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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망원경 '북녘의 오늘'

 

통일 망원경 '북녘의 오늘'
 
통일 되어 하나로 살게 될 오늘의 북녘 동포
 
이정섭 기자
기사입력: 2012/11/10 [21:03] 최종편집: ⓒ 자주민보
 
 
- 조선 정부 경제대표단이 10일 리명산 무역상 부상을 단장으로 이집트를 방문하기 위해 평양을 출발했다. (조선중앙통신)


- 네팔신문 쓰러미끄가 6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전반적무상치료제'라는 제목의 글을 게재하였다. 신문은 "조선에서의 전반적무상치료제는 인민사랑의 정치, 인민의 건강보호와 증진을 최우선과업으로 내세우신 김일성 주석에 의하여 조선전쟁의 준엄한 시기부터 실시 되었다." 보도했다.(조선중앙통신)


- 조선중앙통신은 '조선총리 대규모 축산기지 중요성 강조'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최영림내각총리는 강원도의 세포, 평강, 이천군의 광활한 풀판을 개간하여 굴지의 대규모축산기지로 전변시키기 위한 준비정형을 현지에서 료해하고, 세포, 평강, 이천지구에 수만정보에 달하는 대규모풀판을 조성하고 종합적인 축산기지를 꾸리면 풀먹는집짐승을 대대적으로 길러 인민생활을 향상 시킬 수 있다고 강조했다."고 보도했다.


- 조선중앙통신은 "김원균 명칭 평양음악대학과 독일 뮌헨 실내관현악단이 합동 연주회를 진행하여 관람객들로 부터 절찬을 받았다."고 알렸다.

▲ 김원균 명칭 음악대학과 독일 뮈헨 실내관현악단의 협연 모습


- 조선중앙통신은 "류경원과 인민야외 빙상장, 로라스케이트장이공사를 마치고 준공식을 가졌다."고 전했다.

▲ 평양에 특색있게 건설된 류경원과 야외빙상장의 모습 ©


- 조선중앙통신은 '일본에서 조선학교 지원문제에 대한 공정한 해결 촉구'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도꾜, 오사까, 교또를 비롯한 각지 조선고급학교 학생대표들로 구성된 전국 조선고등학교학생연락회 성원들이 1일 일본의 민주당과 문부과학성을 찾아가 조선학교 학생들에 대한 고등학교 지원제도 적용을 요구하는 요청서와 12만여명의 서명문을 각각 전달하였다."고 전하고


"그들은 그 무슨 정치외교적 이유로 여전히 고등학교들에 대한 지원대상에서 조선학교만을 제외시키고 있는 일본정부의 부당한 처사를 규탄했다"고 전했다.
또한 "조선학교 학생들은 일본학생들과 마찬가지로 자기의 말과 글을 배울 뿐이라고 하면서 그들은 일본의 민족차별 정책에 분노를 표시했다."고 보도했다.


- 금수산 태양궁전에 수만입방미터의 새로운 잔디 밭 조성
로동신문은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안치 된 금수산 태양궁전을 더 잘 꾸려갈 일념을 안고 인민군군인들과 일꾼들, 근로자들은 짧은 기간에 수만㎡의 새 품종 잔디밭을 광장공원에 조성함으로써 태양의 성지의 면모와 풍치를 일신시키는데 적극 기여했다."고 보도했다.


- 로동신문은 "조선로동당 김정은 제1비서가 조선로동당창건 67돐에 즈음하여 축전을 보내여 온 여러 나라 당 및 국가수반들에게 답전을 보내시었다."고 전했다.


- 로동신문은 조선의 협동농잡들이 가을철 추수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하며 "주인다운 자각안고 한알도 허실없이 낟알 털기(탈곡)를 질적으로 하도록 정치사업을 짜고들어 진행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 조선은 가을 걷이를 끝내고 낱알 털기(탈곡)에 힘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 로동신문은 새로 개원한 유선종양연구소의 외부 모습을 사진을 통해 공개했다.

▲ 새로 개원한 유선종양연구소 외부모습, 조선 언론들은 외부모습은 물론 첨단 의료기기를 갖추었다고 자랑하고 있다. ©


-로동신문은" 예술 창작기지인 만수대창작사의 전체 일꾼들과 창작가들이 문학예술혁명을 세차게 일으켜 일대 전성기를 펼쳤던 19700년대의 투쟁정신, 투쟁기풍으로 미술작품창작에서 새로운 혁신과 위훈을 창조하기 위한 투쟁을 과감하게 벌려나가고 있다. "고 강조했다.

▲ ©


- 로동신문은 중국공산당 제18차대회가 11월 8일 베이징의 인민대회당에서 개막된 소식을 전했다.


로동신문은 "대회에는 대표와 특별초청대표 2309명이 참가했으며, 오방국동지가 대회 사회를 맡았다"고 알렸다.


신문은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총서기 호금도동지가 대회에서 당중앙위원회 보고를 하였으며, 대회개막에 앞서 7일 중국공산당 제18차대회 예비회의가 진행되였다."는 소식을 함께 전했다.


로동신문은 "예비회의에서는 247명으로 구성된 대회 주석단 명단을 채택하였다."며 대회일정을 채택한 소식과 대회일정을 소개했다.


대회의정과 폐막 일정은 다음과 같다.
- 제17기 중앙위원회 보고 청취 및 심사
- 제17기 중앙규률검사위원회 사업보고에 대한 심사
- 《중국공산당규약(수정안)》 심의 및 채택
- 제18기 중앙위원회 선거
- 제18기 중앙규률검사위원회 선거
대회는 14일까지 계속된다.


주목 할 점은 중국의 향후 정책의 방향을 좌우 할 중국공산당 규약 수정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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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저터널 논란, 눈 가리고 아웅하는 민주당

해저터널 논란, 눈 가리고 아웅하는 민주당

[오마이팩트] 박근혜 후보측 김태환 전 지사에 책임 돌리기는 타당한가

12.11.10 18:29l최종 업데이트 12.11.10 18:29l
사실검증팀(ysku)

 

 

드디어 대통령선거 난타전이 시작되었습니다. 대선 후보와 참모들이 하루에도 수십 건의 공약과 주장을 쏟아냅니다. 이에 오마이뉴스 사실검증팀은 유권자들의 선택을 돕기 위해 날마다 후보와 핵심 참모들의 발언을 모니터해 신뢰할 만한 각종 데이터를 통해 검증할 것입니다. 사안에 따라 누리꾼이 직접 참여하는 '함께 검증하는 뉴스'도 운영할 것입니다. 대선후보 사실검증 '오마이팩트'에 누리꾼 여러분의 적극적 참여(이메일 politic@ohmynews.com, 트위터 @ohmy_fact)를 기대합니다. [편집자말]

판정 : 대체로 거짓

[취재 : 사실검증팀] 구영식 김도균 홍현진 박소희 기자 / 그래픽 고정미

민주통합당 제주선대위 "김태환 박근혜 대선후보 캠프 제주특위 위원장이 해저터널 논란을 촉발시킨 장본인이다."(9일)

목포-제주 해저터널이 '대선공약 뒤집기' 논란에 휩싸인 가운데, 민주통합당이 김태환 전 제주도지사에 책임을 돌리며 반격에 나섰다.

민주통합당 제주선대위는 9일 성명을 통해 "이 논란을 촉발시킨 장본인이 현재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후보 캠프의 제주특위 위원장을 맡고 있는 상황에서 타 당의 정책제안 과정을 빌미로 정치적 공세에 나서고 있는 것은 누가 봐도 아연실색할 일이 아닐 수 없다"고 새누리당에 공세를 폈다.

박준영 전남지사는 지난 2007년 1월 기자회견에서 "완도-제주간 해저터널을 적극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 전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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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영 지사, '해저터널 추진' 공동선언 두 달 전에 "적극 검토" 발언

민주통합당은 지난 2007년 김 전 지사가 박준영 전남지사와 함께 해저터널을 국가 10대 프로젝트에 포함시킬 것을 건의하는 대정부 건의문을 채택했다는 사실을 상기시켰다. 실제로 두 사람은 현직 도지사 시절이던 지난 2007년 9월 5일 제주특별자치도청에서 '21세기 새로운 연륙교통수단 건설을 위한 공동 발표 및 대정부 건의문'을 발표했다.

"대한민국의 신태평양시대를 여는 거점이자 관문인 전남과 제주지역에 21세기 새로운 연륙교통수단 확충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인식하고 국가기간교통망 확충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전남-제주간의 해저터널 건설을 공동으로 주장한다."

현재 논란이 일고 있는 목포-제주 해저터널은 박 후보 캠프의 제주특위 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 전 지사와 민주통합당 대선후보 경선에 참여했던 박 지사가 공동으로 추진했던 프로젝트였던 것이다.

게다가 이러한 공동 추진 선언이 나오기 두 달 전에 박 지사가 먼저 '전남-제주간 해저터널'을 제안했다. 박 지사는 지난 2007년 7월 2일 전남도청 브리핑룸실에서 '민선 4기 1년 기자회견'을 열고 이렇게 말했다.

"한국과 중국, 일본 한복판에 있는 전남을 한·중·일 관광메카로 육성하기 위해서는 제주도와의 연계발전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제주-완도간 해저터널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뉴시스)

박 지사는 해저터널을 추진해야 하는 이유로 "전남의 서남해안관광레저도시와 제주도 관광객 1천만 시대의 도래를 연계하는 동북아 해양관광클러스터 구축이 시급하나, 현행 항공기 및 선박 위주의 교통수단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점을 들었다.

박 지사는 "해저터널이 지자체 차원에서 추진하기 힘든 사안인 만큼 제주도와 협의를 벌인 뒤 중앙정부에 건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후 전남도는 제주도와 협의를 벌였고, 두 달 뒤에 양 지사의 공동 건의문 발표가 나왔다.

박 지사는 올해 진행됐던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때도 해저터널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애초 제시했던 '완도-제주' 구간이 '목포-제주' 구간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이해찬 대표조차도 지난 5월 27일 제주에서 열린 민주통합당 대표·최고위원 선출대회에서 "목포와 제주 사이에 해저터널을 뚫으면 제주는 큰 관광지가 된다"며 "해저터널을 반드시 해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그만큼 민주통합당의 해저터널 추진 의사가 강했던 것이다.

물론 이명박 정부(국토해양부)에서도 해저터널 타당성을 검토했다. 하지만 올해 타당성 조사를 벌인 결과, 비용대비 편익 비율(B/C)이 경제적 타당성 기준치인 1에 못미치는 0.71∼0.78에 불과했다(뉴스1).

각 후보의 '피노키오 지수'를 보시려면 위 이미지를 클릭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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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없는 신비주의

종교 없는 신비주의

 
성해영 2012. 11. 10
조회수 290추천수 0
 

 

 

이스터섬의 일몰-이정용-.jpg

이스터섬의 일몰 사진 이정용 기자

 

 

신비주의란 도대체 무엇일까?

 

신비적 합일 체험

 

신비체험을 다룬 저번 글을 올리고 어쩌다 보니 한참의 시간이 흘러버렸다. 후속 글을 기다렸을 분들과 조현 기자에게 미안함을 전한다. 이런 저런 개인적인 사정 때문에 정작 중요한 이 일에 시간을 내지 못했다. 너그러운 이해를 부탁드린다.

 

체험담을 올린 후 생각보다 많은 메일을 받았다. 많은 분들이 흥미롭게 읽었다는 반응과 더불어 격려해 주었다. 또 메일로 자신의 경험담을 상세하게 적어 보낸 분들도 있었다. 어떤 분은 의식 변형 상태를 체험하려고 ‘감각 박탈 탱크’라는 걸 직접 제작해 실험했던 경험을 알려주기도 했다. 마치 우주적 유머인 듯 두 차례의 태풍으로 옥상에 만들어 두었던 탱크가 부서지는 바람에 정작 의식 변형 체험을 갖는 데에는 실패했다는 대목에선 한참을 웃었다. 그 분의 진지함과 강인한 모험 정신에 박수를 보낸다. 그리고 체험담을 직접 적어 보내 주신 분들에게도 이 자리를 빌려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또 한 분은 고어 비달(Gore Vidal)이라는 소설가가 ‘줄리앙’이라는 작품에서 묘사한 신비체험을 적어 보내주었다. 기독교에 반발해 로마의 다신교 전통으로 돌아가려했던 젊은 황제 줄리앙(Julian the Apostate)의 얘기는 익히 들은 적이 있었지만, 비달이 자신의 소설에서 줄리앙의 신비 체험을 묘사했다는 사실은 전혀 몰랐다. 소개에 감사드리며, 독자들을 위해 그 부분만 간략하게 옮겨 볼까 한다. 아쉽게도 이 작품은 아직 국내에 번역되지 않았다. 보내준 부분은 줄리앙 황제가 미트라(Mithras) 비교(秘敎)에 그의 주치의인 오리바시우스(Oribasius)와 함께 입문한 대목과, 그 이후 신비적 합일 체험을 하게 되는 것을 다루는 부분인 듯하다.

 

“......날이 질 무렵 오리바시우스와 나는 다시 태어나 동굴 밖으로 비틀거리며 나왔다. 그 때 그 일이 일어났다. 내가 석양을 바라보고 있을 때 나는 빛에 의해 사로 잡혔다. 극히 소수의 사람들에게 주어졌던 체험이 나에게도 주어졌다.

 

나는 일자(一者, the One)를 보았다. 나는 태양에 흡수되었으며, 내 혈관에는 피가 아니라 빛이 돌았다. 나는 그것을 보았다. 나는 창조의 근저에 자리하는 단순함 그 자체를 보았다. 그것은 언어와 마음을 넘어선 곳에 있기에 신의 도움 없이는 아는 게 불가능하다. 하지만 그것이 얼마나 명료했던지, 우리가 그것의 일부인 것처럼 우리의 부분으로 항상 거기에 존재하는 그것을 어떻게 우리가 여태껏 알지 못했는지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참으로 간결하고도 아름다운 묘사다. 신비적 합일 체험의 기록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이 대목이 희랍·로마 종교 전통에서 흔히 궁극적 실재로 일컬어지는 일자(一者, to hen)와 하나가 되는 체험(henosis)을 기술하고 있다는 사실을 곧장 알아차릴 것이다.

 

그렇다. 윌리엄 제임스(William James)가 분명하게 지적했듯이 인간은 ‘체험’을 통해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제임스는 그 체험들을 ‘종교 체험’이라 불렀고, 종교 체험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으로 ‘신비 체험’을 꼽았다. 그리고 신비 체험은 신비주의의 핵심이다. 그런데 도대체 신비주의란 무엇을 의미할까?

 

 

신비주의란 무엇인가?

 

종교학 전공자라고 밝히면, 가장 많이 듣게 되는 질문이 ‘종교가 무엇이냐’다. ‘종교가 없다’라고 답하면 다들 고개를 갸웃거린다. 종교학을 곧 신학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종교 없이 종교학을 공부한다는 게 이상한 모양이다. 얘기 끝에 세부 전공이 신비주의라고 하면 분위기가 묘해지기 십상이다. 대뜸 ‘귀신이 보이는가’라는 질문부터 시작해, ‘점을 볼 줄 아느냐’, ‘UFO의 존재를 믿는가’에 이르기까지 온갖 초자연적 현상과 기기묘묘한 것들에 대한 질문이 따라 나온다. 이렇게 왕성한 호기심을 표하는 경우는 그나마 나은 거고, 신비주의라는 단어에서 비합리적이고 황당한 것들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더 많다. 그래서 불필요한 오해를 피하기 위해, 그냥 종교심리학을 공부한다고 얼버무리는 경우가 흔해졌다.

 

신비주의라는 말에는 참으로 많은 오해가 덧붙여져 있다. 신비주의는 본래 인간이 ‘궁극적 실재’와 하나가 되는 체험을 할 수 있으며, 수행을 통해 이 체험을 체계적으로 추구하고, 나아가 체험으로 얻게 된 앎을 이해하고 설명하려는 일련의 움직임들을 뜻한다. 그러므로 신비주의는 신비 체험, 신비적 수행, 신비 사상이라는 세 부분으로 나뉠 수 있다.

 

‘신비 체험’은 신비적 합일 체험을 필두로 ‘보이지 않는 차원’이나 ‘세계’가 인간 의식에 드러나는 여러 현상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 체험 중에서도 궁극적 실재와 인간이 완전히 하나가 되는 신비적 합일 체험은 가장 핵심을 차지한다. ‘신비적 수행’은 신비적 의식 상태로 들어가기 위한 다양한 의식 변형의 유도 방법들을 뜻하며, 종교 별로 명상을 포함해 다양하고 독특한 테크닉들을 발전시켜 왔다. 끝으로 ‘신비 사상’은 궁극적 실재에 대한 체험적 앎에 기초해, 궁극적 실재와 현상 세계 사이의 관계, 인간의 본성과 궁극적 차원, 신비적 수행법과 체험 간의 관계 등을 설명하는 이론을 의미한다.

 

대부분의 신비주의 전통은 이처럼 체험, 수행, 사상의 세 가지 요소를 갖추고 있으며, 이 가운데에서 핵심은 궁극적 실재와 하나가 되는 체험이 사후(死後)가 아닌 육체를 가지고 살아가는 도중에 가능하다는 믿음이다. 그러므로 사후 구원이 신비주의와 양립 가능하기는 하지만, 그 주된 목적이 되기는 힘들다. 이러한 정의가 윌리엄 제임스를 비롯한 학계가 통상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신비주의의 개념 정의다.

 

하지만 현실은 사뭇 복잡스럽다. 많은 사람들에게 신비주의는 과학적 합리주의에 반하는 개념으로 비합리적이며, 초자연적 현상을 총칭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심령 현상, UFO, 접신, 점복, 종교적 기적, 초능력 현상, 신유(神癒) 등 합리화된 현대 사회에서 음지로 숨어들 수밖에 없었던 다양한 사건들이 여기에 포함된다.

 

한편 신비주의는 종교적 견해의 차이를 폄하하는 용어로도 널리 사용된다. 종교 생활의 주된 목적이 신비적 합일 체험이 아니라, 사후에 더 나은 곳으로 가는 것이라 여기는 입장에서 신비주의적 종교성은 문제의 소지가 있는 견해, 즉 이단으로 간주되기 십상이었다. 기독교와 이슬람의 신비주의자들이 이단으로 심판받고 목숨까지 잃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동시에 신을 궁극적 실재로 여겨 신과 하나가 되겠다는 입장은 무신론적 종교 전통의 관점에서 볼 때 의심스럽거나 혹은 한 단계 낮은 종교성의 표현이라 간주되기도 한다. 일부 동양 종교 전통이 서양 신비주의를 유신론으로 낮추어 보는 경우가 대표적인 사례다. 불교인들이 선불교는 서양의 근기 낮은 신비주의와는 거리가 멀다라고 하는 주장이 전형적이다. 그런데 우습게도 서양 종교가 자력적 수행을 통해 깨달음과 같은 종교 체험을 주된 목표로 삼는 동양 종교를 폄하할 때에도 신비주의라는 똑같은 단어를 사용한다. 동양의 종교를 ‘신비주의’라는 이름으로 비난했던 19세기 서양 기독교인들의 태도가 대표적이다.

 

물론 이와 달리 신비주의를 동서양 종교의 핵심이나 근본으로 강조하는 견해도 있다. 이 입장은 앞서 설명한 태도와 달리 신비주의의 개념 정의를 비교적 분명하게 인식한다는 장점을 지닌다. 하지만 이 경우는 자칫 신비주의에 경도될 위험성을 내포한다. 즉, 궁극적 실재의 동일성을 강조한 나머지, 교리나 수행의 차원에서 분명하게 드러나는 동서양 종교의 차이를 간과할 가능성이 크다. 또 신비 체험을 종교 생활의 핵심에 두는 탓에, 체험 그 자체에 모든 에너지를 투여해 이른바 ‘체험 지상주의’에 빠질 위험성도 크다. 체험이 모든 삶의 문제에 해답을 준다는 것이다.

 

덧붙이자면, 우리나라에선 90년대부터 갑자기 연예기자들이 ‘비밀주의’를 신비주의로 혼동해 사용하는 현상마저 생겨났다. 연기자나 가수들이 대중 매체에 의도적으로 노출을 꺼리는 전략이 바로 신비주의라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TV 광고의 ‘티저(teaser) 기법’ 역시 신비주의라 일컬어지기도 한다. 기자들 덕분에 우리나라에서 신비주의는 연예인이나 정치인들이 자신을 적절하게 숨겨, 실제보다 더 ‘신비롭게’ 보이는 전략까지 의미하게 되었다. 그런 탓인지 요즈음에는 신비주의를 전공한다고 하면, 연예계나 광고계에 종사하느냐라는 질문마저 받게 되었다.

 

요컨대 모두가 공감하는 신비주의의 개념 정의는 불가능할 것이다. 또한 사회적으로 이 단어의 외연이 확장되는 것 역시 막을 수 있는 게 아니다. 하지만 신비주의라는 단어가 오랫동안 인간의 참된 본성, 존재의 근본적 의미, 궁극적 실재에 대한 체험적 앎과 관련되어 왔다는 점을 분명하게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러지 않고서야 어떻게 다음 논의로 넘어갈 수가 있을까. 적어도 여기서 연기자 이영애 씨와 가수 서태지 씨의 신비주의를 다루지 않는다는 점 정도는 분명히 하자(^^).

 

 

 

신비주의에 내포된 여러 가지 질문들

 

궁극적 실재와 하나가 되는 체험이 신비주의의 핵심이라면, 여기에는 참으로 많은 질문들이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이 질문들은 신비주의적 종교 전통들을 서로 비교하는 종교학의 하위 분야인 ‘신비주의의 비교 연구(comparative study of mysticism)’라는 이름으로 다루어지고 있다. 주요한 질문들을 개략적으로 살펴보자.

 

궁극적 실재와의 합일 체험이 소설가 비달(Vidal)이 묘사하고 있는 것처럼 언어와 인간의 마음을 넘어선 그 무엇이라면 이런 것들을 학자들이 제대로 다룰 수 있는지와 학문적 접근의 의미가 도대체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물음이 제기될 수 있다.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있지만,학계에서 얼마나 많은 논의가 이루어져 왔는지를 알게 되면, 학문적 접근이 그 분명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나름의 유용성을 갖는다는 점에 공감하리라 믿는다.

 

무엇보다 신비적 합일 체험을 비롯해 여러 가지 종교 체험이 정확하게 어떤 형태의 체험인지를 다루는 유형론(typology)이 있다. 여기에는 신비적 합일 체험의 대상인 궁극적 실재가 무엇일까에 대한 얘기를 포함해, 합일 체험의 구체적인 유형에 관한 논의가 포함된다. 그 연장선에서 신비 체험이 종교별로 같을까라는 중요한 질문도 제기된다. 논리적인 귀결로 만약 체험이 다르다면 왜 다를까라는 물음도 등장한다. 종교 교리와 수행 방식이 달라서 체험이 달라지는 걸까? 그렇다면 초월의 체험이란 불가능한 것이 아닐까? 그게 아니라면 신비 체험은 진정으로 말로 표현할 수 없고, 인간의 오감을 넘어서는, 즉 문화적 맥락과 종교 전통을 초월한 것인가? 그리고 궁극적 실재는 무엇이며, 인간의 언어로 포착될 수 있는 것일까? 예컨대 불교의 공과 기독교의 신이 신비주의의 관점에서 동일하다고 볼 수 있을까? 그리고 왜 하필 ‘궁극적’이라고 부르는 것일까?

 

수행과 체험은 무슨 관계가 있을까? 체험을 위한 더 효과적인 수행법이 있을까? 수행은 반드시 체험을 줄 수 있을까? 그런데 왜 신비적 합일 체험은 누구에게나 일어나지 않는 것일까? 수행의 관점에서 자력(自力)과 타력(他力)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누구에게나 체험이 일어나는 것은 아님에도 불구하고 모든 인간의 내면에는 신성 혹은 불성과 같은 개인적 마음을 넘어선 차원이 있다고 주장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편으로 수행 과정에서 감정은 어떤 역할을 맡고 있을까? 지성은 수행과 양립할 수 없을까? 특히 인간의 성(sexuality)을 비롯해 욕망은 신비 체험의 획득과 어떤 관계를 가질까? 금욕주의가 신비적 합일 체험에 반드시 필요한 것일까?

 

깨달은 자들은 세속적 윤리 규범으로부터 자유로울까? 왜 동양의 깨달았다는 종교 구루들이 서양에 가서 숱한 스캔들의 주인공이 되었을까? 동양적 깨달음과 서양적 신비 체험에 존재하는 차이가 스캔들의 원인인가? 또 종교 없이 신비 체험이 가능한가? 즉, 세속적 신비주의(secular mysticism)라는 게 가능할까? 여성성과 남성성은 신비주의와 어떤 관계가 있을까? 신비주의가 정치적 자유 혹은 민주주의와 관련이 있을까? 왜 플라톤은 서양 신비주의의 시조로 일컬어질까?

