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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과 ‘내란음모’

‘촛불’과 ‘내란음모’
 
<분석과전망>청와대로 향하고 있는 촛불에 ‘내란음모’는 무엇일까?
 
한성 기자
기사입력: 2013/08/29 [13:07] 최종편집: ⓒ 자주민보
 
 

▲통합진보당이 ‘내란음모’를 기획했다구? 설마!

‘내란음모’

8월 28일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과 당직자 그리고 사회단체의 주요간부 등 10여명이 국정원으로부터 압수수색을 당하고 그 중 3명이 체포되는 사건이 벌어졌을 때 사람들이 접하게 된 단어였다.

국회의원이 내란음모라니? 더구나 대통령 후보까지 배출한 야당이? 국가기관을 전복하려 했다구? 설마!

사람들은 충격스러워 하기 보다는 그렇듯 황당스러워했다. 물론 자칫 잘못되면 ‘진보당내란음모사건’ 정도로 불리워질 수도 있을 것이라는 불안감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내란음모는 형법이다. 법적인 절차 없이 법의 기능을 무력화시키거나 강압적인 방법을 이용해 국가기관을 전복시키는 행위 등을 모의한 것에 대해 적용된다.

사람들은 지난 1980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사형을 선고받았던 것을 기억하고 있다. 그때 적용되었던 것이 내란음모였다. 지금도 <김대중내란음모사건>으로 불리우고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당시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배후로 지목받으면서 시작된 사건이었다. 문익환 목사 등 24여명이 군사재판에 회부되었다. 김 전 대통령은 2년 7개월 간 옥살이를 해야했다. 이어 미국으로 망명을 떠나야하는 고통까지도 감내해야했다.

역사에는 <김대중내란음모사건> 말고도 또 하나의 내란음모사건이 기록되어있다. 1975년 인혁당 사건이 그것이다. 당시 유신 반대 투쟁을 벌였던 민청학련(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 배후로 ‘인혁당 재건위’가 지목을 받았다. ‘인혁당 재건위’의 도예종 등 23명에게 붙혀진 혐의가 내란 예비와 음모 등이었다. 도예종 등 8명에게 사형이 선고되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18시간 후, 사형 집행이 되었다. 사법 역사상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1975년 4월 9일이었다. 국제법학자회는 이날을 '사법 암흑의 날'로 선포했다.

그러나 이 두 사건은 조작된 것이었다.

김 전 대통령은 1995년에 제정된 '5·18 민주화운동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2003년 10월 서울고등법원에 재심을 청구했다. 법원은 무죄를 선고했다. 2004년 2월이었다.
'김대중 내란음모사건' 조작 주체는 1980년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 등 신군부 세력이었다. 5.18광주민중항쟁을 제압하는 과정에서 광주시민들을 학살한 것에 대해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조작한 것으로 평가받았다. 정적을 제거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평가도 있다.

인혁당 사건이 조작되었다는 것을 밝혀낸 것은 2002년 9월 대통령 직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였다. 피해자들과 유족들이 재심청구를 했다. 사법부는 2007년 1월 23일 사형당한 8명에 대해 그리고 2008년 징역형을 선고받았던 다른 사람들에 대해 무죄를 결정했다.

인혁당 사건의 내란음모 조작은 유신시대를 본격화하는데 필요한 공안통치의 시작으로 평가받았다.

▲국정원이 ‘내란음모’를 기획한 것 아냐? 글쎄?

‘내란음모’와 관련된 이러한 역사적 사실들로부터 사람들은 이번 이석기의원 등에 대한 압수수색사건의 정치적 배경과 관련해 많은 사색을 진행했다. 그리고는 여러 분석들을 신속하게 내놓았다.

국정원의 ‘내란음모’가 국정원의 정치개입에 대한 정당성을 강변하기 위한 공작이라는 것이 그 하나이다.

국정원은 지난 대선에서의 '댓글작업‘에 대해 대북심리전 차원이라고 일관되게 주장해왔다. 이 주장에 따르면 ’종북세력‘들의 활동을 차단하는 것은 정당한 대북심리전 활동으로 된다. 이 주장에는 심지어 국정원법에 금지되어있는 국내정치개입에 대해 정당성을 부여할 수 있는 논리까지도 내재되어있다.

그러나 국정원의 이러한 주장은 논리적이지도 현실적이지도 않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국정조사 과정에서 폭로.확인된 내용이었다. 국정원은 수세에 내몰려야했다. 결국 국정원의 ‘내란음모’는 그동안 국정원이 비축해두었던 진보당 관련 정보들을 종합하여 사건으로 터뜨림으로써 기간 정치개입활동의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국정원에 대한 개혁요구를 무력화시키기 위한 공작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국정원의 선거개입 혐의 그리고 이를 물타기 하기 위한 것으로 평가받는 정상회담녹취록 공개 등으로부터 국정원은 강도 높은 개혁을 강제 받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셀프개혁을 주문함으로써 그 강도는 조금 눅잦혀진 측면이 있기는 하다.

그렇지만 야당의 요구는 국정원 입장에서는 심상치가 않다. 국내정치파트 폐지가 그 핵심이다. 민주당의 대표적인 요구이다. 진보당은 국정원을 폐지할 수 있는 선까지도 제시하고 있다. 국내정치파트는 국정원이 그간 영향력을 크게 가질 수 있게 하는 결정적 보루였다. 여기에서 수집한 광범위한 정보들은 국내정치사안에 개입할 수 있게 하는 즉, 공작정치의 원천이었던 것이다.

이로부터 국정원의 ‘내란음모’는 구체적으로 국정원 개혁의 핵심인 국내정치파트 폐지를 막기 위한 공작일 수 있다는 것이다.

▲국정원 ‘내란음모’는 ‘대통령 살리기’인가?

국정원의 ‘내란음모’에서 가장 무게 중심이 실려 있는 것은 정국전환용 혹은 ‘대통령 살리기’라는 분석이다.

촛불정세와의 관련성 문제가 그 핵심이다. 국정원의 선거개입에 대한 진상규명을 기본으로 이에 대한 책임자 처벌 그리고 대통령 사과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 촛불이다. 그러나 국정원선거개입에 대한 진상규명을 위해 출범했던 국정조사는 별다른 성과를 남기지 못했다. 일부 야당에서 특검을 제시하고 있기는 하지만 촛불은 지금 명백히 청와대로 향해가고 있다.

촛불이 청와대로 향하고 있다는 것은 현 정국에서 단순한 것이 결코 아니다. 국정원은 촛불을 책임져야하는 몫을 갖고 있다. 국정원 때문에 밝혀진 촛불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촛불이 청와대로 향하고 있다는 것은 국정원이 촛불을 막아내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단순히 국정원의 임무와 역할 그리고 그 존립과 관련된 문제로 국한되지 않는다.

현 시기 촛불이 공식적으로 제시한 최고의 목표는 박근혜대통령의 사과이다. 이는 박대통령의 사과라는 것이 국정조사 혹은 특검 등 합법적인 경로와 과정이 도달시킬 수 있는 최고치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렇지만 촛불이 청와대로 직접 향하게 된다는 것은 전혀 다른 의미를 갖는다. 합법적인 경로나 과정을 생략하는 보다 공격적인 방식을 취한다는 것이 그 첫 번째 의미이다. 촛불 대중은 서울 시청광장에 모였다 사라지고 말지만 세종로를 걸어가면 곧바로 청와대에 도달한다는 것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다.

촛불이 청와대로 향하게 된다는 것이 갖게 되는 또 하나의 의미는 사뭍 심각하다. 지난 대선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제기를 핵심적인 내용으로 담게 된다는 것이 그것이다. 부정선거, 대선무효, 대통령 하야라는 구호가 촛불현장에서 적지 않게 나오고 있는 정치적 배경을 구성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그동안 국정원을 비롯하여 새누리당 등 일체의 보수세력들은 촛불에 대해 종북논리로 공세를 취해왔었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역부족이라는 것이 확인되고 있다.

▲청와대로 향하는 촛불을 그냥 보고만 있을거니? 그리 한가해?

“청와대로 향하는 촛불을 어떻게 막아낼 것인가?”

촛불을 반대하는 세력들 중에 핵심이 갖는 현실적인 문제의식일 것이라며 한 정세분석가는 그렇게 말했다. 문제는 촛불이라고 했다. 국정조사에서의 새누리당의 힘으로도 전반 보수세력들의 종북공세로도 막아내지 못한 촛불을 국정원이 직접 나서서 막아내려는 공작으로 기획한 것이 국정원의 ‘내란음모’라는 것이었다.

촛불 초기 국면 때 국정원 선거개입을 물타기 하기 위해서 남북정상회담대화록을 공개했던 것과 같은 성격인 셈이었다. 물론 목표는 다르다. 국정원 살리기에 국한되지 않는 원대한 또 하나의 목표가 있는 것이 그 다른 점이다. 청와대를 향해 진격하고 있는 촛불을 꺼뜨림으로써 정국전환을 도모하고 위기에 빠질 수도 있는 최고권력자를 살려야한다는 목표가 작동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전선이 치열해지고 있는 셈이다. 전선의 쌍방 간에 판가리 성격의 긴장이 걸린 것으로 보이기도한다. 촛불이 서울시청 광장에서 청와대를 향해 나아갈 태세를 굳혀가고 있다는 것에 누구든 주목할 수밖에 없다. 아직 본격적으로 행동전으로 이어지지 않고 있을 뿐 진격하려는 징후를 곳곳에 잠재시켜놓고 있는 것이다. 물론 서둘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과연 촛불은 국정원이 또 다시 나서서 직접 던져놓고 있는 ‘내란음모’ 앞에서 어떤 전선을 그어주게 될 것인가? 사람들은 청와대 앞에서 조우한 ‘촛불’과 국정원의 ‘내란음모’의 쟁투를 숨죽여 지켜보게 될 것이다. 특히 이번 토요일에 하게 될 제10차 범국민대회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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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습 드러낸 이석기 "국기문란 주범이 진보세력 탄압"

"모든 혐의 전면 부인"... 통합진보당, 당 조직 투쟁본부로 전환

13.08.29 09:27l최종 업데이트 13.08.29 10:34l
유성호(hoyah35) 박소희(sost)

 

 

[기사 대체: 29일 오전 10시 2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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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습 드러낸 이석기 의원 "국기문란 국정원이 민주세력 탄압" 내란예비음모 혐의를 받고 있는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이 2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의원단 연석회의에 참석해 검찰과 국가정보원의 수사에 대해 입장을 밝힌 뒤 자리에서 일어서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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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란예비음모' 혐의를 받고 있는 이석기 통합진보당(아래 진보당) 의원이 29일 모습을 드러냈다. 전날 국가정보원이 그의 국회 의원회관 사무실과 자택 등을 전격적으로 압수수색을 벌일 당시 행방이 묘연했던 이 의원이 하루 만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이 의원은 국정원이 제기한 모든 혐의를 부인하며 "국정원이 진보와 민주세력을 탄압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날 오전 7시 55분쯤 국회에 나타난 이 의원은 취재진을 피해 곧바로 진보당 원내대표실로 들어가 약 30분 동안 열린 비공개회의에 참석했다. 이후 공개회의에서 카메라 앞에 선 그의 얼굴은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 의원은 거듭 목소리에 힘을 주며 "국정원이 유사 이래 있은 적 없는 엄청난 탄압책동을 강제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탄압이 거세면 거셀수록 민주주의의 불길은 더욱 더 커진다"며 "저와 통합진보당은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을 믿고 정의와 민주주의를 위하여 끝까지 싸우겠다"고 했다.

이 의원은 자신이 지하조직을 만들어 통신시설 파괴, 총기 소지 등을 모의하는 등 내란을 꾀했다는 혐의를 전면 부인했지만, 그 내용을 구체적으로 반박하지 않았다. 공개회의에서도 현 상황을 두고 "진보와 민주세력 탄압"이라는 원론적인 말만 했을 뿐, 취재진의 질문은 받지 않았다. 이 때문에 그의 답변을 요구하는 기자와 당 관계자들이 실랑이를 벌이기도 했다.

이석기, 개인 입장 밝히지 않아... 통합진보당 "모든 혐의 전면 부인"

홍성규 진보당 대변인은 공개회의 뒤 기자들에게 추가로 상황을 설명하며 이석기 의원 개인의 입장 표명은 없음을 다시 알렸다. 그는 "어제도 몇 차례 (모든 혐의는 사실 무근이며 해명할 필요도 없다고) 말씀드렸고, 국민들이 궁금해하기에 (이 의원이) 예정에 없던 발언을 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국정원이 제기한 혐의는) 전면 부인한다, 입증 책임은 모두 국정원에 있다"며 이석기 의원이 조직원들에게 "유사시에 대비해 총기를 준비하라"고 지시한 내용이 들어있다는 국정원 녹취록 역시 "(당 차원에선) 아는 바가 없고, 확인해 줄 수 없다"고 했다. 홍 대변인은 또 "어제 언론에 '국정원에 따르면, 검찰에 따르면' 식으로 나온 내용은 불법"이라며 "(검찰과 국정원이) 피의사실을 하나씩 흘리는 불법행위를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석기 의원과 진보당은 모든 혐의를 부인하고 있지만, 오늘 있을 의원실 압수수색을 거부하지는 않을 예정이다. 홍 대변인은 "이석기 의원 본인이 나온 이상 어제와 같이 고지 받지 않은 상태에서 진행된 압수수색을 거부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며 "국정원과 협의 후 정확한 압수수색 시간이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 의원실 보좌관 압수수색이 아직 종료되지 않았다"며 "이 압수수색이 종료되는 대로 의원실 자체 압수수색을 적법절차에 따라 진행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진보당은 28일 압수수색 과정에서 인권침해와 위법행위가 있었다고 밝혔다.

이정희 진보당 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에서 투쟁수위를 높여나가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오늘 이 시간부터 전 당 조직을 투쟁본부로 전환, 전당적인 총력체계로 바꾸겠다"며 "당 대표로서 제가 직접 본부장을 맡는다"고 말했다. 또 "당력을 총동원해 촛불을 더 키워나가겠다"며 "8월 31일 당원들을 국정원 앞으로 결집시키고, 촛불시민과 어깨를 걸고 싸우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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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석 추기경, 침묵은 금이 아니라 죄입니다

耽讀 | 등록:2013-08-29 09:35:49 | 최종:2013-08-29 09:40:03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인쇄하기메일보내기
 
 


 

"정부와 여당에게 묻겠습니다. 비상 대권을 대통령에게 주는 것이 나라를 위해서 유익한 일입니까? 그렇지 않아도 대통령한테 막강한 권력이 가 있는데, 이런 법을 또 만들면 오히려 국민과의 일치를 깨고…"-1971.12.24 성탄자정 미사

"7·4 남북공동성명이 평화 위장의 전쟁 준비 수단이나 권력정치의 기만전술로 이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민족과 더불어 엄숙히 경고한다."-1972.08 광복절 담화

김수환 추기경 "10월 유신같은 초헌법 철권통치는 박정희에게 불행"

▲ 김수환 추기경이 1972년 8월9일 서울 광진구 중곡동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에서 기자들에게 둘러싸인 채 ‘7·4 남북 공동 성명과 8·3 긴급 조치에 대한 메시지’를 발표하고 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제공

서슬퍼런 '독재자' 박정희에게 이런 일갈을 한 이는 고 김수환 추기경입니다. 특히 1971년 성탄자정 미사는 전국에 생중계 중이었습니다. 분노한 박정희는 방송을 중단시켰고, 책임자 옷을 벗겼습니다. 김 추기경은 1972년 10월 독재자 박정희가 '10월유신쿠데타'를 자행하자 "10월 유신 같은 초헌법적 철권통치는 우리나라를 큰 불행에 빠뜨릴 것"이라며 "정권욕에 눈이 먼 박 대통령 자신도 결국 불행하게 끝날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예언은 1979년 10월 26일 성취되었습니다.

