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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 3관왕' 제주, 관광으로부터 보호해야…

[함께 사는 길] 제주도 쉼이 필요해 ③

김정효 제주민예총 전 이사장  |  기사입력 2022.08.14. 22:05:01

 

한반도 남단의 섬, 제주도를 찾는 관광객이 2016년 1500만 명을 넘었다. 코로나19에도 제주도로 향하는 걸음은 멈추지 않았고, 2021년 1200만 명이 넘는 이들이 제주를 찾았다. 일상의 지친 삶을 내려놓고 휴식과 위안을 받기 위해 제주를 찾는다는 이들이 적지 않다.

제주는 어떨까. 불행히도 각종 지표들은 제주도에 적신호가 나타났음을 보여준다. 매년 늘어나는 쓰레기와 하수는 처리용량을 초과해 바다까지 오염시키고 있으며 교통난에 주민들의 불만이 높다. 수많은 숲과 목장이 골프장과 관광시절로 사라져갔고, 지금도 '관광'이란 이름으로 제주 곳곳에 무차별 삽질을 가하고 있다. 우리가 사랑하는 제주가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제주도 쉼이 필요하다. 개발의 삽질을 멈추고 제주가 회복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우리의 여행이 제주를 삼키는 개발로 이어지지 않도록, 우리의 여행과 제주 모두 지속가능할 수 있도록 함께 목소리를 내야 할 때다. 편집자 주.

관광으로부터 관광을 보호해야 

제주에서 흔하게 보는 문장 중의 하나가 '유네스코 자연과학 분야 3관왕'이다. 시내버스 광고를 비롯해 제주를 홍보하는 거의 모든 자료에 빠짐없이 등장한다. 유네스코 자연과학 분야라 하면 생물권보전지역, 세계자연유산, 세계지질공원을 이르는 말로 전 세계에서 이 모두를 충족하는 곳이 제주라는 이야기다. 여기에 더해 식생의 보고, 화산학의 교과서, 전설의 보고, 오름의 왕국, 1만8천 신들의 고향 등 제주의 가치를 보여주는 수식어는 많다. 

그렇다면 제주는 유네스코 자연과학 분야 3관왕이기에 가치가 높은 것일까? 제주의 가치를 단순화시켜 말하면 '한 곳에서 2000m에 육박하는 높은 산과 드넓은 바다를 동시에 볼 수 있는 곳'이라는 것이다. 거기에 아름다운 자연과 청정한 환경은 덤이다. 제주는 그런 곳이다. 

유네스코 자연과학 분야 3관왕이 제주의 전부는 아니다. 세계유산 보호구역만이 아니라 제주도의 가치가 뛰어나기에 세계유산이 된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실제로 유네스코에서도 제주도의 더 많은 지역을 세계자연유산에 포함시킬 것을 권고하지 않았던가. 예로부터 제주 사람들의 인식, '한라산이 곧 제주도요, 제주도가 한라산'임을 음미할 필요가 있다.

  
 

 

제주 어머니의 산, 한라산

제주 사람들이 제주의 상징 한라산을 대하는 태도를 보자. 한라산의 높이가 1950m임을 처음으로 밝혀냈던 독일의 지리학자 지그프리드 겐테(Siegfroied Genthe)가 1901년 한라산을 오를 때의 이야기이다. 신축년 제주민중항쟁 직후라 서양인에 대한 반감이 심한 상황임을 고려하여 그는 소개장과 여행 도중 신분보장을 위한 통행증까지 소지했지만, 당시 이재호 제주목사는 그의 한라산 등반에 대해 호의적이지 않았다. 

이유는 한라산을 신성시하는 제주 사람들의 믿음을 거스르지 않겠다는 것인데, '범접할 수 없는 고고함과 안정을 누군가가 깨뜨리는 날이면 산신령이 악천후와 흉작, 역병 등으로 반드시 이 섬을 응징할 것이며, 그렇게 되면 주민들이 와서 산신령을 괴롭히는 이방인에 대하여 항의할 것'이라는 부연 설명을 하고 있다. 이처럼 제주 사람들에게 한라산은 신(神) 그 자체로 존재한다.  

이러한 존경의 마음이 이제껏 한라산에서의 수많은 개발계획을 막아내는 힘으로 작용했다. 한라산 개발계획의 시작은 1965년이다. 성판악에서 사라오름 부근까지 8㎞에 대해서는 차도를 내 관광도로로 이용하고, 여기서부터 백록담까지 나머지 6㎞에 대해서는 3m 폭의 등산로를 개설할 계획을 세우기까지 했다. 이어 1968년에는 성판악을 기점으로 사라악 - 왕관릉 - 백록담 - 영실을 잇는 10.6㎞에 케이블카를 설치하겠다고 사업계획이 제출되는가 하면 이와는 별도로 성판악에 500평의 부대 건물과 60평의 유기장, 사라악에 200평의 부대 건물과 휴게소, 왕관릉에 150평의 휴게소, 백록담에 1000평의 호텔, 오백나한에 300평의 유기장을 만들겠다는 계획까지 나온다. 

이후 잊을만하면 '산악관광을 통한 지역경제 활성화'라는 미명으로 한라산 케이블카 건설계획이 등장하는데, 2010년까지 지속적으로 이어져 왔다. 그때마다 문화재위원을 비롯한 전문가와 도민들이 막아냈다. 1966년 한라산을 문교부에서 부랴부랴 천연보호구역으로 가지정했던 것도 개발행위를 막기 위한 응급조치였을 정도다.

제주 사람들에게 한라산은 아낌없이 주는 존재이기에 흔히들 어머니 산이라 부른다. 한라산 계곡의 물을 식수로 이용하고 있고, 과거에는 땔감, 심지어 집을 짓거나 배를 만드는 목재도 한라산에서 베어낸 나무를 이용했다. 불과 40여 년 전만 하더라도 백록담까지 소와 말을 풀어 방목하기도 했다. 해서 제주 사람들의 일생을 '한라산에서 태어나 다시 한라산으로 돌아간다'라고 표현할 정도다. 

관광이 곧 정복이 되어버린 시대 

하지만 근래 들어 한라산을 바라보는 관점이 많이 달라진 것도 사실이다. 관광의 대상으로 바뀌면서 정복의 대상, 자기과시의 수단으로 이용되는 경우도 많다. 심지어는 SNS에 올릴 사진 촬영을 위해 한라산을 오르기까지 한다. 그 과정에서 탈법도 많아 지정된 등산로를 벗어나는가 하면 사라오름 산정호수에서 수영을 하다가 적발되는 사례까지 나온다. 등산(登山)이 아닌 입산(入山)이라 하여 산에 든다는 의미를 강조했던 옛사람들의 정신세계가 그리운 대목이다.

이러한 가치관의 변화는 비단 한라산에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제주 여행의 일대 전환기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는 올레길에서 쉽게 볼 수 있다. 걷기를 통한 사색은 사라지고 전 코스 완주에 매달리는 올레꾼들이 많다. 사단법인 제주올레에서 기념품으로 제작한 '간세' 인형이 있다. '간세'는 게으름을 피우는 행위 또는 일하기 싫어함을 말하는 제주어다. 하지만 천천히 걷는다는 간세인형의 의도와는 달리 실제 현장에서는 그렇지 않은 경우도 종종 보게 된다.

"진정한 걷기 애호가는 구경거리를 찾아서 여행하는 것이 아니라 즐거운 기분을 찾아서 여행한다. 도보로 산책하는 맛을 제대로 즐기려면 혼자여야 한다. 단체로 또는 둘이서 하는 것은 이름뿐인 산책이 되고, 오히려 피크닉에 속하는 것"이라 말했던 스티븐슨의 경고를 귀담을 필요가 있다. 

▲ 돌매화나무. ⓒ강정효
▲ 고사리삼. ⓒ강정효

제주에 사람이 산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다. 제주 여행에 있어 자연경관만이 아닌 그곳에서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에도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돌담과 해녀, 감귤, 조랑말 등 제주를 상징하는 자원들 하나하나가 과거에는 척박한 삶의 현장이거나 수탈의 수단으로 이용된 역사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제주 전역에서 보이는 돌담은 과거 척박한 땅을 일구며 발생한 돌을 쌓아 올린 것으로, 경계의 기능과 함께 바람을 막거나 소와 말이 농작물을 훼손하는 것을 방지하는 기능이 있다. 해녀들은 저승에서 돈을 벌어 이승에서 쓴다는 표현이 있을 정도로 삶과 죽음을 넘나드는 고단한 작업을 이어간다. 감귤의 경우 과원(果園)의 인부는 봄에 달린 열매의 숫자를 가을 수확기에 제출해야만 했다. 두세 차례 태풍이 지나며 낙과 피해가 발생함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목마장의 목자는 자신이 관리하는 말이 한라산에서 얼어 죽었을 경우 그 가죽을 바쳐 증명하거나 그렇지 못하면 금전으로 배상해야만 했다.

오늘날 제주 사람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4.3의 아픔을 알아야 한다. 1948년 당시 제주도 전체 인구의 10분의 1인 3만 명 내외가 희생된 근현대사 최대의 비극이다. 성산일출봉, 정방폭포, 천제연폭포, 송악산, 함덕해수욕장, 표선해수욕장 등 제주의 유명 관광지는 물론이거니와 제주의 관문인 제주국제공항(옛 정드르비행장)이나 제주 앞바다도 학살터였다. 이처럼 제주는 발길 내딛는 곳곳마다 민중의 한이 함께 하고 있다. 한마디로 잔인한 아름다움이다.

제주의 대표적인 겨울꽃으로 동백과 수선화가 있다. 동백은 4.3의 아픔을 상징하는 꽃이고, 수선화는 추사 김정희의 표현을 빌어 '해탈 신선의 꽃'으로 소개된다. 추사는 들판에서 자라고 있는 수선화를 통해 절해고도에서 유배인의 신분인 자신을 떠올렸을 것이다. 문제는 추사의 글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수선화가 곳곳에 여기저기 널려있다. 밭고랑 사이에 더욱 무성한데 이곳 사람들은 뭔지도 모르고 보리갈이 할 적에 모두 뽑아 없앤다.'라고. 추사에게는 신선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농부의 입장에서는 잡초일 따름이다. 이처럼 보는 관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제주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제주를 제주답게 지켜야 

최근 제주는 적정수용력을 초과한 관광객들과 관광개발이라는 이름 아래 자행되는 각종 난개발로 몸살을 앓고 있다. '관광으로부터 관광을 보호해야 한다'는 말이 있다. 미래의 관광을 위해 현재의 개발을 제한해야 한다는 얘기로 미래세대의 관광 욕구를 저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현재 세대의 관광 욕구를 충족시켜야 한다는, 지속가능한 관광개발의 개념과도 맥을 같이 한다. 

예컨대 1960년대 계획대로 백록담 분화구 안에 호텔을 짓고, 사라오름과 영실기암에 숙박시설, 그리고 진달래밭대피소까지 도로포장을 냈다면 오늘날의 한라산은 어떻게 됐을지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무분별한 사냥으로 100여 년 전 멸종한 한라산의 사슴도 기억해야 한다. 백록담 바위틈 돌매화나무나 선흘 곶자왈의 제주고사리삼을 보라. 규모가 아닌, 작음으로써 그 가치를 증명하는 사례다. 제주다움을 지키는 것보다 더 큰 관광개발은 없다.

훗날 여러분이 다시 찾고 싶은 제주가 온전히 이어지길 바란다면 제주의 가치를 지키는 길에 동참해 주시길 부탁드린다. 제주는 그만큼 소중한 곳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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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집값 오를 거라고? 결국 들통난 공급부족론의 허상

  • 분류
    아하~
  • 등록일
    2022/08/15 07:32
  • 수정일
    2022/08/15 07:32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금리 무시하고 집값 상승 공언한 보수·경제 언론들의 말바꾸기

22.08.14 15:52l최종 업데이트 22.08.14 15:52l
지난 7월 29일 서울 남산에서 본 아파트.
▲  지난 7월 29일 서울 남산에서 본 아파트.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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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년간 고공행진을 이어오던 집값이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올해 초까지만 해도 주택 공급 부족으로 집값이 오를 것이라고 전망한 보수·경제 언론들은 '금리'를 탓하면서 탈출구를 찾기 바빠 보인다. 공급 부족을 집값 상승 원인이라 지목했던 소위 부동산 전문가들의 목소리도 자취를 감췄다.

올해 초까지만 해도 보수·경제 언론들은 멈추지 않는 집값 상승의 주요 원인을 '주택 공급 부족'으로 탓하면서 문재인 정부에 대한 공세를 멈추지 않았다. 주택 공급 부족이 계속되면서 올해도 집값 상승이 계속될 것을 전망하는 기사도 잇따라 내놨다.
 
"대통령 선거와 금융 환경 변화 등 적지 않은 변수 속에서도 전문가들이 집값 상승을 강조하는 원인은 공급 부족이다."


지난해 12월 21일 <아주경제>의 2022년 주택 시장 전망 기사의 첫 문장이다. 올해 초까지 보수·경제 언론들이 쏟아낸 주택시장 전망 기사들의 주요 내용 역시 이 문장 하나로 요약할 수 있다. 부동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부동산 전문가로 기사에 등장해, 주택가격 상승 분위기를 부채질했다.
  

큰사진보기지난해 12월 15일자 동아일보 보도.
▲  지난해 12월 15일자 동아일보 보도.
ⓒ 동아일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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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21년 12월 30일 <한국경제>는 부동산 전문가 121명을 자체 설문한 조사를 통해 올해 집값 상승을 점쳤다. 응답자의 55.4%가 '집값이 상승할 것'이라고 전망했다는 것이다. 설문 결과를 보면, 집값이 오르는 이유로 신규 주택 공급 부족(70.1%)때문이라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설문에 응한 부동산 전문가들은 대부분 부동산업자(건설사, 시행사)들이었다.

2022년 '집값 상승' 호언 장담했던 언론사들 <매일경제>도 지난 2021년 12월 14일자 보도에서 주택산업연구원 분석을 인용하면서 올해 집값 상승을 점쳤다. 주택협회 등 주택사업자들이 공동 출자해 만든 주택산업연구원은 김현아 전 국민의힘 의원이 연구원으로 몸 담았던 곳이기도 하다. 보도를 보면 주택산업연구원은 주택 가격 변동에 가장 큰 요인으로 '주택 공급'을 꼽았다. 금리나 경제성장률은 '주택공급'에 비해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주장도 했다.


<중앙일보>는 올해 1월 2일 '역대급 공급했다더니 서울 20만가구 부족… 주택수급 8년 전으로 추락'이라는 제목을 단 분석 기사를 냈다. <중앙>은 2021년 서울 주택보급률이 전년에 비해 1%p 가량 떨어진 것을 집중 조명하면서, 이를 주택 가격 상승 원인으로 지목했다.

<중앙>은 이 기사에서 주택 수요가 늘어난 근거로 '일반가구 수 급증'을 꼽았다. 이 신문은 '일반가구'들을 모두 '매매 수요층'으로 봤다. 가구별로 거주 유형이나 소득 수준도 다르고 내 집 마련 계획 시기도 천차만별인데, <중앙>은 이런 점들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최근 증가세가 두드러진 1인 가구들도 모두 '매매 수요'로 봐야 하는지도 의문이다.

<매일경제> 등 경제지들도 <중앙>과 유사한 논리로 공급 부족 탓에 집값이 오른다고 강조했다. 공급 부족 기사에 단골처럼 등장하는 부동산학 전공 교수들과 시중은행 컨설턴트 등 소위 부동산 전문가들도 '집값 상승론'을 반복했다. 올해 초 금리 인상이 예상되고, 금리가 집값에 주요 변수가 될 수 있다는 국책연구기관(국토연구원)의 보고서는 이 부동산 전문가들의 목소리에 조용히 묻혀버렸다.

하지만 금리와 정책, 대내외 변수, 물가 등 집값에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요인을 등한시하면서 '공급 부족'만 외치던 이들의 목소리는 오래 가지 못했다.

올해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올리기 시작하면서 부동산 시장은 상승세가 꺾이기 시작했다. 국민은행 집계에 따르면, 지난 6월 전국 아파트 가격은 전달에 비해 0.04% 하락했고, 7월에는 –0.07%로 낙폭이 커졌다. 서울 아파트 가격 상승률도 지난 6월 0.13%에서 7월 0.03%로 축소되고 있고, 서울 강북 지역에는 지난 7월 0.01% 하락했다.

집값이 오를대로 오른 상황에서 금리까지 오르다보니 실수요층이 대출을 통해 구매할 수 있는 여력이 급격히 떨어졌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금리가 집값에 큰 영향을 주지 못했지만, 집값이 크게 오른 상황에서 금리는 집값의 주요 변수로 자리 잡았다.

