친노로 분화되어 있었고 비노는 도토리 키재기식 자잘한 경쟁으로 분할되어 자기들만의 마스터베이션을 즐겼기 때문입니다. 자기편이 아니면 모두가 적인 정당이었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국민여론은 새정치를 갈망하였고 새로운 대안세력으로 안철수 세력이 떠올랐습니다. 그랬음에도 이들 모든 세력은 하나 되지 못했기에 권력을 탈환하지 못했습니다.

이 실패가 오늘의 박근혜 정권과 새누리당이란 원치 않는 세력의 정국주도입니다. 그리고 일어난 세월호 사건입니다. 망국으로 치닫는 관피아 해피아 법피아 등의 신조어가 나올 정도의 끼리끼리 카르텔이 세월호 안에 있던 300여 명의 목숨을 물속에 수장시켰습니다. 수장된 후 나타난 어처구니없는 부조리들이 오늘의 한국사회임을 알게 한 것입니다.

이를 덮으려고 정권은 또 ‘국가개조’라는 엉뚱한 말을 회자시키고 있으나 지금은 국가개조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정부개조 권력개조 대통령개조가 필요한 때입니다. 그러함에도 야당은 이 중차대한 시기에 야당의 책무를 다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현재의 야당인사들은 너나할 것 없이 모두 죄인입니다. 다시 말해 당신들은 지금 죄인인 것입니다. 이를 자각하지 않는다면 당신들이 어떤 말을 해도 국민들에게 대안세력으로 인정받을 수 없을 것입니다.

오늘(26일) 박근혜 대통령은 정홍원 국무총리를 유임시켰습니다. 세월호 참사에 책임을 지고 사표를 냈는데 그 사표를 60일 만에 되돌려준 것입니다. 이는 어떤 이유로든 정부가, 정권이 세월호 참사의 책임을 지지 않겠다는 선언입니다. 총리로 세울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말은 곧 그만큼 이 정권에 사람이 없다는 말도 됩니다. 이 정권의 사람들은 누구라도 국민적 잣대에서 버텨낼 수 없다는 말입니다. 정권을 지지하고 정권이 쓸 수 있는 사람은 모두가 부정직한 사람이란 뜻도 됩니다. 우린 지금 부정직한 사람들이 이끄는 나라에서 살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국민은 이런 부정직한 정권을 바꿔야 하고 바꾸려면 대안세력을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대안세력은 야당 당신들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묻습니다. 당신들이 대안세력입니까? 당신들에게 나라를 맡기면 이 부정직한 사람들보다 더 좋은 나라로 만들 수 있습니까? 당신들의 지금 그 고질적인 계파전쟁, 내편 위주의 사고방식을 바꿀 수 있습니까? 당신들이 당신들 스스로가 아닌 국민들을 위한 정치를 할 수 있습니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당신들은 이번 7.30 재보선 공천으로 해야 합니다. 지난 6.4지방선거 같은 공천이라면 당신들도 자격이 없습니다. 내편 위주의 공천, 유권자보다 자기위주의 성공 코스프레, 이런 공천이라면 당신들은 앞으로 영원한 아웃사이더일 것입니다.

잘 아시겠지만 오늘(26일) 새누리당 성완종 의원이 의원직을 상실함으로 새누리당은 147석을 가진 정당이 되었습니다. 300명 정원의 과반에서 3석이 부족합니다. 따라서 이번 재보선에서 새누리당은 최소 3석 이상을 획득해야 산술적 과반수가 됩니다.

물론 이 숫자는 산술적 숫자일 뿐입니다. 정의화 국회의장, 유승우 의원이 무소속이긴 하지만 당적만 새누리당 의원이 아닐 뿐 사실상 새누리당 의원이라고 볼 수 있지요. 그러면 149석입니다. 하지만 현재 형사소추 대기 중인 박상은 의원이 있습니다. 만약 박상은 의원이 구속되기라도 하면 그의 국회출석은 불가하므로 주요안건 표결 시에 당연 기권표가 될 것입니다. 그래서 어떻든 새누리당은 이번 재보궐선거에서 최소한 3석을 획득해야 국회 과반의 다수당 지위를 누릴 수 있습니다.

재보궐선거 지역은 15곳입니다. 그러나 말만 재보선이지 수도권 6곳, 충청권 3곳 호남권 4곳 영남권 2곳인 전국선거입니다.

새누리당은 자체여론조사로 이중 울산 남구을과 부산 해운대기장갑을 안정권이라고 봅니다. 일단 2석은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죠. 그리고 평택을, 충주, 서산태안, 대전대덕, 수원병은 유리할 것으로 봅니다. 결국 새누리당은 최소 7석을 건질 것으로 보고 있다는 말입니다. 따라서 이 같은 새누리당 계산대로 선거결과가 나온다면 현재 야당을 책임지고 있는 당신들은 그 책임의 한계를 벗을 수 없습니다. 선거 결과가 새누리당 계산대로 나타난다면 그것은 새누리당의 승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국민들의 입장에서 보면 이번 선거는 아무리 재보궐선거라지만 절대로 야당이 새누리당에게 지면 안 되는 선거입니다. 여당에게 국회의 과반을 허락하는 것은 지금의 정치를 계속하라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없어서 총리도 세우지 못하는 정권, 세월호 사고에서 나타난 대로 국민의 생명을 지켜주지 못한 정권, 총기사고를 수습하랬더니 유서도 감추고 가해자 신병을 가짜로 바꿔치기하는 정권, 바꾸겠다는 장관 후보들은 논문 도둑질을 한 사람, 심지어 음주운전 사고를 내 사람까지 있고, 국정원장 후보는 차떼기로 받은 불법 자금을 배달한 배달책임자이기도 합니다. 이런 사람들로 각료나 국가의 요직을 채우는 정권… 이 정권에게 다시 날개를 달아주는 것입니다.

이 편지는 그래서 쓰는 것입니다. 야당의 이번 재보선 공천은 계파, 내사람, 새정치, 구정치, 물갈이, 이런 말 필요 없습니다. 무조건 승리가 목표여야 합니다. 누구라도 이길 수 있는 사람이 최적의 후보입니다. 그 후보들이 옛날사람이든 새사람이든 이런 구분은 필요 없습니다. 이길 수 있는 후보여야 합니다. 승리가 최대의 목표입니다.

오거돈이 부산에서 이길 수 있으면 오거돈이 후보여야 합니다. 손학규 정동영 김두관 천정배 김효석 백혜련 금태섭 이계안 등 거론되는 모든 자원을 가동하여 이길 수 있는 곳에 투입하는 드림팀을 만들어야 합니다. 권은희도 삼고초려하여 공천하는 새로움도 보여줘야 합니다. 그래서 바람을 일으켜 이겨야 합니다. 객관적 판세에서 열세인 울산은 내주더라도 나머지 14곳의 완승이라면 완벽한 여소야대 정국을 만들 수 있습니다.

저는 이번에 김한길 안철수 양 대표가 이런 결단을 해주기를 바랍니다. 이번 선거를 통해 여소야대 정국을 만드는 것으로 당신들은 영웅이 될 것입니다. 그래야 당신들의 정치에도 미래가 있습니다.

이번에야 말로 진검승부입니다. 국민을 앝잡아 보고 사표 낸 총리를 다시 세우는 정권에게 국민이 무섭다는 것을 알려주는 방법은 선거 외에는 없습니다. 선거의 처절한 패배를 통해 저들이 다시는 국민을 얕잡아보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만약에 이번에도 내편 내 계파 나 등 이런 틀 안에 갇혀서 공천에 실패하여 선거를 지게 만든다면 당신들은 박근혜와 그 패밀리보더 더한 역적으로 취급받을 것임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28&table=c_flower911&uid=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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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부자 조중동의 상위 1%를 위한 부동산 언론 조작

 

 


참여정부 시절, 부동산을 안정시키기 위해 '8.31 부동산 대책'이 나왔습니다. 참여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나오자 조중동은 '무차별 세금 폭탄'. '종부세 공포', '경제 대란' 등의 용어를 거침없이 사용하면서 공격에 나섰습니다. 

'8.31 부동산 대책'뿐만 아니라 '11.15부동산 대책'이 발표됐을 때도 사정은 비슷했습니다. <부동산 문제-세금폭탄-정책 실패- 무능한 정권>으로 이어지는 조중동의 언론 공격에 참여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매번 실패와 난항을 겪었습니다. 