또 다른 독재자 전두환이 '12·12군사반란'을 성공시킨 후 추기경을 찾았을 때 덕담이 아니라 면전에 대고 "서부 활극을 보는 것 같습니다. 서부영화를 보면 총을 먼저 빼든 사람이 이기잖아요"라고 직격탄을 날렸습니다.

이 같은 결기는 이름만 대면 다 아는 개신교 목사가 1980년 8월 6일 서울 롯데호텔에서 열린 '전두환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상임위원장을 위한 조찬기도회'에서 "이 어려운 시기에 막중한 직책을 맡아서 사회 구석구석에 악을 제거하고 정화할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와 "여호수아 장군 같이 되라"고 기도한 것과는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공교롭게도 이날 기도회는 KBS와 MBC가 생중계했습니다. 1971년 성탄절 자정미사 생중계와 전혀 달랐던 것입니다.

"(전두환)에게 '하느님이 두렵지도 않으냐… 나를 먼저 밟고 가라"

김수환 추기경은 이에 머물지 않고 1987년 '박종철타살사건'때 시국미사에서 다음과 같이 분노합니다. 이는 온 나라에 기름을 붓는 계기가 됩니다.

이 정권에 '하느님이 두렵지도 않으냐'라고 묻고 싶습니다. 이 정권의 뿌리에 양심과 도덕이라는 게 있습니까. 총칼의 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지금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묻고 계십니다. '너희 젊은이, 너희 국민의 한 사람인 박종철은 어디 있느냐?' '그것은 고문 경찰관 두 사람이 한 일이니 모르는 일입니다' 하면서 잡아떼고 있습니다. 바로 카인의 대답입니다

전두환 정권을 향해 "하느님이 두렵지도 않으냐"고 분노했습니다. 그리고 국민들에게 "우리는 모르는 일입니다"라고 하면 안 된다는 추기경의 호소는 시민들 마음을 흔들었습니다. 우리는 모른다고 하는 것은 카인이라는 지적에 시민들은 일어났습니다. 김수환 추기경은 이처럼 권력이 독재를 하고, 인간존엄성을 해할 때는 한치도 머뭇거리지 않고 비판했습니다. 특히 1987년 6월 항쟁 당시 명동 대성당에 들어온 시위대를 연행하기 위해 치안본부장과 안기부 차장에게 "경찰이 들어오면 맨 앞에 내가 있을 것이고, 그 뒤에 신부들, 그 뒤에 수녀들이 있을 것이오. 그리고 그 뒤에 학생들이 있을 것이오"라는 말은 전두환도 명동성당을 짓밟지 못하게 했고, 학생들을 지켜냈습니다. 그가 지난 2009년 2월 선종했을 때 40만명이 추모한 이유입니다.

김수환 추기경을 떠올린 이유는 국정원 부정선거 개입 의혹을 두고 고등학생, 대학생, 교수, 시민단체, 시민들 그리고 종교인들이 시국선언때문입니다. 종교인들 시국선언에는 천주교 신부들과 수도자와 수녀들도 함께 했습니다.

지난 21일 서울대교구 사제 262명도 "자유와 진리를 향한 무명의 헌신을 포기하면서까지 국가안보와 국익의 토대인 민주의 가치를 허물어뜨렸다"는 시국선언을 발표했습니다. 특히 지난 26일 천주교 수도자 4502명은 서울 신수동 예수회센터 성당에서 신약 루카복음 19장 40절 "이들이 잠자코 있으면 돌들이 소리 지를 것이다"는 말씀을 제목으로 시국선언을 발표했습니다. 이들은 "우리 사회가 민주주의의 정신을 제대로 실천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공정한 선거가 필수적"이라며 "이것을 침해하고 위협하는 그 어떠힌 행위도 자유 민주주의의 정신과 실천을 부정하는 것"이라고 강조하면서 다음과 같이 주장했습니다.

우리 사회가 추구하는 공동의 선은 소수 권력자들의 특권과 지배와 불법을 용인하는 순간 아주 쉽게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이것이 고쳐지지 않으면 우리 사회는 그 어떤 공동의 가치도 기꺼이 나누려 하지 않는 이기적이고 자기 파괴적인 사회가 되고 말 것입니다. 우리들은 권력의 그 어떤 불법과 특권에도 결단코 반대하며, 민주사회에서의 건강한 삶이 온전하게 회복되기를 간절히 희망합니다.

김수환 "카인이 되지 말라"고 했것만… 정진석 추기경 침묵

하지만, 정진석 추기경이 국정원 부정선거에 관련해 입장을 표명한 것을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사제들과 수도사들이 국정원 부정선거에 대해 성직자와 신앙인으로 양심으로 도저히 넘어갈 수 없이 분노하고 있는데도 침묵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김수환 추기경은 독재권력이 민주주의를 배반하고, 시민을 탄압할 때 앞장 섰습니다. 이는 이념 문제가 아닙니다. 민주주의 문제입니다.

사실 정 추기경은 이명박 정권 이후, 정치 현안에 대해 침묵하거나 오히려 정권 정책에 대해 옹호하는 듯한 반응까지 보여 천주교 내에서 비판을 받았습니다. 지난 2010년 12월 8일 기자간담회에서 4대강 사업에 대해 "그건 자연과학자들이 다루는 문제다"면서 "토목 공사하는 사람들이 전문적으로 다룰 문제지 종교인들의 영역은 아니다"고 했습니다. 발언이 알려지자 천주교 원로사제들은 "정 추기경의 말씀에 부끄럽고 비통한 심정을 금할 길이 없다"며 "용퇴"를 촉구하는 성명까지 발표했습니다.

명동성당은 1980년대 '민주성지'였습니다. 독재자 전두환도 결코 짓밟지 못했습니다. 그랬기에 학생과 노동자들은 공권력에 내몰리면 명동성동에 들어갔습니다. 구약시대 '도피성'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권력에 저항하다가 피해다니는 이들은 명동성당이 아니라 '철탑', '크레인', '송전탑' 위에 올라갑니다.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권력을 비판하지 않는 정진석 추기경 행보도 한몫했습니다.

더 이상 미룰 수가 없습니다. 국정원 부정선거에 대한 박근혜 대통령의 뻔뻔할 정도로 책임회피를 막기 위해서라도 정 추기경이 나서야 합니다. 사제와 수도사 수 천명 시국선언보다 더 큰 반향을 불러 일으킬 것입니다. 국정원 부정선거는 진보와 보수 같은 이념 문제가 아니라. 민주주의가 유린 당한 일입니다. 이것을 침묵한다면, 성직자로 자기 책임을 방기하는 일입니다.

침묵은 금이 아니라 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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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9는 국치일일 뿐이다? "신한국 최초의 날"

[강응천의 역사 오디세이] <2> 대동단결선언 정신으로 되짚은 8.29

강응천 인문기획집단 문사철 주간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3-08-29 오전 6:11:52

'강응천의 역사 오디세이'는 8.15처럼 한국인에게 역사적으로 중요한 날들에 담긴 의미를 짚어보는 기획이다. 필자는 1990년대부터 <한국생활사박물관>, <라이벌 세계사>, <지하철 史호선> 등 다양한 역사책을 기획하고 써 왔으며, 현재 인문기획집단 문사철 주간을 맡고 있다. <편집자>
 

역사 오디세이
<1> 분단에 대한 배상…세 번째 8.15가 필요하다


8.29가 사라졌다. 인터넷 검색창에 '8.29'를 쳐도, '8월 29일'을 쳐도 이날이 어떤 역사적 의미를 가진 날인지 알려주는 정보는 뜨지 않는다. 오히려 2010년의 8.29부동산대책이 먼저 눈을 사로잡는다. 오늘날 한국인이 맞닥뜨린 심각한 문제가 하우스푸어, 렌트푸어로 인한 가계 부채라는 점은 아무도 부인할 수 없으니 그것도 매우 중요한 항목인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 해도 그보다 100년 전에 있었던 1910년의 8.29가 이토록 철저하게 잊히고 있는 것은 분명 문제다.

8.29만이 아니다. 2주일 전인 8.15도 "바닷물도 춤을 춘다"던 흥분과 감동을 잊은 지 오래다. 충격과 분노, 회오와 다짐 속에 태극기 물결로 뒤덮이는 게 당연할 터인 8월이 그저 무덥고 짜증나고 집 걱정해야 하는 8월로 바뀌고 있다. '뜨거운 8월'의 기억을 되살려주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심심할 때마다 한 방씩 터뜨려주는 일본 우익 정치인들이다.

 

▲ 야스쿠니 신사. ⓒ강응천


역사의식 없는 일본 우익? 천만의 말씀

그들이 "위안부가 일본군에게 폭행·협박을 당해서 끌려갔다는 증거는 없다"(하시모토 도루 오사카 시장)라든가 "나치에게 개헌 수법을 배우자"(아소 다로 일본 부총리)라면서 한국인을 도발하고 위협할 때마다 한국인은 불같이 일어나 8월의 그날들을 상기한다. 그리고 일본 총리가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할 것인가, 일본 각료 가운데 몇 명이나 야스쿠니로 갈 것인가 등등에 촉각을 곤두세우다가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지 못해 사죄드린다"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약 올리기에 한 번 발끈하는 것을 정점으로 한국인의 8월은 여느 연례행사가 그렇듯 서서히 사그라진다.

한국인에게 8.29와 8.15가 과거사가 아니라 여전히 살아 있는 현실이라는 자각을 안겨 주는 '고마운' 일본 우익! 그들에 대해 한국 언론이 가하는 연례행사급 비판이 있다. "역사의식이 없다"라든가 "역사를 잊고 있다"라는 말이 그것이다. 정말 일본 우익은 역사의식이 없을까? 역사를 잊고 있을까? 천만의 말씀! 오히려 현대 세계에서 일본 우익처럼 철저한 역사의식으로 무장한 정치·사회 집단도 찾기 힘들다. 그들은 먼 옛날 임신한 몸으로 군사를 이끌고 한반도를 정벌했다는 전설의 여전사 진구황후에게 자신들의 역사적 생명을 가탁해 두고 있다. 8.29 직후 초대 조선총독으로 취임해 "(임진왜란 당시 왜군 장수이던) 가토 기요마사, 고니시 유키나가가 살아 있다면 오늘밤 이 달을 어떻게 보았을까?"라고 읊은 데라우치 마사타케는 그들의 역사적 멘토이다.

몇 년 전 8월 도쿄를 방문했다가 야스쿠니 신사에 들렀다. 숙소가 우연히도 김대중 전 대통령의 납치 사건이 일어났던 그랜드팔레스호텔이었는데, 야스쿠니는 바로 그 근처에 있었다. 신사 앞에는 확성기를 달고 '북조선 분쇄', '북방 도서 탈환' 등의 구호를 적은 시위 차량이 도열해 있고, 신사의 지킴이를 자처한 것처럼 보이는 청년들이 시시때때로 모여 의식을 행하고 있었다. 8월의 일본은 자숙하는 분위기일 거라는 지레짐작은 서점가를 방문했을 때 이미 깨져 있었다. 일본인에게 8월은 "반성하자, 8월"이 아니라 "아깝다, 8월!"이었다. 이길 수도 있었던 전쟁에 대한 회한을 가득 담고 복수를 다짐하는 듯한 책들이 서점의 판매대를 점령하고 있었다. 야스쿠니 신사는 그런 분위기의 정점을 이루는 곳이었다.

그때 신사 내부와 '유슈칸'이라는 전쟁박물관을 돌아보면서 문득 이런 상상을 했다. 잘 알려진 것처럼 야스쿠니 신사의 문제는 이곳에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A급 전범들의 위패가 합사되어 있다는 점이다. 만약 베를린 한복판에 히틀러와 괴링, 아이히만 등 나치스의 핵심 인사들을 추모하는 교회가 자리 잡고 있다면 영국, 프랑스 등이 어떤 태도를 취할까? 그 교회가 민간 시설이든 아니든, 독일 총리가 그곳을 참배하든 말든, 당장 철폐하라는 강력한 경고를 던지고 여차하면 선전포고까지 불사하지 않을까? 그런 상상을 하다 보니 일본이 독일에 비해 뻔뻔하다는 생각보다는 한국과 중국이 영국과 프랑스에 비해 참 관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이곳, 야스쿠니 신사를 거점으로 일본 우익은 역사의식을 불태우며 권토중래를 꿈꾸고 있다. 그들은 정치적 생명이 다하는 날까지 자신들이 믿는 역사적 소명을 완수하려고 발버둥 칠 것이다.

역사의식이 없는 사람들, 역사를 잊고 있는 사람들은 오히려 한국인이다. 한국인이 일본 우익에게 역사를 잊었다고 비난할 때 그 '역사'는 사실은 '도덕'이다. 나쁜 짓을 하면 벌 받는다는 기초 도덕이다. 그러나 역사는 나쁜 놈이든 좋은 분이든 길만 있으면 끝까지 달려가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도덕적인 훈계로 그런 경향을 막을 수는 없다. 내 길이 옳다면 역사 속에서 힘으로 입증하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 한국인은 그것을 입증하기도 전에 역사 자체를 잊어버리고 있다.
 

▲ 야스쿠니 신사 지킴이를 자처하는 듯한 사람들. ⓒ강응천
▲ 야스쿠니 신사 앞, 일본 우익의 시위 차량. ⓒ강응천


역사 잊은 한국인…항일 투쟁은 사회 개조 투쟁이었다

왜 이렇게 됐을까? 원인에 대한 구구한 설명을 차치하고 보면 1995년의 조선총독부 건물 해체가 그 거대한 기억 상실의 기폭제이자 상징적 사건이었다. 치욕과 분노의 기억을 말끔히 날려 버린 그 폭거를 전후해 '식민지 근대화론'이라는 기괴한 이론이 백주에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 이론을 주창한 뉴라이트에 따르면 일본의 식민지 정책으로 말미암아 한국은 근대화의 길로 들어섰다. 일제의 식민 침략을 미화했다는 비판에 대해 그들은 변명한다. 일제가 식민지 수탈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 아니라 수탈을 하려다 보니 한국 사회를 근대적으로 개조하게 되었다고. 그리하여 일제의 의도와는 관계없이 한국에 근대적 제도가 자리 잡게 되었으며, 이것이 한국인의 잠재력을 일깨워 현대 한국의 고도성장을 가져왔다고 한다.

듣고 보니 소름이 끼친다. 뉴라이트가 현대 한국을 이끌어 온 엘리트들의 사고방식을 대변한다면, 현대 한국의 자본주의가 왜 이렇게 외설적이고 엽기적이고 자기 파괴적이 되었는지에 관한 답이 그들의 고백 속에 들어 있는 것 같다.

