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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강 사업’, 역사의 심판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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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02/20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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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강 사업’, 역사의 심판 받는다
 
[4대강 인명사전] MB-이재오 등 24명 추가 선정... 5대 찬동기관도 추가
 
정운현 기자 | 등록:2013-02-19 15:06:49 | 최종:2013-02-19 15:13:36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이명박 정권의 최대 국책사업인 ‘4대강 사업’이 역사의 심판을 받게 될 전망이다. 앞선 공개에 이어 찬동자 24명의 명단이 추가로 선정, 공개됐다. 여기에다 최근 감사원이 4대강 사업을 ‘총체적 부실’로 규정한 데 이어 박근혜 정부도 조사를 벌일 예정인 것으로 알려져 사업의 타당성 등을 놓고 또다시 논란이 일 전망이다.

환경운동연합 등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4대강 인명록 편찬위원회’는 19일 4대강 사업에 찬동한 S급 인사 10명과 24명의 추가 명단을 발표했다. 이로써 4대강 인명록에 등재될 인사는 기존에 발표된 258명에 더해 282명으로 늘어났으며, 5대 찬동기관도 함께 선정됐다.
 

4대강 사업의 일환인 '영산강살리기 희망선포식'을 갖고 있는 이명박 대통령 (2009.11.22)

 

‘S급 찬동인사’로는 이명박 대통령, 권도엽 국토해양부 장관, 김건호 한국수자원공사 사장, 심명필 전 4대강 추진본부장, 박석순 국립환경과학원 원장, 박재광 미국 위스콘신대 교수, 이만의 전 환경부 장관, 이재오 새누리당 국회의원, 정종환 전 국토해양부 장관, 차윤정 4대강 추진본부 환경부본부장 등이 선정됐다.

4대강 핵심 추진기관 및 기업으로는 현 정부에서 총 세 차례에 걸쳐 관련 훈장과 표창을 수상한 기관, 기업 중 가장 많은 수상자가 확인된 한국수자원공사(118명), 국토해양부 (88명), 부산지방국토관리청 (58명), 환경부 (36명), 동부엔지니어링(25명) 등이 선정됐다.

이날 새로 추가된 찬동인사 24명으로는 고흥길 특임장관, 김기현 새누리당 수석부대표 등 5명이 A급 인사로 등재됐고, 공기업 A급 인사에는 권형준 수자원공사 경영관리실장 등 3명, 사회인사 A급 명단에는 권영호 인터불고그룹 회장 등이다. 지난 3차 명단에 포함됐던 지홍기 영남대 교수는 소명이 인정돼 명단에서 제외됐다.

편찬위는 “우리의 최종 목표는 4대강 인명록을 발행하고, 많은 국민들에게 제공하는 것이다. 권력자들의 반성이 없으니 시민들의 힘을 정의를 실현하겠다”며 “최종 인명록에는 4대강 사업으로 인한 피해자 및 반대운동도 함께 기록할 것”이라고 밝혔다.

편찬위는 오는 3월 19일까지 한달간 1~4차 명단에 포함된 인사들에게 소명 기회를 제공하고 최종 심의를 통해 인명록 등재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이번 4차 명단에서 제외된 1천353명의 4대강 사업 훈장, 표창 수상 인사들도 정보공개 청구를 통해 모두 인명록에 등재한다는 방침이다. 따라서 자료가 확보되는 대로 추가로 5차, 6차 명단 발표도 예상된다.

그간 MB정부의 4대강 사업 추진을 적극 반대해온 시민사회단체모임인 ‘MB씨 4대강 비리수첩 제작단’은 2011년 9월 19일 ‘4대강 찬동인사 인명사전’에 게재할 82명의 명단을 1차로 발표한 바 있다. 이어 한달 뒤인 10월 19일에는 2차로 177명을 추가로 발표해 총 259명이 ‘4대강 사업 찬동인사’로 선정된 셈이다.

한편, 감사원은 지난달 17일 국토해양부와 환경부 등을 대상으로 지난해 5월부터 실시한 ‘4대강 사업 주요 시설물 품질과 수질관리 실태’에 대한 감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이명박 정부는 국민적 반대 여론에도 불구하고 지난 4년간 무려 22조2000여억원의 혈세를 투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감사원 감사 결과 국토해양부와 환경부 등 관계 당국은 4대강 사업을 통해 수자원 확보, 보의 안전성, 수질 개선 등을 강조했지만 이는 대부분 거짓으로 확인됐다. 결국 천문학적인 예산을 투입한 4대강 사업은 ‘총체적 부실’이었음이 입증된 셈이다.

여기에 4대강 사업 주무 부처인 환경부와 국토교통부 장관 내정자들이 4대강사업을 본격 검증하겠다는 의사를 내비쳐 새정부 출범 이후 4대강 사업이 본격적으로 도마 위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윤성규 환경부장관 내정자는 17일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 논란과 관련해 “잠복된 문제가 있을 수 있어 그런 문제가 있다면 빨리 찾아내 시정할 것은 시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환경운동연합 소속 활동가들이 지난달 28일 '4대강의 진실을 밝혀라'는 구호가 적힌 애드벌룬을 청와대 인근 하늘에 띄워 퍼포먼스를 벌였다.

 

그러나 이명박 대통령은 4대강 사업에 대해 자찬을 늘어놓았다. 임기를 1주일 정도 남겨두고서 19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가진 퇴임연설에서 이 대통령은 “퇴임 후 꽃피는 계절이 오면 4대강변을 따라 자전거를 타고 우리 강산을 한 번 둘러보고 싶다”며 자신이 임기 중에 강행한 4대강 사업을 거듭 자찬했다

이 대통령은 또 “기후변화에 따른 물 부족과 대규모 홍수와 가뭄에 대비하기 위해 시행한 4대강 살리기 사업도 그 취지를 계속 살려나가야 한다”며 “국내 일부에서 논란도 있지만 해외 전문가 그룹들은 4대강 살리기 사업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OECD는 ‘종합적 수자원관리의 성공사례’로 꼽고 유엔환경기구는 ‘강 복원을 통한 녹색경제 사례’로 높이 평가하고 있다. 태국 물 관리사업에도 진출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고 강변했다.

다음은 ‘4대강 인명록 편찬위원회’가 19일 공개한 ‘명단’ 전문이다.

[4대강 사업 S급 찬동 인사] (10명)

이명박 대통령, 권도엽 국토해양부 장관, 김건호 한국수자원공사 사장, 심명필 전 4대강 추진본부장, 박석순 국립환경과학원 원장, 박재광 미국 위스콘신대 교수, 이만의 전 환경부 장관, 이재오 새누리당 국회의원, 정종환 전 국토해양부 장관, 차윤정 4대강 추진본부 환경본부장

[4대강 핵심 추진 기관 및 기업]

한국수자원공사, 국토해양부, 부산지방국토관리청, 환경부, 동부엔지니어링

[4대강 사업 4차 찬동 인사명단] (24명)

정치인 A급

고흥길 특임장관, 서규용 농림식품수산부 장관, 김기현 새누리당 수석부대표, 오정규 농림식품수산부 2차관, 유영숙 환경부 장관

정치인 B급

김상협 청와대 녹색성장 비서관, 김춘석 여주군수, 남유진 구미시장, 하성식 함안군수

전문가 B급

박성래 한국외대 명예교수, 심순보 충북대 명예교수, 이상돈 이화여대 교수

공직자 B급

민병조 경북도청 환경해양산림국장, 박광열 대전지방국토청장, 이승호 전 대전지방국토청장, 임종룡 국무총리실장

공기업 및 기업인 A급

권형준 수자원공사 경영관리실장, 박재순 한국농어촌공사 사장, 정남정 수자원공사 4대강 추진본부장

공기업 및 기업인 B급

김완규 수자원공사 부사장, 김종해 수자원공사 아라뱃길사업 본부장, 김행윤 한국농어촌공사 전남지역본부장, 정성영 수자원공사 경북지역 본부장

사회인사 A급

권영호 인터불고그룹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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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 사고' 아들은 7년째 입원…담당의 "수술 몰랐다"

[선택 아닌 선택진료 ②] 잘못된 '대리 진료' 관행

김윤나영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3-02-20 오전 7:19:20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4대 중증질환 100% 보장' 공약에서 선택진료비를 제외하겠다고 발표했을 때 환자단체들은 허탈감을 금치 못했다. 가계 파탄의 원흉으로 꼽히는 비급여(비보험) 진료비 가운데 1위를 차지하는 항목이 바로 선택진료비이기 때문이다. <프레시안>은 선택진료제에 관한 환자들의 불만을 듣고, 이 제도가 현실에서 어떻게 왜곡돼 왔는지를 짚는 기획을 마련했다. <편집자>

대형 병원에서 진료 받은 환자들의 영수증을 보면 '선택진료비'라는 항목을 쉽게 볼 수 있다. 선택진료비는 전문의 자격을 취득한 지 5년이 지나고 대학 병원에서 조교수 이상인 의사, 혹은 전문의 자격을 취득한 지 10년이 지난 의사에게 진료를 받을 때 환자가 내는 추가 비용이다. 선택진료제는 환자가 특정 의사를 선택해 양질의 의료 서비스를 제공받도록 하자는 취지에서 도입됐다.

현실에서는 선택진료제가 취지에 맞지 않게 운영되는 경우가 다반사다. 대표적인 문제 가운데 하나가 '대리 진료'다. 2001년 한국소비자원이 소비자 506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를 보면, 선택진료 의사가 전체 진료를 직접 담당한 경우는 60.5%였다. 선택진료 의사가 일부 진료를 하고 다른 의사가 나머지 진료를 담당한 경우가 37.9%, 다른 의사가 전체 진료를 담당한 경우는 0.6% 등으로 나타났다.
 

선택 아닌 선택진료
① "이것 믿고 박근혜 찍었는데 사기 당한 기분"


"어느 교수가 일요일에 나와서 마취를 합니까?"

손영준(당시 19세) 씨의 어머니 우미향 씨도 2007년 2월 아들의 다리 수술에 '선택진료'를 했다. 선택진료 교수 대신 레지던트 1년차가 수술실에 들어갔을 줄은 몰랐다. 결과는 의료 사고였다. 아들은 마취에서 제대로 깨어나지 못했고, 고등학교 3학년 진학을 앞두고 지금까지 7년째 입원 생활을 하고 있다. 뇌에 손상을 입어 100일 된 아기 상태로 돌아간 채였다.

손 씨가 다리 골절상을 입고 대학 병원 응급실을 찾은 건 2007년 2월 3일 토요일 저녁 8시께였다. 병원에서는 크게 다친 건 아니라고 부모를 안심시켰다. 부모는 정형외과와 마취과에 선택진료 의사를 택했다. 이튿날인 일요일 오후 1시께 손 씨는 수술실로 향했다. 아들이 지갑을 내밀며 "친구들이 병문안 오니까 밥 좀 사주라"고 했을 때 우 씨는 그게 아들이 할 수 있는 마지막 말일 줄은 몰랐다.
 

▲ 손영준 씨. ⓒ프레시안(김윤나영)


2시간 반이면 끝난다던 수술은 6시간이 넘어서야 끝났다. 우 씨는 "수술실에서 나왔을 때 아들이 검정 눈동자가 다 넘어간 채 의식이 없었다"고 말했다. 의료진은 "부분 마취에서 전신 마취로 전환하다가 환자가 아프다고 해서 수술을 중단했는데, 그 과정에서 갑자기 심장 정지가 발생했다"고 뒤늦게 설명했다.

우 씨가 수술실에 마취과 교수 대신 레지던트 1년차가 들어갔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는 그해 2월 5일 월요일이었다. 마취과 교수는 "마취약이 과다하게 투입됐는지, 환자에 따라서 마취가 빨리 깨는 사람도 있고 늦게 깨는 사람도 있는데 해독제를 놨으니 곧 깨어날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교수가 직접 마취하지 않았느냐'고 따지는 우 씨에게 "나는 일요일에 수술이 있는지 몰랐고, 내가 아니라 레지던트 1년차가 들어갔다"라는 답이 돌아왔다고 했다. 우 씨는 "심지어 '마취과 교수는 휴일에 안 나온다, 어느 교수가 일요일에 나와서 마취를 하느냐'는 말까지 들었다"고 울분을 토했다.
 

뇌에 산소가 제대로 공급되지 않아 아기 상태로 돌아간 손 씨는 7년째 병원에 입원해 있다.
 
한 달 뒤면, 일 년 뒤면 아들이 나아지리라는 희망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절망으로 변해갔다. 결국 공소시효 만료를 며칠 앞두고 지난 2010년 우 씨 부부는 병원 측을 사기죄로 경찰에 고소했다. 그러나 경찰은 병원이 보험회사에 선택진료비를 돌려줬으므로 죄가 안 된다는 이유로 병원을 무혐의 처분했다. 이에 우 씨는 의료진을 상대로 소송을 걸었으나, 의료진 측이 대한마취과학회에 직접 의뢰해 제출한 '의학적 근거가 없다'는 소견이 1심에서 받아들여져 패소하고 현재 항소한 상태다.


"모든 부모가 다 그렇겠지만, 레지던트 1년차가 마취한다고 미리 알려줬으면 절대 수술을 안 했을 거예요. 수술 도중에 부분 마취가 제대로 되지 않는다고 말해줬다면, 수술을 중단했을 겁니다. 교수가 수술한다고 해서 선택진료까지 신청했는데, 교수가 안 나와서 사고가 났으면 병원이 100% 책임져야죠. 마취과 교수가 오니까 걱정하지 말라더니, 이제 와서 돈을 돌려줬으니 죄가 안 된다니요. 우리 인생은 2007년 이후로 멈춘 거잖아요."

선택진료제가 취지에 맞게 운영되고 있는가에 대한 정부 공식 통계는 없다. 다만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는 "교수가 외국 학회에 출장을 갔는데도 버젓이 선택진료 의사 목록에 이름을 올리는 경우도 많다"며 "선택진료를 한 보호자가 환자를 수술실에 보내고 나오는 길에 엘리베이터 안에서 선택진료 교수와 마주치는 일도 있다"고 말했다.

한국에만 있는 선택진료제, 외국은…

지난해 11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김용익 민주통합당 의원이 고액 진료비를 경감하기 위해 선택진료비를 폐지하는 의료법 개정안을 내놨을 때, 대한병원협회는 "국민의 실질적인 의사 선택권이 축소된다"며 반대했다. 환자단체들의 생각은 다르다. 환자들은 숙련된 교수를 만나기 위해 대학 병원에 가는데, 5년차 이상인 의사가 거의 전부 선택 진료 의사라면 사실상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것이다.

손 씨의 아버지 손상현 씨는 "우리는 선택진료를 비롯해 병원에서 하자는 모든 것을 다 했다"며 "일단 선택진료를 시켜놓고 나중에 서명만 하라고 하고, 돈만 잔뜩 받아먹고. 이런 일이 있을 수 없다"고 억울해했다. 그는 "선택진료가 선택이 아닌 만큼 선택진료제를 폐지하는 대신 의료기관 점수를 평준화해서 건강보험 수가에 적용하고, 수술은 전문의 이상에게만 허용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사실 한국은 선택진료제를 도입한 유일한 국가다. 한국과 의료 체계가 비슷한 일본의 경우 환자는 의사를 지정해 진료를 신청할 수 있지만, 특정 의사를 선택했다는 이유로 기다릴 수는 있어도 추가 비용을 부담하지는 않는다. 다만, 환자들이 의원(1차 의료기관)의 진료 의뢰서 없이 곧바로 병원급 이상(2차, 3차 의료기관)에 초진을 신청하면 '특정요양비'를 내야 한다.

독일유럽 국가들은 비용 부담이 건강보험의 2-3배에 달하는 민간보험에 가입한 경우에는 공공 병원 진료과 과장에게 '정규 근무시간 이외' 시간에 진료받을 수 있는 선택권을 준다. 공공 보험 체계를 침해하지 않는 한에서 사적 선택을 예외적으로 허용하고 있는 셈이다. 상급병원에 가야 할 경우 환자들은 자신이 정한 주치의가 추천해준 전문의를 찾아간다. 환자가 주치의에게 특정 전문의를 추천해달라고 요구하는 일은 드물다.

미국 시민들은 주로 직장에서 제공하는 민간 보험(Health Maintenance Organization)에 가입하고 보험사가 의료비지급하는데, 이 경우 민간 보험사와 계약한 병·의원들이 몇 군데 정해져 있어 사실상 선택권을 제약받는다. 민간보험이 지급 보증하지 않는 병원이나 의사를 찾으려면 진료비 전액을 환자가 부담해야 한다.

"선택진료제, 의료기관 질 평가로 대체해야"

선택진료제를 없애면 환자의 의사 선택권이 줄어든다는 병원협회의 주장에 대해 안기종 대표는 "지금도 환자에게는 의사 선택권이 없으며, 대형 병원에서 진료 받으려면 선택진료비를 내고도 기다려야 한다"고 반박했다. 대형 병원에 가면 대기 시간이 긴 것은 선택진료비 징수 유무와 상관없다는 것이다.

선택진료제를 폐지하고 양질의 의료 서비스를 확보하는 대안으로 그는 "의료기관 종별 질 평가를 통해 수가를 차등 지급하는 방식으로 병원에 인센티브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환자의 선택권을 다시 정립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손상현 씨는 아들이 사고를 당한 이후 아내가 수술할 일이 생겨 경험 많은 의사가 있는 작은 병원을 찾아간 사례를 말했다. 손 씨는 "의사가 나를 수술실에 데려가 화면을 보여주면서 '유착이 예상보다 심해서 복강경 수술을 하기 어려우니 개복 수술을 해도 되겠느냐'고 물어서 그 자리에서 동의했다"며 "이런 게 진짜 환자 선택권 아니겠나"라고 반문했다. 의료진이 치료 방법을 결정할 때 환자나 보호자에게 충분히 설명하고 의사소통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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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박정희 인맥 중용... 인혁당 사형집행 서종철 아들 국토부 장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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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
    2013/02/20 09:17
  • 수정일
    2013/02/20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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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필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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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를 이은 인연... 더 짙어진 박정희 그림자

 

13.02.19 15:52l최종 업데이트 13.02.19 16:02l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에 내정된 현오석 한국개발연구원장이 17일 오후 서울 동대문구 회기로 KDI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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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마무리 된 박근혜 정부의 내각 및 청와대 주요 비서관 인선에선 '박정희 인맥'의 전진 배치가 눈에 띈다. 2세 정치인인 박근혜 당선인이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과 인연을 맺은 인사들을 중용하면서 인수위원 인선에서부터 아른거리던 '박정희 그림자'가 더 짙어진 것 아니냐는 평가가 나온다.

박 전 대통령 시절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입안한 실무자였던 현오석 경제부총리 후보자는 박근혜 당선인 밑에서는 '경제 사령탑'에 올랐다.

행정고시 14회에 합격해 1974년 공직 생활을 시작한 현 후보자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개발독재 모델을 만든 경제기획원과 한국개발연구원(KDI)을 거쳤다. 두 곳 모두 박 전 대통령의 지시로 설립된 기관이다. 1975년 경제기획국 소속이었던 현 후보자는 제4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만든 '75기획포럼' 멤버였다.

인혁당 사형집행 책임자 아들, 박근혜 정부에서 국토부 장관

서승환 국토해양부 장관 후보자의 인연은 더 특별하다. 서 후보자는 박정희 전 대통령보다 육사 한 기수 선배인 고 서종철 전 국방부 장관(1973년 12월~1977년 12월 재임)의 아들이다. 서 전 장관은 5.16쿠데타 당시 6관구 사령관 신분으로 군사반란에 참여한 후 1972년 육군참모총장을 거쳐 청와대 안보특보로 기용됐다. 박 전 대통령 밑에서 군부 고위직을 거치면서 전두환·노태우 등 하나회 대표들과 인연을 맺고 이들을 적극 후원하기도 했다.

서 전 장관은 특히 국방장관 재임 중인 1975년 인혁당 재건위 사건 당시 군법회의에서 도예종씨 등 8명이 사형판결을 받자 곧바로 사형집행명령서에 서명해 사형을 집행한 인물이다. 판결 후 18시간 만에 도씨 등 8명을 사형해 국제적으로도 사법사상 최악의 '암흑의 날'이라는 오명을 뒤집어 썼다. 서 전 장관은 지난 2006년 참여정부의 전시 작전통제권 환수 계획에 반대하는 성명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박근혜 정부의 초대 통일부 장관으로 내정된 류길재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가 17일 서울 종로구 북촌로에 위치한 북한대학교대학원을 나서고 있다. (2013.2.17)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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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길재 통일부 장관 후보자도 '박정희 인맥'으로 꼽힌다. 류 후보자의 아버지 고 류형진 박사는 5·16 쿠데타 이후 제 3공화국 수립까지 국가 최고 기관의 역할을 했던 국가재건최고회의(의장 박정희) 고문을 맡았다. 5·16 쿠데타의 주축 세력이었던 셈이다. 류 박사는 지난 1994년 사실상 폐기된 '국민교육헌장'의 초안을 작성했다.

이밖에 김병관 국방부 장관 후보자는 자신의 휴대전화에 박정희 전 대통령과 부인 육영수씨의 사진이 담긴 고리를 달고 다녀 구설에 올랐다. 김 후보자는 "지난해 선거 때 어떤 모임에 갔더니 누군가 그 휴대전화 고리를 돌리더라. 그때부터 달고 다녔다"고 밝힌 바 있다. 황교안 법무부장관 후보자는 저서에서 5·16 군사쿠데타를 혁명으로 미화한 '충성파'에 속한다.

청와대 비서관 인선에서도 박정희 그림자
 

청와대 비서실장에 내정된 허태열 전 의원. (2012.3.26)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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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바지 '유시민'의 '정계 은퇴'와 미완의 정치


 

 

 

 


유시민 전 의원이 정계 은퇴를 선언했습니다. 유시민 전 의원은 2월 19일 자신의 트위터에 "너무 늦어버리기 전에, 내가 원하는 삶을 찾고 싶어서, '직업으로서의 정치'를 떠납니다"라고 썼고 "열에 하나도 보답하지 못한 채 떠나는 저를 용서해주십시오"라며 정계 은퇴의 뜻을 밝혔습니다.

유시민 전 의원의 정계 은퇴를 놓고 다양한 해석과 전망이 나오지만, 오늘 '아이엠피터'는 그가 왜 정치를 떠날 수밖에 없었는지 그가 남긴 것을 중심으로 말해보고 싶습니다.
 

' 서울역 회군을 반대했던 유시민'

유시민은 서울대학교 총학생회 대의원회 의장 출신입니다. 그는 1980년 민주화 운동이 거세던 5월 15일 서울역에서 수만 명의 대학생이 모여 열린 '계엄해제와 신군부 퇴진' 시위에 참가합니다.
 

 

▲서울역을 중심으로 최소 10만 명의 시위대가 오여 '신군부 퇴진'을 요구했던 1980년 5월15일

 


당시 18개 대학총학생회장단은 시위를 계속할 것인가 아닌가를 놓고 설전을 벌이는데, 이때 심재철은 시위 해산을 주장했고, 유시민은 결사항전을 주장했습니다. 두 사람의 설전은 시위 도중 내내 계속됐고, 결국 서울대 총학생회장이던 심재철이 서울역 광장 구석에 있던 임시회의처 통학버스 위로 올라가 "오늘 시위는 끝났고 모두 학교로 돌아가고 내일을 기약하자"고 말함으로 그 유명한 '서울역 회군'이 이루어집니다.

당시 신현확 총리는 서울역 시위대 해산을 노리고 '늦어도 연말까지 개헌안을 확정하고, 내년 상반기에 '양대선거'를 실시, 정권을 이양하겠다는 당초 약속을 추호의 변동 없이 지켜가고 있다'며 '시국에대한 국무총리 담화'를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5월16일 "전국대학교 총학생회장 연석회의'가 소집됐으나 경찰의 난입으로 중단되었고, 5월17일 비상계엄령이 대한민국 전 지역으로 확대됐습니다. 그리고 1980년 5월18일 광주는 우리 역사에서 기억하기 어려운 아픔을 겪기 시작합니다.
 

 

▲광주에 진입한 공수부대.

 


'아이엠피터'가 유시민을 말하면서 '서울역 회군'을 먼저 논하는 이유는 당시 '서울역 회군'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라는 생각을 늘 해보기 때문입니다. 광주만큼 서울에서도 무자비한 진압에 대한 유혈사태는 발생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서울은 광주처럼 그토록 '빨갱이'들의 폭동으로 수십 년간 매도되지는 않았으리라 봅니다. 당시 서울은 수많은 외신기자들이 있었고, 광주처럼 모든 지역을 봉쇄할 수 있는 여건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유시민은 '서울역 회군'을 통해 기성 정치인이 가진 이중성과 그들의 태도에 대응하기 위한 정치적 행동의 선택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달았을지도 모릅니다.

1984년 '서울대 프락치 사건'이 발생하고, 유시민은 구속되어 1년 6개월 형을 받고, 1985년 그 유명한 '항소이유서'를 세상에 알립니다.

 

▲법정에 출두했던 유시민

 


유시민은 '항소이유서'에서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거나 1심 선고 형량의 과중함'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면서 '부도덕한 개인과 집단에게는 도덕적 경고'를 '법을 위반한 사람에게는 법적 제재'를 '거짓 선전 속에 묻혀 있는 국민에게는 진실의 세례'를 요구하기 위해 항소이유서를 작성했다고 밝혔습니다.

'아이엠피터'는 서울대 프락치 사건에서 보여줬던 폭력을 추호도 잘했다고 하고 싶지 않습니다. 단지 그 시대 우리 사회가 보여줬던 혼란과 아픔이 기가 막히게 유시민의 '항소이유서'에 나와 있었다는 사실만을 알리고 싶을 뿐입니다.

