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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예산 13년 만에 감축 언론보도, 사실일까?

  • 기자명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 
  •  
  •  입력 2022.08.20 09:15
  •  
  •  댓글 0
 
 

[이상민의 경제기사비평]

내년 예산을 올해보다 줄인다고 한다. 이는 13년 만에 처음으로 있는 일이라고 거의 모든 언론이 전했다. 추경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13일 기자간담회에서 “내년 본예산은 올해 추경을 포함한 규모보다 대폭 낮은 수준이 될 것”이라며 이는 13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라고 발언한 것이 발단이다.

▲ 추경호 기획재정부 장관 발언을 인용해 내년 예산이 13년 만에 감축이라고 전한 언론보도
▲ 추경호 기획재정부 장관 발언을 인용해 내년 예산이 13년 만에 감축이라고 전한 언론보도

 

그러나 놀랍게도 이는 사실이 아니다. 13년씩이나 갈 것도 없이 올해 예산안도 전년 추경보다 적게 편성됐다. 전년도(2021년) 마지막 추경 총지출액은 604.9조 원이다. 올해 예산안은 전년도 추경보다 적은 604.4조 원이었다.

▲ 2022년 기획재정부 예산안 보도자료
▲ 2022년 기획재정부 예산안 보도자료

 

그런데 지난해 문재인 정부가 21년 추경보다도 작은 규모의 예산안을 발표할 때, 대부분 언론은 전년 추경(604.9조원)보다도 적게 편성한 본예산이라고 표현하기보다는 전년 본예산(558조원)보다 증가했다며, 사상 최대 “슈퍼예산”이라고 표현했다. 

▲ 2021년도 당시 2020년 추경보다 감소한 예산안 발표 때는 '슈퍼예산'이라고 표현한 언론보도들
▲ 2021년도 당시 2020년 추경보다 감소한 예산안 발표 때는 '슈퍼예산'이라고 표현한 언론보도들

 

슈퍼예산은 정상적(normal) 범위를 벗어났다는 의미다. 긴축도 아니고 확장도 아닌 비정상적 범위라는 뜻이다. 올해 예산안이 전년 추경보다도 작은 규모로 편성했다고 발표할 때는 굳이 전년 본예산과 비교해서 정상적인 확장 규모조차 벗어난 ‘슈퍼예산’이라고 한다, 반면 내년 본예산안이 올해 본예산보다 늘어날 때는 굳이 전년 추경예산과 비교하면서 13년만에 처음 줄어든 긴축예산이라고 표현한다. 최소한 13년만에 처음이라는 표현은 하지 말아야 한다.  

왜 거의 모든 언론이 13년만에 처음 줄어들었다고 잘못 표현할까? 추 장관이 그렇게 주장했기 때문이다. 추 장관은 내년 예산안과 올해 예산안을 비교하지 않았다. 내년 예산안과 올해 본예산을 비교했다. 정부 예산안이 국회 심의를 거쳐 최종 확정되면 ‘안’이라는 꼬리표가 떨어지고 본예산이 된다. 그러나 논리적으로 내년 예산안은 올해 예산안과 비교해야 한다. 본예산과 비교하면 안 된다. 언론의 사명은 이러한 정부 책임자 주장의 잘못을 파악해서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 아닐까? 

올해 본예산(607.7조 원)은 정부 예산안(604.4조 원)보다 국회 심의과정에서 증가했다. 국회 심의에 대한 책임은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의원들에게 있다. 즉 지난 정부는 이전 연도 추경보다 적은 예산안을 편성했지만 민주당과 국민의힘 의원들이 올해 본예산을 늘렸다. 그래서 올해 본예산과 비교하는 추 장관의 주장은 국회의 책임을 정부에 넘기는 꼴이 된다.

동아일보를 보니 “문재인 정부 때 확장 일변도였던 재정운용 기조를 ‘건전성 강화’로 전환하려는 조치”라고 한다. 이것도 팩트가 아니다. 문재인 정부는 17년, 18년 2년 연속 긴축 운용을 했다. 17년(5.6%) 18년(6.8%) 총지출 증가율은 모두 17년(7.2%), 18년(8.1%) 총수입 증가율보다 낮았다. 통합재정수지도 17년은 24조 원 흑자, 18년은 31.2조 원 흑자를 기록했다. 결국 국가채무비율도 18년 말까지는 박근혜 정부 말보다 오히려 줄었다. 

다만 2019년도와 코로나19 이후 2020~2021년은 확장재정을 펼쳤다. 그러나 코로나19 때 오히려 한국의 선진국 대비 재정수지 차이는 이전보다 더 건전하게 유지했다. 

[관련기사 : 문재인 정부는 곳간을 거덜냈을까]

요약하면 문재인 정부는 처음 2년간은 긴축재정, 코로나19 이후인 2020~2021년은 확장재정을 펼쳤지만 선진국과 비교하면 그야말로 역대급 건전재정을 보였다. 다만 2022년도 선진국은 확장재정 기조가 좀 꺾였지만 한국은 확장재정을 지속하는 분위기다. 이는 올해 윤석열 정부가 제2차 추경에서 총지출 규모를 55.5조 원이나 확대했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의 확장 일변도 정책을 윤석열 정부가 건전성 강화로 전환한다기보다는 “긴축재정을 하던 문재인 정부가 코로나19 이후 확장재정을 했는데 윤석열 정부도 2022년도까지는 확장재정을 계승하다가 코로나19 일시적 지출을 줄이면서 2023년도부터 긴축으로 돌아섰다”고 표현해야 정확하다. 실제로 필자 분석 결과인 ‘2020~2022년 재정수지비교’에 따르면 코로나19 일회성 지출을 제외하면 관리재정수지는 이미 GDP 대비 –3% 이하다. 즉 코로나19 관련 일회성 지출만 중단하면 이미 재정준칙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 만큼 지출을 줄일 수 있다. 

말 나온 김에 올해 예산안 증감률을 전년 본예산과 비교해야 좋을지 아니면 추경과 비교하는 것이 좋을지 판단해보자. 만약 추경이 일회적이고 일시적이라면 추경은 예외값으로 치부하고 본예산과 비교하는 것이 옳다. 그러나 추경이 반복적이고 일상적이라면 추경과 비교하는 것이 좋다. 한번 생각해보자. 올해 추경의 핵심인 재난지원금을 반복적이고 일상적으로 평가해야 할지 아니면 일회적인 이벤트로 판단해야 할지. 

※ 미디어오늘은 여러분의 제보를 소중히 생각합니다. 
news@media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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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당치킨 6990원, 우린 그냥 '호갱'이다

이마트피자, 통큰치킨, 당당치킨의 공통점... '미끼' 던진 대형마트의 교묘한 전략

22.08.19 16:40l최종 업데이트 22.08.19 16:40l
필자는 한때 가맹점주였으며 지난해까지는 프랜차이즈 기업의 관리자로도 근무했습니다. 이 기사는 자영업 현장에서 직·간접적으로 체험한 사실을 바탕으로 한 것임을 밝힙니다.[기자말]
당당치킨. [홈플러스 제공]
▲  당당치킨. [홈플러스 제공]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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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홈플러스가 6990원이라는 파격적 가격에 출시한 일명 '당당치킨'이 화제에 올랐다. 이 치킨이 출시되자 '이 가격이 실화냐?'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언론은 이 이슈를 확대 재생산하고 있다.

새삼스럽지 않은 풍경

현재 프랜차이즈 치킨 업주들은 물론 독립 자영업자들까지 대형마트가 골목상권까지 고사시키려 한다며 크게 반발하고 있다. 이 풍경에 기시감을 느끼는 사람이 적잖을 듯싶다. 사실 새삼스럽지 않은 풍경이기 때문이다. 12년 전인 2010년, 롯데마트가 '통큰치킨'이라면서 5000원 치킨을 내놨을 때도 똑같은 장면이 연출됐다. '파격적 가격'이라는 이슈에 사람들은 줄을 섰고, 이를 본 동네 자영업자들은 대기업이 압도적인 자본력으로 동네 영세 자영업자들 죽이려 한다고 반발했다. 물론 이 반발에 프랜차이즈 본사도 슬며시 밥숟가락을 올리며 엄살을 부렸다.


그런데 이런 논란의 원조는 '이마트 피자'다. 당시 6500원짜리 냉동 피자를 시작으로 45cm의 대형 피자를 1만 원대 팔면서 소비자들의 큰 호응을 받았다. 그리고 당연히 동네 피자가게 사장들의 볼멘소리도 터져 나왔다. 그렇다면 이 재방송이 왜 새삼 화제에 오른 것일까? 그건 최근 고물가에 대한 국민의 저항 심리가 한몫했다고 본다.

사실 홈플러스의 '당당치킨' 출시는 예나 지금이나 대형마트의 마케팅 전략의 일환으로 보인다. 특히 8월 11일, 홈플러스 관계자의 유튜브 인터뷰 영상이 그러했다. 영상에서 홈플러스 관계자는 "(치킨을 팔아도) 안 남는다는 말이 이해가 안 된다. 6990원에 팔아도 남는다"라고 주장하며 시쳇말로 동네 치킨 가게 사장들의 염장을 질렀다.

이에 치킨 가게 사장들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분노와 비난을 쏟아내고 있다. 만약 이것이 홈플러스의 의도된 노이즈 마케팅이었다면 그 의도는 제대로 먹힌 듯하다. 수많은 언론이 이를 기사화했고 필자 또한 글을 쓰고 있으니 말이다.
 
업종별 영업이익률(산업연구원)
▲  업종별 영업이익률(산업연구원)
ⓒ 권성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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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선이 다른 마트 치킨

"왜 비싸겠어요? 프랜차이즈 치킨 경우는 본사의 높은 유통 이윤이 제일 문제죠. 그 유명한 애플에 대해서도 경제 전문가들이 애플의 30%에 육박하는 영업이익은 지나치다며 폭리 논쟁이 있었잖아요.

그런데 우리나라 대표 치킨 브랜드 중 하나가 영업이익률이 30%가 넘어요. 엄청난 R&D 비용이 투자되는 최첨단 IT 업종도 아닌, 일개 치킨 원부자재 유통사의 영업이익률이 애플하고 맞먹는다는 걸 이해할 수 있나요? 도소매 업종 경우 평균적인 영업이익이 매출에 10%가 채 안 되다고 하는데(위 도표 참조) 그와 비교하면 정말 지나친 거죠."


대형 치킨 브랜드 가맹점주였으며 가맹점주단체의 협회장으로도 활동하는 A씨는 이번 논쟁과 관련해 프랜차이즈 치킨의 비싼 가격에 대해 이렇게 자신의 의견을 밝혔다. 

현재 치킨 가게 사장들은 홈플러스의 '그래도 남는다'라는 주장을 반박하기 위해 생닭 납품가 등을 거론하며 조목조목 따지고 있다. 그런데 이 모든 것들이 무슨 의미일까 싶다. 마트 치킨이 남든 안 남든 그것이 문제가 아니고 왜 마트 치킨보다 동네 치킨 특히 '프랜차이즈 치킨이 비쌀 수밖에 없는 이유'가 문제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당당치킨'으로 대표되는 대형마트 치킨은 이미 다 갖춰진 인프라(건물, 인테리어, 설비, 판매대 등)에 메뉴만 올린 것이다. 따라서 판매 시설을 갖추기 위한 부대 비용뿐만 아니라 임대료에 대한 부담도 거의 없다. 사용되는 원부자재(생닭, 튀김가루, 식용유 등)는 자신들의 본업인 대형유통망을 무기로 아주 싼 가격에 구매할 수 있다.

여기에 광고비 부담도 없다. 유명 프랜차이즈들조차 모두 입점한 배달 앱 광고에서 대형마트는 자유롭다. 심지어 광고를 전혀 안 해도 상관없다. 매일 유입되는 손님들에 의한 입소문만으로도 충분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지금은 언론이 알아서 홍보해 주고 있다.

마트는 해당 상품에 대한 이윤 또한 최소화할 수 있다. 마트 안에 수익 상품이 차고 넘치는 상황에서 어차피 이런 저가 치킨은 미끼 상품일 뿐 주력 상품이 아니기 때문이다.
 
모 치킨브랜드의 가맹시 초기 부담금
▲  모 치킨브랜드의 가맹시 초기 부담금
ⓒ 권성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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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90원 치킨도 남는다는데?

그렇다면 동네 치킨 자영업자의 영업환경은 어떠할까? 앞서 점주 A씨의 주장처럼 프랜차이즈 치킨 경우, 가맹한 점주들은 본사의 이윤까지 더한 비싼 원부자재를 반드시 본사로부터 구매해야 한다. 그런데 이조차도 마트 치킨에 비해 비쌀 수밖에 없는 여러 요인 중 하나일 뿐이다.

가맹점은 창업 시 발생하는 사업 초기 투자 비용만 수억 원에 달한다(임대 보증금, 가맹비, 인테리어 및 주방 설비비 등). 이 비용은 사업주 자신의 인건비와 별도로 회수해야 하는 비용이다. 투자비를 회수하지 못한 사업을 경제에서는 '실패한 사업'이라 한다. 그런데 상당수 우리나라 외식 자영업자 현실은 투자금 회수는커녕 자신의 인건비도 겨우 가져간다.

임대료 또한 자영업자에게는 상당한 부담금이다. 오죽하면 '젠트리피케이션 현상(높은 임대료에 원주민이 쫓겨가는 현상)'이란 단어까지 등장했다. 임대료는 입지에 따라 천차만별이지만 입지가 좋은 곳은 7, 8평의 작은 상가 월세가 200여만 원에 달한다. 입지가 나쁘면 임대료가 싸지만, 싸다는 건 장사가 안된다는 뜻이다.
 
모 치킨 프랜차이즈의 가맹점주의 광고비 부담, 브랜드마다 다르다.
▲  모 치킨 프랜차이즈의 가맹점주의 광고비 부담, 브랜드마다 다르다.
ⓒ 권성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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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포화된 치킨 시장은 광고비의 과다 지출을 부추긴다. 혹자는 '프랜차이즈 경우는 본사가 알아서 광고해주지 않느냐?'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광고비 중 상당액은 가맹점주의 주머니에서 나간다. 여기에 점주의 판단에 따라 별도로 진행하는 광고·판촉 비용도 존재한다.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배달 앱 광고다.

여기에 마트 치킨은 당연히 손님이 포장해 가지만 대부분의 치킨 가게는 배달을 한다. 따라서 인건비와 경비(배달 대행비 포함) 부담도 상당하다. 물론 이 또한 혹자는 손님이 배달비를 부담하고 있지 않냐고 항변할 수도 있다. 그러나 현실은 그 배달 비용 일부도 가게가 부담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프랜차이즈 치킨의 영업환경은 도저히 마트 치킨과 비교할 수 없다. 한마디로 어불성설이다.

이 또한 지나갈 것이다

어찌 됐든, 이 또한 시간의 차이일 뿐 잠잠해질 화젯거리라고 본다. 아무리 고물가 시대에 가격 저항이 남다르다 해도 이마트 피자 때도 그러했고 롯데의 통큰치킨 때도 그러했던 것처럼, 이번의 '당당치킨' 또한 시간이 지나면 대중의 관심은 시들해질 것이다.

그건 우리가 유명 프랜차이즈 치킨을 비싸다고 투덜거리면서도 여전히 소비하는 이유에 있다. 심지어 현재의 '당당치킨' 논란에도 그 이유가 있다. 바로 우리가 기업의 광고 전략에 알게 모르게 선동되기 때문이다.

넷플릭스의 <미니멀리즘>이라는 다큐멘터리에 기업 광고와 관련하여 이런 대사가 나온다.

"생각해봐요, (기업들이) 수억 달러를 들여 이게 필요하다고 말(광고)해주는데 이 제품을 사지 않으면 어딘가 부족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겠어요?)"

"(기업의) 최종 목표는 항상 같습니다. 물건(음식도 마찬가지다)을 많이 사게 하는 겁니다."
 

BBQ 회장은 몇 달 전 가맹점주를 위해 '이제 치킨 가격은 3만 원 정도 해야 한다'라는 주장을 했다. 거꾸로 홈플러스는 소비자를 위해 초저가의 치킨을 출시한다며 자신들은 다른 기업인척했다. 이렇게 두 기업의 행보는 서로 대척점에 있는 듯해 보인다. 그러나 그 본질은 같다고 본다.

위 <미니멀리즘>의 대사처럼 이들 기업의 본질은 더 많은 매출, 더 많은 이익에 있다. 그 대상이 한쪽은 치킨이고 다른 쪽은 치킨이 아닐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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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판결을 수용할지 말지 “고민하겠다”는 김순호 경찰국장

‘이적단체 아니다’ 대법원 판결에도 “인노회는 이적단체” 고집...‘동료 밀고한 대가로 경찰 특채’ 의혹, 색깔론으로 물타기만

 
김순호 행정안전부 경찰국장이 18일 서울 여의도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자리하고 있다. 오른쪽은 이상민 행정안전부장관. (공동취재사진) 2022.08.18. ⓒ뉴시스 
 
국회에 출석한 김순호 행정안전부 경찰국장이 2020년 ‘인천부천민주노동자회(인노회)는 이적단체가 아니다’라는 대법원 판결을 무시하고 거듭해서 인노회를 두고 “이적단체”라고 주장해 야당 의원들로부터 “경찰국장이 반헌법세력이냐”는 질타를 받았다.

18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서 진행된 행정안전부와 경찰청 업무보고에서는 인노회에서 함께 활동한 동료들을 밀고한 대가로 경찰로 특별채용됐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김 국장을 향한 여야 의원들의 질의가 쏟아졌다.

김 국장은 1988년부터 노동운동 조직인 인노회에서 지역 책임자로 활동하다가 1989년 4월 인노회에 대한 경찰의 대대적인 수사가 시작될 무렵 돌연 잠적했고, 15명이 구속된 상태로 기소되면서 인노회 사건이 일단락된 지 두 달만인 같은 해 8월 경장 직급으로 갑자기 특채됐다.

경찰로 특채돼 승승장구하던 김 국장과는 달리 인노회 회원들은 이적단체로 낙인이 찍혀 처벌까지 받았다. 훗날 이들은 2020년 대법원 재심 판결을 통해 30여년 만에 이적단체의 누명을 벗었고, 현재 명예회복의 길에 나서고 있다.

그런데도 김 국장은 ‘인노회는 이적단체’라는 입장을 이날 행안위에서도 굽히지 않았다.

김 국장은 ‘인노회가 민주화운동 단체냐, 이적단체냐’는 국민의힘 박승민 의원의 질의에 조금의 고민도 없이 “이적단체”라고 답했다. 박 의원이 ‘인노회 관련 법원 판결이 세 번 있었는데 명백한 주사파 이적단체라 생각하냐’고 재차 묻자, 김 국장은 “네, 그렇다”고 답했다.

더불어민주당 이성만 의원 역시 2020년 대법원 판결을 언급하며 ‘지금도 이적단체냐’고 거듭 물었는데, 김 국장은 이에 대해서도 “(대법원 판결 전까지) 27년간 이적단체라는 판결이 유지됐다”고 답했다. 대법원 판결을 애써 무시하는 태도를 보인 것이다. 심지어 김 국장은 ‘앞으로 경찰국장으로 일할 텐데 인노회가 주사파라는 입장에서 일할 것인가, 이적단체가 아니라는 입장에서 일할 것인가’라는 이 의원의 질문에 “고민하겠다”고 답변했다.

그러면서 김 국장은 동료들을 밀고하기 위해 돌연 잠적한 것이 아니라 주체사상을 갖고 있는 인노회 활동을 그만둔 것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주사파 활동을 한 것에 대한 염증, 주체사상이 갖고 있는 공포 이런 것들 때문에 전향했다”며 “이런 것들을 해소하는 길이 무엇인가 생각한 끝에 경찰이 되겠다고 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여기서 이상한 점은 김 국장이 만약 인노회를 ‘이적단체’라고 생각했다면 왜 가입을 해서 지역 책임자까지 맡고 있었느냐는 것이다. 김 국장이 수사당국의 프락치 활동을 한 게 아니냐는 의혹을 받는 배경이다. 더불어민주당 이성만 의원이 “인노회를 왜 가입했냐”고 묻자, 김 국장은 “그 당시에는 주체사상에 심취돼 있던 때였다”고 답했다.

