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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체제수립은 미룰 수 없는 절박한 과제

북, 내외 호전세력 절대 묵과 없다.
 
평화체제수립은 미룰 수 없는 절박한 과제
 
이정섭 기자
기사입력: 2013/07/19 [09:26] 최종편집: ⓒ 자주민보
 
 

조선이 군사적대결과 긴장을 격화시키며 공고한 평화체제수립을 방해하는 내외호전세력의 책동을 절대로 묵과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하고 나섰다.

조선로동당기관지인 로동신문은 19일자 정세론 해설에서 “이 땅에서 전쟁의 포성이 멎은지도 60년이 되어온다. 하지만 전쟁은 아직 완전히 종결되지 못하였고 조선반도에는 전쟁도 평화도 아닌 불안정한 상태가 의연히 지속되고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로동신문은 “동서고금의 국제관계사에 정전상태가 60년 동안 지속되고 있는 것은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것으로서 매우 비정상적인 사태가 아닐 수 없다. 하기에 광범한 내외여론은 조미사이의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꿈으로써 조선반도의 공고한 평화를 실현할 것을 강력히 주장하고 있다.”면서 “그러나 미국과 남조선당국은 조선반도의 항구적인 평화체제수립을 반대하면서 군사적대결과 긴장을 격화시키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 신문은 “원래 정전협정은 평화협정을 체결하기 위한 과도적 장치에 불과하다.”며 “그러나 조선반도에서 정전협정은 평화협정으로 이어지지 못하였다. 그 책임은 전적으로 미국을 비롯한 반공화국적대세력에게 있다.”고 강조했다.

신문은 “지난 기간 우리 공화국은 조선반도의 평화체제수립과 관련한 획기적인 제안들을 내놓고 그 관철을 위해 최대한의 인내력과 자제력을 발휘하면서 할수 있는 노력을 다하였다.”면서 “하지만 북침야망에 사로잡힌 미국과 남조선 통치배들은 평화체제수립을 한사코 외면하면서 조선반도의 공고한 평화를 위한 우리 민족의 투쟁을 악랄하게 가로막아 왔다. 호전광들은 《정전은 단지 사격중지에 관한 협약일 뿐이다.》, 《싸움은 이제부터이다.》라고 노적으로 지껄여대면서 정전협정에 서명한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호상방위조약》이라는 것을 꾸며내고 우리 공화국을 겨냥한 각종 합동군사연습들과 무력증강책동에 광분하여 왔다.”고 비난했다.

정세론 해설은 “미국이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꿀데 대한 우리 공화국정부의 일관한 입장과 노력을 한사코 외면하면서 정전상태를 지속시켜오는 데는 지난 조선전쟁에서 당한 참패를 어떻게 하나 만회하고 기어이 우리 공화국을 힘으로 압살하려는 흉심이 깔려있다.”며 “조선반도의 항시적인 긴장격화는 미국의 대조선적대시정책의 결과이며 이 땅의 평화를 파괴하고 전쟁위험을 몰아오는 도발자, 침략자는 다름아닌 미국과 남조선 통치배들”이라고 고발했다.

또한 “조선반도의 긴장을 완화하며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바꾸는 것은 항구적인 평화를 실현하기 위한 초미의 과제”라며 “평화체제수립을 반대하는 미국의 책동은 집요하고 악랄하다. 미국은 침략적인 지배주의전략실현을 위해 조선반도의 긴장격화와 전쟁위험의 지속을 필요로 하고 있다. 미국은 지정학적의의가 큰 조선반도를 아시아태평양지역에서 저들에게 맞설 수 있는 대국들의 출현을 억제하기 위한 군사적 포위 환을 형성하는 요충지로 삼고 이 지역에 대한 군사적 간섭을 적극화하기 위한 구실을 계속 만들기 위해 조미사이의 평화협정체결을 반대하고 있다.”고 미국의 전랶적 목표를 폭로했다.

이어 “미국은 조선반도의 평화체제수립에 역행하면서 오히려 앞으로 10년안에 해외에 전진배비한 미군무력의 60%를 아시아태평양지역에 집중시키려 하고있다.”며 “최근에는 《유엔군사령부》를 《다국적연합기구》로 둔갑시켜 아시아판나토의 모체로 삼으려 하고 있다. 여기에는 남조선을 아시아태평양지배를 위한 전초기지로 더욱 확고히 틀어쥐려는 전략적 타산이 깔려있다.”고 단죄했다.

아울러 “미국과 남조선당국은 조선반도의 평화체제수립에 역행하면서 북침을 위한 군사적 도발에 발광적으로 매달리는 시대착오적인 망동을 걷어치워야 한다.”며 “형식적으로나마 유지되어오던 정전협정이 전면 백지화되게 된 책임도 전적으로 미국과 남조선괴뢰패당에게 있는 만큼 그들에게는 조선반도의 평화체제수립에 대한 회피할 수 없는 의무가 있다. 미국은 그 누구의 《위협》에 대해 떠들기 전에 우리 공화국에 대한 무분별한 핵위협을 걷어치우고 북침합동군사연습을 비롯한 온갖 반공화국적대행위부터 중지해야 한다.”고 덧 붙였다.

특히 “침략적인 외세에게는 그 무엇도 기대할 것이 없다. 이 땅의 공고한 평화는 오직 우리 민족의 견결한 투쟁으로써만 쟁취할 수 있다.”면서 “지금 남조선에서 미국과 괴뢰 호전광들의 발광적인 북침핵전쟁도발책동을 규탄하고 정전협정을 시급히 평화협정으로 교체할 것을 요구하는 각계의 목소리가 날로 높아가고 있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고 피력했다.

로동신문 정세론 해설은 “해내외의 온 겨레는 조선반도정세를 격화시키는 미국과 남조선당국의 위험천만한 제2의 조선전쟁도발책동을 짓 부시고 《유엔군사령부》를 해체하며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바꾸기 위한 반전평화투쟁의 불길을 더욱 세차게 지펴 올려야 한다.”며 “남조선의 각계층 인민들은 외세와의 북침전쟁공조에 기를 쓰고 매달리는 보수당국의 민족반역행위를 끝장내고 미제침략군을 철수시키기 위한 대중적 투쟁을 힘차게 벌려나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세론해설은 “조선반도의 긴장상태를 완화시키고 지역의 평화와 안전을 보장하려는 우리의 결심과 입장은 확고하다. 우리는 군사적대결과 긴장을 격화시키며 공고한 평화체제수립을 방해하는 내외호전세력의 책동을 절대로 묵과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편 조선은 전승절(정전협정일 7.27)을 앞두고 미국과 국제사회에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 할 것을 지속적으로 촉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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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교회협의회 부산총회에 거는 기대

 

바른 교리보다 바른 실천 고민, 세계교회협의회 부산총회에 거는 기대

 
김경재 목사 2013. 07. 19
조회수 84추천수 0
 

 
[특별기고] 책임사회와 지속가능한 사회 비전
 
2013.07.18 김경재 한신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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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억 그리스도교도들의 대표자들이
모이는 세계교회협의회 부산총회가
열린다. 분단된 한반도가 새 인류
문명 시대를 여는 ‘산고의 땅’이라는
진실을 깨닫기를 기대한다.
 
 
금년 한국의 가을 하늘이 높아지는 10월 말, 부산 항도에서 중요한 국제적인 큰 잔치가 열린다. 세계교회협의회 제10차 부산총회가 그것이다. 세계 140개국 교회 단체 대표들이 모여 “생명의 하나님 우리를 정의와 평화로 이끄소서!”라는 표어를 내걸고 12일간(10월28일~11월8일) 국제대회를 연다. 세계교회협의회 운동을 흔히 일컬어 ‘에큐메니컬 운동’이라고 하는데 ‘에큐메니컬’은 헬라어 ‘외쿠메네’라는 말에서 왔다. “사람들이 살고 있는 온 세상”이라는 뜻이다. 1948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모인 기독교 지도자들은 세계대전을 겪는 동안 ‘평화와 사랑’의 종교라고 자처하는 교회가 분열하고 기독교 울타리에 갇혀서 마땅히 할 일을 못했다는 회개를 진지하게 했다. 그리하여 결성된 기독교 교회들의 연합단체가 세계교회협의회(WCC: World Council of Churches)이다.
 
한국 같은 종교 다원 사회에서, 일반 사회인들이나 이웃 종교인들은 기독교계 집안 잔치 정도로 가볍게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알고 보면 ‘G20 서울 정상회의’, ‘평창 겨울올림픽’, 그리고 ‘부산 국제영화제’ 못지않게 개최지 한국으로서는 중요한 국제대회임을 인지해야 한다. 세계의 지도적 성직자, 사상가, 전문 분야 석학들, 그리고 유엔 사무총장을 비롯한 깨어 있는 지성인들 수천명이 모여 지구촌의 위기를 진단하고 그 해결책을 모색하는 협의회이기 때문이다. 비교적 열린 신앙을 지닌 개신교 교회, 동방정교회, 아프리카 콥틱교회, 그리고 영국 성공회 등이 정식 회원으로 참여하고 있으므로 약 6억명 신자들을 대표하는 대의원들이 모인다. 공식 대의원을 비롯하여 참관인, 언론인, 자원봉사자 등 외국인 약 7000명이 회동할 예정이다. 로마 가톨릭교회도 세계교회협의회 특별위원회에 참여하고 있으니 명실공히 그리스도교의 세계적 공의회라 하겠다.
 
창립할 때부터 세계교회협의회는 세 가지 기본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교회일치 운동, 복음 선교 운동, 사회봉사 운동이 바로 그것이다. 위 세 가지 목적은 1910년 영국 에든버러에서 세계선교협의회가 열렸을 때부터 지속해온 공통 목적이다. 세 가지 목적을 바탕에 깔고서 1948년 세계교회협의회가 창설된 뒤 오늘에 이르기까지 달려온 수레바퀴는 뚜렷한 두 가지 바큇자국을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세계교회협의회 운동의 두 가지 비전 때문이다. 하나는 ‘책임사회’ 비전이요, 다른 하나는 ‘지속 가능한 사회’에 대한 비전이다. 비전이란 추구하는 꿈이자 열정이고 실현하고자 하는 정신 운동의 지향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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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교회협의회 총회는 7년마다 열리는데, 1948년 창립총회부터 75년 제5차 나이로비 총회까지 주악상(主樂想)은 ‘책임사회’였고, 그 이후부터 제10차 부산총회까지 주악상은 ‘지속 가능한 사회’였음을 알 수 있다. 세계교회협의회 에큐메니컬 운동의 역동성에 귀 기울인다면, 책임사회와 지속 가능한 사회를 열망하는 심장 박동이 감지되는데, 그것은 ‘정의와 사랑’의 동시적 실천을 요청하는 예언자 종교의 현대적 표출이라고 보아야 한다.
 
‘책임사회’ 비전은 2차 대전 이후, 세계가 냉전체제로 양분되면서 기획통제적 공산주의와 자유방임적 자본주의 둘 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인간들과 국가사회한테 강요하는 상황에서 형성되었다. 세계교회협의회 지도자들은 확신하기를 복음 안에서 자유인들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제도와 법질서 마련에 있어서 자율적이며 책임적 존재라는 것을 주장했다. ‘책임사회’ 비전은 자유·평등·평화·복지의 사회 실현을 통해 ‘인간화’를 추구하자는 사회윤리적 의지 표현이었다. ‘제3의 길’을 구체적으로 명시하지는 않았지만, 공산주의와 자본주의 둘 중 어떤 체제도 기독교의 비전과 곧바로 동일시할 수 없다는 것을 선언했다.
 
‘지속 가능한 사회’ 비전은 1970년대 중반기부터 세계교회협의회의 중심 화두가 된다. 인류는 1970년대 초부터 자연환경 오염, 생태계 파괴, 기후 붕괴 등 심각한 문명사적 위기를 깊이 자각했다. 자연에 대한 배려와 생명 가치의 존엄성에 대한 새로운 각성을 하게 된 것이다. 지금 같은 무한 경쟁, 가속화되는 생산 소비 생활 패턴, 전쟁무기 생산 판매, 빈익빈 부익부의 양극화 경제 질서 등은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것을 절감하게 된 것이다. 세계교회협의회 에큐메니컬 운동이 타계 지향적 영혼구원론에만 치우치지 않고, ‘오늘의 구원’과 정의·평화·생명 가치가 존중되는 지속 가능한 사회 실현에 관심을 갖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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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교회협의회 부산총회를 앞두고, 한국 기독교계는 진보 계열인 교회협의회 쪽과 보수계열 교단 사이에 불협화음이 들린다. 불협화음의 근본 원인은 세계교회협의회의 목적과 존재 이유를 오해하는 데서 발생하고 있다. 확실하게 알아야 할 것은, 세계교회협의회 세계대회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와는 성격이 전혀 다른 모임이라는 점이다. 두 공의회가 교회를 갱신하고 봉사하는 교회가 되자는 점에서 같은 정신을 공유한다. 그러나 본질적 차이가 있는데 세계교회협의회는 교리신학, 전례, 윤리 규범을 새롭게 제정하여 회원 교회들이 의무적으로 수용하게 하려는 목적은 창립헌장 속에 애초부터 없다는 점이다. 세계교회협의회 에큐메니컬 운동은 ‘다양성 안에서 일치’ 정신을 가지고 인류 형제가 당하는 고통에 어떻게 응답할까 고민하고 실천하려는 평신도·성직자 공동 참여적 대회이다. 바른 교리에 대한 관심보다 바른 실천에 더 관심을 쏟는다.
 
“교리는 갈라지게 하지만 봉사는 하나 되게 한다”는 속담이 있다. 세계교회협의회 대표들은 총회 개최 장소를 구하지 못해서 한국으로 결정한 것이 아니다. 유일하게 세계 냉전 구도의 희생양이 되어 분단의 아픔을 겪고 있는 나라, 전형적 종교 다원 사회이면서도 종교 간 평화와 협동을 이루고 있는 나라,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룬 민주시민의 저력이 돋보이는 나라, 바로 그 한국의 현장을 보고 경험하기 위하여 부산으로 대회 장소를 정한 것이다.
 
세계교회협의회 부산총회를 반대하는 기독교 보수계 지도자들은 자신들이 복음 진리의 파수꾼이라고 생각할는지 모른다. 그들은 세계교회협의회 에큐메니컬 운동이 용공주의·종교다원주의·인본주의로 병든 기독교 운동이라고 비판한다. 그러나 기독교 울타리 밖에서 보면 왜 안식일에 율법을 어기면서 병자를 치료하느냐고 예수를 비난하고 시비를 거는 바리새인들을 연상케 한다. “안식일은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다”(마가 2:27)라는 예수 말씀을 명심할 일이다.
 
대회준비위원회 지도자들도 행여 한국 기독교의 물량적 성장을 과시하려는 행사 위주의 대회가 되지 않도록 각별히 조심해야 할 것이다. 그동안 물량주의 교회 성장론과 반공 논리에 사로잡혀 사랑의 실천이나 남북 화해 촉진 노력을 소홀히 한 것을 반성하고, 책임사회 및 지속 가능한 사회 비전을 지니고 교회 개혁의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날씨는 분별하면서도 시대의 표적은 분별 못한다”는 기독교에 대한 우리 사회의 냉엄한 비판을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보수와 진보 교단이 대승적 관점에서 세계교회협의회 부산총회에 함께 협력해야 마땅하고, 국민과 정부도 따뜻한 마음으로 외국 대표들을 맞이해야 할 것이다. 세계교회협의회 부산총회가 본래 목적을 이룸과 동시에 덧붙여 두 가지를 기대하고 싶다. 첫째, 동서 문화가 조우했던 동아시아의 한국은 다양한 세계 종교 문화의 최종 정류지로서 인류의 미래 종교 시대를 열어갈 영적 저수지란 것을 참석자들이 발견하기를 기대한다. 둘째, 실질적으로 세계전쟁이었던 ‘한국전쟁’에서 희생양이 되어 분단된 한반도가 새 인류 문명 시대를 여는 ‘산고의 땅’이라는 진실을 깨닫기를 기대한다. 한반도의 화해와 평화가 동북아 및 세계 평화의 돌쩌귀이기 때문이다.
 
김경재 한신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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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중동의 노무현 '부관참시' 아예 소설을 써라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을 열람하려던 여야 의원들은 국가기록원에서 회의록을 찾지 못했습니다. 이것이 어떻게 된 일인지 현재까지는 사실 파악도 되지 않은 상황입니다. 그러나 조선,중앙,동아일보는 7월 19일 오늘 조간신문에서 다시 노무현 대통령을 '부관참시'하기로 작정한 듯 말도 안 되는 제목의 기사를 쏟아 내기 시작했습니다.

조선일보의 1면을 보면 <국가기록원 회의록 보관돼 있지 않다>로 동아는 <노정부 제출 목록에 노-김 회의록 없다>, 중앙일보는 <노 전 대통령, 대화록 안 넘겼다>였습니다. 이것을 연결하면 국가기록원에 남북대화회의록이 없는 이유는 노무현 대통령이 대화록을 넘기지 않았기 때문으로 왜곡하는 문장이 됩니다.

이것은 언론 기사가 아니라 소설입니다. 기사를 쓰는 데 필요한 전제 조건, 즉 과연 노무현 대통령이 기록물을 어떻게 관리 했느냐를 살펴보면 이런 기사를 절대 쓸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썼습니다. 이유는 뻔합니다. 그토록 괴롭혔던 노무현 대통령을 다시 무덤에서 꺼내 '부관참시'하겠다는 의지입니다.

조중동이 쓴 소설이 아니라 진실을 외치는 보잘것없는 정치블로거의 말을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 대한민국 최초로 대통령기록물 시스템을 갖춘 노무현'

노무현 대통령은 역대 대통령 중에 대한민국 대통령 기록물을 체계적으로 완벽하게 보관할 수 있도록 엄청난 노력을 기울인 대통령입니다. 그는 국민의 정부에서 시작된 공공기록물 관리를 법과 시스템으로 완성했던 대통령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2004년 7월 20일 청와대 국무회의 석상에서 공식적으로 맹세합니다. 그는 기록물 관리를 새롭게 하는 일부터 출발하겠다고 강조하면서 과거의 기록물 문제를 진상 공개하고 앞으로 안 그러겠다고 맹세해야 한다고 기록물 관리에 대한 각오와 계획을 밝힙니다.

이런 노무현 대통령의 의지에 따라 대통령 기록물 관리는 체계적인 법과 시스템을 갖추는 개선 방안이 시작됩니다.

 

▶ 2004년 8월 국가기록관리 체계 개선 문제에 대한 대통령 보고
▶ 2004년 10월 기록관리혁신위원회 설치
▶ 2005년 10월 국가기록관리혁신로드맵 완성 (대한민국 건국 최초)
▶ 2007년 4월2일 대통령 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안 가결


노무현 대통령의 철학과 각오에 힘입어 2004년 국가기록물 체계의 문제점과 개선방안이 조사됐고, 그해 역사 전문가와 기록 전문가들이 참여한 '기록관리혁신위원회'가 설치됐습니다. 2005년 국가기록을 어떻게 관리하고 운영하고 보관, 후세에 남길지에 대한 로드맵이 건국 최초로 완성됐습니다.

2007년 4월 2일 국회에서 '대통령기록물관리에 관한 법률안'이 가결됨으로 이제 법으로 대통령기록물을 관리,보관,공개 등을 정하는 역사적인 사건이 발생합니다.

'생산부터 보관까지 원스톱 기록물 시스템 이지원'

노무현 대통령은 IT매니아답게 국가기록물을 전자문서 시스템으로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생산단계부터 보관까지 할 수 있을지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그런 고민 속에서 특허까지 낸 시스템이 바로 '청와대 이지원'입니다.

 

 

▲청와대 이지원 시스템에 관한 설명, 출처:참여정부 홈페이지

 


청와대 이지원은 자료의 수집 단계부터 문서 작성, 메모, 기안서 등의 생산 검토,회의,문서 수정 등의 유통 가공 결정을 지식화 기록화하는 시스템입니다.

한 마디로 청와대의 모든 문서가 자료 수집 단계부터 기록화 전산화 되어 끝까지 모든 과정을 후세에 남길 수 있는 시스템이었습니다.

