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2월이 가기 전에 듣고 싶은 낭보

 

2월이 가기 전에 듣고 싶은 낭보
<칼럼> 김진환 건국대 HK연구교수
 
 
2013년 02월 11일 (월) 09:01:44 김진환 tongil@tongilnews.com
 
김진환 (건국대학교 통일인문학연구단 HK연구교수)


지난 1월 초에 북한의 3차 핵실험 강행 첩보가 입수됐다는 뉴스가 나오자마자 누군가가 제게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습니다. 제 대답은 “북한이 자신의 장거리 로켓 발사에 대한 미국의 대응이 확정되기도 전에 굳이 핵실험을 강행할 이유가 있을까요?”라는 것이었습니다. 왜 그렇게 대답했을까요? 탈냉전 이후 북․미관계를 보면 북한이 어떤 행위를 한 뒤 미국의 대응 태도나 수위를 지켜보고 나서야 그에 맞춰 또 다른 행위를 한 사례가 많기 때문입니다.

물론 사회현상을 설명하는 경우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돈다’는 수준의 법칙은 없기 때문에 항상 예외가 있기 마련입니다. 오바마 행정부가 갓 출범했던 2009년에 특히 그랬습니다. 북한은 그해 연초부터 연말까지 장거리 로켓 발사, 핵실험, 우라늄 농축 선언 등 정말 미국이 숨 돌릴 틈도 없이 바쁘게 움직였었는데, 돌이켜보면 2008년 쓰러졌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복귀한 뒤 북․미 관계정상화라는 필생의 목표를 향해 조금은 다급하게 달려갔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니고, 약관의 후계자가 북한의 대미 외교를 이끌고 있는 마당에 2009년 같은 ‘속도전’은 당분간 없을 것이라는 게 평소 제 생각이었습니다. 그랬기에 북한이 장거리 로켓 발사 이후 불과 한 달여 만에 핵실험을 하려 한다는 첩보 역시 신빙성 있게 들리지 않았던 것입니다.

유엔안전보장이사회가 1월 22일(한국 시각 23일 새벽)에 대북제재 대상을 추가하는 결의안 2087호를 통과시킨 직후 북한이 “높은 수준의 핵시험”까지 운운하며 강하게 반발할 때도, 저는 “앞으로 조선반도와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보장하기 위한 대화는 있어도”라는 북한의 주장에 주목하며 3차 핵실험 전에 북.미 대화가 재개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습니다. 탈냉전 이후 북․미가 겉으로는 온갖 험구를 쏟아내면서도 물밑에서는 양자대화의 물꼬를 트기 위한 협상을 성과적으로 벌여 왔던 경우가 실제로 많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이들은 수많은 근거들을 제시하며 현재 북한이 미국과의 전면전쟁까지 염두에 두고 움직이고 있다는 정세 분석을 내놓기도 하는데, 그렇다면 미국과의 전면전쟁까지 염두에 둔 조선노동당이 세포비서대회를 소집해(1월 28~29일) “우주를 정복한 그 정신, 그 기백으로 경제건설과 인민생활에서 결정적 전환을 이룩”하자고 호소하고, 이러한 목표 달성의 기반인 “당과 인민의 일심단결”을 지키기 위해 “당에서 세도와 관료주의”를 척결하자고 강조하고 있는 현실은 어떻게 보아야 할까요?

지난 해 말부터 북한 관영매체에서는 ‘민심’을 헤아리자는 표현이 자주 등장하고 있고 심지어 2013년 신년사에서도 ‘민심’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정도로 부쩍 민생을 강조하고 있는데, 이런 북한 내 분위기와 전면전쟁 준비가 쉽게 연결되는지요? 2009년 6월 유엔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 1874호 채택 직후 평양시를 시작으로 북한 주요 도시에서 진행됐던 유엔안전보장이사회 규탄 군중대회도 올해는 감감무소식인데 이러한 차이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한마디로 제 입장은 북.미 전면전쟁까지 염두에 둔 정세 전망에 아직까지는 동의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때마침 북한 주간지 『통일신보』가 2월 8일자 기사에서 “최근 공화국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조작한 제재결의를 배격하고 그에 따른 국가적 중대조치를 취하겠다고 내외에 선포했다”며 “미국과 적대세력은 공화국이 제3차 핵실험을 한다고 지레짐작하면서 그것이 현실화되는 경우 선제타격까지 해야 한다고 입방아를 찧고 있다”고 비난했다고 합니다. 비록 외무성, 국방위원회 같은 북한 국가기구의 입장 발표는 아니었지만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1월 27일 ‘국가안전 및 대외부문 일꾼협의회’에서 결심했다는 ‘국가적 중대조치’를 ‘핵실험’과 거의 동일시해왔던 국제사회 여론에 문제를 제기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벌써부터 한국 정부가 북한의 ‘기만전술’, ‘연막전술’로 보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던데, ‘북한이 핵실험을 하지 않을 리 없다’고 단정하기보다는 이처럼 북한이 여지를 보일 때 어떤 경로로든 대화를 시도해보는 게 좀 더 바람직한 태도가 아닐까요? 만약 현재 남북 간에도 ‘물밑협상’이 진행되고 있다면 이참에 북한의 ‘진의’를 파악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한반도 정세는 지금 중요한 분기점에 서 있습니다. 2월에도 북.미 물밑협상의 가시적 성과가 나오지 못한 채 3월 초로 예정된 한.미합동군사훈련이 계획대로 실행된다면 북한이 공언한 ‘국가적 중대조치’의 실체가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물론 그 전에라도 북한이 2009년처럼 ‘속도전’을 할 수도 있겠지요. 예상되는 2월 중 핵실험 날짜는 벌써 한국 언론사들이 몇 개 꼽아 놓았더군요.

반대로 2월 안에 북.미가 양자대화의 물꼬를 텄다는 낭보가 들려올 가능성도 있습니다. 대북협상파를 자임하는 존 케리 국무장관이 2월 들어 본격적으로 활동하고 있다는 점, 국방예산을 삭감해야 하는 미국 사정 때문에 3월 초 한.미합동군사훈련이 중지될 수도 있다는 점 등도 한반도 정세 분석을 할 때 당분간 빼놓지 말아야 할 변수입니다. 여기에 새로 출범하는 박근혜 정부의 남북관계 개선 의지까지 더해진다면 북.미 대화 가능성은 훨씬 더 높아질 것입니다.

재개될 북.미 대화가 성과를 내며 순항할 것인지, 제자리걸음만 반복하다 끝날 것인지는 확실히 예측할 수 없지만, 그래도 대화 없이 으르렁거리는 북.미를 바라보며 하루하루 불안에 떨고 있는 한국인들에게는 북․미 대화가 언제나 절실한 바람일 것입니다. 더 이상의 긴장 고조 없이 북.미 대화가 재개될 수도 있다는 예측이 이번만큼은 현실이 되기를 바랍니다.


 

김진환 (건국대 HK연구교수)
 

   
 
동국대학교에서 사회학을 공부하고 건국대학교 통일인문학연구단 HK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다. 그 전에는 민주노동당 통일외교 정책연구원, 이화여대 통일학연구원 객원연구위원 등으로 일해 왔다. 이 밖에 조계종 민족공동체추진본부, 경실련 통일협회,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같은 통일 관련 단체에서도 활동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동북아시아 열국지 1: 북․미 핵공방의 기원과 전개』(2012), 『코리언의 생활문화』(2012, 공저), 『문화분단: 남한의 개인주의와 북한의 집단주의』(2012, 공저), 『구술사로 읽는 한국전쟁』(2011, 공저), 『북한위기론: 신화와 냉소를 넘어』(2010), 『민족과 통일』(2010, 공저), 『시련과 발돋움의 남북현대사』(2009, 공저) 등이 있다.

현재 월간『민족21』에 ‘김진환의 동북아시아 열국지’를 연재 중이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쿠데타에 정면대결- 광주코뮌과 아고라의 공통점

쿠데타에 항거하는 광주코뮌과 아고라의 공통점
개표부정을 부정하는 논리의 위선

(서프라이즈 / 시다의검 / 2013-02-10)

 

1.다시 5월의 정신을 돌아보며

5.18 광주! 마지막 까지 도청을 사수하던 사람들! 죽을 것을 알면서 그 자리를 지킨, 아니 떠나지 못한 그 심정은 무엇이었을까? 죽어간 사람들에 대한 의리? 살아남는 것에 대한 부끄러움? 누구도 그 어느 누구도 도청을 지키자고 강제하지 않았다. 오히려 중학생 어린 동생들을 떠밀다시피 도청 밖으로 밀어내고 구식 칼빈 소총 한 자루에 지친 몸을 기대며 저 멀리 어둠 속을 바라본다. 계엄군의 함성과 박자를 맞춘 군홧발 소리, 헬기에서 뿌려지는 삐라들이 눈발처럼 날리고 투항하라는 선무방송이 귀를 찢어대는 그 긴장된 여명의 시간! 우리의 형제이자 벗이었던 수백의 윤상원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저 반역의 무리들에게 순순히 이 나라를 넘길 순 없다. 내 부모와 형제들의 목숨을 앗아간 저 악귀들에게 나의 비겁한 뒷모습을 보일 수는 없다. 두 손을 들고 항복할 순 없다. 비록 저놈들의 총탄에 내 육신이 갈기갈기 찢어진들 내 영혼은 핏발선 저항을 하리라. 죽어서도 이 순간을 지켜봐야한다. 내 죽음이 역사의 증거가 되리라. 산들 그것이 산 것이겠는가? 어쩌면 오래전부터 내 죽을 자리는 여기로 예정되었나보다. 광주에서 태어났거나, 우연히도 지난 10여일의 사건에 참여했거나, 우리는 모두 광주코뮌의 동지들이다. 동지들 안녕히, 저승에서 다시 만나자! 그들은 그렇게 오로지 자신만의 실존적 결단으로 도청을 사수하다 죽어갔다. 이렇게 5.16 쿠데타를 계승한 1980년 전두환의 5.17 쿠데타는 수천 광주시민의 목숨을 짓밟고서야 완료될 수 있었다.


2. 517 쿠데타와 51.6 개표 쿠데타의 비교

 

5.17쿠데타 그 후로 30여년, 2013년 2월 초 우리는 아주 다른 것 같지만 본질상 동일한 51.6개표 쿠데타의 전개과정을 목도하고 있다. 계엄군의 총검이 선관위와 방송국의 조작된 개표 프로그램으로 그 외양이 바뀌었을 뿐 다른 모든 양태가 놀랄 정도로 유사하다.

박정희 사후 드러난 전두환의 권력욕과 이명박그네의 권력재창출의지가 너무도 닮았다. 강도의 폭력이냐 사기꾼의 사술이냐의 차이만 있을 뿐 주권재민의 민주적 절차를 파괴한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모든 언론과 방송이 앵무새처럼 전두환과 박그네의 집권의 정당성을 떠들어댄다는 점도 같다. 구국의 결단으로 쿠데타를 미화하고 있다. 아니 더 나아가 5.17을 김대중에 책임을 씌우려는 어용세력이나 18대 대선 실패책임을 문재인과 친노(?)에 전가하려는 적반하장의 세력이 모두 기득권 쿠데타 세력의 동조자라는 점 또한 동일하다.

또한 지식인과 시민운동 세력이 침묵하는 점도 유사하다. 그 이유는 좀 다른 점이 있다. 전두환의 쿠데타에 침묵한 이유는 정말 말 그대로의 두려움이었다. 총칼을 휘두르는 학살정권의 폭력에 대한 원초적 두려움이었다. 그에 반해 이번 51.8개표 쿠데타에 대한 침묵은 비겁함이다. 부정선거를 인정할 때 필연적으로 요구받는 당위적 대응으로써의 부정에 대한 부정을 위한 투쟁의 의무에 대한 회피심리가 작동하는 거다. 목숨까지는 아니더라도 많은 것을 잃을 수 있는 저항운동에 정면으로 마주할 자신이 없는 거다. 그래서 내놓는 말이 “많은 오류와 한계가 있을 수 있지만 선거결과를 뒤집을 만한 정도의 부정선거는 불가능함으로 받아드리고 내일을 기약하자”는 멋들어진(?) 항변이다.


3-1. 부정선거를 부정하는 위선적 논리

부정선거를 부정하는 유일한 근거는 개표과정에서 다수 참여자를 다 속일 수 없다는 게 핵심이다. 그러나 그것은 변명과 핑계에 불과한 위선적 논리이다. 이미 드러난 증언과 증거 자료로 판단해보면 개표장의 대다수 참관인들은 그저 구경꾼에 불과했고 선관위 직원들은 전자개표기의 수동적 보조도구로 기능했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대다수가 허수아비였다고 볼 수 있다.(이는 이번 대선에서 민주당 관계자들을 겪어본 내 경험과 일치한다.) 그런데 골 때리는 것은 이렇게 허술하게 집계된 선관위의 개표결과 수치와 방송국이 실제 방송한 수치가 불일치한다는 사실이다. 이번에 그 어떤 방송사도 개표현장에 집계요원을 보내지 않았고-아고라 마포나루님의 조사에 따르면 출구조사 여부도 대부분 확인되지 않는다.- 선관위가 보내준 자료를 그대로 송출했다는 데 말이다.

그렇다면 자연스럽게 제3의 서버에서 미리 준비된 프로그램에 따라 산출된 수치가 방송사로 송출되었다고 추론하는 게 너무도 상식적인 것이 아닌가? 그렇게 가정할 때 이번 선거 개표과정의 모든 의문이 깔끔히 풀리지 않겠는가? 오캄의 면도날의 이론에 따르더라도 그렇다. (즉 이는 같은 현상을 설명하는 두 개의 주장이 있다면, 간단한 쪽이 논리적이라는 이론이다. 지동설이 천동설보다 행성궤도의 예측에서 보다 단순하다. 고로 지동설이 옳다.) 이번 대선의 개표과정의 숱한 의문점들(51.6%, 로지스틱 함수 꼴, 막판 전국적인 문재인 득표율의 미세상승조정, 기초 자치구와 광역 시도의 득표 그래프의 쌍둥이 닮은 꼴, 선관위와 방송국의 수치 불일치 그 외 등등)은 단순한 한 가지 가설 즉 외부개표조작 프로그램의 존재 이 하나로 충분히 설명 가능하다. 반면 물뚝심송등 일부 부정선거를 부정하는 착한(?) 사람의 주장은 이 모든 걸 우연이나 실수, 착오로 설명해야한다는 난제를 해결할 수 없다.


3-2.

 

그러나 실천적인 면에서 물뚝심송류의 부정선거 불가능설은 유리한 한 가지가 있다. 바로 실천적 고민을 대폭 줄여준다는 점이다. 개표과정의 오류는 없었다. 그러므로 전자개표기 사용에 반대할 이유도 수개표 투쟁을 할 필요도 없다. 또한 로지스틱함수도 방송국이 시각적 효과로 멋지게 컴퓨터그래픽으로 만들어서 나온 것이므로 의심할 필요가 없다. 다른 문제점도 뭐 그럴 수도 있는 우연일 뿐이다. 이 모든 게 박그네를 인정하기 싫어하는 문재인 열성 지지자들의 주관적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저 릴렉스! 사태를 냉정히 보고 현실을 받아들이자.

좋다. 참 그렇게 믿고 싶다. 그리고 부럽다. 그렇게 세상 편히 살 수가 있어서 그 강심장이 존경스럽다. 아고라에서 지금 이 시간에도 귀성길에 나눠줄 전단지를 만들어 돌리는 그 사람들이 편집증에 사로잡힌 이상한 사람이 되는 건가? 솔직히 고백하면 나도 물뚝심송의 글을 읽고서 그렇게 믿고 싶었다. 그러면 속이 편해질 거 같거든. 그냥 안철수나 씹던지, 노인네와 저소득층에 저주만 보내면 되거든. 그리고 앞으로 5년간 무관심하게 살면 되지 뭐, 저 인간들 망하는 거 보면서, 고소해하면서 말이야. 그런데 말야! 그게 잘 안되더라고. 합리적인 의심을 이미 품고 있는데 물뚝심송의 아무 문제없어! 라는 주장이 내게는 내가 고딩 때 떠나버린 야소교의 주여! 믿습니다. 라는 주술로 밖에는 안보이더라고 그리고 아고라와 서프에서 고군분투하는 사람들이 자꾸 5.18 당시 전남도청을 사수하던 광주시민처럼 느껴지더라고.. 30여년전 그 분들은 승리를 확신하지 못했지. 아니 오히려 도청을 떠나지 않고 사수하려다간 끝내 목숨을 잃게 되리란 걸 절감했었지. 시간이 갈수록 고립감을 느끼고 동지들이 하나씩 둘씩 자리를 뜰 때 심리적 동요도 있었을 거야. 지금 부정선거에 항거하는 아고라의 시민들도 정도는 다르지만 비슷한 심경일꺼야. 30여년전 도청의 시민들이 총칼에 굴하지 않고 절대 전두환의 집권을 용납하지 않았듯이 지금 아고라에 모인 시민들도 개표부정으로 당선이 진행 중인 박그네의 정통성을 절대 인정할 수 없는 거야.


