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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여 청소년들 집회 개최…“유가족에 상처 준 정치권 반성하라” 촉구도

거리로 나선 청소년들 “유가족 의사를 반영한 특별법 제정하라”

300여 청소년들 집회 개최…“유가족에 상처 준 정치권 반성하라” 촉구도

윤정헌 기자 yjh@vop.co.kr 발행시간 2014-08-12 22:23:02 최종수정 2014-08-13 09:13:08
세월호 특별법 위해 모인 청소년들
청소년들이 12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집회를 열고 세월호 유가족이 요구하는 기소권과 수사권이 보장된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고 있다.ⓒ양지웅 기자
 

"세월호 참사 문제가 국회로 가면서 왜곡되는 모습을 보고 참기 힘들었어요. 세월호 참사에 가장 순수하게 다가갈 수 있는 사람들은 우리 고등학생들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이런 자리를 준비하게 됐죠."
-고교생 세월호 집회를 제안한 정모(19)군

세월호 참사 119일째인 12일 오후 6시. 유가족 단식 농성장이 있는 광화문 광장에는 아직 앳된 모습이 역력한 학생들이 속속 모여들기 시작했다. 단식장 한켠을 가득 메운 학생들은 6시30분께 집회를 열고 "'제대로 된' 특별법을 제정하라"고 촉구했다.

페이스북 커뮤니티 페이지 '고등학생도 알 건 안다'를 통해 이곳에 모인 300여명(시민 포함 700여명)의 학생들은 '유가족 의사를 특별법 제정에 적극 반영하라', '수사권 기소권 없는 가짜 특별법 집어치워라' 등의 구호를 직접 쓴 손피켓을 들고 자리했다.

흔치 않은 학생들의 집회 모습에 광화문 광장을 지나던 시민들도 하나 둘 발길을 멈춰 섰다. 집회가 시작되자 단식장을 둘러싸고도 자리가 모자를 만큼 인파는 늘어났다.

세월호 청소년 집회 지켜보는 유가족 김영오 씨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30일째 단식농성 중인 세월호 유가족 김영오 씨가 12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청소년들을 바라보고 있다.ⓒ양지웅 기자

"생명을 괄시하는 풍조 속에 나온 세월호 참사"

이날 집회에 참석한 학생들은 준비해온 편지를 통해 생명보다 이윤이 중시되는 사회에 대한 규탄했다.

가장 먼저 마이크를 잡은 박의환 학생은 "초등학생도 이윤보다 생명이 중요하다는 말을 알고 있는데 일부 어른들은 이런 사실을 말하기 위해 이 자리에 나온 우리에게 선동돼 나왔다고 말한다"면서 "이윤보다 생명이라는 말이 선동이라면 우리는 선동당한 것이 맞다"고 성토했다.

박군은 또 "300여명의 친구들이 배와 함께 가라앉았는데 그것에 분노하지 않을 친구들이 어디겠냐"며 "우리는 생명이 우선인 세상을 만들기 위해 끝까지 가족들과 함께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연이어 무대에 오른 양지혜 학생도 "지금의 사회는 학생을 공부하는 기계로 만들고 노동자를 갈아끼울 수 있는 부품으로 생각하고 있다"며 "이번 세월호 참사는 생명을 괄시하는 풍조 속에 나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같은 발언이 이어지자 현장에 함께 한 시민들은 큰 박수로 지지와 성원을 보냈다.

청소년들, 제대로된 세월호 특별법 촉구
청소년들이 12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집회를 열고 세월호 유가족이 요구하는 기소권과 수사권이 보장된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고 있다.ⓒ양지웅 기자

"세월호 참사 119일, 사회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

학생들은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의 심경을 왜곡하고 비하하는 정치권의 무능함에 대해서도 강하게 비판했다.

김한율 학생은 "새누리당은 유가족을 폄하하는 발언을 스스럼없이 하며 국정조사 파행을 일삼았다"며 "특별법에 대한 허위사실을 유포해 유가족들을 모욕했다"고 꼬집었다. 이어 "새정치연합은 유가족 앞에서 새누리당 때문에 유가족이 원하는 특별법 제정을 하지 못한다며 도와달라고 외치다가 선거가 틀어지자 야합을 하기도 했다"면서 "이 한심하고 무능한 정치인과 정부 앞에 죽어가는 것은 힘없는 유가족들이었다"고 규탄의 목소리를 높였다.

김동찬 학생도 "세월호 참사 이후 119일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세상은 권력을 가진 사람들 때문에 아무것도 바꿀 수 없는 상황"이라며 "거대 언론들은 우리의 눈과 귀를 막는데만 급급했고 소위 지식인이라는 사람들의 망언은 끊이질 않았다"고 지탄했다.

세월호 유가족 여러분 사랑합니다
청소년들이 12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집회를 열고 세월호 유가족이 요구하는 기소권과 수사권이 보장된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가운데 시민들의 글이 적힌 노란 리본들이 보이고 있다.ⓒ양지웅 기자

"이제 우리 학생들도 행동해야 해야"

집회에 참석한 일부 학생들은 분노를 참지 못하고 학생들의 집단행동을 제의하기도 했다.

최준호 학생은 "태안 해병대 캠프 참사 1년만에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것은 정치인들이 청소년들에게 관심이 없기 때문"이라며 "이 모든 것이 근본부터 바뀌지 않는다면 이 같은 참사는 계속될 것이 불 보듯 뻔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는 정치인들이 청소년을 신경 쓸 필요가 없는 대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며 "더 이상 우리 청소년들이 무시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오늘과 같은 집회를 통해 우리의 목소리를 알려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등학생이라고 자신을 밝힌 한 학생도 "세월호 참사는 불의의 사고로 슬퍼하기만 할 일이 아니다"라며 "대한민국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우리가 서로 대화하고 모여 힘을 키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학생은 또 "경찰과 권력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우리가 뭉치는 것"이라며 "이젠 우리 학생들도 가만히 있지 말고 행동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청소년들, 세월호 유가족 폄하 수구꼴통 규탄
청소년들이 12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집회를 열고 세월호 유가족이 요구하는 기소권과 수사권이 보장된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고 있다.ⓒ양지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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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관계개선사업, 다시 시동 거는 것인가?

 
<분석과전망>대북의료지원, 제2차남북고위급회담 그리고 미국의 대북대화흐름
 
한성 자유기고가 
기사입력: 2014/08/12 [19:01]  최종편집: ⓒ 자주민보
 
 

우리정부가 북한에 대한 유화제스처를 잇달아 보이고 있어 주목을 끈다.

미국으로부터 확인되는 대북대화 움직임과 맞물리는 것으로 보여서 더욱 그렇다특히 북미대결전이 군사적 대결양상으로 치달으면서 8월 위기론이 현실화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깊어지고 있는 현실은 그 주목도를 더 높인다.

일각에서는 지난 2월에 진행되었다가 성과 없이 끝나고 만 남북관계개선사업에 우리 정부가 다시 시동을 거는 것일 수도 있다는 기대 섞인 전망까지도 조심스럽게 내놓고 있다.

 

통일부의 유엔을 통한 모자보건지원사업

 

우리정부가 북한에 대한 의료지원을 밝힌 것이 주목의 그 첫 자리였다. 11일이었다통일부가 나섰다. 1330만 달러대북지원 액수이다직접적인 대북지원은 물론 아니다북한 임산부와 영유아의 보건 상태를 개선하는 세계식량계획(WFP)과 세계보건기구(WHO)의 모자보건 지원 사업에 대한 지원인 것이다간접적인 지원인 셈이다.

 

유엔의 모자보건 지원사업은 산모와 영유아 건강에 중요하다는 1천일 동안 영양 및 보건 지원을 하는 패키지 사업이다산모와 영유아를 위한 영양식과 예방 접종 지원의료·보건시설 개선 및 관련 인력 교육 등을 주 내용으로 한다유엔이 각국으로부터 1억 달러의 기금을 모아서는 57년에 걸쳐 중장기적으로 추진해나가게 되는 사업이다.

 

통일부의 지원 결정은 유달리 주목을 끌었다그것이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3월 독일의 드레스덴 공대에서 한 이른바 드레스덴 제안에 포함되어 있는 '모자패키지(1,000days) 사업'과 별반 다르지 않아서이다.

 

당시박 대통령은 북한 주민들을 위한 인도적 지원을 확대하겠다고 밝히면서 '모자패키지(1,000days) 사업'을 유엔과 함께 펼쳐나가겠다고 천명했었다.

몇몇 전문가들이 드레스덴 제안이 구체적 실천 단계에 접어드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을 곧바로 내놓았던 이유이다북한이 드레스덴 제안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표시했다는 것을 근거로 삼아 낙관할 수는 없다 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중요한 의미를 부여하는 전문가들이 적지 않은 것이다.

조봉현 IBK 경제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이 대표적이다조 연구위원은 연합뉴스를 통해"북한도 민생 관련 사업을 김정은 제1비서가 챙기기 때문에 모자패키지 사업은 수용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한다"고 한 것이다.

 

국가안보실의 제2차 남북고위급회담 제의

 

우리정부의 대북 유화제스처는 제 2차 남북고위급회담을 제안하는 것으로 이어졌다.한 층 더 선명해진 셈이다같은 날이었다이번에는 국가안보실이었다국가안보실이 이날 오전 910분께 청와대 국가안보실 1차장인 김규현 수석대표 명의의 통지문을 북한에 날린 것이다.

 

전격적인 제의였다놀라운 것은 의제까지도 완전히 열어두고 있다는 것이었다추석 계기 이산가족 상봉 문제를 비롯한 쌍방의 관심 사항통지문에 적시되어있는 문구가 그랬다그동안 북측이 요구해 온 5·24조치 해제나 금강산 관광 재개 문제도 의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통일부가 직접 확인해주었다. 5·24조치 해제나 금강산 관광 재개 문제의 논의 가능성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이에 대해 "특정 의제는 안 된다고 배제하지 않는다"며 "북측이 그런 의제를 제기하면 충분히 논의될 수 있다고 본다"고 통일부당국자가 밝힌 것이다.

 

 

매우 주목된다그동안 정부가 북한이 5·24조치 해제나 금강산 관광 재개 문제를 제기했을 때 분명하게 선을 그어왔던 것에 비교하면 그렇다이번 남북고위급회담 제안을 전향적인 것으로 보게 하는 결정적 이유이다.

남북고위급을 북한이 수용한다면 그 자리를 통해 북한 선수단 및 응원단의 인천 아시안게임 참가 등에 대한 논의도 교착상태에서 빠져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8월 교황의 방한북한의 참가 가능성이 높은 9월 아시안게임 그리고 이산가족상봉

 

우리정부의 대북의료지원 결정과 제2차고위급회담 제의를 접하면서 많은 전문가들이 재빠르게 지난 2월을 떠올렸다.

남북이산가족상봉사업을 계기로 해서 남북관계개선사업이 모색되었던 때였다남북은 그때 판문점 우리 측 평화의 집에서 박근혜 정부 출범 후 첫 고위급 접촉을 갖고 남북관계 개선 사업을 진행하기로 했다상호 비방중상 중단과 이산가족 상봉 진행 등을 합의했었다.

곡절이 많기는 했다그렇지만 이산가족상봉사업은 성사되었다.

 

북한에 대한 의료지원 사업 결정에 이어 전격적인 제2차남북고위급회담 제의에 대해 많은 전문가들이 우리정부가 남북관계개선사업에 대한 재시동을 거는 것이 아닌가하는 기대 섞인 전망을 하게 된 것은 이 때문이다.

 

주변 환경의 모양새가 그 어느 때보다 좋아 보인다는 것을 그 근거로 들었다. 9월에 열리게 되는 아시안게임에 북한이 참여하려는 의사를 적극적으로 펼치고 있다는 것이 그 첫 번째이다두 번째는 8.15에 있게 되는 교황의 방한이다.

그 와중에 남북고위급 회담이 다시 열리고 그에 대한 성과로 민족의 명절인 추석을 계기로 이산가족상봉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지게 된다면 지난 2월 성과 없이 끝나고 만 남북관계개선사업이 다시 진행될 수 있다는 것이다누가 보아도 좋은 그림이다.

 

미국은 남북관계개선사업에 대해 어떤 태세를 취할 것인가?

 

그렇지만 전문가들은 현실이 그리 녹록치 않다는 것 또한 인정한다전문가들이 그 어느 때보다도 더 각별히 미국의 태세에 주목하는 이유이다.

남북관계개선사업이 성과적으로 진행되는데 있어 기본적으로는 대북대화에 대한 우리정부의 확고한 입장이 관건이지만 미국의 입장과 태도 역시 그에 못지않은 관건적인 요소가 된다.

 

지난 2월에 진행되었던 남북관계개선사업의 중단에서 확인된 것도 그것이었다당시 많은 전문가들이 남북관계개선사업에 대한 성과가 나지 않았던 원인을 미국에게서 찾았다.

구체적으로는 미국의 강도 높은 대북대결태세를 꼽았다남북관계개선사업에 대해 미국이 호응하기는커녕 오히려 대북대결성을 높이는 방식으로 적극적으로 방해를 했다는 것이었다미국이 한미연합군사훈련인 키-리졸브 훈련은 물론이고 쌍용훈련 그리고 독수리훈련 등에 대한 강도를 그 어느 때보다 높였다는 것 등을 그 근거로 들었다.

 

당시 시민사회단체에서 가진 문제의식도 같았다미국의 강도 높은 군사훈련에 대해 그들은 언제라도 반전평화로 맞서곤 했다그렇지만 그때는 달랐다반전평화의 구호를 안 든 것은 물론 아니었다그렇지만 우리민족끼리의 남북관계개선에 대해 방해하지마라는 것에다 더 무게를 실어 활동을 벌였던 것이다.

최근에 미국이 보이고 있는 대북대화와 관련한 미세한 흐름에 대해 전문가들이 급거 주목을 돌리고 있는 결정적인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미국의 대북대화의 미세한 흐름과 관련하여 전문가들이 가장 먼저 주목을 돌렸던 것은 미국의 로버트 갈루치 전 북핵특사에 대한 것이었다.

북한과 미국이 1994년 제1차 북핵위기를 넘기고 제네바 합의를 끌어냈을 당시 미국 측 총책을 맡았던 인사가 갈루치였다제네바 합의는 북한이 핵을 동결하고 이에 대한 댓가로 미국이 북한 경수로 건설을 지원하는 것을 합의한 것으로 북미정상화에서 역사적인 이정표가 될 수도 있었던 합의였다갈루치가 현직과 상관 없이 미국에서 최고가는 대북통의 반열에 드는 인사인 이유이다.

 

갈루치는 10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를 통해 미국의 이른바 미국의 전략적 인내’ 정책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오바마 행정부에게 북미대화를 주문하면서다.

갈루치는 오바마행정부에게 북한에 대해 예비회담을 제안하고 이에 대한 댓가로 북한에 억류되어있는 케네스 배 등 미국인 3명을 석방시켜야한다고 구체적으로 주문했다대단히 현실적인 대안으로 보인다.

 

갈루치의 주문이 더 주목을 받았던 것은 갈루치의 문제의식이 로버트 킹 미 국무부 북한인권특사의 행보로 구체화되고 있는 듯한 모양새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킹 특사가 11(현지시간중국을 방문해 2박 3일 동안 체류하고 있는 중인 것이다.

전문가들은 킹 특사가 이번 방중에서 중국이 억류 중인 한국계 미국인 문제를 논의할 것이지만 북한에 억류된 미국인 3명에 대한 논의도 진행될 가능성이 있을 것으로 내다보았다.

 

▲남북관계개선사업 성사 관건은 미국의 대북대결성. 그 구체는 을지프리덤가디언 훈련

 

미국의 대북대화 흐름이 현실화되는 것이 중요한 것은 그것이 우리정부의 대북지원과 고위급회담 제의에 북한이 호응해오게 되었을 때 그로 인해 본격화 될 수 있을 남북관계개선 활동에서 성과가 보장되게하는 외부객관정세로 된다는 점이다.

미국의 대북대화흐름은 구체적으로는 8월 중순에 시작될 한미연합군사훈련인 을지프리덤가디언(UFG) 연습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결정적 요소가 된다.

미국입장에서 안할 수 없는 것이 UFG라면 UFG를 이른바 로우키(Low-Key) 방식으로 치루는 것도 현실적인 방도가 된다군사훈련의 강도와 수위를 최대한 낮추는 것이 그것이다미국의 몫이다.

우리정부의 전격적이고 전향적인 남북고위급회담 제의에 대해 북한이 제의의 진정성과 더불어 미국의 태세를 그 기본으로 삼아 수락여부를 결정할 것으로 보이는 이유이다.

 

세계는 지금우리정부와 미국 그리고 북한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고 있을 것이다.세계가 주목하고 있는 대로 그렇게 숨 가쁘게 돌아가는 한반도이다가히 격동의 8월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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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식중인 세월호 유족들 내쫓고 시복식 거행할 수는 없다”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4/08/13 11:23
  • 수정일
    2014/08/13 11:23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등록 : 2014.08.12 20:29수정 : 2014.08.13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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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우일 주교

방한 준비위 강우일 주교
“힘들어하는 국민에게 프란치스코가 위로와 희망 줄 것”

단식농성중인 세월호 유족들
광화문 시복식 참여 가능케 논의

 

4박5일 빡빡한 일정 
고령에 쓰러질까 우려

 

 

“자식들을 바닷속에 떠나보내고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을 내쫓고 예수님께 드리는 사랑의 성사 미사를 거행할 수는 없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의장으로서 교황방한준비위원장을 맡고 있는 강우일(사진) 주교는 12일 서울 명동성당 문화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세월호 특별법 통과를 요구하며 단식농성중인 세월호 유족들이 광화문 시복식 행사 때문에 물리적으로 퇴거당하거나 쫓겨나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분명히 말했다. 이에 따라 농성중인 유족들이 시복식 행사를 함께 할 수 있도록 실무 협의중이라는 것이다.

 

강 주교는 “국가 운영 시스템 전체의 패착이 송두리째 드러난 세월호 침몰 같은 참혹한 대형사고가 일어나고, 나라를 지켜야 할 군 병영 내에서 비인간적인 폭력이 일상화되고 관행적으로 되풀이되는 치부가 드러나면서 국민들이 심한 충격에 가슴앓이를 하고 있다”며 “힘들어하는 사람들 곁을 제일 먼저 찾아가는 프란치스코 교종(교황)이시니 가슴앓이를 하고 있는 우리 곁에 오셔서 사도 베드로의 후계자로서 위로와 희망의 복음을 들려주시리라 믿는다”고 말했다.

 

강 주교는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에게 교황이 줄 메시지’와 관련해 “유족들과 만날 수 있도록 자리를 배정하고 준비는 했지만 어떤 행동이나 말씀을 줄지는 모르겠다”고 답했다. ‘교종에게 한국이 어떤 상황에 놓여 있고, 교회가 어떤 일들을 겪고 있는지 정보를 상세히 드리려 노력을 했지만, 구체적인 문제에 대해 어떤 얘기를 할지 아무런 힌트를 받은 적은 없다’는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을 사흘 앞둔 11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 교황의 방한을 알리는 펼침막이 걸려 있다. 이정용 기자 lee312@hani.co.kr

 

그는 “교종은 이미 권고문 <복음의 기쁨>을 통해 경제·정치·국제관계 등에 깊은 관심을 보이고, 교회가 적극적으로 그런 현장 속으로 뛰어들도록 우리에게 요구하고 있어서 그 연장선상에서 가톨릭교회 수장으로서 복음의 큰 원칙과 오늘날 여러 나라들이 겪고 있는 문제에 대해 폭넓은 조언을 해주실지 모르지만, 구체적인 현실에 대한 답변이나 조언은 무리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프란치스코 교종은 우리가 겪는 어려움을 보고 듣고 공유하며 힘겨워하는 이들에게 하느님의 사랑과 희망을 선포해 줄 것”이란 믿음을 전해주었다.

 

그는 “여야 재협의를 간절히 바라는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의 염원이 받아들여져 올바른 진상 조사와 사후 조처를 철저히 보장하는 세월호특별법을 신속히 통과시키도록 국회에서는 최선을 다해 주기 바란다”며 한국 천주교 지도자로서의 당부를 잊지 않았다.

 

강 주교는 교황이란 표현 대신 교종이라고 부른다. 한국 천주교의 공식용어집에는 ‘포프’(the Pope)를 교황 또는 교종으로 쓸 수 있다고 되어 있다. 이에 대해 그는 “가톨릭이 아시아권으로 도입될 400여년 전엔 로마 교황청이 유럽 대륙에서 제국의 정치적인 권력이나 위상을 실제 갖고 있었기에 동양인들이 황제급의 정치적인 직위로 받아들여서 교황이란 용어를 사용했지만 가톨릭은 1963~65년 제2차바티칸공의회를 통해 엄청난 쇄신작업을 거쳐 그때와는 다른 새로운 교회관으로 바뀌었다”며 “교황이란 말이 오랫동안 써서 입에 붙어 간간이 쓰긴 하지만 일부러 황제의 이미지를 떼어버리는 자극을 주기 위해 교종이라는 단어를 고집스럽게 쓴다”고 설명했다.

 

강 주교는 “고령의 교종이 서울과 대전을 오가는 4박5일의 빡빡한 일정 때문에 도중에 쓰러질까봐 걱정된다”고 우려하기도 했다.

 

그는 “교종이 휴가도 마다하고 먼 길을 떠나 지구 반대편으로, 특히 아시아 대륙에서도 가장 먼 한반도를 제일 먼저 찾아주는 것은 한반도와 아시아의 평화를 위해 기도하려는 염원 때문으로 생각한다”며 “교종이 우리와 함께하는 기간 동안 우리도 그분의 뜻에 마음을 하나로 모아 그분이 전하고자 하는 ‘사랑과 희망’ 안에 서로를 포용하고 화합할 수 있고 이 땅에 화해와 평화의 싹이 더 커지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말했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박근혜 7시간’ 특검으로는 못밝힌다 [21의생각 #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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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기 내란음모 무죄에 대한 조선일보의 반응

이석기 내란음모 무죄에 대한 조선일보의 반응
 
조선일보, 내란선동은 크게 내란음모는 작게 처리
 
임병도 | 2014-08-12 09:06:16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에 대한 내란음모 혐의에 대해 무죄가 선고됐습니다. 서울고법 형사9부(부장판사 이민걸)는 11일 항소심 선고 공판에서 "내란선동 행위는 명백히 인정되지만 내란음모죄는 법률상 요건인 2인 이상의 내란범죄 실행의 합의에 이르렀다고 보기에 증거가 부족하다"고 밝혔습니다. 

재판부는 이석기 의원 사건에서 가장 중요한 내란음모 사건에 대해서 무죄를 선고하고, RO실체가 불분명하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징역 9년과 자격정지 7년을 선고, 1심의 징역 12년, 자격정지 9년보다 겨우 3년밖에 감형하지는 않았습니다. 

이석기 의원에 대한 내란음모 사건은 자칭 보수라 칭하는 조중동에게는 엄청난 먹잇감이었습니다. 
 

 

 

이석기 의원 내란음모 혐의에 대한 사건이 불거지는 시기,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 사건과 수사가 진행됐지만, 조중동은 내란음모 혐의에 대한 기사를 두 배 이상 쏟아냈습니다. 

조중동의 1일 평균 보도량을 보면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은 8.3건이었고, 내란음모 혐의는 35.4건이었습니다. 

국정원 대선개입보다 이석기 내란음모 혐의에 엄청난 힘을 쏟은 조중동, 그 중에서 조선일보는 이석기 내란음모 무죄에 대해 어떻게 말하고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 조선일보, 내란선동은 크게 내란음모는 작게 처리' 

조선일보의 1면을 슬쩍 본 사람은 이석기 의원이 모두 유죄를 받은 것처럼 착각할 수 있습니다. 조선일보는 8월 12일 화요일 1면에 <이석기, 체제전복 내란 선동했다>는 제목의 기사를 배치했습니다. 

작게 <내란음모 혐의는 무죄 선고>라는 글자가 있지만, 제목의 기사에 비해 작습니다. 여기에 '징역 9년, 자격정지 7년, 국가보안법 위반도 유죄'라는 문장을 앞에 내세움으로 이석기 의원 사건 판결에 대한 편견을 갖게 할 소지가 보입니다. 언론이 중립성을 가지고 보도하는 것이 아니라 범죄 혐의 중 유죄 인정 부분만 더 많이 강조했기 때문입니다. 
 

 

 


조선일보의 편향적인 보도는 1면에 이어 3면에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법원, 이석기 일파, 내란 실행위한 조직 능력 갖춰>라고 제목을 달았지만, 실제 재판부는 '내란범죄를 결의하고 실연한 개연성은 인정된다'고 했지, 실질적인 내란에 대한 조직과 능력은 증거가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조선일보는 계속해서 검찰의 주장이나 <이석기 정치적 사망. 형 확정땐 67세까지 출마못해> 등의 기사를 통해 한쪽의 주장만 지면에 싣거나 형이 확정되지 않았는데도 정치적 사망에 이르렀다는 단정을 스스로 내렸습니다. 

이석기 의원 사건에 대한 조선일보의 기사들은 대부분 이 의원에 대한 편향적 보도로 얼룩져 있었습니다. 