왜 조중동은 참여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그토록 공격했을까요? 
 

'세금 폭탄? 고작 1%를 99%의 문제로 몰고 갔던 조중동' 

'8.31 부동산대책'이 나오기도 전인 2005년 8월 23일 조선일보는 <8.31 부동산대책 무차별 세금폭탄 터지나>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냈습니다. 

8월 24일도 <무차별 세금폭탄, 애꿎은 피해자 쏟아진다.>는 기사를 연속해서 보도했습니다. 

 

 

 


조중동은 매번 무차별 세금폭탄이라고 주장하지만 실제로 종부세를 내는 사람은 전체가구의 1,3%에 불과합니다. 

대한민국 국민 대다수에 해당한다고 조중동은 떠들지만, 실제 대한민국 인구 4천8백만 명 중 23만 명만 해당합니다. 


중앙일보는 2006년 7월 19일 사설에서 한국 부동산 세금폭탄으로 한국인들이 미국 맨하튼의 부동산을 구입한다며 '탈 대한민국'이 왔다는 식으로 보도했습니다. 
 

미국의 부동산 보유세율은 1,5%~1.6%로 한국의 0.17%~0.52%에 비해 무려 3배가 넘습니다. 세금폭탄이 싫은 사람이 오히려 더 세금이 높은 곳의 부동산을 산다는 주장은 억지에 가깝습니다. 

대규모 아파트를 공급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실제 1990년~2005년까지 공급된 주택 586만채 중 270만채는 2채 이상의 주택을 보유한 다주택 보유자였습니다. 

조중동은 1%에 불과한 문제를 마치 99%의 문제처럼 몰고 갔으며, 이는 그들이 1%의 대변자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 부동산 광고는 조중동의 힘' 

조중동이 유료부수를 자랑한다고 하지만 대한민국 신문의 가장 큰 수입원은 광고입니다. 

부동산 분양 관련 광고는 거의 전면 내지는 양면으로 나오는 경우가 많은데, 신문사 입장에서는 돈을 한 방에 쉽게 벌 수 있습니다. 

 

 

 


특히 부동산 분양 광고는 날짜를 지정하는 경우가 많은데, 대기 광고와 지정 광고는 단가부터 차이가 있기 때문에 신문사로서는 수익률이 훨씬 높습니다. 

조중동의 부동산 광고는 다른 신문사에 비해서 유독 많습니다. 그중에서도 조선일보는 항상 부동산 광고 1위입니다. 
 

 

 


부동산 정책이나 관련 기사가 나오는 기간의 조중동과 경향신문, 한겨레 신문의 부동산 광고 횟수를 보면 조선일보는 한겨레에 비해 3배 이상 높았습니다. 

같은 기간 조선일보의 부동산 광고는 (전면과 양면 포함)는 18개였는데, 경향신문과 한겨레는 5개에 불과했습니다. 

1면 컬러 광고비 단가를 대략 1억원 (기준 광고료 1억5백3십만 원)으로 계산한다면, 조선일보는 조사기간 부동산 광고로만 18억원을 번 셈입니다. 
 

 

 


전면이나 양면의 대형 부동산 광고 이외 '5단통'이나 '5단반' 짜리 광고 등은 거의 매일같이 신문 지면에 쏟아지기도 했습니다.
 
조선일보의 부동산 광고는 전체 신문 지면의 11,75%였고, 전체 광고 지면으로 계산하면 23%에 달했습니다. 광고 10개 중의 2개는 부동산 광고라고 볼 수 있습니다. 

대형 건설사의 광고가 주 수입원인 조중동 입장에서는 언론의 역할보다는 광고주인 건설사를 위해 기사를 쓰는 것이 당연했고, 그들은 광고를 뉴스처럼 보도했습니다.  

' 나는 땅 부자 신문사다' 

조중동이 부동산에 목매다는 이유가 단순히 부동산 광고 수입 때문일까요? 아닙니다. 조중동은 그들 스스로 이미 부동산과 관련하여 자유로울 수 없는 존재들입니다. 
 

 

 

 


조선일보는 전체 신문사 자산의 35.3%인 163,776,465,786원이 부동산 자산입니다. 동아일보도 전체 자산 중 28.2%가 (131,520,004,608원) 부동산 자산입니다. 

동아일보는 무려 전체 자산의 45.1%가 (238,809,045,800원)부동산 자산입니다. 


조중동의 부동산 자산만 따져도 5천2백억 원에 달합니다. 조중동은 주식시장의 주식 등락처럼 부동산 시장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태생적 구조를 안고 있는 언론사입니다.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 일가의 자택은 서울시내 개인 주택 중 최대규모인 3,748평입니다. 청와대 관저 (건평 444평, 앞마당 477평)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대지 400평, 건평 350평)과 비교해도 훨씬 많습니다. 

언론사 사주부터 엄청난 땅을 소유하고 있으며, 언론사의 자산이 부동산에 편중되어 있다면, 언론사는 당연히 자신들에 유리한 부동산 정책을 만들도록 유도하게 되어 있습니다. 
 

 

 


참여정부는 부동산 환상의 위험을 경고했습니다. 부동산 투기를 막겠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노력은 상위 1% 땅부자, 그리고 건설사와 결탁한 조중동에 의해 참혹하게 난도질 당했습니다. 

'하우스푸어'가 문제이니 부동산 활성화를 해야 한다며, 빚을 내서 집을 사라고 조중동과 박근혜정권은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언론조작과 왜곡에 휘말려 피해를 보는 사람은 중산층과 서민이고 이득을 보는 사람은 땅부자와 건설사뿐입니다. 

상위 1%를 위해 99%의 희생을 요구하는 언론,
그들은 이미 언론이길 포기한 권력집단에 불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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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P 총기난사 사고 사망자 유가족 대책위 긴급 기자회견... "사인 명확히 밝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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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OP장병 유가족 '진상규명 때까지 장례식 연기' 강원도 고성 22사단 GOP 총기 난사 사건으로 희생된 장병 5명의 합동분향소가 경기도 성남 국군수도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가운데, 26일 오후 유가족들이 기자회견을 열어 '정확한 진상규명이 될 때까지 장례식을 무기한 연기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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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OP총기 난사 사건 희생자 합동분향소 26일 오후 강원도 고성 22사단 GOP 총기 난사 사건으로 희생된 장병 5명의 합동분향소가 설치된 경기도 성남 국군수도병원 장례식장을 유족들이 지키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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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적이고 고질적 문제로 발생한 이 사건을 군 당국이 왕따 등 개인적 문제로 덮으려 하는 것은 피해자들을 두 번 죽이는 일입니다. 유가족들은 군 당국의 무책임하고 안일한 병영관리를 보면서 임 병장에게도 연민을 느낍니다. 

우리 아이들뿐 아니라 임 병장도 저희에게는 지키고 보듬어야 할 자식이기 때문입니다. ... 이에 우리 유가족들은 총기사건의 실체적 진실이 밝혀지는 날까지 장례식을 무기한 연기합니다." 

강원도 동부전선 GOP(일반전초) 총기난사 사건으로 숨진 고 김영훈 중사의 아버지가 호소문을 읽어내려 가던 중 숨을 멈추고 오열했다. 총기사건 희생자 유가족 대책위원회는 26일 오후 5시 20분께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장례식을 무기한 연기한다"고 밝혔다. 

유족들은 희생자들의 시신이 안치된 경기 성남 국군수도병원 장례식장 앞에서 'GOP총기 사건 관련 대국민 호소문'을 발표했다. 이들은 호소문에서 ▲숨진 장병들의 사인을 명확히 밝힐 것 ▲총기사건이 발생한 근본적 원인을 밝힐 것 등을 국방부에 촉구했다.  

