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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공단 회담, 우리는 잘 하자고 준비해 나간다”

 

개성 8.15공동행사 주창한 김완수 6.15북측위원장

베이징=김치관 기자 | ckkim@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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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07.06 06:2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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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15민족공동위원회 공동위원장회의에 참석한 김완수 6.15북측위원회 위원장.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4,5일 양일간 중국 베이징 평양관에서 4년만에 열린 6.15민족공동위원회 공동위원장회의가 공동보도문을 발표하고 막을 내리자 남과 북, 해외의 위원장들은 서로 포옹하며 짧고 깊은 만남을 아쉬워했다.

 

김완수 6.15북측위원회 위원장은 “이 자리에 함께하지 못한 6.15남측위원회 모든 분들께도 안부를 꼭 전해달라”고 이창복 6.15남측위원회 상임대표의장의 손을 잡았다.

이틀간의 인터뷰 요청 공세에도 불구하고 공식 인터뷰를 사양하던 김완수 위원장은 “우리 겨레에(게) 기쁜 소식을 선참으로 전해준데 대해서 상당히 고맙게 생각한다”면서 환송만찬장에서 편안하게 대화에 응해줬다.

김완수(72세) 위원장은 “우리가 온 민족의 소감을 다 대변해서 허심탄회하게 의견들 교환하고, 더더욱 훌륭한 보도문을 채택했다”며 “문제는 이것을 잘 이행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8.15 민족공동행사를 개성에서 개최하기로 합의한데 대해 “개성에서 8.15 68돌 경축 공동행사를 하는 게 특별한 의의가 있다. 시기적으로 보나 북남 상황으로 보나 한반도 정세로 보나 꼭 성사시켜야 한다”면서 “8.15행사 자체를 거역하는 것은 바로 (8.15)해방 자체를 거부하는 것으로 봐야한다”고 단호한 입장을 밝혀 주목된다.

이번 공동위원장회의 과정에서 6.15북측위원회는 8.15 민족공동행사의 개성 개최를 강력하게 제기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김 위원장의 이같은 발언으로 미루어 보아 이후 북측은 남측 정부의 남북관계 개선의지를 이를 통해 평가할 것으로 보인다.

그는 “우리 북측은 걱정 말라. 다 준비돼 있다”고 장담하고 “이번에 나는 남측에서 그것을 꼭 성사시킬 수 있으리라고, 우리 남측위원회가 많은 힘을 넣어서 꼭 실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기대감을 표했다.

하루 뒤인 6일로 예정된 남북 당국간 개성공단 실무접촉에 대해 그는 “우리는 일단 잘하자고 준비해 가지고 나가는데, 남쪽에서 그것을 알고 합리적으로 다 쌍방에 이롭게 타결되도록 손질을 잘해 가지고 나오면 성과를 보는 거고, 또 그렇지 않고 다른 마음 가지고, 딴 생각 가지고 나오게 되면 안 되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함경남도 김책시 출신인 김완수 위원장은 지난 6월 6.15북측위원회 총회에서 위원장으로 선출되기 전까지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조국전선) 중앙위원회 서기국 국장을 맡아왔고, 2002년부터 노동당 통일전선부 부부장을 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대남 실세’로 평가받고 있다.

그는 “문제는 우리가 민족을 위해서 서로 잘 협력하고 잘 이해하고 잘 합심해서 가자는 생각만 가지고 마주 앉으면 다 해결된다”며 “이번에 우리를 보라. 가장 짧은 시간에 많은 문제를 담아서 우리가 문서에 넣지 않았느냐. 어떻게 무슨 생각을 가지고 대하는가? ‘민족공조’에 서면 어려울 것이 하나도 없다”고 말했다.

최근 논란을 빚었던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서기국 국장의 ‘급’에 대해서도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서기국장은 상(장관)급이다. 내각 상들과 대등한 급이다”고 재확인하고 “이번에 남북회담하면서 의도적인지 혹 착오인지 모르겠지만, 북과 남이 대화한 지도 수십 년인데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서기국장 지위를 모를 수 없다”고 꼬집었다. 아울러 조국전선 서기국 국장 역시 상급(장관급)이라고 확인했다.

그는 이창복 6.15남측위원회 상임대표의장에 대해 “이창복 선생을 처음 만났는데 만나는 순간부터 마음에 끌렸다. 이번에 길지 않은 시간에 상봉하면서 역시 폭이 크고 이해력이 깊다는 것을 느꼈다”고 호감을 표하고 “앞으로 계속 공동위원회 사업을 해나가면 성과물이 상당히 많이 나올 걸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번 공동위원장회의에 배석한 6.15남측위 대표단들도 이번 공동보도문 채택이 순조롭게 진행된 데는 김완수 위원장과 이창복 상임대표의장의 리더십이 주요하게 작용했다고 평가했다.

다음은 5일 오후 9시 40분경 베이징 평양관 2층 환송만찬장에서 김완수 6.15북측위원회 위원장과의 대담 내용이다.

“손을 잡아도 뜨겁게 잡아야 한다”

 

   
▲ 김완수 위원장은 공식 인터뷰를 사양하다 5일 환송만찬장에서 기자의 질문에 응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 통일뉴스 : 4년 만에 열린 공동위원장회의가 공동보도문을 발표하고 막을 내렸다. 소감은?

 

■ 김완수 위원장 : 이번에 우리가 6.15 13돌 행사를 전 민족적인 범위에서는 못했지만 북과 남, 해외를 대표한 우리들이 이렇게 모여서 했다고 본다.

비록 몇 명 안 되는 대표들이 모여서 했지만 우리가 온 민족의 소감을 다 대변해서 허심탄회하게 의견들 교환하고, 더더욱 훌륭한 보도문을 채택했다. 문제는 이것을 잘 이행하는 것이다.

나이 많으신 곽동의 위원장 선생도 그렇고 이창복 상임대표 선생도 다 결심이 크겠는데, 나도 그 결심을 따라가야겠다. 이 자리에 앉아서 많은 것을 생각하고 마음을 굳게 다지게 된다. 위원장들이 어떻게 움직이느냐가 중요하기 때문에 책임이 막중하다.

그래서 북과 남 해외를 대표하는 위원장들부터 먼저 단합하자. 손을 잡아도 뜨겁게, 정말 놓기 싫게 뜨겁게 잡아야 한다.

이창복 선생을 처음 만났는데 만나는 순간부터 마음에 끌렸다. 이번에 길지 않은 시간에 상봉하면서 역시 폭이 크고 이해력이 깊다는 것을 느꼈다. 앞으로 계속 공동위원회 사업을 해나가면 성과물이 상당히 많이 나올 걸로 기대한다.

□ 이번 공동보도문은 합의 항목도 많고 범주도 넓고, 특히 당국 간 대화 흐름도 있기 때문에 현안을 많이 다룬 것 같다.

■ 이제 우리 민간뿐만 아니라 당국도 마주앉아서 민족의 공동문제를 협의하지 않느냐. 우리가 다시 한 번 출발하니까 우리 민족에 주는 감회가 새롭다.

그런 의미에서 6.15민족공동위원회 북쪽을 책임진 저로서 책임감을 더 깊이 간직하고 앞으로 더 열심히 할 생각이다.

“8.15공동행사를 거부한다면 8.15해방 자체를 거역하는 것”

 

   
▲ 공동보도문 발표 의식에 앞서 손을 맞잡은 6.15민족공동위원회 공동위원장들. 왼쪽부터 김완수 위원장, 이창복 6.15남측위 상임대표의장, 곽동의 6.15해외측위 위원장.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 시간이 많이 남지 않은 8.15 공동행사의 개성 개최를 공동보도문에 명시했는데, 실현이 가능한가?

 

■ 개성에서 8.15 공동행사를 어떻게나 성취해야 한다. 개성에서 8.15 공동행사를 개최하는 것은 여러 가지로 의미가 크다.

우리가 40년 동안 왜놈의 식민지로서 얼마나 많은 고통을 겪었는가. 해방 당시의 기쁨과 희망이 그냥 이어져 우리 반도에 하나의 조선이 세워졌으면, 우리 민족이 휘황찬란하게 세계무대에 이미 강성국가로 섰을 것이다.

그러나 이 분단이 오랜 시간 흐름으로 해서 우리 민족이 많은 고통과 희생을 당했는데, 이것을 계속 지속시킬 수는 없겠다. 반드시 이것은 우리 세대에 우리가, 우리 손으로, 우리 힘과 지혜로 해결해 나가야 된다.

그런 의미에서 개성에서 8.15 68돌 경축 공동행사를 하는 게 특별한 의의가 있다. 시기적으로 보나 북남 상황으로 보나 한반도 정세로 보나 꼭 성사시켜야 한다. 개성은 여러 가지 의미가 깊지 않나.

□ 지금과 같은 남북관계 상황에서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이는데.

■ 우리민족에게 해방의 기쁨과 통일에 대한 확신을 심어줄 8.15공동행사를 거부한다면 8.15해방 자체를 거역하는 것으로 된다. 그야말로 식민지 노예로서의 피맺힌 원한을 풀어 던지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안고 사는 사람들만이 거부할 수 있는 작태다. 그렇기 때문에 8.15행사 자체를 거역하는 것은 바로 해방 자체를 거부하는 것으로 봐야한다.

이번에 나는 남측에서 그것을 꼭 성사시킬 수 있으리라고, 우리 남측위원회가 많은 힘을 넣어서 꼭 실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 북측은 걱정 말라. 다 준비돼 있다. 정말 온 민족이 새롭게 다시 한 번 새로운 6.15시대를 맞이하는 그런 기쁨과 감격 속에서 행사 준비를 잘 하자. 그때 다시 만나서 남은 회포를 풀자.

“조평통 서기국장 지위를 모를 수 없다”

 

   
▲ 환송만찬을 마치고 기념촬영을 한 6.15남,북,해외측위 대표단.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 조국전선 서기국 국장을 오랫동안 맡았는데, 주로 남북관계를 취급하는 기구인가?

 

■ 온 민족 각계각층이 사상과 제도, 이념을 초월해서 하나로 단합해서 통일이라는 목표로 향하는 그런 사업을 하는 기관이다.

조국전선은 한생을 통일성업에 바쳐온 우리 수령님(김일성 주석)께서 해방 직후에 북한의 각계각층을 단합해서 하나로 뭉치기 위한 조직으로서, 1946년 7월 22일에 민족전선을 결성할데 대해 발기하시고 조직을 무어주시었다. 조국전선 창립은 그것을 시발로 계산하고 있다.

그 후에 49년 6월 26일 북과 남이 합쳐서, 정당, 단체, 각계각층이 합쳐서 평양모란봉극장에서 조국전선 결성대회를 했다.

□ 당시 조국전선 초대 의장은 누구이고, 지금은 누가 의장인가?

■ 초대 의장은 우리 수령님이고, 지금은 조국전선 의장이 여러명 있다. 노동당을 대표하는 의장, 사민당을 대표하는 의장, 청우당을 대표하는 의장, 각계각층을 대표하는 의장이 있다.

조국전선은 의장단이 있고 서기국이 있다. 의장단이 사업하고 서기국은 서기국 대로 사업한다. 조국전선은 북과 남, 해외가 다 뭉친 그런 정당.단체 연합기구이다.

□ 최근 남북은 장관급 회담 개최에 합의하고서도 남측이 조평통 서기국 국장의 ‘급’을 문제삼아 통일부 차관을 수석대표로 내세워 회담이 결렬됐다. 조평통 서기국 국장은 어느 급인가?

■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서기국장은 상급이다. 내각 상들과 대등한 급이다.

이번에 남북회담하면서 의도적인지 혹 착오인지 모르겠지만, 북과 남이 대화한 지도 수십 년인데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서기국장 지위를 모를 수 없다.

지난 시기에는 우리가 상급회담 할 때 단장을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서기국 1부국장을 내각 책임참사 직책을 줘가지고 나섰는데 이번에는 급을 높여서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서기국장을 상급회담에 나가는 것으로 했는데, 남쪽이 그것을 잘 받아들이지 못했다.

□ 조국전선 서기국장도 마찬가지로 상급인가?

■ 그렇다.

개성공단 실무회담, “우리는 일단 잘 하자고 준비해 나간다”

 

   
▲ 김완수 위원장이 이창복 상임대표의장과 포옹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 내일 개성공단 실무접촉이 있는데, 바람이 있다면 간략히 전해 달라.

 

■ 우리가 공동보도문에 개성공업지구 당국 국장급 실무회담이 잘 되도록 응원하기로 했다. 우리는 잘 되리라고 생각하는데, 문제는 대화라는 게 상대가 있으니까.

우리는 일단 잘 하자고 준비해 가지고 나가는데, 남쪽에서 그것을 알고 합리적으로 다 쌍방에 이롭게 타결되도록 손질을 잘해 가지고 나오면 성과를 보는 거고, 또 그렇지 않고 다른 마음 가지고, 딴 생각 가지고 나오게 되면 안 되는 거고.

문제는 우리가 민족을 위해서 서로 잘 협력하고 잘 이해하고 잘 합심해서 가자는 생각만 가지고 마주 앉으면 다 해결된다.

이번에 우리를 보라. 가장 짧은 시간에 많은 문제를 담아서 우리가 문서에 넣지 않았느냐. 어떻게 무슨 생각을 가지고 대하는가? ‘민족공조’에 서면 어려울 것이 하나도 없다.

□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들어서고 간부들의 세대교체가 이루어지고 있고, 나이가 많은 간부들을 교체할 것이라는 보도가 있다.

■ 일부 그렇지만, 우리 원수님(김정은 1위원장)께서는 우리 수령님, 우리 장군님(김정일 국방위원장) 뜻을 이어서 오랜 노간부들을 아끼신다. 노-장-청을 결합하면서 우리 장군님(김정은 1위원장)이 아끼신다. 우리는 다른 데와 좀 다르다.

□ 야위어 보이는데 건강은 괜찮은가?

■ 육체가 사람을 주재하는 것이 아니라 정신력이 주재한다. 어떻게 결단하고 사는가가 중요하다. 몸이 나서(살이 쪄서) 좋은 것 없다. 장수비결의 하나가 몸을 내지 않고 음식을 많이 안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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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의 비밀을 간직한 장소

 

창작의 비밀을 간직한 장소

 
휴심정 2013. 07. 04
조회수 240추천수 0
 

편집최재봉논산집한겨레.jpg
박범신의 논산 집필실 뒤꼍. 논산/한겨레 이정아 기자
 
그가 새롭게 정착한 논산시 가야곡면 조정리는 탑정호라는 커다란 호수를 끼고 있는 호숫가 마을이다. 마을이라고는 해도 근처에 인가가 많지는 않고, 여행객을 겨냥한 식당과 숙박시설 등이 드문드문 서 있는 한적하고 운치있는 곳이다.
 
“작년 여름 모든 사회적 타이틀을 내려놓고 새 출발을 위한 모종의 변화가 필요하다 싶었을 때 논산이 다가왔어요. 저는 사실 고향이 싫어서 떠난 사람이었기 때문에 논산으로 돌아갈 생각은 아니었지요. 서울을 뜨더라도 고향이 아닌 다른 지역으로 가려고 했어요. 그런데 여러 우연이 겹치면서 결국 논산으로 오게 됐네요.”
 
퇴역 교장 선생님이 지어서 살았다는 이 이층집이 작가의 마음을 끈 것은 크게 두 가지. 대문에서 마당에 이르는 진입로의 비스듬한 경사, 그리고 집 뒤꼍의 너른 암반과 그 아래 작은 연못이었다. “처음부터 언젠가 와 본 것처럼 편안한 느낌이었어요. 입구의 야트막한 경사는 저의 오랜 로망이었고, 뒤꼍의 바위는 앉아서 소주 한잔 하기 딱 좋아 보이더군요.”
 
그러나 서울을 뜨기 싫다며 뒤에 남은 부인의 배웅을 받으면서 평창동 집을 나설 때 그의 마음은 착잡하기 그지없었다. “유배를 가는 기분”이었다고 그는 2011년 11월27일치 페이스북 일기에 썼다. ‘나는 대체 왜 이 길을 가려고 하는가.’ 스스로에게 던진 이 질문에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면서 누군가에게 등을 떠밀리듯 떠나온 길이었다.
 
그렇게 돌아온 고향 논산에서 그를 맞이한 것은 뜻밖에도 ‘귀신’들이었다.
 
“낮에는 집 앞 호수와 그 너머 산들을 보거나 차를 몰고 논산 전역의 골목골목을 둘러보는 일로 소일할 수가 있어요. 문제는 밤이죠. 천지 사방이 깜깜한 가운데 집 안에 홀로 웅크려 있자니 견딜 수가 없는 거예요. 우선은 책을 읽으면서 버텨 보지만, 밤 열 시쯤 되면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소주를 아주 빠른 속도로 마시죠. 그렇게 해서 어느 정도 취기가 돌면 누군가의 말소리가 들리고 헛것이 보이기도 해요. 결국은 그이들과 대화를 나누는 지경까지 가는 거죠.”
 
논산 집에서 그가 만난 귀신들은 모두가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고 죽은 사람들의 혼령”이라고 그는 말했다.
 
“호수가 끝나는 안쪽이 계백이 최후의 결전을 벌인 황산벌이에요. 미륵세상을 꿈꾸었던 견훤을 무너뜨리고서 왕건이 세운 절 개태사가 그 인근이구요. 동학의 남북 접주들이 모여 우금치 전투를 준비하던 곳도 근처입니다. 금강 유역이란 대대로 패배의 역사가 짙은 곳이죠. 5천 년 역사 속에서 얼마나 많은 영혼이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고 이곳에서 죽었을까요. 뗏장 밑의 억울한 영혼들이 저를 매개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고자 저를 이곳으로 부른 것만 같아요. 서울에 있었다면 발견하지 못했을 이야기들이죠.”
 
그는 또 조선 중기 예학(禮學)의 태두 격인 사계 김장생으로 대표되는 유구한 유학적 전통 역시 그가 발견한 고향 논산의 새롭고 중요한 면모라고 강조했다.
 
“흔히들 논산 하면 육군훈련소를 떠올리기 십상인데, 논산은 사실 매우 유서깊은 전통문화를 간직하고 있는 고장입니다. 율곡 이이의 법통을 이은 게 김장생이고, 노론의 영수인 우암 송시열이 바로 사계의 제자입니다. 그 송시열의 제자 격임에도 주자학에 반기를 든 개혁적 지식인 윤휴에게 우호적이었던 윤증의 고택 역시 논산에 있습니다. 소론의 태두로 불리는 윤증이라는 관찰자의 눈으로 보수의 거두 송시열과 진보의 거두 윤휴의 관계를 들여다보는 소설도 쓰고 싶어요.”
 
수구초심이랬다고, 나이 든 작가가 고향으로 내려가면 대체로 자연과 벗하는 가운데 차분하게 삶을 정리하는 말년을 상상하기 쉽지만 ‘영원한 청년 작가’를 자처하는 박범신에게는 해당하지 않는 말이다. ‘유유자적과 안빈낙도는 가라! 나는 작가로서 새 출발을 하기 위해서 여기 왔다. 새로운 곳으로 새로운 인간이 온 것이다!’ 예순을 훌쩍 지나 일흔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그의 안에 도사린 채 형형한 눈빛을 번득이고 있는 어느 불온한 청년이 그의 귀에 대고 외쳐 대는 말이 들리는 듯하다.
 
 
그렇게 내려간 고향에서 그는 그러나 아직 새 소설에 착수하지 못하고 있다. 마지막 소설 <말굽>을 탈고한 때로부터 치자면 1년 반 동안 ‘작가 휴업’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셈이다. 90년대 초중반의 ‘절필’ 기간을 포함해 작가 생활 39년 동안 중단편집을 제하고 장편만도 39편을 낸 작가치고는 썩 이례적인 일이다. <은교>에서 <비즈니스>를 거쳐 <말굽>까지 세 장편을 1년 반 동안 몰아서 썼던 그 아닌가. “소설을 안 쓰는 게 더 힘들다”던 그가 이례적으로 오랫동안 침묵을 지키는 게 걱정스럽다기보다는 그 배경이 궁금했다.
 
“무언가 변화가 필요해서 내려오긴 했는데, 그 방향이 어디일지에 대해 아직 확신이 서질 않네요. 1993년 절필 선언을 하고 96년에 <흰소가 끄는 수레>로 복귀한 뒤부터 <말굽>까지는 말하자면 초월을 향한 갈망에 끄달렸던 시기라 할 수 있지요. 지금은 그 갈망의 시기가 끝나고 내 문학 인생의 마지막 시기가 시작되는 지점인데, 그게 어떤 것일지 저부터가 촉수를 내밀고 기다리고 있는 셈이에요. 그렇지만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고 죽은 이들의 이야기’를 쓴다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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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작가, 그 공간 - 창작의 비밀을 간직한 장소 28> (최재봉 지음, 한겨레출판)

'그가 지금 꿈꾸는 문학 - 소설가 박범신의 논산 집필실' 중에서

 

■저자 최재봉

1961년 경기도 양평에서 태어났다.