'종북 공격이 정당하다고 주장하는 조선일보' 

우리가 조선일보를 보면서 가장 눈여겨 봐야 할 대목은 현재 진행 중인 변희재 씨에 대한 '종북 명예훼손' 관련 기사의 논조입니다.

 

 

 

서울고법 민사 13부는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에 대한 변희재 씨의 종북 공격이 "명예훼손"이라며 1500만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조선일보는 이런 재판부에 대한 판단에 대해 '정치인 이념 검증, 언론 역할 버리란 말인가'라는 문장을 통해 변희재씨를 옹호하고 있습니다. 

특히 최연진 사회부기자는 <종북을 종북이라 부르면 안 되는... 화성에서 온 판결인가>라는 기자수첩에서 '종북이란 말은 재판부의 판단보다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다. 친일파, 수구, 꼴통이라고 비판받는 정치인들이 있는 것처럼 종북도 북한 김씨 왕조체제를 감싸는 태도를 보일 때 쏟아지는 일종의 정치적 수사였다'라는 궤변을 늘어놓고 있습니다. 

최연진 기자의 말이 궤변인 이유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종북'은 생명을 앗아가는 무서운 역사를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보도연맹원 학살 사건과 같이 무고한 양민들이 단지 보도연맹원이었다는 이유로 학살됐습니다. 그들은 공산주의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살았던 순진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에게 '빨갱이'라는 낙인이 찍히는 순간 그들은 죽어야만 했습니다. 

종북은 단순히 북한을 추종하는 세력에 대한 수사가 아니라 '빨갱이'라는 단어를 바꿔 부르는 행위에 불과합니다. 대한민국에서 빨갱이라고 낙인을 찍히는 순간 벌어지는 광풍을 그녀가 기억한다면 절대 종북을 단순한 정치적 수사(修辭)라고 부를 수 없습니다. 

 

 

'종북'이라는 단어를 단순한 정치적 수사(修辭)라고 부를 수 없는 이유는 변희재를 비롯한 자칭 보수 단체에는 '종북척결'을 외치며 마치 보도연맹 학살 사건처럼 무고한 사람들을 척결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석기 내란음모 사건은 진보성향을 가진 매체나 여론의 입을 다물게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종북'이라는 형태가 실체로 나타나 진짜 대한민국을 위협하는 세력으로 둔갑했기 때문입니다. 

조선일보가 그토록 이석기 사건에 지면을 할애하고 공격하는 가장 큰 이유는 그가 종북의 실체가 되어야만 앞으로도 '종북'이라는 단어를 통해 정적을 제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조선일보는 8월 12일 사설에서 이석기 사건을 논하고 바로 밑에 <세월호 유족 옆에 나타난 광우병 선동 세력들>이라는 사설을 실었습니다. 

조국,공지영 작가 등을 비롯해 백낙청, 함세웅 신부 등의 인물을 비롯한 단체들이 어떤 선거 때나 사건이 벌어질 때마다 선동하고 있다는 주장입니다. 

자칭보수세력들은 정치,사회적 대결 구도에 있는 인물들을 선동꾼이나 선동세력으로 만들고 이후에는 '종북'이라는 가시 면류관을 씌어 놓습니다. 이후 '종북척결'을 주장하며 그들을 십자가에 못을 박아 제거하려고 합니다. 

[정치] - 이석기 '내란음모'가 몰고 온 광풍의 나라

대한민국 사회에서 '종북'이라는 단어는 정적을 제거하기 위해 사용하는 가장 효과적인 무기이자 지독한 누명이었습니다. 

이석기 의원 사건을 어떻게든 '종북'의 실체로 만들려는 조선일보와 자칭 보수세력들을 보면서, 아직도 이 땅에는 사상을 빙자한 정적 제거의 암울한 역사가 되풀이되고 있음을 또 한 번 느낍니다.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13&table=impeter&uid=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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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답으로 재구성한 프란치스코 생각

조현 2014. 08. 12
조회수 174 추천수 0
 

 

 

“공동체 위한 정치참여는 의무”…현실외면한 교회에 일침

 

 

 

프란치스코 교황(78)은 변화와 개혁에 대한 메시지를 행동뿐 아니라 강론과 인터뷰를 통해서 분명히 공표하고 있다. 성직자들에게 교회 밖으로 나가라고 촉구하는 그의 파격적인 언행들은 얼음장처럼 굳은 세상의 가치관과 세계관에 균열을 내고 있다.
우리가 궁금해하는 질문에 대해 프란치스코 교황은 어떻게 생각할지 강론과 문서, 인터뷰 외에 여러 저서를 참고해 일문일답으로 정리해봤다.

 

 

교황문답1.jpg 

 

*프란치스코 교황이 10일 바티칸 성베드로광장에 운집한 군중들에게

이라크에서 종교적 소수자인 기독교인들을 겨냥한 폭력으로 어린이들이 숨진 것에 분노하며

이런 범죄행위의 종식을 전세계에 촉구했다.

교황은 이 자리에서 한국 방문에 대해 “기도를 통해 나와 함께 동반해달라”고 주문했다. AFP 연합뉴스
 

성직자의 사회참여 
교회가 닫힌 공간이 되면 병 
거리의 사람들과 마주해야
정치와 경제의 목적 
최소한의 복지 제공하는 수단 
인간적 역량 발전시킬 환경 필요


-하느님은 어떤 분인가?
“더 크신 하느님, 놀라움의 하느님이다. 창조적이시고 닫혀 있지 않다. 그래서 결코 경직된 분이 아니다. 따라서 (하느님이 창조한) 인간 존재도 이미 기록된 악보가 아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은 모험이요 추구이며 하느님께로 새로운 공간을 여는 것이다.”

 

-그런데 그리스도인들이 더 경직되고 자유롭지 못한 것 아닌가?
“예수님은 자기만 생각하고 하느님과 대화하지 않는 이기적인 그리스도인을 원치 않는다. 또한 나약하고 자기 의지가 없는 그리스도인, 창의력을 발휘할 줄 모르고 남의 지시대로만 움직이는 그리스도인도 원치 않는다. 예수님은 우리가 자유롭기를 원한다. 자유는 양심에 따라 하느님과 대화할 때 얻어진다. 하느님과 이야기를 나누지 못하는 그리스도인, 양심 속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는 그리스도인은 자유롭지 못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의 양심에 더 많이 귀 기울이는 법을 배워야 한다.”

 

-왜 성직자들이 교회 밖으로 나가야 한다고 했는가?
“교회가 닫힌 공간이 되면 병이 난다. 한해 내내 닫아둔 방에 들어가면 습한 냄새가 나는 것과 마찬가지다. 거리로 나가면 거리의 사람들과 같은 사고가 날 수 있지만, 문을 닫고 병든 것보다야 그런 사고를 마주하는 교회가 천 배나 낫다. 교회는 인간의 하녀다. 교회는 사람을 섬기러 육(몸)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믿는다.”

 

-왜 늘 빈자를 이야기하며 그들을 먼저 챙겨야 한다고 말하나?
“그리스도인은 항상 선과 악에 대해 알아야만 한다. 심지어 어려운 상황에서도 말이다. 빈자들 안에서 그분을 느껴 보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리스도의 몸인 빈자들에게 다가가야만 이것이 정말 가난이구나라는 것을 알기 시작한다. 주님의 가난 말이다.”

 

-규제 없는 자본주의를 왜 독재라고 했는가?
“지금 세상을 지배하는 것은 인간이 아니라 돈, 돈, 돈이다. 하느님 아버지는 우리에게 땅을 지키라는 임무를 주셨다. 돈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말이다. 사람들은 이익과 소비라는 우상에 희생되고 있다. 컴퓨터가 고장나면 큰일이라며 호들갑을 떨고 주가가 10포인트 떨어지면 뉴스거리가 되는데, 수많은 사람들의 궁핍과 가난, 비극적인 사연들은 평범한 일로 치부해버린다. 소수의 소득은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하고 대다수의 소득은 취약해지는 중이다. 이런 불균형은 시장의 절대 자율과 투기매매를 장려하는 데서 연원하고, 국가가 공동선을 위한 감독 권리를 거부하는 이데올로기에서 연원한다. 여기서 보이지 않는 폭정에 법이 정당성을 부여해주고 있다. 거기다가 부정부패와 이기적인 조세화가 세계적으로 확장일로에 있다. 권력과 소유가 한계가 없는 것이 되고 말았다.”

 

-정치와 경제의 목적은 무엇인가?
“제일 가난하고 제일 약한 사람들에게 바치는 봉사에서 시작한다. 경제와 정치의 모든 이론과 실천은 각자에게 최소한의 복지를 제공하기 위해서 작동해야 한다. 품위를 갖고 자유로이, 가족을 부양하고 자녀를 가르치고, 하느님을 찬미하고, 자기의 인간적 역량을 발전시킬 가능성이 제공되어야 한다.”

 

교황문답2.jpg 


동성애 
교회 입장 따르지만 균형도 필요 
그들 처지에서 출발해 연민해야
젊은이들에게 
위대한 이상을 갖고 계속 도전할 것 
시류 거슬러 가는 것 두려워 말아야


  
-한국에선 성직자의 정치 참여(발언)를 놓고 논쟁이 빚어졌다. 어떻게 해야 하나?
“그리스도인이 정치에 참여하는 것은 일종의 의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빌라도와 같은 행동, 다시 말해 손을 씻으며 뒤로 물러나는 짓을 할 수 없다. 할 수 없고말고. 우리는 정치에 참여해야만 한다. 왜냐하면 정치란 공동체적 선을 찾는 좀더 특성화된 사랑의 한 표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은 정치적 행동을 해야만 한다. 오늘날 정치는 매우 타락했다. 그리스도인들은 복음의 정신으로 왜 그것이 타락하지 못하도록 하지 않는가 하고 물어야 한다. 정치적 활동에 참여하는 것이 공동체의 선을 위한 다양한 길 중 하나라는 것은 분명하다.”

 

-한국은 세월호 참사란 비극을 겪었지만 진상규명조차 안 되고 유가족들에게 상처를 입히는 이들도 있다. 군대 폭력으로 많은 젊은이와 가족들이 고통 받고 있다.
“우리는 같은 가족의 한 부분이며 공동의 운명을 공유한다. 서로를 존중하는 하나의 형제적 공동체가 되도록 해야 하며, 서로의 차이를 받아들이고 서로 돌봐주는 세상이 되도록 해야 한다. 우리는 세상에 존재하는 폭력과 불의에 저항하도록 부르심 받았다. 불의와 폭력에 무관심하거나 침묵할 수 없다. 좀더 정의롭고 함께 책임질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그런 사회적 비극에 대해 종교인의 자세는 무엇인가?
“수도자는 예언자다. 교회 안에서 수도자들은 예수의 삶을 증언하고 하느님 나라가 완성될 때의 모습은 어떠할지를 선포하는 예언자가 되라고 부름 받았다. 수도자가 예언을 포기해선 결코 안 된다. 이는 교회의 교계적 부분에 맞서라는 의미가 아니다. 예언적 기능과 교계적 구조가 일치하지는 않지만 말이다. 수많은 성인 수도승들, 남녀 수도자들이 했던 일을 생각해보면 때때로 소란을 일으키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다. 예언은 시끄럽고 소란을 피운다. 사실 예언의 은사는 누룩이 되는 것이다. 곧 예언은 복음의 정신을 선포하는 것이다.”

 

-한국은 4대강 개발 사업으로 자연적인 기능이 크게 훼손되고, 핵발전소의 방사능 오염 위험, 송전탑으로 인한 농촌환경 훼손으로 고통받고 있다.
“우리는 창조계의 ‘지킴이’이다. 대자연에 새겨진 하느님의 계획을 지키는 사람들이다. 타인을 지키고 환경을 지키는 사람들이다. 파괴의 표지, 죽음의 표지판들을 그냥 내버려둬서는 안 된다. 우리의 이 세계가 나아가는 발걸음을 이런 표지판들이 따라붙게 그냥 두어서는 안 된다.”

 

-지구촌 마지막 분단국가인 남북한 분단과 갈등을 어떻게 풀어가야 하나?
“남과 북이 해결책을 찾기 위해 서로 만나는 데 지치지 않기를 바란다. 아시아는 다양한 민족과 종교들이 평화롭게 공존해온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 우리는 이런 상호 존중의 전통을 장려할 필요가 있다.”

 

-동성애를 어떻게 봐야 하나?
“교회의 입장은 다 알려져 있고 나는 교회의 아들이니 이를 계속 말할 필요는 없다. 선교사목은 교의적 가르침을 무작정 전달하는 일에 강박적으로 매달리지 않는다. 새로운 균형을 찾아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교회의 도덕적 체계는 종이로 만든 성곽처럼 무너지고, 복음의 신선함과 향기를 잃어버릴 위험이 있다. 하느님께서 동성애자인 사람을 바라보실 때 애정을 가지고 그 사람의 존재를 인정할까, 아니면 그 사람을 단죄하면서 물리치실까? 항상 사람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인간의 신비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하느님은 사람들을 삶 안에서 동반하신다. 그들의 처지에서 출발해 연민으로 동반할 필요가 있다.”

 

-아시아청년대회에 만나는 젊은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재능을 그냥 묻어두지 마라. 마음을 넓혀주는 이상, 여러분의 재능이 결실을 맺을 수 있게 도와줄 유익한 이상, 그 위대한 이상에 매진하라. 우리에게 삶이 주어진 것은 자신을 위해 그 삶을 탐욕스럽게 지키라는 의미가 아니라, 남들에게 베풀라는 뜻이다. 깊은 영혼을 가지고 원대한 꿈을 품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라. 전념하고 희생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장래를 걱정하지 마라. 희망을 잃지 마라. 지평선 위에는 언제나 빛이 있다. 시류에 거슬러 가라. 하지만 시류에 거슬러 가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그분이 우리에게 용기를 주실 것이다. 우리가 하느님과 일치해 있다면 무서울 것이 없다. 곤란이나 시련이나 몰이해나 무서울 것이 없다. 본래 청춘은 위험을 감수하는 것이다. 선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희망을 품고 도전하는 것이다. 젊음은 큰일에 투신하는 것이다.”

 

 

문답에 참고한 책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원음을 담은 공식 대담집인 <교황 프란치스코>(솔)와 <교황 프란치스코, 가슴속에서 우러나온 말들>(소담출판사), <뒷담화만 하지 않아도 성인이 됩니다>(가톨릭출판사), <사진으로 만나는 교황 프란치스코>(알에이치코리아), <세상의 매듭을 푸는 교황 프란치스코>(하양인) <네 형제가 어디 있느냐>(빛두레) 등이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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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의 비용] 4대강 사업, 22조 원 부은 '밑 빠진 독'

"4대강 사업의 실체적 진실은 3년 반 후?"

[MB의 비용] 4대강 사업, 22조 원 부은 '밑  빠진 독'③

박창근 관동대 교수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4.08.12 04:56:17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여름이 되자 4대강 사업을 진행한 낙동강, 금강 등에 녹조가 발생했다. 올해엔 호수에서나 볼 수 있는 큰빗이끼벌레까지 나타나 더 큰 논란이 일었다. '경제 대통령'이 되겠다던 이명박 대통령이 추진한 경제 정책은 과연 어떤 결과를 가져왔고, 향후 우리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한 정권이 추진한 정책에 대한 사후적 평가는 그 집권세력의 정치적 성향을 떠나 매우 중요한 작업이다. 국민 혈세를 제대로 썼는지에 대한 평가이기 때문이다.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과 지식 협동조합 '좋은나라'(이사장 유종일)는 이런 문제의식으로 직전 정부인 이명박 정부가 추진한 주요 경제 정책에 대한 평가로 'MB의 비용'을 공동 기획, 연재한다. 이 기획은 추상적인 논쟁의 수준에 그치지 않고 정책이 끼친 영향이 얼마나 되는지 구체적인 비용을 추산했다는 점에 의미를 둘 수 있다. 첫 번째로 22조 원의 혈세를 쏟아부은 4대강 사업을 살펴보겠다. 편집자
 
 
ⓒ박용훈

ⓒ박용훈

 
4대강 비리 사례
 
4대강 사업을 하면서 대부분 건설회사는 다양한 방법으로 비자금을 조성하는데, 그중 대표적인 방법은 하도업체가 가짜 세금계산서를 발급하고 받은 돈을 다시 되돌려주는 것이다. 한 예를 살펴보자.
 
2011년 6월 15일 B사(건설기기대여)가 A사에 ‘기존도로유지보수비’ 명목으로 1100만 원에 대한 세금계산서를 발급하였다. 이를 근거로 하여 2011년 6월 22일 A사는 1100만 원을 B사에 입금하였고, 당일 세금 100만 원을 제하고 1000만500원을 H 씨에게 입금하였다. H 씨는 A사가 운영하고 있는 4대강 사업 현장소장의 아들로 알려졌다. 거짓 명목으로 세금계산서를 발급하고 세금을 제외한 입금액을 다시 반납하는 방법으로 비자금을 조성한 사례이다. 상기 사례를 증명할 수 있는 세금계산서와 통장 사본이 있는데 이런 불법 사례에 대한 처리방안을 부산대 법학대학원 차정인 교수(특수부 검사 출신)에게 자문했다. 차 교수는 ‘이런 피라미는 그대로 두어라. 만약 공개되고 수사를 하면 진짜 큰 고기는 사라진다‘라고 언급하였다.
 
또한 '4대강 조사위원회' 등 시민단체 4곳은 2008년부터 4년여에 걸쳐 낙동강 24공구(칠곡보) 현장 등에서 14개 하청업체에 공사비를 부풀려 지급한 뒤 되돌려 받는 방법으로 800억 원의 비자금을 조성하고, 감독청 공무원과 4대강 관련 유력 정치인에게 뇌물과 불법 정치자금 등을 제공한 혐의로 2012년 9월 서모 전 사장과 구모 대우건설 토목사업본부장, 이모 외주구매본부장 등 대우건설 전·현직 임원 6명을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이후 대구지검 특수부는 배임 및 배임수재 혐의로 대우건설 임직원 2명을 구속기소 및 추가 기소하면서 이들이 조성한 비자금이 총 257억 원이라고 밝혔다. 
 
2014년 1월 28일에는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조용현 부장판사)가 4대강 사업 설계업체 유신으로부터 공사 수주 청탁과 함께 6000만 원을 받은 혐의로 장석효 前 도로공사 사장에게 징역 3년 6월과 벌금 6000만 원, 추징금 6000만 원을 선고했다.  
 
4대강 수질개선사업과 관련해 공법선정과 공사수주, 공사편의 제공 등을 대가로 뇌물을 받은 대학교수와 감리원 등이 무더기로 경찰에 입건됐다. 전북지방경찰청 수사2계는 31일 4대강 수질개선사업의 일환으로 지방자치단체에서 발주한 총인처리시설 공사와 관련해 공사업체 측으로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뇌물수수)로 광주총인 공사감리원 배모 씨(47)를 구속하고 대학교수 백모 씨(57)와 전 대학교수 권모 씨(60)를 불구속 입건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또 이들에게 뇌물을 건넨 혐의(뇌물공여)로 최모 씨(55) 등 공사업체 관계자 5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또한,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9부(천대엽 부장판사)는 지난 2월, 4대강 사업 담합행위에 가담한 혐의(건설산업기본법위반 등)로 기소된 22명의 건설사 전·현직 대표와 임원 중 김중겸 전 현대건설 사장, 서종욱 전 대우건설 사장, 한병하 삼성물산 전무 등 18명에 대해 징역 8월~2년에 집행유예 1~3년을 각각 선고했다. 재판부는 건설사 협의체 운영위원을 맡아 실질적으로 담합을 주도한 손문영 전 현대건설 전무에 대해서만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했다. 그러나 대부분 집행유예에 그쳐 막대한 국가예산이 누수된 사건에서 솜방망이 처벌이 이뤄졌다는 비판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재판부는 이번 건설사 입찰담합이 정부의 무리한 4대강 사업이 빚은 결과라고 지적해 정부에도 책임이 있음을 명확히 했다.
 
국가재정법 위반: 보 건설과 준설사업
 
국가재정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예비타당성 조사는 국가경제적 차원에서 당해 사업의 추진 여부를 판단하고 사업 간 우선순위를 합리적으로 결정하여 제한된 예산으로 효율적인 재원분배를 가능하게 하는 데 그 기본적인 취지가 있다. MB 정부는 4대강 사업 마스트플랜이 구체적으로 검토되던 중인 2009. 3. 25. 국가재정법 시행령 제13조 제2항을 개정하여 ‘재해예방’사업을 예비타당성 조사 제외 대상사업으로 추가시켜, 보 건설과 대규모 준설사업에 대한 예비타당성 조사를 제외했다. 이러한 정부의 사업추진에 대한 낙동강 2심 재판부의 판단은 다음과 같다. 
 
① 개정된 시행령 제13조의 ‘재해예방’ 부분을 대규모 재정이 투입되는 국책사업에 대하여 재해예방이라는 이유를 들어 예비타당성 조사 대상에서 제외한다고 해석한다면, 이는 모법인 국가재정법의 입법취지에 정면으로 반하고 국가재정법의 위임범위를 벗어난 해석으로 그 효력을 인정할 수 없다. ② 설령 그 효력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보의 설치는 재해예방사업이라고 볼 수도 없을 뿐 아니라, ③ 보의 설치, 준설 등의 사업이 예비타당성 조사를 면제시킬 정도로 시급성이 인정되는 사업이라고 할 수도 없다. 따라서 MB 정부가 보의 설치, 준설 등의 사업에 대하여 예비타당성 조사를 거치지 아니한 것은 국가재정법 제38조 제1항을 위반하였다고 할 것이다. 
 
MB 정부는 임기 내 사업을 완료해야 한다는 정치권 시간표에 맞추다 보니 각종 절차를 위반하였다. 4대강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국가재정법, 문화재법 등을 위반하였다는 것은 낙동강 재판부와 감사원에 의하여 이미 밝혀졌고, 하천법, 환경영향평가법 등을 위반하였거나 무시한 사실도 곧 공식적으로 밝혀질 것이다. 이처럼 4대강 사업은 최소한 절차적 민주주의도 무시한 위법한 사업이었다. 관련된 공무원들에 대한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국가재정법을 위반하고 추진한 보 건설과 준설사업은 4대강 사업의 핵심 분야라서 4대강 사업의 위법성에 대한 상징성이 높다고 할 수 있다.
 
▲ 영풍교 상류 재퇴적. ⓒ부산시민운동본부

▲ 영풍교 상류 재퇴적. ⓒ부산시민운동본부

 
보의 안전성
 
4대강의 16개 보는 3년 만에 설계하여 공사를 완료했다. 보통 댐을 건설할 때 설계기간을 포함하면 10년 이상 걸린다는 점을 고려하면, 말 그대로 속도전이다. 함안보 사례를 살펴보자. 2011년 7월 공사를 마치고 2012년 6월 30일 준공 처리하였다. 1년여 동안 보수·보강공사를 했다는 뜻이다. 그러나 수자원공사 자료를 보면 함안보 ‘흠결사항(균열, 누수 등)에 대한 보수·보강’을 완료한 시점은 2012년 8월이었다. 보수·보강 공사를 하는 시점에 준공처리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다. 준공직전에 감사원이 수중 촬영한 영상을 살펴보면 함안보 본체의 많은 지점에서 콘크리트가 깨졌고 표면에는 콘크리트가 떨어지는 박리현상이 발생하였으며 대규모 수평 및 수직 균열이 발생하였다. 또한 수직이음부에 구멍이 나서 물이 분출되고 있었고, 보 하류부에서는 적어도 6개 지점 이상에서 파이핑 현상으로 물이 바닥에서 솟구치고 있었다. 이런 현상은 물속에 잠겨있기 때문에 육안으로 확인할 수 없지만, 준공처리할 수 없는 중대한 하자가 발생했다고 할 수 있다.
 
한편 함안보 시공사는 공사하는 중 수자원공사의 지시대로 설계변경을 하는 과정에서 추가로 들어간 147억 원을 포함하여 추가공사비 226억 원을 지불하라고 수자원공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함안보는 ‘문제점이 없는 최상의 상태(A등급)’라고 수자원공사는 우기고 있다. 그러나 함안보는 ‘주요부재에 심각한 결함이 발생한 불량(E등급)’에 해당한다. 물론 이런 상태에 있는 함안보가 당장 무너지지는 않을 것이지만, 내구성에서는 심각한 문제점이 이미 발생했다고 할 수 있고 그대로 내버려둔다면 조만간 보가 주저앉을 수도 있다. 4대강의 나머지 보 역시 함안보와 비슷한 상태에 있다는 사실이 우려스럽다.
 
인도의 간디는 “방향이 잘못되면 속도는 의미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운하를 염두에 둔 4대강 사업은 한술 더 떠서 잘못된 방향으로 전광석화처럼 밀어붙였다. 그리고 속도와 안전은 같이 갈 수 없다. 모래 위에 설치된 보는 안전성 문제에서도 두고두고 애물단지가 될 것이다.
 
