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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이 '먹거리'라던 MB, 알고보니…

핵이 '먹거리'라던 MB, 알고보니…

[추적 ①] 2009년 UAE 수주 이후, 지금까지 계약 전무

 
허환주 기자 2014.11.06 07:32:31

 

 
지난 4일, 언론에서는 한국이 요르단으로부터 160억 원 규모의 요르단 원전 부지평가용역계약을 체결했다고 보도했다. 이보다 하루 전날에는 250억 원 규모의 연구용 원자로 개선사업을 네델란드와 체결했다고 보도했다. 언론과 정부에서는 이를 두고 다시금 원자로 수출 활로가 뚫렸다고 평가하고 있다. 하지만 MB 정부 때부터 진행됐던 원자로 수출 성과는 시원치 않다. <프레시안>에서는 그간 있었던 원자로 수출 과정과 문제점 등을 2회에 걸쳐 살펴본다. 편집자  
 
2012년 11월 26일 이명박 대통령은 라디오연설에서 원전 예찬론을 펼쳤다. 이 대통령은 "지난 40여 년 동안 우리의 먹거리는 자동차와 철강·조선·전자산업이었지만, 성장을 지속하려면 새로운 성장 동력을 발굴해야 한다"며 "그 중 원전은 핵심적인 미래 먹거리 중의 하나"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에 건설 중인 한국형 원전 1·2호기 착공식에 참석했다"며 "원전 수주로 우리가 얻는 경제적 효과는 공사비 200억 달러뿐 아니라 고급 일자리 창출"이라고 강조했다.
 
MB 정부는 원전이 앞으로 한국의 신(新)성장동력이라고 단호히 이야기했다. 2009년에 성사된 아랍에미리트 원전 수주가 근거다. 당시 공개입찰에서 프랑스 아레바 컨소시엄과 일본 히다치, 미국 GE 컨소시엄을 누르고 수주를 따냈다. 당연히 정부 차원에서 대대적인 홍보가 이뤄졌다. 
 
하지만 그의 말처럼 원전이 한국 미래의 먹거리가 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무엇보다 원자력 발전소는 세계적으로 더는 사용하기 부담스러운 에너지로 치부되기 때문이다. 한국이 원전을 수출하려 해도, 수입할 나라가 줄어들고 있다는 이야기다.
 
(관련기사 바로가기 ☞ : MB의 비용'을 따져야만 하는 이유)
 
▲ 원전 수주 계약을 체결할 당시인 2009년, 이명박 대통령과 칼리파 빈 자예드 알 나흐얀 UAE 대통령이 아부다비 에미리트 펠리스 호텔에서 원전사업 주계약서 서명식에 참석하기 위해 웃으며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 원전 수주 계약을 체결할 당시인 2009년, 이명박 대통령과 칼리파 빈 자예드 알 나흐얀 UAE 대통령이 아부다비 에미리트 펠리스 호텔에서 원전사업 주계약서 서명식에 참석하기 위해 웃으며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감소 추세로 가는 원전, 역주행하는 한국
 
전 세계적으로 31개국에서 전력을 생산하기 위해 원자력을 이용한다. 총 439기(2008년 기준) 원자로가 가동되고 있다. 이들 원자로 총 설비 용량은 약 372.100GW이다. 여기서 생산되는 전력은 전 세계 전력 생산의 약 15%를 차지한다.
 
원전이 가장 많이 운영되는 지역은 서유럽이다. 이들 지역에서 가동 중인 원자로 대부분은 1960~1970년대에 건설됐다. 최근 핀란드와 프랑스에서 신규 원자력발전소 건설이 시작된 것을 제외하면 서유럽 대부분 국가에서는 1980년대 말 이후 원전을 추가로 건설하지 않고 있다. 캐나다, 미국, 스위스에서도 1990년대 이후에는 신규원전을 건설하지 않았다.
 
이렇게 감소 추세로 돌아선 배경에는 몇 가지 주요 사건이 존재한다. 1979년 스리마일섬 원전 사고, 1986년 체르노빌 원전 사고 등을 겪으면서 서유럽에서 원전 건설은 쇠퇴기로 접어들었다. 서유럽 지역 원전 운영 중 9개국 가운데 절반 이상인 5개국이 원자력의 단계적 폐쇄를 결정했다. 독일의 경우, 2011년 후쿠시마 사건 이후 원전 완전 폐쇄를 발표했다.
 
그럼에도 지식경제부는 2012년 1월 대통령 주재 비상대책회의에서 "2030년까지 원전 80기를 수출하겠다"고 공언했다. 원자력 선진국에서는 신규 원전을 더는 짓지 않고 있음에도 MB 정부는 어디에서 원전을 수주하겠다고 했던 걸까. 키워드는 아시아와 중동 등 원전 사업에 새롭게 뛰어드는 '신흥국가'였다. 
 
아랍에미리트 이후 성과 없는 한국
 
1970년대와 1980년대 건설을 시작해 20년 넘게 건설이 완료되지 않은 상태로 있는 10기를 제외하면 2000년 이후 건설이 시작된 원전은 서유럽 지역이 2기, 러시아가 4기, 그리고 아시아 지역이 21기이다. 아시아에서만 약 78%의 원자력 발전소가 건설되고 있는 셈이다.
 
이에 MB 정부는 2009년 UAE 원전 수주 이후, 중동 지역과 아시아 국가에 공을 들여왔다. 하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아랍에미리트(UAE)에 이어 제2한국형 원전 수출 후보지로 꼽혔던 터키 시노프 원전 수주는 사실상 한국 정부가 포기했다. 터키 원전 사업자인 한국전력은 이사회를 열고 흑해 연안 시노프에 원전 2기를 건설하기 위해 현지 건설업체와 함께 만든 페이퍼컴퍼니인 네덜란드 현지법인에 관한 청산을 결정한 것으로 확인됐다.
 
양국 정부는 2010년 6월 양해각서(MOU) 체결한 뒤 협상을 벌였다. 앞서 한전과 터키 국영발전회사(EUAS)는 2010년 3월 '시노프 지역에 한국형 원자로 2기를 건설한다'는 내용을 담은 공동선언서에 서명했다. 사업구조, 재원조달, 공정, 용지, 전력판매단가, 인력 양성 등 원전 건설에 필요한 모든 사항에 대한 양국 공동연구도 마쳤다.
 
하지만 터키 정부가 지급보증을 꺼린 데다 전력판매단가를 낮게 책정해 협상에 진척이 없었다. 일본, 캐나다, 중국 등 수주전에 뛰어든 나라를 두고 터키 정부가 저울질했기 때문이다. 결국, 한국 정부는 헐값 수주 논란에 휩싸일 수 있다는 지적에 현지 법인을 청산했다. 현지 법인을 청산했다는 건 터기 원전 수주를 포기한 것과 다름없다.
 
베트남 원전 수주도 터키처럼 되지 않으리란 보장은 없다. 한국과 베트남은 원전 건설을 위한 첫 번째 공식 절차인 예비타당성조사를 공동으로 추진하고 있다. 예비타당성조사는 올해 12월 전후에는 최종 수주에 관한 결과가 나올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예비타당성조사 보고서가 베트남 정부의 확정 절차를 거쳐 베트남 국회에서 승인을 얻으면 한국 원전 수출이 사실상 확정된다. 하지만 한국만이 아닌 일본, 프랑스, 중국 등에서도 입찰에 뛰어들어 터키 꼴이 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발트해 연안의 리투아니아 원전은 우리가 프랑스와 함께 수주전을 벌였으나 원전 후보지가 연약 기반이어서 기술적인 난점이 있다는 이유로 포기했다. 이밖에 이집트는 가격 문제로 수주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아르헨티나는 원전 수리를 맡는 정도에 그치고 있다.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도 원전 건설을 추진하고 있지만 당장 입찰 공고를 낼 분위기는 아니다.
 
▲ 핵 발전으로 생산한 전력량은 1990년 이후 지속적으로 증가했지만 2006년 최고치를 찍은 후 줄어들고 있다. 2013년 한 해 동안 전 세계에서 핵 발전으로 생산한 전력은 2359TWh다. 또한 전 세계 발전량 중 핵 발전이 차지하는 비중도 1996년 이후 점점 줄고 있는데 2013년 현재 전체 생산된 전력량 중 핵발전이 차지하는 비중은 10.8퍼센트다. ⓒ함께 사는 길

▲ 핵 발전으로 생산한 전력량은 1990년 이후 지속적으로 증가했지만 2006년 최고치를 찍은 후 줄어들고 있다. 2013년 한 해 동안 전 세계에서 핵 발전으로 생산한 전력은 2359TWh다. 또한 전 세계 발전량 중 핵 발전이 차지하는 비중도 1996년 이후 점점 줄고 있는데 2013년 현재 전체 생산된 전력량 중 핵발전이 차지하는 비중은 10.8퍼센트다. ⓒ함께 사는 길

 
경쟁에서 이점이 없는 한국
 
반면 한국의 경쟁대상인 러시아는 방사능 유출이 없는 멜트트랩(melt trap) 기술 개발로 국제 원자력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러시아 원자력공사는 지난해 10월 요르단의 원전 2기 건설 수주에 이어 12월에는 핀란드 한히키비 원전 건설에도 합의했다. 
 
러시아형 경수로로 거대 시장이 형성될 영국 진출도 노리고 있다. 러시아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진두지휘 아래 지난 2년간 베트남 2기 등 원전 수주로 700억 달러(약 70조 원)를 벌어들이고, 이란, 중국, 인도, 방글라데시, 헝가리 등 10여 개국에 원전 수출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원전 100기를 가동하고 있는 세계 최고의 원전 강국인 미국조차도 원전 수출에 관한 한 러시아의 적수가 못 된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일으킨 일본도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작년 자국 기술력, 국력, 비전 그리고 총리의 리더십을 총동원해 터키 수출을 확정 지었다. 베트남 원전 2기 수주에 이어 아베 신조 총리가 직접 나서 터키 수출에 쐐기를 박았다. 아랍에미리트에 이어 중동에 발판을 굳히려는 한국 진로를 방해하는 강력한 라이벌이다. 
 
사실 원전을 수출할 수 있는 나라는 얼마 되지 않는다. 원전 운영국 31개국 중 러시아, 프랑스, 일본, 캐나다, 미국 등 겨우 대여섯 나라에 불과하다. 모두 다 선진 강대국으로 러시아는 단독으로도 수출 경쟁력이 충분히 있으며 프랑스, 일본, 미국은 합병회사를 만들거나 컨소시엄이라는 형태로 서로 밀어주고 있다. 
 
문제는 한국 원전 사업은 다른 나라와의 경쟁에서도 이점을 갖기는 어렵다는 점이다. 그렇다보니 원전 가격을 다른 나라보다 4분의 1수준으로 낮게 책정하거나 아니면 다른 옵션을 주면서 유치하는 게 지금의 한국이다. 
 
아랍에미리트 수주 경쟁 때만 해도 '오일달러'를 보유한 아랍에미리트 측이 대출 등을 받아 건설비를 부담하고 한국은 원전을 지은 뒤 돈을 받았다. 아랍에미리트 원전 수주를 위해 한국이 수출입은행을 통해 10조 원을 28년 동안 아랍에미리트에 빌려준 것도 이 같은 이유다. 
 
뒤늦게 이 사실이 알려진 뒤, 한국은행에 역마진이 생긴다는 비판이 제기됐었다. 아랍에미리트의 국가신인도가 우리나라보다 높아 수출입은행의 수출금융 대출 때 역마진이 발생한다. 비싼 이자를 주고 빌려 와 싼 이자를 받고 빌려주기 때문에 우리에게 상당한 손해가 난다는 이야기다.
 
게다가 아랍에미리트에 원자력 수출을 대가로 사용후원자료, 즉 핵폐기물 처분 보증, 특전사 파병 등을 약속한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파병된 부대는 아직 한국에 돌아오지 못했다. 
 
더 큰 문제는 한국에서 목표로하는 차기 원자력 수출국들은 대다수기 개발도상국이기 때문에 아랍에미리트와 같은 방식이 통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터기 원전 수주에서 한국이 밀린 이유도 이 같은 이유였다. 4기 원전을 짓는 터키는 총 200억 달러 공사비용 중 30%를 발주국과 수주국 양국이 나눠 부담하고, 나머지 70%는 외부 금융권에서 PF(프로젝트 파이낸싱)로 할 방침이었다. 
 
PF에 투입되는 비용은 원전에서 나오는 전기를 팔아 회수하는 구조다. PF는 당연히 외국에서 싼 금리로 더 많은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국가가 유리하다. 국내 자금이 풍부하고 국가신용등급이 높아 저금리로 외국 돈을 끌어오기가 쉬운 일본이 부상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이에 앞으로 원전 수주에 성공하기 위해선 싼 이자를 물고 국제시장에서 뭉칫돈을 가져올 대형 은행, 이른바 '메가뱅크'가 필연적이다. 하지만 한국의 시장경제 구조상으로는 이것이 쉽지 않다. 
 

▲ 4대강 사업, 22조 원 부은 '밑 빠진 독'

<1> MB의 비용 : 4대강 사업, 22조 원 부은 '밑 빠진 독' ① "박근혜 정부 5년 수질 관리 비용만 20조 원" 

 

▲ MB의 자원외교 

<1> MB의 비용 : MB 자원외교의 虛와 實 ① MB 자원외교, 71건 MOU 중 계약은 딱 1건! 

<2> MB의 비용 : MB 자원외교의 虛와 實 ② MB정부, 자원외교에 43조 원 투자했으나…

<3> [MB의 비용] MB 자원외교의 虛와 實 ③ 에너지 자립? 돈만 날린 MB 자원외교

<4> [MB의 비용] MB자원외교의 虛와 實 ④ MB 자원외교…묻지마 투자, 수 조원 손실

<5> [MB의 비용] MB 자원외교의 虛와 實 ⑤ "MB 자원외교, 국민에게 56조 부채 남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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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세웅 신부 “진보당 해산? 위험한 독재자야말로 뽑아내야”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4/11/06 13:17
  • 수정일
    2014/11/06 13:17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인터뷰] 함세웅 신부 “진보당 해산? 위험한 독재자야말로 뽑아내야”

‘진보당 해산반대 원탁회의’ 제안, 6일 개최

최지현 기자 cjh@vop.co.kr 발행시간 2014-11-05 23:47:17 최종수정 2014-11-06 00:19:08
 

정부가 통합진보당에 대한 위헌정당해산심판을 청구한지 5일로 딱 1년이 됐다. 진보당 해산심판 사건은 박근혜 정부의 출범과 함께 불어 닥친 ‘광풍’에 따른 한국 헌정사상 최초의 사건으로 기록됐다. 법무부와 통합진보당은 1년 동안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정당의 위헌성 여부를 두고 공방을 벌였고, 앞으로 20일 뒤 최후변론만 남겨 놨다.

이에 맞춰 시민사회·종교·언론·정치권 등 각계를 대표하는 주요인사 10명의 제안으로 정부의 진보당 해산 시도에 반대하는 원탁회의가 6일 서울 용산구 백범김구기념관 컨벤션홀에서 열린다. 여기엔 ‘유신시대’ 민주화운동에 투신했던 함세웅 신부(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고문)도 제안자로 참여했다. 함 신부는 지난 해 4월 구성된 ‘국가정보원 내란음모 정치공작 공안탄압대책위원회’ 상임대표를 맡으며 진보당 해산심판 사건에도 큰 관심을 보였다.

함 신부는 4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 ‘기쁨과 희망 사목연수원’에서 가진 ‘민중의소리’와의 인터뷰에서 “1년 동안 정부가 저지른 무례나 범죄적 행위에 대해 우리가 함께 전체적으로 종합할 필요가 있다고 보고 원탁회의를 제안하게 됐습니다”라며 “이번 원탁회의는 정의를 기초로 오늘 우리 사회를 진단하는 성찰의 자리”라고 밝혔다.

함 신부 등의 제안으로 성사된 원탁회의에는 각계 대표급 인사 60여명이 참석한다. 정부가 진보당 해산심판 청구를 할 때 진보민주진영에서도 침묵하거나 선을 긋는 모습을 보였던 것에 비하면 진보당 입장에선 상당한 진전이다. 이에 대해 함 신부는 “역사 진전의 필연적인 현상”이라고 말했다. 십자가에 못 박혔던 예수나 독립운동의 표상인 안중근 의사가 외롭게 죽음을 맞이했지만, 훗날 역사적으로 평가받았던 것도 같은 이치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함 신부는 정부의 정당해산 시도에 대해 “자기 뜻에 맞지 않는 사람을 배제하는 것은 반민주적인 발상이며 이것이 바로 독재적 사고”라며 “이런 위험한 사람을 오히려 우리는 공동체에서 뽑아내야 합니다. 위험한 사람을 오히려 우리가 공동체에서 배제시켜야 합니다”라고 강한 톤으로 비판했다.

아울러 정당해산심판의 핵심 배경이 됐던 ‘이석기 의원 내란음모 사건’에 대해서도 함 신부는 내란음모는 무죄인데 내란선동은 유죄라는 판결은 모순이라고 지적하며 “(정부 논리대로라면) 부모들이 자녀를 가르치고 선생님이 제자를 가르치고 종교인들이 설법하고 목사님들이 설교하고 우리 가톨릭 사제들이 강론하고, 그게 다 선동 아닙니까? 성경 말씀도 어떤 의미에서는 선동적입니다. 사랑도 선동입니다”라고 꼬집었다.

함 신부는 그러면서 “우리는 모두 이석기 의원과 여섯 명 동료들의 고통과 아픔을,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의 고통일 뿐이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타인을 외면할 때에는 언젠가 나에게도 불시에 고통이 찾아올 수 있다고 생각해야 합니다”라며 “우리는 모두 눈을 뜨고 시대를 주시하는 감시자, 그리고 남을 도와주는 협조자가 되어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함 신부는 과거 일제시대와 유신시대가 끝난 게 아니라 “100년 역사 돌아다볼 때 불의한 정치 현실은 늘 현재형인 셈”이라고 밝혔다. 1974년의 민주회복국민선언과 1976년의 명동 3·1 민주구국선언에 참여해 유신시대 때에만 두 차례 투옥된 적이 있는 함 신부는 그야말로 역사의 산 증인이다. 그의 얼굴에 패인 주름은 세월을 그대로 보여줬다. 하지만 함 신부의 오랜 ‘민주화를 위한 고행’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함 신부는 “우리가 이승만 독재, 군사독재, 유신독재를 청산 못한 채 모두 비빔밥처럼 섞여 살고 있는 상황입니다. 친일파와 분단세력과 박정희 독재와 신군부졸개들이 여전히 건재하고 있습니다”라면서 “이제는 이러한 의미에서 시대를 바꿀 때가 되었습니다”라고 강조했다.

다음은 진보당 해산심판 사건을 비롯해 현 시국에 대한 함 신부와의 인터뷰 내용이다.

- ‘통합진보당 해산 반대 민주수호를 위한 원탁회의’를 제안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오늘(11월 5일)은 진보당 해산 청구를 법무부에서 제출한지 꼭 1년이 되는 날입니다.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사건이나 역사를 기억하며 더 큰 가치를 종합하고 추구해나갑니다. 그래서 1년 동안 정부가 저지른 무례나 범죄적 행위에 대해 우리가 함께 전체적으로 종합할 필요가 있다고 보고 원탁회의를 제안하게 됐습니다. 이러한 상황이 나오게 된 과정에 대해 시민의 처지에서, 또 진보당 당사자들의 처지에서 모두 각자 성찰할 역사적 책무가 있습니다. 원탁회의는 시대를 고민하는 많은 분들이 서로 생각을 나누고, 또 어려운 현실을 어떻게 우리가 헤쳐 나가야 할지 찾고 다짐해 나가는 그런 아름다운 결단의 자리가 될 것입니다.