 

이처럼 많은 질문들이 신비주의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물론 이 모든 질문들을 앞으로 내가 여기서 다루어가겠다는 것은 결코 아니고......(^^;;) 이런 저런 다양한 문제들이 신비주의 비교 연구라는 영역에서 본격적으로 제기되어 왔다는 점을 강조하자는 것이다. 덧붙여 질문이 가능하다는 게 곧바로 답이 있다는 걸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과, 이런 모든 질문들에 그야말로 자로 잰 듯한 깔끔한 답이 있다고 믿기는 곤란하다는 점을 알아주시길 바란다. 이런 질문들 자체가 아예 부질없는 것이라거나, 모든 질문에 답이 너무도 분명하니 헛고생하지 말라고 나에게 조언한 사람들도 있긴 했지만, 전공자인 내 입장에선 ‘문제가 그렇게 단순하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이다. 이 질문들이 무의미하거나, 혹은 너무도 자명한 답이 있었더라면 내 밥벌이는 애초부터 불가능하지 않았을까.

 

신비주의는 종교학계에서 뜨거운 주제였고, 많은 학자들이 적지 않은 시간을 연구에 투여해 왔다. 그러므로 이런 학문적 탐구가 비록 모든 질문들에 대한 확실한 답을 우리에게 주지는 못 하더라도, 적어도 이 문제들을 더 분명하게 이해하고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도와주리라 믿는다. 질문 자체를 꼼꼼하게 살피는 과정에서 예전에는 알지 못했던 여러 차원이 더 분명하게 그 속살을 드러내리라는 기대는, 적어도 우리 마음을 편하게는 못 만들어도 두근거리게는 만들지 않을까. 여하튼 오랜만에 돌아와 참으로 면목이 없기는 하지만, 오랜만이니 더 반갑게 맞아 주시길 염치 불구하고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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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해영
서울대 외교학과를 나와 행정고시에 수석으로 합격해 문화관광부에서 사무관으로 근무했다. 그러나 고교 때 체험한 신비체험을 규명하기 위해 공무원 생활을 접고 서울대에서 종교학을, 미국 라이스대학에서 종교심리학과 신비주의를 공부한 뒤’로 서울대 HK(인문한국) 교수로 있다. 종교체험이 우리 삶에 어떤 의미를 갖는 지 탐구중이다. 저서로 오강남 교수와 함께 나눈 얘기 모음인 <종교, 이제는 깨달음이다>가 있다.
이메일 : lohel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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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앙냄새 풍기는 박근혜 후보의 대북정책

 

 

 

재앙냄새 풍기는 박근혜 후보의 대북정책
 
[한호석의 개벽예감](36) ‘평화’‘화합’운운해도 대북적대정책에 불과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기사입력: 2012/11/10 [02:42] 최종편집: ⓒ 자주민보
 
 

재앙의 악순환 타고 도는 대북적대정책

2012년 11월 5일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서울에 있는 새누리당 중앙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신뢰외교와 새로운 한반도’라는 주제를 내걸고 대북정책기조를 발표하였다.

앞뒤가 맞지 않는 소리만 골라서 하는 이 땅의 수구언론매체들은 그녀가 외교안보통일정책에 관해 기자회견을 열었다고 보도했지만, 그것은 대북정책을 외교정책 또는 안보정책 또는 통일정책과 혼동한 것이다. 박근혜 대선후보가 그 날 발표한 것은 대북정책기조다.

11.5 기자회견을 시작하면서 그녀는 “불신과 대결을 넘어서 평화와 신뢰의 새로운 한반도를 만들고, 궁극적으로 통일한국을 만드는 것이야말로 100% 대한민국의 완성이 될 것”이라고 하면서, “남북한 구성원 모두가 자유롭고 행복한 한반도, 안정되고 풍요로운 아시아를 만들어가는 한반도, 인류발전에 기여하며 신뢰 받는 한반도, 이것이 제가 그리는 ‘새로운 한반도’의 모습”이라고 밝혔다. 이 발언은 유권자 대중의 귀에 듣기 좋은 말을 골라서 담아놓은 총론이므로, 그런 총론적 발언내용에서는 크게 문제가 될 만한 것이 보이지 않지만, 각론에 들어가면 사정은 180도로 돌변한다.

박근혜 대선후보는 11.5 기자회견에서 “지속가능한 평화를 만들겠”다고 하면서 “안보부터 확실히 챙기겠”다고 말하였다. 독재자 박정희의 극우수구정치를 충실히 이어받은 독재자의 딸이 “안보부터 확실히 챙기겠다”고 공언하는 것은 독재자 박정희가 대통령 재임시절 ‘총력안보’라는 간판을 내걸고 극단적으로 밀고 나간 대북적대정책을 연상케 한다. 아니나 다를까, 박근혜 대선후보가 꺼내놓은 대북정책은 박정희식 대북적대정책의 전면적 계승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그렇게 보는 까닭은 아래와 같다.

11.5 기자회견에서 박근혜 대선후보는 “제2의 천안함, 연평도 사태는 결코 용납하지 않겠”고, “우리 장병들이 목숨을 바쳐 지켜온 북방한계선(NLL)에 대한 어떠한 도발도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하였다. 두 말할 나위 없이, 그녀가 생각하는 ‘안보문제’는 ‘북방한계선’을 원인으로 하여 일어난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포격사건에 직결된 사안이다.

세상에 알려진 대로, 이명박 정부는 천안함이 북의 어뢰피격으로 폭침당했다고 규정하고 그것을 구실로 남북관계를 전면적으로 파탄시키면서 기존 대북적대정책을 더욱 극단적으로 밀고 나갔다. 그러나 천안함이 북의 어뢰피격으로 폭침당한 것이 아니라는 과학적 증거들이 속속 나타났고, 그에 따라 그 사건을 북의 어뢰피격에 의한 폭침사건으로 규정한 이명박 정권의 주장이 사실이 아니라는 점이 드러났는데도, 박근혜 대선후보는 ‘천안함 폭침사건’이 또 다시 일어나는 것을 “결코 용납하지 않겠다”고 공언하였다. 대선후보가 마치 유령에 홀린 것처럼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로 믿고 그에 기초하여 만들어낸 대북정책이라는 것을 꺼내놓다니, 기가 막힐 일이다.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포격사건의 근본원인은 주한미해군사령관이 1961년에 임의로 자기들의 작전지도 위에 이른바 ‘북방한계선’을 그어놓은 데서 찾을 수 있다. 지금 이명박 정부는 주한미해군사령관이 임의로 그어놓은 선을 마치 실질적인 해상경계선인 것처럼 억지를 부리면서 그 선을 사수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런 주장에 대해 북측이 수수방관할 리 없다. 이를테면, 2012년 9월 29일 북측 국방위원회 정책국 대변인은 <조선중앙통신> 기자의 질문에 답변하면서 “<북방한계선> 고수주장은 우리의 국가주권과 령해에 대한 침범을 정당화하려는 궤변이며 우리의 국방과 안전을 해치려는 로골적인 침략행위”라고 규정한 바 있다. 북이 ‘침범’과 ‘침략’이라는 말을 쓴 것은 전면전을 염두에 두고 한 발언이다. 다시 말해서, 남측의 ‘북방한계선’ 고수론은 북측의 전면전 의지를 자극한다는 점에서 사실상 대북전쟁론인 것이다.

남측이 ‘북방한계선’을 실질적인 해상경계선이라고 주장하면서 그 수역에서 대북공격연습을 감행하는 한, ‘조국통일대전’ 준비를 완료하였다고 선언한 북을 더욱 자극하는 것이며 기존 무력충돌위험을 남북의 해상분쟁 수준에서 더욱 격화시켜 북을 일방으로 하고 미국과 남측을 다른 일방으로 하는 전면전 수준으로 확대시키는 것이다.

박근혜 대선후보가 그런 무력충돌위험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할 리 없다. 그녀가 11.5 기자회견에서 “북한의 도발을 억지하기 위해 한미동맹을 포함한 포괄적 방위역량을 강화해 나가”겠다고 밝힌 것은, 전면전 위기로 격화되고 있는 무력충돌위험에 대처하기 위해 미국과의 군사동맹을 더욱 강화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박근혜 대선후보의 11.5 기자회견에서 주목해야 하는 것은, ‘북방한계선’ 사수론→대북자극 극대화론→한미군사동맹 강화론→전면전 위기 고조로 이어지는 재앙의 악순환이다. 재앙의 악순환을 타고 도는 대북정책기조로 들고 나온 그녀가 집권하면, 남북관계와 한반도 정세가 과연 어떻게 급변하게 될지 더 이상 설명할 필요도 없다.

11.5 기자회견에서 박근혜 대선후보가 꺼내놓은 재앙의 악순환론은 그녀가 한반도 핵문제에 관해 언급한 대목에서 절정에 이르렀다. 그녀는 “북핵은 결코 용인할 수 없”다고 하면서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을 무력화할 수 있는 억지력을 강화하겠”고 밝혔다.

북의 핵전력과 미사일전력을 무력화할 수 있는 억지력을 강화하겠다니 이건 또 무슨 소린가? 이른바 ‘세계 최강’이라고 자처하는 미국도 북의 핵전력과 미사일전력을 무력화해보려고 지난 20년 동안 수없이 도전과 도발을 거듭하였다가 그때마다 굴욕스럽게 전술적 패배를 당하곤 하였는데, 군사부문에서 미국에게 완전히 예속된 남측이 북의 핵전력과 미사일전력을 무력화할 억지력을 강화하겠다고 하는 발언은 북을 겨냥한 군비증강과 전쟁준비에 힘을 집중하겠다는 소리로 들린다. 북을 겨냥한 군비증강과 전쟁준비야말로 북을 극도로 자극하여 기어이 전쟁을 하겠다는 식의 매우 도발적인 발언이 아닌가.

그녀는 대북억지력을 강화하는 것과 “동시에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남북 간의 실질적 협의를 추진하겠”다고 말했지만, 그건 하나마나한 소리다. 왜냐하면 북을 극도로 자극하는 대북적대정책을 언급하면서 북과 ‘실질적 협의’를 하겠다는 것은 궤변이며, 한반도 핵문제가 북미관계에서 발생하였고 따라서 북미협상으로 해결될 수밖에 없는 문제인데도 그런 문제를 엉뚱하게 남북관계로 끌어당기려는 것도 논리적 모순이기 때문이다.

모략의 악순환 타고 도는 대북모욕정책

박근혜 대선후보는 11.5 기자회견에서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통해 남북관계를 정상화하겠”다고 밝혔다. 이명박 정권이 극도로 악화시킨 현 남북관계를 개선, 정상화하려면, 북을 자극하는 발언부터 중지해야 마땅하거늘, 위에서 지적한 대로 북이 들으면 격분할 자극발언만 골라서 잔뜩 늘어놓고 나서, 무슨 남북관계 정상화라는 말을 입에 올리다니, 박근혜 대선후보가 과연 제 정신으로 기자회견을 하였는지 그녀의 정신상태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그녀의 정신상태를 함부로 의심하는 것은 그녀에 인격에 대한 모욕이 될 것이다. 박근혜 대선후보는 11.5 기자회견에서 제 정신을 잃고 횡설수설한 게 아니라, 북을 모략하였던 것이다. 다시 말해서, 그녀의 대북정책기조는 재앙의 악순환에서 모략의 악순환으로 오락가락하는 것이다.

모략의 악순환이란 북에 대한 허위사실을 날조하고 그것에 기초하여 대북정책기조를 세움으로써 북을 모략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그녀는 11.5 기자회견에서 “북한은 도발을 포기하고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이 되어야” 하고, “핵개발이 아니라 경제개발을 통해 주민들의 삶의 질을 높여야” 한다고 하면서 “(자신이 집권하면) 북한이 올바른 선택을 하도록 여건을 조성하겠”다고 밝혔다. 그녀의 이런 발언은, 북을 ‘도발자’로, 국제규범을 따르지 않는 ‘일탈자’로 규정하였을 뿐 아니라, “핵개발을 포기하고 경제를 발전시켜 인민생활을 향상시켜야 한다”고 ‘훈계’한 것이다.

그녀가 북을 ‘도발자’로, ‘일탈자’로 규정한 것은, 북에 대해 ‘악의 축’이니 ‘폭정의 전초기지’니 ‘깡패국가’니 하는 악담을 퍼붓는 미국 ‘네오콘’의 모략범죄를 맹목적으로 따라하는 모방행위로 보인다.

또한 지금 북은 인민생활향상을 위해 국가적 총력을 기울이면서 상당한 성과를 얻고 있는데, 그런 상황에서 그녀가 북에게 인민생활을 향상시켜야 한다고 ‘훈계’한 것은 북의 시각에서 보면 주제넘은 소리가 아닐 수 없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박근혜 대선후보의 대북정책이 재앙의 악순환을 타고 돌면 대북적대정책으로 되고, 그녀의 대북정책이 모략의 악순환을 타고 돌면 대북모욕정책으로 된다.

이를테면, 그녀의 대북모욕정책은 북측 인민들이 ‘인간 이하의 비참한 생활’을 하고 있고, 북측 경제가 자생력이 없는 ‘불구화된 경제’이고, 북측 인민들이 ‘인권유린의 고통’을 겪고 있다고 보는 발언에서 절정에 이른다. 박근혜 대선후보가 “북한 주민들의 인간다운 삶을 위한 대북지원을 투명하게 추진”하고, “북한 주민의 삶의 개선을 위해 보건, 의료 협력과 농업, 조림, 기후변화 등 녹색경제 협력을 체계화하”고, “북한의 경제 자생력을 높이기 위해 전력, 교통, 통신 등 인프라 확충과 주요 국제금융기구 및 국제투자 유치를 지원”하겠다고 밝힌 것은, 북을 대화상대가 아닌 구제대상으로 바라보는 모욕 위에 정책이라는 미명을 뒤집어씌운 것이다. 특히 그녀가 “우리와 더불어 통일시대를 열어갈 북한주민들이 겪고 있는 고통을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된다고 하면서 “인도주의와 인권을 향상시키기 위해 북한인권법을 제정하고, 국제사회에 이러한 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하겠”다고 밝힌 것이야말로 대북모욕정책의 극치다.

박근혜 대선후보의 대북모욕정책은 남북관계를 파탄시키는 반북사업들만 골라서 열거하였다. 이를테면, “국군포로와 납북자를 송환하겠다”는 것이다. 11.5 기자회견에서 그녀는 이산가족 상봉을 정례화하는 동시에 “전면적 생사확인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는데, 그녀가 말하는 ‘전면적 생사확인’이란 ‘국군포로’와 ‘납북자’의 생사를 확인하고 그들을 ‘송환’하겠다는 뜻이다.

원래 김영삼 정부 시기에 국정원 주도로 시작된, ‘국군포로’와 ‘납북자’를 빼내가는 비밀공작은, 북에 침투하여 사회적 불안을 조성하려는 ‘기획탈북공작’이다. 그런데도 박근혜 대선후보는 ‘기획탈북공작’에 대한 열의를 드러내보였다. 그녀는 “자유를 찾아 북한을 떠난 탈북민의 보호와 지원을 위해 각별한 노력을 기울이고”, “이들이 대한민국에서 자신들의 능력을 맘껏 발휘할 수 있도록 정착지원 인프라와 맟춤형 지원 체계를 강화”하겠다고 하면서, “강제북송을 막기 위해 유엔고등판무관실(UNHCR) 등 국제사회와의 협력을 더욱 강화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이것은 박근혜 대선후보가 집권하는 겨우 이명박 정권보다 ‘기획탈북공작’을 더욱 강화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박근혜 대선후보가 발표한, “개성공단을 국제화하겠다”는 사업구상도 반북사업에 속한다. 남북합의로 시작된 개성공단 건설사업을 ‘국제화’하려는 것은 남북 사이의 민족경제협력사업을 무한정한 이윤추구에 혈안이 된 국제자본시장에로 떠미는 ‘기획약탈공작’이다.

이처럼 북이 들으면 격분할 ‘기획탈북’과 ‘기획약탈’에 대해 거리낌 없이 언급한 박근혜 대선후보의 입에서 북의 지하자원을 공동으로 개발하겠다느니, 북의 ‘경제특구’에 진출하겠다느니 하는 소리가 흘러나온 것은, 북의 사회주의계획경제를 변질시켜 자본주의시장경제로 교체하려는 ‘유인의도’를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그녀는 2012년 11월 8일 서울에서 열린 외신기자클럽 기자회견에서 “(한반도 평화를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한국과 국제사회가 협력해 북한의 실질적 변화를 이끌어 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그녀는 “러시아 연해주, 중국 동북3성, 남북한을 포괄하는 남북러, 남북중 3각 협력을 적극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지금 북과 중국 동북지방의 경제협력은 북중관계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며, 북과 러시아 연해주의 경제협력도 역시 북러관계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그러한 북중경제협력과 북러경제협력에 남측이 끼어들 여지는 별로 없어 보인다.

그런데도 박근혜 대선후보가 무슨 ‘3각 협력’에 대해 언급한 것은 한반도-중국 동북지방-러시아 연해주를 연결하는 국제경제협력사업을 추진하려는 게 아니라, 북을 이용해 이윤이나 빼어 먹겠다는 속셈을 드러낸 것이니, 북으로부터 배격을 받을 게 뻔하다.

박근혜의 ‘남북교류협력사무소’ 설치구상과 남북정상회담 추진의향

박근혜 대선후보는 11.5 기자회견에서 “남북한 경제협력 및 사회, 문화 교류의 지속적 발전과 제도화를 위해 서울과 평양에 ‘남북교류협력사무소’를 설치하겠”다고 밝혔다. 그녀의 ‘남북교류협력사무소’ 설치구상은 이명박 대통령의 ‘남북상주연락사무소’ 설치구상을 연상케 한다.

이명박 대통령은 2008년 4월 당시 방미일정 중에 <워싱턴 포스트>와 회견하는 자리에서 “한국에 돌아가면 북측에 서울과 평양에 상주연락사무소를 설치해 남북의 상시적인 대화통로를 구축하자고 제안하겠다”고 하면서 “연락사무소장은 남북의 최고책임자의 말을 직접 전할 수 있을 정도의 위치에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위의 정보를 종합해보면, 박근혜 대선후보의 ‘남북교류협력사무소’ 설치구상은 이명박 대통령의 ‘남북상주연락사무소’ 설치구상과 조금 다르다. 전자는 교류협력을 위한 통로이고, 후자는 정치접촉을 위한 통로다.

그러나 6.15 공동선언과 10.4 선언을 파기하고 남북관계를 파탄시킨 이명박 대통령이 ‘남북상주연락사무소’ 설치구상을 미국 언론과의 기자회견에서 밝힌 것에 대해 북은 거부감을 넘어 혐오감을 보였다. 이를테면, 북은 <로동신문> 논평을 통해 이명박 대통령의 ‘남북상주연락사무소’ 설치구상에 대해 맹비난을 퍼부었다. 논평은 이명박 대통령의 ‘남북상주연락사무소’ 설치구상을 “북남관계 악화의 책임을 회피하며 여론의 시선을 딴 데로 돌리기 위한 얕은 수”라고 규정하면서, 그를 ‘일자무식쟁이’, ‘ 정치몽유병환자’, ‘얼뜨기’라고 비난하였다.

이명박 대통령이 ‘남북상주연락사무소’ 설치구상을 꺼냈다가 그처럼 북으로부터 욕을 바가지로 얻어먹은 것이 불과 4년 전에 있었던 일인데, 건망증 때문인지 무지몽매 때문인지 아니면 건망증과 무지몽매의 합병증 때문인지 몰라도 박근혜 대선후보는 4년 전의 쓰라린 경험을 반복하였다.

박근혜 대선후보는 ‘남북교류협력사무소’ 설치구상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남북정상회담에 대해서도 언급하였다. 그녀는 11.5 기자회견에서 “(남북관계에서) 신뢰를 쌓기 위해서는 다양한 대화채널이 열려 있어야” 하므로 “남북관계 발전을 위해서라면 북한의 지도자와도 만나겠”다고 말했다. 2012년 11월 8일 서울에서 열린 외신기자클럽 기자회견에서도 그녀는 “남북관계 발전에 도움이 된다면 북한의 새로운 지도자와도 만날 것”이라고 하면서 “만남을 위한 만남이 아니라 서로의 관심사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논의하기 위함”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박근혜 대선후보는 대북정보에 너무 무지하여 북이 자기에 대해 욕설까지 하는지도 알지 못하고 남북정상회담 추진의향을 꺼내놓은 것이다. 이를테면, 2012년 9월 29일 <조선중앙통신>은 북측 국방위원회 정책국 대변인이 <조선중앙통신> 기자의 질문에 답변한 내용을 보도하면서 “괴뢰대통령후보로 나선 박근혜 X까지 주제넘게 <북방한계선> 고수립장을 입에 올리고 있다”고 맹비난하였고, 북측 국방위원회 정책국 대변인도 자신의 답변에서 그녀를 ‘박근혜 X’이라고 부르며 욕했다. 이것은 그녀에 대한 북의 혐오감과 증오심이 얼마나 심한지를 직설적으로 말해주는 사례다.

대북적대감에 사로잡혀 대북정보에 대해 너무 무지한 박근혜 대선후보는 북이 자기에게 욕설을 퍼붓고 있다는 사실도 알지 못한 채 자기가 집권하면 남북정상회담을 열고 허심탄회하게 논의하고 싶다는 의향을 밝혔으니, 그녀의 남북정상회담 추진의향은 쓴웃음을 자아내는 한낱 우스갯소리로 들릴 뿐이다.

박근혜의 해괴한 ‘2단계 통일방안’

11.5 기자회견에서 박근혜 대선후보는 통일방안에 대해서 언급하였다. 그녀가 발표한 ‘통일방안’은 대북적대정책과 대북모욕정책에 의거한 것이므로 당연히 평화통일방안이 아니라 흡수통합방안이다. 남북이 정치적 합의에 의해 나라의 통일을 평화적으로 실현하는 것이 아니라, 남이 북을 흡수통합하려 한다는 점에서, 그녀의 ‘통일방안’은 통일방안이 아니라 명백하게도 반통일방안이다.

올바른 대북관에서 올바른 대북정책이 나오고, 올바른 대북정책에 의거하여 올바른 통일방안이 나오는 법인데, 박근혜 대선후보는 대북관부터 심하게 뒤틀려버렸으니 대북적대정책과 대북모욕정책을 꺼내놓을 수밖에 없었고, 그런 대북정책들에 의거하였으니 흡수통합을 추구하려는 반통일방안 이외에 할 말이 없었을 것이다.

박근혜 대선후보는 자신의 반통일방안을 통일방안으로 위장하기 위해 무던히 애를 쓴 흔적이 엿보인다. 그 흔적은 ‘2단계 방안’으로 나타났다. 그녀는 11.5 기자회견에서 “작은 통일에서 시작하여 큰 통일을 지향하겠”다고 하였다. 통일방안을 3단계 방안으로 설명하는 것은 남측 대중에게 익숙한 설명방식이지만, 통일방안을 ‘작은 통일’과 ‘큰 통일’로 구분하는 해괴한 2단계 방안은 듣던 중 처음이다.

그녀가 말하는 ‘작은 통일’이란 “실질적인 평화를 기초로 군사적 대결을 완화하고, 경제공동체를 건설하여 작은 통일을 먼저 이루”겠다고 밝힌 것에서 알 수 있듯이 평화 정착, 군사긴장 완화, 경제공동체 건설을 뜻하는 개념이다.

그러나 박근혜 대선후보는 통일과 평화를 구분하지 못하고, 통일과 경제통합도 구분하지 못하여 평화와 경제통합을 ‘작은 통일’이라고 착각하는 무지몽매에 빠져 있다. 한반도의 통일은 군사적 대결구도를 해소하고 항구적이고 공고한 평화체제를 세우는 정치과업에 직결되지만, 통일과 평화를 혼동하는 것은 오류다. 통일은 통일국가를 세우는 정치과업이고, 평화는 평화통일을 실현하기 위한 정치과업이다. 분단체제에서는 평화가 실현될 수 없고, 평화통일을 실현하기 위한 정치적 합의과정에서만 평화가 실현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한반도 평화체제는 오직 평화협정 체결과 주한미국군 철군으로만 실현될 수 있다. 그러므로 평화협정 체결과 주한미국군 철군을 말하지 않은 각양각색의 한반도 평화론은 모조리 가짜다.

또한 통일과 남북경제통합은 서로 무관한 것이 아니지만, 남북경제통합은 평화통일을 실현하는 단계에서 통일정부가 추진할 정치과업이다. 분단체제에서는 남북경제통합이 절대로 실현될 수 없으며, 개성공단사업처럼 남북경제협력만 실현될 수 있다. 남과 북이 합의하여 분단체제를 제거하고 평화통일을 실현하는 통일정부를 세우지 않는 한, 남북이 상호경제협력을 아무리 심화시켜도 그것이 남북경제통합으로 전화발전되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정보를 살펴보면, 박근혜 대선후보가 말한 ‘작은 통일’은 궤변이다. 그녀는 ‘작은 통일’이라는 궤변을 들고 나옴으로써 평화통일을 열망하는 이 땅의 유권자 대중을 사실상 기만하고 있는 것이다.