뉴라이트를 포함한 보수 세력이 문제가 아니다. 진보를 자임하거나 진보로 분류되는 사람들 중에도 8.15, 8.29 하면 싫증부터 내는 이가 적지 않다. 2000년을 전후해 '제국주의 대 민족'이라는 '이분법적' 대결 구도로 일제강점기를 바라보는 전통적 시각에 피로감을 나타내는 '진보학자'들이 생겨났다. 그들은 식민지 시절에도 사람들의 다양한 삶이 있었고 싫든 좋든 우리 근대의 단초들이 진행되고 있었다는 데 주목하고, 열심히 모던보이, 모던걸로 대표되는 일제강점기의 다양한 근대적 양상에 확대경을 들이댔다. 그 결과, 일본 우익의 대변지로 꼽히는 <산케이신문>으로부터 일본 통치 시대를 수탈, 억압, 저항뿐인 '암흑사관'으로 보지 않고 근대화에 의한 다양한 변화를 발굴해 재평가하려 한다는 '찬사'를 받기에 이르렀다.

8.29에서 8.15에 이르는 선조들의 험난한 역정을 '민족주의'의 좁은 틀에 가두고 보려는 외골수 시각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민족'이니 '통일'이니 하는 얘기만 꺼내도 민족주의자나 주사파로 몰아가며 외면하는 '진보 세력' 일각의 풍조가 정당화되지는 않는다. 일제와 맞서 싸운 선조들이 다 진보적이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 시절의 진보 세력은 모두 다 일제와 싸웠다. 그들이 단지 이민족의 지배에 맞서 한민족의 순결을 지키기 위해서만 그랬겠는가? 그들에게 일제는 조선 봉건 왕조와 또 다른 의미에서 역사의 진보를 가로막는 적이었다. 항일 투쟁이 곧 사회 개조를 위한 투쟁이었다는 말이다. 현대 한국의 일부 진보 세력은 그 역사를 잃어버리고 있는 것 같다. 가끔 그들이 어디에 역사적 기반을 두고 있는지 의심스러울 때가 있다. 그들은 어디에서 온 진보인가? 스웨덴에서 왔는가, 프랑스에서 왔는가, 일본에서 왔는가?

8.29는 국치일일 뿐이다? 대동단결선언을 보라

우울한 8.29를 앞두고 경기도 의회가 '국기게양일 지정 등에 관한 조례'를 제정해 국치일인 이날 조기를 게양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반가운 일이다. 박수를 보낸다. 그러나 경기도민인 나는 조기를 게양하지 않기로 했다. 1917년 신채호, 박은식, 신규식, 조소앙 등 14명이 임시정부 수립을 위해 발기했다는 '대동단결선언'을 신봉하기 때문이다.

"융희 황제가 삼보(토지, 인민, 정치)를 포기한 8월 29일은 바로 우리 동지가 삼보를 계승한 8월 29일이니(……) 저 황제권이 소멸한 때가 곧 민권이 발생한 때이요, 구한국 최후의 날은 곧 신한국 최초의 날이다."

이런 의미에서 8.29는 암울한 국치일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현대 한국인이 자기 자신의 나라를 세우는 대장정을 시작한 날이기도 하다. 8.15부터 8.29까지의 2주간이 현대 한국인의 해방 주간이 되어 흥분과 다짐 속에 역사를 기억하게 되기를 기원한다.

 
 
 

 

/강응천 인문기획집단 문사철 주간 필자의 다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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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란음모' 남파간첩, 알고보니 북파공작원

 


국정원이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과 당직자, 관련 단체 인사 등 10명을 내란음모 혐의로 일제히 압수수색을 하고, 홍순석 부위원장,한동근 수원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 이상호 경기진보연대 고문 등 3명을 체포했습니다.

국정원은 이석기 의원을 총책임자로 하는 'OO산악회'가 혁명조직 'RO'를 만든 뒤 모임을 통해 북한과 전쟁이 발생하는 등 유사시에 철도,유류시설 등을 파괴하는 내란을 모의했으며, 북한의 혁명가요를 부르고, 북한의 주장에 동조하는 찬양,고무 행위 등의 국가보안법 위반도 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현재 많은 언론이 관계자의 말이라며 여러 가지 주장을 기사로 내보내고 있지만, 정확한 팩트는 실제로 밝혀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이엠피터는 언론은 물론이고 국정원의 주장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습니다.

'내란음모 혐의'라는 무시무시한 죄목이 있지만 믿지 않는 이유는 과거 국정원이 이런 식으로 간첩사건을 조작한 사례가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 국가전복 인혁당 간첩, 알고 보니 북파 공작원'

1964년 8월 14일 중앙정보부는 '북괴의 지령을 받고 국가변란을 기도한 대규모 지하조직 '인혁당'을 적발하여 관련자 57명 41명을 구속하고 나머지 16명은 수배 중에 있다'고 발표합니다.

 

 

 


김형욱 정보부장은 1962년 남파간첩 김영춘의 사회로 우동읍(본명 우홍선) 김배영,김영광,도예종,허작,김한득,박현채 등이 모여 창당발기인 모임을 갖고, '북괴 로동당' 강령 규약을 토대로 '인민혁명당'의 강령과 규약을 채택하여 발족했으며, 이들은 북괴의 지령을 받고 대규모 지하조직으로 국가를 변란하려고 했다고 발표합니다.

중정은 1962년 5월 북괴간첩 김영춘이 월북하여 '인혁당' 창당 결과를 보고했고, 1962년 10월에는 김배영이 당 자금 수령차 일본을 경유, 월북했으며, 전국의 군,면당과 군소 직장 내에 세포조직을 만들어 북괴 중앙당의 지령을 받고 한일회담반대를 '4.19'와 같은 혁명으로 발전하여 현 정권을 타도할 목적을 가졌다고 했습니다.

 

 

 


중정이 발표한 북괴지령과 국가변란의 당위성이 성립되기 위해서는 남파간첩이었던 김영춘과 김배영의 실체가 규명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남파간첩이라는 김영춘은 원래 전 동아대 철학과 교수이자 '사회대중당' 후보였던 김상한이었습니다.

김상한은 육군 첩보부대의 북파공작원으로 선발돼 1962년 7월 12일 북파되었던 인물이었습니다. 당시 중정은 북파 사실은 몰랐지만, 간첩이 아니라는 점을 알고 있었습니다. (중정이 얼마나 대북임무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 단순히 북에 넘어갔다는 이유로 그를 남파간첩으로 둔갑시켰습니다.

중정은 남파간첩 김배영이 월북했다고 발표했지만, 김배영은 인혁당 사건이 터진 후 11월에 월북했던 인물입니다. 그는 1967년 10월 공작원으로 남파됐다가 검거돼 1971년 사형을 받았는데, 중정은 1974년 제2차 인혁당 사건에도 죽은 그를 무덤에서 꺼내 간첩 사건을 조작합니다.

중앙정보부는 북파를 남파로 월북하지도 않았던 시기에 월북했다고 거짓을 말하면서 인혁당 사건을 '북괴의 지령'을 받은 국가변란 사건으로 조작했었습니다.

'간첩으로 체포된 23명 중 간첩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중앙정보부는 1967년 7월 8일부터 17일 사이에 7차에 걸쳐 '동백림을 거점으로 한 북괴 대남 적화공작단' 사건의 수사결과를 발표합니다.

중정은 해외에 거주하고 있는 문화예술인 윤이상·이응로, 학계의 황성모·임석진, 6.3 학생운동 주역인 김중태·현승일 등을 포함, 교수·예술인·의사·공무원 등 194명이 북한대사관을 왕래하면서 이적활동을 했고, 일부는 입북하여 노동당 입당과 국내에 잠입하여 간첩활동을 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중앙정보부는 황성모 교수가 '민족주의비교연구회'(민비연)이라는 단체를 조직하여 내란음모 및 선동시위 등으로 정부전복을 모의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중정은 공작금을 비롯한 여러 가지 문서를 내란을 위한 증거라고 내놓았지만, 사건의 결과는 중정의 처음 주장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중정은 동백림사건 관련자들이 북한의 특수교육을 받고 북한의 지령을 받은 후 간첩활동을 했다고 발표했지만, 사실 이들이 했던 일이라고는 3~4명이 남한에 왔다는 안착신호를 보낸 것과 북한 방송을 1~2회 청취했을 뿐입니다.

중앙정보부는 관련자 203명중 66명을 검찰에 송치했고, 검찰은 23명을 간첩죄, 간첩미수죄, 국가전복 내란음모죄로 기소했지만, 이들 중 간첩죄와 내란음모죄를 적용받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해외에 살면서 북한과 접촉하고 북한 방송을 들은 사실은 있지만, 이들이 중정의 발표처럼 북한의 지령을 받고 대규모 국가전복을 꾀하고 내란음모를 했다고는 전혀 볼 수 없는 과장된 '간첩 조작'사건이었습니다.

' 정권퇴진과 부정선거 폭로를 막기 위해 만들어진 간첩사건'

아이엠피터가 국정원의 전신인 중정의 여러 용공조작 사건 중에서 특별히 인혁당과 동백림사건을 거론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이 두 사건이 벌어진 배경을 이해하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1961년 5.16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는 민정이약 약속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1963년 10월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됩니다. 이후 일본 자본을 끌어들여 경제개발계획을 추진하려는 박정희 정권의 굴욕적인 한일회담은 정권퇴진 요구로 이어지게 됩니다.

1964년 5월20일 서울대 문리대생들은 박정희가 내세우던 '민족적 민주주의' 장례식을 치른 후 거리로 나왔고, 정부는 이를 '체제 전복 기도'로 간주하고 학생을 무차별적으로 연행했습니다. 그러나 담당판사가 영장청구를 기각하자, 무장군인이 법원에 난입하는 사태까지 벌어집니다.

학생들의 시위가 전국적으로 확대되면서 국민적 공감대와 지지까지 얻자 정부는 6월 3일 비상계엄령을 선포하고 이런 학생운동이 북한의 지령을 받은 인혁당이 원인이라고 발표합니다.

박정희가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후 자신을 퇴진하라고 요구하는 국민적 지지가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 조작한 사건 사건이 바로 '인혁당' 사건입니다.

 

 

 


1967년 제7대 국회의원 선거는 박정희에게 매우 중요한 선거였습니다. 1967년 재선에 성공했으나 영구집권을 위한 삼선개헌을 위해서는 반드시 개헌 가능선인 3분의 2를 초과한 의석을 확보해야만 했기 때문입니다.

박정희는 아예 목포에서 국무회의를 개최하는 등 선거법 위반을 태연히 자행하면서 금품살포는 물론이고 관권 동원 등 온갖 부정선거를 자행했으며, 이에 따라 개헌 가능선인 156석을 확보했습니다.

국회의원 선거가 끝나자 야당과 대학생들은 6.8 부정선거에 대한 대규모 규탄시위를 전개했으며, 박정희는 30개 대학과 148개 고등학교를 임시 휴업시켰습니다.

중앙정보부는 6.8부정선거 시위가 확산되자, 1967년 7월8일부터 17일 사이에 무려 7차에 걸친 '동백림 북괴 대남 적화공작단' 수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이후 6.8부정선거 시위는 간첩단 사건으로 신문지면에서는 점차 사라지게 됐습니다.

' 박정희 정권과 박근혜 정권, 왜 이렇게 비슷하지?'

아이엠피터가 인혁당과 동백림 사건을 사례로 들은 이유는 박정희가 간첩조작 사건을 벌인 이유와 지금 박근혜 정권의 '내란음모' 의혹이 비슷한 점이 많기 때문입니다.

 

 

 


인혁당 사건이 벌어지던 시기는 굴욕 한일회담으로 시작된 박정희 정권 퇴진 운동이 확산되던 시점이었습니다. 지금 촛불집회의 참석자가 점점 늘어가는 모습과 매우 비슷합니다.

동백림 사건이 일어났던 1967년에는 6.8부정선거로 야당과 대학생이 시위를 시작했었습니다. 중정은 부정선거를 은폐하기 위해 기존에 있던 동백림 사건을 과대 포장하여 발표했습니다.

지금 촛불집회는 국정원의 대선개입으로 부정선거와 박근혜 책임론이 나오고 있습니다. 국정원은 국정조사가 끝나자마자 곧바로 통합진보당의 '내란음모' 사건을 터트렸습니다.

자신의 불법적인 행위와 통치를 위해 간첩사건을 조작하고 이용했던 수법이 너무나 비슷합니다.

 

 

 


대한민국 정보기관은 삼선개헌,10.2항명사건,대선,총선 등 중요한 정치 사안때마다 정치인을 사찰하며 정치자금,이권청탁 등의 비리사실을 통해 회유, 협박하기도, 용공조작과 통치자의 통치자금을 조달하고 관리하는 등의 정치공작을 벌여왔습니다.

아이엠피터가 정치사를 공부하면서 놀란 것은 한국 현대정치사에서 한국 정보기관이 관여하지 않은 사건이 없으며, 결국 한국 현대정치사를 알려면 정보기관의 역사를 아는 것이 필수라는 사실입니다.

국정원이 '내란음모' 혐의로 현직 국회의원와 관련자를 체포, 압수 수색하는 일이 진짜 내란 사건을 조사하고 간첩을 적발하기 위하고 있다고 백퍼센트 믿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런데 과거 국정원이 했던 대부분 간첩사건이 정권을 유지하고 통치하기 위한 수단으로 조작됐다는 증거 앞에서도 그럴 수 있느냐는 의문이 듭니다.

진실은 언젠가 밝혀집니다. 그러나 진실을 묻어두려는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그것은 그 진실이 불편하기 때문입니다. 누구에게 불편한지는 역사가 알려줄 것입니다. 여러분이 믿는 진실이 진실이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을 꼭 해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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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공단의 역사 속에 나타난 미국의 횡포

개성공단의 역사 속에 나타난 미국의 횡포
 
 
 
문경환 기자
기사입력: 2013/08/29 [01:50] 최종편집: ⓒ 자주민보
 
 

7번에 걸친 실무회담 끝에 남북은 개성공단을 정상화하는 데 합의하였다. 이명박 정부 시절 모든 남북 관계가 단절되고 거의 유일하게 남은 경제협력 사업이었기에 개성공단 정상화 합의는 더욱 소중하다.

그러나 아직 안심은 이르다. 개성공단의 역사를 돌아보면 개성공단을 각방으로 방해한 나라는 따로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개성공단이 합의된 이후 지금까지 시종일관 개성공단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다. 미국이 대북적대정책을 철회하지 않는 이상, 그리고 한국 정부가 미국의 눈치를 보는 이상 개성공단은 언제든 제2, 제3의 위기를 맞을 수밖에 없다.


미국 눈치 속에 치른 개성공단 착공식

2000년 8월 22일 현대아산과 북한은 역사적인 개성공단 사업을 합의하였다. 당시는 첫 남북정상회담이 열려 6.15 남북공동선언이 발표되던 때였다. 남북 관계가 급진전하면서 각종 교류협력 사업이 봇물 터지듯 시작될 때였다. 그리고 북미 사이에도 관계 개선 분위기가 조성되어 올브라이트 미국 국무부장관이 북한을 방문하고 조명록 북한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이 미국을 방문하고 북미 공동코뮤니케를 발표하던 때다. 그래서 개성공단이라는 대규모 경제협력 사업이 가능했다.