하지만 김 국장이 자신의 주장대로 만약 인노회가 주체사상에 물들어 있었다고 한다면, 어떤 계기로 주체사상에 회의를 느끼게 됐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설명이 없었다. 그런 계기는 전혀 없이 갑자기 경찰이 된 점을 두고 여전히 의문이 해소되지 않고 있다. 김 국장은 ‘주사파 활동에 회의를 느낀 게 경찰 투신의 계기가 된 것이냐’는 박 의원의 질의에 “(인노회가) 이적단체이기 때문에 경찰에 투신을 한 계기가 된 것은 아니다”라고 답하기도 했다.
 
이성만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김순호 행정안전부 경찰국장에게 경장 특채 사유와 관련 질의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2022.08.18. ⓒ뉴시스


‘이적단체가 아니다’라는 대법원 판결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인노회에 ‘이적단체’, ‘주사파’라는 색깔을 입히고 있는 김 국장의 태도에 야당 의원들은 강한 비판을 쏟아냈다.

민주당 행안위 간사인 김교흥 의원은 “그 당시 인노회에서 활동한 사람이 250명이다. 지금 눈을 다 시퍼렇게 뜨고 있다”며 “그중 인노회 구속자가 15명인데 14명이 민주유공자가 됐다. 1명만 범민련 문제가 껴서 유공자가 되지 못했는데 이번에 무죄를 받았다. 그분도 곧 유공자가 될 텐데, 왜 자꾸 (인노회를) 주사파로 몰고 가냐”고 질타했다.

이에 김 국장이 “당시 국가보안법 판례에 의해 이적단체로 판결이 났다”고 거듭 주장하자, 김 의원은 “지금은 아니지 않나”라며 “진실과 정의는 30년 전이나 100년 전이나 똑같다”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김 의원은 “김 국장이 살아온 배경을 보면 다 나와 있다. 다만 본인이 (사실이) 아니라고 하니까 실증이 없을 뿐이다. 본인은 양심의 가책을 느낄 것”이라고 사퇴를 압박했다.

민주당 이성만 의원은  “대법원 판결을 존중하지 않는 저런 공무원을 데리고 어떻게 일을 할 수 있느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그러면서 이 의원은 판사 출신인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을 향해 “판결을 무시하고 공무원이 업무를 일방적으로 일할 수 있느냐”고 따졌고, 이 장관은 “대법원 판례를 존중해야 할 것”이라고 답했다.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은 “대법원판결로 (1989년) 그 당시 인노회가 이적단체가 아니게 됐다”며 “(그런데도 이적단체였다고 주장하는) 김 국장이 오히려 반헌법 세력인 거 같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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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경지역 주민‧단체 대표들, 대북전단 박상학 고발

508명 연서명, 경찰청앞 기자회견 후 고발장 접수

  • 기자명 김치관 기자 
  •  
  •  입력 2022.08.18 12:34
  •  
  •  수정 2022.08.18 13:29
  •  
  •  댓글 1
 
508명의 고발인은 18일 오전 10시 서울 서대문구 소재 경찰청 앞에서 ‘불법 대북전단 살포 국민고발 기자회견’을 갖고 고발장을 접수시켰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508명의 고발인은 18일 오전 10시 서울 서대문구 소재 경찰청 앞에서 ‘불법 대북전단 살포 국민고발 기자회견’을 갖고 고발장을 접수시켰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피고발인의 대북전단 살포는 남북관계발전법을 위반한 행위임이 분명합니다. 남북간 군사적 긴장을 초래하고, 접경지역 주민들의 생명·신체에 위해를 끼치거나 심각한 위험을 발생시킬 우려가 있는 대북전단 살포 행위를 반복적으로 일삼는 피고발인을 철저히 수사하여 엄벌하여야 합니다.”

남북 접경지역인 연천과 김포, 고양 지역 주민들과 조헌정 6.15서울본부 상임대표 등 시민사회단체 대표 등 508명의 고발인은 18일 오전 10시 서울 서대문구 소재 경찰청 앞에서 ‘불법 대북전단 살포 국민고발 기자회견’을 갖고 고발장을 접수시켰다. 피고발인은 박상학 자유북한운동연합 대표와 성명불상자다.

고발 대리인을 맡은 함승용 민변 변호사(왼쪽)가 조헌정 목사(오른쪽)와 함께 고발장을 들고 경찰청 민원실로 향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고발 대리인을 맡은 함승용 민변 변호사(왼쪽)가 조헌정 목사(오른쪽)와 함께 고발장을 들고 경찰청 민원실로 향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고발 대리인을 맡은 함승용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변호사는 2018년 4.27판문점선언에 따라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전단 등 살포를 금지하는 취지의 남북관계발전법 개정 법률안이 시행되었다며 “그런데 피고발인은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주민들의 생존을 위협하는 대북전단 살포 행위를 지속하였고, 관련 사건으로 형사 재판이 진행 중 임에도 이를 철저하게 무시하는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개정된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 제24조 ‘남북합의서 위반행위의 금지’, ①항은 “누구든지 다음 각 호에 해당하는 행위를 하여 국민의 생명ㆍ신체에 위해를 끼치거나 심각한 위험을 발생시켜서는 아니 된다.”고 규정하고 구체적으로 1. 군사분계선 일대에서의 북한에 대한 확성기 방송, 2. 군사분계선 일대에서의 북한에 대한 시각매개물(게시물) 게시, 3. 전단등 살포를 적시하고 있다.

함 변호사는 피고발인의 대북전단 살포는 남북관계발전법을 위반한 행위임이 분명하다며 “피고발인을 철저히 수사하여 엄벌하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6.15서울본부 상임대표인 조헌정 목사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6.15서울본부 상임대표인 조헌정 목사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6.15서울본부 상임대표인 조헌정 목사는 최근 전단 살포에 앞장서고 있는 박상학 대표에게 감시자를 붙여야 한다며 “도대체 이게, 경찰이 하는 일이 뭐냐. 국민의 안전을 보장하고 법을 지켜야 될 거 아니냐”고 따져 물었다.

한편, 북한 김여정 국무위원은 지난 10일 김정은 총비서가 사회를 보며 진행된 전국비상방역총화회의에서 토론자로 나서 “너절한 적지물 살포놀음의 앞장에 선 짐승보다 못한 추악한 쓰레기들의 배후에서 괴뢰보수패당이 얼마나 흉악하게 놀아대고 있는가를 우리는 낱낱이 새겨두고 있다”며, “만약 적들이 우리 공화국에 비루스가 유입될 수 있는 위험한 짓거리를 계속 행하는 경우 우리는 비루스는 물론 남조선당국 것들도 박멸해버리는 것으로 대답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김포에 사는 함경숙 ‘강화 평화어머니회’ 대표는 “주민들은 보이지 않는 공포감에 시달리고 있다. 나 또한 마찬가지”라며 “대북 전단 살포는 사전에 그 정보가 없다”고 지적하고 ‘시민감시단’을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함승용 변호사가 경찰청 민원실에 고발장을 접수시키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함승용 변호사가 경찰청 민원실에 고발장을 접수시키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기자회견을 마치고 조헌정 목사와 함승용 변호사는 경찰청 민원실에 고발장을 접수시켰다.

국민고발인은 총 508명으로 김경민 한국YMCA전국연맹 사무총장을 비롯해 조헌정 6.1서울본부 상임대표, 한충목 한국진보연대 공동상임대표, 정연진 AOK 한국 상임대표, 오창규 연천군농민회 회장, 유경수 김포농민회 회장, 최태봉 6.15고양파주본부 대표가 대표고발인으로 나섰다.

 

고발인 명단

대 표 고 발 인 김경민 외 507

대표고발인

1. 김경민(한국YMCA전국연맹 사무총장)

2. 조헌정(목사,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서울본부 상임대표)

3. 한충목(한국진보연대 공동상임대표)

4. 정연진(AOK(Action One Korea)한국 상임대표)

5. 오창규(연천군농민회 회장)

6. 유경수(김포농민회 회장)

7. 최태봉(6.15고양파주본부 대표)

국민고발인(508명)

강경란, 강동배, 강문수, 강병용, 강보향, 강선래, 강선영, 강선희, 강선희, 강성범, 강수혜, 강연주, 강영일, 강우철, 강윤자, 강윤정, 강주수, 강태영, 강필상, 강혜정, 강혜정, 강혜진, 고서연, 고은광순, 고은영, 고이순, 공선미, 공은희, 곽인숙, 구미정, 권기백, 권낙기, 권말선, 권명숙, 권수정, 권오민, 권오양, 권오혁, 권정호, 권지숙, 권진숙, 기경량, 기동서, 기봉설, 김경민, 김준영, 김경엽, 김경택, 김경호, 김광석, 김광진, 김광태, 김국현, 김군섭, 김규환, 김균열, 김기수, 김기수, 김기원, 김나현, 김대환, 김도형, 김동수, 김동완, 김동윤, 김래곤, 김명권, 김명선, 김명섭, 김명화, 김명희, 김미숙, 김미연, 김미진, 김민선, 김민영, 김민정, 김민희, 김백진, 김병혁, 김병훈, 김봉환, 김상순, 김상우, 김석용, 김선아, 김선영, 김선희, 김선희, 김설훈, 김섭기, 김성복, 김성아, 김성혁, 김소영, 김송미, 김수연, 김애영, 김연실, 김연화, 김영미, 김영애, 김영중, 김영혜, 김용덕, 김용복, 김은미, 김은영, 김은주, 김은진, 김은진, 김은희, 김의선, 김인애, 김일섭, 김일중, 김일회, 김장희, 김재규, 김재명, 김재이, 김재혁, 김재현, 김재환, 김재희, 김정미, 김정선, 김정원, 김종열, 김종현, 김주현, 김주훈, 김지선, 김지운, 김지혜, 김지후, 김진광, 김진원, 김철민, 김태영, 김태훈, 김태훈, 김한규, 김한재, 김헌민, 김형남, 김혜령, 김혜순, 김효증, 김후연, 김희성, 나성인, 나영훈, 남영아, 남태수, 남희정, 노윤조, 노희준, 도경정, 동분선, 류경완, 류미애, 류봉식, 모성용, 모철희, 문병모, 문영금, 문응상, 문춘경, 문혜인, 문홍석, 민승준, 박경미, 박광훈, 박기성, 박명훈, 박민권, 박민아, 박병석, 박보경, 박보혜, 박복남, 박석준, 박성열, 박성재, 박성철, 박솔비, 박수경, 박수정, 박쌍순, 박영민, 박영숙, 박영준, 박영태, 박옥하, 박요한, 박용성, 박유나, 박윤석, 박은영, 박이랑, 박자은, 박정일, 박종익, 박중배, 박중식, 박지찬, 박지현, 박진억, 박찬준, 박치영, 박현우, 박형진, 방학진, 배남숙, 배주연, 백경신, 백낙현, 백은지, 백창환, 서민태, 서수미, 서승의, 서영옥, 서영호, 서의윤, 서향수, 성수옥, 소미정, 소상엽, 소진희, 소현진, 소호진, 손동대, 손미희, 손은화, 손정목, 송기훈, 송성호, 송영우, 송영익, 송철규, 신미연, 신미영, 신민구, 신민시, 신영남, 신영배, 신영옥, 신윤영, 신은섭, 신현욱, 심자섭, 심주이, 심주형, 안광획, 안성진, 안소희, 안승순, 안웅열, 안은성, 안재영, 안준용, 안지중, 양재근, 양정우, 양진성, 양혜윤, 양희재, 연시영, 오명윤, 오순옥, 오승근, 오창규, 오철안, 오하나, 오효열, 우미정, 유경수, 유세은, 유승민, 유영임, 유정숙, 유홍인, 유희경, 윤대호, 윤미연, 윤영안, 윤용배, 윤위준, 윤유진, 윤일현, 윤진숙, 윤태경, 은희만, 이규성, 이근영, 이금주, 이길재, 이남희, 이낭근, 이덕인, 이동익, 이동훈, 이명숙, 이민경, 이민수, 이병일, 이병호, 이복자, 이복재, 이상영, 이상재, 이상철, 이상홍, 이선애, 이선이, 이선진, 이성봉, 이성아, 이성재, 이성종, 이성현, 이세영, 이수경, 이수미, 이수진, 이순희, 이승민, 이연희, 이영미, 이영수, 이영식, 이옥희, 이용주, 이원규, 이윤희, 이인선, 이인섭, 이재봉, 이재용, 이재훈, 이재희, 이정섭, 이정아, 이정희, 이종경, 이종욱, 이종욱, 이준해, 이진옥, 이창욱, 이천호, 이충구, 이충민, 이헌일, 이혁희, 이형동, 이형우, 이호철, 이효정, 이훈재, 이희정, 이희철, 임동범, 임민정, 임우남, 임채정, 장병철, 장유미, 장창준, 저는, 전승혁, 전장희, 전주희, 전진수, 전진희, 전태영, 전태철, 전택기, 전환식, 정금교, 정다운, 정대원, 정대일, 정동근, 정명희, 정미라, 정민규, 정봉철, 정부교, 정성혜, 정세일, 정수진, 정수현, 정에스더, 정연진, 정영훈, 정영희, 정유경, 정은영, 정일용, 정종성, 정종훈, 정지영, 정진기, 정철우, 정해혁, 정호기, 조경선, 조기형, 조덕남, 조마초, 조미옥, 조봉훈, 조석원, 조석제, 조승연, 조안나, 조영란, 조영신, 조은구, 조은혜, 조장래, 조종완, 조헌정, 주관철, 주선국, 주영채, 지광환, 지은주, 진수영, 진용호, 차인태, 차차원, 채붕석, 천새라, 최동성, 최만정, 최명철, 최민정, 최상현, 최선정, 최성, 최성금, 최성호, 최순영, 최슬기, 최영수, 최영오, 최영호, 최우영, 최웜우, 최은아, 최일영, 최전돈, 최지웅, 최지혜, 최진호, 최창순, 최태봉, 최필수, 최현경, 최현진, 최형록, 최형록, 추승진, 하동수, 하상윤, 하정순, 한강희, 한광희, 한규희, 한만승, 한봉철, 한상호, 한성, 한영태, 한유미, 한정현, 한찬욱, 한충목, 함경숙, 함재규, 허금석, 허성진, 허지희, 현순호, 현진희, 현태봉, 현필경, 홍 봉기, 홍기정, 홍서정, 홍우철, 홍이승권, 홍정기, 황광석, 황민주, 황민주, 황봉모, 황선, 황승연, 황웅길, 황정우, 황진우, 황태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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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담동 한복판 '하이트진로' 옥상 오른 노동자들 "살기 위해 왔다"

[현장] "15년째 임금 동결, 어떻게 사나"... 영국서도 연대 목소리 "전세계 노동자가 지지"

22.08.18 19:04l최종 업데이트 22.08.18 19:04l
사진·영상: 유성호(hoyah35)

 

큰사진보기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 하이트진로지부 조합원들이 18일 오후 서울 강남구 하이트진로 본사 옥상 광고탑에서 손해배상 소송·업무방해 가처분신청 철회, 해고 조합원 복직, 운송료 현실화 등을 요구하며 3일째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다.
▲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 하이트진로지부 조합원들이 18일 오후 서울 강남구 하이트진로 본사 옥상 광고탑에서 손해배상 소송·업무방해 가처분신청 철회, 해고 조합원 복직, 운송료 현실화 등을 요구하며 3일째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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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 하이트진로지부 조합원들이 18일 오후 서울 강남구 하이트진로 본사 옥상 광고탑에서 손해배상 소송·업무방해 가처분신청 철회, 해고 조합원 복직, 운송료 현실화 등을 요구하며 3일째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다.
▲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 하이트진로지부 조합원들이 18일 오후 서울 강남구 하이트진로 본사 옥상 광고탑에서 손해배상 소송·업무방해 가처분신청 철회, 해고 조합원 복직, 운송료 현실화 등을 요구하며 3일째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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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위에 노동자들이 굶어 죽지 않겠다고, 살겠다고 벌써 세 달째 파업을 하고 있습니다. 130여 명 조합원 전원이 해고됐고, 하이트진로는 28억 원이라는 무시무시한 손해배상·가압류를 걸어 조합원 집에 차압이 들어오는 상황까지 왔습니다. 외칩시다! 하이트진로 화물 노동자들이여 힘내라!"

18일 오후 서울 강남구 청담동 하이트진로 본사 앞. 영동대로 한복판에 모인 화물 노동자 수백 명이 하늘을 향해 "투쟁"을 외치자 10여 층 높이 건물 옥상 참이슬 소주 광고판 앞에 위태롭게 서있던 10여 명이 고개를 내밀었다. 위에서 "투쟁" 하고 답하는 외마디 소리가 내려왔다. 인도엔 위급 상황을 대비한 붉은색 에어매트가 펼쳐져 있었다. 광고판에는 '노조 탄압 분쇄, 손배 가압류 철회, 해고철회전원 복직'이라는 대형 걸개가 걸렸다.

고공 농성 중 전화 연결된 김건수 화물연대 하이트진로 2지회 조직차장은 수화기 너머로 조합원들에게 "사측의 압박과 공권력의 저지에 청주와 이천, 홍천을 거쳐 결국 이곳 서울 청담동 도심 20~30미터 상공까지 왔다"라며 "목숨을 걸고 끝까지 투쟁해 승리하겠다"고 했다. 김 차장은 "하이트진로는 여전히 그 무엇도 제시하지 않은 채 그저 퇴거 명령 통지를 전달하기 위해 옥상 문을 두드리며 조합원들을 압박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하이트진로 하청 화물 노동자 10여 명은 지난 16일부터 본사 옥상 고공농성에 돌입했다. 지난 3월 노조가 결성된 이후 조합원들이 집단 해고됐고, 운송료 인상 요구에 원청인 하이트진로와 하청업체들이 응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6월 2일부터 시작된 파업이 장기화하자 하이트진로는 노조 간부 10여 명에게 28억 원에 달하는 손해배상·운송료 가압류까지 청구했다. 노조에 따르면 기름값·도로비·차량 할부금 등을 제외하고 현재 하이트진로 하청 화물 노동자들이 받는 급여는 월 100만~200만 원 수준에 그친다.

그들이 청담동 한복판 '하이트진로' 본사 옥상에 올라간 이유
 
▲ 하이트진로 옥상 광고탑에 오른 화물노동자 “살기 위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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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공농성 3일째인 이날,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는 고공농성자들이 내다보이는 강남본사 앞 도로에서 집회를 열고 하이트진로를 규탄했다. 현정희 공공운수노조 위원장은 "하이트진로 자본이 배를 불리는 동안 노동자 임금은 동결이다 못해 삭감됐다"라며 "15년 전 임금을 그대로 받는 것도 모자라 2008년 삭감된 뒤 실질적으로는 계속 마이너스 1%"라고 했다. 현 위원장은 "하이트진로 작년 매출이 2조2000억 원이나 됐다. 주주배당하고 돈 잔치하는 동안 하이트진로 화물 노동자들은 이렇게 길거리로, 홍천강으로, 급기야 옥상 광고판까지 몰아냈다"고 말했다. 앞서 지난 4일 강원도 홍천 하이트진로 공장 다리 위에서 시위를 벌이던 하이트진로 화물 노동자 3명은 경찰의 진압으로 인해 홍천강에 빠지는 일이 벌어졌다.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다.


김경율 경제민주주의21 회계사는 회계 자료를 근거로 하이트진로의 노동 착취가 너무 심하다고 비판했다. 김 회계사는 "하이트진로의 매출총이익률이 40%를 넘는 걸 보고 정말 깜짝 놀랐다"면서 "현대자동차 20% 안팎, 삼성전자가 30%대일만큼 매출총이익률이 그렇게 높으려면 기술력이 압도적이거나 군수산업처럼 국가로부터 특혜·독점을 받는 경우나 가능하다"고 했다. 그는 "하이트진로 매출총이익이 1년에 1조 원을 넘는데, 물류비는 900억 원밖에 안 된다"라며 "적당히 해먹어야 하는데 너무 심하게 해먹고 있다"고 했다.

