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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 1년 평가와 새해 전망

<새해 특집①>박근혜 정부 1년 평가와 새해 전망

불철주야 2014/01/02 13:44 Posted by 동북아의 붉은_달

 

 

유신독재부활에 맞서 국민적 저항으로 한 해를 마무리하고 2014년을 맞이한다. 민주주의와 평화, 진보와 통일을 바라는 모두는 격변하는 현실을 냉철하게 분석하여 승리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 
이에 2013년을 돌아보고 새해 정세를 전망하는 새해 특집 기획을 준비하였다. 새해 특집 기획은 ①박근혜 정부 1년 평가와 새해 전망, ②좌충우돌 대북정책과 전쟁과 평화의 갈림길, ③열강의 각축 속에 부상하는 동북아 시대 등 모두 세 편으로 준비하였다.

 

<새해 특집①>박근혜 정부 1년 평가와 새해 전망

 

동북아의 문
http://namoon.tistory.com

 

1. 박근혜 정부 1년 평가

 

유신독재 부활하다

 

집권 1년을 거치면서 박근혜 정부는 <유신독재부활정권>의 성격을 분명히 드러냈다. 총체적 관권부정선거로 권력을 장악한 박근혜는 유신독재시기 인물을 기용하고 민주주의를 파괴하며 불통정치, 공작정치, 공포정치로 한국 사회를 유신독재시대로 되돌려놓았다.

 

박근혜 정부는 총체적 관권부정선거를 저질렀으며 진실을 밝히려는 시도조차 용납하지 않으며 민주주의의 근간을 파괴하였다. 국민들의 뜻이 반영되지 않는 선거는 의미가 없으며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기본 신뢰 관계를 무너뜨린다.

 

부정하게 집권한 박근혜는 상상을 초월하는 공안탄압을 통해 국민들의 저항을 억누르려 하였다. 전교조에 법외노조임을 통보하고 민주노총 사무실을 10시간 생중계를 해가며 침탈했다. 조작된 증거물로 내란음모 사건을 만들고 제2야당인 진보당을 해산시키려 하고 있다. 군사독재시절에나 보던 공포정치의 광경을 21세기에 지켜보는 국민들은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박근혜는 유신헌법을 만든 김기춘을 비서실장에 앉히고, 육사 출신 남재준을 국정원장에 앉혀 전두환 군부독재시기에나 볼 수 있던 육법당을 부활시켰다. 국정원은 정권에 불리한 상황이 발생할 때마다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공개, 내란음모 조작사건 등을 통해 혼란을 조성하는 등 공작정치에 앞장섰다.

 

박근혜 정부는 국민 여론에 귀를 기울이기는커녕 제1야당 대표를 불러다 모욕을 주면서 대화와 협상이란 없음을 분명히 하였다. 박근혜 정부에게 정치란 없으며 오직 <폐하의 통치>만 있을 뿐이다. 청와대는 이런 정부를 불통이라 비판하는 국민들에게 ≪불통이 자랑스럽다≫며 철면피의 진수를 보여주었다.

 

박근혜 정부는 심지어 같은 보수끼리도 <어명>을 받들지 않으면 가차 없이 쳐냈다. 경제민주화 전도사라고 띄워주던 김종인, 친박의 핵심 인물이었던 진영, 통일부장관 물망에 올랐던 최대석, 채동욱 검찰총장 등이 대표적 인물들이다.

 

박근혜 정부는 입만 열면 <종북>을 외치며 비판 세력들을 찍어 누르고 있다. 사회 전반에 퍼진 <종북 낙인찍기>는 <종북>으로 몰린 피해자들을 비난하지 않아도 <종북>으로 의심하는 수준까지 이르렀다. 마치 반공반북이 사회 전반을 휩쓸고 심지어 통일을 주장했다는 이유로 국회의원이 처벌받던 군부독재시절을 보는 듯하다.

 

정부가 앞장서서 종북 마녀사냥을 하고 있는데 남북관계가 제대로 발전할 리 없다. 박근혜 정부는 남북관계를 그저 정략적으로 활용하는 하나의 소재로 보고 있을 뿐이다. 박정희 정권이 통일을 명분으로 유신독재를 시작한 것과 일맥상통한다.

 

박근혜 정부가 표방한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는 사실상 이명박 정부의 <비핵·개방·3000> 노선을 부분 수정한 것에 불과하며 현실 가능성이 없는 정책이다. 그나마도 집권 초반 심각한 전쟁위기를 거치며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는 명함도 못 내밀게 됐다.

 

파탄 난 서민경제

 

이명박 정부 내내 악화일로를 걸은 서민경제가 박근혜 정부 들어서도 개선의 조짐이 보이지 않고 있다. 심각한 정부 재정적자로 서민복지는 꿈도 못 꿀 상황이며, 서민 호주머니를 털어 부자 곳간을 채워주는 부자와 재벌 위주의 경제정책, 하늘 높은 줄 모르는 물가인상은 서민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다.

 

이명박 정부 5년 동안 재정적자는 무려 100조 원 가까이 됐다. 연평균 20조 원인 셈이다. 부자감세와 무모한 4대강 사업, 과도한 국방비 등이 주요 원인이다. 정부가 전망한 올해 재정적자는 23조4천억 원. 내년 역시 20조 원 이상 적자가 예상된다. 홍종학 민주당 의원은 언론 인터뷰를 통해 이대로 가면 박근혜 정부의 재정적자가 150조 원 이상 나게 되어 있다고 경고했다.

 

재정적자가 오래 쌓이면서 국가채무도 심각한 상황이다. 현대경제연구원은 2014년 국가채무가 500조 원을 돌파할 것이라고 전망하였다. 1인당 국가채무가 1천만 원을 넘어서는 것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명목 국내총생산(GDP)보다 국가부채가 2배 이상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심각한 재정적자는 서민복지 축소로 이어진다. 박근혜 대통령의 야심찬 대선공약이었던 기초연금 20만 원이 집권 초반에 거짓말로 드러났고 이 문제로 복지부장관이 바뀌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어느 정부든 집권 초반에는 대선공약을 충실히 이행하려 하면서 민심을 사려 노력하는 법이다. 이렇게 볼 때 박근혜 정부가 기초연금 공약을 폐기한 것은 그만큼 정부 재정 상황이 심각하기 때문으로 짐작할 수 있다. 기초연금뿐 아니라 4대 중증질환 100% 보장, 반값등록금, 장애인 연금 20만 원 등 여러 복지공약이 축소, 폐기되고 있다.

 

박근혜 정부는 재정적자를 메우기 위해 부자증세를 할 대신 서민들의 주머니를 털고 있다. 대표적인 게 교통단속이다. 과태료 징수 목표를 크게 늘리고 대대적인 교통질서 위반 단속에 나서는 것이다. 정부가 2013년 징수한 과태료는 2조5천억 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며 이는 2012년 1조8788억 원을 크게 웃돈다. 특히 교통단속 범칙금 부과건수는 2012년 166만 건에서 2013년 270만 건으로 크게 늘었다. 과태료는 대부분 서민들의 주머니에서 나가기 때문에 사실상의 서민증세나 마찬가지다.

 

여기다 심각한 물가인상도 서민들을 고통스럽게 하고 있다. 2013년 9월 우윳값 인상을 시작으로 유제품, 과자, 빵, 음료도 줄줄이 가격이 올랐다. 또 정부가 공기업들에게 부채를 줄이도록 강요해 공공요금도 줄줄이 오를 전망이다. 이미 전기요금은 올랐고 가스, 우체국 택배 등도 가격 인상을 예고했다.

 

한편 박근혜 정부는 공기업 민영화에도 힘을 쏟고 있다. 2013년 말을 뜨겁게 달군 철도파업도 철도민영화가 주된 이유였다. 철도민영화 외에도 의료민영화, 가스민영화도 속전속결로 추진하고 있다. 공기업 민영화는 서민 생활에 필수적인 요소들을 자본의 논리에 맡김으로써 결과적으로 서민들에게 피해를 주는 대신, 재벌과 해외 자본에게는 새로운 투자 기회를 안겨주는 대표적인 신자유주의 정책이다.

 

2. 2014년 국내 정세 전망

 

대선부정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집권 첫 해를 혼란 속에 보낸 박근혜 정부는 국민들에게 정통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이제 국민들은 국정원 대선개입 진상규명 요구에서 국가기관이 총 동원 된 총체적 관권부정선거에 대한 책임자 처벌로 요구 수준을 높였고, 박근혜 정부의 민생파탄 정책들에 대한 저항을 더해 마침내 정권퇴진까지 요구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정권퇴진 요구가 진보정당이나 단체에서 먼저 나오지 않고 네티즌과 종교계 등 중간층이라 할 수 있는 집단에서 먼저 나왔다는 점이다. 진보정당과 단체에 정권의 탄압이 집중되는 상황에서 중간층에서 먼저 정권퇴진 요구가 나왔다는 점은 그만큼 정권퇴진에 대한 국민 여론이 높다는 점을 반영한다.

 

네티즌과 종교계가 주로 대선부정 문제로 정권퇴진을 요구하고 있다면 노동계는 노동운동 탄압과 민영화 등 생존권적 문제에서 출발해 정권퇴진을 요구하고 있다. 민주노총에 대한 탄압에 한국노총까지 반발하는 것을 보면 노동계 전반이 심각한 위기의식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이명박 정부를 뒤이은 박근혜 정부 역시 경제위기를 명분으로 가혹한 민영화, 구조조정, 정리해고를 단행하며 모든 피해가 노동자들에게 돌아갈 것이 불 보듯 뻔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한편 대학 사회를 중심으로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가 급격히 확산되고 있다. 부당한 사회 현실을 알면서도 침묵하던 대학생들이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행동에 나선 것이다. 그동안 개인의 장래 문제에 매몰돼 사회 문제에 발언을 아끼던 대학생들의 움직임은 대학생들이 한국 사회가 개인의 노력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 사회가 아님을 깨닫기 시작했다는 징조로 풀이된다. 그만큼 한국 사회가 심각한 상황임을 보여주기도 한다.

 

박근혜 정부가 새해 첫날부터 재벌 특혜 시비가 있는 외국인투자촉진법 개정안을 통과시키는 등 재벌에 편중된 정책을 펴면서 서민들은 물론 중소기업들에도 불만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또 제왕적 통치, 일방통행식 정치로 인해 보수세력 내에서도 정부에 등을 돌리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는 기득권층, 집권층 내부 갈등과 분열을 불러올 것이다.

 

이처럼 사회 각계각층에서 터져 나오는 박근혜 정부에 대한 불만과 불신은 2014년 박근혜 퇴진 운동과 민주회복 운동으로 확산될 전망이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는 이를 정치로 풀기보다 강경대응으로 풀 가능성이 높아 결국 연착륙이 아닌 경착륙이라는 결론이 날 수도 있는 상황이다. 올해 보여준 박근혜 정부의 모습은 정치가 실종되고 오로지 박근혜 대통령의 개인 의지가 관철되어야만 문제가 해결된다는 전형적인 독재정부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과거 유신독재시대와 지금은 정치 환경, 사회 환경이 크게 다르다. 예전 같으면 긴급조치 따위로 완전히 묵살해버렸을 대선부정 문제가 집권 1년이 다 되도록 해결은커녕 더 확산되는 것은 이를 잘 보여준다. 대선부정 문제는 정부의 정통성과 직결되기 때문에 쉽게 사그러들지도 않고, 박근혜 정부도 쉽게 타협하지 않을 것이며 따라서 2014년에도 대선부정 문제는 여전히 핵심 이슈로 존재할 것이다.

 

박근혜 정부는 위기에 몰리면 전향적 태도를 보이기보다 더 극단적인 대응을 할 가능성이 높다. 하봉규 부경대 정치외교학과 교수가 군사쿠데타가 다시 필요한 상황이라고 주장한 것도 그저 개인의 황당한 목소리가 아니다. 새누리당 전략기획본부장인 김재원 의원이 계엄령법 개정안을 발의한 것도 우연이라고 볼 수는 없다. 내란음모 조작사건과 진보당 해산청구, 민주노총 사무실 침탈 등 예상을 뛰어넘는 공안탄압 행태를 볼 때 정부가 위기에 몰리면 계엄령을 선포하고 친위쿠데타라도 할 수 있는 것이다. 유신독재식 사고방식을 가진 정부·여당 인사들이라면 능히 가능한 이야기다.

 

그러나 계엄령, 친위 쿠데타 같은 게 가능한 시대는 이미 지났다. 전두환 정부가 87년 6월 항쟁을 무력으로 진압하려다 포기한 때부터 이미 시대는 바뀌었다. 만약 국민들의 저항을 물리력으로 진압하려 한다면 더 큰 파국을 초래할 수 있다. 나아가 그런 상황이 오기 전에 미국이 제2의 10.26사태와 같은 방식으로 손을 쓸 수도 있다. 미국 입장에서는 한국에 민중봉기가 일어나 급진세력이 집권하는 것보다는 극우 정권이 물러나고 온건한 정권이 들어서는 게 더 이익이기 때문이다.

 

갑오농민전쟁 120돌을 맞는 2014년, 박근혜 정권과 대격돌이 불가피한 속에서 승리를 앞당기기 위한 태세 정비에 모두 나서야겠다.

 

 


<동북아의 문> 은 매일 아침 7시 30분에 <아침브리핑>을 통해 전날 주요 뉴스를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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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의 '늑대 괴담', 2000년 전 이솝이 웃겠다!

 

[초록發光] 민영화, 이젠 전기다

이진우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부소장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4-01-02 오전 8:12:38

 

 

 

 

 

 

 

 

 

 

"늑대가 나타났다고 소리치긴 쉽습니다. 그러나 늑대가 없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은 어렵고 지루하고 힘듭니다. 교활한 양치기 소년 때문에 우리는 어렵고 지루하고 힘든 일을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새누리당이 전 국민 크리스마스 선물로 배포한 <늑대가 나타났다>는 홍보 책자의 일부다. 홍보 책자를 통해 웃음을 선사하려고 했는지 'KTX 자회사 설립이 민영화가 된다는 건 괴담'이라는 주장과 함께 민영화는 민주당에서 추진했지 새누리당은 민영화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수록했다.

홍보 책자의 말대로라면 새누리당은 공공 부문 민영화를 우려하는 국민들에겐 참으로 등불과도 같은 존재가 확실하다. 그런데 왜 소위 우매한 민중들은 그런 괴담에 쉽게 속고 휩쓸리는가? 유감스럽게도 그렇게 생각하도록 만든 당사자가 새누리당이기 때문이다.

홍보 책자가 뿌려지기 4일 전 현오석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철도 민영화가 어쩔 수 없는 흐름'이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고, 지난달 청와대에서 재가한 세계무역기구(WTO)의 정부조달협정(GPA) 개정 의정서에는 개방 대상으로 철도 부문이 포함되어 있다. 또 익히 알려진 바와 같이 일단 '쪼개고' 나면, 민영화는 쉬워진다. 그리고 그것이 어떤 결과를 낳고 있는지 에너지 분야의 민영화 추진에서 목도할 수 있다.

전력 부문은 국민의 정부 시절인 1999년 '전력 산업 구조 개편 기본 계획'에 따라 2001년에 6개로 분할됐다. 2003년에는 구역 전기 사업을 신설하는 내용으로 전기사업법을 개정해 민간 발전 회사의 길을 터주었다. 2011년에는 6개 발전 회사가 '시장형 공기업'으로 전환됐고, 그리고는 2012년 제6차 전력 수급 기본 계획을 통해 민자 발전을 대폭 확대하겠다고 발표했다.

이후 남은 상황은 상상하지 않아도 뻔하다. 한국전력과 발전 자회사들의 적자가 누적될 수밖에 없고 이제 효율성을 이유로 발전 자회사들을 민영화한 뒤 배전을 담당하는 한국전력까지 민영화하면 긴 시간을 들인 전력 부문 민영화가 완성되는 것이다. 실제로 현재 산업통상자원부는 한국전력의 송·배전과 전력 판매 부문을 민영화하는 방안에 대해 에너지경제연구원에 용역을 의뢰한 상황이다.

거기에 제2차 에너지 기본 계획에서는 분산형 전원을 늘린다는 미명하에 민간 발전사 키우기에 나서겠다는 의지까지 피력했다. (분산형 전원 체제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적어도 에너지 자립도를 높이는 것이 아니라 산업계의 자가 발전을 의미한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거기에 이미 석유 분야는 민영화된 지 오래됐고, 가스 분야는 가스 직도입을 통해 새로운 민영화의 길을 열어 젖혔다. 이런 변화 과정에서 일관되게 찾아볼 수 있는 건 바로 '효율성과 경쟁' 논리다. 그렇다면 과연 민영화론자들의 주장대로 공공 부문의 효율성이 높아졌을까? 전혀 아니다.
 

▲ 새누리당의 홍보 책자 <늑대가 나타났다>. ⓒ연합뉴스


2011년 발전 회사들이 '시장형 공기업'으로 전환되자 정부로부터 유리한 경영 평가를 받기 위해 개별 회사들의 경쟁이 치열해졌다. 그 결과 국가 전체의 에너지 효율성이 오히려 저하됐다. 해외 발전소 경쟁이 그 대표적인 예다. 그래서 오히려 발전 회사들을 재통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2009년 한국전력이 맥킨지에 의뢰한 보고서를 보면, "한국전력이 발전 자회사들과 재통합할 경우 연료 구매 분야에서 5000∼8000억 원의 구매 비용 절감 효과와 연구 개발 분야에서 1200∼1500억 원, 설비 투자 감소 및 해외 사업 경쟁력 강화 등으로 2020년 기준 연간 약 1조2000억 원의 경비 절감이 예상된다"고 한다. 노무현 정부 시절에는 발전 부문 분리에 따른 부작용이 커지자 노사정위원회 논의를 거쳐 배전 분할을 중단하기도 했다.

민간 발전 회사 확대에 따른 피해도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민간 발전사를 늘리기 위해서는 현재 발전 원가 이하로 생산하고 있는 생산 단가 이상을 보장해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정부는 전력 가격을 결정하는 SMP(계통한계가격)에서 특혜를 주는 식으로 민간 기업의 참여를 유도하고 있다.

그 결과 2012년 민자 발전사 당기 순이익은 9348억 원에 달했다. 반면 6개 공기업 발전사의 당기 순이익은 8061억 원에 불과하다. 얼핏 보면 수지가 맞춰진 상황처럼 보이지만 민자 발전사들의 발전 용량은 공기업 발전사들의 발전 용량의 10% 정도에 그친다는 점을 안다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런 상태에서 민자 발전사들이 더 늘어나면 정부의 부담 폭은 더 확대될 수밖에 없고, 결국 국민의 부담해야 하는 몫이 된다. 그런데 이게 어쩐 일인지 다시 전력 판매 민영화 검토나 민간 발전 회사 진입 허용 등으로 민자 발전 확대 구조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흔히 전력 민영화의 대표적인 부작용으로 꼽는 캘리포니아 대정전, 미국 동북부 대정전은 오히려 덤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더 우려스러운 건 사회가 책임져야 할 공공 서비스가 이윤 창출이 목적인 기업에게 넘어가버리면 그런 최악의 사태가 벌어져도 다시 되돌리기 어려워진다는 점이다. 재국유화는 그 과정의 옳고 그름을 떠나 우리 사회에 커다란 충돌과 갈등을 야기할 수밖에 없고, 그것이야말로 새누리당이 얘기하는 것처럼 "어렵고 힘든 일"이 될 것이다.

철도 민영화가 가시성이 높아 사회적 이슈가 됐지만 전력 민영화는 이미 상당한 수준으로 진척이 되어 있다. 정부와 새누리당은 이것 역시 괴담이라고 말하고 싶겠지만 길지만 집요한 민영화 추진으로 인해 우리는 이미 혹독한 결과를 감내하고 있다. 따라서 철도 민영화 철회가 확실해진다면 우리는 더 늦기 전에 전력 민영화에 대한 대응에 나설 필요가 있다.

일각에서는 탈핵을 위해서는 정부 지원의 고리를 끊기 위해 민영화가 필요할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건 빈대잡기 위해 초가삼간을 태우는 일이다. 또 누군가는 분산형 전원 체계로 가기 위해 민자 발전사 확대는 필수불가결한 일이라고 주장할지 모른다. 하지만 분산형 체계란 수요처 인근으로 발전소를 분산시켜 지역 에너지 자립도를 높이자는 거지 그걸 민간 회사가 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지역에너지공사를 설립해 책임성을 높이는 게 오히려 답이 될 테다. 물론 에너지 기후 변화 대응을 위해서는 전력 체계 전환은 필수적인 일이다. 하지만 에너지는 이미 현대 사회의 기본권 중에 하나기 때문에 복지, 경제, 고용 문제와도 연관 지어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다면 민영화는 위험하다.

마지막으로 사족(蛇足) 하나. 늑대가 나타났다던 양치기 소년의 거짓말은 잘못된 것이었지만 늑대는 결국 나타났다. 이 우화에서 우리가 얻어야 하는 교훈은 단순히 '거짓말을 하지 말자'가 아니라 신뢰를 쌓고 이를 통해 우환을 대비하자는 거다.

무슨 집권 여당의 홍보 자료가 해석 달린 어린이용 이솝 우화 수준에 불과하나. 길지도 않은데 다음부터 이솝 우화 정도는 다시 정독해보고 인용하길 권한다. 2000년 전 사람인 이솝도 웃겠다.
 

'초록發光'은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와 <프레시안>이 공동으로 기획한 연재입니다.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는 이 연재를 통해서 한국 사회를 '초록의 시선'으로 읽으려 합니다.

(☞바로 가기 :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이진우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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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한정수 트위터 VS 조선일보 '악마의 편집'

 


'국정원 등 정보기관의 불법 대선 개입'과 '박근혜 퇴진' 등을 이유로 분신자살을 시도했던 이모씨가 결국 1월 1일 오전 7시 55분경 사망했습니다. 

이모 씨의 죽음에 대해 많은 시민들은 안타까워했지만, 조선일보를 비롯한 보수 언론들은 이모 씨의 죽음을 헐뜯거나 깎아내리기 바빴습니다. 특히 조선일보는 배우 한정수 씨가 올린 트윗을 아예 '거짓말 트위터 선동'이라고 하며 그를 매도하기도 했습니다. 

배우 한정수 씨는 자신의 트위터에 <서울역 분신, 결국 이런 일이 생길 줄 알았다. 그런데 더 어이없는 건 어느 뉴스에도 이 사건은 보도죄지 않는다는 것,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는 글을 남겼습니다. 

이에 대해 조선일보는 <한정수, 거짓말 트위터 선동,,서울역 분신 남성 사망 보도 안해? 100건도 넘게됐는데!>라는 기사를 올리며 한정수 씨가 거짓말로 트윗을 올렸고, 트위터에서 이모 씨의 죽음을 선동하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 한정수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조선일보 장상진 기자는 기사를 쓰면서 도대체 트위터에서 뉴스라고 말하는 것이 어떤 뉴스를 말하는지 전혀 이해조차 못 하고 기사를 작성했습니다. 

우리가 흔히 뉴스에 보도되지 않았다고 하는 말을 하는데, 이때의 뉴스는 지상파 3사의 메인 TV뉴스를 의미합니다. 결코 네이버에 나오는 인터넷 뉴스를 지칭하는 것은 아닙니다. 

배우 한정수 씨는 이런 기준으로 본다면 절대 거짓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1월1일 저녁에 방송된 지상파 3사 뉴스 어느 곳에서도 분신 사망한 이모 씨의 죽음을 보도하지 않았습니다. 

수갑을 풀고 파출소를 도주한 절도 피의자 검거 소식은 있었어도, 서울역 앞 고가도로에서 휘발유를 뿌리고 고통스러운 죽음을 선택한 이모 씨의 죽음은 그 어느 곳에서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한정수의 트윗은 사실과 달랐다. 한정수가 트윗을 올린 오후 6시 기준으로는 이미 전날부터 100건이 넘는 기사가 인터넷에 올라왔고, 네이버 다음 등에서도 ‘핫토픽’ 등으로 선정해 기사가 널리 확산한 상황이었다. 기사를 쓴 언론사도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등 보수언론부터 진보언론까지 다양했다. (조선닷컴 장상진 기자)


조선일보는 한정수의 트윗이 사실과 달랐다는 근거로 인터넷과 네이버,다음만을 거론했습니다. 가장 사람들이 많이 보는 지상파 3사 정규 뉴스에서 보도하지 않았다는 내용은 아예 없었습니다.

기자라면 최소한 뉴스를 보도하지 않았다는 의미가 인터넷 뉴스가 아닌 지상파 TV 뉴스라는 것 정도는 알았을 것입니다. 기준을 엉뚱한데 해놓고 한정수 씨가 거짓말을 했다고 보도한 것은 오히려 조선일보 기자가 독해력이 떨어진 상태에서 기사를 쓴 것입니다. 

'조선일보가 보여준 악마의 편집'

자신의 독해력 부족은 생각지 않고, 배우 한정수 씨를 향해 '거짓말 트위터 선동'이라고 말했던 조선일보는 과연 얼마나 제대로 이모 씨의 분신 사망을 보도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조선일보는 자신들의 주장대로 수십 건의 이모 씨 분신 사망관련 기사를 내보냈습니다. 그러나 비슷비슷한 기사를 제목만 바꿔 보낸 조선일보 기사들의 핵심은 '이모 씨 죽음 왜곡하기'였습니다. 

제목만 봐도 조선일보는 이모 씨의 분신 사망 원인을 '개인빚과 보험을 노린 죽음'으로 왜곡하고 있는 것을 잘 알 수 있습니다. 

조선일보가 이렇게 이모 씨의 죽음을 '개인 빚'과 '보험금을 노린 죽음'으로 왜곡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새해 첫날부터 '안녕들하십니까?' 대자보로 시작된 우리 사회의 관심을 개인의 문제로 추락시키기 위해서입니다. 

학사 장교로 대위로 전역까지 했지만, 취업 문제와 형의 개인 채무로 인한 신용불량자가 됐던 이모씨의 삶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어려움입니다. 그러나 그가 그런 어려움 때문에 분신자살을 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그리고 빚이 있었다면 7~8년 전에 했어야지 지금 와서 고통스러운 죽음을 선택할 이유는 그리 높지 않습니다. 
 

서울역 분신 남성 사망 사건 관련 한정수 트윗에 네티즌들은 “서울역 분신 남성 사망 사건 관련 한정수 트윗, 거짓부렁 선동하지 말라”, “서울역 분신 남성 사망 사건 관련 한정수 트윗, 괜히 깨어있는척 해보려다가…ㅋㅋㅋ”, “서울역 분신 남성 사망 사건 관련 한정수 트윗, 황당하네” 등의 반응이다.(조선일보 장상진 기자)


조선일보 장상진 기자는 <한정수, 거짓말 트위터 선동...'서울역 분신 남성 사망 보도 안해? 100건도 넘게 됐는데!>라는 기사에서 한정수 트윗에 네티즌들이 조롱하고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했습니다. 

한정수 배우님의 용기에 박수를 보냅니다. (@me******)
배우 한정수씨의 일침입니다.(@se*****)
멋진 한정수님을 좋아하기 시작했습니다.(@coo****)

 

그러나 배우 한정수 씨를 응원하는 트위터도 많았습니다. 언론이 이렇게 편중된 반응만을 일부 보도한 것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악마의 편집'과도 같은 기법입니다. 

 

 

 


조선일보는 배우 한정수 씨의 트위터를 거짓말로 만들면서 'SNS 등을 통해 퍼져 나가는 잘못된 유언비어를 바로 잡지 않으면,,, 국민의 혼란만 가중될 것입니다.'라는 박근혜 대통령의 말이 거꾸로였다는 증거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오히려 유언비어는 SNS가 아닌 언론사였으며, 이런 언론사가 있으면 국민의 혼란만 가중될 것이다라는 사실을...


문제는 조선일보가 자신들의 독해력 부족과 언론 스스로의 편중된 기사를 통해 조작하는 언론의 폐해는 절대 말하지 않고 있다는 점입니다. 

배우가 트위터에 트윗 한 마디 쓴 것은 개인의 생각입니다. 그러나 언론사가 기사로 보도한 것은 언론이라는 책임감이 부과됩니다. 

