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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수호 국민촛불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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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 림
  • 등록일
    2014/03/30 12:58
  • 수정일
    2014/03/30 12:58
  • 글쓴이
    이필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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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당, 철도노조 보복 탄압 중단 촉구
 
진보정치 펌 
기사입력: 2014/03/30 [08:14]  최종편집: ⓒ 자주민보
 
 
 
철도노조를 무력화하기 위한 박근혜 정권의 책동이 점점 심해지고 있다. 이미 130명이 해고되고 404명이 징계를 받았으며 160억 원 손해배상청구, 116억 원 가압류집행에 이어 2천여 명의 노조원에 대한 근무지 강제전출을 시도하고 있다. 이에 대응하여 KTX 민영화 저지와 철도공공성강화를 위한 범국민대책위원회는 27일 오전 서울역에서 기자회견을 가졌다. 통합진보당에서는 김선동 의원과 정희성 노동부문 최고위원이 참석했다.
 

 
범대위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박석운 한국진보연대 공동대표가 첫 발언을 맡았다. 박 대표는 “지난해의 철도파업은 전 국민의 지지를 받았으며 국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여·야·노조가 합의한 것이므로 이것은 사실상 국민과의 합의이다. 국민과 합의를 했으면 지켜야 할 것 아닌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번 강제전출에서 가장 많은 전출 대상이 된 직원은 기관사와 정비사들이다. 이에 대해 박 대표는 “노선별로 특성이 다르고 쓰는 부품도 다른데 갑자기 기술자들을 다른 지역으로 전보시키면 어떻게 안전을 보장할 것인가”라고 물었다.
 
두 번째로 발언한 김선동 의원은 먼저 “직원들을 연고지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보내는 것은 명백한 가정파괴 행위”임을 강조했다. 그리고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담보로 자신들의 목적을 달성하려는 이러한 행태는 박 정권이 강조하는 4대 사회악보다 더 나쁜 것”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박 정권의 일련의 노조파괴 책동을 “국민에 대한 도전이자 범죄행위”라고 규정한 김 의원은 마지막으로 “이러한 비인간적이고 비인권적인 탄압을 즉각 중단하여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국민적 처벌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하며 발언을 마쳤다.
 
이어 발언한 김명환 철도노조 위원장은 “아직 법원 판결이 나오지도 않은 마당에 노조 조합비를 동결시켜 해고자나 산재로 사망한 동료들을 위한 구호 활동도 못하고 있다”고 호소했다. 그리고 “지난 파업에서 기관사나 정비사 분들이 가장 열성적으로 파업에 임했기 때문에 가장 강도 높은 탄압을 가하는 것”임을 명백히 했다. 또한 김 위원장은 “업무다양성을 핑계로 내세우지만 이렇게 한꺼번에 강제전출을 시키면 업무가 마비되고 각종 사고가 빈발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위원장은 이번 사태의 책임자인 최연혜 코레일 사장에 대해서도 직접적으로 비판했다. “최연혜 사장은 지난 해 교섭에도 딱 한번 잠깐 얼굴만 비추고 사라지더니 추가교섭에는 나올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다. 이것이 시간끌기가 아니고 무언인가”라고 말한 뒤 “강제전출을 강행할 경우 총파업도 불사하겠다”고 경고했다.
 

 
이외에도 권영국 민변 노동위원장과 홍희덕 전국정치모임 새로하나 대표, 이아혜 노동자연대 학생그룹 활동가의 발언도 이어졌다. 권영국 변호사는 전문가답게 이번 강제전출이 인사권 남용이며 철도파업이 법적으로 정당함을 강조했다. 홍 대표는 “지금 상황이 전제시대와 다를 것이 무엇이냐”고 주장했고 이아혜 학생은 “이러한 치졸한 보복극에 대한 투쟁에는 우리 학생들도 적극 참여하겠다”고 결의를 밝혔다.
 
마지막 발언자로 나선 신승철 민주노총 위원장은 “우리가 이렇게까지 목소리를 높이는 데도 현 정권은 왜 귀담아 듣지를 않는가”라고 규탄했다. 또한 “박 대통령은 과거 우리를 식민지배한 일본 총리와는 회담을 하면서 우리의 교섭 요구에는 응하지 않고 있다”라며 박 정권과 최연혜 사장의 태도를 비판했다. 신 위원장은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상황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노동자들은 참고 또 참으면서 합법적인 범위에서 투쟁을 계속할 것이다”라고 앞으로의 투쟁 방향에 대해 이야기했다.
 
신 위원장의 발언에 이은 기자회견문 낭독으로 기자회견을 마무리했다. 기자회견문에서는 철도노조원들에 대한 강제전환배치를 즉각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 그리고 3월 31일까지 ‘10만 명 인터넷 서명운동’, ‘국가인권위 긴급구제신청’, ‘수도권 집중 선전활동과 전국 16개 광역시도의 대국민선전활동’을 전개할 것이라고 향후 계획을 밝혔다. 김선동 의원은 서울역 기자회견을 마친 이후 곧바로 광화문으로 이동하여 철도노조원 강제전출을 비판하는 1인 시위를 가졌다.
 
글= 진보정치 허수영 기자
사진= 진보정치 황경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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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번방의 선물’ 실존 인물 정원섭 목사

 

등록 : 2014.03.28 20:26수정 : 2014.03.29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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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섭 목사는 1972년 강원도 춘천에서 일어난 여자 어린이 성폭행 살인범 누명을 쓰고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정 목사의 억울한 사연은 영화 <7번방의 선물>의 모티브가 되기도 했다. 재심에서 무죄 확정판결을 받은 정 목사는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고 지난해 서울중앙지법은 26억여원을 지급하라고 판단했다. 그런데 지난 1월 서울고법은 소송 제기 소멸시효 기간 6개월에서 열흘이 늦었다며 1심 판결을 뒤집었다. 열흘은 정 목사가 진실규명을 위해 외롭게 싸워온 36년에 비하면 너무 짧은 시간이다. 지난 20일 오후 서울 강남구에서 정 목사를 만나 42년째 끝나지 않는 ‘과거사’에 대해 들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36년간 성폭행·살인 누명…‘7번방의 선물’ 실존 인물 정원섭 목사
“배상금은 우리 가족의 핏값…나를 또 죽이겠다는 것” 울분 토해

지난해 1281만명의 눈물을 훔친 영화 <7번방의 선물> 주인공은 사형을 받아 세상을 떠났다. ‘피고인 이용구에게 무죄를 선고한다’는 영화 속 판결도 모의재판에 그쳤다. 그러나 <7번방의 선물>의 모티브가 된 실존인물 정원섭(80) 목사는 아직 살아 있다. 당시 만홧가게를 운영하던 정 목사는 1972년 강원도 춘천시 역전파출소장의 열살 딸을 성폭행한 뒤 살해한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가 15년 만인 1987년 출소했다. 검찰 수사 때부터 무죄라고 주장해온 정 목사의 누명은 30년이 지난 2007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와 법원 재심 무죄 판결로 벗겨졌다. 경찰이 고문하고, 검찰은 조작된 사실을 바탕으로 기소하고, 법원마저 무기징역을 선고한 이 사건은 국가가 한 사람과 그 가족의 삶을 망쳐놓은 부끄러운 과거사였다.

 

‘해피엔딩’으로 끝나려던 사건은 하루아침에 악몽이 됐다. 지난 1월23일 서울고법 민사8부(재판장 배기열)가 소멸시효 기간이 열흘 지났다며, 정원섭 목사와 그 가족에게 손해배상금 26억원을 지급하라는 1심 판결을 뒤집었기 때문이다. 전혀 다른 판결이 내려진 이유는 지난해 대법원 판결에 따른 것이다. 대법원은 지난해 12월12일 재심 무죄 선고를 받은 과거사 피해자들이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이전까지 민법에 따라 3년으로 통용되던 소멸시효 기간을 ‘형사보상 결정 확정일로부터 6개월’로 못박았다. 이 판결로 1심 때는 문제가 되지 않았던 소멸시효가 2심 때 적용돼 26억원의 손해배상금은 하루아침에 0원이 됐다. 정 목사는 시작에 불과하다. 법원에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한 독재·권위주의 정권에 의한 폭력, 조작 간첩, 의문사 사건 등 반민주·반인권적인 ‘과거사’ 피해자들은 여전히 많다. 이 판례에 따라 손해배상금을 한 푼도 받지 못하는 또다른 ‘정 목사들’이 줄줄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

 

과거사 피해자와 단체들은 대법원의 소멸시효 삭감을 과거사 청산의 후퇴로 평가한다. 과거사 위원회들의 활동 종료 뒤 피해자들은 법원 재심과 손해배상을 통해 명예회복과 보상을 받아왔다. 이들은 재심 무죄와 손해배상을 국가의 사과이자 화해의 표시로 받아들였다. 그런데 지난 시절 조작된 혐의에 대해 확정 판결을 내렸던 법원이 이제 와 피해자들이 ‘권리 위에 잠자고 있었다’며 소멸시효를 내세워 손해배상금을 깎고 있다. 국가로부터 2차 가해를 받고 있는 대표적인 과거사 피해자 정원섭 목사를 20일 서울 강남구에 있는 법무법인 덕수 사무실에서 만났다. 

 

 

2008년 11월28일 춘천지법에서 형사 재심 첫 무죄 판결을 받은 정원섭 목사(가운데)가 기뻐하고 있다. 재심 무죄 확정판결과 손해배상 소송 1심 선고는 평생의 한을 위로한 선물이었다. 연합뉴스

 

 

▶ 정원섭 목사의 사연과 영화 <7번방의 선물>은 닮은 점이 많습니다. 경찰 간부의 어린 딸 성폭행 살인 사건이 벌어졌고, 경찰은 폭력과 협박을 동원해 무고한 사람에게 누명을 씌웠지요. 다른 점도 있습니다. 실제 죽은 건 파출소장 딸이었고, 정 목사는 비장애인이며,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15년 뒤 가석방됐습니다. 진실규명을 위한 평생의 노력은 재심 무죄와 26억여원의 손해배상금 판결로 빛을 발하는가 싶었습니다. 그러나 서울고법은 판결을 뒤집었습니다. 왜 이러는 걸까요? 

 

 

“배상금은 우리 가족 핏값…다시 무기징역 받은 기분” 

 

 

“손해배상금은 나와 우리 가족의 피나 다름없는데, 그걸 주지 않겠다는 건 나를 또 죽이겠다는 거예요.” 42년이 지나도 끝나지 않은 싸움에 정원섭 목사는 목소리를 높였다.

 

-재심 무죄 확정판결 뒤 국가를 상대로 민사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소멸시효 탓에 1심과 2심 판결이 엇갈렸는데 어떻게 보십니까?

 

“돈을 안 주기 위한 거라고 생각합니다. 국가가 잘못한 걸 인정하기 싫다는 거죠. 오히려 따뜻하게 보듬고 위로해줘야 하는데 이게 무슨 짓이에요. 형사보상금 확정일로부터 6개월 10일이 지났다는 건데, 형사보상금은 법원에서 확정판결이 나면 검찰에서 10일 내에 주기로 돼 있어요. 근데 5개월 동안 4번씩 나눠서 줬어요. 형사보상금액을 손해배상 고소장에 써야 하니까, 돈을 받아야 소송을 할 수 있어요. 그거 다 받고 하니까 10일이 지난 거예요. 검찰이 늑장 부린 것도 법을 어긴 건데, 국가가 잘못한 것을 아무 책임 없는 저에게 덮어씌운 거 아닙니까.” 
 

 

 

1972년 춘천의 논두렁서 발견된 
10살 여자아이 살해범으로 몰려 
고문에 의한 허위자백, 무기징역 
15년 뒤 출소해 진실규명 노력 
36년만의 무죄판결, 그리고 0원 

소멸시효 기간 10일 지났다며 
26억 손해배상금을 없던 일로 
손배소 비용은 형사보상금인데 
법원은 그 돈이 5개월이나 늦게 
지급된 것은 문제삼지 않았다 

 

 

 

“진실화해위 결정문 받았을 때 가장 기뻤지만…”

 

형사보상금은 재심 무죄를 선고받은 사람들에게 주는 억울한 옥살이에 대한 피해 보상금이다. 손해배상금이 국가가 저지른 불법행위에 대한 위자료라면, 형사보상금은 구금기간에 대해 주는 보상이다. 검찰 내부지침으로 형사보상 지급청구 결정일로부터 10일 안에 보상금을 지급해야 하지만, 정 목사처럼 잘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대다수다. 정 목사는 2012년 5월18일 형사보상금 9억6000만원 지급 결정을 받았지만, 실제 돈은 6월8일~10월19일 사이 네 차례로 나눠 입금됐다. 형사보상금 지급이 늦어지면 그만큼 손해배상소송도 지연된다. 과거사 사건 피해자들은 장기간의 옥살이와 사회적 낙인 탓에 경제적 상황이 좋지 않아 대부분 보상금을 인지대로 쓰고 있다. 정 목사 사건을 담당하는 김형태 변호사(법무법인 덕수)가 “설령 6개월로 소멸시효가 줄어든 걸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형사보상금 지급일이 들쑥날쑥하기 때문에 마지막으로 돈을 받은 10월19일을 기준으로 봐야 한다”고 지적하는 이유다. 형사보상금 지급의 고질적인 문제 탓에 국민권익위원회도 지난해 8월 법무부 장관에게 관련 제도 정비를 권고했다.

 

-손해배상금은 목사님께 어떤 의미입니까?

 

“내 피, 우리 가족 전부의 피죠. 우리 삶이 피 흘린 삶이에요. 이건 나를 몇 번 죽이는 거예요. 예전에 무기징역 선고를 받았을 때와 똑같은 거죠. 그때는 몽둥이를 들어 직접 나를 때렸다면, 이번에는 경제력을 죽이는 거죠. 그 돈을 다 준다고 해도 그동안 잃어버린 세월이 어딥니까. 그 세월 회복 못 합니다. 국가가 사과도 안 하지 않습니까. 배상금 말고는 없는데 그것도 안 한다니. 미국에서는 성폭행 살인 누명을 쓰고 11년을 감옥에서 산 데이비드 에이어스에게 지난해 114억원의 손해배상금을 지급하라는 판결이 나왔어요. 저는 그보다 긴 15년을 감옥에서 살았는데…. 돈이 많다고요? 저 같은 대우 받고 살면 다들 몇 달 못 살고 죽었을 겁니다. 저는 하나님의 도우심 덕분에 그 고통을 견뎌내고 나온 거지 하나님마저 원망했으면 감옥에서 벌써 죽었을 거예요. 감옥에서 일부러 더 착하고 모범적으로 살려고 했어요. 그것이 바로 나를 이렇게 만든 사람들에 대한 복수니까요. 역설적이지만 나를 너희가 이렇게 망가뜨려도 난 그렇게 망가지지 않겠다는 거였어요. 그렇게 살아왔는데 소멸시효라는 말로 국가의 잘못을 나한테 뒤집어씌웁니까.”

 

-처음 서울고법에 재심을 청구한 게 1999년 11월이었습니다. 오래전부터 재심 청구를 생각했던 건가요?

 

“제가 자신이 있으니까 진실 규명을 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경찰이나 검찰은 제가 범인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사건을 조작했는데 저를 믿어 주겠어요? 그래서 교도소에서 징역 살면서 책을 찢어 꿀떡꿀떡 삼키면서 형사소송법 공부를 했어요. 진실 규명하려면 법을 알아야 하니까요.”

 

-하지만 진실 규명은 쉽지 않았습니다. 첫 재심 신청은 2001년 10월에 기각됐고, 진실화해위가 2007년 진실을 규명한 뒤에 다시 제기한 재심 신청이 받아들여졌죠. 무죄 확정판결도 2011년 10월까지 기다려야 했습니다. 진실이 밝혀졌을 때 심정은 어땠습니까?

 

“그걸 어떻게 한마디로 다 말하겠어요…. 돌이켜보면 진실화해위 결정문을 받았을 때가 제일 기뻤습니다. 몇십년 동안의 싸움이 비로소 빛을 보게 됐으니까요. 그 전까지는 아무 말도 못했습니다. 사회적 낙인이 찍혀 있으니까요. 범인이 아니라고 말하면 다 나보고 미친놈이라고 하겠죠. 누명을 벗기 전에는 누가 나를 똑바른 시선으로 보겠어요. 어딜 가도 쫄아서 고개 숙이고 다녔어요. 춘천지법에서 처음 무죄 판결을 받고 좋아했는데, 검찰이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붙여 항소·상고하는 바람에 고법, 대법원까지 갔어요. 증거가 다 허위라는 게 밝혀졌는데 계속 유죄를 주장하는 걸 보고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생각했죠.”

 

-30년 넘는 힘든 시간을 버티게 한 힘은 무엇이었습니까?

 

“첫째는 하나님은 날 아신다는 거였습니다. 내가 너무 힘들어서 죽으려고 했을 때나 통곡할 때나 언제나 제 옆에는 그분이 계셨어요. 나를 한 번도 의심하지 않고 믿어주셨죠. 저의 가장 위대한 변호사는 주님이었습니다. 둘째는 진실은 죽지 않는다는 거였어요. 아무리 짓밟고 뭉개버려도 진실은 죽지 않는 생명력이 있다고 믿었죠.”

