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재일 한통련 등, 주일 미국대사관 기습시위

"바이든 대통령의 방한‧방일을 단호히 반대한다"

  • 기자명 도쿄-박명철 통신원 
  •  
  •  입력 2022.05.15 22:19
  •  
  •  댓글 0
 
바이든 대통령 방한 방일 반대 현수막과 한미일 군사동맹화 반대 플래카드를 든 시위 참가자들. [사진-통일뉴스 박명철 통신원]
바이든 대통령 방한 방일 반대 현수막과 한미일 군사동맹화 반대 플래카드를 든 시위 참가자들. [사진-통일뉴스 박명철 통신원]

광주항쟁 42주년을 앞두고 재일한국민주통일연합(재일 한통련, 의장 손형근)은 일본인 연대단체 인사들과 함께 5.18광주 학살을 용인한 미국에 대한 분노를 안고 15일 오전 도쿄 미나토구 주일미국대사관 앞에서 바이든 대통령 방한 방일 반대 요청 기습시위를 벌였다. 

일본경찰의 감시를 피해 삼삼오오 떼를 지어 미국대사관 앞에 모인 20여명의 참가자들은 현수막과 플래카드를 펼쳐 들고 “바이든 방한‧방일 반대” 목소리를 높였다. 

미국대사관 앞에서 현수막을 펼치자 일본경찰들이 급히 달려왔다. [사진-통일뉴스 박명철 통신원]
미국대사관 앞에서 현수막을 펼치자 일본경찰들이 급히 달려왔다. [사진-통일뉴스 박명철 통신원]
경찰이 시위행동을 못하도록 가로막아 서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박명철 통신원]
경찰이 시위행동을 못하도록 가로막아 서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박명철 통신원]

그러자 순식간에 경찰 100여명이 몰려들어 시위대를 해산시키려 밀고 당기며 실랑이를 벌이는 가운데 한통련 곽수호 고문이 ‘조 바이든 대통령 앞 요청문’을 낭독했다. 

그 후 참가자들은 “바이든 대통령은 방한 방일을 중단하라” “미국은 대북적대정책을 포기하라” “한미군사협력, 한미일군사동맹화 책동을 중단하라”는 구호를 목청껏 외쳤다.

경찰의 방해 구역을 벗어나 현수막을 펼친 시위대. [사진-통일뉴스 박명철 통신원]
경찰의 방해 구역을 벗어나 현수막을 펼친 시위대. [사진-통일뉴스 박명철 통신원]

시위를 막으려는 경찰과 실랑이를 벌이다가 경찰의 간섭을 받지 않는 곳으로 자리를 옮겨 1시간 반에 걸쳐 마무리 집회를 열었다. 

먼저 한통련 손형근 의장이 인사를 통해 “한국의 보수정권 등장에 이어 바이든 대통령의 방한‧방일로 대북 대중국 적대정책이 강화될 것이다. 한일 민중은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군사긴장을 격화시키는 한미일 군사동맹화 반대투쟁을 강화해야 한다”며 미국대사관에 대한 행동의 의미를 설명했다.  

잇달아 일본인 활동가들이 향후 투쟁결의를 다짐했다. 이날 참가한 연대단체 인사는 전수도노동조합 도쿄 데라시마 유타카 부위원장, 부락해방동맹도쿄 호리 쥰 공투부장, 평화헌법을 지키는 아라카와모임 모리모토 다카코 대표, 일한민중연대 전국네트워크 오하타 류지 씨, 사상운동 도마츠 카츠노리 씨, 한국산연노조지원모임 오자와 다카시 사무국차장 등이다. 

이들은 각기 발언을 통해 “일한민중 연대로 한미일군사동맹화를 저지해야 한다”, “한일양국을 방문한 바이든 대통령이 강제징용공 문제 등에 대해 압력을 가할 것”, “오늘은 한통련의 귀중한 호소에 응해 참가했지만 이 과제에 대해 일본인의 주체적인 투쟁으로 생각해 봐야겠다”, “우크라이나도 아시아도 전쟁이나 군사긴장 배경에는 미국 군수산업의 이윤추구가 있다는 점을 보면서 투쟁 강화를 다짐한다”,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계속 무기를 제공해 시민들만 막대한 피해를 입고 있다. 똑같은 상황이 한반도에서 펼쳐질 수도 있다”. “정당한 요청행동을 일본경찰이 방해하는 것은 위법이다”고 말했다. 

시위단을 강제로 배제하려는 일본경찰들. [사진-통일뉴스 박명철 통신원]
시위단을 강제로 배제하려는 일본경찰들. [사진-통일뉴스 박명철 통신원]

이날 집회에서는 한통련 도쿄본부 양병룡 대표가 바이든 대통령 앞 요청문을 재차 낭독했다.

요청문에서는 바이든 대통령에 대해 ‘방한 방일 중단, 대북적대정책 포기, 한미군사협력과 한미일군사동맹화 책동 중단 등 3개항을 요구했다. 

요청문은 “바이든 대통령이 방한 방일을 통해 북한과 중국에 대한 적대시정책을 강화하려 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한일군사협력, 한미일 군사동맹화 추진, 쿼드에 한국을 참여시켜 아시아판 나토, 집단안보체제 구축을 노리고 있다”고 강조하고 미국의 이러한 위험한 움직임은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군사긴장을 극도로 높이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요청문에서는 “바이든 대통령의 방한과 한미동맹 강화는 뼛속까지 사대주의에 물든 윤석열 정권을 미국의 패권 유지를 위해 철저하게 이용”하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한반도의 자주 평화 통일 실현의 최대의 장애물인 한미동맹은 강화가 아니라 해소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대사관 앞을 떠나는 시위대 뒤편에는 100여명의 경찰이 늘어섰다. [사진-통일뉴스 박명철 통신원]
미국대사관 앞을 떠나는 시위대 뒤편에는 100여명의 경찰이 늘어섰다. [사진-통일뉴스 박명철 통신원]
미국대사관 경비를 위해 줄지어 대기한 경찰버스. [사진-통일뉴스 박명철 통신원]
미국대사관 경비를 위해 줄지어 대기한 경찰버스. [사진-통일뉴스 박명철 통신원]

요청문은 이어서 “평화헌법 부정, ‘적기지 공격 능력 보유’ 등 군사대국화와 아시아 재침략의 길로 돌진”하고 있는 일본과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기간 중 유사시 자위대 상륙을 용인한 발언”등에 대해 한일양국 민중은 분노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잇달아 “바이든 대통령이 북미대화를 진정으로 바라고 있다면 북을 적대시하는 제재나 한미연합군사연습을 선행하여 중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재일 한통련은 요청문을 통해 미국이 패권을 포기하고 공존공영의 길로 나가는 것이야말로 미국의 쇠퇴를 막는 최상의 길이라고 조언했다.  

재일 한통련은  요청활동을 마친 후 요청문을 미국대사관에 우편으로 보냈다.  

 

요청문(전문)

조 바이든 대통령 귀하

  우리는 바이든 대통령이 5월 20일부터 24일까지 예정된 한국과 일본 방문을 단호히 반대한다. 
  패권을 고집하는 바이든 대통령은 이번 방한‧방일을 통해 북한과 중국에 대한 적대시정책을 더욱 강화하려 하고 있다. 미국은 신냉전 아래 한미동맹 강화와 한일군사협력, 한미일 군사동맹화를 추진하는 동시에 쿼드(미. 일. 인. 호 4개국 안보협력체)에 한국을 참여시켜 미국주도의 아시아판 나토(NATO) 집단안보체제를 구축하려 하고 있다. 미국의 이러한 위험한 움직임은 북한과 중국의 거센 반발을 불러일으켜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군사긴장을 극도로 높이게 될 것이다. 
  이번 바이든 대통령 방한과 한미동맹 강화의 의미는 뼛속까지 사대주의에 물든 윤석열 정권을 미국의 패권유지를 위해 철저하게 이용하려는 것이다. 
  한반도의 자주‧평화‧통일을 실현하는데서 최대의 장애물인 한미동맹은 강화할 것이 아니라 해소해야 한다. 또한 미국이 구축하려는 집단안보체제는 아시아 여러나라의 안전보장과 자주성을 위협하는 무용지물이다.
  일본은 평화헌법 부정, ‘적기지 공격 능력’ 보유, 군사비 대폭 확대 등 군사대국화와 아시아 재침략의 길로 돌진하고 있다. 그런데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 기간 중 유사시 자위대 한반도 상륙을 허용하는 발언을 했다. 이와 같은 한일 양국 정부의 언동에 대해 한일민중은 분노하고 있다. 우리는 일본의 아시아 재침략으로 이어지는 한일군사협력과 한미일군사동맹화를 단호히 거부한다. 
  바이든 대통령이 북미대화를 진정으로 바라고 있다면 북한을 적대시하는 제재나 한미연합군사연습을 선행하여 중단해야 한다. 
  미국은 패권을 포기하고 다른 나라들과 상호 공존 공영하는 길로 나가야 한다. 이 길은 미국의 급속한 쇠퇴를 막는 최상의 길이기도 할 것이다. 미국은 한반도에 대한 지배와 내정간섭을 즉각 중단하기를 강력히 요구한다. 미국이 어디까지나 패권에 고집한다면 반미투쟁은 한국에서, 세계에서 더욱 거세게 타오를 것이다. 
  
요청사항
1, 바이든 대통령은 방한‧방일을 중단하라!
1, 미국은 대북적대정책을 포기하라!
1, 한미군사협력‧한미일군사동맹화 책동을 중단하라!

2022년 5월 15일
재일한국민주통일연합(한통련) 및 일본인 연대 유지  

 저작권자 © 통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아들만 석방된다면... 아버지는 어디서든 무릎을 꿇었다

국가보안법으로 구속된 대북경협사업가 김호의 아버지 김권옥

 
 
22.05.14 19:38최종 업데이트 22.05.14 19:38
김권옥이 보안검색대를 통과하는데 경광등의 벌건 빛이 갑자기 빙빙 돌았다. 2022년 4월 28일 아들의 항소심 첫 번째 공판 날, 법원 현관을 들어서자 가슴이 콩콩대는데 검색대까지 요란을 떠니 그의 마음은 더 심란했다.

[관련기사]
"구시대적 국가보안법 폐지, 남북협력 사업가 김호 석방해야" http://omn.kr/1ylsg
[김호 인터뷰] 문재인정부 1호 '간첩' 사건... "이런 식이면 정상회담 왜 하나?" http://omn.kr/1jn4v
"또다른 유우성 사건, 촛불정부에서 국가보안법 탄압 웬 말" http://omn.kr/zeo0

남북경협사업 하던 아들이 국가보안법 위반
 

▲ 김호의 아버지, 김권옥님 모습 그의 관심은 오로지 국가보안법 피해자인 아들의 석방이다. ⓒ 민병래

 
지난 1월 25일은 몸서리 쳐지는 날이었다. 1심의 판사는 1시간 20분이나 판결문을 읽더니 "징역 4년에 자격정지 4년, 김호를 법정 구속한다"는 말을 남기고 사라져버렸다. 구속되었다가 보석으로 풀려나와 재판을 받던 아들은 넋을 잃었다. 담당 변호인 장경욱도 당황해 어쩔 줄 몰랐다. 교도관이 아들을 끌고 갈 때 김권옥의 눈에는 불꽃이 튀었다.

"이런 법이 어딨어. 우리 아들이 뭘 잘못했다고 무슨 해를 끼쳤다고..." 하며 아들의 옷깃을 잡았다. 법정 직원들이 "할아버지 이러시면 안 돼요. 잡혀가요" 하며 막았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래, 나도 집어 처넣어, 나도 넣으라고!"

 아들 김호는 2007년부터 남북경협으로 안면인식프로그램을 개발했다.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이 정상회담을 가진 후 개성공단을 비롯한 여러 경제협력이 진행되자 아들도 남쪽의 자본과 북의 IT 능력을 결합하는 사업기회를 모색했다.

아들이 택한 '안면인식' 분야는 보안은 물론 결제시스템 등에도 두루 활용할 수 있기에 전망이 밝았다. 아들은 그 일을 10년 이상 매진했다. 그런데 그 결과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4년이라니...

오후 2시 30분에 맞춰 302호 법정에 들어서니 가슴이 더 벌렁거렸다. 정면에는 판사 세 명이 재판기록을 넘겨보고 있었고 왼쪽에 자리한 검사 세 명도 서류에 머리를 박고 있었다.
 

▲ 2018년 12월 1일 영등포구 국회앞에서 아들의 구명을 호소하는 김권옥 그는 아들의 석방을 위해서 어디서건 무릎을 꿇었다. ⓒ 연합뉴스

 
김권옥의 악몽이 시작된 건 2018년 8월 9일! 여느 날처럼 김권옥이 철원의 단골거래처에서 대파를 실어 운송하던 중이었다.

"아버지, 큰일 났어요, 지금 어디 계세요?"

숨넘어가는 며느리의 목소리였다. 그게 무슨 소리냐고 묻는데 며느리는 다시 걸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김권옥이 어수선한 마음으로 가락동시장에 도착해 물건을 내릴 때 "아버님, 김호 대표가 경찰청 보안수사대로 끌려갔어요" 하며 양심수 후원회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칠십 대의 나이라 몸놀림이 헛헛한데 아들의 연행 소식에 그는 주저앉고 말았다.

다음 날 김권옥은 며느리와 함께 신정동의 보안수사대 앞에서 아들을 내놓으라고 외쳤다.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어머니들, 양심수후원회 회원들과 함께 기자회견을 열고 면회를 요구했다.

"문재인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4월 27일 판문점에서 회담했잖아?"
"남북이 함께 잘 살자는 마당에 이게 무슨 짓이야?"


왁자지껄한 항의가 정문 앞에 가득했다. 굳게 닫힌 철문은 요지부동이고 근처 김포공항을 오가는 비행기의 굉음은 가족들의 외침을 무질러버렸다. 그날부터 김권옥은 경찰서와 법원을 3년 넘게 쫓아다녔다. 덕분에 그는 아들의 사업 내용을 소상히 알게 되었고 검찰의 주장을 못이 박히게 들어 국가보안법 박사가 되었다.

검사의 항소 "4년 형량은 지나치게 낮습니다"

아들이 교도관에게 이끌려 들어와 피고인석에 앉을 때 김권옥의 마음은 철렁거렸다. 코로나에 걸려 격리까지 되었던 아들, 얼마 전 면회 때보다 수척한 모습이다.

뒤돌아보니 방청석에는 양심수후원회와 '국가보안법폐지 국민행동'의 회원 그리고 아들의 명지대 선후배들이 자리를 채웠고 '아버님 힘내세요'라는 속삭임을 보내줬다. 늦을 리 없는데 며느리가 눈에 띄지 않으니 마음이 영 허전했다.

"1심 판결은 형량이 지나치게 낮습니다."

검사가 항소 이유를 말할 때, 김권옥은 주먹을 꽉 쥐었다. '징역 4년이 가볍다고? 애들에게서 아빠를 빼앗아갔는데? 집안이 거덜났는데?' 그는 일어나서 외치려다 간신히 참고 어금니를 다물었다.

"피고인이 만든 안면인식프로그램으로 해킹 피해를 입은 사례가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피고인 김호는 사업과정에서 알게 된 북의 정보를 국정원에게 알려주며 조력자 역할을 했습니다."

장경욱 변호사는 검사에 맞서 항소이유를 설명하고 무죄를 주장했다. 아들 김호는 중국동포를 통해 북측의 IT 기술자에게 '안면인식프로그램' 개발을 의뢰했다. 그는 김일성대의 교수로 정보기술연구소소장을 맡고 있었다.

그런데 경찰과 검찰은 "북의 사업파트너가 노동당당원이고 통일전선부의 관리 아래 있으니 필경 프로그램에 악성코드를 심어 해킹을 시도했고 김호는 대한민국을 위험에 빠뜨리려 했다"고 주장했다.

아들 김호가 개발비용을 송금한 것은 국가보안법상 편의제공이며 프로그램을 납품받은 것은 금품수수이고 프로그램 개발을 위해 방위사업청의 '제안요청서' 중 기술 관련 항목을 발췌해 보낸 것은 군사기밀 제공이라고 기소했다.