폭력을 행사하는 국가 권력은 정당하게 처벌받지 않는 사실을 빗댄 그의 주장을 통해 우리는 권력의 폭력적인 수단이 어떻게 사회를 도덕적으로 망가뜨리고 대한민국 사회가 불법과 분열,대립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었는지 한 번쯤은 생각해봐야 한다는 뜻입니다.

' 타고난 작가,그리고 논객 유시민'

유시민의 글을 읽어본 사람은 그의 글에 감탄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의 글솜씨를 가장 잘 보여주는 대목은 그가 수배 중이던 시절 썼던 MBC 월화미니시리즈 8부작 '그것은 우리도 모른다'는 멜로 드라마의 각본을 썼던 점입니다.
 

 

▲드라마 '그것은 우리도 모른다'에는 아직도 극본 유지수라고 나온다. 출처:다음 영화

 


뽀글이 파마를 하고 방송사를 출입하며 '유지수'라는 가명으로 '그것은 우리도 모른다'라는 드라마의 극본을 썼던 유시민은 그 후에도 '신용비어천가'라는 단막극의 각본도 썼습니다.

독일 유학 후에 귀국한 유시민은 각종 언론사에 칼럼니스트로 글을 쓰기도 하고, '100분 토론'의 사회자로 활동하기도 했는데, 당시 그의 인기가 높았던 이유 중의 하나가 그가 썼던 글들이 보여준 예리함과 말솜씨는 때문이었습니다.

그저 입을 열면 원고 없이 몇 시간 동안 계속 말을 할 수 있는 그의 해박함과 글 속에서 보이는 예리함과 속 시원함은 많은 사람들을 사로잡았고, 그가 정치에 입문할 수 있었던 '인기'의 배경이었음은 틀림이 없었습니다.

' 정당 브레이커 유시민'

유시민은 1988년 이해찬 의원의 보좌관으로 정치에 들어왔다가 2002년 '화염병을 들고 바리케이드 앞에 서는 심정으로'라는 글을 통해 절필을 선언하고, 정치에 본격적으로 뛰어듭니다.

유시민 전 의원을 '정당 브레이커'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유시민 전 의원이 소속된 정당이 분열되는 일들이 많아 붙여진 부정적인 별명 중의 하나입니다.
 

 

 


유시민은 2002년11월 '개혁국민정당'을 시작으로 열린우리당 창당 주도(2003년), 대통합민주신당 대선 경선 참여(2007년), 국민참여당 창당(2009년), 통합진보당 창당과 탈당(2012년), 진보정의당 창당(2012년) 등 정말 많은 정당을 창당했습니다.

그가 정당을 창당하고 탈당하는 모습을 빗대 사람들은 그를 '정당 브레이커'로 칭하기도 하지만 그가 수많은 정당을 창당하게 된 배경에는 그가 정치를 대하는 기본적인 자세에 있기도 합니다.

 

 

▲국회 개원때 하얀색 바지에 노타이로 등원한 유시민.

 


고양 덕양구갑 보궐선거를 통해 국회의원이 된 유시민은 첫 국회 등원때 정장이 아닌 흰색 면바지에 노타이 차림으로 단상에 올라 '백바지'라는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습니다. 당시 동료 국회의원은 물론이고 많은 사람에게 '국회를 뭐로 보느냐'는 욕을 먹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그는 정치를 딱딱하게 풀려고 하지 않았기에 정당을 창당하고 탈당하는 일에 그리 거리낌이 없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그가 무슨 목적으로 정당을 자꾸 만들었는지에 대한 그가 가진 '정당'에 대한 개념입니다.

' 삼자구도를 통한 '정치혁신'을 꿈꾸었던 유시민'

유시민은 “87년 체제가 만든 ‘결선투표도 없는 대통령선거와 비례대표 비율이 매우 낮은 소선거구 국회의원선거 제도’가 기존 기득권을 쥐고 있는 양당이 계속 권력을 나눠 먹게 한다”며 “양당구도와 지역주의가 결합해 완강하게 대한민국을 지배하고 있다”는 주장을 통해 대한민국 정치판의 '양당 구조'를 신랄하게 비판했습니다.

그에게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이념을 떠나 권력을 나눠 가지며 대한민국 정치를 가로막는 정당이었을 뿐입니다.
 

 

▲소선거구제와 양당체제 현상을 보여주는 총선 결과. 출처 민주주의복지사회연대

 


유시민이 생각하는 정치 혁신의 시작은 현재의 양당 구조를 개혁하는 일이었다고 봅니다. 그래서 그는 민주당에 합류하지 않고, 국민참여당에 갔고, 야권대통합보다는 민주노동당 등 소수 진보세력에 적극 참여했습니다.

'정당 브레이커'라는 말 속에는 자꾸 왜 정당을 깨느냐는 질타가 있겠지만, 한편으로 유시민에게는 대한민국의 양당 체제에서는 결코 민주주의가 진보하지 못한다는 결론을 실천하려는 방편이 아니었느냐는 생각도 해봅니다.

유시민의 정치 중에서 '노무현'이라는 단어를 빼놓을 수 없지만, 한편으로 유시민에게 노무현 대통령은 김대중 대통령과 함께 이제 사라져야 할 과정이라고 봤습니다. 즉 김대중-노무현으로 이어지는 민주주의가 이제 새로운 패러다임의 복지국가를 진행하는 밑거름이지 그것이 전부가 아니기 때문에 양당 체제를 무너뜨리고 최소 삼자 구도 이상의 정치가 나와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현행 정치에서 '양당 체제'로는 절대로 다양한 의견을 표출할 수 있는 '제3당'이 나올 수 없고, 이는 그가 끊임없이 새로운 정당을 창당하고 소수의 세력 속에 들어가려는 시도를 했다는 모습에서 알 수 있습니다.

' 정치인 유시민이 남긴 것들'

'아이엠피터'는 유시민을 평가한다는 생각이나 그를 옹호하거나 비판하려는 의도로 글을 쓰지 않았습니다. 진보 세력 간에도 유시민을 싫어하는 사람도 있고, 그를 적극 지지하는 사람도 있지만, '아이엠피터'는 그의 공과를 따지기 보다 그가 원했던 정치의 한 단면에서 우리가 무엇을 취해야 할까?라는 생각으로 글을 쓴 것입니다.
 

 

▲보건복지부장관,대선경선 출마,경기지사 선거 등 다양한 정치 활동을 벌였던 유시민.

 


그가 생각했던 정치, 정당 구조, 정책, 모든 것이 완벽하거나 옳다고만 할 수 없습니다. 그가 했던 말에도 모순이 있고, 그의 정치 행동과 정당 활동에도 문제점은 분명 존재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꿈꾸었던 세상 속에는 분명 새로운 정치를 향한 갈망과 시도가 있었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습니다. 그의 생각이 전부 옳은 것은 아니지만, 다양한 사회 속에서 정치도 분명 기성 정치와는 차별된 어떤 시도와 노력이 필요하고, 그 안에 유시민이라는 인물이 있었음을 우리는 부인할 수 없습니다.




 



유시민의 '캠프가 망했어요'라는 동영상을 보면 그의 인기와 착각, 그리고 그가 원하는 모습을 조금은 엿볼 수 있습니다. 그를 지지했던 사람들을 통해 정치하려고 했지만, 기존의 정당 구조 속에 시민의 참여가 없다면 성공하기 어렵고, 현실과 이상적인 정치가 얼마나 많은 간극을 보이고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어쩌면 유시민이라는 인물은 '실패한 정치인'의 범주에 포함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성공보다는 그의 실패 속에서 우리는 많은 것을 깨닫고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가 가졌던 정치에 대한 꿈, 열망이 어떻게 무너지기도, 어떻게 성공하기도 했는지를 통해 우리는 앞으로 어떤 정치가 우리 사회에 필요한지,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어떻게 정치를 해야 하는지를 많이 배울 수 있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 장례식장에서의 유시민.

 


이제 '정치인 유시민'은 우리 곁을 떠납니다. 그를 지지했던 사람은 그를 아쉬워할 것이고, 그를 비판했던 사람은 그의 정계 은퇴를 그저 바라볼 것입니다. 그러나 양쪽 모두, 그를 통해 배워야 합니다. 그저 안타까워하거나 박수를 치는 것이 아니라 그의 모습 속에서 우리 정치가 어떻게 변화돼야 하는지 생각해봐야 합니다.

"슬픔도 노여움도 없이 살아가는 자는 조국을 사랑하고 있지 않다" 라는 네크라소프의 시구를 인용한 그의 '항소이유서'처럼 열정을 가진 시민들의 정치 참여와 기성 정치와는 다른 제3의 모습이 대한민국 정치에 자꾸 등장해야 합니다. 떠나는 그를 보면서 한 가지는 확실히 말할 수 있습니다.

'당신을 통해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당신이 보여준 미완의 정치를 이제 우리가 완성해보겠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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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석우는 불핵폭탄? - 북 과학자들, 21세기 핵융합시대를 열어놓아

 

운석우는 불핵폭탄? - 북 과학자들, 21세기 핵융합시대를 열어놓아
북조선, 중국, 러시아가 컨소시엄으로 차세대 에너지 “핵융합 발전”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면, 21세기 꿈의 에너지, 핵 방사능이 전혀 없는 대규모“핵융합 발전소 공단”건설 사업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라면
예정웅 자주논단(122)/ 민족의소리자주역사신보
 
 
 
▲ 연합뉴스는 운석우가 러시아에 떨어지고 히로시마 원폭의 33배가되는 위력이라는 보도를 했다. 이러한 운석우가 미국 샌프란시스코와 쿠바행상에도 떨어졌다는 보도는 중요한 의미가 있는 것으로 분석한다. � 민족의소리자주역사신보편집부


<편집자주>“예정웅자주논단 (122) 북 과학자들, 21세기 핵융합시대를 열어놓아 ②는 1월 29일경에 글이 올라온 것으로 단군박공의 사이트를 검색하던중 발견하였다.

특히 방송과 언론사들의 러시아 우랄산맥 인근 첼랴빈스크 상공에서 폭발한 운석의 위력이
히로시마 원자폭탄의 30배가 넘는 것으로 분석됐다고
연합뉴스는 사진과 함께 보도하여 무슨 새로운 징조가 있음을 직감하게 했다.

16일 미국 항공우주국(NASA)은 운석이 지구 대기층과 충돌하면서 발생한 폭발력을
500킬로톤(kt)으로 수정 평가했다고 전하고 이는
2차 세계대전 당시 히로시마에 터진 원자폭탄의 33배에 달하는 위력이라고 평가 보도했다.

그러나 언론보도에 따르면 미국 캘리포니아 샌프란시스코와 쿠바해상에도 운석우가 떨어졌다는 보도는
이러한 직감력을 보강하는데 도움이 되어 예정웅 자주논단(121)에서 언급한 불폭탄을 연상하게했다.

또한 언론들은 16일 새벽에는 지름 45m 크기의 소행성 `2012 DA14`가 지구를 스쳐 지나갔다.
이 소행성은 지구 상공을 도는 정지궤도 위성 보다 더 가까운 약 2만 7700㎞ 거리를 두고
충돌 없이 지구를 스쳐 지나갔다고 보도했다.

미.중.러.영.프랑스의 인공위성들은 우주상에 야구공만한 것의 움직임도 포착하여 대응할 수 있다고
장담하여 온 것을 미루어 보면 운석우와 관련한 보도는 미흡하기짝이 없고
불명확한점이 상당함을 파악할 수 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는 3차 초경량, 초강력위력의 핵시험의 성공이라는 선언과
4차, 5차에 걸친 미국과 그 추종세력을 향한 인명에 피해가 전혀없는 핵시험을 할 것이라는 선언은
예정웅 자주논단(122)내용을 뒷받침하는 것으로 알 수 있다.

언론과 방송사들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3차 핵시험에 대해 유엔의 안보리 제재가
운석우 보도이후 불가론으로 돌아서는 것을 볼때 언론들이 보도한
러시아와 미국의 샌프란시스코, 쿠바해상의 운석우는 관련국들이 정확한 사실을 보도하지 않는 이상
다른 의미를 부여하기에는 역부족임을 밝힌다.

향후 동영상과 언론보도, NASA등의 반응을 분석한 국제문제, 군사전문가들의
분석글이 올라올 것으로 판단한다.

러시아와 미국,쿠바해상에 떨어졌다는 운석우와 관련 예측과 예정웅 자주논단(122)를 연관지어 보도한다.

 
▲ 운석우라고 햇으나 떨어지는 형태는 운석우형태로 보이지 않고 전혀 다른 형태를 띤것으로 보인다.<사진:연합뉴스인용> � 민족의소리자주역사신보편집부


◆ 21세기 에너지는 여전히 전기

이 글은 지난번 논단의 연속선상에서 이해되면 좋을 것이다.
2013년 1월7일 에릭 스미츠 구글 회장과 리차드슨 전 뉴멕시코 주지사 일행이 평양을 방문 하였다.
왜 갓을까. 무척 궁금할 것이다. 그냥 여행 삼아서? 추운 1월에 평양의 설경을 구경하러?
아니면 간첩누명을 쓰고 잡혀있는 미 시민의 석방을 위해서...그런 것이 아니다.

에릭 스미츠는 당신의 컴 이메일, 당신의 글, 당신이 쓰고 있는 인터넷 전화 등
구글을 통과해야 만하는 모든 IT정보를 한 눈에 다 보는 회사의 회장이다.
구글의 회장이 경영인이라면 북에 대해서 상당한 정보를 갖고 있는 인물로 보아야 한다.

그러니까 백악관이나 CIA, 국방성과 협조관계에 있는 중요인사라는 점을 먼저 인식할 필요가 있다.
1월 2일. 미CIA 유라시아 지국장이 오바마의 비밀특사로 평양을 방문하고
그가 워싱턴에 도착해 업무협의를 한 시간 대에 민간인 구글회장 일행이 방북의 바퉁을 넘겨받은 것이다.
오바마의 웃 선에서 노는 고급한 국제정치를 주무르는 유대의 움직임에 백악관은 조용한데,
국무성이 눌런드 대변인 따위가 뭘 알 턱이 있을까.

미 국무부 대변인은 슈미트 구글 회장 일행의 북한 방문계획을 알고 있었다고 밝힌 뒤
“이 시점에서 방문하는 것이 유익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구글 회사연혁을 조금 소개하자,
구글 검색사이트는 1998년 스탠퍼드대학 박사과정에 있던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이 처음 만들었다.

1999년 6월 유대자금에서 공동출자 형식으로 지원을 받아 검색서비스를 시작한 뒤,
2004년 8월 19일 나스닥에 상장하였다.
유대계의 또 하나의 IT기업이 된 것이다. 미 유대의 신재벌 군(구릅)에 속한 기업이다.
에릭 스미츠는 인터넷 기술자가 아니라 기업가이다.
그는 상당한 북의 정보를 알고 있을 것이다.

발전된 북의 3~4차원 기술력에 동물적 감각으로 관심을 갖고 지켜보았을 것이다.
북의 기술에 투자 해? 합작 한번 해봐?
지금 중동 유대자본들이 북에 진출해 투자하는 시대인데...

이집트의 오라스 콤 통신회사도 지금까지 총 1억5000만 달러를 북에 투자했다고 하지 않았는가.
나의 친구인 독일 캠핀스키 호텔그룹의 레토 위트워(Reto Wittwer) 회장도
오라스 콤의 류경호텔 개발권을 확보하고
1억8000만 달러를 투자해 호텔 외장공사를 끝냈다고 하지 않았는가,
영국, 이태리, 독일, 네델란드 많은 나라가 교역국으로 등장하는 때에...

그는 오바마와 상당한 친분이 있다.
그의 기업가적 입장에서 북을 관찰하였을 때 인터넷 사업의 대북진출을 위한 것이 아니라
다른 영역에 더 관심이 있었을 것이다.
이번 평양방문은 그에게는 워밍업 수준의 준비운동 차원이다.

유대계 사업가에게는 특이한 점 두 가지가 있다.
우리는 좋은 점은 본받을 필요가 있다.

하나가 사업영역에서 이데올로기 즉, 이념에 사로잡혀 있지 않다는 점이다.
대대로 고리대금업으로 살아온 유대의 부의 축적 방식에는 역사적으로 적아구분이 명백하지 않다.
이게 진짜 사업가이다.
멍청한 이명박은 집권 5년 동안에 이것을 배웠어야 했다.

두 번째는 이익이 되는 곳에는 적도 동지도 아닌 오로도 고객만 있다.
그들은 그러한 사고 속에 살아왔고 중국에 투자도 그런 식으로 시작하였다.
러시아에도 자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고 있지 않은가.
유대 장사꾼이 금과옥조처럼 섬기는 철학가운데 하나가 이익이 되는 곳으로 찾아가라! 이다.
이게 유대의 사업신조이다.
에릭 스미츠가 그것을 모를 리가 있을까.? 아니다.
너무나 돈 버는 데는 천부적 재질을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사람이다.

그는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여러 면을 생각했을 것이다.
21세기 미래의 에너지는 여전히 전기이다. 석유, 석탄, 그것도 여전히 전기 에너지원 이긴 하다.
하지만 21세기에는 석탄 석유는 한 물간 물건이고 핵융합에서 얻는 전기, 그것이 답이 아닌가.
진짜 황금알을 낳는 거위 그게 바로 핵융합 전기이다.

이 핵융합 전기 문제를 조금 부연 설명하자.

지금 동북아시아에서 엄청난 변화가 찾아오고 있다.
북, 중, 러가 동북3성에 막대한 자금을 투입하고 어디엔가
《핵융합발전소》기초건설 프로잭트가 진행되고 있다면 어쩔 것인가.
러시아가 1천리의 고속도로 길을 딱고 있으며,
중국은 창, 지, 투 개발 사업에 동북3성 인프라 확충과 건설에 막대한 자금을 투입하고 있다.
이제 곧 멀지 않아 동북3성은 동북아시아의 최고의 에너지의 보고가 되고
세계를 내려다보는 위치에 서게 된다.

동북3성, 그 넓은 땅 어디에 이 지구가 탄생한 이래 최초이고 최대이며
거대한“ 핵융합 발전소 공단사업”프로잭트가 추진되고 있다면,
동북3성 어디에? 어디라고 딱 잘라 말 해 줄 만한 자료는 없다.
국가적 보안문제가 걸려있기 때문이다.
어느 깊은 산골의 지하에,? 어느 큰 호수 밑의 지하에,? 만주벌판 어느 지하에,?
광대한 밀림의 숲 어느 지하에,? 백두산의 정기가 뿌리내린 그 어디에?
이미 기초공사가 거의 끝나가고 있다고 한다.

이 대규모의 “핵융합 공단”건설에 국가적 심혈을 기울이고 중심적 역할을 노는 국가는 단연 북조선이다.
핵융합 원천기술을 쥐고 있는 국가가 경영의 중심이 되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닌가.
여기에 북조선, 중국, 러시아가 컨소시엄으로 차세대 에너지 “핵융합 발전”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면,
21세기 꿈의 에너지, 핵 방사능이 전혀 없는
대규모 “핵융합 발전소 공단”건설 사업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라면,
오늘의 지구에 사는 세대들, 다음의 세대들은 영구적인 에너지 걱정은 안 해도 살 수 있게 된다.
아래에 좀 더 부연설명 되어 질 것이다,

 
▲ 핵융합에너지는 방사능이 없는 영구적인 에너지를 만들 수 있다.더나아가 인류문명사를 뒤바꾸어 놓을 것이다. 상온핵융합은 5차원의 세계로 인류가 진입할 것이라고 과학자들은 예측한다. � 민족의소리자주역사신보편집부


◆ 동북공정론은 분열을 노린 자본주의 세력의 음모

이제는 말 할 수 있다.
논단의 요약된 글로 동북공정 론의 진실을 말 한다면 이것도
결국은 미 제국주의자들의 반북, 반중 이간 분열 공작의 하나였다.
지난 5년전까지만 해도 남한과 중국에서는
중국의 역사왜곡, 동북공정이란 말이 무성하게 성행하고 있었다.
지금은 그 말이 잠복돼 조용하다.
당신은 중국의 역사왜곡, 동북공정 론의 진실에서 대해서 좀 알고 있는 것 있는가,
알고 있다면 얼마나 알고 있는가.
막연히 보수언론에서 내 놓는 보도의 수준에서 알고 있다면 기억에서 지워라,

일반적인 현상일 때 감추어진 본질을 보는 것이 중요하다.
세계에서 크고 작은 의혹사건이 터지는 곳에는 반드시 그 핵심적 배후가 존재하며
그 배후는 언제나 유대 일루미나티가 개입되어 있다고 보면 맞는 말이다.
중국의 동북공정론도 초기에는 장쩌민 집권 때 중국공산당 내부에서 전략으로 나온 논리는 아니다.
이 논란의 시작은 상하이방 태자당의 음모론에서 출발 하였다.
상하이 방을 뒤에서 조종하는 세력은 베이징이 아니라 상하이에 진출한 유대계 자본가들이다.

유대자금이 중국 침투에서 첫 진출지가 상하이였다.
상하이 공산당 간부나 지방 토후들은 시장경제의 맛을 들이게 된다.
제일먼저 교육시킨 것이 공권력에 대한 뇌물관행이며 이권개입 등
정신이 혼미한 아편의 맛을 돈의 맛으로 바꾸기 시작한데서 출발한다.

남한도 1970년 대 까지 그래도 공무원들은 청렴하였다. 점심(변또) 밥을 집에서 가지고 다녔고 뇌물이래야 담배와 술값, 차마비 정도면 충분하였다. 그저 인사치례 수준이면 일이 잘 되었다. 모든 자본주의 제도는 많은 규정을 만들고 규정자체가 사회를 부패하고 썩게 만드는 요인이다. 착취제도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80년대까지만 하여도 중국도 부정과 부패가 오늘처럼 깊은 오물의 세계는 아니었다.

80년대 이후 개혁개방과 함께 뇌물을 주지 않으면 아무것도 일이 안되었다. 고위층의 부패는 값을 높여 놓았다. 상하이는 중국에서 돈이 잘 도는 상업도시이다. 상하이 방은 국가 권력쟁탈전에서 헤게모니(주도권)을 거머쥐려는 공산당 간부들이 재벌이 되어 있었다. 이들의 뒤를 옹호해주고 봐주는 자본가 세력들이 있었으니 그들이 유대계이다. 그들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아시아 나라들에 대한 역사외곡과 동북3성을 표적으로 동북공정 론이 기세를 올리기 시작한때 2003년 쯤 부터 시작되었다. 세계를 자본과 금융으로 지배하는 유대계들은 2003년부터 중국공산당이 동북공정과 함께 그것이 실현 되도록 독려하는 켐페인을 세계적으로 벌려왔다. 대표적인 나라가 남한이었으며 친미적 교수 언론들에 의해서 주도 되었다.

목적은 중국의 통일정부를 내부분열 시키기 위한 방편이었다. 미국유학파 친미 지식인들과 교수들, 연구원들이 한 통속이 되어 들고 나온 것이 중국의 변경국가들의 역사왜곡과 동북공정 론이었으며 이들 중 일부는 극단적인 반중 인물들이었다.

전 주석이었던 장쩌민은 북에 씻지 못 할 죄를 지은 것이 좀 있다. 장쩌민 주석을 위수로 한 상하이방과 태자당이 사회문화 인테리 미국유학파들을 동원해 역사왜곡에 따른 동북공정론을 동북 3성을 향해 여론화 시킨다. 시간이 지나면서 중국정부의 동북공정 론이 정책화 된 것은 2005년이다. 이 시기 북과 중국과는 첨예한 대립관계에서 전쟁일보 직전까지 가는 위기국면을 맞게 된다.

2000년 중국은 유대로부터 베이징올림픽 주최 권을 얻게 되었다. 장쩌민을 앞세워 상하이방의 모략에 의해서 동북공정론이 한 때 중국에 유행 하였을 때 북, 중관계가 대단히 악화된 시기였다. 한반도는 당시 전쟁분위기가 최고조로 상승하였던 때였다. 중국 장쩌민 체제는 북의 신의주 개발 사업을 파탄 나게 하였다. 드디어 북이 칼을 빼들었다. 사실을 다 적을 수는 없지만 중국인민해방군 17만 명이 북, 중 국경에 전진 배치 되였다. 북은 가만히 있지 않았다. 군사적으로 보이지 않는 전쟁에서 중국은 상당한 피해를 맛보았다.

북은 후진타워에게 동북 3성《고토문제》를 제기한다. 북이라고 정복전쟁을 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동북 3성은 5천년 단군조선의 땅이라는 사실을 상기시켜주었다. 즉, 동북 3성 문제에서 고토회복 론은 이렇게 시작된 문제이다. 중국은 결정하여야 했다.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북조선과 생사를 건 싸움을 할 것인가, 아니면 이웃 형제국으로 우호친선 동맹관계를 복원할 것인가 택일할 것을 강제 받게 되었다.

난국에 처한 중국이었다. 2008년도에 중국은 준엄한 한 해 였다.“ 2008베이징 올림픽”개최가 축제분위기로 맞이해야 하는데 축제가 아니라 반중여론이 국제사회를 주도해 나갔다. 중국은 무엇인가 깨닫기 시작한 것이다. 중국내정에 사회적 분열과 분파분위기가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반중 친미주의자들의 선동과 달라이 라마가 티베트 독립을 선동해 티벳트의 유혈폭동사태가 발생한다.

자금은 지하로 잠적했거나 해외로 도피해 잠잠해 졌지만 당시“파륜궁”사태와 함께 해외에서 반중시위가 세계적 범위에서 광범위하게 전개되었다. 올림픽 봉화 릴레이가 가는 곳 마다 반중시위로 막혔고 여론이 악화 확대되면서 국제적인 문제로 등장하였다. 반중시위에 중국당국이 골탕을 먹었다. 여기에 중국의 내부의 사회혼란까지 가중되었다. 중국공산당 내부가 동요한다. 이러한 정세 하에서 북조선과 등을 지고는 정권이 위태롭게 되었다.