공무원과 전문가들에 대한 책임
 
감사원은 감사결과 보고서에서 공무원들이 4대강 사업에 대한 담합의 빌미를 제공했고, 입찰 정보를 사전 누출했으며 입찰담합을 방지하려는 노력을 소홀히 했다고 판단했다. 그 과정에서 공무원들은 국가재정법, 하천법, 환경영향평가법, 문화재보호법 등 많은 법령을 위반하거나 무시하면서 대국민 사기극을 이끌었다. 곳간을 훔친 도둑(건설회사)도 나쁘지만, 곳간을 열어젖혀 놓고 뒤에서 도둑질하라고 부추긴 머슴(공무원)이 더 나쁜 법이다. 그럼에도 사기극으로 밝혀진 4대강 사업에 대해 책임지는 공무원은 없고, 오히려 더 높은 자리로 더 힘 있는 자리로 영전했다. 주인을 농락한 머슴 대신 머슴의 하수인(건설회사)만 책임을 지는 꼴이다.
 
녹조에도 불구하고 국토부와 일부 지자체장들은 녹조와 4대강 사업은 무관하다는 주장을 하고, 한술 더 떠서 독성물질이 있더라도 먹는 물 수질기준 이하이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우기고 있다. 이러한 대국민 사기극에 교과서에도 없는 논리를 제공했던 수많은 전문가가 그 대가로 훈장 등 포상을 받았는데, 그 수가 무려 1157명에 이른다.
 
사르뜨르는 그의 저서 <지식인을 위한 변명>에서 지식인의 가장 직접적인 적은 ‘사이비 지식인’인데, 이들은 지배계급의 사주를 받아 과학적 연구방법의 산물인 것처럼 제시되는 논리를 통해 특정 계급의 이데올로기를 옹호한다고 지적하면서 그들을 ‘집 지키는 개’에 비유하고 있다. 지식인이 한 번쯤 곱씹어 볼 만한 가르침이다. 대국민 사기극에 일조한 전문가가 그 대가로 받았던 훈장은 당연히 취소되어야 할 것이다.
 
국무총리실 4대강 조사·평가위원회의 한계 
 
2013년 8월 국무조정실은 중립인사로만 조사·평가위원회를 꾸리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면서 4대강 사업을 찬성한 토목학회 등에서 추천받은 인사들이 ‘중립’인지 평가해달라고 시민사회단체에 요청하였다. 4대강 사업에 찬성했던 많은 전문가가 스스로 중립이라고 주장하면서 학회를 통해 위원회에 지원했다. 모양새는 그럴듯하지만 위원회는 색깔만 조금 덜한 4대강 사업 찬성 쪽 인사 중심으로 구성됐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국무조정실이 제시한 중립의 기준은 4대강 사업에 대해 어떠한 입장도 밝히지 않은 인사였다. 
 
감사원 감사결과, 4대강 사업은 총체적 부실 사업이었고, 한반도 대운하 사업을 이름만 바꾼 것이었다. 청와대는 ‘만약 그렇다면, 국민을 속인 것’이라고 평가했다. 단군 이래 최대 국책사업인 4대강 사업이 22조 원의 예산으로 진행한 대국민 사기극이었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4대강 사업에 대해 한마디 의사표현을 하지 않았던 전문가들이 스스로 중립이라고 주장하면서 위원회에 들어갔다. 마틴 루터 킹 목사는 “사회적 전환기에 최대 비극은 악한 사람들의 거친 아우성이 아니라, 선한 사람들의 소름 끼치는 침묵”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조사권한도 극히 제한적이고 국토교통부와 수자원공사가 만들어주는 자료를 책상 위에 놓고 갑론을박하다가 국토부에 일정 부분 책임이 있다는 체면치레용 평가결과를 내놓을 것이다. 결국 4대강 사업 추진 세력에게 광의적인 면죄부를 줄 것이라 쉽게 예상할 수 있다. 국가를 위한 대규모 사업을 하다 보면 다소 잘못은 있을 수 있지만 누군가는 해야 할 사업이었고 조금만 손을 보면 문제점들을 해결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릴 것이다.
 
이런 비판을 의식했던지 4대강 조사·평가위원회는 4대강 현장조사를 수행할 조사작업단을 신설 법인 형태로 구성하겠다고 밝혔다. 중립성과 전문성을 겸비한 인사로 법인을 설립할 예정인데, 현시점에서 그러한 인사는 찾기 어렵고 따라서 또 다른 꼼수다. 
 
이제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나서야 한다. 최근 야당과의 청와대 회동에서 4대강 사업에 대하여 강도 높은 비판을 했다는 언론보도가 있었다. 2013년 두 차례의 감사원 감사결과에 의하여 4대강 사업이 위장된 대운하사업이었다는 것이 밝혀진 이상 대운하에 대해 분명한 반대의견을 제시했던 박 대통령이 결단해야 한다. 지속해서 4대강 사업의 문제점을 지적했던 사람들로 대통령 직속 4대강 사업 조사위를 구성해야 한다. 그리고 조사위에 전권을 줘야 한다. 대신 공청회 등을 통해 4대강 사업을 추진한 측에 반론권을 충분히 주면 된다. 현 정부가 이렇게 미적거려봤자 스스로 발목을 잡는 것이고 결국 국민의 신뢰를 떨어뜨리는 작용을 하게 된다. 현 정부가 그대로 안고 가기에는 4대강 사업은 너무 뜨거운 감자다.
 
▲ 4대강 자전거길을 자전거로 이용하는 이명박 전 대통령. ⓒ이명박 전 대통령 페이스북

▲ 4대강 자전거길을 자전거로 이용하는 이명박 전 대통령. ⓒ이명박 전 대통령 페이스북

 
4대강에 다시 생명을
 
강은 흘러야 한다. 물이 흐름으로 인하여 강에 여울과 소(웅덩이)가 형성되고 물고기의 산란처와 피난처를 제공한다. 그리고 강에는 많은 모래톱이 조성되어 물을 정화하기도 하고 서식처를 제공하기도 하며 우리나라 강만이 갖는 아름다운 경관을 만들기도 한다. 그러한 강을 바라보면서 수많은 시인묵객이 강을 화폭에 담고 노래했다. 이것이 본래 강의 모습이다. 강을 살리겠다면서 물의 흐름을 차단하는 대규모 보를 설치하고 모래를 준설하는 4대강 사업을 국가재정법을 위반하면서 속도전으로 진행했다. 
 
유럽에서도 한때 운하를 만들기 위하여 보 건설을 했다. 라인강에 보를 설치하여 물의 흐름을 막아 홍수 위험을 증가시켰고 보 하류부에서는 모래가 유실되자 인공적으로 모래를 공급하여 생태계를 유지한다.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EU는 하천에 댐 건설과 준설과 같은 대규모 토목공사로 하천 생태계를 파괴하지 못하도록 200년에 물 관리 기본지침(Water Framework Directive)을 제정하였다. 이에 따르면 4대강 사업과 같은 사업은 원천적으로 하지 못하게 되어 있다. 미국 역시 깨끗한 물법(Clean Water Act)을 만들어 하천에 대규모 토목공사를 하는 것을 원천적으로 막고 있다. 유럽, 미국, 일본 등에서는 생태계 복원을 위한 활발한 하천복원사업이 진행되고 있고, 특히 하천의 연속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수많은 보와 댐들을 해체하고 있다.   
 
이제 황폐해진 4대강에 대한 재자연화를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물이 흘러야 한다는 대원칙은 반드시 지켜야 하지만, 현실적으로 4대강에는 16개 대규모 보가 설치되어 있다. 일각에서는 국민예산으로 설치한 보를 철거하는데 거부감을 가질 수도 있다. 따라서 보가 하천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고 보의 부작용을 최소화할 방안을 마련하는 연구를 시작해야 한다. 대안으로 ① 보를 유지하면서 부작용을 줄일 방안 ② 보의 구조변경을 하는 방안 ③ 보를 철거하는 방안을 제시할 수 있다. 각 방안에 대한 공학적 평가, 환경성 평가, 경제성 평가, 사회적 수용 가능성 평가 등을 바탕으로 가장 적합한 방안을 선택할 수 있을 것이다. 
 
4대강의 실체적 진실은 4년 후?
 
22조 원의 국민 세금으로 4대강 사업이란 이름으로 운하사업을 한 MB정부는 전문가들의 곡학아세와 권력의 힘으로 대국민 사기극을 펼쳤다. 이것이 필자의 4대강 사업에 대한 평가이다. 그러나 4대강에 녹조가 발생한 것은 수질이 개선되었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있는 모양이다. 4대강 사업은 진실과 거짓의 문제이다. 올해 들어 감사원의 2차례 감사발표와 국정감사에서 밝혀진 수많은 진실은 그동안 4대강 사업에 지속해서 반대해왔던 측의 주장이 옳았다는 것을 충분히 밝혀주었다. 그럼에도 진실을 뭉개려는 시도는 아직도 감지되고 그런 과정에서 물타기를 하면 국민들은 양비론에 휩싸이고 4대강 사업 반대 측은 제풀에 지쳐 떨어져 나갈 것으로 기대하고 있는지 모른다. 
 
그러나 거짓으로 진실은 덮으려는 어리석은 시도가 통했던 시절은 이미 지나갔다고 생각한다. 4대강 사업의 진실은 일시적으로 물속에 잠겨 있을지 몰라도 엄연히 숨 쉬고 있다. 22조 원의 수업료를 지불하고 우리 국민들은 ‘오래된 상식’을 확인했다. 그러나 상식을 무시했던 과정을 밝히는데 4년이란 세월을 더 기다려야 한다면 그것은 우리 사회의 불행이다. 4대강 사업은 이미 ‘4대강 게이트’로 이행되었기 때문이다. 진실은 과연 무엇이며, 거짓이 진실을 덮을 수도 있다는 현실이 되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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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선출된 윤춘화 관리위원장


<연재> 정창현의 ‘북녘 여성을 만나다’ (16)
정창현  |  tongil@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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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08.11  10:0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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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대 후반에 청산협동농장 책임자가 된 윤춘화 관리위원장. [자료사진 - 민족21]

지난 3월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에서 남포시 강서구역 청산협동농장의 윤춘화(44) 관리위원장이 대의원으로 선출됐다. 2008년 청산협동농장의 관리위원장이 된지 6년만이다.

 

처음 만났을 때 “이제 청산협동농장의 관리위원장이 되셨으니 다음 최고인민회의(남쪽의 국회에 해당) 선거 때는 대의원으로 선출되겠습니다”라고 하자 윤 관리위원장은 “벌써부터 걱정입니다. 내가 국가운영에 참여해서 잘 할 수 있을지”라고 대답했다. 통상적으로 청산협동농장 관리위원장은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으로 선출돼 왔기 때문에 자신도 그렇게 될 것이라는 점을 예상하고 있었던 셈이다.

그녀를 처음 만난 것은 2008년 6월 25일이었다. 이날 오후 2시 평양을 벗어나 평양­남포간 고속도로를 20km 정도 달리자 오른쪽으로 청산협동농장이 눈에 들어왔다. 협동농장의 관리위원장과 관리부위원장, 해설강사가 나와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2년 전에 만났던 관리위원장과 해설강사가 아니다. 옆에 있던 민족화해협의회의 관계자가 “관리위원장이 최근에 바뀌었습니다”라고 귀띔했다.

30대 후반의 나이에 관리위원장에 선출

 

   
▲ 북한의 대표적인 모범 협동농장인 청산협동농장 체계도. [자료사진 - 민족21]
 
   
▲ 청산협동농장사적관 해설강사가 농장의 연혁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자료사진 - 민족21]

협동농장을 방문하기 전 고명희 관리위원장과 청산리혁명사적관 윤옥 해설강사를 인터뷰하기로 질문지까지 보냈는데 예상치 못한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먼 곳까지 방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윤춘화 관리위원장이 반갑게 인사를 했다.

 

□ 언제 부임하셨습니까?
■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30대 후반의 나이에 북한을 대표하는 협동농장의 책임자라는 중책을 맡은 셈이다.

□ 전임 고명희 관리위원장께서는 다른 곳으로 가셨나요?
■ 농업부문을 보는 더 높은 단위로 승진했습니다.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지는 않았지만 평안남도 농촌경리위원회로 자리를 옮긴 듯했다. 윤 관리위원장의 세대주(남편)도 농촌경리위원회 간부로 활동하고 있다고 했다.

□ 원래 강서 출신인가요? 아니면 세대주와 결혼하면서 이곳으로 시집을 왔나요?
■ 이곳 강서에서 나서 공부하고 자랐습니다. 청산중학교를 나온 후 농장원이 됐고, 지난해까지 제6작업반장으로 일했습니다.

중매로 농촌경리위원회에서 일하는 남편과 결혼

 

   
▲ 2008년 방북 당시 윤춘화 청산협동농장 관리위원장과 만났다. [자료사진 - 민족21]

□ 세대주와는 어떻게 만나 결혼하셨는지요?
■ 세대주도 이곳 출신입니다. 지금은 많이 달라졌지만 내가 결혼하던 10년 전에는 중매로 결혼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지요.

 

□ 관리위원장이 되기 위해서는 어떤 특별한 자격이 있어야 합니까?
■ 무엇보다도 농장원들의 신임을 받아야죠. 능력도 있어야 하고….

“작업반장에서 관리부위원장을 제치고 관리위원장으로 승진한 것을 보니 농장원들의 신임도 높고, 능력도 인정받은 모양입니다”라고 하자 윤 관리위원장은 약간 상기된 얼굴로 웃기만 했다. 말은 별로 없지만 ‘뚝심 있는 여장부’의 인상이 풍겼다.

청산협동농장은 500여 세대, 2,500여 명으로 구성돼 있고, 이 중 농장원은 600여 명이다. 농산반, 과수반 등 17개의 작업반으로 나눠져 있고, 경지면적은 1,000여 정보가 된다. 그중 논이 600정보(180만 평), 밭과 과수원이 400정보(120만 평)다. 각 작업반 별로 여러 개의 분조가 있어 약 70개의 분조를 두고 있다. 과거에는 작업반 중심이었지만 지금은 분조 중심으로 계획과 생산, 분배가 이뤄진다.

□ 협동농장 관리위원장으로 2,500여 명의 살림을 돌보려면 굉장히 바쁠 것 같은데, 집안 일을 세대주께서도 잘 도와 주시나요?
■ 서로 도우며 일하고 있습니다. 세대주도 사업을 하다보니 바쁜 편이죠. 딸아이가 하나 있는데, 협동농장 안에 탁아소와 유치원, 소학교가 다 갖춰져 있어 아이 키우는데 큰 어려움은 없습니다.

농장에서 운영하는 탁아소와 유치원도 둘러볼 수 있나요”라고 하자 “일 없습니다”라고 안내를 해줬다. 북한의 각 협동농장에는 탁아소, 유치원, 소학교, 중학교가 갖춰져 있다. 유치원은 낮은반 1년, 높은반 1년으로 2년 과정이다. 윤춘화 관리위원장의 안내로 유치원 높은1반 교실에 들어서자 아이들이 교양원의 지도로 국어책을 읽고 있었다.
 

   
▲ 청산협동농장 유치원생들이 수업을 하고 있다. [자료사진 - 민족21]

□ 청산협동농장에는 몇 명이 유치원에 다니고 있습니까?
■ 170명 정도 됩니다 낮은반이 세 개 반, 높은반이 세 개 반으로 되어 있고, 한 반에 30~40명의 어린이들이 배우고 있지요.

 

□ 유치원에서는 어떤 교육을 시키고 있나요?
■ 유치원은 지적 발전이 시작되는 시기의 어린이들에 대한 보육과 교육교양을 동시에 진행하면서 학교교육의 기초를 닦아주는데 중점을 두고 있지요. 어린이들의 심리적 특성에 맞게 학습과 건강에 신경을 써, 정서생활을 위해 체조와 몸 단련도 시키고 말과 글, 노래와 춤도 배워주며, 새참과 점심도 먹이고 낮잠도 재웁니다.

□ 통상 교육시간은 어떻게 됩니까?
■ 8시에 유치원에 나오면 12시까지 오전 교육을 받은 후 2시간 동안 점심시간이고, 2시부터 6시까지 오후 교육이 이뤄집니다. 오전에는 주로 ‘김정일 원수 어린시절’, ‘셈배우기’, ‘글자배우기’ 등 교양교육 중심으로 진행하고 있고, 오후에는 무용, 체조, 악기 등 예체능 중심으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 유치원 교육을 맡고 있는 교양원들은 어떻게 양성됩니까?
■ 일반적으로 교양원이 되려면 평양과 각 도.시에 설치되어 있는 3년제 교원대학 교양원과를 졸업하거나 도.시.군에 설치되어 있는 1년 과정의 교양원양성소를 나와야 합니다.

협동농장의 유치원은 10일유치원이다. 북한의 유치원은 1일유치원과 주(週)유치원, 10일유치원으로 나뉜다. 1일유치원은 동과 리, 기관, 기업소들마다에, 주유치원은 주요 공업지역과 도시에서 교원, 기자 등 출장이 많은 여성들의 자녀들을 대상으로 한다. 10일유치원은 각 협동농장에 만들어져 있다.

북한에서는 탁아소와 유치원을 ‘학령(취학) 전 어린이들의 보금자리’라고 부른다. 북한의 탁아소와 유치원은 중앙부터 지방까지 일관된 관리운영체계에 따라 모든 보육교양사업이 정규화, 규범화되어 있는 특징을 갖고 있다. 또 “탁아소와 유치원들에서는 대상 어린이들을 빠짐없이 조사등록하고 그들을 입소, 입학시키는데 필요한 보육교양 조건을 갖추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한다.

청산협동농장의 탁아소와 유치원을 둘러보니 1990년대 ‘고난의 행군’과 같은 최악의 경제상황은 벗어났지만 평양에 있는 탁아소, 유치원과는 교육환경에서 큰 격차가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올해부터 ‘과학농사’ 전면 도입

 

   
▲ 청산협동농장의 종합복지시설인 청산원의 이용실 모습. [자료사진 - 민족21]

유치원 옆에 있는 청산원에 들어서니 목욕탕과 이.미용실, 상점 등이 눈에 들어왔다. 
“청산원은 농장원들을 위한 복합편의시설로 2006년 봄에 건립했습니다. 한번에 50명까지 수용할 수 있는 목욕탕과 사우나는 물론 텔레비전과 녹음기, 녹화기(비디오)를 고쳐주는 수리점과 양복과 조선옷(한복)을 맞춰주는 의상실을 갖추고 있습니다.”

 

청산원 앞 농지에는 옥수수와 벼가 자라고 있었다. 윤 관리위원장은 “올해 농사가 잘 될 것”이라고 낙관적 전망을 내놓았다. “관리위원장으로 사업하면서 어려운 점은 없습니까?”라고 묻자, “어려움은 없습니다. 다만 맡은 일을 잘 해 신임에 보답할 수 있을지 걱정입니다”라고 대답했다.

□ 북한이 경제성장을 하기 위해서는 농업분야에서 곡물생산량을 결정적으로 늘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앞으로 5년 동안 청산협동농장의 목표는 무엇입니까?
■ 꾸준히 종자를 개량하고, 이모작을 늘려나갈 계획입니다. 먼저 올해 지난해보다 많은 수확량을 얻는 것이 과제입니다.

2006년에 두 번 방문하고, 2년 만에 다시 방문한 청산협동농장은 그 사이에 많은 변화를 시도하고 있었고, 이후 컴퓨터실도 갖추고 ‘과학 영농’을 위해 힘쓰기 시작했다. 올해부터는 시범적으로 시행하던 ‘과학농사’를 전면적으로 도입했다. 종전보다 종자와 비료 등 농자재가 적게 드는 재배 방법과 생산성이 향상된 종자를 쓴다고 한다. 젊은 관리위원장이 취임한 후 최근 북한 당국의 경제개혁 조치와 어우러져 청산협동농장이 새로운 변화를 시도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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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정치, 세월호 특별법 '다시 협상'하기로

[기사 재보강 : 11일 오후 9시 5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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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정치민주연합, 세월호 특별법 재협상 추진 지난주 세월호 특별법 여야 원내대표 합의 내용을 놓고 유가족을 비롯한 야권 내부의 반발이 거센 가운데, 1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새정치민주연합 비공개 의원총회에 참석한 은수미, 홍익표, 서영교, 정청래, 도종환 의원이 회의장을 나서고 있다. 이날 의원총회에 참석한 박범계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변인은 브리핑을 통해 "지난 7일 여야 원내대표 합의사항으로는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을 바라는 유가족과 국민의 동의를 받기가 어렵다는 점을 확인한다"며 "박영선 원내대표는 이러한 의원들의 총의를 모아 다시 협상을 추진하며 향후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들은 박영선 국민공감혁신위원장을 중심으로 더욱 단결해서 세월호 진상규명에 헌신적으로 나설 것을 결의한다"고 밝혔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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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정치민주연합은 여야 원내대표 간 '세월호 특별법' 합의에 대해 '다시 협상'을 추진하기로 결정했다. 

11일, 장장 4시간 30분 여 동안 이어진 의총에서 의원들은 "7일자 여야 원내대표 합의사항으로는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을 바라는 유가족과 국민의 동의를 받기 어렵다는 점을 확인한다"라며 "박영선 원내대표는 이런 총의를 모아 다시 협상을 추진한다"라고 뜻을 모았다고 박범계 원내대변인이 밝혔다. 

박 원내대변인은 '다시 협상' 문구에 대해 "협상이 끝나지 않았고 오늘도, 내일도 협상해야 한다"라며 "협상을 하는 당사자인 원내대표와 정책위의장 입장도 고려한 표현"이라고 밝혔다. '추가 협상'이냐는 질문에도 그는 "말장난 같을지 모르겠으나 협상하는 분의 고충과 의원의 요구를 절충하는 형식으로 '다시 협상한다'라는 표현을 썼다, 이에 재협상과 추가협상이라는 표현도 피했다"라고 말했다. 다만 그는 "기존 합의가 무효가 아니라는 점은 분명하다"라고 못 박았다. 

'기존 합의에서 어느 부분이 유효하냐'는 질문에 박 대변인은 "협상 진행중이기 때문에, 기존 합의문 어디가 유효하고, 어디가 유효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라고 잘라 말했다. 

박 대변인의 얘기를 종합해보면, '다시 협상'이 기존 합의를 엎고 원점에서 다시 협상하는 것인지, 기존 합의를 인정한 상태에서 추가로 협상하는 것인지가 애매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정치민주연합은 '재협상'이라는 의미에서 '다시 협상한다'고 표현했다. 하지만 은수미 의원이 이날 페이스북에 "지난 7일 여야 합의를 추인하지 않고 유족의 뜻에 따라 재협상하기로 했다"고 쓴 것을 헤아리면 '8.7 합의 파기'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이날 의총에서 김영환·정청래 의원 등은 '원점에서 재협상'을 강하게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재선 의원도 "무효 선언하고 전면 재협상하라는 것이 대다수 의견"이라고 전했다. 이날 의총에서는 30명의 의원들이 발언한 것으로 전해진다. 당초 '여야 원내대표 협상안'을 추인하지 않는다는 문구를 의총 결과문에 넣으려 했지만 결국 최종본에서는 빠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로써, 기존 합의안을 확고하게 고수했던 박영선 원내대표의 리더십은 타격받을 수밖에 없게 됐다.

'세월호 특별법' 13일 본회의 통과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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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호 특별법 재협상 기로에 선 새정지치민주연합 지난주 세월호 특별법 여야 원내대표 합의 내용을 놓고 유가족을 비롯한 야권 내부의 반발이 거센 가운데, 1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새정치민주연합 비공개 의원총회 도중 일부 의원들이 복도로 나와 심각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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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본회의 통과 여부에 대해 박 대변인은 "내일 (여야 협상이) 타결이 되면 13일이 불가능하진 않다"라며 여지를 남겼다. 더불어 국조특위 청문회를 위한 증인채택과 관련해서 그는 "박영선 대표가 패키지 협상임을 지적했다"라며 "특별법 부분과 국조특위 증인 부분은 함께 협상돼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앞서 여야 원내대표는 지난 7일 세월호 특별법 관련 쟁점을 일괄 타결했다. 특검 추천은 현행 상설특검법에 맞춰 진행하되 진상조사위 구성을 여야 각 5인, 대법원장과 대한변협회장 각 2인, 유가족 측 3인 추천으로 구성키로 했다. 특검 추천 권한에서는 야당이, 진상조사위 구성에서는 여당이 한 발 물러선 결과다. 

