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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실 홈피에서 사라진 메뉴... 수상한 조짐

[그 정보가 알고 싶다] 정보공개 메뉴 사라져... 윤석열 정부에서 국민의 알 권리가 지워지고 있다

사회)

 

 

정보공개센터(cfoi

 

 22.05.25 05:49최종 업데이트 22.05.25 05:49

국민의 알 권리와 이를 실현하는 정보공개제도는 민주주의와 국민주권의 근간으로 여겨진다. 한국의 지난 정권들은 물론이고 현재 각국 정부들이 정보공개를 더 폭넓게 효율적으로 수행해 정부의 투명성과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노력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는 이런 흐름에 대한 인식조차 없는 것인지 국민들의 알 권리와 정보공개에 관한 공약부터 아예 부재했다. 그 결과 임기 초반부터 국민의 알 권리와 대통령실의 투명성이 후퇴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첫 정보공개청구, 대통령실의 반응

지난 5월 10일 윤석열 대통령의 취임식이 국회에서 거행됐다. 예산으로 국고 33억 1800만 원이 배정되었다고 한다. 초대 귀빈들은 4만 1000여 명가량으로 규모면에서 역대 대통령 취임식 중 가장 큰 규모의 취임식으로 기록되었다.

정보공개센터는 취임식에서 지출된 예산의 세부 내역을 알아보기 위해 취임식 이튿날인 5월 11일 대통령비서실에 '20대 대통령 취임식 지출내역'을 정보공개 청구했다. 
 

▲ 대통령실은 20대 대통령 취임식 비용 지출내역 정보공개청구를 접수하지 않고 있다. ⓒ 정보공개센터


청구일이 이미 2주가량이 경과했는데도 아직까지도 정보공개청구가 접수조차 되지 않았다. 공공기관은 통상 정보공개청구가 들어오면 당일 접수해 정보공개처리절차를 시작한다. 접수가 지연되더라도 하루이틀 정도가 고작이다.

그런데도 청구가 발생한 지 2주가량이 경과하도록 접수조차 하지 않는 것은 두 가지 경우라고 볼 수 있다. 아직까지 정보공개를 담당할 담당자가 배치되지 않아 업무를 시작하지 못했거나, 정보공개청구 사실을 알면서도 의도적으로 처리를 지연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둘 중 어느 경우라도 문제가 된다. 아직 담당자를 두지 않은 것이라면 대통령실이 필요한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해 국민의 알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고, 의도적으로 청구 처리를 지연하는 경우라면 청구인에게 불편을 끼치는 악의적인 방식으로 국민의 알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대통령실을 포함한 공공기관의 홈페이지에는 정보공개 관련 메뉴가 접속자들이 쉽게 찾을 수 있는 곳에 배치된다. 이곳에서 시민들은 정보공개제도 안내는 물론이고 공공기관들이 자발적으로 공개하고 있는 주요 '사전공표 정보'를 직접 다운받거나 확인할 수 있고 정보공개청구도 바로 진행할 수 있다.
 

▲ 문재인 정부 청와대 홈페이지에는 정보공개청구 제도 안내 및 서식 제공, 청구까지 가능한 정보공개 메뉴가 있었다. ⓒ 정보공개센터

 

▲ 정보 은폐가 많았던 박근혜 정부에서도 청와대 홈페이지에는 정보공개 메뉴가 독립적으로 운영되었다. ⓒ 정보공개센터


그러나 윤석열 정부 대통령실 홈페이지에는 정보공개 메뉴가 아예 없다. 정보공개제도에 대한 안내도, 자발적으로 공개하고 있는 정보도 없다. 정보공개청구도 바로 진행할 수 없고 정보공개포털에 따로 접속해서 진행해야 한다.
 

▲ 20대 대통령실 홈페이지에는 정보공개 관련 메뉴가 없다. ⓒ 정보공개센터

 
공공기관의 정보공개 수준 퇴보

정보공개 관련 메뉴와 정보들이 대통령실 홈페이지에서 사라진 것을 작은 변화로 볼 수도 있다. 아니면 그저 조금 불편해진 것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다. 하지만 사실상 이는 매우 위험한 퇴보이다.

그 이유는 정보공개 메뉴가 공공기관들 홈페이지 첫 화면에 노출되어 있는 것만으로도 공공기관들은 정보공개를 자신들의 주요 업무로 인식하고 업무에 대한 적절한 부담감과 책임감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시민들은 공공기관 홈페이지를 방문할 때마다 정보공개는 공공기관이 반드시 해야 하는 업무이고 공공기관이 공개하는 정보는 누구든지 접근할 수 있고 원하는 정보는 청구도 할 수 있다는 자연스러운 권리 의식을 갖게 된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는 집권하자마자 대통령실부터 정보공개 메뉴를 아예 없애버렸다. 의도 여하를 막론하고 소통하는 정부를 만들겠다는 윤석열 대통령 본인의 소신과도 배치될 뿐만 아니라 행정부 수장인 대통령실에서부터 정보공개 메뉴가 사라지면 대통령이 정보공개에 관심이 없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다.

따라서 이런 행태는 다른 공공기관들로 하여금 홈페이지에서 정보공개를 삭제하거나 소홀하게 다뤄도 된다고 여기게 만들 수 있다. 그렇게 되면 한국 공공기관들의 전반적인 정보공개 수준 자체가 퇴보하게 되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이 받게 된다.

윤석열 정부가 국민의 신뢰 속에서 임기를 마치고 싶다면 당장 해야 할 것은 대통령실의 정보공개 메뉴부터 되살리는 일이다. 또한 공약에는 없더라도 당장 정보공개제도 실태를 파악하고 더 발전적인 정책을 마련해 정부의 투명성을 제고하기를 바란다. 지금 이런 행정 태도로는 국민에게 신뢰 받기 어렵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정보공개센터 홈페이지에도 게재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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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직자 검증까지 맡은 한동훈에 중앙일보 "왕 장관"

기자명 노지민 기자 입력 2022.05.25 07:47 댓글 0 

 
 

 

[아침신문 솎아보기]
폐지한다던 대통령실 민정 기능, 한동훈 법무부 산하 조직으로
박지현 민주당 비대위원장 읍소, 민주당 진정성 대한 의심 눈길

대통령실 민정수석실의 고위 공직자 인사 검증 조직이 법무부 장관 아래로 들어간다. 윤석열 정부 2인자로 꼽히는 한동훈 법무부 장관에게 과도한 권한이 집중된다는 우려가 잇따르고 있다. 24일 법무부 등 관할 부처가 ‘인사정보관리단’ 신설을 위한 시행령·개정안 등을 입법예고한 가운데, 25일 신문들 모두 이를 비판적으로 다뤘다.

윤석열 정부에서 인사 추천은 대통령인사기획관실, 검증은 법무부 장관 직속 인사정보관리단이 맡게 된다. 인사정보관리단은 검사나 일반직 공무원이 맡는 단장 1명을 포함해 20명 규모로 구성된다. 감사원, 국정원, 국방부, 경찰 등에서 인원을 파견 받는다. 검사가 담당관을 맡는 1담당관실은 사회 분야, 검찰 수사관이나 일반직 공무원이 이끄는 2담당관실은 경제 분야 정보를 담당한다.

동아일보(법무장관 직속 ‘20명 규모 인사검증 조직’ 신설…野 “권한 남용”)는 “대검찰청 사무국장 출신의 복두규 대통령인사기획관과 특수통 검사 출신의 이원모 인사비서관에 이어 법무부에 인사정보관리단이 설치되면서 추천부터 검증까지 검찰이 인사 업무를 장악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며 “법무부는 이런 점을 고려해 감사원이나 인사혁신처 등 비(非)검찰 출신 인사를 초대 인사정보관리단장으로 임명할 방침”이라 설명했다.

▲5월25일자 주요신문 1면 모음
▲5월25일자 주요신문 1면 모음

인사정보관리단을 만들고자 시행령을 활용하는 건 편법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정부조직법상 인사검증은 법무부 장관 권한에 없고, 검찰청법상 검사 직무 범위에도 인사 검증 기능이 없다는 것이다. 서울신문(검사 직무에 ‘인사검증’ 없는데… “정부조직법 등 개정 선행돼야”)은 이런 지적과 더불어 “검사가 검증 도중 범죄 혐의를 발견할 경우 처분도 논란이 될 것으로 보인다”며 “검증 업무를 맡은 검사 입장에서는 수사에 착수하든 범죄를 덮든 모두 문제가 되기 때문”이라고 짚었다.

공직자 인사검증 전반이 검찰 출신 인사에 좌지우지될 우려도 있다. 세계일보(檢 출신, 공직자 인사 좌지우지 우려…‘檢공화국’ 비판 거세)는 “정부 전 부처와 공기업 인사를 담당하는 대통령 비서실의 복두규 인사기획관, 이원모 인사비서관은 각각 대검찰청 사무국장, 대전지검 검사 출신”이라며 “한 장관이 ‘친윤(친윤석열)’ 검사 기용으로 ‘대통령-장관-검찰’로 이어지는 ‘직할 체제’를 구축했다는 지적을 받는 가운데, 일각의 ‘검찰 공화국’ 비판이 더욱 거세질 수 있는 셈”이라 지적했다.

한겨레(윤핵검에 넘긴 ‘공직인사권’)는 “윤석열 정부 인사검증 기능 밑그림을 그리는 작업에, 박근혜 정부 민정수석실에 근무했던 국가정보원 직원 ㄱ아무개씨가 관여한 사실도 확인돼 뒷말이 나온다”며 “ㄱ씨는 박근혜 정부 시절 국정농단 사태가 터졌을 때 삼성그룹 승계 보고서 작성을 위해 우병우 당시 민정수석에게 관련 정보를 전달한 사실이 검찰 수사를 통해 확인되기도 했다”고 했다.

▲5월25일자 중앙일보 만평
▲5월25일자 중앙일보 만평

이날 9개 주요 일간지 중 6개 신문(국민일보·동아일보·서울신문·중앙일보·한겨레·한국일보)은 사설을 통해서도 인사정보관리단 관련 우려를 밝혔다. 중앙일보 사설(인사 검증까지 맡는 한동훈, ‘왕 장관’ 우려 커진다)은 “차관급 인사 검증을 하기 위해 후보자 범주에 드는 실·국장 관련 정보를 수집하고 전 부처 공무원을 대상으로 이런 작업을 진행한다면 과거 국가정보원이 수집·관리하던 ‘세평’ 정보와 흡사해질 수 있다”며 “‘왕 수석’을 없애겠다며 ‘왕 장관’을 만들어내는 우(愚)를 범해선 안 된다”고 경고했다.

박지현 비대위원장 읍소, 민주당엔 ‘싸늘한 시선’

박지현 더불어민주당 공동비상대책위원장이 24일 국회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지방선거에서 기회를 주신다면 책임지고 민주당을 바꿔나가겠다”며 대국민 호소문을 발표했다. 박 위원장은 ‘내로남불’ ‘팬덤정치’ 등을 직접적으로 언급하며 사과했다. 당 혁신을 위한 차별금지법(평등법) 제정, 기후위기 대응, 사회 불평등 해소, 청년 정치인 육성을 약속하는 한편 소위 ‘86그룹 용퇴론’ 관련 질문에 “논의를 거쳐 금주 중 발표하겠다”고도 말했다.

그러나 민주당에선 박 위원장의 대국민 호소에 대한 반응이 엇갈리고 있다. 윤호중 공동비상대책위원장은 86용퇴론을 비롯한 쇄신안에 대해 “당과 협의된 바 없다”고 선을 그었다. 이재명 총괄선대위원장은 다만 “전적으로 공감한다”면서 “민주당은 절박한 마음으로 국민 삶을 개선할 기회를 달라고 호소드리는 것”이라 밝혔다.

박 위원장 기자회견 이후 국민의힘에선 이준석 대표가 곧장 기자회견을 열었다. 서울신문(이준석 “野 발목잡기 뚫고 일하게 해달라”…박지현 사과에 맞불)은 “이 대표는 예정에 없던 국회 대국민 호소 기자회견으로 박지현 더불어민주당 공동비상대책위원장의 대국민 사과 4시간 만에 맞불을 놨다”며 “이 대표가 2018년 이해찬 당시 민주당 대표의 ‘20년 집권론’을 언급한 것도 박 위원장의 사과가 민주당 주류와 괴리된 상황임을 지적하려는 의도”라고 해석했다.'

▲5월25일자 서울신문 사진기사
▲5월25일자 서울신문 사진기사

세계일보 사설(선거 불리해지자 또 부랴부랴 읍소 작전 펴는 민주당)은 이를 두고 “박 위원장은 어제 개딸 등 강성 지지층을 비판하며 팬덤정치 종식을 강조했는데, 공감하는 이들이 많다”면서도 “26세의 박 위원장은 지난 1월 말에서야 이재명 대선 캠프에 합류하고 당내 아무런 세력도 없는 인물”이라고 비판했다. “민주당은 평소에는 오만과 독선의 정치로 일관하다 선거가 불리해지면 고개를 숙인다. 민주당의 이 같은 기만적 행태에 국민은 속아 넘어가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김희원 한국일보 논설위원은 ‘박지현이 과분한 민주당’ 제목의 논설위원 칼럼(지평선)을 썼다. “진단은 하나같이 옳다. 변화는 한결같이 의심스럽다”는 평가다. 그는 “문제의 핵심은 팬덤인데, 이를 기반 삼은 게 민주당 주류이니 변화가 없다. 박 비대위원장의 고군분투가 외롭고 공허한 이유”라며 “그나마 희망이라면 그를 지지하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한 점”이라고 했다. “누가 가세할 것인가가 민주당의 미래를 가늠케 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영방송 비판 이어가는 조선일보

조선일보는 이날 더불어민주당의 방송법 개정안 관련해 ‘‘내로남불’로 정권 잃고도 또 방송 장악 내로남불’이란 제목으로 사설을 썼다. 개정안 요지는 현 9~11인의 공영방송 이사회를 25명 운영위원회 체제로 개편하고, 운영위는 국회와 방송유관단체, 학계, 시청자기구 등 추천을 받도록 하는 방향이다. 공영방송 지배구조가 정치권 후견주의에 매몰됐다는 비판을 해소한다는 취지인데, 조선일보는 이를 두고 “늘어난 운영위원을 민주당 편으로 채우면 공영방송 지배권을 계속 장악할 수 있다는 것”이라 주장했다.

조선일보는 최근 지속적으로 공영방송 지배구조 관련 글을 싣고 있다. 지난 20일엔 보수성향 언론학자로 꼽히는 윤석민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가 민주당안을 비판하면서도 이를 수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칼럼(그래도 공영방송 지배구조는 개혁하는 게 옳다)을 게재했다.

이후 23일엔 허성권 KBS노동조합 위원장이 기고(‘25인 운영위’ 민주당 법안, 공영방송 영구 장악법이다)를 통해 “25인 운영위원회 법안이 제도화되면 민노총 언론노조가 공영방송을 '영구 장악'할 수 있는 시스템이 완성된다”고 주장했다. 이날 조선일보 사설도 비슷한 시각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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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이 남기고 간 신냉전의 덫

  •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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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
    2022/05/25 09:45
  • 수정일
    2022/05/25 09:45
  • 글쓴이
    이필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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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강호석 기자
  •  
  •  승인 2022.05.24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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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댓글 0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이 한·일 순방 일정을 마치고 24일 귀국길에 올랐다.

글로벌 포괄적 전략동맹, 전략적 경제‧기술 파트너십,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 등 어려운 표현들이 많이 나왔지만 결국 바이든 행정부가 평소 강조하던 ‘가치 동맹’에 따른 ‘신냉전’ 체계 구축으로 요약된다.

신냉전은 미국이 중국과 러시아를 포위하기 위해 쿼드, 오커스, 민주 정상회의, IPEF 등 안보‧경제 동맹을 결성하는 새로운 국제질서를 의미한다.

미국 줄서기는 재앙의 덫

이번 바이든 대통령의 순방 일정에서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IPEF의 출범이다.

IPEF는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중국의 경제적 영향력 확대를 억제하기 위해 미국이 동맹, 협력국을 규합해 추진하는 일종의 경제협의체다.

특히 각국의 생산 기술력 수준이 상향 평준화하면서 세계 경제에서 미국의 영향력이 축소하고 대신 원자재 공급망이 세계 무역 시장의 판도를 결정하게 되자, 다급해진 미국은 IPEF 출범을 서둘러야 했다.

문제는 ‘세계 최대 FTA’로 불리는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을 통해 아시아의 경제 공급망을 좌우하는 중국에 맞서 IPEF가 성공할 수 있느냐는 점이다.

미국은 과거 냉전 체제에서 사회주의를 무너트린 경험이 있기 때문에 ‘신냉전’ 질서가 구축되면 이번에도 승리할 수 있다고 동맹국을 독려하고 있다. 그러나 세상은 많이 변했고, 미국도 예전 같은 강대국이 아니다.

무엇보다 과거 냉전은 세계 경제가 사회주의와 자본주의로 양분되었기 때문에 배제와 포위가 자유로웠다. 하지만, 사회주의 붕괴와 미국의 신자유주의 세계화 영향으로 중국은 아시아 모든 나라와, 러시아는 유럽 대부분 국가와 긴밀한 경제 교류를 진행하고 있다.

1992년에 국교를 수립한 한국만 하더라도 미국의 2배가량을 중국과 교역하는 실정이다. 그래서 지금까지 한국은 미국과 중국 중 굳이 한 나라를 선택하지 않는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해 왔다.

문제는 윤석열 정부의 섣부른 IPEF 참여가 가져올 후과다.

당장 중국의 반발이 예상된다는 지적에 윤 대통령은 “중국과 경제적 협력을 소홀히 한다는 건 절대 아니기 때문에 중국에서 너무 과민하게 생각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라고 발을 뺐다.

중국이 윤 대통령의 해명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알 수 없지만, 향후 IPEF에 따른 공급망 배제나 대만 문제 등이 불거지면 미국은 또 줄서기를 강요할 터.

결국 바이든 대통령이 이번에 구체화한 ‘신냉전’ 질서는 언제든 우리 경제와 안보에 재앙을 가져올 덫이 된 셈이다.

러시아 제재와 신냉전의 운명

 

우크라이나를 매개로 한 러시아 고립전략도 성공을 낙관하기는 힘들다.

우선 미국의 러시아 제재에 따른 가스 공급망 차단으로 당장 독일이 오래 버틸 것 같지 않다.

석유와 천연가스를 전적으로 수입에 의존하는 독일은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천연가스를 확보하기 위해 2012년 러시아에서 독일 해안에 이르는 장장 1,230㎞의 파이프라인(노르트 스트림-2) 사업을 추진했다. 그러나 2022년 2월 공사를 완공한 시점에 우크라이나 사태가 발생했고, 미국은 러시아 제재를 위해 이 가스관 개통을 불허해 버렸다.

문제는 우크라이나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독일이 언제까지 버틸 수 있느냐에 달렸다.

미국은 (미국산) 셰일 가스로의 공급 다변화를 주문하지만 현실적 대안으로 자리 잡는 데는 긴 시간이 필요할뿐더러 독일이 10년에 걸쳐 건설한 가스관을 이제 와서 포기할 리도 없다.

시간은 오히려 러시아 편이다.

러시아는 현재의 에너지 차질이 유럽 경제를 강타해 결국 반러 연합이 깨질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실제 독일과 유럽은 현재의 비축분으로 겨울을 날 수 없다. 올가을 유럽에 무슨 일이 생길까?

신냉전과 국익 사이

미국의 러시아 제재로 인한 피해는 한국도 만만치 않다.

이미 75%를 러시아에서 수입하던 유연탄 공급이 막히면서 시멘트 대란을 예고하고 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조선업계에서 터졌다.

러시아 선주의 대금 미지급 사태가 빚어지면서 10조 원 규모의 러시아 수주물량을 보유한 국내 조선업계에 비상이 걸린 것.

미국의 금융제재로 러시아가 국제은행 간 달러 결제망(SWIFT)에서 퇴출당함에 따라 현실적으로 러시아 선주가 국내 조선사에 대금을 지급할 길이 마땅치 않아 업계는 ‘대규모 계약 해지 사태’라는 최악의 상황에 몰렸다는 소식이다.

이런 사정에도 불구하고 윤석열 대통령은 이번 한미 공동성명에서 “러시아에 대한 자체적 금융 제재와 수출통제를 강화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아울러 한미관계를 ‘글로벌 포괄적 전략동맹’이라고 명명하면서, 러시아를 반대하고 우크라이나 지원을 선언했다.

국익을 위해서라면 ‘영원한 적도 영원한 동맹도 없다’는 국제사회의 관행을 굳이 들먹이지 않더라도 국가를 대표하는 최고 지도자라면 중요한 외교적 결단에 앞서 최소한 국민의 눈치는 볼 것으로 기대했다면 너무 지나친 욕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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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정신 계승해 민족자주 쟁취하자” ..한통련, 5.18 기념집회 개최

이준일 재일동포 | 기사입력 2022/05/23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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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주출청가를 부르는 재일한국청년동맹, 재일한국인학생협의회 회원들.  © 이준일

 

재일한국민주통일연합(이하 한통련)은 22일 일본 나고야 시내에서 ‘광주정신을 계승하고 민족자주를 쟁취하자! 광주민중항쟁 42주년 기념 재일한국인 전국 집회’를 개최했다.

