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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로동신문 전쟁 경고기사 무려 5개

 

북 로동신문 전쟁 경고기사 무려 5개
 
"도발자들 소탕해 버릴 것" 발언
 
이정섭 기자
기사입력: 2012/09/19 [07:31] 최종편집: ⓒ 자주민보
 
 

▲ 조선인민군은 김정은 원수의 최후 돌격 명령만을 기다리고 있다며 훈련을 다그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반도에 전쟁이 아닌 평화가 깃들기 바란다. © 이정섭 기자

조선 로동당 기관지인 로동신문이 19일자 신문에 전쟁에 관한 경고 기사를 무려 5개를 보도해 주목되고 있다.


로동신문은 ‘억척같이 다져온 군사적 위력을 총폭발시켜 도발자들을 소탕해 버릴 것“이라는 종합제목 아래 전쟁을 언급하는 기사를 다량 게재했다.


이 신문은 ‘자주통일, 평화번영의 장애는 제거 되어야 한다.’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자주통일, 평화번영은 우리 민족의 한결같은 지향이며 요구”라며 “역사적인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은 조국의 자주적 평화통일을 이룩하고 부강 번영하는 통일강국을 일떠세우려는 우리 민족의 투쟁에 커다란 활력을 부어주었다.”고 일갈했다.


기사는 “북과 남,해외의 온 겨레는 외세에 민족의 존엄과 이익을 팔아먹으면서 반통일 대결책동에 미쳐 날뛰는 이명박 역적패당을 쓸어버리기 위한 거족적 성전에 한결 같이 떨쳐나서야 한다.”며 “자주통일, 평화번영은 이명박 역적 패당을 무자비하게 징벌하는 우리 겨레의 성스러운 애국투쟁에 있다.”고 밝혔다.


로동신문은 ‘선제공격에는 무자비한 조국통일성전으로’라는 제목의 기사에서는 “최근 내.외호전광들이 악랄하게 감행한 《을지 프리덤 가디언》합동군사연습의 침략적 성격을 입증해주는 자료들이 드러나 내외의 심각한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고 을지 프리덤 가디언 훈련을 비난했다.


기사는 “남조선괴뢰들의 북침전략이 선제공격으로 공공연히 이행되고 있는 것은 실로 위험천만한 사태”라며 “이명박 패당은 지금 최악의 통치위기에 처해있다.《대북정책》의 총파산과 높아가는 민심의 반《정부》기운으로 파멸의 위기에 처한 이명박 패당이 그로부터의 출로를 전쟁도발에서 찾으면서 군사적 모험에 나설 수 있다.”고 우려했다.


또한 “이명박패당이 북침선제공격을 기정사실화하고 그 실행을 본격적으로 다그치고 있는 위험천만한 현실은 해내외의 온 민족에게 전쟁광신자들을 무자비하게 징벌하고 조국통일을 이룩하기 위한 정의의 애국성전의 필요성을 다시금 강조해주고 있다.”고 강조했다.


로동신문은 ‘제2의 조선전쟁도발을 노린 광대극’이라는 보도에서 “남조선에서 지난 전쟁시기를 방불케 하는 요란한 반공화국광대극들이 펼쳐지고 있다.”며 “지난 13일부터 15일까지 괴뢰들은 월미도앞바다에서 1,500여명의 무력과 각종 함선, 상륙돌격 장갑차 등을 동원하고 숱한 참관자들까지 끌어들여 미제가 지난 조선전쟁시기 감행한 인천상륙작전을 재연하는 불장난소동을 펼쳤다”고 비난했다.


신문은 낙동강 전투 재현도 예정 되어있다고 말하고 이는 엄중한 군사도발이라고 반발했다.


기사는 “이명박 패당이 지난 조선전쟁에서의 수치스러운 참패에서 교훈을 찾을 대신 《기념》이니 뭐니 하며 북침을 꿈꾸는 것이야말로 어리석기 그지없다.”며 “지금 우리 군대와 인민은 미국과 이명박 역적 패당의 무분별한 전쟁도발책동에 대처하여 만단의 준비태세를 갖추고 최후명령만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하고


“미제와 괴뢰들이 감히 도발을 걸어온다면 우리 천만군민은 절대로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억척같이 다져온 군사적 위력을 총 폭발시켜 전쟁광신자들을 모조리 격멸소탕하고 조국통일위업의 최후승리를 이룩하고야 말 것”이라고 호언했다.


로동신문은 ‘핵전쟁의 불구름을 몰아오는 미제와 남조선 괴뢰 호전광들’ 제하의 기사에서 “최근 미제와 남조선 괴뢰 호전광들의 북침전쟁도발책동이 더욱 무모한 단계에 이르고 있다.”고 경계하고


“괴뢰 호전광들의 무모한 북침전쟁연습책동은 철저히 미국상전의 조종하에 그리고 《유엔군사령부》의 간판을 도용한 미제침략군의 지원 밑에 감행되었다.”며 “끊임없는 북침전쟁연습소동으로 조선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엄중히 위협하고 파괴하는 미제와 미국의 침략적인 전쟁정책집행의 하수인이 되여 미쳐 날뛰는 괴뢰 호전광들은 저들이 지른 불속에서 파멸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로동신문은 마지막 ‘불순한 정치적 목적이 깔린 폭압소동’에서 “남조선에서 우리 공화국을 동경하며 민족의 화해와 단합, 자주통일을 주장하고 보수《정권》을 반대하는 각계 진보적 인사들과 단체들에 대한 이명박 역적 패당의 파쇼적 폭압책동이 계속 악랄하게 감행되고 있다.”며 국가보안법의 남용을 지적했다.


이 매체는 국가보안법으로 탄압받고 있는 울산대학교 교수와 자주민보 이창기 대표, 조국통일범민족연합 로수희 부의장 등을 직접 거론하며 이들은 “전쟁위험을 막고 평화와 남북관계개선, 조국통일에 기여하기 위해 정의로운 활동을 벌려온 활동을 보안법 위반혐의로 구속기소하고 그에게 정신육체적 박해를 가하고 있다.”고 규탄했다.


또한 “민족의 화해와 단합, 통일을 주장하는 각계 인사들에게 폭압의 마수를 뻗치고 있다.”며 “노수희 부의장이나 이창기 대표는 죄로 될 만 한 일을 한 적이 없다. 그들의 활동은 그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자신들의 결심과 선택, 남조선인민들의 의사와 요구로부터 출발한 것”라고 강조했다.


이어 “괴뢰패당이 감행하는 폭압소동의 불순한 목적을 똑똑히 꿰뚫어보고 있는 남조선의 진보세력들과 각계층 인민들은 보수당국의 망동을 《〈정권안보〉를 위한 MB의 마지막몸부림》”이라며 “보수패당의 무분별한 폭압망동은 저들자신의 파멸만을 앞당기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편 로동신문의 이날 전쟁기사는 최근에 들어서도 이례적인 일이어서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서울의 한 통일운동가는 “이명박 정부는 취임초부터 북을 적으로 규정하고 비핵개방 3000 등을 통해 남북관계를 경색 시키고 5.24 조치로 남북교류가 전면 중단 됨으로써 한반도에는 전쟁이 먹구름이 드리우고 있다”고 우려하고 “이명박 대통령이 뼈속까지 친일 친미라는 발언은 대통령의 형 이상득 전의원의 입에서 폭로되었다. 동족을 주적으로 몰아세우고 외세에 대해 사대주의적 행보로는 분단을 극복할 수 없다. 통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우리민족끼리 자주적이고 평화적인 방법으로 민족대단결의 원칙에서 6.15와 10.4 선언을 이행해야 가능하다”며 이명박 대통령의 대북 정책의 전향적 자세를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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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교수 "민주당, 안철수 들어올 정도로 혁신해야"

"안철수, 무소속 대통령은 무조건 실패한다"

[인터뷰] 조국 교수 "민주당, 안철수 들어올 정도로 혁신해야"

여정민 기자(정리)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2-09-18 오전 10:41:43

 

이제 정말 시작이다. 민주통합당의 대선 후보로 지난 16일 문재인 후보가 확정됐고,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은 오는 19일 출마와 관련한 입장을 밝힌다. 야권의 경선은 사실상 이제 시작되는 셈이다.

아직까지
대중 앞에서 자신의 출마 관련 생각을 밝히지 않은 안 원장의 속내를 확언하긴 어렵지만, 야권에서 문 후보 본인을 포함해 두 사람의 단일화 필요성을 부인하는 사람은 없다. 다만 '어떻게'가 관건일 뿐이다.

17일
만난 조국 서울대 교수는 단일화의 방법보다 그 과정을 강조했다. 앞서 '아름다운 단일화', 이른바 '담판'을 얘기한 바 있는 조 교수지만, 그는 "앞으로 한두 달 동안 각자 행보를 '따로 또 같이' 하다 보면 어느 순간 한 자장이 확 넓어지는 때가 온다"고 말했다. 지금 굳이 '방법론 논쟁'을 반복하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얘기다.

그는 그러면서도 "무소속 대통령은 무조건 실패한다는 것을 안 원장도 알 것이고 모른다면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집권은 가능할지 몰라도 국정운영은 무소속으로는 못 한다"는 것이다. 때문에 조 교수는 당장 민주당 입당은 어렵지만 "민주당이 안 원장이 들어올 수 있는 정당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 교수는 이른바 '안철수
현상'에 대해서도 "민주진보진영의 외연이 확장돼 가는 과정으로 정당정치의 이탈이 아니라 정당정치의 성숙과 진화의 과정"이라고 주장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이나 안 원장 등 당 밖 인사들이 대중의 마음을 얻는 것은, "이미 완결된 보수대연합"과 달리 아직 완결되지 못한 민주대연합이 이행돼 가는 과정일 뿐이라는 얘기다.

다음은 이날 서울시 관악구 서울
대학교 연구실에서 진행된 조국 교수와의 인터뷰 전문. 이 인터뷰는 전홍기혜 정치팀장이 진행했다.

 

▲ 조국 서울대 교수.ⓒ프레시안(최형락)


"모바일 투표 공정성 논란, 총선 때의 구원에서 비롯된 것"

프레시안 : 민주당 후보가 결선투표 없이 확정됐다. 결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조국 : 예정된 결과였다. 광주전남의 결과를 보고 결선투표는 없겠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했었다. 광주전남의 결과로 추정해 보면, 민주당 당원이든 지지자든 결선투표를 한 번 더 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나 생각한 것 같다. 문재인으로 민주당 후보를 확정하고 다음 단계로 나아가자는 판단이다.

프레시안 : 문재인 후보 개인에 대한 평가 이전에 경선 과정에서 비문 후보들을 중심으로 모바일 투표의 불공정성에 대해 문제제기하는 등 적잖은 내홍이 불거졌다. 2002년이나 2007년과 비교해 보면 크게 시끄러웠던 건 아닐지 몰라도, 잘 수습될 수 있을까?

조국 : 수습된다. 어렵지 않은 것이다. 경선 과정에서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지만 각 후보들이 충분히 전략적으로 할 만한 얘기였다. 비문 후보들은 결선투표로 가야하니까, 자기 지지층을 굳히고 문재인 후보와의 차별성을 확보하려면 강경한 전략을 쓰는 것은 이해할만하다. 다만 모바일 투표는 2007년 손학규 대표 시절에 도입한 것이다. 그 뒤로도 강화하는 흐름이었고 어느 날 갑자기 떨어진 게 아니다. 기술적 조작이 있었다면 할 말이 없지만, 그게 아니라면 국민참여경선 자체는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었다.

학문적으로는 민주당의 당원이 아닌 사람이 왜 (정당 문제에) 관여하느냐는 근본적인 문제제기는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은 한국 정당 구조의 문제다. 100% 당비 내는 사람에게만 투표권을 주는 진성당원제는 진보정당의 특수성이고, 한국 현대사에서 지배적 대중정당은 지지자 정당이었다. 당원은 소수다. 이유가 있다. 우리는 진보든, 보수든 대개 정당에 잘 가입하지 않는다. 그러니 지지자 중심으로 정당이 움직여 온 것이다. 당원만 가지고 다 할 수가 없다. 모바일 투표도 결국 젊은층이 유선전화는 잘 안 받으니까 도입한 것 아닌가. 그 자체는 문제가 없다. 지지자 정당으로 당연히 했어야 할 조치다.

모바일 투표 관련 이 논쟁이 근본적으로는 지난 총선 때의 구원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본다. 지난 총선에서 소외된 사람, 낙천한 사람 등이 결집되면서 지난 총선 과정에서의 책임을 문재인 후보 개인에게 돌리는 것이다. 이런 몇 가지 문제들이 연결된 상황에서 터진 문제였다. 발언들을 보면 손학규 후보가 다른 후보에 비해 속이 많이 상한 것 같지만, 손 전 대표는 대인이다. (문 후보에게) 힘을 합치는 것은 너무 자연스러울 것이다. 김두관, 정세균 후보는 말할 것도 없다.

"문재인과 안철수, '따로 또 같이' 계속해야 한다"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비문 후보들의 반발에 대한 우려는 당 밖에 있는 안철수 원장과 단일화 문제와 연관된 것이기도 하다. 거기서 문재인 후보의 정치력이 어느 정도 판가름 날 것으로 보이는데?

조국 : 단일화는 될 것이다.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사적으로 두 사람의 사이가 나쁘지 않다. 개인적 신뢰가 있다. 또 두 사람 모두 '정치 초년병'이라는 점이 오히려 (장점으로) 작동할 것이다. 전에 '맑은 눈'이라고 표현했는데, 야욕과는 관계없이 살아온 사람들이다. 둘째 이유는 단일화가 이뤄져야만 민주진보진영이 집권할 수 있다. 한국 사회의 구조적 정치 지형이 그렇다. 김대중도 김종필과 연합해서 이겼고, 노무현도 정몽준과 단일화를 통해 이겼다.

그때는 어찌 보면 완전히 반대 세력과도 힘을 합쳤다. 그러나 안철수와 문재인은 그 정도 떨어져 있지 않다. 더욱이 합치지 않으면 무조건 지는데 그 정치적 비난과 후과가 엄청나다는 것을 본인들도 알고 있을 것이다. 이런 구조도 단일화에
유리한 조건이다.

프레시안 : 문제는 방법 아닌가? 조 교수는 '박원순 모델'을 단일화의 한 방편으로 제시했는데, 서울시장과 대통령 선거의 무게가 다르다는 점에서 소위 '아름다운 단일화'가 가능하냐는 걱정이 작지 않다.

조국 : 내가 말한 '담판'은 내일 당장 하자는 것이 아니다. 양쪽 모두 한두 달 정도는 지지층을 확보하고 설득하는 작업을 해야 한다. 안철수 원장도 지금까지 비공식적으로 활동했지만 공식 데뷔하면 자신의 판을 가지는 기회가 있어야 하지 않겠나. 앞으로 한두 달 동안 각자 행보를 하면 지금은 알 수 없는 판세가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지금 판세는 의미가 없다. 10월 중순 이후의 판세가 중요하다. 담판은 시간 순서로 맨 뒤다. 그 전까지 각자가 각자의 자장을 최대한 넓히는 일을 하다 보면 어느 순간 한 자장이 확 넓어지는 때가 온다.

거기까지 가는 과정에서 두 후보가 '따로 또 같이'를 계속해야 한다. 양 측에 그런
메시지를 이미 전하기도 했는데, 각자의 지지층을 확산하고 공고히 하면서 또 사람들이 '저 두 사람이 같이 가겠구나'라고 느끼도록 보여줘야 한다. 일주일에 한 번씩 공개적인 티타임을 갖든, 함께 시장을 방문하든, 전국을 돌며 두 사람이 공동 토크쇼를 하는 것도 괜찮다. 차 한 잔 함께 마시는 것이 별 것 아니지만 정치적이고 상징적 의미가 있다.

"후보 등록은 한 명만 해야…무소속 대통령은 무조건 실패한다"


프레시안 : 그런 과정까지 염두에 둔다면 더욱 그 둘을 묶는 중재자 역할이 중요해 보인다. 많은 사람들이 중재자로 조 교수를 지목한다.

조국 : 나는 개인이다. 내 개인의 말을 들으리라 생각하지 않는다. 더욱이 대권은 엄청난 자리라 중재자의 발언권이 많지 않다. 나 뿐 아니라 이른바 '재야 원로'들의 발언도 먹혀들 여지가 거의 없다. 각 후보 본인, 그리고 직접적 대리인들끼리 담판을 지어야 한다. 솔직히 다 까놓고 얘기해야 하는 순간이 올 것이다. 지금은 물론 아니다. 선거 하루 전날 하면 당연히 안 된다. 솔직히 말하면 후보 등록은 한 사람만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프레시안 : 하지만 민주당 입장에서 보면, 이번 대선까지 후보를 못 내면 주요 선거 세 번을 모두 후보를 내지 못하게 된다. 불임정당이라는 비난이 나올 것이 뻔하다.

조국 : 박원순 서울시장은 입당하지 않았나. 두 가지 측면을 얘기하고 싶다. 일단, 안 원장이 지금 바로 입당할 수는 없을 것이다. 또 바로 입당하는 것이 좋은지도 모르겠다. 따라서 민주당은 우선 안철수 원장이 들어올 수 있는 정당으로 바뀌어야 한다. 당내 혁신의 문제다. 또 안철수 원장에게는 '무소속 대통령은 무조건 실패한다'는 얘기를 하고 싶다. 예수님이 온다 해도 무소속 대통령은 정국을 이끌어갈 수 없다. 외국의 사례를 보더라도 집권은 가능할지 몰라도 국정운영은 못 한다. 우리로 얘기하면 새누리당과 민주당 모두로부터 견제를 받으니, 집권 1년 반 혹은 2년 내에 좌초된다.

안 원장도 그것을 알 것이다. 모른다면 알아야 한다. 안 원장 지지자도 마찬가지다. 새누리당과 민주당 양쪽을 모두 포괄하는 거국내각을 만든다? 그것은 환상이다. 우리 정당정치 구조 내에서 안 원장이 민주당과 손 잡아야하는 것은 분명하다. 비록 기존 정당정치에 대한 불신으로 '안철수 현상'이 만들어졌다 해도, 집권을 하고 국정을 운영하려면 정당정치에 기반해야 한다. 그것이 안철수의 남은 과제다. 민주당에서는 안 원장이 들어올 수 있도록 열어줘야 한다. 내부를 혁신하면서 소통의 틀을 만들어주면 가능하다. 시간이
얼마 안 남은 것 같지만 서로가 절박하니 할 수 있을 것 같다.

 

ⓒ프레시안(최형락)


"박원순, 안철수의 등장은 민주진보진영 진화 과정이다"

프레시안 : 2002년 노무현-정몽준 단일화 때와 같은 방식만으로는 유권자들에게 감동을 줄 수도 없고, 새로운 비전을 보여주는데도 한계가 있어 보인다. 그래서 나오는 얘기가 공동정부론인데, 이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나?

조국 : 공동정부론은 <한겨레>에서 내가 하는 인터뷰 코너에 문재인 후보가 나와 처음 한 말이다. 그 당시에는 내용이나 시기 등을 놓고 난타를 당했다. 그러나 현재는 민주당에서 안철수 원장 및 그 지지자와 연합해야 한다는 것을 부인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공동정부든, 연합정부든 단어는 중요하지 않다. 사실 우리 사회에서 연합정부의 실험은 계속돼 왔다. 김영삼은 '3당 합당'이라는 연합 정치를 통해 집권했다. 그 뒤에는 'DJP 연합'이 있었다. 그때마다 일부에서는 야합이라고 비판했지만 외국에는 좌파 정당과 우파 정당이 연합정부를 만드는 일이 실제 있다. 민주진보진영만의 독자적이고 순순한 정부를 세울 수 있다면 하면 되지만, 그게 아니면 최대한 힘을 키워야하는 것 아닌가. 더욱이 과거에는 '합리적 중도' 정도의 이미지만 가지고 있고 모호해 보였던 안철수 원장이 <안철수의 생각>을 내면서 민주진보진영과 같이 하겠다는 것을 좀 분명하게 보여주지 않았나. 함께하는 것은 당위다.

프레시안 : 안철수 원장은 사실상 '개인'이라는 점에서 과연 공동정부라고 할 수 있냐는 비판도 나온다. 총선 이후 통합진보정당의 사실상 와해로 그 이전 시점에 얘기했던 '야권연대'와 상당히 결이 다른 선거 연대 전략이 됐다.

조국 : 당연하다. 안철수 원장은 당이 없고 당을 만들 생각도 없을 것 같고 능력도 없을 수 있다. 안 원장 주위의 사람들도 당을 만드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한국의 정당정치는 현재 진행형으로 봐야 한다. 정당이 있고 그 밖의 모든 사람을 개인으로 보는 것은 옳지 않다. 박원순도 개인일 뿐인데 왜 단일화를 했나? 우리 정당정치가 미약하다는 증거이긴 하지만 진화하는 정당 정치의 면에서 본다면, 박원순이나 안철수는 민주진보진영의 외연이 확장돼 가는 과정이다.

보수 쪽은 3당 합당을 통해 보수대연합이 어느 정도 완결됐다. 비록 선진당 등이 있긴 하지만 실질적인 의미가 없고 뿌리가 한 번도 바뀐 적이 없다. 그런데 이쪽은, 미안한 얘기지만 진보정당은 적어도 2012년까지는 의미 없는 존재가 됐고, 민주당을 포함한 쪽도 보수대연합만큼의 외연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기존 호남에, 노무현 당선을 기점으로 합류한 친노, 그리고 박원순 시장이 중심이 되는 시민사회운동이 최근에 결합했고, 여기에 '합리적 전문가 집단'을 대표하는 안철수 원장까지 합쳐지면 비로소 민주대연합의 모습을 갖추게 된다. 현재는 거기로 가는 여정에 있다. 정당정치의 이탈이 아니다. 정당정치의 성숙과 진화의 과정이다. 그러니 당연히 안철수 원장도 궁극적으로는 하나의 정당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 맞다. 지금 당장 입당하라는 얘기는 현실 가능하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지만.

그런 점에서 '문-안 공동정부'는 'DJP 연합'이나 '노무현-정몽준 단일화'보다 더 좋은 조건에 있다. 박원순 식 승리의 경험도 가지고 있지 않나. 대권후보가 된 문재인의 몫이 크겠지만, 민주당은 현재의 민주당에 사람을 붙이는 식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문 후보가 당의 혁신을 공약했지만, 완전히 새로운 세력들을 다 묶어내는 모습으로 당을 바꿔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의미의 수권정당이다. 후보간 단일화는 충분조건이 아니다. 충분조건은 수권세력의 형성이고, 수권세력의 형성은 민주대연합 정당이 완성될 때 가능하다. 그런 것이 후보등록인 11월 28일 전에 등장하기를 원하고 희망한다.

"이정희 출마? 아무런 변수 안 돼…민주정부 3기, 해선 안 되는 일은 안다"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총선 전에는 야권의 한 축으로 진보정당이 있었지만 지금은 통합진보당이 완전히 무너졌다. 이정희 전 대표는 선거에 나온다고 하는데 대선 정국에 변수가 될까?

조국 : 변수는 안 된다. <진보집권플랜>이 총선 전까지는 거의 다 들어맞았는데, 총선 때 여러 가지 이유로 어그러졌다. 민주당이 공천을 잘 했다면 1당이 됐을 것이고, 통합진보당도 원내 교섭단체가 됐을 것이다. 그리고 두 당의 정책연합을 통한 연합정부가 가능했다면, 안철수 원장이 안 나왔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렇게 안 됐다.

그 상태에서 통합진보당은 알다시피 연속적 자해를 계속하고 있다. 이정희 전 대표가 대선에 나와서 1~2%의 득표를 얻는다고 의미는 없다. 민주당이든 안철수든 누구도 같이 하자고 하지 않을 것이다. 과거에도 반드시 진보정당과 함께 했던 건 아니었다. 게다가 이번 대선에서는 역할이 극히 줄었다.

이렇게 된 것은 어느 누구의 탓도 아닌, 본인들의 탓이다. 정치적 과오에는 정치적 책임을 지는 것이 맞다. 이정희 전 대표에게 직접 얘기하지는 못했지만, 여러 선배들에게 '백의종군'하는 것이 맞다고 얘기했다. 대권에 나왔다가 (정권교체를 위해 희생하면서) 물러가겠다? 그 자체가 우스운 얘기로 들릴 것이다. 전략적 이득도 잘 모르겠다. 정치인 개인을 위해서도, 진보정당을 위해서도 여러 분란에 대해 책임 지고 백의종군하는 것이 깔끔하다. 내 말을 들을지는 (모르겠지만)….


프레시안 : 올해 대선에서 야권이 승리한다면 '민주정부 3기'라 할 수 있다. 지난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보면 공과 모두를 찾을 수 있다. 민주정부 3기의 중요한 과제를 꼽아본다면 어떤 게 있을까?

조국 : 1기와 2기의 경험이 있어서 3기는 그 이전처럼 되지는 않을 것이다. 무엇을 해서는 안 되는지를 경험으로 아는 것이다. 해야 할 과제는 당연히 두 가지다. 경제민주화와 정치사회개혁이다. 경제민주화의 핵심은 재벌개혁과 노동인권 강화다. 이 두 가지가 없는 경제민주화는 사기다. 박근혜 후보와의 결정적 차이기도 하다. 이 두 가지는 정권 초반 1년 내에 결판을 봐야한다.