 

1973년 법원은 1심에서 대법원 판결까지 세 차례에 걸쳐 정 목사가 성폭행 살인범이 맞다며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정 목사의 재심 신청을 받아들인 법원은 2008~2011년 동안엔 다시 세 차례에 걸쳐 정 목사의 무죄를 인정했다. 세 번의 무죄 판결에서 법원이 자신의 잘못을 고백한 것은 1심 법원인 춘천지법 형사2부(재판장 정성태)뿐이었다. ‘수사 과정에서 자신이 마땅히 누려야 할 최소한의 권리와 적법절차를 보장받지 못한 채 고통을 겪었던 피고인이 마지막 희망으로 기대었던 법원마저 적법절차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고민이 부족하였고 그 결과 피고인의 호소를 충분히 경청할 수 없었다는 점에 대해서는 어떠한 변명의 여지도 없다고 하겠다.’ 2013년 7월 서울중앙지법 민사33부(재판장 박평균)는 정 목사가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민주주의 법치국가에서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라며 당사자와 가족들에게 손해배상금 26억원과 이자 지급을 결정했다. 하지만 불과 반년 뒤에 법원은 말을 바꿨다.

 

 

1972년 ‘춘천 어린이 성폭행 살인범’ 누명을 쓴 정원섭 목사가 경찰의 현장검증을 받고 있다. 동아일보 제공

 

 

시한부 검거령에 다급해진 경찰의 고문

 

사건은 1972년 9월28일 오전 9시40분께 강원도 춘천시 우두동의 한 논둑길에서 10살 난 여자 어린이 주검이 발견되면서 시작됐다. 어린이 성폭행 살인 사건에 대한 국민적 분노가 뜨거웠다. 당시 김현옥 내무부 장관은 1972년 10월10일까지 범인을 검거하지 않으면 관계자들을 문책하겠다고 밝혔다. 시한부 검거령이었다. 경찰은 시한부 검거령에 딱 맞춘 것처럼 10월10일 왕국만화가게 주인이었던 정원섭 목사가 범인이라고 밝혔다. 검거도 상도 빨랐다. 범인을 잡고 3일 후 담당 경찰관들은 특진하고 표창을 받았다.

 

-원래 한국신학대학원(현 한신대)을 졸업하고 목사로 지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춘천에 만홧가게를 열었습니까?

 

“목사가 된 건 어머니 때문입니다. 원래 1953년 경희대의 전신인 신흥대학교에 원서를 넣었는데 어머니가 단식을 하셨어요. ‘하나님께 우리 집안에서 목사 하나 나올 수 있게 기도해서 네가 태어났는데 어떻게 그런 곳에 가냐’면서요. 그래서 전도사 양성 목적으로 만든 고등성경학교에 갔다가, 1954년에 서울 한국신학대학원으로 옮겼죠. 열아홉 살 때부터 교회를 개척했어요. 어머니가 제가 전도하고 기도하는 모습을 좋아하셨거든요. 그러다 대학 졸업하면서 사진관을 열었어요. 교인들이 낸 헌금이 아니라 목사가 자기 생활 기반을 갖고 교회를 운영하는 ‘자비량 목회’의 꿈이 있었거든요. 교회는 내 것을 주는 곳이지 교인들에게 돈 많이 내라고 설교하는 곳이 아니지 않습니까.

 

돈이 모이니까 1964년 서울 송파구에 있는 한 교회 전도사로 갔어요. 그러다 어느 해 여름 ‘모여라 동무야 여름성경학교로’라는 펼침막을 교회 앞에 걸었는데 ‘동무’라는 말을 썼다고 경찰에 끌려가 온종일 맞았죠. 그때부터 경찰들이 내 설교까지 감시하니까 설교를 더 못하겠는 거예요. 농촌 교회로 피난을 갔다가 경상북도 청송의 한 학교 교사로 도망갔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여덟 살이었던 큰아들 제헌이가 뇌척수막염에 걸렸어요. 안동으로 나가고, 대구로도 가고, 서울까지 걔 낫게 하려고 다 다녔는데 그만 죽고 말았죠. 자식도 잃고 돈도 잃고 거지가 돼서 먹고살려고 어머니와 형님이 있는 춘천으로 들어갔죠. 그 상황에서 교회로 가면 교인들이 날 먹여 살려야 하니까 교회로 갈 수는 없었어요. 내가 농사일을 배웠나요, 노동을 제대로 합니까. 그래서 만화방을 열었습니다.”

 

강원도 춘천시에 정 목사가 연 ‘왕국만화가게’는 장사가 잘됐다. 정 목사는 수완이 좋았다. 신간은 10원에 4권, 구간은 10원에 6권을 빌릴 수 있었는데 20원 이상씩 책을 빌리면 당시 귀했던 텔레비전을 만화방에서 무료로 볼 수 있는 쿠폰인 시청표를 줬다. 아이들이 많이 찾을 수밖에 없었다. 혹시 그 아이들 중에 숨진 열 살 소녀가 있었던 걸까.

 

-죽은 아이와는 알던 사이였나요?

 

“가게 처음 열었을 때 한두 번 왔고, 왔다 간 지가 아주 오래됐습니다. 그날도 우리 집에 오지 않았어요. 그 아이가 집에서 학교 가는 길에는 우리 가게가 아니라 ‘주택만화가게’라는 다른 만화방이 있었어요. 우리 집에 오려면 빙 돌아 일부러 찾아와야 했어요. 죽은 아이 몸에서 텔레비전 시청표가 나왔는데 그것도 우리 게 아니라 주택만화가게 것이었어요. 시청표를 그냥 줬겠어요? 거기서 책을 빌렸으니까 줬겠죠.”

 

-처음 경찰서로 연행된 건 1972년 9월29일이었습니다. 그때부터 용의자로 지목됐습니까?

 

“그 사건이 터지자 웬만한 동네 사람들은 다 경찰서에서 잡아다가 두들겨 팼습니다. 일단 가둬두고 조사를 한 거예요. 저도 10월4일에야 석방이 됐는데, 경찰서 유치장이 터져 나갈 것 같았어요. 동네 사람들이 너무 많이 잡혀와 가지고. 나갈 때는 난 아니라면서 석방을 해줬지. 그래 놓고 10월7일에 다시 또 잡아간 거예요.”

 

-며칠 전까지만 해도 그날 아이를 본 적 없다고 진술했는데, 어떻게 3일 만에 범인이 된 겁니까?

 

“폭행이란 폭행은 다 받았어요. 경찰이 우선 나를 조져놓고 봤지요. 그걸 어떻게 잊어버립니까. 처음에 저는 웃었어요. 웃기는 얘기니까요. 그런데 사람이 힘들면 고통이 극심하면 안 한 것도 했다고 그래요. 니 맘대로 다 쓰라고 하게 돼 있어요. 그게 고문의 효과잖아요. 고문의 공포가 컸습니다. 고문에 견디는 사람은 없어요. 못 견디기 때문에 허위자백을 하면 죽는 걸 알면서도, 인정하면 사형받을 수 있는 걸 알면서도 합니다. 죽음보다 더한 것, 그게 고문이에요.”

 

 

연필과 빗, 피 묻은 팬티라는 증거

 

정 목사는 고문의 기억을 말하고 싶지 않아 했다. 그 기억은 진실화해위 보고서에 나와 있다. ‘10월7일 11시에 파출소 갔다가 숙직실에 갇혀 9월27일부터 9월28일까지 행적에 대한 진술서를 작성했다. 저녁 11시께 춘천경찰서로 옮겨져 기합과 구타를 받으며 신문을 당했다. 팬티 외에 옷을 다 벗기고 손에 수건을 댄 뒤 소총 멜빵 같은 것으로 양손을 약간 떨어뜨려 묶고, 양팔 사이로 양 무릎을 넣어 무릎 아래로 봉을 통과시키고, 이 봉을 양 책상 사이에 걸쳐 매달리게 한 뒤 얼굴에 수건을 덮고 찬물을 부었고 고문을 가하며 자백을 강요했다. 7일 연행 후 자백할 때까지 잠을 재우지 않았고 식사도 제공하지 않았다.’ 고문은 3일 만에 범인을 만들어냈다. 경찰이 만든 건 자백만이 아니었다. 머리빗, 연필, 피 묻은 팬티 같은 증거도 만들어냈다.

 

-당시 목사님이 범인이라는 증거로는 빗, 연필, 피 묻은 팬티가 제기됐습니다.

 

“사건 현장에서 긴 하늘색 연필이 나왔고, 우리 아들이 자기 연필이라고 했대요. 그런데 그게 아니었어요. 현장을 목격한 사람들은 짧은 노란색 연필을 봤다고 했죠. 처음에는 아들을 현장에 데려가서 연필을 보여줬다고 하는데, 알고 보니 나를 고문해 자백을 받은 다음에 우리 애를 파출소에 데려간 다음 필통을 가져오라고 했어요. 그 필통에서 하늘색 연필을 꺼내서, 네 거냐고 물으니까 당연히 자기 거라고 한 거죠. 현장에서 발견된 빗도 내 것이라고 종업원이 진술했다는데, 그것도 여관에 갇혀 폭행당해 말한 거고요. 제 팬티에 피가 묻어 있었다는 증언도 말이 안 됩니다. 증언한 사람이 우리 집 옷 빨래하다가 봤다고 하는데 만약 진짜 피가 묻어 있으면 깨끗이 빨지 않았겠어요? 그런데 빨래 널 때 보니까 피 같은 게 묻어 있다고 하니….”

 

현장에서 발견됐다는 정 목사의 연필과 빗, 그리고 빨래하면서 봤다는 그의 피 묻은 팬티는 정 목사가 범인이라는 심증을 굳히게 했다. 그러나 2011년 10월27일 재심 대법원 판결은 세 증거를 모두 부정했다. 현장에서 발견됐다는 하늘색 연필은 증거물로 조작된 것으로 보이고, 빗이 정 목사의 것이라는 진술도 여관에 갇혀 경찰관들에게 폭행당하던 만홧가게 종업원의 허위진술로 판단했다. 피 묻은 팬티를 봤다는 증인 역시 “피 같은 건 본 적은 없지만 경찰 조사 시 무서운 분위기에서 사실과 다르게 진술했고, 수사기관에서 진술을 번복하면 처벌받는다는 말을 듣고 겁이 나 거짓증언을 했다”고 말했다. 대법원은 ‘시한부 검거령을 내린 상태에서 경찰관들은 범인을 검거하기 위해 무리한 수단을 동원하였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거짓을 말하는 증인들이 원망스럽지 않았습니까?

 

“말도 못 하죠. 우리 아들한테는 물증을 바꿔서 자기 연필이라고 말하도록 유도했는데. 증거 조작만 하면 누구나 다 쉽게 성폭행 살인범이 되는구나, 그 말을 듣고 내가 죽는구나, 하나님이 나를 데려가시려는구나 했어요. 전 증거도 증인도 조작인 걸 알았으니까 속으로는 웃었죠. 양심이라는 것은 조작자들이 무슨 짓을 하든지 초월해서 내려다보고 심판하는 거예요. 그때 거짓말하고 조작한 사람들 때문에 진짜 범인을 놓친 겁니다.”

 

-검찰과 법원에서는 혐의를 부인하고 고문 사실도 말했는데 그냥 넘어간 건가요?

 

“사실상 검찰이 고문을 허락하지 않으면 경찰 마음대로 조작을 못 합니다. 경찰은 검찰 말을 들을 수밖에 없는 구조니까요. 판사도 검사가 요구하는 무기징역을 선고 안 할 수가 없었어요. 유신정권에서 삼권을 전부 틀어쥐기 위해 판사 임명권을 박정희 대통령이 가져갔잖아요. 정권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죠.”

 

정 목사는 검찰과 법원에서 고문과 허위자백 사실을 말했다. 1972년 11월6일 검사 피의자 신문조서 3회에서 “(경찰에게 자백한 것에 대해) 경찰의 고문 때문이었다”, “(검사에게 자백한 것에 대해) 경찰관들이 그렇게 하라고 종용했고, 번복해도 검사님이 받아주질 않을 것 같았다. 경찰에게 보복을 받을까 두렵기도 했다. 그러나 제가 억울하게 징역을 살 수가 없어 번복한 것이다”라고 진술했다. 1심 1, 2차 공판에서도 고문 사실을 말했다. 그러나 당시 검찰과 법원은 정 목사의 말을 인정하지 않았다. 35년 뒤에야 재심 재판부는 ‘자백이 고문, 폭행, 협박 등의 방법으로 진행돼 증거능력이 없다’며 정씨의 말을 믿어줬다.

 

-하지도 않은 일로 파렴치범으로 몰리고 무기징역까지 선고된 뒤 심정은 어땠습니까?

 

“세상에 이런 일도 있구나 싶었죠. 감옥 갔더니 사람들이 놀리더군요. 세 번씩이나 거기서 자살하려고 했어요. 너무 억울하고 분한 것도 있고, 내 명예가 이렇게 됐는데 어떻게 나가서 목사가 될 수 있을지 도덕적 절망감이 컸어요. 그때 대학 시절 은사님들이 면회를 왔죠. ‘죽지 마라’, ‘정군이 죽으면 경찰이 좋아할 거 아니냐. 고문하고 조작한 사람들 말이 진리가 되는 거다’라며 나를 믿어줬어요. 그 말 듣고 정신을 차렸어요.” 
 

 

 

“무기징역 선고받을 때와 똑같죠 
그땐 몽둥이로 날 직접 때렸다면 
이번엔 경제력을 죽이는 거죠 
돈 다 줘도 세월 회복 못합니다 
사과 안 하면서 배상금도 없다니” 

정 목사는 대법원에 상고했다 
이번 판결은 과거사 피해자인 
여든 고령 그에게 마지막 기회다 
또다시 공은 법원으로 넘어갔다 

 

 

교통사고 당한 아내, 노동판에 뛰어든 아들

 

-감옥에 들어갈 당시 부인과 아이까지 다섯 식구가 남아 있었죠. 생계를 책임지던 가장이 사라진 뒤 가족들은 어떻게 살았습니까?

 

“죽지 못해 살았죠. 춘천에서는 그날로 바로 쫓겨났어요. 큰애가 아홉 살이고 막내가 태어난 지 얼마 안 됐는데, 여자가 혼자 애 넷 키우기 위해 무슨 짓인들 못 했겠어요. 형님 집에 가 숨어 있는데 거기까지 찾아와서 사람들이 행패 부렸어요. 형 확정 뒤 광주 교도소로 갔는데 가족은 서울에 있어서 자주 못 봤습니다. 감옥에 있을 때 아내가 교통사고를 당해서 걷지 못하게 됐어요. 엄마 그렇게 다치고 나서 큰아들이 중학교 마치고 노동판에 뛰어들었어요. 그 아들이 제일 불쌍하죠. 남들은 다 하는 공부 중학교밖에 못했으니. 내가 교도소에서 1987년에 나오고 나니 막내가 고등학교에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고 있더라고요. 완전히 우리 가정은… 나만 죽인 게 아니라 우리 가족 다 죽인 거예요.”

 

-1987년 12월24일 모범수로 가석방 출소했습니다. 그 뒤로 어떻게 지내셨나요?

 

“사람 마음이 곧지만은 않지요. 가족이 저를 믿을 때도 있고 믿지 않을 때도 있고. 기계적으로 사람을 딱 믿고, 안 믿고 할 수는 없어요. 그래도 가족이 저를 기다려줬죠. 하지만 사회적 낙인 때문에 누가 나 볼까 봐 전라북도 장수군 대성리 산골마을에 숨어 살았습니다. 누나가 전도사로 있는 교회에서 봉사하면서, 바위에 ‘통곡’을 한자로 적어놓고 거기에서 무릎 꿇고 기도하곤 했죠.”

 

절망 속에서도 정 목사는 자비량 목회의 꿈을 놓지 않았다. 1991년 누나가 세상을 떠난 뒤 1992년 전라북도 남원시에 충절교회를 세웠다. 그 후 지금까지 충절교회에서 사슴 등을 키우며 지내고 있다.

 

-국가가 뒤흔든 42년의 삶이었습니다. 되돌아보면 어떻습니까?

 

“진실을 규명할 수 있었던 건 저의 승리가 아니라 주님의 승리였습니다. 덕분에 저는 이제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당당해졌어요. 비록 지금 형식은 대한민국과 법원에서 싸우고 있지만 미워도 내 부모, 내 자식인 것처럼 내 국가 아니겠어요? 잘못한 사람들이 나쁜 거지 국가를 미워하진 않습니다. 남은 바람이 있다면 배상금이라도 많이 받아서 좋은 일 하고 싶어요. 형사보상금도 받은 뒤 모교에 장학금으로 내기도 했습니다. 배상금은 통일을 위해 쓰고 싶어요. 국가와 민족을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이 통일 아닙니까.”

 

정 목사는 대법원에 상고했다. 이번 판결은 여든 고령의 과거사 피해자에게 마지막 기회일 수도 있다. 또다시 공은 법원으로 넘어갔다.