이러할 때 북은 그래도 이웃 국가이며 형제국 이라고 사심 없이 국제외교 정치무대에서 중국을 지지하고 정치적으로 도와 준 분이 바로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 국방위원장이었다. 여기에 고무된 중국정부는 자신들의 정책적 오류와 과오를 북에 사과하게 된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국제프로레타리아 국제주의 정신에 입각해 양국간 신뢰관계가 회복되는 동기를 부여하였다.

중국인들이 잘 쓰는 말 중에 (胡说八道)“흥수바도”란 말이 있다.“헛소리”라는 의미이고 쌍말로 말하면“개수작 떨지 말라”이런 소리이다. 초기 중국이 말한 동북공정 론 이란 바로 '헛소리'이며 '개수작'이였다. 중국 공산당 간부들의 자제들, 신흥재벌들의 자제들, 미국유학파들이 자본주의적 정치개혁을 요구하는 켐페인 까지 들고 나왔다.

중국정부는 장쩌민이 물러나고 후진타오로 정권이 바뀌면서 국가보위부는 대대적인 검열에 착수해 그들을 체포하고 이적행위를 한 그들을 다 잡아들였으며 지금은 동북공정이란 말은 없고 잠잠해진 문제로 되어있다. 한마디로 동북공정을 주도한 자들을 모두 체포되어 우르무치에서 처단한 것으로 알려진다. 당시 사형당한 반중 학자들이 근 70여명이나 된다고 한다.

중국을 분열시켜 지배하자는 유대의 공작차원에서 벌어진 전략에 장쩌민은 유대자본가들에게 놀아난 꼴이 되었다, 북조선을 가슴 아프게 한 잘못을 저지른 것이다.

오늘날 동북공정은 다른 차원의 동북3성“화평굴기전략”에 따라 경제개발과 현대화 사업이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다. 국경을 맛 대고 있는 북조선과 연계되면서 거대한 국가적 프로잭트로 경제개발을 하는 곳이 동북3성이다. 무엇이 건설되고 있을 것 같은가. 그동안 비밀에 가려져 있던 사업이 있었다.
 
▲ 2011년 언론의 뜨거운 관심사였던 이온플라즈마비행체 사진이다. 이온플라즈마비행체는 반물질로 중력장을 벗어나 자유자재로 비행할 수 있다. 이러한 비행체를 상온핵융합을 활용하여 만들 수 있다는 과학자들의 주장이다. �민족의소리자주역사신보편집부


◆ 북, 동북 3성에 세기적인 대규모‘핵융합 발전소 공단’건설

북, 중간 험악한 상황에도 조선로동당과 중국공산당 사이에는 동지적 관계로 맺은 변치 않는 인간관계가 살아있다. 2003년부터 북조선 노동당과 중국 공산당간에 동북3성에 비밀리에 추진하는 진짜 동북공정 사업이 존재하고 있었다. 이 사업은 국가적으로 극비에 붙여져 왔다. 북, 중간 진짜‘동북공정’의 비밀의 역사적 한 페이지를 옮겨보자. 미 제국주의가 뒤늦게 알게 되었다. 유대계들이 미국과 전 세계에 중국의 내정과 사회역사를 왜곡하면서 포위 전략을 내온 것도 이때부터였다.

중국이 마치 단군조선의 역사를 중국역사에 편입시켜 중국의 변두리 지방정부로 격하시키려고 말도 되지 않는 소리를 퍼트렸다. 그러나 중국공산당은 동북공정에 대하여 조선로동당과 긴밀한 연계 속에서 극비리에 추진한 사업이 바로 북, 중간에 동북3성에 건설되는《핵융합 발전소 합작 공단건설》사업이었다. 이제는 그 비밀사업이 많이 알려져 글로 내놓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북의 세계자주화 전략중의 하나가 바로 핵융합 시스템의 구조 내에 북이 기술적인 측면에서 세계에 전기를 무한대로 공급하고 그 무한대의 21세기 에너지를 인류에게 혜택을 골고루“ 배푸는 자주화 전략” 이 점이 또 다른 북의 세계자주화 시혜 전략의 하나가 될 것이다. 세계와 인류와 모든 국가들은 그 반대급부로 북에 21세기《자발적인 존경심》에 기초한 세계 패권국의 지위에 올라서게 할 것이다.

이는 하나의 예에 불과하다. 즉, 지금의 미 제국주의는“착취와 수탈의 뜯어먹는 패권”으로 세계의 패권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북은“인류와 세상에 유익한 혜택을 주는 패권”인간을 쥐어짜서 자신의 패권을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에게 유익한 사랑의 혜택을 널리 줌으로써 성립되는 패권...이것이 지금 북이 꿈꾸는 다음 세계의 자주화전략과 패권의 진정한 모습이 될 것이다.

그동안 각 국가들은 원유 찾아 삼만리, 그렇게 발이 닳도록 뛰어다녔다. 오늘의 ‘동북공정’ 사업이란 세기적인 인류를 위한 거대한 사업을 말한다. 바로 동북 3성에 세기적 규모의 거대한《핵융합 발전소》‘관리공단’ 조성사업을 벌리는 것은 북 혼자만 잘 살아남겠다는 것이 아니라 세계와 다 같이 더불어 잘 살자는 것이다.

북과 중국이 합작하여 아시아 전체국가와 전 세계에 전력 에너지를 값싸게 공급해 주는 장기적인 계획하에 “핵융합 발전소” 관리공단 프로젝트, 이 사업에 러시아가 콘서시엄으로 2010년에 공동으로 참여하게 된다. 이것이 북, 중, 러 3국이 국가적 투자로 건설하는 ‘동북공정’의 진실 된 내막이다.

이 ‘동북공정’이 완성되면 아시아, 유라시아 구라파와 중동, 아프리카까지
전 지구적 전력망을 구축하게 되고 저렴한 가격으로 에너지를 영구적으로 풍부하게(무한대)로
공급하게 되는 계획이 바로 오늘의 ‘동북공정’의 진실이다.
사람이 모든 것의 주인이며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주체의 논리가
자주화전략과 함께 우주천체에서 가장 아름다운 지구에 평화의 세계를 창조해 내자는 것이다.

북은 이와 동시에 국내의 강원도 통천에 기간산업에서 첨단산업공단을 모델을 꾸리는 계획을 세웠고
‘핵융합발전소’ 건설 프로젝트가 완성되는 시대를 대비해 오고 있었다.
상상력을 동원해 사고해 보라, 멀지않은 날에 “핵융합 자동차 엔진”이 나온다.
한번 연료를 장전하면 2~3년은 연료걱정 없이 운전이 가능한 핵융합 전기자동차,
이미 북은 평양근교에 아시아에서 제일 큰《핵융합엔진 전기 자동차》공장의 기초가 닦아지고 있다.

중국은 중국전역과 흑룡강 성, 길림성, 북경, 내몽고 까지
그리고 러시아 시베리아, 핫산, 블라디보스톡, 사할린 섬 지역까지 대규모의 전송망을 연결하고
동북3성《핵융합발전소》에 생산하는 전기를 받아쓰도록 계획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생산되는 전력은 1단계는 년 평균 1천억 메가왓트의 전력이 생산되고,
2단계에서는 전 지구적으로 마음대로 써도 남을 만큼 무한대의 전력이 생산되는 전기가
아세아-구라파- 유라시아- 중동 더 나아가 아프리카까지 연결돼 전 인류에게
거의무료나 다름없이 싼 값으로 공급이 될 것으로 예견되고 있다.

한반도의 평화가 정착될 경우, 통일이 이루어지게 될 경우,
21세기 핵융합의 전기가 민수화 될 경우, 사람들이 받을 수 있는 혜택이란 끝이 없을 것이다.
모든 제품원가가 절감 된다. 생활이 윤택해 진다.
뜯어 먹는 미 제국주의 착취제도가 없어진다.
우주로 가는 사업이 발달한다.
세계의 새로운 문화역사가 창조된다.
 
▲ 영국신문이 미, 뉴옥의 자유의 여신상 번개를 맞는 것을 보도했고 뉴옥상공에서 UFO 비행체의 "마지막 기회" 글씨를 남겨 논란이 있었 다. 최근에는 교황청에 이와같은 번개가 몰아쳐 교황이 600년만에 사임하면서 신의 계시라는 이해할 수 없는 말로 사퇴하고 유색인종중에서 교황을 선출한다고 발표했다. 번개는 전기이다. 번개를 저장할 수 있으면 인류의 에너지문제는 공기처럼 사용할 수 있다. 이를 상온핵융합으로 해결할 수 있다. �민족의소리자주역사신보편집부


◆ 핵융합 발전소 완공되면 - 유대석유재벌 해체 - 미 세계 패권 무너져

북조선의 주도로 동북3성에 세계최고의 에너지 메가로 개발되어 질 것이다.
그래서 그 사업이 창, 지, 투 개발사업과 연계 속에 지금 알려진 비밀로 추진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러시아는 지금 동북방면 블라디보스토크와 치따,
중앙아시아 바이갈 호수에서부터 중국까지 전 구간 1단계 1천리 인프라 고속도로를 건설하고 있다.

참으로 안타가운 것은 남한이다,
청와대도 이 사업이 있을 것이라는 것을 조금은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명박이 얼마나 머저리냐 하면 이런 노다지 황금사업을 반북대결정책으로 기회를 상실하고 만 것이다.
오늘의 시대는 이념정치 시대가 아니다.
이념으로는 올바른 국제정치를 할 수가 없는 시대이다.

이명박은 반북이념과 식민지 노예가 돼 국가장래와 미래가 보이는 길을 근처도 접근해 보지도 못하고
청와대를 떠나가야 한다.
이런 자를 나라의 지도자라고 갖고 있는 게 남한이다.
후대들에게 참으로 부끄럽지 않는가.

유대석유 재벌들이 미치고 환장하며 배가아파 죽을 지경이다.
왜,? 이 거대한 세계 최대의《핵융합발전소》프로잭트가 완공되면
미 제국주의자들의 전 세계 에너지 패권이 순식간에 무너지게 되며,
석유는 이제 중요한 에너지원에서 밀려나게 되어있다.
석유전쟁, 석유패권에서 중동은 사라지게 된다.
그러면 유대는 살 길이 막막해 지는 것이다.

미국의 유대는 이 북, 중, 러 3국 공동컨소시엄 ‘동북공정’ 사업이
자기들을 죽이는 계획으로 보고 저지하려고 할 것이다.
그래서 방해공작 중에 하나가 북, 중 관계악화와 중, 일 영토분쟁 다오이다오를 등장시키게 된다.
북, 중 관계를 단절시키기 위해서 이간질 공작이 보통이 아니다.
동북3성에 그래서 서방국가들과 미제간첩이 득실대며 많이 침투된 지역이 된 것이다.
별의 별 반북, 반중 모략 심리전을 다 벌려왔다.

북, 중간 불화를 조성하고 싸움을 부추기려고 공작한다.
미 제국주의는 식민지나라의 썩은 인간들을 이용하는 것이다.
만약 중국이 역사왜곡에서 역사공정, 동북공정을 하면 중국은 망하게 된다, 왜?
북이 가만히 있지 않는다. 북이 들고 일어나면 중국은 50여개 자치주는 산산조각이 나 분열된다.
중국공산당이 그것을 원 하겠는가.
북, 중 전쟁이 터지면 동북삼성은 말 그대로 격전지가 된다.
팔은 안으로 굽는 다 했다.
이 지역은 대대로 단군 조선민족의 후예들이 살아왔고 지금도 살아간다.
김일성주석의 항일혁명과 혁명의 전적지가 살아있는 땅이다.
그리고 중국은 소수민족 국가이다.
이러한 동북3성에 오늘날 어떠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핵융합의 원천기술은 북의 것이다.
물론 원천기술에 대한 지분은 단연 북이 가지게 된다.
북은 동북3성에서 우주와 땅과 바다를 내려다 보면서 평화와 사랑의 꿈의 에너지를
지구의 인류 모두에게 제공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21세기 북이 인류에게 베푸는 사랑과 평화의 세계자주화 전략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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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웅 목사 인터뷰>-시사코리아

“5·16 주동자들…이젠 양심선언 할 때”
본지단독 직격토로/ ‘황태성 사건’ 미국에 최초 제보 조웅

(시사코리아 / 김은석 기자)


4·19혁명 당시 학생운동의 중심인물로 활동한 조웅씨는 학생 신분으로 5·16 군사정변에 참여했다. 5·16 군사정변 이후 ‘황태성 사건’을 계기로 박정희·김종필 등과 갈등을 빚게 된 그는 이들 세력으로부터 완전 이탈, 곡절 많은 시간들을 뒤로 한 채 1980년 이후 목회자의 길을 걷고 있다. <시사코리아>는 지난 1월 17일 ‘황태성 사건’에 대한 그의 본격 증언을 통해 학생운동과 5·16군사정변의 뒷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대학생 신분으로 5·16군사정변 참여…5·16 이상 좌절
목회자의 길 걸어…군 관계자 명예회복 나설 터

중앙정보부 창립 멤버인 조웅(본명 조병규) 씨는 5·16군사정변 이후 장도영 중장을 비롯한 반혁명혐의로 기소된 이들의 명예회복에 앞장서고 있다. 그는 한쪽의 일방적인 증언으로 기록된 역사적 사건 이면에 권력투쟁에 밀려 억울한 누명을 쓰게 된 인물에 대한 재조명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밝혔다. 이승만 정권의 장기집권을 종식시킨 4·19혁명과 제2공화국을 폭력적으로 무너뜨리고 정권을 장악한 5·16군사정변의 중심에 섰던 그의 동지 대부분은 노환으로 거동이 불편하거나 이미 고인이 되었다. 그 역시 80세를 바라보고 있다. 이는 1960~70년대 사회격변기 시절에 발생한 역사적 사건에 대해 증언할 수 있는 인물이 많지 않음을 방증한다. 이에 <시사코리아>는 조웅 목사와의 인터뷰를 통해 역사적 뒤안길에 사라져 가는 사건들을 되짚어보았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

 

▲ 중앙정보부 창립멤버 조웅 © <사진=시사코리아

-4·19혁명 당시 학생신분으로 참가했다. 활동 사항을 자세히 알려달라.

“1960년 대통령 선거기간 건국대 정치외교학과에 재학중이었다. 당시 재야에서 이승만 타도를 위해 공명선거추진전국대학생투쟁위원회(공추위)가 결성되었고 중앙위 의장을 맡게 되었다. 활동을 계속하기 위해 자금문제 해결이 절실했고 당시 친분이 있었던 민주당 최고위원이었던 박순천 할머니를 찾아가 자금 지원을 부탁했다. 1차 자금으로 100만원을 투쟁자금으로 받았고 그 돈으로 유인물을 제작했다. 그러나 선전활동에 나서려는 순간 누군가의 밀고로 들통 나고 말았다. 결국 내란죄로 서울지검 공안부에 체포되었고 4월 민중항쟁이 시작되기 열흘 전인 1960년 4월 9일 동료들과 함께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었다. 이승만 정권이 붕괴된 4월 29일이 돼서야 감옥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조웅 목사가 바라던 바대로 4·19혁명을 계기로 이승만 정권이 물러났고 7·29 총선을 거쳐 민주당이 정권을 인수했다. 당시 기분은 어떠했나.

“정국은 혼란스러웠다. 당시 나에게 장면 정권은 권력에 취한 무능한 정권으로 보였다. 4·19혁명에 가담한 이들은 비서관으로 들어가며 권력에 흡수되었고 사상 유례없는 3·15부정선거를 저지른 이들에 대한 처벌도 이뤄지지 않았다. 4·19혁명 과업을 잇지 못한 것이다. 박순천 할머니께서도 ‘지금은 정국이 혼란스러운 상황이라 처리하지 못했다’는 말만 하셨다. 할머니께서는 오히려 나에게 미국 유학을 권하기도 하셨다. 이때부터 장면 정권을 믿을 수가 없었다.”

-군이 나서야 한다고 판단한 것인가.

“그렇다. 4·19혁명을 완수하기 위해서 군이 나서야 된다고 보았다. 일제시기 광복군 제1지대장을 역임했으며 국군 창군의 일원으로 당시 군의 원로 중 한사람인 채원개 장군을 찾아갔다. 군의 거사를 말씀드리고 영관급 장교를 소개해 달라고 부탁했다. 이에 ‘장도영계’ 인물인 이해영 대령을 소개받았다. 그는 후에 ‘장도영 반혁명 사건’으로 사형선고를 받은 인물이다. 육군본부 이해영 대령의 방에서 ‘하극상 사건’ 관련자들을 만나게 되었고 특히 중령 계급장을 단 김종필과 첫 대면하게 되었다. ‘하극상 사건’은 당시 군의 젊은 영관급 장교들이 주도한 정군운동을 말한다.”

-군의 쿠데타 주도 세력과의 첫 만남이었다. 조 목사를 본 그들의 반응은 어떠했나.

“그들은 ‘하극상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나누었다. 재판에 계류 중이던 ‘하극상 사건’을 책임질 무료 변호사를 선임해주겠다고 하니 그들은 처음에 반신반의했다. 내란죄로 구속됐을 때 무료 변호사 15명의 도움을 받았던 터라 그들을 소개해 주겠다고 말했다. 변호사를 선임 할 여건이 되지 않았던 이들은 호의를 표하기 시작했다. 결국, 무료 변호사들에게 요청을 했고 3~4개월 동안 재판이 미뤄졌던 ‘하극상 사건’은 김동복, 김종필, 석정선 등이 예편되고 나머지는 무죄판결을 받은 것으로 끝이 났다. 재판이 끝나면서 군사혁명은 구체화 되었고 거사계획을 세부적으로 세우기 위해 김종필을 수차례 만났다.”

-거사계획은 어떻게 진행되었나.

“1차 계획은 4·19 1주년을 맞이해 벌이려고 했으나 정보가 샜으며 5월 13일로 예정된 2차 계획 역시 정보가 새나갔다. 5월 15일은 야전군 창설기념일이라 전방 지휘관이 전부 강원도 원주에 모여 파티에 여념이 없는 동안에 허를 찌르자는 작전이었다. 그러나 이때도 8·15광복 이후 남한 주둔 미군의 전투부대인 24군단에 소속되어 첩보활동 등을 담당한 정보기관인 CIC에 첩보가 들어갔다. 5·16거사가 CIC에 누설이 되면서 쿠데타 세력은 구속직전 상태에 놓였다. 당시 나는 CIC 부부대장 백운상 장군에게 ‘5·16 쿠데타 백지화 계획’을 알림으로써 역정보를 흘렸다. 이로써 5·16은 계획대로 추진할 수 있었다.”

-5·16군사정변 이후 어떠한 변화가 있었나.

“5·16 백지화 역정보를 제공함으로써 군사정변의 성공에 일조했으나 쿠데타 이후 김종필의 독주체제가 시작되었다. 그가 다른 세력을 거세하기 시작한 것이다. 대표적인 사건인 바로 ‘방첩대 사건’이다. 이는 김종필이 장도영계를 제거하기 위한 음모로 방첩대 부부대장 백운상 장군과 그 주변 인물이 연루된 사건이다. 이들이 박정희와 김종필 암살을 모의했으며 반혁명 음모를 꾸몄다며 마포형무소에 구속시킨 것이다. 이 사건에 대해 김종필을 만나 따져 물었으나 그는 ‘내 편에 서라. 장도영 편에 서지 말고 분명히 하라’고 윽박질렀다.”


박정희·김종필 세력과 대립각 세워

-장도영과 김종필 사이에서 중간에 선 입장이 되었다. 양측으로부터 오해의 시선을 받았을 것으로 보인다.

“어느 쪽이냐는 김종필의 질문에 ‘나는 장도영 중장파도 아니고 누구파도 아니다. 대한민국파다’라고 말했다. 김종필 독주체제를 비판하거나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당시 남아나지 않았다. 장도영 중장을 제거하려는 생각을 품었던 김종필 계획을 알고 장도영 비서실장에게 이를 알려주었으나 장도영측은 ‘설마, 그럴 리가 없다’는 태도로 일관했다. 결국 중앙정보부 차장 서정순 중령은 장도영 중장 등 장교 44명을 구속하여 수사한다고 발표하면서 결국 권력투쟁에 패배한 장도영은 반혁명분자로 규정되었다. 나 또한 장도영 중장의 참모들의 구명운동을 하면서 구속되고 말았다. 장도영 파로 몰려 중앙정보부 서울지부에 구속된 것이다. 나는 군법회의에 넘겨져 비밀재판을 받았으며 징역 1년에 집행유예 3년을 받아 192년 12월에 풀려났다. 그러나 다시 중앙정보부에 붙들렸고 재구속, 수감이 이어졌다.”

-황태성의 존재는 언제 알게 된 것인가.

“서대문형무소에 있을 때 같은 방을 쓰던 한 간첩을 통해 황태성이 서대문형무소에 같이 수감되어 있다고 전해 들었다. 그는 황태성이 북한에서 ‘밀사’ 임무를 띠고 박정희를 만나러 왔다가 구속된 것이라고 전했다. 황태성이 반도호텔 735호 특실에서 박정희와 김종필을 만났고 민주공화당 창당에도 관여했는데 지금은 박정희 입장이 곤란해서 수감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일이 잘 풀려 곧 석방될 것이라고 했다. 이후 나는 어느 날 밤중에 석방 통지서를 받았다. 당시 최고회의 의장 경호실장 박종규가 김종필에게 말해 풀어났으니 한번만 협조하라고 했다. 군의 일부 장성들이 각하를 추방하려고 하니 그들 속에 들어가 공작을 해달라는 것이다. 나는 화를 냈고 그 제안에 응하지 않았다. 그 때 이후로 김종필 세력으로부터 완전히 마음을 돌리게 되었다.”

-김종필 세력에 반기를 들기 위해 미국측에 황태성에 대한 제보를 한 것인가.

“공작을 해달라는 부탁이 들어온 후 유엔군 총사령부로 가 황태성이 박정희의 정치적 고문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제보했다. 당시 나로서는 모든 권력과 군이 박정희 아래에 있는 상태였기에 미국의 힘을 빌리려는 생각뿐이었다. 사건의 전보를 제보하고, 한미합동 조사단 구성을 요구했다. 하루가 지나 케네디 대통령의 안보담당 보좌관, 3정보기관의 정보분석관 등이 속속 미8군사령부로 모여들었다. 미국은 제보가 있기 전 황태성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중앙정보부 부장이던 김형욱이 말하길 미국 측이 자꾸 황태성을 넘기라고 요구하자 박정희는 절대로 넘겨줄 수 없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김형욱은 황을 넘겨주고 한미간의 유대강화를 내세웠으나 박정희와 김종필은 황태성과 비밀회담을 통해 통일문제를 논의한 사실이 탄로나면 국민들의 반발을 살 것을 두려워 한 것으로 보인다.”

-황태성과 박정희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가.

“황태성은 대구 폭동 때 사살당한 박정희의 친형인 박상희 친구이다. 박상희의 결혼 중매도 황태성이 했다. 그는 철저한 공산주의자로 박정희가 가장 좋아하던 형이었고 대구폭동이 실패로 돌아가자 월북한 인물이다. 박정희가와 친분이 있는 황태성은 북한 밀사로 남한으로 와 박정희 또는 김종필을 만날 수 있도록 주선해 달라고 요청했고 이들은 비밀회담을 통해 통일문제를 논의했다. 김종필은 박상희의 사위였다. 황태성은 북으로부터 많은 액수의 자금도가지고 온 것으로 알려졌다. 제6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윤보선은 황태성 문제를 중요 선거 이슈로 삼기도 했다. 결국, 미국으로부터 사상 의심을 받고 있으며 대통령 선거 승리를 확신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박정희는 황태성을 남파 간첩으로 몰아 형식적인 재판을 거쳐 사형에 처했다.”


황태성 사건 제보로 15년형 확정

-4·19 이후 사회혼란속에 5·16군사정변을 추진했지만 조 목사의 뜻과는 다른 결과를 낳고 말았다. 최후 수단으로 미국과 접촉을 했지만 잘 이루어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미국측에 황태성 사건을 제보했을 때 이미 미국은 박정희에게 기울어져 있었다. 미국 측으로부터 김종필이 추방된다는 내용을 확인했으나 미8군에서 나오자마자 나는 중앙정보부에 의해 잡히고 말았다. 군사법정에서 최종 15년 형이 확정돼 징역살이를 해야 했으나 민정이양 특사로 풀려났다. 그때의 상처는 너무 컸으며 결국 목회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전하고 싶은 말은 무엇인가.

“대학생 신분으로 유일하게 군사쿠데타에 가담한 이유는 4·19의 완성이라는 순수한 신념에서 비롯된 것이다. ‘혁명’이라 믿고 참여한 이유는 군이 나서더라도 성공 후에는 반드시 ‘군 본연의 임무로 돌아간다’는 것을 전제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군 내부의 다른 세력들이 차례로 제거되는 것을 보면서 5·16 이상은 좌절되었다. 역사의 내막을 알리고 권력투쟁에 밀려 억울한 누명을 쓴 군 선배들의 명예회복이 필요하다. 사건의 중심에 섰던 인물들의 양심선언을 요하는 바이다. 지난해 4월 31일 강영훈 장군은 공식석상에서 처음으로 창군멤버인 강문봉 장군의 김창룡저격 사건 누명에 대해 재심 근거를 밝혔다. 미국 CIA 요원이었던 차국찬 목사, 방원철 장군도 백운상 CIC 방첩대 부부장 암살에 관한 증언을 했다. 반혁명조작사건에 연루된 장도영 중장, 김웅수 중장, 고 박림항 중장의 명예회복은 본인이 책임지고 이행할 것이다.”


출처 : http://www.sisakorea.kr/sub_read.html?uid=4362

 


 

동영상과 내용정리(조웅 목사님의 박근혜 폭로)/정윤회 기사
(다음아고라 / 유형주 / 2013-02-17)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115&articleId=2295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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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 요금 누진세의 비밀? 요금 폭탄의 진실!