진짜 누가 잘못된 유언비어를 지금 이 사회에 퍼트리고 있는지, 우리는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2014년 새해부터 첫날부터 보여준 조선일보의 '악마의 편집'은 진짜 우리 사회에서 추방해야 할 자들이 누구인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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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방중상' 중단시, 당국회담 가능성 열려

'비방중상' 중단시, 당국회담 가능성 열려<분석> 북한 신년사로 본 2014 남북관계 향방
조정훈 기자  |  whoony@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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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01.01  16:3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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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1일 신년사를 발표했다.

김 제1위원장은 신년사 중 남북관계 분야에서 "북남사이 관계개선을 위한 분위기를 마련해야 한다"며 "백해무익한 비방중상을 끝낼 때가 되었으며 화해와 단합에 저해를 주는 일을 더 이상 해서는 안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리고 "외세에 의해 갈라져 살고 있는 것만도 가슴아픈 일인데 동족끼리 비방하고 반목 질시하는 것은 용납될 수 없다"며 "그것은 조선의 통일을 바라지 않는 세력들에게 어부지리를 줄 뿐"이라고 말했다.

즉, 지난해 3,4월 한.미 연합군사훈련을 필두로 일부 언론의 '최고존엄 모독', 일부 보수단체의 '화형식', 탈북자단체들의 대북 전단살포 등을 대북 적대행동을 지적한 것이다.

또한 신년사는 "남조선 당국은 무모한 동족대결과 종북소동을 벌이지 말아야 하며 자주와 민주, 조국통일을 요구하는 겨레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북남관계 개선에로 나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지난해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공개와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 사건으로 촉발된 '종북몰이'에 대한 경고로 읽힌다.

게다가 미국과 일부 군부 강경세력을 향해, "북침 핵전쟁연습을 광란적으로 벌이고 있으며, 이로 하여 사소한 우발적인 군사적 충돌도 전면전쟁으로 번질 수 있는 위험한 정세가 조성되고 있다"면서 오는 3.4월에 열리는 연례훈련인 '키리졸브.독수리' 한.미 연합군사연습을 지목했다.

요약하면, 당면한 한.미 연합군사연습의 진행과정을 예의주시하고, 최고존엄 모독 등 대북 강경노선이 어떻게 가라앉느냐에 따라 남북관계 개선에 나서겠다는 선언인 셈이다.

또한 김 제1위원장은 신년사에서 '우리민족끼리'를 강조, "북과 남은 조국통일3대원칙과 북남공동선언에서 천명된 자주의 원칙을 견지하고 우리민족끼리 입장에 확고히 서야 하며 공동선언들을 존중하고 성실히 이행하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지난해 신년사에서 6.15선언과 10.4선언을 구체적으로 언급했던 것과 달리, 7.4성명을 포함한 남북 공동선언 존중.이행을 포괄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우리 정부를 배려한 것 아니냐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실제 우리 정부는 이명박 정부를 거쳐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북한의 6.15선언,10.4선언 이행요구를 껄끄럽게 생각해왔으며, 모든 남북간 합의를 존중한다는 수준의 입장만 보여온 바 있다.

그렇기에 북측이 먼저 남측이 껄끄럽게 생각하는 부분을 제거해주고, 남북관계 개선 분위기를 조성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북한은 김일성 주석의 1994년 남북정상회담 개최 관련 문서 서명을 강조해, 남북정상회담을 포함한 당국간 대화의지를 표명했다. 한마디로 공을 우리 정부에 넘긴 셈이다.

한 북한 전문가는 "북한이 김일성 주석이 '조국통일과 관련한 역사적 문건에 생애의 마지막 친필을 남기신 20돌이되는 해'라고 강조한 것에 주목해야 한다"며 "단순한 꺽어지는 해의 의미를 뒀을 수도 있지만 달리 해석하면 정상회담을 포함한 당국간 대화를 하겠다는 의도"라고 분석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도 신년사에서 '북남관계 개선'이 세 차례 언급된 것에 주목, "올해 남북대화 추진 환경은 상대적으로 좋아졌다"고 평가했다.

정성장 수석연구위원은 "김정은 제1비서가 남북관계 개선에 대해 적극적인 입장을 표명했다"며 "올해 상반기에 북한이 2013년에 추진했다가 일방적으로 연기한 이산가족상봉의 재개를 제안하고 금강산 관광 재개 허용을 요구하면서 당국간 대화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올 것"으로 전망했다.

통일부도 신년사 평가에서 "대남면에서는 '남북관계 개선 분위기 마련'을 언급하였으나, 비난도 계속하고 있어 향후 태도변화 여부를 주시할 필요가 있다"면서 조심스레 남북관계 개선 가능성을 내비쳤다.

하지만 북한은 남북관계 개선 분위기 조성의 조건으로 비방중상과 종북소동 중단이라는 조건을 내세워, 우리 정부가 이에 대해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 움직일 것으로 보인다.

한 북한 전문가는 "북한이 김일성 조국통일 친필 20돌을 언급했지만, 비방중상을 중단하고 종북소동을 벌이지 말라며 남북관계 개선 전제조건을 내건 것"이라며 "남북관계 개선은 우리 정부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렸다"고 말했다.

정성장 수석연구위원은 "한국정부가 어떠한 입장을 취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북한의 비핵화에 유리한 환경 조성과 개혁.개방을 촉진하기 위해 남북총리회담 개최를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제시했다.

한편으로는 남북관계가 지난해와 달리 당국간 대화를 중심으로 진전을 보일 것으로 조심스레 예상된다.

앞서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달 31일 <중앙일보> 기고에서 "평화와 통일의 기반을 조성할 것이다. 나아가 남북대화와 교류협력을 통해 지속 가능한 평화를 만들어 갈 것"이라고 밝힌 바 있기 때문이다.

즉, 이틀동안 남북은 박 대통령이 '남북대화와 교류협력'을 강조하고, 김 제1위원장이 '남북관계 개선 분위기 조성'으로 화답하는 등 최고지도자들이 입장을 주고받는 성격을 취해 올해 남북관계 향방이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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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창원 "이씨 죽음 폄훼, 한심한 작태에 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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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 퇴진" "특검 실시" 등을 요구하며 분신한 이아무개(40)씨의 빈소가 서울의 한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빈소에 '박근혜 OUT'이라는 피켓이 놓여있다.
ⓒ 김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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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신 : 오후 11시 10분] 

분신 이씨, 고인이 되어서도 '박근혜 OUT'을 품다 
추모객들 "이런 분 더 이상 안 나오는 새로운 사회 되길" 

"박근혜 퇴진" "특검 실시" 등을 요구하며 분신한 이아무개(40)씨의 빈소가 1일 오후 서울 영등포 한강성심병원 장례식장(무궁화2호 특별실)에 마련됐다. 이씨의 장례는 민주시민장으로 4일동안 치러지며, 오는 4일 오전 9시 30분 서울역 광장에서 영결식이 치러진다. 시신은 광주 망월동 5·18 묘역에 안치하는 방안을 유족과 논의중이다. 

빈소에는 이씨의 형과 동생이 상주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씨의 어머니는 "아들이 사흘 전에 와서 용돈으로 80만 원을 쥐어주고 갔는데 죽었을 리 없다"며 오열해 주변을 안타깝게 했다. 새해 첫 날의 영향인지, 이 씨의 빈소에는 아직 친인척들의 방문이 활발하진 않았다. 대신 고인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한 시민들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빈소에 마련된 고인의 영정 아래에는 '박근혜 OUT'이라고 적힌 피켓들이 놓여있다. 빈소를 방문한 신재성(40)씨는 "고인이 오래전부터 치밀하게 준비했다는 생각이 든다"며 "2013년의 마지막 날에 돌아가시고 새 날을 열고 싶었던 것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이어 "제발 이런 분들이 더 이상 안 나오는 새로운 사회가 되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덧붙였다. 

신촌에서 자영업을 하는 이남용씨도 "불통에 대한 답답함을 박근혜 정부에 너무 알리고 싶어 나도 이씨 같은 생각을 불쑥불쑥 해본 적이 있다"며 "너무 많은 사람들이 현 정부의 문제를 고민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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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 퇴진" "특검 실시" 등을 요구하며 분신한 이아무개(40)씨의 빈소. 정동영·강기정 민주당 의원등이 조화를 보내 고인을 애도하고 있다.
ⓒ 김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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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고인의 빈소에는 민주당 김한길 대표와 정동영 의원,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 천호선 정의당 대표 등 정치인들이 조화를 보내 고인을 애도했고, 민주당 강기정, 통합진보당 오병윤 의원 등이 조문했다. 

SNS 등을 통한 유명 인사들의 애도도 이어졌다. 배우 문성근씨는 이날 오전 자신의 트위터에 "명복을 빕니다. 긴급 속보. 몇 분 전, 12월 31일에 서울역 고가에서 '박근혜 퇴진, 특검 실시' 펼침막을 건 채 온몸에 쇠사슬을 묶고 분신하신 이모 씨가 운명하셨다"라는 글을 게재했다. 문씨는 이어 이씨의 장례식장과 장지 소식, 오는 4일 영결식을 치른다는 글을 리트윗(RT)하며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탤런트 한정수씨도 이씨의 죽음을 애도했다. 한씨는 이날 자신의 트위터에 "서울역 분신, 결국 이런 일이 생길 줄 알았다. 그런데 더 어이없는 건 어느 뉴스에도 이 사건은 보도되지 않는다는 것"이라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고 글을 올렸다. 온라인 상에서는 고인과 관련한 기사가 보도됐지만, TV 뉴스 등 지상파 방송을 통해 보도되지 않은 상황을 두고 안타까움을 드러낸 것이다. 

종교계와 시민단체, 유가족 등으로 구성된 장례대책위원회는 2일 오후 6시 장례식장 앞에서 촛불문화제를 열고, 오후 7시 30분에는 추모기도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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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1일 오후 5시 29분경 서울 중구 남대문로5가 서울역 고가도로 위에서 이아무개(40, 광주광역시)씨가 "박근혜 사퇴", "특검 실시"라는 두 플래카드를 내건 채 분신 자살을 시도했다. 사진은 분신 직후 상황으로, 고가도로 위에 불길이 치솟고 있다. 마친 인근을 지나던 한 시민이 찍어 트위터에 올린 이 사진에 대해 경찰 관계자는 각도와 정황상 분신 상황이 맞다고 확인했다.
ⓒ @cantaloupisl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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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신 : 오후 7시 20분] 

이씨 유서 추가 공개... "빚 때문에 분신" 경찰 발표 논란

"국민들의 두려움 다 안고 내가 가겠다. 국민들이여 일어나라." 

"박근혜 퇴진" "특검 실시" 등을 요구하며 분신한 이아무개(40)씨의 유서 일부가 추가로 공개됐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소속 박주민 변호사는 1일 오후 남대문경찰서 앞에서 기자들과 만나 이씨의 다이어리에 적힌 유서 내용 일부를 전했다. 박 변호사는 이날 오후 이씨의 형이 경찰 조사를 받을 때 배석했다. 

또한 이씨에게 빚이 없다는 형의 진술이 나와, 이씨의 분신 동기를 개인의 금전적 어려움 등에 의한 것으로 발표한 경찰 수사 내용도 논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박 변호사는 "경찰이 유족의 진술을 잘못 받은 것 같다"며 "형의 진술에 따르면, 고인은 실질적인 빚이 없다"고 말했다. 

이씨 유서 "민주주의 유린... 박근혜 정부가 밝혀야" 

박주민 변호사에 따르면, 이씨가 분신 현장에 남긴 다이어리에는 국민에게 보내는 2통의 편지가 적혀 있다. 박 변호사는 "'안녕하십니까'로 시작하는 편지에는 현 정부 실정에 대한 비판이 주를 이룬다"며 "그것 외에 짧은 글에는 국민들을 향해 '내가 이 두려움을 다 안고 갈 테니까, 일어나십시오'라고 적혀 있다"고 말했다. 

특히 '안녕하십니까'라는 제목의 대자보 형식 편지에는 "국정원 등 정보기관이 불법적으로 선거개입을 했는데, 박근혜 정부는 이를 일탈로 치부하고 진실규명을 안 한다. 민주주의가 유린되고 있다. 정부가 이런 것을 밝혀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고 박 변호사는 전했다. 

이씨의 다이어리에는 국민에게 보내는 편지 외에 형, 동생, 어머니에게 각각 "미안하다"는 내용의 편지도 적혀 있다. 또한 자신이 도움을 받은 사람에게 고마움을 전하는 2통의 편지도 발견됐다. 

박 변호사는 "유서가 적힌 다이어리는 겉표지만 타고 온전하게 보존되어 있다"며 "다이어리는 내일(2일) 공개할 예정이지만 유족과 논의를 더 해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경찰 "빚 독촉으로 힘들어 해" vs. 민변 "빚 전혀 없다" 

특히 박 변호사는 이날 "이씨가 최근 빚 독촉에 시달렸다"는 동생의 진술을 공개한 경찰의 중간 수사결과 발표를 정면으로 반박했다. 

경찰은 이날 오전 발표한 수사상황 자료에서 "동생의 진술에 의하면, 이씨가 일주일 전 동생에게 전화를 해 이씨가 가입한 보험의 수급자를 동생 명의로 바꿔 놓으라고 했고, 이씨가 신용불량 상태에서 빚 독촉으로 많이 힘들어 하였다면서 경제적인 이유 말고는 분신을 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고 진술했다"고 밝혔다. 

이씨가 보험의 수급자를 바꿨다는 점, 신용불량 상태라는 점 등을 부각시켜 경찰이 이씨의 분신을 개인의 금전적 어려움에 따른 일탈로 몰아가는 듯한 인상을 줬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실제 경찰은 "현재까지 수사한 바로는 부채, 어머니의 병환 등 복합적인 동기로 분신을 마음먹은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박 변호사는 "경찰이 받은 (동생의) 진술은 유족들이 경황이 없을 때 말한 것"이라며 "동생보다 고인이랑 한 집에서 같이 산 형님의 진술이 더 정확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박 변호사는 이어 "이씨가 빚을 진 게 아니라 형님이 잘못된 투자로 빚을 진 것이고 수입으로 충분히 빚을 감당할 수 있었다"며 "빚을 진 게 7~8년 전인데, (빚 때문이라면) 몇 년 전에 자살하지, 왜 지금 자살하겠느냐"고 반박했다. 

박 변호사는 또 "나중에 유서를 확인하게 되겠지만 상세하게 기록된 유서 내용에도 빚에 대한 얘기는 전혀 없다"고 강조했다. 

경찰 측은 이씨의 동생과 형의 진술이 다르다는 점은 인정하면서도 이씨에게 빚이 있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경찰의 한 관계자는 "형의 진술에 따르면, 숨진 이씨가 형 때문에 카드빚 3000만 원 있고, 7~8년 전에 신용불량자가 됐다"며 "형은 카드대금 청구서가 많이 왔었지만 그것 때문에 고인이 자살했다고 보지 않는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표창원 "고인 사생활 마구 공개, 한심한 작태에 분노" 

한편 표창원 전 경찰대 교수는 이씨의 죽음을 폄훼해서는 안 된다며 경찰을 비판하고 나서 눈길을 끌었다. 표창원 전 교수는 이날 오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2014년 벽두를 맞으며... 사람의 가치가 그리도 가볍습니까?"라고 이씨의 분신 사건을 언급했다. 

표 전 교수는 "한 사람의 목숨이 쓰러졌다. 결코 이 분의 행동을 지지하거나 옹호하고 싶지 않다"면서 "그러나 이 분의 사망을 이용해 선동하는 행동에도 반대한다. 같은 마음으로 이 분의 삶과 죽음을 폄훼하고 그 명예를 훼손하는 작태에 대해서도 분노하고 반대한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특히 가족의 동의 없이 이 분의 경제 사정이나 부채, 개인 사생활 관련 내용을 마구 공개 유포하고 보도하며 애써 이 분이 죽음으로 주장하려던 박근혜 대통령 사퇴와 국정원 사건 특검 도입에 대한 세간의 관심을 막고 돌리려는 한심한 작태에 분노한다"고 말했다. 

또 표창원 전 교수는 "사람의 목숨이 그렇게 가벼운가? 당신들의 이익과 편함을 위해 그리 매도해도 되는 것인가?"라고 반문한 뒤 "그동안 채동욱 검찰총장, 윤석열 검사, 철도노조 등 반대나 불편을 야기하는 대상마다 사생활 혹은 인격 내지 명예를 까발리거나 공격, 훼손하며 본질을 호도하던 작태를 생명손상 사건에서도 그대로 사용하는가"라고 지적했다. 

[1신 : 1일 오전 11시 40분]

분신 이씨 유서 "안녕하십니까, 안부 묻기도 힘들어"

국가정보원 대선개입 사건 특별검사제 도입 등을 요구하며 분신 자살을 시도한 이아무개(40)씨가 1일 오전 7시 55분경 끝내 사망했다. 이씨는 지난 12월 31일 오후 "박근혜 퇴진" "특검 실시" 등의 플래카드를 내걸고 서울역 고가도로 위에서 분신했다.(관련기사: 이씨, 분신 전 "박근혜 사퇴" 외쳐)

경찰에 따르면, 현장에서 발견된 이씨의 다이어리에서 가족 등에게 남긴 유서 형식의 글이 발견됐다. 특히 다이어리 뒷부분에는 "안녕하십니까"라는 제목으로 17줄에 걸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안부도 묻기 힘든 상황입니다"라고 시작되는 메모가 기록돼 있다. 정부에 대한 비판이 주요 내용으로, 최근 대학가에 붙은 대자보와 유사한 방식으로 글을 썼다는 게 경찰의 분석이다. 

이씨 "슬퍼하지 말고.... 엄마를 부탁한다"

또한 '삶에 대하여(Paradigm of God)'라는 제목의 글에서는 "누구나 결국 신의 영역으로 돌아간다"는 등 영(혼)과 신에 대한 얘기가 15줄에 걸쳐 적혀 있다. 

삼형제 중 둘째인 이씨는 동생에게 "짐을 지우고 가서 미안하다"면서 "슬퍼하지 말고 행복하게 기쁘게 갔다고 생각해라. 엄마를 부탁한다"고 적었다. 주로 어머니의 건강문제 등에 대한 걱정이 담겨 있고, 이씨의 형에게도 "행복하게 살라"는 간단한 언급이 적혀 있다

경찰은 이씨의 다이어리에 휘발유통, 앰프, 벽돌형(톱밥) 압축연료 등 용품 명세서와 차량을 빌리기 위해 적어 놓은 렌터카 회사의 연락처, 현장에 내걸었던 현수막 제작업체 연락처 등이 적혀 있는 것으로 보아 이씨가 사전에 분신을 계획하고 준비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경찰은 "(이씨가) 특정 단체나 노조 등에 소속된 점은 확인된 바 없다"면서 "현재까지 수사한 바로는 부채, 어머니의 병환 등 복합적인 동기로 분신을 마음먹은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씨의 형 "아직도 믿을 수 없다"

이씨의 형은 이날 오전 <오마이뉴스> 기자와 만나 "동생이 사고를 당했다는 소식을 어제 오후 7시 30분경에 경찰의 전화를 듣고 알았다"며 "아직도 믿을 수가 없다"고 심경을 밝혔다. 사망한 이씨 함께 광주에서 살고 있었다는 형은 "동생이 서울에 올라간지도 몰랐다"며 "같은 집에 살지만 서로 먹고 살기 바빠서 열흘 전에 연락한 게 마지막"이라고 말했다. 

이씨의 형은 "고인이 평소 정치적인 발언을 하거나 하는 성격은 아니었다"며 "지금 어머니는 너무 놀라셨고 이 상황을 못 믿겠다고 하신다"고 전했다. 

한편 이씨의 장례식은 시민사회장으로 치러질 예정이다. 기독교대책위원회와 강기정 민주당 의원이 시민장을 추천했고 고인의 형이 이를 수락했다. 4일장으로 서울에 위치한 한 장례식장에 빈소를 마련할 예정이다.

다음은 1일 이아무개씨가 사망한 직후 경찰이 발표한 수사사항 전문이다.
 
서울역 고가도로 위에서 분신한 사건 수사사항

□ 서울남대문경찰서(총경 연정훈)는 

❍ 2013. 12. 31. 17:35경 서울역 앞 고가도로(만리동→회현동) 중간지점에서 발생한 이모씨(40세)의 분신 사건을 수사하고 있습니다 

❍ 분신을 기도한 이씨는 지문확인을 통해 정확한 인적사항을 확인하였고, 광주시 북구 00동에 거주하고 '○○편의점' 대리점에서 매장관리 일을 하고 있으며, 아직 미혼인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 이씨는 현재 서울대병원을 거쳐 한강성심병원 중환자실에서 치료중 오늘 아침 07시 55분경 사망하였습니다. 

❍ 현장에서 발견된 타다 남은 이씨의 다이어리를 분석한 결과, 휘발유통, 앰프, 벽돌형(톱밥) 압축연료 등 용품들과 차량을 빌리기 위해 적어 놓은 렌터카 회사의 연락처, 현장에 내걸었던 현수막(90Cm×690Cm) 제작업체 연락처 등이 적혀 있는 것으로 보아 사전에 분신을 미리 계획하고 준비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으며 이 물품들은 현장에서 확인되거나 유류된 물품들과 같습니다. 

❍ 또한, 다이어리에는 가족에게 남긴 유서형식의 글이 발견되는데, 동생에게 "짐을 지우고 가서 미안하다라고 시작하여 슬퍼하지 말고 행복하게 기쁘게 갔다고 생각해라. 엄마를 부탁한다"라고 끝을 맺고 있으며 엄마의 건강문제 등에 대한 걱정이 주요내용이고, 형에게도 마찬가지 행복하게 살라는 간단한 언급과 엄마에게는 사랑한다고 간단히 적혀 있습니다. 

❍ 다이어리 뒷부분에는 "안녕하십니까"라는 제목으로 17줄에 걸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안부도 묻기 힘든 상황입니다"라고 시작하여 정부에 대한 불만내용이 들어있는 메모 글이 있어 최근 대학가에 붙은 대자보와 유사한 방식으로 글을 쓴 것으로 보여집니다. 

❍ 다이어리 뒷부분에는 삶에 대하여(Paradigm of God)라는 제목으로 "누구나 결국 신의 영역으로 돌아간다"는 등 영(혼)과 신에 대한 얘기 등(15줄)을 적어 놓은 부분이 있습니다. 

❍ 현재 유족인 동생의 진술에 의하면, 이씨는 일주일 전에 전화를 하여 이씨가 가입한 보험의 수급자를 동생 명의로 바꿔 놓으라고 하여 12. 30 보험회사에 찾아가 수급자를 바꾼 사실이 있으며, 정당이나 사회단체에 가입한 사실이 전혀 없고, 신용불량 상태에서 빚 독촉으로 많이 힘들어 하였다면서 경제적인 이유 말고는 분신을 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고 진술하고 있습니다. 

❍ 사망자는, 특정 단체나 노조 등에 소속된 점은 확인된 바 없으며(코레일 인사부에 확인한 바 철도노조원은 아님), 현재까지 수사한 바로는 부채, 어머니의 병환 등 복합적인 동기로 분신을 마음먹은 것으로 판단하고 있으며, 추후 경찰은 정확한 분신 동기 등 추가로 중요사항이 확인되면 알려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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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사 앞둔 가리왕산, 600살 주목의 '마지막 겨울'

조홍섭 2014. 01. 01
조회수 841 추천수 0
 

평창 동계올림픽 활강경기장 건설 위한 환경영향평가 중, 이르면 내년 봄 착공

주목 묘목부터 수백년 거목까지 내륙 유일의 번식지 파괴될까

 

j1.jpg» 활강경기장 안에 자리잡은 600년생 초대형 주목. 지난 여름에 촬영한 것으로 산림청은 현지에 보존한다고 하지만 전문가들은 고사할 우려가 높다고 본다. 사진=우이령사람들

 

잎을 떨군 활엽수림이 솜털처럼 빽빽하게 들어선 눈 덮인 가리왕산은 평화로웠다. 이르면 내년 봄부터 평창 동계올림픽 활강 경기장 공사가 시작되면 능선과 골짜기는 전기톱과 굴착기의 굉음에 휩싸일 것이다.

 

그런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20m가 넘는 훤칠한 키에 은백색 수피가 아름다운 왕사스레나무들은 주황색 겨울눈을 서둘러 피어 올려 꽃이 핀 것 같았다.
 

j2.jpg» 가리왕산 임도가에 늘어선 반짝이는 수피의 개벚지나무와 흰 수피와 큰 기의 왕사스레나무.

 

지난 21~22일 ‘산과 자연의 친구 우이령 사람들’(회장 이병천)이 강원도 정선군 북평면 숙암리 가리왕산(해발 1561m) 스키 슬로프와 리프트·곤돌라 건설 예정지에서 벌인 수목 조사에 동행했다. 조사단은 숙암 분교를 출발해 가리왕산을 해발 약 1000m 높이로 한바퀴 휘감는 임도를 따라 조사지로 향했다.
 

j2-1.jpg» 임도의 관중적 예정지 표시. 스키장이 건설되면 빽빽한 활엽수림은 대부분 벌채될 전망이다.

 

길가에는 줄기에서 황갈색 광택이 나는 개벚지나무가 줄지어 서 있었다. 우리나라 야생 벚나무 가운데 가장 큰 열매가 달려 야생동물이 좋아하는 나무이다.

 

j3.jpg» 양지바른 임도변 참나무에 자리잡은 희귀 기생식물인 꼬리겨우살이의 열매가 노란 꽃처럼 보인다.

 

임도가 굽이쳐 해가 잘 드는 길가 참나무 위에 노란 열매가 다닥다닥 열린 꼬리겨우살이가 눈길을 끌었다. 울진 소광리 등 전국에서 5곳에서밖에 볼 수 없는 산림청 지정 희귀종이다. 활강 경기장 공사와 함께 임도가 확장되면 사라질 식물의 하나이다.
 
■ 스키장으로 나무 5만 그루 훼손
 
j4.jpg» 해발 1000m를 넘어서자 분비나무, 전나무와 함께 상록인 주목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가리왕산 중봉 근처인 해발 1337m 지점에서 출발하는 여자 활강 슬로프 예정지로 향했다. 해발 1000m를 넘어서자 소나무가 전나무에게 자리를 내어준다. 활엽수림 사이에 듬성듬성 고산성 침엽수인 주목과 분비나무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눈 쌓인 비탈에 나무들이 기다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여기저기 나무에 매달려 있는 빨강·노랑·흰색 꼬리표가 없었다면 고적한 겨울 산의 분위기를 연출했을 것이다.
 

아름드리 신갈나무에는 벌목 대상임을 가리키는 붉은 리본이 매달려 있는 반면 손가락 굵기의 나무에는 노란 리본에 ‘이식 대상’이라고 적혀 있었다. 
 

j5.jpg» 스키 슬로프에 있어 벌채 대상인 초대형 활엽수들과 분비나무 등 침엽수들.

 

산림청은 지난 7월 활강경기장 건설을 위해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이던 가리왕산의 일부인 78㏊를 해제하는 한편 생태계 파괴 논란이 일던 중봉 정상을 슬로프에서 제외하는 등 슬로프를 일부 변경하도록 했다. 또 슬로프 건설로 훼손이 불가피한 주목, 분비나무, 전나무 등 121그루를 옮겨심기로 했다.
 

강원도가 작성한 환경영향평가서를 보면, 옮겨심어도 잘 사는 비교적 작은 나무를 이식 대상으로 선정했으며 나무 높이 3~5m, 지표 굵기 14㎝ 이하를 기준으로 제시했다. 
 

결국, 어린 나무 일부를 뺀 가리왕산을 대표하던 크고 멋진 나무의 상당수가 벌채된다는 얘기다. 강원도가 추산하는 스키장으로 인해 훼손되는 나무는 모두 5만여 그루이다.
 

j6-1.jpg» 자연적으로 번식해 자란 어린 주목. 국내 내륙에서 주목으로 이렇게 자연적으로 번식하는 곳은 가리왕산이 유일하다.

 

여자 활강경기장 슬로프의 꼭대기 가까운 해발 1227m 지점에서 조사단이 탄성을 질렀다. 거대한 분비나무 옆에 작고 어린 주목이 올망졸망 자라고 있었다.
 

“전국에서 주목이 어린 개체부터 수백 년 된 노거수까지 세대별로 출현하는 곳은 내륙에서 가리왕산이 유일하다”고 이병천 회장이 말했다. 이 박사는 임업시험장과 국립수목원에서 식물 보전 관련 일을 하다 최근 정년 퇴임했다.
 