김 회계사는 "화물 노동자들이 보통 1년에 1억2000만 원 매출을 하는데, 이중 유류비가 4000만 원 이상, 차량 감가상각과 톨게이트비 수천 만원까지 합하면 1년에 집에 가져가는 돈이 2000만~3000만 원 선"이라며 "그것도 50대 이상인 분들이 많은데 그렇게 벌면 어떻게 살라는 거냐"고 지적했다.

"노조법 2조 개정해 원청이 교섭 나오게 해야"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조합원들이 18일 오후 서울 강남구 하이트진로 본사 앞에서 화물연대 하이트진로지부 조합원들의 고공농성투쟁 승리를 기원하는 결의대회에 참석해 해고 조합원 복직, 손해배상 소송·업무방해 가처분신청 철회, 운송료 현실화 등을 요구하고 있다.
▲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조합원들이 18일 오후 서울 강남구 하이트진로 본사 앞에서 화물연대 하이트진로지부 조합원들의 고공농성투쟁 승리를 기원하는 결의대회에 참석해 해고 조합원 복직, 손해배상 소송·업무방해 가처분신청 철회, 운송료 현실화 등을 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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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조합원들이 18일 오후 서울 강남구 하이트진로 본사 앞에서 화물연대 하이트진로지부 조합원들의 고공농성투쟁 승리를 기원하는 결의대회에 참석해 해고 조합원 복직, 손해배상 소송·업무방해 가처분신청 철회, 운송료 현실화 등을 요구하고 있다.
▲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조합원들이 18일 오후 서울 강남구 하이트진로 본사 앞에서 화물연대 하이트진로지부 조합원들의 고공농성투쟁 승리를 기원하는 결의대회에 참석해 해고 조합원 복직, 손해배상 소송·업무방해 가처분신청 철회, 운송료 현실화 등을 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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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법 2조 개정에 대한 목소리도 쏟아졌다. 하청 화물 노동자들의 운송료 인상엔 원청인 하이트진로 결정이 필수적인데, 현재 하이트진로는 하청 물류업체에 책임을 미룬 채 교섭에 응하지 않고 하청 업체는 원청인 하이트진로의 눈치를 보며 권한이 없다고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일을 막기 위해 노조법 2조를 개정해 원청이 실질적인 사용자로서 의무적으로 교섭에 나오도록 법을 보완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법 개정만 되지 않았을 뿐 대법원 판례는 이미 나와있다. 대법원은 지난 2010년 원청이 하청 노동자와 직접적인 근로계약을 맺지 않았다고 할지라도 교섭의 실질적인 권한을 가졌다면 사용자로서 교섭의 책임을 지닌다고 판결한 바 있다(현대중공업 하청노조 판결). 하지만 이후 정부와 국회가 제도화에 나서지 않았고, 이제는 이를 법으로 강제해야 한다는 요구다.

이봉주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 위원장은 "ILO(국제노동기구)에서도 화물 노동자들의 노동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하고 있다. 우리는 용차도 아니고 특고(특수형태고용종사자)도 아니고 노동자다"라며 "노조법 2조 개정 투쟁에 들어가겠다"고 했다.

양한웅 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집행위원장도 "하청 노동자들이 하청 업체와 하는 교섭에 진전이 없는 이유가 바로 노조법 2조 때문"이라며 "노조법 개정을 통해 노동자들이 정당한 노동권을 확보하는 데 종교계도 동참할 것"이라고 했다.

류호정 정의당 의원은 "실질적인 사용자가 책임을 부담하고 모든 노동자의 노동3권(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 보장을 위한 노조법 2조 개정에 적극 나서겠다"고 했다. 그는 "화물 노동자의 운송료와 노동 조건을 결정하는 실질적 권한을 가진 하이트진로가 교섭에 성실히 나서라"라며 "노동부도 하이트진로에 교섭 의무를 부과하고 노조 파괴 행위가 중단되도록 특별근로감독에 나서라"고 촉구했다.

영국에서 온 연대 목소리 "Too-Zaeng!"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조합원들이 18일 오후 서울 강남구 하이트진로 본사 앞에서 화물연대 하이트진로지부 조합원들의 고공농성투쟁 승리를 기원하는 결의대회에 참석해 옥상 광고탑에서 고공농성 중인 조합원들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하고 있다.
▲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조합원들이 18일 오후 서울 강남구 하이트진로 본사 앞에서 화물연대 하이트진로지부 조합원들의 고공농성투쟁 승리를 기원하는 결의대회에 참석해 옥상 광고탑에서 고공농성 중인 조합원들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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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상 광고판까지 올라간 하이트진로 화물 노동자들에 대한 연대는 비단 국내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연대를 위해 영국에서 온 노엘 코드 국제운수노련 내륙운수실장(Noel Coard, International Transport Workers' Federation Inland Transport Secretary)이 이날 집회에 참석했다. 그는 '단결 투쟁'이 적힌 빨간 머리띠를 두른 채 영어로 연대 발언을 했다. 하지만 "투쟁" 구호만큼은 팔뚝질을 하며 또박또박한 한국어로 연거푸 외쳤다.

노엘 코드 실장은 "하이트진로 화물 노동자들은 결코 혼자가 아니다"라며 "전세계 2000만 명의 국제운수노련 조합원들이 지지하고 함께 투쟁하고 있다"고 했다. 노엘 코드 실장은 하이트진로에 "성실 교섭에 나서고 노동자에 대한 손배·가압류를 다 취하하라"라며 "노동자들의 정당한, 국제법에 의해서 보장된 권리를 존중하라"고 촉구했다.

그는 "안전운임제가 전 차종과 전 품목에 적용되고 있었다면 우리는 이 자리에 있을 필요가 없었을 것"이라고도 했다. 안전운임제는 화물 노동자들의 적정임금을 보장하는 제도로, 과적·과속·과로를 막아 일반 운전자들의 안전도 함께 증진시킨다는 취지다. 현재는 컨테이너·시멘트 운송차량에만 적용되고 있다. 이봉주 화물연대 본부위원장은 "만약 하이트진로 동지들이 안전운임제도 영역 안에 있었다면 이렇게 운송료 몇 푼 올려달라고 목숨을 건 투쟁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이날 노엘 코드 실장의 발언 전문을 기록한 것.

"동지들 반갑습니다. 저는 국제운수노련 내륙운수실장 노엘 코드입니다. 여러분들과 함께 하고 연대하기 위해서 이자리 왔습니다. 투쟁! 투쟁! 투쟁! Thank you.

저는 국제운수노련 사무총장과 위원장님을 대신해 연대 인사 드립니다. 저는 공공운수노조 그리고 특히 화물연대 투쟁에 연대하고 응원하기 위해서 한국을 방문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혼자 투쟁하고 있지 않습니다. 고공농성에 올라간 동지들이 혼자 투쟁하고 있지 않습니다. 저는 오늘 한 명 혼자 이 무대에 서있지만, 저 뒤에서 국제운수노련의 2000만명의 조합원들이 지지하고 응원하고 함께 투쟁하고 있습니다.

이제 안전 운임제 법제화 확대를 위한 투쟁은 한국만의 투쟁이 아닙니다. 세계적인 투쟁, 모든 운수노동자를 위한 투쟁이 됐습니다. 그리고 그 투쟁 맨 앞에서 투쟁하고 있는 동지들이 바로 화물연대 본부입니다.

공공운수노조 위원장 동지와 화물연대 본부위원장 동지가 말씀하신 대로 안전운임제가 전 차종과 전 품목에 적용되고 있었다면 우리는 이 자리에 있을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국제운수노련, 그리고 국제운수노련에 속한 2000만명의 운수 노동자들이 안전운임제 일몰제가 폐기되고 전 차종 전 품목에 확대될 때까지 우리는 함께 투쟁할 것입니다.

전세계적으로 부자가 된 악덕 기업들이 보수 정권과 손을 잡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탄압하고 있습니다. 한국 상황과 마찬가지입니다. 하이트진로 자본이 성실 교섭에 나서는 것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절대 가만히 있지 않겠습니다.

2000만명의 국제운수노련 조합원을 대신해서 하이트진로 자본에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습니다. 성실 교섭에 나서주십시오. 노동자에 대한 손배·가압류를 다 취하하십시오. 노동자들의 정당한, 국제법에 의해서 보장된 권리를 존중해주십시오.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강조하겠습니다. 여러분들이 혼자 투쟁하고 있지 않습니다. 전세계적으로 함께 하고 있고, 끝까지, 이길 때까지, 승리할 때까지 반드시 함께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투쟁(Too-Zaeng)! 투쟁(Too-Zaeng)! 투쟁(Too-Zaeng)!"

 
18일 오후 서울 강남구 하이트진로 본사 옥상 광고탑에서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 하이트진로지부 조합원들이 3일째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본사 앞 농성장에 하이트진로 화물노동자들의 투쟁을 응원하는 손피켓이 걸려 있다.
▲  18일 오후 서울 강남구 하이트진로 본사 옥상 광고탑에서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 하이트진로지부 조합원들이 3일째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본사 앞 농성장에 하이트진로 화물노동자들의 투쟁을 응원하는 손피켓이 걸려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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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조합원들이 18일 오후 서울 강남구 하이트진로 본사 앞에서 화물연대 하이트진로지부 조합원들의 고공농성투쟁 승리를 기원하는 결의대회에 참석해 옥상 광고탑에서 고공농성 중인 조합원들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하고 있다.
▲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조합원들이 18일 오후 서울 강남구 하이트진로 본사 앞에서 화물연대 하이트진로지부 조합원들의 고공농성투쟁 승리를 기원하는 결의대회에 참석해 옥상 광고탑에서 고공농성 중인 조합원들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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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행령 개악으로 ‘윤석열 검찰공화국’ 만들겠다는 한동훈

검찰권력의 130년 행태…검수완박이 꼭 필요한 이유

 

박명훈 주권연구소 연구원 | 기사입력 2022/08/18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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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권력의 130년 행태…검수완박이 꼭 필요한 이유

 

 


 

지난 2019년 대검찰청과 서울중앙지검이 있는 서초동에 검찰개혁을 열망하는 촛불 시민들이 모였다. 박근혜 탄핵 촛불 이후 처음으로 잇달아 열린 대규모 촛불집회에서 시민들은 당시 윤석열 검찰총장을 향해 “검찰개혁”을 외쳤다. 이와 관련해 윤석열은 대선 후보가 되고 나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참 어이없는 일들이 있었죠. 대검하고 서울지검 앞에 수만 명, 얼마나 되는 인원인지 모르겠는데 (중략) 거의 검찰을 상대로 협박을 했습니다. 이거는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거든요. 어떤 정권도 이런 정권이 없었습니다. 완전히 무법천지죠. 과거 같으면 다 사법 처리될 일입니다.”

-윤석열이 국힘당 대선후보였던 지난 2월 8일 국힘당 유튜브 채널 「오른소리」에 출연해 한 말.

 

이렇듯 윤석열은 “사법 처리”를 운운하며 촛불 시민들을 겁박하고 나섰다. 윤석열 스스로 검찰개혁을 촉구하는 촛불 민심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밝힌 셈이다. 사실 생각해보면 윤석열로서는 당연한 인식일 수 있다. 애초 검찰총장을 지낸 윤석열이 독재·보수세력에 붙어 시민들을 폭도, 빨갱이로 몰아 탄압해온 검찰권력의 일원이기 때문이다.

 

해방 이후 70여 년 동안 우리 사회에서 검찰은 나쁜 권력에 붙어 부정부패와 표적 수사를 일삼는 집단으로 인식돼왔다.

 

국내에는 검사가 저지르는 부정부패, 정치개입 등 중대범죄를 주제로 다뤄 흥행한 영화가 여럿 있다. 「부당거래」, 「범죄와의 전쟁」, 「검사외전」, 「더킹」 같은 영화에서는 부정부패에 찌든 검사들이 권력을 휘두르는 장면이 나온다. 영화에서 검찰은 입맛에 따라 집단 내부의 추잡한 성범죄, 부정부패 등 자신들의 치부는 몽땅 덮고 나쁜 권력자들을 편드는 선택·편파적 수사를 벌이는 집단으로 그려진다. 이러한 영화의 묘사는 검사 집단을 바라보는 대중의 일반적인 시선이라고 봐도 무방할 듯하다.

 

권력을 악용한 검찰의 부정행위는 실제 현실에서도 마찬가지다. 수사권과 기소권을 쥔 검찰은 부정부패, 중대범죄임이 명확한 혐의에도 한솥밥 먹는 검찰에게는 줄줄이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지난 2020년 12월 서울남부지검은 라임자산운용에서 수백만 원 넘는 술 접대를 받은 검사들을 ‘99만 9,000원 이하 금액을 대접받았으니 죄가 없다’라며 기소조차 하지 않았다. 지난 5년간 통계를 살펴보면 범죄 의혹을 받는 검사가 실제로 기소된 비율은 0.1%에 그친다. 이는 범죄 의혹을 받는 일반 시민 중 40%가 기소되는 것과 비교하면 한참 낮은 수치다.

 

고위직으로 눈을 돌려보면 특수강간·뇌물죄 혐의를 받아온 전 법무부 차관 김학의, 고발사주·판사사찰의 몸통으로 지목받던 전 검찰총장 윤석열, 검언유착 혐의를 받던 전 검사장이자 윤석열의 최측근 한동훈이 줄줄이 검찰의 불기소·솜방망이 기소 처분을 받았다. 특히 검찰은 ‘본부장(본인·부인·장모) 비리’에 휩싸인 윤석열을 제대로 수사하지 않으면서 사실상 윤석열의 대통령 당선을 도왔다.

 

이러한 검찰권력의 전횡이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역사를 돌아보면 수사권·기소권 독점으로 대표되는 검찰권력의 폐해는 일제강점기 이전부터 시작됐다. 구한 말 1895년 일제가 갑오개혁에 개입하면서 검찰의 수사권·기소권이 담긴 재판소 구성법이 처음 만들어졌다. 이후 130년 가까운 세월 동안 검찰은 지금까지 수사권·기소권을 잡고 있다. 

 

해방 이후에는 미군정이 친일파 세력을 비호하면서 친일 검찰의 체계를 그대로 남겨뒀다. 이후 검찰은 군사독재세력의 하수인으로서 수사권과 기소권을 휘둘러 숱한 시민들을 반공세력, 빨갱이로 몰아 감옥에 가두고 사형도 구형했다. 한 마디로 검찰은 70여 년 동안 우리 사회에서 민주주의와 시민을 위협하는 적이었다. 

 

시행령 개악으로 검수완박 무력화…헌법 무너뜨리는 한동훈

 

불의한 검찰권력은 청산되기는커녕 이제는 전 검찰총장 윤석열을 앞세워 대권까지 집어삼켰다. 대통령 윤석열은 내각, 대통령실, 국정원, 금융감독원 같은 요직에 최측근 검찰 출신 인사들을 앉혔다. 괜히 각계에서 ‘윤석열 검찰공화국’이라는 비판이 쏟아지는 것이 아니다.

 

오늘날 한국 검찰은 전 세계를 둘러봐도 사례가 없는 막강한 수사권과 기소권을 유지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한국 검찰은 수사권에서 ▲경찰에 대한 수사지휘권 ▲자체 수사 인력 ▲검경 조서 증거능력 차이(검찰이 작성한 피의자 신문 조서의 증거능력을 경찰이 작성한 피의자 신문 조서보다 우선하는 것), 기소권에서는 ▲수사종결권 ▲기소독점주의 ▲기소편의주의 ▲공소취소권을 모두 쥐고 있다. (오는 9월 10일로 다가온 검찰개정법·형사소송법 개정안이 시행되기 이전인 2022년 8월 기준) 

 

윤석열은 광복절 77주년 경축사에서 “공산 세력에 맞서 자유국가 건국”,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는 “(노동조합의 투쟁과 관련해) 법에 따라 일을 처리할 수밖에 없다”라며 낡아빠진 색깔론을 들고 나왔다. 권력에 맞서는 시민, 노동자, 진보진영을 적으로 간주해 수사와 기소로 찍어누르겠다는 대국민 선전포고로 풀이된다. 이는 검찰총장 출신 대통령 윤석열만이 아니라 검찰 내부 전반에 깔린 인식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윤석열은 검사 시절부터 “법과 원칙, 공정과 상식”이란 말을 줄기차게 되풀이해왔다. 하지만 정작 대통령이 되고 나서는 불법과 무원칙, 불공정과 몰상식이 가득한 자신들만의 세상을 만들려 하고 있다. 실제로 윤석열을 둘러싼 본부장 비리, 그중에서도 김건희의 주가조작·경력조작 의혹은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수사조차 되지 않고 묻힌 상황이다.

 

윤석열은 아예 검언유착 의혹에 깊숙이 연루된 최측근 한동훈을 법무부 장관에 앉혔다. ‘소통령 한동훈’은 기존 검찰 소통·인사 검증을 담당하던 민정수석실의 권한까지 넘겨받아 막강해진 법무부의 장관이 됐다. 국무총리의 장관 제청, 국회 청문회 절차조차 거치지 않은 ‘위법 장관’ 한동훈은 검찰총장 추천위원회를 열지 않고 친윤석열 검사들을 고위직에 꽂는 위법을 저질렀다.

 

이렇게 윤석열이 한동훈을 앞세워 ‘윤석열 앞으로 나란히 섯!’하는 검찰 독주체제가 점점 굳어지고 있다. 윤석열의 최측근이자 검찰 출신 인사가 요직에 앉은 국정원, 대통령실은 2년 전 서해 공무원 사건을 갑자기 끄집어내더니 문재인 정부 인사들을 ‘종북 인사’로 낙인찍으려는 반북 여론몰이까지 벌였다.

 

그러나 노골적인 반북 색깔론은 민심의 철퇴를 맞았다. 여러 여론조사에서 60%가 넘는 국민이 “윤석열 정부는 검찰공화국”이라고 답했다. 윤석열의 지지율은 나날이 추락해 20%대에 머물고 있고 부정평가는 무려 70%에 가깝다. 

 

이런 상황에서 윤석열은 한동훈을 앞세워 또 다른 노림수를 꺼내 들었다. 지난 8월 11일 한동훈은 ‘검사의 수사 개시 범죄 범위에 관한 개정안’을 오는 8월 29일까지 입법 예고한다고 발표했다. 시행령 개정을 통해 검사가 수사할 수 있는 범죄 범위를 늘리겠다는 것이다. 이는 검찰의 수사·기소 권한을 부패·경제범죄로 제한한 검찰개정법·형사소송법 개정안을 무력화하려는 시도다.

 

한동훈은 오는 9월 10일 시행을 앞둔 개정안에 남아있는 검찰의 수사 권한(부패·경제범죄)을 확대하는 편법을 꺼내 들었다. 개정안에 따르면 검찰의 직접수사 대상에서 제외되는 공직자·선거 범죄를 부패·경제범죄로 넓게 해석해 검찰의 직접수사 대상으로 포함하는 식이다. 이렇게 되면 윤석열·한동훈 직할 체제로 편성된 검찰이 이재명 의원 같은 야권 유력 인사들을 겨눠 대대적인 표적 수사를 벌이는 것도 손쉬운 일이 된다.

 

한동훈의 만행은 헌법이 규정한 국회의 입법권을 하위 법령인 시행령을 통해 무력화하려는 작태다. 그 자체로 민주주의와 헌법을 파괴하는 폭거, 쿠데타다. 

 

그런 의미에서 “시행령 개정으로 검찰이 수사하는 것이 진짜 민생 챙기기”라는 한동훈의 말은 윤석열과 한동훈이 꿈꾸는 검찰공화국의 민낯을 잘 보여준다. 검찰권력을 철옹성처럼 쌓아 자신들과 적폐 기득권이 저지르는 범죄는 가리고, 방해가 되는 진보진영은 수사와 압수수색·기소로 탄압하는 공포 통치를 벌이겠다는 것이다. 