 

김민경 기자 salma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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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당은 지방선거에서 이겨야 합니다.

지방자치제는 야당에게 정권탈환을 담보해주는 제도
 
임두만 | 2014-03-29 09:13:23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지방자치제, 비록 지방토호들의 정치적 권세를 유지시키는 제도라는 비판을 받고 있기도 하지만 지방자치제는 민주주의의 근간입니다. 우리나라도 지방자치가 행정과 의회자치제에서 교육자치제까지 시행되고 있으므로 지방자치제의 절반가량 왔습니다. 마지막 남은 지방경찰제, 지방검찰제, 지방법원자치제가 시행된다면 완벽한 지방자치제가 시행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방의 재정자립도가 형편없으므로 이는 앞으로도 상당 시간이 지나야 할 것입니다. 중앙정부 예산지원이 없으면 지방행정기관의 공무원 급여도 부족할 자치단체가 있을 정도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스위스와 같이 지방세와 국세를 따로 거두는 이중 세제를 실시할 수도 없습니다. 지금도 세목별로 지방세와 국세가 다르고 자치단체별로 지방세를 징수합니다만 이는 엄연히 중앙정부와 국회가 제정한 세법에 따른 징수이므로 스위스와는 체제 자체가 다릅니다. 진정한 지방자치제란 세법까지 자치단체의 자율에 맡겨져서 자치단체별로 필요한 세수를 조달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결국 재정상태가 이 정도인 나라에서 이 만큼이라도 지방자치제를 실시한다는 것은 당연히 야당에게 정치적 입지를 마련해주기 위함입니다.

국정을 책임진 여당은 사실상 자치제가 부담스럽고 싫죠. 도지사 광역시장 같은 장관급 광역단체장은 물론, 시장군수라는 고위 공직자들을 임명할 권한을 정권을 책임진 대통령과 여당이 갖는다고 생각해보세요. 야당은 정권을 잡을 엄두를 낼 수도 없습니다. 이는 실질적으로 1995년 전국 지방선거가 실시되면서 1997년 정권이 교체된 것으로도 증명됩니다.

지방자치제는 야당에게 이처럼 거대한 선물입니다. 이런 깊은 내막을 이해하지 못한 안철수 같은 신진인사가 자신의 ‘상표’하나 때문에 호남을 제외한 기초단체장을 다 여당 측에게 넘겨준다면 야당이 정권을 되찾을 기회는 영영 없어질 수도 있습니다.

중앙정권을 잃었더라도 야당은 어떤 식으로든 지방정권을 단 한곳이라도 더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계속적으로 완전한 지방자치제를 요구하면서 지방검찰제, 지방경찰제 지방법원자치제까지 이끌어 내므로 중앙종속적 자치제가 아닌 완전한 지방자치제를 추구해야 합니다. 이것이 자연스러운 정권교체의 틀을 만듭니다.

이런 점 때문에 야권은 지난 2010년 지방선거를 야권후보 단일화란 핵심이슈를 만들었습니다. 지역적 특성에 따라 자율적 단일화도 되었고 자율적 단일화가 되지 않은 지역은 정당이 다름에도 경선이라는 제도를 통해 거의 강제적 단일화도 했습니다. 그리고 선거는 야권의 압승이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 유권자 인식이 여야로 양분된 상태이므로 이 방식 외에는 여권을 이길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전례가 있음에도 지금 야권은 ‘명분’하나 때문에 시작도 하기 전의 게임에서 패배를 각오한다는 패배의식만이 팽배합니다. 패배가 정당하다는 억지논리도 횡횡합니다. 선거에서 패하는 것이 정당하다는 논리가 어떻게 성립될 수 있는지 저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특정 정당은 패배를 알면서 그 많은 돈을 들여 선거전에 나서고, 국가는 특정 정당의 싹쓸이를 위햐 엄청난 세금을 쏟아 부어야 하는 희한한 게임을 우리는 봐야 합니다.

이 희한한 게임이 성립되지 않으려면 게임 룰이 정당해야 합니다. 한 쪽에서 지키지 않겠다면 지키도록 강제하는 것은 가장 기초입니다. 아무리 억지논리를 들이대도 야당은 그 억지논리를 물고 늘어지며 룰의 정당성을 고집해야 합니다.

민생정치는 말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장하는 정치를 하기 위해서도 선거를 이겨야 합니다. 아무런 권한이 없는 낙선자들의 정당이 무슨 방법으로 민생정치를 할 수 있습니까? 정치인이 입으로 주장하면 그게 민생정치입니까? 정책을 집행해야 민생정치입니다. 집행 권한은 선거에서 이겨 당선자가 되어야 생깁니다. 지금 야당이 해야 할 것은 선거에 이기기 위한 노력입니다.

그 노력의 첫째가 룰의 공정성입니다. 기존의 법은 정당공천제인데 정치지도자들의 약속으로 이 법을 무공천으로 개정하기로 했으면 개정하는데 모든 힘을 쏟아야 합니다. 그게 안 된다면 무공천 공약을 한 대통령에게 지키라고 압박을 가해야 합니다. 약속을 지키지 않겠다면 목숨을 건 단식이라도 해야 합니다.

1989년 1월 24일, 김대중·김영삼·김종필 야3당 총재는 국회에서 회담을 갖고 1989년 내에 광역자치단체장 선출을 포함, 지자제가 실시될 수 있도록 한다고 합의했습니다. 야3당 총재회담 합의에 따라 3월 4일 지방자치법개정안이 통과되었습니다. 그러나 노태우 대통령은 이 법률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했습니다. 4월 26일 다시 회담을 연 야3당 총재는 노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비판하면서 계속 노태우 대통령과 여당인 민정당을 압박했습니다. 그리고 1989년 10월 19일 야3당 총재회담에서 “공동 노력하여 정기국회에서 지자제법을 통과시키기로” 재차 합의하는 것으로 노태우 대통령의 결심을 촉구했습니다.

이윽고 1989년 12월 15일 청와대 4자(노태우·김대중·김영삼·김종필)회담은 야3당이 제출한 지방지치제 법안을 통과시키기로 합의했습니다. 여소야대 국회에서 소수 여당이 다수 야당의 반대를 뚫고 예산안과 예산 부수법안을 처리할 방도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정기국회 폐회일인 1989년 12월 19일, 여야 4당 간에 극적인 대타협이 이루어져 국회에서 관계 법률안이 통과되었습니다.

그러나 1990년 벽두인 1월 22일. 노태우 김영삼 김종필은 자신들이 이끌던 3당을 합당한다는 발표를 합니다. 그리고 이 합당 이후 지방자치제 실시와 관련된 모든 합의를 파기했습니다. 특히 김영삼과 김종필은 자신들이 야당 총재일 때 지방자치제가 필수라고 주장하면서 김대중의 평민당과 지방자치제 법안 통과에 온 힘을 쏟더니 합당 후 여당이 되면서 국회에서 통과된 법안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돌변한 것입니다,

3당 합당 후 정계가 거여 대 소야 개편된 1990년, 거의 1년 내내 김영삼과 김종필에게 합의를 지키라고 요구하던 김대중 평민당 총재는 이들이 합의를 지킬 마음이 없다는 것을 알고 그해 10월 8일부터 무기한 단식에 들어갔습니다.

호적은 1924년으로 되어 있으나 실제는 1923년생인 김대중 총재의 당시 나이가 만 67세, 우리나이로 68세였습니다. 이 노령의 단식은 목숨을 건 단식이었습니다. 특히 소금도 물도 먹지 않은 단식이었기에 측근들과 당내의 반대도 많았습니다. 당 중진을 비롯한 의원들의 단식중단 호소가 있었으나 김대중 총재는 고집을 꺾지 않았습니다. 급기야 동조단식 등 다양한 방식의 당내 응원이 답지했습니다.

단식 8일 째, 탈수현상이 생기면서 생명이 위독해졌습니다. 측근들이 병원으로 옮겼으나 병원에서도 단식을 풀지 않았습니다. 단식 중 당시 김영삼 민자당 대표최고위원이 병실을 찾아왔을 때, “나와 김 대표가 민주화를 위해 싸웠는데 민주화란 것이 무엇이오. 바로 의회 정치와 지자제가 핵심 아닙니까. 여당으로 가서 다수 의석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어찌 이를 외면하려 하시오.”라고 질타했습니다.

결국 노태우 대통령과 김영삼 대표가 받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김대중 총재는 10월 20일 13일간의 단식을 끝냈습니다. 여·야 간 극한 대치가 협상으로 판이 바뀌면서 12월 6일 전면적 지방자치제 실시를 최종 합의하기에 이르렀습니다. 1991년 6월 30일 이내 기초 및 광역 지방의회를 구성하고, 1992년 6월 30일 이내 기초 및 광역 지방자치단체장 선거를 실시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합의를 여당은 다시 지키지 않았습니다. 1992년 1월 10일 노태우 대통령은 1992년 6월 30일 이내 실시하기로 되어 있던 자치단체장 선거를 일방적으로 연기한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리고 1992년 총선과 대선이 치러졌습니다.

그러나 언제까지 법에 정해진 시기를 늦출 수 없었기에 1992년 대선에서 당선 된 김영삼 대통령은 1995년에 가서 제1회 동시 지방선거를 시시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 선거에서 민주당은 서울시장을 당선시켰으며 인천과 경기를 빼앗겼지만 전면적 승리라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그리고 1997년 정권을 교체했습니다. 이를 뒤돌아보면 1995년 지방선거 실시 및 야당승리가 정권을 교체하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 터전이었습니다.

야당에게 지방선거 승리는 이처럼 대단한 의미가 있습니다. 2006년 지방선거의 한나라당 전면적 승리는 2007년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 대통령 당선으로 이어졌습니다. 2010년 야권의 전면적 지방선거 승리는 이명박 정권 전체를 흔들었으며 한나라당이 당명까지 새누리당으로 바꾸게 하는 원동력이었습니다. 2012년 총선과 대선은 실상 야당에게 매우 좋은 여건이었으나 정치력에서 현 박근혜 대통령에게 밀려 총선도 패하고 대선도 패했지만 현재 새정치민주연합이 야당 역사상 전무한 130석 거대의석을 지니게 한 원동력입니다.

이런 역사에서 보듯 지방자치제는 야당을 위한 제도입니다. 이 제도가 없다면 대통령은 17개 장관급 광역 단체장과 교육감, 244개 이사관급 이상의 기초단체장의 인사권까지 총괄 행사하는 제왕이 됩니다. 지금 지방자치제가 실시되어 이들의 인사권이 국민인 유권자에게 넘어가 있어도 제왕적 대통령이라고 하는데 만약 이런 인사권까지 지닌 대통령이라면 어떤 제왕이 부럽지 않습니다. 실지로 지방자치제를 폐지한 박정희는 18년을 제왕으로 지냈고 전두환 7년 노태우 5년도 제왕적 대통령이었습니다. 물태우라고 불렸으며 총선 패배로 잠시 흔들렸으나 노태우가 제왕적 대통령이 아니었다고 말할 사람 없습니다.

글이 길어졌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 글의 명료한 답안입니다. 지방자치제는 야당에게 정권탈환을 담보해주는 제도입니다. 이 제도를 활용하지 않고 정권탈환을 논하는 것은 메아리도 없는 바다에 대고 소리를 지르는 짓입니다.

제도의 악용으로 지방 토호들이 득세하고 이 토호들을 장악한 중앙의 정치 권력자들이 지방의 공무원 조직까지 장악하는 현실을 타파하는 개혁은 분명하게 필요하나. 이를 위해 더 필요한 개혁을 할 수 있는 정권을 잡을 수 없다면 ‘명분’ 때문에 게도 구럭도 다 잃는 것입니다. 애초 기초공천제 폐지는 잘못된 공약이었습니다. 그러니 상황을 보다가 기초공천제 폐지공약은 잘못된 공약이었다고 새누리당은 당당하게 말하는 것입니다.

지방토호의 득세, 지방 공무원의 줄세우기는 공천제가 가져 온 폐해이기는 하지만 이 폐해가 공천을 하지 않는다고 해소될 것이라는 생각이 순진한 생각입니다. 그 방식이 맞다고 해도 공직선거법 상 공천이 보장된 것이 현재의 룰인 만큼, 이 법을 개정하든지, 개정이 안 되면 법대로 시행하는 것이 법치주의 국가의 정상적 정치행위입니다.

따라서 법을 개정하겠다고 약속해놓고 하지 않는 것을 비판하고 비난하고 강요하고 강압하는 게 첫째이고, 그래도 법이 개정되지 않으면 법대로 따르는 것이 둘째입니다. 게임의 룰이 바뀌지 않았는데 일방적으로 룰에도 없는 것을 약속과 명분이란 이유로 하지 않는다면 그 또한 정당 지도자의 독선입니다.

지방자치제는 풀뿌리 민주주의입니다. 이런 풀뿌리 민주주의가 명분과 실리 싸움에 개차반이 된다면 이것은 정치개혁이 아니라 정치후퇴입니다. 특히 일부 명망가들이 명분이란 이유로 자신의 지위를 남용하는 것은 새정치가 아니라 독재입니다. 자신의 생각만 옳다고 주장하면서 그것을 해야 기득권 포기라고 주장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따라서 지금 새정치민주연합 지도부가 해야 할 일은 명백한 수순이 있습니다. 첫째, 약속을 지키라고 상대에게 계속 강압하는 것입니다. 그 방식은 위에 인용한 김대중의 방식보다 더 강한 방식이어도 됩니다. 당 지도부의 단식투쟁이나 농성투쟁이 시작되면 현역 새정치민주연합 시장군수는 물론 예비후보까지 릴레이 단식으로 룰의 공정성을 압박해야 합니다.

현 박근혜 대통령은 비정상의 정상화가 국정목표입니다. 선거과정의 공정한 룰이야말로 가장 핵심적인 비정상의 정상화입니다. 대통령이 공약을 지키는 것이 비정상의 정상화 첫걸음입니다. 이를 강압하고 그래도 지키지 않을 경우 정치소비자인 국민에게 직접 호소하는 방식이 약속을 지키라는 강성투쟁입니다. 이 강성투쟁에 여권이 굴복하여 무공천으로 돌아서면 우리도 예측 가능한 정치를 볼 수 있습니다. 정치소비자인 국민이 예측가능한 정치가 선진정치입니다.

만약 그래도 여권이 공천을 고집하면? 야권도 법에 명시된대로 공천해야 합니다. 그것이 공정한 룰 안에서 치루는 게임입니다. 1:1싸움이어야 승리를 바라볼 수 있고 승리해야 새정치를 할 수 있습니다.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28&table=c_flower911&uid=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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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작 증거' 내고도 당당한 검찰, 세 가지 '꼼수'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4/03/29 11:07
  • 수정일
    2014/03/29 11:07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기자의 눈] 검찰 "유우성은 간첩임이 분명하다"고? 증거는?

박세열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4.03.29 07:59:40

 

 

 

 

 

 

 

 

28일 오후 4시 경. 검사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울러퍼졌다. 목소리의 톤은 점점 올라갔다. 유우성 씨 간첩 사건 항소심 재판이 열린 서울고등법원 형사법정에서 검사의 목소리가 올라갔다. 
 
"유가려 씨 진술 번복 등의 신빙성 검증 작업이 항소심에서 증거 조작 논란에 가려져 제대로 안 되고 있다."
 
증거 조작 논란이 간첩 사건 진실을 밝히는데 걸림돌이나 된 것처럼 당당했다. 공판 기일 추가 요구의 핵심 요지는 이 부분이었다. 이 쯤에서 세 가지 '꼼수'가 포착된다. 
 
첫째 '꼼수'
 
국정원으로부터 조작한 증거를 받아 법정에 제출해놓고, 그 증거의 위조를 사실상 인정하고 철회해 놓고도, 검찰은 재판정에서 당당했다. "'위조'라고 하는 것은 언론을 통해 보도된 것이고 진상조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면서. 
 
조작된 증거를 제출한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 이현철 부장검사는 "위조 논란이 있지만 항소심에 제출된 기존의 증거로도 (간첩 입증이) 충분하다"며 "피고인이 간첩임이 분명한데 국민에 심려를 끼쳐서 죄송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오로지 증거에 따라 판단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는지 일단 의문이다. 
 
▲ <뉴스타파> 화면 캡처 ⓒ뉴스타파

▲ <뉴스타파> 화면 캡처 ⓒ뉴스타파

 
검찰의 '꼼수'는 간단하다. 위조된 증거 문건 3건은 증거 능력 판단 전에 철회한 것이므로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검찰은 위조된 증거를 법원에 제출해, 마치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인 것처럼 피고와 재판부를 기망해도, 후에 위조됐다 판단될 경우 '당황하지 않고', 그냥 철회하면 '끝'이다. 얼마나 깔끔한가. 변호인 측 이의 제기가 없었다면 위조 증거가 그대로 인정됐을 것이다. 그저 운이 나빴다고 생각하는 걸까. 
 