그러나 미국에 부시 행정부가 들어서고 북미 관계가 다시 험악해지면서 개성공단에는 난관이 조성되기 시작했다. 부시 대통령은 2001년 새해 연두교서에서 북한을 <악의 축>으로 지목하고 대북적대정책으로 회귀하였다. 남북관계가 발전하는 것에도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다. 심지어 한미정상회담 자리에서 남북화해정책을 설명하는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막말까지 내뱉었다.
이런 와중에 착공식 날짜는 다가왔다. 미국은 착공식 전부터 반대의 입장을 분명히 했다. 2002년 11월 7일 더글러스 파이스(Douglas Feith) 미 국방부 정책담당 차관은 용산 미8군 사령부에서 조중동을 비롯한 친미반북 언론만 따로 불러 기자간담회를 가졌다. 파이스 차관은 개성공단 착공에 입장을 묻는 질문에 ≪북한이 국제 합의를 깨고도 다른 나라와 정상적인 거래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도록 만들어서는 안 된다≫며 개성공단 착공에 반대 입장을 밝혔다.
미국의 눈치 속에서 2003년 6월 30일 남북은 개성공단 착공식을 진행하였다. 2003년 7월 1일자 로스앤젤레스 타임스(LAT)는 북한 경제봉쇄를 촉구하는 미국의 신경을 건드리지 않기 위해 개성공업지구 착공식을 의도적으로 차분한 분위기 속에 진행했다고 보도했다. 착공식에는 남측에서 한국토지공사, 현대 아산 관계자 등 120여명, 북측은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등 약 200명이 참석했으나 개성공단이 외국기업에 문호를 열고 있음에도 외국인 초청자들은 많지 않았다.

입주 단계에서 발목을 잡은 미국 수출관리규정

2004년 6월 14일 15개 기업들이 개성공단 시범단지에 입주계약을 체결했다. 그러나 미국의 견제로 기업들은 입주에 어려움을 겪었다. 정동영 전 통일부장관은 2013년 5월 2일 블로거 간담회에서 ≪개성공단을 만드는 과정에서 미국의 반대가 있었다≫, ≪EAR라고 미국의 기술이 10% 이상 들어간 물자는 군사물자로 전용될 수 있다 해서 적성국가에 수출 시 미국 정부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 법이 있다≫, ≪어지간한 공장엔 컴퓨터가 들어가는데 미국이 반대하면 공장을 지을 수 없다≫고 밝혔다.
미국은 2003년 5월 <연례 세계 테러보고서>를 통해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다시 지정했다. 테러지원국에 생산설비와 기자재를 반입하려면 미국 수출관리규정(EAR)에 따라야 한다. 이 규정에 따르면 북한에 미국산 부품이나 프로그램이 10% 이상 포함된 수출통제품목(CCL)을 수출할 경우 미 상무부의 사전 승인을 받아야 한다. 예를 들어 펜티엄3급 이상의 컴퓨터는 개성공단에 가지고 들어갈 수 없다. 개성공단에 공장을 차려도 컴퓨터를 쓸 수 없는 것이다. 이미 북한은 펜티엄4급 컴퓨터를 자체 생산하고 있기에 참으로 황당한 규정이지만 지키지 않을 수 없다. 입주업체가 미국의 제재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수출관리규정 외에도 전략물자통제체제인 바세나르 협약(The Wassenaar Arrangement), 원자력 전용 및 관련품목을 통제하기 위한 핵공급그룹(NSG : Nuclear Suppliers Group), 생화학물질의 통제를 위한 호주그룹(AG : Australia Group), 미사일 부품의 통제를 위한 미사일기술통제체제(MTCR) 등을 통해 개성공단으로 들어가는 물품을 규제하였다.

15개 입주예정 업체는 미국 상무부에 1140여 개 품목 심사를 신청했다. 미국은 초반에는 원칙적으로 처리하겠다며 까다롭게 나왔다. 한국 정부는 미국 정부와 긴급 협의를 통해 전략물자 반출 감시가 가능하다고 설득하고 나섰다. 정동영 당시 통일부장관도 미국을 방문해 케네스 저스터 상무부 차관을 만나 <읍소>하였다.

2004년 8월 12일 시민단체들은 보도자료를 통해 남북상생의 평화경제사업인 개성공단이 전략물자 반출 문제로 위기에 처해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미국이 협조하지 않으면 ≪개성공단 사업 자체가 불투명해질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2004년 9월 6일 북한 노동신문도 논설을 통해 ≪미국이 전략물자 수출통제 법규를 개성공업지구에 진출하는 남조선 기업에 적용하겠다고 통지한 것은 군사전용 가능성을 문제삼아 개성공업지구 건설사업을 파탄시키자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미국은 동서해선 철도·도로연결과 개성공업지구 건설이 시작된 첫 시기부터 훼방을 놓고 핵문제의 진척에 맞춰 북남관계 진전속도를 조절하라고 남조선 당국을 강박하는 등 민족 화해협력사업을 방해하려 했다≫고도 언급했다.

전략물자 반출문제는 개성공단의 출발 과정에서 심각한 걸림돌이 되었다. 삼성경제연구소 동용승 경제안보팀장은 ≪수출시장에서 경쟁력이 있는 하이테크 제품을 생산하려면 그에 필요한 원료와 부품이 적시에 투입돼야 하는데 국제 간 협약인 <전략물자 반출금지> 규제로 주요 첨단부품의 공급이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2004년 12월 15일자 조선일보 인터넷판 보도)

미국은 개성공단 성사 여부는 자신들의 결정에 달려있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2004년 11월 9일 서울 용산 주한미군기지에 있는 유엔군사령부 군사정전위원회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과 비무장지대(DMZ) 내 최전방지역으로 이전했다. 이곳에서 비무장지대를 출입하는 인원과 반입 물자에 대한 승인 및 허가 등의 임무를 수행하면서 전략물자 반입을 집중적으로 감시하려는 목적에서다. 이철기 동국대 교수는 비무장지대 관할권이 주한미군에게 있다는 것을 과시하기 위한 상징적, 실질적 조치라고 지적했다.(2004년 11월 9일자 문화일보 인터넷판 보도)


노동착취를 우려하는 자본주의 미국

남북은 이런 미국의 방해 속에서도 개성공단 시범단지 입주를 성사하고 본격 가동에 들어갔다. 그러자 이번에는 인권 문제, 노동권 문제가 대두됐다.
제이 레프코위츠 미국 대북인권특사는 2006년 3월 30일 미국기업연구소(AEI) 주최 북한인권 토론회에 참석해서 ≪개성 공단 북한 근로자들은 하루에 2달러밖에 안되는 적은 액수의 돈을 받고 있으며 노동권리에 대해서도 아무런 보장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미 하원 국제관계위원회 청문회에서는 개성공단 사업이 북한에 수억 달러를 퍼주었고 북한의 새로운 돈줄이 되고 있다고 비난했다.
2006년 4월 28일에는 월스트리트저널 기고문을 통해 개성공단 북한 노동자들이 노동 착취를 당하고 있다며 한국이 북한 정권 유지를 돕고 있다고 주장했다. 같은 날 부시 미국 대통령은 탈북자들과 김성민 북한자유방송 대표 등을 만나 ≪미국 대통령으로서 인권과 자유가 없는 북한 주민들을 위해 끝까지 일할 의무가 있다≫고 말했다. 이 자리에는 제이 레프코위츠 특사도 배석했다. 한국 정부 당국자는 내정간섭적 발언이라며 반발했다.

이 문제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도 영향을 미쳤다. 노무현 정부는 개성공단의 원산지 표기를 <Made in Korea>로 해 줄 것을 요구하였지만 미국은 철저히 거부했다. 미국 민주당 의원들과 비정부단체들이 북한 인권 문제, 개성공단 노동자 처우 문제를 들고 나선 게 명분이었다.

미국은 재무부 자산통제국(FOAC)의 승인이 있어야만 북한산 제품 수입이 가능하다. 이는 북한에서 제조한 완제품뿐 아니라 일부 북한산 부품을 포함한 제품에도 적용되며 미 세관이 자산통제국의 승인절차를 감독한다. 따라서 개성공단 원산지를 한국으로 하지 못하면 한미 FTA가 있어도 개성공단에서 생산된 제품은 미국 수출이 거의 불가능하다.

2010년 천안함 사건이 터지자 미국 공화당 의원들은 노골적으로 개성공단을 폐쇄하라고 압박했다. 공화당 하원의원이자 미국 의회 내 한국협의회인 <코리아 코커스(Korea Caucus)> 공동의장인 에드 로이스는 2010년 6월 3일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글을 통해 ≪수년동안 나는 개성공단에 의문을 가져왔다≫면서 ≪개성공단을 지금 폐쇄하라≫고 촉구했다.
 
개성공단 가동 중단에 스며든 미국의 입김

이처럼 미국은 개성공단 논의 시점부터 지금까지 일관되게 부정적 입장을 가지고 있었고 끊임없이 방해해왔다. 올해 들어 벌어진 개성공단 가동 중단 사태에도 미국의 영향력은 여전했다.
2013년 6월 14일(현지시간) 글린 데이비스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미국에서 기자들과 만나 ≪우리는 매일매일 한국의 외교관과 정부당국자들과 접촉하면서 이런(개성공단 남북 실무회담 진행) 상황을 파악하고 있다≫면서 박근혜 정부의 개성공단 인력 철수와 남북 당국자회담 무산 과정에 미국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것을 암시했다.

2013년 7월 29일 데이비드 코언 미국 재무부 테러·금융범죄 담당 차관이 한국을 방문했다. 미국의 대북 금융제재를 총괄하는 인물이다. 같은 날 박근혜 정부는 개성공단 정상화를 위한 마지막 실무회담을 열자면서 사실상 <최후통첩>을 했다. 미국의 개성공단 폐쇄 압박에 박근혜 정부가 동조한 셈이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개성공단 재가동 문제는 ≪북미관계가 어떻게 풀리느냐를 보고 나서 뒤따라가는 모양새가 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2013년 4월 26일자 프레시안 보도)
미국 때문에 발생한 개성공단의 우여곡절 역사를 돌아보면 미국의 대북적대정책이 사라지지 않는 한 개성공단은 언제든 위기 상황에 빠질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남북의 경제협력 사업조차 미국의 눈치를 보고, 미국의 승인을 얻어야 하는 이 모순을 하루빨리 극복해야 하겠다. (2013.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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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를 넘은 <뉴스데스크>의 ‘박근혜 편애’

박근혜 발언은 ‘자세히’… 민주당 논평은 ‘언급 조차’ 안해
 
耽讀 | 등록:2013-08-27 12:43:35 | 최종:2013-08-27 12:46:10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인쇄하기메일보내기
 
 


 

▲ <뉴스데스크>는 박 대통령 발언을 두 차례나 전했지만, 민주당 논평 내용 자체는 단 한 줄도 보도하지 않았다. ⓒ 뉴스데스크

"국정원 댓글 사건과 관련해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대선 때 국정원의 어떤 도움도 받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26일 <뉴스데스크> 朴대통령 "국정원 도움 안 받았다…국정원 개혁 강력추진"

박근혜 발언은 '자세히'… 민주당 논평은 '언급 조차' 안해

아니나 다를까. MBC <뉴스데스크>는 26일 첫 기사로 박근혜 대통령이 이날 "지난 대선에서 국정원으로부터 어떤 도움도 받지 않았고, 선거에 활용한 적도 없습니다."고 말한 것을 뽑았습니다.

<뉴스데스크>는 <朴대통령 "국정원 도움 안 받았다…국정원 개혁 강력추진"> 제목 기사에서 "수석비서관 회의를 주재한 박 대통령은 민주당 의원들이 3.15부정선거를 언급하며 공세를 올리는 것과 관련해 분명한 입장을 밝혔다"면서 박 대통령 발언을 전했습니다.

이어 "또 야당이 주장하는 국정원 개혁은, 국가 안보를 위한 본래의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강력하게 추진하겠다고 밝혔다"면서 "그러면서 다음 달 정기국회 때는 민생에 집중하자며, 경제민주화와, 부동산 대책, 지하경제 양성화 등을 위한 조속한 법안 처리를 요청했다"고 보도했습니다. 당연히 박 대통령이 한 "국민을 위해 협조할 것은 초당적인 마음으로 임해주셔야 경기도 살릴 수가 있고 국민들의 삶도 나아질 수 있습니다"는 발언도 상세히 알렸습니다.

하지만 민주당 논평 내용은 보도 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새누리당은 환영입장을 밝혔고, 민주당은 국정원 의혹에 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없는 논의는 본질을 비켜간 것이라며, 국정원 개혁과 민생을 함께 논의하자고 역제안했다"고 전했을 뿐입니다.

이날 김관영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브리핑을 통해 "민주주의 없는 민생이 사상누각이듯, 국정원 불법 대선 개입 사건에 대한 철저한 진상규명과 성역 없는 책임자의 처벌, 국정원 개혁에 대한 확고한 입장 표명 없이 민생만 논하자는 것은 본질을 비켜가는 것"이라고 박 대통령을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특히 김 대변인은 박 대통령이 '국정원으로부터 도움 받지 않았다"고 말한 것과 관련, "도움 준 사람은 있는데 받은 사람이 안 받았다고 하면"그만이냐며 "국민들이 판단할 것"이라고 질타했습니다.

공정한 언론이라면, 박 대통령이 국정원 도움을 받지 않았다고 한 것에 대해 민주당이 비판한 내용을 전해야 합니다. 하지만 <뉴스데스크>는 박 대통령 발언을 상세히 전하면서 민주당 논평 내용은 전하지 않았습니다. <뉴스데스크>가 얼마나 박근혜 대통령을 편애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중국 안전띠 '미착용'은 보도해도… 천주교 수도사 4502명 시국선언은 'ㅅ'도 없어

무엇보다 이날 중요한 시국선언 하나가 있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 모교인 서강대 예수회센터에서 천주교 수도자 4502명이 국정원 대선개입 규탄 시국미사를 봉헌하면서 시국선언을 했습니다. 이들은 "국가정보원과 경찰이 공모해 민주사회 유지에 필요한 최소한의 절차인 선거에 불법 개입한 사실이 드러났다"며 "시민의 자유와 권리가 국가권력에 의해 공공연히 침해받고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특히 이들은 "정부 대표로서 국정원, 경찰, 새누리당의 불법 행위를 책임져야 한다"며 "국민에게 마음을 다해 사죄하고 공정하고 균형잡힌 민주사회가 되도록 관련자 처벌, 국정원 개혁 등 모든 노력을 즉시 실행해야 한다"며 박 대통령에게 사과를 촉구했습니다. "나는 도움을 받지 않았다"는 박 대통령 해명을 정면으로 비판한 것입니다.

▲ <뉴스데스크>는 중국 사람들이 안전띠를 착용하지 않고 참사가 자주 일어난다는 기사는 보도하면서 천주교 수도사 4502명이 시국선언한 것은 보도하지 않았다. 보도하면 갈무리 ⓒ 뉴스데스크

하지만 <뉴스데스크>에서는 시국선언 'ㅅ'도 없었습니다. 이날 <뉴스데스크>는 중국 관련 기사를 두 개나 보도했습니다. 그 중 하나가 <중국, 또 안전띠 미착용 참사…운전기사조차 '관심無'>입니다. 해당 기사는 지난 2일 중국 저장성의 한 고속도로에서 발생한 관광버스 사고에서 운전기사가 튕겨나가는 동영상을 보여주면서 중국 사람들이 안전벨트를 잘 메지 않아 중국 당국이 고민에 빠졌다고 보도했습니다.

