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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지난 100년간 세 번째 미국에 패배하다

  • 분류
    아하~
  • 등록일
    2022/04/12 09:54
  • 수정일
    2022/04/12 09:54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해외 시각] 미 대외정책을 장악한 세 과두세력 : 무기, 석유, 금융 산업

 

현재 우크라이나에서는 두 개의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자국의 독립, 또는 안보를 위한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재래식 전쟁, 그리고 미래의 세계 경제 패권을 둘러싼 미국/유럽 대 러시아/중국의 지정학적 경제 전쟁이다.

운용자산 10조 달러인 세계 최대의 사모펀드 블랙록의 CEO 래리 핑크는 투자자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코로나19에 이은 우크라이나전쟁으로 지난 30년간 지속돼온 세계화의 시대는 끝났다’고 진단했는데, 앞으로 세계의 운명은 적어도 10년 이상 지속될 미국/유럽 대 러시아/중국의 경제전쟁에 의해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1차 대전과 같은 패권 계승 전쟁의 막이 오른 것이다.

인류공동체와 지구생태계의 존속을 위협하는 기후위기 극복을 위해 모든 국가들이 힘을 합쳐도 부족한 판에 벌어진 이번 전쟁은 매우 비극적 사태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전쟁이 지속될 경우 최대의 피해자는 우크라이나, 그리고 독일을 비롯한 유럽이 될 것이라는 점 또한 확실하다. 

재래식 전쟁이 장기화될 경우 우크라이나는 이라크, 아프간, 시리아와 같은 국토 및 국가 파괴의 운명에 처할 수도 있다. 경제전쟁의 최대 피해자는 유럽이다. 자본 및 기술을 가진 유럽은 에너지 및 자원 부국인 러시아와의 경제 교류를 통해 상호 평화와 번영을 누릴 수도 있었음에도 미국이 일으킨 경제전쟁에 끌려들어가 러시아와 적대하게 됐기 때문이다.

이는 무엇보다도 나토라는 군사동맹 체제를 통해 미국에게 군사주권을 위임한 유럽의 대미 종속, 그리고 미국의 대외정책이 무기, 석유, 금융 산업이라는 특수 이익집단에 예속됐기 때문이다. 이번 전쟁의 배경을 미 대외정책을 장악한 세 과두세력의 전횡이라는 관점에서 분석한 마이클 허드슨 미주리대 명예교수의 글을 소개한다. 

이 글은 허드슨 교수의 개인 홈페이지(https://michael-hudson.com/) 2월 28일자에 "미국, 1세기만에 세 번째 독일을 꺾다(America Defeats Germany for the Third Time in a Century)"라는 제목으로 실려 있다. 편집자

현재 벌어지고 있는 신냉전은 무엇을 바꾸고, 무엇을 해결하려 하는 것인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누가 전쟁을 일으켰는지를 물어야 한다. 전쟁에는 언제나 두 편이 있기 마련이다. 공격하는 자와 공격당하는 자. 공격하는 자는 특정한 결과를 노리는 반면, 공격당하는 자는 자신에 유리하게 작용할, 의도치 않은 결과를 추구한다. 이번 우크라이나전쟁의 경우, 양 측은 두 가지의 의도하는 결과와 특별한 이익들을 추구한다. 

(소련이 붕괴한) 1991년 이후 미국은 언제나 능동적 군사 행동과 침략자의 역할을 맡아 왔다. 탈냉전 이후 (동유럽의) 바르샤바조약기구가 해체되면서 (서유럽의) 나토도 해체되는 것이 마땅했다. 그러나 나토가 해체되지 않으면서 지난 30년간 "평화 배당금"은 발생하지 않았다. 오히려 클린턴 행정부 이후 미국 행정부는 나토의 새로운 군사적 팽창을 계속함으로써 지난 30년간 일종의 "전쟁 배당금"을 독점했다. 서유럽 및 여타 미국의 동맹국들의 대외정책을 자신의 국내정치적 필요가 아닌 미국의 "안보 이익"에 종속시키도록 만든 것이다. 나토는 유럽의 대외정책 결정 기구가 되었으며, 심지어 유럽 동맹국의 국내 경제적 이익까지도 좌지우지 하는 위치에 올랐다. 

2014년 우크라이나 사태(신나치 그룹에 의한 마이단 쿠데타) 이후 친서방 우크라이나정부의 러시아계 주민에 대한 탄압을 통해 러시아를 전쟁에 끌어들인 최근의 사태 전개는, 나토 동맹국 및 여타 달러화 사용 위성국들에 대한 미국의 정치, 경제적 장악력이 약화되는 데 대한 미국의 우려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이들 나라들은 중국 및 러시아와의 교역 및 투자를 통해 커다란 경제적 이득을 추구하고 있었다. 

미국은 왜 전쟁을 일으켰나 

이러한 상황이 미국의 대외정책 목표와 이익에 얼마나 위협이 되는가를 이해하려면, 미국 정치와 그 이면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 다시 말해 미국 대외정책의 핵심은 겉으로 드러나는 정당정치를 통해서는 절대 알 수 없다는 사실 말이다. 미국의 대외정책은 연방정부의 상원의원이나 하원의원이 자신이 대표하는 주, 또는 자신의 지역구 유권자를 위하여 만드는, 그런 것이 아니다. 

미국의 경제 및 대외정책을 보다 현실적으로 관찰하려면 공화당이나 민주당의 정책이 아니라 군산복합체, 석유.가스 및 광산 업체, 그리고 은행 및 부동산 업체의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예산위원회, 외교위, 국방위 등의) 핵심 상원의원이나 하원의원들은 자신이 속한 주나 지역구보다는 자신에게 거액의 정치자금을 대주는 경제 및 금융 이익집단을 위해 움직인다. 오늘날 미국 정치에서 정치인들은 유권자가 아니라 정치헌금 집단을 대표하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위의 세 집단이 미국 정치의 가장 중요한 정치 헌금 집단을 구성하고 있다. 

이들 세 과두집단은 정치자금으로 상원과 하원을 매수하는 한편 국무부와 국방부에 자신들을 위한 정책 결정자들을 심어놓는다. 그 첫 번째가 군산복합체(Military-Industrial Complex : MIC), 즉 레이시온, 보잉, 록히드마틴 등의 무기제조업체들이다. 이들은 가능한 한 많은 주, 미국의 거의 모든 주에 공장을 세워 고용을 창출한다(그래야 의원들이 국방 예산 배정에 열성일 것이므로). 특히 국방 예산을 결정하는 핵심 의원의 지역구에는 더욱 신경을 쓴다. 이들의 경제적 기반은 무기 생산 독점에 따른 지대 추구(monopoly rent)로 특히 나토 국가들, 중동의 산유국들, 국제수지 흑자 국가들에 대한 무기 수출을 통해 막대한 이윤을 거둬들인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전쟁이 한창인 22일(현지시간) 노르웨이에서 펼쳐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연합훈련 '콜드 리스펀스'(Cold Response 2022)에서 핀란드와 스웨덴군 탱크가 보인다. 지난 14일 시작돼 내달 1일 종료되는 이번 훈련에는 나토 27개 회원국에서 약 3만 명의 병력이 참가하고 나토 비회원국인 핀란드와 스웨덴도 합류했다.ⓒ 로이터=연합뉴스

러시아의 침공 소식과 함께 이들 무기제조업체의 주가가 치솟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무기 제조비용에 일정 비율의 이윤을 무조건 보장해주는 "펜타곤 자본주의" 하에서 전쟁 발발은 곧 엄청난 무기 생산, 즉 막대한 이윤 창출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미국의 무기제조업체는 캘리포니아 주와 워싱턴 주에 밀집해 있으며, 따라서 이들 지역의 의원 및 군부 친화적인 남부 주들의 의원들이 전통적으로 군산복합체를 대변해 왔다. 이번 전쟁으로 나토 및 미국의 우방국들에 대한 무기 수출이 폭증했고, 특히 독일은 군사비 지출을 GDP의 2%까지 올리기로 즉각 결정했다.

두 번째 과두집단은 석유(Oil), 가스(Gas), 그리고 광산업체(And Mining : OGAM)로 이들 역시 독점에 의한 지대 추구를 통해 막대한 이윤을 챙긴다. 특히 막대한 지하자원을 채굴해 대기 중으로 이산화탄소를 배출하고 바다 및 수자원을 오염시킴에도 불구하고, 안보산업이라는 이유로 특별 감세 혜택을 누린다. 은행 및 부동산 부문이 주택 등 자산의 가격 상승을 통해 경제적 지대를 최대화하고 자본 이득을 추구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OGAM 부문 역시 에너지 및 원자재의 가격을 최대한으로 올려 자연자원 독점에 따른 지대의 극대화를 추구한다. 지난 1년 여간 미국의 주요 정책 목표는 달러화 사용 국가들에서 러시아산 석유와 가스를 퇴출시키고, 이들 국가들에 대한 미국산 석유의 독점을 완성하는 것이었다. 즉 독일 등 유럽과 러시아의 경제적 연계를 더욱 강화시킬 위험이 있었던 노르트 스트림2 가스관의 가동을 좌절시키는 것이었다. 