둘째 '꼼수' 
 
심지어 검찰은 유우성 씨의 출입경기록(출-입-입)이 전산 오류가 아니라는 내용을 입증하기 위한 전문가 소견까지 제출했다. 변호인 측이 "검찰이 이미 위조된 것으로 판명난 것을 (위조가 아니라고) 입증하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고 반박할만 하다. 
 
검찰의 논리는 중국 정부가 위조 문서에 대해 '정식 문서'라고 거짓말을 했다는 것과 다름 없다. 
 
게다가 검찰의 증거조작 사건팀은 이미 수사를 통해 간첩 사건 팀이 제출한 문서의 위조 여부를 다투고 있다. "국정원이 고의로 증거를 위조했다"는 정황을 발견하고 이를 입증하려 총력을 다하고 있다. 검찰 수사 과정에서 수상한 부분들도 없지 않지만, 최소한 그렇게 전제는 할 수 있다. 
 
그런데 오늘 검찰 측은 "아직 위조로 판명나지 않았다"고 당당히 목소리를 높였다. 위조 여부에 대한 변호인들의 입장 표명 요구도 사실상 거부했다. 한 쪽에서는 위조임을 입증하기 위해 사력을 다하고, 한 쪽에서는 아직 위조 여부를 알수 없다며 기존 입장을 번복하지 않고 있다. '검사동일체의 원칙'은 어디로 갔는가. 동료들의 입증 실패라도 바라고 있는 것인가. 
 
위조된 증거를 제출하고 저리 당당할 수 있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납득할 수 없는 부분이다. 위조 증거를 제출한 검사들에 이미 면죄부가 주어진 것일까. 동료들에 의해 국가보안법 상 날조 혐의로 수사 선상에 오를지 모르는 상황에 처한 간첩 수사팀 검사들이 저리도 느긋한 이유를, 도저히 달리 생각할 길이 없다. 
 
셋째 '꼼수' 
 
검찰의 '꼼수'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 것 같다. 왜 검찰은 공소장 변경과 함께 추가 기일을 요구했을까. '진짜 이유'는 공판 과정에서 유추해볼 수밖에 없다. 검찰은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과 별개로 유우성 씨의 북한이탈주민보호법 위반, 여권법 위반 부분에 사기죄를 끼워넣기 위해 공소장 변경을 청구했다. 
 
정확히 얘기하면 청구한 것이 아니라 "다음 기일에 (다음 기일이 만약 허락된다면) 청구하겠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런 검찰의 요구를 들어줬다. 
 
변호인은 강력 반발하며 "북한이탈주민 보호법 위반 부분은 우리만 항소를 한 부분이어서 우리가 항소를 취하하면 검찰이 공소장 변경 자체를 못할 수도 있는 상황"이라고까지 주장했다. 물론 변호인 측은 항소 취하라는, 극단적 선택까지는 하지 않았다. 당연한 얘기다. 
 
그러나 검찰 측이 유우성 씨와 변호인들의 사정을 교묘하게 이용하는 듯한 인상은 지울 수 없었다. 재판부에 의해 공소장 변경이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을 것을 검찰은 알고 있었던 것 아닐까. 아무리 생각해도 의문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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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세열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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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자살 유행병 특별 기획 조명

알자지라 생방송, 한국 자살 유행병 특별 기획 조명
-한국 자살률 증가 추세, 젊은층 절반 자살 생각
-자살에 대해 무감각해져, 일상적인 것으로 받아들여

CNN을 위협할 정도로 급성장하고 있는 알자지라 아메리카 방송이 한국의 높은 자살률에 주목하고 나섰다. 특히 알자지라 더스트림은 한국과 미국 등의 전문가를 연결하여 38분간이나 집중적인 기획보도를 내보내 비정상적인 한국사회에서 일어나는 비정상적으로 높은 자살률에 대해 원인과 대안 등을 모색해 한국의 자살 문제는 이제 단지 한국만의 문제가 아닌 전 세계적인 이슈로 떠오르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 보도는 Jooyea Lee(활동가), 글로벌 포스트의 Geoffrey Cain 기자, ‘무지개 청소년 세이프 스페이스’ 이준영 소장, B.C. Ben Park 브랜디와인 대학 교수 등 전문가들을 연결하여 토론 형식으로 선진국 중 가장 자살률이 높은 한국의 자살 현실과 그에 대한 원인, 배경 그리고 대안 등을 집중적으로 모색했다.

알자지라는 한국의 자살률이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다며 교통사고를 제치고 자살이 한국 젊은 층의 가장 높은 사망원인이 되었다고 강조한 뒤 한국의 젊은이들 중 절반이 자살을 생각해보았다고 자살문제의 심각성을 전했다. 이 방송은 젊은 층들의 과도한 학업, 성공에 대한 중압감, 외모 지상주의 등을 젊은이들의 자살원인으로 꼽았다.

알자지라는 또한 한국 노년층의 자살률에 주목하며 노년층의 자살률은 더 높다고 주목했다. 알자지라는 한국 노년층의 자살률 증가가 ‘한국의 문화적 가치의 변화와 더불어 노년층의 경제적 상황에 기인한 것’이라고 짚었다.

이 보도는 한국의 높은 자살률에 대해 ‘사회가 이미 이 문제에 대해 무감각해졌고 한 때는 터부시 되었지만 현재 자살은 사회적으로 수용되고 있으며 심지어 고귀하거나 명예롭다고 여겨진다’며 ‘늘어만 가는 유명인들의 자살 소식 (유명 인사, 전 대통령을 포함한 정치인들)을 접하며 대중들은 자살에 무감각해졌고 심지어 삶이 약간 힘들어졌을 때 실현 가능한 선택이라고 생각하게 됐다’는 제임스 강이라는 네티즌의 의견을 내보냈다.

이러한 자살률 증가를 막기 위해 정부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보도한 알자지라는 한국 정부는 자살예방을 위한 정신 건강 센터와 복지 기관에 대한 투자를 증대해야 한다는 @metempirics의 의견을 온라인으로 받아 보도했다. 실시간으로 네티즌들이 참여해 전문가들과 의견을 나누는 특이한 방식으로 진행된 이번 기획보도는 많은 이들의 주목을 끌었고 한국의 자살 문제에 대한 대책이 국제적인 관심사로 떠올랐음을 다시 한 번 환기시켰다.

다음은 알자지라 더스트림 기사 전문을 뉴스프로가 번역한 것이다.

번역 감수: 임옥

더스트림 기사 바로가기 ☞ http://bit.ly/1pleGpa

더스트림 방송 바로가기 ☞ http://bit.ly/1h4oDAs

 

Shining a light on South Korean suicides

한국 자살문제 조명

How can the country tackle its suicide epidemic?

유행병처럼 퍼지는 자살을 어떻게 대처할 수 있을까?

Mar. 27, Aljazee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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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th Korea has the highest suicide rate among OECD members with more than 40 Koreans committing suicide every day. It’s the leading cause of death among young people and a recent poll found more than half of teens have suicidal thoughts. While the government has taken steps to curb the epidemic, there seems to be no signs the rate is declining. Join our live conversation at 19:30GMT.

매일 40여명의 자살로 한국은 OECD국가 중 가장 높은 자살률을 보인다. 젊은층에서는 가장 높은 사망요인이며 최근 여론조사에 의하면 10대 청소년 절반 이상이 자살을 생각한다고 한다. 정부가 이 현상을 줄여보려 대책을 세웠지만 숫자는 줄지 않는 듯 보인다. 그리니치 표준시간 오후 7시30분 실시간 대화에 여러분을 초대한다.

In this episode, we speak to:

이 토론에 다음 사람들과의 대화가 진행된다:

Jooyea Lee @crea_pass
Activist
facebook.com/creapass

Geoffrey Cain @geoffrey_cain
Correspondent, Global Post
globalpost.com

JuneYoung Lee @junelee558
Program Officer, Rainbow Teen Safe Space

B.C. Ben Park
Sociologist, Brandywine University

With the highest suicide rate of any developed nation, at least 40 South Koreans kill themselves every day. As suicide rates across much of the developing world have started to fall, in South Korea they continue to trend upward as shown in the graph below:

선진국 중 가장 높은 자살률을 기록하며 최소 40명의 한국인이 매일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개발도상국에 속한 대부분 국가에서 자살률이 감소하는 반면 한국에서는 자살률이 다음 그래프에서 보는 바와 같이 계속 증가추세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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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utranking car accidents, suicide is the leading cause of death among young people in South Korea. Today, over half of the country’s youth experience suicidal thoughts.

교통사고를 제치고 자살은 한국 젊은 층의 제일 높은 사망원인이 되고 있다. 현재 전국적으로 젊은이들의 절반 이상이 자살을 생각해보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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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astairGale: Poll Shows Half of Korean Teenagers Have Suicidal Thoughts http://on.wsj.com/1eos7ks

여론조사는 한국 10대 청소년들 절반이 자살을 생각했음을 보여준다.

Therapists and researchers attribute this to the enormous amount of pressure that students face to succeed in school. Many study for more than 12 hours a day in hopes of getting into top universities.

치료전문가들과 연구자들은 학생들이 학업에서 성공해야 한다는 막대한 양의 중압감으로부터 이것이 기인한다고 본다. 일류대학에 들어가고자 하는 희망으로 많은 학생들이 하루에 12시간이 넘게 공부한다.

On a test day, one South Korean tweeted:

시험 날, 한 한국인이 트윗했다.

@eddiebyun: Please pray for life and protection for the students of Korea today as they take their college entrance exam. Many commit suicide after.

@eddiebyun: 대학입학 시험을 보는 한국의 학생들의 생명과 보호를 위해 기도해 주세요. 많은 학생들이 시험 후에 자살합니다.

Online, some described the competitive nature of the South Korean education system:

온라인 상에서 몇몇의 사람들이 경쟁적인 한국교육제도를 언급했다:

@AKG1593: @AJStream Competitive pressure makes education a life and death question. Same is the case with a major %age of Indian high school students.

@AKG1593: @AJStream 경쟁적 중압감이 교육을 죽고 사는 문제로 만든다. 인도 고등학생의 대다수와 경우가 같다.

@ESLBarry: @raisazaidi sure, for many success is only going to a prestigious school and working for a conglomerate. Of course not all can do this.

@ESLBarry: @raisazaidi 맞는 말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성공이란 단지 일류 학교에 가는 것과 대기업에서 일하는 것이다. 물론 모두가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Nyawade Sidigu: The pressure to perform academically is huge in . There are probably a few other big factors, but I think that’s the primary motive for suicide by their youth. Japan has a similar problem, though there are definitely differences. I imagine most of this occurs in the cities, though.

Nyawade Sidigu: 학업성취도에 대한 중압감은 아주 크다. 아마도 몇 가지 다른 큰 요인들이 있겠으나, 나는 그것이 청소년들이 자살하는 가장 주요한 동기라고 생각한다.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일본도 유사한 문제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일들은 대부분 도시에서 일어난다고 생각한다.

Naa Adorkor Pappoe: Pressure in their education system, obsession to look nice in other to fit in.and many more why wont their suicidal rate increase..

Naa Adokor pappoe: 교육제도 내의 압박, 어울리기 위해 외모에 집착하는 강박관념. 그리고 또 자살률 증가의 더 많은 이유들..

Others felt the level of attention paid to one’s physical appearance has led to the high rates of suicide among youth:

다른 이들은 신체적 외모에 주어지는 관심의 정도가 청소년의 높은 자살률을 초래했다고 느꼈다:

Xandra Escorsa: Because they’re not contented with their physical appearance and many resort to plastic surgery just to be accepted by the society. South koreans teens think they’re ugly without plastic surgery done in their face and body and this thought forces them to commit suicide due to low self esteem and inferiority complex leading to depression.

Xandra Escora: 그들이 자신들의 신체적 외모에 만족하지 못하고 많은 사람들이 사회에 받아들여지기 위해 성형에 의지하기 때문이다. 한국 청소년들은 얼굴과 몸에 성형수술을 하지 않고서는 자신들이 못생겼다고 생각하며, 낮은 자신감과 열등감으로 우울증에 이르게 되고 이 생각이 이들을 자살하도록 몰아간다.

Weera Chak: Too stressed out seeking perfection in looks and all else, especially social standing and relationships.

Weera Chak: 외모와 그외에 모든 것, 특히 사회적 지위와 관계들에서 완벽을 추구하느라 굉장히 스트레스를 받았다.

Roaa Ramadan: No, they commit suicide from bullying, and how they perceive their own look and beauty.

Roaa Ramadan: 아니다, 그들은 왕따를 당하는 것과 그들 자신의 용모와 미모를 어떻게 스스로가 인지하는 것으로 인해 자살을 한다.

Some pointed out, however, that the issue may be more complex:

그러나 다른 이들은 이 문제가 아마도 더 복잡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Joseph Kim: @loisnam @AJStream @hohocho @AskAKorean @JaeyeonWoo I think the issue goes beyond social norms or expectations and is far more complex

Joseph Kim: @loisnam @AJStream @hohocho @AskAKorean @JaeyeonWoo 나는 이 문제가 사회적 표준 혹은 기대치를 넘어서며 훨씬 더 복잡하다고 생각한다.

With half of South Korea’s elderly in relative poverty, the suicide rate among Korea’s older generation is even higher:

한국 노년층 절반이 상대적 빈곤층이며, 이들 한국 노년층의 자살률은 더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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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is attributed to the economic situation of the elderly, combined with changing cultural values in the country.

이것은 한국의 문화적 가치의 변화와 더불어 노년층의 경제적 상황에 기인한 것이다.

In light of the high rates among the youth and elderly, some online feel society has become numb to the problem:

청년층과 노년층의 높은 자살률에 대해 몇몇 네티즌은 사회가 이 문제에 대해 이미 무감각해져 있다고 지적한다:

James Kang: once a taboo, now suicide became acceptable, even noble or honorable in the society. more people associate suicide with courage instead of cowardice. not sure how this started, but the increasing frequency of suicide among public figures (including top celebrities, politicians including former president) make general public numb to this epidemic and make them to think suicide is a viable option when life gets a little rough.

James Kang: 한 때는 터부시 되었지만 현재 자살은 사회적으로 수용되고 있으며 심지어 고귀하거나 명예롭다고 여겨진다. 더 많은 사람들이 자살을 비겁함이 아나라 용기와 연결시킨다. 이런 현상이 어떻게 시작됐는지 모르겠지만, 늘어만 가는 유명인들의 자살 소식 (유명 인사, 전 대통령을 포함한 정치인들)을 접하며 대중들은 자살에 무감각해졌고 심지어 삶이 약간 힘들어졌을 때 실현 가능한 선택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Steve Miller: @loisnam Most have accepted this behavior as routine. There’s no outrage or call for real change. Until that happens, the rate stays high.

Steve Miller: @loisnam 대부분 이 현상을 일상적인 것으로 받아들인다. 분노를 표현하거나 실질적인 변화를 요청하지 않는다. 이런 움직임이 없다면 높은 자살률은 변함없을 것이다.

Several initiatives have been implemented to combat the suicide epidemic facing the country. In 2012, the government outlawed the sale and storage of Gramoxone, a herbicide linked to suicides. The ban was credited with cutting the suicide rate by 11 per cent in first year of implementation.

한국이 직면한 자살 유행병을 해결하기 위해 몇 가지 정책들이 시행됐다. 2012년, 정부는 자살과 관련있는 제초제 ‘그라목손’의 판매와 보관을 금지했다. 이 조치가 시행된 첫 해 자살률이 11% 감소하는 성과가 있었다.

A more controversial initiative is the Samsung-sponsored project, “Bridge of Life”. In a campaign to decrease the number of people jumping from the Mapo Bridge in Seoul, the municipal government rebranded the bridge, installing motion-sensor lights and inspirational messages on its guard rails.

더 많은 논란이 되고 있는 조치로, 삼성이 후원하는 프로젝트인 “생명의 다리”가 있다. 서울 마포대교에서 뛰어내리는 사람들의 수를 줄이기 위한 캠페인으로, 서울시는 동작감지 조명을 달고 난간에 고무적인 메시지를 새겨 마포대교의 이미지를 새로이 했다.

‘The Bridge of life’ by Samsung Life Insurance (삼성생명의 “생명의 다리”)

The bridge created controversy when it was reported that the number of suicide attempts quadrupled in the project’s first year of existence. The government disputed the criticism, stating the campaign had actually reduced the fatality level.

그러나 이 생명의 다리는, 시행된 첫해에 자살시도 건수가 4배로 증가한 것으로 보도되자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그러자 정부는 이 캠페인으로 인해 사망률이 실제로는 줄었다며 비난에 이의를 제기했다.

Other Koreans experience “fake funerals” in effort to “die” in order to learn how to live. As described in the report below, some say the experience teaches them how to better appreciate life:

또 일부의 한국인들은 “죽음”을 체험함으로써 사는 방법을 배우기 위해 “모의 장례식”을 하기도 한다. 아래의 보도에서와 같이 이 경험을 함으로써 삶을 더 잘 인식하는 방법을 배우게 되었다고 몇몇 사람들은 말하고 있다:

韓国の偽葬式 – A Good Day to Die: Fake Funerals in South Korea

죽기 좋은 날: 한국에서의 모의 장례식

Online, some felt the government and society needed to do more to improve mental health services:

온라인에서 일부 사람들은 정부와 사회가 정신 건강증진을 위한 사업을 향상시키기 위해 더 많은 일을 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느꼈다:

@metempirics: @AJStream South Korean government’s investment 4 mental health centers and the welfare organizations in suicide prevention should increase.