기사는 또 다른 사고 동영상을 보여주면서 "중국에서는 현재 안전벨트를 착용하지 않을 경우 벌점 3점과 우리 돈으로 1만8천원 가량의 벌금을 부과하고 있지만 잘 지켜지고 있지 않은 탓에 인명 피해가 잇따르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보시라이 재판은 보도… 원세훈 재판은 했는지 몰라

다른 기사는 보시라이 전 충칭시 당서기 재판 관련 내용입니다. 21번째 <中 보시라이 '세기의 재판' 아내와 선 긋기…치정극으로?>제목 기사에서 "보시라이는 자신의 오른팔이었지만 결국 자신을 몰락시킨 왕리쥔 전 충칭시 공안국장을 지목하며 '내 아내를 짝사랑 한 남자'라고 폭로했다"면서 "왕리쥔이 미국 영사관으로 달아났던 것도 아내 구카이라이를 짝사랑한 사실을 들켜 보복이 두려웠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고 보도합니다.

▲ <뉴스데스크>는 중국 보시라이 재판은 보도해도, 원세훈 재판은 보도하지 않았다 ⓒ 뉴스데스크

그러면서 "지난해 왕리쥔은 보시라이 아내의 살인사건을 보고했다 묵살당했다며 미 영사관으로 도피했고 보시라이의 낙마로 이어졌다"면서 "결국 이번 사건이 내부 '권력투쟁'에서 일어난 게 아닌 단순 '치정극'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음을 시사한 대목"이라고 전했습니다.

그런데 보시라이 재판은 보도하면서 이날 열렸던 공직선거법 및 국가정보원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 대한 첫 공판은 아예 보도하지 않았습니다. 이날 공판에는 중요한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오마이뉴스> 보도에 따르면, 검찰은 김하영씨를 비롯한 국정원 심리전단 소속 직원들이 외부 조력자를 활용했으며 내부 보고를 거쳐 이들에게 매월 활동비로 300만 원을 지급했다고 밝혔습니다.

검찰은 "피고인(원세훈)은 심리전을 적이 아닌 국민을 상대로 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검찰은 "피고인은 정부 여당을 비판하거나 북한과 유사한 주장을 하는 개인이나 단체를 모두 종북으로 지목하고 공박을 지시했다"면서 "피고인의 이런 사고는 안보기관의 수장으로서 수사나 재판 결과 등 구체적인 근거도 없이 무차별적으로 종북 딱지를 붙이는 신종 매카시즘"이라고 비판했다.-26일 <오마이뉴스> "국정원, 외부 조력자에 월 300만 원 활동비 지급 원세훈, 무차별 종북딱지로 신종 매카시즘 행태"

'문화방송'에서 '그네방송'으로 이름 바꿔라

어떻게 이렇게 중요한 내용을 '단신보도'도 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중국 안전벨트 미착용 사고와 보시라이 재판은 자세히 보도한 <뉴스데스크>는 시국선언과 원세훈 재판은 아예 없었던 것처럼 보도 조차하지 않았다는 것은 공영방송임을 포기한 거나 다름없습니다.

물론 이날도 '날씨방송' 답게 <폭염특보 모두 해제…목요일부터 전국 '가을비'>, <온난화에 과일재배 지각 변동…작물지도 바뀐다>, <추석 벌초, 맹독성 말벌 조심…번식기 맞아 '웽웽'>기사를 내보냈습니다.

이쯤 되면 <뉴스데스크>의 '박근혜 편애'가 도를 넘었습니다. 아예 '문화방송'이 아니라 '그네방송'으로 이름을 고치는 것이 더 낫습니다. 그럼 욕도 안 먹을 것입니다. 왜 '그네방송'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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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들은 도로의 제한속도를 안다

새들은 도로의 제한속도를 안다

 
조홍섭 2013. 08. 27
조회수 4134추천수 0
 

제한속도 110㎞ 도로에선 75m, 50㎞ 도로에선 15m 거리에서 날아가

천적인 자동차에 당하느냐 먹이를 더 먹느냐 기로, 개별 차 속도는 무관

 

640px-Phasianus_colchicus_Roadkill.jpg » 로드킬을 당한 장끼. 도로의 자동차에 어떻게 적응하느냐는 새에게 중대한 문제이다. 사진=위키미디어 코먼스

 

도로는 새들의 서식지를 파괴하고 단절시킬 뿐 아니라 자동차 충돌이라는 직접 위협을 가한다. 미국에서만 연간 8000만 마리의 새들이 도로에서 죽임을 당한다. 세계 다른 곳에서도 해마다 수백만 마리가 희생될 것이다.
 

이런 대규모 위협에 잘 적응한 새는 살아남고 그렇지 못하면 사라질 것이다. 도로는 새에게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 진화할 것을 요구한다.
 

사실, 새들은 놀라운 적응 능력을 가지고 있다. 도시에 사는 명금류는 소음에 맞서 노래의 주파수를 높이기도 하고, 러시아워를 피해 노래시간을 조정하기도 한다.
 

새들은 도로에서 어떻게 적응할까. 관건은 차가 어느 정도 다가왔을 때 날아갈까이다. 너무 늦으면 차에 치고 너무 이르면 먹이를 제대로 먹지 못한다. 이런 적응은 처음이 아니다. 탐조 애호가가 많은 도시의 새들은 이미 농촌에서보다 사람이 더 가까이 다가왔을 때 날아간다. 도시 사람이 농촌 사람보다 덜 위험하기 때문이다.
 

Christopher Watson _781px-Roadkill_wedgie_-_Christopher_Watson.jpg » 도로에 죽은 동물을 먹기 위해 내려앉았다가 자동차에 치인 맹금류. 사진=크리스토퍼 왓슨, 위키미디어 코먼스

 

최근 캐나다 연구자들은 새들이 새로운 천적인 자동차에 어떻게 적응하는지를 실험한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연구진은 프랑스에서 새들이 자동차에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관찰했다. 주로 까마귀, 집참새, 대륙검은지빠귀 등이 도로에서 먹이를 먹다가 자동차가 다가서면 날아갔는데, 흥미롭게도 도로의 제한속도에 따라 날아오르기까지의 접근 허용 거리가 달라졌다.

 

제한속도가 시속 50㎞인 도로에서 새들은 15m까지 접근했을 때 날아갔지만 제한속도 110㎞ 도로에선 75m 밖에서 날아올랐다. 어떤 도로냐가 중요하지 개별적인 자동차의 속도는 전혀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
 

다시 말해 새들은 도로의 위험을 자동차의 평균 속도, 곧 제한속도와 연관지어 평가한다는 것이다. 마치 도시에서 사람이 가까이 접근할 때까지 먹이를 먹는 것이 유리하듯이, 도로에선 제한속도에 맞추어 날아오르는 거리를 잡는 개체가 살아남는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바이올로지 레터스> 최근호에 실린 이 연구는 또 새끼를 기르는 어미 새가 많은 봄에는 자동차가 가깝게 접근했을 때에야 날아가는 경우가 많았고, 어린 새가 많은 가을엔 멀찍이 차가 와도 날아간 사례가 많다고 밝혔다.
 

cliff-swallow_s.jpg » 차에 치여 죽은 삼색제비. 날개가 긴 개체가 짧은 개체보다 많이 죽는다. 사진=찰스 브라운 외, <커런트 바이올로지>

 

도로가 새들을 무자비하게 ‘선택’한 사례도 있다. 일본 나고야 대학의 미국인 연구진은 지난 30년 동안 미국 네브라스카에 서식하는 삼색제비의 사회행동과 군집생활을 연구해 왔다. 이 새들은 1980년대 도로가 건설되자 절벽 대신 다리, 고가도로, 배수로 등에 둥지를 틀기 시작했다.
 

당연히 자동차와 충돌해 죽는 개체가 많았다. 그런데 30년 동안 이 제비의 전체 개체수는 증가했는데도 로드킬을 당하는 제비는 현저히 줄어들었다.

 

놀랍게도 그 사이 이 제비의 날개 길이는 상당히 짧아졌다. 날개가 긴 제비가 주로 자동차와 충돌해 죽었던 것이다. 날개가 짧아야 도로에서 재빨리 수직으로 날아오를 수 있다.
 

road kill.jpg » 지난 30년 동안 삼색제비의 둥지는 늘어나는데 로드킬은 현저히 줄어들었다(A). 날개 길이별 로드킬 빈도를 보면 날개가 길수록 크게 늘어남을 알 수 있다(B). 그림=찰스 브라운 외, <커런트 바이올로지>

 

도로는 날개가 긴 제비를 솎아냈고, 날개가 점점 짧아진 제비들은 로드킬을 당하는 횟수가 훨씬 줄어들게 된 것이다. 이 연구는 지난 3월 <커런트 바이올로지>에 실렸다.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Legagneux P, Ducatez S. 2013 European birds adjust their flight initiation distance to road speed limits. Biol Lett 9: 20130417. http://dx.doi.org/10.1098/rsbl.2013.0417
 
Charles R. Brown and Mary Bomberger Brown, Where has all the road kill gone? Current Biology, Volume 23, Issue 6, R233-R234, 18 March 2013 http://dx.doi.org/10.1016/j.cub.2013.02.015.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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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조는 재앙의 시작…"낙동강은 영원히 사라졌다"

주기재 교수 "국토교통부 해체 없이 낙동강 복원 불가능"

강양구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3-08-27 오전 8:13:21

 

'녹조 라떼'라 불리는 낙동강 중류의 녹조 현상이 이명박 정부가 추진한 4대강 사업이 직접적인 원인이라는 주장이 나와 주목된다. 주기재 부산대학교 교수(생명과학과)는 오는 8월 29일부터 30일까지 전남대학교에서 열리는 한국환경생물학회에서 이런 내용의 연구 결과와 대응 방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주기재 교수가 이끄는 부산대학교 담수생태학연구실은 1993년 이후 낙동강 하류 물금(경상남도 양산) 등 본류 6곳과 왜관(경상북도 칠곡) 등 지류 9곳에서 1~2주일 간격으로 수질 검사를 20년째 진행하고 있다. 주 교수는 "담수생태학연구실에서 축적한 검사 결과는 4대강 사업 전후에 낙동강의 수질이 어떻게 변했는지 확인할 수 있는 자료"라고 설명했다.

낙동강 녹조 현상, '이명박 대운하' 탓이다

담수생태학연구실의 자료를 보면, 2008년까지 낙동강 중·하류의 수질은 점진적으로 개선되고 있었다. 특히 갈수기에 수질이 악화되는 모습을 보였던 하류와는 달리 왜관 이북 중·상류의 수질은 양호했다. 주기재 교수는 "하구둑으로부터 200~260킬로미터 구간인 중·상류는 수심 1~2미터 정도로 모래톱이 발달된 맑은 하천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낙동강의 수질은 2009년부터 2011년 8개의 보가 설치되면서 급격하게 변했다. 주 교수는 "16년 동안 단 한 번도 남조류 등이 번식하지 않았던 구미, 칠곡에서 녹조 현상이 확인됐다"며 "보로 인한 강물의 체류 시간 증가로 2012년에 이어서 올해도 똑같은 현상이 관찰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주 교수는 "최근 전 국민의 이목이 쏠린 구미, 칠곡의 녹조 현상이 보로 인해 발생했다는 사실을 부정해서는 안 된다"며 "병원에서 시티(CT) 촬영을 통해서 병의 진원지를 찾듯이 이제 그 원인을 구간별로 찾아서 오염을 줄이고, 보 내의 물질이 어떻게 순환하는지 확인하는 연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다만 주 교수는 "낙동강 수질의 최대 관심 지역이었던 하류 물금의 경우에는 예전보다 수질 상태가 상대적으로 개선되었다"며 "지난 1년 6개월 동안 하류의 평균 수질은 지난 15년간의 평균보다 나아졌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렇게 하류의 수질이 나아진 것은) 남조류 번식의 원인이 되는 오염 물질(인)이 중류에 머물면서 생긴 현상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연합뉴스


"환경부 밑으로 국토교통부 통합해야"

주기재 교수는 "낙동강 중·하류 250킬로미터 구간에 8개의 보가 설치되면서 낙동강은 인위적으로 유량이 유지되는 '강-호수 복합체'가 되었다"며 "과거의 낙동강과는 전혀 다른 강이 탄생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주 교수는 "이번 녹조 현상은 앞으로 낙동강에서 일어날 여러 문제의 시작을 알리는 경고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주 교수는 "'수질', '수량' 관리가 환경부와 국토교통부로 나뉘어 있는 현재의 하천 관리 체계로는 낙동강의 건강을 회복하는 일은 영원히 어렵다"고 경고했다.

주 교수는 "수질은 환경부, 수량은 국토교통부가 담당하는 현실에서 수자원 관리가 원활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며 "국토교통부의 강력한 이기주의와 생태에 대한 무관심이 4대강 공사 당시 수질과 생태를 담당하는 환경부를 왜소화시켰다"고 지적했다. 그는 "수량을 담당하는 국토교통부의 일부 기능이 환경부로 편입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2006년 "수질과 수량 부분으로 이원화돼 있는 물 관리 정책 기능의 통합"을 강력히 권고했으며, 이를 접한 노무현 대통령도 환경부와 건설교통부(국토교통부)의 통합 검토를 지시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런 안은 이명박 대통령이 국토해양부(국토교통부)를 중심으로 대규모 토건 공사를 밀어붙이면서 흐지부지됐다.

"낙동강 모래톱도 사라져…서식처 복원이라도!"

이밖에도 주기재 교수는 "보 건설 공사로 이제 낙동강에서는 모래톱과 같은 경관을 볼 수 없게 됐다"고 지적했다.

주 교수는 "수달이 대규모로 서식했던 경북 예천 일대의 낙동강 본류의 경우에는 최소한 서식처 복원이라도 이뤄져야 한다"며 "이런 서식처 복원은 4대강 사업 당시 부실한 사전 조사로 수많은 생명체의 서식처를 영원히 사라지게 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책임"이라고 강조했다.

 
 
 

 

/강양구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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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개입 규탄 미주집회 주도한 '미주 희망연대' 장호준 의장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13/08/28 06:53
  • 수정일
    2013/08/28 06:53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미주 동포들 분노 크다... 박근혜 결단해야"

[나는 분노한다 25] 대선개입 규탄 미주집회 주도한 '미주 희망연대' 장호준 의장

13.08.27 17:50l최종 업데이트 13.08.27 18:02l

 

 


해외 언론들이 한국의 국정원 대선개입 규탄 시위 상황을 국내 언론보다 더 상세하게 보도한다. 미국 < CNBC>에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이 언급되기도 했다. 이밖에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로이터통신>, <글로벌포스트>, <르몽드> 등 세계 주요언론들이 국정원 불법 대선개입 사건과 촛불시위를 보도했다.

이러한 해외 언론들의 보도는 인터넷 언론들을 통해 기사화 되었고, 이 기사를 본 누리꾼들이 재빠르게 SNS를 통해 전파하면서 일부에서는 "촛불 소식은 해외 언론을 통해 본다"라는 기사가 나오기도 했다.

해외 언론의 관심을 이끈 중심에는 해외 동포들이 있다. 이들의 활동은 크게 두 가지로 요약해 볼 수 있다. 하나는 해외 주요 도시를 중심으로 두 달 넘게 계속 진행하고 있는 국정원 대선개입 규탄 집회이고, 또 하나는 해외 언론에 국내 상황을 적극적으로 알리는 역할이다. 해외에서 열리는 국정원 대선 개입 규탄 집회는 미국에서부터 시작됐다. 샌디에이고를 시작으로 매주 릴레이식으로 워싱턴 DC, LA, 시카고, 시애틀, 필라델피아, 댈러스, 애틀랜타, 보스턴, 산호세 등 12개가 넘는 한인 거주 대도시에서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이외에도 호주, 캐나다, 영국, 프랑스, 독일 등에서도 국정원 대선개입 규탄 시위가 진행 중이다.