박근혜 대선후보는 11.5 기자회견에서 ‘작은 통일’을 이룬 뒤에 “궁극적으로 정치통합을 통한 큰 통일로 나아가겠”다고 밝혔다. 그녀가 말하는 ‘큰 통일’은 ‘정치통합’이라는 뜻이다. 그녀가 말하는 ‘정치통합’은 남과 북의 상이하고 적대적인 정치체제를 단일한 정치체제로 통합한다는 뜻이다. 남측의 자본주의정치체제와 북측의 사회주의정치체제를 하나의 정치체제로 통합하겠다니, 지구의 자전방향을 바꿔놓겠다는 말보다 더 황당무계한 소리를 꺼내놓은 그녀는 제 정신인가?

한반도 통일과정에서 평화통일을 위한 남과 북의 정치협상과 정치적 합의는 있어도, 그녀가 말하는 ‘정치통합’은 존재할 수 없고 존재해서도 안 된다. 왜냐하면, 그녀가 말하는 ‘정치통합’은 북측의 사회주의정치체제를 남측의 자본주의정치체제로 교체하겠다는 체제통합을 뜻하기 때문이다. 그녀는 11.5 기자회견에서 “자유민주주의 질서에 기초한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을 계승, 발전시켜 통일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하겠”다고 아주 거리낌 없이 말했는데, ‘자유민주주의 질서에 기초한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이 바로 그러한 체제통합의 별칭인 것이다.

박근혜 대선후보가 언급한 남북의 체제통합이 대결과 전쟁을 불러오게 될 것이라는 사실은 누구나 쉽게 예견할 수 있다. 체제통합은 대통합이 아니라 대재앙이다.

박근혜 대선후보는 11.5 기자회견에서 “분단과 대결의 시대를 뒤로 하고 평화와 화합의 새로운 시대를 열어야” 한다고 말하였지만, 대결과 전쟁을 불러올 ‘체제통합’을 공언한 그녀의 입에서 평화와 화합이라는 말이 흘러나온 것은 그녀가 평화와 평화통일을 열망하는 이 땅의 유권자 대중을 얼마나 기만하고 있는지를 말해 줄 뿐이다. 독재자의 딸이 꺼내놓은 대북적대정책, 대북모욕정책, 체제통합방안은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에서 전면전을 불러오는 재앙냄새를 짙게 풍기고 있다.(2012년 11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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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갈등 본격화 전 남북관계 개선 시급”

 

“미중 갈등 본격화 전 남북관계 개선 시급”
미대선 토론회, “주한미군에 아프간 전력 들어올 수도”
 
 
2012년 11월 09일 (금) 23:13:10 김치관 기자 ckkim@tongilnews.com
 

 

   
▲ 홍익표 의원실과 코리아연구원이 공동주최한 ‘미국 대선 결과와 한반도 선택’ 토론회가 9일 국회도서관에서 열렸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한국 대선 결과가 중요한데 이것이 잘 맞물려 갈 경우에는 미국의 대북정책에서 상당한 변화가 예상된다.”

김준형 한동대 교수는 9일 오전 10시 국회도서관 소회의실에서 ‘미국 대선 결과와 한반도 선택’을 주제로 홍익표 의원실과 코리아연구원이 공동주최한 토론회에서 “오바마가 한국에 대해서 상당히 자율성을 인정하고 대북정책에 있어서 운전석을 약간 내어줄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며 이같이 전망했다.

김 교수는 그 근거를 첫째, 오바마 대통령이 재임에 성공해 ‘역사적 유산 만들기’에 나설 가능성이 높고 둘째, 작년 말과 올해 초에 보여준 대북정책의 전향적 변화 조짐이 있고 셋째, 현재 워싱턴은 김정은 정권이 공고화 돼 있고 개방적이라고 판단하기 때문이라고 제시했다.

또한 “이번에 만약에 (미국) 민주당과 (한국) 야권이 동시 정권을 갖게 된다면 대북정책의 큰 전환점이 오는데, 약간의 유연성이 필요하지 않겠나 생각한다”며 “우리가 미국을 잘 구슬러서 유연하게 대북정책을 해결해 가는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그러나 한미관계에 대해서는 이명박 정부에서 ‘한미동맹 절대주의’에 빠졌다며 “우리의 대미 군사적 종속이라든지 대미 의존적 관계가 훨씬 심화되었기 때문에 앞으로 무기구입, 분담금 요구, 미국식 대 중국 봉쇄 전진기지가 될 가능성이 굉장히 높다”며 “한국이 MD(미사일방어체제) 참여라든지 무기구입이라든지 전략적 유연성이라든지 이런 데 대한 압력이 상당히 커지리라 생각한다”고 어두운 전망을 내놓았다.

   
▲ 김준형 한동대 교수가 오바마 2기 대외정책 전망을 발제하고 있다. 왼쪽은 피터 벡 아시아재단 한국지부 대표.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또한 “미중 갈등은 구조적일 뿐만 아니라 굉장히 이념적”이라며 “중국에 대한 봉쇄와 포용에 의한 균형전략은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 언제든지 갈등, 봉쇄로 축의 균형이 기울 가능성이 굉장히 많은 정책”이라고 미중관계도 쉽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김 교수는 “미중 갈등이 본격화되기 전에 한반도 남북관계의 개선이 시급하게 추진되어야 한다”며 “그렇지 않을 경우 미중 갈등의 구조에 휘말려들게 될 우려가 다분하다”고 결론지었다.

토론에 나선 홍현익 세종연구소 안보전략연구실장은 “미중 간에 알력과 갈등이 벌어지면 그 폐해의 상당 부분을 우리가 떠맡을 가능성이 크다”며 “한미동맹을 적절히 발전시키면서도 MD참여나 한일정보보호협정 체결 등을 통해 한미동맹이 반중 동맹화하는 것을 막는 것”이라고 해법을 제시했다.

이남주 성공회대 교수는 “한국은 앞으로 4년간 어떤 시기보다도 미중 경쟁이 강화될 것이라는 점을 전제로 외교정책을 세워야 할 것”이라며 “우리가 미중 경쟁을 강화하는 요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미중 협력의 공간을 확대하는 데 기여할 수 있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서보혁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HK연구교수는 미국의 아시아로의 중심축 이동에 대해 “미국이 공세적으로 중국봉쇄라는 목표도 있지만 상당히 적응적인 측면도 있다고 본다”며 “오바마 2기가 동아태지역 특히 한반도 정책에 있어서 과연 정책적 우선순위를 투사할 능력과 의지가 있느냐에 대해서 상당히 제한적으로 본다”고 평했다.

피터 벡 피터 벡 아시아재단 한국지부 대표는 오바마 2기 정부가 “북한한테 ‘약한 포용정책’을 쓸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아주 적극적으로 포용하지 않겠지만 만약에 한국 정부가 북한하고 대화 열심히 하고 협상할 생각 있으면 앞서가지 않겠지만 따라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 김종대 <디펜스21+> 편집장이 오바마 2기 국방정책 전망을 발제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오바마 재선을 국방정책에서 조망한 <디펜스21+> 편집장은 “(미국의) 국방비 구조로 봤을 때 앞으로 추가적인 신형 무기를 도입한다든가 해외에 군사력을 투사하기 위한 새로운 작전개념을 수행할 수 있는 여력이 갈수록 역량이 소진돼 가고 있다”며 “한국의 국방비를 대폭 증액시키라고 요구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김 편집장은 특히 “미국이 대선 직전까지 가장 한국에 전략적으로 압력을 행사하고 가장 강도 높은 대화를 해온 대목이 '작전계획 5029'”라며 북한 급변사태시 미국과 중국이 협력해서 북한의 핵무기를 통제하고 북한의 안정화를 도모하는 내용을 담은 ‘작전계획 5029 부속합의서’를 미국이 추진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 편집장은 “(작전계획 5029 부속합의서가) 이전의 작전계획 5027이나 5029 본문과 다른 측면은 북한을 공동관리구역으로 설정하고 강대국이 공동으로 통치하거나 관리하되 한국의 외교적 발언권 내지는 한국의 주권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라며 “한국 주도의 통일을 미국이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과 중국이 북한을 관리하는데 한국이 지원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또한 지난주 미 국방부 고위관리가 브리핑한 내용 중 아프간에서 철군한 미군이 아시아태평양으로 이동한다는 대목에 주목, “주한미군에 아프간의 지상군 병력의 전력 일부가 들어올 수도 있다”며 “기존의 평택기지 조성이라든가 전작권 전환을 둘러싼 한미간 군사적인 역할분담 체제에 있어서 모종의 변화가 나올 수가 있다”고 짚었다.

특히“한반도에 평화체제를 구축하려면 유명무실한 유엔사령부를 해체하고 남북한 장관급회담이나 군사공동위원회나 남북 장성급회담이나 이런 위기관리 구조를 만들어서 이걸 기초로 평화체제로 가는 길목에서 우리가 한반도 위기관리를 해보자, 이게 우리가 가졌던 비핵화와 평화체제에 대한 비전”이라며 “미국이 유엔사를 통해서 위기관리의 기본틀을 강화한다든지 또는 주한미군의 역할변경이 있을 때 우리의 평화체제 담론에 상당히 큰 변수가 조성된다”고 우려를 표했다.

김 편집장도 역시 “2013년에 새로운 정부가 보다 자주적이고 당당하게 이러한 문제를 관리할 수 있는, 유능한 정부가 돼야 된다”며 “외부적 충격이 우리의 내부적 부담으로 전환되기 이전에 뭔가 남북한 관계에서 우리가 돌파구를 열어 한반도 정세를 우리가 주도할 수 있는 비전이 보다 더 적극적으로 창출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 김연철 코리아연구원 원장의 사회로 진행된 토론회에 참석자들은 진지한 관심을 보였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김연철 코리아연구원 원장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토론회는 박병석 국회부의장과 이재정 전 통일부 장관이 인사말을 홍익표 민주당 의원이 축사를 했으며, 민주당 김동철 의원 등이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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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따뜻한' 복지 - 안 '든든한' 복지

문 '따뜻한' 복지 - 안 '든든한' 복지

[공약검증④] 문재인-안철수 복지정책, 유사도 90%

12.11.09 14:33l최종 업데이트 12.11.09 14:56l
공약검증팀(cominsoo)

 

 

12월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또 다시 야권후보 단일화라는 초대형 이슈가 터져나왔습니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와 안철수 무소속 후보는 오는 26일까지 단일후보를 뽑는 데 합의했습니다. 이에 따라 이들 두 후보 가운데 누가 단일후보가 되느냐와 함께 어떤 정책을 펼칠지가 큰 관심사로 떠올랐습니다. <오마이뉴스>의 '대선공약검증팀'에선 이들 두 후보가 내놓은 주요 정책 50가지를 비교해 분석해봤습니다. 정치쇄신을 비롯해 일자리와 복지, 경제민주화, 대북정책 등 분야에서 두 후보의 정책 유사도가 얼마나 되는지, 차이는 무엇인지를 살펴봤습니다. 이를 통해 향후 단일후보가 어떤 공약을 내밀 것인지 가늠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편집자말]
[오마이뉴스 공약검증팀 : 김종철 김시연 최지용 강민수 / 그래픽 : 고정미]

<복지 부문> 문재인 후보 vs. 안철수 후보 대선 공약 정책 유사도
ⓒ 고정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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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후보의 '따뜻한 복지'와 안철수 후보의 '든든한 복지' 사이에 별다른 차이는 나타나지 않았다. 반값등록금 시행 시기에서만 차이를 보일 뿐 무상보육, 무상의료, 주거복지 등 두 후보의 복지정책은 90% 유사도를 나타냈다.

"기본적인 소득을 높이고 민생지출은 줄이겠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통령 후보 선대위의 복지국가위원회는 지난달 31일 '사람이 먼저인 따뜻한 복지국가 구상'을 발표했다.

65세 이상 노인에게 지급되는 기초노령연금을 2배 인상하고 청년 구직자에게 최장 2년간 매월 30만 원, 12세 미만 아동 가정에 월 10만 원씩 지원하는 등 국민이 인간다운 생활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먼저'인 사회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문 후보는 이미 복지국가위원회 출범식에서 대통령 취임 즉시 '제1차 복지국가 5개년 계획'을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안철수 후보는 현재까지 큰 틀의 '복지 정책'을 발표하지 않았다. 다만 안 후보가 중앙선관위에 제출한 10대 공약에서 '든든한 복지체계'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또 정책 네트워크 '내일'의 '안심으로 육아를 돕는 포럼'에서 발표한 보육 정책과 '경제민주화포럼'의 주거복지 정책을 통해 안 후보의 복지 정책 일면을 살펴볼 수 있다. 안 후보는 오는 10일 발표하는 정책공약집에서 복지 정책의 큰 그림을 공개할 예정이다.

문 "내년 국·공립대부터 반값등록금"... 안 "2017년까지 단계적으로"

무상보육, 무상의료, 주거복지 등 복지정책 큰 그림은 두 후보가 유사하다. 두 후보는 0~5세 영유아 무상 보육을 추진하고 있다. 국공립 어린이집에 다니는 아동 비율을 문 후보는 40%, 안 후보는 30%까지 늘리고 특별활동비 등 추가 비용을 없애기로 했다. 문 후보는 초등학교 저학년을 위한 방과후 학교를 전면 확대하는 등 아동 돌봄 체계를 개편한다는 계획이다. 안 후보 역시 '방과후 어린이 센터' 8000개를 만들어 어린이 약 23만 명에게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할 것을 약속했다.

의료정책에선 문재인 후보가 국민건강보험 본인 부담 의료비를 연간 100만 원으로 제한한 것이 눈에 띈다. 문 후보는 또 보험 처리가 되지 않는 진료를 모두 급여로 전환하고 2013년부터 보호자 없는 병원을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안철수 후보 역시 본인 부담 의료비를 최소화해 모든 국민이 민간 보험 가입 없이 건강보험만으로도 의료비 걱정 없는 사회를 만든다는 방침이다. 간병 서비스를 제공하고 MRI 검사, 병실료도 건강보험에 포함시켜 의료비를 줄여가기로 했다.

두 후보의 주거복지 정책도 닮은꼴이다. 전월세 인상률 상한제, 전세계약 갱신 1회 청구권 부여, 전세금 보증센터 설립, 주택바우처제도 등 세입자 보호에 관한 한 두 후보 공약은 비슷하다. 문재인 후보는 이전 정부의 도시재정비사업에서 벗어나 도시재생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문 후보는 도시 재생기본법을 입법화하고, 뉴타운 출구 사업에 재정을 지원할 계획이다.

두 후보 모두 임기 내에 반값등록금을 시행할 계획이지만 시기에선 차이를 보였다. 문 후보는 내년부터 당장 국·공립대학 반값등록금을 시행하고 2014년에 사립대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반면 안 후보는 단계적 시행에 무게를 두고 있다. 안 후보는 지난 1일 교육정책을 발표하면서 "2014년 전문대를 시작으로 이공계, 지방대 등 순차적으로 실시해 2017년까지 모든 대학에 도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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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적인 귀촌? '지네' 보고 도망갈 뻔했다.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12/11/10 07:31
  • 수정일
    2012/11/10 07:31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아침에 일어나 상쾌한 공기를 마시며 산책하다가 낮에는 소일거리 삼아 텃밭을 가꾸고, 저녁이면 마당에서 고기 구워먹으며 사는 것을 꿈꾸는 귀촌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습니다. '베이비붐'세대의 은퇴가 가속화되면서 2001년에 880가구에 불과하던 귀농,귀촌 인구가 2005년에는 1,240가구,2010년에는 4,067가구로 계속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필자가 사는 제주에만 올 7월 말까지 3,052명이 다른 지방에서 제주로 순유입됐고, 매달 400~500명 가량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이렇게 귀농,귀촌 인구가 늘어나면서 그들이 행복하고 성공적으로 정착해 사느냐고 묻는다면 선뜩 그렇다고 대답하기가 어렵습니다. 도시에서 생각했던 귀농,귀촌이 막상 현지에서 살아보니 어렵고 힘들어 다시 도시로 온 사람들도 꽤 되기 때문입니다. 귀농은 말할 것도 없이 힘들고, 그나마 쉽다고 여겼던 귀촌도 귀농과 매한가지로 힘듭니다.

귀농,귀촌 인구의 60%를 차지하는 40-50대의 귀촌 생활 중 반드시 알고 있어야 하는 일들을 모아봤습니다.

' 농약때문에 창문조차 열지 못하는 집'

귀촌을 하는 40~50대 남자들의 로망은 평생 자신이 꿈꾸었던 그림 같은 집을 짓는 일입니다. 통나무집, 황토집, 조립식 주택 등 다양한 방법으로 자신들만의 공간을 머릿속에서 설계하다 보면, 하루빨리 시골에서 살고 싶어 미칠 지경입니다. 그런데 이런 상상은 집 구하기에서부터 깨져버립니다.

전원생활을 꿈꾸는 사람들이 제일 먼저 찾는 곳이 각종 부동산 사이트와 귀농,귀촌 카페입니다. 이런 곳에서 정보를 얻어 직접 답사도 하고 부동산 업자와 함께 땅주인이나 집주인을 만나 가격도 조정하다 보면 금방이라도 멋진 집이 생길 것 같지만, 그 집이나 땅이 얼마나 제대로 된 곳인지 모르고 덜컥 샀다가는 평생 모은 재산을 일순간에 날리기 십상입니다.

 

 

▲ 농촌에서 집을 구할 때는 주변에 어떤 농사를 어떻게 짓는지를 잘 알아봐야 한다. 요새는 농약을 기계로 뿌리기 때문에 근처에 집이 있다면 그 집은 농약을 공기로 들여마시게 된다.

 


제주 이주자 모임에서 나온 사례를 한번 보실까요?

" 부동산 업자가 소개해준 집을 봤더니 넓은 들판에 4가구가 옹기종기 각자 개성이 담긴 멋진 전원주택을 짓고 살고 있었다. 확 트인 모습에 도시 생활에 넌덜머리가 난 아내와 나는 덜컥 계약금을 치르고, 서울에 올라왔다. 이삿짐센터와 연락해서 이사 갈 날짜를 앞둔 어느 날, 아이들에게 자랑도 할 겸 우리가 살 집에 잠시 가봤다.

이사 갈 집에 도착했더니 갑자기 매스꺼운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하고, 쓰레기 태우는 연기가 자욱했다. 알고 보니 그 집은 대규모 농사를 짓는 밭 한가운데 있어 날마다 농약을 살포하고 있으며, 쓰레기 차가 들어오지 않아 마을 사람들이 번갈아 가면서 쓰레기를 밭에다 태우고 있었다.

내가 멋있다고 생각했던 전원주택 4채 중 2채에 살던 이웃들은 이미 그 집을 버려두고 도시로 도망치듯 나갔고, 다른 한 채도 월세로 돌려서 근처 일용직 사람들의 숙소로 이용되고 있었다. 퇴직금을 몽땅 털어 그 집을 샀던 우리 가족은 울며 겨자 먹기로 그 집에서 살 수밖에 없었고, 결국 매일 불어오는 농약 냄새에 창문조차 열지 못하고 집을 산 지 한 달만에 다시 집을 내놓았다."


기획부동산들은 귀촌 인구가 늘자 저렴한 농지를 대규모로 사서 대지로 전환해 필지를 나누어 순진한 도시인에게 수십 배의 차익을 받고 팔기 시작했습니다. 멋모르고 이런 기획 부동산에 당한 사람들은 자신들이 지불했던 가격을 건지기 위해 다시 집을 내놓지만, 그 집을 사는 사람은 어수룩한 귀촌 희망자이기에 이런 악순환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 아직도 시골에는 소를 키우는 곳이 많이 때문에 마을 안쪽이라도 축사가 있는 집이 있는지, 그 축사에서 냄새가 나는지 꼭 따져봐야 한다.

 


농촌에는 아직도 '축사를 새로 만들기 어렵지만, 있는 축사를 없애기는 더 어렵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축사 주변에 집을 구하면 아침, 저녁으로 오리지널 농촌 냄새를 아주 진하게 맡을 수 있으며, 계절에 상관없이 파리,모기에 시달리기도 합니다.

귀촌을 생각하는 사람이 스스로 열심히 공부해서 집을 짓는 방법도 있지만, 대부분 건축 사무소나 업자를 부르는데, 잔금 달라고 해서 줬더니 남은 공정 안 해주며 미루기 일쑤이고, 설계도면과 전혀 다른 자재를 사용하거나 부실 공사로 수도가 터지거나 벽이 갈라지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이처럼 귀촌을 생각하며 멋진 전원주택에서 살고 싶던 생각은 집을 구하는 과정이나 집 짓기, 어느 것을 해도 힘들고 어렵고 마음에 들지 않는 경우가 부지기수입니다.

' 지네만 보면 죽여야 사는 남자'

필자가 사는 제주 산간지방은 습기가 많기로 유명합니다. 여기에 근처에 축사까지 있는 탓에 각종 벌레와 나방, 지네가 집 주변은 물론이고 집 안까지도 등장합니다.

 

 

 

▲ 싱크대에 나온 지네, 욕실 바닥의 도마뱀, 벽과 옷장 속의 거대한 바퀴벌레 중에 가장 무서운 것은 자고 있는 이불에서 나온 사인펜 크기만 지네이다.

 


파리,모기는 애교 수준이고, 듣지도 보지도 못한 각종 벌레가 여름이나 겨울에 상관없이 나옵니다. 손바닥만 한 나방을 시작으로 사람을 봐도 도망가지 않는 바퀴벌레에 뭔지도 모를 이상한 벌레는 우리집이 마치 곤충박물관이 된 듯한 착각을 불러오기도 합니다.

파충류도감에서나 볼 수 있는 도마뱀이 볼일 보고 있는 화장실을 지나갈 때면 군대까지 다녀온 남자에도 깜짝 놀랍니다. 우리 집은 지네가 가장 무섭습니다. 제주에서 뱀에 물려 병원에 갔다는 사람을 보기는 어렵지만, 지네에 물려 응급실에 간 사람은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지네는 물리면 간혹 물린 부위가 퉁퉁 붓기도 하면서 열이 나기도 할 수도 있는데, 이런 지네가 두 살짜리 아이와 함께 자는 이불에서 나오면 그날은 잠을 포기하고, 지네 색출 및 박멸 작업을 해야 합니다.

도시에서 평생 자란 사람들이 이런 벌레와 지네,나방,도마뱀을 집 안에서 보면 과연 어떤 생각이 들까요? 필자의 아내도 농촌에서 자랐지만 처음 지금 사는 농가주택에 이사했을 때는 각종 벌레 등이 약을 쳐도 기어 나오는 것을 보면서 어떻게 살 수 있을지 걱정하다 도시로 그냥 가려고도 했었습니다.

이처럼 자연 속에서 살면서 그 공간에 인간만 사는 것이 아님을 깨닫지 못하면, 하루에도 열두 번은 그 집을 나가고 싶어집니다.

' 넓은 창문보다 작은 창문으로 단열되는 집이 최고'

잡지나 TV에서 보면 바깥 풍경이 보이는 넓은 통유리가 있는 거실이 너무 멋있게 보입니다. 그러나 농촌에서 살면 현실은 그런 낭만과는 거리가 멀게 됩니다. 물론 비싼 고급 자재를 사용하여 새로 지은 집은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래된 농촌주택은 단열이 되지 않아 겨울이면 밖의 풍경보다 오로지 집 안 온도를 유지하는데 급급합니다.

아직도 대한민국 농촌 지역은 도시가스가 들어오지 않은 상황입니다. 그러다 보니 대부분 지역에서는 기름보일러를 사용하는데, 요새처럼 기름값이 비싼 경우 한 드럼에 27만 원에서 많게는 29만 원까지 듭니다. 서울에 살 때처럼 따뜻한 난방을 하려면 최소한 한 달에 기름을 두 드럼 이상을 사용해야 겨우 가능합니다.

이렇게 한 달에 두 드럼씩 든다고 계산하면, 최소한 5개월은(11월에서 3월까지) 난방을 해야 되는 농촌지역에서 난방비로만 연 270만 원이 듭니다.

 

 

▲ 겨울이면 방한용 비닐 차단막과 두꺼운 커튼을 출입구에도 설치한다. 세 드럼짜리 기름보일러에는 기름값이 무서워 겨우 한 드럼만 채운다..

 


 

 

이러다 보니 비닐로 창문을 막거나 두꺼운 방한용 커튼 설치는 필수이고. 그러고도 기름보일러를 밸브를 거실 또는 방 하나에만 열어 놓고 온 가족이 전기장판을 깔고 같이 자기도 합니다. 이렇게 노력해야 겨우 겨울철 난방비를 줄일 수 있지, 그렇지 않으면 일해서 번 돈의 대부분을 기름값으로 쓰게 됩니다.

