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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시장님, '박정희 기념관 부지 매각' 유감입니다

 

[공개편지] 박정희 기념관, 약속과 달리 도서관 운영 안해... 꼼수 매각 철회해야

14.07.20 19:42l최종 업데이트 14.07.21 10:04l

 

 

저는 상암동의 한 초등학교에 아이를 보내고 있는 학부모입니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박원순 시장과 혁신학교를 공약으로 내세운 교육감의 당선을 누구보다 기뻐했던 사람 중 하나입니다. 그런 제가 이런 공개 편지를 보내게 되어 유감입니다.

시장님께서도 잘 아시겠지만, 상암동 월드컵파크 3단지 옆, 난지천공원 앞에 있는 상암동 1693번지 부지에는 박정희대통령기념·도서관(아래 박정희기념관)이라는 이름의 건물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박정희기념관 부지를 서울시에서 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아래 박정희기념재단)에 매각한다는 이야기는 지난해부터 흘러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서울시민과 마포구민의 관심 부족 때문이었을까요? 지방선거 끝나고 2주일이 지난 6월 18일 서울시가 이 부지를 박정희재단 측에 매각하는 것을 공식적으로 결정했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서울시는 매각을 위한 감정평가를 진행중이라고 합니다. 사용허가를 취소해도 시원치 않을 판국에 부지 매각이라니요? 박원순 시장님, 박정희기념관 부지 매각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DJ 정부 시절 역사와의 화해 차원으로 추진된 박정희기념관 건립 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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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오후 1시반 서울시의회 개원에 맞춰 본관 앞에서 <상암동 ‘’을 공공도서관으로! 마포공동행동(준)>과 <민족문제연구소>가 함께 박정희 기념관 부지 매각 철회를 요구하는 피켓 시위를 벌였다.
ⓒ 마포공동행동(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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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님께서도 잘 아시겠지만, 이 문제는 1999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 해 5월 김대중 대통령은 역사 화해 차원에서 박정희기념관 건립 지원 의사를 밝힙니다. 그리고 박정희대통령기념사업회(박정희기념재단의 전신)는 서울시에 부지 지원을 요청합니다. 당시 상암택지개발사업을 계획 중이던 고건 시장은 상암동의 현 부지를 제공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런데 당시 박정희기념관 건립에 대한 반대 여론이 만만치 않았습니다. 200억 원이 넘는 국고보조금까지 지원된다는 소식에 250여개의 민간단체와 시민들이 '박정희 기념관 반대 국민연대'를 결성하기도 했습니다.

이같은 반대 여론에 부담을 느낀 당시 서울시는, 시 소유의 부지를 무상으로 제공하되 그 위에 세운 건물을 기부채납받는 형식으로 해 국민의 비판을 피해가려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2001년 12월 31일 서울시와 박정희기념재단 측은 아래와 같은 내용의 협약서를 체결하게 됩니다.

<전략>
2. 건축물의 용도는 공공도서관 및 전시관, 기타 부대시설로 하며 건축면적은 2,145㎡ 내외로 한다.
3. 건축을 위하여 "갑"(서울시)은 "을(박정희기념재단)에게 필요한 토지사용을 승인한다.
4. "을"은 건물을 완성함과 동시에 시설 일체를 "갑"에게 기부채납하여야 한다.
5. "갑"은 기부채납된 일체의 시설을 "을"에게 위탁하여 관리토록 한다.
6. "을"은 제5항에 의해 관리 위탁된 모든 시설을 「서울시도시공원조례」가 정하는 바에 따라 전담(專擔) 운영하고 관리한다.
<후략>

한 마디로 말해 서울시는 토지를 무상으로 제공하고, 재단 측이 그 토지 위에 건물을 지은 후 서울시에 기부채납하면, 시가 이 건물을 재단 측이 위탁관리할 수 있도록 하는 권리를 준다는 것입니다. 재단 측은 토지를 무상으로 제공받아서 좋고, 서울시에서는 건물에 대한 소유권을 갖게 됨으로써 '재단에 특혜를 준다'는 비판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그런 과정을 거쳐 2002년부터 박정희기념관 건립 공사가 시작되었습니다. 물론 그 이후 국고보조금 교부 결정이 취소되기도 하고, 이에 반발하여 재단 측이 소송을 제기하는 법적 공방이 오가기도 했습니다. 결국 재단 측이 법적 공방에서 승리함으로써 2010년 3월 공사가 재개되고 국고가 지원되어 마침내 2011년 11월 박정희기념관이 완성되었습니다.

여기서 시장님께서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바로 협약서 2항과 3항입니다. 2항은 '공공도서관과 전시관, 기타 부대시설'로 건축물의 용도를 명시하고 있습니다. 2항의 연장선에 있는 3항은 그같은 조건 하에서 서울시가 재단 측에 토지사용을 승인한다는 내용입니다. 공공도서관으로의 건축물 용도 협약을 지키지 않으면 토지사용 승인 역시 취소가 될 수 있다는 것을 협약서는 명확히 규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운영비 지원과 위탁관리 기간 문제, 부지 매매로 해결하려 시도

2011년 11월 완공된 박정희 기념관은 그 다음해인 2월 21일 개관합니다. 그러나 재단 측은 서울시가 도서관 운영비를 지원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2층의 절반과 3층의 전체에 해당하는 공공도서관 공간을 폐쇄하고 전시관만 개관하는 파행적 운영을 하게 됩니다. 2014년 7월 14일 현재까지도 도서관 공간은 폐쇄되어 있습니다. 그 경과 과정은 아래와 같습니다.

완공 후 재단 측은 2001년 협약서 내용대로 2012년 2월에 기부채납을 신청합니다. 그리고 별도로 공공도서관 운영비를 지원해 줄 것을 서울시에 요청합니다. 그러나 서울시가 이를 거부하자 재단 측이 재정 문제를 핑계 삼아 공공도서관을 폐쇄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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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정희 기념관 파행 운영 관련 일지 박정희기념재단측이 공공도서관을 폐쇄한 채 전시관만 운영한 것은 명백히 2001년 협약서 위반이다.
ⓒ 장창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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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는 이같은 상황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어떤 제재를 가하지도, 시정을 요구하지도 않았습니다. 통합진보당 오병윤 의원실에 따르면, 위 일지에서 언급한 내용 외에 서울시가 재단 측과 어떤 내용의 공문도 주고 받은 게 없다고 밝혔다고 합니다. 이에 서울시 임대주택과 담당자는 "기부채납절차가 끝나야 관리에 대해 개입할 수 있는 자격이 생긴다, 그 전에는 소유주가 재단 측이기 때문에 관여할 수 있는 여지가 없다"고 해명했습니다.

애초 협약대로 개관 1년 후인 2012년 2월 재단은 시에 기부채납을 신청합니다. 그러나 시유지를 무상으로 영구사용하는 것에 대한 특혜 비판은 계속 이어졌습니다. 재단 측도 서울시도시공원조례 개정에 따라, 기부채납이 받아들여서 영구위탁을 받더라도 10년마다 심사를 받는 것에 부담을 느꼈을 것입니다.

재단 측은 2013년 2월 '당초 기념과 건립 목적과 취지에 충분히 부합되고 기념과 사업이 영구히 발전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라는 명분으로 해당 부지 매입 의사를 피력합니다. 비록 부지를 감정평가액대로 주고 사야하는 재정적 부담은 있지만, 공공도서관을 운영하도록 규정하고 있는 2001년 협약서의 제약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연면적 5000㎡가 넘는 3층 건물을 누구의 제재나 간섭을 받지 않고 사용할 수 있게 되는 거죠. 따라서 부지 매입은 재단 측의 '신의 한수'였습니다.

그런데 박원순 시장 체제 하에서의 서울시가 재단 측의 매입 의사를 수용한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2001년 서울시와 재단 측이 체결한 협약은 서울시민을 대리하여 서울시가 맺은 협약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바로 그런 성격의 협약이었기 때문에 '공공도서관'이 협약서에 명기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서울시는 서울시민 혹은 서울시민을 대표하는 서울시의회의 어떤 동의 절차도 거치지 않고 시유지 매각 입장을 재단 측에 천명했습니다. 마포공동행동(준) 등 시민단체가 박정희기념관 부지 매각 문제를 서울시의회에서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입니다.

기념관 파행 운영에는 서울시 책임도 커

기념관 파행 운영은 운영권을 갖고 있는 박정희재단 측에 더 큰 책임이 있음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공공도서관을 폐쇄한 채 전시관만 운영하는 것은 2001년 협약서 위반이며, 이는 서울시민을 우롱하는 행위입니다. 그러나 이같은 파행적 운영의 책임에서 서울시 역시 자유로울 수는 없습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서울시는 비록 재정적 이유를 내세웠더라도 재단 측이 '의도적으로' 공공도서관을 폐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방치했습니다. 기념관은 2012년 2월 21일 개관 첫날부터 파행적으로 운영되었습니다.

그로부터 8개월이 지난 그 해 10월 23일 서울시가 재단 측에 보낸 공문을 보면, 서울시 역시 이같은 파행적 운영의 문제를 알고 있었고, '협약서 위반'이라는 표현도 공문에 등장했습니다. 그러나 실제적인 어떤 대책도 세우지 않은 것에 대해 '기부채납 받기 전이라 운영에 간섭할 자격이 없다'는 서울시 해명만으로는 쉽게 납득이 가지 않습니다.

둘째, 서울시가 시유지를 무상으로 제공, 박정희재단 측에 특혜를 주고 있다는 비판 여론이 일자 서울시는 2013년 12월 2일 "현재 기부채납 절차를 이행 중으로 아직 건축물의 소유권이 기념재단 측에 있어 건물사용료 부과도 미성립됨으로써, 특혜라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라는 해명자료를 냈습니다.

그러나 오병윤 의원실이 낸 자료에 따르면, 이미 서울시는 5개월 전인 7월 10일 175억 감정가격으로 부지 매각 의사가 있음을 박정희 재단 측에 공문으로 피력한 바 있습니다. 그런데도 '기부채납 절차가 진행 중'이라고 한 서울시의 해명을 어떻게 봐야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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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시 공유재산 및 물품관리조례 서울시 조례에는 사용수익허가부에 명시되어야 할 항목이 구체적으로 명시되어 있다. 서울시는 2001년 협약서가 사용수익허가부를 대체한다고 주장하지만, 2001년 협약서에는 이런 구체적인 내용이 결여되어 있어 사용수익허가부를 대체될 수 없다.
ⓒ 장창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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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박정희재단 측의 파행적 운영을 사실상 방조하는 서울시 행정의 법적 하자가 존재합니다. 2014년 3월 28일 서울시가 오병윤 국회의원실에 제출한 답변서에 따르면 "건축물의 기부채납을 전제로 시유지의 무상사용을 목적"으로 하고, "기념재단 측의 건축물 건립 및 건축물 기부채 절차 이행 과정의 토지사용에 대하여도 협약서(2001년)에 의거 허가"되었기 때문에 별도의 사용허가서가 존재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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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1년 협약서 서울시와 박정희기념재단(당시 기념사업회)가 체결한 협약서 사본이다.
ⓒ 장창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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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서울시 공유재산 및 물품관리조례' 19조와 20조에 의하면 서울시는 공유재산 사용·수익허가부를 반드시 작성하고, 이를 보존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서울시는 2001년 협약서가 사용·수익허가부를 대체한다고 주장하지만 협약서에는 위 조례 19조에서 규정하고 있는 사용 목적에 대한 사항이 전혀 존재하지 않으며, 건축물의 용도만 규정하고 있습니다.

기념관 부지 매각이 갖는 법적 절차와 역사 의식의 문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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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일 서울시청사 앞에서 박정희 기념관 매각 철회를 요구하는 1인 시위를 진행했다.
ⓒ 마포공동행동(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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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행정도, 법률·규정도 잘 모릅니다. 그런 문외한인 제가 봐도 박정희기념관과 관련한 서울시의 행정은 쉽게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먼저 부지 매각이 갖는 법적 문제점부터 지적해 보겠습니다.

서울시 홈페이지에 공개되어 있는 시유지 매각 절차에 따르면, '매각신청서 접수→현장 확인→매각 방침 수립→공유재산심의위원회 심의→공유재산관리계획반영(의회의결)→감정평가→예정가격 결정→경쟁입찰'의 순서를 밟아야 합니다.

그러나 현재 서울시가 추진하는 박정희기념관 부지 매각은 공유재산심의위원회와 공유재산관계계획에 대한 의회 의결을 거치지 않았습니다. 또한 서울시와 재단 측 사이에 오고 간 지난 공문들에 의하면 '경쟁입찰'이 아닌 '수의계약'으로 매각한다는 방침을 서울시는 갖고 있습니다. 이같은 과정들의 적법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고 싶습니다.

부지 매각이 갖는 더 큰 문제가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역사에 대한 문제입니다. 문창극 전 국무총리 후보자의 친일 역사 발언으로 우리 사회에서 역사 청산의 과제가 또 다시 화두가 되었습니다. 백번 양보해 박정희 독재 시절 한국 경제의 일대 발전이라는 '공'은 인정하더라도, 박정희 시대의 군부 독재 정치 그리고 박정희 '대통령'의 친일 행적에 대한 '과'는 전혀 평가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한국 사회의 현실입니다.

독재기념관보다 공공도서관으로... 시장님의 결단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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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가 서울시의회의 어떤 동의 절차도 거치지 않고 시유지 매각 입장을 재단 측에 천명한 것과 관련, 마포공동행동(준) 등의 시민단체가 의회에서 논의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 마포공동행동(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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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시장님. 혹시 박정희기념관을 가보셨는지 모르겠습니다. 군부 독재를 미화하는 갖은 문구와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을 뿐입니다. 그나마 위안이 되었던 것은 박정희기념관의 절반이 공공도서관이라는 것 하나였습니다.

박정희재단은 운영비 부족으로 '공공도서관' 공간을 3년 동안 폐쇄하고 운영해 왔습니다. 그런 재단이 부지를 매입한 후 '공공도서관'을 운영할 리 만무합니다. 부지 매각은 '박정희기념관'을 '박정희독재찬양기념·도서관'으로 가는 길을 열어주는 것입니다.

기념관을 짓는데 200억 원이 넘는 국고가 들어갔습니다. 재단 측은 협약서를 지키지 않고서도 3년 동안(공사기간까지 포함하면 10년 훨씬 넘게) 시유지를 무상으로 사용하였습니다. 공사 기간까지 포함해 10년이 훨씬 넘는 기간 동안 사용료를 받았다면 그 액수 역시 상당할 것입니다. 서울시가 부지를 매각한다면 이는, 요즘 유행하는 말로, 재단 측의 '먹튀'를 돕는 꼴이 됩니다.

많은 서울 시민들이 박원순 시장의 재선에 기뻐하였습니다. 그러나 부지 매각은 박원순 시장의 시정에 커다란 오점이 될 것이 분명합니다. 박원순 시장의 결단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독재기념관보다 공공도서관이 우선인 서울을 만들어 주십시오. 그 첫 걸음은 부지 매각 결정을 철회하는 것입니다. 박원순 시장님의 결단을 촉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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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유가족의 단식농성과 집회를 보도하지 않는 언론

 
칼럼홈 > 임병도  
 
 
 
‘세월호 특별법’을 왜곡해야 하는 가장 큰 이유
 
세월호 유가족의 단식농성과 집회를 보도하지 않는 언론
 
임병도 | 2014-07-21 08:23:24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세월호 유가족들이 세월호 특별법 관련 단식 농성에 들어간 사이, 보수단체라고 주장하는 '엄마부대 봉사단'은 농성장에 찾아와 '세월호 특별법 의사자 지정' 문제를 놓고 유가족을 비난했습니다. 

'엄마부대 봉사단'은 '세월호 특별법 제정 반대' 집회를 통해 세월호 유가족들의 단식 농성이 정치적 목적을 가진 도가 지나친 요구라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엄마부대 봉사단'의 이러한 주장이 합당한지,  세월호특별법이 과연 어떤 법안이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 의사자 지정? 단 한 건의 제안에 불과' 

세월호에 관련되어 7월 21일 현재까지 국회에 올라와 있는 의안 (법안)은 총 18건입니다. 
 

 

 

 

발의된 18건 중에서 여야 국회의원 결의안, 국정조사 질의에 관한 내용, 안전행정위원회 내용 등을 제외한 순수 세월호 관련 법안은 13건입니다. 

현재 세월호 특별법 중에서 '의사자' 관련 내용이 올라온 건은 13건 중 단 한 건에 불과합니다. 전해철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발의한 '4.16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및 피해자 지원 등에 관한 특별법안에만 이 내용이 들어가 있습니다. 

13건의 법안 중에서 '의사자'라는 조항 하나가 들어갔다고 해서 유가족이 과도한 요구를 하고 있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이 부분은 전체 법안을 살펴보면 쉽게 이해됩니다. 
 

 

 

가장 먼저 피해자 배상금 관련 문제는 새누리당이 발의한 법안이 가장 많았습니다. 새정치민주연합,통합진보당,정의당 의원들이 발의한 (대표발의와 공동대표에 3당 의원 모두 포함) 피해 보상 내용은 금전적인 문제보다는 생활밀착형 피해 보상이 주를 이루었습니다. 

특히 야당의원들이 발의한 추모공원,추모비 건립 등은 피해자 단체의 의견을 수렴 후 결정하겠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또한, 대학입학 특례 혜택은 야당 의원뿐만 아니라 새누리당 의원도 발의했습니다. 