 

김창오 한통련 사무국장의 사회로 진행된 집회는 민중 의례, 영상 상영에 이어 조기봉 한통련 부위원장이 개회사를 했다. 

 

조 부위원장은 “광주의 정신은 민주화를 요구하는 사람들의 마음이며 6월민주항쟁, 촛불혁명으로 계승됐다. 한국에서는 조국통일에 역행하는 정권이 탄생했다. 미국이 말하는 대로 따라가, 남북관계는 정체할 우려가 있다. 하지만 역사는 반드시 비정상적인 것을 정상으로 바꾸어 간다. 지금이야말로 광주의 투쟁을 계승해 자주, 민주, 통일의 길로 매진하자”라고 강조했다.

 

송세일 한통련 위원장은 한반도 정세에 대해 강연을 했다. 

 

송 위원장은 미국의 대외정책에 대해 “자신의 패권을 막는 것을 ‘적대세력’으로 삼아 동맹국. 파트너국과의 관계를 강화함으로써 압력을 가하는 ‘신냉전’ 전략을 추진하려고 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윤석열 정권에 대해서는 “철저한 미국 추종이며 한미동맹은 글로벌 포괄적 전략동맹으로 강화하려고 한다”라고 주장했다. 이어 남북관계에 대해서는 “지금까지의 남북 합의를 무시하고 일방적인 비핵화를 요구하고 있다. 북한이 이런 요구에 응할 수는 없고 남북관계는 더욱 정체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면서 앞으로의 과제에 대해서는 “민족자주세력의 총결집해 윤 정권의 대미종속·남북대결 정책을 파탄시켜 남북 합의를 실천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 정세 강연을 하는 송세일 한통련 위원장.  © 이준일

 

각 지방본부에서 의견표명이 이루어졌다. 

 

김승민 카나가와본부 사무국장은 “청년 시절 광주 투쟁을 배우고 민족의 일원으로서 자랑스러운 마음을 가질 수 있었다. 앞으로는 지역에서 민족자주역량을 결집해 일본에 의한 역사왜곡책동을 파탄 내고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위해 나아가겠다”라고 말했다. 

 

정승명 미에본부 사무국장은 “광주 42주년을 맞아 민족의 자주를 빼앗고 있는 것은 누구인지 다시 한번 가슴에 새겨야 한다. 윤 정권은 미국종속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민주화와 통일로 가는 행보는 정체해 북한과의 대결 자세를 나타내고 있다. 우리 민족의 미래를 맡기지 못하는 정권이다. 광주정신을 계승해 미국의 지배와 간섭을 물리치고 자주, 민주, 통일을 달성하자”라고 호소했다.

 

재일한국청년동맹(이하 한청)과 재일한국인학생협의회 회원들이 광주정신에 대한 마음을 모으며 ‘광주출정가’를 힘차게 제창했다. 

 

한성우 한청 중앙본부 위원장은 “우리 청년학생은 윤석열 정권이 악랄한 방해를 해도 당당하게 싸워나가겠다. 광주정신을 계승하고 더 많은 재일동포 청년과 손을 잡고 자주, 민주, 통일을 추진해 나갈 것”이라고 결의를 말했다.

 

김원도 한통련 사무 부국장이 낭독했다.

 

한통련은 ‘▲광주정신 계승하고 민족자주를 쟁취할 것 ▲윤석열 정권의 대미종속 책동을 규탄할 것 ▲남북 합의 실천을 요구할 것 ▲자주, 민주, 통일의 깃발 아래 조직과 운동을 전진시킬 것’ 등을 결의했다. 

 

김창오 사무국장은 폐회사에서 “검찰 권력을 배경으로 한 윤 정권은 앞으로 반드시 촛불시민과 대결하게 될 것이다. 우리 투쟁은 오늘 집회를 계기로 시작한다. ‘자주적 민주정부’ 수립을 위해 함께 싸워나가자”라고 호소했다.

 

▲ 참가자들 전체 사진.  © 이준일

 

아래는 결의문 전문이다.

 

결의문

 

역사적인 광주민중항쟁으로부터 42주년을 맞았다. 1980년 5월 광주지역 학생 시민들은 전두환 군부세력이 투입한 계엄군에 대해 민주를 지키기 위해 과감하게 나서 결사적으로 싸웠다. 광주민중항쟁은 역대 군부독재 배후에는 미국이 존재하는 것을 밝히며 반독재민주화 투쟁을 반외세민족자주화 투쟁으로 발전시키는 데 결정적인 계기가 된 민주화 투쟁이다. 전국에서 결집한 우리들은 광주민중항쟁의 투쟁 정신, 광주정신을 계승하고 반드시 민족자주를 쟁취하는 것을 결의한다.

 

바이든 미정권은 북한(조선)에 대해 “적대시는 하지 않는다”, “무조건 대화한다”라며 외교관여 자세를 강조하는 한편 북한(조선) 측이 적대시 행위로서 중지를 요구하는 한미연합군사훈련을 강행하는 등 북한(조선)에 대한 군사압력을 계속 가하고 있다. 또 중국에 대항하는 인도·태평양전략을 내세워 한국, 일본 등 동맹국과 파트너국을 총동원함으로써 중국 포위망 구축을 서두르고 있다. 이런 속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5월 21일 서울에서 바이든 대통령과 첫 정상회담을 개최하고 한미동맹을 포괄적 전략동맹으로 끌어올려 강화하기로 합의했다. 이는 북한(조선)에 대한 한미연합군사 태세를 더욱 강화하는 것과 함께 한국의 인도·태평양경제포럼(IPEF)에 참가한 것이 보여주는 듯 한미동맹을 경제·안보 분야로 확대하는 것을 의미하며 한미동맹은 군사와 지역을 넘는 확대 동맹이 되었다. 윤 정권이 바이든 정권과 함께 추진하는 포괄적 전략동맹과 한미일 군사동맹에 의해 한국은 미국을 추종하면서 세계적인 ‘신냉전’으로 휩쓸리며 그 전초기지가 될 위험성을 가지고 있다. 미국의 패권 정책에 단호히 반대하는 것과 동시에 윤 정권의 대미 추종 자세를 엄격히 규탄해야 한다.

 

2018년 판문점선언과 평양공동선언, 군사분야합의서에 따라 본격적으로 시작되어야 했던 한반도의 평화와 조국통일로의 획기적인 행보는 민족자주권에 대한 미국의 지배와 간섭, 또 문재인 정권의 민족자주성 상실로 인해 유감스럽게도 현재도 정체되고 있다. 윤 대통령은 대통령 선거기간 중 ‘북한(조선)에 대한 선제공격’ 발언 등 북한(조선)에 대한 대결 자세를 명백히 하면서 대통령 취임사에서는 남북합의를 언급하지 않고 남북합의에 없는 ‘북한(조선)의 선비핵화’를 주장했다. 그러나 문 정권 말기에 나눠진 남북정상 간의 친서는 윤 정권에 대해 “남북합의를 준수하면서 대화로 관계 개선하자”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윤 대통령은 북한(조선)에 대한 대결 자세를 전환하고 민족자주 밑에 남북합의를 존중하고 성실히 실천함으로써 남북관계의 개선과 발전을 추진해야 한다.

 

윤 정권의 출범에 즈음하여 우리는 광주정신을 계승하고 자주, 민주, 통일을 하루라도 빨리 실현하는 결의를 가슴에 새기면서 다음과 같이 결의한다.

 

결의사항

 

1. 광주정신을 계승하고 민족자주를 쟁취하자!

 

1. 미국의 패권정책에 반대하고 윤석열 정권의 대미추종을 규탄한다!

 

1. 윤석열 정권은 남북합의를 성실히 실천하라!

 

1. 자주, 민주, 통일의 깃발 아래 조직과 운동을 전진시키자!

 

2022년 5월 22일

광주정신을 계승하고 민족자주를 쟁취하자!

광주민중항쟁 42주년 기념 재일한국인 전국 집회 참가자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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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정상회담 북한핵 대응 전략이 불안한 이유

  • 기자명 고승우 언론사회학 박사 
  •  
  •  입력 2022.05.23 17:49
  •  
  •  댓글 2
 
 

[기고] ‘핵에는 핵으로 대응’ 전략 외에 한국의 자주적 평화적 해결 방안 나왔어야

한미 두 나라 대통령이 21일 열린 정상회담에서 북한의 핵 공격 위협 시 핵을 포함한 모든 방어 역량을 한국 방어에 투입하는 미국의 확장 억제 공약을 확인했다. 한미 공동성명에 확장 억제 수단으로 ‘핵’과 ‘재래식’ ‘미사일 방어’를 포함한 모든 방어 역량을 구체적으로 명시한 것은 처음이다. 한미 두 나라는 북한 핵 공격에 대비한 양국의 연합 훈련도 필요하다는  논의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미 정상이 북한 핵에 대한 방침을 천명한 것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최근 “우리의 핵이 전쟁 방지라는 하나의 사명에만 속박되어 있을 수는 없다”면서 ‘선제 핵 타격’을 위협한 것에 대한 대응 성격으로 보인다. 북한 최고 지도자가 핵무기 선제사용 가능성을 언급한 뒤 국내외 정치권과 언론 등은 경계심과 날선 비판을 쏟아냈고 그에 대한 대응책이 한미정상회담을 통해 제시된 것이다.

두 정상은 그러나 한반도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 정착, 남북한 평화통일 문제 등에 대해서는 침묵해 아쉬움을 남겼다. 한국의 입장에서는 핵전쟁을 피하는 것은 물론 민족의 숙원인 평화통일 추진이라는 과제를 달성하기 위한 방안이 절실한데도 이런 부분은 찾아보기 힘들다.

미국의 대북 정책은 비핵화를 유도하기 위한 압박과 봉쇄전략이었고 중국에 대해서도 전방위적인 공세전략을 펴왔던 던 점에서 이번 한미정상회담의 북핵 대응책은 미국에게 매우 만족스런 결과라 하겠다.

외교적 합의를 제로섬 원칙에 비춰볼 때 미국의  만족감이 클수록 한국에게는 그렇지 않다는 것은 불가피하고 그것은 비정상이다. 한반도 핵전쟁이 발생할 경우 그로 인한 파국적 비극은 민족전멸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윤석열 정부는 최선을 다했는지 자문해 보아야 할 것이다.

미국의 동북아 전략이 자칫 냉전 회귀가 아니냐 하는 우려가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이 미국과 찰떡공조를 할 뿐 한국 자주적 대북 및 동북아 정책을 추진하지 않는 것은 깊이 새겨볼 부분이다. 국제외교는 당사국들의 이해관계가 100% 일치하기는 어려운 법이고 국가별 특성에 따른 자주적 외교 추진이라는 부분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한미간 안보 및 경제협력 합의사항 가운데는 중국이 반발할 부분도 포함되어 있는 것도 간과할 수 없다. 한중 경제관계의 비중은 한미, 한일의 경제관계 비중을 합한 것보다 더 크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윤석열 정부가 앞으로 이런 점을 어떻게 대응할지 두고 보아야 하겠지만 대통령 취임식 열흘 만에 급조된 듯한 정상회담에서 미국 쪽 주문에 너무 기울어버린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현실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한미 두 나라 정부나 전문 가등이 예민한 반응과 큰 우려를 표시했던 김정은 위원장의 새로운 핵전략 언급도 정치군사적인 측면에서 다각도로 분석해야 한다. 그것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유엔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평화적으로 종식시키는 역할을 하지 못하고 제 3자의 중재가 나서지 않으면서 전쟁의 양상이 점차 심각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나왔다는 점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자칫 세계 대전으로 비화할지 모른다는 우려감이 커지면서 미국, 러시아가 핵무기 선제 타격 가능성을 언급했고 그런 연장선상에서 북한의 핵 선제사용논리가 나온 것을 주목하는 시각은 거의 없었다.

▲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5월2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집무실에서 소인수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사진=대통령실 홈페이지
▲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5월2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집무실에서 소인수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사진=대통령실 홈페이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기간 동안 변화한 미러의 핵 선제 타격논리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되고 우크라이나를 무대로 미국과 러시아가 군사적으로 충돌하고 힘겨루기 하는 모양새로 치닫는 상황이 되면서 미국과 러시아의 핵전략 수정이 이뤄지는 등 세계정세가 복잡해지고 있다.

우선 푸틴 대통령은 침략전쟁이 장기화되면서 서구진영의 경제봉쇄 등의 공세에 시달리자 위 기시 핵무기 사용 가능성을 시사하거나 최첨단 대륙간탄미사일 실험을 하기도 했다. 러시아는 국가가 존망의 위기에 처했을 경우 핵무기를 사용한다는 입장이다(https://theintercept.com/2022/04/11/nuclear-weapons-biden-russia-strike-policy/).

이에 미국 바이든 대통령이 대선 당시 내놓았던 핵무기 선제공격 공약을 뒤집었다. 바이든 대통령은 2022년 3월 외국의 화학무기 공격과 같은 극단적인 상황에 미국과 우방의 핵심적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핵 선제공격을 할 수 있다고 말해 핵 선제공격의 문턱을 낮췄다. 이렇게 되면서 미국과 러시아의 입장 차이가 없어졌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2021년 12월 실시된 대선 공약에서 “미국이 핵무기를 보유하는 유일한 목적은 외국의 핵 공격을 억제하는 수단이다. 내가 대통령이 되면 미국 군부와 미 우방들과 협의해 이런 목표를 수행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는 미국이 핵 선제공격을 하지 않는다는 다짐이었다.

바이든 대통령의 핵사용에 대한 입장 변화는 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화학무기를 쓸 가능성이 있다는 언론 보도가 나온 뒤 공개됐다. 미국 정부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최악의 상황에 빠질 경우 전술 핵무기를 사용할 가능성이 있다’는 언급을 계속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미국과 러시아의 최고 지도자들이 인류를 절멸시킬 공동의 군사목표를 정해놓은 꼴이 되었다. 두 대통령은 핵 선제타격을 명령함으로써 지구의 모든 생명체가 종말을 고할 수 있는 유일한 신과 같이 막강한 권력을 두 나라 제도로 부터 부여받고 있는 것이다.

한편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2022년 4월27일 조선인민혁명군 창건 90주년 경축 열병식 연설에서 “적대세력들에 의해 지속되고 가증되는 핵위협을 포괄하는 모든 위험한 시도들과 위협적 행동들을 필요하다면 선제적으로 철저히 제압·분쇄하기 위하여 우리 혁명무력의 절대적 우세를 확고히 유지하고 부단히 상향시켜나가겠다”고 밝혔다(연합뉴스 2022년 4월29일). 이는 김 위원장이 핵무기를 전쟁 방지뿐만 아니라 근본이익 침탈 시도에도 사용하겠다고 밝히는 등 선제 핵공격 가능성을 시사한 것의 연장선상으로 보인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조선중앙TV가 녹화 중계한 지난 4월25일자 열병식 연설에서 핵무력 강화 발전을 거론하고 "우리가 결코 바라지 않는 상황이 조성되는 경우에까지 우리의 핵이 전쟁 방지라는 하나의 사명에만 속박돼 있을 수는 없다"라고 발언했다. 이는 북한이 방어나 보복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공격의 목적으로도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고 위협한 것이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핵무기만이 침공으로부터 나라를 지킬 수 있다"라는 믿음을 북한이 더 강하게 갖게 된 것이라는 해석이 미전문가들에 의해 제기됐다(뉴시스  2022년 4월27일).

▲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5월1일 조선인민혁명군 창설 90주년 (4월 25일) 기념 열병식을 성과적으로 보장하는 데 기여한 평양시 안의 대학생, 근로청년들과 기념사진을 찍었다고 조선중앙TV가 5월2일 보도했다. 김 위원장이 열병식 참가 청년들을 향해 왼손 엄지손가락을 치켜들고 있다. 사진=조선중앙TV 화면, ⓒ 연합뉴스
▲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5월1일 조선인민혁명군 창설 90주년 (4월 25일) 기념 열병식을 성과적으로 보장하는 데 기여한 평양시 안의 대학생, 근로청년들과 기념사진을 찍었다고 조선중앙TV가 5월2일 보도했다. 김 위원장이 열병식 참가 청년들을 향해 왼손 엄지손가락을 치켜들고 있다. 사진=조선중앙TV 화면, ⓒ 연합뉴스

미러와 중국의 핵전략 차이

미국의 핵전략은 미 대통령의 판단에 의해 집행되는데 북한에 대한 핵공격도 마찬가지다. 미 대통령의 선제타격권은 한국 대통령에게 북핵 선제타격에 대해 사전협의나 동의가 포함되어 있지 않다. 미 의회의 사전 승인도 받지 않는다. 북한도 미 대통령의 선제 타격권을 의식해 새로운 핵전략을 내놓은 것 아닌가 하는 추정을 할 수 있다.

그러나 핵무기 보유 실태를 보면 미러가 각각 6천~7천개, 중국이 3백~4백 개이고 북한은 수십 개라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미국이 북한 핵이 세계 평화를 위협한다면서 러시아, 중국과 동일한 비중으로 대처하고 한국이 공동보조를 취하는 것이 현명한 것인지는 신중하게 따져보아야 할 것이다.

여러 가지 변수를 고려할 때 현재 상황은 한국에게는 매우 심각하다. 만약 현재와 같은 군사구도에서 북한의 핵전략과 미국의 핵전략이 충동할 경우 한국의 군사적 주권이 설 자리가 없다. 이런 점에서 한국이 경제력 세계 10위, 군사력 6위라는 국제적 위상을 살리면서 한반도에서의 군사적 충돌을 예방, 억제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춰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동북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미국, 러시아, 중국의 핵전략을 살펴야 할 필요가 있다. 북한도 3 개 핵 강대국의 핵전략을 의식하고 대응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지구촌의 두 핵 강국인 미국과 러시아의 핵전략은 비슷한 체제인 반면 중국의 핵전략은 조금 차이가 있다. 현 시점에서 미국과 러시아는 핵무기로 선제타격을 한다는 것인데 중국은 핵 보복에 초점을 맞추고 핵 선제타격은 하지 않는다는 전략이다. 그러나 중국도 미국과 러시아의 태도에 영향을 받아 종래의 핵사용 전략에 변화 가능성의 틈이 커지고 있다.

미국과 미사일의 경우 적국의 미사일 공격을 탐지하는 조기 경보시스템이 위성과 육상 레이더와 연결되어 있어 적국의 핵탄두가 자국 영토위에서 폭발하기 전에 탐지해서 요격미사일을 발사하는 시스템과 함께 상대방이 기습 핵공격을 할 경우를 가상해 전략 핵무기를 항상 최고의 경계태세를 유지하면서 즉각 응징 보복할 수 있는 태세를 갖추고 있다.

이런 전략을 ‘경보가 울리면 발사하는 시스템이라고 불린다. 한국에 배치된 미국의 고고도미사일, 사드가 중국과 러시아가 미국을 향해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발사할 경우 조기에 탐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알려져 있다(https://carnegieendowment.org/about 카네기 국제평화재단은 미국의 철강왕 앤드루 카네기가 설립한 재단이다).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서 성주기지의 사드 정식 배치 절차를 협의했다는 이야기가 들리고 있고 이것이 사실이라면 중국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는 자명해 보인다.

중국의 핵전략은 다른 나라가 핵무기를 중국에 사용하는 것을 저지하면서 적이 먼저 핵공격을 해 올 경우 핵 보복을 하지만 핵무기를 먼저 사용치 않는다는 원칙을 밝혀왔다. 중국은 국방백서를 통해 ‘중국의 핵 무력의 목적은 다른 나라가 핵무기를 중국을 향해 사용하는 것을 억제하기 위한 것이고 실제 중국에 핵 공격이 가해졌을 경우 핵 보복을 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혀왔다. 이 때문에 중국은 핵무기를 평화 시에는 고도의 경계상태로 유지하지 않고 핵탄두와 미사일을 따로 분리해 놓고 있다(Paul H. B. Godwin, “Potential Chinese Responses to U.S. Ballistic Missile Defense,” in Stimson/CNA NMD-China Project (January 17, 2002); Hans M. Kristensen, Robert S. Norris, and Matthew G. McKinzie, “Chinese Nuclear Forces and U.S. Nuclear War Planning,” (Washington, DC: Federation of American Scientists/Natural Resources Defense Council, 2006)).

▲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019년 8월29일 중국 베이징의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국가 훈장 및 국가 명예 칭호 대상자 시상을 마치고 연설하고 있다. ⓒ 연합뉴스
▲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019년 8월29일 중국 베이징의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국가 훈장 및 국가 명예 칭호 대상자 시상을 마치고 연설하고 있다. ⓒ 연합뉴스

그러다가 중국은 안보위기 상태가 고조되면 핵무기의 경계상태가 상향 조정된다. 중국은 핵공격을 당했을 경우에도 즉각적인 핵 보복을 실시하지 않고 며칠 또는 몇 주를 관망하면서 핵공격이 필요한지 여부와 적절한 대응조치를 검토 한다(Bin Li, “China and Nuclear Transparency” in Transparency in Nuclear Warheads and Materials: The Political and Technical Dimensions, ed. Nicholas Zarimpas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2003)). 그러나 이 같은 핵전략은 2015년에 이어 2019년 중국 국방백서가 핵무기에 대해 전략적 조기 경보체제를 강화한다고 밝힌 바 있어 중국의 핵 보복 전략도 수정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추정 된다(“China’s National Defense in the New Era,” (Beijing: State Council Information Office of the People’s Republic of China, 2019)).

