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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교육라인 인선, 전교조-진보교육감 수난 예고

김명수 전교조 진보 척결, 송광용 정수장학회 한국문화재단 출신
 
육근성 | 2014-06-14 11:51:07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부총리급 교육부장관에 김명수 전 한국교원대 교수가청와대 교육문화수석에는 송광용 전 서울교육대 총장이 내정됐다서남수-모철민 라인에 비해 100% 순도에 가까울 만큼 친박 색채가 진해졌다.

교육라인’ 대폭 강화한 박근혜-김기춘 정부

교육라인을 대폭 강화했다사회 부총리(교육,사회,문화분야 총괄)가 교육부장관을 겸하도록 돼 있다정부의 안대로 정부조직이 개편될 경우 교육부장관의 위상은 부총리급으로 격상돼 경제부총리와 쌍벽을 이루며 사회분야를 책임지게 된다.

김명수 내정자가 사회부총리에 임명될 경우 전교조와 관련있는 고용노동부 등 민감한 부처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다김 내정자는 스스로 합리적 보수를 자처한다하지만 그의 행보를 종합해 보면 박근혜 정부의 정책을 지지해온 강경보수다.

그의 이념관은 뉴라이트와 맥을 같이한다친일교과서 논란에 대해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교학사 교과서 채택률 0%에 가까운 것은 좌파와 진보성향 시민단체들이 교학사를 협박하고 교학사 교과서를 채택한 학교를 찾아 행패를 부렸기 때문이라며 이는 국가적 국민적 수치라고 주장한 바 있다.

부총리급 김명수 교육부장관 내정자전교조 척결 친일교과서 옹호

그는 학교 역사교육 현장을 매우 부정적으로 본다. “식민사관을 극복한다며 등장한 진보성향의 사람들이 역사교육을 좌지우지하면서 대한민국 정체성에 위협이 되고 있다며 위안부가 (일본군을따라다녔다는 교학사 교과서의 표현이 논란이 된 것에 대해서도 단어 하나만 갖고 문제를 삼은 것으로 진보 측 교과서에도 흠잡을 것 많다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전교조를 강하게 부정한다. “20년 동안 전교조가 교원양성 단계부터 예비교사를 포섭해 의식화 작업을 해왔지만 좌편향에 물들지 않은 교사가 여전히 다수라며 “10~20%에 불과한 좌편향 교사들이 목소리가 켜 학부모나 시민단체 등을 동원해 교장을 압박하기도 한다고 날을 세웠다.

또 비정상의 정상화에 전교조도 포함되는 게 맞다는 주장을 폈다전교조 존재 자체에 대한 강한 부정이다전교조에 대한 정부의 법외노조화 조치는 당연한 것이라고 강조한 뒤 전교조가 국가 교육정책에 대해 왈가왈부해서는 안 된다고 못을 박았다아무리 정책이 잘못됐다 해도 입 닥치고 가만히 구경만 하고 있는 게 옳다는 주장이다.

<

<이명박 정부부터 각종 현안에 대한 민주화 교수들의 시국선언이 잦았고 '뉴라이트 계열' 교수들은시국선언에 반박하는 성명을 냈다. 여기에 거반 '김명수'라는 이름이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김명수 국정교과서 도입 필요, 학생인권 충분 교사권위 강화해야

교과서 문제에 대해서는 일본의 예를 들며 친일교과서 단체들의 주장을 그대로 복기했다. “국사와 국어 등 한민족으로서의 정체성을 가르치는 과목에 대해서는 국가가 분명하게 방향을 정해줘야 한다교육부가 편수조직을 확충해 일일이 지침을 내려야 한다고 주장했다그래도 교과서 논쟁이 계속된다면 국정교과서 체제로의 전환을 검토해야 한다고 못박았다.

학생인권조례에 대해서는 알러지 반응을 보였다학생의 인권은 충분히 보장돼 있지만 교사의 인권은 그렇지 안다며 교사의 권위가 시급히 강화돼야 한다고 강조했다그가 문화일보와 지난 2월 인터뷰한 내용이다

지금 학교현장에는 넘칠 정도로 학생인권이 보장되고 있지만 교사들은 무력증에 빠져있다학생인권조례는 특정 이념하에 정치적 목적을 갖고 만들어진 것이다이미 제정된 조례를 막을 수 있는 건 학부모밖에 없다시대가 변했다 해도 교사는 여전히 국왕과 부모를 대신하는 존재라고 생각한다권위가 있어야 아이들을 이끌어갈 수 있다.”

<친일 논란이 거셌던 교학사교과서 내용. 이 교과서가 '옳다'고 주장하는 이들 중 하나가 교육부장관후보자다. 일제식민지배와 수탈을 합리화하려고 안달난 정권. '문창극 류가' 얼마나 더 판을 칠까.>

교사는 국왕과 부모를 대신하는 존재

김명수 내정자가 어떤 사람인지 그 단면을 잘 보여주는 발언이다교사를 왕과 부모를 대신하는 존재라고 표현하다니어린 학생들과 함께하는 교단에 규범적 통제와 물리적 힘을 바탕으로 한 권위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그의 주장이 황당할 뿐이다

이런 사람이 부총리급 교육부장관이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불 보듯 뻔하다교과서 검정제도 도입과 학생인권조례를 폐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을 듯하다. ‘교사권위신장조례를 만들려 덤빌 기세다.전교조에 대한 박해는 극에 달할 것이다

그와 박근혜 교육라인의 한 축을 담당할 송광용 내정자는 어떤 사람일까. ‘골수 친박으로 분류된다.작년까지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정수장학회 이사를 역임했다박 대통령이 이사장이었던 때인 1999년 이사에 선임된 이후 무려 14년간 장물 장학회의 임원직을 유지해 왔다그가 얼마나 친박근혜 성향인지를 적으로 말해주는 대목이다.

 

송광용 교육수석정수장학회-한국문화재단 출신

고 김지태씨에게서 강탈한 장물이 분명한데다 사실상 박 대통령의 장학재단인 정수장학회이 재단의 이사로만 있었던 게 아니다박 대통령이 30년 이상 이사장을 맡아오다 대선 몇 달 전 황급히 해산시킨 한국문화재단의 감사를 맡기도 했다한국문화재단이 위치했던 곳은 서울 강남구 신사동 588번지’. 박근혜 비선조직인 신사동팀의 본거지로 알려지기도 했다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겠나.

부총리급 교육부장관에는 전교조 척결과 친일교과서를 옹호하는 인물을청와대 교육수석에는 박근혜 정권 산실이나 다름없는 정수장학회와 한국문화재단에 몸 담았던 가신을 내정했다이렇게 진용을 짠 것은 6.4선거에서 진보교육감이 대거 당선된 것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김명수-송광용 교육라인에게 주어진 미션이 어떤 것인지 감잡힌다전교조 척결과 뉴라이트 교과서 보급학교내 친독재·국가주의적 이념 확산진보교육감에 대한 행정적 압박과 견제 등이 그것일 것이다. 교육감 임명제 추진에도 앞장 설 것으로 보인다.

친일교과서 보급 획책과 전교조와 진보교육감 수난 시대가 본격화 될 모양이다.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22&table=c_aujourdhui&uid=3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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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년 전 이완용의 '망언', 문창극 발언과 똑같네

 

 

 
 
 
'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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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완용.
ⓒ 위키피디아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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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년 을사늑약(소위 을사보호조약)과 1910년 국권침탈을 주도하여 '친일파의 대명사'로 등극한 이완용. 그는 살아생전에 온갖 친일 망언들을 쏟아냈다. 그는 이미 죽고 없지만 그의 망언을 여전히 참고하지 않으면 안 될 이유가 있다. 그 이유는 맨 뒤에서 언급하기로 하고, 95년 전에 이완용이 쏟아낸 어이없는 망언들부터 살펴보자. 

한국인의 10%가 넘는 200만 명 이상(일본측 추산은 110만 명 정도)이 "대한독립 만세!" 혹은 "조선 독립 만세!" 또는 "일본 나가라!"를 외친 1919년 3·1운동. 이때 한국인의 10% 이상은 단순히 시위에 참가하는 정도가 아니라, 헌병의 총칼에 맞서 목숨을 걸고 싸웠다. 그것은 시위가 아니라 전쟁이었다. 

3·1운동이 일어난 것은 1910~1919년의 식민통치 9년간이 그만큼 괴로웠기 때문이다. 일본측 주장대로 그 9년 동안 한국인들이 잘살았다면, 그처럼 수많은 대중이 헌병의 총칼 앞에서 만세를 외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일본측이 그 어떤 통계 자료를 들이민다 해도, 3·1운동을 통해 드러난 식민통치의 참혹함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같은 민족적 궐기에 대해 친일파 이완용은 어떤 생각을 갖고 있었을까? 이완용의 느낌은 한마디로 '딱하다'는 것이었다. 이 점은 1919년 4월 5일 총독부 기관지인 <매일신보>를 통해 발표한 경고문에서 확인된다. 이 경고문은, 한 달 넘게 지속되고 있는 만세운동을 지켜보다가 더 이상 참지 못해 작성한 것이다. 

'식민통치 순응이 살 길'이라 했던 이완용

<매일신보> 톱기사로 실린 이 경고문의 서두에서, 이완용은 "오호! 조선 동포여! 속담에 사중구생(死中求生)이란 말이 있다. 그런데 지금 조선 인민은 생중구사(生中求死)하려 하고 있으니, 이 어찌된 까닭인가?"라며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참고로, <매일신보>에 실린 이완용의 경고문은 100년 전 문투인 데에다가 중간 중간에 중국어문장으로 되어 있어, 이것을 원문 그대로 소개하면 오늘날의 독자들이 읽기가 편하지 않다. 그래서 원문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현대 한국어로 옮겼음을 밝힌다. 

이완용이 인용한 사중구생이란 속담은 '죽을 고비에서 살 길을 찾는다'는 뜻이다. '생중구사'는 사중구생을 뒤집은 말이다. 충분히 살 수도 있는 상황에서 헛되이 죽을 길을 찾아간다는 뜻이다. 

3·1운동을 한 달 넘게 지켜본 이완용의 소감은 "다들 스스로 죽을 길을 찾아가는구먼!"이었다. '식민통치에 순응하면 죽일 고비에서도 살 길이 생기는데, 왜들 저렇게 살 길을 놔두고 죽을 길을 찾아가는가!'라며 그는 나름대로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이것은 이완용식 동족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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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완용의 제1차 경고문을 톱기사로 실은 1919년 4월 5일자 <매일신보>. 이 기사의 오른쪽에는 이완용의 경고문을 소개하는 편집자의 말이 실려 있다. 그래서 이 기사는 톱기사였다.
ⓒ 조선총독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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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이어, 이완용은 자신이 글을 쓴 동기를 설명했다. "조선독립이라는 선동이 허언이고 망동이라는 점에 대한 각계 인사들의 천 마디 만 마디가 부족함이 없는데도 (일반 대중이) 계속 자각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렇게 나서게 되었노라고 그는 말했다.  

그런 뒤에, 3·1운동의 본질을 이렇게 해석했다. "처음에 무지하고 몰지각한 아이들이 망동을 벌이더니, 그 뒤 각 지방에서 뜬소문을 듣고 함께 일어나 치안을 방해하고 있다." 무지몽매한 학생들의 망동에 어른들이 부화뇌동하는 바람에 이런 사태가 생겼다는 것이다. 

'이완용의 제1차 경고문'이라 불린 이 기사의 결론은 "동포여! 내 말을 듣고 앞으로는 후회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그런 다음에 이완용은 "백작 이완용, 삼가 고하다"라는 표현으로 경고문을 끝맺었다. '경고문'이란 제목과 '삼가 고하다'라는 끝맺음이 어딘가 부자연스럽다. 

이완용, 3차 경고문에 모든 친일철학 동원

제1차 경고문이 나가자, 한국인들 사이에서 분노와 비판이 터져 나왔다. <매일신보>에 소개된 바에 따르면, 어떤 사람은 "매국노의 말이 세상의 이목을 더럽힌다"라며 울분을 표시했다. 이완용도 이런 반응을 확인했다. 그래서 그는 4일 뒤인 4월 9일 제2차 경고문을 발표한다. 제1차 경고문에 대한 대중의 반응을 보고 뭔가 울컥했던 것 같다.

4월 9일자 <매일신보>에 실린 제2차 경고문에서, 이완용은 자기의 진심을 믿어달라고 말한 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한다. 여러분이 느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위협에도 개의치 않고 경고문을 다시 발표한다"고 말했다. 대중의 비판에 대해 다소 조롱 섞인 반응을 보인 것이다.  

이 경고문에서 이완용은 자기가 소신을 갖고 제1차 경고문을 작성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 외에는 특별히 추가된 내용이 없다. 제1차 경고문에 대한 대중의 반응 때문에 심기가 좀 불편했는지, 이완용은 "백작 이완용, 다시 고하다"라는 말로 끝맺음을 했다. '삼가 고하다'가 '다시 고하다'로 바뀐 것이다. 

3월 1일 시작된 만세 시위는 4월에도 계속 확산되다가, 5월 하순이 되면서 약해지기 시작했다. 이 시점에서 이완용은 제3차 경고문을 발표할 필요성을 느꼈다. 시위가 약해지는 시점에서 쐐기를 박아야겠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는 5월 29일 제3차 경고문을 발표한다. 

확실하게 쐐기를 박기 위해서인지, 이완용은 <매일신보>에 실린 제3차 경고문에서 자기의 모든 철학을 총동원했다. 모든 철학이란 것은 친일 철학을 말한다. 모든 철학이 다 동원되어서인지, 제3차 경고문은 앞의 두 개에 비해 내용이 훨씬 더 길다. 

"일한합병은... 조선민족의 유일한 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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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완용의 제2차 경고문.
ⓒ 조선총독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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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차 경고문의 서두에서 이완용은, 시위가 누그러진 것에 대해 치하의 뜻을 표시했다. '잘 생각했다'고 칭찬한 것이다. 그런 뒤에 그는 "본인이 한마디 더 하고자 하는 것은, 독립론이 허망하다는 것을 여러분이 확실히 각성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라며 독립에 대한 희망을 버리라고 촉구했다. "일한합병은… 조선민족의 유일한 활로"라고 그는 단언했다. 

독립이 불가능하다는 주장을 입증하기 위해 이완용은 자기 나름대로 결정적인 근거들을 제시했다. 하나는, 한국 땅이 좁다는 것이었다. 이런 좁은 땅으로 무슨 독립이 가능하냐는 것이었다. 

또 다른 근거는 "모든 수준이 부족한 천여 백만의 인구로는" 독립이 불가하다는 것이었다. 국민 수준이 모든 면에서 질적으로 떨어지는 데에다가 인구도 천여 백만밖에 안 되니 무슨 독립이 가능하냐는 것이었다. 당시의 조선 인구는 2천만 명 정도였지만, 그는 한국인 인구가 일본인 인구보다 적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일부러 '천여 백만'이란 표현을 사용했다. 거짓말 같지 않게 거짓말을 한 것이다. 

한걸음 더 나아가, 이완용은 하느님까지 들먹였다. 조선이 식민지가 된 것은 상천(上天) 즉 하느님의 뜻이라는 것이다. 그는 "상천도… 두 땅의 분립을 불허하실 것"이라고 못 박았다. 두 땅은 한국 땅과 일본 땅을 지칭한다. 하느님도 일본의 통치 하에서 조선과 일본이 함께 살기를 바라실 것이라는 게 이완용의 말이었다.  

그런 다음에 이완용은 식민통치의 우수성을 찬양했다. "총독 정치 10년의 성적을 볼 때, 인민이 향유한 복지가 막대하다는 점은 내외 국민이 공감하는 바다." 한국인의 10%가 목숨을 걸고 시위에 뛰어든 참혹한 현실을 무시하고, 식민 통치 10년간 한국인의 생활수준이 향상되었다고 주장한 것이다. 그는 식민지 근대화론(식민통치 덕분에 한국이 근대화되었다는 주장)의 교과서였다. 

뒤이어 이완용은, 식민통치는 우수한 통치이므로 지금 단계에서는 총독부에 저항하지 말자고 주장했다. 또 일본에 대한 요구사항이 있더라도 지금 당장은 자제하자고도 말했다. 

"여러분이 주장하는 지방자치, 참정권, 병역문제, 교육문제, 집회 및 언론의 자유 등의 문제가 꽤 많지만, 여러분의 생활 및 지식수준에 따라 정당한 방법으로 요구해야만 동정을 얻을 수 있다."