야당 의원들이 중점적으로 제기하고 있는 항목은 바로 '사법경찰' 등을 통한 '사법권'입니다.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를 구성해야 한다는 야당 의원들은 조사관들이 사법경찰 관리의 직무를 수행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세월호특별법은 '사법권'이 주요 쟁점이지, '의사자 지정'이 주요 쟁점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 세월호 유가족의 단식농성과 집회를 보도하지 않는 언론' 

세월호 참사 피해가족들은 '세월호 특별법'을 위해 국회에서 단식농성을 벌이고 있습니다. 새누리당과의 협상 결렬 이후 지지부진한 세월호 특별법을 위해 7월 19일 오후 시민 1만5천명이 서울광장에서 촛불을 들었습니다. 
 

 

 

SBS는 7월 19일 8시 뉴스에서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범국민대회'가 서울광장에서 열렸다고 보도했습니다. 

비록 24초간의 짧은 소식이지만, 참가자들이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과 재발 방지를 위해 세월호 특별법을 조속히 제정할 것을 촉구했다'고 보도했습니다. 

그러나.....
 

 

 

MBC와 KBS는 7월 19일 오후에 열린 서울광장 집회 소식을 단신조차도 보도하지 않았습니다. 세월호 특별법 제정은 세월호 참사의 재발 방지와 마무리를 하는 중심에 서 있는 아주 중요한 내용이지만, MBC와 KBS는 아예 보도조차 하지 않은 것입니다. 

길환영 사장 퇴진 이후 보도의 공정성이 점차 나아지고 있다고 하지만 실제 중요한 사안에서는 KBS는 침묵을 지키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언론은 이렇게 '세월호 특별법' 관련 뉴스에 소극적일까요? 

' 비밀누설금지, 수사권 없는 유명무실한 특별법' 

세월호 특별법을 통해 우리가 해야 할 의무는 첫째는 진상규명과 처벌이고 두 번째는 재발 방지입니다. 이 두 가지를 충족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진실에 대한 공개와 규명이 필요합니다. 
 

<세월호 4.16사고 반성과 진상조사 및 국가재난방지체계 혁신을 위한 특별법안>
- 대표 발의 서청원 등 새누리당


제 5조 (세월호 4.16사고 관련 자료의 수집 및 분석)

② 위원회는 제1항의 자료수집을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는 관계 행 정기관 또는 단체에 관련 자료의 제출을 요구할 수 있다.이 경우 요구를 받은 관계 행정기관 또는 단체는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이에 따라야 한다. ③ 관계 행정기관 또는 단체는 세월호 4․16사고 관련 자료의 발굴및 열람을 위하여 필요한 편의를 제공하여야 한다.

진실규명을 위한 자료 수집과 제출은 당연한 일이지만, 새누리당 의원들이 발의한 '세월호 4.16사고 반성과 진상조사 및 국가재난방지체계 혁신을 위한 특별법안> 제5조를 보면 자료의 발굴과 열람을 단순히 편의를 제공해야 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진실 규명을 위한 자료 제출은 필수지만, 만약 특별한 사유가 있다면 제출하지 않아도 된다는 항목이 있기에 관련기관이 자료 제출을 거부해도 가능합니다. 현재의 법률로 이들을 처벌할 규정이 명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료제출은 해도 되고, 안 해도 그만이라고 해놓고서는 '비밀누설 금지'라는 항목은 처벌 조항까지 포함되어 있습니다.  
 

<세월호 4.16사고 반성과 진상조사 및 국가재난방지체계 혁신을 위한 특별법안>
- 대표 발의 서청원 등 새누리당


제15조(비밀누설의 금지)위원회의 위원이나 그 직(職)에 있었던 사람 은 업무상 알게 된 비밀을 누설하여서는 아니 된다. 

제16조(벌칙)제15조를 위반하여 비밀을 누설한 사람은 3년 이하의 징 역 또는 3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새누리당이 발의한 세월호 '4.16사고 반성과 진상조사 및 국가재난방지체계 혁신을 위한 특별법안' 제일 마지막에는 비밀누설 금지 등의 항목이 있고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의 벌금까지 포함하는 벌칙까지 있습니다. 

강제적인 자료 제출 의무가 없어, 세월호 참사의 규명을 위해 공익제보자가 진실을 밝히면 오히려 처벌받는 시스템이 새누리당이 제출한 세월호 특별법입니다. 
 

 

 

심재철 새누리당 의원이 세월호특별법 제정에 반대하는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내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심재철 의원이 보낸 메시지를 보면 '학교 수학여행을 가다가 개인회사의 잘못으로 희생된 사건을 특별법을 만들어 보상해달라는 것은 이치에도 어긋나는 것이다'라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 메시지를 보낸 사람이 현재 세월호 국정조사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심재철 새누리당 의원이라는 사실입니다. 

심재철 의원은 그저 반대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서라고 하지만 실제 지금 우리가 논의해야 할 주요사안은 '자료제출','사법권','특별 재판소' 등을 통한 절차와 법적인 문제입니다. 
 

 

 

2013년 3월 심재철 의원은 누드 사진 파문을 겪었습니다. 당시 심재철 의원은 누군가 카톡 메시지로 보내와서 누드 사진 목록을 검색했다고 변명했습니다. 

2014년 7월 세월호 특별법 관련 여론 수렴을 위해 카톡 메시지를 보냈다고 변명했습니다. 심재철 새누리당 의원을 보면 문제의 대부분이 카톡 메시지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국회의원은 스마트폰으로 여론을 수렴하는 자리가 아닙니다. 국회 밖에서 단식하며 울부짖는 유가족을 만나고, 여야 국회의원을 만나 '의사자 지정',' 사법권',' 특별재판소','비밀누설 금지' 등의 조항을 어떻게 조율하고 합의를 해서 진실을 규명하고 재발 방지를 하느냐를 고민하는 자리입니다. 
 


세월호 특별법을 둘러싼 오해의 근원은 국회가 제대로 그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새누리당은 세월호 참사를 위한 진실규명과 법적 처벌을 두려워하고 있음을 '세월호 특별법'을 통해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새누리당과 자칭 보수 단체는 진실을 알리지 않기 위한 장치를 철저히 준비하고, '배상금(돈)'과 '의사자' 문제로 세월호 특별법을 물타기 하고 있습니다. 

정치논리와 권력욕에 휩싸여 아이들이 왜 죽었는지 밝혀내지 못한다면, '살고 싶다'고 외치던 우리 아이들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13&table=impeter&uid=5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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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선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4.07.21 07:42:09

 

 

 

 

 

 

 

 

 

 

 

세월호 참사 100일을 앞두고 집권여당의 민낯이 다시 드러났다. 새누리당 조원진 의원은 세월호 침몰 사고를 조류독감(AI)으로 폄하했으며, 세월호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위원장인 심재철 의원은 '세월호 참사 유언비어'를 직접 유포했다. 심재철 의원은 지난 11일 세월호 유가족이 조원진 의원 발언과 해경 증언에 항의하자, 유가족을 퇴정 조치한 바 있다.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 소장은 지난 18일 녹음된 팟캐스트 <이철희의 이쑤시개>에서 심재철 의원의 "평소 심정을 보면 (국정조사 현장에서) 엄청 참은 것"이라며 "성격 있다(단호하다)"라고 표현했다. 그러면서 "지역구가 수도권이니 그 정도 참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MBC 기자 출신인 심 의원은 경기 안양 동안갑에서 내리 4선을 한 새누리당 중진이다.  
 
심재철 의원이 지역구가 대구 달서구병인 조원진 의원과 달리, 수도권 여론을 신경 쓰는 이유는 현재 새누리당 모든 관심이 2016년 총선에 쏠려 있기 때문이다. 비박계 김무성 의원의 새누리당 대표 입성이 그 증거다.(☞ 팟캐스트 바로 듣기 
 
'미래 권력' 김무성, '무대 본색'은 시간문제
 
'과거(현재) 대 미래' 구도로 치러진 7.14 새누리당 전당대회는 친박계의 참패로 끝났다. 친박 좌장 서청원 의원이 체면을 구긴 것은 말할 것도 없고, 홍문종 전 사무총장 역시 당원들에게 버림받았다. 새누리당 국회의원뿐 아니라, 250만여 당원들(2012년 기준)도 비박을 선택한 것이다.  
 
이철희 소장은 이에 대해 "박근혜 대통령 시대가 채 2년도 안 돼 내용적으로 끝난 것"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김무성 의원이 김태호·김을동 의원과의 연대로 친박계를 잠재울 만큼 "(당내) 기반이 넓다"고 평했다. 또 이철희 소장은 김무성 의원의 정치력에 주목했다. 김무성 의원은 지난해 12월 말 공권력이 투입된 상황에서 철도노조 파업 철회를 이끌어냈다. 새누리당 최다선 의원으로, 현안에 책임지는 모습을 보인 셈이다. 
 
무엇보다 김무성 의원은 이번 전당대회에서 '오픈 프라이머리 제도 법제화'를 주장, 현직 국회의원의 기득권을 인정했다. 다음 총선이 오픈 프라이머리로 치러질 경우, 147명의 현직 국회의원들은 상대적으로 유리한 고지를 점하게 된다. 박근혜 대통령이 아닌 김무성 의원이 '나'를, '내 지역구'를 지켜줄 것이라는 믿음으로 일종의 '보험'에 가입한 것이다.  
 
이종훈 스포츠 평론가는 "박근혜 대통령과 김무성 대표 간 기싸움이 시작됐다"고 말했다. 단적인 예가 지난 15일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 신임 지도부와의 오찬이다. 이날 박근혜 대통령이 김무성 대표를 앞이 아닌 옆에 앉힌 것은 "보기도 싫다"는 태도를 노골적으로 나타낸 것이라는 주장했다. 
 
▲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자리한 박근혜 대통령 식탁에는 '당청 협력'이라는 반찬이 없었다. ⓒ청와대

▲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자리한 박근혜 대통령 식탁에는 '당청 협력'이라는 반찬이 없었다. ⓒ청와대

실제 대통령과 집권여당 대표가 '따로국밥'이라는 사실은 장관 인사 문제로 바로 표면화됐다. 박근혜 대통령은 김무성 대표와 오찬이 끝난 후, 30분 만에 김명수 교육부 장관 후보자 지명을 철회했다. 정성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의 경우도, 박근혜 대통령는 김무성 대표를 2시간 차로 따돌렸다.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 통과 여부는 사실상 당력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박근혜 대통령이 김무성 대표에게 사전 공지나 상의를 전혀 하지 않은 것이다.(☞ 관련기사 : 체면구긴 김무성 "정성근 거취 알고 있었지만…"
 
게다가 박근혜 대통령이 신임 교육부 장관으로 황우여 전 대표를 지명함으로써 내각은 '김기춘-최경환-황우여'를 중심으로 한 친박으로, 당은 김무성 대표가 이끄는 비박으로 나뉘었다. 다만, 이종훈 평론가는 "새누리당 분위기는 (결정적인 순간) 김무성 대표의 손을 들어주는 묘한 구석이 있다"고 했다. 대통령의 국정운영 파트너에 한참 못 미치는 "일개 비서실장의 거수기가 됐다"는 자존심 문제가 한 몫 했다는 것.
 
이철희 소장은 "김기춘 비서실장에 최경환 경제부총리, 황우여 사회부총리, 이완구 원내대표 형태로 '3+1' 또는 '1+3'으로 국정이 운영될 경우, 김무성 대표는 가만히 있을 사람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현재 김무성 대표는 청와대에 비교적 협조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지만, '무대(무성 대표) 본색'이 점차 드러날 것이라는 지적이다. "야당과 손잡고 여론을 동원하는 방식"의 세련된 정치 행위로.  
 
"김무성 대표가 지난 15일 청와대 김기춘 실장에게 '전화 통화하려면 어디로 해야 하나?'라고 물었다고 한다. 철도파업 당시 김기춘 실장이 자신의 전화를 받지 않은 사실을 꼬집은 것이다. 그런데 김기춘 실장이 '나한테 직접 해라'라고 대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기춘 실장이 김무성 대표의 의도를 알았는지, 몰랐는지 동문서답한 것이다. 정치 고수들끼리 한바탕 은밀하게 주고받은 것이다." 
 
7.30 승리 후, '먹고사는 문제'로 야권 재편하자   
 
<이쑤시개>는 7.30 재보궐선거 이후, 향후 2년간 정치와 경제 영역에서 여야 간 일전(一戰)이 벌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이철희 소장은 "정치가 재보선 이후 재밌어질 것"이라며 선거에 명운을 거는 정치권의 속성상 2016년 총선과 2017년 대선을 위한 각축전이 벌어질 것으로 예상했다. 뿐만 아니라, 부동산 경기 활성화로 내수 확대를 꾀하는 '최경환 노믹스' 덕에 일대 회전(回戰), 즉 대규모 전투가 벌어질 것으로 예측했다.     
 
먼저 차기 총대선을 위해 이미 '김무성 카드'를 선택한 새누리당과 달리, "야권은 어느 카드를 뽑아야할지도 모른 채, 혼돈 상태"라고 비판했다. 이에 이종훈 평론가는 새정치민주연합 조기 전대론을 제시했으며, 이철희 소장과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는 7.30 재보선에서 이기는 싸움을 한 후 자기 정돈에 들어가자고 주장했다. 야권 연대를 통해 15곳 승부처를 '7 대 8로 꺾자'는 것이다. 
 
호남 4곳(광구 광산구을, 전남 순천시 곡성군, 전남 나주시 화순군, 전남 담양순함평군·영광군 장성군)에 손학규 상임고문이 출마한 경기 수원시병, 정장선 전 의원이 출마한 경기 평택시을 등 2곳을 합쳐 6곳은 승기를 잡았다고 내다봤다. 그리고 서울 동작을은 정의당 노회찬 전 대표로, 경기 수원정은 박광온 새정치민주연합 대변인으로 단일화해 최대 8곳을 야권 승리로 만들자는 구상이다. 
 
한편, LTV·DTI 규제 완화와 사내유보금 과세로 경제를 살리겠다는 최경환 경제부총리의 경제 활성화 대책에 대해 "철 지난 것을 자꾸만 꺼낸다"며 우려를 표했다. 김윤철 교수는 최경환 부총리가 "'소득 주도 성장'이라고 말한 것을 들으며 '거짓말도 참 뻔뻔스럽게 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비판했다. 부동산을 통한 경기 부양은 일시적이며, 기업 투자가 서민 경제에 직접적인 혜택을 주지 않는다는 사실은 국민 모두가 이미 체감으로 알고 있다. 그는 이어, 박근혜 정부가 "규제완화를 외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강한 정부 시절의 기업 규제권을 지금도 갖고 있다"고 착각하는 것 같다고 비난했다.(☞ 관련기사 : 최경환 선장의 '세월호', 걱정된다 / 최경환의 '킹핀'과 유보된 위기)
 
특히 박근혜 정부의 규제완화 정책은 곧바로 민영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 의료 및 교육, 그리고 공공분야의 사영화가 더 심각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철희 소장은 "철도파업이나 의료 민영화 싸움을 겪으면서 민심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파악했기 때문에" 박근혜 정부가 "이미 대중적 동력을 잃었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먹고사는 문제를 중심으로 쟁점이 형성되면 야권 세력을 재편할 동력이 생길 것"이라는 희망 메시지를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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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운명적인 7월 어떻게 흐르고 있는가?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14/07/21 10:54
  • 수정일
    2014/07/21 10:54
  • 글쓴이
    이필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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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호석소장 대담] 대화와 협력인가 대결과 충돌인가?

주권방송 

기사입력: 2014/07/21 [02:23]  최종편집: ⓒ 자주민보 

남북관계의 획기적 전환을 요구하는 북한, 미사일발사 훈련 등 군사활동의 강도를 높여가는 북한. 
운명적인 7월을 지켜보겠다는 북한의 행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복잡한 한반도 정세를 읽기 위해 미주 통일학연구소 한호석 소장과 특집대담을 마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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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체육교류와 北 응원단

[친절한 통일씨] 남북 체육교류의 역사
조정훈 기자  |  whoony@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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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07.20  19:2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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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3년 10월 제주 '민족평화통일체육문화축전'에서 남측 이봉주 선수와 북측 함봉실 선수가 마라톤 출발선에 함께 섰다. [자료사진-통일뉴스]

 

북한이 오는 9월 열리는 제17차 인천 아시안게임 참가 의사를 밝혔다. 350명으로 구성된 선수단 외에도 350명의 응원단을 파견한다고 밝혀 규모 면으로 보면 사상 최대가 될 전망이다.

남북이 한 차례 실무접촉을 갖고 결렬, 장외공방을 이어가고 있지만, 북한이 이번 아시안게임을 남북관계 개선의 계기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불참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남북은 체육교류를 남북관계 개선의 마중물로 삼아왔다. 응원단 파견으로 남북 간 문화적 차이점을 이해하고 민족 동질성 회복을 위해 노력해 왔다. 지금까지 남북은 어떠한 체육교류를 해왔으며, 응원단을 파견해왔을까.

남북 당국 간 체육교류, 끊임없는 시도 : 1960년~1980년

남북 체육교류의 시발점은 196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5.16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군사정권은 이승만 정권보다 남북관계를 유연성 있게 가져가려고 했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1964년 동경올림픽을 앞두고 북한의 요구로 1963년 로잔느 남북체육회담이 열렸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중재로 3차례 만났지만, 실질적 토의를 진행하지 못하고 결렬됐고, 남북은 체육을 체제경쟁의 상징적 의미로 받아들였다.