저는 신학도로서 4~5세기 아우구스티노 성인의 말을 늘 되새깁니다. 그는 로마제국 멸망을 지켜보면서 신국론에서 ‘모든 공공단체, 국가공동체에는 정의가 기초가 돼야 한다. 정의가 없는 공동체는 강도 집단과 똑같다’고 말했습니다. 따라서 이번 원탁회의는 정의를 기초로 오늘 우리 사회를 진단하는 성찰의 자리라고 생각합니다. 이 원탁회의는 외국인 법 전문가들도 참석하는데, 이는 진보당 해산심판 사건이 국내 문제뿐 아니라 국제적 문제, 인류 전체의 문제라는 것을 입증하는 것입니다.

- 박근혜 정부의 통합진보당 해산 청구에 대해 어떻게 보고 있나. 정부는 진보당 구성원들의 성향을 따지면서 국기문란 등 위험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예방 차원에서라도 해산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예방이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예방차원의 목적은 공동선에 기초해야 합니다. 공동선은 개인과 가정과 단체가 더 충만하게 더욱 쉽게 자기 완성을 실현할 수 있는 총체입니다. 한 마디로 공동선은 모두를 껴안은 모두에게 좋은 가치입니다. 따라서 자기 뜻에 맞지 않는 사람을 배제하는 것은 반민주적인 발상이며 이것이 바로 독재적 사고입니다. 이런 위험한 사람을 오히려 우리는 공동체에서 뽑아내야 합니다.

현 정권은 국가공동체와 공동선의 참뜻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국가공동체는 다양한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헌법을 짓밟고 군사반란을 일으키고 쿠데타를 행하고 헌법과 법을 위반하고 공권력을 남용하고 죄 없는 사람들을 고통 받게 하는 불의한 권력자들이 역사와 민족공동체 앞에서 깊이 속죄하고 반성해야 합니다.

-이석기 의원 내란음모 사건 항소심에서는 내란음모 부분은 무죄, 내란선동 부분은 유죄를 선고 받았습니다. 당시 선고 재판을 직접 방청하시면서 어떤 생각을 하셨나요.

=참으로 모순된 재판입니다. 음모가 없으면 선동 자체가 무의미합니다. 선동을 법적인 잣대로 재단하는 것 자체가 모순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언어는 그 자체가 선동적이기 때문입니다. 부모들이 자녀를 가르치고 선생님이 제자를 가르치고 종교인들이 설법하고 목사님들이 설교하고 우리 가톨릭 사제들이 강론하고, 그게 다 선동 아닙니까? 성경 말씀도 어떤 의미에서는 선동적입니다. 사랑도 선동입니다. “세상을 바꾸자”, “잘 살자”라는 말도 선동입니다. 초대와 호소도 선동입니다. 이와 같이 인간의 언어는 그 자체로 선동적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선동을 법으로 통제하니 우습습니다. 인간은 선동하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선동을 죄라고 하는 것은, 생각하고 말하는 게 죄라는 것과 똑같습니다. 국제공동체 사회에서 웃음거리가 되는 이러한 법 적용은 빨리 없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천주교 정의구현 전국사제단 고문 함세웅 신부
천주교 정의구현 전국사제단 고문 함세웅 신부ⓒ김철수 기자

-이석기 의원 내란음모 사건부터 진보당 해산심판 사건까지 정치인과 정당이 정권으로부터 직접적인 탄압을 받고 있음에도 진보민주진영 일각에선 이에 대해 침묵하거나 선 긋기를 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1년이 지나고 열리는 원탁회의에는 예전보다 많은 인사가 참여하는 것 같습니다.

=역사의 많은 발자취를 남긴 분들의 죽음을 우리가 되돌아보면 사실 고독했습니다. 신앙인으로서 보면,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 현장에도 다섯 여섯 분들의 경건한 여인들과 사도 요한 한 분만 계셨습니다. 독립운동의 표상인 안중근 의사도 홀로 돌아가셨습니다. 최근 역사만 보더라도 진보당 조봉암 대표도 사형 당할 때 정말 모두에게 외면당한 상태였습니다. 50여년이 지난 다음에 무죄가 확정됐습니다. 이와 같이 외로움 속에는 오히려 공동체 가치가 내재돼있습니다. 70년대 재판에서 최후 진술할 때 우리는 모두 제4심인 ‘역사의 심판’을 선언했습니다. 저는 신앙인으로서 역사의 심판을 넘어 종말론적 하느님의 영원한 심판을 확신합니다.

군중과 대중의 경우 이러한 힘든 여정에 공포감이 있으니까 처음엔 일단 외면했습니다. 지난해 11월에 광풍이 몰아닥쳤기 때문이지요. 지금은 당시 대선 관권 불법선거에 대한 항의를 잠재우기 위해 이 사건을 펼쳤다고 모두들 다 알고 있습니다. 안타까웠던 것은 당시 민주당 국회의원들이 광풍 속에서 침묵 지키고 이석기 의원 구속을 동의했던 점입니다. 그것이 정말 마음이 아프고 안타까웠습니다. 광풍의 1년이 지난 지금은 조금 더 객관적으로 생각할 수 있기에 더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갖고 함께 하고 계십니다. 이는 역사 진전의 필연적인 현상입니다. 함께 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하고, 그 외 선입견으로 외면하셨던 분들도 선입견과 외면을 거둬들이고 역사적 현장으로 오셨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이 사건과 함께 과거 독일 나치 히틀러시대를 다시 생각합니다. 그 당시엔 많은 공산주의자들, 유대인들, 노동자들, 가톨릭 사제들, 교수들 등 많은 이들이 감옥에 갇혔습니다. 마지막에 갇힌 분 중 한 분이 니묄러 목사님이었습니다. 이 분은 감옥에서 '그들이 왔다'라는 아름다운 신앙 고백문을 남겼습니다. 유대인 등 많은 사람들이 체포당할 때 무관심하다가 나중에 감옥에 끌려 갈 때, ‘사람 살려줘요!’ 하고 외쳤더니 아무도 듣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억울한 고통을 당할 때 외면하면 내가 억울한 고통 받을 때도 나 또한 외면당할 수밖에 없다는 것과 하느님께서도 나의 고통을 외면하신다는 신앙적 깨달음 속에서 이러한 고백을 토로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모두 이석기 의원과 여섯 명 동료들의 고통과 아픔을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에 고통일 뿐이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타인을 외면할 때에는 언젠가 나에게도 불시에 고통이 찾아올 수 있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모두 눈을 뜨고 시대를 주시하는 감시자, 그리고 남을 도와주는 협조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런 사건은 수구정권의 이른바 ‘종북몰이’와도 무관하지 않을 텐데,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십니까.

=나와 모습이 다르고, 생각이 다르고, 언어가 다르고 종교가 다르다고 해서 그걸 배제하는 것은 사실 동물적 접근입니다. ‘종북’을 말하는 것은 자기 스스로가 인간이 아니고 나는 동물이다, 나는 짐승과 같다고 얘기하는 것과 흡사합니다. 그렇게 말하는 분들에게 다가가 우리는 깨우쳐 주고 또한 그들 구원해야 합니다.

수구언론에서는 ‘종북몰이’로 역사적 사실과 진실을 왜곡하고 있는데, 역사적으로 깊게 관찰한다면 종북몰이의 원조는 박정희입니다. 1972년 7.4공동성명 발표되었습니다. 자주·평화·민족적 대단결이라는 통일의 3대 원칙,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그 당시 우리는 조금 의심을 했지만 그 의심대로 몇 달 뒤인 10월에 유신정변이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공개된 CIA 문서에 의하면 유신정변 4일 전쯤에 박정희 정권은 이를 북한에 미리 통고했다는 것입니다. 유신정변은 북한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니라고 설명했답니다. 그때부터 박정희는 1인 독재 길로 들어서고 김일성은 후계자 김정일 체제로 넘어가는 수령론을 정착시켰다는 것입니다. 누가 종북의 원조입니까? 박정희부터 질타하라고 얘기하고 싶습니다.

-통합진보당 해산 심판 청구를 비롯해 각종 공안탄압이 벌어지면서 우리나라가 유신시대로 되돌아갔다는 말이 공공연히 나오고 있습니다. 실제 그렇게 보십니까?

=일제시대 36년을 제가 살았던 시대가 아니기에 어려서는 너무나 먼 옛날의 긴 시대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박정희 군사독재 정권과 싸우면서 지금 40년이 흘렀습니다. 이건 우리 당대의 일이었습니다. 다시 일제 침략사를 되돌아보면 36년이 긴 게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되었습니다. 똑같은 사안이 45년 해방 이후 남북이 분단되는 과정에서도 일어났습니다. 미국과 소련의 점령이라는 아픈 역사를 기억합니다.

저는 지금 일제시대 나라를 빼앗겼던 고종과 이완용 시대의 옛날이 재현되는구나, 바로 지금 그것이 우리 시대에서 반복되는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해방 이후에 군정과 친일파들이 판을 쳤던 그때가 바로 지금 재현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이승만 독재, 군사독재, 유신독재를 청산 못한 채 모두 비빔밥처럼 섞여 살고 있는 상황입니다. 친일파와 분단세력과 박정희 독재와 신군부졸개들이 여전히 건재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변형을 거듭해서 한나라당이 되고 새누리당 집권층이 되었습니다. 100년 역사 돌아다볼 때 불의한 정치 현실은 늘 현재형인 셈입니다. 민족과 역사의 가치를 바로 정립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한 세기가 더 걸린다 합니다. 그것이 레미저러불의 교훈이기도 합니다. 이제는 이러한 의미에서 시대를 바꿀 때가 되었습니다.

천주교 정의구현 전국사제단 고문 함세웅 신부
천주교 정의구현 전국사제단 고문 함세웅 신부ⓒ김철수 기자

-지난 4월 16일 발생한 세월호 참사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최근 여야가 세월호 특별법에 대해 겨우 합의했지만, 여전히 미흡한 부분이 남아있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문제를 풀어나가야 할까요.

=4월 16일 이후에 벌어진 일들을 우리는 모두 있는 그대로 마음속에 간직했으면 좋겠습니다. 특히 정치인들, 책임자들이 그대로 간직했으면 합니다. 초심을 간직하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유가족을 청와대에 초청한 당사자, 희생자들을 얘기하며 눈물을 흘렸던 그 당사자가 그 언행에 대한 진정성과 책임을 보여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것들이 모두 거짓이었다는 게 판명됐었습니다. 세월호 진상규명법에 그러한 진정성과 책임이 녹아들어가야 하는데 그것이 이루어지지 못했습니다. 마음이 아픕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의 진상 조사가 세상을 떠난 분들을 위한, 그리고 우리 시대를 위한 진정한 쇄신의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가슴 아픈 마음으로 돌아가신 분들과 우리시대의 변혁을 위해 매일 하느님께 정성껏 기도드립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얼마 전 한국을 방문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직접 유족을 만나기도 했고, 사회적 약자에 관심을 갖는 행보를 이어갔습니다. 그의 한국 방문은 어떤 의미를 남겼다고 보십니까?

=처음에는 개인적으로 조금 염려했습니다. 불의한 관권선거로 된 독재자의 딸을 국제적으로 정당화시켜주는 게 아닌가 이런 염려를 하면서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교황의 말씀과 행업 등 모든 걸 지켜보면서 제 염려는 사라지고 제가 기대하고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아름답고 감동적인 메시지를 주셨습니다. 그 분은 단순히 언어로써 자기의 뜻을 표현하는 게 아니라 마음으로, 가슴으로 얘기하는 분이라는 걸 느꼈습니다. 공항에 도착하면서부터 떠날 때까지 세월호 참사 가족들을 위한 방문이었다고 생각될 정도로 그분의 방문은 한국사에서도 큰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하면서 유가족과 같은 마음의 위로를 간직했습니다.

반면에 그분이 가슴으로 말했던 그 이면에는 가슴으로 말하지 않고 외면하는 한국사회의 모든 이들, 특히 형식적 신앙인들을 비롯하여 불의한 관료들, 모든 정치인들, 모든 책임자들을 꾸짖는 의미도 내포되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연장선상에서 우리나라 가톨릭은 독재정권시절 정의구현사제단이 설립돼 활발히 활동할 때 약자의 편에 섰는데 지금은 상대적으로 그런 역할이 적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습니다.

=종교는 절대적 존재와 초월적 가치에 기초하고 있지만 인간 공동체라는 의미에서 그 시대, 그 문화, 민족, 사회적, 정신적 수준과 비례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시대의 시민이 깨어 있으면 그 시대의 종교와 종교인들도 깨어 있고 그 시대의 종교와 종교인이 깨어 있으면 그 시대에도 깨어 있는 것인데, 시대가 암울하고 자본주의와 이기주의, 탐욕에 종속돼 있는 만큼, 종교도 또한 그영향 하에 있습니다. 70년대에는 아주 극악한 독재시대였지만 시대정신은 훌륭했습니다. 저와 동료 사제들은 지학순 주교가 구속되는 것을 보고 역사 현장으로 나왔습니다.

그것이 1차적 계기였지만, 더 큰 계기는 그 당시 묵묵히 공부하고 있었다면 취업하고 미래가 보장되었을 청년학생들이 그 미래를 포기하고 위험한 선택을 하고 구속되는 것을 지켜보았습니다. 청년학생들은 민주주의와 인권 회복, 그리고 민족 공동체를 위해서 독재 타파를 외치며 역사의 현장에 투신했습니다. 그들을 보면서 저는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때의 시대정신과 청년학생의 순수성을 40년이 지난 오늘에 다시 체험하기란 좀처럼 쉽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1997년 국제금융통화기금에 예속되고 신자유주의에 지배당하게 되면서 아름다운 인간성 파괴되고 자본과 재물의 노예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저희는 앞으로도 계속 예수님의 말씀과 복음 정신으로 우리 자신과 공동체를 쇄신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되도록 많은 이들이 곳곳에서 노력하고 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했던 전주교구 박창신 신부가 강론의 일부 내용 때문에 검찰로부터 소환 통보를 받았습니다. 가톨릭의 정치적 편향성에 대한 의문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경찰과 검찰이 그렇게 하면 안됩니다. 법관도 그렇습니다. 공직자도 그러면 안됩니다. 그러한 얘기를 시민으로서 신앙인으로서 마땅히 해야 되지 않습니까? 종교와 신앙은 존재론적으로 정치적입니다. 구원이라는 것은 영혼만을 구원하는 게 아닙니다. 육신을 포함한 사람 모두를 구원해야 합니다. 이것이 전인적(全人的) 구원입니다. 그 사회, 정치, 경제 현실, 우주 만물 모든 걸 구원하는 게 종교의 책무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정치적 발언’이라며 비판하는 것은 우매몽매한 것입니다. 종교는 존재론적으로 바로 정치적입니다.

천주교 정의구현 전국사제단 고문 함세웅 신부
천주교 정의구현 전국사제단 고문 함세웅 신부ⓒ김철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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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파 세모녀 건보료 5만원, 전 건보공단 이사장은 0원”

등록 : 2014.11.06 11:52수정 : 2014.11.06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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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26일 생활고를 비관한 세 모녀가 숨진 채 발견됐다. 이들은 70만원이 담긴 새하얀 봉투를 남겼다. 방세 50만원과 가스비 12만9000원, 전기료·수도료 등을 어림한 돈이었다. 서울지방경찰청 제공

김종대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 건보체계 개편 주장
“모든 가입자에 소득중심으로 동일한 보험료 부과돼야”

14일 퇴임을 앞둔 김종대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이 퇴직하면 송파 세모녀도 5만원씩 내던 건강보험료를 본인은 내지 않게 된다며 현행 건강보험료 부과체계를 서둘러 개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이사장은 6일 오전 개인 블로그에 올린 글에서 “퇴직하면 수천만원의 연금소득과 5억원이 넘는 재산을 가진 전직 건보공단 이사장인 저는 직장가입자인 아내의 피부양자로 자격이 바뀌어 보험료가 0원이 된다”며 현행 건보료 부과체계의 불합리성을 짚었다.

 

국민건강보험법 시행규칙은 직장가입자 피부양자 조건을 △이자·배당소득 합산 4천만원 이하 △사업소득 없음 △근로·기타 소득 합산 4천만원 이하 △연금소득의 50% 금액 2천만원 이하 △재산세 과세표준액 합산 9억원 이하로 규정한다. 김 이사장은 본인이 이 조건들을 충족시킨다고 설명했다.

 

만약 김 이사장을 부양하는 가족이 없다면 김 이사장은 일반 지역가입자가 돼 5억6천여만원의 재산과 성·연령 등으로 추정하는 평가 소득 등을 기준으로 월 18만9470원의 보험료를 내야한다. 똑같이 기존 소득이 사라지는 은퇴자인데다가 부양 가족이 없어 생활이 더 힘들어지는데 건강보험료까지 납부해야하는 것이다.

 

김종대 건강보험공단 이사장
김 이사장은 “반면 올해 초 세상을 등진 송파 세 모녀는 성·연령 및 전월세를 기준으로 매달 5만140원을 납부해야 했다”며 “동일한 보험집단에서는 모든 가입자에게 소득을 중심으로 동일한 보험료 부과기준이 적용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보건복지부가 구성한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개선기획단’은 지난 9월까지 11차례에 거쳐 개선 방향을 논의했지만 아직 결과를 발표하지 않고 있다.

 

박수지 기자 suji@hani.co.kr

 

 

 

 

김종대 이사장의 글 전문

 

 

이제 저는 다음 주(11월 14일)가 되면 건강보험공단 이사장직에서 물러납니다. 퇴임을 얼마 앞두고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문득, ‘퇴직하고 나면 나는 얼마의 보험료를 내게 될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직장을 떠나게 되는 분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가져보는 궁금증일 것입니다.

 

그래서 건강보험공단에서 퇴직하면 제 건강보험 자격은 어떻게 바뀌고, 보험료는 얼마가 될지 따져봤습니다. 그 결과를 공개하려면 부득불 개인적인 정보들을 밝혀야 하지만,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제 사례이니 만큼 그 어느 사례보다 생생하게 전달할 수 있을 것 같아 소개하려 합니다.

 

1. 현재 내고 있는 건강보험료

 

우선, 현 시점에서의 제 건강보험 자격과 보험료를 살펴보겠습니다. 국민건강보험법(제6조)에는 ‘모든 사업장의 근로자 및 사용자와 공무원 및 교직원은 직장가입자가 된다.’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사용자인 저는 직장가입자입니다. 월급(보수) 외 연 7200만원을 초과하는 별도의 종합과세소득이 없는 직장가입자라면, 자신의 보수월액에 보험료율(5.99%, 2014년 기준)을 곱한 금액의 절반을 보험료로 부담하게 됩니다. 나머지 절반은 사업장이 부담합니다. 현재 제 보수월액은 12,411,130원이고, 이 금액의 5.99%인 743,420원의 절반인 371,710원을 매월 납부하고 있습니다.

 

2. 퇴직 후 예상 건강보험료

 

직장가입자의 자격변동은 그 사용관계가 끝난 날의 다음날 이루어집니다.(국민건강보험법 제9조) 그렇다면 제가 건강보험공단에서 퇴직한 다음날인 11월 15일이 되면, 저의 자격과 보험료는 어떻게 바뀔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저는 직장가입자인 아내의 피부양자로 자격이 바뀌고, 보험료는 0원이 됩니다. 제 아내가 직장가입자이고, 저의 소득과 재산 등이 피부양자가 될 수 있는 자격을 충족시키기 때문입니다. 직장가입자인 아들과 딸의 피부양자로 올릴 수도 있습니다.

 

그럼 제가 피부양자가 되는 이유를 하나하나 따져보겠습니다. 그러자면 먼저, 직장가입자의 피부양자가 될 수 있는 조건부터 살펴보아야 합니다. 국민건강보험법 시행규칙(제2조)에는 ‘소득요건’과 ‘부양요건’을 모두 충족시켜야 피부양자가 될 수 있다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소득요건은 다음 네 가지입니다.

 

① 이자소득과 배당소득의 합계액이 4천만원 이하일 것

 

② 사업소득이 없을 것

 

③ 근로소득과 기타소득의 합계액이 4천만원 이하일 것

 

④ 연금소득의 100분의 50에 해당하는 금액이 2천만원 이하일 것

 

부양요건은 ‘재산세 과세표준액의 합이 9억원 이하일 것입니다.