하지만 1심 재판 과정에서, 납품받은 273개 파일 중 단 3개에서만 초보적 수준의 악성코드가 발견되었고 이 또한 파일을 주고받거나 압축하는 과정에서 오염되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확인되었다. 2018년 11월 3차 공판에서는 안면인식프로그램을 납품받은 업체들의 보안담당자가 나와 프로그램 운영 이후 어떠한 피해도 발생하지 않았다고 한결같이 증언했다.

하지만 1심 재판부는 "향후라도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는 검찰의 주장, "북한은 반국가단체이고 대남사업은 통일전선부와 정찰총국의 관리하에 있으며 김호는 북측 파트너에게 개발하청을 준 게 아니라 지령을 받은 것"이라는 검찰의 주장을 받아들여 징역 4년을 선고하고 말았다.

변호인의 항소이유 설명이 끝난 후 아들 김호가 발언 기회를 얻어 일어났다. 검사의 항소를 들을 때 겨우 진정시킨 김권옥의 마음이 다시 콩닥거렸다.

아들이 남북경협사업을 시작할 때 뜬구름을 잡는 것 같아 김권옥은 "아서라" 하며 말렸다. 하지만 아들은 남북경협으로 성공하겠다는 의지가 확고했다. 다행히 아들의 사업은 조금씩 궤도에 올랐다. 시제품도 괜찮아 2013년에는 한국 인터넷 진흥원에서 인증을 받았다.

2014년과 2017년에는 미국기술표준원 주최로 열린 세계 경진대회에서 각각 2위와 6위를 기록했다. 덕분에 KBS와 SBS의 방송망을 탔고 국내외에 조금씩 판매가 이루어졌다. 이런 성과에 대해 나라에서 상을 주지는 못할망정 구속을 시키다니 그것도 문재인 대통령 시절에... 김권옥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50년간 화물운송해 자식들 뒷바라지
 

▲ 팔순을 바라보는 김권옥, 그는 잠시도 일을 쉬지 않았다 아들이 구속된 후 그는 석방투쟁에 나섰다. ⓒ 민병래

 
모두 진술을 위해 일어선 아들은 말문을 열지 못했다. 재판정엔 정적이 감돌았다. 김호는 아들 얼굴을 보지 못하고 무릎에 얼굴을 파묻었다. 아들의 처지가 몰이꾼에게 쫒기는 한 마리 짐승 같았다. 아들은 첫 마디를 꺼냈다가 급기야 눈물을 쏟았다. 뒤에서도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며느리가 뒤늦게 왔나 보다.

김권옥은 제대하고 스물다섯 되는 해 전남 해남에서 서울로 올라왔다. 처음 시작한 일이 화물운송, 50년 가까은 세월을 바쳤다. 팔순을 바라보지만 새벽 네다섯 시면 45만km를 뛴 타이탄을 가지고 대파가 있는 산지로 달려간다.

한 단에 천 원하는 대파를 가득 실어 가락시장으로 배송한다. 싣고 내리는 일만이 전부가 아니다. 거래처를 많이 확보하려면 물불 안 가리고 도와야 한다. 같이 쪼그리고 앉아 파를 뽑고 상한 놈은 쳐내 가지런히 묶어 지게차에 실으면서 고양, 철원 등 여러 곳에 단골을 만들었다. 애들 셋, 남부럽지 않게 키우려 몸을 부수며 일했고 모두 대학 공부를 시켰다. 큰아들의 성공을 무엇보다 간절히 빌었건만 옥바라지를 하게 될 줄이야...

아들 김호는 2007년 프로그램 개발사업을 시작할 때 '남북교류협력법'에 따라 통일부에 사업신고를 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2010년 5.24조치를 시행해 남북 간에 모든 교류가 막히자 아들은 난감해 했다. 그런데 2011년 말 국정원 대북정보팀의 요원이 김호에게 접근해왔다. 그는 북측의 IT 관련 정보를 제공해달라고 요구했다.

김호는 사업을 계속하기 위해 출구가 필요했던 참에 아름아름 협력했다. 개발 중인 안면인식프로그램을 통째로 국정원에 제출하고 보안검사까지 의뢰했다. 쌀값 같은 소소한 정보도 제공했다. 아들 김호는 5.24 조치 이후 통일부에서 승인을 받지 못했지만 국정원 요원들에게 3년 동안 사업 과정에 대해 보고했으니 남북교류협력법이나 국가보안법상 하자가 없을 것으로 판단하고 사업에 매진했다.

그런데 경찰청 보안수사대는 4.27 판문점 정상회담으로 남북 간의 평화와 번영의 분위기가 고조되는 때인 2018년 8월에 아들을 연행했다. 아들은 국정원에 보고하고 협력했다며 항변했다.

국정원 담당자들은 1심 재판에서 "경찰에서 김호를 내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2014년 김호와 접촉을 끊었고 김호의 대북사업을 인지했지만 허용하지는 않았다"고 당시의 행위를 설명했다. 대공수사권을 가진 국정원의 황당한 해명이었다. 결국 아들의 남북경협사업은 송두리째 무너져버렸다.

"아버지, 죄송해요" 눈 앞에서 끌려간 아들
 

▲ 김호의 아버지, 김권옥 그의 관심은 오로지 국가보안법 피해자인 아들의 석방이다. ⓒ 민병래

 
판사는 검사와 변호인이 주장한 항소 쟁점을 확인한 후 다음 기일을 5월 26일로 잡았다. 증거채택과 증인 선정 여부를 다루다 보면 그날 결심이 될 리 만무하다. 얼마나 기다려야 아들은 감옥에서 나온단 말인가?

아들이 구속된 1월 이후 김권옥은 트럭 일을 중단했다. 자식들이 한사코 쉬라고 성화였지만 한 귀로 들었는데... 그는 핸들 대신 마이크를 잡고 아들의 석방투쟁에 나섰다. 어디든 달려가 "국가보안법 철폐"와 "김호 석방"을 외쳤다. 청와대 앞에선 문재인 대통령이 들으라고 더 크게 외치고 무릎마저 꿇었다. 오늘 재판 전에도 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며 '아들의 석방'을 외쳤다.

오후 4시쯤 재판이 끝나자 김권옥은 함께 해준 이들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 교대역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봄이 한창이건만 스산하다. 살품으로 들어오는 바람은 톱니바퀴를 지닌 듯 아프고 따갑다.

부러 활갯짓을 해보고 마음을 다잡건만 발걸음은 터벅터벅이다. 눈물짓는 며느리를 먼저 집으로 들여보냈다. 학교에서 돌아올 아이들 어서 가 밥 챙겨주라고. 요즘 가락동 시장을 안 가니 손주 녀석들 과일도 못 사다 주었는데... 눈앞에 안개가 낀 듯 교대 앞 사거리가 뿌옇다.

"저녁에 밥때 맞춰서 들어와요?" 아내의 전화다. 아내는 요즘 정신이 가뭇가뭇하다. 몹쓸 치매가 와서 아들의 상황을 모른다. 지금 가는 길이라고 말하고 김권옥은 난간을 짚으며 지하철 계단을 내려갔다. 삭신이 쑤신다.

재판이 끝나고 아들은 "아버지, 죄송해요"라며 눈물을 훔쳤다. 김권옥은 "이놈아 죄송하긴, 네가 잘못한 게 뭐 있냐? 마음 단단히 먹어라. 애들은 걱정하지 말고" 말을 하려는데 교도관은 아들을 잡아채 끌고 가버렸다.

<못다한 이야기>

① 대북경협사업가 김호의 사건은 두 가지가 큰 쟁점이다. 하나는 이 사건에 대해 남북교류협력법을 적용하지 않고 국가보안법을 적용한 문제다. 두 번째는 '국가보안법상의 자진지원과 군사기밀의 제공'에 대한 판단문제다. 이 조문이 적용돼 유죄가 되면 7년 이하의 징역형에 미수여도 처벌되고 집행유예 자체가 불가능하다. 김호에게 4년이라는 중형이 선고된 것은 편의제공, 회합통신, 금품수수 조문보다 자진지원 목적으로 군사기밀을 제공했다는 것이 유죄로 인정되었기 때문이다.

남북교류협력법은 1990년 7월 14일 제정되어 그해 8월 1일부터 시행되었고 16차례 개정되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2005년 5월 31일에는 금강산관광과 개성공단 사업이 추진되고 남북교역이 증대한 상황을 반영 "남북간의 거래를 민족 내부 거래로 본다"는 조문까지 추가되었다.

남북교류협력법은 북한을 '국가보안법'이 규정하는 반국가단체가 아니라 교류와 협력, 평화와 번영의 당사자로 보는, 중대한 의의가 있는 법이다. 교류협력법은 국가보안법과 부딪히기에 한 사안이 두가지 법령에 모두 저촉되면 교류협력법을 우선 적용하기로 되었다.

이 법에 따르면 남북간의 교류, 경제협력 모든 사항은 통일부에 신고하고 사업승인을 받아야 한다. 만일 신고를 하지 않고 승인을 받지 않은 채로 진행을 하면 과태료를 받게 되어 있다. 김호는 안면인식프로그램 개발사업을 위해 통일부에 신고를 했으나 5.24조치 이후에는 승인을 받지 못했다.

1심 재판부가 여러 차례 인사이동으로 바뀌었는데 헌법재판소로 옮겨간 재판관 한 명은 검찰에게 "왜 남북교류협력법을 적용하지 않고 국가보안법을 적용했냐?"고 물었다. 검찰은 "IT사업의 특수성, 즉 사이버테러의 위험성을 고려하여 국가보안법을 적용했다"고 답변했다. 남북교류협력법에서 적용 우선 조항이 있는 것은 국가보안법의 남용이나 선의의 피해자를 막기 위해서였는데 김호 사건에서 보듯 이를 결정하는 것이 공안기관이기에 입맛대로 적용할 위험성이 큰 것이다.

김호가 국가보안법으로 유죄 확정이 되면 남북교류협력 관계자들은 언제든 국가보안법으로 기소될 선례가 남기에 이 재판은 중요하다. 그래서 변호인들은 김호 사건을 국가보안법이 아니라 남북교류협력법의 미승인사업으로 다룰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② 이 글에서 김호가 개발한 안면인식프로그램의 기술수준에 관한 설명은 2018년 12월 3일 방영된 MBC스트레이트를 참조했습니다.

③ 오랜 세월 공을 들인 것에 비해 김호의 사업은 그닥 뻗어나간 것은 아니다. 여기저기 납품했다고 하나 개발비를 대고 영업비와 운영비를 만드느라 늘 쪼들렸다. 중국 측 동포는 "돈을 넉넉히 보내주면 북측 개발팀을 아예 중국으로 나오게 해서 작업할 수 있다. 이메일로만 의견을 주고받으니 사업이 제대로 안 된다"며 볼멘소리를 했다.

하지만 김호는 이 요구를 들어줄 수 없었다. 남북경협의 선구자이고 벤처사업가였지만 언제나 자금 압박을 받는 처지였다. 2018년 판문점회담 이후 김호는 투자를 받아 사업을 한 단계 끌어올리려 했다. 투자회사와 벤처캐피탈에게 제안할 문서를 만들며 밤을 새웠다. 바로 그렇게 꿈에 부풀었던 때 경찰청 보안수사대에 연행된 것이다.

④ 이 글의 본문 (못 다한 이야기 제외)은 A4, 5.5매에 해당하는 분량이지만 지면관계 상 4매로 줄여 게재했습니다. 전문은 본 기자의 블로그 (https://blog.naver.com/pmsigni)에서 볼 수 있습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무력화되는 대북제재, 한계에 이른 적대정책

  • 기자명 현광 코리아뉴스 편집장
  •  
  •  승인 2022.05.14 15:50
  •  
  •  댓글 0
 
 
 
동북아 정세와 관련한 현광 코리아뉴스 편집장의 칼럼을 한글 맞춤법으로 고쳐 싣는다. [편집자]

악몽

조선의 핵전쟁 억지력을 현대화, 고도화하기 위한 미사일 개발이 놀라운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지난 1월에 시험 발사된 극초음속미사일의 개발 성공, 3월 24일에 단행된 1만5천Km 사정거리의 ‘화성포-17’의 시험발사성공 등은 조선의 미사일 개발의 속도와 수준을 잘 보여주고 있다.

미 국방성 합동참모본부 부의장을 지낸 존 하이텐(John Hyten)은 현직에 있을 때 북의 미사일 개발과 관련하여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고 경계심을 표시한 바 있다.(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에서 한 연설 2020.1.17)

존 하이텐이 표시한 우려는 우려로 끝나지 않고 현실이 되어 미국과 그 추종자들에게 큰 충격을 주고있다.

미국이 아직도 개발하지 못하고 있는 극초음속미사일과 미국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사정거리의 ‘‘화성포-17’의 개발은 미국에게 있어서 악몽이었을 것이다. 남측 군부가 똑똑한 근거도 없이 ‘화성포-17’ 발사는 실패했으며 쏘아 올린 것은 ‘화성-15’라고 공식 발표하고 있는데 미 군부는 ‘화성포-17’을 인정하기는 불편하고 그렇다고 남측처럼 거짓 발표하기는 체면상 껄끄러운지라 ‘분석중’라고 얼버무렸다. 그들이 받은 충격의 크기를 잘 보여주는 치졸한 기만극이다.

김정은 총비서는 조선인민혁명군 창건 90돐 경축 열병식에서 “우리 국가가 보유한 핵무력을 최대의 급속한 속도로 더욱 강화발전시키기 위한 조치들을 계속 취해나갈 것”이라고 언명하였다.

‘세계 최고속(最高速)’으로 이루어져 온 북의 핵무력건설에 더욱 박차가 가해지리라는 것은 명백하다.

그러나 미국은 조선의 핵무력 고도화를 멈춰 세울 아무런 방도도 못 가지고 있다. 미국이 가지고 있는 압력수단들은 모두 무용지물이 된 지 오래다. 속수무책으로 전전긍긍하며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것이 오늘의 미국의 모습이다.

무력화

조선에 대한 미국의 제재봉쇄 소동이 무력화되고 파탄에 직면하고 있다. 제재봉쇄의 목적은 조선의 목을 조이고 비핵화를 강요하는 데 있다. 그러나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진행되는 핵무력건설을 저지하지 못하고 비핵화를 강요하기는 커녕 팔짱을 끼고 수수방관하지 않을 수 없는 처지에 빠지고 있다.

지난 2017년 11월 조선이 워싱톤을 타격할 수 있는 ICBM‘화성포-15’를 시험 발사하여 성공시키자 미국이 유엔안보리에서 석유제품의 수출을 년간 50만 배럴로 제한하는 등의 혹독한 제재를 가해나선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중국과 러시아를 참여시켜 석유 수입을 제한한 것등을 가지고 ‘사상 최대의 압박’이라고 호언장담하였으며 조선이 양손을 드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떠들었다.

그때로부터 4년 5개월, 북이 견디지 못할 것이라는 예측은 완전히 빛나가고 북의 핵고도화에 속수무책으로 주저앉은 것은 미국이다.

자력갱생과 재제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이 결렬된 2019년, 연말에 열린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5차전원회에서 김정은 총비서는 ‘세기를 이어온 조미대결은 오늘에 와서 자력갱생과 제재와의 대결로 압축되어 명백한 대결 그림을 그리고 있다’고 하면서 ‘자력갱생의 위력으로 적들의 제재봉쇄 책동을 총파탄시키기 위한 정면돌파전’ 전략을 내놓았다.

자력갱생과 제재와의 싸움은 자력갱생의 승리로 가고 있다.

요새 미국의 입에서 석유제품의 ‘불법환적’ 소리가 사라졌다.

2년 전의 2020년에 조선이 중국과 러시아에서 수입한 석유제품의 양을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유엔조선제재위원회’에 보고된 데 의하면 중국이 4만2천 배럴, 러시아가 10만7천 배럴. ‘사상 최대의 압박’이라던 재제가 정한 상한선은 50만 배럴. 두 나라 합쳐도 상한선의 30%에 못 미친다.

그럼에도 조선이 석유제품이 없어 곤난을 겪는 기색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연료 수요만 해도 100만 군대를 움직이고 수송과 건설에 내달리는 륜전기재, 농번기에는 필수적인 트랙터와 농기계의 가동 등등 그 양만 보아도 막대한데 말이다.