 

따라서 검찰권력을 뿌리 뽑을 이른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의 실현은 우리 삶 전반을 좌우할 중요한 과제이기도 하다.

 

다 알면서도 눈 뜨고 당한 민주당

 

문제는 국회에서 윤석열 정권의 시행령 개악을 막아야 할 거대 야당 민주당이 몸을 사리고 있다는 점이다. 민주당은 윤석열이 한동훈을 앞세워 검찰의 수사권을 유지할 것이라고 예상되는 상황에서도 무기력했다.

 

지난 대선 패배 이후 민주당에서는 이른바 ‘개딸(개혁의 딸)’ 같은 지지자들을 중심으로 윤석열 검찰공화국을 견제하려면 서둘러 검수완박 법안을 처리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왔다. 이 흐름을 타고 ‘검수완박 원안 처리 고수’를 주장해온 박홍근 의원이 원내대표로 뽑히기도 했다.

 

이후 박홍근 원내대표 등 민주당 내부에서는 단독으로 국회 원 구성을 해서라도 검수완박 원안 처리, 검찰을 대체할 수사기구 설치를 위한 사법개혁특별위원회 논의를 시작하겠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하지만 결국 말뿐이었고 민주당은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지난 4월 30일 민주당 출신 국회의장 박병석, 국힘당의 야합으로 누더기가 된 ‘검수덜박(검찰 수사권 덜 박탈) 법안’이 통과됐다. 해당 개정안에는 검찰의 직접수사 대상을 부패·경제범죄로 제한, 수사 검사·기소 검사를 따로 구분하는 내용이 담겼다. 이는 6대 중요범죄(부패·경제·공직자·선거·방위사업·대형참사)에서 검찰의 수사를 완전히 배제, 검찰에게는 기소만 맡기기로 한 검수완박 원안에서 매우 크게 후퇴한 것이다.

 

특히 개정안에는 해석에 따라 검찰의 수사 범위가 무한정 확대될 수 있는 독소조항을 남겨둬 문제가 됐다. 먼저 어떤 범죄가 부패범죄이고 경제범죄인지 명확히 규정하지 않아 검찰의 수사 범위를 확대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겼다. 또 ‘부패범죄와 경제범죄 중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중요범죄’로 명시한 원안을 ‘부패범죄와 경제범죄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중요범죄’라고 적시했다. 이 역시 해석을 통해 얼마든지 검찰의 수사 범위를 확대할 수 있는 독소조항이다. 한동훈은 바로 이런 법의 허점을 파고들어 시행령 개악에 나선 것이다.

 

개정안이 통과되기 전부터 윤석열 정권이 마음만 먹으면 시행령 개정을 통해 검찰의 수사권을 얼마든지 되돌릴 수 있다는 지적이 많았다. 하지만 170석에 가까운 의석을 가졌고 얼마든지 검수완박 원안을 밀어붙일 수 있던 민주당은 움직이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민주당은 문재인 정부 시절 적폐청산과 사회대개혁을 열망하는 시민들의 목소리를 귀담아듣지 않았다. 민주당은 개혁에 철저하지 않았고 시종일관 보수·적폐세력의 눈치를 보며 타협했다. 그 결과 지난 대선에서 윤석열 검찰세력에 정권을 넘겼음에도 여전히 우물쭈물 미적대고 있는 모습이다.

 

혹시라도 민주당이 윤석열 정권의 무능과 횡포로 반사 이익을 얻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크나큰 오산이다. 지금처럼 민심에 등 돌리는 헛발질을 계속하는 한 민주당이 대안 정치세력으로 받아들여질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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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실 홍보라인 조정에 “찔끔 쇄신” “땜질 처방”

  • 기자명 장슬기 기자 
  •  
  •  입력 2022.08.19 07:21
  •  
  •  댓글 1
 
 

[아침신문 솎아보기] 한겨레, 대통령 관저 리모델링 업체 대표도 김건희 추천으로 취임식 초청
초대 검찰총장 이원석 내정, 경향 “수사 기밀 유출 사실” 주목, 조선 “똑부 검사” 평가 

서울 한남동 대통령 공관 리모델링 공사를 수의계약으로 따낸 업체 대표도 김건희 여사가 대통령취임식에 초청했다고 한겨레가 보도했다. 통장 잔고증명서를 위조한 혐의로 윤 대통령의 장모와 함께 기소돼 유죄를 선고받은 김아무개씨가 김 여사 추천으로 취임식에 초청됐다는 보도 이후 논란의 인물들이 계속 등장하는 모양새다. 한겨레는 이봉규TV, 가로세로연구소 등 보수 유튜버 30여명도 취임식에 초대받았다는 내용도 전했다. 

대통령실이 홍보라인을 일부 조정하고 정책기획수석을 신설하기로 했다. 신임 홍보수석에는 윤 대통령 당선자 시절 대변인을 맡았던 김은혜 전 국민의힘 의원이 내정됐고, 강인선 현 대변인은 외신 대변인, 최영범 현 홍보수석은 홍보특보로 옮기는 방안이 나온다. 후임 대변인에는 다시 언론계 출신이 올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이번 개편에 대해 여전히 비판 여론이 큰 가운데 서울신문은 “국민 뜻을 따르겠다는 약속을 실천에 옮겼다고 볼 수 있다”며 호평도 함께 전했다. 

윤석열 정부 초대 검찰총장으로 이원석 대검찰청 차장검사가 내정됐다. 경향신문은 이원석 총장 후보자가 지난 2016년 법조비리 사건인 ‘정운호 게이트’를 수사하면서 법원행정처에 수사기밀을 여러 차례 유출했다고 ‘사법농단 사건’ 판결문에 적시된 사실을 보도했다. 조선일보는 이 후보자가 ‘윤석열 사단’의 핵심 중 한명이라며 ‘똑부(똑똑하면서 부지런한) 검사’라고 평가했다. 

▲ 19일 아침종합신문 1면 모음
▲ 19일 아침종합신문 1면 모음

 

관저 리모델링 업체 대표, 보수 유튜버 30여명 취임식 초청

한겨레는 1면 톱기사에서 “한겨레가 확보한 윤 대통령 취임식 초청자 명단에는 대통령 공관 리모델링 업체 ㄱ사의 김아무개 대표가 김 여사 추천으로 이름을 올렸다”며 “ㄱ사는 취임식 보름 뒤인 5월25일 12억2400만원짜리 서울 한남동 관저 리모델링 공사를 수의계약으로 수주했다”고 보도했다. 

이어 “ㄱ사는 2016년과 2018년, 김 여사가 운영하던 코바나컨텐츠가 주최한 전시회장의 인테리어 공사를 담당했고, 김 여사가 기획한 ‘르코르뷔지에’전과 ‘알베르토 자코메티’전의 후원업체로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고 전했다. 김 대표는 한겨레에 “그냥 궁금해서 (취임식에) 참석했다. 초청받지 않았다”라며 “그냥 갔다가 줄이 길어서 (돌아)왔다”고 해명했다. 대통령실도 관련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 19일 한겨레 1면 톱기사
▲ 19일 한겨레 1면 톱기사

 

한겨레가 취임식 명단을 확보한 가운데 임기 초반임에도 권력 누수가 발생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가능하다. 행정안전부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등은 취임식 명단을 별도로 작성하지 않았거나, 취임식 명단을 이미 폐기했다는 등 명단이 없다는 취지의 답변을 해왔지만 취임식 명단이 언론사로 흘러갔기 때문이다. 명단이 유출된 만큼 추후 취임식 초청명단 중 논란이 될만한 인사가 더 드러날 가능성이 있다. 

한겨레는 2면에서 보수 유튜버들도 취임식에 초대받은 사실을 보도했다. 이봉규TV, 시사창고, 시사파이터, 너알아TV, 짝찌TV, 애국순찰팀, 가로세로연구소, 자유청년연합, 정의구현박원석 관계자들이 ‘여사님’ 추천으로 대통령 취임식에 초청됐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살고 있는 ‘평산마을 시위’를 주도한 극우 유튜버 안정권씨와 대통령실에 근무했던 안씨의 누나도 초청자 명단에서 ‘여사 추천’으로 분류됐다. 

한겨레는 “자유통일당, 이승만건국대통령기념사업회, 자유청년연합, 자유일보 주필도 ‘여사 추천’으로 취임식에 초청됐다”며 “문 전 대통령 지지세력이었다가 대선 국면에서 이재명 후보에 반대하며 윤석열 후보를 지지했던 깨어있는시민연대당 관계자들도 취임식에 초청받았다”고 보도했다. 

대통령실 홍보라인 조정, 잘못된 원인 진단? 

동아일보는 1면 톱기사에서 “취임 100일 직후 재정비되는 2기 대통령실은 기존 ‘2실장-5수석’ 체제에서 ‘2실장-6수석+알파’ 체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며 “‘대통령실 슬림화’를 기조로 출범했지만 국정 혼선이 드러나자 대통령실의 인력과 기능을 보강하는 것”이라고 보도했다. 대통령실은 정책기획수석을 신설하기로 했다.  

경향신문도 1면 톱기사 제목 “홍보수석 교체에 머문 ‘찔끔 쇄신’”에서 대통령실의 인적 쇄신이 부족하다고 평가했다. 

▲ 19일 동아일보 사설
▲ 19일 동아일보 사설

 

홍보라인 일부 조정에 대해 동아일보는 사설에서도 비판했다. 이 신문은 “국정 신뢰도 하락의 주된 원인을 홍보의 실패로 봤다면 잘못 짚은 것”이라며 “거의 모든 여론조사에서 대통령 지지율 하락의 첫째 요인으로 꼽히는 것이 인사실패다. 대통령실은 연이은 사적 인연 채용 논란을 자초했다”고 지적했다. 

동아일보는 “현 정부의 위기를 부른 근본적 원인은 국정 목표와 실천 전략을 분명히 설명하지 못하는 데 있다”며 “인사시스템을 쇄신하고 국민들이 공감할 만한 국정 비전을 제시하지 않으면 홍보 담당자를 바꾸고 늘려 봐야 떠난 민심은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한겨레도 사설 “‘분골쇄신’한다더니 홍보수석 하나 책임 묻는 건가”에서 “이는 전면 쇄신과는 거리가 먼 ‘땜질 처방’에 가깝다”라며 “‘윤석열표 쇄신’에는 가장 중요한 문책이 빠져 있다”고 평가했다. 이 신문은 “대통령을 잘못 보좌한 총체적 책임자인 김대기 실장은 쇄신안 마련을 주도하고 있고 당정은 물론 대야당 관계에서 존재감을 찾아볼 수 없는 이진복 정무수석, 사상 최악 수해가 나던 날 ‘비 온다고 대통령이 퇴근을 안 하냐’는 말로 국민 분노를 돋운 강승규 시민사회수석 등도 개편에서 제외되는 분위기”라고 지적했다. 

한겨레는 “공정과 정의와는 거리가 먼 김인철 교육부 장관 후보자부터 최근 박순애 교육부 장관까지 무려 5명이 불명예 퇴진하는 과정에서 부실 검증의 책임을 져야 할 인사 라인 역시 교체된다는 얘기는 들리지 않는다”며 “지금 총체적 국정난맥 상황이 오직 ‘소통과 홍보 부족’ 탓이라고 여긴다면 대단한 착각”이라고 평가했다. 

서울신문의 톤은 다소 달랐다. 1면 톱기사 제목을 “정책․소통 강화…대통령실 인적 쇄신”으로 정했고 이어지는 3면 기사에서 “홍보라인의 개편도 앞서 몇 차례 메시지 혼선이 윤 대통령 지지율 하락의 요인이 됐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라고 보도했다. 사실상 대통령실 입장을 그대로 전하는 수준이다. 

사설에서는 비판적 의견을 다소 드러냈다. 이 신문은 “홍보라인 개편에 착수한 건 인적 쇄신을 원하는 국민 뜻에 따르겠다는 약속을 실천에 옮겼다고 볼 수 있다”고 평가하면서 동시에 “대통령실 일부 조직을 새로 만들고 홍보라인 일부를 손대는 정도를 쇄신으로 볼 수는 없다”고 했다. 이어 “대통령실부터 과감한 인적 개편을 통해 국민 뜻을 받든다는 실감을 줘야 한다”고 했다. 

초대 검찰총장, 수사 기밀 유출 논란

경향신문은 1면 “이원석, ‘정운호 게이트’ 수사기밀 유출 의혹”이란 기사에서 “(사법농단 관련 재판) 판결문에는 이 후보자가 법원행정처에 수사정보를 전달했다고 명시돼 있다”라며 “판결문에는 이 후보자가 사법연수원 동기인 김현보 당시 법원행정처 윤리감사관과 친분이 두터워 수사정보를 상세히 알려줬다고 적혀있다”고 보도했다. 이 후보자는 2016년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으로 ‘정운호 게이트’ 수사를 담당했다. 

▲ 19일 경향신문 1면
▲ 19일 경향신문 1면

 

이 신문은 “김 전 감사관은 이렇게 알게 된 정보를 임종헌 당시 법원행정처 차장에게 보고했다”고 전했다. 이어 “김 전 감사관은 ‘이원석 부장 통화내용’이라는 제목으로 이 내정자와 통화내용을 35차례 걸쳐 메모나 보고서 형식으로 정리했다”고 전했다. 이 후보자는 경향신문에 “수사정보 유출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법원 자체 감찰과 징계를 위해 필요한 사항을 설명한 것은 있지만 수사정보를 유출한 사실은 없다”고 했다. 

▲ 19일 조선일보 정치면 기사
▲ 19일 조선일보 정치면 기사

 

조선일보는 정치면 “삼성 비자금‧국정농단 수사한 ‘똑부 검사’…‘검찰 중립성 지킬 것’”이란 기사에서 “이 후보자는 2019년 7월부터 2020년 1월까지 대검 기획조정부장으로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을 바로 곁에서 보좌했다”라며 “‘윤석열 검찰’이 ‘조국 일가 의혹’ ‘청와대 울산시장 선거개입 사건’ 등을 수사하자 문재인 정부가 윤 대통령과 주변을 강하게 압박하던 시기와 겹친다”고 전했다. 

‘윤석열 사단’으로서 지난 정부에 대한 수사에 속도를 낼 것이란 전망도 담았다. 조선일보는 “이 후보자 앞에는 문재인 정부의 ‘서해 공무원 피살 진상 은혜’와 ‘탈북 어민 강제 북송’ 의혹,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관련한 ‘대장동 특혜․비리’ ‘백현동 개발 비리’ 등 주요 사건 수사가 쌓여있다”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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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국민 사과로 시작한 '주호영 비대위'… "화합과 단결"

박덕흠 사무총장설 없던 일로…비대위-혁신위 투트랙 가동

최용락 기자  |  기사입력 2022.08.18. 10:35:28

 

국민의힘 주호영 비상대책위원회가 당내 갈등과 분열 등에 대한 대국민 사과로 첫 발을 뗐다.

주호영 비상대책위원장은 18일 비대위 첫 회의를 열며 "비대위 정식 출범에 앞서서 국민과 당원 여러분께 먼저 반성하고 사과드린다는 말씀을 올리면서 시작하고자 한다"며 "당에 갈등과 분열이 생긴 일, 갈등과 분열을 제대로 수습하지 못하고 법정까지 가게 된 일, 민생을 잘 챙겨서 유능한 집권당이란 인식을 조기에 국민에게 주지 못하고 부적절한 언행으로 국민으로부터 눈살을 찌푸리게 한 일, 새 정부를 제대로 견인해 조기에 안착시키고 신뢰 받게 하는데 소홀함이 있었던 점, 이런 점 모두 국민과 당원들께 사과하고 반성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우리가 잘못했고 잘 하겠다는 취지로 인사드리고 (회의를) 시작했으면 한다"며 비대위원들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 

비대위 운영 방향에 대해 주 위원장은 "민심의 창구인 당은 민심을 적극 수용해서 정부에 전달하고 정부가 민심과 괴리되는 일이 있을 때는 빠른 시간 안에 고치도록 하는데 최선을 다하겠다"며 "혁신과 변화로 당이 국민들로부터 신뢰받고 사랑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 화합과 단결로 다시는 국민들로부터 당 운영 문제로 걱정 끼치는 일 없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당원들에게 그는 "뭉쳐야 한다. 분열한 조직은 필패하게 돼있다. 그렇다고 무조건 단합을 호소하지는 않는다"며 "당 전체가 흔들리고 무너지면 모든 게 잘 될 수 없다는 절박함, 집권당으로서 정치인으로서 이 시대의 어려움에 처한 국민에 대한 책임감, 이런 걸 갖고 조금씩 역지사지하고 양보하면 당의 단합은 조기에 정착될 수 있다. 우리 모두 심기일전해 다시 새롭게 출발하자"고 당부했다. 

 

 

주 위원장은 전날 안철수 의원이 꺼내 든 당 혁신위원회 해체 주장에 대해 "내일 최재형 혁신위원장으로부터 활동 보고도 받도록 돼있지만 저는 비대위와 혁신위에 각각의 역할이 있고 활동 공간이 있다고 생각한다"며 "혁신안을 잘 내면 비대위가 논의해 채택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혁신위가 활발히 활동하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선을 그었다.

주 위원장은 또 자신이 "비 왔으면 좋겠다. 사진 잘 나오게"라는 김성원 의원의 발언을 두고 "장난기"라고 말한 데 대해 윤리위 회부가 검토 중이라는 데 대해 "처음 듣는 이야기"라면서도 "(장난기 발언은) 김 의원을 옹호하기 위한 게 아니고 평소에 장난기가 많아서 저러다 언제 한 번 큰 사고 치겠다는 걱정을 이야기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한편 비대위는 이날 주요 인선 작업을 마무리했다. 박덕흠 의원 내정설이 돌던 사무총장직은 김석기 의원에게 돌아갔다. 

'윤핵관' 정진석 의원과 사돈관계인 박 의원에 대해서는 사무총장으로는 부적절한 인사라는 여론이 높았다. 국토교통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던 2015~2020년 본인의 가족회사가 국토부와 산하 공공기관으로부터 1000억 원대 공사를 수주해 이해충돌 논란을 일으킨 이력 때문이었다. 해당 논란이 일자 박 의원은 2020년 9월 탈당했지만 지난해 12월 슬그머니 복당했다. 

그밖에 비대위 수석대변인으로는 청와대 춘추관장·대변인을 지낸 박정하 의원이 임명됐다. 비대위 비서실장으로는 정희용 의원이 임명됐다.

최용락

내 집은 아니어도 되니 이사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집, 잘릴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충분한 문화생활을 할 수 있는 임금과 여가를 보장하는 직장, 아니라고 생각하는 일에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나, 모든 사람이 이 정도쯤이야 쉽게 이루고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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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17일 서해상으로 순항미사일 2발 발사

  • 기자명 이광길 기자 
  •  
  •  입력 2022.08.17 15:25
  •  
  •  수정 2022.08.17 15:35
  •  
  •  댓글 0
 

북한이 17일 새벽 평안남도 온천 일대에서 서해상으로 순항미사일 2발을 발사했다. 

군 관계자는 “우리 군은 감시 및 경계 강화하고 한미 공조아래 철저한 경계태세 유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군 당국은 비행거리나 고도를 비롯하여 미사일 제원에 대한 세부 분석을 진행하고 있다. 

유엔 안보리 대북 결의들은 대량파괴무기(WMD)인 탄도미사일 발사를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정밀타격무기인 순항미사일은 유엔 안보리 대북 결의들이 금지하는 대상이 아니다.     

북한이 ‘윤석열 대통령 취임 100일’에 맞춰 미사일을 발사했다는 점이 주목된다. 윤 대통령이 지난 15일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제안한 ‘대담한 구상’에 대한 북한의 답변으로 볼 수도 있다. 

북한이 지난 1월 25일 발사한 장거리 순항미사일. [자료출처-노동신문]
북한이 지난 1월 25일 발사한 장거리 순항미사일. [자료출처-노동신문]

특히, 합동참모본부(합참)와 주한미군사령부가 전날(16일)부터 시작한 ‘위기관리연습’에 대한 북한의 대응일 가능성이 커보인다. 19일 끝나는 위기관리연습은 오는 22일 시작하는 ‘을지 자유의 방패’의 사전연습이다.    