그와
동시에, 다소 추상적이지만 정의와 공정의 문제를 풀어내야 한다. 부정의하고 불공정하다는 느낌을 받는 법과 제도와 관행이 있다. 정치인으로 놓고 보면 뇌물, 정치개혁, 정당개혁의 문제가 있고, 검찰의 기소권 남용이 문제라면 사법개혁이 필요한 등이다. 재벌 문제 외에도 정치든 사법이든, 심지어 자기 생활에서의 문제에도 불공정의 문제는 있다. 이런 문제는 늦어도 집권 2년 내에 해야 한다.

프레시안 : 그 측면에서 걱정은 내년에는 더 경제가 안 좋을 거라고 한다.

조국 : 국내적으로는 가계부채가 있고, 국외로 보더라도 그리스에 이어 스페인까지 터지면 바로 우리에게 직접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들 하더라. 김대중 정권이 외환위기 터지고 집권해서 설거지하다 끝났는데, 그런 일이 또 터진다면 3기 민주정부는 양해를 구해야 할 것이다. 이건 할 수 있지만 이건 못 한다고 밝혀야 한다. 우선순위를 정해서 해야될 것이다.

"박근혜, 본능적 정치인…유신에 대한 신앙에 가까운 생각 매우 위험"


프레시안 : 대선 후보 개개인의 장점과 단점을 꼽아 본다면? 우선 박근혜 후보부터?

조국 : 이 분은 대중, 정확히 말하자면 '우중(愚衆)'의 마음을 정확히 알고 그것을 움직이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본능적 정치인이고 훈련된 정치인이다. 어릴 때부터 정치인을 했고, 궁정정치와 실물정치의 속살을 만지고 경험했고 지켜봤으니 그런 장점이 있다. 선거의 여왕이라 불리는 이유도 그렇다. 구조를 따지기 전에 특정 순간에 어떤 말로 돌파해야 이긴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2012년 OECD 수준에 이른 대한민국의 대통령에게 필요한 자질은 없다고 본다. 이 분은 자기 신념의 강자다. 신념의 포로다. 그 신념은
아버지와 유신 체제에 대한 신앙에 가깝다. 버리지 못한다. 생물학적으로는 아버지, 정치적으로는 유신이다. 그것을 단 한 번도 부정한 적이 없다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우리 대한민국 헌법에 위배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유럽발 경제위기가 와서 다시 외환위기로 간다면 어떤 행동을 할지 모르는 것 아닌가. 경제위기를 이유로 준유신을 가동할 수도 있다고 본다. 왜 부정하지 못하느냐가 매우 중요한데 민주주의 사회에 맞는 최고 지도자로서의 멘탈리티가 약한 것 아닌가 생각된다. 나는 별로 뽑고 싶지 않다.

프레시안 : 그러나 사실 젊은층은 유신의 기억이 없다. 경험해 보지 않았기 때문에 와닿지도 않는다.

조국 : 유신이 태어나기 전 얘기니까 그렇다. 거의 3.1운동처럼 들린다. 인혁당 사건도 유관순 누나가 서대문형무소에서 죽었다는 것처럼 생각될 수 있다. 그런데 그 시대가 재연된다면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질 것이다. 개헌을 요구하면 감옥 가고, 머리 길면 강제로 잘리고, 여학생이 미니스커트를 입으면 유치장에 간다. 경제성장이라는 이름 아래 벌어진 일이지만, 과연 그런 전략만이 경제성장이 가능한가에는 여러 가지 논쟁의 지점이 있다. 심지어 보수 진영 내에서도 다수는 5.16 군사쿠데타는 인정하지만, 유신은 너무 나갔다고 한다. 유신체제는 거의 히틀러의 그것과 똑같았으니까. 그런데도 박근혜 후보는 유신까지도 끝까지 옹호한다.

"야생마 같은 노무현 vs 절도와 절제 있는 문재인"


프레시안 : 문재인 후보의 장단점은?

조국 : 노무현 정부 때는 오히려 사람들이 문재인을 잘 알지 못했던 것 같다. 본인이 대중적으로 나서려 하지 않았기도 했다. 그런데 '노통' 장례식 때 모습, 백원우 의원소리를 지르니 (문 후보가) 백 의원을 앉히고 이명박 대통령에게 머리를 숙여 사과했다. '노통'의 비서실장으로 누구보다 원통할텐데 그 와중에 공식적인 격식을 유지한 것이다. 그 모습에서 사람들이 '아, 저 사람은 한풀이하려는 사람은 아닌 것 같다'는 것을 느낀 것이다. '노통'의 서거 발표하고 장례식까지의 모습에서 인간 문재인이 어떤 사람인지 대중에게 각인됐고, 그 이미지를 문재인이 가지고 있다.

실제로 과거에 법무법인
부산에서 노무현 당시 변호사와 함께 변호사로 활동할 때도 '노통'과 상반된 이미지였다. 두 사람 모두 대표적인 노동인권변호사였지만, 법정에서 '노통'을 거북해하는 사람은 상당수였지만 문재인은 대부분이 좋아했다. 문재인과 반대되는 입장에 있는 사람도 그랬다. 둘이 스타일이 다르다. '노통'은 야생마 같지만 문재인은 절도와 절제가 있다. 지금도 몸에 배어 있다. 그것이 최고의 장점이 아닐까.

권력을 잘 모른다는 얘기도 있지만 사실은 그 속성을 잘 아는 사람이다. 그래서 정치인으로 정말 안 나가려고 애를 쓴 것이다. 1987년 민주항쟁 때부터 넓은 의미에서 정치에 관여해 왔고, '노통'을 보내고 난 뒤 자신 외의 여러 사람이 다 정치를 했다. 어떻게하든 정치를 안 하려 했던 사람인데 지금은
대형 정치인이 돼 버렸다.

 

ⓒ프레시안(최형락)


단점은 말? 원래 좋았는데 치아 10개를 임플란트 시술한 뒤 발음이 정확하지 않다. 또 변호사는 비록 서면으로 말하는 사람이긴 하지만, 변호사 때는 말을 잘 했다. 법률가의 언어는 잘 하는데, 정치인의 말은 아직 부족하다. 법률가의 특성은 한 단계씩 밟아가 결론에 도달한다. 정치인은 점핑한다. 비약하고 생략한다. 정치인 언어의 화룡정점이 바로 노무현 전 대통령의 "내 아내를 버리란 말입니까" 아닌가. 한 방에 모든 것을 다 끝내는 언어, 통쾌하다. 아직 문재인 후보에게는 최고 지도자가 가져야 할 생략과 비약이 잘 모이지 않는다. 정치인으로의 진화가 여전히 필요하다.

"안철수, 신중하고 사려 깊지만 아직 정치인의 모습 보여주지 않았다"

프레시안 : 안철수 원장은 어떤가?

조국 : 정치인으로서는 알 수가 없다. 아직 정치인으로 활동을 본격적으로 안 하셨으니. 현재까지는 책으로 정치를 했다. (출마선언으로) 본격 시험대에 올랐으니 이제는 담판을 하건, 야권단일화를 위해 TV토론을 하건, 말을 해야할 것이다. 그 말은 책과는 다르다. 어떨지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장점은 신중하고 사고가 깊고 스스로 다지는 스타일로 보인다. 문재인 후보보다 더 다지고 다진다. 어떻게 보면 지루할 정도로, 돌다리도 짚어가는 사람인 것 같다. 또 우리 사회에 그 정도 지위에 오른 사람 중에, 그 정도로 깔끔하게 산 사람은 없을 것 같다. 깔끔하게 살았을 뿐 아니라 세상의 바람직한 변화에 대해 그 정도 고민한 사람이 있을까? 많지 않다. 그런 점에서 매우 소중하다. 정치인으로 어떻게 할지는 아직 모른다. 자신의 육성으로, 언동으로 보여주지 못했고 늘 타인을 통해 얘기했다. 대중민주주의사회에서 그런 건 없다. 그걸 하셔야 할 때가 됐다. 이제 대변인이 아니라 자신의 말로 해야 한다.

프레시안 : 야권의 승리를 위해 기여를 하겠다고 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무엇을 할 것인지 얘기해준다면?

조국 : 빗자루 들고 마당 쓸라고 하면 그래야죠. 사실 나는 정권교체 되면 1년 간 연구년 받아 나가 있을 생각이다. 지난해와 올해 세상 일에 관여를 너무 많이 해 와서 제가 해야 할 저술 작업이 조금씩 미뤄졌다. 사적으로 (정권교체가) 매우 필요하다(웃음). 그 점에서 연말까지 빗자루까지 쓸 생각이 있다.

어떤 역할을 해야할지는 고민이다. 단일화가 되면 단일 후보를 위해 뛰어야하는 것이 너무 분명하지만, 어떤 일이든 직책이든 도와달라면 도와드려야 할 것이다. 그 전에 두 분이 경쟁과 협력을 계속해 나갈 때 제가 어떤 일을 해야할지 고민이다. 고민 중에 있다고만 말씀드린다.

프레시안 : 긴 시간 얘기 감사하다.

 
 
 


 

/여정민 기자(정리) 필자의 다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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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기업이 평양으로 몰린다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2/09/18 10:40
  • 수정일
    2012/09/18 10:40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세계기업이 평양으로 몰린다
 
북 제8차 평양가을철 국제상품 전람회 개최
 
이정섭 기자
기사입력: 2012/09/18 [07:44] 최종편집: ⓒ 자주민보
 
 


▲ 평양국ㅈ상품전람회는 해를 거듭할 수록 그 규모와 경제적 효과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은 봄철상품전람회에 조선의 평화자동차가 내놓은 자동차. © 이정섭 기자


조선에서 국제 상품 전람회가 열리게 된다고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

조선중앙통신은 “제8차 평양가을철국제상품전람회가 오는 24일부터 27일까지 3대혁명전시관에서 진행된다.”고 밝혔다.

중앙통신은 평양가을철국제상품전람회에 조선을 비롯해 중국, 네덜란드, 독일, 러시아, 말레이시아, 스위스, 영국, 오스트리일리아, 이탈리아, 프랑스, 폴란드, 중국 대북 등의 국가 210여개 회사들이 참가하게 된다고 전했다.

이신문은 조선에서는 컴퓨터 수치제어 기술이 도입된 최첨단 CNC공작기계를 비롯하여 금속, 기계, 전력, 농업, 경공업, 보건, 식료일용 등 여러 부문의 1.390여종의 제품들이 출품 될 것이라고 확인했다.

또한 전람회는 무역, 경제, 과학기술분야에서 나라와 지역들 사이의 협력과 교류를 발전시키는데 이바지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국제상품전람회는 조선무역성 국제무역전람사 주관으로 봄철과 가을철로 나뉘어 개최되며, 국민의정부와 참여정부 시절에는 남북 경협을 위해 한국국제전시장(KINTEX), 김대중전시컨벤션센터, 한국무역협회 등 전시기관, 남북경협관련 단체·협회, 통일부 관계자 등이 조선을 방문 참관하기도 했으나 이명박 정부들어 교류와 참관이 전면 차단되어 있어 아쉬움을 남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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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부, 민주당 대북 실무접촉 불허

 

통일부, 민주당 대북 실무접촉 불허
통일부 "정치적 목적 정당교류 허용할 수 없다"
 
 
2012년 09월 18일 (화) 09:49:29 김치관 기자 ckkim@tongilnews.com
 
   
▲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지난 5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추석을 전후하여 민주당 대표단을 북측에 파견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통일부는 민주당이 대북 실무접촉을 제의하는 팩스를 보내는 것을 17일 불허했다. 민주당은 추석을 전후해 대표단의 평양 방문을 추진하고 있다.

민주당 김종수 통일전문위원은 18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이해찬 당 대표께서 밝힌 추석 전후 민주당 방북단 파견 관련 대북 실무접촉을 제의하는 팩스를 보내려 했으나 통일부의 거부로 무산 위기에 처해 있다”며 “꽉 막힌 남북관계를 풀어내고 남북 평화, 공존의 분위기를 만들려는 우리당의 노력을 무시하고 가로막는 통일부를 강하게 규탄한다”고 밝혔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지난 5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추석 전후 ‘민주당 대표단’을 북측에 파견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힌 바 있고, 민주당은 이에 따라 북측과 실무접촉을 제안키로 한 것.

민주당은 통일부에 북한주민접촉신고서를 제출하고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에 팩스 발송을 대행하는 공문을 발송했지만 통일부는 17일 불허를 통보해왔다.

민주당은 북에 보낼 실무접촉 제안서에 “최고인민회의 관계자들과 남북관계 발전을 위한 제반 현안의 폭넓은 논의를 위해 추석을 전후하여 평양을 방문하고자”하며, “이를 위한 실무적 협의를 위해 추석 전에 귀측이 편리한 장소에서 접촉할 것을 제안”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통일부 관계자는 “북측과 논의할 남북관계 발전 제반 현안 은 당국간 협의해야 할 사항”이며, “순수한 사회문화교류만 허용하고 있는 방침상 정치적 목적의 정당 교류는 허용할 수 없다”는 수리 거부 입장을 전화로 통보했다.

김종수 전문위원은 “이산가족 상봉을 비롯해 수해지원 등 남북간의 인도적인 문제도 풀어내지 못하는 정부가 제1야당의 남북관계 개선의 노력마저도 가로막는 것에 강한 분노를 표출한다”며 “남북관계 발전의 경험과 노하우를 가진 야당을 적극 활용하는 방향으로 발상을 전환해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또한 “통일부가 우리당의 북한주민접촉신고를 거부하는 것은 초법적인 권한 남용으로 반드시 그 책임을 물을 것”이라며 “통일부는 우리 민주당이 북측 관계자를 만나 남북관계 발전을 논의하는 것이 ‘남북교류협력법’ 신고 거부의 해당 사항에 해당하는 지 명백히 밝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남북교류협력법' 제9조2(남북한 주민 접촉) 제1항은 남한 주민이 북한의 주민과 회합.통신 그 밖의 방법으로 접촉하려면 통일부장관에게 미리 신고하도록 규정하고 있고, 제3항은 “접촉에 관한 신고를 받은 때에는 남북교류.협력을 해칠 명백한 우려가 있거나 국가안전보장, 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해칠 명백한 우려가 있는 경우에만 신고의 수리를 거부할 수 있다”로 규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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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해찬, 추석 전후 민주당 대표단 방북 검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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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용역' 컨택터스 SJM폭력 행사 당시 경찰 신고 7건 녹취록 전문 입수

"경찰이죠? 사람들, 용역한테 맞고 있는데..."
"누가 맞아요? 세콤은 뭐하고 있는 거예요?"

[단독] '폭력용역' 컨택터스 SJM폭력 행사 당시 경찰 신고 7건 녹취록 전문 입수

12.09.17 17:28l최종 업데이트 12.09.17 17:28l
 
 
지난 7월 27일 직장폐쇄로 용역업체가 들어간 경기도 안산 반월공단의 자동차 부품업체 에스제이엠(SJM). 컨택터스라는 용역업체가 고용한 인력들이 공장 후문을 막고 서 있다.
ⓒ 최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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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고자 : 아무런 조치를 못하고 있고요. 경찰이 그 용역업체를 전경이라고 하는데요.
경찰 : 그 내용도 해가지고 보냈고요.
신고자 : 어이없지 않습니까?
경찰 : 여기다 따지시면 안 되고.
신고자 : 그럼 어디에다가 따지죠? 몇 번이죠. 몇 번이죠?
경찰 : 기다려 보세요. 거기 목래동이라고 했죠?
신고자 : 어이가 없어서 그렇습니다. 어이가
경찰 : 어이가 없는 건 거기가 어이가 없는 거지 여기가 어이가 없는 건 아니잖아요.
신고자 : 그쪽 사람들(조합원들)은 그 사람들(용역)한테 맞고 있는데
경찰 : 누가 맞고 있어요?
신고자 : (용역들이) 행패부리고 차 파손시키고 기물 파손하고 사람 때리고 그러는데 (경찰은) 아무것도 못하지 않습니까?
경찰 : 그럼 세콤은 뭐하고 있는 거예요?
신고자 : 네?
경찰 : 세콤은 뭐하고 있어요?
신고자 : 공권력은 뭐 있죠? 공권력이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우리가 도와 달라는 거잖아요. 예?

경찰은 없었다. 검정 옷에 용역들이 곤봉과 방패를 들고 자신들을 흉내 내며 사람을 패는 모습을 지켜만 봤다. 용역 전투화에 짓밟히는 노동자들의 절규를 듣고만 있었다. 심지어 그 용역을 '전투경찰'이라고 칭하며 공권력의 폭력을 당연시했다. 지난 7월 27일 새벽 경기도 안산 반월공단에 자동차부품업체 에스제이엠(SJM)에서 발생한 일이다.

<오마이뉴스>는 17일 진선미 민주통합당 의원을 통해, 112종합상황실에 접수된 SJM 관련 신고 녹취록을 입수했다. 당시 경찰신고 정황이 일부 알려지기는 했지만 신고 상황을 정확히 알 수 있는 전문이 공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사건은 민간군사기업을 표방한 용역업체 '컨택터스'가 에스제이엠의 직장폐쇄 과정에서 조합원을 상대로 폭력을 휘둘러 사회적 논란을 일으켰다. 현재 컨택터스 업체 관계자 4명과 SJM 임원 1명이 구속돼 검찰이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날 공개된 녹취록에 따르면 사건 당일 오전 4시 55분부터 5시 27분까지 32분 동안 노조 조합원으로 추정되는 사람과 사설경비업체(세콤)의 신고가 7번 있었다. 녹취록에서는 현장에 경찰이 출동했지만 "아무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는 내용이 수차례 반복됐다. 용역업체의 폭력행위가 눈앞에서 벌어져도 '경찰이 꼼짝하지 않았다'는 정황이 사실로 드러난 셈이다.

또 현장에 출동한 경찰들이 사설경비업체의 항의에 용역들을 "전경(전투경찰)"이라고 둘러댄 사실도 확인됐다. 폭력을 방관하는 모습에 항의하자 용역들의 폭력을 공권력으로 포장한 것이다.

"빨리 와주세요, 지금 죽겠어요, 사람 죽게 생겼어요"

지난 7월 27일 직장폐쇄로 용역업체가 들어간 경기도 안산 반월공단의 자동차 부품업체 에스제이엠(SJM). 30일 오후 용역업체 컨택터스의 인력들이 공장 후문을 막고 있다.
ⓒ 최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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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 신고가 접수된 시각은 27일 오전 4시 55분. 조합원으로 보이는 신원 미상의 신고자는 "여기 지금 깡패들이 와가지고, 지금 전 경력인 줄 알았어요. 전경인 줄 알았어요, 전경같이 복장을 하고 한 삼백여 명이 지금 와 있거든요"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곧 충돌이 있을 거 같으니까, 안에 지금 사람들 일하는 사람들을 지금 밀어내려고 하니까 빨리 출동 좀 해주세요"라고 전달했다.

오전 5시 1분에 접수된 두 번째 신고는 SJM 공장의 사설 경비업체 측에서 이뤄졌다. 현장 소식을 보고받은 경비업체 근무자가 자신의 사무실에서 신고를 한 전화다. 그는 "저희 직원이 아직 도착한 것은 아니고요, 저기 관리자 경비 아저씨 있죠"라며 "회사를 쑥대밭으로 만들고 있다고 있답니다"라고 신고했다.

4분 뒤 세 번째 신고가 현장에서 걸려온다. 역시 조합원으로 보이는 신원 미상의 신고자는 "사람들 맞고 지금 피흘리고 싸우고 있는데 지금 빨리 안 오냐고요, 빨리 좀 와주세요 지금 죽겠어요, 지금 사람 죽게 생겼어요"라고 급박한 상황을 전달했다. 이에 경찰은 "지금 순찰차 거의 도착했으니까 조금만 더 기다려 주십시오"라고 답했다.

오전 5시 23분, 두 번째 신고를 했던 사설경비업체가 현장에 도착해 다시 신고를 한다. 현장에 출동한 경비업체 직원은 "경찰이 대응을 못하고 있어서요"라며 "저기 경찰이 용역업체랑 전경이랑 구분을 못해 가지고요, 자기네들이 불렀다고 하는데요"라고 말했다. 그는 "분명히 전경이 아닌데요, 용역업체가 들어왔는데도 불구하고 용역업체 직원을 전경이라고 지금 얘기하고 있거든요"라고 반복해서 설명했다.

이에 112종합상황실 경찰은 "그건 현장에 출동한 경찰에게 확인해야 되요, 여기서는 그냥 경찰관을 파출소 직원을 보내드리는 거거든요"라고 말했다. 신고자가 "다시 그 쪽에서 다시 한 번 확인하면 안되겠습니까"라고 문의하자 경찰은 "여기는 확인하는 데가 아니에요, 접수받아 그냥 보내기만 하는 데에요"라고 말했다.

오전 5시 26분에 걸려온 다섯 번째 신고자는 "(용역이) 현장 내에 지금 들어 와가지고 지금 흉기를 막 집어 던지고 있어요, 지금 부상자가 속출하고 있거든요"라며 "제품이 엄청 날카로운데 그 제품들 지금 집어던지면서 막 그래서 지금 단원병원에 후송되고 그랬거든요"라고 말했다. 그는 "빠른 조치 좀 부탁 바랄게요"라고 덧붙였다.

공권력 포기한 경찰... "세콤은 뭐하고 있어요?"

지난 7월 27일 새벽 SJM 측이 공장에서 부분 파업 농성 중인 노조 조합원들을 강제로 내쫓기 위해 300여 명의 용역들을 투입한 가운데 한 여성 조합원이 용역들이 휘두른 곤봉에 머리를 맞아 붕대 등으로 응급치료를 한 모습.
ⓒ 금속노조 경기지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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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5시 27분, 현장에서 경찰이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자 사설경비업체가 다시 신고를 했다. 경비업체 직원은 "용역업체를 경찰이 전경이라고 하는데요, 어이없지 않습니까?"라는 항의를 하기에 이른다. 여기에 경찰은 "왜 이렇게 성질을 부립니까"라며 "세콤은 뭐하고 있어요?"고 반문한다. 이에 신고자는 "공권력은 뭐 있죠? 공권력이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우리가 도와 달라는 거잖아요, 예?"라고 되물었다.

같은 시각, 마지막 신고 전화를 건 조합원으로 보이는 신고자의 말에는 현장의 공포가 그대로 전달됐다. 신고자는 "지금 사람들 맞고 지금 피 흘리고 싸우고 있는데 지금 빨리 안 오냐고요", "여기 깡패들이 쇠 덩어리 살인 무기를 막 던져가지고 사람들이 생명이 위협한데 빨리 와주세요"라고 말했다.

이번에 공개된 신고 녹취록에 따르면 현장에 출동한 경찰들의 사태 방관이 명확하게 드러난다. 뿐만 아니라 용역 직원들을 "전경"이라고 말하는 이해할 수 없는 태도를 확인할 수 있다. 단순히 경찰의 소극적인 자세 지적을 넘어 용역업체와 경찰이 협력관계에 있다는 의심까지 제기될 수 있다.

진선미 의원실 관계자는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통화에서 "현장에서 경찰이 용역을 전경이라고 한 게 명확하게 드러났다"며 "이것은 책임자를 징계하거나 사표를 쓰게 할 게 아니라 경찰과 SJM, 용역업체 컨택터스의 유착관계를 수사해야 할 사안"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사건이 있은 직후 신고 녹취록을 경찰에 요구했지만 경찰은 각 신고에 대해 한 줄로 요약해 보내왔다"며 "수차례 급박한 상황이 신고 됐음에도 경기경찰청의 지휘라인은 손을 놓고만 있었다, 신고녹취록을 감추려는 이유가 있었던 것"이라고 지적했다.

진 의원실에 따르면, 경찰은 현재 당시 현장 책임자였던 우문순 안산단원경찰서장의 징계를 진행하고 있다. 우 전 서장은 행정안전부에 사표를 제출한 상황이다. 징계나 유착관계에 대한 수사 없이 우 전 서장의 사표 수리로 마무리 될 수 있는 상황이다.

한편,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오는 24일 용역업체 컨택터스의 폭력과 관련해 '산업현장 폭력 용역 청문회'를 개최한다. 이 자리에는 SJM의 김용호 회장 등 사측 관계자와 박종태 컨택터스 대표 등이 증인으로 채택됐다. SJM은 폭력 사태로 논란을 일으켰지만 아직까지 직장폐쇄를 계속하고 있다.

아래는 진선미 의원실에서 공개한 112신고 녹취록 전문이다.

[전문] 112신고 녹취록
SJM 112신고 녹취록1
접수번호 : 1747
접수시간 : 2012. 7. 27.(금) 04:55:50~(1분 13초)
신고번호 : 010-9XXX-XXXX
접 수 자 : 112종합상황실 경사 김○○

경 찰 : 경찰입니다.
신고자 : 여보세요
경 찰 : 네, 신고내용 말씀하세요
신고자 : 아. 경찰이죠?
경 찰 : 네
신고자 : 네, 여기 반월공단 안에 에스제이엠 밀런데요
경 찰 : 반월공단
신고자 : 네네, 목내동
경 찰 : 안산 목내동이요
신고자 : 네네
경 찰 : 안산 목내동 반월공단 내에 어디라구요?
신고자 : 네, 반월구 목내동 여기가 주소는 모르겠고, 402-3번지
경 찰 : 목내동 402-3번지라는거에요?
신고자 : 네네 그 앞에 에스제이엔라는 회사인데요
경 찰 : 에스젠
신고자 : 에스제이에이
경 찰 : 에스제이엔
신고자 : 네
경 찰 : 네네
신고자 : 여기 지금 깡패들이 와가지고, 지금 전 경력인줄 알았어요. 전경인줄 알았어요 전경같이 복장을 하고 한 삼백여명이 지금 와 있거든요
경 찰 : 삼백여명이 와있어요?
신고자 : 네 여기 충돌, 지금 굉장히 충돌될거 같으니까 곧 충돌이 있을거 같으니까 안에 지금 사람들 일하는 사람들을 지금 밀어낼려고 하니까 빨리 출동 좀 해주세요
경 찰 : 아. 일하는 사람들을
신고자 : 아니 그러니까 예측이 되는데 지금 깡패들이 지금 중무장을 하고 지금 와 있기 때문에 빨리 와주세요
접수자 : 그래요 알았습니다.