석유자원이 없는 조선에서는 석유화학이 아니라 풍부한 석탄을 원료로 하는 일산화탄소화학공업을 자격갱생의 힘으로 개척하여왔다. 일산화탄소화학공업에서 석유도 나오고 비료도 나오고 석유화학제품을 뭐든 만들 수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니 석유제품수입을 제한한 ‘사상 최대의 압박’은 웃음거리로 될 수밖에 없다. 미국은 조선이 상한선의 30% 이하의 양밖에 수입 안하고 있는데도 ‘불법환적’을 운운하여 왔으니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다. 상한선에 이르기까지 수입한 양의 2배를 더 사올 수 있는데 조선이 무엇 때문에 경비도 시간도 더 드는 ‘불법 환적’을 하겠는가.

 

더 놀라운 것은 ‘불번환적’을 구실로 추가 제재를 하려다가 중국과 러시아가 증거를 가져오라며 반대하자, 트럼프 정권 말기에 국무장관 폼페오는 ‘불법환적’의 증거를 통보한 나라나 사람에게 500만 달러를 주겠다며 현상금을 거는 놀음까지 벌려 놓았으니 그 어리석음에 어안이 벙벙해질 수밖에 없다.

자력갱생의 승리를 보여주는 한 가지 실례이다.

두마리의 토끼

자력갱생으로 제재를 돌파하는 조선의 전략은 미국의 봉쇄정책을 파탄에로 내몰고 있다.

존 루드 미 국방부 정책담당 차관은 하원 군사위원회 정책청문회(2020년1월28일)에서 제재가 조선으로 하여금 ‘무기개발과 경제성장이라는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실현할 수 없음을 인식하도록 하는 데 결정적’이라고 말한 바있다. 제재봉쇄로 두마리 토끼를 쫓을 수 없게 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대항하여 조선은 자력갱생으로 제재를 정면돌파하여 두마리 토끼를 다 얻겠다는 것이다.

자력갱생의 ‘자’자도 모르고 알려고도 하지 않은 사람들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구태여 알 필요도 없다고 하는 사람들도 북이 자력갱생으로 개척한 일산화탄소화학공업의 힘으로 ‘사상 최대의 압박’이 무력화되고 있는 사실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실례를 말하라면 끝이 없는데 또 한 가지만 들어보자.

석탄에서 비료가 나온다. 조선에서는 석탄가스화에 의한 비료생산이 해마다 늘어 거의 자급수준에 이르고 있다. 예컨데 2019년(상반기) 중국에서 수입한 비료가 90,198톤인데 비해 다음해(상반기)에는 11,400톤으로 격감하였다.

미국과 남측 정보기관은 이와 같은 사실을 무시하고 비료 부족을 운운하며 기후조건 등이 겹쳐 이 몇해 사이 조선이 100만톤의 곡물 부족으로 식량난을 겪고 있다는 흑색 전전을 벌려왔다.

자연기후조건에 따른 곡물 생산은 증감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비료를 비롯한 영농자재의 자립화와 농촌 인프라이다. 조선에서는 영농자재를 자급하고 농촌 인프라 정비에 큰 힘이 돌려 농업생산을 담보하고 이제는 양뿐 아니라 식생활의 질 제고에 초점이 맞추어지고 있다.

미국의 가혹한 제재하에서도 자력갱생의 힘으로 뚫고 에너지, 식량문제를 해결하며 전반 경제건설을 활력 있게 전개하고 성장시키고 있다.

두 마리 토끼를 쫓을 수 없게 하겠다던 미국을 신처럼 믿고 조선에 대하려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일임을 깨달아야 한다. ‘보건협력’이요 ‘인도지원’이요 하면서 핵개발도상이 아니라 핵보유국으로 부상한 조선에 비핵화를 강요하는 것이 가능하기라도 하는가.

제재봉쇄가 무력화되고 핵무력 고도화가 급속히 추진되자 초조해진 미국은 안보리에서 추가 제재를 이루어보려고 중국과 러시아를 끌어들이는 데 혈안이 되고 있다.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진다고 하는데 대국에 좌지우지 당해 거래의 미끼, 희생양으로 피해보는 것은 힘없는 약소국의 경우다.

조선은 이미 핵보유국이고 미국을 불바다로 만들 수 있는 ICBM도 보유한 핵강국이다.

동북아시아 정세를 관리하고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전략 국가로 발돋움한 조선은 거래의 대상으로 될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을 두고 집요하게 중국에 거래를 시도하고 있으니 어리석기 짝이 없다.

올해 들어 5월까지 미국의 요청으로 7번에 걸쳐 안보리회의가 소집되었지만, 중국과 러시아의 반대로 조선에 대한 추가 제재도 비난 성명 한 건도 채택하지 못한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다.

제재봉쇄로 북의 목을 조이려는 미국의 적대 정책은 한계에 다다랐다. 그렇다고 핵강국으로 부상한 조선에 대한 군사력 행사는 핵참화를 각오하지 않고서는 선택할 수 없다.

김정은 총비서는 상술한 2019년 말의 당회의에서 “앞으로 미국이 시간을 끌면 끌수록, 조미관계의 결산을 주저하면 할수록 예측할 수 없이 강대해지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위력 앞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게 됐으며 더욱더 막다른 처지에 빠져들게 되어 있다”라고 지적했었다.

속수무책으로 ‘모래 속에 머리를 박고 있는 타조’(존 메릴 전 美국무부 동북아실장.‘동아일보’1.23) 신세가 된 미국에게는 대북적대 정책을 철회하는 길만이 남았다.

  현광 코리아뉴스 편집장 webmaster@minplusnews.com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윤석열 용산 시대 집회의 문, 성소수자들이 열었다

국제성소수자혐오반대의날 공동행동 행진, 용산 집무실 앞 처음 지나

 
윤석열 정부 시대 집회·시위의 문을 성소수자들이 열어젖혔다. 14일 ‘2022 국제성소수자 혐오반대의 날(IDAHOBIT) 공동행동’의 행진은 서울 용산으로 이전한 대통령 집무실 앞을 처음 지났다.

경찰의 금지통고로 무산될 뻔한 행진이다. 법원에서 과도한 경찰 처분이 저지됐으나 집무실 인근 경호는 그만큼 삼엄했다. 하지만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는 이들의 목소리까지 막을 순 없었다.
 
2022 국제성소수자혐오반대의날 공동행동이 14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 도로에서 혐오와 차별에 반대하며 행진하고 있다. 2022.05.14. ⓒ뉴시스

공동행동은 오는 17일 ‘국제성소수자 혐오반대의 날’을 앞두고 이날 서울 용산역 광장에서 기념대회를 열었다. 국제성소수자 혐오반대의 날은 1990년 5월 17일 국제보건기구가 질병관리 목록에서 동성애를 삭제한 날을 기념하는 날이다.

용산 광장은 무지개 빛으로 물들었다. 참가자들은 무지개 마스크를 쓰고, 무지개 깃발을 흔들고 있었다. 풍물패 꼬리도, 태극기 건곤감리도 무지개 색이었다. 참가자들은 그간 코로나19로 인해 열리지 않았던 퀴어퍼레이드를 하는 느낌으로 왔다고 말했다. 무지개 색깔만큼 모인 사람들의 색깔도 다양했다. 성별, 나이, 국적, 장애 여부, 종교를 가리지 않았다. 모여드는 인파에 맨 뒷줄에 있던 취재라인은 몇 차례나 뒤로 밀려났다.

광장에서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은 서로 인사 나누기 바빴다. 파트너 배혜진(퀴어댄스팀 큐캔디) 씨의 공연도 볼 겸 참가했다는 이다은 씨는 “벅차고 즐겁다”고 말했다. 대전에서 올라왔다는 박선우 대전퀴어네트워크 활동가는 “오랜만에 반가운 사람들을 만나 행복하다”며 “혐오세력이 없는 청정한 집회는 오랜만”이라고 말했다.
 
2022 국제성소수자혐오반대의날 공동행동이 14일 서울 용산역 앞에서 혐오와 차별에 반대 집회를 하고 있다. 2022.05.14. ⓒ뉴시스
2022 국제성소수자혐오반대의날 공동행동이 14일 서울 용산역 앞에서 혐오와 차별에 반대 집회를 하고 있다. 2022.05.14. ⓒ뉴시스

공동행동은 행진에 나서는 각오를 밝혔다. 이들은 공동선언문에서 “새정부 첫날부터 대통령 비서관이 동성애는 치료될 수 있다는 망언을 쏟아냈고, 이제는 거대야당이 된 더불어민주당은 여전히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노력을 적극적으로 하지 않고 있다”고 질타했다.

이어 “경찰에 의해 한차례 막혔던 행진길을, 새정부의 대통령실을 향하는 이 길을 무지개로 물들이며 나아간다”며 “성소수자들이 존재를 드러내지 못하게 하고 인권을 합의의 대상으로 만들며 아직도 ‘나중에’를 말하는 정치를 향해, 성소수자가 여기 있음을, 우리의 거침없는 전진을 누구도 막을 수 없음을 분명히 보여주고자 한다”고 강조했다.

윤석열 집무실 앞서 “차별금지법 제정하라”
“혐오로 흥한 정치인의 끝은 초라할 것”


가수 레이디가가의 노래 ‘본 디스 웨이’(Born This Way)로 행진이 시작됐다. 태어난 그대로의 모습을 사랑한다는 내용의 가사에 사람들은 환호성을 터뜨렸다. 행진은 용산역 광장을 출발해 신용산역을 지나, 대통령 집무실이 있는 삼각지역을 거쳐 최종 목적지인 녹사평역 이태원 광장으로 향했다.
 
2022 국제성소수자혐오반대의날 공동행동이 14일 서울 용산역 앞에서 혐오와 차별에 반대 집회를 하고 있다. 2022.05.14. ⓒ민중의소리
 
삼각지역 13번 출구를 지나면서 대통령 집무실이 가까워지자 행진 양 옆으로 폴리스라인이 세워졌다. 빽빽한 폴리스라인 때문에 출입이 자유롭지 않았다. 취재진도 기자증을 보여줘야 폴리스라인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집무실 앞에 도착한 행진 대열은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라”고 외쳤다. 소주 ‘HIV/AIDS인권활동가네트워크’ 활동가는 “국회 앞에 34일째 굶으며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는 동성애자가 있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윤석열 정부가 강조하는 키워드가 소통이라고 한다. 정말 소통을 원한다면 국회 앞에서 한 달 넘게 굶고 있는 인권활동가들을 찾아와야 하지 않겠나”며 “식사 정치를 강조하는 윤 대통령은 왜 국회 앞 평등의 밥상을 먹지 않나”고 규탄의 목소리를 높였다.
 
성소수자 차별 반대 무지개행동(무지개행동) 회원들이 14일 오후 서울 용산역 광장에서 '2022 국제성소수자혐오반대의날'을 기념하며 손팻말을 들고 있다. 2022.5.14 ⓒ뉴스1

윤 정부의 여성가족부 폐지 움직임에 대한 비판도 나왔다. 명숙 ‘여성가족부폐지저지공동행동’ 활동가는 “윤 대통령은 여성혐오로 당선된 자”라며 “혐오로 흥한 정치인은 그 끝이 초라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정치인이라면 인권을 보장하는 것이 마땅하나 윤 대통령은 무한경쟁 각자도생을 무기삼아 소수자 공격을 유도했다”며 “전날 사퇴한 김성회 대통령비서실 종교다문화비서관,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 등 현 정부 주요 인사는 사회적 소수자를 질서를 해치거나 비용이 드는 존재로 낙인찍는다”고 지적했다.

새 정부에 기대하는 시민들도 있었다. 성소수자부모모임 비비안 활동가는 “윤 대통령은 전혀 모르던 세계지 않을까. 우리가 이만큼 차별받고 배제되고 있다는 걸 안다면 다같이 더불어 잘 사는 세상으로 변할 수 있다는 희망이 있다”고 말했다.
 
대통령 집무실 앞 경비가 삼엄했다. ⓒ민중의소리

한편 경찰의 과잉 대응으로 눈살이 찌푸려지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다. 행진 중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폴리스라인 밖으로 나가려는 참가자들에 대해 경찰은 피켓, 깃발 등 집회 용품을 가방 속에 집어넣어야 출입을 허가했다.

폴리스라인을 벗어나기 위해 피켓을 넣어야 했던 박관철 씨는 “제가 무엇을 들고 있던 시민의 자유 아닌가. 피켓을 들고 있다는 이유로 이동의 자유를 침해할 이유는 없다. 부당한 일”이라고 비판했다.
 
성소수자 차별 반대 무지개행동(무지개행동) 회원들이 14일 오후 서울 용산구 대통령집무실 앞에서 '2022 국제성소수자혐오반대의날'을 기념하며 행진하고 있다. 이날 무지개행동은 용산역을 시작해 대통령 집무실을 거쳐 이태원광장까지 행진을 진행했다. 2022.5.14 ⓒ뉴스1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집무실 앞 시위 헌법정신 몰각? 기본권부터 배워야할 언론

  • 기자명 장슬기 기자 
  •  
  •  입력 2022.05.14 19:10
  •  
  •  댓글 3
 
 

비평] 법원, 대통령 집무실 앞 시위 허용…청와대 폐쇄, 용산 이전 취지 ‘소통’ 아니었나
경찰, 대통령 눈치보느라 법원 판단까지 무시…일부 언론도 나서 시위 비난, 새 정부 눈치보나

윤석열 대통령이 청와대에 단 하루도 머물 수 없다며 용산으로 대통령 집무실을 이전한 이유는 ‘소통’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하지만 경찰은 법에서 규정하지 않은 ‘대통령 집무실 반경 100m의 집회와 시위를 금지하겠다’는 방침을 결정했고, 국민의힘 의원은 집시법(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을 개정해 대통령 집무실 반경 100m에 집회와 시위를 금지하는 규정을 추가하겠다고 나섰다. 

현행 규정부터 보자. 집시법 제11조(옥외집회와 시위의 금지 장소)를 보면 일부 장소에 대해 100m 이내 옥외집회 또는 시위를 금지하고 있다. 11조 3호를 보면 대통령 관저, 국회의장 공관, 대법원장 공관 등을 금지 장소로 명시했다. 기존 대통령은 청와대, 즉 대통령 관저와 집무실이 한 공간에 있었기 때문에 이 규정으로 관저 100m 인근 집회가 금지되는 효과를 봤다. 

윤석열 정부는 대통령이 공적인 업무를 보는 집무실(구 국방부 청사)과 대통령의 집인 관저를 분리했다. 그러자 경찰은 집무실에 관저가 포함된다며 용산 집무실 100m 집회와 시위를 금지하겠다는 방침을 내세웠다. 구자근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달 20일 집시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100m 집회금지 대상에 대통령 집무실도 명시하는 내용이다. 

▲ 대통령실 홈페이지 갈무리
▲ 대통령실 홈페이지 갈무리

 

서울행정법원은 지난 11일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이 용산경찰서장을 상대로 낸 집회 금지통고 처분 집행정지(효력정지) 신청에서 용산 집무실 100m 집회를 허용했다. 서울경찰청은 지난 12일 법원 판결에 불복하고 법무부 지휘를 받아 즉시항고장을 법원에 제출했다. 법무부도 경찰 주장을 승인한 것이다. 

‘소통’ 취지가 무색하게,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겠다고 여당과 경찰, 법무부까지 합세한 가운데 언론에선 이 사안을 어떻게 보도하고 있을까? 

시위를 악습으로 규정, 법원 판단 ‘어이없다’는 문화일보

문화일보는 지난 12일 사설 “‘대통령실 코앞 시위 허용’ 황당 결정과 악습是正(시정) 과제”에서 법원 판단에 대해 “이것이야말로 ‘법률의 통상적 취지’를 벗어난 황당한 판단”이라며 “헌법정신까지도 몰각한 결정이라는 점에서 더욱 어이없다”고 주장했다. 

문화일보는 “대통령실 이전은 국민과 소통을 확대하면서 투명한 국정을 펼치겠다는 윤 대통령 결단에 따른 점에서 집회·시위 등 국민의 표현의 자유에도 새로운 전기가 되도록 할 필요가 있다”면서도 “법원은 이런 전반적 상황을 종합해 시위 악습은 시정하면서 합리적 표현은 보장하는 방향으로 상급심에서 잘못을 바로잡기 바란다”고 주장했다. 