유가족들은 여기서 총기사고와 관련한 국방부와 군 당국의 처리과정에 대해 강한 유감을 표하는 한편, 사고의 가해자로 알려진 임 병장에 대해 "그도 저희에게는 지키고 보듬어야 할 자식"이라며 "군 당국의 무책임한 태도를 보며 그에게 연민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유족들은 또 "구조적이고 고질적인 문제로 발생한 이번 사건을 군 당국과 국방부가 왕따 등 개인 문제로 접근하는 것은 피해자들을 두 번 죽이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25일 오전 김관진 국방부 장관이 해당 사고를 언급하며 "전역을 3개월 앞둔 병장이 사고자가 된 이면에는 집단 따돌림 현상이 군에 존재한다"라 말한 데 따른 것이다(관련기사: 김관진 "병장이 사고 낸 이면에는 '집단 따돌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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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OP장병 합동분향소 강원도 고성 22사단 GOP 총기 난사 사건으로 희생된 장병 5명의 합동분향소가 경기도 성남 국군수도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가운데, 26일 오후 일반 군인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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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희생자 고 이범한 상병의 외삼촌인 노봉국씨는 기자회견 후 짤막한 브리핑을 통해 "어제 제가 조카 부검에 다녀왔는데, 목 옆의 작은 동맥이 끊어졌을 뿐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더 큰 상처를 입은 임 병장도 살았는데 우리 조카가 살지 못한 이유는 무엇인지에 대해 군 당국은 명확히 밝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고 진우찬 상병의 아버지 진유호씨도 "저희도 예쁜 모습으로 아이들을 보내주고 싶었다"면서 "그러나 아이들이 '왕따를 시킨 가해자'라는 식으로, 이렇게 불명예스럽게 가는 것은 원하지 않아 힘들게 (장례식 무기한 연기를) 결정했다"고 말했다.

김관진 국방장관 방문해 긴급 면담... 유족들 "만족할 만한 답변 듣지 못했다"

유족들은 당초 오후 3시께 기자회견을 열 예정이었으나 이에 앞서 백승주 국장부 차관과 김관진 국방부 장관의 긴급 면담이 차례로 예정돼 기자회견을 5시로 미뤘다. 김관진 장관은 이날 오후 3시 45분쯤 국군수도병원에 도착해 유족들과 면담을 진행했다. 그러나 유족 측은 기자회견을 통해 "국방장관에게서 만족할 만한 답변을 듣지 못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사건 발생 당시 군 당국은 총상에 의한 사망이라고 했지만, 과다출혈에 의한 사망이 의심되는 소견이 나온다"며 "초동 대처는 어땠고 아이들을 살리려 어떤 노력을 했는지, 왜 다음날 오후 3시까지 주검이 방치됐는지 명확히 밝히라"고 요구했다. 

이어 "국방부와 군 당국은 임 병장의 개인적인 갈등이 원인인 것으로 호도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인권침해와 차별을 정당화하는 보호관심병사 제도 등 안일한 병역관리 문제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유족들은 "당시 피해자들을 구조하기 위해 신속한 응급조치를 취하지 않은 점, 사건 발생 후 2시간 반 동안이나 외부에 알리지 않아 국민들의 생명을 무방비로 방치한 점 등 총기 사건의 근본적인 원인을 밝히라"고 촉구했다. 

앞서 유족들은 군이 총기난사 사건의 가해자인 임아무개 병장의 유서 전문을 비공개하는 이유를 "유가족이 원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한 것에 대해 강한 유감을 표현했다. 또 김 국방 장관의 '집단 따돌림' 언급에 대해서도 장례 일정을 취소하는 등 강한 항의를 드러냈다. 

한편, 총기난사 사건의 가해자인 임아무개 병장은 26일 오후 1시 25분쯤 강원 강릉시 국군강릉병원으로 옮겨졌다. 임 병장은 24일 군의 포위망이 좁혀오자 자살을 시도한 후 강릉 아산병원으로 옮겨졌으며, 26일 오후 현재는 수술 후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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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회 한겨레통일문화상 수상한 정세현 원광대 총장

"통일담론 활성화에 일익 담당하겠다" 제16회 한겨레통일문화상 수상한 정세현 원광대 총장
김치관 기자  |  ckkim@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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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06.26  19:5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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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6일 정세현 원광대 총장(왼족)이 임동원 한겨레통일문화재단 이사장으로부터 제 16회 한겨레통일문화상을 받고 있다.  [사진제공 - 한겨레신문]

“이제 한겨레통일문화상도 받았으니까 진짜 민간인 신분으로 통일운동을 좀더 적극적으로 해서 상값을 해야 하지 않겠나.”

26일 제 16회 한겨레통일문화상을 수상한 정세현(69) 원광대 총장은 오는 12월 총장직을 물러나면 민간 통일운동에 보다 매진하겠다고 말했다.

정세현 총장은 25일 낮 서울 신촌 이화여대 앞 한 커피숍에서 <통일뉴스>와 가진 인터뷰에서 27년간의 공직생활과 10년간의 민간활동을 되돌아보며 “지금까지 해왔던 대로 나는 인터뷰나 대담 이런 것을 통해서 통일담론을 계속 이끌어가고 활성화시키는데 일익을 담당하는 것이 편하다”고 말했다.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에서 각각 통일부 장관을 역임한 이례적인 경력은 물론, 이명박 정부 때까지 열린 606회의 남북대화 중 99회의 회담에 관여했고, 총 226건의 남북합의서 중 67건에 참여한 특별한 기록을 보유한 정 총장은 가장 기억에 남는 일로는 남북 철도.도로 연결사업을 추진한 일과 대북 쌀.비료 지원시 ‘대한민국’을 표기한 포대를 사용할 수 있도록 협상한 일을 꼽았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인터뷰 본문 참조)

정 총장은 주로 정부에서 통일관련 업무를 담당하다 퇴직 후 민화협 상임대표의장 등을 맡은데 대해 “'갑'의 위치에 있던 시간이 훨씬 길고, '을'의 위치에 있던 기간이 6월 30일이 딱 10년이다”며 “참 어렵더라”고 말했다.

“민간차원에서 일을 하면서 법대로만 하면 되지 않겠느냐” 생각했지만 이명박 정부 이후 실제로는 정부의 ‘불허’ 장벽에 가로막혀 “너무 힘들었다는 기억만 가지고 있다”는 것.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하면 떠오르는 ‘정세토크’도 이같은 배경에서 나왔다. 정 총장은 “글보다는 말로 해야겠다고 생각해서 ‘정세토크’를 시작했던 것”이라며 “다시 세월이 좋아지면 어느 것이 길인지, 어느 것이 길이 아닌지 전달하려면 그렇게 기록으로 남겨둬야 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 『정세현의 정세토크』출간 기념으로 2010년 11월  <통일뉴스>와 인터뷰한 정세현 전 장관. [자료사진 - 통일뉴스]

통상 정세 관련 인터뷰에 익숙한 정 총장은 이날 수상 기념 인터뷰에서도 “(정부) 안에 있을 때는 별로 몰랐는데 밖에 나와서 보니까 우리 정부가 남북관계와 관련해서도 너무 미국 눈치를 보는 거다”라며 “오바마 정부 들어와서도 마찬가지”라고 꼬집었다.

특히 “오바마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하고 2012년 11월 ‘아시아로의 귀환’을 차기 정부의 아시아 정책 방향으로” 정한데 주목하고 “중국의 세력이 커지고 미국이 그걸 견제해야 되는 상황이 되면서 북핵문제를 풀면 안 되겠다고 계산한 것 같다”고 해석했다.

북핵문제와 6자회담 재개를 두고 미국 등이 ‘중국 역할론’을 부각시키는 점에 대해서도 “책임을 자꾸 떠넘기는 중국 책임론”이라며 “세계평화를 어지럽히는 북한에 대해서 중국이 가장 영향력을 많이 행사할 수 있는데 움직이지 않기 때문에 이렇게 되고 있다고 책임을 넘기면서 사실상 6자회담이 열리지 않기를 바라는 쪽으로 입장을 정했다고 본다”고 해석했다.

박근혜 정부에 대해서도 “북쪽이 리더십 교체가 있고 그러니까 곧 망할지 모른다는 기대 때문에 복잡하게 반대급부를 줘가면서 회담 같은 것을 할 필요 없이 나중에 한방에 엎어치기 할 수 있다는 식으로 잘못된 계산을 하고 있는 것 같다”며 “그것이 통일대박론이고 또 통일대박론과 한짝을 이루는 북한붕괴론”이라고 짚었다.

정 총장은 미리 배포한 수상소감에서도 박 대통령이 “길을 두고 산으로 갔다”며 “만약 박 대통령이 후보 시절의 초심으로 돌아가서 6.15와 10.4정신을 존중하면서 한반도신뢰프로세스를 발표 당시 원안대로 추진해 나가면 임기 중에 통일 관련해서 큰 업적을 남길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한겨레통일문화상 심사위원회가 “정 총장이 남북관계는 물론 북미, 한미, 한중, 일중 관계 등 급변하는 동북아 정세에 대한 명확한 진단과 창조적 대안제시를 통해 정부의 정책생산과 국민의 이해를 돕는데 앞장서 와음을 높이 평가했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듯이 앞으로의 그의 활약이 기대된다.