집값 떨어지자, 자취 감춘 '공급부족론'

보수·경제 언론들이 내놓는 부동산 기사도 180도 달라졌다. 금리를 큰 변수로 보지 않고 집값이 오를 것이라고 하던 연초와 달리 지금은 부동산 시장 침체 이유로 금리 상승을 들고 있다. '주택 공급 부족'은 아예 자취를 감췄다. 한국은행이 지난 7월 13일 기준금리를 대폭 인상했을 당시 '부동산 침체'라는 표현도 등장했다.
 
8년만에 기준금리 2.25%… "부동산 침체 길어진다"<조선비즈>
금리인상으로 부동산 시장 냉각 가속화 우려<한국경제>
[한은 빅스텝] 역대 최대폭 기준금리 인상에 부동산 시장 '꽁꽁'<중앙일보>
"대출 금리 감당 못해"… 생애최초 부동산 매수자도 역대 최저<매일경제>
 

주택 가격이 상승할 것이라던 부동산 전문가들의 목소리는 자취를 감췄다. 올해도 주택 가격이 오르니, 집을 사라고 부채질하던 한 대학 겸임교수는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실수요자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이자 상환을 유예해줘야 한다"고 목소리를 내고 있다.

집값이 하락하면서 보수 언론이 제기해온 '공급 부족론'의 허상이 드러났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성달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국장은 "집값이 떨어지면서 공급 부족이 문제라는 보수·경제지들의 거짓말이 드러난 것"이라며 "이들 언론의 주장은 재건축 규제를 풀어서 값비싼 아파트를 많이 공급하게 하면 집값이 떨어진다는 것이었는데, 역사적으로 그런 전례는 없었고, 공급 부족이라는 말도 허상이었다"라고 말헀다.

김 국장은 이어 "언론사 기사에 등장하는 부동산 전문가들도 무주택 서민 입장에서의 관점이 아닌 투자자 관점에서 의견을 표하는 성향이 강하기 때문에, 적당히 거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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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5광복, 미국이 시켜줬나? 우리 힘으로 이뤄냈나?

  • 기자명 강호석 기자
  •  
  •  승인 2022.08.14 16:45
  •  
  •  댓글 0
 
 
 

광복절에 드는 의문 (5)

1945년 8월 15일 우리나라는 광복을 맞이했다. 그런데 그날의 해방은 미국과 소련을 비롯한 연합군이 2차 세계대전에서 승리한 덕택에 주어진 선물일까? 아니면 우리 민족의 힘으로 싸워 얻어낸 전취물일까? 전자를 ‘타력 해방론’, 후자를 ‘자력 해방론’이라 부른다.

이남 사회는 타력 해방론이 압도적으로 우세하지만, 이북은 자력 해방론이 절대적인 상식이다.

물론 자력 해방이라고 해도 우리 민족 자체의 힘만으로 일제를 물리쳤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2차 세계대전은 전 세계 파쇼국가와 연합군 사이의 ‘판갈이’ 전쟁이었기 때문에 당시 최강의 힘을 가진 국가도 단독으로 파쇼국가들과의 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었다.

승리를 위해서는 연합군(미국, 소련, 영국 등)의 지원이 절대적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독일에 함락된 프랑스나 일본의 식민지가 된 중국이 자력으로 해방했다는 주장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프랑스나 중국과는 달리 자력 해방론에 소극적일까?

우리 사회가 유독 자력 해방을 믿지 않는 이유는 조선인민혁명군(김일성 빨치산부대)의 항일무장투쟁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1920년대 번창하던 항일독립군은 1930년대에 접어들면서 시들해졌고, 오로지 조선인민혁명군만이 끝까지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했다. 그런데 이남 사회는 이들을 인정하지 않는다. 자연히 자력 해방을 주장할 근거가 사라지고 없다.

타력 해방론이 대세를 이룬 또 다른 이유는 미군정에 빌붙은 친일파 때문이다. 일제에 타협했거나 투쟁을 회피했던 세력들은 ‘어차피 해방은 미국이 시켜줬으니 독립운동 따윈 필요치 않았다’는 이유를 들어 자신들의 과거 친일 행적을 합리화하는 수단과 논리로 활용했다.

이들은 8.15광복이 연합국의 승리가 가져온 선물임을 강조하면서, 항일독립군이 일제와 벌인 전투와 투쟁의 성과를 상쇄시키려 했고, 그럼으로써 일제에 저항하지 않았던 자신들과 항일독립운동가들을 동일 선상에 놓으려 했다.

해방의 원동력을 무엇으로 보는가가 중요한 이유는 해방 이후 새조국 건설을 자체의 힘으로 할 수 있는가, 없는가를 가르는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미국이 우리를 해방시켰다면 새조국 건설도 미국이 하라는 대로 할 수밖에 없다.

 

미군정에 의해 친일파 척결이 중단되고, 미군정의 발표에 따라 38선 이남에만 단독선거가 실시되는 것을 우리 민족이라면 누구나 반대했겠지만, 타력 해방론이 팽배한 이남의 현실에서 감히 미군정에 저항하지 못했다. 더구나 당시만 해도 3년 후에는 미군이 나갈 것이라고 굳게 믿었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이처럼 자력이냐, 타력이냐는 해방된 조국의 운명을 가르는 결정적인 문제로 작동했다.

그렇다고 근거도 없이 자력 해방론을 주장할 수는 없다. 자력 해방론의 기준은 일제와의 전쟁에서 당당한 주체로 참여해서 승리에 공헌했느냐? 특히 한반도에서 일제를 몰아내는 전투를 하고, 일제 통치기구를 분쇄했는가? 여부에 달렸다.

우리의 광복은 과연 자력 해방의 기준에 부합하는가?

광복이 오기까지 우리 민족은 쉬지 않고 일제와 싸웠다. 해방의 그날은 우연히 주어진 게 아니라 우리 민족의 피땀 어린 저항에 연합국의 승리가 더해져 이룩한 결실이었다.

3.1독립만세 이후 결성된 항일독립군의 봉오동전투(1920년), 청산리전투(1920년), 1930년대 들어 조선인민혁명군의 무송현성전투(1936년), 보천보전투(1937년), 간삼봉전투(1937년), 륙과송전투(1939년) 등 항일무장투쟁을 이어갔다.

특히 1945년 8월 9일 소련이 일본에 선전포고하고 조선인민혁명군은 조국해방을 위한 총공격이 개시했다. 8월 9일 경흥요새 돌파전투, 훈흉 해방전투를 비롯해 웅기 해방작전, 나진지구 해방작전, 창진지구 해방작전 등 국내 진공 작전은 반일 전민항쟁의 불길과 함께 타올랐다.

당시 소련군과 조선인민혁명군이 한반도에 진격하자, 미군도 이에 질세라 한반도 진출을 계획했다. 더는 버틸 수 없게 된 일본은 8월 15일 항복을 선언했다.

만일 소련과 조선인민혁명군의 진격이 없었다면 ‘조선사수론’(조선을 끝까지 식민지로 남겨 두려는 일제의 종전협상 카드)을 주장했던 일본이 과연 한반도에서 철군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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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 정면 비판, '정치적 결별' 선언…윤핵관에 '열세 지역 총선 출마' 요구하며 도발도

최용락 기자  |  기사입력 2022.08.13. 18:15:59 최종수정 2022.08.13. 19:03:29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자신을 '내부 총질 당 대표'로 표현한 윤석열 대통령을 강하게 비판하며 정치적으로 갈라서겠다는 뜻을 보였다. 자신의 대표직 박탈과 당 비상대책위원회 출범에 대해서는 "황당한 발상"이라며 직접 제기한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이 기각돼도 향후 자신의 입장이나 행동에 변화는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이 대표는 윤 대통령을 비판하며 "대선 때 양머리를 쓰고 개고기를 판 건 나였다"며 윤 대통령을 '개고기'에 빗대거나, "'윤핵관'들은 열세 지역구에 출마할 용기가 있나" 같은 도발적 표현을 쏟아내 눈길을 끌었다.

이 대표는 13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통령이 원내대표에게 보낸 어떤 메시지가 국민의 손가락질을 받는다면 그건 당의 위기가 아닌 대통령의 지도력 위기"라며 "보통 어느 정권이나 국민들은 대통령에 대한 상당한 존경심을 갖고 정치를 바라보고 직선제 대통령은 상당한 권위를 갖기 때문에 대통령 지지율이 정당 지지율을 견인하는 상황이 많이 나오는데 7월 초를 기점으로 정당 지지율보다 국정 지지율이 낮다면 (대통령의) 리더쉽 위기"라고 윤 대통령을 정면 겨냥했다. 

이 대표가 말한 '메시지'는 윤 대통령이 권성동 원내대표에게 보낸 "우리당도 잘하네요. 계속 이렇게 해야", "내부 총질이나 하던 당 대표가 바뀌니 달라졌습니다"라는 텔레그램 메시지를 뜻한다. 

이 대표는 '내부 총질' 문자 노출 이후 국민의힘이 상임전국위원회를 열어 현 상황을 비대위 출범이 가능한 '비상' 상황으로 규정하고 비대위 전환을 결의한 것이 "반민주적"이라는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고 밝혔다. 

그는 "(내부 총질) 문자는 '당이 잘 돌아간다'며 (윤 대통령이) 치하하는 내용과 '더 열심히 노력하겠다'는 권 원내대표의 다짐이었다"며 "그럼에도 대통령실에서 비대위 전환 의견을 당 지도부에 전했다는 한 언론사 보도와 함께 그 다음날부터 갑자기 당 내에서 '비상상황'을 만들기 위해 동분서주했다"고 말했다. 

그는 "문제되는 메시지를 대통령이 보내고 원내대표의 부주의로 그 메시지가 노출됐는데 그들이 내린 결론이 당 대표를 쫓아내는 일사불란한 절차를 진행하는 것이었다면 이는 공정하지도 정의롭지도 않은 판단"이라며 "'비상상황'을 주장하면서 당의 지도체제를 무너뜨린다는 생각은 그 자체로 황당한 발상"이라고 말했다. 

'비대위 전환 효력 정지 가처분 신청'을 낸 과정에 대해 그는 "길게 고민하지 않았다"고 밝힌 뒤 "비대위 전환 의도는 반민주적이었고 모든 과정은 절대반지에 눈이 돌아간 사람들의 의중에 따라 진행됐다. 당이 한 사람을 몰아내기 위해 몇 달 동안 위인설법을 통해 당헌당규를 누더기로 만드는 과정은 정치사에 안 좋은 선례를 남겼다"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가처분 신청이 당의 혼란을 가중시킬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해 그는 "그걸 알면 어쩌자고 이런 큰 일을 벌이고 후폭풍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나"라고 오히려 자신에 대한 윤리위 징계와 비대위 전환을 추진한 측이 이 상황을 책임져야 한다고 반박했다. 그는 "익명으로 지르는 문화에 익숙해져서 '사고는 내가 쳐도 책임은 내가 지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저지른 일이냐"고 했다. 

'가처분 신청이 기각될 경우 어떤 행동을 할 것이냐'는 질문에 그는 "기각돼도 (행동이) 달라질 건 없다"고 답했다. 이어 그는 "'윤핵관'은 정당 경영 능력도 국가 경영 능력도 없는 사람들이라 그들만의 희생양을 찾아 나설 것"이라며 "선거가 임박하면 할수록 그 희생양의 범주를 넓혀서 떠받든 사람마저 희생양 삼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그는 "가처분 신청 결과는, 법원이 절차적 민주주의를 지켜내기 위한 결단을 해줄 것이라고 믿고 기대한다"고 밝혔다. 

 

 

"양두구육, 저에 대한 자책감·질책…대선 때 내가 뭘 팔았던가 깊은 자괴감"

이 대표는 지난 대선에서 승리를 위해 선당후사(先堂後私)의 심정으로 뛰었지만 돌아온 것은 푸대접이었다며 거친 말로 윤 대통령과 그 측근들을 비판, 정권과의 본격적인 대립을 예고했다. 

이 대표는 "비대위 출범에 대해 가처분 신청을 하겠다고 하니 갑자기 '선당후사하라는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며 "일련의 상황을 보며 제가 뱉어낸 양두구육(羊頭狗肉)이란 탄식은 사실은 저에 대한 자책감 섞인 질책이었다"고 했다.

그는 "돌이켜보면 양의 머리를 흔들면서 개고기를 가장 열심히, 잘 판 사람은 바로 저였다"며 "선거 과정 중 그 자괴감에 몇 번이나 (윤 대통령을) 뿌리치고 연을 끊고 싶던 적도 있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이어 "'내부 총질'이라는 표현을 볼 때 어떤 생각도 들지 않았다"며 "'올 것이 왔다'는 생각과 함께, 양 머리를 걸고 무엇을 팔았는지 깊은 자괴감이 들었다"고 했다. 

이 대표는 "대통령 선거와 지방선거를 겪는 과정에서, 여럿이 모인 자리에서 누차 그들(윤 대통령과 윤핵관)이 저를 '그 새끼'라고 부른다는 표현을 전해 들으면서 '그래도 선거 승리를 위해 내가 참아야지'라고 참을 인(忍) 자를 새기면서 발이 부르트도록 뛰고 목이 쉰 경험이 떠오른다"며 "저에게 선당후사를 이야기하는 분들은 매우 가혹한 거다. 대선 과정 내내 한쪽에서는 저에 대해 이 새끼, 저 새끼 하는 사람을 대통령으로 만들려 당 대표로 열심히 뛴 쓰린 마음이 그들이 입으로 말하는 선당후사보다 훨씬 더 아린 선당후사"라고 주장했다. 

자신이 윤 대통령과 갈라선 결정적 계기는 역시 '내부 총질' 문자 사건이라고 그는 말했다. 이 대표는 "저는 '체리 따봉' 못 받아봤다. 단 한 번도 받아본 적 없다"고 농담을 건넨 뒤 "(내부 총질 문자로 드러난 대통령의 모습이) 적어도 제가 바라던 많은 국민이 표를 던지며 상상한 대통령의 모습은 아니었을 거"라고 했다. 

그는 "저는 도어스테핑하면서 대통령이 하신 말씀들 다 진실이었을 거라고 생각했고, '대통령이시기 때문에 당의 혼란 속에서도 절제된 표현과 입장을 계속 보이셨구나'하는 인식을 갖고 있었는데 아무리 사적으로 주고 받은 텔레그램이라 할지라도 이면에 다른 생각이 있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 대표가 말한 "절제된 표현과 입장"은 윤 대통령이 '당무 개입을 하지 않겠다'던 입장으로 보인다. 

'앞으로 대통령을 만날 생각이 있냐'는 질문에도 이 대표는 "만날 이유가 없다. 대통령을 만날 이유가 없을 뿐더러 대통령과 풀 것이 없다"며 "(내부 총질 문자로) 대통령실이 어떤 의도를 갖고 있고 어떤 생각인지 명확하게 알았기 때문에 더 이상 자질구레한 사안에 대해 의견을 나눌 생각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윤핵관' 우세 지역구에서 의원직 유지만 관심…열세 지역구 출마 용기 있나" 

이 대표는 이른바 '윤핵관'들을 향해서도 '당이 우세한 지역구에서 의원직을 유지하는데만 혈안이 돼 있는 정치인'이라고 날을 세우며 "열세 지역에 출마할 용기가 있느냐"고 몰아붙였다. 

이 대표는 먼저 "이 정권의 위기는 '윤핵관'이 바라는 것과 대통령이 바라는 것과 많은 당원과 국민이 바라는 게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당과 민심 괴리의 원인으로는 '윤핵관'의 '재선 욕심'을 꼽았다. 그는 "'윤핵관'이 우리 당 우세 지역구에서 당선된 사람들이라는 건 우연이 아니"라며 "윤핵관이 꿈꾸는 세상은 당이 선거에서 이기고 국정동력을 얻어서 가치를 실현하는 방향이 아니다. 본인들이 우세 지역구에서 다시 공천받는 세상을 이상향으로 그리는 것 같다"고 주장했다.

이 대표는 "권성동, 이철규, 장제원 의원 같은 윤핵관들, 정진석, 김정재, 박수영 의원 같은 '윤핵관' 호소인들은 윤석열 정부의 총선 승리에 일조하기 위해 열세 지역구 출마를 선언하라"며 "그 용기를 내지 못한다면 여러분은 절대 오세훈과 붙겠다는 결심을 한 정세균, 황교안과 맞붙을 결단을 한 이낙연을 넘어설 수 없다. 여러분은 그저 호가호위(狐假虎威)하는 '윤핵관'으로 남을 것"이라고 했다. 

이 대표는 "호가호위한다고 지목받는 '윤핵관'과 '윤핵관' 호소인들이 열세 지역구 출마를 선언하면 저는 '윤핵관'과 같은 방향을 향해 손 잡고 뛸지도 모른다. 수도권의 성난 민심을 함께 느끼면서 같은 고민을 하게 된다면 동지가 될 수도 있다"며 "하지만 국민 모두가 알듯 '윤핵관'들이 그런 선택을 할 리가 만무한 이상 저는 그들과 끝까지 싸울 것이고 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방식으로 싸울 것"이라고 말했다. 