▲ 문화일보 12일자 사설
▲ 문화일보 12일자 사설

 

헌법 제21조는 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고 정했다.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국민의 기본권을 ‘악습’으로 비난하며 “시정해야 한다”고 한 것이다. 윤 대통령이 소통을 확대하려고 하고 집회와 시위가 표현의 자유인 것을 인정하면 논리적으로 집회와 시위를 인정하자는 주장으로 이어져야 하지만 ‘시위 악습’을 꺼낸 것이다.

집시법 위반 가상사례 끌어와 시위 비난한 서울신문

서울신문은 지난 13일 사설 “‘민의의 전당’ 용산, 소음으로 얼룩져선 안 돼”에서 “윤 대통령이 집회 시위의 자유를 보장하겠다는 입장을 적극 밝히거나 아예 시위 주최 측의 목소리를 청취하는 자리를 정례적으로 만들겠다고 약속해 해결하면 좋을 것”이라면서도 “그렇다고 해서 시민사회단체를 비롯한 각종 집회 주최 측이 확성기를 크게 틀며 집시법에 허용하는 범위 이상의 소음을 유발하거나 교통 정체를 일으키는 등 시민의 일상까지 불편하게 만드는 무분별한 집회는 자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울신문도 윤 대통령이 소통을 강조하며 용산으로 집무실을 이전했기 때문에 시위를 금지하는 것을 무작정 옹호하진 못했다. 그런데 서울신문은 느닷없이 시민단체가 집시법을 어겼다는 전제 하에 집회에 대해 비난했다. 

▲ 서울신문 13일자 사설
▲ 서울신문 13일자 사설

 

용산 집무실로 이전한 뒤 시민들이 필요 이상의 소음을 유발하거나 교통정체를 일으켜 집무실 일대 시민의 일상을 불편하게 만들었나? 무분별한 집회가 악의적이고 반복해 열렸다면 해당 단체에 대한 비판이 가능할지 모르지만 경찰은 집시법조차 지키지 않은 채 자의적으로 집무실 인근 집회를 금지해오고 있다. 현재 집시법 취지를 어긴 건 경찰이다. 

또한 일부 단체들이 집시법 취지에 어긋나도록 집회를 했다면 그 단체의 문제일 뿐이다. 서울신문은 용산이 “소음으로 얼룩져선 안 된다”며 “다양한 목소리와 입장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성숙한 집회 문화가 정착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역시 집회 문화가 성숙하지 않다는 전제 하에 집회에 나선 시민들을 비난하는 내용이다. 

서울신문의 사설은 논점을 정면으로 반박하지 않고, 일부 사례를 일반화해 시위 자체를 비난했다. 이번 집무실 앞 집회 금지 논쟁 훨씬 이전부터 집시법 11조 자체가 국민의 저항권이나 표현의 자유를 위반한다는 비판이 있었다. 지난 3월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도 “국가기관 편의를 위해 시민의 기본권을 희생시키고 있다”며 집시법 11조 폐지를 주장했다. 

법원의 집회 허용으로 시민불편?

법원의 집회 허용 판단은 집시법에 대한 해석이자 경찰의 무리한 기본권 통제에 대한 경종이다. 그러나 일부 언론은 법원 판단으로 시민불편을 야기한다는 논지를 폈다. 

뉴시스는 12일자 “대통령 집무실 인근 집회 허용…‘교통 지옥’ 용산 현실화”에서 “이에(법원 판단) 따라 용산구에서 생활하거나 출퇴근하는 시민들은 교통 통제 등으로 불편함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보도했다. “법원 “집무실 100m 앞 집회 허용”… 삼각지, 시위 집결지 되나”(서울신문 12일자), “집무실 100m내 행진 허용…용산 시위 몸살 앓나”(국민일보 12일자), ““동네 갑자기 시끄러워졌다”…삼각지역 13번 출구, ‘집회 1번지’ 급부상”(데일리안 14일자) 등의 보도도 비슷한 논조를 보였다. 

이러한 사태의 원인제공은 청와대에서 집무실을 용산으로 옮긴 윤 대통령에게 있다. 용산을 중심으로 소통하겠다고 나선 만큼 집무실 인근이 시끄러워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윤 대통령은 취임 이후 아침 혼잡한 시간에 서초동에서 용산까지 출근하면서 교통혼란을 가중하고 있지만 이들 언론은 소통하겠다고 용산을 찾은 시민들을 비난하는 꼴이다.  

일부 언론에서 표현의 자유를 비난하는 가운데 윤석열 정부는 정부출범 직후 용산 대통령 집무실을 미국 백악관 웨스트윙과 비슷한 구조로 구성했다고 홍보했다. 백악관을 벤치마킹해서 소통을 강화했다는 취지였다. “백악관 닮은 용산”(조선 12일자), “백악관 본뜬 집무실”(중앙 12일자), “‘백악관처럼’ 참모들 수시로 들락날락”(뉴스1 12일자) 등 대통령실 입장을 그대로 전한 보도들이 나왔다. 하지만 미국 백악관은 100m 집회 금지 규정이 없어 시민들이 백악관 바로 앞까지 접근할 수 있다. 

▲ 용산 집무실이 미국 백악관을 따라했다고 홍보한 대통령실. 사진=대통령실 제공
▲ 용산 집무실이 미국 백악관을 따라했다고 홍보한 대통령실. 사진=대통령실 제공

 

우왕좌왕 경찰 비판한 동아일보 “새 정부 눈치보나”

보수매체에서도 경찰의 과잉충성에 대한 쓴소리가 나왔다. 동아일보 13일자 사회부 기자의 “대통령실 인근 집회 놓고 새 정부 눈치보는 경찰”을 보면 법원의 집무실 인근 행진 허용 판단 직후 경찰이 ‘사법부의 판단을 존중한다’고 했다가 ‘항고하겠다’는 입장 사이에서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지적했다. 법조계에선 경찰 항고가 실효성이 없는데도 경찰 측 관계자가 “즉시항고는 의지 표명”이라고 실질 효과가 없음을 인정한 것도 함께 전했다.

동아일보는 “관저와 집무실의 사전적 의미가 다르다는 점에서 경찰의 자의적 법해석이라는 지적이 많았는데 그럼에도 반대 의견에 귀를 닫고 집무실 인근 집회 금지를 고수했다가 법원에서 제동이 걸린 것”이라며 윤 대통령이 소통 강화를 이유로 집무실을 용산으로 이전한 사실과 용산공원 담장을 낮춰 시민들과 눈을 맞추겠다고 한 점 등을 강조했다. 

한겨레는 지난달 12일 사설에서 “숱한 반대를 무릅쓰면서까지 ‘국민에게 더 가까이’를 명분으로 집무실 이전을 밀어붙였다면, 집무실 근처에서 국민들이 다양한 의사를 표출할 기회를 최대한 보장하는 게 옳다”며 “윤 당선자 쪽이 모델로 삼았다는 미국 백악관 앞에서도 시위는 흔한 일”이라고 주장했다. 언론이 시민들의 입을 막을 게 아니라 집무실을 용산으로 이전 강행한 윤 대통령에게 질문할 때다. 

※ 미디어오늘은 여러분의 제보를 소중히 생각합니다. 
news@mediatoday.co.kr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소통하겠다던 윤석열 정부에서 늘어가는 한겨레 고소·고발장

  • 기자명 김예리 기자 
  •  
  •  입력 2022.05.13 11:39
  •  
  •  수정 2022.05.13 18:29
  •  
  •  댓글 39
 
 

한동훈·이상민·원희룡 검증보도에 기자 개인 고소·고발 이어져
“검증 대상인 정치인이 기자 개인 형사고소하는 문화 안돼” 우려

윤석열 내각에 인선된 후보자들이 한겨레 내각 검증팀 기자들을 상대로 잇달아 고소·고발에 나섰다. 인사 검증 보도를 상대로 한 이례적인 법적 대응에 언론시민사회에선 언론 자유 위축을 우려하는 입장을 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는 지난 4일 ‘자녀의 엄마찬스 스펙쌓기’ 의혹을 보도한 한겨레 A, B, C 기자를 서울 서초경찰서에 고소했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지난달 23일 자신의 변호사법 위반 사건 연루 논란을 다룬 한겨레 보도를 이유로 D 기자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하고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한다고 밝혔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 검증 보도와 관련해서도 우익단체가 한겨레 기자 3명을 고발했다. 자유청년연합 장기정 대표는 지난 29일 한겨레 E, F, G 기자를 명예훼손 혐의로 서울지방검찰청에 고발해 사건이 서초경찰서에 이관됐다. 한겨레는 원희룡 후보자의 제주도지사 시절 △업무추진비 명세서 허위작성 △정치후원금 보은 인사 △오등봉 개발 특혜 등 의혹을 단독 보도해왔다.

▲21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입구에서 취재진이 촬영을 하고 있다.
▲21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입구에서 취재진이 촬영을 하고 있다.

정부 내각 발표와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이뤄지는 언론의 의혹 및 검증 보도에 검증 대상인 후보 당사자들이 기자 개인을 형사고소하는 것은 이례적이다. 

김동찬 언론개혁시민연대 정책위원장은 “정치인 검증 보도는 언론자유 측면에서, 특히 고위공직자를 상대로 한 검증 국면에서 폭넓고 강력하게 보호돼야 한다. 정치인이자 검증의 대상인 인물이 직접 나서 언론인을 고소할 때 보도 위축으로 인한 피해는 공동체 전체가 입게 된다”며 “정치집단이 고소·고발을 남용하는 문화가 형성되고, 시민들의 고발까지 부추기는 효과가 나타난 것 같아 우려 된다”고 말했다.

언론연대는 한 후보자의 기자 고소에 11일 성명을 내고 “장관 후보자가 자신을 향한 검증보도에 고소장부터 내미는 것은 매우 부적절한 행태이다. 언론에 대한 형사소송은 후속보도를 위축시켜 국민의 알권리를 침해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언론연대는 “기사에 이미 후보자 측 반론이 포함되어 있고, 해당 언론사가 사실과 다른 내용을 바로잡은 상황에서 기어이 형사고소에 나선 것은 언론을 압박하려는 의도로 볼 수밖에 없다”고 했다. 앞서 한겨레는 한 후보자 딸의 “기업의 도움으로 우리가 노트북 50여 대를 기증할 수 있었다”는 언론 인터뷰를 근거로 부제에 ‘딸 명의 기부’라고 밝혔으나, 기업 명의의 기부라는 후보자 항의를 수용해 부제를 지운 바 있다.

언론연대는 이어 “한 후보자는 청문회에서 고소 취하 의사를 묻는 질의에 ‘대단히 예외적인 상황’이며 ‘악의적으로, 명확하게 사실을 아는데도 불구하고 공격하기 위해서 (기사를 썼다)’고 단정해 말했다”며 “전체적인 사실관계와 보도 취지에 비춰보아도 수긍하기 어려운 주장이다. 법률가인 한 후보자가 이를 모를 리 없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언론연대는 한 후보자 자녀의 스펙 쌓기 의혹 해명을 요구하는 다른 언론의 사설을 예로 들었다. 한국일보는 10일 사설을 내 “미국 대학 입시를 위해 부모와 가족까지 동원한 게 아니냐는 합리적 의심을 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중앙일보는 9일 “자녀를 향한 검증을 불편해 하거나 반발하기보단 겸허한 자세로 충분히 설명”할 것을 요구했고 동아일보는 10일 “딸·재산 의혹 국민 눈높이에서 겸허하게 해명하라”고 밝혔다.

언론연대는 그러면서 “한 후보자의 언론 고소는 민주당 (언론중재법) 법안의 위험성을 그대로 보여주는 실례”라며 “언론 및 시민사회단체들은 민주당이 추진하는 언론법안에 대해 꾸준히 독소조항을 지적해왔다”고 했다. 언론연대는 “이번 사태를 통해 국회가 해야 할 일은 보다 명확해졌다”며 “국회는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킬 우려가 있는 법 개정에 신중해야 한다”고 밝혔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뉴스AS] 그때는 그때고?…추경 놓고 ‘한 입 두 말’ 하는 추경호

등록 :2022-05-13 16:07수정 :2022-05-14 00:59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가운데)이 12일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2022년 2차 추가경정예산안 관계장관 합동브리핑을 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가운데)이 12일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2022년 2차 추가경정예산안 관계장관 합동브리핑을 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지난 2월 16조9천억원 규모의 1차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한 뒤 3개월 만에 정부가 사상 최대 규모의 ‘2차 추경’을 들고 나왔다. 똑같은 ‘코로나 극복’ 추경이지만 선수가 바뀌면서 여야의 속내는 무척 복잡해 보인다. 추경을 둘러싼 입장 변화가 가장 큰 사람은 역시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다. 대선 전까지 국회 기재위에서 홍남기 전 부총리를 비롯한 전 정부를 공격했던 ‘추경호 국민의힘 의원’은 이제 새 정부의 경제부총리가 되어 추경안 편성을 진두지휘하는 입장이 됐다.

 

① ‘초과세수로 추경’ 방만이라던 추경호


2021년도 2차 추경 편성을 앞둔 지난해 6월23일 국회 기재위 전체회의. ‘야당’의 추 의원이 당시 홍남기 부총리에게 물었다. “(초과세수가) 약 30조 더 들어온다 해서 적자살림이 갑자기 흑자살림 된 것도 아닌데 (…) 30조를 채무 상환을 다 하더라도 약 70조~80조 정도의 적자살림을 살아야 하는데 이렇게 그냥 써도 되는 겁니까, 빚 안 갚고?” “세수 더 걷힌다고 또 추경해서 재정지출을 늘리는 것은 경기 대응 측면을 고려하더라도 너무 방만하게 적극적으로 가는 것 아닙니까?

 

”추 부총리는 취임 다음날인 12일 초과세수 53조3천억원을 활용한 59조4천억원 규모의 추경안을 발표했다. 꼭 같은 질문을 돌려받은 추 부총리는 “건전재정 기조는 변함없다”며 “사실 건전재정만 보면 전부 국채 상환에 쓰겠지만, 한쪽에는 엄중한 경제 상황이 있고 코로나로 피해 입은 소상공인분들이 계시기에 시급히 지원하지 않으면 나중에 추가적인 복지 지출 소요로 나타난다. 가급적 온전한 손실보상과 민생안정 외 다른 지출을 잡지 않고 9조원은 국가부채비율을 줄이는 데 썼다는 것을 우리 건전재정 기조의 신호로 이해해달라”고 답했다.

 

야당이 무작정 “돈 더 쓰자”고 주장하는 장면도 선수만 바뀌어 반복됐다. 대선 전 더불어민주당이 25조원 규모 재난지원금을 약속하자 국민의힘은 ‘묻고 더블로 가’ 식으로 50조원, 100조원까지 부르며 ‘퍼주기 경쟁’을 부추긴 바 있다. 이번 2차 추경안이 발표되자 야당이 된 민주당은 이미 사상 최대 규모인 정부안에 10조8천억원을 더 얹은 자체 추경안을 내밀어 맞불을 놨다.

 

2019년 7월 18일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자유한국당 추경호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연합뉴스
2019년 7월 18일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자유한국당 추경호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연합뉴스
② 인플레 우려될 때 재정 풀면 ‘엇박자’라더니

국고에서 막대한 돈이 풀려나면 인플레이션을 자극할 공산이 크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2%대 중반까지 올랐던 지난해 6월에도 추경 편성을 둘러싸고 이런 우려가 나왔다. 당시 ‘야당’의 추 의원은 국회 기재위에서 “미국 등 곳곳에서 인플레 걱정을 많이 하고 있고 우리나라도 그렇다. 거시적으로는 이제 금리 인상을 고려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는데, 재정은 한발 더 나아가 기름 붓듯 확장적으로 방만하게 가는 게 과연 맞는지, 거시정책 조합에서 보면 서로 엇박자 나는 건 아닌지 몹시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불과 11개월 만에 추 부총리는 똑같은 우려에 대해 방어하는 위치에 섰다. 당시 2%대 중반이었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벌써 5%대를 위협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추 부총리는 “이번 추경을 편성하면서 어떻게 하면 물가에 부담 주는 영향이 최소화할 수 있도록 하느냐, 이것이 고민이었다”며 “물가가 오를 때 물가 안정 과제와 함께 물가불안 속에 어려워하는 계층에 힘을 보태드리는 것도 우리 정책 과제”라고 답했다. 아울러 추 부총리는 “이번 재정 투입은 대부분 이전지출 소요다. 이전지출은 통상적인 정부 지출에 비해 물가 영향이 굉장히 약하다”고 해명했는데, 지난해 편성된 추경도 대부분 이전지출이기는 마찬가지였다. 이전지출은 재난지원금처럼 정부가 개인이나 단체에 반대급부없이 지급하는 돈을 말한다.