동서냉전 구도가 화해 분위기로 들어가던 1970년대 7.4남북공동성명 발표로 남북은 화해 분위기 속에서 1977년 남북탁구협회 대표회담을 열었다.

1979년 제35차 평양 세계탁구선수권대회 단일팀 구성을 위한 회담으로 북측이 제의, 4차례의 체육회담을 가졌지만, 경기일정이 촉박해 결국 무산됐다.

1980년대 서울 아시안게임(1986년), 서울 올림픽대회(1988년) 유치는 남북 간 체제경쟁을 넘어 체육교류 가능성도 높아졌다.

1982년 전두환 정권의 '민족화합 민주통일방안' 발표로, 1982년 LA올림픽 단일팀 구성을 위해 정주영 대한체육회장과 북측 김유순 국가체육위원회 위원장이 만나 회의를 했다. 그러나 당시 동구권 국가들의 LA올림픽 불참 선언으로 결실을 보지 못했다.

이어 1985년 당시 사마란치 IOC 위원장의 중재로 서울올림픽과 관련한 로잔느 남북체육회담이 열렸다. 남북은 서울 올림픽 단일팀 구성 및 공동개최 등을 논의하기 위해 4차례 만났지만 결국 성과를 거두지 못했고, 북한은 서울올림픽에 불참했다.

하지만 1988년 노태우 정부의 '7.7선언'은 남북 간 체육교류의 물꼬를 트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남북교류협력추진위원회' 발족(1989년),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기본 지침서'(1989년),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 및 남북협력기금법'(1990년), 남북기본합의서(1992년) 등은 남북 체육교류를 한 층 앞당기는 촉매제가 됐다.

 

   
▲남북은 태권도시범단을 서로 교환해왔다. 사진은 2003년 제주 '민족평화통일축전'에 참가한 남북 태권도 시범단 모습.  [자료사진-통일뉴스]

 

남북 당국 간 체육교류, 풍부한 성과 그리고 중단 : 1990년~현재

남한 정부의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적극적인 태도변화와 이를 위한 제도적.법적 장치 마련은 남북 간 체육교류의 성과를 가져왔다.

1990년 분단 이후 첫 남북 총리가 만난 남북고위급회담 이후 1990년 말부터 1991년까지 총 4차에 걸쳐 남북체육회담이 열렸다.

여기서 남북은 △남북 스포츠교류 및 바르셀로나 올림픽 단일팀 구성, △국제대회 남북단일팀 구성, △일본 지바 세계탁구선수권대회 단일팀 파견 및 포르투갈 리스본 세계청소년축구대회 단일팀 구성 방안 등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그리고 1991년 탁구단일팀 구성, 축구대회 단일팀 구성 등에 대해 각각 2차례 실무접촉과 총 6차례 연락관 접촉으로 두 대회 모두 단일팀을 구성하는 성과를 거뒀다.

단일팀 구성 결과, 1991년 일본 지바 세계탁구선수권대회는 여자 단체전 우승, 개인단식 우승, 남자개인단식 3위, 혼합단식 3위의 성과를 거뒀다. 그리고 남측의 현정화, 북측의 리분희는 세계적인 스타 반열에 올랐다.

뒤이어 개최된 포르투갈 리스본 세계청소년축구대회에서는 8강 진출의 쾌거를 거뒀다.

 

   
▲ 2007년 5.1절을 맞아 경남 창원에서 열린  남북 노동자 통일축구대회 경기 직후 남북 노동자들의 유니폼을 나눠갖는 모습. [자료사진-통일뉴스]

 

그리고 이보다 앞서 1990년 10월 남북 축구국가대표팀이 서울과 평양을 오가며 '통일축구대회'를 가져 남북이 1승 1패를 각각 나눠 가졌다.

하지만 남북 간 체육교류는 국제 정치 혼돈과 궤를 같이할 수밖에 없었다. 1991년의 성과는 김영삼 정부 출범 이후 불거진 북핵문제로 더는 이어지지 못했다.

중단된 남북 간 체육교류는 2000년 역사적인 남북 정상회담으로 재개됐다. 그러나 1990년대 단일팀 구성보다는 공동입장 등의 새로운 형태의 체육교류 합의가 전부였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 단일기를 들고 공동입장 한 것을 시작으로,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2003년 아오모리 동계아시안게임, 2003년 대구 하계유니버시아드, 2004년 아테네 올림픽, 2005년 인천 아시아육상경기대회, 2005년 마카오 동아시아경기대회, 2006년 토리노 동계올림픽,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 2007년 장춘 동계아시안게임 등에서 공동입장으로 스포츠를 통한 평화의 이미지를 굳혔다.

물론, 남북은 단일팀 구성을 위해 체육회담을 가졌지만, 각각 선수선발 방식의 이견을 좁히지 못해 2000년 들어 단일팀 형태의 체육교류는 없었다.

그리고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5.24조치'로 인한 남북관계 경색국면은 남북 간 체육교류의 중단을 불러왔고, 국제경기대회에서의 공동입장 모습도 더는 볼 수 없게 됐다.

 

   
▲ 남측 김무교 탁구선수(오른쪽)와 북측 정성옥 마라톤 선수가 2003년 제주 '민족평화통일체육축전'에서 함께 성화를 점화했다. [자료사진-통일뉴스]

 

남북 민간 체육교류, 친선의 장

남북 당국 간 체육교류ㅇ 부침은 남북 민간 체육교류에도 영향을 줬다. 민간 체육교류는 친선경기 형태로 진행됐다.

대표적인 것은 남북 노동자 통일축구대회이다. 분단 이전인 1929년 시작된 서울-평양 간 경평축구대회는 당시 일제의 압박 속에서 열려 민족의 단합정신을 가져왔고, 1946년까지 이어져 왔지만 분단선을 넘지 못했다.

그런 경평축구의 부활을 예고한 것이 1990년 남북 축구대표팀 간 통일축구대회였다. 그리고 맥을 이은 것이 바로 남북 노동자 통일축구대회였다.

1999년 8월 평양에서 남측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과 북측 조선직업총동맹 간에 축구경기가 열렸다. 이후 2007년 5.1절을 맞아 경남 창원에서 남북노동자축구대회가 열렸다.

그리고 2002년 9월 서울에서 '유럽-코리아재단' 주선으로 남북통일축구대회, 2005년 8.15민족대축전 기념 남북 통일축구대회 등이 열렸다.

 

   
▲ 2005년 8.15민족대축전 맞이 남북 축구대표팀 친선경기. [자료사진-통일뉴스]

 

또한, 1999년 9월과 12월에 각각 평양과 서울에서 현대 통일농구 교환경기가 열렸고, 2000년 서울.평양.금강산 '금강산 자동차 경주대회', 2000년 평양 삼성통일탁구경기대회, 2001년 '금강산 자동차 질주경기대회' 2002년 평양.서울 남북태권도 시범행사, 2004년 남북권투대회, 2007년 청소년 및 유소년 팀 서울.평양 방문 축구 친선경기, 2007년 서울.춘천 남북태권도 시범행사 등 다양한 영역에서 체육교류가 진행됐다.

이러한 남북 체육교류는 체육과 관련한 다양한 민간행사가 열리는 데 이바지했다. 2000년 부산 전국체전에서는 금강산 옥류동 부대바위에서 성화가 채화됐고, 2003년 10월 제주에서 '민족평화통일체육문화축전'이 열렸다.

2005년 중국 베이징에서 '코리아 민족의 체육발전을 위한 학술토론회'를 여는 등 민족 체육발전을 위한 학술의 영역까지 확대됐다.

 

   
▲ 2003년 제주 '민족평화통일체육문화축전'에 참가한 북측 그네 선수. [자료사진-통일뉴스]

 

북 응원단 파견 그리고 공동응원

남북 간 체육교류의 역사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도 북한 응원단에 대해서는 오랫동안 잊지 못한다. 북한의 20대 초반 여성들로 구성됐다고 해서 '미녀 응원단'이라고도 어색하게 불리는 응원단은 남한 사회에 큰 반향을 불러왔기 때문이다.

먼저, '미녀 응원단'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기로 한다. 그리고 앞으로도 사용하지 않기를 바란다. '미녀 응원단'이 공식적인 표현도 아닐 뿐 아니라 '미녀'라는 단어가 가져오는 성적인 의미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미녀와 미녀가 아닌 사람을 구분 짓는 반인권적인 용어라는 점에서 앞으로 '미녀 응원단'이 아닌 '북측 응원단'으로 불려야 한다.

 

   
▲ 2003년 하계 유니버시아드에 참가한 북측 응원단 중 취주악단이 공연을 펼치고 있다. [자료사진-통일뉴스]

 

북측은 남측에서 열린 국제경기대회에 총 3차례 응원단을 파견했다.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에는 만수대예술단과 평양교예단 등에 소속된 280명의 응원단이 참가, 150명은 '인민보안성 산하 여성취주악단' 이었다. 이들 응원단은 '만경봉-92호'를 타고 원산을 출발, 부산 다대포항에 정박해 숙소로 사용했다.

2003년 대구 하계유니버시아드에는 유니버시아드대회는 '국제대학스포츠연맹(FISU)'이 주관하는 대회라는 점에서 대학생으로 구성된 응원단 200여 명과 '인민보안성 산하 여성취주악단' 100여 명 등 총 303명이 파견됐다.

이들은 북측 고려항공을 이용, 직항로를 이용해 김해공항을 통해 입국했다. 이들 응원단은 경북 칠곡군에 위치한 대구은행연수원에서 생활, 대형버스를 이용해 경기장으로 이동했다.

 

   
▲ 2005년 인천 아시아육상경기대회에 '청년학생협력단'으로 참가한 리설주. [자료사진-통일뉴스]

 

2005년 인천 아시아육상경기대회에는 응원단 자격이 아닌 '청년학생협력단' 자격으로 파견됐다.

124명으로 구성된 이들은 금성학원 소속 학생들로, 육상은 짧은 시간에 치러지는 경기라는 점을 감안, 응원단 파견에 북측이 난색을 보여, 대북 인도적 지원 민간단체인 '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와 협력사업의 일환으로 '청년학생협력단'이라는 이름으로 들어왔다.

하지만 이들은 경기장에서 응원을 펼치기도 해 응원단으로 각인됐으며, 여기에는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부인이 된 리설주가 참가했다.

이들은 서해 직항로를 통해 항공편으로 입국, 인천 파라다이스 호텔을 숙소로 사용하며 대형버스를 이용해 경기장을 오갔다.

 

   
▲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응원단 숙소로 사용된 '만경봉-92호'. 부산 다대포항에 정박했다. [자료사진-통일뉴스]

 

남북 공동응원은 없었을까. 1990년 베이징 아시안게임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당시 남북은 체육교류 논의를 하면서 공동응원을 펼치기로 했으며, 태극기, 인공기, 단일기를 사용하며 공동응원을 펼쳤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공동응원 성사 가능성이 높았다. 2007년 남북정상회담의 성과로 베이징 대회에 남북응원단이 경의선 열차를 이용, 참가하기로 했지만,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 남북관계가 경색국면으로 치닫자 결실을 보지 못했다.

물론, 2008년 6월 서울에서 열린 남아공월드컵 지역예선전에서 남북이 경기를 펼쳤고, 여기에 관중석에서 단일기가 나부끼며 남북을 함께 응원했지만, 엄밀한 의미의 공동응원은 아니었다.

북한은 이번 인천 아시안게임에 350명의 선수단과 350명의 응원단을 파견하기로 했다. 응원단은 경의선 육로로 이동하고, 원산항에 정박 중인 '만경봉-92호'를 제주해협을 거쳐 인천항에 정박, 응원단 숙소로 사용한다고 밝혔다.

현재 남북은 한 차례 가진 실무회담에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그러나 인천 아시안게임 개막까지 2달 남짓 시간이 남았다. 그 기간 남북이 성과를 거둘 수 있기에 북한 응원단의 열띤 응원을 다시 볼 수 있을 기대감을 잃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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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새끼가 왜 죽었는지 뭐가 두려워 안 가르쳐주나"

[현장] 유가족 주최한 세월호 특별법 제정 촉구 범국민대회

서어리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4.07.19 23:04:00

 

 

 

 

 

 

세월호 참사 100일을 5일 앞둔 19일, 세월호 유가족들과 시민들이 함께 눈물로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했다.
 
이날 오후 4시 서울 시청 앞 광장에서는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 책임자 처벌! 안전사회 건설! 4.16 특별법 제정 촉구 범국민대회'가 열렸다. 이날 범국민대회에는 주최 측 추산 1만 5000여 명(경찰 측 추산은 5000여 명)의 시민들이 모였다.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며 6일째 단식 농성을 이어가고 있는 15명을 포함, 200여 명의 세월호 유가족들도 함께했다. 참사 이후 유가족들이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 범국민대회에 주최 측으로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유가족들은 세월호 특별법의 조속한 제정을 촉구하는 한편, 참사 100일을 맞는 오는 24일에는 10만 시민들이 함께해줄 것을 요청했다.
 
▲19일 서울 시청 광장에서 열린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 책임자 처벌! 안전사회 건설! 4.16특별법 제정 촉구 범국민대회'에 참가한 1만 5000명의 시민들. ⓒ프레시안(최형락)

▲19일 서울 시청 광장에서 열린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 책임자 처벌! 안전사회 건설! 4.16특별법 제정 촉구 범국민대회'에 참가한 1만 5000명의 시민들. ⓒ프레시안(최형락)

 
유가족 "특별법, 수사권·기소권 넣어야"- 박영선 "수사권만이라도…"
 
이날 대회에 참석한 200여 명의 유가족을 대표해, 단원고등학교 2학년 8반 고(故) 지상준 학생의 어머니 강지은 씨가 단상에 올랐다.
 
"알면 알수록, 아이들을 구할 기회와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해경은 단 한 명도 구해오지 않았습니다.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드는 특별법이 제정될 수 있도록 힘이 되어주세요. 왜 그 큰 배가 침몰했고, 어째서 우리는 아이들을 품에 안아보지 못하는지…. 이 어처구니없는 참사의 마지막 희생자가 사랑하는 제 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유가족들은 사고 진상을 규명하기에 여야가 제시한 특별법안이 미흡하다고 판단, 시민단체와 함께 자체적으로 '4․16 참사 진실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을 만들어 국회에 입법 청원한 바 있다. 독립된 특별위원회를 구성하고, 수사권과 기소권을 갖도록 하는 것이 해당 법안의 골자다. 이에 대해 새누리당은 '특별위원회에 수사권·기소권을 부여하는 것은 형사사법체계를 흔드는 일'이라며 반대하는 상황이다.
 
▲19일 세월호 특별법 제정 촉구 범국민대회에 참석해 사전 공연을 지켜 보는 유족들의 모습. ⓒ프레시안(최형락)

▲19일 세월호 특별법 제정 촉구 범국민대회에 참석해 사전 공연을 지켜 보는 유족들의 모습. ⓒ프레시안(최형락)

새정치민주연합 박영선 원내대표는 "진상 조사를 위해서는 수사권 확보가 필수"라며 "수사권 부여를 위해 특별사법경찰관에게 부여되는 임무를 진상조사위에 부여하자고 (여당에) 말하고 있다. 그런데 산림청, 관세청 등 50여 개 기관에도 부여된 임무가 왜 세월호 진상조사위원회에는 안 된다는 것인지 어불성설"이라고 말했다.
 
박 원내대표는 그러나 유족들에게 기소권은 포기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는 "거대 공룡 여당의 과반의석 때문에 특별법 통과가 힘들다"며 "수사권은 물론 기소권까지 필요하다고 주장하시는 마음을 잘 안다. 그러나 욕 먹을 각오하고 말씀드리면, 기소권은 양보하고 수사권만은 지켜야 한다"고 했다.
 
"살고 싶어요" 영상 속 절규에 광장 '눈물바다'
 
유가족들은 세월호 참사의 철저한 진상 규명을 위해 미공개 영상을 공개했다. 단원고 고(故) 김동협 학생이 배가 가라앉기 직전 촬영한 영상이다. (관련 기사 : "세상에서 가장 슬픈 라임…故김동협 군이 남긴 영상")
 
"지금 구조대가 오고 있대요. 해상 구조대. 내가 왜 수학여행을 와서! 나는 꿈이 있는데, 살고 싶은데! 내가 진짜… 해경이 거의 다 왔다고 하는데 나 살고 싶어요. 진짜로!"
 
▲단원고 2학년6반 고 김동협 군이 세월호 침몰 당시 남긴 영상 캡쳐. ⓒ세월호가족대책위원회

▲단원고 2학년6반 고 김동협 군이 세월호 침몰 당시 남긴 영상 캡쳐. ⓒ세월호가족대책위원회

김 학생의 절규와 함께 1만 5000명의 통곡 소리가 온 광장을 울렸다.
 
이어 유가족들의 모습이 영상으로 흘러나왔다. 김 학생의 어머니 김성실 씨가 발언하는 모습도 나왔다.
 
"저희는 먹고살기 바빴던 부모들입니다. 저희들이 원하는 것은 한 가지입니다. 내 새끼들이 왜 죽었는지 궁금합니다. 몇 시간 동안 엄마와 아빠를 부르며 죽어갔는지 언제쯤 진상 규명이 될지."
 
유가족들이 흐느끼는 모습이 화면에 잡힐 때마다 곡 소리가 더욱 커졌다.
 