실제 2013년 발간된 중국의 군사과학전략에 대한 책자는 “적이 중국에 대해 핵미사일을 발사했다고 확신할 경우 그 탄두가 중국을 목표로 폭파해서 중국에 실제적인 피해를 주기 전에 중국은 즉각 보복조치로 핵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다. 적에 의해 최초의 핵공격이 가해지고 난 직후에 중국이 핵 보복조치를 취하는 것은 중국이 오랫동안 유지해온 ‘최초로 핵무기를 사용치 않는다’는 원칙에 위배되지 않는다’”라고 썼다(Xiaosong (寿晓松) Shou, Science of Military Strategy (战略学) (Beijing: Military Science Press (军事科学出版社), 2013)).

미중러의 핵전략은 동일하지는 않지만 결과적으로 지구촌 전체가 쑥대밭이 되는 전면 핵전쟁의 가능성을 전제한 것이다. 전면 핵전쟁은 1945년 미국이 일본에 두 번의 핵폭탄을 터뜨린 뒤 핵 위력이 모두에게 입증되면서 인류가 행할 수 있는 가장 야만적 행위라는 지탄을 받아왔다.

대통령은 군통수권자, 군사적 측면에만 매몰되어서는 안 돼

핵보유국들의 핵전략 담당 군고위층은 군사적이 측면만을 고려할 뿐 핵전쟁으로 인한 인류전멸이라는 파국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 않는다. 그것은 정치가 할 일인 것이다. 맥아더가 한국전쟁에서 핵무기 사용을 고집할 때 그 정치적 파급 효과에 대해 무신경했다가 미대통령에 의해 면직 된 것이 그런 사례다.

이 때문에 민주주의 국가에서 대통령이 군통수권자가 되고 정치가 군사에 우선한다는 논리가 헌법으로 보장받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자신이 군사령관이 아니라는 점, 그래서 군사적인 측면에만 매몰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한국 대통령은 미국의 한반도 및 동북아 전략에 대해 살펴야 하지만 거기에 경제와 평화, 안전 등을 총체적으로 포괄하는 전략을 미국과 대등한 입장에서 협상해 그 결과를 내놓아야 한다. 한미 대통령이 민족이 거덜이 날 가능성을 함축한 전략 등에 대해  같은 목소리를 낸다는 것은 자주적 평화통일을 원하는 유권자를 불안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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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동밥에 즉석밥까지 ‘미국산 쌀’ 밀어넣는 대기업들

컵반에 미국산 쌀 사용 시작한 CJ제일제당 “소스와 잘 어울려” 황당 해명

 
대형마트 한편에 마련된 즉석밥 판매대 ⓒ뉴시스
 
 
식품 대기업이 미국산 수입쌀 사용을 확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수입쌀에 대한 거부감이 적은 젊은세대가 이용하는 간편조리 제품군에 미국산 쌀 사용 비중을 늘리고 있다. 자원 무기화가 세계적으로 가속화하는 시점에, 대기업의 무분별한 수입쌀 사용이 한국 농업 근간을 흔들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23일 민중의소리 취재를 종합하면, CJ제일제당은 자사 제품군에 미국산 쌀 사용을 확대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CJ는 지난해 4월 출시한 ‘BIG치킨마요덮밥’, ‘BIG스팸마요덮밥’, ‘BIG스팸김치덮밥’ 등 7종의 컵밥 제품에 미국산 쌀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출시 당시 이들 제품은 100% 국산쌀을 사용한 즉석밥이 들어갔으나, 지난 3월 말부터 미국산 쌀로 대체했다. CJ는 모두 30여종의 컵밥, 덮밥, 국밥 등의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컵밥 제품에 미국쌀 사용 비중은 0%였다가 지난 3월부터 23%까지 올라갔다.

식품 업계에선 “이대로 가면 국내 컵밥 제품에서 국산 쌀을 찾아보기 어려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오뚜기가 생산하는 비슷한 형태의 덮밥 13종은 모두 국산쌀을 쓰고 있는데, 치열한 원가 절감 싸움을 벌이는 식품업계에서 경쟁 업체들이 언제까지 국산쌀을 고집할 수 있겠냐는 것이다.
 
미국쌀 살 사용이 시작된 CJ제일제당 컵반 제품과 원산지 변경 고시 ⓒCJ몰 캡쳐


CJ제일제당 “소스와 어우러짐 중요해 미국쌀 쓴다” vs 농업계 “구차한 핑계” 일축

CJ 측은 미국산 쌀 사용 이유에 대해 “수차례 테스트 진행한 결과”라고 해명했다. 미국산 쌀이 소스에 가장 잘 스며들어 높은 점수를 받았다는 주장이다.

전문가들 사이에선‘납득하기 어렵다’는 반응이다. 원가 절감을 위해 수입쌀을 쓰면서 여론 악화가 우려되니 궁색한 해명을 내놨다는 뜻이다.

CJ가 컵밥에 쓰는 미국산 쌀 품종은 칼로스(Calrose)다. 앞의 칼(Cal)은 생산지인 미국 캘리포니아의 약자다. 뒤의 로스(rose)는 장미라는 뜻이다. 칼로스는 ‘캘리포니아의 장미’라는 뜻을 담고 있다.

칼로스는 한국과 일본이 주로 먹는 ‘자포니카’ 품종이다. 학계에선 쌀알의 길이에 따라 한국 재배 자포니카를 ‘단립종’, 미국 캘리포니아 재배 자포니카를 ‘중립종’으로 구분한다. 쌀 낱알 하나의 길이가 한국은 상대적으로 조금 짧고, 미국이 약간 길기 때문에 하는 구분이다. 밥을 지어 놓으면, 일반인은 구분하기 매우 어렵다. 밥 맛도 비슷하다. CJ가 “미국산 쌀에 소스가 잘 스며들었다”는 해명에 전문가들이 동의하지 않는 이유다.

수입쌀의 대명사인 장립종과는 구분해야 한다. 장립종은 미국산 중립종보다 쌀알의 길이가 훨씬 길다. 일반인도 척 보면 구분할 수 있다. 원산지 표기에 ‘쌀 = 국내산’이라고 적힌 식당에서 공깃밥을 열고 흠칫 놀라는 길쭉한 쌀이 바로 장립종이다. 종도 자포니카가 아니라 인디카 품종이다. 베트남 쌀, 태국 쌀로 알려진 ‘안남미’가 대표적이다.

특성도 다르다. 길이가 길고 윤기가 적어 소스를 잘 흡수하는 게 특징이다. 또 찰기가 적어 볶음밥 등의 요리에 주로 사용한다. 김호 단국대 환경자원경제학과 교수는 “CJ 말처럼 소스를 잘 흡수해서 칼로스를 쓴다면, 그보다 더 잘 흡수하는 안남미를 써야하는 것 아니겠냐”고 반문했다.

문제는 가격이다. 20kg 한 포대를 기준으로 미국 자포니카는 한국 자포니카에 비해 1만원 정도 싸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 따르면 지난 18일 기준 국산 쌀(중품) 도매가는 20kg당 4만6천원이다. 반면 미국산 칼로스는 20kg 한 포대에 3만6천원이었다. 도매 낙찰가 기준, 1만원 차이다.

컵밥에는 통상 210g 짜리 즉석밥 1개가 들어간다. 쌀 20kg 한 포대면 즉석밥 95개를 만들 수 있다. 컵밥 판매량을 연 백만개라고 가정하면, 국산쌀로 만들었을때 재료비가 480억원, 미국산 칼로스 재료비가 370억원으로 100억원 이상 절감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김정룡 전국쌀생산자협회 사무총장은 “덮밥류인 컵밥에 국산 쌀보다 미국산 쌀이 더 적합하다는 CJ제일제당의 주장은 구차한 핑계일 뿐”이라며 “결국 돈 더 벌자고 한 일 아니겠냐”고 지적했다.
 
미국산 쌀 사용을 시작한 BIG사이즈 햇반컵반 ⓒ캡쳐


‘경계’ 넘어 컵밥까지 미국산 쌀 사용 시작한 CJ
‘너도나도 미국산’ 식품업계 도미노 도화선 되나
‘식량위기’ 우려도 커져


식품업계에 볶음밥·비빔밥 등 ‘냉동밥’에 미국산 쌀이 침투한 지는 오래다. CJ가 생산하는 22개 냉동밥 제품 중 21개(95.5%) 제품에는 수입산 쌀을 사용한다. CJ뿐 아니다. 풀무원 역시 17개 중 11개(64.7%) 제품에, 오뚜기는 14개 중 9개(64.3%) ‘냉동밥’ 제품에 수입산 쌀을 사용한다. 냉동밥에 국산 쌀을 사용하는 대기업은 하림 뿐이다. 8개 냉동밥 제품 모두에 국산 쌀을 쓴다.

컵밥은 상황이 다르다. CJ의 미국산 쌀 컵밥 사용은 그간 업계에서 합의된 경계를 무너뜨렸다는 상징적 의미를 갖는다. 컵밥 시장에서 CJ와 경쟁하는 오뚜기는 제품 24종 모두에 국산 쌀만 쓴다. 업계에선 오뚜기가 컵밥에 미국산 쌀을 쓰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것이 대체적인 시각이다. 컵밥 시장 진출을 타진하고 있는 풀무원과 동원, 하림 역시, 원가 경쟁력을 감안하면 국산 쌀 사용 정책을 고수하기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산 쌀은 냉동밥을 넘어 컵밥 시장을 잠식하고 있다. 아직 ‘햇반’이나 ‘오뚜기밥’ 같은 원조 즉석밥에 국산쌀이 쓰이지만, 이 추세 대로라면 미국산 ‘햇반’이 나오지 말라는 법이 없다.

전문가들이 컵밥 미국산 쌀에 우려를 보내는 이유다. 식품 대기업 수익은 늘겠지만, 국내 농업 기반은 더 흔들린다. 지난해 기준 국내 즉석밥 시장점유율은 CJ제일제당이 67%다. 부동의 1위다. 오뚜기(30.7%)와 동원F&B(2%)가 뒤를 잇는다. 최근 하림 등이 즉석밥 시장에 뛰어들긴 했지만, 시장점유율은 미미한 수준이다.

CJ는 국내에서 가공용 쌀을 가장 많이 쓰는 기업이기도 하다. 2019년 기준 CJ가 계약재배로 사들인 쌀은 약 5,122톤에 달한다. CJ가 수입산 쌀 사용 비중을 늘려갈 수록, 국산 쌀 농가의 판로가 줄어드는 것이 현실이다.

국내 쌀 산업 위기는 최근 지속적으로 높아지고 있다. 생산비는 늘어나는데 쌀 가격은 하락 추세다. 이근혁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 정책위원장은 “비룟값부터 농약값, 인건비 등 쌀 생산비가 최하 25% 이상 올랐는데, 국산 쌀 가격은 떨어지고 있는 상황이어서 농민들의 어려움이 커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식량 서플라이 체인’도 위기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밀 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인도가 밀 수출을 중단하고, 인도네시아는 팜유 수출을 막았다. ‘자원 무기화’, ‘식량 무기화’는 눈 앞에 닥친 리스크가 됐다. 한국 쌀 산업의 위기가 식량 위기로 직결될 가능성이 높아진 셈이다.

김정룡 사무총장은 “국내 기업들조차 한국쌀을 쓰지 않는다면 우리 농업은 버틸 힘을 잃게 될 수밖에 없다. 식량 위기가 현실화하는 것”이라고 경고했다.
 
추수 자료사진.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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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부의 선택... 싱가포르 총리는 왜 격노했을까

[이봉렬 in 싱가포르] 한국 노동자들이 더 많이 죽는 결정적 이유

22.05.24 06:00최종 업데이트 22.05.24 06:00
저는 싱가포르의 한 반도체 공장에서 일을 합니다. 반도체 공장이라고 하면 최첨단 시설의 좋은 환경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사실은 세상의 온갖 가스와 화학제품을 이용하는 위험한 곳입니다. 삼성의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이 백혈병에 걸려 사망한 사건이 영화로도 만들어진 적이 있어서 이제는 그 위험성도 많이 알려졌고, 또 많은 개선이 이뤄지기도 했습니다.
 

▲ 싱가포르의 한 반도체 회사 공장 입구에 안전 상황판이 걸려 있습니다. 다양한 사고 사례를 함께 모아 놓고 주의를 환기시킵니다. ⓒ 이봉렬

 
제가 다니는 공장 입구에 안전현황판이 붙어 있습니다. 지난 50일 동안 안전사고가 없었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 옆에는 예전에 발생한 안전사고 사례가 붙어 있습니다. 그 중 하나는 계단을 내려오다가 미끄러져서 이틀간 병가를 써야 했다는 내용입니다. 화물 손수레에 부딪혀 엉덩이를 다친 사례도 있고, 문에 기대고 있다가 문이 갑자기 열리는 바람에 넘어진 사례도 있습니다.

얼핏 보면 대수롭지 않은 일처럼 보이지만 이런 일이 발생할 때마다 사고 사례로 만들어져서 모든 직원들에게 회람을 돌리고 교육을 합니다. 안전현황판에 부서별 사고 건수로 기록이 되고 회사 전체 무사고 날짜도 0에서 다시 시작합니다. 이렇게 사소한 일들까지 안전사고로 기록이 되다 보니 전체적으로 사고가 많은 것처럼 보이긴 하지만 병원에 입원해야 할 정도의 큰 사고는 거의 없습니다.

 노동자의 안전을 위해 신경을 쓰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이익을 추구하는 회사 입장에서는 비용이 드는 일입니다. 안전교육을 받지 않으면 공장 출입이 안 되기 때문에 꼭 필요한 사람이 제 때 들어오지 못해 일정이 늦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필요한 안전장구를 갖추고 주기적으로 점검하는 것도 사람과 돈이 필요한 일입니다. 하지만 안전을 위한 비용을 제대로 쓰지 않으면 더 큰 비용을 지불해야 합니다.

싱가포르의 안전보건 프로그램

싱가포르는 산업재해 감소를 위해 2006년부터 "BUS(기업감시)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중대 재해 또는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이나 안전사고 관련하여 누적 벌점이 높은 기업을 대상으로 작업장 환경개선을 강제하는 프로그램입니다. 대상이 된 회사는 BUS 프로그램 사이트에 이름이 공개가 됩니다. 2022년 5월 현재 27개 기업의 이름을 누구나 확인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이름이 올라가면 관급 공사는 물론이고 대부분의 민간공사 입찰에도 참여할 수 없습니다. 개선 기간 동안 수시로 점검이 이뤄지고 문제가 발생하면 벌금에 작업 중지 명령까지 받을 수 있어 사실상 정상적인 회사 운영이 힘들어집니다. 안전보건 관리시스템을 갖추고 제대로 운영할 수 있다고 판단이 되어야 명단에서 이름을 뺄 수 있습니다.
 

▲ 안전관련 다섯 단계의 인증서를 발급하여 각 단계별로 기업에 혜택을 줍니다. ⓒ 싱가포르 WSH (산업안전보건위원회)

  
징벌적 성격의 "BUS 프로그램" 말고 "bizSAFE (비즈세이프) 프로그램"이라는 안전 자격부여 프로그램도 있습니다. 기업의 안전관리 프로그램 참여 정도에 따라 다섯 단계로 인증서를 발행합니다. 기업의 안전담당자가 기본적인 안전 워크숍만 마치면 1단계 인증입니다. 반면에 공인인정기관으로부터 안전과 관련한 인증을 받고 노동부와 안전관리공단의 감사 보고서까지 받았을 때는 5단계 인증인 "비즈세이프 스타"를 받을 수 있습니다.

비즈세이프 인증을 받으면 회사 홈페이지와 홍보물, 명함 등에 비즈세이프 로고를 쓸 수 있습니다. 관급 공사에서 안전 관련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어서 기업의 경쟁력이 높아지고, 안전 관련 증명을 위한 추가 시간 및 비용을 아낄 수 있습니다. BUS 프로그램에 이름이 올라간 회사와 비즈세이프 최상위 인증을 받은 회사 중 어느 회사가 더 경쟁력이 있을지는 불을 보듯 뻔한 일입니다. 그래서 비용이 들더라도 회사 내 안전을 위해 사람과 돈을 투자하는 것입니다.

싱가포르의 안전관리체계는 안전사고에 대한 책임자를 명확히 규정하는 게 가장 큰 특징입니다. 발주사, 시공사, 하청업체, 노동자 등 관련된 사람 모두의 법적 의무가 명확합니다. 프로젝트를 시작하기 전에 받아야 하는 위험성 평가와 작업허가제도 안전하지 않으면 일을 시작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보여줍니다. 시스템과 공무원의 역할을 중시하는 싱가포르답게 근로감독관에게 시간과 장소의 제약 없이 언제든 안전 관련 조사 및 감독을 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고 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나라 되려는 싱가포르

지금까지 소개한 안전 관련 프로그램들은 2005년에 시작된 작업장 안전보건 발전계획인 "WSH 2015"의 여러 추진 항목 중 일부입니다. 2004년 기준으로 싱가포르의 산재 사망 십만인율은 주요 경쟁국에 비해 높은 4.9였는데 이를 10년 안에 절반인 2.5로 줄이겠다는 게 WSH 2015의 핵심 목표였습니다. 그런데 2007년에 이미 3.0 이하로 줄어들면서 2018년까지 1.8로 더 낮추겠다는 공격적인 목표를 담아 "WSH 2018"을 다시 내놓았습니다. 그럼 2018년의 결과는 어땠을까요? 산업재해 사망자 수 41명으로 목표했던 1.8보다 더 낮은 1.2를 달성했습니다.

이 같은 성과를 바탕으로 다시 내 놓은 것이 WSH 2028입니다. 향후 10년 안에 1.0 이하를 달성하여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나라가 되는 것이 목표입니다. OECD 나라 중에 1.0 이하인 나라는 네덜란드, 스웨덴, 영국, 독일 등 네 나라밖에 없습니다. 싱가포르는 새로운 목표마저도 달성할 수 있을까요? 거기에 대한 답을 찾을 만한 일이 얼마 전에 발생했습니다.
  

▲ 싱가포르 리셴룽 총리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해 발생한 20명의 노동자 사망사건에 대해 "그 수가 너무 많고 용납할 수 없다"고 썼습니다. ⓒ 리셴룽 총리의 페이스북

 
지난 9일, 싱가포르 리셴룽 총리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해 작업장에서 사망한 노동자 수가 20명이나 된다면서 이 숫자는 너무 많고 용납할 수 없다고 썼습니다.("This is far too many, and not acceptable") 그러면서 노동부, 직장안전보건위원회 등 관련 단체에 2주 동안 안전을 위한 특별점검을 지시했습니다.

글의 말미에 "우리는 현지인이든 외국인이든 모든 노동자를 안전하게 보호할 책임이 있습니다"라는 문장을 덧붙였습니다. 4개월 동안 발생한 20명의 사망자 수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외국인 노동자까지 포함해서 모든 노동자의 안전을 위해 모든 일을 다 하자는 총리가 있는 한 싱가포르는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나라가 되자는 목표를 충분히 달성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WSH 2028 보고서 중 일부입니다. 2004년 산재 사망 십만인율은 4.9였는데 2018년에는 1.2를 기록하여 OECD 국가와 비교하면 7번째로 낮은 사망자 수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 싱가포르 WSH 2028 계획서

 
주 120시간 일하게 하자는 윤석열 정부

그럼 우리나라는 어떨까요?

아래 표는 2019년, 싱가포르가 자국의 3년 평균 산업재해 사망자 수를 OECD 국가와 비교해서 만든 것입니다. 조사대상 37개국 가운데 싱가포르는 7위, 한국은 35위입니다. 한국 뒤에 있는 나라는 멕시코와 터키뿐입니다. 1위 네덜란드와 비교하면 우리나라의 산업재해 사망자 수는 10배에 가깝습니다.
 

▲ 싱가포르 노동부에서 자국의 산업재해 사망자 수를 OECD 국가와 비교하여 순위를 매겼습니다. 싱가포르는 7위, 한국은 전체 조사대상 37개국 가운데 35위를 차지했습니다. ⓒ WSH 2028 계획서

 
고용노동부에서 발표한 2021년 산재 사고 사망자 수는 828명으로 이를 십만인율로 변환하면 4.3입니다. 같은 해 싱가포르의 1.1에 비하면 거의 4배 정도입니다. 어떤 숫자를 가져 와도 한국의 산재 사고 사망자 수는 월등히 높은 수준입니다. 왜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에 비해 일하다 죽는 노동자 수가 더 많은 걸까요?