우리 집처럼 평수가 작고 가족이 많으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두 가족이 사는 집이 평수만 넓다면 그 집을 유지하기 위해 겨울철에는 추위에 덜덜 떨던지, 아니면 돈으로 집안을 데우던지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 살 수밖에 없습니다.

 

 

▲ 텃밭에 심은 대파와 배추가 크는 모습을 봐도, 여전히 농약을 치지 않은 배추는 벌레 때문에 구멍이 숭숭 뚫려 있다.

 


도시에서 텃밭을 조금이라도 가꾸어 본 사람은 그나마 괜찮지만, 농사 한 번 지어보지 못한 사람은 텃밭이라도 하려고 해도 만만하지 않습니다. 비료와 거름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모종을 심어도 작물은 자라지도 않고, 농약을 뿌리지 않으면, 병충해 때문에 죽는 일도 허다합니다.

잡초는 어찌나 잘 자라는지 예초기를 사용해도 일주일에 한두 번은 꼭 풀을 베어야지, 그렇지 않으면 순식간에 텃밭이 아니라 정글이 됩니다.

 

 

 


 

 

귀촌해서 좋은 집을 구하거나 짓고 사는 일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집을 어느 정도 해놓고 막상 살아봐도 그리 좋은 일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시골에서 사는 일을 포기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것은 벌레나,추위 등이 힘들게 해도, 그것을 이겨낼 수 있을 만큼 자연에 산다는 것은 하나의 축복입니다.도시에서는 느낄 수 없는 평화로움과 여유로움을 만끽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입니다.

준비된 귀촌은 충분히 성공할 수 있습니다. 단지, 귀촌을 아파트에 살 때처럼 아늑한 공간을 농촌으로 옮겨 놓고, 현관문을 나가면 자연을 즐길 수 있으리라는 환상으로 생각하면 견디지 못합니다. 앞으로 남은 인생을 인간과 자연이 함께 공존하며 사는 삶으로 바꾸고 싶다면, 최소한 귀촌이 무조건 낭만적이지 않다는 마음가짐은 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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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극우파, 미국 지역신문에 광고 게재... ‘말뚝 테러’ 후속타인 듯

 

“위안부는 직업창녀, 장군보다 더 벌었다”고?
 
[집중분석] 日 극우파, 미국 지역신문에 광고 게재... ‘말뚝 테러’ 후속타인 듯
 
정운현 기자 | 등록:2012-11-09 15:29:26 | 최종:2012-11-09 16:25:19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일본 극우파의 망동(妄動)이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 있는 ‘소녀상’에 말뚝 테러를 가하더니 이제는 외국 신문에 거짓 광고를 실어 위안부 피해자들을 두 번 죽이고 있다.

9일자 <뉴시스> 보도에 따르면, 일본의 광신적 극우파들은 지난 4일 미국 뉴저지의 유력지 <스타레저(Star Ledger)>에 위안부의 역사를 왜곡하는 전면광고를 실었다고 한다. <뉴시스>가 전한 광고의 핵심 3가지는 다음과 같다.

‘위안부 모집은 민간 브로커들이 했다’,
‘일본 정부는 불법 브로커들을 단속했다’
‘성노예는 존재하지 않았고 직업적인 창녀들의 수입은 장군의 월급을 능가했다.’
 

지난 4일 일본 극우파들이 미국 지방신문에 실은 '위안부' 왜곡 광고

 

일일이 반박할 필요도 없을 정도로 허위사실로 가득 차 있다. 그들의 주장대로 위안부 모집은 ‘민간 브로커’들이 했다고 치자. 그러나 이 ‘민간 브로커’들은 총독부가 자신들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이들을 앞세워 추진했다는 사실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또 ‘직업적인 창녀들의 수입은 장군의 월급을 능가했다’는 말도 그렇다. 일제가 조선을 침략할 초기에 일본군 부대 옆에는 ‘유곽’이 더러 있었고 이곳에 ‘직업적 창녀’들이 들끓은 것도 사실이다. 다만 그 ‘직업적 창녀’들의 수입이 장군 월급을 능가했는지는 모르겠다.

문제는 위안부 피해자들이 ‘직업적 창녀’가 아니었다는 데서 이들의 주장은 거짓임이 금세 드러나고 만다. 위안부 피해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이들은 전부 강제로 끌려갔으며(혹은 속아서 끌려갔으며) 또 직업적으로 매춘행위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만약 위안부 출신 여성들이 매춘의 대가로 일본군 장군 월급을 능가할 정도로 큰돈을 벌었다면 그 여성들이 지금은 떵떵거리며 잘 살아야 하는 게 상식이다. 그러나 놀랍게도 위안부 피해자들은 자신의 몸 하나를 의탁할 공간마저 없이 가난과 고통 속에서 노년을 힘들게 보내고 있는 실정이다.

대체 일본 극우파들은 왜 이런 허무맹랑한 내용의 광고를 미국 신문에 실었을까? 아마 뉴욕 타임스퀘어에 나붙은 '위안부 광고' 때문이 아닐까 싶다. 뉴욕 한복판의 타임스스퀘어 대형 빌보드 광고판에는 가로와 세로 각각 15m 크기의 위안부 관련 광고가 붙어 있다.

 

가수 김장훈이 미국 뉴욕 멘허튼 소재 광고판에 내건 '위안부 사과 요구' 광고

‘기억하시나요?(DO YOU REMEMBER?)’라는 제목의 이 광고는 ‘한국 홍보’ 전문가인 성신여대 서경덕 교수와 가수 김장훈은 지난 10월 3일부터 이 광고를 시작했는데 12월 말까지 약 3개월간 진행될 예정이다. 이 광고는 일본군 위안부와 관련해 일본의 사과를 촉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광고에는 빌리 브란트 전 독일 총리의 사진을 배경으로 사용해 행인들의 눈길을 끌고 있다. 브란트 전 총리는 독일 정부의 과거사에 대한 반성의 뜻으로 폴란드 바르샤바의 유대인 위령탑을 방문해 무릎을 꿇고 사죄한 바 있다.

이를 빗대 광고는 “1971년, 브란트 총리가 폴란드에서 사죄함으로써 유럽 평화에 큰 기여를 했다. 2012년, 한국의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은 여전히 일본의 진심 어린 사죄를 기다리고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광고의 비용을 후원한 가수 김장훈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한일관계를 떠나 여성인권 이슈”라면서 “20만여 명의 여성을 성 노예로 짓밟고서도 사과하지 않는 일본의 모습을 전 세계에 폭로해 세계적인 여론을 환기시키고 싶었다”고 한 인터뷰에서 밝혔다.

이런 광고가 일본 극우파들에겐 몹시도 불편하고 또 눈에 거슬렸을 것이다. 그래서 방안을 찾던 중 이같은 무리수를 둔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워싱턴포스트>나 <뉴욕타임스> 같은 권위지 대신 뉴저지의 유력지 <스타레저(Star Ledger)>를 광고 게재 대상으로 택했는데 이는 나름의 전략으로 보인다.

우선 <스타레저>는 지역신문이지만 ‘위안부 기림비’가 건립된 뉴저지 북부 버겐카운티에서 많은 독자들을 확보하고 있다는 점이다. 만약 전국지에 광고를 게재할 경우 자칫 일본군 위안부의 존재를 모르는 대부분의 미국인들에게 홍보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문제의 광고는 ‘역사적 사실 위원회(the Committee for Histoical Facts)’는 일본 극우 집단에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단체에는 극우 언론인 사쿠라이 요시히코를 비롯해 아오야마 시게하루, 스기야마 고이치, 니시무라 고유. 후지오카 노부가스 등 정치평론가와 TV프로듀서, 작곡가, 교수 등으로 구성돼 있다.

이들은 문제의 광고에서 이른바 ‘세 가지 팩트’를 관련 문서와 신문기사 등을 곁들여 미국의 독자들을 오도하고 있으며 영화제목을 패러디한 ‘섹스 거짓말 그리고 위안부’라는 자극적인 제목의 유투브 동영상까지 안내하고 있다.
 

위안소 밖까지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는 일본군들

 

이들이 말하는 ‘첫 번째 팩트’는 위안부 모집은 민간 브로커들이 저지른 일이라는 것. 정작 일본군대는 이를 금지했다며 1938년 3월4일자 ‘일본군 2197문서’를 싣고 있다. 또 ‘두 번째 팩트’는 1939년 8월31일자 <동아일보> 기사를 들며 당시 일경은 부녀자 유괴범을 단속했다고 주장했다. 끝으로 ‘세 번째 팩트’는 위안부가 성노예(Sex Slave)가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 모두는 근거가 미약한 것들이다.

반면, 일제가 조선인 여성을 위안부로 강제로 끌고 갔다는 사실은 피해자들의 증언 말고도 관련자료가 무수히 많이 있다. 한 예로 1977년 일본 <마이니치신문>이 발간한 <1억인의 소화사(昭和史)>라는 제목의 책에는 ‘일본 육군이 설립한 위안소’라는 문구가 버젓이 쓰여 있다. 또 사진 속의 위안부 여성들을 두고 ‘대부분 조선에서 강제로 끌고 온 여성들’이라고 밝히고 있다.

지난 9월 7일 MBN이 단독입수해 보도한 ‘전쟁의 특수 현상과 그 대책’이라는 문서에 따르면 일제가 군인들 ‘위안’ 목적으로 위안소를 설치한 사실도 확인되고 있다. 이 문서는 1930년대 일본군 군의관 아사오 대위가 중국 상해에서 근무하면서 작성한 것으로, 일본 육군성에 보내는 청원서 형식으로 돼 있다.

이 문서에는 “출병자, 즉 군인의 성욕을 긴 시간 억제하면 중국 여성을 성폭행하게 되니” “중국에 빠른 시일 내에 위안부소를 개설해” “주요 목적인 성의 만족을 주고, 병사들의 사기를 올려야 한다.”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아사오 대위는 이 문서에서 원활한 전쟁 수행을 위해 일본군 장병을 위한 위안소 설립을 일본 군부에 공식 제안했다.

그간 관련 학계에서는 일본군에서 조직적으로 위안소를 설치한 시기를 만주사변(1931년) 이후로 보고 있는데 이 문서는 1935년에 작성돼 이같은 학계의 주장을 뒷받침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MBN은 “일각에서는 이 문서가 일본군이 공식적으로 위안소를 만들자고 요청한 최초의 문서라고 주장하고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한편, 이들의 망동은 최근 일본 정부의 대한정책과도 맥을 같이하고 있어 주목된다. 지난 5월 이후 일본은 정부와 민간 차원에서 위안부 이슈와 독도에 대해 공격적인 자세로 일관하고 있다. 독도영유권 논란과 관련해 일본은 국제사법재판소에 ‘단독 제소’ 방침을 이미 내부적으로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극우인사들은 구체적인 행동으로 나오고 있다. 주한일본대사관 앞 위안부 ‘소녀상’에 대한 ‘말뚝 테러’에 이어 ‘위안부 기림비’에 ‘다케시마는 일본 영토’라는 말뚝을 박고 또 맨해튼의 한국 총영사관 민원실 현판에 다케시마 스티커와 동일한 말뚝을 갖다 놓는 등 조직적인 테러를 자행하고 있다. 이번 광고 역시 그 연장선상에서 나왔다는 분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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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온 우주와 연결된 존재라는 성찰이 우리를 변화시킬 것"

강금실 변호사, "내가 온 우주와 연결된 존재라는 성찰이 우리를 변화시킬 것"

 

정치 에세이 <생명의 정치> 출간
"수평적 네트워크로의 정치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한 시대"

문양효숙 기자 | free_flying@catholicnews.co.kr

 

 

대통령선거가 40여일 앞으로 다가왔다. 두 야권 후보는 후보등록 전 단일화를 선언했다. 이런 정국에서 언론에서 주목하는 이가 있다. 참여정부에서 첫 여성 법무부장관을 지낸 강금실 변호사다. 2008년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며 정치일선에서 한걸음 물러나긴 했지만 참여정부 시절 함께 일한 문재인 후보와 가까운 거리에 있는 민주당 인사 일 뿐더러 안철수 후보 캠프에는 강금실 변호사의 친구들이 대거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그가 지난 10월 초, 그간의 고민을 녹여낸 책을 출간했다. 제목이 <생명의 정치>(2012, 로도스)다. 생명의 가치가 실종된 지난 몇 년을 반증하듯, ‘생명’이 민초들이 곳곳에서 외치는 익숙한 단어가 되어버렸음에도 불구하고 정치를 생명과 연관시키는 작업은 그리 익숙지 않다. 생명이 정치의 중심으로 들어와 본 적이 없는 가치이기 때문이리라. 2008년부터 가톨릭대학교 생명대학원에서 공부해 온 그가 구상한 ‘생명의 정치’란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일까. 일터인 법무법인 원에서 강금실 변호사를 만났다.

 

   
▲ 강금실 변호사가 자신의 사무실에서 생명과 권력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문양효숙 기자

 

생명, 여성을 중심에 둔 수평적 패러다임으로 전환해야

그는 “정치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기본적으로 정치는 ‘인간 중심’이다. 국민의 기본권, 인간의 존엄과 가치 등이 정치에서 다루는 가치다. 그런데 지난 몇 년간 이것만으로는 담아낼 수 없는 사회적 이슈들이 많아졌다. 4대강이 대표적인 예다. 생명이라는 가치를 중심에 놓고 정치를 고민해야 할 때다.”

강 변호사는 그의 저서에서 ‘권력’과 ‘생명’의 문제에 집중한다. “권력이란 국민이라고 하는 총체적인 공동체 구성원 전체에게 속하며 공동체 생명의 힘일 뿐이지, 그 누구도 권력을 가질 수 없다”고 확인하며 “대통령이 되려는 의지는 권력 의지가 아니라 철저하게 공익을 추구하겠다는 ‘공동선에 대한 의지’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또 촛불집회와 SNS 등을 통해 드러난 ‘생명체 각자의 다양한 창발성을 기반으로 한 유기적 공동체’를 통해 변화된 시대 흐름을 읽고 정치구조가 ‘수평적 네트워크’, ‘수평적 권력’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당조직이 분권, 네트워크, 아래로부터의 조직으로 기본원칙과 방향을 설정하고 변화를 위해 노력해 나가야 한다. 기존의 깃발아래 모이는 시스템, 리더와 군중의 시스템으로는 지금의 자율적이고 다양한 움직임을 담아낼 수 없다.”

그는 한편 여성의 문제에도 천착했다. 여성이 가진 생명에의 감수성에 주목하고 여성성을 바탕으로 한 민주적 모델로 ‘생협’을 언급하기도 했다. 강 변호사는 자신이 사회적으로 주류의 삶을 살았지만 비주류적 감성에 대한 균형을 지니게 된 것은 여성이라는 위치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사법연수생 시절 300명중 여성은 3명이었다. 1% 세대라고 말한다. 독재정권 시절 사법기관에서 일을 시작해 13년간 판사로 있었고 참여정부 시절 첫 여성 법무부 장관을 지낸 것도 컸다. 법무부 장관이 통일부, 외교부, 재경부와 함께 권력 4위의 요직인데 여성장관이 있었던 적이 없다. 이런 경험들이 나의 문제의식의 기반을 형성해왔다. 여성과 권력의 문제가 나의 화두일 수밖에 없다.”

여성성이 살아 숨 쉬는 민주주의를 꿈꾸는 그는 근래에 계속되는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의 ‘여성 대통령론’에 대해 적잖은 우려를 표현했다.

“<생명의 정치> 출판 기념회에 참석했던 심상정 진보정의당 대선 후보는 이를 두고 ‘여성에 대한 모독이며 역사에 대한 반역’이라고 말했다. 정확한 표현이다. 여성은 생물학적 여성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사회적 성인 젠더(gender)로, 공동체 속의 여성으로 접근해야 한다. 새누리당의 일사 분란한 지위명령체계를 보라. 소통이 부재하는 권위주의의 표상이다. 게다가 새누리당은 집권 40년간 벌여놓은 여성격차에 대해 책임 있는 자세를 취해야 한다. 2011년 세계경제포럼 발표에서 우리나라 여성 격차지수는 135개국 중 107위였다. 이는 박정희 정권으로부터 계속된 군사문화와 남성적 권력이 약자를 배제하고 억압해온 역사의 결과다.”

 

   
▲ 강금실 변호사. 그림과 문학을 좋아하는 그의 책장에는 다양한 분야의 책들이 자리 잡고 있다. ⓒ문양효숙 기자

 

권력에 대한 깊은 회의 속에서 권력으로부터 죽임당한 예수를 가슴으로 만나다

자신에게 요구되었던 사회적 역할을 인지하고 받아들이면서도 ‘인간 강금실’을 잃지 않도록 중심을 잡아주고 힘이 되어준 것은 신앙이다. 강 변호사는 2004년 법무부장관 시절 세례를 받고 이한택 주교(의정부교구)로부터 ‘에스더’라는 세례명을 받았다. 그는 세례를 받기 전에도 종교에 대해, 예수의 삶에 대한 지적 호기심이 많았다. 성경공부 모임에도 참석하고 신학 서적을 탐독하기도 했지만 전통적으로 불교집안이었던 까닭에 ‘그리스도교를 갖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는 영역의 일이었다. 그랬던 그가 법무부에 간 이후 마음이 힘들어졌다. 일상에서 오는 힘든 문제들도 많았지만 생명을 억압하고 인간을 괴롭히는 국가 권력의 정체, 한 인간이 권력 지향적이 되며 돌변하는 모습들 등에서 권력에 대한 극심한 회의에 빠졌다. 그때, 예수 그리스도의 삶이 가슴으로 들어왔다. 세속 권력으로부터 죽임을 받은 예수, 그러면서 ‘저들을 용서하소서’라고 했던 예수, 거기서부터 해답을 찾기 시작했다. 그는 “내게는 갈망이 있었고, 하느님의 이끄심이 있었다”고 말했다.

강 변호사는 2009년 생명대학원 재학시절 로마 이탈리아 성지순례를 다녀온 후, <오래된 영혼>(2011, 웅진지식하우스)이라는 제목의 기행문을 세상에 내 놓기도 했다. 기행문을 쓸 당시 그는 “바오로의 회심 때문에 너무 힘들었다”고 말했다. 그리스도인을 잡아들였던 권력자에서 하루아침에 복음의 사도로 돌아선 그의 회심을 받아들이기가 어려워 오랜 시간을 뒤척였다. 결국 해답을 찾지 못했고 책에도 쓸 수 없었다. 해답을 찾기 위해 그는 작년부터 혜화동 가톨릭대학교에서 백운철 신부로부터 신약입문과 공관복음 수업을 듣고 있다.

“바오로 사도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면서 그 분의 확고한 믿음을 내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듯하다. 어려움이 올 때 이 어려움의 원인이 무엇인가, 정체가 무엇인가를 고민하는 과정이 아니라 밀고 나가는, 그냥 믿는 굳건한 믿음 말이다. <생명의 정치>를 쓰면서 그런 믿음이 나에게 오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통합적 성찰을 통해 상처를 넘어 생명공동체로 향해야

그는 책에서 정치 패러다임의 변화와 함께 권력을 부정적으로 보는 개인들에 대해서도 ‘성찰’을 요구했다. 성찰은 “생명가진 존재의 본분”이며 “자기 성찰에 의해서만이 생명 공동체의 축제를 향해 나갈 수 있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그에게 성찰은 ‘우주와의 관계’속에서 나오는 총체적인 것이다.

“‘나라는 존재가 어디로부터 왔는가’를 물으면 과학적으로는 40억년 된 생명계로, 역사적으로는 부모의 부모를 거슬러 올라가는 삶의 궤적으로 올라간다. 성찰이란 것은 이렇게 과학적이고 역사적이며 또 종교적인, 복합적인 측면을 갖는다.”

그는 많은 이들이 어린 시절 상처로부터 영향을 받고 그것을 극복하며 살아가게 되는데 그 치유의 과정 또한 ‘성찰’이라고 말한다. 가족, 사회, 역사에 대한 통합적 성찰을 통해 자기 삶을 치유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성찰은 ‘자아의 확장’으로 연결된다. 내 인생이 나만의 인생이 아니라 가족과 사회와 지구와 나아가 온 우주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 ‘나’라는 고립되고 개별적인 존재가 아니라 확장된 우주적 자아로 내 개인의 삶과 세상을 바라보게 되고 그랬을 때 많은 것이 달라질 수 있다. 상처를 치유하는 능력은 연관된 삶에 대한 각성에서 온다고 할 수 있다.”

존재의 근원을 물으면 닿게 되는 것이 종교이며 공동체 속에서 구체적인 삶의 근원을 물으면 닿게 되는 것이 정치일지도 모르겠다. 종교인이며 정치에 대한 고민이 깊은 그에게 근원은 파편화되지 않고 연결되어 있으니 근원으로 물어나가면 이 둘이 하나로 만나는 것이 아니겠냐고 물었다. 강 변호사는 “근본적으로 인간의 삶은 모두 합쳐져야 한다”고 답한다.

“파편화되고 층층이 나눠진 차원이 아니다. 모두 통합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정치가 자꾸 잘못된 방향으로 가는 것은 분리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정치에 삶과 생명이 담겨야 정상적인 정치가 될 것이다. 일상 속 정치가 종교성을 포괄할 정도로 회복이 되어야 한다.”

그는 이런 고민을 담아 ‘생명의 정치’를 넘어서 ‘영성의 정치’를 말하고 싶다 했다. 인터뷰를 마치며 언제 만나도 마음 한 구석이 건드려지는 성경구절이 있는지 물었다. 그는 마태오 복음서 6장의 ‘하늘의 새들을 눈여겨 보아라, 들에 핀 나리꽃들이 어떻게 자라는지 지켜보아라’로 시작하는 말씀을 좋아한다고 했다.

“예전부터 좋았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걱정하지 말라는 말씀. 정치라는 게 온통 먹고 사는 문제 아닌가. ‘염려하지 말고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는 말씀, 늘 마음을 환기시킨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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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 재선'이 알려준 '한국 대선' 승리 비결

'오바마 재선'이 알려준 '한국 대선' 승리 비결
(서프라이즈 / 아이엠피터 / 2012-11-08)

 

 


미국 국민은 결국 버락 오바마의 재선에 손을 들어줬습니다. 현재까지 미국 대통령 선거 결과를 보면 (최종 결과는 현지 시각 11월 7일 오전에 발표) 오바마 대통령은 당선에 필요한 선거인단 수 270표를 넘어 303표를 획득해 재선에 성공했습니다.

올해 미국 대통령 선거는 공화당 롬니와 민주당 오바마의 치열한 접전으로 정치 전문가와 선거 전문가 모두 박빙의 승부를 예측했지만, 기대와 달리 싱겁게 끝나버렸습니다. 이번 오바마의 재선 승리의 요인을 살펴보면 불과 40여 일 앞둔 한국 대선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오바마의 재선을 통해 한국 대선이 생각해봐야 할 점들을 비교해봤습니다.

' 부자가 아닌 중산층과 서민을 선택한 오바마의 정책'

롬니와 오바마는 공화당과 민주당이라는 정당의 차이에 맞게 대선 공약도 분명한 차이가 있었습니다. 이 두 후보가 보여준 정책을 먼저 보겠습니다.
 

 

 


롬니와 오바마의 정책을 단적으로 말하면, '소수 부유층 VS 중산층과 서민을 위한 정책'이라는 점을 들 수 있습니다. 민주당은 1%의 부유층이 아니라 중산층과 서민층을 위한 정책을 내건 반면에, 공화당 롬니 후보는 부자 감세와 기업 법인세 인하 등 소수 계층을 위한 정책을 강조했습니다.

오바마는 중산층과 서민층에 대한 세제 지원과 보건의료 지원 등 복지 정책을 통해 경제위기로 힘들어진 중산층을 지원하는 정책을 내걸었습니다. 이를 위한 재원마련으로 부유층과 대기업에 대한 증세와 국방예산 감축 등의 조건을 내걸었습니다.

롬니는 공화당이 그동안 계속 주장했던 자유경제와 시장의 자율성을 강조하며, 감세와 규제 완화를 통한 기업의 경쟁력 강화 등을 정책으로 제시했습니다.
 

 

 


가장 큰 쟁점 중의 하나였던 부유층의 소득세율을 보면 오바마는 35%에서 39.6%로 인상하겠다고 했지만, 오히려 롬니는 35%인 소득세율을 28%로 인하하겠다고 했습니다. 결국, 조세 정책을 비교해보면 오바마는 소득 하위계층에게 유리했고, 롬니는 상위 소득자에게 유리했다고 분석됩니다.

사회보장에서도 두 후보는 뚜렷한 차이를 보였습니다. '건강보험개혁법'을 통해 누구나 기본적인 의료보장을 받게 되었음을 강조하면서 확대를 주장했던 오바마와 다르게 롬니는 '건강보험개혁법'을 주장하며 오히려 민영의료보험 확대를 강조했습니다.