■ 우회 슬로프에서도 주목 세대별로 분포

 

j6.jpg» 어린 주목. 산림청은 이들을 슬로프 밖으로 이식시킬 예정이지만 스키장 건설로 달라진 미기후에서 살아남을지는 미지수이다.


 주목 등 희귀식물 보호를 위해 중봉 정상을 슬로프에서 제외하고 새로 낸 우회노선에서도 주목이 세대별로 분포했다. 가슴높이 지름이 6~26㎝인 주목 10그루가 이곳에서 확인됐다. 활강코스의 폭은 30~100m이지만 이 조사는 30m 구간에서만 했기 때문에 실제로 훼손될 주목은 이보다 훨씬 많을 가능성이 있다.
 

하봉 정상까지 남자 활강선수들을 태우고 갈 곤돌라가 건설될 폭 20m의 비탈에도 가슴 높이 지름이 68㎝인 음나무와 한 번도 수액채취를 당하지 않아 꼿꼿하게 자란 지름 62㎝의 고로쇠 등 거목이 즐비했다. 이곳에서도 지름 10~38㎝인 다양한 연령대의 주목 10그루가 자라고 있었다.
 

j6-2.jpg» 이병천 산과 자연의 친구 우이령사람들 회장이 새대별로 분포하는 주목의 중요성을 현지에서 설명하고 있다.

 

이승호 건국대 지리학과 교수 등이 지난해 <한국자원식물학회지>에 발표한 연구결과를 보면, 설악산 저항령(1100m)에는 지름 20㎝ 이하의 어린 주목이 전혀 분포하지 않았고 덕유산에도 지름 10㎝ 이하의 어린 주목은 거의 없었다. 
 

이런 현상은 주목 군락이 천연기념물 244호로 지정된 소백산 비로봉(1439m)과 태백산 장군봉(1567m)에서도 비슷했다.
 

j7.jpg» 하봉 연습코스 상단에서 발견된 지름 1m가 넘는 초대형 주목. 사진=우이령사람들

 

우이령 사람들은 지난 7월 가리왕산 중봉과 하봉 사이 능선에서 숙암리 방향으로 내려가는 하봉 연습코스 상단 1305m 지점에서 가슴 높이 지름이 무려 125㎝와 88㎝인 초대형 주목 2그루를 발견하기도 했다.

 

또 여기서부터 해발 1264m 지점까지 100여 그루의 크고 작은 주목이 군락을 이루고 있는 것을 확인했다. 환경영향평가서가 전체 사업 지역 안 주목이 모두 35그루라고 밝히고 있는 것과 큰 차이다.

 

j7-1.jpg» 환경단체 우이령사람들 회원들이 스키 슬로프 예정지의 초대형 주목을 측정하고 있다. 사진=우이령사람들
 

주목은 성장 속도가 매우 느려 20~30㎝ 굵기로 자라는데도 약 100년이 걸린다. 따라서 지름 120㎝의 거목이라면 수령은 600~700년, 고려 시대부터 가리왕산을 내려다보고 있던 나무인 셈이다.
 

이 단체 박운상 사무국장은 “지난해부터 7차례에 걸쳐 슬로프와 연습코스, 리프트, 곤돌라 예정지를 현장 답사하면서 노거수를 하나하나 전수조사했는데, 모든 예정지에서 주목이 세대별로 분포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 "덕유산 활강경기장 주목 70% 고사 중"
 

 j8.jpg» 1997년 동계유니버시아드 대회를 위해 산림청의 유전자원보호구역이기도 했던 덕유산의 향적봉 일대 주목 군락이 대규모 피해를 입었고 현재도 진행 중이다. 주목 고사목은 아직도 서 있다.


산림청은 1970년대부터 주목의 도벌을 막기 위해 모든 자생지의 주목에 일련번호를 달아 관리하고 있다. 가리왕산 활강경기장 예정지에서도 주목은 크기에 관계없이 베어내지 않고 그 자리에 보존하거나 인근 지역에 옮겨 심을 계획이다. 그러나 이런 조처로 주목의 자생림을 지킬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이병천 박사는 “국내 최대의 주목 자생지였던 덕유산에 유니버시아드대회 활강경기장을 건설하면서 옮겨심었거나 경기장 주변에 위치한 주목의 70%가 죽고 현재도 죽어가고 있다. 하이원 스키장을 건설한 백운산이나 발왕산에서도 주목이 죽어가고 있다. 주목을 보호하려면 자생지를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j7-3.jpg» 지난 여름에 촬영한 가리왕산 스키 슬로프 예정지의 세대별 주목 군락. 사진=우이령사람들 

 

가리왕산에서 주목이 대를 이어 번식할 수 있는 것은 이곳의 독특한 지형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가리왕산에는 활강경기장 안 7500㎡와 주변을 포함해 약 2만㎡에 걸쳐 사면에 돌 더미가 쌓인 지형인 애추가 분포한다. 이런 곳에는 겨울에 쌓인 눈 밑에서 따뜻한 기운이 나오고 여름에는 서늘하고 습한 미기후가 조성된다.
 

j15.jpg» 스키 슬로프 건설 예정지 인근인 장구목이에 있는 가리왕산 최대의 주목. 스키장 건설로 미기후가 교란됐을 때도 괜찮을지 우려가 나온다.

 

이 박사는 “눈과 안개가 많은 덕유산과 화산암 돌 더미가 애추를 이루는 한라산과 울릉도에서만 주목이 번식한다는 사실은 풍혈 지형이 주요 요인임을 짐작하게 한다. 가리왕산에 스키장이 건설된다면 인근의 핵심 보호구역인 장구목이의 미기후도 교란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선/글·사진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가리왕산을 지키는 ‘3신 나무’와 희귀 수목들
 
j10.jpg» 국내 최대로 추정되는 가리왕산 장구목이의 신갈나무. 세 아름이 넘는다.

 

2010년 설악산국립공원에 편입된 점봉산은 국내 최고의 원시림을 지니고 있다고 평가된다. 그러나 거목에 관한 한 가리왕산이 점봉산보다 윗길이라고 수목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가리왕산에는 환경운동가들이 ‘3신 나무’라고 부르는 국내 최대급 나무 3그루가 있다. 활강 경기장에서 2㎞쯤 떨어진 장구목이에는 가슴 높이 지름이 130㎝인 신갈나무가 서 있다.

 

상처 하나 없이 매끈하게 솟은 이 나무를 끌어안으려면 어른 세 명이 손을 맞잡아도 모자란다. “점봉산에 있던 지름 150㎝의 신갈나무가 1979년 벼락으로 쓰러져 이 나무는 국내 최대의 신갈나무로 보인다”고 이병천 박사는 설명했다. 수령 220살로 추정된다.
 

j11.jpg» 슬로프 예정지에 있는 초대형 들메나무.

 

남자 활강경기장이 건설되는 하봉 아래쪽 능선에는 가슴 높이 지름이 110㎝인 들메나무가 자란다. 1.5m 높이에서 세 갈래로 갈라졌지만 옆으로 자세를 흩트리지 않고 위로 쭉 뻗은 이 나무는 80살로 추정되며, 천수에 가깝게 산 국내에서 보기 힘든 들메나무이다.
 

중봉 여자 활강 경기장 예정지 근처에는 가슴 높이 지름 120㎝의 음나무 거목이 다른 대형 음나무들을 거느리고 서 있다.
 

 j12.jpg» 중봉 여자 활강 경기장 인근에는 가슴 높이 지름 120㎝인 초대형 음나무가 서 있다.

 

‘우이령 사람들’ 조사단이 지난해부터 가리왕산 활강 슬로프와 곤돌라·리프트 건설 예정지를 전수조사한 결과 가슴 높이 지름 50㎝ 이상인 거목은 모두 200그루에 이르렀다. 환경영향평가서에서 “노거수가 65본”이라고 한 것과 큰 차이를 보인다.
 

이 단체의 조사결과를 보면, 가리왕산의 스키장 건설 예정지에는 특히 신갈나무와 소나무 거목이 많았다. 또 왕사스레나무가 남한에서 가장 큰 군락을 이루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 나무는 가리왕산 말고는 남한에선 점봉산에만 분포한다.


이밖에 개벚지나무와 사시나무는 굵기도 굵고 개체수도 많아 남한 내 최대 규모인 것으로 나타났다. 고로쇠나무 거목들도 다른 산에서는 보기 힘든 나무이다.

j13.jpg» 최근 중봉 우회노선 바로 옆에서 발견된 포대형 철쭉.

 

게다가 조사가 계속될수록 보호가치가 큰 나무가 계속 발견되고 있다. 조사단은 지난 22일 중봉 우회노선 바로 옆에서 거대한 철쭉을 새로 찾아냈다. 이 철쭉은 지면부터 5개의 줄기로 나뉘었는데, 각각의 굵기가 18㎝, 17㎝. 14㎝, 14㎝, 10㎝일 정도로 굵다.

 

정선/ 글·사진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 주목이란 어떤 나무?

 

j14.jpg» 주목은 수피와 재질이 붉은 나무이지만 달콤하고 붉은 열매도 맺는다.

 

주목은 한라산, 덕유산, 지리산, 설악산, 오대산 등 1000m 이상의 산에만 분포하는 대표적인 고산수목이다. 강원도와 전북에 가장 많이 분포하며 극동러시아, 중국 동북부, 일본에도 자생하는 상록 침엽수이다. 수피와 나무 재질이 붉어 주목이란 이름이 붙었다.
 

흔히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이란 수식어가 붙는 주목은 더디게 자라는 만큼 나무 결이 곱고 단단해 고급 가구와 건축재료로 인기가 높다. 나무 내부가 썩어도 겉은 멀쩡하게 유지하기도 하며 고사목도 오랜 기간 유지된다. 이 나무에서 항암성분인 택솔을 추출하기도 한다.
 

고산지대의 천연 주목은 줄기가 뒤틀리고 옆으로 자라는 불규칙한 형태이지만 공원이나 정원에 심는 원예용 주목은 곧고 바르게 자라는 차이를 보인다. 주목의 자연적인 번식은 매우 어려우며 정원수로 보급된 주목은 거의 일본산이다. 늦여름에 달콤한 과육이 있는 컵 모양의 열매가 열려 새들의 먹이가 되고 이를 통해 씨앗을 퍼뜨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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떼쓸 때마다 쥐여준 스마트폰에…2살배기 ‘중독의 늪’

등록 : 2013.12.31 21:35수정 : 2014.01.01 11:50

  

[2014 기획] 당신의 디지털, 안녕하신가요 1부

어릴 적 할머니와 자란 27개월 난 보람이(가명)는 돌 이전부터 스마트폰을 직접 쥐고 쓴다. 아빠 전화, 엄마 전화, 할머니 전화의 잠금화면 패턴이 각각 다른데 모두 구분해서 잠금해제 뒤 쓴다. 동영상을 보다가 한편을 다 보면 다음 편을 직접 실행해서 감상한다. 엄마는 보람이가 밥을 먹거나 떼를 쓸 때 30분가량씩 스마트폰을 보여준다. 보람이에게 스마트폰은 일종의 마취제이자 보육도우미다.

 

5살 원철이(가명)는 스마트폰 중독으로 최근 놀이치료를 받았다. 원철이 엄마 강혜진(가명·32·서울 영등포구)씨는 3살까지 아이를 직접 키우고, 아이가 4살 무렵 직장을 구했다. 4살까지는 일상생활에 큰 문제가 없었는데, 최근 어린이집 선생님이 원철이가 친구들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고 전화가 왔다. 집에 와서도 원철이가 점점 스마트폰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스마트폰을 주지 않으면 밥을 먹지도 않고, 잠자리에서조차 스마트폰을 달라고 떼를 썼다. 엄마가 스마트폰을 뺏으면 울면서 엄마를 물고 할퀴기까지 했다. 강씨는 “일을 나가면서 자꾸 아이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어 퇴근 뒤 아이가 원하면 스마트폰 게임을 허용했다. 단호하게 제재했어야 했다”며 후회했다.

 

 

육아도우미 스마트폰, 그 치명적 유혹

 

 

부모가 바쁠 때, 아이 달랠 때
효과 만점인 ‘마법의 육아도우미’
“아이에게 좋지 않단 걸 알면서도
순간순간 유혹 느껴요”

 

최초사용 평균연령 2.3살로 ‘뚝’
자극적 영상이 젖먹이들 현혹
안주면 짜증 작동 안되면 ‘쾅쾅’
“중독 영유아들 공격 성향 심각”

 

 

 

늘 손에 쥐고 있는 스마트폰에 영유아들이 부모와 함께 노출되면서 보육의 새로운 고민거리가 생겨났다. 스마트폰을 ‘마법의 보육도우미’로 쓸 것인가 말 것인가.

 

“순간순간 항상 유혹을 느껴요. 아이에게 좋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바쁘고 급한 상황에서 아이를 어딘가에 집중시켜야 할 때 항상 스마트폰을 사용할까 하는 유혹을 느끼죠.” 13개월 남아를 키우는 양아무개(33·서울 강남구)씨의 얘기다.

 

양육자의 보살핌을 많이 필요로 하는 영유아를 키우는 부모들에게 스마트폰은 마법의 강력한 기능의 육아도우미다. 스마트폰에서 소리가 들리고 자극적인 영상이 보이면 울던 아이도 금세 울음을 멈추고 조용해진다. 그사이 부모는 빨리 집안일을 처리할 수도 있고, 잠시 화장실도 다녀올 수 있다. 자동차나 기차, 버스, 비행기 등에서도 아이들은 계속 움직이고 싶어하는데, 부모들은 스마트폰으로 아이들을 조용하게 만들고 가만히 있도록 만든다. 힘들고 지루하고 통제 불가능한 육아 상황이 스마트폰 하나면 뚝딱 해결되는 것이다.

 

최근 5년간 스마트폰 보급이 급속도로 확산되면서, 스마트폰이 영유아의 삶 곳곳에 스며들고 있다. 우리나라의 가구당 스마트폰 비율은 2012년 기준 63.7%로 전년도의 31.3%에서 1년 동안 두 배 이상 증가했다. 스마트폰 노출 연령도 갈수록 하향화돼, 스마트폰 사용을 시작하는 평균 연령이 2.27살로 조사됐다.

 

반응이 즉각적인 스마트폰은 인터넷·텔레비전과 마찬가지로 영유아에게 오랜 시간 노출되면 폐해가 심각하다. 많은 전문가들은 스마트폰에 너무 이른 나이에 노출되면 영유아의 뇌 발달이 저해되고 성장과 발달에 부정적 영향을 끼친다고 경고하고 있다. 그러나 부모들은 스마트폰의 위험성에 대한 경각심보다는 다양한 이유를 들어 ‘스마트폰 육아’에 나서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12월15일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동의 한 키즈카페 안, 추운 날씨 때문에 실내놀이터를 찾은 부모와 아이들로 북적거렸다. 아이들이 노는 공간과 앉아서 음식을 먹는 식탁이 놓인 공간으로 구성된 이 놀이터에서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는 부모와 아이들은 쉽게 목격됐다. 30개가 넘는 식탁 가운데 다섯곳 정도에서만 서로 대화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나머지 식탁의 어른들은 모두 스마트폰을 이용하고 있었다. 일부 아이들은 뛰어놀고 와서 쉬거나 부모와 대화를 하기보다, 부모의 스마트폰으로 동영상을 보거나 유아용 게임을 했다. 소라(가명·4살)와 민준이(가명·6살)도 나란히 앉아 태블릿과 스마트폰으로 한글 따라쓰기와 그림 그리기를 하고 있었다. 아버지 소아무개(37·서울 영등포구)씨는 “1시간 반 정도 놀다 아이들이 지쳐 보여 교육용 앱을 틀어줬다. 게임이나 동영상은 못 하게 한다. 나이에 맞는 유아용 프로그램만 보여준다”고 말했다. 이날 만난 부모들은 대부분 교육적 목적으로 스마트폰을 보여주는 것은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강했다.

 

5살 아이와 6개월 신생아를 키우는 명아무개(32·서울 성북구)씨는 아예 ‘스마트폰 육아’를 적극적으로 하고 있는 경우다. 청소를 하거나 식사 준비를 할 때, 차 타고 이동할 때, 아이에게 밥을 먹일 때 명씨는 스마트폰으로 아이가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을 보여준다. 명씨는 “다른 아이들도 스마트폰으로 동영상을 보는데 우리 아이만 안 보여주면 오히려 더 스마트폰을 보고 싶어할 것이다. 전자파가 걱정되지만 지나친 억제보다는 적절하게 보여주는 것이 오히려 낫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명씨는 또 아이가 먼저 요구해서 보여주는 것보다는 자신의 필요에 의해 보여주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혼자서 두 아이를 보살펴야 하는 상황에서 불가피하게 스마트폰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스마트폰 보급이 확산되면서 엄마들끼리 대화를 나누는 동안 아이들에게 스마트폰으로 동영상을 보여주는 사례가 빈번하다. 아이들이 돌아다녀서 다칠 염려가 없고 조용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영유아에게는 되도록 스마트폰을 보여주지 않는 것이 좋으며, 보여주더라도 하루 15~20분 이내로 부모와 함께 보는 것이 낫다고 조언한다. 사진은 28일 서울 문래동의 한 카페에서 엄마들이 얘기를 나누는 사이 아이들이 스마트폰으로 동영상을 보고 있는 모습이다. 이 모습은 부모의 동의를 얻어 재현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이처럼 부모들이 다양한 이유로 ‘스마트폰 육아’를 하고 있는 가운데, 일부 부모들은 ‘스마트폰 육아’의 부작용을 여실히 체감하고 있다. 스마트폰의 세계에 자신도 모르게 빠져든 아이가 부모에게 스마트폰을 달라고 떼를 쓰고 소리를 지르는 일이 심심치 않게 발생하고 있다. 심한 경우 아예 현실 세계보다는 스마트폰에만 관심 갖고 다른 아이들과 어울리지 못하거나 우울증 증세를 보이는 등 정서적 문제를 겪는 아이들이 나타나고 있다.

 

28개월 된 리나(가명)의 경우도 그런 예다. 리나는 유난히 엄마에 대한 애착이 심하다. 디지털 기기를 좋아하고 다지틸 기기 사용에 익숙한 아빠 조아무개(38·서울 관악구)씨는 아이를 엄마에게서 떼어낼 때 울리지 않기 위해 스마트폰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그 뒤 아이에게 스마트폰을 보여주는 횟수가 점점 늘었다. 조씨는 “두돌이 지났을 무렵 원하는 콘텐츠가 빨리 다운로드되지 않는다고 딸이 스마트폰을 쾅쾅 쳤다. 그런 조급함은 스마트폰 때문에 생긴 것 같아 이후 스마트폰 사용을 자제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홍석 한림대 강남성심병원 정신과 교수는 “스마트폰 운영체제는 영유아의 뇌가 주로 사용하는 직관과 이미지에 의존해 개발됐다. 이는 영유아가 스마트폰에 중독될 위험성이 가장 높은 군일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부모들은 스마트폰을 보상 기제로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서울 마포구 공덕동에서 한 여성이 아기에게 스마트폰 화면을 보여주고 있다. 김정효 기자

 

출생 후 0~3살 동안은 아이들의 우뇌가 폭발적으로 발달하는 시기다. 우뇌는 사회·정서적 두뇌로서 정서·인지 조절과 같은 비언어적 기능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이런 기능들이 발달해야만 다른 사람의 표정과 마음을 읽을 수 있고 타인과의 상호작용이 가능해진다. 그런데 유아기에 스마트폰 화면처럼 반복적인 자극에 오래 노출되면 우뇌 발달이 지연될 수밖에 없다. 실제로 육아정책연구소가 최근 서울·경기 지역 0~5살 영유아를 둔 부모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미디어에 중독된 영유아들은 대체적으로 정서·사회성 발달이 지체되고 있었다. 연구를 진행한 이정림 육아정책연구소 부연구위원은 “스마트폰에 중독된 아이들은 공감능력이 결여돼 공격적이었고 자아중심적이었다. 자신의 감정에 대한 표현방법도 미숙했고, 전반적으로 발달의 모든 영역에서 지체돼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 연구위원은 “부모의 잠깐 동안의 편함을 위해 또는 교육적 목적으로 준 스마트폰이 우리 아이들의 오감 발달을 저해하고 있다. 영유아 시기는 그나마 부모들이 미디어 노출에 개입하고 중재할 수 있는 시기다. 부모들이 스마트폰 육아의 위험성을 인식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양선아 권오성 기자 anmad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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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행적 박근혜, 진화한 민주주의로 가는 진통 과정"

 

[인터뷰] 조희연 성공회대 교수 "한국, 아시아 민주주의 허브 되자"

곽재훈 기자,임경구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4-01-01 오전 3:05:09

 

다음 각 호의 행위를 금한다. (…) 대한민국 헌법의 개정 또는 폐지를 주장·청원·선동 또는 선전하는 행위, 학교 당국의 지도·감독 하에 행하는 수업·연구 또는 학교장의 사전 허가를 받았거나 기타 예외적 비정치적 활동을 제외한 학생의 집회·시위 또는 정치 관여 행위, 이 조치를 공연히 비방하는 행위.

(…) 이를 위반한 내용을 방송·보도 기타의 방법으로 공연히 전파하거나, 그 내용의 표현물을 제작·배포·판매·소지 또는 전시하는 행위를 금한다. (…) 국회의원이 국회에서 직무상 행한 발언은 이 조치에 저촉되더라도 처벌되지 아니한다. 다만 그 발언을 방송·보도 기타의 방법으로 공연히 전파한 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이 조치 또는 이에 의한 주무부 장관의 조치에 위반한 자는 1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하며 10년 이하의 자격정지를 병과한다. 미수에 그치거나 예비 또는 음모한 자도 또한 같다. 이 조치 또는 이에 의한 주무부 장관의 조치에 위반한 자는 법관의 영장 없이 체포·구속·압수 또는 수색할 수 있다. (…) 이 조치에 의한 주무장관의 명령이나 조치는 사법적 심사의 대상이 되지 아니한다.


1975년 5월 13일부터 실제로 한국에서 시행됐던 '대통령 긴급조치 제9호' 가운데 있는 내용들이다. 이 조치는 조치를 발령한 박정희 전 대통령보다도 40여일 넘게 살아남아, 1979년 12월 8일에야 해제됐다. 이 조치로 인해 구속된 사람은 1387명으로, 974명이 사법적 제재를 받았다. (☞관련기사 보기)

그로부터 34년 후인 올해 3월 21일, 헌법재판소는 긴급조치 9호가 위헌이라는 결정을 내렸다. 많은 피해자들이 재심을 청구해 무죄 판결을 받았고, 국가로부터 배상을 받게 됐다. 서울대 75학번인 조희연 성공회대 교수도 그 중 하나다.

조 교수는 김종수 도서출판 '한울' 대표, 김준묵 전 스포츠서울 회장, 변재용 한솔교육 대표이사, 하석태 전 경희대학교 교수 등과 함께 '아시아 민주주의 인권 기금'을 세우는 데 국가로부터 받은 배상금을 내놨다. 이들 6명은 지난 23일 배상금과 자발적 기부금 등 5억5000만 원을 '아름다운재단'에 기탁해 기금으로 운용하기로 했다. 이들의 의기투합에 '제2의 민주화운동'이라는 수식어가 붙을 정도로 관심이 쏠리고 있다.

<프레시안>은 지난 12월 27일 조 교수를 만나 기금 설립 취지와 향후 계획, 그리고 아시아 민주주의를 고민하는 우리의 민주주의 현실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인터뷰는 박인규 프레시안 이사장이 진행했다. <편집자>



 

▲조희연 성공회대 교수. ⓒ프레시안(최형락)



"민주주의 발전의 결정적 요인은 시민사회 역량 강화"

프레시안 : '아시아 민주주의와 인권 기금' 설립의 과정과 취지를 설명해 달라.

조희연 : 긴급조치 9호 세대가 배상금을 많이 받고 있고, 앞으로도 받는다. 9호 위반자 전체가 1000명이 넘고, 배상액이 상당히 된다. 양민호 '긴급조치 9호 관련자 재심대책위원회' 위원장과 양춘승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상임이사는 배상액 중 5%씩을 모아서 '민주인권평화재단'을 만드는 작업도 하고 있다. 민주인권평화재단은 70~80명이 서약해 규모가 한 40~50억 정도 된다. 그건 우리가 모아서 우리 국내 민주주의를 위해 쓴다는 거다.

저희의 취지는, 이미 사회에서 자리를 잡고 있어 꼭 보상을 안 받아도 되는 사람들이 다액을 출연해 좋은 일을 한 번 하자는 것이다. 반독재 세력, 진보세력이 보수의 눈에서 보면 똑같이 돈, 권력, 명예를 가진 집단이고, 때로는 부패 사건도 나면서 보수를 압도하는 도덕성을 갖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런 점을 반성적으로 보면서 누가 봐도 좋은 일을 하자는 것이다.

원래 1970년대에는 민주주의라는 말 속에 인권이라는 개념도 포함돼 있었다. 법에 의하지 않고 체포되거나 구금되지 않을 권리가 '인권'이었다. 그런 민주주의 정신을 살리는 일을 하는데, 우리보다 여러 면에서 민주주의나 인권에서 어려운 위치이고 상대적으로 저발전된 아시아를 우리가 보듬어 안고 지원하는 게 그래도 새로운 일이고 누가 봐도 충분히 합의할 수 있는 일이니 그런 일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었다.

실제로 한국도 1980년대까지 (민주화 과정에서) 독일, 일본, 미국 등으로부터 많은 지원을 받았다. 우리가 받은 것을 다시 우리보다 민주화가 지체된 곳에 되돌려줄 필요가 있다. 그런 과정이 우리가 지키려 했고 '타는 목마름으로' 소망했던 민주주의 정신을 다음 세대로 넘기고 일반화, 보편화하는 과정이 되지 않겠는가.

프레시안 : 처음에 기금 설립 아이디어는 누가 냈는가? 6명이 5억5000만 원을 모아 '아름다운재단'에 기탁했는데, 이 돈을 어떻게 쓰는 것인가?

조희연 : 아이디어는 제가 냈다. 공감대가 없으면 포기할 생각도 했지만 김준묵 선생 등이 적극 화답하고 공감해 저도 용기를 얻어 의기투합한 셈이다. 기금은 우리가 기탁해 아름다운재단이 쓰게 된다. 그런데 낸 돈을 허물어 사용하고 마는 게 아니라, 그 정신이 좋으니 사회적 캠페인으로 하자는 것이다.

처음 6명이 5억5000만 원을 낸 다음에 14명이 추가로 1차 기부자로 나섰다. 이분들은 배상금 중에 5%는 변호사비로 내고, 5%는 민주인권평화재단에 기탁하셨는데 한 100만 원 정도 출연했으면 좋겠다 생각해서 말씀을 드렸더니 응했다. 이필렬 방송통신대 교수 같은 경우는 1000만 원이나 내셨다. 이 14분이 내신 것만 2000만 원이 넘는다. 여기에 일반 시민들도 참여하면 일정한 액수가 되지 않겠나? 더 규모를 키워 좋은 일을 하면 어떻겠나 한다.

프레시안 : 일단은 긴급조치 9호 위반자들 보상금으로 시작하지만 피해자 아닌 일반 시민들도 참여할 수 있게 한다는 구상인 것 같다.

조희연 : 그렇다. (23일) 기자회견도 그런 취지에서 했다. 널리 알려서 기금을 받고, 취지에 동감한다면 같이 해보자는 것이다. 우리 아이한테도 '아빠가 좋은 일 하니 너도 10만 원이라도 같이 해보자'고 해서 확답을 받은 상태다. (웃음) 언론이 주목해 주고 일부 신문에서는 '제2의 민주화 운동'이라고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더 큰 옷을 입혀주기도 했다. 송구스러운 한편 더 적극적으로 해야겠다는 다짐도 했다.

프레시안 : 아름다운재단에서는 기금을 어떻게 활용할지 구체적 계획이 있는 것인가?

조희연 : 몇 가지 예시가 있는데, 아시아 각국 민주주의 지원은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나 5.18재단도 하고 있다. 아시아 정치 난민 지원, 대항언론 지원, 시민사회 발전을 위한 인력 및 교육 지원 등이다. 지금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중요하지만 복사기도 중요하니(웃음) 복사기 사서 지원도 한다. 이런 것들을 포함해, 아시아 민중의 인권이라는 게 포괄적 개념이니 좋은 사업을 안출하는 것도 일일 것 같다.