 

③ 선거 전 추경에 ‘매표용’ 비난하더니

추경의 타이밍에 대한 태도도 대선 전후로 달라진 점 가운데 하나다. 추 부총리는 지난 1월 페이스북에 지난 1차 추경을 “선거용 재정살포”라고 비판한 바 있다. 당시 추 부총리는 “문재인 정권과 민주당이 또다시 대선을 겨냥한 매표용 돈 풀기에 나섰다. 사실상 관권선거 하겠다는 것”이라며 “추경하더라도 대선 끝나고 3월10일 이후 실효성 있는 추경을 편성하고 심사하는 것이 정도”라고 썼다. 그런 추 부총리는 지방선거가 한달도 채 남지 않은 시점에 사상 최대 규모의 추경을 들고 나왔다.

 

여야 공수가 전환된 지금, 민주당에서도 묘한 입장 변화가 감지된다. 오는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추경을 반대하기 어려운 민주당은 공식적으로 2차 추경에 대해 “하루라도 빨리 지급하자”는 태도다. 하지만 지난 12일 김성환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당초 대선이 끝나자마자 추경을 편성하자고 여러 차례 요청했지만 공교롭게도 지방선거를 앞두고 집행되는 상황”이라며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이지혜 기자 godot@hani.co.kr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윤석열이 소환한 전력 판매 민영화①] 개방은 혼란이었다

  • 조한무 기자 chm@vop.co.kr
  •  2022-05-13 17:24:37
  • 수정 2022-05-13 17:15:33
  •  
  •  
  • 윤석열 정부가 여러 국가에서 폐해가 드러난 전력 판매 시장 개방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전력 판매 시장에 민간 기업 참여를 허용한다는 계획이다. 앞서 시장을 개방한 국가에서는 1천개 이상의 요금제가 우후죽순으로 생겨나 소비자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경쟁 도입에 따른 전기요금 인하 효과도 불투명하다.

    13일 전력 업계에 따르면,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최근 발표한 국정과제에는 전력 판매 시장 계획이 담겼다. 에너지 관련 과제로 ‘경쟁과 시장원칙에 기반한 전력시장 구축‘을 제시했다. 지난달 에너지 정책 방향에서도 ‘한국전력 독점 판매 구조를 점진적으로 개방‘하겠다고 밝혔다.

    정부가 개방한다는 전력 판매 시장은 한전과 시민·기업이 거래하는 소매 시장을 이르는 것으로 풀이된다. 한전은 도매 시장인 전력거래소에서 발전사로부터 산 전기를 시민·기업에 판매한다. 인수위가 ‘한전 독점 판매 구조’라고 표현한 배경이다. 시장 개방은 한전뿐 아니라 민간 기업도 전력거래소에서 전기를 매입해 되팔 수 있게 된다는 의미다.

    민간 기업에게 전력 판매 시장은 적은 투자 비용으로 수익을 낼 수 있는 신산업이다. 전력 산업은 ‘발전-송·배전-판매’ 구조로 이뤄진다. 발전사가 만든 전기는 한전이 구축한 송·배전망을 타고 주택·공장·빌딩 등 수요처에 들어간다. 송·배전망은 설비 투자에 대규모 자본이 투입되지만, 수익성은 크지 않아 재계의 개방 요구가 크지 않다. 민간 기업은 전력 유통 길목에서 통행세를 받는 셈이다.

    소비자 선택권 확대의 실체

    전력 판매 시장이 개방되면 여러 민간 기업이 각종 요금제를 만들어 경쟁하게 된다. 시장 개방을 지지하는 쪽은 소비자 선택권이 확대된다고 주장한다.

    일본 2위 통신사 KDDI도 전기요금 판매에 나서면서 ‘현명하게 선택해 비용 절감’이라는 홍보 문구를 내걸었다. 일본은 주요국 가운데 가장 최근인 지난 2016년 전력 판매 시장을 개방했다. 전력 판매 시장을 개방하겠다는 새 정부가 참고할만한 사례다.

    일본 경제산업성 자원에너지청 자료를 보면, 2020년 기준 670여 개 기업이 1,300개 이상의 요금제를 판매한 것으로 집계됐다.

     
    지난 2021년 7월 18일 오후 일본 도쿄 니혼바시의 한 거리. 2021.7.18 ⓒ뉴스1


    전력 판매 시장을 전면 개방한 이후 민간 기업이 대거 뛰어들었다. 기존에는 10개의 발전사만 전기요금제를 팔 수 있었다. 이들 요금제는 사실상 정부가 조정하는 구조였다.

    요금제가 우후죽순으로 늘자 전기요금제를 비교해주는 서비스까지 등장했다. 셀렉트라(Selectra)는 사용자 거주지와 전력 사용량 등에 따라 최적의 요금제를 찾아준다. 현재 가입한 요금제보다 싼 요금제를 나열하는 방식이다.

    홈페이지에서 연간 전력 사용량을 입력한다. 가구 인원과 사용하는 가전(세탁기·건조기·에어컨 등)을 설정하면 추정치도 알려준다. 자주 이용하는 시간대와 거실과 방 개수를 선택한다.

    연간 2,500kWh 정도를 사용하며 도쿄전력 요금제에 가입한 2인 가구를 가정해 검색해보니 요금제가 125개 뜬다.

    상세정보를 누르니 머리가 어지럽다. A 회사 요금제는 1kWh당 가격이 전력 사용량 구간별로 달라진다. 0~120kWh 구간은 19엔, 120~300kWh 구간은 25엔이다. B 회사 요금제는 월 200kWh 정액제로, 기본요금이 정해져 있다. 정량을 넘기면 1kWh당 추가 요금이 붙는다. 정량을 다 쓰지 못하면 이월할인이 적용된다. B 회사는 100kWh 정액제 요금도 판다. C 회사 요금제는 별도 조건 없이 1kWh당 가격이 책정돼 있다. 다른 회사는 가스 요금제나 통신 요금제를 동시에 가입하면 할인하는 요금제도 판다.

    전기를 얼마나 쓰느냐에 따라 요금이 달라져 쉽게 유불리를 파악할 수가 없다. ‘현명하게 선택해 비용 절감’은 멀게 느껴진다.

     
    전기요금 자료사진 ⓒ셀렉트라(Selectra)


    선택지가 많으면 혼란스럽다

    다양한 선택지는 소비자를 혼란스럽게 한다. ‘곤혹독점(Confusopoly)’은 기업이 요금체계를 의도적으로 알기 어렵게 해 소비자가 혼란을 겪는 현상을 이른다.

    일본에서는 전기요금제의 복잡성을 곤혹독점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노무라 무네노 간사이대학교 경제학부 교수와 쿠사나기 신이치 효고현립대학교 경제학부 교수는 일본 전력 판매 시장 개방 직후인 2017년 낸 ‘전력·가스 자유화의 진실’에서 곤혹독점을 언급하며, 다양한 전기요금이 반드시 소비자후생에 긍정적인 것은 아니라고 강조한다.

    이들 교수는 일본에 앞서 전력 판매 시장을 개방한 영국을 사례로 들었다. 영국은 1999년 전력 판매 시장을 완전 개방했다. 요금이 복잡해져 비교하기 어렵다는 게 소비자들 반응이다. 전기요금제 비교 사이트 유스위치(uSwitch)의 2013년 조사 결과, 응답자 절반은 전력 판매 기업를 신뢰하지 않다고 답했다. 불신 주요 요인은 낮은 서비스 수준(50%)과 개방성·투명성 결여(37%) 등이었다. 다른 조사에서는 응답자 35%가 전기요금 청구서를 이해하지 못하며, 37%는 지불한 금액을 모른다고 답했다. 요금제가 난립하는 가운데 소비자가 합리적인 선택을 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준다.

    영국에서는 복잡한 요금 체계를 바로잡기 위해 정부가 나섰다. 영국 에너지 규제 기관 오프젬(Ofgem)은 2013년부터 ‘더 단순하고 명확하며 공정한(simpler, clearer and fairer) 에너지 시장을 위한 전력 판매 기업의 행동 기준’을 구체화하기 시작한다. 기업별로 핵심 요금제를 4개까지만 제공하도록 제한했다. 소비자에게 정보를 제공할 때는 오해의 소지가 없어야 하고, 중요한 정보가 적절하게 부각돼야 한다. 판매 중단된 요금제에 가입한 소비자에 대해서는 더 저렴한 요금제로 변경하도록 해야 한다는 내용도 담겼다.

    기업 개선은 더디다. 노무라·쿠사나기 교수는 2016년 영국 전력 요금제를 보면 여전히 조건이 다양해 비교가 어렵다고 지적한다. 조기 계약 해지 수수료, 월간 추가 포인트, 연간 할인 등 조건이 붙는다. 영국 상황은 전력 시장 개방이 가져올 정부와 기업  간 지난한 조정 과정을 보여준다.

    가격경쟁 효과는 한때

    민간 기업이 전력 판매 시장에 진입하면 가격경쟁으로 요금이 떨어질 거라는 주장도 현실과 거리가 멀다.

    전기요금은 국제 유가 영향을 받는다. 유가가 오르면 전기 판매 기업이 발전사에 지급하는 도매가격이 상승해 전기요금도 올라가게 된다. 원가 부담이 커진 상황에서 전기요금을 올리지 않는 전기 판매 기업은 수익성에 타격을 받는다.

    영국 전기요금은 2000년대 초까지는 내려가는 경향이 있었지만, 2004년 이후에는 가격 인상이 이어지고 있다. 오프젬에 따르면, 2009~2012년 듀얼 퓨얼(가스와 전기를 한 회사로부터 공급받는 요금제) 연간 평균 요금은 1,095파운드에서 1,232파운드로 13% 올랐다. 이후 2013~2014년에는 평균 7% 상승했다.

    원가 부담이 적은 저유가 시기에 전력 판매 기업이 요금을 낮춘다는 보장도 없다. 영국 전력 판매 기업은 이윤을 많이 남기기 위해 요금을 올린 것으로 추정된다. 연간 평균 요금에서 도매가격이 차지하는 비중은 2009년 68%(646파운드)에서 2014년 50%(612파운드)로 줄었다. 같은 기간 주요 6대 전력 판매 기업 당기순이익은 21.7% 늘었다. 특히 가정용 부문은 2억 3,300만파운드에서 11억 1,900만파운드로 4배 이상 뛰었다.

    전력 판매 시장 개방 직후 전기요금이 일시적으로 떨어졌다가 다시 올라가는 현상은 세계적으로 나타난다. 일본은 가정용 요금이 2010년 1kWh당 20.4엔에서 2018년 25엔으로 23% 상승했다. 2015년 24.2엔에서 2016년 22.4엔으로 떨어졌지만, 이듬해 바로 23.7엔으로 올랐다.

    미국도 전력 시장 개방이 요금 인상으로 이어지는 경향을 보인다. 미국전력회사단체(APPA)에 따르면, 전력 시장을 개방하지 않은 주보다 개방한 주의 요금이 더 비쌌다. 그 격차는 1998년 1kWh당 2.5센트에서 2013년 3센트로 벌어졌다.

    독일 전기요금은 2008~2012년 1.2배 올랐다. 같은 기간 도매가격은 50% 감소했다.

    송재도 전남대 경영대학 경영학부 교수는 “민간 기업의 이윤 극대화 논리에 따라 마진이 증가하고 전기요금이 상승하는 현상이 여러 국가에서 나타났다”며 “경쟁이 요금을 낮춘다는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는 쪽에 최근 힘이 실리고 있다”고 말했다.

     
    2015년 이후 일본 전기요금 현황 ⓒ전력거래소


    시장 참여 예상 1순위는 통신사

    한국 전력 판매 시장이 개방될 경우, 참여가 예상되는 기업으로 SK텔레콤·KT·LG유플러스 등 통신 3사가 언급된다.

    소비자를 대상으로 한 판매망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시장 참여가 용이하다. 일본의 2·3위 통신사인 KDDI와 소프트뱅크를 비롯한 여러 국가 통신사가 전기요금제를 팔고 있다. 이들 기업은 자사 통신 서비스와 결합한 전기요금제를 제공한다.

    피쳐폰에서 스마트폰으로 넘어가고 LTE와 5G를 거치면서, 통신요금에 대한 소비자 불만이 끊이지 않았다. 데이터 제공량이 아주 적거나 필요 이상으로 많은 요금제만 팔고, 소비자 수요가 많은 구간의 요금제는 만들지 않아 비판이 제기된다. 비싼 요금제는 1MB당 단가가 싸고, 저렴한 요금제는 데이터 단가를 비싸게 매겨 형평성 논란도 인다. ‘쓰는 만큼 내는’ 간단명료한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 구조다.

    통신 산업도 처음에는 국영으로 시작했다. 1998년 민간 기업 참여로 개방되고, 2002년 한국통신(KT) 지분을 매각해 민영화했다.

    통신 시장 개방 당시 경쟁을 통한 가격 인하와 신기술 도입 등 장밋빛 전망이 나왔다. 기대와 달리 공공성이 저해되고 대기업 배를 불리는 결과를 낳았다. 가계통신비 인하가 대통령 공약으로 나올 만큼, 많은 국민이 비싼 통신 요금에 불만을 품는 상황에 이르렀다. 그 사이 통신사는 매년 수조원대 영업이익을 올렸다.

    도시가스사도 전력 판매 시장 참여가 전망된다. 일부 외국 사례와 같이 전기와 가스를 결합한 요금제를 판매하는 형태가 될 수 있다. 도시가스 시장도 SK 계열사가 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있다. SK E&S는 전국에 8개 자회사를 두고 사업을 하는데, 이들 점유율은 22.5%에 달한다.

    민간 발전사가 직접 판매까지 할 가능성도 있다. 영국에서는 발전사가 전력 판매 시장의 주요 사업자로 활동하고 있다.

    통신사·도시가스사·발전사는 대기업이 주를 이룬다. 전기라는 공공재에 대기업의 기업 논리가 작용하면 소비자 부담이 가중될 심산이 크다.

    구준모 에너지노동사회네트워크 기획실장은 “민간 기업은 본성상 수익성을 추구하기 때문에 요금을 부풀리려고 할 것”이라며 “통신 산업에서도 1위 사업자가 요금제에 대해 정부 허가를 받아야 하지만, 영업비밀을 이유로 원가구조를 공개하지 않아 사업 운영 결정권이 민간에 넘어간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서울 중구 한 휴대폰 매장 간판에 통신사 3사 로고가 보이고 있다.2020.05.20. ⓒ뉴시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핀란드 나토 가입, 러시아 발끈…美 "푸틴이 자초"

  • 분류
    아하~
  • 등록일
    2022/05/14 07:49
  • 수정일
    2022/05/14 07:49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스웨덴도 조만간 나토 가입…유럽의 또다른 뇌관 되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의 여파로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74년 동안 중립을 지켜온 핀란드가 나토(북대서양 조약기구, NATO) 가입을 공식화했다.

핀란드 사울리 니니스퇴 대통령, 산나 마린 총리는 12일(현지시간) 공동성명을 내고 "핀란드는 지체 없이 나토 가입을 신청해야 한다"며 "나토 가입으로 핀란드의 안보가 강해질 것"이라고 밝혔다고 <AFP통신>이 보도했다.

러시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고 지난 1939년 11월 소련의 침공으로 '겨울전쟁'을 겪은 핀란드 입장에서는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나토 가입을 선택할 수 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겨울전쟁'으로 핀란드는 영토의 11%를 떼주고 1940년 3월 휴전협정을 맺었다.