총독부에 요구할 게 있더라도 생활수준과 지식수준을 향상시킨 뒤 합법적 절차에 따라 요구하라는 것이다. 그래야만 동정을 얻을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독립하고 싶으면 힘부터 기르라던 이완용

자신의 경고문이 나가고 나서 1개월 뒤에 시위운동이 약해졌다는 사실에 스스로 고무되었는지, 이완용은 일본인들에 대해 관용의 마음을 품자고 한국인들을 설득했다. 이완용의 마음속에서 호기가 발동한 것이다. 그는 조선인을 차별하는 내지인 즉 일본인들에 대해 아량을 갖자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가 내지인에 비해 실력이 부족하지 않다고 할 수 없으니, 아량을 크게 갖고 가급적 그들에게 반성을 촉구하고 이해를 구해야 할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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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완용의 제3차 경고문. 별표 부분에서부터 시작하여 하단의 ‘현상 소설 모집’ 광고의 양쪽과 아래쪽에도 경고문이 이어지고 있다.
ⓒ 조선총독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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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꽤 긴 내용의 경고문을 작성한 뒤 이완용이 결론적으로 내린 한마디는 "여러분의 급선무는 실력을 양성하는 것뿐이다"였다. 독립하고 싶으면 힘부터 기르라는 것이다.  

이완용은 실력을 양성해서 일본을 이겨보라고 말했다. 그런데 그가 말한 실력에는 주먹이나 무력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 주먹이나 무력으로 대항하는 것은 실력이 아니라는 게 그의 관점이었다. 

위에서 소개했듯이 이완용은 '정당한 방법'으로 일본을 상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말은, 일본을 이기려면 일본이 정한 법과 제도 안에서 일본과 싸워야 한다는 뜻이었다. 따라서 실력을 양성하자는 말은 일본에게 저항하지 말자는 말과 다를 바 없었다. 

을사늑약과 국권침탈에 협력한 일로 인해 이미 큰 죄를 지은 이완용은 위와 같이 3·1운동 시기에도 동족의 기를 꺾고 동족을 우롱하는 죄악을 범했다. 그는 오늘날의 일본 총리나 장관들 못지않게 온갖 망언을 쏟아냈다. 그는 그렇게 살다가 1926년에 '대일본제국'의 '품안'에서 편안히 눈을 감았다. 

2014년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는 '이완용들'

이 기사의 서두에서 "이완용은 이미 죽고 없지만 그의 망언을 여전히 참고하지 않으면 안 될 이유가 있다"면서 "그 이유는 맨 뒤에서 언급하겠다"고 말했다. 이제 그 이유를 언급한다. 

이완용은 죽고 없지만, 아직도 대한민국에는 이완용과 다를 바 없는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다. 그들은 지금도 어디에선가 친일 망언들을 쏟아내고 있다. 식민통치는 끝났지만, 그들의 마음속에는 여전히 식민통치가 계속되고 있다. 그래서 마음 놓고 망언을 하는 것이다. 

더욱 더 한심한 것은, 이완용과 똑같은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 중 일부가 대한민국의 일인지하 만인지상 자리까지 탐내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사람들이 대한민국을 통치하는 것을 막으려면, 이완용과 똑같은 말을 하고 다니는 사람들을 지도층의 자리에서 끌어내려야 한다. 

대한민국이 더 이상 추락하지 않도록 하려면, 누가 이완용과 똑같은 말을 하고 다니는지 살펴보지 않으면 안 된다.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95년 전 이완용의 친일 망언을 다시 들어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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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앰네스티 “韓경찰, 밀양 과잉진압 인권침해”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14/06/14 12:25
  • 수정일
    2014/06/14 12:25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국제앰네스티 “韓경찰, 밀양 과잉진압 인권침해”
이계덕 고발뉴스 SNS 특파원  |  balnews2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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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06.14  12:02:47
수정 2014.06.14  12: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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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밀양 765kV 송전탑 반대 대책위원회

국제인권단체 앰네스티가 경남 밀양 송전탑 농성장 철거 과정에서 경찰이 과잉진입을 했다고 인권침해 우려를 제기했다.

앰네스티는 13일 " 평화로운 시위대를 상대로 필요 이상의 공권력을 사용해서는 안된다"며 "경찰은 농성자들을 움막에서 끌어내는 과정에서 칼로 천막을 찢고 농성자들이 고령인 점을 감안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아널드 팡 국제앰네스티 동아시아 조사관은 "최근 시위대에 대한 한국 정부의 대응을 보면 집회·시위·표현의 자유를 보호하기를 꺼리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며 "정부는 평화시위에 참여하는 이들의 권리를 존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이 기사는 인터넷 뉴스 신문고(http://www.shinmoongo.net/sub_read.html?uid=58552)에도 동시 게재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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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발 청춘의 '통일시인' 이기형 1주기


생전에 남긴 10권 600편에서 간추린 '이기형 대표시 선집' 출판기념회
이승현 기자  |  shlee@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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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06.13  13: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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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일시인' 이기형 1주기 추모 모임 및 '이기형 대표시 선집'출판기념회가 12일 오후 서울 조계사 내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열렸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아흔일곱 생애를 단 하룻날처럼 휘달려간 '통일시인' 이기형 1주기를 맞아 추모 모임과 '이기형 대표시 선집' 출판기념회가 12일 서울시 종로구 견지동 조계사내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함께 열렸다.

천명(天命)의 세월, 온 몸으로 조국의 참된 해방과 통일을 노래한 '백발 청춘의 시인'은 그가 한생을 통해 보여주었던 소년같은 순수한 영혼과 온유하고 따뜻한 성품으로 다시 사람들을 모이게 했다.

시인이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함께했던 한국작가회의, 한국문학평화포럼 등 문학동네 인사들과 몽양여운형선생기념사업회, 6.15공동선언실천남측위원회, 사월혁명회, 양심수후원회, 민족문제연구소를 비롯한 통일운동 단체를 포함해 200 여 명의 참가자들은 3시간 가까이 진행된 추모 및 기념회에 끝까지 자리를 함께했다.

   
▲ 왼쪽부터 민영 시인, 이부영 몽양여운형선생기념사업회 회장[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어린시절을 만주에서 보냈던 민영 시인은 추도사에서 고 김규동 시인과 함께 이기형 시인을 기억하면서 "50년 가까이 형, 동생으로 지내오던 두 분이 차례로 가시고 나니 앞으로 북쪽을 바라보면서 형님이라고 떠올릴 수 있는 시인이 없어졌다"며, 그리움을 표시했다.

민영 시인은 "함경도 출신인 두 분은 생전에 만나시면 '이 담에 고향갈 때 같이 가자'고 곧잘 이야기했다"며, "부디 저 세상에서도 생각나면 글쓰시고 후배들 생각해 달라"고 추모했다.

이미 그 자신이 여든에 달한 노시인은 "선생님들 고맙습니다"라며 추도사를 맺었다.

이부영 몽양여운형선생기념사업회 회장은 "해방과 분단의 세월을 이러저리 헤매면서 잠시도 쉬지 않고 쉼없는 통일염원으로 걷고 또 걸었던 시인의 등산화"를 떠올리며 "이기형 시인의 한 생은 남(南, 他)의 하늘 아래서 사느라 너무 고통스러우셨다고 표현할 수 있다"고 말했다.

   
▲ 왼쪽부터 권오헌 양심수후원회 명예회장, 정동익 사월혁명회 상임의장, 강준식 몽양여운형선생기념사업회 사무총장, 이형찬 바른정치실현연대 대표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권오헌 양심수후원회 명예회장은 "처음엔 시인 이기형으로 뵌 것이 아니라 멈출 수 없는 열정으로 훼손되는 민주주의, 짓밟히는 민중생존권, 탄압받는 민족통일의 현장에 달려오신 선생니을 만났다"며 고인과의 만남을 기억했다.

권오헌 회장은 "2~3년 전부터 이기형 선생님이 말씀하시길 '통일시상이 무수히 떠올라. 100살까지 계속 쓸거야'라고 했다며, "장담하시던 백수를 못보고 잠드셨다. 고향엔 다녀오셨느냐"고 애도했다.

정동익 사월혁명회 상임의장은 자신이 지난 1989년 '아침'이라는 출판사를 운영하면서 이기형 시인과 만나 지리산 빨치산을 다룬 실록연작시집 '지리산'을 출판했다가 함께 구속된 '공범'관계라는 인연을 소개했다.

정동익 의장은 "이기형 선생님은 사월혁명회와 동아투위 행사에 항상 정시에 참석해서 쩌렁쩌렁한 음성으로 시낭송을 해주셨다"며, "이제 70대에 접어든 동료들에게도 노년의 이기형 선생님이 보여주셨던 그 열정을 보라고 말하곤 했다"고 회고했다.

정 의장은 "선생님은 '통일이 되면 북에 남겨둔 영석(아들), 호정(딸)을 꼭 만나달라'고 당부했다"며, "그토록 후배들에게 모범이고 귀감이 됐던 일생을 꼭 전하겠다"고 다짐했다.

몽양 여운형 선생의 비서역을 맡아 한 이기형 시인이 지난 1989년 몽영 여운형 연구자였던 자신을 찾아와 첫 인연을 맺게 됐다는 강준식 몽양여운영선생기념사업회 사무총장은 첫 만남에서부터 단박에 '민주화 이후 민족적 과제는 통일'이라는 시인과 의기투합했다고 말했다.

강준식 총장은 이기형 시인이 좋아한 시인 마오쩌둥을 자신이 소개했다는 일화를 전하면서 "이기형 시인은 참으로 소년같은 순수한 모습이 있었으며, 시는 과감하고 파격적이었지만 성품은 온유하고 따뜻했다"고 감회롭게 회고했다.

여든살에 접어든 이형찬 바른정치실현연대 대표도 고향 선배인 이기형 시인의 맑고 깨끗한 성품을 기리며 "평생 아름다운 생활을 하시다가 아름다운 날을 택해 돌아가셨다"고 추모했다.

   
▲ 왼쪽부터 '이기형 대표시 선집'의 대표 엮은이인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 소장, 맹문재 시인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 소장은 출간 기념사에서 "이기형 시인은 노년의 연세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행사에는 한번도 빼놓지 않고 빠짐없이 열심히 다녔을 뿐만 아니라 언제나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현장에서 시낭송을 하셨다"며, "이런 시인, 이런 통일운동가는 후배들에게도 귀감이 되도록 기려서 후세에 감동과 교훈을 주어야 한다"고 밝혔다.

대표 엮은이인 맹문재 시인은 이번 시선집이 지난해 가을부터 기획돼 시인이 남긴 10권, 600편의 발표시와 미발표 신작시 중에서 통일 주제를 가장 잘 드러낸 시편을 중심으로 선정위원들이 100편을 뽑았으며, 이중 5편은 유족들이 고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맹문재 시인은 이 시선집을 통해 이기형 시인은 '한국 시문학사에서 통일의 노래를 가장 잘 부른 시인'으로 평가될 것이라고 말했다.

   
▲ 왼쪽부터 나종영, 정우영, 권옥희, 김창규 시인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왼쪽부터 문창일, 박용희, 홍일선, 고규태 시인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이날 나종영, 정우영, 권옥희, 김창규, 문창일, 박영희 시인이 시선집에 포함된 이기형 시인의 대표 시를 낭독하고 홍일선, 고규태 시인은 1주기 추모시를 발표했다.[별도 박스 : 고규태 시인-머나먼 통일공화국의 노래]

더불어 명상음악가인 평산 신기용, 중요무형문화제 제30호 가곡 이수자인 이정희, 장순향 한양대 무용과 교수와 학생들, 가수 인디언 수니, 대금 연주자인 김용욱 여민락 대표, 마묵무용단, 가수 김현성 등 많은 문화예술계 인사들이 이기형 시인의 1주기를 추모하기 위해 공연에 나섰다.

추모 및 기념회는 이기형 시인의 외아들인 이휘건 한양대 교수와 며느리, 두 손녀의 감사 인사로 끝을 맺었다.

이휘건 교수는 "지난해 6월 아버님이 돌아가신 후 어머님(방현주 여사)은 아버님이 그리우셨는지 9개월만 더 사시고 올해 3월에 돌아가셨다"고 가족의 근황을 소개하고 "오늘 행사전에 열 여섯분이 버스를 타고 묘소에 따로 인사를 드리고 왔는데, 늦은 시간까지 자리를 함께 해 준 여러분들은 아버님을 정말 깊게 그리워하시는 분들인 것 같다. 가슴에서 절절 끓어 오르는 감사를 드린다"고 인사했다.

   
▲ 『이기형 대표시 선집』임헌영ㆍ맹문재 엮음/작가/344쪽 [사진-작가 제공]
머나먼 통일공화국의 노래
-이기형 선생님 1주기에


고 규 태


2005년 7월 25일, 여기 평양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수도, 평양
89세의 한 노인이 서 있다

여름꽃 흔들리는 순안비행장 한켠
저만큼엔 아슴히 옅은 무지개가 떠 있고
남녘에서 온 상노인이 서 있다

흰 머리, 흰 눈썹, 꼿꼿한 허리, 형형한
눈빛의 당신은 문인방북단의 일원-
최고령의 시인 이기형 선생님

당신 눈은 먼 곳에 가 있다

저 너머 동쪽 함경도 거기
저 너머 동쪽 묘향산맥 지나 거기
내 고향은 어디쯤일까

돌아보며 돌아보며 떠나온 흥남부두 
그 안쪽 함경남도 함주 땅은 어디쯤일까
내 고향은 도무지 어디쯤일까

눈가엔 남 모르는 눈물
눈시울에 물컹 젖어드는 옛기억
최고령의 당신은 어느새 소년이 되고
당신의 숨은 거칠어졌다

무심한 남행의 비행기는 
탑승을 재촉하고, 남녘북녘 문인들은
웅성웅성 아쉬움을 나누고, 재회를 기약하고

그 틈박에서 또 한 번의 이별에 
당신은 산산이 무너졌다

그 찰라, 당신 손을 이끄는 건
웃음 많은 북녘의 안내자

불현듯 당신 앞엔 따님이 나타나고
딸은 벌써 59세, 내년이면 60
어느새 희끗 할미꽃의 초입이었다

아, 얼마만인가?
10년 20년만인가, 30년만인가, 40년만인가
이도 저도 아니었다, 반백년도 
넘는 55년만이었다

둘은 껴안고, 울고, 흐느끼고,
깡마른 가슴 맞대어 얼굴을 부비고

하지만 숨 돌릴 겨를도 없이
당신께 날아든 것은 어머니 소식

어머니는 함경도에 안 계셨다
어머니는 공화국에 안 계셨다
어머니는 이 세상에 아니 계셨다 
부모님은 이미 저 세상에 계시었다

거꾸로 흐르는 역사 속
분단, 전쟁, 생이별, 그리움, 피눈물
속절없이 흘러버린 세월

분단과 전쟁- 
그러나 당신이여 얼마나 다행인가
따님 얼굴 한 번은 보았으니
그러나 당신이여 얼마나 불행인가 
부모님 얼굴은 한 번도 뵙질 못했으니

그렇게 선생님은 가시었다
무려 97세, 아흔 일곱의 당신은 
늙을 줄 모르는 소원 하나 풀지 못하고
당신마저 이 산하의 흙이 되었다

그리고 여기, 우리들의 남녘
이름하여 대, 한, 민, 국

북녘은 멀다 만남은 멀다 
대화는 멀다 평화는 멀다
상생과 통일은 더 멀다

한 생애가 온통 통일의 여정이었던
이기형 선생님이여

독립은 멀다 해방은 멀다
몽양은 멀다 건준은 멀다 
하나의 조국은 더 멀다

한 생애가 전부 조국해방과
통일공화국 건설의 손길 발길이었던 
당신이여

언론은 멀다 신문은 멀다 
두 눈은 멀다 두 귀는 멀다
사실은 멀다 진실은 멀다
부러진 펜- 정론직필은 더 멀다

한 생애가 온통 반듯 
반듯한 기자였던 당신이여
온몸이 온통 언론이었던 당신이여

자유는 멀다 평등은 멀다
인권은 멀다 민중은 멀다
약자는 멀다, 멀쩡한 헌법 놔두고
민주주의는 더 멀다

다카키 마사오-
친일 친미 유신은 더 가깝다

한 삶이 전부 민주주의 실현의
전선이었던 님이여
한 삶이 오직 반외세 자주 실현의 
최전선이었던 님이여

목숨은 멀다 생명은 멀다
사람은 멀다 생환은 멀다
웃음은 멀다 실종은 가깝다 
죽음은 더 가깝다

한 삶을 온통 저기 저 세월호에 
갇힌 채 살아온 이기형 선생님이여

그리고 다시 여기, 
우리들의 몸서리치는 남녘
이름하여 대-한-민-국

시는 멀다 문학은 멀다 
글은 멀다 정신은 멀다
행동 참여 실천은 더 멀다
잡념 잡담 잡소리는 가깝다

한 삶이 오로지 치열한 문학이었던 
님이여, 행동의 자취마다 실천의 굽이마다
민족의 대서사시였던 당신이여

떨리는 손을 붙들어 치세워 
핏자국처럼 또박또박 써내려가신 
선생님의 장대한 문학

당신의 시여 노래여
이 시대의 살아있는 예술이여
참된 먹물의 육성이여

그러한 당신은 지금 어디에 계시는가

저 남북 휴전선 위
저 서로를 겨눈 총부리 위
저 중무장한 대량살상의 무기 위
저 남북을 유유히 오가는 새의 날개짓 위

당신은 거기 계신다
우리를 내려다보고 계신다
잘들 살고 있는지 샅샅이 살피고 계신다

그러면서 이기형 선생님
흰 눈썹 휘날리며 노래하신다

살아서 못다 부른 겨레의 노래,
인민의 노래, 민주주의의 노래, 사람 사는 
세상의 노래, 우리 가슴을 저미는 노래

남과 북에 울려퍼진다
남과 북에 스민다
동서남북을 적신다

오늘도 당신이 부르시는
아직은 우리에게 머나먼 노래-
아, 통일공화국의 노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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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선승의 유언이 이룬 병원

 
조현 2014. 06. 12
조회수 1958 추천수 0
 

 

능행스님과 환자-.jpg 

환자 돌보는 자재병원 이사장 능행 스님

 

 

자재병원 환자들-.jpg 

자재병원 내에서 환담하는 환자들

 

자재병원-.jpg 

울산광역시 울주군에 지어진 자재병원

 

 

17년 전 능행 스님은 한 가톨릭 수녀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임종을 앞둔 환자가 아무래도 스님인 것 같은데 일체 대꾸조차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환자는 선방에서 20년 넘게 수행만 해온 비구 스님이었다. 그 스님은 “중생의 은혜로 살면서 아무 것도 못하고 떠난다”고 눈물을 떨구며 능행 스님에게 유언을 남겼다. “불자가 1천만이 넘는데, 스님들이 편히 죽어갈 병원 하나가 없다”며 “나 대신 병원 하나를 지어 달라”는 것이었다. 