미주 동포들이 국정원 규탄 시위를 벌이는 이유

이 시위를 주도하고 있는 '사람사는 세상을 위한 미주 희망연대'(미주 희망연대) 의장 장호준 목사와 25일 이메일과 전화 인터뷰를 통해 해외 동포들의 '국정원 불법 대선개입 진상규명 요구' 활동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봤다. 장호준 목사는 고 장준하 선생의 3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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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 희망연대' 장호준 의장. 장호준 의장은 고 장준하 선생의 3남이다.
ⓒ 박승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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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외 동포들이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에 분노하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해외 동포들은 지난 대선 이후부터 일관되게 이 사건을 국기문란과 국민의 주권을 찬탈한 사건으로 규정했습니다. 국정원 대선개입은 대한민국을 조국으로 생각하는 해외 동포들이 당연히 분노 할 수밖에 없는 중대한 사안입니다. 특히 지난 총선부터 해외 동포들도 투표에 참여할 수 있게 되지 않았습니까? 자신들이 선택한 결과가 왜곡됐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를 바로잡기 위해서 더 행동에 나선 것으로 보입니다."

- 해외 동포들은 검찰 수사발표 이전부터 국정원 대선개입 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발언했습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선거 개입 과정에 대한 의심스러운 정황들이 대선 전후로 나타났고, 이를 알게 된 사람들이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했습니다. 해외 동포들을 중심으로 시작된 이러한 문제제기들은 수개표를 통한 재검표 요구로 이어졌고, 합리적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을 오히려 불순한 세력으로 몰아붙이는 박근혜 정부 때문에 불신이 더욱 커지게 되었다고 봅니다."

- '미주 희망연대'가 국정원의 불법 대선개입과 관련해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활동은 무엇인가요?
"지난 5월 25일 발족한 '미주 희망연대'는, 미주지역에 거주하는 깨어있는 동포들이 만든 시민단체들의 모임입니다. 민주주의의 기본 정신에 입각한 협의연대로 운영되며, 소속된 개인 또는 단체의 자유와 권리가 최대한 보장되는 모임입니다. 올바른 역사 교육을 통해 재미 동포로서의 정체성 확립과 자긍심을 고취하고, 균등한 기회, 공정한 과정, 정의로운 결과를 통해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후손들에게 물려주고자 합니다. 현재 비영리단체 (NPO)등록과 정관 마무리 작업 중입니다. 연대단체도 15개 지역 18개 단체로 늘었습니다.

현재 미국에는 미주 희망연대 외에도 '정의와상식을추구하는시민 네트워크'라는 페이스북 그룹이 있습니다. 이들은 국정원의 불법 대선개입 문제가 외신에 소개될 수 있도록, 진보 언론에 보도된 한국 상황을 영어로 번역해 해외 언론에 전달하고 있습니다."

- 어떻게 집회를 기획하게 됐습니까?
"사실 누가 주도적으로 했다기보다는 의문이 불신을 낳고, 불신이 분노로 번지면서 동포들이 자발적으로 행동에 나섰다고 봅니다. 시국선언과 국정원 사태에 대한 성명서가 여기저기에서 쏟아지고 있지만, 대통령의 책임 있는 발언이나 행동이 없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광장정치가 만들어지게 된 것입니다."


- 성명서를 비롯해 구체적으로 미주지역에서 어떤 행동이 이루어졌습니까?
"6월 16일에는 미주 희망연대에서 '국정원 개입 부정불법선거에 대한 성명서'를 발표했고, 6월 20일에는 1018명의 미주동포들과 함께 '국정원 개입 부정불법 선거에 대한 미주 동포 시국선언문'을 발표했습니다. 또한, 6월 22일 샌디에이고를 시작으로, 워싱턴DC, LA, 시카고, 필라델피아, 시애틀, 뉴욕, 댈러스, 애틀랜타, 보스턴, 산타 클라라 등의 지역과 뉴욕의 타임스스퀘어, 워싱턴의 백악관 앞과 보스턴의 하버드대학 앞에서 '국정원 개입 부정불법 선거 규탄 시위'를 주도하고 참여했습니다.

대한민국에 국정원이란 도둑이 들어 민주주의를 훔쳐간 것을 그냥 두고 볼 수 없어 조국의 촛불시민들과 함께 하기 위해 지난 7월 25일부터 8월10일까지 '국정원 불법 대선개입 규탄 촛불시위 지지를 위한 후원금' 모금을 미주동포들과 미주희망연대 각 지역을 대상으로 실시하기도 했습니다.

총 8671.31달러가 모금되어 8월 6일에 1차로 '서울시국회의'에 4000달러 (수수료 제외)를 전달했고, 나머지 4581.30달러 (수수료 제외)를 '부산 시국회의'에 전달하였습니다. 자세한 내역은 미주희망연대 홈페이지 (http://www.sasaseusa.org/xe/notice/96382)에 가시면 확인할 수 있습니다. 또 해외 지식인들의 의견 표명이나 성명서를 조직하는 운동도 준비 중입니다. 한국 민주주의에 대한 세계의 관심은 큽니다. 한국 민주주의의 퇴행을 막기 위해 해외 지식인들의 동참을 호소하는 메일을 보낼 예정입니다."

"동포들의 분노가 결국 집회 참여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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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LA 총영사관 앞에서 지난 6월 29일 진행된 국정원 대선개입 규탄시위 모습.
ⓒ 로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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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뉴욕 타임스퀘어 앞에서 지난 7월 20일 진행된 국정원 대선 개입 규탄 '범뉴욕동포' 집회 장면.
ⓒ 김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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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포들이 이렇게 집회에 적극적인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앞에서도 말씀드렸듯이 의문을 넘어 분노로, 분노를 넘어 현 정부에 대한 불신임 요구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헌법에 명시된 국민주권의 원칙이 대통령 직속 최고 정보기관인 국정원에 의해 유린당하고 사건의 진실이 경찰에 의해 왜곡되는 참담한 상황이 동포들을 나서게 했다고 생각합니다. 쉽게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워낙에 분노가 크고, 이번에 이 사태를 해결하지 못하면 다시는 선거를 통한 정권교체는 불가능하다는 위기감이 절박합니다."

- 국정원 규탄 시위를 바라보는 동포들의 반응은 어떤가요? 집회 과정에서 에피소드가 있다면 소개해 주시죠.
"국정원의 불법 대선개입 내용이 시위를 통해 꽤 널리 알려졌다고 봅니다. 특히 정치나 시민운동에 한 번도 참여해 본적 없는 사람들도 "아~ 내가 움직이지 않으면, 세상도 움직이지 않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든 것 같습니다. 참여의식이나 주인의식을 고양시키는 면에서도 이번 시위가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색안경을 끼고 보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샌디에이고에서는 피켓을 훼손하는 사람도 있었고, 애틀랜타에서는 재향군인회가 시위 방해를 하기도 했습니다."

- 박근혜 대통령은 유신헌법 작업에 관여한 김기춘씨를 비서실장에 기용하고, 국정원에는 셀프개혁을 주문했습니다. 어떻게 평가하시는지요?
"박정희는 7.4 남북공동성명을 발표한 그해 유신헌법을 발표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8.15 기념사에서 남북이산가족 상봉을 제안하면서 남북간 화해 분위기를 만들고 일본에 대해서는 신뢰회복을 주문했습니다. 공안정국의 주범을 비서실장에 앉히면서 남북화해를 이야기 하고, 일본에 대한 신뢰를 외치면서 한일군사훈련을 진행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표리부동한 아버지의 정치를 그대로 닮아가고 있지 않은지 심히 걱정스럽습니다."

- 지난 17일 LA에서 고 장준하 선생 38주기 추모식이 있었습니다. 아버지 장준하 선생의 삶과 죽음이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궁금합니다.
"아버지는 민족의 자유와 민권을 지키기 위해 이승만 정권과 싸웠고, 민족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박정희 정권과 싸웠습니다. 박정희의 7·4 남북 공동성명은 어쨌거나 찢어진 민족을 외세의 간섭 없이 자주적으로 통일하자는 것이였기 때문에 아버지는 전폭적인 지지를 보냈습니다. 아버지는 그러나 유신헌법과는 목숨을 건 싸움을 했습니다. 유신헌법은 민주주의를 말살하고 민족의 영구적 분단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버지 장준하 선생은 1973년 유신헌법을 반대하기 위한 100만인 서명운동에 앞장섰다가 결국 살해되고 말았습니다. 아버지의 죽음은 명백한 타살입니다. 박정희 정권이 책임져야 하는 일이었습니다. 제가 대를 이어 유신 세력과 싸우는 것은 비극입니다."

- 국회 국정조사 끝났습니다. 국정조사를 본 소감은?
"여러가지 의견이 있겠지만, 저는 100점 만점에 30점을 주고 싶습니다. 일단 새누리당 국조위원들은 대한민국 국회의원이라고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코미디같은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국민들의 합리적 의심을 풀어주고 잘못된 부분을 바로잡아야 하는 국정조사의 최소한의 의무조차도 저버렸습니다. 민주당은 새누리당의 그러한 예상된 행태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국민의 뜻을 헤아리는 데 역부족이었습니다. 물론 그동안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을 제대로 접하지 못했던 국민들에게 국정조사가 실상을 알리는 데 다소 도움은 주었다고 봅니다. 그러나 진실을 낱낱이 밝혀내지는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특검을 통한 진상규명' 요구 수용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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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5일 미국 워싱턴 인근 에난데일 버지니아에서 열린 '국정원 대선 개입 규탄' 미주동포 촛불시위
ⓒ 신행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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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정원의 불법 대선개입 사건이 어떻게 해결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시는지요?
"국정을 책임지고 있는 대통령이 자신의 입으로 "나는 관계없다"고 말하는 것은 이번 사태에 대한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국민들의 최소한의 요구는 '특검을 통한 진실규명' 입니다. 일단 이 요구에 청와대는 대답해야 합니다. 그래야 박근혜 정부의 정통성을 그나마 지킬 수 있습니다. 그러나 특검만 가지고는 안 됩니다. 피흘려 세운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지키고, 국민들의 행복과 번영을 위해서 박근혜 대통령의 결단이 요구됩니다. 그 결단의 시작은 이번 국정원과 경찰의 불법 선거 개입에 대해 실체를 밝히고 책임지는 것입니다. 그 이후는 국민의 판단에 맡겨야 합니다."

- 국내에서 촛불시위를 벌이고 있는 촛불시민들에게 전하고픈 이야기는 없으신지요?
"해외 동포들은 촛불 시민의 분노를 잘 알고 있습니다. 정치권에 맡겨서는 결코 사건의 진실에 접근하기 힘듭니다. 국민이 나서야 합니다. 대한민국 주권이 국민에게 있다면 그 주권을 구체적으로 행사해야 합니다. 물론 어려움이 있습니다. "먹고 살기도 힘든데, 어쩌란 말이냐"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번 국정원과 경찰의 선거개입 사건은 민주주의의 근본과 나라의 기강을 뿌리째 뒤흔든 사건입니다. 어렵고 힘들지만 지치지 말고 아픈 다리 서로 기대며 끝까지 가야 합니다. 이번 사건을 저지른 불순한 세력은 시민들이 지치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저희 해외 동포들도 지치지 않고 함께 하겠습니다.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라는 사실을 믿으며 후세들의 미래를 위해 질기게 그래서 끝내 이기는 촛불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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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북'표현은 '증오와 선동의 정치'일뿐'

종북담론의 실체를 밝힌다' 토론회 개최

이승현 기자 | shlee@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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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08.27 19:3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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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권운동사랑방 등이 주최한 토론회 '종북담론의 실체를 밝힌다'가 27일 오후 서울 중구 정동 환경재단 레이첼 카슨홀에서 열렸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종북'이라는 용어는 이미 그 안에 어떤 내용이 담겨 있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다. 표현 자체가 상대에 대한 증오와 선동일 뿐이다."

'종북담론'을 주제로 한 토론회에서 발제자와 토론자들은 '종북'이라는 표현에 담긴 '악마성'을 성토하고 "표현 자체를 사용하지 않음으로써 소멸시키자"고 주장했다.

27일 오후 인권단체연석회의 공권력감시대응팀이 제안하고 인권운동사랑방과 민주주의법학연구회,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차별금지법제정연대 등이 주최한 토론회 '종북담론의 실체를 밝힌다'가 서울 중구 정동 환경재단 레이첼 카슨홀에서 3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당초 토론회를 제안한 공권력감시대응팀은 사전 배포한 자료에서 종북 매카시즘의 역사성에 주목해야 할 필요를 제기하고 종북담론을 둘러싼 지배권력 통치의 특성과 사회운동의 대응에 대한 고민을 함께 나누자고 제안했다.

토론회에서 발제자와 토론자들은 '안전담론'을 둘러싼 배제와 혐오의 정치가 우리 사회의 다양한 소수자에게 광범위한 공격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이로 인한 혐오정서의 대중화는 한국사회 전반을 극단적으로 분리, 해체시키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 과정에서 지배권력은 북을 오로지 물리쳐야 할 적이자 금기의 대상으로 묶어놓고 정보를 차단한 채 국가정보원같은 정보기관만 정보를 독식하는 구조를 유지함으로써 통치권력을 강화하는 수단으로 종북담론을 활용하고 있다고 이들은 지적했다.

   
▲ "종북이라는 용어는 이미 기의(記意)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상대편에 대한 증오와 선동일 뿐이다" 왼쪽부터 발제자인 한성훈 연세대 교수와 이호중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첫번째 발제자로 나선 한성훈 연세대 연구교수는 "현재 우리 사회는 정치세력 및 진영 사이에 찬반만 존재할 뿐 합리적 주장에 대한 지적 동의가 전혀 이뤄지지 않는 파국적 균형 상태에 처해 있다"고 지적하고 '종북'이라는 표현에 담겨있는 증오의 정치가 이같은 현상을 부추기고 있다고 주장했다.

한성훈 교수는 "'종북'은 예전의 간첩, 빨갱이와 마찬가지로 우리 사회 분단의 특수성을 반영한 속어"이며, "우리사회의 갈등과 편가르기 수준을 정치역영뿐만 아니라 사회문화, 다른 하위 영역으로 확장시키는 구실을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한 교수는 "국방부가 국방정신교육원을 부활해서 실시하고 있는 정훈교육은, 과거 80년대 일부 운동권 학생들을 상대로 불법적으로 자행했던 정치교육을 일반 병사에게까지 확대하려는 시도"라며, "헌법 위반 가능성과 인권침해 등을 국회에서 검토하는 방안과 함께 민주적인 시민교육으로 대체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호중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발제문에서 '종북'개념이 지난 2001년 민주노동당과 사회당 사이의 통합논쟁때 처음 나왔으며, 이후 2006년 민주노동당내에서 '일심회'사건에 연루된 당원 제명을 둘러싼 갈등이 불거지면서 본격적으로 회자되기 시작했다고 지적했다.

이호중 교수에 따르면 "처음에 사용된 '종북'은 '북한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세력'이라는 의미"였지만 "지금은 종북개념의 외연이 극단적으로 확장되고 있고 있다."