OGAM 부문은 미국의 모든 주에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 투자자들만큼은 거의 모든 지역에 분포해 있다. 텍사스와 서부의 석유 생산 및 광산 소재 주들의 상원의원들이 핵심 로비스트로 활동하며, 국무부는 국가안보를 이유로 이들 업체들에 특별 세제 혜택을 부여한다. 이밖에 석유, 가스, 석탄의 사용을 줄이고 생태 친화적 에너지로 대체하자는 환경운동의 요구를 묵살, 저지하는 것도 이들의 주요한 정치적 목표다. 이에 따라 바이든 행정부는 해양 석유 시추 확대를 지지했고, 세계에서 가장 더러운 석유자원으로 꼽히는 아타바스카 타르 샌즈로부터의 캐나다 송유관 건설과 환경오염으로 악명을 떨쳐온 미국 내 수압파쇄방식 석유 채굴(프래킹)을 승인했다. 

세 번째 과두집단은 서로 공생관계에 있는 금융(Finance), 보험(Insurance), 부동산(Real Estate : FIRE) 부문으로 이들은 봉건 시대 이후 토지 지대로 거대한 부를 축적한 유럽 토지 귀족의 현대판 금융자본주의 계승자라 할 수 있다. 오늘날 토지 지대는 모기지 이자 및 원금 상환 형태로 주로 은행에 납부되고 있는데, 미국 및 영국 은행들의 대출 중 80%가 부동산 관련이다. 미국과 영국 은행들은 토지 가격을 상승시키는 방식으로 자본 이득을 취하고 있다.

월가에 중심을 둔 은행 및 부동산 부문은 군산복합체보다도 더욱 조밀하게 각 선거구 별로 분포돼 있다. 월가가 있는 뉴욕 주 상원의원 척 슈머를 필두로 신용카드 산업의 본거지인 델라웨어 주의 전 상원의원 조 바이든, 그리고 보험 산업이 몰려있는 코네티컷 주의 상원의원들이 그 핵심 로비스트들이다. 국내적으로 FIRE 부문의 목표는 토지 지대를 상승시켜 지대 소득과 자본 소득을 극대화 하는 것이다. 

국제적으로 FIRE 부문의 목표는 외국의 공공 부문 경제(건강보험, 교육, 교통, 통신, 정보 기술 등)를 자신의 수중에 사유화 하는 것이다. 그 나라 국민에 대한 기본적 서비스를 독점해 그 가격을 극대화함으로써, FIRE는 미국이 독점한 달러 발행의 특권을 최대한 누리는 반면 해당 국가의 생활수준은 악화되고 기업 활동은 위축된다. 또한 월가의 금융세력은 언제나 석유 및 가스 업체와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예컨대 석유 재벌 록펠러그룹은 시티그룹 및 체이스맨해튼은행을 거느리고 있다) 

FIRE, MIC, 그리고 OGAM은 오늘날 탈산업화된 금융자본주의를 지배하는 3대 지대 추구세력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군산복합체(MIC)와 석유.가스 업체(OGAM)의 주가가 치솟으면서 이들의 입지는 한층 강화됐다. 또한 SWIFT 등 서방의 금융결제시스템에서의 러시아 축출과 러시아산 에너지의 유럽 공급 차단에 따른 악영향이 가속화되면서 달러화 금융자산에 대한 대규모 자금 유입이 예상된다. 

앞서 얘기했듯이 미국의 경제 및 대외정책은 공화당과 민주당 간의 정당정치가 아니라 이들 세 지대 추구세력의 관점에서 관찰하는 것이 훨씬 더 현실에 부합된다. 주요한 상원의원과 하원의원들은 자신을 선출한 주나 지역구가 아니라 이들 세 과두집단의 경제적, 금융적 이익을 위해 움직인다. 오늘날 미국의 제조업이나 농업 부문이 미국의 대외정책에 이렇다 할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세 과두집단의 정책 목표가 한 방향으로 수렴되면서 노동과 (군산복합체를 제외한) 제조업의 이익은 묵살되고 있다. 세 지대 추구세력의 강력한 동맹이야말로 오늘날 탈산업화된 금융자본주의의 결정적 특징이다. 기본적으로 이는 노동 및 산업자본과는 무관한 경제적 지대 추구로의 회귀를 의미한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이들 세 과두 지배세력이 어떤 이유로 러시아로 하여금 우크라이나 침공에 나서게 했고, 또한 서방의 러시아 경제 제재를 추동했는가, 하는 점이다. 

미국의 세 지대 추구세력은 신냉전의 결과를 이미 알고 있었다 

바이든 대통령이 설명했듯이, 현재 미국이 주도하고 있는 군사 분쟁 강화의 목표는 우크라이나가 아니다. 바이든은 당초부터 미군 병력을 투입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이미 1년 전부터 독일에 대해 러시아의 값싼 천연가스를 공급받을 수 있는 노르트 스트림2의 가동을 중단하는 대신 훨씬 값비싼 미국산 액화천연가스(LNG)를 구매해줄 것을 요구해 왔다. 

미국 정부는 처음에는 노르트 스트림2의 건설을 중단시키려 했다. 이 공사를 맡은 기업들이 미국의 제재를 받았으나, 결국 러시아는 자체 힘으로 가스관 건설 공사를 마무리했다. 그러자 미국은 전통적으로 미국에 고분고분한 독일 정치인들에게 압력을 가하기 시작했다. 러시아가 제멋대로 가스 공급을 중단한다면 독일 및 유럽에 중대한 안보 위협이 될 것이라면서 정치경제적 양보를 요구한 것으로 보인다. 결국 독일은 완공된 노르트 스트림2의 가동 승인을 포기했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신냉전에서 미국의 주요 목표 중 하나는 유럽의 가스 시장에서 러시아를 몰아내고 미국 업체들이 독점하는 것이다. 이미 전임 트럼프 행정부의 압박에 의해 메르켈 총리는 미국산 액화천연가스의 하역을 위한 항만 시설 건설에 10억 달러를 투입하기로 약속했다. 그런데 2020년 11월 트럼프의 대선 패배와 뒤이은 메르켈의 정계 은퇴로 이 투자 약속은 없던 일이 돼버렸다. 결국 독일로서는 러시아산 가스의 수입 외에 다른 대안이 없게 된 것이다. 가스는 주택 난방이나 전력 생산은 물론 비료 생산에도 필수적인 원료다. 비료 생산의 감소는 식량 생산의 감소를 의미한다.

즉 나토 대 러시아의 대결 상황을 연출해낸 미국의 최대 전략 목표는 석유 및 가스 가격을 최대한 올리는 것이다. 이는 물론 독일에 매우 안 좋은 결과다. 유가 상승은 미국 석유업체의 이윤 및 주가를 올려주겠지만 독일 경제는 높은 에너지 가격으로 고통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독일은 (1, 2차 대전에 이어) 한 세기만에 세 번째로 미국에 패배당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패배가 이어지면서 독일 경제 및 정치에 대한 미국의 지배력은 갈수록 강화되고 있으며, 이제 나토는 독일 국내의 국민적 저항에 대한 효과적 통제수단으로 확고하게 자리 잡았다. 

가솔린을 비롯한 기타 난방용 에너지 가격의 상승은 미국과 다른 국가(특히 에너지 자원이 부족한 남반구 국가들) 소비자들의 살림살이를 어렵게 할 것이다. 에너지 비용 부담 증가로 국내 소비가 감소할 것이며, 결국 한계 상황에 직면한 주택 소유주들이 집을 내놓으면서 부자들의 주택 소유가 늘어나고 주거의 양극화가 가속화될 것이다.

밀을 비롯한 식량 가격 역시 폭등할 것이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세계 밀 수출의 25%를 담당한다) 이에 따라 중동을 비롯한 남반구 국가들의 식량 사정이 악화되고, 경상수지도 악화되며 외채 상환 불능 사태가 벌어질 것이다.