경희대 영어영문학과와 그 대학원을 졸업했으며,

현재 <한겨레> 문학기자로 문학과 대중의 거리를 좁히는 일을

천직으로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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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2013 아리랑 공연 승리와 경축의 장

북, 2013 아리랑 공연 승리와 경축의 장
 
아리랑 첫장 출연자 한명도 없이 특색 있게 구성
 
이정섭 기자
기사입력: 2013/07/05 [08:39] 최종편집: ⓒ 자주민보
 
 
 
▲ 세계 기네스북에 등재 된 대집단 체조와 예술 공연 아리랑이 오는 22일부터 진행된다고 북 언론이 밝혔다. ©
조선의 김일성상 계관 작품으로 세계 기네스북에 등재 된 대집단 체조와 예술공연인 아리랑이 승리와 경축의 장으로 구성 된 것으로 알려졌다.

조국평화통일위원회 기관지인 우리민족끼리는 5일 커다란 관심 속에 펼쳐질 승리의 아리랑, 경축아리랑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승리자의 긍지 넘치는 우리 조국 땅에 아리랑열풍이 세차게 일고 있다.”면서 “김일성상 계관작품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아리랑》이 진행된다는 보도는 만 사람의 가슴을 또다시 아리랑열풍으로 달구어주고 있다.”고 쓰고 우리 민족끼리 기자가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아리랑》국가 준비 위원회 일꾼과 대담한 소식을 보도했다.

우리민족끼리 기자는 “올해에 진행되는 대집단체조와 예술 공연 《아리랑》은 벌써부터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그에 대하여 알고 싶다.”고 질문햇다.

이에 대해 국가준비위 일꾼은 “이미 보도된바와 같이 공화국창건 65돐과 위대한 조국해방전쟁승리 60돐을 맞으며 수도 평양의 5월1일경기장에서는 김일성상 계관작품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아리랑》은 세계《최강》을 자랑하던 미 제국주의를 타승하시여 유례없는 군사적 기적을 창조하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대원수님의 불멸의 전승업적과 우리 조국을 정치사상강국, 인공지구위성제작 및 발사국, 핵보유국, 무적의 군사강국으로 일떠세우신 위대한 영도자 김정일 동지의 선군혁명영도업적을 감명 깊은 화폭들로 펼쳐보이게 된다.”며 “또한 위대한 대원수님들의 숭고한 뜻을 받들어나가시는 경애하는 김정은동지의 현명한 영도아래 나날이 부강 번영하는 내 조국의 밝은 모습을 펼쳐보이게 된다. 한마디로 말하여 어제 날의 수난의 아리랑이 절세위인들의 현명한 영도에 의하여 오늘은 어떻게 승리의 아리랑, 행복의 아리랑으로 승화되고 있는가를 감동깊이 보여주게 된다.”며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공화국창건 65돐과 전승 60돐을 맞으며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아리랑》이 승리의 아리랑, 경축아리랑으로 높이 울려 퍼지도록 현명한 가르치심을 주시여 우리 창작가, 예술인들과 출연자들에게 신심과 용기를 안겨주시었다.“고 전했다.

기자는 “이번에 진행되는 공연에서 지난 시기와 다른 특색있는 것은 어떤 것인가.”라고 묻자 일꾼은 “일찍이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아리랑》을 놓고 보아도 위대한 시대가 위대한 역사를 창조한다는 것을 알수 있다고 가르쳐주셨다.”며 “우리 혁명이 새로운 전환의 시기에 들어선 지금 우리나라(조선)에서는 세인을 경탄시키는 사변들이 끊임없이 펼쳐지고 있다. 인공지구위성 《광명성-3》호 2호기의 성과적발사와 제3차 지하핵 시험의 성공, 미제를 괴수로 하는 제국주의연합세력의 광란적인 핵전쟁소동에 대처하여 연이어 취해진 우리 공화국의 자위적조치들, 《마식령속도》창조를 위한 장엄한 대진군, 승리자의 신심 드높이 힘있게 벌어지는 공화국창건 65돐과 전승 60돐 경축행사준비들…”이라고 말을 끊은 뒤 “이런 장엄한 현실은 창작가들에게 창작적 영감을 불러일으켜 대집단체조와 예술 공연을 또다시 시대적 명작으로 되게 하였다. 좀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한다면 지난 시기 꽃다발을 들고 명절옷차림으로 단장한 녀성들의 첫 출연으로 시작되던 경축장에는 출연자는 한명도 보이지 않지만 여러 가지 조명과 음악을 비롯한 특수효과로 경축의 분위기를 살리게 된다.”고 말하고 각장의 구성을 설명했다.

그는 “1장 3경에서는 지금으로부터 60년전 강철의 영장이신 위대한 수령님께서 전승열병식광장에서 연설을 하시는 역사적인 장면을 육성녹음과 함께 펼치며 위대한 장군님의 태양상도 정중히 모셔 위대한 대원수님들에 대한 그리움과 경모의 정을 더해주게 된다. 또한 경애하는 원수님의 영상도 밝고 정중하게 모시여 그이의 령도따라 최후승리를 향해 힘차게 나아가는 우리 인민들의 투쟁을 크게 고무추동하게 된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뿐만 아니라 5장 친선아리랑의 폭을 넓힌 것을 비롯하여 모든 장, 경들이 보다 높은 수준에서 창조되고 있다.”며 “궤도축포를 이용하여 봉화를 지펴 올리는 등 조명과 장치를 비롯한 형상부문에서도 혁신적인 창조물들이 많이 도입되게 된다.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아리랑》의 성공은 배경대를 떠나서 생각할 수 없다. 이번에도 배경대에는 역사적인 내용들을 실감 있게 펼쳐 대집단체조와 예술 공연의 품격을 더욱 돋구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공화국창건 65돐과 전승 60돐을 맞으며 진행되는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아리랑》이 승리의 아리랑, 경축아리랑으로 진보적 인류의 마음속에 깊이 새겨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민족 기자는 “이야기를 듣고 보니 더욱 기다려진다. 현재 준비는 어느 정도이며 언제부터 공연을 시작하겠는지에 대해서도 이야기해주었으면 한다.”는 질문을 이어갔다.

국가준비위원회 일꾼은 “마식령속도를 창조하기 위한 투쟁의 불길은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창작가들과 출연자들의 가슴속에서도 세차게 타오르고 있다.”며 “출연자들은 긴장한 전투를 벌려 6월중순에는 모든 장, 경들의 틀 거리를 갖추었다.”며 “이번에도 대다수의 인원이 처음으로 인입되고 많은 부분을 새롭게 창조하여야 하는 조건에서 이것은 대단한 혁신이라고 할수 있다. 많은 면에서 비약을 가져왔다고 하지만 우리에게는 아직도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경애하는 원수님의 역사적인 호소문을 피끓는 심장에 받아 안은 우리 창작가들과 출연자들의 열의는 대단하다. 우리는 제2, 제3의 《마식령속도》를 창조하여 선군조선의 기상을 떨칠데 대한 당의 뜻을 받들고 모든 장, 경들을 빠른 시일내에 만점짜리로 만들어내겠다. 하여 공화국창건 65돐과 전승 60돐을 맞는 올해에 승리의 아리랑, 경축아리랑이 더 높이 울려 퍼지게 하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우리민족끼리는 “이미 보도 된 대로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아리랑》이 7월 22일부터 막을 올린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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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불회' 회주 명진 스님 인터뷰

 

"국정원 댓글사건, 박 대통령 정말 몰랐을까?
밤11시 경찰 허위 발표...선진국이면 선거무효"

[나는 분노한다②] '단지불회' 회주 명진 스님 인터뷰 ①

13.07.04 17:40l최종 업데이트 13.07.05 09:05l
유성호(hoyah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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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불회 회주 명진 스님이 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사무실에서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 중 "노무현 전 대통령이 NLL을 포기했다는 것은 누가 봐도 억지 주장이고, 국정원이 댓글 사건을 덮으려다가 자기 발등을 찍은 격"이라고 일침을 날렸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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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이 기원정사에 있을 때 목련존자가 작은 암자에서 공부를 했는데, 부처님께 이야기를 전합니다. '양치기들이 양떼를 몰고 와서 해가 지면 돌아가는데, 무리에서 떨어진 양 한마리가 표범을 봤답니다. 꼼짝없이 죽었다고 생각했겠죠. 산양은 그 순간 뿔을 앞세우고 사정없이 달려들었고 표범이 움찔하는 사이 무리에 합류했다고 합니다.'

부처님이 그 이야기를 듣고 목련존자에게 말합니다. '정말로 나쁜 놈에게는 정중함이 필요가 없다' '법도 필요가 없다' '싸우는 길이 최선이다'. 본생담(本生譚. 석가의 전생 생활을 묘사한 설화)에 나오는 말입니다. 불의한 정권, 악한 정권, 정의롭지 못한 정권이라면 표범에게 달려드는 산양과 같아야 합니다."

'단지불회(但知不會)' 회주 명진 스님의 말이다.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수송동 사무실에서 명진 스님을 만났다. 사무실 창문을 닫아도 조계사에서 친 목탁소리가 방안에 은은하게 울려 퍼졌다.

스님은 제주 왕벚나무로 만든 함지박을 뒤집어놓은 다도상 앞에 앉았다. 1년 전보다 얼굴이 많이 수척해졌다. 대상포진 후유증을 앓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최근 불거진 '국정원 게이트'에 대해서는 결기어린 표정으로 사자후를 토했다. 이날 인터뷰를 마친 뒤 '발언의 엑기스'를 모아 기자의 휴대폰으로 동영상을 찍었다. 6분 분량이다. 이른바 '명진 스님의 시국선언'.
 
명진스님의 시국선언
ⓒ 김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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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댓글사건과 3.15 부정선거

그는 동영상을 촬영하기 전 2시간여 동안 이런 시국선언이 나온 배경을 조목조목 설명했다. 죽비소리처럼 따끔했고 때론 절묘한 비유를 들었다. 또 유머와 위트로 국정원 게이트 정국의 맨얼굴을 양지로 드러냈다.

"영남제분 회장 부인의 청부살인 사건은 국정원 댓글 사건과 너무 닮았습니다. 사람을 시켜서 산탄총으로 여대생을 쏘아 죽인 회장 부인은 무기징역을 받았는데 호텔급 병원 특실에서 지냈어요. 파렴치한 악질범죄죠. 허위진단서를 써준 사람은 누구죠? 의사입니다. 변호사도 동참했겠죠? 학연, 지연을 통해 비리의 모순덩어리를 지탱했어요. 이게 한국 사회 상위 1%의 단면입니다."

명진 스님은 "국정원 댓글 사건도 상위 1%의 기득권층이 저지른 국가 권력의 조직적 범죄행위"라면서 "지난 대선은 원세훈 전 국정원장을 필두로 박원동 전 국익정보국장,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 권영세 전 새누리당 선거대책본부 종합상황실장(현 주중대사)들이 상의해서 저지른 부정선거"라고 주장했다.

그는 한 발 더 나아가 "지난 대선은 불법적인 권력 찬탈"이라며 "3.15부정선거에 버금가는 부패 타락선거"라고 규정했다. 그는 "미국 CIA와 FBI가 이런 일을 벌였다면 그냥 넘어가겠느냐"고 반문한 뒤 "선진국에서는 선거 자체를 무효로 처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스님은 "평소 법과 원칙을 강조해 온 박근혜 대통령은 그 직을 수행하지 못하더라도 진실을 밝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선거 때 선거 사무장이 큰돈을 돌린 불법 사실이 드러나면 본인이 몰랐더라도 국회의원은 그 직을 상실합니다. 그런데 대선에서 국가 권력이 유기적으로 합작 공모했습니다. 국정원과 경찰, 그리고 새누리당이 한쪽을 깎아내리고 다른 한쪽을 당선시키려고 조직적으로 움직인 정황이 나왔습니다. 그런 불법을 덮으려고 대통령 기록물 보존기한을 어겨가면서 NLL을 들고 나왔습니다. 이런 날치기, 들치기꾼 같은 사람들이 국가권력을 좌우하는 최고 정점에 있습니다."

그는 국정원을 '걱정원'이라고 새롭게 작명했다. 앞날이 걱정스럽다는 뜻이다. "국정원 고급 인력들을 댓글이나 쓰게 만드는 작태도 한심하고, 국기문란 사건을 저지르는 직원들의 월급을 세금으로 충당하는 것도 국가 예산낭비"라는 것이다.

그는 남재준 국정원장이 '국정원의 명예를 위해서' 남북정상회담 발췌록과 대화록을 공개한 것에 대해서도 쐐기를 박았다.

"국정원은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한다고요? '음지에서 일하지 말고 국정원의 명예를 위해 국가 기록물은 다 깐다. 망신당해도 좋다'라고 모토부터 바꿔야 합니다. 국정원이 만든 발췌록도 정상이 아니지요. (노무현 대통령이) '나'라고 표현한 것도 '저'라고 바꾸고 북측 김계관 부상이 정상회담 중간에 6자회담 경과를 남북 정상에게 '보고'한 것을 노 대통령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보고 드린다'로 둔갑시켜 국민들을 오도했습니다."

그는 특히 "노무현 전 대통령이 NLL을 포기했다는 것은 누가 봐도 억지 주장이고, 국정원이 댓글 사건을 덮으려다가 자기 발등을 찍은 격"이라고 일침을 놨다.

집권 여당의 대국민 사기극과 도적질
 
▲ 명진 스님 인터뷰 단지불회 회주 명진 스님이 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사무실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과 박근혜 대통령의 평가 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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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일요일 심야에 벌어진 경찰의 허위 수사발표가 선거에 직접 영향을 미쳤다고 지적했다.

"국가변란이 일어난 것도 아닌데, 연쇄 살인사건 수사결과 발표도 아닌데, 서울경찰청장이 선거 3일전, 그것도 대선후보 마지막 TV토론이 끝난 뒤인 일요일 밤 11시에 (댓글 사건에 대해) '혐의점을 찾지 못했다'고 중간 수사 발표를 했습니다. 권은희 당시 수서경찰서 수사과장이 양심 고백하지 않았으면 이 어마어마한 진실이 그냥 묻혔을 겁니다. 당시 김용판 서울경찰청장이 주말인데도 쉬지 않고 출근해 발견된 댓글 증거를 조작하고 은폐하라고 지시해서 중간수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만일 수사결과를 있는 그대로 밝혔다면 선거가 어떻게 됐을까요? 아마도 핵폭탄급 파괴력이 있었을 겁니다. 선거가 그대로 치러질 수 있었을까요? 아마 곳곳에서 선거 보이콧 같은 사태가 일어나고 야단이었을 겁니다. 불법을 저지른 국정원 직원에게 인권 운운하면서 옹호했던 새누리당의 정치적 타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겁니다. 그날 하루에 국가의 운명이 뒤집어졌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는 "당시 경찰의 수사 결과 발표가 되기도 전에 김무성 총괄선대위원장, 박선규 대변인은 그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고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그는 수사결과 발표 직전에 박선규 대변인이 한 언론 인터뷰를 예로 들기도 했다. 박 대변인은 한 방송국 생방송에서 "아마 내 생각에는 국가적인, 국민적인 관심이 있기 때문에 조사 결과가 오늘 나올 것"이라고 발언한 바 있다.

"박 대통령은 정말 몰랐을까요? 16일 당일 TV토론 때 자신 있는 태도를 봐서 대략의 흐름은 감지하고 있지 않았을까요? 결국 국가기관인 국정원과 경찰, 집권여당인 새누리당이 합작한 불법적 대선 개입이고 대국민 사기극입니다. 법치주의 국가에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에 대해 국민들이 분노하고 있고 저도 화가 납니다."

- 박 대통령이 '대선 때 국정원으로부터 어떤 도움도 받지 않았다'고 입장을 밝힌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시나요?
"이심전심으로 도움을 받았다고 보는 게 상식이지 않습니까? 국정원 직원들이 불법인 줄 알면서도 숨어서 누구에게 유리하라고 댓글 달았습니까? 경찰은 왜 증거를 조작하고 은폐해서 발표했습니까? 문재인 후보를 위해서요? 국민을 위해서요?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입니다. 박 대통령은 TV토론 때 자신의 입으로 댓글을 단 국정원 직원을 (민주당이) 감금했고 인권을 유린했다고 했습니다. 흑색선전에 대해 전면전을 선포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흑색선전이 아니라 사실이었죠.

박 대통령 당시 문재인 후보가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이젠 입장이 거꾸로 됐죠. 국가기관의 불법적 대선개입에 대해 박근혜 대통령이 책임을 져야 합니다. 뿐만 아닙니다. 대선 때 NLL 문서도 몰래 도적질을 해서 불법적으로 공개하지 않았습니까. 김무성 선대위 총괄본부장이 자기 당 회의에서 그걸 자신이 입수해 읽었다고 자백하지 않았습니까? 청와대와 국정원에 밖에 없는 그 자료를 어디서 어떻게 누구로부터 구했는지 수사해야합니다. 그 불법적으로 입수한 NLL문건을 12월 14일 부산 선거 유세 때 김무성 총괄본부장이 박근혜 후보를 옆에 세워놓고 그걸 읽었어요. 그런데 국회에서 할 일이라고 물러서 있을 일인가요. 박 대통령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이젠 NLL을 피로 지키지 말자"

- 얼마 전 표창원 전 경찰대 교수는 이번 사건과 관련해서 자신의 트위터에 "법과 정의 짓밟은 박근혜, 더 이상 제겐 대통령이 아닙니다"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대선 결과에 대한 부정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표창원 전 교수의 시각이 과도하다고 생각하시나요?
"표창원 교수는 국가범죄를 저지른 국가기관에 대해 '도둑이야'라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엄청난 용기와 자기희생이 따르는 일이죠. 도둑을 보고 '도둑이야'라고 소리쳤는데 어떻게 도둑을 알게 됐느냐고 수사에 들어갔어요.(국정원이 기관 명예훼손으로 고소한 사건에 대한 수사를 지칭함.)

국정원은 지난해 12월 16일 댓글을 찾지 못했다고 경찰이 발표하자 11분 뒤 전광석화처럼 보도자료를 내 '국정원 직원 댓글 알바' 주장을 하는 사람들에게 민형사상 책임을 묻겠다고 협박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자신들의 불법행위가 밝혀진 지금 사과 한 마디 안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걸 밝혔다고 고소를 했습니다. 세상천지 이런 나라가 어디 있나요? 얼마 전에 민간인 불법사찰을 폭로했던 장진수 주무관도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주장하면서 불기소 청원을 했습니다. 검찰이 원세훈 전 국정원장만 불구속 기소하고, 박원동 전 국익정보국장은 기소도 하지 않은 것 때문입니다. 박 전 국장은 위에서 시켰기 때문이랍니다. 장진수씨의 청원을 검찰이 어떻게 처리할 지 궁금합니다."

- 남북정상회담 대화록과 발췌록이 공개된 뒤에도 새누리당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NLL을 포기했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습니다.
"사실이 아니라는 게 드러났죠. 그리고 정상회담에서 막말하나요? 예의를 갖춥니다. 그렇다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죽기 전에 NLL을 없앤 것도 아니지 않나요? 박근혜 대통령은 '피와 젊음으로 지킨 NLL'이라고 말했는데, 노 전 대통령이 정상회담에서 평화어로구역을 정하자고 이야기한 것은 앞으로는 NLL을 피로 지키지 말고 평화적으로 막자고 제안한 것입니다. 새누리당의 전신인 YS집권 때 이양호 국방장관이 NLL 어쩔 수 없다고 했습니다. 조선, 동아 등의 보수신문도 마찬가지의 입장이었습니다. 그랬던 그들이 노무현의 발언은 NLL포기라고 주장합니다. 노무현이 포기라면 그들 모두는 이미 NLL을 포기한 것 아닙니까?

사실 이명박 정권에서도 국무회의 할 때 70%가 병역 미필, 기피자였습니다. 정치권에서 NLL 지키자고 외치는 사람치고 군대를 갔다 온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자꾸 '좌파 축출' '종북 척결'을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국가안보는 총칼로 지켜지지 않습니다. 존경받는 지도자 아래서의 단합된 국민의 힘이 곧 안보입니다."