 

그럼 실제로 제 소득과 재산이 소득요건과 부양요건을 충족시키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참고로, 제 소득과 재산에 대한 자료는 현재 건강보험공단의 자격 및 부과 DB에서 보험료 부과에 실제로 활용하는 자료들입니다.

 

우선, 이자소득이나 배당소득은 없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4천만원을 넘지 않아 국세청으로부터 공단에 통보된 자료가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국세청은 이자소득과 배당소득 합계액이 4천만원(2013년 귀속분부터는 2천만원)을 초과할 경우에만 금액을 통보하고 있습니다. 3년간 건강보험공단 이사장으로만 일했으니 신고된 사업소득도 없습니다. 신고된 다른 근로소득이나 기타소득도 없습니다. 퇴직 후에는 시골에 내려가 주경야독할 예정이니 앞으로도 당분간은 사업ㆍ근로ㆍ기타소득은 발생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연금소득이 있긴 합니다. 하지만 소득요건을 충족시킬 수 있는 금액입니다. 저의 퇴직 시점에서 소득요건 충족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이 되는 것은 2013년 연금소득 총액입니다. 제가 2013년에 수령한 연금 총액은 2046만원이었습니다.(건강보험공단에 재직중이므로 관련 법률에 따라 50%만 지급되었습니다.) 연금소득의 100분의 50에 해당하는 금액은 1023만원이므로 시행규칙에서 규정된 2천만원을 넘지 않습니다. 2015년이 되어도, 2014년 연금소득 총액은 2325만원(2013년과 마찬가지로 50%만 지급받은 금액) 정도이므로 2015년까지는 피부양자가 될 수 있는 소득요건이 충족됩니다. 퇴직 이후인 2015년부터는 연금을 전액 받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연금소득이 연간 4천만원을 넘겨 피부양자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할 것이고 2016년부터는 피부양자에서 제외되어 지역가입자로 전환될 것입니다.

 

재산이 있긴 하지만, 부양요건도 충족시킬 수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퇴직 시점에서 부양요건 충족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이 되는 시점은 2014년 6월 1일입니다. 이 시점을 기준으로 제 소유의 재산은 경북 예천군에 있는 논(답) 2,721㎡과 대지 119㎡, 강남구 신사동 소재 아파트 한 채입니다. 재산세 과세표준액은 논과 대지가 2243만원이고, 아파트가 5억 4240만원입니다. 재산세 과세표준액 합계 금액은 5억 6483만원으로 9억원에 미치지 못합니다.

 

이렇게 해서, 저는 소득요건과 부양요건이 충족되어 직장가입자인 아내의 피부양자가 됩니다. 따라서 제가 갑자기 다른 소득이 생기거나 재산이 늘어나는 등 다른 조건이 변하지 않는다면 저는 오는 12월부터 건강보험료를 한 푼도 내지 않게 됩니다.

 

3. 만약 지역가입자가 된다면?

 

국민건강보험법(제6조)은 피부양자를 ‘직장가입자의 배우자, 직계존속, 직계비속과 그 배우자, 형제ㆍ자매’ 중 직장가입자에게 주로 생계를 의존하는 사람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또한 ‘지역가입자’란 직장가입자와 그 피부양자를 제외한 가입자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만약, 제가 직장가입자인 아내나 자녀가 없는 상태에서 이사장직에서 물러나 지역가입자가 되었다고 가정하고, 제 소득(연금)과 재산(토지, 주택)을 기준으로 보험료를 계산해 보겠습니다.

 

지역가입자의 보험료 산정기준은 소득이 500만원 이하인 경우와 500만원 초과인 경우가 다릅니다. 그래서 먼저 제 소득을 살펴보겠습니다. 말씀드린 것처럼 2013년 기준으로 2046만원의 연금소득이 있습니다. 하지만, 지역가입자 소득 산정시 연금소득은 20%만 반영하게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410만원(연금소득 2046만원의 20%)이 제 소득입니다. 저는 소득 500만원 이하 세대에 포함됩니다.

 

소득 500만원 이하인 세대에 대해서는 자동차, 재산, 평가소득(성ㆍ연령ㆍ재산ㆍ자동자ㆍ소득으로 추정)에 따른 점수에 점수당 보험료 175.6원(2014년 기준)을 곱해서 계산합니다. 평소에 주로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때문에 제 소유의 자동차는 없습니다. 재산은 과세표준액 5억 6483만원에 해당하는 점수가 841점입니다. 평가소득은 238점(성․연령 1.4점, 소득 9점, 재산 12.7점, 합계 23.1점) 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해서 제 보험료 부과점수는 총 1079점이고, 여기에 175.6원을 곱한 189,470원이 제 보험료가 됩니다.

 

4. 송파 세모녀는 5만원, 전직 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은 0원

 

제가 퇴직 후 건강보험료를 계산해 보면서 알게 된 것은 “퇴직하고 나면 나는 피부양자가 되어 보험료를 한 푼도 내지 않게 될 것이다. 만약 지역가입자였다면 20만원 가량을 내야 했다”는 것입니다.

 

올해 초, 송파구 석촌동의 지하방에 살던 60대 어머니가 ‘주인 아주머니께 죄송합니다. 마지막 집세와 공과금입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라는 짧은 메모를 남기고 두 딸과 세상을 등졌습니다. 직장이 없던 세 모녀는 지역가입자였고, 성ㆍ연령 및 전월세를 기준으로 산정된 보험료로 매달 50,140원을 납부해야 했습니다.

 

반면, 수천만원의 연금소득과 5억원이 넘는 재산을 가진 전직 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인 저는 직장가입자인 아내의 피부양자로 등재되어 보험료를 한 푼도 내지 않게 됩니다. 이것은 제가 선택한 것이 아닙니다. 국민건강보험법이 정한 기준에 따라 피부양자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혹시라도 선택권이 있다고 해도 보험료를 전혀 내지 않아도 되는 피부양자 등재를 포기하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2011년 11월 15일 건강보험공단 이사장에 취임하자마자 노‧사대표, 임직원, 관계전문가 등 199명으로 ‘건강보험공단 쇄신위원회’를 구성하여 7개월에 걸친 작업결과, ‘소득중심의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단일화 방안’ 등 6개 개혁방안을 담은 「실천적 건강복지플랜」을 마련하여 2012년 8월 9일 정부(보건복지부)와 국회에 관계 법령의 개정 등 필요한 조치를 건의했습니다.

 

그 결과 ‘소득중심의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개편’이 2013년 2월 현 정부의 국정과제에도 반영되었으나 아직 정부의 개편방안이 나오지 않고 있어 매우 안타까운 심정입니다.

 

현재와 같이 가입자마다 보험료를 부과하는 기준이 다르지 않고, 동일한 보험급여를 받는 동일한 보험집단(5천만 전국민)에서는 모든 가입자에게 소득을 중심으로 동일한 보험료 부과기준이 적용되어야 하는 것은 상식이며 국제적 보편기준입니다. 건강보험료 부과기준의 조속한 개편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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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탄난 동두천, '양키 고 홈'이 낫다"


자유총연맹·통합진보당도 한목소리

[르포] '미2사단 잔류 결정'에 여론 들끓는 동두천 보산동 일대

14.11.05 22:11l최종 업데이트 14.11.06 00:18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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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두천이 미국 땅이냐? 한국 땅이냐?" 5일 오후 경기도 동두천 캠프 케이시 앞에서 열린 미2사단부대잔류반대범시민궐기대회 도중 장애인 단체 회원들이 미2사단 내 항의방문을 시도하자 경찰이 저지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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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도 동두천 캠프 케이시 인근에 있는 한 식당이 미군병력 감축 이후 어려워진 사정으로 영업을 중단하고 가게를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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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키 고 홈' 하는 게 나아, 이제는 장사 그만 두려고."

경기도 동두천시 보산동 '보산관광특구'에서 양복점을 운영하는 A씨가 허탈하게 말했다. 보산관광특구(아래 관광특구)는 미군2사단 부대인 '캠프 케이시(14.14k㎡)'와 5차선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자리 잡은 상권 골목이다. 한 때 이곳에서 먹고살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 만큼 돈을 벌었다는 그는 이제 이곳을 떠나려 한다. 36년을 지킨 곳이다. 어느새 머리는 백발이 됐다.    

굳이 묻지 않아도 그가 떠나려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보통의 도시가 한창 활기를 띠는 정오에도 이 거리를 오가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드문드문 연한 갈색 군복을 입은 미군 한 두 명만이 한가롭게 오갈 뿐이었다. A씨는 양복점 유리벽에 'Big Sale' '80% off'라고 써붙여 두었다. 유리창 너머엔 그가 정성스레 만들어 놓은 양복이 빼곡히 걸려 있었다.  

"한 때 남부럽지 않았지만, 지금은 월세만 겨우 내는 신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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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일 오후 경기도 동두천 캠프 케이시 앞에서 미2사단 장병들이 미2사단부대잔류반대 현수막 앞을 지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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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봐, 이 시간에 미군 두 명 지나가잖아. 여긴 물건 사는 사람보다 상인이 더 많아."

한 때 2만 명 넘게 주둔하던 미군은 2003년 이라크 파병으로 서서히 빠져나가 현재는 5천 여 명만 남았다. 그 여파로 생계가 오로지 미군의 주머니에 달린 이곳도 점차 쇠락했다. A씨는 "20여 개에 이르던 양화점이 지금은 한 곳만 남았고, 30개 넘던 양복점도 이제는 10여 곳만 간신히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 또한 5년 전부터는 벌어 둔 돈으로 월세를 내며 버텨오다 한계에 이르렀다. 

실제 관광특구 시작점부터 그의 점포까지 50여 미터를 걸어오는 동안 문을 연 곳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관광특구 초입에서 10평 남짓한 잡화점을 운영하는 B(67)씨는 "IMF를 모를 정도로 호황이었지만 지금은 개점휴업 상태"라고 말했다. 그는 매장 문을 걸어 잠근 채 TV를 보던 중이었다. B씨는 "상인들이 장사가 안 되니 보통 오후에나 문을 열고, 폐업한 곳도 많다"고 귀띔했다. 바로 옆 신발가게 유리벽에는 '폐업' 'Goodbye sale'이 쓰여 있었다.  

당초 국방부는 2016년까지 동두천의 모든 미군기지를 평택으로 이전하겠다고 밝혀왔다. 동두천시는 미군이 철수하면 그들이 사용하던 공여지를 넘겨받아 대단위 주거시설, 대기업 생산공장 등을 지어 지역경제 활성화를 이루겠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정부와 국방부가 지난 10월 24일 한미안보협의회에서 캠프케이시에 있는 '210화력 여단'(2500여 명)을 오는 2020년까지 남기기로 하면서 이 청사진은 사실상 백지화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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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찰과 충돌한 동두천 시민들 5일 오후 경기도 동두천 캠프 케이시 앞에서 열린 미2사단부대잔류반대범시민궐기대회 를 마친 참가자들이 정문을 향해 행진 하려하자 경찰이 저지해 충돌이 발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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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일 오후 경기도 동두천 캠프 케이시 앞에서 열린 미2사단부대잔류반대범시민궐기대회 를 마친 참가자들이 정문을 향해 행진 하려하자 경찰이 저지해 충돌이 발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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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이) 아예 나가든지, 아니면 예전만큼 다시 들어오든지."

관광특구 변두리에서 옷가게를 운영하는 유아무개(59·여)씨의 말이다. 그는 "미군이 점점 빠져나가다 3~4년 전부터 상권이 확 죽었다"며 "예전만큼 미군이 많이 머무는 게 아니라면 공장 같은 게 들어와 일자리를 만드는 게 낫다"고 말했다. 유씨도 양복점 A씨와 잡화점 B씨처럼 한 때는 아쉬울 게 없었지만 지금은 "겨우 현상 유지만 할 정도"라고 토로했다. 또한 "나는 내 건물에서 장사를 해서 지금까지 버텼지만, 이 골목에서 세 들어 장사하던 상인들은 다 떠났다"고 말했다. 

유씨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조금 더 걸어 들어갔다. 이 골목 초입인 유씨의 점포에서 30여 미터를 따라 걷는 동안 27개 점포가 즐비해 있었지만 문을 연 곳은 유씨 점포를 포함해 단 두 곳이었다. 오후 늦게 문을 여는 '클럽'이나 '주점'은 제외하더라도 선물이나 기념품을 파는 점포도 셔터를 내렸다. 주요 거리보다 유동인구가 적은 이 골목은 나뭇잎이 땅에 닿는 소리가 또렷이 들릴 정도로 적막했다.

오후 1시께 관광특구 안 상인연합회 사무실에서 만난 고종빈 보산동 상인연합회 회장은 "2004년 미군이 이라크로 떠나기 전만 해도 관광특구에 300개가 넘게 상점이 있었지만 지금은 240여 개로 줄었다"며 "평택에 있는 미군이 동두천으로 오든지, 완전히 이전하고 새로 개발을 할 수 있도록 정부가 보조금을 지원해 주든지 해야 한다"고 말했다. 

적은 수라도 미군이 잔류하는 게 낫다고 보는 상인도 있었다. 미군이 떠나면 현상유지마저 불가능하다는 지적이다. 개발을 한다 해도 도시가 탈바꿈하는 데까지 걸리는 공백기를 어떻게 버텨야 할 지 막막하다는 우려였다.

관광특구에서 스파게티와 볶음밥 등을 파는 동두천 토박이 C(56·여)씨는 10년 전부터 이곳에서 장사를 시작했다. 한때 밤 10시까지 손님으로 가득 찼다는 그의 점포는 점심시간인데도 한산했다. 테이블 여섯 개 중 한 곳에만 손님이 있었지만 "그나마 있는 미군마저 나가면 당장 월세도 낼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군2사단 정문 앞에서 잡화점을 운영하는 40대 한 남성 상인도 같은 의견이었다. 그는 미군부대 앞에 걸려있는 '3번 국도 봉쇄하여 동두천 시민의 분노를 보여주자' '매번 희생만 강요하는 정부, 동두천 시민 피멍든다' 등의 펼침막을 가리키며 분을 삭이지 못했다.

자유총연맹·통합진보당 한목소리로 "동두천을 살려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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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두천 외면하는 정부는 반성하라" 5일 오후 경기도 동두천 캠프 케이시 앞에서 열린 미2사단부대잔류반대범시민궐기대회에서 동두천시민들이 흰풍선과 피켓을 들고 참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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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찰에게 항의 하는 박용선 대책위원장 5일 오후 경기도 동두천 캠프 케이시 앞에서 열린 미2사단부대잔류반대범시민궐기대회 를 마친 뒤 행진을 막아선 경찰에게 박용선 미군재배치범시민대책위원장이 강력하게 항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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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리로 나온 성난 동두천 시민들 5일 오후 경기도 동두천 캠프 케이시 앞에서 열린 미2사단부대잔류반대범시민궐기대회 를 마친 참가자들이 정문을 향해 행진 하려하자 경찰이 저지해 충돌이 발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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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오 지나도 한산하기만 한 이곳이 갑자기 분주해진 건 오후 2시30분께 '미2사단 잔류 반대 범시민 궐기대회'가 미군2사단 정문 근처에서 열리면서부터다. 이날 행사는 동두천시 53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미군 재배치 범시민대책위원회'가 주관했다.

정문 앞에 모인 2천여 시민들은 이날 ▲ 미2사단을 예정대로 평택으로 이전 ▲ 정부가 동두천시 경제 회생 방안 마련할 것 ▲ 정부는 용산과 평택에 준하는 지원 대책을 동두천에 마련할 것 등을 요구했다. 주민들은 '단결' '투쟁' 등이 쓰인 붉은 머리띠를 묶고, '동두천 무시하는 정부는 반성하라' '동두천을 특별지원 하라'고 쓰인 어깨띠를 둘렀다.  

이날 궐기대회는 지역 내 좌우 단체가 한목소리로 정부의 일방적 잔류 결정을 규탄하고 주민 생존권을 요구한 자리였다. 참가자들이 손에 든 피켓에는 '자유총연맹', '대한노인회', '새마을부녀회' 등 보수단체부터 '통합진보당 동두천시위원회'까지 적혀있었다. 궐기대회 중간에는 국민의례와 함께 애국가가 나오다가 '임을 위한 행진곡'이 울려 퍼지기도 했다. 

이 자리에서 오세창 동두천시 시장은 "63년 전 중앙정부에 의해 동두천은 시 전체 면적의 절반을 미국 공여지로 징벌 당했고, 기지촌이라는 오명을 쓰고 살았다"며 "현재는 경기도에서 가장 낙후한 도시로 (지역경제가) 파탄 지경이고, 자립으로 회생하기 불가능한 처지가 됐다"고 말했다. 

이어 오 시장은 "63년 희생에 걸맞은 도움을 달라고 목청이 터져라 중앙정부에 외쳤지만 묵살당했다"며 "미군이 축소되어 공동화 된 동두천시에 아무런 지원 대책 없이 고작 포병여단 하나만을 남겨둔다는 정부의 발표는 동두천을 폐허로 만들겠다는 것"이라고 일갈했다. 

오 시장이 일갈할 때마다 무대 아래에서 박수와 함성이 터져 나왔다. 또한 "청와대로 가자" "다 때려 부수자"는 말도 심심치 않게 튀어 나왔다. 한 시민단체 관계자가 연단에서 "안보희생 60여 년 정부지원 당연하다" 등의 구호를 선창할 때엔 "목소리가 너무 작다"는 핀잔도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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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군 부대로 날린 '잔류반대' 흰풍선 5일 오후 경기도 동두천 캠프 케이시 앞에서 열린 미2사단부대잔류반대범시민궐기대회에서 미2사단 부대를 향해 흰풍선을 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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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조망에 걸린 '미군잔류반대' 풍선 5일 오후 경기도 동두천 캠프 케이시 앞에서 미2사단부대잔류반대범시민궐기대회 도중 날린 '미군부대잔류반대' 풍선이 미군부대 철조망에 걸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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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군잔류결정 절대 반대' 5일 오후 경기도 동두천 캠프 케이시 앞에서 열린 미2사단부대잔류반대범시민궐기대회를 마친 동두천시민들이 피켓을 들고 행진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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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시민들은 1시간 반 가까이 궐기대회를 마치며 "백지 상태에서 (지역개발을) 다시 시작하자"는 의미의 흰색 풍선을 미군2사단 담장 너머로 날려 보냈다. 궐기대회를 마치고 일부 시민이 미군2사단 정문 앞까지 행진하려다 경찰 병력과 충돌을 빚기도 했다. 30분 가까이 경찰과 대치한 시민들이 방향을 바꾸어 신시가지로 행진하면서 긴장 상황은 일단락 됐다.     

시민들이 가두 행진을 펼친 미군2사단 근처에서 동두천 중앙역까지 2km 남짓 거리도 관광특구와 마찬가지로 한산했다. 궐기대회 행진 대열이 지나갈 때는 잠시 소란스러웠다가 이들이 지나고 나면 다시 적막이 흘렀다. 환하게 불을 밝힌 상점 사이로 문 닫은 점포도 심심치 않게 보였다. 문을 연 상점 중 손님이 든 곳은 찾기 어려웠다.

가두행진 대열에서 만난 김아무개(43)씨는 "불과 4~5년 전과 비교해도 지역경제가 많이 침체됐다"며 "2016년에 미군부대가 철수하고 개발된다고 해 그것만 믿고 살았는데 하루아침에 바뀌었다"고 허탈해했다. 인터넷에서 이날 궐기대회 소식을 보고 직장동료들을 설득해 함께 참여했다는 그는 "지역 여론이 부글부글 끓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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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녘 온 공장과 마을 과수원화 꼭 성공하길

북녘 온 공장과 마을 과수원화 꼭 성공하길
 
 
 
이창기 기자 
기사입력: 2014/11/05 [21:40]  최종편집: ⓒ 자주민보
 
 

 

▲ 북 강원도 장촌연유공급소 일터 안을 과수원화한 모습     © 자주민보

 

▲ 정성껏 공장의 안의 감나무를 돌보는 북 주민들     © 자주민보
▲ 김정일국방위원장의 수림화, 원림화, 과수원화할 데 대한 현지지도를 떠올리는 장촌연유공급소 조동희 소장, 대나무까지 잘 키운 것을 보니 북도 온난화의 영향을 많이 받나보다. 남도의 수종들도 능히 재배할 수 있을 것 같다.    © 자주민보



요즘 북의 보도를 보면 ‘공장과 마을을 수림화, 원림화, 과수원화할 데 대한 김정은 제1위원장의 현지지도를 받들어 나무를 심고 가꾸는 일에 북 주민들이 정성을 다하고 있다’는 보도가 자주 나오고 있다.