미국 신냉전 전사들의 장기적 목표는 러시아를 해체하는 것이다. 최소한 옐친/하버드대 도당들이 만들어낸 꿈만 같았던 1990년대를 재현하는 것이다. 당시 옐친은 제프리 삭스 등 하버드대 경제학자들의 조언을 받아들여 러시아 국영 기업들을 묻지마 방식으로 사영화하면서 서방 주식시장에 엄청난 이윤을 안겨줬다. 미국의 석유업체들은 아직도 (러시아의 거대 석유, 가스 업체인) 유코스, 가즈프롬의 인수를 꿈꾸고 있다. (2003년 푸틴이 유코스 소유주 호도로프스키를 구속한 것은 유코스 주식을 미국 석유기업 엑슨모빌에 팔려 했기 때문이다) 미국 월가는 러시아 (주로 석유,가스 기업) 주식 붐의 재현을 기대하고 있다. 또한 군산복합체 투자자들은 이러한 꿈의 실현을 위해 보다 많은 무기들이 팔릴 것이라는 행복한 꿈에 젖어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AP=연합뉴스

러시아는 미국이 초래한 전쟁의 의도치 않은 결과에 기대를 걸고 있다 

러시아는 무엇을 노리는 것일까? 당장 급한 것은 2014년 마이단 쿠데타를 주도한 신나치, 반러시아 세력을 제거하는 것이다. 우크라이나를 중립화, 즉 친러시아적으로 만들어 체첸이나 조지아처럼 미국 주도 반러시아 공세의 교두보가 되는 것을 방지하는 것이다. 

장기적으로는 유럽을 나토와 미국의 지배로부터 해방시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중국과 함께 경제적으로 통합된 유라시아를 건설하고 여기에 중심을 둔 다극 체제를 만드는 것이다. 이를 위해 나토를 해체하며, 그동안 러시아가 추구해온 광범위한 군비 해제와 탈핵무기 정책을 추진하는 것이다. 미국산 무기의 구매를 축소하는 것은 물론 미국 주도의 군사모험주의에 대해 제재를 가하는 것이다. 세계 경제의 탈달러화가 가속화된다면 미국의 군사작전 수행을 위한 자금 동원 능력도 축소될 것이다. 

이제 지각 있는 관찰자라면 사태의 진상이 분명히 드러났을 것이다. (1) 나토의 목표는 방어가 아니라 침략이다, (2) 옛 소련의 영토 중 더 이상 정복할 땅이 남아 있지 않은 마당에 도대체 나토 확대를 통해 무엇을 얻겠다는 것인가? 러시아가 유럽을 침공하지 않을 것임은 분명하다. 침공으로 얻을 것이 없다. 우크라이나를 앞세운, 러시아에 대한 나토의 안보 위협을 제거하는 것만이 러시아의 목표다. 

과연 유럽의 민족주의 지도자들은(유럽 좌파는 거의 친미로 돌아섰다)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할 수 있을까? 우리를 위험에 빠뜨릴 뿐인 미국산 무기를 무엇 때문에 사야 하는가? 러시아와의 교역과 투자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경제적 이득을 포기한 채 값비싼 미국산 LNG와 석유를 사고, 러시아산 곡물과 원자재에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해야 할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게다가 러시아와의 적대를 통해 중국과도 갈등을 빚는 것이 과연 현명한 처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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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 '검수완박' 추진에 한겨레 "과유불급", 조선 "文입장은"

  • 기자명 박서연 기자 
  •  
  •  입력 2022.04.12 07:50
  •  
  •  댓글 1
 
 

[아침신문 솎아보기] 서울신문, 1·2면에 대주주 호반과 골프대회 개최 소식
조선일보 “감사원, 인수위에 시민단체 회계 전반 모니터링 계획 보고”

11일 김오수 검찰총장이 더불어민주당이 추진하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검수완박) 법안에 대해 자신의 직을 걸고 법안을 막아내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날 김오수 총장은 대검찰청에서 열린 전국지검장회의에서 “만약 검찰 수사기능이 폐지된다면 검찰총장인 저로서는 더는 직무를 수행할 아무런 의미가 없다”며 “검찰 수사를 제도적으로 금지하는 것은 선진법제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다”고 말했다. 민주당 의원총회를 하루 앞두고 자신의 입장을 밝힌 것이다.

12일 민주당은 국회에서 정책 의원총회를 연다. 이날 검찰의 직접 수사 관련 규정을 삭제하는 내용의 형사소송법 개정안 등의 법안 처리 시점과 방식을 결정할 계획이다. 민주당은 문재인 정부 들어 검경 수사권 조정을 통해 검찰의 직접 수사 범위를 6대 범죄(부패·경제·공직자·선거·방위·사업·대형참사)로 한정했다. 그러나 민주당은 이 6대 범죄에 대한 직접 수사권까지 타 기관으로 이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12일자 경향신문 3면.
▲12일자 경향신문 3면.
▲12일자 아침신문들 1면.
▲12일자 아침신문들 1면.

12일자 아침신문들은 일제히 1면에 이 소식을 보도했다. 정권 이양을 한 달 앞두고 추진하는 이 법안 처리 계획에 대부분 신문이 ‘무리수’라고 지적했다. 한겨레마저도 민주당에 “과유불급”이라고 했다. 또 한국일보와 경향신문 등은 11일 김 총장의 발언에 대해 검찰의 대응이 도를 넘었다고도 지적했다. 조선일보는 민주당의 ‘검수완박’ 법안 추진에 대해 문재인 대통령이 입장을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검수완박 추진 한겨레 “과유불급” 조선 “문 대통령 입장 밝혀라”

‘검수완박’이 이슈로 떠오른 이유에 대해 경향신문은 1면 기사에서 “배경은 검찰총장 출신 대통령 당선인의 등장이다. 윤석열 당선인의 검찰 직할 및 검찰의 자의적 수사 가능성을 우려하는 더불어민주당이 ‘검수완박’을 급발진했고, ‘존재의 위기’를 느낀 검찰이 여기에 정면으로 맞서면서 대립이 격화하고 있다”고 해석했다.

경향신문은 이어 “근저에는 검찰에 대한 고질적 불신이 있다. 신구 권력 간 투쟁이 민주당과 검찰의 대리전으로 전이되고 그것이 다시 검찰 내 신구 권력 간 다툼과 맞물리는 흐름도 보인다. 그 와중에 정작 지금 당장 검찰의 수사권을 폐지해야 하는 이유에 대한 설명과 진지한 논의는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고 보도했다.

▲12일자 경향신문 1면.
▲12일자 경향신문 1면.

정의당은 ‘검수완박’ 법안에 공식 반대 입장을 냈다. 한겨레 3면 기사를 보면 여영국 정의당 대표는 국회에서 열린 대표단회의에서 “더불어민주당이 불을 지핀 검수완박으로 다시 검찰의 시간으로 돌아가는 일체의 논란과 행동에 깊은 우려를 밝힌다”며 “검수완박은 그 의도를 둘러싼 정치적 공방만 증폭시켜 진영 대결과 갈등만 확대될 뿐 좋은 해답에 접근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한겨레는 윤석열 당선자가 검수완박을 추진하려는 민주당과 반대하는 검찰의 입법 갈등 사안에 거리두기를 하고 있다고 했다. 한겨레는 2면 기사에서 “대선 후보 시절 검찰권 강화 등 자신의 ‘전공 분야’에 강한 목소리를 냈던 것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라며 “검찰총장 출신인 당선자가 논쟁에 뛰어들면 검찰 편을 든다는 논란을 키우고, 취임 전부터 민주당과의 관계가 경색된다는 점 등을 고려한 행보로 풀이된다”고 했다.

▲12일자 한겨레 3면.
▲12일자 한겨레 3면.
▲12일자 한겨레 2면.
▲12일자 한겨레 2면.

한겨레는 더불어민주당이 신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겨레는 사설에서 “검찰개혁의 대의에 반대할 국민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정권 이양까지 한달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시급한 민생이나 정치개혁 입법보다 거센 충돌이 예상되는 사안부터 우선적으로 밀어붙이는 것까지 다수가 호응할지는 매우 불확실하다. 지지층을 넘어 전체 민심을 수렴해 신중한 판단을 내리기 바란다”고 조언했다.

한겨레는 이어 “유례없는 대통령-검찰 동일체 정권이 우려되는 현실 속에서 근본적 검찰개혁이 필요하다는 주장 자체에는 수긍할 대목이 적지 않다”면서도 “그러나 과유불급이라고 했다. 검찰개혁을 지지하는 국민들 사이에서도 현 정부 임기 안에 이 문제를 속도전으로 처리하는 것을 두고서는 의견이 갈린다. 민주당 일부에서 뻔히 예상되는 검찰의 정치보복성 수사로부터 문재인 대통령과 이재명 전 대통령 후보를 지키기 위해선 차기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없는 지금 법안을 처리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적절치 않다”고 지적했다.