나토의 확장으로 인한 안보 위협을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명분으로 내세웠던 러시아는 발끈하고 나섰다. 러시아 외무부는 성명을 내고 "러시아는 자국의 국가 안보를 향한 위협을 해결하기 위해 군사.기술 상호적인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앞서 핀란드와 함께 나토 가입 추진 입장을 밝힌 스웨덴도 16일께 가입 신청서를 제출할 것으로 알려졌다. 앤 린데 스웨덴 외무장관은 트위터에 "핀란드는 스웨덴의 가장 가까운 안보 및 국방 파트너"라면서 "핀란드에 대한 나토의 평가를 고려해 나토 가입을 신청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미국은 핀란드의 나토 가입이 "위협"이라면서 군사적 대응까지 고려하고 있다고 경고한 러시아의 입장에 대해 "이런 일을 초래한 것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라고 비판했다.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푸틴 대통령은) 거울을 보라. 아마도 그곳에 이런 국가에서 나토 합류에 대한 대중적 지지가 증가하는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원인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그는 "나토는 방어적인 동댕이지 공격적인 동맹이 아니다"라며 "핀란드와 스웨덴이 나토 가입을 선택한다면 미국은 이를 지지한다"고 말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윤 대통령, “북 주민에게 코로나19 백신 지원 방침”

  • 기자명 이광길 기자 
  •  
  •  입력 2022.05.13 14:54
  •  
  •  수정 2022.05.13 16:52
  •  
  •  댓글 0
윤석열 대통령. [사진제공-대통령실]
윤석열 대통령. [사진제공-대통령실]

윤석열 대통령이 북한 주민에게 코로나19 백신을 비롯한 의약품을 지원할 방침이라고 강인선 대통령실 대변인이 13일 발표했다.

이날 오후 서면브리핑을 통해, 강 대변인은 “최근 북한에선 코로나19 대유행으로 감염 의심자가 폭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면서 “구체적인 지원 방안은 북한 측과 협의해 나갈 예정”이라고 알렸다.

지난 3일 윤석열 당선자 측 인수위원회는 ‘110대 국정과제’ 중 하나로 ‘남북 간 인도적 문제 해결 도모’를 제시했다. “인도적 지원을 조건 없이 실시하되 이를 필요로 하는 북한주민에 전달되도록 모니터링 실시”하겠다며, 북한이 호응하면 ‘코로나19’ 관련 긴급지원, 식량난·수해 등 긴급구호를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13일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는 “(북한으로부터) 연락은 안 왔다”고 선을 그었다. ‘남북 채널이 있는가’는 질문에 대해 “그런 것까지는 아직 아니고 일단 윤석열 정부의 입장을 정한 것이라고 보면 되겠다”고 답했다. 

“코로나가 발생한 상황에서도 주민의 생명과 안전을 외면하고 탄도미사일 도발을 지속하는 북한의 이중적 행태”를 비판한지 하루 만에 백신 지원 방침을 밝히느냐는 지적에는 “우리 정부가 입장을 바꿨다기 보다도 12시간 간격으로 북한이 상반된 말과 행동을 했다”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오늘 [조선신보]에서 낸 메시지는 ‘방역 강화에 필요 수단을 우리는 완벽하게 구비하고 있다’”는 것으로 “지금 밖에서 뭘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메시지”라며 “지켜보면서 북한의 의도가 무엇인지, 앞으로 인도적 현안을 따로 떼어서 추가적 조치를 고려해야 되는지를 판단해 보겠다”고 밝혔다. 

“인도적 협력과 군사안보 차원의 대비는 별개의 문제”이며 “안보를 지키는 문제는 철저하게 그것대로 초점을 맞추고, 북한이 뭔가를 원하고 도움을 청한다면 거기에 분명히 응해서 진지하게 논의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12일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은 “지난 5월 8일 수도의 어느 한 단체의 유열자들에게서 채집한 검체에 대한 엄격한 유전자 배열분석 결과를 심의하고 최근에 세계적으로 급속히 전파되고 있는 오미크론 변이비루스(BA.2)와 일치하다고 결론하였다”고 발표했다.

13일자 [노동신문]에 따르면, 지난 4월 말부터 원인을 알 수 없는 열병이 북한 전역에 폭발적으로 확산되어 짧은 기간에 35만여명의 '유열자'(발열환자)가 나왔으며, 그중 16만 2,200여명이 완치되었다. 

12일 하루동안 전국적으로 1만 8,000여명의 발열환자가 새로 발생했고, 지금까지 18만 7,800여명이 격리 및 치료를 받고 있으며, 사망자는 6명이고 그중 1명이 오미크론 변이 바이러스 확진자로 확인됐다는 것.

 
저작권자 © 통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아는 사람만 아는 이 봄나물, 한번 먹으면 못 잊습니다

[우리 집 봄나물 레시피] 밥 한 공기 '순삭' 하게 만드는 쭉잎나물

22.05.13 05:58l최종 업데이트 22.05.13 05:58l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봄이 오면 맨 먼저 우리 집 밥상부터 달라진다.
▲  봄이 오면 맨 먼저 우리 집 밥상부터 달라진다.
ⓒ unsplash

관련사진보기


봄의 끝자락 5월이다. 세상이 온통 푸르고 생기가 넘친다. 봄이 오면 맨 먼저 우리 집 밥상부터 달라진다. 겨울 추위에 땅속에서 영양분을 저장해 놓았던 새싹이 돋아나 싱싱한 나물이 되어 우리의 입맛을 돋워 준다. 겨울 동안 움츠렸던 우리 몸은 봄이 오면 춘곤증으로 피곤하고 나른하다.

봄은 생명의 계절이다. 피곤으로 지친 우리 몸을 위해  비타민C가 듬뿍 들어 있는 봄나물로 밥상을 차린다. 봄나물은 예전 임금님 수라상에도 자주 올렸던 음식이다. 봄나물은 우리 몸에 이로운 효능이 많다. 쌀이 귀하고 가난하게 살았던 우리 조상들에겐 봄에 나오는 나물들이 구황 식품이었다. 각종 나물에 곡식은 조금만 넣어 죽을 끓여 먹으며 여러 식구가 보릿고개를 넘겼던 시절도 있었다. 

봄이 온다는 말만 들어도 마음부터 설렌다. 봄에 만나는 꽃들도 많지만 우리가 좋아하는 먹거리 나물들이 산과 들에는 지천으로 널려 있다. 들에 나오는 식물들은 독성이 있는 것만 빼고는 거의 나물로 먹을 수 있는 것들이다. 그러나 익숙하지 않다는 이유로 매번 먹는 것만 챙겨 먹게 된다. 
 

봄나물로 가득 찬, 향긋한 식탁  추위가 가시고 2월이 지나면 맨 먼저 우리 식탁에 올라오는 나물이 냉이와 달래다. 독특한 향과 몸에 좋은 효능이 많다. 냉이, 달래를 밥상에 올리면서 봄은 시작된다. 그다음으로 돌나물도 우리 집 식탁에 빠지지 않는다. 돌나물을 사다가 싱싱할 때 곧바로 된장 고추장과 마늘 참기름 한 스푼 넣어 버무려 밥을 비며 먹으면 이 또한 별미다. 겨울 내내 김장 김치만 먹던 밥상은 싱그러운 봄빛으로 물든다.


사람도 저마다 향기가 다르 듯 봄에 나오는 나물들도 각기 독특한 저마다의 향기를 지니고 있다. 참 신기하고 오묘하다. 놀랍기만 하다.

각종 먹거리들이 많아지고 봄이 오기 시작하면 나는 재래시장을 자주 간다. 오늘은 무슨 나물이 나왔을까? 시장에 가면 온통 푸르른 나물 종류가 많다. 그래서 기분마저 좋아진다. 우리가 가장 선호하는 쑥에서부터 쌉싸름한 머위 나물, 향이 독특한 돌나물까지. 새로운 나물이 나오면 반가워서 사가지고 온다. 

쑥이 연할 때는 도다리쑥국을 한 번이라도 끓여 먹어야 섭섭하지 않다. 미나리는 우리에게 친숙한 나물이다. 나는 미나리, 머위, 새발 나물을 조금씩 사 가지고 와 매끼 바꾸어 가며 나물들을 살짝 삶아 무쳐서 밥상에 올린다. 봄에 나오는 나물과 밥을 먹으면 마치 봄을 먹는 것 같은 생각에 마음이 흐뭇하다. 

4월이 지나고 오월이 오면서는 산나물이 나오기 시작한다. 특히 강원도에서 나오는 나물들을 많은 사람들이 즐긴다. 곤드레는 나물밥을 해서 먹고 곰취는 생으로 쌈을 싸 먹기도 한다. 그 향이 너무 좋아 손가락으로 엄지 척을 하면서 먹는다. 친근한 나물 고사리가 나오고 영양이 듬뿍 들어 있는 두릅도 우리 밥상에 빠지지 않는 봄나물이다.

두릅은 먹는 방법이 다양하다. 우리집의 경우, 살짝 데쳐 숙회로도 먹고 찹쌀가루 무쳐 튀김도 해 먹고 장아찌를 담가 저장해 놓고 먹고 있다. 이처럼 나물 종류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우리 집에서 제일 좋아하는 나물은 따로 있다.

요즘은 그 나물을 만나기가 어렵다. 예전에는 그래도 시장에 가면 더러 나왔는데, 지금은 찾기가 어렵다. 그 나물은 경상도에서는 참죽나물이라고 하고, 전라도에서는 쭉나무 쭉잎이라 부른다.

아는 사람만 아는 이 맛
 
큰사진보기참죽나물 무침. 유튜브 '엄마가아들에게Mom's recipe' 채널 영상 갈무리. 관련 영상 : https://youtu.be/ChmJPIxFyCE
▲  참죽나물 무침. 유튜브 "엄마가아들에게Mom"s recipe" 채널 영상 갈무리. 관련 영상 : https://youtu.be/ChmJPIxFyCE
ⓒ 유튜브 엄마가아들에게

관련사진보기

 
쭉잎나물은 아는 사람만 안다. 예전에는 시골 마을에 쭉나무가 더러 있었다. 쭉잎은 향이 정말 독특하다. 그런데 쭉잎은 고추장에 넣어 장아찌를 해도 맛이 그만이고 살짝 데쳐 찹쌀 풀에 적셔 말린 뒤 튀겨 먹으면 어디에서도 맛보지 못하는 독특하고 맛있는 음식이 된다. 

우리 집은 간단하게 쭉잎을 사다가 끓는 물에 소금 조금 넣고 살짝 데쳐, 된장 고추장에 참기름 듬뿍 넣고 깨소금 마늘에 무쳐 먹는다. 종종 먹었던지라, 지금은 같이 살지 않는 딸들도 쭉잎나물 추억을 가지고 있다.

또 다른 요리도 있다. 쭉잎을 살짝 데친 후 물기를 꼭 짠 뒤 햇볕에 말린다. 바삭바삭 말린 후 줄기는 떼어 내고 잎만 프라이 팬에 기름을 두르고 바삭하게 볶아내는 것이다. 맛소금 약간 넣고 통깨와 참기름도 조금 넣어 접시에 담아내어 밥을 비며 먹으면, 밥도둑 반찬이 된다.

마지막으로, 쭉잎 장아찌도 빼놓을 수 없다. 쭉잎 장아찌를 만드는 것은 의외로 쉽다. 

1. 어린 쭉나무를 사다가 씻어 소금물에 30분쯤 담아 살짝 숨을 죽인다.
2. 다음에는 건져 물기를 뺀다.
3 매실액과 고추장을 동량 넣어 잘 섞는다.
4. 절여 놓은 쭉잎을 그릇에 차곡차곡 담아 고추장 양념 물을 붓는다.
5. 돌이나 무거운 걸로 눌러 놓고 2~3일 후에 먹으면 맛있는 장아찌가 된다.

남편과 내가 제일 좋아하는 나물이 바로 이 쭉잎나물(참죽나물)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 나무가 귀해서 그런지 이맘때 만나기가 어렵다. 쭉잎은 어려서 잠깐 며칠 사이에 나오는 잎이다. 나뭇잎이 크면 질기고 뻣뻣하고 맛이 없다. 올해는 정말 놓치지 않고 쭉잎나물을 해 먹으려 다짐한다.  

오랫동안 써왔던 마스크도 실외에서는 벗고 우리의 소중했던 일상이 돌아오고 있는 기쁜 날들이다. 봄 기운 가득한 밥상을 차려, 코로나19로 힘들었던 마음을 멀리 보내고 활기차고 행복한 나날을 채우길 바라본다. 봄은 우리에게 선물 같은 계절이다. 우리도 힘차게 한번 살아보자. 봄은 축복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기자의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북한 코로나 확진자 35만명 발생, 지금까지 6명 사망

김정은, 선제적 봉쇄 주문...백신 미접종에 의료 인프라 취약해 외부 지원 없이 극복 어려울 듯

이재호 기자  |  기사입력 2022.05.13. 07:57:02 최종수정 2022.05.13. 08:08:53

 

북한 내 코로나 확진자가 약 35만 명 정도 발생했으며 이 중 현재까지 6명이 사망한 것으로 드러났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선제적 봉쇄를 통해 전파를 차단하겠다고 밝혔지만, 실제 이같은 조치가 전파력이 강한 오미크론 변이에 유효한 대책이 될지는 미지수다.

13일 북한 관영매체 <조선중앙통신>은 김 위원장이 12일 국가비상방역사령부에 방문해 전국적인 코로나 19 전파 상황을 점검했다고 보도했다.

통신은 "4월 말부터 원인을 알 수 없는 열병이 전국적 범위에서 폭발적으로 전파확대되어 짧은 기간에 35만여 명의 유열자가 나왔으며 그중 16만 2200여 명이 완치되었다"고 밝혔다.

이어 통신은 코로나 확진자가 있다고 공개했던 12일 하루에만 북한 전역에서 1만 8000여 명의 유열자가 새로 발생했다며 "현재까지 18만 7800여 명이 격리 및 치료를 받고 있으며 6명(그중 'BA.2' 확진자 1명)이 사망했다"고 전했다.

김 위원장은 이에 대해 "우리가 이미 세워놓은 방역체계에도 허점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며 "전국의 모든 도, 시, 군들에서 자기 지역을 봉쇄하고 주민들의 편의를 최대로 보장하면서 사업단위, 생산단위, 거주단위별로 격페 조치를 취하는 사업이 가지는 중요성"에 대해 강조했다. 

 

그는 "보건부문과 비상방역부문에서는 유열자들의 병 경과 특성들을 치밀하게 관찰하고 전문성 있는 지도서의 요구에 맞게 과학적인 치료방법과 전술을 전격적으로 따라 세우며 국가적인 의약품보장대책을 더욱 강화하여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와 함께 통신은 김 위원장이 "인민들이 국가의 비상조치들을 정확히 이해하고 그 실행에서 고도의 자각성을 발휘하도록 정치선전사업을 공세적으로 벌릴 데 대하여 말씀하시었다"며 "각급 비상방역단위들에서 자기 지역, 자기 단위의 방역사업에 대한 작전과 지휘능력을 높이며 제기되는 정황에 기민하게 대응할 수 있는 준비를 충분히 갖출 데 대한 문제, 방역사업에서 신속성과 과학성을 보장할 데 대한 문제"등 구체적 실행 과업을 제시했다고 전했다.

김 위원장은 "국가비상방역사령부 일군들이 당과 혁명이 부여한 엄숙한 사명감과 책무를 깊이 자각하고 당중앙위원회 제8기 제8차 정치국회의정신의 요구대로 과감한 용기와 실천력으로 악성전염병의 전파근원을 완벽하게 차단, 소멸하며 방역대전의 승리의 돌파구를 앞장에서 열어나가리라는 기대와 확신을 표명"했다. 