 

 세상일이라곤 해본 적이 없는 비구니 능행 스님은 감당키 어려운 유언을 받은 이후 기나긴 고행이 시작됐다. 더구나 “중이 수행이나 하지 웬 세상 일이냐”는 핀잔이 정당화는 되는 의식 부재의 불교계에서 맨몸으로 병원을 짓는다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치기나 다름 없었다.

 

 그런데 불가능해 보이던 그 꿈이 현실이 됐다. 정토마을공동체는 오는 15일 오후 1시30분 울산광역시 울주군 상북면 소야정길에 자재요양병원 개원식을 연다.  능행 스님이 이사장인 정토마을공동체가 충북 청원군 미원면에 독립형 호스피스인 정토마을을 개원한지 14년 만이다. 정토마을공동체는 지난 2005년 이곳에 병원 부지를 매입했고, 지난 2007년엔 의료복지 임상전문인력 양성교육기관인 마하보디교육원을 열어 병원 개원을 준비해왔다.

 

 양방의 내과, 외과와 한방의 한방내과 한방부인과, 한방재활의학, 침구과 등을 갖춘 이 병원은 108병상 규모로 의사 한의사 등 60여명이 환자들을 돌본다. 무료 1만5천여명의 후원자들의 십시일반으로 원력이 성취됐다.

 이 곳은 환자의 고통을 덜어주는 완화의료 전문병원이다. 완화의료병동과 함께 승려들만 입원하는 승가병동이 운영되는게 특색이다.

 

 이 병원은 의료사각지대에 있는 환자들의 의료비를 지원하고, 말기 환자들에게도 총체적 돌봄을 지향한다. 특히 삶의 마지막 순간을 존엄하게 마칠 수 있도록 불교적 임종의식을 따르고 있다.

 

 병원 개원을 맞아 오는 13~15일 다양한 행사가 마련됐다. 13일 오후 2시 부터는 ‘마가 스님과 함께 하는 치유법회’와 ‘피아니스트 정소영과 함께 하는 작은음악회’가 펼쳐진다.

 

 또 14일엔 오전 10시부터 ‘허유지와 함께하는 사경법회’와 ‘도신 스님과 함께 하는 건강한 100세’,  ‘개원축하 전야 야단음악회’가 이어진다. 승려화가인 수안스님이 기증품으로 여는 ‘108선서화전과 사인회’도 축제 기간에 열린다.

 

 개원일인 15일엔 오전 10시 고구려 당취소리 공연이 펼쳐지고, 오후 1시30분엔 조계종 총무원장 자승 스님과 원로회의 의장 밀운 스님, 석종사 선원장 혜국 스님, 운문사 회주 명성 스님 등이 참석한 가운데 개원식이 열리고, 오후 3시30분엔 장사익 공연이 이어진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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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인권사무소 한국지부개설은 전쟁부르는 행위 규탄

민권연대, 
북한인권사무소 한국지부개설은 전쟁부르는 행위 규탄
 
 
이창기 기자 
기사입력: 2014/06/13 [11:00]  최종편집: ⓒ 자주민보
 
 
▲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유엔북한인권사무소 한국지부개설 규탄 기자회견을 진행하는 민권연대     © 자주민보
 
▲ 민권연대의 북한인권사무소 개설 반대 기자회견     © 자주민보

  
민주민생평화통일주권연대(민권연대)는 12일 정부종합청사 통일부 앞에서 유인권이사회의 북한인권사무소 한국 설치에 대한 항의 집회를 진행하였다.

민권연대는 박근혜정부와 유엔의 위와 같은 행동은 한반도 평화에 찬물을 끼얹고 전쟁위기를 가중시키는 엄중한 행위라며 그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하였다.

특히 박근혜 정부에 대해서는 평화통일을 명시한 헌법에 위배된 행동이며 최근 발표한 통일대박론과도 정면 배치되는 행동이라며 당장 중단한 것을 강력히 요청하였다.

민권연대는 유엔에게 보내는 이런 입장을 담은 영문항의서한도 함께 공개하였다. 

다음은 관련 항의서한과 성명이다.       

 

                        유엔 북한인권사무소 한국설치추진 항의서한        

유엔 인권이사회의 북한인권사무소 한국 설치를 강력히 항의한다.    

지난 2월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위원장 마이클 커비)는 북한인권 최종보고서를 발표하며, 그 후속 조치를 위한 유엔조직설치를 제안하였다. 유엔 인권이사회는 이 제안을 반영해 3월 말에 북한인권사무소를 설치하는 북한인권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는 북한인권사무소 설치를 한국에 제안했고, 박근혜 정부는 5월 28일(스위스 제네바 현지시간) 이를 수락했다. 

민권연대는 유엔 북한인권사무소 설치에 대해 다음과 같은 이유로 강력히 항의하는 바이다.

첫째, 북한인권사무소 설치의 배경이 되는 북한인권 최종보고서를 신뢰할 수 없다. 

탈북자의 증언을 중심으로 작성된 유엔 조사위원회의 북한인권조사는 객관적인 지표라고 보기 힘들다. 탈북자는 그 사유가 무엇이든지 국경선과 제3국을 통해 귀순하는 사람이며 보통 중국으로 밀입국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대한민국의 사회현실에 염증을 느껴 떠난 이민자들이 대한민국에 대해 긍정적인 시각보다 비판적인 시각이 큰 것처럼 탈북자 역시 마찬가지 일 수밖에 없다. 게다가 탈북자는 북한을 부정하지 않고서는 자신의 존재가치를 증명할 방법이 없다. 반북의식이 강한 한국에서 그러한 경향은 더욱 심하다. 유엔 조사위원회의 북한인권조사는 북한 주민들의 인권실태에 대한 객관적 현장검증이 아니기 때문에 신뢰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둘째, UN 참가성원국의 입장이 고루 반영되지 않은 유엔 북한인권사무소 설치는 적절치 않다.

제네바 중국 대표부의 천촨동 외교관은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유엔 조사위원회의 북한인권 조사는 근거가 없는 고소이며 현실과 동떨어진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중국 대표는 “보고서가 북한을 방문하지도 않고 증언만을 기초로 작성돼 정확하지 않다”면서 “탈북자는 경제적 이유로 불법 입국한 범법자”라는 입장을 강조했다. 그는 이어 "관련국들의 지지와 협력을 얻고자 하는 조사위원회의 이러한 무능력은 조사위가 그러한 권한을 불편부당하고 객관적이며 효과적인 방법으로 수행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들 뿐"이라고 비난했다. 러시아, 중국, 파키스탄, 쿠바 등 6개국은 북한 인권조사위 결의안에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인권을 정치 문제화시켜 자국의 이득을 꾀하려는 패권적인 시도에 가까운 북한인권사무소 설치는 중단되어야 한다.

셋째, 유엔 북한인권사무소 설치는 한반도 긴장을 조성하여 대한민국 국민의 생명권을 위협한다.

한반도는 언제든지 전쟁이 터질 수 있는 정전상태다. 현재 남북관계는 극단적인 대결로 치닫고 있으며 서해에서 근접 포격이 발생할 정도로 긴장된 위기상황이다. 대북전단 살포 등과 같은 비방행위가 물리적 충돌위기까지 초래할 수 있는 심각한 상태인 것이다.

북한은 한국에 북한인권사무소를 설치하는데 대해 ‘동족 대결을 더욱 격화시키고 체제통일 야망을 실현하기 위한 적대행위’라며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북한은 '있지도 않은 인권문제'라고 주장하며 관련자들을 '무자비하게 징벌할 것'이라며 위협했다. 당사국인 북한의 반응이 이러한데 만약 하반기 한국에 북한인권사무소가 설치된다면 긴장은 필연적으로 더욱 고조될 것이다. 대한민국 국민의 평화권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유엔 북한인권사무소 설치는 중단되어야 한다. 

넷째, 유엔 북한인권사무소 설치는 한반도 통일을 심각하게 방해하는 행위이다. 

한반도 평화통일은 온 국민의 간절한 열망이다. 2014년 초 한국의 통일대박 선언과 북한의 중대제안 발표로 남북관계는 급물살을 탔다. 남과 북은 2.14합의를 통해 상호비방 중단을 약속했으며 극적으로 이산가족상봉을 성사시켰다. 60년간 헤어졌던 이산가족의 아픔이 잠시나마 해소되었던 시점이었던 것이다.

북한인권사무소는 올 해 하반기에 설치될 예정이다. 북한인권사무소 설치는 남북관계의 커다란 악재로 작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단기적으로 남북관계를 조금이라고 개선시킬 가능성이 있는 9월~10월 인천아시안게임에도 악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장기적으로 한국에 설치될 북한인권사무소는 반북대결의 거점으로서 한반도 통일에 심각한 후과를 남기게 될 것이다. 

유엔 인권이사회는 인류의 인권을 증진시키기 위해 존재한다. 유엔 인권이사회는 논란의 여지가 많은 보고서를 바탕으로 한 북한인권사무소 설치를 중단해야한다. 대한민국 국민은 북한인권사무소 설치로 인한 심각한 평화권과 생명권의 침해를 우려하고 있다. 우리는 유엔 인권이사회에 한국 북한인권사무소 설치를 중단할 것을 강력히 요청하는 바이다.

                                          2014년 6월 10일
                             민주민생평화통일주권연대(민권연대)

     

            유엔 북한인권사무소 한국설치추진 항의서한(영문번역)    
* 북한인권사무소 한국 설치에 대하여 유엔인권위원회에 보내는 항의서한입니다. 

A Statement of Protest against Pursuing the Establishment of a United Nations Office on North Korea's Human Rights in South Korea

We Strongly Oppose the Establishment of a UN Office on North Korea’s Human Rights in South Korea!

The UN Commission of Inquiry (COI) (Chairman: Michael Kirby) published its final report on Human Rights in North Korea last February and it also suggested that it open a UN office as part of their follow-up measures. Based on the proposal, the UN Human Rights Council (UNHRC) adopted its resolution on establishing a UN office on Human Rights in North Korea in late March. After that, the COI proposed to the South Korean government that it open the office in South Korea, and President Park Geunhye accepted the proposal on May 28th (local time, Geneva, Switzerland).

We, The Solidarity for Democracy, People's Livelihood, Peaceful Reunification, and the Sovereignty of Korea, strongly oppose the establishment of a UN office on Human Rights in North Korea for the four reasons below. 

First, we cannot trust the UN's final report on Human Rights in North Korea, which provided the basis for opening a UN's office on North Korea’s Human Rights in South Korea. It is difficult to consider the UN report on North Korea's human rights as objective data, because it was written based on testimony from North Korean defectors. Most North Korean defectors came to South Korea through borders and third countries, and the majority of the defectors secretly entered China first. As South Korean immigrants to other countries who left South Korea because they were sick of the reality of South Korean society have more critical views than positive views about their country, it is the same with North Korean defectors. Besides, there is no way for North Korean defectors to find the value of their existence in South Korea without denying and criticizing North Korea. Their critical comments and testimony against North Korea became more extreme in South Korea because anti-North Korea sentiment is strong in South Korea. In this regard, we cannot trust the UN report on North Korea's human rights, because the UN did not write the report by conducting objective on-site inspections with North Korean people living in North Korea. 

Second, it is not appropriate to establish a UN office on North Korea's Human Rights because the decision was not made by equally reflecting all the positions of the related UN members on this matter. Chen Chuandong, a counselor in China's mission in Geneva, told the UNHRC that the independent commission of inquiry had made unfounded accusations and recommendations that were divorced from reality. He also pointed out that, "North Korean defectors are just lawbreakers who illegally smuggled themselves into other countries for financial reasons." He added, "The inability of the commission to get support and cooperation from the country concerned makes it impossible for the commission to carry out its mandate in an impartial, objective and effective manner." Also, six countries, including Russia, China, Pakistan and Cuba expressed their opposition to the resolution proposed by the COI. As the political intention for establishing a UN office on North Korea's Human Rights is just a power play by some countries that want to seek benefits by making a human rights issue into a severe political issue, the plan for establishing a UN office on North Korea's Human Rights should be abandoned. 

Third, the establishment of a UN office on North Korea's Human Rights will threaten the right to life of the people of the Republic of Korea by raising political tensions on the Korean peninsula. The Korean peninsula is technically in a ceasefire agreement that can lead to a real war at any time. In addition, the relations between the two Koreas have been heading toward extreme confrontation, and even two North Korean and South Korean ships exchanged gunfire along the Yellow Sea line of demarcation. The situation is getting critical enough to cause a physical conflict; for example, by slandering North Korea, by flying anti-North Korean leaflets into North Korea. North Korea lashed out at South Korea for its acceptance of the UN's request because it will increase the confrontation between the two countries, and that South Korea is trying to achieve its ambition of forcible reunification. North Korea also argued that the human rights issue is a fight against the conspiracy and ratcheted up its threats against the related parties, saying, “we will punish them mercilessly." Under the circumstances, the tension between the two Koreas will be inevitably heightened if a UN office is established in South Korea in the second half of this year. The plan for establishing a UN office on North Korea's Human Rights should be abandoned, as it violates the right to peace of the people of the Republic of Korea. 

Fourth, the establishment of a UN office on North Korea's Human Rights will interrupt a peaceful reunification of two Koreas. All of the Korean people have longed to achieve a peaceful reunification between the South and the North. The relations between the two Koreas seemed to begin to thaw thanks to South Korean President Park's statement on inter-Korean unification that it would amount to “daebak”, or hitting the jackpot, for all Koreans, and also to the important proposal made by North Korea's National Defense Commission early in 2014. Two Koreas agreed to halt verbal barbs and to hold reunions of the families separated by the Korean War on February 14th. Thanks to this agreement, families torn apart for more than 60 years could reunite for a moment. However, a UN office on Human Rights in North Korea is scheduled to be opened in South Korea in the second half of this year. If the office is established as planned, it will have a negative effect on inter-Korean relations. In the short term, it will negatively affect the 2014 Incheon Asian Games scheduled from September to October, which is expected to improve the relations between the South and the North. In the long term, a South Korea-based UN office on North Korea's Human Rights will be a base for anti-North Korea activities, which will hinder a peaceful reunification between the two Koreas.