한국노동연구원이 지난해 발간한 <사업체 특성별 산업재해 현황과 과제>라는 보고서를 보면 주 52시간 이상 일을 하는 사업장이 40시간 미만인 곳보다 산업재해 사망자 수가 4배 이상 많다고 합니다. 보고서는 "노동시간이 길어질수록 산업재해 발생위험이 그만큼 산술적으로 증가할 뿐 아니라, 작업자의 체력 및 주의력의 저하, 졸음 등의 생리적 현상을 발생시켜 보다 직접적인 산재위험을 불비례적으로 증가시키는 등, 대체로 장시간 노동은 산업재해 발생의 위험요인으로 널리 인정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 주당 노동시간별 산업재해율입니다. 주 52시간 이상 일을 하는 사업장이 40시간 미만인 곳보다 산업재해 사망자 수가 4배 이상 많습니다. ⓒ 한국노동연구원 보고서

 
하지만 윤석열 정부의 인물들은 "일주일에 120시간이라도 바짝 일하고 이후에 쉴 수 있어야 한다"(윤석열 대통령)거나, "생산직은 주 52시간 이상 일하지 못하게 된 것에 대한 반발이 있다"(이준석 국민의힘 대표), "현장에서는 일률적·경직적 규제로 소득감소 등 어려움을 토로하는 것으로 안다"(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 등 주 52시간제도마저도 폐지하고 노동시간을 되레 늘이려는 입장입니다.

거기에 더해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는 경영자가 해야 할 각종 안전 확보 의무를 제한하자는 내용을 담은 중대재해법 개정 요구 건의서를 윤석열 정부에 제출했습니다. 정부는 노동자의 노동시간을 늘리려고 하고, 경영자들은 안전 확보 의무를 면제해 달라고 하는 상황에서 노동자들의 사망 사고가 줄어들기를 기대하는 건 어려울 것 같습니다.
 

▲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지난 12월 25일 공개된 유튜브 경제전문채널 삼프로TV ‘[대선 특집] 삼프로가 묻고 윤석열 후보가 답하다' 편에서 주52시간제에 대한 의견을 말하고 있다. ⓒ 삼프로TV

 
싱가포르 리셴룽 총리가 올해 사망자 20명이 너무 많다며 대책을 지시하던 지난 9일, 공교롭게도 <오마이뉴스>에는 "산재사망노동자 추모의 달, 73명의 노동자가 죽었습니다"라는 기사가 실렸습니다. 노동자의 사망 소식에 정부가 먼저 나서서 대책을 마련하는 싱가포르, 더 이상 일하다 죽지 않도록 해 달라는 노동단체와 언론의 호소에 아무 대답이 없는 한국. 이 차이가 네 배나 더 많은 노동자의 죽음을 만드는 이유가 아닐까요?

"나는 싱가포르에서 일하는 노동자니까 다행이야"하고 말기에는 내 나라 한국의 상황이 너무 안타까워서 이렇게 기사를 쓰는 겁니다. 내 나라의 노동자들이 더 이상 일하다가 죽지 않도록 해달라고 호소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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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발열환자 연이틀 10만명대 감소세, 완치율은 약 83%

  • 기자명 이승현 기자 
  •  
  •  입력 2022.05.23 10:14
  •  
  •  수정 2022.05.23 13:58
  •  
  •  댓글 0
 

북한 국가비상방역사령부는 22일 하루 '유열자'(발열환자)가 전날에 비해 1만8,440여명 감소해 16만명대에 머물렀다고 23일 발표했다.

국가비상방역사령부 통보에 따르면, 완치자는 전날에 비해 3만1,550여명이 줄었으며 사망자도 1명에 그쳤다.

[노동신문]은 23일 국가비상방역사령부 통보를 인용해 21일 오후 6시부터 22일 오후 6시까지 전국적으로 16만7,650여명의 발열환자가 새로 발생하고 그중 26만7,630여명이 완치되었으며, 1명이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지금까지 사망자 총수는 68명이며, 같은 기간 사망자를 환자수로 나눈 치명률은 전날에 비해 약간 줄어든 0.002%이다.

최대비상방역체계를 가동한지 12일째되는 23일 기준으로 하루 신규 발열환자가 전 날에 이어 연 이틀 10만명대에 머물고 있으며, 약 83%의 발열환자가 완치된 것이어서 주목된다.

지난 4월말부터 22일 오후 6시까지 전국적인 발열환자 총수는 281만4,380여명이며, 82.964%에 해당하는 234만4,910여명이 완치되고 17.034%에 해당하는 47만9,400여명이 치료를 받고 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2일 당 정치국협의회에서 "전국적인 전파 상황이 점차 억제되어 완쾌자 수가 날로 늘어나고 사망자 수가 현저히 줄어드는 등 전반적 지역들에서 안정세를 유지하고 있다"고 방역상황에 대해 밝힌 바 있다.

만수대창작사에서 코로나19 방역에 일심단결로 '방역대전'을 승리로 이끌자는 취지의 선전화 5종을 새로 내놓았다. [사진-노동신문 갈무리]
만수대창작사에서 코로나19 방역에 일심단결로 '방역대전'을 승리로 이끌자는 취지의 선전화 5종을 새로 내놓았다. [사진-노동신문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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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백발 휘날리며 울산 누빈 권영길 “노동자 정치 다시 시작하자”

 
19일 제8회 지방선거 공식선거운동이 시작된 가운데 현대중공업 전하문 앞에서 권영길 전 민주노총 위원장(왼쪽)이 윤장혁 민주노총 금속노조 위원장과 함께 출근길에 오른 노동자들을 향해 김종훈 진보당 울산 동구청장 후보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민중의소리 
 
권영길 전 민주노총 위원장이 백발을 휘날리며 울산에서 3박 4일 동안 진보단일후보의 선거운동을 돕는 강행군을 펼쳤다. 제8회 지방선거 공식선거운동이 시작되면서다. 지방선거와 관련해 이번이 세 번째 울산 방문이다. ‘진보정치 1세대’인 그에게도 이번 선거의 의미는 그만큼 남달랐던 것이다.

권 전 위원장은 공식선거운동이 시작된 19일 오후 진보당 김종훈 울산 동구청장 후보 선거대책본부에서 민중의소리와 만나 “많은 사람들이 왜 울산에 세 번씩이나 가느냐, 울산에서도 왜 세 번씩이나 오느냐고 이야기하고 있는데, 특별한 의미 있기 때문에 그렇다”고 밝혔다.

권 전 위원장이 처음 울산을 방문한 것은 지난달 15일 민주노동과 노동당, 정의당, 진보당이 진보정치의 단결을 약속하는 ‘울산선언’을 발표할 때였다. 두 번째 방문은 지난 2일 김종훈 후보 선대본 출범식이 열리는 날이었다.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을 맡은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은 물론이고, 권영길, 단병호, 이갑용, 한상균 등 전직 민주노총 위원장들도 명예 선대위원장으로 한 자리에 모였던 날이다. 권 전 위원장은 울산을 방문할 때마다 노동조합을 만나는 등의 행보도 이어갔다.

“진보대통합 이뤄야 한다”

어느덧 80세를 지나고 있는 권 전 위원장이 고령의 몸을 이끌고 연이어 강행군을 펼치고 있는 것은 ‘진보대통합’을 이뤄야 한다는 소명 때문이다. ‘민주노동당 창당주역’이었던 그로서는 현재 여러 갈래로 쪼개져있는 진보정당들을 그냥 두고 볼 수만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권 전 위원장은 이날도 울산 동구와 북구를 오고가면서 진보단일후보들의 선거운동을 지원했다.

“민주노동당이 분열돼서 지금은 여러 진보정당으로 나뉘어졌다. 2000년 민주노동당이 창당되고 2007년 분열됐다가 통합진보당으로 잠깐 단일화됐다가 2차 분열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냉정하게 말하면 진보정당들은 존재감마저 상실돼있는 상황이다. 정의당이 원내정당으로서, 원내 제3당으로서 역할을 다하고 있지만, 실제 국민들에게는 진보정당으로의 역량을 발휘를 못하고 있다.”

결국은 ‘분열’이 가장 큰 원인이라고 권 전 위원장은 콕 집어 말했다.

“이념이 차이가 얼마만큼 있나. 국민들은 그걸 구분하지 못한다. 실제 국민들은 정의당이나 진보당이나 노동당이나 뭐가 다르냐고 묻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구체적으로 뭐가 다른지 이야기를 못해주고 있다. 정파 간의 대립으로 인한 분당인데, 그 차이를 일반 국민들은 절실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진보정당이 다시 부활해야 한다고 권 전 위원장은 힘주어 말했다. 하나로 뭉쳤던 민주노동당의 정신이 되살아나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 지방선거를 앞두고 전국 곳곳에서 4개 진보정당이 후보단일화를 이룬 것은 좋은 신호다. 그 시발점은 울산이었다.

권 전 위원장은 “분열된 진보정당의 재통합이 울산에서 시작되고 있다”며 “노동자들이 여기서 앞장서고 있다”고 강조했다. 진보정당뿐만 아니라 노동자, 즉 민주노총이 진보대통합에 중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에 의미를 부여한 것이다.

“선거운동을 하는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진보정당이 분열됐을 때엔 현장에 접근하기가 굉장히 어려웠다고 한다. 현장에서 노동대중들이 ‘진보정당도 꼴보기 싫다’, ‘들어오지 말라’, ‘우린 선거운동하지 않는다’며 받아들이질 못했다. 그래서 (후보 쪽에선) 접근을 못했고, 실제로 현장에선 노동자들이 떠나갔다. 그런데 이번에 진보후보 단일화가 되면서 그 현장 접근의 벽이 무너졌다.”

실제로 울산에선 민주노총 금속노조가 선거운동에 결합해 진보단일후보 지지를 직접 호소하고 있다.

권 전 위원장은 “그 장벽을 깨뜨리지 않고는 진보정당이 성장할 수 없다. 진보정당이 재도약 못한다”며 “이 벽을 넘어서는 방법은 진보단일화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오랜 기간 성찰과 반성을 통해서 ‘분열한 건 잘못했다, 우리가 다시 출발하겠다’며 하나 된 진보단일후보를 냈다”며 “이게 재통합의 출발점이다. 재통합이 쉽지는 않겠지만 여기서부터 한 걸음 한 걸음 진보통합의 길로 갈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19일 제8회 지방선거 공식선거운동이 시작된 가운데 현대중공업 전하문 앞에서 권영길 전 민주노총 위원장(왼쪽)이 윤장혁 민주노총 금속노조 위원장, 정동석 민주노총 금속노조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지회 지회장과 함께 출근길에 오른 노동자들을 향해 김종훈 진보당 울산 동구청장 후보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민중의소리

“민주노총 바퀴와 진보정당 바퀴가 함께 굴러가야 한다”

권 전 위원장은 과거 민주노동당이 국회로 들어가 한국 정치·사회·경제 시스템을 바꾼 것은 민주노총이 함께 움직였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권 전 위원장은 “노동자 정치세력화는 실패했다고 이야기하는 사람이 많다. 민주노총 안에서도 그렇게 이야기하는 사람이 많다”고 전했다. 하지만 과거 민주노동당만 봐도 그렇지 않다는 게 그의 말이다.

그는 “민주노총이 1996~97년 노동법 날치기 파업을 승리를 이끈 다음 대선에 참여했고, 이어서 민주노동당을 창당했다. 민주노총이 주도해서 민주노동당이 창당된 것이다”라며 “사실 민주노동당은 엄청난 업적을 이뤘다. 주5일제도 민주노동당이 법제화한 것이다”고 강조했다. 나아가 현재 국민건강보험 체제의 기틀을 만든 것도, 학교 무상급식도, 민주노총의 투쟁을 바탕으로 민주노동당이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오늘날 비정규직 문제가 매우 심각한데, 노무현 정부 때 처리된 비정규직법 때문이다. 당시 비정규직법을 처리하려고 할 때 민주노동당 의원들이 그야말로 결사적으로 막았다. 하지만 민주노동당 의원들이 강제적으로 감금됐고, 결국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함께 그 법을 통과시켰다. ‘비정규직 보호법’이라고 돼있더라. 그래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위한 보호법인데 왜 노동자를 위한다는 민주노동당이 왜 반대하냐고 따지더라. 하지만 그건 비정규직보호법이 아니라 비정규직양산법이다, 이 법으로 인해서 앞으로 한국사회는 비정규직 사회가 될 것이라고 민주노동당은 얘기했다. 비정규직을 법제화하고 2년이 지나면 해고시킬 것이라고 했다. 그랬더니 그렇게 극단적으로 보지 말라고 하더라. 그런데 실제 어떻게 됐나. 365일이 되기 하루 이틀 전에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해고시키고 있다. 오늘날 비정규직 사회가 됐다. 이 문제를 노동자들이 해결해야 한다는 바람을 일으켰던 게 민주노동당이었다.”

그러면서 “민주노총이라는 한 수레바퀴, 민주노동당이라는 한 수레바퀴가 함께 굴렀기 때문에 수레가 앞으로 나간 것”이라며 “현장 노동자들과 당이 함께 가는 것이다. 이건 세계적으로 공통된 것이다. 노동자 정치세력화가 필요한 이유”라고 강조했다.

나아가 권 전 위원장은 “민주노동당 활동 이전에는 정치개혁은 말할 것도 없었다. 그 전에는 패거리 정당, 지역주의 정치가 있었다”며 “이걸 바꾼 게 민주노동당”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민주노동당은 한국의 정치·경제·사회를 완전히 바꿨다. 그래서 세상을 바꾸자고 한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19일 제8회 지방선거 공식선거운동이 시작된 가운데 현대중공업 전하문 앞에서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회와 사내하청지회 지회장 조합원들이 출근길에 오른 노동자들을 향해 김종훈 진보당 울산 동구청장 후보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민중의소리


“서민들에게 밥을 먹여주는 것이 진보정치...그 기둥은 ‘노동’”

권 전 위원장은 향후 진보정치는 윤석열 정부의 ‘시장경제 강화’에 맞서야 할 것이라고 당부했다.

“윤석열 정부가 이야기하고 있는 건 시장경제를 더욱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시장경제 자본주의의 중심국가인 미국에서도 바꿔야 한다, 이대로는 안 된다고 하고 있는데, 우리는 국민의힘이나 민주당이나 똑같이 그렇게 가고 있다. 진보정당이 다음에 할 일은 시장주의 중심의 경제를 바꾸는 것이다.”

그러면서 권 전 위원장은 “서민들에게 밥을 먹여주는 것이 진보정치”라고 강조했다.

“서민들을 위한 정치, 민생정치는 다 내걸고 있는 거 아닌가. 그러나 중요한 차이점이 있다.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 건설 없이는 서민들에게 밥을 먹여주는 정치가 이뤄질 수 없다. 시장주의에 매몰되면 빈부격차만 더 강화하고 양극화만 더 강화할 것이다. 진보정당의 재출발, 재통합은 실질적으로 서민들의 살림살이를 나아지게 하는 정치다.”

다만 진보정당의 기둥은 ‘노동’이어야 한다고 권 전 위원장은 강조했다.

“진보정당은 노동 중심의 정당이다. 노동이 기둥이다. 노동중심의 정당 위에서 기후위기, 생태, 평화, 젠더 이런 과제를 함께 안아야 한다. 예컨대 노동중심의 토대를 갖추지 않고 젠더 문제에만 몰두한다면 그건 진보정당의 완성체가 아니다. 오늘날 잘못된 인식이 뭐냐면, 정의당을 보고 ‘젠더정당이지 진보정당이 아니다’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건 노동중심이 갖춰지지 않았다고 본다는 말이다. 진보정당은 노동자들이 만들고, 노동자들이 운영하고, 노동자들을 위한 것이다. 노동자들의 정치, 노동자들을 위한 정치여야 한다.”

권 전 위원장은 울산에 이어 부산을 찾았다. 이곳에서도 권 전 위원장은 민주노총과 함께 진보단일후보를 지지해달라고 호소했다.

권 전 위원장은 “보수정치의 틀로 보면 구청장 하나는 점에 불과할 것”이라며 “하지만 김종훈 울산 동구청장 후보의 당선은 한 사람의 구청장 문제로 끝나는 게 아니라 진보재통합의 시발점이라는 굉장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울산 동구에서 시작해서 전국에서 진보정당이 재도약한다는 자신감을 사람들에게 불어넣어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진보정당 간 골이 깊어서 후보단일화를 했다고 재통합이 되겠느냐는 비관적이거나 회의적인 견해를 갖고 있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며 “뼈아프게도 많은 노동자들이 진보정당에 등을 돌리고, 그동안 민주당을 찍거나 기권했다. 그런데 이걸 지금 바꿔내고 있는 것이다. 전과는 다르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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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 떼죽음 참사... 전국서 벌어지는 기이한 일

[최병성 리포트] 수상태양광이 되려 환경훼손... 신재생에너지 정책, 제대로 하자

22.05.23 05:49최종 업데이트 22.05.23 05:49 

▲ 커다란 물고기들이 한 배 가득이다. 그런데 물고기들이 어딘가 이상해 보인다. ⓒ 해창만 수상태양광 반대 대책위원회

 
큰 물고기들이 배에 가득하다. 숭어, 잉어, 붕어 등으로 만선(滿船)이 되었으니 어부가 행복할까? 그런데 배에 실린 물고기들의 색깔이 이상하다. 물고기 몸에 뻘건 출혈 흔적들이 보인다. 

만선이 되었음에도 어부가 행복하지 않은 이유는 호수에 둥둥 떠 있는 죽은 물고기를 건진 것이기 때문이다. 호수 가장자리와 수초 사이사이에 물고기 사체들이 가득했다.
  

▲ 죽은 물고기들이 호숫가를 차지하고 있다. ⓒ 해창만 수상태양광 반대 대책위원회

 
이곳은 전남 고흥군 포두면의 길이 약 10㎞, 너비 약 5㎞의 '해창만'이다. 1960년대부터 바다를 막아 간척지로 만든 곳이다. 드넓게 펼쳐진 간척지 논에서 친환경 농사를 지어오고 있다.

지난 3월 3일 지역 주민들이 호숫가에 죽은 물고기들이 떠 있는 것을 발견했다. 해창만 주변엔 유해 시설이 없어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물고기 떼죽음이었다. 친환경농사를 짓는 호숫가에서 왜 물고기들이 떼죽음한 것일까?

지난 3월 17일 해창만 현장을 돌아보았다. 높은 담장이 산책로 가를 막고 있었다. 안을 들여다보았다. 수상태양광 설치공사가 한창이었다.
 

▲ 해창만 산책로를 막고 태양광 조립공사가 한창이다. ⓒ 최병성

 
해창만 농경지 사이 수면에 수상태양광이 설치되고 있었다. 호숫가에서 태양광을 조립해 수면 안으로 이동해 설치하는 것이었다. 이미 드넓은 면적의 수상태양광 패널이 해창만의 수면 두 곳을 차지하고 있었다.
  

▲ 해창만 수면 위에 설치된 태양광. 저 멀리 바다가 보인다. ⓒ 최병성

 

▲ 해창만 수면 두곳에 대규모 수상태양광이 설치되고 있다. ⓒ 카카오맵

 
물고기 떼죽음 사고는 사업자가 수상태양광 패널을 세척한 직후 발생하기 시작했다. 주민들은 태양광 세척제가 물고기 떼죽음의 원인이라 지목했다. 그러나 사업자는 세척제를 사용한 적이 없으며 농약이 원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물고기 떼죽음의 원인은?

사업자는 왜 수상태양광 패널을 세척했을까? 세척하기 전 태양광 패널의 모습이다. 태양광 패널은 햇빛을 잘 받아들여야 하기 때문에 검은 색이다. 그런데 해창만 태양광 패널은 흰색이다. 마치 흰 페인트를 칠한 듯 태양광 패널이 새똥 범벅이 된 것이다.
  

▲ 사업자가 세척하기 이전에 새똥으로 뒤덮인 해창만의 태양광. 흰 페인트를 칠한 것처럼 보일 만큼 새똥 범벅이다. ⓒ 해창만 수상태양광 반대 대책위원회

 
물고기 떼죽음 사고가 발생하자 고흥군청이 전라남도보건환경연구원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분석을 의뢰했다. 3월 24일 시험 결과가 나왔다. 농약 성분이 없었다. 고흥군청의 노력에도 물고기 사망 원인을 밝혀내지 못했다. 그러나 물고기 떼죽음의 원인이 농약 때문이라던 태양광 사업자의 주장은 틀렸다.
  

▲ 고흥군이 의뢰한 전남보건환경연구원과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분석 결과. 농약 성분이 검출되지 않았다. ⓒ 고흥군

 
주민들은 강원대학교 환경연구소 부설 어류연구센터에 조사를 의뢰했다. 최재석 센터장과 김희갑 교수 등 강원대 연구진이 현장을 조사했다. 죽은 물고기들의 혈액을 채취하고, 아가미와 내장 등의 다양한 증상들을 해부했다. 물고기가 죽은 곳과 태양광 패널이 있는 지점의 수질도 채취했다.

4월 21일, 조사결과에서 충격적인 사실이 밝혀졌다. 해창만에서 채취한 물과 죽은 물고기 혈액에서 세제 성분인 ABS가 검출되었다. 더 충격적인 것은 물고기 몸 안에서 검출된 ABS 농도였다.
  