그런데 이 세 가지 구호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현지지도 과정에 늘 강조했었다고 한다.


탈북자들이 운영하는 한 인터넷방송사에서 소개한 10월 20일 중앙텔레비젼 보도를 보면 강원도 장촌연유공급소 조동희 소장이 “공장을 수림화, 원림화, 과수원화 할 데 대한 (김정일)장군님의 현지지도 말씀을 받들어 공장 구내를 잘 가꾸기 위한 사업에...”라고 말하는 대목이 나온다.

최근 김정은 제1위원장도 현지지도 과정에 이 수림화, 원림화, 과수원화를 아주 강조하고 있는데 이도 결국 그 연장선상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북에서 수림화 원림화는 줄곧 거론해왔고 과수원화라는 말은 최근에 자주 나오고 있다. 
남녘에서도 70년대에는 새마을운동을 진행하면서 마을과 집안에 유실수 심기 운동을 장려했었는데 최근에는 먹거리가 풍요로워지고 관리 및 먹거리 안전성 등의 문제로 신축 공동주택 조경수나 마을숲, 공원 등에 유실수를 특별히 장려하여 심지는 않고 있다.
물론 지금도 그 지방 특산 과일나무를 가로수로 심는 등 마을 전체를 과수원화하고 있는 지방이 있기는 하지만 도심의 유실수들은 갈수록 밀려나는 분위기이다.

 

사실, 서울 등 도심에서는 병충해 방지 등을 위해 정기적으로 농약을 뿌리는 공동주택 정원이나 가로수의 경우 은행과 감이 탐스럽게 익어도 따먹는 사람들이 거의 없다.
10여 년 전만 해도 긴 막대기로 가로수 은행을 따는 풍경을 종종 보았는데 지금은 은행이 지천으로 떨어져 곤죽이 되어도 줍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 
과육에서 풍기는 냄새조차 그리 좋지 못한 은행인지라 아파트 조경수로 은행을 심는 것을 반대하는 입주자들도 적지 않다. 서울시의 상징 나무가 은행인지라 아파트 조경수로 일정 비율의 은행나무를 심어야 된다는 규정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도 터져나오고 있다.

 

북에서도 이런 남측의 흐름과 같은 길을 걷게 될 것인지 아니면 풍요로운 유실수의 풍치를 가꾸면서도 농약을 사용하지 않고 잘 관리하는 방법을 찾아 먹거리로도 요긴하게 사용하는 문화와 체계를 정착할 것인지 궁금하다.

 

사실 유실수는 꽃도 예쁘고 단풍도 고운 경우가 많다. 은행만 해도 그 단풍이 얼마나 고운가. 감나무도 붉은 단풍이 볼만한 나무이다. 거기다가 잎이 지고 붉은 감이 주렁주렁 열려있는 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매실꽃, 살구꽃은 우리 고향 봄풍경에서 절대 빠질 수 없는 고운 꽃이며 사과꽃, 배꽃도 흐드러지지는 않지만 봄꽃에서 빠질 수 없는 운치 있는 꽃들이다.

요즘 은행보다 좀 더 인기가 많은 견과류인 가래나무, 호두나무, 개암나무도 나무 자태가 아담하고 예뻐서 정원수나 가로수로 얼마든지 심을 수 있는 나무이다.


필자가 좀 널리 강조하고 싶은 유실수는 석류나무이다. 기후온난화로 북도 아마 도심에서는 얼마든지 심을 수 있으리라 보는데 석류는 두꺼운 껍질로 둘러쌓여있어 농약을 좀 쳐도 그 안의 석류알에까지 묻을 가능성이 없다. 물론 은행, 호두 등 모든 견과류는 더 안전하다. 이런 과일은 농약을 좀 쳐도 먹는 과육에 잔류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

석류를 추천하는 이유는 꽃도 독특하지만 늦가을 서리가 내릴 때까지 놔두면 그 못생긴 석류열매가 쩍 벌어지면서 그 안에서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해맑게 알알이 붉은 열매가 얇은 막을 젖히고 초롱초롱 고개를 내미는 경이적인 모습을 우리 아이들에게 보여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서리를 맞아 따는 석류는 완전히 익어 신맛도 거의 나지 않고 또 얼마나 달콤한지 모른다. 영양도 풍부하다고 하지 않는가.

 

먹거리 80% 이상을 수입에 의존하는 남녘이나 완전 식량 자급을 하기에 농토가 부족한 북녘 모두 먹거리 자급을 이루기 위해서는 작은 땅이라도 놀리지 말아야 한다. 가능한 한 많은 조경수를 유실수로 가꾸면 그 생산양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갈수록 주택건설에 있어서 조경이 차지하는 비중이 커가고 있기 때문에 이런 의의는 갈수록 더 커질 것이다.

 

북에서 일터와 주거지를 수림화, 원림화 과수원화에 성공하고 그 관리와 이용까지 효율적으로 하는 방법을 꼭 찾아냈으면 좋겠고 남녘에서도 기후와 풍토 등을 고려하여 각 지역별로 특색있는 유실수 가로수, 유실수 공원을 확대해가고 그 관리와 이용에 대한 체계를 만들어가면 좋겠다. 이를 위해 지금까지의 경험을 서로 공유할 수 있다면 더없이 좋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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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좌관 '월급 갈취'에 '개털 깎기' 심부름까지?

 

[이철희의 이쑤시개] 전·현직 보좌관 특집

이명선 기자 2014.11.05 10:14:19
 
보좌진 월급을 갈취해 정치자금을 조성하고, 보좌관에게 애완견 털 깎기 심부름을 시키는 등 국회의원의 알려지지 않은 '갑질'이 천태만상이다.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된 새누리당 박상은 의원은 보좌진의 월급을 기업이 대납하도록 한 뒤 일부 반납을 강요하는 방식으로, 뇌물수수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새정치민주연합 신학용 의원은 보좌진 월급에서 후원금을 돌려받는 형식으로 돈을 빼돌렸다. 또 새정치민주연합 황주홍 의원은 보좌진에게 '개털 깎기' '아침밥 차리기' 등 횡포를 일삼은 것으로 알려졌다. 황 의원은 현재 해당 사실을 보도한 <일요서울>과 민사소송 중이며,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 14부)는 지난 10월 8일 ▲보좌진의 개털 깎기 ▲보좌진의 잦은 교체 ▲기분에 따라 벌금이 정해진다 ▲벌금은 의원이 부르는 게 값이라는 내용에 대해서는 사실로 인정된다고 밝혔다. 
 
ⓒ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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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몇 국회의원의 '슈퍼 갑' 행태는 시시때때로 의원회관을 술렁이게 한다. 의원이 아침에 먹을 사과와 저녁에 마실 한약을 챙기는 일이 의정활동 보좌보다 중요하게 여겨지기도 한다. 신분은 공무원(별정직)이나 정해진 출퇴근 시간도, 고용 관계도 명확하지 않다. 의원이 '나가라'고 하면 그날로 끝이다. 그래서 보좌관은 스스로를 '파리 목숨'이라고 한다.  
 
전·현직 보좌관 세 명은 지난달 31일 팟캐스트 <이철희의 이쑤시개>에서 '보좌관의 세계'를 가감 없이 풀어냈다. <이쑤시개> 진행자인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 소장은 14대 국회 비서관과 김대중 정부 청와대 행정관을 거쳤으며, 익명의 출연자(목소리 변조)는 17대 국회에서 보좌관 생활을 했다. 이날 특별 초대 손님으로 참여한 도정호 보좌관은 19대 국회 새정치민주연합 임내현 의원실에서 근무하고 있다. 그리고 <이쑤시개> 고정 패널인 박용진 새정치민주연합 전 대변인이 함께했다.(☞ 팟캐스트 바로 듣기) 
 
'영감님'이 한 일을 알고 있다
 
도정호 보좌관은 국회 의원회관을 "300개의 중소기업이 모여 있는 곳"이라고 표현했다. 지역과 비례를 포함한 국회의원 300명이 아파트형 '공장' 같은 의원실을 한 곳씩 차지하고 있으며, '공장'마다 분위기와 일하는 방식이 다르다는 뜻이다. 
 
각각의 '공장'에는 고용주 1명(의원)과 피고용주 9명(보좌진 : 정규직 7명·인턴 직원 2명)이 근무하며, 이들의 관계는 '동지'부터 '갑을'까지 다양하다. 이들은 호칭 또한 별스럽다. 직원은 사장을 '영감님'(정치권 및 법조계에서 상사를 일컫는 은어)이라고 하고, 사장은 똑똑한 직원을 '빠꼼이'라고 부른다. "김 의원실 신 비서관이 '빠꼼이'야"처럼…. 
 
의원 간 '입법 전쟁'으로 보좌진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졌지만, 보좌진은 상황에 따라 '영감님'의 원수가 되기도 한다. 특히 차를 운전하며 일정을 보좌하는 수행비서(운전기사)는 '영감님'이 지난 여름 한 일까지 모두 알고 있다. 이에 여의도 정가에서는 '밖에서 하는 일은 운전기사가 알고 집안의 일은 가정부가 알고 있다'고 농담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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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원님의 사라진 돈다발'이라는 제목으로 시작부터 흥미로웠던 박상은 의원 사건은 차량 현금 도난의 진위가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밝혀진 경우다. 수행비서 김 모 씨는 박 의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신고하기 위해 현금 3000만 원과 자료가 든 가방을 차량에서 빼냈으나, 박 의원이 경찰에 '운전기사가 돈을 훔쳤다'고 신고하면서 검은 돈의 덜미가 잡혔다. 검찰은 지난 7월 30일 김 씨에 대해 "불법 영득의 의도가 없었다"며 비리와 관련한 공익 제보로 인정해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반면, 검찰은 박 의원의 아들 자택을 압수수색해 나온 현금 6억여 원을 불법 정치자금으로 보고 박 의원을 구속했다.  
 
새누리당 현영희 전 의원도 운전기사의 금품 비리 폭로로, 의원직을 잃었다. 현 의원은 지난 4.11 총선에서 새누리당 공천(부산 중·동구)을 받기 위해 부산시당 홍보위원장에게 5000만 원이 든 쇼핑백을 전달했다. 운전기사 정 모 씨의 신고로 관련 사실이 알려지자, 현 의원은 지난해 새누리당에서 제명당했으며 올해 1월 징역 2년·집행유예 3년·추징금 4800만 원을 선고받았다. 대신 정 씨는 선거관리위원회로부터 최대 3억여 원의 포상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운전기사의 신고로 비리 의원의 백태(百態)가 드러났지만, 사실 운전기사 대부분은 의원의 '갑질'을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편이다. 험한 말은 기본이고 집안일은 예사다. 뒷좌석에 앉은 의원이 '운전 제대로 하라'며 운전 중인 수행비서의 앞좌석을 발로 치는 경우도 흔하다. 
 
또 이런 경우도 있다. 풍문에 따르면, 2007년 대선 당시 야당 의원의 운전기사가 의원에게 성추행을 당했다며 여당에 제보했다. 그는 몇 년에 걸쳐 일어난 일을 상당히 구체적으로 전했으며, 증거로 "몸에 치열이 남아 있다"고 주장했다. 여당은 시민 단체와 함께 관련 사실을 밝히기로 했으나, 기자회견 당일 운전기사와 연락이 두절돼 무위에 그쳤다.     
 
도정호 보좌관은 "(민주노동당 등의 영향으로) 과거에 비해 의원의 '갑질'이 줄기는 했지만, 여전히 선거 때와 국회 입성 후 상반된 행동을 보이는 의원이 많다"며 씁쓸해했다.   
 
이철희 소장은 "보좌진의 비애는 국회의원의 무례와 연결된다"며 "자신의 의정활동을 보좌하는 이들을 비인간적으로 대우하는 것은 패악질"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민주노동당이 국회에 입성한 2004년 의원과 보좌진이 한 공간에서 같은 책상을 쓰며 월급도 균등하게 나눠 갔던 모습이 당시 신선했다"고 말했다.    
 
보좌관, '그림자' 아닌 '실세'   
 
국회의원 보좌진의 역할은 주로 그해 국정감사에 맞춰져 있다. 의원이 속한 상임위에서 감사해야 할 행정 부처를 대상으로, 자료를 열람·요청·분석해 언론사에 알릴 보도자료 및 국감 질의서 등을 작성한다. 
 
이번 국감은 카카오톡 감청 논란으로 촉발된 검찰의 '사이버 검열'이 단연 이슈였다. 여당과 야당 쪽 입장이 나뉘었고, 검찰의 감청영장 건수와 감청 범위가 문제 됐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임내현 의원실이 확인한 바에 따르면, 통상 구속영장 청구 기각률은 23퍼센트(%)이지만 통신감청을 위한 영장 기각률은 최근 5년 평균 4%에 불과하다. 특히 '사이버 망명' 사태와 관련한 질의에서 임내현 의원은 황교안 법무부 장관에게 "나는 카톡을 계속 쓴다"는 답변을 이끌어내 책임자의 문제 인식 수준을 직접적으로 나타냈다.   
 
날카로운 질문과 정확한 분석으로 국감에서 주목받은 의원 뒤에는 능력 있는 보좌관이 있게 마련. 보좌관은 의원의 '그림자'이면서 동시에 '실세'이기도 하다. '국회의원' 개인으로 대표되는 의정활동이지만, 안주인인 보좌관 없이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도정호 보좌관을 비롯한 임 의원실 보좌진은 관련 자료를 준비하는 데만 꼬박 두 달이 걸렸다. 그만큼 치밀하게 준비했다. 그러나 법사위 피감기관인 대법원·법무부·대검찰청은 의원실이 요청한 자료를 제때 제공하지 않았다. 
 
"피감기관에 자료를 요청할 때 한 50개 정도를 준비한다. 민감한 이슈와 관련한 자료는 피감기관이 눈치 못 채게 하려고 애쓰지만, 그쪽도 안다. 그래서 '준비 중이다'라며 시간을 끌거나, '안보와 관련한 비밀문서'라며 거부한다. 결국 '의원이 찾는다. 자료를 정 못 주겠으면 국장이나 실장이 와서 대면 보고하라'고 얘기한다. 그러면 마지못해 자료를 들고 온다."
 
현직 의원 가운데 20여 명이 보좌관 출신이며, 정권과 함께 청와대 비서관으로 수직 상승하는 경우도 있다. 또 휴민트 및 정보력으로 기업의 고위직으로 스카우트되기도 한다. 박근혜 대통령의 '문고리 권력 3인방'으로 불리는 청와대 이재만 총무비서관·정호성 제1부속비서관·안봉근 제2부속비서관이 권력 상승의 대표 사례다. 한화와 SK은 지난해 총수 일가가 구속되자 보좌관 특별 채용에 앞장섰으며, CJ는 오래 전부터 보좌관 영입에 공을 들이는 기업으로 알려졌다.  
 
보좌관의 위상이 바뀌면서 두세 사람이 팀을 이뤄 의원실을 이동하는 경우도 생겼다. 또 "전문성을 인정받은 보좌관의 경우, 의원이 상임위를 옮기면 '보좌하는 의원을 바꿔야 하나?를 고민할 정도"라고 익명의 출연자는 전했다.  
 
이철희 소장도 보좌진의 전문성이 눈에 띄게 높아졌다면서 "대한민국 정치전문가라고 할 수 있는 직종은 보좌관이 유일하다"고 말했다. 다만, "한 사람만 쳐다보게 돼 '갑을 관계'에 익숙해질 수 있다"며 "4~5년 정도만 경험하는 것이 좋다"고 충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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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민 “박근혜, 비판받기 싫으면 대통령 내려놔야”

 
 
‘애비나 딸이나 트윗’ 고발수사…원정스님 ‘박근혜 굿판’ 트윗 징역6월·집유 “재물삼은 것”
 
입력 : 2014-11-05  09:25:46   노출 : 2014.11.05  11:12:07
 

검찰과 보수단체의 박근혜 대통령 명예훼손 혐의 고발 및 수사 기소 사건과 관련해 지난해에도 여러 건의 ‘대통령 명예훼손’ 검찰 수사 뿐 아니라 법원 판결이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나는 꼼수다’ 멤버이자 국민TV 부국장 겸 라디오팀장인 김용민 PD는 지난해 11월 자신의 트위터에 “부정선거로 당선된 것들이 반성은커녕 큰소리 떵떵 치니. 이 정권은 불법정권임을 자인하는 꼴이다. 그 애비도 불법으로 집권했으니. 애비나 딸이나”라는 글을 올렸다는 이유로 지난 1월말 보수단체 엄마부대봉사단 주옥순씨로부터 ‘대통령 명예훼손’으로 고발당했다. 이후 수원지검 담당 검사가 지난 2월말에서 3월초 김 PD에 전화를 걸어 출두를 제안했으나 출두하지 않았다. 

김 PD는 4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수원지검 검사에게 ‘뭐 이런 것이 수사감이냐’고 했더니 그 검사가 ‘수사감’이라면서 ‘안나오겠다는 것이냐, 내 마음대로 하라는 얘기냐’고 물었다”며 “그래서 나는 ‘그런 말 한 적이 없다, 검사님 마음대로 하시라’고 하고 말았다”고 전했다.

김 PD는 이밖에도 지난 2012년 대선 때도 박 대통령과 관련해 트위터에 ‘본인은 사이비종교 교주와 20년 간 협력관계를 맺고, 신천지와도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라는 글을 올렸다는 이유로 황우여 당시 새누리당 대표 등으로부터 고소 당했다. 

   
김용민 국민TV 부국장 겸 라디오팀장.
이치열 기자 truth710@
 

김 PD 역시 황 대표와 이상일 당시 새누리당 대변인, 한기총 목사를 맞고소했다. 김 PD는 “문장의 맥락상 사이비종교 교주는 최태민을 지칭한 것인데, 엉뚱하게 해석해 날 고소했으므로 맞고소한 것”이라며 “고소인 조사를 받은 이후 아직 검찰에서 연락이 없다”고 밝혔다.

김 PD는 ‘애비나 딸이나’라는 트윗글이 막말이라는 비난에 대해 “터무니없는 주장”이라며 “그 말이 아니라 ‘부정선거로 당선된 것들’이라는 말이 불편해 문제 삼은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대통령 명예훼손 고발 및 수사가 남발하는 것에 대해 김 PD는 “박 대통령이 자연인이고 일반인이면 왜 비판하겠느냐”며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대해 비판하는 것을 명예훼손이라 한다면 대통령 하지 말아야 한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런 혐의로 나를 수사하겠다면 협조해달라지 말고 그냥 잡아가라고 덧붙였다.

이밖에 대선기간 중 ‘박근혜 억대 굿판 벌였다’는 트윗글을 썼다가 공직선거법 및 (대통령)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원정스님(정정희)도 최근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았다. 현재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1부(재판장 이범균 부장판사)는 지난 5월 8일 판결문에서 △원정스님에게 말했다는 초연스님(이아무개씨)이 법정에서 원정스님에게 그런 말을 한 적도 없고 굿한 적도 없다고 진술했으며 △굿한 장소와 시간을 원정스님이 대지 못하고, 그밖의 신빙성 있는 소명자료를 제출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지난 2012년 12월 원정스님이 올렸던 '박근혜 굿판' 관련 트위터 글.
 