The UNHRC exists as a body whose aim is to improve the human rights of all humankind. The UNHRC should stop its plan to open a UN office on North Korea's Human Rights based on its controversial report on human rights in North Korea. The people of the Republic of Korea are concerned that a UN office on North Korea's Human Rights in South Korea will lead to severe violations of the rights to peace and life of the people of South Korea. We strongly ask the UNCHR to stop the establishment of a UN office on North Korea's Human Rights in South Korea.

                                          June 11, 2014
The Solidarity for Democracy, People's Livelihood, Peaceful Reunification, and Sovereignty of Korea   
     

                   [성명] 유엔 북한인권사무소 설치하는 박근혜 정부 규탄     

박근혜 정부의 유엔 북한인권사무소 설치 수락으로 한반도 긴장과 대결이 고조되고 있다.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의 루퍼트 콜빌 대변인은 지난 5월 28일 "한국 정부가 사무소를 한국에 설치해달라는 제안을 수락했다“며, 올해 하반기 중으로 북한인권현장사무소(Field based structure)를 한국에 설치할 것이라고 밝혔다. 북한인권사무소는 북한의 인권 상황에 대한 조사와 기록을 담당하게 될 것이라고 한다.

유엔 북한 인권사무소 국내설치는 남북대결을 부추기고 한반도 위기를 조성하는 위험한 선택이다.

북한은 그동안 ‘체제비방, 내정간섭’에 대해서 예외 없이 강력히 반발해왔다. 특히 북한은 북한인권사무소 설치의 배경이 된 지난 3월 유엔 대북인권결의안에 대해서 “미국, 일본, 유엔 등은 남의 인권을 거론할 자격이 없다”며 강하게 규탄한 바 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는 강력한 반발이 예상됨에도 불구하고 북한인권사무소 설치를 강행하고 있다.

북한인권사무소 국내설치는 평화적인 통일을 추진해야 할 대한민국 헌법과도 배치된다. 

한반도는 60년 넘게 분단이 고착화된 특수한 상황이다. 즉 상호존중 없이는 평화통일을 이루기 힘들다. 무리한 인권공세는 저강도 전쟁과 맞먹는 위험한 행위로 헌법에 명시된 평화통일노선을 위반한 것이다.

유엔 북한 인권사무소 국내설치는 박근혜 정부 스스로 강조해온 ‘통일대박’과도 거리가 멀다. 

박근혜 대통령은 연 초부터 지속적으로 통일문제를 언급해 왔으며, ‘통일준비위원회’를 설치해 스스로 위원장 자리에 앉기도 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는 북한이 강력히 반발하는 북한인권사무소 설치를 결정함으로서 ‘통일대박’과는 거리가 먼 ‘대북적대노선’을 확고히 했다.

북한인권사무소가 국내에 설치되면 전쟁위기는 불가피하며 국민들은 불안에 떨 수밖에 없다.

지난 6월 9일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는 대변인 성명을 통해 ‘무자비한 징벌’ ‘불벼락 세례‘ 같은 강도 높은 표현을 써가며 북한인권사무소 설치를 규탄했다. 지난 연평도 사태에서 볼 수 있듯이 한반도는 작은 충돌에도 언제든지 전면전으로 번질 수 있는 위험 속에 놓여있다. 

최근 북일 관계는 단독제제 해제와 납치자 문제 해결에 합의하며 관계정상화 수순으로 가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도 북한과의 경제협력강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 상황이다. 박근혜 정부의 유엔 북한인권사무소 설치는 평화로 나아가는 동북아 추세에도 맞지 않는 극도로 위험한 도박행위다.

국민들은 대결과 전쟁이 아닌, 평화를 원한다. 

박근혜 정부는 국민을 볼모로 한 대북대결정책을 즉각 중단하고 남북관계개선에 나서야 한다. 

박근혜 정부의 북한인권사무소 설치 수락결정을 강력히 규탄한다!

한반도 평화를 위협하는 북한인권사무소 국내설치를 당장 중단하라!

                                         2014년 6월 10일
                             민주민생평화통일주권연대(민권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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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고(故) 심미선·신효순 양의 12주기 추모음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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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중의례 중인 참석자들 고(故) 신효순, 심미선양의 12주기 추모음악회에 참석한 사람들이 민중의례를 하고 있다.
ⓒ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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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오후 7시, 서울시 서대문구에 위치한 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선교교육원 앞 정원에 사람이 몰려들었다. 가슴에, 모자에, 가방에 노란 리본을 단 사람들이 여럿 보였다. 정원에 마련된 의자는 사람들로 가득 찼다. 준비한 의자가 부족해서 많은 사람들이 서서 음악회를 지켜보았지만, 불쾌해하거나 자리를 피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정치인에서부터 시민단체 관계자, 백발의 노인부터 어린 중학생까지 50여 명의 다양한 사람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2002년 미군 장갑차에 의해 세상을 떠난 고(故) 심미선·신효순 양의 12주기 추모음악회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아이들의 넋이 자주와 평화의 희망으로 피어나기를..."

사단법인 민족미술인협회와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이 준비한 추모음악회는 예정보다 조금 늦은 7시 15분께 시작했다. 음악회는 김경호 향린교회 목사의 하모니카 연주로 막을 열었다. 김 목사는 연주에 앞서 "아이들의 넋이 자주와 평화의 희망으로 피어나기를 바란다"며 "평화와 통일의 염원을 담아 연주하겠다"고 말했다. 김경호 목사가 하모니카로 '아리랑'과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연주하는 동안 많은 참석자들이 눈을 감고 조용히 음악을 감상했다.

김씨의 연주와 민중의례가 끝난 후, 추모사를 맡은 이은선 세종대학교 교수가 나와 마이크를 붙잡았다. 이은선 교수는 "오늘 우리 주변에 죽음이 만연해 있다"며 "우리는 어느 사이 죽음에 무뎌지게 되었다"고 입을 열었다.

이씨는 효순·미선양의 희생과 세월호 참사를 병치시키며 국가권력을 비판한 후 희망에 대해 얘기했다. 이씨는 "촛불의 지속성이 신뢰의 그루터기가 된다, 그 그루터기에서 어떤 거대한 제국, 거짓과 불의도 결국은 물리칠 수 있다는 작은 희망의 잎새가 돋아나는 것을 본다"고 추모사를 마무리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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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금을 연주 중인 한충은 KBS 국악관현악단 부수석 한충은 KBS 국악관현악단 부수석이 고(故) 신효순, 심미선 양의 12주기 추모음악회에 참석하여 대금을 연주하고 있다.
ⓒ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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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사 이후 권정호 변호사가 객석 앞에 섰다. 권씨는 2002년 사건부터 지금까지 효순·미선양을 기리기 위해 어떤 노력들을 해왔고,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해 간략하게 소개했다. 권씨는 "미국을 배척하자는 것이 결코 아니라 상호 평등한 호혜적 관계를 만들자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권씨의 발언 이후 음악회의 본무대가 시작됐다. 대금과 기타, 노랫소리가 어우러졌다. 사람들은 아는 운율이 나오면 따라서 흥얼거리기도 하고, 고개를 까닥거리기도 했다. 눈을 감고 악기소리를 듣다가 눈물을 훔치는 관객도 있었다. 곡이 끝날 때마다 박수가 터져 나왔지만 환호성은 없었다. 추모음악회는 잔잔하고 차분한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이날 대금을 연주한 한충은 KBS 국악관현악단 부수석은 오늘 참석 이유를 묻는 <오마이뉴스>의 질문에 "이 시대를 같이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연주를 해달라는 부탁을 거절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며 "상처가 아물고 딱지가 질 때까지는 행사에 계속 와야 하지 않겠나, 앞으로도 당연히 참여할 것"고 말했다. 한씨는 이어 "앞으로도 꾸준히 문제제기를 해야한다, 돈과 권력이 지배하는 세상을 문화와 예술과 사랑으로 무너뜨려야 한다"고 말했다.

도종환 "눈물의 힘과 슬픔의 힘을 모아서 세상을 바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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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화꽃을 헌화 중인 도종환 의원 새정치민주연합 도종환 의원이 고(故) 신효순, 심미선 양의 12주기 추모음악회에 참석하여 추모비에 국화꽃을 헌화하고 있다.
ⓒ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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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도종환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의 추모시 낭송 순서가 있었다. '길'이라는 제목의 추모시는 효순·미선뿐만 아니라 세월호 희생자들의 넋을 함께 기리는 시였다. 

시 낭송 후 도종환 의원은 "이 나라가 아픔을 잊어버리고 싶어한다"며 "하지만 눈물이 우리에게 하던 말을, 눈물이 우리 얼굴 위에 쓰던 젖은 글씨를 어떻게 잊느냐"고 말했다. 도 의원은 "눈물의 힘과 슬픔의 힘을 모아서 세상을 바꾸자"고 말했다. 주최측은 "아직 도종환 시인이 추모시를 다듬고 있는 중"이라며 "완성될 때까지 전문을 공개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의원실 보좌진과 함께 온 김광진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작년과 재작년에 이어 올해도 참석했는데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며 "효순·미선양이 살아있었으면 딱 나 정도의 나이다, 원래 숨 쉬고 있었어야 할 사람들이 묻힌 것이 얼마나 슬픈 일인가"라고 말했다.

이어 김 의원은 "하지만 슬픈 것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게 막는 것이, 그분들의 슬픈 죽음보다 더 슬픈 일"이라며 "국민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대한문 앞에 분향소를 설치하겠다고 하니 경찰이 막았다, 국회의원이 나서니까 그제야 허가를 해줬다"고 안타까워했다.

중학교 1학년 학생 "무척 슬프다는 것 하나만큼은 분명하다"

모든 연주가 끝난 후 추모음악회에 참석한 모든 사람들이 일어서서 한 사람씩 손에 국화꽃을 들었다. 참석자들은 효순·미선 추모비에 국화꽃을 꽂으며 헌화했다. 엄마의 손을 붙잡고 함께 온 김소흔(13)양은 "기억은 나지 않지만 2002년에 엄마가 나와 함께 촛불 시위에 나선 것으로 안다"며 "세월호 참사와 겹치면서 많은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김양은 "머리가 복잡해서 정확하게 내 감정을 표현할 수는 없지만 무척 슬프다는 것 하나만큼은 분명하다"고 얘기했다. 

참석자들은 이후 다과와 함께 담소를 나눈 후 내일 행사를 위해 추모비를 트럭에 옮기는 것으로 이날 음악회를 마무리 지었다. 추모음악회는 고(故) 심미선·신효순 양 12주기 추모행사의 일환으로 열렸다. 13일 오전 11시에는 당시 사고가 발생했던 경기도 양주시에서 효순·미선로(路) 선포, 표지판 설치 등을 포함한 현장추모제가 예정되어 있다. 이어 평통사는 오후 3시부터 서울 대한문 앞에서 효순·미선양을 기억하기 위한 분향소 설치 및 운영을 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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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5행사 분산 개최하는 6.15남측위 이창복 의장

“내용과 정신은 함께하는 행사 되도록” 6.15행사 분산 개최하는 6.15남측위 이창복 의장
김치관 기자  |  ckkim@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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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06.13  09: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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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15공동선언 14주년을 맞아 이창복 6.15남측위원회 상임대표의장과 12일 서울 시청 인근 한 커피숍에서 인터뷰를 가졌다. [사진 - 통일뉴스 박귀현 기자]

6.15공동선언 14주년 기념일이 다가오고 있지만 2008년 금강산대회를 마지막으로 6년째 6.15민족공동위원회가 주최하는 남북.해외 공동행사는 분산 개최를 면치 못하고 있다.

가장 답답한 당사자는 아마도 민간통일운동단체의 총결집체인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6.15남측위원회)일 것이다. 정부는 최근 6.15남측위원회가 신청한 개성 실무접촉을 위한 방북신청마저 불허했다.

이창복 6.15남측위원회 상임대표의장은 12일 <통일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결국 분산 개최하는 결과가 됐는데 참 불행한 일”이라며 “통일을 앞당기는데 걸림돌이 되는 조치”라고 비판했다.

6.15남측위원회가 15일 오후 2시 서울 서대문 독립공원에서 분산 개최하는 14주년 기념행사에 대해서는 “형식은 단독으로 하는 셈이지만, 그 내용과 정신은 함께하는 행사가 되도록 노력하고 있다”며 “남북.해외 3자가 공동으로 합의한 공동성명을 낼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공동성명에 대해 “아직 문안은 확정되지 않은 상태”라면서 △남과 북의 관계개선을 촉구하고, △한반도 평화를 위해 서로 노력하자고 다짐하고, △일본의 극우반동적인 군국주의화를 경계하는 내용이 담겨질 것으로 예상했다.

6.15남측위원회의 이후의 활동 계획에 대해서는 오는 9월 북측 대표단이 참여하는 인천 아시안게임에 공동 응원단을 구성해 공동 응원을 펼치는 것과 일제시기 강제 징용.징병자들에 대한 일본정부의 사죄와 배상을 받아내는 활동을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6.15남측위원회 본부 중심의 사업은 각 지역본부와 부문본부를 방문해서 상황을 청취하면서 조직과 조직 간의 결합력을 제고하는 일에 중점을 두어왔다”면서 “6.15남측위원회 본부가 6.15와 10.4 등 계기적 투쟁을 하는 조직패턴을 벗어나지 못했는데 이제는 상시적 활동체제로 전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사무실도 얻어 보고, 상근자도 배치해 보려고 한다”고 말했다.

또한 진보정당과 재야단체, 이른바 진보진영에 대해 내부 분열 문제를 우선적인 문제점으로 꼽고 “조직의 통폐합이 이뤄져야 하고, 통폐합이 안 되면 연대활동이라도 강고하게 이뤄내서 활동해야 한다”면서 “우리는 정말 허심탄회하게 반성하면서 주어진 일들을 열심히 해야”한다고 말했다.

세월호 사건 이후 우리 사회의 근본적인 변화에 대한 열망이 높아진 상황에 대해서는 “대결 국면을 포기하고 북쪽의 경제투자를 활성화시키고 결국 8천만 민족의 화해협력 방향으로 간다고 하면 우리 사회가 통일과 관련돼 상당한 변화들이 생기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현 정권으로 하여금 정책을 변화시키도록 촉구하는 것, 그러면서 통일의 길을 넓혀나가는 것, 이런 것들이 현실적인 방안 아닐까 생각한다”고 고민의 일단을 밝혔다.

다음은 이창복 6.15남측위원회 상임대표의장과 12일 오후 1시 서울 시청 인근 한 커피숍에서 가진 6.15공동선언 14주년 기념 인터뷰 내용이다.

“결국 분산 개최, 참 불행한 일이다”

   
▲ 이창복 의장은 일성에 "지난 1년, 정말 답답한 한해였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사진 - 통일뉴스 박귀현 기자]

□ 통일뉴스 : 6.15공동선언 발표 14주년을 맞았다. 소회는?

■ 이창복 상임대표의장 : 지난 1년, 정말 답답한 한해였다. 새로운 정권이 들어서면서 남북문제에 대해서 정책 전환을 예상했는데 전혀 빗나갔다. 남북관계가 경직된 상태를 유지하고 있어 답답하고 힘을 얻지 못한 상황에 있다. 그러나 우리 내부적으로는 조직을 추스르고, 조직과 조직 간의 결합력을 제고하는 일을 해온 한해였다고 생각한다.

□ 5.24조치 등을 이유로 민간교류가 차단당해 올해도 6.15민족공동위원회의 공동기념행사가 열리지 못하고 있다. 먼저 올해 공동행사 추진 경과를 소개해달라.

■ 6.15북측위원회에서 남북.해외 3자가 함께하는 공동행사를 개성에서 하자는 제안이 왔고, 그것을 위해 실무접촉을 하고자 했는데, 정부의 협력을 받아내지 못해 이뤄내지 못했다. 그래서 결국 분산 개최하는 결과가 됐는데 참 불행한 일이다. 통일을 앞당기는데 걸림돌이 되는 조치다.

□ 분산 개최되는 올해 6.15 기념행사에 대해 소개해달라.

■ 올해는 6.15남측위원회가 형식은 단독으로 하는 셈이지만, 그 내용과 정신은 함께하는 행사가 되도록 노력하고 있다. 장소는 서대문 독립공원에서 15일 오후 2시에 열린다. 행사가 끝나면 시청역까지 행진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천여 명 정도가 참가할 것으로 예상하지만 그날 행사도 많아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 분산 개최되는 올해 기념행사의 주요한 메시지는 무엇인가?