"오늘도 싸우고 나왔어요. 집에서 큰 아이가 너무 예쁘게 꾸미고 있어서 싸웠어요. 이런 마음으로 살고 있습니다"
"내 새끼가 죽었는데, 어떻게 죽었는지를, 무엇이 두려워서 안 가르쳐주는지 알려주십시오. 아빠니까 엄마니까, 내 새끼니까 알아야겠습니다"
 
▲대회가 끝난 뒤 광장을 빠져나가는 유가족들을 향해 박수를 보내는 시민들. ⓒ프레시안(서어리)

▲대회가 끝난 뒤 광장을 빠져나가는 유가족들을 향해 박수를 보내는 시민들. ⓒ프레시안(서어리)

유가족 "누구도 다치지 말아달라"
 
유가족들은 대회가 끝난 후 여당을 압박하기 위해 국회로 향했다. 시민들은 광장을 빠져나가는 유가족들을 따뜻한 포옹과 박수로 배웅했다.
 
대회가 끝날 무렵, 유가족들은 지난 16일 세월호 수습 작업을 마친 소방대원들이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난 데 대해 안타까움을 표하며 "참가자분들도 다치지 않고 연행되지 않으셨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행진은 오후 6시40분 경부터 시작됐다. 대회 참가자들은 유가족의 요청대로 경찰과 충돌 없이 을지로, 종로 등을 거쳐 보신각까지 행진한 뒤 8시 10분 경 자진 해산했다.
 
▲19일 범국민대회가 끝난 뒤 도심 행진하는 시민들의 모습. ⓒ프레시안(최형락)

▲19일 범국민대회가 끝난 뒤 도심 행진하는 시민들의 모습. ⓒ프레시안(최형락)

▲범국민대회 참가자들이 대형 종이배를 접은 뒤 '철저한 진상 규명' 문구를 적고 있는 모습. ⓒ프레시안(최형락)

▲범국민대회 참가자들이 대형 종이배를 접은 뒤 '철저한 진상 규명' 문구를 적고 있는 모습. ⓒ프레시안(최형락)

▲광화문 광장 사거리 횡당보도 인근에서 '아직 밝혀진 것 하나 없다'는 문구가 적힌 손피켓을 들고 있는 한 시민의 모습. ⓒ프레시안(최형락)

▲광화문 광장 사거리 횡당보도 인근에서 '아직 밝혀진 것 하나 없다'는 문구가 적힌 손피켓을 들고 있는 한 시민의 모습. ⓒ프레시안(최형락)

▲세월호 가족대책위 기록위원회가 19일 서울광장에 작은 전시회를 열었다. 기록위원회가 팽목항에서 현재까지를 기록한 이 사진들은 24일까지 전시된다. ⓒ프레시안(최형락)

▲세월호 가족대책위 기록위원회가 19일 서울광장에 작은 전시회를 열었다. 기록위원회가 팽목항에서 현재까지를 기록한 이 사진들은 24일까지 전시된다. ⓒ프레시안(최형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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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창원 고소한 국정원 ‘망신’…검찰 “명백한 무혐의”

수정 : 2014.07.20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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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창원 전 경찰대 교수

“국가기관은 명예훼손 피해자 안돼” 각하 처분 내려
표 전 교수, 신문 칼럼 ‘국정원 무능화·무력화’ 비판

국가정보원이 명예를 훼손당했다며 표창원(48) 전 경찰대 교수를 상대로 낸 고소를 검찰이 ‘각하’ 처분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이현철 부장검사)는 지난해 1월 표 전 교수의 신문 칼럼 등을 문제 삼아 국정원이 낸 고소를 각하했다고 20일 밝혔다. 처분은 고소장이 접수된 지 1년여 지난 올해 2월말 내려졌다. 각하는 무혐의나 ‘공소권 없음’ 등 불기소 사유가 명백하거나 수사할 필요성이 없는 경우 사건을 종결하는 절차다.

 

검찰 관계자는 ”무혐의가 명백해 각하했다. 국가기관이 명예훼손 피해자가 될 수 없다는 판례가 있고 신문 칼럼의 내용 역시 사실 적시가 아닌 의견 표명에 해당하는점을 고려했다“고 말했다. 검찰은 표 전 교수를 상대로 별다른 조사도 하지 않았다.

 

표 전 교수는 지난해 1월 경향신문에 쓴 칼럼에서 ”국정원은 위기“라고 지적했다. 국정원은 ”정치 관료가 국정원을 장악해 정보와 예산, 인력들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제 첩보 세계에서 조롱거리가 될 정도로 무능화·무력화돼 있다“라는 부분을 문제 삼은 것으로 알려졌다.

 

국정원은 박원순 서울시장이 2009년 희망제작소 상임이사 시절 민간 사찰 의혹을 제기하자 국가와 국정원의 명예를 훼손당했다며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낸 바 있다. 당시 법원은 ”국가는 심히 경솔하거나 상당성을 잃은 공격에만 예외적으로 명예훼손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며 1~3심 모두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대법원은 2011년 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기소된 ‘광우병 PD수첩’ 제작진의 상고심에서 ”정부 또는 국가기관은 형법상 명예훼손죄의 피해자가 될 수 없다“고 못박았다.

 

국정원은 이런 선례를 감안한 듯 감찰실장 명의로 고소장을 냈다. 국정원 직원 개인으로서 명예훼손 피해를 입었다는 것이다.

 

검찰은 그러나 고소인인 감찰실장이 사실상 국정원의 대리인에 불과하다고 판단했다. 검찰은 고소 취소 여부를 타진했으나 감찰실장이 거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표 전 교수는 ”국가기관이 고소를 남발해 시민의 비판을 잠재우려 하고 감정적으로 대응하는 저급한 행태를 되풀이하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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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기완 “박근혜, 대통령 된 것 자기 자신에게도 불행”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4/07/20 11:08
  • 수정일
    2014/07/20 11:08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백기완·김중배 두 원로가 만나다] 세월호참사·쌀시장전면개방에 “박근혜 시민도 사람도 아니다”
 
입력 : 2014-07-19  18:35:07   노출 : 2014.07.20  10:06:45
신학림 편집인·이치열 기자 | chh@mediatoday.co.kr   
 
우리 진보개혁 진영의 ‘유이(唯二)’한 원로라 할 수 있는 백기완 선생과 김중배 선생이 18일 마주 앉았다. 만남은 며칠 전 백기완 선생이 김중배 선생에게 전화로 “밥이나 한 끼 같이 먹자”고 제안한 것을 김중배 선생이 흔쾌히 받아들여 이뤄졌다고 한다. 이를 알게 된 미디어오늘 취재팀이 두 원로의 만남은 “만남 그 자체가 의미 있는 것”이라며, 배석해 영상과 기록으로 남기고 싶다는 뜻을 전했고, 두 선생이 받아들임으로써 취재까지 이뤄지게 된 것이다.

두 선생은 12시 30분에 서울 대학로(혜화동)에 있는 학림다방에서 만나기로 했다. 백기완 선생은 이날 아침 박근혜 대통령이 기습적으로 쌀 시장 전면개방 방침을 예고하자, 농민단체 등이 중심이 된 반대 기자회견에 특유의 한복차림으로 참석하고 돌아와 12시부터 다방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김중배 선생도 약속시간보다 15분 먼저 다방에 들어섰다. 평상복으로 보이는 등산복 차림에 평소처럼 책이 든 작은 배낭을 메고 있었다.

백기완: 김 선생은 어떻게 아직도 그렇게 술을 많이 드실 수 있나요?

백기완 선생은 자신보다 두 살이 적은 김중배 선생이 아직도 아들뻘 되는 젊은이 못지않게 술을 마신다는 얘기를 들은 모양이었다. 백 선생이 김중배 선생한테 먼저 말문을 열었다. “아직도 어떻게 그렇게 약주를 많이 드실 수 있나요?” 김중배 선생의 대답: “(옛날과 비교해서) 지금은 많이 못 마시고... 나이가 들면 술을 많이 마시지 못하게 하는 자동조절장치가 몸 안에 있는 것 같습니다.”

지난달 끝난 교육감 선거와 교육이 화제로 떠오르자, 김중배 선생이 말문을 연다. “교육이란 용어 자체가 잘못된 것 같습니다. 누가 누구를 교육한단 말입니까?” 백 선생이 맞장구를 친다. “그렇지요.”

김중배: “술은 미디어라 생각합니다” 

평소 언론계 후배들에게 “술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소통을 가능케 하는) 미디어”라고 강조해 온 김중배 선생이 ‘언론’의 정의와 본뜻을 왜곡하는 조중동 등 족벌언론사들의 행태를 비판한다. 

“언론계 후배들과 자주 만나는데, 그것도 진정한 의미의 언론이고, 지금 우리가 만나 대화하는 것도 언론입니다. 그런데 우리사회는 언론이라 하면 언론사만 지칭하는 것으로 잘못 알고 있습니다. 특히 조중동은 북한의 (관영)언론사들을 언론사라고 부르지 않고, ‘언론매체’라 부르는데 정말 우스운 일입니다.”

김중배 선생이 백기완 선생에게 “건강이 어떠시냐”고 묻는다. 백 선생이 대답한다. “건강을 물으면 난처해요. 아침저녁으로 달라요. 요즘은 아침이면 (추워서) 긴 팔 옷을 입어야 할 정도로...”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
이치열 기자 truth710@
 
이 때 학림다방 사장이 들어와 인사하자, 백 선생이 김중배 선생을 소개한다. “이 분이 동아일보 편집국장을 지내시고, 한겨레신문 사장과 MBC 사장도 지낸 김중배 선생인데, 우리나라 언론계에서 ‘유일한 어른’이에요.”

평생 노동자와 농민 그리고 민중 운동의 맨 앞에서 젊은 (전투/의무)경찰들과 몸싸움도 마다하지 않았던 백 선생인지라, 여든이 넘은 자신의 몸이 옛날 같지 않음을 구체적으로 실토한다. “3년 전만 해도 내가 젊은 전경 아이들이 들고 있는 방패를 밀면 애들이 뒤로 밀렸는데, 요즘은 밀리지가 않아요. 내가 밀면, 전경 아이들은 그냥 (꿈쩍 않고) 가만히 있어요. 나는 건강이 따로 없어요. 아침저녁이 다르니까...”

두 사람은 평소 서로를 가슴으로 존경하는 듯 했다. 여러 집회나 시위 현장에서 자주 만나곤 했지만, 두 사람이 별도로 같이 식사 자리를 가진 적이 없었다는 사실이 놀랄 정도로 의외였다. 

백기완 선생이 김중배 선생을 만나자고 한 어떤 특별한 이유가 있었는지 기자는 짐작할 수 없었다. 뭔가 이유가 있을 것 같았지만, 백 선생께 여쭤보지 않기로 했다. 우리 사회의 진보 보수를 통틀어 진정한 의미에서 ‘원로’라 부를 수 있는 두 사람이 만나면, 의도까지는 아닐지라도, 만남의 ‘의미’는 그대로 드러날 것이라 생각했다. 나머지는 미루어 짐작하기로 했다. 

백기완: “박근혜는 대통령 자격없어, 무조건 물러나야”

백 선생이 세월호 참사와 국정 난맥상을 염두에 둔 듯, 박근혜 대통령에 ‘돌직구’를 날린다. “박근혜는 민족도, 시민도, 사람도 아니다. 그러니 (박근혜) 대통령도 없어. 무엇을 결정하고 자시고 할 자격도 없어. 그냥 물러가야 해!”

두 사람의 대화에서 통일이 빠질 리가 없다. 백 선생 특유의, 그러나 이른바 어떤 남북문제 전문가에게서도 들을 수 없는, 통일론이 나온다. 몸 상태가 아침저녁으로 달라진다는 고백이 무색할 정도로 목소리가 높아진다.

“통일, 통일 하는데, 남과 북이 단순히 합쳐지는 것은 진정한 통일이 아니야! 분단의 장벽을 뛰어넘어야 진정한 통일이지. 분단이 뭐냐? 분단은 미국의 침략으로 이뤄진 것인데, 분단으로 피해를 입은 민중들이 해방돼야 진정한 통일이야!”

두 사람은 점심 식사를 위해 종로1가의 영양탕 집으로 자리를 옮긴다. 마침 이날이 초복이라 1시가 넘었는데도 손님들로 북적인다. 주인이 두 사람을 알아보고 자리로 찾아와 인사한다. 주인이 내오는 고기양이 눈에 띄게 많았다.
 
   
김중배 언론광장 대표.
이치열 기자 truth710@
 
기자가 식당 주인에게 “이 음식점 생기고 이렇게 소중하고 귀한 두 분이 같이 온 것은 처음일 것”이라고 말하자, 김중배 선생이 바로 말을 받는다. “백 선생님은 귀한 분이지만 저는 아닙니다.”

백기완: “나는 평생 길거리에서 ‘먼지’를, 김중배 선생은 ‘역사’를 먹고 살아”

그러자 백 선생의 화답이 과연 걸작이다. “김중배 선생의 말씀이, 나(백기완)는 평생 길거리에서 ‘먼지’만 먹고 살았고, 김 선생은 평생 ‘역사를 먹었다’는 뜻이야!” 일제히 폭소가 터졌다. 산전수전 다 겪은 백전노장들의 내공이란 그런 것이었다.

백 선생이 김중배 선생에게 묻는다. “김 선생은 인격이 있어서 요새 젊은이들의 행태를 보고도 참지요... 말씀은 안 하시지만, 요새 젊은이들한테 못마땅한 게 있다면 뭐를 꼽을 수 있겠습니까?”

김중배: “엉뚱한 방향으로 불만 쏟는 일베 아이들도 보듬고 가야 하는데...” 

김 선생이 대답한다. “꼴사나운 것 보다는 안타까운 게 많아요. 소위 일베(일간베스트)하는 애들이 하는 일들을 들여다보니까, 바탕에는 세상에 대한 불만이 끓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좌우나 진보·보수냐의 차원도 아니고. (그들도) 박근혜를 좋아하는 게 아닌 것 같고. 다만 그들이 분출하는 방향을 엉뚱한 곳에다 잡은 것으로 보입니다. 정말 중요한 문제는 우리 모두가 그런 애들과도 함께 (보듬고) 살아가야 하는데, 어떤 길이 그런 길이냐는 고민을 하게 됩니다.”

백 선생이 말을 잇는다. “김 선생은 역시 인품이 있는 분이야. 요즈음 우리 젊은이들은 돈이 지배하는 세상이 영원할 줄 잘못 알고 있는 것 같아...” 

김 선생의 화답이 이어진다. “그런 것(돈에 대한 맹신)까지 포함해서 그렇습니다. 돈과 권력에 대한 불만이 이상하게 왜곡돼 분출되는 것 같습니다. 이른바 젊은이들의 멘토라는 분들이 무조건 (현실을) 긍정하라고 하는데, 그 말은 옳고 그른 것을 구분하지 않고 모든 현실을 긍정하라고 하면서, 그것이 힐링 어쩌고 하는데... 그렇게 해서 되는 것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백기완: “박근혜, 집안 내력을 객관적으로 볼 수 없게 된 것이 불행”

공사석을 막론하고 한 번 시작하면 사자후를 내뿜는 백기완 선생이 오늘은 말 수가 적다. 그렇게 느끼는 순간, 백 선생이 나지막하면서 차분한 목소리로 말한다. “박근혜가 대통령이 된 것은 우리 모두에게 불행한 일이지만, 자신을 위해서도 불행한 일이야. (아버지에 이어 대통령이 되면서) 자기 집안 내력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기회가 없어진 것이야. 그것이 불행하다는 것이지.” 

백기완 선생은 1932년 황해도 구월산 자락에서 태어나 아버지 손을 잡고 월남하여 김구 선생의 체취와 발자취를 가슴에 새기면서, 장준하 선생, 계훈제 선생, 문익환 목사 등과 더불어 반독재 투쟁과 농민운동, 민중운동에 일생을 바쳐온 진정한 의미의 어른이자 원로다. 그는 여든을 넘긴 나이에도 한진중공업 노동 탄압사태의 돌파구를 열기 위해 송경동 시인이 제안해 이뤄진 ‘희망버스’ 대열에 단 한 번도 빠진 적이 없다. 다른 투쟁 현장도 예외가 아니다.

즐겁고 부담 없는 자리보다는, 국가권력과 결탁한 자본의 탄압 앞에 벼랑 끝에 몰린 노동자와 약자들이 벌이는 사투 현장에 와 달라는 요청을 거부한 적이 없다. 식사를 위해 자리에 앉으면 그들이 처한 처절한 현실 앞에 “도움 준 것이 없다”며 아들과 손자뻘 되는 후배들 앞에서도 자주 눈물을 쏟는다. 어릴 때 덧이름(별병)이 ’울보‘였단다. 

백기완: “김중배 선생은 날 없는 도끼로 ‘과따소리’를 내는 언론인” 

김중배 선생은 우리 시대의 진정한 ‘원로 언론인’이자, 참여연대, 언론개혁시민연대 등을 출범시키는 데 중심적인 역할을 한 시민운동의 ‘대부’다. 1934년 광주에서 태어나 1957년 한국일보 견습기자로 언론계에 뛰어든 뒤 1963년 동아일보로 자리를 옮겨, 편집국장과 논설위원을 지내며, 박정희·전두환 군사독재 시절 날카롭고 용기있는 글로 독자들과 민중에게 희망의 촛불을 밝혀온 ‘평생 언론인’이다.

‘영원한 기자’ 김중배는 편집국장에서 해임된 뒤 1991년 9월 동아일보를 떠나면서 “앞으로 언론은 권력과의 싸움에서 보다 원천적인 제약 세력인 자본과의 힘겨운 싸움을 벌이지 않으면 안 되는 시기에 접어들었다”는 유명한 경고를 던졌다. 그의 예측은 한 치의 어긋남 없이 곧바로 현실이 되었고, 이런 현실을 예상하면서도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언론계 후배들은 그 앞에 서면 한없이 작아지고 부끄러워진다. 