[초록發光] 서민들이여, 허리띠를 졸라매라

이진우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부소장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3-02-19 오전 8:11:28

 

 

이제 정치권의 약속은 시효가 2개월도 안 되나 보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선거에서 '세상을 바꾸는 약속'이란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복지를 우선하겠다고 얘기한 지 2개월도 되지 않아 우리는 기초 노령 연금, 4대 중증 질환에 대한 말 바꾸기 쇼를 목도했다. 그리고 이젠 서민 전기 요금 인상까지 들고 나왔다. 아니 오히려 약속한 대로 간다고 해야 하나?

지식경제부가 지난 2월초 국회에 보고한 자료를 보면, 현행 요금 차이가 최대 11.7배가 나는 주택용 누진제를 4~8배로 줄이겠다는 계획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6단계로 나눠진 전기 요금 누진 구간을 3~5단계로 완화하겠다는 것이다. 그간 주택용 누진제에 대해 많은 논란이 있었던지라 개선해야겠다는 정부의 심정은 이해하지만, 개악도 이런 개악이 없다.

첫 번째, 누진제 완화로 서민층 부담을 늘고, 고소득층 가정의 부담은 크게 준다. 정부 계획대로 누진제가 완화되면 한 달 평균 약 1만5000원(매월 150킬로와트시) 정도를 내는 가구는 월 평균 4000원 가량 요금이 증가하지만, 10만 원(매월 450킬로와트시) 가량을 내는 가구는 약 9000원 정도 요금이 줄어든다.

이렇게 되면 당연히 지금도 전기 요금 납부가 버거운 서민층이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 반면에 한 달에 수천만 원에서 수백만 원을 내는 고소비 가구들은 수백만 원에서 수십만 원의 전기 요금 절감 혜택이 발생한다. 실제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2009년 당시 월 평균 주택용 전기 요금이 2500만 원에 이르고, 이건희 회장도 1000만 원 가까이 난 것으로 나타났다.

그렇다면, 전반적으로 전기 요금을 낮추는 방향으로 가면 서민 부담을 줄일 수 있지 않느냔 말이 나올 법도 하지만 한국전력 부채가 80조 원에 이른다는 걸 감안하면 실현 불가능한 일이다. 다소비 가정에서 줄어드는 금액만큼 저소득층과 서민층에게 더 걷어 벌충하는 방식이 될 수밖에 없다. 두말할 나위 없는 부자 정책이다.
 

ⓒ연합뉴스


두 번째, 다소비 가정에 대한 에너지 절감 유도가 사실상 유명무실해진다. 우리는 매해 여름과 겨울이면 피크 전력으로 정전을 걱정해야 할 정도로 전력난이 심각한 상황이다. 정부는 이를 위해 발전소를 더 짓겠다는 입장이지만, 이미 전기 소비 세계 9위에 이르는 우리가 공급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난센스다.

게다가 새로 짓겠다는 발전소는 대부분 온실 기체 다배출원인 화력 발전소이거나 에너지 갈등의 핵심인 핵발전소다. 지금이 에너지 소비를 최대한 줄여야 하는 시점이라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지상 명제다. 정부도 이를 인정하고 요금을 지속적으로 올리고 있는 중이지만 한 편에선 오히려 소비를 조장하는 방식을 준비 중에 있다는 건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백 번 양보해 공급 관리와 수요 관리 정책이 모순된다는 걸 눈감고 지나치더라도 2011년 순환 정전 사태의 학습 효과가 전혀 없어 보이는 건 안타깝기까지 하다. 그해 여름 400킬로와트시 이상 썼던 다소비 가정의 전력 사용량 비중이 30퍼센트 가까이 됐다는 걸 어떻게 무시할 수 있는가.

그들에게는 지금도 낮은 수준인 전기 요금 탓에 소비 억제 효과가 적은 판에 누진제를 더 줄인다는 건 온실 기체 감축 정책은 포기하겠다는 선언에 불과하다. 더 나아가 정부의 요구대로 에너지 사용량을 줄이고 있는 착한 가정에게 인센티브는커녕 요금을 더 내라며 쥐어짜는 게 과연 합당한 일일까.

세 번째. 누진제가 너무 강하기 때문에 형평성이 어긋난다고 주장하는 것도 사실과 거리가 멀다. 전기를 생산하는 과정에는 엄청난 양의 온실 기체와 대기 오염 물질이 배출되고 이를 관리하기 위해 천문학적인 비용이 소요된다. 하지만 전기 요금에는 이러한 외부 비용이 전혀 반영되어 있지 않다.

즉 다시 말해 에너지 다소비 가정들, 쉽게 말하면 부자들이 유발하는 환경 비용을 모두가 나눠서 부담하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따라서 오히려 환경 비용을 전기 요금에 포함시켜 배출한 만큼 책임지게 만드는 것이 더 공정한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현행 누진율이 형평에 어긋난다고 얘기하기 힘들다.

네 번째, 주택용 요금이 아니라 산업용 요금이나 일반용(상업용) 요금이 문제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산업 분야는 국내 전력 소비 비중이 약 52~54퍼센트 수준에 이르는 반면, 요금은 주택용 요금에 비해 훨씬 저렴하다.

물론 주택용 요금도 발전 원가 이하기 때문에 인상 요인이 분명히 있고 생산 단가가 다르기 때문에 산업용 요금이 낮을 수밖에 없다는 점도 인정하지만, 그래도 지금은 서민들에게 돈을 걷어 대기업 요금을 지원하는 교차 보조가 가장 큰 문제다. 산업용 요금을 먼저 현실화해야 용도별 요금 간 불평등도 줄이고, 에너지 수요 저감 효과도 노릴 수 있다.

다행히도 이명박 정부가 지난 1년 반 사이에 전기 요금을 산업용 요금은 네 번이나 올리면서 주택용은 두 번만 올리기에 이 사람들이 웬일인가 했다. 그런데 그건 주택용 요금을 대대적으로 손보기 위한 사전 포석에 불과했었던 것인가.

마지막으로 그들이 말하는 에너지 기본권 혹은 에너지 복지에 대해 생각해보아야 한다. 현 정부는 '에너지 복지'라며 월 수천 원 한도 내에서 전기 요금을 할인해주고 있다. 하지만 이마저도 구간이 완화되면 약화될 가능성이 있다. 그렇게 되면 저소득층에게는 사형 선고나 마찬가지다. 올 겨울만 해도 얼마 안 되는 에너지 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동사로 목숨을 잃은 저소득층의 소식이 왕왕 전해졌다.

에너지는 인간이 인간답게 살기 위해 필수적으로 누려야 할 권리다. 우리나라의 에너지 복지법도 에너지는 기본권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낮은 전력 소비량 요금은 더 낮춰서 권리를 보장해줄 필요가 있다. 그 경우 에너지 소비량이 증가할 가능성이 있지만 이는 누진제를 강화해 다소비 가정이 줄이도록 유도하는 것으로 상쇄시켜야 한다. 누진제가 강화되면 평균 소비량을 보이는 가정에서도 비용 부담을 줄이기 위해 에너지 절약을 실천할 가능성이 크다. 에너지 기본권을 보장하면서도 환경 부하도 줄일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의미다.

하지만 아예 누진제를 폐지하자는 일각의 주장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늘어나는 환경 부하를 좌시하기에는 이미 사회적 비용 규모가 너무 커졌다. 게다가 월 평균 요금 5만 원 안팎을 내는 대부분의 서민층은 누진제 영향을 거의 받지 않는다. 낮은 단계 요금은 발전 원가 이하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누진제를 폐지함과 동시에 자기 발등을 찍는 형국이 되고, 누진제를 폐지되거나 완화되면 다시 복구하기 힘들다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오히려 그런 누진제 폐지는 언론의 여론몰이가 만들어낸 허상에 가깝다는 생각까지 든다. 누진제 폐지 여론이 정점에 이른 시기가 지난 여름 20~30만 원 전기 요금 폭탄 기사들이 쏟아진 직후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추가 발전소 건설을 막고, 온실 기체를 줄이기 위해서는 전기 요금 제값내기가 필요한 시점이다. 합리적 부담을 용인해야 저들의 폭주를 막을 수 있다. 전기 요금은 그 시작이다.
 

'초록發光'은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와 <프레시안>이 공동으로 기획한 연재입니다.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는 이 연재를 통해서 한국 사회의 현재를 '초록의 시선'으로 읽으려 합니다. 이런 시도는 이명박 정부의 '녹색 성장'이 아닌 '초록 대안'을 찾으려는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활동의 일부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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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다 죽을 수도!"...서울시내에서 공포체험

[체험기] 휠체어 타고 도심 돌아보니... 버스 이용은 '그림의 떡'

13.02.19 09:23l최종 업데이트 13.02.19 09:23l

 

 

3년 전 예상치 못한 사고로 다리를 다친 적이 있다. 2개월 정도 휠체어를 탄 후 목발을 짚고 다녀야 했다. 한 쪽다리에 깁스를 했을 뿐인데도 일상생활에서 겪는 불편함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특히나 버스와 지하철을 타는 것이 가장 어려웠다. 일시적인 불편도 이런데 장애인들은 어떨까. 직접 전동휠체어를 타고 대중교통을 이용해봤다. 휠체어 사용에 익숙해지기 위해 약2시간을 연습한 뒤 거리로 나섰다... <기자말>

직접 전동휠체어를 타고 거리로 나섰다. 촬영은 휠체어 대여센터 직원의 도움을 받았다.
ⓒ 유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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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 어떡해. 저거 고장났나봐."

옆에 서 있던 여자가 버스와 나를 번갈아 보며 말했다. 지난 13일 오후 5시경 서울 강남구청 앞. 간선 301번 버스를 타기 위해 정류장에서 기다리는 중이었다. 최종 목적지는 친구와 만나기로 한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다. 앞서 301번 버스가 도착했지만, 계단식으로 돼 있어 휠체어로는 이용할 수 없었다.

다시 5분을 기다리니 저상버스가 도착했다. 저상버스란 차체 바닥이 낮고 계단이 없는 버스로, 노인과 장애인 등 교통약자를 위해 2003년 도입된 버스다. 그런데 버스 뒷문 아래에 있는 슬로프(버스와 인도를 연결하는 경사판)가 고장이었다.

자동으로 나와야 할 슬로프가 꿈쩍도 하지 않는다. 몇 번 시도 해보던 버스기사는 급기야 차에서 내린 뒤 "미안하다"며 버스 화물칸을 열어 갈고리를 꺼냈다. 나오지 않는 슬로프를 버스기사가 갈고리로 힘을 줘 빼내서야 겨우 버스에 오를 수 있었다.

슬로프가 나오지 않자 버스기사가 수동으로 고치고 있다.
ⓒ 유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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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가 출발한 시간은 오후 5시 11분. 슬로프를 고치고 승차하는데 6분여가 걸렸다. 다시 차에 오른 기사는 큰 목소리로 승객들에게 "지체해서 죄송합니다"라고 말했다. 버스를 타느라 정신도 없었지만, 무사히 타고 난 후에도 뒷자리에 앉은 사람들을 쳐다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괜히 탔나'하는 생각과 함께 왠지 나 때문에 시간이 지체된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먼지 쌓인 장애인 전용 좌석..."장애인이 집에나 있지 무슨 민폐냐"

버스 뒷문 바로 옆, 일반 의자를 접고 노약자 탑승석에 자리를 잡았다. 의자 아래에는 휠체어를 고정시키는 안전장치 '체어락(Chair lock)'이 설치돼 있었다. 휠체어가 버스와 함께 흔들린 탓에 앞자리 승객이 일어나야 했다.

버스기사는 "이거(안전장치) 쓰는 사람이 별로 없어서…"라며 말끝을 흐렸다. 그리고 내게 양해를 구했다. 오래 사용하지 않은 듯 실제로 '장애인 전용'이라 붙은 스티커의 글자는 군데군데 떨어져 나갔고, 하차용 버튼 주위에는 눈으로 보일 만큼 뿌연 먼지가 쌓여 있었다.

버스 안의 장애인 전용 좌석은 오랫동안 쓰지 않은 듯해 보였다.
ⓒ 유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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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3호선 금호역 정거장에 도착했다. 버스기사가 슬로프를 다시 작동시키는데 이번엔 거리가 말썽이다. 슬로프는 인도와의 적정거리를 유지한 뒤 내려야만 안전한데, 인도와 너무 가깝게 내린 탓에 아스팔트와 부딪쳐 긁는 소리가 났다.

내려서 보니 버스 안 승객들이 이런 장면을 처음 보는 듯 신기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취재과정에서 만난 한 뇌병변1급 장애인은 "휠체어를 타고 버스를 탔는데 운전기사가 '장애인이 집에나 있지, 양심 없이 이게 무슨 민폐냐'고 한 적이 있다, 사람들 시선도 곱지 않아 그 후로 버스는 되도록 타지 않는다"고 말했다.

'빠지면 어떡하지?' 너무 넓은 승강장 사이 간격

승강장과 열차 사이의 거리가 넓을수록 노약자를 비롯한 장애인들에게 매우 위험하다. 사진은 3호선 충무로역.
ⓒ 유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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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역은 승강장과 열차 사이 간격이 넓으므로, 열차를 타고 내리실 때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온 지하철 안, 눈앞에서 두 대의 열차를 그냥 보냈다. 열차와 승강장 사이 거리가 생각보다 넓어 휠체어를 탄 채로 건너기가 두려웠기 때문이다. '휠체어가 승강장 사이에 빠지면 어떡하나, 기관사가 그걸 모르고 그대로 출발하지는 않을까' 하는 상상도 들었다.

승강장 사이 간격은 주로 승강장 형태가 곡선일 경우 넓다. 내가 타려는 3호선 금호역과 두 정거장 거리에 있는 충무로역의 승강장 틈새 간격을 확인한 결과 무려 19cm에 달하는 곳도 있었다.

작년 10월에는 서울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의 승강장 틈새로 6살 꼬마아이가 떨어져 머리를 다치기도 했다. 성북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활동하는 김정(35, 뇌병변장애1급)씨는 "지하철과 승강장 사이에 휠체어 바퀴가 빠져 아예 앞으로 고꾸라졌던 적도 있다"고 말했다.

세번째 도착한 지하철의 문이 열리자 심호흡을 한 뒤 리모컨 키를 앞으로 꺾었다. "쿵,쿵." 전동휠체어의 앞·뒷바퀴가 승강장 사이로 빠졌다 올라오며 큰 소음을 냈다. 몇 번 바퀴가 소리를 낸 뒤에야 지하철에 탈 수 있었다. 소리에 놀란 사람들이 쳐다봤지만, 내겐 휠체어가 위 아래로 흔들리며 허리에 가해진 아픔이 더 컸기 때문에 신경쓸 틈이 없었다.

스트레칭도 할 겸 허리를 양쪽으로 돌리니 "뚜둑"하며 관절 꺾이는 소리가 났다. 그런 내가 측은했는지 한 할머니가 말도 없이 다가와 아무렇게나 풀린 내 목도리를 정성껏 여며주기 시작했다. 호의는 고마웠지만, 한편으로는 동정받는 듯한 느낌도 들어 유쾌하지만은 않았다.

마주친 시선을 애써 피하는 사람들

휠체어를 타고 이동해보니 장애인을 대하는 사람들의 반응은 세 가지 정도였다. 무심하거나, 주시하거나, 모르는 척 하거나. 꼬마아이나 노인은 아예 대놓고 나를 뚫어져라 쳐다봤고, 그 외 다른 사람들은 평소처럼 무심하거나 그도 아니면 애써 시선을 피하고는 했다.

개인적으로는 세번째 반응이 가장 신경 쓰였다. 퇴근하는 직장인들은 나를 흘깃거리며 보고 있다가도 눈이 마주치면 안 보던 척 다른 곳으로 눈을 돌렸다. 내가 탄 휠체어를 가리키며 "저게 뭐야, 엄마?"하는 아이의 물음에, 아이 손을 잡고 일부러 걸음을 재촉하는 아주머니도 있었다. 차라리 일반인들처럼 자연스럽게 지나치는 것이 오히려 마음은 더 편했다.

지하철 내에서 눈이 마주친 사람들은 못 본 척 시선을 돌리곤 했다.
ⓒ 유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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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이 쉽지 않으리란 점은 어느 정도 예상했던 일이다. 하지만 '생리현상'이 문제가 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휠체어에 오래 앉아 있다 보니 소변이 마려웠는데 지하철에서는 장애인 화장실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분당선 강남구청역의 경우 화장실 내부에 장애인 전용 칸이 있었음에도, 외부에 '장애인화장실'이 있다는 표시를 해놓지 않아 한참을 찾아 헤매야 했다.

나중에 알아보니 이는 실제 장애인들도 겪고 있는 문제였다. 특히나 보조인의 도움 없이는 화장실 이용이 불가능한 장애인의 경우 더욱 그랬다. 성북 장애인 보장구센터의 이정진씨는 "같은 문제로 고민하는 장애인들을 여럿 봤다"며 "한 장애인(뇌병변) 형은 집 밖에 나오면 화장실 가야 할까봐 물이나 커피 같은 음료수 종류는 아예 입에 대지도 않더라"고 덧붙였다.

작년 5월 일부개정된 '장애인·노인·임산부등의편의증진보장에관한법률'에 따르면, 공공 지하철 내 장애인 화장실 설치는 의무일 뿐 아니라 남녀구분도 반드시 표시해야 한다. 하지만 지난해 남녀 구분이 없는 지하철 역사내 장애인 화장실은 약 30%에 달했다.

장애인으로 '살아본' 하루... 장애인에겐 평생의 고통

마침내 도착한 안국역. 날은 이미 어두워지고 있었다. 역에서부터 친구가 기다리고 있는 삼청동 카페에 가려면 성인 걸음으로 10여 분 정도를 더 이동해야 한다. 아직 눈이 녹지 않은 인도는 그대로 얼음이 얼어 휠체어로 지나가기가 더욱 어려웠다.

깨진 보도블록을 비롯해 인도가 끝나고 시작할 때마다 나오는 작은 턱들이 하나하나 다 장애물이었다. 인도에 눈을 쌓아놓거나 차를 주차해둔 경우도 많아서 하는 수 없이 차가 다니는 도로 가장자리로 지나가야만 했다. 삼청동에는 횡단보도에 신호등이 설치되지 않은 곳도 많았다. 휠체어에는 속도 제한이 있어 차와 마주쳐도 빨리 피하기가 어렵다. 쉴 새 없이 달리는 차를 피해, 요리조리 도로를 건너가는 사람들이 부러웠다.

무엇보다도 힘들었던 건 '경사진 인도'를 이용할 때였다. 전동휠체어의 브레이크로 조종 가능한 위아래(상-하) 경사보다는 양옆(오른쪽-왼쪽)으로 경사진 경우가 더욱 위험했다. 특히나 도로가 오른쪽으로 기울어 있어 휠체어와 몸도 오른쪽으로 기운 상태인데, 마침 그 쪽으로 차들이 쌩쌩 달리는 도로가 지나갈 때는 정말 생명의 위협을 느꼈다. 자꾸만 오른쪽으로 헛도는 바퀴 탓에, 자칫하다 앉은 채로 넘어져 차에 치이면 '끝장'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차라리 취재를 포기하고 일어서서 걸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삼청동 도로. 인도에 차가 주차돼있어 이동이 매우 어려웠다.
ⓒ 유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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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에 도착한 시간은 완전히 어두워진 오후 6시 45분경. 총 1시간 45분이 걸린 셈이다. 내가 출발한 분당선 강남구청 역부터 카페 옆의 삼청동 주민센터까지, 포털의 길찾기 서비스로는 최단 시간 '약 44분'이 걸린다는 결과가 나왔다.

하지만 휠체어로 탈 수 있는 저상버스가 없어서, 지하철 엘리베이터를 찾아 헤매느라 소요된 시간은 총 105분이었다. 일반인이 '44분'이면 올 거리를 휠체어로는 약 2배의 시간이 걸려서야 도착할 수 있었다.

하루 종일 휠체어에 앉아 장애인으로 지내본 하루. 내겐 '잠깐의 불편'이 누군가에겐 '평생의 고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국의 주요도시 중 서울은 그나마 장애인을 위한 편의시설이 잘 구비돼 있는 축에 속한다. 장애인들이 거리에서 잘 보이지 않는 이유는 이들이 없어서가 아니라 바깥으로 '못 나오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땅에서 장애인으로 살아가는 것은 아직도 여전히 '형벌'에 가까웠다.

장애인이 이용가능한 대중교통(저상버스, 지하철, 콜택시)의 현황과 문제점.
ⓒ 유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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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저상버스 노선이 적다는 지적에 서울시 버스정책과 김아무개 주무관은 "기본 9년인 (버스)차량 수명이 만료해야만 저상버스를 도입할 수 있다"며 "저상버스가 장애인들이 원하는 만큼 전 노선에 분포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서울시에서 관리하는 지하철의 경우 1~9호선에 위치한 292개 역 중 11개역은 여전히 엘리베이터가 없는 상황이다.

18일 현재, 장애인들은 5호선 광화문 역 내에 천막을 치고 '장애등급제 폐지' 등을 외치며 182일째 농성 중이다.

▲ 장애인단체, "활동보조인 없으며 죽게 됩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소속 회원들이 1월 1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한국금융연수원 내 마련된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장애인 권리 보장을 위해 장애등급제와 부양의무제 폐지를 요구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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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유성애 기자는 오마이뉴스 17기 인턴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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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정부 욕하던 MB, 청와대 자료 파기 지시


 

 

 


'채널A'는 단독이라면서 청와대가 자료파기를 시작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채널A는 청와대가 새 정부 출범 1주일을 앞두고 인수인계 작업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기록 삭제 작업을 지시했고, 무차별 자료 파기로 인수인계에 지장을 초래하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우리는 채널A와 똑같은 보도를 2008년에도 본 적이 있습니다.

 

 

▲노컷뉴스 2008년 기사.출처:한국일보 인터넷신문

 


당시 언론들은 참여정부가 청와대 자료를 상당 부분 파기했기 때문에 국정 운영에 차질을 빚고 있으며, 하드디스크까지 파기했기 때문에 이명박 정부가 취임 초부터 상당히 애를 먹고 있으며, 청와대 비서관들은 '분노'까지 하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2008년에 참여정부를 그토록 비난하고 '분노'까지 했던 이명박 정부 청와대 비서관들이 2013년에 왜 똑같은 일을 벌이고 있을까요? 과연 이들도 참여정부처럼 무엇인가 숨기고 박근혜 정부를 골탕먹이려고 하는 걸까요? 알쏭달쏭한 문제를 풀어보도록 하겠습니다.

■ 이명박 정부의 청와대 자료 파기는 합법적인 일입니다.

많은 사람이 오해하는 것이 청와대의 자료를 '파기'하는 일이 잘못된 일처럼 지적하고 있지만, 사실 새 대통령이 오기 전에 청와대의 자료는 청와대 운영 방침 매뉴얼 등의 일부 자료를 제외하고는 모두 파기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무조건 파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원본으로 지정된 파일과 문서,자료는 '국가기록원 대통령기록관'에 보관하고, 청와대에 있는 자료는 대부분 파기합니다.

 

대통령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

제1장 총칙
제1조(목적) 이 법은 대통령기록물의 보호·보존 및 활용 등 대통령기록물의 효율적 관리와 대통령기록관의 설치·운영에 관하여 필요한 사항을 정함으로써 국정운영의 투명성과 책임성을 높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제2조(정의) 이 법에서 사용하는 용어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개정 2010.2.4>
1. "대통령기록물"이란 대통령(「대한민국 헌법」 제71조에 따른 대통령권한대행과 「대한민국 헌법」 제67조 및 「공직선거법」 제187조에 따른 대통령당선인을 포함한다. 이하 같다)의 직무수행과 관련하여 다음 각 목의 기관이 생산·접수하여 보유하고 있는 기록물 및 물품을 말한다.
가. 대통령
나. 대통령의 보좌기관·자문기관 및 경호업무를 수행하는 기관
다. 「대통령직인수에 관한 법률」 제6조에 따른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이하 "대통령직인수기관"이라 한다)
1의2. 제1호의 기록물 및 물품이란 다음 각 목에 해당하는 것을 말한다.
가. 「공공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 제3조제2호에 따른 기록물(이하 "기록물"이라 한다)
나. 국가적 보존가치가 있는 대통령상징물(대통령을 상징하는 문양이 새겨진 물품 및 행정박물 등을 말한다. 이하 같다)
다. 대통령선물(「공직자윤리법」 제15조에 따른 선물을 말한다. 이하 같다)
2. "대통령기록관"이란 대통령기록물의 영구보존에 필요한 시설 및 장비와 이를 운영하기 위한 전문인력을 갖추고 대통령기록물을 영구적으로 관리하는 기관을 말한다.
3. "개인기록물"이란 대통령의 사적인 일기·일지 또는 개인의 정치활동과 관련된 기록물 등으로서 대통령의 직무와 관련되지 아니하거나 그 수행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 아니하는 대통령의 사적인 기록물을 말한다.
제3조(소유권) 대통령기록물의 소유권은 국가에 있으며, 국가는 대통령기록물을 이 법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관리하여야 한다. 제4조(다른 법률과의 관계) 대통령기록물의 관리에 관하여는 다른 법률에 우선하여 이 법을 적용하되, 이 법에 규정되지 아니한 사항에 관하여는 「공공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이하 "공공기록물관리법"이라 한다)을 적용한다.


'대통령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라서 청와대에 있는 모든 대통령 기록물은 대통령기록관으로 이전해야 하며, 청와대에는 대통령 기록물이 남아 있어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현재 이명박 정부가 진행하고 있는 청와대 자료 파기는 합법적인 일인 동시에 반드시 해야 할 일입니다.