민주당 오바마의 정책과 공화당 롬니 후보의 정책을 보면 마치 한국의 민주당과 새누리당을 보는 듯합니다. 물론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가 요새 좌클릭하는 정책을 내걸고 있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공화당의 전통적인 방향과 별로 다를 바가 없거나 다시 우클릭할 수 있다고 본다면, 왜 미국인들이 공화당보다 민주당을 선택했는지를 의미깊게 받아들여야 할 듯싶습니다.

' 미국 대선을 뒤흔들었던 슈퍼팩과 대선 광고'

2012년 미국 대선의 가장 큰 특징은 슈퍼팩(Super PAC:슈퍼 정치행동위원회)라는 '정치괴물'이었습니다. 기존에는 대선을 위한 선거자금 모금액이 연방선거법의 제한을 받았지만, 슈퍼팩은 무제한 모금이 가능했습니다.

원래 슈퍼팩은 특정후보와 직접 관계 없이 기업이나 노조 등의 독자적인 지출만 가능하지만, 교묘하게 법망을 피하면서 대부분 대선 후보들의 외곽조직으로 활동했습니다.

 

 

▲올해 초부터(2012년 2월) 슈퍼팩에서 최고의 자금을 지원받았던 공화당 롬니후보,출처:http://www.floatingpath.com

 

슈퍼팩의 자금이 어느 정도냐면 올해 미국 대선이 역대 가장 많은 60억 달러(약 6조5,200억 원)가 소요됐다고 하는데, 슈퍼팩 관련한 자금만 20억 달러에 달했던 것으로 분석됩니다.

이렇게 엄청난 슈퍼팩은 대부분 TV광고에 사용됐는데, 롬니의 측근들로 구성됐던 '우리의 미래 회복(Restore Our Future)'이라는 슈퍼팩은 롬니의 공화당 예비경선 때 상대진영 후보를 공격하기 위한 광고에만 무려 1400만 달러, 우리 돈 158억 원을 퍼붓기도 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처음에는 이 슈퍼팩을 허용한 대법원 판결을 '민주주의 적'이라고 비난했지만, 결국 자신을 지지하는 슈퍼팩 ‘미국 우선 행동(Priorities USA Action)’ 모금 운동을 돕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막대한 자금으로 TV 광고를 지원한 슈퍼팩 때문인지, 지난 6월 1일부터 방송과 케이블 TV에 나간 대선광고만 무려 91만5천 회를 넘었고, 이는 지난 2008년과 비교하면 44.5%나 증가한 것입니다.


TV에 지겹게 나온 대선광고 대부분은 네거티브 광고로 상대 진영을 공격하는 데 많은 힘을 쏟았습니다. 그런데 이 대선 광고를 보면 몇 가지 특징이 있었습니다.

 

 

 


롬니는 오바마의 경제 실패에 초점을 맞추어 그를 공격했고, 자신이 기업경영자 출신으로 미국 경제를 살리겠다는 경제 성장 광고를 무차별적으로 쏟아냈습니다. 그러나 오바마는 롬니가 오히려 부자와 대재벌만을 위한 정책으로 우리의 미래를 망칠 것이라는 형태의 광고를 연령,인종,직업 등의 대상을 달리한 맞춤형 광고로 내보냈습니다.
 


이번 대선 광고에서 가장 롬니를 괴롭혔던 광고는 오바마를 지지하는 '아메리칸 브리지(American Bridge)'가 내보냈던 '롬노폴리(Romnopoly)'라는 제목의 광고였습니다. 롬니와 모노폴리 게임을 합성한 롬노폴리는 롬니 때문에 해고됐던 GST 스틸의 전직 근로자를 출연시키면서 롬니의 경제 원칙은 중산층이 아닌 백만장자나 억만장자를 위한 것이라는 광고를 내보냈습니다.

사실 전반적으로 미국 대선광고는 막대한 자금을 쏟은 만큼의 효과를 봤다고는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미디어에 익숙해진 시대의 흐름에 맞추어 이런 동영상 광고는 쉽고 빠르게 유권자의 인식을 전환할 수 있기에 한국 대선에도 눈여겨볼만합니다.

특히 경제를 살리겠다고 나섰던 롬니의 지난 행적을 통해 중산층이나 서민을 위한 정책이 아니라는 광고는, 경제에 실패했던 오바마의 지지율을 떨어뜨리기보다 오히려 롬니보다는 오바마가 더 낫다는 믿음을 주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한국 대선에도 자신의 약점이나 상대의 강점을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따라 유권자의 표심이 바뀔 수 있다고 봅니다.

' 최고의 승부수는 역시 TV토론'

미국 대선의 가장 큰 승부수는 TV토론입니다. 이번 미국 대선에서 TV토론은 3차례 열렸는데, 이 TV 토론의 승자는 2:1로 오바마가가 승리했다고 봅니다. 첫 번째 토론의 승자는 롬니였습니다.

 

 


롬니 후보는 1차 토론에서 오바마 대통령의 경제 실패를 공격했고, 이런 그의 공세에 많은 미국 시청자들은 롬니 후보가 잘했다는 의견이 67%, 오바마 대통령 27%로 상당한 격차를 보였습니다. 그러나 이후 열린 2차 TV토론에서는 접전을 보였고, 3차 TV토론에서는 오바마 승리로 바뀌었습니다.

2차 TV토론에서 롬니가 실패한 가장 큰 이유는 오바마의 질문에 말을 더듬었던 그의 표정이었고, 3차 TV토론에서는 '러시아가 적'이라고 말한 롬니의 과거 발언을 공격하면서 보였던 오바마의 노련함 때문이었습니다.
 

 

▲CBS 앵커 밥 시퍼 기자의 사회로 열렸던 3차 TV토론

 

미국 유권자, 특히 남성들은 폿볼경기나 프로야구 등 스포츠를 좋아합니다. 그래서 스포츠 관련 프로그램의 시청률은 항상 높은데, 이번 미국 대선 TV토론 시청률은 이런 스포츠 프로그램 시청률을 훌쩍 넘었습니다. 3차까지 진행된 TV토론을 시청한 미국인만 총 19200만 명(1차 6720만명,2차 6560만명,3차 5920만명)이었습니다.

이처럼 미국 유권자들은 TV토론을 통해 후보들을 평가하기도 하면서 투표를 어떻게 할 것인가 결정하기도 합니다. 물론 TV토론 이전에 지지 후보를 선택한 경우도 많지만, 부동표는 이런 TV토론을 통해 표심이 바뀌는 경향도 있습니다.
미국은 대선 TV토론이 온 국민의 관심을 집중시키는 하나의 중요한 도구가 되고 있지만, 한국은 대선관련 TV토론회를 여태껏 한 번도 보지 못했습니다.

[정치] - 박근혜는 무엇이 두려워 '대선 TV토론' 피하는 건가

피터는 야권단일화 과정부터 TV토론회가 열려야 한다고 봅니다. 이 토론회에 문재인,안철수 후보가 참석해서 그들의 가치관과 철학,정책을 철저하게 검증받고 토론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것은 단순히 두 사람을 비교하는 일을 떠나, 국민의 관심과 기대를 모을 수 있고, 토론회가 국민의 알 권리와 선택할 권리 모두 충족시킬 기회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TV토론은 몇 번을 강조해도 중요하리만큼 하루빨리 대선 후보들이 참여해서 국민 앞에 그들을 보여줘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단순히 TV토론을 나오는 것보다, 각 진영에서는 노련함과 신뢰를 보여줄 수 있는 토론을 준비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오히려 TV토론을 통해 그동안 유지해온 지지율을 모두 잃을 수도 있는 양날의 칼날과도 같다고 봅니다.
 

 

 


미국 대선을 통해 한국 대선은 어떤 방향으로 가야 승리할지에 대한 예상을 해보자면, 가장 큰 화두는 중산층과 서민을 중심으로 한 보편적 복지의 확대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미국 대선에서 오바마의 경제 실패에 관한 책임도 제기됐지만, 롬니가 실패했던 가장 큰 이유는 재벌과 부자 중심의 경제 정책을 유권자들이 더 싫어했다는 점을 손꼽을 수 있습니다. 시대적 흐름은 성공보다는 최소한 내가 일한 만큼의 복지 혜택을 통해 기본적인 권리를 누리겠다는 의식입니다. 이런 면을 새누리당도 인식해서인지 연일 '경제민주화'를 내세우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한국 대선에도 TV광고는 아주 중요한 승부수이기도 합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준비된 대통령'이라는 광고로, 노무현 대통령은 '노무현의 눈물' 이라는 광고로, 이명박 대통령은 '경제 대통령'이라는 광고로 대선에서 효과를 봤습니다.
 

18대 대선에서 TV광고가 어떻게 나올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전 광고보다는 독특한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후보의 TV광고가 유리하리라 봅니다. 노골적인 미국의 TV광고보다는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통해 은연중에 자신의 장점을 내세우는 광고가 나와야지, 기존 TV광고처럼 나온다면 시청자의 외면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대선을 분석하다가 든 생각 중의 하나는, 많은 TV 광고보다 하나의 사진 한 장을 통해 많은 유권자의 마음을 움직일 수도 있다는 점입니다.

 

▲플로리다를 방문한 롬니와 허리캐인 샌디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뉴저지를 방문한 오바마,출처:AP

 


오바마는 대선 직전 미국을 강타한 허리케인 샌디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뉴저지주를 방문해 피해를 입은 상점주인을 안아주었고, 이 사진이 언론에 보도됐습니다.당시 플로리다에서 유세하면서 샌디피해자를 위한 성금기부를 했던 롬니와 비교되는 이 사진으로 오바마는 대선 유세를 하는 것보다 훨씬 효과적이며 강렬한 인상을 미국 유권자에게 심어주었습니다.

이런 미국 대선의 모습을 생각하며, 한 편의 사진 영상을 만들어 봤습니다.
 

 

 


미국 대선을 보면 엄청난 자금도 세련된 TV광고도 유권자의 마음을 흔들지는 않았다고 봅니다. 국민 대다수를 위한 정책과 고통받는 국민을 따뜻하게 안아주었던 모습이 오히려 국민을 사로잡았습니다.

한국 대선 후보들이 미국 대선을 통해 깨달아야 할 점은 과거 그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솔직히 보여주며, 한결같고 진실한 마음으로 국민을 대할 때에만 유권자들이 그들을 지지한다는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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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11개 단 이 사람, 인생 제2막에서 던진 돌직구

[정치경영연구소의 '自由人']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상임이사

한림대국제대학교대학원 정치경영연구소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2-11-09 오전 8:00:01

 

소설가가 되겠다는 꿈을 품고 서울에 상경해 열심히 소설을 써대던 한 청년이 있었다. 그런데 8·90년대란 시대는 그가 원고지와 씨름을 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았다.

"1991년 4월 20일에 강경대가 죽어 두 달 동안을 영안실을 돌아다녔다. 시신탈취를 막는 싸움판이 벌어지고, 울고불고 그때 진짜 미치겠더라. 당시 '재야의 장의사'라고 불렸다.(웃음) 딱 보면 이게 얼마짜리 장례인지 나왔다. 내가 정말 장의사인가 하는 생각도 했다.(웃음)"

늘 '허허하하' 웃는 그이지만 사실은 '서로 창자가 이어져 있다'고 할 만큼 각별하던 동생 박래전을 먼저 보냈던 아픔이 있다. "장례 치를 때까지 실감이 안 났다. 나중에 장례를 치르고 나니까 환상을 보기도 하고 환청 현상도 겪었다. 한동안은 하던 일을 아무것도 못하겠더라. 동생의 죽음을 계기로 해서 유가협(민주화운동 유가족협의회)에 가게 되었고, 그것이 인연이 되어 인권운동을 하게 되었다"라고 한다. 동생을 잃은 아픔이 그로 지금도 고통의 현장에 더 깊게, 더 빨리 스며들게 하는 건 아닐까.

"대선후보들이 이야기하는 정책, 비전 등의 상당부분이 인권의 언어로 얘기할 수 있고 인권의 논리로 설명할 수 있는 것들임에도 불구하고 대선주자들이 인권을 내세우면 우리 사회의 깔려있는 보수층에서 싫은 기색을 하고 그러면 표가 날아간다. 그렇기 때문에 가급적이면 인권을 앞세우려 하지 않는다"며 속상해한다. 그래서일까 그가 최근 김미화 씨와 함께 '인권의 눈'으로 본 대선 전망서인 <대선 독해 매뉴얼>(클 펴냄)를 내놓았다. "단지 잘 살겠다는 멍청한 구호에 속지 말고 경제적 불평등의 문제 때문에 얼마나 사람이 많이 죽는지 제대로 알자. 경제문제도 인권의 관점으로 접근해서 풀어야 한다"는 그의 이야기가 우리 사회에 묵직한 돌직구를 날려주었으면 참 좋겠다.

"운동권 진영에서 가장 큰 문제가 정파적인 문제다. 이런 것들이 자꾸 운동을 왜곡시키고 대중들의 참여를 막고 그들의 자발성이 분출되는 것을 막는 것 같다. 정파가 종파화 되는 것을 경계해야 하는데 지금은 그런 식으로 가면서 우리가 갖고 있는 역량을 결집시키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라며 대중과 유리된 채 정파 이익 중심의 운동을 전개하는 운동권의 모습에 안타까움을 토로한다.

"내가 용산철거민 참사 범국민대책위원회(용산범대위) 공동집행위원장을 맡게 된 것도 정파적인 문제 때문이었다. 운동권 내 여러 정파가 서로가 견제하는 상태에서 나는 그동안 인권운동가의 삶을 살아오면서 두루두루 다 친하고 실용적이고 실사구시적이라 일은 일로써 얘기하자고 하면서 용산 사회를 맡게 된 것이다.(웃음) 마이크를 잡는 순간 '이건 구속이구나'라고 생각했고 예상대로 갔다(웃음)"라며 허허 웃는다.

"나는 지금 인생의 제2막을 살고 있다. 소설가가 되려는 꿈을 갖고 대학에 들어가서 소설을 썼던 것까지가 제1막이다. 그다음은 원치 않는 운동권이 되어 운동을 사는 게 제2막이다. 2막을 60살까지 살려고 한다. 제3막의 삶은 1막에서 못 이룬 소설가의 꿈을 이루는 것이다."

운동 정파들 간에 대립으로 인해 문제를 조정해낼 이가 없을 때 '이건 구속감이구나'를 알면서도 마이크를 잡은 그. "인권센터를 통해, 대리하는 운동이 아니라 피해자가 스스로 주체로 서게 하는 인권운동과 사람들이 차분히 인권에 대해서 공부하면서 자기의 권리를 찾아가는 길을 밟아갈 수 있는 대중적 기반의 모델을 만들어 가고 싶다"는 그. 그가 바라는 인권센터가 속히 건립되었으면, 그래서 인권의 인프라가 우리 사회 곳곳에 세워졌으면. 그래서 그를 집회 장소가 아닌 소설가 박래군 책 사인회에서 날이 속히 왔으면.



▲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상임이사 ⓒ프레시안(최형락)


별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지금까지 11개를 다신 걸로 알고 있는데 이후 추가된 것은 없나(웃음)

추가될 가능성은 앞으로 있다. 희망버스 재판이 중단됐는데 이게 확정되면 어떻게 될지 모르고 이번에 생명평화대행진도 잘 되면 또 별을 달수도 있다.(웃음)

지금까지 수감 생활 중 가장 인상 깊었던 때를 꼽는다면?

스물여섯 살 때 들어갔을 때 감옥에서 겪을 수 있는 것은 다 겪어봤다. 나는 원래 여리고 소심한 사람이긴 하지만 감옥에서 있을 때 항상 싸우는 일을 많이 했고 그래서 걸핏하면
보안과 지하실에 끌려가서 맞고 묶이고 징벌방에도 갔다. 그 속에서 투쟁도 배우고 민중의 삶도 배웠다. 그때 감옥이 정치 대학이라는 것을 실감했다. 87년 4월 13일 영등포 교도소에서 형이 확정되어 대전교도소로 이감되었는데, 대전교도소는 일반수들도 꼴통들만 가고 양심수들 중에서도 문제가 많은 사람들만 골라서 보내는 곳으로 유명하다. 수감되었을 당시, 직선제 개헌을 번복하는 4.13 호헌조치까지 있었으니 이제 죽었구나 생각했다. 5월에 소 내에서 교도관들하고 싸움이 있었다. 5.18 단식 농성을 3일 하고 난 뒤 기운도 없는데 나를 붙잡아 돼지묶음이라고 해서 다리랑 손을 묶어 독방에 갖다 집어넣었다. 그동안 수없이 수갑도 차보고 묶이기도 했는데, 대전교도소는 정말 질이 달랐다. 못 견디겠더라. 그래도 자존심이 있지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혀를 깨물었다.

죽겠다고 혀를 깨문 것인가?

당연히 죽겠다고는 안했다.(웃음) 혀를 깨물어 피 좀 흘리면 풀어주겠지 하는 기대감에 그랬다.(웃음) 그런데 혀가 안 끊어지는 거다.(웃음) 그래서 혀를 내밀고 턱을
바닥에 찧으니까 피가 나왔다. 피를 고아서 벽에 피를 뱉어 고함을 지르니 교도관들이 들어왔는데 풀어주지는 않고 소리 지른다고 방성구(防聲具, 재갈)를 물리고 포승줄을 더 쪼였다.(웃음) 몇 시간을 있다가 겨우 풀려나 간 곳이 당시 비전향 장기수들을 수용하고 있었던 특별사동 6동이었는데, 장기수들을 전향 공작하기 위해 일부만 따로 관리하는 '육사하'라는 곳이었다. 거기는 형량이 무기, 10년, 7년 등의 국가보안법 사범들이 있는 곳이었는데, 나는 집시법에 2년형을 받고 거기에 수감된 것이다. 두들겨 맞고 제대로 치료도 못 받으니 고름도 끼고 세게 묶인 곳에는 물집 잡히고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그런데 나보다 훨씬 더 심한, 죽음의 문턱까지 가는 고문을 당했던 사람들이 도리어 나를 위로해주고 돌봐주는데 너무나 위로가 되었다.

그때 나는 말하자면 입에 혁명을 달고 사는 기고만장한 혁명가였다. 교도소 투쟁에서도 꺾이지 않았던 승승장구했던 투쟁의 경험을 가진 투사 말이다. 그런데 이 사람들을 보며 내가 지금껏 얼마나 교만하고 오만했는지 알게 되었다. 그 사람들은 새벽 4시든 5시든 자기들이 정해놓은 시간이 되면 딱 일어나서 냉수마찰하고 걸레질하고 명상하고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생활했다. 사람들을 대함에 있어서도 정말로 서로를 존중하는 것이 느껴졌다. 그때 내가 20대였으니 한참 아래인데도 불구하고 50대, 60대인 분들이 나에게도 꼭 '박 선생'이라고 존대했다. 운동한다고 하면서 하수로 살아가는 나의 모습이 거울처럼
비치면서 운동가가 겸허해야지, 자기를 내세우면 안 된다는 것들을 그때 알게 되었다. 그런데 그때 반성을 하지 말았어야 했다. 그러고 나와서 지금 이렇게 사는 게 아닌가.(웃음) 나는 13개월 살다가 6월 항쟁 가석방으로 나왔는데 그 사람들은 거기에서 20년, 40년을 살면서 변혁에 대한 신념들을 꺾지 않고 사는 모습이 또 새롭게 운동가의 삶을 살도록 만들어 주었다.

운동을 하면서 힘들어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은 없었나?

운동만 30년 동안 했었는데 왜 없었겠나. 세 번 정도 고비가 있었는데 공통적으로 모두 사람이 싫어졌을 때이다. 사람 때문에 너무나 상처를 입었을 때는 정말 운동을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든다. 나의 진심이 오해받는 부분이 있으면 풀면 되는데 이것이 풀리지 않고 저쪽에서 의도를 가지고 밀어붙여 사람들과의 관계를 끊고 들어올 때는 정말 미치겠더라. 그럴 때면 친한 놈 하나 불러서 계속 술 마신다.(웃음) 그러다가 다른 일 하다 보면 잊고 그러면서 살아온 것이다. 사람 때문에 힘들고 아프고 또 사람 때문에 즐겁고 보람되는 것이 운동인 것 같다.(웃음) 내 경우에는 소심해서 이건 아니다 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다음부터는 어떻게 해서든 피하든지 안 섞이려고 한다. 말하는 것 자체가 기분 나쁘니까.(웃음) 그렇지만 대개는 폭넓게 사람들을 만나고 원만한 관계를 만들려고 한다.


그런 힘든 일을 만날 때도 결국 운동을 포기하지 않는 힘은 무엇인가?

대부분은 사람들은 자기의 어려운 문제를 가지고 내게 온다. 유가협 시절에는 수많은 죽음의 문제, 고문의 문제들이 내게 찾아왔다. 20대 말, 30대 초반에 내가 봤던 시체와
사진만 해도 꽤 많다. 맨 처음에는 끔찍해서 못 보겠던 것이 나중에는 시간 없으니까 사진을 보면서 밥을 먹기도 했다.(웃음) 경찰이나 정부에 의해 고문당했던 사람들의 얘기를 듣다 보면 그 사람 일이 더 이상 그 사람 일이 아니라 내 일이 된다. '아이씨~ 이런 것을 왜 그냥 놔두지? 이런 것을 외면하고 내가 어떻게 뭘 하지?' 라는 생각이 들면서 그 사람보다 내가 더 화가 난다. 특히 그 문제가 착하고 좋은 사람들의 문제라면 더 그렇다. 대추리 사람들하고 지금도 만나는데 사심 없이 통하니까 그 사람의 문제가 내 문제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엄청 피곤하게 산다.(웃음) 하지만 이렇게 살다 보면 내가 직접 경험해보지 못한 세계를 배우는 때가 많다. 다른 삶을 배워가는 것도 좋고 사람들 자체가 좋으니까 이 운동을 계속하는 거다. 그러면서 사람들에게 받는 힘도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박래군의 삶을 생각하면 동생 박래전 열사의 죽음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다. 박래전이 독재타도를 외치며 분신을 했는데, 민주화운동을 하며 많은 열사들의 장례를 함께 치러왔겠지만 막상 동생의 장례를 치를 줄은 몰랐을 것 같다. '서로 창자가 이어져 있다'고 할 만큼 각별한 사이였다고 들었는데 동생의 죽음이 지금의 박래군이 있게 한 것인가?

막상 내 일이 되니까 정신을 못 차리고 장례치를 때까지 실감이 안 났다. 나중에 장례를 치르고 나니까 환상을 보기도 하고 환청 현상도 겪었다. 동생이 키가 컸는데 비슷한 애들을 보면 동생이 보이는 것이다. 분명 내 동생이 "형!"하고 부르는 것 같은데 돌아보면 아니었다. 한동안은 하던 일을 아무것도 못하겠더라. 그러다가 이소선 어머니가 유가협에 나오라고 해서 한 번씩 가서 도와주고 하다 보니까 어머니 아버지들하고 못 쓸 정이 들어 버린 거다.(웃음) 특히 이소선 어머니는 거리를 뒀어야 했는데.(웃음) 사실 유가협에 안 들어갔으면 뭐가 됐을지 모르겠다. 노동운동을 하고 싶었으니까 지금쯤 민주노총에서 뭘 하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동생의 죽음을 계기로 해서 유가협에 가게 되었고, 그것이 인연이 되어 인권운동을 하게 되었다. 후회하는 것은 아니지만 유가족이 안 됐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은 해본다.

동생을 잃었던 경험이 있기에 사람들의 아픔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었나?

그런 것이 있다. 큰 아픔을 겪은 사람일수록 폐쇄적이게 된다. 유가족들은 대중들에게는 말하지 못하는 것을 자기와 비슷한 아픔을 겪은 사람한테는 가슴을 열고 말한다. 동생을 잃은 아픔으로 인해 공감능력이 커진 탓도 있지만 사실은 같은 경험을 공유한 동질감이 서로에게 있는 것이다.

(故 박래전 열사(당시 숭실대 인문대 학생회장)는 1988년 6월 4일 "광주는 살아 있다", "청년학도여 역사가 부른다. 군사파쇼 타도하자"를 외치며 숭실대 학생회관 옥상에서 분신자살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이 정권을 이어 받은 지 3개월, 민주적 정권교체라고는 하지만 전두환 군사정권이 노태우에게 사실상 권력을 그대로 위임했다. 게다가 87년 6월 항쟁이 제대로 평가 받지 못한 채 나라는 88올림픽 준비로 분주했다. 박 열사의 장례는 '민중해방열사 민주국민장'으로 치러졌으며 재야인사와 학생, 시민 등 4000여 명이 참석했다. 장례식 후 학생들은 '반민중적 올림픽 결사반대'를 외치며 산발적인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페이스북에 올라온 일상을 보면 정말 하루가 분 단위로 나뉘어 있는 것 같다. 그렇게 사람들의 필요를 위해 계속 뛰어다니다 보면 스스로 고갈된다고 느끼는 순간은 없나?