그러나 세월호 유가족들이 꾸준히 요구해온 진상조사위에 수사권·기소권 부여문제는 전혀 반영되지 않아 유가족들은 물론 사회 각계의 반발을 샀다. 이에 새정치연합은 의총을 열고 뜻을 모아 '다시 협상'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이에 앞서 여야 원내대표는 회동을 통해 협상을 이어갔지만 결론을 내지 못한 채 오는 12일 다시 만나기로 했다. 오는 12일 회동에서도 돌파구를 찾지 못할 시 13일로 예정돼있던 세월호 특별법 본회의 처리도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박영선, 특검의 야당 추천 권한 확대 제안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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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야 주례회동 마친 박영선 원내대표 지난주 세월호 진상조사를 위한 특검 추천권 여야 원내대표 합의안에 대해 유가족을 비롯한 야권 내부의 반발이 거세지고 있는 가운데, 1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운영위원장실에서 박영선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가 이완구 새누리당 원내대표와의 주례회동을 마친 뒤 기자들에게 둘러싸여 질문에 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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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박영선 원내대표는 상설특검에서 야당 특검 추천 권한을 확대하는 방안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별검사의 임명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특검후보추천 위원 7명은 법무부 차관·법원행정처 차관·대한변호사협회장이 추천한 각 1명과 국회 추천 4명으로 구성하도록 돼있다. 박 원내대표의 제안은, 국회 추천 몫 4명 가운데 3명을 야당이 추천하도록 하자는 요구인 것으로 전해진다. 이에 새누리당은 거부 뜻을 밝혔고 이날 협상은 무위로 돌아간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날 새정치연합 의원총회에서 '다시 협상' 결론이 난 만큼 오는 12일 여야 원내대표 간 협상이 더욱 중요해졌다. 이날 협상 결과에 따라 세월호 특별법 제정이 이뤄지느냐 장기간 교착 상태에 빠지느냐가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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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8월 이후 북의 마지막 선택

2014년 8월 이후 북의 마지막 선택
 
한호석의 개벽예감 <125>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기사입력: 2014/08/11 [11:15]  최종편집: ⓒ 자주민보
 
 

 [편집자 주: 눈에 보이기에는 평화로운 한반도이지만 한호석 소장의 이 글만 봐도 북미대결전이 격화되어 한반도의 전쟁위기가 심각한 단계로 접어들고 있음을 직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정부당국자는 북과 미국의 대결에 한반도의 운명을 맡겨놓고 있지만 말고 지금이라도 북과 직접 만나 한반도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할 길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이 글은 다소 충격적인 주장이 많이 들어있지만 정북 당국에 6.15, 10.4 선언을 통한 평화적 통일의 길을 하루빨리 모색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소개합니다.]

 

▲ <사진 1> 지난 8월 7일 미국 국방부는 B-2 스텔스전략폭격기 세 대를 괌에 있는 앤더슨공군기지에 전진배치하였다고 밝혔다. 가오리처럼 생긴 이 폭격기는 선제핵타격, 심층관통핵타격에 동원된다. 미국이 그런 임무를 수행하는 폭격기들을 한반도를 겨냥한 서태평양출격기지에 전진배치한 것은 미국이 전쟁징후에 준하는 매우 심각한 상황이 한반도에서 전개되었다고 판단하였기 때문에 그렇게 한 것이다. 그런데도 남측 국민들은 심각한 상황을 아직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     © 자주민보


 

 미국은 왜 느닷없이 B-2 스텔스전략폭격기를 전진배치하였을까?

 

지난 8월 7일 미국 국방부는 B-2 스텔스전략폭격기 세 대를 서태평양의 미국령 괌(Guam)에 있는 앤더슨공군기지(Anderson Air Force Base)에 전진배치했다고 밝혔다. 미국 본토 미주리주에 있는 와이트먼공군기지(Whiteman Air Force Base)에 고정배치된 B-2 스텔스전략폭격기들이 한반도를 겨냥한 서태평양출격기지에 전진배치된 것이다. <사진 1>


B-2 스텔스전략폭격기를 앤더슨공군기지에 전진배치하였다는 말은 격납고에 들어가 출격명령을 대기하는 중이라는 뜻이 아니라, 공중타격연습을 계속 실시한다는 뜻이다. 2009년 3월 12일 미국 태평양공군사령부 공식매체인 <태평양공군(PAF)>이 보도한 바에 따르면, 당시 앤더슨공군기지에 전진배치된 B-2 스텔스전략폭격기 편대는 “임무를 수행하는 동안, 그 어떤 상황에서도 더욱 훌륭히 준비하기 위해 마치 실전상황처럼 작전(연습)을 하게 된다”고 하였다. 지난 8월 7일 미국의 온라인 매체 <세계항공보(Global Aviation Report)>는 앤더슨공군기지에 전진배치된 B-2 스텔스전략폭격기 세 대가 ‘숙달훈련(familization training)’을 받게 된다고 하였다. 무엇을 숙달한다는 뜻인가?


한 번 이륙하면 6시간마다 한 차례씩 공중급유를 받으며 11,000km를 비행할 수 있는 B-2 스텔스전략폭격기는 심층관통핵타격(deep-penetrating nuclear strike)에 동원되는 폭격기다. B-2 스텔스전략폭격기는 공중에서 투하되어 지하 61m까지 파고들어가 폭발하는, 무게가 14t이나 나가는 지하관통폭탄 GBU-57A/B 두 발을 실을 수 있고, 340킬로톤급 폭발력을 지닌 B-61핵폭탄 또는 1.2메가톤급 폭발력을 지닌 B-83핵폭탄을 실을 수 있다. 1.2메가톤급 핵폭탄은 일본 히로시마를 파괴한 핵폭탄보다 75배나 더 강한 폭발력을 가졌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면, 이번에 앤더슨공군기지에 전진배치된 B-2 스텔스전략폭격기 세 대는 심층관통핵타격을 숙달하는 연습을 실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심층관통핵타격연습은 아무 때, 아무 데서나 일상적으로 실시하는 것이 아니라, 전쟁징후에 준하는 매우 심각한 상황이 조성되었을 때 선제핵타격연습의 일환으로 실시하는 것이다. 적의 방공레이더망을 뚫고 공중침투할 수 있는 스텔스기능을 갖춘 것만 보더라도, 그 전략폭격기가 전쟁징후를 포착한 즉시 선제핵타격을 개시하기 위해 특별히 설계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최근 미국은 전쟁징후에 준하는 매우 심각한 상황을 인식하였기 때문에 지난 8월 7일 B-2 스텔스전략폭격기 세 대를 앤더슨공군기지에 전진배치하여 선제핵타격, 심층관통핵타격을 연습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누구나 아는 것처럼, 미국이 전쟁징후에 준하는 매우 심각한 상황을 인식한 곳은 한반도다.


요즈음 친러시아세력과 친서방세력 사이의 갈등이 폭발한 우크라이나 내전사태에 대비하여 중무장한 러시아군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접경지대로 집결한 공격징후가 보이는데도, 미국은 그에 대처하여 B-2 스텔스전략폭격기 편대를 서유럽에 전진배치하지 않았고, 순양함 한 척을 흑해에 전진배치하였을 뿐이다. 오늘 우크라이나 상황과 한반도 상황을 비교하면, 미국의 B-2 스텔스전략폭격기 세 대가 북을 겨냥한 선제핵타격, 심층관통핵타격연습을 감행하는 것은, 미국이 러시아군의 우크라이나 공격징후보다 훨씬 더 심각한 상황이 한반도에서 전개되었다고 판단하였기 때문에 그런 연습을 감행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미국이 러시아군의 우크라이나 공격징후보다 훨씬 더 심각한 상황을 한반도에서 인식하였다면, 그것은 미국이 보기에 조선인민군의 군사동향이 매우 심각하다는 뜻이다. 


미국의 B-2 스텔스전략폭격기 네 대가 사상 처음으로 괌의 앤더슨공군기지에 전진배치되어 북을 겨냥한 선제핵타격, 심층관통핵타격을 연습한 때는 2009년 1월 중순이었는데, 당시에도 미국은 전쟁징후에 준하는 매우 심각한 상황이 한반도에서 전개되었다고 판단하였기 때문에 그런 연습을 감행한 것이다. 2009년 1월 중순 미국이 B-2 스텔스전략폭격기 네 대를 사상 처음으로 괌의 앤더슨공군기지에 전진배치한 까닭은, 그로부터 약 넉 달이 지난 2009년 5월 25일에 밝혀졌는데, 북이 그날 제2차 지하핵실험을 실시하였던 것이다.


미국은 북이 지하핵실험을 실시하기 넉 달 전에 그 실험이 실시될 것을 어떻게 미리 알았을까? 2008년 10월 9일 미국 정부 고위관리들의 말을 인용한 미국 <ABC> 텔레비전 방송보도에 따르면, 당시 미국 당국이 함경북도 길주군 만탑산에 있는 지하핵실험장을 촬영한 위성사진을 판독하였더니 그 무렵 두 주간 동안 그 곳에서 굴착작업과 대형케이블선 이동 같은 움직임이 보였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면, 미국이 이미 2008년 10월부터 북의 지하핵실험 준비상황을 주시해오다가 2009년 1월 중순 B-2 스텔스전략폭격기 네 대를 앤더슨공군기지에 전진배치하였던 것임을 알 수 있다. 


2009년 이후 미국의 B-2 스텔스전략폭격기가 앤더슨공군기지에 두 번째로 전진배치된 때는 2013년 1월이다. 당시 B-2 스텔스전략폭격기 두 대가 앤더슨공군기지에 전진배치되었다. 또한 2013년 3월 28일에는 와이트먼공군기지에서 이륙한 B-2 스텔스전략폭격기 두 대가 공중급유를 받으며 10,400km를 비행하여 전라북도 군산 앞바다에 있는 직도폭격연습장까지 날아가 핵타격연습을 실시하고 와이트먼공군기지로 돌아갔다. 이처럼 2013년에는 미국이 B-2 스텔스전략폭격기의 서태평양 전진배치와 대륙간장거리이동을 석 달 간격으로 연거푸 감행할 만큼 상황이 매우 심각하였다. 


북은 2013년 2월 12일 제3차 지하핵실험을 실시하였는데, 그 준비는 이미 2012년부터 진행되고 있었다. 미국의 <합동통신(AP)> 2012년 4월 27일 보도에 따르면, 미국 당국이 당시 4월 초에 만탑산 지하핵실험장을 촬영한 위성사진을 판독하였더니, 그 곳에서 굴착작업과 토사운반광차 이동 같은 움직임이 보였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면, 미국이 이미 2012년 4월부터 북의 지하핵실험 준비상황을 주시해오다가 2013년 1월에 B-2 스텔스전략폭격기 두 대를 앤더슨공군기지에 전진배치하였던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지난 8월 7일 미국이 B-2 스텔스전략폭격기 세 대를 앤더슨공군기지에 전진배치한 것도 북의 지하핵실험 준비동향과 관련된 것일까? 지난 4월 21일 오전 9시 남측 국방부와 합동참모본부는 북의 제4차 지하핵실험에 대비한 통합위기관리실무반을 가동시켰다. 이튿날 남측 국방부는 북이 만탑산 지하핵실험장에서 여러 가지 활동을 벌이고 있다고 밝힌 바 있는데, 그들이 말한 여러 가지 활동이란 각종 계측장비를 현장에 설치하고, 계측장비와 통제소 사이에 통신선을 연결하고, 굴착한 갱도를 되메우는 움직임 등이다. 당시 김민석 국방부 대변인은 북이 “언제든지 결정만 하면 기습적으로 핵실험을 할 수 있는 단계에 있다”고 말했다.


이런 맥락을 살펴보면,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명령만 내리면 조선인민군은 언제든지 제4차 지해핵실험을 즉각 실시할 모든 준비를 갖춘 것으로 보인다. 한국군은 지난 4월 21일부터 북의 지하핵실험에 대비한 통합위기관리실무반을 가동하고 있는데, 미국이 그로부터 약 3개월 반이 지난 뒤에 B-2 스텔스전략폭격기 세 대를 앤더슨공군기지에 전진배치한 것은, 2009년 1월이나 2013년 1월과는 달리, 이번에는 북의 지하핵실험이 임박한 징후를 포착하였기 때문에 그렇게 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지난 7월에 미국이 한반도에서 전개되기 시작한 것으로 판단한, 전쟁징후에 준하는 매우 심각한 상황은 무엇인가? 이와 관련하여 아래와 같은 두 가지 사실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첫째, 지난 7월 중에 조선인민군 전략군이 화성-6호를 동원한 불시기동-기습타격연습을 세 차례 실시하였는데, 미국은 그 연습을 전쟁징후에 준하는 매우 심각한 행동이라고 본 것이다. 7월 중에 조선인민군 전략군이 실시한 불시기동-기습타격연습에 관해서는 지난 7월 21일 <자주민보>에 발표한 나의 글 ‘마지막 선을 향해 남하하는 불시기동-기습타격연습(http://www.jajuminbo.net/sub_read.html?uid=16927)에서 논한 바 있다.


둘째, 북이 ‘운명적인 7월’이라고 했던 지난달 20일 북측 국방위원회 정책국 대변인이 발표한 담화문을 읽어보면 아래와 같은 문장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우리는 이미 1월의 중대제안과 공개서한을 통하여 그리고 6월의 특별제안과 7월의 공화국정부성명을 통하여 북남관계를 개선하고 나라의 통일과 평화번영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하였다. 이제 남은 것은 최후의 선택뿐이다.”


이 인용문은 북과 미국의 적대관계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현 정세를 한 마디로 말해준다. 인용문을 남측 서술방식으로 바꿔 다시 적어보면, 북은 지난 1월부터 7월까지 남북관계를 개선하고 한반도의 통일과 평화번영을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였건만, 미국과 남측 정부는 북의 그런 노력을 선의로 대하기는커녕 항모타격단을 비롯한 방대한 무력을 동원한 합동전쟁연습을 감행하였으니 2014년 8월 이후 북에게는 마지막 선택밖에 남지 않게 되었다는 뜻이다.


2014년 8월 이후 어느 시점에 북이 단행하게 될 것으로 보이는 ‘최후의 선택’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누구나 직감하는 것처럼, 위의 인용문에 나온 ‘최후의 선택’이라는 말은 ‘최후 결전’을 뜻한다. 북에서 말하는 ‘최후 결전’은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2012년 8월 25일 ‘선군절’ 경축연회 연설에서 언급한 ‘판가리결전’ 또는 ‘조국통일대전’이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면, 위에서 인용한 북측 국방위원회 정책국 대변인 담화문에 들어있는 “이제 (북에) 남은 것은 최후의 선택뿐”이라는 문장은 2014년 8월 이후 북에 남은 것은 ‘조국통일대전’뿐이라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

 

 

전 이후 분단 10주기를 맞을 때마다 ‘조국통일대전’ 의지를 표명한 북의 최고영도자들

 

2013년 10월 24일 서울에서 진행된 국제학술회의에서 청샤오허(成曉河) 중국 런민대 교수는 기밀해제된 중국 외교부 문서인 ‘주조중화인민공화국 대사의 담화기록’에 대해 언급하면서 김일성 주석은 1965년 당시 주조중화인민공화국 대사에게 “전쟁을 하지 않고서 이 문제(한반도 분단문제-옮긴이)를 해결할 수 없다”고 하면서 “조선은 조만간 전쟁을 할 것이며 이는 불가피한 것”이라며 “전쟁을 하게 되면 중국에서 군대를 파병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고 한다. 또한 중국 <텅쉰핑런(騰迅評論)> 2014년 3월호에 실린 글에 따르면, 1965년 김일성 주석은 6.25전쟁에 중국인민지원군 부사령관으로 참전했던 양융(楊勇)에게 “(우리가) 더 늙기 전에 한 번 더 겨뤄보는 것도 나쁘지 않고, 이 짐을 후대에게 물려주면 우리가 싸우는 것보다 반드시 더 잘한다는 법도 없다. 경험 있는 우리가 이 무거운 짐을 질테니 당신들과 함께 싸워보면 어떻겠는가?”라고 말했다고 한다. 위의 인용문은 ‘조국통일대전’이 한반도 분단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불가피한 ‘최후의 선택’이라고 생각한 김일성 주석이 1965년에 ‘조국통일대전’ 의지를 중국측에 표명하였음을 말해준다. 1965년은 분단 20년이 되던 해였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1965년 4월 27일 조선인민군 항공군 소속 미그-17 두 대가 동해 상공에 나타난 미국군 정찰기 EC-121을 공격하였는데, 기습공격을 받고 기체손상을 당한 그 정찰기는 일본 요코다공군기지로 간신히 대피하였다. 그로부터 4년이 지난 1969년 4월 14일 북의 전투기들은 동해상공에서 미국군 정찰기 EC-121을 공대공미사일 한 발로 격추하였고 거기에 타고 있던 미국군 31명이 몰살당했다. 1968년 1월 21일에는 조선인민군 특수군 부대의 청와대 습격사건이 있었고, 이틀 뒤에는 조선인민군 해군이 동해에서 대북첩보활동을 벌이던 미국군 첩보선 푸에블로호(USS Pueblo)를 나포하면서 승조원 83명 전원을 생포하였고, 10월 30일부터 11월 2일까지 기간에는 조선인민군 특수전 부대가 경상북도 울진과 삼척에 각각 기습상륙하여 교전을 벌였으며, 1969년 3월에는 조선인민군 최전방 부대의 기습공격으로 주한미국군 7명이 죽었고, 11월에는 주한미국군 4명이 또 죽었다.


조선인민군이 1965년부터 1969년 사이에 그처럼 집중공격을 가해 미국군에게 커다란 타격을 입힌 것은 김일성 주석이 1965년에 중국측에 ‘조국통일대전’ 의지를 표명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 당시 베트남전쟁에서 패색이 짙어진 미국이 북의 집중공격에 겁을 먹고 뒤로 물러나는 바람에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지만, 조선인민군은 1965년부터 근 5년 동안 미국군을 집중공격하면서 ‘조국통일대전의 결정적 기회’를 노리고 있었던 것이다.

 

▲ <사진 2> 김일성 주석이 '조국통일대전' 의지를 표명하였던 1965년 당시 미국은 위의 사진에 보이는 지대지미사일 어네스트 존을 주한미국군기지들에 배치하고 있었다. 문제는 그 미사일에 전술핵탄두가 탑재된다는 점이다. 당시 미국은 11종의 핵탄 950발을 남측에 배비하고 있었다. 그러나 북은 미국의 핵위협이 아니라 그보다 더한 것으로도 막을 수 없을 만큼 강렬하고 절실한 '조국통일대전' 의지를 가지고 있었다.     © 자주민보


만일 당시 북이 ‘조국통일대전’에 돌입하였더라면, 미국은 대북핵공격을 감행하였을지 모른다. 미국의 핵전문가 핸스 크리스텐슨(Hans M. Kristensen)이 2005년 9월 28일 미국과학자연맹 전략안보블로그(FAS Strategic Security Blog)에 발표한 자료 ‘남코리아에서 미국 핵무기의 역사(A History of U.S. Nuclear Weapons in South Korea)’에 따르면, 1967년에 미국은 11종의 핵탄 950발을 남측에 배비하고 있었다. 핵탄 950발 가운데는 지대지미사일과 순항미사일에 각각 탑재하는 핵탄두는 말할 것도 없고, 핵지뢰도 있었고, 203mm포와 280mm포에서 발사하는 핵포탄도 있었다. <사진 2>


그런데 각종 핵탄 950발로 무장한 주한미국군은 당시 핵탄 한 발도 갖지 못한 조선인민군이 자기들에게 근 5년 동안 집중공격을 퍼부었는데도 대북핵공격을 감행하지 못했다. 1960년대 후반 세계 최강의 핵보유국이었던 미국은 비핵국가였던 북으로부터 집중공격을 받았으면서도 북에게 포 한 발 쏘지 못하였다.


놀라운 사실은, 당시 재래식 무기밖에 없었던 북이 세계 최강의 핵보유국인 미국에게 정면으로 맞서면서 ‘조국통일대전의 결정적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는 점이다. 당시 미국이 각종 핵탄 950발을 주한미국군기지들에 배비해놓고 대북핵공격을 노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북이 몰랐기 때문에, 1965년부터 근 5년 동안 미국군을 집중공격하면서 ‘조국통일대전의 결정적 기회’를 노린 것은 아니었다. 명백하게도, 북은 미국의 핵위협이 아니라 그보다 더한 것으로도 막을 수 없을 만큼 강렬하고 절실한 ‘조국통일대전’ 의지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김일성 주석은 분단 30년이 되던 1975년에도 ‘조국통일대전’ 의지를 표명하였다. 1975년 5월 6일 베이징 주재 동독대사관이 본국에 보낸 비밀전문에 따르면, 당시 14년 만에 중국 방문길에 오른 김일성 주석은 4월 19일 베이징에서 열린 중국 지도부의 환영연회에서 연설하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만일 적들이 무모하게 전쟁을 벌인다면, 우리는 전쟁으로 결정적인 대답을 줄 것이며 침략자들을 완전히 소멸할 것입니다. 이 투쟁에서 우리가 잃을 것은 군사분계선이요, 우리가 얻을 것은 조국의 통일입니다.”


분단 40년이 되던 1985년에 김일성 주석이 ‘조국통일대전’ 의지를 표명하였는지를 말해주는 기록은 찾을 수 없지만, 북이 외부지원을 받지 않고 독자적으로 전쟁을 할 수 있는 군사력을 보유하였던 1985년에도 ‘조국통일대전’ 의지를 가지고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


김일성 주석의 ‘통일유훈’을 실현해야 하였던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분단 50년이 되던 1995년에 김일성 주석이 생전에 이루지 못한 ‘조국통일대전’에 대한 강렬한 의지를 표명하였다. 김영환 국가정보대학원 교수가 ‘대국민 안보보고서’라는 제목의 논문을 2009년 1월 인터넷에 공개하여 남측 국민들에게 충격을 준 바 있는데, 현역 군인 출신 탈북자의 말을 인용한 그의 글에 따르면,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1994년 4월 인민무력부 작전지휘관들에게 “우리 인민들이 자고 있는 사이에 공격을 개시, 순식간에 남조선을 점령해 아침에 깬 인민들이 남조선점령상태를 확인하도록 하라”고 지시하였다고 한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분단 60년이 되던 2005년에도 ‘조국통일대전’에 대한 강렬한 의지를 표명하였다. 2003년 1월 일본 언론매체가 입수하여 번역, 게재한 ‘조선인민군 학습제강’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우리가 조국을 통일하는 것은 무력으로 적들을 소멸하고 남조선을 단숨에 타고 앉는 길밖에 다른 방도가 없으며 이것은 나의 변하지 않는 무력통일관입니다”고 말하면서 ‘조국통일대전’ 의지를 표명하였음을 알려주었다.

 

▲ <사진 3> 북의 최고영도자들은 6.25전쟁 이후 분단 10주기를 맞을 때마다 '조국통일대전' 의지를 표명하였는데,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생전에 이루지 못한 '조국통일대전 유업'은 오늘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에게 계승되었다. 지난해 남측 언론보도에 따르면, 김정은 제1위원장은 3년 이내에 무력통일을 하겠다고 수시로 공언하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공언은 분단 70년이 되는 2015년까지 '조국통일대전 유업'을 실현하겠다는 강렬한 통일의지를 표명한 것으로 해석된다.     © 자주민보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생전에 이루지 못한 ‘조국통일대전 유업’은 오늘 김정은 제1위원장에게 계승되었다. <사진 3> 2013년 8월 9일 북측 조국평화통일위원회가 펴내는 <우리민족끼리> 보도에 따르면, 김정은 제1위원장은 “조국통일은 더는 미룰 수 없는 민족최대의 절박한 과제이며 위대한 대원수님들의 필생의 념원이고 유훈”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2013년 10월 8일 남측 국회 정보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한 남재준 당시 국정원장은 “김정은 제1위원장이 3년 이내에 무력통일을 하겠다고 수시로 공언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정은 제1위원장이 3년 이내에 무력통일을 실현하겠다고 공언한 것은,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생전에 이루지 못한 ‘조국통일대전 유업’을 분단 70년이 되는 2015년까지 실현하겠다는 강렬한 통일의지를 표명한 것으로 해석된다. 위에 서술한 것처럼, 북의 최고영도자들은 6.25전쟁 이후 분단 10주기를 맞을 때마다 ‘조국통일대전’ 의지를 표명하였으니, ‘조국통일대전 유업’을 계승한 김정은 제1위원장이 분단 70년이 되는 2015년까지 그 유업을 실현하겠다고 여러 차례 공언한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된다. 지난 시기 김일성 주석은 아직 핵무력을 보유하지 못한 북이 미국으로부터 일방적으로 핵위협을 받았던 매우 불리한 상황에서도 ‘조국통일대전’에 대한 강렬한 의지를 표명하였는데, 북이 미국 본토를 타격할 강력한 핵무력을 보유하고 ‘조국통일대전’ 준비를 완료하였다고 하는 오늘 김정은 제1위원장의 ‘조국통일대전’ 의지는 더욱 강렬한 것으로 생각된다.

   
남재준 당시 국정원장이 국회 정보위원회에 출석하여 김정은 제1위원장의 ‘조국통일대전’ 의지표명에 관해 보고한 때로부터 사흘 뒤 국회 국방위원회 인사청문회에 출석한 최윤희 당시 합참의장 후보자는 북의 “3일 단기속결전 시나리오”에 대한 질문을 받고 “한미동맹을 기반으로 한 우리의 방위태세로 볼 때 (그 시나리오는) 실현 가능성이 없다”고 답변했다. 그 날 국회 국방위원회 인사청문회에 참석한 국회의원들 가운데 누가 ‘3일 단기속결전 시나리오’를 언급하며 합참의장 후보자에게 질의했는지는 언론에 보도되지 않았으나, 그 시나리오는 북이 작성한 것이 아니라 2013년 3월 16일 <자주민보>에 실린 글 ‘3일만에 끝날 단기속결전’에 서술된 나의 추론이다. 그 글이 <자주민보>에 실린 날로부터 14일이 지난 3월 30일 북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 정당, 단체 특별성명’에서 “우리의 조국통일대전은 3일 대전도 아니며 미국과 괴뢰호전광들이 미처 정신을 차릴 사이 없이 단숨에 남조선 전지역과 제주도까지 타고 앉는 벼락같은 속전속결전”이라고 지적하면서 내가 추론하였던 ‘3일 단기속결전 시나리오’를 사실상 부인한 바 있다.