尹과 결별한 '이준석 정치' 노선은 '자유주의'?…"조직에 충성하는 국민의힘 불태워야"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이 대표는 "이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앞으로 할 수 있는 역할을 모두 할 생각"이라며 "다음 주부터 더 많은 당원이 활동할 수 있는 온라인 소통 공간을 제가 직접 키보드 잡고 프로그래머로 뛰며 만들겠다. 지난 한 달 전국을 돌며 저녁에 당원을 만나고 나머지 시간에는 당의 개혁과 혁신을 위한 방안을 담아내기 위해 써내려가던 당의 혁신 방향에 관한 책도 탈고를 앞두고 있다"고 밝혔다. 

당 혁신 방향으로는 '자유주의'를 제시했다. 그는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 국민의힘을 넘어서 조직에 충성하는 국민의힘도 불태워야 한다"며 "오로지 자유와 인권의 가치에 충실한 국민의힘이 돼야 한다. 보수정당이 지금까지 가져온 민족주의적이고 전체주의적인 계획경제를 숭상하는 파시스스트적 세계관은 버려야 할 때"라고 주장했다.

다만 이 대표는 당 혁신 방향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정권은) '여가부 폐지' 정도의 나팔만 불면 젊은 세대가 그들을 형해 다시 지지를 보낼 것이라는 착각에 똑같은 실수를 반복할 거다. 최근 여당과 정부에 대한 지지가 급전직하한 것은 여가부를 폐지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아젠다를 발굴하고 공론화하는 능력을 상실했기 때문"이라고 하는 등 여전히 여성부 폐지 입장을 고수하며 '반(反)페미니즘'이라는 인식의 한계를 보였다.  

지난 4일자 <중앙일보>는 윤 대통령 취임식날 이 대표와 오찬 회동을 한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이 "당분간 미국에 가서 공부를 하고 오는 것이 좋겠다"며 "학부를 공학(하버드대 컴퓨터과학과)을 했으니 이번에 미국에 가서는 사회과학을 공부하는 게 어떠냐"고 조언했다고 보도하기도 했었다.

최용락

내 집은 아니어도 되니 이사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집, 잘릴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충분한 문화생활을 할 수 있는 임금과 여가를 보장하는 직장, 아니라고 생각하는 일에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나, 모든 사람이 이 정도쯤이야 쉽게 이루고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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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조 물 속에서 자라는 벼... 이 쌀 먹을 수 있겠습니까

[현장] 낙동강 지천 뒤덮은 녹조... 치명적 '녹조 독' 우려 큰 농작물 어쩌나

22.08.13 18:40l최종 업데이트 22.08.13 18:40l
대구 달성군 구지면에서 낙동강과 만나는 지천 응암천에 퍼진 심각한 녹조. 역한 냄새와 함께 녹조가 마치 유화를 그리고 있다.
▲  대구 달성군 구지면에서 낙동강과 만나는 지천 응암천에 퍼진 심각한 녹조. 역한 냄새와 함께 녹조가 마치 유화를 그리고 있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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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일 오전 9시 낙동강 현장을 다시 찾았다. 모 언론사와 동행했다. 달성군 구지면의 아름다운 정자인 이노정 앞 낙동강이다. 멀리서부터 역한 냄새가 올라온다. 이날 오전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녹조는 사라지지 않았다.

이곳은 낙동강의 작은 지천인 응암천과 낙동강이 만나는 바로 합수부다. 그 합수부 안쪽으로 심각한 녹조가 발생해 있었던 것이다. 비탈길을 따라 강으로 내려갔다. 조금 상류로 들어갈수록 녹조는 더 심했다. 녹조 곤죽이었다. 녹조 특유의 썩은 시궁창 냄새가 올라왔다. 참기가 어려웠다. 동행한 언론사 분들도 힘겨움을 호소해왔다.

흐리고 비마저 내리는 날에도 녹조 곤죽을 보게 될 줄을 몰랐다. 그만큼 낙동강 녹조가 심각하다. 강 안으로 들어가니 바닥은 물껑물껑한 펄이다. 발을 한발 내딛기 어려울 만큼 발이 숙숙 빠졌다. 삽으로 뻘을 한 삽 펐다. 지독한 냄새와 함께 검게 변한 썩은 펄이 올라왔다. 그 안에는 어김없이 실지렁이가 나왔다.

녹조 곤죽의 이노정 앞 낙동강... 썩은 펄과 실지렁이 나와
 

유화를 그리고 있는 낙동강 지천 응암천의 심각한 녹조. 저 강 안에는 발이 푹푹 빠지는 썩은 펄로 뒤덮여 있고 그 안에서 실지렁이가 나왔다.
▲  유화를 그리고 있는 낙동강 지천 응암천의 심각한 녹조. 저 강 안에는 발이 푹푹 빠지는 썩은 펄로 뒤덮여 있고 그 안에서 실지렁이가 나왔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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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이 지금 낙동강의 바닥 상황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현장이다. 낙동강이 흐르지 않자 강 속의 유기물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서서히 가라앉고 그것들이 바닥에 차곡차곡 쌓이면서 썩어간다. 그것들이 쌓이고 쌓여 지금과 같은 썩은 펄이 되는 것이다. 그곳엔 과거 낙동강 바닥에 살았던, 오직 시궁창에나 사는 수질 4급수 지표생물인 실지렁이와 붉은깔따구만 살고 있다.

2급수여야 할 낙동강이 4급수로 전락했다는 것은 이들의 존재로 확인할 수 있다. 이들이 환경부 지정 4급수 공식 지표생물들이기 때문이다. 저 낙동강 하구 본포취수장에서부터 맨 상류 상주보까지 이들 4급수 지표생물이 강바닥을 점령했다.

흐르는 낙동강, 녹조도 따라 흘러간다

응암천을 나와 낙동강을 따라 내려갔다. 농업용수를 취수하는 낙동강의 많은 양수장 중의 하나인 대암양수장으로 들어갔다. 대암양수장 관리인의 안내로 낙동강물을 취수하는 취수구 앞에 섰다. 아, 그런데 강이 흐르고 있다. 강 표면에 강하게 피어있던 녹조 띠가 강물과 함께 마구 흘러간다.
 

▲ 녹조와 함께 흐르는 낙동강
ⓒ 정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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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모습은 정말 오랜만이다. 확인해보니 경북 봉화나 영주 등 경북 북부지역에 비가 많이 내려서 낙동강 상류로부터 유입 수량이 많아지자, 8개 보를 일제히 열어 그만큼 물을 하류로 내려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이른바 수문개방이 이루어진 것이다. 그렇게 낙동강 보의 수문을 열자 강물이 힘차게 흘러 내려가고 흘러가면서 녹조를 함께 하류로 내려보내고 있었다. 이는 다음 들른 현장인 합천창녕보에서도 확인을 한 사실이다. 합천창녕보는 세 개의 수문을 모두 열고 강물을 하류로 내려보내고 있었다. 녹조가 강물과 함께 하류로 떠내려가는 모습이 그대로 포착된다.


그래서인지 대암양수장 취수구는 한여름 내내 뒤덮여있었던 녹조가 사라지고 없다. 실로 오랜만에 보는 정상적인 모습의 대암양수장이다. 그런데 이미 양수장을 통해 올라온 녹조가 선명한 낙동강물은 인근 논으로 다 들어간 상태다. 녹조 물이 그대로 논으로 들어간 것이다. 논 안에서 녹조가 무럭무럭 자라고 있는 그 현장을 찾아봤다.

녹조로 무럭무럭 자라는 논의 벼

경남 합천군 덕곡면의 한 들판에서 그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얼핏 보면 개구리밥으로 착각이 들 정도로 초록색 녹조덩이가 논 전체를 뒤덮었다. 녹조 물이 들어간 논에서 벼들이 자라고 있는 그로테스크한 모습을 이곳에서 확인했다.
 
경남 합천군 덕곡면의 한 논. 논에서 심각한 녹조가 창궐했다. 낙동강물을 농업용수로 공급받고 있기 때문이다.
▲  경남 합천군 덕곡면의 한 논. 논에서 심각한 녹조가 창궐했다. 낙동강물을 농업용수로 공급받고 있기 때문이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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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녹조는 독이 있다는 것이다. 그것도 발암성까지 가지고 있는, 청산가리 100배 수준라는 치명적인 독이 녹조에 들어있고 그 독은 생물농축 과정을 통해 벼를 통해 나락으로까지 들어간다는 것이 최근 확인된 사실이다.

대구환경운동연합은 지난해 가을 수확한 낙동강 주변에서 생산한 쌀에서 녹조 독인 마이크로시스틴이 1킬로그램당 3.18마이크로그램이 들어있다는 사실을 부경대 이승준 교수팀과 함께 밝혀내고, 그 사실을 올해 초 언론을 통해 폭로한 바 있다.

이렇게 되면 낙동강 주변에서 낙동강 물로 재배한 모든 농산물에서 녹조 독이 검출될 수 있다는 소리다. 실제로 배추와 무, 상추에서는 녹조 독이 검출된 사실을 확인했다. 낙동강 주변에는 쌀을 비롯한 상당히 많은 채소류들이 생산된다. 그 쌀과 채소는 전국으로 유통되고 있다. 전 국민이 위험한 밥상을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인 것이다.
 
경남 양산에서 낙동강과 만나는 작은 지천인 화제천의 심각한 녹조. 유화를 그리고 있는 듯한 심각한 녹조가 발생했고 이 물이 농업용수로 공급되고 있다.
▲  경남 양산에서 낙동강과 만나는 작은 지천인 화제천의 심각한 녹조. 유화를 그리고 있는 듯한 심각한 녹조가 발생했고 이 물이 농업용수로 공급되고 있다.
ⓒ 임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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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시각 경남 양산에서도 비슷한 현장이 목격됐다. 이날 낙동강네크워크 임희자 집행위원장은 양산의 한 수로와 논으로 녹조 강물이 그대로 들어가고 있는 현장을 목격하고 그 사실을 필자에게 통보해 왔다.

녹조 곤죽의 농업용수가 들어가고 있는 경남 양산 원동들

문제의 양수장에선 이노정 앞 응암천에서 본 것보다 더 짙은 녹조가 발생했다. 그 녹색 물이 수로를 통해 논으로 유입되는 현장을 목격했다. 경남 양산의 원동들이 문제의 논이고 이 논으로 물을 대는 곳이 낙동강과 지천인 화제천이 만나는 곳에 위치한 양산화제양배수장이다.

이곳에서 취수한 녹조 물이 수로를 통해 원동들의 논으로 유입된다. 부경대 이승준 교수는 녹조 독의 10%까지 작물에 들어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원동들로 강물을 공급하는 수로에 녹조가 가득하다. 이런 물로 주변 논의 벼들이 자라고 있다.
▲  원동들로 강물을 공급하는 수로에 녹조가 가득하다. 이런 물로 주변 논의 벼들이 자라고 있다.
ⓒ 임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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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동들의 상황은 매우 심각해 보인다. 이를 직접 현장에서 목격하고 그 대책을 고민하고 있는 임희자 집행위원장은 다음과 같이 문제의 원인과 대책을 내놓고 있다.

"양산 원동들 논밭의 녹조 문제는 강물의 흐름을 막고 지천 오염원을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낙동강오염총량제와 낙동강 유역종합관리대책의 실패로 보인다. 이곳은 하굿둑으로 막힌 상시적 녹조 발생 구간이다. 또, 화제천 상류에 있는 축사 등으로부터 오염원이 계속해서 유입되고, 양수장 취수 지점이 낙동강 본류와 지천에 만나는 정체 수역으로 녹조가 발생하기 유리한 지형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선 낙동강 하굿둣을 상시 개방하고, 상류 보들 또한 수문을 상시 개방해서 낙동강이 계속 흐르도록 유지해야 한다. 그래야 낙동강 녹조 문제를 잡을 수 있다. 그리고 향후 원동들에서 생산한 쌀과 채소는 전량 국가가 수매해서 폐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녹조의 영향을 받은 농산물을 그대로 판매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현장을 지켜본 활동가들의 공통된 견해였다. 그러나 비단 원동들만의 문제가 아닌 것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낙동강을 따라 있는 8개 보에서 뻗은 양수장에서 농업용수를 공급받고 있는 경상도 지역 낙동강 유역의 모든 논밭에서 이와 같은 일이 일어나고 있다.
 
원동들의 한 논. 논에 심각한 녹조가 창궐해 있다.
▲  원동들의 한 논. 논에 심각한 녹조가 창궐해 있다.
ⓒ 임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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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농작물은 전국으로 팔려나가고 있다. 이쯤 되면 이는 경상도만의 문제가 아니다. 전국의 시민들이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하는 이유다. 문제 해결에 대한 강력한 전국적 여론이 모아질 때 작금의 녹조 문제는 해결되리라 본다.

아기 고라니의 죽음이 말하는 것

임희자 집행위원장은 원동들의 한 수로에서 죽어가고 있는 아기 고라니의 모습도 전달했다. 낙동강 주변 야생동물들의 죽음 현황과 역학조사도 시급히 이루어져야 할 문제로 보인다. 이처럼 낙동강 녹조는 우리 인간들뿐만 아니라 동물들에게도 심각한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
   
해결책은 의외로 간단하다. 낙동강 8개 보와 하굿둑을 상시개방하는 것이다. 낙동강이 상시적으로 흐르는 강이 될 때 비로소 낙동강 녹조 문제는 해결된다. 그래야 녹조 독의 공포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그러므로 어서 보의 수문을 열어야 한다. 그래야 강이 살고 생태계가 살고 우리 인간이 살 수 있다.
 
경남 김해 원동들 수로 옆에서 녹조 독으로 인해 죽어가고 있는 아기 고라니.
▲  경남 김해 원동들 수로 옆에서 녹조 독으로 인해 죽어가고 있는 아기 고라니.
ⓒ 임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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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기자는 대구환경운동연합 생태보존국장으로 지난 15년간 낙동강을 취재해오고 있습니다. 낙동강은 낙동강 보가 만들어진 지난 10년 동안 녹조로 몸살을 앓아왔습니다 . 녹조는 강의 죽음을 넘어 이제 인간 생존까지 위협하고 있습니다. 하루빨리 녹조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하루빨리 낙동강 보 전면 개방이 그 해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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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대결을 멈추라!”

1만여명, 숭례문 앞서 ‘광복 77주년 자주평화통일대회’

  • 기자명 이광길 기자 
  •  
  •  입력 2022.08.13 16:51
  •  
  •  수정 2022.08.13 17:58
  •  
  •  댓글 0
 
13일 오후 서울 숭례문 앞에서 '광복 77주년 자주평화통일대회'가 열렸다. [사진-통일뉴스 이광길 기자]
13일 오후 서울 숭례문 앞에서 '광복 77주년 자주평화통일대회'가 열렸다. [사진-통일뉴스 이광길 기자]

“전쟁을 부르는 대결정책 중단하라!”
“한미일 군사협력 반대한다!”

비가 내리는 가운데, 13일 오후 서울 중구 숭례문 앞에서 서울역에 이르는 도로를 가득 메운 1만여명이 소리 높여 외쳤다.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시민평화포럼, 한국YMCA전국연맹과 한국노총, 민주노총, 정의기억연대, 민족문제연구소 등 100여개 시민사회단체들이 결집한 ‘광복 77주년 8.15자주평화통일대회 추진위원회’가 개최한 ‘자주통일대회’를 통해서다. 

김삼열 상임대표 등이 개회를 [사진-통일뉴스 이광길 기자]
김삼열 상임대표 등이 개회를 선언했다. [사진-통일뉴스 이광길 기자]

김삼열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상임대표와 윤정숙 시민평화포럼 공동대표, 김태성 한국종교인평화회의 사무총장,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의 개회선언에 이어 이홍정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총무와 이나영 일본군성노예문제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연대 이사장이 발언에 나섰다.

이홍정 총무는 “2018년 판문점 선언과 평양선언, 싱가포르 선언에서 확인된 남북미 정상들의 평화 의지는 미·중 패권경쟁 구도 속에 자리잡은 인도태평양전략으로 빛을 잃어가고 있다”고 개탄했다. 

“북조선의 완전한 비핵화”는 목표가 아니라 평화를 이룩하기 위한 과정에서 함께 또는 그에 따라 오는 결과라며, 전쟁을 부르는 대결정책을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나아가 ‘정전협정 70주년’인 2023년에는 종전을 선언하고 평화협정을 체결하자고 호소했다.

이나영 이사장은 광복 77주년이 다가오지만 일본의 가해자들은 “강제동원과 일본군 성노예제 피해자들을 모욕하고”, 한반도의 긴장을 빌미로 일본의 재무장과 한미일 군사협력을 획책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윤석열 정부는 강제동원과 일본군 성노예제 피해자들 편에서 ‘과거사 문제’를 풀어가기 보다 “최소한의 자존심마저 내버린 채 굴종외교, 자해외교로 일관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날 대회에는 전국 곳곳에서 상경한 1만여명이 참석했다. [사진-통일뉴스 이광길 기자]
이날 대회에는 전국 곳곳에서 상경한 1만여명이 참석했다. [사진-통일뉴스 이광길 기자]

사회자인 정종성 6.15청년학생본부 상임대표가 6.15공동선언실천 북측위원회, 해외측위원회에서 각각 연대사를 보내왔다고 알렸다.