사람들이 요구하는 대로 사는 것 같지는 않다. 그렇게 활동하면 오래 못 간다. 운동도 결국 사람이 하는 것인데 만약 주체성이 없으면 재미도 없다. 물론 필요에 나를 맞추는 경우도 있지만 같이 기획하고 그 가운데 나의 주도성을 인정받기도 한다. 그리고 때로는 내가 운동을 요구하기도 한다.

활동하는 모습을 보면 현장에 스며드는 것 같다. 지치지 않으려면 스며들되 때로는 쿨함도 유지해야 할 것 같은데 어떤가?

쿨 하지는 못하다.(웃음) 사람들 앞에서는 잘 안 우는데 대추리, 용산 때는 뒤에서 많이 울었다. 마치 내가 대추리 주민이고, 용산에서 같이 장사했던 사람들처럼 말이다. 그리고 현장에 잘 스며드는 이유가 내 외모 덕분이다. 편한 동네 아저씨처럼 생겨서 동네 사람들이 날 형, 동생으로 부르며 편해한다. 그래서 먼저 만난 자기들보다 더 빨리 친해진다며 활동가들이 늘 부러워한다.(웃음)

운동을 하다 보면 내가 주인공이라는 생각을 하기 쉽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나는 보조적인 역할을 하는 거지 운동의 주체는 당사자들이 돼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나중의 성과도 그 사람들이 가져가는 게 맞고 패배도 그들의 질 수 있어야 한다. 싸움의 결과가 잘 되든 안 되든 우리는 또 다른 현장으로 가지만 그 사람들은 남아서 이 문제를 평생 안고 산다. 그렇기 때문에 활동가들이 내가 이 싸움을 이겨야 하고 내 몫이라고 생각하는 교만을 버려야 한다. 이 부분은 문정현 신부님께 많이 배웠다.

어찌 보면 용산참사 때 신부님을 내가 끌어들인 꼴이었는데 도중에 우리 상황실 쪽과 사제단이 의견을 달리할 때가 많았다. 재판에 어떻게 임할 것인가 하는 것에 대해서 신부님 쪽은 전면 거부였고 우리는 진실규명을 위해서라도 재판과정을 밟아야 한다고 했다. 장례 협상할 때도 우리는 장례협상을 빨리해서 장례를 치러야 한다는 입장이었고 신부님들은 지방자치 선거까지 가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서로 상당히 평행선을 달린 상태에서 감정적으로 좋지 않았다. 실제로 신부님이 내가 명동성당으로 수배생활 하고 있을 때 잘 안 찾아오셨다. 그런데 이 과정을 푸는 과정에서 신부님께서 "이 투쟁의 주체는 유가족이고 범대위다. 그들이 하는 것에 우리가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것 자체가 잘못이다. 박래군이 나와 의견은 다르지만 동지로서 존중한다"라고 하시는 거다. 이렇게 말씀하시면서도 신부님께서 얼마나 속 쓰려 하시는지.(웃음) 그래도 이렇게 자기주장을 포기하시는 분이 바로 문정현 신부님이다.

인권 문제가 발행한 현장에서 운동가들의 주장이 이해당사자들이 당면한 과제를 풀어가는 것보다 더 중요하게 여겨질 때도 있는 것 같다.

운동권 진영에서 가장 큰 문제가 정파적인 문제다. 내가 용산범대위 공동집행위원장을 맡게 된 것도 정파적인 문제 때문이었다. 운동권 내 여러 정파가 서로가 견제하는 상태에서 나는 그동안 인권운동가의 삶을 살아오면서 두루두루 다 친하고 실용적이고 실사구시적이라 일은 일로써 얘기하자고 하면서 용산 사회를 맡게 된 것이다.(웃음) 마이크를 잡는 순간 '이건 구속이구나'라고 생각했고 예상대로 갔다.(웃음) 정파가 없어져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문제는 그것이 사람들의 시야를 가둬 두기 때문이다. 자신들이 유리한 대로 끌고 가려고 하고 이런 것들이 자꾸 운동을 왜곡시키고 대중들의 참여를 막고 그들의 자발성이 분출되는 것을 막는 것 같다. 정파가 종파화 되는 것을 경계해야 하는데 지금은 그런 식으로 가면서 우리가 갖고 있는 역량을 결집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인권운동하면서 나도 모르게 어느 정파에 속해있기도 했는데 그게 참 별 볼일 없다는 생각을 했다. 예를 들어 유가협에서 장례를 치르는데 NL열사면 내가 NL이 아니라고 해서 안 갈 것인가? 그렇지 않은 거다. 그 죽음 앞에서 내 입장에서 다르다고 하더라도 가야 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정파적인 것을 내려놓자고 한 것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진보적 인권운동론을 주창하는 사람이다. 인권을 가지고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기존에 우리 사회에 들어와 있는 주류 인권운동과는 다른 결의 인권운동을 '인권운동사랑방'을 통해 개척해 왔다고 생각하는데 내년이 어느새 '인권운동사랑방'이 20년이 된다.

유가협에서 활동비 15만 원을 받고 활동을 시작했다고 들었다. 정말 적은 돈이었는데 생활을 어떻게 했나?

1991년 3월 초에 정말 생계대책 없이 결혼을 했다. 결혼하고 한 달 좀 있어 91년 4월 20일에 강경대가 죽어 두 달 동안을 영안실을 돌아다녔다. 시신탈취를 막는 싸움판이 벌어지고, 울고불고하는 영안실에서 신혼기간 대부분을 살았다. 그 때 진짜 미치겠더라. 당시 '재야의 장의사'라고 불렸다.(웃음) 딱 보면 이게 얼마짜리 장례인지 나왔다. 내가 정말 장의사인가 하는 생각도 했다.(웃음) 그렇게 몇 달 후에 집에 들어가니까 아내가 결혼 축의금으로 들어온 돈도 다 쓰고 이제는 돈이 하나도 없다고 말하며 울고 있었다. 그런데 내가 정말 무책임하게 "어쩌느냐. 그냥 되는대로 살자" 그랬다. 사실 아내가 많이 고생했다. 아내가 자기는 운동을 접고 돈을 벌 테니까 나더러 운동을 하라고 했다. 정말 고마웠다.

마지막까지 인권운동사랑방에서의 활동비는 36만 원이었고 나머지는 원고를 써서 돈을 벌었다. 정말 원고 기계였다.(웃음) 그렇게 해야지만 교통비랑 최소 후배들을 만나면 낼 술값을 벌 수 있었다.(웃음) 아내가 올해 7월 달까지 15년 동안 동네에서 초등학교 애들 상대로 글쓰기 학원을 한 덕분에 여태껏 살아왔다. 정말 조강지처다.(웃음) 어려운 구조에서 생활을 책임져주고 지지해주고 그러니까 우리 아이들도 나를 지지해준다. 그러니 나 혼자 운동을 한 것이 아닌 것이다. 가족에게 참 고맙다.

가족이 지지해주고 밀어주지 않았으면 활동하기가 편치 않았을 텐데. 아이들은 어떤가?

사실 감옥에 가고 수배생활을 할 때 아이들 걱정이 됐다. 그런데 아이들이 아빠 하는 일에 굉장히 지지해주고 박수를 보내준다. 대추리 때 아내가 탄원서 쓸 때 우리 큰 딸은 아빠가 잘못한 거 없으니까 판사한테 비굴하게 굴지 말고 당당하게 쓰라고 했단다. 용산참사 때문에 수감되었을 때는 아빠 면회 간다고 (학교를) 땡땡이도 치고 그랬단다.(웃음) 애들이 중학교 때까지는 "아휴, 인권운동가라고 하면 애들이 뭘 알아야지. 설명하기가 복잡해"라며 나를 회사원이라고 그러더니 고등학교에 들어가서는 우리 아빠가 인권운동가라고 하고 다닌다. 그중에서 좋은 담임을 만나면 내 이름 정도는 아는 사람을 만나기도 한단다.(웃음)

엄중하고 무거운 시대의 과제에 늘 반응하며 살아왔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낭만이 있고, 아름다운 추억들도 있었을 것 같다. 가장 행복했던 순간들을 꼽는다면?

우리는 참 불행한 시대에 살았다. 그 시절은 내 행복 찾으면 미안한, 대학생인 것 자체가 죄송스러운 그런 때였다. 광주에서 사람을 죽이고 전두환이 집권했고 학교 강의실, 도서관까지 경찰이 장악하고 있는 상태에서 도대체 행복하게 산다고 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거기에 운동을 한다고 하면 감시가 따라붙으니 한시도 긴장을 늦추면 안 되었다. 그래서 운동권 내에서는 연애금지였다.(웃음) 나중에는 뒷구멍으로는 다 했지만 말이다.(웃음)

ⓒ프레시안(최형락)
내 청춘은 그런 중에서도 되게 더럽다.(웃음) 소설가가 되겠다는 꿈을 가지고 대학에 들어갔기 때문에 1학년 때는 학생운동 이런 것은 일절 무시하고 소설 쓰고 술만 마셨다.(웃음) 그때가 참 행복했던 것 같다. 그런데 악마의 손길에 의해(웃음) 운동권이 되었고 그 뒤로는 정말 치열하게 살았다. 한 1년 동안 학생운동을 하다가 이제는 재밌게 운동하나 보다 하다가 강제징집을 당했고, 일주일 동안 서대문경찰서에서 두들겨 맞고 그날로 강원도 양구에 있는 훈련소 가서 또 두들겨 맞았다. 맷집이 약했으면 벌써 죽었을 것이다.(웃음)

자대배치를 받았는데 거기에서도 엄청 맞았다. 군대라는 곳이 아무리 사회에서 잘난 놈이라고 해도 이등병 배지 달고 있으면 후줄근해 보이는데 거기다가 훈련소에서 새까맣게 타서 왔으니, 내가 얼마나 우습게 보였겠는가. 고참이 사회에서 뭐하다 왔느냐고 해서 솔직하게 대학 다니다 왔다니까 무슨 농사짓다 온 촌놈처럼 생겨서 거짓말한다고 엄청 때리더라.(웃음) 거기다 연세대학교 나왔다고 하니까 또 때리더라.(웃음) 그렇게 억울하게 두들겨 맞았다.(웃음) 그런 후에 대변을 누기 위해 화장실에 가서 바지를 끌어내리는데 팬티가 안 내려가더라. 엉덩이가 터져서 눌어붙은 것이었다. 그것을 끌어내리면서 그 안에서 진짜 서럽게 울었다. 그때 외모차별 당한 게 한이 되어 그 한으로 인권운동을 하게 되었나 생각하곤 한다.(웃음)

아니다. 친근하고 귀엽게 생기셨다.(웃음)

옛날에는 촌스럽기가 더했다.(웃음) 노동운동할 때 위장취업을 하려면 사람들이 노동자 티가 나게 변장을 해야 하는데 나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웃음) 시골에서 일하다가 왔다고 하면 바로 통과였다.(웃음) 86년 인천 5.3항쟁 때는 경찰의 경비가 굉장히 삼엄했는데 저 안에 화염병을 반입해야 했다. 그런데 나더러 엿장수로 위장해서 리어카(손수레)에 화염병을 잔뜩 싣고 끌고 들어가라는 거다.(웃음) 경찰이 처음 저지선을 통과할 때는 나를 의심 없이 보냈다가 한 5미터 정도 갔을 때 "저거 뭐야? 뒤져봐!" 그러더라.(웃음) 그때 내 동지들이 뛰어 나와서 경찰을 가로막고 나는 리어카를 끌고 들어가고 그랬다.(웃음). 5.3 동의대 사태(1989년 5월 입시부정에 항의하는 부산 동의대 학생들이 학내로 진입한 전투경찰을 감금했다. 감금된 이들을 구출하려는 경찰과 학생 사이에 충돌이 발생했고, 이 과정에서 경찰 7명이 사망했다) 때 썼던 화염병은 내가 다 나른 거다.(웃음) 그 정도로 내 외모가 출중하다.(웃음)

소설가가 되고 싶었다고 하셨는데, 대학교 1학년 때 연세문학상 소설부문에 당선되었다고 들었다. 소설 내용이 궁금하다.

제목이 "땅강아지"로 우리 시골이야기다. 아버지는 아들하고 같이 농사짓고 싶어 하고 아들은 도시로 가고 싶어 하는데 그러다가 아들이 힘든 농사일을 하다가 야반도주하는 이야기다. 문제작이었다.(웃음) 그런데 그 원고를 잃어버렸다. <연세춘추> 신문사에 가 봐도 없더라.

앞으로 소설을 써볼 생각은 없나?

나는 지금 인생의 제2막을 살고 있다. 소설가가 되려는 꿈을 갖고 대학에 들어가서 소설을 썼던 것까지가 제1막이다. 그 다음은 원치 않는 운동권이 되어 운동을 사는 게 제2막이다. 이 2막의 삶을 길게 살고 있다. 그래서 나는 2막을 60살까지 살려고 한다. 제3막의 삶은 1막에서 못 이룬 소설가의 꿈을 이루는 것이다.(웃음)

1막에서 못 이룬 소설가의 꿈을 이루는 것. 그게 인간 박래군이 꾸는 꿈인가?

60살이 되면 운동을 정리해야 한다고 하는 것은 다름이 아니라 사람이 나이를 먹어서 대표 자리에 있는 것이 운동의 걸림돌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운동의 정년을 둬야 할 것 같다. 나이가 드니까 체력도 체력이지만 판단력도 흐려지고 보수화되더라. 옛날보다 훨씬 더 급격하게 변하는 흐름을 못 따라가는 것 같다. 보수가 되려고 하지 않는데 시대의 흐름을 못 좇아가면 보수가 되는 거다. 운동이 더 혁신적이 되고 젊어져야 하는데 그러려면 오래된 사람들이 대표 자리를 후배들에게 물려주고 뒤에서 밀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모습으로 정리를 하고 싶다. 내가 없다고 뭐가 안되는 게 아니다.

자리에서 내려와야 한다는 마음을 갖기가 사실 쉽지 않을 것 같다.

나도 바뀐 거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나도 현장에서 죽겠다고 했다. 그런데 그것도 욕심이더라. 이제는 다른 욕심을 부려보는 거다. 나도 내 인생을 살아보자고 생각하는 것이다.(웃음)

현안들을 하나하나 풀어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문제들이 반복적으로 일어나지 않도록 제도를 바꾸는 것도 정말 중요한 것 같다. 인생 3막에 정치가가 되어 제도를 바꾸는 일에 뛰어볼 생각은 없나?

없다. 정치는 너무 머리 아픈 것 같다. 보여주는 삶을 살아야 하지 않나. 드라마 추적자를 보니까 강동윤이 그런 얘기를 하더라. "정치인은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게 아니라 사람들이 듣고 싶은 말은 한다." 내가 정치인을 너무 부정적으로 보는 것일 수도 있는데 진짜 맞는 말 같다.(웃음) 사실 나는 내가 하는 게 이미 정치라는 생각을 한다. 프랑스 철학자 자끄 랑시에르가 '이 사회의 주류가 아닌 비주류, 소수의 사람들이 하는 것이 진짜 정치지 주류가 하는 것은 지배'라고 얘기를 했는데 참 똑똑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다. 진짜 정치란 누군가를 통치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갈등들을 조절하고 자기 권리를 못 찾고 있는 사람들로 주체가 되도록 만드는 것이라고 한다면 내가 하는 인권운동은 아주 훌륭한 정치라고 생각한다. 이런 훌륭한 정치를 30년 이상 해온 것이니까 정치에 미련이 있겠는가.(웃음)

그리고 나는 군사정권 때부터 운동을 해왔다. 계속 운동을 하고 싶어서 대학을 졸업하지 않고 대학원도 안가겠다고 생각했다. 이후 대학은 졸업했지만, 오로지 운동가로 갈 수 있는 길만 가겠다고 하고 여러 갈림길을 다 차단하고 살아왔다. 그런데 어느 날 보니까 이 바닥에서 살아왔던 사람들을 김대중 정부부터 끌어당기는 것이다. 2000년대 들어와서 김대중, 노무현 정부 때 인권과 관련되어 여러 자리가 있었는데, 나는 단 한번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에 들어가 8개월 동안 봉사했다. 그런데 그것을 하고 나서는 절대로 정치영역으로는 안가겠다고 생각했다.

사실 그런 자리에 가면 우리가 받는 활동비의 다섯 배까지 받을 수 있고, 그 돈으로 우리 활동하는 후배들과 단체들을 팍팍 밀어줄 수도 있다.(웃음) 정치가 잘 커야 하고 반드시 필요한 것이지만 그럼에도 정당에 한 번도 가입하지 않고 운동만 한 것은 정치보다 사회운동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회운동이 광범위한 토대들을 형성하고 성장할 때 진보정치도 제대로 갈 수 있는 것이다. 진보정치를 하겠다고 운동하던 역량들을 다 끌어넣어서 정당정치를 하지만, 만약 이 진보정당이 망했을 때 사회운동도 같이 망하게 되는 위험성이 있다. 남미의 니카라과의 경우가 그렇다. 니카라과에서 79년에 좌익운동세력이 정권을 잡아서 올인을 했다가 그 정권이 무너지자 운동도 한 번에 무너졌다. 그렇기 때문에 운동을 약화시키면서 진보정당이 가는 것이 아니라, 운동이 강화되면서 진보정당이 가야 하는 것이다. 만약 사회운동역량이 어느 시점까지 가서 넘쳐나서 정당을 만들어야 하는 요구가 생기게 되면 정당이 만들어지고 사회운동이 그것을 풍부하게 끌어갈 수 있도록 도울 수 있을 것이다. 그러지 않고 사회운동에 대한 충분한 대책과 전망 없이 정당운동으로 바로 가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현안에 대해서 들어가 보자. '인권피해 현장에 뛰어들어 피해자들 대신 싸워주는 것으로 활동가의 역할을 다했다고 할 수 있을까. 이런 대리전 방식이야말로 활동가들의 에너지를 갉아먹고 인권 피해자들을 대상화하는 것은 아닐까'라는 고민 끝에 인권센터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했다.

1998년 '양지마을 사건'이라고 큰 이슈가 되었던 일이 있었다. 충남 연기군에 한 부랑인 수용시설이 있었는데 진짜 감옥보다 더한 비참한 곳이었다. 거기에서 탈출했던 어떤 한 사람의 얘기를 듣고 일주일 동안 조사를 해서 당시 국민회의 이성재 의원과 몇몇 단체와 함께 그곳에 쳐들어가 거기에 갇혀 있었던 300여 명이 되는 사람들을 전부 해방시켰다. 그 사건이 터지고 언론에는 '노예의 섬'이라고 해서 기사화되었고 우리는 거기서 나온 사람들을 위해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대행해주기도 했다. 그런데 이 사람들 상당수가 가족들에게 버림받는 사람들이었는데, 이들이 사회복지시설은 죽어도 가기 싫다고 해서 더 이상 손 쓸 수 있는 부분이 없었다. 나중에 수소문 해보면 이들 대부분은 노숙인이 되어버리거나 죽어 있었다. 이 일을 겪으면서 '과연 무엇이 잘못됐나' 고민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모든 것을 대행해서 언론에 폭로도 하고 소송도 해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옆에서 돕고 그들이 스스로 이 문제를 풀도록 했으면 그 사람들이 이후 노숙자가 되고 알콜중독자가 되어 거리에서 죽어가는 일이 없지 않았겠느냐 하는 생각을 했다. 인권센터를 통해 대리하는 운동이 아니라, 피해자가 스스로 주체로 서게 하는 인권운동과 사람들이 차분히 인권에 대해서 공부하면서 자기의 권리를 찾아가는 길을 밟아갈 수 있는 대중적 기반의 모델을 만들어 가고 싶다.

용산참사 같은 경우를 봐도 일반 소시민으로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그런 상황이 떨어졌을 때 평생 인권에 대한 사실을 별로 생각하지 않고 살던 사람들이 이런 문제를 겪었을 때 허둥지둥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까 인권활동가들이 더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밖에 없는 상태이고 이런 악순환이 반복된다는 생각을 한다.

맞다. 독재 정권 때는 억울하다는 생각조차도 못 했었고, 조금 상황이 나아졌을 때는 억울하지만 어떻게 해볼 수 없으니까 그냥 지나쳤던 것이 지금은 사람들의 의식이 좀 높아져서 자신이 인권을 침해당한 것에 대해서 민감하게 반응하고 소송까지 가는 경우들이 꽤 있다. 그런데 이것들이 굉장히 이기적으로 수용되어 있다.

'이기적으로 수용되어 있다'는 말이 어떤 뜻인가?

'내 인권피해에 대해서는 참을 수 없다'고 하면서 다른 사람이 인권침해를 당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내가 그것을 굳이 뛰어들어서 휘말려? 송사에 휘말릴 수도 있는데?' 하면서 문제제기를 안 한다는 거다. 이렇듯 인권문제가 철저하게 개인화 되어 있고 이기적으로 되어 있다. 이것은 운동진영에도 존재한다. 노동운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매일 욕하는 것이 '평소에는 남의 인권에 대해 거들떠보지도 않다가 너네 해고당하면 인권운동 찾느냐?'라는 것이다. 인권운동이라는 것은 일종의 '품앗이'라고 할 수 있는데 평소에 정말 어려움에 처해 있는 사람들과 연대하고 공감하고 같이 싸울 줄 알아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있다. 특히 IMF 이후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던 연대의 가치들이 철저하게 깨져 나갔고, 이 부분에 대해서는 우리 진보운동이 엄청난 패배를 하고 있다고 본다. 그러니까 지금 우리나라 자살률이 OECD 1위고 범죄율도 엄청나게 높아지고 있지 않나. 사람들이 옆에서 죽어나가는 대도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있다. 내 일이 아니기도 하고, 이런 일들에 너무 익숙해져 버렸다.(웃음)

그 맥락에서 볼 때, 용산참사가 무분별한 재개발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제기로 이어지지 않은 것엔 자신 또한 언젠가 재개발로 인해 이익을 볼 수도 있기 때문에 이 문제를 애써 외면하고 싶었던 대중의 심리도 일정 정도 영향이 있지 않았을까?

용산 문제는 그런 측면이 굉장히 강하다. 당시 나는 '사람들이 죽어가는 것을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함께 목격했으면서도 함께 추모하지 않을까?' 굉장히 고민했다. 사람이 여섯 명이 죽었던 현장의 참혹한 광경을 인터넷 생중계로도 보고 텔레비전으로도 수없이 보고 이제는 <두 개의 문>같은 다큐멘터리로 보면서도 사람들이 왜 침묵하는지 의아했다. 김수환 추기경이라든가, 노무현 전 대통령, 김대중 전 대통령 같은 경우는 광장에 모여 열렬하게 추모했는데 말이다. 물론 경찰이 원천봉쇄해서 추모대회도 못하고 남일당 현장도 가까스로 유지했던 상황이었으니까 그랬다고 하지만 그 이전에 사람들이 용산 문제 자체를 굉장히 불편하게 여기는 것 같더라. 대부분의 사람들 마음속에 '나도 내 집 마련하고 싶은데 이게 월급 모아서는 안 되고 땅 투기 같은 것을 해서 한몫 잡고 싶다'라는 생각을 은연중에 가지고 있는데, 용산 참사는 그런 나의 욕망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당하고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직시하게 한 사건이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랬기 때문에 사람들이 선뜻 추모의 광장으로 나오지 못한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다. 물론 그런 가운데도 355일 동안 현장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은 용산참사로 돌아가신 분들과 철거민들의 처지에 공감하는 가난한 사람들의 마음의 연대가 있어서 가능했다. 그래서 버텨낼 수 있었다고 생각하지만 다수의 사람들은 그러지 않았던 것, 스스로가 스스로를 잘못이라고 비판해야 했던 상황은 맞았다. 그런 불편한 진실이 바로 용산이었다.

ⓒ프레시안(최형락)
다시 인권센터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현재 10억 원을 목표로 모금을 시작해 5억 원 넘게 모금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얼마 동안에 이렇게 모으신 건가?