■ 우선 남북.해외 3자가 공동으로 합의한 공동성명을 낼 것이다. 그 속에는 남과 북의 관계개선을 촉구하는 내용이 들어갈 것이고, 한반도 평화를 위해 서로 노력하자는 것과, 일본의 극우반동적인 군국주의화를 경계하는 내용이 담겨지지 않을까 예상된다. 아직 문안은 확정되지 않은 상태다.

□ 정부의 계속된 불허로 사실상 남북교류나 공동행사 등이 가로막혀 있다. 돌파하거나 우회할 수 있는 대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 돌파라든가 우회라는 말을 안 쓰고 자연스럽게 공동행사가 되면 얼마나 좋겠나. 그렇게 안 됐을 때 돌파해 내는 방법도 염두에 두고 있다. 그런데 우리들이 대정부 투쟁을 해봤지만 우리들의 힘이 약했을 때는 왕왕 소수 정예화되어 가는 과격한 행동을 하게 된다.

그러나 소수 정예화된 과격한 행동 전략을 쓰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 아니라 생각해서 우리들의 힘을 키워서 그 힘에 의해서 정부에 영향을 주고 정부를 변화시키는 방향으로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정부가 자기들의 생각대로만 갈 수 없다고 판단할 수 있도록, 대중의 힘을 모아 저항해야 한다는 것이 나의 기본적인 생각이다.

그리고 물론 우회하는 방법도 생각할 수 있다. 사실은 해외에서 만난다든지 학술세미나를 해외에서 한다든지 이런 방법으로도 할 수 있겠으나 그렇게 하는 것은 최선의 방법은 아니다. 될 수 있으면 정책의 변화와 함께 우리가 남북관계를 정상화시킬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고자 한다.

□ 주어진 상황을 돌파한다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 같다. 실제로도 최근 그러한 시도나 성공을 보지 못한 것 같다.

■ 돌파가 어려운데, 우리가 과거의 활동 행태를 보면 돌파 중심의 행동이었다. 그런데 그때는 그렇게 싸울 수밖에 없었고 싸워왔다. 우리 스스로의 평가는 소수정예화 되니까 과격한 방법으로 싸우게 됐고, 그 결과 희생이 상당히 많았다. 물론 성과도 없잖아 있었지만 더 많은 대중과 함께, 더 많은 시민과 함께 하기는 어려웠던 경험을 되살려가면서 많은 국민대중과 함께 민중과 함께 해낼 수 있도록 하려고 한다.

인천 아시안게임 공동응원단 구성

   
▲ 지난해 7월 5일 6.15민족공동위원회는 중국 베이징에서 공동위원장 회의를 갖고 공동보도문을 발표했다. 그러나 역시 이 자리에서 합의한 8.15공동행사는 성사되지 못했다. 왼쪽부터 김완수 6.15북측위원회 위원장, 이창복 의장, 곽동의 6.15해외측위원회 위원장. [자료사진 - 통일뉴스]

□ 최근 공동행사가 성사되지 못하자 6.15남측위원회가 뭘 하고 있는지 잘 안 보인다. 최근 6.15남측위원회가 중점을 두고 진행하고 있는 사업은 무엇인가?

■ 조용한 가운데서도 전혀 움직이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정중동의 활동양태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6.15남측위원회 본부 중심의 사업은 각 지역본부와 부문본부를 방문해서 상황을 청취하면서 조직과 조직 간의 결합력을 제고하는 일에 중점을 두어왔다.

이제 우리가 하려고 하는 것은 인천에서 개최되는 9월 아시안게임에 북의 축구단부터 경기단체들이 오는데, 그때 공동으로 응원단을 구성해서 함께 응원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일본과 관련된 문제인데, 징용.징병 문제에 대한 조사부터 확대하고 철저히 해서 배상을 받는 운동, 그리고 일본의 사과를 받아내는 운동을 관련된 단체들과 함께 펼쳐나갈 수 있도록 계획하고 있다. 반드시 사죄와 배상까지 받아내려 한다.

지역과 부문에서는 학술본부는 학술세미나를 몇 번 개최하고 정책토론을 벌여서 좋은 정책을 개발해서 제공할 수 있고, 광주나 전북본부에서는 통일마라톤대회를 대중적으로 열어서 성공하는 사례가 있다. 청년학생본부에서는 6.15통일문학상을 시상해서 많은 청년학생들을 결집시키는 운동을 하고 있다.

짧은 시간에 다 거론할 수 없지만, 여성본부는 남북과 해외가 모여서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는 회의도 해왔다. 이처럼 아주 괄목할만한 활발한 활동은 못했지만 조용한 가운데 조직을 끌어안으면서, 확대해나가면서 활동을 해오지 않았나 평가한다.

특히 저희들이 교육훈련사업을 열심히 하려고 했는데, 진보연대를 보면 자체적으로 수백 명씩 모여서 연찬회도 하면서 활동을 한다. 그런 것을 보면 조직을 강화시키고 확산시키는데 가장 좋은 방법이 교육이다. 이것을 본부차원에서도 그렇고 다른 지역본부 차원에서도 열심히 하도록 권고하고 있고 진행하고 있다.

□ 6.15남측위원회에 소속된 각 부문본부나 지역본부는 굉장히 포괄적인 조직이다. 언론본부만 하더라도 한국기자협회, 한국인터넷기자협회, 한국PD협회 등을 모두 망라하고 있지만 대북 보도를 보면 형편없다. 지역이나 부문이 포괄하고 있는 범위나 규모에 비해서 우리 사회에서의 영향력이나 조직화 정도가 너무 낮지 않은지 냉정한 평가가 필요한 것 같다.

■ 그래서 내가 조직과 조직 간의 결합력을 제고시켜야겠다고 강조했다. 조직형태를 보면 큰 조직이다. 그 조직을 좀더 견고하게 건설해서 대중적인 사업을 열심히 할 수 있도록 유도해 내야한다. 그래서 대중의 힘을 끌어안는, 그래서 통일 열기도 고양시키고 정부에 대해서 큰 목소리를 낼 수 있을 때 정책의 변화까지 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조직은 단군 이래 최대 조직이라고 하는데,(웃음) 그런데 활동은 아주 미미한 활동을 하고 있다. 나를 비롯한 지도부의 책임도 있겠지만 우리의 현실이기도 하다. 6.15남측위원회 본부가 6.15와 10.4 등 계기적 투쟁을 하는 조직패턴을 벗어나지 못했는데 이제는 상시적 활동 체제로 전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사무실도 얻어 보고 상근자도 배치해 보려고 한다.

그런데 이게 하루아침에 되는 게 아니더라. 또 돈만 있다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니더라. 물론 돈도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 자체 내의 결집력, 활동할 수 있는 강한 의지가 필요하다. 이런 것이 갖춰지고 재정적인 문제가 수반될 때 국가적인 일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아무튼 계기적 투쟁의 활동을 해왔다고 본다면, 앞으로는 상시적인 활동, 운동주체로서 정착해 가야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사무실도 얻어 보고 상근자도 배치해 보려고 한다”

   
▲ 12일 <통일뉴스>와의 인터뷰 직후 6.15학술본부가 주최한 토론회에 참석해 격려사를 하고 있는 이창복 의장. 그는 지역과 부문본부의 활동에 중요한 의미를 부여했다. [사진 - 통일뉴스 박귀현 기자]

□ 원래 재야운동 조직이 전공 아니었나? 전통 재야운동을 해온 경험이 많아서 그런 부분에 대한 기대가 있지 않나?

■ 조직을 통해 성장해온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데, 하여튼 그렇게 노력하려 한다. 그런데 사실은 내 뜻만 가지고는 안 되더라. 구성원들이 다 고유의 사업을 하는 단위가 있기 때문에, 그 사업을 해가면서 시간을 내서 하는 일이라서 아주 시간맞추기도 어렵고 그렇다.

그러나 이런 제약된 조건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극복해내고 더 열심히 일을 해야 될 것이다. 더구나 이 시기에 있어서 통일운동은 얼마나 중대한 과제인가. 민족적인 과제를 놓고 마치 부업으로 하는 식으로 일을 하면 되겠나. 우리가 전업체제로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 세월호 참사 이후 우리 사회 전반을 근본적으로 바꾸어야 한다는 여론이 높다. 남북관계와 통일 분야에 있어서는 어떤 근본적 변화가 필요하다고 보나?

■ 어려운 질문이다. 정치적으로 통일운동적인 사고를 한다고 하면, 이 정부는 안보위기를 조장시키려 한다. 그러니까 대결국면으로 가는 정책을 버리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경제적으로 보면 우리 경제의 활로는 대북 경제협력 밖에 없다. 그래서 북쪽 지역에 투자도 하고 노동자들이 가기도 하고 그래서 경제를 활성화시키는 쪽으로 가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상황에 있다. 대북투자를 활성화시키는 방향으로 가야한다고 생각한다.

사회적으로 보면 남북 간의 이질성을 해소하는 문제도 있지만 8천만 민족이 대동단결해서 화해와 협력의 국면으로 가는 그러한 노력이 우리로부터 시작돼 아주 열심히, 적극적으로 추진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대결 국면을 포기하고 북쪽의 경제투자를 활성화시키고 결국 8천만 민족의 화해협력 방향으로 간다고 하면 우리 사회가 통일과 관련돼 상당한 변화들이 생기지 않을까 생각한다.

□ 우리 사회가 뻔히 다 알고 있고, 너무나 상식적인 것조차도 잘 안 고쳐지는 고질적인 문제가 많다. 통일 영역에서도 마찬가지로 예를 들어 남북경협을 하면 좋은 건데 안 하고 있다. 아주 뻔하고 쉬운 문제들이 실제로는 굉장히 높은 장벽에 둘러쌓여 있어 잘 안 되고 있다. 현존하는 정치지형, 사회.언론.문화 환경에서 6.15남측위원회가 앞장서서 우선적으로 변화시켜야 될 부분은 무엇이라고 보나?

■ 좋은 제안이다. 우리가 현재까지는 남북.해외 3자가 공동행사를 하는 것도 안 되는 마당에 더 다른 것을 생각할 수 있는 여유를 못 가진 것도 사실이다. 물론 그런 분야에 대해서도 우리가 섭렵하고 고민해내야 하다.

아직은 그러지 못했는데 이러한 상황 속에서 결국은 정치 분위기, 정치 환경을 바꿔야 되는 것 아닌가. 큰 것은 정권의 교체인데 그것은 앞으로 몇 년 더 있어야 하고, 현재 이 상황 속에서는 현 정권으로 하여금 정책을 변화시키도록 촉구하는 것, 그러면서 통일의 길을 넓혀나가는 것, 이런 것들이 현실적인 방안 아닐까 생각한다.

통일운동과 사회의 근본적인 개혁을 생각해본다면 우리들의 마음도 바뀌어야 한다. 이를테면 안 되는 건 전부 정부 탓이고 우리 탓은 없는 것인 양 생각하는 것도 너무 안주하는 소극적인 생각이 아닌가 생각된다. 우리가 활동해왔던 것을 냉정하게 성찰해 가면서 앞으로 해야 할 일들을 열심히 해야 설득력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래서 정부를 변화시켜 나가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시간이 걸리는 것 아닌가 생각된다.

□ 이번 지방선거 결과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나?

■ 많은 사람들이 세월호 참사가 야권에 긍정적으로 영향을 줬다고 생각하고 사실 그런 측면이 있지만 그것이 ‘대통령의 눈물’이니, ‘도와주세요’ 이런 흐름 때문에 상당히 희석된 것도 사실이다. 이번에 진보교육감이 대거 진출했고, 광역자치단체장도 반은 우리가 차지한 걸 보면 국민들은 상당히 야권에 힘을 실어줬다고 판단하고 싶다.

특히 그런 판을 짜는데 40대 엄마들의 분노가 발동하지 않았을까 생각하는데, 자녀들의 교육에 대해서는 진보를 택했고, 일상적인 생계문제, 주택문제를 생각하면 보수를 택한 양면성이 있지 않느냐 본다. 그리고 젊은층들이 과거보다는 동참했다고 보여진다.

국민들이 야권에 상당히 힘을 실어준 결과라고 보고 싶다.

“우리들의 마음도 바뀌어야 한다”
 

   
▲ 이창복 의장은 상황을 돌파하거나 우회하기 보다는 국민의 힘을 모아 정부의 정책을 변화시키는 방향을 견지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박귀현 객원기자]

□ 선거 이후 박근혜 정부는 인사를 통해 이후의 정국 흐름을 예고했다. 김관진 국방장관을 안보실장에, 이병기 주일대사를 국정원장에 내정했다. 이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나?

■ 제자리걸음하는 변화는 없다. 변화는 진전이 있어야 한다. 사람을 바꾸어야 하는데 그 성향의 사람을 그대로 두는 인사는 변화를 주는 인사가 아니다. 이번에 총리 후보자를 지명한 것이라든지, 국정원장 후보자 지명한 것을 봐도 변화를 기대할만한 인사가 아니라는 점에서 답답한 점이 있다.

□ 군 출신이 물러나고 남북관계가 풀려야 한다는 기대가 있었는데, 다시 군 출신이 안보실장이 됐다.

■ 강한 성격을 가지고 있는 김관진 국방장관이 안보실장에 내정된 것은 변화를 주려고 하는 노력이 전혀 없는 것 없는 것 같다. 그리고 뒤에서 좌지우지하는 비서실장도 교체대상이어야 하는데 교체한다는 이야기는 들리지 않는다. 국민의 여론을 무마시키는 정도로만 생각하는 것 아닌가. 그것도 똑바로 했으면 좋겠는데 변화를 주는 인사들이 나타나지 않아서 걱정이다.

□ 진보정당과 재야운동이 예전에 비해 현저히 위축돼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에 대한 평가와 대안이 있다면?

■ 진보정당이나 재야, 합쳐서 진보진영으로 표현해보자. 진보진영이 ‘몰락했다’, ‘위상이 위축돼 있다’는 표현을 많이 한다. 그 이유가 뭔가 생각해보면, 우선 진보진영 내의 분열이 있다. 통합진보당과 정의당, 몇 개의 정당이 있지 않나. 사실 통합진보당을 비롯해서 진보정당들이 하나가 돼서 더 큰 목소리를 낼 수 있었으면 좋겠는데 그렇지 못하고 있다.

재야도 보면 통일운동권과 시민운동권이 나뉘어 있고, 그 시민운동권 안에서도 여러 단체가 갈라져있다. 물론 연대활동을 하기는 하지만. 민주주의 사회에서 다양한 위상을 가지고 사회활동을 하려고 하는 여러 단체들이 나타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힘을 모으고 역량을 키우는데 있어서 거의 같은 뜻으로 활동하는 단체들이라고 한다면 조직의 통폐합이 이뤄져야 하고, 통폐합이 안 되면 연대활동이라도 강고하게 이뤄내서 활동해야 한다. 그래서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도록 돼야 하는데 아직 그 점이 상당히 약한 상태에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지극히 반성해야 한다. 남의 탓하기 전에 ‘너희들은 뭘 잘했어?’, ‘뭘 잘하고 있어?’라고 물어본다면 아무 것도 이야기할 게 없는 상황에서 우리는 정말 허심탄회하게 반성하면서 주어진 일들을 열심히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 최근 미국은 북핵문제 해결에 관심이 없는 듯 하고, 오히려 일본과 북한이 느닷없이 만나고 있다. 국제정세에 대해서 어떻게 전망하나?

■ 일본하고 북한하고 요새 접촉을 통해서 북한 제재를 약화시키면서 납치활동을 조사하기로 합의했는데, 이것은 한.미.일 간의 합의사항이 약화되는 거다. 이것이 뭘 의미할까. 결국은 북핵 저지를 위해서 힘을 합치자 했지만 국익을 위해서는 다 제 갈길 가는 거다. 제 나라를 위한 일을 하고 있다.

이럴수록 우리는 남북 간에 협력하고 교류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이게 우리 민족의 이익을 보장하고 남북 간에 평화와 한반도의 안정을 정착시킬 수 있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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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사모 괴롭혔던 김영한, 청와대 민정수석으로

 


박근혜 대통령이 청와대 수석 9명 중 '민정', '정무', '경제', '교육문화' 등 4명의 수석 비서관을 교체했습니다. 그중에서 우리가 눈여겨볼 인물이 '김영한 민정수석' 내정자입니다. 

경북 의성 출신으로 대구 경북고를 나온 김영한 민정수석 내정자는 전형적인 공안검사 출신입니다. 김 내정자는 사시 24회(사법연수원 14기)로 대구지검 공안부장과 대검찰청 공안1,3과장, 서울지검 공안1부장, 수원지검장, 대검 강력부장을 역임했습니다.
 