- 이 사건이 향후 남북 관계에 얼만큼 영향을 줄까요?
"북쪽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방북 당시 대화록을 내놓겠다는 의중을 비쳤습니다. 묘향산의 만국친선전람관에 가면 남쪽에서 보낸 선물이 많습니다. <동아일보>는 '보천보 전투에 대해 김일성 장군이 만든 위대한 전투'라고 쓴 동판(1.2킬로그램짜리 원판)을 제작해 바쳤죠. 전두환 대통령도 김일성 주석에게 친서(親書)를 보내면서 '주석님께서 광복 후 오늘까지 40년에 걸쳐 조국과 민족의 통일을 위하여 모든 충정을 바쳐 이 땅의 평화 정착을 위해 애쓰신 데 대해 이념과 체제를 떠나 한 민족의 동지적 차원에서 경의를 표해 마지 않습니다'라고 했다고 합니다. 이게 무슨 말일까요? 외교적 수사입니다.

박정희 대통령 시대에 이후락이 평양갔을 때 한 말은 달랐을까요? 난마처럼 꼬인 원한과 적대의 관계를 교류와 협력, 평화의 관계로 바꾸어 놓으려면 정말 허심탄회하게 이야기 하지 않고는 한걸음도 전진할 수가 없어요. 그런 점에서 북쪽에 가서 교류와 협력의 입장에서 한 여러 이야기를 공개한다면 남북관계가 진전될 수 없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남북관계를 잘 풀 수 있었는데 찬스를 놓친 것 같아 아쉽습니다."

- MB정부 때의 남북 관계가 대물림될 수 있다는 건지요?
"이번에 박근혜 대통령이 시진핑 중국 주석과 정상회담을 했습니다. 인조 때 삼전도에서 청 태종에게 머리를 세 번씩 땅에 찍어가면서 절을 했는데, 박 대통령이 중국에서 환대받은 것은 보기가 좋았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무찌르자 오랑캐'라는 노래를 부르면서 컸습니다. 중국도 적이었죠. 6.25전쟁 때는 어땠나요? 100만 대군을 밀고 들어와서 '멸공통일'을 가로막았습니다. 요즘도 서해에서 노략질을 하고 우리 경찰도 흉기로 죽였습니다. 그런 중국과 우호선린 관계를 맺었다고 좋아하는데, 북한과 못할 이유는 없는 거죠."

- 그럼 왜 북한과의 관계가 계속 꼬인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신라와 고려는 불교를 국가이념으로 삼았고, 조선 왕조는 유교인 성리학을 국가를 다스리는 철학 체계로 잡았습니다. 대한민국은 뭐죠? 박정희 대통령이 국가재건최고의장이 된 뒤에 첫 번째 혁명공약이 반공이었습니다. 무엇에 반대하는 것이 국가 정책일 수 있나요. 평화통일 얘기했던 조봉암 선생은 간첩으로 몰려 사형까지 당했습니다. 말로는 평화통일을 이야기하는데 안보론자들은 여전히 '멸공통일'에 갇혀있습니다. 지금도 '종북타도'라는 이름으로 그 맥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북쪽에만 진정성을 요구할 게 아니라 남쪽도 평화적 방법으로 상생을 길을 가야한다는 진정성을 가져야 대화할 수 있을 겁니다."

"'이명박근혜'란 조어가 진실을 관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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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진 스님은 "국가기관인 국정원과 경찰, 집권여당인 새누리당이 합작한 불법적 대선 개입이고 대국민 사기극이다"고 말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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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간 MB정부를 비판해왔습니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 출범 130여일이 지나고 있습니다. 대략 1부 능선 가까이 오른 것인데, 이명박 대통령과의 차별성이 있다고 보는지요?
"해방 직후에 '미국놈 믿지 말고 소련에 속지말자' '일본 놈 일어선다 조선아 조심하라'라는 말이 동요처럼 회자됐습니다. 그런데 지난 대선 때는 '이명박근혜'라는 말을 누가 지어냈습니다. 시중에 떠도는 말이 정확하게 진실을 관통하고 있습니다.

MB정부는 태어나지 말았어야할 정권입니다. 불량, 불법 정권입니다. 국가의 개념이 아니라 건설회사에서 자재 빼내기를 전문으로 했던 야바위꾼이 747 경제공약으로 대통령이 됐습니다. 그런데 4대강 사업과 미디어법 날치기 등은 친박이나 박근혜 대통령이 동조했습니다. 대선 때 이명박 대통령과 거리를 두면서 차별화 시키는 데 성공했는데, 대선에 김무성, 권영세, 원세훈, 그리고 하수인 김용판과 박원동이 긴밀하게 연락해서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에 올인한 게 드러났습니다."

- 마지막으로 국정원 정국의 한가운데 서 있는 원세훈 전 국정원장과 이명박 전 대통령, 박근혜 대통령을 위해 법문을 해주신다면?
"소떼가 강물을 건너갈 때 길잡이 소가 길을 바로하지 않으면 뒤따르는 소가 위험합니다.중생도 그와 같아서 대중에는 반드시 지도자가 있나니 나라의 임금이 바른 법을 행하면 모든 백성이 편안하다는 것입니다. <아함경>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논어>의 안연편에도 이런 말이 있습니다. 자공이 국가 경영 정치의 요체를 물으니 공자가 '경제를 풍족히 하고 군사력을 튼튼히 하고 백성을 믿도록 하라'고 말했습니다. 그 중 하나를 부득이 버려야 한다면 처음에는 군사를 버리고 그 다음으로는 경제를 버리고 마지막까지 신뢰를 지켜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믿음은 정직한 데서 나옵니다. 정치지도자는 정직함을 기본으로 해서 신뢰를 받아야 합니다.

박근혜 정권 출범 초기입니다. 여러 가지 실수가 있고 남북관계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초기에 터져 나왔기에 좀 더 솔직하고 진정어린 판단으로 국민을 대한다면 훌륭한 지도자로 다시 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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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이 무엇을 뜻하는 줄 아느냐?” AOK 의 미국인 동참자들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13/07/05 09:44
  • 수정일
    2013/07/05 09:44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연재> 정연진의 원코리아 운동이야기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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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07.04 18:5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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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대전 피해자들을 위한 마지막 전투를 즐겁게 수행하는 배리 피셔 변호사

“Do you know what Tongil means (통일이 무엇을 뜻하는 줄 아느냐)?” 미국인 변호사가 동포 2세들에게 물어보는 질문입니다. 영어권에서 자라나 우리말이 서툰 그들에게 “통일이라는 단어를 어떻게 읽는 줄 아느냐?” “이 단어가 무엇을 뜻하는 줄 아느냐?” 라고 열심히 2세들에게 통일이라는 말을 가르치는 사람은 푸른 눈의 배리 피셔 변호사. 이번 칼럼에서는 한국 사람 못지 않게 한국의 통일에 큰 열정을 가지고 있는 미국인들, Action for One Korea의 미국인 동참자들을 소개합니다.

먼저 세계적인 인권변호사인 배리 피셔. 일제강점기 강제동원피해자들의 법정 투쟁과 인권 회복을 위해 1999년부터 함께 활동해온 피셔 변호사는 저와는 오랜기간을 함께해온 동반자 같은 벗입니다.

미국에서 1990년대 후반 나찌전범 기업들을 상대로 유대인들의 집단소송이 대규모로 제기되었습니다. 벤즈, 스위스은행과 같은 세계적인 기업들, 유대인의 강제노역이나 휴면구좌로 부당이익을 취한 기업들을 상대로 수 많은 소송건이 제기됩니다. 독일에 대한 여론이 나빠질 것을 우려한 독일정부는 법정밖 합의를 통해 정부와 소송당한 기업들이 반반씩 배상기금을 조성할 것을 제안하기에 이릅니다. 1999년 7월 70억불에 달하는 거액의 배상기금이 조성되고 일부를 피해자들의 보상에 일부는 미래세대를 위한 역사재단을 만드는게 쓰이게 됩니다.

이렇게 성공적인 합의가 이루어진데는 정부, 피소기업, 피해자들간의 협상을 이끌어낸 변호인단의 역할이 컸습니다. 이 일련의 소송들은 ‘홀로코스트 소송’이라 불리는 세기적인 소송이 되는데, 배리 피셔 변호사는 이 세기적 소송이 최종 합의에 이르도록 주도적으로 기여한 변호사입니다.

여러 나라의 헌법에 대한 자문도 하고 있는 피셔 변호사는, 동구권이 몰락한 다음 생긴 여러 나라들의 헌법을 자문해 주면서 이들 나라들이 민족 단위로 독립을 성취하는 것을 목격하고 2차대전의 가해국인 독일도 통일을 이루었는데, 일제가 일으킨 침략전쟁의 피해자였던 한국이 아직 분단된 상태로 남아 있는 것에 대해 마음 아프게 생각합니다. 남과 북이 분단을 극복하고 통일을 이루는 것이 20세개의 불운한 역사를 마감할 수 있는 길이라 믿으며 피셔 변호사는 통일에도 깊은 관심을 가지고 AOK의 활동에도 참여하고 있습니다.


   
▲ 2008년 10월 네델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헤이그 국제평화회의 103주년 기념 컨퍼런스에 참석한 배리 피셔 변호사, 정연진 바른역사정의연대 대표, 독일의 ‘기억, 책임 미래에 대한 역사재단’ 사무총장 (왼쪽부터) [자료사진 - 정연진]

 

그는 한국과 중국의 징용피해자, 한국, 중국 필리핀이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을 위해 2000년부터 약 6년간 일본을 상대로 전개된 국제소송에서 변호단을 조직하고 소송을 이끌어가는 주도적 역할을 합니다. 일제과거사 문제를 다루는 여러 컨퍼런스와 국제 회의에서 피해자들의 인권회복을 위해 도쿄, 상하이, 베이징, 타이페이, 헤이그 등 어디든 마다않고 세계 곳곳을 다녔고, 남과 북이 일제과거사 문제 해결을 위해 힘을 합칠 수 있도록 북의 소송참여를 타진하기 위해 3차례 평양을 방문하기도 했습니다.


   
▲ 배리 피셔 변호사는 전문 악단을 가진 프로 음악가이기도 하다. 4월 5일 AOK 창립식에서 “We are all brothers” 라는 유대민요 노래 반주를 위해 아코디온을 직접 연주하고 있다. 2002년 북을 방문할 때 무거운 아코디온을 가지고 갔다. ‘허리 아프다고 하시면서도 왜 무거운 악기를 가져가시냐’고 말리는 나에게 ‘북측 담당자들을 음악으로 즐겁게 해주어야 이야기가 잘 풀릴 것’ 이라며 한사코 가지고 가셨다. [자료사진 - 정연진]

 

북은 미국 법정에서 전개되는 징용/위안부 소송에 동참하기를 원했으나, 당시 미행정부가 부당하게도 일본편을 들면서 소송에 적극적으로 훼방을 놓고 있었고, 부시행정부가 북을 ‘악의 축’으로 몰아가던 험악한 시기라서 북의 소송참여는 안타깝게도 이루어지지 못합니다. 피셔 변호사는 역사의 매듭을 짓기 위해 장기간 보수도 없이 기여한 공로로 2008년에 만들어진 노근리국제평화재단의 봉사상을 수여하기도 했습니다. 2차대전 피해자들을 위해 일해온 피셔 변호사가 늘 즐겨하는 말, ‘우리는 2차대전의 마지막 전투를 치르고 있습니다.’ 비장한 각오가 서린 이 말은 언제 들어도 마음에 여운을 남깁니다.

로버트 케네디 정신으로 AOK 운동을 지지하는 제인 케이건

또 한 분, 제인 케이건(Jane Kagon)은 미디어 전문가로 UCLA 평생교육기관의 엔터테인먼트 디렉터를 거쳐 현재 LA 소재 로버트 케네디 학교의 미디어센터 (Robert F. Kennedy Legacy in Action)의 총괄책임자입니다. 할리우드 영화사에서 활동한 경력이 있고 한국의 한류 콘텐츠 관련 컨퍼런스에서 연사로도 여러 차례 참여한 적이 있습니다.

제인은 ‘아마도 과거에 (전생에) 한국인이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한국의 문화와 역사에 심취해 있는 분입니다. 한번은 한국에서 발표할 컨퍼런스 자료 준비를 위해 디지털미디어 시대를 헤치고 나가는 말탄 기사의 형상이 필요했는데, 비서가 인터넷에서 수집한 수 많은 말탄 기사의 이미지에서 하필 고구려 수렵도에 나오는 기사를 고르는 것이었습니다. ‘어째서 수 많은 무사 이미지 중에서 하필이면 고구려 무사를 골랐을까, 아마도 당신은 전생에 고구려인이었을 것이다”라고 제가 놀리던 기억이 납니다. (그랬더니 정말로 본인이 전생에 한국사람이었다고 믿습니다!)

제인은 현재 미국 문명은 인류를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가는 큰 위기에 봉착해 있다면서 문명적 대안을 한국에서 찾습니다. 한국인이 높은 문화적 저력과 인류애의 가치를 가지고 세계사에 전환점을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라 예견합니다. 그리고 남과 북의 화합과 통일을 통해 그러한 기반을 만들어갈 수 있다고 여깁니다.


   
▲ AOK 로스앤젤레스 창립식에 격려사를 하고 있는 제인 케이건 Robert F. Kennedy Legacy in Action (RFK-LA) 총괄책임자. [자료사진 - 정연진]

 

로버트 케네디 재단과도 밀접하게 일하고 있는 그는 로버트 케네디의 정신이 오늘날 미국에도 절실히 필요하고 케네디의 정신으로 미국인들도 AOK의 풀뿌리 통일운동을 성원해 주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주: 로버트 케네디 - 존 F 케네디의 동생이자 1960년대 미국 민권운동의 기수. 35세에 최연소 법무장관을 지냈고 민주당대통령 후보로 유력했던 정치인. 1968년 마틴 루터 킹 목사와 같은해에 석연치 않은 암살을 당함)


   
▲ 1968년 로버트 케네디가 대통령선거 유세중 암살당한 유서깊은 장소인 암배서더 호텔의 부지에는 로버트 케네디 정신을 기리는 6개의 학교군이 있는 거대 학교단지가 들어서 있다. RFK-LA 는 6개의 학교군을 위한 미디어교육을 관장하고 있다. [자료사진 - 정연진]

 

4월 5일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AOK 의 LA 창립식에서 제인은 다음과 같은 로버트 케네디의 연설 구절을 낭독하면서 AOK 운동이 로버트 케네디의 비전을 공유하는 불의에 대항하는 운동으로 작은 물결이 커다란 해류가 되듯이 앞으로 크게 성장해 나갈 것이라 격려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한 사람의 힘으로 역사를 바꿀 수는 없지만 우리 모두는 각자 조금씩 변화를 만들 수는 있습니다. 용기와 신념을 가진 사람들의 무수한 행동에 의해 결국 역사는 만들어집니다. 한 사람이 어떠한 이상을 위해, 다른 이들의 운명을 개척하기 위해, 또는 불의에 대항하여 일어설 때 그 한 사람은 세상에 잔잔한 희망의 물결을 내보냅니다. 수백만의 무수한 에너지 센터를 가로지르며 그 당찬 물결은 마침내 큰 해류가 되어 억압과 저항의 거대한 벽을 휩쓸어 내립니다.”

 

   
▲ LA 로버트 케네디 학교 정면에 세워진 케네디의 연설문을 조각한 기념물. [자료사진 - 정연진]

 

세계적인 인권변호사 배리 피셔와 미디어 전문가 제인 케이건의 지속적인 참여는 원코리아 운동이 앞으로 미국사회에서 미국인들이 공감하고 지지할 수 있는 통일운동의 기반을 마련하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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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과 CIA, 그들만의 '비밀기록물'

 


미국의 CIA와 한국의 국가정보원은 하는 일이 비슷한 국가의 정보기관입니다. 이들은 명칭 그대로 정보를 수집, 분석하여 정부 여러 부처에 보고하는 임무가 기본임무입니다. 정보를 수집하는 공작 업무를 위해 정보기관은 블랙요원이나 정보원을 활용하기도 하고, 비밀스러운 임무를 수행하기도 합니다.

원래 정보수집이 목적인 정보기관이 정보만 수집, 분석하면 문제가 없겠지만, 실제로 국가 정보기관이 여러 사건에 개입한 정황은 많습니다. 미국 CIA는 국내 정치와 사건에 관여하지 못하게 되어 있지만, 그들도 미국 국내 사건에 손을 댔었고, 국정원의 전신인 중앙정보부는 더 말할 나위 없이 대한민국 정치를 좌지우지했었습니다.

미국 CIA와 한국 국가정보원은 임무와 성격이 거의 같지만, 전혀 다른 점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그들이 관여한 임무에 대한 기록물을 국가기록물로 이전, 보관하느냐 아니냐의 차이입니다.

'국가기록원, 국정원 기록물 단 한 건도 없어'

현재 대한민국 국가기록원은 국정원으로부터 단 한 건의 기록물도 이관받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7월 4일 안전행정부에 따르면 국정원은 비공개 기록물은 물론이고, 국정원 생산 기록물 목록까지 모두 국가기록원이 아닌 국정원이 자체 보관하고 있습니다.

국정원의 기록물 자체 보관은 명확히 '공공기록물관리에 관한 법률'을 위반한 행위입니다.

 

 

 


대한민국의 '공공기록물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대한민국 정부 기관이 생산한 문서 중 영구대상 기록물은 모두 국가기록원에 보관하게 되어 있습니다. 처음부터 국가기록원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생산기관에서 9년 동안 보관하고 그 후에 국가기록원으로 이관하도록 규정되어 있습니다.

일반문서와 다르게 비공개 기록물은 보호기간 만료 때까지 생산기관이 자체 비공개 보관하다가 또는 30년이 경과하면 국가기록원으로 이관합니다.

국정원처럼 비밀문서를 많이 다루는 곳에서는 최장 50년까지 연장이 가능한데, 아마 국가기록물로 이관되는 문서 중에서 최장 생산기관 보관 규정일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비밀문서라고 해도 50년이 지나면 국가기록원에 이전되어야 하는데, 대한민국 국정원은 이와 같은 법률을 위반하고 있는 것입니다.
 

 

▲국가정보원에 나온 국정원 역사. 출처:국정원 홈페이지

 


국정원의 역사는 1961년 5.16군사쿠데타 이후 6월 10일 설립된 '중앙정보부'가 공식적인 시작입니다. 그렇다면 최소한 1961년 중앙정보부 창설부터 1963년 대통령 직속기관으로 지정되기까지의 기간에 생산된 중앙정보부의 비밀문서들은 국가기록원으로 이관됐어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공식적인 정부 문서를 보관하는 국가기록원에 국정원 관련 문서가 없다는 사실은, 국정원이라는 국가기관이 명백히 대한민국 법을 위반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 CIA 비밀문서를 감독하는 미국 국립문서기록청'

한국의 국정원이 자신들의 문서를 국가기록원에 넘기지 않는 것과 대조적으로 미국 CIA는 철저히 국립문서기록청( National Archives and Records Administration, NARA)에 모든 문서를 이관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미국 CIA는 생산한 문서와 기록물 등을 보관 연한에 따라 자체 보관한 후 국립문서기록청으로 이관합니다. 그중에 비밀문서는 최대 50년까지 보관이 가능하지만, 그 이후에는 국립문서기록청으로 이관해야 합니다.

미국 국립문서기록청 (NARA)은 한국 국가기록원과 비교해보면 엄청난 권한을 가지고 있습니다. 미국CIA가 기록물을 함부로 보관하지 않도록 기록관리 실태를 조사할 수 있으며, 이관된 CIA 비밀문서도 국립문서기록청 산하 비밀해제센터(NDC)에서 공개 여부를 검토하게 되어 있습니다.

미국의 시스템 중에서 가장 돋보이는 부분은 NARA 산하의 정보보안감독국(ISOO)이 국가안보를 위해 꼭 필요한 정보는 공개를 최소화하면서, 비밀문서의 지정이 과도한 문서를 공개하도록 감독한다는 점입니다.

 

 

 


미국 국립문서기록청의 철저하고 실리적인 감독과 운영 탓에 미국 CIA비밀문서가 종종 해제되어 공개되는 때도 있습니다. 그중에 대한민국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문서가 바로 5.18광주민주화운동 당시 미국 CIA 문서입니다.

미국은 5.18민주화운동이 벌어지던 시기, 미국무부와 주한미대사관,국방부,CIA는 몇 분마다 전문을 주고받을 정도로 광주를 주시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CIA가 생산한 비밀문서는 해제됐고, 대한민국은 이런 비밀문서가 공개되어 당시의 진실을 철저히 규명할 수 있게 됐었습니다.