문제는 과연 얼마나 많은 자료를 대통령기록관에 이전했는지를 따져야 할 일이지, 청와대 기록물 폐기가 아닙니다. 이명박 정부는 참여정부보다 훨씬 많은 일을 했습니다. 그렇다면 기록물은 더 많이 대통령기록관에 이전됐어야 하는데, 현재 상황으로는 참여정부 십 분의 일도 못 미치고 있습니다.

박근혜 정부는 청와대 폐기를 문제 삼지 말고, 왜 대통령기록관으로 이전하지 않고 있느냐를 점검해야 할 것입니다.


■ 국정 운영에 필요한 자료는 어떻게 봐야 하나요?

참여정부 다음에 청와대에 입성한 이명박 정부는 국정 운영에 필요한 자료가 없어서 일하지 못했다고 하는데, 이것은 순전히 법적 절차를 무시한 행동이자, 언론을 통해 참여정부를 왜곡한 사례입니다.

 

 

▲ 국가기록물은 공개여부에 따라 열람할 수 있으며 온라인 또는 문서로 구분하여 볼 수 있다. 화면캡쳐:국가기록원

 


청와대에 새로 들어온 비서관들이 필요한 자료가 있다면 국가기록원에 자료 열람을 신청하면 됩니다. 만약 공개해도 괜찮은 자료라면 당연히 전자문서로 열람할 수 있고,(현재 대통령기록관에서는 Open API를 활용해서 대통령기록포털을 검색할 수 있으며, 이것을 이용하려면 인증키를 발급받아야 한다.) 대통령기록물 법률에 따라 비공개(자료마다 비공개 기간이 다름) 기록물로 지정되면 열람할 수가 없습니다.

2008년 이명박 정부는 참여정부가 자료를 하나도 남겨두지 않고 갔다고 했지만, 이는 사실과 다릅니다. 참여정부는 분명히 이명박 정부가 청와대 운영에 필요한 매뉴얼 자료 6만여 건은 남겨두었고, 참여정부의 대통령 기록물만 복구,열람하지 않도록 삭제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2008년 2월 25일 청와대에 들어갔는데 컴퓨터가 작동하지 못해 열흘 후에야 겨우 컴퓨터를 작동했다고 행정안전부 업무 보고에서 말했습니다.

 

"청와대 들어간 저도 (2월)25일 저녁에 청와대 내에 컴퓨터가 작동하지 않았다. 컴퓨터를 다시 작동하는 데 열흘이 걸렸다.열흘이 지나도 정상적으로 컴퓨터가 작동하지 않았다"


그러나 사실 확인 결과 청와대 컴퓨터의 보안상 비밀번호를 입력해야 하는데 화면보호기만 작동하지 비밀번호 입력 창이 나오지 않아 이명박 대통령이 사용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CTRL+ALT+DEL키를 동시에 누르고 비밀번호를 입력해야 함)

결국, 이명박 정부는 자신들이 법적으로 정당하게 거쳐야 할 절차를 밟지도 않고, 청와대 컴퓨터 시스템을 대통령에게 교육하지도 않았으면서, 무조건 참여정부가 모든 자료를 파기했고, 협조하지 않아 취임 초기 청와대 운영에 어려웠다고 주장했었습니다.

앞으로 박근혜 정부가 취임해서 청와대 비서관들이 자료가 필요하다면 이들도 자료 열람 신청을 해서 보면 됩니다. 또다시 자료가 없어 일을 못한다는 핑계가 나오는 언론이 있다면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매번 나오는 기사를 그대로 베낀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 노무현 VS 이명박,'청와대 자료 유출' 사건


이명박 대통령은 취임 초기, 노무현 대통령이 청와대 서버와 하드디스크에 자료 원본을 담아 봉하마을로 가져갔다고 비난했습니다. 당시에 국민들은 노무현 대통령 측이 그토록 진실을 말해도 믿지 않고 오로지 조중동과 왜곡된 언론만 믿고 노무현 대통령을 죽일 놈으로 몰아세웠습니다. 간단하게 당시 논란을 정리해봤습니다.

 

 

 


이명박 정부는 노무현 대통령이 봉하마을로 하드디스크 원본을 가져왔다고 신랄하게 비판했습니다. 그러나 국가기록원에서 나중에 확인해줬듯이 전자문서는 원본,사본의 개념이 없습니다. 전자문서의 데이터를 신뢰할 수 있는 조치를 모두 취한 진본만이 있는 것입니다. 국가기록원은 청와대에 들어가서 이동식 저장 장치로 데이터를 복사하면서 국가기록원 절차에 따라 진본 확인을 했습니다.

봉하마을에 온 자료는 단순히 저장장치를 통해 복사해온 사본일 뿐 진본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이명박 정부는 하드디스크에 서버까지 봉하마을로 가져왔다는 왜곡을 했고, 제대로 컴퓨터를 아는 사람이라면 청와대의 주장이 얼마나 허구였는지 쉽게 알 수 있었습니다.

 

 

▲출처:참여정부 양정철 전 비서관 블로그.

 


여기서 쟁점이 되는 것은 과연 노무현 대통령이 대통령기록물 사본을 가진 것이 불법이나 아니냐가 아닙니다. 전임 대통령이 기록물 열람을 위한 조치를 후임 대통령에 해달라고 요청했으나 계속해주지 않아 사본을 들고 온 단순한 기싸움에 불과합니다.

 

제18조(전직 대통령에 의한 열람)
① 대통령기록관의 장은 제17조제4항에도 불구하고 전직 대통령이 재임 시 생산한 대통령기록물에 대하여 열람하려는 경우에는 열람에 필요한 편의를 제공하는 등 이에 적극 협조하여야 하며, 편의 제공에 관한 협의 진행상황 및 편의 제공의 내용 등을 문서로 기록하여 별도로 관리하여야 한다. <개정 2010.2.4>
② 제1항에 따른 열람을 위하여 전직 대통령은 「전직대통령 예우에 관한 법률」 제6조제1항에 따른 비서관 중 1명을 포함하여 필요한 범위에서 대리인을 지정할 수 있다. <신설 2010.2.4>
③ 대통령기록관의 장은 제1항에 따라 대통령지정기록물 및 비밀기록물을 제외한 기록물에 대하여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2조제1항제1호에 따른 정보통신망을 이용한 열람(이하 "온라인 열람"이라 한다)을 위한 편의를 제공할 수 있다. <신설 2010.2.4>
④ 제1항부터 제3항까지의 규정에 따른 전직 대통령과 대리인의 열람 방법·절차 및 온라인 열람에 대한 보안대책 등에 관하여 필요한 사항은 대통령령으로 정한다. <신설 2010.2.4>


'국가기록원 대통령기록관'과 '봉하마을'은 350킬로미터가 떨어져 있습니다. 만약 노무현 대통령이 회고록을 집필하기 위해 필요한 자료를 볼려면 4시간이상 차를 타고 대통령기록관으로 가야 합니다. 이런 문제 때문에 봉하마을은 전용선 내지는 전자 열람을 요청했고, 이명박 정부측은 반대한 것입니다.

사실 이 부분은 앞으로도 계속 논란이 될 것입니다. 만약 이명박 대통령이 퇴임 후에 회고록을 집필하려고 자신의 기록물을 열람하려면 논현동에서 성남까지 가야 하고, 국가기록원이 세종시로 이전하면 그때는 세종시까지 가야 합니다. 이처럼 대통령 기록물에 대한 열람은 앞으로도 전자시대에 맞춰 보안시스템을 구축해 새롭게 적용해야 할 것입니다.

■ 대통령 기록물 공개 VS 비공개

대통령의 기록물을 보유하고 있던 청와대의 자료 파기가 합당한 이유는 새 대통령이 전임자의 기록을 악용하거나 대외적인 국가의 안보와 외교를 고려해서 이루어지는 절차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대통령의 기록물을 무조건 후임 대통령이 공개할 수 있다면, 크나큰 문제가 발생할 수 있음은 당연합니다.[각주:1]

노무현 대통령의 기록물을 공개하자고 주장하는 사람을 보면 답답한 것이 왜 법이 대통령의 기록물을 법으로 몇십 년 동안 공개하지 못하게 했는지 그 의미조차 모르기 때문입니다.

 

 

▲역대 대통령기록물 보관현황, 노무현 대통령은 역대 최다 기록물을 남겼다. 출처:대통령기록관

 


노무현 대통령은 역대 대통령들의 기록물을 모두 합친 것보다 훨씬 많은 8백6십만 점의 대통령기록물을 대통령기록관에 남겼습니다. 만약 노무현 대통령이 자신에게 불리한 내용이 있다고 진짜 폐기했다면 저렇게 수백만 건의 기록물이 남겨질 수 없습니다.

기록물이 퇴임 이후 즉시 공개되면 대통령들은 무조건 자신에게 불리한 기록물은 남기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대통령 기록물을 기한을 정해 비공개로 처리하는 것입니다.

 

 

▲청와대가 왜곡보도한 참여정부 청와대 자료 폐기 기사.출처:조선일보.

 

조선일보를 비롯한 대다수 언론들은 법에 따라 열심히 일한 행동을 마치 위법을 저지른 것처럼 왜곡 보도하면서 참여정부를 괴롭혔습니다. 그들이 국민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은 법을 지킨 대통령에 관한 진실이 아니라 자신들의 편리에 맞춰 대통령을 위법자로 만든 조작이었습니다..

조중동이 지금 걱정해야 할 것은 청와대의 자료 파기가 아닙니다. 박근혜 정부에 필요한 청와대 인사 검증시스템은 청와대 매뉴얼에 다 있고, 그 업무를 담당해야 할 비서관들이 찾아서 하면 됩니다. 문제는 이명박 대통령이 과연 얼마나 많은 자료를 대통령기록관으로 이전했느냐입니다.

아마 15년 후, '아이엠피터'의 나이가 60이 가까워져 오면 참여정부의 10분1도 되지 않은 54만 건의 이명박 대통령 재임 기록물들이 슬슬 공개될 것입니다. 그때 언론이라는 이름으로 청와대 자료 유출 공방을 벌였던 자들과 함께 토론회를 해봤으면 합니다.

진실을 감춘 언론을 계속 믿는 자들이 존재하는 한, 진실의 역사는 자꾸 폐기돼
진실을 금방 알기 어렵습니다. 시간은 더딜 수 있지만, 그래도 진실은 결국 드러날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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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원 "북미관계 정상화.평화체제 협상 불가능"

 

"북, '핵보유 문턱' 넘었다"
박선원 "북미관계 정상화.평화체제 협상 불가능"
 
 
2013년 02월 18일 (월) 09:27:32 김치관 기자 ckkim@tongilnews.com
 

 

   
▲ 박선원 전 청와대 통일외교안보전략비서관은 16일 북한의 3차 핵실험 등에 대해 <통일뉴스>와 인터뷰를 가졌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북한의 핵개발 속도와 관련해서 한국, 미국 등이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사실은 단 하나였다. 늘 우리의 예측보다 빨랐다. 이것은 굉장히 중요한 포인트다.”

6자회담 한국측 대표로 유일하게 처음부터 끝까지 이 회담에 참여했던 박선원 전 청와대 통일외교안보전략비서관은 북한의 3차 핵실험이 “성공적”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박선원 전 비서관은 16일 <통일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북한의 이번 핵실험은 고농축 우라늄 15kg 정도를 이용했고, 리히터 지진계로 진도 5 수준으로 “폭발력이 히로시마에 떨어졌던 15킬로톤(kt) 정도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평가했다. 정부가 발표한 폭발력 규모 7kt 보다 2배 이상인 셈이다.

특히 6자회담이 한창이던 2005년을 기준으로 “우리는 북한이 ‘핵보유 문턱’(nuclear threshold)을 넘어설 시기를 2007년에서 2010년으로 봤다”며 구체적인 플루토늄과 우라늄 양의 추계치를 제시했다.

박 전 비서관의 추계에 따르면 북한은 플루토늄을 총 46~54kg 정도 가지고 있었고, 두 차례 핵실험으로 9kg을 사용해 37~45kg 정도가 남아있으며, 우라늄은 총 40~45kg 정도 보유하고 있고, 이번 3차 실험에 15kg을 사용해 25~30kg 정도 남아있다는 것.

따라서 플루토늄으로 7기 이상의 핵무기를 만들 수 있고, 우라늄으로 1.5기 정도의 핵무기를 만들 수 있어 8~10기 정도의 핵무기를 보유할 수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북한이 저렇게 강하게 나올 수 있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고 지적했다. “국제적으로 한자리수 후반대, 7~9기면 핵억제력이 확보된 것으로 본다”는 것이다.

특히 “북한은 지금 투발수단은 가지고 있는데, 아직 정확하게 미국 본토에서 원하는 타겟을 때릴 정밀한 공격용 운반수단까지는 안 가지고 있는 것”이라며 “북한은 자신들이 미국을 공격할 수단을 확보했다고 주장하면서 대화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고, 미국은 북한이 미국을 공격할 수는 있으나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지점은 절대 못 때린다고 보고 대화에 들어갈 수 있다”고 진단했다.

그렇지만 일반적으로 관측되는 북미관계 정상화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은 더욱 요원해졌다는 것이 박 전 비서관의 판단이다.

“국제제재를 받으며 잘못된 행동을 통해서 계속 저항을 뚫고 들어와 ‘진짜 핵국가’(real nuclear power)가 됐는데 그들을 평화협정과 평화체제 협상 대상으로 인정해버리면 앞으로의 미국의 비확산 질서라든지 대외관계는 다 깨진다”는 것이다.

결국 “지금은 북한이 미국과 관계에서 얻을 수 있는 최대치는 정치적 제도적 방식이 아닌 물리적 균형에 의한 평화공존(peaceful coexistence) 밖에 없다”는 진단이다.

또한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해 “참여정부는 북한 영변핵시설을 불능화시키고 농축우라늄 활동을 철저히 감시하도록 미 국무부 전문가들이 고려호텔에 상주할 수 있게 해서 정권을 넘겨주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2008년부터 북한 비핵화와 6자회담 진전을 가로막는 행동에 여념이 없었다. 한마디로 북한의 핵능력 증강을 막기 위한 어떠한 구체적인 노력도 기울이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나아가 박근혜 새 정부에 대해서도 “(대북) 수단은 별로 없고 북한도 박근혜 정부하고 대화를 조기에 틀 생각도 별로 없을 것”이라고 진단하고 “현재의 대립구도에서 한국이 고약한 상황에 빠져있다는 건 부인할 수 없다”고 말했다.

16일 오후 4시부터 인천광역시 송도동 자택에서 진행된 <통일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박 전 비서관은 참여정부 외교안보 분야 담당자이자 6자회담 대표로서의 풍부한 경험과 전략적 사고를 유감없이 풀어놓았다.

특히 9.19공동성명 합의 직후 북측 수석대표였던 김계관 외무성 부상과 북한-이란 커넥션에 대해 나눈 이야기나 부시 대통령 재선을 앞두고 백악관과 청와대가 북한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려한 사례 등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중요한 뒷이야기들은 자못 흥미롭다. 다음은 인터뷰 내용이다.

 

중국이 유엔안보리 제재 결의에 동참한 이유
 

   
▲ 박선원 전 비서관은 자택 서재에서 6자회담 대표 경험 등을 토대로 풍부하고 심도있게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사진 - 통일뉴스]
□ 통일뉴스 : 북한이 3차 핵실험을 단행했다. 북한은 이번 핵실험 배경으로 지난해 12월 북한의 인공위성 발사에 대한 유엔안보리의 제재 결의를 들었다. 일반적으로 중국이 유엔안보리 의장성명에 동의하는 선 정도로 그칠 것으로 봤는데, 제재 결의에 동참한 것을 어떻게 해석하나?

■ 박선원 전 비서관 : 국제규범 측면에서 핵무기비확산조약(NPT) 조성국가로서 배타적 지위를 미국과 함께 지켜나겠다는 공동의 이익이 중요한 이유이다. 여기에 출범한 지 얼마되지 않은 중국의 시진핑 정부가 미국 오바마 정부와 긴장관계를 해소하고 싶다는 의사표시가 더해졌다.

중국을 쭉 상대해 보면, 중국은 두 개의 전선론 같은 입장이 있다. 남방전역(Southern Theater)과 북방전역(Northen Theater)이다.

남방전역에서 도전은 대만 등 남중국해, 난사군도, 동지나해에서의 안정을 중국 주도로 이끌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 지역에서 미국이나 일본이 연합하여 자신들을 포위하고 압박하는데 대해서 어떤 식으로 대응할 것인가는 중국의 핵심적 이익과 직결된다.

북방전역에서 중국은 동북아 중에서도 특히, 주한미군이 주둔해 있는 한반도에서 미-북한 간의 갈등이 확산되어서 통제할 수 없는 상황으로 가는 것을 제일 두려워한다.

이처럼 중국은 늘 남방전역과 북방전역 두 개를 관리하면서 자국의 핵심이익 수호를 안보정책의 최우선 목표로 삼고 있다.

그런데 비중을 따진다면 대만 문제가 포함된 남방이익이 북방이익보다 크다. 북방문제는 외교적으로 통제 내지는 관리가 가능한 영역이라고 본다. 북한이나 한반도라고 하는 하나의 완충지대가 미국과의 사이에 존재하기 때문에 직접적인 위협은 안 된다. 안보상의 핵심 이익지대이기는 하지만 미국과 직접 물리적으로 부딪치는 곳은 아니다.

그러면 중국은 미국과 어떤 식으로 대화를 해갈 것인가? 2009년 오바마 정권 등장이후부터 미중전략경제대화(S&ED)라는 고위급 양자협의 틀을 제도화하긴 했지만, 그 이전에 미국과 중국 사이에 안보와 평화를 놓고 대화하는 틀은 6자회담이었다. 중국은 6자회담을 통해서 미국 부시 대통령의 일방주의를 상당히 제어해내고, 미국하고 대화의 통로를 개척했다고 생각한 것 같다. 실제로도 그랬다.

그런데 중국 입장에서 보면 2010년부터 센카쿠.댜오위다오 열도 문제, 남중국해의 난사군도 문제 등을 미국이 상당히 깊게 치고 들어온다. 아세안 국가들을 미국이 외교적으로 줄을 딱 세워버려 중국에서 이탈했다. 급기야 작년부터는 센카쿠.댜오위다오에서는 미국과 일본의 해군과 공군이 거의 초계활동을 같이 하다시피 하지 않는가?

중국은 일본을 거칠게 다루면서도 동시에 미국과의 직접 대화하고자 하는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이를 위해 중국은 남방전역이 아닌 북방전역에서 미국이 원하는 것을 들어주어야 했다. 미국의 요구를 들어주면서 중국의 관심사도 미국에 전달하려 한다.

과거 부시행정부 2기에는 남방전역에서 타이완 문제가 비교적 안정화되었고, 일본과 영토를 둘러싸고 큰 문제가 없었기 때문에 북핵문제를 매개로 6자회담이라는 다자외교의 장을 활용해서 중국이 미국과 양자차원의 안보대화를 하는 게 가능했다. 그러나 지금은 남방전역에서 갈등이 커지고 있기 때문에 미국과 긴장을 풀 수 있는 계기가 더욱 절실해졌다.

그래서 중국은 북방전역에서의 주요 의제인 북핵문제에 관해 미국이 원하는 데까지 상당히 따라 간다. 의장성명이라든지 안보리 결의까지 협조해주는 데 전혀 문제가 없다. 특히 자신들도 일정한 한계를 넘어서는 북한의 행동을 어느 정도 제어하고 싶은 욕구와 북한의 김정은 체제가 동요에 빠질 수 있는 직접적인 제재수단은 동원하지 않는 중간 정도에서 미국과 함께 북한에 압력을 가하는 것은 중국의 국익에 부합한다.

다시 말하자면 6자회담이라는 다자틀에서 미국이 요구하는 국제안보문제에서 책임을 지는 모습을 보이는 중국, 동북아 중추적인 행위자로서 자기 면모를 보여주는 계기가 바로 북한의 로켓발사라든지 핵실험에 대해서 미국의 요청을 능동적으로 수용하는 것이다.

2003년에는 미국이 아프간 침공에 이어 이라크 침공을 단행해야 했기 때문에 중국에 북한핵문제를 외주를 줬다 해서 ‘아웃소싱(outsourcing) 외교’라고 했는데, 지금은 미국이 중국에 아웃소싱한 점도 있지만 오히려 중국이 미국에게 ‘미국의 안보상 우려사항에 대해 대국으로서, 혹은 G-2로서 책임을 다하는 모습’을 자청해서 보여주려 한다.

시진핑 체제의 정비과정과 결합해서 보면 중국은 ‘북한 카드’를 써야만 하는 상황에 와 있다. 물론 직접적이고 물리적인 제재는 여전히 자신들이 할 일은 아니라고 판단하고 있다.

부시 대통령 재선 때도 북미간 협상 시도됐다

□ 북한이 인공위성 발사에 대한 유엔안보리 제재 결의에 반발해 3차 핵실험을 선택했다. 북한의 3차 핵실험 선택을 어떻게 평가하나?

■ 먼저 작년 12월 12일 로켓발사에 이르기 까지 미국과 북한의 외교게임을 먼저 짚어볼 필요가 있다. 북한은 지난해 4월에 로켓발사를 했다. 그 직전에 조셉 데트라니 팀이 북한에 갔고, 거기에는 데트라니의 오랜 세월 부관이었던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의 시드니 사일러가 포함돼 있었다.

한국 정부에서는 정보관련 방문(intelligence visit)이라고 했지만 사실은 비밀 단독회담을 하러 보낸 것이다. 당시 북한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고위직 인사는 데트라니가 거의 유일했다. 그리고 8월에 다시 방북했다. 시드니 사일러는 지난해 10월에도 한국에 왔다. 그래서 상당히 광범위하게 사람들을 만나고 갔다. 중국을 들렀는지, 아니면 평양을 비밀리에 방문했는지 확인은 안 되었다.

여하튼 4월과 8월 당시 북한은 ‘2.29 합의가 있긴 했지만 로켓발사는 평화적 우주이용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다. 유엔 제제로 몰고 가지 말고 눈감아 달라’고 했고. 미국 쪽에서는 ‘미국 대통령 선거 이전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로켓발사를 하지 말라’고 요청한 것으로 안다.

그런데 미국 대선기간 동안 북한의 행동 자제를 요청하는 움직임이 처음 있었던 일은 아니다. 2004년의 경우 ‘북한이 추가로 상황을 악화시키는 행동을 하지 않고, 부시 대통령이 재선되면 대화를 할 수 있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하자’는 논의가 한미 양 정부간에 있었다.

즉, 미국대표가 2004년 11월 미국 대선 전이나 직후 평양을 방문해서 ‘부시 2기 때는 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 대화를 하겠다. 6자회담에 속도를 내자. 북한도 이럴 준비를 해주기 바란다’ 이런 협의를 하면 어떻겠느냐고 우리가 제안했고, 미국 쪽도 괜찮다는 반응이었다.

긍정적으로 검토한 배경에는 북한이 판을 깨는 행동, 부시의 재선에서 북한 문제가 또다시 정치적 부담으로 작용하지 않도록 원하는 시그널이 있었다. 그런 것이 북측에도 간접적으로 전달됐을 것이라 생각한다.

□ 직접적으로는 전달되지 않았나?

■ 우리가 원했던 것은 미국 대표의 방북 협의였다. 미국 쪽에서는 협의 당사자는 의지가 있었지만 고위급에서 대선 이후 간접적인 의사전달 방식을 선호했다. 방북하려다 못한 것이다. 직접적으로 전달은 안 된 거다.

북한으로서는 대선에 부담을 주는 행위를 하지 않으면, 재선에 성공한 정권과 거래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판단할 수 있다. 그때는 부시 대통령이고 이번에는 오바마 대통령의 차이 뿐이다.

그래서 작년 4월과 8월, 북한은 ‘로켓발사를 국제적 불법행위로 인정하지 말아 달라’고 했는데, 미국에서는 ‘인정할 수 없다, 특히 대선 이전에는 발사하지 말아 달라’고 했을 것이다. 그래서 미국 대선이 끝나고 김정일 위원장 사망 1주기를 앞둔 12월 12일 발사했다.

북한은 미국 대선 기간에는 발사하지 않았다는 "약간의 근거 있는 기대"를, 미국이 보기에는 "용납할 수 없는 일방적인 기대"가 교차하면서 로켓발사가 이뤄졌다. 북한은 나름대로 IMO(국제해사기구)에 통보하고 항행금지구역을 선포하는 등 절차를 밟았고, 로켓을 발사해 과거와 달리 궤도진입에 성공했다. 그래서 자신들은 절차를 다 밟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데 북한은 일말의 기대가 있긴 했지만 역시 미국이 강하게 나올 것이라는 판단도 당연히 하게 되어 있다. 소위 국제규범에 따라 절차를 밟아서 로켓을 발사해도 미국은 제재 수순을 밟을 것이다. 유엔으로 또 끌고 갈 거다. 그렇게 경로를 예측했을 것이다.

어차피 미국이 제재로 나올 거라면 아예 처음부터 로켓발사 준비와 동시에 핵실험준비도 착수하는 건 하나의 정해진 경로라고 판단을 했을 것이다. 로켓발사한 다음에 미국이 중국과 함께 제재에 나서는 걸 보고 나서 핵실험을 결정한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오히려 연달아 해치움으로써 김정은의 평양정권은 시진핑, 박근혜, 오바마가 취임하기 전에, 물론 오바마 임기는 시작됐지만, 먼저 판을 주도해버리겠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서 핵무기와 그 운반수단이 모두 완성되었음을 확인시키고 핵보유 국가로서 다른 나라들을 상대하겠다는 입장을 이미 세우고 나온 거다. 일련의 계획대로 움직였다고 본다.

10년 만에 뒤바뀐 북-미간 핵협상 입지

□ 북한의 입장에서 3차 핵실험의 의미는 무엇이라고 보나?