 

 

 


청와대 업무관리시스템 이지원을 보면 누가 로그인을 해서 문서를 봤는지에 대한 기록이 철저히 남으면서, 작성일,작성자, 경로,문서목록뿐만 아니라 누가 어떤 지시를 했고 그 과정과 현재 상황을 모두 한눈에 알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이렇게 이지원을 특허까지 내면서 했던 가장 큰 이유는 별도로 국가기록물을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처음부터 모든 대통령기록물을 후대에 남기겠다는 열정 때문이었습니다.

2006년 노무현 대통령은 MBC 100분 토론에서 시민논객이 "참여정부의 정책 중 차기 정부에서도 지속적으로 이어졌으면 하는 내용과 그 이유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모두 다 지속적으로 해주면 좋겠다, 이지원 시스템도 그중에 하나다."라고 말할 정도로 이지원 시스템에 대한 자부심과 중요성을 강조한 바 있습니다.

정권은 바뀌어도 이지원 체계와 시스템만은 꼭 남기고 사용됐으면 하는 노무현 대통령의 소망은 그만큼 기록물 관리에 대한 그의 열정과 노력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보여준 것입니다.

' 팩트는 알고 기사는 쓰니? 소설 쓰는 기자들'

TV조선은 7월 18일 방송에서 정상회담 대화록 행방불명 논란이 예견됐으며, 이는 민감한 문건은 내용과 함께 목록도 없앨 수 있느냐고 참모에게 물었다는 조선일보 보도를 근거로 들었습니다.

이런 조선일보와 TV조선의 기자들은 과연 당시 발언론 전문을 보기는 했는지 그냥 문장 하나를 가지고 상상력을 동원한 소설을 썼는지 기가 막힐 따름입니다.

 

 

 


조선일보는 '인계할 때 제목까지 없애버리고 넘겨줄 거냐'고 말했으며, 이는 '폐기'였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국가기록물법이나 그 과정을 안다면 이런 기사를 쓸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비공개 지정기록물은 아예 목록까지 공개해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별칭을 쓰기도 합니다.

또한 노무현 대통령이 '기술적으로 가능하냐'는 질문을 마치 시스템 안에 있는 기록물을 어떻게 파기할 것이냐는 은폐 지시로 보는데 지정기록물이 다른 공개기록물과 연계되어 공개되지 않도록 철저히 관리하는 시스템을 이렇게 왜곡한 것입니다.

이번에 다시 불거진 이지원의 원본 논란은 IT 전문가들이 들으면 도대체 뭘 알고 기사를 쓰는지 비웃음당하기 딱 좋은 글입니다.

 

 

 


전자문서는 사본,원본의 구별이 종이문서와 다릅니다. 문서의 과정이 모두 기록된 내용의 문서를 진본으로 지정하고 보안처리를 하면 그것이 원본이 됩니다.

이지원 문서에는 로그파일이나 메타데이터가 작성되는 등의 처리 과정을 모두 확인할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국가기록원도 문서의 보안 처리 내역을 확인하고 진본으로 지정했습니다.


봉하마을이 청와대 시스템을 열람했다고 하는 주장도 말이 되지 않습니다. 컴퓨터를 아는 사람이라면 제조회사와 기종이 다르고 소프트웨어가 다르면 호환이 안 된다는 사실을 당연히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봉하마을은 그 시스템을 봉하까지 구축해 달라고 요구했고 (이것은 전직 대통령으로 정당한 권리) 기록원은 돈이 없어 못 해주겠다고 한 것입니다.

 

 

 


2012년 10월 NLL 논란이 불거지자 중앙일보는 목록조차 검색되지 못한다고 1면에 보도했고, MBC와 다른 언론도 덩달아 이런 기사를 인용하여 보도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기사는 대통령기록물 중에서 비공개 지정기록물은 목록도 나중에 공개된다는 법을 모르거나 일부러 악의적인 노무현 죽이기를 위한 보도에 불과합니다. 이들이 왜 악의적인지 그 증거를 보여 드리겠습니다.

 

 

 


국가기록원은 '박정희대통령기록물 정리 수정 보고'에 관한 기록조차 비공개로 해놓았습니다. 어떤 문서가 있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단순히 박정희기록물을 정리 수정한 보고서 자체가 비공개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대통령기록물관리법에 따르면 지정기록물은 최장 30년 동안 비공개 대상입니다. 영구집권을 꿈꾸던 박정희가 지정기록물로 지정하고 죽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공개됐어도 마땅하지만, 그래도 30년을 지킨다고 가정합시다. 그가 사망한 시기가 1979년이고, 아이엠피터가 자료를 검색한 날짜가 2013년 7월 19일입니다. 30년이 훌쩍 넘었는데 '비공개'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돌아가신지 얼마나 됐습니까? 4년이 겨우 지났습니다. 그런데 목록이 검색되지 않는다고 이리들 난리입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겠습니까? 법과 상식, 논리는 저들에게 안중이 없습니다. 오로지 죽은 자를 무덤에서 끌어내 또다시 난도질하겠다는 파렴치하고 인륜을 저버리는 행동입니다.

 

 

 


기록관리를 위해 그토록 애를 썼던 노무현 대통령이 회의록을 보고도 결론이 나지 않는 NLL 대화록을 폐기하라고 지시했다고요? 아무리 노무현 대통령을 싫어하고 정책이 잘못됐어도 그것은 아닙니다. 이것은 정말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절대 할 수 없는 행동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완벽한 사람은 아닙니다. 참여정부의 문제, 왜 없겠습니까? 그러나 그가 남긴 기록물 관리 시스템만큼은 모든 기록전문가들이 많은 성과를 거뒀다고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유독 정치권과 조중동은 그를 이토록 괴롭힐까요? 어쩌면 그가 무서웠을 것입니다.

모든 기록물을 그가 남겼기 때문에 후대 정권들은 법에 따라 기록물을 없애는 것 자체가 범죄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노무현 대통령을 아예 기록물 파괴자로 만드는 소설을 쓰는 것입니다.

 




노무현의 정책, 그리고 참여정부의 실패를 비난할 수는 있습니다. 그를 욕해서 속이 시원해진다면 그래도 됩니다. (노무현 대통령 자신도 그래도 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기록물 파괴자로 만드는 짓만은 하면 안 됩니다. 역사를 기록으로 남기려고 노력했던 노무현 개인을 무너뜨리는 일이 아니라 대한민국 역사를 훼손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을 무덤에서 파헤쳐 그를 난도질해서 정권을 유지하려는 자들과 야합한 기자들은 (조선일보 권대열, 중앙일보 권호,김경희,동아일보 고성호,김진균 기자:1면 기사 작성자들) 그들이 어떻게 역사에 기록될 것인지 알아야 합니다.

보잘것없는 일개 정치블로거의 말이 맞는지, 조선,중앙,동아일보 기자들의 말이 맞는지, 나중에 역사가 판단해주겠지만,
역사를 왜곡하는자, 역사의 준엄한 심판을 반드시 받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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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합참의장 "전시작전권, 예정대로 전환 지지"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3/07/19 13:08
  • 수정일
    2013/07/19 13:08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朴정부 '연기' 방침에 부정적 답변

곽재훈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3-07-19 오후 12:00:58

 

 

박근혜 정부가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환수 시점 연기를 미국에 요청한 것으로 알려진 후 미국 측의 첫 반응이 나왔다. 한국이 예정대로 2015년 12월에 전작권을 환수하기를 바란다는 부정적 답이다.

마틴 뎀프시 미 합참의장은 18일(현지시간) 2년 임기의 합참의장직에 재지명돼 열린 재인준 청문회 서면답변에서, 전작권 문제에 대해 "예정대로 전환하는 것을 지지한다"며 "군사적 측면에서 보면, 전작권 전환의 시점은 적절하다"고 말했다.

뎀프시 의장은 "전환의 조건"에 대해 "무기체제 획득, 지휘통제체제, 정보감시정찰(IRS) 플랫폼, 적절한 군수품 보급, 전환 준비를 비준할 올바른 보장 절차 등을 포함하는 '역량 기반' 목표를 달성하는가(meeting capability-based milestones)"라고 전제했다.

그는 이같은 '조건'이 무르익었는지에 대해 "한국군은 매우 유능한 군대이지만 (역량 기반) 목표를 완수하기 위한 자금 조달에서 일부 차질이 있었다"고 진단했다. 그는 "제임스 셔먼 한미연합사령관과 주한미군 내에 마련된 그의 팀은 요구되는 역량을 확보하고 보장(조건)을 만족시키기 위해 한국 합참과 함께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뎀프시 의장의 이같은 발언은, 한국 정부의 전작권 전환시기 연기 요청 소식이 알려진 후 나온 미국 측 고위당국자의 첫 반응이다. 미국 정부, 특히 국방부는 '전략적 유연성' 계획과 예산 삭감 등으로 인해 해외 미군의 부담을 줄이려는 쪽에 초점을 두어 왔다.

뎀프시 의장의 발언을 통해 미 정부 일각의 부정적 반응이 재확인됨에 따라, 전작권 환수 시점 연기 요청을 관철하더라도 그에 따른 '대가'가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우려가 힘을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상원 청문회 서면질의에는 지난 3월 조인된 '한미 공동 국지도발대비계획'에 대한 질문도 나왔다. 뎀프시 의장은 이 계획에 대해 "(한미 간의) 올바른 균형을 잡고 있다"며 "한국의 자위권이라는 주권이 과도한 긴장 격화나 정전협정 위반 없이 적시에 적절한 형태로 발휘될 수 있게 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추가적 대응이 필요하거나 정당화될 수 있는 상황에 대비해, 한미 양국의 (군사)고문 시스템이 준비돼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그러나 한반도 상황은 모든 면에서 예측하기 매우 어렵다"면서 "미국의 억지력과, 한국 정부와 주한미군 간의 친밀한 관계는 긴장 격화에 대한 최선의 대비책"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뎀프시 의장은 한반도 안보상황에 대해 "현재 안정된 상태지만, 도발이 장기화된 국면에 있지 않은지 우려된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군의 활동은 통상 수준"이라며 "북한은 긴장이 최고조된 지난 4월 이후 (도발적)언사의 수위를 낮추고, 양보를 얻어내기 위해 외교를 시도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했다.

뎀프시는 "북한의 탄도미사일과 핵무기, 그리고 이 무기들을 사용하겠다고 위협하는 호전적인 언사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면서도 "하지만 현재로서는 탄도미사일이나 핵능력을 당장 사용할 것이라는 징후는 전혀 없다"고 했다.

그는 '북한의 미사일 기술 확산을 막기 위해 미 국방부가 추가로 어떤 조치를 취할 수 있는지'라는 질문에 대해, 여러 국제기구들과 공조하고 있는 현 국방부 시책이 적절하다고 평가하면서도 "확산 방지를 위한 추가적인 옵션에 대해서도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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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여자축구팀, 8년만에 서울 방문

 

 

재일 총련 응원단도 18일부터 속속 입국

조정훈 기자 | whoony@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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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07.19 01:3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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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 여자축구팀이 18일 밤 인천공항을 통해 서울을 방문했다. [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북한 여자축구팀이 18일 밤 10시경 남방항공편으로 중국 베이징에서 출발, 인천공항을 통해 서울을 방문했다.

북한 여자축구팀의 서울 방문은 이달 20일부터 서울과 경기도 화성에서 열리는 '2013동아시안컵'에 참가하기 위한 것으로 8년만이다.

짙은 파란색의 치마 단복을 입은 선수단은 가슴에 '김일성-김정일' 초상휘장과 인공기를 달고 입국장에 들어섰다.

선수 21명과 임원 15명 등 총 36명으로 구성된 북한 여자축구팀은 햇빛에 그을린 얼굴이지만 하나같이 밝은 표정을 지었다.

이날 입국장에는 허정무 대한축구협회 부회장 등 관계자들이 나와 북한 선수단을 환영했다.

 

   
▲선수단 버스에 오른 한 북한 여자축구선수가 취재진의 플래쉬가 터지자 커튼을 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북한 여자축구팀은 상암동 월드컵경기장 인근 호텔에서 여장을 푼다.

 

이번 북한 여자축구팀은 오는 21일 서울 상암동 월드컵경기장에서 남북대결을 갖고, 25일 화성종합경기타운에서 일본과, 27일 잠실종합운동장에서 중국과 각각 경기를 치른다. 북한 여자 축구팀은 28일 출국할 예정이다.

이와 함께, 북한 여자축구팀 응원을 위해 재일 총련 응원단도 18일부터 속속 입국했다.

재일 총련 응원단은 체육연합회, 재일본조선인축구협회 관계자 등 33명으로 구성됐으며, 특히, 정대세 선수의 부모와 이모 부부 등도 응원단에 포함됐다.

한편,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도 약 5백여명 규모로 구성된 공동응원단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북한 여자축구팀의 짐가방이 트럭에 실리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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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난대 희귀식물 ① 제주고사리삼

 

양치식물 진화사 새로 쓴 곶자왈의 ’보석’

 
현화자 2013. 07. 18
조회수 14추천수 0
 

제주의 난대 희귀식불 ① 제주고사리삼

2001년 국제학계 발표한 새로운 속 양치식물…속 명칭은 고 박만규 박사 이름 따

선흘 곶자왈이 자생지는 대부분 사유지, 무분별 채취와 그늘 제거 등 훼손 위협

 

go5.jpg » 지구상에서 제주도에만 분포하는제주고사리삼. 새로운 양치식물 속이다.

 

제주고사리삼은 2001년 국제학술지 <택손>에 신속 신종으로 기재된 양치식물이다. 만규아(Mankyua) 속의 유일한 종이며, 한국 특산식물로 지구상에서 제주도의 일부 지역에만 분포하는 희귀식물이다.

 

학명은 '만규아 제주엔세'(Mankyua chejuense)로 속명인 만규아는 원로 식물학자인 박만규(1906∼1977) 박사의 이름을 땄으며, 종소명인 제주엔세는 자생지인 제주를 가리킨다.

 

제주고사리삼의 식물학적 특징

 

go6.jpg » 얼핏 양치식물로는 보이지 않는 제주고사리삼. 김문홍 제주대 교수가 발견했다.

 

식물 전체의 크기는 높이 10~12㎝이고 지하경은 흑갈색 연한 갈색으로 관모양으로 옆으로 기며 1~2개의 눈이 있다. 잎은 1~3개이며 엽병은 8~12㎝로 털이 없고 다육성이다.

 

잎은 영양엽과 포자엽으로 구분되는데, 영양소엽은 털이 없고 소엽병이 있으며 엽병에 수직으로 3개로 나누어지며 각각은 다시 두 부분으로 나누어지기도 한다. 잎 가장자리에는 미세한 치아상 거치가 있으며, 개방맥으로 1~2회 차상 분지한다.

 

생식소엽은 수상으로 엽병 끝과 영양소엽의 기부에서 생성되며 거의 엽병이 없거나 짧은 소엽병이 있다. 포자낭수는 다육성으로 선형, 관상이며 드물게 하부에서 1~2회 분지하며, 포자낭은 포자낭수에 함몰되어 포자낭수 주변부에 2열로 배열되며 세로로 열개한다. 포자는 연한 황색이고 삼구형이다.

생장과 번식은 주로 지하경의 신장과 무성생식을 통하여 이루어지는데, 강우가 집중되는 7월에 잎이 지상으로 나오기 시작하여 6개월 정도의 생육기간을 마친 후 이듬해 1월이 되면 포자를 방출하고 시들어 없어지기 시작한다.


go2.jpg » 제주고사리삼 자생지인 선흘 곶자왈 지역의 모습.

 

이 식물은 제주도의 동북부 지역인 조천읍 선흘리, 구좌읍 동복리 및 김녕리 일대의 해발 200m 이하에 분포하는데, 이 지역은 제주도 지정 기념물인 동백동산 상록활엽수림을 포함하는 선흘 곶자왈 지역이다.

자생지는 지형적으로 주변보다 낮고 비가 오면 일정 기간(3~7일) 물이 고여 있으며, 이러한 환경적 특성으로 인해 좁은잎미꾸리낚시, 사마귀풀 등의 다양한 습지식물이 분포하는 소택지와 유사한 특징을 갖고 있다. 특히 상록활엽수림 및 관목림이 분포하는 주변과는 매우 다른 식생을 보인다.

 

자생지 내에 분포하는 주요 수목은 참느릅나무, 꾸지뽕나무, 가마귀베개 등의 낙엽활엽수 등이며, 주변의 상록활엽수림에 분포하는 종가시나무, 동백나무 등은 매우 드물게 자란다. 특히 제주고사리삼은 참느릅나무 등 수목의 그늘에만 분포하고 있는데, 이들 수목은 제주고사리삼이 자랄 수 있도록 그늘을 제공해 주는 중요한 구실을 한다.

 

go4.jpg » 세계적인 희귀식물인 제주고사리삼의 자생지 모습. 오른쪽 바닥에 나 있다.


양치식물에서 새로운 속(종 다음의 상위 분류 단위)이 발견된 것은 1961년 중국의 양치식물학자 칭에 의해서였다. 그 후 약 40년 만에 새로운 속의 양치식물인 제주고사리삼 속이 학계에 보고된 것이다.

 

제주고사리삼 속은 고사리삼 과에 속하며 형태적으로 근연 속인 나도고사리삼 속(Ophioglossum) 및 헬민토스타키스 속(Helminthostachys) 식물과 몇 가지 특징을 공유한다. 나도고사리삼 속과는 생식소엽의 형태, 포자낭의 함몰 여부, 열 개 그리고 영양 번식의 특성을 고유하며, 헬민토스타키스 속과는 지하경, 엽서, 영양소엽의 형태 및 엽맥상의 특성이 비슷하다.

 

이러한 형태적인 특성으로 인해 제주고사리삼은 형태적으로 보면 헬민토스타키스 속과 나도고사리삼 속 사이에 위치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되고 있다. 제주고사리삼의 원 기재자인 선병윤 교수는 제주고사리삼이 우리나라 고유식물로서 뿐 아니라 전 세계 하등 식물의 진화 양상에 관한 중요한 단서를 제공해 줄 수 있는 학술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식물이라고 평가하였다.

go3.jpg » 여름 풀이 무성하게 자란 제주고사리삼 자생지의 모습.

 

또한 전 세계적으로 제주도의 극히 제한적이고 독특한 환경에서만 자라고 있으며, 지상부의 잎은 수가 많아 보이지만 대부분 지하부가 하나로 이어져 있는 동일 클론으로 추정되고 있다.

 

따라서 개체 수 파악이 매우 어렵고 하나의 자생지에 자라는 개체는 매우 적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렇듯 자생지가 협소하고 개체수가 적으며 주변 환경 변화에 취약하다는 점 등을 고려해 환경부는 이 식물을 2005년 멸종위기 2등급 식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go1.jpg » 제주고사리삼의 싹은 계속해서 돋아날 수 있을까. 세계적인 멸종위기종임에도 자생지의 여건은 취약하기 짝이 없다.


제주고사리삼의 자생지 주변은 대부분 개인 소유의 토지로서 접근이 편리하며 출입에 대한 특별한 제약을 받지 않아 자생지 보존이 힘든 상황이다.
특히 희소성으로 인해 무분별한 채취가 성행하고 있으며, 개체의 크기가 매우 작아 간단한 도구만으로도 쉽게 채취할 수 있어 자생지 훼손은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게다가 자생지 내에 자라고 있는 참느릅나무, 꾸지뽕나무 등은 관상용 혹은 약용으로 쓰여 수피뿐 아니라 뿌리까지 도채되고 있어 이 과정에서 제주고사리삼이 짓밟히는 피해를 당한다. 또 참느릅나무가 벌채되면 그 그늘에서 살아가는 제주고사리삼의 생육에 치명적인 타격을 받을 수 있다.

현재 선흘곶자왈의 일부 지역은 보호지역으로 지정되어 있어 자생지 일부가 보호받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자생지는 여전히 보호받지 못하고 있어 이들 나머지 지역에 대한 보호구역의 추가 지정이 매우 절실하다.