4.이 투쟁이 어떻게 될지 속단할 순 없다.

 

30여년전 광주에서 항쟁에 나선 시민들은 다른 도시의 지원과 봉기를 기대했었다. 그리고 심지어 미국이 민주주의를 위해서 전두환을 몰아내고 광주시민을 지지하리라 믿었다. 그러나 그러한 기대와 믿음은 무참히 깨졌다. 당시의 학생 운동권은 대대적인 탄압과 검거에 몸을 숨기고 침묵했다. 미국은 오히려 전두환을 지지했다.

현재 이 부정선거 투쟁도 4.19로의 도약이냐 좌절이냐의 기로에 서있다. 그러나 그 시절과 다른 점이 있다면 우리의 싸움은 현재 물리력이 아닌 담론을 둘러싼 싸움이라는 것이다. 사실을 규명하고 널리 알려서 진실로 규정하는 성격의 싸움이라는 것이다. 우리의 작은 노력이 모여서 트윗으로, 전파로 전 세계 인터넷 망을 타고 알려지고 있다. 이러한 투쟁을 원천봉쇄할 방법이 저들에겐 없다. 아고라에 서프에 침입해 오는 국정원 십알단의 무리들을 보면서 우리는 오히려 자신감을 가질 수 있다. 우리를 고립시키려 국민세금까지 동원하는 저들의 작태에서 우리는 결코 고립되어있지 않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우리의 싸움은 박그네 정권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과정에서 수구 기득권 전체를 박그네와 싸잡아 부정할 수 있는 싸움이다. 단기간에 뚜렷한 성과가 없을 지라도 부정선거를 해야만 하는 취약한 저들의 집권기반을 그 토대에서 무너뜨릴 수 있는 싸움이다. 또한 이 과정에서 야권전체를 새롭게 재편할 수 있는 싸움이다. 알곡과 가라지가 아직은 구별이 안 되게 혼재되어있으나 우리의 이 투쟁에 대한 지지의 저변이 커지는 결과로 새롭고 튼튼한 대안세력이 형성될 것이다. 그리고 그 중심 주체는 이 싸움을 주도해나가는 민주시민이 될 것이다. 민주당 따위가 우리를 능욕하고 무시하는 현재의 상황을 조만간 그대로 그들이 느끼게 할 것이다. 그 과정에서 저 부정선거 주범들과 손잡은 배신의 무리가 노골적으로 드러나게 될 것이다.

4.19 미완의 혁명에 숨지신 민주 열사 분들과, 전남도청에서 마지막 밤을 살라가며 역사의 제단에 민주주의의 제물로 화하신 선배 동지들에게 우리가 오늘 화답할 차례다. 김구와 장준하, 김대중과 노무현의 길을 따라 ‘사람 사는 세상’의 대장정을 시작할 때다.

# 예고했던 글의 첫 번째 글입니다. 나머지 주제들은 자칫 주관적 감상으로 흐를 수 있어서 좀 더 취재하고 숙고한 후 쓸 계획입니다.

 

시다의검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그 엄마 육아 그 아빠 일기 1] 나의 마지막 가정 출산기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13/02/11 09:13
  • 수정일
    2013/02/11 09:13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내가 미쳤지, 왜 또 이걸!"... '복댕이'가 나왔습니다

 

13.02.10 20:29l최종 업데이트 13.02.10 20:29l

 

 

이희동, 정가람 부부가 함께 쓰는 육아일기입니다. 다섯 살 까꿍이와 세 살 산들이, 그리고 갓 태어난 복댕이가 그 주인공으로서 다섯 식구가 어떻게 복작거리며 살아가는지 소소한 일상을 담을 것입니다. 또한 육아와 관련된 상황들을 이 시대의 남편과 아내가 어떻게 다른 시각으로 인식하고 대처하는지 기록하고자 하며 이를 통해 많은 부모들과 좀 더 나은 육아에 대해 고민하고자 합니다. 우리의 일기는 까꿍이가 일기를 쓰기 시작하는 날 끝날 듯 싶습니다. <기자 말>

▲ 세남매 니들이 키워라, 막내!
ⓒ 정가람

관련사진보기


오늘은 설날. 작년 이날만 해도 임신 7개월의 부른 배를 하고 새벽같이 시댁에서 일어나 시어머님과 함께 만두를 빚었는데 올해는 세수도 않고 안방에 누워 늦잠을 자며 뒹굴거리고 있다. 며느리인 친구들은 물론이거니와 친정엄마께서도 부러워하신다.

시댁으로 친정으로 오가는 수고로움은 없지만 그래도 명절날 갓난쟁이와 단 둘이 안방에 누워있는 게 마냥 좋지만은 않다. 어른들 말씀처럼 그래도 명절은 식구들 다같이 모여 북적거리는 게 제 맛이다 싶다. 하지만 두 번 다시 없을 이 고요하고 나른한 '나 홀로 명절'에 귀에 걸린 입은 내려올 줄 모른다.

처음도 아닌데, 두 번도 아닌 세 번째인데 이상하게 겁이 나고 떨리고 두렵기까지 했다. 처음엔 뭔지 모르니 그야말로 무식한 용감함으로 덤볐고, 그 다음은 두 번째는 쉽다는 말에 별다른 긴장 없이 덤볐는데, 세 번째가 되니 두 번의 경험으로 이도 저도 다 잘 알기에 9개월 동안 문득문득 마음이 살얼음판이 되었다가 콩알만 해지기를 반복했다.

대망의 그날이 다가오자 이는 더욱 심해졌고 평소엔 잘 안하던 기도가 절로 반복재생 되었다. 2월이 되고 그날이 점점 다가옴을 느꼈다. 자는 것도 걷는 것도 뭐든 다 불편해지고 간헐적으로 찾아오는 고통은 잦아졌다. 이번에도 무사히 잘 할 수 있을까…, 그래야 하는데…, 뭔지 모를 불안함에 자신감은 뚝뚝 떨어져만 간다.

예정일을 며칠 앞둔 일주일 전, 나부터 시작해 첫째 둘째가 이틀 간격으로 노로바이러스에 감염되어 힘든 날들을 보내던 주말, 아무래도 거사를 앞둔 마지막 일요일이 될 것 같은 예감에 식구들 모두 영양보충을 제대로 하자 작정을 하고 토요일 밤 맛집을 찾았다. 그때 아뿔싸! 신호가 시작되었다.

설날을 일주일 앞두고... 아뿔싸! 신호가 시작됐다

▲ 쓸쓸한 계단 걷기 조금이라도 진행을 빨리 시키려는 야밤의 노력
ⓒ 이희동

관련사진보기

남편과 아이들은 모두 잠든 한밤중. 5분 주기로 아파오는 배를 뒤로 하고 거실에서 억지로 잠을 청했다. 아이들이 곁에 없어야 신음소리라도 편히 낼 수 있기에. 진통 속에 두어 시간 선잠을 자다 깬 새벽, 남편을 깨워 시작되었음을 알렸다. 진통의 강도가 그렇게 세진 않았지만 주기는 5분. 경산모이기에 언제 진진통이 걸릴지 몰라 남편은 새벽이었지만 조산원에 전화를 걸어 상황을 알렸다. 두 아이 모두 받아준 조산사는 짐을 챙겨 곧바로 집으로 오기로 했다.

새벽 6시경 조산사가 집으로 도착했고, 내진 결과 자궁문은 2cm 열려 있지만 아직 자궁 경부가 부드럽지 않은 상황이었다. 빠르면 오전 중에, 늦어도 저녁 전엔 '복댕이'가 세상에 나올 거라 알려주었다. 이미 4시간 정도 진통을 한 상황인데, 최소 6시간이 더 남았다는 말에 힘이 쭈욱 빠졌다. 그래도 셋째인데 9시간 진통을 하고 나온 둘째보다는 빨리 나오겠지 했는데, 20시간 진통을 한 첫째만큼 갈 수도 있다니! 셋째는 30분 만에도 나온다는 행운은 내겐 없는 건가….

아이들에게 동생이 세상에 나오는 걸 자연스럽게 보여주고 싶어 가정출산을 선택했는데 둘째 낳을 때 진통하는 엄마 곁에서 한 시간 넘게 울어댄 첫째를 생각하니 애들 잘 때 빨리 복댕이를 낳아야겠다는 생각과 어서 이 진통에서 벗어나고 싶은 간절함에 외투를 입고 아파트 계단 오르내리기를 시작했다.

집을 나서는 나를 따라 남편이 나온다. 마지막 출산이니 계단을 함께 걸어주려나 보다 하고 고마운 마음이 들려는 찰나 뒤에서 들리는 사진기 소리. 찰칵찰칵 사진기만 눌러대더니 집 안으로 들어가 버린다. 세 번째 임신이라고 뭐가 먹고 싶다는 것도, 손발이 부어 힘들다는 말도 은근슬쩍 못들은 척하고 넘어가기 일쑤였던 남편이었다. 아, 바랄 걸 바라야지.

1층부터 9층까지 계단 걷기를 몇 번 했지만 진통 주기는 좀처럼 짧아지지 않고 계속 5분. 소파에 머리를 박고 진통을 견디는데 남편은 공부방에서 뭘 하는지 내다보지도 않는다. 전엔 와서 허리도 쓰다듬어 주고 손도 잡아주고 하더니 마지막 출산이라 생생하게 남겨야 한다며 노트북에 내장된 캠코더 시범 작동 중이라 바쁘단다. 아, 나는 누구의 아이를 낳기 위해 이다지도 진통 중에 있는가!

30분 만에 나온다는 셋째... 내게 그런 행운은 없는 건가

▲ 진통 아이들이 놀라지 않게 최대한 숨죽여서
ⓒ 이희동

관련사진보기


겨울엔 9시까지도 늦잠을 자는 아이들이 8시가 못 되어 일어났다. 마음이 더 급해진다. 그러나 내진 결과, 아직도 자궁문은 3cm밖에 열리지 않았고 자궁경부도 출산하기엔 딱딱한 상태이다. 자궁경부가 얇고 부드러워져야 진진통이 걸린다 하는데, 복댕이는 나와 달리 급할 게 없나보다. 하긴 누나와 형이 장악한 집에 빨리 나오고 싶은 마음이 뭐 그리 크겠는가. 반신욕을 하면 진행도 빨리 되고 진통도 덜해진다는 친구의 말이 생각나 욕조에서 한 시간가량 배를 쓰다듬었지만, 여전히 자궁문은 3cm에서 더 열리지를 않는다.

아이들이 놀라지 않게 최대한 신음소리를 내지 않고 여전히 5분 주기인 진통을 견뎠다. 아이들은 일어나자마자 좋아하는 만화영화와 어쩌다 한 번씩 나오는 과자가 줄줄이 나오자 신이 났다. 오전 11시가 넘으면서 진통의 강도가 세지고 진통 간격도 4분으로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렇게도 안 열리던 자궁문이 드디어 8cm까지 열리고, 조산사는 경산모이니 지금부터 힘 주기에 들어가자 했다.

안방에서 혼자 진통이 오면 힘 주기에 들어갔다. 진통과 함께 열까지 세며 있는 힘 다해 힘을 주기 시작하자 떠오르는 지난 두 번의 산고의 고통들. 아, 내가 왜 잊었던가, 그 고통들을! 내가 왜 이 고통을 또 자처해서 겪고 있는가, 내가, 왜, 왜!

바보 같은 내가 서러워 몰래 화장실에서 울기까지 했다. 딸 아들, 둘 낳았으면 됐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또 이러고 있나 하며…. 안간힘을 쓰며 참아내던 고통이 극에 달하고 나도 모르게 비명 소리가 새어나오기 시작했다. 만화와 과자가 있어도 안방에서 혼자 복댕이 낳을 준비 중인 엄마가 걱정이 되어 수시로 들락거리던 아이들이 겁먹은 얼굴로 문간에 서 있는 게 보인다. 아이들이 더 놀라지 않게 참자 다짐을 하지만 지쳐버린 몸과 마음은 마지막 잡고 있던 이성의 끈을 놓아버렸다.

남편은 최대한 아이들이 놀라지 않게 거실에서 아이들과 놀아주고 난 조산사의 손을 잡고, 내 골반에 진입해 360도 회전을 하며 산도를 통과해 내려오는 복댕이를 돕는 힘주기를 계속 했다. 곧 머리가 보일 테니 이젠 아빠가 들어와 엄마를 도와야 한다는 조산사의 부름. 몇 번만 더 힘을 주면 이 고통이 끝난다는 걸 알지만 약해질 대로 약해진 심신은 마음먹은 대로 잘 되지 않았다.

등 뒤에 앉아 나를 받치고 있는 남편 목을 잡고 다리를 최대한 벌려 힘을 주면 아기가 내려오기 쉬운데, 팔을 뻗어 남편의 목도 잡지 못하고, 몸부림을 치며 못하겠다, 그만하자, 병원 가 수술하자는 떼를 쓰기 시작했다(남편은 틈만 나면 이랬던 나를 놀려댄다).

약한 엄마와 달리 복댕이는 씩씩하게 쑤욱 내려와 까만 머리를 보여주기 시작했다. 출산의 가장 중요한 순간이다. 아무리 아파도 몸 뒤틀지 말고 조산사의 말을 잘 듣고 태아가 혼자 세상에 나올 수 있게 심호흡 크게 하며 긴장해야 하는데 나의 고통은 절정에 달했고, 한 번만 더 힘을 주면 되는데 또 쉬어버렸다.

둘째 때도 머리 보이는 찰나에 쉬어 머리에 자국이 열흘 넘게 남았었는데. 자꾸 이러면 회음부가 찢어져 고생한다는 조산사의 말에 화들짝 정신이 들었다. 복댕이 힘드니 정신 차리란 얘기는 흘려들어놓곤 이러면 출산 후 내가 고생할 거란 얘기를 듣고 나서야 마음을 가다듬고 마지막 힘을 짜냈고, 쑤욱 하고 복댕이가 태어났다.

마지막 힘을 짜내는 순간... '쑤욱' 복댕이가 태어났다

▲ 핏덩이 그야말로 갓 태어난 신생아
ⓒ 이희동

관련사진보기


▲ 출산의 현장 마지막 고통, 태반을 꺼내는 순간
ⓒ 이희동

관련사진보기


엄마 다리 사이에서 나온 동생을 정면에서 보고 서 있던 두 아이들은 다행히 울지 않았다. 진통하는 엄마를 보면서도 놀라지 않고 잘 참던 큰아이가 갓 태어나 엄마 배 위에 엎드려 누워 꼬물거리는 동생을 보자 울먹이기 시작했다. 누나가 울먹이자 둘째도 울려 한다.

급한 마음에 스마트폰을 쥐여주며 갖고 놀아라 했더니, 스마트폰을 받아든 첫째는 거실로 쌩하고 나가버린다. 그래도 둘째는 계속 엄마 곁에서 동생과 엄마를 번갈아 본다. 아직 태맥이 뛰는 탯줄과 작고 어린 복댕이를 쓰다듬으며 울기 직전인 둘째 아이를 보듬으며 세 번째이자 마지막인, 꼭 마지막이어야 하는 가정출산을 무사히 끝마쳤다.

임신기간 동안, 진통하는 동안 내도록 나를 나약하게 했던 많은 걱정과 달리 아기도 나도 건강했다. 남편은 자궁문이 완전히 열리고 20분도 채 걸리지 않고 복댕이가 태어났다 했지만, 내겐 20시간, 아니 200시간 같았던 출산의 시간이었다. 하지만 금방 잊어버리는 게 산고의 고통이다. 불과 몇 초 전까지만 해도 죽겠다 소리 질러 놓곤 언제 그랬냐는 듯 웃으며 조산사 선생님과 남편, 아이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첫째 조산원 출산, 둘째 가정출산 이후 셋째 출산을 앞두고 남편부터 시작해 많은 이들이 이번에도 집에서 낳을 거냐 물었다. 어른들은 마지막이고 하니 병원에서 안전하게 출산하고 조리원에 들어가 산후조리도 야무지게 하라고 조언을 하셨지만, 마지막이기에 더더욱 가정출산을 하고 싶었다.

다행히 막달검사까지 별다른 이상이 없었고, 조산원에서도 가정출산이 가능하겠다는 진료 결과를 주었다. 물론 몇 번은 병원에서 무통주사 맞고 조금이라도 덜 아프게 아이 낳고 조리원에서 편하게 산후조리 하고 싶은 생각도 했다. 하지만 출산이 다가올수록 내가 제일 마음도 몸도 편한 건 가정출산에 내 집에서의 산후조리였다.

앞서 두 번의 출산기에서 썼듯 나는 가장 자연스러운 출산을 하고 싶었다. 일명 출산 3종 세트인 회음부 절개, 관장, 제모를 하지 않고, 환자복을 입고 좁은 간이침대에서 진통을 하다 자궁문이 다 열려서야 분만실로 들어가 의사들이 정해주는 자세로 아이를 낳고, 갓 태어난 아기를 안아보지도 못하고 간호사들이 처치실로 데리고 가버리는 그런 일반적인 분만은 하고 싶지 않았다(모든 병원분만이 이런 건 아니다. 가족분만실에서 자연출산에 가까운 출산을 하는 병원도 점점 늘고 있다).

