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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을지프리덤으로 전쟁 나면 유엔도 책임

북, 을지프리덤으로 전쟁 나면 유엔도 책임
 
“유엔 안보리 한미 합동군사훈련 긴급현안 회의”요구
 
이정섭 기자 
기사입력: 2014/08/02 [07:10]  최종편집: ⓒ 자주민보
 
 

조선이 미국의 위협이 계속되는 한 핵무기를 계속 개발할 것이라며 유엔 안보리는 을지프리덤 가디언 훈련에 대해 긴급 현안으로 회의를 열 것을 요구했다.

내.외신들은 2일 일제히 지난 1일(현지시간) 리동일 북한 유엔대표부 차석대사는 이날 낮 뉴욕 맨해튼 유엔본부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전 세계 어느 나라도 북한처럼 끊임없이 위협받는 나라는 없다"면서 ”미국 등으로부터의 위협이 계속되는 한 이를 억제하기 위해서는 핵무기 개발외에 대안이 없다“고 주장해 자신들의 핵개발이 미국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것임을 밝혔다.

유엔 주재 리동일 차석대사는 조선의 핵무기 개발은 2002년 조지부시(아들 부시) 미국 정부가 북한에 대한 선제공격 정책을 정하고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지 않았다면 아마도 핵무기를 개발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핵 개발의 동기가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의 발언으로 촉발 된 것임을 주장했다.

리동일 차석대사는 “이미 요구한대로 유엔 안보리는 한·미 합동군사훈련 문제를 긴급 현안으로 다뤄야 한다.”며 “안보리가 이 요구를 거절한다면 세계평화와 안보를 위해 중립과 원칙을 지켜야 할 유엔이 존재목적을 저버리는 것”이라고 말해 유엔이 중립성과 공정성을 지킬 것을 강조했다.

리 차석 대사는 “유엔 안보리가 조선의 요청을 무시하고 있다”면서 “유엔 안보리와 미국이 조선의 공식 요청을 계속 거부할 경우 북한은 스스로 선택한 길로 나갈 것이다. 특히 한반도에서 미-한 합동군사훈련이 계속되면 북한도 자위적인 차원에서 맞대응을 해 나갈 것이며 조선의 대응에는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 등 모든 방안이 다 포함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리 차석대사는 “한·미 군사훈련 과정에서 불똥이 튀어 전쟁으로 번지면 이 책임은 미국이 져야 한다.”면서 “아울러 유엔 안보리 역시 미국을 불법으로 지원한 책임을 면할 수 없다”고 말해 불행한 사태가 발생하면 유엔도 공동 책임이 있음을 강력하게 역설했다..

그는 “한국전 휴전 이후 지금까지 미국이 벌인 대규모 군사훈련은 무려 1만8천회로 추산된다.”면서 “한반도 평화와 안보의 최대 위협은 바로 미국”이라고 피력했다.

유엔 주재 리동일 차석 대사는 일본의 집단자위권 행사에 대해서는 “조선이 미.일, 한·미 조약의 표적이 돼 있는 상황에서 일본은 이미 이웃에 군사화의 날개를 펼치고 있다”고 지적하고 “매우 위험한 일이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A급 전범이 있는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는 것은 반 인권적 행위”라며 일본의 집단자위권 행사에 대해 반대의 뜻은 물론 미국이 이를 용인하는 것 자체도 잘 못되었음을 분명히 했다.

아시안 경기대회 참가에 대해서는 “조선의 아시안 게임 참가는 한반도 긴장 완화를 위한 차원”이라는 원칙적 입장과 함께 상황을 지켜 보겠다는 입장을 덧붙였다.

한편 조선은 지난 31일 조선평화옹호전국위원회 대변인 담화를 통해 한.미 당국이 을지프리덤 가디언 훈련을 강행하면 총와대는 물론 미국의 백악관과 팬타곤, 세계에 있는 미군기지들이 핵타격의 목표물이 될 것이라고 강조해 한반도 정세가 엄중해 지고 있어 평화를 위한 관련국들의 해법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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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악 쇼' 박정희, '적폐 쇼' 박근혜…닮은꼴 부녀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14/08/02 14:54
  • 수정일
    2014/08/02 14:54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 <55> 제3공화국의 탄생, 두 번째 마당

김덕련 기자, 최하얀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4.08.02 09:15:11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쉽게 흔들리지 않는 법이다. 사회 전반의 분위기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이른바 진보 세력 안에서도 부박한 담론이 넘쳐나는 이 시대에 역사를 깊이 있게 이해하는 것이 절실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러한 생각으로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를 이어간다. 서중석 역사문제연구소 이사장은 한국 현대사 연구를 상징하는 인물로 꼽힌다. 매달 서 이사장을 찾아가 한국 현대사에 관한 생각을 듣고 독자들과 공유하고자 한다. 일곱 번째 이야기 주제는 제3공화국의 탄생이다. <편집자>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
[이야기 마당 1∼3] 한국전쟁
[이야기 마당 4∼8] 친일파
[이야기 마당 9∼15] 학살
[이야기 마당 16∼31] 해방·분단

[5.16쿠데타, 첫 번째 마당] 박정희 쿠데타 연재는 왜 그 신문에서 사라졌나

[5.16쿠데타, 두 번째 마당] 오랜 꿈 이룬 '박통'…대한민국은 짓밟혔다

[5.16쿠데타, 세 번째 마당] 박정희는 왜 한국인의 '노예근성'을 주목했나

[5.16쿠데타, 네 번째 마당] 청와대·참모총장의 위험한 선택…헌법은 죽었다

[5.16쿠데타, 다섯 번째 마당] 박정희 '은밀한 과거', 미국이 개의치 않은 이유

[5.16쿠데타, 여섯 번째 마당] 정치 깡패 이정재는 진정 죽어 마땅했나

[5.16쿠데타, 일곱 번째 마당] 나라 구한 박정희? 장준하는 왜 그리 판단했나

[5.16쿠데타, 여덟 번째 마당] 청와대 '부정 선거' 앞잡이, 정보부…어쩌다?

[5.16쿠데타, 아홉 번째 마당] '전 재산 헌납' 삼성 약속은 왜 물거품이 됐나

[5.16쿠데타, 열 번째 마당] 박정희 거듭 구한 은인, 제대로 뒤통수 맞다

[5.16쿠데타, 열한 번째 마당] '박통'의 특별한 선배, 왜 간첩으로 죽어야 했나

[5.16쿠데타, 열두 번째 마당] '장면 맹비난' 박정희, 사실은 대부분 따라 했다

[제3공화국, 첫 번째 마당] '가만있어라' 강조한 '박통', 은밀히 뒤통수쳤다

 

프레시안 : 박정희와 김종필을 중심으로 한 5.16쿠데타 세력이 권력을 내놓지 않기 위해 한 일은 민주공화당 사전 조직만이 아니었다.

 

서중석 : 사전 조직을 방대하게, 밀실에서, 중앙정보부 조직을 최대한 이용해서 했는데 이것만 가지고 집권을 계획한 것이 아니었다. 앞에서 얘기한 1961년 8월 12일 박정희의 민정 이양 성명에는 중요한 내용이 또 하나 들어 있었다. "구정치인 중 부패·부정한 정치인의 정계 진출을 방지하기 위한 입법 조치를 취한다", 이것이었다. 간단히 말하면 구정치인 중 상당수가 정계에 진출하지 못하도록 인위적으로, 법의 이름을 빌린 물리력으로 막겠다는 것이다.

 

그게 바로 정치활동정화법이라는 것을 만드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것도 참 악명 높은 법이다. 1962년에 들어와 중앙정보부 중심으로 작업을 해서 재건동지회가 만들어진다고 지난번에 얘기했는데, 정치활동정화법도 1962년 들어 구체화된다.

 

1962년 2월 3일 윤보선 대통령은 기자 회견에서 '구정치인의 출마를 제한한다는 것은 재검토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구정치인에는 자기도 들어가지 않나. 간단히 이야기하면 기존의 모든 정치인을 구정치인으로 규정하고 쿠데타 이후 등장한 군인들이 신정치인이라고 한 셈이다. 그러니 자기가 대통령일 때 이 법이 통과되면 자기 동지들한테 얼마나 욕을 얻어먹겠나.

 

그런데 김종필 중앙정보부장은 '아직도 일부 몰지각한 구정치인들이 혁명 성업을 모독하고 있는 것은 용서 못할 처사다. 이러한 자들에게는 정권을 넘길 수 없다'고 하면서 '1∼2년 동안에 이런 부패한 역사가 해결된다고 보기는 어렵겠다', 이런 이야기를 한다.

 

프레시안 : 정치활동정화법은 5.16쿠데타 세력에게 여러모로 쓸모가 많은 무기였다.

 

서중석 : 1962년 3월 16일 최고회의에서 정치활동정화법이 통과됐다. 이 법에 대해선 역시 김종필 부장이 참 짤막하고 적절하게 잘 얘기했다. 앞으로 정부가 정책을 강력히 수행하는 데 있어서 여러 가지 부당한 말썽을 일으킬 만한 "보균자"들에게 한 번 내지 두 번 정도 국회의원만 되지 말아 달라는 것이었다. "보균자"라고 표현했다. 대통령은 자기들이 할 것이라고 확고하게 생각했는지, 하여튼 한 번 내지 두 번 정도만 국회의원이 되지 말아 달라고 얘기했다. (김종필은 1962년 3월 20일, "정치활동정화법은 구정치인들 중 신정부를 까부술 위험성이 있는 자들을 나오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 그 근본 목적"이라며 "보균자는 자진해서 국회에 안 나오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편집자>)

 

이 말은 나중에 정확하게 구체화된다. 다수는 1963년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할 수 있게 되지만, 몇 사람은 1963년 총선은 물론 1967년 선거에도 출마를 못 하게 된다. 그러니 이런 사람은 두 번 출마를 못하게 되는 것이고, 상당수는 한 번(1963년 선거) 못하게 되는 것이며, 나머지 다수는 정치 활동이 허용된 것이다.

 

단순하게 보면, 정치활동정화법은 박정희, 김종필이 강력한 통치를 하기 위해 방해물을 제거하거나 정치적 반대자를 약화하기 위한 것이라고 얘기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만이 아니었다. 정치활동정화법을 적절히 이용하면, 그러니까 누구는 풀어주고 누구는 안 풀어주는 식으로 하면서 야권을 서로 불신케 하고 분열, 갈등을 조장하는 간특한 머리도 작용한 것 아니냐는 이야기를 들었다.

 

 

▲ 서중석 역사문제연구소 이사장. ⓒ프레시안(최형락)

▲ 서중석 역사문제연구소 이사장. ⓒ프레시안(최형락)

 

 

 

반대파 옥죄고 야권 분열 조장한 정치활동정화법

 

프레시안 : 5.16쿠데타 세력은 이승만 정권의 주요 인사들을 선별해 끌어들이고 혁신계의 발을 확고하게 묶어두는 데도 정치활동정화법을 활용했다.

 

서중석 : 그렇다. 윤보선은 더는 대통령을 할 수 없으니 3월 22일 사임했다. 그러니까 박정희가 바로 대통령 권한 대행이 된다. 4374명을 '해당자'로 정하고 그 명단을 공고했다. 그러면서 구정치인 가운데 신고를 하게 했는데, 2958명이 정치활동정화위원회에서 자신들의 적격 여부를 처리해달라고 청구한 것으로 돼 있다. (이 위원회에서 적격 판정을 받지 못하면 1968년 8월 15일까지 정치 활동을 하지 못하도록 법에 규정돼 있었다. <편집자>) 1962년 5월 30일, 2958명의 45퍼센트인 1336명을 적격자로 규정해 '이 사람들은 정치를 할 수 있다'고 풀어줬다. 그해 12월 31일에 가서는 171명을 또 추가 해금했다. 어느 경우나 자유당이 많다. 특히 12월 31일에는 이승만 정권 말기 국방부 장관을 한 김정열, 초대 내무부 장관인 윤치영 같은 사람들이 풀렸다. 나중에 둘 다 민주공화당 의장이라는 중책을 맡게 된다.

 

1963년 2월 1일에는 또 275명을 해금한다. 이때도 자유당계가 많았다. 박정희 의장은 망명지인 하와이에서 앓고 있던 이승만 전 대통령의 귀국 문제를 심심히 고려하고 있다고 하면서, 자유당계의 민주공화당 입당을 유도하고 있었다고 한다. (정치적 필요에 따른 이런 몸짓과 반대로, 박정희 정권은 이승만의 귀국을 막았다. <편집자>) 마지막으로, 물론 선거를 앞두고 한 것인데, 1963년 2월 27일까지 추가 해제했으나 269명은 제외했다. 이 269명 여기에 중요한 사람들이 많았다. 자유당계로는 이승만, 민주당 정권의 장면 같은 사람들이 여기에 포함돼 있었다. 그렇지만 역시 제일 많은 건 혁신계 간부급 인사들이다. 김달호, 고정훈, 정화암, 박기출, 장건상, 윤길중 등이 다 묶여 있었다.

 

이 정치활동정화법은 개폐할 수가 없다고 헌법에까지 못을 박았다. 부칙 제4조 2항에다가 '못 고친다'고 못을 박아 놨다. 이렇게 해서 쿠데타 세력이 일부를 제외하면서 야당을 분열시키는 데 정치활동정화법을 이용하는 것을 볼 수가 있다.

 

(훗날 전두환 신군부는 총칼로 권력을 잡은 후 기성 정치권 등의 발을 묶은 5.16쿠데타 세력의 방식을 그대로 이어받는다. 신군부는 1980년 11월 '정치 풍토 쇄신을 위한 특별 조치법'을 만들고 기성 정치인 등의 정치 활동을 금지한다. 그 대상에는 김종필도 포함돼 있었다. 그에 앞서 신군부는 김종필을 부정 축재자로 규정했다. 5.16쿠데타 후 기성 정치인 등을 보균자로 몰아붙였던 김종필은 그렇게 20년도 안 돼 정반대 처지에 놓인다. 전두환 정권이 막바지에 접어든 1987년 6월항쟁 이후에야 김종필은 정치 활동을 재개하게 된다. <편집자>)

 

역사학자 서중석의 진단
▲ "박근혜는 유신의 허깨비가 결코 아니었다"
▲ "박정희 신드롬, 박근혜가 지울 수도 있다"
▲ "<조선> 말대로면 이명박·박근혜 정부는 빨갱이"

 

새 헌법 만들어 대통령에게 막강한 힘 부여한 이유

 

프레시안 : 쿠데타 세력은 정치활동정화법을 만들어 야당 정치인들을 옥죄고 분열시키는 한편 헌법을 만드는 작업에 구체적으로 들어간다. 그런데 국민이 직접 뽑은 대의 기관도 아닌 최고회의에서 헌법 문제를 다루는 게 적절한가 하는 것도 논란거리다.

 

서중석 : 나중에 제3공화국 헌법으로 불리는 것이다. 1962년 7월 11일 최고회의는 헌법심의위원회를 구성했다. 여기에는 민간 전문위원을 비롯한 21명이 참여했다. 대개 새로 만드는 헌법은 제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쿠데타로 제2공화국을 무너뜨렸으니) 장면 정부 때 헌법의 수순에 따라 새 헌법을 만들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그런데 최고회의에서는 '국가재건비상조치법을 고쳐 헌법 개정의 절차를 취하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헌법안을 만들면 최고회의 의결을 거쳐 국민 투표로 확정한다'고 했다. 이러면서 국민 투표가 다시 부각된다. 국민 투표법은 10월 12일에 제정된다.

 

국민 투표는 이승만 정권의 악명 높은 사사오입 개헌에 포함돼 있었다. 이승만 이 노인네가 중임 제한을 철폐하려고, 그러니까 영구 집권을 하려고 개헌을 밀어붙였는데 야당은 말할 것도 없고 국민들의 반대가 워낙 심하지 않았나. 그러니까 이 양반이 '그것만 개헌하자는 게 아니다. 오히려 개헌은 국민 투표를 할 필요성 때문에 꼭 필요하다', 이런 식으로 몰고 갔다.