우리는 사실 기금만 기탁하고 끝내려 했는데, 커뮤니티를 만들어 어떤 사업을 할 것인지도 논의해야 하고, 어떤 단체와 파트너로 사업할 건지도 고민해야 할 것 같다. 궁극적으로 민주주의 발전의 결정적 요인이 뭐냐 하면, 시민의 힘의 발전이다. 시민의 역량, 시민사회 역량을 강화하는 그런 사업을 많이 개발하면 좋겠다. 또 하나, 아시아 문제에 관심을 갖는 한국의 청소년들이 아시아 민주주의 지원 사업을 하면 지원할 수 있도록, 청소년을 통해 지원하는 일도 이뤄지면 좋겠다. 현재로서는 이 정도를 생각하고 있다.

"민주주의 지원은 '국익' 관점으로 접근하면 안 돼"

프레시안 : 아름다운재단을 통로로 삼은 건 어떤 이유에서인가?

조희연 : 아름다운재단이 시민사회를 기반으로 국민들에게 공신력을 갖는 재단이 된 것 같다. 그 공신력에 결합하는 의미도 있었고, 더 적극적으로는 아름다운재단이 대한민국의 아름다운재단이 아니라 아시아의 아름다운재단으로 시야를 확장하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지금도 한국 민주주의와 인권 발전을 놓고 우리가 싸우고 갈등하고 있으니 후진적인 것 같지만, 비교사회적 관점에서는 그렇지 않다. 한국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서도 싸우되 그 에너지의 20~30%는 아시아에 투영하면 좋겠다. 제가 참여연대 창립 멤버인데, 참여연대에도 예컨대 간사가 50명이면 그 중 30%는 아시아에 투자하자고 하고 있다. 그럴 정도가 됐다고 본다. 참여연대나 아름다운재단 정도면 아시아 국제조직의 성격이 있어야 한다.

프레시안 : 한국이 1987년 민주화 운동을 통해 아시아에서 자력으로 민주화를 이룬 거의 유일한 나라인데, 조 교수는 아시아 민주주의에 대한 비교연구를 많이 한 것으로 안다. 동남아 등 아시아의 다른 국가에서 한국의 민주주의와 민주화 운동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조희연 : 물론 민주주의를 서구식, 미국식 기준으로 일렬 종대로 세워 '이 나라는 높이 발전했다', '이 나라는 아니다' 이렇게 비교하기는 쉽지 않지만, 동북아시아의 한국, 일본, 대만은 그래도 일반적인 선거나 시민적·정치적 권리의 보장이라는 점에서 높은 수준에 와 있는 것으로 본다. 동남아는 여전히 상대적으로 지체돼 있고, 버마 같은 나라는 민주주의 이행 과정에 본격적으로 진입하지 못했다. 그렇게 3가지 유형이 있는 것 같다.

아시아에는 상당한 정도로 한국 시민사회와 민주주의에 대한 부러움이 있다. '한류'에 대한 선망 속에는 물론 한국의 문화와 경제 발전에 대한 선망도 있지만, 그 정치적 역동성과 시민사회의 발전, 비정부기구(NGO)의 강력한 힘에 대한 선망도 있는 것 같다.

제가 몸담고 있는 성공회대학교에 '아시아 시민사회 지도자 과정(MAINS)'이라는 석사 과정이 있는데, 전액 장학생으로 10명의 아시아 민주주의 활동가를 초빙해 교육하는 사업이다. 여기 오시는 많은 분들이 한국의 운동에 대한 선망을 갖고 온다. 태국 출신 활동가가 많고, 파키스탄, 필리핀, 인도에서도 오는데, 한국이 상대적 민주주의 선진국처럼 인식돼 있다. 이게 나쁘지는 않은 것 같다. 한국이 아시아 민주주의의 선도 국가로 지속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프레시안 : 그러나 한 가지 우려는, 이런 민주주의 지원 사업이 피지원국의 민주주의 발전보다 자칫 지원국의 국익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조희연 : 정당한 우려다. 미국 민주주의진흥재단(NED) 같은 경우가 그런데, 저는 그래서 NED 모델을 따르면 안 된다고 본다. 민주주의 지원 사업은 어떨 때에는 오히려 국익과 반대로 가야 한다. 경제적 지원 프로그램인 공적개발원조(ODA)처럼, 정치적인 공적 부조로 민주주의 지원(democracy assistance)이라는 개념이 있다. 이 영역이 확장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고 아시아 민주주의 인권 기금이 거기 기여하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절대 수출론적인 입장으로 국익이나 기업의 이해와 같이 가면 안 된다고 본다.

예를 들면 한국 기업이 이미 동남아에 가서 많은 돈을 벌면서 노동 착취, 인권 탄압도 해 왔다. 그것을 상쇄하는 역할, 아시아에서 활동하는 한국의 다국적 기업과 싸우는 동남아의 노동자와 빈민들을 지원하는 역할을 했으면 한다. 방금 NED 얘기를 했는데, 지난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도 '민주주의 이식'이라는 목적이 있었지만 민주주의는 '이식'될 수 있는 게 아니다. 다만 민주주의를 자력으로 가능하게 하는 민중의 힘을 키우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하는 데 고민의 초점을 둬야 한다.

"北도 민주주의 거부 안돼…'북한 특색의 민주주의' 고민해야"

프레시안 : 아시아 민주주의 문제에서 사실 중국과 북한이 빼놓을 수 없는 문제이다. 중일 갈등의 복판에서 일본은 한국에 '같은 민주주의 국가끼리 힘을 합하자'고도 하고 있다. 국내 보수세력들은 아시아 인권을 얘기하면 '북한 인권부터'라고도 한다.

조희연 : 사실 '민주주의 지원'에서 굉장히 조심해야 하고, 자칫 NED 식으로 갈 수 있다는 부분이 그런 부분이다. 물론 NED도 일부에서는 무슨 미 중앙정보국(CIA) 돈을 받는다느니 하는 편견이 있지만 90%까지는 통상적 지원이고 10% 정도가 미국 국익과 같이 가는 지점이 있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는 실무적으로 지원이 이뤄지고 있고 그런 점은 이해해야 한다.

북한 부분에서 바로 그런 문제가 튀어나올 수 있다. 이게 북한의 딜레마이면서 남한 내 '반미 자주파'의 딜레마이기도 한데(웃음), 1970년대까지는 남북한 체제가 수평적인 경쟁관계였지만 1970년대 후반을 넘어서며 남이 북을 경제적으로 앞서기 시작했고, 1987년 6월 항쟁을 통해 정치적으로도 앞서기 시작했다. 체제 경쟁에서 이미 남한이 북한을 굉장히 앞서는 상황이다.

 

▲조희연 성공회대 교수. ⓒ프레시안(최형락)

그런 면에서 보면 북한도 인권이 보장되고 북한 특유의 민주주의가 실현되는 방향으로 가는 게 맞다고 본다. 따라서 일정 측면에서는 아시아 민주주의 지원 사업에 북한에 대한 민주주의 지원 역시 포함되거나 중첩될 수 있다고 인정된다. 그러나 북한 민주화 지원은 분리해서 다른 영역으로 하지 않으면 아시아 민주주의 지원의 순수성이 의심받고 국내에서 정치적 쟁투의 대상이 되거나 오해를 받을 수 있다. 아시아 민주주의 지원은 그 자체로 순수하게 다른 범주로 분리하는 게 좋다고 본다.

제가 과거에 중국 민주주의와 관련해 '중국 특색의 민주주의(democracy with Chinese charactristics)'라는 글을 썼다. 대만에 6개월 정도 강의하러 가 있을 때 쓴 것인데, 중국 학자들을 설득하기 위해 쓴 논문이다. 현재 중국의 가장 큰 딜레마는 경제적인 산업화는 성공했지만 정치적 민주화의 도전 앞에 있다는 것이다. 중국이나 북한 지식인들에게 생각해 보라고 하고 싶은 것이, 미국식 민주주의를 그대로 이식할 수는 없다는 전제에 서되, 민주주의를 거부하는 체제가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지금 민주주의에 대한 2가지 견해가 있다. 하나는 '과잉-보편주의'적인 민주주의관으로, 서구식 민주주의만이 절대적이라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과잉-특수주의'적인 민주주의관으로, 민주주의를 결국 외부 사람이 자기 체제를 붕괴시키기 위한 이데올로기로만 보는 것이다. 중국이나 북한 당국자들의 시각이다.

프레시안 : 박정희 유신정권의 '한국식 민주주의'도 '과잉-특수주의'일 것 같다.

조희연 : 그렇다. 저는 그래서 과잉-보편주의나 과잉-특수주의 민주주의관을 넘어서서 '중국 특색의 민주주의'를 고민해 보라는 문제 제기를 한 것인데, 북한에 대해서도 같은 주문을 하고 싶다. 무슨 뉴라이트 단체처럼 '삐라' 뿌려서 체제를 붕괴시키려 하는 식으로 민주주의를 활용할 건 아니다. 북한 체제가 사회주의라는데, 원래 사회주의가 사회주의적 민주주의, 인민민주주의 아니냐. 물론 그 과정에서 인민이 체제 붕괴를 원한다면 그것 역시 민주주의에 부합하는 것이고 소련이 그 길로 간 것이다.

과거 동아시아에 3가지 국가사회주의가 있었는데, 소련은 민주주의의 도전, 서방식 정치 및 경제적 발전의 요구를 완벽히 거부함으로써 붕괴됐다. 중국은 정치적인 민주주의 요구는 거부했지만 경제적 요구를 수용함으로써 체제는 유지했으나 지금 정치적 민주화의 도전에 직면해 있다. 북한은 둘 다 거부한 채 아직 체제를 유지하고 있으나, 북한에도 여러 경로가 있을 수 있고 나름대로 자기 개혁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프레시안 : 지난 10월 아시아민주주의네트워크'(Asia Democracy Network, ADN)도 출범했는데 이들과 아시아 민주주의 인권 기금의 역할 차이나 분담이 있을까?

조희연 : ADN은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의 신형식 기획조정실장과 이성훈 한국인권재단 상임이사 등이 실무적으로 주도하고 있다. 2~3개월 정도의 논의 과정을 거쳐 만들어졌는데 사무국 역할을 한국이 하게 됐다. ADN에는 아시아개발연대(ADA)부터 아시아 자유선거를 위한 네트워크(ANFREL) 같은 공정선거 감시 단체, ODA 감시 단체, 남아시아 지역협력단체, 동북아 평화단체, 국제투명성기구(TI) 등 아시아의 거의 모든 국제조직이 다 모여 있다. 민주주의라는 것이 공명선거와 개발, 투명성 등을 다 포괄하는 지점이 있기 때문인데, 포괄적 의미의 네트워크, '네트워크의 네트워크'인 셈이다. 우리도 기금이 많이 모아진다면 ADN과 협력해 지원사업을 할 수도 있을 것으로 본다.

프레시안 : 한국이 아시아 민주주의 운동의 허브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인가?

조희연 : 그럴 수 있다. 식민지 경험이 우리의 도덕적 자원인 것 같다. 중국이 '아시아'를 얘기하면 바로 과거의 제국, 중화주의의 기억이 살아난다. 일본이 하면? 바로 대동아공영권이다. 그러니 한국이 좀 했으면 한다. 그런데 뉴라이트는 여기서 북한을 아예 배제하고 붕괴시키려고 하는데, 박은홍 성공회대 교수가 지적했듯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 아세안)과 버마의 관계를 따르면 좋겠다. 버마에서 미얀마 정부가 아웅산 수치를 연금하는 등 군사독재를 했지만 아세안은 버마를 배제하지 않았다. 배제하면 할수록 동남아시아 지역 안보에 위협이 되기 때문이다.

동북아도 그렇다. 북한을 악마화(demonize)하면 한국과 일본의 우익세력은 좋을지 몰라도 모든 국제적 불안정의 근원이 된다. 그래서 아세안의 버마 관리 모델을 따르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결국 버마는 타협된, 관리된 민주주의의 경로로 갔다. 미얀마 정부의 군부나 집권층들이 체제 붕괴를 염려하지 않고 민주화의 길로 갈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북한도 초입은 그래야 한다. 동북아 지역안보 체제에 북한을 배제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끌어들여야 북한도 그런 길을 갈 수 있다. 체제 붕괴? 그 나라 민중이 판단할 문제이지 한국 뉴라이트가 판단해줄 문제가 아니다.

프레시안 : 동아시아도 북한을 '버마 모델'로 풀어야 한다는 말인데, 동아시아 내 갈등을 풀기 위해서라도 남북 화해가 중요하다는 것은 전문가들이라면 누구나 하는 이야기다. 그러나 국내정치적으로 보면 천안함·연평도 사건을 거치며 반북 정서가 불어났고, 이 반북 정서가 보수의 국내정치적 지지를 동원하는 데 너무 좋은 도구가 됐다. 2010년 이후 계속 반북 정서로 보수가 정치 장사를 하고 있는데, 이런 상황에서 북한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하나?

조희연 : 북한이 자기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군사력 강화 정책은 일본의 보통국가화, 군사대국화, 군국주의화를 촉진하는 요소가 된다. 북한은 이미 악마화된 이미지를 갖고 있다. 한 번 악마화되면 좋은 행위를 해도 그건 '위장 전술'이 되고, 나쁜 행위를 하면 본질이 발현되는 것이 된다. 뭘 해도 나쁘다. 그래서 이 지점에서 북한을 악마화하면 할수록 북한은 또 체제 유지를 위해 핵개발을 하는 등 자폐적인 전략을 강화할 수밖에 없다. 이는 다시 동북아의 정치군사적 불안정을 낳는다. 그래서 '버마 모델'을 말한 것이다.

북한 입장에서도 어떻게 스스로를 타자의 시선으로 볼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 타자의 시선, 비판자의 시선으로 자신을 보는 것이 성찰성이고 역지사지의 능력이다. 북한도 그런 생각을 가졌으면 한다. '북한이 주도하는 햇볕정책' 같은 것도 생각할 수 있다. 북한이 악마화된 자신의 이미지를 해체하기 위한 적극적 전략을 편다면, 동북아 지역협력 체제에 편입돼 자기들 체제 보장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꼭 '미국 주적론'의 관점에서 '미국 때문에 이런 문제가 생겼으니 내가 취하는 전략은 언제나 정당하다'는 생각만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한국에서는 이른바 '종북' 담론 부상이 문제인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과거에 박정희 정권이 써먹던 '빨갱이' 담론은 지배 이데올로기로써 권력에 의해 강요된 담론인 반면, 지금의 종북 담론은 상당히 의사(擬似) 합의적 담론 같은 성격이 있다는 것이다. 2008년 2월 민주노동당 분당 과정에서 진보 세력 일부가 '종북'을 비판하며 이게 국민적으로 확산된 담론처럼 됐다.

이런 가운데 박근혜 정부나 국정원은 수시로 종북 담론을 끌어내 이제 '노조에도 종북이 있다', '공무원 중에도 있다', '교사도 있다' 하면서 정치적으로 악용하려고 한다. 민주노동당-진보신당 분당 후에도 2012년 부정 경선을 둘러싼 통합진보당의 악마화 과정이 덧붙여지면서 국정원이 종북 담론을 국내정치에 악용할 수 있는 지반이 확장됐다.

한국에서도 90%가 권력의 강요에 의한 것이라면, 10%는 스스로의 잘못된 전략과 오류에 의해 확산됐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2008년 분당의 원인이 된 일심회 사건의 경우, 당원 명단을 북한에 넘긴 것은 분명한 범죄적 행위이고, 이를 정정하라는 요구를 조승수, 심상정 의원이 제기해도 받아들여지지 않으니 '종북'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당을 나오게 된 빌미가 되지 않았나. 그런 점에서 성찰적 자기 전환 같은 것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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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연 교수. ⓒ프레시안(최형락)



"국정원 대선개입, 한국 민주주의 발전 과정의 일부다"

프레시안 : 그렇게 다른 아시아 국가에서는 한국 민주주의가 선망의 대상이라고 하는데, 그게 체감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이명박 정부도 '독불 정치'로 나갔고,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됐을 때 '그래도 박 대통령은 원칙을 지키고 사(私)보다 공(公)을 앞세우지 않겠나'하는 기대가 있었는데 채워지지 않고 있다. 기존에 이룬 민주주의의 성취도 무너지는 느낌이다.

조희연 : 저는 그 점은 약간 여유 있게 보고 있다. 예를 들면 촛불집회하면서 싸울 때는 '(박근혜 정부가) 유신 시대로 돌아갔다', '신(新)파쇼체제가 등장했다'고 비난할 수 있지만, 아시아 전체 민주주의의 맥락에서 보면 한국이 겪는 진통은 한 단계 높은 민주주의로 가기 위한 적극적 진통 과정이라고 본다.

현재 한국 민주주의에서 주요한 갈등은 정치적 민주주의에서 사회·경제적 민주주의로 가는 진통이라고 본다.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87년 항쟁으로 이룬) 한국 민주주의를 공습해 무너졌고 '반독재 민주정부'도 그것을 방어 못하고 붕괴했다. 그래서 비정규직, 양극화 등 많은 문제가 발생했다. 저는 이게 사회·경제적 민주주의로 가는 과정이라고 본다.

국정원의 선거 개입 문제도 과거와 동일한 성격이 있지만, 다른 한 편에서 보면 국정원을 제자리로 돌려놓는 과정, 더 심화된 형태로 민주주의적으로 재편하기 위한 과정인 것 같다. 민주정부 10년 동안 국정원의 정치 개입이 통제됐었지만 그 이전까지는 국정원이 정치 영역에서 장막 뒤의 행위자(behind actor)로 중요하게 작용하고 있었다.

이번의 아주 극단적으로 퇴행적인 정치 개입을 통해 이미 존재해 왔던 국정원 선거개입이 공론장으로 떠오르고 있고, 거기 대해 민주적 규제를 하려고 하는 진통 과정을 겪고 있다고 본다. 형태상으로는 이미 성취한 민주주의가 퇴행한 것을 회복하는 과정인 것처럼 보이지만, 단순한 '회복'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질적 심화, 사회·경제적 심화라는 한 단계 진화한 갈등의 주제가 결합해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본다.

즉 현재 한국이 가진 사회·경제적 문제점들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이고, 이것을 제대로 처리한다면 아시아 민주주의의 새 모델이 되는 것이다. 한국 민주주의를 사회·경제적 민주주의로 '업그레이드'할 수 있다면 아시아의 신생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처음 있는 일이다. 아시아에는 본격적인 사회·경제적 민주주의를 실현한 나라가 없고, 싱가포르가 내용적으로는 어느 정도 실현하고 있지만 그건 냉전 시대에 사회주의의 위협 속에서 싱가포르 권위주의 체제가 사회민주주의적인 요소를 받아들인 것으로 맥락이 좀 다른 측면이 있다.

프레시안 : 박 대통령 집권 과정에서 경제민주화와 복지 공약을 내세운 것이 바로 사회·경제적 민주화가 우리 사회의 주요한 의제가 됐다는 증명인 것 같고, 박 대통령 역시 이것이 시대적 요구라는 것을 알았던 것 같다. 그런데 집권 이후 관련 공약들이 파기되고 있는데, 이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조희연 : 2012년 12월의 박근혜가 있고, 2013년 12월의 박근혜가 있다. 이 둘 사이에는 커다란 격차가 있다. 2012년 12월의 '전향적 박근혜'는 왜 탄생했느냐, '반독재 민주정부'에 대한 실망과 좌절, 민심의 이반 위에서 '선진화' 담론을 내세운 이명박 정부가 집권했다. 유권자들은 '선진화'라는 이름에서 높은 수준의 민주주의와 민생 민주주의를 연상했지만, 5년간 기업 친화적인 정책과 4대강 사업 같은 대형 개발 프로젝트만 하면서 실망과 좌절이 쌓이고 중산층과 자영업자의 삶은 붕괴했다. 여기에서 광범위한 불만이 생겨났다. 보수세력이 권력을 상실할 것 같은 위기 속에서 극약 처방으로 '전향적 박근혜'가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화장실 갈 때와 나올 때 마음이 다른 것처럼, 집권 후에는 본인 스스로가 그런 약속(에 대한 의지)이 약해지는 것이 있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보수 내부의 반발이다. 기업들이 나서서 '공약은 공약일 뿐'이라는 메시지를 던지는 것은 '전향적 박근혜'를 '이전의 박근혜'로 되돌리기 위한 작업이다. 저는 박 대통령이 대차게 나가야 한다고 본다. 진보의 입장에서는 '2012년의 박근혜'가 더 큰 도전이고 어려움이다. 보수가 진화한 만큼 진보도 업그레이드돼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2013년의 박근혜는 '퇴행적 박근혜'다. 대중의 불만과 국정원 선거개입 사건에 대한 저항을 체제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하고 신 권위주의 방식을 취했다는 것은 문제다. 지금 그것이 전면화돼 나타나는 양상이 아닌가 한다.

프레시안 : 불만이 전면화됐다고 하지만, 사실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이 가지는 중대함에 비해 대중의 분노 정도는 약하지 않았나?

조희연 : 한국민들의 전통적이고 관행적 지혜가 집권 1년에서 1년 반 정도 '공약한 대로 마음껏 해 보라'는 여유를 주는 것이다. 그게 새 정부와 언론, 새 정부와 국민 간의 밀월이다. 그런데 이 기간 동안 박근혜 정부는 충분히 부응하지 못한 것 같다. 저는 솔직히 2013년 12월의 '퇴행적 박근혜'의 모습이 어디서 나오는지 고민이다. 정치학자들끼리 모여서 얘기하다 보면 박 대통령 특유의 캐릭터가 있는 것 같고, (박 대통령 주변의) 집단이 가지는 역사적 특성도 있는 것 같다.

예를 들면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의 등장은 김 실장 개인의 등장이 아니라 많은 지점에서 '70대'라는 집단의 등장이다. 이건 (박 대통령이 김 실장으로 대표되는 집단을 국정 동반자로 선택했다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박근혜 정부 집권세력이) '박근혜를 상징군주로 하는 30년 만의 보수 대연합'이라는 것이다.

이 헤게모니 세력의 성격은 이제 70대가 된 관료 집단과 군(軍), 그리고 검찰이라는 공안 세력이다. 이들은 지난 20년 민주화의 진통 속에서도 변하지 않은 것 같다. 박 대통령 본인도 민주적 쟁투 과정에서 훈련받을 기회가 없었다. 정치 이력을 봐도, 천막 당사에서 구세주처럼 나타나지 않았나. 그러니 갈등을 조정하고 대중과 소통하고 타협도 하는 그런 리더십이 아니다.

박근혜 정부가 좀 성찰적으로 봤으면 좋겠다. 지금 대중은 과거의 대중이 아니다. 높은 기대를 갖는 대중이고, 독재를 무너뜨렸던 대중이다. 노무현 정부에 대해서도 성이 안 찼던 대중이다. 그들과 마주하고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보수가 스스로 마지노선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을 좀 허물면서 가라고 주문하고 싶다.

"2012년 탄생한 '전향적 박근혜'의 퇴행은 모두의 불행"

프레시안 :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에 대한 대중의 반응과는 대조적으로, 민영화 이슈에 대해 대중의 반응은 상당히 높은 강도다. 절차적 민주주의에 대해서는 내면화된 믿음이 있지만, 사회·경제적 민주주의에 대해서는 더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다는 지표일까?

조희연 : 그런 면이 있다고 본다. 이명박 정부 5년을 거치며 친기업 정책, 신자유주의 정책에 대한 대중의 비판적, 저항적 감수성과 분노가 확대된 면이 있다. 이곳 서울 합정동에도 3~4개월 동안 재래시장 상인들이 (대형 마트 입점에 반대해) 천막을 치고 투쟁하기도 했다. 칼 폴라니가 '시장의 지배력이 전 사회적으로 확장되면 사회의 자기 보호 본능이 발현되면서 시장에 저항하게 된다'고 했는데, 재래시장 상인이나 자영업자 같은 전통적 집단들의 저항에는 그런 성격이 있다. 산업·금융 쪽에 있던 대자본이 유통 분야로까지 오면서 자기 삶이 급속히 붕괴되는 데 대한 사회적 저항인 셈이다.

철도 민영화에 대해서도 '재정 적자를 줄이기 위해 불가피하다', '국제 경쟁력 강화를 위해 불가피하다'는 정부의 논리가 과거에 비해 이미 폭넓게 수용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변화가 있다. 민영화가 세계적 추세인 것은 사실이지만 어느 수준의 민영화를 할 거냐, 대중이 어느 정도까지 수용하느냐는 충분히 다를 수 있다. 그리고 한국은 전 세계적으로 봐도 민영화에 대한 굉장히 폭넓은 저항적 감수성이 있는 사회다. 한국의 보수정부도 미국·영국식으로만 할 게 아니라, 한국 대중에 맞게 민영화 정책을 재구성할 필요가 있다. 철도 민영화가 아니라고 하지만, 설사 민영화가 맞더라도 한국 대중의 태도가 영·미와는 다르니 정부도 거기 맞는 태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프레시안 : 달라진 국민적, 시대적 요구에 박근혜 정부가 눈을 떠야 한다는 주문인 것 같다. 그런데 그게 가능할까?

조희연 : 박근혜 정부가 취하고 있는 강경정책은 굉장히 오래되고 익숙한 통치전략이다. 이런 오래된 전략과 변화된 대중의 인식 간 격차가 있는 것 같다. 만약 박근혜가 MB의 위치에 있었다면,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MB가 아닌 박근혜가 이겼다면, 박근혜 역시 MB의 전철을 밟았을 것이라고 본다. 그런데 '2012년 12월의 박근혜'는 정확히 박정희 모델을 따라한 MB가 국민적 저항을 받는 것을 보고 그 모델을 수정해야 하는 위치에 서 있었다. 거기서 '전향적 박근혜'가 탄생했다.

그런데도 MB의 실패 경험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모델을 그대로 답습하려 하는 것은 박근혜 정부로 보나, 한국 민주주의 발전의 측면에서 보나, 한국의 민주주의 발전을 기대하는 아시아 민중의 입장에서 보나 불행이다. 한국의 보수는 중도화될 필요가 있다. 한국의 대중은 높은 평등주의적 기대를 갖는 대중이기 때문이다.

프레시안 : 현실 정치에서 보수의 정치 메커니즘이 민주주의와 친화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조희연 : 사회에는 언제나 적대적 갈등과 비적대적 갈등이 있다. 민주주의는 적대적 갈등의 의제를 비적대적 갈등의 영역으로 만드는 것이고, 그러려면 공론장이 확장돼야 한다. '너는 빨갱이니 배제한다', 이런 게 아니라 이슈를 공론장으로 끌어와 타협적인 정치 가공을 해야 한다. 그래야 민주주의 선진국이다. MB가 내건 '선진화'의 진정한 의미가 이런 것이다. 사회·경제적 민주주의, 더 많은 협의제 합의제 민주주의로 가는 것이다.

그런데 (MB 정부는) 정반대로 퇴행하고 권위주의적으로 갔다. 제가 주장하는 '보수의 중도화'란 이런 측면을 지적한 것이다. 보수가 진보적 의제를 자기 식으로 융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진보는 체질상 더 급진화되기 쉽고 보수적 주장을 수용하기는 어려운데, 상대적으로 보수는 편한 위치에 있다. 보수의 중도화가 이뤄지면 오히려 보수의 정치적 기반이 확장될 것이다.

프레시안 : 보수의 중도화는 상당히 공감대를 얻을 수 있는 전략이고, 지난 대선에서 그 효과가 확인됐는데, 막상 집권 뒤에는 왜 정치적 이득이 되는 그런 통치 전략을 구사하지 못하는 건가?

조희연 : 제가 진짜 궁금한 게 그거다. (웃음) 왜 그렇게 나가야 하느냐, 그러다 보니 이게 혹시 체질이거나 역사적으로 내재화된 성격이 아닐까 하는 것이다. 이런 것들이 연령적으로 70대인 집권 엘리트들의 문화 속에서는 너무 자연스러운 것 같은 느낌이다.

프레시안 : 민주주의의 갈등 구조에 대해 얘기하면서 '공론장'을 언급했는데, 흔히 한국사회를 '기울어진 운동장'에 비긴다. 특히 언론 지형은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며 9:1 정도로 보수 우위가 됐고, 종편 출범에 이어 '지상파의 종편화(化)'라는 말까지 나온다. 이런 언론 환경이 지금 집권세력에게 자아도취를 주지는 않을까?