SJM 112신고 녹취록2
접수번호 : 1763
접수시간 : 2012. 7. 27.(금) 05:01:10~(1분 19초)
신고번호 : 02-1XXX-XXXX
접 수 자 : 112종합상황실 경사 김○○

경 찰 : 예, 경찰입니다.
신고자 : 죄송합니다. 확인 신고 전화 드리겠습니다. 세콤 사무실의 이○○입니다.
경 찰 : 예, 말씀하세요.
신고자 : 안산시 단원구 목내동이고요.
경 찰 : 목
신고자 : 목내동
경 찰 : 안산시 단원구 목내동
신고자 : 401-5번지
경 찰 : 401-5번지
신고자 : 반월공단 6블럭 20호입니다.
경 찰 : 반월공단
신고자 : 6블럭 20호
경 찰 : 6블럭 20호하면 다 아나요
신고자 : 회사명은 에스제이엠입니다.
경 찰 : 에스
신고자 : 제이엠
경 찰 : 제이엠
신고자 : 회사로 용역업체에서 지금 들어와서 행패를 부리고 있답니다.
경 찰 : 용역업체에서 들어와서 행패를 부리고 있데요?
신고자 : 네네
경 찰 : 몇 명이나요
신고자 : 급하셔 가지고 그거 까지는 파악 못하였습니다.
경 찰 : 출동자 전화번호요
신고자 : 010입니다. 9XXX 3XXX번입니다.
경 찰 : 3XXX번이요, 혹시 무전으로 안 되나요?
신고자 : 네.
경 찰 : 무전으로 확인해 볼 수 없어요?.
신고자 : 저희 직원이 아직 도착한 것은 아니고요, 저기 관리자 경비 아저씨 있죠. 에스제이엠
경 찰 : 뭐라고 전화 왔던가요. 용역원들이 들어왔다고....
신고자 : 네, 회사를 쑥대밭으로 만들고 있다고 있답니다.
경 찰 : 네, 몇 명인지는 말하지 않고요.
신고자 : 네, 급하셔 가지고 끊으셨습니다. 위급하신 것 같습니다.
경 찰 : 용역원들이 들어와서 회사를 쑥대밭으로 만들고 있다고요.
신고자 : 네. 네.
경 찰 : 여보세요.
신고자 : 제가 전화를 한 것입니다.
경 찰 : 알았습니다.
신고자 : 네.
경 찰 : 감사합니다.

SJM 112신고 녹취록3
접수번호 : 1775
접수시간 : 2012. 7. 27.(금) 05:05:06~(27초)
신고번호 : 010-9XXX-XXXX
접 수 자 : 112종합상황실 경사 김○○

경 찰 : 네, 경찰입니다.
신고자 : 여보세요 여보세요
경 찰 : 네 네
신고자 : 여기 왜 경찰안와요?
경 찰 : 아. 지금 순찰차 거의 도착했으니까 조금만 더 기다려 주십시오 그래가지고
신고자 : 지금 다 들어가라고 사람들 맞고 지금 피흘리고 싸우고 있는데 지금 빨리 안오냐고요
경 찰 : 네 알겠습니다.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신고자 : 빨리좀 와주세요 지금 죽겠어요 지금 사람죽게 생겼어요
경 찰 : 네, 알겠습니다.

SJM 112신고 녹취록4
접수번호 : 1835
신고시간 : 2012. 7. 27.(금) 05:23:08~(1분 19초)
신고번호 : 02-1XXX-XXXX
접 수 자 : 112종합상황실 경위 노○○

경 찰 : 예, 경찰입니다.
신고자 : 예, 감사합니다. 에스엠 세콤입니다.
경 찰 : 예, 불러보세요.
신고자 : 저희 지금,, 경찰이 지금 도착했는데요. 아무런 대응을 못해 가지고요,
경 찰 : 예.
신고자 : 예, 다시 지금 연락을 드린겁니다.
경 찰 : 대응을 못한다니요, 무슨 얘기에요?
신고자 : 혹시 집회 신고 들어온 것 있습니까? 반월
경 찰 : 여기는 확인이 안되요. 관할 경찰서로 하시면 됩니다.
신고자 : 예, 관할 경찰서요.
경 찰 : 예.
신고자 : 저기 용역업체랑 경찰이 전경이랑 구분을 못해 가지고요, 자기네들이 불렀다고 하는데요.
경 찰 : 예.
신고자 : 전경 차량에 시크리트라고 써 있을리 없거든요. 50명이 지금 용역업체가 들어왔다고 하는데요. 이거 다시 한번..
경 찰 : 거기 경찰관 출동했다면서요?
신고자 : 출동을 했는데....
경 찰 : 예.
신고자 : 분명히 전경이 아닌데요. 용역업체가 들어왔는데도 불구하고 용역업체 직원을 전경이라고 지금 얘기하고 있거든요.
경 찰 : 예.
경 찰 : 그건 현장에 출동한 경찰에게 확인해야 되요.
경 찰 : 여기서는 그냥 경찰관을 파출소 직원을 보내드리는 거거든요.
신고자 : 그 쪽에서 다시 한번 확인하면 안되겠습니까.
경 찰 : 여기는 확인하는데가 아니에요, 접수받아 그냥 보내기만하는데에요
신고자 : 이거 저희가 한번 확인해 가지고, 만약에 알겠습니다 우선
지령실 : 거기 관할이 어떻게...

SJM 112신고 녹취록5
접수번호 : 1841
접수시간 : 2012. 7. 27.(금) 05:26:48~(1분 7초)
신고번호 : 010-5XXX-XXXX
접 수 자 : 112종합상황실 경위 김○○

경 찰 : 여보세요 경찰입니다. 말씀하세요
신고자 : 예, 경찰서죠?
경 찰 : 예 예 예, 경찰서가 아니고 112신고센터에요
신고자 : 예, 여기 안산시 단원구 목내동 401-5번지 인데요
경 찰 : 잠깐만요 잠깐만 선생님 목내동 401-5번지
신고자 : 예, 에스제이엠 사업장 내 거든요
경 찰 : 자 401-5번지 에스..에스 머요
신고자 : 에스제이엠요
경 찰 : 에스제이엠
신고자 : 네
경 찰 : 예, 예
신고자 : 네 지금 용역들이 들어 와가지고
경 찰 : 아, 용역들이 들어와서
신고자 : 네, 현장 내에 지금 들어 와가지고 지금 흉기를 막 집어 던지고 있어요 지금 부상자가 속출하고 있거든요
경 찰 : 아 용역들이 들어 와서 흉기를 집어 던지고 있다
신고자 : 네 제품이 엄청 날카로운데 그 제품들 지금 집어던지면서 막 그래서 지금 단원병원에 후송되고 그랬거든요
경 찰 : 알겠습니다.
신고자 : 빠른 조치 좀 부합... 바랄게요
경 찰 : 예 알겠습니다. (이거 이거죠 예 맞아요 에스..에스엠)

SJM 112신고 녹취록6
접수번호 : 1846
접수시간 : 2012. 7. 27.(금) 05:27:47~(2분 8초)
신고번호 : 02-1XXX-XXXX
접 수 자 : 112종합상황실 경위 노○○

경 찰 : 경찰입니다
신고자 : 감사합니다. 에스원 세콤입니다
경 찰 : 네 불러보세요
신고자 : 목래동 이구요
경 찰 : 목래동 이요?
신고자 : 안산시 단원구 목래동
경 찰 : 잠깐만요 안산시 단원구 목래동 목래동이요
신고자 : 401-5번지입니다.
경 찰 : 401-5
신고자 : 용역업체가 50명이 들어와서
경 찰 : 그거 보냈잖아요
신고자 : 보냈는데, 아무런 조치를 못하고 있고요
경 찰 : 그 내용 해가지고 보냈어요
신고자 : 그리고 경찰이 그 용역업체를 전경이라고 하는데요
경 찰 : 그 내용도 해가지고 보냈고요
신고자 : 어이 없지 않습니까?
경 찰 : 여기다 따지시면 안되고
신고자 : 그럼 어디에다가 따지죠? 몇 번이죠. 몇 번이죠?
경 찰 : 기다려 보세요 거기 목래동이라고 했죠?
신고자 : 네
경 찰 : 안산 단원경찰서요
신고자 : 몇 번 입니까?
경 찰 : 여기서 가만 있어보자
신고자 : 그것도 파악 안되나요?
경 찰 : 왜 이렇게 성질을 부려요, 여기다
신고자 : 네?
경 찰 : 여기다 이렇게 성질을..
신고자 : 어이가 없어서 그렇습니다. 어이가
경 찰 : 어이가 없는건 거기가 어이가 없는거지 여기가 어이가 없는건 아니잖아요
신고자 : 그쪽 사람들은 그 사람들한테 맞고 있는데
경 찰 : 누가 맞고 있어요
신고자 : 행패부리고 차 파손시키고 기물 파손하고 사람 때리고그러는데 아무런 못하지 않습니까 그사람들은 우리들 한테는...
경 찰 : 그럼 세콤은 뭐하고 있는거예요?
신고자 : 네?
경 찰 : 세콤은 뭐하고 있어요?
신고자 : 공권력은 뭐 있죠? 공권력이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우리가 도와달라는거 잖아요. 예?
경 찰 : 여기 단원 경찰서 전화 해보세요, 8040에
신고자 : 이름이 어떻게 되죠?
경 찰 : 0329에요
신고자 : 8040
경 찰 : 8040에 0329요
신고자 : 0329 성함이 어떻게 됩니까?
경 찰 : 노○○ 경위에요
신고자 : 노 동자
경 찰 : 노○○ 경위라고요
신고자 : 노 순자, 여보세요
경 찰 : 아, 노○○ 경위라고요 여기 녹음 다 되어 있어요
신고자 : 음, 알겠습니다.

SJM 112신고 녹취록7
접수번호 : 1847
접수시간 : 2012. 7. 27.(금) 05:27:53~(1분 3초)
신고번호 : 010-8XXX-XXXX
접 수 자 : 112종합상황실 경사 이○○

경 찰 : 예, 경찰관입니다 여보세요
신고자 : 여보세요
경 찰 : 예, 예 경찰관입니다
신고자 : 여기 에스엠이라는 회사인데요
경 찰 : 에스엠요?
신고자 : 에스제이엠이요
경 찰 : 예예 무슨 일인가요
신고자 : 네 여기 깡패들이 들어 와가지고 쇠 덩어리 살인 무기를 막 던져가지고 사람들이 생명이 위협한데 빨리 와주세요
경 찰 : 거기가 그 반월동인가요?
신고자 : 예, 여기 목래동 451-5
경 찰 : 잠깐만요
신고자 : 지금..
경 찰 : 우리 경찰관이 안나가 있나요 그 반월공단 6블럭 말씀 제일
신고자 : 예 지금 거 하나 나와 있는 거 같은데 지금 경찰 병력이 안나와 가지고 지금 깡패들이 살인 무기를 던지고 있다고요 쇠 덩어리를
경 찰 : 아, 예
신고자 : 빨리 나와 보시라고요
경 찰 : 예, 알겠습니다.
신고자 : 지금 전화 받으시는 분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경 찰 : 이○○ 경사입니다.
신고자 : 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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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핵강국의 조용한 등장 알려주는 사진

 

 

 

제4핵강국의 조용한 등장 알려주는 사진
 
[한호석의 개벽예감](30) 2006년 “세계최대 잠수함대 북에 있다”던 당시 주한미군사령관 버웰 벨의 발언의 의미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기사입력: 2012/09/17 [11:06] 최종편집: ⓒ 자주민보
 
 

버월 벨의 청문회 발언은 사실이었나?

2006년 3월 9일 당시 주한미국군사령관 버월 벨(Burwell B. Bell)이 미국 연방하원 군사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하였다. 청문회에서 한반도 군사상황을 거론하던 그는 인민군 전력에 대해 언급하는 대목에서 “세계에서 가장 큰 잠수함대(the world's largest submarine fleet)”가 북에 있다고 하였다. 누구나 아는 것처럼, 인민군과 첨예하게 맞선 무력대치상태에서 한미연합군을 지휘하는 버월 벨은 가장 많은 대북군사정보를 알고 있는 야전사령관인데, 그런 그가 미국 연방하원 청문회에서 세계에서 가장 큰 잠수함대가 북에 있다고 언급한 것은 그냥 스쳐갈 일이 아니다.

그런데 영어 표현으로는 잠수함 보유척수가 가장 많은 것(the largest in number)도 가장 큰 잠수함대라는 뜻이고, 잠수함대의 총배수량이 가장 큰 것(the largest in total displacement)도 가장 큰 잠수함대라는 뜻이므로, 버월 벨의 그 발언은 좀 모호하게 들린다.

지금까지 세계 각국 군사전문가들은, 버월 벨의 그 발언을 인민군 잠수함대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잠수함을 보유하였다는 뜻으로 해석해왔다. 그런 식의 해석이 일반화된 까닭은, 영국 런던에 있는 국제전략문제연구소(International Institute for Strategic Studies)가 펴내는 연례보고서 ‘군사균형(The Military Balance)’에 나온 인민군 잠수함대에 관한 정보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세계 각국 군사전문가들 사이에 유포된, ‘군사균형’을 비롯한 몇몇 군사정보들은 인민군 잠수함대에 관한 이런 정보를 전해준다.

첫째, 인민군은 1960년대와 1970년대에 소련으로부터 위스키급(Whiskey class) 잠수함 4척을 도입하였다. 1950년대에 소련에서 건조되었고, 1980년대에 퇴역한 위스키급 잠수함은 수중배수량이 1,350t급인 디젤-전기 잠수함이다. 북이 도입한 위스키급 잠수함은 4척 뿐이다. 도입 이후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 북의 위스키급 잠수함 4척은 너무 낡아서 고철로 해체되었거나 초년병 훈련용 또는 기만전술용으로 쓰일 것이다. 따라서 위스키급 잠수함 4척은 인민군 잠수함대 보유량에서 제외되어야 마땅하다. 그런데도 세계 각국 군사전문가들은 인민군이 아직도 위스키급 잠수함 4척을 운용하고 있다는 소리를 늘어놓고 있다.

둘째, 인민군은 1960년대 후반에 소련으로부터 로미오급(Romeo class) 잠수함 3척을 도입하였다. 로미오급 잠수함은 수중배수량이 1,830t급인 디젤-전기 잠수함이다. 소련은 중국에게 로미오급 잠수함 설계기술을 지원하여, 중국도 로미오급 잠수함을 자체로 건조하였는데, 1970년대 초에 북은 중국이 건조한 로미오급 잠수함 4척을 도입하였다. 그로부터 얼마 뒤 소련은 북에게도 로미오급 잠수함 설계기술을 지원하여, 북도 중국처럼 로미오급 잠수함을 자체로 건조하였다. 이미 소련과 중국으로부터 로미오급 잠수함 7척을 도입한 북은 1980년대에 동급 잠수함 5척을 자체로 건조하여 총 12척을 보유하였고, 1990년대에는 동급 잠수함 10척을 더 건조하여 2000년 현재 총 22척의 로미오급 잠수함을 운용하고 있었다.

셋째, 인민군은 수중배수량이 370t인 상어급(Sang-o class) 잠수함 40척, 수중배수량이 130t인 연어급(Yono class) 잠수정 10척을 현재 운용하고 있다.

위의 정보를 종합하면, 인민군 잠수함대에는 로미오급 잠수함 22척, 상어급 잠수함 40척, 연어급 잠수정 10척이 배치되어 있는 것이다. 인민군 잠수함대에 배치된 잠수함 62척과 잠수정 10척의 수중배수량을 모두 합하면 56,360t이다. 그런데 미국군 잠수함대에 배치된 로스앤젤레스급(Los Angeles class) 잠수함 42척의 수중배수량을 모두 합하면 290,934t이고, 러시아군 잠수함대에 배치된 타이푼급(Typhoon class) 잠수함 3척의 수중배수량을 모두 합하면 144,000t이다. 이렇게 비교해보면, 인민군 잠수함대가 세계에서 가장 큰 잠수함대라는 버월 벨의 말은 수중배수량이 아니라 보유척수가 가장 많다는 뜻이다.

그러나 버월 벨의 그런 발언은 사실이 아니다. 왜냐하면 미국군 잠수함대에 배치된 핵추진 잠수함도 72척이나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인민군 잠수함대가 세계에서 가장 큰 잠수함대라는 버월 벨의 말은 북의 군사적 위협을 부풀리려는 과장발언이었을까?

지금 세계 각국 군사전문가들이 알고 있는 인민군 잠수함대에 관한 정보 가운데서 눈여겨보아야 할 사실이 있다. 그것은 북이 1990년대 말부터 지금까지 20년이 넘는 기간 동안 로미오급 잠수함을 더 이상 건조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2000년대에 들어와 북이 건조한 잠수함은 상어급 잠수함을 개량한 소형 잠수함과 연어급 잠수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북은 왜 20년이 넘도록 로미오급 잠수함을 건조하지 않는 것일까? 이 물음에 대한 해답은 평양에 있는 조선혁명박물관에 보존된 한 장의 오래된 사진에서 찾을 수 있다.


보존사진이 말해주는 놀라운 사연

2012년 7월 14일 세계 최대의 동영상 누리집 <유투브(You Tube)>에 ‘련속참관기 - 장군님과 동지, 조선혁명박물관을 찾아서 (9)’라는 제목의 텔레비전 방영 동영상이 실렸다. 조선혁명박물관에 보존되어 있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령도사적’에 관해 해설해주는 그 동영상은, 인민군 무력강화사업에 충실하였던 인민무력부 제1부부장 김광진 차수의 실화를 담은 동영상자료다. 김광진 차수는 1984년 12월에 인민무력부 부부장에 임명되었고, 1992년 4월에 차수 칭호를 받았고, 1997년 불치의 병에 걸려 70세를 일기로 별세하였다. 동영상에 나오는 해설에 따르면,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김광진 차수에게 “(인민군 무장장비를) 우리나라의 지형조건에 맞게 현대화할 과업을 주시였다”고 하며, 김광진 차수는 그 과업을 성과적으로 수행하여 공화국 영웅 칭호를 받았다고 한다.

그런데 동영상에 나오는 조선혁명박물관 보존사진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잠수함 모형 앞에서 김광진 차수로부터 보고를 받는 현장을 촬영한 것이다. 동영상에 나오는 해설강사의 말에 따르면, 그 사진은 1995년 4월 25일에 촬영된 것인데, 4월 25일은 인민군 창건 기념일이다.

무력강화사업을 책임진 인민무력부 제1부부장이 인민군 창건 기념일에 잠수함 모형을 앞에 놓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잠수함에 관해 보고하는 그 사진은 무엇을 말해주는 것일까? 누구나 알 수 있는 것처럼, 1995년 4월 당시 북은 이미 신형 잠수함 건조사업을 추진 중이었던 것이다. 그 사진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김광진 차수로부터 신형 잠수함 건조사업에 관한 보고를 받는 현장을 촬영한 것이다.

그 사진이 말해주는 것처럼, 1995년 4월 당시 북이 신형 잠수함 건조사업을 추진하고 있었으므로, 아무리 늦어도 2000년대 초에는 건조사업을 마쳤을 것이고, 그로부터 12년이 지난 오늘까지 북은 1990년대에 개발한 신형 잠수함을 계속 생산하여 실전배치하였을 것이다. 북이 1990년대 말부터 지금까지 20년이 넘도록 로미오급 잠수함을 더 이상 건조하지 않은 까닭은, 신형 잠수함을 건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북의 신형 잠수함은 어떤 잠수함일까? 그 사진에 나타난 것처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신형 잠수함 모형을 앞에 놓고 김광진 차수로부터 보고를 받았으므로, 북이 건조한 신형 잠수함은 바로 그 모형과 똑같이 생긴 잠수함이 분명한데, 신형 잠수함 모형은 함체도색과 함체구조가 인민군이 운용해오던 기존 잠수함과 크게 다르다.

첫째, 신형 잠수함 모형은 함체 위에 상층부를 한 층 더 얹어놓은 것 같이 생긴 2층 구조다. 이러한 2층 구조는 탄도미사일을 발사하는 잠수함에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외부형태다. 함체 위에 상층부를 한 층 더 얹어놓은 것 같이 보이는 그 부분이 바로 탄도미사일 수직발사대가 설치된 공간이다. 길이가 긴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SLBM)을 잠수함 안에 수직으로 세워놓아야 하므로 위쪽으로 불쑥 튀어나온 공간이 필요한 것이다. 미국, 러시아, 중국 같은 잠수함 강국이 운용하는 전략잠수함들 가운데 그렇게 생긴 잠수함이 흔하다.

사진에 나타난 신형 잠수함 모형은 특히 러시아군의 델타(Delta) 4급 잠수함과 아주 비슷하게 생겼다. 양자 사이의 차이점은, 인민군 신형 잠수함 모형의 경우 탄도미사일 수직발사대 공간이 전망탑(sail) 앞에 있는 데 비해, 러시아군 델타 4급 잠수함은 탄도미사일 수직발사대 공간이 전망탑 뒤에 있는 것이다. 미국군이 지난 시기 운용하였고 지금은 퇴역한 벤자민 프랭클린급(Benjamin Franklin class) 잠수함도 델타 4급 잠수함처럼 탄도미사일 발사대 공간이 전망탑 뒤에 있다.

인민군 신형 잠수함 모형은 실물 축소판이므로, 실물 잠수함의 길이를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잠수함 전망탑 길이와 잠수함 함체 길이의 비율을 계산하면 전체 길이를 추산할 수 있다. 사진에 나타난 신형 잠수함 모형의 함체 길이는 전망탑 길이의 약 8배다.

어느 나라에서나 잠수함 전망탑을 터무니 없이 길게 만들지 않기 때문에, 다른 나라 잠수함 전망탑 길이와 잠수함 함체 길이의 비율을 계산하여 그것을 인민군 신형 잠수함의 동종 비율과 비교하면 인민군 신형 잠수함 길이를 추산할 수 있다. 외형이 인민군 신형 잠수함과 아주 비슷하게 생긴 러시아군의 델타 4급 잠수함이 비교대상으로 적합하다. 러시아군의 델타 4급 잠수함은 1985년 12월에 취역하였는데, 그 동안 모두 7척을 건조하였고, 지금도 운용 중이다. 델타 4급 잠수함 함체 길이는 전망탑 길이의 약 10배다. 이런 비교결과를 보면, 인민군 신형 잠수함 길이가 러시아군 델타 4급 잠수함보다 조금 짧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델타 4급 잠수함 함체 길이는 167m이므로, 그보다 길이가 조금 짧은 인민군 함체 길이는 약 140m일 것으로 추정된다.

둘째, 사진에 나타난 신형 잠수함 모형은 전부 진록색으로 칠해졌다. 김정은 국방위원장이 김광진 차수로부터 신형 잠수함 모형을 놓고 보고를 받았던 때로부터 17년이 지난 2012년 3월 14일 김정은 제1위원장의 지도로 진행된 인민군 육해공군 합동타격훈련에 진록색 잠수함 1척이 등장하였다. 북이 공개한 ‘경애하는 최고사령관 김정은 동지께서 조선인민군 륙해공군 합동타격훈련을 지도하시였다’라는 제목의 기록영화에 나온, 진록색 잠수함은 전망탑만 수면 위로 내놓고 기동하면서 어뢰 1발로 표적함선을 날려버린다. 그런데 전망탑만 수면 위로 내놓았기 때문에, 그 진록색 잠수함이 17년 전 보고현장에 모형으로 전시되었던 진록색 잠수함과 같은 급의 잠수함인지 확인하기는 힘들다.

러시아군이 운용하고 있는 델타 4급 잠수함은 수중배수량이 18,200t이고, 수심 400m까지 내려갈 수 있으며, 승조원 130명을 태우고 80일 동안 수면 위로 떠오르지 않고 계속 잠항할 수 있다. 또한 그 잠수함은 90메가와트급 가압경수로 2기가 공급하는 20,000마력의 추진력으로 수중에서 시속 40~44km로 잠항한다. 이런 정보를 살펴보면, 인민군이 운용하고 있는 신형 잠수함의 수중배수량은 10,000t 정도로 추정되며, 승조원을 100명쯤 태우고 2개월 이상 수면 위로 떠오르지 않고 계속 잠항하는 잠수함일 것이다. 분명한 것은, 인민군이 운용하고 있는 신형 잠수함은 북이 독자적으로 개발한 소형 가압경수로가 설치된 공격형 핵추진 잠수함이라는 사실이다. 북이 경수로 기술을 이제껏 세상에 알려진 것보다 훨씬 이른 시기에 개발하였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이전에 발표한 나의 글에서 논한 바 있으므로 이 글에서 재론하지 않는다.