 

그래서 1954년 11월 국회에서 부결됐다고 선포한 걸 다시 사사오입으로 강변하면서 통과됐다고 주장하는 그 헌법에는 제7조에 "대한민국의 주권의 제약 또는 영토의 변경을 가져올 국가 안위에 관한 중대 사항은 국회의 가결을 거친 후 국민 투표에 부친다"고 돼 있었다. 그렇지만 이승만은 국민 투표 조항을 전혀 지킬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법률로 국민 투표법을 만들지 않았다. 1952년 발췌 개헌 때 참의원 조항을 넣었는데도 지키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다. (양원제에서 참의원은 상원, 민의원은 하원 격이다. 이승만 정권 때는 헌법에 참의원 조항이 있긴 했지만 한 번도 구성되지 않았다. <편집자>) 그런데 드디어 이 군사 정권에 의해 국민 투표법이 의결되기에 이르렀다.

 

국민 투표는 그 당시 어느 나라건 간에 대개 집권 세력의 의도에 맞게 통과되며, 집권 세력의 의도와 다르게 국민 투표가 되는 경우는 없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라고들 얘기하고 있었다. 이것도 마찬가지였다. 최고회의에서 통과시킨 것을 합법화한다고 할까, 합리화하는 구실로 국민 투표를 치른다. 박정희 정권 때는 이것 말고도 3선 개헌, 유신 체제 때 등 국민 투표가 몇 번 더 실시된다.

 

프레시안 : 쿠데타 세력이 만든 새 헌법은 대통령에게 강력한 힘을 부여했다. 이는 쿠데타 세력의 핵심 인사들이 영도자의 강력한 통치를 선호한 것과 관련 있어 보인다.

 

서중석 : 이 헌법 개정안은 최고회의를 통과해서 1962년 12월 17일 국민 투표를 거쳐 확정됐다. 이 새로운 헌법은 다 알다시피 내각 책임제였던 제2공화국과 달리 대통령 중심제였다. 그것도 대통령의 권한이 대단히 강화된 것이었다. 첫째, 부통령제를 없앴다. 부통령제를 없앤 데는 박정희와 김종필의 속셈이 각각 달랐을 수 있을 것이고, 다른 최고위원들의 생각도 작용하고 그랬을 것이다. 그런데 부통령 제도를 제도화해놨더라면 과연 유신 체제가 탄생할 수 있었겠느냐, 3선 개헌을 하는 게 용이했겠느냐 하는 점은 생각해볼 수 있다. 부통령이라는 자리가 대통령의 권한을 일정 정도 견제할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오늘날에도 헌법을 고쳐야 한다는 여론이 있는데 이 부통령제를 다시 살리는 것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그 경우엔 이승만 정권처럼 대통령과 부통령을 따로따로 선거하게 하는 게 아니라 러닝메이트 제도로 꼭 해야 한다. 박정희 정권의 행태를 되돌아볼 때 부통령제를 두는 것은 충분히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어쨌건, 부통령제를 없앤 대신 국무총리를 뒀다. 헌법에 국무총리의 권한이 없는 것은 아니다. 지금까지도 논란이 많이 되는 국무위원의 임명 제청권과 해임 건의권을 갖고 있었다. 물론 어느 누구도 과거에 그 권한을 제대로 행사해본 적이 없다는 이야기도 한다. 이승만 정권 때도 '국무총리는 장관만도 못하다', 그렇게 얘기됐다. 이승만은 권력에 대한 집착이 워낙 강해서 사사오입 개헌을 할 때 국무총리제까지 없앴다. 어쨌건 새 헌법에선 국무총리제를 뒀다.

 

그리고 헌법심의위원회 다수 의견으로 국무원을 장면 정권 때나 제헌 헌법처럼 의결 기관으로 해야 한다고 했지만, 쿠데타 세력은 국무회의로 이름을 바꾸고 결국 심의 기관으로 격하했다. 이처럼 대통령의 권한이 강력했다. 대통령한테는 국가 긴급권, 입법 거부권까지 보장돼 있지 않았나.

 

 

▲ 민정 이양을 앞두고, 5.16쿠데타 세력은 대통령에게 강력한 힘을 부여한 새 헌법을 만들었다. 사진은 1973년 국군의 날(10월 1일), 박정희 대통령이 경축사를 하는 동안 스탠드에 펼쳐진 대통령 초상화 카드 섹션. ⓒ연합뉴스

▲ 민정 이양을 앞두고, 5.16쿠데타 세력은 대통령에게 강력한 힘을 부여한 새 헌법을 만들었다. 사진은 1973년 국군의 날(10월 1일), 박정희 대통령이 경축사를 하는 동안 스탠드에 펼쳐진 대통령 초상화 카드 섹션. ⓒ연합뉴스

 

 

 

괴상한 비례 대표제…헌법·선거법을 자기들 입맛에 맞춘 쿠데타 세력

 

프레시안 : 이 헌법에는 독특한 조항도 있었다.

 

서중석 : 그렇다. 이 헌법에 아주 독특한 게 들어갔다. 제36조에 "국회의원 후보가 되려는 자는 소속 정당의 추천을 받아야 한다", 제64조엔 "대통령 후보가 되려는 자는 소속 정당의 추천을 받아야 한다", 이렇게 돼 있었다. 한마디로 무소속 후보가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으로 나올 수 없게끔 만들어버렸다.

 

이것에 대해 여러 정치학자가 '정당을 육성하려고 그런 것'이라고 썼다. 그런데 이 부분에 대해 그 당시 이미 한 신문에서 '이것은 야당 난립을 불러일으킨다'고 했다. 여러 야당이 나올 수밖에 없게 만든다는 지적이었다. '무소속으로 나올 수 있으면 당을 안 만들어도 되지만 이런 식으로 해놓으면 꼭 국회의원이 되고자 하는 사람들, 되든 안 되든 대통령으로 나오겠다고 하는 사람들은 당을 만드는 수밖에 없지 않느냐. 그러면 야당이 제구실을 할 수가 있느냐. 그런 점에서 이 부분은 문제가 많으니 이를 고려하라'고 요구한 것에 문제점이 잘 나타나 있다.

 

이 헌법은 제38조에 뭐까지 붙여놨냐 하면, "국회의원은 임기 중 당적을 이탈하거나 변경한 때 또는 소속 정당이 해산된 때는 그 자격이 상실된다"고 해 놨다. 국회의원이 당의 명령을 잘 듣지 않으면 안 되게끔 하는 부분이었다. 한마디로 야당을 난립시키면서 여당이 강력한 통치를 하기 위한 방책으로 이걸 만들어놨고 그렇게 활용된다.

 

그래서 유신 헌법으로 가면 또 싹 바뀌지 않나. 다 알다시피 유신 체제에서는 한 선거구에서 국회의원을 두 명씩 뽑게 돼 있었다. 그러면 반드시 한 명은 여당, 즉 민주공화당이 될 수 있다고 봤으니 문제는 야당을 떨어뜨리는 것 아닌가. 그렇게 하려면 무소속 후보가 나오게 해야 한다. 그래서 유신 헌법에서는 무소속 출마를 가능하게 해버렸다.

 

프레시안 : 지난번에 살펴본 8.15 계획서의 핵심 중 하나는 '군인들이 민정에서도 계속 권력을 잡을 수 있도록 새 헌법과 선거 제도를 고안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헌법뿐만 아니라 국회의원 선거법에도 이것이 강하게 작용했다고 볼 수밖에 없는 대목이 눈에 띈다.

 

서중석 : 국회의원 선거법에도 문제 조항이 있었다. 1963년 1월 16일에 제정됐는데, 처음으로 전국구 비례 대표란 것을 두었다. 이게 44명이었다. 지역 대표가 131명이었던 걸 생각하면 그 비중도 적은 게 아니다. 비례 대표제가 당시 독일 등 다른 나라에서 시행된 것엔 두 가지 의미가 있었다. 하나는 정당에 투표한 것에서 유실 표를 막자는 것이다. 정당 대표적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이다. 또 하나는 직능 혹은 전문성 대표라는 의미다. 각 당이 전문성을 갖추기 위해 여러 좋은 사람들을 국회로 보내게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쿠데타 세력의 의도는 그게 아니었다. 이것도 역시 강력한 통치와 관련이 있다. 제1당의 득표율이 50퍼센트 이상이면 비례 대표 의석의 3분의 2, 그 미만이면 절반을 주게 돼 있었다. 선거에서 제1당이 되는 건 대개 여당 아닌가. 그러니 비례 대표의 최소한 반절은 여당이 먹는 것으로 돼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게 또 야당한테도 나중에 이상하게 이용된다. 이 선거가 끝나고 그다음 선거부터는 '어떻게 보면 이게 국회의원 거저 되는 것이지 않나. 그러면 돈 좀 내야 하는 것 아니냐', 이렇게 됐다. 당시엔 '비례 대표는 국회의원 거저 되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전국구로 나오려면 상당한 정치 자금을 내도록 했다. 처음에는 박정희 정권이 그걸 탄압하기도 했지만 이걸 막을 수도 없었다. 야당은 돈이 궁해 죽을 처지였으니, 전국구 비례 대표가 돈을 갹출하는 한 방법이 돼 버린 것이다.

 

비례 대표가 직능 대표성이라든가 전문성을 진정으로 갖게 되는 것은 1987년 6월항쟁 이후다. 20세기가 끝날 무렵에는 여성에게 비례 대표 자리를 많이 주지 않나. 나중엔 반절까지 배정했는데, 여성이 의회에 진출하는 데 큰 힘이 됐다. 그리고 정말 직능 대표성이 있는 사람들도 각 당에서 추천하고 그러면서, 21세기에 와서는 비례 대표가 예전보다 그 본질에 부합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프레시안 : 5.16쿠데타 세력은 지방 자치의 싹도 잘라버렸다.

 

서중석 : 1962년 11월 14일, 조시형 최고회의 내무위원장은 지방 자치 단체장 선거 제도는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지금 지방 자치 할 생각 없다. 단체장을 선임하거나 지방 의회를 구성할 생각이 없다', 이 말이다. 그러면서 그 후 30년 동안 풀뿌리 민주주의가 사라진 나라가 됐다. 전 세계에서 지방 자치를 완전히 없앤 나라는 한국 빼놓고는 없지 않느냐고까지 그때 애기를 많이 하더라.

 

이렇게 사전 조직, 그것도 이원 조직에 의한 사전 조직을 하고, 정치활동정화법도 만들고, 헌법과 국회의원 선거법도 자신들한테 유리하게 만들고, 지방 자치도 없애버리면서 박정희와 김종필을 중심으로 한 세력은 이제 큰 골격은 이뤘다고 생각하게 된다.

 

 

▲ 박정희 전 대통령은 한국 현대사의 문제적 인물이다. 사진은 2011년 8월 27일 경북 청도에서 열린 새마을운동 성역화 사업 준공식에 참석한 박근혜 한나라당 의원이 이날 공개된 박 전 대통령 동상에 손을 대며 활짝 웃는 모습. ⓒ연합뉴스

▲ 박정희 전 대통령은 한국 현대사의 문제적 인물이다. 사진은 2011년 8월 27일 경북 청도에서 열린 새마을운동 성역화 사업 준공식에 참석한 박근혜 한나라당 의원이 이날 공개된 박 전 대통령 동상에 손을 대며 활짝 웃는 모습. ⓒ연합뉴스

 

 

 

"구악 일소" 강조한 박정희 세력, '구악 중 구악' 자유당계 대거 포섭

 

프레시안 : 독재자들은 대개 '강력한 영도자를 뒷받침하는 정도의 역할만 하는 국회'를 원한다는 이야기를 지난번에 했다. 영도자의 손발 노릇을 하는 국회라는 건데, 박정희 정권이 1970년대에 만든 유신정우회가 떠오른다.

 

서중석 : 비례 대표를 발전시킨 게 유신 체제에서는 유신정우회다. 대통령이 사실상 임명하는 방식으로 국회 의석의 3분의 1을 차지했다. 전두환 신군부 때 가서는 그것이 조금 미안했는지 신군부한테 절대 유리하게 의석을 분배하는 방식으로 약간 바꾼다.(1980년 10월 신군부가 만든 헌법은 국회 의석의 3분의 1을 전국구로 배정하고 그 전국구의 3분의 2는 제1당이 차지하도록 규정했다. <편집자>)

 

프레시안 : '5.16 혁명 공약'에는 "부패와 구악을 일소"한다는 내용도 있었다(제3항). 정치권의 구악을 일소한다는 명분 아래 만든 것이 정치활동정화법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혁신계와 민주당 정권을 쥐 잡듯 몰아세운 쿠데타 세력이, 민주당 정권보다 훨씬 부패했고 국민을 학살하기까지 한 자유당 정권의 인사들을 대거 받아들인 것도 앞뒤가 안 맞는 일이다. 4대 의혹 사건 등이 보여준 것처럼, 쿠데타 세력이 구정치인들보다 덜 부패했다고 볼 근거도 없다. 결국 쿠데타 세력이 구악 일소를 내세워 정치 쇼를 한 셈인데, 세월호 참사 후 박근혜 정부가 내건 "적폐 청산" 주장과 여러모로 닮은꼴이다. 예컨대 참사의 밑바탕에는 '생명 뒷전, 돈벌이 우선' 논리가 있었는데도, 박근혜 정부가 "적폐"의 핵심인 무분별한 규제 완화에 오히려 힘을 싣는 역주행을 하는 데서도 이 점은 잘 드러난다. 적폐라는 비판을 받는 것이 조금도 과하지 않은 인사들을 중용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박근혜 대통령 자신이 적폐의 일부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서중석 : 거듭 얘기하지만 박정희나 김종필한테는 '상식적으로 안 맞는다', 이게 통하지 않았다. 일부 최고위원까지 포함한 다른 정치 세력을 다 묶어놓고 자기들끼리만 뭘 했다는 것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지 않나. 그리고 자유당계를 대거 포섭했다. 나중에 공화당 간부 중에서 군인 다음으로 많이 차지하는 게 자유당계다. 이것도 도무지 이해가 안 가고 나도 항상 의아했다. 그러나 이런 점은 있다. 박정희가 1962년에 쓴 <우리 민족의 나갈 길>, 박정희의 사상과 의식이 가장 잘 담긴 책으로 보는데 어쨌든 이 책도 그렇고, 1963년에 쓴 <국가와 혁명과 나>나 박정희의 다른 어떤 글을 봐도 이승만 대통령을 직접 비판하는 대목을 찾아보기 어렵다. 소설가 이병주가 쓴 글에도, 쿠데타 전 부산에서 술 마실 때 박정희가 이상하게 이승만을 직접 욕하지는 않았다는 내용이 나온다.

 

난 이런 걸 보고 참 놀랐다. 박정희 관련 자료를 많이 봤지만, 이승만을 직접 비판하는 걸 찾기가 어렵다. 자유당을 욕하는 것도 거의 안 나온다. 1963년 이후에는 욕을 좀 덜한다고 하더라도 1962년 <우리 민족의 나갈 길>에서는 자유당을 강하게 비판해도 되는 것 아닌가 싶은데, 그렇지가 않더라. 그때는 누구나 자유당을 비판했다. 4월혁명 이후에는 자유당 비판이 보통 강한 게 아니었다. 그런데 그런 게 별로 없다. 이와 달리 장면 정권에 대해선 하나의 장을 만들어서 엄청난 비판, 사실상 비방과 중상에 가까운 태도를 보인다. (박정희가 "이승만 노인의 눈 어두운 독재"라는 정도로 비판한 대목이 있긴 하지만, 반공을 강조한 장면 정권을 용공 세력으로 몰아가는 등 제2공화국을 사실과 다르게 몰아세운 것에 비하면 이승만 정권을 겨냥한 강도 높은 비판은 훨씬 적다. <편집자>)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 쉰여섯 번째 편도 조만간 발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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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유가족 ‘노숙자’라며 밥한끼 주겠다는 새누리”

유경근 대변인 “돈으로 가족 분열시려는 의도”…조동원 “그래서 ‘쇼한다’는 것” 김태흠 질타
 
입력 : 2014-08-02  11:57:16   노출 : 2014.08.02  12:29:48
강성원 기자 | sejouri@mediatoday.co.kr   

 

 

 

새누리당 의원들이 세월호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며 국회 본청 앞에서 단식농성 중인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을 향해 연이어 막말을 쏟아내고 있다.