조희연 : 공론장에 심대한 왜곡 현상이 발생하는 것 같다. 공론장이 왜곡되면 전반적 여론분포를 보수에 유리하게 해석하게 되고, 그러면 정책 처방이 왜곡돼 보수에게도 독이다. 종편 출범은 보수 언론의 힘을 공중파 영역까지 확장하는 것이고, 여기 자본의 힘이 들어오는 것이다. 이미 강력한 자본권력의 힘이 언론기업과 결합해 공론시장을 보수적으로 확실히 재편하려고 하는데 이게 문제다. 한 번 허가된 종편을 취소할 수도 없고…. 오히려 다음에 진보적 종편도 만들고 해서 역으로 다원화하는 수밖에 없지 않나 한다. 있는 것을 없애기는 어렵다. 저항이 너무 심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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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시안(최형락)



"민주-반민주 구도로는 불충분…한국이 아시아 민주주의 선도 모델 돼야"

프레시안 : 민주당 대선후보였던 문재인 의원이 최근 낸 책 <1219 끝이 시작이다>에서 '민주 대 반(反)민주' 구도가 여전히 유효하다는 주장을 폈다. 민주 대 반민주 구도는 절차적 민주화에서 연원한 것이지만, 야당이 스스로를 도덕적으로 옹호하기 위한 방패가 되기도 했고, 지금에 와서는 사회·경제적 민주화로 나아가지 못하는 한계가 되기도 한다. 현재 상황에서 '민주 대 반민주'가 여전히 야권이 제기할 수 있는 효율적이고 타당한 전략일까?

조희연 : 정치학에서 '87년 체제'라고 하는데, 1987년의 시기에는 독재의 유산을 척결하기 위해 '민주 대 반민주', '독재 대 반독재' 구도가 유효하게 존재했고 정치적 갈등의 지배적 의제였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국정원 대선개입 문제 등 독재 유산과의 싸움이 여전히 남아 있기는 하지만, 저는 지배적 의제의 전환에 착목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저는 '포스트 민주화'로의 전환이 있었다고 본다. MB정부부터 시작된 보수정부 10년은 일종의 '민주화 이후 시대'다. 그 시대는 '민주 대 반민주'라는 민주화 의제도 갖고 있지만 다른 새로운 의제, 새로운 갈등과 분노, 요구들이 나타나고 있다. 이런 새로운 저항성을 끌어안는 '민주화 이후 시대'의 새로운 전선 구성을 해야 한다.

박근혜 정부가 과거의 파쇼적, 반민주적 유산을 여전히 갖는 방식으로 존재한다는 것은 이른바 민주진영에는 강점이다. 저항의 전선에 '민주주의'라는 국민적 합의담론을 가져갈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일부일 뿐, 그것만으로는 박근혜 정부를 이길 수 없다. 국정원 대선개입에 대한 싸움조차 필요조건이지만 충분하지는 않다. 많은 경우 '다시 87년으로' 라고 하면서 민주 대 반민주 구도를 '회복'해야 한다는 관점을 취하는데, 새로운 저항의 주체가 나와 새로운 전열, 새로운 대치선이 만들어질 때 박근혜 정부를 넘어설 수 있다고 본다.

충분조건은 이런 것이다. 젊은 세대가 겪는 새로운 모순이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대자보로 표출됐다. 이들의 새로운 분노를 끌어안고, 사회경제적으로는 자영업자들의 분노까지 끌어안는 저항의 연합전선, 무지개 전선을 만들어야 박근혜 정부를 넘을 수 있다.

박근혜 정부의 입장에서는, 불필요한 주제로 싸우는 것은 굉장히 소모적인 일일 뿐이다. '보수의 중도화'를 통해 과감한 전환을 해야 하고, 새로운 미래지향적 주제를 가지고 싸우는 게 좋다. 박근혜 정부도 그렇게 앞으로 나가면 좋겠다.

프레시안 :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조희연 : 아시아 각국의 상황을 보면, 선거를 통한 정치적 민주주의는 태국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동남아 국가들도 상당한 수준에 올라섰다. 지금 아시아는 한 단계 높은 민주주의의 모델을 누가 만들 것이냐를 두고 경쟁하고 있다.

여기에는 3가지 모델이 있다고 본다. 하나는 '민주화된 싱가포르' 모델이다. 싱가포르는 냉전 시대 사회주의의 위협 속에서 국가에 의한 주택 공급 등 사회민주주의적 요소를 가지게 됐는데, 이런 싱가포르 모델이 권위주의를 넘어 민주화될 때 새로운 대안이 될 수 있다.

다른 하나는 '민주화 및 재사회화된 중국' 모델이다. 중국은 사회주의 국가로 출발했지만 개혁개방 이후 지니계수가 세계에서 가장 높은 불평등한 국가가 됐다. 중국 혁명의 사회주의적 요소를 재정립해야 하고, 정치적 민주화 도전도 겪고 있다. 만약 중국이 이 '병목 지점'을 돌파한다면 새로운 모델이 될 수 있다.

마지막 하나는 '사회·경제적 민주화를 실현한 한국' 모델이다. 한국은 정치적 민주화는 상당한 수준에 올라 있다. 저는 한국이 새로운 모델을 만들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싱가포르는 시민사회의 힘이 약하고, 중국은 재사회화의 동력이 아래에서만 나올 경우 중국판 자유주의 혁명으로 갈 수도 있다. 시민사회와 노동의 역동성이 있는 한국이 아시아 민주주의의 새로운 선도 모델을 만들었으면 한다.

 
 
 

 

/곽재훈 기자,임경구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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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여자, 세상 끝에서 밀양을 외치다

 

 

남미 9개국, 80여 도시를 돌며 '송전탑 반대' 사진을 찍다

13.12.31 16:13l최종 업데이트 13.12.31 16:13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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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페루 마추픽추에서 든 '밀양 송전탑 반대' 피켓
ⓒ 김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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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가 배낭 사줬으니까 나는 마추픽추에서 피켓 만들어 오빠 사무실 홍보 해줄게."
"좋지! 아, 근데 마추픽추에서 밀양 송전탑 반대 피켓 들고 사진 찍어서 블로그에 올려 보는건 어때? 송전탑에 대해서도 널리 알릴 수 있고, 의미도 있고 괜찮을 것 같은데?"

부끄럽게도, 오빠와 이런 대화를 하는 중에도 난 밀양 송전탑 건설 문제에 대해 별 관심이 없었다. 그 당시 나의 관심사는 온통 며칠 후면 떠날 '남미여행' 뿐이었으니까. 그런데 오빠의 뜬금없는(?) 제안 때문에 나는 밀양 송전탑 관련 정보를 찾기 시작했고, 문제에 대해 더 자세히 알게 될수록 마음이 불편해졌다.

'동양 최대 규모의 전력량'을 자랑하는 송전탑이 내 고향 밀양에 세워지면, 엄청난 전자파가 발생해 인근 지역은 사람이 살 수 없는 '죽음이 구간'이 된다고 했다. 그렇다면 평생을 땅만 일구며 순박하게 살아온 지역 시골 어르신들은 어디로 가야 한단 말인가? 점점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페루·볼리비아에서 든 '밀양 송전탑 반대' 피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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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르헨티나 이과수폭포에서 든 '밀양 송전탑 반대' 피켓
ⓒ 김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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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무거운 마음을 가득 안고 꿈에 그리던 남미, 콜롬비아에 도착했다.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10배는 더 멋지고 매력적인 콜롬비아를 여행하던 중 오빠와의 약속이 떠올랐다. 레포츠의 천국이라 불리는 콜롬비아의 작은 도시, '산힐'에서 작은 문구점을 찾았다. 도화지를 산 후 배낭 깊숙이 넣어뒀던 매직을 꺼내어 오빠와 의논한 문구를 정성스레 적었다.

'내 고향 밀양에 송전탑을 세우지 마세요! 핵발전소가 없는 태양과 바람의 나라를 꿈꿉니다.'

애초에는 마추픽추에서만 밀양 송전탑 반대 피켓을 들고 사진을 찍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왕 하기로 한 거 뉴스에서조차 보도를 자제하고 있는 내 고향의 문제, 밀양 송전탑 이야기를 나라도 좀 더 열심히 알리는 것도 괜찮겠다 싶었다. 그래서 방문하는 도시마다 송전탑 반대 피켓을 들고 사진을 찍어서 페이스북과 내가 운영하는 블로그, '시골여자의 촌티나지 않는 여행'에 올리기로 했다.

페루의 공중도시 마추픽추의 감동이 채 가시기도 전에 나는 배낭을 열어 송전탑 건설 반대 피켓을 꺼냈다. 마추픽추의 감동에 빠져있는 여행 동행자들에게 "나 이거 중요한 거야, 빨리 사진 좀 찍어줘"라며 채근하기도 했고, '소금호수'라 불리는 볼리비아의 우유니 소금사막으로 투어를 떠날 때 내가 가장 먼저 챙긴 것도 송전탑 반대 피켓이었다.

세계자연유산으로 등록되어있는 웅장한 이과수폭포에서는 매의 눈으로 적당한 외국인 관광객을 콕 찍어서는, 피켓을 들고 있는 내 모습을 찍어 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관광지뿐만 아니라 해발 4060m 세계에서 가장 높은 도시인 볼리비아의 '포토시'에서도, 아르헨티나에 있는 세상의 끝이라 불리는 도시 '우수아이아'에서도, 에콰도르 해발 4100m 안데스 산맥 줄기에서도, 페루의 수도 리마 광장에서도 어김 없이 난 피켓을 들었다.

80여개 도시를 여행하며 찍은 밀양 송전탑 반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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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볼리비아 우유니 사막에서 든 '밀양 송전탑 반대' 피켓
ⓒ 김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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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나는 240일 동안 남미 9개국, 80여개 도시를 여행하면서 틈틈이 송전탑 반대 사진을 찍었다. 물론 너무 바쁘게 노느라 사진을 찍지 못한 곳도 꽤, 솔직히 엄청 많다. 하지만 나는 이 메시지를 적은 종이를 마치 로또 1등에 당첨된 복권을 간직하듯 혹시 찢어지지는 않을까, 잊어버리지는 않을까 싶어서 제일 안전한 곳에 보관하며 그렇게 여행을 다녔다.

송전탑 반대 피켓을 들고 사진을 찍고 있으면 여행지에서 만난 외국 친구들이 질문을 하곤 했다.

"종이에 적힌 글이 너희 나라 말이야? 무슨 내용이야?"

마음 같아서는 내가 사는 곳 밀양이 어떤 도시인지 부터 시작해 그곳에 건설되는 송전탑의 전력이 어쩌고저쩌고, 주민들이 어쩌고저쩌고. 정말 침을 튀겨가며 설명하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나는 그들에게 모나리자의 애매한 미소만 지을 수밖에 없었다. 이곳은 영어가 잘 통하지 않는 남미이지 않은가! 게다가 자기소개도 아닌 밀양 송전탑 관련 이야기를, 영어도 아닌 스페인어로 해야 한다니...

스페인어로 이런 내용들을 설명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765kV의 고압 송전선이 밀양이 아닌 내 머릿속을 지나가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자랑스러운, 아니 자랑스럽고 싶은 밀양의 딸이 아니던가. 호스텔에서 열심히 사전을 찾아 밀양 송전탑에 관한 이야기들을 스페인어 문장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어설프게 작문한 문장을 외워 더듬더듬 현지인 친구들에게 입술을 바르르 떨며, 손과 팔은 더 바쁘게 움직이며 대충 설명했다. 친구들이 안타깝다는 표정을 지으며 "잘 해결됐으면 좋겠다"고 했으니 내 설명이 어느 정도 전해지긴 했나보다.

블로그와 페이스북에 '여행자의 관심'이라는 폴더를 만들어 남미를 여행하면서 찍은 밀양 송전탑 반대 사진을 올리기 시작한 후, 몇몇이지만 함께 송전탑을 반대해주는 사람이 생겨 뿌듯했다. 또 남미에서 우연히 만난 한국 여행자가 "아 시골여자님! 밀양 송전탑 반대하시는 분이죠? 블로그에서 봤어요"라며 내게 먼저 인사를 해 줄 때는 정말 기분이 좋았다.

내 고향 밀양에 다시 평화가 찾아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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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르헨티나 엘찰튼 피츠로이에서 든 '밀양 송전탑 반대' 피켓
ⓒ 김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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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송전탑 반대 현장에서 실질적인 도움을 주진 못했지만, '나로 인해 이 문제에 대해서 단 한 명이라도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생긴다면 내게는 기쁨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응원해 주시는 분들이 계서서 정말 행복했다.

8개월 동안 남미의 여러 나라들을 방문했고 입이 쩍 벌어지고 가슴이 먹먹해질 만큼 아름다운 도시들을 가봤지만 그곳에서 나는 단지 여행자일 뿐이다. 잠시 머물다 떠나는 여행자. 하지만 고향은 어떤가? 굳이 '마음속 깊이 간직한 그립고 정든 곳'이라는 이런 사전적인 의미가 아니더라도 고향은 내 마음의 안식처이자 나의 모든 것이다.

면적은 서울보다 넓지만 인구는 10만도 채 안 되는 소도시 밀양, 사람소리보다 새소리가 더 선명하게 들리는 아름다운 밀양, 하늘에 총총 떠있는 별을 볼 수 있는 맑은 공기가 머무는 내 고향 밀양에 다시 평화가 찾아왔으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 남미여행은 2012년 12월부터 2013년 7월까지 8개월 동안 다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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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 부정, 그냥 넘어갈 수 없다

[시론] 선거 부정, 그냥 넘어갈 수 없다

등록 : 2013.12.31 19:08수정 : 2013.12.31 21:37

28일 오후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민영화 저지, 노동탄압 분쇄, 철도파업 승리 1차 총파업 결의대회’에 참여한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과 한국노동조합총연맹 등 양대 노총의 조합원과 시민들이 “민영화를 막아내자”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박근혜 정부가 출범하고 첫번째 새해를 맞는다.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에 수많은 사람들이 ‘안녕하지 못합니다!’를 외치면서 2013년 한 해가 저물었다. 지난 12월18일과 19일에는 재야 인사들과 종교인들, 시민사회단체 인사들이 선거부정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시국선언과 시위에 나섰다.

 

12월28일 오후에는 보신각 앞에서 150여명의 변호사들이 지난 대선의 선거부정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집회를 열고 시청광장까지 거리행진을 했다. 여기에 많은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해 함께 행진하며 구호를 외쳤다. 시청광장에서는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의 연대집회에 수만의 사람들이 운집해 부정선거를 규탄하고, 경찰의 민주노총 사무실 난입을 성토하고, 민주주의 수호를 결의하고, 대통령의 불통을 비난했다.

 

이것은 국내만의 일은 아니다. 요즈음 한국인이라면 미국이든 유럽이든 그 어느 곳에서든 자기가 있는 곳에서 지난 대선의 선거부정을 규탄하고 쓰린 가슴으로 서로 안부를 묻는다. 외신들도 한국의 부정선거를 앞다투어 보도하고 있다는 전갈이다. 그런데 정작 우리 정부는 그게 뭐 대수냐는 생뚱맞은 표정인데다 방송과 보수신문들은 조용하기 그지없다. 대한민국 정부와 언론을 보노라면 부끄럽고 창피하다.

 

선거는 주권자인 국민이 대표자를 선출해 국정을 맡기는 대의정치 제도의 근본을 이룬다. 선거가 부정으로 얼룩지면 그 선거로 권좌에 오른 대표자가 정당성을 가질 수 없음은 당연하다. 정당성을 잃은 자가 행사하는 권력은 국가권력의 외관을 지녔을지라도 벌거벗은 폭력일 뿐이다. 그런 연유로 우리는 역사에서 이승만·박정희와 전두환 일파를 민주주의를 유린한 독재자들로 단죄하는 것이다. 아무리 미사여구로 자기들의 행위를 치장해 본들 그것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것일 뿐 역사의 단죄를 피해갈 방법은 없다.

 

주권자인 국민은 본래 가지고 있는 권한의 일부를 선거를 통해 대표자에게 위임하여 공직을 부여한다. 그러나 그 위임은 언제라도 철회할 수 있는 권한을 유보한 위임일 뿐이다. 국민은 여전히 주권자로서의 지위에서 공직자를 감시감독할 권한이 있고, 위임의 본뜻에 따르지 않는 공직자에 대한 위임을 철회할 수 있다. 이것이 국민주권의 본뜻이며, 국민주권으로부터 연유하는 국민 저항권과 소환권의 근거를 이룬다.

 

그런데 지난 대선 직전부터 제기되었던 국가권력의 선거개입 의혹이 그동안 차츰 베일을 벗고, 국정원, 행정안전부(현 안전행정부), 국방부, 보훈처 등 다수의 국가기관이 상상할 수조차 없는 부정행위를 전방위적으로 저질렀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아직도 더 많은 부정이 있는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지난 대선이 3·15 부정선거 이래 최대의 관권개입 부정선거였던 사실은 이미 백일하에 드러난 것이다. 그럼에도 그 선거를 통해 당선된 박근혜 대통령은 ‘나와는 아무 관계가 없고, 이익을 받은 바도 없다’는 말로 진상규명을 피해가려 한다. 국정의 최고책임자답지 못한 치졸한 변명이다.

 

그뿐 아니라 검찰의 부정선거 수사를 방해하고 수사팀장을 축출하는 일마저 서슴지 않았다. 한걸음 더 나아가 부정선거로 인한 정권의 위기를 덮으려는 수단인지 33년 만의 내란음모 사건으로 진보정당을 옥죄고, 정당해산 심판 청구까지 제기하는 무리수를 두고 있다. 전교조의 노조 지위를 박탈하려는 시도 역시 그 연장선상에 있다. 그의 말처럼 자신과는 아무 관계도 없고 이익을 받은 바도 없다면 왜 이명박 정권이 저지른 부정선거의 실상이 드러나는 것을 저렇게도 두려워하는가? 그것이 아니라면 공공연히 유신과 같은 권위주의 시대로 다시 돌아가려는 것인가.

 

대통령의 생각이 어떠하든 국민은 그가 지난 대선의 선거부정에 대해 책임을 질 것을 요구하고 있다. 대통령의 말처럼 그와 직접 관계가 없는지 여부를 떠나서, 그가 이익을 받은 바 없는지 여부를 불문하고, 그가 부정선거였던 지난 대선을 통해 당선되었고 현재 국정의 최고책임자 자리에 앉아 있기 때문에 이것은 지극히 당연한 요구인 것이다. 국가의 근본 기틀을 뒤흔드는 국가기관의 선거부정에 대해 대통령이 진상을 규명하고 책임자를 처벌하는 일을 하지 않겠다면 다른 어느 누가 이것을 대신 할 것인가? 만일 이러한 부정을 없다는 듯 덮고 넘어간다면 우리나라의 장래는, 우리 국민들의 미래는, 우리가 그토록 애쓰면서 피와 땀으로 쟁취한 민주주의는, 이 모든 것은 어떻게 될 것인가? 대통령은 국정의 최고책임자로서 취임 당시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하며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에 노력하겠다’고 선서하였으니, 여기에 답해야 할 의무가 있다. 부정선거는 헌법을 유린하고 국가를 위태롭게 하며 국민의 자유와 복리를 위협하는 것이 아닌가. 그렇기에 국민은 당연히 지난 대선의 선거부정에 대하여 대통령이 책임질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1948년의 정부 수립 이후 우리는 국가권력이 저지른 너무나도 많은 학살과 조작, 고문과 억압, 부정과 부패, 월권과 불의를 보아왔다. 그리고 그 모든 의롭지 못한 행태의 근본에는 국민의 의사가 아닌 부정선거로 찬탈한 권력, 총칼로 강탈한 권력이 있었다. 그러나 우리 국민은 이러한 권력의 횡포에 제대로 책임을 묻지 못했다.

 

이것은 일제 36년의 과거를 청산하지 못한 후과일 뿐이다. 정부 수립 직후 출범한 반민특위는 1년도 채 되지 않아 이승만 정권의 친일경찰에게 무참히 유린되었고, 그 결과 36년의 참혹한 식민지배 기간 중 일본에 부역한 자들을 단 한명도 제대로 처벌하지 못했다.

 

프랑스와 벨기에, 네덜란드 등 유럽 국가들이 독일에 점령되었다가 4년여 뒤에 국권을 회복한 후 나치에 부역한 자들을 수만명씩 처단한 사례들을 보면, 우리의 경우는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기이하고 황당한 역사가 아닐 수 없다. 그 이후 지금껏 그 불의한 권력은 대를 이어 계승되어 왔고, 그런 까닭에 권력이 자행한 불법과 불의 역시 제대로 청산된 일이 없다. 이것이 선거부정을 지적하는 사람들에게 오히려 적반하장으로 ‘대선에 불복하느냐’고 호통치면서, 지난 대선의 선거부정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호도하려는 청와대와 정부여당이 믿는 구석이다. 이번 사태 역시 끝까지 버티면 그냥 넘어갈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국민들이 지금은 분노하고 있지만 조만간 옛날과 달라진 것이 없다면서 체념하리라 믿기 때문이다. 그들이 믿는 것처럼 정말 그렇게 된다면 우리의 미래는 암울할 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제라도 우리 국민은 이와 같은 과거청산의 부재라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난 대선에서 저질러진 부정을 철저하게 규명하고 책임자를 엄정하게 처벌해야 한다. 임기를 마친 이명박 전 대통령 역시 예외가 아니다. 철저하게 수사하여 책임이 있다면 마땅히 처벌해야 한다. 선거 부정행위의 공범이 기소되어 있으니 공소시효도 정지되었고, 책임이 있다면 처벌에 장애가 없다. 국민이 이것을 요구하고 있다. 오늘의 이 사태는 이명박 정권 초기에 있었던 미국 쇠고기 수입 고시로 촉발된 촛불시위와는 근본부터 다르다. 주권이 모욕당한 지난 대선, 선거권의 신성함이 오욕된 부정선거는 용납될 수 없는 일이다.

 

하늘의 그물은 넓어 성긴 것처럼 보여도 빠뜨림이 없다(天網恢恢 疎而不失·천망회회 소이불실) 하지 않는가. 만일 이 정권이 국민의 분노와 실망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선거부정을 덮고 넘어가려 한다면, 또한 국민의 열망을 읽지 못하고 반민주적 행태를 지속한다면, 국민은 어떤 방법을 통해서라도 그 대가를 치르도록 요구할 것이다.
최병모 변호사
권력의 즉각적인 와해를 가져오지는 않을지라도 국민의 불신과 권력의 누수로 인하여 심대한 정치적 무능에 빠져드는 결과로 귀결될 것이다. 그리고 후일 우리의 역사는 이 시기를 나쁜 대통령의 시대로 기록할 것이다. 그러므로 아직 4년 넘게 남은 임기를 생각한다면 박근혜 대통령은 국민의 비판에 귀를 기울여야 마땅하다. 그리고 지난 대통령선거 부정의 진상규명을 피해가서는 안 될 일이다. 그것만이 이 정권의 위기를 타개하고 내외에 지도자로서의 자질을 보여주는 길이다.

 

최병모 변호사·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민주주의수호 비상특별위원장 최병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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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민영화 투쟁은 계속된다"

  •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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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
    2014/01/01 15:35
  • 수정일
    2014/01/01 15:35
  • 글쓴이
    이필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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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X 범대위, 철도노조 현장투쟁 지지...국회 철도산업발전소위 감시

이승현 기자  |  shlee@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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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12.31  18:0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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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 민영화 저지라는 파업의 목표와 방향을 바꾼 것이 아니라 투쟁의 형태를 바꿨을 뿐"이며 "철도 민영화 저지의 끈을 절대 놓치 않겠다."

   
▲ 김명환 철도노조 위원장은 31일 오후 KTX범대위 기자회견에 참석해 "철도 민영화 저지라는 파업의 목표와 방향을 바꾼 것이 아니라 투쟁의 형태를 바꿨을 뿐"이며 "철도 민영화 저지의 끈을 절대 놓치 않겠다"고 밝혔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김명환 철도노조 위원장은 31일 오후 'KTX민영화저지와 철도공공성 강화를 위한 범국민대책위원회(KTX 범대위) '가 민주노총에서 가진 '철도노조 파업중단과 현장투쟁 전환에 따른 KTX범대위 입장발표' 기자회견장에 모습을 나타내 이같이 밝히고 "철도 노동자들은 이제 파업을 중단하고 현장투쟁으로 전환한다"며 전날 발표를 재확인했다.

김 위원장은 "국토교통부는 오랜 기간 사회적 갈등이 벌어지게 된 철도 분할 민영화 정책을 추진하고 입안했던 주체이면서도 노사간 교섭을 강요만 했을 뿐 아무 것도 한 일이 없으며, 이 정책의 집행자임을 자임했던 코레일 역시 두세차례에 걸친 형식적 노사 교섭과 노조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와 가압류 외에는 한 일이 없다"고 비난하고 철도의 정시 안전운행을 보장하라는 노조의 대화 요구에 응할 것을 촉구했다.

철도노조는 30일 오후 김명환 위원장의 기자회견을 통해 조합원들의 파업중단과 일터 복귀 명령을 하달했으며, 오늘 오전 9시부터 전국 15개 지구별 결의대회를 갖고 오전 11시까지 현업 업무에 복귀했다.

KTX 범대위는 먼저 철도민영화로 인해 발생할 요금폭등과 서비스 저하, 안전 불안을 우려하는 국민의 70%가 철도노조의 입장에 귀를 기울이고 동의해 주었다며 감사 인사를 했다.

또한 국회의 합의에 따라 설치하기로 한 '철도산업발전소위원회'를 통해 철도노조가 계속 요구한 '사회적 대화를 통한 구체적인 합의'를 이끌어 내기 위해 현장투쟁에 돌입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KTX 범대위는 앞으로 "박근혜 정부의 단계적 철도 분할 민영화 정책은 해가 바뀌면 '여객사업과 화물사업 분리', '물류 자회사 설립 추진'을 필두로 '차량 자회사', '시설 유지부문' 분리 등 '경쟁'이라는 이름으로 여전히 강도 높게 추진 될 것"으로 예상하고 민영화를 반대하는 철도 노동자들의 벗으로서, 노동자들과 뜻을 같이 하는 국민들과 함께 끝까지 함께 하고 현장투쟁에 돌입하는 철도노동자들을 지지·지원하겠다고 밝혔다.

권영국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노동위원장은 여는 말씀을 통해 '이번 철도파업은 국민의 발이 되기 위해 국민과 함께 한 파업'이었으며 많은 국민들이 실제로 파업을 지지해 주었다고 말했다.

권영국 노동위원장은 "파업이 오늘(31일)로 23일째에 접어든 상황에서 파국을 막기 위한 종교, 사회계의 중재가 있었고 이제 공은 국회로 넘어갔으나 정부는 자신들은 아무 상관없다는 듯 철도노조 지도부에 대한 체포와 법적조치 등 강공으로 일관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민영화 문제가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철도노조가 내부수습을 마친 후 가장 주된 문제해결의 주체로 나설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경자 민주노총 부위원장은 "정부와 코레일은 철도의 적자 해소 방안으로 분리 자회사를 통한 효율 추구를 제시하고 있지만 이는 곧 철도의 공공성을 파괴하는 것과 같다"며 "정부가 주장하는 경쟁과 효율은 국민이 원하는 방향이 아니며, 오히려 돈이 없어도 누구나 이용할 수 있도록 공공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 국민의 요구"라고 강조했다.

   
▲ KTX 범대위는 31일 기자회견을 갖고 철도민영화로 인해 발생할 요금폭등과 서비스 저하, 안전 불안을 우려하는 국민의 70%가 철도노조의 입장에 귀를 기울이고 동의해 주었다며 감사 인사를 했다.[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박석운 한국진보연대 공동대표는 "철도노조가 필수 공익근무자 7천명을 남기고 제한적 파업을 한 것은 전면 총파업을 하는 것보다 10배쯤은 어려운 일"이라며 "한국 노동운동사에 기록될 신기원을 열었다"고 지지의사를 표시했다.

또 철도노조의 파업으로 노동자와 국민이 힘을 합쳐 철도 뿐만 아니라 정부가 추진하는 가스, 의료, 교육 등 다른 공공부문의 민영화에도 결정적 쐐기를 박았다는 점을 가장 큰 수확이라고 평가했다.

박석운 대표는 "철도노조는 필수 공익근무자들이 근무시간을 엄수하면서도 비번일 때 집회나 홍보전에 나서는 방식으로 '함께 투쟁하고 함께 현장에 들어가자'는 당초 목표를 100% 달성했다"고 평가하고 "박근혜 정권은 국민적 지지와 동의를 얻은 철도 민영화 저지에 한사코 맞서는 불통의 민낯을 보였다"며 제일 망한 측이라고 지목했다.