나는 2012년 2월 23일 <자주민보>에 기고한 글 ‘종적을 감춘 핵잠수함은 어디로 갔을까?’에서 북이 러시아군 태평양함대의 11,500t급 공격형 핵추진 잠수함 ‘양키 놋취(Yangkee Notch)’ 2척을 1993년에 도입하여 개조하고, 이를 실전배치하였을 것으로 추정하였으나, 2012년 7월 북에서 공개된 위의 사진 한 장으로 나의 그런 추정은 5개월만에 전면 수정될 수밖에 없다. 다만 북이 러시아로부터 1993년에 도입했던 핵추진 잠수함 2척을 개조하는 과정에서 핵추진 잠수함 설계기술을 확보한 것으로 생각되며, 그 기술을 가지고 1995년에 자체로 핵추진 잠수함을 건조하고 있었던 것으로 생각되는 것이다. 놀랍게도, 북은 공격형 핵추진 잠수함을 자체로 건조하는 세계 최고 수준의 잠수함 강국인 것이다.


김광진 차수가 1990년에 남긴 말

1997년 10월 21일 미국 연방상원 정무위원회 산하 국제안보, 확산 및 연방업무 소위원회가 개최한 북의 미사일 확산문제에 관한 청문회에 불려간 인민무력부 대외사업국 통역자 출신 탈북자가 청문회에서 털어놓은 대북군사정보가 워싱턴 정가에 파문을 일으켰다. 김광진 인민무력부 부부장(당시 직책)을 수행한 중국 방문길에서 그는 북이 사거리 4,000km 이상의 중거리 미사일 개발을 이미 끝내고 현재 생산 중이라는 김광진 부부장의 말을 직접 들었다고 털어놓았던 것이다. 김광진 인민무력부 부부장을 단장으로 하는 인민군 대표단이 중국을 방문한 때는 1990년 10월이다. 이것은 북이 이미 1990년 10월에 사거리 4,000km 이상의 중거리 미사일을 생산하고 있었음을 말해주는 놀라운 정보다.

무력강화사업의 책임을 맡은 인민무력부 부부장이 해외방문 중에 자기 수행원에게 사실이 아닌 것을 말했을 리는 없으므로, 위의 정보에 따르면 북은 이미 1990년에 사거리가 4,000km가 넘는 중거리 미사일을 실전배치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이제까지 세상에 알려진 북의 중거리 미사일 생산시기보다 무려 10년 이상 앞선 이른 시기에 북이 중거리 미사일을 생산하고 있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이런 정보에 따르면, 인민군의 미사일 전력에 관한 국제사회의 기존 관념은 전면 수정되어야 한다.

사거리가 4,000km로 추산되는 인민군 중거리 미사일이 미국 정찰위성에 처음 포착된 때는 2003년 9월이다. 그런데 김광진 차수가 1990년 10월에 언급한 사거리 4,000km 이상의 미사일과 미국 정찰위성이 2003년 9월에 포착한, 사거리 4,000km로 추산되는 미사일은 같은 종류의 중거리 미사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 두 미사일에 관한 정보가 각각 알려진 시점 사이에 무려 13년이라는 시차가 있기 때문이다. 이런 시차를 감안하면, 북은 김광진 차수가 1990년 10월에 언급한 사거리 4,000km 이상의 1세대 중거리 미사일을 미국 정찰위성이 2003년 9월에 포착한 사거리 4,000km의 2세대 중거리 미사일로 개량한 것이 분명하다.

북이 개량한 2세대 중거리 미사일이 바로 화성 10호 미사일이다. 화성 10호 미사일은 2010년 10월 10일 당창건 경축 인민군 열병식에서 6축12륜 발사차량에 실려 웅장한 자태를 드러냄으로써 세계를 놀라게 하였다.

북의 2세대 중거리 미사일인 화성 10호 미사일은 다른 미사일과 달리 탄두부가 뾰족하지 않고 뭉툭한 우유병 꼭지처럼 생겼다. 뭉툭한 탄두부에 핵탄두가 여러 발 들어있는 다탄두 미사일인 것이다. 또한 화성 10호 미사일은 다른 미사일과 달리 미사일 동체에 꼬리날개가 달리지 않았다. 이것은 잠수함에서 발사하는 다탄두 핵미사일임을 말해준다.

핵추진 잠수함을 지상 열병식에 등장시킬 수 없었던 북은 핵추진 잠수함 수직발사대에 있는 사거리 4,000km의 타탄두 미사일 화성 10호를 지대지 중거리 미사일을 싣는 6축12륜 발사차량에 임시로 실어 열병식에 등장시킴으로써 인민군이 강력한 핵추진 잠수함을 운용하고 있음을 암시한 것이다.

화성 10호 미사일의 등장은, 북이 1990년 10월 김광진 차수가 생산 중이라고 언급하였던 1세대 지대지 중거리 미사일을 최첨단 기술로 대폭 개량하여 2세대 중거리 미사일인 잠수함 발사 다탄두 미사일을 만들어냈음을 말해준다. 다시 말해서, 1995년 4월 25일 인민군 창건 기념일에 김광진 차수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설명한 그 진록색 잠수함 모형은 장차 화성 10호를 탑재할 핵추진 잠수함 모형이었던 것이며, 지금 조선혁명박물관에 보존되어 있는 그 사진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핵추진 잠수함 건조사업에 관한 보고를 받는 장면을 촬영한 것이다.

러시아군의 델타급 핵추진 잠수함에는 미사일 16발이 들어가는 수직발사대가 설치되었고, 533mm 어뢰 4발이 들어가는 어뢰발사관도 설치되었다. 다른 핵강국들이 보유한 핵추진 잠수함도 미사일 16발짜리 수직발사대와 533mm 어뢰 4발짜리 어뢰발사관을 공통적으로 설치하였으므로, 인민군이 보유한 신형 잠수함도 당연히 그런 수준의 강력한 무장을 갖추었을 것이다.

<자유아시아방송> 2010년 10월 13일 보도기사에서 미국의 군사전문가 브루스 벡톨(Bruce Bechtol)은 북이 2010년 10월 10일에 공개한 6축12륜 발사차량에 실린 중거리 미사일을 약 200기 실전배치하였을 것으로 보았다. 벡톨의 추정에 따르면, 북은 핵추진 잠수함에 실을 약 200기의 화성 10호 중거리 미사일을 보유하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 두 가지 일정만 남았다

북의 핵추진 잠수함은 바다로 통하는 해안동굴식 잠수함 건조기지에서 건조되고, 평소에도 해안동굴식 잠수함 기지에서 물 속으로 드나들며, 해안동굴식 잠수함 정비소에서 정비를 받기 때문에, 미국 정찰위성에 전혀 노출되지 않는다. 미국 정찰위성에 노출된 일반 해군기지에 정박하였다가 이따금 어디론가 사라지는 인민군 잠수함들은 모두 로미오급 또는 상어급 잠수함들이다.

미국은 북이 핵추진 잠수함을 운용하고 있다는 정보를 알고 있을까? 미국은 북의 핵추진 잠수함을 본 적은 없으나, 여러 정보를 분석하여 북이 핵추진 잠수함 보유국임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 중요한 군사기밀은 알아도 안다고 밝히지 않는 법이다.

북은 파키스탄에서 1998년 5월에 한 차례, 그리고 함경북도 길주군 핵실험장에서 2006년 10월과 2009년 5월에 각각 한 차례씩 모두 세 차례나 지하핵실험을 성공적으로 실시하였을 뿐 아니라, 경수로 기술을 실물로 입증하였고, 2세대 대륙간탄도미사일 화성 13호 6기를 2012년 4월 15일 열병식에 등장시켜 자국이 핵보유국임을 당당히 선포하였다. 1998년부터 2012년까지 14년 동안 자기의 핵억지력을 순차적으로 세상에 공개해온 북은 녕변핵시설 단지에 건설 중인 소형 경수로를 완공하고, 핵추진 잠수함을 세상에 공개하는 마지막 두 가지 일정만 남겨두고 있다.

누구나 아는 것처럼,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소련과 미국이 독점해온 전략무기는 대륙간탄도미사일과 핵추진 잠수함이다. 대륙간탄도미사일과 핵추진 잠수함을 모두 갖춰야 진정한 핵강국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지금 그 두 가지 전략무기를 모두 갖춘 핵강국은 전 세계에서 미국, 러시아, 중국 세 나라밖에 없다. 영국과 프랑스는 핵추진 잠수함을 운용하고 있으나, 대륙간탄도미사일은 보유하지 못하였다.

그런데 2000년대 중반에 이르러 대륙간탄도미사일과 핵추진 잠수함을 모두 보유한 제4핵강국이 조용히 부상하였다. 동방의 사회주의나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바로 그 제4핵강국이다. 제4핵강국의 등장은, 사회주의 대 제국주의의 군사대결을 북미대결관계로 집약시킨 대사변이다.

북이 핵억지력 부문에서 영국과 프랑스를 앞지르면서 미국, 러시아, 중국과 어깨를 겨룰 수 있는 제4핵강국으로 부상하였으므로, 세계 핵전력 균형은 사실상 깨지고 말았다. 김정은 제1위원장의 지시에 따라 제4핵강국의 핵추진 잠수함이 세상에 공개되는 대충격의 날이 오면, 세계 안보지형과 국제정치관계는 뒤집히게 될 것이다. 지금 태평양과 대서양 어느 바다속을 소리 없이 누비며 대양순찰활동을 벌이고 있을 제4핵강국의 공격형 핵잠수함들은 미국의 선제핵공격위험을 강력히 짓누르면서, 김정은 제1위원장의 ‘조국통일대전 명령’을 대기하고 있을 것이다. 이런 사실을 안다면, 미국과 일본은 북을 자극하는 경거망동을 멈추어야 할 것이다.(2012년 9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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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 중위가 정신질환자? 국방부 해도 너무 한다

김훈 중위가 정신질환자? 국방부 해도 너무 한다

'화약흔 검출' 실험결과 꼼수로 부정... 비열한 진실왜곡 중단해야

12.09.17 14:21l최종 업데이트 12.09.17 14:21l
고상만(rights11)

 

 

고 김훈 중위의 아버지 김척 예비역 육군 중장이 '뇌관 화약 잔사 확인 시험'의 의미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김도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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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98년 판문점에서 의문사한 김훈 중위의 아버지, 김척 예비역 중장으로부터 밤 늦은 시각에 전화가 왔습니다. 1998년 천주교 인권위원회에서 활동가로 일할 당시 아들의 의문사를 호소하고자 찾아온 아버지와 처음 만났으니 어느덧 14년째 이어져온 인연입니다. 그런데 평소와 달리 까맣게 타버린 아버지의 절박한 심경이 전화를 통해 울려왔습니다.

무슨 일인가 싶었습니다. 완전한 형태는 아니지만 그래도 지난 14년간 김훈 중위에 대해 국방부가 내린 3차례의 자살 결론에 대해 지난 8월 국민권익위원회가 '순직 처리'하도록 요구한 후 한결 아버지의 시름이 덜어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왜 그러시냐"고 묻는 말끝에 그 아버지가 전해준 사실은 다시 한번 저를 충격에 빠지게 합니다.

국방부, 김훈 중위 또 다시 자살 결론? 원인은...

아버지의 말에 의하면 권익위의 '순직 처리' 권고와 달리 국방부가 또다시 김훈 중위가 자살했다며 4번째 결론을 내리려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더 나아가 '정신질환에 의한 자살'로 처리하려 하고 다만 권익위의 권고에 따라 그 결과는 '업무 연관성을 인정하여 순직으로 처리하겠다'는 입장인 것으로 확인되었다는 주장이었습니다. 이는 한마디로 국방부의 '비열한 거짓말'이며 '참을 수 없는 꼼수'입니다.

권익위가 국방부에 김훈 중위를 '순직 처리'하라고 권고하게 된 배경을 살펴봐도 그렇습니다. 2011년 9월 권익위가 김훈 중위 사건에 대해 조사를 착수하게 된 것은 유족의 진정에 따른 것이었습니다. 아무런 객관적 근거도 없이 국방부는 그동안 모두 세차례 김훈 중위가 '자살'했다는 주장만 되풀이했습니다. 그래서 더 이상 국방부에 기대할 것이 없다는 판단을 한 김훈 중위 유족은 최후 수단으로 권익위에 민원을 제출합니다. '사건 재조사후 순직인정을 받게 해달라'는 취지였습니다.

한편, 이같은 진정을 받은 권익위는 사전 조사를 통해 김훈 중위 사건이 첫 단추부터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됩니다. 1998년 2월 24일 낮 12시경 오른쪽 관자놀이에 총상을 입고 사망한 김훈 중위에 대해 국방부가 '자살'로 결론을 내린 시각이 문제였습니다. 당시 국방부는 국방부 출입기자들에게 "김훈 중위가 판문점에서 자살했다"며 보도 자료를 배포했습니다. 그 시간은 당일 오후 2시경이었습니다.

문제는 이처럼 국방부가 '보도자료'를 배포하던 그 시점은 아직 군 수사관이 사건 현장에 도착도 하지 못한 시간이었다는 것입니다. 즉, 수사가 시작도 안 된 그 때 이미 국방부는 김훈 중위가 자살했다고 발표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처럼 말도 안 되는 국방부의 자살 예단은 이후 그 어떤 객관적 타살 의혹에도 불구하고 '김훈 중위 자살'이라는 국방부의 틀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못하는 결정적 이유가 됩니다.

그러다보니 이후 '국회 국방위 김훈 중위 사망 소위'와 '대법원', 그리고 '군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 등 3개의 국가기관이 국방부의 주장과 달리 자살로 볼 수 없다며 의견을 제시했지만 이 역시 국방부는 모두 수용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권익위는 대표적인 '군 의문사 사건'인 김훈 중위 사건에 대해 추가 조사의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하고 이에 따라 본격적인 조사에 착수하게 됩니다.

반드시 있어야 할 화약흔 없는 '김훈 오른손의 진실'

미군 수사관이 현장에서 촬영한 고 김훈 중위의 시신. 좌측 상단 청바지 차림의 미군 수사관 다리가 보이고 김 중위의 양손에는 화약 잔재를 채취하기 위해 봉투가 끼워져 있다. (유족의 양해를 얻어 김 중위의 사진을 공개합니다)
ⓒ 김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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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권익위가 김훈 중위 사건에서 발견된 많은 의혹 중 가장 핵심적인 의혹으로 주목한 것이 바로 김훈 중위의 '오른손'에 얽힌 논란이었습니다. 바로 스스로 권총을 발사하여 자살했다는 김훈 중위의 오른손에서 검출되지 않은 '화약흔'을 둘러싼 공방이었습니다. 만약 국방부의 주장대로 김훈 중위가 스스로 권총을 쏴 자살했다면 응당 그의 오른손에는 '안티몬과 바륨' 등 화약흔 성분이 검출되었어야 합니다.

실제로 권총에 의한 사망사건이 빈번한 미국의 경우 두 명의 사람이 사망한 채 발견된다면 수사기관이 가장 먼저 하는 조치는 이들 사망자들의 손을 면봉으로 닦아내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를 토대로 화약흔 검사를 실시하여 누구의 손에서 화약흔이 발견되느냐에 따라 결론을 내린다는 것입니다. 즉, 화약흔이 검출된 사람이 가해자인 것으로 특정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김훈 중위가 자살했다'는 국방부의 논리가 맞으려면 문제의 김훈 중위의 오른손에서 화약흔이 검출되면 그만이었습니다. 하지만 국방부의 주장과 달리 김훈 중위의 오른손에서는 검출된 화약흔이 전혀 없다는 것이 지난 14년간 끊임없이 제기된 의혹이었던 것입니다. 당연히 논란이 가열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한 사실 앞에서 궁색해진 국방부는 황당한 주장을 시작합니다. "화약흔이 나올 수도, 안 나올 수도 있어 김훈 중위의 손에서 화약흔이 발견되지 않은 것은 별 의미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같은 국방부의 주장에 대해 미국의 저명한 법의학자인 노여수 박사는 "말도 안되는 소리"라며 강하게 반박했습니다.

그는 '작은 권총'과 탄창이 돌아가는 '피스톨 권총'의 경우 화약량이 적어 국방부의 말처럼 그럴 가능성이 있으나 김훈 중위가 사용한 '베레타-9' 권총은 세계에서 가장 큰 권총으로서 격발시 반드시 화약흔이 나올 수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작은 권총과 큰 권총을 구분하지 않고 말하는 국방부의 주장은 '진실을 왜곡하는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따라서 그는 김훈 중위의 오른손에서 화약흔이 검출되지 않았다는 것은 김훈 중위가 스스로 총을 격발하여 사망하지 않은 명백한 증거라고 그의 타살을 강하게 주장했습니다.

권익위는 이 논란에 주목했습니다. 그리고 이 논란만 제대로 규명한다면 김훈 중위 사건의 실체적 진실이 무엇인지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라고 판단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실 진실은 알아내는 것은 간단한 일입니다. 김훈 중위가 사망시 사용했다는 문제의 권총으로 직접 발사 실험을 하고 정말 화약흔이 나오나 그렇지 않은가를 확인해보면 금방 알 수 있는 진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만약 국방부의 주장처럼 발사자의 손에서 화약흔이 나오지 않는다면 이는 '김훈 중위가 자살한 것이 맞다'는 근거가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반대로 발사자의 손에서 모두 화약흔이 검출된다면 이는 국방부의 주장과 달리 김훈 중위가 스스로 권총을 발사했다고 할 수 없으므로 그가 '자살했다는 국방부의 주장은 잘못된 것임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권익위는 즉각 국방부에 이같은 권총 발사에 따른 화약흔 실험을 하자고 제안했습니다. 그러면서 이 모든 실험 과정에 대한 주도권 역시 국방부에게 전부 위임했습니다. 즉, 국방부가 원하는대로, 하고 싶은대로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이는 권익위의 깊은 고심이 깔려 있는 조치였습니다. 만약 차후 이 실험 결과가 국방부가 원하는 바와 다르게 나오더라도 자신들이 주도한 이 결과는 부정하지 못하겠지 싶은 마음으로 초강수를 둔 것입니다.

그래서 받아들인 국방부의 조건은 너무나 특이했습니다. 처음 그들의 요구를 전해들은 저는 그야말로 실소를 금치 못했습니다. 실험에 참여하기로 한 권총 발사자 10명 중 5명은 정상적인 격발 자세인 '오른손 두 번째 손가락'으로 방아쇠를 당기는 대신 나머지 5명은 기상천외하게도 첫 번째 손가락인 '엄지'로 방아쇠를 당기게 하자는 제안이었습니다.

처음엔 그게 무슨 뜻인가 했습니다. 육사를 제대한 장교가 엄지 손가락으로 권총의 방아쇠를 당기게 하자는 국방부의 발상이 너무나 황당했기 때문입니다. 이건 또 무슨 꿍꿍이인가 싶어 확인해보니 국내 저명한 모 법의학자가 이같은 제안을 국방부에 제시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그동안 '김훈 중위가 자살했다'는 국방부의 주장에 동조해 온 사람이었는데 그의 주장에 의하면 김훈 중위의 오른손에 화약흔이 없는 이유가 '엄지 손가락을 이용한 격발 때문'일 수 있다며 국방부에 제안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김훈 중위 아버지는 이처럼 말도 안되는 국방부의 요구에 대해 저에게 어찌해야 할지 의견을 물어왔습니다. 제 대답은 간단했습니다. 만약 권익위가 국방부 요구를 수용한다면 우리 역시 이를 따르자고 했습니다. 확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느 손가락으로 당기든 터진 화약이 도대체 어디로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같은 모 법의학자의 '이상한' 주장이 과연 어떤 결과로 나타날지 저 역시 몹시 궁금했습니다.

2012년 3월, 드디어 지난 14년간 이어져 온 이 사건 '김훈 중위 자, 타살 논쟁'의 분수령이 될 역사적인 실험이 이뤄진 곳은 모 특전여단 사격장이었습니다. 이날 국방부의 주도 아래 14년 전 사고 현장이었던 판문점 241GP 3번 벙커를 그대로 재현한 상태에서 실험에 참여한 사수 10명이 권총의 방아쇠를 당겼습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야말로 피가 마를 정도로 긴장된 그때였습니다.

밝혀진 화약흔의 진실, 국방부 '실험 결과 부정'

그리고 마침내 지난 6월. 석달여를 기다려온 화약흔 실험 결과가 밝혀졌습니다. 밝혀진 진실은 참으로 놀랍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결론적으로 유족이 옳았습니다. 국방부의 주장이 틀린 것입니다. 당연한 상식의 승리였습니다.

국방부가 주장한 '엄지를 이용한 격발'이든 아니면 '정상적인 두 번째 손가락을 이용한 격발'이든 상관없이 이날 실험에 참여한 사수 10명 모두의 손에서 화약흔이 검출된 것입니다. 즉, 어떤 방식의 권총 격발이든 상관없이 권총 방아쇠를 당긴 사람의 손에서는 '화약흔이 검출된다'는 상식이 과학적 실험을 통해 확인된 것입니다.

마침내 길고 힘든 14년간의 어두운 터널을 지나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날, 김훈 중위 아버지 김척 예비역 장군은 저에게 전화하여 큰 목소리로 외쳤습니다.

"이겼어. 마침내 우리가 이겼어. 그동안 주장해온 것이 모두 사실이었던 거야. 국방부 주장이 틀렸다는 것이 이제 명백히 드러난 거라고. 고상만씨. 정말 수고했어. 그동안 정말 고마웠다고."

지난 14년간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아버지의 '안타까운' 기쁨이었습니다. 이것을 기쁜 일이라고 말하는 것이 이상한 일이지만 솔직히 말해 저 역시 기뻤습니다. 그리고 그 오랜 14년간에 걸친 국방부와 얽힌 그 끔직한 고뇌의 시간이 모두 끝났다고 생각하니 그 묘한 감정은 그야말로 무엇으로 표현하기 어려운 느낌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설마하며 우려했던 일이 벌어진 것은 이같은 우리의 자축 여운이 채 사라지기도 전이었습니다. 우려해왔던 국방부의 실험 결과 부정 주장이 제기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내막은 이랬습니다. 이미 확인한 것처럼 총기 발사자 10명의 양쪽 손바닥과 손등에서는 모두 '화약흔이 검출'되었습니다. 그런데 그중 단 1명의 우측 손등에서 "화약흔은 검출되었으나 그 양이 적어 이른바 국제 기준에 맞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국방부는 '이를 화약흔 검출로 볼 수 없다'는 주장을 시작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보다 정확한 추가 조사가 필요하며 따라서 기존의 김훈 중위가 자살했다는 본질에는 변한 것이 없다는 논리였습니다.

만약을 위해 모든 것을 다 국방부가 주관하도록 해주고 또한 그들의 요구에 따라 말도 안되는 엄지 손가락 발사까지 다 수용했음에도 그들의 주장은 참으로 뻔뻔하다는 말 외엔 달리 표현할 길이 없는 주장이었습니다. 국방부는 10명의 사수 중 단 한 명에게서 확인된 한쪽 손등의 '특이 상황'을 이유로 실험 결과 자체를 '별 의미 없는 것'이라며 격하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같은 국방부의 주장은 참으로 뻔뻔한 논리입니다. 발사자 10명의 좌우 손바닥과 손등을 합치면 모두 20개입니다. 그런데 그중 19개에서 다량의 화약흔이 검출되고 다만 1개에서 검출 기준보다 미달하는 화약흔이 나왔다 하여 이 모두가 의미 없다는 국방부의 주장은 그야말로 너무나 야비한 주장입니다.

정말 궁금한 것은 만약 국방부가 제안했던 문제의 엄지 손가락 발사 결과에서 자신들이 주장한 것처럼 화약흔이 과반수 이상 검출되지 않은 결론을 얻었다 해도 이처럼 실험 결과를 부정했을까요. 당연히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니 이같은 국방부의 행태가 얼마나 치사한 것인지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더 명백한 '진실 왜곡'은 따로 있었습니다.

이미 언급한 것처럼 그들이 문제 삼는 발사자 1명의 우측 손등에서 검출된 화약흔은 정확히 말해서 '아무것도 나오지 않은 미 검출'이 아니라 검출은 되었으나 그 기준에 미달한다는 지적이었습니다. 그런데 김훈 중위는 이와 '완전히 다른 사례'입니다. 즉, 기준 미달이니 뭐니가 아니라 김훈 중위의 오른손은 화약흔이 전혀 검출되지 않은, 그야말로 '깨끗한 상태'였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기준 미달이든 뭐든 상관없이 '김훈 중위가 스스로 권총을 발사하지 않았다는 진실은 변함이 없다'는 것이 됩니다.

따라서 권익위는 이같은 권총 화약흔 실험 결과와 국방부의 초동수사 잘못을 확인한 후 다음과 같이 육군 참모총장을 상대로 권고한 것입니다.

"피신청인에게(육군 참모총장에게) 군 수사기관의 초동수사 과실 등으로 인해 사망 원인이 불분명하게 된 신청인의 子, 故 김훈의 순직 여부에 대해 재심의하여 순직으로 인정할 것을 시정 권고한다."