세월호 참사 100일이었던 지난달 24일 주호영 새누리당 정책위원회 의장이 ‘세월호는 교통사고’라고 말해 여론의 뭇매를 맞았음에도 지난 1일 김태흠 새누리당 의원이 또 다시 단식농성 유가족들을 ‘노숙자’라고 폄훼했다.

김 의원은 이날 국회에서 열린 새누리당 의원총회에 참석한 뒤 기자들과 만나 국회에서 단식농성 중인 세월호 유가족에 대해 “국회에서 노숙자들처럼 저렇게 있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유경근 세월호 가족대책위원회 대변인은 2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유가족들을 노숙자라고 운운하는 그런 망언은 거의 매일해서 이제 새롭지도 않고, 결국 세월호 참사나 가족을 바라보는 새누리당 전반의 인식이 저급하다는 것”이라며 “새누리당 의총이 끝나자 바로 그날 오후에 국회에서 빨래 좀 걷어달라고 얘기했다”고 밝혔다.
 
   
▲ 유경근 세월호 가족대책위 대변인
이치열 기자 truth710@
 
유 대변인은 새누리당이 다른 한쪽에서는 유가족들을 직접 만나 보상·지원 대책을 논의하겠다고 한 것에 대해 “반복되는 망언에 대한 사과와 인식 전환이 없는 상태에서 유가족 지원을 위한 일대일 면담을 하겠다는 얘기는 돈을 앞세워 가족들의 생각을 왜곡시켜 우리를 분열시키겠다는 것”이라며 “노숙자들 불쌍하니까 밥 한 끼 주겠다는 이런 인식인데 전혀 반갑지 않고 새누리당이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도 믿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가족대책위는 새누리당의 세월호 피해자 지원대책에 대한 공식 입장을 오는 4일 밝힐 예정이다. 유 대변인은 “진상규명이 전제되지 않으면 아무리 많은 보상을 해준다 해도 절대로 받지 않을 것”이라며 “충분한 진상규명이 이뤄진 후 국가의 책임이 명확하게 드러나면 피해보상은 이미 정해진 상식적이고 정상적인 법적 절차에 의해 진행될 문제”라고 설명했다. 

한편 김태흠 의원이 세월호 유가족들을 노숙자로 비하한 것에 대해 조동원 새누리당 홍보기획본부장은 1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선거가 끝난 지 얼마나 됐다고 다시 구태가 돼가는 것 같아 걱정스럽다”며 “‘노숙자’니 ‘교통사고’니 하는 일부 의원들의 발언과 행태는 구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며 그런 발언으로 갈등을 유발하고 세월호 유가족의 마음을 아프게 하면 안 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는 “수요일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세월호 유가족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일이 없도록 새누리당이 진심을 다해야 한다고 부탁했다”면서 “그러니까 선거 때만 되면 ‘쇼한다’고 그러는 것”이라고 질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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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인권센터, 28사단 ‘윤 일병 집단구타 사망사건’ 군 수사 내용 공개

“링거 맞혀 다시 폭행, 성기에 안티푸라민 바르기도···”

옥기원 기자 ok@vop.co.kr 발행시간 2014-07-31 17:42:56 최종수정 2014-07-31 18:20:56

윤 일병 사망사건

군인권센터는 지난 4월 사망한 윤 모 일병의 부대 내 상습 폭행 및 가혹행위에 관한 군 수사내용을 공개했다.ⓒ뉴시스
 

“성기에 안티푸라민 바르기, 가래침 핥아먹게 하기, 치약 한통 먹이기··· 윤 일병은 부대 전입 후 한 달동안 매일 가혹행위를 당했습니다”

군인권센터는 31일 오후 2시 서울 영등포구 여성미래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 4월 사망한 28사단 포병연대 의무대 윤 모(24) 일병의 부대 내 상습 폭행 및 가혹행위에 관한 군 수사내용을 공개했다.

앞서, 지난 4월 7일 윤 일병은 내무반에서 만두 등 냉동식품을 함께 먹던 중 선임병에게 가슴 등을 맞고 쓰러졌다. 윤 일병은 당시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음식물이 기도를 막아 산소 공급이 중단되면서 뇌손상을 입어 다음 날 사망했다.

군인권센터 임태훈 소장은 윤 일병이 사망한 의무대의 상습 가혹행위는 “입에 담기 힘들 정도로 잔혹했다”고 설명했다. 군인권센터가 확보한 군 수사기록에 따르면 윤 일병은 부대로 전입 온 3월 초부터 사고가 발생한 4월 6일까지 매일 선임병들로부터 대답이 느리고 인상을 쓴다는 이유로 상습 폭행을 당했다.

윤 일병 폭행 증거사진
윤 일병 폭행 증거사진ⓒ군인권센터

선임병들은 폭행을 당해 다리를 절고 있는 윤 일병에게 다리를 절뚝거린다며 다시 폭행했으며, 힘들어하는 윤 일병에게 링거 수액을 주사한 다음 원기가 돌아오면 다시 폭행을 가했다. 또 허벅지 멍을 지운다며 윤 일병의 성기에 안티푸라민을 발라 성적인 수치심을 주기도 했으며, 치약 한통 먹이기, 잠 안 재우고 기마자세 서기 등의 가혹행위를 일삼았다.

이 같은 상습폭행이 자행되고 있는 상황에도 부대에서는 어떠한 병사관리도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이 군인권센터 측의 설명이다. 본부중대에서 떨어져 있는 의무대대의 물리적 특성뿐만 아니라 이 부대를 관리하던 유일한 간부였던 유모 하사(23) 역시 윤 일병에게 폭행을 가하는 등 가혹행위를 묵인했다는 것이다. 심지어 유 하사는 가혹행위를 주도한 나이가 많은 이모(25) 병장에게 ‘형’이라 부르며 함께 어울리기까지 했다.

임태훈 소장은 “상습적인 폭행, 사고 직후 폭행사실을 숨기자고 입을 맞추는 등 조직적인 증거인멸, 의식을 잃은 윤 일병에게 ‘차라리 죽어 버렸으면 좋겠다’는 말을 했던 정황 등으로 봐서 가해자들의 공소장을 상해치사가 아닌 살인죄로 변경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전화통화 결과 사단장과 군단장 등이 윤 일병 사건을 잘 파악하고 있지 못한 사실을 확인했다”면서 “군 수사 당국이 사건을 축소한다는 의혹에서 벗어나기 위해 공소장 변경 및 사건의 진상을 더욱 철저하게 조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30일 군 수사당국은 윤 일병에게 상습 구타를 가했던 이모 병장(25)등 병사 4명(상해치사)과 가혹행위 등을 묵인한 유모 하사(23) 등 5명을 구속 기소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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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단식일기 “정말 우리는 유가족충인가요”

 
세월호 가족 단식 18일째 “10만 촛불 기도합니다”
 
입력 : 2014-07-31  19:05:37   노출 : 2014.07.31  21:31:44
이하늬 기자 | hanee@mediatoday.co.kr  

 

 

세월호 유가족들이 단식을 시작한 지 18일째다. 애초 15명으로 시작한 단식농성단은 단 두 명만 남았다. 유경근 가족대책위 대변인과 유민이 아버지 김영오(47)씨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병원으로 후송됐다. 김씨는 광화문 광장에 유 대변인은 국회에서 단식을 이어가고 있다. 

김씨의 하루는 일찍 시작된다. 한뎃잠을 자니 그럴 수밖에 없다. 오후 10시면 쓰러지듯 잠들고 오전 5시께에 일어난다. 광화문에서 생활하지만 집안 걱정도 끊이질 않는다. 그는 단식 11일째 일기에서 ‘멋 부리기 좋아하는 둘째 딸’에 대해 썼다. “둘째는 멋 부리는 걸 좋아하는 애에요. 그것밖에 몰라. 옷 예쁘게 입고 꾸미고. 그런데 유민이 사고 나고 나서는 잠만 자요.”

사실 김씨는 이렇게 단식이 길어질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고 했다. 그는 단식 9일째인 지난 22일자 일기에서 “단식을 하며 싸우면 여당 의원님들과 대통령이 특별법을 수용할 거라 생각했다”며 “하지만 하루하루 지날수록 정부가 무섭다. 대한민국 국회의원들은 가슴이 없는 철면피들만 있더라”고 썼다. 

단식을 이어갈 수 있는 큰 힘은 국민들에 대한 ‘기대’다. 세월호 100일 촛불집회 이튿날 그는 “국민들이 이토록 지지해주시고 격려해주시는 정성을 봐서라도 꼭 특별법을 제정해서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들어줘야겠다”고 썼고, 지난 29일 일기에는 “촛불이 하나 둘 모여 8월 15일에는 10만이 넘는 촛불이 밝혀지지라 기도 해봅니다”라고 썼다. 

하지만 7·30재보궐선거 결과에는 실망감을 감추지 못 했다. 유가족들에게 이번 재보선은 특별법 통과가 될 수 있는 마중물이었다. 김씨는 31일 일기에서 “이것이 국민들의 심판일까요. 일부 주장처럼 우리 유가족이 너무하는 걸까요. 정말 우리는 유가족충인가요.” 김씨가 단식을 이어가며 쓴 '단식 일기' 일부를 미디어오늘에 보내왔다. 
 
   
▲ 단식 농성중인 2학년 10반 유민 학생 아버지 김영오씨를 17일 오전 광화문 광장에서 만났다. 사진=박준수 제공
 
7월 22일
오늘은 단식 9일째 입니다. 보통은 새벽 5시면 눈에 떠져요. 밤 10시가 되면 쓰러져서 자고요. 아침에 갑자기 빗발이 날려 일어나자마자 텐트 위에 비닐 덮니라고 정신이 없었어요. 비닐 덮고 나니 어지럽더라고요. 한 시간 정도 다시 잠들었네요. 

배고프다는 건 못 느끼겠고 먹고 싶다는 생각도 안 들어요. 굳이 먹고 싶다면 삼겹살에 소주 한 잔? 다만 이가 너무 아파서 소금으로 양치질을 못 할 정도고요. 어깨가 아파서 힘듭니다. 의사는 약이 없다네요. 단식 멈추고 밥을 먹어서 몸에 영양분을 줘야 한대요. 

단식하기 전에는 단식을 하면서 싸우면 여당 의원님들과 대통령이 특별법을 수용할 거라 생각했어요. 그런데 하루하루 지날수록 정부가 무섭네요. 대한민국 국회의원들은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거 같아요. 가슴이 없는 철면피들만 있더라고요. 단식하다가 죽어도 눈 하나 깜짝 안 할 겁니다. 

7월 23일
오늘은 단식 10일째 입니다. 유민이에게 편지를 썼어요. 유민아 유민아. 아빠가 정부와 싸우는 데 정신이 팔려 우리 유민이 이름 한 번 제대로 불러보지 못 했구나. 벌써 내일이면 100일이 되네. 우리 이쁜 딸 지금은 행복하고 편하게 친구들과 잘 지내고 있지?

지난 몇 년 동안 여름 휴가 한번 못 가서 마음이 항상 아팠어. 그래도 작년 가을에 아빠가 좋은 회사 취직해서 올해는 유민이랑 유나랑 꼭 여름휴가 가려고 계획까지 세워놨는데. 

왜 아빠가 마음이 더 아프고 슬픈지. 왜 이렇게 단식까지 하면서 싸우는 지 알겠지? 우리 유민이 살아 있을 때 해준 게 너무 없네. 앞으로는 해주고 싶어도 해줄 수가 없어서 가슴이 더 아프다. 아빠가 너무 많은 죄를 지었구나. 아빠가 힘들게 살아서 미안해. 
 
   
▲ 단식 농성중인 2학년 10반 유민 학생 아버지 김영오씨를 17일 오전 광화문 광장에서 만났다. 사진=박준수 제공
 
7월 24일
오늘은 단식 11일째 입니다. 단식 전에는 밥을 하루에 한 끼, 많이 먹으면 두 끼를 먹었어요. 이제 단식 끝나면 무조건 하루 세 끼 먹고 싶은 걸로 꼬박 꼬박 먹을 겁니다. 먹고 싶은 게 너무 많아요. 광화문 검정 봉지 들고 다니는 사람만 봐도 죽겠어요. 

둘째는 멋 부리는 걸 좋아하는 애에요. 그것밖에 몰라. 옷 예쁘게 입고 꾸미고. 그런데 유민이 사고 나고 나서는 잠만 자요. 학교도 잘 못 다니고. 애 엄마가 깨워도 애가 일어나질 못 한대요. 애 엄마가 전에 밤새 너무 슬프게 울었어요. 그래도 그 이후로는 학교 잘 다니고 있대요. 

7월 25일
세월호 100일 집회 끝나고 새벽 네 시에 자고 일어났더니 피곤하네요. 여기 광화문 광장에 사람이 꽉 찼어요. 국민들이 이토록 지지해주시고 격려해주시는 정성을 봐서라도 꼭 특별법을 제정해서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들어줘야겠다는 다짐을 했습니다. 

7월 28일
오늘은 단식 15일째 입니다. 아침부터 야당 의원들이 분주하게 이순신 동상 앞으로 모였어요.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이라고. 기자회견이 끝나고 전해철 의원과 몇몇 의원들이 내 몸 상태를 걱정하시며 단식을 중단하라고 하셨어요. 나는 단식을 안 멈출거에요. 그러니 야당 의원들도 약한 모습 보이지 마시고 강하게 밀어붙이면 좋겠네요.

날씨가 덥네요. 김병권 위원장은 어제 총회 참석했다가 바로 병원에 입원했어요. 이제 광화문 단식은 예지 아빠와 나, 둘만 남았네요. 두 시가 넘으면 한 낮의 폭염이 시작됩니다. 예지 아빠 혈압이 3일 전부터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오늘은 70/50으로 떨어졌어요. 위험 수치라고 하네요. 예지 아빠도 오늘 병원으로 갔습니다. 

솔직히 나도 두렵네요. 이제 광화문에 혼자 있어야 하는데. 언제 쓰러질지. 그래도 우리 유민이를 생각하면. 공포에 질리고 두려움에 몸서리 치며 엄마, 아빠 살려달라고 울부짖다 죽었다는 생각을 하면 피가 거꾸로 솟아요. 그 생각 하면서 참고 버티고 있어요. 왜 우리 아이들이 억울하게 생매장 당했는지 꼭 밝혀 내려면 나라도 광화문을 지켜야지요. 
 
   
▲ 단식 농성중인 2학년 10반 유민 학생 아버지 김영오씨를 17일 오전 광화문 광장에서 만났다. 사진=박준수 제공
 
7월 29일
오늘은 단식 16일째 입니다. 대전에서 한 시민이 오셨습니다. 큰 쇼핑백을 건네 주셨어요. 힘내라고만 하고 몇 마디 하지도 않고 펑펑 우시며 가버리셨어요. 쇼핑백을 열어보니 노란 종이배 304개랑 편지 한 장이 있었어요. 편지를 펼쳐봤는데 아무런 글도 없는 백지편지. 가슴이 뭉클 했습니다. 