■ 3차 핵실험을 한 것은 첫째로 미국으로 하여금 핵보유국 지위를 확실히 한다는 측면이 하나 있고, 두 번째는 핵보유국의 위상에 맞게 정책결정을 공개적이고 제도화된 외양을 갖추었음을 과시하고자 했다. 북한은 보여주고 싶다는 거 아니겠는가? 매우 공세적인 행보이다.

2003년 3월 초 탕자쉬엔 국무위원은 “김정일 위원장은 핵개발 의사가 전혀 없다. 원하는 것은 조미 간의 평화다. 그래서 직접대화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때만 해도 북한은 중국을 통해서 “당신과 대화하고 싶으니 나를 공격하거나 정권교체를 하려고 생각하지 말라”는 굉장히 수세적인 태도였다.

2003년 8월에 열린 제1차 6자회담에 김영일 외무부 부상이 나왔다. 김영일 부상이 회담장 구석에서 소위 ‘미북 접촉’을 할 때 거의 우는 소리로 “너하고 나하고 정식으로 회담하자. 우리를 존중해달라”며 부르르 떨었다. 제2차 6자회담에서는 김계관 부상이 나와서 “우리들이 원하는 것은 적대시정책의 철회이고, 미국과의 직접 협상이다”라고 했을 때 데이비 스트로브 국무부 과장은 나한테 “김계관의 목소리가 저렇게 처량하게 들리기는 생전 처음이다”고 그랬다. 스트로브 과장은 92,93년경부터 김계관을 봐왔었다.

그런데 그 김영일과 그 김계관이 이번 2013년 1월 27일 ‘국가안전 및 대외부문 일꾼협의회’, 이게 일종의 안보관계장관회의라고 볼 수 있는데, 이 회의에 당당하게 김정은 옆에 앉아 로켓발사 이후 국제제재에 맞서 핵실험할 지 여부를 논의하고 있지 않는가? 거기서 중국을 통해 미국의 선처를 호소하는 모습은 전혀 발견할 수 없지 않는가? 지난 10년간 그만큼 북한과 미국 간의 핵협상을 둘러싼 입지가 바뀌었다.

북한의 입장에서 보자면 중국의 역할은 없어진 거다. 부시행정부 내내 중국은 미국에게 “북한이 핵무기를 추구하지 않을 것이니까 동시행동의 원칙에 따라 협상하라”는 것이었다. 북한은 중국이 자신들의 의사를 미국에 전달해주고, 다른 한편 방파제가 되는 역할 원했었다. 그런데 이제는 미국과 북한 사이 중국의 역할은 거의 사라져가고 있다.

2006년 10월 북한이 최초 핵실험을 한 직후 미국은 북한을 잘못 길들였다. 2006년 7월 북한이 미사일 훈련을 했을 때 참여정부는 남북장관급회담에서 식량지원을 연기했고, 2006년 10월 9일 핵실험을 하자 식량과 비료지원을 중단했다. 그 직후에 있었던 한미정상회담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우리가 북한에게 가장 강력한 제재를 하고 있다”는 말도 했다.

반면 미국은 추가 제재가 아닌 협상의 길을 선택했다. 2006년 10월 말부터 미북 뉴욕채널이 재개되었고, 2006년 11월 30일부터 미북 양자접촉이 베이징에서 열렸다. 그때 북한은 ‘핵실험을 감행해도 압력을 가할 수 있는 나라는 남한 밖에 없더라. 미국은 아무런 제재도 못하고 제재수단도 없고, 오히려 대화를 요청했다. 중국은 그 대화를 주선했다. 그러니 강공으로 가서 우리들이 손해 볼 것이 없다’는 확신을 갖게 해 버렸다.

당시 나는 6자회담 재개를 희망하긴 했지만 그렇게 빨리 미국이 몸이 달아올라 서두를 지는 차마 예상하지 못했다. 오히려 대화라도 좀 늦게 했으면 모르는데... 이번에도 유엔제재가 두렵지 않고 자신들의 몸값은 올라갔다고 확신하는 것이다.

로켓발사와 핵실험에 성공했다고 자평함으로써 북한 정권이나 북한 지도체제는 김정일 사후 1년이 지난 오늘 정치적 동요보다는 오히려 이라크의 후세인이나 리비아의 카다피 같은 신세에 처하는 일은 확실히 없을 것이라는 자신감으로 무장하고 있을 것이다.

이처럼 대외적으로는 핵보유국으로서의 입지확보, 대내적으로는 김정일 이후의 정치체제에 대한 어떤 자신감과 안정감을 물리적으로 확보했다고 하는 것이다.

이러한 결정은 체계적이고 집단적이고 조직적으로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에, 제도화된 결정이다. 1차 핵실험은 김정일 개인의 결정이었다면, 이번에는 제도적 집단적 결정이기 때문에 함께 책임을 진다는 것이고, 동시에 김정은의 역할은 상대적으로 줄어든 것이다.

물론, 별도의 토론이 필요한 사인이지만 북한이 김일성, 김정일의 후광이 없어도 유지될 수 있다는 지배엘리트 사이의 부지불식간에 의식이 형성된다면 김씨 일가의 세습을 통한 정통성 확보가 기념은 해야 할 지 모르나 체제유지에 필수적인 요소로서 상징성은 약해질 수 있다. 이는 장래 북한에 대한 예측에 다양한 함의를 갖는다. 아마도 김정은을 제외한 원로급 정챡결정자들은 이런 점도 고려했을 것이라고 본다.

3차 핵실험, 진도 5, 폭발력 15kt으로 “성공적”

□ 3차 핵실험에 대한 기술적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폭발력의 규모, 핵물질의 종류, 소형화.경량화 여부 등이 논란거리다.

■ 일단 북측에서는 소형화, 경량화, 다종화에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소형화라고 하는 것은 운반체에 실을 수 있다는 것이고, 경량화라고 하는 것은 더 적은 핵물질을 사용해서 자신들의 기대수준의 폭발력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다종화라고 하는 것은 어떤 식으로든 우라늄이 중심이 된 핵실험이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을 믿을 거냐 말거냐의 문제가 있다. 첫 번째, “일단은 성공했느냐?”라고 했을 때 폭발력 기준은 리히터 지진계로 4.9~5.1이 나왔는데 진도 5정도 나왔다고 한다면 성공적인 핵실험이라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진도 5 정도면 폭발력이 히로시마에 떨어졌던 15킬로톤(kt) 정도로 보는 것이 합리적일 수 있다. 대체로 우리가 판단할 때 리히터 지진계에서 나타나는 진도라고 하는 것은 폭발력을 기하급수적으로 반영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 이명박 정부 발표의 두 배 이상이다.

북한의 핵개발 속도는 늘 우리의 예측보다 빨랐다

□ 폭발물 양은 어느 정도로 추산되나?

■ 먼저 한 가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있다. 북한의 핵개발 속도와 관련해서 한국, 미국 등이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사실은 단 하나였다. 늘 우리의 예측보다 빨랐다. 이것은 굉장히 중요한 포인트다.

1992,93년 핵위기로 갔을 때 북측이 제시한 신고에는 수 그램 단위에 불과했다. 그런데 실제로 특별사찰에서 IAEA(국제원자력기구) 기술자들, 미국 기술자 전문가들, 미 CIA(미중앙정보국) 등이 판단한 것은 8~12kg이었다. 훨씬 많은 핵물질을 이미 확보해놓은 것이다.

2003년 참여정부 출범 직후 미 CIA 전문가들이 와서 설명할 때 한두 개의 핵폭탄을 만들 수 있는 핵물질을 이미 확보해놨다고 했다. 2002년 10월 켈리 방북시 우라늄 관련 시비가 있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2003년 CIA 브리핑 때 우라늄에 대해서도 어느 시기를 특정하면서 무기급 고농축 우라늄 추출이 가능할 수 있다는 전망치까지 나왔다.

2002년 12월에 IAEA 사찰관을 영변 핵시설에서 철수시킨 뒤 2003년 4월 베이징에서 열린 미-북-중 3자회담에서 리근 북한 외무성 대표는 “재처리를 완료했고 핵물질을 확보했으며 핵무기 수를 늘릴 지 말지는 미국에 달려 있다”고 제임스 켈리 대표에게 통보했다. 켈리는 “또 나에게 공갈친다”고 불쾌해 했다. 리처드 롤리스를 비롯해서 미 국방 당국자, 미 CIA 등은 그렇게 단시간내에 재처리는 불가능하다고 했다.

그러나 북한은 2003년 6월초에 재처리를 완료했고, 6월말 7월초에 미국에게 재처리를 완료했다고 통보했다. 우리는 미국에게 핵협상을 시작하자고 채근했고, 미국 당국자들은 북한 주장을 “뻥(bluffing)”이라고 했다. 잘 해봐야 폐연료봉을 수십 다발 몰래 숨겨나가서 제3의 장소에서, 실험실 수준에서 했겠지 했다. 그런데 2006년 1월에 해커 박사와 루이스 교수, 프랭크 자누치, 리처드 루가 상원의원의 보좌관인 키스 루스 등이 방북해 확인했다.

내가 프랭크 자누치를 만났는데 “재처리를 확실히 했다. 수조가 텅 비어 있고 깨끗했다. 해커 박사에 의하면 플루토늄을 담아 둔 용기 표면을 직접 만져봤는 데 따뜻했고 가이거 계수 측정기로 방사능이 측정되었다”고 설명해주었다.

2005년 북한이 ‘핵무기보유 선언’을 하며 ‘벼랑끝 전술’에 들어가자 북한이 핵실험을 할지도 모른다는 판단에 따라 2005년 여름부터 대비했다. 북한이 핵실험 할 경우 한미가 어떻게 협력할 것인가를 의논했다. 실제 핵실험은 2006년 10월이었다.

나는 북핵 6자회담을 실무적으로 운영하는 대책을 주도하는 한편, 북핵기술자문단도 처음부터 운영하였다. 그때 우리는 북한의 무기급 플루토늄 총량을 46~54kg으로 추정했다. 1차 핵실험 때 6kg 이상을 썼을 거라고 판단했다. 실제로 2007년 말에 미북, 남북 비공식 협의를 할 때와 2008년 6월에 북한이 미국 측에 신고할 때, 총 30여 킬로그램 가운데 3~3.5kg을 썼다고 했다.

중국에 핵실험을 통보할 때 6kg을 이용하여 4kt의 폭발력을 낼 계획이라고 했는데 실제론 1kt 정도에 그쳤다. 3~3.5kg 밖에 안 썼겠느냐는 의심을 하지만 그랬을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든다.

전체적으로 돌이켜 보면 북한의 핵능력은 계속 외부, 특히 미국의 평가보다 빠른 속도로 증대됐다. 북한은 계속 “갈수록 우리 핵능력은 늘어난다. 시간은 누구의 편도 아니다. 대화를 해도 너희의 결정이고, 대화를 하지 않아도 너희가 책임지라”고 큰소리 쳤다.

참여정부 기간 동안 북핵문제 해결을 위해 다자든 양자든 협상에 가속도를 내야 한다고 그토록 목청을 높인 이유였다. 2003,4년 내 개인 판단으로는 북한이 100여차례를 훨씬 넘는 고폭실험의 이력을 보면 2007~2010년 사이에 탄두 무게를 1000kg 이하로 줄이는 소형화를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봤다. 지금 기억으로 2005~2007년 사이 국회 국방위에서 소형화를 언제 달성할 것으로 보느냐는 예상 질문에 국방부와 협의하여 2010년 정도로 예상한다는 초안을 작성하곤 했었다.

우라늄농축과 관련하여 얘기한다면, 2004년 독일에서 중국을 통해 반입하려던 고강도알루미늄 튜브는 미국이 차단했는데, 그 즈음 러시아를 통해서 밀수해 들어간 6천톤은 차단하지 못했다. 6천톤의 고강도알루미늄 튜브를 사용해서 성공적으로 원심분리기를 가동한다면 60kg의 무기급 고농축 우라늄235라는 핵물질이 나온다. 그 소요시간은 우리가 감시하지 못 한다면 3~5년 정도로 추산했다. 당시에 2008~2010년 사이로 본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북한이 ‘핵보유 문턱’(nuclear threshold)을 넘어설 시기를 2007년에서 2010년으로 봤다. 이런 판단의 기준은 전부 내가 6자회담 실무자로 중심적으로 뛰었던 2005년 기준이다.

2007~2010년이 북한이 핵무장으로 가는 핵문턱을 넘느냐 못넘느냐는 민감한 시기로 봤었다. 참여정부는 북한 영변핵시설을 불능화시키고 농축우라늄 활동을 철저히 감시하도록 미 국무부 전문가들이 고려호텔에 상주할 수 있게 해서 정권을 넘겨주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2008년부터 북한 비핵화와 6자회담 진전을 가로막는 행동에 여념이 없었다. 한마디로 북한의 핵능력 증강을 막기 위한 어떠한 구체적인 노력도 기울이지 않았다. 오바마 정권도 마찬가지였다. 북한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플루토늄 37~45kg, 우라늄 25~30kg, 핵억지력 보유

□ 북한이 예상보다 빠르게 핵개발을 추진했고, 현재 핵물질 보유량도 상당하다는 평가인데, 그렇다면 북한의 핵무기 능력을 어떻게 평가해야 하나?

■ 먼저 핵물질을 보면, 플루토늄은 46~54kg 정도 가지고 있었고, 플루토늄을 이용해서 두 번 핵실험을 했다. 6kg을 사용해야 핵폴발 임계치에 충분히 도달할 수 있다고는 하지만 그것은 1945년 기술 수준을 기준으로 한 것이다. 최근 교과서에는 한번 실험에 3~6kg을 사용한다고 되어 있다. 그들은 핵물질 양이 많지 않기 때문에 많이 쓰지 않는데, 3~6kg 중간인 4.5kg를 썼다고 가정하면, 9kg을 사용해서 37~45kg 정도가 남는다.

그리고 우라늄은 P1이든 P2든 해커 박사가 2010년 11월 영변에 가서 목격 당시로부터 만 2년이 더 지났다. 이번 핵실험에 우라늄을 썼다면 적어도 두 개 이상의 핵무기를 만들 분량을 확보한 뒤 시도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라늄은 40~45kg이 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고 그중 이번 실험에 15kg 정도 썼을 것이다. 1945년 기준이 우라늄핵무기 1기에 20kg 정도이고 지금은 덜 쓴다. 약 15kg 정도 썼을 것으로 보면 25~30kg 정도 갖고 있다고 추정할 수 있다.

□ 고강도 알루미늄 튜브 6천톤이면 60kg까지 생산할 수 있지 않나?

■ 6천톤을 들여와 원심분리기 6천기를 만들어서 60kg를 생산할 수 있다. 만약에 고강도 알루미늄 튜브를 6천 톤 외에 또 확보했다면 그건 추측하기 어렵다.

내가 추산한 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러시아를 거쳐서 들여온 것이 6천톤이었기 때문에, 그걸 다 사용했겠느냐는 것이다. 2천기씩 3군데에서 동시에 돌려야 하는데 해커는 영변에 가서 봤는데 그 공장은 안 돌리고 있었다. 영변 한 세트는 계속 안 돌렸을 가능성이 더 높다. 보여줄 수도 있고 협상용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교실 두 칸 정도의 공간만 있으면 되니까 별도의 두 군데에서 돌려 약 40kg을 농축했을 것으로 본다.

고폭시험은 이후에도 계속했을 것이다. 그것은 어려운 게 아니다.

□ 요약하면 진도 5정도 규모의 15kt 폭발력이고 고농축우라늄을 이용한 핵실험일 가능성 높다는 것인데, 왜 우라늄으로 추정하나?

■ 왜냐면 2차례 실시한 플루토늄 실험 데이터를 가지면 모의시험, 즉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을 할 수 있기 때문에 플루토늄만 가지고 3번을 실험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플루토늄은 더 생산할 수 없다는 약점이 있으니 그냥 핵기폭장치에 담아두는 게 낫다고 판단하는 게 논리적이다.

우라늄은 고강도 알루미늄 튜브만 확보해 놓으면 나머지 부품은 부피가 크지 않기 때문에 밀수를 많이 했을 것이다. 물론 자체 개발도 하고. 그래서 그쪽으로 계속 숫자를 늘려갈 여지가 있다.

종합해서 보면, 우라늄으로 1.5개 정도, 플루토늄을 4kg정도만 써도 된다고 하지만 4.5~5kg을 사용하다고 잡아도 7개 정도의 핵무기를 만들 수 있다. 도합 8~10개 정도가 있는데, 북한이 저렇게 강하게 나올 수 있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국제적으로 한자리수 후반대, 7~9기면 핵억제력이 확보된 것으로 본다. 1차 공격 능력이 있고, 그에 따른 공격을 받고 한 번 더 때리고, 이를 2차공격력, 영어로는 second strike capability라고 하는데, 또 한 번 공격받고 다시 한 번 더 때리는, 3번 공격해야 상대방이 겁을 먹고 공격을 안 한다. 핵보유국가끼리 3차 타격 능력을 가질 때 핵억제력이 확보되는 것이다.

거기에 더해 국방부에서도 밝힌 것이지만, 걱정되는 것은 핵부산물로 더티 밤(dirty bomb)이 나올 수 있고, 열화우라늄탄도 있다. 더티 밤은 질이 낮은 핵물질 부산물과 일반 고폭화약을 섞어서 포탄으로 만들어 대포로 쏘든 항공기를 이용해 투하할 수 있다. 재래식 무기에서는 관통력을 높이기 위한 열화우라늄탄으로 연결된다.

또 배치까지 예상해 보면, 더티 밤과 열화우라늄탄과 2,3기의 핵무기 배치까지 상정을 한다면 북한이 앞으로도 계속해서 강하게 나올 가능성이 높다. 이제 겁나는 게 없는 거다.

이런 상황까지 오게 한 것은 지난 5년 동안 북한을 잘못 다뤄왔기 때문이다. 잘못 다뤄온 이유는 첫 번째는 “김정일과 협상을 하면 손해를 본다. 성과 낼 수 없다”고 하는 전혀 경험도 없는 사람들의 잘못된 전제, 두 번째는 “북한 곧 망한다. 망할 국가와 협상 할 필요 없다”, 세 번째는 “김정일과는 협상이 안 되기 때문에 정권교체(regime change)를 정책목표로 삼아야 한다”, 그런데 이 3가지가 다 틀린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미국이 6자회담을 하려고 하면 제동을 걸었다. 보즈워스가 강석주와 만나고 오면 그 다음 진행을 못하게 한다든지, 클린턴이 갔을 때도 여기자 문제만 해결해 와야 된다는 요구를 한다든지, 2010년 2월말에도 계속 딴지를 걸었다.

전략적으로 인내하자는 건지, 인내하는 것을 전략적으로 선택하자는 건지 잘 모르겠지만, 소위 ‘전략적 인내’라는 말을 고안해낸 사람들이 현재의 북한 핵문제를 키워버린 원흉이라고 생각한다.

이명박 대통령이 어제도 북한의 ‘레짐 체인지’를 말했는데, 결국 그런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에 안 된다. 지금도 레짐 체인지를 어떻게 하나? 할 수 있는 게 풍선 보내는 것 밖에 없는데, 풍선으로 레짐 체인지된 나라가 있나?

해상검역, 항공통제, 그리고 유로화 규제

□ 당분간 국제사회의 강력한 제재와 북한의 강력한 반발이 예상된다. 이같은 ‘강 대 강’ 구도가 계속될 것인가? 미국과 한국이 취할 수 있는 대북정책은 없는가?

■ 북한은 자신들이 공표한 행위를 계속 할 것이다. 문제는 미국 등의 제재 효과다.

강화된 내용의 제재 결의가 채택될 것이다. 하지만 해상봉쇄는 못할 거고, 해상의 검역은 강화할 텐데, 누가 하느냐 문제이다. 2002년 11월 서산호 사건처럼 스페인이 나서고 영국군이 나설 리는 없고, 중동 해역까지 가면 효과적인 검역이나 나포가 안될 수 있으니 해상 감시와 검역을 한미일이 주도하기 위해 동북아 연안으로 당겨야 하는데 그것이 과연 얼마나 북한을 고통스럽게 할 수 있을 지 미지수이다.

물론 이렇게 하면 북한은 해상 군사봉쇄라고 반발할 공산이 크다. 그물을 넓게 펴자니 효과가 떨어지고 좁고 촘촘하게 펴자니 북한이 반발할 수 있어 고민이 되긴 하겠지만 어쨌든 할 수 밖에 없다.

그 다음에 공역검색, 항공통제를 해야 하는데, 이란과의 협력이 가장 의심스럽고 중요한 것 이다. 참고로 이란 비행기가 1999년부터 2003년까지 8,9회 정도 북한을 왔다갔다 했었고, 칸 박사도 한두 번 왔다갔다 했다. 미사일 협력은 확실하게 있었고, 핵협력도 2004, 2005, 2006년 이후 확실히 있었던 것 같다.

내가 2005년 9.19 공동성명을 채택한 뒤 조어대 회담장에서 김계관 부상한테 “남북관계와 미북관계를 개선하는 대신 더 이상 이란과의 거래는 중단하는 것이 맞지 않느냐”라고 했을 때 “이란과의 관계는 너무 중요해서 내가 판단할 수 없다. 이란과의 관계를 끊을 수 없다”고 이야기했다. 아마 이란과 북한의 관계를 물어 본 것도 처음이고 답변도 처음이자 마지막일 것이다.

어쨌든 항공통제를 해야 하는데 민간 항공기로 다닐 경우에 방법이 있겠는가. 어디선가 북한으로 들어가는 이란의 항공기를 검색해야 되는데, 서산호 사건처럼 아무것도 안 나왔을 때 뭐라고 할 건가? 그런 부담이 있다.

내 생각으로는 미국이 해상감시는 확산을 막기 위해 아무것도 안 나와도 계속한다. 항공통제는 확실한 정보가 있을 때 할 건데, 제3국의 공항을 이용해야 한다든지, 민간항공기를 검색해야 한다든지 상당한 부담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재 테이블에 포함되어 있다고 본다.

북한 내부에서 핵능력이 강화되는 수직적인 확산, 북한 핵능력이 이란 등으로 퍼져 나가는 수평적인 핵확산, 그 두 가지 다 핵확산이라고 하는데, 해상 검색강화나 공역검색을 통해서 핵확산을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물론 뭐라도 해야 하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하기는 할 것이다.

□ 중국이 협조하지 않으면 항공통제가 가능하나? 금융제재가 더 효과적이라는 관측도 있다.

■ 우즈베키스탄, 파키스탄, 타자흐스탄, 키르키즈스탄 이런 데에 미국의 군사기지들이 많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거기를 이용하면 할 수 있다. 북한과 이란이 이용할 수 있는 공역, 항로가 별로 없다. 미국의 중앙아시아 군사기지 배치 현황을 보면 할 것 같다.

다음으로 국제금융망 제재는 반드시 당장이라도 실시할 것이다. BDA(방코델타아시아) 그 뒤에도 풀어준 적이 없고 지금도 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을 유로화까지 넓힐 것이냐가 관건이다.

BDA 당시에는 미국 달러화를 미국 FRB(연방준비은행)에서 결제할 때 다 통제하니까 고통을 주었다. 여기에 중국 인민폐는 추가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EU의 유로화까지 한다면 북한에게 상당한 고통이 될 거다. BDA 사건 이후 북한이 유로화의 비중을 많이 늘렸기 때문이다.

요악하면 해상검색을 강화해서 실제로 검문검색을 하고, 항공통제도 하고, 달러의 국제적 결제수단은 이미 안 쓰고 있겠지만 그것도 하고 유로화까지 추가한다면 북한에게 상당한 타격이 될 거다.

중국은 인민폐 제재는 안하겠지만 북한과 유로 내지 달러화가 거래되는 자국 은행의 정보를 미국에게 준다면 압력이 된다. 중국의 금융체제에서 돈세탁이라든지 국제기준에서의 투명성 부족이 있기 때문에 그걸 미국이 카드로 쓸 수 있다. 중국은 어느 정도 시늉을 할 수 밖에 없다.

따라서 중국이 부분적으로 협조할 것으로 본다. 인민폐나 유로화는 안하지만, 달러화 북중 간 거래는 그 정보를 미국에게 줄 수밖에 없을 것이다. 홍콩, 마카오도 포함해서.

그렇게 나올 것에 대비해 북한은 현재의 강력한 돌파를 최단시일 내에 끝내려고 하지 않겠느냐고 본다. 그렇다면 추가 로켓발사, 그리고 한 번 더 추가 핵실험이 있을 수 있다.

추가 핵실험은 이미 준비는 해놓고 있지만 당장은 안한다고 본다. 실제 핵물질을 담고 있는 핵기폭장치는 그렇게 크지 않다. 그래서 다른 준비는 다 해놓고 기폭장치는 핵시험장 부근이나 제3의 장소에 보관해 긴장을 유지하고 로켓은 발사하는 것이다.

로켓은 확실하게 발사하고 4차, 5차 핵실험 카드는 열어둔 채로 상황을 조기 종료하기를 원하지 않겠느냐.

한국정부, “아픈 수단이 없다”

□ 미국 정부와 한국 정부의 대응 전망은?

■ 북한의 사회경제적 상황을 정확하게 잘 모른다는 데서 관측에는 한계가 많이 있다. 어떤 보도는 북한이 작년에 기후가 좋지 않았지만 평년작 이상의 가을걷이를 했다고 이야기 한다. 그래서 식량이 부족하지만 오히려 배급량을 조금 늘렸다는 보도가 있다.

알렉산더 만슬로프가 <38North>에 기고한 글을 보면 김정은의 1년이 생각보다 괜찮았다. 사회적으로 밝아졌고 정치적으로 안정화 됐고, 하다못해 올림픽 금메달도 많이 땄고, 식량난이 완화됐다는 것이다. 식량제공을 포함한 ‘2.29합의’ 이후에도 평양이 미국과 대화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점 등을 보면 체제가 흔들릴 정도의 식량난은 없다.