 

   
박근혜 대통령.
@연합뉴스
 

원정스님은 4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2012년 6월 면목동 구룡사에서 초연스님과 조세형씨를 함께 만났고 당시 들은 사실을 트위터에 쓴 것”이라며 “그는 어느 법당이라고까지 했으나 말을 바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대통령은 5년짜리 공무원으로, 노무현은 ‘대통령에 욕 안하면 어디다 욕하느냐, 스트레스 풀린다면 욕하고 계란 던지라’ 했다. 어느 나라나 다 이렇다”며 “부정선거로 집권한 정권이 비판을 차단하기 위해 자신의 권위를 내세우고 나같이 힘없는 사람을 재물 삼아 재단에 올려놓은 것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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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성정체성 알게된 엄마가 한 일... 대단하다

 

[인터뷰] 비온뒤무지개재단 이신영 이사장, 류홀릭 이사

14.11.05 10:45l최종 업데이트 14.11.05 10:45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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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은 혐오보다 강하다" 비온뒤무지개재단 사무실 입구에 있는 올해 퀴어문화페스티벌 슬로건.
ⓒ 김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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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29일, 저녁 찬거리를 준비할 시간에 망원동 재래시장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휴대폰으로 길찾기 앱을 켜고 시장 중앙 길을 헤매다, 한적한 골목길로 들어섰다. 빨간 벽돌의 다세대 주택들이 이어졌다. 분명 길찾기 앱의 화살표는 이 근방에 도착지가 있다고 표시하는데, 아무래도 이상했다. 재단이라는 단체이면, '번듯한' 간판이라도 하나 보여야 할 것 아닌가. 

약속된 인터뷰 시간보다 조금 일찍 도착했는데도 혹여 늦지는 않을까 마음이 초조해졌다. 결국 재단에 전화를 했고, 상근 간사님이 직접 마중을 나왔다. 그토록 찾던 '비온뒤무지개재단' 사무실은 무심코 지나쳤던 그 빨간 벽돌의 건물 2층에 위치해있었다. 이런 익숙한 삶의 공간에 낯선 단체가 둥지를 틀고 있으리란 생각을 하지 못했기 때문일까.

비온뒤무지개재단은 우리나라 최초의 성적소수자를 위한 비영리 재단이다. 2012년,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 활동가 워크숍에서 '새로운 형식의 성적소수자 재단'에 대한 아이디어가 나온 것이 그 시초다. 그 후 2년이 지난 지금, 그 단순한 상상은 비온뒤무지개재단으로 실현되었다.

재단 사무실에 들어섰을 땐 한 방송사의 촬영이 한창 진행 중이었다. 최근에 재단의 소식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꽤나 바쁜 모양이었다. 잠시 기다려서야 사무실 내 성적소수자의 역사를 수집하는 아카이브 공간인 '퀴어락'에서 이신영(53·트랜스젠더 부모모임 대표) 이사장과 류홀릭(38·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 대표) 이사를 마주할 수 있었다. 

단순한 아이디어로 성적소수자의 희망을 말하다 

- '비온뒤무지개재단'이라는 이름이 예쁜데, 어떻게 지은 것인가요?
이신영 : "무지개가 희망을 상징하잖아요. 우리나라에서 성적소수자 인권 운동을 시작한 지 20년이 되었다는데 차별은 여전해요.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놓지 않겠는 의미에요. 또 무지개가 다양성을 상징하잖아요. 성 정체성이나 성적 지향에 상관없이 타고난 자기만의 색깔로 빛나기를 바라는, 우리 사회가 그렇게 다양해졌으면 좋겠다는 마음에서 짓게 된 이름이에요." 

- 앞서 말한 것처럼 성적소수자를 위한 국내 운동의 역사가 20년이 넘었어요. 그간 성적소수자를 위한 단순한 커뮤니티도 있었고, 운동을 하는 단체도 존재했어요. 그런데 모든 성적소수자를 아우르는 '재단' 형태의 단체는 처음 아닌가요?
류홀릭 : "만들어진 지 15년 정도 된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 활동을 이어오다가 활동가들이 (앞으로의) 비전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했어요. (앞으로)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했는데 사실 가장 필요한 것이 돈이잖아요. 인권단체이지만 나라의 후원을 받는 것도 아니고요.

개개인의 성적소수자들이 돈이 없어서 학업 중단하거나 꿈을 포기하는 것과 같이 제대로 된 삶을 영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재단이란 것을 만들어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에요. 단순한 아이디어로 시작을 했지만, 사실은 굉장히 큰일이에요."

이신영 : "저도 아이의 성정체성을 처음 알게 되었을 때는 그냥 정신이 없었어요. 나중에야 성적소수자 단체가 있다는 것을 알고, 어떤 어려움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아이 뿐만 아니라 사회적 지지나 가족 내에서 지지를 받지 못하는 다른 성적소수자 아이들을 도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또 (성적소수자 단체의) 활동가들은 활동을 하는 것만으로도 벅찹니다. 보수도 별로 없고, 생활을 꾸려나가면서 일을 병행해야 해요. 그런데 성적소수자들이 꼭 필요로 하는 곳에 금전적 지원을 주려면 기부를 받을 수 있는 단체가 필요해요. 재단이 하는 가장 중요한 일은 기부를 받고, 그것을 꼭 필요한 곳에 배분하는 일입니다. (성적소수자) 단체는 그런 일을 할 여력이 없습니다. 그래서 재단이라는 틀이 필요했어요. 기부를 하는 분들도 아무래도 재단이라면 믿고 기부를 하시고요."

성적소수자의 '삶'을 기반으로 한 지원 사업

- 재단이 준비하고 있는 사업에는 성적소수자의 실생활에 밀접한 활동이 많은 것으로 알아요. 특별히 눈길을 끄는 사업은 의료 지원, 장학 지원, 지역 지원인데요. 
이신영 : "의료 지원은 성적소수자들, 그중에서도 특히 트랜스젠더에게는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에요. 트랜스젠더는 신체적 수술을 경험하고, 호르몬을 투여하기 때문에 사실 건강관리가 평생 필요합니다. 의료적 비용 문제도 걸리지만, 성적소수자에게 우호적이면서 인권 감수성을 가진 의료진을 만나는 것 또한 쉽지 않습니다. 실제로 성적소수자들이 병원 진료를 받고 (마음의) 상처를 입는 경우가 굉장히 많아요. 그래서 (성적소수자에게) 우호적인 의료 네트워크를 구성하는 것이 굉장히 필요합니다."

류홀릭 : "(지역 지원 같은 경우) 성적소수자들이 외계에 사는 것이 아니잖아요. 나와 전혀 다른 사람들이 아니에요. (성적소수자는) 이 지역에, 어디에나 같이 있습니다. '성적소수자는 내 주변에 없다', '(성적소수자를) 한 번도 본적이 없다'와 같은 생각을 많이 하지만 사실은 (성적소수자들이) 굉장히 많거든요. 

마을 운동과 지역 운동 활성화, 그 안에 성적소수자가 들어가는 것이 굉장히 필요해요. 종로에는 게이바가 많아요. 그래서 게이들이 많이 있지만, 그에 비례해 혐오 범죄도 많죠. 지역에서 같이 (성적소수자를) 받아들이는 운동을 하지 않으면, 사회는 성적 소수자를 없는 존재로 보게 됩니다. 

또 모든 (성적소수자) 운동들이 서울 중심, 수도권 중심이거든요. 사실 지금은 자신이 동성애자라고 깨달아도, 인터넷에 관련 정보가 많아서 크게 힘들어하지 않을 수 있어요. 하지만 그들의 부모님이나 트랜스젠더는 앞으로 어떤 의료적 조치를 받아야 하는지, 상담은 어디서 받아야 하는지 정보를 얻으려면 한계가 있습니다. 매번 서울에 오는 것이 어렵기도 하고요. 따라서 (성적소수자에 대한) 지역 지원이 필요합니다." 

- 다른 사업들은 내년부터 그 지원이 본격화 되지만, '이창국 장학 사업'은 이미 시작이 된 걸로 알고 있어요. 
이신영 : "고 이창국님은 저희 돌아가신 아버님입니다. 살아계실 때 개인적으로 장학 사업을 하셨어요. 제가 장학 사업을 지원하게 된 것도 아버님의 뜻을 받은 것이에요. 저희 형제들도 이 재단을 만들 때 도와주었고요. 

저희 가족이 특별하다는 생각은 안 해요. 내 형제의 일이고, 내 조카의 일이니까요. 성적소수자, 트랜스젠더에 대한 정확한 이해는 없더라도 가족의 일이니까 (장학 지원을 통해) 마음을 보인 것이라 생각합니다. 제가 아버지를 많이 닮았거든요. 아버지가 아마 살아 계셨더라면, 정말 좋아해주셨을 것 같아요. 정말 잘한다고 격려해주셨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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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뷰가 진행된 '퀴어락’ 비온뒤무지개재단 부설 기관으로, 성적소수자의 역사적 기록물을 보관하는 공간이다.
ⓒ 김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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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 공간 한 곳만 있어도 사람을 살리더라"

- 재단의 부설 기관으로 '별의별상담연구소'와 '퀴어락 아카이브'가 있는데, 어떤 곳인가요?
류홀릭 : "원래는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에서 같이 하던 것들이에요. 재단에 발기인들이 모여서 어떤 재단을 꿈꾸는지 이야기를 했을 때, 퀴어락이라는 역사적 공간을 가져가는 것이 의미가 있다고 이야기 했어요. 별의별상담연구소도 상담소라고 만들어져 있지만 공간 문제도 그렇고 지원을 받는 것이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재단 부설로 들어가면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겠다는 판단이 들었습니다. 

부설 기관은 모두 갑자기 생긴 것은 아니고 바닥부터 시작한 것들이에요. (상담소의 경우) 상근자가 있을 정도의 안정은 아니지만, 각자 직업을 가지신 분들이 일을 끝내고 시간을 쪼개 이곳에 오세요. 지금의 퀴어락도 굉장히 많이 발전한 상태입니다. 조그만 방 한 칸에서 시작했거든요. 그래도 관심 있는 분들이 와서 간행물 정리하고, 자료에 라벨을 붙이고, 자료들을 어떻게 보관할지 고민합니다. 굉장히 소중한 자원과 인력들이 함께하고 있어요."

이신영 : "오랜 현장 경험에서 나온 결과물인 것 같아요. 시간이 없었더라면, 세월이 없었더라면 못했겠죠."

류홀릭 : "저도 활동한 지 몇 년 됐지만, 처음 (성적소수자 활동에) 뛰어든 사람이 없었다면 저도 이 자리에 없었을 거예요. 처음 저의 (성) 정체성을 깨달았을 때 나의 (성) 정체성을 상담할 곳을 찾았는데, 그곳이 바로 이곳이거든요. 그렇게 시작했는데, 제 인생이 바뀌었어요. 이 공간이, 이런 상담 공간 한 곳이 사람을 살리는 공간이 되더라고요."

차별과 싸우는 일, 그럼에도 포기할 수 없는 것 

- 재단 홈페이지 오픈 한달 사이에 창립회원이 100명을 넘었고, 지난 7월에는 창립 기금 1억 원을 돌파했어요. 많은 사람들이 재단에 관심을 가지고, 또 마음을 나누고 있는데 혹시 어려움은 없나요? 
이신영 : "어려움이 있죠. 저희가 올 봄부터 재단 등록하려고 모든 준비를 해두었어요. 정관도 만들었고, 창립총회도 열었습니다. 그리고 재단 등록을 하기 전, 분위기를 살피려 서울시청 담당 공무원과 연락을 주고 받았습니다. 그 과정에서 담당 공무원이 '성적소수자 관련 부분은 미풍양속을 저해되는 사안이라 재단 등록이 될지 모르겠다'는 식으로 이야기하시더라고요.

후에 (담당공무원이) 자신이 실수를 했다고 사과했지만, 서울시에는 성적소수자 인권 문제를 담당하는 과가 없어 아마 (재단 등록이) 안 될 것이라며 다른 곳에 문의해보라고 하더군요. 되도록 (재단 등록을) 받고 싶어 하지 않는 분위기가 느껴졌어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만약 재단 등록을 받아주었을 경우 성적소수자를 혐오하는 이들이 괴롭힐 것이라는 두려움이 컸던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재단 등록 서류를 내고왔어요. 재단 등록 허가 결과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 최근 '모두에게 완자가'라는 성적소수자의 목소리를 담은 웹툰이 연재되고 있고, 지난해에는 김조광수-김승환 부부의 첫 동성커플 공개 결혼식이 있었어요. 현재 제정되고 있는 서울시민인권헌장에 성적지향에 대한 차별 금지 조항을 넣어야 한다는 움직임도 일고 있고요. 하지만 여전히 이러한 다양한 형태의 성적 지향, 성 정체성을 반대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아요. 
류홀릭 : "각자의 운동 방식에 따라 목소리를 내는 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성적소수자를) 받아들이는 사람도 마음에 동하는 것이 있어야 하잖아요. 만화 좋아하는 사람은 만화를 보고 성적소수자를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고, 영화 좋아하는 사람은 영화로, 법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인권 헌장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거예요.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무엇을 해도 받아들이지 않겠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포기할 수는 없잖아요."

"같이 고민하는 것이 결국 이성애자를 더 자유롭게 하는 것"

- 지금은 LGBTAIQ(레즈비언, 게이, 양성애자, 트랜스젠더, 무성애자, 간성, 퀘스처너리의 앞 글자를 딴 단어)를 모두 '성적소수자'라는 용어로 한데 아울러 칭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 몇몇 사람들은 이들을 잘 구분하지 못해요. 예를 들어 트랜스젠더를 게이나 레즈비언으로 오해하는 경우도 있죠.
류홀릭 : "예전에 단체 이름을 지었을 때는 '동성애자'인권연대, '게이'운동단체 친구사이, '레즈비언'상담소라는 식으로 지었어요. 그런데 이제 기존의 단어만으로 모든 성적소수자들이 표현 되지 않기 때문에 외국의 표현을 따오는 경우가 많아요. 그러면 또다시 이것을 아우르는 단체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이름을 바꾸게 됩니다. 

저는 명칭도 중요하지만, '왜 우리만 나누어져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하고 싶어요. 이성애자라는 정체 없는 개념 또한 해체하는 운동을 해야 하지 않을까요. 성적소수자의 종류를 대체 어디까지 나열을 할 것인가, 한번쯤은 이성애자가 '나는 동성애자가 아닐까' 하는 고민을 해봐야 하지 않을까요. (성적 지향의) 개념을 나누고 쪼개는 것은 이성애자에게도 필요해요." 

이신영 : "이성애자가 이곳에 오면 소수예요. 우리는 익숙하지 않은 것에 불편함을 느끼잖아요. 처음에는 제가 만나보지 않았던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사실 좀 불편했어요. 내가 어떻게 처신을 해야겠는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그래서 적응하는데 시간이 걸렸습니다. 

요즘엔 그런 불편함이 자연스럽게 해체되면서 '나는 세상이 나누어 놓은 남자 여자라는 이분법에 묶여있었구나, 족쇄처럼. 그래서 더 많은 것을 생각해보지 못했구나. 나는 그냥 나를 여자라고만 생각했지, 내 안에 어떤 다른 것이 있을 것이란 걸 전혀 생각하지 못했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요. 이 생각이 어떤 면에서 저를 굉장히 자유롭게 했어요. 되게 좋더라고요. 이런 문제를 같이 고민하는 것이 결국 이성애자를 더 자유롭게 하는 것 같아요."

"삶은 비가 오는 것과 무지개가 뜨는 것의 반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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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신영 이사장과 류홀릭 이사 이신영 이사장(왼쪽)과 류홀릭 이사(오른쪽).
ⓒ 김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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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우리 사회에서 성적소수자에 대한 논의는 어디까지 진행되었다고 보나요? 한국은 아직 비가 오는 중인가요, 비가 그치는 중인가요, 아니면 무지개가 뜨기 직전인가요. 
이신영 : "저는 성적소수자 운동도 그렇고, 사람의 삶도 그렇고 늘 비가 오고 늘 무지개가 떠있지는 않다고 생각해요. 비가 오다가, 무지개가 떴다가 그게 반복돼요. 그런데 중요한 것은 비가 오는 중에도 무지개가 언젠간 뜰 것이라는 것을 아는 것이죠. 그리고 무지개가 떴을 때도 또 비가 올 것이란 것을 안다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이들에게 그간 성적소수자를 위한 활동을 해오며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언제였는지를 물었다. 류홀릭 이사는 작년과 올해 있었던 퀴어문화축제 퍼레이드의 기억을 되짚었다. 작년에는 퍼레이드 도중에 거짓말처럼 무지개가 떴다고 했다. 올해는 그 무지개를 보지 못했지만, 하늘에 뜬 무지개만큼 기억에 남을 광경을 목격한 듯했다. 

"보수 기독교 세력과 맞붙으면서 퍼레이드가 5시간 정도 지연이 되었어요. 그런데 5시간이 지나고 모든 퀴어들이 다시 돌아와서 밤에 행진을 했던 기억이 잊히지 않아요. 이성애자를 포함한 수많은 사람들이 성적소수자를 지지한다며 같이 걸어주는 것이, 그게 잊히지 않아요. 우리만 운동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니죠. 많은 이성애자들이 우리를 지지하고 함께 고민해주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퍼레이드 안에서 느꼈어요."

'혼자가 아니다'. 같은 고민을 하고 비슷한 혼란을 겪을 성적소수자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을 부탁했을 때도 이들은 한목소리로 누군가와 함께한다는 것의 중요성에 대해 말했다. 이신영 이사장의 말처럼 이들의 삶에 항상 비가 오는 것은 아니며, 그렇다고 항상 무지개가 떠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런 삶 속에서 무지개가 뜰 때, 다른 사람과 함께 그것을 바라보는 경험도 충분히 소중하다. 하지만 지금 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비가 올 때 모두가 그 비를 함께 맞아줄 것이라는 확신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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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믿을 검찰 수사발표1- 짜맞추기 시뮬레이션

[국민정보원 PIS 15회] 
 
검찰 중간수사발표 분석1 - 세월호 침몰 시뮬레이션의 문제점
 
조준규 피디 
기사입력: 2014/11/05 [01:19]  최종편집: ⓒ 자주민보
 
 

 

세월호사고 검찰 중간수사발표 분석1 - 침몰 시뮬레이션의 문제점.

 

지난 10월 6일 검찰에서 세월호 사고 중간수사 발표를 하였습니다. 154명을 구속시키고 4명이 불구속시키며 진행하고 있는 검찰의 수사, 사고원인부터 수사결과까지 그동안 해오던 주장을 되풀이하며 국정원 등에는 면죄부를 주는 듯한 모양새입니다.


검찰 발표를 분석하고 제대로된 수사를 촉구하는 첫번째 시간으로 침몰원인 시뮬레이션의 문제점을 살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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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3차 대대장·대대정치지도원대회 개최..군력강화 표방


김정은 제1위원장, 지팡이없이 도보 이동
이승현 기자  |  shlee@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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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11.05  11: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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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참석한 가운데 북한에서 인민군 제3차 대대장·대대정치지도원대회가 성대히 진행됐다고 <노동신문>이 5일 보도했다. 김 제1위원장은 "적들과의 대결전을 앞둔 오늘의 정세는 우리(북)가 선군의 기치를 변함없이 틀고나가며 군력을 더욱 강화할 것을 절실히 요구하고 있다"고 강조했다.[사진-노동신문 캡쳐]

북한에서 지난 3일과 4일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참석한 가운데 인민군 제3차 대대장·대대정치지도원대회가 성대히 진행됐다고 <노동신문>이 5일 보도했다.

신문은 이번 행사가 "전군 김일성-김정일주의화의 요구에 맞게 대대강화의 새로운 이정표를 마련하는 대회"로서, "인민군대의 대대들을 수령결사옹위의 최정예 근위대오로 만들기 위한 투쟁에로 전군을 총궐기시켜 군력강화의 최전성기를 열어나가는데서 중대한 의의를 가진다"고 해설했다.