3일 전부터 광화문 국민 문화 촛불 행사를 하고 있어요. 그레도 첫날보다는 사람들이 많아졌네요. 촛불이 하나 둘 모여 8월 15일에는 10만이 넘는 촛불이 밝혀지리라 기도 해봅니다. 

7월 31일
오늘은 단식 18일째 입니다. 이것이 국민들의 심판인가요. 여당 11곳 야당 4곳의 결과가 나왔네요. 일부 주장처럼 우리 유가족이 너무하는 걸까요. 더 많은 보상, 배상을 받으려고 단식까지 하며 싸우고 있는걸까요. 정말 우리는 유가족충인가요. 여기서 단식을 중단하고 주는대로 먹고 떨어져야 할까요.

너무도 허탈합니다. 국민들의 심판이. 야당 지도부의 안일한 대처 때문인 거 같습니다. 4월 16일부터 지금까지 보면 야당은 강하게 어필하지도, 밀어붙이지도 않았어요. 도대체 유가족을 위해 일을 한다고 하는 무슨 일을 얼마나 하는지 모르겠네요. 무능한 당 지도부의 결과물입니다. 오늘은 일기마저 쓰기 싫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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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의 국제정세

<분석과전망>통일의 외적 조건은 동북아의 화해.협력.평화
 
한성 자유기고가 
기사입력: 2014/07/31 [17:48]  최종편집: ⓒ 자주민보
 
 
현 시기 벌어지고 있는 북미대결전은 우리의 통일문제와는 어떠한 관련을 갖게 되는 것일까? 
정세전문가들이라면 누구 할 것 없이 기본적으로 갖고 있는 문제의식이다. 추상이 아니다. 매우 실물적이며 구체적인 문제의식이다.
북미대결전을 통일문제와 결부시킨다는 것은 통일 관련되는 국제정세를 정확히 읽어내고 또한 그 전망을 밝히는 문제이다. 통일 관련되는 국제정세란 통일의 객관요인으로서의 국제정세를 의미한다.

통일의 객관요인인 국제정세와 관련, 지난 9~11일 이화여자대학교가 주관한 제13차 한독포럼은 통일 관련 전문가들에게 적쟎은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포럼에는 독일통일 관련 독일 인사들이 대거 참가했다. 그 중에서도 한독포럼 독일 측 위원장인 하르트무트 코쉬크(55) 연방하원의원은 단연 돋보였다. 독일을 대표하는 지한파 의원이어서이다.

독한의원친선협회 의장이기도 한 코쉬크는 2003년 노무현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했는가 하면 한국관련 저서도 <독일·한국-통일·분단> <김대중 대통령과의 만남. 평화·화해, 그리고 통일의 길을 가는 한국> <우정의 정원-독·한 관계의 과거, 현재와 미래> 등 세 권이나 된다.
독일에서도 출중한 정치인이다. 독일 통일 직후인 90년 하원의원 당선 후 지난해 총선까지 무려 7선의원을 거쳤다. 지난해까지 앙겔라 메르켈 내각의 재무차관을 지냈다.  

코쉬크는 통일의 객관요인으로 작용하게 될 국제정세의 중요성에 대해 역설했다. 문화일보 김영희 대기자와 가진 인터뷰에서이다.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은 물론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도 독일 통일에 찬성했다는 것 그리고 회의적 시각을 가졌던 주변 국가들도 태도를 바꿨던 것을 먼저 강조했다. 그것들이 독일 통일을 유리하게 했던 대표적인 유럽정세라는 것이었다. "독일 통일은 그 당시 유럽의 정치적인 환경, 그리고 미국과 소련 관계를 포함한 국제적인 환경을 배경으로 해서 가능했다"고 언급한 것이다.     

코쉬크는 자신의 견해를 동북아정세에 대한 것으로 확장시켜 피력했다. "남북, 한·중, 한·일 관계의 정상화로 동북아 화해·협력·평화를 실현하는 것이 통일의 외적 조건"이라는 이영희 대기자의 견해에 대해 적극적으로 동조를 하면서다.  

통일의 객관요인으로 기능하는 국제정세는 저절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치밀하게 구상하고 주도하는 세력이 있는 것이 기본이며 그 주도의 동력 또한 분명하게 존재하게 되어있다.

많은 정세전문가들이 북한이 핵보유국을 선포하고 인공위성제조발사국이라고 주장하는 것 그리고 특히 핵-경제병진노선을 국가발전전략으로 채택한 것 등에 대해서 통일의 객관요인과 관련시켜서 보려고 하는 이유이다. 

북한이 핵.미사일 능력을 높이는 활동은 현재로서는 북미대결전에서 미국의 북한에 대한 적대성을 구성.강화하는 결정적 내용이다. 문제는 북한의 핵.미사일이 당장에는 북미대립의 축으로 되고 있기는 하지만 미국의 대북적대성을 약화시키는 방향으로 변화시키는 동력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힘과 힘이 격돌하는 국제정세의 역학관계에 따르는 추론이다. 

이를 통해서 정세전문가들이 확인하게 되는 것이 하나 있다. 미국의 대북적대성 약화가 미국자체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본질적으로는 북미대결전의 결과로 강제된다는 것이 그것이다. 이는 반세기 이상 치열하게 진행되어왔던 북미대결전의 역사를 천착해보면 상식적 수준에서 도달하게 되는 결론이다.     

미국의 대북적대성 약화는 통일관련 동북아정세에서 핵심적 요소이다. 물론 미국의 대북적대성 약화 징후는 직접적으로 감지되고 있지는 않다. 오히려 군사적으로 치열한 대결양상을 보이고 있는 것이 지금의 북미관계이다. 


그렇지만 시선을 돌려 동북아정세라는 큰 틀에서 보면 최근 시기에 들어 미국의 대북적대성이 약화되고 있는 흐름들을 비교적 또렷하게 확인하게 된다.

일본의 대북교섭이 그 대표적인 것이다. 북한에 있는 ‘일본납치자문제’ 그리고 일본의 대북경제제제 일부 해제 등을 교섭내용으로 하고 있기는 하지만 이는 종국적으로는 북일수교를 그 방향으로 진행되게 될 것이다. 
일본의 대북관계개선 흐름은 객관적으로 보면 미국의 대북적대성이 외부에서부터 약화되고 있는 것에 따른 결과이다. 이는 동시에 이후 미국 자체의 대북적대성 약화를 가속화시킬 조건으로도 된다. 일본이 추진하고 있는 대북관계개선 움직임이 최소한의 성과라도 마련하게 된다면 이것이 통일의 객관조건으로서 기능을 하게 되는 결정적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코쉬크는 일본이 중국 북한은 물론 특히 우리나라에 대해서도 전향적 자세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일본 경제의 미래가 지역의 신뢰와 협력에 달렸다는 걸 알아야 한다"면서 "일본은 과거사 청산을 넘어서 다른 국가와 이해하고 소통하는 다리를 놓는 것이 결국에는 이기게 될 것"이라고 한 것이다.

이와 관련해 거론할 수 있는 구체적인 문제는 북일정상화와 더불어 우리나라에 대한 일본의 과거청산문제이다. 일본의 대한 과거사청산문제는 한일관계개선의 핵심으로서 위안부 문제나 독도문제 해결 등을 그 구체적인 내용으로 하고 있다. 북일정상화문제와 한일과거사청산문제는 서로 밀접히 연관되어있는 문제이다. 동전의 양면이라고도 할 수 있다. 

여기에서 핵심은 물론 북일정상화문제이다. 북일관계진전이 한일관계발전을 추동하기 때문이다. 한일과거사청산 문제가 이때껏 해결되지 않고 있는 것은 북일정상화에 진척이 없는 것과 밀접한 관련을 갖는다. 현 시기 이루어지고 있는 북일대화를 우리정부가 실천적으로 면밀히 주시해야되는 이유이다. 

코쉬크가 이영희 대기자의 말에 동의한 것 중에서 한중관계 발전 역시 통일의 외적 조건으로서 큰 역할을 하게 되는 요소이다. 

7월초 한중정상회담은 밀월관계를 과시했다고 할 정도로 중요한 내용들을 적잖게 담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경제교류 문제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1992년에 수교를 맺은 이래 중국은 10년 동안 한국 최대 교역국의 지위에 올라있다. 한국 수출에서 무려 4분의1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중국이다. 
국제사회는 특히 양국이 정상회담 후 원-위안화 직거래 시장을 개설하기로 한 것에 대해 크게 주목했다. 미국으로 하여금 불만을 노골적으로 표출하게 했던 것도 이것이었다.      

코쉬크가 이영희 대기자와의 인터뷰에서 헬무트 콜 초대총리가 독일통일 과정에서 보여준 행보에 대해 높게 평가한 것은 우리정부의 통일정책 구사와 관련하여 눈여겨 볼만한 대목이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자 프랑스·영국·폴란드 등은 독일 통일을 경계하는 태세를 취했다. 난관이었다. 이에 대해 콜은 ‘독일 통일은 유럽의 정치환경과 상치돼서는 안 된다’ 논리로 대응했다. 유럽통합을 지지하는 정책을 콜이 곧바로 내온 것도 그 때문이었다. 

코쉬크의 주장에 따르면 콜의 그러한 적극적인 행보는 결국 독일에 대한 유럽국가들의 신뢰를 회복시키는 데에 상당한 성과를 낸 것이었다. 코쉬크가 콜을 높이 평가한 것은 결국 우리정부에게 한일관계는 물론 한중관계도 통일정세 형성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끌어갈 것을 주문한 것에 다름 아니다. 

코쉬크가 통일의 외적 조건으로서 동북아정세를 강조하기는 했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기본적인 것으로서 남북관계문제이다. 
한중관계 한일관계를 통일관련 국제정세로 지향시켜나가는 노력을 하는 것은 결국은 남북관계개선과 결부되어야만이 통일관련 직접적인 성과로 귀결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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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대통령 되고 싶다"던 손학규, 꿈을 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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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학규 '웃으며 떠납니다' 손학규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이 31일 오후 여의도 국회에서 정계은퇴를 선언하는 기자회견을 마친 후 국회를 나서며 차량에 올라 취재진을 향해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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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31일 오후 4시, 기자회견을 약속한 시각. 회견 장소인 국회 본청 앞에 도착했지만 손학규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은 차 문을 열지 않았다. 3분여 간 미동도 않던 그는 눈가를 훔친 뒤 차 문을 열고 나섰다. 1993년 민주자유당에 입당하며 정계에 발을 들인 뒤 21년 간 쌓아온 정치 역정을 마무리하러 가는 길이다. 

2012년 6월 <오마이뉴스>와 한 인터뷰에서 "나는 정말 대통령이 되고 싶다, 좋은 나라를 만들고 싶다"라고 밝혔던 그는 2년여 뒤인 이날 "떳떳하게 일하고 당당하게 누리는 대한민국을 만들려 했던 나의 꿈을 이제 접는다, 능력도 안 되면서 짊어지고 가려했던 짐들을 이제 내려 놓는다"라고 담담히 밝혔다. 하루 전 치러진 수원병 재보궐선거에 출마했으나 패배한 손 상임고문은 "지금은 내가 물러나는 것이 순리"라고 말했다. 

20여 년 간 정치인으로 살아온 손 상임고문은 "오늘 이 시간부터 시민의 한 사람으로 돌아가 성실하게 살아가겠다"라고 말하며 정치인으로서 마침표를 찍었다. 

"한나라당 탈당 후 시베리아 땅으로... 순탄치 않았지만보람 있었다"

손 상임고문의 정치 역정은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민주당 당 대표를 두 번이나 지냈지만 '한나라당 출신'이라는 주홍글씨는 내내 그를 따라다녔다. 1993년 김영삼 전 대통령과 정치를 시작하며 민주자유당(한나라당·새누리당 전신)에 입당한 것이 그에게는 부정적인 꼬리표로 작용했다. 

그는 민자당 입당 직후 14대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당선되며 탄탄대로를 걸었다. 15대 총선에서 재선한 그는 1996년 보건복지부 장관을 역임한다. 2000년 16대 총선에서 한나라당 소속 3선 의원이 됐고, 2002년 민선 3기 경기도지사가 됐다. 

그랬던 그는 2007년 돌연 한나라당을 탈당했다. 2007년 대선 당시 한나라당 대선 경선 후보 '빅 3'로 꼽혔던 그는 "한국정치의 낡은 틀을 깨뜨리기 위해 저 자신을 깨뜨리며 광야로 나선다, 지금의 한나라당은 군정의 잔당들과 개발독재시대의 잔재들이 버젓이 주인 행세를 하고 있다"라며 "한때의 돌팔매를 피하려고 역사의 죄인이 되는 길을 택할 수는 없다"라고 말했다. 그는 "낡은 수구와 무능한 좌파의 질곡을 깨고 새로운 대한민국을 위한 새 길을 창조하기 위해 한나라당을 떠나기로 했다"라고 밝혔다. 

그의 선택을 두고, 한나라당 내에서는 대선후보가 될 수 없다고 판단한 그가 정치 생명을 걸고 탈당한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이후 대통합민주신당(새정치민주연합 전신) 창당 과정에 역할을 했고, 대통합민주신당·민주당 대표를 두 차례 역임했음에도 그에게 새겨진 주홍글씨는 쉬이 지워지지 않았다. 

손 상임고문을 따라다니던 꼬리표가 희미해진 건 불과 몇 년 전 일이다. 2012년 7월 고 김근태 의장을 따르는 당 내 모임인 '민평련'이 주최한 대선후보 초청 간담회에서 그는 "5년 전 한나라당에서 탈당했다"며 자신의 주홍글씨를 언급했다.

그는 "한나라당 출신이라는 주홍글씨를 억지로 벗으려 할 것도 없다"라며 "다만 내가 젊어서부터 추구했던 민주주의의 가치, 사회적 약자, 남북 분단으로 인한 비극을 치유하는 것에 몸을 던지는 것으로, 김근태 의장이 '학규 좋은 사람이긴 한데…'라면서 뒷말을 잇지는 못하고 돌아가신 데 대한 죗값을 치르겠다"라고 말했다. 

스스로 주홍글씨를 언급하며 '죗값을 치르겠다'는 그에게 민평련은 대선 후보 지지투표에서 손 상임고문을 1위로 뽑는 것으로 답했다. 

"제 이야기도 여기까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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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계은퇴 선언한 손학규 7.30 경기 수원 병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했다 낙선한 새정치민주연합 손학규 상임고문이 31일 오후 국회 정론관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정계은퇴를 선언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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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그의 뿌리는 '야성'에 있었다. 민자당에서 정치를 시작했지만, 그는 대학 시절 유신독재 반대운동에 투신했다. 서울대 정치학과 재학 시절에는 고 김근태 상임고문, 고 조영래 인권변호사와 함께 '서울대 운동권 3인방'으로 불리며 학생운동에 적극 가담했다. 1979년 유신 체제가 막을 내리던 때에도 기독교 사회운동에 몸담았었다.

손 상임고문은 박 전 대통령이 시해당한 날 동시에 목숨을 얻기도 했다. <오마이뉴스> 인터뷰에서 그는 "(부마항쟁 시 체포대 보안대로 끌려가) "이유도 묻지 않고 48시간 동안 두들겨 맞았다, 그러고 나가더니 이틀 밤이 지나서야 헌병이 와 '괜찮으실 거에요'라고 하더라"라며 "나중에 알고보니 그 시간에 박정희 대통령이 시해당했던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돌고 돌아 자신의 뿌리로 돌아온 손 상임고문은 2008년 대통합민주신당 대표로 선출됐고, 18대 총선(2008년)을 진두지휘했다. 대선 대패 후 총선 참패도 불 보듯 뻔한 상황에서 그는 민주당과의 통합을 이뤄내고 박재승 변호사를 공천심사위원장으로 영입하며 박수를 받기도 했다. 결국 당시 통합민주당은 81석 확보에 그쳤다. 그는 "정치인은 들고 날 때가 분명해야 한다, 당과 나라의 발전을 위해 평당원으로서 책임과 사명을 다할 것"이라며 대표직에서 물러나 강원도 춘천에서 칩거 생활에 돌입했다. 