▲12일자 한겨레 사설.
▲12일자 한겨레 사설.

한겨레는 “정치적 이해에 따른 입법 아니냐는 의구심을 키우고 역공 논리에 힘을 보탤 따름”이라며 “민주당이 진정 국민 다수를 설득하기 위해 얼마나 치열한 노력을 했는지 의문”이라고도 했다.

11일 김 총장의 발언에 대해 조선일보는 사설에서 “맞는 말이지만 김 총장이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없다. 그는 법무부 차관, 검찰총장 등 요직을 맡아 문재인 정권의 불법적 폭주에 도움을 줬다. 그 휘하의 검찰은 월성 원전 경제성 평가 조작, 대장동 의혹 등에 대한 수사를 축소했다. 그런 그가 일선 검사들의 반발에 밀려 ‘직을 걸겠다’고 하자, 민주당은 ‘조직의 수장이 집단행동을 부채질하고 있어 개탄스럽다’고 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문재인 대통령의 입장이 궁금하다고 했다. 조선일보는 “민주당이 강행하려는 이 제도를 시행 1년 만에 스스로 무너뜨리는 것이다. 그런데도 제도를 주장해 만든 당사자가 침묵하고 있다”며 “작년 초 민주당이 윤석열 당시 총장을 압박하려 검찰 수사권 완전 폐지를 추진했을 때 문 대통령은 ‘신중해야 한다’며 제동을 걸었다. 그 후 달라진 것은 대선 패배로 정권이 바뀌었다는 것뿐”이라고 했다.

▲12일자 조선일보 사설.
▲12일자 조선일보 사설.

조선일보는 이어 “앞으로 문 정권이 억누르고 감춰둔 권력 비리에 대한 검찰 수사가 시작될 수 있다는 두려움이 ‘검찰 수사권 자체를 박탈하는 법을 만들자’는 움직임을 낳았다”며 “민주당 의원들도 이 법이 문재인, 이재명 두 사람을 보호하기 위한 법이란 사실을 굳이 부정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니 이 법의 수혜자인 문 대통령이 자신의 불법이 드러나는 것을 막기 위해 검찰 수사권 박탈법을 만드는 데 동의하는지 밝힐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서울신문, 1·2면에 대주주 호반그룹과 골프대회 개최 소식

서울신문이 대주주 호반그룹(서울신문 지분 47.58%)과 골프대회를 개회한다는 소식을 1면과 2면에 걸쳐 보도했다. 서울신문은 1면에 “한국여자골프의 든든한 후원자 역할을 해 온 호반그룹과 118년 역사의 서울신문이 손잡고 오는 7월 총상금 10억원 규모의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대회를 개최한다”고 보도했다.

김선규 호반그룹 회장과 곽태헌 서울신문 사장, 강춘자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대표 등은 11일 서울 강남구 KLPGA 사무국에 참석해 ‘호반 서울신문 위민스 클래식’ 개최 조인식을 했다.

▲12일자 서울신문 1면.
▲12일자 서울신문 1면.

서울신문 보도를 보면 이날 김선규 회장은 “세계 최고 수준의 KLPGA 정규투어에 호반그룹과 서울신문 위민스 클래식이 명실상부한 최고의 대회가 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곽태헌 서울신문 사장도 “오랫동안 대한민국 골프 발전을 위해 묵묵히 노력해 온 호반그룹과 ‘호반 서울신문 위민스 클래식’을 개최하게 돼 무척 기쁘다. 이번 대회가 한국여자골프의 활성화와 KLPGA 투어의 위상을 강화하는 데 기여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조선일보 “감사원, 인수위에 시민단체 회계 모니터링 계획 보고”

조선일보가 감사원이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시민단체의 국고 보조금 처리 등 회계 집행 전반에 대한 모니터링을 실시하겠다고 보고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했다.

▲12일자 조선일보 1면.
▲12일자 조선일보 1면.

조선일보는 1면 기사에서 “감사원은 지난달 25일 인수위 업무보고에서 ‘시민단체 회계 비위 관련 보고’를 했다고 한다. 감사원은 이 자리에서 ‘시민단체의 회계 업무를 지원할 수 있도록 감사원의 회계 감사 전문가가 시민단체의 회계 집행·처리에 대한 모니터링과 자문 업무를 실시하도록 하겠다. 시민단체의 국고 보조금 사업부터 (모니터링 작업을) 우선 적용하고 추후 시민단체의 기부금까지 이를 확대 추진하겠다’고 보고한 것으로 전해졌다”고 했다.

감사원의 이 같은 보고는 “시민단체의 회계 집행 문제는 2020년 정의기억연대(정의연)의 전 이사장이었던 윤미향 의원(무소속)이 수억원대의 후원금과 보조금을 횡령한 것으로 조사되면서 큰 이슈가 됐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도 지난 1월 ‘권력과 결탁한 시민단체의 불법 이익을 전액 환수하겠다’고 공약한 바 있다”는 이유로 이뤄졌다고 조선일보는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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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지검장들, ‘검수완박’ 집단 반발 “검찰 존재 의의 사라져”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22/04/12 09:25
  • 수정일
    2022/04/12 09:25
  • 글쓴이
    이필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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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특위 구성 제안 “폭넓은 의견 충분히 수렴해야”

 
김오수 검찰총장이 11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열린 전국 지검장 회의에서 모두발언하고 있다. 이날 회의에는 김 총장과 박성진 대검 차장, 전국 지검장 18명 등이 참석해 대면회의 방식으로 진행했다. 2022.04.11. ⓒ뉴시스
 
 전국 지검장들이 11일 여당의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추진에 집단적으로 반발했다.
대검찰청은 이날 김오수 검찰총장 주재로 대검 대회의실에서 전국 지검장 회의를 열고 ‘검찰 수사 기능 폐지 법안’ 추진 상황과 관련해 논의했다고 밝혔다. 회의에는 박성진 대검 차장, 예세민 대검 기조부장과 전국 지검장 18명이 참석했다.

논의 결과, 일선청을 지휘하는 지검장들은 “검찰 수사는 실체관계를 명확히 밝히고 사건관계인의 억울함을 해소하는 필수 절차이다. 검찰의 수사 기능을 전면 폐지하게 되면 사건관계인의 진술을 직접 청취할 수 없는 등 사법정의와 인권보장을 책무로 하는 검찰의 존재 의의가 사라지게 된다”며 ‘검수완박’에 반대했다.

이들은 “2021년 1월 형사사법제도 개편 이후 범죄를 발견하고도 제대로 처벌할 수 없고 진실규명과 사건처리의 지연으로 국민들께서 혼란과 불편을 겪는 등 문제점들을 절감하고 있다”며 “이러한 문제점조차 해결되지 못한 상황에서 국민적 공감대와 절차적 정당성을 갖추지 아니하고 충분한 논의나 구체적 대안도 없이 검찰의 수사 기능을 폐지하는 법안이 성급히 추진된다면 그로 인한 피해는 국민들께 돌아갈 것”이라고 엄포했다.
 
11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열린 전국 지검장 회의에서 박찬호 광주지검장, 이정수 서울지검장, 노정연 창원지검장 등이 대화를 하고 있다. ⓒ뉴시스

그러면서 이들은 국회에 가칭 ‘형사사법제도개선특위’를 구성해 논의해줄 것을 제안했다.

이들은 “검찰 수사 기능뿐만 아니라 형사사법제도를 둘러싼 제반 쟁점에 대하여 각계 전문가와 국민들의 폭넓은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고 논의를 거쳐 형사사법제도의 합리적 개선 방안을 마련해주실 것을 간곡히 호소드린다”고 밝혔다. 이는 검찰개혁 논의는 다시 원점으로 되돌리려는 시도로 보인다.

다만 이들은 검찰에 대한 비판 여론을 인식한 듯 “검찰 스스로도 겸허한 자세로 본연의 임무에 충실함으로써 국민의 신뢰를 받는 검찰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피력했다.

전국 지검장들의 이러한 입장 표명은 예상된 수순이었다. 대검이 지난 8일 ‘검수완박’에 반대하는 입장 표명을 한 데 이어, 이날 전국 지검장 회의에 앞서 김오수 검찰총장도 “만약 검찰 수사기능이 폐지된다면 검찰총장인 저로 서는 더 이상 직무를 수행할 아무런 의미가 없다”며 ‘직’을 걸고 반대한다는 입장을 냈다. 검찰 출신인 김 총장은 문재인 정부의 검찰개혁 과제에 보조를 맞춰온 만큼 그동안 여당의 ‘검수완박’ 추진에 말을 아꼈지만, 이에 대한 내부 반발이 커지자 결국 여당을 향해 공개적으로 불만을 표출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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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왜 안 돌려주나?