백기완 선생의 김중배 선생에 대한 존경과 찬사는 단순히 고수가 고수를 알아보는 차원일까? 아니면 방식과 스타일은 달라도 평생 같은 목표로 한 길을 걸어온 원로끼리의 말없는 동지 의식에서 나오는 걸까? 기자의 궁금증을 알아챘는지, 백 선생이 먼저 말을 꺼낸다. 

때는 1990년대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백 선생의 회고: “1991년 수서택지 특혜분양 비리사건이 터져 시민단체와 활동가들이 모여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기자회견, 집회와 농성을 통일문제연구소에서 하고 있는데, 정치권 인사들도 (적당히 해 달라고) 전화를 해오고, 심지어 중견언론인들도 나한테 전화를 해대는 거야. 그래서, ‘아, 이거 엄청난 사건이구나’하고 생각했지. 그런데 취재하러 오는 기자들이 한 명도 없어. 그래서 김중배 선생한테 (취재해 달라고) 전화를 했지. 그랬더니 동아일보 기자가 한 명 와서 취재를 해 갔는데, 2-3단짜리 기사 정도로 나올까 생각했는데, 1면에 머리기사로 나온거야! 그러자 연구소에 사람들이 몰려오고...”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4일 새누리당 전당대회에 참석했던 모습. 사진=청와대
 
그 정도를 가지고 감동할 백기완 선생이 아니다. 백 선생의 설명이 이어진다. “과따소리는 바가지 밖에 없는 가난한 빌뱅이가 바가지를 가지고 대궐같은 집에 사는 부잣집 대문을 때려 부수는 소리야. 도끼날이 없어도, 도끼 자루만 가지고 대궐문을 때려도 대궐문은 깨지게 돼 있어. 무지랭이 백성이 날 없는 도끼 자루만 가지고 왕궁이나 대궐 문(띠따소리)을 깨부수는 것이 과따소리야.”

“언론이란게 뭐냐? 바로 과따소리야. 진정한 언론이란, 진실을 까발리고, 옳고 그름을 밝히는데 그치지 않고, 희망과 전망까지 제시하는 과따소리야. 김중배 선생은 과따소리를 내는 진정한 언론인이야.” 

두 원로에게 세월호 참사는 이해하기도, 받아들이기도, 견디기도 힘들었던 모양이다. 추모와 위로의 현장에도 빠지지 않는다. 가슴에는 노란 리본이 달려 있다.

김중배: “후배들이 내가 죽을 자리를 만들어 달라!”

기자는 두 원로의 언행에서 심상찮은 느낌을 갖는다. 작년 쯤 언론시민운동 진영의 한 후배가 던진 말을 그대로 실행에 옮기려고 작심한 것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진정한 도인(道人)은 산 속에 있지 않고 저자거리에 있는 법이다. 침대 맡에 자식 손자들을 앉혀놓고 편안하게 눈을 감는 것이 아니라, 도탄에 빠진 백성을 구하려고 이리 뛰고 저리 뛰다 시궁창에 처박혀 죽는 삶이 진정한 도인(지도자)의 삶이다.”

이 말을 전해들은 김중배 선생은 언론계 후배들 모임에서 태연하면서도 결연하게 말한 적이 있다. “내가 죽을 자리를 후배 여러분들이 만들어 달라...” 후배들은 섬뜩하다.

백기완 선생의 이날 초청은 어쩌면 팔십 평생을 치열하게 살아온 두 고수(高手)의 말 없는 대화와 뜻이 통해 이뤄진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화와 침묵이 꼬리를 무는 시간이 쏜살같다. 3시가 넘어가자 다음 약속이 있는 김중배 선생이 양해를 구한다. 다음에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면서. 백 선생이 돌아서는 김중배 선생을 다시 불러 세운다. 그러면서 “김 선생은 소득이 없을 것”이라며 차비를 주겠단다. 잠시 머뭇거리던 김중배 선생이 지폐 넉 장을 마지못해 받는다. 어색한 것 같으면서도, 서로 존중하지 않고 내공이 없다면, 벌어지기 어려운 장면이다. 기자의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동시에 두 고수이자 원로의 다음 만남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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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까지 특별법제정...안되면 '특단의 결단'

세월호 국민대책위 등 '416 특별법 제정 촉구 범국민대회'
이승현 기자  |  shlee@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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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07.20  03:3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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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국민대책회의)와 희생자·실종자·생존자 가족 대책위원회(가족대책위), 일반인 희생자 유가족 대책위원회는 19일 오후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 안전사회 건설! 416 특별법 제정 촉구 범국민대회'를 개최해 세월호 참사 100일째가 되는 오는 24일까지는 특별법 제정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고 새누리당을 비롯한 여·야에 거듭 촉구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국민대책회의)와 희생자·실종자·생존자 가족 대책위원회(가족대책위), 일반인 희생자 유가족 대책위원회는 19일 오후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 안전사회 건설! 416 특별법 제정 촉구 범국민대회'를 개최해, 유가족이 참여하고 수사권과 기소권을 보장하는 특별위원회 구성을 핵심으로 하는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했다.

대회를 공동 주최한 세월호 가족단체들과 국민대책회의는 대통령이 국민앞에 약속하고 여·야가 가족들에게 공언했던 특별법 제정시한이 지난 16일이었음을 상기시키고 세월호 참사 100일째가 되는 오는 24일까지는 특별법 제정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고 새누리당을 비롯한 여·야에 거듭 촉구했다.

가족대책위는 총회를 거쳐 만일 이같은 요구가 수용되지 않으면 특단의 결단을 내리겠다고 밝혔다.

이날 대회가 열린 서울광장에는 광화문광장에서 엿새째 단식 농성을 하고 있는 세월호 가족 15명과 국회에서 농성중인 가족들, 그리고 안산에서 여의도까지 40여km를 도보로 행진한 10명을 새벽에 따라나선 500여 명의 시민들이 합류했고 전국 각지에서 특별법 제정을 위한 서명운동을 벌여 오던 시민들이 함께 모여 1만5천여 명이 자리를 가득 메웠다.

   
▲ 단원고 2학년 8반 지상준 군의 엄마 강지윤 씨(사진 맨 왼쪽)는 대회 여는 말씀에서 "여러분들이 가족들의 국가"라며 대회 참가 시민들에게 고마움을 표시했다. 사진 가운데 박영선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 박래군 국민대책회의 공동대표.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전날부터 광화문광장 단식농성을 함께 하고 있는 박래군 국민대책회의 공동대표는 "새누리당은 수사권도 기소권도 없는 특별위원회를 만들자고 한다"며, "무딘 특별법으로 특별위원회를 무디게 만들어야 자신들의 성역을 보호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라고 비판하고 세월호 특별법 제정이 기로에 서있는 상황이라고 언급했다.

박래군 대표는 "가족들이 원하고 국민이 요구하는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위해 참사 100일이 다 되도록 제대로 한 일이 없다"고 지적하고 "그날, 거기서, 왜 우리 아이들이 죽어갔는지 우리는 알아야겠다는 것이 유가족들의 요구이다. 그래야 아이들에게 설명이라도 할 수 있을 것 아니냐"라고 말했다.

이어서 박 대표는 "청와대와 집권여당의 의도를 누르고 특별법을 만들자면 70여 일만에 350만 명의 서명을 만들어낸 국민의 힘, 생존해 돌아온 단원고 아이들과 함께 40여 km를 걸어왔던 그 힘을 믿고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대표는 "세월호 참사 100일째 되는 7월 24일 그날 지금 모인 분들이 다섯명씩 손잡고 같이 나와서 10만 명이 모이자"고 절절히 호소했다.

야권을 대표에 무대에 오른 박영선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는 먼저 "이미 몸과 마음을 많이 다친 가족들이 단식하게 하고 살아 돌아온 아이들이 제 몸 추스리기도 전에 먼 길 걷게해서 미안하다"고 고개를 숙였다.

박영선 원내대표는 "수사권과 기소권을 모두 요구하는 가족들에게 기소권은 양보해달라고 요청하면서까지 새누리당과 협상하려고 했지만 진전이 없었다"고 경과를 설명하고 "수사권조차 부여되지 않으면 특별위원회를 통한 진상조사는 불가능하다"는 입장은 분명히 했다.

박 원내대표는 이미 50여 기관에 부여된 특별사법경찰관의 지위를 진상조사위원회(특별위원회)에 부여하라는 요구에 황교안 법무부장관이 공무원 아닌 민간에는 맡길 수 없다고 주장한 데 대해서는 세월호는 전대미문의 참사이기 때문에 진상규명을 위해 구성되는 진조위는 민간이 아닌 특별기구로 봐야 한다고 반박했다.

결국 청와대와 새누리당이 "두려워하고 있다. 꿈쩍도 하지 않는다"라고 박 원내대표는 덧붙였다.

박 원내대표는 21일 새누리당 원내대표와 주례회동시까지 결론이 없으면 특별법 제정을 위해 모든 당력을 집중해 할 수 있는 노력을 다하겠다고 밝혔으나 더 이상 구체적인 언급은 없었다.

   
▲ 서울광장은 통곡와 오열이 그치지 않았다. 이날 대회에 참가한 세월호 가족들과 시민들은 내내 함께 울고 서로 손잡으며 어깨를 끌어안았다. 가족들은 영상을 제대로 쳐다 보지 못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이날 대회에 참가한 세월호 가족들과 시민들은 내내 함께 울고 서로 손잡으며 어깨를 끌어안았다.

단원고 2학년 8반 지상준 군의 엄마 강지윤 씨는 무대에 올라 "왜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 알아야 아이들에게도 설명할 수 있지 않겠느냐"며 "가족이 참여하는 특별법이 제정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말했다.

강지윤 씨는 "단원고 아이들을 비롯해 10명으로 출발한 도보행진 대열이 새벽 2시 30분 광명을 지날 때 80명이 함께 해 주었고 여의도에 도착했을 때는 500명으로 불어나 있었다. 식사를 위해 식당을 찾자 여기 저기서 직접 지어 온 밥과 음식으로 아이들을 먹여 주었다"며, "여러분들이 가족들의 국가"라고 고마움을 표시했다.

김일란 감독이 제작해 이날 상영한 영상을 세월호 가족들은 제대로 쳐다 보지 못했다.

영상속, 최성호 군의 아빠 최경덕 씨는 "병신같은 아빠는 보고 싶은 아들이 왜 죽었는지 모른다. 내 새끼는 죽었는데 책임자는 없다. 무엇이 두려워서 왜 알려주지 않는지 누가 좀 알려달라. 내 새끼가 보고싶다. 4월 16일 자식잃은 부모가 500명이다"라고 울부짖었다.

그날 세월호가 침몰하던 오전 9시 10분부터 9시 41분까지 선내에 있던 아이들이 찍은 미공개 촬영영상이 대형화면으로 나오자 서울광장은 통곡했다.

가족들이 총회를 거쳐 공개 결정을 한 이 영상에서 아이는 선내에 비치된 구명조끼의 제작년도가 1994년이라는 사실에 기막혀하면서 "나는 살고 싶습니다. 아, 나 진짜 무서워요, 지금."이라고 말했다.

심장이 오그라드는 듯한 그 소리에 여기저기에서 오열이 그치지 않았다.

가수 임정득 씨는 '사람이 사람위에 서지 않는 세상을 상상한다'는 가사의 노래를 온몸으로 열창하고 "서로가 외롭지 않도록 어깨겯고 함께 가자"며 북받치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한 채 무대를 내려왔다.

노래패 '노래로 물들다'는 "광장의 시민들 뿐만 아니라 그 10배, 100배의 국민들이 함께 가슴으로 울고 안타까워 하고 있으니 부디 힘내시라"며 가족들을 위로했다.

각 지역에서 올라온 국민대책위 지역 대표자들은 "안전사회로 가기위한 이번 세월호 특별법 제정이 만일 불발된다면 정권퇴진 운동으로 변하게 될 것"이라며 특별법 제정에 강한 의지를 피력했다.

또 "우리 사회가 4.16 이전과 이후 반드시 달라져야 한다는 각오로 잊지 않고 가만히 있지 않고 끝까지 함께 하겠다"고 다짐했다.

무대 제일 앞쪽에 있던 가족들은 대회를 마친 후 참가 시민들에게 깊은 감사의 인사를 전했고, 시민들은 여의도 국회로 향하는 가족들을 위해 길을 열고 가족들의 손을 쓰다듬으며 눈물로 배웅했다.

대회를 마친 참가자들은 이날 오후 6시 40분부터 을지로3가를 거쳐 종로 보신각까지 행진한 후 이곳에서 마무리 집회를 가졌다.

국민대책위측은 당초 광화문 광장의 단식농성장까지 이동해 집회를 개최할 예정이었으나 세월호 실종자 수색작업을 마치고 돌아가던 소방헬기가 광주에서 추락하는 등의 사고를 괴롭게 생각한 가족들의 요청으로 조정됐다고 설명했다.

국민대책위는 앞으로 광화문 단식농성장에서 매일 7시 작은 문화제가 계속 열리며, 22일 '위험사회를 멈추는 시민행동' 원전반대 행사와 함께하는 촛불집회, 23일 팽목항으로 향하는 기다림의 버스 운행, 24일 자정에는 실종자 귀환을 외치는 기도회를 개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한편, 극도로 허약해진 심신상태에서 벌이는 세월호 가족들의 단식농성이 6일째 접어들면서 15명 중 3명이 이미 쓰러진 상태이며, 이날 대회를 마친 나머지 12명 중 1명이 의식을 잃었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이들의 건강에 대한 걱정이 커지고 있다.

   
▲ 이날 오후 4시부터 대형종이배 만들기와 대형 붓글씨 쓰기 등의 사전행사가 진행됐다.[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광화문 광장에서 6일째 단식농성을 벌이고 있는 15명을 비롯해 세월호 가족들이 대회에 앞서 묵상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이날 대회를 공동주최한 세월호 참사 희생자·실종자·생존자 가족 대책위원회, 일반인 희생자 유가족 대책위원회, 국민대책회의 대표자들이 "진실이 밝혀지고 안전한 사회가 이루어지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는 내용의 결의문 '우리의 다짐'을 낭독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시민들은 대회를 마치고 여의도 국회로 향하는 가족들을 위해 길을 열고 가족들의 손을 쓰다듬으며 눈물로 배웅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대회를 마친 참가자들은 이날 오후 6시 40분부터 을지로3가를 거쳐 종로 보신각까지 행진했다. '철저한 진상규명, 특별법 제정'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보신각 앞 마무리 집회. "참사 100일째인 24일 이전에 반드시 416특별법 제정해야"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광화문 단식농성장.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광화문 광장 단식농성장으로 시민들의 위로, 격려를 위한 방문이 끊이질 않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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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네티즌 마저 분개 '백린 쏜 이스라엘은 악마다'

백린탄에 맞은 아기의 참상.. '참혹해!'
 
정찬희 기자 
기사입력: 2014/07/19 [23:37]  최종편집: ⓒ 자주민보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를 폭격하며 쏜 '백린탄'의 참혹함에 전세계 네티즌들이 분노하고 있다.

국내의 경우 언론보도가 오히려 '이스라엘의 신무기의 위용'에 감탄하는 반인륜적 시각의 기사가 많아 그다지 큰 이슈가 되지 못하였으나, 일본 평화주의 네티즌들과 해외 네티즌들은 '이스라엘은 악마' 라며 다수의 글들을 쏟아내고 있다.

백린은 가연성과 발연성이 매우 높아 한번 살에 맞으면 수천도의 고열을 내며, 소멸할때까지 그야말로 뼈와살에 끝까지 타들어가는 잔혹한 무기로 제네바 협약에 의해 사용금지가 권고될 정도이다.

이스라엘이 변변한 무기도 없는 팔레스타인에 마구잡이로 쏜 백린탄의 잔혹함에 분노한 일본네티즌들은 '백린에 잔인하게 당한 모습'을 제작하여 자신의 SNS등을 통해 공개하고 있다.
 
▲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에 발포한 백린의 잔혹함     © 일본 야후(번역)

끝까지 타들어가는 '백린'의 특성상 더욱 처참한 사진들이 끝도 없이 많았다.
저항하지 못하는 아기들의 경우 더 처참하게 당해 온몸이 숯이 되거나 눈에 맞은 경우 끔찍한 상태로 실명된 사진도 많았다.
 
▲ 이스라엘 공습에 새카맣게 타죽은 아기     © 트위터

이러한 잔혹한 공습을 언덕너머 의자까지 갖다놓고 '즐겁게 관람'하는 이스라엘 젊은이들이 모습이 트위터로 돌아 논란이 일었다.

 
▲ 공습을 관람하는 이스라엘 사람들. 환하게 웃고 있다     © allansorensen72 트위터


트위터 내용은 그 곳을 '스데롯 시네마' 라고 칭하며 '이스라엘 사람들은 의자를 가져와 관람하며 폭발음이 들리면 박수를 쳤다' 라고 되어 있다.