 

 

조선인민군의 적군와해공작과 한국군의 사상정신상태

 

중요한 것은, 북에서 말하는 ‘조국통일대전’이 사흘 만에 끝날 것인가 아니면 하루 만에 끝날 것인가 하는 전쟁속결속도에 대해서만 관심을 가질 것이 아니라 조선인민군이 그처럼 상상을 초월한 초고속으로 ‘조국통일대전’을 끝낼 수 있는가 하는 그들의 전쟁준비태세에 대해서도 응당한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점이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아래와 같이 설명할 수 있다.


북에서 말하는 ‘조국통일대전’은 피를 적게 흘리는 특수한 전쟁이라고 볼 수 있다. ‘조국통일대전’이 사흘까지 가지 않고 그 이전에 급속히 끝나게 될 것이라는 북의 공식언명은 전쟁기간이 짧을수록 그만큼 피를 적게 흘리게 된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발언인 것이다.


조선인민군이 ‘피를 적게 흘리는 조국통일대전’을 수행할 때 그들에게 제기되는 중요한 과제는 적군와해공작이다. 위에 인용한 ‘조선인민군 학습제강’은 ‘조국통일대전’에서 적군와해공작이 가지는 결정적인 중요성에 대해 언급한 군의 내부문건이다. ‘조선인민군 학습제강’은 “현대전에서 적군와해공작이 가지는 의미는 더욱더 커져가고 있습니다”고 지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가르침을 전하면서 “상대측을 사상심리적으로 와해시키는 일이 커다란 힘이 된다”고 인정하였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면, 북의 ‘조국통일대전’ 시나리오는 조선인민군이 기습타격과 불시점령으로 주한미국군과 한국군의 전투력을 순식간에 마비시키고 곧이어 적군와해공작을 전개함으로써 피를 적게 흘리는 특수한 전쟁을 초고속으로 결속하려는 내용으로 작성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북에서 말하는 ‘조국통일대전’에서 조선인민군의 적군와해공작은 한국군의 사상무장이 허술해야 가능하다는 점이다. 사상무장이 든든한 군대에게는 와해공작이 먹혀들어가기 힘들기 때문에 그렇다.

 

▲ <사진 4> 최근 남측 언론매체들이 날마다 떠들썩하게 보도하는 각종 군부대 사건들이 말해주는 것처럼, 입에 담지 못할 가혹한 폭행과 변태적 학대행위, 정신질환과 범죄가 한국군에 만연된 것으로 보인다. 한국군은 사상정신적으로 와해될 위험에 빠진 것이다. 이런 맥락을 보면, 조선인민군이 적군와해공작을 왜 그처럼 중시하는지 자명해진다.     © 자주민보


한국군의 사상무장은 잘 되어 있을까? 얼마 전 일어난 육군 제22사단 총기난사-무장탈영사건과 제28사단 폭행치사사건에서 드러난 것처럼, 한국군에는 사상무장은커녕 입에 담지 못할 가혹한 폭행과 변태적 학대행위, 정신질환과 범죄가 만연된 것으로 보인다. <사진 4>


지난 8월 6일 한국군 육군 당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3년 한 해 동안 군에서 일어난 폭행 및 가혹행위에 따른 형사처벌건수는 1,100건이고, 징계건수는 6,095건이다. 그러나 이런 통계수치는 이번에 제28사단 폭행치사사건에서 드러난 것처럼 ‘빙산의 일각’이다. 그렇게 판단하는 근거는, 지난 4월 7일 육군 제28사단에서 폭행치사사건이 일어나자 군당국이 4월 한 달 동안 전체 부대를 대상으로 가혹행위에 관한 긴급조사를 실시하여 3,900여 명의 가혹행위 가담자를 적발한 것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한 달 동안 3,900명의 가혹행위 가담자가 적발되었는데, 한 해 동안 가혹행위에 따른 형사처벌건수가 1,100건밖에 되지 않고, 징계건수가 6,095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소리다. 폭력으로 통제되는 한국군은 전쟁이 터지면 아군끼리 서로 총을 겨눌 것이라고 우려한 <문화일보> 2014년 8월 8일부 보도기사는 결코 과장이 아니다. 


2014년 8월 6일 국군의무사령부가 공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11년 1월부터 2013년 12월까지 3년 동안 19개 군병원들에서 정신질환을 치료한 경험을 보면, 한국군 정신질환자는 19,066명이고, 정신질환진료는 66,481건이나 되었다. 2013년 9월 9일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국회의원이 국방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우울장애에 걸렸거나 자살충동을 느끼는 군인의 비율이 13.9%에 이른다. 2011년 9월 22일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국회의원이 국방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군에서 자살사건이 증가하는 바람에 2011년 7월부터 9월 22일까지 인성검사를 실시했는데, 그 검사를 받은 중사와 상사 60,038명, 위관급 장교 29,130명을 포함해 모두 89,168명의 피검사자들 가운데 10.2%에 이르는 9,131명이 정신과 의사의 진료를 받아야 하거나 전문가의 상담을 받아야 한다는 판정을 받았다.   

  
지난 8월 7일 새정치민주연합 소속 국회의원이 군검찰 자료를 인용해 밝힌 바에 따르면, 2013년 한 해 동안 군검찰이 의법처리한 군인범죄는 7,530건이나 되었는데, 교통법위반범죄, 폭력범죄, 성범죄, 추행범죄, 사기 및 공갈범죄, 절도 및 강도범죄, 횡령 및 배임범죄, 기밀누설범죄, 탈영, 마약, 도박 등으로 다종다양했다.


이처럼 폭력과 학대가 만연되고, 정신질환자가 해마다 늘어나고, 범죄율이 높은 군대가 전쟁을 할 수 있을까? 조선인민군은 전군이 전우애로 똘똘 뭉쳐 ‘조국통일대전’ 준비를 완료했다는데, 한국군은 사상정신적으로 와해될 위험에 빠졌으니 그런 사실을 아는 남측 국민들은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조국통일대전’에 돌입한 조선인민군이 적군와해공작을 시작하기도 전에 한국군이 스스로 와해되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가 생길 지경이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면, 조선인민군이 적군와해공작을 왜 그처럼 중시하는지 알 수 있다. 


북에서 말하는 적군와해공작은 적군의 인명을 살상하는 것이 아니라 군조직을 와해시키고 무장을 해제하는 것이다. 바로 그런 맥락에서 ,북에서 말하는 ‘조국통일대전’이 피를 적게 흘리는 특수한 전쟁이라는 뜻을 이해할 수 있다.

 

 

조선인민군 특수군의 불시점령과 장거리남진갱도

 

북에서 말하는 ‘조국통일대전’에서 조선인민군이 중시하는 적군와해공작은 기습타격과 불시점령에서 일차적으로 승리했을 때 가능한 것이다.


북의 ‘조국통일대전’ 시나리오에서 말하는 기습타격이란 전략군이 초정밀전술유도탄으로 주한미국군과 한국군의 전방거점들을 파괴하고, 특수군이 주한미국군과 한국군의 후방거점들을 불시에 점령하는 것을 뜻한다. 조선인민군 전략군이 기습타격에 동원할 타격수단들 가운데 하나인, 원형공산오차가 1m 이내인 초정밀전술유도탄에 대해서는 2014년 6월 30일 <자주민보>에 실린 나의 글 ‘화성-11호 능가하는 북의 경이적인 전술유도탄(http://www.jajuminbo.net/sub_read.html?uid=16696)’에서 자세히 논한 바 있으므로, 이제는 조선인민군 특수군의 불시점령에 대해 논할 차례다.


조선인민군 특수군은 불시점령을 위해 지상과 지하, 해상과 수중 그리고 공중에서 입체적으로 침투할 것으로 예견되는데, 그 가운데서도 가장 결정적인 것은 장거리남진갱도를 통한 지하침투다. 이에 관한 정보는 지난 7월 15일 서울에서 출판된 책 ‘여적의 장군들’에 서술되었다. 한국군 공군과 합참의 요직을 두루 거치고 2010년 1월에 예편한 예비역 소장인 저자는 그 책에서 충격적인 주장을 꺼내놓았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수맥이나 광맥을 찾는 전문가와 함께 청와대 주변을 돌아다니며 땅속을 탐침하였더니 그 일대에 지하갱도가 벌집처럼 뚫려있는 것을 발견하였다고 한다. 그가 탐침한 청와대 주변의 지하갱도를 보면, 청와대 밑으로 뚫려있는 지하갱도가 최소 84개, 삼청동 총리공관 밑으로 뚫려있는 지하갱도가 6개, 청와대 주변도로 밑에 뚫려있는 지하갱도가 3~6개, 경복궁 밑으로 뚫려있는 지하연결통로가 5개 이상이다. 또한 그는 한국군 해병대 제2사단이 방어하는 서부전선 최북단 땅속을 탐침하였더니 지하갱도가 최소 36개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그 책에서 밝혔다. 

 

▲ <사진 5> 1975년 3월 19일 강원도 철원군에서 북쪽으로 13km 떨어진 근동면 군사분계선 남방 900m 지점에서 발견된 북의 남진갱도를 촬영한 사진이다. 토사와 버럭을 운반하는 광차가 오간 궤도가 보이고, 용도를 알 수 없는 도관이 바닥에 놓인 것도 보인다. 너비가 2.1m이고, 높이가 3m이며 지하 50-160m에 굴설된 이 남진갱도는 단거리남진갱도이므로 길이는 3.5km밖에 되지 않는다. 당시 이 남진갱도를 차단하는 작업에 투입된 한국군 7명이 조선인민군이 미리 설치해놓은 폭발물이 터지는 바람에 사망하였다. 최전방에 침투하는 단거리남진갱도는 이제껏 네 개 발견되었으나, 서울을 비롯한 남측 후방에 깊숙이 침투하는 장거리남진갱도는 하나도 발견되지 않았다.     © 자주민보


또한 그의 견해에 따르면, 붕괴를 막기 위해 격실형태로 굴설된 남진갱도들은 대체로 깊이 10m 정도에 뚫렸는데, 그 가운데는 언제든지 갱도출구를 파내고 즉각 지상으로 나올 수 있도록 지표면 가까이 2m에 뚫린 곳도 있다고 한다. <사진 5>


그가 탐침조사를 하지 않았지만, 주한미국군사령부와 국방부가 있는 서울 용산기지 일대 땅속에도 조선인민군이 굴설한 남진갱도가 뚫렸을 것으로 보이고, 미국군과 한국군의 지하전쟁지휘소들이 있는 청계산과 관악산에도 조선인민군의 남진갱도가 뚫렸을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지난 8월 2일 김민석 국방부 대변인은 북이 군사분계선으로부터 서울 중심부까지 60km에 이르는 장거리남진갱도를 굴설하는 경우 5t 화물차 140,000대가 실어 나를 엄청난 토사와 버럭을 처리해야 하는데, 그런 대규모 굴설작업이 미국군 정찰위성에게 발각되지 않을 수 없다고 하면서 북의 남진갱도에 관한 위와 같은 주장은 근거 없는 소리라고 일축하였다.


그러나 국방부 대변인이 알지 못하는 것은, 팔레스타인 군정조직 하마스(Hamas)가 가자지구에 지하갱도를 수백 개나 굴설하였다는 사실이다. 하마스가 2000년대 초반부터 불과 10여 년 동안 초보적인 굴착기술로 건설한 지하갱도가 수백 개 되는데, 조선인민군이 1953년 8월부터 60년 동안 고도의 굴착기술로 건설한 남진갱도가 얼마나 길고 얼마나 많은지 추정하기도 힘들다.


조선인민군이 굴설한 남진갱도는 단거리남진갱도와 장거리남진갱도로 구분되는데, 단거리남진갱도는 조선인민군 최전방부대들이 주한미국군과 한국군의 전방기지들을 불시에 공격하기 위한 시설이고, 장거리남진갱도는 조선인민군 특수군이 주한미국군과 한국군의 후방거점들을 불시에 점령하기 위한 시설이다. 


1990년대에 남측 국방장관 과학기술보좌관으로 근무할 때 북의 남진갱도에 관한 제보가 들어오면 진위여부를 판단하는 일을 맡았던 윤여길 공학박사가 2013년 5월 17일 <뉴스한국> 취재기자와 진행한 대담에 따르면, 3개조로 편성된 조선인민군 공병대 군인 24명이 하루에 지하갱도를 20m 정도 굴설할 수 있다고 하는데, 1953년 8월부터 오늘까지 60년 동안 그런 굴설속도로 남진갱도를 계속 파들어갔다면 그 길이는 438km에 이르게 되어 남측 어느 지역 땅속이라도 통할 것이라고 추정하였다. 그것만이 아니다. 전폭기들이 폭탄을 투하하는 경우 그 폭탄이 벽에 부딪쳐 튕겨나가도록 지하갱도입구를 정밀하게 설계하는 고도의 기술을 북이 보유하였다는 사실을 미국 과학자들을 통해 알게 되었다고 그는 말했다. 


산악지대가 없고 거의 구릉과 평지로 이루어져 지하갱도입구를 은폐하기 힘든 자연지리적 조건에서 하마스가 굴설한 지하갱도를 정찰능력이 뛰어나다는 이스라엘군이 혈안이 되어 찾아다녔는데도 겨우 23개밖에 찾지 못한 것을 보면, 산악지대로 이루어져 지하갱도입구를 은폐하기 아주 쉬운 자연지리적 조건에서 조선인민군이 고도의 기술과 위장술을 동원하여 굴설한 남진갱도를 탐사작업에 열심을 보이지 않는 한국군이 찾아내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보인다. 실제로 남측 국방부 탐지과는 북의 남진갱도가 22~24개 있을 것으로 추정하지만, 하나도 찾지 못하였다. 1974년부터 1990년까지 남측에서 발견된 북의 남진갱도 네 개는 모두 단거리남진갱도들이다. 

 

▲ <사진 6> 이 사진에 나온 조선인민군 병사들은 특수군이 아니라 정찰병인 것으로 보인다. '조국통일대전'이 일어나는 경우 장거리남진갱도를 통해 남측으로 침투할 조선인민군 특수군은 한국군 복장을 입고 위장할 것이다. 한국군 복장을 입은 조선인민군 특수군 병력 200,000명이 갱도출구 400개를 열고 불시에 서울을 비롯한 남측 각지에 나타나 핵심거점들을 무혈점령하면 피를 적게 흘리는 '조국통일전쟁'은 그야말로 순식간에 끝날 것이다.     © 자주민보


1979년부터 1995년까지 조선인민군 저격병여단에서 군사복무를 할 때 지하갱도적응훈련을 받았다는 탈북자의 회고담을 인용한 <뉴스한국> 2013년 5월 20일 보도에 따르면, 땅속에 여러 갈래로 뚫린 남진갱도를 통해 침투한 ‘폭풍군단’이라 부르는 조선인민군 특수군 1개 여단 6,000~8,000명이 갱도출구를 파내고 지상으로 나와 곳곳에서 동시에 출동하면 서울은 순식간에 점령당할 수 있고, 24시간 안에 충청남도까지 점령할 수 있다고 한다. <사진 5>


위에 인용한 언론대담 중에 윤여길 공학박사가 언급한 추산법에 따르면, 조선인민군이 출구를 각각 20개씩 낸 장거리남진갱도를 20개 굴설하였다고 가정하는 경우 모두 400개의 갱도출구가 있는 것이고, 그 갱도출구들에서 병력이 500명만 지상으로 나와도 30분이면 200,000명이 남측 각지에서 갱도출구를 통해 지상으로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그가 예견한 것처럼, 조선인민군 20만 대병력이 서울을 비롯한 남측 각지에서 불시에 나타나 핵심거점들을 무혈점령하면 피를 적게 흘리는 특수전쟁은 그야말로 순식간에 끝나게 될 것이다. 다만 주한미국군과 한국군이 지키고 있는 최전방에서는 피를 흘리는 격전이 일어날 것으로 보인다.


이런 사실을 파악한 윤여길 공학박사는 위에 인용한 언론대담에서 “북한이 3일 만에 (남측 전역을) 점령한다는 말을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충고를 남겼던 것이다. 그가 남긴 충고를 새겨들으면, 2014년 8월 이후 마지막 선택만 남은 북에게 분단 70년이 되는 운명적인 2015년이 차츰 다가오는 현실이 눈에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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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협상이 전략? 이게 무슨 야당인가

[게릴라칼럼] 박영선 새정치 원내대표는 모르는 협상의 정석

14.08.11 11:15l최종 업데이트 14.08.11 11:15l

 

 

'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초등학생도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해 주세요."

과학계에 큰 뉴스가 터지면 언론사들로부터 이런 요구를 자주 듣는다. 지난해 노벨 물리학상이 발표되던 날에는 그 수상 내용을 '한 문장으로 요약해 달라'는 전화를 받았다. 급기야 지난 3월 태초의 중력파를 검출했다는 뉴스가 나왔을 때는 내가 이해시켜야 할 대상이 유치원생까지 내려갔다. 

나는 나름 최선을 다해서 설명을 하지만, 초등학생도 이해할 수 있는 현대물리학은 거의 없다는 말을 꼭 덧붙인다. 20세기 초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이 현대물리학의 신호탄을 쏘았을 때, 아인슈타인을 포함한 당대 최고의 과학자들조차 새로운 자연현상을 이해하기 위해서 생각의 회로를 바꿔야만 했다. 지금은 그로부터 100년도 더 지났다.

현대물리학을 초등학생도 이해할 수 있느냐 없느냐와는 별개로,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왜 유독 기초과학만 초등학생도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쉽게 설명을 해야만 하는지 그 공평하지 못한 처사에 불만을 드러내기도 한다. 사도세자가 왜 뒤주에 갇혀 죽었는지를 이해하는 초등학생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이 세상에는 초등학생이 이해할 수는 없지만 가치 있는 것들이 아주 많다. 

그렇긴 해도 나는 초등학생도 이해할 수 있는 설명을 요구하는 기자들의 마음을 헤아려볼 수는 있었다. 언젠가 나는 기자들이 초등학생이나 중학생이 이해할 수 있는 수준으로 기사를 쓰도록 훈련받는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공교육을 정상적으로 받은 평범한 사람이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돌아가는 세상은 분명 정상이 아닐 것이다. 우리가 일상을 살아가기 위해 양자역학 수준의 복잡신묘한 원리까지 알 필요는 없다. 

수사권과 구성요건이 왜 양자택일의 문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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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영선 새정치민주연합 국민공감혁신위원장이 지난 10일 국회에서 세월호 특별법과 관련한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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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가 작동하는 방식도 이와 비슷하다. 아주 예외적인 경우가 아닌 한, 일정한 나이에 이른 평범한 성인은 누구나 공평하게 한 표를 행사할 권리를 갖는다. 부자든 빈자든, 똑똑하든 멍청하든, 배움이 많든 적든 아무 상관이 없다. 가장 못난 사람이라도 주권자로서의 권리를 행사하는 데에 큰 어려움이 없어야 민주주의가 작동한다. 

민주주의가 왕정이나 귀족정체제와 근본적으로 다른 것은 이 때문이다. 동료 과학자 중 한 명은 이런 이유로, 복잡한 칩이나 전자회로를 거치게 되는 전자개표기 사용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첨단기기와는 거리가 먼 시골의 촌부까지도 한 눈에 알 수 있는 방식으로 민주주의가 작동해야 한다는 게 그 이유다. 민주주의도 기술의 발전과 함께 발을 맞춰 나가야겠지만, '초등학생도 이해할 수 있는' 설명이 가장 필요한 곳이 바로 민주주의라는 데에는 나도 크게 동감한다.

새정치민주연합(아래 새정치)의 박영선 원내대표가 새누리당과 합의한 세월호 특별법안 내용을 보면서 나는 이 상황을 과연 초등학생도 이해할 수 있을까, 정상적인 교육을 받은 평범한 상식의 시민들이 납득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박영선 원내대표는 <오마이뉴스>와 한 인터뷰에서("수사권보다 진상조사위 더 중요 유가족에 설명하지 않은 건 전략")에서 진상조사위가 수사권을 확보하는 것보다 진상조사위원회에 유가족 추천위원수를 한 명 더 늘리는 것이 중요한 문제였다고 밝혔다. 박 대표는 7·30 재보선 이후 수사권과 위원회 구성요건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서 후자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고 항변했다. 

무엇보다 나는 수사권과 구성요건이 왜 양자택일의 문제인지 이해할 수가 없다. 재보선 이후 정치지형이 변한 탓이라면, 그 전에 왜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했을까? 전후반 무승부 뒤 야권이 연장전 페널티킥을 얻은 것과도 같다던 7·30 재보선에서는 어쩌다 '브라질 스코어'보다 더 참혹한 결과를 얻은 것일까? 왜 그 책임을 세월호 가족들이 져야 하는 것일까? 각종 여론조사 결과는 물론 전문가 여론조차 수사권 및 기소권 확보를 선호하는데 왜 박 대표에게는 이것이 선택의 문제였을까? 얼마나 더 우호적인 여론과 조건이 만들어졌어야 했을까? 

박 대표의 비밀협상은 그 자체가 심각한 문제

박 대표는 수사권을 얻어 봐야 위원회에서 수적으로 밀리면 수사권을 발동할 수가 없다고 했다. 그리고 조사위가 관련 자료를 100% 확보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했다. 과연 수사권 없이도 세월호 관련 자료를 100% 확보할 수 있을까? 박 대표는 수사권 확보야말로 명백한 진상규명의 가장 유력한 수단임을 잊은 듯하다. 

박 대표의 논리는 비유적으로 말해, 운전면허를 따 봐야 돈이 없어 차를 못 사면 어차피 운전을 할 수가 없으니 면허를 따는 대신 일단 차를 살 돈부터 모으자는 얘기와 다르지 않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면허가 없으면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차를 몰고 갈 수가 없다. 물론 돈도 넉넉해야 원하는 차를 살 수 있다. 그러니까 그 둘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고 모두가 충족되어야 하는 필요조건이다. 

박 대표는 특검추천권을 포기하더라도 상설특검법 안에서 중립적인 특검을 충분히 내세울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그것은 박 대표의 바람일 뿐이다. 박 대표는 특검후보추천위원회에서 여야 4인이 합의를 하면 나머지 3인(법무차관, 법원행정차장, 대한변협 추천 몫)도 따라올 수밖에 없을 걸로 기대하겠지만, 애초에 여야합의가 되지 않는다면 물거품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결국은 수사 및 기소권이 대통령이 임명하는 특별검사에게만 주어지는 셈이다. 세월호 특검이 꼭 밝혀야 할 내용 중에는 국정원과 세월호의 관계, 세월호의 정확한 항적과 해경 교신내용, 해경이나 해군 등의 인명구조가 늦어진 지휘체계상의 원인 등 박근혜 정권의 권력핵심을 수사하지 않고서는 밝힐 수 없는 내용들이 많다. 과연 대통령이 임명한 특검이 국정원과 청와대 등 세월호 관련 권력 핵심부의 문제점을 제대로 수사하고 기소할 수 있을지 근본적인 의문이 남는다. 

박 대표는 특별법 협상에 나서면서 처음부터 수사권보다는 위원회 구성요건에 힘을 쏟았다고 한다. 그 내용을 유족들과 사전에 충분히 협의하지 않은 것은 협상내용이 미리 공개될 것을 우려한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박 대표의 비밀협상은 그 자체로 대단히 심각한 문제가 있다. 설령 박 대표의 협상내용이 옳다 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사건의 일차적 당사자인 세월호 가족들이 배제된 협상안은 가족들의 협상안이 아니라 박 대표 개인의 협상안일 수밖에 없다. 이는 마치 사건을 수임한 변호사가 의뢰인과 상의도 없이 검사와 합의해 놓고 어쩔 수 없었다며 의뢰인에게 도장을 찍으라고 강요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나는 박 대표의 협상전략이 얼마나 절묘하고 기발한 것인지 알 재간이 없다. 하지만 그렇게 유족과의 사전협의도 하지 못할 만큼 복잡하고 까다로운 정치역관계가 작용되는 협상전략이라면 처음부터 잘못된 전략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박 대표는 세월호 특별법을 통상적인 국회에서의 여야협의로 인식한 듯하다. 하나를 내 주고 다른 하나를 얻는 그런 방식 말이다. 그러나 세월호 특별법에 관한한, 뭔가를 내주고 뭔가를 얻겠다는 애초의 발상 자체가 잘못된 것이었다. 