아이들이 마음껏 꿈꿀 수 있는 세상을 위해, 출발이다!

▲ 라이벌 등장 내가 먹던 엄마 젖인데...
ⓒ 이희동

관련사진보기

집 가까운 병원이라 해도 갓 태어난 핏덩이를 데리고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도 걱정이고, 38개월, 20개월 두 아이를 데리고 병원이나 조산원으로 오가는 것도 힘들 일이었다. 가까운 시댁에 아이들을 맡기는 방법도 있지만, 가뜩이나 동생의 출현으로 엄마를 나눠야 한다는 불안함이 큰 아이들에게 갑자기 엄마가 사라졌다 동생을 안고 등장하는 충격을 주고 싶진 않았다.

혹자들은 엄마가 고통 속에 동생을 출산하는 걸 보여주는 게 더 큰 충격으로 오래 남을 것이라 걱정을 하지만 경험을 미뤄보면 곁에서 출산하는 엄마를 두 번씩이나 본 큰아이는 동생에게 샘도 부리지 않고 출산 후 몸조리 하는 엄마를 아주 잘 이해해준다. 아직도 수유 중인 둘째도 누나의 이런 모습을 그대로 따라해 크게 떼 부리지 않고 동생과 엄마 젖을 나눠 먹고 있다.

애가 셋이면 애 셋 모두 맑음인 날이 단 하루도 없다는 어느 엄마의 말이 내 앞날을 걱정해주지만 낳고 보니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첫째 둘째 출산 후엔 엄마로서의 뿌듯함이 거의 없었는데, 셋까지 낳고 나니 어쩌면 살면서 제일 잘한 일이겠구나 하는 마음이 든다. 아이들에게 다복한 형제애, 동기애만큼 큰 유산이 있을까 하는 마음도 들고. 출산 후 마땅히 드려야 하는 감사의 기도도 셋째를 낳고 나서야 낮고 겸허한 마음에서 진심을 다해 우러나왔다.

세 아이를 키우는 일이 쉽진 않겠지. 지금의 다짐과 감사를 까맣게 잊고 소리 질러가며 히스테리 가득한 엄마가 되는 날들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건 아롱이다롱이 각기 다른 세 아이를 키우면서 나 또한 각기 다른 삶의 지혜를 배우고 쌓아가면서 더 큰 부모가, 더 넓고 싶은 내가 되어갈 것이다.

육아에 밀려 사라져버린 내 꿈에 서러운 날도 있겠지만 길어야 몇 년 육아에 전념하며 아이들을 키워내다 보면 잠시 쉬고 있는 내 꿈도 아이들과 함께 영글어 가리라 믿어본다. 자, 이제 다시 시작이다. 육아와 살림, 일상에 함몰되지 않기 위해 남편과 번갈아 세 아이 키우는 일상을 이곳에 기록하며 서로를 이해하고 아이들이 마음껏 꿈꿀 수 있는 세상을 위해 출발, 출발이다!

▲ 40개월, 남동생만 둘 고단한 누나
ⓒ 정가람

관련사진보기


▲ 형제 셋째 등장 이후 훌쩍 커버린 둘째
ⓒ 정가람

관련사진보기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북녘 동포들 설명절 어떻게 보낼까?

 

 

 

북녘 동포들 설명절 어떻게 보낼까?
 
설빔 입고 집안 동네 어른에게 새배
 
이정섭 기자
기사입력: 2013/02/10 [09:58] 최종편집: ⓒ 자주민보
 
 

▲ 북녘동포들이 가족과 함께 새배를 한뒤 윷을 놀며 설명절을 즐기고 있다. © 이정섭 기자
우리민족의 대명절인 설을 북녘 동포들은 어떻게 지낼까? 과거 반북 반공 교육을 받던 시기 북은 우리전통 명절도 없이 지낸다고 배웠다.

정말 그럴까? 답부터 말하면 전혀 틀렸다가 맞다. 조국평화통일위원회 기관지인 우리민족끼리는 우리전통 설명절을 소개하는 기사를 실었다.

우리민족끼리는 “음력 정월초하루를 기념하여 쇠는 민속명절인 설은 새해 첫 명절을 이르는 고유한 조선말”이라며 “설명절은 고조선을 비롯한 고대국가시기부터 있었다. 그후 설명절 맞이는 삼국시기와 고려, 이조시기에 이어져 전통적인 풍습으로 더욱 고착되어 큰 규모로 진행되었다.”고 유래를 소개했다.

이 신문은 “섣달그믐날에는 집안 밖을 깨끗이 청소하고 소나무, 학 등 십장생그림을 그려 벽장이나 병풍에 붙여서 명절분위기를 돋구었으며 설 옷(설빔, 세장)과 설음식을 준비하였다.”며 “설맞이행사는 새해 정월초하루날 아침부터 진행되었다. 설맞이행사로는 차례와 세배, 설음식대접, 민속놀이 등이 있었다.”고 전했다.

신문은 “차례는 설날 새벽에 먼저 돌아간 조상들에게 지내는 제사로서 조상숭배관념에서 생겨난 행사였다.”며 “설날 이른 아침에는 웃어른들에게 세배를 하였다. 우선 집안의 웃 사람순서로 차례차례 큰절로 세배를 하였으며 다음에는 마을의 웃어른들, 친척집의 웃 사람들, 스승들에게 세배를 하였다.”고 써 차례와 세배 등 우리민족의 전통을 고스란히 전했다.

또한 “설날에 하는 즐거운 일은 다음으로 설음식을 잘 차려 친척들이 한곳에 모여 먹거나 세배로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대접하는 것이었다. 설날음식은 세찬이라고 하였다. 이날에는 특색 있는 음식인 떡국, 찰떡, 설기떡, 절편 등과 여러 가지 지짐류, 당과류, 수정과, 식혜, 고기구이, 과실, 술을 마련하였고 특히 떡국은 설음식으로서 빠져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고 떡국음식에 대한 특별함도 소개했다.

이어 “설명절을 특별히 장식하고 즐겁게 한 것은 민속놀이였다. 설날의 놀이로는 대중적인 놀이인 윷놀이와 장기놀이, 어린이들의 연띄우기, 썰매타기, 팽이치기, 제기차기, 바람개비놀이 등이 있었다. 이러한 놀이는 우리 인민이 예로부터 즐겨 온 것으로서 정서적이면서도 체력단련에 도움을 주었다.” 고 놀이의 의미를 설명했다.

하루빨리 조국이 통일 되어 남과북을 넘나들며 설을 함께 지 낼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 긴급> 문재인 이제 나와서 밝혀야 한다.

<긴급> 문재인 이제 나와서 밝혀야 한다.
(서프라이즈 / 짜고친고스톱이냐 / 2013-02-08)


이번 설연휴에 국민들에게 대대적으로 홍보하지 않으면 부정선거 의혹과 증거들은 그대로 묻히고 2.25일 박근혜의 대통령 취임은 정당성을 얻고 제 2의 박정희시대, 제 2기 유신독재가 시작됩니다.

조국 교수가 박근혜가 대통령되면 이명박이 그리워지는 시대가 온다는 예언이 100% 증명됩니다. 이명박 시대는 봄날이었다는 것이 증명될 겁니다.

민주, 진보진영의 인사들(문재인 포함)과 국민들의 피의 희생을 줄이려면 양측이 서로 손잡고 하나되어 나아가야 합니다.

부정선거 의혹을 밝힐 수 있는 증거들 확보하고 칼날이 아닌 칼자루를 쥐고 있어야 팍곯은 애가 휘두르는 칼에 피흘리지 않고 고통을 당하지 않게 됩니다.

서프의 여러분도 마찬가지 입니다. 문재인과 하나 되어 피흘리지 않을 자기보호는 해야할 시점입니다 또한 문재인은 우리와 같이 함으로써 살아남을 겁니다.

동의하시면 아래 링크글에 적극적으로 추천하여 베스트 보내주세요.

문재인은 아래 유튜브 동영상의 1:08분 부터 시작되는 해외동포들의 호소와 피토하는 눈물을 보아라!!!!

이런 상황에서도 문재인이 나서지 않는다면 사람도 아니다.
문재인을 우리가 보호하고 지켜줄 이유가 없다.
문재인은 한 나라의 정치인이 돼서도 안되는 치졸한 졸장부다.
국회의원 자격도 없다 사퇴하고 정치판에서 당장 사라져라 !!!!!

문재인 후보 밑에서 대선을 지휘하고 당선되면 한자리 하려고 붙었던 민통당 주류세력(친노)의 친노의원들 수십 명은 대선이 끝나는 순간부터 지금까지 쥐구멍에 숨어서 모습을 감추고 침묵하고 있는데 니들도 마찬가지다.

이 이후에 침묵하여 확실한 부정선거임에도 불구하고 박근혜 세상을 만들어주고 민주,진보진영의 인사들이 탄압당하고 국민이 피흘리고 목숨 빼았기는 지옥문을 열어 놓고도 침묵할 것이라면 국민이 너희들을 단죄하고 감방에 쳐넣기 전에 석고대죄하고 정치판을 떠나라 !!!!

(문재인을 비롯한 주류인 이해찬, 한명숙 등 수십명의 친노의원들은 명심하라)

 

짜고친고스톱이냐

 

 

[펌 1]

어제 회원 수 1,000 명이 넘는 부정선거 의혹 규명에 앞장선 유권소의 미주 회원들과 한국의 회원들이 주권방송 협조로 ‘나는 왜 지난 대선을 부정선거로 생각하는가’의 주제로 제 2차 한미 글로벌 화상회의를 열었습니다.

동영상은 막 유튜브에 올려졌는데 이 동영상이 알려짐으로 부정선거 의혹에 관한 관심이 커져갈 것을 기대합니다.

http://www.youtube.com/watch?v=VNQ024itJMw&feature=youtu.be

 

 

 

[펌 2]

국정원 사태까지 왔다 문재인 이제 나와라!
(다음아고라 / 증거는 민심이 증거다 / 2013-02-08)

 

문재인이 아직 나서서는 안된다고 설레발 치던 1인이다!
문재인의 말과 행동 하나에 엄청난 파장을 몰고올 것이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알기에, 나는 문재인이 아직은 나서면 안된다고 얼마전까지 주장했다.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다르다! 문재인은 국정원 사건과 십알단 사건의 의문에 대해서 국민에게 답할 때가 되었다!

수많은 지지와 투표를 문재인에 던지며, 문재인의 질문에 답했던 유권자들에게 지금은 말하고 보여줄때가 된것이다!

때는 무르익었고, 문재인에게는 그러한 사명이 대권주자로서 국민에게 지지를 부탁하면서 부터 자연 발생 했다!

국정원 사건이 거의 구체화 되어있고, 이제는 국가기관에 근무하는 공무원들의 복지부동을 견제할 야권의 강력한 목소리가 필요 할때이고, 민주당의 복지부동을 흐트러트릴 문재인의 목소리가 필요 할때이다.

국민에게는 그런 목소리가 없다!
오로지 문재인에게만 있다!
지금은 문재인이 국민의 부름에 답을 할때이다!
망설일 이유도 없고, 파장을 걱정할 이유도 없다.

이미 증거는 충분하고,이조차 망설이고 증거탓만 한다면, 문재인은 석고대죄를 통해 국민에게 철저히 사과하고 정치에서 물러나라!

국민에게 지지를 부탁할 자격조차 없었던 자가 정치한다고 깝친것 밖에 안된다!

자신이 국민의 부름을 받고 나왔더라도, 애초에 거절했으면 될일을, 승낙한것은 이러한 국민의 부름에 나올준비는 당연히 하고 있다는것이라 생각하고 그것을 너무도 알 분이라고 믿기에 과감하게 요구한다!

이제는 국민의 부름에 응답하라! 문재인!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articleId=2286570&bbsId=D115&pageIndex=1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뜨겁고 오래 타는 난로 어디 없소?-기발한 난로 다 모여

뜨겁고 오래 타는 난로 어디 없소?-기발한 난로 다 모여

 
이유진 2013. 02. 08
조회수 420추천수 0
 

완주서 2회 '나는 난로다' 공모전 성황…'난로인'들 적정기술 기량 겨뤄

발열통 덧붙인 난로, 거꾸로 타는 난로, '일파만파 난로', 고물 재활용 난로, 드럼통 열풍기…


입춘에 폭설이 내릴 정도로 유난히 추운 이번 겨울엔 따뜻한 난로와 고구마가 절로 생각난다. 이런 겨울에 딱 어울리는 고효율 화목난로 공모전 '나는 난로다' 행사가 지난 2월 1일부터 3일간 완주군 커뮤니티비즈니스센터에서 열렸다.

 

nan1.jpg » 전북 완주에서 열린 '나는 난로다' 전시장.


전국의 난로 장인들이 출품한 59개 작품이 전시되었고, 화목난로·태양열온풍기·폐식용유 바이오디젤 만들기 등에 대한 '적정기술 강의'도 열렸다. 약 6000 명이 방문한 대회장은 한겨울 추위를 녹일 정도로 후끈했다. 자료집은 이틀 만에 동이 났고, 즉석에서 앙코르강연이 진행되기도 했다.


이번 행사를 완주군과 함께 준비한 '지역 에너지 자립 적정기술 네트워크(준)'의 김성원 준비위원은 "이번 출품작들은 지난해 담양에서 열린 대회보다 기술적으로 더욱 성숙했다. 효율을 높이면서도 용도에 맞게 다양하게 출품되었다는 것이 특징이다"고 평가했다.

nan2.jpg

 

총 상금은 1000만원. 300만원의 상금이 주어지는 금상은 '축열식 더블 큐브난로'를 개발한 이주연씨와 '슈퍼펠렛스토브'를 개발한 한국전씨에게 돌아갔다.

 

이번 대회의 심사기준은 고효율 화목난로의 구성요소를 잘 반영하면서도 사용 편의성이 높고, 디자인이 훌륭한 난로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더불어 양산이 가능하고, 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새로운 연소방식을 도입한 것에 가산점을 줬다.

nan3.jpg » 금상을 받은 이주연씨의 축열식 더블 큐브난로.

 

nan4.jpg » 다른 금상 수상작인 한국전씨의 SPS.

이주연 씨는 금속디자인 작가이다. 우연한 기회에 난로를 디자인하게 되었는데, 지금은 실력파로 이번 대회에서 금상을 수상했다.

 

난로의 핵심은 완전연소와 열이용률을 높이는 것이다. 나무를 태워서 발생한 열이 연통을 통해 바로 나가버리면 안 된다. 그래서 이씨는 큐빅 모양의 연소실 위에 발열통을 같은 크기로 설치하고, 열기가 발열통에서 충분히 머물도록 설계했다.

 

이씨의 '난로 철학'은 이용하는 사람이 사용 용도와 장소에 맞게 만들면 된다는 것이다. 자신이 만든 난로는 실내용으로, 은근히 오래 타도록 만들었고 했다. 그의 난로는 이미 서울시 동작구 성대골마을학교에서 사용하고 있다.


한국전씨는 캠핑을 아주 좋아한다. 영하 20도의 날씨에서도 캠핑을 하면서 석유난로를 썼는데,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직접 난로를 만들어 봤더니 나무가 너무 많이 들었다. 그래서 3년 동안 나무를 적게 쓰는 효율 좋은 난로를 집중해서 연구했고, 거꾸로 타는 캠핑용 펠릿난로와 화목난로를 개발해 특허를 받았다.

 

상금이 100만원인 은상은 세 명이나 수상했다. 김준수씨의 '키다리 화목난로', 강상영씨의 '일파만파', 김흥수씨의 '거창화로'가 그것이다.

 

'키다리화목난로'는 불이 위에서부터 타서 내려오는 'T-LUD'(Top-Lit Up Draft) 기술을 채택했다는 점이, '일파만파'는 난로 옆에 라디에이터를 붙여 바닥난방, 화덕, 오븐, 열풍을 할 수 있도록 다기능을 접목했다. '거창화로'는 로켓화목난로의 원리에 충실하면서도 발열과 연소를 개선했다.

 

nan5.jpg » 은상을 받은 김준수씨의 키다리화목 난로.

 

nan6.jpg » 은상을 받은 강상영씨의 일파만파.

동상은 김일환 씨의 '착한 난로'와 안병국 씨의 '잡열 잡는 난로'가 수상했다. 김일환씨는 통영거제환경연합 전 사무국장으로 지금은 적정기술 기술자로 변신했다. '착한 난로'는 발열통을 따로 두어서 열을 충분히 사용하도록 만들어 나무가 많이 안 들어가기에 그런 이름을 붙였다. 안병국씨는 완주에서 만든 불노리영농조합법인에서 활동하고 있는데, 지역 당선자로 완주의 체면을 세웠다.

 

nan7.jpg » 동상 수상작인 김일환씨의 '착한 난로'.

 

nan8.jpg » 역시 동상을 받은 안병국씨의 '잡열 잡는 난로'.