▲ 강원대학교 분석 결과 해창만 물과 물고기 사체에서 세척제 성분이 검출되었다. ⓒ 강원대학교 어류연구센터

 
환경정책기본법 상 ABS의 유해성 기준 농도는 1L당 0.5mg 이하이다. 그런데 연구소가 사고 직후인 지난 3월 10일쯤의 농도치를 계산한 결과 1L 당 481mg로 기준치의 962배가 나왔다. 죽은 물고기의 혈액 속 ABS 농도 값은 더 심각했다. 1L당 2144mg로 기준치의 4288배를 초과했다.
  

▲ 해창만 물과 죽은 물고기에서 검출된 세제 성분 ⓒ 여수 mbc

 
사고 원인을 추정할 수 있는 분석 결과도 나왔다. 수상태양광 패널과 가까운 지점의 ABS 농도가 다른 곳보다 더 높다는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같은 날인 4월 2일 해창만 선착장 지점의 ABS 농도 값은 L당 73mg인데, 태양광 패널 지점의 값은 그 두 배 이상인 리터당 191mg이었다. 태양광 패널 세척이 해창만 물고들을 떼죽음 시킨 원인이라는 주민들의 주장에 힘이 실리는 결과다.
 

▲ 태양광 패널이 있는 곳과 선착장의 세제 농도 차이 ⓒ 여수MBC

 
해창만 사고를 조사한 강원대학교 최재석 교수는 여수MBC와 한 인터뷰에서 "말 그대로 세제예요, 주방세제. (태양광 사업자 쪽에선) 안 썼다 그러는데 물에서 나왔단 얘기는 썼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예견된 사고

해창만 물고기 떼죽음 사고는 사실상 예견된 사고였다. 해창만은 국내 철새 도래지로 유명하다. 해창만 수상태양광발전소 조성공사 당시의 환경부의 소규모 환경영향평가 협의 내용을 입수해 살펴보았다. 해창만은 중요한 철새 도래지이기 때문에 조류에 영향을 줄까 우려된다고 반복하여 지적하고 있었다.
 
○ 사업예정지 해창만은 지난 20여 년간 환경부에서 겨울철 조류 동시 센서스 조사를 실시하는 중요한 철새도래지로 동 사업 시행으로 인해 조류에 직접적인 영향이 우려된다
 

▲ 환경부의 소규모 환경영향평가서. 해창만은 중요한 철새도래지로 수상태양광이 조류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 소규모 환경영향평가 협의

 
문제는 중요한 철새도래지임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환경부가 환경영향평가서를 협의해주었다는 사실이다. 철새도래지에 설치한 수상태양광은 당연히 새똥광이 될 수밖에 없다. 말라붙은 새똥은 물만으로는 세척이 어렵다. 환경부가 사전에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결과였다.

KEI(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는 해창만 수상 태양광발전소 사업에 대한 소규모 환경영향평가서를 검토한 후에 환경부(영산강유역환경청)에 입지와 사업계획이 부적정하다며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상세하게 제시했다. KEI가 부적정하다고 의견 제시했는데, 어떻게 환경평가 협의가 완료된 건지 의문이다. 
 
○ 바다를 막은 준담수역은 육지의 댐과는 달라 충분한 검증 결과가 부재인 상태로 육역 일부 담수역에서의 검증 결과를 여과 없이 적용하여 일반화하는 것이 부적절하다.
○ 법정 보호종이 분포하고 국제적으로 보전이 요구되는 조류 이용도가 높은 해창만에서 인공시설의 과도한 점용은 안전상의 문제와 간척지 고유의 생물 서식역에 심각한 영향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아 사업을 지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 KEI는 해창만 수상태양광의 입지와 계획이 부적정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 KEI

   
물고기만 죽은 게 아니었다. 가마우지 등의 철새 사체와 폐사된 조개류도 쉽게 발견되었다. 환경부는 중요한 철새도래지인 해창만에서의 수상태양광 사업이 초래할 결과를 충분히 예측할 수 있었다. 결국 환경부의 안일한 환경영향평가서 협의가 사전에 막을 수 있는 사고를 초래한 것에 다름없다.
  

▲ 물고기뿐만 아니라 철새들도 죽었다. ⓒ 해창만 수상태양광 반대 대책위원회

 
반복된 잘못

새똥광은 고흥 해창만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지난 <새만금에 환경대재앙 시작됐다... 군산시 무슨 짓 한 건가>(http://omn.kr/1umil) 기사에서 새만금에 설치 중인 새똥광 문제를 지적한 바 있다.
  
철새 서식지에 설치하는 수상태양광이 새똥으로 범벅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KEI의 지적처럼 수상태양광은 바닷가 철새도래지가 아니라 철새가 적은 육지의 댐과 저수지에 설치해야 한다.
 

▲ 파랑이 적고, 염분 피해와 철새가 없는 육지 내의 댐과 저수지의 수상태양광은 태양광 시설의 안전만 확보되면 가장 환경 피해가 없는 신재생에너지가 될 수 있다. 사진은 충주댐. ⓒ 최병성

 
바다를 막은 담수호에는 철새들도 많이 찾아오고, 파랑이 세서 수상태양광 시설 파손이 잦다. 또, 염분으로 인한 서설물의 장기적인 안전이 아직 검증되지 않은 상태다.
 

▲ 수십만 마리의 가창오리 군무를 볼 수 있는 삽교호에도 수상태양광 사업이 진행 중이다. ⓒ 김상섭

 
그럼에도 신재생에너지 바람을 타고 전국 바닷가 철새들의 서식지마다 대규모 수상태양광이 추진되고 있다. 수상태양광 반대 현수막이 붙어 있는 이곳은 가창오리의 환상적인 군무를 볼 수 있는 삽교호(揷橋湖)다. 삽교호는 충청남도 아산시 인주면과 당진시 신평면에 위치한 호수로 1979년 10월 26일 3360m의 방조제가 완공됨으로써 생긴 담수호이다.

삽교호에는 매년 30~40만 마리의 가창오리가 찾아와 환상적인 군무를 펼친다. 많을 때는 약 70만 마리의 가창오리가 삽교호에 머문다. 가창오리는 낮에는 삽교호 수면 위에 머물다 해질 무렵 노을 지는 하늘을 아름답게 수놓는다.
 

▲ 가창오리의 군무 삽교호에는 매년 30~40만 마리의 가창오리가 찾아와 환상적인 군무를 펼친다. 낮에는 삽교호 수면 위에 머물다 해질 무렵 노을 지는 하늘을 아름답게 수놓는다. ⓒ 최병성

 
 

▲ 삽교호 수면 위에 쉬던 가창오리들이 해질 무렵 날아오르며 군무를 시작하고 있다. ⓒ 김신환

 
삽교호는 가창오리뿐만 아니라 큰고니, 큰기러기, 노랑부리저어새, 흰꼬리수리, 도요새 무리가 찾아오는 국내 최고의 철새도래지다.
  

▲ 삽교호는 가창오리만이 아니라 큰고니, 큰기러기를 비롯해 다양한 철새들이 찾아오는 찰새 낙원이다. ⓒ 김상섭


삽교호 인근 인주면 이장들에게 태양광사업자가 협약 제안서를 받고 있다. 인주면에 연간 1억 원을 17년 동안 지급하며, 동참하지 않는 마을은 지급 대상에서 제외한다는 일종의 협박성 협약 제안서다. 이로 인해 마을 주민들 사이에 갈등이 일어나고 있다.
  

▲ 태양광 사업자가 주민들에게 연간 1억원을 준다며 협약을 제안하고 있다. ⓒ 수상태양광 협약 제안

 
보상금으로 인한 주민간의 갈등은 삽교호만이 아니다. 태양광이 설치되는 전국의 마을마다 돈 문제로 주민 갈등이 발생한다.

만약 삽교호에 수상태양광을 설치하면 어떻게 될까? 해창만과 새만금처럼 새똥 범벅이 될 것이다.
  

▲ 삽교호 내 어부들의 작업대가 새똥으로 가득하다. ⓒ 최병성

 
신재생에너지 제대로 하자

신재생에너지 정책은 필요하다. 하지만, 환경을 훼손하는 방식이라면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 전기가 필요한 곳에 전기를 생산한다는 기본 원칙에 따라 신재생에너지 설치가 이뤄져야 한다.

새똥광 세척으로 물고기가 떼죽음 된 전남 고흥의 해창만은 남쪽 바다 끝에 있다. 전남 완도 약산면 간척지 50만 평에도 태양광 설치 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전기가 필요한 곳은 도심인데, 왜 국토 최남단에 태양광을 설치하고 있는 것일까?
   

▲ 전남 완도 약산면 50만 평의 간척지 전체를 태양광으로 덮는 사업이 진행 중이다. 왜 바다 끝 섬까지 태양광을 설치해 전기를 끌어와야 하는 것일까? ⓒ 최병성

 
해창만, 새만금, 삽교호 등에 수상태양광을 설치하지 않아도 태양광을 설치할 수 있는 곳이 많다. 환경부 통계에 따르면, 한국의 고속국도 밀도는 OECD 평균의 약 7배로 5위에 해당된다. 일본과 프랑스의 고속국도 밀도의 2배에 이를 만큼 국토 면적에 비해 도로가 많은 나라다. 지금도 전국 곳곳에 도로 건설이 이뤄지고 있다. 그러나 햇볕이 잘 드는 고속도로 경사면이 텅 비어 있다. 고속도로 경사면에 태양광을 설치한 곳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 고속도로 경사면에 태양광 패널이 설치되어 있다. 전국 고속도로와 도로에 태양광을 설치하면 해창만과 삽교호 등의 철새들 서식지와 간척지에 태양광을 하지 않아도 된다. ⓒ 최병성

 
고속도로만이 아니다. 전기를 가장 많이 사용하는 공장과 물류창고 지붕들이 텅 비어 있다. 공장마다 태양광 전기 생산 의무화를 해야 한다. 햇살 잘 드는 공장 지붕은 팽개치고 산과 바다를 훼손하는 것은 올바른 신재생에너지가 아니다.

세계는 벽면 태양광 설치가 한창이다. 기술이 발전하여 벽면 태양광의 전기 생산 효율도 점점 더 높아진다. 심지어 투명유리 태양광 패널도 개발되고 있다. 이젠 전기 때문에 억지로 설치하는 흉물스런 태양광 시대가 아니다. 전기도 생산하고 건축물의 가치를 높여주는 태양광 모듈도 속속 개발 설치되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이제 전기가 필요한 곳에 전기를 생산한다는 친환경적인 신재생에너지 정책을 고민해야 한다. 철새들의 서식지는 철새들의 터전으로 남겨주고, 사람과 자연이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덧붙이는 글 다양한 환경 사건, 사고 제보 받습니다.
cbs5012@hanmail.net로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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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내각 ‘남성편중’ 외신기자 질문 외면한 신문은?

  • 기자명 금준경 기자 
  •  
  •  입력 2022.05.23 07:41
  •  
  •  댓글 0
 
 

[아침신문 솎아보기] 한미 정상회담 파장, 한미동맹 강화 vs 중국 리스크 우려

지난 21일 한·미 정상회담 공동기자회견에서 워싱턴포스트 기자의 질문이 주목을 받았다. 그는 윤석열 정부 내각의 ‘남성 편중’을 지적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공직사회에서, 예를 들어 내각의 장관이라고 하면, 그 직전의 위치까지 여성이 많이 올라오지 못했다”고 답했다. 그는 “여성에게 공정한 기회가 적극적으로 보장되기 시작한 게 오래되지 않았다”고도 했다.

워싱턴포스트는 ‘젠더 불평등 관련 압박 질문에 한국 대통령이 불편함을 드러냈다’ 기사를 내 윤석열 대통령의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과 남성 편중 내각 현황을 전했다. 

윤석열 정부 ‘남성편중’ 질문, 조선 중앙 외면

이 사안을 가장 적극 보도한 신문은 한겨레와 경향신문이다. 두 신문은 각각 사설을 통해 이 문제를 다뤘다. 경향신문은 윤석열 대통령의 답변에 관해 “장관으로 기용할 만한 ‘스펙’을 갖춘 여성이 부족하다는 시각이다. 여성 장관 부족을 사실상 여성 책임으로 돌리며, 성차별 개선 의지가 부족함을 국제사회에 드러냈다”고 비판했다. 

▲ 23일 한겨레 경향신문 사설
▲ 23일 한겨레 경향신문 사설

한겨레는 사설에서 “정상회담 회견장에서 나온 이례적 질문은 그만큼 새 정부의 노골적인 ‘여성 패싱’이 국제사회에서도 우려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야 한다”며 “윤 대통령의 말과 달리, (장관 뿐 아니라) 차관 및 처·청장급 41명 인선에서도 여성은 2명뿐이었다. 남녀 동수 내각이 속출하는 시대에 경제, 문화 등 각 분야에서 영향력이 훌쩍 커진 한국의 이런 모습이 기이하게 비치는 건 당연하다”고 지적했다. 

반면 주요 종합일간지 가운데 중앙일보 등 신문은 지면에서 이 사안을 다루지 않았다. 조선일보는 ‘서로 ‘멋진 파트너 만난 것 같다... 예정시간 넘기며 회담’ 기사를 통해 양 정상의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중점적으로 전한 뒤 해당 기사 마지막 문단에 “윤 대통령은 정상회담 공동 기자회견에서 미국 기자로부터 내각의 성비 불균형과 관련 기습 질문을 받기도 했다”고 전했다. 

관련 기사를 낸 다른 신문의 경우 ‘미 기자 ‘내각에 여성 적다’ 돌발질문... 윤 ‘기회 더 보장’’(동아일보) ‘미 기자 ‘남성 편중 내각’ 돌발 질문에 윤 진땀’(한국일보) ‘‘남자내각’ 외신 질문에 윤 ‘장관 직전까지 여성 못 올라와’’(경향신문) 등 제목을 써 조선일보와 차이를 보였다. 

▲ 23일 조선일보 기사
▲ 23일 조선일보 기사

 

안보 업그레이드 vs 중국 리스크 우려

이날 정상회담은 한국이 미국과 안보, 경제 등에서 적극 협력 기조를 보이면서 여러 측면에서 파장을 낳게 됐다. 보수신문에선 일제히 ‘핵 대응’과 ‘경제 협력’을 강조하며 ‘업그레이드’ 등 표현을 쓰며 긍정적인 면을 부각했다. 

특히 북핵 문제에 강경한 대응을 주문해온 보수신문은 한미 공동성명에서 확장 억제 수단으로 ‘핵’을 구체적으로 처음 언급한 사실, 한미 군사훈련 확대 등을 부각했다. 조선일보의 1면 톱 기사 제목은 ‘핵에는 핵으로’, 동아일보의 1면 톱 기사 제목은 ‘한미 정상, 북 핵위협에 핵대응 첫 명시’다. 

▲ 23일 조선, 동아일보 1면
▲ 23일 조선, 동아일보 1면

조선일보는 사설을 통해 “TV용 깜짝 쇼를 통해 북핵 문제를 해결했다는 환상으로 국민을 눈속임했던 한미 정권이 모두 바뀌면서 비로소 김정은 정권에 대한 상식적 대응이 재개됐다”며 “북핵이라는 눈앞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데 4년이 걸렸다”고 했다.

중앙일보는 ‘윤석열 외교, 한미동맹 업그레이드로 첫발 뗐다’ 사설을 통해 “공공연히 핵 사용을 언급한 북한의 위협에 무방비 상태로 있을 수는 없는 일”이라며 긍정 평가했다. 다만 중앙일보는 조선일보와 달리 “대화의 문을 열어 놓고 북한을 설득하는 노력은 계속돼야”라는 표현을 함께 써 강경일변도를 주문한 조선일보와는 차이를 보였다. 

반면 진보성향 신문들은 ‘중국’과 멀어지는 거리를 함께 조명하며 우려의 목소리를 전했다. 이번 공동성명에는 ‘민주주의와 규범에 기반한 국제질서 촉진, 부패 척결 및 인권증진이 양국 공동의 가치’ 등 중국을 겨냥한 내용을 담았다. 특히 경제분야에서 중국에 배타적 내용들이 포함됐다. 

한겨레 1면 톱 기사 제목은 ‘중국 보란 듯... 한미 경제안보 내세워 초밀착’, 경향신문 1면 톱 기사 제목은 ‘안보도, 경제도 미국... ‘중국 리스크’ 시험대’다. 한겨레는 사설을 통해 “국제질서 급변의 시기에 한국의 무게중심이 미국 쪽으로 크게 기울면서, 한반도 정세의 긴장과 중국 리스크는 커졌다”며 “한-미 동맹의 범위를 반도체·배터리·사이버, 우주, 원전·보건 협력, 글로벌 사안들까지 전방위로 확장하겠다는 의기투합이 한국에 ‘양날의 칼’일 수 있음 또한 유념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 23일 한겨레, 경향신문 1면
▲ 23일 한겨레, 경향신문 1면

경향신문은 “중국에서는 한국이 안미경중(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기존 외교정책 틀에서 벗어나 미중 사이의 전략적 균형을 깼다는 평가가 나온다”며 “한국 정부로서는 균헝추를 미국 쪽으로 옮겨가면서도 대중관계를 어떻게 관리할지가 숙제로 남게 됐다”고 했다. 

경제신문, “기업이 애국자” 극찬

여러 경제신문들은 이번 정상회담 보도의 중심에 ‘기업’을 놓았다. 한국경제는 1면 톱기사에 ‘삼성 현대차가 이끈 한미 ‘경제안보 동맹’기사를 내고 “한국 대표 글로벌 기업들이 더 이상 한미 동맹의 조연이 아니라 주연이 됐다는 점”을 강조했다. 매일경제 역시 1면 톱 기사로 “정의선, 바이든에 50억 달러 더 풀었다”기사를 통해 현대자동차의 투자 소식을 전했다. 서울경제는 ‘기업이 경제안보 지키는 애국자임을 보여줬다’ 사설을 냈다. 

▲ 23일 한국경제 1면
▲ 23일 한국경제 1면

이들 언론의 ‘메시지’는 결국 ‘친기업적 정책 요구’로 귀결됐다. 서울경제는 관련 사설에서 이번 정상회담에 기업의 기여를 강조한 다음 “기업이 글로벌 정글에서 경쟁력을 갖추고 살아남으려면 정부가 규제 혁파, 노동 개혁, 법인세 부담 완화 등 기업 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매일경제는 “한국을 대표하는 민간사절로 기업인이 맹활약하는 이때 이런저런 이유로 기업이의 발목을 잡고 있으니 안타깝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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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층 더 심각해진 ‘폭풍예보’

  • 분류
    아하~
  • 등록일
    2022/05/23 09:29
  • 수정일
    2022/05/23 09:29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개벽예감 492] 한층 더 심각해진 ‘폭풍예보’

 

한호석(통일학연구소 소장) | 기사입력 2022/05/23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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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

1. 중국의 전략적 의도를 오독, 오판한 미국

2. 대만을 독립국가로 승인하려는 미국의 계략

3. 중미관계의 폭풍을 예보하는 전쟁준비태세

4. 바이든의 한국-일본 순방과 미국의 양방향 적대정책

 

 

1. 중국의 전략적 의도를 오독, 오판한 미국

 

2022년 3월 1일 중미관계를 더욱 악화시킨 사건이 일어났다. 조 바이든(Joseph R. Biden Jr.) 미국 대통령이 파견한 군사대표단이 대만에 도착한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이 파견한 군사대표단은 합참의장 출신 마익 물런(Michael G. Mullen), 국방차관 출신 미셸 플러노이(Michèle A. Flournoy), 국가안보부보좌관 출신 미간 오썰리번(Meghan O'Sullivan),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아시아담당 선임보좌관 출신 마이클 그린(Michael J. Green)으로 구성되었다. 바이든 대통령이 이들을 대만에 파견한 목적은, 대만 국방부장 추궈정(邱國正)을 만나 대만군의 비대칭전투능력(asymmetrical warfare capability)을 증강시키는 군사문제를 논의하려는 것이었다. 

 

그런데 대만군의 비대칭전투능력을 증강시키는 문제는 미국 군사대표단이 대만을 방문하기 훨씬 전에 이미 대만 국방부가 검토했다. 2021년 3월 18일 대만 국방부는 ‘2021년 국방4개년 총검토보고서’라는 제목의 군사전략문서를 대만 입법원에 제출했는데, 그 문서에 대만군의 비대칭전투능력을 증강시키는 문제가 담겼다. 문서에 따르면, 대만군이 중국인민해방군과 전면전을 벌이는 경우 대만군은 대만 근해를 방어하고, 대만 해안에 상륙하려는 중국인민해방군을 저지, 격퇴하기 위해 비대칭전투능력을 증강할 것인데, 무인전술작전기, 재래식 잠수함, 초음속순항미사일, 해안방어미사일 등을 자체로 개발하거나 미국에서 수입하여 비대칭전투능력을 증강하겠다는 것이다. 