다음은 정세현 총장 시상식을 하루 앞두고 나눈 인터뷰 내용이다.

“민간 통일운동 더 열심히 하라는 채찍”
 

   
▲ 제16회 한겨레통일문화상 수상을 앞둔 25일, 서울 신촌의 한 카페에서 정세현 원광대 총장과 인터뷰를 가졌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 통일뉴스 : 제16회 한겨레통일문화상 수상을 축하드린다. 먼저 소감 한말씀 해달라.

■ 정세현 총장 : 원래 한겨레통일문화상은 민간부문에서 통일문제에 관련한 활동을 하거나 담론을 이끌어가는 분들에게 드리던 상인데, 나한테 준다고 해서 좀 의아했다. 나는 정부에서 나온 지는 10년이 돼 가지만 기본적으로 국록을 받으면서 통일문제를 직업적으로 했던 사람이다.

다만, 상을 주는 이유는 앞으로 민간인 자격으로 통일운동을 더 열심히 하라는 채찍으로 알고 받는다.

□ 현재는 원불교 재단인 원광대 총장으로 재직 중인데, 활동하던 지역도 바뀌고 분야도 바뀌었다.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하다.

■ 원래 지역적으로는 내가 전북 출신이기 때문에 연고는 있다. 그리고 우리 집안의 어른들이 독실한 원불교 교도들이고, 나도 원불교 입교 자체는 40년이 넘었다. 열심히 안 나갔다 뿐이지 집안은 그렇다.

내가 원광대학교 총장이 되리라고는 전혀 생각을 못했다. 아마도 학교 측에서 행정부에서 오랫동안 일했던 공무원 경력을 좀 활용할 필요가 있어서 가게 되지 않았나 싶다. 통일문제와는 다르지만 행정은 어떻게 보면 통하니까.

그리고 나는 기본적으로 공무원은 싫고 교수가 되고 싶었던 사람이다. 그래서 교수 되려고 공무원을 하면서도 77년부터 계속 대학에 출강했다. 교수의 꿈을 접은 86년까지 한 10년 동안 열심히 대학에 출강했다. 그때는 1년에 최소한 두 편의 논문을 학술지에 써야 하는데, 그런 조건을 갖춰 놓았다. 그런데 안 되더라. 두 번 정도는 거의 다 되는 걸로 알았다.

□ 결과적으로 국가를 위해서 오히려 잘 된 것 아닌가?

■ 잘 된 게 아니라, 팔자에 없는 것 같다.(웃음)  대학 총장 제의를 받은 것도 세 번째다. 정부에서 나오고 난 직후에 두 군데서 총장 제의를 받았었는데, 서울 시내와 수도권에 있는 대학인데 그때는 안 갔다. 멀리 떨어진 여기로 오게 된 것은 팔자에 있기 때문에, 한 번은 군대 때우는 식으로 가야 하기 때문에 가게 됐다.

□ 총장으로서 행정업무 등에 어려움은 없었나?

■ 처음에 가서는 좀 어려웠다. 왜냐하면 우선 같은 행정은 통한다고 하지만 교육행정과 정부행정은 좀 다르고, 또 하나는 자기 학교 교수 출신이 아니라는 것 때문에 상당히 저항이 있었다.

그런데다가 그동안에 교육부에서 대학교들을 평가하는 지표들이 있는데, 이전에 지표관리가 소홀히 됐다. 그래서 가서 업무도 파악되기 전에, 한학기 만에 ‘정부 재정지원 제한 대학’이 되고 ‘학자금 대출 제한 대학’이 됐다. 별로 성적이 좋지 않은 대학이 받는 패널티 두 개를 다 받은 거다.

그것을 회복하는데 1년 동안 동분서주, 불철주야로 교수들을 계속 독려했다. 결국 졸업생들을 취업시키는 문제다. 그 다음에 지방대학의 어려운 점이 학생들이 중간에 서울로 가버리는 것이다. 재학생의 중도탈락률을 낮추기 위해서 교수들을 독려하다 보니까 내가 인심은 잃었지만 학교의 평가는 올라갔다.

□ 어디 가나 일복은 많은 것 같다.

■ 일복이 많다. 그전에 통일부에서 남북대화 사무국으로 발령이 나서 갔는데, 바로 ‘판문점에서 접촉을 하자’는 전통문을 보내 온 거다. 오랫동안 막혀있던 남북관계가 다시 시작되는 일이 있었다. 또 98년 통일부 차관으로 발령 받은 후에 바로 비료회담이 시작되기도 했다.

남북 철도.도로 연결, “가장 큰 보람”
 

   
▲ 지난해 대통령선거 과정에서 문재인 통합민주당 후보와 함께 도라산역을 찾은 역대 통일부 장관들. 정세현 전 장관은 남북 철도.도로 연결사업을 가장 기억에 남는 일로 꼽았다. 오른쪽부터 정세현, 임동원, 문재인, 정동영, 이재정, 이종석. [자료사진 - 통일뉴스]

□ 한겨레통일문화상 수상자 선정 이유에 수많은 남북회담과 합의서 작성에 참여했다고 하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회담이나 합의서는?

■ 계산해보니까 이명박 정부 끝날 때까지 606회의 남북대화 있었는데 99회 회담에 내가 관여했다. 7분의 1이 조금 넘는다. 그리고 1971년 적십자회담이 시작된 뒤부터 그동안 남북 간에 합의서가 226건이 만들어졌고, 그 중에 67건에 관여했다. 내가 통일부 장관으로 있을 때는 총 95회의 회담을 하고 나왔다. 물론 그전에도 차관 시절이나 대화사무국 시절, 청와대에 있을 때도 회담에 참여했다.

그런데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회담 보다는 남북 철도.도로를 연결한 일이다. 2000년 9월 18일 철도 연결식을 했다. 그런데 그해 초겨울이 되면서 북쪽 공사가 중단됐다. 2001년 들어와서 ‘역시 남북 간에는 합의해 봐야 소용 없다’는 비판적 여론이 많이 일어나고 ‘북한과는 무슨 약속도 소용없다’는 식의 반북적인 이야기가 나왔다.

그런데 나는 2001년 5월에 갑자기 국정원장 특보로 발령이 났다. 나한테 주어진 역할은 통일정책 홍보를 적극적으로 하라는 것이었다. 내가 청와대에 보고서를 썼다. ‘북쪽 구간의 공사가 중단된 것은 그 사람들이 합의를 이행할 의지가 없어서가 아니라 공사를 계속할 자재가 없어서라고 생각한다. 이것을 주고 해야 한다. 주지 않으면 안 될 거다’라고 썼다.

당시 비서실장에게 보고서를 보냈는데 대통령한테까지 보고가 안 됐는지 반응이 전혀 없었다. 그런데 2002년 연초에 대통령 연두기자회견을 앞두고 각계 전문가들을 대통령이 먼저 만나 본 다음에 말씀할 자료를 준비하는 과정이 있었다. 거기에 내가 불려갔는데, 그때 내가 대통령 면전에서 직접 그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그 분은 원래 마음에 안 드는 이야기를 해도 표정이 포커페이스고 마음에 드는 이야기를 해도 마찬가지다. 정치 9단이니까. 물끄러미 쳐다만 보시더라. 그래서 ‘마음에 안 드는 모양이구나’ 생각했다. 나는 “전문가들이나 언론에서 이 걸 주고라도 해야 된다는 식의 여론이 일어날 때가지 기다리지 말고 정부가 직접 주도적으로 해야 한다. 국민한테 물어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1월초에 그런 미팅이 있은 다음에, 1월말에 내가 통일부 장관 발령을 받았다. 그래서 나는 그때 ‘네가 직접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뜻이 거기에 있었는지 없었는지 모르지만, 취임하고 나서 상공회의소 초청 조찬간담회에서 그 얘기를 터트렸다.

그때는 동해선 이야기는 없고 경의선만 있을 때고, 철도연결만 했지 도로까지는 이야기가 안 나올 때다. 철도연결 하는데 북측 구간을 개성에서부터 시작해서 MDL(군사분계선)까지 오는데 계산해 보니까 비료 20만톤 주는 정도 밖에 돈이 안 든다. 그래서 그걸 주고라도 해야 한다고 했다. 그게 기사화가 됐는데도 반론이 안 나오더라.