17일 오후 대통령실은 “오늘 새벽 북한이 평남 온천비행장 인근에서 순항미사일(추정)을 발사한 것과 관련 합참은 한미 연합자산을 통해 탐지했다”면서 “김성한 국가안보실장은 오전 9시 국가안보실 간부들과 안보상황점검회의를 개최하여, 합참으로부터 관련 상황을 보고 받고 우리 군의 대비태세를 점검했다”고 알렸다. 

아울러 “참석자들은 현재 한미 ‘을지 자유의 방패’ 연합 연습을 앞두고 위기관리연습이 시행 중임을 감안하여 관련 동향을 예의주시해 나가기로 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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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대통령 기자회견에 “국민 안도감 느꼈을 것”이라는 신문은?

  • 기자명 노지민 기자 
  •  
  •  입력 2022.08.18 07:56
  •  
  •  댓글 0
 
 

아침신문 솎아보기] 대통령 100일 기자회견에 부정적 평가 다수…노동 답변에 평가 엇갈려
더불어민주당 부정부패 당직자 자격 관련 조항 개정 않기로, 조선일보 “이재명 방탄 우회로”

저조한 국정지지율 속에 열린 윤석열 대통령의 첫 기자회견은 실망스럽다는 반응이 중론이다. 17일 윤 대통령 취임 100일을 기념해 기자회견이 진행된 다음날 아침 중앙일간지로 꼽히는 신문 다수가 반성과 쇄신안이 부족했다고 지적했다. 아래는 이날 9개 주요종합일간지 1면에 실린 윤 대통령 기자회견 관련 기사 제목들이다.

윤 대통령 기자회견에 대한 사설들은 “공허”(경향)했고, “국정 혼선 반성과 인사 쇄신 없는”(중앙)이었다는 지적으로 요약된다. 9개 신문별 사설 제목은 아래와 같다.

경향신문: 성찰·쇄신 보이지 않아 공허했던 윤 대통령 100일 회견
국민일보: 취임 100일 윤 대통령, 다짐보다 실천이 중요하다
동아일보: “분골쇄신” 다짐한 尹 회견, 국정·인사 쇄신으로 내용 채워야
서울신문: ‘국민 숨소리 안 놓치겠다’는 다짐, 허언 안 돼야
세계일보: 尹대통령 “국민 뜻이 우선순위”…실천으로 보여주길
조선일보: 국민 뜻 받들겠다는 다짐, 실천되는지 지켜볼 것
중앙일보: 국정 혼선 반성과 인사 쇄신 없는 윤 대통령 100일 회견
한겨레: 민심 경고 외면한 윤 대통령의 ‘불통’ 회견
한국일보: 국정 쇄신 청사진 안 보인 尹 100일 회견

윤 대통령 기자회견의 문제로 지적된 것 중 하나는 ‘현실인식’이다. 서울신문은 “그가 54분의 기자회견 중 20분을 국정과제 이행 사항을 일일이 언급하는 데 할애한 것이 뭘 뜻하겠나. 대통령실과 정부의 홍보·정무 기능이 작동하지 않아 국정 성과가 국민들에게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는 아쉬움의 방증 아닌가”라고 했다. 동아일보는 “집권세력은 ‘무조건 반대’를 넘어 국정운영의 청사진을 내놓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상황”이라며 “참모 탓, 야당 탓 말고 대통령 스스로 변화의 구심점이 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8월18일 주요 신문 1면 모음
▲8월18일 주요 신문 1면 모음

두 번째는 인사쇄신. 윤 대통령이 ‘인사쇄신은 지지율 반등 등 정치적 목적으로 해선 안 된다’고 밝힌 가운데, 대통령실 홍보라인을 비롯한 일부 참모진 개편이 예견되지만 부족하다는 것이다. 세계일보는 “어물쩍 소폭 개편이나 미세 조정으로 해결될 상황이 아니다”라고 했다. 국민일보는 “적극적인 인적 쇄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은데 대통령실 일부 참모들만 보강하고 끝낸다면 또 다른 실망을 부를 것”이라며 “비판을 받아들이지 않는 오만한 대통령은 국민의 뜻에 충실히 따르는 대통령과 전혀 다르다”고 밝혔다.

반면 조선일보의 경우 “국민은 윤 대통령의 이번 회견에 적잖은 안도감을 느꼈을 것”이라는 평가를 내놨다. “취임 초반 미숙하고 때론 거칠게 비쳤던 모습에서 벗어나 변화하려는 의지를 보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국민이 진짜 변화를 느끼려면 그런 의지를 실천에 옮겨야 한다. 말로만 끝나고 실제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국민 실망감은 더 커질 수 있다”고 당부했다.

윤 대통령이 즉흥 추가발언한 ‘노동’, 엇갈린 평가

중앙일보의 경우 윤 대통령 기자회견 발언 중 ‘노동개혁’ ‘대북 문제 대응’ 등 답변은 “평가할 만하다”고 봤다. 이 신문 사설을 인용하면 “노동 유연화와 임금 격차를 아우른 노동개혁이나 연금개혁 등을 정치적 유불리를 따지지 않고 추진하겠다고 하고, 법과 원칙에 따른 노사 갈등 대응을 강조한 점은 평가할 만하다. 북한 비핵화를 위해 발표한 ‘담대한 구상’의 후속으로 북·미 관계 정상화를 위한 외교적 지원 등 북한이 중시하는 안전 보장 관련 조치를 언급한 것도 적절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회적 갈등을 양산할 수 있는 정책을 내세우면서 구체적 문제 해결 방안이 없다는 지적이 있다. 한겨레는 관련 기사(노동개혁 포장한 갈등 의제 ‘사회적 대화’ 한마디도 없어)에서 “고용노동부는 노·사·정이 함께 참여하는 ‘대통령 소속 경제사회노동위원회’를 통해 노동개혁 과제를 발굴하고 추진하겠다고 밝혔지만, 윤 대통령은 취임 뒤 지금까지 단 한차례도 ‘사회적 대화’를 언급한 적이 없다”며 “윤 대통령 취임 100일 동안 사실상 사회적 대화는 중단된 셈”이라고 했다. 한국노총은 이날 “(윤 대통령은) 노동시장 양극화와 이중구조 문제의 합리적 대안을 노동계 없이 재계와 만들 모양”이라고 논평했다.

▲8월18일 한겨레 기사
▲8월18일 한겨레 기사

한편 조선일보 여론조사전문기자는 국정 지지율 관련한 여론조사가 난립해 대통령 지지율 하락을 “부채질”했다는 관점을 제시했다. ‘100일간 100건 지지율 조사’란 제목의 칼럼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여심위)에 따르면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00일간 공표한 대통령 지지율 조사가 무려 100건이었다. 박근혜 정부 초반 100일간 50건의 두 배나 되고 문재인 정부 때 66건보다도 크게 늘었다”며 “‘우후죽순 여론조사’가 윤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을 부채질했다는 견해도 있다. 대통령 지지율 조사와 관련 뉴스가 거의 매일 반복되자 여권 지지층이 기가 눌려서 입을 못 여는 분위기가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라고 했다.

민주 ‘이재명 방탄’ 논란 당헌 절충안으로…조선 “면죄부”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가 17일 부정부패로 기소된 당직자의 자격정지를 규정하는 당헌을 유지하기로 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위한 개정이라며 ‘이재명 방탄’ 꼬리표가 붙은 조항이다. 다만 기소 시 정치탄압 등 부당한 이유가 있다고 판단되면 징계처분을 취소 또는 정지할 수 있는 권한을 ‘윤리심판원’에서 ‘당무위원회’로 바꿨다. 부정부패 관련 당직자의 자격정지 요건은 ‘기소’에서 ‘하급심에서 금고 이상 형을 받은 경우’로 수정했다.

이를 두고 여론을 의식한 당이 한 발 물러섰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국일보 기사(‘이재명 방탄’ 부담됐나…당직자 직무 정지 기준 ‘검찰 기소’ 유지)는 “당헌 개정을 둘러싸고 현재 다수 혐의로 검·경 수사 대상에 오른 유력 당권주자 이재명 의원을 지키기 위한 것 아니냐는 당 안팎의 거센 비판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며 “전준위 안을 문제 삼아왔던 비이재명(비명)계에선 비대위 절충안을 긍정 평가하는 분위기”라고 했다. “수정안에 찬성한 것으로 알려진 비대위원들에게는 강성 지지자들의 문자 폭탄이 쇄도했다”는 분위기도 전했다.

▲8월18일 조선일보, 한국일보 기사
▲8월18일 조선일보, 한국일보 기사

반면 조선일보(‘李 방탄’ 또 꼼수개정…기소돼도 지도부 뜻대로 면죄부)는 “당헌 조항을 이재명 의원에게 유리하게 노골적으로 바꾸진 않았지만, 우회로를 통해 ‘셀프 구제’가 가능하도록 한 것”이라면서 “정치권에서는 민주당이 꼼수 개정을 통해 ‘이재명 방탄’을 실현했다는 얘기가 나왔다”고 했다. “수정안대로라면, 이재명 의원이 당 대표가 된 뒤 기소되더라도 자신의 필요에 따라 스스로 직무를 정지하지 않을 수 있다”며 “당무위원회가 당원권 정지 관련 사안을 판단하게 되면 개별 의원들이 지도부의 눈치를 더욱 살피게 되는 효과도 있다”는 것이다.

 노지민 기자 jmnoh@media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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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실종시대, 김대중에게 길을 묻다

  • 분류
    아하~
  • 등록일
    2022/08/18 10:19
  • 수정일
    2022/08/18 10:19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다시, 김대중①- 정치 리더십] <김대중 평전> 저자가 쓴 'DJ의 눈으로 본 윤석열 정부 100일'

22.08.18 05:25최종 업데이트 22.08.18 05:25
2022년 8월 18일은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13주기입니다. 한국 사회 전반에 남긴 김 전 대통령의 발자국은 명징합니다. 13주기를 맞아 정치권에서는 김 전 대통령의 리더십과 정책, 국정관리 능력을 재평가해보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습니다. 사회적 갈등이 그 어느 때보다 첨예한 정치 양극화 시대, 여야 정치권이 김대중의 유산에서 배울점을 찾자는 겁니다. <오마이뉴스>는 각 분야별로 다섯 차례에 걸쳐 김 전 대통령이 남긴 정치적·정책적 유산을 재조명하는 전문가 기고를 싣습니다. 그 첫 번째는 <새벽, 김대중 평전>저자 김택근 전 <경향신문> 논설위원의 글입니다. [편집자말]

▲ 2003년 2월 24일 김대중 대통령과 이희호 여사가 청와대에서 사저로 출발하면서 환영 나온 인파들에게 차 안에서 손을 들어 답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일생 동안, 특히 지난 5년 동안 저는 잠시도 쉴 새 없이 달려왔습니다. 이제 휴식이 필요합니다." (김대중 대통령 퇴임사) 

김대중 대통령은 모든 힘을 쏟고 동교동 집으로 돌아왔다. 긴장이 풀어지자 건강이 급속하게 나빠졌다. 결국 신장 투석치료를 받아야 했다. 한 번 투석으로 이틀 또는 사흘치의 생명을 얻었다. 그럼에도 극우단체 회원들이 몰려와 '김대중은 빨갱이'라며 구호를 외쳤다. 그들의 고함이 담을 넘어왔다.

 김대중은 낙담했다. 자신을 음해하는 무리와 지상에서는 화해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미리 역사 속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그리고 미래인들과 교감했다. 그들이 한반도를 경영할 때는 역사 속에서 자신을 찾을 것이라 믿었다. 김대중이 가장 두려워 한 것은 역사의 심판이었다.

그런데 '김대중의 시간'이 빨리 찾아왔다. 세상을 떠난 지 13년, 다시 김대중이다. 삶과 사상을 재평가하며 김대중의 리더십과 정책, 업적을 꺼내보기 시작했다. 아마 시국이 엄중하기 때문일 것이다. 정치는 없고 정치 해설만 난무하는 천박한 시대이기 때문일 것이다. 김대중이 있었다면 어떻게 했을까. 지금 보수와 진보 모두 김대중에게 길을 묻고 있다.

철저한 정치인, 김대중

김대중은 철저한 정치인이었다. 정치와 정치인을 깎아내리지 않았다. 부패하고 무능한 정치인이 나쁜 정치를 해도 그것들을 바로 잡는 일은 역시 정치를 통해서만 가능했다. 정치인은 심산유곡에 피어난 한 떨기 백합화가 아니라 시궁창에서 피어난 연꽃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치인은 국민이 내뱉은 울음과 한숨을 삼켜야 한다. 흙탕물에서 공동선을 피워 올려야 한다. 김대중은 자신의 말대로 현실 문제를 회피하지 않았다. 어떤 현안에도 나름의 답을 찾으려 했다.

김대중은 대통령수칙을 만들어 지니고 다녔다. '사랑과 관용, 그러나 법과 질서를 엄수해야' '인사정책이 성공의 길, 아첨하는 자와 무능한 자를 배제' '현안 파악 충분히, 관련 정보 숙지해야' '국민의 애국심과 양심 믿어야, 이해 안 될 때 설명방식 재고' '국회와 야당의 비판 경청, 그러나 정부 짓밟는 것 용납 말아야' '청와대 이외의 일반시민과 접촉에 힘써야' 등이다. 이렇게 준비된 정치인은 일찍이 없었다.

김대중은 늘 민심을 살폈다. 정권 말기에 권력형 비리가 터져 나오고 민심이 돌아서자 곧바로 고개를 숙이며 대국민 사과를 했다. 2002년 새해 연두회견에서는 죄송하다, 미안하다는 말을 여섯 차례나 했다. 민심을 이기는 권력은 없다는 것을 정치인 김대중은 알고 있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국민은 언제나 현명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민심은 마지막에 가장 현명하다."

용서와 화해의 리더십
 

▲ 1998년 2월 25일, 김대중 대통령이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 광장에서 열린 제15대 대통령취임식장에서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 김대중 대통령 너머 노태우, 전두환, 김영삼 전 대통령이 보인다(왼쪽부터). ⓒ 연합뉴스

 
김대중의 용서와 화해는 피의 보복으로 점철된 한국 현대사를 바꾸었다. 대통령이 되어 약속대로 정치보복을 하지 않았다. 자신을 세상 끝까지 찾아다니며 죽이려 했던 중앙정보부(안전기획부로 바뀜)와 검찰에 대해서도 어떤 앙갚음을 하지 않았다. 다만 새 출발을 당부했다.
 
"과거 불행했던 안기부 역사의 표본은 바로 나다. 납치, 사형선고 등 안기부의 용공 조작 때문에 별일을 다 당했다. 내가 당했던 일을 안기부가 다시 해서는 안 된다. 완전히 새 출발을 해야 한다. 대통령은 국가의 원수요 행정 수반으로서 받드는 것이지 정치적으로 받들 필요는 없다."(1998년 안기부 업무보고)

대통령 당선자 신분으로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의 사면 복권을 건의하고 이를 관철시켰다. 반발이 거셌다. 그럼에도 김대중은 피해자가 가해자를 용서해야 진정한 화해가 가능하다고 여겼다. 전직 대통령의 사면에는 더 이상 정치보복이나 지역적 대립은 없어야 한다는 염원이 담겨있었다. 박정희기념관도 건립토록 했다. 국민 다수의 정서를 감안하면 용인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대통령 김대중은 이를 허용했다. 자신의 최대 정적인 박정희와의 화해였다.

통합과 소통 그리고 탕평 인사

김대중은 국민들과 끊임없이 소통했다. 민심을 세심하게 살펴서 국민보다 반걸음 이상 앞서가지 않았다. 국민들이 따라오지 못하면 기다렸다가 국민의 손을 잡았다. 이렇듯 국민들을 설득하며 국론을 한 데 모았다. 이런 노력이 없었다면 '금 모으기' 같은 거국적 운동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나라의 체질을 바꾸는 4대 부문(기업·금융·공공·노동) 개혁도 참으로 지난했다. 군살을 빼고 환부를 도려내는 일은 국민들의 의식까지 개혁해야 하는 난제였다. 그럼에도 대다수가 개혁에 동참했다. 이익집단의 불만은 있었지만 조직적인 저항은 없었다. 국민적 합의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김대중의 국민통합 노력은 실로 눈물겨웠다. 집권 초기부터 동서화합을 위해 모든 노력을 경주했다. 이른바 '동진정책'이다. 경상도에서 올라온 민원은 각별히 챙겼다. 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조롱과 냉소뿐이었다. 이를 두고 동진정책은 실패로 끝났다고 평하지만 지역화합과 국민 통합의 노력에 어찌 끝이 있을 수 있는가. 당시에는 속 보이는 어설픈 정책이라고 폄훼했지만 어떻게든 반대 진영의 마음을 얻으려는 김대중의 노력은 재평가 받아야 마땅하다. 정치적 이해를 따져 민심 갈라치기를 서슴치 않는 요즘 풍토에 김대중의 포용정책은 귀한 유산임이 분명하다.

김대중은 지역차별을 극복하려 무진 애를 썼다. 특히 고른 인재 등용에 심혈을 기울였다. 우선 지역이나 진영을 가리지 않았다. 숨은 인재를 적극 발굴하면서도 탕평인사를 단행했다. 이런 일이 있었다. 1999년 9월 대통령 김대중은 대법원장과 감사원장 등을 새로 임명했다. 대법원장에는 최종영 전 대법관을, 감사원장에는 이종남 전 법무장관을 발탁했다. 그러자 대변인이 말했다.
 
"총리는 충청, 대법원장은 강원, 국회의장은 대구, 감사원장은 경기 출신으로 3부 수장의 전국화가 이뤄졌습니다."

듣고 있던 이희호 여사가 호남만 빠졌다고 말했다. 그러자 대통령 김대중이 웃으며 한마디 했다.
 
"대통령이 호남인데요, 뭐 어떻습니까."

실언이 없었던 지도자, 역사에 남을 연설문
 

▲ 1998년 2월 25일, 김대중 대통령이 여의도 국회의사당앞 광장에서 열린 제15대 대통령 취임식에서 취임사를 낭독하고 있다. ⓒ 연합뉴스

 
김대중은 일생동안 말실수를 거의 하지 않았다. 정제된 입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햇볕정책' '행동하는 양심' '서생적 문제의식과 상인적 현실 감각' '철의 실크로드' '기회는 천사의 얼굴로만 오지 않는다' '인생은 아름답고 역사는 발전한다'는 등 수많은 명언을 남겼다.

대화를 할 때도 추상적이고 현학적인 레토릭을 구사하지 않았다. 사안을 설명할 때도 쉬운 말로 논지를 분명하게 전달하려 노력했다. 또 상대의 말을 많이 들었다. 대화의 요체는 수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말을 경청하는 데 있음을 간파하고 있었다.

김대중은 연설문을 작성하는 데 각별한 정성을 쏟았다. 미문과 감성적인 문구는 극도로 자제했다. 말의 유희나 문장의 기교에 빠지면 철학과 의지가 엷어진다고 믿었다. 그래서 메시지가 분명했다. 중요한 내용은 반복해서 전달했다.

연설비서관들은 곤욕을 치러야 했다. 거의 살아남은 문장이 없을 정도였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듬고 또 다듬었다. 역사에 남긴다는 생각으로 연설문을 작성했다. 대통령 취임사에는 향후 5년이 담겨있었다. 김대중은 취임사에서 천명한 구상들을 그대로 실천했다. 김대중이 연설문을 썼지만 결국 그 연설문이 김대중을 이끌었다.

정책의 동력은 대의에서 나왔다

정책을 추진하기 전에 대의를 앞세웠다. 햇볕정책을 추진했을 때는 남과 북의 화해와 협력의 당위성을 내세웠고, 지식정보화 정책에는 눈앞에 지식정보화 혁명이 밀려오고 있음을 국민들에게 알렸다. 그렇게 대의를 내세워 국민들의 공감을 얻고 이를 바탕으로 일관성 있게 국정을 운영했다. 국민의 정부는 역대 최약체였지만 가장 많은 업적을 남겼다.