타카피 밴드 공연에 이어 박만규 흥사단 이사장, 이장희 불평등한 한미SOFA개정 국민연대 상임대표, 양옥희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회장, 이태형 조국통일범민족연합남측본부 의장, 조성우 겨레하나 이사장, 최인기 빈민해방실천연대 수석부위원장, 윤희숙 진보당 상임대표, 하원오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  김경민 한국YMCA전국연맹 사무총장, 박석운 전국민중행동 공동대표가 ‘결의문’을 낭독했다.

이들은 “적대 행위와 군사 위협이 새로운 군사행동을 낳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상대방을 말살시키겠다는 군사 위협과 경제압박으로는 평화를 지킬 수 없다”면서 “적대행위와 군사 위협을 당장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한미연합군사연습 중단과 즉각 대화 재개, △남북, 북미공동선언 이행, △70년 이어진 전쟁 끝내고 평화협정 체결, △한반도 전쟁기지화 미군기지 확장 반대, △대일 굴욕외교 중단과 한일역사정의 실현, △일본 평화헌법 개정 반대와 한미일 군사협력 중단을 요구했다.

자주평화통일대회에 앞서 전국노동자대회가 열렸다. [사진-통일뉴스 이광길 기자]
자주평화통일대회에 앞서 전국노동자대회가 열렸다. [사진-통일뉴스 이광길 기자]

이날 대회는 같은 장소에서 먼저 열린 민주노총 주최 ‘8.15전국노동자대회’가 다소 길어지면서 예정보다 15분 가량 늦은 오후 2시 45분께 시작됐다. 

약 30분 간의 대회를 마친 참가자들은 서울역을 거쳐 대통령 집무실이 있는 용산까지 행진했다. 서울 시민과 함께 용산 집무실을 향해 “전쟁과 대결을 멈추라!”는 요구를 전달하기 위해서다. 
 

[사진-통일뉴스 이광길 기자]
[사진-통일뉴스 이광길 기자]

 

<결의문(전문)>

 

전쟁의 소용돌이에 전 세계가 영향을 받는 가운데, 한반도와 동아시아 역시 첨예한 군사적 대결상태가 이어지고 있다. 남북 대화와 북미협상은 모두 중단되었고, 신임 정부는 시작부터 북을 ‘적’으로 규정하며 한미연합군사연습을 확대하는 등 강경 대결정책에 몰두하고 있다. 

한 세기 전, 세계를 휩쓴 제국주의 침략 정책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사이 우리는 주권을 상실하였고, 광복을 이루기까지 온 겨레가 겪은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오늘날 진영간 대결을 부추기는 미국의 패권정책을 쫓아 대중국, 대북 압박에 몰두하다가는 전쟁 위기를 키우고 이 땅의 평화와 주권을 더욱 위태롭게 할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이 위기의 시기, 깨어있는 시민, 단결한 민중의 힘으로 적대와 대결을 넘어 이 땅의 자주와 평화, 남북의 화해와 협력을 실현하고 말겠다는 의지를 담아, 오늘 우리는 자주평화통일대회를 열고 각계의 뜻을 모아 아래와 같이 선언한다. 

1. 적대 행위와 군사 위협이 새로운 군사행동을 낳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상대방을 말살시키겠다는 군사 위협과 경제압박으로는 평화를 지킬 수 없다. 적대행위와 군사 위협을 당장 중단하라! 

2. 압도적 화력으로 상대방 진영을 초토화하고 점령하는 내용의 한미연합군사연습은 한반도 긴장을 격화시키는 주범이다. 
한미 정부는 16일 실시되는 한미연합군사연습을 중단하고 대화에 즉각 나서라! 

3. 평화와 통일로 가는 남북의 이정표는 남북공동선언의 합의에 있으며, 북미관계의 정상화 역시 2018년 북미공동성명의 이행에서 출발해야 한다. 
남북, 북미공동선언 이행하라!

4. 이 땅에 뿌리박힌 전쟁과 분단체제는  평화와 민주주의, 생존권을 계속 위협해 왔다. 70년 가까이 이어진 한반도 전쟁을 이제는 끝내고 평화협정을 체결하라! 

5. 미국은 한반도를 대중국 압박의 전초기지로 삼으려 하면서, 성주와 제주, 군산과 부산, 포항과 동두천 등 이 땅 곳곳을 기지와 훈련장으로 새로이 요구하고 있다. 
한반도 전쟁기지화 미군기지 확장 반대한다!

6. 윤석열 정부는 강제 동원 문제,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과 역사정의 회복을 외면한 채, 한일관계 개선을 졸속으로 추진하며 대일 굴욕외교로 일관하고 있다. 대일 굴욕외교 중단하고, 한일역사정의 실현하라!

7. 일본의 군사대국화와 평화헌법 개정은 동아시아 긴장을 한층 격화시키고 있다. 
일본 평화헌법 개정 반대한다! 한미일 군사협력을 중단하라! 

깨어있는 시민, 단결한 민중의 힘으로 자주, 평화, 통일을 이루자! 
민주주의와 생존권, 평화가 실현되는 새로운 시대로 나아가자!

2022년 8월 13일
광복 77주년 8.15자주평화통일대회 추진위원회 

(자료제공-광복77주년 추진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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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들이 ‘광복 77주년 8.15자주평화통일대회’ 포문 열다

2일 밤 용산 전쟁기념관 앞에서 대학생대회 열려

양희원 통신원 | 기사입력 2022/08/12 [2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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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생 통일선봉대가 12일 오후 8시 전쟁기념관 앞에서 ‘8.15 77주년 자주평화통일 대학생대회’를 개최했다.  © 양희원 통신원

 

“한미연합훈련 중단하라!”

“종속적인 한미동맹 파기하라!”

“한·미·일 군사협력 반대한다!”

“대일 굴욕 외교 윤석열 정부 규탄한다!”

 

대학생 통일선봉대, 통일대행진단이 12일 오후 8시 전쟁기념관 앞에서 ‘8.15 77주년 자주평화통일 대학생대회’(아래 대학생대회)를 개최했다.

 

사회는 김수형 한국대학생진보연합(아래 대진연) 상임대표가 맡았다. 

 

김수형 대진연 상임대표는 “자주와 통일의 목소리를 내어온 대학생 단체가 한자리에 모여 뜨거운 공동투쟁의 깃발을 올렸다. 올여름 공동투쟁을 기반으로 자주와 민주, 통일을 지향하는 우리가 더욱 끈끈한 동지가 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라며 대회의 포문을 열었다.

 

 © 양희원 통신원

 

이어 대학생 통선대, 통일대행진단의 활동 보고가 있었다. 

 

먼저 민주주의자주통일대학생협의회(아래 민대협) 통일선봉대가 「쿵따리 통선대」 문예 공연과 발언을 했다. 

 

최진주 민대협 통일선봉대 조장은 “시민들을 만나 대일 굴욕 외교를 하며 강제동원 피해자들을 무시하는 윤석열 정부를 규탄하는 선전전을 하던 중, 노모를 모시고 가던 한 시민분이 자신의 어머니도 강제동원 피해자인데 이렇게 목소리를 내어주어 고맙다며 응원해주었다. 앞으로도 윤석열 정권의 대일 굴욕 행보를 규탄하며, 한반도의 통일을 위한 행동을 하겠다”라고 말했다. 

 

이어 서울·부산 청년진보당(아래 청년진보당) 통일선봉대가 노래 공연과 발언을 했다. 

 

청년진보당 당원은 “유일한 반미자주 정당, 진짜 진보정당이 진보당이라 생각해 함께하게 되었다. 진보당과 함께 세상을 바꾸자 외친다면, 이 정세가 변화할 것이라 믿는다”라고 강조했다. 

 

청년진보당 통일선봉대는 노래 「떠나라」를 제창하고 “자주, 민주, 통일 세상을 건설하자”라고 외쳤다. 

 

▲ 대진연 예술단 ‘빛나는 청춘’의 「투쟁을 멈추리 않으리」 율동 공연.  © 양희원 통신원

 

대학생 겨레하나 통일대행진단은 「질풍가도」 문예 공연과 영상으로 활동 보고를 했다. 부산 백운포 해군기지와 미 8부두, 일본총영사관 앞 기자회견, 연행자 석방 투쟁, 소성리 투쟁, 골령골 답사 등 반미자주와 조국통일을 외친 대학생 겨레하나의 활동이 영상에 담겨있었다.

 

진보대학생넷(아래 진보넷) 자주통일실천단은 김남주 시인의 시 「그 나라에서는 7년 동안」을 낭송했다. 

 

이어 발언에 나선 주예빈 진보넷 자주통일실천단 8조 조장은 “완전하게 해방된 자주, 민주, 통일의 세상이 올 때까지 계속해서 실천하고 투쟁하겠다”라고 다짐했다.

 

대진연 통일대행진단은 보고 발언과 「우리 하나되어」 문예 공연을 했다. 

 

박찬우 대진연 통일대행진단 4조 조장은 “대진연 통일대행진단은 일주일 동안 반노동, 반민생 윤석열 정권을 규탄하는 반윤석열 투쟁을, 우리나라의 주권을 무시하는 부산 일본 영사관과 서울 일본 대사관 앞에서 반일 투쟁을, 전국의 미군기지와 소성리에서 반미투쟁을 했다. 부산 일본 영사관 투쟁에서 느꼈던 연대의 순간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대학생 동지들의 연대 투쟁과 탄원에 참여해 준 시민들의 힘으로 연행자들이 석방될 수 있었다. 우리 모두 탄압을 뚫고 나가는 선봉대가 되자. 이 땅의 자주, 민주, 통일을 위해 끝까지 투쟁하겠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단위 보고에 이어 정종성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청년학생본부((아래 6.15청학본부) 상임대표의 발언이 있었다. 

 

정종성 상임대표는 “8.15 대회의 첫 시작을 대학생 청춘들이 기세 있게 열어냈다. 내일 8.15 대회에서는 오랜만에 남·북·해외의 청년들이 민족자주, 반전평화를 한목소리로 외칠 것이다. 전쟁을 막아내고 기어이 통일로 나아가자”라고 호소했다.

 

▲ 대학생 통일선봉대, 통일대행진단 단장의 발언 모습.  ©양희원 통신원

 

이후로는 전체 참가자들의 「통일선봉대 찬가」 제창과 대학생 통일선봉대, 통일대행진단 단장의 발언이 있었다. 

 

장유진 6.15청학본부 대학생분과 대표는 “언젠가 이 자리에서 300명이 아니라 전국의 모든 대학생이 모였으면 좋겠다. 오늘을 그 시작을 결심하는 자리로 여기자”라고 발언했다.

 

결의문 낭독과 「우리가 하나로」 율동 공연 이후 대학생대회는 마쳤다. 

 

 © 양희원 통신원

 

 © 양희원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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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실 재난 담당 팀장은 휴가…尹대통령 첫 지시는 밤 11시 40분"

대통령실 "국정상황실장은 휴가 안가…이미 9시 17분에 총리가 지시한 바 있어"

이명선 기자  |  기사입력 2022.08.13. 10:52:32

 

서울에 폭우가 쏟아져 수해가 난 상황에서 대통령실 국정상황실 재난 대응 담당 팀장이 휴가중이었다는 보도가 나왔다.

13일 <SBS> 보도에 따르면 기상청이 국회에 제출한 문건을 토대로 복기했을 때 대통령에게 폭우 관련 방재 대책 필요성을 보고한 것은 폭우 하루 전날인 지난 7일 오전 11시였다. 이후 8일 오후 수도권 일대 집중 호우가 시작됐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저녁 7시 반에 비상 1단계를 발행한 후 1시간 반 만에 비상 2단계로 격상했다.

관련해 이 매체는 "하지만 당시 대통령실 국정상황실에서 재난 대응을 담당하는 팀장은 휴가 중이었고, 대통령에게 호우 상황 보고도 제대로 이뤄지지 못해, 윤석열 대통령은 퇴근길에야 상황의 심각성을 파악한 걸로 전해졌다"고 보도했다. 이후 "위험지역 주민 사전 대피 등 각별한 대책을 강구하라"는 등의 대통령 최초 긴급 지시는 밤 11시 40분에 전달됐다고 한다. 

윤 대통령은 실제로 9일 출근한 후 수해 현장을 찾은 자리에서 "제가 퇴근하면서 보니까 벌써 다른 아파트들이, 아래쪽에 있는 아파트들은 침수가 시작됐더라고"라고 말한 바 있다. 

이같은 보도와 관련해 대통령실은 "대통령실의 재난 책임자는 국정상황실장으로, 실장은 휴가를 가지 않았다"며 "실무자인 팀장 한 명이 휴가를 갔다고 상황 파악을 제대로 못 했다는 보도 내용은 명백한 허위"라고 반박했다.

또 대통령의 첫 지시가 밤 11시 40분에 이뤄졌다는 데 대해서도 "악의적 왜곡"이라며 "이미 대변인실 브리핑을 통해 밝힌 대로 그날 오후 9시 17분 국무총리가 재난 담당 부처에 긴급 지시를 내린 바 있다. 총리와 행정안전부 장관 등이 재난 담당 부처들을 컨트롤하는 상황에서 대통령이 똑같은 지시를 내릴 이유가 없다"고 반박했다.

이어 대통령실은 "밤 11시 40분 대통령의 추가 지시가 나온 것은 대중교통이 침수돼 다음 날 출근 대란이 우려되는 새로운 상황에 대처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라며 "왜곡 보도에 강한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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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베 논란 회피 박민영, 그 '말빨'은 이렇게 써라

[주장] 정치는 '승리'가 중요한 대회 아냐... 맹목적 분노 거두고 포용적 해법 내놓는 정치인 되길

22.08.12 18:56l최종 업데이트 22.08.12 18:56l
지난 1월 28일 서울 여의도의 한 카페에서 열린 'MZ세대라는 거짓말' 북콘서트에서 저자인 박민영 국민의힘 청년보좌역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  지난 1월 28일 서울 여의도의 한 카페에서 열린 "MZ세대라는 거짓말" 북콘서트에서 저자인 박민영 국민의힘 청년보좌역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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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 대통령실 대변인실에서 일하게 된 박민영 국민의힘 대변인이 생각지 못한 암초를 만나 휘청거리고 있다. 일베 논란에 휩싸이며 언론과 정치권에 일일이 해명하느라 진땀을 흘리고 있다. 그는 "계정을 공유한 두 살 터울의 동생이 작성한 것"이라며 일베 관련설을 부인했다.

가족과 계정을 공유한다는 것도 금시초문이려니와, 동생이 일베에서 사용하는 표현을 썼다는 사실을 태연히 밝히는 당당함이 놀라울 따름이다. 아무렴 그가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애꿎은 동생을 걸고넘어지지는 않았겠지만, "(일베에) 들어가본 적도 없다"는 부연 설명을 보니 일베라는 낙인이 무섭긴 무서운 모양이다(관

련 기사 : '용산행' 박민영 "일베 아니지만... 깊게 말씀드리기 어렵다").

전라도 출신을 비하하는 '네다홍'과 고 노무현 대통령의 조롱하는 표현인 '×운지', 기독교를 폄훼하는 '개독' 등의 일베 용어가 그의 계정으로 작성된 커뮤니티 게시글에서 속속 발견된 뒤 벌어진 사달이다. 일베의 영향력은 예년에 견줘 많이 위축됐지만, 온갖 혐오 표현을 양산하며 여전히 활동 중이다. '입에 착착 달라붙는' 일베 용어들은 청년 세대뿐만 아니라 중고등학생 아이들에게도 상당한 소구력을 발휘한다.

현재 언론과 정치권에서 보편적으로 통용되는 일베의 판별 기준은 소셜미디어 등에서 일베 용어를 사용했느냐 여부다. 일베가 극우의 대명사처럼 여겨지는 상황에서 일베라는 낙인은 사회생활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한다. 하물며 대중의 지지를 먹고 사는 정치인들에겐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 '적개심'은 어디서 왔나 해명에도 불구하고 이번 논란은 현란한 말솜씨로 나이 서른에 대통령의 참모 자리에까지 오른 그의 입지전적인 이력에 커다란 오점으로 남게 될 듯하다. 그가 일베 용어를 썼느냐 여부는 이젠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그보단 과거 그가 언론 인터뷰 등에서 쏟아낸 발언들이 다시금 여론의 주목을 받고 있어서다.


지난 5일, 그는 YTN 뉴스 채널에 나와 민주화 세대를 청산해야 할 잔재로 규정했고, 전교조와 민주노총, 시민단체들을 '사회악'의 뿌리로 묘사했다. 그러한 '사회악'들을 뽑아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로 윤석열 대통령에게 투표했다고 덧붙였다. 당시에는 다른 굵직한 사회적 이슈가 많아 별다른 관심을 끌지 못했지만, 이번 논란으로 다시 화제가 되고 있다.