  • 기자명 강호석 기자
  •  
  •  승인 2022.04.10 22:53
  •  
  •  댓글 0
 
 
 

‘전국 미군기지 자주평화원정단’, 동두천 의정부 미군기지 찾아

▲전국 미군기지 자주평화 원정단이 10일 의정부시 캠프 스탠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미군기지 온전한 반환을 촉구했다. 
▲전국 미군기지 자주평화 원정단이 10일 의정부시 캠프 스탠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미군기지 온전한 반환을 촉구했다. 

‘전국 미군기지 자주평화원정단’은 7일차 마지막 날 일정으로 동두천과 의정부 미군기지를 찾았다. 이곳에 이미 반환된 줄 알았던 미군기지가 그대로 남아 있어서 원정단의 분노를 자아냈다.

2004년 한미연합토지관리계획(LPP)에 따라 2016년까지 모두 반환하기로 한 이곳 주한미군 기지는 아직 반환되지 않았다.

이 사이 평택 미군기지 ‘험프리스’가 미군 단일 기지로는 세계 최대 규모, 여의도의 5.5배 면적에 약 18조 원을 투입해 조성되었다.

주한미군 병력은 대부분 평택기지로 이동했지만, 동두천시 전체 면적의 42%인 40.63㎢의 기지와 의정부시 캠프 스탠리 2,457㎢는 반환하지 않고 있다.

주둔하지도 않는 미군기지를 반환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동두천 기지의 경우 미2사단 예하 부대인 210화력여단의 역할 때문이다.

210화력여단이 한강 이남 평택으로 옮길 경우 북과의 전면전 시 대응 속도가 늦어질 수 있다는 이유를 들어 미군은 2014년 동두천 부지반환을 일방적으로 취소했다.

현재 미군은 캠프모빌 등 동두천 일대 기지에 무인정찰기 격납고와 활주를 설치해 정찰 비행 훈련장으로 사용하고 있다.

미군이 의정부 캠프 스탠리를 반환하지 않는 이유는 헬리콥터 급유를 위한 중간기지가 필요한데, 아직 대체 헬기장을 마련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평택 미군기지에서 휴전선까지의 거리는 100㎞, 동해안의 끝인 고성까지도 200㎞에 불과하기 때문에 순항거리가 800㎞인 헬리콥터가 중간에 연료가 떨어지는 일은 없다.

미군이 캠프 스탠리를 반환하지 않는 진짜 이유는 8년 만에 이곳에 다시 주둔하게 된 제23화학대대 때문으로 보인다.

제23화학대대는 로드리게스 실탄사격장에서 탄저균 등을 대상으로 화학 및 생체시료 분석훈련을 실시했다. 주한미군은 지난 2019년 12월 캠프 스탠리에서 제23화학대대가 훈련을 한 사진들을 공개한 바 있다.


주한미군에 우리 세금으로 지어준 평택기지까지 분양받고도 동두천과 의정부 일대 기지를 반환하지 않는 것과 관련해 의혹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경기북부평화시민행동 김대용 대표는 미군이 대중국 포위망 구축을 위해 한국을 전초기지화하면서 기지 반환을 거부한 것으로 분석했다.

실제 동두천 210화력여단은 장사거리유도형 다연장로켓(G-MLRS), 대포병 탐지레이더 (AN/TPQ-36·37), B2브래들리 장갑차 등을 보유하고 있으며, 지리적으로 대중국 포위망 형성에 유리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이 때문에 새로운 인도태평양전략을 수립한 미군이 동두천 기지 반환 약속을 저버린 것으로 보고 있다.

또한 부산항을 비롯해 최근 세균전부대 육성에 열을 올리는 미군이 제23화학대대가 주둔한 캠프 스탠리를 쉽게 포기할 수 없었던 것 아니냐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다음은 캠프 스탠리 앞에서 진행된 자주평화 원정단의 기자회견이다.


 

출처 : 현장언론 민플러스(http://www.minplusnews.com)

  강호석 기자 sonkang11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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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만에 또 수사권 공방…빌미준 민주, 우려키운 검찰

등록 :2022-04-11 04:59수정 :2022-04-11 07:30

 
 
 
 
10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연합뉴스
10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연합뉴스

한달 뒤 야당이 되는 더불어민주당 지도부가 문재인 정부 마지막 한달을 ‘검찰 수사-기소 완전 분리’ 입법에 집중하겠다는 뜻을 밝히면서 신구 권력 사이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법조계는 물론 민주당 내부에서도 검경 수사권 조정 1년 만에 검찰 수사 기능 폐지를 재추진하는 명분과 시기 모두 적절하지 않다는 의견이 나오지만, 한편에서는 검찰총장에서 대통령으로 직행한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의 검찰 직할통치 우려를 씻지 못한다면 윤석열 정부 5년 내내 같은 논란이 되풀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검찰 못지 않게 권력 친화적 행보를 보여온 경찰 권한을 확대하면서도 별다른 제한 장치를 두지 않는 것에 대한 우려도 크다.

 

대검찰청은 지난 8일 검찰 수사 기능을 전면 폐지하겠다는 민주당 방안에 대해 “검사가 직접 (사건 관련) 사실관계를 확인하지 못하도록 하면 극심한 혼란을 가져올 뿐 아니라 국민 불편을 가중시키고 국가의 중대범죄 대응 역량 약화를 초래하게 될 것”이라며 반대 입장을 밝혔다.

 

검경 수사권 조정에 따라 지난해 1월부터 6대 중대 범죄(부패, 경제, 공직자, 선거, 방위사업, 대형참사)를 제외한 사건을 경찰 단계에서 직접 종결하기 시작한 이후 사건 처리가 지연되고 있다는 불만이 고소·고발 당사자와 변호인들로부터 나오는 것은 사실이다. 예견됐던 일이지만 민주당이 2019년 12월 수사권 조정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와 묶어 패스트트랙으로 처리하며 제대로 된 논의는 이뤄지지 않았다. 추후 보완을 전제로 개문발차한 것이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 시절 검찰 수사-기소 완전 분리를 추진하던 민주당이 이를 접은 것도 ‘수사권 조정 안착’이 이유였다. 민주당 방안에 반대 뜻을 분명히 한 대검이 “개정 형사소송법 시행 후 1년이 지난 지금까지 여러 문제점이 확인돼 지금은 이를 해소하고 안착시키는 것이 시급하다”고 밝힌 것은 이를 상기시키려는 의도다. 김한규 전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은 “수사권 조정과 공수처 설치 등 수사 시스템을 정비하자마자 또 다시 이를 바꾼다는 것 자체가 부적절하다”고 말했다.

 

반면 경찰은 일부 사건 처리가 지연되고 법리 검토 미숙 등 수사력 논란이 드러나고 있지만 꼭 수사권 조정에 따른 혼란만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서울의 한 경찰서 형사과장은 “사건 처리 지연 문제는 검사의 보완수사 요구 등을 비롯해 피의자 권리 강화로 절차적 문제가 복잡해진 점을 고려해야 한다. 법리 검토는 변호사 자격을 가진 인력이 경찰에 충분히 수혈되면 해결 가능한 문제”라고 말했다. 다른 경찰서 수사과장은 “제도적으로 권한이 주어지면 그 권한을 행사하며 역량이 생기기 마련이다. (경찰 수사력 논란은) 순서가 바뀐 이야기”라고 말했다. 다만 수사권 조정이 안착할 때까지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에서는 검찰과 큰 차이는 없다.