 

원래 비대칭전투능력은 아군만 가졌고, 적군은 갖지 못한 특유한 전투능력을 말하는데, 대만군이 비대칭전투능력을 증강하기 위해 자체로 개발하거나 미국에서 수입하려는 무인전술작전기, 재래식 잠수함, 초음속순항미사일, 해안방어미사일은 중국인민해방군도 가졌으므로 비대칭무기체계들이 아니다. 

 

중국인민해방군은 대만군이 자체로 개발하거나 미국에서 수입하려는 무인전술작전기, 재래식 잠수함, 초음속순항미사일, 해안방어미사일보다 훨씬 더 강력하고 우수한 장거리무인전략작전기, 핵추진 잠수함, 극초음속미사일, 공중발사순항미사일을 가졌다. 대만군이 비대칭전투능력을 증강하기 위해 제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중국인민해방군의 막강한 비대칭전투능력을 따라잡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대만군이 ‘국방4개년계획’을 다그쳐 실행하여 앞으로 4년 뒤에 그런 무기체계들을 실전배치해도 비대칭전투능력을 발휘하지 못할 것이며, 중국인민해방군의 압도적인 공격을 받고 완전격파를 당할 것으로 보인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면, 2022년 3월 1일 대만을 방문한 미국 군사대표단이 대만군의 비대칭전투능력을 증강시켜주는 문제를 논의했으나, 아무런 묘책도 찾을 수 없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묘책을 찾지 못해 머쓱해진 미국 군사대표단은 대만 국방부장에게 조기경보레이더를 설치해보라고 제안하는 것으로 자기 체면을 유지했다. 2022년 3월 9일 대만 언론보도에 따르면, 당시 대만을 방문한 미국 군사대표단은 대만 국방부장에게 조기경보레이더(early-warning radar)를 대만 남부에 설치하라고 제안했다고 한다. 

 

그런데 대만군은 미국에서 수입한 조기경보레이더를 이미 운용하고 있다. 미국이 14억 달러를 받고 대만에 팔아먹은 조기경보레이더는 대만 남부에 설치되었고, 2013년부터 9년째 돌아가고 있다. 당시 대만은 미국산 조기경보레이더를 하나 더 수입하려고 생각했으나, 14억 달러나 되는 막대한 비용을 감당하기 버거워, 결국 수입을 포기했다. 그런데 이번에 미국 군사대표단은 10년 전에 대만이 수입을 포기한 미국산 조기경보레이더를 하나 더 팔아먹으려는 속셈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 

 

미국의 견지에서 보면, 중국의 압도적인 공격력 앞에서 벌벌 떠는 대만은 미국산 무기를 많이 팔아먹을 수 있는 단골손님이다. 그래서 미국은 대만군의 비대칭전투능력을 증강시켜주겠다는 구실을 내걸고 값비싼 미국산 무기를 대만에 계속 팔아먹고 있다. 2022년 4월 26일 토니 블링컨(Antony J. Blinken) 미국 국무장관은 연방상원 외교관계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하여 “대만이 잠재적인 침공으로부터 자신을 지킬 수 있는 모든 방어수단을 갖추고 있는지를 확인하기로 했다”고 하면서 “미국은 중국의 공격에 대비해 비대칭전투능력을 증강하려는 대만의 노력을 지원해주겠다”고 말했다. 비대칭전투능력을 증강하려는 대만의 노력을 지원해주겠다는 말은 군사적 무상지원을 주겠다는 뜻이 아니라 값비싼 미국산 무기를 팔아먹겠다는 뜻이다. 2022년 5월 7일 <뉴욕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미국은 중국의 군사공격에 대비해 비대칭전투능력에 적합한 무기들을 주문하라고 하면서 대만을 압박하고 있다고 한다.

 

차이잉원(蔡英文) 종미우익정권은 값비싼 미국산 무기를 수입한다고 해서 대만군의 비대칭전투능력이 증강되는 것이 아닌데도, 미국의 무기판매전략을 추종하여 값비싼 미국산 무기를 계속 사들이고 있다. 종미우익바이러스에 감염되면, 그처럼 사리분별력을 상실한 중증환자로 전락한다. 

 

차이잉원 종미우익정권이 미국의 무기판매전략을 추종하여 미국산 무기를 많이 사들이는 것은 사리를 분별하지 못하는 멍청한 짓으로 끝나는 게 아니다. 미국이 대만에 미국산 무기를 많이 팔아먹을수록 중국은 더욱 심한 자극을 받게 된다. 아니나 다를까, 2022년 3월 18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바이든 대통령과 전화통화를 하면서 “미국측 인사들이 대만독립세력에 잘못된 신호를 보내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미국은 중국의 전략적 의도를 오독하고 오판했다”고 비판하면서 “미국이 대만문제를 잘못 처리하면, 중미관계에 파괴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고 엄중히 경고했다. 

 

시진핑 주석은 미국이 중국의 전략적 의도를 오독하고 오판했다고 비판했는데, 무슨 전략적 의도를 오독하고 오판했다는 뜻인가? 그것은 미국이 중국과 전쟁을 할지언정 대만지배권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야욕을 드러내면서 중국을 계속 협박, 위협하면, 중국이 겁을 먹고 대만해방전쟁의지를 포기할 것으로 오독하고 오판했다는 뜻이다. 중국은 미국이 협박, 위협한다고 해서 자기의 핵심리익을 포기할 나라가 결코 아니며, 미국과 전쟁을 해서라도 대만을 기어이 해방하고 영토완정을 실현하려는 강렬한 의지가 충만한 나라다. 

 

그러나 중국의 전략적 의지를 오독하고 오판한 바이든 대통령은 시진핑 주석의 비판과 경고를 한 쪽 귀로 듣고 다른 한 쪽 귀로 흘려버렸다. 더욱이 2022년 2월 24일 로씨야의 노보로씨야해방전쟁이 시작되자, 미국은 중국이 대만해방전쟁을 시작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을 느꼈기 때문에 대만지배권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야욕이 더욱 강해졌다. 

 

 

2. 대만을 독립국가로 승인하려는 미국의 계략

 

중국의 견지에서 보면, 대만은 홍콩과 대비할 수 없는 "핵심리익(core interest)"이 걸려있는 지역이고, 미국의 견지에서 보면, 대만은 우크라이나와 대비할 수 없는 "사활적 이익(vital interest)"이 걸려있는 지역이다. 만일 중국이 대만을 해방하고, 그로써 미국이 대만지배권을 상실하면, 미국의 태평양지배영역은 괌과 하와이로 물러나게 될 것이므로, 미국은 차라리 우크라이나를 포기할 수 있어도 대만은 포기할 수 없다. 

 

미국이 노보로씨야해방전쟁에 파병하지 않은 이유들 가운데서 결정적인 이유는 대만을 포기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만일 미국이 노보로씨야해방전쟁에 파병하여 로씨야와 전쟁을 벌이면, 미국의 침공무력은 유럽전선으로 집중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중국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대만해방전쟁에 돌입할 것이다. 중국의 그런 전략적 의도를 간파한 미국은 로씨야가 노보로씨야해방전쟁을 시작하자마자 중국의 군사동향을 더욱 면밀히 주시하면서 대응책을 찾으려고 분주하게 돌아쳤다. 이를테면, 미국과 영국이 중국의 대만해방전쟁 발발위기를 통제하는 문제, 그리고 중국의 대만해방전쟁에 대비해 공동비상계획을 수립하는 문제를 은밀히 협의한 것이다. 2022년 5월 1일 영국 언론매체 <파이낸셜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로씨야의 노보로씨야해방전쟁이 일어난 때로부터 며칠 지나지 않은 2022년 3월 7일부터 8일까지 커트 캠벨(Kurt M. Campbell)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인디아양-태평양정책조정관과 로라 로젠버거(Laura Rosenberger) 백악관 중국담당 국장이 데이빗 쿼리(David Quarrey) 영국 국가안보부보좌관을 비롯한 영국 정부 대표들과 만나 중국의 대만해방전쟁 발발위기를 통제하는 문제와 중국의 대만해방전쟁에 대비한 공동비상계획을 논의했다고 한다. 보도에 따르면, 그 자리에서 영국은 미국이 대만문제를 놓고 중국과 충돌하여 전쟁이 일어나는 경우 영국이 미국을 어떻게 지원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거론했다고 한다.      

 

로씨야의 노보로씨야해방전쟁을 계기로 중국이 대만해방전쟁을 시작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을 느낀 미국은 다급한 나머지 상황을 오판했다. 미국의 상황오판은 중국을 더욱 자극하는 위험천만한 도발행동을 유발했다. 여기서 말하는 위험천만한 도발행동은 미국 연방하원의장이 일본과 대만을 순방하려고 시도한 것을 뜻한다. 그 내막은 다음과 같다.  

 

2022년 4월 7일 미국 언론매체와 대만 언론매체가 각각 보도한 바에 따르면, 낸시 펠로시(Nancy P. Pelosi) 미국 연방하원의장은 4월 9일 일본을 공식 방문하여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와 회담하고, 4월 10일 한국을 방문하려고 했다가, 생각을 바꿔 일본을 방문한 뒤에 대만을 방문하기로 순방계획을 변경했다고 한다. 미국의 견지에서 보면, 펠로시가 일본을 방문한 뒤에 한국을 방문하는 것보다 대만을 방문하는 것이 더 시급하고 중대하였으므로 순방계획을 변경한 것이다. 

 

그런데 주목되는 것은, 펠로시 연방하원의장이 대만에 가서 미국의 ‘대만관계법(Taiwan Relations Act)’ 제정 43주년 기념식에 참석하려고 하였다는 사실이다. 미국의 국가권력서렬은 대통령, 부통령, 연방하원의장, 연방상원림시의장, 국무장관, 재무장관, 국방장관, 법무장관 순으로 정해졌으므로, 낸시 펠로시는 미국 국가권력서렬 3위에 오른 최고위급 인사다. 또한 미국의 ‘대만관계법’은 중국의 국가주권과 영토보전을 훼손하는 도발적인 내정간섭법이다. 또한 일본은 미국이 반중국적대정책을 수행하는 데서 앞잡이 노릇을 하는 중국의 적국이다.  

 

낸시 펠로시의 일본-대만 순방계획이 발표되자, 중미관계에서 커다란 마찰음이 들려왔다. 중국은 펠로시의 일본-대만 순방계획을 단호히 반대하면서 미국에 ‘엄정교섭’을 제기하였고, 순방계획을 당장 취소하라고 강하게 압박했다. 중국이 말하는 ‘엄정교섭’은 어떤 중대사안을 잘못 처리한 상대국에 외교경로를 통해 항의의사를 전하는 것을 뜻한다. 미국 국가권력서렬 3위에 오른 최고위급 인사가 일본을 방문하여 반중국적대정책을 논의하고, 곧바로 대만으로 가서 내정간섭법 제정 기념식에 참석하는 것은 미국이 중미관계의 ‘금지선’을 넘어서는 것을 의미했다. 만일 미국의 ‘금지선’을 넘어서면, 중미관계는 무력충돌위험으로 걷잡을 수 없이 치닫게 될 판이었다.   

 

그런데 그런 살얼음판에서 뜻밖의 사건이 일어났다. 펠로시 연방하원의장이 일본과 대만을 순방하기 위해 워싱턴을 출발하기 하루 전인 2022년 4월 7일, 연방하원의장 대변인은 펠로시가 코로나19 확진판정을 받고 자가격리에 들어갔다고 발표한 것이다. 이전에 펠로시는 코로나19 백신접종을 두 차례나 받았고, 추가접종까지 받았으며, 워싱턴을 출발하기 일주일 전에 받은 검사에서 음성판정을 받았는데, 4월 7일에는 확진판정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연방하원의장 대변인은 코로나19 확진판정을 받은 펠로시에게서 아무런 병리증상도 나타나지 않았다고 밝혔다. 

 

펠로시 연방하원의장이 정말로 코로나19에 감염되어 일본-대만 순방을 갑자기 취소한 것인지 아니면 중국과 충돌할 위험을 피하기 위해 코로나19에 걸렸다는 핑계를 대고 일본-대만 순방을 취소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가 순방계획을 전격적으로 취소함으로써 중국과 미국은 무력충돌위험을 또 한 차례 넘겼다. 

 

그런데 펠로시 연방하원의장이 일본-대만 순방을 취소한 직후, 뜻밖의 사건이 또 일어났다. 미국 연방상원 외교위원장 로벗 메넨데즈(Robert Menendez)를 단장으로 하고, 연방상원의원들인 린지 그레이엄(Lindsey O. Graham), 리처드 버(Richard Burr), 로벗 포트먼(Robert Portman), 벤자민 쌔씨(Benjamin Sasse), 롸니 잭슨(Ronny Jackson)으로 구성된 연방상원 대표단이 2022년 4월 14일 대만을 전격적으로 방문한 것이다. 펠로시 연방하원의장의 대만방문이 취소되자, 연방상원 대표단이 사전에 아무런 예고도 하지 않고 전격적으로 대만을 찾은 것이다. 그것은 집요한 반중국도발행동이었다. 특별기를 타고 대만에 도착한 미국 연방상원 대표단은 이튿날 중국 총통 차이잉원과 국방부장 추궈정을 각각 만나 미국의 반중국적대정책에 관해 밀담을 나눴다.  

 

미국의 집요한 반중국도발행동을 본 중국은 노여움을 느꼈다. 2022년 4월 20일 웨이펑허(魏鳳和) 중국 국방부장의 발언은 중국의 노여움을 대변한 것이었다. 그는 로이드 오스틴(Lloyd J. Austin) 미국 국방장관과 전화통화를 하면서 “대만은 중국의 일부이며, 중국의 주권, 안보, 영토보전을 위해 대만을 수호할 것”이라고 하면서 “미국은 중국의 대만수복의지를 과소평가하지 말라. 미국이 대만문제를 제대로 처리하지 않으면 중미관계에 엄청난 악영향이 불가피하게 발생할 것”이라고 엄중히 경고했다. 

 

하지만 중국이 따끔한 비판과 엄중한 경고를 주어도, 제국주의자들에게는 쇠귀에 경 읽기다. 2022년 5월 5일 미국 국무부가 ‘미국과 대만 양자관계에 관한 사실자료’라는 제목의 문서를 발표하였는데, 그 문서에는 “대만이 중국의 일부이며, 미국은 대만독립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서술한 부분이 삭제되었다. 이것은 미국이 대만의 분리독립지지정책을 더욱 노골적으로 추진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아니나 다를까, 미국은 대만을 독립국가로 승인하려는 음흉한 계략을 드러냈다. 2022년 5월 15일 바이든 대통령은 국제기구에 국가자격으로 참가하려고 책동하는 대만을 지원해주는 법에 서명한 것이다. 그 법은 대만이 세계보건기구(WHO)의 최고의결기구인 세계보건총회(WHA)에 참관국 자격으로 참가하는 것을 미국이 지원하는 법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2022년 5월 22일부터 28일까지 스위스 제네바에서 세계보건총회 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유엔은 1972년 중화인민공화국 정부를 중국의 유일한 합법정부로 인정하고, ‘중화민국’을 참칭하는 대만을 유엔에서 축출했는데, 그로써 대만은 유엔 산하기구인 세계보건기구에서도 축출되었다. 그런데 그로부터 50년이 지난 오늘 미국은 중국의 격렬한 반대를 무릅쓰고 대만을 다시 세계보건기구에 끌어들이려고 비렬하게 책동했다. 하지만 미국의 책동은 중국의 반대에 걸려 좌초되었고, 대만은 세계보건총회 회의장에 얼굴을 내밀지 못했다. 

 

 

3. 중미관계의 폭풍을 예보하는 전쟁준비태세

 

위에 서술한 사실을 종합해보면, 중미관계에서 대화와 협상의 여지는 완전히 사라졌고, 무력충돌위험만 남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금 중국과 미국이 각각 전쟁준비태세를 완성하려고 힘쓰고 있는 현실은 무력충돌의 불가피성과 임박성을 보여준다. 그러면 미국의 전쟁준비태세는 어느 정도 진척되었는지 살펴보자. 

 

1) 전쟁을 준비하려면 막대한 비용이 들어가는데, 미국은 중미전쟁을 준비하기 위해 많은 국방예산을 지출하고 있다. 2020년 12월 6일 <워싱턴포스트> 보도에 따르면, 미국 연방의회는 2021회계년도 국방예산안에 ‘태평양억제구상(Pacific Deterrence Initiative)’이라는 특별항목을 신설하고 거기에 22억 달러(2조4,000억원)를 배정했다고 한다. 미국에서 2021회계년도(fiscal year)는 2021년 4월 1일부터 2022년 3월 31일까지 기간이다.   

 

2) 전쟁을 준비하려면 전쟁전략을 수립해야 하는데, 미국은 중미전쟁전략을 수립하기 위해 박차를 가하고 있다. 2021년 2월 10일 <로이터통신> 보도에 따르면, 미국 국방부는 15명의 전쟁기획자들로 구성된 중국전담실무반을 구성했고, 2021년 6월까지 대중전쟁전략을 수립할 것이라고 하였다. 2022년 5월 현재 미국 국방부의 대중전쟁전략은 완성되었고, 실행하는 일만 남았다. 

 

누구나 예상하는 것처럼, 미국이 대만을 ‘방어’해준다는 구실을 내걸고 중국의 압도적인 공격력에 맞서려면 해군력을 대거 동원해야 한다. 따라서 대중전쟁전략을 수립하는 데서 미국 국방부의 일차적 관심은 항모타격단을 중심으로 증강, 편성된 해군력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동원하는가 하는 문제에 집중되었다. 예컨대 미국은 2022년 1월 말 제1항모타격단과 제5항모타격단을 남중국해에 동시에 출동시켜 중국공격을 연습했다. 

 

2022년 5월 8일 미국 해군 제7함대 제5항모타격단 소속 핵추진항공모함 로널드 레이건호가 일본 도꾜만에 나타났다. 원래 이 항공모함은 2021년 10월 요꼬스까해군기지에서 연례적인 정비를 받았는데, 이번에 정비를 마치고 출항하여 시험운항을 시작한 것이다. 정비후속시험운항을 마치면, 정비기간 동안 지상공군기지에 머물고 있었던 함재기들이 날아와 로널드 레이건호에 착함하고, 정비기간 동안 서로 떨어져 있던 순양함, 구축함, 보급함이 로널드 레이건호의 작전통제체계 안으로 다시 들어가 제5항모타격단이 재구성된다. 

 

이처럼 제5항모타격단이 제자리로 돌아갔으니, 항모타격단을 동원하는 미국의 중국공격연습이 더욱 기승을 부릴 것은 뻔하다. 위에 서술한 사정을 보면, 2021년 6월 이후 미국은 중국의 대만해방전쟁을 억제한다는 구실을 내걸고 연간 22억 달러를 지출하면서 중미전쟁에 대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미국이 그처럼 중미전쟁에 대비하고 있는 것에 대응하여 중국도 당연히 중미전쟁에 대비하고 있다. 그러면 중국의 전쟁대비태세는 어느 정도 진척되었는지 살펴보자.

 

1) 중국은 대만해방전쟁을 수행하기 위해 해군력을 비상히 강화하고 있다. 미국이 항모타격단을 동원하여 중미전쟁을 도발하는 상황에 대비하여 중국도 항모전투단을 동원하여 미국의 항모타격단에 맞서싸우는 훈련을 진행하고 있다. 이를테면, 미국 연방상원 대표단이 대만에서 차이잉원과 추궈정을 각각 만나 미국의 대중국적대정책을 논의하고 있었던 2022년 4월 15일 중국인민해방군은 동중국해와 대만 인근 해역에서 폭격기, 전투기, 구축함을 동원한 대규모 군사훈련을 실시했다. 2022년 5월 3일부터 11일까지 8일 동안 항공모함 랴오닝호를 주축으로 미사일구축함 2척, 미사일호위함 4척, 보급함 1척으로 편성된 중국인민해방군 항모전투단은 대만 인근 해역에서 전투기와 작전헬기를 이착함하는 훈련을 100회 이상 계속하면서 새로운 전법을 숙달했다. 

 

중국은 대만 해안을 들이치는 상륙작전능력을 급속히 강화하고 있다. 이를테면, 2021년 12월 중국은 075형 강습상륙함 하이난(海南)호를 대만에 가까운 동부전구에 전진배치했고, 2022년 4월 22일 075형 강습상륙함인 광시(廣西)호를 동부전구에 전진배치했다. 하이난호와 광시호는 각각 40,000t급 최신형 강습상륙함이다. 중국은 세 번째 075형 강습상륙함인 안후이(安徽)호를 2021년 1월 29일 진수했는데, 현재 시험운항하는 중이다. 중국이 세 번째로 건조한 강습상륙함의 시험운항을 마치고 대만에 가까운 동부전구에 강습상륙함 3척을 전진배치하면, 대만상륙작전능력이 완성된다. 

 

2) 중국의 전쟁대비태세에서 나타나는 특징은 미국이 갖지 못한 비대칭무기체계를 실전배치하는 것이다. 미국은 갖지 못했고, 중국만 가진 비대칭전투능력을 발휘해야 전쟁에서 미국을 제압할 수 있다. 중국이 보유한 비대칭무기체계는 다음과 같다.