장려상은 정지용씨의 '하이브리드 난로'와 류영옥씨의 '고물딱지 난로'가 수상했다. '하이브리드 난로'는 난로에 착탈식 열교환기를 부착해 온수를 생산하는 방식이고, '고물딱지 난로'는 거의 모든 재료를 재활용한 재료로 사용해 환경과 에너지를 고려하면서도 효율을 높였다.

nan9.jpg » 장려상 수상작인 정지용씨의 '하이브리드 난로'.

nan10.jpg » 장려상을 받은 류영옥씨의 '고물딱지 난로'.

그 외에도 주목할 만한 난로로 가스통을 쉽게 재활용한 원주공방의 '멧돼지 난로', 드럼통으로 구둘 효과를 낸 '드럼통 구들', 농가 비닐하우스에 사용하기에 적합한 '드럼통 열풍기' 등이 있다. 이들은 수상작은 아니었지만 실용성과 아이디어가 돋보였다.

 

nan11.jpg » 원주공방의 '멧돼지 난로'.

nan12.jpg » '드럼통 구들'의 얼개.

 

nan13.jpg » 비닐하우스에 쓰기 적합한 '드럼통 온풍기'.

완주군에서는 내년 군의 다양한 먹을거리와 결합해 '나는 난로다' 3회 대회를 준비하겠다고 밝혔다. 이번에는 에너지 자립마을 덕암마을에서 고효율화덕으로 'Fire Food'를 준비했는데, 다음에는 더욱 풍성해질 것으로 기대된다.

 

임정엽 군수는 올해 완주군의 시정 목표로 ‘로컬 에너지’정책을 펼치겠다고 밝혔다. 농촌도 에너지 위기에 대응해야 할 뿐만 아니라 군민의 에너지 부담을 덜기 위해 적정기술을 활용한 에너지 복지정책을 적극 도입한다는 것이다.

 

로컬푸드 1번지가 된 완주군에서 로컬에너지를 어떻게 일궈낼지 기대가 되는 대목이다.

 

nan14.jpg » 올해 완주군에서 로컬 에너지 정책을 펼치겠다고 발표하는 임정엽 군수.

마지막 날에는 '적정기술 에너지협동조합 포럼'이 열렸다. 앞으로 논의는 더 진행되겠지만 올해 난로를 포함한 농촌에 적합한 적정에너지 기술을 교육하고 연구하는 협동조합이 완주에 만들어질 것으로 보인다.

 

'나는 난로다' 경진대회도 난로만이 아니라 태양열 온풍기, 단열 건축기술 등 다양한 분야로도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완주군은 앞으로 지역에너지 자립을 위한 다양한 실험을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전국 난로인들의 축제로 자리잡은 '나는 난로다'행사는 우리 농촌에 적합한 적정기술의 가능성과 필요성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자리가 되었다. 내년 대회가 어떻게 진화할지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글·사진 이유진/ 한겨레 물바람숲 필진, 녹색당 공동정책위원장

 

관련글

 

 

이유진 녹색연합 녹색에너지 디자인 팀장
녹색연합 녹색에너지 디자인 팀장. 재생가능에너지, 기후변화, 원자력 발전, 지속가능한 발전 분야에서 풍부한 현장 경험과 전문적 식견을 지녔다. <동네에너지가 희망이다> <에너지 자립마을 만들기 가이드북> 등의 저서가 있다.
이메일 : leeyj@greenkorea.org
블로그 : http://plug.hani.co.kr/localenergy

최신글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하늘에서 설 맞는 사람들] 송전탑, 성당 종탑 등에 오른 노동자들

아들의 33m 고공농성, 어머니는 한 달 넘게 몰랐다

 

13.02.09 11:27l최종 업데이트 13.02.09 11:27l

 

 

매서운 칼바람이 부는 하늘에서 설날을 맞이하는 사람들이 있다. 고공 농성 중인 노동자들이다. 이들이 머무는 곳은 15만 볼트 송전탑, 성당 종탑, 굴다리 난간 등이다. 적게는 3일째부터 길게는 115일째 농성들을 벌이고 있다.

8일 전화 통화를 통해 이들의 심정을 들어봤다.

[복기성 쌍용자동차 해고자] 송전탑 생활 81일째... 소원은 "가족과 저녁식사"

▲ 쌍용차 철탑농성 77일째 지난 4일 민주노총 금속노조 쌍용차지부의 한상균(52) 전 지부장, 문기주(53) 정비지회장, 복기성(38) 비정규지회 수석부지회장이 77일째 경기도 평택시 쌍용자동차 공장 부근 철탑에서 국정조사 실시, 비정규직 정규직화, 해고자 복직 등을 요구하며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다.
ⓒ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10분 거리에 아이들이 있는데…."

복기성 비정규지회 수석부지회장은 "설 연휴에는 아이들을 보고 싶다"며 말을 흐렸다. 복 부지회장에게는 7살 딸과 5살 아들이 있지만 81일째 아이들 얼굴을 쓰다듬어주지 못했다. 그가 있는 곳은 경기 평택시 쌍용자동차 공장 앞 송전탑. 15만 4000볼트의 전류가 흐르는 곳이다.

한번은 부인이 아이들과 함께 송전탑 먼발치까지 와서 손을 흔들어줬다. 그는 바람에 휘청거리는 송판 위에 서서 아이들을 바라봤다. "아빠가 보고 싶다"며 우는 모습에 그의 마음도 흔들렸다고 한다. 그 뒤로 아이들은 오지 않았다.

그는 2009년 쌍용차 정리해고 사태로 해고된 비정규직 노동자다. 그가 원하는 건 복직과 정규직 전환 그리고 쌍용차 국정조사다. 얼마 전 무급휴직자 455명이 복귀하게 됐지만 여전히 201명은 해고된 상태로 남아있다. 그동안 불거져온 회사의 회계조작도 풀어야할 문제다. 하지만 그의 진짜 소원은 바로 이거다.

"개인적인 소원은 가족들과 함께 저녁 식사를 하는 거예요. 아내가 차려준 밥 먹으면서 즐겁게 설 연휴를 보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습니다."

[홍종인 유성기업 해고자] "설도 설이지만... 오는 15일은 초등학생 아들 졸업식"

홍종인 금속노조 유성기업 지회장
ⓒ 충남시사 이정구

관련사진보기


홍종인 금속노조 유성기업 지회장은 14살 아들에게 "미안한 마음 뿐"이다. 올해 중학생이 되는 아들은 오는 15일 초등학교 졸업식을 치르지만, 아버지인 그는 졸업식에 가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아버지로서 아들 졸업식에 참석해 사진이라도 같이 찍고 싶죠. 그런데 당장 설날에 아들이랑 떡국 먹는 일도 힘든데요."

그는 충남 아산시 유성기업 인근 자동차전용도로 굴다리 난간에 움막을 매달고 고공 농성 중이다. 그는 2011년 노조파업에 대한 유성기업의 직장폐쇄로 거리에 내몰렸고, 지난해 10월 21일부터 회사의 사태 해결을 요구하며 고공 농성을 시작했다. 8일로 111일째가 됐다. 이번 설 역시 한 사람 누울 정도 크기의 움막에서 버텨야 한다.

그가 처음 굴다리 난간 위에 올랐을 때, 그 모습을 본 아들은 많이 울었다고 한다. 세 달이 훌쩍 지났는데도 아들의 눈물샘은 마를 날이 없다. 설날 때 손에 용돈이라도 쥐어주며 마음을 달래주고 싶지만, 그의 몸은 굴다리 난간 위 움막에서 움직일 수 없다.

그는 오늘도 "아버지 노릇을 할 수 있는 날"을 꿈꾸며 하루를 마감한다.

[오수영 재능교육 해고자] 난간 없는 성당 위에서도 시어머니 걱정

전국학습지산업노동조합 재능교육지부 소속 해고노동자인 여민희(41)씨와 오수영(40)씨가 6일 서울 종로구 혜화동 재능교육 본사 맞은편 혜화동성당 종탑에 올라가 해고자 전원 복직과 단체협약 원상회복을 요구하며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오수영씨가 재능교육 본사 간판을 배경으로 서 있다.
ⓒ 이주영

관련사진보기


오수영씨는 남편과 함께 70세 넘은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아왔다. 매년 설 연휴 때마다 친척들이 그의 집에 찾아왔다. 오씨는 시어머니를 도와 전을 부치고 차례상을 차렸다.

하지만 올해에는 시어머니 혼자 제수음식을 준비해야 한다. 재능교육 해고 노동자인 그는 지난 6일부터 동료 해고 노동자와 함께 서울 종로 재능교육 본사 건너편 헤화동 성당 종탑에서 고공 농성에 돌입했다.

"시어머니한테는 아들만 셋이에요. 제대로 된 음식을 만들 줄 아는 사람은 저밖에 없는데…."

전국학습지산업노동조합 재능교육지부(이하 재능교육노조)의 전임자로 활동하던 오씨는 2008년 해고됐다. '노조 활동을 그만 두고 업무에 복귀하라'는 회사의 명령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서울행정법원은 지난해 11월 "재능교육 학습지 교사들에 대한 계약해지는 무효"라고 판결했지만 오씨는 여전히 복직되지 않고 있다. 그가 성당 종탑에 올라간 이유다.

"가족이 그립지만 해고자 복직과 노동조합 인정이 이뤄질 때까지 내려오지 않겠다"는 오씨. 그는 이번 설날을 높이 20m 너비 약 30m²의 난간 없는 종탑에서 맞고, 그의 시어머니는 혼자 제수 음식을 준비해야 한다.

[김재주 택시노동자] 33m 조명탑에 있는 아들, 어머니는 언론 보고 알았다

김재주 공공운수노조 택시지부 천일교통 분회장이 손을 내밀어 인사를 하고 있다.
ⓒ 문주현

관련사진보기


공공운수노조 택시지부 천일교통 분회장인 김재주씨의 어머니는 얼마 전에야 아들이 어디에 있는지 알았다고 한다. 그것도 언론 보도를 통해서다. 8일 현재 아들은 전주 야구장의 33m 조명탑에서 36일째 지내고 있다. 한 달이 넘도록 까맣게 모르고 있던 것이다.

택시노동자였던 김 분회장은 2011년 11월 5일 천일교통에서 해고됐다. "민주노총 노조를 세우면서 회사 측의 노조탄압이 시작됐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김씨는 고용노동부 노동위원회의 복직명령을 받았는데도 6개월 넘게 복직을 거부하는 회사에 항의하기 위해 지난 1월 4일 조명탑 위에 올랐다.

김 분회장의 어머니는 "설날에도 그 모진 곳에서 지내야 하냐"며 걱정했다고 한다. 하지만 아들은 오히려 어머니가 걱정된다.

"어머니가 전주에서 혼자 사세요. 이번 설날에 자식도 못보고 혼자 계셔야 하잖아요. 얼른 복직돼서 좋은 모습으로 어머니를 찾아뵙고 싶습니다."

[천의봉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 설날 소원이 뭐냐는 질문도 그에겐 사치였다

현대차 울산공장 앞 송전탑 위에서 농성 중인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 천의봉씨.
ⓒ 박석철

관련사진보기


"바람이 하도 불어서 체온이 많이 떨어졌어요. 바람이 세니까 '공중부양' 할 때도 있고요(웃음). 그래도 여기 있은 시간이 오래되니까 몸이 좀 적응이 되는 것 같네요. 설 연휴 한파라고 해도 어떻게든 버틸 수 있겠죠."

천의봉씨의 목소리는 덤덤했다. 그가 있는 곳은 울산 현대자동차 공장 주차장 안 송전탑이다. 15만 볼트의 고압 전류가 흐르는 50m 높이의 송전탑 중간에서 생활 중이다. 한 칸 쪽방보다 좁은 간이 천막으로 올 겨울을 버티고 있다. 영하의 매서운 추위를 막아줄 수단은 개인용 침낭과 손난로가 전부다.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노동자인 그가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의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이곳에 올라온 지 벌써 115일째가 됐다. 명절 때 고향인 경북 의성으로 가고 싶지만, 현대차 비정규직 문제가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아 "들뜬 마음도 가라앉았다"는 천씨. 그는 "갑갑하지만 땅에서 함께 농성을 돕는 동료들이 있다는 사실에 위안을 받으려고 한다"고 체념했다.

'설날 소원이 뭐냐'고 묻자, 천씨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일단 땅에 발을 딛고 서야 무슨 소원이라도 빌지 않겠냐"는 것이다. 설이면 흔히 하는 질문조차 그에게는 사치였던 것이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굿바이, PC통신…"우린 신인류였어"

[방담] PC통신은 우리에게 무엇을 남겼나

김봉규 기자(정리)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3-02-10 오전 2:02:42

 

1990년대에 PC통신으로 출발했던 웹 사이트 나우누리가 지난달 31일 문을 닫았다. 급작스러운 소식은 아니었다. 지난해 말 야후 코리아가 철수했고, 초기 온라인 시대의 대표 사이트였던 프리챌도 저물었다. 월드와이드웹(WWW) 시대 이전의 온라인 서비스였던 PC통신은 대부분의 누리꾼에게 이미 추억으로 남아 있는 상태였다. 나우누리의 종료 선언은 그 희미해지는 추억을 다시 상기시키는 계기였다.
<프레시안> 기자들도 감회에 젖었다. 인터넷 세계로 넘어오면서 자연스럽게 잊혔던 PC통신의 추억을 다시 곱씹자는 취지로 기자 4명이 모여 수다를 떨었다. 독자들도 설 연휴에 또래 친척과 모여 앉아 PC통신을 추억해보는 건 어떨까. <편집자>


PC통신 뭐 했어요?
 

*참가자: 이텔(37세, 여), 누리(34세, 남), 리안(30세, 남), 니텔(27세, 여)


리안: 지난 일요일(3일) <EBS>에서 심야에 방영하는 '한국영화특선'에 <접속>이 나왔어요.

일동: 아~.

누리: <접속>이 PC통신으로 만나는 이야기였나?

이텔: 네. 유니텔이었어요.
 

▲ 1997년 개봉됐던 영화 <접속>. 현대의 소외된 두 남녀를 이어주던 끈은 당시 청년층을 중심으로 퍼져 나갔던 'PC통신'이었다.

리안:

(나우누리 소식과 관련해) 의도가 있는 편성이라고 보이는데. 먼저, 각자 PC통신을 언제 접했었나요?

이텔: 저는 1996년 말에 처음 접했어요.

리안: 하이텔?

이텔: 아니. PC통신의 초창기여서 큰 규모가 아니라 BBS.

리안: 사설 BBS라고 부르던?

이텔: 응. 참세상이라고…진보네트워크의 PC통신 버전인데, 같이 놀던 사람들이 많이 있어서 접하게 됐고. 당시 접속해서 'all'이라는 명령어를 치면 접속한 사람들이 다 보였어요. 작은 규모라 많지 않았지. 그래서 접속한 사람들에게 말 걸고 놀았는데, 그 당시 문화진보운동 쪽 사람들이 많아서 정보도 많이 접했죠.

그러다가 큰물로 가고 싶어져서 처음 시작한 게 유니텔. 당시
이미지가 '쌔끈'했거든. 하이텔이나 나우누리는 벌써 낡은 느낌이 있었는데 유니텔은 신세대를 겨냥해 만들었다는 느낌이었죠. 나우누리도 동아리 활동 때문에 했고, 나중에 하이텔도 했고.

누리: 저는 1997년 고등학교 3학년 때 처음 했어요.

이텔: 고3 때?

누리: 수능 압박을 별로 안 받아서….

리안: 어느 서비스?

누리: PC통신은 닫힌 곳이었잖아요. 가입을 해도 다른 PC통신은 못하고. 뭐 할까 하면서 보니 천리안은 확실히 '노땅'들이 사용하는 이미지였고, 하이텔도 마찬가지. 나우누리, 유니텔 둘 중 하나였는데 고민하다가 나우누리가 갈 만한 데가 더 많다고 해서 들어갔죠. 그 때는 열심히 안 했고 대학 가서 죽어라 했죠.

니텔: 1998~1999년 사이에 시작했어요. 그 '삐삐삐~'(☞듣기) 하는 소리 나던…(누리: 모뎀) 네, 모뎀. 하는 동안에는 전화도 못 받고. 중학교 2학년 때 한 아이돌 그룹을 좋아해서 하이텔 연예 게시판과 그 그룹 팬클럽 헤비유저가 됐죠. 그러다 사람들이랑 채팅하고 친해지면서 나중에는 우리끼리 따로 비밀 소모임을 만들어서 활동했어요. '정모' 같은 거 하면 나중에 인물 게시판에 '인평'(인물 평가)도 올라오고…. 심지어 그곳에서 알게 된 언니 때문에 '티티마' 강세미 팬클럽 시삽까지 했고(웃음).

누리: 티티마, 정말 추억의 이름이다. 시삽이라는 말도….

리안: 저는 1996년에 처음 접했고, 나우누리를 썼죠. ID라는 말의 개념 자체를 잘 몰라서 제 이름 이니셜에 살던 집 호수를 붙여서 만들었던 기억이 나네요.

누리: 전 누나 ID를 썼는데 '상상의별'이었어요(일동 폭소).