"외환위기를 극복했고,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6.15 공동선언을 끌어냈다. 한반도 주변 4대국과 선린의 외교망을 설치했다. 4대 부문을 개혁하여 경제체질을 바꾸었고,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을 만들어 굶주림을 추방했다. 여성부와 국가인권위원회를 설치했고, 의문사진상규명 특별법과 제주 4.3사건진상규명 특별법 등을 제정했다.

2700만 명의 인터넷 인구를 지닌 IT강국을 건설했고, 그렇게 해서 전자정부를 완성했다. 또 거센 반대에도 4대 보험을 도입했다. 시위현장에서 최루탄과 폭력이 사라졌다. 취임 당시 39억 달러에 불과했던 외환보유고가 1200억 달러를 넘었다. 과거 50년 동안 외국인 투자가 246억 달러에 그쳤지만 국민의 정부 5년 동안에는 무려 600억 달러의 자본을 유치했다. 온 국민의 열기를 뭉쳐 월드컵 축구 4강 신화를 이뤘다. 그리고 가장 귀한 상, 노벨상을 받았다." (김택근, <새벽-김대중 평전>)

그리고 정권을 재창출했다. 이는 정당사에 길이 남을 금자탑이다. 진보진영이 불안하거나 불온한 세력이 아님을 증명해 보였고, 그렇게 해서 국민들로부터 다시 정권을 맡겨도 되겠다는 인증을 받은 것이다.

DJ가 본 윤석열 정부 100일... "검찰을 보내고 정치를 맞아야"
 

▲ 2006년 12월 9일, 김대중 전 대통령이 김대중도서관에서 '오마이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 이종호

 
김대중은 퇴인 후 어림 3년(2007~2009년, 밝혀진 것만) 동안 일기를 썼다. 건강하게 우리 곁을 지켰다면 여전히 일기를 썼을 것이다. 그의 사상을 살피고 어록을 뒤져서 윤석열 정권 출범 이후의 가상 일기를 써보겠다. 그가 남긴 일기의 문체를 흉내 내며.

"윤 대통령의 취임사에 비전이 보이지 않는다. 공정과 상식을 내세웠지만 추상적이다. 정책이란 것도 나열에 불과할 뿐 손에 잡히는 구체적인 방안은 별로 없다. 자유란 용어가 자주 등장했는데 낯익어 오히려 낯설었다. 전체적으로 나라를 어디로 끌고 갈 지 선명하지 않다. 좌표 설정을 제대로 안했으니 앞으로 헤맬 것 같다. 이런 불길한 상상이 기우였으면 좋겠다."

"검찰 출신들이 요직을 독차지했다. 비난 여론이 비등하다. 윤 대통령의 인사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검찰은 事後(사후)를 책임지는 조직이다. 그래서 그들을 설계하고 예측하는 事前(사전)의 영역에 들이지 않는 게 좋다. 공정과 상식의 나라를 세우겠다면 검찰을 멀리해야 한다. 우리가 그토록 정치검사들을 증오했는데 앞으로는 더 많은 정치검사들이 나올 것 같다. 검찰의 미래를 보더라도 불행한 일이다. 고위 공직자 인사 또한 최소한의 지역 안배마저 무시해버렸다. 오직 능력만을 보고 발탁했다는데 이는 망언이다. 소외된 지역민들의 공분을 살 뿐이다. 국정 운영에 큰 부담이 될 것이다."

"정치권에 막말이 난무하고 있다. 입에 담기에 거북한 말들이 유통되고 있다. 정치의 격을 떨어뜨리고 있다. 대통령도 예외가 아니다. 실언이 잦다. 대통령의 말에는 모든 사안의 '최후'가 들어있다. 출근길 회견도 그냥 날 것이어서는 안 된다. 대통령 말이 흔들리면 나라가 흔들린다."

"정치권이 요동을 치고 있다. 특히 집권여당의 내홍이 극심하다. 대통령의 지지율이 급락하고 있다. 일찍이 없던 일이다. 정치가 실종되었기 때문이다. 얼마 전 출근길 회견에서 실토한 '대통령 처음 해 봐서'라는 발언을 많은 이들이 조롱했지만 나는 유심히 들었다. 그의 고뇌가 느껴졌다. 쌓인 현안들이 산을 짊어진 것처럼 무겁고, 생각할수록 두려울 것이다. 그는 초보 정치인이다. 하루속히 검증된 정치인을 곁에 두고 지혜를 빌려 쓰라고 조언해주고 싶다. 검증된 정치인을 얻기 어려우면 노회한 정치인이라도 좋다. 당장 흔들리지 않는 지휘탑이 필요해 보인다."

"집권 초기의 정책들이 후퇴를 거듭하고 있다. 대의를 내세워 미리 국민들을 설득하는 노력을 하지 않은 탓도 있다. 그래서 소통이 중요한 것이다. 정치란 마음을 얻는 고도의 기술이다. 그리고 희망과 꿈을 심는 예술이다. 이렇듯 새 정권이 활력을 잃어가니 나라의 앞날이 걱정이다."

"윤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를 들었다. 김대중-오부치 선언을 계승하여 한일관계를 풀어가겠다고 했다. 현직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나의 외교노선을 계승하겠다고 선언한 것은 처음인 것 같다. 당시의 한일관계를 떠올렸다. 대중문화 개방으로 생겨난 한류와 한류스타들을 생각하며 잠시 눈을 감았다. 행복이라는 게 이런 것인가 싶다. 하지만 대북정책이 여전히 안개속이다. 취임사에서 '담대한 계획을 준비 중'이라고 해서 기대했는데 실망이다. 구체적인 실천방안이 보이지 않는다. 북한이 비핵화를 하면 지원해주겠다며 여러 가지를 나열만 했을 뿐이다. 이런 당근책으로는 북을 설득할 수 없다.

얼핏 참담하게 실패한 이명박 정부의 '비핵개방3000'이 떠오른다. 북한은 분명 거칠게 반응 할 것이다. 남북관계가 더욱 경색될까 우려스럽다. 물론 미국과 중국의 다툼에 선택의 폭이 좁을 수밖에 없음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아니 그럴수록 중요한 것은 남북화해이다. 한국은 지리적으로는 작은 나라지만 지정학적으로는 중요한 나라이다. 남과 북이 손을 잡으면 평화의 바다에 고깃배의 노래가 떠다니지만 남과 북이 등을 돌리면 냉전의 바다에 강대국 군함이 물살을 가른다. 이는 근현대사에서 우리가 생생하게 목격한 바 있다.

우리에게 외교는 명줄이다. 국내정치는 실수하더라도 고치면 되지만 외교의 실패는 돌이킬 수 없다. 재임 중에 내가 왜 그렇게 4대강국과의 외교에 심혈을 기울였는지 헤아려 주었으면 좋겠다. 나는 이미 늙고 병들었다. 그래서 이렇게 탄식하며 적을 뿐이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 김택근은 오랜 기간 동안 기자 생활을 했고 <경향신문> 문화부장, 논설위원을 역임했다. <새벽, 김대중 평전>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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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칩4’에 대한 다른 진단, 같은 처방

메모리 반도체 레버리지 삼아 속도 조절하는 역할 해야…중국 추격 대비한 시스템 반도체 경쟁력 강화 주문도

 
윤석열 대통령이 20일 경기 평택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시찰을 마친 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연설에 박수를 보내고 있다. 2022.05.20. ⓒ뉴시스 
 
이른바 ‘칩4’를 두고 미중 패권 경쟁 사이에서 한국의 균형 잡기가 다시 시험대에 올랐다. 중국을 겨냥한 동맹인지, 기술 협의체인지 성격 규정부터 전문가 사이에서 의견이 엇갈린다. 다만, 한국이 취해야 할 방향성에서는 입을 모은다. 칼자루를 쥔 건 한국이니, 최대한 중국을 자극하지 않는 쪽으로 이끄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17일 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칩4 예비회의에 참여할 방침이다. 이달 말 또는 다음 달 초로 예정된 회의에서 칩4의 구체적인 협의 수준이나 의제가 논의될 전망이다.

칩4는 미국이 주도해 한국·일본·대만과 반도체 공급망 관련 조정그룹을 형성하려는 구상을 이른다. 모두 반도체 분야 주요 국가로, 이들이 합의를 이루면 반도체 공급망을 좌지우지하게 된다.

실체는 모호하다. 정작 미국 언론조차 칩4라는 용어를 쓰지 않는다. 반도체(chip·semiconductor) 동맹(alliance)·협력(cooperation)을 언급하는 외신 보도가 있기는 하나, 반도체 주요국이 공급망 안정성 확보 방안을 협의하는 차원으로 설명된다. 동맹 수준에서 별도 의제를 논의하는 기구와는 거리가 있다.

우세종 세종연구소 연구위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소위 ‘칩4 동맹’이라는 단어는 국내 언론에서만 사용한다”며 “존재하지 않는 개념”이라고 짚었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미국은 한국·일본·대만이 아니더라도 공급망 관리에 도움 되는 나라는 모두 협력하려고 한다”며 “논의 주체를 4개국으로 특정할 상황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한국에서 칩4가 언급된 건 지난 3월이다. 미국이 한국에 칩4 결성을 제안했다는 보도가 시발점이 됐다.

이후 5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방한을 전후로 반도체 동맹이 대두됐다. 바이든 대통령은 첫 순방지로 삼성전자 평택 반도체 공장을 방문해 “지속적으로 공급망을 더욱 회복력 있고, 신뢰성 있게, 안전하게 유지해야 하며, 그것이 바로 우리의 전략”이라고 말했다. 동행한 윤석열 대통령은 “한미관계가 첨단기술과 공급망 협력에 기반한 경제 안보 동맹으로 거듭나기를 희망한다”고 했다. 양국 대통령의 공급망 협력 발언은 칩4가 중국 고립을 목적으로 하는 동맹을 의미한다는 해석에 힘을 실었다.

정부는 줄곧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대통령실은 7월 칩4에 대해 “미국은 지난해 6월 공급망 검토보고서에서 반도체 분야 파트너십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여러 번 강조했다”며 “미국과 다양한 채널을 통해 반도체 협력을 강화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확대 해석을 경계하는 모습으로 보인다. 외교부도 “미국이 가입을 제안한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며 “공급망 교란이 가져오는 여파가 커, 어떤 게 최선인지 다양하게 검토하고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고 전했다.

중국 고립 동맹인가, 반도체 공급망 협의체인가

칩4가 갖는 외교적 의미를 놓고 해석이 엇갈린다.

미국이 중국을 고립시키기 위한 수단이라는 시각이 있다. 세계 반도체 공급망에서 중국을 배제하려는 속내라는 것이다. 중국에 대한 배타적 반도체 장벽으로 그려진다. 반도체는 산업의 쌀이라고 불린다. 반도체 수급에 차질 생긴 국가는 경제 전반에 타격을 입는다.

중국이 한국 최대 수출국이라는 점은 고민이 깊어지게 한다. 칩4를 미중 패권 경쟁 연장선으로 본다면 중국에는 치명적이다. 2017년 사드 배치로 촉발된 중국의 경제 보복이 재현될 가능성도 있다.

김양팽 전문연구원은 “칩4에 대한 중국 반발은 당연히 보일 수 있는 반응”이라고 말했다. 그는 “반도체 굴기 전략을 추진하는 중국은 한국과 대만에서 기술이전을 받기 위해 노력해왔다”며 “기술력이 없는 중국 입장에서는 미국이 기술력을 가진 국가와 모여 달려 나가면서 자국의 기회가 줄어드는 형국으로 비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윤 대통령의 친미 성향이 짙은 행보는 우려를 불러일으킨다. 후보 시절부터 사드 추가 배치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미국이 주도하고 일본·인도·호주가 참여하는 쿼드(Quad) 가입 추진을 주장하는가 하면, 지난달에는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NATO)가 중국에 대한 대립적인 언급을 공식화한 회의에 참여했다.

칩4가 중국에 대한 반도체 제재로 이어진다고 보는 건 과도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통상적인 기술 협력 성격이라는 설명이다. 반도체 기술과 생산 능력을 가진 국가가 친미 성향이다 보니 공급망 관리 논의가 중국 배제로 오역된다는 시각이다.

우세종 연구위원은 “한국이 미국을 비롯한 주요 국가와 이미 수행하고 계획하고 있는 수많은 논의체와 다를 바 없는 모임을 지향하는 것으로 알려졌다”고 전했다.

이어 “코로나로 인한 국제적 공급망 불안정을 겪은 주요 반도체 제조국이 어떻게 협력하는 것이 미래 반도체 수급을 위해 효과적일지 얘기해보자는 것”이라며 “주요 의제도 연구개발 협력, 반도체 생산 관련 인재 양성, 공급망 안정 대책 논의 등이지, 특정 국가를 배제하기 위한 수단을 모색하는 협의체가 아니다”라고 했다.

김양팽 전문연구원은 “칩4라는 틀에서 국가 단위로 동맹을 맺는 건 불가능하다”고 분석했다.

이어 “대만을 국가로 인정해야 하는 문제가 있고, 한일 관계도 있다”며 “협의체가 아닌 동맹 차원으로 수위가 높아지면 외교적인 문제가 커진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정부 차원에서 반도체 주요국 간 협의체 구성에 대해 수년전부터 대비해왔다”며 “수면 위로 떠 오르면 미중 사이에서 입장이 곤란해지니 구태여 드러내지 않았는데, 이번에 칩4가 대두되면서 정말 곤란하게 됐다”고 말했다.

격양된 반응을 보이던 중국은 최근 입장에 변화를 보인 것으로 풀이된다. 박진 외교부 장관은 최근 왕이 중국 외교부장과 회담에서 칩4 예비회담에 참석한다고 통보했다. 박 장관은 특정 국가를 배제하는 성격이 아니라는 점을 설명했고, 왕 부장은 ‘예의주시하는 가운데 한국의 적절한 판단을 기대한다’는 취지로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관영 매체 글로벌타임스는 회담 당일자 사설에서 “한국이 부득이 미국의 소그룹(칩4)에 가입해야 한다면, 균형자 역할을 하기를 기대한다”며 “이는 한국의 독특한 가치를 체현하는 것이기도 하다”고 했다.

그간 중국 정부와 관영 매체가 칩4에 대해 ‘미국의 협박’, ‘한국의 상업적 자살’ 등 표현으로 비난한 것과 온도차가 있다.

김양팽 전문연구원은 “중국이 경제 보복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는데, 이번 한중 외교장관 회담에서 왕 부장 발언이 톤다운되면서 우려가 해소되는 기류로 보인다”고 말했다.
 
박진 외교부 장관이 지난 9일 중국 산둥성 칭다오에서 왕이(王毅) 중국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과 한·중 외교장관 회담을 하고 있다. 2022.08.09. ⓒ외교부

미중 패권 경쟁 틀 못 벗어나…느슨한 협의체로 끌고가야

동맹이 아닌 협력이라는 성격, 중국의 미묘한 입장 변화를 감안해도 미중 관계의 틀을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다.

미국은 중국 반도체 발전을 위협으로 받아들이고 경계한다. 세계반도체통계기구(WSTS)에 따르면, 중국 반도체 시장은 2010년 570억달러(약 74조 2,700억원)에서 2020년 1,434억달러(약 186조 8,500억원)로 급성장했다. 2016년 이후 연평균 성장률 12%를 기록하며 세계 평균을 두 배 웃돌았다. 중국 반도체 굴기 전략이 효과를 내고 있는 것이다. 중국은 ‘제조 2025’ 정책을 통해 반도체 자급률을 2020년 40%에서 2025년 70%로 높이는 것을 목표로 한다.

미국은 중국 반도체 제재를 강화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최근 반도체와 과학법(반도체 산업육성법)에 서명했다. 해당 법안에 따라 지원받은 기업은 중국 현지에 공장을 신설·증축하지 못한다. 미국은 다른 방식으로도 중국 수출 금지를 압박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돈 그레이브스 미국 상무부 부장관이 올해 상반기 네덜란드를 방문했을 때 ASML이 생산한 반도체 생산 장비를 중국에 수출하지 못하도록 해달라고 네덜란드 정부에 요청했다는 외신 보도가 있었다.

산업적 외교적 측면을 고려할 때 한국은 칩4를 느슨한 협의체 성격으로 이끌고 가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 중론이다.

김준형 전 국립외교원장(한동대 교수)은 “칩4가 민간 기업 단위의 협력체로 구성돼도 배후에는 미국 정부가 있는 것”이라며 “중국에 대한 기술이전 등을 통제할 경우 한국 정부도 뒤에서 미국 정부를 상대로 저항하고 속도 조절을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김형준 차세대지능형반도체사업단 단장도 “이분법적으로 보면 시장만 가진 중국보다는 시장과 기술·장비를 가진 미국을 등졌을 때 타격이 크다”면서도 “한국 반도체 산업에서 중국 시장 비중이 큰 만큼, 한국은 중국을 배제하려는 미국을 추종하기보다는 최대한 중국을 자극하지 않는 방향으로 끌고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양팽 전문연구원은 “앞서서 적극적인 참여 의사를 보이거나 협력 강화를 주도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또한 “칼자루는 한국이 쥐고 있다”며 “미국에 생산 공장을 지으라거나 중국 공장 신설·증축을 금지하는 등 무리한 요구를 과감하게 거절하는 한편, 우리에게 필요한 기술 경쟁력 강화를 위한 협력을 받아내야 한다”고 했다.
 
삼성전자는 지난 2019년 4월 24일 시스템 반도체 분야에서 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반도체 비전 2030’ 전략을 발표해, 2030년까지 시스템 반도체 분야 에 133조원을 투자하고 전문인력 1만 5000명을 채용한다고 밝혔다. ⓒ삼성전자


메모리 칼자루 무뎌질 때 대비해야

한국이 쥔 칼자루는 메모리 반도체다. 세계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차지하는 점유율은 70%에 달한다. 한국이 메모리 반도체 공급을 끊으면 스마트폰·PC·가전 생산이 막히고 서버 증축도 멈춘다. 칩4에 한국이 포함된 이유다.

문제는 메모리 반도체 우위를 언제까지 유지할 수 있느냐다. 중국 추격이 매섭다.

미국반도체산업협회는 올해 초 보고서에서 중국의 세계 반도체 점유율이 2020년 9%에서 2024년 17.4%로 증가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우세종 연구위원은 “중국이 반도체 생산을 시작한 이래, 한국과 중국의 기술 격차는 매해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며 “특히 메모리 분야에서는 중국 기술 발전이 매우 빠르게 나타나고 있다”고 전했다.

한국은 디스플레이 분야에서 중국의 가격경쟁력에 밀려 시장을 내준 경험이 있다. 상대적으로 진입 장벽이 낮은 LCD 시장은 주도권이 중국에 넘어가 한국 기업은 철수했거나 철수가 진행 중이다. OLED 시장은 한국 기업이 기술 우위를 점하고 있지만, 중국과 격차가 좁아지고 있다. 메모리 반도체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반복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 배경이다.

중국이 단기간에 추격하기는 쉽지 않을 거라는 전망도 있다. 미국 견제가 작용할 거라는 분석이다.

김형준 단장은 “미국이 반도체 장비와 전자설계자동화(EDA) 기술을 통제하는 상황에서 중국이 자급자족으로 한국을 따라잡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며 “한국이 메모리 반도체 레버리지가 쉬이 잃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진단은 다르지만, 처방은 같다. 메모리뿐 아니라 파운드리(위탁생산), 팹리스(설계) 분야 경쟁력을 강화해 종합반도체 국가로 거듭나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김양팽 전문연구원은 “한국이 칩4 논란 중심에서 향후 방향성에 대한 논의에 참여할 수 있는 건 메모리 반도체 경쟁력 덕분”이라며 “중국에 따라잡히면 가치가 없어진다. 반도체 강국이 아니고 메모리 반도체에서 반짝했던 나라로 사라지게 된다”고 경고했다.