@metempirics: @AJStream 한국 정부는 자살예방을 위한 정신 건강 센터와 복지 기관에 대한 투자를 증대해야 한다.

Syed Ahmed commented:

Syed Ahmed가 글을 남겼다:

facebook.com: The status of mental health services needs to be renovated. Korean psychiatrists, therapists and counselors needs to become more inclusive of teen health. I’m sure cultural barriers exist from getting help from professionals and this must also be addressed.

정신 건강증진사업에 대한 현황은 개선이 필요하다. 한국 정신과의사, 치료전문가, 상담사들은 10대들 건강에 더 폭넓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나는 전문가들의 도움을 얻는 것에 문화적 장벽이 존재하며 이것 또한 반드시 다루어져야 한다고 확신한다.

@insim05: @raisazaidi It can only be curbed by raising awareness among people, and people should manage to get counselling they need in time.

이것은 사람들 사이에서 관심을 불러일으킴으로써 제어될 수 있다. 그리고 사람들은 제때에 자신들이 필요로 하는 상담을 받아야 한다.

Others shared personal experiences relating to suicide in the country:

다른 사람들은 이 나라에서 자살과 관련된 개인적인 경험들을 공유했다.

Jae Hee: @AJStream In the area where I live, I heard 2 students committing suicide in recent days. middle schooler & high schooler. No press coverage

내가 사는 지역에서, 최근에 2명의 학생들이 자살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중학생과 고등학생. 언론에는 보도되지 않았다.

Jaehwan Cho 조재환: @loisnam When I heard my military colleague committed suicide, I felt why the society cannot giving us a better society.

내가 군 동료가 자살했다는 것을 들었을 때, 왜 이 사회가 우리에게 보다 나은 사회를 주지 못하는지에 대해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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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총참모부 "남조선 해군 NLL 침범..어선 귀순 강요"

 

"예민한 수역, 여러가지 대책 취할 것"
조정훈 기자  |  whoony@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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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03.28  23:4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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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7일 오후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넘어온 북한 선박 1척을 우리 군이 나포, 송환한 것과 관련, 북한군 총참모부는 "남조선 해군이 서해 우리측(북측) 수역에 불법침입하였다"며 "어선에 귀순을 강요하면서 폭력을 가했다"고 28일 주장했다.

북한 인민군 총참모부 대변인은 이날 <조선중앙통신> 기자와 문답에서 "27일 밤 남조선 2함대 소속 쾌속정 편대가 조선서해 우리측(북측) 수역에 불법침입하여 평화적인 우리 어선을 강압적으로 나포하는 엄중한 도발사건이 발생하였다"고 말했다.

대변인에 따르면, 27일 밤 옹진군 마합도부근 수역에서 조업 중인 '옹진수산사업소' 소속 22hp어선 '539-52456'호가 기관고장으로 항로를 잃었다.

당시 짙은 해무가 낀 상황에서 해당 어선은 닻을 내리고, 나침판으로 방향을 고정하던 중, 남측 2함대 소속 쾌속정이 다가와 50여발의 총탄을 쐈다는 것.

이와 관련, 합동참모본부는 북한 선박 1척이 백령도 동방해역 NLL을 1마일 가량 월선, 오후 8시에 나포했으며, 고속정을 근접 기동해 수차례 경고통신과 경고사격으로 퇴거조치를 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에 대해 북측은 "남조선 해군 2함대 소속 쾌속정 무리들이 우리 해상군사분계선을 넘어 불시에 침범하였던 것"이라고 상반된 설명을 내놨다.

우리 해군이 해당 어선을 나포, 관계기관 등과 침범 경위 등을 조사했다는 내용에 대해서도 북측은 "어선에 뛰여든 남조선 해군 깡패무리들은 무작정 선원들을 쇠몽둥이로 후려치면서 실신상태에 빠뜨린 다음 족쇄를 채우고 눈까지 싸맨 상태에서 어선을 백령도로 끌고 가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대변인은 "문제는 우리 어선을 쇠갈구리로 마구 찔러대며 강압적으로 나포한 해상깡패 행위가 항로를 잃고 표류하고 있던 평화적인 어선을 대상으로 '귀순의사가 전혀 없다'는 것을 밝힌 인원들을 대상으로 고의적으로 저지른 망동이라는 데 있다"고 주장했다.

당시 귀순의사가 없는 것을 확인한 합참은 북측에 통지문을 보내, "평화적인 어선이며 불비한 기관으로 정상항해가 불가능한 상태에 있었을 뿐 아니라 선원들의 귀순의사가 전혀 없다'고 전했다고 대변인이 밝혔다.

그러나 대변인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선을 백령도로 끌고간 남조선 해군깡패무리들은 인원들을 서로 격리시켜 놓고 총구까지 겨눈 상태에서 귀순을 강요하면서 폭행을 가하며 강박대기 시작하였다"고 말했다.

이어 "사태의 진상을 간파한 우리 인민군총참모부는 당일 22시20분 서해지구 북남군통신선을 통하여 남조선군 합동참모본부에 평화적인 우리 어선을 즉시 돌려보낼 것을 촉구하면서 만약 어선 귀속이 늦어지는 경우 예상할 수 없는 사태가 벌어지게 될 것이라는 긴급경고통지문을 내보냈다"고 설명했다.

또한 "남조선 해군 2함대 소속 깡패무리들은 우리 어선이 '북방한계선을 불법월선'했다느니, 수차례 경고를 하였지만 불응했기 때문에 강압적으로 나포했다느니 하면서 거짓말과 변명을 했다"며 "결국 28일 1시 28분 조국의 품으로 돌아오게 되였다"고 말했다.

대변인은 "어선에 실려온 우리 인원들은 귀순을 강요하면서 가한 치떨리는 야수적인 만행으로 실신상태에 있으며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다"면서 "앞으로 예민한 수역에서 어로작업을 하는 모든 어선들에 비정상적인 사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여러가지 대책을 취하려고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기자문답에서 북한 군 총참모부 대변인은 '여러가지 대책'에 대해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지만 예상치 못한 대책이 나올 수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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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의사]순국일 비밀과 헤이그 정상회담

안중근 의사의 잘린 손가락, 대한민국은 독립국가일까…
 
장유근 | 2014-03-27 19:01:45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안중근 의사의 잘린 손가락
-순국일 비밀 담긴 잘린 손가락과 헤이그 정상회담- 

대한민국은 독립국가일까…

요즘 우리나라가 처한 형편을 돌아보고 있노라면 민족적 자긍심 따위는 찾아볼 수 조차 없게 된 세상이다. 민족적 자긍심은 커녕 불의가 횡행하고 거짓이 상식으로 돌변한 사회에서 살아남으려면, 조작질을 통해서라도 거짓을 사실로 꾸며대야 하는 나라로 변해있는 것이다. 이 같은 나라에서 진실을 말하는 것 만큼 어리석은 일이 또 있을까. 사실 내지 진실을 통해 가치를 말하면 ‘어리석은 사람’ 쯤으로 여기게 된 절망의 시대는, 최소한 을사늑약(1905년) 후부터 104년이 지난 지금까지 여전히 우리사회를 암울하게 만드는 것이다.

일주일 전 필자는 남산을 다녀올 기회가 생겨서 안중근(1879~1910) 의사 기념관 곁에서 한참을 서성거렸다. 남산을 찾는 사람들 조차 잘 찾지않는 기념관 근처에는 안 의사의 왼손 장인(掌印)이 찍인 논어의 한 귀절이 커다란 바위에 새겨져있었다. 이익을 보거든 정의를 생각하고, 위태로움을 보거든 목숨을 주라는 뜻의 “견리사의 견위수명(見利思義 見危授命)”이었다. 보고 또 보고 다시 돌아봤다. 이익을 보거든 정의를 생각하고, 위태로움을 보거든 목숨을 주라?…

2014년 3월 26일 현재 대한민국에 살고있는 시민들에게 이렇게 가르치면 무능한 사람으로 비쳐지기 십상이다. 뺀질뺀질 남의 속까지 훤히 들여다 보며 실속을 챙겨도 시원찮을 마당에, 얼마되지 않는 이익을 챙겨겨 정의를 생각하고 이웃과 나라의 위태로움 때문에 목숨을 주라고 한다면, ‘너나 잘하세요’라며 빈정거리지 않는 것 만도 다행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 선조님들은 의로운 일을 통해 여전히 우리의 거울이 되어 희망을 일깨우고 있는 것.

1909년 안중근 의사는 동지 11명과 함께 죽음으로써 나라를 위한 구국투쟁을 벌일 것을 맹세하며, 동의단지회(同義斷指會)를 결성할 때 손가락을 끊었다. 안 의사의 왼손 약지(넷째 손가락) 첫 마디가 없어진 비밀은 곧 현실로 나타나게 된 것이다. 안 의사는 1909년 10월 26일 중국 하얼빈 역에서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에게 권총으로 세 발을 명중시켰다.

1909년 이토 히로부미가 러시아의 재무상 코코브쵸프와 회담하기 위해 하얼빈에 오게 된 것을 기회로 삼아, 하얼빈 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권총으로 사살시킨 것이다. 이토 히로부미는 '한일병탄'과 관련해 일제의 제국주의적 침략과 대한제국의 식민지화를 주도한 인물이었다. 안 의사는 현장에서 체포되었다.

그리고 1910년 2월 14일 사형 선고를 받고, 같은 해 3월 26일 처형된 것이다. 안 의사 나이 31세 때의 일이었다. 위대한 거사를 앞 두고 왼손 약지를 잘라 흔들림 없이 거사를 행했는 데 안 의사를 위대하게 만드신 분은 당신의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였다. 여사께선 아들이 사형선고를 받았다는 소식을 듣고 죽음을 앞둔 아들에게 ‘마지막 편지’를 썼다.

“네가 만약 늙은 어미보다 먼저 죽는 것을  불효라 생각한다면 이 어미는 웃음 거리가 될 것이다. 너의 죽음은 너 한 사람 것이 아니라  조선인 전체의 공분을 짊어지고 있는 것이다. 네가 항소(抗訴)를 한다면 그것은 일제(日帝)에 목숨을 구걸하는 짓이다. 네가 나라를 위해 이에 이른즉 딴 맘 먹지 말고 죽으라. 옳은 일을 하고 받은 형이니 비겁하게 삶을 구하지 말고 대의에 죽은 것이 어미에 대한 효도다 아마도 이 어미가 쓰는  마지막 편지가 될 것이다. 네 수의를 지어 보내니 이 옷을 입고 가거라 어미는 현세에서 재회하길 기대하지 않으니 다음 세상에는 선량한 천부의 아들이 되어 세상에 나오거라.”

나라와 민족이 힘들어 할 때마다 어머니는 위대함으로 다가오는 것일까. 안 의사의 어머니께서 남기신 마지막 편지를 읽으면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삶과 죽음의 의미가 새롭게 다가오기도 한다. 나라를 위해 아들의 목숨을 내 놓은 어미의 가슴은 천갈래 만갈래 찢어질 텐데 호연지기를 심어준 위대한 어머니께선 죽음 앞에서 조차 비굴하지 말기를 당부하고 계신 것이다. 그것도 손수 장만하신 수의 한 벌과 ‘선량한 천부의 아들’과 같은 형벌 같은 바람을 아들에게 전하며 자랑스러워 하고 계시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안 의사는 순국 이틀 전 감옥 속에서 옥중 유묵(遺墨)을 남겼는 데 그 중 하나가 “견리사의 견위수명(見利思義 見危授命)”이었던 것. 안 의사의 거사가 있기 전 네덜란드의 헤이그에서는 헤이그 특사(이준,이상설,이위종)들이 <만국평화회의보>와 인터뷰를 통해 일제의 불법적 조선침략을 폭로하기도 했다.일제에 의한 을사늑약 체결로 한국은 외교권을 상실하여 자주 국가로서 국제적인 인정을 받지 못하게 된 데 대한 특사파견이었다.

네덜란드의 헤이그에서 26개국의 대표가 참석하는 제 2회 만국평화회의가 열리게 되자, 1906년 4월 고종은 전 의정부 참찬 이상설과 전 평리원 검사 이준을 이 회의에 파견하게 된 것인 데 일제의 반대로 회의 참석이 제지되고 만국 평화 회의 참석이 제지되는 참담함 앞에 놓이게 되자 이준 열사께서 복부를 베어 자결을 시도한 사건이 헤이그에서 있었던 것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우리 선조님들은 목숨을 걸고 나라와 민족에 대한 자부심이나 자긍심이 대단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안 의사 서거 104주기를 맞이한 지금 대한민국은 그런 자부심이나 자긍심은 온데간데 없어지고 말았다. 국가의 안위를 위해 조직된 국가정보원의 첩보요원들이 본연의 임무를 망각하고 댓글사건을 통해 짝퉁 대통령을 양산하는 범죄를 버젓이 저지르는 나라가 됐다. 정치적 이익을 위해 선량한 사람을 간첩으로 만드는 조작질을 서슴치 않게 됐으며, 서류 위조가 발각되자 이번에는 개인과 특정 조직의 이익만을 위해 자살극을 벌이는 나라가 됐다.

더 큰 문제는 이런 몰상식이 하루가 멀다하고 행해져도, 이를 부추기거나 합리화 하며 국론분열을 일삼는 정치세력이 버젓이 활개치는 나라가 대한민국의 현주소이다. 안 의사의 순국 104주기를 맞이해 숭고한 넋을 기리는 분들이 통곡을 하며 억울해 하는동안, 바다 건너 네덜란드 헤이그에서는 한미일 3국의 정상회담이 열렸다.

이른바 ‘헤이그 정상회담’에서는 댓글사건 수혜자 박근혜가, 제국주의 부활을 노리는 극우주의자 아베신조와 전쟁에 광분하는 미국과 함께 동족상잔을 부를 수 있는 ‘북핵 대응책’에 머리를 맞대고 있었다. 전혀 얼토당토 않은 일이 헤이그에서 벌어지고 있었던 것. 선조님들이 구국충정을 보인 성스러운 땅 헤이그에 친일 유신독재자의 딸이 선조님들의 얼을 더럽히고 있었던 것이다.

어제(26일)는 천안함 침몰사건이 4주기를 맞이한 날이자, 민족의 영웅 안중근 의사의 순국 104주기를 맞이한 날이었다. 안 의사께선 스스로 손가락을 잘라 나라와 민족을 더럽힌 원흉을 처단했다. 그러나 뼛속까지 친일.친미의 피가 흐른다며 자랑스러워 한 이명박 전 대통령과 군 당국 등으로부터 정리된 천안함 사건은, 46명의 호국영령을 여전히 백령도 앞 바다에 수장시키고 있었다. 사건에 대한 의혹은 여전한 데 의혹을 가진 국민을 향해 ‘음모론’이라 주장하며 나라와 민족을 ‘정치적 이익’에 악용하고 있는 사람들.

안 의사께선 “옳은 일을 짓밟는 것을 보거든 정의를 생각하고, 위태로운 처지에 놓여 있는 사람을 보거든 구해줄 마음을 가져라. 그리고 나라가 위태로운 지경에 빠졌을 때는 목숨을 던져 나라를 바로 잡는 데  힘쓰는 사람이 되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목숨을 던져 나라를 바로잡는 건 고사하고 옳은 일과 위태로운 처지에 놓인 나라와 시민을 짓밟고 있는 사람들 때문에 선조님들 볼 면목이 없다. 대한민국이 독립국가인지 다시 되새겨 보는 참담한 새벽이다.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15&table=dream_jang&uid=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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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채동욱 보도'의 한국신문상 수상에 대해

[주간 프레시안 뷰] '채동욱 혼외아들' 보도는 '청부 보도'?

박인규 프레시안 편집인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4.03.28 10:49:53

 

 

 

 

 

 

 

 

 

<주간 프레시안 뷰>는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만의 차별화된 고급 칼럼지입니다. <프레시안 뷰>는 한 주간의 이슈를 정치/경제/남북관계·한반도/국제/생태 등 다섯 개 분야로 나눠 정리한 '주간 뉴스 일지'와 각 분야 전문 필진들의 칼럼을 담고 있습니다.

 
정치는 임경구 프레시안 정치 선임기자 및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가 번갈아 담당하며, 경제는 정태인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원장, 남북관계·한반도는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국제는 이승선 프레시안 국제 선임기자, 생태는 하승수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이 맡고 있습니다.
 
이중 매주 한두 편의 칼럼을 공개하고자 합니다.
 
※ 현재 <프레시안 뷰>는 프레시안 조합원과 후원회원인 프레시앙에게 무료로 제공되고 있습니다. 그 외 구독을 원하는 분은 프레시안 협동조합에 가입하거나 유료 구독 신청(1개월 5000원)을 하면 됩니다.(☞ <프레시안 뷰> 보기)
 
프레시안 조합원 여러분 안녕하셨습니까, 이사장 박인규입니다.
 