초등생 이해 못하는 협상전략, 그것은 '당리당략'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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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호 특별법 제정 촉구 촛불문화제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단식 27일째를 맞은 단원고 희생자 김유민양의 아버지 김영오씨가 지난 9일 저녁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세월호 특별법 제정 촉구 촛불문화제에 참석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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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은 정권을 잡고 있는 집권당으로서 300명이 넘는 승객을 수장시킨 책임을 져야 하는 당사자다. "바람은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극복하는 것이다"는 유명한 영화대사도 있듯이, 세월호 사고에서 새누리당의 몽니는 계산의 대상이 아니라 극복과 응징의 대상이다. 130명이나 되는 금배지로 그 정도의 바람도 극복하지 못한다면 그게 무슨 야당인가. 

세월호 가족들이나 일반 국민들이 원하는 특별법은 그렇게 고도로 복잡한 정치 엔지니어링이 필요한 사안이 아니었다. 단지 "내 새끼가 왜 죽었는지 알고 싶을 뿐이다." 사람 목숨은 거래의 대상이 아니지 않은가. 초등학생도 이해하지 못하는 협상전략이라면, 그것은 그야말로 당리당략일 뿐이다. 

상식을 가진 보통의 시민이 이해할 수 없는 논리와 전략이라면 그 논리와 전략은 그리 대단한 것이 못 된다. 지난 재보궐 선거에서 새정치가 참패한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정치인들에게는 전략공천이니 후보단일화니 하는 말들이 사활적이었을지 몰라도 일반 유권자들에게는 전혀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자기들만 아는 언어와 논리를 들고 나와 유권자들에게 이해를 강요하는 정치세력에게 누가 표를 주고 싶은 마음이 들까. 진보정당이 존재감 없이 사라져 가는 이유도 똑같다. 

세상 돌아가는 물정은 초등학생 정도로만 아는 나 같은 사람은 이번 세월호 특별법 협상 과정과 결과를 도저히 이해하거나 받아들이기 어렵다. 내 새끼와 내 가족이 어떻게 죽었는지 그 진상을 밝혀 달라는 것이 힉스 입자나 중력파 검출만큼 알아듣기 힘든 말도 아닌데 무슨 조건과 토씨가 그렇게 많이 필요하단 말인가. 

새정치는 즉시 협상안을 파기하고 새로운 특별법 제정에 나서라. 사랑하는 이들을 바다에 묻은 세월호 가족들은 이미 자신의 목숨까지 내걸었다. 하루하루 자신의 관을 이고 곡기를 끊은 가족들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헤아린다면, 협상이나 타협을 말하기 전에 원칙과 상식을 지키기 위해 무엇을 했는지부터 돌아보기 바란다. 그 결과를 초등학생도 이해할 수 있을지, 상식을 가진 보통 사람들이 과연 수긍할 수 있을지부터 살펴보기 바란다. 그것이 민주주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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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가톨릭은 '프란치스코 붐'에 응답할 수 있는가?


교황 방한이 던지는 한국 가톨릭 교회의 숙제와 전망
백승덕 / 한양대 트랜스내셔널인문학 석사  |  mediaus@media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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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4.08.11  08: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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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만 지나면 방한할 교황에 대한 관심이 크긴 한가보다. 오랜만에 광화문에 있는 대형서점에 들렀더니 한가운데에 서있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입상부터 보였다. 큰 통로에 아예 특별 전시대를 마련해두고 교황 관련 책들을 모아 판매하고 있었다. 전시대에는 별다른 설명 없이 ‘교황 프란치스코’라는 식의 제목을 단 신간들이 한가득 놓여있었다. 가히 프란치스코 붐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 10일 오후 시민들이 세종문화회관에서 '헬로, 프란치스코' 사진전을 관람하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오는 14일 방한한다. (연합뉴스)
 
교황 프란치스코의 진정성 대한 기대
 
프란치스코 교황이 선출되던 당시에 가톨릭교회는 사제들의 아동 성추행, 교황청의 돈세탁 스캔들 등으로 권위가 땅에 떨어졌었다. 해방신학자 레오나르도 보프 신부의 자리를 박탈하는 등 전임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보수주의적 입장이 스캔들과 겹치면서 교회의 퇴락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졌던 시기였다. 이러한 위기의 시기에 선출된 프란치스코 교황은 스캔들을 은폐하지 않고 오히려 철저한 진상규명에 앞장섰다. 올해 초 유엔 아동권리위원회(CRC)가 가톨릭 사제들의 아동 성추행 문제와 관련하여 사상 처음으로 교황청에 대한 청문회를 열자, 교황은 “우리는 어디에 그런 비리가 있는지, 누가 돈을 축재했는지 알고 있고 이는 교회의 부끄러움”이라며 추문사실을 숨기지 않았다. 교황의 진상규명 의지는 아동 성추행을 조사하는 특별위원회를 설치한 것에서도 살펴볼 수 있다. 
 
지난 6월에는 돈세탁 스캔들과 연관된 마피아의 근거지에 찾아가 미사를 드리며 마피아에 대한 파문을 선언하기도 했다. 교황 바오로 2세에 대한 저격사건 이후에 관례처럼 설치한 전용차의 방탄유리를 떼어낸 프란치스코 교황의 행보는 세속을 초탈한 듯이 보였다. 자신이 묵은 숙소의 계산을 직접 한다거나 일부러 다른 사제들이 머무는 작은 숙소에서 함께 자는 소탈한 모습은 이전 교황들에게는 쉽게 접하기 어려운 것들이었다. 엄숙한 종교 의례 중에 갑자기 제단 위로 올라온 어린아이의 장난을 받아주고, 순례 중에 기도를 부탁하는 신자들을 꼭 껴안고 있는 교황의 모습에서 많은 사람들이 ‘진정성’을 느꼈다고 말한다. 스캔들에 대한 확고한 진상규명 의지와 소탈한 행보는 교황에게 종교적 아우라를 돌려주었다.
 
그래서 교황의 곁에 다가가기가 이전보다 훨씬 쉬워진 것처럼 보인다. 교황이 집전하는 미사가 끝나면 많은 신자들이 돌아가지 않고 교황을 직접 만나기 위해 기다리곤 한다. 지난 3월에 교황을 만나 불법 이주자인 아버지의 추방을 막아달라고 호소했던 10살 소녀 저지도 교황의 곁이 이전보다 다가서기 쉬워졌기 때문에 그를 만날 수 있었다. 교황은 다음날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을 만나 이민법 개정을 부탁하였고, 저지의 아버지는 미국에서 추방당하지 않을 수 있게 되었다.
 
   
▲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이 나흘 앞으로 다가오면서 교황 맞이 막바지 준비가 한창인 10일, 대전교구 관계자들이 교황이 15일 대전월드컵경기장에서 있을 성모승천대축일 미사(사진 오른쪽)와 17일 아시아가톨릭청년대회 폐막 미사 때 입을 제의를 보여주고 있다. (연합뉴스)
 
특히나 이 사건은 교황 프란치스코의 영향력을 새롭게 확인시켜준 계기가 되었다. 현행법에 의하면 추방당할 불법이주자였지만, 교황은 해당 국가의 수장을 만나 딱한 사정을 전하며 법을 개정해주기를 요청했다. 멕시코 출신 불법 이주자의 어린 딸의 이야기를 듣고 세계 최강국인 미국의 대통령을 움직였던 것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교황의 휴머니즘이 개별 국민국가들의 법들을 넘나들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을 듯한 믿음을 주었다.
 
한국 가톨릭교회의 변화
 
교황에게 보다 다가서기 쉬워지고, 교황의 휴머니즘이 국민국가의 법에 의해 겪는 수난을 해결해줄 수 있을 길처럼 보이자,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교황을 찾아 나서기 시작했다. 지난 5월 이석기 의원 등 내란음모 구속자 가족들이 바티칸으로 찾아간 것도 이러한 기대 때문이었다. 구속자 가족들은 교황 알현 현장에서 교황이 지나갈 때 이탈리아어로 도와달라고 요청했고, 교황은 멈춰 서서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다고 한다. 구속자 가족들은 한국의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장 이용훈 주교가 써준 편지를 교황에게 직접 전달할 수 있었다.
 
두 달 뒤인 지난 7월, 한국 가톨릭교회의 수장인 염수정 추기경은 이들 구속자 가족들을 직접 만나 탄원서를 써달라는 요청을 받아들였다. 자필로 쓴 이 탄원서에서 염 추기경은 이들의 무죄를 주장하지는 않았지만 용서를 청했다. 염 추기경의 탄원서는 이전의 행보에 비추어 봤을 때 매우 이례적인 것이었다. 
 
그는 추기경으로 선출된 직후에 교황청이 운영하는 일간지와 인터뷰를 하면서 대선부정을 비판하던 정의구현사제단에 대해 강력하게 비판했던 적이 있었다. “맞서 싸워야 할 독재권력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면서 “사제단 신부들의 주장이 완전히 비이성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었다. 이 인터뷰에서 염 추기경은 정의구현사제단이 ‘정권퇴진’과 같은 요구를 계속한다면 사회의 변두리로 밀려날 것이며, 교회에 대한 분열행위는 비난받아 마땅한 것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 염수정 추기경이 지난 5월 31일 오후 서울 중구 서소문역사공원 순교성지에서 천주교 순교자 103위 시성 30주년·124위 시복 및 교황방한을 기념하는 순례 행진을 마친 후 기념 미사를 집전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러나 대선에서 부정이 있었다면서 ‘정권퇴진’을 요구하는 사제들의 발언에 비해, 북한에 우호적인 입장에서 국가전복을 꾀한 혐의로 구속된 이들을 용서해달라고 요청한 염 추기경의 탄원서가 훨씬 논란을 일으키기 쉬운 것이었다. 실제로 대한민국수호천주교모임과 같은 교회 내 보수집단들을 즉각 염 추기경을 비판하고 나섰다. 종교지도자가 용서를 구하는 탄원서를 쓴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니지만, 염 추기경이 ‘종북주의자’로 낙인찍힌 내란 혐의자들을 용서해야 한다고 말한 것을 그리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는 어려웠다. 한국에서 ‘정권퇴진’보다 ‘종북주의자’가 정치적으로 휘발성이 훨씬 높기 때문이다. 이러한 염 추기경의 입장 변화는 교황 알현과 떨어뜨려 생각하기가 어렵다. 교황의 휴머니즘이 한국의 강고한 반공주의에서도 영향력을 발휘한 것으로 보인다.
 
교황 방한에 기대할 것과 기대하지 말아야 할 것
 
이처럼 교황에게 직접 호소하는 것이 국민국가 내의 법이 지닌 한계와 모순을 이겨내는 효과적인 방법이라는 인식이 자리를 잡다보니 교황 방한에 대한 기대도 커지고 있다. 특히 교황이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을 직접 만나기로 하자, 세월호 특별법 입법 등 진상규명에 보다 큰 힘이 실릴 기회가 되기를 바라는 기대가 섞인 예상을 하는 이들이 많아졌다. 일례로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의 한상봉 주필은 ‘박근혜 정부의 패착’이라는 글을 통해 “한국 교회뿐 아니라 한국 사회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올 수도 있다”고 예상했다. 교황이 시복식 중에 “세월호 유가족들의 농성장에 직면할 것이고, 그 자리에서 어떤 모습을 보일지 아무도 장담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이 맞닥뜨린 현재의 어려움을 생각한다면 교황 방한에 대한 이러한 기대는 일면 자연스럽기도 하다. 유가족들은 수사권을 지닌 세월호 특별법을 요구하며 한 달 가까이 단식농성을 하고 있지만, 정부와 여당은 기존의 사법체계를 흔들 수도 있다며 유가족들의 요구를 단호하게 거부하고 있다. 오히려 새누리당의 한 의원이 단식 농성을 폄훼한 발언이 알려지면서 유가족들의 분노를 일으켰다. 수많은 사상자를 만든 끔찍한 참사의 진상규명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채 유가족들은 거리에서 오랜 단식을 이어가고 있다. 정말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상황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교황 방한에 대한 기대가 높아질 법도 하다. 이전의 교황 알현이 그랬던 것처럼 다시금 국민국가의 법이 지닌 한계와 모순을 넘어서 교황의 휴머니즘이 발휘되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자연스럽다. 이러한 기대는 누구보다 유가족들에게 절실할 것이다.
 
하지만 교황 방한에 기대할 수 있는 것과 기대하기 어려운 것 또한 분명하다. 교황이 시복식 중에 유가족들의 농성장을 발견하고 차에서 내려 유가족들을 만날 수도 있다. 그러나 교황이 그 자리에서 세월호 특별법을 제정하라고 함께 외치기는 대단히 어려울 것이다. 이전에 그러했듯이, 교황은 유가족들을 안고 위로하는 기도를 하겠지만 해당 국가의 정부를 대상으로 하는 수사를 요구할 것으로 예상하기는 어렵다. 교황의 휴머니즘은 국민국가의 경계를 넘나들지만, 국민국가의 정부를 직접적으로 대적했던 적은 없었다.
 
도리어 장밋빛 기대와 반대로 교황 방한이 너무 큰 위로의 이미지를 만들어낼 것을 조심해야 한다. 교황의 방한 중에 벌어질 행사가 주는 스펙타클을 통해 그간 힘들게 싸워온 유가족들이 위로를 받은 것처럼 받아들여진다면, 교황 방한은 진상규명의 계기가 아니라 대단원의 막이 내리는 결말처럼 비춰질 수도 있다. 방한 첫날 교황과 만날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 희생자와 유가족들을 위한 기도를 요청할 예정이라고 하는 보도는 이러한 우려를 키운다.
 
교황 방한 이후의 한국 가톨릭교회가 풀어야 할 숙제
 
이례적으로 소탈하고 사회개혁적인 교황의 방한은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교황 방한에 너무 많은 관심이 쏠리다보면 생길 문제도 적지 않다. 지금으로서는 교황 방한 자체보다는 교황 방한 이후에 대해 고민할 것이 더 많아 보인다. 교황 방한 이후에도 한국의 가톨릭교회는 이 지역에서 나름의 역할을 계속해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 가톨릭교회의 입장에서는 교황의 방한을 통해 스스로 살펴볼 수 있을 숙제들이 적지 않다. 우선, 한국 가톨릭교회의 쇄신이 절실히 필요하다. 한국 가톨릭교회는 염 추기경이 유가족들의 방문을 받아들여 교황과 만남을 주선했다고 홍보하고 있다. 그러나 유가족과의 면담은 염 추기경이 단식 농성장에 찾아가서 성사된 것이 아니라 유가족들의 방문을 받아 이루어진 것이었다. 게다가 염 추기경이 세월호 참사의 희생자를 추모하는 미사를 드리는 것은 여태껏 단 한 번에 불과했다. 이러한 태도는 유가족들의 고통에 연대한다고 말하기에 너무도 소극적이다. 일선의 사제들과 평신도들이 농성하는 유가족들과 함께 지내고 있는 모습과 사뭇 대조적인 태도다.
 
   
▲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을 앞둔 10일 오후 광화문 인근 거리에 교황 시복식 미사와 관련해 교통 통제를 알리는 안내문이 걸려 있다. (연합뉴스)
 
또한, 가톨릭 사회운동 내부의 정리도 필요해 보인다. 유가족들이 있는 광화문 농성장에는 정의구현사제단을 비롯한 성직자들이 동조 단식을 이어가고 있다. 한편 대한문 앞에서는 평신도를 중심으로 하는 정의평화민주가톨릭행동이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특별법 제정 촉구 미사를 열고 있다. 평신도운동을 둘러싼 입장차와 미사라는 형식에 대한 해석의 차이가 각각 다른 방식의 연대를 선택하도록 만들었다. 특히 2008년의 촛불시위 이후에 가톨릭 사회운동이 개인들의 자율적인 결합 방식으로 변화하면서 산발적인 모임들끼리 입장을 공유하지 못하는 경향이 생기고 있다.
 
그가 떠난 자리에서 살아갈 사람들의 소명
 
교황 방한을 앞두고 교황에 대한 관심은 대단히 높다. 그러나 이러한 관심이 프란치스코 교황 한 사람에 대해서만 머물고 말지도 모른다. 교황이 오고 간 자리에 과연 무엇이 남을 것인가? 부조리를 호소하려는 사람들이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바티칸으로 날아갔던 것은 사실 그 지역의 가톨릭교회가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교황이 직접 온다. 그가 알릴 기쁜 소식(福音)이 무엇일지 기대된다. 그러나 그가 떠난 이곳에서 기쁜 소식을 전할 사람들은 한국의 가톨릭 신자들이다. 그가 떠난 자리에서 스스로의 역할을 해낼 수 있도록 준비할 소명 또한 한국의 가톨릭 신자들에게 있으며, 그들이 곧 한국의 가톨릭교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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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의 성성납과 박근혜의 사라진 7시간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14/08/11 11:22
  • 수정일
    2014/08/11 11:22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박정희의 성성납과 박근혜의 사라진 7시간
 
조선시대 채홍사, 박정희정권에도 활약했다
 
임병도 | 2014-08-11 08:37:34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지난 8월 8일 서울고법 민사13부는 박정희가 성 상납을 받다가 총에 맞아 죽었다고 발언한 주진우 기자에 대한 명예훼손 판결에서 1심과 다르게 명예훼손의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1

서울고법은 "박 전 대통령의 성상납 여부나 재산에 대해서는 상당한 의혹이 제기돼 왔고 비슷한 취지의 자료도 많이 있다. 주씨가 사실로 믿을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고 이는 역사적 사실 규명이나 비판적 평가가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1심에서 "연회 자리에서 성상납이 이뤄졌다거나 이 연회가 성상납을 위한 모임이라 인정할 자료를 찾기 어렵다. 그런데도 주씨는 성상납 의혹을 단정적으로 표현했다"는 판결이 2심에서 뒤집힌 것입니다. 

박정희의 성상납 관련 자료는 차고도 넘쳤습니다. 그러나 이런 자료를 1심 재판부에서는 인정하지 않다가, 2심에서 인정받은 셈인데, 도대체 어떤 자료인지 먼저 알아보겠습니다. 


'조선시대 채홍사, 박정희정권에도 활약했다' 

채홍사라는 말은 원래 채홍준사(採紅駿使 )라는 벼슬아치를 지칭하는 말입니다. ‘홍(紅)’은 여자, ‘준(駿)’은 말을(馬) 가리키는 단어로 연산군 시절 미녀와 준마를 궁중으로 모아들이기 위해 지방에 파견됐던 관리였습니다.

 

 

조선시대 채홍사가 박정희정권에도 활약했는데, 중앙정보부 의전과장이었던 박선호였습니다. 박선호는 중정 의전과장으로 궁정동 안가에서 벌였던 연회에 여성을 조달하는 임무를 맡았던 인물입니다. 

박선호는 10.26 이후 재판과정에서 자신이 맡았던 채홍사 역할에 대해 이렇게 진술했습니다. 
 

▷변호사: 피고인은 차지철 경호실장이 여자문제를 더욱 힘들게 하고 피고인 자신이 어린애들을 갖고 있는 아버지로서 그런 일을 하고 있다는 데 대해 인간적으로 괴로워서 김 정보부장에게 수차 『도저히 이 일을 계속할 수 없습니다』고 하소연하면서 그만두게 해 달라고 했으나 김 부장이 『궁정동 일은 자네가 없으면 어떻게 하느냐』고 하면서 사의를 만류시켰다고 하는데 사실입니까?

▶박선호: 제가 근무하기를 몇 번 꺼렸습니다. 그래서 부장님에게 계속하기 어렵다는 여러 가지 사유를 몇 번 올린 바가 있습니다. 

▷변호사: 결국 정보부장님이 『자네가 없으면 어떻게 하느냐』고 또 그렇게 해서 할 수 없이…. 

▶박선호: 네, 저를 신임하시어 자꾸 계속적인 근무를 원하셨습니다. 

▷변호사: 청와대 차지철 경호실장은 『돈은 얼마든지 주더라도 좋은 여자를 구해 달라』고 하면서 실제로 돈은 한 푼도 주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하도 말만 많아서, 피고인이 경호처장인 정인형한테 『당신이 고르라』고 말했더니 『청와대에서 고르는 걸 국민들이 알면 큰일 난다』며 안된다고 하기에 피고인은 『그러면 골라 놓은 사람들에게 좋든 싫든 말이나 말아야 할 것 아니냐』고 항의까지 했더니 그 이후에는 차실장도 잔소리가 적어졌다는데, 그렇습니까. 

▶박선호: 말씀 안 드리겠습니다.

(1979년 12월 11일 군법회의 제1심 4회 공판, 강신옥 변호사와의 신문과 답변)

박선호는 딸과 같은 여성을 박정희의 연회에 조달하는 업무에 대해 회의감과 고통을 토로했습니다. 특히 차지철 실장이 TV나 주간지를 보다가 여성을 지명해놓고 돈은 얼마든지 줄 테니 부르라고 해놓고 돈이라고는 10원도 주지 않았다며 차 실장을 탓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직접 연회에 조달됐던 여성에 대해 말을 아꼈던 박선호도 10.26 당일 가수 심수봉과 대학생 신재순을 내자호텔커피솝과 프라자호텔에서 궁정동으로 데리고 왔다가 나중에 돈을 줘서 보낸 일은 진술했습니다. 

변호사와 채홍사의 역할에 대해 말을 아꼈던 박선호는 재판 말미에 가서는 폭탄 발언을 합니다. 
 

 

 


박선호는 최후 진술에서 궁정동 안가가 어떤 곳인지, 그리고 박정희의 술자리 여인에 대해 진술하기 시작했습니다. 
 
▶박선호:어제 여기에서 검찰관께서 그 집은 사람 죽이는 집이냐 하는 질문 같지 않은 질문도 받았습니다만, 그 집은 사람 죽이는 집이 아닙니다. 그와 같은 건물은 대여섯 개가 있는데, 이것은 각하만이 전용으로 사용하시는 건물로서…. 

▷법무사: 피고인, 범죄에 관계되는 사항만…. 

▶박선호: 예, 그래서 이것을 제가 발표하면 서울시민이 깜짝 놀랄 것이고, 여기에는 여러 수십 명의 일류 연예인들이 다 관련되어 있습니다. 명단을 밝히면 시끄럽고 그와 같은 진행과정을 알게 되면, 이것은 세상이 깜짝 놀랄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평균 한 달에 각하가 열 번씩 나오는데, 이것을…. 

▷법무사: 범죄사실에 관해서만…. 

▶박선호: 예 ? 

▷법무사: 피고인의 범죄사실에 관해서만 진술하시오. 

▶박선호: 예. 그래서 제가 1년 연중 하루도 쉬지않고 열심히 근무했고 상관의 명령은 충실히 이행했다는 것을 이 자리에서 말씀드립니다.

박선호의 진술 내용을 보면 박선호는 아이를 둔 아버지로 딸과 같은 연령의 여성을 박정희의 행사에 조달하는 업무에 늘 고통 받아왔으며, 궁정동 안가가 박정희가 전용으로 사용하는 건물로 여기에 수십 명의 일류연예인이 관련되어 있으며, 박정희가 한 달에 평균 열 번씩 나온다는 증언을 했습니다. 


' 박정희의 배꼽 아래 인격' 

10.26 당시 여자가수와 대학생이 현장에 있었다는 사실을 국민들은 잘 몰랐습니다. 나중에 알게 됐을 때도 일부 국민들은 육영수 여사를 떠나보내고 남자라서 외로워서 그랬다는 동정론이 심했습니다. 
 

 

 

육영수 여사가 죽고 나서 박정희가 여성을 궁정동 안가에 불렀다는 동정론은 무의미합니다. 박정희는 일본 군대 문화 속에 뿌리 박혀 있는 '배꼽 아래 세치에는 인격이 없다' (臍下三寸に人格なし)는 말에 따라 성적인 면에서만큼은 자신이나 부하에게 엄청나게 관대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사고방식인 탓에 육영수 여사가 살아 있을 때도 박정희는 여자 때문에 육영수 여사와 다툼이 끊이지 않았었습니다.
 

박정희의 술과 여자는 많은 비화를 남겼다. 70년대 초 어느날 대통령부인 육영수 여사를 면담한 어느 여성은 육여사의 얼굴에 멍이 든 것을 본다. 소문은 퍼지고 청와대출입기자들이 그 배경을 취재했다. 부부싸움을 하다가 박정희가 재떨이를 던졌다느니 손찌검을 했다는 얘기가 나돌았다. 
한 기자가 직접 박정희에게 물었다. 

『영부인 얼굴에 멍이 들었던데, 부부싸움을 하신 겁니까?』 이 말에 대통령은 몹시 어색한 얼굴로 헛기침만 했다. 

『어허, 음, 흠…』 

부부싸움은 대통령의 주색 때문이었다. 육여사는 대통령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온갖 하고 싶은 일을 다 하게 해주는 경호실장 박종규가 문제라고 생각했다. 육여사는 박종규 거세계획에 착수한다. 이 계획에 동원된 사람이 당시 청와대 사정담당 수석비서관 홍종철이었다. 

육여사는 홍종철을 은밀히 불러 박종규의 부도덕한 행위에 대해 눈물을 글썽이며 규탄했다. 

『내가 이 사람을 더 이상은 각하 곁에 놓아둘 수 없습니다. 방법이 없을까요』 

이래서 홍종철은 극비리에 박종규 비리조사에 착수한다. 본인과 형제 친척들의 이권개입과 인사청탁 여부에서부터 사생활 비리 등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런 일이 막강한 경호실 안테나에 안 걸릴 리가 없었다. 박종규의 귀에 사정수석실이 자신의 비리에 대해 내사하고 있으며 홍종철이 직접 지휘한다는 정보가 들어갔다. 박종규는 흥분했다. 그는 경호실에 있던 엽총을 집어들고 홍종철의 방에 뛰어 들어갔다. 