 

 

▲미국국립문서기록청이 보관하고 있는 OSS 관련 문서. 출처:NARA

 


정보기관의 문서 관리가 얼마나 역사에서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또 하나의 사례가 있습니다. 미국 CIA의 전신은 전략사무국 OSS입니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정보를 담당했던 OSS는 대한민국 역사를 조명하는 기록물을 남겼는데, 그것은 바로 OSS가 한국인을 훈련해 조선 본토에 침투시키려는 계획서입니다.

[시사] - 광복군OSS특수부대의 국내진공 침투작전은 성공했을까?

미국 국립문서기록청이 공개한 OSS 관련 문서 목록 5,6번을 보면 'OSS 미션, 한국, 훈련'이라는 항목이 나옵니다. 이 문서를 통해 우리는 미국이 조선 본토 침투작전을 위해 한국인을 훈련시켰다는 역사적인 기록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국가안보에 필요한 정보는 최소한으로 공개하되, 정보기관의 문서를 어떻게 관리, 감독하느냐에 따라 기록이 남겨지고, 역사의 진실을 나중에라도 알 수있습니다.

' 국정원, 그들만의 불법을 이제는 막아야 한다'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이 중요한 이유는 이번에 진실을 파헤치고, 그들의 불법을 처벌하지 못한다면 대한민국 민주주의와 역사는 퇴보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 정치 역사에서 정보기관은 정권 창출에 깊숙이 관여했고, 여기에는 언제나 불법과 폭력의 범죄가 동반됐었습니다.
 

 

 


박정희와 군사쿠데타를 모의하던 김종필은 쿠데타 이후의 집권을 위해 정보기관의 설립을 강조했고, 5.16군사쿠데타 이후 곧바로 중앙정보부를 창설합니다.

중앙정보부를 창설한 김종필이 가장 먼저 손댔던 일이 군사쿠데타 이후 민정 이양으로 가는 데 필요한 정치자금을 확보하는 일이었습니다. 중정은 1백억환의 정치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농협이 보관하던 한국전력 주식 12만8천주를 외상으로 사들이고, 주가조작을 통해 2만환짜리 주식을 6만환에 팔았습니다.

중정이 증권브로커와 짜고 벌인 주가조작을 통해 남긴 차익은 고스란히 박정희 쿠데타 정권의 정치자금으로 사용됐습니다.

당시의 중정문서는 고스란히 국정원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50년 넘었는데도 왜 당시의 기록물을 국정원은 국가기록원에 넘기지 않을까요? 국정원이 벌인 파렴치한 정치 공작이 만천하에 드러날 수 있으며, 당시 박정희 정권이 얼마나 부도덕한 정권임을 보여주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을 통해 대학가의 시국선언이 발생하자, 국정원이 대학을 관리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옵니다. 이것은 유신체제에서 중정이 벌였던 학원사찰의 불법이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단독,한겨레] 국정원, ‘시국선언’ 대학까지 사찰

단순히 용공조작을 통해 정치인을 불법 연행,감금,고문했던 일뿐만 아니라 학생들을 억압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루어졌던 학원사찰에 중정이 개입했던 증거들을 보면서, 2013년 국정원이 왜 개혁되고, 불법적인 일을 심판해야 하는지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 미연방법원은 정부관료를 향한 명예훼손에 대해 “이런 소송이 허락된다면, 향후 정부관료를 향한 비판들이 - 설사 그것이 정당한 비판일지라도 - 공포와 두려움의 장막에 갇혀 얼어붙게 되고, 이는 곧 [정당한 비판 이전에] 자기검열로 이어질 것이다” 라고 판결한 바 있다.

 


예전에 '블랙요원'(국내가 아닌 해외에서 신분을 숨기고 정보를 수집하는 국정원요원)을 취재한 적이 있었습니다. 많은 얘기를 들었지만, 정보는 얻지 못하고 그저 힘들었던 삶의 얘기만 듣고 왔습니다. 그에게 물었던 말이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험한 일을 목숨을 걸고 왜 했느냐'였습니다. 그 요원은 '가슴 속의 애국심'때문이라고 답했었습니다.

진정한 애국심은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가슴 속에 살아 움직입니다. 국정원의 명예 운운하며, 고소,고발을 자행하는 지금의 국정원을 보면 그들이 무슨 정보요원이냐는 한숨만 나옵니다. (국정원은 불법 정치 공작을 폭로한 진선미 의원을 명예훼손으로 고발했으며, 앞으로 그와 관련한 글을 올린 블로거와 게시자들 또한 고발할 예정으로 알려졌다)

영화 속 스파이들은 고문을 당해도 정보를 불지 않습니다. 자신들의 나라가 위태로워지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 국정원은 고문은커녕 알아서 자신들의 비밀기록을 술술 공개합니다. 하지만 정작 대한민국 법에 따라 국가기록원에 넘겨야 할 비밀문서들은 절대 넘기지 않고 있습니다.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저희가 대답하되,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남의 종이 된 적이 없거늘 어찌하여 우리가 자유케 되리라 하느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종은 영원히 집에 거하지 못하되 아들은 영원히 거하나니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케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하리라. (요한복음 8장 31절~36절)



미국 CIA의 국훈은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는 성경 속 구절을 인용한 문구입니다. 어쩌면 아이엠피터도 국정원에 고발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참다운 진리를 찾으려는 마음만 있다면 무엇이 두렵겠습니까?

진리를 찾다가 몸이 피곤한 삶이
거짓을 진실로 믿고 사는 일상보다
하나뿐인 인생의 자유를 누리며 사는 일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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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서도 산속서도, 옹달샘은 새의 천국

 

 

도심서도 산속서도, 옹달샘은 새의 천국

윤순영 2013. 07. 03
조회수 4536추천수 1
 

새들에겐 마시고 목욕할 깨끗한 물 필수, 옹달샘에 다양한 종 몰려들어

도심에 옹달샘 파고 횃대 놓아주면 작은 '새들의 천국'

 

윤순영.jpg » 경기도 김포 야산에 인공으로 만들어 준 옹달샘에서 직박구리가 목욕을 한 뒤 힘차게 물을 털고 있다. 사진=윤순영

 
도심 야산의 인공 옹달샘
 
도심의 산에도 개울은 있지만 메말라 있기 십상이고, 비가 내리면 잠시 물이 흐르다가 곧 메말라 버립니다. 가까스로 물기가 남아 있는 경기도 김포의 한 야산 개울에서 새들이 물을 먹고 목욕을 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모습을 목격했습니다.
 

개울 한 곳에 웅덩이를 파서 물이 고이게 해 주었습니다. 새들의 다리 높이를 고려해 바닥에 작은 돌멩이를 깔아 물 깊이를 10~15㎝로 유지하게 했습니다. 목욕하기에 적당한 깊이입니다.
 

04747702_P_0.jpg » 통나무로 만든 인공 횃대에서 쉬는 직박구리

 

이 인공 옹달샘 가장자리에는 통나무와 가지를 구해 횃대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이렇게 해 주면 늘 편안하게 목욕도 하고 물을 마실뿐 아니라 목욕 후 물기를 털어 내는 곳으로 쓸 수도 있습니다. 횃대는 또 옹달샘을 오갈 때 징검다리 구실을 하고 천적이나 위험을 경계하는 장소도 됩니다.
 

샘으로 새가 쏜살같이 날아오는 건 목이 타 매우 다급한 상황임을 보여줍니다. 보통 산새들은 여유있게 쉬엄쉬엄 이곳저곳의 나뭇가지를 이용해 물가로 접근합니다.
 

04747692_P_0.jpg » 목욕을 마치고 깃털을 다듬는 호랑지빠귀

 

04747698_P_0.jpg » 옹달샘에 물을 마시러 온 청딱따구리

 

새들이 모여듭니다. 직박구리가 처음으로 모습을 나타낸 뒤 호랑지빠귀가 수풀 사이에 몸을 숨기며 슬금슬금 다가옵니다. 갓 태어난 곤줄박이, 쇠딱다구리, 청딱다구리가 주변을 서성대고 있고, 물까치는 옹달샘을 아예 제 집 목욕탕인 양 터줏대감 노릇을 하려 듭니다.
 

잡식성인 물까치를 위해 식빵 조각을 잘게 뜯어 횃대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처음 한두 마리가 날아들더니 숲속에 소문이 퍼졌는지 물까치 십여 마리가 몰려옵니다. 옹달샘에서 목욕은 여러 종류의 새들이 사이좋게 하지만 먹이 경쟁에선 집단행동을 하는 물까치를 누구도 맞서지 못합니다.
 

04747690_P_0.jpg » 던져준 빵조각을 차지하려 싸움을 벌이는 물까치들

 

자연을 조금만 배려하면 풍요로움을 맛볼 수 있습니다. 작은 인공 옹달샘과 횃대가 그런 예입니다. 새들이 안심하고 목욕을 하고 물을 마실 수 있는 곳을 우리 주변의 야산이나 공원에 만들어 주면 놀랄 만큼 다양한 종류의 새들과 만날 수 있습니다.

 

글·사진 윤순영/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

 

 

지리산 깊은 산속 옹달샘

04747683_P_0.jpg » 지리산 깊은 산속 옹달샘에서 몸을 흠뻑 적신 채 목욕을 즐기는 작은 쇠박새.  
 
몇 해 전, 1200여 편의 동시를 선물로 남겨주시고 떠난 분이 계십니다. 윤석중 선생님입니다. 동요의 노랫말이 된 동시가 무려 800여 편입니다. 선생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지 않아 그 많은 동요를 만나지 못했다면, 나의 어린 시절은 어떠했을지 궁금합니다. 또한 현재의 나는 어떤 다른 모습이 되어있을지도 무척 궁금합니다.
 

선생님 덕분에 깊은 산 속 옹달샘은 토끼와 노루가 먹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토끼는 새벽에 눈 비비고 일어나 세수하러 왔다가 물만 먹고 가고, 노루는 달밤에 숨바꼭질하다가 목마르면 달려와 얼른 먹고 간다고 하셨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옹달샘을 찾는 친구가 또 있습니다. 선생님께서 옹달샘을 지켜보고 있을 때에는 이 친구들이 다른 곳에서 놀고 있어 눈에 띄지 않았나 봅니다. 
 

지리산 깊은 숲속에 옹달샘 하나가 있습니다. 두 손을 모아 퍼내면 몇 번 지나지 않아 바로 바닥이 드러날 작은 옹달샘이건만 수많은 새가 모여들어 목을 축이고 목욕도 하다 갑니다.
 

04747677_P_0.jpg » 검은머리방울새

 

04747678_P_0.jpg » 박새 무리와 함께 온 곤줄박이.

 

오늘의 첫 손님 검은머리방울새는 ‘쮸잉, 쮸잉’ 소리를 내며 와서는 아주 급하게 물을 마시고 떠납니다. 이어 박새, 진박새, 쇠박새, 곤줄박이의 순서로 박새과의 새들이 총출동하여 물을 마시러 옵니다. 다음 손님 동박새는 남해안 섬지방에서 동백꽃 꿀을 즐겨 먹는 텃새이지만 근래에는 남부지방에서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습니다.
 

이번엔 몸이 조금 큰 친구 흰배지빠귀가 나타납니다. 계곡이 있는 곳에서 한참을 떨어진 곳으로부터 땅으로 내려와 깡충깡충 뛰듯 이동하여 물로 접근하는 방식이 조금 다릅니다. ‘치칫, 치칫’ 소리를 내며 노랑턱멧새가 온 뒤 마침내 ‘귀한 몸’ 유리딱새도 모습을 드러내는군요.

 

04747684_P_0.jpg » 깊은 산의 귀한 손님 유리딱새가 옹달샘에 파란 몸을 드러냈다.

 

숲의 노래꾼 직박구리 역시 갈증이 나지 않을 리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전혀 예상하지 못한 손님 새매가 찾아왔습니다. 새매는 슬며시 나타나 소나무 죽은 가지에 숨어 있더니 검은머리방울새 한 마리를 공중에서 그대로 낚아 채 갑니다.
 

새들이 옹달샘에 모여드는 과정을 찬찬히 지켜보는 것으로도 저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고스란히 엿볼 수 있습니다. 우선 숲의 고요함 너머로 귀를 손으로 감싸야 알아차릴 수 있는 아주 작은 크기의 새소리가 들리기 시작합니다. 그러다 귀에서 손을 떼어도 좋을 만큼 소리가 커질 즈음이면 하나 둘 모습을 드러내 줍니다.

 

아주 멀리서부터 분명 옹달샘을 향해 모여드는 것은 틀림없지만 단숨에 날아오지 않습니다. 앞서는 친구가 한곳에 있다 이동하면 다음 친구들이 그 빈자리를 채우는 식으로 접근합니다. 옹달샘이 바로 내려다보이는 나뭇가지까지 와서도 한참을 또 망설입니다. 마침내 한 친구가 옹달샘으로 내려와 물을 마시고 떠나면, 뒤를 이어 몇 마리씩 내려옵니다.
 

흰배지빠귀_김.jpg » 흰배지빠귀

 

어떠한 경우든 귀한 물을 두고 서로 다투지 않는 것이 신통합니다. 옹달샘 주변에 모여 있는 새들이 많으면 순서를 기다렸다가 내려앉을 때가 대부분이며, 목욕을 하더라도 홀로 차지한 채 오래 버티지 않습니다.
 

숲속의 새들과 친구가 되는 것,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옹달샘 하나를 마련해주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물이 귀한 계절이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하지만 숲에서 너무 먼 곳에 사시는 분들이 계시군요. 그렇다면 가슴에 작은 옹달샘 하나를 지니고 사는 길도 있습니다.

 

글·사진 김성호/ 서남대 생명과학과 교수

 

※ 김성호 교수의 글은 2011년 10월10일 물바람숲에 실린 김 교수의 글 '깊은 산 속 옹달샘, 새가 와서 먹지요'를 간추려 다시 실은 것입니다.

 

 

새에게 물은 얼마나 중요할까
 
새는 땀을 흘리지 않고 오줌을 조금만 싸는 물 절약형 동물이다. 포유류는 노폐물을 요소 형태로 배출하는데, 요소는 독성이 심해 이를 희석하기 위해 물을 많이 마시고 오줌으로 배출한다. 그러나 새가 배출하는 요산은 물에 잘 안 녹고 독성이 덜해 물로 희석할 필요가 없다.

 

물론 새는 호흡과 배설로 물을 잃기 때문에 작은 새라면 하루 2번은 물을 마셔야 한다. 곤충 등 먹이를 통해서도 수분을 섭취한다. 새는 비행을 위해 심장박동과 호흡이 빠르고, 체온이 높아 더운 여름에 물이 꼭 필요하다. 목욕도 새에게 매우 중요하다. 목욕을 통해 흙먼지나 기생충을 씻어내 깃털을 최상의 상태로 유지해야 비행과 단열 기능을 발휘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새들은 물을 마실 때 부리에 물을 담아 머리를 하늘로 치켜들어 마시지만 비둘기는 포유류처럼 부리를 물에 담그고 꿀꺽꿀꺽 마신다.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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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자 225명, 시국 선언 동참…"MB를 법정에 세워야"

 

 

 

"국정원, 정치 공작에 몰두…새누리당, 혹세무민 멈추고 석고대죄해야"

최하얀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3-07-04 오전 11:21:48

 

 

전국의 역사학자 225명이 국가정보원의 대선 개입과 여론 조작을 규탄하는 시국 선언 대열에 동참했다.

4일 하일식 한국역사연구회 회장(연세대 사학과 교수) 등은 참여연대 느티나무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민 주권 유린, 국기 문란 범죄에 온 국민이 나서서 책임을 물어야 합니다'란 제목의 성명을 발표했다.

이들은 "지금 우리 사회는 국민 주권을 유린하고 민주 국가의 법질서를 무너뜨린 불법 행위를 덮으려는 집권 세력의 선동으로 상식적 판단과 이성적 사고가 실종된 듯한 상황에 놓여 있다"며 "우리 역사학자들은 오랜 기간 많은 국민의 숭고한 희생으로 이룩한 민주주의가 훼손되는 현실을 목격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명박 정권 내내 국정원이 정치 공작에 몰두했음이 드러났"고 "심지어 국가 최고 비밀인 '남북 정상대화록'까지 왜곡 편집해 새누리당과 함께 선거 운동에 활용했다"며 "이는 (4월혁명으로 이어진 1960년) 3.15 부정 선거에 버금가는 범죄이며, 군사 독재 시절 중앙정보부·안기부가 공화당·민정당과 함께 민주주의를 유린하던 상황을 방불케 한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또 "(국정원과 새누리당이) 다수 국민과 외신들도 이해하는 순 한글 문서인 남북 정상대화록의 문맥조차 제대로 독해하지 못한 채 정략과 선동의 소재로 활용한 무지와 무모함에 아연실색했다"며 "여기에 수구 언론은 앞장서서 진실을 왜곡하며 여론을 호도하는 데 열중했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7월 2일 국회에서 대화록 원문 열람·공개를 표결한 것도 법 정신을 훼손하는 부당한 행위"라고 지적했다. "정치권은 더 이상 엉뚱한 일을 벌이지 말고 국기 문란의 실체를 밝히는 데 힘써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이들은 "우리 역사학자들은 국민의 일원으로 저들의 책임을 묻고, 모든 실상을 역사에 분명히 기록하고자 한다"며 "집권 세력과 수구 언론이 국민을 '어리석은 무리'로 간주하고 거짓 선동을 벌여 빚어진 참담한 결과를 역사 속에서 수없이 보았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이들은 "민주공화국의 법질서를 바로 세워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국회는 법적·제도적 개혁 및 보완책을 마련해야"하며, "모든 불법과 정치 공작 근원에는 권력을 사유화해 정략적으로 이용한 이명박 전 대통령이 있는 만큼, 이 전 대통령을 원세훈과 함께 법정에 세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새누리당에 "저급한 궤변으로 혹세무민하는 선동을 즉각 멈추고", 국정 조사에 "석고대죄하는 자세로 임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마지막으로 이들은 "박근혜 대통령은 국정원 정치 공작과 주권 교란에 책임 있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며 "그 조치가 미흡하면 각종 불법 행위의 암묵적 수혜자로 남아 정통성에 타격을 입고, 국정 운영에 큰 부담을 지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번 성명과 관련해 하일식 회장은 <프레시안>과 한 통화에서 "불과 36시간 만에 225명의 역사학자가 동참해 놀랐다"며 "(연락을) 기다렸다는 듯이 성명에 동참하겠다고 한 학자들이 많았으며, 재정적으로 후원할 뜻을 밝힌 사람도 있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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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이 땅의 민주주의 기로에 서다

 
 
 
국정조사로 최소한의 정의 회복될 수 있을까?
 
육근성 | 2013-07-04 09:54:22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인쇄하기메일보내기
 
 


 

헌정 사상 초유의 일이 벌어지고 있다. 국정원 대선 개입에 대한 국정조사가 실시되고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원문이 공개된다. 별개인 것처럼 보이는 사건이지만 사실상 하나다. 여권이 정권 연장을 위해 정치적 목적으로 자행한 불법행위인 것이다.

멈춰버린 민주주의 시계

국정원 대선개입과 대화록 불법 유출·공개는 민주국가가 유지되는데 필요한 기본적 법도와 질서를 유린한 사건이다. 국정원은 대선에서 여당 후보가 유리할 수 있도록 조직적으로 여론조작을 했고, 새누리당은 국정원과 공모해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선거전략에 활용했다. 대화록을 보관하고 있던 곳이 국정원이니 불법유출도 국정원의 작품인 게 확실하다.

정권을 연장하기 위해 새누리당과 국정원이 결코 해서는 안 될 일을 저지른 것이다. 숱한 희생과 역경을 헤치며 힘겹게 여기까지 온 이 땅의 민주주의 시계가 저들에 의해 멈춰버렸다.

국정조사와 대화록 공개를 통해 민주주의의 가치를 회복하고 정의를 바로 세운다면 멈춰진 시계가 다시 앞으로 움직일 수 있을 테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민주주의 시계는 과거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절체절명의 상황이다.

국정조사로 최소한의 정의 회복될 수 있을까?

어떻게 이룩한 민주주의인가. 이승만 정권의 관권 부정선거, 박정희 정권의 유신독재, 전두환 정권의 정권찬탈 등에 맞서 투쟁하며 피 흘린 수많은 이들의 희생을 생각해야 한다. 이들의 피와 희생이 헛되지 않을 최소한의 정의라도 회복돼야 한다.