 

10일 여의도 국회 본청 더불어 민주당 원내대표 회의실에서 열린 국무총리 후보자 인사청문 준비1차회의에서 박홍근 원내대표가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10일 여의도 국회 본청 더불어 민주당 원내대표 회의실에서 열린 국무총리 후보자 인사청문 준비1차회의에서 박홍근 원내대표가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검은 검찰 수사-기소 완전 분리 방안에 검찰 조직 전체가 집단 반발하며 172석 민주당과 맞서는 모양새가 부담스럽다. 그러면서도 “수사-기소 완전 분리에 반대하는 입장은 갑작스러운 것이 아니다”라고 강조한다. 대검 관계자는 “검찰총장 시절 윤석열 당선자도 민주당의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에 대해 부패완판(부패가 완전 판칠 것)이라며 반대 뜻을 밝혔지 않느냐”고 했다. 다만 그랬던 검찰총장이 곧바로 대통령 자리에 오르게 되면서 이번 검찰 집단 반발이 검찰 출신 대통령을 뒷배로 둔 ‘무력 시위’로 비춰지는 것을 두고는 검찰총장의 대통령 직행을 말리지 못하고 오히려 두둔·방조한 검찰 조직 전체가 짊어져야 할 ‘업보’라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윤 당선자가 대선 전 문재인 정부 5년에 대한 수사 필요성을 공언했고, 실제 묵혀뒀던 검찰 수사들이 대선 직후부터 속도를 내면서 검찰발 사정정국·정치보복 우려는 현실화하고 있다. 여기에 한동훈 검사장, 권성동 국민의힘 신임 원내대표 등 윤 당선자 최측근들의 언행까지 더해지며 엎질러진 기름에 불을 지르는 모양새다. 윤 당선자가 서울중앙지검장 후보 물망에 올렸던 한 검사장은 지난 6일 <채널에이> 취재원 강요미수 사건에서 무혐의를 받은 직후 “다시는 이런 짓을 못하도록 책임을 물어야 한다”며 추미애·박범계 등 전·현직 법무부 장관 실명을 거론했다. 검찰 내부에서는 “누가 한동훈 입을 못 막느냐”는 말이 나올 정도다. 검찰 출신으로 윤핵관으로 불리는 권성동 원내대표는 10일 <연합뉴스> 인터뷰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이재명 전 민주당 대선 후보 이름을 거론하며 이에 대한 수사를 막기 위해 검찰 수사권을 박탈하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민주당이 수사권 조정을 하며 보완장치 없이 경찰 권한을 지나치게 강화시켰다는 비판도 있다. 문재인 정부는 경찰의 정보수집 기능을 국정운영에 적극 활용한 탓에 “경찰이 수사와 정보까지 모두 틀어쥐게 했다”며 시민단체 등의 비판을 샀다. 이창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민주당이 1년 만에 검수완박 시즌2를 다시 들고 나온 것은 결국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 실세들에 대한 처벌을 막으려는 의도로 비칠 수 있다. 경찰은 기본적으로 정권 충성도가 높은 조직이다. 민주당이 몰아쳐서 법을 바꿔도 본인들이 원하는 형태가 나오지 않을 수 있다”고 했다. 고검장 출신 변호사는 “민주당 방안이 현실화할 경우 윤석열 정부에서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수장과 주요 간부를 모두 검사나 검찰 출신으로 채우는 방안도 있다”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가 10일 서울 종로구 통의동 금융감독원 연수원에 마련된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내각 인선 발표를 마친 후 인수위 사무실을 나서며 취재진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가 10일 서울 종로구 통의동 금융감독원 연수원에 마련된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내각 인선 발표를 마친 후 인수위 사무실을 나서며 취재진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법조계 안팎에서는 우선 수사권 조정 경과를 면밀히 검토한 뒤 추가 입법을 논의하는 속도조절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다. 동시에 윤석열 당선자 역시 검찰 직할통치 우려를 불식할 수 있는 가시적 조처를 함께 내놓아야 한다고 말한다. 검찰 수사·기획업무 경험이 많은 한 법조인은 “한동훈을 서울중앙지검장 등 주요 보직에 임명하지 않겠다는 신호를 보내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했다. 이창현 교수는 “법무부 장관과 일선 주요 수사를 맡는 검사장 자리에 중립적 인사를 임명하는 형식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김한규 변호사는 “박근혜 정부는 물론 문재인 정부도 정권 입맛에 따라 검찰 인사를 하는 등 정말 잘 못했다. 윤석열 정부가 출범하는 이상 검찰이 할 일은 윤석열 정부를 견제하는 것이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박근혜 정부 시절 좌천됐다가 현 정부에서 벼락 승진한 윤석열 당선인이 검찰 인사의 투명성과 공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를 내줘야 한다”고 했다.

 

전광준 기자 light@hani.co.kr 강재구 기자 j9@hani.co.kr 고병찬 기자 kick@hani.co.kr 서혜미 기자 ha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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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정부 내각 발표에 조선까지 "새 인물 없어" 혹평 아닌 혹평

  • 기자명 장슬기 기자 
  •  
  •  입력 2022.04.11 07:11
  •  
  •  댓글 3
 
 

[아침신문 솎아보기] 영남·5060·남성 위주 인선, 尹과 인연 강조한 인사로 다양성·참신함 부족 
검찰 수사-기소 분리에 권성동 “천인공노할 범행”…조선, ‘검수완박’ 대신 ‘총장 임명 개선안’ 제안
중앙일보 출신 박보균, 문체부 장관 후보자로…조선 “편향성 칼럼” 경향 “문화예술 접점 약해”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가 지난 10일 경제부총리 등 1기 내각 장관 후보자 8명을 발표했다. 윤 당선자가 전문성과 능력으로만 뽑았다는 뜻으로 “할당과 안배는 하지 않았다”고 한 가운데 11일자 대다수 신문에선 다양성이 실종됐고 윤 당선자와 인연을 인사에 반영해 참신하지 않다고 평가했다. 조선일보도 사설에서 “대선 캠프나 인수위 등에서 윤 당선자를 도운 인사가 많다”며 “참신한 새 인물이나 30·40대 깜짝 발탁은 없었다”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더불어민주당이 추진하는 ‘검찰 수사권-기소권 완전 분리 방안’(검수완박, 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을 두고 여야가 강하게 충돌하고 있다. 권성동 신임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지난 10일 “천인공노할 범죄”라며 원색적인 비난을 내놓으며 “이재명 전 후보와 문재인 대통령 측근을 보호하기 위한 만행”이라고 했다. 이러한 논란 가운데 한겨레는 검찰의 집단반발이 도를 넘었다는 사설을 내놨고, 조선일보는 2018년 대검 검찰개혁위원회가 권고한 ‘검찰총장 임명 개선안’을 제안했다. 

중앙일보 편집인 출신의 박보균 당선자 특별고문이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됐다. 조선일보는 언론인 시절 편향성 칼럼, 특정인을 지나치게 옹호하는 칼럼을 썼다고 비판했다. 경향신문은 그가 문화예술분야와 접점이 약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중앙일보는 그가 중앙일보 시절 성과를 중심으로 이 소식을 보도했다.

▲ 11일자 아침종합신문 1면 모음
▲ 11일자 아침종합신문 1면 모음

 

1기 내각, 영남·5060·남성 위주 인선 

윤 당선자는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로 추경호 의원,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로 원희룡 전 제주지사, 국방부 장관 후보자로 이종섭 전 합동참모본부 차장,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후보자로 이창양 카이스트 교수를 지명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후보자엔 이종호 서울대 반도체공동연구소장,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로 박보균 전 중앙일보 편집인,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엔 김현숙 당선자 정책특보, 보건복지부 장관에 정호영 전 경북대병원장을 각각 지명했다. 

▲ 11일자 경향신문 만평
▲ 11일자 경향신문 만평

 

한겨레는 1면 톱기사 “영남·5060 남성 위주 인선…다양성 안보인다”에서 “50~60대 남성이 주류를 이루면서 ‘다양성’이 실종됐다는 지적과 함께, ‘인연’이 있는 인사를 중용하는 인사 성향이 반영돼 참신함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며 “여성은 김현숙 여가부 장관 후보자 한명에 그쳤다”고 보도했다. 이중 최연소자는 56세인 김 장관 후보자로, 그는 자신의 부처를 폐지해야 하는 임무를 담당할 것으로 보인다. 

한겨레는 “8명 가운데 추경호·원희룡·이창양·이종섭 후보자는 인수위원으로 활동하고 있고, 김현숙·박보균 후보자는 당선자 특보를 맡고 있다”며 “대선 캠프시절부터 윤 당선자와 함께 일해왔던 인사들인데 과감한 발탁 인사를 통한 ‘새로움’은 찾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 11일자 한겨레 정치면
▲ 11일자 한겨레 정치면

 

한겨레는 정치면 “윤석열의 ‘실력주의’, 통합도 파격도 없었다”란 기사에서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인수위원 역시 ‘서울대 출신 50대 남성’이 주류를 이룬 ‘서오남’ 구성이라는 지적을 받았으나, 내각 역시 이런 흐름이 이어진 셈”이라며 “첨예하게 대립했던 진영·젠더·세대 갈등을 해소하려는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는 비판이 나온다”고 전했다. 

조선일보도 호평을 내놓진 않았다. 사설 “균형·통합 아쉬운 尹 내각, 실력 보여줘야”에서 윤 당선자를 도운 인사가 많다고 지적하며 “참신한 새 인물이나 30·40대 깜짝 발탁은 없었다”고 했다. 이어 “국민 통합이나 지역·세대 균형에 조금만 더 신경 썼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며 “1차로 발표된 장관 후보자 8명 중 영남 출신이 5명”인 점도 꼬집었다. 