 

글·사진 현화자 ·최형순/ 국립산림과학원 난대·아열대산림연구소 박사

 

※ 이글은 국립산림과학원이 격월간으로 발행하는 <과학이그린> 2013년 3+4호에 실린 것으로 필자의 허가를 얻어 다시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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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선거개입 규탄 717 청소년 시국선언

 

청소년 817명 시국선언 “국정원, 확실하게 개혁해야”

 

강경훈 기자
입력 2013-07-17 22:00:14l수정 2013-07-17 22:23:05

 

청소년들의 국정원 규탄 시국선언

국정원 선거개입 규탄 민주주의 수호 청소년 시국회의가 17일 오후 서울 종로 동아일보 앞에서 '국정원 선거개입 규탄 717 청소년 시국선언 기자회견'을 열고 국정원 국정조사와 남재준 국정원장의 해임, 박근혜 대통령의 입장표명을 촉구하고 있다.ⓒ양지웅 기자

전국 464개교 중.고등학생 817명이 국가정보원의 대선개입을 규탄하는 시국선언을 발표했다.

“누구보다 공정해야할 수사기관이 민주주의 훼손”

‘국정원 선거개입 규탄․민주주의 수호 청소년 시국선언에 참여한 학생들은 17일 오후 서울 종로구 동아일보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와 국회는 국정원과 경찰의 선거개입에 대해 철저하고 공정하게 조사하라”고 밝혔다.

청소년들은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는 수많은 사람들의 피를 마시고 꽃 피웠다고 배웠다”며 “그러나 누구보다 공정해야할 수사기관이 선거에 개입해 민주주의를 훼손했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죄를 지었으면 벌을 받는다고 배웠으나 이 사회는 엄격해야할 것에 너무나도 관대하다”며 “정의는 교과서 안에만 있는 것인지 의문스럽다. 명백한 범죄행위는 비난받아 마땅하고 관련자들도 당연히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박근혜 대통령은 일련의 사태에 대해 직접 책임있는 의사를 밝혀야 한다”며 “남재준 국정원장을 해임하고 국정원을 확실히 개혁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청소년 국정원 시국회의 '남재준 사퇴 촉구'

국정원 선거개입 규탄 민주주의 수호 청소년 시국회의가 17일 오후 서울 종로 동아일보 앞에서 연 '국정원 선거개입 규탄 717 청소년 시국선언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자유발언을 하며 남재준 국정원장의 사퇴를 촉구하고 있다.ⓒ양지웅 기자



청소년들은 이날 지난 3일부터 15일까지 전국 청소년 612명을 대상으로 ‘국정원 사건’에 대한 청소년의 생각을 물었던 온라인 설문조사 결과도 발표했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청소년의 93.6%는 지난 대선에서 국정원의 댓글달기 활동과 관련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여권 등 특정 후보에게 유리한 여론을 형성하기 위해 지시했다’고 보고 있었다.

또 청소년의 75.3%는 ‘국정원의 NLL 발언록 공개’와 관련해 ‘국민들의 촛불, 시국선언의 확산을 막기 위한 물타기 용’이라고 판단했다.

‘국정원 선거개입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가장 먼저 취해야 할 조치’에 대해 청소년의 33.2%는 ‘박근혜 대통령의 책임 촉구’라고 응답했다. 이어 국정조사(24%), 철저한 진상규명(20.4%), 원세훈․김용판 구속(13.4%) 순으로 나왔다.

“우리가 대항하는 상대가 더 커... 오늘이 시발점 될 것”

이날 교복을 입고 기자회견에 참석한 청소년들은 내리는 비를 맞으면서 시국선언을 했다. 청소년들은 박근혜 대통령에게 국정원 사건과 관련해 책임을 촉구하고 원세훈 전 국정원장,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을 감옥에 가두는 퍼포먼스도 펼쳤다. 광화문 거리를 지나가던 시민들은 걸음을 멈춘 채 기자회견을 지켜보며 박수를 쳤다. 한 시민은 “청소년들까지 시국선언을 할 수밖에 없는 세상이 답답하다. 청소년들에게 미안하다”고 말했다.

시국선언에 참여한 한 청소년은 “800여명이 넘는 청소년이 시국선언에 동참했지만, 우리가 대항하는 상대에 비교하면 많은 숫자가 아니다”며 “우리 청소년들은 더 뭉쳐서 함께 나아가야 한다. 오늘이 그 시발점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청소년 국정원 시국회의 '선거개입 규탄 퍼포먼스'

국정원 선거개입 규탄 민주주의 수호 청소년 시국회의가 17일 오후 서울 종로 동아일보 앞에서 연 '국정원 선거개입 규탄 717 청소년 시국선언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박근혜 대통령의 입장표명을 촉구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양지웅 기자

 
청소년 시국회의 '박근혜 대통령 국정원 입장표명 촉구'

국정원 선거개입 규탄 민주주의 수호 청소년 시국회의가 17일 오후 서울 종로 동아일보 앞에서 연 '국정원 선거개입 규탄 717 청소년 시국선언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박근혜 대통령의 입장표명을 촉구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양지웅 기자

 
청소년 '국정원 대선개입 참을 수 없다'

국정원 선거개입 규탄 민주주의 수호 청소년 시국회의가 17일 오후 서울 종로 동아일보 앞에서 '국정원 선거개입 규탄 717 청소년 시국선언 기자회견'을 열고 국정원 국정조사와 남재준 국정원장의 해임, 박근혜 대통령의 입장표명을 촉구하고 있다.ⓒ양지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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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김정일에게 서해 평화구상을 밝힌 참뜻은…"

 

 

[정전 60주년 기획 인터뷰] <4>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

이재호 기자(정리)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3-07-18 오전 9:51:07

 

<프레시안>과 평화네트워크(www.peacekorea.org)가 정전 60주년을 맞이해 준비한 기획 인터뷰 네 번째 주인공은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이다. 이 전 장관은 참여정부 시절 32대 통일부 장관을 지낸 것을 비롯해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장과 사무차장 등을 역임한 최고의 북한 전문가로 손꼽히고 있다.

이 전 장관은 박근혜 대통령이 대화를 위한 대화가 북핵을 고도화시킬 수 있다고 말한 것과 관련, 대화를 위한 대화조차도 하지 않으면 북핵은 더 고도화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2009년 5월 이후 북한에 대해 고강도 제재를 하는 동안 북한은 가장 빠르고 강하게 핵을 강화시켰다"며 "대화를 위한 대화가 소용없다는 것은 말은 그럴듯해 보이지만 현 국면에서는 전혀 현실적이지 않은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2007년 남북 정상회담 대화록 공개와 관련해 이 전 장관은 대화록 공개도 심각하지만, 노 전 대통령의 말에 대해 토를 다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회담이나 협상의 목적은 자신이 이루기 위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함이다"라고 전제한 뒤 "상대방을 설득하기 위해 가장 좋은 언어, 화법을 생각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협상에서 중요한 것은 결국 합의문"이라며 "노 전 대통령이 어떤 화법으로 이야기했다는 것을 갖고 왈가왈부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는 문제에 대해 이 전 장관은 "평화협정은 평화체제라는 긴 과정 속에 중대한 전기를 마련하는 한 부분"이라며 "한반도 평화체제의 주체는 남북이다. 그런데 그 중대한 계기인 평화협정을 만드는 것은 미국과 중국을 포함한 4자"라고 주장했다. 일각에서 제기됐던 '2+2', 즉 남북이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미·중이 이를 보장해주는 것에 대해 그는 "미·중이 아무런 노력도 없이 한반도 문제에 개입할 수 있는 통로만 터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반도와 동북아가 중대한 전환기에 들어선 현 시점에 집권한 박근혜 정부의 바람직한 대북정책에 대해 이 전 장관은 북한을 국내정치적으로 이용해서는 안 된다고 주문했다. 그는 현 정권이 북한의 버르장머리를 고친다고 나서도 싫어할 국민들이 별로 없기 때문에 단기적으로는 잘했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으나, 중장기적인 상황에서는 달라질 수 있다며 "북한이든, 일본이든 국내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유혹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게 출발점"이라고 당부했다.

인터뷰는 지난 12일 프레시안 편집국에서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겸 프레시안 편집위원과 이 전 장관의 대담 형식으로 진행됐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이다.<편집자>

 

▲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의 대화록에 흥미로운 부분이 있다. 바로 이종석 전 장관의 이름이 거명되는 부분이었는데, 배석자를 제외하곤 남측 인사 가운데 유일하게 등장하는 이름이어서 흥미로웠다. 노 전 대통령이 완전한 자주의 불가능성을 설명하면서 '이종석이 보고 우리가 독자적으로 경수로를 짓지 못하는 이유를 보고서로 써내라'고 지시했다는 부분이 나온다. 이 부분은 어떤 맥락에서 나온 것인지 설명해달라.

이종석 : 나도 내 이름이 나온 걸 보고 좀 놀랐다. 그건 노무현 전 대통령 리더십의 한 측면을 보여준 것이기도 하다. 대통령 앞에서 참모가 이견을 말하기가 쉽지 않은데, 노 전 대통령께서는 참모들과 토론을 즐겼고 경수로도 그 주제 가운데 하나였다. 그때가 내 기억에, 일단은 2004년 하반기가 되면서 미국 쪽에서 이제는 경수로 건설을 완전히 중단해야 한다는 주장을 해왔다. 그에 대해서 경수로 사업비의 일부분을 맡았던 일본이나 유럽연합이 미국에 동조를 하고 있었다. 이에 따라 2004년 하반기부터는 끊임없이 경수로에 대한 대책에 대해 집중적으로 고민했었다.

프레시안 : 그래서 정부 내에서 경수로가 우리 독자적으로 짓는 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결론을 내고는 남측에서 북측에 직접 송전을 하자는 중대제안을 고안하게 된 것인가?

이종석 : 사실 노무현 대통령께서도 독자적으로 꼭 경수로를 짓자고 생각하셨던 것은 아니다. 경수로 사업이 완전히 중단되면 이후에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서 다양한 경우의 수를 생각하신 거였다. 노 대통령께서는 우리가 국민 세금 13억 달러를 쓴 상황에서 이 사업을 완전히 중단하면 막대한 천문학적 손실을 입을 수밖에 없는 상황을 아쉬워했다. 더구나 경수로는 우리의 의사에 의해서 시작된 것도 아니고 미국이 제네바 기본합의서에서 북한에 약속하고는 김영삼 정부가 이를 떠안아 시작된 것이었다.

경제적 손실보다 더 큰 걱정도 있었다. 그 당시에는 경수로를 잠정적으로 중단한다고 되어 있었는데, 미국은 그것이 아니라 아예 종료시키자고 주장을 했고 그게 종료가 되면 그건 제네바 기본합의에 따른 모든 합의는 다 중단되는 것을 의미했다. 그것은 우리가 북한 핵문제에 대해서 제동장치 하나를 완전히 잃는다는 것을 의미했다. 물론 부시 행정부는 제네바 기본합의서는 쓸모가 없다고 얘기했지만 우리는 북미 간의 합의를 쉽게 끝낼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러한 이유들 때문에 경수로 문제에 대해서 쉽게 끝낼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이에 따라 다양한 대책, 혹은 다양한 경우의 수로서 독자적인 경수로 건설 가능성도 검토는 해봤다. 우리 정부는 하여튼 그 가능성이 1퍼센트만 되더라도 모든 가능성을 검토한 다음에 결론을 찾아가는 게 우리가 어떤 하나의 정책을 수립할 때에 방식이었다. 이처럼 여러 경우의 수에 대한 검토들이 있었고, 검토 결과 결국 경수로를 우리가 독자적으로 짓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판단을 내리게 된 것이다. 이러한 보고를 노 대통령께 드렸고, 대통령께서는 좀 더 자세하게 알고 싶다고 하셔서 보고서를 제출하라고 그랬던 거였다.


프레시안 : 2005년 초에 전반적인 정세도 좋지 않았었다. 조지 W 부시는 재선에 성공했고 국무장관으로 기용된 콘돌리자 라이스는 북한을 '폭정의 전초기지'라고 했다. 북한은 이에 강력히 반발하면서 핵보유국 선언도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경수로까지 공식 종결된다면 사태가 걷잡을 수 없다고 봤던 것인가? 중대제안도 이러한 맥락에서 나온 것인가?

이종석 : 그런 상황이 종합적으로 반영되어 있었다. 그러니까 그때는 이런 생각을 했다. '경수로를 결국 종료할 수밖에 없는 쪽으로 이미 결론을 내부적으로 내리면서 핵문제에 대한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 또 하나는 '경수로에 이미 13억 달러를 쓴 상황에서 나중에 이를 다시 이용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일까?' 이런 고민도 했었다. 이러한 고민을 집중적으로 하다 보니 중대제안이 나온 거다. 북한이 핵을 포기한다면 우리가 경수로 대신에 북한에 200만 킬로와트의 전력을 제공하겠다는 것이 중대제안의 핵심이었다. 두 번째 고민에 대해서는 경수로 건설 부지인 신포에는 여러 가지 기반 시설과 부대시설도 건설 중이었기 때문에, 향후에 남북관계가 좋아지면 여러 가지 공업 시설이나 지하자원, 물류 기지 등 이런 쪽으로 이용하는 방안도 검토했었다.

 

9.19 공동성명과 BDA

프레시안 : 그 결과 9.19 공동성명에는 중대제안 내용도 들어가고 경수로도 적절한 시점에 논의하기로 이렇게 합의가 됐다. 그런데 바로 직후에 이 '적절한 시점'이 언제냐를 놓고 북한과 미국이 충돌했다. 북한은 바로 지금이 적절한 시점이라고 얘기했고 미국은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핵확산금지조약(NPT)에 복귀해서 국제사회의 신뢰를 확보한 다음에야 가능하다는 입장이었다. 이처럼 경수로 문제는 방코델타아시아(BDA) 문제와 맞물려 북미관계가 악화되는 중요한 요인이었는데, 그 논란 당시에 노무현 정부의 입장은 무엇이었나?

이종석 : 9.19 공동성명 협상 당시에 '말 대 말', '행동 대 행동'의 순서를 어떻게 잡느냐가 핵심 관건 가운데 하나였다. 북한이 핵을 포기하면 동시 행동 차원에서 다른 6자회담 참가국들이 해야 할 문제는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미국을 중심으로 북한에 대한 안전보장을 하는 건데, 안전보장이란 것은 결과적으로 북미 관계정상화 같은 것을 통해서 이루어지게 된다. 또 하나는 북한이 핵을 포기할 경우 '평화적 핵이용 문제는 어떻게 할 것인가'인데, 당시 북한은 자신의 핵 프로그램의 목적 가운데 하나는 원자력 발전에 있다고 주장했었다. 실제 그런 징후도 있었다. 그러면 북한이 자신의 핵 프로그램을 포기하면 원자력 발전도 자체적으로는 못하게 될 수 있는데, 이에 따라 경수로 제공 문제는 "적절한 시점에 논의"하기로 합의하고, 우리는 경제적 보상책으로 중대제안을 통해 북한에 200만 킬로와트의 전력을 제공할 수 있다고 한 것이었다.

물론 한국에서 200만 킬로와트의 전력이 북한으로 간다는 것은 북한으로서는 쉽게 받기 어려운 측면도 있었다. 전력난에 시달리는 북한으로서는 자신들에게 좋은 기회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한국 경제에 북한 경제가 지나치게 종속된다고 생각할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로서는 한국에서 200만 킬로와트의 전기가 북한으로 가면 전쟁은 영원히 종식될 것이고 남북한의 경제협력이 획기적으로 진전될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우리는 또한 중대제안을 통해 9.19 공동성명 합의에 추동력을 부여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어느 나라도 북한에 경제적인 보상을 하는 데에 적극적이지 않았는데, 우리에겐 북핵 문제 해결도 절박하고 남북경협과 통일 기반을 확대할 필요도 있었고 해서 중대제안을 통해 돌파구를 열려고 했던 것이다. 그런데 9.19공동성명에 나와 있는 중대제안은 한국정부가 당장 200만 킬로와트 전력을 북한에 제공한다는 건 아니다. 우리는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경수로를 짓지 않으면 200만 킬로와트 제공한다고 했고 이것을 다시 확인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경수로는 "적절한 시점"에 논의해서 합의가 이뤄지면 다시 지어준다는 거였다. 그리고 경수로가 완공되면 200만 킬로와트 송전은 중단되는 거였다. 북한이 두 가지 모두를 받을 수 있는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프레시안 : 9.19 공동성명 관련해 또 한 가지 질문하고 싶은 게 있다. 최근 북한에서 '조선반도 비핵화' 를 강조하고 있는데, 과거의 맥락을 짚어봐야 할 것 같다. 9.19 공동성명이 발표된 직후에 미국측 수석대표였던 크리스토퍼 힐은 "이 합의는 미국이 한국에 미국의 핵무기를 재반입하는 권리까지 제약한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이에 대해 북한이 반발했던 기억이 있는데, 합의 당시에도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개념이나 목표를 둘러싸고 진통이 있었을 것 같다. 예를 들면 미국 핵무기의 재반입 문제, 핵우산의 문제 등이 있지 않았나?

이종석 : 9.19 공동성명과 6자회담에서 우리가 목표했던 것은 북한의 비핵화였다. 그런데 기본 전제에는 한반도 비핵화가 있었다. 미국도 한반도 비핵화를 원했다. 한국도 현재 플루토늄 생산과 재처리도 못하고 있지 않나? 한국은 현재 핵무기로 가는 길이 첩첩산중으로 차단되어있다. 결국 9.19 공동성명에 나온 한반도 비핵화는 북한의 비핵화뿐만 아니라 한국의 핵무기 개발 금지, 그리고 주한미군의 핵무기 재반입 금지를 포괄하는 것이다.

다만 핵우산은 추상적인 개념이기 때문에 철수한다는 개념을 적용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그 문제를 해소하는 방향은, 2007년 2.13 합의에서 동북아 다자안보협력으로 6자회담에서 문제의식의 지평을 넓힌 것처럼, 결국 공동 안보의 틀을 만들어감으로써 북한이 남한의 미국 확장 핵 억제(핵우산)에 대해 자연스럽게 문제를 제기할 이유가 없어지는 상황을 만들어가야 하는 것 아니었나 싶다. 다만 한반도 비핵화에는 주한미군의 핵무기 반입도 안 되는 것이다.

당시 9.19 공동성명에 대해 한·중·일·러·북은 각국이 느끼는 차이가 있었겠으나 모두 만족했다. 미국도 미국의 협상파들은 어느 정도 만족을 했는데 네오콘들은 북한을 찍어 누르지 못했기 때문에 만족스럽지가 않았던 것이다. 그 분위기가 미국에 영향을 미치면서 9.19 공동성명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크리스토퍼 힐의 강경 발언을 나온 게 아닌가 싶다. 또한 BDA 사건도 나오게 됐다.

프레시안 : BDA 문제에 대해 짚고 넘어갈 것이 있다. 미국 재무부에서 BDA를 돈세탁 우려 대상으로 지정한 것이 9.19 공동성명 채택 전인 9월 15일이었다.

이종석 : BDA 문제가 본격적으로 알려진 것은 9.19 공동성명을 공표한 후 며칠 뒤였다.

프레시안 : 그 부분이 명확하게 정리될 필요가 있는 것이, 미국 쪽은 BDA 결정을 먼저하고 9.19 공동성명이 나중에 나온 것으로 인지하고 있다. 따라서 미국의 네오콘들은 9.19를 방해하기 위해 BDA를 제기한 것은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이종석 : 네오콘들이 9.19 공동성명을 반대하기 위해 BDA 문제를 제기한 것은 아니라고 본다. 다만 9.19 공동성명이 나왔으면 이를 존중해야 하는데, BDA 문제를 터뜨려서 결과적으로 9.19 공동성명을 유린했다. 9.19 공동성명의 초안이 9월 19일에 나온 게 아니다. 그 이전에 이미 북한과 미국 사이의 관계개선, 즉 경제관계를 개선하고 외교관계를 정상화하는 일련의 스케줄이 담겨 있는 것이고, 이러한 일정으로 북한의 비핵화로 간다는 것이었다.
 