 

그럴 수 있을까. 돌아가는 모양새를 보면 부정적이다. 민주주의의 근간과 국기를 유린해 얻은 결과물로 정권을 거머쥔 이들이다. 그런 저들이 자신들의 범행과 치부가 드러나도록 손을 놓고 있겠나. 모든 방법을 동원해 진상을 덮고 여론을 호도하려 들 것이다.

국정원 사건은 야당의 정치공작에 불과하고, 대화록 공개는 역사적 진실과 국민의 알권리를 위해 불가피한 일이었다는 억지 주장으로 정의와 진실을 덮으려 할 게 분명하다.

검찰이 수사과정에서 작성한 2200쪽의 ‘국정원 범죄 일람표’에는 게시글 977건과 찬반 클릭 행위 1711건이 수록돼 있다. 새누리당은 이 가운데 직접 대선과 연관이 있는 것으로 보이는 댓글은 73건 뿐이라며, 대선 개입이라는 민주당의 주장은 어불성설이라고 우긴다.

<대통령 직선제를 이뤄낸 '6월 항쟁'/서울 시청앞. 1987년 >

여당의 억지와 괴설 더 심해질 텐데

상식도, 일말의 양심도 없는 주장이다. 검찰이 작성한 ‘범죄 일람표’는 불과 서너명을 조사한 결과일 뿐이다. 다수의 국정원 직원과 얼마나 될지 가름도 할 수 없는 댓글 알바가 동원된 사건이다. 또 이들과 연계된 단체가 여럿이라는 의혹도 있다. 제대로 조사할 경우 대선에 관여한 댓글과 게시글의 수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을 수 있다.

또 경찰의 축소수사와 검찰의 부실수사로 이어지는 동안 많은 중요한 증거들이 인멸됐다는 정황이 수두룩하다. ‘뉴스타파’ 등 일부 언론과 네티즌들이 증거인멸을 확인하고 문제를 제기해도 이에 대한 수사는 이뤄지지 않았다. 증거인멸 혐의가 뚜렷한 국정원 직원들을 구속하지 않고 기소유예 처분을 내린 검찰이다.

검찰의 ‘범죄 일람표’는 ‘빙산의 일각’이다. 그런데도 새누리당은 이게 전부인 양 대선 관련 댓글은 수십개에 불과하다며 거꾸로 야당을 몰아세운다. 국정조사 과정에서 이런 유형의 억지는 더 집요하고 가증스러워질 것이다.

새누리당의 목표는 '결과 없는 국조' '소득 없는 대화록 공개'

대화록이 공개되면서 노 전 대통령의 ‘NLL 포기’ 발언은 존재하지 않은다는 게 확실해 졌다. 분쟁지역인 NLL을 평화지역으로 바꾸자며 ‘서해평화협력지대’를 만들자고 제안한 게 전부다. 박 대통령이 지난 대선 당시 공약으로 내세웠던 ‘서해공동어로구역’과 대등소이하다.

그런데도 새누리당은 여전히 포기란다. “포기라는 직접적인 단어는 없지만 누가 봐도 NLL 포기를 뜻한다”며 자신들의 주장이 맞다고 우긴다. 한글을 읽고 쓸 줄 아는 사람이면 노 전 대통령의 발언이 ‘NLL 포기’가 아니라 NLL을 지키려는 것임을 알 수 있는데도 괴설을 늘어놓기 바쁘다.

국정조사 내내 새누리당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국정원 사건이 대선 개입이 아니라는 자신들의 주장을 밀어붙일 게 분명하다. 대선개입 정황이 분명해지고 박 대통령까지 연루됐다는 사실이 드러날 수 있겠다고 판단할 경우, 온갖 트집을 잡아 시간을 끌고 자리를 뜨는 등의 방법으로 국정조사 기간인 45일을 버텨 ‘결과 없는 국정조사’로 만들려 할 것이다.

대화록 공개도 마찬가지다. 설령 원본에서 노 전 대통령이 ‘NLL 포기 안 한다’ ‘NLL 지키겠다’는 명확한 표현이 나온다 해도 온갖 괴설을 다 동원해 ‘그래도 포기를 뜻한다’고 우길 것이 확실하다. 새누리당의 억지에 밀린다면 국가의 체면과 외교적 손실을 감수한 채 남북 정상회담 기록물을 공개한 게 헛것이 되고 만다.

7월, 이 땅의 민주주의가 기로에 서 있다

7월. 이 땅의 민주주의가 기로에 서있다. 다시 앞으로 나갈 수도 있고, 수십년 뒤로 물러날 수도 있다. 새누리당과 그 배후에 있는 권력의 힘을 이겨내야 방법 이외에는 민주주의의 퇴보를 막을 길이 없다. 민주당이 잘해내야 한다.

또 민주주의와 정의의 가치를 아는 국민들이 나서야 할 때다. 지금 이때 여당과 그 배후세력들의 만행을 규탄하고 잘못을 엄하게 꾸짖지 못한다면, ‘원세훈 게이트’나 ‘NLL 게이트’보다 더한 일이 권력에 의해 또 다시 자행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지켜온 민주주의인가. 이렇게 유린되도록 방치해서는 안 된다. ‘국정원 게이트’와 ‘NLL 게이트’ 모두 최종적인 책임은 박 대통령이 져야 할것이다. 부정한 방법으로 대통령직에 오른 게 확실해지면 스스로 물러나는 게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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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개성기업인들 방북 허용"... 판문점 연락 채널 재개

 

 

"공단관리위도 와서 협의하자"... 공식 채널로 통보

13.07.03 21:58l최종 업데이트 13.07.04 09:36l
안홍기(anong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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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당국회담 결렬과 동시에 다시 끊어졌던 남북 판문점 대화 채널이 3일 오후 재개됐다. 이와 함께 북측은 이날 오후 개성공단 입주 기업의 공단 방문을 허용하겠다고 밝혔다. 사진은 개성공단에 머물고 있던 근로자들의 전원 철수가 예정된 지난 4월 29일 오후 북축의 실무적인 문제로 귀환이 지연되자, 경기도 파주 경의선남북출입사무소에서 취재기자들이 마지막 입경을 취재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모습.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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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당국회담 결렬과 동시에 다시 끊어졌던 남북 판문점 대화 채널이 3일 오후 재개됐다. 북측은 이날 오후 개성공단 입주 기업의 공단 방문을 허용하겠다면서 남측과의 대화의지를 내비쳤다.

통일부는 이날 "오늘 오후 5시 판문점 연락관 접촉을 통해 북한 측으로부터 중앙특구개발지도총국 명의로 개성공단관리위원회와 개성공단입주기업협회 앞 문건을 전달받았다"며 "문건에서 북한측은 장마철 공단 설비·자재 피해와 관련, 기업 관계자들의 긴급 대책 수립을 위한 공단 방문을 허용하겠다고 하면서 방문날짜를 알려주면 통행·통신 등 필요한 보장조치를 취하겠다고 했다"고 밝혔다.

북측은 이 문건에서 "개성공단관리위원회 관계자들도 함께 방문해도 되며 방문기간 중 필요한 협의들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입장을 보였다"고 정부는 밝혔다. 정부는 "해당 문건을 개성공단관리위와 입주기업협회에 전달하였으며 여러 가지 관련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대응책을 검토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또 이 판문점 연락관 접촉에서 북측은 남측이 제기한 판문점 연락채널 정상화 요구를 받아들여 이날 오후 5시 30분 남북간 전화통화가 이뤄졌다. 남북간 군사긴장 고조 국면이었던 지난 3월 8일 끊어졌다가 지난달 남북당국회담 실무접촉 과정에서 재개됐고, 회담이 무산되면서 다시 끊어졌던 판문점 연락채널이 복원된 것이다.

북측의 이번 제안은 남측과 대화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개성공단 잠정 중단 이후 입주기업들 방북요구를 거듭할 때마다 북측은 남측 당국을 배제한 채 관영매체 등을 통해 '기업인들의 방북을 허용하겠다'는 뜻을 밝혀 남측으로부터 '남남갈등을 유발한다'는 반발을 초래했다. 그러나 이번 제안은 당국간의 정식 연락채널인 판문점을 통해 방북허용 의사를 밝혔다는 게 달라진 점이다.

북측이 '개성공단관리위원회 관계자들도 함께 방문해도 되며 방문기간 중 필요한 협의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한 대목도 주목된다. 개성공단관리위원회가 남북 공동 구성의 행정기관이지만 위원장을 비롯한 남측 구성원들이 사실상 남측 당국과 긴밀히 연결돼 있다는 점에서 북측이 개성공단 정상화와 관련된 협의쟁점을 개성공단관리위원회를 통해 남측에 전달하려는 의도일 수 있기 때문이다.

북측의 이번 제안에 대해 정부는 3일 밤 현재까진 입장을 정하지 못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북측의 '기업인 방북 허용'에 대해 정부는 '방북을 위해선 남북 당국간 협의가 필수'라는 입장을 밝혀왔기 때문에 이번에도 이 틀을 벗어나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북측이 판문점 연락채널을 먼저 열어둔 상태여서 정부가 당국간 대화를 제의한다면 성사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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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첩혐의 배준호씨 노동교화 생활 생생히 보도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3/07/04 09:53
  • 수정일
    2013/07/04 09:53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북의 특별교화소는 어떤 곳?
 
간첩혐의 배준호씨 노동교화 생활 생생히 보도
 
이정섭 기자
기사입력: 2013/07/04 [07:54] 최종편집: ⓒ 자주민보
 
 

조선과 중국에서 1,500명의 조직원을 두고 간첩행위를 한 사건으로 15년의 노동 교화형을 선고받은 한국계 미국인 배준호씨의 생활이 구체적으로 소개 됐다.

재일동포 신문인 조선신보는 특파원 기자의 기획 취재를 통해 지난 5월 14일부터 《특별교화소》에서 교화생활을 시작한 미국공민 배준호(미국명 케네스 배 1968년 8월 1일생)가 농사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과 함께 하루일과와 대담까지 싣는 등 이례적 보도가 주목된다.

조선신보는 “《특별교화소》 교화인의 일과대로 배준호는 아침 6시에 기상하고 오전 8시부터 저녁 6시까지 로동하고 있다. 그사이에 점심시간과 2번의 휴식시간이 있으며 하루 8시간로동제가 적용되고 있다”며 “구체적인 일과를 보면 6시~7시 세면 및 청소, 7시~8시 아침식사, 8시~10시 로동, 10시~10시 30분 휴식, 10시 30분~12시 30분 로동, 12시 30분~13시 30분 점심식사, 13시 30분~15시 30분 로동, 15시 30분~16시 휴식, 16시~18시 로동, 18시~19시 휴식, 19시~20시 저녁식사, 20시~22시 문화시간, 22시 취침 일요일과 명절은 휴식일로 정해져 있다.”는 구체적 일과 계획표도 공개했다.

▲ 배준호씨가 보안원이 지켜보는 가운데 농사 노동을 수행하고 있다. ©
이 신문은 “지난해 11월 3일 라선시를 통해 입국하였던 배준호는 반공화국적대범죄를 감행한 것으로 하여 해당기관에 억류되고 수개월간의 예심 끝에 재판에 회부 되였으며 올해 4월 30일 최고재판소에서 15년의 노동교화형을 언도받았다.”며 “지난 시기 조선의 법을 위반하여 억류된 미국공민들은 미국의 고위관리들이 평양에 와서 사죄, 재발방지약속을 한데 따라 조선측은 인도주의적견지에서 관용을 베풀어 놓아주었으나 이번에 미국공민이 《특별교화소》에서 교화생활을 하는것이 확인된 것은 처음”이라고 밝혔다.

신문은 배준호(미국명 케네스 배)씨 이날 본인의 동의밑에 이루어진 본사기자와의 면담에서 배준호는 자신의 죄행은 용서받기 어려운 행위이지만 조선정부가 선처해주고 미국정부가 노력해주어 조속히 돌아갈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을 요청한다고 하면서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도록 많은 분들이 나서주기를 부탁 드린다“는 말을 보도해 배준호씨가 미국으로 돌아 걸 것을 희망하며 미국 정부의 노력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 된다.

또한 배준호씨는 “자신의 건강상태에 대해 《원래 당뇨병, 고지혈증, 지방간, 동맥경화증상이 있다. 또 10여년전에 허리를 다쳤는데 통증이 재발되였다.》고 하면서 《건강상태가 좋은 편은 아니지만 인내성 있게 잘 견디여내고 있다는 것을 (가족들에게) 전해주면 좋겠다.》고 말하였다.”고 알렸다.

이어 ‘외국인범죄자수용시설’ 이라는 소제목에서 “보초병이 지켜서있는 《특별교화소》 출입구를 지나 안으로 들어서자 무거운 공기가 흐르고 있어 커다란 중압감이 느껴졌다”며 “교화소 관계자에 의하면 《특별교화소》는 일반 범죄자가 아니라 반국가범죄를 저지른 외국인범죄자들을 수용하는 시설”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아울러 “관계자의 안내로 배준호가 생활하고 있는 건물로 향하는 길에 잠시후 길옆의 콩밭에서 허리 굽혀 김매기를 하는 중년남자가 보였다. 밭 둘레에는 여러명의 보안원들이 서서 그를 날카롭게 감시하고 있었다.”며 “관계자는 그가 배준호라고 알려주었다. 배준호는 푸른색 교화복을 입고 같은 색깔의 모자를 쓰고 있었으며 왼쪽가슴에는 《103》이라는 번호가 달려있었다.”고 배준호씨의 교화소 노동모습을 소개했다.

조선신보는 “관계자의 설명에 의하면 《특별교화소》에서의 기본노동은 농사일”이라는 말과 함께 “배준호는 5월 14일의 입소 이래 콩 씨를 뿌리고 지금은 두엄(거름)내기와 감자, 강냉이, 콩 등의 밭의 김매기를 하고 있다고 한다. 작업은 소농기구를 가지고 하는 손노동이다. 농사일을 처음 해본다고 하는 배준호는 《이곳에 있는 분들이 많이 배려해주셔서 너무 무리하게 일하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건강상태가 좋은 편이 아니기에 어려움은 있다. 여기에 상주하고 있는 의사선생님도 계시고 정기적인 검진도 받고 있다.》”는 배준호씨의 발언도 실었다.

이신문은 배준호씨가 노동하는 동안 그가 갇혀있는 감방 안을 돌아볼 수 있었다며 “약 12㎡(약 3평)의 감방에는 침대, 책상, 텔레비젼 등이 구비되고 변소와 세면장이 있으며 창문에는 쇠살창이 설치되어있다.”고 개인의 교화시설의 규모까지 상세히 보도했다.

신문은 “감방 안에는 《교화인의 생활준칙》이 게시되어 있었다.”며 “《교화인의 생활준칙》에는 교화인은 교화소안에 제정된 일과질서 및 행동질서를 철저히 지켜야 한다, 교화인은 매일 노동과제를 무조건 수행하여야 하며 태공(태만) 할 때에는 해당한 처벌을 받는다, 교화소안의 보안원들에게 예의를 표시하고 그들의 정당한 요구와 지시에 무조건 복종하여야 하며 불복종하거나 반항하였을 경우에는 해당한 처벌을 받는다고 지적되어있었다.”고 썼다.

또한 “배준호는 지난해 11월에 구속되고 《특별교화소》에 입소하기 전까지는 가족 등 외부사람과의 전화통화가 허용되었으나 《특별 교화소》에서는 전화통화는 규정상 불허 되고 있다.”며 “다만 가족, 친척, 친우들과 서신거래는 할 수 있으며 가족측이 보내오는 차입품을 검사한 기초위에서 받을 수 있게 되어있다. 관계자에 의하면 배준호가 《특별교화소》 입소 후 교화소 측에서는 배준호가 쓴 편지를 2차례 내보내주었으며 배준호 앞으로 보내온 편지를 5차례 접수하였다”고 한다는 사실도 전했다.

이어 “규정에 의하면 필요한 경우 조선주재 자국의 외교 및 영사일꾼들과 면회할 수 있다. 조선과 미국사이에 국교가 없는 조건에서 주조 스웨리예(스위스)대사관이 대신하여 배준호를 1차례 면회하였다”고 전하고 “배준호는 조선에 입국하여 구속된 이후 전화통화, 편지, 면회들을 통하여 거듭 자신이 풀려나올 수 있게 해줄 것을 요청하였다”고 게재했다.

아울러 “이번 면담에서 더 할 말이 있는가 하는 기자의 물음에 배준호는 7월 4일에 아버지가 칠갑을 맞는다며 외아들로서 꼭 찾아가 축하해드리고 싶다, 부모들이 많이 걱정하고 충격을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 심려를 덜어드리고 싶다”고 말한 소식을 강조했다.

조선신보가 미국공민 배준호와 대담요지 내용 전문을 게재한다.

반공화국적대범죄를 감행하여 15년의 노동교화형을 언도받고 지난 5월 14일부터 《특별교화소》에 수용된 미국공민 배준호가 6월 26일 본사기자와의 면담에 응하여 현재의 교화생활과 심정에 대해 이야기하였다.

일문일답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현재 건강상태는?

▲ 원래 당뇨병, 고지혈증, 지방간, 동맥경화증상이 있다. 또 10여년 전에 허리를 다쳤는데 통증이 재발되었다.

-여기서 어떤 일과를 보내고 있는가.

▲ 주로 농사일을 하고 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 8시간 노동하고 있다. 중간에 쉬는 시간도 있고 점심시간도 있다. 농사일은 평생 처음으로 하는 일이다. 이곳에 있는 분들이 많이 배려해주셔서 너무 무리하게 일하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건강상태가 좋은 편이 아니기에 어려움은 있다. 여기에 상주하고 있는 의사선생님도 계시고 정기적인 검진도 받고 있다.

-지난해 구속된 이후 스웨리예(스위스)대사관 성원과 여러 번 만났다고 하는데.

▲ 제가 공화국법을 위반하여 조사받고 있는 중이라고 이야기했고 조사받고 있는 내용의 골자를 이야기했다. 어떤 내용으로 기소가 될 것이며 결국 재판으로 가게 될 것이라는 것을 이야기했다. 재판(4월 30일)을 받게 되였고 여기에 들어와서 생활하게 된다는 것을 스웨리예(스웨덴)대사관 성원을 통하여 가족들에게 알렸다. 편지로도 여기에 있는 상황들을 알렸다.

제가 조속히 돌아갈 수 있도록 미국정부에 도움을 요청하는 이야기도 하였다. 재판 후에는 사면을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해달라고 부탁을 했다.

-가족들과 전화통화를 했는가.

▲ 2번 했다. 재판전에는 재판을 받게 된다는 것을 알렸다. 재판 후에는 사면을 위해서 노력해달라는 이야기를 했다. 당시에는 교화소로 입소될지 결정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그러한 이야기는 전혀 하지 못했다.

▲ 조선신보 기자와 대담 중인 배준호씨는 "하루 속히 가족에게 돌아갈 수있도록 조선정부에 선처를 구하고 미국정부에는 석방 될 수 있도록 노략해달라고 요청했다. 배준호씨 왼쪽 옆에는 난방을 할 수있는 보일러 시설이 보인다. ©


-가족들에게 전하고싶은 말이 있는가.

▲ 비록 건강상태가 썩 좋은 편은 아니지만 여기서 인내성 있게 잘 견디여 내고 있다는 것을 전해주면 좋겠다.

(가족들은) 조속히 좋은 조치가 공화국정부와 미국정부의 노력에 의해서 이루어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노력해주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계속 기도해주시고 사면요청을 공화국정부와 미국정부에 해달라고 부탁하고 싶다.

-재판에서 변호인의 변호를 거절하였다고 하는데.

▲ 3개월에 걸친 예심이 있었다. 라선시에 입국해서 조사를 받으면서 제가 법을 위반한데 대한 진술서를 썼고 예심과정에서도 그것을 인정하였기 때문에 굳이 재판에서 따로 변호인을 선정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더 하고 싶은 말이 있는가.

▲ 7월 4일이 저의 아버지의 70살 생일이다. 공화국정부에서 선처해주시고 미국정부도 더욱더 노력해주셔서 조속한 시간 내에 제가 돌아갈 수 있도록 도움을 요청한다. 제가 외아들로서 꼭 (부모가 사는 미국 씨애틀에) 가서 아버지를 축하해드렸으면 한다. 지금까지 이곳에서 여러분들의 배려와 보살핌 속에서 잘 지내고 있다.

제가 한 행위는 용서받기 어려운 행위들이지만 원만히, 조속히 해결되어 가족들을 다시 만났으면 하는 것이 저의 소망이다.