리안: 당시 ID 길이가 한글 4글자까지 가능했던 것 같네요.

일동: 맞아, 맞아.

리안: 하이텔은 게스트 ID로 로그인하면 판타지 소설 등이 연재되는 게시판에 접근이 가능했죠. 이영도가 판타지 소설 <드래곤 라자>를 연재하던 그 게시판, 거기에서 갈무리를….

일동: 갈무리…흐흐흐.

리안: 갈무리 명령어가 'pr'이었나…. 각설하고, 다들 PC통신을 하던 장소는요?

이텔: 집에서 방해받지 않는 밤 시간. 학교는 PC실 줄이 너무 기니까. 오래 쓰면 눈치 보이고.

누리: 대학 입학한 후에는 자취방에서 주로 사용했죠. 1학년 때 필수교양수업 하나가 오전 8시에 시작했는데, 알잖아요? 대학교 1학년 때 얼마나 인간이 망가지는지? 그 수업 들어간단 핑계로 밤새 PC통신 하고, 결국 뻗어서 학교도 안 가고…. 나뿐만 아니었어, 대학교 1학년 때만 해도 사람들이 PC실에서 그 '삐삐삐~' 하면서 파란 화면을 쳐다보고 있었죠. 뒤에는 프린트하려고 온 학생들이 기다리고 있는데. 그래서 문제 되기도 했고.

리안: 어릴 때라 집에서만 했는데, PC통신 중에는 전화가 통화 중이어서 많이 혼나곤 했죠.

니텔: 그래서 핑계도 만들었죠. 사실은 '팬픽'을 쓰는데 부모님에게 '소설을 쓴다, 나의 미래를 위해 투자하라'고(웃음). 그 뒤로는 안 혼났어요.

리안: (PC통신 에뮬레이터 프로그램) 이야기, 새롬데이타맨도 기억나세요?

누리: PC통신 확장기가 IMF 환란 때와 겹치잖아요, 그때 새롬데이타맨 주가(새롬기술)가 삼성 주가보다 더 올랐어요. 시가총액이 삼성보다 더 오른 거예요. 김대중 정부도 세금 들여서 땅 까고 인터넷망 깔던 때였고. 젊은 층 상대로 PC통신이 폭발적인 인기를 얻으니 새롬데이타맨이 나스닥에도 상장한다느니 별 기사가 다 나왔는데, 우리나라 주식 거품 역사에서 한 획을 그었을 거예요. 삼성전자를 넘었으니.

메탈리카가 센가, 메가데스가 센가?

이텔: 당시 PC통신 진입장벽 중에 전화비가 있었나요?

리안: 모뎀 가격도 비쌌죠. 저는 십만 원을 훌쩍 넘게 주고 샀던 기억이 나네요.

누리: 가입비도 내야 했고.

리안: 나우누리가 1만4000원 정도 했었던 것 같네요.

누리: 하이텔이 9900원 정도였고, 천리안이 제일 비쌌었죠.

리안: 신기하다고 해야 할까, 현재 집에서 인터넷을 3년 약정으로 월 2만 원 정도에 쓰고 있는데, 당시 이용료와 전화비를 합치면….

누리: 더 비싸죠. 물가 상승을 감안 안 해도. 당시엔 386DX 컴퓨터가 600만 원에 나오고 하던 시절이었으니. 접하기 어려운 고급 문화였던 셈이죠.
 

▲ 요즘도 회자되는 1990년대 컴퓨터 광고.


이텔: 20대 이상에서 문화가 됐다고 보는 게 맞죠.

누리: (고등학교) 반에서는 친구들과 PC통신 이야기한 적이 별로 없으니까.

리안: PC통신을 접하고 느낀 충격은 '아 이렇게 고수가 많았구나'라는 것. 지금보다 더 강하게 느꼈죠. 음악을 좋아했는데 당시 잡지에서 전문가들이 쓰는 글만 보다가 PC통신에 들어가니 '지미 헨드릭스가 최고인가, 잉베이 맘스틴이 최고인가' 하고 싸우고 있더라고요. 글 쓰는 사람들이 모두 표현력도 좋고….

누리: PC통신 문화라는 게 신문, 언론의 권력이 낮아지게 된 첫 시대를 연 게 아니었나 싶어요. 재야의 고수들이 출몰한. <퇴마록> 열풍이 대표적이고. 재야의 고수들이 자신의 존재를 사방에 알리기 시작했고, 그걸 바탕으로 기성 언론이 따라가지 못하는 동시대의 이야기를 우리의 언어로 하기 시작했고. 거기에 사람들이 열광하면서 새로운 정보들이 유통되기 시작했고. 그 세대가 인터넷에서도 <딴지일보> 식으로 넘어온 거잖아요.

PC통신이 가장 위력을 떨친 것 중 음악이 있는데, 누구나 인정하는 PC통신 동호회로 하이텔의 '블렉스', 나우누리의 'SNP', '메탈체인' 등이 있었죠. 블렉스, SNP는 힙합 동호회였는데, 당시 거기 있던 사람들이 자기들끼리 데모 테이프 만들어 공유하다가 지금 다 현업 뮤지션으로 활동해요. 면면을 보면 블렉스 출신으로 가리온, 주석이 있고 SNP에서는 버벌진트, 휘성이 다 그쪽 사람들이에요. 말 그대로 우리나라 힙합 문화를 만든 곳이죠. 언더그라운드 힙합. 메탈체인 쪽 대표 뮤지션으로는 오지은이나 김윤아가 있고.

리안: 방담 준비하면서 보니 델리스파이스는 하이텔 메탈동 소모임 '모소모'에서 활동했다고 하네요. 모던락 소모임이었던 모소모를 만든 사람이 언니네이발관의 이석원.

이텔: 홍대 언더문화 얘길 하기 시작한 게 1996년부터잖아요. 예전에 이석원 씨 인터뷰할 때 다른 뮤지션들한테도 물어본 게 있어요. 음악이라는 분야가 그런가, 기타를 사서 치면 되지만 영화 같은 경우는 당시로선 엄청난 크기의 카메라가 필요하니 영화 동호회가 있어도 영화를 찍지는 않았어요. 근데 모소모 이런 데 모인 사람들은 그 전까지는 음악을 하지도 않았지만 어릴 때 피아노 학원에서 배운 것 말고는 딱히 음악적 훈련을 받지 않았던 친구가 키보드연주하기 시작하고, 이석원은 (음악 한다고) 거짓말하다가 실제로 밴드를 만들었고, 이석원과 친하던 고등학생이 그 밴드에 들어가 기타를 치고.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물어봐도 '만날 만나는 사람이 이 사람들이고 이 사람들이랑 음악 얘기하다 보니 이렇게 됐다'고만 하더라고요.

누리: 우리나라 대중 문화, 개인의 취미 생활이 전혀 환영받지 못하던 시대였죠. 공부·돈 아니면 안 되는 사회에서 처음으로 개인의 문화가 소중하다는 걸 PC통신을 통해 사람들이 깨달은 거죠.

니텔: 우리가 좋아하던 1980년대 외국 뮤지션들을 보면 그냥 동네에서 만나서 차고에서 합주하다가 밴드 된 예가 많은데, 우리는 PC통신 이전까지는 그렇게 만날 수가 없었던 거죠.

누리: 우리에겐 그 차고 역할을 PC통신이 한 거고.

니텔: 도시에서 합주가 불가능한 사람들이 만나서 '찌질'대다 뭔가 하나 나오고 그런 거죠.

누리: 판타지 문학도 PC통신에서 나왔고.

이텔: 동호회라는 존재 자체가 획기적인 것 같아요. 지금 보면.

누리: 1990년대 문화 폭발 현상을 우리 세대가 이끈 거죠. 메탈체인에 가면 딴 곳에서는 안 하던 얘기를 우리 언어로 할 수 있었으니까. 메탈리카가 세니, 메가데스가 세니…정말 이런 유치한 논쟁을 각종 자료를 붙여가면서 주고받기 시작한 거죠. 모두 궁금한 거니까.

리안: 메탈체인에서 음악 한 곡을 내려받았었는데, 나중에 찾아봐도 시중 음반으로는 듣기 어려운 일종의 희귀 버전이었어요. 지금도 갖고 있고. 지금과 비교해 PC통신의 규모가 그리 크지 않았어도 집중력이 있다는 인상이 있었어요.

걔가 나우누리의 걔였어?

누리: 반대로 대중 문화를 향유하는 취미가 없던 사람들도 대학교에 처음 가거나 할 때 신입생 '번개' 같은 걸 하는 통로로 PC통신을 처음 접했죠. 저도 PC통신으로 동창 만났었고.

니텔: 지금도 존재하는 특정 인간형의 습관이 PC통신 시절 형성되었다고 봐요. 제가 경험한 건 팬덤 문화니까 거기에 국한해 얘기하자면 전통적인 팬덤, 그러니까 JYJ 같은 아이돌 팬덤뿐 아니라 가령 일본 애니메이션 팬이나 영화 <어벤저스>를 가지고 동인지를 생산하는 문화 같은 게 있잖아요. 어떤 것을 매우 좋아해서 '팬질'을 하고, 그게 '덕질'로 이어지고, 그게 2차 창작으로 이어지는. 그런 세계가 있는데 PC통신 때 봤던 게 그대로 이어지고 규모나 질은 더 커진 것 같아요. 주로 여성들의 세계인데….

리안: 동인 문화 같은?

니텔: 그렇지. 현재 많은 '덕질' 혹은 '2차 창작' 하고 있는 여성들은 PC통신을 많이 했었고, 이것저것 건드려 온 계보가 있어요. 생각나는 건 소위 '팬 아트'인데, 좋아했던 아이돌 그룹 팬 내에서도 팬 아트를 잘 그리는 사람이 있었고, 그 사람이 코믹월드 같은 데 나가기도 하고 그랬죠. 그런 사람들이 글 쓰면 같은 팬 입장인데도 환호하고. 정모 때도 인기 제일 많고.

이텔: '존잘'인데(웃음).

누리: 존잘?

이텔: '존나 잘 그린다'의 준말. (웃음)

니텔: 아직도 기억하는 ID가 있는데, 'OOO'님이 정말 잘 그렸는데…(일동 폭소). 나중에 인터넷에서 집요하게 검색해 보니 그 언니가 한예종(한국예술종합학교) 애니메이션과에 들어갔더라고요(일동: 아~).

그러니까 정리하자면 전부 아이돌 그룹을 좋아해 모였는데, 그 안에서 인기인과 팬이 또 형성되는 거죠. 그림 잘 그리고 소설 잘 쓴다는 이유로 어떤 ID를 신봉하는 사람이 생기고, 당사자도 2차 창작으로 어딘가에서 암약하고 있고, 21세기 여성들의 규방 문화라고 해야 할지(웃음). PC통신이 그 원류가 아닌가 싶어요. 그 정서는 지금도 인터넷 곳곳, 동인지가 판매되는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고.

이텔: 지금 트위터에서 '박원순이 나한테 멘션했다' 이러는 것처럼, PC통신은 우리가 생각하는 유명 인사와 말을 섞을 수 있는 첫 번째 창구였던 것 같아요. 저의 경우엔 당시 '신세대 작가'라는 명칭으로 수식되던 백민석 씨에 대한 추억이 있어요. <헤이, 우리 소풍간다>라는 소설을 읽고 하이텔 문학동에 감상문을 괴발개발 써서 올렸죠. 그런데 백민석 씨가 '감상문 잘 봤다. 고맙다'라는 메일을 보냈어요. 그날 밤 설레서 잠도 못 잤어요. 그런 식의 동경하던 사람들과 말을 섞게 되고, 만나기도 하고, 그런 가능성 때문에 팬덤과는 또 다른 의미가 있었어요.

니텔: 다르게 얘기해보면 그 전까지는 텔레비전에 나오는 사람만 팬클럽을 이끌 수 있고 소위 셀레브리티(celebrity)의 권위를 가질 수 있었잖아요. 그런데 지금 트위터를 보면 바깥에선 전혀 알려져 있지 않은 사람이 파워 트위터리언이 되어 있어요. PC통신에서도 현실 직함은 백수인데 뭐 하나를 잘한다는 이유로 재야의 고수가 되고 팬을 거느릴 수 있었죠. 그런 '평범한 ID님의 셀레브리티 화(化)' 문화의 시작점이 PC통신이었던 거죠.

이텔: 적어도 동네 노는 형은 될 수 있었던.

니텔: 10년 뒤에 '걔가 나우누리의 걔였어?' 하는(웃음).

누리: 궁금해서 방금 트위터에서 PC통신을 검색해봤는데, 우리가 빼먹은 추억이 있다. PC통신 들어가면 인사가 당시 '방가방가', '하이룽'….

이텔: 안냐세요~.

니텔: 리하이~.

리안: 리하이?

니텔: 채팅방에서 튕겼다가 다시 들어올 때. re-hi.

인터넷, 파란 화면도 아닌데 왜 공짜지?

리안: PC통신을 언제부터 잊었나요?

누리: 전성기가 5년도 못 갔으니까….

리안: 당시 모뎀으로 인터넷을 처음 했는데, 넷스케이프를 통해 천천히 로딩되는 야후 초기화면을 처음 봤을 때 충격이 굉장했죠.

니텔: 당시엔 인터넷 검색창에 뭘 쳐도 사용하는 사람들이 없으니 결과가 며칠 동안 똑같고 그랬어요. 그래도 뭔가 정보를 얻고 싶어서 계속 썼고.

리안: 저는 '다운족'이었는데 고속 인터넷망이 뚫리고 인터넷에 '와레즈'(warez) 사이트 같은 게 생기면서 PC통신 자료실과 멀어지게 된 것 같아요. 음악 같은 경우에도 소리바다가 생겼었고.

누리: PC통신 단절은 군대에 가면서 자연스럽게 이뤄졌어요. 군대 가기 전에는 PC방 가면 한쪽에서는 스타크래프트 하고 한쪽에는 '삐삐삐~' 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이듬해 휴가를 나와서 PC방에 갔더니 친구들이 '스카이러브'라는 채팅 사이트를 가르쳐줬죠. 전 그걸 새로운 PC통신으로 알고 있었어요. 화면이 깔끔해서 '엄청 비싸겠다'고 생각했고. 그런데 가입비도 안 내더라고요. 그냥 하면 된다는 거예요. 공짜라는 개념 때문에 처음에는 충격을 받았어요. '파란 화면도 아닌데 왜 공짜지' 하는. 적응하는 데 한참 걸렸던 것 같아요.

리안: 고속 인터넷을 쓰면서 비용이 더 늘어났는데, 나우누리만 쓰는 데 1만4000원씩 주기가 아까워지기 시작했죠.

이텔: 저의 경우에는 직장에 들어가 바빠지면서 멀리하기 시작했죠. PC통신은 '잉여'들의 문화였잖아요. 시간이 있으니 정보를 모아 '자랑질'하는 게 PC통신이었는데, 바빠지니까 자연스럽게 멀어지는.

또 PC통신에서 함께 놀던 또래들이 일제히 사회생활을 시작했어요. 영화동에서 놀던 사람은 현장 가서 제작부에 들어가고, 누구는 또 영화 잡지 붐이 일면서 웹진이 생기니 그쪽으로 흡수가 되고, 음악 소모임 하던 애들도 음반회사 들어가고. 취미를 직업의 영역으로 옮기는 사람들이 늘어난 거죠. 일터에서 만나면 되니까 PC통신을 굳이 할 이유가 없고. 한 세대가 공통적으로 PC통신을 하다가 일시에 딱 끊긴 거 같아요.

우린 신인류였어

리안: 현재로 돌아와 봅시다. 돌이켜보면 2000년대 전반기는 인터넷 확장기이고, 후반기에는 일종의 '대세'가 나타났던 시절이라고 봐도 될까요? 검색은 구글, 포털은 네이버, '잉여 문화'는 디시인사이드, 정부 비판하는 사람들은 특정 사이트로 몰리고, 트위터가 출연하는 등 SNS가 현재 인터넷 문화의 가장 큰 특징이 되기도 했죠. 오늘 방담 목적이 PC통신의 향수를 나누는 것이지만요, 현재 인터넷과 PC통신의 대비를 통해 우리가 특정한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요?

니텔: PC통신에서 인터넷으로 옮겨간 것은 기술 발전과 시대상에 맞춰가는 문제라고 봐요. PC통신에서 놀라웠던 것들이 더는 놀랍지 않고, 사실 PC통신을 그 당시 하지 않던 사람들도 2000년대에 들어와 대부분 인터넷 사용을 했단 말이죠. 자신만의 습관을 터득하고 자신만의 정보 습득 능력, 사람들을 만나는 걸 선택할 수 있게 된 거죠. 그걸 단순히 'PC통신 시절엔 우리만의 문화였는데 아쉽다'거나 '지금은 재밌는 게 없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그저 시대 변화에 따라 이런 문화를 향유하는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많아진 거죠.

누리: 나우누리 문 닫는다는 기사를 보고 사람들이 '그때가 좋았지'라고 하지만 당시만 해도 PC통신의 언어 파괴 현상 등에 대한 비판도 많았어요.