김정은 제1위원장은 연설에서 이번 대회는 "김일성동지와 김정일동지의 대대중시, 대대강화사상을 군건설과 군사활동에 철저히 구현하며 군력강화의 최전성기를 열어나가는데서 중요한 이정표를 마련한 획기적인 계기로 된다"며, "적들과의 대결전을 앞둔 오늘의 정세는 우리(북)가 선군의 기치를 변함없이 틀고나가며 군력을 더욱 강화할 것을 절실히 요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 제1위원장은 또한 "모든 대대들을 그 어떤 강적도 단매에 때려부실수 있는 무적필승의 최정예 전투대오로, 당중앙위원회의 뜨락과 잇닿아있는 병사들의 정든 고향마을로 만드는데서 나서는 강령적 과업"을 제시하면서 먼저 "모든 군인들을 사상의 강자, 도덕의 강자로 준비시키는 것을 기본과업으로 내세우고 당정치사업을 끊임없이 심화시켜 나가"야 한다고 언급했다.

이어서 "인민군대에 있어서 싸움준비, 훈련보다 더 중요하고 더 절박한 과업은 없다"며, 언제 어디서나 훈련을 기본으로 틀어쥐고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김일성-김정일군사전략전술사상과 주체전법, 부대, 구분대의 전투임무와 현대전의 요구에 맞게 훈련내용과 방식을 끊임없이 개선"해야 한다며, '명사수, 명포수 운동'을 강화하고 모든 훈련을 실전의 맛이 나게 진행하며, 요구성을 최대한 높이고 훈련에 대한 총화와 평가사업도 잘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밖에 김 제1위원장은 "대대를 강화하기 위하여서는 대대장, 대대정치지도원들의 책임과 역할을 결정적으로 높여야 한다"고 강조하고 "대중운동과 경쟁바람을 세차게 일으키는 것을 대대강화에서 새로운 전환을 일으키기 위한 중요한 방도"로 내세웠다.

   
▲ 김 제1위원장은 "이번 대회를 통하여 대대강화를 위해 자기의 모든 것을 다 바쳐온 대대지휘성원들이야말로 애국자, 숨은 영웅이라고, 당중앙은 이런 동무들이 있는 것을 가장 큰 자랑으로 생각한다"며, 방경철 등 다섯명의 대대지휘성원들에게 노력영웅칭호와 함께 금메달(마치와 낫) 및 국기훈장 제1급을 직접 수여하고 대회 참가자들과 기념촬영을 했다. [사진-노동신문 캡쳐]

이날 김 제1위원장은 "이번 대회를 통하여 대대강화를 위해 자기의 모든 것을 다 바쳐온 대대지휘성원들이야말로 애국자, 숨은 영웅이라고, 당중앙은 이런 동무들이 있는 것을 가장 큰 자랑으로 생각한다"며, 방경철 등 다섯명의 대대지휘성원들에게 노력영웅칭호와 함께 금메달(마치와 낫) 및 국기훈장 제1급을 직접 수여했다.

김 제1위원장에 앞서 황병서 인민군 총정치국장은 보고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대대는 인민군대의 말단지휘단위이고 기본전투단위이며 독립적인 생활단위"라고 독창적으로 규명하고 "대대를 강화해야 인민군대의 전반적 전투력이 백방으로 다져진다는 대대중시사상을 제시했다"고 지적하고 "위대한 대원수님들(김일성·김정일)의 대대중시사상과 건군위업은 오늘 김정은동지의 현명한 영도에 의하여 새로운 높은 단계에서 빛나게 계승발전되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김 제1위원장이 "중대와 대대를 거점으로 전군 김일성-김정일주의화를 전면적으로 실현하도록 영도해 혁명무력강화의 일대 전성기를 펼쳐 놓았"으며, "인민군대의 강군화를 군건설의 전략적 노선으로 제시하고 김정일애국주의교양, 신념교양, 계급교양, 도덕교양을 강화하며 대대안에 당의 유일적 영군체계와 혁명적 군풍을 세우도록 이끌어 주었다"고 말했다.

대회에는 황병서 총정치국장, 현영철 인민무력부장, 리영길 군 참모장, 김원홍 국가안전보위부장 등이 참가했다고 신문은 덧붙였다.

   
▲ 대회 이틀째인 4일 김 제1위원장이 대회 참가자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기 위해 이동하는 모습. 김 제1위원장의 왼손에 지난달 초부터 계속 들고 다니던 지팡이가 보이지 않는다. [사진-노동신문 캡쳐]

대회를 마친 김 제1위원장은 4일 대회 참가자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으며, 촬영을 위해 이동하는 김 제1위원장의 왼손에는 지난달 초부터 계속 들고 다니던 지팡이가 보이지 않았다.

한편, 북한은 지난해 10월 김 제1위원장이 참석한 가운데 13년만에 중대장·중대정치지도원대회를 개최한 바 있으며, 대대장·대대정치지도원대회는 지난 2006년 10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참석한 2차 대회 이후 8년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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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상엔 김밥 한줄과 붕어빵 몇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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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
    2014/11/04 10:08
  • 수정일
    2014/11/04 10:08
  • 글쓴이
    이필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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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11.03 20:00수정 : 2014.11.04 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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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아무개씨 위패 앞에 그가 숨지기 전날 “먹고 싶다”던 김밥과 붕어빵 등이 놓여있다. 나눔과나눔 제공

죽음 이후가 두려운 홀로노인들

지난달 29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최아무개(68)씨는 사후 자신을 수습해주느라 수고할 이들에게 국밥 한 그릇이라도 챙겨 먹으라며 10만원을 남겼다. 주변에 주검을 거둬줄 이도 없고, 모르는 누군가에게 폐를 끼치기도 싫었던 최씨는 장례비로 보이는 100여만원을 따로 남겼다. 홀로 사는 노인들에게 ‘죽음 이후’는 이승의 생활고보다 두려울 때가 있다고 한다. 기초생활수급자가 숨졌을 때 정부가 지원하는 장제비는 75만원에 불과하다. 수의 한벌 걸치기에도 모자란다. ‘사후 복지’에서도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의 현실과 그 이유 등을 살펴본다.

 

노숙·고시원 전전하던 염 할아버지
연락 끊긴 가족들 주검 인수 포기
노숙인·활동가들 ‘마지막 길 배웅’

 

위패 앞엔 알루미늄 포장지에 싸인 김밥 한 줄과 붕어빵 몇 점이 놓였다. 그가 마지막까지 먹고 싶어했던 음식이라고 했다. 그리고 귤 한 접시와 전 몇 조각.

 

지난달 26일 세상을 뜬 염아무개(71)씨의 초라한 빈소에 그를 아는 노숙인과 사회단체 활동가 등이 찾아왔다. “형님, 좋은 데로 가세요.” 서울 종각역에서 염씨와 함께 종이상자를 깔고 누웠던 노숙인 정아무개씨가 울음을 그치지 못했다. 정씨는 쓸쓸한 빈소의 향이 꺼질세라 밤새 다른 노숙인들과 함께 영정 곁을 지켰다.

 

홀로 살던 노숙인 염씨의 빈소는 서울 은평구 서울시립서북병원 장례식장에 차려졌다. 무연고자 장례 지원 단체의 도움이 없었다면 염씨도 다른 무연고자 대부분이 그렇듯 술 한잔 받지 못한 채 서둘러 화장장으로 향했을 것이다. 그래도 사흘장은 언감생심이다. 염씨는 빈소가 차려진 이튿날 발인을 마치고 서울시립승화원에서 한 줌 재로 변했다.

 

베트남전에 참전했었다는 염씨는 젊은 시절 건설 붐이 일었던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공사용 트럭을 몰며 돈을 벌었다고 한다. 귀국해서 집도 마련하고 큰 트럭도 샀지만, 1997년 말 외환위기에 휘청이기 시작한 삶은 2005년 교통사고로 허리를 다친 뒤 돌이킬 수 없게 됐다고 했다. 1억원에 달하는 차량 할부금을 내지 못했고, 급기야 2007년부터는 종각역에 자리를 폈다.

 

염씨는 노숙인 지원 단체인 ‘홈리스행동’의 도움을 받아 6년 전부터 고시원 생활을 시작했다. 세간살이라고 해봐야 1인용 침대와 텔레비전이 전부였던 월세 23만원짜리 좁은 방에서 살던 그는 종합병원과 요양병원을 전전하다 숨을 거뒀다. 관절염으로 고생하다 폐질환으로 세상을 뜬 그가 남긴 재산은 고시원 총무에게 맡겨둔 20만원과 가방 속의 천원짜리 한 장이 전부였다. 항상 지녔던 가방에서 작은 증명사진이 나와 그나마 영정을 만들 수 있었다.

 

왕래가 끊겼던 가족들은 주검 인수를 포기했다. 동료 노숙인들과 무연고자·기초생활수급자 장례를 돌봐주는 시민단체 ‘나눔과나눔’이 상주를 대신했다.

 

 

무연고 주검은 ‘마지막 술 한 잔’ 못받고 곧바로 화장

 

작년 숨진 922명 무연고 처리
시민단체 지원 받으면
그나마 이틀장이라도 치뤄
1인 노인가구 내년 138만
2025년엔 224만 가구로 늘 듯

 

홀몸노인들 “장례 걱정 많아”
시민단체에 결연장례 신청 늘어
“죽음 뒤까지 걱정해야하는 사회”

 

무연고 주검 처리
홈리스행동의 활동가 박사라(30)씨는 “마지막 가는 길이 외롭지 않아 그나마 다행이었다”고 했다.

 

박씨의 말처럼 염씨의 사례는 ‘그나마 다행’이다. 지난해 염씨처럼 무연고 주검으로 ‘처리’된 이는 922명에 이른다. 장례를 치를 피붙이가 아무도 없거나, 가족이 있더라도 장례비 등을 감당할 수 없어 주검 인수를 거부당한 이들이다.

 

지난해 285명이 무연고 주검으로 처리된 서울시에서는 해마다 입찰로 무연고 주검 장례업체를 선정한다. 염씨도 주변에서 그를 기억하는 이들이 없었다면 장례 절차 없이 업체를 통해 곧바로 화장됐을 가능성이 높다. 무연고 주검 장례를 맡아 하는 한 업체 관계자는 “가족들 형편이 어려워 주검 인수를 포기하는 경우를 많이 봤다. 안타까운 마음이 크다”고 했다.

 

고령화와 1인가구 증가가 맞물리면서 무연고 주검도 빠르게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통계청은 1인 노인가구가 2015년에는 137만9000가구(전체 1인가구의 27.3%), 2025년에는 224만8000가구(34.3%), 2035년에는 343만가구(45%)에 이를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연평균 10만가구씩 증가하는 셈이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지난해 11월 “고독사 등 홀로 사는 노인 문제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부각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홀로 사는 노인들은 지금의 고된 몸도 힘들지만, 죽어서도 편히 눕지 못할 현실을 생각하면 ‘죽음 이후’는 떠올리기조차 싫다고 말한다. ‘사람은 누구나 평등하게 죽는다’고 사람들은 말하지만, 이들에게는 거짓말이다. ‘평등’의 근처에도 가보지 못한 몸은 죽을 때도 마찬가지다.

 

이 때문에 ‘결연 장례’ 신청을 하는 이들도 있다. 서울지역 임대주택에 사는 한 할머니는 최근 사회복지사를 통해 자신이 숨지면 장례를 대신 치러달라고 ‘나눔과나눔’ 쪽에 요청했다. 딸이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는 그는 “내가 죽으면 누가 장례를 치러줄지 걱정이 많다”고 했다. 78살 어머니와 함께 산다는 중증지체장애인 딸(50) 역시 “어머니가 돌아가시면 장례를 어떻게 치를지 너무 걱정스럽다”며 어머니 장례를 대신 치러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박태우 기자 eh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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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치 같은 멸치 아닌 비양도 꽃멸 아시나요

 
황선도 2014. 11. 03
조회수 2585 추천수 0
 

제주 옆 화산섬 비양도 회유하는 꽃멸은 청어과 생선, 제 이름은 샛줄멸

흑돼지고기 찍어먹는 '육젓' 맛 일품…멸치보다 10배 비싼 값으로 팔려

 

bi0-1.jpg» 비양도 꽃멸치. 실은 멸치와는 과가 다른 어종이다.  
   
요즘 나는 두집살림을 한다. 주중에는 제주에서 근무하고, 주말에 가족의 품을 찾아 육지로 간다. 내가 사는 한림에서는 서쪽 바다로 언제 어디서나 비양도가 보인다. 
 
제주도가 지각 밑에 흐르는 맨틀의 현무암질 마그마가 뿜어져 오르는 화산활동으로 섬이 만들어졌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이러한 화산분출은 보통 마그마의 휘발성분이 폭발하여 분출한 화산쇄설물이 화구 주위에 퇴적되어 정상 부분이 움푹 파인 분석구를 만들게 된다. 물이 없는 환경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바다 한 가운데에 분석구로 이루어진 비양도는 지질학적으로 매우 흥미로운 일이다. 더욱이 고려사(1451년)와 고려사절요(1452년)에 고려 목종5년(1002년)에 화산분출이 있었다는 기록을 바탕으로 겨우 천년 전에 비양도가 만들어졌다는 탄생 설까지 회자되고 있어 세간의 관심을 받았다. 
 
이후에 비양도 암석의 연대를 측정한 결과, 고려 시대 분화설은 학문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음이 입증되었음에도 한번 고정된 인식은 바뀌지가 않고 있으니 더더욱 신비로운 섬이다.

 

bi1.jpg» 제주의 서쪽에서는 언제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비양도의 모습.  
 
올해 초 교육방송(EBS)에서 전화가 와서는 옛날부터 먹어왔고 그래서 생활에 깊이 연결된 물고기들을 발굴해내서 과학적 접근만이 아니라 문화적으로 풀어내는 다큐멘터리 ‘백성의 물고기’를 만들려고 하는데, 이들 물고기에 대해 조언을 해달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4월 즈음 프로그램 기획회의에 참여하여 본격적인 협조가 시작되었다. 5월 말에는 그때 만났던 문예원 작가가 제주를 찾아왔다. 
 
비양도에 꽃멸이라는 멸치가 있어 사전답사하러 왔다는 것이었다. 내가 제주에 머문 지 반년이 다 되었는데도 비양도를 물 건너서 바라만 보았던 터라 이 현장취재에 동행하기로 했다. 
 
봄날의 따가운 햇살 속에 한림항에서 배를 타고 20여분도 채 걸리지 않는 거리에 있는 비양도에 들어갔다. 정말 작고 이쁜 섬, 비양도에 도착해서 제주도를 바라보니 육지만큼 거대하였다. 섬에서 섬으로 들어와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는 세상은 특별하였다.
   
비양도 선착장에 배를 대자마자 문 작가는 어딘가에 전화를 걸었다. 잠시 후에 나타난 분은 비양도 어촌계장 고순애씨. 육지에서는 보통 어촌계장이 남성인 것과 달리 제주는 여성 어촌계장이 더 많다고 하니 세삼 제주도에서 여성의 존재감을 느낄 수 있었다. 
 
이끄는 대로 올라간 곳은 부두가 내려다보이는 이층건물 어촌계 사무실. 간단한 통성명을 하고 시원한 음료수 한잔을 사이에 두고서 작가와 어촌계장 사이에 인터뷰가 시작되었다.

 

■ 꽃멸이 멸치가 아니라고?
 
작가가 묻고 어촌계장이 답하는 것을 나는 좀 떨어져 지켜보고 있었다. 한참을 이야기한 것 같은데 도무지 진척이 없다. 
 
작가는 멸치 이야기를 묻는데, 어촌계장은 ‘꽃멸’ 이야기를 한다. 옆에서 잠자코 듣고 있던 나도 혼란스러웠다.

 

아무리 들어도 어촌계장이 말해주는 꽃멸의 생태와 습성이 멸치와는 같지 않았다. 산란장소가 다르고, 산란시기가 다르다. 
 
멸치는 봄부터 늦가을까지 외해에서 어미가 부성란(물에 뜨는 성질의 물고기 알)을 산란하고 그 어린 것이 연안으로 들어와 자라다가 어느 정도 성장하면 다시 외해로 나간다. 그런데 꽃멸은 봄에서 초여름에 어미가 연안으로 들어와 침성란(물 밑에 가라앉은 알)을 산란한다고 하니 아무래도 같은 종이 아닌 것 같다. 
 
나는 갑자기 궁금증이 생겨 그 꽃멸이라는 놈을 보고 싶다고 했다. 어촌계장은 지금 실물을 볼 수는 없지만, 이전에도 방송국에서 촬영을 많이 해갔으니까 인터넷을 뒤지면 볼 수 있단다. 
 
마침 사무실에 켜 놓은 컴퓨터의 자판을 두드렸다. 검색엔진에 ‘비양도 꽃멸치’를 치니 기사와 함께 사진이 떴다. 
 
아뿔싸! 이건 멸치가 아니었다. 몇 군데를 더 검색해 보니 이름이 나왔는데, 이 꽃멸치가 ‘샛줄멸’이란다. 
 
언뜻 보면 샛줄멸이 가늘고 긴 체형이어서 멸치와 비슷하고 같은 청어목에 속하지만 세분하면 멸치는 멸치과에 속하는 반면 샛줄멸은 청어과에 속해 분류학상으로는 다른 위치에 있다. 
 
물고기 박사인 내게도 익숙하지 않은 물고기이다. 그렇다면 멸치를 취재하러 와서 멸치가 아닌 샛줄멸을 만났으니 헛수고한 것 아닌가 싶었다. 
 
그런데 문 작가는 태평하다. 그녀에게는 꽃멸도 멸치란다. 이름과 분류, 그 모든 것은 인류와 멸치가 태어나고도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몇몇(?) 사람들이 딱지 붙인 것이란다. 
 
더욱이 비양도에서 나는 꽃멸은 너무도 오랫동안 사람들이 멸치라 하며 회로도 먹고 젓을 담아 먹어 온 백성의 물고기라는 것이다. 이게 과학과 인문학의 차이인가?
   
비양도에서 꽃멸이라 부르는 ‘꽃멸치’의 생물·생태학적 정보를 찾아보았다. 정식 이름은 샛줄멸이고, 학명은 스프라텔로이데스 그라실리스(Spratelloides gracilis)이다.

 

청어목 청어과에 속한다. 영어로 실버스트라이프 라운드 헤링(Silver-stripe round herring) 또는 밴디드 블루스파트(Banded blue-spart)라 부른다.  

몸 빛깔은 등쪽은 연한 청색, 배쪽은 백색이며, 몸 옆구리에는 폭이 넓은 은백색의 세로띠가 있으며 이와 평행하게 등쪽 언저리에 푸른빛의 띠가 둘려 있어 반짝거린다. 몸은 가는 원통모양으로 앞뒤가 측편 되어있으며, 주둥이는 원추형으로 다소 뾰족하다. 
 
생태적 특성을 보면, 외양성 어류로 우리나라 남해안과 제주도 연해, 그리고 일본 중부 이남, 동중국해, 대만 등 따뜻하고 깨끗한 연안에 주로 서식하며, 먼 거리 회유를 하지 않는다. 산란기는 5~8월로서 이때가 되면 떼를 지어 연안으로 몰려와 지름 1.2㎜의 둥그런 점착성 알을 낳아 암초나 해조류에 붙여 놓고 떠난다. 
 
1주일 만에 부화한 새끼는 5㎜ 정도로 연안에서 동물플랑크톤을 먹고 살며 낮에는 수면 가까이, 밤에는 밑바닥 층으로 큰 떼를 이뤄 유영한다. 겨울이 오기 전 5㎝ 정도까지 자라면 외양으로 떠나는데, 다 자라면 체장이 11㎝로 수명은 1~2년 정도이다. 
 
1년이면 성숙하여 다음 해에 산란을 위해 다시 연안으로 들어오는 생활사를 거듭한다. 이 정도가 샛줄멸에 대한 거의 모든 정보이다. 
 
그 만큼 연구도 되지 않았고, 육지 쪽에 서식하지 않으니 두루 알려지지도 않았다. 자연과학은 연구대상이 있어야 하는데, 접하지 않으니 알 수 없었던 것이다.
   
bi2.jpg» 제주 비양도에서 꽃멸 또는 꽃멸치라 부르는 샛줄멸. 
 