물론 경제적인 어려움은 늘 상존하지만, 체제가 흔들릴 정도의 심각한 식량난이 없다면 남북관계에서 식량과 비료를 얻기 위해서 대화를 요청할 것인가? 당장은 안할 거다. 박근혜 정부의 대북 수단이 별로 없다는 의미가 된다. 주는 게 있어서 끊든지 새롭게 주겠다고 해야 하는데, 새롭게 받겠다고 저쪽에서 구걸하지는 않을 거다.

북한 입장에서 차라리 상황을 풀려면 중국에게 부탁하고 중국한테 지원을 받고 풀지 ‘한국 한테 지원을 받고 미국한테 용서받는 형태’로는 안할 거다. ‘중국한테 지원을 받고 미국과 다리를 놔달라고 요청’할 수는 있다. 그래서 한국 정부로서는 제재와 압박을 밀고 나가기는 하되 그렇게 아픈 수단은 없다.

그런데 우리 한국에 제일 약한 고리는 북한이 핵무기 사용을 거론하면서 위협을 가할 때 대응 수단과 대응 의지이다. 해외자금의 북한 유입을 통제한다든지 해상검색을 한다든지 국제공역에서의 통제를 할 경우 한국이 미국에게 기여할 일도 별로 없다. 다시 말해서 그만큼 변수가 안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계속 핵무기에 의존해서 우리에게 부분적인 국지도발을 할 수 있다는 카드로 해서 한반도의 안정을 흔들어놓는 것은 계속할 거다. 그렇지만 박근혜 정부의 수단은 별로 없고 북한도 박근혜 정부하고 대화를 조기에 틀 생각도 별로 없을 것이다. 물론 북한의 핵무기 사용 운운에 대해 겁을 먹어선 안 된다. 북한은 결코 핵무기를 쓸 수 없다.

그러나 현재의 대립구도에서 한국이 고약한 상황에 빠져있다는 건 부인할 수 없다. 침로는 결국 미국이다. 미국이 키를 쥐고 있다. 미국은 중국의 조언을 받아들일 거다. 중국은 미국이 요청하는 것을 다 받아들여줬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하지만 중국도 미국의 심부름꾼에 머물러 있진 않을 것이다.

중국은 미국에 대해서 양자접촉을 요구하고 그 양자접촉에서 미국은 이미 다 깨진 것이지만 2.29합의를 존중하겠다고 천명하고, 물론 제재기간 중에 식량공급은 하지 않는다는 걸 전제로 북한이 2.29합의 이행 의사를 재확인해주면 고위급 접촉으로 들어갈 수 있어야 한다고 요청할 수 있다.

중국의 이 같은 요청 혹은 제안에 미국이 응할 것인가? 나는 존 케리 국무장관과 웬디 셔먼 국무부 정무차관 지명자가 응할 거라고 본다. 존 케리와 웬디 셔먼은 NPT(핵무기비확산조약) 체제의 공고화를 위해 대화 틀 안에 이란과 북한을 묶어놓을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오바마를 설득, 중국과 협조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 거다.

웬디 셔먼은 커트 컴벨 차관보라든지 이런 친구들 때문에 자기의 발언을 행사할 기회가 없었다. 그런데 부시 1기보다 2기가 대화에 적극적이었던 것처럼 이제 이 문제를 협상을 통해서 틀고 갈 수 밖에 없다.

미국으로서는 그 정당화 논리를 ‘대륙간탄도미사일, ICBM 능력만은 허용해서는 안 된다’에 맞출 것이다. 핵은 전 세계 비확산 질서에 해당하는 것이고 ICBM은 북한의 대미 위협이라는 측면에서 볼 수밖에 없기 때문에 북한의 대미위협이 커져 나가는 것은 절대 두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협상 접점은 투발수단과 운반체의 틈새

□ 인공위성 발사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데, 로켓발사 모라토리움(유예선언)이나 인공위성 발사대행 방식도 가능한가?

■ 지극히 역설적이며 동시에 논쟁적인 주장이 되겠지만 ‘매직 솔루션’(해결책)은 북한이 위성발사에 성공해주는 거다. 그러면 핵문제도 평화적 핵이용 권리는 허용하는 쪽으로, 로켓이나 미사일 부분도 평화적인 우주공간의 이용은 허용하고 나머지 무기부분은 허용하지 않는 쪽으로, 그래서 평화적 부분과 군사적 부분을 분리해서 대처하는 쪽으로 서로 체면치레를 할 수 있는 ‘창조적인 모호성’의 여지가 생길 수 있다. 그렇다고 내가 북한의 위성발사 성공을 바란다는 뜻은 아니다.

북한으로서는 오히려 현재의 긴장을 조기에 수습하기 위해서도 로켓 발사를 빨리해서 성공하려하고, 그래서 그걸 들고 워싱턴 가는 문을 두드리려 하지 않겠느냐 관측한다.

핵은 미국한테 위협이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물론 한국하고 일본한테 위협이 되지만. 북한이 핵의 소형화 경량화에 성공했다면 투발수단(launching vehicle)은 정확한 표현이 아니고 운반체(delivery means) 문제가 핵심이다.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지점에 떨어뜨려야 되기 때문이다. 그냥 던져놓고 아무데나 터지면 되는 것이 아니다.

북한은 지금 투발수단은 가지고 있는데, 아직 정확하게 미국 본토에서 원하는 타겟을 때릴 정밀한 공격용 운반수단까지는 안 가지고 있는 것이다.

□ 미국 본토가 사거리에는 들지만 정확한 타격력은 아직 갖추지 못했다는 뜻인가?

■ 그렇다. 1만km 투발수단은 다 된 것이기 때문에 미국 동부 뉴욕이라도 도달할 수 있다.그런데 어떤 면에서 핵무기가 사실 별거 아닐 수 있다. 미국 같이 큰 나라에서 사람이 안 사는데 떨어지면 아무 문제가 없다. 네바다 사막에 떨어지거나 텍사스 사막 위에 떨어지면 어디다 쓰겠느냐.

미국이 보복할 때 핵무기 두세기 만 동원해서 때리겠나? 라이스가 2006년 10월 하순에 청와대에 와서 그랬다. “지도에서 없애버리겠다”고 했다. 진짜 그렇게 할 거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미국의 안보위협을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국과 북한 사이에 ‘미팅 포인트’(접점)가 생기는 거다. 미국이 보기에는 투발수단은 있는데 정확한 운반수단은 없다고 보는 거다. 그러니까 발사용 로켓(launching vehicle)은 있는데 전달기술(delivery means)은 없고, 그 사이에 정밀도와 기술력의 벽이 있다. 위성을 쏜다는 것은 투발수단이다. 궤도까지 위성을 던져놓고 로켓은 사라지는 거다. 그러면 미국에 대해 위협이 안 된다.

그러니까 북한은 자신들이 미국을 공격할 수단을 확보했다고 주장하면서 대화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고, 미국은 북한이 미국을 공격할 수는 있으나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지점은 절대 못 때린다고 보고 대화에 들어갈 수 있다.

발사대에 최소 며칠씩 걸어둬야 하고 액체연료를 쓰는 발사체로 미국을 공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런 것은 미국에 위협이 안 된다. 미국은 북한의 투발수단도 불안정하고, 운반수단은 더더욱 아니라고 본다. 그렇지만 이렇게 빠른 속도로 기술진보가 이루어지는 것에는 우려가 되는 거다.

그래서 투발수단인 상태에서 상황을 조속히 종료시켜야 한다는 하는 쪽으로 미국과 중국, 북한 사이에는 컨센서스가 이뤄질 수 있다.

일본과 한국은 동의를 못할 것이다. 지금 수준으로 보면 소형화가 1,500-2,000kg 사이라고 치면 노동과 대포동에는 탑재할 수 있다고 본다. 왜냐하면 나가사키에 떨어뜨린게 4.1톤이었는데, 항공투하이기 때문에 방향조절용 날개 등이 붙어 무게가 많이 나갔지만 미사일 탑재시에는 무게가 확 줄어든다. 가장 단순하게 날개가 없다.

한국과 미국에게는 이런 협상이 북한의 핵위협 아래서 진행되고, 미국은 핵위협이 진행되지만 아직 태평양을 건너지 않은 단계이기 때문에 미팅 포인트가 있다. 김계관이 그 정도는 봤을 것이다.

□ 이번 3차 핵실험으로 북한이 사실상 핵보유국이고 동결과 비확산을 현실적 목표로 삼아야 되는 것 아니냐는 의견들이 나오고 있다. 나는 북한에 경수로와 인공위성 권리를 부여해 핵무기 폐기 후에도 다시 핵무기 보유국으로 되돌아갈 수 있는 ‘가역적 핵포기국’을 협상 목표로 삼을 수 있다고 제시했다. 물론 여전히 북한의 핵폐기만이 유일한 목표라는 주장도 있다. 이번 3차 핵실험으로 북핵 전략에 변화된 지점이 있다고 보나?

미국, ‘진짜(real) 핵국가’와 평화체제 협상은 불가능

■ 김 기자가 이야기한 가역적 핵포기국가는 상당히 재미있는 아이디어고, 지금은 그 정도만 되도 좋겠다고 미국에서 판단하지 않을까 싶다. ‘되돌릴 수 없는’(비가역적, irreversible)비핵화는 불가능한 상태로 와버렸다. 그러나 현실에서 정책으로 채택되기는 어려울 것이란 판단이다.

‘동결과 비확산’이면 그건 핵보유국을 인정해야 하는데, 인도나 파키스탄이나 다 제재 받다가 인정해준 것은 사실이다. 인도 같은 경우에는 적극적으로 인정이 된 거고, 파키스탄 같은 경우에는 미국의 반테러전쟁에 협조함으로써 묵인이 된 거다.

그러나 북한은 그 자체 핵능력만 가지고 인정을 받으려고 하는 것인데, 미국 스스로가 벽을 허무는 것 같다. 사실상의(de facto) 핵무기국가에서 실질적인(real) 핵무기국가로 표현이 옮겨졌다. 척 헤이글 국방장관 지명자가 그런 표현을 썼다.

NPT 체제에서 법률적 국가, 조성국으로서의 핵국가(nuclear power)는 아니지만 사실상의(de facto) 핵국가를 한 단계 더 현실화 시켜준 것이다. 그러나 핵국가로서 합법적 지위는 영원히 인정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북한은 평화적 핵이용 권리를 주장하는 단계에서 평화적인 핵이용을 실행하는 단계로 갈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고민은 이런 북한과 어디까지 협상할 수 있느냐, 미국은 그게 문제일 것이다. 무엇보다도 미국은 북한을 평화협정과 평화체제 협상 대상자로 보질 않을 것이다.

□ 미국이 북한을 평화체제 협상 대상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은 의외의 전망이다. 그렇다면 어떤 정책이 가능하나?

■ 미국의 논리(logic) 상 절대 불가하다. 국제제재를 받으며 잘못된 행동을 통해서 계속 저항을 뚫고 들어와 ‘진짜 핵국가’(real nuclear power)가 됐는데 그들을 평화협정과 평화체제 협상 대상으로 인정해버리면 앞으로의 미국의 비확산 질서라든지 대외관계는 다 깨진다.

미국이 북한을 어디까지 협상할 대상자로 볼 것인가? 영원히 이대로 간다. 정전상태이고 북한은 미국의 적으로 남아있는 거다. 적으로 남아있기 때문에 꼭 이런 행동을 하지 않더라도 원하는 경우에 다른 압박을 할 수 있는 대상이 되는 거다. 그쪽으로 남아 있어야 된다.

미국이 북한을 관계정상화 대상으로 볼 것인가? 핵문제가 있는 한은 관계정상화도 못한다. 다만 위협감소를 위한 협상의 대상자로만 된다. 이건 미국의 입장을 이야기한 거다.

북한이 핵무기를 제3국에 넘기지 않는다고 했고 현재 미국의 대북 정책 목표가 ‘동결과 비확산’에 묶어두고 ICBM기술을 확보하지 못하게 하여 위협을 감소시키는 정도로 제한되는 만큼, 거기 상응하여 미국과 북한의 관계도 극적인 진전은 있을 수 없다.

관계정상화도 못 간다. 최고로 발전해봐야 영사급 외교관계 정도 밖에 못 갈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걸로 북한한테 충분할 것 같다. 지금 미국이 평화체제와 관계정상화를 대가로 핵무기를 외부로 반출시키거나 폐기시키는 생각을 전혀 안한다. 북한도 안한다. 지금은 북한이 미국과 관계에서 얻을 수 있는 최대치는 정치적 제도적 방식이 아닌 물리적 균형에 의한 평화공존(peaceful coexistence) 밖에 없다.

북한은 핵무기를 갖고 투발수단까지 확보함으로써 체제안전에 더 이상 위협이 없는 상태에서 평화적으로 공존하는 것이다. 미국은 자신의 직접적 핵위협이 없는 상태에서 미북관계의 현상동결이다. 거기까지 밖에 목표로 못한다. 오바마가 4년 임기에 더 이상은 할 수 없다.

□ 최근 <38North>에서 북한의 무수단리 동해발사장에서 미사일 발사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 동창리 발사장은 남쪽을 향해 발사하게 돼 있고, 중국 본토와 가까워 미국이 함부로 공격할 수 없는 장점이 있는 곳이다. 무수단 발사장은 동해 쪽으로 날아가고, 아마 이번에 미사일을 발사한다면 하와이를 넘어 중남미 해역에 도달하는 것을 보여주려고 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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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회찬 유죄 파문과 박근혜 '법원 장악' 음모

노회찬 유죄 파문과 박근혜 '법원 장악' 음모
(서프라이즈 / 두루객 / 2013-02-17)


삼성 'X파일'속의 검사 명단을 공개한 노회찬 의원이 유죄로 선고 받아 의원직을 상실했는가하면, X파일 사건을 덮는데 공헌을 했던 황교안 전 검사가 박근혜의 법무장관에 지명돼 최고위직 벼슬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니 이 무슨 해괴망측한 엇갈림이란 말인가

떡값 검사 문제가 8년 전의 대화 내용이어서 비상한 공적 관심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변명도 그렇거니와 통신비밀보호법을 꺼내어 노회찬 의원에게 유죄를 선고, 본말이 전도된 대법원 판사의 궤변도 해괴망측함 그 자체라 할 것이다.

통신비밀보호법은 국가 정보기관의 불법도청을 막기위한 것임에도 불구 이 나라는 어찌된 것인지 양심에 따른 고발자나 언론인을 향해 옥죄려는 권력 기득권층들의 도구로 이용되는 등 거꾸로만 가고 있다.

과거의 독재 정권들이나 보수 기득권층 주류들이 자신들을 향한 비판적 목소리들을 가둬놓을 도구로 국가보안법을 이용했다면, 오늘날에 그들이 악용하는 도구는 통신비밀보호법이 된 듯 하다.

MBC 정수장학회 지분 매각으로 '박근혜 선거운동' 및 민영화한다는 최필립- 이진숙의 비밀대화를 공개한 한겨레 신문 기자를 상대로 김재철 MBC 사장이 고소한 명목도 통신비밀보호법이었고, 'X파일 보도' 이상호 기자에게 유죄를 선고한 대법원의 사유도 통신비밀보호법이었다.

국가기관의 불법 도청 및 사찰을 막기 위한 취지와 전혀 다른, 양심에 따른 고발자들에게 적용하는 도구로 전락한 것은 매우 심각한 일이다.

적어도 대법원의 판사라면 이런 입법 취지를 숙지해야는 것이 기본임에도 삼성X파일의 떡값검사 명단을 공개한 노회찬 의원에게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의 유무 판단이 'X파일'에서 드러난 혐의를 밝히려는 공익적 행위보다 우선된 것은 어이가 없다못해 허탈할 지경이다.

물론 기계적 논리로 봤을때 '안기부 X파일'의 본질은 도청이었다. 그것이 삼성과 관련이 있든 없든 안기부라는 국가기관이 도청해 감시를 했다는 것은 진영 논리를 떠나 불법임이 틀림없다.

그러한 도청 내용을 공개한 것에 대한 처벌도 부당함이 없지 않는 바, 개정되어야하는 과제가 현재진행형이다. 그렇더라도 판사가 굳이 공개자를 단죄해야할 것도 없다. 공익을 위한 것이라면 판사의 재량권이 발휘되는 것이 상식이 아니던가

더욱이 'X파일'이 세상에 드러난 이상, 공직자 사회의 뿌리 깊은 부패상의 문제였으므로 그것은 그것대로 밝혀내야 하는 것은 공익을 위한 것으므로 우선되어야할 판단이다. 그런데도 도청 행위와 전혀 관련이 없고 도청 조직의 일원도 아닌데도, 드러난 자료를 공개한 것을 두고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을 꺼내들어 '검찰과 재벌,정치인'들의 유착관계 거래 내용보다 우선되는 것은 천만부당한 일이다.

대법원 판사가 통신비밀보호법의 입법취지나 사건의 본질을 모를리가 없다. 헌법재판소 판관 나리들이 인권 침해의 악용 사례가 넘쳐난 '국가보안법'에 합헌이라고 결정을 내렸던 것과 전혀 다를게 없는 '기득권적 카르텔'의 행태가 아니라면 법원 내부에도 또한 '삼성 떡값'의 판사들이 즐비했음을 말해주는 것 밖에 더 무슨 해석을 할 수 있겠나

우연도 이런 우연이 없다. X파일 사건을 덮었던 검사가 박근혜 내각의 법무장관이 되고, X파일을 공개한 진보정의당 의원이 유죄를 선고 받은 것이 단순한 우연의 일치 및 유기적 관계 없음으로 과연 볼 수 있을까?

그렇지 않아도 박근혜 인수위가 인선한 조각 명단이 지금 '3공 5공'으로 돌아가는 '육법당' 인사로 불리워지고 있다. 경호실 책임자를 육사출신으로 임명하는가하면,국무총리를 비롯한 각부에 정권의 매파성이 뚜렷한 사법부 출신들이 다수 지명되고 있는 것이 그것이다.

정홍원 국무총리 후보는 90년대 봐주기 검찰수사의 장본인이었다고 한다. 황교안 내정자도 X파일 사건에 연루되다못해 야당에 대한 '종북 마녀사냥'에 앞장서는 등 뉴라이트 인사라해도 과언이 아닌 사람이다. 낙마한 김용준 총리후보도 "5.18 특별법이 위헌" 의견과 형제복지원 판결이 논란이 된 바 있다.

이렇듯 박근혜가 인선하고 있는 인재풀들이 도덕성 문제로 끊이지 않는 것은 부패해서 수구보수 행위가 될 수 밖에 없는 새누리당 정권의 태생적 한계와 맞물려 있는, 기득권층 사회의 카르텔적 특성에 비롯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박근혜의 기득권적 카르텔 특성은 재벌가들과의 혼맥으로 얽혀진 MB와 다를 바가 없어 절대 '개과천선' 할 일은 없다. 그런 특성이 있기에 박근혜 집권의 첫 음모 획책은 방송사에 대한 사유화와 더불어 '법원 장악'이 될 것임을 경계해야 한다.

MB와 함께 인선한 이동흡 헌재소장 후보의 개인비리 문제가 불거졌음에도 '청문회 무력화' 발언에서 드러난 박근혜의 '이동흡 김용준' 감싸기는 사법부 장악 시나리오와 무관하지 않음을 보게했다.

이는 아버지 박정희의 권력행태를 따라가려는 것과 같다. 사법부 인사들을 꼭두각시로 두고 제 입맛대로 판결을 해왔던, 그 중에 사법살인을 저질렀던 '인혁당 판결 사건'도 사법부 장악이었으니 가능했던 것이다. 인혁당 판결의 잔인함으로 가지 않더라도 박근혜 집권 동안의 황당한 판결은 노회찬 유죄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계속 될 것임을 암시한다.

박근혜의 대선약속이나 복지공약이 선거가 끝나자 헌신짝처럼 내버려지는 것도 애초부터 그럴 의지도 없는 사기성이었기에 가능했다. 그러한 사기성은 박근혜 주변을 둘러싼 새누리당 정권의 태생적 한계와 맞물려 있다.

부자감세 철회 및 부유층 증세라도 해서 공약 현실화하는 것이 맞는 것인데도 국민연금에서 빼와 재원을 마련한다는, 서민들이 피땀 흘려 국가에 내놓은 돈으로 장난을 치는 것은 국민연금 무력화가 예상되는 우려와 함께 기득권층 카르텔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박근혜임을 말해주는 것이었다.

이렇듯 박근혜 인수위의 인사 파동은 단순히 인사파동에서 그치는게 아니라 민생과 복지의 후퇴, '유전무죄 무전유죄'로 가는 사회 부조리 현상과 연결됨을 알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박근혜의 인사 문제나 법원 장악 여부에 대해 무겁게 바라봐야 할 것임을 주장하는 바이다.

이 번 노회찬 유죄 판결 파문에서 또한 어이가 없던 것은 종편에서 그나마 낫다는 MBN 방송의 방송 태도이다. 정상적인 방송사라면 '노회찬 - 황교안'의 희비를 풍자하는 것이 정도인데도 돌발영상을 통해 '노회찬 말바꾸기'로 억지 편집하는 행태는 그들이 얼마나 기득권층의 카르텔에 빠져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이와 다르게 경향신문과 프레시안이 노회찬 유죄 판결 파문을 비중있게 다루어 준 것은 매우 당연한 처사이자 그들 본연의 모습이다. 그렇지만 어찌된 것인지 이들 언론들에겐 아직까지도 국정원 선거개입 기사를 찾아볼 수가 없다. 경향신문에 비해 프레시안은 아예 모르쇠다.

대선 투표 결과에 대해 과정상의 부당함이나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보수화의 구조적 문제로 보기 보다는 오로지 '문재인 탓'으로만 부각한 보도 행태가 있어서인지 모르겠지만, 대선 부정개표 의혹이나 국정원 의혹을 부각하면 친노의 정치 부활이 될까봐 계산하는 것이 기득권층 카르텔의 본질을 밝히는 것보다 중요하단 말인가.

노회찬 유죄 - 국정원 선거개입- 국정원 선거개입에도 침묵하는 선관위- 대선 부정개표 의혹 등의 모든 것이 어느 쪽으로 가고 있음을 모른다면, 이 모든 것을 유기적 판단으로 바라보지 않고 개별 사안에만 관심을 가지는 한, 무능한 야당에 무능한 야권언론이라는 악순환에서 벗어날 수 없다.

 

두루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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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국정원 직원 대선 개입, 추가 조력자 정황 포착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3/02/18 09:21
  • 수정일
    2013/02/18 09:21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단독]국정원 직원 대선 개입, 추가 조력자 정황 포착

1초 만에 다른 IP 접속… “최소 3~4명 필요”
‘1차 공조자’ 이씨와 ID 공유 없이는 불가능

 

경향신문|이효상 기자|입력2013.02.18 06:02|수정2013.02.18 08:28

 

18대 대선결과 개입 의혹을 받고 있는 국가정보원 직원 김모씨(29)가 복수의 인물 또는 조직과 인터넷상에서 활동했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간 김씨를 도와 인터넷 커뮤니티 '오늘의 유머'(오유) 등에서 활동해 온 인물은 이모씨(38) 한 명인 것으로 알려졌지만 이씨의 ID를 또 다른 인물이 공유하며 활동한 흔적이 포착됐다.

17일 현재 이씨가 사용한 것으로 의심되는 ID는 모두 30여개이다. 이 중 5개는 김씨의 ID를 공유한 것이고 나머지는 경찰 수사 과정에서 새로 드러난 이씨의 ID들이다. 경향신문은 이씨의 ID 활동패턴을 분석했다. 그 결과 김씨나 이씨 외에 또 다른 인물이 개입했을 것으로 보이는 정황들이 발견됐다.

지난해 8월29일 오후4시2분20초, 이씨의 ID '탁*****'은 박원순 시장을 비판하는 글에 추천을 표시했다. 1초 뒤인 오후4시2분21초, 이씨는 또 다른 ID '오*****'를 사용해 < 나꼼수 > 를 비판하는 글에 추천을 표시했다. 14초 뒤에는 앞서 박원순 시장 비판 글에 추천을 표시한 '탁*****'을 따라 똑같이 그 글에 추천을 눌렀다. '탁*****'이 인터넷에 접속(로그인) 한 IP(인터넷주소)는 124.198.***.***이고, '오*****'가 접속한 IP는 211.246.***.**이다.
 

이씨 혼자 여러 ID를 사용했다면 그가 박원순 시장을 비판하는 글에 추천을 누른 후 1초 만에 IP를 바꿔 다른 ID로 접속해 < 나꼼수 > 를 비판하는 글에 추천을 표시했다는 말이 된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수초 만에 IP를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IP를 가장 손쉽게 변조할 수 있는 방법은 스마트폰으로 무선 인터넷에 연결하는 방식인 '테더링'이다. 스마트폰의 '에어플레인 모드'를 껐다가 다시 켜면 새로운 IP를 부여받을 수 있다. 그러나 이 경우 아무리 빨라도 최소 10초 이상은 시간이 걸린다.

과학수사 전문가인 한양대학교 김인성 교수는 "한 사람이 2대의 컴퓨터를 이용해 서로 다른 IP로 동시에 접속했을 가능성은 있다"며 "그러나 이 경우에도 한 사람이 두 대의 기기로 1초 만에 서로 다른 글에 추천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결국 이씨가 30여개 ID 중 일부를 또 다른 인물과 공유했다고밖에 볼 수 없는 정황이다.

진선미 민주통합당 의원은 "자체 조사 결과 국정원 김씨를 포함한 11개의 ID들이 2012년 8월31일 오후4시32분부터 33분까지 1분 동안 14개의 글을 집중적으로 게재했다"며 "미리 작성해 둔 글을 복사해 붙여넣기를 한다 하더라도 1분 만에 14개의 글을 올리려면 최소 3~4명의 인원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씨와 이씨뿐 아니라 다수 인원의 조직적인 개입 가능성에 중심을 두고 수사 범위를 확대해 나갈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다.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 수서경찰서 관계자는 추가 인물이 있을 가능성에 대해 "현재 수사 중인 사안이기 때문에 확인해 줄 수 없다"고 말했다.