1815년 나폴레옹이 유배지 엘바 섬을 탈출해 파리로 돌아와 잠시 황제로 복위했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당시 프랑스 언론들은 처음에는 '대역죄인 나폴레옹 엘바 섬을 탈출하다' 식으로 보도하다 막상 나폴레옹이 파리에 입성하자, '황제, 파리에 복귀하시다'라며 태도를 180도 바꿨다고 합니다. 결국 나폴레옹은 그해 6월, 워털루 전투에서 패해 세인트헬레나 섬에서 쓸쓸한 최후를 맞았지만, 이 일화는 언론과 권력의 관계가 얼마나 취약하고 간사한지 보여주는 사례로 자주 거론됩니다.
 
▲ 26일 자 <조선일보> 8면 기사

▲ 26일 자 <조선일보> 8면 기사

<조선일보>가 '채동욱 검찰총장 혼외 아들' 보도로 한국신문협회가 주는 '2014 한국신문상'을 받게 됐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위의 일화가 떠올랐습니다. <조선일보>는 3월 26일 지면 전체를 할애해 '탈선 권력에 용기 있는 비판… 이것이 언론 본령'이라고 자화자찬했지만, 제 눈에는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검찰총장의 사적 일탈을 빌미 삼아, 국정원 등 국가기관의 대선 개입이라는 보다 큰 공권력의 불법행위를 덮기 위한 '청부 보도'라는 느낌이 훨씬 강했습니다.
 
다 알다시피, 채동욱 전 검찰총장은 지난 해 6월 11일 원세훈 전 국정원장을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습니다. 당시 윤석열 검사를 비롯한 수사팀은 18대 대선 과정에서 국정원 등 국가기관의 대선 개입 실상을 밝혀내기 위해 성역 없는 수사를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원세훈 전 원장의 기소 시점인 6월 11일을 전후해 채동욱 총장 사생활에 대한 청와대의 내사가 시작됐고, 결국 9월 6일 <조선일보>의 관련 보도로 채 총장은 낙마했습니다. 이후, 윤석열 검사를 비롯한 수사팀이 해체되는 등 수사는 흐지부지됐습니다. 만일 채 총장과 수사팀이 관련 수사를 계속했다면, 국가기관 대선 개입 실상이 지금쯤 낱낱이 밝혀졌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물론, 검찰총장도 무시하지 못할 권력입니다. 아무리 작더라도 권력자의 잘못이 있다면 언론은 '용기 있게' 밝혀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권력자 한 사람의 사적 일탈과, 국정원 등 국가기관이 대통령 선거라는 민주주의 과정에 불법 개입한 공적 탈선은 차원이 다릅니다. 사적인 일탈은 개인적인 비행일 뿐이지만, 국가기관의 공적인 탈선은 전체 사회의 정상적인 운영에 엄청난 해악을 끼치기 때문입니다. 만일 <조선일보>가 "탈선 권력에 용기 있는 비판이 언론의 본령"이라고 생각한다면, 18대 대선 과정에서 행해진 국가기관 대선 개입의 실상을 파헤치는 데에도 그런 용기를 발휘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국가기관 대선 개입에 대한 <조선일보>의 보도 태도는 국정원 감싸기로 일관했습니다. 채동욱 전 총장의 혼외 아들 보도가 '청부 보도'라는 느낌은 그래서 지워지지 않습니다. 나폴레옹 사례에서 보듯 권력 앞에 약해지는 것이 언론의 생리(生理)라지만, 그래도 이건 아닌 것 같습니다. 언론이 권력의 비리를 비판하지 못한다면, 건강한 민주주의는 보장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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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삼권분립 원칙 훼손, 민주주의는 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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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유우성 결심공판... 검찰 '연장전' 시도 성공할까?

'공소장 변경·추가 기일' 주장 관철 여부 주목

14.03.28 08:14l최종 업데이트 14.03.28 08:14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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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착찹한 표정의 유우성씨 간첩 증거조작 사건 당사자 유우성(전 서울시공무원)씨.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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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항소심 결심공판이 28일 열린다. '공소장 변경'을 내세워 추가 기일을 얻어내려는 검사와 이미 늦춰진 공판일정을 더 이상 미뤄선 안 된다는 변호인 사이의 치열한 공방이 예상된다. 

28일 오후 3시 서울고등법원 형사대법정에서 제7형사부(김흥준 부장판사) 심리로 열리는 이 사건 공판은 검사의 증거 및 증인 철회부터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검찰이 하루 전 밝힌대로 위조정황이 드러난 유우성씨의 북-중 출입경기록과 관련 문서 등의 증거와 전직 중국 출입경관리 공무원에 대한 증인신청을 철회한다는 의사를 재판부에 전달하는 것이다. 

또 지난 25일 재판부에 제출한 의견서에서 주장했듯 공판에서 검사들은 '공소장 변경을 위해 공판기일이 추가로 필요하다'는 주장을 펼 것으로 보인다. 유씨가 신분을 위장해 정착지원금 등 탈북자 대상 지원금을 타냈다는 기존의 북한이탈주민지원법 위반 혐의에 형법상 사기혐의를 적용, 공소장을 변경하겠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추가 기일이 필요하다는 논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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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시공무원 간첩사건' 유우성 씨, 참고인 신분으로 검찰 출석 간첩혐의 피의자로 검찰 조사를 받았던 '탈북자 서울시공무원 간첩사건' 피고인 유우성씨.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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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검사 측 주장이 관철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27일 재판부에 의견서를 내 공판 연장에 대한 반대의 뜻을 분명히 한 변호인 측은 '공소장 변경을 이유로 내세운 추가 기일 지정 주장은 시간끌기일 뿐'이라며 검사 주장에 맞설 것으로 예상된다. 

재판부도 검사 측 주장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당초 이 사건을 맡은 재판부는 지난달 28일 열린 공판을 결심공판으로 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그러나 지난 2월 중순 법원 인사이동으로 인해 새로 구성된 재판부가 지난달 28일 공판에서 '재판부 교체 뒤 열린 첫 공판을 결심공판으로 하기엔 심리에 부담이 크니 다음 기일을 결심공판으로 하자'고 제안해 미뤄진 게 이번에 열리는 공판이다. 

재판부로선 검사 측 주장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은 것. 이날 공판이 결심 공판이 되면 검사가 구형을 하게 되는데, 1심과 같이 징역 7년을 구형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1심에서 기소한 내용에서 더 추가된 범죄사실이 없기 때문에 구형에 변화를 줄 명분이 없기 때문이다. 

유씨 출입경기록 등 검사 측 증거가 철회되면서 검사들은 이 사건 항소심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거나 다름없게 됐고, 다시 시작한 첫 날이 마지막 공판이 될 수 있는 상황이 돼 버린 것이다. 

추가로 제출할 증거나 증인도 없는 상황에서 프리젠테이션을 통해 검사 측은 항소이유서의 논지를 다시 한번 강조할 것으로 보인다. 즉 유씨 동생 유가려씨가 지난해 3월 증거보전절차에서 한 오빠의 간첩혐의 관련 진술이 매우 구체적이라 그 신빙성을 높게 봐야 한다는 것. 1심 재판부는 유가려씨의 진술이 다른 객관적 사실들과 부합하지 않은 점에 주목하면서 신빙성을 낮게 판단했다. 
태그:탈북자 간첩사건, 증거위조, 처음처럼, 유우성 태그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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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루미 곡간' 1만5천㎡ 논 내놓은 농부

 
윤순영 2014. 03. 27
조회수 2683 추천수 0
 

철원 권재환씨 부부 논 1만6000여㎡ 두루미 위해 쾌척, 한탄강변 먹이터

낱알 하나까지 거둬가는 세태, 이대로면 철원은 월동지 아닌 중간기착지 전락

 

크기변환_dnsSY3_1920.jpg» 한탄강 두루미 무리. 

 

겨우내 소리와 몸짓의 향연을 펼치던 두루미는 번식지로 떠나고 그들이 머물던 자리에는 아지랑이가 봄을 재촉한다. 해마다 철원평야를 방문한 지도 17년, 두루미의 생태를 죽 관찰하면서 자연의 경이로움과 안타까움이 엇갈린다.

 

크기변환_dnsDSC_1593~2.jpg» 월동을 마치고 번식지로 가기 위해 기류에 몸을 실고 선회하는 두루미 무리.

 

크기변환_dnsCRE_9428.jpg» 볏짚을 말아놓은 곤포 사일로. 뒤로 어렴풋이 재두루미가 보인다.

 

우리나라 최대의 두루미 도래지라지만 철원평야에는 곤포 사일로용으로 모두 걷어가 볏짚은 찾아 볼 수 없고 당연히 낙곡도 사라져버렸다. 철새가 먹을 것을 찾을 수 없는 평야를 비닐하우스가 뒤덮고 있다.


철원평야는 한반도와 일본에서 월동하는 재두루미의 중간 기착지로도 매우 중요한 곳이다.

 

크기변환_dnsYS2_9064.jpg» 일본 가고시마 이즈미로 월동을 하러 떠날 채비를 하는 재두루미들.

 

재두루미가 번식지인 러시아를 떠나 2000㎞의 긴 여정의 중간 기착지로 철원평야에 들른다. 10월 중순이면 3000여 마리가 이곳에 도착한다.

 

일본 가고시마현 이즈미의 월동지로 떠날 재두루미 무리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철원평야의 하늘을 날아다닌다. 시끌벅적 마음껏 떠들고, 몸짓 언어와 날개를 흔드는 자리 다툼의 춤사위 향연이 11월 말까지 한바탕 펼쳐진다.

 

크기변환_dnsDSC_7827.jpg» 철원 평야에서 월동하는 재두루미가 영역을 표시하는 행위를 하고 있다. 

 

철원에 온 재두루미 가운데 2000여 마리는 일본으로 떠나고 남는 개체는 700여 마리에 지나지 않는다. 항상 많은 수의 재두루미가 떠날 때마다 마음이 편치 않았다.

얼마나 열악한 상황이면 머나먼 일본으로 날아갈까? 이런 현실이 우리나라의 환경을 가늠하는 척도가 아닐까?

 

그나마 탐조와 촬영 목적으로 한탄강 잠자리에 먹이를 주는 것이 고작이다. 한탄강 잠자리에 콘테이너와 비닐하우스를 지어 1만원씩 받고 있다.

 

크기변_dnsSY2_0385.jpg» 촬영을 위해 뿌려 놓은 먹이를 먹는 두루미와 재두루미 무리.

 

한탄강은 두루미에게 잠자리로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장소이다. 평야에서 먹이를 먹던 두루미들이 목을 축이러 들른다. 또 다슬기나 물고기를 잡아 영양부충을 하고 목욕과 휴식을 취하기도 한다.

 

이런 한탄강에 먹이를 공급하는 것보다는 평야에 먹이를 주어 생태의 습성과 자연성을 살려 주는 것이 더 바람직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또한 탐조와 촬영 장소가 한탄강 잠자리에 있다 보니, 사람들의 방해로 편안히 잠을 자지 못하고 이리 저리 잠자리를 옮겨 다니고 있어 잠자리에 대한 보호와 특히 사진을 촬영하는 사람들에게 두루미를 보호 의식이 절실하다.

 

크기변환_dnsYS1_9159.jpg» 아침 햇살이 퍼지자 여울의 잠자리에서 깨어나는 두루미 무리.

 

철원군에서는 올해 콘테이너와 비닐하우스가 있는 곳에 탐조와 촬영을 위해 둑 위에 수억 원을 들여 지하벙커를 계획하고 있다. 탐조와 촬영하는 사람이 두루미와 접할 수 있는 개선된 공간이 마련되는 것은 환영할 일이지만 지하벙커가 있어서 두루미가 오는 것이 아니지 않는가?

 

두루미 처지에서 생각하면 안정적으로 먹이를 먹을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 더 많은 두루미가 정착하는 데도 우선 필요하다고 본다.

 

개인적으로 당장 두루미 보호에 나서지 않는다면 10년 안에 이 땅에서 볼 수 있는 두루미는 거의 없어지지 않을까 걱정이다. 현재 월동하는 철원의 두루미 수가 점차 줄어들고 있어, 자칫 가을과 봄 두루미가 중간 기착지로 이용만 하는 곳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

 

두루미 보호에 대한 인식 부족과 무관심, 재산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막연한 피해 의식, 그리고 사람들의 지나친 욕심으로 평야엔 낱알이 없고 먹이를 줄 만한 논 한 뙈기 구하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크기변환_dnsCRE_9010.jpg» 철원군 동송읍 이길리의 한탄강 상류 두루미 잠자리.

 

김포시 홍도평 재두루미는1992년 김포시 홍도 평에서 7마리가 관찰된 이후 모이주기를 계속한 결과 2001년에는 최대 120마리로 늘어났다. 하지만 무분별한 농지매립과 재산상의 피해를 입힌다는 이유로 모이주기에 반대하는 등 농민들의 항의와 실랑이가 계속되면서 재두루미는 점차 줄어 현재 10마리 정도가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크기변환_dns매립DSC_2049.jpg» 눈치를 살피는 홍도평 재두루미 뒤로 농경지 매립 차량이 보인다.

 

지난 1월 한탄강 상류인 철원군 동송읍 이길리의 권재환씨 집에서 민박할 기회가 있었다. 민통선 지역이어서 일반인이 쉽게 들어갈 수 없는 곳이다. 이길리 동네 앞 한탄강에는 두루미 잠자리가 있고 그나마 안정적으로 사람들의 방해를 받지 않고 있다. 그러나 군인들의 순찰로 인한 방해가 간혹 발생해 군부대와 순찰시간을 조정하면 천혜의 두루미 잠자리인 여울이다.

 

크기변환_dnsCRE_2230.jpg» 한탄강에서 바라 본 이길리 마을. 

크기변환_dnsYS1_4277.jpg» 여울 잠자리에서 평화롭게 잠을 자는 두루미.

 

권재환씨의 안내를 받아 남방한계선까지 접근하여 두루미의 생태를 관찰해 보았다. 그곳 역시 사람의 방해는 받지 않았지만 곤포 사일로 탓에 들판에 볏짚은 찾아 볼 수 없었고 먹이가 부족한 상태였다.

 

3박4일 동안 민박을 하면서 두루미 보호에 관해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이야기를 듣던 권재환씨 부부가 선뜻 두루미를 위하여 한탄강과 인접한 본인의 논 1만6000여㎡(약 5000평)를 내놓겠다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크기변환_dns두루미곡간_2751.jpg» '두루미 곡간'으로 활용 될 이길리 387-2번지 농경지.

 

그동안 두루미를 위해 그토록 하고 싶었던 일이 이루어지는 순간이었다.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듯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이튿날 그 논에 가보았다.  두루미들이 선호하고 먹이를 안정적으로 먹을 수 있는 계단식 형태의 논이다. 동쪽 방향은 한탄강 풍광과 어우러져 뛰어나다.

 

 크기변환_dnsCRE_9275.jpg» 철원평야 전역에 서 있는 전봇대. 자칫 날던 두루미에게 치명상을 일으킬 수 있다.

 

서쪽은 토교저수지, 남쪽은 금학산이 보이고 북쪽은 오성산이 자리잡고 있다. 특히 이곳 논엔 전봇대가 하나도 없어 다행이었다. 철원평야 어디를 가나 전봇대가 즐비하게 서 있어 두루미가 위태롭게 비행하곤 한다.

 

크기변환_dns크기변환_dnsYS3_0282.jpg»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강원 도지회설립 인증서를 들고 있는 권재환(왼쪽), 김일남씨 부부.

 

내친김에 이들 부부에게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에 가입을 권유하였다. 흔쾌히 승낙을 하였다. 지난 3월17일 부인인 김일남씨가 협회 강원도 지회장, 남편인 권재환씨가 부지회장직을 맡았다.
 
올 9월부터 철원에 찾아오는 두루미는 그들만을 위해 마련된 먹이터를 볼 것이다. 이곳에는 두루미가 선호하는 환경을 조성하는 한편 생태연구, 탐조, 촬영이 가능한 기반시설도 갖출 계획이다. 환경이 나빠 먼 일본으로 가야만 했던 재두루미 무리도 이곳에서 월동을 하게 된다면 더할나위 없을 것이다.

 

그곳 이름을 '두루미 곡간'이라고 지었다. 이곳에서 두루미들이 마음껏 먹고 평화롭게 노니는 모습을 기대해 본다. 자연과 인간이 공존할 수 있는 두루미 곡간을 제공한 권재환 부부에게 감사를 드린다.

 

글·사진/ 윤순영 한겨레 물바람숲 필진,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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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마저 울린 45분짜리 '안중근' 영상

안중근 평화재단 청년아카데미, 26일 도쿄서 첫 안중근 추도식 열어

14.03.27 12:10l최종 업데이트 14.03.27 15:12l
 
 
 
 
 
 
 
 
 
 
 
 
 
 
 
 
 
 
 

 

 

안중근 '장군'의 104주기 추도식이 일본에서 비밀리에, 하지만 공개적으로 열렸다. 