국방부, 권익위 권고 따라 김훈 중위 사건 처리해야

그는 아버지를 잇는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장교가 되려고 했다. 하지만 국방부는 그를 '파파보이' 의지가 나약한 한심한 존재로 만들었다. 하지만 김훈 중위의 동기생은 말한다. 그는 누구보다도 자랑스러운 육사 출신 장교였다고 말이다.
ⓒ 김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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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같은 권익위의 권고를 받은 국방부가 이미 언급한 것처럼 또다시 김훈 중위를 상대로 진실을 왜곡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두 번, 세 번 김훈 중위가 자살했다며 진실을 왜곡해 온 국방부가 이제 또 다시 네 번째 그를 자살로 몰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도대체 국방부에는 양심이라는 것이 있는 것일까요? 얼마나 더 많은 고통을 그 유족에게 안겨줘야 그들의 성에 찬다는 것입니까? 14년 전 처음 만날 때 50대 후반의 신사였던 그 아버지 김척 예비역 중장은 어느덧 70대를 바라보는 노인이 되었습니다. 함께 식사를 할 때마다 제 앞의 밥공기가 다 비워졌는데도 정작 아버지는 사건 설명을 한다며 제대로 식사하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지난 14년간 듣고 또 들은, 어쩌면 젊은 제가 더 많이 알고 있는 사실인데도 그 아버지의 애타는 심정은 혹여 제가 이 사건에 관심을 버릴까 걱정되는지 멈출지를 모릅니다. 그런 아버지가 권익위의 '진상규명 불능에 따른 순직 권고'에도 불구하고 국방부가 재차 진실을 조작하려 하자 다시 새까맣게 타버린 얼굴로 절규합니다. 차마 눈물없이 들을 수 없는 그 아버지의 절규는 제 가슴을 다시 먹먹한 슬픔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국방부가 너무 야비해. 정말 너무해. 도대체 이럴 수 있는거야. 이게 내가 청춘을 다 바쳐 충성해온 국방부라니 정말 너무나 슬프고 비참해. 정말 이렇게까지 야비하고 치사할 줄 몰랐어."

그러면서 아버지는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만약 국방부가 김훈 중위에 대해 또다시 자살로 결론 내린다면, 그것도 '정신질환에 의한 자살'로 결론 내리면서 '순직 처리'로 하겠다면 그 결과를 절대 수용하지 않겠다는 선언이었습니다. 반드시 권익위의 권고와 같이 '진상규명 불능'으로 처리되어야 것입니다. 그래야만 언제든 다시 김훈 중위 사건에 대해 재조사할 수 있는 길이 있기에 절대 양보할 수 없다며 아버지는 이를 악물었습니다. 그러면서 이를 위해 지난 14년간 처절하게 싸우며 정말 고통스러웠지만 필요하다면 또 14년의 싸움도 마다하지 않고 '죽을 때까지' 싸우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 아버지와 저 역시 싸울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아버지가 끝내 이 결과를 보지 못하고 먼저 돌아가신다면 살아남은 저라도 반드시 이 사건에 대한 진실을 밝히고자 싸울 것입니다. 김훈 중위 한 명을 위한 싸움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한 해 100여 명씩 자살로 처리되는 이 나라의 현실에서 김훈 중위처럼 또 다른 제2, 제3의 억울한 군 의문사 희생자가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도 김훈 중위 사건은 반드시 진상 규명 되어야 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자살한 것은 '김훈 중위'가 아니라 '국방부의 양심'입니다. 하다 하다 이제는 '정신질환자'로 몰아가는 이같은 행위는 결코 양심이 있는 집단이라면 생각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도대체 지난 14년간 단 한 번도 언급한 적도 없는 난데없는 '정신질환자' 주장이 왜 나온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이것을 국가 권력의 폭력이라고 하지 않으면 무엇을 폭력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진심으로 저는 '자살해버린 국방부의 양심'에 애도를 표합니다. 그리고 간곡히 호소합니다. 더 이상 김훈 중위의 유족에게 이와 같은 '참담한 고통'을 줘서는 안됩니다. 지난 14년간 준 고통만으로도 이미 차고 넘칩니다. 죽고 싶어도 차마 죽지 못하고 살아온 그들의 지난 세월입니다. 숨쉬고 있다고 해서 살아온 지난 14년이 아니란 말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14년 전 억울한 사인 끝에 죽어간 김훈을 정신질환자로 만드는 저 국방부를 뭐라고 규탄해야 할지 마땅한 말조차 찾을 수가 없습니다.

이것이 37년간 국가와 군을 위해 살아온 늙은 노병에게 주는 국방부의 선물이라면 도대체 누가 이 나라를 위해 충성을 하겠습니까. 특혜를 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국방부만 빼고 모든 국가기관이 다 확인해 준 '사인 진상규명 불능' 결정과 권고에 따라 처리하라는 이 당연한 요구를 왜 끝끝내 외면한단 말입니까.

정말이지 국방부는 김훈 중위에 대한 '비열한 진실 왜곡'을 중단해야 합니다. 권익위가 권고하고 사실상 내부적으로 합의한 것처럼 '육군 전, 사망 심의위원회'를 통해 김훈 중위의 명예를 조속히 회복시키는 '순직 처리'를 조건없이 추진해야 합니다. 이것이 그나마 지난 14년간 국방부가 해온 잘못에 대한 최소한의 속죄이며 당연한 도리임을 김관진 국방부 장관에게 강력히 촉구합니다.

25살에 죽어 이제 살았다면 39살이 되었을 김훈 중위. 그의 안타까운 넋에 또다시 흰 추모의 국화꽃을 올리며 깊은 애도를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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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 비정규직 이 씨는 왜 스스로 목을 매야 했나?

현대차 비정규직 이 씨는 왜 스스로 목을 매야 했나?

[현장편지] 불법파견 문제에 현대차·정치권·정규직노조 나서줬다면…

박점규 비정규직 없는 세상 만들기 집행위원 전 금속노조 비정규국장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2-09-17 오후 1:26:54

 

9월 15일 새벽,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가 목을 매달았습니다.

9월 14일 과거사 논란에 휩싸인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는 청소노동자들을 만나 "월급이 원청하고 차이가 나면 안 되는데"라며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리고 바로 다음날 새벽, 현대자동차에서 원청의 절반도 안되는 월급을 받으며 11년 동안 자동차를 만들던 비정규직 노동자가 스스로 목을 매 숨졌습니다.

새누리당 조윤선 대변인은 "비정규직 근로자들의 문제 해결을 위해 새누리당과 박근혜 대통령 후보는 환경미화원과의 대화를 시작으로 다양한 분야와 업종에 걸친 현장을 찾아 비정규직 근로자들을 직접 만나 대화할 것"이라고 약속했습니다. 바로 다음날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는 박근혜 후보는커녕 새누리당 당직자 한 명 만나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는 불법파견을 은폐하고 사내하청을 합법화하는 법안이기 때문에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정몽구 보호법'이라고 불리는 '사내하도급 보호법'을 올해 꼭 통과시키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다음 날, 정규직 전환에 대한 꿈을 잃어버린 현대차 '사내하도급' 노동자는 병든 아버지와 어린 누이를 남겨두고 숨을 거두었습니다.

민주통합당 대선후보로 선출된 문재인 후보가 14일 열린 TV 토론에서 "양극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800만 명에 달하는 비정규직을 점차 정규직화 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다음날 새벽, 노동부가 불법파견이라고 판정한 2004년부터 대법원의 최종 판결이 난 올해까지 8년 동안 '불법파견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싸웠던 노동자는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났습니다.

 

▲ 지난 5월 새누리당이 민생법안 1호로 불법파견을 합법화하는 '사내하도급법'을 내놓자 노동시민단체는 반발했다. ⓒ프레시안(김윤나영)


박근혜가 비정규직 노동자를 만난 다음날

현대차 비정규직지회 이재환 조합원(32)이 스스로 목을 맸다는 소식이 전해진 토요일, 그를 잘 아는 노동자들이 경주의 장례식장으로 달려갔습니다. 왜 병환 중이신 아버지와 어린 여동생, 사랑하는 여인을 두고 죽음을 택할 수밖에 없었는지, 왜 10년을 넘게 일했던 현대자동차에서 정규직화에 대한 희망을 잃어버리고 스스로 목을 맬 수밖에 없었는지 알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유서 한 장 남기지 않았습니다. 최근에 주고받았던 문자나 통화 기록도 없었습니다. 그가 속한 시아테크라는 업체에서 전체 조합원에게 일괄 발송한 문자조차 지워져 있었습니다. 그의 핸드폰에는 사랑하는 여인과의 최근 대화만이 남아 있었습니다.

비정규직노조 조합원 자살 소식에 당황하던 현대차와 하청업체는 유서가 없다는 소식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을 겁니다. 하청업체에서 "특근을 신청하는 등 최근 별다른 문제가 없다"는 문자를 노동자들에게 보냈다고 합니다. 두 번의 대법원 판결과 노사교섭으로 어느 때보다도 정규직 전환의 가능성이 높아졌는데 왜 그에게는 살아야 할 희망이 없어진 것일까요?

현대자동차에서 11년 동안 청춘을 바쳐 일했던 그가 세상에 남긴 것은 병든 아버님과 어린 동생, 그리고 빚을 독촉하는 카드명세서 뿐이었습니다.

현대자동차를 11년 만든 비정규직 노동자가 남긴 것

그는 2002년 울산 2공장에 들어와 11년 동안 비스토, 투싼, 산타페, 아반떼, I(아이)40를 만들었습니다. 자동차 운전석 정면에 있는 '크래쉬패드'를 조립하는 일을 했던 그는 2004년 겨울 노동부에서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 1만 명에 대해 불법파견이라는 판정이 나오고 2005년 비정규직노조가 정규직화 투쟁을 벌이자 노조에 가입했습니다.

정규직과 똑같은 일을 하거나 더 힘든 일을 하면서도 정규직의 절반도 되지 못하는 임금을 받으며 차별과 멸시에 시달렸던 그에게 노동부의 불법파견 판정은 정규직 전환에 대한 첫 번째 희망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희망은 비정규직 노조 간부들의 구속과 해고만을 남기고 사라졌습니다. 노동자의 친구라던 노무현 정부는 이들의 가슴에 분노와 절망을 아로새겼습니다.

5년의 시간이 흘렀고, 2010년 7월 22일 대법원은 "컨베이어 벨트 시스템으로 생산되는 제조업 생산 공정은 불법파견이기 때문에 2년 이상 근무한 사내하청 노동자는 정규직으로 간주된다"며 '합법도급'이라는 고등법원 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고등법원으로 되돌려 보냈습니다. 정규직 전환에 대한 두 번째 희망이 생겨난 것입니다.

2010년 11월 15일부터 25일 동안 500여명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1공장 점거농성을 벌였고, 그가 속한 2~3공장 조합원들은 현장에서 파업을 벌였습니다. 비정규직 역사상 가장 치열하고 처절하게 싸웠습니다. 그러나 정규직노조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연대의 손을 거부했고, 싸움은 승리하지 못했습니다.

노조 간부들에게는 구속과 해고, 손해배상이라는 형벌이, 그에게는 정직이라는 고통이, 그리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가슴에는 정규직노조의 배신이라는 각인이 새겨졌습니다.

정규직화에 대한 세 번의 기회

1년 6월의 시간이 흘러 올해 2월 23일 대법원에서 최종 판결이 나오고, 현대차 정규직노조가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위해 싸우겠다고 약속했을 때 세 번째 희망이 얼굴을 내밀었습니다. 무엇보다 비정규직을 배신했던 집행부를 이긴 '민주집행부'가 들어섰기 때문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기대는 어느 때보다도 높았습니다.

다리를 크게 다쳐 3개월의 병가를 보내고 공장으로 돌아온 그에게 비정규직노조의 파업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는 아픈 다리를 이끌고 파업에 참가했고, 집회와 농성을 벌였으며, 용역경비의 폭력 앞에서 당당하게 만장을 들고 싸웠습니다. 2005년과 2010년 패배의 아픈 기억이 있었지만 마지막 희망의 끈을 놓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회사가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내놓은 것은 불법파견을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3천명 신규채용안이었습니다. 정규직노조는 비정규직 조합원들에게 신규채용안을 받아들일 것을 요구했고, 흔들린 일부 조합원들이 파업 현장을 떠나갔습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3000명 신규채용안을 '쓰레기안'이라며 거부하자, 정규직노조는 비정규직 정규직화 요구안만을 남기고 임금협상을 타결했습니다. 2700만원이 넘는 성과급 돈 잔치 앞에서 '비정규직 연대'라는 가치는 고개를 숙이고 말았습니다. 그의 세 번째 희망, 마지막 희망은 이렇게 사그라지고 있었습니다.

희미하게 사라져가는 마지막 희망

"알려드립니다. 현재 진행 중인 불법파업, 불법행위를 중단바라며 이에 따른 인사상 불이익을 받을 수 있음을 통보드립니다.(시아테크 대표)"

비정규직노조의 파업에 참여했던 그와 조합원들에게 하청 사장이 보낸 문자입니다. 정규직 임금 협상이 끝나자 하청 사장은 그의 동료들 4명을 해고하겠다고 협박했습니다. 그는 해고는 말도 안 된다며 다시 파업을 하자고 친구에게 말했습니다.

오랜 노동조합 경험으로 그는 정규직 전환의 가능성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목을 매달기 전날 점심시간에 공장 식당에서 그의 친구에게 기록되지 않은 '유서'를 남겼습니다.

"요즘 우리 조합도 많이 힘들제? 이번에는 정규직 전환에 대한 기대가 높았는데, 어려울 것 같다. 내가 뭐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친구는 그에게 그런 농담 하지 말라고 했지만 그는 넋이 나간 표정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말이 그의 마지막 말이 되었습니다.

 

▲ 현대자동차가 불법 파견 인정 대신 사내하청 일부 신규 채용안을 내놓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반발하고 있다. ⓒ프레시안(김윤나영)


3000명 신규채용안과 사라진 마지막 희망

현대자동차가 대법원 판결에 따라 지난 10년 간 불법을 저질러왔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모든 사내하청 정규직 전환에 대해 노사교섭에서 전향적인 태도로 나왔다면 그가 이런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까요?

2010년 대법원 판결 이후 노동부와 검찰이 명백한 불법노동에 대해 정몽구 회장사용자들의 책임을 묻고 현장조사와 특별근로감독을 비롯한 조치를 취했다면 이 젊은 노동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까요?

파견법과 비정규직법을 만들어 900만 비정규직의 고통과 절망을 양산했던 민주통합당 문재인 대선후보를 비롯한 대권주자들이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절망과 고통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보였다면 그가 이렇게 허망하게 세상을 떠났을까요?

회사와 정부와 정치권이 나섰다면

3000명 신규채용안에 대해 회사는 "특히 불법파견 논란을 마무리하고 동시고용 유연성을 확보하는 계기를 마련하게 됐다"고 밝혔습니다.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현행 근로자파견법을 피해 아무 때나 쓰고 버릴 수 있는 노동자들로 사용하겠다는 뜻입니다.

2008년 미국에서 시작된 경제위기 때 현대차에서 1천명이 넘는 비정규직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해고했던 것처럼, 앞으로 경제위기가 심화되거나 판매가 부진할 경우 언제든지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공장 밖으로 쫓아낼 수 있는 '고용 유연성'을 확보하겠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현대차지부 문용문 지부장은 비정규직 노동자들과의 간담회에서 3000명 신규채용안을 수용하라며 조합원이 절대 차별이나 불이익을 받지 않을 것이고, 근로자지위확인소송은 계속될 것이며, 설령 3천명 안에 들지 못하더라도 이후에도 계속 채용은 불가피하기 때문에 업체 인원을 우대할 것이고, 해고자 문제도 전향적으로 풀 것이라고 했습니다.

"재환이가 이번에는 정규직노조에 기대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3000명 신규채용안이 나오고, 정규직노조 태도를 보면서 기대가 사라지게 된 겁니다. 우리처럼 초기에 노조에 가입한 조합원들은 분위기를 보면 알잖아요. 재환이가 정규직이 되어서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고 행복하게 살고 싶다고 했는데…."

고 이재환 조합원의 친구가 전한 얘기입니다.

어쩌면 이재환 조합원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버티지 못하고 끝내 죽음을 선택한 이유가 정말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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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대선 후보 문재인, 그가 넘어야 벽들

  •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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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
    2012/09/17 07:25
  • 수정일
    2012/09/17 07:25
  • 글쓴이
    이필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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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대선후보로 문재인 후보가 선출됐습니다. 문재인 후보가 대선 후보로 선출되면서 기쁨도, 안타까움도 느꼈습니다. 아스팔트가 아닌 돌밭을 내딛으면서 정치인 문재인으로 성장하는 모습은 기뻤지만, 가는 걸음마다 그를 공격하고 순탄하지 않은 외부적인 요인을 보면 정치를 시작한 그가 안쓰럽기도 했습니다.

문재인 후보의 민주당 대선 후보 선출을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습니다. 그것은 그가 넘어가야 할 담들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어제 그가 민주당 후보로 당선된 만큼 이제 앞으로 그가 할 일들을 정리해봤습니다.

'민주통합당, 구태의연한 정당 정치를 넘어야 한다'

왜 국민은 민주통합당에 많은 실망을 할까요? 말로는 정치 개혁을 외치지만 결국 그들의 모습을 보면 구태의연한 기성 정치인의 모습과 별 차이가 없기 때문입니다. 지금 민주당은 내부 갈등으로 진통을 겪고 있습니다. 경선 과정에서 보여준 계파 간의 헐뜯기는 그 도를 넘을 정도였습니다. 이제 민주당 대선 후보로 문재인 후보가 선출됐으니 모두 한마음 한뜻으로 그를 지지하고 성원해줄까요? 당연히 그래야 합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리 쉽지 않습니다.

 

 

 


현재 민주당 지도부에서는 최고위원회의 권한을 대선 후보에게 위임하겠다고 나서고 있습니다. 그러나 경선 기간 내내 담합설과 지도부 사퇴를 요구한 일부 후보 지지자들의 모습을 보면 과연 순조롭게 이런 지도부의 뜻을 따를지 의문입니다.

문재인 후보는 경선에 참여했던 후보들과 연대 이전에 그들이 가졌던 지도부에 대한 불신을 해결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야 합니다. 아무리 최고위원회의 권한을 줬다고 해도 반지도부가 계속해서 지도부를 따르지 않는다면, 밑에서부터 흔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문재인 후보가 용광로 같은 선대위를 만든다고 하는데, 여기서 두 가지 현실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하나는 선대위는 말 그대로 대선을 위한 조직적으로 한목소리를 내야 하는데, 다른 계파에서 온 인물들이 그럴 수 있느냐는 점과, 선대위가 인수위 등으로 이어지는 사례에서 보듯이 선대위에 참여하려는 기득권 세력을 어떻게 정리하느냐입니다.

그리고 가장 우려되는 것이 바로 대선 후보 흔들기입니다. 단순히 문재인 후보를 공격하는 원색적인 일들도 발생할 수 있겠지만, 더 큰 문제는 민주통합당 의원이지만 안철수 후보를 지지하기 위해서 속칭 간을 보는 민주통합당 의원입니다.

한 사람의 자유인으로 안철수 원장을 지지하고 그를 돕는 일은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나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로 확정된 사람이 있는데 소속 의원이 안철수를 지지하고, 한마음으로 정당 대선 후보를 돕기보다 오히려 단일화 이전에 그를 위해 뛴다는 사실은 우리가 생각해봐야 합니다. (단일화 이후는 상관없겠지만, 두 사람의 단일화가 이루어지기 전에는 반드시 각자의 자리에서 그들의 몫을 해야 합니다)


가장 중요한 일은 민주당의 개혁입니다. 민주당은 정당정치의 구태의연함을 아직도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기에 친재벌,관료적인 부패 인물도 있습니다. 이런 인물들 과감히 버려야 합니다.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그들을 등용한다면 국민과 지지자,유권자 모두를 실망하게 할 것입니다.

문재인 후보가 민주당을 개혁하느냐 아니냐에 따라서 국민이 민주당을 바라보는 시선, 그리고 대선 지지까지도 많은 영향을 끼칠 수 있습니다. 민주당은 존중하되, 그 안에 있는 쓰레기는 싹 청소하고 국민에게 깨끗한 모습으로 변화된 민주당을 선보여야만 대선을 치를 수 있는 아주 기초적인 힘이 생깁니다.

' 모바일 민심이 전부가 아니다'

민주당 경선 과정 내내 모바일 투표에 참여한 민심은 당심이 아니라는 말들이 많았습니다. 분명히 민주당 모바일 경선에 참여한 선거인단은 당심과 민심이 합친 거대한 힘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점을 인식해야 합니다.

12월 대선은 온 국민이 참여하는 선거입니다. 그 안에는 노년층도 있을 것이고, 주부, 보수 세력,중도 세력 등 다양한 계층이 있습니다. 57만 표의 모바일 민심이 (문재인 후보는 336,717표) 대한민국 대선을 이길 수 있는 전부는 아닙니다. 대선운동의 시작은 될 수 있으나 부족합니다. 나중에 대선 전에 유권자 분석을 통해 다시 한번 언급하겠지만, 민주당 모바일 민심만을 믿으면 낭패를 볼 수 있습니다.

 

 

 


젊은 유권자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중도세력과 보수 이탈 세력을 끄집어낼 수 있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지난 17대 선거에서 50-60대의 투표율은 76%를 넘었습니다. 50-60대가 투표율이 높았기 때문에 이들을 무조건 공략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실제로 선거인의 연령대를 보면 50-60대는 33.7%이고, 20-40대는 64.6%입니다. 그러나 이번 선거는 초박빙의 승부가 될 수 있기 때문에 단순히 20-40대만 끌고 간다는 전략을 펼치면 안 된다는 의미입니다.

대선은 종이투표를 사용하는 선거입니다. 모바일과 참여 방식이 다르므로 모바일에 참여했던 젊은 세대만을 믿고 가기에는 부족합니다. 이 부족함을 채우고 넘어가야 12월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조중동과 같은 야만의 언론, 어떻게 이길 것인가?'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에 참여했던 공범자로 저는 언론을 제일 손꼽습니다. 그들이 만든 언론공작에 노무현 대통령이 돌아가셨다고도 저는 봅니다. (그래서 안타까운 것이 만약 SNS가 있었다면 과연 노무현 대통령이 가슴 아픈 결심을 했겠느냐는 생각도 합니다.)

참여정부 내내 조중동을 비롯한 언론은 노무현 대통령의 말을 왜곡했고, 그를 공격했으며, 그를 아예 범죄자로 처음부터 만들어 놓고 뒤에서 사악함을 드러냈습니다. 이런 사례가 있었기에 이번 대선은 처음부터 새누리당에 대한 네거티브 공세를 막는 전담팀 이전에, 언론 네거티브 공세를 이길 수 있는 태스크포스팀이 빨리 만들어져야 합니다.

어제 민주당 대선 후보로 선출됐는데 벌써 너무 빠른 걱정이 아니냐고 생각하십니까?

 

 

▲ 민주당 경선 다음날인 오늘 9월 17일 조선일보 기사.

 


오늘 아침 조선일보 기사입니다. 신문 1면 전체를 (하얀색 부분은 광고) 문재인 후보 검증으로 도배됐습니다. 문구가 아주 교묘합니다. '노정권때 매출 3배로 뛴','문재인 아들','불법건축물'등의 문구를 통해 철저하게 도덕성 잣대를 무차별적으로 들이대고 있습니다. 이런 조선일보의 기사를 접한 일부 시민들은 문재인 후보도 마치 기성 정치인과 똑같은 부패한 정치인으로 인식할 수 있습니다.

왜 조중동과 같은 야만의 언론이 무서운지 아십니까? 바로 공격의 칼날을 들이댈 때는1%의 팩트에 99%의 거짓말을 더해 거짓을 100% 진실처럼 둔갑시키는 언론조작 정치의 특수전과자들이기 때문입니다. 문재인 후보가 이런 언론들과의 싸움에서 어떻게 이기느냐에 따라 대선에서의 승패가 갈릴 수도 있습니다.

 

 

 


안철수와의 단일화를 문재인이 넘어야 할 벽으로 생각하십니까? 필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문재인과 안철수, 이 두 사람의 싸움을 부추기는 존재는 바로 새누리당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두 사람은 넘어야 할 벽이 아니라, 함께 손을 잡을 존재라고 믿습니다. 아니 그렇게 되도록 우리가 도와줘야 합니다.

분명 안철수와의 단일화는 필요합니다. 그러나 단일화가 이루어지는 시기까지 이 두 사람은 자신들만의 정책과 비전을 각자의 자리에서 국민에게 보여주고 국민의 선택만을 기다리면 됩니다. 그 안에는 싸움도 네거티브 논쟁도 모두 필요가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두 사람의 정책 토론과 같은 TV 프로그램 동반 출연은 어떨까도 생각해봅니다.

자꾸 새누리당이 만든 프레임에 속으면 안 됩니다. 어떻게 하든 자신들에게 유리하도록 이 두 사람이 서로 싸우고 결선에 올라오기를 기다리는 간교함을 깨뜨려야 합니다. 단일화 과정이나 방법은 남아 있지만, 이 두 사람이 올바른 결정을 할 수 있도록, 각 캠프 관계자들이 기득권을 내세우지 못하도록 철저히 막기만 하면 됩니다.
 

 

 

 


문재인 후보가 정치 보복을 하지 않겠다고 말했는데, 개인적인 정치보복은 하지 않아도 정권 심판은 반드시 해야 합니다. 올바른 사법부를 만들어 제대로된 법을 가지고 법을 어겼던 범죄자들을 모두 엄벌에 처하는 단호함도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문재인 후보는 노무현이라는 이름을 벗을 수가 있습니다. 친노라는 딱지도 뗄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그가 경선 과정에서 혹독한 시련을 통해 한 사람의 정치인으로 우뚝 섰고, 국민의 인정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노무현 대통령이 보여줬던 정치개혁이 이제 문재인이라는 인물을 통해 완성되리라 봅니다.