이 교수는 "과거에도 국가보안법은 정치적인 반대세력을 배제하는 법 적용으로 작동됐으나 시민사회에서 온전히 받아들이지는 않았다"고 전제하고 "현재 건재하게 작동하는 국가보안법과 함께 광범위하게 유포되는 '종북'이라는 표현은 시민사회 운동의 역사성과 상호연계성, 주체성을 말살하고 '뇌'가 없는 운동으로 폄훼하는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고 말했다.

즉, 종북담론의 확장이 시도되는 배경에는 '북의 지령 한마디로 운동의 방향과 목표를 변경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인식이 있다는 것이다.

예컨데,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최근 국회 국정조사와 법정에서, "현행법에 의하더라도 명백히 위법한 대선 댓글 공작따위를 '대북심리전'이라고 한결같이 주장하는 '확신'의 배경에도 이같은 인식이 있다고 이 교수는 설명했다.

이 교수는 "국가보안법의 경우에도 과거에는 정치세력간의 역학관계에 따라 정치적 절충도 이뤄지고 적용 대상을 분명히 하기도 했었는데, 지금은 과거의 암묵적 합의같은 것도 와해되고 적용대상은 은밀히 확대되고 있으며, 급기야 '종북담론'이 시민들에게도 일부 먹혀들고 있는 것 같다"고 조심스럽게 평가했다.

이 교수는 "더 폭넓게 해석하면, 신자유주의 시대에 만연한 안보, 범죄 불안을 해결하는 방안으로 법을 활용하는 방식이 달라지고 있다. 즉, 과거에 행위를 중심으로 규제했다면 최근엔 행위자인 사람을 규제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때 선과 악을 대비시켜 한 일방을 낙인하고 배척하는 배제의 논리가 동원되는데, 현재 우리 사회에서 처럼 '종북담론'이 활용되고 있다. 또 인터넷 감시에 방통위가 나서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사법권력을 대신해 일상적인 행정권력으로 규제를 강화하는 등의 변화가 있다"고 한다.

이 교수는 종북담론은 기본적으로 자유주의적 개혁과제를 해결하는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 왼쪽부터 정정훈 수유너머N 연구원과 이도흠 한양대 교수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이어서 발제에 나선 정정훈 수유너머N 연구원은 "현재의 상태는 기득권연합의 힘이 대중의 민주적 힘을 압도하지는 못하지만 불안한 가운데 우위에 있는 상황"이며 "이 상태를 안정적이고 영구적인 우위로 전환하고 이를 바탕으로 자신들의 영구집권체제를 구축하려고 시도하는 상황"이라고 규정했다.

정정훈 연구원은 "종북공세, 애국주의 , 안전담론의 의미는 이런 맥락과 상황에서 살펴봐야 한다"고 말했다.

즉, 대중에게 공포를 조장하고 불안을 고취시키며, 그 공포와 불안의 요인이 기득권연합의 지배때문이 아니라 위험한 인물들과 세력(북한, 종북좌파, 범죄자 등)때문이라고 바꿔치기하려는 시도라고 해석해야 한다는 것이다.

토론회 마지막 발제자인 이도흠 한양대 교수는 "종북 프레임을 극복하지 못하는 한, 진보의 집권은 요원하다"며 냉전의 잔재와 대중의 내면화된 레드컴플레스, 신자유주의 체제의 모순 등을 우리 사회가 해결해야 할 과제로 제시하고 대안으로 한반도 평화체제의 구축, 대항 담론 투쟁의 강화, 진보의 재구성 등을 역설했다.

토론자로 나선 국가보안법폐지 국민연대 이광철 변호사는 "종북개념은 진보진영내에서 먼저 제기된 것이며, 이로 인해 종북세력은 '반민주세력', '패권세력', '진보진영으로부터도 외면받는 세력'으로 부정적인 낙인이 찍혔다"고 지적하고 "종북프레임의 극복은 국가보안법의 폐지를 통해서 내용적으로 완성될 수 있으며, 그 폐지는 국민들의 지지속에서만 가능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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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댓글부대 '월 삼백만원' 받아, '불법'이라 자백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공직선거법 및 국정원법 위반 사건 첫 공판에서 검찰에 의해 국정원 심리전단, 속칭 댓글부대의 실체가 어느 정도 드러났습니다.

8월 26일 서울중앙지법 형사21부 심리로 열린 공판에서 검찰은 그동안 수사한 심리전단의 활동을 상세히 밝혔는데, 그 자료를 토대로 국정원 심리전단의 규모와 활동내역을 정리해봤습니다.

● 국정원 심리전단 규모

국정원 심리전단은 민병주 단장을 주축으로 총 4개팀이 있습니다. 1팀은 총괄,기획을 2팀은 대형포털 (다음,네이버,네이트)을 3팀은 중소포털(오늘의 유머,일간베스트,보배드림,뽐뿌,SLR클럽,82쿡 등)을 담당했습니다. 5팀은 SNS (트위터,페이스북,미투데이 등)를 담당했습니다.

1개팀에는 4~7명으로 구성된 1개 파트가 총 4개가 존재하며, 전체적으로 12개 파트가 대형포털은 물론이고 오늘의 유머,일간베스트 등의 게시판과 트위터 등에서 활동한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 매뉴얼에 따른 심리전단 활동절차

국정원 심리전단은 '사이버 이슈 선점 및 대응 절차'라는 매뉴얼에 따라 움직였습니다. 그 매뉴얼의 기초는 원세훈 원장의 '원장님 지시,강조말씀'이었고, 그것을 기초로 사이트별로 어떤 이슈를 주제로 글을 올릴지가 결정됐습니다.


 

 

 


팀별로 그날의 이슈 대응 및 논리가 하달되면, 각 파트장들은 사이트별 게시글 샘플을 작성하여 블로그 등에 올려놓고, 이 글을 팀원들이 복사하여 올리거나 변형하여 글을 작성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팀원들은 그날 사이트에서 작업하다가 수집한 사이트 특이 동향 및 성향, 주요 이슈를 파트장에게 보고했으며, 파트장들은 이런 정보를 수집하여 다시 팀장에게 보고했습니다.

● 국정원 심리전단 댓글 규모

심리전단은 각 파트별로 4~7명의 팀원이 있는데, 그 팀원들은 보통 하루에 3~4개의 게시글과 댓글을 작성해서 올렸습니다. (찬반 클릭은 포함하지 않음) 파트별로 20여개의 게시글이 올라가고 팀당 하루 60~80개의 게시글이나 댓글이 게시됐습니다.

1개팀당 하루 60~80개 글을 올리면 한 달이면 1200~1600개가 되고, 1년이면 대략 17만 개 이상의 글이 올라갔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찬반 클릭 등을 통한 여론조작을 제외하고라도 댓글 몇 개 달았다는 축소 주장이 무색해지는 엄청난 댓글 공작의 규모입니다.

● 국정원의 월 삼백만 원짜리 댓글 알바

검찰은 이번에 '외부조력자 활용 사안'을 발견했습니다. 이에 따르면 국정원은 외부조력자들에게 매월 200~450만원의 활동비를 지급했는데, 평균 매달 3백만원 정도입니다.

국정원 직원 김하영과 일했던 이모씨의 경우 자신의 시티은행 계좌로 직접 입금한 금액이 4,925만원었고, 정모씨의 계좌에서 이씨의 우리은행 계좌로 4,309만원이 계좌이체됐습니다.

시티은행 계좌의 돈은 이씨가 다른 외부조력자들에게 지급해야 할 돈을 받아 자신의 계좌에 입금한 뒤 보낸 것으로 추측되며, 이씨의 우리은행 계좌로 이체된 돈은 이씨의 활동비가 아닌가 의심됩니다.

'국정원 직원의 자백, '댓글 작업은 불법이었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은 국정원 심리전단의 댓글작업을 계속해서 국정원 고유의 업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변호인은 공판에서 "(국정원의 댓글작업) 북한 및 종북세력에 대응한 사이버 활동은 국정원 고유 업무"라며 검찰이 주장한 국내 정치 개입 국정원법 위반 사실을 전면 부인하고 있습니다.


 

 

 


원세훈 측 이동명 변호사의 공소사실 부인과 다르게 검찰 조사를 받은 국정원 심리전단 직원은 "국정원이 인터넷 댓글 등의 작업을 한 것은 잘못이다"라는 진술을 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심리전단 직원은 누가 봐도 명백히 국내 정치에 개입한 국정원법 위반이었기에 이에 대한 자백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원세훈 원장의 주장대로 MB정권의 정책을 홍보하려 했다면 굳이 국정원 직원이 스마트폰으로(원래 국정원 직원은 스마트폰사용이 금지되어 있음) 노트북과 테더링으로 연결하여 아이피를 변환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냥 각 정부부처에 파견 나간 직원들이 정부 컴퓨터로 국정을 홍보하면 됩니다.

하지만 국정원 직원이 국정을 홍보한다는 것 자체가 웃긴 것처럼 종북세력에 대응하기 위해 대통령의 치적을 홍보하려고 했다는 변명은 궤변에 불과합니다.

' 정보기관의 진짜 사이버 대응은 이렇게'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확대 개편한 심리전단은 한 마디로 국정원은 물론이고 한국에서는 존재할 필요가 없는 집단입니다. 그것은 심리전을 하는 이유는 국내가 아닌 국외, 즉 북한을 대상으로 해야 하지 국내 포털 사이트와 게시판, 뉴스 댓글로는 효용성이 없습니다.

이는 진짜 적이 북한이 아니라 한국 국민이라는 대한민국 세금으로 운영되는 정보기관이 절대 해서는 안 되는 논리에서 시작된, 독재국가에서나 벌어지는 일입니다.


사이버보안을 운운하는 부분도 어이가 없습니다. 미국이 인권침해 소지가 우려되는 활동을 하면서도 그 배경에 있는 사이버보안 대비책을 살펴보면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미국은 사이버보안의 가장 1순위는 바로 주요국가시설의 보호입니다. 미국은 에너지,금융,교통,통신, 의료 등 주요 국가 기반시설 등이 디도스와 해킹 등의 테러에 당하지 않도록 보호하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습니다.

매번 농협해킹조차 막지 못하는 한국에서 원전이 해킹당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국정원 사이버보안팀이 해야 할 일은 이처럼 대한민국의 주요 국가기반 시설을 보호하는 취약점을 수집하는 임무입니다.

미국은 외국의 정보획득을 위해 외국정부 또는 외국정부 첩보요원을 대상으로 전자적 감청을 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외국과 문제가 발생하고 있지만, 미국은 테러 위협을 막기 위해서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습니다.

탈북자들이 수시로 재입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국정원은 그조차 잡지 못하고 탈북자가 북한에 다시 돌아가게 하고 있습니다. 국정원이 본연의 대북 관련 정보수집 업무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잡으라는 디도스나 해커는 못 잡고 댓글이나 다는 국정원의 사례를 외국 정보기관 세미나에서 정보기관 업무라고 발표하면, 아마 무슨 독재국가의 친위대로 알 것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8월 26일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를 주재하면서 "작금에는 부정선거까지 언급하는데 저는 지난 대선에서 국가정보원으로부터 어떤 도움도 받지 않았고, 선거에 활용한 적도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아이엠피터는 박근혜 대통령에게 묻습니다.
"얼마 안 있으면 G20 정상회의 참석차 러시아로 출국합니다. 과연 세계 각국 정상들이 모인 자리에서 국정원의 심리전단이 수만 개의 댓글 작업을 한 것을 떳떳하게 말할 수 있습니까? 그것이 정당한 대한민국 국가정보원의 임무였다고"

국정원 댓글 부대는 블로거조차 싫어하는 인터넷 마케팅 업체가 했던 짓을 똑같이 했습니다. 여러분이 맛집이 좋다는 블로그 글과 댓글을 보고 갔는데, 알고 보니 그 글과 댓글이 돈을 받고 올린 글이라면 어떤 생각이 들겠습니까?

한 손으로 햇빛은 가릴 순 있어도 하늘은 가릴 수 없습니다.
국민은 민주주의를 위해 대한민국을 위해 폭염에도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가는데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유체화법을 대통령이 청와대에 앉아서 얘기하는 것 자체가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아닌, 국정원의 대통령이 되겠다는 선전포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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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6개월', 경제민주화 보다 성장?

재벌과의 긴장 모드 끝낸 대통령, 경제 정책 여야 충돌예고

김민하 기자 | acidkis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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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3.08.26 11:14:01

박근혜 정부 6개월을 두고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특히 박근혜 대통령이 후보 시절과 취임 초기 경제민주화와 복지 확대를 내건 것에 비해 이후 정부 정책이 성장 지향적으로 변했다는 것에는 이견이 없는 상황이나 이를 둘러싼 평가가 다양한 관점에서 제기되고 있다.

 

   
   
▲ 국가미래연구원이 박근혜 정부 경제정책에 대해 비판적 시각을 드러냈다고 보도한 경향신문의 26일자 기사.

 

<경향신문>은 26일자 1면과 2면 보도를 통해 박근혜 대통령의 싱크탱크격인 국가미래연구원이 보고서를 통해 박근혜 정부의 경제정책을 비판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국가미래연구원이 25일 내놓은 ‘기획재정부 업무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국가미래연구원은 박근혜 정부가 국내외의 경제상황을 안일하게 인식했고 공약 실현 재원 조달계획을 담은 ‘공약가계부’는 실현가능성이 낮으며 최근 정부가 내놓은 세법개정안도 사실상 숫자 맞추기에 불과하다고 지적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가미래연구원은 류길재 통일부 장관, 윤병세 외교부 장관, 서승환 국토교통부 장관, 최문기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등이 소속된 바 있어서 정부와 불가분의 관계로 여겨지고 있다는 점에서 정부 정책에 비판적인 입장을 밝힌 이번 보고서가 큰 파문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게 <경향신문>의 지적이다. 특히 현오석 부총리가 최근 리더십 논란에 휩싸인 바 있고 야심차게 내놓은 세제개편안마저 일부 원점재검토 지시를 받게 됐다는 점을 고려하면 현오석 경제팀이 이 보고서로 인한 부정적 영향을 받게 될 수 있다는 점을 전망할 수 있다.

하지만 일부 보수언론의 보도는 <경향신문>의 이러한 지적과는 전혀 다른 기류가 감지된다. <조선일보>는 박근혜 정부 경제 정책 성과 6개월을 평가하며 현 정부 정책에 대해 우호적인 국민여론이 존재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 복지정책에 대한 여론이 예전같지 않다는 점을 강조한 조선일보의 26일자 기사.

 

<조선일보>는 같은 날 1면 보도를 통해 미디어리서치에 의뢰해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를 근거로 ‘복지보다 성장에 주력해야 한다’는 주장에 국민들이 공감하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조선일보>는 '정부가 복지 정책을 앞으로 어떻게 추진하는 게 좋다고 보는가'라는 질문에 '당분간 복지 확대보다는 경제성장에 주력해야 한다'는 응답이 43.4%로 가장 높았고 '현재 세금 수준에서만 복지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는 응답이 23.2%로 뒤를 이었다고 보도했다.

<조선일보>의 이러한 진단은 현오석 경제팀이 경제민주화보다는 성장에 방점을 찍고 있다는 세간의 평가가 존재한다는 점을 고려해보면 현 정부 경제정책에 긍정적인 평가흘 한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조선일보>는 19대 국회에서 기업 규제 법안이 하루에 1건 꼴로 쏟아졌다며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에도 기업 활동을 위축시킬 수 있는 환경이 지속적으로 조성돼왔음을 강조하기도 했다. 이 역시 현오석 경제부총리가 과거 '경제민주화가 기업 활동을 위축시킬 수 있으므로 주의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을 밝힌 것과 일맥상통한 보도이다.