일본 네티즌들은 이스라엘의 백린탄 공습에 대해
(댓글 출처:  http://blog.livedoor.jp/genkimaru1/archives/1856313.html)
 

"눈물이 멈추지 않는다. 언젠가 끝날수 있을까. 악마교가 멸절하는 일이 있을 수 있을까"
"현재 이스라엘군은 백린탄을 인구밀집지에 무차별 투하하고 있는 것이다. 연막, 조명목적이 아닌 일반시민에게 화상을 입히고 살상하기 위해 사용하는 것은 비인도적이며 국제적으로 금지되고 있다"
"이스라엘에 무기를 수출하면 안된다"
"무기수출의 3원칙이 철폐되었는데 이제부터 무기를 많이 팔아 돈을 벌어봅시다. 이스라엘은 딱 좋은 상대입니다. 우리의 상품을 가자 지구에서 마구 써봅시다" 

라며 분노를 터트렸다.

백린은 한번 발사되면 산소와 결합해 끝까지 타들어가므로 물속으로 들어가도 소용이 없으며, 군필자들의 이야기에 따르면 '백린에 맞았을 시에는 장검으로 긁어낼 것' 이라고 교육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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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특별법의 모든 것

세월호 특별법의 모든 것
 
 
 
이창기 기자 
기사입력: 2014/07/19 [09:58]  최종편집: ⓒ 자주민보
 
 
최근 여당의 반대로 여야 협의가 무산되어 세월호 특별법이 다음 회기로 연기되었다.
이에 국민들이 여야 합의안의 차이점과 왜 여당의 주장에 문제가 많은지 등을 한 눈에 알 수 있도록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에서 발표한 '세월호 특별법의 모든 것'이란 웹진을 아래에 소개한다.
이 웹진에는 세월호 특별법 제정관 관련된 '한 눈에 보기' 그림과 여야, 유족들안 등의 핵심 쟁점을 비교대조글 등 여러 자료를 모아 놓고 있다. 

....................  아래 ..........................

 
안쪽
 
 

[공유부탁] 세월호 4·16 특별법의 모든 것!

 

세월호 특별법의 모든 것!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만드는 4·16 특별법은, 세월호 이후의 한국 사회를 완전히 바꾸기 위한 특별한 법이어야 합니다. 성역 없는 진상 조사, 철저한 책임자 처벌, 그리고 모든 국민을 위한 안전한 사회 건설. 이 모든 것이 가능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가족과 국민이 함께 입법청원한 4·16 특별법이 제정되어야 합니다.  7월, 가족의 마음과 국민의 힘으로 만든  4·16 특별법 제정의 골든타임을 우리는 놓치지 맙시다! 

아래 자료들을 살펴봐주시고, 자유롭게 사용해주시고, 이 링크를 널리 알려주세요.


[3분이면 알 수 있는] 4·16 특별법안의 핵심내용과 각 정당 특별법안과의 차이



 

  • 4·16 특별법을 가족들과 공동으로 입법 청원했습니다 >> 클릭
  • [국민해설자가 될 수 있는] 4·16 특별법 국민설명회 자료집 >> 클릭
  • 4·16 특별법 전문 >> 클릭
  • [감사합니다] 4·16 특별법 청원 국민대표단 명단 >> 클릭
  • [영상] 4·16 특별법 “다시는 이런 비극이 일어나지 않게 해주세요”>> 클릭
  • [유인물] 4·16 특별법안의 핵심내용과 각 정당 특별법안과의 차이 >> 클릭
  • [행동] 7/15 4.16특별법 제정 촉구 청원행진에 함께해요! >> 클릭
  • [행동]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위한 7월 릴레이 신문광고 제작 >> 클릭
  • [현수막청원] 세월호 참사, 잊지 않겠다는 약속은 ’4.16 특별법 제정’부터! >> 클릭
  • [촛불행동] 7/12특별한 만남, 특별한 법, 특별한 다짐! “모두에게 진실을! 모두에게 안전을!” >>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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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장교의 '끔찍한' 안보교육 아이들 충격에 빠져 강의 중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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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부대 강사가 나와 17일 오전 서울 A초에서 상영한 동영상.
ⓒ 제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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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성에 대한 강제 낙태와 영아 살해, 손을 뒤로 묶는 비둘기 고문을 받다 피를 흘리는 두 사람, 공중 매달리기 고문에 피 흘리는 사람...

북한 주민 고문 모습을 담았다는 동영상을 지켜본 서울 강동지역 A초등학교 학생들이 충격에 빠졌다. 현역 육군 소령이 강사로 나선 이 강의에서 6학년 여러 여학생들은 눈을 가린 채 "악!" 비명을 질렀다고 한다. 이 학교 교원들은 "어떤 여학생은 강의를 들은 뒤 한 시간 동안 우느라 수업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고 전했다.

충격 받은 초등 여학생, 한 시간 동안 눈물

서울 A초교와 서울시교육청, 국군 수도방위사령부 등에 따르면, A초교는 지난 17일 3교시 수업을 한 군부대가 마련한 '나라사랑교육'에 할애했다. 하지만 3교시가 끝나기 7분 전 쯤 끔찍한 동영상에 놀란 6학년 학생들 가운데 25명이 담임교사와 함께 강의실에서 빠져나갔다. 강사로 나선 현직 장교가 강의를 중단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이 학교 교장은 "다른 학교에서 더는 그 군부대 강의를 안 들었으면 한다"는 건의문을 서울시교육청에 보낼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날 3교시 문제의 강의를 들은 이 학교 6학년 학생은 모두 120여 명. 5학년 학생 120여 명도 이날 4교시에 40여 분 동안 같은 강의를 들을 예정이었지만 강사가 가버리는 바람에 중단됐다.

이날 3교시 강의를 직접 본 한 교사는 "삽화 형태로 보여준 동영상 속 고문 모습은 아이들이 보면 안 될 정도로 혐오감을 주는 것이어서 학생들이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며 다음처럼 동영상 모습을 설명했다.

"칼 같은 도구를 든 남자들이 앞에 서 있고 한 여자의 뒷모습이 보였다. 피가 흐르는 것 같은 장면도 보였다. (여자) 배를 갈라 강제 낙태시키는 모습이었다. 자막으로 '영아살해, 강제 낙태'란 글귀가 쓰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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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부대 강사가 나와 17일 오전 서울 A초에서 상영한 동영상.
ⓒ 제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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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교사는 "아이들이 본 영상은 내가 예비군 훈련 당시 본 동영상과 비슷한데 그때도 이런 영아살해의 끔찍한 모습은 없었다"면서 "군인이 강사를 맡아 반공교육을 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이 학교 교감도 "6학년 교사들과 아이들의 의견을 들어봤는데, 아무리 나라사랑교육이 필요하더라도 동영상 장면은 초등학생에게 과했다"고 밝혔다.

이날 강의를 진행한 B소령은 "해당 동영상은 국방부 표준교안에 제시된 것이라 그대로 진행한 것"이라면서 "학생들이 갑자기 빠져 나가는 바람에 당황하고 놀라서 교육을 더 이상 진행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이날 나라사랑교육을 주관한 군부대는 올해 서울 강동·송파·강남·동작·남부·강서 교육지원청 소속 초·중·고에 강사를 파견해온 것으로 확인됐다. 강동송파교육지원청에 따르면 이 지역에서만 해당 부대가 진행하는 교육에 33개 초·중·고 2만여 명 이상의 학생이 강의를 듣거나 들을 예정인 것으로 확인됐다.

문제는 해당 부대의 강의 내용을 A초는 물론 강동송파교육지원청, 서울시교육청 모두 미리 살펴보지 않았다는 것. 군인 정신무장 교육을 위해 훈련받아온 정훈장교들이 군인이 아닌 어린 학생들을 가르치는데도 손을 놓고 있었던 셈이다.

참교육학부모회 "강의 중단하라"

박범이 참교육을 위한 전국학부모회 회장은 "강제낙태 모습을 보고 눈물을 흘린 초등학교 여학생들의 정신적 충격은 평생갈 텐데 과연 누가 치유할 수 있느냐"면서 "학부모들이 자녀를 학교에 보내는 건 교사에게 가르침을 받도록 하기 위함인데 왜 난데없이 군인들이 강사로 나서느냐"고 비판했다.

이어 박 회장은 "적에 대한 적개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군인들을 어린 학생들 앞에 세우는 반교육적 행위는 당장 중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해당 부대가 소속된 수도방위사령부 관계자는 "해당 동영상은 국방부에서 제작한 것"이라면서 "국방부와 교육부가 협약(MOU)을 체결해 전국 학교에서 신청을 받아 교육을 진행해왔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또 "북한의 인권유린이 얼마나 잔혹하게 자행되는지 그림으로 표현한 해당 동영상을 본 다른 학교에서는 A초교와 같은 문제제기가 없었다"면서 "학교, 학생별로 받아들이는 방식의 차이에서 발생한 결과"라고 말했다.

덧붙이는 글 | 인터넷<교육희망>(news.eduhope.net)에도 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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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화는 농업 사형선고” 논 갈아엎은 농민들 ‘울분’

전농부경연맹, 오는 21일부터 경남도청 앞에서 무기한 천막농성 돌입

구자환 기자 hanhit@vop.co.kr 발행시간 2014-07-18 15:57:29 최종수정 2014-07-18 15:57:29
농민들 논 갈아엎으며 ‘대규모 농민투쟁’ 선언
18일 정부의 쌀 관세화 발표에 농민들이 논을 갈아엎으며 반발하고 있다.ⓒ구자환 기자
 

정부의 관세화를 통한 쌀시장 개방 방침에 반발한 경남 농민들이 논을 갈아엎으며 이의 중단을 요구했다.

18일 전농 부경연맹은 창녕군 도천면 인근에서 지난 5월 말 모심기를 한 후 성숙기에 접어든 논 400여 평을 트랙터로 갈아엎으며 박근혜 정부를 규탄했다.

농민들은 기자회견을 통해 “이동필 농림축산부장관이 이날 쌀 관세화를 선언한 것은 쌀시장 전면개방을 의미한다”며, “이는 농민에게 사형선고를 내린 것”이라고 규탄했다. 또, “오늘은 정부가 농민을 버리는 날이고 식량주권마저 강대국의 손아귀에 바치는 치욕적인 날”이라고 반발했다.

농민들 논 갈아엎으며 ‘대규모 농민투쟁’ 선언
18일 전농부경연맹은 창녕군 도천면 인근에서 지난 5월 말 모심기를 한 후 성숙기에 접어든 논 400여 평을 트랙터로 갈아엎으며 박근혜 정부를 규탄했다.ⓒ구자환 기자

농민들은 “정부의 쌀 관세화가 추가 수입을 막을 수 있다는 논리는 궤변”이라며, “처음에는 수입쌀 진입을 막아낼 수 있지만 관세감축과 철폐의 압력을 벗어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어, “협상도 하기 전에 관세화 선언을 한다는 것은 맹수 앞에 몸을 맡기는 꼴”이라고, 강조하고 “기습작전을 하듯 쌀 전면 개방을 선언하는 것은 국민의 분노를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와 함께, “정부는 국제적 쌀 협상을 포기하고 농민들과 싸움을 선택한 것”이라며, “박근혜 정부의 쌀 전면개방은 세월호 참사에 이은 식량참사로 규정한다”고 강조했다.

전농 부경연맹은 오는 21일부터는 경남도청 앞에서 장기간 천막농성에 돌입한다고 밝혔다.

이원호 전농 부경연맹 의장은 “20년 동안 농민들이 목숨을 내 놓으며 저항했지만 박근혜 정권은 농업을 내놓으려고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오늘을 시작으로 전국 곳곳에서 끝없는 저항에 부딪힐 것”이라며, “농업을 이대로 내놓지 않는 투쟁을 시작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재명 민주노총 경남지역본부장은 “국가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군사, 에너지, 식량 주권이 확보되어야 한다”며, “식량을 포기하는 것은 국가를 포기하고 국민을 포기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지금 우리는 먹고 사는 문제와 국가를 지켜내기 위한 싸움을 할 때”라고 강조했다.

농민들 논 갈아엎으며 ‘대규모 농민투쟁’ 선언
18일 전농부경연맹은 창녕군 도천면 인근에서 지난 5월 말 모심기를 한 후 성숙기에 접어든 논 400여 평을 트랙터로 갈아엎고 있다.ⓒ구자환 기자
농민들 논 갈아엎으며 ‘대규모 농민투쟁’ 선언
정부의 쌀 전면 개방에 반발한 경남농민들이 논을 갈아엎으며 쌀 전면개방 중단을 요구했다.ⓒ구자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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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협력자 김원하의 고백

등록 : 2014.07.18 20:49수정 : 2014.07.19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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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구치소에 수감돼 있는 김원하씨는 <한겨레>와 여섯차례 서신을 교환하며 증거조작의 전말을 밝혔다. 그의 글씨체는 정갈했다. 그는 중국의 조선족학교에서 교원으로 일하다가 1992년 사직한 뒤 한국을 오가며 사업가로 살아왔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토요판] 커버스토리
국정원 협력자 김원하의 고백

▶ 서울시 공무원 간첩 증거조작 사건의 재판이 6월17일부터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 사건은 진짜 책임자가 기소되지 않았다는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기소된 국정원 직원들은 ‘증거 위조를 몰랐다’고 발뺌합니다. 국정원의 부탁을 받고 증거조작을 실행한 국정원 협력자 김원하씨만 죄를 인정하고 있습니다. 진실은 여전히 안갯속입니다. 현재 서울구치소에 수감된 김원하씨가 오랜 고심 끝에 <한겨레> 인터뷰를 통해 증거조작 전말을 털어놓았습니다.

 

 

‘서울시 공무원 간첩 증거조작’은 믿기 어려운 막장드라마 같은 사건이었다. 실체가 벗겨진 국가 정보기관의 민낯은 참담했다.

 

지난 2월14일 중국 정부가 증거 위조를 공식 확인하자 검찰은 진상조사에 나섰고 위조 실행자 김원하(62·조선족)씨와 김씨에게 업무를 지시한 국가정보원 대공수사국 김보현(48) 기획과장(4급) 등 국정원 직원 4명을 기소했다. 범죄자들은 기소되어 재판을 받고 있고 피해자인 유우성(34)씨는 4월25일 항소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았다. 남재준 국정원장은 5월22일 사표를 냈다.

 

이것으로 이 사건은 잊혀져도 괜찮을까. 아직 밝혀지지 않은 진실이 많다. 감춰진 진실의 퍼즐을 풀 유력한 단서는 증거조작 실행자 김원하씨의 증언이다. 김씨는 김보현 과장과 십수년간 친분을 유지하며 김 과장으로부터 업무 지시를 받고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들어왔던 장본인이다. 지난 3월 자살을 기도하면서 위조 사실을 시인하는 유서를 남겨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하기도 했다. 그는 현재 위조를 지시했던 국정원 직원들과 맞서 법정 다툼을 벌이고 있다. 기소된 국정원 직원들은 증거조작은 김씨 혼자 벌인 일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한겨레>는 김씨와 수차례 서신을 교환했다. 재판이 비공개될 가능성이 커 진실이 묻힐 것을 염려했다. 김씨를 통해 더 밝혀내야 할 것이 많았다. 이 사건 재판은 현재 김원하씨 심문만 공개되고 다른 국정원 직원들의 심문은 비공개되고 있다.

 

 

국정원 김보현 과장과 십수년간 
친분 유지하며 업무 지시 받고 
허심탄회한 얘기 들어온 김원하 
위험하다 말려도 위조 계속 요구 
국정원도 나중엔 전과정 후회 

 

“유우성 출입경기록은 단둥시 
공안국 고위관계자에게 입수 
발급기관·관인·날짜 없자 
단둥의 조선족 김명석 통해 
화룡시 공안국 관인 위조”

 

 

1. 유우성 간첩조작사건의 퍼즐

 

유우성씨의 출입경기록을 위조한 범인은 검찰 진상조사팀이 끝내 찾아내지 못한 상태다. 따라서 유씨 출입경기록 내용이 왜 ‘출입입입’에서 ‘출입출입’으로 바뀌어 재판부에 제출된 것인지는 여전히 의문으로 남아 있다. 위조 서류는 총 세가지(유우성 북-중 출입경 기록, 중국 화룡시 공안국 회신서, 삼합변방검사참의 확인서)였다.

 

유우성씨는 2006년 5월23일 어머니 장례를 치르러 지린성 연변자치주 삼합변방검사참(국경관리소)을 통해 중국에서 북한으로 들어가고(출), 2006년 5월27일 오전 10시24분 중국으로 나왔다.(입) 하지만 중국 출입경기록 시스템의 오류로 인해 출입경기록 원본에는 2006년 5월27일 오전 11시16분 다시 북에서 중국으로 나오고(입), 2006년 6월10일 다시 북에서 중국으로 나온(입) 기록이 붙어 있다.(출-입-입-입)

 

반면 위조된 출입경기록은 유우성씨가 2006년 5월23일 북으로 들어갔다가(출), 27일 중국으로 나왔다가 다시 들어가고(입-출), 유우성씨가 보위부 남파 요원이 된 뒤 6월10일 중국으로 나왔다고(입) 되어 있다.(출-입-출-입)

 

유씨를 수사한 검찰 수사팀(서울중앙지검 공안1부)은 여전히 ‘출입경기록을 비외교적인 방식으로 입수한 것일 뿐 기록의 내용을 변조한 것은 아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즉, 유씨가 북한을 드나들었다는 주장은 굽히지 않은 것이다. 이번 사건은 ‘증거조작 사건’인지 ‘간첩조작 사건’인지 불투명한 상황이다. 증거조작으로 기소된 이들의 혐의가 ‘국가보안법상 무고·날조’가 아닌 ‘형법상 모해증거 위조’인 것도 이런 탓이 크다.