 

2-1) 2022년 1월 1일 중국은 차세대 극초음속무기를 개발했다. 이 극초음속무기는 지상, 해상, 공중에서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모든 이동물체를 타격할 수 있는데, 미국은 적어도 2025년까지 그런 차세대 극초음속무기를 개발하지 못한다. 2022년 4월 21일 중국은 최신형 055형 구축함에서 사거리가 1,500km인 잉지(鷹擊)-21 극초음속미사일을 시험발사하는 영상을 공개했다. 대만군 전투함선은 이 극초음속미사일을 포착하지 못한다. 

 

2-2) 2022년 5월 18일 중국은 세계 최초의 2,000t급 인공지능 무인수송선 주하이윈(珠海雲)을 진수했다. 중국은 원격조종으로 항해하는 주하이윈 인공지능 무인수송선이 비군사적 용도로 사용될 것이라고 밝혔는데, 전시에는 무인항공모함으로 용도가 변경되어 무인작전기 수 십 대를 싣고 대만 해안에 접근하여 대만군의 해안방어체계를 교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2-3) 2022년 1월 현재 중국은 감시정찰위성 262기와 위성항법위성 49기를 운용하고 있다. 중국이 운용하는 각종 위성은 530기나 된다. 중국의 위성들 중에서 가장 큰 관심을 모으는 것은 항모추적위성이다. 중국의 항모추적위성은 최신 인공지능기술을 사용하여 미국 항공모함의 항행위치를 파악하여 실시간으로 작전지휘부에 알려준다. 기존 감시정찰위성은 미국 항공모함의 항행위치를 추적하면서 촬영한 엄청난 양의 위성영상자료를 보내주기 때문에 작전지휘부가 위성영상자료를 분석하는데 시간이 걸려 항공모함을 실시간으로 추적할 수 없었다. 2022년 5월 10일 중국 <화남조보(SCMP)> 보도에 따르면, 2021년 6월 17일 미국 해군 항공모함 해리 트루먼호가 뉴욕 롱아일랜드 앞바다에서 해협통과훈련을 실시하였을 때, 중국의 항모추적위성이 그 항공모함의 항행위치를 파악하여 실시간으로 알려주었다고 한다. 항모추적위성을 가동하여 미국 항공모함의 항행위치를 실시간으로 파악한 중국인민해방군이 사거리가 5,000km인 둥펑(東風)-26 항모타격미사일을 발사하면, 중국 해안에서 수 천 km 떨어진 서태평양의 미국령 웨이크섬(Wake Islands) 인근 해역에서 항해하는 미국 항공모함을 격침시킬 수 있다.  

 

 

4. 바이든의 한국-일본 순방과 미국의 양방향 적대정책

 

중국과 미국이 각각 전쟁준비태세를 갖추고 무한대립상태에 있는 시기에 바이든 대통령이 이른바 “자유롭고 개방된 인디아양-태평양지역”을 만들겠다고 하면서 2022년 5월 20일부터 24일까지 한국과 일본을 순방했다. 윤석열 종미우익정권은 “자유롭고 개방된 인디아양-태평양지역”을 만들려는 미국의 제국주의지배체제에 대한 복종의사를 미국 대통령 앞에서 표명했다. 한국방문일정을 마친 바이든 대통령은 5월 23일 현재 일본 도꾜에 있다. 그는 도꾜에서 아시아의 종미우익정권들을 긁어모아 새로운 반중국경제협력체인 인디아양-태평양경제구성체(Indo-Pacific Economic Framework)를 창설하고, 반중국안보회의기구인 쿼드(Quadrilateral Security Dialogue) 정상회의를 진행한다. 

 

원래 바이든 대통령은 한국을 방문하지 않고 일본만 방문하여 인디아양-태평양경제구성체 창설과 쿼드 정상회의를 진행하려고 했었는데, 한국을 방문하지 않으면 한국을 인디아양-태평양경제구성체에 끌어들일 명분이 없으므로, 나중에 계획을 변경하여 한국방문을 일본방문의 종속변수로 끼워 넣어준 것이다. 윤석열 종미우익정권은 그런 줄도 모르고 미국 대통령이 사상 처음 한국을 먼저 방문하고 일본을 방문했다는 사실을 부각시키면서 미국이 그만큼 한국의 전략적 가치를 중시하고 있다느니 뭐니 하면서 헛소리를 늘어놓았다. 하지만 미국은 미국 대통령의 한국방문을 일본방문의 종속변수로 끼워넣어주는 대가로 천문학적인 대미투자금을 상납받으면서, 중국으로 기울어지던 한국의 미래산업동력을 미국으로 돌려놓음으로써 중국에 종속되었던 한국 경제를 이탈시켜 자기에게 종속시키는 데 성공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하였을 때, 블링컨 국무장관이 아니라 지나 레이몬도(Gina M. Raimondo) 상무장관이 가장 중요한 수행간부로 동행하였다. 바이든 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하였을 때는 블링컨 국무장관이 가장 중요한 수행간부로 동행했다. 레이몬드 상무장관은 바이든 대통령의 방한 둘째날인 2022년 5월 21일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경제안보회담을 진행했고, ‘공급망 및 산업대화기구 설치에 관한 양해각서(Memorandum of Understanding on the Establishment of the Supply Chain and Commercial Dialogue)’를 체결했다. 이 양해각서는 중국으로 기울어지던 한국의 미래산업동력을 미국으로 돌려놓은 경제정책전향각서다. 1948년 이후 오늘까지 한국 경제의 대외종속역사를 훑어보면, 한국 경제의 실질적 지배자가 미국, 일본, 중국을 거쳐 이번에 미국으로 바뀌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사정을 보면, 바이든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한 가장 중요한 목적은 중국에 종속되었던 한국 경제를 이탈시켜 미국에 종속시키려는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한국 경제가 중국 경제권에서 이탈하여 미국 경제권으로 종속되어야, 윤석열 종미우익정권이 중국의 눈치를 더 이상 살피지 않고 미국의 반중국적대정책을 전면적으로 추종할 수 있다.    

 

바이든 대통령의 한국-일본 순방은 미국의 양방향 적대정책을 한층 더 확대, 강화하려는 목적에 따라 이루어진 것이 분명하다. 여기서 말하는 양방향 적대정책이라는 것은 반조선적대정책과 반중국적대정책을 결합시킨 것이고, 기존 반중국군사동맹체(미일군사동맹체)와 새로운 반중국경제협력체(인디아양-태평양경제구성체)를 결합시킨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의 한국-일본 순방은 한국과 일본을 양방향 적대정책에 깊숙이 끌어들인 예속심화계기로 되었고, 윤석열 종미우익정권과 기시다 종미우익정권이 미국의 양방향 적대정책을 적극 추종하는 복속심화계기로 되었다. 

 

조선의 견지에서 보면, 바이든 대통령의 한국-일본 순방은 미국이 한국과 일본을 앞세워 반조선적대정책을 더욱 확대, 강화함으로써 무력충돌을 예고하는 징후로 보인다. 또한 중국의 견지에서 보면, 바이든 대통령의 한국-일본 순방은 미국이 한국과 일본을 앞세워 반중국적대정책을 더욱 확대, 강화함으로써 무력충돌을 예고하는 징후로 보인다. 

 

조미전쟁과 중미전쟁은 로씨야-우크라이나전쟁과는 대비될 수 없을 만큼 거대한 폭풍을 몰아올 수 있다. 바이든 대통령의 한국-일본 순방을 계기로 하여 ‘폭풍예보’는 한층 더 심각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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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하라는대로, 살려달라 전화만…가둬놓고 죽인 거잖아요”

등록 :2022-05-23 04:59수정 :2022-05-23 07:36

[코로나로 빼앗긴 삶 23965]
척수성 근위축증 앓는 정희숙씨
척추측만증에 일반인 폐보다 작았지만
집중관리군 아닌 일반관리군으로 분류
팍스로비드 처방 대상에서도 제외돼

고열·근육통·호흡곤란 시달려도
보건소·119 “병상 없다” 말만 되풀이
사망 8시간 전에야 겨우 응급실로

“입원시켰다면 충분히 살 수 있었는데
결국에는 가둬 놓고 죽인 거잖아요”
코로나19로 인해 병상을 찾지 못해 사망한 중증장애인의 유족 안영일씨. 광주/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코로나19로 인해 병상을 찾지 못해 사망한 중증장애인의 유족 안영일씨. 광주/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22일 0시 기준 코로나19 누적 사망자
22일 0시 기준 코로나19 누적 사망자

“(코로나19 환자인 아내가) 중증장애인입니다. 119는 (신고)했고, 병원 섭외가 안 된다고 해서요. 도저히 (병실이) 안 난다고 하는데… 치료를 좀 받을 수 있나요? (환자가) 곧 죽을 것만 같아서….” 

 

3월17일 새벽 1시 안영일(49)씨가 광주광역시의 한 대학병원 응급실에 전화를 걸었다. 영일씨의 전화기에 자동녹음된 그의 목소리는 거칠고 다급했다. 척수성 근위축증을 앓았던 아내 정희숙(39)씨는 3월12일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고 재택치료 중이었다. 확진 초기부터 고열과 호흡곤란에 시달렸던 희숙씨의 건강이 이날 새벽 극도로 악화됐다. “계속 뭘 먹지를 못했어요. 확진 초기에는 3일 동안 토하고, 거의 물도 삼키지 못했어요. 토하고 가래를 뱉으면 핏기 섞인 게 나오고, 정신을 거의 못 차리고 있어요.” 영일씨 가족은 셋째 아이가 3월11일 첫 확진을 받고, 다음날 부부와 나머지 두 아이 등 다섯 식구가 모두 확진 판정을 받았다. 병원은 보호자 영일씨가 확진자라는 사실에 머뭇댔다. 거듭된 읍소 끝에 영일씨는 병원의 입원 ‘허가’를 받았다. 병상을 확보한 건 보건소도, 119도 아닌 남편이었다. 하루 신규 확진자가 역대 최다 62만명을 넘었다는 뉴스가 떠들썩하던 날이었다.

 

자고 있는 7살, 12살, 14살 세 자녀를 뒤로한 채 차에 희숙씨를 싣고 응급실로 내달렸다. 희숙씨는 병원 도착 8시간 만인 오전 9시30분 숨졌다. 폐·신장이 이미 크게 망가진 상태였다. “아기 엄마 데리고 병원 빨리 갔다 올 요량으로 아이들 잠 안 깨게 조심히 갔거든요. 그럴 줄 알았으면 아이들이 엄마한테 인사라도 하게 하는 건데….” 확진 뒤 격리 기간이 남아 있던 영일씨는 아내의 주검을 장례식장에 먼저 보내고 홀로 집으로 돌아왔다. 그는 하룻밤 사이 엄마를 잃은 세 아이를 붙잡고 울었다. “미안하다, 미안하다, 아빠가 엄마를 못 지키고 혼자 왔다. 미안하다….”

 

‘엄마 아프면 안돼. 응알게찌. 엄마가 아프면 가족도 마음이 아파 그러니까 아프지마’. 5월17일 찾은 거실 한켠에 걸린 희숙씨의 사진 위엔 편지가 놓여 있었다. 2021년(2022년의 오기) 3월16일. 엄마가 숨지기 하루 전날 7살 막내가 쓴 간절한 편지였다.

 
중증장애인, 먹는 치료제·집중관리 대상 제외

 

희숙씨는 ‘재택치료’가 시작된 3월12일부터 내내 “온몸의 뼈가 부러지는 듯한” 근육통과 구토, 고열과 호흡곤란에 시달렸다. 보다 못한 영일씨는 확진 다음날인 13일부터 병상을 요청하기 위해 하루 종일 전화기를 붙들고 있었다. 보건소에 수십통의 전화를 했다. 거의 불통이었다. 어쩌다 연결되더라도 보건소는 “병상이 없다”는 말만 반복했다. 119도 마찬가지였다. “이송은 해줄 수 있지만, 병상이 없기에 먼저 병원을 섭외해달라.” 개별로 접촉한 병원들은 “확진자는 진료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결국 비대면 진료를 통해 약을 처방받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구토를 계속해 삼키기도 어려운데다 먹어도 효과가 없었다. 코로나19 먹는 치료제 팍스로비드는 처방 대상도 아니었다. 그렇게 5일을 버틴 끝에 희숙씨는 숨지기 8시간 전에야 지역의 대학병원 응급실에 입원할 수 있었다.

 

희숙씨는 ‘척수성 근위축증’을 앓고 있는 중증장애인이었다. 팔꿈치 아래 외엔 온몸에 힘이 없을 뿐 아니라, 척추측만증이 심해 폐가 일반인보다 작았다. 그럼에도 3월12일 재택치료를 시작하는 과정에서 고위험군에 해당하는 ‘집중관리군’이 아닌 ‘일반관리군’으로 분류됐다. 희숙씨의 자기 기입식 조사서에는 ‘지체장애인, 척수성 근위축증 환자’라고 돼 있었지만 바뀌는 건 없었다. 당시 정부는 △60살 이상△먹는 치료제 투약 대상자인 50대 이상 고위험·기저질환자(고혈압, 심혈관계 질환 등) △먹는 치료제 투약 대상자인 면역 저하자(암 환자, 장기이식 환자 등)를 ‘집중관리군’으로 관리했는데, 희숙씨의 희귀질환은 이에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준에 따르면 정씨는 팍스로비드 처방 대상(60살 이상, 면역 저하자, 40·50대 기저질환자)도 아니었다. 감염 시 폐 손상 위험이 컸지만 ‘일반관리군’이라는 이유로 병상 배정에서 후순위로 밀렸다.

 

지난 17일 오후 광주시 남구 한 아파트 거실 벽면에 코로나19로 인해 병상을 찾지 못해 사망한 중증장애인의 사진 액자에 막내딸이 엄마가 살아 있을 때 써놓은 글이 놓여 있다. 2021년은 2022년의 오기다. 광주/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지난 17일 오후 광주시 남구 한 아파트 거실 벽면에 코로나19로 인해 병상을 찾지 못해 사망한 중증장애인의 사진 액자에 막내딸이 엄마가 살아 있을 때 써놓은 글이 놓여 있다. 2021년은 2022년의 오기다. 광주/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보호자 동반 병상은 더 없었다

 

코로나19 확진자가 폭증할 시기였다는 점 외에도 희숙씨의 입원이 어려웠던 결정적 이유는 또 있었다. 보호자와 함께 입원해야 하는 장애인이라는 점이다. 광주 남구 보건소 관계자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보호자도 들어갈 수 있는 1인실 병상이 없어서 병상 배정이 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확진 뒤 사흘이 지난 3월15일, 영일씨도 병상을 요청하며 비슷한 설명을 들었다. “5~6인실을 이용해야 하는데, 보호자는 함께 갈 수 없다”는 답변이었다. “보호자가 동행해야 한다”는 영일씨의 답변에 보건소는 그날 밤까지 연락이 없었다.

 

확진 나흘 뒤인 3월16일 영일씨는 다시 보건소에 병상 배정을 요청했다. 보건소는 “우선 외래진료센터를 가보라”고 권했다. 여러 병원에 연락한 끝에 확진자 대면진료가 가능한 외래진료센터를 방문할 수 있었다. 하지만 병원 문턱에서부터 일이 꼬였다. 확진자 전용 출입구에 계단이 있었던 것. 100㎏이 넘는 전동휠체어를 들고 진입하기란 불가능했다. 오랜 기다림 끝에 비확진자용 입구로 돌아 간신히 입구로 들어섰지만, 또 다른 난관이 기다리고 있었다. “(폐 손상 여부를 보는) 엑스레이 검사를 해야 했는데, 일어서야만 찍을 수 있다는 겁니다. 그건 아내에게 무용지물이에요. (혈액검사를 위해) 혈액을 뽑아야 되는데, (희귀질환 탓에) 그렇지 않아도 혈관이 안 나오는 사람이 며칠을 못 먹으니까 (의료진이) 혈관을 찾을 수가 없어요. 결국 혈액도 뽑지 못했습니다.” 결국 부부는 초음파 검사와 3차 의료기관 진료의뢰서만 받고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영일씨도 나중에 안 일이지만, 아내는 숨지기 전 심한 폐 손상, 패혈증을 겪었다. 영일씨는 대면진료 때 엑스레이를 찍지 못한 점, 더 빨리 입원하지 못한 점을 생각하며 스스로를 탓했다. 아내가 확진된 이후 ‘살릴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고 생각해서다. “환자 상태가 그렇게 심해졌다는 걸 알았으면 어떻게든 안 했겠냐고요. 우리는 알 수가 없으니까 그냥 정부에서 하라는 대로만 하고 있었죠. 계속 살려달라고 전화만 하고요. (중략) 입원을 시켜서 치료를 받았으면 충분히 살 수 있었는데, 나라에서 격리하라니까 격리하고, 집에서 치료받으라고 하니까 치료했어요. ‘가둬놓고 죽인 거’잖아요.”

 

광주시는 이 일 이후 장애인단체와 면담을 거쳐 코로나19와 관련해서 △중증장애인 전담 병상 확보 △장애인 전담 상담창구 마련 △중증장애인 이동 지원 등을 담은 대책을 세웠다. 하지만 구체적인 사항을 규정해두지 않으면 이런 일은 반복될 가능성이 있다. 앞서 보건복지부도 2020년과 지난해 장애인 대상 감염병 대응 매뉴얼을 내놓은 바 있다. 지난해 4월 매뉴얼을 보면, ‘65살 이상’을 우선 고려하도록 했지만 ‘장애인 확진자가 입원할 수 있는 의료지원·생활지원 병동·병원을 확보하고, 확진 시 확보 병상 우선 조치 한다’는 내용이 있다. 하지만 실제 적용은 상황별로 다르다. 복지부 관계자는 “병원별로 활동지원사나 보호자를 거부하는 등 사례가 있을 것”이라며 “장애인 병상 배정은 각 시·도에서 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필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기획실장은 “장애인 병상 배정은 지방자치단체의 상황이나 병원장의 재량에 좌지우지된다”며 “매뉴얼을 이행하고 적용하는 일을 지자체 판단에 맡겨두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전장연 등 장애인 단체는 코로나19 먹는 치료제 처방과 재택치료 시 고위험군·집중관리군으로 중증장애인을 포함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데, 정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병상을 찾지 못해 사망한 중증장애인. 그가 생전에 사용하던 전동휠체어가 지난 17일 오후 광주시 남구 한 아파트 거실에 그대로 놓여 있다. 광주/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코로나19로 인해 병상을 찾지 못해 사망한 중증장애인. 그가 생전에 사용하던 전동휠체어가 지난 17일 오후 광주시 남구 한 아파트 거실에 그대로 놓여 있다. 광주/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휠체어 편히 다닐 집 짓는 게 꿈이었는데…”

 

레미콘 기사로 일하는 영일씨는 아이들이 크고 나면 아내와 함께 시골에서 사는 게 꿈이었다. 계단과 문턱이 널린 도시를 벗어나고 싶었다. 외식을 하더라도 좌식인지 입식인지, 전동휠체어가 가능한지 알아봐야 하는 생활에 스트레스가 컸다. “휠체어가 어디든 막힘없이 다닐 수 있게끔, 아내를 위해 집을 지어 살고 싶었어요.”

 

희숙씨는 시골로 가서 노인 복지 관련 일을 해보는 데에 관심이 컸다. 세 자녀를 키우면서도 공부를 시작해 사회복지 전공으로 올해 초 대학을 졸업했다. 사회복지사 1급 자격증 취득도 준비하고 있었다. 주변 사람들은 희숙씨를 ‘다정하고 의지가 강한 사람’으로 기억했다. 30여년간 가깝게 지내온 김민선 광주장애인가정상담소장은 “셋째를 가졌을 때 저희 사무실에 왔는데, 한 아이는 엄마한테 안기고, 한 아이는 휠체어 뒤에 타고 왔다. 놀라웠다”며 “여러 사람들하고 편지로 소통했다. 사람들과 관계가 굉장히 좋아서, 한번 알게 되면 관계를 오래 유지한 친구”라고 기억했다.

 

희숙씨의 가장 큰 즐거움은 가족과 야외로 나가는 일이었다. 영일씨는 집 안에만 있어야 하는 아내를 위해 쉬는 날이면 야외 어디든 가려고 애썼다. 희숙씨는 그런 남편을 ‘친절한 영일씨’라 부르며 행복해했다. “아기 엄마는 휠체어 타고 같이 야구장으로, 산으로 가서… 가다 소나기 오면 비 맞고 그랬던 추억이 있네요. 남들은 피하지만, 우리는 못 피하잖아요. 비가 막 쏟아지면요.” ‘쏟아지는 비’를 피하지 못했기 때문일까. 이젠 이 땅 어디에도 희숙씨가 없다.

 

광주/박준용 기자 juney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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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풀렸는데 ‘원숭이두창’ 세계 확산…팬데믹 될 가능성은?