부모님들이 많이 걱정하고 충격을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 위로해 드리고 싶고 제 걱정 때문에 어려워하실 것이라고 알고 있다. 그런 염려, 심려를 덜어드렸으면 하는 마음으로 부탁드리겠다. 좋은 결과가 있을수 있도록 많은 분들이 나서주시고 노력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

한편 조선신보가 이례적으로 조선의 노동교화소를 방문 취재하며 배준호씨와 대담을 한 것은 조선이 반인권 국가라는 오해를 불식시키는 것과 더불어 배준호씨가 미국정부에 자신의 석방을 위해 노력해 달라는 의지를 전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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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때 내 몸을 씻겨준 계엄군

 

 

5·18때 내 몸을 씻겨준 계엄군

 
최상용 2013. 07. 02
조회수 5319추천수 0
 

 

518 나경택 사진1-.jpg

5·18 광주민주항쟁 학생을 구타하는 계엄군. 사진 <한겨레> 자료

 

 

[나를 울린 이사람]·

 

5·18 광주민주항쟁 이후 교도소 안에 갇혀 있던 당시 투옥과 고문으로 심신은 지칠 대로 지쳤다. 교도소 밖에서 들려오는 고속도로를 질주하는 차량의 굉음이 마치 돌아갈 수 없는 세계의 아우성 같았다.

 

 밤이면 장난처럼 자행되는 계엄군의 구타와 폭언은 스물한 살 청춘이 감당하기엔 너무나도 힘든 공포와 충격 그 자체였다. 군인들이 내 뱉는 비속어와 은어 자체를 이해 못해 수없이 구타당하기도 했다. 생지옥이 따로 없었다. 그곳은 창문하나 없는 창고였다. 안쪽 한 귀퉁이에 임시로 설치한 소대변통에서 풍기는 악취때문에 더운 날엔 군인들도 들어오길 꺼렸다.

 

 그렇게 한 달 여를 세수는커녕 씻지도 못하고 지내다보니 피부병의 일종인 전염성 강한 ‘옴’에 걸리고 말았다. 나는 다른 수감자들과 격리되었고, 곧이어 다른 곳으로 이송되었다. 그곳 역시 여건은 별반 다를 게 없었다.

 

최상용-.jpg

필자 최상용 소장. 사진 조현 기자

 

 

 그러나 이런 와중에도 행운이 찾아들었다. 당시엔 폭군이나 다름없었던 계엄군 중에 천사와도 같은 사람이 나타났다. 그가 매일 아침과 저녁, 주저하는 나를 간이목욕탕으로 데려가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말끔하게 씻어 주는 게 아닌가! 같은 처지의 동료들도 행여 옮길까봐 날 가까이 하지 않았는데, 그것도 맨손으로! 온몸 구석구석 꼼꼼히, 마치 세례(洗禮)의식이라도 치르듯. 매번 겸연쩍어 내 스스로 씻는다고 하면 자애로운 형처럼 입가에 맑은 미소를 지으며 “그냥 있어, 괜찮아!”라고 위로했다. 가슴이 먹먹하면서도 얼마나 콩닥거렸는지, 지금 생각해도 트라우마를 지우는 촉매제 역할을 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변변한 약도 먹지 못했는데 채 일주일이 되기도 전에 말끔하게 나았다. 당시 그의 계급은 상병, 이름은 차재욱! 그립고 보고 싶다. 30년도 더 지났지만, 지옥 속에서 만난 그 천사는 아직도 내 가슴에서 훈훈한 자애로움과 사랑으로 자라나고 있다.

 

최상용(인문기학연구소장)

 

518 검거된 시민군들-.jpg

518 당시-.jpg 518 무릅꿇린 진압군들-.jpg 518 연행 시민학생들-.jpg 518 진압군에 연행되는 학생들-.jpg 518광주항쟁 사진2-.jpg 518당시 전남도청 마당 무력진압뒤-.jpg 518당시 트럭에 태움-.jpg518진압군의 시민 구타1-.jpg 518항쟁사진 관1-.jpg 광주항쟁 진압군의 폭행2-.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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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노든 폭로가 보여준 것: 언론의 타락과 미국의 몰락

 

 

[박인규의 지구촌 분석] "관제언론으로 추락한 美 언론"

박인규 프레시안 편집인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3-07-03 오전 7:14:20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이 첫 조합원 대상 서비스로 6월 28일 뉴스 큐레이팅 서비스 <주간 프레시안 뷰> 준비호 1호를 냈다. <주간 프레시안 뷰>는 정치, 경제, 국제, 생태, 한반도 등 각 분야의 권위 있는 전문가들이 뽑은 뉴스다. 단편적인 정보가 아닌 '흐름으로서의 뉴스', '지식으로서의 뉴스'를 추구한다.

매주 금요일 저녁에 발행되는 조합원에게 무료로 제공되지만, 일반 독자에게는 유료인 콘텐츠다. <주간 프레시안 뷰>를 보고자 하는 독자는 조합원으로 가입하면 된다. 7월 한달 동안 준비 기간을 거쳐 8월부터 본격적인 서비스에 들어갈 예정이다. 내용이 궁금한 독자들을 위해 지난 28일 발행된 <주간 프레시안 뷰>에 실린 글의 일부를 게재한다. <편집자>


지난 6월 23일 홍콩을 떠난 '세기의 고발자' 에드워드 스노든은 6월 28일 현재 러시아 모스크바공항의 환승구역에 머무르면서 중남미 국가인 에콰도르로의 망명을 추진 중입니다. 그의 '배신행위'에 분노한 미 당국이 22일 그의 여권을 취소하는 바람에 언제 그가 모스크바 공항을 떠날 수 있을지 현재로서는 불투명하다고 하는군요. 그러나 지난 9일 그의 폭로가 몰고 온 파장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입니다. (☞ 관련 기사 : "구글·페이스북도 NSA 감시망…美 최고 정보기밀 폭로")

이번 폭로로 유일 초강대국 미국은 국내외적으로 큰 곤경에 처한 모습입니다. 한때 미국을 변화시킬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조지 W. 오바마'란 오명을 뒤집어쓰며 지지율이 급락했다고 합니다. (☞ 관련 기사 : '스노든 폭로'에 지지율 급감…"조지 W. 오바마")

스노든의 폭로 직후인 지난 11~13일 <CNN>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오바마 대통령의 지지율은 한 달 전 53%에서 8% 포인트나 떨어진 45%로, 18개월 새 최저치를 기록했다고 하는군요. 특히 지지율이 상대적으로 높았던 20대를 중심으로 한 젊은 층의 지지율은 한 달 만에 17% 포인트나 떨어지면서 48%에 그쳤다고 합니다.

뿐만 아닙니다. 전통적 우방국인 독일마저도 미국에 등을 돌렸습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지난 19일 오바마 대통령과의 베를린 정상회담 후 기자회견에서 "경제 위기와 시리아·아프가니스탄 사태에 앞서 미국의 첩보 활동 문제를 우선으로 다뤘다"면서 "안보를 위한 정보수집이라도 적절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 소식을 전한 독일 <슈피겔>의 기사 제목은 "앵글로색슨에 포위된 독일 안보가 위태롭다"였습니다. 미 국가안보국(NSA)의 무차별 사찰에 대한 독일인들의 분노가 느껴지지 않습니까. (☞ 관련 기사 : "앵글로색슨에 포위된 독일 안보가 위태롭다")

그동안 미국으로부터 인터넷감시국이라는 비난을 받아온 중국도 미국 비판에 나섰습니다. 관영 <인민일보>는 "미국은 인권의 모범국에서 프라이버시를 도청하고, 국제 인터넷망에 대해 집중된 권력으로 조작했고, 다른 나라들의 네트워크를 침범한 미치광이"라고 맹비난하는 동시에 스노든에 대해서는 "미국의 위선을 찢어발긴 대담함을 보여줬다"고 찬사를 보냈습니다. 나아가 홍콩시립대 조지프 청 교수는 "미국이 중국을 해킹해왔다는 폭로로 서방권은 사이버 전쟁에서 도덕적 우위를 상실했다"면서 "중국은 향후 대미 협상에서 이번 폭로를 외교적 무기로 활용할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 관련 기사 : '세기의 고발자' 처리 놓고 미·중 관계 삐걱?)

스노든의 폭로로 세계의 지도국가를 자처해온 미국은 우방국들의 신뢰를 잃는 한편 미래 세계의 패권을 놓고 경쟁을 벌이고 있는 중국에 대한 도덕적 우위마저도 상실한 셈입니다.

앞으로 스노든 폭로의 파장이 어디까지 미칠지는 좀 더 두고 봐야 하겠지만 다음 두 가지는 확실히 드러난 것 같습니다. 첫째, 패권국가 미국의 몰락을 더욱 재촉할 것이라는 점입니다. 이와 관련, 우방국 독일 등의 반발과 경쟁국 중국 등의 비판보다 더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전통적으로 미국의 강력한 영향권 안에 있어 '미국의 뒷마당'으로 불렸던 에콰도르 등 중남미 국가들이 스노든에 망명지를 제공하겠다고 나섰다는 사실입니다. 미국의 언론인 스티븐 킨처는 지난 25일 영국 <가디언>에 기고한 칼럼을 통해 이러한 상황은 "눈알이 튀어나올 만큼" 놀랄 만한 변화라고 지적했습니다. (☞ 관련 기사 : Latin America is Ready to Defy the US Over Snowden and Other Issues)

킨처는 <뉴욕타임스> 특파원 출신의 언론인으로 미 CIA에 의한 과테말라 아르벤즈 정권 전복(1954년)을 고발한 <쓰디쓴 열매(Bitter Fruit)>의 공저자이며 19세기 말 하와이에서 2003년 이라크에 이르기까지 미국에 의한 13개 외국 정권 전복 사례를 다룬 <전복(Overthrow)>(2006년)의 저자입니다.

그에 따르면 '반역 및 간첩죄'로 미 사법당국의 분노에 찬 추적을 받고 있는 스노든의 망명을 받아들일 경우 미국으로부터 강력한 외교적 경제적 제재를 받을 것이 분명한데도 망명 수락 용의를 밝혔다는 것은 20세기의 중남미국가들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1973년 칠레 아옌데 정권 전복에서부터 80년대 그레나다, 파나마 침공 등을 생각해보면 이해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킨처는 미국으로부터의 독립에 대한 열망은 차베스와 같은 일부 떠버리 지도자들의 전유물이 아니라 대다수 중남미 주민이 공유하는 열망이라고 지적합니다. 1990년대 미국의 요구에 따라 받아들인 신자유주의 체제가 어떤 결과를 초래했는지를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죠. 결국, 한때 중남미 국가들을 쥐고 흔들었던 미국의 영향력이 형편없이 추락했다는 얘기입니다.
 

▲ 대니얼 엘스버그가 "미국 역사상 가장 중요한 폭로"라고 평가한 NSA 내부고발자가 <가디언>의 독점 인터뷰를 통해 자신의 신분까지 스스로 공개했다. 사진은 <가디언>이 제공한 에드워드 스노든의. 인터뷰 모습.


에콰도르의 라파엘 코레아 대통령은 열렬한 사회주의자로 지난 2009년 워싱턴의 거듭된 반대에도 불구하고 자국 내 미군 기지를 폐쇄한 바 있습니다. 그리고 미국의 미움을 받고 있는 또 한 명의 고발자, 위키리크스 창립자 줄리안 어산지에게 망명지(런던 주재 에콰도르 대사관)를 제공하기도 했습니다. 그가 이토록 미국의 뜻을 거스를 수 있었던 것은 자국민들의 지지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있기 때문이라 게 킨처의 분석입니다.

물론 에콰도르 정부도 스노든 망명 허용에 대해 신중한 자세를 취하고 있습니다. 리카르도 파티노 에콰도르 외무장관은 26일 "어산지의 망명 허용 결정에 두 달이 걸렸다. 이번 경우에도 그 정도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과연 에콰도르는 스노든의 망명을 받아들일까요? 그 경우 미국의 대응은 어떤 것일까요? 관심의 대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 관련 기사 : Edward Snowden 'not likely to gain asylum in Ecuador for months')

또 하나 주목해야 할 사실은 <뉴욕타임스>를 비롯한 미국 주류언론의 비판정신이 완전히 실종됐다는 점이 다시 한 번 드러났다는 것입니다. MSNBC의 PD 출신으로 현재 미 이타카 대학의 저널리즘 교수로 있는 제프 코언은 이번 스노든 사건에 대한 미국 주류언론의 보도 태도가 관제언론과 다를 바 없다고 신랄하게 비판합니다. (☞ 관련 기사 : Snowden Coverage: If US Mass Media Were State-Controlled, Would They Look Any Different?)

스노든의 폭로를 공공의 이익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보고 미국정부를 비판하기보다는 그를 매국노로 단죄하는 데 급급하다는 것입니다. 예컨대 <뉴욕타임스> 기자이며 CNBC방송의 단골 토론자인 앤드류 로스 소르킨은 "젠장, 우리는 일을 완전히 망쳤어. 심지어 스노든이 러시아로 도피하도록 놔뒀잖아"라고 발언했다고 합니다. 코언 교수는 소르킨이 '우리'라는 말을 사용함으로써 자신을 언론인이 아니라 CIA나 FBI에 근무하는 정부관리로 착각하고 있다고 비판합니다. 그에 따르면 미국의 주류언론은 스노든에 대한 옹호 발언을 일체 허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방송 토론의 경우 "스노든은 매국노니까 당연히 감옥에 쳐넣어야 해"(강경파)와 "그의 의도는 선했지만 그래도 잡아넣어야 한다"(온건파)로 갈려 논쟁하는 정도라는군요. <타임> 여론조사 결과 '스노든의 폭로가 좋은 일'이라는 반응이 미 국민의 53%, 특히 18~34세에서는 70%에 이르는데도 불구하고 이런 여론은 주류언론에 전혀 반영되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코언 교수는 스노든의 폭로를 <가디언>에 특종 보도한 글렌 그린왈드 기자가 블로거 출신임을 지적하면서 이제 미국에서 제대로 된 언론의 역할은 독립언론의 몫이 됐다고 말합니다. 그린왈드는 독립 블로거 출신으로 미국 인터넷언론 <살롱>을 거쳐 지금은 <가디언>에서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앞에 말한 소르킨은 그린왈드 기자를 구속해야 한다고 열변을 토했다고 하는군요. 이른바 언론인이, 진실을 보도했다는 이유로 다른 언론인을 구속하라고 요구하는 것이 미국 주류언론의 실상입니다.

사실 요즘 미국의 주류언론은 펜타곤 페이퍼를 폭로하고(<뉴욕타임스>) 닉슨 대통령을 하야시킨(<워싱턴포스트>) 1970년대와는 매우 다릅니다. 코언 교수의 지적대로 관제언론을 닮아가고 있습니다. 2003년 미 이라크 침공의 중요한 근거가 된 <뉴욕타임스>의 '이라크 핵무기 개발(우라늄 농축)' 보도가 대표적 사례입니다. 당시 이 신문의 주디스 밀러 기자는 특종이라는 정부 관리의 유혹에 넘어가 제대로 된 검증 없이 이를 보도함으로써 이라크 침공에 대한 미 국민의 지지를 끌어내는 데 한몫을 했습니다.

미국은 이라크 침공 이후 (지금은 아프간 등에서) 미국 역사상 가장 오랫동안 전쟁을(이른바 Long War) 계속함으로써 귀중한 경제력과 군사력을 낭비하고 있습니다. 이라크를 해방함으로써 대중동지역을 미국의 영향권 안에 두어 세계 패권을 영구화하겠다는 부시 정부의 야심 찬 계획이 미국의 몰락을 재촉하는 결정적 계기가 된 셈입니다. 2001년 9.11 이후 미국이 군사적 일방주의에 나서게 된 데는 부시 정부의 전쟁 정책을 독립적으로 검증하고 비판하기보다는 무비판적으로 따른 주류언론의 책임도 크다고 하겠습니다. 언론의 타락이 미국의 몰락을 재촉하고 있는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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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이 공돈 취급하는 분담금도 혈세다

 
 
 
분담금 통제권한 없어 오용-전용 묵인해 줘
 
육근성 | 2013-07-03 09:53:36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인쇄하기메일보내기
 
 


 

6월 국회 마지막 날(2일) 국회 외교통일위가 한국정부가 부담하는 주한미군 방위비분담금이 방만하게 사용되고 있다고 지적한 미국 상원 군사위원회의 ‘해외미군 주둔비용 보고서’를 공개했다. 국회 입법조사처가 취합한 자료를 민주당 박주선 의원이 공개한 것이다.

미 상원, “한국이 미군에 지급하는 분담금은 사실상 공돈”

이 보고서에서 미국 상원 군사위원회는 ‘주한미군이 방위비분담금을 오용하거나 전용한 사실이 있다’며 “(주한미군이) 한국이 지급하는 분담금을 사실상 공돈(free money) 취급했다”고 꼬집은 것으로 알려졌다.

용산기지 내 2개의 식당을 통합하고 리모델링할 경우 연간 운영비를 29만 달러 이상 절감할 수 있다며 140만 달러를 들여 공사를 했지만, 결과는 연간 운영비가 5만3000달러 더 들게 됐다고 지적했다.

주한미군 재배치로 새로 건설 중인 평택 미군기지(캠프 험프리)에 한국정부가 지급한 분담금 중 1040만 달러(약 115억원)를 미2사단 박물관을 짓는 데 사용하기로 한 것도 문제다. 미 상원 보고서는 “분담금을 박물관 건축이 아니라 업무상 필수적인 곳에 사용하는 게 더 바람직하다”라고 비판했다.

분담금 산출·관리 방식 ‘엉망’, 굴욕스럽기까지

분담금이 이토록 방만하게 사용되고 있는 이유는 분담금 산출과 관리방식이 엉망이기 때문이다. 굴욕스럽기까지 하다. 한국정부가 부담해야 할 분담금은‘예산 소요기반’이 아니라 ‘총액’으로 책정된다. 한미 양국이 5년에 한차례씩 협상을 통해 분담금 총액을 결정한 뒤 매년 물가상승률을 반영해 계산하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돈을 줬으면 사용내역에 대한 관리와 사후 감사권 정도는 행사하는 게 상식이다. 하지만 한국정부에게 통제권한이 전혀 없다. 분담금이 지급되면 그것으로 사실상 끝이다.어떻게 사용되는 지 관리가 안 된다는 얘기다. 이러한 게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으니 대한민국 국민의 혈세로 미군을 위한 박물관을 짓겠다고 하는 거다.

방위비분담금 협정은 1991년부터 시작됐다. 2009년 1월 체결된 제8차 협정이 가장 최근이다. 첫해 1073억원이었던 분담금 규모가 노무현 정권 때인 2005년과 2006년을 제외하고 20년 동안 계속 늘어나 현재 8695억원(2013년)에 달한다. 주한미군 1인 2600만원을 지원하는 셈으로 2001년(1300만원)보다 2배나 많아졌다. 국방비 대비 방위비분담금 점유율도 그간 2배 늘어나 2.78%를 차지한다. 미국 측의 계속되는 인상요구로 내년에는 1조원을 넘어설 전망이다.

방위비분담금, SOFA 규정에 어긋나

군사건설비, 한국인 근로자 인건비, 군수지원비 등의 명목으로 지원되는 방위비분담금 자체가 논란거리다. 주둔군지위협정(SOFA)에는 한국 측이 이런 분담금을 부담해야 한다는 조항이 없다. 분담금의 근거는 1991년 체결된 ‘한미 방위비 분담 특별협정’(special measures agreement/SMA)이다. SOFA 제5조(시설과 구역-경비와 유지)에 근거한 것이라지만 5조에는 건설비, 인건비, 군수비 등의 주둔비용을 미국정부가 부담하는 것으로 돼있다.

SOFA 조항과 SMA(방위비분담 특별협정)가 서로 상충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래서 어쩔 수없이 ‘특별(special)’ 이라는 용어를 넣었나 보다. 주한미군에게 ‘아주 특별한 대우’를 해주는 협정이란 얘기다.

그런데도 미국정부는 한국이 부담하는 분담금 규모가 적다고 말한다. 전체 주둔비용의 40% 정도만 한국이 부담하고 있다며 적어도 50% 이상으로 높여야 한다는 게 미국 측의 주장이다. 계산법이 잘못됐기 때문이다. 기지 무상임대, 저평가된 임대가치, 한국정부가 부담하는 미군 이전비용 등을 감안한다면 70% 이상일 거라는 게 시민사회단체의 판단이다.

아주 특별한 특별협정, 'SMA'

제9차 SMA 체결을 위한 협상이 어제(2일) 미국 워싱턴에서 개최됐다. 어느 때보다도 분담금 증액 요구가 거셀 것으로 보인다. 국방예산 대규모 삭감을 포함한 시퀘스터(연방정부 예산 자동삭감)이 발효된 상태이기 때문이다.