그의 발언으로 인해 민주노총 산하의 전교조 조합원이자, 이러저러한 시민단체에 발을 담그고 있는 난 졸지에 '사회악'으로 낙인찍혔고, 청산해야 할 잔재로 전락했다. 대변인실에서 대통령을 가까이에서 보좌하게 될 테니, 그의 말이 괜한 엄포로만 들리지 않는다. 이런 글을 쓰는 것조차 책잡힐까 싶어 솔직히 두렵다.

과연 그의 민주화 세대를 향한 '적개심'은 어디서 비롯된 걸까. 인간의 속마음을 어찌 알까마는 그의 학창 시절과 정치권에 발을 들여놓는 과정을 통해 어림짐작해볼 수는 있다. 대학을 갓 졸업한 그 또래의 청년 세대에겐 가정과 학교에서의 일상 속 경험이 자신의 정체성 형성에 바탕일 테니 말이다.

그는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검정고시를 통해 명문대에 합격했다. 불우한 가정환경 탓에 10대 시절을 오랫동안 방황했다고 한다. 특히 '박사' 아버지와의 갈등은 그의 보수적 가치관 형성에 큰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지난 3월 <중앙일보>에 쓴 칼럼(<어릴적 여가부 도움받은 청년, 기꺼이 폐지 지지한 이유>)에서 스스로 밝혔듯이, 운동권을 자처하면서도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지도 않고 폭력적이며 권위주의적이었던 아버지를 그는 경멸했다.

그는 아버지를 통해 386 운동권의 위선적 행태를 일찌감치 경험했다. 이후 '내 인생을 살겠다'며 동생들의 학비 조달을 그에게 미룬 어머니에 대한 애증도 포개졌다. 한때 아버지와 이념적 동지였던 그의 어머니는 여성학을 공부하며 홀로서기를 했고, 끝내 이혼소송으로 귀결된 고단했던 학창 시절을 보냈다.

부모의 삶으로부터 세상에 처음 눈뜬 그에게 386 운동권은 '악' 그 자체였다. '꼰대' 아버지가 가정을 지배했듯이, 386 운동권이 지금의 대한민국을 지배하고 있다고 단정했다. 또, 지금 386 운동권들이 보여주고 있는 위선적 행태가 어릴 적 봐온 아버지의 그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칼럼에서 그는 '진보 교육감 자녀의 특목고 입학'과 '귀족노조의 일자리 세습', '진보 성향 국회의원의 기득권 집착' 등을 근거로 내세웠다. 따지고 보면, 이태 전 '조국 사태'로부터 비롯된 것들이다. 당시 민주당 정권을 비롯한 진보 성향의 정치 세력의 도덕적 권위를 일순간에 허물어뜨린 사건으로, 정권 교체의 방아쇠가 됐다는 건 부인하긴 어렵다.

그런데, 그가 386 세대를 '악'으로 단정한 근거들은 386 세대만의 문제로 한정할 수 없을뿐더러 일부의 사례를 확대해석한 일반화의 오류다. 아무리 그들의 위선적인 행태가 혐오스럽다고 해서 '위선 떨지 않고 대놓고 부패를 저지르는' 세력을 옹호하는 건 '홧김에 바람피운다'는 식의 자가당착이다. '오십보백보'라며 다 같은 놈들이라고 눙치는 건 더 나쁜 놈들의 손을 들어주는 짓이다.

그의 언어가 향해야 할 곳 

누군가 부패한 세상을 향해 일갈했다. "위선은 역겹지만, 위선마저 사라진 세상은 야만"이라고. 그가 386 운동권으로 대표되는 민주화 세대의 위선을 질타하며, 공정과 상식이라는 이름으로 군사독재정권의 후예를 자처하는 국민의힘을 대안 세력으로 추켜세우는 건 '정치공학적 선택'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민주화 세대를 청산해야 할 잔재로 여긴다면, 위선을 문제 삼기보다 무능을 지적하는 게 적확하다.

청운의 꿈을 품은 정치인이라면, 진보 교육감이 자녀를 특목고에 보냈다고 발끈하기 전에 그들조차도 무시하지 못하는 고교 서열화 정책에 대한 문제 제기가 우선되어야 한다. 귀족노조의 정규직 세습을 비난하기 전에 비정규직에 대한 극심한 차별 문제에 공감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게 먼저다. 하물며 정치에 대한 환멸을 부추기는 건 제 얼굴에 침 뱉는 격이다.

이른바 '흑화'한 386 운동권의 존재를 부정하진 않는다. 과거 민주화운동의 이력을 종잣돈 삼아 권력과 부를 거머쥔 채 기득권을 누리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민주화 세대를 싸잡아 폄훼해선 곤란하다. 민주화 세대를 한 덩어리로 묶어 이해하려는 건, 마치 청년 세대의 처지와 고민이 같다고 말하는 것처럼 황당하다.

민주화운동에 청춘을 바친 수많은 이들을 향한 미안함과 고마움으로 소액이나마 기부하며 살아가는 평범한 소시민으로서 그에게 충고 한마디 덧붙이고 싶다. 부디 민주화 세대에 대한 맹목적인 분노를 거두길 바란다. '꼰대' 아버지가 386 운동권의 대표일 리도 없으려니와 그들의 위선에 대해선 한때 동지였던 같은 민주화 세대가 더 치를 떨고 있음을 알아주었으면 한다.

아울러, 정치는 말로 하는 것이고, 대변인의 역할 또한 말하는 게 팔 할 일 테지만, 베일 듯한 말의 날을 조금만 무딜 수 있길 바란다. 화려한 말속에 진심을 담아내긴 어려운 법이다. 듣는 이의 마음을 얻어내지 못한다면, 말은 그저 한낱 소음에 불과하다. 그의 말에선 견강부회의 차디찬 논리와 상대를 굴복시키려는 투지만 가득할 뿐 포용적 태도를 전혀 느낄 수 없다.
 
지난 3월 28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국민의힘 중앙당사에서 국민의힘 대변인 선발 토론배틀 ‘2022 나는 국대다’가 열리고 있다.
▲  지난 3월 28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국민의힘 중앙당사에서 국민의힘 대변인 선발 토론배틀 ‘2022 나는 국대다’가 열리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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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자니까, 그는 대학에 진학한 뒤 각종 토론대회의 우승 상금으로 등록금과 생활비를 충당했을 정도로 자타공인 '토론의 달인'이었다. 그가 정치계에 두각을 나타낸 것도 토론배틀 '2022 나는 국대다'에서 우승을 거머쥐며 국민의힘 대변인이 된 직후다. 그에게 토론이란 상대를 제압해야 하는 말의 전쟁터이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지금이야 그렇듯 승부를 봐야 하는 토론은 학교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다. 억지 주장과 말꼬리 잡기가 횡행한다는 이유로 찬반 토론조차 지양하는 추세다. 외람되지만, 이러한 토론 방식의 변화 필요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가 바로 그가 최근 보여준 행태가 아닐까 싶다. 토론은 이기기 위한 게 아니라 상대와의 민주적 소통 행위이자 자신을 성장시키기 위한 수단이다.

그가 몸담게 된 정치는 승부를 봐야 하는 토론대회가 아니다. 정치란 설득하고 조율하고 타협하고 합의하는 일련의 과정일진대, 과거 그의 '말빨' 이력이 발목을 잡게 되지나 않을지 걱정이다. 부디 대변인을 넘어 대통령을 보좌하는 청년 정책통으로서, 큰 정치인을 향한 그의 건승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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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정 김순호 사퇴하고 경찰국 폐지하라”

성균관대민주동문회 등 민주화 운동 단체들 기자회견

  • 기자명 이계환 기자 
  •  
  •  입력 2022.08.12 17:46
  •  
  •  댓글 1
‘밀정 김순호 사퇴! 피해자 사죄 촉구! 공동기자회견’이 12일 오전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열렸다. [사진-통일뉴스 홍인석 통신원]
‘밀정 김순호 사퇴! 피해자 사죄 촉구! 공동기자회견’이 12일 오전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열렸다. [사진-통일뉴스 홍인석 통신원]

“김순호 사퇴와 경찰국 폐지가 이뤄지지 않으면 역사를 과거로 돌리는 일이다.”

김기홍 성균관대민주동문회장은 12일 오전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열린 ‘밀정 김순호 사퇴! 피해자 사죄 촉구! 공동기자회견’에서 여는말을 통해 이같이 규정했다.

김 회장은 “우리는 이 자리에서 세 가지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며 “첫 번째는 경찰국 신설이 헌법을 위반하고 정부조직법을 위반한 것이고, 두 번째는 31년 전 군사독재의 망령이 다시 살아난 것이고, 세 번째는 경찰국 실무 중심에 1989년 인노회 사건 때 프락치 활동으로 의혹을 받고 있는 당사자 김순호 국장이 있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김 회장은 “이명박 정부 때 쇠고기 촛불시위가 일어났다”고 상기시키며 “촛불시위가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김순호는 사퇴하고 경찰국은 폐지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정주 강제징집녹화선도공작진실규명추진위원회 사무처장은 증언발언에 나서 “우리는 강집을 당해 군에서 보안사의 주도로 프락치가 돼 학교, 노동, 정당에 대한 정보 보고를 하라는 녹화 공작을 받았을 때 저항했다”며 회고하고는 “우리는 회유와 폭력이 두려워 소극적 저항이라도 했다. 그러다가 녹화공작에 돌아가신 분도 있었다”며 숙연해 했다.

조 사무처장은 “김순호는 어디에 해당하냐?”고 묻고는 “그는 적극적 지지자다. 보안사 프락치에서 경찰 프락치로 변신한 것 아니냐? 옛 동지의 가슴에 대못 박지 말고 사퇴해야 한다”고 외쳤다.

기자회견이 열린 서울정부청사 전경. [사진-통일뉴스 홍인석 통신원]
기자회견이 열린 서울정부청사 전경. [사진-통일뉴스 홍인석 통신원]

이어, 각계의 연대발언이 이어졌다.

장현일 민족민주열사희생자추모(기념)단체연대회의(추모연대) 의장은 “학생운동, 시민운동, 노동운동을 하다가 운동이 힘들어서 떠나간 동료는 많았다”면서도 “하지만 김순호처럼 함께 일했던 동지를 팔고 그 대가로 승승장구한 인간이 있다는 건 상상하기 어렵다”며 혀를 찼다.

장 의장은 “김순호가 노동운동을 배신하고 정보를 파는 등 프락치 활동을 했다. 당시 넝쿨째 굴러온 호박을 놔두겠는가?”하고 묻고는 “이런 자를 경찰국장으로 세운 윤석열 정부도 문제다”며 일갈했다.

이인숙 서울지역대학민주동문회협의회장은 “일제시대 때도 동지를 판 것은 밀정이나 일본 순사보다 못한 ‘말종’ 취급을 받았다”며 김순호 국장을 ‘말종’에 비유하고는 “정의와 공정을 화두로 하는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이러한 밀정과 고문 경찰의 망령이 경찰국을 통해서 화려하게 부활하고 있는 현실에 대해서 분노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김순호 경찰국 초대 국장의 모교인 성균관대 1학년에 재학 중인 노규원 학생은 “(김순호 씨가) 성대 학생이라는 것이 수치스럽다. 학교 이름을 더럽히지 말고 피해자 앞에 사과하라”고는 “시대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배신자는 우리의 동문이 아니다”며 단호함을 내비쳤다.

김순호 경찰국장의 대학 1년 선배이자 인노회에서 노동운동을 함께 했던 최동 열사의 여동생 최숙희 씨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홍인석 통신원]
김순호 경찰국장의 대학 1년 선배이자 인노회에서 노동운동을 함께 했던 최동 열사의 여동생 최숙희 씨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홍인석 통신원]

특히, 기자회견 말미에 김순호 경찰국장의 대학 1년 선배이자 인천부천민주노동자회(인노회)에서 노동운동을 함께 했던 최동 열사의 여동생 최숙희 씨가 나서자 분위기가 달아올랐다.

최숙희 씨는 “경찰국장이 된 김순호는 최동 오빠가 아끼는 후배였다”고는 “대학생 때 동숭동 집에도 자주 놀러왔다. 장사하러 나가신 어머니를 대신해서 제가 어린 나이에도 밥을 많이 해주었던 사람”이라고 회고했다.

최 씨는 “김순호가 10여년을 한께 했던 오빠는 지금 고인이 되어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왜? 고인이 된 오빠 이름을 거론하며 비겁하게 숨는지, 자신의 과오를 합리화하는지 묻고 싶다”고 제기했다.

최 씨는 “김순호는 오빠 무덤 앞에서 무릎 꿇고 사죄하기를 간절히 요청한다. 억울하게 돌아가신 최동 오빠 49제를 지내고 바로 돌아가신 최동 아버지를 기억하기 바란다”고 울먹이고는 “젊은 시절, 따스한 밥을 해주던 어머니를 생각하기 바란다. 최동 오빠가 돌아가신 후 지금까지 신경안정제로 살아가고 있는, 오열하는 어머니를 떠올려 보시기 바란다”며 절규했다.

참가단체들은 공동성명서에서 △김순호 경찰국장의 사퇴 △밀고로 피해 본 피해자들에게 사죄 △경찰국 해체 등을 요구했다. [사진-통일뉴스 홍인석 통신원]
참가단체들은 공동성명서에서 △김순호 경찰국장의 사퇴 △밀고로 피해 본 피해자들에게 사죄 △경찰국 해체 등을 요구했다. [사진-통일뉴스 홍인석 통신원]

이날 참가단체들은 이창훈 추모연대 집행위원장이 낭독한 공동성명서에서 “노동자들의 권익을 위해 투신한 민주화 운동 동지들을 배신하고 밀고한 자를 경찰국장에 임명한 것에 참담한 마음을 금할 수가 없다”며 “김순호 경찰국장의 사퇴와 밀고로 인해 피해를 당한 피해자들에게 사죄를 촉구한다”고 외쳤다.

이어 이들은 △김순호 경찰국장의 사퇴 △밀고로 피해 본 피해자들에게 사죄 △경찰국 해체 △공작사건의 전모를 밝힐 것과 공작사건 피해자들에 대한 명예회복 등을 요구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참가자들이 최동 열사의 얼굴을 본뜬 가면을 쓰기도 했다. 사회자는 “최동 열사가 광화문광장에서 눈을 부릅뜨고 있다”고 표현했다.

기자회견 후 참가자들은 ‘김순호 사퇴 촉구 요구 서한’을 전달하기 위해 경찰국이 소재해 있는 정부서울청사로 향했다.

언론매체들의 뜨거운 취재열기. [사진-통일뉴스 홍인석 통신원]
언론매체들의 뜨거운 취재열기. [사진-통일뉴스 홍인석 통신원]

이날 기자회견에는 지리한 장마 뒤의 폭염 속에서도 사안의 중대성을 반영하듯 언론매체들의 취재열기가 뜨거웠다.

한편, 오기태 성균관대민주동문회 사무국장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기자회견에는 성균관대민주동문회, 인천부천민주노동자회사건관련자모임, 강제징집녹화·선도공작진실규명추진위원회, 민족민주열사·희생자추모(기념)단체연대회의, 서울지역대학민주동문회협의회, 민주사회를 염원하는 성균관대 재학생 일동이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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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대위 전성시대…리더십은 없고 비상함만 있는 한국 정치

등록 :2022-08-12 09:00수정 :2022-08-12 10:17

 

정치BAR_송채경화의 여의도 레인보우
민주당, 연이은 선거 패배에
국민의힘은 연이은 승리에도
당권·계파싸움 ‘허약성’ 드러내
“보여주기 혁신 관례화 문제
주호영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대회의실로 비대위원장 취임 기자회견을 하기 위해 들어오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주호영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대회의실로 비대위원장 취임 기자회견을 하기 위해 들어오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국민의힘이 지난 9일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전환하면서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까지 원내 정당 3곳 모두 비대위 체제로 운영되는 이례적인 사태를 맞았다. 대통령선거와 지방선거에서 패배한 책임을 지고 지도부가 총사퇴한 민주당·정의당에 이어 두 선거에서 모두 승리한 국민의힘마저 당권 다툼 와중에 비대위 체제로 전환하자 전문가들은 한국 정치가 ‘리더십 붕괴’ 위기를 맞고 있다고 진단했다.
 
국민의힘은 이준석 대표가 ‘성상납 증거 인멸 교사 의혹’으로 당의 중징계를 받은 데 이어, 권성동 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의 ‘내부총질 문자 노출 파문’까지 터져나오면서, 주호영 비대위원장 체제로 전환됐다. 주 위원장은 계파 시비에서 자유로운 비대위원 인선을 통해 ‘혁신형 비대위’를 운영할 계획을 밝혔지만, 차기 당권을 노리는 일부 주자들이 ‘조기 전당대회’ 실시를 주장하며 주 위원장의 리더십을 흔들고 있다. 게다가 이 대표가 ‘강제 해임’의 부당성을 제기하며 법원에 제출한 가처분 신청이 인용될 경우 하루 아침에 비대위 체제가 붕괴될 위험도 안고 있다. 이준한 인천대 교수는 11일 “집권하자마자 여당이 당권과 미래 대권 싸움에 휘말려 비대위로 가는 것은 상당히 예외적인 현상”이라며 “한국의 정당 정치가 얼마나 허약한지를 보여준다”고 말했다.
 