박 대표는 특히 앞으로 불법 강경진압 실패에 대한 보복과 수배자 구속, 조합원들에 대한 무더기 징계, 노조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와 가압류 등 갖가지 탄압이 가해지겠지만 이는 정권측의 헛된 시도에 불과할 것이며, 불법관권 선거에 대한 책임을 묻는 국정원시국회의 등 투쟁이 불타오를 것이라고 주장했다.

박원석 정의당 의원도 "교착국면에서 해결 실마리를 찾아서 다행"이라며 국민과 소통하면서 공공부문 민영화 저지 여론을 만들어 낸 것을 이번 철도노조 파업의 최대 성과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여야 합의로 국회 국토개발위원회 산하에 '철도발전소위원회'를 설치하기로 합의해 문제해결의 가능성은 열었지만 새누리당과 정부의 태도로 볼때 의제 설정조차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지적했다.

박원석 의원은 국회에 설치될 '철도발전소위'의 활동과 관련해서 정부 조차 KTX수서법인 면허발급이 '민영화는 아니다'라고 말할 수 밖에 없을 만큼 민영화 저지에 대한 국민적 공감이 형성된 것을 법·제도로 확립할 것과 최소한 국회 철도소위 활동기간을 통해 검토되어야 할 사안들이 많이 포함된 만큼 면허권 발급 이후 정부 조치는 집행돼서는 안된다는 점, 그리고 철도노조에 대한 징계와 손해배상 청구, 사업처리등은 파업철외에 대한 합의정신에도 어긋나는 만큼 여야가 나서고 철도공사도 힘을 합쳐 최소화할 것 등 3원칙을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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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지구는 안녕했나

2013년 지구는 안녕했나

 
조홍섭 2013. 12. 31
조회수 6 추천수 0
 

기후변화, 자연재해, 스모그, 오존층 파괴…

위성서 본 지구는 여전히 아름답지만 안녕하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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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와 홍수, 화산폭발, 산불 등 각종 자연재해에 시달리느라 지구는 2013년에도 그리 편하지 못했던 것 같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지구관측 프로그램에서 각종 인공위성과 국제우주정거장(ISS)을 통해 촬영한 지구의 다양한 사진으로 2013년을 돌아본다.
 
위 사진은 아폴로 8호 우주선이 1968년 12월24일 달 궤도에서 촬영한 지구의 모습이다. 당시만 해도 지구의 기후변화 문제는 아직 심각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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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란드의 얼음은 지구온난화의 지표로 최근 관심의 표적이 되고 있다. 지난해 최악의 얼음층 감소를 겪은 그린란드는 지난해보다는 회복됐지만 여전히 기후변화의 흔적을 드러내고 있다. 이 사진은 지난해 12월30일 촬영한 것으로 올해 것은 아니지만 그린란드 남부의 전형적인 겨울 모습을 보여준다.
 

흰 눈으로 뒤덮인 내륙은 햇빛의 90%를 우주로 반사한다. 반면 바닷물은 6%만 반사하고 나머지는 흡수하며 얼음은 반은 흡수하고 반은 반사한다. 그린란드 해안의 피요르드와 가파른 언덕은 지난 1000년 동안 눈이 얼음에 자리를 내주고 후퇴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해마다 3~4월이면 눈이 녹으면서 그 밑의 얼음도 녹아 얼음층의 후퇴가 급속히 진행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동쪽 해안의 소용돌이는 얼음을 띄운 북극의 찬 바닷물이 남쪽으로 흘러내리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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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상이변은 중동에도 예외는 아니어서, 12월 10~13일 사이 이례적 폭설과 폭풍이 이 지역을 휩쓸었다. 구름이 모두 걷힌 15일 촬영한 인공위성 사진을 보면, 시리아, 이집트, 레바논, 이스라엘, 요르단 고지대에 하얗게 눈이 쌓여 있다.
 

이 지역의 폭설은 드물지는 않지만 이렇게 이른 시기에 내린 것은 이례적이다. 예루살렘에는 30㎝의 눈이 내려 도심이 마비됐고, 암만과 요르단에는 45㎝의 눈이 쌓였다.
 

지중해 해안의 녹색 부분은 저지대에 눈 대신 내린 폭우로 쓸려나간 흙탕물과 퇴적물이 바다로 흘러든 모습이다.
 
e3-4.jpg » 2011년(왼쪽)과 2012년 남극 상공의 오존 구멍 모습.

 

프레온 가스를 규제해 성층권 오존층 파괴를 막았다는 건 국제환경협력의 대표적 성공사례로 꼽힌다. 남극 상공의 오존 구멍을 그림으로 표시해 해마다 그 변동상황을 알림으로써, 과학적 불확실성이 남아있음에도 염화불화탄소(프레온)를 줄이기 위한 몬트리올 의정서를 채택했다.
 

2011년 남극의 온존층 사진에서 오존 구멍 크기는 관측을 시작한 1980년대 이래 10번째로 큰 상태였고, 2012년엔 반대로 2번째로 작았다. 2011년에 갑자기 오존 구멍이 커진 이유가 있었던 걸까? 아니면 2012년에 오존층이 획기적으로 회복된 걸까?
 

미 항공우주국 과학자들의 설명은 이렇다. 오존층은 인간이 방출한 염소의 양과 관련이 있다. 적어도 1990년대까지는 그랬다. 염소 배출량을 줄이면 오존 구멍도 작아졌다. 염소는 성층권에서 좀처럼 분해되지 않는다. 1990년대 말이 되면 성층권은 염소로 포화상태에 이르렀다. 이 때문에 아무리 염소 발생량을 줄여도 오존 구멍이 줄어들지는 않는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그래프 참조).
 

e3-3.jpg » 오존 구멍 면적의 변천(단위: 100만㎢)

 

사실 2011년 오존 구멍이 그렇게 커진 것은 염소 배출량보다는 기상현상과 관련이 있다. 오존은 열대지방에서 생성돼 남극으로 옮겨오는데, 이해에 남극으로 부는 바람이 약해 옮겨온 오존의 양이 애초에 적었던 것이다. 이해에 남극 성층권의 염소 양은 평소보다 작았지만 워낙 오존 자체가 작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오존 구멍도 평소보다 커졌다.
 

2012년 오존 구멍이 작은 이유도 기상현상 때문이었다. 이해에도 오존 구멍은 매우 컸지만 10월 강력한 바람이 오존을 상층부로 불어 올려, 위성에서 관측하기엔 오존이 풍부해 구멍이 작은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자들은 몬트리올 의정서가 효과를 발휘해 성층권 염소 농도가 포화상태 이하로 떨어지려면 2025년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본다. 마침내 오존층이 정상화되는 것은 그보다 훨씬 뒤인 2058~2090년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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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베이징에서 상하이까지 1200㎞ 거리의 방대한 지역이 심각한 스모그로 뒤덮여 있는 모습을 위성사진이 보여준다. 지난 12월7일 촬영된 이 사진에서 두드러진 흰 부분은 구름이고 그 주변의 흰 부분은 안개를 가리키며 잿빛 부분이 스모그이다.

 

이날 미국 대사관이 측정한 베이징과 상하이의 초미세먼지(PM2.5)의 농도는 공기 1㎥당 각각 480, 355마이크로g으로 세계보건기구 기준 25를 18배 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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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사는 아시아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서아프리카 나미브사막의 거대한 모래 먼지가 나미비아 서해안에서 대서양을 향해 날아가는 모습을 지난 5월5일 인공위성이 포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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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 ‘불의 고리’를 이루는 러시아 캄차카 반도는 세계에서 활화산 밀도가 가장 높은 곳이다. 지난 1월11일 이 지역 키지멘 등 180㎞밖에 떨어지지 않은 4곳에서 화산이 동시에 분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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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분출이 새로운 섬을 탄생시키기도 했다. 지난 11월 말 일본 도쿄 남쪽 약 1000㎞ 지점에 있는 오가사와라 제도에서 화산분출이 새로운 섬 니이지마(새 섬이란 뜻)를 만들었다.
 

12월8일 촬영된 이 섬은 5만 6000㎡ 면적으로 20~25m 높이였는데, 애초 타도의 침식으로 저절로 사라질 것이란 예측과는 달리 아직도 성장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일본 당국은 이 섬이 몇 년은 갈 것으로 내다봤다. 이 섬은 일본 영해 안에 위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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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태평양 바누아투에 있는 지름 20㎞인 가우아 섬에서 화산이 분출해 수증기를 먼바다로 뿜어내고 있다. 국제우주정거장(ISS)이 지난 5월31일 촬영한 이 화산은 이미 과거에 분출한 화산의 내부에서 다시 분화한 것으로 푸른 칼데라 호수가 옆에 보인다. 사실 이 섬 자체는 바다 밑에 감춰져 있는 높이 3000m, 폭 40㎞의 거대한 해저 화산의 꼭대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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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가 바꾸어 놓은 모잠비크 남부 림포포 강 유역의 모습이다. 2005년 2월11일 촬영한 사진(위)에선 농경지와 시가지 사이로 얌전히 흐르던 강이 지난 1월 범람해 1월25일 촬영한 사진(아래)에선 주변을 거의 삼켜 버렸다. 이 홍수로 적어도 38명이 사망하고 15만 명의 이재민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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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항공우주국이 여러 위성 사진을 조합해 만든 지구의 최신 영상인 '블루 마블'의 아시아-오스트레일리아 야경. 인간 활동은 지구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지만 밤중에 본 지구에서 그 범위는 아직 미미하다.

 

글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사진 미 항공우주국 지구 관측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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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1년, 'MB의 반격'이 있었나"

[인터뷰] 이상돈 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

박세열 기자(=정리)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3-12-30 오후 4:15:20

 

 

이상돈 전 중앙대 법대 교수. 2012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을 맡아 대선 승리의 '일등공신'이라는 평을 듣던 그가 "박근혜 대통령과의 지난 10년간을 복기하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 최근 1년 사이에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변한" 박 대통령을 보면서, 내놓은 그의 소회다.

이 전 교수는 2004년 열린우리당의 사학법 개정 시도에 반대 논리를 제공하며 박근혜 대통령과 인연을 맺었다. 당시 열린우리당 4대 개혁 입법을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입장에서 저지할 수 있었던 것은 이 전 교수의 '논리'가 주요했던 것으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환경법을 전공한 보수학자답게 그는 이명박 대통령의 4대강 사업을 정면 비판하며 2008년부터는 한나라당 정부가 가장 껄끄러워하는 인물이 됐다. 노무현 정부 여당(열린우리당)의 핵심 정책을 무산시키고, 이명박 정부 여당(한나라당)의 핵심 정책에 반기를 들었던 이 전 교수가 박근혜 당시 대표의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으로 간 것은 상징적인 의미가 컸다. 이명박 대통령을 불신하는 보수층은 이 전 교수의 정치 참여를 보고 박근혜 대통령과 이명박 전 대통령의 차별점을 포착할 수 있었다. 그런 이 전 교수가 박근혜 정부 여당(새누리당)에 쓴소리를 내놓고 있다.

<프레시안>과 마주앉은 그는 김병호 전 한나라당 의원의 언론재단 이사장 발탁 소식부터 꺼냈다. "김병호는 서청원과 결이 다르다. 서청원은 보수정당의 총체적 비리를 상징적으로 떠안아 개인으로 보자면 정치적 희생양의 측면이 없지 않지만, 김병호는 순전히 개인 비리로 정치를 그만뒀던 인물 아닌가"라고 말하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박근혜 대통령이 이명박 전 대통령을 수사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대북송금특검으로 호남을 등졌다는 논리를 가져다, 이명박 전 대통령을 특검 수사하면 TK 등을 돌리게 한다는 말들이 나오고 있다. 이게 맞는 논리인가"라고 허탈해 했다. 그는 이명박 전 대통령 측근들이 대책 회의를 열고, 청와대 대변인을 지낸 인사가 당당하게 "퇴임 대통령의 불행이 반복되지 말아야 한다"는 취지의 말을 언론 인터뷰에서 쏟아내는 것을 보면서 이상한 느낌을 가졌다고 했다.


이명박 정부에서 박근혜 정부로 넘어오는 시기, 국정원의 대선 개입 활동이 있었고, 4대강 사업은 대운하 전단계 사업이라는 결과를 내놓은 감사원장은 결국 옷을 벗었다. 두 전현직 대통령 사이에 어떤 기류가 있는 것인가. 그는 "(박 대통령이 이 전 대통령에게) 뭐가 (좋지 않은 모습이) 잡힌 것인가"라는 말도 했다.

이 전 교수는 박근혜 정부를 2000년 미국의 부시 행정부에 빗댔다. 부시 대통령은 아버지에 이어 2대째 대통령을 했으나, 결국 '아버지 사람'인 올드보이 딕 체니를 부통령으로 기용해 실패의 길을 걸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김기춘 비서실장의 별명은 '부통령'이다. 이 전 교수 인터뷰는 <프레시안> 전홍기혜 편집국장과 임경구 정치선임기자가 함께 했다.
 

▲ 이상돈 전 교수 ⓒ프레시안(최형락)


"이명박 대통령의 포로라도 된 것인가? 미스테리다"

프레시안 :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 최근 쓴소리를 내놓고 있다. 언제부터 조짐이 이상했나?

이상돈 : 내가 이해가 안 된다는 것이다. 어디 갑자기 (누군가의) 포로가 됐나? 미스테리다. 처음에 인사가 날 때 보면, 박 대통령이 자신에게 부담되는 사람을 제외하고, 본인이 직접 나서는 것 정도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윤창중 사태가 났다. 그 때부터 뭔가 있었다. 윤창중은 좀 심하지 않았나. 허태열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두 번, 세 번 '안된다'고 했다지 않나. 그때 지지율 50%가 무너졌다. 지금이 그 때랑 비슷한데, 이번에는 회복할 길이 잘 안보인다.

프레시안 : 인수위 때부터 불안했던 요인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김기춘 비서실장 인사 때 화룡점정을 찍었던 것 같다.

이상돈 : 김기춘 실장은 (전반적인 국정운영에서) 통제가 안되니 어쩔수 없이 내세운 것 아닌가. 또 감사원에서 4대강 사업이 대운하였다는 감사 결과를 발표한 후에 감사원 사무총장이 어깨에 힘을 주고 다닌 적이 있다. 그리고 나서 아마 MB 측의 반격이 있었던 것 같다. MB는 2007년 대선후보 경선 과정부터 박근혜 대통령의 여러가지 정보를 들여다 본 것 아닌가. 2012년 대선 당시와 관련해서도 박 대통령의 정보를 다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또 2012년 총선 공천이 어떻게 됐는지 이명박 전 대통령은 다 알고 있었지 않았을까.

프레시안 : 전 정부와 현 정부간 서로 뭔가 꺼림직한 게 있는 상황이라는 것인가?

이상돈 : 다는 아니지만 그런 것도 있지 않겠나. 이명박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잇는 것 같다.

프레시안 :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이상돈 : 지금 새누리당 의석이 155석 밖에 없다. 재보선에서 1~3석 정도 날아간다고 치고, 정두언 의원 대법원 판결이 난다고 가정하자, 그러면 과반이다. 혹은 조만간 과반을 잃을 수도 있다. YS가 1995년 가을, 다음 해 총선 있기 전에 5공 청산을 했다. 당시 YS 정권에는 정국 반전의 사건이 만들어졌었다. YS는 정치라는 것을 하기 위해서는 여론의 등을 업어야 한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박근혜 대통령도) 감사원 발표 때 (이명박 정권에 대해 청산 등) 뭔가를 했어야 했다. 그런데, 거기에 걸린 게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대선 개입이었다.

프레시안 : 이 전 교수는 박 대통령을 오래 지켜봤는데, 나름대로 준비를 많이 한 대통령 아닌가?

이상돈 : 아무도 모른다. 많은 사람들이 '박근혜를 안다'고 하는데, 박 대통령은 모든 사람을 1대 1로 만났다. 그래서 만난 사람들이 아는 박근혜가 다 다르다. 장님이 코끼리 만지듯 그렇게….

프레시안 :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기대 중 하나가 예측 가능한 정치였다. 그런데 취임 후 전혀 다른 행보를 보인다.

이상돈 : 경우에 어긋나는 것은 안하고, 순리에 맞게 갈 것을 기대하지 않았나. 이를테면 박 대통령과 관련해 국가보안법 폐지를 기대하진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보면 (기대하지 않았던 불통 논란 등과 관련해) 왜 그런지 모르겠다. 박 대통령이 전반적으로 뭘 하는지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예를 들면 문화재 문제는 문화재 전문가를 만나서 얘기하고, 다른 문제는 그 전문가를 1대1로 만나서 얘기할 뿐이다. 전체적으로 박 대통령이 하는 것을 아는 사람이 없다.
 

▲ "왜 여기에 대해 정권이 올인을 하는 것인가. 그리고, 이 문제가 쉽게 받아들여지리라 생각했을까? 난 이해가 안간다. 그렇게 보면 이 정부가 정무적 판단이 없는 것 같다. '색맹(色盲)처럼 정무맹(政務盲)이다." ⓒ프레시안(최형락)


"철도 경쟁 체제 도입, 이해 안된다"

프레시안 : 철도 민영화 논란 얘기를 해보자.

이상돈 : 민영화는, 민간에 매각하는 것은 아니니까 아니라고 본다. 그러나 경쟁 체제는 이해가 안간다. 철도가 철도와 경쟁한다는 것은 내 상식에 안 맞는다. 철도가 고속도로가 들어오면서 쇠퇴했다. 철도는 국가에서 하지 않으면 운영할 수가 없는 것이다. 멕시코같은 나라는 철도를 거의 다 뜯어버렸다. 경쟁 논리라 하면 철도는 살아남을 수 없는 것이다. 레이건 대통령이 철도 민영화를 하려고 했는데 누가 사갈 사람이 없었던 것 아닌가. 미국 철도는 민간 화물 위주로 돼 있다. 여객은 민간이 했다가 다 부도가 나서 없어져버렸다. 미국 철도 타면 '이게 철도인가' 싶다. 워싱턴, 뉴욕, 보스톤, 샌디에고 등 몇 개 황금 노선이 있지만 그것 말고는 없다. 수서발 KTX가 들어오면 서울 강남에서 고속버스와 수송 부분을 나눠먹는 것 아닌가. 경쟁이라니, 직원을 새로 뽑으니 연봉을 재조정하는 등 비용 감축 부분은 있을수 있더라도, 이해가 안간다.

프레시안 : 그런데 민주노총 공권력 투입으로 논쟁이 공권력과 불법파업으로 바뀌어버렸다.

이상돈 : 왜 여기에 대해 정권이 올인을 하는 것인가. 그리고, 이 문제가 쉽게 받아들여지리라 생각했을까? 난 이해가 안간다. 그렇게 보면 이 정부가 정무적 판단이 없는 것 같다. '색맹(色盲)처럼 정무맹(政務盲)이다. 내가 수도 민영화(물 민영화) 부분을 공부를 많이 했다. 영국이 수도 민영화를 한 것은, 너무 낙후돼 있는데 개선할 돈이 없어서 그런 부분이 있다. 그런 논리로 철도 민영화를 나중에 했는데, 그것도 대처 때는 정작 철도 민영화는 못했다. 아무도 (철도를) 안 사려고 하니까. 영국 철도는 영국에서도 잘했다고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민영화도 민영화 나름이라고 본다. 그런데 지금 수서발KTX문제는 정부에서 설명하는 것을 이해할 수가 없다. 왜 굳이 별도의 회사를 만드나. 철도가 통신처럼 다수 사업자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나.

프레시안 : 공기업의 적자 구조 개선이라든지, 공기업 선진화의 한 방안이라고 설명한다.

이상돈 : 지난 4~5년간 공기업 부채가 왜 폭증했나. 원인을 제대로 봐야지 않나. 4대강 사업, 자원 개발, 용산 개발 실패 등 (정책 실패로 인한 부채다). 그러면 책임자를 먼저 문책하고 나서야 하는데, 그런 부분은 (하지 않는다). 4대강 사업 부채가 수공에만 8조 원이 늘었고 경인운하까지 하면 10조 원이다. 철도도 철도청에서 철도공사로 넘어올 때, 이미 5조 원 이상, 인천공항철도 인수에 2조 원 이상, 그리고 용산 개발까지 하면 10조 원 가까이 정책부채다. 이걸 코레일이 떠안았다. 그렇게 할 것 같으면, 4대강 사업과 관련해서는 민영화를 하는 딱 하나 방법이 있다. 댐을 파는 것이다. 안동댐 등 2~3조 원씩 해서 팔아야 한다. 국내에서 안산다. 그러면 외국계 사모펀드에 팔고 (민자 도로나 지하철 9호선처럼) 수익 보전해주는, 그런 방법 밖에 없다. 아니면 지자체가 댐 지분을 사도록 해서 물을 지자체가 마음껏 쓰도록 하든지.

프레시안 : 파업을 대하는 이번 박근혜 정부의 태도를 보면, 철도 문제를 넘어 노동계 전반과 척을 지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상돈 : 그런 것을 일부러 일으키려 했다고 하면 어떤 음모론이 나올텐데, 아마추어이거나 초고단수 아니겠나. 나는 아마추어로 판단한다. 원래 생각했던대로 (노동계에 대한 강공책) 간다고 하더라도, 가게 되면 여론을 타고 가야 맞다. 그래야 일이 풀린다. 영국 대처 총리 얘기를 하는데, 대처가 탄광노조를 진압한 게 집권 5년차 때였다. 첫 파업 때는 (대처가) 양보했었다. 석탄이 없어서 그랬다. 이후에 파업을 대비, 석탄을 비축해 놓게 된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직전에 포틀랜드 전쟁에서 승전했다. 그런 식으로 여론을 업은 것 아닌가. YS가 전두환, 노태우를 칠 때도 등에 여론을 업었다. 역사를 보면 그렇다. 포클랜드 전쟁에 지고 탄광 노조에 대응했다면 대처는 몰락했을 수도 있다.

프레시안 : 대처식 개혁은 어땠나?

이상돈 : 대처가 임기 1년차에 했던 개혁은 공무원 개혁이었다. 당시 우리나라로 치면 안전행정부를 없애버렸다. 공무원 관리하는 공무원들이니까, 이렇게 할 일 없는 공무원이 어디 있느냐고 했다. 그리고 나서 한 것이 공단을 만들었다. 정부 기능이 '정책 결정'과 '정책 수행'이라면 정책 결정하는 기능은 별로 크지 않아도 된다. (정책 수행은) 대부분 인허가, 검사, 감독 등 '루틴'한 것(일상적인 것)을 한다. 영국은 그래서 반관반민(半官半民) 공단을 만들었다. 말하자면 정부는 정책 결정 중심으로 가는 것이다. 이게 대처 초기 개혁이다. 그런 와중에 전쟁이 났는데 승리를 했다. 그리고 지지도가 확 올랐을 때 탄광노조를 진압한 것이다. 현재 박근혜 정부의 노조에 대한 대응을 대처에 비유하는 것은 뭘 잘 모르는 것이다. 대처는 정치가였다.

프레시안 : 지난 1년을 보면 대처하는 방식이 비슷했던 것 같다. 통합진보당 해산 청구를 했을 때도, 전교조 법외 노조 통보를 했을 때도, 특정 여론만 의식한 것 같다.

이상돈 : 그런 것들을 어떻게 동시다발적으로 했는지…. 이번에는 제일 큰 것(노동계 전반)을 건드렸는데, 이렇게 되리라고 생각을 못했을 것 같다. 통합진보당 같은 경우도 원칙대로 했고, 이것도 원칙대로 했다고 생각했을수도 있겠다.

프레시안 : 그런 측면에서 보면 노조에 대한 이해가 상식적이지 않은 것 같다.

이상돈 : 노조는 나도 잘 이해를 못한다.(웃음) 다만 과거에 보면 노사문제가 그렇게 뜻대로 되는 것은 아니지 않나. 현실적인 벽이 분명히 있다. 그것을 인정하면서 대처를 해야하는 것 아닌가. 그게 정치 아닌가.

"쓴소리 해도 전화도 안온다. 청와대 항의 전화 받아보는 게 소원"


 

▲ "김종인, 안대희가 양 쪽에 상징적 인물이었다. 두 사람을 보고 사람들이 찍었지 김기춘을 보고 찍은 것은 아니다."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국정원 댓글 사건부터 복기해보자. 전두환 추징금 환수도 마치 민주노총 진입하듯 해버리기도 했다. 대부분이 그런 스타일이었는데, 국정원 사건, 통합진보당 사건, 이석기 사건 등등 현재까지 숨가쁘게 왔다. 어떻게 보나?

이상돈 : 박근혜 대통령을 도와줬던 것은 개성공단 해결, 그리고 이석기 사건 정도였다. 전두환 추징금 환수 수사도 국민 호응을 받았다. 그러나 외교 관계에서 대통령 지지라는 것은 거품이 많다. 1991년 걸프전 때, 아버지 부시 대통령 지지도가 미국 역사상 가장 높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 이후 여론이 싸늘해지면서 결국 클린턴에게 패해 재선에 실패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경우, 결국 자기를 당선시켜준 것은 국정 공약, 어젠다, 이런 것들이었다. 그런데 1년 동안 아무 것도 못하고 이른바 껍데기만 남은 게 돼 버렸다. 경제민주화도 지난 번에 (7월에) 끝내버렸지 않나. 대선 공약이라는 것은 임기 내내 가져가야 하는 것인데, 이런 식으로 공약을 종결시키는 정권은 처음 봤다. 20만 원 기초노령연금 문제도 사실상 종결시켰다. 나머지 임기는 뭘로 갈 것인가.

프레시안 : 경제민주화, 복지에 대해서는 대통령도 나름 진정성이 있는 인식을 했던 사안 아닌가?

이상돈 : 몇 년씩 얘기해왔던 것들이다. 작년 대선에 NLL같은 이슈 제외하고, 양당의 공약을 보면 차별성이 별로 없었지 않나. 그러나 대선 끝나고 나서는 너무 혼란스럽다. 6개월만에 공약을 매듭짓는 정권이 과거에 있었는지…. 못해도 가지고 가야 여론이 호응을 하는 것 아니겠나. 내가 이런 얘기하면 청와대에서 못마땅해 한다.

프레시안 : 청와대에서 전화도 오나?

이상돈 : 나한테 전화도 안온다. 항의 전화 받아보는 게 소원이다.(웃음)

프레시안 : 박 대통령이 대선에 도움을 받은 사람들이 또 있지 않나.?

이상돈 : 내 문제도 포함되기 때문에 말을 안하는데, 지난 번에 선대본부가 두 개가 있었지 않나. 김종인, 안대희가 양 쪽에 상징적 인물이었다. 이들을 보고 사람들이 박근혜를 찍었지 김기춘을 보고 찍은 것은 아니다. 굉장히 (그 사람들에게는) 아픈 부분이다. 내가 얘기할 부분은 아니지만.

프레시안 : 인사 스타일이 왜 그럴까?

이상돈 : 누구도 모르는 것이지 않나. 공식적인 답은 '전문가'여서 뽑는다고 한다. 그런데 수석이나 장관 중에 전문가다운 전문가가 누가 있나. 공기업 구조조정으로 가장 시급한 것은 연구소다. 첫째, 교통연구원이다. 그리고 건설기술연구원, 환경정책평가원이다. 대부분 SOC나 4대강 사업 등이 연관된 곳들이다. 박정희 정권때도 연구원들이 무리한 결론을 내지 않았다. 그런데 요즘 연구원들이 자조적으로 '쓰레기'를 만들고 있다고 한다. 쓰레기는, 버리면 좋다. 그런데 그것을 따라서 하니까 문제다. 문제 공기업을 개혁하려면 먼저 연구소를 개혁해야 한다. 공기업 부채가 왜 생기나, 정부가 보증을 서주니까 돈 받아가는 것 아닌가. 공기업 인건비 문제를 얘기하기 앞서 터무니없는 정책사업을 합리화시킨 연구원부터 개혁을 하라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그런 부분에서 책임이 없는 사람이다. 그래서 지지한 것도 있는데, 그 부분에 총대를 매지 못하고 있다.

프레시안 : 2000년 '아들 부시(George W. Bush)' 행정부랑 닮아간다는 지적에 대해 설명을 좀더 해달라.