문재인이 노무현의 그늘 아래서 대선후보가 되었다고 폄훼하는 분들, 그는 비록 노무현의 그늘 아래서 출발을 했을지는 모르나, 지금의 문재인은 국민의 그늘 아래서 대선후보가 되었고, 국민에게 그늘을 드리워 주는 큰 나무가 될 것이다. <레인메이커 ‏@mettayoon>

그에게는 넘어야 할 벽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러나 이런 벽을 혼자서 넘을 수는 없습니다. 지도자는 혼자 가는 것이 아니라 국민과 함께 손을 잡고 벽을 넘어, 같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가야 합니다. 그가 이제 국민에게 손을 내밀었습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 손을 잡고 벽을 넘기를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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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자 오슬로국립대 교수 인터뷰

박노자 오슬로국립대 교수 인터뷰

조회수 618추천수 02012.09.15 12:22:45

카페에서 인터뷰를 시작하기 전 서울 중구 순화동 염천교 사거리에서 자세를 취한 박노자 교수. 그는 어떠한 사적인 질문도 공적인 답변으로 전환하는 놀라운 능력을 지닌 사람이었다. 강재훈 선임기자khan@hani.co.kr

[토요판] 김두식의 고백
박노자 오슬로국립대 교수

9월 초 국제 심포지엄에 참석하려고 잠시 귀국한 박노자 교수와 어렵게 약속을 잡고, 그의 글에 단편적으로 등장하는 이야기들을 모아 질문지를 준비했지만, 그의 입으로 개인사를 듣는 일은 쉽지 않았습니다. 소문대로 그는 어떤 사적인 질문도 공적인 답변으로 전환하는 놀라운 능력을 지닌 사람이었습니다. 포그롬(유대인 박해)으로 고생한 집안 어른들의 고통스런 삶을 물으면 20세기 초반 유대계 사회주의자들의 역사와 분파에 대한 강의가 이어지는 식이었습니다. “지식인이 공공이익과 상관없이 개인 이야기를 늘어놓는 것은 몸을 파는 어릿광대짓”이라는 게 그의 신념이었습니다. 그래도 대화는 유쾌하고 유익했습니다. 높은 톤의 목소리에 실린 놀랍도록 풍부한 그의 지식 때문이었습니다. 미리 준비한 가벼운 질문들은 아예 써먹을 틈이 없었습니다. 메뉴판의 ‘아메리카노’를 보자마자, 유시민씨에 대한 생각이 줄줄 흘러나왔습니다.

 

“유시민씨를 좋아하지 않아요. 사람이 해서는 안 되는 타협이 있거든요. 어쩔 수 없는 창씨개명까지는 봐줄 수 있지만, 학병 나가라는 강연은 용서할 수 없잖아요. 유시민은 이라크 파병 연장에 찬성함으로써 반민중적 폭력과 연관되어 인간이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했죠.”

 

정규직 되려 노르웨이 갔어요
러시아·한국 시간강사들은
아직도 생계가 어려운데
혼자만 잘사는 게 미안하죠

 

동료들은 4시면 퇴근해요
밤늦게까지 일하는 저에게
동료들은 묻곤 했어요“언제 이혼하냐,
왜 근로기준법을 어기냐”

 

유시민과 공지영을 보는 시각
-박노자가 좌파라면 유시민은 리버럴일 텐데, 좌파와 리버럴의 본질적인 차이는 뭔가요?

 

“좌파는 원칙상 자본주의를 수용할 수 없습니다. 자본주의보다 더 나은 체제를 지향합니다. 리버럴은 자본주의를 받아들이죠.”

 

-공지영 선생처럼 노동자의 고통에 공감하고 도우려는 분들이 있잖아요. 그런 분들까지 차가운 눈으로 바라봐야 하나요?

 

“공지영 작가는 사회운동에 긍정적으로 기여하는 부분이 있고 이는 당연히 높이 평가해야 합니다. 문제는 인권, 민주주의 등을 내세워서 자본주의의 본질을 은폐하는 혹세무민의 논리입니다. 리버럴들은 관용, 다양성, 참여정치, 다문화사회 같은 말을 즐겨 씁니다. 다 좋은 말인데 그 안에는 ‘재벌들의 생산수단 사유에 대해서는 건드리지 말라, 사회의 근본적인 문제도 건드리지 말라’는 생각이 담겨 있어요. 본질을 흐리는 리버럴들의 프로파간다죠. 그런 의미의 혹세무민입니다. 케케묵은 새누리당보다 호소력 있는 리버럴이 더 위험한 거죠.”

 

-노무현 정부에 대해서도 늘 비판적이었죠?

 

“노동자 입장에서 보면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가 다를 게 없으니까요. 노 대통령은 노동자에 대한 악질적 탄압, 파병 범죄, 에프티에이(FTA), 평택미군기지 등 많은 문제가 있었죠. 강경진압을 용인하여 두 명의 농민을 죽게 한 건 일종의 간접살인이었습니다.”

 

-그런 생각을 가진 박노자에게 이번 대선은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그게 제일 두려운 질문인데요. 이번 대선에 민중 후보가 나타나서 얼마나 선전할 것인지가 저의 관심입니다. 마르크스가 ‘마구간과 같은 부르주아 국회를 우리 연단으로 사용하자’고 말한 것처럼 이 선거에서 말할 기회를 잡는 게 중요합니다. 그 연단에서 ‘재벌 기업이 노동자와 사회의 소유가 되어야 한다, 주주들의 사유권을 몰수해야 한다, 징병제를 모병제로 바꾸어야 한다, 남북 공존을 위해서 군대를 줄여야 한다, 자영업자나 알바들을 보호할 파격적인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대놓고 얘기해야죠.”

 

-자칫 보수의 집권 연장을 돕는 결과를 낳지는 않을까요?

 

“박근혜의 세계관이 극도로 국가주의적이라서 좌파 지식인을 탄압하는 공안 광풍이 걱정되기는 합니다. 박근혜가 되면 안 되죠. 그러나 노동자는 노동자 후보를 지지해야 합니다. 차악보다는 선이 먼저니까요.”

 

-오슬로대학의 교수생활은 어떻습니까? 연구업적에 쫓기는 삶인가요?

 

“노르웨이는 위대한 초일류국가 대한민국만큼 선진화가 안 됐잖아요.(웃음) 동료들은 4시면 퇴근해요. 밤늦게까지 일하는 저에게 동료들은 두 가지를 묻곤 했어요. 언제 이혼하냐, 왜 근로기준법을 어기냐?(웃음) 누가 시킨다고 사랑하지 못하는 것처럼, 연구도 직업적인 관심을 가지고 자기가 좋아서 해야죠. 국가나 학교가 시켜서 억지로 하는 연구는 성매매와 같습니다. 한국에서는 미국의 권위있는 잡지에 논문이 실리면 몇천만원씩 주기도 한다면서요? 정신분열입니다. 자기 영혼을 그렇게 파는 교수는 성매매보다 백배 천배는 나쁜 짓을 하는 거죠.”

 

1973년 소련 레닌그라드(지금의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변전기 설계사인 아버지와 미생물학 교수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박노자는 상트페테르부르크대 극동사학과를 졸업하고 1996년 모스크바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그의 친가는 제정러시아 시절 박해와 학살을 온몸으로 경험하고, 혁명 이후에야 비로소 이주와 고등교육의 기회를 얻어 1930년대 레닌그라드에 정착한 유대인 집안입니다. 우크라이나계로 일찍이 볼셰비키 지지자가 되었던 친러시아사회민주노동당(RSDRP) 성향의 외가는 1905년 학살 때 목숨을 걸고 유대인들을 숨겨주기도 했습니다. 민족을 타파하자는 소련 초기의 국제주의에 충실했던 외할아버지는 유대계 외할머니와 결혼해 어머니를 낳았습니다. 모계를 중시하는 유대 전통에 따르자면 어머니도 유대인 아니냐고 묻자, 그는 “반 정도는 그렇죠. 근데 그게 무슨 상관입니까?”라고 반문했습니다. 국제주의자다운 태도였습니다. 어린 시절 유대인으로 놀림받은 경험을 물었습니다. 사적인 질문이었지만 답변은 역시 공적인 내용으로 바뀌었습니다.

 

“소수자들이 어디서나 겪는 일이죠. 민중 속에 널리 퍼진 반유대주의 편견을 사회주의도 완전히 씻어내지는 못했어요. 그래도 공식적 이데올로기는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였기 때문에 직접적인 폭력에 많이는 노출되지 않았습니다. 공산주의 사회는 폭력에 민감해요. 조화 속에서 동지애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집단 안에서는 폭력이 일어나지 않도록 청년 공산당조직이 잘 통제했죠.”

 

 

샤란스키와 장준하의 비극, 비교가 됩니까
-비밀경찰의 통제 아래 폭력이 일상화된 사회 아니었나요?

 

“1930년대 스탈린의 숙청 때는 그랬죠. 제가 자랄 때는 전혀 아니죠. 저희 동네 경찰은 무기도 안 가지고 다녔어요. 경찰이 무기를 들고 다닌 것은 망국(그는 소련의 해체를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이후입니다. 고르바초프 집권 초기에 민주주의를 하겠다고 양심수를 석방했는데 그 수가 200명이었어요. 양심적 병역거부자, 불법출국을 시도한 사람들, 과격 민족주의자를 모두 합쳐도 그 정도였죠.”

 

-이스라엘로 이주해 장관까지 지낸 나탄 샤란스키 같은 사람의 자서전을 보면 소련을 상당히 끔찍한 사회로 묘사하던데요? 사하로프 박사의 경우도 그렇고요.

 

“사하로프가 받은 끔찍한 탄압이라고 해봐야 거주지 이전 명령으로 모스크바를 떠나 6년을 지낸 건데, 도시 안에서 돌아다니는 건 자유로웠어요. 과격한 유대민족주의자였던 샤란스키는 13년 형을 받았지만 고문당한 적은 없어요. 장준하나 김남주가 당한 의문사, 고문, 탄압을 생각해 보세요. 비교가 됩니까? 적어도 말기의 소련은 남한의 파쇼정권처럼 고문과 살인으로 지식인 집단을 다스리지는 않았어요.”

 

-90년대 초반 러시아의 엄청난 경제난 속에서 한-러 통번역, 여행 가이드 등 다양한 일을 했다고 들었습니다.

 

“러시아 보따리장수들을 데리고 하도 많이 다녀서 남대문은 눈 감고 돌아다닐 수도 있어요.(웃음) 명예 박사학위를 받으러 러시아에 온 수많은 총장·교수들의 통역도 맡았죠. 썩어빠진 어느 지방 사학재단 총장이 학술논문 하나 없이 석사논문만을 근거로 명예 박사학위를 받는 것도 봤어요. 저보다는 고려인 통역들이 고생을 많이 했죠. 여자 구해 달라고 하고, 반말하고, 성추행하고, 개돼지 대접을 했거든요. 백인에게는 조심하면서도, 못사는 동족에게는 극단적인 멸시와 차별을 하는 ‘지엔피(GNP) 인종주의’였어요. 고려인 후배 중에는 ‘관광객 안내를 계속하다가는 한국 문화까지 싫어져서 한국학을 그만두게 될 것 같다’고 가이드 노릇을 중단한 친구도 있었죠. 망국 이후의 러시아는 정상적인 사회 작동을 멈춘 상태였고요.”

 

-망국의 아픔을 실감하셨군요?

 

“공산정권이 통제를 하기는 했지만, 지식인들 먹여 살리고 지식 인프라를 늘리고 인문학 발전을 위한 기반은 만들었어요. 망국 이후 제일 먼저 무너진 게 도서관이에요. 망국 이전에는 대학 도서관만 가면 언제든지 <뉴욕 타임스>, <워싱턴 타임스>, 외국 과학잡지를 볼 수 있었거든요. 그런 걸 읽지 않으면 서방에 뒤진다고 생각했으니까요. 망국 이후의 새로운 자본주의 정권은 과학과 인문학에 아무 관심이 없었고, 수많은 과학, 인문학 노동자들이 굶어죽었습니다. 그걸 방치한 정권은 살인자들이었죠.”

 

-그 시기에 러시아로 유학 온 아내를 만났죠? 양가의 결혼 반대는 없었나요?

 

“옐친의 자유화로 물가가 백배쯤 뛰어버려 장학금으로는 빵 몇 조각도 못 사던 시절이에요. 그때 몇 년은 알바 한 기억밖에 없어요. 음악원에서 통역을 했는데 남한 유학생들이 소련인들을 많이 멸시했죠. 개인 레슨을 받으면서도 ‘저 교수에게는 10불 이상 주지 마라. 버릇 나빠진다’고 가난한 사람을 타자화하고 차별했어요. 아내는 소련 사람을 덜 멸시했죠. 망국 이후 아버지는 실직하고 어머니는 연금생활자였기 때문에 우리 집은 결혼을 반대할 여력도 없었어요. 굶어죽는 게 걱정이었으니까.(웃음) 아내 쪽은 처음에 좀 반대하다가 나중에는 따뜻하게 맞아주셨어요.”

 

97년부터 3년간 경희대에서 비정규직 교수로 러시아어를 가르친 박노자는 주말이면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한국사를 강의했습니다. 일요일을 같이 보내지 않는다고 아내의 불만이 많았지만, 인도·네팔에서 온 노동자들과 신라 불국토 사상을 함께 토론할 수 있었던 “너무 재미있는” 자원봉사였습니다. 99년에는 로버트 할리, 이한우와 함께 <한겨레>에 ‘서울 돋보기’라는 제목으로 글쓰기를 시작했습니다. 다른 필자들이 한국의 음식과 문화를 다룬 가벼운 글을 주로 쓴 데 반해, 박노자는 처음부터 박정희 독재, 베트남 파병, 양심적 병역거부 등의 무거운 주제를 들고나왔습니다. 논객 박노자의 화려한 등장이었습니다.

 

“한국이 특별히 나쁘다는 얘기를 하려던 게 아니라, 인간의 정상적인 삶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자본주의의 문제를 지적하고 싶었어요. 제가 소련에서 군사교육 시간에 불교경전을 읽다가 쫓겨난 적이 있어요. 당장 군대로 끌려가지는 않고 박사학위를 받으면서 병역면제를 받았죠. 베트남 파병 글을 쓸 때는 어머니 친구 생각을 했어요. 어머니와 매우 친했던 베트남 유학생이 나중에 호찌민시 대형병원의 원장이 됐는데 80년대까지 소식을 주고받았거든요. 그분이 보내준 노역된 베트남 고전을 읽으면서 자라났기 때문에 베트남 사람을 형제처럼 생각했죠. 양심적 병역거부도, 베트남도, 남의 문제가 아니었어요.”

 

-비판적 글을 쓰면서 어려움은 없었나요?

 

“월드컵을 지배층의 속임수라고 <오마이뉴스>에서 비판했을 때는 댓글의 절반쯤이 죽이겠다는 얘기였어요. 한국에서는 밥 먹듯이 하는 말이잖아요.(웃음) 언어폭력이나 잘리는 건 두렵지 않아요. 고문이나 테러 같은 물리적 폭력은 두렵죠.”

 

(※클릭하면 이미지가 확대됩니다.)

 

제 얘기가 그렇게 근본주의로 들리나요?
-2000년 노르웨이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보다 정규직이 되고 싶었어요. 국민의료보험과 연금이 있는, 소련과 비슷한 사민주의 사회에서 살고 싶기도 했죠.”

 

-2001년 출간한 <당신들의 대한민국>의 억대 인세를 ‘아시아의 친구’라는 단체에 기부했다고 들었습니다.

 

“인세가 얼마나 되는지는 잘 몰라요. 노르웨이에서 받는 월급이 있고, 정규직이니까 먹고사는 데 지장 없잖아요. 이민자 차별에 저항하는 단체와 연대하고 싶었고요. 저작권은 원칙적으로 없어졌으면 좋겠어요.”

 

-큰돈을 기부하고 가족들에게 미안하지는 않나요?

 

“아내에게 많이 미안하죠. 그래도 요즘 집안 노동을 많이 해서 죄악을 씻고 있어요.(웃음) 첫째가 2002년생, 둘째가 2011년생인데, 비정규직일 때는 아이 낳을 생각을 못했어요. 언제 쫓겨날지 모르니까요. 비혼과 무자녀가 비정규직의 유일한 무기잖아요. 비정규직 탈출하려면 전력을 다해야 하는데 아기가 있으면 불가능하죠. 비정규직 양산이 인간의 자연스러움을 차단하고 인구 재생산을 막는 겁니다. 둘째가 태어나면서는 제가 육아노동을 열심히 합니다. 그 전에는 아내가 오랫동안 혼자 고생했죠. 저도 죄인이라 말하기 뭣하지만, 지식인이 지을 수 있는 가장 큰 죄악이 집안일을 안 하고 공부만 하는 거예요.(웃음)”

 

-한국과 노르웨이를 오가며 많은 글을 쓰고 있는데 그 힘의 원천은 무엇입니까?

 

“미안함이죠. 제가 망국 후 러시아를 떠나지 않았습니까? 러시아에 남은 동료와 후배들은 시간강사 해도 생계가 되지 않아서 엄청난 고생을 해요. 한국에서 비정규직 생활을 같이 한 분들도 마찬가지고요. 혼자 잘사는 게 미안하죠.”

 

-한국으로 돌아올 계획은?

 

“애들 때문에 쉽지 않아요. 노르웨이에서 자란 첫째 아이에게는 한국의 불평등과 인권침해가 매 순간 충격이거든요. 아이는 저에게 한국에서의 활동을 접으라고도 해요. ‘한국 사회의 일상적 보수성을 보면 사회주의로 가기가 불가능하다, 시간 낭비하지 말고 노르웨이의 적색당 활동이나 열심히 하라’고 하죠.”

 

-반대편의 이야기도 들을 기회가 있나요?

 

“한국 올 때마다 택시운전사들과 이야기해요. 일부는 보수적인 분들인데, 제가 한국말을 한다고 신기해하시면 ‘진보신당을 어떻게 생각하냐?’고 살짝살짝 물어보죠. 대부분 당 이름도 몰라요.(웃음) 그래도 노동하는 분들과 얘기하면 늘 좋죠.”

 

인터뷰를 마치며 박 교수는 걱정스런 얼굴로 “제 얘기가 그렇게 근본주의로 들리나요?”라고 물었습니다. 진보신당 사람들은 늘 올바른 이야기를 하지만, 가끔은 현실과 담 쌓고 까대기에만 능숙한 지식인들로 보일 때도 있습니다. 좋아하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인 당인데도 제가 선뜻 표를 주지 못하는 이유입니다. 저의 그런 우려에 박 교수는 “지식인의 삶의 유일한 기준은 죽음에 임박해 자기 인생을 돌아보았을 때 부끄럽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라며 “30년대 말의 조선 지식인들을 생각해 보라”고 했습니다. 뜨끔했습니다. 근본주의적이든 아니든, 사회주의 국가에서 소수자로 태어나 평생 약자에 대한 따뜻한 감수성과 냉철한 이성을 벼려온 박노자의 존재는 ‘지엔피 인종주의’에 빠져 외국인과 소수자 차별이 일상화된 우리 사회의 건강성을 점검하는 리트머스 시험지입니다. 그의 아들 율희에게는 미안하지만, 그가 더 오랜 시간 우리 곁에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생긴 인터뷰였습니다.

 

녹취·진행 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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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북한에 특사 보내 취임식에 초청할 것"

 

문재인 "북한에 특사 보내 취임식에 초청할 것"
대선후보 수락연설서 '평화와 공존의 문' 제시 <전문>
 
 
2012년 09월 16일 (일) 17:35:17 김치관 기자 ckkim@tongilnews.com
 

 

   
▲ 민주통합당 문재인 제18대 대통령 후보. [사진출처-민주통합당]
민주통합당 대통령 후보로 선출된 문재인 후보는 16일 수락연설문을 통해 “대통령에 당선되면 북한에 특사를 보내 취임식에 초청할 것”이라고 밝혔다.

2003년 노무현 대통령 취임식 당시에도 북한 고위층 사절단을 초청해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의 방한설이 흘러나왔지만 실현되지 못한 바 있어 문 후보의 이같은 구상이 실현될지 주목된다.

문재인 후보는 이날 오후 1시부터 고양체육관에서 개최된 서울지역 순회투표에서 158,271표(60.61%)를 얻어 누적득표율 56.52%로 과반을 넘겨 결선투표 없이 대통령 후보로 최종 확정됐다.

문 후보는 수락연설에 나서 “새로운 시대로 가는 다섯 개의 문이 우리 앞에 있다”며 △일자리 혁명의 문 △복지국가의 문 △경제민주화의 문 △새로운 정치의 문 △평화와 공존의 문을 제시했다.

특히 “변화의 새 시대로 가는 다섯 번째 문은 평화와 공존의 문”이라며 “분단 극복은 우리 민족의 과제이다. 저 문재인이 그 문을 열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문 후보는 먼저 “지난 5년, 한반도는 대결과 긴장의 연속이었다”며 “6.15, 10.4 선언의 정신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남북경제연합을 통해 경제 분야에서부터 통일을 향해 나아가겠다”며 “남북경제연합은 우리 대한민국을 ‘30-80시대’로 이끌 것”이라고 말했다. ‘30-80’은 소득 3만 달러와 인구 8천만 이상을 의미하며 미국, 독일, 일본이 여기에 속한다.

또한 “저는 대통령에 당선되면 북한에 특사를 보내 취임식에 초청할 것”이라고 밝히고 “임기 첫 해에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하겠다”고 재확인했다. 나아가 “대통령 선거 전이라도 북한과의 관계개선을 위해 이명박 정부의 요청이 있다면 우리당과 함께 적극 협력할 것”이라고 적극적 입장을 밝혔다.

문 후보는 대외정책으로 “남북대화와 6자회담을 복원할 것이다. 북핵문제 해결과 남북관계 발전을 함께 추진하겠다”며 “미국과는 동맹관계를 공고하게 하는 가운데 주변 국가들에 대해서도 균형외교를 펼치겠다”고 약속했다.

이 외에도 문 후보는 경제민주화와 관련, 재벌의 특권과 횡포를 용납하지 않고 골목상권을 보호하겠다고 약속했으며, 정치개혁과 관련 책임총리제를 통해 ‘제왕적 대통령’의 권력을 분산하고 정당책임정치를 구현하겠다고 공약했다.

문 후보는 당면한 대선에 대해서는 “더 널리, 새로운 인재들이 함께하는 열린 선거대책위원회를 구성하겠다”며 “그 힘으로 우리 민주통합당이 중심이 된 정권교체의 길로 나아가겠다”고 다짐하고 “정권교체, 정치교체, 시대교체, 반드시 해내겠다. 사람이 먼저인 세상을 꼭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이날 서울지역 순회투표에서는 손학규 54,295표(20.79%), 김두관 30,261표(11.59%), 정세균 18,322(7.02%)를 득표했으며, 누적 득표율은 문재인(56.52%)-손학규(22.17%)-김두관(14.30%)-정세균(7.00%) 순으로 집계됐다.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 수락 연설문>
변화의 새 시대로 가는 문을 열겠습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당원 동지 여러분. 감사합니다.

여러분은 대한민국의 변화를 선택하셨습니다.
정권교체를 선택하셨습니다.
민주통합당의 승리를 선택하셨습니다.

그리고 저 문재인을 선택하셨습니다.
여러분의 간절한 소망을 이루어내는 주역이 되라는 막중한 책임을 맡기셨습니다.

저는 두렵지만 무거운 소명의식으로 민주통합당의 대통령 후보직을 수락합니다.
그리고 저에게 부여된 막중한 책임을 반드시 이루어낼 것임을 약속드립니다.

여러분의 지지와 성원에 보답하겠습니다. 12월 대통령선거에서 반드시 승리하겠습니다.

1년 전만 해도 저는 현실정치로부터 멀리 있었습니다.
그런 제가 민주통합당의 대통령후보가 되었습니다.
많은 분들의 도움이 있었습니다.

먼저, 수평적 정권교체를 이뤄내고 국민참여시대를 열었던
김대중, 노무현 두 분 대통령이 계십니다.
저의 오늘은 두 분의 역사 위에 서있습니다.

변화를 갈망하는 국민들이 계셨습니다. 저에게 큰 용기가 되었습니다.
변화에 대한 그분들의 간절함이 승리의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국민경선에 함께 한 100만 명의 시민들이 계십니다.
저에게 정권교체에 나서도록 힘을 모아주셨습니다.
무엇보다 당원 동지들의 격려가 있었습니다.
경선기간 내내 저를 지탱해준 버팀목이었습니다.
저는 자랑스러운 민주통합당의 후보입니다.
그 사실을 언제나 잊지 않을 것입니다.

세 분 후보님이 끝까지 경선을 함께 했습니다. 위로의 인사와 함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경쟁이 저를 거듭나게 했습니다. 소명과 책무를 더욱 명확히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세 분 후보님과 손을 잡겠습니다. 민주통합당의 이름으로 하나가 되겠습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우리는 세계사적 전환기에 살고 있습니다. 수년 전 미국 발 금융위기가 있었습니다.
지금은 유럽이 재정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세계경제가 요동치고 있습니다.

나라마다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습니다.
시장만능주의와 성장지상주의가 빚어낸 결과입니다.
곳곳에서 보통사람들의 삶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세계 자본주의의 위기를 걱정하는 소리가 높습니다.