<한국이 지급한 분담금 미집행액을 전용할 수 있도록 양해해준 제8치 SMA협정/2009.1>

그간 한국정부가 준 분담금의 미집행액이 1조원을 넘는다. 그런데도 증액을 계속 요구하는 이유가 있다. 미집행분을 축적해 동두천 미2사단(켐프 케이시) 이전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서다. 분담금을 이전비용으로 전용하려는 것이다. 용산기지 이전비용은 한국정부가, 미2사단 이전비용은 미국 측이 부담하도록 양국이 합의한 바 있다.

 

 

분담금 전용은 한국 실정법을 넘어서는 행위일 뿐 아니라 SOFA 규정에도 어긋난다. SOFA제7조에는 “합중국 군대의 구성원과 군속 등은... 대한민국 안에서 대한민국 법령을 존중한다”라고 명시돼 있다.

MB 분담금 미집행액 전용 양해, 오바마 당선·취임 ‘선물’

미국이 분담금 전용이라는 초헌법적인 특혜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이명박 전 대통령 덕분이다. 일각에서는 2011년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미 대사관 비밀전문(2007.4.2)을 들어 노 전 대통령이 분담금 전용을 결정해준 거라고 주장하지만 여러 정황으로 볼 때 사실이 아닌 게 분명하다.

비밀전문에 의하면 버시바우 당시 주한 미대사는 “(미군 기지 이전비용과 관련해) 한국정부의 부담분은 전체 비용의 93%로 추산된다”라는 내용을 본국에 보고한다. 이것은 당시 한국정부가 밝힌 50% 부담과 배치되는 주장이다. 버시바우는 그 이유로 ‘한국정부의 계산방식’을 꼽았다.

그는 “방위비분담금 미집행액 전용분과 민간투자(BTL: 한국의 민간업자가 건물을 지어준 뒤 일정기간 임대해 투자금을 회수하는 방식) 부분이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정부가 비판여론을 의식해 우리 측 부담분을 축소해 말한 것이다.

분담금 전용 문제를 놓고 미국과 노무현 정부가 옥신각신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버시바우가 “이같은 사실(한국정부가 실제 이전비용의 93% 부담한다는 내용)을 한국 국회와 국민에게 알려야 한다”고 우리 정부에 요구한 것이 그 증거다. 미국 측은 한국정부로부터 분담금 전용을 명문화하는 조치를 받아내려고 애쓴 것으로 보인다.

 

미국에게 주는 방위비분담금도 국민의 혈세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자 미국은 만사형통의 기쁨을 누린다. 오마바 대통령이 당선인 신분이었던 2009년 1월 15일 이명박 전 대통령은 미국 측에 통큰 선물을 제공한다. 미국측이 그토록 원했던 분담금 미집행액 전용 뿐 아니라 기지 이전에 따른 공사선택권까지 보장해 줬다. 미국 측에 설계·감리비까지 챙겨주기 위해 기지 이전 사업비의 12%을 현금으로 지원하기로 하는 등 정성을 기울였다. 이런 내용을 담은 각서에 MB가 서명한 지 5일 후 오마바 대통령의 취임식이 거행됐다.

미국이 기지 이전 비용 확보를 위해 분담금 미집행분을 축적해온 건 불법행위다. 원칙대로라면 축적분 1조1000억원은 국고로 환수돼야 한다. 불법을 용인한 이명박 정부도 문제지만, 현재 SMA 협상을 진행하고 있는 박근혜 정부 또한 전 정권의 모습과 다를 게 없어 보인다.

2011년부터 현금 12%와 현물 88% 등 한국 정부의 100% 지원에 의해 미군기지 이전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방위비 분담 특별협정(SMA)는 SOFA 규정에 어긋나고, 기지 이전 비용 지원에도 불법적인 요소가 있다. 언제까지 이래야 하는 건가. 미국에게 주는 방위비분담금도 국민의 혈세다.

(최상단 사진 출처: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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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장장비관 견문록(1) ‘불새’를 쏘는 ‘무적의 첨단전차’

 

 

 
 
[한호석의 개벽예감](68) 중무기실에 전시된 북의 전차들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기사입력: 2013/07/02 [21:51] 최종편집: ⓒ 자주민보
 
 

나는 왜 거기에 갔는가?

초조한 느낌이 밀려왔다. 내가 평양을 방문한 목적이 조선인민군 무장장비관 참관인데, 내게 주어진 참관시간이 오전 9시 30분부터 정오까지 2시간 30분밖에 되지 않는다는 말을 안내자로부터 들었기 때문이었다. 매우 방대한 규모의 무장장비관을 2시간 30분 동안 전부 돌아보는 것은 어림없는 일이라는 점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점심식사도 거르고 하루 종일 참관하겠다고 막무가내로 요구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무슨 방도를 궁리하고 있을 때, 나를 태운 승용차는 어느덧 만경대구역 청춘거리에 들어서고 있었다. 무장장비관은 그 거리 북쪽에 있었다. 무장장비관으로 통하는 길목은 청춘거리에서 안쪽으로 조금 들어간 곳에 있다.

승용차가 무장장비관 경비소 앞에 이르자, 기관단총을 등에 멘 인민군 경비병이 다가와 신원을 확인한 뒤에 통과를 허락하여 구내로 들어갈 수 있었다. 내 눈앞에 펼쳐진, 깔끔하게 잘 꾸며진 정원은 아늑한 휴양소 같은 느낌을 주었다. 초조함과 설렘이 교차하는 심정으로 승용차에서 내려서니 그곳은 무장장비관 주차장이다.

그런데 주차장 바닥 전체에 잔디밭을 펼쳐놓은 것이 인상적이다. 잔디열풍은 거기서도 세차게 불어오고 있었다. 참관자들을 태운 승용차나 버스가 수시로 드나드는 주차장 바닥에 잔디를 심으면 차바퀴에 짓밟혀 자랄 수 없으므로, 어른 주먹이 들어갈 만큼 큰 동그란 구멍을 가로세로 줄맞춰 수없이 뚫어놓은 넓은 판을 주차장 바닥 전체에 깔아 놓았는데, 그 수많은 구멍들에서 고개를 내민 잔디가 주차장을 온통 푸른 주단으로 덮어주고 있었다.

생전 처음 보는 이색적인 잔디주차장에서 걸음을 옮겨 정원에 나있는 길을 100m 정도 걸어가니, 사진에서 본 무장장비관이 눈앞에 나타났다. 50명쯤 되어 보이는 북측 근로자들이 나보다 한 발 앞서 무장장비관 현관에 도착하여 참관을 막 시작하려던 참이었다.

나의 무장장비관 참관을 안내할 해설강사가 현관문을 열고 나와 내게 다가왔다. 해설강사는 뜻밖에도 여성군인이었다. 군복을 입고 총기어린 눈매로 내게 인사하는 그녀의 화장기 없는 순박한 얼굴이 고와보였다. 김윤희라고 적힌 그녀의 명찰에 내 눈길이 잠시 머물렀다. 무장장비관 해설강사는 모두 여성군인들이라고 한다.

북의 참관자들은 한 번에 50명씩 집체적으로 참관하는데, 해외동포 방문자인 나는 단독으로 참관하게 되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연이지만, 해외동포사업국으로부터 사전연락을 받은 해설강사 김윤희 동무는 내가 참관 도중에 이것저것 질문할 것을 예상하여 답변준비를 하고 나왔다고 한다. 묻고 싶은 것이 많았던 나에게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모른다.

해설강사의 말에 따르면, 외국인은 무장장비관을 참관할 수 없다고 하니, 인민군 군인들과 북측 근로자들, 그리고 해외동포들만 참관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앞으로 언젠가 방북할 남측 동포들에게도 참관기회가 열려있겠지만, 요즈음처럼 남북관계가 최악상태에 빠진 정세에서는 남북왕래라는 말도 꺼내기 힘들고, 긴장된 정세가 풀려 남측 동포가 평양에 간다 해도 남측 정부당국이 무장장비관 참관을 불허할 것이므로 남측 동포들의 참관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에게 내가 무장장비관을 참관한 목적에 대해 한 마디 하련다. 통일학을 연구하는 나의 시각으로 보면, 사실과 다르게 왜곡된 대북정보가 북측 외부세계에 넘쳐나고 있다. 그렇게 된 원인은, 내외 반통일세력이 왜곡된 대북정보를 유포함으로써 자주적 평화통일을 향한 민중의 희망과 요구를 가로막으려는 데 있다. 대북정보의 왜곡과 유포는 자주적 평화통일의 길을 가로막는 가장 큰 걸림돌 가운데 하나다.

내외 반통일세력은 각종 대북정보를 전방위적으로 왜곡하는데, 군사부문도 예외가 아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대북군사정보에 관한 저들의 왜곡이 가장 심하다. 특히 미국이 대북전쟁연습을 극단적인 상황으로 밀어가고, 북이 그에 맞서 반미전면대결전을 선포하고 그에 따른 군사활동을 전개하는 오늘의 군사상황을 파악하려면 북의 군사문제에 관한 정보가 필수적인데 왜곡된 대북군사정보가 민중의 시야를 가리고 있다.

민중의 시야를 가린 왜곡된 대북군사정보를 걷어내고 올바른 상황판단과 정세인식을 추구하려는 요구, 바로 그런 절실한 요구가 나를 무장장비관으로 떠밀었다. 내외 반통일세력이 왜곡한 대북군사정보를 비판하고 논박하고 진실을 세상에 알리려면 주관적 해석보다 객관적 사실이 필요한데, 나는 무장장비관 참관이야말로 그런 객관적 사실을 파악할 수 있는 유일한 방도라고 믿었던 것이다.

놀라움 속에 참관한 중무기실과 전략로케트관

해설강사 김윤희 동무의 또랑또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인민군 군인들이 불과 1년 6개월밖에 되지 않는 짧은 시공기간 동안 총부지면적 22만 평방미터, 연건축면적 5만 평방미터의 무장장비관을 “불이 번쩍 나게” 지었다고 한다. 그 말을 듣고 나니 그처럼 방대한 전시장의 어느 한 귀퉁이밖에 볼 수 없겠구나 하는 생각으로 섭섭하였다.

아닌 게 아니라, 나는 그 날 오전 9시 30분부터 오후 12시 30분까지 꼬박 3시간 동안 잠시도 쉬지 않고 전시장 안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관찰하고, 해설을 듣고, 때로 질문도 하고 수첩에 기록도 하였으나, 너무 아쉽게도 중무기실과 전략로케트관 두 곳밖에 참관하지 못하였다. 항공군무기를 전시한 전시실, 해군무기를 전시한 전시실, 특수군무기를 전시한 전시실, 전자도서관, 그리고 ‘적군무기’를 전시한 ‘세계의 병기관’에는 가보지도 못했고, 전시구역이 너무 넓어 관람용 소형열차를 타고 돌아보는 야외전시장도 가보지 못했다. 무장장비관에 있는 그 모든 전시장을 참관하려면, 꼬박 사흘이 걸릴 것이다.

▲ <사진1> 무장장비관 정면 [자료사진= 인터넷검색, 한호석]
예상했던 대로, 무장장비관 안에서 사진촬영은 금지되었다. 나의 단독참관을 위해 애쓴 해설강사 김윤희 동무와 함께 건물 밖에서 기념사진 한 장 찍고 싶었건만, 옥외사진을 찍는 것도 금지되었다는 말을 듣고 생각을 접었다. 무장장비관 현장사진을 한 장도 싣지 못한 견문록을 쓰려니 독자들에게 좀 미안해서, 나는 뉴욕에 돌아와 인터넷 사진자료를 뒤진 끝에 관련사진 몇 장을 찾아냈다. 이 글에 실린 무장장비관 사진들 가운데 출처가 밝혀지지 않은 사진이 있지만, 그 모든 사진들은 <조선중앙통신(KCNA)>에 보도된 사진 또는 <조선중앙텔레비죤(KCTV)> 방영화면을 잡은 사진들이다.
▲ <사진2> 무장장비관 전자도서실 [자료사진= 인터넷검색, 한호석]

<사진1>은 정원에서 무장장비관 정면을 촬영한 것이고, <사진2>는 무장장비관 전자도서실을 촬영한 것이다. 나는 참관시간이 너무 부족하여 전자도서관까지 가보지는 못했지만, 이 사진을 보면 전자도서관이 고급 내장재로 꾸며졌고, 최상급 설비를 갖추었음을 직감할 수 있다.

무장장비관의 여러 전시실들 가운데 가장 넓고 큰 전시실은 중무기실이다. 크고 무거운 각종 중무기를 통째로 들여놓아야 하였으므로 중무기실을 그처럼 넓고 크게 꾸려야 했을 것이다. 중무기실에 들어선 나는 방대한 전시규모와 다종다양한 중무기들을 보고 놀랐다. 중무기실에서 내가 살펴본 무기들은 여러 종류의 자행포(자주포)와 방사포(다련장로켓포), 여러 종류의 땅크(전차)와 경땅크, 여러 종류의 장갑차, 여러 종류의 반땅크로케트(대전차미사일)와 지상대공중로케트(지대공미사일) 등이다.

주목하는 것은, 위에 열거한 모든 중무기들이 북이 자체로 생산하여 실전배치한 자국산 무기들이고, 다른 나라에서 수입한 외국산 무기는 한 점도 없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중무기실에 전시된 각종 무기들을 돌아보면, 북의 중무기 발전추세를 알 수 있다.
▲ <사진3> 무장장비관 중무기실 [자료사진= 인터넷검색, 한호석]

<사진3>은 무장장비관 중무기실로 들어가는 입실방향에서 촬영한 것이고, <사진4>는 중무기실에서 나가는 퇴실방향에서 뒤를 돌아보며 촬영한 것이다. <사진3>에서 보이는 것처럼, 중무기실 중앙통로를 중심축선으로 하여 왼쪽에 육중한 전차와 장갑차들이 전시되었고, 오른쪽에 포신을 치켜든 자행포와 방사포들이 전시되었다. 하지만 사진촬영각이 제한되어서, <사진3>에는 그 많은 무기들 가운데 중앙통로 부근에 전시된 일부만 보인다. <사진3>에서 보이지 않지만, 중앙통로에서 이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아래쪽에 각종 지상대공중로케트들이 전시되었다.

무장장비관 전시무기들 앞에는 해설판이 하나씩 놓여있는데, 해설판마다 해당무기의 공식명칭이 적혀 있다. 이번에 무장장비관을 참관하면서 나는 북이 보유한 각종 무기의 공식명칭을 알 수 있었다. 또한 해설판마다 무기의 제원이 적혀 있는데, 군사기밀에 속하는 성능지표에 대해서는 “비공개”라고 적어 놓았다.

그런데 한 군데 예외가 있었다. 북에서 ‘주체식 미싸일 및 요격미사일종합체’라고 부르는 지상대공중로케트 발사체계에 속한 자행발사대(발사차량) 앞에 놓인 해설판은 다른 해설판보다 조금 큰데, 거기에 비교적 자세한 내용이 적혀 있었다.

무장장비관의 중무기실과 전략로케트관을 3시간 동안 돌아본 참관과정은 내게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참관을 통해 내가 알게 된 것은, 조선인민군이 북측 외부세계의 섣부른 추측을 뒤집어엎는 강력한 무기들을 보유하였으므로 북은 재래식 무기만 가지고서도 군사강국이라는 사실이다. 더욱이 북이 그처럼 강력한 재래식 무장에 더하여 핵무장까지 갖춘 것을 생각하면, ‘세계 최강’을 자처하는 미국군과 격돌할 반미전면대결전에서 인민군이 능히 이긴다고 자신만만하게 공언하는 것도 빈말이 아니라고 생각되었다.

무장장비관의 중무기실과 전략로케트관에 전시된 각종 무기들에 관한 나의 서술은 무장장비관 전시실 해설판에 적힌 내용, 그리고 해설강사의 해설과 내 질문에 대한 그녀의 답변을 중심으로 한 것이며, 그 이외에도 북의 보도기사내용, 그리고 북측 외부세계에 알려진 정보를 첨가한 것이다. 무장장비관에 가서 직접 파악하고 쓴 이 견문록은 이제껏 북측 외부세계에 알려진 인민군 무장력에 관한 정보들 가운데 가장 정확하고 자세한 정보를 담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북과 미국의 대결구도를 중심으로 조성된 군사정세를 바라보는 전문가들과 관심 있는 독자들의 대북군사정보 인식에 도움이 되기 바란다.

세계 4대 전차강국 위상을 실물로 입증한 중무기실의 전차들

무장장비관 참관을 마치고 평양을 떠나 뉴욕에 돌아온 나는 인터넷을 검색하다가 눈이 번쩍 뜨이는 보도기사를 보았다. 그것은 2013년 6월 19일부터 21일까지 몇몇 남측 언론매체들이 북의 신형 전차에 관해 보도한 기사들이다. 그 기사들을 읽어 내려가던 내 기억 속에는 무장장비관 중무기실에서 흥분 속에 바라보았던 전차들의 육중한 모습이 문득 떠올랐다. 북의 신형 전차에 관한 남측 언론의 산만한 보도내용을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첫째, 보도에 따르면, 북은 2005년부터 2012년까지 8년 동안 신형 전차들인 ‘선군호’와 ‘천마5호’ 900여 대를 생산하여 전방에 실전배치하였는데, 이것은 같은 기간 한국군의 전차생산량보다 두 배가 넘는 규모다.

둘째, 보도에 따르면, 북의 신형 전차 ‘천마5호’는 1990년대에 개발된 ‘천마4호’를 개량한 것으로 추정되고, “최근에 식별된” 북의 신형 전차 ‘선군호’는 기존 주력전차인 ‘폭풍호’보다 주포 사거리가 늘어났고, 최대속력도 시속 70km 이상으로 달릴 수 있어 기동력이 뛰어나다.

셋째, 보도에 따르면, ‘선군호’는 신형 사격통제장치와 포탑을 갖춰 이동중 사격능력이나 야간사격능력이 우수한 3세대 전차다.

넷째, 보도에 따르면, ‘선군호’ 포탑 위에는 러시아군 지대공미사일 ‘이글라’를 개조한 지대공미사일이 장착되었고, 2010년 중국에서 수입한 러시아산 대전차미사일도 장착되었다.

이처럼 네 갈래로 정리한 북의 신형 전차에 관한 남측 언론보도내용은 내가 무장장비관 중무기실에서 직접 확인한 북의 신형 전차에 관한 정보와 크게 어긋나는 엉터리 정보를 말해주고 있다. 북의 신형 전차에 대해 알지도 못하면서 제멋대로 왜곡하여 헛소문을 퍼뜨린 것이다.

▲ <사진5> 무장장비관 중무기실에 전시된 북의 전차들 [자료사진= 인터넷검색, 한호석]

<사진5>를 보면, 중앙통로 바로 왼쪽에 전차 다섯 대가 전시되고, 그보다 바깥쪽에 포탑이 둥근 전차 두 대가 전시된 것이 보인다. 사진촬영각이 제한되어 그 사진에서는 일곱 대밖에 보이지 않지만, 중무기실에는 북에서 생산한 10종의 전차 열 대가 한 줄에 다섯 대씩 두 줄로 전시되었다. 중앙통로 바로 왼쪽 안줄에 전시된 전차 다섯 대는 북이 2000년대 이후에 생산한 5종의 전차들이고, 바깥줄에 전시된 전차 다섯 대는 북이 196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생산한 5종의 전차들이다.

무장장비관 중무기실에 전시된 10종의 전차들 가운데서 북이 196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생산한 5종의 전차를 생산연도순으로 열거하면, 1967년식 수륙땅크, 1968년식 중땅크, 1976년식 중땅크 ‘천마’, 1981년식 경땅크 ‘신흥’, 1992년식 중땅크 ‘천마-92’다.

중무기실을 참관하던 나는 1981년식 경땅크 ‘신흥’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경땅크 ‘신흥’은 미국 군부가 ‘PT-85’라고 제멋대로 부르는 수륙양용경전차다. 중전차에 비해 무게가 절반밖에 되지 않는 20t이어서 경전차라 부른다. 1981년식 경땅크 ‘신흥’에는 85mm 주포, 사거리가 3km인 대전차미사일, 7.62mm 기관총, 14.5mm 기관총이 장착되었다. 속력은 지상에서 시속 60km, 물에서 시속 10km로 달리며, 주행거리는 500km다. 1981년식 경땅크 ‘신흥’은 강과 하천이 많고,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해안선 굴곡이 심한 한반도의 작전환경에 적합하게 만든 전차다.