이어 “협상에서 레버리지를 확보하려면 파운드리와 팹리스를 아우르는 시스템 반도체 분야 발전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파운드리 시장 선두는 대만 TSMC다. 점유율은 54% 수준이다. 삼성전자는 16% 정도다. 10나노 이하 선단 공정 파운드리 시장은 대만 TSMC와 삼성전자가 양분하고 있는데, TSMC가 60% 이상을 차지한다.

김형준 단장은 “관건은 파운드리다. 메모리보다 더 위험하다”며 “한국은 최신 전자 기기에 탑재되는 10나노 미만에서는 강점을 가지고 있지만, 보급형 제품에 들어가는 이른바 레거시(성숙) 공정은 중국이 앞선다”고 설명했다.

중국 SMIC는 점유율 약 6% 차지하며 세계 시장 5위를 점하고 있다. 최근 키파운드리를 인수하며 파운드리 사업에 뛰어든 SK하이닉스와 DB그룹 계열사인 DB하이텍보다 우위다.

한국 팹리스 경쟁력은 미약하다. 삼성전자가 스마트폰 AP 엑시노스를 개발해 일부 자사 제품에 적용하고 있지만, 퀄컴의 스냅드래곤에 못 미친다는 평가다. 실제 삼성전자 플래그십 모델에는 대부분 스냅드래곤이 들어간다. 팹리스는 생산 설비가 없어도 돼 비교적 투자 비용이 적은 만큼 중소기업 참여가 용이한 분야이지만, 한국에서는 기반을 넓히지 못하고 있다. 한국 팹리스 기업은 120개가 채 안 되지만, 중국은 1,800개에 달한다.

김양팽 전문연구원은 팹리스 분야 인재 양성 지원을 주문했다. 그는 “하나의 칩에 다양한 기능이 탑재되는 추세”라며 “기능별로 인력이 필요해 수요가 많다”고 말했다.

이어 “팹리스 인력은 고도의 전문성을 요해 학부 수준이 아니라 최소 석사, 기본 박사 과정을 거쳐야 한다”며 “학부생 확대도 중요하지만, 석박사 양성까지 이어질 수 있는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김형준 단장은 정부가 반도체 정책을 설계할 때 시야를 넓힐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최근 시행된 국가첨단전략산업법(반도체 특별법)에는 전략 산업에 대한 인프라 구축 비용 지원과 예비타당성조사 면제 등 규제 완화, 연구개발, 인력 지원 등 내용이 담겼다. 전략 산업 지정은 실무협의회에서 이뤄지는데, 반도체 산업 지정은 기정사실화된 분위기다.

그는 “정부가 반도체에 집중해 지원하는 분위기는 업계에서 반길만하다”면서도 “반도체는 기본적으로 부품이다. 모바일·자동차·선박·의료기기 등 반도체 수요 산업 전반에 대한 활성화 정책이 반도체 지원 전략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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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퇴론' 권성동도 결국 '재신임'?…權 포함 국민의힘 비대위 출범

權, 의원총회에서 압도적 다수로 재신임 가결…외곽 여론전 이어가는 李에 주호영 "안타깝다"

최용락 기자  |  기사입력 2022.08.16. 17:25:48

 

국민의힘 '주호영 비상대책위원회'가 16일 정식 출범했다. 원내대표직 사퇴 압박을 받았던 권성동 원내대표도 의원총회에서 재신임을 얻어 9명의 비대위원 중 한 명으로 합류했다. 법원에 '비대위 효력 정지 가처분 신청'을 낸 이준석 대표는 결사항전 태세를 취하고 있지만, 비대위 출범에 따라 이날부로 대표직을 상실하게 됐다. 

주호영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은 이날 의원총회에서 비대위원 명단을 보고한 뒤 상임전국위원회 의결을 거쳐 8명의 비대위원을 임명했다. 

서병수 상임전국위원회 의장은 이날 ARS(전화자동응답방식)로 진행된 상임전국위원회 비대위원 임명 찬반 투표가 끝난 뒤 "상임전국위원 재적 위원 55명 중 42명이 투표에 참여해 찬성 35명, 반대 7명으로 당헌 제96조 4항에 의거하여 비상대책위원회 임명안은 원안대로 가결"됐다며 "이 시간 이후에 과거 최고위원회는 해산된다. 따라서 비대위원장이 당 대표의 권한과 지위를 갖게 된다"고 밝혔다. 

윤석열 대통령과 주고 받은 '내부 총질 당 대표' 문자를 노출해 비대위 전환의 빌미를 제공한 권 원내대표는 이날 의원총회에서 진행된 익명 재신임 투표 결과 다수표를 얻어 원내대표직을 유지했고 비대위원으로도 임명됐다. 총회가 끝난 뒤 주 위원장은 "(권 원내대표가) 압도적 다수 찬성으로 재신임"됐다고 밝혔다. 

성일종 정책위의장도 직책 변경 없이 그대로 비대위원에 임명됐다. 그 외 비대위원에 임명된 원내 인사는 모두 초선으로 엄태영 의원(충북 제천시·단양군)과 전주혜 의원(비례)이다. 

원외 비대위원을 보면 호남색이 눈에 띈다. 2020년 김종인 국민의힘 비대위 사무총장을 지낸 호남 출신의 정양석 서울시 당협위원장(서울 강북 갑 전 의원), 윤 대통령 측근으로 알려졌으며 지난 지방선거에서 광주시장 선거에 출마한 주기환 호남대학교 경찰행정학과 초빙교수다. 

청년 비대위원 몫은 이소희 세종시의원(1986년생), 최재민 강원도의회 의원(1984년생)에게 돌아갔다.

'주호영 비대위'의 첫 회의는 윤석열 정부 출범 100일 다음날인 18일로 예정돼 있다.  

비대위 임기, 즉 차기 전당대회 개최 시기와 관련해 주 위원장은 이날 기자 간담회에서 "가급적 비상 상황은 일찍 해소하는 게 좋지만, 문제는 정기국회 중 전당대회를 하는 게 맞느냐는 것"이라며 "당내 의견을 들어본 결과 정기국회를 끝내고 전대를 시작하는 게 좋겠다는 의견이 상당히 압도적으로 많은 것으로 안다"고 언급했다. 

비대위 출범과 관련한 당내 절차는 이것으로 마무리됐지만 이준석 전(前) 대표는 법정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다음날인 17일 법원(서울남부지법)은 이 전 대표가 낸 '비대위 효력 정지 가처분 신청'의 심문을 연다. 

주 위원장은 이 전 대표가 지난 13일 가처분 신청을 철회할 의사가 없음을 밝히는 기자회견을 갖고 윤 대통령과 '윤핵관'에게 집중포화를 쏟아낸 데 대해 "매우 안타까운 일"이라며 "이 대표도 당을 사랑하고 당원을 사랑하는 마음이 많다고 본다. 당원과 국민에게 (자신의 모습과 말이) 어떻게 비치는지 잘 고려해 주시기 바란다"고 자제를 당부했다.

이 전 대표와의 만남에 대해서도 주 위원장은 "못 만날 이유가 없다. 당원이고 당 대표이기도 하니까"라며 가능성을 열어뒀다. 

 

 

 

이 전 대표는 문화방송(MBC) 라디오 인터뷰에서 대선 당시 자신과 윤 대통령과의 관계를 묻는 질문에 "피상적으로는 서로 예우했다"며 불편한 심사를 감추지 않았다. 

대통령실 쇄신 여론이 이는 데 대해 그는 "대통령실에 좋은 구슬을 많이 모아놔도 결국 꿰어야 되는 거다. 꿰는 것은 결국 리더 또는 책임자의 역할"이라며 "그 책임자는 대통령이다. 대통령실장이 아니다"라고 국정난맥의 원인을 윤 대통령 본인으로 지목하기도 했다.  

그는 국정 지지율 회복 가능성에 대해서도 "기술적 반등은 있을 수 있는데 개혁이나 사정 정국을 이끌 수 있을 정도의 추동력이 생길 만큼 회복되기 어렵다"며 박하게 내다봤다. 

이른바 '윤핵관'에 대해서도 그는 "보수에 있는 사람들은 정신을 차려야 된다"며 "박근혜 대통령 때 탄핵에 이르는 과정에 사후적으로 후회했던 지점들이 있다. 박근혜 대통령께서 독주를 하려고 하실 때 미리 견제를 했어야 됐다"고 했다. 

"유승민을 쫓아내려고 했을 때 아무도 이야기를 하지 않았고, 그 다음 총선 때 공천학살을 하려고 했을 때, 또 '진박'이라고 호가호위(狐假虎威)하는 이상한 분들 나왔을 때 그분들을 미리 제압하지 않았다"며 "그때 자기들(진박)이 '진실한 사람들'이라면서 '친박'도 안 되니까 '진실한 사람들' 이랬다. 지금 익명 인터뷰하고 당내에서 사고치는 걸 보면 '진박'보다 '윤핵관'이 결코 못하지 않다"고 했다. 

한편 이날 국민의힘에는 이 전 대표 제명 청구 신청서가 접수되기도 했다. 이 전 대표에게 성 접대를 했다고 주장 중인 김성진 아이카이스트 대표의 법률 대리인이자 김건희 전 코바나컨텐츠 대표 팬클럽 '건희사랑'의 전 회장인 강신업 변호사는 이날 국민의힘 당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준석 전 국민의힘 당 대표 제명 청구를 위해 국민의힘 당사를 찾았다"고 밝혔다. 

강 변호사는 "이준석은 성 상납이라고 하는 잘못을 저질렀고 수차례 술 접대와 물품 접대를 받아 알선수재죄를 저질렀고 이를 덮기 위해 비서실장을 가세연이 (이 전 대표의 성 접대 의혹을) 방송하던 그날 대전으로 내려보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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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민보] 전남 최초 독립영화관 목포에 세운 정성우 감독 “영화관은 사람과 사람을 이어줘요”

770번째 만민보··· 시네마라운지MM과 목포국도1호선독립영화제로 목포에 독립 영화의 씨앗

 
독립영화관 시네마라운지MM에서 만난 정성우 감독(오른쪽)과 박혜선 협동조합시네마MM 이사장(왼쪽) ⓒ민중의소리 
 
기차를 타고 목포역에서 내려 독립영화관 시네마라운지MM을 찾아가는 길은 추억어린 여행이었다. 일제 강점기에 지어진 오래된 건물들 사이를 지나면 새로운 이야기를 간직한 상점들이 곳곳에 들어서 있다. 고단했던 역사의 시간이 퇴적층처럼 쌓인 거리를 지나 바닷가 주변 만호동에 이르면 커다란 창고 같은 건물을 만날 수 있다. 일제 강점기 일본으로 공출하던 쌀을 보관한 조선미곡창고주식회사 목포지점 건물이다. 지금도 창고로 쓰이는 1층을 지나 넓은 마당을 건너 2층으로 올라가면 시네마라운지MM을 만날 수 있다.

가끔은 내가 그곳을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그곳이 나를 기억하는 건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내가 잊고 있던 시간과 감정을 그곳이 간직하고 있다가 다시 나를 만나면 대화를 걸어온다. 영화관도 바로 그런 곳 가운데 하나다. 영화관에 가면 어린 시절의 꿈과 낭만이 있고, 아련한 첫사랑의 추억이 있다. 시네마라운지MM에 들어서는 순간 과거의 기억을 더듬어가듯 행복한 시간여행 속으로 빠져들었다. 입구 왼쪽엔 좌석이 30여 석 되는 자그마한 영화관이 있고, 정면엔 각종 포스터 등 영화 관련 굿즈와 책, 음반 등을 파는 금지옥엽이 있다. ‘기쿠지로의 여름’, ‘노팅힐’, ‘이웃집 토토로’ 등 영화 사운드트랙과 영화 ‘모던타임즈’의 한 장면을 담은 포스터가 찾는 이들을 반긴다.

18일 제9회 ‘목포국도1호선독립영화제’ 개막
44편의 장·단편 영화 4개 섹션으로 상영


지난 11일 이곳에서 독립영화관 시네마라운지MM 지킴이 정성우 감독을 만났다. 정 감독은 전남 최초의 독립영화관인 시네마라운지MM을 세웠다. 올해로 9회째를 맞이하는 ‘목포국도1호선독립영화제’(https://www.nr1iff.com)를 만드는 등 고향인 목포에 독립영화의 씨앗을 뿌려왔다.
 
제9회 목포국도1호선독립영화제 상영작 목록 ⓒ제9회 목포국도1호선독립영화제

영화관을 방문했을 때 정 감독과 협동조합시네마MM 박혜선 이사장 등 영화관 식구들은 18일 개막하는 제9회 목포국도1호선독립영화제 준비에 한창이었다. 이번 영화제는 18일 저녁 7시 30분 목포해양대학교 운동장에서 열리는 개막식을 시작으로 21일까지 펼쳐진다. 개막식을 제외하면 나머지 영화제 프로그램은 모두 시네마라운지MM에서 상영된다. 영화제는 4개의 섹션으로 구성됐다. 멀리뛰기 섹션은 남한에서 북한, 다시 북한에서 남한까지 ​평화통일과 관련된 작품을 만날 수 있다. 높이뛰기 섹션은 변두리에서 중앙으로 중앙에서 다시 변두리로 ​서울 외 지역 로컬을 주제로 한 작품이 상영된다. 도움닫기 섹션은 처음 영화제에 출품하는 감독의 작품들을 선보이는 ‘내 생애 첫 영화제’가 주제다. 장애물닫기 섹션은 성소수자, 장애인, 여성 등 약자의 메시지를 담은 다양성 영화들이 소개된다. 아울러 별도의 섹션으로 시민들이 프로그래머가 되어 상영작을 선정한 ‘모람모람’ 섹션이 영화제 기간 중인 21일에 만호동행정복지센터에서 열린다.

“올해 영화제는 10회를 바라보는 해인 만큼 신나고, 편안하고, 즐겁게 사람들이 참여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준비를 하고 있어요. 그래서 영화제 슬로건도 ‘파도로 멀리, 바다로 깊이’로 정했어요. 평화와 통일의 메시지가 우리 사회가 널리 퍼졌으면 하는 염원을 담았습니다. 목포해양대와 협력을 하고, 해양대 운동장에서 개막식을 열기로 한 것도 이런 마음이 지역에 넓고 깊게 뿌리내렸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었습니다. 아직 지역에서 우리 영화제를 모르는 분들이 올해 영화제를 통해 독립영화에 대해 잘 알고 친근하게 다가설 수 있었으면 합니다.”

동네영화제로 시작해 9년 만에 목포를 대표하는 영화제로

정 감독은 이번 영화제 상영작이 950여 편에 이르는 작품들 가운데 44편의 장·단편 영화를 엄선한 만큼 모두 의미 있는 작품이지만, 그 가운데서도 개막작 가운데 하나인 ‘8X6’과 폐막작인 ‘엄마는 영화감독’을 꼭 봐야만 하는 작품으로 추천했다. 정 감독은 “‘8X6’은 우리 목포국도1호선독립영화제와 시네마라운지MM이 제작지원을 해서 만든 작품이에요. 아동 극영화인데 스태프와 배우는 물론 촬영지에 이르기까지 목포에서 만든 목포영화예요. 지역 영화제의 의미를 가장 잘 살릴 수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엄마는 영화감독’은 여성들이 영화라는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고, 영화를 만들어나가는 과정을 사실적으로 담아낸 다큐멘터리예요. 한국사회에서 여성들은 꿈을 가지고 있어도 현실적인 벽에 부딪혀 좌절되는 경우가 많잖아요. 이런 현실과 함께 이야기 나눌 거리도 많은 영화예요. 엄마 뿐만 아니라 이 영화를 보고 있으면 누구나 감독이 될 수 있다고 꿈을 꿀 수 있을 겁니다.”
 
2018년 시네마라운지MM이 개관할 떼 응원 메시지를 보내준 목포시민들 ⓒ정성우 감독 제공

정 감독과 몇몇 뜻있는 목포 시민들이 자그마한 동네영화제로 시작한 영화제는 이제 공모작이 950여 편에 이를 정도로 커졌다. 이렇게 영화제가 발전할 수 있었던 건 자발적으로 참여해 영화제를 돕는 목포 시민이 있었기 때문이다. 영화제에 왔다가 자연스럽게 봉사자로 참여하게 된 이들도 많다. “‘뿌뿌’라는 영화제 자원 활동 조직이 꾸려져 있어요. 목포가 항구도시인 만큼 뱃고동 소리를 따라 만든 거예요. 젊은 친구들이 많이 참여해 자신들이 직접 낸 아이디어로 홍보 활동도 합니다. 영화제가 이렇게 많은 이들의 참여를 통해 더욱 풍성해지는 것 같아요.”

정 감독 7년 만에 고향인 목포로 돌아오다
“목포는 원래 떠나고 싶었던 곳인데
고향을 떠나 만난 목포는 달랐어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떠나 문학을 공부했던 정 감독은 고향인 목포로 스물여섯 살에 돌아왔다. 고향에 돌아올 때까지만 해도 그는 이런 미래를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문학을 공부했지만, 그가 흥미를 느낀 건 영화와 다큐멘터리였다. 대학을 나온 뒤 한겨레문화센터에서 다큐 제작 과정을 들었다. 작은 비디오카메라로 영상을 찍으면서 재미를 느꼈다. 그리고, 그렇게 영화에 재미를 느낄 즈음에 그는 고향으로 다시 내려왔다. 목포MBC시청자미디어센터에서 영화제작 과정을 배웠지만, 좀 더 전문적인 과정을 배워야겠다는 생각에 그는 고향인 목포와 가까운 나주 동신대 연기영상학과에 편입했고, 2년이 지나 졸업한 뒤엔 대학원에 진학했다.

“대학원에 진학하면서 영화를 본격적으로 배우고, 관련된 일도 할 수 있었어요, 대학원에 다니면서 기회가 돼서 광주KBS VJ로 활동했어요, 대학에서 요청이 있어서 학부생들을 대상으로 강의도 몇 년 동안 했어요, 이후에 영화 관련 일도 계속했구요.”
 
2021년시네마라운지MM 개관 3주년을 기념해 찍은 사진. 사진 왼쪽에서 두번째가 정성우 감독이다. ⓒ정성우 감독 제공

시간이 지나면서 정 감독은 목포에서도 독립영화제를 만들면 어떨까 하고 상상을 했다. 정 감독의 상상은 독립영화에 대한 사랑이자 동시에 고향인 목포에 대한 사랑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정 감독은 자신의 고향 목포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목포는 고등학교 다니던 시절까진 사람들은 좋은데 무언가 낙후하고, 벗어나고픈 이미지의 도시였어요. 하지만, 서울로 떠난 뒤에 명절이나 일이 있을 때마다 찾았던 목포는 달랐습니다. 곳곳에 문화예술이 살아 숨쉬고 있었고,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곳이었어요. 그런 목포에서 독립영화의 다양한 매력을 보여줄 수 있는 영화제를 만들자는 생각에서 목포국도1호선독립영화제를 시작하게 됐어요.”

영화제 이름에 국도1호선이 들어간 까닭은?

영화제 이름을 목포국도1호선독립영화제로 지은 건 평화와 통일에 대한 열망과 길이 담은 다양한 이야기에 주목했기 때문이다. 일제 강점기에 우리나라에 생긴 첫 번째 도로인 국도1호선은 목포에서부터 신의주까지 이어지는 도로다. 지금은 분단으로 끊긴 이 도로가 다시 신의주까지 이어질 수 있는 바람도 담았다. 아울러 정 감독과 함께 영화제를 함께 준비했던 밴드 이름도 국도1호선이었다. 이런 바람을 담아 2014년 첫 영화제를 열었다. 다섯 편의 단편 영화를 예산도 없이 지역의 문화예술인들과 함께 작은 카페를 빌려 영화제를 열 때만 해도 9년이 지나 이렇게 번듯한 영화제로 발전할 것이라곤 상상하지 못했다.
 