이텔: 옛날 신문 보면 분명 나올 거야.
 

PC대화 '문법 파괴' 확산

컴퓨터통신이 새로운 대중매체로 빠르게 확산되면서 컴퓨터통신 용어의 '문법 파괴'가 새로운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13일 정보통신부에 따르면 96년 7월 말 현재 컴퓨터통신 이용자는 270만 명을 넘어섰으며, 남북한 언어의 이질화에 못지않게 '미디어세대' 간 언어의 장벽도 갈수록 높아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어솨여(어서와요), 안냐세요(안녕하세요), 방가(반가와요), 설사라요(서울 살아요), 잼(재미있었어요), 그럼20000(그럼 이만), 담에 바여(다음에 봐요)" 등을 볼 수 있다. 컴퓨터통신 대화방에 처음 들어간 사람들은 '이게 무슨 소린가' 의아해 하지만, 청소년들 사이에선 이미 일상용어로 자리 잡은 컴퓨터식 대화법이다. 이런 표현법들은 컴퓨터 통신이 지닌 쌍방향커뮤니케이션 기능에 힘입어 급속하게 전파되고 있다. (<한겨레> 1996년 8월 14일자)


누리: X세대가 삐삐로 통일되는 세대였는데, <동아일보>가 당시 1면 하단 기사로 'Y세대'라는 개념을 내세워 1979~1981년생만을 따로 묶어보려고 하기도 했어요. 그 세대의 특성으로 PC통신을 하고 힙합 바지를 입고 HOT를 좋아하고….

니텔: 트위터에서 이런 말을 본 적이 있어요. "지금 이 시대의 모든 매체는 인터넷의 부분집합"이다. 방송을 예로 들면, 과거엔 방송 자체로 권력을 가졌지만 지금은 그렇지가 않아요. 다시 보고 싶어도 처음 띄우는 건 검색창이고, '방송 반응' 즉 검색어 같은 게 없으면 권위가 휴지 조각이에요. 모든 자료가 검색어 망의 부분집합이 되어버렸죠. 세계가 인터넷이 되어버렸다는 느낌인데.

PC통신과 인터넷은 다르지만, 어쨌든 뭔가 화면 속에서 생활을 영위하고 사람을 아이디로 접하고 이런 공통점을 생각해 보면, 과거엔 일부의 습관·생활이었던 게 지금은 모든 사람의 습관이 되었다고 생각해요. 그 농도는 희석되었겠지만 어쨌든 지금 인터넷 문법을 외면한 채 살아가는 사람은 없거든요. 그래서 PC통신에 대한 향수를 갖는다는 건 그런 습관을 소수만 누렸던 시절에 대한 향수가 아닐까요? 지금은 다 인터넷형 인간이지만, 그때는 약간의 특권의식과 무언가를 선도한다는 인식이 있지 않았나 싶어요.

이텔: PC통신을 했던 10대 후반, 20대 초반의 나를 그리워하는 게 더 맞는다고 봐요. <접속> 같은 영화가 어마어마한 흥행을 기록했고 삽입곡도 확 뜨고 했었는데, 영화에 나온 신세대 사랑법, 너무 고독해서 하루키적 인간형이라고 내세워져 컴퓨터로만 대화하던 두 남녀가 막판에 만난다는 그 러브스토리로 지금 세대를 분석하려고 했단 말이죠. 정말 그 시대의 우리는 '신인류'였던 겁니다!(웃음) 무언가 새롭고, 예쁘고, 신선한 감수성을 우리가 독차지했던 시절이었으니. 그때를 그리워하는….

리안: <접속> 얘기도 다시 나오고, 수미쌍관의 멋진 방담이 됐다고 봅니다(일동 박수). 어떻게 끝낼지 계속 고민이었는데 방금 나온 '그 시대의 우리는 신인류'로 끝내도록 하겠습니다.

이텔: 아뿔싸.

누리: 20년 뒤에 지금 '초딩'들도 얘기할 거야. "그땐 아이폰 이런 걸 들고 통신했어" 그러면서.

니텔: 다들 자신이 첫 취향을 형성하던 시절을 그리워하는 거죠.

누리: 그 말 좋다. 첫 취향을 형성하던 도구로서 PC통신.

이텔: 제가 영화 좋아하는 거 엄마가 진짜 싫어했거든요. 항상 구박만 받았단 말이야. 내 취향에 대해. 그런데 내가 좋아하는 거 가지고 똑같은 인간들이 모여서 밤새도록 채팅하고, 24시간 영화 얘기만 하고, 거기서 비롯되는 흥분이라는 게…. 취향이 그렇게 형성이 되고 자기 인생의 경로를 결정짓는 순간이 그때였으니.

 
 
 

 

/김봉규 기자(정리) 필자의 다른 기사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민속 없이 민족 없다”

 

김정일 위원장이 찾아준 설명절
 
“민속 없이 민족 없다”
 
이정섭 기자
기사입력: 2013/02/09 [13:15] 최종편집: ⓒ 자주민보
 
 



▲ 설명절에 조상에게 차례를 지내고 웃 어른을 공경해 세배를 하는 전통은 남과 북이 똑 같다. 그러나 사진을 통해서 보면 남쪽에서 아랫사람에게 세배돈을 주는 대신 북에서는 책을 주는 모습이 이채롭다. © 이정섭 기자


민족최대의 명절인 설날을 앞두고 조선도 명절분위기로 흥성거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로동신문은 9일 “선군으로 존엄 높은 조국 땅 이르는 곳마다에 민족의 정서와 향취가 넘쳐흐르고 있다.”고 전했다.

이 신문은 “명절날과 휴식 날이면 팽이치기, 연띄우기, 장기놀이, 씨름을 비롯한 민속놀이로 흥성거리는 거리와 마을들, 민족의 향취가 넘쳐나는 민족음식들로 사람들의 발길이 끊길새 없는 옥류관, 청류관을 비롯한 곳곳의 급양 봉사망들, 노래는 노래마다 민족적선율 차 넘치고 춤은 춤마다 민족적률동이 흘러넘치는 자랑스러운 현실…”이라며 명절 분위기를 그렸다.

신문은 “이 모든 것을 대할수록 우리의 마음속에는 혁명과 건설에서 주체성과 민족성을 고수하고 민족의 우수한 민속전통과 문화를 빛내어 나가도록 이끌어주신 위대한 장군님의 불멸의 업적이 뜨겁게 되새겨진다.”고 김정일 위원장을 회고했다.

▲ 설명절을 맞은 조선의 어린이들이 전통 놀이를 하고 있는 모습은 남과 다르지 않다. © 이정섭 기자









또한 “우리 인민은 반만년의 유구한 역사를 내려오면서 우수한 민족적 전통을 이룩하였습니다.”라는 김정일 위원장의 어록을 싣고 일꾼들과 대화를 통해 설명절의 의의와 전통 등을 설명하고 문화유산을 계승해야 한다고 전해 설명절과 대보름 등 민속명절이 김정일 국방위원장 제언에 따른 것임을 시사했다.

김정일 위원장은 “옛 기록에 의하면 우리 선조들은 설을《세주》,《연수》 혹은 《원일》이라고 하였다. 설을 맞으면서 무엇보다도 음식을 잘 준비하였는데 그것을 세찬이라고 하였다. 설을 맞으면서 새 옷도 만들어 입었는데 그것은 설빔”이라고 한다면서 “설을 맞으면서 그믐밤을 지새우는 풍습도 있었다. 설 날에 아이들은 자기 부모들과 동리의 어른들을 찾아가 세배를 하였고 어른들은 서로 인사를 나누거나 덕담(좋은 말)을 주고받았다.윷놀이,널뛰기,연띄우기,썰매타기,팽이치기 등으로 남녀노소가 설명절을 즐겼다.”며 설명절 풍습에 대해 소상히 이야기했다.

또한 “우리 인민들은 설명절과 같은 명절놀이에서 뿐아니라 노동생활, 문화생활, 도덕생활 등에서 우수하고 훌륭한 민속전통을 창조하였다고 하시며 우리 선조들이 대를 이어오면서 창조한 민속전통은 우리가 잘 보존하고 계승 발전 시켜야 할 귀중한 민족적 유산이라고 강조하셨다”고 신문은 소개했다.


▲ 조선은 우리민족이 전통적으로 입었던 조선옷(한복)을 즐겨 입으며 고상한 복식 문화를 계승 발전 시키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이정섭 기자


신문은 “민족의 우수한 민속전통을 귀중히 여기고 대대손손 빛내어 나가는 문제를 민족의 존망과 관련된 중요한 문제로 내세우시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민속전통을 고수하고 빛내어 나가는데서 나서는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는 위대한 장군님을 일군들은 숭엄한 격정 속에 우러렀다.”다고 당시 상황을 상세히 설명했다.

이어 “우리 선조들이 창조하고 대를 이어오면서 지켜온 민속전통에는 우리 인민의 고상한 사상 감정과 예의도덕, 조선사람의 독특한 생활양식과 우리 민족의 고유한 기호와 특성이 반영되어있다고 하시면서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고상하고 아름다운 민속전통을 가지고 있다는 높은 긍지를 간직하고 우리 인민의 민족적 특성을 더욱 빛내어 나가야 한다고, 민속을 버리면 민족을 잃어버릴 수 있다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고 덧붙였다.

특히 김위원장의 설명을 들은 일꾼들은 “민속이 단순히 한 민족의 세태나 풍속이 아니라 거기에 바로 민족의 숨결과 넋이 깃들어있고 민족의 고유한 모습과 발자취가 어려 있기에 민속이 없으면 민족도 없다는 심오한 진리를 가슴깊이 새겨 안게 되었다.”고 피력했다.

로동신문은 끝으로 “혁명과 건설에서 민족성을 고수하고 그 전통을 빛내어 나가도록 이끌어주신 위대한 장군님의 현명한 영도의 손길에 의하여 오늘 우리나라에서는 민족의 우수한 민속전통과 문화가 나날이 빛을 뿌리고 있다.”며 김정일 위원장의 혜안을 높이 평가했다.

로동신문의 오늘 기사는 수수만년 전통과 문화를 함께 누려 온 우리민족이 하루 빨리 하나로 통일된 세상에서 정을 나누며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깊게 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설 특별대수송' 첫날, 첫차 운전실에서 바라본 귀성 풍경

'명절 전문 기관사'의 고백 "내 생애 최초의 뇌물은…"

[동승 취재] '설 특별대수송' 첫날, 첫차 운전실에서 바라본 귀성 풍경

박세열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3-02-09 오전 8:36:10

 

설 특별대수송기간 첫날인 8일, '올겨울 가장 강력한 한파! 서울 -17도~-7도' 속보가 스마트폰 액정에 떴다. 귀를 찢을 듯한 새벽 추위를 뚫고, 기관사 박 아무개 씨가 분주하다. '설 수송 대작전'의 첫 테이프를 끊게 될 오전 6시 10분 서울발 부산행 무궁화호 1201호 첫차 운행을 맡았기 때문이다.

기자는 철도노조 홍보팀의 협조로 운전석에 동승할 수 있었다. 기자에게 기차에 대한 추억은 기근 수준이다. 그 흔한 간이역 하나 없는 지역에서 자랐기 때문에 기찻길 옆에 있는 외가에 갈 때마다 철길 주변에서 서성대곤 했다. 거대한 기관차가 연기를 뿜고 철로 주변 돌을 튀기면서 경적을 울리면, 거기에 맞춰서 큰소리로 '빠아앙'을 외치기도 했다.

그 와중에 한 번은 단비처럼 기차를 탈 기회를 잡았다. 명절에 할머니를 따라 기차 여행을 할 기회가 생긴 것이다. 그날 할머니는 새벽부터 일어나 달걀을 삶으셨고, 회색 빛깔 습자지에 흰 소금을 정성스레 담아 접고 또 접었다. 반투명 비닐 '봉다리'에 담긴 삶은 달걀에 더 관심이 많은 손주의 손을 잡고 할머니는 인근 도시 기차역으로 향하는 버스를 탔다. 새마을호, 좁은 객실 통로에서 카트를 밀고 가는 승무원을 잡고 사이다를 산 할머니는 달걀을 까서 손주에게 쥐어주셨다.
 

 

▲ 귀성길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8일 새벽 6시 서울역 풍경. ⓒ프레시안(박세열)


"그런 추억들이 다들 있을 겁니다. 근대화의 상징적 산물인 기차 노선이 영국에서 처음 탄생한 이래 전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이 기차에 대한 추억을 하나씩 갖게 됐죠. 숯검댕이 기관사들과 정비사 같은 옛 철도 노동자들의 모습이 담긴 사진 속에는 산업화에 대한 경외감, 혹은 전쟁의 기억, 노동운동의 치열함,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한 추억 같은 것들이 들어 있죠. 철도만큼 인간의 집단 기억에 남긴 강렬한 대상도 없을 겁니다. 이를테면 칠레의 시인 파블로 네루다의 아버지는 철도 노동자였죠. 네루다의 시에 철도 노동자 얘기가 유독 많이 등장하는 것도 그 때문이죠."

무궁화호 기관사 박 씨의 말이다.

"고향 가는 승객의 꿈과 희망을 싣고 오늘도 달린다"

서울역에서는 새벽잠이 덜 깬 귀성객들이 추위로 빨갛게 물든 양 볼을 감싸고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고향 갑니다. 대전이에요. 가까워서 자주 내려가는 편이지만, 설 때 내려가는 건 더 각별한 의미가 있죠. 왜 무궁화호를 타냐고요? 싸고, 느긋해요. 귀성길에 동트는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도 행운이죠." 아이 둘을 데리고 나온 박 아무개 씨는 "새해 복 많이 받으시라"며 발걸음을 옮겼다.
 

 

▲ 서울발 부산행 무궁화호에 승객들이 탑승하고 있다. ⓒ프레시안(박세열)


기관사 박 씨가 "어서 오세요"라며 운전실 문을 열어줬다. 박 씨는 자신이 '무궁화호 기관사'임을 자랑스러워했다. "기관사들이 가장 선호하는 기관차입니다. 시야 확보가 쉽고, 운전도 비교적 편한 편이에요."

박 씨는 "운이 좋은 기관사들은 설에 쉬기도 하지만 극소수예요. 특별대수송기간에는 3분에 한 대씩 발차합니다. 기관사들도 그만큼 많이 근무를 하죠"라고 말했다. 이어 "그래도 설 연휴 때, 우리 차가 8량이거든요. 1000명 이상의 귀성길을 책임지는 만큼, 뿌듯한 감도 많이 들어요. 사람들이 자기가 난 곳으로 돌아가는 거잖아요. 제 고향은 서울이라 감흥이 없는데, 기관차를 운전하다 보면 동화가 됩니다. 이를테면 승객들의 꿈과 희망을 싣고 가는 거죠"라고 멋쩍은 표정으로 덧붙였다.

그는 "저는 명절 전문 기관사에요"라고 말하며 웃었다. "기관사는 꼭 명절에 쉬는 날이 걸리는 운 좋은 기관사도 있어요. 물론 명절에 거의 못 쉬는 운 나쁜 기관사도 있죠. 그래도 '운이 좋은 기관사들은 평소에 착한 일을 많이 하나보다' 생각하고 말죠."

박 씨는 이날 새벽 4시 32분에 수색 기지로 출근했다. 여기서 박 씨는 오늘의 선로 상태 정보, 즉 서행해야 하는 구간, 공사 구간 등 상황을 체크한 후 기관차 기능을 점검한다. 그리고 객차를 연결한 뒤에, 마지막으로 또 한 번 점검한다. 이 모든 게 완료되면 기지에서 출발해 서울역으로 열차를 옮겨 놓는다.

서울역 승강장에서는 짐을 한가득 들고 있는 승객들이 추위에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아직 주변은 컴컴하다. "그래도 새벽 공기는 언제나 상쾌합니다"라고 말한 박 씨는 노치(NOTCH, 주제어기)를 손에 얹고 무전기에서 흘러나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출발 신호등이 켜졌다. 파란 신호에 맞춰 열차가 서서히 출발했다. "한강 다리를 건널 때마다 상쾌한 기분이 들어요. 박 기자는 호강하는 거예요. 운전실 앞 유리로 바깥 풍경을 보는 게 얼마나 좋은지 모를 겁니다. 사실 업무에서 받는 스트레스는 이런 '눈호강'으로 보상을 받죠."

두 시간 동안 승객 1000여 명과 기자는 '운명 공동체'가 됐다. "운전실은 좀 많이 흔들리죠. 객차는 아늑하게 갈 수 있도록 장치들이 많이 돼 있는데 운전실은 덜컹거려요. 운전실이 너무 아늑하면 안 되니, 일부러 그러는 것도 있죠."
 