나는 엉겁결에 안중근 추도식 홍보위원장을 맡게 되면서 책임이 막중해졌다. 우선 많이 알리고 싶었다. 하지만 부끄럽게도 무서웠다. 

얼마나 많이 봤던가. 나는 지난 8년 동안 매년 8월 15일마다 야스쿠니 신사에서 일어났던 충돌을 생생하게 경험해왔다. '도쿄에서 처음 열리는 안중근 추도식'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폭력이 난무하는 충돌을 먼저 떠올렸다. 

안중근 추도식을 도쿄에서 열어야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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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6일 도쿄 한국YMCA 지하 강당에서 열린 안중근 장군 104주기 추도식
ⓒ 박철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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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의 미완성 걸작 '동양평화론'은 충돌을 원치 않는다. 안중근, 그는 어디까지나 중국과 조선과 일본의 운명공동체를 꿈꿨던 이상론자이면서 또한 지독한 현실주의자였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한국과 일본 모두 공부가 부족하다. 한국에서는 그를 침략주의 야욕에 불타는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한 민족의 영웅으로만, 일본에서는 초대 총리대신을 암살한 테러리스트로만 받아들인다. 

둘 사이의 간극은 너무나 컸다. 때문에 외부에, 이를 테면 일본 매스컴에 추도식이 열린다는 사실을 알리는 순간 충돌은 쉽사리 짐작됐다. 

아마도 2월 중순이었을 게다. 안중근 평화재단 청년아카데미(아래 청년아카데미) 정광일 대표의 "안중근 장군 추도식을 도쿄에서 열자"라는 연락을 받았을 때, '이 사람 제정신인가'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즈음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정기국회에서 "안중근은 당시 일본의 내각총리대신을 살해해 사형을 받은 인물"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테러리스트라는 말만 들어가 있지 않을 뿐, 저 표현에는 안중근에 대한 아베의 인식이 여실히 드러나 있다. 일본 사회의 우경화가 그 어느 때보다 걱정되는 지금, 안중근 추도식을 도쿄 한복판에서 연다는 것은 '만약의 사태가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걸 전제로 한 행위나 다름 없었다. 

그때 정 대표가 한 말은 무척 흥미로웠다. 

"그러니까 여는 것이다. 안중근 정신은 일본인들까지 감화 시킬 정도로 부끄러움이 없었다. 그는 진정한 동양의 평화를 꿈꾼 성인이다. 지금 한국·중국·일본의 상황을 봐라. 지금이야말로 안중근 정신을 되새겨 한중일 삼국이 주도하는 동양평화를 논해야 할 시기다." 

그러면서 정 대표는 45분짜리 동영상을 소개했다. 그 동영상은 1995년 7월 일본 공중파에서 방영된 '슬픈 테러리스트의 진실'이었다. 이 방송을 본 나는 형언할 수 없는 엄청난 전율을 느꼈다. 

"이 동영상 내용이 일본 교과서에 실려야"
http://www.youtube.com/watch?feature=player_embedded&v=s3gViezMO5s#t=0

http://www.youtube.com/watch?feature=player_embedded&v=s3gViezMO5s

'20년 전의 일본 방송국은 이 정도로 대단했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이 방송을 추도식이라는 이름을 빌려 공개적으로 보여주는 것 자체가 의미가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동영상의 내용은 엄청났다. 지금까지 관성적으로 안중근 '의사'라 불렀던 내가 '장군'으로 부르게 된 것도 전적으로 이 방송 덕분이었으니까. 

동영상을 본 뒤 흐르는 눈물을 참을 수 없었고, 그 눈물의 의미를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었다. 하나 둘씩 사람들이 모였고 알게 모르게, 그러니까 '비밀리에' 모든 준비가 진행됐다. 불필요한 충돌은 피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2014년 3월 26일 도쿄 한국YMCA 지하 강당에서 안중근 장군 순국 104주기 기념 추도식이 100여 명의 총련계·민단계·뉴커머·일본인 전부를 아우르는 가운데 개최됐다. 

식순은 간단했다. 개인 묵념과 '슬픈 테러리스트의 진실' 상영 그리고 청년아카데미가 제정한 안중근 평화상의 시상 및 저녁식사가 전부였다. 어떻게 보면 초라해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추도식 준비위원회 사람들은 영상의 힘을 믿었고 그것은 명백히 증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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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6일 도쿄 한국YMCA 지하 강당에서 열린 안중근 104주기 추도식에 참석한 사람들
ⓒ 박철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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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이 흐르는 동안 객석에서는 끊임없는 탄성과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재일동포나 한국인들이야 그렇다치더라도 일본인들의 반응이 궁금했다. 하지만 그들 역시 별다르지 않았다. 

추도식에 참석한 다지마 미야코씨는 "추도식이라는 말은 듣지 못하고 좋은 공부가 있다는 말만 듣고 왔는데 정말 어마어마한 공부가 됐다"라면서 "너무나 가슴 아픈 역사를 알게 됐다"라고 말했다. 교과서 문제에 관심이 많다는 이와사키 겐이치씨는 "이런 내용을 일본 중·고교 교과서에 반드시 실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안중근은 재평가돼야 한다"라고 역설했다. 

벌써부터 2015년 3월 26일이 기다려진다

이런 마음이 통했는지 청년아카데미 정광일 대표는 마지막 인사말을 통해 "안중근 장군이 돌아가신 3월 26일을, 그의 유지를 받들어 '동양평화 기원의 날'로 제정하고 싶다"라고 말하자 우레와 같은 박수갈채가 쏟아져 나왔다. 

이 박수는 진심이었던 것 같다. 추도식이 끝난 뒤 수많은 참가자들이 사회를 본 내게 이구동성으로 "많은 공부를 했다"라며 "앞으로도 매년 이 행사를 제발 열어 달라"라고 말했으니까. 

안중근 장군은 물론 한일간의 근현대사에 관심조차 없었다는 젊은 여성 유학생의 감상도 인상적이었다. 

"(내가) 이런 자리에 있었다는 것이 신기하면서도 놀라웠다. 정말 색다른 경험이었다." 

추도식을 끝내고 돌아가는 길에 올려다본 밤하늘은 놀랍도록 청아했다. 그러면서 다짐했다. 내년에는 모든 것을 공개적으로 해야 겠다고. 안중근 장군, 당신이 마지막까지 그 어떠한 두려움 없이 당당했던 것처럼. 

내년 3월 26일 '동아시아의 평화'를 기원하는 이들은 이 자리에 다시 모일 것이다. 1년 후 오늘이 벌써부터 들뜨고 설렌다.
 
태그:안중근, 추모, 도쿄, 일본 태그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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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사리 협동조합, 된장 · 고추장 만들기 한창

협동조합 품은 해방촌성당, 장독에 뭐가 들었을까지역 주민과 신자 함께하는 다사리 협동조합, 된장 · 고추장 만들기 한창
문양효숙 기자  |  free_flying@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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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03.26  17: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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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방촌성당에서 다사리 협동조합 조합원들이 따뜻한 엿기름 물에 고춧가루를 풀어 고추장을 만들고 있다. ⓒ문양효숙 기자

“메주가루가 더 많이 들어가서 덜 빨갛다.”
“그럼 고춧가루를 더 넣어야지.”
“얼마만큼 넣어야 하지?”
“적당량이지, 적당량.”

지난 20일 오후, 서울 해방촌성당 지하에 삼삼오오 모여 고추장을 만드는 이들은 지난 2월 23일 창립한 다사리 협동조합의 조합원들이다. 나이가 지긋한 조합원들은 익숙한 듯 장맛을 보며 ‘적당량’과 ‘눈짐작’으로 일관하지만, 젊은 조합원들은 계량기와 레시피의 필요성을 말하기도 한다. 한쪽에서는 엿기름 삭힌 물에 찹쌀가루를 풀어 달이고, 다른 한쪽에서는 본당 주임사제인 이영우 신부와 조합원들이 팔을 걷어붙이고 열심히 고춧가루를 푼다.

한편, 성당 마당 한쪽에는 커다란 장독들이 햇빛을 받으며 줄지어 서 있다. 장독 안에 있는 것은 2월에 조합원들이 함께 담근 간장이다. 천일염으로 짠맛을 낸 물에 우리 콩으로 만든 메주, 숯과 고추 등을 함께 넣어 두었다. 장의 맛에는 담그는 시기가 중요하기 때문에 다사리 협동조합도 가장 맛이 좋다는 ‘정월장’을 담갔다. 4월초, 담근 지 100일이 지나는 날 즈음에 메주를 건져 간장은 간장대로, 메주는 된장으로 숙성시킬 계획이다. 그렇게 1년쯤 지나면 그제야 맛 좋은 간장과 된장이 된다. 젊은 조합원들도 우리 음식에 시간과 정성이 많이 필요하다는 건 익히 알고 있지만, 직접 겪어본 장 담그기는 역시 쉬운 일이 아니었다.

   
▲ 지난 2월 다사리 협동조합에서 담근 간장이 익어가고 있다. ⓒ문양효숙 기자

시작은 ‘본당 식구들끼리 장을 함께 담가 먹자’는 주임신부의 제안이었다. 이영우 신부는 “안 좋은 첨가물을 많이 넣어 대기업에서 만들어 파는 된장, 고추장 말고 우리가 만들어 먹자”고 했다.

“우리 본당에 어르신들이 많은데 그분들에게는 기술이 있으니까요. 저도 옛날에 시골에서 장 담그는 걸 보면서 컸거든요. 어르신들은 장독대를 소중하게 생각하셨던 것 같아요. 장을 담그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직접 만드는 과정을 보고 신뢰할 수 있는 먹거리도 좋지만, 함께 만들면서 사람들이 모일 수도 있잖아요.”

누가 만들지, 판로는 어떻게 개척할지 등 여러 가지 고민을 신자들과 나누던 중 협동조합 이야기가 나왔다. 한 해 행사가 아니라 장기적으로 지역에 도움이 되는 구조를 고민했다. 수익금을 의미 있게 쓰자는 데에도 의견이 모아졌다.

그런 과정을 통해 다사리 협동조합이 시작됐다. 23명의 조합원 중 해방촌성당 신자는 이영우 신부를 포함해 16명, 지역 주민은 7명이다. 출자금은 한 구좌에 20만원, 조합원들은 한 구좌에서 다섯 구좌까지 자신이 원하는 만큼 출자했다.

다사리 협동조합 남기문 이사장은 “처음에는 협동조합을 낯설어하는 본당 신자 분도 많았다”고 설명했다.

“노동조합을 떠올리면서 이념적인 이미지를 떠올리는 분도 있었고, 긍정적이지 않은 분들이 더 많았어요.”

하지만, 뜻에 동의한 몇몇 신자들과 협동조합이 첫 발걸음을 떼고, 텃밭이었던 성당 한쪽 구석에 장독대가 들어서자 처음에 경계했던 본당의 어르신들도 관심을 쏟기 시작했다. 본당 어르신들은 햇빛을 어느 쪽으로 받게 해야 한다, 몇 월에 담그는 게 좋다 등 장독대를 보면서 한 마디씩 거들었다. 서울 한복판에서는 보기 어려운 정겨운 광경이었다.

“분위기가 좋아지는 걸 조합원들 모두가 체감하고 있는 것 같다”는 남 이사장은 “자본주의 사회구조에 많은 것을 기대할 수 없다면, 마을 단위에서 최적화된 일자리를 만들고 지역에서 경제가 순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남 이사장은 협동조합의 앞날을 4~5년 긴 호흡으로 전망하면서 “결국 협동조합의 자양분은 마을 네트워크”라고 강조했다.

   
▲ 해방촌성당 주임 이영우 신부가 장독을 열어 간장을 살펴보고 있다. ⓒ문양효숙 기자

이영우 신부도 협동조합이 성당의 울타리를 넘어 마을에 뿌리내리기를 원했다. 성당이 모태가 됐지만, 뿌리를 잘 내려 지역에서 의미 있는 역할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는 것이다.

“아이들과 젊은 부부를 대상으로 장 만들기 프로젝트를 할 수도 있겠죠. 관심 있는 청년들이 모인다면 도시에서 어르신들과 젊은이가 함께하는 공간도 될 수 있을 것이고요. 잘되면 학교 급식업체나 구청 등에 납품할 수도 있고. 그렇게 된다면 작지만 어르신들에게 일자리와 수익을 나눌 수도 있을 듯해요.”

고추장은 맛이 깃든 두세 달 뒤쯤, 장은 1년 뒤 판매를 시작할 계획이다. 고추장 만드는 과정은 그리 간단하지 않았다. 맛있는 비율을 맞추기도 어려웠지만, 고춧가루 덩어리가 남지 않게끔 끝까지 풀어줘야 하기 때문에 팔다리가 꽤 고단한 작업이었다. 하지만 하루 종일 세 항아리의 고추장을 가득 채워 넣은 조합원들의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했다. 25년간 해방촌에 살았다는 한 젊은 조합원이 웃으며 말했다.

“혼자 했으면 힘들고 엄두도 안 났을 것 같아요. 집집마다 혼자 만들다 실패한 집이 많거든요. 하지만 같이 하니까 재미있네요.”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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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처럼 통일 말하며 이념·종북 공세 이어갈 것"

 
[통일대박론 점검 좌담회①] 김연철 교수·김창수 실장·이철희 소장
14.03.26 21:28l최종 업데이트 14.03.26 21:28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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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일 오전 <오마이뉴스> 마포구 서교동 사옥에서 열린 '통일대박' 점검 좌담회에 참석한 김창수 통일맞이 정책실장,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 소장, 김연철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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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 '통일은 대박이다' 발언(1월 6일)→북한 '중대제안'(1월 16일)→남북 고위급접촉(2월 12일, 14일)→이산가족 상봉(2월 20~25일)→통일준비위원회 설치 발표(2월 25일)→박 대통령 독일 드레스덴에서 '통일독트린' 발표 예정(3월 28일)

직접 통일준비위원장까지 맡은 박 대통령이 '통일 드라이브'를 제기하고 있는 배경과 의도는 무엇일까. 야당을 포함한 진보개혁세력의 대응은 어떠했나.

각각 학계와 시민단체에서 남북관계와 통일문제에 대해 연구하고 실천해온 김연철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와 김창수 코리아연구원 연구실장, 그리고 이들에 비해서는 한 발 떨어져서 남북관계를 지켜봐온 정치평론가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이 이 문제들을 점검하기 위해 지난 21일 자리를 함께했다.

이들은 박 대통령이 통일-규제완화 프레임으로 지방선거에 대응하려 하고 있으며, 박정희· 노태우 정권 때처럼 '통일드라이브'와 이념 ·종북 공세를 함께 구사할 것이고, 이번 지방선거에서도 이같은 공세가 가해질 것이라는 데 뜻을 같이했다.

반면 김 실장과 김 교수는 통일대박론의 실체와 이후 전망에 대해 의견을 달리했다. 두 사람이 '햇볕정책' 그룹 소장파의 핵심 인물들이라는 점에서 눈길을 끄는 대목이다.

다음은 그날 나눈 문답이다.

"통일대통령 되려는 생각" - "급변사태론에 근거해 통일대박론 제기"

사회(황방열 기자) : 최근 발언을 보면 김창수 실장은 통일대박론이 실체가 있고 이로 인해 우리 사회에 큰 파도가 올 것이라고 보는데 비해 김연철 교수는 의견이 다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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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창수 통일맞이 정책실장.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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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수 : 박 대통령은 1회성 이벤트가 아니라 임기 내 남북관계에서 성과를 내서 언론이 말하는 '통일 대통령'에 근접하는 성과를 내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런데 이렇게 되려면 국민적 합의, 북한과의 신뢰 조성, 북핵 문제를 풀기 위한 미국의 협조, 러시아와의 협력이 필요한데 이를 위한 노력은 잘 보이지 않고 있다. 그런 점에서 여전히 모호한 점들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김연철 : 장성택 처형 전후로 김정은 체제가 불안정해졌는데, 이런 상태로 가면 북한 내부에 급변상태가 발생할 것이라는 판단을 하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조만간 통일이 가능할 수 있다고 보고 이에 대한 대비차원에서 통일대박론을 꺼낸 것이라고 본다. 

문제는 이런 의도와 이 담론이 정책차원에서 준비되는 과정과는 굉장한 격차가 있다는 점이다. 대통령도 정부도 내부적으로 그럴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해서 꺼내든 통일대박론의 의도를 공개적으로 얘기할 수는 없기 때문에 이런 격차가 유지되면서 계속 흘러갈 가능성이 높다. 

하나 더 얘기하면, 통일준비위원회를 만든다고 하는데 통일은 준비되는 게 아니라 만들어가는 것이다. 박 대통령은 붕괴라는 가정이 전제돼 있기 때문에 남북관계를 진전시킬 정책이나 과정, 이런 게 필요 없다. 곧 무너지는데 뭐.

사회 : 이 소장은 어떻게 보시나.

이철희 : 굳이 대비를 해본다면 이전에 야권과 진보세력은 통일보다는 평화에 방점을 두고 있었던 것 같다. 분단체제의 평화적 관리에 방점을 두면, 그 정치적 대척점에는 대한민국 보수의 정통인 분단보수, 안보보수가 서게 된다. 결국 평화의 대비로서 통일을 얘기하는 것은 안보보수의 이해관계를 정확하게 대변해주는 것이 된다.