조선일보는 “교수 출신이 절반이고 기용 가능성이 점쳐졌던 기업인이나 민간 분야 전문가 등은 포함되지 않았다”며 “특정 대학 출신이 많고 여성도 한 명뿐이며 ‘친시장 경제팀’을 부각했지만 다양성에선 미흡하다는 평가”라고 했다. 

대체로 신문들의 평가는 비슷했다. 

경향신문 1면 톱기사 “1차 내각 8명 모두 윤 당선자와 ‘인연’”
한국일보 1면 톱기사 “‘능력’만 봤다지만…‘통합·균형’ 안 보였다”
경향신문 사설 “다양성 부족하고 논공행상 성격 짙은 ‘윤석열 내각’ 인선”
국민일보 사설 “혁신보다 안정 택한 새 정부의 조각 인선 아쉽다”
세계일보 사설 “‘서육남’ 편중의 尹정부 내각…안배와 균형이 아쉽다”
한국일보 사설 “안정감에 무게 둔 尹 1차 내각…다양성 보완을” 

▲ 11일자 한국일보 1면
▲ 11일자 한국일보 1면

 

다만 일부 신문들은 새 정부의 과제를 강조하는 방식으로 내각 구성에 대한 평가를 생략했다. 

중앙일보는 사설 “전문가 발탁 내각, 민생 과제 수습에 매진해야”에서 “윤 당선자의 설명대로 후보자들을 보면 전문성을 기준으로 한 실용 내각으로 볼 만하다”며 “실용 내각은 결국 성적표로 평가받을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동아일보도 사설 “尹정부 1기 경제팀 추경·부동산 혼선부터 정리하라”에서 “한국 경제는 지금 정부의 작은 정책 실수에도 깨지기 쉬운 살얼음판”이라며 “첫 단추를 잘못 채워 판이 깨지면 복구엔 훨씬 오랜 시간이 걸린다”고 주장했다. 

한겨레, 검수완박 검찰 집단반발 도 넘어
조선, 2019년에 이어 ‘총장 임명 개선안’ 주장

권성동 원내대표가 지난 10일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검수완박 추진에 대해 “검찰을 무용지물로 만들겠다는 것”이라며 “이재명 전 후보와 문 대통령 측근을 보호하기 위한 만행”이라고 했다. 민주당의 검찰개혁안은 현재 검찰이 갖는 6대 중대범죄 수사권을 없애고 기소만 담당하도록 하고 있다. 민주당 내 일부 반발은 있지만 현 정부 임기 내 검찰개혁을 완수하겠다는 입장이다. 

지난 8일 이후 대검을 중심으로 검사들은 조직적으로 반발하고 있다. 법무부 검찰국 검사들은 이날 회의를 열어 박범계 법무부 장관에게 반대 의견을 전했고 11일 오전 대검에서 검찰총장과 전국 지검장 18명이 모이는 지검장회의를 열 예정이다. 지난 8일 검찰 내부 게시판 이프로스에 권상대 대검 정책기획과장의 글을 시작으로 검사들의 글이 이어지고 있다. ‘윤석열 사단’으로 분류된 이복현 서울북부지검 형사2부장은 검찰 수뇌부를 “모래 구덩이에 머리를 박는 타조”로 비유하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익명의 검찰 관계자는 한겨레에 “과거 검찰의 행적을 보면 지금 잇따라 올라오는 검수완박 반대 글도 일종의 윗선발 관제데모가 아닌지 의심된다”며 “검찰의 권한 오남용으로 반성이 필요할 때 이 정도의 움직임을 보인 적이 있는지 묻고 싶다”고 했다. 

한겨레는 사설에서 “아무리 자신들의 이해가 걸렸다고 해도, 엄연한 정부 조직의 공무원으로서 도를 한참 넘어섰다”며 “검찰총장에서 대통령으로 직행하는 윤 당선자가 검찰 권한을 크게 강화하겠다고 공언하는 마당에 검찰이 입법부에서 압력 집단 노릇을 하겠다고 나서지 못할 이유가 어디 있겠느냐”고 꼬집었다. 

한겨레는 “검찰의 기고만장한 행태는 ‘검찰공화국’에 대한 국민들의 불안감을 키우고 있다”며 “그런데도 윤 당선자는 지난 9일 ‘검수완박’ 논란 기자들의 질문에 ‘법무부와 검찰이 알아서 할 일이고, 난 국민들 먹고사는 것만 신경쓰겠다’고 답했는데 책임있는 자세를 보여주기 바란다”고 했다. 

▲ 11일 조선일보 오피니언면
▲ 11일 조선일보 오피니언면

 

한편 최원규 조선일보 사회부장은 “尹 당선인 검찰 공약, 핵심이 빠졌다”는 칼럼에서 “검찰총장만이라도 정권의 신세를지지 않았다는 인식을 갖게 되면 검찰은 달라질 것”이라며 “각계 인사들이 참여했던 대검 검찰개혁위가 2018년에 권고한 ‘총장 임명 개선안’이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제안했다. 

이는 “총장 후보추천위원회(9명)를 구성해서 위원 절반 이상에게 미칠 수 있는 법무부 장관 영향력을 줄이고 법무부 검찰국장과 검사장 출신 법조인을 위원에서 빼는 대신 민주적으로 선출한 검사 대표 3명을 위원으로 추가하고 장관이 임명하는 민간 위원 3명 추천권을 국회에 주는 방식”이다. 

현행법상 검사 임명권은 대통령에게 있는데 역대 어느 대통령도 이 권한을 내려놓지 않으니 검찰총장만이라도 대통령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게 하자는 주장이다. 지난 2019년 6월 최원규 당시 사회부 차장은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도입을 두고 논쟁할 때 비슷한 제안을 했었다.

당시 칼럼에서 “그럴 바엔 검찰의 정치 중립성을 높이는 방안을 찾는 게 훨씬 낫다”며 총장 임명 개선안을 주장했다. 그는 “최선은 대통령이 검찰 인사에서 손을 떼는 것이지만 어느 정권도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라며 “이 방법이 차선이 되는데 검찰청법 조항만 바꾸면 된다”고 주장했다. 

최 부장은 11일 칼럼에선 이와 함께 검찰 인사위원회 실질화도 주장했다. 그는 “인사위에 검사장과 핵심 요직에 대한 인사 추천권을 주는 방식을 생각해볼 수 있다”며 “이 두가지만 정착돼도 국민들에게 대통령이 검찰을 쥐고 흔들지 않는다는 믿음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중앙일보 출신 박보균, 문체부 장관 내정

조선일보는 “尹캠프 특별고문 활동…편향성 칼럼으로 논란”이란 기사에서 “박 후보자는 언론인 재직 때 정치 칼럼을 주로 썼으며 일부는 편파성 논란을 빚었다”고 평가했다. “2013년 1월 칼럼에서 ‘박근혜의 권력 운용은 절제다. 과시하지 않는다’ 등 특정인을 지나치게 옹호하는 칼럼들을 쓰기도 했다”고 지적했다. 

▲ 11일자 조선일보 정치면 기사
▲ 11일자 조선일보 정치면 기사

 

경향신문은 “언론인 경력…문화예술 접점 약해”란 기사에서 “국외 소재 문화재 관련 저서와 언론인 경험을 제외하면 문화예술분야와의 접점은 약하다는 평가를 피할 수 없다”며 “언론 경력도 정치·국제 분야에 집중돼 있다”고 평가했다. 

반면 중앙일보는 “40년 현장 누빈 언론인 대한제국 공사관 발굴”이란 기사에서 그가 대한제국 공사관의 존재를 알리고 2013년 국민훈장(모란장)을 받은 사실 등을 언급하며 그의 긍정적인 면을 부각했다. 

한국일보는 “언론계 인사 중 윤 당선자의 의중을 잘 아는 측근 중 한명”이라고 평가했고, 그가 인사청문회를 통과하면 “언론인 출신으로 문체부 장관에 기용되는 여섯 번째 사례”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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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평화의 걸음이 일파만파로 커질 것"

6.15남측위 등, 한미연합군사연습 중단 집중행동

  • 기자명 이승현 기자 
  •  
  •  입력 2022.04.10 21:51
  •  
  •  수정 2022.04.10 22:03
  •  
  •  댓글 2
 
6.15남측위를 비롯한 시민사회단체, 진보정당들은 10일 오후 용산 국방부 일대에서 '한미연합군사연습 중단을위한 '평화의 걸음' 집중행동'을 진행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6.15남측위를 비롯한 시민사회단체, 진보정당들은 10일 오후 용산 국방부 일대에서 '한미연합군사연습 중단을위한 '평화의 걸음' 집중행동'을 진행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오는 12~15일부터 실시 예정인 한미연합훈련을 앞두고 시민사회의 중단 요구가 본격화되고 있다.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6.15남측위, 상임대표의장 이창복)를 비롯해 전국민중행동, 민주노총, 진보당을 비롯한 시민사회단체, 진보정당들은 10일 오후 서울 용산 국방부 일대에서 '한미연합군사연습 중단을 위한 '평화의 걸음' 집중행동'을 진행했다.