『야, 이 새끼야, 네가 내 뒷조사를 하고 다니냐』

박종규는 분에 못이겨 엽총 방아쇠를 당기고 말았다. 그러나 총구는 천장을 향해 있었다. 그가 냅다 갈긴 엽총 탄알은 홍종철의 머리 위 천장에 맞고 튀었다. 홍종철은 박종규 앞에서 기를 펴지 못했다. 경호실장은 박정희의 분신으로 누가 무슨 보고를 해도 경호사고가 나지 않는 한 문책인사 대상이 아니었다. 

이 사건 후 대통령의 채홍사 일이 경호실에서 중앙정보부로 옮겨졌다. 술자리 마련과 여자 조달하는 일을 청와대에서 한다는 사실이 외부로 알려지는 날이면 큰 낭패라는 생각에서 그 일을 비밀 공작수행기관인 중정으로 떠넘긴 것이다. 

청와대는 출입기자들이 있는데다 공식적인 방문객도 많아 비밀스러운 일이 노출될 위험이 컸다. 어느 모로 보나 그 일을 맡기엔 중정이 안성맞춤이었다. 국가기밀이라는 허울좋은 베일 뒤에서 각하의 술과 여자가 난무하게 된 것이다. 

박종규가 1974년 8·15 광복절 기념식장에서 일어난 육영수여사 피격사건으로 물러난 것은 묘한 아이러니였다. 육여사는 그렇게 싫어했던 경호실장을 생전에 밀어내지 못하고 죽어서야 뜻을 이룬 셈이다. 
<신동아 1998년 11월>

박선호의 채홍사 역할을 조사했던 변호사와 이 과정을 취재했던 신동아 송문홍 기자의 <비화, 10.26사건이후 19년만의 최초 전면공개, 채홍사 박선호 군법회의 증언 녹취록>이라는 기사와 <박정희의 유산:김재홍저, 도서풀판 푸른숲>과 <운명의 술 시바스>등에는 박정희의 여성 편력에 대해 조금 더 상세한 내용이 담겨 있었습니다.
 

'변호사는 박선호보다 앞서 중앙정보부 의전과장으로 채홍사역을 했던 윤모, 이모, 김모 씨(육사 15기,예비역 대령)와 만나 이 증언들을 검증했다. 누구나 한번 듣기만 하면 입을 딱 벌릴 만한 TV 드라마와 은막의 스타들인 C, C1, C2, L, L1, W 양 등이 궁정동 안가의 밤 연회에 왔던 것으로 확인됐다. 

각하의 술자리 여인을 동원하는 데는 엄격한 규칙이 있었다. 첫째 단독후보는 안되며 반드시 복수로 부르는 것이고, 둘째로 결코 동일인을 두 번 이상 들이지 않는 것이 그것이다. 복수후보로 하는 것은 그의 선택 폭을 보장하기 위함이었고, 한 여인을 두 번 이상 부르지 않는 것은 각하의 이상한 인연이 깊어져서는 안되기 때문이었다. 

각하의 양 옆에 앉히는 두 여인 중 대부분의 경우 한 사람은 이름이 널리 알려진 스타였고, 다른 하나는 연예계 지망 신출내기로 선택됐다. 각하는 술이 취하면 으레 둘 중 마음에 드는 쪽으로 몸이 기울었다. 그리고 그 다음 일은 경호실장과 이 관립 비밀요정의 담당자만 아는 비화속에 묻혔다. 

한번 「인연」을 맺은 뒤 퍼스트 레이디 후임을 노리는 야심파도 나타나 소동이 빚어지기도 했다. 한번 술자리에 참석한 뒤 각하의 후처가 되겠다고 나선 출세지향파는 유명한 은막의 스타 C양이었다. 이 바람에 박선호와 궁정동 안가 요원은 여배우의 「후처소동」을 진정시키느라 진땀을 뺐다. 궁정동 행사에 참석했다가 각하가 자신을 사랑한다고 믿게 된 그 여배우는 행사에 연속출연을 요구해왔다. 중정측은 물론 같은 여자를 두 번 이상 불러들이지 않는다는 원칙을 내세워 이를 잘랐다. 그러자 어느날 그녀의 어머니가 박선호 의전과장을 찾아왔다. 

『각하께서 우리 아이를 좋아하는데 당신들이 중간에서 차단해도 되는 거요?』 대통령의 연심을 사로잡았다고 생각한 스타의 어머니는 중앙정보부 간부에게 큰 소리를 칠 만큼 위세가 대단했다. 

그 밖에도 박대통령 술자리에 왔다 간 연예계 지망생의 부모가 사후에 그 사실을 알고 항의해와 돈 주고 달랜 일 등이 옛 궁궐 속의 비밀처럼 묻혀 있었다. 

<신동아 1998년 11월>

단순하게 기사와 책 등 언론의 취재뿐만 아니라 당시 궁정동 안가에서 근무했던 중정 요원요원 등의 증언에도 박정희가 얼마나 궁정동 안가에서 여성들과 함께 연회를 즐겼는지 나와 있습니다. 
 

 

 

궁정동 안가에는 박정희, 비서실장,중정부장,경호실장이 모이는 '대행사'와 박정희 혼자 오는 '소행사'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1년에 대행사는 3~3번에 불과하고 소행사가 거의 빈번하게 이루어졌습니다.

박정희가 혼자 궁정동 안가에 오면 경호실장은 밖에 있고, 대통령만 시중드는 아가씨와 함께 술을 마시고 행사를 치렀다는 증언은 조서와 진술에서도 나와 있습니다. 
 

 

 

박정희를 미화하는 사람도 많지만, 그의 죽음은 한 마디로 '주색잡기'하다가 부하에게 사살당한 것입니다. 좋게 얘기해서 '주색잡기'였고, 실제 현행법으로 말한다면 돈을 주고 '성매매'를 하다 성매매 현장에서 사망한 사례입니다.

박정희 성상납이 명예훼손이야 아니냐를 놓고 법정 공방을 벌였지만, 실제 의전과장 박선호가 돈을 줬기 때문에 성상납이 아니라 '박정희의 성매매'로 봐야 합니다. 


' 박근혜의 사라진 7시간'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가 벌어진 4월 16일에 사라졌던 7시간에 대한 공방이 뜨겁습니다. 일본 산케이 신문은 는 박근혜 대통령이 사라진 7시간 동안 정윤회를 만났다는 내용의 기사를 내보냈습니다. 
 

 

 


일본 산케이신문을 번역한 뉴스프로에 따르면 산케이신문은 국내에 떠도는 소식을 취재한 결과 박근혜 대통령과 실명이 거론된 정윤회가 만났다는 내용을 구체적으로 보도했습니다. 
 
「大統領をめぐるウワサは少し前、証券街の情報誌やタブロイド版の週刊誌に登場した」 
“대통령을 둘러싼 소문은 최근까지, 증권가 정보지와 타블로이드(tabloid)판의 주간지에 등장하였다”
そのウワサは「良識のある人」は、「口に出すことすら自らの品格を下げることになってしまうと考える」というほど低俗なものだったという。ウワサとはなにか。 
그 소문은 “교양있는 사람”은 “입에 담는 것만으로도 스스로 품격이 깎여져 내리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고 할 정도로 저속한 것이라고 한다. 무슨 소문일까. 
証券街の関係筋によれば、それは朴大統領と男性の関係に関するものだ。相手は、大統領の母体、セヌリ党の元側近で当時は妻帯者だったという。だが、この証券筋は、それ以上具体的なことになると口が重くなる。さらに「ウワサはすでに韓国のインターネットなどからは消え、読むことができない」ともいう。一種の都市伝説化しているのだ。
증권가의 관계자에 의하면, 그것은 박 대통령과 남성의 관계에 관한 것이다. 상대는, 대통령의 모체(母体), 새누리당의 측근으로 당시는 유부남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증권가는 그 이상 구체적으로 파고들면 신중해진다. 또한 “소문은 이미 한국의 인터넷 등에서는 사라지고 읽을 수 없다”라고 한다. 일종의 도시 전설화되고만 것이다. 
コラムでも、ウワサが朴大統領をめぐる男女関係に関することだと、はっきりと書かれてはいない。コラムの記者はただ、「そんな感じで(低俗なものとして)扱われてきたウワサが、私的な席でも単なる雑談ではない“ニュース格”で扱われているのである」と明かしている。おそらく、“大統領とオトコ”の話は、韓国社会のすみの方で、あちらこちらで持ちきりとなっていただろう。 
칼럼에서도, 소문은 박 대통령을 둘러싼 남녀 관계에 관한 일이라고 분명히 적혀 있지 않다. 칼럼 기자는 다만 “그런 느낌으로 (저속한 것으로) 간주되어온 소문이, 사석에서도 단순한 잡담이 아닌 ‘뉴스 격’으로 다루어지고 있는 것이다”고 밝히고 있다. 아마도 ‘대통령과 남자’의 이야기는, 한국 사회 구석 구석 여기 저기에서 한동안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릴 것이다.
このコラム、ウワサがなんであるかに言及しないまま終わるのかと思わせたが途中で突然、具体的な氏名を出した“実名報道”に切り替わった。 
이 칼럼은, 소문이 무엇에 관한 것인지 언급하지 않은 채 그냥 끝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어느 순간 갑자기, 구체적으로 성명을 내며 “실명 보도(実名報道)”로 바꾸었다. 
「ちょうどよく、ウワサの人物であるチョン・ユンフェ氏の離婚の事実までが確認され、ウワサはさらにドラマティックになった」 
“때마침, 소문의 당사자인 정윤회씨의 이혼 사실까지 확인되면서 소문은 더욱 드라마틱하게 됐다”
チョン氏が離婚することになった女性は、チェ・テミンという牧師の娘だ。チョン氏自身は、大統領になる前の朴槿恵氏に7年間、秘書室長として使えた人物である。 
정씨와 이혼한 여성은 최태민이라는 목사의 딸이다. 정씨는 대통령이 되기 전 7년간 박근혜씨의, 비서실장으로 일했던 인물이다 
コラムによると、チョン氏は離婚にあたり妻に対して自ら、財産分割及び慰謝料を請求しない条件を提示したうえで、結婚している間に見聞きしたことに関しての「秘密保持」を求めたという。 
칼럼에 따르면, 정씨는 이혼할 당시 아내에게 모든 재산 분할 및 위자료를 청구하지 않는 조건과 함께, 결혼생활 동안 보고 들은 것에 대한 ‘비밀 유지’를 요구했다고 한다. 
証券筋が言うところでは、朴大統領の“秘線”はチョン氏を念頭に置いたものとみられている。だが、「朴氏との緊密な関係がウワサになったのは、チョン氏ではなく、その岳父のチェ牧師の方だ」と明かす政界筋もいて、話は単純ではない。 
증권가에서는, 박 대통령의 “비밀 접촉(秘線)”은 정씨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보여지고 있다. 하지만 ‘박 씨와의 긴밀한 관계로 소문난 것은, 정씨가 아니라 그의 장인 최 목사다’고 밝힌 정계 관계자의 믿을만한 소식통이 있어, 이야기는 단순하지 않다.
<출처:뉴스프로>
 

 

 

청와대는 산케이 신문의 보도에 대해 '입에 담기 부끄러운 거짓말'이며 청와대 홍보수석은 '민형사 책임 대충 끝내지 않을 것'이라며 산케이 신문에 대한 고소를 진행 중에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산케이신문은 억울한 면이 있습니다. 그들이 취재한 내용을 보면 증권가 소식과 함께 조선일보라는 언론의 기사를 인용해서 보도했기 때문입니다.
 

 

 

7월 18일 조선일보에는 <대통령을 둘러싼 풍문>이라는 제목의 최보식 선임기자의 칼럼이 실렸습니다. 여기에 나온 정윤회와 박근혜 대통령과의 풍문을 산케이신문은 그대로 인용했는데, 자신들만 고소당하니 억울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사라진 7시간에 대해 보안이나 안보사안이라고 주장하는 청와대의 해명은 그리 신뢰성이 없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해외순방 중에 해외파병 부대를 방문하는 등의 행사라면 당연히 몇 시간 동안 언론에 그 행적이 밝혀지지 않아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복귀 후 그 사실은 정식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벌써 몇 달이 지난 후에 당시 행적이 밝혀져도 큰일이 벌어질 사안은 방한 중인 밀사를 만나는 일 이외는 별로 없습니다. 2

박정희가 성매매를 했다는 발언이 명예훼손이라는 고소에 대해 재판부는 자료가 있기에 검토할 사안이지 명예훼손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마찬가지로 박근혜 대통령의 사라진 7시간 행적에 대해서도 당시 기록을 놓고 공방을 벌이면 금방 밝혀질 일입니다.
 

 

 

박정희가 사망한 10.26 다음 날인 10월 27일 모든 신문들은 박정희가 궁정동 소재 중앙정보부 식당에서 만찬 도중 사망했다고 보도했습니다. 

궁정동 안가에서 성매매를 위해 여성 2명을 불러서 술을 마시다가 사망했다는 얘기는 없었습니다. 

역사의 진실은 아무리 숨겨도 언젠가는 밝혀질 것입니다. 그 시간의 차이를 거슬리는 순간 정치 공작이 되고, 국민의 신뢰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아버지 박정희의 죽음을 통해 아무리 숨겨진 사실도 국민들이 결국 알게 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1. 주진우씨가 200만원 배상 판결을 받은 이유는 박정희가 독일에 갔지만 서독 대통령을 만나지 못했다는 발언에 대한 착오를 인정했고 이 부분에 대한 위자료 부분이다.
2. 진짜 국가안보나 외교 등의 문제로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13&table=impeter&uid=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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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최근 로켓 발사는 미국 겨냥한 군사목적

 
조선신보 "미국 유엔 안보리 평화보장 요청 받아들여야“
 
이정섭 기자 
기사입력: 2014/08/11 [09:15]  최종편집: ⓒ 자주민보
 
 
 
▲ 최근 김정은 제1위원장의 지도 아래 이루어진 조선의 로켓 발사는 미국을 겨냥한 군사적 목적이라고 조선신보가 보도했다.     © 이정섭 기자

조선의 광명성 3호는 평화적 위성이었지만 최근 발사한 탄도 미사일은 미국을 겨냥한 군사적 목적의 로켓이라며 미국의 대북정책 전환을 촉구하는 언론보도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연합뉴스는 지난 9일 재일동포 신문인 조선신보가 최근 잇따른 북한의 미사일 발사 훈련 등이 미국의 대북정책 전환을 촉구하는 '북한(조선)식 인내전략'이라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연합뉴스와 정치 포털 싸이트 써프라이즈에 따르면 조선신보는 지난 9일 '창과 방패의 대결/ 로켓 발사 훈련의 배경(하)' 제목의 글에서 “조선식 인내전략은 미국이 먼저 행동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면서 “미국이 적대시 정책을 버리지 않고 핵위협을 그만두지 않는 한 조선은 핵 억제력 강화 노선을 추구하고 탄도로켓 발사 훈련 등 국방력을 다지려는 조치를 취해나갈 것”이라고 전했다. 

조선신보는 조선이 과거 '인공위성'을 쏘아 올릴 때의 로켓 발사는 우주개발 목적이었지만 최근의 로켓 발사는 군사적 목적이라며 “백악관의 정책전환 의지가 군사분야에 구현될 때까지 중단되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이 신문은 “합동군사연습이 미국과 남조선에 있어서 절대로 버릴 수 없는 소중한 것이라면 조선반도 영역을 벗어난 곳이나 미국에 건너가 벌이라”는 북측 언론 보도를 상기했다. 

신문은 황병서 조선인민군 총정치국장이 지난 7.27 전승절(정전협정일)61주년 기념식에서 “자주권을 위협하면 미국의 백악관과 팬타곤 등 미 본토를 핵공격 할 것”이라는 말을 언급하며 “조선이 북침전쟁연습의 정례화에 자위적 군사훈련의 정례화로 대답해 나섰다. 조선을 부단한 국방력 강화로 떼밀었던 오바마 행정부가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행동 대 행동'의 새로운 과제를 떠맡게 됐다”고 밝혔다. 

또한 '전승절'(정전협정 체결일·7월 27일) 인민군 결의대회에서 미국이 핵으로 조선의 생존을 위협하면 "백악관과 펜타콘을 향해 핵탄두 로켓을 발사하게 될 것"이라고 한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의 발언에는 "백악관이 (대북) 적대시 정책을 더 늦기 전에 빨리 포기해야 한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고 분석했다.

특히 “미국은 남측 당국이 한미 군사연습 중단에 관한 북의 제안에 호응하면 그 결단을 존중해야 한다”며 “평화보장에 관한 유엔안보리의 요청을 받아들이라”라고 촉구했다. 

한편 조선은 한미 당국이 오는 18일부터 시작하는 을지가디언훈련을 강행하게 되면 미국 본토를 타격할 것이라는 강경발언을 이어 가고 있어 한반도 긴장완화와 평화 보장을 위한 관계국들의 노력이 요구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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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위안부' 문제 운동 역사

끝나지 않은 인권침해, 일본군'위안부'[친절한 통일씨] 일본군'위안부' 문제 운동 역사
조정훈 기자  |  whoony@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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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08.10  20:3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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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제는 과거사로 치부할 문제가 아니며 사법 정의 및 배상이 이뤄지지 않는 한 이 여성들에 대한 인권 침해는 지속되고 있다는 점에서 현재의 문제이다."

최근 나비 필레이 유엔 인권최고대표가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있는 일본 정부를 향해 일침을 놨다.

일본 정부 관료들의 망언과 모르쇠에도 불구하고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일본군'위안부' 문제 해결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그 문제 해결의 방법은 단순한 사죄가 아니라 전쟁범죄를 해결하는 방식인 법적 배상과 교과서 기록을 핵심으로 삼고 있다.

2차대전 당시 대표적인 전쟁범죄인 일본군'위안부' 문제. 피해자의 목소리로 출발한 일본군'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20여 년의 역사를 살펴보자.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의 목소리로 시작된 일본군'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  [자료사진-통일뉴스]

우선, 일본군'위안부'란 용어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1990년 초 일본군'위안부' 문제가 본격적으로 제기됐을 때, '정신대(挺身隊)'라는 용어가 사용됐다. '정신대'는 '일본 국가 혹은 천황을 위해 솔선해서 몸을 바치는 부대'라는 뜻으로 일제가 노동력 동원을 위해 만든 용어였다.

하지만 정신대에는 근로와 위안부라는 의미가 혼합된 것으로 '군 위안부'란 용어로 사용됐으며, 일본에서 '종군 위안부'라는 말로 사용됐다. 그러나 '종군'은 군을 자발적으로 따라다녔다는 의미로, 강제성을 내포하지 않고 있다. '위안부'는 군인의 몸과 마음을 위로한다는 의미이다.

이에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와 시민사회는 '일본군'이라는 가해자를 명확히 하고 역사적 용어인 '위안부'를 결합해 일본군'위안부'라는 용어로 사용하기로 했다.

국제사회에서는 '위안부'를 'comfort women'으로 표기했지만, 일본군'위안부' 제도가 강제동원과 강압에 의한 제도였음을 명확하기 하기 위해 '일본군'성노예'(Japanese military sexual slavery)라고 사용한다.

하지만 '성노예'라는 지칭은 피해자들에게 이중의 고통을 줄 수 있다는 판단에 따라 국제용어로는 성노예라고 표현하되, 국내에서는 일본군'위안부'로 칭하고 있다.

   
▲1991년 처음 공개 증언한 고 김학순 할머니. 국민기금 반대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제공-정대협]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김학순 할머니의 첫 증언, 운동의 시작

일본군'위안부' 문제가 본격적으로 제기된 것은 1990년 1월 윤정옥 전 이화여대 교수가 한 일간지에 취재기를 발표하면서부터이다. 이어 본격적인 문제해결을 위한 운동단체인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가 같은 해 11월 발족했다.

그리고 해방 64년 만인 1991년 8월 일본군'위안부' 피해자인 김학순 할머니가 첫 공개증언을 했다. "당한 것만 해도 치가 떨리는데 일본사람들이 정신대란 사실 자체가 없었다고 발뺌하는 것이 너무 기가 막혀 증언하게 됐다"는 김학순 할머니의 증언은 한국 사회에 파장을 불러왔다.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군이 여성들을 끌고 갔다는 이야기만 전해졌을 뿐, 잊혔던 역사가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같은 해 9월 '정대협'에서 '정신대 신고전화'를 개통, 김학순 할머니의 증언에 힘을 입은 피해 여성들이 전면에 나서기 시작했다. 이어 1992년 당시 외무부(현재 외교부) 내에 '정신대실무대책반'을 조직, 전국 시.군.구를 통해 피해자 신고를 접수받았다.

지금까지 정부에 공식 등록된 일본군'위안부'피해자는 총 237명. 이 중 2014년 8월 현재 54명이 생존해 있다.

   
▲1992년 1월 첫 수요시위. [사진제공-정대협]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의 증언으로 시작된 문제 해결 운동의 목표는 일본군'위안부' 문제의 완전한 해결이다. 그리고 그 해결방법은 1992년 1월 시작된 '일본군'위안부' 문제해결을 위한 수요시위'(수요시위)에 명시된 내용으로, 지금까지도 핵심으로 자리 잡고 있다.

첫 수요시위에서 제시된 문제해결 방법은 △일본정부는 조선인여성들을 위안부로 강제연행한 사실을 인정하라, △그것에 대해 공식적으로 사죄하라, △만행의 전모를 스스로 밝혀라, △희생자들을 위하여 추모비를 세워라, △생존자와 유족들에게 배상하라, △이러한 잘못을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 역사교육 속에서 이 사실을 가르쳐라 등이다.

이는 문제해결 운동과정을 통해, △일본군'위안부' 범죄인정, △진상규명, △국회결의 사죄, △법적배상, △역사교과서 기록, △위령탑과 사료관 건립, △책임자 처벌 등으로 보다 구체화됐다.

   

▲1992년 12월 일본에서 열린 '전후 보상 국제공청회. 여기서 남측 김학순 할머니(오른쪽)와 북측 김영실 할머니(왼쪽)가 만났다. 두 할머니는 같은 위안소에 있던 것으로 알려졌으며, 김학순 할머니는 김영실 할머니를 만나 "위안소에 같이 있었잖아"라고 말했다.  [사진제공-정대협]

일본군'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국내, 국제, 남북 연대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의 목소리로 출발한 문제해결 운동은 국내와 국제, 남북 등 다양한 영역에서 진행되고 있다. 그리고 정대협이 문제해결운동의 중심에 서 있다.

1991년 시작된 수요시위는 매주 수요일 낮 12시 서울 중학동 일본대사관에서 열리고 있으며, 현재 1138차를 앞두고 있다.

국내적으로 피해자들과 정대협은 한국정부를 상대로 문제해결을 강하게 촉구하고 있다. 과거사 문제는 '조용한 외교'로 일관한 정부였지만 2011년 헌법재판소 판결은 전환점을 가져왔다.

당시 헌재는 대한민국과 일본국 간의 재산 및 청구권에 관한 문제의 해결과 경제협력에 관한 협정(한일 청구권 협정) 제3조 부작위에 대해 위헌결정을 내렸다. 청구권 협정 3조는 협정의 해석과 실시에 대한 분쟁이 발생할 경우 정부의 외교적 해결 의무와 회부 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헌재는 "위안부 문제로 인해 분쟁이 발생했는데도 정부가 양자협의, 중재회부 등의 절차를 진행하지 않고 있다"며 "'소모적인 법적 논쟁으로의 발전 가능성', '외교관계의 불편'이라는 매우 불분명하고 추상적인 사유를 들어 그것이 기본권 침해의 중대한 위험에 직면한 청구인들에 대한 구제를 외면하는 타당한 사유가 된다거나 또는 진지하게 고려돼야 할 국익이라고 보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이에 정부는 지난 2011년 9월과 11월 두 차례 일본정부를 상대로 양자협의를 요청했지만, 일본정부는 이에 응하지 않았다. 또한, 한일 외교부가 세 차례 국장급 협의를 했지만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1995년 방한한 라다카 쿠마라스와미 유엔 인권위원회 여성폭력특별보고관. 쿠마라스와미 보고서는 남북.해외 일본군'위안부' 피해 사례를 직접 청취한 유엔의 첫 보고서이다.  [사진제공-정대협]

정부를 상대로 한 압박 외에도 정대협과 피해자들은 국제사회의 연대를 이끌어 내 외교적인 압박을 가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 연대로, 라디카 쿠마라스와미 유엔 인권위원회 여성폭력특별보고관 보고서(1996, 2003), 게이 맥두걸 '무력분쟁하 조직적 강간과 성노예 문제 등에 대한 유엔 인권소위원회 특별보고관' 보고서(1998) 등이다.

쿠마라스와미 보고서는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다룬 유엔의 첫 보고서로 남북.해외의 사례를 수집, 일본군'위안부'는 '군사적 성노예'라고 처음 규정했다.