▲ 북핵문제 해결의 이정표를 세운것으로 평가받는 9.19 공동성명이 나온지 7년이 지났지만 북핵 문제 해결은 여전히 요원해 보인다. 사진은 성명 합의 직후 6자회담 참가국 수석대표들이 손을 맞잡은 모습. 왼쪽부터 당시 수석대표였던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 사사에 겐이치로 일본 외무성 아시아대양주 국장, 우다웨이 중국 외교부 부부장, 송민순 외교통상부 차관보,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 알렉산드로 알렉세예프 러시아 외무부 차관. ⓒ연합뉴스


미국이 이를 알고도 BDA 문제를 준비했다면 더 큰 문제라고 본다. 9.19 공동성명은 19일 당일에 나온 것이 아니다. 굉장히 여러 번 협상을 통해 문항을 조정했다. 이때 마지막에서 문제가 됐던 것은 적절한 시기에 경수로 문제를 논의한다는 것밖에 없었다. 나머지 것들은 대체적으로 합의가 됐던 것이었다. 즉 미국과 북한 사이에 관계개선, 경제관계에 대해서는 공동성명 발표 전에 합의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사정이 이랬다면 미국은 대북 적대시 정책으로 비춰질 수 있는 BDA 문제를 꺼내 들지 말았어야 했다.

프레시안 : BDA의 영향을 개인적으로 가장 많이 받은 분이 이종석 전 장관이 아닌가 싶다. BDA 문제로 9.19 공동성명이 이행되지 않았고 6자회담도 열리지 않으면서 결국 북한이 탄도미사일 시험과 1차 핵실험을 했다. 그 여파로 통일부 장관직을 그만두게 되었는데.

이종석 : 그렇게도 볼 수 있지만, 정작 중요한 문제가 있다. 사람들이 약간 착각이나 오해를 하고 있는 부분이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대화를 위한 대화는 북핵을 고도화시킬 수 있다고 한 적이 있다. 말은 맞는데, 북한과 대화하지 않으면서 압박하는 동안 북핵은 훨씬 더 빠르고 강력하게 고도화됐다. 지난 2009년 5월 이후 북한에 대해 고강도 제재를 하는 동안 북한은 가장 빠르고 강하게 핵을 강화시켰다. 당시 추가적 핵실험뿐만 아니라 농축 우라늄까지 본격적으로 가동하게 됐다. 2006년 10월 1차 핵실험이 발생하게 된 것도 BDA 사태 이후 핵문제가 다시 표류하게 됐고 6자회담이 무산되면서 북한이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마음을 먹고 핵실험으로 간 것이다.

엄밀히 말해 대화를 위한 대화조차도 대화를 아예 하지 않은 것보다 북핵을 억제하는데 효과가 있었다. 6자회담을 하게 되면 서로 견제하고 의심하는 것이 공론화되기 때문에 북한이 함부로 움직이기가 어렵다. 따라서 대화를 위한 대화가 소용없다는 것은 말은 그럴듯해 보이지만 현 국면에서는 전혀 현실적이지 않은 것이다. 부시의 강경정책이 압도적으로 북한을 밀어붙이다가 북한 핵실험이 발생하고 그에 대한 반성으로 2.13합의가 나온 것이 아니었나.

오바마 대통령은 2008년 대통령 선거 유세 때 부시가 북한에 대해 일방적인 압박만 하다가 북한의 핵 능력만 강화시켰다고 말했다. 부시의 강경정책 때문에 북한이 핵실험을 했다고 정확히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런데 당시 한국 야당(한나라당)은 포용정책이 북핵 실험을 초래했다고 비난했다. 이건 정치적인 해석이다.

국민의 평화를 책임지는 것이 정부

프레시안 : 2006년 여름 북한 미사일 발사 징후가 농후해지기 시작했고 국내적으로 논란이 있을 때 이 전 장관은 쌀 지원을 보류하겠다는 카드를 꺼냈다. 최고의 북한 전문가로서 그게 북한을 움직이는 레버리지가 안 될 것을 알고 있었을 텐데, 당시 북한이 미사일 발사를 하지 않을 것이라고 기대한 것인가?

이종석 : 당시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시험발사는 곧 핵실험으로 가는 가교라고 볼 수 있었다. 정부는 장거리 미사일 시험발사가 미사일로 끝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핵실험까지 갈 것이기 때문에 당시 통일부 장관이었던 내 판단으로서는 북한에 단호한 입장을 보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사전에 북측을 설득하면서 통일부장관 목이 10개라도 장거리 미사일 시험발사를 하면 쌀 지원은 할 수 없을 것이라는 점을 여러 차례 밝혔다. 그러나 당시 무조건 쌀 지원을 않겠다는 것이 아니었다. 북핵 실험을 저지할 수 있는 길, 즉 북한이 6자회담의 장으로 복귀를 약속하면 쌀 지원을 하겠다고 했다.

또한 국민 세금을 사용해 쌀 지원을 하는 만큼, 국민 정서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시험발사로 인해 국민들이 불안해했다. 국민들의 평화를 책임지는 정부가 이 상황에서 일방적으로 쌀을 지원하는 것이 맞는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결국 당시 쌀은 차관 형태였지만, 미사일 시험발사를 하고 북한이 핵실험으로 가면 안 되기 때문에, 그런 입장을 내놓은 것이다. 물론 우리가 쌀을 주지 않겠다는 것이 북한에 약효가 먹힐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서는 아직도 후회하지 않는다. 핵실험까지 가는 과정을 눈앞에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만약 그런 상황에서 쌀을 지원했다면 나라 전체가 큰 홍역을 치르게 되었을 것이다. 비판을 듣더라도 감당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봤다. 국민들의 세금으로 운영하는 정부는 최소한의 책임성이 있어야 한다.

프레시안 : 노무현 정부에 아쉬웠던 부분이 하나 있다. 왜 남북 정상회담을 빨리 못했나? 부시 1기 때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정상회담에 대해 부정적인 발언도 많이 했다. 드러난 모습만 봤을 때 노무현 정부는 임기 후반부가 되어서야 정상회담에 신경을 쓰는 것 같았다.

이종석 : 노무현 전 대통령이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에게 정상회담을 할 용의가 있다고 친서를 통해 밝힌 것은 2003년 가을이다. 당시 문성근 씨를 특사로 보냈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은 북미 관계가 핵문제로 틀어져있는 상황에서는 북한이 우리를 상대로 정상회담을 할 가능성이 낮다고 생각했다. 2000년 6.15 공동선언이 있었지만 이후 북미관계 악화되면서 남북관계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지 않았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 전 대통령은 정상회담에 대한 의지가 있었다. 다만 2003년 가을에 의지표명을 했지만 당시는 정상회담의 여건이 무르익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그러다가 정상회담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이 2005년 5월이었다. 그래서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6월에 특사로 북한에 갔다. 정 장관은 대통령의 친서와 중대제안을 갖고 올라가서 김정일 전 위원장에게 직접 이야기했다. 우리가 제안한 것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6자회담에 복귀해서 6자회담 타결을 위해 노력하자는 것이었다. 또 하나는 남북 정상회담이었다. 정상회담과 관련해 김 전 위원장은 상당히 긍정적으로 반응했다. 그래서 2005년 가을을 남북 정상회담의 목표 시점으로 잡고 움직였다.

같은 해 8월에 김기남 노동당 비서를 단장으로 하는 북한 대표단이 8.15 행사 참석 차 남한에 와서 노 전 대통령을 만났다. 그리고 김용순의 사망으로 대남총책이 된 림동옥 통일전선부 제1부부장(곧 부장이 됨), 정동영 장관, 저 이렇게 세 명이 워커힐 호텔에서 별도로 회담했다. 내용은 북핵 문제와 정상회담이었다. 그랬더니 북측은 '정상회담 하겠다, 구체적인 것은 기다려달라'고 했다. 그래서 우리는 가을로 생각하고 있었다. 이 와중에 제3국인 러시아 정부가 러시아에서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하는 것이 어떠냐는 이야기도 나왔었다. 여기에 대해 우리는 남북이 이미 협의를 진행시키고 있는 사안이 있으니 괜찮다고 했다. 실제로 정상회담을 가을에 할 것으로 생각하고 준비를 진행시켰다.

그런 상태에서 9.19 공동성명이 이루어졌고 정상회담을 하려고 했다. 그런데 BDA 문제가 터졌다. 이후 북한은 우리가 정상회담 얘기를 하면 계속해서 기다려달라고 했다. 북한이 미국과 대결적인 상태에서 남북정상회담은 힘들다고 봤던 것이다. 노 전 대통령 역시 북미 관계가 악화되는 상태에서 정상회담은 여의치 않다고 봤다.

결국은 BDA 문제가 2007년 2.13합의로 타결되고 그해 6월에 미국은 BDA에 동결되었던 북한 소유 2400만 달러를 북한에 되돌려줬다. 북미 관계가 새로운 관계로 접어들게 됐다. 남북정상회담을 할 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진 것이다. 실제로 2007년 6~7월 남북이 만나서 정상회담에 합의를 봤다. 그리고 나서 원래는 8월에 하려고 했는데 북한에 홍수가 나서 10월로 연기된 것이다. 당시 정부는 정상회담을 할 수 있는 시기와 여건을 기다렸다. 아쉽게도 그러다 보니 임기 말이 되고 말았다.

프레시안 : 노 전 대통령이 BDA 사태에 대해 강한 유감을 표명한 것도 성사 일보 직전까지 갔던 남북정상회담이 BDA 문제로 미뤄진 것도 영향을 미친 것인가?

이종석 : 그런 부분도 있었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이 더 유감스럽게 생각했던 점은 우리는 온갖 전력을 다해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 BDA 문제를 꺼내든 미국은 그렇지 않다고 봤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중국과 협력해서 9.19 성명도 만들었고. 남한 외교에서 가장 우선순위도 북핵문제였다. 그러면 미국도 최소한 북핵 문제에 대해 우선순위를 뒀어야 한다고 봤다. 만약 미국 외교 문제에서 북핵이 우선순위였다면, BDA 사태를 일으키지는 않았거나 조기에 해결했을 것이다.
 

▲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 ⓒ프레시안(최형락)

노 전 대통령은 가장 절박한 것이 핵문제라면 핵부터 풀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북핵 문제 해결이 BDA 사태 때문에 틀어진 것이다. 그래서 2005년 11월에 당시 미국 대통령인 부시를 만나서 북핵문제부터 풀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그런데 부시는 '북한이 우리 달러를 위조하는데 가만히 있을 수 있겠냐'고 말했다. 당시 참모진은 노 대통령한테 보고를 할 때, 북한 외교관들이 위조지폐를 유통한다는 혐의는 분명히 있다고 했다. 그런데 위조지폐를 만든다는 것은 쉽게 입증이 안 됐다. 그래서 화폐 제조에 대해서는 그대로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그런데 부시가 저렇게 말하니까 결국 참모진이 잘못 보고한 꼴이 되고 말았다.

이후 미국이 2007년 2.13 합의를 통해 북핵문제 해결을 위해 나선 것에 노 전 대통령은 매우 기뻐했다. 어쨌든 북핵문제에서 BDA 사태가 걸림돌이 된 것은 당시로서는 유감이었다. 이 사태가 동북아시아의 안정과 평화의 큰 계기를 마련할 수 있는 물꼬를 완전히 역진시킨 측면도 있다.

협상에서 중요한 것은 '합의문', 결과 놓고 판단해야

프레시안 : 얼마 전 공개된 2007년 정상회담 대화록을 보면 노 전 대통령이 좀 저자세가 아니었냐는 지적이 있다. '이웃과 친구가 되기 위해 다른 이웃을 욕하지 말라'는 말도 있는데, 노 전 대통령이 미국이나 일본을 비판하기도 했다. 그걸 보면서 노 전 대통령이 2003년 5월에 미국에 갔을 때 부시 행정부의 환심을 사기 위해 했던 여러 가지 친미적인 발언들이 떠오르기도 했다. 정상회담에서 노 전 대통령이 보여준 스타일을 총괄적으로 평가한다면?

이종석 :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이 공개된 것이 심각한 문제라고 보지만, 노 전 대통령의 말에 대해 하나하나 토를 다는 것도 불쾌한 일이다. 회담이나 협상의 목적은 자신이 이루기 위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함이다. 상대방을 설득하기 위해 가장 좋은 언어 구사, 화법 등을 생각하는 것이다. 더군다나 정상회담에서는 이를 위해 진폭이 큰 대화를 하게 된다.

그런데 협상에서 중요한 것은 결국 합의문이다. 합의가 아니라 회담의 화법을 문제시하는 것은 인격 모욕적인 것이다. 특히 정상회담 대화를 어떤 경우에도 공개하지 않는 것은 그 자리에서 나오는 화법이 다양하기 때문이다. 물론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과장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합의가 아니기 때문에 유효하지 않다. 따라서 유효하지도 않은 문제들, 노 전 대통령이 어떤 화법으로 이야기했다는 것을 갖고 왈가왈부하는 것 자체가 문제가 있다.

협상에 대한 평가는 협상의 결과를 보고 이야기해야 한다. 상대방으로부터 뭔가 얻어내야 할 것이 많다면, 상대방을 설득시키기 위해 상대방이 듣기 좋아할 만한 발언도 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어떤 합의를 이뤄냈느냐는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의 발언이나 화법에 대해 문제를 삼는 것은 곧 우리가 해서는 안 되는 논쟁 속으로 빠져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노 전 대통령이 당시 정상회담에서 밝힌 서해평화협력지대, 공동어로구역 설정은 서해를 평화의 바다로 만들고 NLL을 제대로 지켜나가면서도 이 지역에서 더 이상 희생이 따르지 않는 방법을 만들기 위해 골똘히 연구한 것이다. 아무리 NLL을 열심히 지켜도 여기에 대해 남북이 이견이 있는 한 결국 군사적 충돌은 불가피한 것 아닌가? 만약 NLL 인근의 지역에 양쪽 군대가 못 들어가게 되면 충돌이 나서 사람이 죽어나가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인식에서 비롯됐다.

프레시안 : 지금 새누리당, 국정원, 국방부, 일부 언론 등에서 당시 정상회담 대화록 어디에도 등거리, 등면적 이야기가 안 나온다는 점을 부각시키고 있다. 그 이야기가 없었기 때문에 노 전 대통령이 김정일 전 위원장의 제안에 동의한 것처럼 여론을 몰아가고 있다. 등거리 등면적 표현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의 차이가 중요한 문제인가?

이종석 : 중요하지 않다. 대통령이 김정일 전 위원장에게 등거리 등면적을 이야기할 만큼 구체적인 것까지 접근하지 못한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이 당시 김 전 위원장에게 준 보고서가 세 가지인데 거기에 서해평화협력지대, NLL을 중심으로 우리가 주장하는 등면적의 공동어로 구역이 있었다. 참고로 NLL에서 공동어로 구역을 여러 군데 정할 때 모든 구역이 등거리 등면적이 되는 것은 아니다. 연평도 서쪽 같은 경우 NLL이 북한 쪽에 붙어 있기 때문에 어로 구역이 북한 쪽으로 많이 치고 올라가는 데 한계가 있다. 이런 경우는 연평도 부근은 좀 아래쪽으로 내려오고, 백령도 동쪽에 있는 곳은 좀 위쪽으로 올리는 방식을 취했다. 이렇게 하면 전체적으로 등면적이 된다. 이런 식으로 만든 지도를 같이 줬다.

당시 남북 정상회담에서 합의문 작성은 실무진이 했다. 처음에 남북 양측 실무자들이 만나서 공동어로, 공동 수역들을 표시한 지도를 10.4 선언문에 붙이자고 했다. 그래서 우리가 가져온 안을 북한에 보여줬다. 그랬는데 북한이 우리가 만든 지도에서 NLL 위쪽에 표시되어 있는 면적을 모두 지웠다. 이에 우리는 이를 거부했고 양측의 신경전이 계속됐다. 결국 합의를 보지 못하고 이 문제를 국방장관 회담으로 넘기게 된 것이다.
 

▲ 지난 2007년 10월 3일 고 노무현 전 대통령과 고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이 회담을 하고 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그 당시 등거리, 등면적 논란은 정상회담 합의문을 만들면서 남북의 실무자들 사이에서 이미 발생한 것이었다. 결론적으로 대통령이 그 말을 하느냐 마느냐는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프레시안 :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긴급 성명에서도 노 전 대통령이 NLL 포기 발언을 한 것 아니라는 취지의 발표를 했다.

이종석 : 정상회담의 내용은 합의문에도 나와 있다. 합의문 이외에 뭐가 더 필요한가? 만약에 노 전 대통령이 정말로 NLL 포기했다면 북한이 이걸 다 이용하고 우려먹었겠지, 지난 5년간 가만히 있었겠나. 오히려 북한한테 노 전 대통령의 발언을 우려먹으라고 새누리당이 부추기고 있는 이적행위를 하고 있는 셈이다.

프레시안 :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차장으로, 이후에는 통일부 장관으로 계시면서 국가안보 기구의 역할에 대해서도 고민을 많이 했을 것 같다. 요즘 국정원과 국방부가 하는 행동을 보면 여러 생각이 들 것 같은데?

이종석 : 국정원은 존재 이유를 스스로 부정했다. 국정원과 국방부가 명예를 스스로 훼손시키는 중대한 자해행위를 한 것이다. 부끄러운 일이다. 나라의 기강을 흔든 것이다. 왜 본인들이 스스로 정치적 논란에 끼어드나. 그것도 사실관계까지 왜곡하면서 말이다.

평화협정은 평화체제의 중대한 '일부분'

프레시안 : 한반도 평화체제 얘기로 넘어가겠다. 참여정부 5년을 관통하는 평화협정 전략의 핵심은 무엇이었나?

이종석 :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은 참여정부의 국정 핵심과제였다. 계기가 있을 때마다 이 문제를 국제사회에도 이야기했다. 하지만 워낙 북핵문제가 엄중하다 보니 평화체제 이야기가 공론화되기 힘들었다. 그런 와중에 2005년 여름쯤 미국에서 평화체제를 논의할 의향이 있다는 반응이 나왔다.

그래서 우리는 6자회담에서 평화체제를 거론하는 데 적극 나섰다. 이런 맥락에서 9.19 공동성명에서 한반도 평화체제를 위한 별도의 포럼을 만든다는 것을 넣게 됐다. 그때 북한이 우리를 평화체제 논의의 당사자로서 인정하기 시작했다. 그전까지 북한은 북미평화협정 체결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더불어 한미 간 평화체제 논의도 있었다. 평화체제와 관련된 개념을 만들었고 NSC에서 논의했다. 이에 대한 개념 페이퍼를 미국에 전달하기도 했다. 그런데 9.19 공동성명 이후 상황이 악화되니까 2005년 가을부터 논의가 시들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평화체제에 대해 언제든지 논의할 수 있는 기반을 그 때 만들었고 이후 2007년 2.13 합의 때는 동북아 다자안보협력이라는 틀까지 만들게 된 것이다.

프레시안 : 노무현 정부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한국 정부의 기본 입장은 남북한이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미국과 중국이 이를 보장한다는 '2+2'였다. 그런데 9.19 공동성명에서는 "직접 관련 당사국들"이라는 표현이 등장했고, 이는 곧 미국을 포함한 3자, 혹은 중국까지 포함한 4자로 간주됐다. '2+2'가 3자, 혹은 4자로 전환된 이유는 무엇인가?

이종석 : 기본적으로 한반도에서 평화체제를 확립한다는 것, 평화협정을 맺는 것은 정전체제를 해소하는 문제다. 정전체제를 해소하는 방식은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하나는 역사적 원인을 해결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실체적인 힘의 관계에서 평화체제를 만드는 것이다. 역사적 원인 해소라는 것은 정전체제를 만들어 낸 국가, 즉 남·북·미·중 4자가 원인을 해결해야 하는 것이다.