그렇게 해서 비료를 준다고 하고 임동원 장관이 특사로 3월말에 북에 간다. 그때 저쪽에서 “도로도 연결하자. 동해선도 만들자”고 해서 결국 곱하기 4가 된 거다. 그걸 주니까 2002년 9월 18일 공사가 재착공된다.

나는 그렇게 주고라도 연결해 놨던 것이, 내가 1977년 통일원 들어와서 명색이 통일문제를 직업적으로 연구하고 현장에서 일했던 사람으로서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

‘대한민국’ 쌀포대, “북한 주민들 한 사람에 두 개씩”

   
▲ 2009년 11월 일본 NPO 삼천리철도 방한단과 함께 판문점을 방문해 평화의집 2층 회담장을 찾은 정세현, 임동원, 이재정 전 통일부 장관. “이곳에서 회담을 참 많이 했다”고 각자의 경험들을 꺼내놓으며 회담테이블에 앉아보는 등 감회에 젖기도 했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 다른 이야기거리도 많을 것 같다.

■ 회담 관련된 이야기인데, 쌀을 줄 때 처음에는 제공자 표시를 영어로 밖에 못했다. 2001년까지 ‘Republc of Korea’라고만 돼 있었다. 그런데 2002년 8월말에 서울에서 경제협력추진위원회(경추위)가 열렸다. 경추위 우리측 수석대표는 장관급 회담 차석대표인 재경부 차관이 맡는다. 그때 대표가 아마 윤진식 재경부 차관일 거다.

나는 평양에 가도 장관급회담을 하면 잠을 안 잔다. 밤새 그들의 동태를 수시로 보고받고 필요하면 대책회의를 수시로 한다. 판문점에서 열리는 회담도 잠을 안자고 CP(Command Post, 지휘소)에서 쭉 동향을 체크해서 결정할 것 결정하고 대책회의 하고 하는데, 경추위지만 회담장인 그랜드 힐튼 호텔에다 CP를 차려놓고 진두지휘했다.

그런데 쌀을 30만톤에서 40만톤으로 올려 달라는 거다. 그래서 “10만톤 올려 준다고 해라. 그 대신 제공자 표시를 포대에 영어로 ‘Republc of Korea’가 아니라 ‘대한민국’을 박는 조건으로 준다고 해라”그랬더니 그건 못 받겠다는 거다. “그러면 30만톤이다”.

내가 협상을 하면서 “그 대신 ‘대한민국’을 받으면 전년도까지는 태국산 쌀을 사서줬는데, 금년에 40만톤 주면서 국산쌀로 준다. 그래도 못 받겠는가? 결정하라”. 그랬더니 밤새 움직인 모양이더라. 새벽에 아마 평양에서 오케이가 떨어진 것 같았다. “진짜 줄 거냐? 남쪽에서 생산한 쌀로”. “준다. 제공자 표시를 대한민국이라는 한글로만 박는다면. 지금 월드컵 때문에 전 세계에 '대한민국' 함성을 울렸는데, 내가 책임지고 한나라당을 설득해서 준다”.

□ 당시 우리 국산 재고미가 40만톤이나 있었나?

■ 국산 재고미는 많다. 농수산부에서는 50만톤이 아니라 100만톤씩 덜어내 달라 한다. 그렇게 못 주는 이유는 도시빈민들이 쌀을 사먹어야 하는데 "우리는 안 주고 왜 저쪽만 공짜로 주느냐"는 일종의 국내의 갈등 때문에 40,50만톤까지 밖에 못 준다. 농수산부로서는 추곡 수매가를 높이기 위해서 재고를 자꾸 덜어 버려야 된다. 2,3년 지나면 사료나 비료로 쓴다. 그거 미리 덜어내자는 거다.

그래서 그때 제공자를 대한민국으로 표시한 것이 참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때부터 시작해서 2004년까지는 내가 결정해놓고 나갔다. 3년간 120만톤이 갔다. 정동영 장관 때 김정일 위원장 만나고 와서 10만톤 더 올려줘서 50만톤이 돼 모두 170만톤이 갔고, 이종석 장관 때는 사실 못 갔다.

170만톤이 가려면 40kg 짜리 쌀포대가 4,250만개가 가야 된다. 그리고 만약에 터지는 걸 대처해줘야 하니까 여벌로 포대가 간다. 잘 찢어지지도 않지만 자꾸 더 달라고 한다. 가볍고 질겨서 좋기 때문이다. 그래서 4,300만개 내지 4,400만개가 갔다고 치면, 거의 물건 들고 다닐 수 있는 기력을 가지고 있는 북한 주민들이 한 사람에 두 개씩 들고 있을 수 있는 분량이다.

쌀 제공자 표시가 대한민국으로 박혀 가면서 나는 남북 간에 민심이 연결되는 효과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모니터링 때문에 몇 군데 가서 녹음도 하고 녹화도 해왔지만, “태풍이 와서 비가 몰아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포가 아니면, 남쪽이 아니면 우리에게 누가 이렇게 쌀을 주겠느냐. 우리 고맙게 알고 먹고 있다”고 했다.

또 비료 주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 전에는 적십자 마크만 찍어서 제공자 표시 없이 갔다. 그것도 올려 달라 했다. “20만톤에서 30만톤으로 올려주겠다. 그 대신 포대를 만드는데 시간이 걸리니까 있는 포대에다 주마”. 이미 쌀포대에 제공자 표시가 ‘대한민국’으로 나갔는데 그거 못 받을 거 뭐 있겠나.

한글로 된 포대에 그냥 넣어서 주면 사용법이 다 있다. 북한 사람들이 농사짓기 아주 편하다. 내가 물러난 때인데, 2005년쯤 KBS가 체류하면서 취재하는데 만경대협동농장 부지배인이 KBS 마이크 앞에서 “남쪽에서 제때에 비료를 이렇게 보내줘서 우리 농민들이 농사짓는데 아주 도움을 많이 받고 있다”고 얘기했다.

그리고 2006년 6월 17일 정동영 장관 일행이 김정일 위원장을 만났을 때, 첫 인사는 “남쪽에서 쌀과 비료를 보내줘서 우리 인민들이 고맙게 생각한다는 것을 내가 우리 인민을 대표해서 인사를 드린다. 정확하게 전달해 주시라”. 그때 6자회담에 (북한이) 돌아온다는 것이 톱뉴스가 되면서 실제 김정일 위원장이 맨 처음에 했던 그 이야기는 기사화 되질 않았다.

제공자 표시를 한 것은 생색을 내자는 게 아니라 남쪽이 주는 걸 북쪽 주민들이 알게 되면서 민심이 연결되는 효과가 있는데 지금은 무효가 됐다. 그러나 다시 또 쌀이 갈 수 있게 되면 그때의 기억들이 되살아나면서 남북의 민심들이 연결되는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북측 파트너, ‘논객 전금철’과 ‘한량 김령성’ 단장

   
▲ 제13차 남북 장관급회담에서 북측 김령성 단장과 건배하고 있는 정세현 전 장관. [자료사진 - 통일뉴스]

□ 많은 북측 파트너들이 있었을 텐데, 기억에 남는 사람이나 에피소드가 있다면?

■ 회담에서 상대했던 이는 전금철과 김령성이다. 전금철 씨는 김영삼 정부 시기인 95년 쌀회담 때도 만났었고, 비료회담 때는 저쪽 단장이고 나는 우리쪽 수석대표로 만났다. 그는 굉장히 논리가 정연하다. 나보다 12,13년 연상일 거다. 그래서 기억에 남는다. 그와 회담을 하면 합의를 통크게 만들어내기 어렵다.

그런데 김령성 씨는 통전부(통일전선부) 사람이고, 모든 일거수일투족을 조심해야 하는 협상대표 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사람이 어떻게 보면 낭만이 있다고 할까. 술 한잔 들어가면 피아노 치고 회담할 때 이론적으로만 하지 않고 가끔 시도 읊어대고 그런다.

□ 김령성 단장은 외모도 남쪽 사람 느낌이 많이 든다.