비양도 사람들은 ‘꽃멸이 비양도에만 산다’고 한다. 정말 그럴까? 
 
연구가 많이 되어 있지 않다는 것은 불행한 일이지만, 이 정도의 정보와 주민들의 설명을 토대로 하여 물고기 박사의 과학적 눈으로 해석을 해보는 것도 재미있을 듯싶다.
   
여기에 과거 뉴스 기사를 찾아 상황을 이해하는 것은 일종의 참고문헌 조사에 해당할 것이다. 여러 기사를 종합해 보니, 2012년부터 제주특별자치도는 매년 제주시 한림읍 비양도 마을어장에서 샛줄멸(제주명 꽃멸치) 조업을 희망하는 연안자망어선에게 6~8월 한시적으로 조업을 허용하였다. 
 
이런 조처는 매년 이맘때면 값 좋은 샛줄멸 떼가 비양도 연안으로 회유하여 들어옴에 따라 어민들이 조업허용을 요청해서 이뤄진 것이다. 지금까지는 연안자망 어업허가 내줄 때 마을어장에서는 수산자원보호 측면과 해녀가 물질할 때 위험할 수 있으니 조업을 해서는 안된다는 조건을 붙여 제한해 왔었다고 한다.
 
bi3.jpg» 연안자망을 이용한 비양도 꽃멸치 잡이. 사진=<연합뉴스>
 
이 상황을 생태학적 관점에서 보면, 생활사에 따라 외해에 살던 샛줄멸이 산란을 위해 연안으로 회유하는 시기, 즉 산란기가 비양도 주변 해역에서는 늦봄부터 초여름 사이이다. 그리고 외양성 어류인 샛줄멸이 연안에서 점착성 알을 낳는데, 알을 붙일 암초나 해조류가 있는 얕고 깨끗한 물이 있는 곳으로 비양도가 적격인 것이다. 
 
비양도에서는 이러한 바닷가 해안을 ‘엿동산’이라고 한다. 나름 어원을 유추해보면 냇가에 돌멩이가 있고 그 위에 물이 자박자박하게 흐르는 곳을 여울이라 하며, 깊은 바닷가에서 수심이 얕으려고 하면 어느 정도 솟아오른 곳이어야 하는데 이를 동산이라고 표현하였다. 여울이 있는 동산이라고 해서 지역 어민들이 부르는 이름 ‘엿동산’이 되었으리라 추측해 본다.
   
과연 우리나라에서는 비양도에서만 샛줄멸이 서식할까? 서식환경으로는 제주도 연안은 거의 비슷한 조건일 것이다. 다만, 비양도 어업인들이 요구하고 이곳 연안자망어선에게만 한시어업이 허용되어 어획하고 알려졌기 때문일 것이다. 
 
과거에 섬에서 주민들이 담아 먹어왔던 ‘멸젓’이 있었는데, 지금은 한림수협에서 일괄 구매해서 젓갈을 비양도 특산품으로 만들었으니 훌륭한 협업 사례이다. 꽃멸치의 ㎏당 위판단가가 2500원이 넘어 일반 멸치의 가격과 비교하면 8∼10배 이상 높으니 어민소득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제주에 오면 누구나 똥돼지 또는 흑돼지 맛을 보고 싶어 할 것이다. 그런데 한림읍에 나가면 뒷골목에 근고기집이 하나 있다. 근고기는 몇 인분으로 팔지 않고 근을 달아서 판다고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일단 고기가 두껍다. 아직도 연탄불을 고집한다. 가운데 화덕이 있는 스테인레스 원탁이다. 보드카가 연상되는 라벨을 붙인 한라산소주 한잔하기에 딱 맞는 분위기다. 
 
고기를 올려놓은 석쇠 아래에 뭔가 담긴 종지가 놓여 있다. 궁금해 하는 나에게 직접 고기를 구워주는 주인 아주머니는 고기 찍어먹는 육젓이란다.

 

보통 육지에서 육젓이라 하면 유월에 잡아 담근 새우젓을 말하는데, 아무리 살펴봐도 새우는 아니었다. 사연을 들어보니 멸치는 젓갈을 담으면 삭아서 국물만 남아 액젓이라 부르고, 샛줄멸은 살이 단단해 젓갈을 담아도 육질이 남아 있어 고기 육(肉)젓이라 부른단다. 
 
아하~ 기가 막히다. 이게 문화(文化)이다, 글이 되는 것.
 
bi4.jpg» 제주흑돼지 근고기(왼쪽)와 육젓이라 부르는 꽃멸치 젓갈.
 
일본은 역시 거의 모든 물고기에 대해 연구와 이용이 되고 있는 듯하다. 인터넷을 뒤져보니 샛줄멸은 일본 남쪽의 규슈 가고시마 지방에서 유명하다. 
 
심지어 안 먹어보면 ‘유감’이라고 할 정도이다. 게다가 ‘기비나고’(キビナゴ, 꽃멸치)’ 라면이 봉지면으로 출시되었다고 한다. 
 
역시 샛줄멸이 살 수 있는 따뜻한 남쪽 바닷가 이야기다. 라면을 좋아하는 내가 한 번은 먹어봐야 할 패스트푸드이다.
 
bi5.jpg» 일본 가고시마 지방의 기비나고(꽃멸치) 봉지라면. 고양이가 물고 있는 모습이 재미있다. 
 
■ 멸치는 기다려주지 않았다
   
미디어길 이문호 감독이 제주를 찾아온 것은 문 작가가 사전답사를 하고 간 뒤 두달여만이다. 사정이야 어떻든 멸치를 촬영하러 오기에는 때 늦은 감이 있었다. 예상하건데 8월초면 멸치가 제주도 주변의 가까운 바다에서 빠져나가 먼 바다로 북상 회유하는 시기이다.
   
제주의 멸치는 전통적으로 불배 또는 챗배라 부르는 배를 타고 분기초망 어법으로 11월부터 다음해 8월 사이에 바닥이 모래펄질인 수심 10m 내외에서 조업한다. 
 
5~6월 봄에는 작은 멸치가 잡히고 멸치가 성장하면서 7~8월에는 큰 멸치가 잡힌다. 분기초망어업은 불을 밝히는 집어등을 뱃머리에 켜놓고 챗배 옆구리에서 챗대라는 막대기에 연결된 키 모양을 한 그물을 멸치 어군 밑으로 이동시킨 뒤 불을 밝혀 그물 속으로 유인하여 짧은 시간내 떠올려 잡는 어법이다. 
 
분기초망(焚寄抄網)이란 말 자체가 불빛으로 어군을 끌어 모아서 떠올려 잡는다는 뜻이다. 이러한 전통어업을 찾아 촬영하고자 성산포와 모슬포 등지의 서귀포 일대를 다 뒤졌는데도 헛방이었다. 
 
올해는 예년에 비하여 물이 차서 일찍 조업이 끝났다고 한다. 멸치가 기다려주지 않고 이미 먼 바다로 이동한 것이다.
 
또 다른 제보가 들어왔다. 한림읍 옹포항에 가면 저녁 무렵 멸치 떼가 부둣가로 튀어오른다는 것이다. 동네 주민들이 달려 나와 멸치를 바가지로 주워 담았단다. 
 
언뜻 듣기에 언젠가 뉴스에서 본 듯한 장면이 떠올랐다. 철지난 9월이 되면 동해의 속초 앞바다 백사장에 멸치 떼가 튀어 올라 주민과 관광객이 주워 담는 일이 벌어졌다는 소식이었다. 
 
이런 현상은 늦여름 동해에서 반복해서 일어나는데, 고등어 떼에 쫒긴 멸치 떼들이 방향을 잃고 뭍으로 튀어올라온 것이라는 해석이다. 이런 일이 제주에서도 일어나는가 싶어 몹시 설레는 마음으로 포구로 나갔다. 
 
달도 없는 그믐사리 때 만조가 되어 부둣가로 찰랑찰랑 물이 넘칠 만큼 수위가 높아질 때까지 기다렸다. 아무리 기다려도 멸치 떼는 고사하고 멸치 그림자도 볼 수 가 없었다. 
 
함께 기다리던 제보자에게 그 당시 상황을 다시 들어본 즉 한달 전 7월 그믐 사리때 지나가던 멸치잡이 배들이 엔진소리를 높이며 항구로 들어오니까 멸치가 튀어올랐다는 것이다. 
 
동해 멸치 떼 뉴스와 같은 이유였구나 싶다. 멸치가 연안역에 충분히 있을 때 고등어 떼든 선박이든 멸치를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붙여서 생긴 현상일 것이이라. 그러나 이 또한 시기가 지났다. 이미 멸치는 우리 주위에 있지 않았다.
   
마지막 남은 기회는 바다목장사업과 바다숲조성사업으로 물밑으로 들어가는 잠수업체에게 정보를 얻고자 하였다. 잠수부들에 따르면 불과 보름전만 해도 서귀포시 보목리 앞바다에 있는 섶섬 물속에서 멸치 떼를 보았다는 것이다. 
 
혹시 발견하면 촬영을 해달라 부탁했다. 아직까지 연락이 없다. 자연은 이렇게 냉정하다.
 
■ 제주에는 원담이 있다
 
한림읍에서 옹포를 거쳐 협재를 지나 금능에 가면 금능해변이 있다. 예부터 육지에서 오는 관광객은 협재해수욕장에서 놀고, 지역 주민들은 금능해변에서 논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수평선 너머로 비양도가 보이는 백사장이 넓고 완만하여 아이들이 놀기에 최고이다. 이 백사장 한쪽으로 멸치가 들어온다.
   
제주도에 가장 흔한 것 중 하나가 돌이라 하지 않았던가. 화산 폭발 때 분출한 마그마가 급격히 식으면서 만들어진 송송 구멍 뚫린 시커먼 현무암을 제주 사람들은 그들의 생활 곳곳에 이용하였다. 
 
요즘 제주 올레 투어할 때 볼 수 있는 돌담이 그 대표적일 것이다. 돌담은 강한 바람으로부터 집과 작물을 보호해준다. 무덤가에도 돌담이 있는데, 산에 있다하여 산담이다. 
 
그러면 바다에도 돌담이 있을까? 돌 그물인 ‘원담’이 있다. 원담이란 돌을 둑처럼 얕으막하게 쌓아 놓고 밀물 때 물과 함께 휩쓸려 들어온 물고기가 썰물 때 빠져나가다가 엉기성기 쌓인 돌담에 물은 빠져나가고 고기가 걸리게 만든 장치이다.
 
bi6.jpg» 제주 한림읍에 있는 금능원담. 생태적인 전통어법이다.
 
이와 같은 원리의 어업이 육지에도 있다. 서해 갯벌에 있는 독살이 그것이다. 
 
돌로 부챗살처럼 살을 만들었다는 의미이다. 남해의 죽방렴도 재료가 돌에서 대나무로 바뀌었을 뿐 발을 쳐서 걸린 물고기를 잡는 원리는 같다. 
 
우리는 이들을 전통어법 또는 생태어업이라고 말한다. 그만큼 오래전부터 조상들이 먹고 살려고 했던 자연발생적인 고기잡이이며 자연 순응적인 어업이라는 뜻이다. 
 
요즘 먹거리 관점에서 보면, 이런 어법으로 잡은 물고기는 슬로우푸드 또는 슬로우피쉬에 해당할 것이다. 패스트푸드에 대항하여 만들어진 건강한 먹거리 운동으로 현대사회에서 이문을 남기려고 빠르게 대량으로 생산하는 기업형 음식을 과거로 돌아가 천천히 그리고 소비자와 가까운 생산지에서 자연에 순응하여 먹거리를 생산하자는 의도이다. 절대적으로 옳다.
 
bi9.jpg» 원담 고기잡이와 원담지기 이방익씨. 
 
원담을 처음 만들 때에는 마을 사람들 모두가 함께 품앗이로 무거운 돌을 하나하나 맞잡아 옮기고 쌓았을 것이다. 지금에야 그 엄청난 일을 손이 아닌 포클레인으로 하루아침에 만들 수 있겠지만 그 옛날에는 많은 노동력이 들었을 터이니 좀 미련해 보였을 것 같다. 
 
경제적인 측면에서 노동력을 감안하면 답 안나오는 행위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이제와 돌이켜보면 원담은 초기 투자비가 많이 들었던 것이지 한번 시설해 놓기만 하면 배 기름값이나 소비성 그물값이 들지 않아 오히려 장기적으로는 이득이니 자연순응적인 생태어업이 경제성도 있음을 입증한 셈이다. 
 
지금은 고기잡이를 하는 사람도 줄고, 배를 가지고 어업을 하는 어부는 나일론으로 만든 그물을 손쉽게 구할 수 있어 더 이상 원담에서 고생스러운 고기잡이를 하지 않는다. 그러나 지금도 원담에는 원담지기가 있다. 이방익 할아버지가 그이다. 
 
이 우직한 하르방은 소싯적에 군대 다녀와서부터 혼자서 부서진 원담을 보수하고 관리하면서 지금까지 고기잡이를 하고 있다. 이 원담에서 잡은 고기를 팔아 자식들을 다 가르치고 장가보냈다고 자부심이 대단하였다. 무엇보다 남한테 해코지하지 않고 착하게 살아 잡혀갈 일 없다고 농담하실 만큼 인생의 여유가 있어 보였다.
 
8월은 우기가 한창이다. 가끔은 태풍도 분다. 제주의 여름은 유채꽃 피는 봄과 사뭇 다르다. 이런 상황에서 이 감독은 텐트를 치고 야영을 하였다. 
 
자기 몸보다 더 소중이 여기는 촬영장비가 문제였다. 비가 치고 물이 차오르니 어쩔 수 없이 민박으로 옮겨 전전긍긍하였다. 
 
몸도 피곤해지고 멸치를 촬영해야하는 압박감까지 더해져 몰골이 말이 아닌데도 열정 하나는 대단하였다. 그런 와중에도 수중에 들어가 촬영을 해야 한다고 현지에서 스쿠버다이빙 교육을 받았다. 그는 프로였다.
   
프로는 자기 일에 만족을 한다. 이 감독이 다시 활기를 찾기 시작한 것은 원담을 촬영하고부터였다. 
 
물이 빠진 원담에 갇힌 어린 전갱이들이 군무를 하듯 일렬로 떼지어 다니는 모습은 맨눈으로 보아도 장관이었다. 맨 앞에 선 대장의 뒤를 따라 일사불란하게 헤엄치는데, 유턴할 때도 서로 부딪히는 일이 없었다. 
 
원담 물속에 카메라를 집어넣으니 또 다른 세상이 있었다. 맨눈에 보이지 않는 아주 작은 치어들과 작은 생물들이 다양하게 보였다. 
 
연안이나 만 또는 조수 웅덩이가 해양생물의 보육장이라는 평소 나의 학설을 입증해주는 증거물이었다. 대중을 위한 방송촬영에서 과학을 입증하고 있는 순간이었다.

 

bi8.jpg» 원담에 갇힌 어린 전갱이 떼를 촬영하는 모습.
 
■ 원담에 갇혀 몰려다니는 어린 전갱이 떼 동영상

  

 

 

아직도 이곳 원담에 멸치나 꽃멸치가 돌아오지 않았다. 다만 우리는 강남 갔던 제비가 봄이 되면 돌아오듯 북상했던 멸치가 월동하러 따뜻한 남쪽으로 남하할 때를 기다릴 뿐이다. 이렇게 자연은 기다림이다.
 

글·사진 황선도/ 한겨레 물바람숲 필자, 한국수산자원관리공단 연구위원·어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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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리트니 메이나드, 29세에 존엄사를 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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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 투병을 하면서 환자 권리 운동에 앞장서던 오리건주의 브리트니 매이나드가 지난 토요일 29세의 나이로 죽었다고 오레고니언이 보도했다.

피플지에 따르면 그녀는 페이스북에 "사랑하는 모든 가족과 친구들에게 작별 인사를 보냅니다."라고 썼다.

"오늘은 내가 내 존엄을 유지하며 불치병에서 해방되기로 결정한 날입니다. 세상은 아름다운 곳이고 여행은 나에게 가장 좋은 선생님이었습니다. 또 친한 친구들과 가족은 최고의 헌신자들이었습니다. 세상이여, 안녕. 긍정적인 에너지를 많이 퍼뜨려 주세요. 선행 나누기를 열심히 합시다!"

가족은 최고의 헌신자들이었습니다. 세상이여, 안녕. 긍정적인 에너지를 많이 퍼뜨려 주세요. 선행 나누기를 열심히 합시다!"

그녀는 교모세포종이라는 종양으로 6개월 시한부를 선고받았다고 올해 발표했었다. 이 병의 말기가 고통스럽게 전개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그녀는 자기의 의지대로 목숨을 끊기로 결정했다.

그녀와 남편 댄 디에즈, 그리고 어머니 데비 지글러는 오리건주로 이사를 했다. 오리건주에는 1994년 제정된 '존엄사법(Death With Dignity Act)'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미국은 오리건주 외 버몬트, 몬타나, 뉴멕시코, 워싱턴 등 총 5개 주가 존엄사법을 갖고 있으며 이미 수백 명의 불치병 환자가 오리건 주에서 존엄사를 선택한 바 있다. 브리트니 메이나드는 남편의 10월 생일을 축하한 이후에 죽기 위해 존엄사 일자를 11월 1일로 잡았다.

brittany mayna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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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리트니 메이나드의 결혼식 사진

오리건주로 이주한 뒤 매이나드 가족은 '연민과 선택(Compassion and Choices)'이라는 단체를 지원하며 존엄사를 원하는 환자들을 위해 사회활동을 벌여왔다.

그녀는 CNN.com의 블로그에 "나에겐 자살 충동이 없습니다."라고 쓴 적도 있다. "난 죽고 싶지 않아요. 그러나 죽어가는 것이 분명하므로 내 죽음은 내가 알아서 관리하고 싶어요."

지난 수요일, 그녀는 자신의 사망 일자를 좀 더 뒤로 연기할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영상을 발표한 바 있다. "11월 2일이 왔는데 내가 죽었다면 남은 가족이 나와 내 선택을 자랑스럽게 여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11월 2일이 되었는데 내가 아직 살아있다면 서로를 사랑하는 한 가족으로 계속 전진할 겁니다. 새로운 결정을 할 때까지요."

매이나드는 최근 자신의 버킷리스트에 담아 두었던 마지막 항목들에 직접 도전했다. 그랜드캐니언을 방문하는 일이었다. 그녀는 질병을 앓기 전에는 동남아에 살며 여행도 하고 킬리만자로 산도 탄 적이 있는 활동적인 모험가였다.

그녀의 이야기는 아래 영상에서 더 볼 수 있다.

*이 기사는 허핑턴포스트US의 Brittany Maynard, Death With Dignity Advocate, Dies At 29을 번역, 편집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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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와 토론, 합의에 의한 공무원 연금개혁을

코미디 된 '공무원연금 포럼', 영국 모델 본받자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참여와 토론, 합의에 의한 공무원 연금개혁을

 
공무원 연금 개혁이 온 나라를 달구는 뜨거운 쟁점으로 부상했다. 당사자인 공무원들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차분한 논의 대신 피상적이고 감정적인 찬반격론이 이어지는 가운데, 정부는 '공무원연금 개혁 국민포럼'을 개최한다고 발표했다. 순회 포럼 형식으로 서울·세종·전주·부산·춘천·광주·대구 등 7개 거점 도시를 돌며 안전행정부 담당자 및 공무원·시민단체·언론인·전문가와 일반인이 참여하는 포럼을 열고, 공무원 연금 개혁에 대한 여론을 수렴하겠다는 것이었다. 
 
코미디가 돼버린 '공무원연금 포럼'
 
포럼은 지난달 24일 서울에서 시작돼 세 개 도시에서 이미 개최되었다. 그러나 포럼은 거의 사전 준비가 없는 상태에서 짧은 시간 안에 진행되도록 계획되었고, 당사자들의 반발과 일반인들의 무관심 속에 유명무실하게 치러졌다. 
 