한반도의 실제적인 힘이라는 측면에서 살펴보면, 미국이 이미 한반도에 들어와 있고, 중국 역시 현실적인 힘으로 존재한다. 한반도 정전체제를 해소하는 것이 평화체제라고 한다면 이 구조를 받치고 있는 다리가 4개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일각에서는 우리가 한반도 평화의 주인공이기 때문에 남북한만 평화협정을 체결하면 된다는 사고를 갖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이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한가? 당위적으로는 남북한이 한반도 평화의 주인공이라고 생각하고 하면 된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현실적인 힘으로 존재하고 있는 미국, 중국과 관계는 어떻게 처리해야 하나? 미국이 별도로 북한과 협의하면 이는 결과적으로 북·미 평화협정이 되기 때문에 남한이 결코 원하는 방식이 아니다. 그래서 정전체제에 실제적이고 역사적인 원인을 제공했고 현재까지도 관계가 되어있는 핵심 당사자인 4자가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2+2는 남북한이 합의하고 미국과 중국이 보장한다는 것인데, 이런 주장이 역대정부의 기조였으며 참여 정부 초기까지 논란이 많았다. 2+2 이야기가 나온 원인은 북·미 평화협정에 대한 대응으로 남북 평화협정을 체결해야 한다는 주장과 '평화협정은 남북이 해야지 누가 하느냐'에 대한 문제 제기도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미·중은 아무런 노력도 없이 한반도 문제에 개입할 수 있는 통로만 터주는 것이다. 보장한다는 것은 도장하나 찍어주고 별 책임 없이 언제든지 이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프레시안 : 한반도 평화체제를 이야기하는 사람들 중에는 평화체제와 평화협정을 혼용해서 사용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둘 사이의 관계는 어떻게 정립하는 것이 바람직한가?

이종석 : 평화협정은 한반도 평화체제 실현을 위한 아주 중대한 사건이지만 평화협정이 이루어졌다고 평화체제가 바로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물론 평화협정을 통해 많은 것들을 합의하고 실현할 수 있지만 평화체제는 그러한 것들이 장기적으로 이어지기 위해 더 많은 것들을 해나가야 한다. 즉, 평화협정은 평화체제라는 긴 과정 속에 중대한 전기를 마련하는 한 부분이다. 평화체제의 부분집합이 평화협정이라는 말이다. 물론 한반도 평화체제의 주체는 남북이다. 그런데 그 중대한 모멘텀인 평화협정을 만드는 것은 미국과 중국을 포함한 4자다.

4자 평화협정이라는 것이 하나 있고 그 밑에서 필요하다면 미국이 북한을 공격하지 않겠다는 것을 확인하는 협정도 가능할 수 있다. 즉, 협정 안에서 부속 협정도 맺는 방식을 생각할 수 있다. 평화협정의 핵심은 결국 휴전선이 일반 경계선이 되는 것이다. 그 일반 경계선은 누가 지키나? 남북이 지키는 것이다. 곧 남북이 주체적으로 평화를 관리하는 것이다.

프레시안 : 4자 평화협정을 통해 평화체제의 주체를 남북한으로 자리매김하는 그러한 전략으로 이해된다. 평화체제 논의 시 핵심 쟁점 가운데 하나는 주한미군 문제인데, 일각에서는 주한미군이 평화 유지군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이종석 : 우선 평화유지군이라는 것은 아직 평화로운 상태가 아니라는 말이므로 평화협정 이후 평화유지군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남북이 군비 통제나 축소에 의해 어느 정도까지 실현이나 합의, 실천까지가 포함되어야 가능한 일이다. 잠정적으로 여러 나라에서 군대가 들어와 있는 경우도 있지만 그런 것 자체가 평화체제를 만들 만한 능력이 없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프레시안 : 평화체제를 통해 북미 적대관계를 해소하면서, 주한미군 문제를 한미 간의 협의로 하는 것으로 북한에 양해를 받는 전략으로 가야하나?

이종석 : 양해받을 것도 없이 주한미군이 북한에 적대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만 합의하면 된다. 그러면 그 다음부터는 주한미군의 존재 여부에 대해서는 우리와 미국이 해결할 일이 되는 것이다. 북한과 상관없이. 더불어 유엔사는 평화체제가 만들면 해체될 것이다. 유엔사라는 것 자체가 정전상태이기 때문에 있는 것 아닌가? 전쟁 상태가 해소되는 것이 평화 상태고, 평화체제가 되면 당연히 유엔사는 물러날 수밖에 없다.
 

▲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많은 국민들이 평화협정이 체결되면 주한미군의 지위도 불안해지고, 결과적으로 대한민국 안보가 불안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다.

이종석 : 평화협정을 체결하는 과정에서 대한민국의 안보는 오히려 튼튼해질 것이다. 평화협정을 체결한 이후 남북한이 군비 통제하는 과정이 있을 것인데, 이는 곧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줄어든다는 뜻이기 때문에 안보가 튼튼해진다는 뜻이다. 또한 평화협정에는 당연히 북한의 불가침 확약도 포함된다.

안보라는 것은 국방력을 강화시켜서 지켜야 하는 측면도 있지만 협상을 통해 전쟁의 위험성을 낮추려는 노력도 있다. 더욱이 평화협정이 체결되면 전쟁의 위험성을 극도로 낮춰버릴 수 있다. 게다가 한국군의 정예화는 지속적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당연히 안보는 강화된다.

사람들이 원래 있던 것에서 없어지는 것만 생각하지, 새롭게 형성되는, 전쟁을 방지할 수 있는 수많은 기제가 생긴다는 것에 대해서는 사실 잘 생각을 못한다. 그러다 보니 우려를 갖고 있는 것 같다. 진통이 따르더라도 이제는 정전체제에서 평화체제로 전환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게 우리 안보도 튼튼히 하고 대한민국의 미래도 밝게 비춰줄 것이다.

김정은, 병진노선을 들고 나온 이유


프레시안 : 최근 북한이 경제건설과 핵무력건설 병진노선을 채택했는데, 이에 대해서 어떻게 평가하나?

이종석 : 1960년대 나온 국방-경제 병진노선과 현재의 병진노선은 다르다고 본다. 예전 병진노선 담화를 내놓을 때 북측이 선전했던 것은 경제가 조금 희생되더라도 국방을 강화해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지금은 핵을 통해 재래식 군비를 축소해서 군비 부담을 줄이고 이를 경제로 돌릴 수 있다는 식으로 말한다. 담론 구조가 다르다.

물론 개인적으로는 현재 북핵이 재래식 무기를 감축할 수 있을 만한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핵의 실존화된 능력이 아직 있다고 보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은 이미 선전 도구로서 병력을 감축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북한은 자신들이 핵이 있으니까 가능하다고 말한다.

사실 현재 북한의 군대 자체가 대단히 비효율적이다. 110만 명의 병력을 갖고 있는데 이는 북한 전체 인구에 5%에 해당한다. 따라서 현재 병력을 축소시켜 이를 노동현장으로 돌려야 경제 발전이 가능하다. 이런 상황에서 군대를 줄이는 명분으로 핵을 삼는 것이다. 결국 과거에는 국방비 투자를 많이 하기 위해 병진노선을 이야기한 것이고 지금은 병력을 감축하는 논리로, 국방비 일부를 경제적 영역으로 돌리려는 명분으로 이야기하는 것이다.


프레시안 : 어찌보면 북핵은 북한 군부를 잡기 위한 것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최근 김정은 1년간 군 인사의 세대교체가 빠르고 폭넓게 진행됐다. 이런 것 역시 병진노선을 선택하기 위한 내부 작업으로 해석할 수 있나?

이종석 : 일단 북한이 김정은 체제를 군에서 확립하는 과정이라고 봐야 할 것 같다. 또 한편으로는 세대교체의 의미도 있다. 젊은 지도자의 탄생 이후에 맞춰지는 것으로, 아마 군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도 세대교체를 단행하고 있을 것이다. 김정은 정권이 1년 정도 지나면서부터 더 자신감이 생긴 것 같다. 지난번 북한이 핵실험 하고 위기를 고조시킨 것이 고도로 계산된 전략인지 자만심인지는 모르겠지만, 자만심으로 갈 위험성도 있다. 세대교체가 작년부터 계속된 것은 아마 자기 체제, 김정은 체제를 만드는 과정이 아니겠나 싶다. 꼭 병진노선과 관련된 것만으로 보기는 힘들 것 같다. 물론 현재 김정은에게는 경제를 제대로 살리는 것이 관건이라고 본다.
 

▲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지난 3월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북한은 이 회의에서 경제건설-핵무력 건설 병진 전략을 발표했다.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우리 정부를 비롯해 몇몇 사람들이 북한의 병진노선을 두고 국방력 강화의 일환으로 해석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것보다는 현재 상태에서 핵보유의 정당성을 강조하면서 한편으로 불필요하게 많은 재래식 군비 부분을 축소시키면서 그 부분을 경제 영역으로 돌리려는 명분으로 활용되는 측면이 더 강하다고 본다.

프레시안 : 김정은은 핵을 통해 재래식 군축을 한다는 주관적 자신감이 있는 것 같다. 만약 북한이 이번 병진노선을 통해 재래식 군축을 같이 하자고 한다든지, 또는 개혁개방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는 않더라도 경제발전 시도할 테니 협력하자고 할 때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이종석 : 남북한 군비 축소는 운용적 수준에서의 군비 통제가 있고 또 하나는 구조적 통제가 있는데 우선 초기에는 운용적 수준의 군비통제를 하게 될 것이다. 상호간 군사 대화를 하고 연락망을 놓고 군사훈련을 참관하고 훈련 횟수를 조정하고 비무장지대 초소(GP)를 철수하고 휴전선을 정상화하는 것 등 운영상의 군비통제가 먼저 될 것이다. 물론 여기에도 시간이 많이 걸린다.

이러한 작업 이후에 병력과 무기 감축 문제가 나올 것이다. 군사력 감축을 의미하는 구조적 군비통제는 현 상태에서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이미 남북한 군사력 사이에 비대칭 상태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북한이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지만 핵을 갖고 있으면서 우리한테 군비 감축하자고 하면 어떻게 똑같이 감축할 수 있겠나?

다만 시간이 좀 오래 걸리겠지만 운용적 군비통제를 높은 수준까지 해 나가면 그 과정 속에 신뢰가 생길 것이다. 그 신뢰에 기초해서 실제 구조적 군비통제를 하는 방법이 나올 것이다. 지금은 아이디어 내기 힘들다. 북한이 재래식 무기를 감축하자고 해도 이미 비대칭 상황이 됐기 때문에 어렵다. 어떻게 보면 지금 상황에서 그런 이야기들은 그야말로 김칫국부터 마시는 꼴일 수 있다. 일단 운용적 군비통제부터 이야기한 뒤에 거기서 쌓인 협상의 노하우와 신뢰와 지혜를 갖고 구조적 군비통제로 나아가야 한다. 또 구조적 군비 통제 이야기를 진행시킬 수 있을 때, 북한이 핵을 포기할지 아니면 확실히 가진 건지, 아니면 애매모호하게 가진 건지 등 그 시점에서의 북한 상태를 보고 군비통제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전시작적권 환수와 평화체제의 상관성?

프레시안 : 노무현 정부 때 가장 뜨거운 논란 중 하나가 전시작전권 환수문제였다. 평화체제 구축이라는 맥락에서 전작권 환수가 어떤 의미를 가졌던 것인가? 전략적, 정책적 측면에서 전작권 환수가 평화체제와 어떤 관계였나? 전작권 환수가 평화체제로 가는 필수적 과정이었나?

이종석 : 참여정부 때 전작권 문제를 이야기했을 때 평화체제 구축과 관련된 것은 부차적이었다. 사실 정상적인 주권 국가라면 자기 능력으로 자기 나라를 지켜야 하지 않나? 그러기 위해 능력이 된다면 전작권을 찾아와야 한다고 생각했다. 국가주권의 상징 중의 하나가 군사주권 아닌가.

전작권 환수는 나라가 제대로 서기 위해 가장 기초적인 것으로 봤다. 또 우호적이고 균형적인 한미동맹 관계를 갖는 것을 위해서도 필요했다. 지나치게 대미 의존적인 것이 아니라 보다 우리 목소리를 내면서 동맹관계로 나아가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전작권 환수가 자꾸 늦춰지는 것이 유감스럽다.

노 전 대통령이 전작권 환수를 임기 내에 하려는 것은 아니었다. 당시 그는 군 관계자들을 불러 모아 전작권을 환수하기 위해 대북 억제력을 갖출 수 있는 시간이 언제냐고 물었다. 이 때 나오게 된 결론이 2012년에 해도 좋겠다는 것이었다. 노 전 대통령은 전작권을 찾아와서 국가주권의 기본요소인 군사 주권을 갖는 것 자체가 국방비를 높이는 것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대한민국의 과제가 많다고 봤는데 군사 주권을 가져오는 것이 국방비가 좀 늘어나는 것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프레시안 : DJ-노무현 정부 10년간 국방비가 정확히 2배가 늘었다. 오히려 이명박 정부 때 국방비 증가율이 떨어지는 모습도 보게 됐다. 북핵을 해결하려면 군축에 대한 적극적인 사고도 있어야 할 것 같다. 결국 북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북한에 대한 강력한 억제도 가져야 하고 군축도 해야 하는 딜레마적인 상황이다. 어떻게 접근해야 하나?

이종석 : 딜레마가 있는 건 사실이다. 참여정부 때 국방비를 크게 늘렸던 것도 사실이다. 이것이 포용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보수파의 반발을 염두에 둔 것 아니냐는 해석도 한편으로는 일리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가장 본질적인 이유는 자주국방 의지였다.

노 전 대통령은 대북 문제와 별도로 자주국방 의지가 강했다. 우리 몸집에 맞는 능력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노 전 대통령이 가장 싫어했던 말이 '인계철선(引繼鐵線, 원래 의미는 폭탄에 연결돼 건드리면 터지는 가느다란 철사를 뜻하는 것이었으나 오랜 시간 동안 한강 이북에 배치된 주한미군의 존재를 비유하는 데 쓰였다. 유사시 미군의 자동 개입을 위해 남겨둔 군대라는 인식이 있었기 때문이다.)'이었다. 미군의 생명을 담보로 우리 안보를 지키자는 것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봤다.

대북 억제와 관련해 우리가 억제력을 강화하면서 남북한의 화해협력을 추진하는 것은 모순적일 수 있다. 그러나 지금 당장은 과도기다. 대화와 억제를 병행하면서 지혜로운 방향을 찾아야 한다. 문제는 국내 정치적 요소들에 의해 남북관계가 좌지우지되는 측면들이 많았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정확한 방향성을 이야기하기 어렵다. 대북 억제력과 남북화해가 증진됐을 때, 이 관계를 어떻게 볼 것이냐에 대해 이야기하기가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남북관계라는 요소를 중심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국내 정치적 요소들이 치고 들어와 안보 문제가 지나치게 정치 논란으로 비화되면서 어려움이 커졌다.

남북관계라는 요소만 갖고 이야기를 단순화시켜서 본다면 결국은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그러니까 전작권 환수가 되는 시점이 지나면, 그 때부터는 대북 억제력 강화가 아니라 억제력의 재편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GP를 철수하는 것, 휴전선을 중심으로 집중되어 있는 병력을 재조정하는 방식 등을 통해 상호간 신뢰와 안전장치가 남북한 사이에 들어옴으로써 억제력으로 버텨왔던 휴전선을 안전장치와 신뢰로 대체시킬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물론 북한의 핵실험으로 논의가 더 어려워지긴 했지만, 이에 대한 고민은 계속 필요하다.

대북정책, 국내정치로 이용하려는 유혹에서 벗어나야

프레시안 : 대북정책의 가장 큰 변수로 국내 정치가 되고 있고 이러한 경향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이러한 영향을 덜 받기 위해서라도 북한에 대한 사람들의 확고한 인식이 있어야 할 것 같다. 우리가 북한을 어떻게 인식해야 하나?

이종석 : 북한은 우리한테 적이자 형제인 두 가지 모습으로 다가와 있다. 이 두 가지의 모습은 전통적인 북한의 모습이다. 분명한 것은 우리가 미래를 개척하기 위해 협력하고 함께해야 할 파트너가 북한이라는 점이다. 또 우리 삶의 불안정을 해소하고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다양한 가능성의 공간을 함께 갖고 있는 파트너가 북한이라는 것이 인식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남북협력이라는 것 자체가 우리한테 주는 의미가 있다. 남한 같은 경우는 삼면이 바다인 상황에서도 오늘날의 대한민국을 만들어왔다. 가장 중요한 육지가 봉쇄된 상태에서 여기까지 왔다. 그럼 봉쇄된 육지가 터지면 엄청난 전환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결국 북한이라는 상대를 생각할 때 그들과 함께 있을 때 엄청난 공간이 열리고 기회가 생긴다고 바라봐야 한다. 북한 역시 휴전선이 있기 때문에 그들 양쪽으로 나온 바다도 별로 쓸모없게 됐다. 따라서 그들 입장에서도 남한은 엄청난 가능성을 갖고 있는 것이다.
 

▲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 ⓒ프레시안(최형락)


강조하고 싶은 게 있다. 북한에 대해 생각할 때, 나에게 북한을 어떻게 대하는 것이 도움이 되는지를 중심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북한에 이익이 되면 안 된다는 사고가 있는데, 즉 북한이 얼마나 손해를 보는지, 창피를 당하는지, 얻어맞는지 등이 기준이 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정말 생각해야 할 것은 우리를 중심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뭐가 좋고 이익이 되는 지를 기준으로 봐야 한다.

개성공단 같은 경우 우리가 훨씬 이익이 많다. 그런데 북한에 들어가는 이익을 막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개성공단을 통해 북한으로 들어가는 이익만 생각하지, 우리가 개성공단으로부터 얻는 이익은 잘 이야기하지 않는다. 이런 편향성을 극복해야 한다.

프레시안 : 한반도와 동북아 정세가 중대 전환기에 접어들었을 때 이명박 정부가 등장했다. 그리고 MB 정부는 역사적 기회를 유실했다. 박근혜 정부의 성공 여부도 너무나도 중요한데, 아직까지는 너무 부족한 것 같다. 박근혜 정부의 성공을 기원하는 측면에서 조언을 한 마디 해주신다면?

이종석 : 4월까지 박근혜 정부의 정책이나 여러 가지 전망에 대해 인터뷰조차 하지 않았다. 이명박 정부는 출범하기 전부터 과거 정부를 아주 욕보이고 부정하면서 출발해서 대응을 안 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는 그렇지 않았다. 그래서 전직 장관으로서, 다음 정부가 출범하면 일정 기간 동안은 입 다물고 하는 것을 보고 나서 이야기하고 싶었다. 물론 이러한 생각의 저변에는 박근혜 정부가 이명박 정부와는 달라지기를 기대하고 또 성공하기를 바라는 심정이 있었다.

그런데 그 뒤에 입을 열게 됐다. 지금 이 상황에서, 특히 정상회담 대화록까지 공개하면서 국내 정치적으로 남북관계를 악용하고 있는 박근혜 정부에게 무슨 덕담을 할 수 있겠나 라는 심정마저 든다. 물론 그들이 대북정책이나 외교정책에 있어서 나름대로 한다고 하는지는 모르지만 비합리적인 것이 한두 개가 아니지 않나. 대화를 위한 대화는 북핵을 고도화시킬 뿐이라고 이야기했지만 대화를 위한 대화도 하지 않았을 때 북핵이 더 고도화되는 현 상황을 누가 박 대통령에게 이야기하고 있나.

남북한 회담에서 격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는데, 정말 기준이 없다. 박 대통령이야말로 중국에서 특사로 외교부 상무부부장을 보냈는데, 그 특사를 받아들이고 그것에 대한 화답으로 정권의 2인자라고 할 수 있는 김무성 의원을 특사로 보냈다. 이건 격에 맞는 특사였나? 그러나 누구도 이에 대해 뭐라고 하지 않았다. 상황에 따라 다르기 때문이다. 일관성, 원칙, 신뢰를 이야기하지만 따지고 보면 일관된 것이 없는 거다. 이런 것들이 많이 쌓여있다.

대일 외교에도 문제가 있다. 일본을 이렇게 놔둬도 되나. 더욱이 역대 대통령들이 일본을 먼저 방문했던 관성도 있다. 물론 중국은 앞으로 우리와 아주 오랫동안 상호의존적인 관계가 될 가능성이 높다. 우리가 중국에서 여러 기회를 포착할 것이고. 한국 경제나 한국 사람들 삶에 훨씬 더 많은 부분이 중국과 상호의존적인 측면으로 변할 것이다. 이 와중에 우리도 모르게 의존하는 측면이 발생할 수도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중국의 대(對)한반도 영향력이 과도하지 않도록 견제해야 한다. 한미동맹에 대한 재평가도 이런 부분에서 나오는 것이다. 우리가 한반도에서 제대로 살아가려면 균등한 한미 관계를 추구해 나가면서도 동맹관계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말이다.