김 위원장이 코로나 19 극복을 위한 대책을 마련하고 다양한 방안을 지시했으나 의료 체계가 열악하고 백신 접종이 전혀 이뤄지지 않은 현 상황에서 효과적인 바이러스 차단 및 극복이 이뤄지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이에 일부에서는 북한이 백신과 치료제를 포함한 국제사회의 도움을 받기 위해 확진자 수를 공개하는 등 코로나 19 상황을 공식적으로 외부에 알리기 시작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특히 북한의 코로나 19 확진자가 지난 4월 말부터 발생했고 그 규모가 수십만 명으로 늘어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발생 이후 열흘이나 지난 시점에서 이를 공개한 것을 두고, 외부의 도움 없이 이를 극복하기가 쉽지 않다는 현실적 판단이 작용한 것 아니냐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 

정부는 북한의 코로나 상황에 대해 가능한 한 적극적으로 지원에 협력하겠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통일부는 12일 밝힌 입장 자료에서 "더 이상 사태가 확산되지 않고 조기에 진정되기를 바란다"며 "북한 주민에 대한 지원과 남북간 방역·보건의료 협력은 인도적 차원에서 언제라도 추진할 수 있다는 입장이며, 앞으로 남북 간 또는 국제사회와 협력이 필요한 사항이 있다면 적극 검토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권영세 통일부 장관 후보자 역시 이날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서 열린 인사 청문회에서 "북한의 어려운 상황을 적극적으로 도울 의향이 있다. 관련한 예산도 통일부에 편성 돼있다"며 "협력할 수 있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정권 바뀌자 53조 초과세수? “분식회계 아닌가”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22/05/13 08:34
  • 수정일
    2022/05/13 08:34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 기자명 정민경 기자 
  •  
  •  입력 2022.05.13 07:56
  •  
  •  댓글 0
 
 

[아침신문 솎아보기] 또 민주당 성비위…근본 해결책 촉구
그동안 성비위 사건에 ‘2차가해’하거나 옹호했던 모습 문제
초과세수 53조에 “새 대통령 쓸 비용을 감춰놨다가 꺼내는 것이냐”

더불어민주당이 3선 중진 박완주 의원을 당내 성비위 사건으로 제명했다. 안희정 전 충남지사, 오거돈 전 부산시장,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 등 사례에 이어 유사한 사태가 반복되고 있어 비판을 받고 있다. 언론은 민주당 성비위 사건을 두고 20일밖에 남지 않은 6·1 지방선거에 ‘초비상’이 걸렸다고 보도했다.

주요 일간지들은 박완주 의원의 성비위 사건에 대부분 사설을 내놨는데, “박 의원을 국회 윤리특위에 신속하게 제소해 의원 제명을 추진하고 수사기관에 고발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민주당에서 반복되는 성비위 사건은 근본적이 해결이 되지않고 있음을 보여준다는 지적도 여러 신문에서 나왔다.

정부가 59조4000억원 규모의 2차 추가경정예산안을 확정했는데 초과세수가 53조3000억원으로 집계돼 논란이다. 오차율이 너무 심해 “정부가 바뀌는 과정에서 의도적으로 세수를 적게 잡은 게 아니냐”는 의심이 나오기도 한다. 경향신문은 “정부가 분식회계한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온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다음은 13일 주요 종합 일간지 1면 머릿기사 제목이다.
경향신문 “민주당, ‘성비위’ 박완주 제명…‘죄송’”
국민일보 “‘소상공인에 최대 1000만원’ 추경안 의결”
동아일보 “여야 ‘17곳 중 9곳 승리’ 최대 승부처 수도권 총력”
서울신문 “코로나 뚫린 北 또 탄도미사일”
세계일보 “손실보상 수십조 시중에…물가 어쩌나”
조선일보 “3선 박완주 제명, 보좌진 ‘더 있다’”
중앙일보 “선거빚 갚으려고 뇌물받고 선거비 만들다 감옥간다”
한겨레 “초과세수 높게 잡아, 59조 ‘역대급 가불 추경’”
한국일보 “‘형식적 협치보다 성과’ 직진 택했다”

▲13일 주요일간지 1면 모음.
▲13일 주요일간지 1면 모음.

또 민주당 성비위…
“국회 윤리특별위원회에 제소” 등 근본 해결책 촉구

더불어민주당이 12일 박완주 의원의 성비위 사건을 밝히고 박 의원을 제명했다. 민주당이 박 의원을 국회윤리특별위원회에 직접 제소하지 않고 ‘국회 인권센터’에 보내기로 하면서 제 식구 감싸기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이 사건은 민주당 중앙당에 제보가 접수돼 당 윤리감찰단이 자체 조사를 벌였다고 한다.

신현영 민주당 대변인은 12일 박 의원 제명을 발표했다. 신 대변인은 “당내에서 성비위 사건이 발생해 당 차원에서 처리한 것”이라며 “2차 가해 방지 및 피해자 보호를 위해 상세한 내용은 밝히지 않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윤호중·박지현 공동비대위원장은 이날 저녁 피해자와 가족, 국민에게 사과했다. 이들은 “성비위는 철저한 무관용 원칙을 견지하고, 예외 없이 최고 수준의 징계를 하겠다”며 당헌·당규 개정과 재발방지 대책도 더욱 철저히 세우겠다고 밝혔다.

▲13일 중앙일보 12면.
▲13일 중앙일보 12면.

경향신문은 이날 사설에서 “사건이 터질 때마다 되풀이한 자성과 사과는 모두 빈말이었던 건가. 민주당의 맹성을 촉구하지 않을 수 없다”며 “민주당의 사과는 이전에도 여러 번 있었다. 중요한 것은 실천이다. 민주당은 우선 박 의원을 국회 윤리특별위원회에 제소하고, 보다 실효성 있는 대책을 내놔야 한다”고 전했다.

박 의원의 성비위 사건에 민주당의 대응도 잘못됐다는 지적이 대부분이다.

국민일보는 이날 사설에서 “성폭력 행위가 당에 접수된 게 지난해 말인데 5개월이 지나서 제명키로 한 것은 늦어도 너무 늦은 조치”라며 “성폭력 신고가 접수됐는데도 박 의원은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대선때까지 2개월여를 정책위의장으로 활동한 후 대선 패배에 책임을 지고 지도부가 교체될 때 함께 물러났다”고 지적했다. 또한 국민일보 역시 “박 의원을 국회 윤리특위에 신속하게 제소해 의원 제명을 추진하고 수사기관에 고발해야 한다”고 전했다.

▲13일 국민일보 사설.
▲13일 국민일보 사설.

동아일보는 이날 사설에서 “피해자가 누군지, 언제 어떤 일이 벌어진 것인지를 놓고 불필요한 추측이 난무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면서도 “다만 대선 과정에서 사건을 무마하거나 쉬쉬하려 했던 건 아닌지 밝혀져야 한다”고 짚었다.

서울신문은 이날 사설에서 “당에서 제명하는 데 그칠 게 아니라 국회 윤리특위 제소를 통해 의원직에서 제명하는 등 철저하게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라 했다. 한국일보도 이날 사설에서 “박 의원 성비위 사건은 제명으로 끝날 일이 아니다. 민주당도 제명 처분과 함께 국회 차원의 징계를 요청한다는 계획이다. 국회 윤리특위는 민주당 자체 조사결과를 토대로 엄중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전했다.

▲13일 서울신문 사설.
▲13일 서울신문 사설.

박완주 의원 외 또 다른 성비위 사건이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12일 민주당보좌진협의회는 “최강욱 의원의 발언 문제가 불거진 이후 많은 제보가 들어왔다”며 “차마 공개적으로 올리기 민망한 성희롱성 발언들을 확인했고 더 큰 성적 비위도 제보받았다”고 밝혔다.

조선일보는 이날 1면 기사 제목을 “3선 박완주 제명… 보좌진 ‘더 있다’”라고 뽑았다. 민주당 보좌진 협의회는 이날 입장문에서 “더 큰 성적 비위 문제도 제보받았다”며 진상 조사를 요구한 것에 대해 “다른 정치인들의 성추행 사건이 더 드러날 경우 6·1 지방선거를 앞두고 파문이 확산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썼다.

▲13일 조선일보 1면.
▲13일 조선일보 1면.

 

그동안 성비위 사건에 ‘2차가해’하거나 옹호했던 모습 문제

조선일보는 이날 사설에서 “박 전 시장이 극단적 선택을 한 뒤 민주당 의원들은 박 전 시장을 ‘맑은 분’, ‘뜻을 잇겠다’고 칭송하고 피해자를 지속적으로 ‘피해호소인’이라고 부르며 모욕했다”며 “작년 보궐선거에선 ‘당 소속 선출직 공직자의 중대한 잘못으로 재·보궐선거를 실시하게 된 경우 해당 선거구에 후보자를 추천하지 않는다’는 당헌을 고쳐서 후보를 냈다. 가해자를 옹호하고, 진심으로는 전혀 반성하지 않으니 민주당 내 성범죄가 계속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13일 조선일보 사설.
▲13일 조선일보 사설.

중앙일보는 이날 사설에서 “민주당은 성비위 사건이 터질 때마다 진상을 은폐하고 무마하려 한 의혹을 사 왔다. 성비위 자체도 문제지만 잘못을 묻고 넘어가려 한 고질적인 대처 방식이 더 문제”라며 “국회의원직을 박탈하고 엄정한 수사를 통해 법적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2차 가해 예방에도 전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전했다.

한겨레 사설 역시 “이런 상황은 민주당의 성폭력 근절 의지가 여전히 부족한 탓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며 “민주당은 지도부가 앞장서서 박 전 시장 사건의 피해자를 ‘피해호소인’이라고 불러 사실상 집단적 2차 가해를 저지른 바 있다. 여론이 악화하자 사과는 했지만, 2차 가해 제재 강화를 위한 당헌·당규 개정 논의는 대선 패배 이후 자취를 감췄다”고 지적했다.

이어 “민주당은 불과 얼마 전 안 전 지사와 박 전 시장 사건 피해자 지원단체가 2차 가해자로 지목해 공천 배제를 요구한 양승조, 변성완, 최민희 세 사람을 각각 6·1 지방선거에 공천 확정하기도 했다”며 “민주당의 다짐이 신뢰를 얻으려면, 안 지켜도 그만인 말 대신 단호하고 구체적인 근절방안을 내놓아야 한다”고 전했다.

정권 바뀌자 53조 초과세수? “정부의 분식회계 아닌가”

정부는 12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임시국무회의를 열어 59조4000억원 규모의 2차 추가경정예산안을 확정했다. 추경은 소상공인·민생·방역 지원에 36조4000억원, 지방재정 보강에 23조원을 쓰기로 했다. 소상공인·자영업자·중기업 손실보전금은 370만명에게 기본 600만원, 최대 1000만원을 지급하기로 했다. 기초생활수급자·차상위계층·한부모가정 등 270만가구에 가구당 최대 100만원의 생활안정자금을 지원하고 특수형태고용직·프리랜서 등에 고용안정지원금 100만원, 법인택시·버스 기사들에게 소득안정자금 200만원을 책정했다.

정부는 올해 초과세수가 53조3000억원으로 예상돼 국채를 발행하지 않고 추경을 편성할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2차 추경 재원 중 44조3000억원(74.6%)이 초과세수였다.

▲13일 서울신문 1면.
▲13일 서울신문 1면.

경향신문 사설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오차율이다. 정부가 바뀌는 과정에서 의도적으로 세수를 적게 잡은 게 아니냐는 의심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며 “올해 세입전망은 지난해 가을에 했고, 지난해 세수집계는 올해 초에 해서 양측 간에 시차가 있다. 그렇다면 세수 추이를 봐가며 세수전망을 적시에 수정했어야 옳다. 2년 연속으로 세수에서 막대한 오차를 기록한 재정당국을 누가 믿겠나”라고 비판했다.

이 사설은 “정부가 분식회계한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온다. 이는 재정당국이 세수 추계와 결산 등 과정을 공개하지 않는 탓이 크다”며 “재원이 부족하다는 재정당국의 주장에 정부 지원이 미뤄지면서 자영업자들이 무더기 폐업했다. 세수 예측에 오차가 발생한 이유를 반드시 규명해야 한다”고 썼다.

▲13일 경향신문 사설.
▲13일 경향신문 사설.

동아일보 역시 세수 53조 오차에 대한 사설에서 “‘새 대통령 당선인이 쓸 비용을 감춰놨다가 꺼낸 소지가 있어 보인다’는 김성환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의 지적에 기재부는 뭐라고 답할지 모르겠다”며 “예산의 기본인 세수 추계가 엉터리로 이뤄지는 한 나라 가계부를 짜임새 있게 운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비판했다.

한국일보 이날 사설 “정권 바뀌자 초과 세수 53조, 믿고 써도 되나”은 “정권이 바뀌자 떠오른 거액의 세수를 곧이곧대로 믿고 써도 되는지 불안하다. 정권 코드에 맞춰 기재부가 과하게 늘려 잡은 것이라면 잠시 국민을 속이고 빚만 남기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기재부가 초과 세수를 지나치게 부풀린 게 아닌지 우려스럽다”며 “추경의 필요성은 공감하나 먼저 쓰고 보자는 식이어선 곤란하다. 여당이 국채 발행을 피하려다 다른 우를 범하는 게 아닌지 우려된다”고 밝혔다.

▲13일 동아일보 사설.
▲13일 동아일보 사설.

기재부의 통계 오차를 비판하는 사설이 대부분이었던 한편 조선일보의 사설은 기재부가 문재인 정부 내내 거짓말을 하다가 새 정부가 출발하자 진실을 말하고 있다는 관점이었다.

조선일보 사설은 “새 정부가 출발하자마자 기재부는 거품 낀 고용 통계의 실상을 숨기지 않고 있는 그대로 설명했다. 당연한 일”이라며 “문 정부가 이념 편향의 목표에 꿰어 맞춰 자기들 입맛대로 취사 선택해온 가계소득 통계, 부동산 통계, 원전 경제성 평가 등도 바로잡아야 한다. 새 정부 정책은 정확하고 객관적이고 솔직한 통계 위에서 만들어야 한다”고 썼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5.18조사위, ‘광주역 발포 현장 지휘 있었다’ 진술 확보

극우세력에 의해 ‘북한군’으로 몰렸던 광주 시민군, 42년만에 등판 “지만원 사과해라”

 
송선태 위원장이 12일 오후 서울 중구 5·18 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의에서 열린 5.18 진상규명 조사위 대국민 보고회에서 경과 보고를 하고 있다. 2022.05.12 ⓒ민중의소리 
 
1980년 5월 광주에서 공식 발포 명령이 내려지기 전에 있었던 광주역에서의 집단 발포가 우발적으로 벌어진 것이 아니라 현장 지휘관의 명령에 따른 것이라는 다수의 증언이 확보됐다.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조사위)는 12일 ‘대국민 보고회’를 열어 이 같은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최근 조사위는 1980년 5월 20일 광주역 일대 발포와 5월 21일 도청 앞 집단 발포에 대해 집중적으로 조사를 벌였다. 두 곳에서 벌어진 발포는 계엄군의 공식적인 발포 명령, 즉 ‘자위권 발동’ 결정보다 하루 먼저 발생했다는 점에서 더 많은 의문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애초 5월 20일 광주역 발포는 박모 대대장 등이 시위대의 차량 공격을 저지하기 위해 차량의 바퀴에 대고 권총을 발사한 데서 비롯됐다고 알려졌는데, 이는 박 대대장 본인의 수기 기록 등에 따른 것이었다.

하지만 조사위가 현장 작전 참여 계엄군 530명에 대한 방문 조사 등을 벌인 결과, 그동안 확인되지 않았던 새로운 정황을 포착했다. 당시 최모 제3공수여단장이 광주역 현장에서 지휘했고, 최 여단장이 무전으로 발포 승인을 요청했다는 진술 등을 확보한 것이다.

조사위는 “5월 20일 광주역 일원에서 집단발포 당시 최 여단장이 권총 3발을 공중에 발사하는 등의 현장지휘가 있었다는 진술을 확보하고 진위 여부를 확인 중에 있다”며 “현장지휘관의 독자적 판단에 의한 발포가 아니라 별도의 명령계통에 의해 광주역 집단발포가 있었는지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밖에 광주역 주변 건물 옥상에서 M60 기관총 위협사격과 함께 광주역 일원의 광범위한 지역에서 시위대열을 향한 발포뿐만 아니라 주택가, 상가에도 발포가 있었다는 진술도 나왔다.