< 이효상 기자 hslee@kyunghya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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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협상 무용? 위험천만한 얘기!"

[긴급 기고] 핵협상 무용론과 핵무장론의 위험성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3-02-17 오후 2:49:10

 

2월 15일, 대통령과 여당 대표가 약속이나 한 듯이 쌍벽을 이루는 획기적 발언을 했다. 대통령은 원로자문회의 석상에서 '핵협상 무용론'을 설파하고, 여당 대표는 KBS 라디오 방송에서 '핵무장론'을 제기했다. 핵협상 무용론의 핵심 논거는 북한이 붕괴하기 전에는 핵을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핵무장론의 논거는 북한이 '한반도비핵화공동선언'을 위반했으니까 우리도 비핵화 약속을 지킬 필요가 없어졌다는 것이다. 두 분 다 국내 정치는 9단인지 모르지만, 국제 정치의 냉혹한 현실이나 한미관계의 서글픈 한계는 잘 모르는 것 같다.

'핵협상 무용론'은 미국 군산복합체들이 반기는 이론

우선 '핵협상 무용론'부터 보자. '핵협상 무용론'은 국산이 아니다. 미제다. 미국에서 나온 이론인데 결과적으로 미국 군산복합체의 이익을 키워주게 되는 이론이다. 자연현상에 대한 이론은 이념성이나 당파성이 있을 수 없지만, 정치·경제·사회현상에 대한 이론은 기본적으로 이념성이나 당파성이 있다고 봐야 한다. 특히 국제 정치나 외교 관련 이론들은 자기 나라의 국익을 보호하거나 증진시키기 위해서 만들어지는 경향이 있다. 물론 객관성을 갖춘 것처럼 절묘하게 화장을 한다.

이렇게 국제 정치 관련 이론의 이데올로기성을 감안하면서 따져보자. 핵협상 무용론에 동조하게 되면 결과적으로 '비핵화'는 포기하고 대신 '비확산'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받아들여야 한다. 북한의 핵문제가 '비핵화' 대신 '비확산'으로 낙착이 되면 우리는 완전히 북한에게 멱살 잡히는 형국이 된다. 멱살 잡힌 채로나마 근근이 경제라도 끌어나가려면 한국은 안보 면에서 미국에 지금까지보다 훨씬 더 의존할 수밖에 없다. 우선 미사일방어(MD)체제부터 도입해야 한다. 북핵실험 직후 오바마 대통령 입에서 MD강화 얘기가 이미 나왔다.

장차 '비확산', 'MD도입' 쪽으로 우리 안보 정책 방향이 정해지면 미제 신형 무기 획득 비용이 엄청나게 불어나면서 국가 예산 구조 자체가 바뀌게 된다. 복지 증진? 중소기업 살리기? 현실적으로 어렵게 된다.

협상이 무용지물이면 군사적 해결? 현실적으로 불가능

'핵협상 무용론'에는 '군사적 해결론'의 그림자도 있다. 그러나 말처럼 군사적 해결이 가능하면, 북핵문제는 1994년 6월에 해결되었을 것이다. 1993년 3월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를 선언하자 미국 클린턴 정부는 바로 북한과 양자협상을 시작했다. 당시 한국 김영삼 정부는 미·북 핵협상을 반대하면서 북한을 '거칠게' 다룰 것을 주문했다. 북한과 협상하는 과정에서 지친 미국이 1994년 6월 초 영변 핵기지 폭격 방식으로 북핵문제의 뿌리를 뽑아버리려고 계획했었다.

그러나 북폭은 제2의 한반도 전쟁으로 번질 것이고 전쟁 비용이 엄청나게 들 뿐 아니라, 미·중 간 군사적 충돌까지 각오해야 한다는 현실 앞에서 미국도 북폭 계획을 슬그머니 거둬들인 적이 있다. 이게 '협상무용론', '군사적 해결론'의 한계다. 지금은 20년 전과 사정이 또 다르다. 그동안 중국의 군사 역량이 엄청나게 커졌고 국제 사회에서 위상도 높아졌다. 미·중 역학관계도 그때에 비해 크게 바뀌었다. 특히 경제적으로는 미국이 중국과 협조해야 하는 상황이다. 한반도 주변에서 미국의 정치·군사적 선택지가 줄었다. 그런 점에서 '핵협상 무용론'과 그 연장선상에 있는 '군사적 해결론'은 비현실적이다.
 

▲ 북한 조선중앙방송은 12일 제3차 핵실험을 성공적으로 진행했다고 발표했다. ⓒ연합뉴스


협상 무용론의 뿌리가 북한붕괴론이라면, 상상력이 대단하다

대통령은 북한이 붕괴하기 전에는 핵을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핵협상 무용론'을 설파했다. 이명박 정부는 출범 직후부터 북한 붕괴를 기다렸던 것 같다. 기회 있을 때마다 북한이 많이 변화하고 있다고 중계방송 하듯이 했는데, 속내를 알고 보니 구체적인 정보가 있어서라기보다는 '밑으로부터 혁명'이 일어나 북한 정권이 붕괴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희망적 관측이었던 같다.

그런데 대통령 임기 중에 김정일이 사망했는데도 북한에서는 민란이나 폭동은 일어나지 않았다. 금강산으로 달러도 안 들어가고 쌀 한 톨, 밀가루포대 못 보내게 했는데도 어디서 돈이 나왔는지 미국까지 날아갈 수 있는 장거리 로켓을 쏘고 핵실험도 현 정부 임기 중에만 두 차례나 했다.

북한 체제의 특성, 북한의 정치문화, 북한 경제의 운영 원리를 모르면 북한붕괴론 같은 얘기를 쉽게 할 수 있다. 북한붕괴론은 김영삼 정부 때도 유행을 했었다. 그러나 희망적 관측은 꿈으로 끝났다. 그때도 "김일성만 사망하면 북한은 붕괴할 것이고 북한이 붕괴하면 그건 곧 통일이다", "대북 지원은 붕괴할 수밖에 없는 북한 정권의 명맥을 연장해주는 것이다", "대북 지원은 공산독재에 시달리는 북한 주민들을 더욱 어렵게 하는 일이다. 인도주의가 아니라 오히려 비인도적인 일이다", 이런 말들이 유행했었다. 그럴듯하지 않은가?

그러나 이런 주장들은 모두 다 이론과 주장의 이데올로기성을 반영하는 것들일 뿐이었다. 북한붕괴론이 나온 지 20년이 넘었는데도 북한은 아직 붕괴하지 않았다. 이제는 이런 상상력의 소산인 비현실적 주장에 휘둘리지 말아야 한다.

핵문제 해결책은 결국 협상밖에 없다

1993년 3월 NPT 탈퇴를 기점으로 치면 북핵 문제는 올해로 21년째로 접어든다. 그동안 협상 형태도 갖가지였고, 해법도 갖가지로 나왔었다. 그런데 아직도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있을 뿐 아니라 더 난해한 문제가 되었다. 그러니 협상무용론이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북한의 도발->제재->일정기간 경과 후 협상->해법 합의->(어느 일방의) 합의 불이행->(북한의 불이행 시) 제재->북한의 재도발->제재->협상, 이런 식으로 몇 차례 반복한 건 객관적인 사실이다.

그런데 이런 악순환을 북한의 약속 불이행 탓으로만 돌리는 분석도 있다. 북한이 합의 사항을 이행하지 않은 경우, 물론 많다. 북한은 약속을 안 지키는 것으로 소문이 나 있고, 남북관계에서도 숱하게 체험했기 때문에 필자도 북한을 편들어 줄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러나 북한만 합의 사항을 이행하지 않고 약속을 어겼는가? 그건 아니다. 국제 정치의 세계에서 심판관처럼 행세하고 있는 미국도 합의 사항 불이행의 기록을 가지고 있다.

1994년 10월 미국 클린턴 정부는 북한과 '제네바 기본합의'를 채택했다. 북한이 핵활동을 중지하는 대가로 미북수교를 해주고 200만Kw짜리 경수로 원자력발전소를 지어주기로 했다. 그러나 클린턴 정부 임기 내 수교 협상도 시작되지 않았다. 다만 경수로 공사는 이런저런 핑계로 느릿느릿 계속되다가 부시 정부 때인 2003년 초 중단되었다. 미국에서 정권이 교체되면 전 정부의 대북 합의는 대부분 지켜지지 않았다.

같은 정부 기간 중에도 합의 다음 날부터 약속이 지켜지지 않은 사례도 있다. 부시 정부는 2005년 9월, 6자회담에서 북핵 문제의 근본적 해결 로드맵이라고 평가 받았던 '9.19공동성명'을 채택해놓고 바로 그다음 날 대북 경제제재를 시작했다. 북한이 위조지폐를 만들고 그걸 돈세탁했다는 죄목으로 마카오에 있는 BDA 은행의 북한 계좌를 동결시켜버렸다. BDA 제재를 1년여 어렵사리 견디던 북한이 마침내 2006년 10월 9일 제1차 핵실험을 단행했다. '할 테면 해보자'는 북한식 셈법이다.

물론 미국의 합의 불이행보다 북한의 핵실험이 더 나쁜 일이니까 국제 여론은 북한에 불리했고, 유엔 안보리에서 대북 제재도 결의되었다. 그러나 대북 제재가 시작돼도 북한이 계속 초강수를 두니까 핵비확산 책임이 있는 부시 정부도 결국은 다섯 달을 못 버티고 북한과 양자협상을 시작했다. 그 결과로 2007년 2월 13일, '9.19공동성명'을 이행해나가기 위한 '2.13합의'라는 것이 나왔다. 이후 '10.3합의'라는 것도 만들면서 협상으로 문제를 풀려고 했다.

미국 같은 지도급 국가가 국제적 합의를 했으면 지킬 일이지, 합의한 다음 날부터 합의 이행은 고사하고 다른 문제를 구실로 제재를 시작하는 것은 무엇인가? 제재를 시작했으면 영을 세우기 위해서라도 끝장을 보든지 할 일이지 협상은 왜 하고 각서는 왜 또 써준단 말인가? 그러고 나서 다시 흐지부지하다가 문제가 커지면 북한의 약속 불이행 비난 여론이나 조성하는 것은 또 뭔가? 그런데도 그 와중에 미국에서는 '핵협상 무용론'이 나오면 우리나라에서는 그것도 미제라고 금과옥조처럼 인용하면서 글을 쓰고 주장을 펴는 전문가들이 나오곤 했다.

북핵 문제가 쳇바퀴를 돌게 된 인과관계를 따지지 않고 그럴듯하다고 생각해서 '협상 무용론'을 얘기하다가 보면 결과적으로 국가가 어떤 손해를 입고 불이익을 당하게 될 것인지 깊이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일반 국민들은 물론이고, 국가 지도급 인사들도 정치인이건 언론인이건 마찬가지다. 특히 명색이 전문가라는 사람들은 어떤 이론이 나오면 '내 나라'의 입장에서 그것의 유불리를 따져보는 자세가 아쉽다. 미제 이론뿐 아니라 북한제 이론에 대해서도 똑같은 잣대를 들이대고 보아야야 한다.

핵무장론은 한미관계 현실 모르는 얘기

북한이 핵실험을 3차까지 거듭하다보니 우리도 핵무기를 가져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기왕에도 그런 얘기들을 왕왕 했었지만, 비중 있는 정치 지도자까지 그런 얘기를 하고 나선 것은 예삿일이 아니다.

한국의 핵무장? 아마 핵관련 한미관계의 냉혹하고 서글픈 현실을 알고 나면 '아차!' 할 것이다. 이거야말로 미국의 심기를 매우 불편하게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입장에서 볼 때, 한국의 핵무장론은 한국이 안보 면에서 미국으로부터 독립하겠다는 얘기나 다름없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고가의 미국 무기를 안 사겠다는 얘기가 된다.
 

▲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 ⓒ프레시안(최형락)

여당 대표는 북한이 '한반도비핵화공동선언'을 위반한 걸 구실로 한국의 핵무장을 주장했지만, '한반도비핵화공동선언'은 북한의 핵 개발만을 막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당초 '한반도비핵화공동선언'은 1991년 여름 미국의 권유로 협상을 시작해서 그해 말 체결된 것이다. 그런데, 필자는 미국의 그러한 권유 이면에는 북한을 묶으면서 동시에 한국의 핵개발도 막자는 의도가 있었다고 본다. '선언'에 담긴 "핵무기의 시험·제조·생산·접수·보유·저장· 배비(配備)·사용 금지" 조항은 기본적으로 북한을 겨냥한 것이지만, "핵재처리 시설 및 우라늄 농축시설 보유 금지"는 한국에도 해당되는 것이다.

1956년 2월 체결된 '한·미원자력협력협정'은 그 후 1958년, 1965년, 1972년, 1974년, 네 차례 개정되었다. 1974년 5월 개정되어 6월 16일부터 발효한 지금의 원자력협력협정은 효력이 무려 41년이나 된다. 41년 동안 딴소리하지 말라는 거고, 또 하지 않겠다고 약속한 셈이다. 앞으로 4년 4개월 더 효력을 발휘할 원자력협력협정에서 우리에게 독소조항은 재처리와 농축 금지 조항이다.

북핵 문제가 불거진 후 김영삼 정부 때부터 사용 후 핵연료봉 재처리라도 허용해달라고 간청을 했었지만, 그때마다 돌아온 대답은 "NO! 다만, 븍한의 핵위협에 대해서는 핵우산을 확실하게 보장해 줄 테니 걱정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북한의 사용 후 핵연료봉 재처리를 통한 핵무기 개발을 막는 문제로 골치 아파하는 미국과 동맹을 유지해야만 하는 한국의 입장에서는 이런 일을 당하고도 "아야!" 소리도 낼 수 없었다.

2010년부터 진행되고 있는 '원자력협력협정' 관련 협상에 진전이 전혀 없고, 미국 쪽에서는 논의 자체를 2년 뒤에 하자고 한단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2월 1일 박근혜 당선인이 에드 로이스 미국 하원 외교위원장 일행의 예방을 받고 '원자력협력협정'의 개정을 도와달라고 요청했다. 핵심은 사용 후 핵연료봉을 재처리해서 다시 연료봉으로 쓸 수 있게 하는 파이로 프로세싱(pyro-processung) 기술을 허용해달라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한국은 이 기술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2016년이 되면 핵폐기물이 포화 상태가 되어 폐연료봉을 재처리하지 않으면 심각한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의 반응은 싸늘하다. 금년 2월초 미국 의회조사국(CRS)이 발행한 '한미관계보고서(U.S.-South Korea Relations)'에는 "한국 정부는 핵연료봉 재처리 허용을 원하고 있지만, 이는 미국의 핵비확산 정책에 대한 도전을 의미한다."고 적혀 있다. 이것이 핵문제 관련 한미관계의 현실이다. 여당 대표가 미국 의회보고서에 이런 내용이 있는 줄을 까맣게 몰랐다면 또 몰라도, 알고도 핵무장론을 제기했다면 미국식 해석으로는 '도전'이 된다. "재처리 요구도 '도전'인데 '핵무장'까지 주장해?"라고 하면서 코웃음 치는 미국 관계자들의 거만한 모습이 어른거린다. 이것이 한미관계의 냉혹하고 서글픈 현실이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필자의 다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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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동 식당 건물 큰불... 수차례 폭발음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13/02/18 08:43
  • 수정일
    2013/02/18 08:43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인명피해는 화재 진압 뒤 파악 가능... 가스폭발 추정

13.02.17 22:13l최종 업데이트 13.02.18 01:37l

 

[최종신 : 17일 오후 11시 30분]

서울 종로구 인사동 '먹자골목'에서 발생한 화재는 불이 난 지 3시간만에 불길이 잡혔다.
이날 오후 11시 현재 소방관들은 화재현장으로 진입해 잔불을 진화 중이다. 그러나 정확한 화재 원인을 파악하는 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화재현장 인근 게스트하우스에서 숙박 중이던 일본인 관광객 1명 포함 7명은 대피 과정에서 연기를 흡입해 서울 백병원에서 치료 중이다.

서울 종로소방서에 따르면, 화재가 발생한 건물은 1층 '육미', 2층 '보헤미안', 3층 '마당쇠' 술집이 있는 건물로 추정되나 정확한 원인은 화재진압 후 조사를 통해 밝혀질 예정이다.

[2신 : 17일 오후 11시]

17일 오후 10시 31분께 서울 인사동 화재 현장에서 건물이 붕괴되는 순간이다. 소방관 여러 명이 진화작업을 벌이던 중 갑자기 건물이 무너져내렸다. 소방관들이 간발의 차이로 붕괴현장을 탈출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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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인사동 먹자골목에서 발생한 화재가 오후 10시 40분 현재까지도 진화되지 않고 있다. 화재 초반 다소 높게 치솟았던 불길은 잡혔지만 곳곳에서 다시 불꽃이 튀어오르는 등 진화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소방관들조차도 화재현장 내부로 진입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총 6개동 23채의 건물들이 불타면서 붕괴위험이 있는 현장에는 접근이 완전히 차단된 상태다.

오후 10시 25분경에는 화재 발원지로 추정되는 3층짜리 식당 건물이 통째로 무너져내려서 현장 가까이에서 진압하던 소방관들도 가까스로 자리를 피했다.

그 식당 건물 주변에는 대개 1층~2층짜리 건물들이 많고, 대부분 불에 완전히 소실된 채 무너져내린 게 확인되고 있다.

현장 목격자들에 따르면, 불이 났다는 소리를 듣고 밖으로 나오니 이미 1층 식당에서 불길이 치솟고 있었고, 잠시 뒤에는 LPG 가스가 폭발하는 듯한 폭발음이 연속으로 들렸다고 한다. 삽시간에 불길이 치솟아 인근 상인들은 도저히 접근할 수 없을 정도로 불길이 높게 치솟았다.

이날 오후 10시 45분 현재 화재현장 주변에는 상가 주인들과 종업원들이 나와 현장을 지켜보고 있다. 일부 상인들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20년 넘게 장사를 해온 곳인데 억장이 무너져내린다"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주변 화재현장에서 연기를 마신 7명은 서울 백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1신 : 17일 오후 10시 10분]

17일 서울 인사동 식당 밀집지역에 큰불이 나 출동한 소방대원들이 진화작업을 벌이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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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오후 8시 48분 현재 서울 인사동 종로타운 뒤편 식당가 건물에서 가스폭발로 보이는 화재가 발생했다. 이날 화재는 3층짜리 건물 중 3층에 있는 한 식당에서 발생했고, 수차례 폭발음과 함께 큰 불길이 치솟았다. 폭발음으로 보아 식당에서 이용하는 프로판 가스로 인한 폭발로 추정된다.

서울 종로소방서에 따르면 정확한 화재 지점은 서울시 종로구 인사동 255번지이며, 화재 발생시간은 오후 8시 26분이다. 이날 오후 9시 45분 현재까지 인명피해는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현재까지 이 불로 이 일대 총 23개 점포가 완전 소실됐으며 화재진압을 위해 소방차 62대, 소방관 141명, 9개의 인명구조대가 출동한 상태다.

오후 9시 55분 현재 불길은 잦아들고 있지만 완전히 꺼지지 않고 계속 검은 불기둥이 치솟고 있다. 주변 건물 주민들은 전원 대피조치가 이뤄진 상태다.

현재 이 지역 골목길이 워낙 협소해 대형 소방차의 접근이 어려워 소방관들이 대로변에서 사다리차를 이용해 물을 뿌리고 있다.

화재현장 주변에는 매캐한 연기가 가득 찼고 건물 사이로 화재현장의 불꽃이 튀어오르는 게 관찰된다. 화재가 발생한 지역은 작은 식당 건물들이 좁은 간격으로 붙어 있는 일명 '먹자골목'이다.

이날 화재로 인해 일부 차선의 통제가 이뤄지고 있지만, 주변 통행에는 문제가 없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인근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김아무개(50)씨는 "두 번의 폭발음이 들려 밖으로 나와보니 불길이 치솟고 있었다"며 "불이 난 건물 1층 식당에서 손님들이 폭발음을 듣고 긴급히 대피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목격자는 "'불이야' 소리를 듣고 나가보니 폭발음이 들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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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들에게 약 먹였습니까?

물고기들에게 약 먹였습니까?

 
조홍섭 2013. 02. 15
조회수 2112추천수 0
 

미량 불안장애 약 성분도 민물 농어 큰 행동변화 불러, <사이언스> 논문

폐의약품, 화장품 등 화학물질 수천종 일상적으로 하천 유입…PCPPs 새로운 오염문제 떠올라

 

Danielle Duhe_Fish_pharmaceutical_illustration.png » 우리가 먹은 약물 또는 내버린 약 성분은 결국 수생태계로 들어간다. 그림=다니엘 두헤, 위키미디어 코먼스

  
상쾌한 아침 샤워가 심각한 수질오염을 일으킬 수 있다. 샴푸의 세제 성분이나 물 낭비를 말하는 게 아니다. 몸을 단장하는 데 쓴 화장품이 강으로 씻겨 들어가 새로운 환경오염을 부른다는 얘기다.
 

예를 들어, 사향노루는 멸종위기여서 보기도 힘들지만 합성 사향은 화장품과 세제, 비누 등에 널리 쓰여 세계적으로 해마다 수천톤이 생산되고 있다.

 

그런데 이 사향 성분은 물에 녹아 수생생물의 지방조직에 축적되는 성질을 갖고 있다. 사향 자체야 유독물질도 오염물질도 아니다. 하지만 합성 사향을 장기간 몸속에 축적한 물고기를 먹어도 괜찮을까? 그 사람이 임신부라면? 또 합성 사향과 함께 물속에 들어간 수많은 다른 화학물질이 예상치 못한 상승효과를 일으킨다면?
 

‘약물과 개인용품(PCPPs)’에 의한 새로운 환경오염이 선진국을 중심으로 큰 사회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개인이 건강을 위해 먹는 약이나 몸을 단장하려고 쓰는 화장품 등에 들어 있던 화학물질은 결국 환경으로 들어간다.

pic.jpg » 약물 및 개인용품(PPcPs)의 화학물질이 어떤 경로를 통해 토양과 수생태계로 가는지를 보여준다. 그림=알리스테어 복살 외, Environmental Health Perspectives • volume 120 number 9, September 2012

 

우리가 쓰는 약만 해도 4000종이 넘는다. 약은 우리 몸에서 모두 분해되는 것이 아니라 일부는 배설되고 또 생물활성이 늘어난 대사물질로 바뀌기도 한다.

 

약 성분은 하수처리장에서도 잘 분해되지 않아 한강에서도 10여종의 약 성분이 검출되고 있다. 2010년 신종플루가 대유행했을 때 항바이러스제인 타미플루의 성분이 전국의 모든 주요하천에서 검출된 것은 우리 몸에 들어간 약 성분이 결국 환경으로 향한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약물 말고도 향수, 샴푸, 햇빛차단제, 살충제, 식품첨가물, 커피의 카페인, 니코틴 등 우리가 내보내는 화학물질은 수천가지가 넘는다. 여기에 축산농장에서 다량의 항생제와 스테로이드를 쓰고 제약회사 공장에서도 배출물이 나온다.
 

물론, 환경에서 이들 물질의 농도는 매우 낮다. 그렇지만 워낙 환경에 유입되는 양이 많고 하수처리장에서 효과적으로 제거하지 못하는데다 환경과 인체에 장기적으로 끼칠 영향이 불확실해 세계적으로 주목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이다.
 

항생제 성분이 내성균을 부르고 경구피임약 성분이 수컷 물고기에게 암컷 성징이 나타나게 하는 알려진 문제 말고도 불길한 조짐은 여기저기서 나타나고 있다. 항우울제 성분이 조개의 산란행동을 교란하고, 어떤 심장병 약 성분은 수생동물이 오염물질을 배출하는 기능을 가로막는다.
 

perch.jpg » 스웨덴 우메아 대학 연구진이 옥사제팜 성분에 의한 행동변화를 연구한 민물 농어. 적은 양의 약 성분에도 큰 행동변화가 나타났다. 사진=브로딘 외, <사이언스>

 

특히, 평생 물속에서 살아야 하고 화학물질 세례를 피할 수 없는 물속 동물이 어떤 영향을 받을지는 큰 관심거리이다. 최근 스웨덴 연구진은 긴장과 불안장애 처방약 성분인 옥사제팜이 미량이라도 물고기의 행동에 큰 변화를 부른다는 실험 결과를 과학전문지 <사이언스> 최근호에 발표했다.

 

연구진은 민물 농어를 길러 행동변화를 관찰했는데, 보통 조심스럽고 무리지어 먹이활동을 하는 이 물고기가 도심 하천 수준의 약물이 포함된 물속에서는 대담해지고 먹이를 빨리 먹으며 사회성이 떨어져 홀로 사냥하는 행동을 보였다. 옥사제팜은 농어에게 사람과 비슷한 효과를 냈던 것이다.
 

이런 행동변화는 하천 생태계를 근본적으로 바꿀 가능성이 있다. 먹이 섭취량이 늘어나면 동물플랑크톤이 줄어들어 식물플랑크톤이 번창하는 사태를 불러올 수 있고, 반대로 조심성이 떨어지면 포식자에게 잡아먹힐 확률이 늘어난다. 게다가 옥사제팜 말고 다른 미량 화학물질이 어떤 영향을 끼칠지는 알려진 바가 없다.
 

우리의 하천은 점점 ‘화학물질 수프’처럼 바뀌고 있다. 가장 걱정되는 것은 장기적으로 하천생태계와 인간의 건강에 끼칠 영향이다. 하지만 현재 전문가들의 일치된 답변은 ‘모른다’는 것이다.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Dilute Concentrations of a Psychiatric Drug Alter Behavior of Fish from Natural Populations
T. Brodin, J. Fick, M. Jonsson, J. Klaminder
10.1126/science.1226850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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