2년여 뒤, 정계에 복귀한 그는 2010년 10월 민주당 당대표로 또 다시 선출됐다. 이후 2011년 4월 재보궐 선거에서 한나라당의 텃밭인 분당에서 당선됨에 따라 당 안팎에서 정치적 입지를 다졌다. 당 대표로서 손 상임고문은 '야권대통합'을 제안하며 야권 지형 확장에 나섰고, 그 결과 정치권 바깥에 있던 문재인 의원을 비롯한 이해찬·문성근 등 친노 핵심인사와 김기식·이학영 등 시민사회 인사로 구성된 시민통합당과의 합당을 이뤘다. 

'야권 대통합'은 그에게 자부심이었다. 2012년 9월 대선 후보 순회 경선이 이뤄지던 때, 마지막 경선지인 서울에서 손 후보는 다음과 같이 밝혔다. 

"국민 여러분, 당원 동지 여러분 누가 뭐래도 저는 야권 대통합에 무한한 자부심을 갖고 있다. 야권 대통합으로 우리는 국민들로부터 지지와 기대를 받고 정권교체에 대한 희망을 받게 되었다. 야권 대통합이 되었으니 제 역할은 이제 끝났다고 생각했다. 새 지도부의 구성을 원혜영 임시 대표에게 맡기고 저는 조용히 지리산 자락으로 내려갔다. 민주통합당의 지지율이 쭉쭉 뻗어 올라 새누리당을 10% 이상 앞섰다. 

우리는 총선 승리의 큰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제 이야기도 여기까지다."

당시는 이미 문재인 후보로 대세가 기울어져있던 상황이었다. 모든 것을 받아들이듯, 그는 이렇게 연설을 마쳤다. '저녁이 있는 삶'이라는 슬로건으로 호응을 얻었던 손 상임고문은 결국 문 후보에 패해 당의 대선후보가 되지 못했다.

대선 후 독일 유학길에 오르며 정치권 밖에 머물렀던 손 상임고문은 '자의반 타의반' 7·30 재보선에서 수원병에 출마해 재기를 노렸다. 그러나 결국 패배했다. 20년 정치인생의 종지부를 찍는 자리. 31일 손 상임고문은 회견 내내 웃음을 띄며 정계은퇴 뜻을 밝혔다. 

"정치는 들고 날 때가 분명해야 한다는 것이 저의 평소 생각입니다. 국민 여러분께 함께 잘사는 나라를 만들어 저녁이 있는 삶을 돌려드린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해 송구합니다. 오늘 이 시간부터 시민 한 사람으로 돌아가 성실하게 살아가겠습니다. 저녁 있는 삶을 위해 열심히 살고 노력하는 국민의 삶이 되겠습니다." 

그는 자신의 정치 인생에 대해 "한나라당을 탈당하여 시베리아 땅으로 나선이래 민주당과 함께한 저의 정치 역정은 순탄치는 않았지만 보람있는 여정이었다"라고 정리했다. 앞으로의 일정을 묻는 질문에 그는 "자유로운 시민인데 무슨 특별이 일정이 있겠어요, 여행을 할 수도 있고, 쉴 수도 있고, 책을 볼 수도 있고, 잠을 잘 수도 있고"라고 말했다. 

21년간 정치인으로 살았던 그는 이제 '자유인 손학규'가 됐다.
태그:손학규저녁있는 삶정계은퇴 태그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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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산의 뜻처럼 남북이 하나 되어 사대주의 배격해야”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4/08/01 09:41
  • 수정일
    2014/08/01 09:41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죽산의 뜻처럼 남북이 하나 되어 사대주의 배격해야”죽산 조봉암 선생 55주기 추모제 열려
이창훈 통신원  |  tongil@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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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07.31  18: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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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산 조봉암 선생의 55주기 추모제가 31일 오전 서울 망우리 공원묘지에서 개최됐다. [사진-통일뉴스 이창훈 통신원]

죽산 조봉암 선생(1898~1959)의 55주기 추모제가 죽산조봉암선생기념사업중앙회(회장:김용기) 주관으로 31일 오전 11시 서울 망우리 공원묘지에서 개최됐다.

이날 추모제에서 김용기 회장은 인사말을 통해 "죽산 선생의 죽음 이후 수백 명의 사상자를 냈던 4.19민주혁명과 이 나라를 수십 년간 독재 치하에 놓이게 한 5.16군사정변이 연이어 일어났다"고는 "만약 죽산 선생이 죽지 않고 살아서 그 뜻을 이뤄냈더라면 우리 역사의 불행은 없었을 것"이라며, “어서 고인의 뜻이 이뤄진 세상이 오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 무용가 이삼헌 씨와 정영미 씨의 진혼무 광경. [사진-통일뉴스 이창훈 통신원]

추도사에 나선 새얼문화재단 지용택 이사장은 "최근 국제정세를 보면, 한반도를 둘러싼 강대국들의 국가원수들이 우리나라를 찾고 있다"고 지적하고, "하지만 이는 우리나라가 강대국의 반열에 오른 탓이 아니라, 오히려 자국의 이익을 위해 우리나라에 눈독을 들이기 때문"이라고 짚었다.

이어 지 이사장은 "이러한 때에 사대주의에 빠져 나라의 정신을 팔아먹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되며, 죽산 선생 뜻처럼 남북이 하나가 되어 나라의 힘을 키우고 사대주의를 배격해 나가야 한다"고 호소했다.

이날 추모제에는 죽산의 장녀 조호정(86세) 여사를 비롯한 유가족과 각계인사 100여 명이 참석했다.

   
▲ 추모국화가 놓여진 죽산 영정. [사진-통일뉴스 이창훈 통신원]
   
▲ 1953년 광복절 8주년에 중앙청앞에서 경축사를 낭독하는 죽산. [사진제공-이창훈 통신원]

죽산 조봉암이 1959년 7월 31일 서울형무소에서 오전 11시 3분에 사형된 뒤로 오랫동안 진실이 묻히게 된다.

그러던 중 1987년 6월 민주항쟁 이후 그의 측근들에 의해 명예회복을 위한 노력이 재개된다. 이어 장택상의 비서로 정치에 들어선 김영삼 대통령 시절에도 진상규명을 요청하였으나 이뤄지지 않았다.

결국 2007년 7월 18일 진실화해위원회(당시 위원장 송기인) 전원위원회 회의에서 '이승만 정권에 의해 저질러진 비인도적, 반인권적 인권유린이자 정치탄압사건'이라고 규정하고 국가에 재심 등의 상응조치를 권고했다.

이후 법원에서는 재심을 받아들여 2011년 1월 20일 59년 만에 대법원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더불어 유족들과 기념사업회는 보훈처에 죽산 선생을 독립유공자 반열에 올려 달라고 요구했으나, 아직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한편, 북측에서는 자주독립운동과 조선공산당에 참여했던 죽산 선생이 이승만 정권에 의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자, 애국열사릉에 가묘를 설치하고 1990년에는 ‘조국통일상’을 추서하는 등 민족지사로 모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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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담] 열하루 '세월호 단식' 끝내는 새정치민주연합 4명의 의원들

"정치력 부재와 불신, 내 탓이오! 

세월호 특별법, 협상 대상 아니다"

14.07.31 14:10l최종 업데이트 14.07.31 14:10l

장윤선(sunnij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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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식 11일째 강동원,유은혜,남윤인순,은수미 의원 새정치민주연합 강동원, 유은혜, 남윤인순, 은수미 의원이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30일 국회 본관 앞에서 11일째 단식농성을 벌이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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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에 대한 진상규명과 특별법 처리는 협상의 대상이 아니다. 유가족들께서는 건강을 생각해서 단식을 멈춰주실 것을 간곡히 요청드린다. 저희가 대신 단식을 하고 진상규명과 특별법 제정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

남윤인순, 유은혜, 은수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들은 지난 20일 '엄마의 심정'으로 단식을 시작했다. 그들보다 엿새 앞서 국회 본청과 광화문 광장에서 단식을 시작한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과 매일 아침 국회에서 마주치면서 도무지 미안하고 민망해 피할 수 없었던 동조단식이었다. 뒤이어 25일 강동원 의원이 단식대열에 합류했다.  

세월호 참사 106일을 맞이하는 7월 30일 현재까지도 특별법 제정에 한 치도 진전이 없는 도돌이표 상황에서 이들은 단식을 일단 끝내기로 했다. 단식 중이던 유족 20여 명이 이미 실려 나갔고 이젠 둘만 남은 상황이지만, 국회의원 넷이 단식만 하고 있기엔 '싸워야 할' 현안이 너무 많아 8월 새로운 투쟁국면을 위한 전환적 조치인 셈이다. 

그들은 이날 국회 본청 2층 앞 콘크리트 바닥에 철푸덕 앉아 좌담을 시작했다. 야당 국회의원 넷이 무려 열하루씩이나 곡기를 끊고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해도, 새누리당 의원들이 '생까는' 상황에서 더는 이대로 앉아만 있을 수 없다고 판단한 듯하다.

그들은 "정치실종" "정치의 부족" 등을 성토하며 "내 탓이오"를 외쳤다. 전직 사회운동, 학생운동, 시민운동 출신으로 국회에 입성했지만 고작 단식이나 하고 있음에 매우 열패감을 느끼는 눈치였다. 곡기까지 끊었지만 국민들로부터 칭찬은커녕 원성만 자자한 현실도 자괴감을 느끼기엔 충분했다. 일부 댓글엔 "뒈질 때까지 단식을 하건 말건" 등의 냉소도 쏟아진다. 곡기를 끊어도 진정성을 믿어주지 않는 정치현실에 암담한 듯 한숨도 자주 터졌다. 

이들은 또 "유가족들은 8·15 때 교황님이 오시면 뭔가 변화가 있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는데 빨리 제대로 된 세월호 특별법을 만들어야 한다"며 "당이 이제 좀 제자리를 찾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무엇보다 이들은 김한길·안철수 두 대표를 향한 쓴 소리도 서슴지 않았다. 이들은 "직을 걸고 세월호 특별법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며 "그럼 직을 걸고 추진하는 게 어떤 건지 보여주셔야 한다"고 두 대표를 정조준 했다. 

다음은 7·30 재보궐선거가 열린 30일 오전, 네 의원과 나눈 좌담을 정리한 것이다.

"새정치연합은 세월호 이후 바뀌었나? 바뀔 조짐 있나"

- 지난 20일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단식에 돌입했다. 만 열하루가 지났는데 무엇이 달라졌나. 

은수미(아래 은) : "두 가지 목표가 있었다. 하나는 저희보다 먼저 단식을 시작한 유가족들을 대신하겠다는 거였고, 다른 건  세월호 특별법 제정 촉구였다. 그러나 여기서 만 열하루를 보내며 느낀 건 암만 저희가 나선들 유가족들의 고통을 대신할 수는 없다는 점이다. 

세월호 가족들이 단식을 하고 그 장면을 바라보다 저희도 따라 동조단식을 하는 건 정말 '정치의 실종'이다. 정치가 제대로 섰더라면 유가족들이 단식하게 두지도 않았을 것이고 우리도 단식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국회의원이 국회에서 단식하는 건 예외적 정치행위다. 이것이 잦아지거나 반복되면 안 된다. 11일간 나는 이 세상을 바로잡지 못한 정치 부족함을 뼈져리게 느꼈다."

유은혜(아래 유) : "처음 단식을 시작할 때도 너무 부끄럽고 죄송한 마음이었는데, 지금은 더 부끄럽고 더 죄송하다. 이유는, 열하루가 지났지만 하나도 나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국회의원이 고작 단식밖에 할 수 없느냐, 비판도 있지만, 저 스스로도 이런 상황…. 참담하다. 세월호 특별법은 단지 유가족들에게만 국한되는 게 아니다. 대한민국 전체의 미래를 어떤 지표로 가져갈 것인지 중차대한 결정을 해야 할 문제다. 우리 사회 근간을 바꾸는 문제를 어디서 어떻게 시작해야 하나, 다시 고민되는 열하루였다."

강동원(아래 강) : "세월호 참사는 대한민국 참사다. 국민과 유가족들이 참사의 원인을 규명해달라고 했다. 그럼 국회는 당연히 특별법을 만들어 조사해야 한다. 그런데 새누리당이 계속 딴죽을 걸고 있다. 그럼 이때 뭘 해야 하느냐, 고민하던 중 세 분이 먼저 단식을 결행했다. 여성 세 분이 먼저 결행해서 남성으로서 너무 죄인 같은 느낌이었다. 그래서 일단 동조단식이라도 해야 나중에 후회하지 않을 것 같아서 함께했다. 오늘로 6일째인데 주로 정치가 국민들에게 무엇으로 꿈과 희망을 줄 수 있을까 고민하는 시간이었다."

남윤인순(아래 남윤) : "유가족들도 저희도 막무가내로 시작한 단식이 아니었다. 가족들은 국정조사를 모니터링 할 때 국회의원들이 무슨 생각인지 다 지켜보았다. 그러고도 그분들은 최대한 국회의 절차를 존중하면서 가족들의 의견을 반영하려고 노력했다. 그 모습을 그저 바라만 보기는 너무나 힘들었다. 뭐라도 해야겠기에 시작한 단식이 벌써 열하루가 됐다. 정치가 먼저  이분들의 손을 잡고 해결해야 줘야 하는데 그걸 못하니 그저 함께 아파하고 공감하는 것밖엔 못했다."

- 네 분 모두 전직 운동가 출신이다. 이제 정치인이 됐으니 정치로 풀어야 한다. 그런데 왜 국회의원들이 열하루나 단식을 했는데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을까. 

 : "우리 당을 많이 비판하는 이유가 있다. 절박하지도 않고, 야성도 없고, 새누리당이 야당인지, 새정치민주연합이 여당인지 헷갈린다는 분도 계시다. 저는 이 당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되지만 뜻있는 분들의 힘을 모아서 단식 이후에는 새로운 투쟁을 전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단 7·30 재보선이 끝나면 당 지도부가 세월호 특별법 제정에 대한 새로운 투쟁방법을 강구하겠다고 했으니 기대해 본다. 당론으로 힘을 모아 세월호 특별법을 꼭 제정해야 한다."

 : "무슨 일이든 절박해야 이뤄진다. 우리 정치에 절박함이 있었나? 세월호 참사는 유례도 없는 일로 대한민국의 총체적 민낯이 드러난 사건이었다. 탐욕적 자본과 그 자본에 기댄 권력, 인간 같지도 않은 짐승과도 같은 사람들의 문제에 대해 과연 우리 당이 얼마나 절박함을 갖고 접근했나 돌아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제 당의 행동으로, 추진력으로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해야 한다. 선거도 끝난 마당에 더 이상 논의를 늦출 수는 없다."

남윤 : "선거 전에는 당 지도부가 재보선 때문이라는 말로 세월호 특별법 추진에 힘을 제대로 싣지 못했다. 이제 선거가 끝났다. 만약 선거가 끝났으니 이제 조직정비를 해야 한다면서 당무위원회를 새로 정비하고 지역위원장 선출에 몰입한다면 우리 당은 또다시 근본이 서지 않고 모래알처럼 흩어져 이합집산할 것이다. 절대로 그래서는 안 된다. 7·30 선거가 끝났으니 이제는 당력을 세월호 특별법 제정으로 모아야 한다."