왼쪽부터 주호영 국민의힘 비대위원장,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비대위원장, 이은주 정의당 비대위원장. 공동취재사진
왼쪽부터 주호영 국민의힘 비대위원장,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비대위원장, 이은주 정의당 비대위원장. 공동취재사진

민주당에선 대선 패배에 대한 책임을 지고 송영길 대표 등 지도부가 총사퇴한 뒤 비대위를 꾸렸지만, 이 비대위마저 지방선거에서 패배하며 두번째 비대위 체제가 들어섰다. 당 안팎에서 리더십의 한계에 봉착한 ‘86세대(1980년대 학번·1960년대생) 퇴진론’이 나오지만, 8·28 전당대회에 출마한 ‘97세대’ 정치인들이 제대로 된 정치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는 “민주당은 새로운 리더십 형성이 안 되는 상황에서 당내 기반도 없는 이재명 의원을 내세웠다”며 “리더십이 원활하게 작동하지 않으니 비상적인 조처를 통해 정당의 활력을 찾게 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연이어 참담한 성적표를 받아든 정의당에선 비대위 출범 이후에도 ‘비례대표 국회의원 총사퇴 권고’ 당원투표까지 추진되는 등 혼란이 이어지고 있다. 지병근 조선대 교수는 “노회찬·심상정 이후 ‘포스트 정치 세대’가 제대로 성장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각자 여기저기에서 목소리를 내면서 어디로 갈지 아무도 모르는 이상한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전문가들은 문제가 생길 때마다 급하게 ‘비대위’ 체제로 전환하는 정치권의 관행에 대해서도 우려를 나타냈다. 지 교수는 “지도 체제를 바꾸면 국민들로부터 지지를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일종의 ‘보여주기’를 위한 혁신의 관례화가 작동하는 게 문제”라며 “선거 패배 등에 대해선 제대로 원인을 파악하고 개선안을 마련해 실행해 옮기면 된다”고 말했다.

 

특히 지도부 교체 과정에서 권력을 얻기 위한 계파 갈등이 필연적으로 벌어질 수밖에 없고, 잦은 인물 교체로 인해 후진 양성도 제대로 이뤄지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박원호 서울대 교수는 “젊은 정치인들을 꾸준히 키우는 게 중요한 정당의 역할 중에 하나인데, 그나마 있는 젊은 정치인들도 빠른 노화를 겪고 퇴출되니 제대로 된 리더십이 생길 수가 없다”고 말했다.

 

송채경화 기자 khs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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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호 경찰국장은 정말 노동운동 하다 변심해 경찰이 됐을까?

  • 최지현 기자 cjh@vop.co.kr
  • 발행 2022-08-11 23:12:55
  • 수정 2022-08-12 07:54:10
  •  
  •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행정안전부 경찰국을 찾아 근무자들을 격려한 뒤 나서고 있는 가운데, 
  • 김순호 경찰국장이 뒤에서 이를 지켜보고 있는 모습. (자료사진) 2022.08.02. ⓒ뉴시스
 
33년 전인 1989년 1월, 인천과 부천 지역에서 활동하던 인천부천민주노동자회(인노회) 간부와 회원들이 갑자기 들이닥친 경찰에 의해 대공분실로 강제 연행됐다. 2월에도, 4월에도, 5월에도 경찰의 연행은 이어졌다. 인노회가 느닷없이 이적단체로 낙인찍히면서다. 6월 사건이 법원으로 넘겨지면서 인노회라는 조직은 와해됐다. 일명 ‘인노회 사건’은 훗날 재심을 통해 이적단체라는 누명을 벗은 대표적인 조작 사건이었다.

그런데 경찰의 대대적인 수사 과정에서 돌연 모습을 감췄던 인노회의 부천지역 조직 책임자인 김순호가 두 달 뒤에 경찰관이 되어 돌아왔다. 그리고 김순호는 오늘날 행정안전부 초대 경찰국장 자리에까지 올랐다. 인노회 회원들은 충격에 휩싸였다. 경찰에 붙잡히기는커녕 오히려 경찰이 되어 돌아온 ‘동지’라니,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성균관대 81학번 김순호
학생운동하다 강제징집→녹화사업 당해
전역 후 노동운동하다 인노회 가입, 부천지역 조직 책임자까지
“김순호 열심히 활동했다” 동료들 증언
이듬해 곧바로 인노회에 경찰 탄압 시작
그 사이 김순호 돌연 잠적
인노회 사건 끝나자 경찰로 특채


민중의소리 취재에 따르면 광주 광산 농민의 아들이었던 김순호는 80년 광주고를 졸업하고 81년 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에 입학했다. 그리곤 83년 3월 학내 운동권 동아리인 ‘심산연구회’에 가입했다. 심산연구회는 김순호보다 한 학번 선배들이 만든 동아리였다. 심산연구회 회장을 지냈던 김순호의 선배 A씨는 “저도 순호를 되게 예뻐했다. 순호가 활동도 열심히 하고 착했다”고 기억을 떠올렸다. 그를 이어 김순호가 심산연구회 회장이 된 이유였다.

민주화운동에 나선 학생들에 대한 정권의 탄압이 여전히 악랄하던 그 시절, 김순호도 이를 피할 순 없었다. 과거 전두환 정권은 80년 5·18광주민주화운동 이후 대학가 중심으로 퍼진 민주화운동을 분쇄하기 위해 시위 현장에서 학생들을 잡아다 군에 강제징집했는데, 김순호 역시 83년 4월 친구들과 함께 강제징집됐다. 그리고 2년이 흐른 85년 7월에 전역한 김순호는 학교로 곧장 돌아가지 않고 그해 9월부터 같은 학교 친구들과 함께 부천지역 공장에 위장취업을 하며 노동운동을 시작했다.

이후 김순호가 인노회에 가입한 건 88월 3월 인노회가 창립된 지 한 달여 지난 시점이었다. 김순호에게 인노회 가입을 제안했던 사람은 성균관대 한 학번 선배이자 심산연구회를 만들었던 최동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최동 역시 김순호를 굉장히 아꼈던 선배였다고 한다.

인노회에는 ‘현장에서 활동하지 않으면 회원이 될 수 없다’는 규정이 있었는데, 김순호는 공장에서 일했던 만큼 곧바로 회원이 될 수 있었다. 김순호가 부천지역 조직 책임자가 된 건 그해 11~12월경이었다. 인노회는 회장단, 사무국, 조직국, 그리고 조직국 산하에 부평·주안·부천지구위원회로 구성돼 있었는데, 김순호가 부천지구위원장이었던 것이다. 부천지구위원회 아래에는 8개 정도의 분회가 있었고, 회원들은 분회를 중심으로 활동했다.

인노회에 대한 경찰의 탄압이 시작된 건 이듬해인 89년 1월 말이었다. 1월 26일 부부회원이 강제 연행된 데 이어 2월 8일엔 인노회 사무국 소속 회원 6명이 강제 연행됐다. 2월 16일엔 5명에 대해 구속영장이 발부됐다.

이후 한동안 잠잠하다 싶더니, 4월 28일 김순호의 선배였던 최동이 강제 연행됐다. 다음 날엔 김순호의 친구 두 명이 강제 연행됐다. 5월 이후에도 인노회 회장단 3명과 사무국원 6명, 대외활동이 많았던 부서 회원 중심으로 강제 연행이 이어졌다. 이 ‘인노회 사건’은 6월에 15명이 구속된 상태에서 기소되면서 일단락됐다. 이후 인노회는 와해됐고, 회원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그런데 정작 부천지역 조직 책임자였던 김순호의 이름이 이 ‘인노회 사건’ 어디에도 등장하지 않는다. 인노회 회원들도 모두 의아해하고 있는 지점이다. 당시 김순호와 같이 인노회 활동을 했던 동료들은 김순호가 4월 초쯤 돌연 ‘잠적’했다고 입을 모았다. 인노회 간부뿐만 아니라 회원까지 줄줄이 연행되다가 잠시 잠잠해진 시점이었다. 당시 김순호는 친구들뿐만 아니라 동거인에게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갑자기 사라졌다고 한다. 그리고 4월 말부터 김순호와 가까웠던 사람들이 줄줄이 연행됐다.

김순호의 대학 동기이자 인노회 부천지역위원회 분회장을 맡고 있던 B씨도 그때 연행된 사람 중 한 명이다. B씨는 민중의소리와 만나 “제가 연행되고 진술을 거부하고 있었는데도, 이미 치안본부가 너무 많은 것을 상세하게 알고 있었다. 저희 분회에 대해 속속들이 알고 있었다”며 “A3용지로 전체 조직도까지 보여주는 걸 보며 속으로 경악을 금치 못했다. 도대체 어떻게 이렇게까지 알 수 있을까 생각했다. 저도 모르던 것이었다”고 말했다.

김순호를 아꼈던 선배인 최동도 그때 연행됐다. 그는 조사 과정에서 모진 고문을 받았고, 이후 우울증과 정신분열증세를 얻어 그해 구속된 지 4개월여 만에 집행유예로 출소했다. 그리고 이듬해 8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때 나이 겨우 서른 한 살이었다. 최동 역시 생전에 누군가 자신을 밀고를 했을 것이라는 의심 때문에 정신적 압박감을 많이 호소했다고 한다.
 
경기도 이천시 민주화운동기념공원에 위치한 최동 열사의 묘. ⓒ민중의소리


김순호 잠적 등 근거로 ‘경찰에 동료 밀고’ 의심 짙어져
김순호, 인노회 사건 후 수사 책임자 찾아가 사실상 자수했다고 주장
그런데 핵심 혐의자가 입건은커녕 오히려 경찰로 특혜
경찰 내부에서도 “상상할 수 없는 일” 의문 제기

홍승상, 김순호가 인노회 사건 증거 분석했다며 엇갈린 주장
김순호 해명도 명확하지 않아

당시 인노회 회원들은 김순호가 자신들을 밀고했을 것이라는 의심을 강하게 했다고 한다. 경찰이 이미 알고 있던 내용들은 조직 책임자였던 김순호가 아닌 다른 사람들은 잘 알지 못했던 내용이었다는 점, 하필 그때 김순호가 잠적했다는 점 등이 근거였다. B씨는 “부천지역의 그 조직표를 알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 사실 그 친구(김순호)밖에 없었다. 그 당시 (먼저) 잡혀 들어간 사람들 중에는 그런 조직도를 그릴 만한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며 “게다가 김순호가 그때 잠적했기 때문에 가장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고 지적했다.

대체 김순호는 4월에 어디에 있었던 것일까.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인노회에 대한 경찰의 탄압이 시작됐던 만큼 잡히기 전에 어디론가 도피했을 가능성이 있다. 만약 그랬다면 김순회의 도피는 성공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일단 김순호가 그 당시 경찰에 붙잡혔다는 얘기를 들은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김순호 역시 경찰이 자신을 검거하기 위해 찾으러 다닌 적이 있는지 없는지는 알지 못한다고 밝혔다. 경찰에 잡힌 적이 없다는 의미다.

그런데 김순호는 경찰에 붙잡히지 않기 위해 의도적으로 도피한 것은 아니었다고 밝혔다. 김순호는 11일 MBC라디오에 출연해 “4월에 제가 주사파로부터 단절을 해야 되겠다(고 생각해서), 고향으로 내려간 건데 공교롭게도 이제 ‘인노회 사건’이 되면서 도피가 돼버린 것”이라며 “그래서 저 역시 고향집에 있지 않고 은신할 만한 곳에 있었다. 제가 있었던 곳은 사설독서실이고, 잠을 잘 수 있는 곳이었다”고 주장했다.

다만 김순호는 4월 들어 갑자기 잠적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은 건 아니었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그전부터 (운동권에 대한) 회의와 갈등은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김순호는 인노회 사건이 기소로 일단락된 이후인 7월에 서울 홍제동 치안본부 대공분실을 직접 찾아가 인노회 사건 수사 책임자에게 그동안의 활동을 자백했다고 주장했다. 김순호는 MBC라디오에서 “인노회 사건이 마무리가 됐는지, 진행이 되고 있는지는 제가 모르는 상태에서 찾아가서 그것에 대한 진술을 했다”며 “4일 정도 조사를 받았다”고 밝혔다.

이상한 점은 그때 김순호가 핵심 혐의자로 입건이 되기는커녕, 한달 뒤인 8월에 경찰로 특별채용이 됐다는 것이다. 그것도 순경보다 더 높은 직급인 경장으로 직행했다. 이에 대해 김순호는 YTN과의 인터뷰에서 “당시 경찰 책임자가 조사하면서 주사파에 물들까 걱정된다는 고백을 들은 뒤 역으로 ‘대공 특채’를 제안하면서 곧바로 경찰의 길을 걷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김순호는 노동운동 조직 정보를 팔아넘기고 그 대가로 경찰 특채를 받는 ‘거래’를 한 적은 없다고 부인했다.

자수하러 간 핵심 혐의자를 수사 담당자가 입건조차 않고 오히려 특채를 제안해서 실제로 채용까지 했다는 것인데, 이는 경찰 내부에서도 납득이 어렵다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익명을 요구한 총경급 경찰관은 민중의소리와의 전화통화에서 “지금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며 “불법에 가담했다면 형사입건해야 하고, 그렇게 안 하면 직무유기죄로 경찰이 처벌받는다”고 지적했다. 이어 “(혐의자가) 자수를 했다고 하더라도 혐의 감면 사유일 뿐”이라며 아예 면책이 될 수는 없다고 꼬집었다. 이에 대해 김순호는 MBC라디오에서 “그 면책 부분은 어떻게 됐는지 그때는 제가 잘 알 수가 없었던 상황”이라며 합리적인 해명을 내놓지 못했다.

그렇다면 김순호는 어떤 근거로 특채가 된 것일까. 법적 근거가 없지는 않았다. 더불어민주당 이성만 의원이 경찰청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김순호는 경찰공무원법과 경찰공무원임용령에 따라 ‘임용예정직에 상응한 보안업무 관련 전문지식을 가진 자’로 인정돼 특채됐다. 경찰청이 구체적으로 근거로 든 법률과 훈령 가운데 경찰공무원임용령 16조 4항 4호에 따르면 ‘대공공작업무와 관련 있는 자를 대공공작요원으로 근무하게 하기 위해 경장 이하의 경찰공무원으로 임용하는 경우’가 가능하다.

김순호도 MBC라디오에서 “전문지식이 있는 자로 해당돼 특채가 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학위도 없는데 어떤 게 전문지식이냐’는 질문에 김순호는 “주사파로 오래 활동을 했다. 주사파가 되기까지는 주체사상에 대한 학습, 북한의 대남혁명노선에 대한 학습, 이런 것들이 이루어져야 한다. 또 러시아 혁명을 성공한 레닌의 혁명론 등 공산주의 혁명 이론에 대한 학습들이 전반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며 이것이 자신이 가진 ‘전문지식’이라고 답했다.

하지만 김순호의 말대로라면 그 당시 운동권 서클에 가입을 해서 이념교육을 받았던 사람들은 모두 ‘전문지식을 가진 자’로서 마음만 먹으면 경찰에 특채될 수 있다는 것이 되므로, 설득력을 얻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이런 지적이 나오자 김순호는 “그건 채용을 하는 기관에서 평가하는 문제”라며 즉답을 피했다.

이처럼 경찰 특채 과정에 대해서도 납득할 만한 해명을 내놓지 못하다 보니 인노회 동료들을 ‘밀고’하는 공적을 쌓아서 특채가 된 게 아니냐는 의혹만 더 커지고 있다. 공교롭게도 김순호가 경찰이 되어 처음 일하게 된 곳도 인노회 사건을 담당했던 치안본부 대공수사3과였다.

그러나 김순호는 ‘공적’에 대해서는 분명히 선을 긋고 있다. 김순호는 ‘대공공작업무와는 상관이 없다’며 경찰청이 근거로 공개한 경찰공무원임용령 적용 사실마저 부인했다. “대공공작업무라는 건 하위법령에 규정돼 있던 것”이라고 둘러대면서다. 김순호는 앞서 KBS와의 인터뷰에서도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무엇으로 주사파가 됐는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등 나를 중심으로 얘기했다”며 인노회에 대해 이야기하긴 했지만 인노회 사건(경찰 수사)에 영향을 준 사실은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경찰 내부에선 이런 김순호의 주장 역시 수긍하지 못하고 있는 분위기다. 마산동부경찰서 양덕지구대장인 류근창 경감은 MBC라디오에 출연해 “과거 희대의 도주범 신창원을 검거하는데 가장 큰 공을 세운 분이 신고자였다. 그분이 원래는 케이블TV 기사였는데 꿈이 경찰관이 되는 것이었고, 그래서 경찰에서 그분을 순경으로 특별채용한 사례가 있다”며 “아주 큰 공을 세우면 그렇게 경찰관으로 특별채용하는 사례가 있긴 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순경보다 더 높은 직위인 경장으로 특채가 되려면 그에 상당하는 ‘공적’이 분명히 있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순호가 찾아갔다는 ‘인노회 사건 수사 책임자’로 추정되는 인물의 증언도 김순호의 주장과 엇갈린다. 그는 내무부 치안본부 대공수사3과 소속 홍승상 경감이었다. 홍승상은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경위서에 ‘탁 치니 억 하고 쓰러졌다’는 문장을 쓴 당사자로 지목된 인물로, 대공 수사 분야에서 악명이 높다.