김영한 민정수석이 어떤 인물인지를 통해 박근혜 정부의 권력이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 노사모를 괴롭혔던 정치 검사' 

김영한 민정수석 내정자가 수사했던 사건 중의 하나가 '희망돼지 저금통' 모금 운동을 주도했던 배우 문성근 씨와 노사모 회원을 불법선거운동 혐의로 기소했던 일입니다. 
 

 

 


2002년 대통령 선거운동이 시작되면서 노사모 회원들을 중심으로 '희망돼지 저금통' 모금 운동이 시작됐습니다. 돈이 많이 드는 정치의 부패 고리를 끊기 위해 시작된 새로운 정치후원금 방식과 변화였습니다.

그러나 대통령 선거가 끝나자마자 검찰은 '희망돼지 저금통'과 관련된 배우 문성근 씨와 노사모 회원 등을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기소했습니다. 

당시 서울지검 공안1부 (김영한 부장검사)는 "피고인이 사회적 지위를 이용해 전국을 순회하며 희망돼지 저금통의 배부를 주도, 선거법 위반의 책임이 매우 크다'며 징역 1년 6월에 추징금 20만 원을 구형하기도 했습니다. 

2003년 서울지법 형사합의23부는 '희망돼지 저금통'에 대해 무죄를 선고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희망티켓 부분에서는 불법 유인물 배포와 불법 정치자금을 모금한 혐의가 인정된다며 벌금 450만원( 선거법 위반 400만원+정치 자금법 50만원)에 추징금 20만 원을 선고하기도 했습니다. 
 

 

 


시간이 흘러 2006년 8월 27일, 노사모 회원들이 청와대에 초청받아 노무현 대통령과 오찬을 함께했습니다. 

당시 노사모 회원 중의 한 명이 노무현 대통령의 환영사에 대해 답사를 했고, 이 답사가 끝나자 노무현 대통령은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았습니다. 

 

<노사모 회원의 답사>

참 와보고 싶었습니다.

참 만나보기 원했습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분, 우리가 지지하는 분이 일하시는 모습을 직접 보고 싶었습니다.
불가능해보였던 승리를 쟁취했던 그 날로부터 한참 지나 이제야 오게 되었습니다. 
반갑습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여기 오신 분들은 정말 부패없는 새로운 정치를 갈망하고 원칙과 상식이 통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헌신하셨던 분들입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대접받기 원치 않았고 보상을 원하지도 않았습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단 한가지 대통령님(노짱님)의 성공과 우리의 승리입니다.
낡은 시대의 유물을 청산하고 대한민국을 완전히 새롭게 만드는 것 우리 사회가 더 진보하는 것 그것이 우리의 목표입니다. 우리가 다시 승리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우리는 노짱님에게 새로운 용기를 드리러 왔습니다.
여기 오신 분들을 대표해서 말씀드립니다.
힘내십시오. 사랑합니다

 


노무현 대통령 입장에서 자신을 지지하고 후원해주던 사람들이 선거가 끝나고 받은 고통에 대해 아무런 도움을 줄 수 없었던 점이 미안했었나 봅니다. 어쩌면 다른 대통령처럼 그들을 챙겨주지 못한 고지식한 자신의 모습에도 변하지 않는 그들을 보면서 마음이 너무 아팠을 것입니다. 

지금은 정치 후원금을 온라인으로 모금하고 펀딩을 모집하는 일이 자연스럽게 됐지만, 당시만 해도 노사모 회원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던 정치 후원금 소액 모금은 획기적인 일이었습니다.

당시 검찰이 노사모 회원을 기소한 모습을 보면, 문제가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소액 다수 모금'은 선관위가 오히려 권장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노무현을 지지하는 형태라며 고발했고, 검찰은 기소했습니다. 

정치 검찰의 전형적인 노무현 길들이기의 일환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 매년 해오던 장학금 지급, 진보교육감이라 기소했던 정치 검사' 

2010년 6.2 지방선거가 끝나고 교육과학기술부는 수원지검에 김상곤 교육감 수사를 의뢰합니다. 

김상곤 교육감이 교육감 선거를 노리고, 2009년 12월에 1억 9천여만 원의 장학증서를 학생들에게 수여했다는 이유 때문입니다. 

 

 

 


당시 수원지검 공안부 (지검장 김영한)는 2010년 11월 26일 경기도 교육청 재무과를 압수 수색을 하고, 12월 1일 김상곤 교육감을 '지방교육자체에 관한 법률 위반'(선거법상 기부행위 금지 규정)로 불구속 기소합니다. 

수원지검 공안부의 이런 기소는 도저히 이해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김상곤 교육감이 장학금을 지급했던 행사는 전임인 김진춘 교육감 시절인 2007년부터 시행되었던 사업이었기 때문입니다. 

수원지법 재판부는 ""피고인이 경기도교육감의 지위에서 장학증서 수여식에 참석해 장학증서를 전달하고 격려사를 한 행위는 건전한 상식과 사회통념 등에 비춰 볼 때 정상적인 업무행위로, 사회상규에 어긋나지 않는다"며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검찰의 '김상곤 교육감 소환'에 대한 법학교수 성명서 >
- 김상곤 교육감에 대한 소환통보를 철회하라 

검찰은 2010년 1월 11일 김상곤 경기도교육감에 대하여 소환을 통보하였다. 2009년 12월 10일 교육과학기술부가 '시국선언' 교사의 징계를 유보한 김상곤 교육감을 형법 제122조의 직무유기죄로 검찰에 고발했기 때문이다. 앞서 교과부는 작년 여름 초ㆍ중등 교사들의 시국선언이 국가공무원법 제66조 제1항의 집단행위 금지 조항을 위반했다며 16개 시도 교육청에 관련 교사들의 징계를 요청하고, 동시에 그들을 검찰에 국가공무원법 제66조 제1항의 위반으로 직접 고발한 바 있다. 그리고 작년 11월 검찰은 관련 교사들에 대한 고발사건의 조치결과를 경기도를 비롯한 각 시ㆍ도 교육청에 통보하였다. 

교과부와 검찰의 이러한 조치에 대하여 경기도교육청은 사건 초기부터 관련 사실조사와 법률검토를 거쳐 "다수의 법률전문가들은 교사들의 시국선언은 표현의 자유에 해당한다는 법적 의견을 제시하고 있으므로 국가공무원법 위반에 대한 사법부의 최종 판단이 나올 때까지 징계를 유보하겠다"는 입장을 공개적으로 천명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사건을 담당하고 있는 수원지검 공안부는 2009년 12월 22일 김상곤 교육감에 대해 소환조사를 벌일 방침을 밝히고, 급기야 2010년 1월 11일 김상곤 교육감에 대하여 소환을 통보하게 된 것이다. 

우리 사회의 인권보호와 민주주의 발전을 염원하는 우리 법학교수들은 아래와 같은 이유로 김상곤 교육감에 대한 검찰의 소환은 부당하기 때문에 소환을 철회할 것을 강력히 요구한다. 
<이하 중략>


김상곤 교육감이 장학증서를 수여한 일은 경기도 교육청의 기존 계획을 그저 승인 절차에 따라 벌인 일에 불과했습니다. 선거를 위한 기부행위가 아니었음을 검찰도 충분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수원지검 공안부는 무리하게 기소를 했습니다. 

수원지검 공안부(지검장 김영한)가 시국선언 참가 교사에 대해 징계를 유예했던 김상곤 교육감을 직무유기 혐의로 기소한 점 (이후 무죄가 선고)이나 다른 교육청에서도 유사한 장학금 수여 등이 이루어졌지만 유독 김상곤 교육감만 문제 삼았던 점을 보면, 진보 교육감을 향한 표적 수사라는 사실을 명확히 알 수 있습니다. 

'김영한은 왜 검찰을 떠나야 했는가?' 

검찰 조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법연수원 기수를 알아야 합니다. 이 사법연수원 기수를 통해 검찰 조직의 움직임과 그들의 행태를 짐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수원지검 지검장으로 근무하던 김영한은 2011년 MB정권 후반 검찰 고위직 인사에서 대검 강력부장으로 임명됩니다. 대검차장으로 14기 동기인 채동욱이 임명되면서 그 밑에 김영한을 임명한 건 사퇴하라는 무언의 압력입니다. 

검찰총장을 제외하고 최고참에 속하는 14기 중에서 김영한이 고검장 승진에 탈락한 가장 큰 이유는 수원지검장 시절 김상곤 교육감을 '지방교육자체에 관한 법률 위반'(선거법상 기부행위 금지 규정)으로 무리하게 불구속 기소했다가 무죄 선고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 사건으로 검찰 내 입지가 좁아졌고, 승진에서 누락됐습니다. (김영한은 당시 사표를 제출하려고 했으나 한상대 검찰총장의 만류로 1년간 대검 강력부장으로 근무하게 된다.)
 

 

 


김영한 민정수석 내정자는 2012년 7월 18일자로 대검 강력부장을 사임하고 법무법인 바른의 변호사로 개업합니다. 법무법인 바른은 MB정권에서 '여권 전담 법률 대리인'으로 불리며 급성장한 법무 법인입니다. 

2012년 3월 23일 김영한이 신고한 재산은 서초구 한신플러스 전세권과 강남구 도곡동 우성아파트, 예금 5억1천9백여 만원이었습니다. 김영한은 2011년에 비해 재산이 5천여만 원 줄었다고 신고했습니다. 

정무수석 내정자가 얼마큼 전관예우를 받아 재산이 늘어났는지 아닌지가 앞으로 밝혀질 것으로 보입니다. (현재까지 재산신고는 되지 않은 상태)
 

참고: 보통 법조계 인사들은 인사 이동이 있기 직전에 사직하고 다음 해 인사이동이 있기 1년 동안 전관 예우를 받는다.


아이엠피터는 김영한을 청와대 민정수석으로 임명한 이유가 그가 갖춘 능력보다 검찰 조직을 잘 다룰 수 있는 사법연수원 14기라는 점과 권력의 내부에서 멀어졌기에 다시 그 권력에 충성을 다할 수 있는 자세를 봤다고 봅니다. 

' 박근혜 정부의 권력 컨트롤 타워 김기춘' 

김영한 민정수석 내정자를 보면 그다지 민정수석에 적합한 인물은 아닙니다. 그런데도 그가 민정수석에 임명된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을 중심으로 하는 권력 컨트롤 타워를 완성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번에 교체된 청와대 정무수석은 조윤선 여성가족부 장관입니다. 장관이 차관급 정무수석으로 내려간 것입니다. 권력 면에서는 승진했습니다. 

'조윤선 정무수석'은 박근혜 대통령의 입으로 불리던 사람입니다. 이제는 정무수석으로 박근혜 대통령의 의중을 그대로 전달하는 역할을 맡을 것으로 보입니다. 


'교육문화수석'으로 임명된 송광용 전 서울교대 총장은 '정수장학회 이사' 출신입니다. 뉴라이트 한국현대사학회와 친분이 있는 송 내정자는 진보교육감이 대거 당선됐기에 이들을 견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임명됐을 것입니다. (원래 박근혜 정부 교육문화수석은 문화분야 출신)

원래 '이병기 국정원장' 내정자는 국정원이 아닌 비서실장으로 거론되던 인물입니다. 그런데 김기춘 비서실장이 유임되고 국정원장에 내정됐습니다. 친박으로 남재준 전 원장보다 충성심이 강하고, 북풍 및 정치 공작의 경험을 높이 샀을 것입니다. 

'김영한 민정수석' 내정자는 '김진태 검찰총장'과 사법연수원 14기 동기입니다. 이전 홍경식 민정수석보다 (사법연수원 8기) 더 친밀하게 검찰조직을 상대할 수 있게 됐습니다. 
 

 

 


김영한 민정수석은 권력에 충성을 다하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을 짓밟고 그들을 고통 속에 몰아넣었습니다. 출세가 막히자, 변호사로 일하다가 이제는 대한민국 핵심 권력이라 할 수 있는 민정수석으로 내정됐습니다. 

문창극 총리 후보자가 문제가 아닙니다. 대독 총리급은 그다지 의미가 없습니다. (어쩌면 그에게 여론의 관심을 쏟게 하고 있을 수도...) 

[정치] - '대선개입-북풍공작' 이병기가 국정원장이라니

'김기춘 비서실장'을 중심으로 '이병기 국정원장', '김영한 민정수석' 등이 박근혜 대통령을 향한 충성심으로 똘똘 뭉쳐 그 어떤 일이라도 펼칠 수 있는 권력 시스템이 완성됐다는 점이 무섭습니다. 


청와대는 안전 컨트롤 타워가 아니라며 세월호 책임에서 벗어났습니다. 안전은 책임지지 않으면서 권력의 컨트롤 타워는 너무 견고하게 잘 구축되어 있습니다. 

그 모든 비난 속에도 흔들리지 않고 권력 중심부에서 이 모든 일을 기획하고 조정하는 김기춘 비서실장과 박근혜 대통령을 보면, 무섭다 못해, 공포 영화를 보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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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재판] 3등항해사가 본 건 잠수함?

급부상한 세월호 침몰원인
 
장유근 | 2014-06-12 21:00:54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급부상한 세월호 침몰원인
-세월호재판, 3등항해사가 본 건 잠수함?-

“사고 해역은 
협수로로 물살이 빠르고,

반대편에서 배한척이 올라왔다.

충돌하지 않도록 레이더와 전방을 관찰하며
무전을 듣고 있었다”

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code=seoul&id=20140612500120&keyword

지난 10일, 광주지방법원에서 열린 세월호 재판에서 세월호 3등항해사 박모(25·여)씨 변호사가 주장한 사실이다. 박모 씨의 주장사실에 따르면 세월호가 급변침한 이유는 세월호 맞은 편(반대편) 에서“배 한척이 올라왔다”는 것이다. 보통의 선박과 다른 물체가 바다 속에서 ‘솟구친 것’으로 미루어 박 씨의 주장 속 의문의 물체는 잠수함일 가능성을 배제 할 수 없다. 박 씨의 이 같은 주장은 천안함 사건에서 언급된 ‘제3부표’와 비슷한 것으로 세월호 침몰원인이 급부상하고 있는 모습이다.

세월호의 AIS 항적 등을 고려할 때 이 의문의 선박은 세월호의 침몰원인을 밝혀 줄 새로운 단서가 아닌가 싶다. 세월호 참사 초기 생존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세월호 선수 쪽으로 쿵~하는 소리와 함께 배가 좌현쪽으로 급격히 기운 것으로, 세월호의 침몰이 단순한 과적 때문이 아니라 제3의 물체와 추돌해 일어난 교통사고란 점을 배제해서는 안 된다. 사실이 그러하다면 상상 조차 힘든 ‘학살의 의혹’이 점차 설득력을 얻는것이며, 박근혜의 ‘대통령 코스프레’는 비극적인 종말을 고할 게 틀림없어 보인다.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15&table=dream_jang&uid=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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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 10 만인 대회 '청와대 향하던 시민 - 경찰 충돌 ... 60 여명 연행

Sewol 페리 비극 '을 기념 해 .10 전국 인민 행동에 참여하는 시민은 Sewol 페리 피해자를 기념 중앙 서울 청계 광장에서 정부의 서투른 대응을 비난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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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출현 이후 생물 멸종 속도 1000배 빨라져

 
김정수 2014. 06. 11
조회수 2000 추천수 1
 

평가 생물의 31%가 멸종위기, 100만종 가운데 해마다 100종씩 멸종하는 셈

알려지기도 전에 사라지는 생물종 많아, 스마트폰 이용한 시민과학자 참여 중요

 

bio1.jpg» 남아메리카 코스타리카의 고지대에 서식했으나 1989년 이후 멸종된 ‘골든 토드’. 사진=국제자연보전연맹(IUCN)

 

모리셔스의 ‘도도’, 아이티의 ‘너배서 락 이구아나’, 코스타리카의 ‘골든 토드(금두꺼비)’. 이들의 공통점은 이제는 지구에 존재하지 않는 생물이라는 것이다. 모두 인간 때문에 멸종했다는 운명도 같다.

 

박근혜 대통령이 최근 공공기관의 방만한 경영을 비유하는데 불려나오기도 한 새 도도는 이들 중 가장 먼저(17세기) 멸종됐다. 인간의 무분별한 사냥 탓이다.