은 "당이 시민의 바다에 풍덩 빠져 정치의 영역을 확장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세월호 유가족 보상문제가 불거지면 그 시점에 당이 국민에게 물어야 한다. 국민대토론회를 열어서라도 진실을 알리고, 여론조사를 통해 세월호 특별법 통과가 국민적 여론인지 아닌지 확인해야 한다. 근거를 갖고 새누리당과 협상해야 한다. 새누리당은 보상은 해주지만 진상규명은 안 된다고 했다. 그런 사람들과 진상규명하려면 우리가 먼저 국민적 여론을 등에 업고 밀어붙였어야 했다. 새누리당의 뒷덜미를 잡고 국민이 원하니 당장 특별법 추진해라, 이런 전환점이 필요하다."

 : "이명박근혜정권을 겪어보니 국가운영을 과거 군사독재시절처럼 한다. 그럼 우리의 투쟁방식도 그 시절로 돌아가야 한다. 어느 정도 민주화 됐으니 대충 그들과 화해와 타협? 그걸로는 안 된다. 그러니까 맨날 새누리당에 당한다. 이제는 우리 당이 역사의 흐름까지 내면적으로 들여다보면서 투쟁방식과 전략을 세워야 한다. 그런 게 안 되니까 국민들이 우리를 얼마나 질타하고 있나. 우리는 다 느끼는 것을 왜 지도부는 못 느낄까 싶다."

 : "당이 이제는 세월호 특별법을 원 오브 뎀(one of them, 여러 가지 중 하나)의 이슈로 볼 게 아니다. 흩어지지 않고 조직된 힘으로 하나가 되어 싸우는 유가족처럼 우리 당도 이제 실천을 단단하게 묶어가야 한다. 지금 유가족들은 8·15 때 교황님이 오시면 뭔가 변화가 있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는데 빨리 제대로 된 세월호 특별법을 만들어야 한다. 이제부터라도 당이 중심을 잡고 행동구심력을 세워야 한다. 당이 이제 좀 제자리를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 "사람들은 대한민국이 세월호 이전과 이후가 달라질 것이고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대한민국이 세월호 이전과 이후로 나뉠지 아무도 안 믿는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세월호 이전과 이후로 바뀌었나? 바뀔 조짐이 있나? 달라질 조짐이나 희망을 100일 넘게 못 주고 있다. 세월호 참사라는 비극 앞에서 정치불신은 더 커졌다. 정치불신을 없앨 방법에도 지도부가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세월호 해양교통사고 발언, 지도부는 왜 화 안 내나"

- 세월호 참사 이후 적폐를 해소하겠다던 박근혜 대통령은 현재까지 제대로 해놓은 게 없다. 새누리당 안에서는 세월호 참사가 해양교통사고라고 한다. 보수언론은 이제 노란깃발을 정리해야 한다는 주장도 서슴없이 한다. 단식 농성 중 만난 새누리당 의원들은 세월호 특별법에 대해 어떤 반응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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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식 11일째 은수미,유은혜,남윤인순,강동원 의원 새정치민주연합 은수미, 유은혜, 남윤인순, 강동원 의원(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이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30일 국회 본관 앞에서 11일째 단식농성을 벌이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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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윤 : "새누리당 의원들 중 유가족들과 인사하는 분들은 몇 안 된다. 이 현장 자체를 외면하고 지나간다. 내가 이곳에 열하루 있었지만 유가족들에게 목례하고 지나가는 새누리당 의원들을 거의 못 봤다. 홍문종 전 사무총장 등이 세월호 참사를 해양교통사고에 빗댄 건 그 자체로 정부여당이 치러야 할 책임론에서 벗어나고 싶은 거다. 이제 다 잊고 일상으로 넘어가자는 건데 7·30 재보선이 끝나면 그런 흐름은 더 강해질 수 있다고 본다."

 : "야당이 강력하게 투쟁하면 여당이 야당을 파트너로 인정하면서 성숙된 모습을 보일 거다. 그런데 오히려 깔아뭉갠다. 그럴 수 있는 이유는 새누리당이 우리 당 지도부의 정체성을 너무 잘 알아서 완전 자신만만한 게 아닌가 싶다. 이렇다면 우리 야당이 더 강한 정신과 절박함을 갖고 더 세게 싸워야 한다. 

정당의 존립기반은 집권인데, 집권하겠다는 태도가 전혀 아니다. 나는 현 지도부를 탓할 생각은 없다. 김대중 노무현정부부터 현재까지 이와 같은 리더십이 계속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새누리당과 대응하지 않으면 만년 새누리당에게 끌려 다닌다. 우리가 먼저 정신을 차려야 한다."

 : "여당의 야당 무시는 오래됐다. 여당에게 그런 대접을 받는 건 우리 잘못이다. 그런데 가만 보면 정부여당은 다른 나라 사람들 같다. 대통령 눈물 흘린 지 불과 두 달도 안돼 노란 리본을 거두라는 말을 한다. 해양교통사고라고 한다. 어떻게 이렇게 갑자기 표변할 수 있나. 우리가 어리숙한 건지 새누리당이 능수능란한 건지 원 구성이나 특별법 관련 등등 뭐든 자기들 멋대로 표변하고 약속도 안 지킨다. 

거기에 김기춘 비서실장의 역할은 대단한 것 같다. 청와대 김기춘 비서실장과 친박계 여당의원 몇몇 실세가 정말 정국을 농락하고 있다. 국민도 야당도 안중에 없다. 언론까지 전부 장악한 그들은 너무 잔인할 정도로 국민을 무시하고 있다."

남윤 : "새누리당과 적당히 타협해서 성과를 얻긴 어렵다고 생각한다. 새누리당의 표리부동은 새누리당의 문제가 아니다. 표리부동에 순진하게 대응하는 우리가 문제였던 거다. 새누리당 욕하는 건 공허하다. 새누리당 행태에 어떻게 맞서 싸울 건지 우리가 먼저 죽을 똥 살 똥 준비해야 한다. 그래야 다음 총선도 가능해질 것이다."

 : "비통하긴 하지만 무시당할 짓을 하니까 무시당한다고 생각한다. 새누리당에서 세월호 참사를 해양교통사고라고 말한 게 한둘인가? 그럼 당이 화를 내야 한다. 윤리위에 제소하고 징계를 요청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 당은 지도부부터 아무도 화조차 안 낸다. 만약 새누리당이었다면? 아마 난리가 났을 것이다. 새누리당은 자기 이익이 조금이라도 해쳐진다고 생각하면 난리를 친다. 

과거 야당이 그랬다. 민주주의 가치가 훼손되면 난리가 났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새누리당이 여러 번 도발해봤는데, 그때마다 우리 당이 화낼 줄도 몰라, 대응도 안 해, 그럼 밟는 거다. 무시한다. 국상 중인데, 교통사고 운운하는 패륜을 저지르면 의원직 내놓아라 난리를 쳐야 옳다. 노란 리본을 정리하라고? 야당은 통곡해야 한다. 그런데 무감각하다."

"8월의 이슈로 세월호 특별법 제정 끌고 나가야"

- 단식을 정리하고 난 뒤엔 어떤 활동이 예정돼 있나.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나. 
 : "1단계는 당이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도록 의총에서 논의하는 것이다. 국민대토론회를 열어서 논의를 모아야 한다. 만약 이런 일들이 당 차원에서 안 된다 해도 나는 이대로 물러설 생각이 없다. 그럼 뭘 해야 할까. 그게 참 고민스럽다. 당 차원에서 총력투쟁이라고 해놓고 결과적으로는 하향평준화 돼서 일상활동으로 가는 경우가 많았다. 단식 이후 그냥 일상으로 가는 게 아니라 새로운 투쟁의 길을 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 "당이 국민 속에서 많은 토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부적으로 무장해서 당 차원의 투쟁활동을 더욱 총체적으로 해나갈 필요가 있다."

 : "세월호 특별법 문제가 장기전으로 가면 어떻게 해야 할까(한숨). 당 지도부의 결정이 중요할 것 같다. 매일 세월호 특별법 서명을 받으러 나가는 자발적 시민모임이 전국적으로 확산돼 있다. 이제 선거가 끝났으니 내일부터는 새로운 국면이 열려야 한다. 8월의 이슈로 세월호 특별법을 끌고 가면서 내일(1일)이라도 당장 의총을 열어 구체적인 실행계획을 집행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지금 당장 필요한 일이다."

 : "전국에서 매일 세월호 특별법 서명을 받는 자발적 시민단체가 3천개가 넘는다고 한다. 온 국민이 국상으로 세월호 참사를 함께 겪고 있는데 왜 대통령이 결단하지 않나. 이건 코미디다. 지방선거 때는 표 달라고 눈물을 흘리더니, 유가족이 단식하시다가 무려 20여 분이 쓰려졌는데도 박근혜 대통령은 휴가를 갔다. 대통령의 세월호 참사 발생 이후 7시간 동안의 행적 조사하자니까 사생활 소리가 나온다. 이런 상황을 우리 지도부가 어떻게 돌파하려고 하는지… 유병언 시신 가짜논란 속의 정치상황에서도 헤게모니를 쥐지 못하는 지도부라면 정말 문제 아닌가." 

- 끝으로 김한길 안철수 두 대표가 지금 당장 무엇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 "지금은 할 말이 없다. 비판도 애정이 있을 때 하는 거다. 내가 새누리당을 아예 접어버리는 것은 그들이 짐승의 시간을 만들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새누리당 의원들, 정말 사람이 할 소리가 아닌, 사람이 할 태도가 아닌 행동을 하고 있다. 지금 나는 나 스스로 정치인으로서 대안적 깃발을 어떻게 만드는가가 우선적 고민 사항이다. 지도부에 대한 비판이나 제안은 준비 안 돼 있어 할 말 없다."

남윤 : "선거 끝나면 선거 평가하면서 조직 강화에 나설 것이다. 이때 조직만 강화할 게 아니라 세월호 특별법 추진위원회를 만들어서 두 대표 중 한 대표가 실질적으로 맡아서 추진할 필요가 있다. 당력을 여기에 싣는 걸 보여주지 않으면 안 된다."

 : "두 대표께서는 지금까지 했던 말씀을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 직을 걸고 세월호 특별법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그럼 직을 걸고 추진하는 게 어떤 건지 보여주셔야 한다. 120석이 넘는 의석의 야당.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니다. 집권여당이 벌이는 이 기만의 시대, 어떻게 제1야당으로서 자기 역할을 할 수 있는지 당대표로서 절박한 고민의 결과를 보여줬으면 좋겠다." 

 : "선거 결과와 무관하게 세월호 특별법 제정에 당력을 모아야 한다. 전쟁터에 나가는 장수가 졸들에게 작전도 지휘도 못하면 그건 곤란한 일이다. 전직 대표, 현직 대표 당 중역들 할 것 없이 모두 의견을 모아 세월호 특별법 제정에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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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김한길 사퇴’ 뒤에 감춰진 새누리당의 무서움

 
 
지역 민심을 파고든 새누리당의 허풍 공약
 
임병도 | 2014-07-31 08:35:27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7.30재보궐 선거 결과 새정치민주연합을 비롯한 야당이 참패했습니다. 새누리당이 11석을 확보했지만, 새정치민주연합은 겨우 4석만을 가져왔기 때문입니다. 

2012년 총선 때는 새누리당이 152석 새정치민주연합이 127석이었는데 7.30재보궐 선거 결과 새누리당이 158석, 새정치민주연합이 130석으로 새누리당이 더욱 견고해졌습니다. 

새정치민주연합이 참패한 이유는 '전략 공천 파문'과 '리더십 부재',' 선거전략 부재' 등으로 이미 선거 전부터 나와 있는 문제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야당이 무능해서만 새누리당이 승리했다고 착각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야당이 무능한 부분도 있었지만, 새누리당의 치밀한 선거 전략이 빛을 발했던 부분도 놓쳐서는 안 됩니다. 

도대체 새누리당이 어떻게 선거에 임했는지 분석함으로 새정치민주연합이 왜 무능하다는 소릴 듣는지 객관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 문제는 경제였다' 

선거 때마다 가장 잘 먹히는 카드가 있습니다. 바로 '안보'와 '경제'입니다. 북풍과 같은 안보 카드는 보수층을 결집하는 효과를 '경제'는 중산층을 혹하게 하는 마법을 부리기도 합니다. 
 

 

 

7.30재보궐 선거가 불과 일주일도 남지 않은 7월 24일 박근혜 대통령은 세종청사에서 '확대경제장관회의'를 주재합니다. 

내수 경기 회복을 위한 규제 철폐와 소비를 증진하기 위해 가계소득을 늘릴 수 있는 방안, 단기적인 경기 활성화 등을 내세운 박근혜 대통령의 '경제 회의'는 세월호 참사로 침체된 경기에 불만을 품은 유권자층의 마음을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에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내수 경기 부양을 위해 '40조 7,000억원'이라는 엄청난 돈을 풀겠다고 나섰습니다.

 

 

 

야권이 세월호와 야권 단일화 문제에 신경을 쏟고 있는 동안, 조중동과 경제 언론들은 일제히 '가계 경제 회복'을 위해 박근혜 정부가 힘을 쏟고 있다는 '경제 카드'를 일제히 뿌리기 시작했습니다. 

박근혜정권은 이미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질질 끄는 수법을 통해 본질을 회피하고 있었으며, 이런 상황에서 피로감이 달한 국민을 향한 '경제 카드'는 엄청난 효과를 보였습니다. 


'지역 민심을 파고든 새누리당의 허풍 공약' 

새누리당은 선거 전에는 항상 귀에 솔깃한 공약을 내놓습니다. 선거 후에 공약이 지켜지지 않는 일이 빈번하지만, 그래도 선거 때마다 후보자들이 말하는 공약은 지역 민심을 잘 반영하는 공약들입니다. 
 

 

 

 

 

이번 7.30재보선에도 새누리당 후보들은 지역 현안과 민심을 사로잡을 수 있는 공약들을 내놓으며 유권자의 마음을 흔들었습니다. 

경기 수원병 김용남 후보는 '수원역을 KTX 출발역'으로, 수원을 정미경 후보는 '수원 공군비행장 이전 사업'과 같은 지역 민심이 가장 원하는 숙원 사업을 공약으로 내놓았습니다. 

대전 대덕 정용기 후보는 '연축동 개발 사업'을 충남 서산,태안 김제식 후보는 '태안 기름 유출사고 피해 조속한 보상'을 약속하며 지역 주민의 지지를 받았습니다. 

전남 순천,곡성 이정현 새누리당 후보는 '순천과 곡성에 예산 폭탄을 퍼붓겠다'는 '예산 폭탄론'을 던져 소외당하고 있는 전남 순천,곡성 주민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새누리당은 자신들이 했던 말을 표정 한 번 안 바꾸고 뒤집습니다. 그래도 그들은 뻔뻔하게 선거 때마다 달콤한 말을 쏟아 붓습니다. 

사기꾼에게 당하는 사람들이 그냥 당하는 것이 아니라 사기꾼들의 화려한 언변과 화술, 그럴듯한 약속에 속는 것입니다. 

새누리당이 선거 때마다 지역 현안과 민심을 파고드는 공약을 내밀며 유권자들을 현혹하는 기술만큼은 거의 프로 사기꾼에 가깝습니다. 


' 읍소전략, 다 이유가 있다' 

새누리당은 항상 선거 막판에 '살려주세요','도와주세요'라는 말을 하며 '읍소전략'을 내놓습니다. 
 

 

 

이번에도 동작을 나경원 후보는 선거 직전 '나경원 후보가 어렵습니다','나경원 후보를 살려주세요'라는 문자를 보내 많은 사람들에게 빈정을 사기도 했습니다. 

전남 순천,곡성 이정현 후보도 '죽도록 부려 먹다가 못하면 그때 다시 쓰레기통에 넣으시더라도 한 번만 제 손을 잡아달라'며 애걸복걸하는 '읍소 작전'을 내세우기도 했습니다. 