목포 근대역사관 앞에 있는 국도1.2호선기점 기념비. 국도 1호선은 목포에서 시작해 신의주까지 이어지는 우리나라 최초의 도로다. ⓒ민중의소리

“처음에는 좀 막막하고 막연했어요. 당시만 해도 함께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지역에 많이 없었거든요. 그러다 보니 일을 대부분 저 혼자 해야 하는 상황이었어요.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사람들이 모였고, 시민사회에서도 관심을 보이면서 조금씩 틀을 갖춰갔어요. 2015년엔 2014년 있었던 세월호 참사 관련 단편 영화 ‘불안한 손님’을 만들어 상영했어요. 시민들이 직접 후원도 하고, 출연도 했습니다. 2017년도엔 6월항쟁 30주년을 기념하는 단편 ‘그곳에 바람이 분다’를 역시 시민들의 참여로 만들었어요. 그렇게 시민들이 함께 하면서 점점 영화제가 발전했습니다.”

영화(MOVIE)의 M과 목포(MOKPO)의 M을 따서 만든
전남 최초의 독립영화관 시네마라운지MM


영화제가 해를 거듭하면서 정 감독은 새로운 고민이 생겼다. 영화제를 안정적으로 치를 수 있는 영화관이 필요해진 것이다. 해마다 공간을 찾아야 하다 보니 정 감독과 영화제 스태프들의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래서, 정 감독은 독립영화관을 만들기로 마음먹었고, 2018년 영화(MOVIE)의 M과 목포(MOKPO)의 M을 따서 목포 목원동 독립영화관 시네마라운지MM을 열었다. 시네마라운지MM은 전남 최초의 독립영화관이다.

독립영화관은 우리가 흔히 아는 인기영화가 아닌 다양한 영화를 만날 수 있는 공간이다. 기자가 시네마라운지MM을 찾은 지난 11일에도 영화 ‘썸머 필름을 타고’, ‘초록밤’ 등 흥행과는 거리가 먼 영화들이 상영되고 있었다. 영화진흥위원회에 따르면 이날 스크린 점유율 상위 11편이 전체 스크린의 92%를 차지했다고 한다. 특히 스크린 점유율 상위 세 편인 ‘헌트’(22.8%), ‘한산: 용의 출현’(19.7%) ‘비상선언’(14.0%)이 전체 스크린의 절반이 넘는 56.5%를 점유했다. 결국 시네마라운지MM 등 독립영화관이 아니면 만날 수 없는 영화들이 많다는 이야기다.
 
2020년 열린 바람의 언덕 박석영 감독과의 대화 ⓒ정성우 감독 제공

“오늘 개봉하는 영화가 100편이라고 하면 멀티플랙스 극장에 걸리는 영화는 10편 내외예요. 나머지 90여 편의 영화들은 극장을 찾기 힘들어 개봉조차 못 하는 경우가 많아요. 독립영화관이 많아지면 이런 영화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 거예요. 이런 영화가 살아남지 못하면 시민들이 다양한 영화를 만날 기회를 뺏기는 거예요. 결국 시민들이 피해를 입는 겁니다.”

60명의 목포시민이 시민극장주로 참여하고,
6명의 활동가들이 힘을 모아 영화관을 다시 열다


시민들이 다양한 영화를 만들 수 있도록 도왔던 시네마라운지MM은 개관 1년 만에 위기를 맞았다. 건물주가 영화관이 들어선 건물을 팔면서 어쩔 수 없이 이사를 가야 했다. 결국, 2020년 현재 시네마라운지MM이 자리한 만호동으로 자리를 옮겼다. 자리를 옮기면서 정 감독 혼자 운영하던 체제에서 협동조합을 통해 모두가 힘을 합쳐 운영하는 방식으로 바꿨다. 시네마라운지MM을 운영하는 협동조합시네마MM 박혜선 이사장은 “영화관을 개인 소유가 아닌 목포 시민과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것으로 만들어보자는 의미로 협동조합을 만들고 운영하게 됐습니다. 정 감독을 도와 영화도 함께 했고, 영화를 공부하고 가르치며 살아왔던 사람으로서 목포에선 만나기 힘든 영화들을 볼 수 있는 공간을 만든다는데 이끌려서 이사장까지 맡게 됐어요”라고 말했다.

2020년 4월 협동조합시네마MM을 통해 60명의 목포시민이 시민극장주로 참여하고, 6명의 활동가들이 힘을 모아 영화관을 재개관했다. 그리고, 시네마라운지MM은 단순한 독립영화 상영관을 넘어 지역에서 영상 제작 교육을 위한 공간으로 거듭났고, 목포 지역의 독립영화 역량을 한 단계 더 끌어올리는데 크게 보탬이 됐다. 그리고, 그렇게 키워진 역량을 목포국도1호선독립영화제의 발전으로 이어졌다. 소규모로 시작했던 영화제는 지난 7회 영화제부터 영화진흥위원회로부터 500만 원의 예산 지원을 받았다. 그리고, 해를 거듭하면서 지원금은 늘어났고, 올해엔 영화진흥위원회로부터 1,500만 원, 목포시에서 700만 원을 각각 지원받았다. 하지만, 여전히 영화제 운영엔 턱없이 모자란 금액이다.

“영화제 올해 예산을 총 3천만 원 정도로 잡고 있어요. 800여만 원 정도는 우리가 자체적으로 마련해야 하는 거예요. 이런 부분에서 협동조합시네마MM의 활약이 컸어요. 원래 우리처럼 장단편 44편을 상영하는 영화제를 4일간 진행하려면 최소 6천만 원 넘게 예산이 들어가요. 그리고, 사무국 운영만 해도 상당한 예산이 들어가는 데 박혜선 이사장을 비롯해 협동조합시네마MM 식구들이 사무국 역할을 맡아주어서 가능했어요.”
 
시네마라운지MM에서 운영하는 영화학교 학생들의 영화 제작 현장 ⓒ정성우 감독

목포시민과 뜻있는 이들이 십시일반으로 힘을 모아 영화제와 독립영화관을 이끌어가는 건 매우 의미가 크다. 하지만, 이런 지역의 문화가 튼튼하게 자라나려면 공공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정 감독은 강조했다. “민간에게 모든 것을 책임을 떠넘기는 것이 아니라 공공의 어떤 역할이 중요하고 꼭 필요해요. ‘지원은 하지만, 간섭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듯이 간섭이 아닌 지원은 지역의 예술이 피어나는 바탕이라고 생각해요. 많은 이들이 지역 문화의 활성화를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이런 정책의 의지는 예산에 나타난다고 봐요. 의지가 있다면 지원을 해야 하는 거죠. 모든 게 서울과 수도권 중심이에요. 지역에서 영화를 만들고 싶은 이들이 있어도 제작 환경이나 기반 시스템이 부족해 지역을 떠날 수밖에 없는 경우도 많아요.”

“지역의 예술적 기반을 만들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 가운데 하나가 골목골목마다
작은 영화관, 작은 공연장, 작은 미술관, 작은 도서관을
만드는 것이에요.”


정 감독은 이런 지역의 예술적 기반을 만들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 가운데 하나가 골목마다 문화를 누릴 수 있는 작은 영화관, 작은 공연장, 작은 미술관, 작은 도서관이 생겨나는 것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정부의 문화예술 정책은 여전히 지역 예술의 활성화보다는 이른바 K-콘텐츠라 불리는 문화산업에만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도 지난 2월 문화예술 공약을 발표하면서 △지역별 문화 격차 해소 및 지역 중심 문화자치시대 개막 △전 국민 문화 향유 시대 확립으로 문화 기본권 보장 △공정하고 사각지대 없는 예술인 맞춤형 지원 △K-컬처를 세계문화의 미래로 발전 △K-컬처 스타트업 지원으로 세계를 감동시키는 문화산업 선진국 도약 △전통문화유산을 미래의 문화자산으로 보존하고 가치 제고 △제약 없고 공정한 장애 예술인 활동 기회 및 가치 제고 등을 약속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당시 “K컬처가 세계문화를 지속적으로 선도할 수 있도록 든든하게 받쳐주는 한편 전통문화를 보존해 우리 문화의 저변을 단단하게 다지겠다는 게 골자”라고 말해 산업적 관심을 감추지 않았다.
 
시네마라운지MM에 있는 영화 관련 북카페 금지옥엽. 각종 영화관련 굿즈들을 만날 수 있다. ⓒ민중의소리

“K-콘텐츠와 한류를 강조하지만, 그런 예술도 결국 문화예술적 기반이 받쳐줘야 가능해요. 숫자만 강조하다 보면 밑바탕이 부실해질 수 있어요. 그리고, 밑바탕이 없으면 금방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항상 지역 문화의 활성화를 이야기하지만, 독립영화나 영화관에 대한 지원은 늘 제자리걸음이에요.”

시네마라운지MM은 9회 목포국도1호선독립영화제를 마치고, 다시 영화관을 이전해야 한다. 목포 원도심에서 다시 영화관이 들어설 장소를 알아보고 있다. 영화관 뿐만 아니라 영화를 가르치는 강의실 공간까지 필요해서 장소를 찾는 일이 만만치는 않다. 비용도 문제다. 박혜선 협동조합시네마MM 이사장은 “협동조합 법인 기금 대출도 알아보는 등 준비를 계속하고 있어요. 목포시에도 시네마라운지MM이 가진 의미를 호소해서 도움을 받는 방안도 고민중”이라고 말했다. 정 감독 생각하는 독립영화관, 동네영화관은 단순한 영화관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어주는 공간이다. 끝으로 정 감독은 새롭게 이전하는 시네마라운지MM도 목포시민을 위한 사랑방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전했다.

“영화관은 사람이 모이는 곳이에요. 어떤 이는 영화를 통해서 행복을 느낄 수 있고, 어떤 이는 영화를 통해서 지역의 화두를 만날 수도 있어요. 영화관은 그렇게 사람과 사람이 어울리는 공간입니다. 도심으로 나가야 만날 수 있는 멀티플랙스 영화관에선 이런 감응을 느끼기 어려워요. 혼자가 아니라 옆에 앉은 이들과도 소통할 수 있는 그런 극장의 매력 말이에요. 우리 영화관이 목포시민을 이어주는 공간으로 계속 사랑받을 수 있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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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서 발견된 4구의 시신... 이게 다 기후 위기 때문?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22/08/17 07:01
  • 수정일
    2022/08/17 07:01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글로벌 기획 - 이상기후 현장을 보다] 극단적 기후변화와 미 의회의 겸손한 진전

22.08.17 05:10최종 업데이트 22.08.17 05:10
<오마이뉴스>는 세계 여러 나라에서 소식을 보내오는 시민기자들과 함께 '2022 글로벌 리포트 : 불타는 지구... 이상기후 현장을 보다'를 내보냅니다. 폭염, 폭설, 산불, 홍수와 같은 각종 이상기후 현상과 현지인들의 반응을 생생하게 전달하고, 이에 대한 각국 정부의 대응, 전문가들의 진단을 소개합니다.[편집자말]

한국에는 물난리 뉴스가 쏟아졌는데, 내가 사는 미국 동부 뉴저지주에는 가뭄주의보가 발령 중이다. 특파원들이 전하는 서울발 폭우, 홍수 소식과 정반대로 미 동부는 근 한 달째 화씨 100도(섭씨 37.8도) 넘는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주 대부분 지역에서 하천의 흐름과 지하수 수위가 평년보다 낮아지고 있습니다. 일부 저수지는 덥고 건조한 상태가 지속되면서 급격한 감소율을 보이고 있습니다."

 가뭄 위기 첫 단계 조치로 주 담당자는 주민들에게 잔디와 나무에 물 주기를 줄이고 세차 같은 필수적이지 않은 사용을 자제해 달라고 호소한다. 계속 비가 오지 않으면 다음 단계인 가뭄 경보와 함께 주민들의 물 사용 제한 의무화 같은 조치가 내려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찌는 듯한 더위와 높은 습도 속에 물마저 못 쓰게 될까 봐 쨍한 하늘이 야속할 뿐이다. 

처음으로 바닥 드러낸 미드 호수
 

▲ 지난 7월 23일 미 네바다주 미드 호수에서 '보트 없음'이라고 쓰인 부표가 갈라진 바닥 위에 놓여 있다. ⓒ 연합뉴스

 
"미드 호수에서 시체를 찾다가 다쳤다고요? 보상 가능!"

미 네바다 주 라스베이거스 밸리에 있는 한 카지노 맞은편에 광고판 하나가 등장했다. 지역 법률 사무소에서 내건 이 광고판은 갑자기 전국 뉴스가 된 지역 호수로 소비자를 낚는 중이다.

지난 7일 미국의 케이블 뉴스 채널 <씨엔엔>은 라스베이거스 인근의 미드 호수에서 또 유해가 발견됐다고 보도했다. 지난 5월 이후 네 번째다. 1936년 후버댐 건설로 조성된 미드 호수는 애리조나, 캘리포니아 지역 등에 농업용수를 공급하는 인공 호수다.

최근 유례없는 가뭄으로 조성 이후 처음으로 바닥을 드러내고 있는 상황. 부패한 통에서 총상 입은 사체가 나오는가 하면 디엔에이(DNA)를 추출하기조차 어려운 오래된 시신들이 발견되는 이유다. 라스베이거스 경찰은 네바다 주와 애리조나 주 경계에 걸쳐 있는 지리적 특성상 이 지역 갱 조직과 연관되어 있다고 추측하고 수사를 진행 중이다.

1980년대 해발 373m까지 올라갔던 이 호수의 수위는 초대형 가뭄이 계속된 올해엔 처음 저수지가 채워지던 1930년대와 같은 수준까지 떨어지고 있다. 지난달 미 항공우주국(NASA)은 이 호수의 수량이 전체 수용량 대비 27%에 불과하다고 발표한 바 있다. 

지난 11일 미국 의회 신문인 <더 힐>도 미 서부 지역이 최악의 건조한 시기를 겪고 있다고 보도했다. 2000년경부터 시작된 현재의 가뭄 상황은 남쪽 텍사스에서 북쪽 오리건까지 서부 모든 지역의 수천만 미국인들에게 영향을 주고 있다. 미드 호수의 경우처럼 수원지가 고갈되는 사태는 물론이고 언제든 정전에 직면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미국 가뭄 감시국 자료에 따르면 미 서부의 6%가 농작물과 목초지의 비정상적인 손실 그리고 전면적인 물 비상사태 같은 '예외적' 가뭄 상태다. 23%는 '극심한' 가뭄 상태인데 농작물 손실과 빈번한 물 부족으로 당국이 물을 제한하는 '심각' 상태는 26%나 된다. 특히 캘리포니아의 경우 100%가 '비정상적으로 건조'하다. 

"지금의 기후는 우리의 물 사용 방법뿐 아니라 어떻게 물을 확보하고 저장하고 주 전체에 분배할지를 재고하게 합니다."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는 지난달 말 지역 지도자들과 간담회를 가졌다. 비와 눈 같은 자연적인 물 공급을 기대하지 않게 된 상황에서 주 정부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 논의했다. 미국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주이지만 97.5%가 '심각한 가뭄'을 겪고 있기에 매우 다급하고 중요한 의제다. 캘리포니아대 연구원들은 지금의 가뭄이 2030년까지 지속될 가능성이 75%라는 연구를 <네이처>에 발표하기도 했다. 

1000년 만의 홍수, 500년 만의 폭우
 

▲ 지난 8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홍수로 피해를 입은 켄터키주 로스트 크릭을 방문해 이재민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연합뉴스


"지난 며칠 동안 미국은 1000년에 한 번, 또는 한 해 0.1%의 확률이라고 하는 홍수를 4번 이상 경험했다."

지난 11일 <가디언>은 매번 기록을 경신하고 있는 미국의 여름 홍수를 이렇게 기록했다. 

작년 여름 최고 57도를 기록해 지구상에서 가장 뜨거운 곳으로 불리는 캘리포니아 데스벨리 지역은 지난 5일 세 시간 동안 약 1인치 반(약 38mm)의 비가 쏟아졌다. 이는 연 강수량의 75%에 해당하는 양으로 '1000년 만의 사건'으로 불린다. 갑작스러운 폭우에 도로는 물에 잠겼고 자동차들이 떠내려갔다. 폭우에 대비하지 못한 기반 시설은 파손됐다. 

세계 최초의 국립공원인 미국 옐로스톤의 경우, 올여름 관광객이 40% 감소했는데 지난 6월 엄청난 홍수로 공원 안팎의 도로가 훼손됐기 때문이다. 지난 5일 미국의 공영라디오방송 <엔피알>은 여름 관광객이 줄어 울상인 부근 마을 주민들을 인터뷰했다.

"국립공원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사라졌다면 어느 누가 숙소를 잡고 식당에 가고 래프팅이나 승마를 할 수 있겠어요? 할 수 있는 게 없는 거죠."

인구 900명의 이 작은 마을 주민들은 홍수 이후 생계가 막막해졌다. 도로 복구는 앞으로 2년 이상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는데 500년 만이라는 대홍수가 미국의 대표적 국립공원 옐로스톤 주민들의 삶마저 바꿔 놓았다. 

코로나바이러스에서 회복된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지난 8일, 회복 후 첫 공식 일정으로 켄터키 주를 방문했다. 기록적인 폭우로 37명의 사망자가 나온 홍수 피해 지역을 영부인과 둘러본 그는 "마음이 아프다"며 집중 호우와 홍수에 대한 비상 대응 비용을 연방 정부가 부담하겠다고 말했다. 

"이런 현상들은 더 이상 1000년에 한 번 일어나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그 명칭부터 바꿔야 합니다." 

국립대기연구센터에서 극단 기후를 연구하는 프레인씨는 매번 기록을 경신하는 자연재해를 패턴으로 분석해 대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화석연료의 연소로 지구의 대기가 뜨거워지면서 거대한 폭우가 될 수 있는 수증기를 품게 되고 그로 인해 지금과 같은 광범위한 극단적 날씨 패턴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매우 겸손한 진전' 상원 통과한 기후 법안
 

▲ 지난 7일 미국의 척 슈머 상원 민주당 원내총무는 워싱턴DC 국회의사당에서 상원이 지구온난화, 인플레이션, 세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법안을 통과시킨 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오늘 민주당 상원은 가장 부유한 기업들이 그들의 공정한 몫을 지불하게 만들었습니다. 특별한 이익 집단이 아니라 미국의 평범한 가족들 편에서 처방약과 건강보험, 일상적인 에너지 비용을 낮추고 줄이기 위해 투표한 것입니다."

바이든 대통령의 말처럼 일요일인 8월 7일, 미 상원은 16시간의 긴 토론 끝에 7500억 달러 규모의 의료, 세금, 기후 법안을 통과시켰다. 대기업에 최소 15%의 법인세를 부과하고 처방약 값을 낮추기 위한 직접적 약값 협상과 약값의 총액 상한선 설정 같은 의료 소비자 부담을 경감해주는 조치가 골자다. 무엇보다 3690억 달러를 투자해 온실가스 40% 감축을 목표로 에너지 안보와 기후 변화 대응을 위해 적극적으로 대처하게 된다.

'바이든 대통령과 민주당의 정치적 승리'라고 불리는 법안은 51:50의 근소한 차로 통과됐다. 만면에 웃음을 띤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는 가장 왼쪽의 버니 샌더스부터 가장 오른쪽에서 있는 조 만친까지 모두 아울러야 했던 힘든 과정이었음을 숨기지 않았다.

그러나 흡족해하는 만친 의원과 달리 의회 계단에 앉아 생각에 잠겨있는 버니 샌더스 의원의 사진은 대공황 이후 가장 큰 공룡 예산 법안의 구멍들이 여전하다는 것을 상징한다.

"결론적으로 저는 이 법안을 지지할 겁니다. 기후 변화의 위기를 고려할 때, 환경단체들은 이것이 한 걸음 전진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죠. 우리가 가야 할 길은 멀지만 한 걸음 전진한 거니까요."

버니 샌더스는 MSNBC와 인터뷰에서 '매우 작은 진전'이라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 매일매일 극단적인 기후 위기를 직접 겪고 느끼고 있는 미국인들에게 느리고 답답하지만 조금씩 전진하고 있다고 믿고 싶다. 우리의 지구가 성난 모습을 자제하고 얼마나 느긋이 우리를 기다려 줄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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