일본과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보다 냉철한 머리로 한일관계를 들여다보면서 일본과 중국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노력이 필요하다. 일본의 과거사에 대한 그릇된 인식은 하루아침에 해결되지 않는다. 그런데 지금 한일 양국이 이야기를 해보기도 전에 너무나 엉클어져 있어서 걱정이다. 게다가 일본, 북한이라는 국가는 정치인들에게는 정치적으로 활용 가능한 측면이 많다. 대일문제에 대해 강경 일변도로 나가서 싫어할 국민들이 별로 없다. 북한에 대해서도 원칙을 강조하고 버르장머리를 고쳐야 한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북한에 대한 혐오감 때문에 그렇다. 그래서 북한과 일본 문제를 우리 지도자들은 절제해서 다뤄야 하는데 이 문제들이 절제되지 않고 있다.

일본이 어떤 도발을 했으면 우리가 조치를 취할 수 있는데, 지금처럼 박 대통령이 정상회담을 하지 않을 정도의 일이 발생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좀 우려스러운 상황이다. 일본과 북한에 대해서는 지도자의 절제된 정책과 태도가 필요하다. 단기적으로는 국민들한테 잘한다는 소리 들을 수 있으나, 중장기적으로 되면 실책이 하나하나 쌓여서 한 번에 잘못될 수도 있다. 북한이든, 일본이든 국내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유혹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게 출발점이다.

 
 
 

 

/이재호 기자(정리) 필자의 다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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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전협정 60주년, 한반도의 평화는 어디에 있는가

 

2013년을 평화 협정의 원년으로 <1편>
 
정전협정 60주년, 한반도의 평화는 어디에 있는가
 
김승자 | 2013-07-18 10:49:49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인쇄하기메일보내기
 
 


 

 

 

정전협정 60주년, 한반도의 평화는 어디에 있는가
평화, 제국의 맨 얼굴

들어가면서

벌써 60년이 되어 온다. 휴전협정(Korean Armistice)을 체결한지 올해로 60년이 되었다.
“기획 분단”은 전쟁을 내재하고 있었지만 전쟁상태를 벗어나기 위한 필사적인 탈출은 한 걸음도 옮기지 못한 채 그 자리에 그대로 머물고 있다.

전통적 의미에서의 평화도 전쟁이 없는 상태나 세력 균형(Balance of Power)을 의미한다고 할 때 항시적으로 전쟁 위협에 시달리는 한반도도 평화지대로 분류될 수 있다는 얘기다.그러나 현실은 국제 안보 장사(merchant of security)와 무기장사(merchant of death)를 주축으로 하는 ‘전쟁친화 세력’(War Friendly Force)의 프레임에 갇힌 채 이미 내부자 거래를 튼 국내산 안보 장사의 협력과 결탁이 효력을 발생하고 있으며 “안보”라는 간판과 상호는 독점권을 행사하고 있다. “안보”가 본래의 의미를 뛰어넘어 정치적 프로파간다의 첨병으로 자리를 잡았다는 얘기다.

그 효력은 막강하여 정권 창출의 신기술로 주목 받고 있는 단계에 이르렀으며 특이하고 열악한 국제 환경은 절박한 민족 문제와는 무관하게 각각 자국의 수익 창출과 수익증대의 먹이사슬을 이루고 있다. 노르웨이의 세계적 평화학자 갈 퉁(Johan Galtung)은 평화의 개념을 전쟁이 없는 상태의 소극적 평화(negative peace)와 구조적 폭력 不在로서의 적극적 평화(positive peace)로 분류하고 있다. 여기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안보”가 무기 상인들의 선동구호로 자리 잡은 현실은 안보 프레임에 걸려있는 해당국의 위험지수를 상승시킨다는 사실이다.

물론 전쟁이라는 평화 파괴행위는 우발적인 경우도 있으나 우연을 가장한 도발이나 침공 또는 ‘기획 도발’도 도처에서 목격된다. 바꿔 말하면 “전쟁도 주문 생산”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국제환경의 야만적 현실은 진화를 거듭하고 있는데 선진 문명에 찬가를 헌정하는 행위 도한 이어지고 있다.누가 문명의 길항에 편 갈이를 하는 걸까?

적군의 시신을 희롱하고 적장의 시신을 모독하는 야만적 행위 또한 도처에서 목격되고 있다.

제국의 대본영에서는 물고문(water boarding)을 합법화하였다.(부시, 체니, 파월, 라이스는 백악관 회의에서 물고문을 합법화 하였고 2008년 3월 8일에는 의회에 상정된 물고문 금지법에 부시는 거부권을 행사하였다.) 제국주의의 패악이 시퍼렇게 살아 21세기를 장악한 현실은 현재 진행형이다.

세계 전쟁사에 유례없는 60년의 긴 정전협정은 한반도를 옭아매고 있다. 아무런 해결책도 내어 놓지 못한 채 6자 회담은 겉돌고 그들의 손에는 손익 계산서가 있을 뿐이다. 1945년 8월 15일 해방과 함께 찾아 온 “기획 분단”은 지속적으로 한반도를 강타하고 있으며 역설적이게도 한반도는 제국의 군수산업의 수익 창출에 충실하게 공조하고 있다.

평화의 당위성과 한반도 민중의 소망사항은 그 울림의 절박함에도 불구하고 제국의 울타리를 넘지 못하고 있다.

무엇이 문제인가.

제국주의의 맨 낯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부분은 제한되어 있고 제국의 불편한 진실은 금기구역에서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일그러진 모습에 익숙해진 탓일까 제국에 학습되고 순치된 자화상은 인지 부조화의 덫에 걸린 듯 무덤덤하다. 증오 마케팅의 상흔이 깊숙이 패어 있는 대도.

북녘의 최대 경축일에 일본이 미사일(북측은 인공위성이라며 세계 언론인들에게 공개한)을 선제 타격하겠다고 하는가 하면 미국은 유엔을 통한 제재를 공언하고 북측은 ‘서울을 일시에 날려 버리겠다.’고 화답(?)을 한다. 남측 또한 ‘김정은의 창문을 정밀 타격 하겠다.’며 적개심을 불태우는 현실을 감안할 때 한반도가 전쟁지대(War zone)라는 사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휴전 협정에 대한 고찰의 당위성은 증대될 수밖에 없다.

1. 휴전협정 (Korean Armistice) 略史

휴전협정문 서문(Preamble)에서 밝혔듯이 한반도에서 발생한 1950년 6월의 한국전쟁은 한반도를 참화로 몰아넣는 대 재앙이었다. 전쟁으로 인한 유혈사태는 이 전쟁을 종식 시켜야 한다는데 인식을 같이한 참전국들의 합의를 이끌어 낼 수 있었다. 그러나 그 길은 멀고 험난한 길의 예고편에 불과 했다.

처음 휴전협상에 대한 제의는 유엔 주재 소련 대사 말리크였다.

1. 1951년 6월 23일 주유엔 소련대사 말리크는 교전 당사국이 상호 38선을 기준으로 하여 철수할 것을 조건으로 휴전할 것을 제안한다.
2. 1951년 7월 8일 개성에서 연락장교회담 (예비회담)
3. 1951년 7월 10일 개성에서 휴전회담 (실무회담)

물론 이에 앞서 1950년 12월 3일 베이징에서 중국은 김일성조선 인민군 총사령관과 휴전에 관한 회담을 한다. 전쟁의 한 가운데서 협상의 가능성을 열어 둔 것은 중국이 변타변담(邊打邊談 :전쟁을 하면서 한편으로는 담판을 하는) 전략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 라는 분석이 있지만 그만큼 전쟁의 유혈사태가 심각했다는 반증이 아니겠는가.

1951년 7월8일 개성에서의 예비회담에서 1953년 7월 27일 까지 무려 25개월이 걸렸고, 158차례의 본회의와 500여회가 넘는 소위원회가 열리는 등의 긴 과정을 거치게 된다.

1953년 7월 27일 오전10시 판문점에서 열린 159차 본회의에서 휴전 협정문에 합의 서명함으로써 3년여의 전쟁은 멎게 된다. 조선 인민군과 중국인민지원군을 대표하여 조선 인민군 남일 대장, 유엔(UN)군을 대표하여 미군 중장 해리슨(William K. Harrison)이 각각 서명하였다.

조선 인민군 대장 남 일이 중국인민 지원군까지 대표하게 된 것은 휴전협정 회담 현장중심의 서술 때문이며 조선 인민군 총사령관 김일성과 중국인민 지원군 사령관 팽더화이 (팽덕회:彭德懷)는 평양과 개성에서 서명하였다.

전문 5조 63항과 부록은 한글, 영문 , 한문의 3개 국어로 작성되었으며 군사 분계선(Military Demarcation Line)과 4km 넓이의 비무장지대(Demilitarized Zone)의 설치 및 군사 정전 위원회(The Military Armistice Commission)와 중립국 감시 위원회(The Neutral nations Supervisory Commission)의 구성을 명기하고 있다.

지금도 지속되고 있는 분쟁의 기원을 분명히 하기 위해서 휴전협정문 63항과 판문점 휴전협정 서명인인 조선인민군과 중국인민 의용군을 대표한 남일 대장, 유엔군을 대표한 미군 중장 해리슨의 서명을 영문으로 전재한다.

 

Article V Miscellaneous

63. all of the provisions of this Armistice Agreement other than Paragraph 12, shall become effective at 2200 hours on 27th day of July 1953,

Done at Panmunjom, Korea at 10:00 hours on the 27th day of July 1953,in English, Korean and Chinese, all texts being equally authentic.

NAM IL WILLIAM K. HARRISON, JR
-----------------------------------
General, Korea People's Army
Senior Delegate,
Delegation of the Korean People's Army
and the Chinese People's Volunteers
------------------------------------
Lieutenant General, United States Army
Senior Delegate,
United Nations Command Delegation

(Source: Columbia University)

 

교전 당사자인 한국(남한)은 휴전 협정문 그 어디에도 없다. 물론 초기대응에 실패한 대한민국 대통령 이승만이 유엔군(실질적으로는 미국)에 작전 통제권을 통째로 넘겼기 때문이며 (1950년 7월 14일) 지금도 작전통제권 문제로 갈등을 겪고 있다. 미국에 작전 통제권을 넘긴 이승만은 무력으로 “북진통일”을 하겠다는 주장으로 미국을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전선은 교착상태에 빠졌고 참혹한 유혈사태(suffering and bloodshed)로 인한 쌍방의 희생은 걷잡을 수 없었다. 전선은 한반도로 국한돼 있었지만 세계3차 대전으로 이어질 수도 있는 상황에서 이승만은 학생들을 관제데모로 동원하면서 북진통일 주장을 완강하게 펼쳤다. 그런 그가 휴전협상 테이블에 합석할 수 있었겠는가.

휴전협정에서는 서명할 수 없었지만 휴전 협정에서 제시한 한반도의 평화 정착 문제는 이승만과 미국에 의해 휴지 조각이 되고 만다. 그리고 60년이 흘렀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새날희망 연대 월례 포럼 강연문-

*참고 *
1): 평화적 수단에 의한 평화 : Johan Galtung
2): 해방일기 : 김 기협
3): 김 승자 칼럼 “무기장사의 그늘”
4): 김 승자 발제문--한일 NGO 토론회 발제문
“평화 그리고 이중잣대”
5): SIPRI 2011 YEAR BOOK : SIPRI

金 勝子 / 평화통일 시민연대 공동대표, 칼럼니스트


2013년을 평화 협정의 원년으로 <2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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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회의록 폐기? 삭제 전과 있는 이명박 정부 의심"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13/07/18 11:33
  • 수정일
    2013/07/18 11:33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NLL 논란 새국면] 전병헌 "남재준 배후에 음모가"... '회의록 폐기' 논란으로 확대

13.07.18 09:25l최종 업데이트 13.07.18 10:53l
최경준(235jun)

 

 

[기사보강 : 18일 오전 10시 5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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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가 전날 2007년 남북정상회담 관련 자료 2차 예비열람을 마쳤지만 회의록 원본의 존재를 확인하지 못한 것과 관련, 민주당 전병헌 원내대표는 18일 고위정책회의에서 "노무현 정부가 이 기록물을 삭제 또는 폐기했을 가능성은 전무하다"고 말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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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에 이 기록물이 없는 것이 확인이 된다면, 그것은 분명히 민간인 사찰을 은폐해왔거나 국정원 댓글의 조작 경험에 비추어서 삭제와 은폐의 전과가 있는 이명박 정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해 북방한계선(NLL) 포기 발언' 진위를 밝혀줄 2007년 2차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원본이 국가기록원 대통령기록관에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전병헌 민주당 원내대표가 회의록 원본 폐기 가능성을 시사하면서 화살을 이명박 정부에게 돌렸다.

전병헌 원내대표는 18일 고위정책회의에서 이같이 말한 뒤 "또한 남재준 국정원장이 불법 복제판을 들고 기세등등 설쳐댔던 그 배후에 이 같은 음모가 도사리는 것 아닌지 의심된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서는 대통령기록물 보관시스템이 복잡해 국회 열람위원들이 회의록을 찾지 못한 게 아니냐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회의록의 유실·훼손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 만약 회의록 유실·훼손이 사실로 확인될 경우 회의록 파기 주체 등을 놓고 여야 간에 날선 공방이 예상된다. 'NLL 포기 발언' 진위 논란이 사실 확인보다는 진실 공방으로 치닫는 등 새국면을 맞은 셈이다.

전병헌 "노 전 대통령에게 뒤집어 씌우려는 조짐... 삭제 가능성 전무"

전병헌 원내대표가 이날 이명박 정부의 '정상회담 회의록' 유실·훼손 가능성을 제기하고 나선 것은 일부 보수성향 언론이 새누리당 관계자의 말을 빌어 "참여정부가 회의록을 국가기록원에 이관하지 않은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한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전 원내대표는 "일부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뒤집어 씌우려는 조짐이 있지만, 2007년 대통령기록물관리법을 만들어서 대통령기록물이라는 지위를 최초로 공식화한 사람이 노무현 전 대통령과 참여정부"라며 "참여정부나 노 전 대통령이 이 기록물을 삭제했을 가능성은 전무하다"고 강조했다.

전 원내대표는 앞서 참여정부에서 정상회담 회의록을 국가기록원에 분명히 넘겨줬다는 점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전 원내대표는 "참여정부 당시 대통령기록물을 담당하고 후임정권에게 이관하고 대통령기록물 관리소에 넘겨줬던 실무책임자들은 분명히 관련 기록물이 있었고, 넘겨주었다고 증언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더더욱 국정원에게 기록을 넘겨주고, 참고로 한 부 가지고 있으라고 친절하게 안내했던 노무현 정부에서 기록물을 파기했을 가능성은 전무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기사 관련 사진
여야가 전날 2007년 남북정상회담 관련 자료 2차 예비열람을 마쳤지만 회의록 원본의 존재를 확인하지 못한 것과 관련, 민주당 전병헌 원내대표는 18일 고위정책회의에서 "노무현 정부가 이 기록물을 삭제 또는 폐기했을 가능성은 전무하다"고 말했다. 전 원내대표 방에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진이 나란히 걸려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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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원내대표는 또 "이미 (국정원이) 여당 의원들에게는 공개와 열람까지 시킨 대통령기록물이 대통령기록관에 없다는 것은 납득이 안 간다"며 "언론보도 나온 대로 없다는 걸 믿을 수 없다, 현재까지 찾지 못했다고 하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전 원내대표는 "(여야가) 서로 속단해서 정치공방을 벌일 것이 아니라 추가적인 확인 작업을 해서 기록물 찾아내는 데 모든 노력을 다해야 한다"며 "기록물만 못 찾은 것으로 알려졌지, 다른 부분들에 있어서는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NLL 관련된 진위공방은 이번 기회에 깔끔하게 정리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고 말했다.

서영교 의원은 이명박 정부의 국가기록물 관리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고 나섰다. 서영교 의원은 "대통령기록관에 관장 등 노 전 대통령 시절 기록관에 있던 사람들을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모두 내쫓고 이명박 전 대통령 사람들로 기록관 직원들을 채웠다"며 "기록관에서 기록물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고, 열람하러 간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어디있는지 찾지도 못하는 무성의한 행태를 보였다"고 지적했다.

여야 열람위원들, 18일 오후 2시 결과 내용 보고 예정

앞서 10명의 국회 열람위원들은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열람을 위해 지난 15일과 17일 두 차례에 걸쳐 경기도 성남에 위치한 국가기록원 대통령기록관을 방문했지만 회의록 원본을 찾지 못한 것으로 17일 알려졌다.

15일 1차 예비열람 당시 국가기록원은 여야가 제시한 7개 키워드로 검색한 결과 여행가방 1개 반 정도의 자료를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검색자료에 회의록 원본이 포함돼 있지 않았고 17일 2차 예비열람에서 여야가 추가 키워드를 제시해 재검색을 했으나, 결국 원본 등을 찾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국가기록원에 정상회담 회의록 원본을 비롯한 관련 자료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최종 확정될 경우 'NLL 포기' 논란은 '회의록 폐기' 논란으로 확대돼 정치적으로 큰 공방이 예상된다. 참여정부 말기나 이명박 정부에서 누군가 원본을 폐기했을 경우 사초를 없앤 것이어서 법적인 처벌 역시 불가피하다. 대통령기록물관리법은 대통령기록물 무단 파기 손상·은닉·멸실을 금지하고 있으며, 위반 시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 벌금에 처하게 돼 있다.

한편 여야 열람위원들은 18일 오후 2시에 열리는 국회 운영위원회에서 1·2차 예비열람 결과 등에 대한 내용을 보고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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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인 “한반도 신뢰프로세스, 기대 크지만 아직 내용없다”

 

 

흥사단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와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국제 심포지엄’

김소정 통신원 | tongil@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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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07.17 14:3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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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와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국제 심포지엄’이 흥사단 민족통일운동본부 주최로 16일 서울 소공동 프레스센터에서 열렸다. [사진제공-흥사단 민족통일운동본부]

 

문정인 “한반도 신뢰프로세스, 기대 크지만 아직 내용 없어 아쉽다”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핵심 정책으로 들고 나온 박근혜 정부에 거는 기대가 크다. 하지만 아직까지 신뢰프로세스의 구체적인 내용과 그림이 보이지 않아 아쉽다.”

문정인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16일 서울 소공동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와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국제 심포지엄’에서 이같이 말했다.

 

   
▲ 문정인 연세대 교수는 1부 기조발제에서 “아직까지 신뢰프로세스의 구체적인 내용과 그림이 보이지 않아 아쉽다”고 말했다. [사진제공-흥사단 민족통일운동본부]

 

이날 심포지엄 행사는 흥사단 창립 100주년과 정전 60년을 맞아 흥사단 민족통일운동본부 주최와 도산통일연구소 주관으로 진행됐다.

문 교수는 1부 기조발제에서 “개성공단 협상과 금강산 관광 재개, 이산가족 협상이 잘 되고 민간부분 교류협력이 잘 이뤄지면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에 청신호가 보이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국민들의 의구심은 상당히 높아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남북기본합의서와 6∙15공동선언, 10∙4공동선언 이행을 통해 남북관계를 정상화 시키고 한반도 평화체제를 구축해야 할 것”이라며 “남북한 평화 통일이야말로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최고의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이정철 “박근혜 정부, 한미동맹과 한중협력관계를 동시에 잘 가져가야”

 

   
▲ 2부 기조발제를 하고 있는 이정철 숭실대 교수. [사진제공-흥사단 민족통일운동본부]

 

‘한반도 정세 변화전망과 남북관계 발전 과제’를 주제로 한 2부에선 주변 국가의 유동적인 정세 속에서 정부는 경직된 자세를 벗어나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정철 숭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박근혜 정부가 한미동맹과 중국과의 전략적 협력관계를 동시에 잘 가져가는 게 중요하다”며 “경쟁적 미중관계나 중일 갈등기라는 2013년 체제 변동과정에 한국이 중간국가로서의 자율성을 발휘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한국 정부가 동아시아에서 외교력을 발휘하고 더욱 풍부한 대북정책을 펼치기 위해선 국가주도의 단일화 전략만으로는 힘들다”며 “국가와 시민사회가 함께 힘을 모으는 사회협약(Social pact) 프로젝트가 그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리춘푸 성균관대 성균중국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이번 박근혜 대통령의 방중 성과 중 하나로 북핵문제를 둘러싼 한중간 공조 가능성을 높여줬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며 “비핵화문제는 궁극적으로 안보문제이고 평화체제 구축문제“라고 설명했다.