 

유우성 사건 담당 검사들이 문서 위조 과정에서 국정원과 어느 정도까지 모의를 했는지도 더 밝혀져야 한다. 검찰 진상조사팀은 이문성·이시원 검사에 대해 직무태만 정도의 책임을 물었을 뿐이다. 두 검사의 휴대전화 통화 내역도 살피지 않았고, 진실을 알려주겠다고 수차례 연락한 국정원의 또다른 정보원을 조사하지도 않은 결과였다. (<한겨레> 5월3일치 17면 참조)

 

이외에도 국정원 합동신문센터에서 유우성씨 동생 유가려(27)씨의 진술이 어떻게 조작되었는지와 관련한 의혹도 여전히 풀리지 않고 있다. 이렇게 서울시 공무원 간첩 증거조작 사건은 많은 의문점을 지닌 채 서서히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져 가고 있다.

 

김원하씨는 더이상 숨지 않고 진실을 밝히겠다는 입장이다. 그가 어떤 위치에서 어느 정도까지 국정원의 업무 내용을 파악하고 있었는지는 불투명하다. 구치소에 갇혀 있는 탓에 그의 머릿속에 있는 내용이 명확하게 전해지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그간의 전말을 밝히겠다고 나선 국정원 관계자는 김씨가 유일하다. 그의 입에 주목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김씨의 증언을 단서로 삼아 더 정확한 실체를 파헤쳐야 한다.

 

김씨와의 인터뷰는 지난달 10일부터 여섯차례의 서신 교환과 17일 한차례의 구치소 면회를 통해 이루어졌다. 두서없이 적힌 편지 내용이 자연스럽게 읽히도록 질의응답 형식으로 재구성했다. 원문의 내용을 훼손하지 않는 수준에서 문장을 다듬었음을 밝힌다.

 

 

김원하씨는 3월6일 검찰의 조사를 받은 뒤 자살을 기도했다. 김씨는 <한겨레> 인터뷰에서 “국정원에 이용당했다는 느낌이 들어 허망했다”고 말했다. 김씨가 3월10일 서울 여의도성모병원 중환자실에서 일반병실로 옮겨지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2. 출입경기록 위조 전말

 

-출입경기록의 위조 전말에 대해서는 검찰이 밝혀내지 못했다. 위조 과정에 대해 아는 대로 말해달라.

 

“유우성 출입경기록은 단둥시 공안국에서 입수한 내용이다. 당시 단둥시 공안국 고위 관계자를 통해 유우성 출입경기록을 조회하였는데 그는 정식 발급은 불가능하다며 발급 기관, 관인, 날짜 등이 없는 출입경기록만 출력해 참조하라고 제시했다고 들었다. 이 출입경기록을 (국정원이) 법원에 제출하려 해도 (공안국) 관인이 없어 공문서의 가치가 없었다. 이 때문에 공판검사(유우성 수사검사)가 관인을 받아오라고 국정원에 지시했다. 국정원은 내부 회의를 통해 김보현 과장이 중국으로 가 관인을 받아오게 하였다. 김 과장은 단둥시에 거주하는 조선족 김명석을 통해 관인을 받으려고 노력했다.”

 

김원하씨는 관련 이야기를 대부분 김보현 과장에게 들었다고 밝혔다. <한겨레>는 신뢰할 만한 국정원 관계자를 통해 단둥시 공안국 ○○ 국장이 출입경기록 위조에 연루됐다는 확인을 받았다.

 

-유우성이 북한을 오갔을 때 이용했던 삼합변방검사참은 용정시 관할이지 화룡시 관할이 아니다. 국정원이 왜 화룡시 공안국의 관인을 받아오게 한 것일까?

 

“실수한 것이다. 국정원에서 중국 지도를 보고 삼합검사참이 화룡시 관할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삼합검사참은 용정시 관할이 맞다. 중국에서 일 처리를 한 김씨는 국정원의 지시대로 화룡시 공안국 출입경관리과 관인을 위조해 유우성 기록을 만들었는데 화룡시 공안국에는 출입경관리대대가 있지 출입경관리과가 없다. 김씨는 화룡시 공안국 안을 들어가보지도 않고 관인을 위조했다.”

 

-출입경기록의 내용이 ‘출입입입’에서 ‘출입출입’으로 바뀐 이유는 무엇인가? 검찰은 기록의 오류가 수정된 것이라고 주장하는데.

 

“국정원이 김명석에게 화룡시 공안국의 관인을 받아오라고 지시했을 때 ‘출입입입’이 ‘출입출입’으로 조작된 것이다. 김보현 과장은 김명석을 통해 ‘출입출입’으로 조작되고 ‘화룡시 공안국출입경관리과’ 관인이 날인된 유우성 출입경기록을 받아왔다. 국정원에서 조작을 한 뒤 김씨에게 출입경기록을 보낸 것인지, 김씨가 조작을 해서 국정원에 제출한 것인지 모르지만 조작을 지시한 것은 국정원이 맞다. 기소된 4명의 국정원 직원은 모두 ‘서류를 정식 절차를 받지 않고 입수한 건 맞지만 관인이 위조되었다는 것은 몰랐다’고 주장하고 있다. 가소로울 뿐이다.”

 

위조 여부를 수사한 서울중앙지검 수사팀(팀장 윤갑근 검사장)은 이달 초 ‘피의자 김아무개씨는 국정원 김보현 과장의 진술에 의해 인적사항은 특정되나 소재 불명이라 기소 중지한다’고 밝혔다. 김씨의 이름은 ‘찐밍시’라고 전해졌다. 김명석씨를 지칭하는 것으로 보인다.

 

김보현 과장은 ‘출입경기록이 가짜인 것을 몰랐고 김명석에게 속았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김씨는 국정원의 부탁으로 단순 심부름 역할을 맡은 것에 불과하기에 그 스스로 ‘출입입입’을 ‘출입출입’으로 바뀐 출입경기록을 발급받아올 이유가 없다. 내용을 변조하라는 국정원의 주문이 있었을 가능성이 더 크다.

 

-화룡시 공안국 명의의 ‘출입경기록 발급 사실 확인서’는 어떻게 된 것인가?

 

“그것 역시 김명석(찐밍시)이 한 것이다. 국정원은 김씨에게 ‘화룡시 공안국에서 유우성 출입경기록을 발급한 사실이 있음’이라고 적힌 내용으로 회신공문을 위조하게 했고 그것을 선양 주재 한국영사관에 보냈다. 선양 영사관 이인철 영사(실제로는 국정원 파견 직원)는 허위로 영사 인증 서류를 만들었다.”

 

-국정원은 유우성씨를 간첩으로 확신했나, 아니면 간첩으로 조작하려 한 것인가?

 

“국정원은 간첩으로 확신했던 것 같다. 나도 국정원 설명을 믿었다. 다만 위조 서류를 의뢰할 때는 내게 (김보현 과장이) ‘검찰과 국정원의 체면을 살리기 위해 답변서(화룡시 공안국 위조 서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당신이 국정원으로부터 문서 위조 의뢰를 받은 것은 언제부터인가?

 

“2013년 9월 국정원은 나에게 유우성 출입경기록 입수를 의뢰했다. 나는 입수가 불가능하다고 명확히 알려주었다. 국정원과 검찰은 출입경기록 입수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대책회의를 열고 서류 위조를 지시했다. (내가 못하겠다고 하자) 출입경기록 위조를 다른 조선족 김명석에게 부탁한 것 같다.”

 

김원하씨는 7월8일 오후 서울중앙지법 320호 법정에서 진행된 증거조작 재판에 출석해 국정원과 어떻게 처음 접촉하게 된 것인지 진술한 바 있다. 재판정에서 한 진술과 <한겨레>와 인터뷰한 내용을 묶어 재구성해 옮긴다.

 

“지난해 나는 한국의 회사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그해 9월 김보현 과장이 유우성 출입경기록을 입수할 수 있는지 부탁을 하길래 추석 휴가(9월18~20일) 때 중국으로 들어가 알아봤다. 하지만 구할 수 없는 서류인 것을 알고 김 과장에게 안 되겠다고 말했다. 10월에는 김 과장이 화룡시 공안국 관인 도장을 구해달라고 했는데 그것도 안 되겠다고 말했다. 김 과장은 12월7일 분당 서현역으로 나를 다시 찾아와 유우성 사건을 자세하게 설명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유우성이 누군지 잘 몰랐다. 김 과장은 그날 유우성 변호인단이 재판부에 제출한 서류를 반박할 수 있는 자료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 과장은 이날 화룡시 공안국이 발급한 것으로 유우성 출입경기록을 위조한 것을 후회한다고 말했다. 재판도 ‘다 끝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이대로 물러설 수 없는 상황이라며 유우성 쪽 서류를 한번 더 반박할 서류를 만들자고 김 과장은 제안했다.”

 

유우성 변호인단은 이 당시 삼합검사참으로부터 ‘유우성 출입경기록에 찍힌 2006년 출입입입 기록은 전산 오류로 발생한 것으로 유우성은 2006년 5월27일 이후 북으로 다시 들어간 적 없다’는 취지의 설명서를 받아 재판부에 제출했었다. 국정원은 이에 대한 반박 서류를 김원하씨에게 부탁한 것이다.

 

“내가 다른 지역 변방검사참에서 근무하는 지인을 통해 알아보니까 변방검사참은 군의 통제하에 있어 민간인이 들어갈 수 없고 유우성 변호인단이 제출한 그런 서류도 발급해주지 않는다는 거다. 12월8일 김보현 과장에게 알려주니까 김 과장은 (유우성이 받아온) ‘삼합변방검사참 설명서를 반박하는 서류를 받아올 수 없겠냐’고 물었다. 나는 ‘그런 서류를 제3자가 발급받아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김 과장은 ‘돈을 쓰더라도 서류를 꼭 만들어야 한다. 이대로 물러서면 화룡시 공안국 발급 유우성 출입경기록 위조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된다’고 말했다. 내가 ‘그렇다면 가짜로 서류를 만들어오라는 건데 유우성 쪽에서 또 중국에 가서 떠들 텐데’라고 우려하자 김 과장은 ‘그건 걱정 말라. 이번이 (선고 공판을 앞두고) 증거 제출 마지막이어서 (유우성 쪽이) 더 떠들고 할 시간이 없다’고 했다. 내가 다시 ‘재심(상고심)이 있는 것 아니냐’ 하고 물었더니 김 과장은 ‘재심은 공개재판을 여는 것이 아니고 판사가 서류만 검토한다’며 안심시켰다.

 

김 과장은 ‘가짜 서류도 괜찮지만 육안으로 볼 때 차이가 나면 안 된다’고 했다. 그래도 나는 선뜻 대답할 수 없어 우려되는 여러 문제를 논의했다. 중국에서는 (서류 위조가) 범죄인데 한국에서는 문제가 없는 것인지, 한국 재판부가 중국에 확인할 우려는 없는지 등 많은 문제를 이야기했다. 김 과장은 문제될 게 없다고만 했다.”

 

결국, 김원하씨는 이틀 뒤 중국으로 갔다. 12월13일 김 과장이 적어준 내용대로 삼합변방검사참 명의의 유우성 출입경기록 관련 확인서인 ‘일사적답복’을 위조했다고 한다. ‘삼합변방검사참에서는 유우성 출입경기록 관련 확인서를 발급한 적 없고, 2006년 당시의 출입입입 기록은 오류로서 출입출입이 정확한 기록일 가능성이 크다’는 취지의 내용을 담았다. 김 과장은 유우성이 소유한 단수비자로도 북한을 여러 차례 드나들 수 있다는 설명이 들어가도록 위조를 지시했지만, 상식적으로 불가능한 내용이라 김씨는 서류에 그러한 내용은 담지 않았다고 한다. 이후 국정원은 김씨에게 통장으로 위조와 체류 비용으로 약 850만원을 보냈다.

 

2013년 12월 중순께 김 과장은 김씨에게 한국의 회사를 그만두고 자신의 일을 도와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하루 10만원씩 한달 300만원씩 주겠다고 제안했다고 한다. 김 과장은 ‘긴박하니까 도와달라’며 계속 설득했다고 한다. 김씨는 이를 받아들였다.

 

2014년 1월20일께 김보현 과장은 이번에는 유우성 출입경기록을 위조해서 가짜 공증을 받아오라고 김씨에게 부탁한다.

 

“위조라는 말을 쓴 것은 아닌데 어떻게든 만들어서 가지고 오라고 했다. 그래서 김 과장 지시에 따라 ‘유우성이 2회 북한 출입한 사실을 확인한다’라고 주석을 적은 유우성 출입경기록 초안을 작성하고 스마트폰으로 촬영하여 김 과장에게 보내어 계속 논의했다.”

 

 

하지만 이 출입경기록 위조는 성공하지 못했다. 공증을 받으려 해도 공증처에서는 신청인란에 유우성씨 등의 이름이 적혀야만 공증을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유우성 신분증을 위조해 공증처에 제출해서 공증을 받는다 해도, 이를 재판부에 제출하면 유우성 변호인의 웃음거리만 될 것이 분명했다.

 

“2월 초 김 과장이 다시 연락을 해왔다. (유우성이 아닌) 연변자치주 공안국이 공증을 신청한 것처럼 공증서를 위조하자고 새로 제안을 했다. 나는 너무 위험하다며 안 된다고 했지만 김 과장은 마지막 재판이라면서 거듭 부탁했다.”

 

그런데 애초 국정원이 갖고 있던 출입경기록에서 오타가 발견됐다. 유우성 쪽이 발급받아 재판부에 낸 정식 출입경기록과 비교해서 이를 발견했다고 김보현 과장으로부터 들었다고 김씨는 증언했다. 출입경기록은 새로 위조됐다.

 

검찰은 유우성 출입경기록을 2013년 11월1일과 12월5일 두번 재판부에 제출했는데 이 두 기록에서 화룡시 공안국 도장이 찍힌 위치가 미세하게 달라 <한겨레>는 2013년 12월22일 심층 보도로 위조 가능성을 제기한 바 있다. 김씨의 이번 증언대로라면, 국정원이 필요에 따라 여러장의 출입경기록을 수시로 위조해냈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2014년 2월14일 김씨는 길림성 외사판공실을 발신인으로 하여 선양 주재 한국영사관으로 위조된 출입경기록 공증 서류를 보내려 하였다. 그때 김 과장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중국 정부가 한국 재판부에 위조 사실을 통보했다는 소식이 김씨에게 전해졌다. 모든 위조 작업은 중단됐다. 위조비용으로 1000만원가량이 이미 들었지만 국정원은 김씨에게 지급하지 않았다고 한다.

 

 

“검찰조사 대비해 상의할 때 
국정원이 다 책임지겠다는 
말 들어 국정원을 믿었다 
진술 내용도 그들이 정해줬다 
하지만 검찰조사를 받아보니…” 

 

“위조과정을 총지휘한 것은 
검찰이라고 주장한다 
비공식 출입경기록에 대해 
발급사실 확인서 받아오라는 건 
문서조작하라는 말과 진배없어”
 

 

 

지난해 12월6일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항소심 재판을 받기 위해 서울시 서초동 서울고등법원으로 들어가는 유우성씨. 1심에 이어 이날도 무죄판결을 받고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는 유씨는 최근 김원하씨가 <한겨레>에 보낸 편지를 읽고 “안타까운 마음이 크다”고 말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3. 들통난 위조와 자살 기도

 

중국 칭다오에 머물던 김씨에게 김 과장은 연락해 한국으로 들어오라고 요청했고, 김씨는 2월23일께 귀국했다. 김 과장은 김씨에게 검찰 조사를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때 김씨는 유우성 수사 검사가 자신을 조사한다는 말로 이해했다. 검찰에 위조사건 진상조사팀이 꾸려진 것은 몰랐다.

 

-국정원과 함께 있으면서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나?

 

“국정원이 마련한 호텔에 있는 동안 검찰 조사를 어떻게 받을 것인지 논의했다. 이때 김 과장은 나와 허심탄회하게 많은 이야기를 했다. 그는 위조 서류 제작 전 과정을 후회했다. 2월27일 이인철 영사까지 소환돼 검찰 조사를 받는다는 소식을 듣고는 격한 심정을 토해냈다. 김 과장은 ‘나(김보현)를 검찰 조사에 나가라고는 못할 것이다. 다 대책회의 토론을 하고 하게 한 일이다. 나 혼자 한 일은 하나도 없다. 죽으면 다 같이 죽는 것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중국에서 위조 사실을 확인해줄 것은 미처 예상 못했던 것인가?

 

“민변이 중국 공안국에 찾아갔지만 위조라는 공식 확인을 받지는 못했었다. 그래서 김 과장은 ‘한국 재판부의 확인 요청에도 중국 정부가 응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화룡시 공안국은 검찰 제출 서류는 위조라고 설명했지만 위조 확인서 발급은 거부했었다. <한겨레> 취재진이 지난해 12월 방문했을 때도 같은 설명을 들었다. 이 때문에 변호인단은 공안과의 대화 장면을 녹화해 재판부에 제출할 수밖에 없었다.

 

-검찰 조사 때 당신에게 어떻게 진술하라고 지시한 것은 없었나?

 

“나는 잘못을 인정하는 게 어떻겠냐고 김 과장에게 제안도 했지만 김 과장은 동의하지 않았다. ‘중국 정부가 검찰 쪽 제출 문서가 위조라고 통보했지만 어떤 식으로 위조된 건지 밝히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은 위조라고 얘기하면 안 된다. 우리는 돈을 주고 받아온 것일 뿐 위조는 몰랐다고 말하라’고 했다.”