■ 그 사람 때문에 내가 북쪽 대표인줄 알고 그 사람이 남쪽대표인줄 알고 착각하기도 했다.(웃음) 김령성 씨는 멋쟁이 기질이 있지만 회담할 때는 밀고 당기고 철저하게 빈틈없이 한다. 그러나 잠깐 잠깐 참관할 때 얘기하는 것 보면 한량이다.

□ 공직을 나와 민화협 상임대표의장도 맡았고, 김대중평화센터 부이사장을 지금도 맡고 있는데, 정부가 바뀐 것도 있겠지만 밖에서 활동하기가 쉽지만은 않았을 것 같다. 

■ 정부가 바뀌니까 정부의 대북정책이 북한의 선행동을 요구하거나 북한의 선양보, 선변화를 전제로 해서 뭘 해주겠다는 것으로 바뀌었다. 이명박 정부 때 ‘비핵.개방.3000’이 대표적이고, 지금 한반도평화프로세스도 말은 좋게 했는데 마찬가지다. 실제로는 북한의 회담대표가 우리하고 무슨 격이 안 맞는다느니 진정성을 보이라느니 하면서 한 발짝도 못 나가고 있다.

정부의 정책 방향이 굉장히 중요하다. 정부가 대북지원이라든가 북한방문 승인을 까다롭게 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더라. (정부) 안에 있을 때는 별로 의식을 못했는데 갑의 위치에 있다가 을의 위치로 가니까, “야, 민간부문에서 통일문제를 고민하는 게 이렇게 어렵구나” 생각했다. 한겨레통일문화상은 사실 을의 위치에서 통일운동하던 사람들이 받는 상인데...

   
▲ 2009년 8월 김대중 대통령 서거시 방남한 북측 '특사 조의방문단'을 김대중평화센터 부이사장 자격으로 김포공항에서 맞이하고 있는 정세현 전 장관. [자료사진 - 통일뉴스]

□ 퇴직후 민간 통일운동을 하지 않았나?

■ 그래도 갑의 위치에 있던 시간이 훨씬 길고, 을의 위치에 있던 기간이 6월 30일이 딱 10년이다. 참 어렵더라. 특히 민화협 시절인데 노무현 정부 때까지는 괜찮았는데 이명박 정부로 바뀌면서 2008년 5월에 북한에 나무심어 주는 프로그램으로 평양을 다녀온 것이 마지막이다. 민화협에서 ‘겨레의 숲’을 운영하고 있으니까.

그 뒤로는 민화협 대표상임의장조차 북한에 갈 수도 없었고, 2009년에는 그만두라고 그래서 그만 뒀다. 이명박 정부나 박근혜 정부나 민간차원에서 통일운동하는 사람들한테는 굉장히 어려운 조건이 되고 있다.

나는 정부에 있다 나와서 민간차원에서 일을 하면서 법대로만 하면 되지 않겠느냐, 교류협력법만 지키면서 하면 되지 않겠는가 생각했다. 그런데 가령 저쪽에서 연락이 와서 무슨 문제를 협의하기 위해서 (북한에) 간다든지 제3국에서 만나는 것은 쉽게 할 줄 알았는데 설명없이 자꾸 시간 끌고 그러니까 너무 힘들었다는 기억만 가지고 있다.

‘차라리 이제 글이나 쓸까’ 이런 생각이었고, 글보다는 말로 해야겠다고 생각해서 ‘정세토크’를 시작했던 거다. 기록은 남겨야 되고. 다시 세월이 좋아지면 어느 것이 길인지, 어느 것이 길이 아닌지 전달하려면 그렇게 기록으로 남겨둬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안에 있을 때는 별로 몰랐는데 밖에 나와서 보니까 우리 정부가 남북관계와 관련해서도 너무 미국 눈치를 보는 거다. 물론 시기적으로 미국이 그때 부시 정부였기 때문에 남북관계가 개선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아니어서 여러 가지 문제제기를 하니까 불편해서 그냥 웬만한 건 덮어두자 했지만, 오바마 정부 들어와서도 마찬가지다.

“오바마, 북핵문제 풀면 안 되겠다고 계산한 것 같다”

   
▲ 2009년 3월 민화협 상임대표의장을 타의에 의해 김덕룡 의장(오른쪽)에게 물려준 정세현 전 장관. [자료사진 - 통일뉴스]

□ 오바마 정부도 대북정책에서 ‘전략적 인내’를 기조로 삼고 있다. 6자회담의 경우도 한국은 조금이라도 문턱을 낮춰볼까 하는데 미국은 전혀 관심이 없는 것 같다.

■ 오바마가 민주당 대통령이기는 하지만 시기적으로 대통령이 된 게 2009년인데, 2009년부터 중국이 굉장히 빠른 속도로 경제성장을 하면서 군사대국화 되고 있고, 외교적으로도 발언권을 행사하고 있다.

시진핑 주석이 1949년 10월 1일 중화인민공화국 정부수립 선포 60주년인 2009년 10월 1일 ‘중화부흥’이라는 것을 중국의 국가목표 내지는 외교적 목표로 제시하지 않았나. 그러면서 미국이 아시아에서 쫒겨나는 것 아닌가 위기의식을 느낀 것 같다. 그게 이른바 ‘아시아로의 귀환’(Pivot to Asia) ‘아시아 재균형’(revalancing) 이런 정책으로 나타나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하고 2012년 11월 ‘아시아로의 귀환’을 차기 정부의 아시아 정책 방향으로 정한다. 중국의 세력이 커지고 미국이 그걸 견제해야 되는 상황이 되면서 북핵문제를 풀면 안 되겠다고 계산한 것 같다. 왜냐하면 중국을 옥죄고 들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중국 역할론도 나는 그런 맥락에서 나온 것으로 본다. 책임을 자꾸 떠넘기는 중국 책임론이다. 세계평화를 어지럽히는 북한에 대해서 중국이 가장 영향력을 많이 행사할 수 있는데 움직이지 않기 때문에 이렇게 되고 있다고 책임을 넘기면서 사실상 6자회담이 열리지 않기를 바라는 쪽으로 입장을 정했다고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핵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북한의 핵능력이 커지면 우리가 죽을 지경이다”라는 식으로 미국한테 매달려야 하는데 그럴 의지가 없어 보인다. 그리고 그런 위기의식이랄까, 위험을 의식하지 못하는 것 같다.

북쪽이 리더십 교체가 있고 그러니까 곧 망할지 모른다는 기대 때문에 복잡하게 반대급부를 줘가면서 회담 같은 것을 할 필요 없이 나중에 한방에 엎어치기 할 수 있다는 식으로 잘못된 계산을 하고 있는 것 같다. 그것이 통일대박론이고 또 통일대박론과 한짝을 이루는 북한붕괴론이다.

미국이 클린턴 때는 대가를 주고라도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고 부시도 2기 때는 변해서 그래 보려고 했다. 그런데 중국이 점점 빠른 속도로 경제성장이 되면서 중국의 목소리가 커지고 위상이 높아지니까 미국이 진보정권임에도 불구하고 중국 견제를 위해서 북핵문제를 오히려 남겨놓는 것이 낫겠다고 내심 결정한 것 아닌가 본다. 말로는 해결할 것처럼 하지만, 공식적으로 표방하는 외교전략과 실제전략은 차이가 많이 날 수 있다.

□ 총장 임기는 언제까지인가?

■ 금년 12월 22일 끝난다.

□ 이후 계획은?

■ 없다. 나도 좀 본업으로 돌아가고 싶다. 이제 한겨레통일문화상도 받았으니까 진짜 민간인 신분으로 통일운동을 좀더 적극적으로 해서 상값을 해야 하지 않겠나.(웃음)

□ 민화협 대표상임의장도 지냈는데 어느 곳에서 어떤 활동을 할 계획인가?