 

너배서 락 이구아나는 사람들이 서식지 주변에 염소와 고양이 등을 풀어놓자 19세기 중반 이후 멸종됐고, 골든 토드는 서식지 환경오염 등으로 1989년 이후 자취를 감췄다.
 

bio2.jpg» 국제자연보전연맹(IUCN)이 멸종 위급종(CR)으로 분류한 아프리카 동쪽 마다가스카르섬의 ‘타잔 카멜레온’. 사진=IUCN

 

인간에 의한 생물 서식지 파괴, 환경오염, 외래종 도입 등은 지구 곳곳에서 생물종의 멸종을 불러와 생물다양성에 가장 큰 위협이 되고 있다. 지구의 생물한테 다가온 멸종 위협이 어느 정도인지는 국제자연보전연맹(IUCN)이 야생생물종의 멸종 위험 정도를 평가한 ‘적색목록’을 통해 엿볼 수 있다.

 

적색목록은 세균류를 제외한 지구의 생물 기록종 190만여종 가운데 포유류·조류·어류·파충류·양서류·절지동물·식물 등 7만1576종의 상황을 평가한 것이다. 이 가운데 14.7%인 1만549종을 높은 멸종 위협을 받고 있는 ‘취약종’, 9%인 6451종을 매우 높은 멸종 위기에 놓인 ‘위기종’, 6%인 4286종을 극히 높은 멸종 위기에 있는 ‘위급종’으로 분류했다.

 

이미 ‘멸종’됐거나 ‘야생에서 멸종’ 상태로 판정된 종도 1.1%인 800종에 이른다. 분류군별로 보면 양서류의 41%, 파충류의 39%, 포유류와 어류의 23%, 조류의 13%가 멸종 위협에 처한 것으로 평가됐다.
 

bio3.jpg» 인도양의 모리셔스섬에 서식하다 17세기에 멸종된 ‘도도’의 모습. 사진=IUCN

 

이런 상황에서 지난달 30일 유명 과학저널인 <사이언스>에 지구의 생물종 멸종이 지금까지 추정한 것보다 훨씬 대규모로 이뤄지고 있음을 시사하는 연구 결과가 실렸다. 학계와 생물다양성 보호운동 단체들의 눈길이 쏠렸음을 물론이다.
 

미국 듀크대의 생물학자인 스튜어트 핌 교수가 이끈 국제 연구팀은 생물종 멸종이 인간이 지구에 나타나기 이전에 비해 1000배가량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고 밝혔다. 이런 멸종 속도는 이제까지 과학자들이 예상한 속도보다 10배나 빠르다.

 

핌 교수는 연구 결과 발표 뒤 언론과 인터뷰에서 “우리는 여섯 번째 대멸종에 직면해 있다”며 “그것을 피할 수 있을지는 우리의 행동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다섯 번째 대멸종은 6600만년 전에 있었다. 이때 공룡을 비롯한 당시 생물종의 75%가 지구에서 사라졌다.
 

bio4.jpg» 남대서양 세인트헬레나섬에 자생했으나 2003년 멸종된 ‘세인트헬레나 올리브’. 사진=IUCN

 

연구팀은 생물종 수가 불확실하고 멸종 위험이 평가된 종도 기록된 종의 극히 일부에 불과한 점을 고려해 멸종 추세 분석에 ‘멸종률’이라는 개념을 적용했다. 멸종률은 100만종년 당 멸종수(extinctions per million species-years·E/MSY)를 뜻한다.

 

이렇게 계산한 1900년 이후 현재까지 조류의 멸종률은 132E/MSY(100만종 가운데 매년 132종)이다. 1900년 이후 멸종 판정을 받은 조류는 기록된 1230종 가운데 13종이다. 이 조류 멸종 종수인 13을 조류 1230종이 각각 처음 기록된 이후 지금까지 경과한 햇수의 누계인 9만8334종년(평균 경과년도 80년)으로 나눈 뒤, 100만을 곱해 멸종률을 계산한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계산한 생물종의 평균 멸종률은 100E/MSY(100만종 가운데 매년 100종)이었다. 이는 인간이 지구에 출현하기 전의 배경 멸종률 0.1E/MSY(100만종 가운데 매년 0.1 종) 보다 1000배나 높은 수치다. 
 

bio5.jpg» 남아메리카 파나마에서 17㎞ 떨어진 에스쿠도섬에 사는 멸종 위급종 ‘피그미 세발가락 나무늘보.’ 사진=IUCN

 

기록종보다 훨씬 많으리라 추정되는 미기록종을 고려하면 100E/MSY라는 멸종률도 상당히 저평가된 것일 수 있다는 게 연구팀의 분석이다. 지금까지 기록된 생물종은 세균류를 제외하고 190만여종이지만, 생물학자들 가운데는 미기록종까지 포함한 전체 생물종의 수가 1000만종이 넘거나, 곤충만 500~600만종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는 이들도 있다.

 

미기록종은 기록종에 비해 서식 범위가 좁을 가능성이 높아 서식지 교란과 같은 인간의 위협에 더 취약할 수 있다. 연구팀은 “많은 종들은 기록도 되기 전에 사라져버렸거나 사라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현재 생물종을 멸종위기에서 구하기 어려운 요인 가운데 하나는 이들의 상태를 평가할 자료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점이다. 청자고둥과 생물의 경우 기록종 632종 가운데 6.5%가 멸종 위협에 시달리는 것으로 분류돼 있지만, 자료 부족으로 아예 평가 대상에 오르지도 못한 종이 14%나 된다.
 

bio6.jpg» 한반도 서해안을 찾는 철새로 세계에 200마리 밖에 남지 않은 멸종 위급종 ‘넓적부리 도요’. 사진=IUCN

 

연구팀은 자료 부족을 메우는데 온라인 데이터베이스와 아이내처럴리스트(iNaturalist)와 같은 스마프폰 앱을 활용한 일반 대중의 적극적인 참여가 중요한 역할을 해 줄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아마추어 시민과학자들이 평소에 만나지 못하던 생물종의 사진을 찍어 위치 정보와 함께 올리면, 전문 연구자들이 종합·분석해 다양한 분류군에서 풍부한 평가 자료를 축적하는 것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김정수 선임기자 jsk21@hani.co.kr

  

유엔식량농업기구의 경고

“세계 나무 종 절반 생존 위협” 

 

유엔식량농업기구(FAO)가 지구 생태계 가운데 특히 산림의 생물 다양성과 관련해 별도의 위험 경보를 울렸다.
 

유엔식량농업기구는 3일 지구 전역의 산림 유전자원의 상태를 점검한 <지구 산림 유전자원 상태> 보고서에서 세계의 숲에 있는 나무 종의 절반이 목초지와 경작지로 전환, 과도한 이용, 기후변화의 영향 등에 의해 위험에 처해 있다고 진단하고 각국 정부에 산림 생물다양성 보전 노력을 확대·강화하라고 촉구했다.

 

유엔식량농업기구가 지구 전체의 산림 유전자원 실태와 관련한 종합적인 보고서를 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보고서를 보면, 8만~10만여종으로 추정되는 세계 산림 수종 가운데 2400여종만이 각국 정부 차원에서 관리를 받고 있다. 여기에서 증식과 보존을 위한 프로그램이 적용되고 있는 수종은 700여종이며, 유전자 정보 분석까지 이뤄진 것은 500~600종으로 전체의 1%에도 못미친다.

 

이에 따라 86개국이 보고한 산림의 나무 8000여종만 놓고 보더라도 절반가량이 종의 생존에 위협을 받는 상황에 놓여 있다는 것이다. 산림 다양성에 대한 위협은 가난한 나라들에 집중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1990년과 2010년 사이에 가장 많은 숲이 사라진 나라는 브라질·인도네시아·나이지리아·탄자니아·짐바브웨·콩고민주공화국·미얀마·볼리비아·베네수엘라·오스트레일리아 등이다. 대부분 저개발국가나 개발도상국이다. 
 

보고서는 “숲의 유전적 생물 다양성은 숲에서 나오는 생산물의 생산성을 풍부하게 만들고, 기후변화를 포함한 환경 조건의 변화에 적응하고 질병에 저항력을 강화시켜 숲을 보호하는 구실을 한다”며 “숲의 생물 다양성을 보호하려면 우선 각 나라가 전체 수종의 분포 위치를 표시하는 지도를 작성하는 일이 시급하다”고 밝혔다.

김정수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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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기필마로 JTBC 간 손석희, 그가 쫓겨나면..."

 

[이영광의 거침없이 묻는 인터뷰 126] 'GO발뉴스' 이상호 기자14.06.11 20:46l최종 업데이트 14.06.11 20:46l이영광(kwang3830) 

세월호 침몰은 한국 언론에 큰 영향을 끼쳤다. 특히 공영방송은 세월호와 함께 침몰했다는 말까지 들었다. 

급기야 KBS 노조는 길환영 사장 퇴진을 주장했고, 이사들은 지난 5일 이사회를 열어 사장 해임 제청안을 7:4로 가결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10일 KBS 이사회의 길환영 사장 해임 제청을 받아들여 길 사장을 정식으로 해임했다. 

기자가 '기레기'를 넘어 흡혈귀 취급받는 현실. 이런 상황을 어떻게 봐야할까? 이상호 <GO발뉴스> 기자를 지난 8일 이한열기념관에서 만나 의견을 들었다. 

길환영 KBS 사장 해임에 대해 이 기자는 "더 큰 싸움을 위한 작은 성취"라며 "곧 이어질 사장선임과 이에 대한 투쟁이라는 두 번째 싸움을 위한 최소한의 동력을 확보했다고 본다"고 평가했다. 

또한 이 기자는 최근 호평을 받는 JTBC 뉴스보도에 대해 "상업주의 언론은 자유로운 이점도 있으나, 시장과 권력의 이해가 조율된 요즘 세상에서는 더욱 간교하게 시민사회의 이해를 짓밟을 수 있다는 점에서 위험하다"고 경고했다. 

그는 손석희 사장에 대해서도 "JTBC는 손 사장 한 명 쫓아내면 이내 '삼성방송'으로 회귀할 게 명백하다"며 "그러나 단기필마로 JTBC에 들어가 기대 이상의 역할을 하는 손 사장의 성취에 대해서는 대한민국 언론계가 충분한 평가를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다음은 이상호 기자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 길환영 사장이 해임됐는데요. 
"더 큰 싸움을 위한 작은 성취라고 봅니다. 모처럼 손을 잡고 싸운 KBS 양대 노조는 향후 닥칠 두 번째 싸움을 치르기 위한 최소한의 동력을 확보했습니다. 두 번째 싸움이란 곧 이어질 사장 선임과 그 결과에 대한 투쟁을 말합니다. 박근혜 정권은 일방통행식 시스템을 바꾸지 않을 게 명백합니다. '국가개조'라는 명분으로 수구적 철권통치를 강화할 겁니다. 공영방송 KBS 사장을 포기할 이유가 만무하지요. 공정방송을 위한 적임자보다는 정권의 '위기'를 돌파해 낼 안정감 있는 인사를 선임할 겁니다."

- KBS가 파업을 시작할 땐 MBC 노조의 전철을 밟지 않을까 우려됐지만, 결과는 달랐어요
"세월호 참사 후 일명 '기레기' 언론에 대한 비판 여론이 컸어요. 박 정권도 이런 비판 여론을 무시하기 힘들었을 겁니다. 향후 세월호 국정조사 대상에 KBS 길환영 사장이 예정돼 있는데, 그걸 최대한 차단하고 싶었을 겁니다. 정권의 보도통제 매뉴얼과 길 사장의 정권 눈치 보기 행태가 백일하에 드러날 것이고, 그렇게 되면 국정조사의 칼끝이 결국 청와대로 향할 테니, 사전에 연결 고리를 끊어야지요. 이번 길 사장 해임은 편향보도, 청와대 옹호 보도에 대한 반성이 아니라 청와대 '그분'에 대한 경호차원에서 이뤄진 미세조정에 불과합니다."

- 이제 관심은 차기 사장에게 쏠리는데요.
"국민TV 김용민 PD가 <미디어오늘> 민동기 편집장이랑 하는 팟캐스트가 있어요. 거기서 '<뉴스타파> 김용진 대표를 사장으로, 최경영 기자를 보도본부장으로 임명하면 인정하겠다'는 말을 했더라고요. 그 정도면 저도 인정합니다. 하지만 그건 정말 꿈같은 이야기입니다. 길환영보다 훨씬 애매한 인물을 내려보낼 겁니다." 

- KBS 노조 파업 때 MBC 노조는 움직임이 적어 비판을 받았는데요. 
"MBC는 이명박 정권을 거치면서 해고와 징계가 일상화됐죠. 공정언론 추진 세력의 감행 의지가 크게 약화됐습니다. 무엇보다 MBC 내부의 공정보도 투쟁을 위한 인적구성이 망가졌습니다. 무려 50~60명에 달하는 '구사대' 기자들이 이미 보도국 주요 출입처와 보직을 장악하고 있습니다. 사실상 파업의 효용성이 제거된 조직이 됐습니다."

"현장 기자생활 20년... 이번 참사에서 평정심 무너지더라"

- 세월호 참사 직후 현장에 바로 내려가셨잖아요. 
"하루 반나절 동안 지켜보기만 했어요. 처음에는 '다 구조하겠지'라는 생각만 했다가 점점 '이거 아닌데...' 하며 패닉 상태에 빠졌어요. 현장 기자생활 20년을 하면서 웬만한 대형 사건, 사고를 겪어봤어요. 기자에게 제일 중요한 게 평정심을 유지하는 거예요. 그런데 이게 무너지더라고요. 

300명에 달하는 단원고 학생들이 시시각각 죽어가는데 아무런 대응을 못 하는 구조 당국을 보면서 제가 숨이 막히는 고통을 경험했습니다. 겨우 정신을 차리고 난 뒤, <고발뉴스> 전 스태프들에게 짐 싸라고 지시했습니다.  

사실, 저는 작년 말에 머리 쪽에 문제가 생겨서 입원한 후 세월호 참사가 발생하기 직전까지 방송 현업에 복귀하지 못했습니다. 사무실에 나가 후배들 기사를 봐주고, 취재 기획 등을 도와주고 있었어요. 다시 현장의 스트레스를 감당할 엄두가 나지 않아서요. 그런데 사건이 터지고 나니, 좌고우면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본능적으로 내려갔어요. 그렇게 다시 현업에 복귀했죠."

- 과거와 이번 참사 보도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이번 사고는 본질적으로 두 가지 점이 과거와 다릅니다. 먼저, 비민주적 정권에 예속·유착된 언론이 정치적 성격의 대형 참사를 어떻게 보도하는지 보여줬어요. 언론사적으로 대단히 중요한 사례가 될 겁니다."

- 또 다른 점은 뭔가요? 
"아주 중요한 차이점인데요. 세월호 참사는 참혹한 '리얼 서바이벌' 상황이었습니다. 구조대가 제한된 시간 안에 최대한 생존자를 구해야 하는 미션이 떨어졌는데, 골든타임을 넘기도록 한 사람도 못 구했죠. 골든타임이 지나가는 장면이 생중계 돼 전 국민이 가해자가 된 듯한 엄청난 트라우마를 겪었습니다.  

이런 경우는 흔치 않습니다. 10년 전 이라크 파병 관련 김선일씨 사건 기억하시죠? 그때도 충격이 상당히 컸어요. 그런데 이번에는 '테러'의 전 과정이 생중계됐고, 피해자가 한 명이 아니라 300여명이었습니다.  

해난사고라는 '대국민 테러'가 발생했는데 탑승자 전원이 시시각각 사망했죠. 사고 현장을 눈앞에서 지켜봐야만 했던 국민들은 가장 끔찍한 잔혹영화를 강제로 관람하고 나온 뒤의 분노를 느끼고 있습니다. 문제는 영화관 밖으로 나와도 더 참혹한 현실이 끝나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는 거지요.

지금 국민들은 노무현 정권 시절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가 말했던 것처럼 '정부의 무능과 무책임에 분노'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정권은 도리어 국민들을 상대로 '너희를 개조하겠다'고 합니다. 야당은 세월호 사태 50일이 넘도록 혹시 불똥이 자기들 쪽으로 튈까 두려워 찍소리도 못 냈죠. 이 정도면 정부의 무능과 무책임을 넘어 국가 부재 수준입니다."  

- <연합뉴스> 기자를 욕하기도 했는데, 당시 어떤 상황이었나요. 
"저는 약 20년 동안 공영방송에서 방송한 사람입니다. 욕을 했다는 건 중요한 방송 사고지요. 실수입니다. 제가 통제하지 못 한 거죠. 그건 바람직한 게 아닙니다. 당시 상황을 말씀드리자면, 피해 가족들은 사실상 언론에 고립된 상태였습니다. 정부의 구조대책이 일방적으로 홍보됐고, 가족들의 의사는 전혀 반영되지 못 했으니까요.  