2010년 1월 5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지도로 실시된 근위서울류경수 제105땅크사단 기동사격훈련 중에 김정은 제1위원장이 몸소 조종하였던 951호 전차가 바로 1981년식 경땅크 ‘신흥’이다. 그 날 김정은 제1위원장이 조종한 951호 전차는 ‘중앙고속도로 춘천-부산 374km’라고 쓰인 커다란 이정표가 서 있는 전차기동훈련장 남진예상주로를 질주하면서 전차포를 연발 사격하였다.

놀라운 것은, 북이 자국산 전차를 처음 생산한 때가 지금으로부터 46년 전인 1967년이라는 사실이다. 남측의 신진자동차가 일본산 ‘크라운’ 승용차 부품을 수입하여 조립생산을 시작하였던 1967년에 북의 류경수전차공장과 구성전차공장은 자국산 전차를 생산하고 있었다. 그로부터 46년이 지난 오늘, 북의 전차생산과 남의 자동차생산 사이에 근본적인 차이가 있지만, 북은 러시아, 중국, 미국에 이어 제4위의 전차보유량을 기록하였고, 남은 중국, 미국, 일본, 독일에 이어 제5위의 자동차생산량을 기록하였다.

북이 최신형 전차를 생산한 때가 2009년이므로, 북은 1967년부터 2009년까지 근 50년 동안 10종의 전차를 개발하고 개량하고 생산해온 것이다. 북이 지난 50년 동안 10종의 전차를 자체 기술로 개발하고 개량하고 자력으로 대량생산하였으므로, 세계 최고 수준의 전차개발기술과 전차개발경험을 가졌다는 미국, 러시아, 독일 같은 전차개발선진국들과 어깨를 겨룰 고도의 제작기술과 풍부한 개발경험을 축적한 것이다. 이런 사실을 알게 되면, 북이 노후한 소련산 전차를 보유하고 있다는 식의 남측 언론보도는 허위보도라는 점이 자명해지며, 오늘날 북이 6,000대가 넘는 전차를 실전배치한 세계 4대 전차강국이라는 사실도 자명해진다.

인민군에 배치된 6,000대 이상의 전차는 100%가 각지에 건설한 수많은 갱도진지들에 들어가 있다. 자국군 전차를 100% 갱도진지에 넣어두고, 평시에 적국의 위성정찰을 차단하고 전시에 적국의 공중공격을 막아내는 군사강국은 세계 4대 전차강국 가운데서도 북밖에 없다. <사진6>은 갱도진지에서 전차를 몰고 훈련장으로 나온 인민군 전차병들을 촬영한 것이다. 그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지금 인민군 전차병들은 출전을 결의하며 김정은 최고사령관의 최후돌격명령을 기다리고 있다.


▲ <사진6> 갱도진지에서 전차를 몰고 나온 인민군 전차병들 [자료사진= 인터넷검색, 한호석]


거듭 개량되어온‘천마’ 계열 전차들, 그리고 실존하지 않는‘폭풍호’ 전차

놀라움 속에서 중무기실을 참관하던 내 발길은 2000년대 이후에 생산된 5종의 전차들 앞에서 멈췄다. <사진5>에 나타난, 중앙통로 바로 왼쪽에 전시된 5종의 전차를 생산연도순으로 열거하면, 사진에서 맨 앞에 보이는 것이 2000년에 생산된 주체89년식 중땅크 ‘천마-98’이고, 그 다음으로 2001년에 생산된 주체90년식 중땅크 ‘천마-214’, 2003년에 생산된 주체92년식 중땅크 ‘천마-215’, 2004년에 생산된 주체93년식 중땅크 ‘천마-216’이며, 사진에서 맨 끝에 보이는 것이 2009년에 생산된 주체98년식 중땅크 ‘선군-915’다.

놀라운 것은, 북이 ‘천마’ 계열 중전차를 처음 생산한 때가 1976년이라는 사실이다. 북이 자국산 중전차를 처음 생산하였던 때가 1968년이었는데, 그로부터 약 10년 뒤에 당시로서는 매우 우수한 성능을 지닌 ‘천마’ 중전차를 처음 생산한 것이다. 북이 이라크와 전쟁 중이던 이란에게 1982년부터 1985년까지 전차 150대를 수출하였는데, 그 전차가 1976년식 중땅크 ‘천마’다.

또한 북은 1992년에 생산한 중땅크 ‘천마-92’의 성능개량에 힘을 집중하여 2000년, 2001년, 2003년, 2004년에 ‘천마’ 계열 전차들을 연속 생산하였다. 이것만 봐도, 북의 전차개발능력이 2000년대에 절정에 이르러 전차생산의 전성기를 펼쳤음을 알 수 있다. 전차생산 전성기에 성능향상을 거듭한 ‘천마’ 계열 전차들의 성능은 어떻게 향상되었을까? 구체적인 내용은 군사기밀이어서 알 수 없지만, 아래와 같은 두 가지 내용을 지적할 수 있다.

첫째, 적의 공격으로부터 전차를 방어하는 장갑방호력을 더욱 강화한 것이다. 북은 1992년식 중땅크 ‘천마-92’에 덧장갑을 씌워 적의 열압력탄 공격에 대한 장갑방호력을 강화한 바 있었는데, 2000년 이후에 생산된 ‘천마’ 계열 전차들은 복합장갑으로 만들어 장갑방호력을 한층 더 강화하였다. 덧장갑이란 남측에서 폭발반응장갑(explosive reactive armour)이라 부르는 것인데, 500mm 두께의 강철판과 같은 방호력을 지닌다. 전차 포탑과 정면에 더덕더덕 붙여놓은 것처럼 보이는 것이 덧장갑이다. 덧장갑보다 더 우월한 복합장갑(composite armour)은 강철보다 네 배나 더 견고한 성질을 지니고 무게는 강철의 절반밖에 되지 않으면서도, 900mm 두께의 강철판과 같은 방호력을 지닌다.

러시아군이 자국산 전차에 세계 최초로 덧장갑을 부착한 때는 1985년이고, 그 뒤를 이어 미국군이 자국산 전차에 덧장갑을 부착한 때는 1988년이고, 인민군이 자국산 전차에 덧장갑을 부착한 때는 1992년이다. 이런 추세를 보면, 북이 전차개발기술에서 앞선 러시아와 미국을 이미 1990년대 초에 바짝 뒤쫓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둘째, 1992년식 중땅크 ‘천마-92’, 주체98년식 중땅크 ‘천마-98’, 주체90년식 중땅크 ‘천마-214’의 중량은 각각 38t씩인데, 주체92년식 중땅크 ‘천마-215’, 주체93년식 중땅크 ‘천마-216’의 중량은 각각 39t씩이다. 전차성능 개량과정에 전차중량이 1t 더 무거워진 것은 그만큼 더 강력한 신형 무장장비를 갖추었음을 뜻한다.

▲ <사진7> 2001년 생산된 북의 '중땅크' '천마-214' [자료사진= 인터넷검색, 한호석]


2012년 4월 15일 인민군 군사행진에 등장한 ‘천마’ 계열 전차들 가운데 내가 인터넷에서 찾아낸 현장사진은 두 장인데, <사진7>에 나오는 전차가 2001년에 생산된 주체90년식 중땅크 ‘천마-214’, <사진8>에 나오는 전차가 2004년에 생산된 주체93년식 중땅크 ‘천마-216’이다. ‘천마’ 계열 전차들 가운데 최신형은 2004년에 생산된 주체93년식 중땅크 ‘천마-216’이다. 남측과 미국에서는 ‘천마-216’을 ‘천마5호’ 전차라고 제멋대로 부른다.

▲ <사진8> 2004년 생산된 북의 '중땅크' '천마-216' [자료사진= 인터넷검색, 한호석]


위의 정보를 살펴보면, 세계 각국 군사전문가들이 북의 최신형 전차라고 알고 있는 ‘폭풍호’는 보이지 않는다. 미국 군부는 북이 러시아군 전차 T-72를 개량하여 2002년에 ‘폭풍호’ 전차를 생산하였다고 하면서, 그 전차를 ‘M2002 전차’라 부르지만, 그것은 엉터리 정보다. 누가 ‘폭풍호’라는 가상명칭을 조작해냈는지 알 수 없으나, ‘폭풍호’는 실존하지 않는다.

‘선군-915’는 세계 정상급 첨단전차

북이 실전배치한 최신형 전차는 2009년에 생산된 주체98년식 중땅크 ‘선군-915’다. 북이 2000년부터 2004년까지 5년 동안 연속적으로 성능을 개량하여 생산한 4종의 전차들은 모두 ‘천마’라는 공통명칭을 지녔는데, 북이 2009년에 생산한 최신형 전차는 ‘선군’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었다. 전차이름이 ‘천마’에서 ‘선군’으로 바뀐 것은 전차성능이 질적으로 향상되었음을 뜻한다.

해설강사에게 물어보았더니, 북에서는 맨 앞에 달린 작은 전차바퀴를 향도바퀴라 부르고, 맨 뒤에 달린 작은 전차바퀴를 추동바퀴라 부르고, 향도바퀴와 추동바퀴 사이에 늘어선 여러 개 바퀴들을 지탱바퀴라 부른다고 한다. 나는 중무기실에 전시된 ‘선군-915’의 지탱바퀴들이 강철로 만들어진 것이겠거니 생각했는데, 손으로 만져보니 강철바퀴가 아니었다. 강철보다 단단한 특수재질로 만들었다고 한다.

이전에 인민군 군사행진에 등장한 전차들을 유심히 살펴보면, 전차 정면 아래쪽과 측면 지탱바퀴 위쪽에 달린 커다란 철판 같은 것이 보인다. 중무기실에서 전차를 살펴보던 내가 그 철판 같은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집초방어판이라는 것이다. 손으로 집초방어판을 만져보았더니 철판이 아니라 딱딱한 고무판 같은 감촉을 느낄 수 있었는데, 집초방어판은 집초탄(대전차고폭탄)을 막아주는 특수재질의 방호판이라고 한다.

놀라운 것은, 복합장갑으로 만든 ‘선군-915’의 전면에 복합장갑까지 부착하여 장갑방호력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렸다는 점이다. 500mm 방호력을 지닌 덧장갑과 900mm 방호력을 지닌 복합장갑이 이중으로 방호하고 있으므로 1,400mm 장갑방호력을 지닌 셈이다. 이것은 전 세계에 현존하는 그 어떤 대전차무기도 ‘선군-915’ 앞에서 무용지물이 된다는 것을 뜻한다. 한 마디로, ‘선군-915’는 난공의 전차다.

<사진4>에서 맨 앞쪽에 보이는 전차가 바로 북의 최신형 전차 ‘선군-915’다. <사진5>에 나타난 ‘천마’ 계열 전차들과 외형을 비교해보면, 그 줄 맨 끝에 있는 ‘선군-915’는 전혀 다르게 생겼다. 2012년 4월 15일 인민군 군사행진에 등장한 전차대오를 촬영한 <사진10>에 2009년에 생산된 주체98년식 중땅크 ‘선군-915’의 모습이 담겼다.

▲ 2009년 생산된 북의 '중땅크' '선군-915' [자료사진= 인터넷검색, 한호석]


그런데 <사진10>만 보고서는 ‘선군-915’에 대해 제대로 알 수 없다. 왜냐하면 중무기실에 실물로 전시된 ‘선군-915’는 <사진10>에 나온 군사행진 중의 ‘선군-915’와 전혀 다르게 생겼기 때문이다. ‘선군-915’는 군사행진에 나오기 전에 ‘조절조치’를 받고 세상에 공개된 것으로 보이는데, 원래 포탑 전면에 부착된 덧장갑도 보이지 않고, 원래 포탑 상부 오른쪽에 장착된 대구경 기관총이 왼쪽으로 옮겨졌고, 원래는 없는 견착식 대공미사일 ‘화승총’ 1기가 대구경 기관총이 있던 자리에 장착되었고, 고사로케트(저고도대공미사일)와 반땅크로케트(대전차미사일)가 보이지 않는다.

중무기실에 전시된 ‘선군-915’ 앞에 해설판이 놓였는데, 거기에는 “중량 44t, 너비 3.502m, 높이 2.416m, 호극복능력 2.8m, 여울극복능력 1.2m, 수중도하 5m”라고 적혀 있다. 이런 제원을 지닌 ‘선군-915’가 얼마나 강력한 전차인지 알려면, 러시아군과 미국군이 실전배치한 세계 최강급 전차들과 비교해볼 필요가 있다.

러시아가 중국에 수출한 전차 T-80 최신형의 제원을 열거하면, 중량 42.5t, 너비 3.4m, 높이 2.202m, 호극복능력 1.8m, 여울극복능력 미상, 수중도하 5m다. 또한 미국군 전차 M1 에이브럼스(Abrams) 최신형의 제원을 열거하면, 중량 69.5t, 너비 3.6m, 높이 2.8m, 호극복능력 1m, 여울극복능력 미상, 수중도하 불능이다.

또한 중량 대 마력의 비율을 비교하면, 미국군 전차 M1 에이브럼스 최신형은 t당 21.6마력밖에 되지 않고, 러시아군 전차 T-80 최신형은 t당 29.4마력인데, ‘선군-915’는 t당 27.3마력이다. 최대속력을 비교하면, M1 에이브럼스 최신형은 시속 68km인데, T-80 최신형은 시속 70km이고 ‘선군-915’는 시속 70km를 넘는다. 또한 ‘선군-915’는 적외선야시장비, 적외선방해전파발신기, 레이저거리측정기, 컴퓨터사격통제장치, 화생방방호체계를 두루 갖추었다. 이러한 우수한 내부장비들은 ‘선군-915’가 세계 최강 전차들과 동급의 첨단전차라는 사실을 입증해준다.

‘무적의 첨단전차’는 ‘불새’를 쏜다

여러 가지 전차성능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뭐니 뭐니 해도 화력이다. 화력이 강해야 우수한 전차라고 할 수 있다.

미국군 전차나 러시아군 전차와 마찬가지로, ‘선군-915’도 사거리가 5km인 125mm 무강선포(활강포) 1문을 포탑에 장착하였고, 사거리가 4km인 14.5mm 대구경 기관총 1정을 포탑 상부 오른쪽에 장착하였다. 강선포에 비해 포탄을 더 멀리 날려 보내는 무강선포는 고폭탄(HE), 고폭파편탄(HE-FRAG), 대전차고폭탄, 날개분리안정탄 등을 쏠 수 있다. 이처럼 ‘선군-915’는 포신이 긴 무강선포를 하늘에 치켜들고 대구경 기관총을 포탑에 장착한 모습으로 2012년 4월 15일 인민군 군사행진에 등장하였지만, 중무기실에 전시된 ‘선군-915’는 군사행진 때의 그 모습과는 다른 특별한 모습으로 나를 깜짝 놀라게 하였다.

▲ <사진9> 북의 '중땅크' '선군-915'를 확대한 모습 [자료사진= 인터넷검색, 한호석]
<사진4>에 나오는 ‘선군-915’를 확대해놓은 모습이 <사진9>에 나오는데, 확대사진에는 러시아군 최신형 전차나 미국군 최신형 전차가 갖지 못한 2종의 강력한 무기가 ‘선군-915’ 포탑 위에서 놀라운 모습을 드러내었다. 이를테면, <사진9>에서 1번 동그라미 안에 있는 무기는 전차의 정면 중앙부 포신 바로 위 포탑에 장착된 반땅크로케트 ‘불새’ 2기이며, 2번 동그라미 안에 있는 것은 전차포탑 상부 왼쪽에 장착된 고사로케트 2기다.

‘선군-915’에 장착된 반땅크로케트 ‘불새’는 사거리가 5.5km인 러시아군 대전차미사일 9M133 코르넷(Kornet)과 동급 성능을 지녔다. 이것은 ‘선군-915’가 강력한 대전차미사일 ‘불새’를 쏘아 5.5km밖에 있는 적 전차를 격파할 수 있음을 말해준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면, 시속 70km로 고속기동하며 5.5km밖에서 ‘불새’를 쏘는 ‘선군-915’를 피해 한미연합군 전차들이 재빨리 달아나지 못하면 ‘불새의 밥’이 될 것이다.

중무기실에는 북이 생산한 반땅크로케트 2종이 전시되었는데, 1968년식 반땅크로케트 ‘불새-1’, 1973년식 반땅크로케트 ‘불새-2’가 있다. 북이 지금으로부터 45년 전에 반땅크로케트 ‘불새’를 자체로 생산하였으니 놀라운 일이다. ‘선군-915’에 장착된 반땅크로케트는 전차무장장비로 개량한 최신형 반땅크로케트 ‘불새-3’이다.

▲ <사진11> 무장장비관에 전시된 북의 '중땅크' '선군-915' [자료사진= 인터넷검색, 한호석]


스톡홀름 국제평화연구소(SIPRI)가 펴낸 2005년도 연감에 따르면, 북이 1976년부터 2004년까지 소련-러시아에 수출한 반땅크로케트 ‘불새’는 모두 23,250기나 된다. 북이 반땅크로케트 ‘불새’를 1968년부터 일찌감치 생산하였으니, 인민군을 ‘불새’로 무장시키고 남아도는 것을 소련-러시아에 28년 동안 계속 수출하였던 것이다. 반땅크로케트 부문에서 선진국인 소련-러시아가 북이 생산한 반땅크로케트를 장기간 동안 대량수입한 것은 자기들이 만든 반땅크로케트보다 북이 만든 반땅크로케트가 더 우수하기 때문에 그렇게 하였음을 생각할 때, ‘불새’야말로 세계 최고 수준의 반땅크로케트임을 알 수 있다.

놀라움은 거기서 그치는 게 아니었다. ‘선군-915’에 장착된 고사로케트 2기는 견착식 대공미사일 ‘화승총’보다 훨씬 더 우수한 저고도대공미사일이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면, 인민군 전차의 고속남진을 저지하려고 최전방에 급히 출동한 한미연합군 공격헬기들이 대전차미사일을 쏘게 되는데, 기동력과 화력이 강한 공격헬기가 대전차미사일을 공중에서 쏘면, 지상의 전차는 피격당하는 수밖에 없으므로, 공격헬기는 전차의 ‘천적’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선군-915’는 전차의 ‘천적’으로 알려진 공격헬기를 잡는 강력한 대공미사일을 장착하여 상황을 뒤집어버렸다. ‘선군-915’에 2기가 장착된 고사로케트는 사거리가 5km이고 사고도가 3.5km인 러시아군 저고도대공미사일 9K35 스트렐라(Strela)-10과 동급의 강력한 대공무기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면, 한미연합군 공격헬기는 ‘선군-915’가 고속기동하며 5km밖에서 발사하는 고사로케트에 맞아 추락할 것이다.

해설강사의 말에 따르면, ‘선군-915’를 조종하는 전차병들은 달리는 전차 안에서 신형 탐지장비와 사격통제장치를 가동하여 125mm 무강선포, 14.5mm 대구경 기관총, 반땅크로케트 ‘불새-3’, 고사로케트를 각각 발사한다니 예상을 뛰어넘는 엄청난 화력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사실을 알지 못하는 남측 언론매체들은 ‘선군-915’가 한국군 주력전차 K1A1보다 방호력과 화력이 떨어진다고 하면서 한미연합군이 공격헬기와 다련장로켓포로 충분히 대응할 수 있다고 주장했지만, 그것은 ‘선군-915’에 대해 알지 못하는 소리다. 위에 열거한 성능지표 비교에 따르면, ‘선군-915’는 기동력, 방호력, 화력, 탐지력에서 전 세계에 현존하는 그 어떤 전차보다 강한 ‘무적의 첨단전차’다.

바로 그 ‘무적의 첨단전차’가 근위서울류경수 제105땅크사단에 집중배치되었다. 공식명칭은 땅크사단이지만 실제로는 군단급 전차부대인 근위서울류경수 제105땅크사단은 2009년부터 지난 4년 동안 ‘무적의 첨단전차’로 무장함으로써 한미연합군 방어선을 격파할 강력한 화력을 보유한 최강의 전차군단으로 자기의 전투력을 비상히 강화하였다. 2010년 12월 31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지도에 따라 실시된 근위서울류경수 제105 땅크사단 전차부대의 기동훈련장면을 촬영한 화면이 남측 일부 언론에 보도되기도 했는데, 그 전차군단에 배치된 ‘선군-915’는 지금 김정은 최고사령관의 ‘조국통일대전’ 진격명령을 기다리고 있다. 2012년 1월 1일 새해를 맞은 첫 시각 금수산태양궁전을 참배한 김정은 최고사령관이 승용차로 새벽길을 달려 근위서울류경수 제105땅크사단에 가서 최고사령관으로서 첫 공식활동을 시작한 까닭을 알 수 있다.(2013년 6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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