등록 :2022-05-22 09:10수정 :2022-05-22 11:56

원숭이두창 감염·의심 사례 11개국 120건 넘어
유럽 대륙 넘어 북미, 오스트레일리아까지 전파
감염력 낮은 질병의 이례적 확산 원인 분석 골몰
원숭이두창 바이러스는 천연두 바이러스와 같은 계통으로 증상도 비슷해 ‘천연두의 사촌’이라 불린다. CDC/신시아 S. 골드스미스
원숭이두창 바이러스는 천연두 바이러스와 같은 계통으로 증상도 비슷해 ‘천연두의 사촌’이라 불린다. CDC/신시아 S. 골드스미스

박쥐발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팬데믹이 사그라드는 와중에 또다른 인수공통감염병이 확산되고 있어 세계 보건당국과 과학계를 긴장시키고 있다.

 

세계보건기구에 따르면 그동안 거의 아프리카에서만 발견돼온 희귀 바이러스 질병 윈숭이두창(monkeypox) 감염 확인 또는 의심 사례가 올해 들어 미국, 유럽 등 아프리카 지역이 아닌 11개국에서 120건 이상 나왔다.

 

세계보건기구에 보고된 첫 사례는 5월13일 영국의 한 가정집에서 감염된 세 사람이었다. 현재 이 감염병은 영국과 포르투갈, 스페인, 스웨덴, 이탈리아, 벨기에 등 유럽에서 주로 보고됐으나 바다 건너 캐나다, 미국은 물론 남반구의 오스트레일리아에서도 감염 사례가 나왔다.

 

코로나19로 제한됐던 해외여행이 다시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어서 앞으로 더 많은 사례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어 보건 당국을 긴장시키고 있다. 세계보건기구는 성명을 통해 “질병 감시를 확대하기 위해 관련 국가를 비롯한 여러 국가들과 협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과학계도 이 감염병의 확산 원인을 규명하는 데 나섰다.

 

역대 원숭이두창 발병 지역. 보라색 지역이 올해 발병 사례가 보고된 곳이다. 위키피디아
역대 원숭이두창 발병 지역. 보라색 지역이 올해 발병 사례가 보고된 곳이다. 위키피디아
 
온몸 발진에 독감 같은 고열도

 

원숭이두창 바이러스는 DNA 바이러스로 천연두 바이러스와 같은 폭스바이러스과에 속한다. 증상도 천연두와 비슷해 천연두의 사촌격이라 할 만하다. 가려움증을 유발하는 울퉁불퉁한 발진이 전신에 나는 것과 함께 독감과 비슷한 고열과 통증을 동반한다. 발진은 나중에 고름이 가득 찬 물집이 된다. 감염 후 증상이 발현되기까지 잠복기간은 보통 6~13일이다. 증상 지속 기간은 14~21일이며 저절로 회복되는 경우가 많다.

 

원숭이두창이란 이름이 붙은 것은 1958년 실험실에 있던 원숭이에서 처음 발견됐기 때문이다. 질병 이름은 원숭이두창이지만 질병의 숙주는 아프리카에 서식하는 설치류로 추정한다. 주로 아프리카 열대우림의 원숭이들한테서 많이 발생하며, 사람한테서는 1970년 콩고민주공화국의 어린이한테서 처음 발견됐다. 아프리카에서는 서부와 중부 지역을 중심으로 한 해 평균 수천건이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주된 발생지는 콩고민주공화국이다.

 

아프리카 이외의 지역에선 아프리카여행자나 아프리카로부터 수입한 동물에서 발생한 사례가 있었으나 매우 드물었다. 그런데 이번엔 발생 양상이 이전과 확연히 다르다. 지난 몇주간 발생한 사례만으로도 이미 1970년 이래 전체 발생 건수를 넘어섰을 정도로 증가세가 뚜렷하다.

 

원숭이두창과 같은 계통인 천연두 바이러스. 안에 있는 유전물질 DNA가 아령 모양을 하고 있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원숭이두창과 같은 계통인 천연두 바이러스. 안에 있는 유전물질 DNA가 아령 모양을 하고 있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대유행병으로 발전할 가능성은 낮아

 

그러나 미육군감염의학연구소 제이 후퍼 박사(바이러스학)는 과학학술지 ‘네이처’에 “원숭이두창이 코로나19와 같은 정도의 바이러스 질병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그 이유로 두 가지를 꼽았다. 첫째는 원숭이두창은 사람간 감염이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 둘째는 이미 많은 치료제와 백신이 준비돼 있는 천연두 바이러스와 비슷하다는 점이다.

 

과학자들이 우려하는 초점은 바이러스 그 자체보다는 바이러스의 전파 방식에 새로운 특성이 추가됐는지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주로 에어로졸이라고 하는 작은 비말을 통해 퍼진다. 반면 원숭이두창은 침과 같은 체액과의 밀접한 접촉을 통해 전파된다. 이는 원숭이두창에 걸리더라도 다른 사람한테 전염시킬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훨씬 낮다는 걸 뜻한다고 후퍼 박사는 말했다.

 

포르투갈 과학자들은 5월19일 이번에 발생한 원숭이두창의 게놈 서열을 처음으로 분석해 공개했다. 과학자들은 이 분석에서 이번에 발견된 원숭이두창 바이러스 균주가 서부 아프리카에서 주로 발견되는 바이러스 변종과 닮았다는 걸 알아냈다. 원숭이두창 바이러스엔 서부 아프리카 계통과 중앙 아프리카 계통이 있다. 서부 아프리카 변종은 중앙 아프리카 변종에 비해 증상이 가볍고 치명률도 낮다. 예컨대 빈곤한 농촌 인구에서의 치명률이 약 1%다. 그래도 독감 치명률 0.1%보다는 훨씬 높다.

 

그러나 현재 확산되고 있는 바이러스가 실제로 서부 아프리카 균주와 정확히 얼마나 같고 얼마나 다른지, 또 현재 발생국가들의 바이러스들은 서로 같은 종인지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이를 파악하면 갑작스럽게 확산되는 것이 전염력이 높아진 돌연변이 때문인지, 또 각국에서 발견되는 바이러스의 발원지가 같은 곳인지 알 수 있다고 호주 뉴사우스웨일스대의 레이나 매킨타이어 교수(감염병학) 교수는 ‘네이처’에 말했다.

 

변이가 쉽게 일어나는 RNA 바이러스인 코로나19 바이러스와 달리 원숭이두창 바이러스는 크기가 상대적으로 큰 DNA 바이러스다. DNA 바이러스는 RNA 바이러스보다 돌연변이를 탐지해 복구시키는 능력이 더 낫다. 이는 원숭이두창 바이러스가 갑작스럽게 인간 전염력이 높아질 가능성이 낮다는 걸 뜻한다고 매킨타이어 교수는 말했다.

 

미국의 프레리 대평원에서 서식하는 작은 설치류 동물 프레리도그. 미국에선 애완동물로 키우는 프레리도그가 사람한테 원숭이두창을 옮기는 매개체 역할을 했다.
미국의 프레리 대평원에서 서식하는 작은 설치류 동물 프레리도그. 미국에선 애완동물로 키우는 프레리도그가 사람한테 원숭이두창을 옮기는 매개체 역할을 했다.
2022년발 원숭이두창의 수수께끼

 

그럼에도 아무런 관계도 없는, 서로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들한테서 같은 종류의 바이러스가 검출됐다는 건 바이러스가 지역 내에서 은밀하게 퍼지고 있을 수 있음을 시사한다.

 

이 점이 바로 이번 확산 사례에 내재된 잠재적 공포다. 다만 피부에 병변이 생기는 원숭이두창은 코로나19와 달리 무증상 전염과는 거리가 멀어 이럴 가능성이 크지는 않다.

 

원숭이두창의 또 다른 수수께끼는 모든 발병 사례에 20-50세 남성이 포함되어 있다는 점이다. ‘네이처’는 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동성애자나 양성애자였다고 전했다. 성적 접촉이 전파 경로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성적 행위를 하게 되면 두 사람이 서로 밀접한 접촉을 하게 된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매킨타이어 교수는 바이러스가 우연히 동성애-양성애 집단에 들어왔다가 계속 순환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네이처’는 몇주간의 역학조사가 완료되면 어디에서 발병이 시작됐고 감염 위험은 어느 정도인지 파악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과학자들은 1970년대 박멸 캠페인으로 천연두가 사그라든 이후 원숭이두창을 주시해 왔다. 예방접종이 중단되면서 천연두 바이러스에 대한 면역력이 약하거나 전혀 없는 인구가 증가했기 때문이다. 나이지리아에선 2017년 이후 약 500명의 의심 환자와 200명 이상의 확진자가 나왔다. 미국에서도 2003년 가나에서 운송된 설치류를 거쳐 70여명이 감염된 사례가 있었다.

 

미국에서 천연두 및 원숭이두창 겸용 백신으로 승인받은 ‘임바넥스’. 바바리안노르딕 제공
미국에서 천연두 및 원숭이두창 겸용 백신으로 승인받은 ‘임바넥스’. 바바리안노르딕 제공
코로나와 달리 백신·치료제 이미 확보

 

그러나 세계의 보건 당국은 무방비로 당했던 코로나19와는 달리 원숭이두창에는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을 이미 갖고 있다. 천연두 백신은 원숭이두창에도 85%의 면역 효과가 있다. 또 원숭이두창용 백신과 치료제도 이미 개발돼 있다. 미국 같은 나라에선 천연두 백신 공급망이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

 

‘네이처’는 만약 원숭이두창 확산이 우려될 경우 보건 당국은 코로나와 같은 격리 전략보다는 ‘포위 접종’(ring vaccination)이라는 백신 전략을 선택할 것으로 예상했다. 포위접종은 감염 가능성이 가장 높은 사람들한테 우선 예방주사를 맞게 하는 질병 확산 억제 전략이다. 불이 났을 경우 마을 전체가 아닌 불이 난 집부터 물을 뿌리는 것과 같다. 예컨대 누군가 질병에 감염됐을 경우 추가 감염 가능성이 있는 가족, 이웃, 친구 등을 조사해 1차 접촉자, 2차 접촉자, 3차 접촉자 이런 식으로 분류한 뒤 그룹별로 백신을 접종한다. 백신 물량 부족으로 인구 전체에 대한 접종이 어려웠던 아프리카에서 천연두를 박멸하는 데 큰 효과를 발휘했다.

 

미국감염병통제예방센터의 안드레아 맥칼럼 박사는 ‘네이처’에 “원숭이두창 감염자가 날마다 나오는 지역에서도 감염 사례는 상대적으로 드물다”며 “지금까지 본 데이터에 기반해 본다면 백신 접종을 넘어 격리까지 필요하지는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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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 감시' 공익소송 결과 날아든 429만짜리 청구서

다섯 번째 소송비용 독촉장 받은 참여연대... 법 개정 통해 공익소송 패소비용 문제 개선해야

22.05.21 20:41l최종 업데이트 22.05.21 20:41l
인사혁신처에서 보낸 독촉장이 다섯번째 도착했다.
▲ 공익소송 패소비용 납입 독촉장 인사혁신처에서 보낸 독촉장이 다섯번째 도착했다.
ⓒ 참여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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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연대는 지금 독촉장을 받고 있습니다. 지난주에는 5차 독촉장이 왔습니다. 쫄보인 담당자는 '독촉장 재중'이라 적힌 우편물을 받을 때마다 가슴이 콩닥콩닥합니다. 계속 납부를 유예할 경우 지급명령과 강제집행이 이루어져 통장이 압류될 수도 있다고 합니다.

한 달 살기도 빠듯한 월급이라 저축한 것도 없는데 '월급이 나오지 않으면 어떡하지?'란 생각이 절로 듭니다. 자세한 내막을 모르는 사람들이 보기엔 참여연대가 법적 절차를 거부하고 소송비용을 내기 싫어 버티는 걸로 보일 수도 있으니 '내로남불'이란 말이 나올까 조마조마합니다.  

독촉장이 오는 주기가 빨라집니다. 5번째 독촉장은 4번째 독촉장이 온 지 2주 만에 왔습니다. 독촉장을 받을 때마다 논의했습니다. 현실적 불안과 앞으로 벌어질 가장 안 좋은 미래까지 생각해 봅니다. 앞으로 몇 번의 독촉장을 더 받을지, 우리가 내야 할 부담금에 지연이자가 얼마나 붙을지, 우리가 그 비용을 감당할 수 있을지 고민합니다. 여러 차례 논의 끝에 참여연대는 공익소송 패소비용 제도개선이 이루어질 때까지 납부를 유예하기로 했습니다. 우리가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위해 우리의 불안, 금전적 부담을 감내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이제 담당자는 콩닥거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독촉장이 또 오기 전에 이 문제를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립니다. 짧게는 4년, 길게는 20~30년 전부터 시작된 긴 이야기를 들어주세요. 

돈 때문에 공익소송을 못 한다고? 

이 일은 1990년 '민사소송법' 개정부터 시작됩니다. 한국도 처음에는 다수의 국가들처럼 소송비용 각자 부담이 원칙이었으나 1990년 '민사소송법' 개정을 통해 '패소자부담주의'를 도입했습니다. 소송에서 패하면 상대방의 변호사비용을 포함한 소송비용 전부를 패자가 부담하는 형태입니다.  

그러나 의료소송같이 정보 접근부터 평등하지 못한 소송이나, 큰 기업을 상대로 한 집단소송, 국가를 상대로 한 소송, 새로운 법 해석을 요하는 공익소송들은 필연적으로 패소율이 높을 수밖에 없습니다.

패소하면 상대방의 변호사 수임료까지 전부 부담해야 하기에 금전적 여유가 없다면 소송을 주저하게 되는 것이 현실입니다. 특히 공익소송의 경우 승소 시 우리 사회에 미치는 공익성이 크고 소송 남발 우려가 적음에도 패소비용이 부담되어 필요한 소송마저 제기하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합니다. 

다른 많은 나라들에서는 공익소송의 사회적 기여, 의미를 인정하여 비용에 대한 예외를 두고 있습니다. 패소자부담주의를 택하고 있는 영국과 캐나다는 법원이 패소비용 부담을 판단해 공익소송인 경우에는 면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각자부담주의를 택하는 미국이나 일본도 공익소송이나 부당한 소 제기가 인정되는 경우에는 소송비용 부담 주체를 법원에서 결정하는 형태로 금전적 부담에서 공익소송을 보호합니다.

공익소송이 개개인의 이해관계보다 다수 즉 공공의 이익을 위한 소송이기 때문입니다. 2020년 법무·검찰 개혁위원회는 법무부에 공익소송 패소당사자의 소송비용을 필요적으로 감면하는 규정 마련을 권고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아직 아무 변화도 없습니다.

국가는 꼭 패소비용을 받아야 할까?

현행 '민사소송법'은 승소한 상대방이 대한민국 국가이더라도 법원에 소송비용 지급을 요구하는 소송비용확정청구를 하고, 법원은 해당 비용을 기계적으로 적용하여 공익적 목적의 소송에까지 소송비용을 청구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이번에 참여연대에 패소비용을 독촉하고 있는 승소한 상대방은 대한민국 인사혁신처입니다. 

참여연대는 공직자의 이해충돌을 방지하기 위한 퇴직 공직자의 민간기업 등의 취업심사가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2006년부터 매년 이슈리포트를 발간해 왔습니다.

2018년에는 공정거래위원회 출신 퇴직 간부의 불법 취업에 대한 검찰 수사를 계기로 기업 관련 조사권과 고발권을 가진 공공기관 퇴직공직자의 취업심사가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지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국세청, 공정거래위원회,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출신 퇴직자에 대한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의 취업심사 관련 자료를 정보공개청구했습니다. 

하지만 인사혁신처는 심사대상자의 인적사항 등 민감한 개인정보를 포함하고 있어 공개하기 어렵고(정보공개법 제9조 제1항 제6호), 회의록과 결정사유서는 공직자윤리법 시행령에 따라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 회의는 비공개 대상이며(정보공개법 제9조 제1항 제1호, 공직자윤리법 시행령 제19조 제5항), 공개할 경우 외부의 부당한 영향 등으로 공정한 업무수행을 저해할 우려가 있다(정보공개법 제9조 제1항)며 정보를 비공개처분 했습니다. 

참여연대는 개인정보는 비식별화하면 되고 취업경위나 취업승인신청 사유는 민감정보라 볼 수 없으며, 회의 비공개와 회의록 비공개는 다르고, 정보공개를 통한 투명성 강화로 심사위원들의 책임감을 높일 수 있다며 이의를 신청했지만 기각되었습니다. 

이 자료를 꼭 확인해야만 했습니다. 취업제한심사를 받은 퇴직공직자 93%가 취업가능(허용) 결정을 받았고(참여연대 2018년 이슈리포트), 업무관련성이 있어 보이지만 취업가능 결정이 내려진 사례가 다수 확인 되는(참여연대 2017년 이슈리포트) 등 부실심사 의혹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취업심사결과에 대한 공정성 확보와 국민의 신뢰 제고를 위해서라도 시민들이 심사과정을 감시⋅비판하고 개선을 요구할 수 있도록 해당 정보는 공개되어야 하기에 서울행정법원에 정보공개처분 취소 청구 행정소송을 제기했습니다. 1심에서는 대부분의 정보를 비공개하고 딱 두 개의 정보만 공개하라는 일부 승소 판결을 받았고 항소심에서는 기각되었습니다. 

큰 힘을 가졌던 공직자가 퇴직 후 이해관계가 있는 기업에서 일정 기간 일하지 못하도록 제한하는 제도가 제대로 운영되는지 알기 위해 시작한 일이었습니다. 시민단체의 본분인 권력 감시와 국민의 알 권리 실현을 위해 국가를 상대로 한 4년간의 공익소송의 결과로 돌아온 것은 429만 5577원짜리 청구서였습니다. 
 
서울행정법원의 소송비용확정 결정문 중 소송비용계산서
▲ 인사혁신처에 제기한 정보공개 공익소송의 패소비용  서울행정법원의 소송비용확정 결정문 중 소송비용계산서
ⓒ 참여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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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익소송 패소비용, 납부 거부 아닌 유예

공익소송을 통해 우리 사회는 더 나은 사회로 바뀌어 왔습니다. 기존의 주류적 판례에서 인정하고 있지 않은 새로운 법 해석을 이끌어냄으로써 사회 모순, 인권 개선 등을 촉진하는 역할을 하고 이 과정에서 여론을 형성하고 국민 참여를 촉발했습니다.

김포공항 주변 주민들의 국가 상대 소음피해에 대한 집단소송이나 서울광장 차벽 위헌결정, 이동통신사에 대한 통신자료 제공내역 정보공개청구 및 손해배상청구, 청와대 100m 앞까지 행진이 가능하게 된 것들 모두 공익소송을 통해서 이루어졌습니다. 

참여연대가 패소한 정보공개소송 역시 공익소송입니다. 행정의 투명성과 책임성을 묻는 정보공개청구제도의 근거법인 '정보공개법'은 국민의 알권리 보호 차원에서 국민 누구나 정보공개청구를 하고 비공개처분에 대해 행정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일률적으로 과도한 소가를 적용하여 패소 시 소송비용을 부담시켜 국민의 재판청구권을 크게 제약하고, 이를 통한 행정 감시 등 공익소송을 위축시키고 있습니다. 

2021년 2월에 참여연대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공익인권변론센터, 진보네트워크센터, 전국언론노동조합, 천주교인권위원회,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는 이같은 의견을 담아 헌법소원을 제기했지만 각하되었습니다. 법 해석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 헌법재판소의 판단이었습니다.

이제 '민사소송법'이나 '정보공개법' 개정을 통해 공익소송 패소비용문제를 개선해야 합니다. 참여연대는 이 문제를 알리고 법 개정에 힘을 모으기 위해 정보공개청구 공익소송의 패소비용 납부를 법이 개정될 때까지 유예하기로 했습니다. 

현재 참여연대가 소송비용 납부를 유예하고 있는 공익소송은 두 개입니다. 앞서 소개한 2018년 인사혁신처에 한 취업심사 관련 정보공개청구 소송과 2019년 국방부에 한 사드 관련 정보공개소송입니다.

참여연대는 2019년 10월, 국방부의 패소비용 680여만 원 납부 통지에 대해 공익소송비용 관련 제도개선이 이루어질 때까지 소송비용 납부를 유예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법무부에 제도개선 의견서를 제출했습니다. 이후 21대 국회의원들과 수 차례 토론회를 진행하며 방법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대한변호사협회에서도 적극적으로 이 문제의 개선 방안을 찾고 있습니다. 

지난 1월에는 인사혁신처에도 공익소송비용 관련 제도 개선이 이루어질 때까지 소송비용 납부를 유예하겠다는 입장을 전달하고 법무부에 제도개선 의견서를 제출했습니다. 하지만 인사혁신처는 납부 유예는 법무부 소관이라며 벌써 5번째 독촉장을 보내왔습니다. 

국방부는 독촉하지 않는데 인사혁신처만 독촉장을 계속 보내는 것을 문제삼는 건 아닙니다. 모두 자신의 역할에 충실한 일들을 하고 있습니다. 참여연대도 시민단체 본분에 충실하게 공익소송 패소비용 문제를 세상에 알리고 해법을 찾아가겠습니다. 이 문제를 함께 고민해주세요.

덧붙이는 글 | 해당 내용은 참여연대 홈페이지(www.peoplepower21.org)에서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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