홍승상은 최근 TV조선과 익명으로 인터뷰를 했다. TV조선에 따르면 홍승상은 1989년 초 김순호가 다짜고짜 자신을 찾아와 “제가 운동권에서 빠져나오려고 하는데 도와주십시오”라는 말을 했다고 주장했다. 김순호는 1989년 7월에 홍승상을 찾아갔다고 밝혔는데, 홍승상은 그보다 앞선 시점인 1989년 초라고 언급한 점이 일단 눈길을 끈다.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인노회에 대한 경찰 수사가 시작될 때부터 김순호가 도움을 줬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홍승상은 “(김순호가) 운동권에서 이념을 많이 배운 사람이라, 운동권 사건 관련 증거물들이 오면 분석을 시킨 거야. 그래서 그 사람한테 많이 도움을 받았다고. 대표적인 사건이 인노회 사건인데”라며 “그 사건(인노회 사건)을 할 때 많이 (김순호) 도움을 받았어. 안보 정국을 전환시키는 데 내가 봐서는 크게 역할을 한 사람이야”라고 말했다. 이어 “김 국장이 운동권에서 완전히 빠져나왔고, 수사에 도움까지 줬잖아”라며 “그래서 내가 특채로 그렇게 받아준 거야”라고 강조했다. 인노회 사건에 영향을 주는 일은 하지 않았다는 김순호의 주장과는 정면으로 배치되는 셈이다.

앞서 김순호도 YTN에 “자신은 운동권에 몸담은 경험으로 증거물 분석에 특기가 있었기 때문에 대공 특채가 된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증거물 분석’ 특기가 김순호에게 있다고 경찰이 어떻게 확인했는지 의문이 남았는데, 홍승상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이 의문은 풀리는 셈이다. 이에 대해 김순호는 납득할 만한 해명을 내놓지 못한 상태다. 김순호는 MBC라디오에서 “사실에 부합하지 않다”고만 말했다. 현재 홍승상 인터뷰 기사 전문은 삭제된 상태다.

김순호가 8월 경장으로 특채된 뒤 10월에는 인천지역민주노동자연맹 회원들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되는 사건이 터졌다는 점을 봐서도, 김순호가 과거 몸 담았던 단체 등에서 얻은 정보를 수사에 이용한 게 아니냐는 의혹에 힘이 실린다. 인천지역민주노동자연맹은 인노회 사건 이후 사망한 최동이 87년 6월항쟁 이후 조직화에 가담한 노동자 단체였기 때문이다.
 
민중의소리 취재를 토대로 정리한 사건 일지 ⓒ민중의소리


김순호는 정말 노동운동 도중 변심한 걸까?
녹화사업 이후 ‘프락치’로 활동했다는 의혹 짙어져
녹화사업 내용 담긴 개인 자료는 공개 거부
결국 김순호가 직접 밝혀야 하는 문제


돌이켜보면 민간인이었던 김순호가 대공수사 분야에서 경찰 간부급이었던 홍승상을 직접 찾아가서 만난 것부터 부자연스럽다. 김순호가 홍승상을 어떻게 알고 찾아갔느냐는 여전히 의문으로 남아 있다. 김순호는 MBC라디오에서 ‘사전에 무슨 교류가 있었느냐’는 질문에 “제가 알고 찾아간 게 아니라, 찾아가서 만나보니 그랬다(홍승상이었다)”고만 답했다. 누군가가 ‘어디로 가보라’고 해서 찾아가본 것인지도 모를 일인데, 김순호는 그에 대해 구체적으로 답변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김순호가 노동운동 도중 변심한 것이 아니라, 일찍이 ‘프락치(끄나풀)’로 활동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짙어지고 있다. 그 외에는 김순호와 홍승상 사이에 연결고리가 특별히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김순호는 강제징집이 됐던 83년 11월 ‘녹화사업’ 대상자였다. 당시 전두환 정권은 강제징집된 학생들을 고문과 협박, 회유를 통해 학내 동향 수집 보고 활동 등을 강요했는데 이를 ‘녹화사업’이라고 한다. 적화된(불온한) 사상을 녹화(온건화) 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군은 녹화사업 대상자들에게 자신의 양심에 반하는 진술을 강요하고, 생각과 이념을 바꾸고, 나아가 반성문까지 작성하도록 강제했다. 특히 서클 활동 등에 대해 조사하면서 동료, 선⋅후배들의 활동사항을 진술하도록 했다. 더 나아가 ‘프락치’ 활동까지 강요하는 경우도 있었다.

조종주 강제징집녹화공작 진실규명위원회 사무처장은 “강제징집과 녹화사업은 격리-심사-순화-활용 단계로 나아간다”며 “제대 후에도 계속 국가로부터 관리받으며 소위 ‘프락치’로 활용되는 사례가 꽤 존재한다”고 증언했다. 실제 2006년 7월 발표된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의 ‘강제징집·녹화사업 조사 결과’에 따르면 녹화사업 대상자를 ‘제대 후 학원안정 요원으로 활용’하는 사후관리도 했다는 내용이 당시 문교부와 대통령에게도 보고된 바 있다.

만약 김순호 역시 실제로 ‘프락치’로 활동한 것이라면, 조직 책임자였음에도 경찰에 잡히지 않았던 점, 자백하러 직접 수사 책임자를 찾아갔음에도 아예 면책까지 된 이유가 모두 설명이 된다. 인노회 회원이란 가면을 썼을 뿐 실제론 인노회 회원이 아니기 때문이다. 실제 김순호가 ‘프락치’였다면 홍승상 역시 이를 대외적으로 인정하긴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 이럴 경우 홍승상이 인터뷰에서 ‘김순호가 다짜고짜 나를 찾아왔다’고 말했던 배경도 설명이 된다.

그렇다면 ‘인노회 사건’ 전, 김순호에 대해 이상한 낌새를 주변에서 느끼진 않았을까. 오히려 김순호는 운동권 활동에 회의를 느껴서 4월에 인노회를 떠난 것이라고 주장하는데, 이런 그의 내적 갈등을 옆에서 체감했던 동료들은 거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대부분의 동료들은 김순호를 ‘활동을 열심히 하고 잘하는 친구’로 기억하고 있었다.

김순호의 대학 동기인 C씨는 “보통 학생운동을 하다가 그만두는 경우 고시 같은 시험 공부를 하러 가거나 한다. 그런데 김순호는 그런 단계를 건너뛰고 갑자기 경찰이 됐다. 뭔가 논리적으로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렇기 때문에 김순호의 이후 돌변한 행보가 동료들에게 더 충격적으로 다가왔던 것으로 보인다.

‘프락치’는 함정수사·위장수사의 일종으로, 현재 법에 의해 제한되고 있는 것이다. 익명의 총경급 경찰관은 “범죄집단에 들어가서 그렇게 (‘프락치’ 활동을) 하는 건 영화에 나올 법안 소재일 뿐이지 지금은 그렇게 수사하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그런 만큼 과거 ‘프락치’ 의혹을 받고 있는 김순호가 ‘경찰국장 자격’이 있느냐에 대해 의문이 제기된다. 이 경찰관은 “그동안 경찰국 신설에 경찰들이 반대한 것도 녹화사업이란 명분으로 정당한 학생운동이나 노동운동을 탄압하고 이에 가담한 사람을 승진시키는 등 국가권력이 부당하게 행사됐던 암울한 과거로 회귀하면 안 된다는 목소리였다”며 “과거에 그런 의혹이 많은 인사가 경찰국장이 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본다”고 비판했다.

김순호는 자신은 “녹화사업 피해자”일 뿐이라며 ‘프락치’ 활동 의혹에는 “억측으로 구성된 소설 같은 소리”라고 일축하고 있다. 김순호는 YTN과의 인터뷰에서 “녹화사업 당시 공작 활동과 관련해선 누굴 만난 뒤 보고하라는 지시를 받긴 했지만, 친구들과 술 마신 내용 등만 보고해 별일은 없었다”고 주장했다.

나아가 김순호는 MBC라디오에서 “제가 진짜 밀고를 했거나 프락치였다면 왜 사라지겠나”며 “제가 진짜 프락치이고 밀고했다면 정말 의심 받을 게 뻔한데 인노회 사건이 끝나자마자 어떻게 특채가 되느냐”고 되레 목소리를 높였다. 

이성만 의원이 국가기록원으로부터 받은 자료요구 답변서에 따르면, 과거 국군안보지원사령부에서 작성한 김순호에 관한 ‘존안자료’를 지난 2020년에 국가기록원이 이관받아 관리 중인 것으로 드러났다. ‘존안자료’는 보안사가 녹화사업 대상자들을 관리하며 작성한 개인 파일을 지칭한다.

2006년 7월 발표된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의 ‘강제징집·녹화사업 조사 결과’에 따르면 녹화사업의 개인별 ‘심사(審査)자료’가 남아있는데, 그 자료엔 대상자가 작성한 ‘자필 진술서’, ‘반성문’, ‘서약서’뿐만 아니라 보안사에서 작성한 ‘심사결과보고서’, 학원정보 수집에 협조한 경우는 ‘활용결과 보고서’까지 포함돼 있다. 심지어 ‘프락치’ 활동사항까지 일련의 과정이 기록돼 있다.

이 의원은 “’존안자료’ 안에 김순호 국장이 학교 내 동향을 보고하거나 주변 인물과의 관계에 대해 진술한 내용이 담겨 있을 가능성이 높다”며 “‘존안자료’에 실제로 그런 내용이 담겨 있다면 그가 제대 후 노동운동 등에 참여한 행적의 의도를 짐작해 볼 수 있을 것”이고 지적했다. 그러나 국가기록원은 “개인에 대한 사찰기록”이라며 정보공개법 규정에 따라 공개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결국은 김순호가 직접 밝혀야 하는 문제인 것이다. 하지만 김순호는 “그런 프레임을 씌운 분들께서 그 프레임을 입증하고 설명해야 하는 게 아닌가”라며 책임을 돌리고 있다. 

인노회의 간부였지만 사건이 커지기 직전 사라진 김순호. 경찰은 그를 찾지 않았고 그는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았다. 그리고 느닷없이 경찰로 특채돼 승승장구했다. 과연 이것이 그가 이념적으로 동요하고 변심했기 때문일까. 어쩌면 그가 영화 ‘무간도’나 ‘신세계’에나 나올 법한 오랫동안 묻어둔 프락치는 아니었을까. 풀리지 않은 의혹은 있지만 진실은 아직 드러나지 않았다. 이제 김순호 스스로 진실의 상자를 열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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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수완박법 무력화한 '한동훈 시행령'에 세갈래로 갈린 언론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22/08/12 09:29
  • 수정일
    2022/08/12 09:29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 기자명 정민경 기자 
  •  
  •  입력 2022.08.12 07:59
  •  
  •  수정 2022.08.12 08:28
  •  
  •  댓글 2
 
 

[아침신문 솎아보기] ‘검수완박’법 시행령으로 무력화한 법무부
‘반지하 없앤다’ 정책에 ‘실효성있는 지원책 뒷받침’ 강조
사드 두고 다시 한중갈등 예상…중국 압박 비판한 언론들

검찰 수사권을 축소한 개정 검찰청법·형사소송법 시행을 한 달 앞두고 법무부가 이를 사실상 무력화하는 시행령을 내놓았다. 법무부는 11일 검찰의 직접 수사범위를 확대하는 내용을 담은 ‘검사의 수사개시 범죄 범위에 관한 규정’(대통령령) 개정안을 이달 29일까지 입법예고한다고 밝혔다.

이를 두고 언론은 시행령이 ‘꼼수’라는 논조, ‘검수완박’법 역시 문제가 있었지만 시행령 역시 문제가 있다는 논조, 검수완박법이 근본적인 문제였다는 논조로 나뉘었다.

또 다른 주요 이슈로는 서울시가 10일 주거 목적의 반지하 사용을 전면 불허하고 기존 반지하는 20년에 걸쳐 순차적으로 없애거나 창고, 주차장 등으로 바꾸겠다고 밝힌 것이 있다. 8일부터 기록적인 폭우로 반지하 주택에 거주하던 주민들이 목숨을 잃자 내놓은 대책이다. 언론은 이 같은 정책을 점검하고, 현재 반지하에 살고있는 주민들에 대한 공공임대주택 지원 등 구체적 이주대책을 마련해야 실효성있는 정책이 될 것이라 전했다.

이날 세번째 주요 이슈로는 대통령실이 11일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에 대해 자위적 방어수단이고 안보 주권 사안이라는 점을 공식적으로 밝힌 점이다. 언론은 이에 한중관계 갈등이 예상된다고 밝혔다. 중국이 사드 운용에 대한 경계감을 드러낸 것인데 대부분 언론은 사설을 통해 중국이 가하는 압박을 비판하고, 한국 정부가 외교에 대한 대책을 신중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밝혔다.

▲12일 주요 종합일간지 1면 모음. 
▲12일 주요 종합일간지 1면 모음. 

다음은 12일 주요 종합일간지 1면 톱기사 제목이다.
경향신문 “한동훈, 시행령으로 ‘검수완박’ 무력화”
국민일보 “대통령실 ‘사드, 협의대상 아니다’…이달 기지 정상화”
동아일보 “‘홀로 슬퍼 말아요’ 서로를 꼭 안았다”
서울신문 “더이상 갈 곳이 없다 ‘반지하 제로’의 역설”
세계일보 “사드 기지 이달말 정상화…中견제 일축”
조선일보 “‘지금 산 무너져요’ 문 두드려 구했다”
중앙일보 “사드기지 이달 정상화 대통령실 ‘주권 사안’”
한겨레 “한동훈 ‘법 위에 시행령’ 검찰 수사권 다시 늘렸다”
한국일보 “‘사드 협의 대상 아냐’ 안보주권 못박았다”

다음달 10일 개정 검찰청법·형사소송법이 시행되면, 검사가 직접 수사에 착수할 수 있는 범죄는 기존 6대 범죄(부패·경제·공직자·선거·방위사업·대형참사)에서 ‘부패·경제범죄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중요 범죄’로 줄어든다. 입법 취지는 직접 수사 대상을 6개 범주에서 2개 범주로 축소한 데 있다.

하지만 11일 법무부가 공개한 시행령 개정안은 부패·경제 범죄의 범위를 폭넓게 다시 규정했다. 또한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중요 범죄’라는 문구를 확대 해석해 공직자·선거범죄 중 일부도 검찰이 수사할 수 있도록 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개정법 관련) 권한쟁의심판 (청구)에 대한 헌법재판소 판단이 늦어질 경우 부패·마약·조폭이 판치는 것을 막아야 하기에 시행령 개정안을 만들었다”고 했다.

▲12일 중앙일보 3면.
▲12일 중앙일보 3면.

이날 언론 사설은 시행령을 강하게 비판하는 반응, 검수완박법과 시행령 모두 문제라는 반응, 검수완박법이 근본적으로 문제였다는 반응으로 갈렸다.

경향신문은 사설에서 “국회가 만든 법률을 하위규정인 시행령을 통해 우회하겠다는 ‘꼼수’”라며 “국회의 고유권한인 입법권을 침해해 삼권분립 원칙에 위반된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어 “여야 원내대표가 ‘검찰 수사권 축소’ 후속 조치를 논의할 ‘형사사법체계개혁특위’(사개특위) 구성에 합의하고 위원 선임도 마친 터”라며 “법무부와 검찰은 국회든 헌재든 아랑곳하지 않는 ‘무소불위’ 기관인가”라고 비판했다.

한겨레 사설 역시 “시행령 개정이라는 손쉬운 방법으로 국회의 입법권을 형해화하는 오만한 행태가 아닐 수 없다”며 “시행령을 통해 법에도 없는 행정안전부 장관의 경찰 지휘권을 보장한 데 이어 또다시 꼼수로 조직의 권한을 ‘셀프 확장’하는 안하무인식 행태에 말문이 막힌다”고 전했다.

▲12일 경향신문 사설.
▲12일 경향신문 사설.
▲12일 한겨레 사설.
▲12일 한겨레 사설.

동아일보나 한국일보 사설은 ‘검수완박’법 역시 허점이 있지만 시행령 역시 문제가 있다는 논조다.