대한민국도 위기로부터 자유롭지 못합니다.
우리 경제는 개발독재와 정경유착으로 파행적인 압축 성장을 이루었습니다.
대외의존도가 높은 경제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안팎의 어려움에 직면해 있습니다.

성장만을 외치며 달려오는 동안 특권과 부패가 만연했습니다.
독선과 아집이 횡행했습니다. 갈등과 반목이 되풀이되었습니다.
이 구시대 문화가 우리의 전진을 가로막고 있습니다.

시대는 질서의 전환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경쟁과 효율’에서 ‘상생과 협력’으로의 전환입니다.

‘불통과 독선’의 리더십은 구시대의 유산입니다.
권위주의 시대의 역사의식으로는 새 시대를 열 수 없습니다.

‘협력과 상생’이 오늘의 시대정신입니다. 저는 ‘소통과 화합’의 리더십을 발휘하겠습니다.
‘공감과 연대’의 리더십을 펼치겠습니다. 저 문재인이 변화의 새 시대를 열겠습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행복하십니까? 국가가 나를 위해 존재한다고 느끼십니까?
나의 어려움을 함께 걱정해주는 정부라고 생각하십니까?

보통사람들의 현실은 불안하고 아프기만 합니다.
힘겨운 직장생활에도 가계는 여전히 빚투성이입니다.

40대, 50대 가장들은 언제 일자리를 잃을지 몰라 불안합니다.
자영업자들은 이미 포화상태입니다.
청년들은 일자리를 구할 수 없습니다.
수명은 많이 늘어났는데, 노후 대책이 없습니다.
불공평 속의 빈곤과 사회안전망의 부족이 우리나라를 자살률 1위 국가로 만들었습니다.

청소년들은 끔찍한 성적 경쟁으로 인한 좌절과 절망 속에서, 스스로 삶을 포기하고 있습니다.

여성들은 어두운 밤길이 무섭습니다. 주부들은 자녀들의 등하굣길을 살펴야 합니다.
집에 있는 아이들의 안전도 걱정해야 합니다. 범죄가 만연하지만 치안은 무력합니다.

대통령 측근들의 비리는 끝이 없습니다.
기득권 정치, 정치 검찰, 재벌이 손을 잡고 있습니다.
이 특권 카르텔의 횡포가 극에 달하고 있습니다.

이명박 정부 5년이 시대를 과거로 돌려놓았습니다. 민주주의와 인권도 후퇴되었습니다.
국민들은 불안 속에서 절망하고, 좌절하고 있습니다.
우리 역사가 계속 후퇴할 것이냐, 다시 전진할 것이냐,
지금 우리는 그 기로에 서 있습니다.

우리가 바꿔야 합니다. 변화의 새시대로 가야 합니다.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역사의 물줄기를 다시 돌려놓아야 합니다.
저 문재인이 앞장서겠습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사람이 먼저입니다’
제가 대통령이 되면 이 말이 국정철학이 될 것입니다.
‘사람이 먼저인 세상’을 만들겠습니다.
모든 사람이 똑같이 존엄한 세상입니다. 돈과 지위의 차별이 없을 것입니다.
직업과 신분의 차별도 학력과 학벌의 차별도 없을 것입니다.

‘보통사람들이 함께 기회를 가지는 나라’
‘상식이 통하고, 권한과 책임이 비례하는 사회’
‘세금이 제대로 쓰이는 나라’
‘힘없는 사람에게 관대하고 힘 있는 사람에게 엄격한 잣대가 적용되는 사회’

출마 선언 때 시민들이 제게 주셨던 ‘공평’과 ‘정의’에 대한 요구들이었습니다.
제가 대통령이 되면, ‘공평’과 ‘정의’가 국정운영의 근본이 될 것입니다.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 이것을 국정운영의 원칙으로 바로 세우겠습니다.

특권과 반칙은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입니다.
특권층이나 힘 있는 사람들의 범죄는 더욱 엄중하게 처벌할 것입니다.

권력형 비리와 부패를 엄단하겠습니다.
재벌이 돈으로 정치와 행정을 매수하여 특권을 키우지 못하도록 특별히 경계하겠습니다.
병역의무를 회피한 사람이 고위공직에 오르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민간 분야도 반부패 대책을 세우겠습니다.
맑고 투명한 사회로 거듭나도록 하겠습니다.


존경하는 국민여러분!

새로운 시대로 가는 다섯 개의 문이 우리 앞에 있습니다.

그것은 일자리 혁명의 문입니다.
복지국가의 문입니다.
경제민주화의 문입니다.
새로운 정치의 문입니다.
그리고 평화와 공존의 문입니다.
우리는 이 다섯 개의 문을 열어야 합니다.
새로운 대한민국으로 가야합니다.

첫 번째는 일자리 혁명의 문입니다.
저 문재인이 그 문을 열겠습니다.
일자리가 민생이고, 성장이고, 복지입니다.
범정부적인 일자리 혁명을 추진하겠습니다.

대통령 직속으로 ‘국가일자리위원회’를 설치해서 직접 챙기겠습니다.
지방의 일자리 마련에도 각별한 노력을 기울이겠습니다.

특히 청년실업 문제를 해결하겠습니다.
어른들이 만들어놓은 세상의 문턱이 높아 아파하고 힘들어하는 청춘들에게 무한 책임을 느낍니다.
청년이 바로 국가의 미래입니다.
‘국가일자리위원회’ 안에 ‘청년일자리특별위원회’를 두어 특별히 청년실업 문제를 챙길 것입니다.
젊은이들이 더 이상 스펙에 매달릴 필요가 없는 사회를 만들겠습니다.

변화의 새 시대로 가는 두 번째 문은 복지국가의 문입니다.
저 문재인이 그 문을 열겠습니다.

복지는 투자입니다. 성장의 동력입니다.

민주정부 10년은 복지국가의 시작이었습니다.
복지재정이 크게 늘었습니다.
제도의 기본 틀도 갖춰졌습니다.
그러나 국민들의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많이 모자랐습니다.

이명박 정부 5년이 격차를 확대시켰습니다.
격차 해소가 국정의 최우선 목표가 될 것입니다.
소외되고 그늘진 곳이 없도록 살필 것입니다.
노인복지에도 관심을 쏟겠습니다.
고령화 사회, 고령사회에 대비하겠습니다.

복지국가를 위한 임기 중 계획은 물론 중장기계획도 세우겠습니다.
시혜적이고 선별적인 복지를 뛰어넘겠습니다.
보편적 복지가 계획의 핵심이 될 것입니다.
‘복지국가 대한민국’의 5년, 10년, 20년 계획을 세우겠습니다.

한 번의 실패가 낙오로 이어져서는 안됩니다. 재기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겠습니다.
저 문재인은 ‘힐링 대통령’이 될 것입니다. 국민의 고통과 아픔을 치유하겠습니다.

변화의 새 시대로 가는 세 번째 문은 경제민주화의 문입니다.
경제민주화는 시대적 명제입니다. 저 문재인이 그 문을 열겠습니다.

경제 분야부터 ‘공평’과 ‘정의’를 바로세우겠습니다.
승자독식의 ‘정글의 법칙’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상생과 협력’의 경제 생태계가 필요합니다. 이것이 약자를 배려하는 따뜻한 경제입니다.
포용적 성장, 창조적 성장, 협력적 성장, 생태적 성장을 통해 일자리 창출, 복지확대, 지속성장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겠습니다.

공정한 시장 질서를 만들겠습니다.
재벌 관련 제도를 확실히 정비하겠습니다.
재벌의 특권과 횡포는 용납되지 않을 것입니다.

재벌과 중소기업이 상생하는 길을 찾겠습니다.
골목상권을 보호하겠습니다.
사용자와 노동자의 ‘공존·공생’을 통해 일하는 사람들이 제대로 대접받게 하겠습니다.

변화의 새 시대로 가는 네 번째 문은 새로운 정치의 문입니다.
저 문재인이 그 문을 열겠습니다.

대통령이 되면 저는 대한민국을 진정한 민주공화국으로 만들겠습니다.
대통령이 권한 밖의 특권을 갖는 일은 결코 없을 것입니다.
오로지 헌법과 법률이 정한 권한만을 행사할 것입니다.
결코 초심을 잃지 않을 것입니다.

책임총리제를 통해 ‘제왕적 대통령’의 권력을 분산하겠습니다.
정당책임정치를 구현하겠습니다.
대통령은 당을 지배하지 않을 것입니다.
여당은 정책을 주도하게 될 것입니다.

직접 민주주의를 강화하겠습니다.
시민들의 소통과 참여를 적극적으로 보장하겠습니다.

국가균형발전정책으로 지방을 살리겠습니다.
본격적인 지방분권시대를 열겠습니다.
특정세력이나 지역에 편중되지 않은 균형인사를 하겠습니다.
품격 있는 정치를 하겠습니다. 편 가르기와 정치보복, 더 이상 없을 것입니다.

야당과도 외교·안보에 관한 정보를 공유할 것입니다.
이를 토대로 정책을 협의할 것입니다.
특히, 선거 때 공통으로 한 공약은 인수위 때부터 그 실행을 협의해 나가겠습니다.

변화의 새 시대로 가는 다섯 번째 문은 평화와 공존의 문입니다.
분단 극복은 우리 민족의 과제입니다.
저 문재인이 그 문을 열겠습니다.

지난 5년, 한반도는 대결과 긴장의 연속이었습니다.
민주정부 10년이 공 들여 쌓아온 남북 간의 신뢰가 모두 무너졌습니다.
평화는 실패했고 안보는 무능했습니다.

6.15, 10.4 선언의 정신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튼튼한 안보의 바탕 위에서 평화와 공존의 한반도를 실현해야 합니다.
국민들이 안심하고 살 수 있는 나라를 만들어야 합니다.

이제는 평화가 경제입니다.
남북경제연합을 통해 경제 분야에서부터 통일을 향해 나아가겠습니다.
우리에게는 새로운 성장 동력이 필요합니다.
북한은 한반도 경제를 넘어 대륙경제로 진출하는 기회의 땅이 될 것입니다.
남북경제연합은 우리 대한민국을 ‘30-80시대’로 이끌 것입니다.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와 인구 8천만의 한반도시장을 의미합니다.
우리 대한민국이 미국, 독일, 일본에 이어 네 번째 ‘30-80’ 국가가 될 것입니다.
북한도 함께 발전하는 공동번영의 시대가 열릴 것입니다.

저는 대통령에 당선되면 북한에 특사를 보내 취임식에 초청할 것입니다.
임기 첫 해에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하겠습니다.
대통령 선거 전이라도 북한과의 관계개선을 위해
이명박 정부의 요청이 있다면 우리당과 함께 적극 협력할 것입니다.

지금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정세에 경쟁과 갈등의 파고가 높습니다.
한·일 간에는 독도와 역사문제를 놓고 대립이 있습니다.
중·일 간에는 영토분쟁이 격화되고 있습니다.
중국은 G2 국가로 성장했고, 미국도 아시아로의 회귀를 선언했습니다.

이명박 정부는 변화하는 국제정세 속에서도 미일편중외교와 대외전략의 부재로 일관했습니다.
한국외교의 방향타를 잃었습니다.
저는 남북대화와 6자회담을 복원할 것입니다.
북핵문제 해결과 남북관계 발전을 함께 추진하겠습니다.
미국과는 동맹관계를 공고하게 하는 가운데 주변 국가들에 대해서도 균형외교를 펼치겠습니다.
동북아지역의 평화와 협력을 이끄는 평화선도국가의 역할을 당당하게 해 나가겠습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당원 동지 여러분.

우리는 이명박 정부에서 김대중, 노무현 두 분 대통령을 잃었습니다.
두 분 대통령의 서거는 이명박 정부의 국정파탄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일이었습니다.

저를 현실정치로 이끈 것은 국민들의 고통에 대한 책임감이었습니다.
참여정부가 더 잘해서 이명박 정부의 출범을 막아냈어야 했다는 뼈아픈 책임감이었습니다.

그 책임감이 저를 야권대통합운동으로 이끌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이 자리까지 오게 만들었습니다.

이제 저는 두 분 대통령의 헌신과 희생을 딛고 새로운 민주정부시대를 열겠습니다.

‘공평하고 정의로운 세상’, 그리고 ‘사람이 먼저인 세상’을 여는
새시대의 맏형이 될 것입니다.

저 문재인, 늘 국민과 소통하는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국민과 손잡고 동행하는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국민이 기대고 싶을 때 어깨를 내어주는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당원동지 여러분

지금 정치권 밖에서 희망을 찾는 국민들이 적지 않습니다.
이 또한 새로운 정치에 대한 열망의 표현입니다.
저와 우리 민주통합당이 반성해야 할 대목입니다.
그러나 좋은 기회이기도 합니다.
우리 당이 과감한 쇄신으로 변화를 이뤄낸다면 새로운 정치의 열망을 모두 아우를 수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정권교체의 대장정을 시작합니다.
승리로 가는 길목에서 꼭 필요한 것은 우리의 단결입니다.

오늘 이 시점부터 우리 민주통합당은 하나입니다.
더 널리, 새로운 인재들이 함께하는 열린 선거대책위원회를 구성하겠습니다.
당내 모든 계파와 시민사회까지 아우르는 ‘용광로 선대위’를 만들겠습니다.
그 힘으로 우리 민주통합당이 중심이 된 정권교체의 길로 나아가겠습니다.

우리 민주통합당과 함께 변화의 새 시대로 가는 문을 열어주십시오.
정권교체, 정치교체, 시대교체, 반드시 해내겠습니다.
사람이 먼저인 세상을 꼭 만들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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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의 ‘배은망덕’과 모순된 역사관

 

 
박근혜의 ‘배은망덕’과 모순된 역사관
 
[23년 전 박근혜 일기] 자기 아버지 억울한 것은 바로잡자고 외치면서
 
김욱 | 2012-09-15 11:09:30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 박근혜 수필집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났더라면> 표지

 

 

 

 

 

 

 

 

 

 

박근혜의 책 중에 자주 인용되는 책이 하나 있다. 1993년에 출간된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났더라면> 이라는 책으로, 박근혜의 80년대 말과 90년대 초의 일기를 모아 펴낸 수필집이다. 중반과 후반은 개인적인 감상이고 앞부분은 박정희 10주기 추도식을 준비하고 치르는 과정에서 부모에 대한 소회를 밝히는 내용인데 언론에서 주로 인용하는 부분은 바로 앞부분이다. 이 책에 실린 1989년 10월 27일자 일기를 보면 이런 내용이 나온다.

"어제 10주기 행사는 온화하고 청명한 날씨 속에 무사히 끝났음을 하늘에 감사드리는 마음이다. 묘소까지 가는 도중 마음의 울렁임을 참기 힘들었다. 10년만의 추도식이니 어찌 그렇지 않겠는가. 그러나 추모사에서 '아 아버지!' 하고 부르고 나서 감정이 폭발하면 자제키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차 안에서 어머니께 기도 드렸다. 감정을 억제하게 해주십사하고."

87년 이전까지 박근혜 남매는 아버지의 추도식을 할 수 없었다. 전두환 정권이 추도식을 못하게 막았기 때문이다. 이날 박근혜가 감정 폭발을 자제키 어려울 정도로 격한 감정에 휩싸였던 건 불가능하다 생각했던 10주기 추도식을 가질 수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박근혜는 같은 해 12월 30일 일기에서 1989년은 "수년 간 맺혔던 한을 풀었다고 표현해도 좋을 한 해"라고 말하며 감격에 겨워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박근혜가 그렇게 바랬던 추도식은 박정희가 탄압한 민주화 덕분에 가능했다. 박근혜는 책에서 추도식을 가질 수 있었던 데 대해 감사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 대상은 '민주화'가 아니었다. 89년 11월 19일 일기에서 박근혜는 "한을 풀었다고 할 수 있을 정도의 성과를 가져온 오늘이 있도록 해주신 하늘에 감사를 올리는 마음이다"라고 쓰고 있다. 박근혜에게 민주주의는 인간의 투쟁에 의해 쟁취된 게 아니라 하늘의 뜻으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썼다.

박근혜는 지난 9월10일 MBC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출연해서 '인혁당 피해자에게 사과할 생각이 있느냐?'는 사회자의 질문에 대해 "대법원 판결이 두 가지로 나"왔다며 "앞으로의 판단에 맡겨야 되지 않겠"냐고 답했다. 여기엔 인혁당 사건이 독재정권에 의한 '사법살인'이 아니라 유신정권 시절 사법부의 판결대로 피해자들에게 죄의 책임이 있을 수도 있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인혁당 피해자 8명은 대법원에서 사형선고가 내려지고 20시간만에 사형이 집행되었다. 심지어 피해자들의 시신은 강제로 화장되었는데 시신 부검으로 고문 사실이 알려질 것을 우려한 조치가 아니고선 설명될 수 없는 것이다. 국제법학자협회는 인혁당 피해자들이 사형된 날을 세계 사법사상 암흑의 날로 선포하기까지했다. 인혁당 사건은 32년 뒤인 2007년 대법원 재심에서 무죄선고를 받았다.

인혁당 희생자들은 민주화의 뿌리와 같은 사람들이다. 그들의 투쟁이 부마항쟁과 광주항쟁 그리고 6.10 항쟁까지 이어졌고 그리하여 오늘의 민주화를 이루었다. 박근혜가 인혁당 피해자들을 모욕한 것은 민주화의 뿌리를 모욕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리 원하던 아버지의 추도식을 가능하게 해줬던 '민주화의 뿌리'에 대해 박근혜는 배은망덕한 짓을 한 것이다. 인혁당 피해자들은 그 아버지에게 죽임을 당하고도 그 딸에게 은혜를 베풀었건만 또 다시 모욕을 받았다.
 

▲ 박정희 대통령 10주기 추도식 관련 기사(동아일보, 1989.10.26)

▲ 1989년에 열린 박정희 대통령 10주기 추도식에 참석한 인파

박근혜의 10월 25일과 11월 9일 일기를 보면 역사에 대한 내용이 나온다. 이때 그의 역사관은 우리와 비슷하다. 다만 다른 것은 그의 아버지 부분이다.

"아! 10주기! 이날을 잘 맞기 위해 나는 지난 1년 여 뛴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러한 노력이 없었을 때 과연 아버지는, 역사는 어찌 되었을 것인가. 다만 아찔한 생각이 들 뿐이다." (10월 25일)

"아버지에 대한 그 시절 역사에 대한 왜곡이 85% 정도 벗겨졌다고들 말한다... 역사가 바로 잡혀야 사회질서가 바로 잡히게 되는 이치를 생각해볼 때 하늘이 우리나라를 버리시지 않았다는 뜻도 되는 것이다." (12월 30일)

바로잡혀야 할 역사가 자신의 아버지 부분이라고 한 건 문제 삼지 않겠다. 우리가 궁금한 건 박근혜가 왜 이 때의 역사관과 지금의 역사관이 달라졌나 하는 것이다. 박근혜는 '박정희 독재'의 과오에 대한 질문에 대해 항상 "역사의 판단에 맡기자"고 답했다.

그런데 23년 전 박근혜는 아버지의 일을 역사에 맡기지 않고 바로잡기 위해 열심히 뛰어다녔다. 왜 박근혜는 자신의 아버지는 바로 잡겠다고 하면서 남의 아버지는 역사의 판단에 맡기자고 할까. 다같이 역사의 판단에 맡기던가 아니면 다같이 바로잡던가 해야할 거 아닌가?

박근혜는 89년 12월 30일자 일기에서 80년대를 두고 "마음의 고통과 아픔이 얼마나 크고 깊은지 두번 다시 돌아다 보기도 싫은 소름 끼치는 연대"라고 쓰고 있다. 80년대 박근혜에게 아픈 상처를 준 건 전두환 정권일 것이다.

그리고 이 아픔을 끝낸 건 바로 민주주의다. 지금 5.16은 구국의 혁명이라고 하고 유신정권은 불가피했다고 하는 박근혜는 민주주의와 싸우고 있다. 만약 박근혜 후보가 이번 대선에서 이긴다면 우리의 2010년대는 소름끼치는 연대가 될지도 모른다. 이제라도 박근혜 후보가 생각을 바꾸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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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신화의 바다 헤험친 박경숙 박사

인도 신화의 바다 헤험친 박경숙 박사

조회수 548추천수 02012.09.15 12:26:50

 

 

집 벽에 그린 아그니 신 앞에 선 <마하바라타> 번역자 박경숙씨. “구전문학인 <마하바라타>는 텍스트가 일관성이 없어, 맥락을 설명하는 주해를 상세히 달고, 매끄럽게 번역문을 다듬는 것이 어려웠다”고 했다.

 

<마하바라따 1~5>
박경숙 옮김/새물결·각 권 2만2000~2만7000원

 

“이거 고교생 큰딸 두레가 아궁이 벽에 그린 겁니다. 솜씨가 어때요?”

 

지리산 기슭의 농가 집 벽에 그려진 불의 신 ‘아그니’ 앞에서 그는 털털한 웃음을 터뜨렸다. 지리산에 온 지 5년째라는 인도 고전 문헌 연구자 박경숙(49)씨는 수더분한 시골 아줌마 같았다. 옆을 따라다니는 작은딸 두메(15·중3)와는 인도 고전 구절들을 소재로 삼아 줄곧 농담을 주고받는다.

 

전북 남원시 산내면 장항리. 박씨의 집은 실상사 들머리에 자리잡은 ‘노루목’ 마을에 있다. 멀리 천왕봉과 반야봉, 뱀사골 계곡이 아스라이 보이는 거처에서 나물 캐고 고추 농사를 짓는 그는 최근 국내 학계를 놀라게 하는 성과물을 내놓았다. 세계 최고 최대의 전쟁 서사시로 꼽히는 고대 인도의 고전명작 <마하바라타>를 세계 3번째로 완역하고 전체 20권 분량 가운데 1차분 5권을 <마하바라따 1~5>라는 제목으로 내놓은 것이다.

 

고대 인도 바라타 왕족 사촌 형제들 무리인 ‘판다와’와 ‘카우라와’ 사이의 피비린내 나는 골육상쟁 전쟁담을 뼈대로 하는 전체 18장의 대서사시 <마하바라타>원본은 어렵기로 악명 높은 고대 산스크리트어로 쓰여 있다. 약 10만개의 시구로 이뤄진 운문체 원본을 20여년 동안 우리말로 풀어 옮긴 번역 초고 물량만 에이(A)4 용지로 5만여장이다. 방바닥부터 쌓으면 천장까지 올라갈 정도다. 21년 전인 1991년 인도 푸네대학에 유학 가서 틈틈이 시작한 번역 초고 작업은 이미 2007년 끝냈다고 한다. 이 산고의 기간 동안 그는 인도의학을 연구하던 남편과 현지에서 만나 결혼해 두 딸을 낳았고, 푸네대학에서 인도 신에 대한 산스크리트·팔리어 고전 연구로 박사학위(2007년)를 받았으며, 그 직후 귀농해 농부가 됐다. 완역본은 인도(현대어)와 미국(영어)에서만 나온 <마하바라타>를 우리말로 풀어낸 박씨의 이력이 궁금해 지난 10일 그의 집을 찾았다. 박씨와의 대화는 <마하바라타>의 장강 같은 서사처럼 꼬리를 물고 거듭되는 인도 고전 이야기의 성찬이었다.

 

<마하바라따 1~5> 박경숙 옮김/새물결·각 권 2만2000~2만7000원

 

산스크리트어 원본 완역 결실
“텍스트 너무 재미있어 끌렸죠
어려운 문제 풀릴때 희열느껴”

 

“왜 번역했냐구요? 원래 제가 싫은 거 안 해요. 사실 텍스트 자체가 너무 재미있어서 시작한 겁니다. <마하바라타>는 이 드넓은 세상 자체니까요. 유학 가서 원문을 보니까, 중국의 고전 <삼국지>와 아주 비슷해요. 주인공들 성격도 그렇고. 같이 비교해서 보면 참 흥미롭겠다 싶더라구요. 세상 모든 사람들이 자기 모습을 이 대작에서 투영해봤으면하는 생각도 했지요. ”

 

서양의 고전 서사시 <일리아드><오디세이>를 합친 것의 8배나 되는 분량을 옮기는 과정은 분명 고통과 인내가 요구되는 과정이었을 터다. 그런데도 “그런 적은 정말 거짓말처럼 없었다”며, 되레 “게으른 사람이 하기에 딱 좋다”고 그는 웃었다. “저처럼 한꺼번에 여러가지 사고를 못하는 사람한테는 낮엔 농사일하고 틈나는 대로 번역하는 일이 좋아요. 스스로 숱한 인간군상들의 생각과 음모, 행동들이 출몰하는 텍스트에 빠져들었죠. 아, 대단하다. 어떻게 이런 생각, 이런 묘사를 할까. 제 번역이 문장으로 이어지고 문법이 굉장히 어려운 텍스트가 풀렸을 때의 희열 같은 것들이죠. 사실 원전이 길기 때문에 일이 계속 있잖아요. 하염없이….”

 

<마하바라타>의 진정한 가치는 집착하는 교훈이 없다는 데서 나온다고 그는 일러준다. 전쟁을 벌이는 무사 아르주나 같은 판다와 형제들과 적수인 두료다나를 비롯한 카우라와 형제들이나 그 과정에 개입하는 크리슈나를 비롯한 여러 신들, 반인신, 아수라·락샤사(악귀), 성자들의 행동과 생각들은 세속적 인간들과 거의 똑같다. 선악과 흑백 논리가 없다는 말이었다.