 

▲ 영등포역에 진입하고 있는 1201호. ⓒ프레시안(박세열)

 

 

▲ 평택역에 가까워지면서 점차 날이 밝고 있다. ⓒ프레시안(박세열)

 

 

▲ 평택역을 지나 충청도로 진입했다. 동이 텄다. ⓒ프레시안(박세열)

 

"'수고했다'며 담배 한 갑 건넨 어르신…기관사 생애 최초의 '뇌물'"

열차에는 여객전무 두 명과 기관사 한 명이 탄다. '
오징어 땅콩 있어요' 하고 호객 행위를 하는 승무원은 이 열차에 없다. 대신 '카페칸'이 있다. 승객들은 그곳에서 커피를 한잔하기도 하고 간단한 식사를 하기도 한다. 카페칸의 '코레일유통' 직원 두 사람을 합치면 총 5명이 이 열차를 움직이고 있는 셈이다.

영등포역, 수원역에 들러 승객들을 가득 실은 후 본격적인 '질주'가 시작됐다. 밤새 켜져 있던 마을 불빛들이 동트기 전 어스름 속에서 여전히 빚나고 있었다. 도로가 얼어붙을 정도의 한파지만, 1201호 열차의 계기판은 시속 140킬로미터를 가리켰다. 운전실 창문 옆으로 눈 덮인 논밭이 휙휙 지나갔다.

"평택쯤 도착하면 해가 뜰 거예요. 기관사들이 시간관념 하나는 귀신같습니다." 박 씨가 말했다. 정확했다. 평택역을 지나자 동이 트기 시작했다. 맞은편 상행선에서 열차가 '쿵' 하고 소리를 내며 1201호 옆을 스쳐 지나갔다. 박 씨는 무전기를 켜고 맞은편 열차에 "1302호, 고생 많았습니다. 잘 올라가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말했다.

"
지금은 철도 옆 도로에 차가 별로 안 지나다니잖아요. 오후 돼 보세요. 완전 주차장입니다. 특히 회덕인터체인지 고가를 이 열차가 지날 텐데, 명절 때는 '고속도로 주차장'이 돼죠." 승용차로 귀성길에 나선 '서울 사람'들을 안쓰러워하는 말이었다. 시속 140킬로미터로 곧게 뻗은 철로 위를 쌩쌩 달리는 박 씨는 왠지 신난다는 표정이었다. 그런 박 씨에게 귀성열차에 얽힌 추억을 묻자, 박 씨는 머리를 긁적였다.

"기관사는 숨겨진 존재죠. 승객들이랑 마주할 기회가 거의 없어요. 운전실 창문도 지하철과 달리 굉장히 높아서 승객들이 기관사 얼굴을 볼 기회도 없죠. 굳이 생각나는 일이 있다면, 예전에 귀경객을 싣고 서울역에 도착했을 때였는데요, 한 나이 지긋한 승객이 운전실 창문을 두드리는 거예요. '내가 뭘 잘못했나' 하고 창문을 열었는데, 새해 복 많이 받으라며 담배를 한 갑 주더라고요. 어르신이니까 그런 오지랖도 있는 거겠죠. 제 생애 처음 받아보는 '뇌물'이었어요. 기관사는 평생 뇌물 한 번 못 받는 직업이랍니다."
 

 

▲ 터널을 지나기 직전의 1201호. ⓒ프레시안(박세열)

 

 

▲ 조치원에서 대전으로 가는 길의 철교. ⓒ프레시안(박세열)

 

"기관사는 철로에 서성대는 아이들이 크는 모습도 볼 수 있습니다"

주변 풍광에 넋을 놓고 있는데,
천안을 지나쳤다. "이제부터는 시골길입니다. 여기서부터가 진짜 멋진 드라이브 코스죠"라고 박 씨가 말했다.

"여기에서 장항선(천안, 군산, 익산을 잇는 오래된 철도로 추억을 찾는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다)으로 빠질 수 있는데, 제가 과거에 장항선을 다닐 때는 기찻길 옆 집들을 많이 봤어요. 건널목도 있었고요. 기차길 주변에 아이들이 많이 있었어요. 전혀 알지 못하는 아이들인데, 지날 때마다 기차를 신기하게 쳐다보더라고요. 기관사는 그 아이들이 크는 과정도 봐요. '아 저 아이가 벌써 학교에 들어갔나보네. 작년에는 키가 작았는데 벌써 저렇게 컸네', 혹은 '저 집 개는 이번에 새끼를 낳았구나' 하는 것들이 죄다 보이는 거죠. 모르는 아이인데도, 친근하게 느껴지는 얼굴들이 많아요. 그럴 때는 참 신기하죠."

열차는 어느덧 홍익대학교 조치원 캠퍼스를 지나쳤다. "여기가 그 유명한 '홍대 앞'입니다." 박 씨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한적한 '2차선'을 신나게 달리다보니 어느새 동이 터 있었다. 아침 빛을 머금은 붉고 신선한 태양이 운전실을 비췄다.

대전에 도착한 시간은 오전 8시 8분. 이곳에서 약 2분간 정차하게 된다. 대전충남본부의 기관사가 서울본부에서 온 박 씨와
교대한 뒤 부산까지 남은 운행을 책임지는 시스템이다. 박 씨는 잠시 휴식을 취했다가 부산발 서울행 열차를 대전에서 받아 서울로 다시 '귀향'을 한다고 했다. 박 씨는 "말동무가 있어서 즐거웠다.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말을 남기고 총총히 사라졌다.
 

 

▲ '설 특별대수송기간'이 시작된 8일 오전 8시 10분, 대전역에 모인 승객들. ⓒ프레시안(박세열)


대전역 주변에서는 군인 한 명이 서성거리고 있었다. 상병이었다. "명절에 맞춰 휴가를 나왔습니다. 고향이 안양이어서 안양까지 기차를 타고 갑니다. 100일 정도 후면 제대인데, 그동안 휴가 때마다 기차를 타고 안양까지 왔다 갔다 했어요. 그 전에는 기차를 한 번도 타본 적이 없는데, 군인이 되니 기차가 친근하네요. 제대해도 대전에서 안양까지 가는 기차는 생각이 많이 나겠죠." 기자가 "여자친구 보러 가느냐"고 물었다. "두 달 전에 헤어졌어요. 부모님이랑 명절 같이 지내야죠." 아뿔싸. 괜한 질문을 했다.

할머니 한 분이 서성대다가 기자를 발견하고 길을 물었다. "열차표 끊는 곳이 어디요? 길을 잃었어요." 명절인데 어디 가시느냐고 묻자 할머니는 "아들 보러 서울 가요. 인제는 우리 같은 사람이 가야지 젊은 사람들이 편하죠." 추위에 보자기를 머리에 꽁꽁 감아 쓴 할머니는 '역귀성'을 하는 중이었다. 예매는 하지 않았다고 했다. "예매할 줄 아는데 그냥 왔어요"라고 말하는 할머니의 표정은 그래도 밝아보였다.

할머니는 고향을 싣고 기차 타고 서울 간다. '설 특별대수송기간' 첫날, 첫차를 타고 내려오며 본 풍경은 그랬다. 매표 창구로 가는 할머니가 종종걸음을 놓는다. 골이 깊이 팬 할머니의 손이 움켜쥐고 있는 저 보따리 안에는 '달걀'이 들어 있을까?

 
 
 

 

/박세열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영향력 점유율, TV 강세 속 인터넷이 신문 제쳐

한국사회 여론영향력 최강자는 KBS
매체별, TV>인터넷>신문>라디오 순

[여론집중도 조사] 지상파 3사 합해 영향력 거의 절반, 조-중-동-매 22.3%

13.02.08 21:25l최종 업데이트 13.02.08 21:34l

 

 

주요 매체계열의 매체합산 여론영향력 점유율 분포 그래프. 문회체육관광부 여론집중도조사위원회는 신문은 열독점유율, TV는 시청점유율, 라디오는 청취점유율, 인터넷뉴스는 체류시간점유율을 조사해 각 매체별로 가중치를 곱해 위 결과를 도출했다. (출처 : <여론집중도조사 보고서>)


문화체육관광부 여론집중도조사위원회(위원장 조성겸)의 여론집중도 조사 결과 한국 사회에서 신문-TV-라디오-인터넷 4대 매체를 통틀어 가장 여론영향력이 높은 언론사는 KBS로 나타났다. 2개 TV 채널과 4개 라디오 채널을 운영 중인 KBS는 TV 부문에서 55.9%, 라디오 부문에서 24.2%의 영향력을 기록해, 전체 매체 합산 여론영향력 점유율 29.0%를 보였다. 이는 2위를 기록한 MBC보다 2.7배 이상 높다.

1개 TV 채널과 2개 라디오 채널을 운영 중인 MBC는 10.7%를 기록했다. 역시 1개 TV 채널과 2개 라디오 채널을 운영중인 SBS(지역민방)는 7.5%로 3위였다. KBS·MBC·SBS 지상파 방송 3사의 점유율을 합하면 47.2%로 거의 절반을 차지했다.

기존 신문에 이어 종합편성채널까지 탑재한 조선·중앙·동아·매경의 매체 합산 여론영향력 점유율은 22.3%였다. 각각을 보면 조선 계열(<조선일보>, TV조선, <조선닷컴>) 7.0%, 중앙 계열(<중앙일보>, JTBC, <msn조인스>) 5.4%, 동아 계열(<동아일보>, 채널A, <동아닷컴>) 5.3%, 매일경제 계열(<매일경제신문>, MBN, <매경닷컴>) 4.6%를 기록했다.

지상파 3사와 종편 운영 중인 4사의 여론영향력 점유율을 합하면 69.5%로 압도적이다. 이들을 제외한 나머지는 점유율 3% 미만을 보였다.

이 결과는 신문 부문은 열독점유율, TV 부문은 뉴스·시사보도 프로그램의 시청점유율, 라디오 부문은 뉴스·시사보도 프로그램을 편성하는 채널의 청취점유율, 인터넷 부문은 체류시간점유율을 기준으로 각 부문별 영향력 가중치를 곱해 합한 수치다. 부문별 영향력 가중치에서 TV 부문이 48.2%로 월등히 높다.

여론집중도조사위원회는 이같은 결과가 담긴 보고서를 7일 발표했다. 조사위는 "매체부문간 교차 소유 형식이 다양화, 복잡화 되어감에 따라 매체 다원성 수준을 측정하기 위한 구체적, 실증적 방법이 필요했다"면서 "한국사회의 주요 매체 부분을 대상으로 여론집중도조사를 처음 실시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 포털과 소셜미디어가 조사 대상에 포함되지 않은 점 ▲ 스마트폰 등 새로운 매체가 배제된 점 ▲ 기준에 따라 큰 차이가 나는 인터넷 부문에서 체류시간 점유율을 유일한 기준으로 삼은 점 등 한계점도 명확하다. 위원회는 "전체 매체의 영향력 집중도 수준과 추세를 파악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라며 "연구 설계 및 조사방법을 연차적으로 개선함으로써 중장기적인 추세 분석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영향력 점유율, TV 강세 속 인터넷이 신문 제쳐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KBS 본관과 신관. KBS는 2013년 2월 7일 발표된 문화체육관광부 여론집중도조사 보고서에서 가장 여론집중도가 높은 언론사로 나타났다.
ⓒ 남소연

관련사진보기


이번 조사에서 가장 주목할 것은 신문-TV-라디오-인터넷 4대 매체 부문의 영향력 점유율을 산출한 것이다.

위원회는 전국 만 19세 이상 성인 7000명을 대상으로 면접원의 가구방문을 통한 일대일 대인면접 방법으로 아래 7개 문항을 질문했다(2012년 8월 24 ~ 9월 30일. 현대리서치연구소). 답변 항목은 신문, TV, 라디오, 인터넷으로 중복 응답이 가능했다.

- "일상의 뉴스 및 시사정보를 어떤 매체를 통해 얻으십니까?"
- "정치·경제·사회적 주요 현안에 대해 알고자 할 때, 어떤 매체의 뉴스 및 시사정보에 주로 의존하십니까?"
- "대통령 선거에 대한 뉴스 및 시사정보를 어떤 매체를 통해 얻으십니까?"
- "국가정책에 대한 가치판단을 하는 데 어떤 매체가 중요하다고 보십니까?"
- "정치·경제·사회적 주요 현안에 대한 여론을 파악하는 데 어떤 매체가 도움이 됩니까?"
- "지지하는 후보나 정치인을 결정할 때, 주로 어떤 매체에 의존하십니까?"
- "정치·경제·사회적 주요 현안에 대해 귀하의 의견을 형성하는 데 어떤 매체가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십니까?"

전체 응답 빈도수에 대하여 각 매체 부문의 응답 빈도수가 차지하는 비중을 산출한 결과, TV가 48.2%으로 과반에 가까운 1위였고, 인터넷 26.0%, 신문 17.3%, 라디오 8.4%였다. 이는 TV 부문을 기준으로 볼 때 인터넷뉴스 부문은 1/2, 신문 부문은 1/3, 라디오 부문은 1/5 정도의 영향력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이용자들이 평가하고 있다는 의미다.

TV의 영향력이 가장 높고 라디오 부문이 낮게 평가되고 있다는 점은 예상 가능했지만, 신문 부문이 인터넷뉴스보다 낮게 평가되고 있다는 점은 시사점이 크다. 위원회는 "매체 환경의 변화로 인해 매체부문간 영향력 변동이 발생하고 있음을 짐작케 한다"고 밝혔다.

젊을수록 인터넷 영향력 커... 신문 위축 조짐 뚜렷
 

매체 부문별 영향력 점유율. TV의 점유율이 높은 가운데 인터넷뉴스가 신문을 제친 것이 뚜렷하다. (출처 : <여론집중도조사 보고서>)

 

연령대에 따른 매체부문별 영향력 점유율 분포. 젊은층으로 갈수록 인터넷뉴스의 영향력이 크다. (출처 : <여론집중도조사 보고서>)


이 조사 결과를 연령대별로 들여다보면 더욱 시사적이다. TV의 영향력은 전 연령대에서 40% 이상 높게 나타났지만, 20대에서는 TV 42.0% - 인터넷뉴스 42.4%로 근소하게나마 인터넷에 1위 자리를 내줬다. 20대는 인터넷 42.4%, TV 42.0%, 신문 11.3%, 라디오 4.4% 순이었다.

30대는 TV 42.7%, 인터넷 34.5%, 신문 14.9%, 라디오 7.9% 순을 보였다. 40대 역시 TV 44.7%, 인터넷 26.2%, 신문 19.5%, 라디오 9.6% 순이었다.

반면 50대 이상부터는 신문이 인터넷을 앞섰다. TV의 점유율도 더 높아졌다. 50대는 TV 51.2%, 신문 22.9%, 인터넷 15.6%, 라디오 10.3% 순이었다. 60대는 TV 66.0%, 신문 18.8%, 라디오 10.3%, 인터넷 5.0% 순이었다.

위원회는 "매체부문별 여론영향력은 연령에 따라 확연히 다른 경향성을 나타낸다"면서 "특히 20대의 경우 인터넷뉴스의 영향력이 매우 높은 반면 신문, 라디오방송의 영향력은 매우 낮다는 특성을 보였다, 이에 반해 60대 이상 세대에서는 텔레비전방송의 영향력이 압도적으로 높게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위원회는 "향후 매체부문간 영향력 구도에 있어서 인터넷의 부상 및 신문의 위축으로 대표되는 변화가 초래될 것을 예측할 수 있게 해준다"고 강조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고속도로 '무상 견인서비스' 무조건 믿지 마세요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3/02/09 09:53
  • 수정일
    2013/02/09 09:53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설날 명절 귀성전쟁이 시작됐습니다. 모처럼 고향 방문에 마음은 이미 고향에 가 있지만, 가뜩이나 짧은 연휴 기간에 차량이 몰리면서 고속도로는 정체되고 추운 날씨에 노면이 얼어붙은 지역은 사고도 자주 일어나고 있습니다.

고속도로에서 사고가 나면 대부분 연쇄 추돌 사고인 경우도 많고 사고 처리도 힘들어 늘 애를 먹습니다. 그중의 하나가 고속도로에서 사고가 났을 경우 견인차를 부르는 문제입니다. 사고가 나며 어떻게 알고 견인차가 그리도 많이 오는지 많게는 10여 대까지도 오는 일도 있습니다.[각주:1]

사고 지역을 빨리 벗어나 쉬고 싶지만, 견인비용이 비싸 함부로 견인도 어렵거니와 많은 견인차 중에서 어떤 차를 선택할지도 답답합니다. [각주:2]

현재 고속도로에서 견인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길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가입된 보험회사에서 보내주는 견인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과 사설 견인 서비스를 받는 일입니다. 보험회사에서 제공하는 견인서비스는 10킬로까지는 무료이고, 그 이후부터는 추가 비용이 듭니다. 문제는 사설 견인 서비스를 받는 경우 견인 비용이 천차만별이라는 점입니다.
 

 

▲국토해양부 공식 견인 비용과 일반적으로 견인 서비스를 받았을 때 청구되는 비용. 이 금액은 공식적이거나 정해진 비용이 아닌 일반적인 비용이기 때문에 이것을 기준으로 견인 기사와 다툼을 벌여도 소용이 없다.

 


국토해양부가 정한 견인비용은 10킬로까지 51,600원이고 이후부터 킬로미터수에 따라 비용이 올라갑니다. 하지만 이 견인비용에 더하여 작업비와 주말,야간 할증비,후방안전조치비용,대기료 등의 다양한 비용이 부과되기 때문에 10킬로를 견인하는 비용만 해도 20여만 원이 훌쩍 넘습니다.