 

   
▲ 박근혜 대통령과 재계 인사들이 오찬을 함께하기로 한 것에 대해 재계와 대통령 사이의 관계개선이 이뤄질 것이라고 내다본 동아일보의 26일자 보도.

 

박근혜-10대 그룹 총수 오찬…재계에 긴장모드 끝? 재계 정부 민원 창구 비판

박근혜 대통령이 28일 10대 그룹 총수들과 오찬을 함께하기로 한 것도 이런 측면에서 주목해볼 수 있는 행보이다. <동아일보>는 이에 대해 박근혜 대통령과 재계가 ‘긴장모드’를 끝낼 것이라고 전망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취임 때만 해도 소상공인과 중소기업의 어려움이 강조되는 등 경제민주화의 필요성이 강하게 제기되면서 정부와 재계 간의 긴장 관계가 조성됐지만 최근 박근혜 대통령의 친기업적 발언 등으로 볼 때 이번 오찬을 기점으로 대통령과 재계 간의 ‘훈풍’이 불기 시작할 것이라고 내다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비판적인 목소리도 나왔다. <한겨레신문>은 같은 날 사설을 통해 현 시점에서 대통령과 재벌 총수들이 회동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 야권을 불필요하게 자극할 수 있고 재계가 정부의 민원 해결만 챙기고 일자리 창출 및 투자 확대 등의 약속은 지키지 않게 될 공산이 크다는 사실이 우려된다는 지적이다.

 

   
▲ 박근혜 대통령이 재벌총수들과 오찬회동을 하는 것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드러낸 한겨레신문의 26일자 사설.

 

그동안 민주당은 대통령과 재벌 총수들과의 만남에 대해 지속적인 불신감을 드러낸 바 있다. 23일 “10대 그룹 총수들과 회동은 하고 제1야당 대표와의 회동은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는 박 대통령의 태도에 대해서 우려를 표한다”며 반발한 바 있다. 또 25일에는 “우리 경제의 위기는 재벌총수와의 간담회 수준의 단순처방이 아니라 구조적 접근이 요구되는 상황으로, 박근혜 정부가 보다 근본적인 인식을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이러한 시각을 종합해보면 박근혜 정부가 취임 후 6개월 간 성장지향적인 정책 전환을 이뤘다는 점에 대해서도 정부와 여당, 야권이 충돌할 여지가 충분하다고 말할 수 있다. 국정원의 선거개입 의혹 등을 둘러싼 논란이 정치적으로 풀리지 않는 상황에서 박근혜 정부 취임 6개월 평가가 정국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 지켜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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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불복인가?” “그건 아니다” 바보들의 행진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3/08/27 06:03
  • 수정일
    2013/08/27 06:03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의혹 해소되지 못한 상태의 불복 논쟁 의미없어
 
정주식 | 2013-08-26 14:40:04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인쇄하기메일보내기
 
 


 

새누리당 : 대선불복인가?

1) 그렇다. 하야하라.

2) 진상규명이 먼저다.

3) 그건 아니다.

1)번은 호기로운 열정가의 답, 2)번은 합리적 지성인의 답, 3번)은 겁많은 멍청이의 답이다. 민주당의 불행은 여기서 시작됐다.

<수차례 “대선불복은 아니다”라고 밝힌 민주당 김한길 대표>

한편의 코메디같았던 국정조사는 끝이 났지만, 여야의 대치는 점점 더 뜨거워지고 있다. 어제 국정조사 특위 야당 소속 위원들은 청와대를 항의 방문해 대통령에게 공개서한을 발표했다. 이 서한은 청와대의 제지로 대통령에게 전달되지 못했지만 새누리당을 자극하기엔 충분했다. 새누리당은 이 서한의 내용에 즉각 발끈하며 역공에 나섰다. 공개서한 중 문제가 된 부분이다.

“민주주의 국가의 근간은 바로 공정한 선거에 있다. 3.15 부정선거가 시사하는 바를 잘 알고 있는 만큼 반면교사로 삼길 바란다”

이 서한에 대해 새누리당 김태흠 원내대변인은 “지난 대선을 3·15 부정선거에 비유하는 것은 국민들의 수준을 60년대 수준으로 보는 것이고, 시대에 역행하는 것이자 국민들을 모독하는 행태”라고 비난했다. 윤상현 새누리당 원내수석부대표도 기자간담회을 열고 “지난 대선을 3.15 부정선거에 빗대서 대통령 사과를 요구하는 것은 한마디로 국민 선택을 왜곡하고 현 정부의 정당성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매우 위험한 발상”이라며 김한길 민주당 대표의 사과 등 입장표명을 요구했다.

의도된 ‘발끈’

국정원게이트의 꼬리가 밟힌 뒤 지난 8개월간 국내외 수많은 언론들이 국정원게이트를 워터게이트에 비유한 바 있다. 그것들에 대해 잠자코 있던 새누리당이 3.15부정선거 언급에 갑자기 발끈한 까닭은 무엇일까?

새누리당이 야권의 장외투쟁에 대한 필승카드로 여기고 있는 것이 이른바 ‘대선불복 프레임’이다. 새누리당은 장외투쟁 초기부터 이 카드를 만지작거렸지만 이번처럼 작심하고 꺼내들기는 처음이다. 때를 기다린 것이다. 새누리당이 기다렸던 '타이밍'은 문재인 의원의 장외투쟁 참가였다. 하지만 이것은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고 여론은 계속 악화되기만 했다. 때마침 민주당이 강경한 발언으로 빌미를 제공하자 더 이상 기다리지 않고 이카드를 꺼내든 것이다. 문제삼은 3.15부정선거 발언은 그저 촉발원인이자 구실일 뿐이다.

국민들이 정치권의 이런 정략적인 몸놀림까지 알 필요는 없다. 국민들이 진짜 알아야 할 것은 이것이 ‘누구에게 유∙불리한가’가 아닌, ‘무엇이 옳고 그른가’이다.

새누리당의 “대선불복인가?”라는 질문은 그 자체로 난센스다. 저 질문에 대해 답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먼저 답해야 할 질문이 있다.

“과정이 공정했는가?”

이것에 대한 답을 내리지 못한 상태에서 승복 or 불복을 논하는 것은 순서가 틀렸다. 이는 온건-과격의 문제가 아닌, 기본적인 사리분별에 관한 이야기다. 합리적 선후관계를 따지는 것에 ‘온건파’, ‘과격파’ 따위의 정치적 성향을 갖다 붙이는 건 어리석은 태도다.

<결과승복의 조건은 ‘공정선거’다>

의혹 해소되지 못한 상태의 불복 논쟁 의미없어

검·경의 수사결과 국정원의 조직적 선거개입이 밝혀진 이상 대선과정에서 중대한 문제가 있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것이 ‘결과를 뒤집기에 충분한가’라는 물음에는 아직 확답하기 어렵다. 사건의 전모가 온전히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부정선거를 바로잡는 것에 대한 두 가지 시각이 있다.

1) 과정이 불공정했음으로 원천적으로 무효라는 시각

2) 선거부정이 결과에 영향을 미쳤기 때문에 바로 잡아야 한다는 시각

나는 1)번 시각에도 동의하지만 반대입장 역시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지고지순한 원칙만을 따져 결과를 뒤엎을 만큼 대통령이라는 자리가 가볍지 않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다만 1)번 만으로 결과를 뒤집기 위해서는 ‘결정적인 불공정’(최고권력자-후보캠프의 개입사실)이 드러나야 한다. 2)번의 경우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결과에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관계가 입증된다면 여기에는 반박할 명분이 없다.

분명한 것은 둘 중 어떤 것이라도 관철되기 위해서는 추가적인 진상규명이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작성한 댓글 수가 몇 개인지, 공작에 몇 명이 참여했는지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욱 중요한 것들이 있다. 국정원사건 진상규명의 핵심은 전임 대통령의 지시 여부, 박근혜 후보 측의 사전 교감 여부 같은 것들이다. 국정원장이 단독으로 이런 엄청난 일을 벌였다는 건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있는 설명이 아니다. 대표적인 ‘MB맨’인 원세훈 원장이 매주 대통령과 독대한 자리에서 장기나 두다 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 합리적의심을 해소하지 않고 승복-불복을 논쟁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이것들에 대한 진상규명은 아직 걸음마도 떼지 못했다. 장장 6개월간 이루어진 검경의 수사과정에서는 온갖 외압과 은폐가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났고, 이를 보완하기 위해 추진했던 국정조사는 한편의 코메디로 마무리됐다. 사건의 핵심 피의자인 원세훈 원장의 구속조차 이루어지지 못했던 말도 안 되는 수사가 끝났을 뿐이다. 결국 검경의 수사와 국정조사는 사건의 핵심에 근접하지도 못했다. 국정원과 전정권, 현 정권의 책임범위가 서로 어디까지인지도 파악되지 못한 상태에서 승복-불복을 논하는 건 가당치도 않다. 지금 해야 할 일은 공허한 불복타령이 아닌, 진상규명을 위한 노력이다. 그 수단이 국정조사든, 특검이든, 거리투쟁이든 목표는 다르지 않아야 한다.

<이런 한심한 논쟁에 참여말아야. 출처:채널A 박종진의 쾌도난마>

‘대선불복’이란 표현은 이미 지난 선거가 공정했음을 전제하고 있다. 따라서 “대선불복인가?”라는 질문을 정확히 풀이하면 이렇게 된다.

“(과정이 공정했음에도 불구하고) 대선결과에 불복할텐가?”

민주당은 수차례 이렇게 답했다.

“그건 아니다”

“대선불복인가”라는 질문은 ‘승복’ or ‘불복’의 양자택일을 유도하는 객관식 질문이다. 민주당은 최악의 오답을 선택하며 스스로 저들의 프레임에 갇혀버렸다. 우문우답(愚問愚答)이다.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웠으니 반복되는 공세에 휘청거리는 것이 당연하다.

민주당은 이 간단한 답을 말하지 못해 곤경에 빠졌다. 상대가 잘못된 전제로 질문을 해 올 때는 이렇게 말하는 것이 정답이다.

“질문이 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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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원세훈, 신종 매카시즘 행태…무차별 종북 딱지"

'원세훈 재판' 첫 공판…검찰, "대북 심리전" 원세훈 주장 일축

박세열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3-08-26 오후 12:25:45

 

검찰이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대선 관여 및 정치 개입 혐의 등과 관련해 '신종 매카시즘'이라고 규정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부(이범균 부장판사) 심리로 26일 오전 열린 첫 공판에서 검찰은 "피고인이 근거 없이 무차별적으로 종북(從北) 딱지를 붙이는 신종 매카시즘의 행태를 보였다"고 했다.

검찰은 이어 원 전 원장이 야권을 종북으로 지목했던 발언 등을 인용한 뒤 "피고인은 그릇된 종북관을 갖고 적이 아닌 일반 국민을 상대로 여론전, 심리전을 벌였다"며 "이는 국정원의 존재 이유에 반할 뿐 아니라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행위"라고 말했다. 검찰은 또 "(원 전 원장은) 대통령의 성공적인 국정 수행이 바로 국가 안보라는 인식에 따라 사이버 여론을 조작해 민주주의 근간을 흔들고 소중한 안보 자원을 사유화했다"고 강조했다.

원세훈 전 원장이 청문회를 통해 "북한이 우리나라 인터넷 등을 해방구로 생각하고 있다. 그런 데 대해서 우리가 적극적으로 개입"한 '대북 심리전'의 일환에 불과했다고 주장했던 것을 검찰이 일축한 것이다. 검찰이 사용한 '매카시즘'이라는 표현에는 원 전 원장이 국내 정치권의 특정 정파를 위해 이른바 '반공' 이슈를 이용했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 16일 국회 청문회에 참석한 원세훈 전 국정원장(왼쪽)과 김용판 전 서울지방경찰청장. ⓒ프레시안(최형락)


검찰의 수사와 국회의 국정원 국정조사 과정에서 밝혀진 데 따르면 원 전 원장은 국정원 내부에 심리전단 산하 4개 팀을 약 70여 명으로 구성해 '오늘의 유머'처럼 '야권 지지자'들이 많이 모이는 사이트를 비롯해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등에서 이른바 '댓글 공작'을 수행했다. 지휘 체계는 국정원장-국정원3차장-심리전단장-각 팀으로 이뤄져 있었다.

검찰에 따르면 원 전 원장은 국정원 부서장 회의에서 "인터넷이 종북 좌파 세력에 점령당하다시피 했다. 전 직원이 청소한다는 자세로" 임해야 한다는 취지의 '지시'를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지시에 따라 70여 명의 직원들은 민간 인사들을 사실상 '고용'하는 행태까지 동원하며 댓글 작업을 수행했으며, 3개월에 한 번씩 활동한 댓글 내역을 삭제한 것으로 드러났다. 70명 이상이 수개월 동안 수천 개의 댓글을 달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상황이다.

원 전 원장이 직원들에게 '하달'한 내용을 보면 상당히 노골적이다. 민주당 등이 국정조사 청문회 등에서 공개한 자료 등에 따르면 원 전 원장은 2011년 5월 20일 "천안함 사건이 북한의 소행이 아니라고 주장하던 인물이 강원지사에 당선되었고"라고 말했고, 2011년 11월 28일에는 "비한나라당 후보가 시장이 됐는데 그쪽에서 내놓은 게 문제예요"라고 말했다.

이 외에도 "'종북 좌파들은 북한과 연계해서 다시 정권을 잡으려 하는데 금년에 확실히 대응을 안 하면 국정원이 없어진다(19대 총선을 앞둔 2012년 2월 17일)", "싸우기는 5개, 6개 당으로 해 가지고 하면서 일반 국민이 보면 다수가 반대를 하고 어떤 정책에 대해서 한나라당만 찬성하는 것처럼 이렇게 돼 있잖아(6.2지방선거를 앞둔 2010년 4월 16일)", "8월 24일 주민투표와 관련해서 현재 투표 자체를 거부하는 일이 허용되는 것은 매우 잘못이다('무상 급식 주민투표'를 앞둔 2011년 8월 22일)", "우리의 경우 총선이 얼마 남지 않았고 연말 대선도 예정되어 있어서 적과 종북 세력들이 남남 갈등 조장은 물론 주요 국정 성과 폄하를 위해 준동하고 있는 상황임(19대 총선을 앞둔 2012년 1월 6일)" 등 원 전 원장의 노골적인 발언이 국정조사 과정에서 공개돼 충격을 줬다.

원 전 원장은 국회 국정조사특위 청문회에 나와 증인 선서를 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재판 과정에서 새로운 사실이나, 원 전 원장의 '말 뒤집기' 등이 밝혀질 가능성도 있어 이번 '원세훈 재판'은 큰 관심을 모으고 있다.

현재 원 전 원장은 댓글 활동을 정치 및 선거 개입이라고 단정하기 어렵고 이를 자신이 지시했는지, 또 지시와 활동 간에 인과관계가 있었는지, 위법에 대한 인식이 있었는지 등이 불확실하다며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다음 공판은 내달 2일 열리며, 재판부는 오는 10월 6일까지 매주 한 차례씩 집중 심리를 진행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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