 

얼핏 신들의 아들인 판다와 형제가 선의 세력이고, 그들을 노름에서 이겨 숲으로 쫓아내고 나중에 전쟁을 벌이는 카우라와 형제가 악의 세력처럼 묘사되지만, 실제 전쟁에서는 판다와 쪽이 신과 공모해 야비하고 음흉한 전술을 밥 먹듯 구사하는 모습이 숱하게 묘사된다는 점도 그렇다. 박씨는 “신이나 성자들도 극악무도하고 속세에 찌든 캐릭터가 많이 등장한다”며 그 단적인 예로 판다와 형제의 용맹한 화살 장수 아르주나를 이끌어주는 지혜의 신 크리슈나를 들었다.

 

“인도 사상의 진수를 담은 <바가바드기타>의 원전이 된 <마하바라타> 6장에서 크리슈나는 동족을 죽여야 하는 현실 앞에 번민하는 아르주나에게 ‘전쟁을 해야 하는 너의 다르마(의무·도리·법이란 뜻)에 충실하라’고 채근하며, 살육을 부추기지요. 카우라와 형제들을 이기려고 갖은 비열한 술법과 책략을 부립니다. 유명한 <바가바드기타>덕분에 성스러운 신으로 알려진 크리슈나의 본모습은 너무 달라요. 여자들을 유혹해 무려 1만6000명의 부인을 두었던 호색한이기도 하고요. 신들의 제왕 인드라신도 성자들이 지위를 빼앗을까봐 요정 압사라스를 시켜 미인계로 그들을 파계시키곤 하죠.”

 

속세에 찌든 캐릭터 많이 등장
선악과 흑백논리 없는게 특이
“무궁무진한 상상력의 별세계”

 

“<마하바라타>의 내용들은 눈앞의 이익에 급급하는 지금 한국인들에게도 삶의 다양한 갈래와 가능성들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는 게 그의 말이다. 또 하나 강조한 건 ‘이야기의 재미’였다. <마하바라타>에는 ‘날탄’(미사일)과 핵전쟁에 비견될 만한 암흑세상의 진언, 비행기와 탱크·장갑차에 해당하는 기기묘묘한 전쟁 무기들이 수시로 등장한다. 바라타 왕족의 모태가 된 여인 샤쿤달라의 보석반지 연애담, 그리스 신화를 압도하는 신들의 투쟁담 같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이야기들이 옴니버스 형식으로 펼쳐진다. 그는 “상투적 수식어나 복잡한 인명 등의 잔가지를 쳐내면 무궁무진한 상상력의 별세계를 접할 수 있다”며 “이 서사시가 ‘포켓몬’ 게임이나 숱한 할리우드·인도 영화들의 모티브가 된 것도 그 때문”이라고 했다.

 

처음 유학을 결행한 것은 대학 시절 어느 스님에게 들은 인간 붓다의 매력을 제대로 이야기로 풀어보고 싶다는 소망 때문이었다고 한다. 가족의 반대를 무릅쓰고 인도에서 두 딸까지 키우면서, 고대 산스크리트 고문헌들과 씨름한 끝에 <마하바라타>의 산맥을 넘었지만, 내처 인연의 힘으로 풀려나간 자신의 학문 역정은 언제나 물 흐르듯 편안했다고 그는 털어놓았다.

 

박씨는 초역은 했지만, 어려운 용어나 인명들을 우리말로 다듬어 풀어내는 완역본 발간까지는 앞으로도 최소한 4~5년은 잡아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일단 내년까지 10권을 출간해 숨고르기를 한 뒤 해석이 가장 난해하다는 12장 ‘평화’와 13장 ‘교훈’을 포함해 판다와 형제들이 승전 뒤 출가수행을 떠나는 나머지 부분에 도전할 참이다. “언제까지라고 목표를 세우진 않았어요. 그렇게 하면 농사짓는 재미를 뺏기니까….”

 

남원/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마하바라타>에 등장하는 판다와 군과 카우라와 군의 마상전차 전투를 그린 인도의 세밀화. 도판 제공 새물결

인도 고전 ‘마하바라타’는

기원전 10세기 전쟁실화담 모태
신과 성자·악귀 골육상쟁 얘기
인도의 사상과 우주관 녹아들어

 

‘위대한 바라타(고대 인도의 왕족 이름)인들의 이야기’란 뜻을 지닌 <마하바라타>는 ‘신화의 밀림’이자 ‘이야기의 아마존’이다. 인도인의 정신과 사상, 지식과 지혜, 신화와 전설, 윤리관과 우주관 등 그들의 역사와 문화에 얽힌 모든 것들이 잡탕처럼 이 고전에는 녹아들어 있다. 10만개의 시구에 등장하는 인명도 3000개에 육박한다. 4세기께 위야사라는 고대 선인이 최종 편집했다고 전하지만, 위야사가 ‘편집인’이란 보통명사로도 쓰여, 실제로는 문학을 담당했던 계급인 브라만들과 민중의 구전담이 1000년 이상 축적된 결과로 본다. 따라서 이 대작을 읽는 것은 나름 인내도 필요하지만, 어떤 형식으로 특정되는 작품이 아니기에 복잡하고 다채로운 구성을 먼저 이해하는 것이 독해의 지름길이다.

 

<마하바라타>의 구성은 장강 대하와 그 언저리의 숱한 지류들에 비유할 수 있다. 기원전 10세기께 전쟁 실화담을 모태로 하여 엄청난 수의 신과 성자, 반인신, 악귀 등이 북인도 대륙을 무대로 삼아 출몰하며 펼치는 골육상쟁의 전쟁 이야기가 본류에 해당한다. 여기에 고대 창조신화와 대홍수, 불로불사의 영약을 얻기 위한 신들과 아수라의 줄다리기 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지류들이 가지처럼 얽혀서 거대한 서사를 이룬다. 내용 전개 또한 이야기 속에 이야기들이 거듭 나타나면서 펼쳐지는 얼개다.

 

원문에서는 모두 18장의 서사시를 가객 우그쉬라와스와 위야사의 제자인 브라만 와이샴파야나, 그리고 전쟁에 패한 카우라와 일족의 왕 드르타라슈트라의 측근 산자야가 화자로 나서 시 형식의 이야기로 풀어내고 있다. 원문은 크게 네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1~5장(이번 1차 번역본은 1~3장까지를 다룬다)은 태초 세상의 창조, 전쟁 대결을 벌이는 판다와·카우라와 형제들의 탄생과 성장, 노름(내기)에서 비롯된 두 형제 간의 갈등 과정을 다룬다. 6~11장은 전쟁의 진행과 판다와의 승리로 끝나는 비참한 전쟁 상황이 핍진하게 묘사된다. 12장 ‘평화’와 13장 ‘교훈’, 14장 ‘말희생제’는 <마하바라타>의 핵심 사상을 담고 있는 장이다. 전쟁에 이겼지만, 일가친척을 살해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는 판다와의 유디슈티라 왕에게 성자 비슈마가 역경과 해탈의 도, 궁극의 진리를 일러주는 내용이다. 마지막 15~18장은 전쟁으로 피폐해진 왕국과 판다와들이 출가수행을 떠나 마음을 다스리는 이야기다.

 

간디와 함석헌의 주해로 유명한 <바가바드기타>는 <마하바라타>의 6장 ‘비슈마’에 있는 철학적·종교적 시구들을 간추린 것으로, 전쟁터에서 동족의 살상에 번민하는 판다와족 전사 아르주나에게 수호신 크리슈나가 던지는 지혜의 잠언 등이 담겨 있다. 흔히들 <바가바드기타>를 인도 고대 사상의 정수라고 표현하곤 하는데, 절반만 맞는 말이다. 실제로 많은 연구자들은 12, 13장을 핵심으로 간주하며 지금도 해석을 놓고 논란을 벌이고 있다. 번역자 박경숙씨도 앞으로 진행될 전작 완역본 출간 과정에서 가장 험난한 산으로 꼽은 것이 바로 이 부분이다. 문외한인 독자의 입장에서 본다면, 2권 말미 부록에 실린 해설을 먼저 보고, 전체 내용을 이해한 뒤 흥미로운 전쟁담이나 신화 등의 구절을 취향대로 골라 읽는 것이 좋겠다. <마하바라타>가 기승전결로 설명할 수 없는 온갖 명상과 사고·일화 등이 뒤섞여든 이야기의 거대한 그물망이기 때문이다. “<마하바라타>에 없는 것은 이 세상에 없다”는 인도인들의 경구가 이런 배경에서 나온 말이다. 사실 이 거작의 구성 자체가 온갖 망상과 잡념, 환상과 욕망에 가위눌리고 유혹당하는 복잡무쌍하고 불가사의한 인간 존재라고 할 수 있다.

 

노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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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타이밍 적절했던 5.18묘역 참배

타이밍 적절했던 5.18묘역 참배
처녀보살 아웃 시킨 인혁당사건

(서프라이즈 / 내가 꿈꾸는 그곳 / 2012-09-15)


 

일출이 일몰을 잉태하듯 매사는 때가 있는 게 아닐까.

주사위는 던져졌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 원장이 광주 국립 5·18민주묘역에 참배하면서 언론들은 일제히 안 원장의 행보가 사실상 대선출마를 뜻하는 것이라며 대서특필 하기 시작했다. 안 원장이 간접화법으로 '개인적인 일로 5·18민주묘역을 참배'했다고 말했지만 그의 발언을 곧이 곧대로 믿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었다. 안 원장이 5·18민주묘역을 참배하면서 사실상 제18대 대한민국 대통령을 선출하는 본격적인 대선 시즌이 도래했다고 볼 수 있으며 안 원장 또한 사실상의 출마선언이나 다름없는 모습이다. 참 적절한 타이밍이 아닌가 싶다.

안 원장이 5·18민주묘역을 전격 참배한 것은 박원순 서울시장을 만난 직후였지만, 안 원장이 결정은 유신독재자 박근혜('그녀'라 부른다)의 인혁당사건 망언이 국민적 뭇매를 맞으며 여론이 최악의 상태에 이를 때였다. 따라서 박근혜의 지지율은 곤두박질 치며 민주당 문재인 예비후보와 안철수 원장에게 추격의 실마리를 제공하는 등 지지율이 역전 당하는 시기였다. 기막힌 타이밍이었던 것이다.

그녀의 지지율 급락이 문재인과 안철수의 지지율을 동반 상승시킨 것이다. 인혁당사건 때문이었다. 여론조사 결과를 전적으로 신뢰할 수 없지만, 리얼미터 여론조사 결과 양자대결에서 박근혜45.4%-안철수45.1%, 박근혜46.1%-문재인42.7%으로 오차 범위내에서 접전 중이다. 그렇다면 그녀의 5.16 군사쿠데타 망언에 이은 인혁당사건의 망언이 불러온 역풍은 어떠한 지 다시 한번 살펴볼까.

그녀의 대선행보 발목을 붙든 인혁당사건의 끔찍한 사실 등은 유신독재자 박정희와 그녀는 물론 새누리당을 통째로 한 통속으로 묻어버린 실로 무지막지한 사건이었다. 캄보디아에 킬링필드란 사건이 있었다면, 유신독재시대에는 인혁당사건이 대표적인 살륙사건이라고 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사법부가 조작질된 기소 내용에 따라 사형선고가 내려진 지 20시간 만에 전격 사형에 처해진 8명의 유가족들의 가슴을 쥐어뜯는 울부짖음이 세상에 파다했다. 관련 포스트에서 언급한 5.16처녀보살의 한풀이로 비견되는 그녀의 대선 행보 망언 때문이었다. 아직도 글쓴이의 머리 속에는 유가족들의 가슴 속에 또아리 틀고있는 인혁당사건 트라우마가 그대로 남아있다. 이랬다.

"...사형은 새벽에 집행됐지만, 시신은 오후 6시가 지나서야 넘겨받았다. 죽은 이의 몸뚱이에는 고문의 흔적이 역력했다. "등이 다 시커멓게 타 있었어요. 손톱 10개, 발톱 10개는 모두 빠져 있었고, 발뒤꿈치는 시커멓게 움푹 들어가 있었어요." 그날을 회고하던 아내 이씨는 "당국이 시신을 화장해 재로 만들어버린 다른 피해자들을 생각하면 그래도 다행이라 생각했다"며 치를 떨었다."

생각하면 할수록 끔직하고 악랄한 만행이 유신독재자 시절에 저질러지고 있었던 것이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한 동안 사진 찍기에 바빳다. 대략 한 달 여 시간 동안 그녀는 전방 부대를 시찰하며 언론들로 부터 광폭행보 평가를 듣는 듯 했다. 그러나 인혁당사건 유가족들이 울부짖음은 결코 5.16처녀보살의 한풀이 굿판을 용납하지 않았다. 혹시라도 그녀의 애비 박정희로 부터 그녀로 이어지는 살풀이가 우려된 것 때문 만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녀의 애비가 남겨준 DNA를 고스란히 물려 받으며 사람들의 바람을 묵살하고 있었다. 그녀의 애비 박정희가 김재규로 부터 총살을 당하기 직전까지 사람들은 "이제 그만 물러날 때가 됐다"라고 했지만 뿌리친 것 처럼, 그녀는 사람들이 과거사를 합리화 하는 발언을'해서는 안 된다'라며 말리는 충고를 멀리하고, 징징거리는 내시에 둘러싸여 안하무인 광폭행보를 하며 나락으로 떨어질 차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른바 '굿발'이 안 받는 이유가 일찌감치 그녀 내부의 적 한풀이로 부터 시작되었다고나 할까.

나이 60세에 이른 노처녀에 사생아 루머와 사람들로부터 '수첩공주' 내지 '할미공주' 등으로 비아냥을 받아 온 그녀는, 어느모로 따져 보나 머리에 든 게 없어 보였다. 대통령이라는 직이 반드시 머리 속에 수 많은 지식과 내공이 필요한 게 아니란 건 이명박 대통령을 통해 익히 학습한 바 있지만, 그래도 인간이라면 가져야 할 기본적인 소양 정도는 갖고 있어야 했다.

하지만 수첩할미는 습관에 따라 특정 사건 등에 대해 최소한의 논리를 갖추지 못했으며 역사관 내지 국가관 따위는 일찌감치 국밥에 말아먹었는 지 툭 하면 '역사에 맡기자'고 말했다. 아울러 그녀 스스로 초법적인 존재가 되어 사법부의 결정을 뒤흔드는 망언을 일삼으며 국민들을 심히 절망에 빠뜨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안철수 원장이 이런 호재에도 불구하고 쉽게 대선 행보에 발을 내딛지 못했다. 민주당의 예비경선 불협화음이 적지않았으며 이대로 가다간 문재인 후보 등과 치루어 낼 야권후보 단일화 등의 일정에 차질이 빚을 정도였다. 안 원장이 등단할 타이밍이 점차 길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천우신조인 지 처녀보살의 망언 내지 주둥이질이 인혁당사건을 부활 시키며 안 원장의 등단 발판을 마련하고 있었다.

그녀는 인혁당사건 망언 때문에 지지율을 다 까먹고 방방 뛰고 있었던 것이며, 굿발이 안 받는 배경에는 광폭행보를 가로막고 선 거대한 벽이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게 안철수의 벽이자 상식의 벽이며 보통사람들이 꿈 꾸는 차기 대통령의 모습이었다. 애비가 남긴 유산 다수를 차지하고도 유독 5.16군사쿠데타 내지 정수장학회 문제나 인혁당사건 유산은 거부한 그녀. 그래서일까. 시사IN의 시사터치에 등장한 그림 속에서 5.16처녀보살이 내 건 한풀이는 결국 망신살로 뻗치며 '안철수 암초'를 자초한 형국이 됐다.

그녀의 굿판은 대선인지 한풀인 지 조차 모르고 방방 뛰고 있었던 것이다. 어쩌면 그녀는 인혁당사건 때문에 대선레이스에서 레드카드를 받으며 아웃될 줄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아직도 기회가 있다고 말하지 말기 바란다. 사형선고 20시간 만에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민주인사 유가족들에게 그저 입으로만 사과해야 할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풀이 굿판을 접고 고향땅으로 발길을 돌리라. 그게 현명한 처신이자 범국민적으로 신뢰를 받고 있는 차기 대통령 후보에게 아름다운 길을 내 주는 일이다. 처녀보살은 '지는 해'라는 거 한시라도 잊지말았으면 좋겠다.

 

내가 꿈꾸는 그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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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대 초월, 가을 밤하늘 수놓은 '윤민석 대합창'

"지금은 우리가 만나서 서로에게 고통뿐일지라도"
세대 초월, 가을 밤하늘 수놓은 '윤민석 대합창'

[자발적 콘서트] 전대협 - 한총련 - 탄핵 - 촛불 세대 한자리 모였다

12.09.15 23:12l최종 업데이트 12.09.16 01:04l
강민수(cominsoo)

 

 

15일 오후 서울 성동구 한양대학교 노천극장에서 열린 '윤민석 음악회-지금은 우리가 만나서'에서 참가자들이 서로 어깨동무를 한채, 작곡가 윤민석씨가 작곡한 '지금은 우리가 만나서'노래를 합창하고 있다. 이날 음악회는 민중가요 작곡가 윤민석씨가 최근 아내 양윤경씨의 암투병 치료비 부족을 호소하자, 시민들이 그를 돕기 위해 자발적으로기획·공연 되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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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오후 서울 성동구 한양대학교 노천극장에서 열린 '윤민석 음악회-지금은 우리가 만나서'에서 참가자들이 작곡가 윤민석씨 부인 양윤경씨의 빠른 쾌유를 빌며 휴대폰 불빛을 밝힌채, 윤씨가 작곡한 노래를 따라 부르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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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오후 서울 성동구 한양대학교 노천극장에서 열린 '윤민석 음악회-지금은 우리가 만나서'에서 정혜신 박사가 최근 윤민석씨가 작곡한 '이또한 지나가리라' 노래를 열창하고 있다. 한동준씨가 '너를 사랑해' 노래를 열창하고 있다. 류금신씨가 윤민석씨의 '오 통일이여' 노래를 열창하고 있다. 노래를 찾는 사람들(노찾사)이 윤민석씨가 작곡한 '지금은 우리가 만나서' 노래를 열창하고 있다.(사진 위 왼쪽부터 시계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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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오후 서울 성동구 한양대학교 노천극장에서 열린 '윤민석 음악회-지금은 우리가 만나서'에서 한총련세대 100인 합창단이 윤민석씨가 작곡한 '날아라 한총련' 노래에 맞춰 춤을 추고 있다. 문진오씨가 윤민석씨의 '광주여 무등산이여' 노래를 열창하고 있다. 김조광수 영화감독이 한총련세대 100인 합창단과 함께 윤민석씨가 작곡한 '전대협진군가' 노래를 열창하고 있다. 서기상씨가 윤민석씨의 '강' 노래를 열창하고 있다.(사진 위 왼쪽부터 시계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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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5년 동안 윤민석이 보여준 치열한 삶과 그의 노래 때문에 우리는 거리에서 하나가 될 수 있었습니다. 뛰어난 정치가 몇명보다도 윤민석 한 사람이 더 소중할 수 있습니다."

작곡가 윤민석이 있어 그들은 행복했다. 80년대 전대협 세대든, 90년대 한총련 세대든, <너흰 아니야>를 불렀던 2004년 탄핵 세대든, <헌법 제1조>를 불렀던 2008년 촛불 세대든, 윤민석은 쉬지 않고 그들 곁을 지켰다. 때문에 그와 그의 노래는 언제나 현재 진행형이다.

윤씨에게 빚진 그들이, 윤씨를 위해 콘서트를 열었다. 윤씨의 팬 1000여 명은 15일 늦은 오후 서울 성동구 한양대학교 노천극장에 모였다. 20대에서부터 60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세대가 한자리에 모였다. 그의 노래가 가진 폭넓은 대중성이 느껴지는 자리였다.

사회를 맡은 방송인 권해효씨와 최광기 토크컨설팅 대표는 유쾌한 입담으로 청중을 즐겁게 했다. 노동자 노래단이 나와 <서울에서 평양까지>를 부르자 최광기씨는 "오랜만에 보니 반가운데 가요무대 보는 것 같았다"며 "박수치는 여러분도 한 템포씩 늦는 것도 똑같다, 모두가 늙어간다"며 웃음을 자아냈다. 권해효씨도 "여러분이 과도한 팔뚝질로 통증을 호소할 줄 알았다"며 "좋은 가을 밤에 우리가 잊고 있었던 놓쳤던 귀한 것들을 위해서 마음을 모아달라"고 말했다.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과 그 가족들을 상담하고 있는 정혜신 정신과 의사도 무대에 올랐다. 그는 "오늘 여기 모이신 분들의 좋은 기운이 암 투병중인 (윤씨의 부인) 양윤경씨에게 전달될 것"이라며 "여러분 모두는 치유자"라고 말했고, 이에 청중들은 환호성으로 답했다.

점점 콘서트의 열기는 달아올랐다. 사회자 최씨가 "준비되셨습니까?" 물었다. 이어 "윤민석과 함께, 지금은 우리가 만나서, 우리가 희망이다"고 외치자, 청중들은 함성을 지르며 파도타기를 연출했다. 예전에는 라이타 불빛을 번쩍였지만, 지금은 핸드폰 불빛을 흔들었다. 어어 나온 <서울에서 평양까지>에 맞춰 모두들 어깨를 들썩였다.

3시간 가까이 이어진 콘서트에서는 윤씨의 노래 10여 곡이 가을 밤하늘에 울려퍼졌다. 영화감독 김조광수씨가 <전대협진군가>를, 정혜신 박사가 <이 또한 지나가리라>를, 손병휘씨가 <사랑하는 동지에게>, 우리나라가 <경의선타고>, <헌법 제1조>를 공연했다. 콘서트는 윤씨의 대표곡 <지금 우리가 만나서>와 <헌법 제1조>의 대합창으로 마무리됐다. 예정에 없던 정태춘, 박은옥 부부가 깜짝 출연해 <소리없이 흰 눈은 내리고>를 부르기도 했다.

아내의 암 투병을 간호하고 있는 윤씨는 콘서트에 참석하지 못했다. 윤씨는 30년 가까이 민중가요에 전념했지만, 아내 양윤경씨의 계속된 투병에 경제적 어려움을 겪어왔다. 결국 그는 '아내를 살리고 싶다'며 SNS을 통해 도움을 요청했고, 이 소식이 블로그와 SNS를 타고 퍼져 2주 만에 1억 5천여만 원이 모였다. 이날 콘서트도 자발적으로 기획·공연됐다.

15일 오후 서울 성동구 한양대학교 노천극장에서 열린 '윤민석 음악회-지금은 우리가 만나서'에서 참가자들이 작곡가 윤민석씨가 작곡한 '경의선 타고' 노래에 맞춰 기차놀이를 하고 있다. 이날 음악회는 민중가요 작곡가 윤민석씨가 최근 아내 양윤경씨의 암투병 치료비 부족을 호소하자, 시민들이 그를 돕기 위해 자발적으로기획·공연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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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오후 서울 성동구 한양대학교 노천극장에서 열린 '윤민석 음악회-지금은 우리가 만나서'에서 문성근 민주통합당 상임고문과 참가자들이 작곡가 윤민석씨가 작곡한 '경의선 타고' 노래에 맞춰 기차놀이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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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오후 서울 성동구 한양대학교 노천극장에서 열린 '윤민석 음악회-지금은 우리가 만나서'에서 임수경 민주통합당 의원과 명진 스님, 문정현 신부 등 참가자들이 작곡가 윤민석씨 부인 양윤경씨의 빠른 쾌유를 빌며 파도타기 응원을 펼쳐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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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오후 서울 성동구 한양대학교 노천극장에서 열린 '윤민석 음악회-지금은 우리가 만나서'에 정태춘, 박은옥 부부가 출연해 윤민석씨 부인의 쾌유를 기원하며 인사말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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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오후 서울 성동구 한양대학교 노천극장에서 열린 '윤민석 음악회-지금은 우리가 만나서'에서 원창연 연극배우가 윤민석씨의 '그이가 동지라네' 노래를 열창하고 있다. 민족춤패인 출이 윤민석씨가 작곡한 '전사의 맹세' 노래에 맞춰 멋진 공연을 선보이고 있다. 김현성씨가 '이등병의 편지' 노래를 열창하고 있다. 조국과 청춘이 윤민석씨가 작곡한 '통일이 되면' 노래를 열창하며 멋진 공연을 펼치고 있다.(사진 위 왼쪽부터 시계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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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오후 서울 성동구 한양대학교 노천극장에서 열린 '윤민석 음악회-지금은 우리가 만나서'에서 신동호 시인이 윤민석씨 부인의 쾌유를 빌며 시낭송을 하고 있다. '윤민석 음악회-지금은 우리가 만나서'에서 일부 참가자들이 무대공연을 더 잘 지켜보기 위해 담장에 올라 연호하고 있다. 노래마을의 이정열, 손병휘, 한경탁, 정은주가 '그대 고운 내사랑' 노래를 열창하고 있다.(사진 위 왼쪽부터 시계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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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오후 서울 성동구 한양대학교 노천극장에서 열린 '윤민석 음악회-지금은 우리가 만나서'에서 한 학생이 작곡가 윤민석씨를 응원하며 적은 편지를 모금함에 넣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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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오후 서울 성동구 한양대학교 노천극장에서 열린 '윤민석 음악회-지금은 우리가 만나서'에서 참가자들이 작곡가 윤민석씨를 격려하며 후원금을 모금함에 넣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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