어머니들이 나서서 당시 현장의 이주영 안전행정부 장관과 대화 자리를 어렵게 마련했는데, 저에게 사회를 봐달라고 요청하시는 거예요. 순간 당황했지만, 중재자로서 해야할 역할을 위해 잠시 (기자인) 저를 내려놨던 기억은 명확합니다. 제 인생에서 잊을 수 없는 순간이었습니다."   

- 취재 도중 병원에 입원했던 것으로 아는데요. 
"별 거 아니었어요. 잠을 못 자서요. 제가 머리가 아팠다고 말씀드렸잖아요." 

- 작년에 가벼운 뇌경색 진단을 받았다고 했는데, 그거였나요?
"아니에요. 전조증상을 느꼈어요. 한 번 아파봤기 때문에 그게 다시 오는 걸 느낄 수 있거든요. 말이 어눌해지고, 어지럽고, 집중력이 극도로 약해지는... 잠을 자야 하거든요. 스트레스도 아주 안 좋은데... 그런데 사고 이후 두세 시간 이상 잠을 못 잤어요. 종일 바닷바람 맞으며 분노와 울분이 넘쳐나는 기사를 만지다 보니, 다시 탈이 난 거죠. 팽목항을 떠날 수 없어 진도 한방병원에서 치료를 받았어요."  

- 그런데 어떻게 다시 바지선을 타게 됐어요?
"어쩔 수 없었어요. 이종인 알파잠수기술공사 대표가 실종자 가족들의 요구로 세 번째로 사고 해역에 들어가기로 했습니다. 당초 두 번 모두 해경 측의 비협조와 노골적인 협박으로, 바지선을 대지도 못하고 쫓겨나왔는데요. 언론은 죄다 '실패'라고 기사화했거든요. 이번에도 방해가 예상됐고 심지어 이종인 대표에게 위해를 가할 것이라는 첩보까지 입수했습니다. 진실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달리 고민할 여지가 없었습니다. 더구나 이 대표가 '무섭다'며 함께 있어달라는 문자까지 보내는 바람에 그냥 달려갔죠."  

"손석희는 충분히 평가해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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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O발뉴스> 이상호 기자.
ⓒ 미디어 몽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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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인터뷰에서 손석희 앵커의 JTBC행을 강하게 비판하셨어요. 최근 세월호 보도로 JTBC 뉴스가 호평을 받았습니다.
"JTBC를 포함한 종편에 대한 이명박 정부의 특혜, 삼성 일가의 미디어 장악 구상에 따른 JTBC의 전략적 역할론에 대한 비판은 유효합니다. JTBC는 삼성 등 자본과의 유리한 관계를 세월호 보도에서 십분 활용했다고 봅니다.  

과거 권위주의 시절 언론들이, 시장에 의존해 일부나마 미국식 상업주의 자유언론을 표방한 적이 있었는데, (JTBC는) 그런 사례라고 봅니다. 상업주의 언론은 정치권력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울 수 있지만, 시장과 권력의 이해가 조율된 요즘 세상에서는 더욱 간교하게 시민사회의 이해를 짓밟을 수 있다는 점에서 위험합니다. 

고문하는 고등계 형사보다, 회유하는 조선인 통역이 악질적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당장은 달콤한 말에 끌리겠지만, 결국 저들의 각본대로 독립운동 조직을 와해시키는 역할을 할 겁니다. 본질적으로 자본의 이해는 시민의 이해와 궤를 달리 할 수밖에 없습니다. 시민의 힘으로 자본의 이익 추구방식을 변화시키지 않으면, 미디어를 앞세운 자본의 조작은 계속된다는 게 역사적 교훈입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대중이 JTBC와 손석희라는 자유 언론인을 분리해서 평가하길 권합니다. 손 사장은 시장과 정치권력에게 장악당한 MBC에서 벗어나 JTBC를 선택해 자신의 자유언론에 대한 실현 의지를 지켰고, 지금까지 그의 실험은 성공적인 듯 보입니다. 

지금은 엉망이 된 MBC가 보여주듯, 언론은 (상품을 만드는) 공장이 아니라 '사람 비즈니스'를 하는 곳입니다. 잘 나가던 공영방송이 몇몇 언론인들이 축출된 뒤 신뢰도가 추락하는 것처럼, JTBC는 손 사장 한 명이 쫓겨나면 이내 '삼성방송'으로 회귀할 게 명백합니다. 단기필마로 JTBC에 들어가 기대 이상의 역할을 하는 손 사장의 성취에 대해서는 대한민국 언론계가 충분한 평가를 해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이영광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http://blog.daum.net/lightsorikwang)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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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기로 본 박근혜의 속임수와 정치전쟁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4/06/12 09:56
  • 수정일
    2014/06/12 09:56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거짓과 속임수에 대항하는 진검승부…이 진검승부의 결과는 7.30재보선
 
임두만 | 2014-06-12 08:44:17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김영삼 정부에서 안기부 2차장을 지내고 이회창을 거쳐 박근혜까지 권력 지근거리에 있었던 이병기 주일대사가 남재준 후임으로 국정원장 후보자로 내정되었다. 이에 야당인 새정치연합은 ‘차떼기 불법자금 배달자’를 국정원장으로 내정했다면서 박근혜 대통령을 공격했다.

그러자 친박 홍문종은 ‘차떼기 배달자’는 좀 너무하지 않느냐?며 “야권에게 섭섭하다. 인사는 대통령께서 나라를 잘 하시기 위해 하는 것인데 긍정적 측면에서 봤으면 한다”고 말했다. 똥묻은 개가 겨묻은 개 나무랜다고 그동안 사사건건 안철수만 물고 늘어진 자신의 발언은 생각하지도 않고 그저 박근혜라면 다 옳단다. 그래서 나는 이병기와 차떼기가 어떤 것인지를 찾아서 포스팅을 한다. 야권이 너무한 것인지 박근혜가 너무한 것인지의 판단은 글을 읽는 사람 몫이다.

2002년 불법 대선자금 사건은 2003년 8월 말 검찰이 SK 비자금을 수사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검찰은 9개월 동안 진행된 사건 수사를 통해 한나라당 823억 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밝혀냈다. 이때 ‘차떼기’란 용어가 등장했다. 불법 정치자금 전달방식은 ‘사과상자’를 대신해서 ‘차떼기’, ‘책떼기’라는 신종 불법자금 수수방법이 사용되었던 것인데, 돈의 액수도 엄청나지만 그 수법도 가히 엽기적이었다.

SK는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100억 원을 실은 승용차를 한나라당 최돈웅 의원에게 넘겨주었고, (주)LG는 150억을 실은 트럭을 경부고속도로 만남의 광장 휴게소로 몰고 가서 이회창 후보의 법률고문이었던 서정우 변호사에게 차를 넘겨주었다. 삼성은 책처럼 포장한 112억 원어치의 무기명채권을 서정우 변호사에게 넘겨주었다.

2004년 5월 19일자 한겨레는 4대 재벌을 위시한 11개 주요 기업이 정치권에 준 불법대선자금과 이에 대한 검찰의 형사처벌 현황을 보도했다. 이 보도에 따르면 삼성 370억 원, 엘지 150억 원, 현대차 115억 원, SK 110억 원, 한화 50억 원, 대한항공 25억 원, 롯데 16억 원, 금호 18억 원, 대우건설 16억 원 부영 6억 원, 두산 2억 원 등의 불법 대선자금을 조성, 정치권에 전달한 것으로 나타난다. 이 중에서 823억 원이 한나라당의 최돈웅, 김영일 의원과 서정우 변호사 등에게 전달되었고. 한나라당은 이를 대선자금으로 사용했다.

그러나 이 엄청난 사건을 밝혔으면서도 당시 검찰은 솜방망이 처벌을 했다. 한마디로 처벌이라고 할 수도 없었다. 정치인들로는 한나라당의 서청원·신경식·김영일·최돈웅 의원 등이 불법대선자금과 관련한 주역으로서 구속되었으며 노무현 쪽에서는 정대철 이상수 안희정 등이 구속된 정도였다. 그리고 이들 외에 몇몇 정치인들과 기업인들이 기소되기도 했다.

당시 대선후보였던 이회창도 불법대선자금 모금 개입 혐의에서 벗어났다. 다만 잔금 은닉에 관여한 사실이 드러났다고만 발표되었다. 검찰은 이회창 후보가 2003년 1월 대선자금 중 삼성채권 154억 원이 남았다는 보고를 받고 측근인 서정우 변호사를 시켜 보관하도록 지시했다는 것이다. 서 변호사는 이 중 138억 원을 보관하다가 검찰 수사가 진행된 2003년 11월 삼성에 돌려줬다고 한다. 그러나 검찰은 이도 기소하지 않았다.

이 사건에 대해 이회창은 2003년 12월 “기업에서 500억 원가량의 불법 대선자금을 썼다”며 “대선 후보이자 최종 책임자였던 제가 처벌받아야 하며, 제가 모든 짐을 짊어지고 감옥에 가겠다”는 사과성명을 발표했으나 감옥에는 가지 않았다. 당시 검찰은 이회창 후보가 포괄적으로 범죄수익은닉 규제법을 위반한 것으로 판단했지만 돈을 직접 받거나 보관하지 않아서 가벌성이 약한 점 등을 감안해 불입건 조치했다.

국정원장 후보자로 발표된 이병기는 이 사건 수사의 검찰발표에 등장한다. 당시 이회창 후보의 특보였던 이병기가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탈락한 이인제 의원 쪽 김윤수 공보특보에게 “한나라당에 유리한 역할을 해달라”며 5억원을 직접 전달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당시 검찰은 이병기를 단순 전달자로 판단해 기소하지 않았다. 이후 이병기는 2004년 총선 때 한나라당 비례대표 국회의원 공천을 신청했지만, 이런 전력 때문에 탈락한 바 있다. 당시 당을 책임진 사람이 박근혜이며 박근혜는 차떼기를 반성한다고 여의도에 천막을 치고 “한번만 용서해 주십시오”로 선거운동을 했다.

2004년 박근혜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장은 박세일 서울대 교수를 당의 공천심시위원장으로 하여 차떼기와 관련된 인사들의 공천은 모두 막았다. 이는 자신의 천막당사를 통한 반성 모드, ‘개헌 저지선만 막아주세요’라는 읍소 모드, ‘용서하시고 한번만 더 도와 주세요’라는 구걸 모드…이 3가지 모드로 선거를 치르는데 꼭 필요한 조치였다. 따라서 이병기는 공천을 받을 수 없었다. 결국 박근혜가 내친 것이다. 박근혜에게 내침을 당한 것이다.

하지만 이는 박근혜의 ‘속임수’ 작전이었다. 그렇기에 이병기는 지난 2007년 대선 당시부터 ‘박근혜 이너서클’에 속한 멤버로 활동했다. 2007년 당내 경선 캠프에서 선거대책부위원장을 맡았고, 지난해 대선 때도 당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소(현 여의도연구원) 고문으로 활용, 자신의 지근거리에서 보좌토록 했다. 그리고 당선된 뒤 잠시 주일대사로 피신시켰다. 권영세를 주중대사로 피신시킨 것과 똑 같은 조치였다. 국민들을 속일 때는 철저하게 숨기고 자신이 필요할 땐 극적으로 활용하는 기가 막힌 속임수다.

새누리당과 박근혜는 세월호 때문에서 지방선거에서 죽기 직전이었다. 그러자 다시 그 특유의 ‘속아주세요’ 모드가 나왔다. 이게 또 성공하여 극적으로 살아 난 박근혜가 다시 본격적 속임수 인재등용을 한 것이다. 속는 국민이 잘못이지만 어떻든 대단한 박근혜다.

따라서 여기서도 이제 야당의 실력을 가늠할 좋은 기회가 제공되었다. 이번 문창극 이병기 등용은 박근혜가 야당과 국민을 ‘무조건 속는 존재’정도로 판단함 때문이므로 속지 않고 걸러낼 실력이 과연 야당에게 있을 것인지를 가늠할 기회라는 말이다.

그래서다. 이번 총리 후보자와 국정원장 후보자는 박근혜와 그 패밀리의 정치생명만 걸린 것이 아니라 현 야당의 지도자인 김한길 안철수 박영선 등의 정치생명도 걸려있다.

이들을 걸러내면 야당 지도부가 살아날 것이고 박근혜 패밀리는 죽는 것이며, 반대로 이들이 용인되면 박근혜와 그 패밀리가 살아나고 야당 지도부는 죽게 될 것이다. 바야흐르 진검승부다. 거짓과 속임수에 대항하는 진검승부…이 진검승부의 결과는 7.30재보선에서 나타난다.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28&table=c_flower911&uid=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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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창극 '식민지배' 동영상 원본 보니. 더 기가 막혀

 
 

 

 


문창극 총리 후보자가 자신이 다니는 교회에서 했던 동영상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큰 파문이 일고 있습니다. 

KBS뉴스에서 보도한 영상을 보면 문창극 총리 후보자는 하나님은 왜 이 나라를 일본한테 식민지로 만들었습니까, 라고 우리가 항의할 수 있겠지, 속으로. 아까 말했듯이 하나님의 뜻이 있는 거야. 너희들은 이조 5백년 허송세월 보낸 민족이다. 너희들은 시련이 필요하다." 며 조선의 식민지배가 하나님의 뜻이었다고 말했습니다. 

단순히 KBS뉴스를 봤던 사람이라면 그의 말 자체에 경악을 금치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 KBS뉴스에 보도된 동영상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습니다. 

아이엠피터는 문창극 총리 후보자가 온누리교회에서 했던 1시간 4분짜리 동영상 원본을 모두 봤습니다. 1시간이 넘는 그의 강연을 들으면서, 과연 이런 가치관을 가진 사람이 대한민국 총리로 적합하냐는 물음을 가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이엠피터가 유튜브에 올린 문창극 총리 후보자 특강 동영상은 1시간 4분짜리 동영상 중에서 주요 발언을 4분 25초로 편집한 영상입니다. 

뉴스에 보도되지 않은 특강 주요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문창극 총리 후보자 특강 발언 내용>

'게으르고 자립심이 부족하고 남한테 신세지고 이것이 우리 민족의 DNA'

'(윤치호) 조선사람들은 공산주의가 딱 맞다. 체질상'

'정부가 세금 걷고, 나는 어떻게 하든 놀자'

'돈 버는 사람은 우리 것을 착취했다. 저 사람 것을 뺏어 우리가 먹자'

'조선 사람의 피에는 오히려 공산주의가 맞다'

'이조 말기 민족들의 피에는 공짜로 놀고 먹는 것이 몸이 박혀 있다'

'통일 한국을 주셨다면, 한국은 자동적으로 공산주의가 됐을 것이다'

'우리 체질로 봤을 때 한국한테 온전한 독립을 주셨으면 공산화 됐을 밖에 없었다'

'너희들의 게으름,죄 아직 깨끗하게 안 됐어'

'분단이 됐으니 한국이 이 정도로 살게 됐다'

'한국전쟁은 미국을 붙잡기 위해서였다'

'(경제발전)일본만 다 따라가면 된다'

'왜 요즘 자살이 많습니까? 대통령부터 다 죽습니까? 나라가 부패해지고 정신이 썩었기 때문'

'세계 문명 국다들이 사회 근본을 기독교로 선택, 기독교 때문에 일반 백성도 높은 도덕성을'


문창극 총리 후보자의 강연 내용을 보면 철저한 월남 보수 기독교인의 가치관을 담고 있습니다. 

그가 가진 개인의 신앙을 폄하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승만의 말을 인용해서 기독교가 세계 문명국가의 근본이 됐고, 그로 인해 일반 백성도 높은 도덕성을 가졌다는 그의 말은 2014년 한국 기독교의 타락을 목격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그다지 와 닿지가 않습니다. 

문창극 총리 후보자의 동영상을 놓고 서로 다른 역사의 관점과 시각을 가질 수가 있습니다. 방송에 나오지 않은 동영상을 보면서 개인적으로 판단하시고, 과연 그가 대한민국 총리로 적합한지 스스로 반문해보시기 바랍니다. 

'역사란 단순히 자기 자신과 자연의 기록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현재에 부피를 주고 인류의 지도자들에게 겸손을 주게 되는 지식입니다. 국가도 개인과 마찬가지로 그 자체의 과거를 의식하지 못한다면, 미래에 대한 목표도, 우리를 붕괴시키려는 외세에 대한 방패도 없이 표류하게 됩니다.'

(L.B 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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