그리고 "위안소 설치.징집.운영은 국제조약 및 국제인도법에 반하며, 인도에 반한 죄에 해당한다"고 지적, 특히, "한일조약에 포함되지 않았고 일본은 국제 인도법상 법적 책임과 도의적 책임을 부담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그러면서 △법적 책임 인정, △행정심판소 설립을 통한 배상, △관련 문서 공개, △성노예 인정 및 서면 사죄, △교과서 기록, △책임자 처벌 등 피해자들의 요구사항을 일본정부에 권고했다.

게이 맥두걸 보고서도 "위안부 여성들의 징집 및 처우는 노예제도를 금지한 국제관습법에 위반되며 전쟁범죄이고 반인도적 범죄"라고 규정했다.

그리고 "개별 범죄자뿐 아니라 군 장교 및 정부 관리 등 위안소 설치, 운영에 관여한 상급책임자들도 형사책임을 져야 한다"며 "일본정부는 위안부 피해 여성들에 대해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밝혔다.

이밖에도 국제노동기구(ILO) 전문가위원회 보고서(1999), 유엔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 위원회(CESCR) 보고서(2013), 유엔 고문방지위원회(CAT) 보고서(2013), 유엔 시민적.정치적 권리규약(B규약) 위원회 의견서(2014) 등에서도 일본 정부의 책임을 묻고 있다.

유엔 외에도 미국 하원, 네덜란드 의회, 캐나다 의회, 유럽의회 등 5개국 의회에서 일본군'위안부' 문제해결 촉구 결의안이 통과됐다. 그리고 국제 시민사회가 연대해 2000년 일본에서 '일본군'성노예 전범 국제법정'을 열고, 히로히토 일왕에게 유죄를 선고하기도 했다.

   
▲ 2007년 서울에서 열린 '8차 일본군'위안부' 문제해결 아시아연대회의'. 이날 회의에서 남북이 처음으로 일본군'위안부'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자료사진-통일뉴스]

일본군'위안부' 문제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정부가 저지른 전쟁범죄로 한국의 문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당시 조선은 물론, 중국, 대만,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 일본군이 주둔한 국가의 여성과 당시 인도네시아에 거주한 네덜란드 여성들도 '위안부' 피해자라는 점에서 피해국 범위가 넓다.

특히, 해방 이후 분단을 겪은 한반도의 경우에도 '위안부' 문제는 남북한이 공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남북 간 연대가 중요하다.

남북은 1991년 5월 일본에서 열린 '아시아의 평화와 여성의 역할' 토론회에서 처음으로 마주했다. 그리고 같은 해 11월 여운형 선생의 딸 려원구 북한 최고인민회의 부의장이 서울을 방문했고, 1992년 이효재, 윤정옥 정대협 공동대표가 평양을 방문, 일본군'위안부' 문제 해결을 논의했다.

심지어 1993년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 등 긴장국면에서도 남측 인사들이 평양을 방문하는 등 일본군'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남북 간 연대활동은 활발했다.

남북은 '일본의 과거청산을 요구하는 아시아지역 토론회'(2002년 평양), '8차 일본군'위안부' 문제해결 아시아연대회의'(2007년 서울) 등 남북을 오가며 다양한 활동을 해왔고, 2007년 당시에는 남북이 처음으로 일본군'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공동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지난 3월 중국 선양에서 '일본군 성노예 문제해결을 위한 남북.해외 여성토론회'가 열렸다.

   
▲ 2002년 평양에서 열린 '일본의 과거청산을 요구하는 아시아지역 토론회'. [사진제공-정대협]

'위안부' 문제, 언제 해결될 것인가

일본군'위안부' 문제 해결은 당사자인 일본 정부가 이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느냐가 중요하다. 일본 정부는 '위안부' 문제가 제기되던 1990년대 초부터 지금까지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왜곡하거나 망언으로 문제 해결을 어렵게 하고 있다.

물론, 1993년 고노 요헤이 관방장관의 담화(고노담화) 발표는 일본 정부의 일본군'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일본 정부의 의지를 보여주기도 했다.

그러나 고노담화 발표 이후 일본 정부는 법적 배상이라는 해결책이 아니라 '여성을 위한 아시아 평화 국민기금'(국민기금)을 만들어 민간차원의 위로금을 지급하려는 술수를 부려, 피해자들과 피해국의 강한 반발을 불러왔다.

   

▲2011년 12월 서울 중학동 주한일본대사관 앞에 세워진 '평화비'.  [자료사진-통일뉴스]

여기에 최근 아베 정권은 '고노담화'를 검증, 외교적 논리에 따른 것이었다며 폄훼해 문제 해결을 어렵게 하고 있다. 그리고 여전히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해결됐다고 주장하며, 이미 실패한 '국민기금' 카드를 다시 꺼내려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군'위안부' 문제의 완전한 해결은 전쟁범죄 해결 원칙인 공식 사죄, 책임자 처벌 그리고 법적 배상이다.

특히, 법적 배상은 일본 정부가 일본군'위안부' 제도 범죄를 공식 인정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에서 모두 해결됐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1965년 당시 일본군'위안부' 문제는 다뤄지지도 않았으며, 반인도적 불법행위 및 식민지 지배에서 유래하는 '청구권'은 협정 대상이 아니었다.

현재 일본 정부는 일본군'위안부' 제도 자체를 부인하고 있지만, 1993년 고노담화 발표를 기점으로 이전에는 일본군'위안부' 문제 자체가 다뤄지지 않았고,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이는 일본 정부가 일본군'위안부' 문제는 1965년 청구권 협정 체결 당시 해결됐다는 주장에 맞지 않다.

   
▲ '전쟁과 여성인권박물관'에 새겨진 일본군'위안부' 피해자의 목소리. [자료사진-통일뉴스]

2011년 헌재 판결 이후, 한국 정부도 일본군'위안부' 문제는 한.일 청구권 협정 논의대상이 아니었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다. 그래서 양자협의를 제안했지만, 일본정부는 외면, 일각에서는 중재위원회를 구성해 회부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일본 정부의 태도를 볼 때, 일본군'위안부' 문제 해결은 요원해 보인다. 그래서 유엔 등 국제사회의 연대와 압박이 필요하다. 또한,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잊지 않는 여론형성도 중요하다.

그렇기에 일본군'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우리 모두가 잊지 않고 관심을 갖고 목소리를 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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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바일을 장악한 언론이 뉴스 역사를 새로 쓴다

[미디어의 미래, 디지털 퍼스트 ④] 뉴스를 쪼개어 작은 화면에 담는다, 모바일 전용 뉴스앱 써카(Circa)
 
입력 : 2014-08-07  10:08:34   노출 : 2014.08.09  17:35:27
조수경·김병철 기자 | jsk@mediatoday.co.kr    
 
미디어오늘은 2주 동안 ‘미디어의 미래, 디지털 퍼스트’라는 주제로 미국을 방문해 가장 빠르게 산업 붕괴를 겪고 있는 미디어 업계의 현장을 취재했다. 뉴욕에서는 기존 언론을 누르고 ‘디지털 혁신’을 이끌고 있는 버즈피드와 허핑턴포스트를 만났다. 또한 뉴욕타임스의 ‘디지털 저널리스트’들을 만나 디지털 시대에 필요한 언론인의 미래상을 물어봤다. 보스턴에서는 하버드 대학교의 ‘니먼 저널리즘 랩’을 방문해 미국 언론의 ‘디지털 교육’과 네이티브 광고에 대한 전망을 들었다. 직접 뉴스를 생산하지 않지만 ‘뉴스 플랫폼’의 역할을 수행하는 플립보드와 써카(Circa)를 찾아 새로운 형태의 뉴스 유통 구조를 살펴봤다. <편집자 주>

① “‘디지털 천장’을 깨야 디지털 혁신이 가능하다”-조슈아 벤톤 니먼 저널리즘 랩 소장
② “SNS 공유 안되면 실패한 콘텐츠” - 잭 셰퍼드 버즈피드 디렉터
③-1 기술을 아는 기자, 언론을 이해하는 기술자의 등장
③-2 “무엇을 다루든지 목표는 저널리즘” - 아만다 콕스 뉴욕타임스 그래픽팀 에디터
③-3 “개발은 스토리를 잘 전달하기 위한 도구” - 앨버트 선 뉴욕타임스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써카(Circa)는 뉴스를 독특한 방식으로 생산하기로 유명하다. 지난달 10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만난 써카의 CCO(Chief Content Officer)인 데이비드 콘(Daivd Cohn)은 “기사를 쓰지 않는다는 점이 다른 매체와의 가장 큰 차이”라고 강조하며 “우리는 뉴스를 사실, 인용문, 통계치, 사건, 이미지 등 ‘원자 단위’(atomic unit)로 분해한 후 이를 다시 엮어서 스토리로 만든다”고 설명했다. 

뉴스를 에디팅(editing)하는 방법이 궁금하다. 
데이비드 콘: 세월호 사건을 예로 들어보자. 언론사들은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될 때마다 새로운 기사를 써야 한다. 그리고 이미 어느 정도 알고 있는 독자와 그렇지 않는 독자 모두를 고려해야 하므로 대부분 이미 쓴 사실을 다시 쓴다. 

하지만 써카는 이러한 스토리를 개별적인 원자로 분해하기 때문에 누가 무엇을 읽었고, 읽지 않았는지 추적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존이라는 사람이 세월호 침몰 때부터 계속 기사를 읽은 상태라면 3일 후에는 서너 가지 새로운 사실을 추가해 제공한다. 휴가를 다녀오느라 이 사건이 발생한지 몰라 처음부터 알아야 하는 제임스와는 다른 순서로 뉴스가 보인다는 얘기다. 

써카 모바일 화면에서 세월호 뉴스를 클릭하면 우선은 커다란 사진과 한 문장으로 된 짤막한 글이 눈에 들어온다. 더 궁금하다면 화면을 위로 살짝 밀면(Swipe) 된다. 팩트와 사진 혹은 그래픽 등 관련한 내용이 따라 나온다. 모바일 화면을 대략 다섯 번 정도 넘기면 해당 뉴스를 다 볼 수 있다. 마지막엔 인용(citation)한 다른 매체 기사의 링크가 걸려있다. 
 
   
▲ 맨 왼쪽 위 사진이 세월호 기사 첫 화면이다. 더 보고 싶으면 화면을 슬쩍 밀면 된다.(맨 위 가운데) 이 기사는 총 9 포인트로 이뤄져 있다. ⓒ미디어오늘 
 
텀블러 전 사장이었다가 최근 써카 사장으로 취임한 존 말로니(John Maloney)는 “특정 스토리를 팔로우하면 써카는 당신이 그 스토리에 관심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다른 뉴스매체와는 다른 방식으로 당신과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고 말했다 

이런 방식을 통해 써카가 독자들에게 제공하는 건 기사가 아니라 ‘스토리’다. 콘은 “세월호 사건의 경우 침몰뿐만 아니라 국무총리 사임 등 두 세 가지 사안으로 나눌 수 있지만 이를 하나의 큰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개별 기사가 아닌 하나의 이야기로 다룬다”고 했다. 

11명의 에디터들이 하루에 50~60개, 많게는 150개의 뉴스를 업데이트한다고 했다. 상당한 양이지만 기사를 다시 써야 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불필요한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진 않는다고. 콘은 “600자 단어를 다시 쓸 필요는 없다. 어떤 경우는 원 포인트(one point)만 추가해도 된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효과는 적지 않다. 말로니는 “그 원 포인트가 독자들이 써카를 다시 찾게 한다”고 했다. 
 
   
▲ CCO인 데이비드 콘(왼쪽)과 사장 존 말로니 ⓒ조수경 기자
 
써카 뉴스는 에디터 1인이 아닌 협업을 통해 탄성되기 때문에 바이라인이 따로 없다. 또한 새로운 사실이 나올 때마다 내용이 추가되지만 모든 걸 덕지덕지 붙이는 식으로 스토리를 완성하지 않는다. 콘은 “한 달 전에 만들어진 이 기사의 경우 지금까지 5개의 포인트가 추가됐는데 이것만 작성한 건 아니다. 이들 중 일부는 관련성이 떨어져서 삭제되거나 숨겨지기도 한다. 세월호 사건의 경우 사망자수 변경은 스토리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원자화된 써카 뉴스의 논조는 매우 건조한 편. 콘은 우리는 매우 객관적인 사실만을 전달하며 분석이나 의견은 넣지 않는다. 우리는 정확(accurante)하고 심도(thorough) 있으며 공정(fair)하게 전달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모바일에 투자하라는 철 지난 얘기
“우리는 이미 최고의 모바일 경험 제공한다”
 

이렇게 완성되는 모바일 전용 뉴스 콘텐츠가 호흡이 짧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써카 뉴스의 길이는 일면 짧아 보이지만 시간을 두고 보면 ‘롱 폼(long form)’이다. 우크라이나 사태를 다룬 뉴스에는 10 포인트가 있지만 실제로는 150 포인트 이상이 숨겨져 있다. 전체를 다 읽으면 꽤 긴 글이지만 조각조각 떨어져 있기 때문에 길게 느껴지지 않는다. 따라서 우크라이나 스토리를 팔로우할 경우 잡지 뉴요커(The New Yorker)의 3,000 단어짜리 긴 기사를 읽는 사람보다 이 사건에 대해 더 잘 알 수 있다.”(데이비드 콘)

써카는 자신들의 CMS(콘텐츠관리시스템)를 공개하진 않았지만 “CMS는 우리만의 독특한 방식을 유지할 수 있게 한다”며 중요성만큼은 매우 강조했다. 콘은 “30년 전이라면 기사를 써서 에디터에게 보내고 서로 피드백을 주고받다가 헤드라인을 정하고 종이신문의 레이아웃을 짜는 편집기자에게 넘긴다. 그러면 이 편집기자가 신문사 안에서 소비자 입장에서 콘텐츠를 바라보는 첫 번째 사람이 된다. 기자는 신문지면상에서 자신의 기사가 어떻게 보일지 고민하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 CMS는 모두가 소비자의 입장에서 뉴스를 바라볼 수 있도록 설계돼 있다”고 했다. 
 
   
▲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써카 사무실 내부. ⓒ김병철 기자
 
무엇보다 써카를 이해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키워드는 ‘모바일 전용’이다. 2012년 출시된 써카는 애플리케이션을 받아야만 제대로 이용할 수 있다. 웹상에서 써카의 SNS에 링크된 뉴스를 클릭하면 볼 수 있지만 모바일 뉴스를 웹화면에 펼쳐놓은 정도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시도로 뉴스미디어를 새롭게 정의하고 싶어 했다. 콘은 “CNN 이전에도 뉴스는 있었지만 CNN은 채널에 뉴스를 편성한 정도가 아니라 그 자체가 뉴스를 위한 채널이다. 그 전에는 없었던 일이었고 CNN은 TV뉴스를 이해하는 방식을 (새롭게)정의했다”고 말했다. 
 
   
▲ 미디어오늘 기자에게 써카 콘텐츠를 설명하고 있는 데이비드 콘. ⓒ조수경 기자
 
콘은 “써카도 첫 번째 모바일 뉴스미디어라고 할 수 없고 다른 경쟁자들도 뉴스 콘텐츠를 모바일에 편성한다. 뉴욕타임스의 경우도 지면으로 오랫동안 콘텐츠를 제공해오며 돈을 벌어왔고 이 콘텐츠를 모바일에 제공하고 있다”면서 “하지만 써카는 그 자체가 모바일 뉴스를 위한 미디어다”라고 말했다. “뉴욕타임스와 같이 레거시 시스템(legacy system·낡은 시스템)이 있는 경우에는 같은 콘텐츠를 모바일 형식에 맞게 만들어야 하지만 우리는 그런 부담이 없기 때문에 완전히 모바일에 집중할 수 있고 모바일 세계에서는 최고의 경험을 제공할 수 있다”(말로니)는 것이다. 

콘은 “우리는 모바일폰 자체가 아니라 모바일 라이프와 모바일화(Mobilization)에 집중한다”면서 “중요한 건 ‘사람들이 뉴스를 어디서 소비하는가’이다. 예를 들어 우리의 관심은 모바일폰에서 데스크톱으로 이동할 수도 있다. 사람들이 아직도 데스크톱에서 뉴스를 보고 있고, 미래엔 훨씬 더 큰 스크린으로 뉴스를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콘은 “따라서 모바일 라이프에서 독자들이 어디로 향하는지를 추적하는 건 매우 중요하다. 또한 써카 콘텐츠는 모든 디바이스에서 적용될 수 있는 강점을 가지고 있다. 정리하자면 우리는 모바일폰에 집중하면서 사람들이 이동 중에 어떻게 뉴스를 소비하는지 추적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콘은 모바일에 최적화돼 있는 써카 콘텐츠의 특징을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콘텐츠가 모바일에 맞게 변해야하기 때문에 써카 뉴스는 짧은 문장으로 구성돼 있는 건가.
콘: 그렇다. 그래서 우리는 뉴스를 분해해서 사실과 인용 등으로 분류한다. 그리고 독자가 무엇을 읽고 무엇을 읽지 않았는지를 추적한다. 한국도 마찬가지겠지만 아침에 일어나서 사람들이 가장 먼저 하는 행동이 핸드폰을 보는 것이다. 제일 먼저 이메일을 체크하고 그 다음엔 뉴스를 본다. 하지만 얼른 씻고 나가야 하기 때문에 30분씩 보진 않는다. 1~5분 정도 보기 때문에 그 시간안에 읽을 수 있도록 한다.
 
   
▲ 써카는 자신들의 블로그에 뉴스 편집 방향을 설명하고 있다. 
 
독자들이 웹과 모바일에서의 행동패턴이 다를 것 같다. 모바일에서는 어떤가. 
콘: 쓰는 시간이 다르다. 아까 말했듯이 아침에 잠깐 쓰고 오후나 퇴근길에 잠깐 사용하지만 데스크톱은 사무실에 도착해서 켜는 등 정반대다. 또 하나, 대부분 뉴스매체들의 트래픽은 주말 동안 급락한다. 우리도 살짝 떨어지지만 결코 다른 뉴스매체만큼 떨어지지 않는다. 주말에 사람들이 컴퓨터에 로그인하고 싶어 하지 않지만 핸드폰은 본다.

그렇다고 해서 써카가 모바일 영역에만 머무르는 건 아니다. 써카도 영역 확장에 나서고 있었다. 말로니는 “우리는 모바일에서 뉴스를 소비하는 라이프스타일에 초점을 맞춰 시작했지만 웹을 비롯한 다양한 플랫폼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들은 웹페이지(circanews.com)를 올해 말부터 시작할 계획이라고 했다. 

그들은 기존 뉴스매체들이 모바일 분야를 강화하는 현상에 대해서는 회의적으로 바라봤다. 콘은 “뉴욕타임스가 ‘모바일 퍼스트를 해야 하느냐’라는 질문을 던진다면 ‘그들은 할 수가 없다’가 답이다”라고 했고, 말로니 역시 “모바일에 집중하는 작은 팀이 하나 있고 나머지 수천 명의 사람들이 다른 일을 하고 있다면 서로 갈등이 있지 않겠나”라고 동의했다. 
 
   
▲ 뉴욕타임스
 
콘은 이어 “올해 CNN는 처음으로 데스크톱보다 더 많은 트래픽을 모바일에서 가져올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물론 이 방송사에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라 많은 뉴스 매체들이 웹과 모바일 트래픽 비율을 50대 50으로 예상하고 있다”면서도 수익 측면에서 딜레마에 빠져 있다고 지적했다. 

모바일에서의 수익 모델이 불투명하다는 얘기다. “기존 언론들은 ‘프린트 달러(print dollars)’를 ‘디지털 다임(digital dimes)’으로 교환하고 있다는 농담을 한다. 그리고 정교한 모바일 경험을 제공하는 게 아니라면 ‘디지털 다임(digital dimes)’을 ‘모바일 페니(mobile penny)’로 바꾸고 있다고 한다. 왜냐면 보통 모바일에서는 기껏 해봤자 배너광고 정도가 붙기 때문이다. 웹과 모바일의 트래픽 비율이 50대 50 수준으로 올라가더라도 가능하면 웹 비중을 100%로 두고 싶을 것이다. 웹에서는 수익을 창출하는 방법을 알지만 모바일에서는 어떻게 해야 할지 아직 모르고 있다.” (데이비드 콘)
 
   
 
 
써카 역시 ‘모바일 달러’를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다. 말로니는 “400만 달러 정도를 투자받았지만 버즈피드나 플립보드의 투자금에 비하면 많은 금액이 아니다”고 말했다. 이들은 미국의 다른 뉴스 스타트업과 마찬가지로 네이티브 광고(native ad)를 수익 창출의 기회로 보고 있었다. 그는 “언제나 중요한 건 확산 범위(Scale)와 몰입도(Engagement)다. 기업이 이런 스토리를 후원한다면 엄청난 효과를 볼 것”이라고 말했다.

광고가 없는데 비즈니즈 모델이 있나.
콘: 현재 수익스트림(stream)이 없는 상황이다. 광고가 없고 기사는 무료이며 독자에게 다가가는데 집중하고 있다. 하지만 향후 수익을 얻을 수 있는 여러 기회가 있다. 그 중 하나가 스폰서 콘텐츠(sponsored contents)다. 
 
“페이퍼 달러가 모바일에선 페니로…”
써카도 수익 찾기 ‘골몰’·네이티브 광고 시동 

써카 스타일의 네이티브 광고인가. 
콘: 맞다. 이를테면 리바이스가 후원하는 사실이 확실히 드러나는 스토리를 만드는 것이다. 리바이스가 언제 만들어졌는지 등 사실을 추가하고 창립자의 말을 인용해 만든 스토리를 팔로우하는 독자들은 몇 개월 후 신상품이 나오거나 ‘빅세일’을 할 때 이를 알 수 있다. 홍보효과가 나타나는 것이다. 자동차도 마찬가지다. 

네이티브 광고는 언제부터 할 건가. 
콘: 현재 말로니가 자금 조달에 집중하고 있다. 투자자에게 네이티브 광고를 통한 수익 가능성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아마 (우리가 할 수 있는)네이티브 광고가 가장 혁신적인 수익모델 중에 하나인 것 같다. 그리고 (다운로드와 같은)유료 가입 등 또 다른 구체적인 수익원을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어쨌든 자금이 좀 더 조달된 후 시도할 계획이다. 

말로니: 올해 말쯤 실험을 시작할 것이다. 써카는 네이티브 광고를 제공할 수 있는 좋은 플랫폼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월드컵을 예로 들어보자. 써카 에디터 팀은 지난 3주 동안 정말로 잘해왔다. 사실 이들은 원자화된 사실만 간단하게 전달했지만 말이다. 만약 당신이 지난 2주 동안 써카의 월드컵 뉴스를 팔로우했다면 업데이트될 때마다 보게 됐을 것이다. 당신처럼 월드컵 뉴스를 팔로우한 수천 명의 몰입도(engagement)는 매우 높기 때문에 우리가 나이키 같은 브랜드에 써카의 월드컵 스토리를 후원해달라고 네이티브 광고를 제안할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은 네이티브 광고가 포화상태(Bubble)에 도달했다는 일부 지적에 대해서는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콘은 “점점 TV와 컴퓨터가 결합되고 있기 때문에 TV광고의 돈이 어떻게든 온라인 광고로 넘어올 것”이라고 말했고, 말로니는 “버블이라면 스타트업보다는 뉴욕타임스와 같은 레거시 시스템이 있는 뉴스 미디어 강자에 더 큰 타격을 입힐 것”이라고 했다. 

또한 써카에 저작권 분쟁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콘은 “국무총리의 말을 인용했다면 저작권은 그에게 있지 뉴스매체에 있는 게 아니다. 국무총리는 소송을 제기할 수 있지만 뉴스매체는 아니다”면서 “우리가 복사하고 붙여 넣는 건 쿼터(quote)일 뿐이지 나머지 부분에 대해서는 다시 쓰며(rewrite), 팩트 자체에 저작권이 적용될 수는 없다”고 말했다. 

기술면에서 선두를 달리는 이들에게 종이신문의 미래는 어떻게 보일까. 낙관적이지도, 그렇다고 비관적이지도 않았다. 
 
   
 
 
종이신문이 언제 사라질 것이라고 보나. 
말로니: 최근에는 주말판만 보지만 뉴욕타임스는 25년째 구독하고 있다. 난 앞으로도 주말판을 계속 구독할 것이고, 독자가 있는 한 종이신문은 남아있겠지만 독자 수는 점점 줄어들 것이다. 요즘은 신문을 끼고 다니는 20대를 찾아보기 힘들다. 하지만 여전히 종이매체를 좋아하는 독자들도 있다. 패셔니스타고 보그(Vogue)지를 좋아한다면 이를 항상 구독할 것이기 때문이다.

콘: 결론적으로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종이신문은 상품이다. 하지만 저널리즘이 곧 종이신문은 아니다. 모바일을 비롯한 다른 상품들이 출시되면서 저널리즘은 더욱 발전할 것이라고 본다. 물론 종이신문의 비중은 줄어들 수 있고 매주 7일 종이신문이 나오는 일은 사라질 것이지만 말이다. 종이신문이 전처럼 다시 주류가 되기는 어렵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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