더욱 황당한 것은 포럼이 시작되고 얼마 되지도 않아, 정부와 여당이 개정안을 확정하고 조속 처리를 밀어붙이고 있다는 것이다. 포럼이 사회적 합의의 장이라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거기서 분출되는 각계의 여론을 경청하고 수렴하여 개정안을 마련해야 한다. 또 개혁 일정 역시 이 합의에 기초에 정해야 마땅하다. 
 
그런데 첫 포럼이 있은 지 나흘 뒤인 지난 10월 28일 새누리당은 김무성 의원이 대표발의하고 소속 의원 전원이 서명해 공무원연금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점입가경, 다음 날 대통령은 국회 시정연설에서 공무원연금법 개정안의 연내 처리를 요청했다. 명색이 여당이라는 정당과 대통령이, 안행부가 여론수렴과 사회적 합의를 명분으로 진행하고 있는 국민포럼에서 무슨 얘기가 나오든 개의치 않겠다고, 그저 자신의 안을 속도전식으로 밀어붙이겠다고 선언한 셈이다. 앞으로 지역포럼이 네 번이나 남았는데 이런 허수아비 행사에 누가 모이겠는가. 안행부만 우스운 꼴이 되었으나, 시작한 걸 중도에 그만둘 수도 없을 테고, 코미디도 이런 코미디가 없다. 
 
ⓒ연합뉴스

ⓒ연합뉴스

 
공무원 연금 개혁은 국민 모두가 이해당사자가 되는, 절대적으로 사회적 합의를 필요로 하는 사안이다. 각계각층의 여론이 제대로 수렴되고 적절한 타협의 과정을 밟을 때 희생이 불가피한 당사자도 설득되고 승복할 수 있다. 이 과정이 아무리 시끄럽고 시간이 걸린다 해도 이런 소통과 합의의 절차는 민주주의의 불가피한 비용이다. 이를 건너뛰려 한다면 법의 통과는 가능해도 제도에 대한 순응은 확보하기 어려우며 다른 부작용들이 불거질 수 있다. 
 
연금 개혁 과정, 영국 모델 주목하자
 
그렇다면 사회적 합의 과정은 어떻게 이루어져야 할까? 2002년 시작해 2011년에야 마무리된 영국의 연금 개혁은 적어도 제대로 된 사회적 합의를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라는 면에서 우리에게 귀중한 시사점들은 던져준다. 
 
첫째, 영국의 연금 개혁은 단기간에 서둘러 진행되지 않았다. 2002년 토니 블레어 총리는 반대하는 재무부를 겨우 설득해 연금위원회를 구성하고 연금 개혁에 시동을 걸었다. 연금위원회의 꼼꼼한 조사와 연구를 거쳐 개혁의 밑그림인 위원회 권고안이 마련된 것은 2006년 5월이었다. 밑그림이 그려지기 전 비공식적으로 행해졌던 여론수렴은 개정안 마련 후 더욱 활발해져 2007년, 2008년 입법 전까지 진행되었다. 무려 2년이 넘는 기간 동안 여론수렴과 여론을 반영한 개정안 수정 및 정교화 작업이 이루어진 것이다. 연금개혁이 최종 마무리된 것은 2011년 입법을 통해서였다.
 
이에 비하면 우리의 공무원 연금 개혁은 몇 달 만에 그야말로 군사작전 하듯 밀어붙이려 하고 있다. 무리하게 연내 개혁을 추진하지 않겠다던 여당대표가 개헌 발언 파동 후 청와대의 대변자로 나서면서 개혁 드라이브는 급물살을 타고 있다. 거대한 사회계약인 연금제도를 고치는 일이 이렇게 급히, 졸속으로 이루어져선 곤란하다.
 
▲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 ⓒAP=연합뉴스

▲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 ⓒAP=연합뉴스

 
"사실, 사실, 사실"(Fact, fact, fact!)
  
둘째, 영국의 연금 개혁은 모두가 신뢰할 수 있는 자료를 기반으로 이루어졌다. 전 고용주조직 대표, 전 노총 대표, 그리고 독립적 학자 등 세 명으로 단출하게 구성되었던 영국의 연금위원회가 초기 작업에서 가장 주력했던 것은 객관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자료를 구축하고 이를 누구나 이해하기 쉬운 형태로 만드는 것이었다. 위원회는 이런 객관적 자료가 개혁의 필요성을 누구도 부정하기 어렵게 하고, 막무가내로 자기이익만을 고집하기 어렵게 하며, 반대자들의 고충과 정당성을 이해하게 하는 데 무엇보다 필요한 작업이라고 생각했다. 표와 그래프로 가득한 위원회의 첫 번째 보고서는 이런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했다.
 
"사실, 사실, 사실"(Fact, fact, fact!)이라는 구호로 대변된 위원회의 이런 작업은 이해당사자들의 동의를 끌어내고 여론을 개혁지지 쪽으로 돌려세우는 데 지대한 역할을 했다. 알기 쉽게 가공된 자료들은 시민들의 연금개혁에 대한 이해를 도왔고, 대중적 토론을 가능하게 했으며, 이해당사자들로 하여금 어떤 부분에서는 희생과 양보가 불가피하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
 
이에 비하면 현재 진행되고 있는 한국의 공무원 연금 개혁은 깜깜이 개혁에 가깝다. 공무원 연금이 과다하다고만 외칠 뿐, 정부는 수령자 유형과 직급이 다양해 평균액을 산출할 수 없다는 황당한 답변을 계속하며 공무원의 직급별, 직종별, 재직기간별 연금액이 얼마인지조차도 밝히지 못했다. 최근에 국회가 다그친 뒤에야 겨우 그 일부가 제시됐을 뿐이다. 
 
또한 새누리당이 개정안을 발의하며 제시했던 개혁 시 '재정 절감 효과'가 크게 부풀려졌다는 지적이 10월 30일 새누리당에서 나왔다. 당연히 연내 처리를 위해 졸속 추계를 제시했다는 비판이 터져 나왔다. 이러니 이해당사자들이 정부 발표와 개혁안에 불신을 거둘 수 없으며, 합리적 토론이 아닌 각자 자신의 주장을 감정적으로 고집하는 싸움이 계속되는 것이다.    
 
'전 국민 연금의 날'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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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영국의 연금 개혁은 다중적인 여론수렴과 사회적 합의 과정을 밟았다. 연금위원회와 정부 주무부서인 노동연금부는 이해당사자의 의견을 광범위하게 청취하고 공식적, 비공식적 협의를 행했다. 개혁안 윤곽이 제시된 두 번째 보고서 출판 이후 의회와 노동연금부는 이해당사자들에게 메모랜덤 제출을 요구해 의견을 수렴했다. 또 야당인 보수당과 자민당과도 긴밀한 협의를 통해 초당적 합의를 구축했다. 
 
또한 노동연금부와 연금위원회는 광범위한 대중적 협의를 진행했다. 2005년 2월 <개혁의 원칙들: 전 국민 연금토론>이란 문건 간행 후 노동연금부 국무상들(ministers)은 6월부터 11월까지 영국의 8개 지역에서 지역 이해당사자들 및 일반대중과 '전 국민 연금 토론'(National Pension Debate)을 개최했다(아마도 한국의 국민포럼은 이를 본 뜬 것이 아닌가 싶다). 
 
이어 2006년 3월18일 노동연금부는 영국의 여섯 개 지역 거점도시에서 1000여 명의 시민들이 동시에 참여하는 '전 국민 연금의 날(National Pensions Day)이라는 숙의적 협의와 여론조사를 겸한 행사를 개최했다. 전국 각지에서 참여한 시민들은 여러 지역에서 동시에 하루 온종일 연금에 대해 토론한다는 아이디어에 놀라움과 열정을 가지고 반응했다.
 
시민들은 먼저 연금 개혁의 핵심 사안에 대한 설문조사에 응했다. 다음으로 인구고령화 추세, 노후를 위한 연금과 사적저축 실태, 노년빈곤 전망에 관해 명확하고 쉽게 가공된 정보들을 제공받았다. 그리고 이로써 자신의 노후에 대한 막연한 생각에서 벗어나 무엇이 문제고 어떤 선택지가 있는지, 어떤 혜택을 원한다면 어떤 걸 감수해야 하는지 알게 됐다. 그런 다음은 여러 개혁대안들에 대해 활발한 토론을 벌이고, 다시 처음에 실시했던 것과 동일한 설문조사에 응했다(비슷한 과정이 온라인에서도 진행되었다.) 
 
결과는 놀라웠다. 연금수령 연령의 상향 조정(이는 현실적으로 몇 년 간의 연금 삭감을 의미한다), 연금 재원을 위한 조세 인상 등 거의 대중의 지지를 받기 어려운 항목들에 첫 설문조사보다 훨씬 많은 비율의 사람들이 동의하게 되었던 것이다. 
 
영국 정부는 이런 사회적 합의에 입각해 연금 개혁을 추진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는 정권이 바뀌어도 개혁이 뒤집어지지 않을 수 있는 안전판이 되었다. 2010년 노동당은 선거에서 패배했으나, 권력을 장악한 보수-자민연립정부는 약간의 수정만 거친 채 노동당 정부가 입안했던 연금 개혁을 마무리했다. 
 
사회적 합의 개혁, 가능하다
 
너무 꿈같은 얘기인가? 그렇지만도 않다. 영국은 원래 이런 나라는 아니었다. 영국은 가장 대표적인 다수제 모델의 정치제도를 가진, 일방주의적 정치의 나라이다. 실제로 1960-70년대 동안 보수당과 노동당은 번갈아 집권하면서 이전 정부가 통과시킨 연금 개혁을 뒤집고 자신의 연금법을 통과시켰었다. 
 
이런 영국의 경험은 우리의 경우도 사회적 합의에 입각한 개혁이 아주 불가능하지 않음을 얘기해 준다. 전 국민에 해당하는 연금 개혁과 공무원 연금 개혁이란 차이, 1980년대 이후 노동당의 보수화로 보수-노동 양당 간의 정책적 격차가 좁아져 합의가 쉬웠던 점 등등, 우리와의 차이점도 물론 적지 않다. 그러나 합의에 입각한 개혁의 필요성과 그것을 위해 최대한 노력할 때 의외로 합의가 가능하다는 점만은 부정하기 어려운 사실이다. 한국의 경우 공무원 연금개혁이 끝이 아니라, 국민연금과 기초연금 등 다른 연금개혁의 시작일 수 있기에, 영국의 교훈들은 깊이 새겨볼 가치가 있다. 
 
* 내만복 칼럼은 필자가 참여하는 팟캐스트 <만복라디오>에서 상세히 논의됩니다. 지난 번 칼럼을 들으세요. (☞바로 가기 : http://mywelfare.or.kr/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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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희토류,동북아정치지형 변화 추동?

 
 
<분석과전망>21세기 산업의 비타민 희토류, 21세기 동북아의 비타민일 수도
 
한성 자유기고가 
기사입력: 2014/11/03 [22:01]  최종편집: ⓒ 자주민보
 
 

 

자원이 나라 간의 갈등 더 나아가 전쟁까지도 불러올 수도 있다는 것은 인류역사가 보여주고 있는 매우 보편적인 상식이다. 중동에서의 수많은 전쟁 특히 미국의 개입으로 인한 중동전쟁들이 다 석유나 천연가스 등과 연관되어있다는 것은 굳이 설명이 필요 없다.  

 

희토류, 국가 간의 자원 무기

 

경제인들 특히 첨단산업에 종사하는 경제인들은 최근래에 들어 세계의 희귀금속인 희토류 또한 자원 전쟁의 대상으로 될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지난 2009년이었다. 중국의 희토류 수출 제한 조치를 둘러싸고 수출국 중국과 수입국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유럽국가들 간의 갈등이 그것이다. 

 

중국의 희토류 생산 제한 조치는 중국이 자연환경 파괴와 희토류의 무분별한 채굴을 막자는 취지에서 시도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 조치는 수소전지, 하이브리드 자동차, 스마트폰, 태플린 PC, 고화질TV 등 광학.정보통신산업은 물론 각종 최첨단 전략무기산업과 항공우주산업 등에 막대한 피해를 불러오는 것으로 귀결되었다. 

 

당시, 미국 무역대표부(USTR)의 론 커크 대표가 나서서 중국을 상대로 세계무역기구(WTO)에 분쟁 중재를 요청해야했다. 그 피해가 얼마나 구체적이며 큰 것인지는 그 피해를 최소화하려는 노력의 맨 선두에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거침없이 서는 것에서도 또렷히 확인되었다.

 

희토류가 국가 간에 쓸 수 있는 정치적으로 위력한 무기로 된다는 것을 중국은 실제로 보여주기도 했다. 2010년 중국과 일본 사이에 댜오위다오 관련 영토 분쟁이 일어났을 때 중국이 일본에 희토류 수출을 전면 금지하겠다고 엄포를 놓음으로써 일본을 위기로 몰아갔던 것이 그것이다. 

 

희토류의 힘을 중국이 그럴만한 정치적 힘으로 전변시킬 수 있다는 것은 아래와 같은 도표가 잘 말해준다. 세계생산량의 97%를 중국이 장악하고 있는 것이다. 

 

▲  사진 자료 경향신문에서 펌


 

그러나 현실은 희토류에 대한 중국의 독점적 지위가 앞으로는 더 이상 유지되기 어려워 질수도 있음을 보여주기 시작하고 있다.

 

힘을 발휘하기 시작하는 북한 희토류

 

“세계 희토류 3분의2가 북한에... 영국 기업 '합작개발'”

올 1월 22일 경향신문이 보도한 기사의 제목이다. 기사에 따르면 외교전문지 ‘더디플로매트’는 그날, 영국계 사모펀드 SRE미네랄스의 발표를 인용, 세계 희토류 매장량의 2배에 이르는 2억1600만 톤이 북한에 묻혀있는 것으로 파악됐다고 보도한다.

 

사람들은 믿을 수 없어했다. 그동안 북한 희토류 자원에 대해 외국 기업들과 연구자들을 통해 기대치가 많이 올라가 있었던 것만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 수치가 그리 높을 줄은 예상치 못했던 것이다.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사람들이 무턱대고 못 믿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믿지 못한다면, SRE가 지난해 12월 4일 북한의 <조선천연자원무역회사>와 ‘퍼시픽 센추리’라는 합작벤처회사를 설립하고 평안북도 정주 지역의 희토류를 개발하기 위한 협약을 체결한 것 그리고 그 합작회사가 향후 25년간 정주 지역의 희토류 개발권을 갖게 된다는 것을 부정해야 되기 때문이었다.

 

북한 희토류의 힘에 대해 사람들은 최근 들어 또 다시 확인하게 된다. 러시아와 북한이 최근 북한의 철도현대화사업인 포베타(승리)프로젝트 추진 결정을 하면서 그에 소요되는 비용인 26조원을 북한 희토류 채굴에 대한 북러합작 사업에서 나오는 돈으로 충당하기로 했다는 뉴스가 그것이다. 

 

러시아소리 10월 29일자가 상세히 보도했다. 최근 화려할 정도로 풍부하고 급속하게 이루어지는 북러경협에서 대표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알렉산드르 갈루쉬카 극동개발부 장관은 한 컨퍼런스에서 "북한의 희토류 금속이 이웃국가인 중국보다 7배 가량 많다"는 쉽게 믿을 수 없는 발언까지 했다.

 

그러한 수치들은 그렇지만 지금에 있어서 그리 중요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북한에 무궁무진한 량의 희토류가 매장되어있다는 것 그리고 이에 대해 세계가 관심을 그것도 매우 구체적으로 그리고 급속하게 기울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북한 희토류, 동북아 정치지형 변화를 추동하는 한 요인 

 

북한에 희토류가 많고 또한 세계적인 범주에서의 투자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은 민족적 견지에서 보자면 매우 좋은 일이다. 그러나 민족적 관점을 좀 더 구체적으로 틀어쥐게 되면 고통스러울 정도로 안타까움을 불러오는 것이 또한 북한 희토류이다. 

 

정운현 팩트TV 보도국장은 2일 <서울의 소리>에 올린 칼럼 <북한 ‘희토류’, 결국 러시아로 넘어가나>라는 기사에서 ‘우리 정부가 북한과 손잡고 북한의 희토류 등 지하자원 개발에 나섰더라면 남북 모두 윈-윈 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언급을 한다.

지난 김대중.노무현 시기 남북의 교류와 협력이 얼마나 중요한 것이었는지를 복기시키고 있는 언급이다. 북한 희토류의 힘을 현 정부가 대북대결정책으로 놓쳐버리고 있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정 국장은 지난 이명박 정부에서 해외자원 개발 명분으로 수 십 조원을 날린 것을 지적하는 한편 박근혜 대통령의 ‘통일대박론’이 말로만이 아니라 남북 간의 교류와 협력을 하루라도 빨리 이어지는 것으로 현실화되어야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그렇게 될 때 실지로 통일이 이뤄진다면 한반도의 위상은 일본을 뛰어넘어 세계 5~6대 강국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까지도 정 국장은 칼럼에서 주장한다.

 

이것은 북한 희토류의 힘이 갖고 있는 경제적인 가치를 언급한 것이지만 본질적으로는 또 다른 중요한 측면 하나를 내재하고 있다. 

북한의 희토류가 동북아의 정치지형에 적지 않은 역할을 하게 된다는 것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적지 않은 전문가들이 이미 밝히고 있는 견해이다. 

 

인터넷 언론 북한전략정보서비스센타(NKSIS) 지난 1월 20일자 <북한 희토류 중국의 6배, 중국정부 경제이익 위해 김정은(북한) 지지 할 것>이라는 기사는 “북한 희토류 량은 중국시장서 지위를 흔들 뿐만 아니라 북한과 최대광산물 수입국인 한국과 일본의 관계도 개선할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북한의 희토류 매장량이 많다는 것이 “사실로 증명된다면 장차 희토류시장과 동북아의 정치형국에 변화를 줄 수 있다”는 관련인사의 분석을 중요하게 다루면서이다.  

 

기사는 이어 “만약 북한이 이 희토류 채굴을 가동하여 자국의 공업산업을 발전할 수 있다면 이웃 나라들과의 관계를 개선하고 융합하여 더 이상 동북아의 검은 구멍으로 남지 않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북한 내 희토류자원이 적지 않다는 사실은 미래 남북통일과 한반도 평화에서 주요한 사안으로 자리 잡을 사안인 것만큼은 명백하다”는 다른 전문가의 분석도 싣고 있다. 

 

작고 좁은 우리정부

 

이것들은 북한 희토류의 힘이 희토류 시장질서에 변화를 불러오는 것으로 국한되지 않고 장차 동북아의 정치지형에 변화를 줄 수 있는 커다란 요인으로 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들이다. 

 

희토류는 21세기 산업의 비타민으로 불리우고 있다. 첨단공업에 없어서는 안 될 재료라는 의미이다. 

21세기의 비타민인 희토류에 대해 북한은 이미 오래 전에 개발사업을 진행해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NKSIS’ 등의 보도에 따르면 북한은 희토류자원 개발을 위해 1980년대 중엽부터 ‘사리원카리비료공장건설’이라는 명목으로 자국의 재원을 이용한 대규모 투자를 기획하고 건설도 해왔다는 것이다. 

 

북한의 희토류와 관련한 이러한 현실들은 북한 희토류가 21세기 동북아의 정치지형이 새롭게 짜여지는 데 일정한 역할을 하게 된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희토류가 21세기 산업의 비타민이지만 북한의 희토류는 21세기 동북아의 비타민으로 작용하게 될 것임을 보여주는 것으로 된다.  

 

이와 관련 당장, 안타까운 것이 있다.

우리정부가 21세기 동북아정세에서 비타민이 될 수도 있을 북한의 희토류에 대해서는 외면하고 대신에 탈북자들이 중심이 되어 벌이는 대북전단 살포의 정치적 위상을 키우는 데에만 보란 듯이 골몰하고 있다는 것이 그것이다. 

그와 관련하여 시민사회진영에서 활동하는 한 인사가 한 다음의 한마디는 두고두고 곱씹어 볼만하다. 

“참 작고 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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