리 연구원은 “한반도 비핵화와 북미 대립관계 해소,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은 병행해서 추진될 필요가 있다”며 “한국 정부의 대북 정책은 원칙을 갖되 보다 유연하고 미국의 전향적인 대북정책을 이끌어낼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최종건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90년대 초 대학 입학 당시 북한붕괴론이 팽배했지만 무너지지 않은 것처럼 20년간 대북 패턴은 고착화돼왔다”며 “대북 피로감 또는 북핵 피로감으로 ‘우리도 핵무기를 갖자’는 식의 우리 사회에서 터부시 여겼던 극단적인 발언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고 우려했다.

최 교수는 “대한민국 국익의 중요한 축이 남북관계 안정화에 있다고 동의한다면 우리가 주도하는 한반도의 자생적 평화 노력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라며 “강대국 국제정치가 던져주는 운명을 일방적으로 소비하기보다 우리의 운명을 스스로 주도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광희 한민족평화통일연대 정책위원장은 “1990년대부터 점차 약화된 학교 현장에서의 반공교육이 현재 군부의 안보교육으로 다시 살아난 것 같다”며 “반공교육의 핵심은 ‘불신’인데 불신이 지속되는 상태에서 어떻게 정부가 신뢰프로세스를 실현할 수 있을지 걱정된다”고 말했다.

이어 “노태우 정권이 보수층을 기반으로 하면서도 남북관계와 통일과제에 대해선 전향적으로 풀어간 것처럼 정책논리와 정치홍보논리를 적절히 차별적으로 구사해야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와다 신스케 동북아평화연구회 공동대표는 “미국의 핵 보호 속에 들어가 있는 일본의 국민들이 북한의 핵무기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는 것처럼 한국에서도 미국과의 관계를 통한 핵무기에 대한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백학순 “박근혜 대통령 정책에 평화체제 수립 약속 없어”

 

   
▲ 3부 기조발제를 하고 있는 백학순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사진제공-흥사단 민족통일운동본부]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와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과제’를 주제로 한 3부에서는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다양한 비판이 나왔다.

백학순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후보 당시 대선 출마문에도 1년전 외교정책 전문지 ‘포린어페어’에 발표한 기고문에도 평화체제를 수립하겠다는 약속이 없다”며 “개성공단 재개 실무회담에서도 평화정착을 하겠다는 기본적 가치와 비전이 결여돼 있다”고 진단했다.

백 연구위원은 박근혜 정부 대북정책의 한계로 △‘기 싸움’ 프레임으로부터 벗어나기 실패 △주도적인 신뢰구축 노력의 부재와 대북 신뢰프로세스의 실종 △‘상대방이 있는 대화’를 ‘상대방이 없는 대화’처럼 한 것 등을 꼽았다.

그는 “박근혜 정부는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 실패를 절대 반복해선 안 된다’는 명확한 인식으로 북한과 대화 및 협상에 임해야 할 것”이라며 “‘기 싸움’ 프레임에서 벗어나 북한과 어떤 관계를 맺기 원하는지, ‘신뢰프로세스’를 어떻게 실천할 것인지, 개성공단에 대해 어떤 해결책을 갖고 있는지 등을 북한 지도부에 명확한 입장을 전달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백 연구위원과 함께 3부 발표자로 나선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 교수는 “신뢰정치라는 이념에 회의적”이라며 “북한의 가장 큰 문제는 미증유의 경제 성장을 이룩한 한국의 존재 자체”라고 말했다.

란코프 교수는 “북한 지도부는 개혁을 통해 경제를 살려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실상을 알았을 때 발생하는 북한 주민의 저항이라는 정치적 리스크가 크기 때문에 딜레마에 처해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그는 과거 김정일 정권 때와 달리 김정은 정권에서는 위험을 감수하고 개혁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란코프 교수는 “개혁을 빨리 시작할수록 빠른 시간 내에 정권은 안정적 단계에 도달할 것”이라면서도 “북한의 개혁은 매우 억압적이고 불안정한 방식으로 진행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재개 등의 남북간 경제교류를 강화해 북한 대중들에게 외부세계를 알리고, 북한 정권의 미래에 대한민국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토론자들, 신뢰프로세스에 다양한 비판.. “단순한 구호”, “신뢰는 힘이 아닌 존중”

 

   
▲ 이날 심포지엄에서는 참가자들이 대회장을 가득 메워 최근 정세에 대한 뜨거운 열기를 느끼게 했다. [사진제공-흥사단 민족통일운동본부]

 

토론자로 나선 피터 벡 아시아재단 한국대표는 “신뢰프로세스는 단순한 구호같이 들린다”며 “전 정권의 대북정책과 비교하면 조금 더 부드럽고 더 추상적이라는 느낌뿐 그 내용을 잘 모르겠다”고 평가했다.

피터벡 대표는 “베트남, 몽골 등이 모두 변하고 있다. 북한도 주변 친구들이 변하고 있다는 것을 알 것”이라며 “세계적으로 협력해 북한의 변화를 이끌어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진정한 평화와 신뢰는 힘이 아니라 상호 이해와 존중에서 정착된다”며 “구축된 신뢰가 지속 가능하려면 대한민국 정권이 바뀔 때마다 대북정책이 완전히 바뀌는 구조를 바꿔야한다”고 주장했다.

임 교수는 “국내 정치적 안정과 남남갈등을 최소화하려는 노력이 없으면 남북한 신뢰구축은 요원한 과제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현곤 세교연구소 상임기획위원은 “동등한 위치에서 북과 대화할 때 박근혜 정부의 신뢰프로세스는 실현 가능할 것”이라며 “북한이 정치적 리스크로 인해 개혁을 쉽게 하지 못할 것이라는 딜레마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남북연합’”이라고 주장했다.

정 위원은 “민간에서도 남북연합 실험이 이뤄지고 있고 이번 개성공단 문제 역시 군사적 긴장이 공단을 중지시켰다는 점에서 남북연합의 원리를 체득하는 실험장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심포지엄에서는 참가자들이 대회장을 가득 메워 최근 정세에 대한 뜨거운 열기를 느끼게 했다.

 

   
▲ 심포지엄 후 발제자, 토론자 등 참가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사진제공-흥사단 민족통일운동본부]

 

한편, 이날 심포지엄 행사를 주최한 흥사단은 민족의 자주독립과 번영을 위해 도산 안창호 선생이 1913년 5월 13일 창립한 민족운동단체로서 올해 100주년을 맞이했다.

흥사단 민족통일운동본부는 흥사단의 목적과 도산 안창호 선생의 구국이념을 바탕으로 민족통일을 촉진하고 세계평화에 기여하고자 1997년 3월 8일 설립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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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권리를 포기하는 '전시작전통제권 재연기'

 


대한민국 국방부가 2015년 12월로 예정된 한미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시기를 미국 정부에 지난 4월에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전작권 전환은 참여정부 시절 2012년으로 합의했다가 MB정부 시절 2015년으로 연기한 바 있습니다. 이렇게 연기를 했는데 박근혜 정부는 또다시 전작권을 연기하겠다고 나서고 있습니다.

현재 전작권에 대한 숱한 왜곡과 정치적 이용이 있는데, 도대체 그 실체가 무엇인지 하나하나 따져 보도록 하겠습니다.

' 전작권 환수는 좌파 노무현이 추진한 정책이다?'

전작권 환수를 흔히 노무현 대통령이 추진한 정책이며, 이를 두고 보수우익에서는 나라를 위협에 빠뜨리는 행동이라고 숱하게 비판해왔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제일 먼저 전작권을 내놓으라고 요구한 사람은 노무현 대통령이 아닌 박정희였습니다. 박정희는 1968년 1월 청와대가 습격할 때는 가만히 있던 미국이 푸에블로호 나포 사건에는 자신들 멋대로 전쟁 직전 단계인 데프콘2를 발령하자 격분했습니다.

미국이 한국을 돕는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미국 이익 우선이라는 현실을 절실히 깨달은 것입니다. 그러자 미국에 작전통제권 환수를 요구했습니다.

 

 

 


1987년 민정당 대통령 후보로 나선 노태우는 전작권 환수를 대선 공약으로 공식적으로 내놓았습니다. 노태우의 전작권 환수 공약은 1994년 김영삼 정부에서 평시작전통제권이 환수됐고, 국방부는 1995년에 전작권을 2000년에 환수하겠다는 계획을 세운 바 있습니다.

이처럼 전시작전권 환수는 노무현 대통령만의 생각이 아니었습니다. 박정희,노태우,김영삼,김대중 정부로 이어지는 기본 바탕이 전시작전권 환수였습니다. 그러나 보수우익은 마치 빨갱이라서 북한 위협에 나라를 팔아먹는 것처럼 노무현 대통령을 비난했습니다.

결국, 전작권 환수는 어떤 국방의 논리보다 철저히 정치적인 전략으로 이용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 전작권 환수하면 한미 동맹이 무너진다?'

많은 보수 우익이 전작권을 환수하면 한미 동맹이 무너지고 전쟁이 나도 대한민국을 미국이 도와주지 않을 것처럼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기본적으로 한미 군사 지휘 체계를 잘 모르고 있어 나오는 오해입니다.

 

 

 


우리가 흔히 한미연합사를 한미 군사동맹의 상징으로 보고 있지만, 그보다 더 위에 있는 시스템이 '한미안보협의회의(SCM)'․'한미 군사위원회(MC)'입니다.

한미연합사도 실제로는 한미안보협의회의와 군사위원회와 같은 고위급 안보협의체에 나온 결과와 방향에 따라 움직이지, 단순히 한미연합사 자체로 한미 동맹을 무너뜨리거나 미군 철수를 감행하지 않습니다.

참여정부 구상 전시 한미 군사지휘 관계를 보면 한미연합사는 해체해도 '한미안보협의회의'나 '한미 군사위원회'는 그대로 존속하게 되어 있습니다. 또한 주한미군 철수는 '한-미 상호방위조약'에 근거를 두고 있기 때문에 전작권과는 직접 관계가 없습니다.

보수 우익은 본사는 가만히 있는데 마케팅팀이 철수하니 물건 주는 회사가 철수한다고 난리를 치고 있는 것입니다.

' 전작권 재연기로 미국은 또 얼마를 요구할까?'

미국은 실제로 전작권 연기에 미온적입니다. 그것은 한국보다 일본을 통한 아시아 방어선 구축이 그들에게 훨씬 효과적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미군은 현재 2019년까지 군 간부 20%를 감축하려는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시퀘스터 (10년간 1조 1000억 달러 예산 자동삭감)에 따라 미국이 국방 예산을 감축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미국은 한국의 전작권 재연기를 호기로 삼을 수 있습니다. 전작권 재연기를 요구하는 한국에 한미방위비 분담 협상과 미사일 방어체제, 차세대 전투기 사업 등의 부담을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미 동맹을 그저 우방이라고 생각하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방과 동맹과 돈은 별개입니다. 그래서 한국은 '우리는 친구잖아'를 외쳐도 미국은 '공짜는 없어, 돈 내놔'를 외칠 것입니다.

과거 신라,고구려,조선시대에서도 강대국들이 우리 땅을 지켜주겠다고 해서 공물과 여자,돈을 바쳤습니다. 그런데 수천 년이 지난 지금에도 이와 같은 일이 계속 벌어지고 있습니다. 정말 부끄럽고 창피하고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일입니다.

' 미군 없이는 싸움도 못하는 한국 장군들'

전작권이 필요한 이유가 북핵 문제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국방부도 이번 전작권 연기에 북핵과 미사일 등의 안보 문제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나 북핵 위협은 항상 있었는데, 십여 년이 지나도 한국 군대가 그것을 대비하지 못하고 또다시 재환수 연기로 삼는 것 자체가 국방부와 한국 장성들의 '직무 유기'에 해당합니다.

 

 

 


대한민국 군대를 이끌고 있는 한국군 장군들과 역대 국방장관, 참모총창들은 실제로 독자적인 전쟁을 수행해 본 경험이 없습니다. 한국전도 미군에 의해, 월남전도 미군의 지휘 통제를 받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들은 진짜 전쟁이 나도 지휘를 하기 겁이 날 수도 있습니다.

미국의 군사전문가들은 북한의 전투력을 한국의 약 40% 수준으로 평가했고, 한국은 세계 10위의 국방비와 세계 6위권의 병력을 갖춘 군사 강국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유독 지휘는 안 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사병이 문제가 아니라 장군이 문제라고 볼 수 있습니다.

 

 

▲북한 핵 위협에 선제타격이 가능하다는 MBC 보도와 북한 미사일 사거리 현황. 출처:MBC,연합뉴스

 


북한이 미국 본토에 핵미사일을 발사하겠다고 위협한다면 미국은 두 가지의 선택을 합니다. 하나는 북한을 달래는 방법이고, 또 하나는 아예 북한을 선제타격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 방법을 해도 미국은 괜찮습니다. 전쟁이 한반도에서 일어나는 것이지, 미국 본토에서 일어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미국의 이런 한반도 전쟁화를 한국이 막을 방법이 없다는 점입니다. 미국은 자국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전쟁을 벌일 수 있지만, 연평도 포격과 같은 사건에는 침묵합니다. 마치 청와대 습격은 괜찮아도 푸에블로호 납북에는 데프콘을 발령한 것처럼 말입니다.

자국의 공격에 아무런 대응조차 하지 못하는 장군들이 무슨 대한민국의 장군들입니까? 그냥 미군을 따라다니며 명령에 따르는 용병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대통령의 권리를 포기하려는 전작권 재환수 연기'

전작권의 원래 명칭은 '전시 작전통제권'입니다. 여기서 작전지휘와 통제의 관계가 나오는데, 작전지휘는 작전임무를 위해 지휘관이 예하 부대에 행사하는 권한입니다. 그러나 작전통제는 부대 편성과 전개, 목표의 지정 및 행정 및 군수가 포함됩니다.

 

 

 


이런 군지휘 시스템을 정리하면, 작전지휘, 작전통제로 이어지고 대통령 고유권한인 군통수권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군작전지휘권의 핵심이 작전통제권이고, 군작전지휘권의 핵심이 군통수권이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 대통령의 군통수권은 헌법 제 74조 1항에 명시될 만큼 중요한 임무이자 권리이고, 그런 까닭에 박근혜 대통령은 당선인으로 취임식이 열리는 11시 이전인 2월 25일 0시부터 군통수권을 인수받았습니다.

 

 

▲설마 박근혜 대통령은 공약집에 나온 말이 준비하겠다지, 환수는 아니라고 또다시 발뻄할까?

 


박근혜 대통령은 대통령 선거 공약집에 분명히 '2015년 전시작전권 전환 차질없이 준비'라고 명시했습니다. 또한 2013년 2월에도 "한-미 연합 억지력 포함한 포괄적 방위 역량 및 2015년 전시작전권 전환 차질없이 준비하고 추진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대선 전부터 취임 이후에도 대통령으로 군통수권을 지키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런데 불과 한 달 만에 전작권을 국민에게 말하지도 않고 재연기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우리가 독자적으로 지휘권을 갖지 못한 것은 주권국가로서는 창피한 일이었다.”
“한국군 내부에서는 미군이 서울에서 나가면 큰일 난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하 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이제 우리 스스로 우리 문제를 결정할 때가 왔고, 그만한 자신을 가질 때도 됐다고 판단했다. 따라서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미군이 나가더라도 우리가 작전지휘권을 행사할 수 있는 훈련을 쌓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국정 책임을 맡아 미국 대통령과 참모, 보좌관들을 만나보니 ‘미군은 우리가 철수하라 해도 하지 않을 것’이라는 느낌이 점점 강해졌다. 동북아에서 미국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서는 한국과 같은 곳에 말뚝이 필요한 것이었다. 과거에는 우리가 너무 약했기 때문에 ‘살려 달라’ 했지만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는 것이다.”
(조갑제 전 조선일보 기자가 노태우 대통령에게 육성으로 들은 내용)


진정한 보수는 내 나라, 내 땅을 내 손으로 지키겠다고 합니다. 전쟁이 당장에라도 일어날 것처럼 매번 북한 위협을 단골로 대한민국 사회를 공안정국으로 만드는 보수우익은 정작 전쟁은 혼자서 못한다고 미국의 바짓가랑이만 잡고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대한민국 보수는 진짜 싸움이 벌어지면 도망치거나 힘센 동네 형을 불러오는 얍삽한 짓을 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대통령 고유권한인 국군 통수권의 핵심요소인 작전통제권을 스스로 계속 연기하는 것은 세계적으로나 역사적으로 '매우 예외적이며, 경이로운 주권양도'의 나쁜 선례이고[각주:1], 이것이 지금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대통령이 대통령 권한을 포기하는 일을 한다면 당장 그 자리에서 내려와야 합니다. 그래도 '작전권 환수 재연기'하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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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인 유언에 화답한 동지 겸 남편

 

부인 유언에 화답한 동지 겸 남편

 
조현 2013. 07. 17
조회수 18추천수 0
 

 
[휴심정에서]
고전의 향기를 이웃과 나누세요” 부인 유언에 화답한 동지 겸 남편
 
서혜란이남곡부부.jpg
동지이자 벗이었던 서혜란, 이남곡 부부
 
7월6일 오후 5시 서울 장충동 만해엔지오교육센터에서 ‘서혜란 추모 토크콘서트’가 열렸습니다. 여성민우회 생활협동조합 창립의 주역인 서혜란 선생님은 휴심정 필자 이남곡 선생님의 부인입니다. 둘은 결혼해 첫아이를 낳은 지 6개월 만에 함께 서울구치소에 수감됐던 민주화운동의 동지이기도 하지요. 토요일인데도 이화여대와 생협 선후배 동료 등 100여명이 찾아와 함께 울고 웃으며 그를 기렸습니다. 육신은 가도 그의 정신과 향기는 지인들의 가슴에 생생하게 살아있더군요.
 
70년대 민주화운동의 동지였던 부부는 ‘운동’을 떠나 인간 내면과 관계의 중요성을 간파한 선구자였습니다. 그들은 경기도 화성에 있는 무소유공동체인 산안마을에서 공동체원으로서 8년간 지내다가, 2004년엔 전북 장수의 산골로 내려가 농사를 짓고, 된장 고추장을 담가 생협에 공급하며 살았습니다.
 
지혜는 감춰두고 늘 입보다는 귀를 열고, 머리보다 가슴으로 사람들을 받아들인 부부였지요. 부부는 10대와 20대 때 품었던 이상을 60이 넘도록 놓지 않을 만큼 바보스럽고 순진무구했습니다. 제가 10년 전 신문사를 1년 쉬고 인도로 떠났다가 한국에 돌아온 뒤 삼겹살과 소주를 사들고 가장 먼저 장수의 산골로 찾아간 것도 태고의 때묻지 않은 향기가 그리웠기 때문이었겠지요. 햇볕에 그을릴 대로 그을린 상대방의 얼굴을 밤하늘의 별처럼 쳐다보던 천생연분 원앙 한쌍의 모습을 잊을 수 없습니다. 무욕의 삶은 두 아들에게까지 이어져 첫째 승엽은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산골에 들어와 장독살림을 맡았습니다. 둘째 태영은 와이엠시에이(YMCA) 간사를 하다가 올해부터 신촌민회 사무국장으로 풀뿌리민주주의운동을 시작했습니다.
 
고인은 눈을 감으며 그토록 사랑한 남편에게 ‘고전을 읽고 그 향기를 이웃들과 나누는 인문운동’을 제안했습니다. 이 선생님은 부인의 소원대로 지난해 <논어, 사람을 사랑하는 기술>을 내고, 논실마을학교에서 ‘좋은 이웃들’과 주경야독을 하고 있습니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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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평화, 가능하기나 한 건가?