■ 지금까지 해왔던 대로 나는 인터뷰나 대담 이런 것을 통해서 통일담론을 계속 이끌어가고 활성화시키는데 일익을 담당하는 것이 편하다. 무슨 자리를 가지고 하는 것이 아니다. 김대중평화센터 부이사장 자리는 그만두라고 하지는 않으니까 원광대 갈 때도 그대로 맡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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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위원장, 새로 개발된 최첨단 초정밀 유도무기 직접 지도

“지구상 어디든 집단. 개인 목표 마음 먹은대로 골라 타격”

이정섭 기자 

기사입력: 2014/06/27 [06:51]  최종편집: ⓒ 자주민보

▲ 김정은 제1위원장이 세로개발 된 초정밀 유도무기 시험발사를 직접 지도했다.     ©



김정은 제1위원장이 새로 개발 된 최첨단 수준의 초정밀 전술 유도탄 시험발사를 직접 지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연합뉴스와 해외 언론들은 27일 조선중앙통신을 인용 이 같은 소식을 전하고 “조선의 자주권과 존엄을 털끝만큼이라도 건드리는 자들은 그가 가까이에 있건 지구상 한쪽 끝에 있건, 그것이 개별목표이건 집단목표이건 마음먹고 골라가며 타격할 수 있는 조선의 초정밀화 된 여러가지 화력타격수단의 소멸권에서 절대로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연합뉴스는 김정은 제1위원장은 시험발사를 지도하면서 만족을 표시하고 “현대전의 그 어떤 작전과 전투에서도 정확한 선제타격에 의한 주도권을 확고히 쟁취할 수 있는 고도로 정밀화된 전술유도무기들을 더 많이 만들어 내리라는 확신을 표명하면서 새로운 국방과학기술과제들을 제시했다”고 전했다.

이 신문은 이날 “김 제1위원장이 중앙감시소에서 전술유도탄의 기술적 제원을 파악하고 직접 시험발사 명령을 내렸다고 밝혀” 직접 시험발사를 지도했음을 알렸다.

▲ 북은 새로개발한 최첨단 유도무기는 지구상 어떤 목표 든 타격 할 수 있다고 밝혔다.     ©



이어 "순간 천지를 진감하는 폭음소리와 함께 전술유도탄들이 세찬 불줄기를 내뿜으며 대지를 박차고 하늘로 날아올랐다"며 "시험발사를 통하여 전술유도무기의 과학기술적 성능이 단 한치의 편차도 없다는 것이 실증되었다"고 설명했다.

신문은 전술유도탄 시험발사에 대해 "우리 인민군대는 자기 손에 틀어쥐고 있는 단거리 및 중·장거리 유도무기들을 비롯한 모든 타격수단들을 세계적 수준에서 초정밀 화할 수 있는 관건적 열쇠를 가질 수 있게 됐다"며 "타격의 명중성과 위력을 최대로 높일 수 있는 확고한 전망을 열어놓게 되였다"고 주장했다.

또한 "우리에 대한 미국과 남조선괴뢰역적패당을 비롯한 온갖 추종세력들의 고립압살책동, 극악무도한 침략전쟁도발행위가 극도에 달하고 있는 때에 통쾌하게 진행된 전술유도무기 시험발사"라고 강조했다.

이어 “초정밀화된 전술유도무기는 무장장비의 정밀화, 경량화, 무인화, 지능화를 실현할데 대한 당의 방침관철에서 조선의 국방과학자들과 군수공업부문 노동계급이 이룩한 또 하나의 자랑찬 성과”라고 덧붙였다.

김 제1위원장의 시험발사 참관에는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 변인선 총참모부 제1부총참모장 겸 작전국장, 박정천 포병사령관, 홍영칠 로동당 기계공업부 부부장 등이 수행했다.

군사전문가들은 김정은 제1위원장이 시험발사를 지도한 전술유도무기는 전 세계 어디든 공격이 가능한 무기로 지난 26일 국방부가 밝힌 동해상으로 발사한 발사체로 추정하고 있다.
한편 한국 방위사업청은 지난 3월 북의 장사정포에 대응 할 수 있는 전술 유도무기 개발에 착수해 2017년 실천 배치 하겠다고 밝힌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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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원 왈, ‘만만회’라고?

 
 
 
임두만 | 2014-06-25 19:14:27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박근혜 대통령의 비선라인 얘기가 박관용을 통해 흘러나오고, 7인회의 1인이라는 김용갑은 “우리가 아니다”라고 발뺌하자 박지원이 비선라인 이름을 ‘만만회’라고 말했다. 이른바 박지만 이재만 정윤회를 지칭하는 말이다.

모두가 알다시피 박지만은 박근혜의 친동생이다. 이재만은 현재 청와대의 모든 사무를 관장하는 총무비서관, 그리고 정윤회는 박근혜의 스캔들이면 언제나 거론되는 고 최태민 목사의 사위다. 이들 3인이 박근혜의 비선라인을 형성하는 조직이란 거다.

그러나… 이들에 대해 잘 아는 정통한 소식통들은 이 말에 고개를 흔든다.. 그리고 박근혜를 걱정하는 측은 더하다. 이들 중에는 박관용도 있고 김용갑도 있고 안병훈도 있고 김기춘도 있을 것이지만 더 깊은 속내를 아는 사람들… 은 아주 원조친박이다.

원조친박이란 박근혜가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탈락한 뒤에도 꾸준히 박근혜를 떠나지 않은 사람들이다. 물론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을 주도한 사람들도 그 범주에 들 수 있다.

이들 중 현재 서청원, 김무성, 최경환, 유정복, 이정현, 유승민, 이혜훈, 김재원 등이 정치권에 있으며, 국회의원 선거에 낙선하거나 권력의 지근거리에서 떠난 뒤 언론에 오르내리지 않은 사람은 허태열 이경재 이규택 이성헌 구상찬 김선동 등이 있다.

이중 김무성은 그동안 수차례 언론에 보도된 것과 마찬가지로 박근혜가 권력에서 멀어졌을 때 이명박 측에 가담하기도 했으므로 탈박으로 분류되기도 하고, 윤상현, 홍문종 등이야 2012년 대선을 통하여 친박임을 설치고 다니지만 실제 그들은 권력의 양지만 쫓아서 찾아 온 사람들이기에 원조친박들은 그들은 몹시 경원시 한다.

그런데 실제는 박근혜란 이름 하나로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했음에도 권력의 지근거리에도 가지 못하고 버림을 받은 원조친박들이 훨씬 많다. 그래서 이들은 언론이 박근혜가 친박정치를 한다는 말도 몹시 싫어한다. 즉 박근혜는 친박정치를 하는 것이 아니라 비선정치를 하고 있으며 그 비선이 박근혜를 망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들이 말하는 박근혜를 망치는 비선정치의 비선그룹도 ‘만만회'다. 하지만 정확히 하면 ‘만 vs 회’라는 것이 정답이다. 다시 말하면 박지만과 정윤회의 비선대결 구도다. 즉 청와대 문고리 3인방을 움직이는 정윤회와 박지만 그룹의 대결구도를 말하는 것이다.

청와대 문고리 3인방은 총무비서관 이재만, 제1부속비서관(의전 수행담당) 정호성, 제2부속비서관(안살림 담당) 안봉근을 말한다. 이들 3인은 박근혜가 1998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당선되면서 박근혜 의원실에서 근무를 시작한 비서진이다. 대통령을 가장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며 대통령의 심기경호까지 담당하는 이들이 바로 문고리 3인방이란 말이다.

그런데 애초 박근혜에게 이들을 추천하고 지금까지 관리한 사람이 정윤회라고 한다. 결국 대통령을 움직이는 정윤회와 문고리 3인방이 가장 힘센 비선그룹으로서 이들은 김기춘도 어쩔 수 없다는 것이다.

때문에 박지만은 이들과 반대편에서 이들을 견제하려고 하므로 정윤회 쪽이 가장 버거워하면서 박근혜를 더욱 자신들 그룹 안에 가두려고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현재 박지원이 말한 만만회는 하나의 그룹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서로 대결관계로 움직이고 있다는 말이 된다.

원조친박들은 이점이 몹시 못마땅한 것 같다. 특히 이들 때문에 박근혜의 인사가 왜곡되고 뒤틀려서 대통령도 정권도 심지어 나라도 위태로운 지경으로 간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오늘 김용갑의 언급이나 박관용의 언급도 이 범주다. 비선이 작용하여 인사를 뒤틀리게 한 것은 맞는데 박지만 이재만 정윤회가 하나로 움직여서 그런 것이 아니라 이들이 충돌하여 문제를 더 키우고 있음을 말한 것일 수도 있다는 말이다.

어제(6.24) 다음 카페 <시사평론-정론직필을 찾아서> 에는 정윤회에 관한 아주 흥미로운 글이 올라왔다. 지난 2012년 대선의 부정을 주장하며 법정투쟁을 하고 있는 <범국민연대> 대표인 김현승이란 사람이 정윤회와의 대화내용을 녹취한 뒤 그 녹취록을 현재 대통령선거 무효확인의 소를 심리하고 있는 대법원에 증거로 제출했다는 글이다.