이상돈 : 나는 클린턴을 별로 안 좋아했다. 하지만 부시가 솔직히 좀 부족하지 않나. 그래서 딕 체니(Dick Cheney) 부통령과 함께 해 부족한 부분이 보완되지 않을까 했었다. 그런데 그게 결국 독이 됐다. 2000년, 2004년 부시 당선, 재선의 1등 공신이 정치 컨설턴트 칼 로브(Karl Rove)였다. 칼 로브가 딕 체니를 들이는데 반대를 했었다. '딕 체니를 부통령을 시키면 당신이 대통령이 될 수 없다'고 반대했었다. 그런데 그렇게 됐다. 체니가 들어오니 체니가 자신의 멘토 럼스펠드를 데려왔다. 완전히 70년대 모습이 돼버린 것이다. 럼스펠드가 40대에 국방장관이 된 사람이다. 체니는 그래도 아버지 부시(George H. W. Bush, 1988년 당선) 때 국방장관을 했었는데, 럼스펠드는 실각된 이후 제약회사 사장 같은 엉뚱한 경력을 지낸 인물이었다. 그런 사람을 국방장관으로 임명해 모든 사람이 놀랐다.

결국 사고(이라크 전쟁, 전쟁 당시 럼스펠드는 이라크가 '대량살상무기'를 숨기고 있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결국 그 명분은 거짓으로 드러났다.편집자)를 친 것 아닌가. 체니나 럼스펠드 같은 사람들은 이미 2000년 시점에 요구하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칼 로브 얘기가 맞았던 것이다. 칼 로브는 외교 전문가가 아니고 정치 전문가다. 사회 여론을 읽고 공화당의 주인 의식과 함께 사명감이 있었던 사람이다. 럼스펠드를 해임할 때도 칼 로브가 자신의 힘으로 안되니 로라 부시에게 부탁해 해임을 시켰다. 당시 체니와 럼스펠드가 나이가 너무 많았다. 대통령보다 한 세대 이상 많았다. 대통령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역사를 알아야 한다는 점이다. 현대사를 알아야 한다.

 

▲ "이제는 다음 선거에서 어떤 공약을 내도 스윙보터들이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사람은 한번 속지 두 번 속지 않는다." ⓒ프레시안(최형락)



"민주당 100% 수성은 불가능…중요한 것은 '스윙보터' 민심"

프레시안 : 국정원 등 국가기관의 대선 개입 사건이 1년동안 정치의 중심에 있었다.

이상돈 : 지금 현재, 대통령은 '나는 모르는 일'이라고 했다. 그러나 상당히 많은 국민들은 연관돼 있다고 믿는다. 믿지 못하는 것은 대통령의 특검 거부 때문이라고 본다. 잘못된 메시지를 준 것이다. 집권 1년에, 소수가 주장하긴 하나, 어찌됐든 '하야 슬로건'이 나오지 않나. YS때 그랬나, DJ때 그랬나? 안 그랬다. 대통령 본심이 중요한 게 아니라 많은 국민들이 어떻게 보느냐가 중요하다. 말하자면 대통령이 주변사람 관리에 실패한 것 아닌가. 국정원 문제 해결 안하면, 정부에 대해 비판의 빌미가 생길 때마다 (야권에서) 이것을 계속 들고나올 것이다. 국회도 취약한 구조다. 여당이 지금 겨우 155석을 가지고 있다. 이렇게 취약한 의석을 가지고 있으면 국민 편에 서야 한다. 야당과 타협도 해야 한다. 박근혜를 지지했던 사람들은 이명박과는 다를 것으로 생각한 사람이 많았다. 그 사람들이 안 찍었으면 박 대통령이 대통령이 됐겠나. 대통령이 그 사람들을 지금이라도 살펴야 한다.

프레시안 : 내년 지방 선거 전망, 어떻게 보나?

이상돈 : 지난 지방선거(2010년) 때 민주당이 워낙 싹쓸이를 해놓았기 때문에, 지금 민주당이 100% 수성한다는 것은 불가능할 것 같다. 민주당이 어느 정도 선방하느냐, 서울시장, 경기도지사는 누가 되느냐, 이게 관건이다. 통합진보당이 만약 지방선거 전에 해산되면 후보를 못낸다. 후보를 못내면 민주당이 유리할 것 아닌가. 그러나 지방선거 전에 해산이 안 됐다? 그러면 통합진보당이 후보를 내게 되고, 그러면 민주당에 불리할 수 있다. 해산 판결이 선거를 넘겨서 나올 가능성이 제일 높은데, 그 경우 민주당에게는 '최고 악재'다. 통진당은 자신의 존재를 강화하기 위해 결사적으로 후보를 내고 더욱 더 세를 모을 것이다. 그러면 새누리당이 득을 본다. 지난해 총선 대선에서는 두 개의 정당이 전부 좌클릭을 했다. 그러면 보수가 유리하다. 앞으로 민주당이 세를 불려서 야권 통합해서 우클릭을 하고, 새누리당에 맞서면 2016년 가서는 어떻게 될지 모른다.

프레시안 : 외교 부문 지지는 거품이 낄 소지가 많다고 지적했는데, 여론조사를 해보면 지지도가 높게 나오는 부분이 외교 성과다.

이상돈 : 일반 국민들이 외교에 대해 그렇게 깊은 생각을 안한다. 지난 번에 바이든 부통령이 와서 한 얘기가 있는데 '베팅 잘하라'는 발언이다. 적절치 못하긴 하지만, 최근 브레진스키(즈비그뉴 브레진스키 존스홉킨스대 교수, Zbigniew Kazimierz Brzezinski)가 미국의 아시아 전략이 한계가 있기 때문에, 한국은 중국 편에 설것인가, 일본 편에 설것인가 결정을 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지금 우리 정부가 중국에 '베팅'했다가 옐로카드 먹은 것 아닌가. 대외 전략에 상처를 입었을 것 같다. 대일 외교는 상황이 좋지 않은데, 내가 대통령에게 어드바이스를 했다면 정상회담 카드는 초기에 쓰지 말자고 했을 것이다. 어려울 때, 사안을 풀 때 써야 하는데, 지금 너무 많이 써버렸다.

프레시안 : 중요한 것은 민생인 것 같다. 거의 6개월만에 대선 공약을 완수했다고 하는데, 민생은 여전히 어렵다. 최근 철도 노조 파업이 커진 것도, '안녕하십니까' 열풍 등 젊은 층에서 쏟아져 나온 '먹고 살기 힘들다'는 요구와 맞물려 있었다. 이들은 민영화 불안이, 더 어려운 세상에 대한 불안으로 치환되는 것 같다.

이상돈 : 민영화는 안 한다고 대통령이 말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스윙보터(선거에서 누구에게 투표할지 결정하지 못한 이들. 스윙보터들은 지지하는 정당과 정치인이 없기 때문에 그때그때의 정치 상황과 이슈에 따라 투표하게 된다. 편집자)다. 대통령의 참모들이 신경쓸 부분은 바로 이들이다. 칼 로브의 전략도 그랬다. '국가 백년 대계를 져버리고 스윙보터만 잡으면 되느냐'는 반론이 나올수 있는데, 그렇다면 100년 대계는 잘 보나? (여야) 양쪽의 골수 지지자들을 뺐을 때, 지난 대선에서는 스윙보터 중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박근혜 정권은 과거 이명박 정권과는 다를 것'이라고 기대했던 것 아닌가. 그 신뢰가 무너진 게 독이라고 본다.

이제는 다음 선거에서 어떤 공약을 내도 스윙보터들이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사람은 한번 속지 두 번 속지 않는다. 또 스윙보터는 대통령을 찍을 때 후보 본인 뿐 아니라 그 주변 사람들을 보고 찍는다. 그게 제일 큰 문제다. 대통령이 초심으로 돌아가지 않는 한, 2016년, 2017년 선거에서는 좋지 않은 일들이 나타날 수 있다. '나는 대통령이 됐으니 국가 백년 대계를 향해 간다'고? 만약에 그렇다면 할 말이 없다. 노무현, 이명박 대통령이 그래서 실패하지 않았나. 두 개 정권의 실패를 극복해야 한다. 그래서 내가 10년간을 복기하고 있다.

 
 
 


 

/박세열 기자(=정리) 필자의 다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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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2.31 08:37l최종 업데이트 13.12.31 08:37l
권우성(kws21)              김동환(heaneye)

 

 

한국 경제, 안녕들 하십니까? 박근혜 대통령이 국민행복과 창조경제를 기치로 내걸고 당선한 지 1년이 지났습니다. 그 사이 한국 경제는 어떻게 달라졌을까요. 경제 분야 전문가 3인과 함께 '근혜노믹스' 1년을 돌아봤습니다. 첫 순서는 김상조 한성대 교수입니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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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상조 교수 "정부 경제정책에 대한 신뢰가 무너졌는데 회복하려는 노력이 안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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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정부가 경제 민주화와 경기 활성화를 동시에 해내야 하는 중요한 시기입니다. 문제는 누구도 정부를 안 믿고 있다는 거죠. 정부의 경제 정책은 뭐가 됐건 이렇게 '믿음이 안 간다'는 인상을 주면 의도한 효과를 낼 수가 없습니다. 기업에 투자 독촉해봐야 투자가 안 나와요."

"신뢰가 무너졌다"는 표현이 와 닿았다. 그는 이 표현을 여러 번 반복했다. 재벌개혁 전문가답게 기업 여론에도 밝았다. "시민사회 뿐만 아니라 기업 쪽 사람들도 같은 얘기를 한다"는 말도 했다.

24일 연구실에서 마주앉은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근혜노믹스' 1년에 대한 평가를 묻자 이같이 답했다. "정부 경제정책에 대한 신뢰가 무너졌는데 회복하려는 노력이 안 보인다"는 지적도 함께 내놨다. 성적도 신통치 않지만 그보다는 학습 태도가 더 문제인 학생을 평하는 투다. 그는 "적절한 정책이 나와도 지금은 시장에서 작동하기 어려운 상태"라고 덧붙였다.

무엇이 상황을 이렇게 만든걸까. 김 교수는 올해 박근혜 정부가 범한 가장 치명적인 실수로 7월에 있었던 박 대통령의 발언을 꼽았다. 박 대통령은 6월 말 국회에서 공정거래법 개정안 등 경제민주화 법안들이 일부 통과되자 '경제민주화 주요 입법이 마무리됐다'고 말해 논란을 빚은 바 있다. 결과적으로 이 사건이 '경제민주화 포기'로 비춰져 정부의 신뢰도를 크게 낮추고 시장 참여자들을 교란시켰다는 것이다.

그는 "현재 한국 경제의 가장 큰 위험은 정부·가계·기업의 부채 압력이 경제 전반을 짓누르고 있다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특히 "MB 정부 때 급격히 늘어난 부실기업을 빠른 속도로 솎아내지 않으면 경제의 활력 자체가 죽어갈 수 있는 상황"이라고 경고하면서 "정부가 경제민주화 정책에 대한 확실한 의지를 보여주지 않는다면 내년부터는 노사문제도 본격적으로 불거질 수 있다"고 충고했다.

"이런 식으로 하면 경제 민주화도 경기 활성화도 실패"

우선 근혜노믹스가 뭐라고 생각하는지부터 물었다. 김 교수는 웃으며 "솔직히 그런 게 있느냐"고 반문했다. 그가 느낀 근혜노믹스는 '혼돈'이었다. 김 교수는 "올해 박근혜 정부의 경제정책은 부분적으로 보면 잘 한 것과 잘 못 한 게 섞여있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일관된 방향이 없었다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덧붙였다.

정부가 대선과 집권 초기에는 경제민주화를 강력하게 내세웠지만 몇 달 지나지 않아 경제민주화는 접어버리고 경기 활성화를 밀기 시작한 점을 꼬집은 것이다. 그는 이같은 경제정책 운용이 매우 위험하다고 설명했다.

정부에 대한 신뢰와 예측가능성을 급격히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정책이 예측 불가능하고 믿을 수 없다는 판단이 들면 경제 주체들은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는다"면서 "이런 식으로 하면 경제민주화도 경기활성화도 성공하기 어렵다"고 단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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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통령이 지난 7월 '경제민주화 주요 입법이 모두 마무리됐다'는 식으로 말했거든요. 이 말이 나온 이후로 재계에서는 모든 경제민주화 공약을 부정하는 쪽으로 입장을 바꿨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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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 정부가 상반기에는 공약대로 경제민주화를 하는가 싶었는데 하반기에는 상당히 흐지부지 됐습니다.
"경제민주화도 중요한 목표지만 경기 활성화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목표입니다. 한국 경제를 짓누르고 있는 부채 압력을 생각하면 극단적인 경기 부양책이 필요할 수도 있는 그런 상태거든요. 단기적으로는 경기를 활성화 시키면서도 장기적으로는 경제민주화를 가져가야 식으로 둘 다 해야하는 그런 상황입니다."

- 경제민주화는 아예 접고 경기 활성화에 주력하는 분위기인데요.
"대통령이 지난 7월에 결정적인 오류를 범했죠. 6월 국회에서 경제민주화 법안 6개가 통과되니까 '경제민주화 주요 입법이 모두 마무리됐다'는 식으로 말했거든요. 이런 식의 발언은 경제 주체들에게 의미있는 '신호'로 작용합니다. 이 말이 나온 이후로 재계에서는 모든 경제민주화 공약을 부정하는 쪽으로 입장을 바꿨지요. 그리고 사람들이 헛갈려하기 시작했습니다."

- 지금 한국의 경제 흐름이 경기활성화 쪽으로 가고 있는 거 아닌가요?
"그렇지는 않아요. 사회에서 통용되는 어떤 흐름이라는 게 있거든요. 박근혜 대통령은 경제민주화를 내세워서 당선됐는데 그건 경제민주화라는 게 이미 다수의 사회구성원에게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일종의 '신호'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경제민주화를 접고 경기활성화? 그렇게 안 됩니다."

- 예를 하나 들어주신다면.
"얼마 전 삼성 그룹이 계열사 간 지분율을 조정했어요. 시장에서는 이걸 후계자 승계를 염두에 둔 계열분리로 해석했지만 사실은 일감 몰아주기 과세를 피하기 위한 조치의 성격이 강합니다. 총수 일가 지분율을 전체의 30% 이하로 낮추고 계열사와의 거래 비중도 30% 이하가 되도록만 만들면 일감 몰아주기에 안 걸리거든요.

삼성 뿐만 아니라 10대 그룹 전체가 하반기에 비슷한 작업을 열심히 하고 있어요. 내년 6월 일감몰아주기 과세신고에 총수 이름이 안 올라가게 하겠다는 거죠. 내년에는 정의선이 일감 몰아주기 과세로 얼마 내고 이재용이 얼마 냈다는 식의 기사가 안 실리게 하겠다는 거에요."

- 올해 6월에 나온 일감 몰아주기 방지법 자체가 '신호'가 됐다는 거군요.
"시민사회에서는 그 법 나왔을 때 내용이 미비하다고 불만이 많았어요. 그러나 법이 만들어졌다는 것은 한국사회에서 더 이상의 일감 몰아주기는 용납하지 않겠다는 신호인 셈이죠. 그러면 기업은 피해갈수밖에 없어요.  사실 전 이 법이 나왔을 때 재벌 대기업들이 위헌소송을 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어요. 원래 상속·증여세법은 세금을 한 번만 내면 되는데 일감몰아주기 과세는 매년 하도록 되어있거든요. 그런데 지금와서 누가 위헌소송 냅니까. 이렇게 우리 사회의 합의가 어느 방향이라는 걸 분명히 제시해주면 기업들은 따라오게 되어 있어요."

"기업부채 심각...주인있는 40대 재벌기업 중 25%가 부실기업"

김 교수는 인터뷰 내내 경기 활성화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기업의 채무부담 능력이 급격히 떨어지고 있는 가운데 0.9%의 기업이 모든 기업이 내는 이익의 60%를 가져간다"는 말도 했다. 그만큼 현재 한국 경제가 기형적인 형태로 침체되어 있다는 얘기다. 최근 한국은행의 금융안정지도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기업부채는 이미 가계부채 위험도와 동일한 수준이다.

기형적인 경제구조를 만드는 주범으로는 부실기업을 지목했다. 그는 "동양사태에서도 드러났던 것처럼 총수 일가들이 자신의 개인적 이익을 놓치지 않으려고 회사의 부실을 방치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경기를 안정적으로 활성화 시키기 위해서는 경제민주화적 조치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 올해 드러난 한국경제의 대표적인 위험요소가 있다면.
"부채죠. 정부 부채는 아직 여유가 좀 있고 가계 부채는 어느정도 예상한 문제인데 기업 부채는 정말 심각합니다. 투자나 고용에도 악영향을 끼치고요. 사실 지금 삼성전자, 현대차, 기아차를 빼고는 이익이 나오는 기업이 거의 없다고 보면 됩니다. MB정권 5년 동안 '비지니스 프랜들리' 기조 아래 구조조정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부실 기업들이 급증했어요."

- 부실기업이 어느 정도나 되나요?
"통상 부채비율이 200%를 넘으면서 이자보상비율이 1이 안 되는 상태가 2~3년 지속되면 부실기업이라고 합니다. 현재 주인이 있는 재벌그룹 40개 중 절반 가까이가 연결재무재표로 계산했을 때 부채비율이 200%를 넘어요. 그중 절반은 이자보상비율이 1이 안 되죠."

- 부실기업이 늘어난 이유는 뭐라고 보시나요?
"이번 동양사태에서도 드러났듯이 총수일가들이 자기 이익 때문에 부실기업이 생겨도 구조조정을 안 합니다. 기업이 이익을 못 내면 구조조정을 해야하는데 오히려 다 분식회계하고 배임하고 더 이상 어쩔 수 없는 '쓰레기 기업'이 된 후에야 법정관리 신청을 하죠. 개인의 이익을 위해 모두가 위험해질 수 있는 구조인 셈입니다. 이런 걸 막으려면 기업 내부를 감시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고 공시나 신용평가 체계를 강화해야 합니다."

- 올해 정부가 입법 예고했던 상법개정안에 관련 내용이 포함됐는데 결국 재계 반대로 아직 법안이 제출되지 못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8월에 10대 그룹 총수와 오찬 회담을 가진 후에 바로 수정에 들어갔죠.(웃음) 상법개정안의 주요 내용은 감사위원 분리선출과 이중대표소송제도 두 가지입니다. 감사위원 분리선출은 지배주주로부터 독립된 사외위원이 해당 기업을 모니터링하게 하자는 취지입니다. 이중대표소송제도는 비상장 회사에 문제가 생겼을 때 상장되어 있는 모회사의 주주들이 책임을 물을 수 있게 하는 제도에요. 총수가 마음대로 그룹을 휘두를 수 없게끔 기업 내부에 아주 최소한의 견제장치를 마련하는 내용이지요."

- 재계에서는 왜 반대했나요.
"이게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약 사항이에요. 그래서 전국경제인연합회에서도 올해 초까지는 드러내놓고 반대를 못했어요. 경제민주화 분위기도 있으니 '어쩔 수 없다' 정도의 분위기였지요. 그런데 자꾸 정부가 경제민주화 끝났다는 신호를 주니까 상법개정안 전부를 부정하는 쪽으로 입장이 바뀌었어요."

"박근혜 정부, 양극화 해결 반드시 이뤄진다는 일관적인 신호 내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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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와대에서 소통과 신뢰 얘기 많이 하는데 그런 건 아무리 말로 해 봐야 생기는 게 아닙니다. 실제로 소통을 하고 신뢰할 수 있는 행동을 보여줘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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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노조가 사상 최장인 23일간 전면 파업을 벌였다. 파업의 주 이유는 임금인상이 아니었다. 대선 공약에서 국민 동의없이는 민영화 없다고 약속한 정부가 철도민영화를 시도한다는 것이었다. 신뢰의 문제가 경제영역으로 확산되는 양상이다.

김 교수는 박근혜 정부가 내년에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로 신뢰의 회복을 꼽았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유권자들의 신뢰를 얻지 못한 경기활성화 정책은 효력도 없을 뿐더러 지속가능성도 떨어진다는 이유다. 그는 "특히 양극화 해결을 위한 경제민주화가 반드시 이뤄진다는 일관적인 신호를 줘야한다"고 강조했다.

- 시민사회에서는 이미 '박근혜 표 경제민주화는 끝났다'는 분위기인 것 같은데요.
"그게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습니다. 올해 6월 지방선거 결과에 따라 또 바뀔수가 있거든요. 저는 시민사회 움직임만 보는 게 아니라 기업 쪽 사람들도 많이 만나요. 기업들이 공통으로 하는 불만이 뭐냐면 경제민주화든 경기활성화든 다 좋은데 어느 방향으로 갈지 분명하게 알려달라는 겁니다. 사업이라는 게 미래가 불투명하면 단기적인 성과를 내기 위한 로비활동 말고는 뭘 할 수가없어요."

- 경제 활력을 회복하기 위해서 내년에 박근혜 정부가 해야 할일은 무엇일까요?
"내년 한국경제 화두는 노사문제라고 봅니다. 비정규직 문제를 포함해 각종 노동 현안들이 산적해있고 이 문제가 해결이 안 된 상태에서 경기 활성화로 들어가면 바로 충돌이 일어날 거에요."

- 애초 약속은 경제민주화였으니까요.
"그렇죠. 양극화 문제를 정부가 해결해 줄 거라는 신뢰를 줘야 합니다. 청와대에서 소통과 신뢰 얘기 많이 하는데 그런 건 아무리 말로 해 봐야 생기는 게 아닙니다. 실제로 소통을 하고 신뢰할 수 있는 행동을 보여줘야죠.

진보 학자로서 제가 원하는 경제민주화를 박근혜 정부가 다 해줄거라고 기대하지 않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수 정권이기 때문에 해줘야 하는 시대적인 과제가 있습니다. 야당 역시 대선 때 똑같이 경제민주화를 제시한만큼 그에 걸맞는 비전과 철학을 보여주면서 현실적으로 가능한 범위 내에서는 실현을 시켜야 합니다."

- 박근혜 정부에 당부의 한 마디를 하신다면.
"35개 경제민주화 공약들을 정권 내에 완성하라고 요구할 생각은 없습니다. 경기 활성화 정책을 우선적으로 펼수도 있습니다. 경제 환경에 따라 정권의 선택은 바뀔 수 있는 거니까요. 그러나 경제민주화 기본 방향은 절대 잊지도 않고 포기하지도 않을거라는 분명한 신호를 줘야 한정된 정책자원을 낭비하는 일이 없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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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춘, 참으로 ‘고래심줄’ 같은 사람이군요

 
 
법 주무르며 누린 ‘기춘대원군’의 40년 권력
 
편집국  | 등록:2013-12-30 11:19:52 | 최종:2013-12-30 11:20:59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 어떤 대통령은 피살되고, 어떤 대통령은 자살하고, 어떤 대통령은 재산의 대부분을 내놓았지만 한국 엘리트집단의 대표 김기춘은 늘 자신의 자리를 지켰다. 그는 포레스트 검프처럼 남달리 근면하고 성실했지만, 역사에 대한 정직성만큼은 검프와 달랐다. 지난 8월6일 청와대 국무회의가 열리기 전 정홍원 국무총리와 함께 서 있는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오른쪽). 청와대사진기자단

[토요판] 특집 / 김기춘뎐(傳) - 기춘대원군의 흑역사
육영수 저격범 사형 ‘공로’로 35살에 중정 국장 발탁
‘초원복집’‘유서대필’ 등 위기마다 빛난 ‘뒤집기 능력’

▶ 오죽하면 ‘기춘 대원군’이라는 말이 나왔을까요. 왕의 자리에 오른 적이 없으면서도 최고의 권력을 휘두른 19세기 말 조선의 실세 ‘흥선 대원군’에서 따온 말이랍니다. 지난 8월 청와대 비서실장에 임명된 김기춘은 ‘총리 위의 비서실장’ ‘막후 실세’ ‘부통령’ ‘왕실장’으로도 불립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왜 그에게 전적으로 의지할까요? 역사학자 한홍구 교수가 김기춘이라는 사람의 ‘흑역사’를 꼼꼼히 짚어보았습니다. 지은 죄가 많아서인지 100장 넘게 써 온 것을 60장으로 줄였습니다.

 

 

장안의 화제가 되고 있는 티브이엔(tvN) 드라마 <응답하라 1994>의 배경이 된 해에 가장 히트한 영화는 <포레스트 검프>였다. 미국 역사의 격동기였던 1960년대와 70년대를 배경으로 아이큐 75 포레스트 검프의 삶을 그린 영화다. 극 중에서 검프는 마틴 루서 킹의 연설 등 역사의 굽이굽이에 모두 등장하면서 케네디, 존슨, 닉슨 등 역대 대통령과 만나기도 한다. 언론과 온라인에서 ‘기춘대원군’이라는 별명을 얻은 청와대 비서실장 김기춘 역시 포레스트 검프처럼 격동의 한국 현대사 굽이굽이에 빠지지 않고 등장한 인물이다. 두 사람은 남달리 근면하고 성실하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다른 점도 무척 많다. 포레스트 검프의 아이큐는 75에 불과하다. 머리 좋기로 빠지지 않을 안대희 전 대법관(검찰 출신)은 “나는 김기춘에 비하면 발바닥”이라며 그의 아이큐는 170대일 것이라 말한 바 있다. 두 사람의 더 큰 차이는 아이큐보다도 자신과 타인의 삶에 대한, 그리고 역사에 대한 정직성이라 할 것이다. 어느 리뷰에서 “혼란의 시기 속에 ‘순수’와 ‘사랑’을 잃지 않은 한 인간”이라 평한 포레스트 검프의 삶은 우리에게 뭉클한 감동을 주지만 기춘대원군의 흑역사는 나에게 두 가지를 떠오르게 만들었다. 바퀴벌레와 오뎅.

 

 

5·16 장학금 받고 광주의 사위가 되다

 

온갖 환경 변화에도 굴하지 않고 3억2천만년 동안 살아남았다는 지구의 터줏대감 바퀴벌레. 그 어떤 방법으로도 퇴치가 불가능하다는, 마음 고쳐먹고 동거하는 수밖에 없다는 그 바퀴벌레. 오뎅은 한국 엘리트 집단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포장마차 아주머니가 저녁때 장사를 나와 오뎅을 끓이면 새벽에 일 마칠 때까지 통을 비우는 법이 없다. 오뎅이 많이 팔리면 꼬치 더 집어넣고, 국물 졸아들면 물 더 붓고, 싱거우면 간장과 양념 치고, 무 더 썰어넣고, 그렇게 해서 새벽까지 통을 비우지 않고 오뎅을 판다. 신라에서 고려로, 고려에서 조선으로, 조선에서 일제시기로, 일제시기에서 해방으로, 군사독재에서 민주화에 이르기까지 그 숱한 상황변화에도 한국 엘리트 집단의 본류는 단절된 적이 없다. 그 끈질긴 생명력을 자랑한 한국 엘리트 집단이라는 종을 대표하는 개체가 바로 ‘왕실장’ 김기춘이다.

 

1939년생인 김기춘은 2013년 8월5일 꺼진 불도 다시 보자는 말을 유행시키며 일흔다섯의 나이에 청와대 비서실장에 임명되었다. 모르긴 몰라도 조선왕조 500년을 포함해도 최고령 도승지(조선시대 승정원의 6승지 중 수석 승지로 왕의 비서장 격)가 아닐까 한다. 김기춘을 주목하는 이유는 그가 역대 최고령 도승지이기 때문이라기보다는 그가 역대 가장 막강한 비서실장이기 때문이다. 중국에 부도옹(不倒翁) 덩샤오핑이 있다면 한국에는 격변의 세월을 살아남아 대원군에 오른 오뚝이 김기춘이 있다.

 

김기춘의 독특한 이력은 1991년부터 1997년까지 정수장학회 장학금 수혜자들의 모임인 상청회의 회장을 지냈다는 점이다. 1958년 서울법대에 입학한 김기춘은 3학년 때인 1960년 말에 제12회 고등고시 사법과에 합격했다. 김기춘이 정수장학회의 전신인 5·16장학회로부터 장학금을 받은 것은 1963년과 1964년, 그가 해군 해병대 법무관으로 근무하면서 어떤 재주를 부렸는지 모르지만 서울대 대학원을 다닐 때였다. 이것이 그가 박정희 일가와 처음 인연을 맺은 때다. 흥미롭게도 5·16장학회 설립에는 박정희의 사단장 시절 법무참모를 지낸 신직수(1927~2001)가 깊이 관여했다. 대한민국에서 관운이 제일 좋다는 소리를 들은 신직수는 법무장관, 중앙정보부장, 대통령 특보 등 자리를 옮길 때마다 김기춘을 데리고 다니며 오늘의 그를 만들어준 후견인이었다.