새누리당 후보들의 읍소전략을 살펴보면 두 가지를 알 수 있습니다. 하나는 그들은 선거에 이기기 위해서는 무릎을 꿇고 비굴한 모습을 보이는 것도 마다치 않는다는 점과 또 하나는 그들의 예측이 놀랍도록 정확하다는 것입니다. 
 

 

 

동작을 나경원 후보는 2위 노회찬 후보와 929표 차이로 겨우 승리했습니다. 무효표 1,403표만 아니었으면 질 수도 있었을 상황입니다. 1

새누리당은 여의도연구소 등을 통해 어느 여론조사 기관보다 뛰어난 지지율 조사를 하고 있습니다. 거의 1일 단위로까지 만들 수 있는 그들의 역량이 있기 때문에 선거 막판에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정확히 분석하고 대비하고 활동할 수 있는 것입니다.

새누리당의 '읍소전략'을 단순히 우습게 보기보다는 그만큼 치밀한 데이터와 행동을 병행한다고 인식해야 할 것입니다. 
 

 

 

2014년 7월 31일 오늘 조선일보 1면의 머리기사는 '안철수,김한길 사퇴'입니다. 7.30재보선 결과를 놓고 새정치민주연합 안철수.김한길 공동대표가 사퇴할 것이라는 예측은 하겠지만, 이것이 전부는 아닐 것입니다. 

[정치]7월9일 - 7.30재보선, 야당의 무덤이 될 수 있다 (이미 야권 패배는 예측됐던 상황이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야당입니다. 야당이 야성을 잃으면 머리를 잘 써서 전략이라도 잘 세워야 하는데 그도 못하고 있습니다. 조직력은 더욱 형편없어지고 있습니다. 지방으로 갈수록 새정치민주연합의 조직력은 분열과 반목을 계속 하고 있습니다. 

안철수,김한길 공동대표의 사퇴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에 못지 않게 새누리당이 얼마나 무섭고 치밀한 집단인지 먼저 분석하고 인식해야 합니다. 

도덕성도 가치관도 역사관도 형편없는 새누리당이지만, 선거만큼은 어떻게 이기는지 아는 정당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면, 다음 선거에도 여전히 빨간색으로 뒤덮일 것입니다.

1. 노동당 김종철 후보 때문이라는 억측은 하지 말자, 진보정당을 지지하는표심도 있다는 사실을 무시하는 행위이다.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13&table=impeter&uid=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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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심은 박근혜 대신 ‘새정치-야권’을 참혹하게 심판했다

[기자칼럼] 세월호 참사와 국정파탄에도 새누리 싹쓸이, 순천곡성마저 내준 진짜 이유는
 
입력 : 2014-07-31  01:02:43   노출 : 2014.07.31  08:10:49
조현호 기자 | chh@mediatoday.co.kr    

 

박근혜 정권이 세월호 참사에서 수백명의 목숨을 구하지 못하고, 온갖 실정과 국정 실패를 이어갔지만 민심은 새정치민주연합이라는 야당을 견제세력으로 인정해주지 않았다. 민심은 박근혜 정권이 아닌 새정치연합을 혹독하게 심판했다. 


30일 치러진 19대 국회의원 재보궐선거 결과 전국 15개 지역구 가운데 새누리당이 11곳에서 승리해 사실상 완승을 거뒀다. 새정치연합은 4곳의 의석을 얻는데 그쳤다. 새누리당은 나경원(동작을), 배덕광(부산 해운대기장군갑), 정용기(대전 대덕구), 박맹우(울산 남구을), 정미경(경기 수원시을-권선구), 김용남(수원시병-팔달구), 유의동(경기 평택시을), 홍철호(경기 김포시), 이종배(충북 충주시), 김제식(충남 서산시태안군), 이정현(전남 순천시곡성군) 후보가 당선됐다.

이에 반해 새정치연합은 권은희(광주 광산구), 박광온(수원시정-영통구), 신정훈(전남 나주시화순군), 이개호(담양·함평·영광·장성군) 등 전남지역 3곳과 수원 1곳에서 당선됐다. 특히 전남 순천곡성에서는 13대 총선에서 국회의원선거가 소선거구제로 바뀐 이후 처음으로 영남권 기반 정당에 의석을 내줬다.

이 같은 결과를 낳은 요인으로 우선 35%도 안되는 낮은 투표율(32.9%)을 들 수 있다. 투표율이 이렇게 낮은 데엔 여름 휴가철이라는 계절적인 특수성도 있으나, 제1야당으로서 야권을 대표하는 새정치연합이 유권자들을 끌어모으는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휴가철 여부를 떠나 경제난을 겪고 있는 서민의 고통, 민주주의 파괴에 신음하는 시민의 분노, 무엇보다 세월호 참사로 자식과 가족을 잃은 유가족의 슬픔과 분노를 대변하고 기댈 곳이 어느 때보다 절실히 필요했다. 자신들을 통해 박근혜 정권을 견제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했지만 유권자들은 새정치연합을 자신들의 대변자로 선택하지 않았다.

수백명의 무고한 목숨이 진도앞바다 한 복판에서 죽어가고 있을 때 단 한 명도 구해내지 못한 박근혜 정권이었는데도 민심은 혹독한 선택을 한 것이다. 박근혜 정권에 대한 분노보다 새정치연합에 대한 불신이 더 컸다. 무능한 정권보다 더 무능한 야당이 된 것이다. 
 

   
나경원 새누리당 서울 동작을 국회의원 당선자의 유세 장면.
ⓒ연합뉴스
새정치연합은 어쩌다 이렇게까지 된 것인가. 이번 7·30 재보선이 시작되면서부터 어느 정도 예견됐다는 평가가 많다. 국회의원 배지라는 권력을 두고 아귀다툼을 벌이게 한 것이 야권 붕괴의 신호탄이었다. 새정치연합은 최대 전략지역이었던 서울 동작을에 기동민 후보를 공천하면서 ‘동지를 배반하게 한 공천’이라는 오명을 낳으며 세월호 참사와 잇단 인사참사라는 최악의 국정운영을 견제해야할 시급한 시기에 신뢰를 잃었다. 권은희 전 수서경찰서 수사과장의 광주 광산을 공천은 유권자들에게 혼란을 가중시켰다. 호남에는 새정치가 아무나 공천하면 다 된다고 여기는 오만한 집단이라는 인상을 심어줬을 뿐 아니라 권은희 스스로도 국정원 불법 대선개입 사건의 양심적 내부고발자로서의 순수성을 훼손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이런 공천을 둘러싼 복마전은 결국 사상 첫 새누리당의 전남지역 의석 확보라는 이변을 낳았다. 이정현이라는 정권 실세의 성공 가능성 만큼이나 서갑원 새정치연합 순천곡성 후보의 공천 역시 잡음이 많았다. 서 후보는 부적절한 '전력'으로 의원직을 상실했던 사람이었다. 

막판에 나름 극적이었던 서울 동작을 지역의 단일화도 전혀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다. 노회찬 후보는 나경원 후보를 맹추격했지만 결국 900표 차이의 한계를 넘지 못했다. 생채기 후에 이뤄진 단일화 효과가 빛이 바래는 순간이었다. 

일각에선 공천 과정이 아니라 더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한다. 과연 새정치연합이 ‘박근혜’라는 이름으로 우리사회를 지배해온 거대한 기득권 세력에 맞설 능력이 있느냐에 대한 회의론이 그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지난해 여름휴가 때 사진. 사진=박근혜 대통령 페이스북
 


돌이켜보면, 박근혜 정권은 취임 초기부터 인사파동에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불법공개 사건, 시국선언에다 심지어 무고한 시민 수백명이 수장되는 실황을 전국민이 목격하고 있는데도 단 한 명도 구하지 못했다. 무능하다는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참담한 권력집단이었다. 그런데도 새정치연합은 이런 국가비상사태에서 박근혜 정권을 대체할 만한 역량도, 이에 맞서는 순교자적 헌신과 자기희생의 진정성도 보여주지 못했다. 무슨 짓을 해도 30%는 박근혜를 지지할 것이라는 패배주의를 벗어나지 못한 채 1년 반 동안 끌려다녔다. 

이 때문에 시민들에게 야당으로서 뚜렷한 존재감을 보여주지 못했다. 이번 선거과정에서 각종 파동을 겪으면서도 선거운동하는 동안 두각을 나타낸 후보도 없었다. 거물이라는 이유로 손학규, 김두관을 내세웠지만 알려진 이름만으로는 유권자의 마음을 얻을 수 없다는 교훈을 심어준 선거였다.

이와 함께 각종 실정에도 다시 집권여당에 158석이나 안겨준 선거결과에 대한 우려도 나오고 있다. 온갖 정권의 악재에도 최악의 결과를 재생산하고 있다는 것이 확인된 이상 현재의 새정치연합으로는 야권을 재건하기 힘들다는 목소리도 제기된다. 다시 대중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는 진정한 환골탈태와 책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박근혜 정권의 국정쇄신을 촉구하기 전에 야권 스스로 전면쇄신할 수 있도록 지도부가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이 됐다. 

한편에선 이런 야권의 붕괴를 틈타 박근혜 정권이 일방 독주를 펴는 것 역시 역풍을 맞을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이번 선거의 투표율은 전체 유권자의 3분의 1도 되지 않는다. 투표에 참가하지 않은 3분의 2가 박 대통령을 지지해서 투표장에 나오지 않은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김한길(왼쪽) 안철수 새정치민주연합 공동대표.
이치열 기자 truth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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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인 동포, 자동차타고 MDL 통과한다

고려인 동포, 자동차타고 MDL 통과한다北, 국경 통과 승인..南, MDL 통과 승인할 듯
조정훈 기자  |  whoony@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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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07.30  18:4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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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러시아에 거주 중인 고려인 동포들이 자동차를 타고 지난 7일 러시아 모스크바를 출발, 오는 8월 15일 북측을 거쳐 MDL을 통과해 남측으로 들어온다. [사진제공-고려인 이주 15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

러시아에 거주 중인 고려인 동포들이 자동차를 타고 오는 8월 군사분계선(MDL)을 넘어 온다.

'고려인이주150주년기념사업회'(공동대표 이해찬, 정몽준)는 29일 보도자료를 통해 "역사상 처음으로 자동차를 몰고 직접 러시아와 북한을 거쳐 남북 군사분계선을 8월 15일 넘어서 올 예정"이라며 "우여곡절 끝에 북한 당국에서 승인을 내어줬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외교부는 MDL 통과 협조가 공식적으로 접수될 경우, 필요한 절차에 따라 최대한 지원하겠다는 입장이다. 통일부도 도라산 남북출입경사무소(도라산CIQ) 통과와 관련한 절차에 협조하겠다는 뜻을 밝혀, 고려인들의 MDL 통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 '유라시아 자동차 대장정' 이동 경로. [사진제공-고려인 이주 15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

'고려인 이주 150주년 기념사업' 일환으로 진행 중인 '유라시아 자동차 대장정'은 고려인 38명이 차량 11대를 이용 지난달 7일 러시아 모스크바를 출발,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즈스탄 등을 거쳐 러시아 동쪽 하산을 향해 이동 중이다.

이들은 다음달 8일 러시아 하산에 도착, 나진-하산 철도를 이용해 방북, 나진시에서부터 평양까지 차량으로 이동한다. 이어 다음달 14일 개성에 도착, 평화음악회를 가진 뒤, 15일 군사분계선(MDL)을 넘어 서울로 들어온다.

   
▲'유라시아 자동차 대장정' 일정표.  [사진제공-고려인 이주 15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

특히, 이들은 북측에 차량 3대를 기증할 예정이며, 오는 8월 교황방한 일정에 맞춰 18일 명동성당 미사에 참석한다.

이들 고려인들은 남측에서 서울시 환영행사 및 축하공연, 현충원 참배, 국회 및 국무총리 예방 등의 일정을 소화한 뒤, 부산을 거쳐 동해로 이동, 24일 러시아로 돌아갈 예정이다.

이와 관련, '고려인 이주 15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는 '유라시아 자동차 대장정'과 관련해 남측 행사에 동참할 참가자를 모집하고 있다.

모집내용은 서울에서 부산까지 고려인들과 함께 자동차 대장정에 동참하는 내용을 골자로 남측 1백여명, 차량 25대 등을 예상하고 있다. 참가 신청은 다음달 4일까지이며 신청문의는 '동북아평화연대'(1688-7050)로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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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기지 이전계획, 전면 수정되나?

<분석과전망>한반도군무력을 강화하려는 미국, 물 건너가는 자주국방
 
한성 
기사입력: 2014/07/30 [17:27]  최종편집: ⓒ 자주민보
 
 

한반도에 대한 미국의 군사적 움직임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고 있어 한반도정세전문가는 물론 군사전문가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주한미군 재배치 계획이 그것이다. 한미양국이 한미연합 전투부대를 창설하고 이를 경기 북부에 주둔시키는 방안을 적극 추진하겠다는 것이 그 구체이다. 지난 25일 최윤희 합참의장이 회의에서 결정한 사안이다.

세세한 내용까지도 흘러나왔다. 경기북부에 산재한 미 보병 2사단 중 포병여단과 한국군전방 부대 중 포병, 기계화 부대를 하나로 묶을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그것을 동두천이나 의정부 등 경기 북부에 주둔시킨다는 것이었다. 

여기에서 많은 사람들이 확인하는 것은 한미연합야전사령부의 부활이었다. 한미연합야전군사령부가 해체된 것은 지난 1992년이었다. 한미당국이 한미연합 전투부대를 창설하게 되면 22년 만에 한미양군당국이 전투임무를 함께 수행할 연합부대를 다시 만들어내는 것으로 된다.

주한미군재배치 계획은 여기에서 멎지 않았다. 용산기지 안에 있는 한미 연합사령부 역시도 서울에 잔류시키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 것이다. 29일 한민구 국방부 장관이 언급한 사안이다. 

이것들은 한미당국이 수립한 '용산기지이전계획'(YRP)과 '연합토지관리계획'(LPP)이 폐기되고 있음을 대단히 화려하게 보여준다. '용산기지이전계획'(YRP)과 '연합토지관리계획'(LPP)은 경기북부와 용산에 있는 모든 주한미군을 2016년까지 전부 한강 이남으로 배치되게 하는 계획이다. 

동두천 등 해당지역의 주민들에게서 거센 반발이 나올 것이 뻔하다. 미군기지가 떠나는 줄 알고 있었는데 왜 갑자기 계획을 철회시키냐면서 반발할 것이다. 해당 지자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뿐만 아니다. 정치권에서도 거센 반발이 나올 것이다.

국방부는 이를 의식하고 있다는 것을 금방 드러냈다. “미군기지 이전계획은 예정대로 진행할 것이다. 다만 한미 연합방어 수준을 최상으로 유지할 방안을 찾고 있는 것이다”라는 국방부의 입장이 대표적이다. 30일 SBS뉴스가 전하고 있는 내용이다. 

반발을 잠재우겠다는 수사이다. 형식적인 측면에서는 ‘미군기지 한강이남 철수’라는 명제는 수정 없이 유지한다는 것이었다. 예컨대, 동두천에 있는 미군기지를 우리 정부가 이양받고, 우리정부는 그 자리에 한미연합 부대를 주둔시키는 것이다. 형식적으로 보면 미군기지는 없다. 다만 미군만 있는 것이다. 국방부에서 부리는 기가 막힌 ‘꼼수’라는 말이 전문가들에게서 나오는 이유이다.

주한미군재배치 계획에서 그 누구도 우리나라의 군사력 강화 혹은 안보 강화를 읽지 못한다. 복잡할 것 없이, 이는 결코 군사력강화가 아니다. 안보강화도 아니다. 주한미군이 우리나라의 안보를 지켜준다는 것은 우리나라의 정치지형상 틀린 말은 아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동시에 미명이기도 하다. 그 미명을 스스로 깨지 않으면 언제까지고 우리는 우리의 안보를 미국의 우산에 맡기는 꼴이 된다. 미국의 우산에 의존하는 안보는 어떤 경우든 강한 안보가 아니다. 안보의 약화. 그것이 본질적 모습이다.