이 글에 보면 정윤회는 “대법원이 무슨 즈그가 힘이 있다고 그래” “그렇게 하면 대법원 그 사람 다 옷 벗어야 돼. 검찰도 다 옷 벗어야 돼. 그거에 관계된 사람 전부 다 다 벗고 나와야 돼” “(검찰총장)김진태는 내가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고 남재준은 별 볼일 없어”라고 말했다는 내용도 있다. 이 내용으로만 보면 지금까지 박근혜의 인사에 정윤회가 개입되어있다는 것은 움직일 수 없는 진실 같다.

결국 박관용 김용갑이 말한 비선조직…박지원이 말한 만만회 안에 정윤회가 있는 것은 사실이란 간접증거 쯤 되겠다. 그러므로 야당은 이제 더욱 이들 만만회가 하나로 움직이는지 ‘원조친박’들이 염려하는대로 그들끼리 서로 견제하면서 인사를 망치고 있는지에 대한 검증이 필요하다. 박지원 혼자만의 원맨 플레이가 아니라 야당이 조직적으로 이 비선에 대한 추적을 해야 한다는 말이다.

권력은 비선이 득세하면 망한다. 특히 비선은 친인척이나 직계들이라서 더욱 그렇다. 이것은 역사가 증거하고 있다. 노태우와 박철언의 월계수회, 김영삼과 소통령, 김대중과 3홍, 우리는 생생히 알고 있다. 박근혜의 권력이 지금 가까운 사람들이 느낄 정도로 비선의 힘이 세다면 그것은 망하는 길로 가고 있다고 보면 된다. 비선으로 지목된 이들은 권력을 지키기 위해서 일한다고 하겠지만 자신들이 권력을 망하게 한다는 것을 모른다. 이를 중지시킬 수 있는 힘은 야당에게 있다.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28&table=c_flower911&uid=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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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무 헬기도 실탄도 방탄복도 없는 아찔했던 교전

 

 

 

여러분은 이 사진의 차이를 금방 아셨습니까? 상단은 총기를 난사하고 탈영했던 임모 병장 진압 작전에 투입됐던 병사들이고 아래는 레바논에 파견된 동명부대원들입니다. 차이는 바로 방탄복 착용 여부입니다. 

총기와 실탄을 보유한 임모 병장을 진압하러 나선 병사들은 방탄복을 착용하지 않았고, 부상자 후송 훈련 중인 동명부대원들은 모두 방탄복을 착용하고 있습니다. 

동명부대원이 있는 레바논도 언제 위험이 닥칠지 모르는 지역이지만, 객관적으로 보면 진압 작전에 투입되어 교전하고 있는 지역의 병사들이 훨씬 위험한 상황입니다. 그런데도 이들은 방탄복을 착용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실탄조차 지급되지 않았던 병사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작전에 투입됐던 일부 병사 중에는 관심사병이라는 이유로 실탄이 지급되지 않아 총기에 탄창조차 결합하지 않고 작전을 수행하고 있었습니다.
 

 

 


국방부는 진압작전 최일선에 있는 703특공연대에는 방탄복과 실탄을 지급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일반 병사도 교전이 벌어지고 있는 지역에 투입됐다면 방탄복과 실탄을 지급했어야 마땅합니다. 

실탄이 지급되지 않은 관심병사들과 함께 있던 소대장은 임모 병장과 조우했고, 혼자 그를 추격하다 관통상을 입기도 했습니다.
 
총상을 입은 소대장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언제 어떻게 교전이 벌어질지 모르는 상황에서 관심사병이라고 실탄을 소대장이 소지하거나 지급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얼마나 검거작전이 엉망이었는지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민간인의 안전은 무시한 검거작전' 

보통 경찰이나 군대에서 작전을 벌일 때는 주위의 민간인을 통제하거나 안전선 밖으로 물러나도록 합니다. 그것은 혹시나 있을 불상사를 대비하기 위해서입니다. 
 

 

 


진압작전을 벌이고 있는 저격수 옆에 태연히 앉아 있는 할머니가 있는 사진을 보면, 그 누가 지금 실탄을 휴대한 무장탈영범과의 교전 대치 상황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까? 

저격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는 저격수는 진짜 자신이 실탄을 발사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저기에 있다고 보십니까? 만약 저격수가 실탄을 발사하고, 그에 대한 대응사격이 발생한다면 저 할머니는 어떻게 됐을까요? 
 

 

 


사격장에서는 절대 총구를 사람에게 겨누거나 총구 앞을 지나가지 않도록 하고 있습니다. 실탄이 있건 없건 혹시나 있을 위험 사고를 막기 위해서입니다. 

옥상에서 총구를 겨누고 있는 헌병 특임대의 앞으로 공을 든 아이는 태연히 지나가고 특임대원은 그것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특임대원의 총에는 실탄이 없어서 저럴 수 있었을까요? 

교전 때문에 총성이 울리는 모습과 다르게 너무 평화로운(?) 모습을 보이는 대한민국 국군을 보면, 마치 영화촬영 현장을 보는 듯합니다.

' 태백산맥을 넘지 못하는 헬기 때문에 지체된 부상자 후송'  

임모 병장의 총기 난사로 총 5명의 사망자와 2명의 중상자, 5명의 경상자(소대장 제외)가 발생했습니다. 그런데 1군사령부는 사망자는 없고 부상자만 5명이 있다는 보고만 했습니다. 

또한 사망자 5명의 사망시각이 달랐다는 주장도 제기됐습니다. 

 

 

 


문재인 의원은 국회 국방위원회 보고에서 초기 사망한 2명과 나중에 사망한 3명의 사망보고 시각에 20분의 간격 차가 있었으며, 환자 후송에 4시간씩 걸린 이유에 대해 이의를  제기했습니다. 

아이엠피터도  6월 23일 포스팅에서 환자 이송에 4시간씩 걸린 문제를 제기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문제는 2010년 연평도 포격 당시에도 제기된 바 있었습니다. 

2010년 11월 연평도 포격 당시 김지용 상병은 중상을 입어 대수술이 필요했지만, 헬기가 아닌 고속정을 이용하여 병원까지 무려 4시간이 소요됐습니다. 


 

 

 


대한민국 육군에는 '의무후송 전용 헬기'1가 없습니다. UH-60을 개조해 기본적인 의무 키트를 장착해서 응급의무후송 헬기로 운용하고 있는데, 이마저도 악천후와 야간에는 비행이 불가능합니다. 

2011년 7월 해병대 총기 난사 사건 당시 박치현 상병은 중상을 입었지만, 강화도에서 국군수도병원 이송에만 3시간이 걸려, 국군수도병원으로 후송된지 25분 만에 숨졌습니다. 당시 헬기로만 왔어도 충분히 살릴 수가 있었습니다. 


이번 총기 참극으로 부상자 후송이 늦어진 이유는 육군이 보유한 '응급의무후송 헬기'는 태백산맥을 야간에는 넘을 수 없었기 때문에 중앙119구조단의 헬기를 기다리다가 지체됐습니다.

<고 이범한 상병의 외삼촌 (전 미군 군의관)은 총상을 입고 1시간 40분 이후에 과다출혈로 사망했던 점으로 미루어, 응급 구조 조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국방부는 이번 총기 참극과 같은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재발대책을 발표하면서 전군 정밀 진단을 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국방부의 이런 대책은 2005년 연천 GOP사고에도 나왔던 대책을 재탕하는 수준 밖에 되지 않습니다. 

육군 의무실장은 2014년 3월, 응급의무후송헬기를 춘천에 배치했고 앞으로 야간과 산악지대 긴급 후송이 가능하다고 보도자료를 내놓았습니다. 그러나 불과 석 달 뒤, 육군 의무실장은 야간과 험악한 산악지형 때문에 부상자 후송에 4시간이 걸렸다고 변명으로 일관했습니다. 

2011년 해병도 총기 난사 사건에서 부상자 이송이 늦어져 아까운 젊은이의 목숨이 사라졌지만, 아직도 국방부와 군대는 정신을 못 차리고 있습니다. 

이승만정권부터 박근혜정부까지 대한민국 군대는 전혀 바뀐 것도 없으며, 바꿀 노력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도대체 언제까지 우리 젊은이들의 헛된 죽음을 계속 방관해야 하는지 여러분께 묻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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