 

북한 굴복시키는 것이 올바른 남북관계인가

[한반도 브리핑] 한반도 평화, 가능하기나 한 건가?

김근식 경남대 교수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3-07-17 오전 9:17:48

 

정전 60주년을 맞아 여기저기서 다양한 논의가 제기되고 있다. 정전체제의 평화체제로의 전환, 비핵화와 평화체제, 평화체제와 한미동맹 등 기존 논의들이 재조명되면서 활기를 띠는 모습이다. 그러나 정전 60년의 한반도 평화 논의도 기왕의 공허하고 비현실적인 주장과 분석이 반복되는 것을 피해 가지는 못하고 있는 듯하다. 실제로 평화를 진전시킬 만한 현실의 변화는 체감되지 않고 있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한반도 평화체제에 논의는 주로 군사 안보적 측면의 신뢰구축과 군비통제 및 평화협정 체결문제와 한미동맹과 주한미군 문제 등의 전통적 영역에 집중되었다. 군사안보 전문가들의 주도로 한반도 평화체제 논의가 진행됨으로써 군사적 신뢰구축 조치의(CBMs) 필요성과 내용, 운용적 군비통제와 구조적 군비통제의 필요성과 쟁점 및 정전협정의 평화협정으로의 전환 문제, 주한미군과 유엔사 문제 등에 대해서만 평화체제 논의가 한정되는 경향을 보인 것이다. 이처럼 군사적 차원의 안보 담론으로만 평화체제를 접근할 경우 탈냉전 이후 남북관계 개선에 의한 한반도 평화의 진전이 종합적 입체적으로 그려지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한반도 평화체제는 군사 안보적 구성요소와 함께 본질적으로는 남북 관계적 차원의 평화가 병행되어야 한다. 남북의 적대 관계가 지속되고 정치적 대결과 반목이 심화되고 있는 상황에서는 그 무슨 화려한 평화협정에 서명한다 하더라도 남북의 평화는 불가능하고 당연히 한반도 평화는 자리잡지 못한다. 즉 남북의 적대 관계 해소와 정치적 화해협력 그리고 되돌이킬 수 없는 남북관계의 진전으로 한반도 평화의 물적 토대를 마련하는 것 없이 군사 안보적 차원의 평화체제 논의는 그야말로 공허한 메아리일 뿐이다. 남북관계가 유동적이고 언제라도 적대와 대결의 긴장된 관계로 환원될 수 있는 구조라면 항구적인 한반도 평화는 충족되지 못한다. 군사적 신뢰구축을 진전시킨다 하더라도 대결의 남북관계로 회귀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존재한다.

결국 한반도 평화체제를 이루는 데 가장 핵심적인 역할은 바로 남북관계일 수밖에 없다. 원론적으로 한반도 평화는 현실의 남북관계에 토대해야 하고 평화의 진전 역시 남북관계의 진전과 연동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반도 평화체제는 남북관계 개선에 따라 상호 화해협력이 증대되어야 가능하다. 탈냉전 이후 한반도 평화의 진전은 민족화해의 개선과 남북관계의 진전에 따른 측면이 주요하게 작용했음을 부인하기 힘들다.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이 활성화되고 진전되면 군사분계선을 통과하는 사람과 물자의 교류가 일상화되고 이를 군사적으로 보장해주는 신뢰조치가 병행되어야 한다. 경협이 군사적 신뢰구축을 이끌어내는 셈이다. 경제협력으로 군사분계선을 통한 남북의 인적 물적 교류가 활성화되면서 이를 보장하기 위한 남북의 군사적 조치와 합의가 진전되고 다시 군사적 신뢰구축이 남북의 경제협력을 추동해내는 상호 선순환 과정이 바로 남북관계 진전이 한반도 평화를 증진시키는 상징적 사례라 할 수 있다.

역으로 남북관계가 적대와 대결이 지속될 경우, 한반도 평화체제 논의는 비현실적일 수밖에 없음도 마찬가지다. 상호 군축, 평화협정 당사자 문제, 평화협정의 조항, 주한미군 주둔 여부, 유엔사 해체 여부, 한미동맹의 변화 등이 적극적 평화를 위한 주요 쟁점이지만 이들 논의가 겉돌 수밖에 없고 매번 제시되는 과제들이 공허하게 들리는 이유는 아직 그것을 구체적으로 논의하고 고민할 한반도 상황이 아니기 때문이고 그 핵심에는 남북관계의 현 단계가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 남북 수석 대표의 격 차이로 남북당국회담이 무산된 가운데 12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 그랜드힐튼호텔에 설치된 회담장이 철거되고 있다. ⓒ뉴시스


남북이 서로 적대하고 불신하고 반목하는 작금의 현실에서 그 무슨 평화협정이니 평화체제가 가능할 것인가? 상대방의 '격'을 내가 판단하고 상대방 수석대표를 특정인으로 지목해서 그가 아니면 회담이 불가능하다는 일방주의와 우월주의가 마치 정상적 남북관계 바로잡기로 인식되는 조건에서는 제아무리 좋은 내용으로 평화협정이 체결된다 하더라도 남북의 평화는 불가능할 수밖에 없다. 결국 한반도 평화의 진전은 핵심적으로 남북관계의 진전과 맞물려 진행될 수밖에 없다. 관계의 평화 없이 문서나 조약의 평화는 취약한 평화일 뿐이다.

결국 남북관계의 진전이 한반도 평화에 기여하고 증대된 평화는 다시 남북관계 진전을 추동한다. 한반도 평화와 남북관계는 서로가 서로를 보완하고 강화시켜주는 상호적 관계인 것이다. 경협이 군사적 보장을 통해 신뢰구축에 기여하고 다시 군사적 신뢰구축의 증대가 남북경협을 더욱 활성화시키는 상호 선순환의 관계가 이를 입증한다. 관계의 평화가 한반도 평화의 토대가 되는 셈이다.

그러나 남북관계의 진전만으로 한반도 평화가 완성되는 것은 또한 아니다. 경제협력이나 사회 문화적 교류가 한반도 평화의 우호적 환경을 마련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자동적으로 군사적 적대 관계를 해소해내지 못하는 것은 사실이다. 2013년 남북의 군사적 긴장 고조 상황에서 개성공단은 너무도 쉽게 무력화되고 말았음을 우리는 목도했다. 경협이 군사적 신뢰구축의 필요조건은 되지만 남북의 적대적 대치를 말끔히 해소할 수 있는 충분조건에는 이르지 못하는 셈이다. 남북관계가 한반도 평화의 조건과 환경이 되지만 한반도 평화를 완성하는 도깨비 방망이는 아닌 것이다.

오히려 정치 군사적 대치와 대결은 그 자체로 평화체제 논의를 통해 해소해야 할 필요성이 존재한다. 북핵문제 해결과 함께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체결 등 획기적이고 극적인 평화체제로의 전환은 정치적으로 우선 결심되고 관철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 군사적 차원의 법제도적인 평화체제 마련이 진행된다 하더라도 이를 가능케 하는 남북관계 차원의 '내부적' 평화가 자리 잡지 못하면 평화협정은 사상누각일 뿐이다.

당국 간 회담을 무산시키는 이른바 '격' 논란을 지켜보면서,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정상회담 대화록이 공개되는 참담한 현실을 지켜보면서 과연 지금의 남북관계와 우리 내부의 현실은 평화를 입에 올릴 수 없을 정도로 상호 적대와 분노 그리고 적개심과 오기로만 가득 차 있음을 부인하기 힘들다. 조평통 서기국장이 장관급 회담의 대표로서 충분함에도 이 명백한 사실조차 인정하지 않으면서 당국 회담을 무산시킨 박근혜 정부에게 절대다수의 지지를 보내고 있는 우리 사회의 비뚤어진 대북관을 보고 있노라면 과연 우리가 한반도 평화를 언급할 자격이나 있는지 스스로 자문하지 않을 수 없다. 누가 읽어보아도 명백하게 NLL을 고수하는 전제하에서 서해평화협력지대를 제안하고 있음에도 이를 NLL 포기라고 우겨대고 그 주장이 다수로 수용되는 작금의 우리 내부 분위기는 평화협정이 당장 체결된다 하더라도 결코 북한과는 평화롭게 공존할 수 없고 기어이 북을 타도하고 제거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위험한 반(反)평화적 상태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북한을 인정하고 북과 공존하려는 것보다는 북을 굴복시키고 혼내줘야만 올바른 남북관계라고 믿고 있는 우리 내부의 현실, 화해협력과 평화공존의 주장마저 이제는 종북세력으로 치부되는 우리 내부의 골 깊은 분열과 적대는 과연 한반도에 평화가 도저히 가능하기나 한 것인지 깊은 회의를 갖게 한다.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는 것도 필요하고 군사적 신뢰구축도 중요하고 경제협력과 사회 문화적 교류증대도 필요하지만, 가장 본질적으로 한반도 평화를 촉진하고 가능케 하기 위해서는 남북 간에 그리고 남과 북 내부에 켜켜이 쌓여가고 있는 상호 적대와 분노의 악순환을 이제라도 끊어내는 우리 스스로의 노력이 절실하다. 관계의 평화 없이, 우리 내부의 평화 없이 법제도적 평화체제와 문서로 보장된 한반도 평화는 공허할 뿐이다.

 
 
 

 

/김근식 경남대 교수 필자의 다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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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 파괴 종결자' 박정희의 '부정투표'

 


오늘은 제헌절입니다. 지난 1948년 대한민국 헌법이 만들어진 날입니다. 대한민국의 헌법은 참으로 굴곡진 역사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것은 헌법이 정당한 절차에 의해 만들어지고 시행되어야 하건만, 대한민국은 유독 정치권력에 의해 헌법이 참혹하게 유린당하는 시기를 숱하게 겪었습니다.

가장 먼저 제헌국회의 헌법 제정 과정에서부터 슬픈 대한민국 헌법의 수난사가 시작됩니다. 제헌국회 헌법기초위원회 초안은 모든 정파들이 동의한 내각제를 채택했는데, 이승만이 갑자기 대통령제를 주장하여, 대통령제도 의원내각제도 아닌 어설픈 헌법이 되기도 했습니다.

대한민국 헌법 수난사에서 가장 심각한 시기는 바로 박정희 독재 시절이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 등장으로 더욱 심해지는 박정희 왜곡과 찬양 속에서, 왜 그를 대통령이 아닌 독재자로 부르는 것이 마땅한지, 대한민국 헌법을 통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 오로지 대통령이 되기 위해 대한민국 헌법을 짓밟은 박정희'

헌법은 한 개인의 소유물이나 권력이 아닙니다. 헌법은 한 국가의 기본 통치 이념과 운영 방법을 담고 있으며, 정부의 과도한 통제를 방지하고,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잣대의 기준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헌법은 매우 중요하며, 그 나라의 헌법을 통해 국가의 민주주의 수준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박정희는 이런 헌법의 기본정신은 안중에도 없었고, 오로지 자신에게 방해되는 헌법을 중지시키고 대통령이 될 수 있도록 헌법을 개정했습니다.

 

 

 


박정희는 대한민국 헌법 개정 9번 중에서 무려 3번이나 유린한 범죄자입니다. 우선 5.16 군사쿠데타를 일으켜 헌법을 개정했고, 3선 개헌을 위해 헌법개정안을 날치기 통과시켰습니다. 그리고 영구집권을 위한 유신헌법을 불법으로 제정했습니다.

박정희의 헌법 파괴의 특징이 있는데, 첫째는 그 과정 자체가 불법입니다. 군사쿠데타 자체가 불법이었으며, 3선 개헌 당시는 국회의사당을 경찰로 에워싸고 일요일 새벽 여당의원들로만 기명투표 방식을 통해 변칙 날치기 통과시켰습니다. 또한, 유신헌법을 위해서는 아예 비상계엄령을 선포해 총칼로 헌법을 개정했습니다.

두 번째는 대통령이 되기 위해 헌법을 개정했다는 점입니다. 군사쿠데타를 통해 대통령이 된 박정희는 3선 개헌은 절대 하지 않는다는 약속을 해서 대통령이 됐지만, 1차에 한해 중임이 된다는 기존의 헌법으로는 대통령이 될 수 없으니 3선 개헌을 단행합니다.

 

 

 


박정희는 7대 대통령 선거에서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읍소 전략을 펼칩니다. 그 이유는 김대중 후보가 박정희를 위협하고, 박정희의 가장 큰 문제점이 3선개헌 약속 파기 등의 장기통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 여러분에게 분명히 말씀드리거니와 내가 이 자리에 나와서 여러분에게 나를 대통령으로 한번 뽑아주십사하는 정치 연설은 오늘 이 기회가 마지막 연설이라는 것을 확실히 말씀드립니다."(1971년 4월 25일 박정희 후보 유세)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큰소리치며 국민에게 약속했던 그는 부정선거를 저지르고도 김대중 후보와 근소한 차이로 이기자 영구집권을 위해 헌법을 또다시 개정했습니다. 만약 박정희가 죽지 않았으면 아마 박근혜가 아니라 그의 아버지 박정희가 청와대에 있었을 것입니다.

' 헌법이라 차마 부르기도 부끄러운 유신헌법'

유신헌법을 헌법이라고 부를 수 있느냐고 묻는 질문에 우리는 독일의 법철학자 구스타프 라드부르호가 말한 '헌법적 불법성'이라고 답할 수 있습니다. 헌법으로써 불법을 저지른 것을 말합니다.

'헌법 파괴'의 종착지라고 부를 수 있는 유신헌법이 도대체 무엇을 담고 있는지 아직도 모르는 사람을 위해 유신헌법을 간략히 정리해봤습니다.

 

 

 


유신헌법은 박정희를 위한 헌법인 동시에 대한민국 헌법을 악랄하게 파괴한 행위였습니다. 우선 박정희는 영구집권을 위해 중임,연임이라는 조항을 아예 삭제했고, 대통령도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의 추천을 받아야만 후보가 될 수 있고, 그들을 통해서만 대통령이 선출될 수 있게 하였습니다.

대통령을 평생 해먹을 수 있게 만든 박정희는 아예 대법원장 임명,법관임명,헌법위원회 임명 등의 권한을 통해 사법부를 장악합니다. 여기에 국회의원도 자신이 만들 수 있게 하고, 국회가 대통령을 탄핵하지 못하면서 맘에 안 들면 국회도 해산하도록 했습니다.

박정희는 철저히 개인의 자유를 통제하는 인권박탈을 감행했습니다. 신체의 자유를 보장하는 구속적부심을 폐지했으며, 고문으로 인한 자백도 가능하게 하는 조항 (제10조) 표현의 자유에 대한 허가,검열을 금지하는 조항 삭제(제18조) 기본권볼질내요침해금지 규정도 (제32조 제2항) 삭제했습니다.

 

 

 


박정희는 유신헌법을 개정하기 전에 10.17비상조치를 통해 국회를 해산하고, 정당 및 정치활동을 금지하고 휴교령을 내렸습니다. 쿠데타에 해당하는 헌법적 긴급조치를 감행한 박정희는 비상국무회의를 통해 헌법적 불법을 완성합니다.

제왕적 대통령으로 입법,사법,행정부를 장악하고 국민의 인권까지 통제한 유신헌법은 개정안부터 (일부 헌법학자들은 이는 개정이 아니라 제정이라고 본다) 불법으로 시작해 국가형태를 파괴 변질시킨 중대한 범죄 행위였습니다.

'국민투표가 아닌 부정투표로 이룩한 유신헌법'

보수우익은 유신헌법이 국민투표로 찬성을 얻었기 때문에 불법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 논리라면 아마 3.15 부정선거도 선거였으니 인정하는 꼴이 됩니다.

1972년 치러진 유신헌법 개정안 국민투표는 아예 시작부터 끝까지 부정으로 일관된 부정 투표였습니다.

 

① 10월 27일 비상국무회의에서 헌법개정안 지지 유도 활동 전개 결의
② 11월 21일 국민투표 실시라는 속전속결
③ 유신헌법 반대 의견이나 비판 봉쇄:정당,개인 헌법 개정안 찬반의사 표시 금지
④ 유신헌법 반대 공화당 의원 및 김대중, 야당 의원 중앙정보부 체포 고문
⑤ 중앙정보부 각 지역분실에 '95% 득표 공작 명령' 하달
⑥ 헌법개정안에 대한 김종필 총리의 선전 연설 중계
⑦ 지역에서 반대표가 나올 경우 불이익이 돌아간다는 반장,이장의 협박
⑧ 학교 교사들 학생을 통해 반대표를 던질 가능성 조사
⑨ 야당 참관인 배제
⑩ 군 탱크 및 군인,경찰 상주


처음부터 속전속결로 군 탱크와 군인, 경찰의 삼엄한 정국에서 이루어진 투표는 관권 부정투표의 모든 것을 보여줬습니다. 유신헌법에 반대할만한 사람은 여야를 가릴 것 없이 체포,고문했고, 중앙정보부는 각 지역분실에 '95% 득표 공작' 명령을 하달했습니다.

 

 

 

 


정부의 유신헌법 개정안 지지 대회는 전국에서 열렸고, 찬성 연설은 TV에 중계되고 신문마다 개정안이 왜 필요한지에 대한 보도자료 기사가 넘쳐났었습니다.

"유신체제 반대하면 붉은 마수 밀려온다"는 식으로 국민을 협박했고, 학교 교사와 지역 이장,반장들은 행여나 불이익을 당할까 봐 무조건 찬성표를 찍으라 강요했고, 반대표를 던질만한 사람을 조사해서 보고 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유신헌법 개정안 투표가 시작됐으니, 결과는 뻔했습니다. 무려 91.5%의 찬성률로 유신헌법 개정안이 통과됐습니다.

 

 

 


투표율과 찬성률을 보면, 마치 북한의 선거와 어쩜 이리 닮았는지 과연 박정희가 북한을 비판할 자격이 있었는가 의심됩니다. (간혹 아이엠피터에게 북한은 왜 비판 안 하느냐고 딴지 거는 사람이 있는데, 비판할 가치가 없는 중범죄자(북한)를 논하는 것 자체가 시간 낭비입니다. 딴지거는 사람들이 진정 북한을 생각하고 통일을 원하고 있을까요?)

박정희는 유신헌법이 통과됐지만 반대 세력이 늘어나자, 1974년 10월 19일 각 신문사 편집국장과 방송국장을 소집했습니다. 여기서 데모,퇴학 처분, 휴강 등 학원내 움직임과 종교계의 민권운동은 일체 보도하지 말 것에 대한 보도지침을 전달해, 언론통제를 시행했습니다.

또한, 인혁당 사건과 같은 용공조작을 통해 사법살인을 자행했으며, 유신헌법에 대한 반대는 어떠한 경우라도 용납하지 않는 중앙정보부 사찰 국가로 만들어 대한민국을 암흑의 시대로 이끌었습니다.

 

 

 



유신헌법은 "헌법의 형식을 취했으되 그 본질은 범죄이고 불법이었습니다."[각주:1] 헌법학자 권영성 교수는 “헌법이 제정되어 그것을 열심히 해석하고 연구한다. 그러다가 어느 날 갑자기 쿠데타에 의해 그 헌법이 없어지고 만다. 그러기를 몇 차례 … 때문에 선진국가의 헌법 학자와는 달리 우리나라와 같은 제3세계 국가에서는 헌법을 연구하기 이전에 어떻게 하면 군부쿠데타를 예방할 것인가 하는 것이 제1차적인 과제요, 연구과정이다."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오늘 제헌절, 박근혜 대통령은 헌법에 관련된 연설을 할 것입니다. 과연 그녀는 아버지가 대한민국 헌법을 파괴하고 신성한 투표를 부정으로 만든 사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지 궁금합니다.

제헌헌법에는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라고 명시됐었습니다. 그런데 이 문구가 1972년 제정된 유신 헌법에서는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국민은 그 대표자나 국민투표에 의하여 주권을 행사한다."는 문구로 바뀌었습니다.

헌법을 난도질당한 국민에게는 주권조차 사라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제헌절 아침에 되새겨보면서, 헌법을 파괴하는 행위는 어떠한 경우라도 용납하지 말 것을 이 글을 읽는 모든 분께 간곡히 부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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