남에게 의존하지 않는 국방력을 흔히 자주국방이라고 한다. 2003년 참여정부가 출범 초기에 미국과 정상회담을 갖고 미군기지 한강이남 배치를 합의하면서 내세웠던 것도 이 자주국방이었다. 전시작전권을 당초 2012년에 돌려 받기로 합의했던 결정적 문제의식도 그 자주국방이라는 문제의식 때문이었다. 

그러나 자주국방에 대한 이러한 문제의식은 이명박 정부를 거쳐 박근혜 정부에 이르면서 점차적으로 약화되고 말았다. 비근한 예가 전시작전권회수문제이다. 2012년 회수되었어야했던 전작권이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시기를 2015년으로 연기했다. 이도 모자라 현 정부는 또 2022~2023년 정도로 재연기했다. 이것만으로도 ‘자주국방’이라는 문제의식은 완전히 소멸되었음이 확인된다. 

“국방정책이 걸핏하면 바꾸는 그 무슨 부동산정책이냐”
적지 않은 전문가들에게서 수도 없이 나왔던 지적이다. 그러나 국방정책을 부동산정책과 비교하는 것을 통해 그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은 현 시기 정세를 관통하지 못하는 문제 있는 관점으로 된다. 

많은 사람들이 주한미군기지 이전 계획이 주한미군재배치 계획으로 둔갑하는 것에서 확인하는 것은 미국의 아시아귀환정책의 한 구체이다. 

한국의 주한미군부대를 재배치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게 될 것으로 보이는 미국의 대한반도군사력공고화가 미국의 아시아귀환정책에 따른 것임을 두말할 나위가 없다. 결코 부동산정책이냐는 말로 비판할 문제가 아닌 것이다. 

최근에 미국이 태평양지역에 군무력을 강화하겠다고 발표한 것이 예사롭지 않게 보이는 결정적 이유이다. 

레이 마부스 미 해군장관이 28일 최신예·최현대식 장비를 태평양에 배치할 것이라고 밝혔다. 최첨단 스텔스 구축함을 태평양지역의 특정한 곳에 배치하는 것을 필두로 미국의 연안전투함(LCS) 32척 중에서 4척을 싱가포르에 그리고 일본 오키나와와 사세보에 현재 있는 상륙준비단 이외에 또 하나의 상륙준비단을 추가로 배치하겠다는 계획이 그것이다.

주한미군재배치 계획이 확정되게 된다면 그것은 결국, 주한미군 한강 이북 잔류 가능성을 높이는 일이다. 아울러 이는 2020년대 환수하게 된다는 전시작전권문제를 또 다시 흔들어놓을 요인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최근의 사드(THAAD)도입과 주한미군 기지 이전, 한미연합 부대 창설과 전시작전권 재연기는 하나의 패키지”
SBS가 30일 보도한 것으로 군 관계자가 밝힌 내용이다. 

“우리나라의 자주국방은 요원한 것인가?”
정치적 견해와 입장을 떠나 한반도정세전문가는 물론 군사전문가들이 일치되게 내놓고 있는 말이다. 일종의 탄식이다. 
한미 국방장관이 참석하는 가장 급 높은 회의체가 한미안보협의회(SCM)이다. 8월과 9월이 지나 10월에 있게 될 SCM에 많은 사람들이 벌써부터 주목을 보내고 있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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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외 감옥에 갇혀 사느니 존엄한 죽음을 선택하겠다"

가자에서: 야외 감옥에 갇혀 사느니 존엄한 죽음을 선택하겠다.

게시됨: 업데이트됨: 

 

가자는 살기가 매우 힘든 곳이다. 포위된 작은 면적에 인구는 넘쳐난다. 그러나 사람들은 친절하다. 또 먹거리가 일품이고 해변이(약간 지저분하지만) 있어서 자유가 있는 듯한 착각을 주민에게 준다. 또 이스라엘의 전투함이 앞바다에 수없이 떠 있는 사이로도 석양의 아름다움은 부인할 수 없다. 거리를 거닐다 보면 주로 아이들로 이루어진 거리의 행상인을 만날 수 있다. 그리고 택시를 한 번 탑승해보라. 아마 하차하기 전에 새로 만든 친구, 즉 택시기사와 서로 전화번호를 주고받는 사이가 될 것이다.

시장은 완전 카오스인데 실로 오감을 자극하는 경험을 할 수 있다. 교통혼잡시간이라고 해 봤자 UNRWA(국제연합난민구제사업국학교)나 바르셀로나 또는 레알마드리드 로고가 붙어있는 티셔츠를 입은 어린 학생들이 하교 후에 집에 가기 위하여 길에 쏟아져나오는 모습이다. 그걸 보면서 난 가자의 인구가 얼마나 젊은지 깨닫는다. 밤거리도 대낮만큼 활발하다. 해변이나 카페에서 물담뱃대를 물고 시샤를 피우는 모습 아니면 가족과 함께 느긋하게 쉬는 모습이 여기저기서 보인다. 즉, 가자인도 보통 인간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제 이런 모습을 더는 볼 수 없다. 길거리는 물론이고 해변도 삭막 그 자체다. 학교는 죽음을 피해 좀 더 안전한 곳을 찾는 수많은 난민의 임시처소로 변하였다. 아름다운 삶의 음향이 끔찍한 사망의 비명으로 바뀌었다. 무인 항공기는 공중에서 감시하고 제트 전투기는 큰소리로 허공을 찌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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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몸에 국기를 두른 한 팔레스타인 남성이 이스라엘 군의 폭격으로 폐허가 된 가자시티의 한 지역을 지나고 있다. ⓒAFP

 

늘 저만치에 폭탄 사례가 있다. 하지만 '저만치'라는 말은 매우 상대적인데 바로 집 앞의 폭발로 창문이 깨지고 내 심장도 자신의 놀란 고함에 깨질 수 있다. 순간적으로 겨우 목숨을 건졌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런데 그렇다면 누군가는 죽었다는 소리 아닌가. 이런 일이 하루에 수없이 반복되고 결국은 지쳐서 집안 한 어두운 구석에 몸을 구겨 부근에 계속 떨어지는 미사일과 폭탄이 자신을 못 찾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잠을 청한다.

어디로도 도망칠 수 없는 가자의 주민은 이스라엘의 공격을 다시 한 번 받고 있다. 6년 사이에 세 번째다. 미사일이 민간인의 집을 맞추면서 온 가족이 단번에 사라진다. 한꺼번에 식구 25명이 죽은 사례나 또 다른 가족에서 18명이 비슷하게 사망한 것을 어떻게 달리 표현할 수 있겠는가. 무슨 이유도 없이 가장 가난하고 사람이 들끓는 지역에 퍼붓는 끊임없는 폭탄 세례와 피해자들을 구하기 위한 구급차나 민간보호단체의 접근을 막는 그런 행동은 또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민간인은 겨냥하지 않는다."고 이스라엘 측은 말한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소리는 만약에 정상인이라면 이렇게 반박해야 한다. "간단히 말해서 거짓말을 하고 있군."이라고 말이다. 이스라엘은 최첨단의 정교 무기로 현재까지 약 1,000명의 목숨을 앗아갔으며 그중에 80%가 민간인이라고 인권단체들은 추측한다. 그 중에 약 200명이 어린아이인데 그들 일부는 목이 잘리고 내장이 터지고 완전히 까맣게 탔다. 또 한 NBC 기자 아이먼 모헤딘은 이스라엘 전투함이 쏜 미사일을 맞은, 해변에서 놀던 바쿠르 가족의 어린이 4명이 그 자리에서 즉사하는 것을 직접 목격하였다. 또 입에 담기조차 어려운 대학살의 현장 알 슈자이예(Al Shujayah)에서는 사건 후 잃어버린 사촌 형제를 그 잿더미에서 찾겠다고 헤매며 돌아다니던 젊은이 하나가 저격수의 총알을 맞고 죽는 비극에 비극을 더 하는 일이 있었다.


 

이스라엘의 무인 항공기는 아침 식사로 요거트를 사러 나온 아리프 가족의 두 형제를 미사일로 죽였다. 또 닭과 비둘기 먹이를 주러 자기 건물 지붕 위에 서 있던 어린아이 셋도 미사일에 맞아 목숨을 잃었다. 세계에서 가장 인구밀도가 높은 지역에 수천 톤의 폭탄을 떨어뜨린 이스라엘의 무력에 희생된 사람들은 아래 또 있다. 한 번의 공습으로 아부자메 가족의 26명이 죽었다. 알 나자 가족은 20명을 잃었고 알 바치 가족은 18명알 카사스 가족은 9명, 알 케일라니 가족은 7명, 카와레 가족은 8명, 하마드 가족은 5명, 등 죽음의 행렬은 계속된다. 안락한(?) 내 집에서 죽음을 기다리는 우리에게 들려오는 이야기가 바로 이런 거다.

휴전이 결정될 수도 있다. 그런데 하마스 쪽에서 대포 발사를 중단한다면 이스라엘도 가자와 웨스트뱅크의 팔레스타인 주민을 겨냥한 지속적인 폭력을 중단할 것인가? 이스라엘 정치인들이 말로는 뭐라고 하던 현실은 팔레스타인 측에서 무력항의를 중지한다고 이스라엘이 이 지역 점령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거다. 폴란드 바르샤바 게토에 포위되었던 유대인들은 "존엄성을 유지하면서 살다 죽겠다."고 하였었다. 현재 게토에 포위되어있는 나는 팔레스타인인들이 이런 보편적인 개념을 참 잘 지켜왔구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우리는 정복을 반대하는 자세로 존엄성을 유지하며 살고 또 존엄성 속에서 죽는다.

우린 전쟁에 지쳐있다. 적어도 나는 피의 장막과 죽음, 그리고 온갓 파괴에 진절머리가 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뿌리 깊은 부당한 예전의 상태로(Status quo) 돌아간다는 것은 더 받아드릴 수 없다. 더는 이 야외 감옥에 존재하는 것에 동의할 수 없다는 뜻이다. 더는 인간의 기본 권리를 무시하는 인간 이하로 취급받는 행태를 용납할 수 없다. 우리는 완전히 고립되었다. 두 죽음의 사이에. 이스라엘의 폭격에 의한 죽음과 이스라엘이 가자를 가로막아서 죽을 수밖에 없는 그런 상황에 말이다.

아무 때나 가자를 들락거릴 수 있는 자유를 요구한다. 우리 학생이라고 왜 원하는 해외대학에 가서 공부할 수 없느냐 말이다. 가자 바깥에서의 치료를 막는 이스라엘 때문에 주민들이 죽는 게 말이 되는가? 어업 종사자들은 총에 맞아 죽임당할 걱정 없이 바다에서 일하고자 한다. 물과 전기 같은 가장 기본적인 것들이 충족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런 모든 것이 불가능한데 그 이유는 이스라엘이 우리를 점령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젠 우리의 땅만 점령한 게 아니라 우리의 몸과 운명까지 점령하려고 한다. 이런 불합리는 그 누구도 용납할 수 없다. 우리도 사람이기 때문에...

* 이 글은 가자지구에 거주하고 있는 인권운동가 Mohammed Suliman가 허핑턴포스트US에 기고한 블로그 글을 번역한 것입니다.

원문 : From Gaza: I Would Rather Die in Dignity Than Agree to Living in an Open-Air Prison

가자지구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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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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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만에 ‘박근혜 마케팅’ 없이 선거 치르는 새누리

등록 : 2014.07.29 20:24수정 : 2014.07.30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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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오른쪽)와 대전 대덕에 출마한 정용기 후보(왼쪽)가 22일 오전 대전 회덕역 앞에서 공약을 발표하고 있다. 대전/김경호 기자 jijae@hani.co.kr

박 대통령 당 위기 때마다 힘 됐지만
당보다 낮은 지지율 탓에 언급 줄여
앞으로 지지율 반등 어렵단 전망에
‘선거의 여왕’ 없는 선거 지속될 듯

새누리당은 7·30 재보선 하루 전인 29일 아침 수원에서 최고위원회를 열었다. 김무성 대표는 “수원의 발전을 위해서는 집권여당의 힘이 꼭 필요하다”며, 민생경제, 지역일꾼, 경기부양책, 경기회복 등 경제 관련 단어를 반복적으로 사용했다. ‘박근혜’라는 단어는 거의 입에 담지 않았다. “박근혜 정부 3년 7개월 남은 임기 동안 민생경제 활성화로 서민들의 주름살을 펴드릴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당부하는 정도에 그쳤다.

 

7·30 재보선의 뚜렷한 특징은 ‘박근혜’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당 지도부는 빨간 카우보이 모자를 쓰고 반바지를 입는 등 파격적인 장면을 연출하면서도 박근혜 대통령을 팔지는 않는다. 심지어 후보들의 유세 차량에서 박근혜 대통령 사진을 찾아보기도 힘들다. 6·4 지방선거 때 새누리당 지도부나 후보들이 ‘박근혜 마케팅’에 몰두하던 것과는 전혀 다른 풍경이다. 왜 그럴까?

 

박근혜 대통령이 24일 오전 정부세종청사에서 주재한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순국선열에 대한 묵념을 하고 있다. 세종/청와대사진기자단
박근혜 대통령 지지율이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7월 초부터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도가 새누리당 정당 지지도보다 낮은 여론조사 결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이렇게 분석했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부정적 평가가 50%를 넘어선 현실을 새누리당이 정확히 포착해 대응하고 있다. 2012년 총선에서 유권자들은 새누리당의 빨간 옷만 보고도 변화를 믿어줬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새누리당의 변화 이벤트가 계속 성공을 거두고 있다. 반면에 야당의 세월호 심판론은 지방선거에서 이미 소진된 쟁점이다. 경제 살리기와 세월호 심판론이 맞붙으면 경제 살리기가 유리하다. 여당의 제스처는 놀라울 정도로 현란한데 야당은 너무나 미숙하다.”

 

‘박근혜 마케팅’이 사라진 것은 일시적인 것일까, 지속적인 것일까? 새누리당 사람들은 박근혜 대통령 지지도가 다시 올라기기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현직 대통령으로서 앞으로 선거에 직접 개입하기도 어렵다고 본다. 지속적이라는 얘기다. 이런 현상은 정치사적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10년 동안 ‘선거의 여왕’이었다. 탄핵역풍 속에서 치러진 2004년 총선 당시 그는 손에 붕대를 감고 한나라당 의석 121석을 방어했다. 2006년 지방선거에서는 얼굴에 칼을 맞고 압승을 이끌어 냈다. 2012년 총선을 앞두고 한나라당이 위기에 처하자 그는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아 당명을 바꾸고 색깔도 바꾸었다. 새누리당은 예상을 깨고 152석을 차지했다.

 

신화는 대통령 당선 이후에도 계속됐다. 6·4 지방선거에서 서병수 부산시장, 유정복 인천시장, 남경필 경기지사, 김기현 울산시장, 원희룡 제주지사가 탄생한 것은 박근혜 대통령의 사전 교통정리가 아니면 설명이 되지 않는다. 선거의 여왕이 수렴청정을 한 셈이다.

 

반면에 그가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은 선거는 예외없이 부진했다.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10년 지방선거와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가 그런 경우다.

 

박근혜 대통령이 유난히 선거에 강한 면모를 보이는 이유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이라는 특수한 신분, 대중적 인기와 카리스마, 민심을 꿰뚫어보는 혜안과 진정성 등을 꼽을 수 있다. 그러나 시작에는 끝이 있는 법이다. ‘선거의 여왕’ 신화도 이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가고 있는 것이다.

 

성한용 선임기자 shy99@hani.co.kr

 

 

특집 정치토크, 7.30 재보선을 말하다 [성한용의 진단 #2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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