2010년 하반기부터 시작했고 실제로 모금활동에 들어간 것은 2011년이니 1년 동안 5억 원 정도 모은 거다. 목표한 것의 반밖에 못 했다.(웃음) 올해 들어와서는 모금을 중단하고 남산 안기부 터를 확보하기 위한 캠페인을 했고, 일정 정도 성과가 있었다. 서울시가 민간 쪽에 공간을 주는 방향으로 해서 남산 안기부 터를 민주·인권·평화의 가치와 관련된 공간으로 쓰게 될 것 같다. 그것은 그것대로 확보하고 원래 우리가 만들려고 했던 민간 독자의 인권센터를 세울 홍대 근처 조그만 집을 마련하기 위해 내년 3월까지 작정을 하고 나머지 돈을 또 모아야 한다.(웃음)

인권센터가 꼭 민간에 의해 독자적으로 만들어져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제는 지방자치 단체들에서도 인권조례가 만들어지고 전국의 기초 단체까지 하면 16개 시군구에서 인권조례가 이미 만들어졌고, 인권센터와 인권위원회가 만들어지고 있다. 이런 추세가 확산될 것이다. 희한한 것은 이명박 정부에 들어와 인권이 엄청나게 탄압되고 억눌러지고 있고 국가인권위원회조차 '삐딱선'을 타고 있는데, 저변에서는 인권의 토대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거다. 그런데 그렇게 만들어지는 인권센터는 아무래도 관이 주도하게 된다. 그런데 민간독자에 의한 인권센터라고 하는 것은 인권단체들이 자기 프로그램을 돌릴 수 있고, 또한 시민들이 쉽게 찾아와서 인권을 배우고 접하고 스스로 자기 활동을 모색해가는 것들이 가능해진다. 사실은 민간의 것들이 먼저 잘 꾸려지고 이 시민의 힘에 의해서 국가 인권위가 만들어져야 하는데, 비록 순서가 바뀌었긴 했지만 어쨌든 민간의 인권센터를 만들어 내겠다는 거다. 우리가 10월부터 다시 12월까지 막바지 모금을 하기 위해서 열심히 다녀야할 것 같다. 굳이 인권이라는 이름을 붙이지 않더라도 지역의 진보적인 정치의 공간은 반드시 있어야 한다. 친근한 삶의 현장 옆에 이런 공간들이 있어 주민들이 모이고 그 사람들이 모여서 민주주의적인 토론 과정도 겪어보고 문제를 같이 풀어가는 것을 경험해보면서 세상의 변화를 위한 진보적 토대들이 아래로부터 만들어지게 해야 한다. 많은 곳들에서 우리가 인권센터를 어떻게 만드는지 보고 있다. 우리가 먼저 인권센터의 좋은 모델을 만들고 이것이 전국적으로 만들어져 관 쪽에서도 만들고 민간에서도 만들어져서 이것이 5년, 10년이 가면 상당한 자산이 될 것이다. 그런 행복한 구상을 해보는 거다.(웃음)

현장 중심의 활동에서 이제는 인권운동의 인프라를 만드는 것으로 운동의 방향을 옮긴 것인가?

우리 사무처 친구들이 늘 불만이다.(웃음) 인권재단 사람 상임이사로 인권센터를 만드는 것에 집중했으면 좋겠다고 하는 거다. 매일 사무실에 나오는데 사무실에 있는 평균시간이 한 시간 정도밖에 안 된다.(웃음) 용산, 쌍용 자동차, 교육, 강연, 이런저런 원고로 사무실에 있는 비중이 적다.(웃음) 하지만 정말로 인프라를 만들고 싶다. 후배들이 지속가능한 인권운동을 할 수 있게끔 시스템을 만든 것을 내 목표로 정했다. 그리고 60살에 내 인권운동을 정리하겠다는 생각이 있다. 인권운동을 정리하고 나서는 돈 모아서 후배들 지원해주고 자원 활동하면서 보내고 싶다.(웃음)

조금 더 구체적인 정치 현안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자. 조금은 민감한 이야기일 수도 있는데 페이스북을 통해 "'진정성'의 상징이던 그는 점점 기성 정치인과 다를 바 없는 행보를 보였고 급기야 통합진보당이 이 지경에 이르도록 만들었다, 진보정치가 갖는 '진정성의 정치'가 상당 기간 불가능하도록 했다"며 이정희 전 대표의 대선 출마를 강하게 반대했다. 평소 정당정치 문제에 대해서는 발언을 하지 않았던 것 같은데, 이번에 이렇게 작심하고 이정희 전 대표의 대선 출마를 비판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굉장히 순하게 한 거다.(웃음) 통합진보당 사태는 당권파와 비당권파 사이에서 싸움이 나서 갈라진 것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2000년부터 10년을 넘게 우리 사회의 진보의 가치를 정치적으로 실현하려고 하는 총체였던 진보정치가 망가진 거라고 본다. 진보의 정치라는 것이 기존의 보수정치와는 다를 것이라는 기대들이 있었고, 그런 기대들이 통합 진보당에 13명의 의석을 준 것이다. 그런데 이런 기대들을 통합진보당 스스로가 보수정당에서도 볼 수 없는 추악한 모습과 추태들을 다 드러내면서 깨 먹은 거다.

진보정당을 대표하는 통합진보당이 깨졌다는 것에 대해서 자기 성찰을 하거나 다시 해보겠다는 진정성 등을 보여주는 노력 등을 다 포기했다. 이정희는 진정성의 정치인이었다. 다른 정치인과 다르다는 이미지를 계속 쌓아왔고 실제로 정말 많이 눈물로 호소했고 맨몸으로 현장의 아픔들에 달려들면서 대중적인 정치인으로 커왔다. 그런데 이런 것들을 다 깨버린 것이다. 지금 박근혜, 문재인, 안철수가 대선 후보로 나온 상황에서 여기에 만약 통합진보당이 그대로 살아 있었다고 하면 진보의 의제들을 가지고 견인할 수 있었을 거다. 민주노동당이 예전에 내놓았던 정책들이 이후 보수정당들에서 다 수용되었다. 이제 이정희 대표가 나오면 자기 지지표 2~3% 다지기는 있을지 몰라도, 진보정치가 확장되거나 진보정치에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니다. 아예 밑바닥 현장에서부터 진보정치를 다시 다져나가겠다고 하면서 실천하는 것이 먼저다. 그런 다음에 차기에나 대선에 나오는 것이 인간적인 도리인 것 같고 정치도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안철수 후보가 다른 정치인들처럼 뺀질뺀질 거리지도 않고 돌아서면 말 달라질 것 같지도 않고 하니까 대중들에게 먹히는 것 아닌가. 사실 안철수 이전에 진심의 정치인으로 이정희 대표가 있었는데 이것을 다 날렸다. 초기에 사태를 수습할 수 있었던 여러 번의 기회가 있었는데 이것을 다 놓치면서 당내 갈등도 봉합할 수 없는 아주 저급한 수준의 정치실력을 가졌다는 것이 드러나 버렸다. 그랬으면 환골탈태해서 스스로를 새로 만들어갈 생각을 해야 하는데 대선부터 나온다고 하니까 화가 나는 거다.

이정희 대표도 얼마 전에는 진정성의 정치인이었지만 어느 한순간 구태한 정치인이 되어버렸다. 그렇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욕심인 것 같다. 개인들의 욕심 또는 자기가 속해있는 세력의 욕심 말이다. 요즘 활동가들 상대로 강연을 나갈 때면 항상 '욕심을 버려라'고 말한다. 사심 없이 열정적으로 잘하면 주변이 이 사람이 정말 괜찮은 사람인지 좋은 사람인지 알아준다는 거다. 하수가 '내가 이런 것 잘하니까 나 알아줘'하는 것이다. 대부분 사람이 어느 정도까지 올라간 다음에는 뭐가 되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거나 또 주변에서 떠밀기도 해서 거기에 밀려가는 것 같다.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운동하는 사람, 세상을 바꾸려고 하는 사람일수록 정말 겸허해야 한다. 똑같이 진보정치를 하는 사람들에게 얘기를 해주고 싶다.

▲ <대선 독해 매뉴얼>(박래군·김미화 지음, 틀 펴냄)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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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김미화 씨와 함께 '인권의 눈'으로 본 대선 전망서인 <대선 독해 매뉴얼>를 내놓았다. 이 책을 내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다면?

사람들은 '인권이 이거다'라고 이야기해도 잘 귀담아듣지 않는다. 특히 선거시기에는 인권이라는 것이 아예 실종이 돼버린다. 후보들이 이야기하는 정책, 비전 등의 상당 부분이 인권의 언어로 얘기할 수 있고 인권의 논리로 설명할 수 있는 것들임에도 불구하고 대선주자들이 인권을 내세우면 우리 사회의 깔린 보수층에서 싫은 기색을 하고 그러면 표가 날아간다. 그렇기 때문에 가급적이면 인권을 앞세우려 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단지 잘 살겠다는 멍청한 구호에 속지 말고 경제적 불평등의 문제 때문에 얼마나 사람이 많이 죽는지 제대로 알자. 경제 문제도 인권의 관점으로 접근해서 풀어야 한다'는 얘기를 해보려고 했던 것이다. 사람들이 인권에 대해 좀 더 생각해보고 인권적 관점이 대통령선거에 있어 선택적 기준이 되도록 제시해보고자 했다. 그런데 읽은 사람들은 다 좋다고 하고 참고해 볼 만한 것도 많다고 하는데 왜 이렇게 안 나가는지 모르겠다.(웃음)

"인권적 관점이 대통령 선거에 있어 선택적 기준이 되도록 제시해보고자 했다"는 것이 매우 인상적이다.

용산과 쌍용을 겪고 나서 어느 날 우연히 자살 통계를 보고 <경향신문>에 실렸던 이대근 씨의 "우리는 조용히 죽어가고 있다"는 칼럼(2011년 2월 16일 자)을 보면서 깊은 공감을 했다. 하루에 자살하는 사람이 42.6명이고 이것이 일 년이면 만 5000명이 넘는 수이다. 청소년을 포함한 어린아이들이 일 년에 150명 이상이 자살하고 노인층의 자살률도 높고, 전체적으로는 OECD평균보다 세 배가량 되는 높은 자살률을 기록하고 있다. 매우 비정상적이고, 잘못 가는 야만사회다. 이게 진짜 사람 사는 세상인가. 사람의 목숨마저 보장되지 못한 상태 정말 전쟁터 같은 데서 우리가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을 쭉 들여다보니까 이 죽음의 원인이 경제적 낙오에서 온 것이었다. 사회 안정망이 없다 보니 경제적 낙오가 곧 죽음인 것이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서든 풀어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2012년인 지금에 와서도 생명권을 고민해야 한다는 게 참 안타깝다. 특히나 지금은 모든 잘못을 개인의 무능력함으로 돌려 사람들이 사회적으로 저항 한번 하지 않고 스스로 조용히 죽어가고 있다.

무능력해서가 아니라 잘못된 정책과 시스템 때문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김대중, 노무현 정부 때 사회적 양극화가 더 심해졌다. 신자유주의 정책이 IMF에 의해서 본격적으로 도입이 되었고 여기에서 탈락한 사람들을 사회복지제도로 보완을 시켜 나가는 것이었다. 가장 좋은 것이 일자리를 충분히 늘리는 것인데 반대로 갔다. 좋은 일자리를 없애고 비정규직을 만들고 상시적인 정리해고가 가능하도록 만들었다. 비정규직이 늘어난다는 것은 그만큼 자살할 가능성이 높은 대상들이 많아진다는 것이다. 거기에 이명박이 들어와서 다져놓은 신자유주의 길 위에 부자감세니 뭐니 해서 사람들을 더 죽음으로 몰아간 것이다. 87년 6월 항쟁 직후에 '노동자 대투쟁'이 있었는데 그때 제기되었던 사회민주화, 경제민주화 이런 부분들을 민주정부에서 도외시했던 결과로, 오늘의 비극적인 현실을 낳게 만든 것이라고 생각한다.

ⓒ프레시안(최형락)


박래군에게 자유란?

'자유, 평등'이라고 이야기하는데 '평등 없는 자유, 자유 없는 평등'은 성립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자유를 얘기하려면 물적인 토대와 조건도 갖춰져야 하는데, 많은 사람들이 의사표현의 자유와 권리를 포기하면서 산다. 예를 들어 비정규직 노동자들 절반 이상이 선거하는 날에도 나가서 일을 해야 한다. 이렇게 빵의 문제가 뒷받침되지 않은 자유는 상당히 공허하다. 민주화됐다고 해서 자유 부분에 확장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우리 사회의 자유는 사실 '사상누각의 자유'인 것이다. 물적인 토대, 사회경제적 토대 없는 자유라고 하는 것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 이명박 정부에서 더 절실히 확인되었다.

예전에 인권운동사랑방에 자주 놀러 갔었는데, 한참이나 나이 어린 활동가들이, 심지어 청소년 활동가들도 "래군, 래군"이라며 부르는 게 참 인상적이었다. 원래 그렇게 나이 어린 활동가들과도 격의 없이 지내는 편인가?

어느 날 후배들이 나이 문제, 호칭 문제 이런 얘기들을 하길래 "그 얘기는 또 뭐냐?"고 물어봤다. 이런 얘기 할 때 선배가 거부하게 되면 분위기도 삭막해지고 관계도 틀어지게 되기 때문에 짐짓 "어, 그래. 너희 말이 맞아. 너희 하고 싶은 대로 해"라고 하면서도 속으로는 불편했다.(웃음) 처음에는 '저 녀석이 반말해?' 하는 마음이 있었는데 나중에는 익숙해지고 격이 없이 하다 보니까 후배들이랑 더 편하게 지내게 되었다. 그런데 후배들이 존댓말을 하지 않아도 정말로 존경받는다고 느낄 때가 있다. 권위가 강제로 내리 먹여짐에서 생기는 게 아니라 자발적으로 생기는 과정들이 필요한 것이구나 생각했다. 1998년쯤 어느 날 초등학교 학생 한 놈이 인권운동사랑방에 놀러 와서 "래군, 래군" 그러는 거다. 우리 딸내미 정도 되는 애들이 와서 "래군, 래군"하니 미치겠더라.(웃음) 대답도 못하고 내가 당황해서 "어, 그래" 그러니까 이제부터 애들이랑 얘기가 되는 거다.(웃음) 만약 여기서 내가 받아들이지 않고 "너 왜 반말 하냐?" 하면 꼰대가 되는 거다.(웃음) 아무렇지 않게 넘어가니 그게 또 익숙해졌다.

한편으로는 형식이 갖는 규정성이 존재하고 그렇기 때문에 인간관계를 규정하는 이런 규정성을 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한다. 그렇지만 이것이 서로 이해되면서 가는 것이 아니라 기존에 있었던 것을 파괴시키면서 이루어지면 관계가 더 안 좋아질 수도 있다. 대중 속으로 들어갈 때는 그 사람들이 갖고 있는 문화에 내가 동의하지 않아도 그들과 같이 동화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라도 생기는 거다. 예를 들어 농촌사회나 노동조합 같은 곳에 들어가면 이 사람들은 굉장히 가부장적인데 거기에 인권감수성을 발휘한다고 해서 "너 왜 이렇게 여성 차별적이냐?"하고 지적해 들어가면 이들과 제대로 이야기하는 기회 자체를 잃게 된다. 오히려 그런 문제점들을 기억하고 있다가 나중에 친해지면서 하나하나 까주면 된다.(웃음) 그러면 나중에 "내가 그랬어? 그런 생각 못했는데…" 이렇게 돼야 하는데 초반부터 가서 지적하고 사고를 바꾸려고 하면 안 된다.

마지막으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들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청년들이 청년 같지 않은 게 문제다. 청년들은 미래를 살아가는 것이다. 지금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은 다 구(舊)체제이고 이것은 무너져서 사라져야 되는 것들이다. 여기에 편입해 적응하려고 스펙 쌓고 구체제가 요구하는 길로 가지 않았으면 좋겠다. 자기가 그려갈 미래를 좀 봤으면 좋겠다. 세상은 바뀔 수밖에 없다. 어떻게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신자유주의가 유지될 거냔 말이다. 이미 유럽과 라틴 아메리카에서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비판과 반성이 생기고 있고 신자유주의를 만들었던 경제체제의 후유증이 경제위기로 나타나고 언젠가 이것이 터질 것이다. 그 뒤에는 또 다른 세상이 열릴 수밖에 없다. 신자유주의의 야만적인 자본주의를 목도한 인류가 다시 이 경험을 반복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런 야만적 자본주의에 우리가 편입해서 미래를 걸겠다고 하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다. 이것은 기성세대로 충분하다. 기성세대들은 살날도 별로 안 남았고(웃음) 미래를 살아갈 청년들이 꿈꾸는 나라를 생각해보고 그 꿈들을 키워나갔으면 좋겠다. 지금은 당장 허황된 것 같지만 그런 꿈을 꾸는 사람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우리 사회는 더 행복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인터뷰 및 정리: 정치경영연구소 김경미, 손어진 연구원)

정치경영연구소가 하는 일 중의 하나는 '진보적 자유주의'의 한국적 함의를 정치 및 정책적 맥락에서 찾아내는 일입니다. 과연 자유는 진보적인 걸까요? 그렇다면 그 구체적 의미는 무엇일까요? 진보적 의미의 자유를 스스로 누리고 있거나 타인을 위하여 퍼트리고 있는 사람들은 누구일까요? 나의 자유와 타인의 자유, 개인의 자유와 사회적 자유, 그리고 자유와 평등은 상호 어떠한 관계에 있어야 하는 걸까요? 정치경영연구소의 청년 연구원들이 자유와 관련된 이 많은 문제들을 현실에서 해결 또는 극복해가고 있는 분들을 직접 찾아 나서기로 작정했습니다. 우리 사회의 대표적인 자유 이론가 혹은 실천가 분들께 (자신과 타인을 위한) 자유를 실천하는 방식에는 어떠한 것들이 있는지 여쭤보겠다는 겁니다. 아마도 그분들은 젊은 저희들에게 자신들의 진솔한 삶의 이야기를 들려줄 겁니다. 앞으로 모든 인터뷰 내용은 잘 정리하여 여기 이 자리에 항상 올려놓겠습니다. 여러분들도 저희와 함께 이 자유의 향연을 즐겨주시길 바랍니다.

* 이 연재는 한림국제대학원대 정치경영연구소의 기획, 취재, 집필에 의해 진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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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장교의 딸이 대통령 돼선 안 돼”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2/11/09 07:27
  • 수정일
    2012/11/09 07:27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일본군 장교의 딸이 대통령 돼선 안 돼”
 
독립유공자 유족 9인 문재인 후보 지지선언.. 보훈정책 개선 요구도
 
정운현 기자 | 등록:2012-11-08 16:03:32 | 최종:2012-11-08 16:40:20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독립유공자 유족 9인이 8일 오후 영등포 민주당사에서 문재인 후보 지지선언을 하고 있다.

각계각층의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 지지선언이 잇따른 가운데 독립유공자 후예 9명이 문 후보 지지를 선언해 주목된다. 이들은 “일본군 장교의 딸이 대통령이 돼선 안된다”며 “반듯한 역사관과 함께 애국선열을 제대로 받들 줄 아는 문재인 후보를 민족과 선열의 이름으로 공개 지지한다”고 밝혔다.

 

임시정부 문화부장과 해방 후 반민특위 위원장을 지낸 김상덕 선생의 아들 김정륙 씨, 호남의병장 조경환 선생의 손자 조세현 씨, 임시정부 국무위원(비서장) 차이석 선생의 아들 차영조 씨 등은 8일 오후 서울 영등포 민주당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문 후보야말로 우리 민족사의 자긍심을 온몸으로 지켜낼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며 문 후보 지지를 밝혔다.

이들은 지지선언문을 통해 “이번 대선은 정치사적으로도, 민족사적으로도 우리 민족에게 매우 중요한 대사라고 생각된다”고 전제하고는 “이명박 정권 5년동안 정치는 실종되고 경제는 무너지고 날이 갈수록 심화된 빈부격차로 서민대중의 삶은 도탄에 빠져 참으로 참담한 세월이었다”고 진단했다.

이어 이들은 “이명박 정권은 우리 민족사의 정통성마저 부인하는 역사파괴 행위조차 서슴지 않았다”며 “헌법 전문에 뚜렷이 명기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송두리째 짓밟는가 하면 애국선열을 모독하는 망발도 마다하지 않았다”고 개탄해 마지않았다.

특히 이들은 “MB정권이 우리 근현대사를 왜곡시키고 역사교과서 개악 작업을 획책하면서 독재자 이승만, 박정희가 무덤에서 화려하게 부활하고 있다”며 “수구진영의 망발과 작태를 좌시하는 것은 선열님들에 대한 모독이자 우리 스스로에 대한 자기부정”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이들은 지난 10월 26일 박근혜 후보가 현충원을 찾아 박정희 전 대통령 묘소를 참배한 날 문재인 후보가 용산구 효창원을 찾아 안중근 의사 등 3의사 묘역과 백범 묘소를 참배한 사실을 상기하면서 “문 후보야말로 우리 민족사의 자긍심을 온몸으로 지켜낼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고 강조했다.
 

지난 '10.26' 날 효창원 안중근 의사 가묘를 찾은 문재인(오른쪽) 후보

끝으로 이들은 최근 ‘종북 DVD’ 배포로 물의를 빚은 보훈처가 보수성향의 퇴역군인 위주의 정책을 펴온 점 등을 거론하며 보훈정책의 개선을 요구하기도 했다. 이들은 “MB정부 들어 정치 이데올로기에 오염된 보훈정책을 획기적으로 개선해 줄 것을 공식적으로 요청한다”고 덧붙였다.

 

이날 문 후보 공개지지 선언문에는 유종하(독립운동가 유희준 손), 윤용황(독립운동가 윤명선 손), 이규중(조선의용군(광복군) 이진영 자), 이동철(조선의용군(광복군) 이원대 자), 김정륙(임정 문화부장·반민특위 위원장 김상덕 자), 조세현(호남의병장 조경환 손), 민성진(임시정부 국무위원 김성숙 외손), 양준일(임시정부 국무위원 양기탁 손), 차영조(임시정부 국무위원 차이석 자) 씨 등 9명이 서명했다.

이밖에 임시정부 국무령을 지낸 석주 이상룡 선생의 증손 이항증 씨, 독립운동가 김의한 선생의 아들 김자동 씨 등도 이날 기자회견장에 참석했다. 다음은 독립운동가 유족 9인의 문 후보 지지선언 전문이다.

친일 청산과 민족정기가 바로 선 나라를 염원하는
독립운동가 유족의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 지지선언

올 연말에 치러질 19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우리는 오늘 비감하고도 무거운 심경으로 이 자리에 섰습니다. 이번 대선은 정치사적으로도, 민족사적으로도 우리 민족에게 매우 중요한 대사라고 생각됩니다.

돌이켜보면 이명박 정권 5년은 참으로 참담한 세월이었다고 하겠습니다. 정치는 실종되고 경제는 무너지고 날이 갈수록 심화된 빈부격차로 서민대중의 삶은 도탄에 빠졌습니다. 그럼에도 기득권 세력들은 제 배를 채우는 데만 급급해 세상인심은 갈수록 험악해지고 있습니다.

기성세대의 희망인 청년들은 미래를 찾지 못해 좌절하고 있으며, ‘개천에서 용 났다’는 얘기는 이제 전설이 돼버렸습니다. 남북문제는 한 가닥 실낱같던 교류의 끈마저 끊겨 버렸으며, 21세기판 신제국주의의 각축장에서 우리는 거룻배처럼 표류하고 있습니다.

비단 이 뿐만이 아닙니다. 이명박 정권은 우리 민족사의 정통성마저 부인하는 역사파괴 행위조차 서슴지 않았습니다. 헌법 전문에 뚜렷이 명기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송두리째 짓밟는가 하면 애국선열을 모독하는 망발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MB정권은 또 ‘뉴라이트’로 불리는 친일-반민족 성향을 앞세워 우리 근현대사를 왜곡시켜 이를 중고등학교 역사교과서 개악 작업도 획책하고 있습니다. 상황이 이러고 보니 독재자 이승만, 박정희가 무덤에서 화려하게 부활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라고 하겠습니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수구진영의 망발과 작태를 좌시할 수 없습니다. 애국선열들이 피와 땀으로 지켜낸 이 땅이 더 이상 거짓과 몰상식으로 짓밟히도록 내버려둬선 안됩니다. 이는 지하에 계신 선열님들에 대한 모독이자 우리 스스로에 대한 자기부정이 되기 때문입니다.

유력한 대선후보 가운데는 일제하 일본군 장교를 지낸 자의 딸도 있습니다. 지난 10월 26일 그의 딸 박근혜 후보는 그가 묻힌 동작동 현충원을 찾았습니다. 바로 그 시각 민주당 문재인 후보는 용산구에 있는 효창원을 찾아 백범 김구 선생과 3의사 묘소를 참배했습니다.

독립운동가 유족인 우리들은 반듯한 역사관과 함께 애국선열을 제대로 받들 줄 아는 문재인 후보를 민족과 선열의 이름으로 공개 지지하는 바입니다. 문 후보야말로 우리 민족사의 자긍심을 온몸으로 지켜낼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아울러 우리는 문 후보가 반드시 집권하여 올바른 민족사관 정립과 MB정부 들어 정치 이데올로기에 오염된 보훈정책을 획기적으로 개선해 줄 것을 공식적으로 요청하는 바입니다.