 

군복무를 마친 초임 검사 김기춘의 첫 발령지는 광주였다. 일설에는 그의 장인이 된 박찬일 변호사가 김기춘을 사위로 삼기 위해 김기춘의 첫 부임지가 광주가 되도록 로비를 했다고도 한다. 반면 김기춘 자신은 서울법대 동기동창의 동생으로 지금의 부인인 박화자 여사에게 반해 그와 결혼하려고 스스로 광주를 임지로 선택했다고 주장했다.(<경향신문> 1990년 1월5일치) 김기춘이 결혼식을 올리던 1965년만 해도 아직 영호남 간에는 지금과 같은 험한 지역감정이 없었다. 김기춘은 대단한 애처가로 알려져 있다. 다들 악몽처럼 기억하는 일이지만 김기춘은 한국 역사상 가장 부끄러운 지역감정 조장 사례인 1992년 초원복집 사건의 주역이었다. 그런 김기춘이 처가가 광주였고, 광주 출신의 아내를 매우 사랑한 부드러운 남자였다. 이완용이 최고의 학식과 인품과 교양을 갖춘 당대 최고의 명필이었던 것처럼.

 

 

60년대
아이큐 75지만 순수와 사랑으로
뭉클한 감동 준 포레스트 검프
머리 좋은 서울법대생 김기춘은
3학년때 사법고시 합격하고
5·16장학금 받으며 권력과 인연

 

70년대
신직수 따라다니며 승승장구
유신헌법의 알맹이를 만들고
재일동포 간첩사건 고문 조작
문세광 입 열어 사형시킨 뒤
박근혜 원수 갚아준 은인으로

 

 

유신헌법 직접 만들었으니 ‘티브이 명해설’

 

김기춘은 1967년 부산지검 검사, 1969년 서울지검 검사를 거쳐 1971년 8월에 법무부 법무과 검사로 발령이 난다. 1971년 6월 신직수가 법무부 장관이 된 직후였으므로, 신직수를 지근거리에서 보좌하게 되었다. 서울법대 헌법학 교수로 있다가 유신헌법 제정에 상당한 역할을 했으며, 뒤에 유신정우회(유정회) 국회의원으로 정책위의장을 지낸 한태연은 2001년 12월 한국헌법학회가 연 ‘역사와 헌법 학술대회’에서 유신헌법 제정 과정과 김기춘의 역할에 대해 상세한 증언을 한 바 있다.(“유신헌법은 박정희가 구상하고 신직수·김기춘이 안을 만들었다” <오마이뉴스> 2001년 12월9일치) 한태연은 “측근들 얘기를 들으면 평소부터 박 대통령은 드골 헌법에 대한 얘기를 많이 했다”며 “김기춘 과장을 파리에 보내 1년 동안 드골 헌법에 대한 자료를 수집하도록 했다”고 소개했다. 한태연은 “나와 갈봉근 (당시 중앙대) 교수가 (법무부에) 가보니 신직수 장관과 김기춘 과장이 주동이 돼 안을 모두 만든 상태였다”며 “장관이 ‘골격은 손댈 수 없다’고 해 ‘자구 수정’ 정도만 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기춘은 자신은 파리에 간 일이 없고 당시에 과장이 아니라 평검사였다며, 자신은 프랑스에서 ‘비상사태하에서 대통령 권한이 어느 정도냐 하는 것’ 등에 대해 조사하여 보고하는 정도 외에 다른 것은 없었다고 한태연의 발언을 부인했다. 디테일에서는 한태연의 기억이 착오일 수 있으나, 비유해서 말한다면 한태연은 유신헌법의 포장지를 만들었고 김기춘은 그 알맹이를 만들었다고 할 것이다. 김기춘은 또 유신헌법에 대해 “티브이에 나와 명해설을 하기도 해 이름이 났었다”고 한다.(<경향신문> 1981년 4월27일치) 유신헌법 제정 공포 이후 첫 검찰인사(1973년 4월초)에서 김기춘은 법무부 ‘인권옹호과’ 과장으로 승진했다. <중앙일보> 1973년 4월3일치는 김기춘과 그의 고시 2년 선배인 정해창이 “유신체제의 법령 입법과 개정의 공로와 실력이 높이 평가되어 유례없이 발탁”되었다고 보도했다. 1973년 봄의 검찰 인사에서 법무부 과장(부장검사급)으로 승진한 사람들이 주로 사법고시 8회(<경향신문> 1973년 4월2일치)였기 때문에 12회인 김기춘이 승진한 것은 참으로 유례없는 일이다.

 

평검사 김기춘은 과장(부장검사)으로 승진했지만, 법무부 장관 신직수는 1973년 말 중앙정보부장으로 영전했다. 이때 신직수는 김기춘을 중앙정보부로 불러들여 부장의 법률보좌관을 삼았다. 1974년 8월15일, 35살의 새파란 검사 김기춘을 40년 후 최고령 도승지로 만들어준 숙명의 사건이 일어났다. 김대중 납치사건에 분노한 재일동포 문세광이 국립극장에서 박정희를 저격했고 그 와중에 육영수가 피격 사망한 것이다.

 

김기춘은 이 사건 수사에 깊이 관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기춘 자신이 <시비에스>(CBS) ‘시사자키 오늘과 내일’에서 증언한바, 문세광은 사건 발생 하루가 지나 “8월16일 오후 5~6시경까지도 묵비하고 일체 질문에 답을 안 했다”고 한다. 김기춘은 문세광의 말문을 열도록 하라는 신직수의 지시로 수사팀에 합류했다. 김기춘은 “피의자들을 신문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첫번째 질문”이고, “보통 첫 질문에 답변을 거부하면 계속 답변을 거부하는 경향”이 있기에 고심 끝에 거두절미하고 단도직입적으로 드골 프랑스 대통령 암살을 다룬 <자칼의 날>이라는 소설을 읽었느냐고 물었다. 이에 그때까지 일체의 답변을 거부하던 문세광이 반가운 표정을 지으며 선생도 읽었냐고 말문을 열었다는 것이다. 김기춘은 문세광이 일체의 신문에 8월16일 오후 5~6시경까지도 묵비하고 있었다고 주장했지만, 당시 조간신문 8월16일치를 보면 문세광이 이미 상당히 구체적인 내용을 진술하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육영수가 실제로 문세광의 총에서 발사된 총탄에 희생된 것인지는 지금도 심각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음에도, 당시 수사당국은 첫째 ‘육영수 여사의 살해범은 문세광’이고, 둘째 ‘그의 배후에는 조총련이 있다’고 단정지었다. 박근혜의 입장에서는 문세광을 범인으로 특정하여 그를 사형에 처하게 만든 김기춘 등 수사진은 바로 어머니의 원수를 갚아준 고마운 사람들이라 할 수 있다. 이 점에 관한 한 현재 박근혜 대통령 주변에 있는 그 어떤 사람도 김기춘에 대한 박근혜의 신뢰와 고마운 마음을 넘볼 수는 없을 것이다.

 

문세광 사건 수사에서 나름 중요한 역할을 한 김기춘은 그 공으로 중앙정보부 대공수사국장으로 승진했다. 김기춘은 서른다섯살 나이에 중앙정보부에서 가장 막강한 부서의 책임자가 되어 유신체제 유지의 대들보 구실을 하게 된 것이다. 대공수사국장 시절 김기춘의 대표작이 1975년 11월22일 중앙정보부가 발표한 ‘학원침투 북괴간첩단’ 적발사건이다. 이 사건의 주요 피해자들은 재일동포였고 사건 관련자들은 부산대·서울대·한신대에 유학중이거나 이들과 친하게 지낸 재학생들이었다. 사건이 발생한 1975년은 인혁당 관련자 사형 집행, 남베트남 정권 붕괴, 장준하 암살 등 참으로 살벌한 때였다. 부산대로 유학 온 김오자라는 젊은 재일동포 여학생은 한국 사회를 엄습한 그 깊은 침묵을 견딜 수 없었다. 그는 혼자 유인물을 쓰고 만들고 뿌렸다. 거기서 단서가 잡혔다. 그때만 해도 유인물에 한자를 쓸 때였는데 노동을 한자로 쓰면서 일본식으로 동에 사람인변을 붙여 으로 쓴 것이다. 중앙정보부가 이를 놓칠 리 없었다. 재일동포 유학생들이 무더기로 붙잡혀가 조사를 받았다. 당시 한국에 와 있던 재일동포 유학생은 200~300명에 불과했는데 이 사건 하나만으로 전체의 10%가량이 한꺼번에 간첩으로 몰렸다. 김오자 등은 수사과정에서 엄청난 고문을 당했다. 김오자의 옆방에서 수사받은 재일동포 유학생 김동휘에 따르면 ‘인간의 비명 소리가 아닌 소리를 들었다’고 한다.(“박정희 때나 지금이나 똑같아” <한겨레21> 제885호, 2011년 11월14일치)

 

 

허화평한테 궁지 몰리자 박철언한테 매달려

 

수사책임자 김기춘은 기자들과의 일문일답에서 이 사건의 또다른 특징으로 관련자 중에 여학생이 많다는 점을 꼽으며 “지하철이나 버스정거장 등지에서 중견장교에게 추파를 던져 접근, 소속부대의 임무 등 군사기밀을 빼내려 했다”고 주장했다.(<중앙일보> 1975년 11월22일치) 5공 시절 부천서 성고문 사건 당시에 공안검찰이 운동권 여학생들이 “성을 혁명의 도구”로 삼는다고 비난한 바 있는데 김기춘은 그 10년을 앞서간 것이다. 이 사건으로 몇 명 되지 않았던 부산대 운동권은 쑥대밭이 되어 1979년 10월 부마항쟁으로 폭발할 때까지 만 4년간 데모가 한 건도 없었다.

 

6공의 황태자라 불렸던 검찰 후배 박철언은 5공화국 시절 김기춘이 궁지에 몰렸을 때 결정적인 도움을 준 사실이 있는데, 이를 자기 회고록(박철언, <바른 역사를 위한 증언1>)에 자세히 털어놓아 김기춘을 거북하게 만들었다. 김기춘이 죽다 살아난 이 사건을 살펴보려면 먼저 1977년으로 돌아가보아야 한다. 김기춘이 청와대 비서실장에 임명된 뒤 <동아일보> 논설주간 황호택은 과거 김기춘에게 직접 들은 이야기를 토대로 이 사건에 대해 상세하게 이야기했다.(인터넷 동아일보 2013년 8월15일치, ‘황호택 칼럼-오뚝이 김기춘 실장의 마지막 공직’) 그에 따르면 “1977년 10월 전방 사단에서 대대장 유운학 중령이 무전병을 데리고 월북하는 사건”이 터졌는데, 당시 보안사는 유운학 중령이 북한에 의해 납치되었다고 박정희에게 허위로 보고했다. 박정희는 보안사의 보고를 믿지 않고 합참과 중앙정보부 대공수사국장 김기춘에게 진상조사를 지시했다. 사실 유운학은 사단 보안대에 약점이 잡혀 고민하다 스스로 월북해버린 것이었다. “일선의 중대장 대대장 연대장 사단장들 사이에서는 보안사 등쌀에 못살겠다는 원성이 자자했다”는 김기춘의 보고를 받은 박정희는 크게 화를 내며 보안사의 권한을 축소하는 개혁안을 김 국장에게 성안하도록 지시했다. 박정희는 김기춘이 올린 개혁안에 따라 “보안사 정보처를 없애고 보안사 요원들을 정부 부처 및 기관에 출입하지 못하도록 했다”고 한다.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에 의해 박정희가 사살되는 10·26사건이 터지자 위세당당하던 중앙정보부는 졸지에 역적기관이 되었고, 간부들은 김재규와의 공모 여부에 대한 조사를 실시한다는 명목으로 모두 보안사 서빙고 분실로 끌려가 혹독한 조사를 받았다. 황호택은 중정을 접수한 보안사 요원들이 제일 먼저 찾은 사람이 김기춘이었다고 증언했다. 김기춘은 정말 운이 좋은 사람이었다. 그가 대공수사국장으로 있었다면 꼼짝없이 서빙고로 끌려가 초주검이 되도록 당하고 옷을 벗어야 했을 것이다. 김기춘이 김재규 밑에서도 2년가량 대공수사국장을 지내고도 무사할 수 있었던 것은 신직수와 박철언 덕이었다. 1976년 12월 중앙정보부장이 신직수에서 김재규로 교체될 때 김기춘은 계속 대공수사국장으로 있었는데, 신직수는 1979년 1월 청와대 법률담당 특별보좌관으로 기용되자 김기춘을 데려다가 청와대 법률비서관으로 삼았다. 김기춘은 청와대에 근무하면서 당시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하던 박근혜와 접촉할 기회도 자주 있었을 것이다. 유신시대 최고로 잘나가던 김기춘은 박정희 사후 친정인 검찰로 복귀했다.

 

전두환이 유신헌법 대신 5공화국 헌법을 만들고 정식으로 5공화국 대통령에 취임한 직후 문제가 불거졌다. 전두환 정권은 법원에서는 법관 재임명으로 37명을 탈락시켰고, 검찰에서는 “10년 이상 경력을 가진 검사 200명에게 검찰쇄신을 위해 인사권자가 소신 있게 인사를 할 수 있도록 한다는 명분 아래 일괄 사표를 제출하도록 하여 이 중 26명의 사표를 수리”했다.(<매일경제> 1981년 4월25일치) 전두환의 보안사령관 시절 비서실장으로 세도가 당당했던 허화평(육사 17기)이 보안사와 악연이 있는 김기춘의 옷을 벗기려 한 것도 바로 이때였다. 궁지에 몰린 김기춘은 청와대 비서관으로 있던 대학후배 박철언에게 매달렸고, 박철언은 김기춘에게 허화평에게 전달해줄 테니 편지를 써달라고 말했다. 김기춘은 얼마 후 “일종의 충성맹세”인 “구구절절 장문의 편지”를 써 왔고, 박철언은 이 편지를 허화평에게 전달하며 적극적인 구명에 나섰다. 그 덕에 김기춘은 천신만고 끝에 살아남았고 검사장으로 승진하기까지 했다. 박철언 덕분에 검사장에 승진하기는 했으나 보직은 검사장급에서 한직으로 취급받는 법무부 출입국관리국장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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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양라면 공업용 쇠기름 사건도 그의 작품

 

전화위복, 새옹지마란 말이 있다. 오뚝이 김기춘에게도 적용되는 말이다. 유신 시절 동기들이 쳐다보지 못할 정도로 앞서가던 김기춘은 5공 때는 찬밥을 먹었다. 세월이 바뀌어 노태우 정권이 들어선 뒤 여소야대 상황에서 5공 청산이 시대적 과제가 되었을 때, 5공 시절 찬밥을 먹은 김기춘은 1988년 12월 검찰총장으로 화려하게 무대의 중앙에 복귀했다. 김기춘이 지휘하는 검찰은 1989년 ‘5공 비리’ 수사를 진행하면서 전 안기부장 장세동 등 49명의 5공 인사를 구속했다. 한 가지 흥미있는 것은 처음에 김기춘의 옷을 벗기려다가 충성편지를 받고 김기춘을 살려준 허화평은 당시 그가 소장으로 있던 준국책연구기관 현대사회연구소 노동조합이 허화평의 구속을 요구하며 시위(<한겨레> 1988년 12월3일치)를 벌였는데도 구속을 면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김기춘이 검찰총장으로 있던 시절은 바로 민주화 이후 수구세력의 반격이 시작되어 공안정국-보수대연합-범죄와의 전쟁이 이어진 시기였다. 이때 김기춘은 ‘미스터 법질서’, ‘자유민주주의 체제 수호의 선봉장’을 자임하면서 좌경용공세력과 폭력세력을 척결하겠다는 강경발언을 연일 쏟아냈다. “6·29선언 이후 민주화라는 미명 아래 좌경세력이 사회 곳곳에서 머리를 드는 데 대해 단호하게 대처하겠다는 결심”을 했다는 것이다. 김기춘이 검찰총장으로 있을 당시 또하나의 야심작은 검찰이 삼양식품 등이 라면 제조 공정에서 공업용 쇠기름을 사용했다는 혐의로 회사 대표 등 여러 명을 기소한 사건이었다. 수년간에 걸친 공방 끝에 그들은 모두 대법원에서 무죄판결을 받았다.

 

첫 임기제 검찰총장 김기춘은 1990년 12월5일 2년 임기를 마치고 총장에서 물러났지만, 곧 일선에 다시 등장했다. 1991년 4월26일 명지대생 강경대가 시위 도중 전경들에게 맞아 죽는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노태우 살인정권의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는 격렬하게 일어났고, 그 와중에 학생들의 분신이 연이어 발생했다. 5월8일에는 재야단체의 연합조직인 전민련 사회부장 김기설이 서강대에서 분신자살하자 정부와 수구세력은 학생들의 분신에 조직적 배후세력의 개입이 있다는 희한한 주장을 내놓았다. 그리고 검찰은 김기설의 유서를 전민련 동료인 강기훈이 대필했다면서 강기훈을 구속했다. 5월초에 숨진 박승희의 장례가 광주에서 무려 20만 인파가 운집한 가운데 거행되고, 서울에서는 또다른 여학생 김귀정이 경찰의 강제해산 과정에서 숨지자, 노태우 정권은 다음날인 5월26일 김기춘을 법무부 장관에 임명했다.

 

민주화 이후 중앙정보부-안기부는 체제 유지의 전면에서 한발 물러서야 했다. 유서대필 사건은 이 공백상태에서 발생한 위기를 검찰이 온몸을 던져 막은 것이다. 유서대필이란 지금이나 그때나 말이 안 되는 사건이었다. 검찰도 수구세력도 그것을 몰랐을 리는 없다. 그럼에도 그런 황당한 주장을 한 치의 주저함 없이 밀고 나가야 할 만큼 노태우 정권은 위기에 빠져 있었다. 검찰이 주도한 유서대필 사건은 군과 정보기관이 퇴조한 가운데 검찰이 체제유지의 주력부대임을 과시함으로써 대한민국을 한동안 ‘검찰공화국’으로 만든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이 사건에서 김기춘은 선발투수는 아니었지만 절체절명의 위기상황에 구원등판하여 노태우 정권을 지켜내는 데 혁혁한 기여를 했다.

 

<뉴스타파>의 보도에 따르면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을 조작한 검사들 대부분이 박근혜 후보의 대선캠프 주변에 몰려 있었다. 김기춘은 원로그룹인 7인회의 일원이었고, 당시 서울지검 강력부장으로 사건의 수사책임자였던 강신욱은 검찰 몫의 대법관을 지낸 뒤 2007년 박근혜 캠프의 법률지원 특보단장을 지냈다. 수사검사였던 남기춘은 박근혜 캠프의 열린검증소위원장, 수사검사였던 윤석만은 박근혜 후보의 외곽조직인 대전희망포럼 공동대표였다. 또 수사검사였던 곽상도는 박근혜 정부 출범 후 첫 민정수석이 되었다가 채동욱 검찰총장을 장악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밀려난 바 있다. 김기춘은 이들 모두의 우두머리다.

 

▲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오른쪽)이 지난 8월8일 청와대에서 임명장을 받은 뒤 박근혜 대통령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80·90년대
5공 땐 찬밥 먹으며 버텼지만
5공청산 때 검찰총장으로 부활
노태우 중대위기서 구원등판
‘초원복집’사건에도 굴하지 않고
고향 거제서 3연속 국회의원 당선

 

2000년대
헌법재판소를 아주 잘 이용해
노무현 탄핵안 접수시키더니
이젠 통합진보당 해산 청구
박근혜 비서실장 임명 직후엔
“윗분의 뜻을 받들어” 명대사

 

 

‘탁월한 법률가’ 김기춘의 완벽한 탈출

 

복어를 잘못 먹으면 탈이 난다. 치밀하고 깔끔하기로 소문난 김기춘도 복어집에 갔다가 역사에서 지워버리고 싶도록 망신한 일이 있다. 아니, 사실 망신이 아니라 정의가 제대로 섰다면 흉악범죄로 처벌받아 마땅한 행위의 수괴였던 것이다. 그 망측한 모의 내용이 고스란히 녹음되어 세상에 까발려졌다. 14대 대통령선거를 이틀 앞둔 1992년 12월16일, 전 법무장관 김기춘이 부산에서 부산시장·검사장·경찰청장·안기부지부장·교육감·기무부대장·상공회의소장 등 기관장을 모아놓고 노골적으로 지역감정을 부추겨 민자당 김영삼 후보를 지원할 것을 모의했는데 이를 국민당 정주영 후보의 아들 정몽준 의원 쪽에서 도청하여 녹음한 테이프를 공개한 것이다.

 

각 언론이 정몽준 의원 쪽에서 녹음한 테이프를 풀어 상세히 보도하면서 “우리가 남이가” 등 거기서 김기춘이 한 발언은 한동안 장안의 화제가 되었다. 이날 김기춘은 “중립내각이 나왔기 때문에 마음대로 못해서 답답해 죽겠다”면서도 치밀한 성격과는 달리 막 달렸다. 그 자리에 모인 공직자들은 아직 장관의 반열에 오르지 못한 사람들인데 김기춘은 그들에게 “안 해봐서 그런 거야. 장관이 얼마나 좋은지 아나, 모르지”라고 자랑하면서 “부산·경남 사람들 이번에 김대중이 정주영이 어쩌니 하면 영도다리에서 칵 빠져 죽자”고 지역감정을 부추기기도 했다. 워낙 자기가 검찰총장과 법무장관을 하면서 무리수를 많이 두었던 것을 염려한 탓인지 김기춘은 “잘못되면 혁명적 상황이 와서 전부 끌려들어가야 할 판인데 여당 해야지 그럼 어떡합니까”라는 걱정을 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하여튼 민간에서 지역감정을 좀 불러일으켜야 돼”라는 노골적인 주문을 하면서 “훗날 보면 보람 있는 시민이라고 다들 느끼게 되지 않겠습니까”라고 자신했다. 녹음테이프가 돌아가고 있는 것을 알았다면 절대 할 수 없는 속마음이 고향에 가 한잔한 김에 거침없이 나온 것이다.

 

세상은 발칵 뒤집혔지만, 뒤집기의 달인은 따로 있었다. 국정원 직원이 댓글을 달던 현장에서 적발되자 문을 잠그고 열어주지 않은 일을 가녀린 여직원을 무지막지한 자들이 감금한 인권유린 사건으로 뒤집은 신공은 이미 20년 전 초원복집 사건 때도 발휘되었다. 이 사건은 공권력을 동원하여 지역감정을 부추기는 파렴치한 부정선거 모의가 아니라 불법적 반인륜적 도청사건이 된 것이다.

 

정상적인 국가라면 김기춘은 감옥에 가야 했고 초원복집 사건으로 그는 더이상 공직을 맡을 수 없어야 마땅하다. ‘부정선거 하기 좋은 나라’ 대한민국에서 검찰은 초원복집에 모인 기관장들을 “공식 석상이 아닌 사적 모임에서 나눈 대화를 가지고 처벌할 수는 없다”며 무혐의 처분하고 모임을 주재한 김기춘만 불구속 기소했다. 선거법 위반으로 불구속 기소된 김기춘은 김영삼이 대통령에 취임한 직후인 1993년 3월 “선거운동원이 아닌 자의 선거운동을 규정한 구(舊) 대통령선거법 제36조는 헌법에 보장된 표현의 자유와 참정권을 지나치게 제한하고 있어 위헌”이라며 법원에 위헌제청을 신청했다. 이에 <동아일보>는 김정훈 기자의 기명칼럼(1993년 3월20일치)을 통해 장관 재직 당시 “유난히 선거관련법의 엄정한 집행을 강조”했던 김기춘이 “막상 이 법률이 자신에게 올가미로 다가오자 이의를 제기”했다며, 이 위헌심판 제청이 “법의 이름을 빌려 면죄부”를 구하려는 “탁월한 법률가 김기춘의 완벽한 탈출구”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결국 1994년 여름 헌법재판소는 이 조항이 위헌이라는 결정을 내렸고, 김기춘에 대한 재판은 공소 취소로 없던 일로 끝났다. 법비(法匪)란 말이 있다. 온갖 비적이 들끓던 만주에서 가장 무서운 비적은 법으로 무장한 법비였다. 김기춘이야말로 법비 중의 법비였다.

 

법비 김기춘은 1996년 신한국당의 공천을 받아 고향 거제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된 뒤 2000년과 2004년 선거에서 연거푸 당선되어 3선 의원이 되었다. 국회의원 시절 그가 가장 플래시 세례를 받은 것은 2004년 3월12일 국회에서 탄핵안이 가결된 뒤 헌법재판소에 탄핵안을 접수시킨 때였다. 당시 김기춘은 국회 법사위원장으로 탄핵소추의 검사 격이었는데 법사위 여당 간사는 16대 국회에 제출된 친일진상규명법안에 대해 여야 합의가 이루어졌음에도 법사위에서 단기필마로 법안을 누더기로 만들어버린 합천 출신의 김용균이었다. 대통령의 사퇴를 촉구한 것이 제명 사유가 된다는 지금이나 유신시대와 비교한다면, 대통령을 실제로 자르려고 했던 2004년의 탄핵은 절차민주주의가 극한으로 만개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그것을 누려 탄핵안을 가결시키고 헌법재판소에 접수시키러 간 자들은 친일과 유신과 5공과 지역감정의 화신들이었다. 김기춘과 김용균이 탄핵안을 헌법재판소에 접수시키는 사진은 온 나라를 뒤흔든 탄핵사태의 본질이 ‘과거 청산 없는 민주화가 초래한 민주주의의 위기’였다는 사실을 웅변해준다.

 

 

박근혜 ‘쉰 386 세대’의 맨 앞줄에 서다

 

김기춘은 이렇게 혁혁한 공을 세웠지만, 아직 60대였던 2008년 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고령자라는 이유로 공천에서 탈락하는 수모를 겪었다. 그는 “이유도 없고 이해할 수도 없는 공천 탈락을 당했다”면서도 당의 결정에 승복하여 무소속 출마를 포기하고 “존경받는 원로의 한 사람으로” 남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지금 김기춘은 한국 정치의 최전선에 서 있다. 김기춘만이 아니다. 김기춘은 어딘가에서 “연산군 밑에는 채홍사들이 들끓고 세종대왕 옆에는 집현전 학자들이 모였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지금 박근혜의 주변에는 누가 모여 있을까. 오죽하면 노무현 시대의 386세대 대신 1930년대에 태어나 나이 80을 바라보며 60년대에 공직에 입문한 ‘신 386세대’ 또는 ‘쉰 386세대’라 불리는 흑역사를 자랑하는 올드보이들만 꾸역꾸역 나오고 있을까.

 

김기춘이 비서실장에 임명된 직후 공식브리핑에서 “윗분의 뜻을 받들어”라는 말을 하여 젊은 기자들을 놀라게 한 적이 있다. 사실 유신 전야인 1972년 7·4남북공동성명 당시에 남쪽의 중앙정보부장 이후락과 북쪽의 부총리 김영주(김일성의 친동생)가 서명하면서 직함을 쓰지 않고 서명만 하면서 “서로 상부의 뜻을 받들어”라고 한 적이 있다. 남북이 20여년간 서로 상대를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국호나 직함을 쓰는 것이 거북했던 점을 나름 운치있게 비켜간 것이다. 반면 21세기 김기춘의 발언은 민주국가에서 대통령을 보좌하는 비서실장의 말이라기보다는 봉건시대 도승지나 할 법한 얘기였다. 6월항쟁의 산물로 탄생한 헌법재판소를 잘 이용해 살아난 유신본당에 지역감정의 화신 김기춘은 이제 왕실장으로 통합진보당 해산 청구를 다시 헌법재판소로 가져갔다.

 

검찰총장직에서 물러나면서 김기춘은 후배 검사들에게 “학생시절의 순수성 정의감이 끝까지 퇴색되지 않았으면 한다”는 말을 남겼다.(<동아일보> 1990년 12월5일치) 남다른 흑역사를 간직한 김기춘에게 묻고 싶다. 당신의 학생시절의 순수성과 정의감은 안녕들 하십니까?

 

한홍구/성공회대 교수·교양학부

출처: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617380.html?_fr=mt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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