5월 21일 도청 앞 집단발포와 관련해선 “중대장의 명령에 따라 시위대를향해 조준사격을 했다”는 등의 진술을 확보하고 사실을 파악하는데 조사역량을 집중하고 있다고 조사위는 전했다. 이 과정에서 당시 현장에 있었던 계엄군 중 일부는 “군인은 명령 없이는 어떤 경우도 발포할 수 없다”, “군인은 생명의 위협을 느끼더라도 명령 없이는 발포할 수 없다는 것은 기본 상식”이라고 증언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12일 오후 서울 중구 5·18 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의에서 열린 5.18 진상규명 조사위 대국민 보고회에서 광수 1호로 지목된 시민군 김군인 차복환씨가 나와 증언을 하고 있다. 2022.05.12 ⓒ민중의소리

조사위는 광주 금남로의 페퍼포그 차량에서 기관총을 들고 있다가 한 언론사 기자에 의해 사진이 찍힌 시민군도 특정했다. 지만원 씨 등 극우세력은 이 사진 속 시민군을 ‘광수1호’라고 부르며 광주에 침투한 북한 특수군이라고 주장해왔다. 이런 주장은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북한 개입설의 근거로 작용하기도 했다. 최근 다큐멘터리 영화 ‘김군’이 이 시민군을 추적하면서 실제 인물을 둘러싼 혼란이 가중되기도 했다.

조사위는 사진 속 인물은 북한군이 아니라 현재 평범한 중년의 가장으로 살고 있는 차복환 씨로 판명됐다고 밝혔다. 또한 다큐에서 추적한 ‘김군’은 차씨가 아니라 효덕동에서 발생한 민간인 집단학살의 사망자인 ‘63년생 자개공 김종철’이라고 밝혔다.

조사위는 지난해 사진 속 인물을 자처하는 제보가 접수돼 조사위가 해당 사진을 촬영한 기자와 다큐 제작자 등을 상대로 조사를 벌여 제보한 인물이 사진 속 시민군인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차씨는 이날 보고회에 직접 참석했다. 차씨는 “작년까지만 해도 제가 ‘광수1호’로 돼있다는 걸 잘 모르고 있었다”며 다큐를 통해서 확인하게 됐다고 밝혔다. 그는 사진이 찍혔던 당시 상황에 대해 “나중에 알고봤더니 기자가 찍었다고 하더라. 당시 그 분이 특이하게 저만 찍더라. 찍지 말라고 해도 계속 따라다니면서 사진을 찍길래 엄청 화가 나서 째려보고 있었는데 그게 찍힌 거였다”고 설명했다.

당시 머리에 두른 띠에 쓴 글자는 ‘석방하라 김군’이었다고 그는 밝혔다. 김군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이름을 줄인 말이었다. 그는 “그때 당시 전남 쪽에선 김대중 씨를 우러러 보지 않았나. 그래서 이름 석자를 쓰기가 좀 그랬다”며 줄여서 ‘김군’이라고 쓴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입었던 옷은 경찰들이 입는 시위진압복이었다. 그는 “’죽어도 좋다’는 서약서에 서명을 했다. 168명이 한 걸로 기억한다”며 서명한 사람에 한해서 전라남도경찰국에서 옷을 지급받았다고 설명했다.

차씨는 “지만원 씨가 저를 ‘광수1호’로 만들었더라. 제 명예가 훼손된 것에 대해 사과를 꼭 받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지씨가 사과하지 않을 시 법적 조치도 검토하겠다고 덧붙였다.
 
송선태 위원장이 12일 오후 서울 중구 5·18 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의에서 열린 5.18 진상규명 조사위 대국민 보고회에서 경과 보고를 하고 있다. 2022.05.12 ⓒ민중의소리

이 밖에 조사위는 ‘무명열사’의 신원을 확인하는 성과도 냈다. 조사위는 1980년 5월 21일 14시께 도청 앞 집단 발포 현장에서 조준사격에 의해 장갑차 위의 청년이 사망한 사건과 관련해 피해자 김모 씨의 신원을 확인했다. 김씨는 다른 이름으로 오인돼 매장됐다가, 그 인물의 생존이 확인돼 '무명열사'로 분류됐고, 이번에 신원이 확인된 것이다.

2019년 12월에 출범한 조사위는 3년 안에 조사를 마치고 그 후 6개월 안에 종합보고서를 제출한다는 계획을 세운 바 있다. 하지만 조사위는 “기존계획의 목표치 대비 조사 달성율은 전체적으로 50% 선에 머물고 있다”고 평가했다.

특별법 개정으로 조사위가 처리해야 할 조사 과제가 대폭 늘어났을 뿐만 아니라, 사건 당시 작성된 군 기록 등이 사후에 변조된 정황이 많아 진실을 재구성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조사위는 특히 “전두환, 노태우는 이미 사망했고, 정호용, 이희성 등 당시 내란집단의 핵심인사들은 진술을 거부하거나 소극적으로 임하고 있다”며 답답해했다.

이에 조사위는 ‘상향식’ 조사방법으로 진실을 규명해나가고 있다고 밝혔다. 조사위는”5.18이 사회적으로 갈등과 분열을 반복케 하고 정치적, 이념적으로 악용되는 악순환을 끊어내고 양심적 증언과 회복적 정의를 실천하고자 한다”며 “80년 당시 격랑에 휩쓸려 부당한 명령에 의해 5.18민주화운동에 연루돼 아픈 상처를 간직하고 계신 분들의 용기있는 증건과 제보를 기다리고 있다”고 호소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CPTPP 가입, 국민적 저항 맞는다

  • 기자명 조혜정 기자
  •  
  •  승인 2022.05.12 18:13
  •  
  •  댓글 0
 
 
 

‘CPTPP 가입 저지 범국민운동본부’ 출범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을 반대하는 국민 저항이 거세질 전망이다. 농업, 노동, 먹거리, 소비자, 인권, 정당 등 시민사회단체들이 CPTPP 가입 저지를 위해 공동행동을 시작한다고 선언했다.

CPTPP는 일본과 호주·캐나다·뉴질랜드·베트남 등 아시아태평양지역 11개국이 참여한 다자간 무역협정이다. CPTPP 개방 수준은 농축산물 96.3%, 수산물은 100% 관세 철폐로 ‘전면 개방’ 수준이다.

▲ 사진 : 뉴시스
▲ 사진 : 뉴시스

문재인 정부가 임기 말 추진하려 했던 CPTPP 가입 신청이 윤석열 정부로 넘어왔고, 윤 정부는 110대 국정과제를 발표하며 CPTPP 가입 추진 의사를 밝혔다.

이들 단체들은 12일 오전 서울 종로 서울글로벌센터 국제회의장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CPTPP 가입 저지 범국민운동본부’ 발족을 알리고, “농축수산업 포기, 식량주권 포기, 검역주권 포기, 국민건강권 훼손하는 CPTPP 가입이 졸속적이고 밀실협상으로 추진되고 있다”면서 “이를 저지하기 위한 행동을 시작한다”고 밝혔다.

먼저 박석운 민중공동행동 공동대표가 운동본부 발족의미에 대해 말했다. 박 공동대표는 “CPTPP 가입을 위한 절차를 밟으며 통상절차법에 따라 산업별영향평가를 했는데 그 결과가 종이 한 장뿐이었다. 엄청난 통상협정을 하면서 정부 당국도 CPTPP에 왜 가입해야 하는지 속 시원하게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무모하고 졸속적인 협상이 아닐 수 없다”고 비판한데 이어, “농축어민들을 비롯해 직접적인 피해자가 될 국민들의 동의가 있어야 가입할 수 있다는 걸 분명히 하며, 가입 저지를 위한 범국민운동을 펼치겠다”고 밝혔다.

“협상은 필요없다, 가입 ‘저지’가 목표”

농·어민 단체 대표들도 참석해 CPTPP 가입에 대한 분노를 토했다.

전국농민회총연맹 하원오 의장은 “우린 CPTPP ‘저지’가 목적이다. ‘협상’은 필요없다”고 단호히 말했다. 그는 “지난 30년간 신자유주의 FTA를 체결하면서 농업만은 지키겠다고 했지만 CPTPP 앞에 붙은 ‘CP’라는 단어처럼 점진적으로, 포괄적으로 농업은 하나씩 무너져 왔다”면서 CPTPP 가입도 예외가 아닐 것이라고 했다.

기존 FTA보다 높은 수준의 개방을 요구하는 CPTPP에 가입하기 위해선 기존 가입국인 11개 국가 모두의 승인을 얻어야 하는데, 이 말은 이들 국가의 요구 조건을 수용해야 한다는 뜻이다. 쌀 수입 개방에 대한 요구를 막지 못할 수 있다. 일본이 가입 당시 쌀 관세를 유지하기 위한 조건으로 호주에 무관세 쿼터 8400톤을 제공한 선례가 있다.

전국연안어업인연합회 김종식 회장은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살아가고 있는 어업인들에게 CPTPP 가입은 청천벽력과 같은 일”이라고 했다. CPTPP 협정문은 ‘수산보조금 지급을 규제’하는 방안을 담고 있고, “밀려오는 수입 수산물로 인해 생업을 유지할 수 없을 것이 뻔하다”는 것이다.

▲ 12일 서울 종로구 글로벌센터에서 열린 CPTPP 가입 저지 범국민운동본부 발족 기자회견.
▲ 12일 서울 종로구 글로벌센터에서 열린 CPTPP 가입 저지 범국민운동본부 발족 기자회견.

수입 수산물은 국민의 건강권까지 위협한다는 비판도 이어졌다. CPTPP 의장국인 일본은 CPTPP 가입 의사를 밝힌 대만에게 방사능 오염의 영향이 남아 있는 후쿠시마산 농수산물 수입을 요구했고 대만은 이를 받아들여야 했다. ‘가입국 만장일치’라는 가입조건을 악용해 일본이 우리에게도 후쿠시마산 농수산물의 수입 재개를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 때문이다.

전국먹거리연대 조완석 상임대표 “우리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지는 것은 국가의 의무다. 일본 후쿠시마산 식품 수입 재개는 국민 건강권을 불안하게 만든다”고 꼬집은 데 이어 “CPTPP 국가 간 수입 검역 규정 완화 역시 이를 부추긴다”고 덧붙였다.

CPTPP의 동식물 위생·검역(SPS) 규정은 검역 장벽을 대폭 낮추게 만든다. 그동안 동식물 전염병이 발생한 ‘국가’에 대해 수출입을 제한해 오던 것을 ‘국가’가 아닌 ‘구획(농장)’으로 규정하면서, 가축에 질병이 걸리거나 식물에 병해충이 발생한 ‘농장’이 아니라면 그 국가에서 수입되어 오는 것은 막을 수 없게 된다.

조 상임대표는 “먹거리 위기와 농업 위기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면서 ‘식량주권 확보’도 강조했다. 그는 “코로나 팬데믹 위기에서 식량 수출국의 통제를 통해 우리는 식량주권 확보가 얼마나 중요한지 느꼈다”면서 “우리 농업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할 때만 국민 먹거리 보장이 가능하다는 당연한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하며, 무역시장 개방이 아닌 식량자급률 확대로 농어민의 삶을 보호하고 우리사회 먹거리 취약계층 모두를 대상으로 하는 먹거리 정책의 공공성을 강화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14년 전, 범국민 행동을 다시 한번

범국민운동본부에 이름을 올린 각계각층에서 CPTPP 가입 저지를 위해 앞장서겠다는 결심이 이어졌다.

김은형 민주노총 부위원장 “기후위기로 인해 산업전환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CPTPP가 노동자 생존에, 노동환경에, 경제산업 전반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정부는 어떤 대응도 내놓지 못하고 있다”면서 “노동자들도 CPTPP 가입 저지 투쟁에 함께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국쌀생산자협회 김명기 회장은 “정부가 국민을 보호할 줄 알아야 하는데 오히려 국민의 먹거리를 해치려고 하고 있다. 정권만 잡고 휘두르면 되는 줄 아는 이들에게 운동본부가 CPTPP에 대한 경각심을 심어주자”고 했고, 친환경무상급식풀뿌리연대 김홍배 공동대표는 “농업인, 노동자 생존권을 위협하는 것뿐만 아니라 자라나는 어린이와 국민 모두의 건강권을 위협하는 CPTPP 저지를 위해 투쟁하는 것은 물론, 학교급식법에 우리 농산물 사용 의무화 등 법 개정에도 적극적으로 앞장서겠다”고 힘을 보탰다.

진보정당에선 김재연 진보당 상임대표가 참석했다. 김 상임대표는 “‘CPTPP’가 낯설 수도 있지만 우리는 이미 14년 전, 이명박 정부 출범 100일이 안 돼 한미FTA 체결을 앞두고 전 국민 행동, 대정부 투쟁을 만들어낸 경험이 있다”면서 “모든 진보정당, 상식을 갖고 있는 건강한 야당과 함께 연대해 CPTPP를 막아낼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운동본부 발족과 함께 “농축수산업과 식량주권, 검역주권, 국민건강권”을 지키기 위한 CPTPP 가입 저지 범국민 투쟁이 본격 시작됐다. 범국민운동본부에 가입한 단체는 발족식 현재 101개다. 지역별 운동본부도 꾸려질 예정에 있다. 

운동본부는 출범과 동시에 CPTPP 가입 저지 범국민 서명운동을 시작하는 한편, 5월 말~6월 초 지역별 저지 행동에 이어 7월12일엔 범국민대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CPTPP 국민토론회(6.13)를 비롯해 민주당과 국회 해당 상임위 면담 등 국회를 압박하는 사업도 계획하고 있다.

경제동맹을 넘은 한미일 군사동맹

김재연 상임대표의 말대로 윤석열 정부 출범과 함께 거대한 무역협정 가입을 앞두고 14년 만에 범국민 저항이 일어날 참이다. 그러나 CPTPP 가입 저지 투쟁은 무역협정 저지 투쟁에 머물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한국의 CPTPP 가입을 둘러싸고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나라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일본 기시다 총리는 오는 7월 참의원 선거에서 압승해 전쟁과 무력 행사를 영구히 포기하고 전력을 보유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일본 평화헌법(9조)을 개정, 사실상의 군대인 자위대의 존재를 헌법에 담겠다는 뜻을 품어왔다. 헌법을 개정해 군사대국을 꿈꾸는 일본은 한일관계를 동시에 풀기 위해 CPTPP 의장국 지위를 활용해 한국의 CPTPP 가입을 승인하는 조건으로 후쿠시마산 수산물 수입 제한 조치 해제를 넘어 강제동원과 일본군‘위안부’합의 등을 문제 삼을 가능성도 크다.

일본과 신뢰 회복을 토대로 미래협력관계를 구축한다는 방침을 세운 윤석열 정부가 어떤 입장을 취할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CPTPP를 아시아태평양지역 경제 통합의 문제로만 볼 수 없는 이유는 또 있다.

CPTPP의 전신인 TPP는 2015년 미국이 아시아에서 영향력을 확장 중이었던 중국을 견제하고, 환태평양 국가 간 경제 협력을 강화할 목적으로 일본과 함께 주도해 출범한 협정이다. 그러나 2017년, 보호무역주의를 주창한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하며 미국은 TPP에서 탈퇴했다. 이후 일본이 주도해 CPTPP가 출범한다. 그리고 미국이 CPTPP 복귀에 유보적인 사이 중국이 지난해 9월 CPTPP 가입을 신청했다.

중국은 미국이 대중국 포위를 위한 신냉전을 추구하며 경제적 압박을 가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2022년 1월 한중일을 중심으로 한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까지 발족하며 인도태평양지역에서 경제적 영향력을 키우고 있다.

반면 미국은 이 지역에서 주도권을 상실할 것을 우려해 새로운 인도태평양지역 경제 틀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 출범을 주도하며 한국을 비롯해 일본, 호주 등의 참여를 논의하고 있다. 중국과의 패권경쟁이 계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IPEF 역시 역내 동맹과 우방국들을 모아 중국을 견제하고 봉쇄하려는 대중국 포위망의 일환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목소리다.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은 “TPP의 각국 협상이 10년 정도 시간이 걸린 것을 감안했을 때 미국은 그 사이 CPTPP도 잘 활용하려고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일본이 주도하는 CPTPP에 한국은 가입하고 중국 가입은 반대를 예견해 볼 수도 있다.

CPTPP 가입도, IPEF 가입도 결국 미국의 대중국 포위망을 확대하기 위한 한미일동맹 강화로 활용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한미일 안보동맹 확장은 일본 군사화의 길을 더욱 쉽게 열어줄 수도 있다.

오는 20일부터 한국과 일본을 방문하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21일 윤석열 대통령과 한미정상회담을 갖고, 22~24일 일본을 방문한다. 한미일 정상이 어떤 그림을 그리느냐에 따라 광우병 촛불을 들었던 민중들의 저항의 파고가 달라질 전망이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