2012년 11월 8일

독립운동가 유족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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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남북정상회담 추진보다 핫라인 설치'

 

안철수, '남북정상회담 추진보다 핫라인 설치'
'강하고 당당하고 평화로운 한반도' 통일외교정책 발표
 
 
2012년 11월 08일 (목) 16:47:44 조정훈 기자 whoony@tongilnews.com
 

 

   
▲ 안철수 무소속 대선후보가 8일 선거캠프에서 '통일.외교정책'을 발표했다. [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21세기 새로운 미래를 만들기 위해 한반도에 무너진 평화를 세우는 일부터 시작하겠다."

8일 오후 2시, 서울 공평동 선거캠프에서 안철수 무소속 대선후보가 '통일.외교정책'을 발표했다.

이 날 안철수 후보는 "남북화해를 바탕으로 북핵 문제와 평화체제를 선순환 시키겠다"며 "남북대화를 우선적으로 추진하고 6자회담 재개를 위해 노력하며 적절한 시기에 9.19성명 합의대로 한반도 평화체제 논의를 위한 남북.미.중간 4자 포럼을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남북합의를 이행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분쟁과 위기를 해소하고 해결하는 상설적인 분쟁해결기구를 북한과 협의해 설치하겠다"고 말했다.

이날 발표된 '강하고 당당하고 평화로운 한반도'로 요약되는 안 후보의 통일정책은 △남북관계-북핵문제-평화체제를 선순환적으로 해결, △화해협력을 진전시켜 통일의 기반 구축, △북방경제의 블루오션 전략 이라는 3대 목표를 두고 있다.

또한 △남북관계 개선-한반도평화체제 구축-북핵문제 해결 병행추진, △서해 평화정착과 남북한 신뢰구축 제도화, △'과정으로서의 통일'을 진전시켜 통일의 기반 구축, △인도주의, 인권문제의 실질적 해결, △대북정책의 국민적 합의 제도화와 초당적 협력, △남북경협 활성화와 북방경제 시대 개막 등 6대 전략으로 구성됐다.

그리고 이에 기초해 △남북대화 조속 재개 및 정상간 핫라인 설치, △한반도 평화공존의 제도적 틀 확립, △서해 평화의 조기 정착, △남북분쟁해결기구 설치 등 16개 추진과제를 마련했다.

 

   
▲ 이날 통일.외교정책 발표회장에는 내외신 기자 150여명이 몰렸다. [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이날 발표된 안철수 후보의 통일정책에서 주목되는 것은 남북대화 조속재개와 정상간 핫라인 설치이다.

이는 남북 장관급회담을 정부 간 대화와 협상의 기본 틀로 회복하고 정례화하며, 이를 통해 남북 정상간 핫라인을 설치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와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가 '남북 정상회담'을 강조한 데 반해, 안철수 후보는 '남북정상회담'에 큰 비중을 두지 않아 눈길을 끌었다.

이에 대해 통일정책 수립에 참여한 이봉조 전 통일부 차관은 "정상회담은 두 차례 열린 바 있고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면서 "그러나 특정한 시기를 정하고 정상회담을 하려고 하지 않는다. 여러 가지 분야별 회담이나 장관급 회담을 먼저 시작하고 상황을 보면서 정상회담을 논의하는 것이 좋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서해 평화 조기 정착'에 대해 안철수 후보는 "해상경계선으로 NLL(서해북방한계선)을 인정하는 전제 하에서 서해 평화를 증진시키는 방안을 강구하겠다"며 "서해에서의 우발적 충돌방지를 위한 남북간 기본합의를 복원하겠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안철수 후보 측은 남측 서북도서방위사령부와 북측 서남전선사령부 간의 군사직통전화를 설치하며, 2004년 남북장성급회담의 '6.4합의'를 복원시키겠다고 강조했다.

'6.4합의'는 '서해 우발적 충돌 방지와 군사분계선 지역에서의 선전활동 중지 및 선전수단 제거에 관한 합의서'로 서해의 우발적 충돌에 대한 구체적 내용에 대해 남북이 합의한 사안이다.

이외에도 안철수 후보는 △6.15선언 이후 분야별 협의체 복원, △'통일고문회의'를 '통일미래기획위원회'로 개편, △1세대 이산가족 상봉 우선 추진, △종합적 북한인권 개선 계획 수립, △'119'프로젝트 추진 등을 제시했다.

이날 안철수 후보의 통일정책에 참여한 백학순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안 후보의 '과정으로서의 통일'이 통일철학"이라며 "기본적으로 남북연합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포괄적인 정책"이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안 후보는 기본적으로 민족화해가 없으면 평화도 공동번영도 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면서 "경제민주화와 혁신경제라는 그리고 성장과 분배라는 경제의 두 바퀴를 가진 자전거가 달리려면 신작로가 있어야 한다. 그 신작로가 바로 평화이다. 그것이 안 후보의 기본적 생각"이라고 설명했다.

 

   
▲ 안 후보의 통일.외교정책에 참여한 이봉조 전 통일부 차관, 백학순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김근식 경남대 교수, 윤영관 전 외교통상부 장관, 김홍규 성신여대 교수 등이 배석했다.[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외교정책에 대해 안철수 후보는 "세계정세의 변화에 전략적으로 대응하며 한단계 더 도약하는 선진외교를 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미 동맹을 더 굳건히 하는 토대 위에서 조화로운 외교를 추진하겠다. 외교공간을 확대하는 전략적 외교를 하겠다. 지구촌 문제해결에 적극 나서는 선도적 외교를 실천하겠다"고 강조했다.

안 후보는 "이제 우리는 위기를 기회로 바꾸어야 한다. 강하고 당당하고 평화로운 한반도 건설은 더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라며 "주체적이고 전략적인 통일외교안보정책을 펼침으로써, 평화의 한국, 당당한 한국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이날 통일.외교정책 발표장에는 통일정책에 참여한 이봉조 전 통일부 차관, 백학순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김근식 경남대 교수, 외교정책에 참여한 윤영관 전 외교통상부 장관, 김홍규 성신여대 교수 등이 배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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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 목사 신부의 전격 <잡설>

스님 목사 신부의 전격 <잡설>

 
조현 2012. 11. 07
조회수 542추천수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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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웅 목사, 도법 스님,김인국 신부(왼쪽부터)

 

 

 

종교계에 두번째 가라면 서러워할 세 ‘입’이 만났다. 조계종 화쟁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공치 아픈 현안들을 풀어내고 있는 도법 스님, 미국에서 20년간 목회하고 성공회대에서 가르치는 김민웅 목사, 고통 받는 이들의 벗인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총무 김인국 신부다.

 

 <기독교사상> 주간을 그만두고 꽃자리 출판사를 차린 한종호 목사가 마련한 대화를 통해 <잡설>을 출간한 세 종교인이 6일 서울 인사동의 한 음식점에서 다시 만났다. <잡설> 다섯째 마당 중 종교마당엔 김기석(서울 청파교회) 목사와 종교학자 오강남 교수가 함께 했지만 이날 만남은 함께 하지않았다. 스님과 목사 신부는 자리에 앉자마자 입심이 작렬한다.

 

 김 신부가 영화 <친절한 금자씨를> 패러디해 “종교인이 뭐라고 하면 ‘종교 너나 잘 하세요’그런다”고 하자, 도법 스님이 “그러니 종교가 먼저 ‘구원’을 받아야 한다”고 한다. 이에 김 목사는 “그냥 버리고 가야하는데 살려주니, 사라져야 할 게 안 사라지는 거 아니냐”고 따진다. 명불허전인 이들의 입에서 나온 ‘잡설’을 주워담아 네가지 퍼줄로 맞춰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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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장을 맡아 대담을 이끈 김민웅 목사

 

 

 

 ◇힐링, 번지수 제대로 찾고 있나

 

 “박근혜, 문재인, 안철수 캠프가 따로 있지만 다 한 캠프 출신이잖아요. ‘힐링캠프’라고. 그런데 그곳은 힐링이 정말 필요한 사람들은 갈 수 없는 곳이잖아요. 성공한 사람들 뒷담화하는 곳이지.”

 

 김 목사는 이상한‘힐링캠프’를 꼬집자, 도법 스님은 “달나라의 계수나무에서 토끼를 찾듯이 환상을 좇아 자꾸 행복타령을 하면서 이게 안된다고 아우성치고 있다”며 힐링 현상을 질타했다. 이에 김 신부는 “세상엔 단순하고 소박한 흙길도 있어서 한 번 그렇게 살아보면 ‘왜 그렇게 미련하게 살았을까. 이렇게 살면 쉽고 재미있는걸’할 수도 있는데…”라며 욕망과 환상만 쫓으며 고통받는 현상에 맞장구를 쳤다.

 

 김 목사는 개인적인 고통에 대해 ‘세상’에 눈을 뜨는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는 “도대체 누가 이토록 우리를 아프게 하느냐”고 물었다. 김 신부는 “그에 눈감은 채 킬링 주체에게 힐링을 맡긴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답답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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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총무 김인국 신부

 

 

 

 ◇지금 한국인은 ‘공감’마비 증후군?

 

 “지금 한국 사회는 누군가 아스팔트 위에 쓰려져 있는데 사람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마구 달리는 식이다. 개나 고양이가 아니라 동료 시민이 누워있으면 먼저 ‘잠깐!’하고 소리쳐서 눈먼 질주를 막아 세워야하는데 말이다.”

 

 김 신부의 호소에 김 목사는 “그럴 때 사람들이 막 몰려가서 ‘어떤 놈이 이런 짓을 한거야? 저 놈이야?’이래야 겁을 먹을 텐데, 그렇게 하지 않는다”며 한숨을 쉬었다.

 

김 신부는 “시인들이 당신이 다음에 내릴 역은 용산참사역’이라고 했지만, 함께 싸워주기는 커녕 강 건너 불구경도 안해준다. 불편해서 그런 줄은 알지만 서운하다”고 말했다.

 

 이들은 요즘에 사람들이 공감하는 것은 유아성범죄와 학교 폭력 뿐 사회 구조적 문제는 철저히 외면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 목사는 “학교 폭력 학교 폭력 하는데 한 번 벌에 쏘이면 평생 가는 것이 ‘학벌’인데 그런 구조 자체가 폭력 아니냐”고 물었다.

 

 김 신부는 “요즘 가톨릭에서 가장 많이 찾는 인물이 이태석 신부인데, 아프리카에서 헌신하다 숨진 이 신부가 한국에 있었다면 돌볼 현장은 외면한다”며 안타까워했다.

 

 김 신부는 또 “이 정권에서 수많은 심청이가 4대강에서, 용산에서, 쌍용차에서 인당수에 몸을 던졌는데, 이제 심봉사가 눈을 뜰까”라고 물었다. 대중들의 각성에 대한 기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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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종 화쟁위원회 위원장 도법 스님

 

 

 

 ◇문재인 안철수 단일화 이상을 보여주라

 

 당면한 대선과 관련해 박근혜 후보의 어머니인 육영수씨의 고향 옥천의 성당 주임인 김 신부는 “박근혜에게 열광하는 민심과 안철수를 소방수로 불러낸 민심을 따로따로 본다”며 “예수가 십자가를 지고 갈 때도 눈물 흘리는 민심이 있는가하면,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하고 악을 쓰던 민심도 있었다”고 말했다.

 

 잡설은 안철수 현상이 공부도 잘하고 의사고 성공한 모델이라서 이를 닮고 싶은 대중적 성공 욕망에서 비롯됐다는데서 시작했다. 김 목사는 “성공만 하면 될 줄 알았는데, 이명박 대통령을 보고 성공에다 착하기도 해야할 것 같아서!”라고 부연 설명했다.

 

 도법 스님은 “안철수가 등장해 박근혜 대세론이 흔들리고 야권이나 진보진영이 ‘해보자, 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을 만들었다. 정치 안하겠다는 박원순, 안철수, 문재인 같은 사람들을 끌어낸 것은 크게 평가될 부분”이라고 말했다.

 

 두 후보에 대한 따끔한 질책도 나왔다. 김 목사는 “지식인들이 지식용역만 할 게 아니라, 노무현 정권이 삼성과 손잡고, 햇볕정책을 후퇴시키고, 자본과 권력을 시장에서 강화시키는 정책을 펼쳐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게 한 문제점을 비판하고 문 후보도 이를 성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신부는 “가톨릭 교회가 격렬한 논쟁 끝에 ‘가난한 이들을 위한 우선적 선택’이란 표어를 선택한 것은 그렇게 하지 않으면 결과적으로 부자 편에 서고 말기 때문”이라며 “안 후보가 ‘융합’이란 추장적인 표현으로 양쪽을 다 아우르겠다고만 하면 곤란하다”고 지적했다.

 

야권 후보 단일화에 대해선 ‘인물’이 아닌 ‘가치 통합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김 목사는 “사람만이 아니라 가치를 이야기 해야 할 때”면서 “이제 사람들은 단순한 결과만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두 후보의 실력과 품격을 보고 싶어 한다”고 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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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적으로 이야기를 나누는 김민웅 목사와 도법 스님, 김인국 신부(왼쪽부터)

 

 

 ◇문제를 어떻게 풀까

 

 혼자 은둔해 눈감고 깨달음이나 구원을 구하는 방식이 아니라 고통 받는 현실에서 답을 찾아야한다는 데 이들은 동의했다.

 

그러나 방법론에선 차이가 있었다. 인도의 간디 제자 비노바 바베가 지주들에게 토지를 헌납받는 운동을 전개하며 ‘모든 사람에겐 열고 들어갈 문이 있다’고 한 말에 대해, 김 신부는 이의를 제기했다. ‘김진숙씨가 타워크레인에서 내려오니까 한진중공업은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입을 싹 씻고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을 보고 있지않느냐’는 것이다. 김 신부는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해서 하나 주고, 둘 주고 했더니 계속 내놓으라고 해서 남아난게 아무것도 없다”면서 “돈(자본)엔 우리가 잡고 들어갈 문고리가 없다”고 항변했다.

 

이에 대해 도법 스님은 “나는 회생분자여서 ‘싸움은 말리고, 흥정은 붙이자’는 주의”라면서 “어떤 문제를 다룰 때 적대적 관점에서 승부를 내 싸워서 이기느냐 지느냐는 논리로 결론을 내리려고 해서는 절대 해답이 나올 수 없으니 승부가 아닌 접근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결국 해결이 되려면 서로가 수긍이 되고 동의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김 목사는 “대충 얼버리고 없는 것으로 치고 넘어가는 게 문제”라면서 “누가 책임을 져야 할지도 은폐한 채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가선 안된다”고 꼬집었다.

 

도법 스님은 대화에 응해준 인도의 지주들과 달리 이명박 대통령과 현 ‘자본’들은 아예 대화 상대를 해주지 않은 안타까운 현실에 대해선 공감하면서도 “승부에선 웃는자가 있으면 우는 자가 있으므로 함께 대화하며 해결점을 찾아가는 방법이 중요하다”고 뜻을 굽히지 않았다.

 

김 목사는 ‘기득권’에 대한 인식 변화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그는 “‘노블리스 오블리주’는 ‘개평이나 나눠주라’는 게 아니고. ‘당신이 많이 배우고 많이 가지고 그 자리를 차지한 건 책임지고 봉사하라고 있는 것이라는 걸 보다 분명히 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세 종교인의 잡설은 오는 11일 오후 7시 서울 대학로 카페 벙커온 북콘서트에서 재개된다.

 

 글·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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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몰아내고 노동자농민이 직접 정치주인 되는 것이 정치쇄신"

  •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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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
    2012/11/08 05:14
  • 수정일
    2012/11/08 05:14
  • 글쓴이
    이필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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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몰아내고 노동자농민이 직접 정치주인 되는 것이 정치쇄신"
(통합진보당 / 2012-11-07)


"정치쇄신은 색깔론과 종북공세 퍼뜨리는 새누리당 몰아내고
노동자, 농민, 서민들이 직접 정치의 주인으로 나서는 것"

사랑하는 전남도당 당원 여러분. 존경하는 여수시민 여러분.
통합진보당 대통령 후보 이정희입니다. 인사드립니다.

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만, 우리 통합진보당은 다시 일어섰습니다. 한 가지를 위해서입니다. 노동자, 농어민, 서민들이 절실히 원하는 것을 이번 대선에서 실현하기 위해서입니다. 민중들에게 필요한 것을 반드시 이루어내기 위해서입니다.

우리 민중들은 간절하게 원하고 있습니다. 진보적 정권교체를 만들어 낼 것. 바로 우리에게 명령하고 계십니다. 한국 사회를 근본에서 바꿔라! 우리 민중들은 통합진보당에 이 임무를 맡기셨습니다.

대선을 앞두고 너나없이 정치쇄신을 말합니다.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도 오늘 정치쇄신안을 발표했다고 합니다. 그중에는 우리 통합진보당이 민주노동당 시절부터 주장해왔던 것도 간간히 들어 있습니다. 그렇다고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가 정치를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는 민중들이 어디 있겠습니까?

틈만 나면 철지난 색깔론과 종북 공세로 한국정치를 파탄으로 몰고 갔던 것이, 박근혜 후보와 새누리당입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한국 정치를 퇴행으로 몰고 갔던 것이 지역감정을 조장하고 색깔론을 퍼뜨린 수구보수 세력이었습니다.

여러분, 다시 한 번 확인합니다. 정치 쇄신은 이런 집단 몰아내는 것입니다. 이번 대선에서 군부독재 시절의 낡은 행태를 지금도 되풀이하는 새누리당을 몰아내고, 유신독재의 부활을 막는 것이 우리 민중들이 요구하고 명명하는 가장 절실한 정치 쇄신 아닙니까?

박근혜 후보가 어떤 실질적인 정치쇄신도 이루어낼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은 이미 뚜렷합니다. 투표율 올라가는 게 두려운 사람이 어떻게 정치쇄신을 말하겠습니까? 우리는 투표시간을 연장하고 유급휴일로 지정해서 비정규직 노동자의 참정권을 보장하려고 합니다. 새누리당이 국민의 기본권을 제약해서라도 집권하겠다며 기어이 투표시간 연장을 거부한다면, 국회에서 아무리 논의해도 길이 보이지 않는다면, 무엇을 해야 하겠습니까?

항상 거리에서 민중들을 대변해왔고 활로를 열어왔던 우리 통합진보당이 노동자, 농어민, 청년, 시민들과 함께 나서서 국회에서 이루어내지 못하는 것, 거리에서 함께 뚫어내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 통합진보당은 국민과 함께 투표시간 연장을 실현하는 것으로 야권이 단합하고 힘을 모으는 19대 국회 첫 번째 사례를 만들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야권연대에 바치는 헌신이자 책임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함께 만들어 갈 수 있겠습니까?

정치 개혁의 근본은 바로 노동자와 농민, 서민이 정치의 주인으로 나서는 것입니다. 다른 당이 아무리 통합진보당의 정책을 빌려 쓰더라도, 그리고 우리가 빌려갈 것을 허락한다 하더라도 뿌리는 가져갈 수 없습니다. 이제는 노동자와 농어민이 직접 정치의 주인으로 나설 때입니다. 이것이 한국정치를 근본에서 바꾸는 것이고, 바로 우리는 이것을 하기 위해서 이번 대선에서 다시 일어섰고, 노동자 민중 속으로 들어가는 것 아닙니까?

정치 제도 몇 개 손 봐서 새누리당과 같은 낡은 정치세력이 또다시 모양과 형식을 바꾸어서 집권하는 것, 우리 민중들은 더 이상 참을 수 없습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우리 민중들에게 정치기본권과 노동3권을 전면 보장하고, 저들이 지역사회를 장악하는 관변단체에 대한 지원 완전히 중단시키고, 자기들끼리 돌리는 쪽지 예산으로 국가 재정 주무르는 것을 막는 것, 그것이 바로 진정한 정치 개혁입니다. 국회의원, 대통령, 나쁜 짓하면 국민이 뜻대로 할 수 있게 국민소환제 실시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 민중이 힘을 갖기 위해 첫 번째 해야 할 일입니다.

우리는 한국 사회를 근본에서 바꾸기 위해 나선사람들입니다. 반민주, 반통일, 사대매국세력을 권력에서 끌어내려야만 정치 혁신 됩니다. 빈 자리는 노동자, 농어민, 서민들, 바로 우리들이 들어가서 차지해야 합니다.

이것이 통합진보당의 정치 쇄신 방안입니다. 권력과 재력, 인맥 가진 사람들이 자리 바꿔 앉는 것으로 정치 쇄신했다고 하는 것, 우리 통합진보당은 단호히 반대합니다. 이것을 통해서 우리는 한국 사회를 근본에서부터 바꾸고자 합니다.

통합진보당이 만들고자 하는 나라는 당당한 나라입니다. 당당한 대통령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바로 내일은 한국군이 미군의 지휘를 받아야 하는 종속적 운명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한미연합사가 설치된 지 34년이 되는 날입니다. 2015년이면 전시작전권이 한국군에 전환되고 한미연합사도 해체됩니다. 하지만 그 뒤에도 공군의 전시작전권은 미국이 갖게 되고, 새로운 동맹지휘구조라는 명목으로 ‘미니연합사’를 만들겠다는 합의가 지난 10월 말에 이루어졌습니다.

주권은 나라의 생명입니다. 동북아 지역에서 자신들의 영향력을 강화하기 위해서 이 땅에 미군이 주둔하며 맺은 종속적인 군사동맹이 한미동맹입니다. 우리 국민이 미군 범죄로 죽어나가고, 우리 강산을 독극물로 오염시켜도 말 한마디 못하고 참아야 했던 것이 우리의 현실이었습니다. 미군이 원하는 곳이라면 어디든 내줘야 하고, 방위비분담금을 비롯한 직간접 비용을 매년 2조원 가까이 부담해야 하는 것이 생활고에 시달리는 우리 민중들의 현실입니다.

통합진보당은 우리의 주권을 확보하고 정상적인 한미관계를 만들기 위해, 무엇보다 한반도의 전쟁 가능성을 없애고 완전한 평화를 보장하기 위해 불평등한 한미관계를 해체하는 것을 한국 사회의 근본적 변화로 가는 가장 중요한 길로 제시합니다.

민생복지에 쓰일 돈 어디서 마련할 것인가 논의가 많습니다. 첫 번째 방법은 침략적 한미전쟁훈련을 중단하는 것입니다. 국제법적 논란의 대상인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 구상(PSI) 참여도 중단하겠습니다. 그러면 20조 원이 넘는 미국 무기 수입을 중단할 수 있습니다. 그 예산을 바로 민생복지예산으로 돌리는 것이 바로 통합진보당이 그리는 복지 계획이고, 민중들이 바라는 복지의 미래입니다.

통합진보당은 종속적 한미동맹을 단계적으로 해소하고, 불평등한 주한미군주둔군지위협정(SOFA)을 전면 개정할 것이며, 막대한 서민 세금이 들어가는 주한미군 주둔비와 미군기지 이전 비용을 전면 재검토하겠습니다.

한반도 모순의 핵심은 바로 정전체제에 있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 민중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통합진보당은 평화협정을 체결해서 한반도 전쟁위기를 없애고 항구적 평화와 번영을 이루어 내겠습니다. 한국사회에 유령처럼 떠도는 색깔론과 종북공세를 완전히 물리칠 것입니다. 모든 민중들이 자신의 표현의 자유와 정치사상의 자유를 완전히 회복하는 것, 이것이 우리가 나가야 할 우리가 만들어 내고자 하는 우리가 책임져야 하는 한반도의 미래입니다.

통합진보당은 늘 새로운 의제와 희망을 제시하며 한국 정치를 선도해왔습니다. 이제 정치권의 대세가 된 복지와 경제 민주화는 모두 민주노동당 시절부터 주장해왔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새로운 기치를 내놓았습니다. “상상하라, 코리아연방”. 한국 사회 진보의 방향이 어디를 지향해야 하는지, 민중들과 함께 만들 국가 비전이 무엇인지에 대한 통합진보당은 답을 내놓았습니다. 복지와 경제민주화에 이어, 진보정치가 추구해야 할 가치와 정체성이 분단체제를 극복하고 통일을 확고히 지향하는 것임을 우리는 명확히 선언했습니다.

우리가 만들어가야 할 미래, 함께 사는 대한민국은 남과 북이 서로 손을 잡은, 통일 조국 코리아 연방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통합진보당은 진보적 정권교체를 통해 모든 민중과 함께 우리 민족의 수십년 아픔을 해소하고 우리 민족의 염원을 반드시 실현하는 데 앞장서겠습니다.

늘 여러분께 부탁을 드려왔습니다. 우리 당원 여러분의 헌신과 희생으로 진보정치는 발전해 왔습니다. 지난 몇 년 분당의 아픔도 바로 전남도당 당원 여러분께서 헌신하셔서 어려움 앞 길을 해쳐오셨습니다. 다시 한 번 부탁드립니다. 민중의 염원, 민중의 명령, 진보적 정권교체와 한국 사회의 근본적 변화를 만들어 내는 이 길에 전남도당 당원여러분들께서 가장 앞에 서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어려운 길일지라도 험난한 길일지라도 제가 가장 앞에 서겠습니다. 고맙습니다.


2012년 11월 6일
통합진보당 이정희 대통령 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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