 

김보현 과장은 또 스캐너를 활용해 문서를 위조한 것을 후회하기도 했다고 한다. 화룡시 공안국 도장 문양 일부에 (위조 시 활용한 문서의) 본문 내용이 찍혀버리는 바람에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쉽게 위조문서임을 알게 됐다고 한다.

 

검찰 조사를 받게 되면서 김씨는 자신이 예상했던 것보다 상황이 심각함을 깨달았다. 유우성 수사 검사가 아닌 증거조작 진상조사팀이 자신을 수사하고 있다는 것도 조사받고 나서야 알았다. 3월5일 새벽 검찰 조사를 받고 나온 김씨는 이날 여의도의 한 호텔 객실에서 자살을 기도했다.

 

-자살을 기도한 이유는 무엇인가?

 

“국정원에 황당하게 당했다는 억울함을 죽음으로 호소하고 싶었다.”

 

-김보현 과장과 상의해서 당신 스스로 위조한 것 아닌가. 무엇이 억울하다는 것인가?

 

“검찰 조사 받을 것에 대비해 국정원 직원들과 상의할 때 국정원이 다 책임을 지겠다는 태도였다. 그래서 국정원을 믿었다. 진술 내용도 그들이 다 정해줬다. 하지만 검찰 조사를 받아보니 국정원에서 말하던 것과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됐다. 김 과장은 내가 10년이나 믿었고 국정원과 검찰은 국가기관이기 때문에 나는 진실로 믿고 도와주려 했는데 나는 범죄자가 되어 있었다. 허망했다.”

 

-김보현 과장과는 언제 어떻게 알게 된 것인가?

 

“김보현 과장은 내가 탈북자를 돕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2000년 초 이를 확인하고자 연락을 해왔다. 국정원 내곡동 청사에서 김 과장을 만났다. 김 과장은 중국에 상당 기간 머물렀는데 중국 단둥과 선양시 등에서도 만나고 백두산 관광도 함께 했다. 김 과장과는 오랫동안 신뢰하는 관계였다.”

 

 

김원하씨 증거조작 증언에 관해 
검찰은 “증거가 우선이므로 
코멘트할 상황은 아니다” 
국정원은 “검찰과 증거확보 위한 
협의 했을 뿐 문서위조 협의 안해”

 

 

4. 검찰과 국정원의 공모 관계

 

<한겨레>는 위조 과정에서 검찰과 국정원의 공모관계에 대해 자세하게 김원하씨의 의견을 들었다. 김씨는 검찰이 국정원의 위조 과정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을 수밖에 없다며 자세한 정황을 설명했다. 김씨가 어느 정도까지 깊숙이 검찰과 국정원의 논의 과정을 알 수 있는 위치에 있었는지는 불투명하지만 위조사건 실체의 실마리를 추적하기 위한 단서라고 판단해 그의 증언을 그대로 옮긴다.

 

“(나는) 위조사건을 총지휘한 것은 검찰이라고 주장한다. 유우성 수사 검사들은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이들은 국정원이 유우성 출입경기록을 정식 절차가 아니라 중국 내 협조자를 통해 정보협력 차원에 의해 확보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검찰은 국정원에 ‘화룡시 공안국 명의 유우성 출입경기록 발급 사실 확인서’를 받아오라고 요청했다. 비공식 출입경기록에 대해 중국 당국이 관인이 찍힌 확인서를 찍어줄 리 없다는 건 검찰도 잘 알 것이다. 검찰이 발급 사실 확인서를 국정원에 요구한 건 새로 문서를 조작하라는 말이나 진배없다. 국정원 내부에서는 화룡시 공안국에 공식 요청할 경우 협조자 보호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어 논란이 있었지만 결국 확인서를 정보협력 방식(서류 위조)으로 받아오기로 결정했다. 김보현 과장은 내게 ‘검찰과 국정원은 모든 과정에서 수시로 대책회의를 열고 서류 위조를 공모했다’고 말했다.”

 

김씨 주장의 취지는, 검찰이 국정원이 가져온 출입경기록이 비공식적인 발급기록임을 알고 있었다면 국정원에 ‘공식적으로 발급받았다는 확인서’가 아니라 공식 출입경기록을 발급받으라고 요구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 1월 유우성 간첩사건 관련 검찰 수사팀에 불려가 조사를 받은 한 참고인은 <한겨레>에 “이문성 검사가 ‘협조자가 운영되어서 출입경기록 관련 자료를 확보하고 있다’고 말한 적 있다”고 전했다. 이 협조자는 김원하씨일 가능성이 크다. 국정원과 검찰이 증거 위조를 논의한 정황으로 해석된다.

 

반면, 검찰은 2013년 9월 국정원이 가져온 출입경기록에 관인이 없어 다시 발급받아오라고 요청했는데 10월 중순 국정원이 가져온 기록에는 발급처의 관인이 정확히 찍혀 있어 그것을 정식 발급 기록으로 믿을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한 바 있다. 검찰이 이 두번째 기록을 정식 발급 기록으로 믿고 확인서를 받아오라고 했을 수 있다.

 

그러나 정상적인 외교경로로는 출입경기록을 발급받을 수 없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던 검찰이 두번째 입수 기록은 정상적이었다는 국정원의 설명을 그대로 믿었다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김씨의 주장과 검찰의 주장은 미묘한 지점에서 서로 대립한다. 진실은 안갯속에 있다.

 

이에 대해 증거조작 수사팀 관계자는 <한겨레>에 “김원하씨의 생각이 그렇다 하더라도, 수사는 증거로 하는 것이다. 국정원과 검찰 모두 (위조 공모 여부를) 부인하고 있기에 지금으로서는 검찰 입장을 밝히기 곤란하다”고 밝혔다.

 

이인철 전 선양 영사관 영사(국정원 파견 직원)는 허위 영사 인증을 한 혐의로 기소되어 재판을 받고 있다. 이 전 영사는 ‘국정원에서 보내온 문서 내용들을 그대로 믿고 영사 인증을 한 것일 뿐 허위 공문서를 작성한다는 인식 자체가 없었다. 이러한 확인서의 작성은 해외에서 국가보안법 사범에 대한 증거수집의 관행이라 생각하고 국정원 수사팀의 지시에 따랐을 뿐이다’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정원은 이 전 영사에게 ‘절차상 의문이 있더라도 본부에서 숙의하여 결정한 사안이니 믿고 따르라’는 지시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정원은 김원하씨의 주장과 관련한 <한겨레>의 답변 요청에 “검찰 조사에 앞서 김씨에게 답변 요령을 교육하지 않았다. 국정원과 검찰이 협의한 것은 유우성의 간첩 혐의를 입증할 만한 진실된 증거 수집과 관련한 것이었을 뿐 문서 위조는 아니었다. 재판을 통해 진실이 밝혀지길 기대한다”고 해명했다.

 

 

5. 김원하는 누구인가

 

김원하씨는 재중동포(조선족)로 알려져 있으나 원래는 탈북자라고 한다. 김씨의 아버지 고향은 평안북도 안주, 어머니 고향은 경상남도 밀양이라고 한다. 일제 강점기에 김씨 부모는 만주로 갔고 그곳에서 만나 결혼했다. 해방 뒤 김씨 아버지의 고향인 안주로 돌아왔는데 1955년 김씨의 아버지는 뇌출혈로 세상을 뜨고 어머니 혼자 6남매를 키웠다고 한다.

 

1965년 3월 김씨 가족들은 탈북해 중국에 정착했다. 당시에는 남한에서 탈북자를 받아들이지 않아 어쩔 수 없었다. 중국에서의 삶도 힘들었다. 김씨는 망류자(떠돌이)로 분류돼 중학교도 제대로 다닐 수 없었다. 학교에서 받아온 교과서로 독학을 했다. 마을에서 소를 대신 키워주는 일을 하고 생계를 꾸렸다.

 

김씨는 가짜 호적을 만들어 조선족이 되었다. 공부를 꾸준히 해 조선족 학교의 교사로 채용됐고 1978년 연변 제1사범학원에 입학해 대학 공부도 하게 되었다. 김씨는 1988년 서울올림픽 중계를 텔레비전으로 보았다.

 

“한국은 미국의 식민지이고 한국 사람들은 헐벗고 판잣집에서 살고 있다고 교육받았는데 텔레비전에 비추어지는 한국은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한국은 우리 민족의 자랑이라는 자부심을 갖게 되었다. 그 후 한국 기업인들의 중국 진출이 많아졌고 나는 한국인들을 많이 만나며 한국에서 살고 싶은 마음이 더욱 간절해졌다.”

 

그는 국정원의 잘못된 부탁을 거절하지 못한 이유에 대해 한국인이 되고 싶은 소망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문서 위조가 잘못된 것임을 알면서도 왜 감행했나?

 

“김보현 과장의 말을 그대로 믿었다. 김 과장은 유우성이 탈북자로 위장해 남한에 들어온 뒤 탈북자 명단을 북한에 넘겼다고 했다. 나는 이 말을 듣고 가슴이 섬뜩했다. 탈북자 명단을 북한에 넘기면 북한에 남은 가족들이 어떻게 되는지 너무 잘 알기 때문이다. 또 국정원과 검찰이 곤란에 빠졌을 때 내가 도와주면 앞으로 나도 큰 도움을 받으리라는 어리석은 판단으로 국정원의 요구에 따랐다. 김 과장은 이번 일을 잘 마무리하면 나의 국적 문제(한국 귀화)가 해결된다고 했다. 그러나 구속 직후 검찰 조사를 받으면서 진상을 알게 됐다. 지금 유우성씨를 생각하면 대단히 죄송할 따름이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이번 일로 대한민국에 피해를 준 것에 깊이 사죄하고 나는 죄인이 맞다고 생각한다. 판사께서 합리적인 판단으로 판결할 것으로 기대한다. 이번 인터뷰가 재판에 영향을 주거나 그러지는 않았으면 한다. 언론 플레이 한다는 얘기 듣고 싶지 않다. 그저 진실을 소상히 국민들에게 설명하고 싶었다. 친구 김보현 과장을 너무 믿었고 그게 애국이라고 생각한 게 내 잘못이다.”

 

<한겨레>는 17일 유우성씨를 만났다. 김씨와 <한겨레>가 나눈 편지 내용들을 전했다. 유씨는 “김원하씨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이 크다”고 말했다. 유씨는 “여전히 김씨가 증오스러운 건 사실이다. 그가 위조를 안 하려 노력했지만 한국 국적을 받고 싶어서 국정원의 말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안타깝게 느껴졌다. 재판에서 선처받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유씨는 “(이런 말을 하는) 내가 착한 건지 멍청한 건지 모르겠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새정치민주연합 박영선 원내대표는 지난 10일 청와대에서 열린 여야 원내대표단 회동에서 새누리당에 상설특검 1호로 간첩 증거조작 사건을 택하자고 제안했다. ‘상설특검법안’(특별검사의 임명 등에 관한 법률)은 지난 6월19일 법률효력이 시작된 상태다. 국회 본회의 출석 인원 과반이 동의해야 특검 대상을 정할 수 있다. 원내 과반 의석을 보유한 새누리당은 간첩 증거조작 사건에 대한 특검에 부정적인 입장이다. ‘대북 휴민트’의 노출을 우려하는 것이다. 현시점에서 특검이 실현될지는 불투명하다.

 

허재현 기자 cataluni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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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인천AG 대규모 파견, 남북관계 개선 신호탄

 北 선수단.응원단, 항공.육로.해상 이용 파견의 의미
조정훈 기자  |  whoony@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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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07.18  19: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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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오는 9월 열리는 인천 아시안게임에 선수단과 응원단을 각각 350명씩 파견한다고 지난 17일 열린 남북 아시안게임 실무접촉에서 밝혔다.

그리고 선수단은 서해 직항로를 이용한 항공편, 응원단은 경의선 육로를 통해 이동하며, 현재 원산항에 정박 중인 '만경봉-92호'를 제주해협을 거쳐 인천항에 정박, 응원단 숙소로 사용하겠다는 구체적 방식을 내놓았다.

이는 북한이 인천 아시안게임을 계기로 '5.24조치'로 중단된 하늘.땅.바닷길을 모두 열겠다는 시도로 풀이되고, 나아가 남북관계 개선을 주도하겠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5.24조치' 이후 서해 직항로가 막혔고, 북한 선박의 영해 해역 운항이 전면 불허됐다. 경의선 육로 중에는 현재 도라산 남북출입경사무소(CIQ)와 개성공단을 잇는 도로가 포함, 현재 사용 중이지만 북한의 대규모 인원이 이 길을 이용한 적은 없다.

서해 직항로를 이용한 항공기의 경우는 2009년 8월 고 김대중 대통령 북측 조문단 이용이 마지막으로, 이는 '5.24조치' 발표 전의 일이다. 그리고 고 노무현 대통령이 경의선 육로를 통해 방북, 남북정상회담을 가졌다는 점에서, 경의선 육로의 상징적 의미는 크다.

그런 점에서 북한이 인천아시안게임에 700명의 선수단과 응원단 파견을 통해 남북 간 화합의 장을 열겠다는 뜻과 함께 이들의 이동방식으로 모든 경로를 활용하겠다는 것은 사실상 '5.24조치' 무력화를 넘어 남북관계 개선 시도라는 분석이다.

이는 지난 7일 북한의 공화국 정부성명에서 의미를 엿볼 수 있다. 북한은 성명에서 "북과 남은 관계개선의 유리한 분위기를 조성해 나가야 한다"며 "북남사이의 혈연적 유대와 동포애의 정을 가로막고 있는 법적, 제도적 조치들을 해제하고 접촉과 내왕, 협력과 대화의 길을 활짝 열어 놓아야 한다"고 밝혔다.

그리고 "우리의 원칙적 입장들과 선의의 조치가 실현된다면 악화된 북남관계를 정상화하고, 조선반도 정세를 완화하며 민족적 화해와 단합을 이룩하는 데서 전환적 계기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를 위해 북한은 인천 아시안게임 응원단 파견을 공언, 즉, 인천 아시안게임 응원단 파견으로 협력의 물꼬를 열겠다는 의미였다. 그리고 북한이 선수단과 응원단을 육.해.공 모든 방법을 통해 파견, '5.24조치'를 사실상 무력화시키고 남북관계를 개선 시키겠다는 실천적 의지를 보인 것이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북한이 대규모 인원을 다양한 방식으로 보낸다는 것은 남북관계 분위기 조성에 대한 의지, 한반도 문제는 자신들이 주도하겠다고 과시한 것"이라며 "대규모 민간급이 도로로 온다는 것은 상징성이 크다. 대범하고 큰 결단"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상징적인 것은 협력하겠다는 것이다. 남북관계 개선 의지가 강하다는 것을 보여준다"며 "비록 아시안게임을 대한민국이 주도하지만 다른 것은 북측이 주도하고 있다는 대범성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과거 남북 민간교류를 주도했던 한 민간단체 관계자도 "전면적으로 남북관계를 풀겠다는 의지이다. 북한이 진정성을 과시하겠다는 것"이라며 "5.24조치 해제는 한 부분에 불과하다.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진정성의 의미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즉, 북한이 선수단.응원단 파견과 다양한 방식의 이동 경로를 통해 5.24조치의 실질적 해제를 넘어 남북관계 개선의 의지를 표명했다는 분석이다.

여기에 정부도 어느 정도 공감대를 형성한 것으로 보인다. 정부 관계자는 "북한이 대규모 인원을 다양한 방식으로 파견해 '5.24조치'를 사실상 무력화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며 "그렇다고 우리가 이를 막을 이유는 없다. 스포츠 분야라는 점에서 북한의 파견방식을 억지로 막을 필요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이는 정부도 남북관계 개선의 걸림돌로 작용하는 '5.24조치'를 선언적으로 해제하지 못하지만, 유명무실화하는 방향으로 사실상 해제되는 방식을 택하겠다는 뜻으로 보인다. 그리고 북한의 인천 아시안게임을 위한 대규모 인원 파견 방식을 허용함으로써 어느 정도 명분을 쌓겠다는 것이다.

앞서 통일부가 통일준비위원회 공식 발족과 함께 대북 인도적 지원 사업에 남북협력기금을 지원하겠다고 발표한 것도 비슷한 맥락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여전히 박근혜 대통령이 과연 남북관계를 제대로 풀 의지가 있느냐가 관건이다. '드레스덴 통일구상'을 통해 대북 지원 의사를 밝혔지만, 그 전제는 '북한의 아이들은 가난하고 불쌍하다'는 것이고, 이에 북한은 여전히 반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남북 아시안게임 실무접촉에서 북측이 제기하지 않은 제반비용과 '대형 인공기' 사용 문제 등을 언급한 것은 북한에게 단순히 끌려가지 않겠다는 의지로 비춰진다.

그렇기에 비록 남북 아시안게임 실무접촉이 결렬됐지만, 앞으로 북한의 인천 아시안게임 대규모 인원 파견 합의가 남북관계 개선의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양무진 교수는 "정부가 비정치적인 행사에 북한의 대규모 인원을 받아들인다면, 이는 5.24조치 완화의 검증기회가 될 것이다. 박 대통령이 드레스덴 통일구상에서 밝힌 민족 동질성 회복 내용과 일치한다"고 분석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도 "이번 접촉에서 우리측은 '국제관례와 규정'을 강조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만약 북한을 동족으로 간주하지 않고 다른 외국 국가들과 동일시 한다면 북한과 통일하기 위해 '통일준비위원회'를 만들 이유가 전혀 없었다"며 정부의 적극적 태도를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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