박 대통령은 집권 이후에 안보보수의 헤게모니를 상당부분 용인해줬고 앞으로도 그렇게 끌고 가려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맥락에서 안보보수의 이해관계를 통일론으로 표현하는 것 같고, 이것과 대쌍으로 묶인 게 규제완화라고 생각한다. 안보보수만으로 갈 수는 없고 시장보수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데, 시장보수의 이해는 이명박 정부에서는 비즈니스 프렌들리, 현 정부에서는 규제완화로 표현된다. 옛날 표현으로 하면 한국 사회의 총노선이라 할 수 있는데, 이런 프레임으로 끌고 가려는 것으로 보인다. 

(정부에) 어떤 정보가 있는지 모르겠으나 대통령이 실질적으로 북한 급변에 무게를 뒀다고 보기는 어렵지 않나 싶다. 아버지가 (1972년) 7·4공동성명을 얻어내고 그 이후 어떻게 해왔는지를 봤기 때문에 일종의 학습효과가 작동한, 다분한 정치적 프레임이라고 생각한다. 통일론과 규제완화를 대쌍으로 패키지로 묶어 가는 것이고, 이는 박 대통령이 지난 대선 때 취했던 '개혁적 보수'는 벗어 던지고 원래 자기 정체성으로 돌아갔다는 의미도 된다. 

나름대로 1년 만에 전체적인 우리 사회 역(力)관계를 잘 분석해서 거기에 맞는 정치노선을 제시했다고 본다. 성공 여부와는 별개로 본인 스스로 정리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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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 소장.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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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보보수와 시장보수의 이해, 각각 통일과 규제완화로 대변"

김연철 : 이 소장 얘기하신대로 국내정치적 접근이 제일 중요한 것 같다. 지금 이 정부의 통일담론은 결정적으로 국내 정치 전략으로서 종북 공세와 충돌한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이 생각하는 통일은 붕괴론과 급변사태에 기반을 둔 것이기 때문에 종북 공세나 색깔론과 충분히 조화를 이룬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중요한 대목이라고 본다. 박 대통령 논리로 보면, 원래부터 이 두 가지는 한 쌍이다. 

유신 때 대통령 선거를 금지하고 통일주체국민회의를 만드는 이유를 두고 통일준비를 하기 위해서는 총력체제를 만들어야 한다, 내부에서 정부 비판을 해서되는 안 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번 지방선거에서도 지난 대선처럼 이념공세를 할 것이라고 본다. 통일담론이란 것을 국내 정치적 차원에서 야당이 정부 비판하는 것을 공격하는 명분으로 사용할 것이다.

이철희 : 과거 (노태우 정부의) 6공화국이 북방정책을 할 때도 국내적으로는 공안 통치를 했다. 말이 안 되는 두 개가 같이 묶였는데 이번에도 그럴 것이라고 본다. 또 하나 박 대통령이 6월 지방선거를 반드시 이기려 한다는, 그런 측면에서도 해석할 수 있다. 보수를 최대한 동원해낼 수 있는 어젠다가 뭘까? 안보라는 개념보다는 통일이 더 긍정적인 이미지이고 폭도 넓다. 햇볕론자들과 대비점도 분명하기 때문에, 통일프레임이 효과가 클 것이다. 

저소득층, 사회경제적 약자들에게도 선물을 줘야 하는데, 당장 소득을 늘려주는 방안이 안 보이면 전체 분위기라도 들썩들썩하게 만들어야 하는데, 대기업하고 손잡고 가는 것 외에는 다른 뭐가 없다. 어설프게 툭툭 던지는 게 아니라 충분히 고민해서 - 그 고민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참여했는지는 모르겠지만 - 이런 포석을 깔고, 규제개혁 토론회를 몇 시간씩 생중계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본다.

대통령은 지난 1년간 국정원 대선개입 문제로 시달렸던 것을 이번 선거 승리로 완전히 해소·제압하고 가겠다는 열망을 갖는 것 같다. 이를 위해 포인트를 쌓아가는 방식으로 착실하게 지방선거를 준비하고 실행에 옮기고 있는 것이다. 6월 지방선거 때까지 이 기조로 갈 것이고, 그 이후에도 안보보수와 시장보수를 한 데 묶어서 가는 것 외에는 다른 선택이 없을 것 같다.

"국내정치적 이용, 남북정권 서로 이해하고 넘어갈 것"

사회 :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은 박정희 대통령과 달리 임기도 정해져 있다. 정상회담, 철도연결 등등 가시적인 성과를 보여줘야 하는데 종북몰이를 계속 하면서도 이게 가능할까.

김창수 : 큰 틀에서 봐야 한다. 통혁당 사건이나 인혁당 사건이 있었음에도 7·4공동성명이 진행됐던 것은 남북 간에 다른 이해관계가 있었기 때문이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박 대통령은 철도도 연결하고, 정상회담도 정례화하고, 노벨평화상도 받아서 통일대통령이 되겠다는 의지를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 김정은 제1위원장도 할아버지가 사상강국, 아버지가 군사강국을 만들었으니 자신은 경제강국을 만들겠다는 구상을 갖고 남한과의 접점을 만들고 있다. 각각 그리는 큰 그림이 있는데, 이 거대한 톱니바퀴가 맞물린다면 그 과정에서 남북 양 정권이 국내정치적으로 이용하는 부분은 서로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다고 본다.

김연철 : 이번에 박 대통령이 독일 드레스덴에서 통일문제에 대한 좀 더 진전된 방안을 발표하겠다고 하는데, 충분히 예측할 수 있다고 본다. 드레스덴은 동독의 반체제 운동의 상징이라는 점에서 일단 장소가 갖는 의미가 있다. 

두 번째로 김대중 전 대통령의 2000년 베를린 선언과 비교하는데 큰 차이가 있다. 그때는 남북관계가 다 끊어져서 아무 대화 채널이 없는 상태에서 대화 의지가 있다, 정상회담 용의가 있다, 남북관례를 어떻게 풀어가겠다고 얘기한 것인데 지금은 채널이 있고, 어디서든 만날 수 있다. 의제들도 많이 나와 있고, 북한과 채널 가동해서 논의를 할 수 있다. 그런데 굳이 밖에서 얘기하는 것은 남북관계 보다는 국내 정치적 효과가 중요하다고 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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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연철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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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관계, 그렇게 쉽게 되지 않는다"

김창수 : DJ 베를린 선언 때도 국내 진보세력 일각에서는 민족문제를 자주적으로 풀어야하는데 왜 외국에 나가서 그러느냐고 비판했었다. 박 대통령이 독일 가서 어떤 선언을 하는 것에 논란이 있을 수 있다고 보는데, 저는 박 대통령이 독일의 모델을 성공사례로 통일이 이런 대박을 가져온다고 통일 관련 내용들을 다시 한 번 얘기할 수 있다고 본다.

박 대통령은 지금까지 큰 그림을 제시한 적이 없는데, 이번에 독일에서 한반도신뢰프로세스, 통일대박론, 동아시아평화협력구상, DMZ평화공원, 유라시아이니셔티브 등을 다 담는 뭔가를 내놓을 것이라고 본다. 

박 대통령이 '내년이 분단 70년'이라고 계속 강조하고 있는데, 정부 부처는 이에 맞춰서 뭔가 일을 해야 한다. 내년은 북한에게는 노동당 창건 70주년이고, 중국과 러시아는 2차 대전 승전 70주년이다. 국내외적으로 뭔가 하려는 분위기가 만들어지고 있는데 박근혜 정부도 대형 이벤트를 하려 할 것이다. 이렇게 진행된다면 다른 국내정치 이슈는 다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될 수 있다. 민주주의와  병행하지 않는 방식으로 진행돼도 뭐라고 지적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연철 : 말로는 쉬운데 남북관계에서 뭘 만든다는 게 그렇게 쉽지 않다. 박근혜 정부도 마음만 먹으면 금방 된다, 마음만 먹으면 정상회담도 쉽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그렇지 않다. 남북관계는 굉장히 복잡하고, 많은 단계와 절차가 있다. 북한도 한번쯤 쇼를 해야 될 필요가 있기 때문에, 7·4남북공동성명 같은 쇼는 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그런 생각으로는 1~2년도 유지되지 않는다. 그게 유지되려면 정부부처 안에서 정책 결정과정도 뒷받침돼야 하고, 상충되는 많은 현안도 정리해야 하고 풀어야 할 부분도 많다. 현재 박근혜 정부의 정책결정 구조, 철학, 의지와는 큰 차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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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창수 통일맞이 정책실장,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 소장, 김연철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가 21일 오전 <오마이뉴스> 마포구 서교동 사옥에서 '통일대박' 점검 좌담회를 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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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정치민주연합 창당 '사라진 민주정부 10년'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14/03/27 08:16
  • 수정일
    2014/03/27 08:16
  • 글쓴이
    이필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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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과 새정치연합이 합친 통합신당 '새정치민주연합'(이하: 새정치연합)이 중앙당 창당대회를 열고 공식 출범했습니다. 민주당 126석과 새정치연합 4석을 합쳐 130석의 거대 통합신당이 만들어졌습니다. 

민주당과 새정치연합이라는 정치 집단이 합쳐진 만큼 많은 기대와 희망이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 내부를 보면 기존 야당 지지자를 당황하게 하는 일들이 존재합니다. 

새정치민주연합. 도대체 무엇이 바뀌었고, 무엇이 당황스러운지 살펴보겠습니다. 

' 외형은 안철수- 새정치연합이라는 옷을 입다' 

이번 통합신당의 외형은 한 마디로 안철수 의원이 이끌었던 '새정치연합'이라는 옷을 입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가장 먼저 '새정치민주연합'이라는 당명의 공식 약칭이 '새정치연합'으로 되어 있는 부분입니다. 

민주당이라는 약칭이 계속 사용됐던 과거와 비교하면, 민주당이라는 존재가 명칭에서는 거의 사라졌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이것은 안철수 의원이 가졌던 '새정치' 파워를 이용, 앞으로도 민주당이라는 존재보다 '새정치'를 추구하는 정당으로 보이길 원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새정치연합의 공식 대표는 '안철수'의원입니다. 물론 김한길-안철수 공동 대표 시스템으로 활동하지만, 공식적으로 중앙당 등록에 따른 대표를 '안철수' 의원으로 표기한 이유는 대내외적으로 안철수 의원을 내세우겠다는 의미입니다. 

아이엠피터는 민주당이 당명이나 당대표를 양보하는 부분에서는 '거인 민주당'이 '꼬마 안철수'를 배려해야 하는 차원으로는 괜찮다고 봅니다. 

그러나 안철수 의원이 가졌던 '새정치'에 대한 이미지와 지지율만 민주당이 흡수, 외형만 포장해 '바지사장'으로 만든다면, 갈등과 분열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새정치연합의 시스템을 보면 안철수 대표가 앞에서 나아가고 김한길 대표가 내부에서 밀어주는 시스템으로 갈 듯합니다. 이럴 경우 선거 패배나 어떤 정치 사안의 책임론이 제기된다면, 안철수 의원에게 비난이 집중적으로 쏟아질 수 있습니다. 

내부적인 문제냐, 외부적인 문제냐를 따지고 안철수 대표가 몇 퍼센트, 김한길 대표가 몇 퍼센트 등으로 책임소재를 따지다 보면 내분으로 비칠 공산도 큽니다. 

새정치연합의 가장 큰 문제는 바로 이 부분입니다. 민주당과 새정치연합은 물론이고 각종 계파가 존재해 있는 새정치연합이 어떻게 계파 간의 갈등을 잘 조율하면서 선거에서 이길 수 있느냐입니다. 

서로 다른 집단이 모였을 때는 오히려 누군가에게 전권을 주는 편이 훨씬 효과적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전권이 독재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현재의 시스템보다 더 민주적이면서 체계적인 시스템을 구축해야 합니다. 

새정치연합의 안철수-김한길 대표가 '힘의 합체와 분배'를 어떻게 풀어나갈지가 제일 큰 고민이자, 성공과 실패의 기준점이 될 수 있습니다. 

' 새정치연합 정강정책에서 사라진 민주정부 10년'

새정치연합이 창당하는 과정에서 안철수 의원의 역사의식이 논란이 됐습니다. 신당의 정강정책에서 4·19 혁명이나 5·18 광주민주화운동, 6·15와 10·4 남북공동선언에 대해 새정치연합의 삭제요청이 있었다는 보도가 있었고, 안철수 대표는 "사실이 아니다"고 부인하기도 했습니다. 

과연 누구의 말이 진실인지는 정확히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논란이 됐던 부분은 새정치연합의 정강정책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소모적인 논쟁은 더는 의미가 없다고 봅니다. 

중요한 점은 민주당의 정강정책과 현 새정치연합의 정강정책에서 바뀌거나 달라진 부분입니다. 
 

 

 


민주당 정강정책 전문에는 '민주정부 10년의 정치·경제·사회 개혁과 남북평화 및 화해·협력의 성과를 계승하되 반성과 성찰로 새로운 시대를 열어간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새정치연합의 정강정책 전문을 보면 민주당에는 있던 <민주정부 10년>이라는 단어가 사라졌습니다. 이것은 민주정부 10년을 정통성으로 가지고 있던 야권 지지자에게는 충격을 주면서, 새정치연합이 중도 보수 또는 우클릭 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민주당 정강정책 전문에는 '대한민국은 위기에 직면해 있다. 성장과 경쟁 지상주의, 무분별한 개발과 개방 만능주의에 기반을 둔 체제는 사회경제적 양극화의 심화와 특권․기득권 강화, 환경파괴라는 대재앙을 가져왔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새정치연합의 정강정책 전문에는 '대한민국은 분단의 어려움 속에서도 산업화와 민주화에 성공한 긍정적인 역사를 가지고 있다'고 되어 있습니다. 

새정치연합의 이런 표현과 문구는 기본적으로 박정희 시대의 산업화와 민주화를 인정하는 뉘앙스를 풍깁니다. 야권지지자들이 제기했던 '독재 정권의 산업화와 민주화 문제점'을 포기한 듯한 모습입니다.

중도보수를 포용하고 함께 나아가겠다는 의도는 좋지만, 그동안 민주당을 지지했던 사람이 가졌던 <민주정부 10년>에 대한 기억과 정통성을 무조건 지울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안타까움이 있습니다. 

' 정당 지지율이 문제인가? 야당 지지율이 문제인가?' 

리얼미터가 2014년 3월 17일부터 21일까지 정당 지지율을 조사한 결과 새누리당과의 지지율이 더 벌어진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리얼미터에 따르면 3월 첫째 주 새누리당 47.8%, 새정치연합 38.3%의 정당지지율을 보였습니다. 3월 둘째 주에는 새누리당 49.6%, 새정치연합 34.8%를 기록, 첫째주 9.5%의 격차가 14.8%까지 벌어졌습니다. 

언론에서는 새정치연합의 지지율이 벌어지기 때문에 벌써 흔들리고 있다고 하지만 아이엠피터는 야권 지지율의 최대치를 잘 보여주는 사례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과거 정당지지도를 보면 한나라당은 차떼기 사건 등으로 지지율히 하락한 이후 노무현 대통령 탄핵 때는 13.7%까지도 떨어졌습니다. 

한나라당의 지지율이 급상승해졌던 시기는 참여정부에 대한 보수층의 공격이 극대화되면서입니다. 이때부터 보수층이 집결하는 모습을 보였고, 이런 진보와 보수의 지지율은 점차 굳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보수층이 모두 집결하면서 과거 한나라당의 지지율을 뛰어넘는 엄청난 지지율이 박근혜 정권 들어서부터 나오기 시작합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이 무려 60%가 넘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이 높은 이유는 언론, 관료,검찰,종교권력,보수학계는 물론이고 박근혜 지지자들이 모두 힘을 합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종북논란 등을 내세워 중도층을 공략, 그들을 흡수하고 있기도 합니다. 

새정치연합의 지지율 하락이 문제가 아니라, 야권이 가진 지지율의 한계가 40%내외라는 점이 큰 문제입니다. 

즉 새정치연합이 기존의 전략을 가지고는 언론,관료,검찰,종교권력,보수학계,박근혜 지지자들이 합친 지지율을 이길 수는 없습니다.

 

 

 


아이엠피터는 '새정치연합'의 창당이 나쁜 일은 아니라고 봅니다. 그렇다고 그들의 통합이 무조건 성공하리라 보기도 어렵습니다. 

세력의 합체와 정치적 사상의 변동과 수용이 있다고, 한국의 모든 기득권 세력이 합쳐진 박근혜 정권 지지율을 뛰어넘기 힘든 구조가 현재의 정치판이기 때문입니다. 

'새정치연합'이 창당했습니다. 이제 진짜 김한길-안철수 대표의 정치적 역량을 총 발휘해야 할 때입니다. <민주정부 10년>을 빼고도 '새정치연합'이 성공한다면 그들은 진짜 새로운 정치를 선보였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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