이 비용도 현재 견인차 기사 커뮤니티에서 돌아다니는 비용일 뿐, 실제 견인기사들이 부르는 비용은 천차만별입니다. 겨우 15킬로 남짓 견인했는데도 50만원을 부르거나 불과 10킬로 이내에도 앞서 보여 드린 각종 비용을 청구하기 때문에 국토해양부 고시 견인비용만 주겠다고 하면 견인 기사는 말도 안 되는 금액이라고 큰소리치기 십상입니다. [각주:3]
 

 

▲견인피해 보도를 다룬 방송화면, 출처:채널A

 


과다하게 청구됐던 견인 비용 때문에 2011년 한국소비자원에 접수된 견인 피해 상담수만 501건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피해 상담을 받거나 시청에 민원을 제기하거나 정식 재판까지 가도 소비자들이 이기거나 구제받는 일은 별로 없습니다. 각종 할증 비용도 현재는 시청에서 다 인정해주기 때문입니다.[각주:4]

이처럼 고속도로 견인비용이 비싸다 보니 몇 해 전부터 SNS에서는 한국도로공사에서 하는 '무료 긴급 견인서비스'라는 글이 떠돌아다니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사설 견인차를 이용하면 돈이 들지만, 한국도로공사에서 하는 견인 서비스는 무료이기 때문에 적극 이용하라는 내용입니다.
 

 

▲경기지방경찰청 페이스북 페이지에도 올라온 한국도로공사 '긴급 견인서비스' 관련 글.

 


한국도로공사 무료 긴급 서비스는 아직도 문자는 물론이고 페이스북,트위터,블로그,커뮤니티 게시판에서 모르면 바보라는 식으로 꼭 알아야 한다는 말과 함께 떠돌아다니고 있습니다.

사실 한국도로공사 '긴급 견인서비스'가 있기는 있지만, 글처럼 고속도로 사고 시 모든 것을 완벽하게 지원해주는 시스템은 절대 아닙니다.
 

■ 한국도로공사 긴급 견인서비스
○ 비용: 무료
○ 거리: 사고 지역에서 제일 가까운 휴게소,영업소 등 최인근 안전 지역
○ 그 이후: 운전자 본인 부담


무료 견인서비스를 해주기는 하지만 사고지역에서 제일 가까운 휴게소나 영업소까지만 해주기 때문에 그리 큰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문제는 그마저도 쉽게 이용하기 어렵습니다.

사고가 나서 경찰에게 한국도로공사 무료 긴급 견인서비스를 받겠다고 말해도 잘 모르는 경우가 많고, 이마저도 빠른 사고 처리를 위해 사설 견인서비스나 보험 견인 서비스를 이용하라고 종용하기 일쑤입니다. 여기에 한국도로공사에 전화해도 견인차가 다른 곳에 출동했을 때는 이용하기 어렵다는 답변만 듣는 일이 많습니다.
 

 

 



제일 큰 문제는 민자고속도로에서는 이런 서비스를 받을 수 없다는 점입니다. 요새 민자고속도로가 워낙 많이 개통되어 있어, 내비게이션을 따라가다 보면 수시로 민자고속도 구간을 지나게 됩니다.만약 경부선을 타고 다시 천안에서 논산천안간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사고가 나면, 이 구간에서는 한국도로공사 견인 서비스를 받을 수 없습니다.

이와 같은 문제점이 있지만, SNS에서 떠도는 글만 무조건 믿고 이 서비스를 이용하려고 하면 사고 처리는 제대로 하지 못하고 전화기로 언성만 높이다가 명절 분위기를 망칠 수 있습니다.
 

 

 


고속도로에서 사고가 났다면 시시비비를 절대 가릴 생각을 하지 마시고 일단 차량이동이 가능하면 갓길로 이동을 시키고, 만약 불가능하면 비상등을 켜고 사람만 대피하시기 바랍니다. 차량 사고에 대한 처리는 보험으로 할 수 있지만 2차 사고로 인한 피해, 특히 인명 사고는 돈으로도 구제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대피했다면 연락을 취해야 하는데, 이때는 경찰 (119),한국도로공사(1588-2504) 보험회사에 모두 연락을 합니다. 만약 차량을 이동하지 못했다면 도로공사에 차량 이동이 불가능하니 긴급 견인 서비스를 신청하면 더 빨리 보내주거나 일단 가까운 휴게소와 영업소까지라도 갈 수는 있습니다.
 

 

 


경찰이나 도로공사,보험회사에 연락할 경우, 사고 난 위치를 정확히 알려주는 것이 효과적이고 빠릅니다. 이때 갓길에 있는 '시점표지판'을 이용하면 편한데, 12번 무안-광주 고속도로 광주방향 14.6킬로 지점이라고 말하면 정확한 위치를 알릴 수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사고가 나면 사진 촬영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단순히 차량 파손을 촬영하기보다는 동영상으로 사고 이전 거리부터 사고 지점, 사고 이후 도로 상황을 전체적으로 촬영해 놓는 것이 훨씬 낫습니다. 파손 여부야 차량을 보면 쉽게 알 수 있지만, 동영상으로 도로 상태나 주위 차량의 모습이 있으면 사고 경위를 파악하는 데 효과적입니다.

짧은 연휴라 서울에 올라가지 못하고 제주에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견인서비스는 오히려 제주가 훨씬 부르기 어렵습니다. 그것은 '아이엠피터'가 사는 곳은 산골이라 견인서비스를 받기도 어렵거니와 가장 가까운 정비소도 25킬로는 나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고속도로처럼 시점표지판도 없어 대충 어디 가는 길 중간에 있어요라고 말하면, 찾는 사람도 기다리는 사람도 계속 휴대폰만 붙잡고 시간은 한없이 흐르기 때문입니다.
 

 

▲한국도로공사의 긴급 견인서비스 공지사항. 출처:한국도로공사

 


사고가 나길 바라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혹시나 하는 사고에 대한 대처 방안은 미리 정확히 알아 놓는 것이 좋습니다. 하지만 일부 잘못된 정보를 그대로 믿는다면 이중의 고통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한국도로공사도 정확한 긴급 견인 서비스 안내문을 설날이나 명절 등 차량이 몰리는 기간에는 홈페이지나 방송을 통해 정확히 알려주는 노력도 필요합니다.

즐거운 설날,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은 절대 사고 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며,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 바랍니다.

 

  1. 견인 기사들은 제보비를 주는 조건으로 택시기사나 버스 기사와 연락이 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본문으로]
  2. 견인기사 중에는 무조건 견인을 위한 고리를 차량에 연결하면서 끌고 갈려고 하는데, 함부로 그들 말만 믿고 견인을 했다가는 낭패를 볼 수 있다. [본문으로]
  3. 대부분의 견인비용은 견인비 포함 내역의 항목을 합산하기 때문에 고시된 견인비 이외 작업비는 얼마이고,할증은 얼마나 붙고, 후방안전조치 비용이나 대기료는 시간당 얼마인가 정확히 알아보고 견인 서비스를 받는 것이 유리하다. [본문으로]
  4. 대부분의 견인기사는 사고난 점을 악용해 고가의 비용을 청구하고 나중에 불만을 제기하면 민원해도 소용없다.재판까지 가자는 식으로 나오는 경우가 많다. [본문으로]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북, 인민소비품 생산 꽝꽝 쏟아져

 

 

 

북, 인민소비품 생산 꽝꽝 쏟아져
 
식료 일용품 1.5배 생산 일대 혁신
 
이정섭 기자
기사입력: 2013/02/09 [05:48] 최종편집: ⓒ 자주민보
 
 

▲ 현대화 된 평양밀가루 공장에서 각종 당과류(과자) 등이 쏟아지고 있다. © 이정섭 기자


조선이 당과류를 비롯한 식료품과, 일용생필품 생산에서 일대 혁신을 일으켰다고 전했다.

우리민족끼리는 9일 “공화국의 식료일용공업부문에서 새해 첫 달 인민소비품생산계획을 넘쳐 수행하는 자랑찬 성과를 이룩하였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평양밀가루가공공장, 평양곡산공장, 선흥식료 공장의 일꾼들과 노동자, 기술자들은 현대적으로 일떠선 생산 공정들이 더 큰 은을 내도록 설비관리, 기술 관리를 짜고 들면서 생산에서 연일 혁신을 일으켜 사탕, 과자를 비롯한 당과류생산을 계획의 1. 5배 이상으로 늘였다.”고 전했다.

▲ 평양곡산공장에서 흐름식 생산공정을 따라 쉼없이 흘러 나오는 과자, 공장은 CNC로 가동되고 있다. © 이정섭 기자


신문은 “대동강식료공장, 경련애국사이다공장을 비롯한 공장들에서도 생산돌격전을 과감히 벌려 새해 첫 달에 높은 생산실적을 기록하였으며. 락랑영예 군인수지 일용품공장, 평양 식료품포장재공장의 일군들과 종업원들도 일터마다에서 증산투쟁을 힘 있게 벌려 여러 가지 포장재를 많이 생산하였다.”고 게재했다.

또한 “청진 기초식품 공장, 강계기초식품공장, 회령기초식품공장들에서 간장, 된장을 비롯한 기초식품생산계획을 앞당겨 수행하였다.”고 알렸다.

이어 “현대적으로 꾸려진 평양수지연필공장, 평양화장품공장의 일군들과 기술자, 노동자들은 인민에 대한 헌신적 복무정신을 지니고 생산을 줄기차게 내밀어 필기도구생산과 맡겨진 공업총생산액계획을 넘쳐 수행하였다.”고 덧붙였다.

▲ 낙랑구역영예군인 수지일용품공장 © 이정섭 기자


아울러 “평양일용품공장, 신의주법랑철기공장, 함흥영예군인수지일용품공장, 강계연필공장, 전천성냥공장의 노동자, 기술자들도 계획수행기간 설비가동률을 높이면서 머리빈침, 연필, 성냥, 법랑철기, 비옷, 장화를 비롯한 소비품생산을 늘였다.”고 강조했다.

우리민족끼리는 “식료일용품생산에서 이룩된 성과는 머지않아 우리 인민들의 생활을 더욱 윤택하게 하는데 적극 이바지하게 될 것”으로 전망하며 높은 생산 실적에 기대감을 표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한반도 평화수호 남북대화 협력 촉구 결의대회

 

“한반도 평화의 숨통을 열어내자!”
한반도 평화수호 남북대화 협력 촉구 결의대회
 
 
2013년 02월 08일 (금) 16:11:50 강인옥 통신원 tongil@tongilnews.com
 
   
▲ 박근혜 차기정부에 남북대화와 협력을 촉구하며 지난달 27일부터 시작한 시민사회단체 공동행동의 농성을 6일 마무리하며 집회를 개최했다. [사진-통일뉴스 강인옥 통신원]

박근혜 차기정부에 남북대화와 협력을 촉구하며 지난달 27일부터 시작한 시민사회단체 공동행동의 농성을 6일 마무리하며 집회를 개최했다. 이 집회는 평화를 수호하고 전쟁을 반대하는 목소리를 더욱 높이자는 결의의 자리이자 새로운 투쟁을 준비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시민사회단체 공동행동은 첫날 인수위에 공개질문장을 발표했으며 농성을 마무리한 이날은 요구서한을 통해 미국에게는 대북제재와 압박을 중단하고 즉각적인 평화협상 시작을, '원점타격' 등 군사적 대응에 열을 올리는 이명박 정부에는 긴장을 부추기는 일체의 움직임 중단을, 박근혜 당선자에게는 군사적 충돌 위험 행위를 통제하고 대북 특사 파견 등 대화에 적극 나서라고 촉구했다.

또한, 이전과는 다른 수준의 심각한 위기국면이라 우려하고 '한미당국과 박근혜 당선자가 이 상황을 안일하게 판단하거나 의도성을 갖고 강경압박 정책을 추진한다면 심각한 군사적 충돌을 포함하여 매우 비극적인 상황이 초래될 것이며, 평화를 염원하는 우리 민족의 준엄한 심판을 면치 못할 것'이라 경고했다.

   
▲ 양심수후원회 권오헌 명예회장은 언론이 "긴박한 정세의 본질을 정확히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사진-통일뉴스 강인옥 통신원]

양심수후원회 권오헌 명예회장은 언론이 "긴박한 정세의 본질을 정확히 봐야 한다"며 "북 핵실험의 시기나 대처만을 다룰 것이 아니라 '북이 핵실험을 왜 하는지, 대응타격만이 능사인지' 긴박한 한반도 정세에 요구되는 것이 무엇인지 똑바로 봐야한다"고 지적했다.

또한,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는 “국가에는 파산을, 사람으로 치면 질식사시키겠다는 것”이라 강력하게 비난하며 '국제조약에도 평등하지 않고 민족적 입장에서도 옳지 않'다고 비판했다.

그리고 박근혜 당선자는 “한반도 문제에 스스로 주도권을 잡고 평화지향적으로 가야하며 이것은 이명박 정부의 정책과의 결별이자 우리 민족끼리 자주적으로 통일하겠다는 의지를 세계만방에 보여주는 것”이라 촉구하면서 “자주통일진영은 이명박 정부에 반대하고 박근혜 차기정부를 적극적으로 추동해야한다”고 우리의 과제를 밝혔다.

   
▲ 통합진보당 강병기 비대위원장은 “대화는 사라지고 제재만 있는 위험천만한 국면을 위기라 느끼지 않는 것이 더 큰 위기”라고 우려를 표명했다. [사진-통일뉴스 강인옥 통신원]

통합진보당 강병기 비대위원장은 “대화는 사라지고 제재만 있는 위험천만한 국면을 위기라 느끼지 않는 것이 더 큰 위기”라고 우려하며 차기정부가 남북정상회담을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는 “과거 팀스피리트 훈련 중단으로 북미 핵타결을 내온 것처럼 대북 선제타격 전쟁연습 즉각 중단”을 주장하며 “한반도 평화의 숨통을 열어내자”고 했다.

한국진보연대 최은아 자주통일위원장은 현재 진행되고 있는 동계 한미합동 군사훈련은 단순한 연례적 훈련이라 볼 수 없다며 그동안 겨울철에 대규모 함정이 참가하는 가운데 해상군사훈련이 없었던 점, 한미 해병대훈련도 처음인 점 등을 봤을 때 이는 북을 겨냥한 무력시위의 연장선상이라 했다.

또한, 지난 2011년 주한미군사령관이 한미합동 군사훈련을 실질적 대북 무력시위라 밝힌 바 있다며 이는 대북 적대적 의사이고 지금처럼 군사적 긴장이 첨예하고 심지어 이명박 정부동안 군사분계선 일대에 충돌이 있었던 것을 보면 지금의 군사훈련은 남북간 충돌을 더 부추기는 것이라 평가했다.

그는 핵잠훈련, 공격형 대규모 한미연합 상륙훈련들은 군사적 긴장 고조뿐만 아니라 긴장해결을 위한 해법에서 더욱 멀어지는 것이라면서 예정된 한미합동 군사훈련을 중단하고 평화를 위한 협상과 대화를 하는 것이 충돌을 방지할 수 있고 근본적인 평화체제 구축의 토대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 했다.

   
▲ 빈민해방실천연대 김영진 위원장은 “상식의 반대는 야만이며 야만은 곧 불통을 의미”한다며 박근혜 정부의 각성을 촉구했다. [사진-통일뉴스 강인옥 통신원]

빈민해방실천연대 김영진 위원장은 “상식의 반대는 야만이며 야만은 곧 불통을 의미”한다며 “불통의 박근혜 정부가 과연 통일을 이야기하는 소통의 박근혜 정부가 될지” 똑똑히 주시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남북공동선언들을 깡그리 뭉게 버린 야만의 역사가 수치스럽다”며 “통일원로 선생들의 꿈과 옥중투쟁하는 통일인사들의 꿈을 위해서라도 진보진영이 제대로 싸워 당당한 조국을 후대들에게 물려주자”고 강조하며, 이를 위해 다시는 진보정치가 난도질당하지 않게 민중진영의 단결을 호소했다.

참가자들은 한반도의 엄혹한 위기 상황에 더 큰 불을 지르는 전쟁연습을 반드시 중단시키고 진보진영의 신발 끈을 단단히 매고 투쟁해나가자는 구호를 외쳤다.

 

   
▲ 이날 집회에는 노래패 '희망새'가 출연해 공연했다. [사진-통일뉴스 강인옥 통신원]

 

 

   
▲ '5.24조치 전면 철회'를 요구하는 통일원로들. [사진-통일뉴스 강인옥 통신원]

 

 
강인옥 통신원의 다른기사 보기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기독교목사님들18대대선부정선거규탄성명서발표

<목사님들의 부정선거 관련 동영상>-꼭 보세요!!!
(서프라이즈 / 명태 / 2013-02-07)

 

기독교목사님들18대대선부정선거규탄성명서발표

 

 

기독교목사님들18대대선부정선거규탄후질문타임


http://korea3d.blogspot.kr/2013/02/18-2.html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