동아일보 사설은 “정권교체 일주일 전에 국회 본회의와 국무회의를 통과한 검수완박법은 내용적으로나 절차적으로 허점이 적지 않다. 수사가 끝나야 알 수 있는 뇌물 액수에 따라 검찰과 경찰의 권한을 미리 나눠 놓은 것이 대표적”이라면서도 “하지만 개인의 자유를 제약하는 국가형벌권의 주체와 범위에 관한 법령은 사회적 합의를 바탕으로 해야 법적 안정성이 보장된다. 검수완박법이 하자가 있다고 그걸 시행령으로 뒤집으면, 그 시행령은 얼마나 오래가겠나. 위헌 여부를 심사 중인 헌법재판소의 판단이라도 기다려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한국일보 사설도 “검수완박법은 민주당이 절차상 논란까지 야기하며 무리하게 입법을 한 측면이 있다. 대체입법 없이 검찰 권한부터 빼앗아 범죄수사 공백을 막는 조치가 불가피했다는 법무부 입장도 충분히 이해된다”면서도 “하지만 행정안전부 내 경찰국 신설처럼 시행령을 통해 우회로를 찾는 것은 변칙일 수밖에 없다. 야당과의 전면전이 불가피하고, 유효기간은 정권 임기와 같을 수밖에 없는 시행령 정치를 잘한다고 할 수는 없다”고 전했다.

▲12일 동아일보 사설. 
▲12일 동아일보 사설. 
▲12일 한국일보 사설.
▲12일 한국일보 사설.

반면 서울신문은 사설을 통해 검수완박법이 근본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논조를 드러냈다.

서울신문 사설은 “검찰의 수사권을 박탈하려 강행 처리한 검수완박법안의 입법 취지에 반한다는 비판이라면 몰라도 부패범죄와 경제범죄의 유형을 확대한 것을 두고 상위법 무력화라고 주장하는 건 다소 억지스럽다”며 “게다가 위장 탈당 등의 꼼수 입법으로 강행한 검수완박법안이 과연 국민의 법익에 부합하느냐부터 다시 따질 일이다. 중요한 건 국가의 범죄 대응 역량”이라고 전했다.

▲12일 서울신문 사설. 
▲12일 서울신문 사설. 

‘반지하 없앤다’ 정책에 ‘실효성있는 지원책 뒷받침’ 강조

서울시가 지하·반지하 주택에서 사람이 살 수 없도록 정책을 추진한다. 서울시는 10일 지하층은 주거용으로 허가하지 않도록 자치구에 건축 허가 원칙을 전달하고, 건축법 개정을 정부와 협의하기로 했다. 현재 있는 지하·반지하 건축물의 경우 세입자가 나간 뒤 창고 등으로 전환한다. 10~20년 유예기간을 두고 순차적으로 없앤다는 계획이다.

이날 경향신문은 4면에 반지하 대책에 대한 기사를 냈는데, 반지하에 살고 있는 주민들에 대한 공공임대주택 지원등 구체적 이주 대책이 마련돼야 실효성있는 대책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반지하 주택에 대한 수요가 실제하고 이들 중에는 공공임대 지원 대상이 아닐 정도로 경제적 최저계층이 아닌 경우도 있다고 지적했다.

▲12일 경향신문 4면.
▲12일 경향신문 4면.

국민일보는 이날 사설에서 “반지하의 퇴출은 궁극적으로 맞는 방향”이라면서도 “그러나 ‘지상으로 가는 사다리’없이 졸속 추진했다가는 지하 거주자들이 살만한 곳을 마련하기가 더욱 어려워질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반지하에 거주하는 서울 20만, 경기도 8만8000가구가 땅 위의 보다 안전한 곳으로 올라가기 위해선 지원책이 필요하다”며 “서울시의 반지하 퇴출 정책이 실효성을 거두려면 기존 세입자의 대체 주거 마련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 대책이 공공임대주택 이전 지원”이라고 밝혔다.

국민일보 사설은 “정부는 고시원, 쪽방에 사는 사람들에게 공공임대주택을 제공하는 ‘주거 취약계층 주거 상향 지원’ 사업 대상에 2020년부터 반지하 거주자도 포함해 시행 중이다. 지난해 서울시에서 이 사업을 통해 공공임대주택에 입주한 가구는 1699가구에 불과하다. 이 중 반지하 가구는 14.8%인 247가구”라며 “이주가 시급한 주거 취약계층에 비해 공공임대주택의 물량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물량이 늘지 않으면 반지하 거주민 지원으로 다른 취약계층의 자리를 빼앗는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 대규모 예산을 확보하는 게 필수”라고 밝혔다.

▲12일 국민일보 사설.
▲12일 국민일보 사설.

서울신문 사설도 “반지하는 퇴출돼야 하지만 취약계층의 살 곳 마련이 먼저다. 정부는 공공임대주택을 문재인 정부(연평균 14만 가구) 때보다 적은 연평균 10만 가구 공급할 계획이다. 공공임대 공급량을 이보다 늘려 반지하 거주민의 주거 이전을 지원해야 한다”며 “저소득 자녀양육 가구에 아동주거비 지원 등 반지하 퇴출은 ‘주거사다리’ 마련과 함께 진행돼야 한다”고 전했다.

한국일보는 3면 기사와 사설을 통해 “정교한 대책만큼 중요한 건 일관되고 실효성 있는 실행”이라며 “반지하 주택 문제만 해도 2012년 건축법 개정으로 상습 침수구역 내 지하층은 건축 허가를 내주지 않을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됐지만, 이후에도 서울에선 반지하 주택이 4만 호 넘게 늘었다”고 지적했다.

빗물터널 건설에 대해서도 한국일보 사설은 “막대한 예산과 가시적 성과를 중시하는 지방행정 관행에 발목 잡혀왔다. 이런 우를 피해야 기후변화에 대응한 수해방지 대계를 세울 수 있다”고 전했다.

▲12일 한국일보 3면.
▲12일 한국일보 3면.

사드 두고 다시 한중갈등 예상…중국 압박 비판한 언론들

대통령실은 11일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는 자위적 방어수단이고 안보 주권 사항으로 결코 협의의 대상이 될 수 없다”며 “(사드 기지는) 8월 말에는 거의 정상화될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중국 정부가 사드 ‘3불(不)1한(限)’을 언급하자 강경한 어조로 윤석열 정부의 원칙을 다시 밝혔다. ‘1한(限)’ 문제는 사드의 운영 제한을 의미한다. 언론은 사드를 둘러싸고 한중 간 갈등이 예상된다고 밝히며 중국의 압박에 대해 비판하는 사설들을 냈다.

▲12일 서울신문 4면.
▲12일 서울신문 4면.
▲12일 세계일보 1면. 
▲12일 세계일보 1면. 

국민일보는 사설에서 “중국의 ‘3불 1한’ 요구는 예상됐던 압박이다. 미국은 중국을 겨냥한 경제·안보 봉쇄 노선을 강화하고 있고, 윤석열정부는 한·미동맹 강화를 천명한 상태다. 중국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이해 못할 것은 아니다”라면서도 “다만 사드 배치와 칩4 참여 등은 우리가 국내외 여건을 고려해 결정할 주권적 사안”이라고 전했다.

동아일보 사설 역시 “사드 배치는 고도화하는 북한의 핵, 미사일 위협으로부터 국민을 지키기 위해 한국이 내린 안보 결정이다. 중국을 겨냥한 게 아니라는 점을 정부는 지속적으로 강조해 왔다. 그런데도 중국이 이에 간섭하는 것은 안보주권 침해”라고 비판했다.

한겨레 사설은 “대통령실은 이날 사드가 결코 협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강조하고 성주 주한미군 사드 기지가 이달 말 정상화될 것이라고 밝혔다”며 “하지만 중국의 보복 가능성에 얼마나 철저하게 대비하고 있는지 우려스러운 게 사실”이라고 우려를 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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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방역전쟁에서 승리” 선포.. 정상방역체계로 전환

  • 기자명 이계환 기자 
  •  
  •  입력 2022.08.11 10:19
  •  
  •  댓글 2
김정은 총비서는 10일 진행된 전국비상방역총화회의에서 '방역전쟁에서의 승리'를 선언했다. [사진-노동신문 갈무리]
김정은 총비서는 10일 진행된 전국비상방역총화회의에서 '방역전쟁에서의 승리'를 선언했다. [사진-노동신문 갈무리]

“그리도 간고했던 방역전쟁이 바야흐로 종식되고 오늘 우리는 마침내 승리를 선포하게 되었습니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가 10일 평양에서 진행된 노동당 중앙위원회와 내각이 소집한 전국비상방역총화회의에서 이같이 선언했다고 북한 [노동신문]이 11일 보도했다.

코로나19 완전 퇴치를 선언한 것이다.

김 총비서는 “공화국 영토에 악성전염병이 침습한 때로부터는 100여일, 전염병이 전국적 범위에로 급속히 확산되는 것에 저항하여 우리나라에서의 방역사업을 최대비상방역체계로 이행시킨 때로부터는 91일이라는 시간이 흘렀다”면서 이같이 선언했다.

10일 열린 전국비상방역총화회의 전경. [사진-노동신문 갈무리]
10일 열린 전국비상방역총화회의 전경. [사진-노동신문 갈무리]

김 총비서는 “우리 당과 정부는 현 방역상황을 평가하고 과학연구부문이 제출한 구체적인 분석자료에 근거하여 나라에 조성되었던 악성전염병 위기가 완전히 해소되었다는 결론에 도달하였다”면서 그 근거로 “최대비상방역체계가 가동한 이후 지금까지의 상황을 총괄해보면 악성전염병이 전파되기 시작한 초기 수십만 명에 달하였던 하루 유열자수가 한달 후에는 9만명 이하로 줄어들었으며 지속적인 감소세를 유지하다가 7월 29일부터는 악성비루스(바이러스) 감염자로 의심되는 유열자가 한명도 발생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에 김 총비서는 “나는 우리 국가, 우리 인민이 사상초유의 보건위기를 이겨내고 끝끝내 되찾은 안정과 평온을 기쁘게 확인하는 이 시각 당중앙위원회와 공화국정부를 대표하여 영내에 유입되었던 신형코로나 비루스를 박멸하고 인민들의 생명건강을 보호하기 위한 최대비상방역전에서 승리를 쟁취하였음을 선포한다”며 공식적으로 코로나19 완전퇴치를 선언했다.

아울러, 김 총비서는 “우리 당과 정부는 지난 5월 12일부터 가동시켰던 최대비상방역체계를 오늘부터 긴장 강화된 정상방역체계로 방역등급을 낮추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이어, 전국비상방역총화회의에서는 보고와 토론이 계속되었다.

보고를 하고 있는 김덕훈 내각총리.[사진-노동신문 갈무리]
보고를 하고 있는 김덕훈 내각총리.[사진-노동신문 갈무리]

김덕훈 내각총리가 보고에 나섰으며, 리충길 국가비상방역사령관, 김영환 평양시비상방역사단장, 리영길 국방성비상방역사단 부사단장, 리성학 내각부총리 그리고 김여정 당중앙위원회 부부장 등이 토론에 나섰다.

신문은 “보고자와 토론자들은 우리나라가 전지구적인 보건동란 속에서 2년 3개월이나 악성비루스의 유입을 막는 방역사상 최장의 신기록을 세우고 그처럼 짧은 기간에 방역에서 완전한 안정을 되찾은 나라로 된데 대하여 긍지높이 토로하면서 이것은 세계보건사가 알지 못하는 기적이라고 강조하였다”고 알렸다.

특히, 김여정 부부장은 토론에서 북한으로의 코로나 유입을 남한 책임으로 돌려 주목됐다.

김 부부장은 “세계적으로도 많은 나라들이 악성비루스에 오염된 물체와의 접촉에 의한 전염병전파의 위험성에 대해 다시금 인식하고 보다 효과적인 방역조치들을 강구하고 있는 시기에 남조선 것들이 삐라와 화폐, 너절한 소책자, 물건짝들을 우리 지역에 들이미는 놀음을 하고 있는 것은 매우 우려스러운 일”이라고 남측을 콕 찍었다.

전국비상방역총화회의 이모저모. [사진-노동신문 갈무리]
전국비상방역총화회의 이모저모. [사진-노동신문 갈무리]

한편, 이날 전국비상방역총화회의에는 김덕훈 내각총리, 박정천·리일환·박태성·김여정·리창대·박수일·김영환 등 당중앙위원회 정치국 상무위원회 위원들과 당중앙위원회 비서들을 비롯한 당과 정부의 책임일꾼들, 방역, 보건부문의 일꾼들, 국경지대에 파견된 당대표들과 당지도소조 성원들, 봉쇄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군부대 지휘성원들, 각급 비상방역지휘부 성원들, 비상방역사업에 기여한 지원자들, 당중앙위원회 해당 부서 일꾼들, 그리고 리영길 국방상을 비롯한 국방성 비상방역부문 일꾼들이 참가했다.

신문은 “경애하는 김정은 동지의 지도 밑에 진행된 전국비상방역총화회의는 위대한 당중앙의 두리(주위)에 일심일체로 뭉쳐 역사의 그 어떤 격난도 정면돌파하며 우리식 사회주의의 휘황한 미래를 향해 줄기차게 전진하는 영웅조선의 힘, 영웅조선의 정신을 다시 한 번 과시한 승리자들의 대회합으로, 국가방역능력건설의 새로운 발전단계를 열어놓은 중요한 계기로 되었다”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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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 통선대, 한미 해병대상륙훈련장 지휘소 기습 점거

  • 기자명 조혜정 기자
  •  
  •  승인 2022.08.11 22:05
  •  
  •  댓글 0
 
 
 
 

민주노총 통일선봉대가 11일 포항 북구 조사리에 위치한 한미연합 해병대 상륙훈련장 지휘소를 기습 점거했다.

포항 조사리는 2018년에 중단됐던 한미 해병대 연합상륙훈련 ‘쌍룡 훈련’이 펼쳐지는 지휘소가 위치한 곳이다. 한미 당국은 내년 3월 중단했던 ‘쌍룡 훈련’을 재개한다고 밝혔다.

이날 통선대는 조사리 해안 쪽 경비 경찰을 따돌리고 지휘소를 기습 점거하는 투쟁을 벌였다.

조사리 해안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이곳은 평시에 한국군 해병대가 관리하는 곳으로 한미연합 해병대 상륙훈련 시 주한미군사령관 및 미 태평양 함대 장성 등이 상륙훈련을 지휘 관람하는 곳이다. 한마디로 침략훈련의 지휘소란 뜻이다.

‘쌍룡 훈련’에는 한미 해병대 1만 2천여 명과 군함 30척, 군 항공기 70여 대가 투입된다.

통선대는 이날 ‘침략전쟁연습 중단하라’, ‘이땅은 우리땅 YANKEE GO HOME(양키 고 홈)’이라고 쓴 대형 현수막을 펼치고 위력 시위를 벌였다.

함재규 통선대 대장은 이날 기습 시위를 전개한 자리에서 “오늘은 경고 수준에서 그치지만 내년 봄 ‘쌍룡 훈련’이 실시되면 물리력을 동원해서라도 침략전쟁연습을 기필코 막고야 말겠다”라는 의지를 밝혔다.

 

한편 하반기 한‧미합동전쟁연습 ‘을지 자유의 방패(UFS)’가 오는 22일부터 실시된다. ‘코로나19’ 재유행 우려가 제기됐지만, 한미 당국은 유전자증폭(PCR)검사 음성 확인 군인만 참가한다는 방침이다.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자마자 중단했던 실기동훈련을 재개한 셈. 매해 3월과 8월에 실시하던 대규모 전쟁연습은 지난 2018년 남북‧북미 정상회담이 연이어 열리면서 중단되었다. 전쟁연습을 재개하지 않은 것은 코로나19 대유행도 한 몫했다.

실기동훈련의 재개 시점도 매우 위험하다. 코로나 재유행도 문제지만, 미국과 중국 사이에 대만 위기가 증폭되는 시점에 미군과 합동으로 실시하는 전쟁연습은 중국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특히 펠로시 미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 이후 중국 인민해방군은 대만을 6곳에서 삼엄하게 둘러싸고 대대적인 군사훈련을 진행 중이다. 인근에서 진행되는 미군의 이번 전쟁연습이 자칫 충돌로 이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실기동훈련 재개 소식이 전해지자 북한(조선)의 반응도 만만치 않다. 북은 UFS가 이름만 ‘방어’라며 “‘수뇌부 제거’ ‘평양 점령’ 등 극히 도발적이고 침략적인 전쟁 목표들을 달성하기 위한 데로 지향된 위험천만한 북침 핵전쟁 연습”이라고 맹비난했다.

실제 UFS전쟁연습은 ‘참수작전’과 핵 선제공격 계획이 포함된 작계-5015에 따른 군사훈련이다. 특히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 전부터 ‘선제공격’을 입에 오르내린 터라 UFS 실시가 갖는 전쟁 위험성은 그 어느 때보다 높아져 있다.

 조혜정 기자 jhllk2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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