국방부 인근 용산우체국에서 행진을 시작한 100여명의 참가자들은 △한미연합군사연습 중단을 통해 대화의 문을 다시 열 것 △선제타격, 대북적대 기조를 버리고 평화를 택할 것을 정부 당국에 촉구했다.

단일기(한반도기)를 앞세운 행진단은 용산우체국 앞에서 전쟁연습 중단 깃발을 들고 평화 염원을 담은 지신밟기 상징의식으로 행진을 시작해 국방부 앞-미군기지 3번 게이트-전쟁기념관까지 △선제타격 △대북적대정책 △한반도 전쟁기지화 △한미연합전쟁 연습 이라고 쓴 장애물들을 차례 차례 밟으며 1시간 행진을 한 뒤 그곳에서 마무리 집회를 진행했다.

행진에는 '전쟁무기 반대! 전쟁기지 반대! 주권회복!'을 내걸고 지난 4일부터 제주도를 출발해 부산, 경남, 경북 김천, 경북 성주, 대구, 전북 군산, 경기 평택, 경기 동두천·의정부까지 전국 행진을 한 '2022 전국 미군기지 자주평화원정단'이 집결해 활동을 일단락지었다.

6박7일간 전국 미군기지를 답사한 원정단은 조끼 가슴팎에 새긴 '이땅은 미국의 전쟁기지가 아니다'라는 팻말을 들고 집중행동에 참가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6박7일간 전국 미군기지를 답사한 원정단은 조끼 가슴팎에 새긴 '이땅은 미국의 전쟁기지가 아니다'라는 팻말을 들고 집중행동에 참가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원정단은 이장희 불평등한 한미SOFA개정 국민연대 상임대표(한국외대 명예교수), 김재하 한국진보연대 상임대표(전국민중행동 조직강화특위위원장), 김은형 민주노총 부위원장, 조헌정 용산미군기지 온전한 반환과 세균실험실 추방을 위한 서울대책위 공동제안자(목사), 김경민 한국 YMCA 전국연맹 사무총장을 공동단장으로 구성하여, 각계 단체 회원 등이 참가했다.

지난 4일부터 9일까지 원정단은 제주 해군기지와 구럼비, 부산 백운포 주한 미 해군기지와 미8군부두, 진해 미 세균전 부대, 성주 사드기지 육상통행로, 대구 캠프캐럴 및 캠프워커, 군산 미군기지, 평택 오산공군기지 신탄약고, 동두천 캠프케이시 및 캠프모빌, 의정부 캠프스탠리 등을 돌며 답사와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한충목 6.15남측위 상임대표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한충목 6.15남측위 상임대표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한충목 6.15남측위 상임대표는 "4년전 4.27 판문점 정상회담을 마친 문재인 대통령은 '이제 한반도에 전쟁은 없다', '적대행위는 없다'고 전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선언을 했지만 대통령도 집권당인 민주당도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국방비 최대 증액 △이명박·박근혜 정권때보다 더 오른 미군 주둔비 △한해도 거르지 않고 실시한 한미연합 훈련선언을 그 예로 들고는, "그 결과 수구반동의 시대가 온 것"이라고 질타했다.

새로 들어설 윤석열 정부에 대해서는 "민주주의·촛불항쟁이 일어났던 광화문을 뒤로하고, 미군이 주둔하는 용산 국방부 건물로 들어와 용산시대를 열겠다고 하는 것은 5천만 민중을 버리고 미군과 군대의 품에 안기겠다는 것"이라며, "이제 공공연히 선제타격, 사드증강, 실기동훈련을 주장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충목 대표는 '의로운 기치를 들고 일파가 나서니 열파, 백파, 천파, 만파가 함께했다'는 '일파만파'의 유래를 설명하고는 "이제 오늘 우리가 평화의 걸음을 통해 반미, 반전, 평화의 기치를 올렸으니 앞으로 전국 각지에 열파, 백파가 함께 하고 8천만 겨레와 전 세계의 천파, 만파가 함께 할 것"이라고 참가자들을 격려했다.

최원석 부산대학생겨레하나 대표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최원석 부산대학생겨레하나 대표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자주평화원정단에 참가한 최원석 부산대학생겨레하나 대표는 "6박7일간 전국의 미군기지를 돌아본 원정단 경험을 통해 미군기지로 인한 이땅 민중의 피해가 너무 막심하여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절박성이 한층 다가온다"고 말했다.

"미군기지 건설을 위해 돈으로 지역주민을 갈라치는 술수, 종이컵 한컵 분량이면 수십만을 살상할 수 있는 생화학무기 실험을 모르쇠하는 뻔뻔함, 밤낮을 가리지 않고 날아다니는 전투기의 굉음이 보여주는 침략성, 술먹고 사람을 죽여도 처벌하기 힘든 불평등은 이제 우리 모두가 힘모아 물리쳐야할 과제로 느껴졌다"는 것.

또 하나. "사드기지가 들어선 성주에서 보았던 헬기가 대구·왜관에서 날아들고 있고 미군기지를 관통하는 철도들이 전국적으로 연결되어 전쟁물자를 실어나르는가 하면 미군기지마다 후방기지, 공군기기, 탄약고, 실험장 등 한반도 전쟁기지화를 위해 치밀하게 수행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고 하면서 "지역, 계층으로 나누어 대응할 것이 아니라 이번 원정단처럼 다양한 연령과 지역, 단체가 함께하는 활동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조원호 평화통일시민회의 공동대표.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조원호 평화통일시민회의 공동대표.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80여개 시민단체와 함께 하는 조원호 평화통일시민회의 공동대표는 "대화를 하면 평화가 보이고 제재를 하면 대결이 깊어진다"며, "대결의 끝은 자명하다. 중국과 러시아를 비롯해 주변국들까지 긴장상태로 몰아넣는 한미일동맹은 군사적 대결을 부추길 뿐"이라고 지적했다.

"유능한 지도자의 역할은 전쟁을 막고 평화를 지키는 것"이라며, "윤석열 정부는 남북교류와 협력, 민주주의의 발전, 평화의 도래는 대화와 협력으로만 가능하다는 지난 80년간의 민주주의 역사를 받아들여 선택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윤석열 정부가 5년전 무지몽매한 과오를 반복한다면 다시 촛불을 들어 우리의 봄을 맞이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김재연 진보당 상임대표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김재연 진보당 상임대표는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적을 만들어 군비를 늘리고 있는 허황한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윤석열 정부의 지향을 직격했다.

"한미동맹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는 선동, 한미동맹의 기치를 내걸고 새로운 정부를 세우겠다는 야욕을 넘어서, 평화를 사랑하고 통일된 국가를 상상하는 모든 사람들이 힘을 모아 자주평화의 새 역사를 만들어갈 수 있도록 하자"고 역설했다.

평화의걸음 공동행동 시작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평화의걸음 공동행동 시작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국방부 앞. 선제타격, 대북적대정책 장애물을 밟으며 행진.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국방부 앞. 선제타격, 대북적대정책 장애물을 밟으며 행진.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국방부 앞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국방부 앞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한미연합군사연습 중단을 위한 평화의 걸음 집중행동 행진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한미연합군사연습 중단을 위한 평화의 걸음 집중행동 행진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한반도전쟁기지화, 한미전쟁연습 장애물을 밟으며 행진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한반도전쟁기지화, 한미전쟁연습 장애물을 밟으며 행진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용산미군기지 담벼락을 따라 행진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용산미군기지 담벼락을 따라 행진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국방부 건너편 집중행동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국방부 건너편 집중행동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한미연합군사연습 중단하라. 마무리집회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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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앗긴 땅 되찾는 제2단계 해방작전

[개벽예감 487] 빼앗긴 땅 되찾는 제2단계 해방작전

 

한호석(통일학연구소 소장) | 기사입력 2022/04/11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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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

1. 마린스끼궁전이 파괴되지 않은 까닭 

2. 정권이 교체될 가망은 없다

3. 빼앗긴 영토를 수복하기 위한 제2단계 해방작전

 

 

1. 마린스끼궁전이 파괴되지 않은 까닭 

 

로씨야-우크라이나전쟁에서 연전련패하여 사실상 몰락위기에 빠진 젤린스끼 종미우익정권을 지원해주는 미국의 행동에 가속도가 붙었다. 미국의 지원행동 중에서 가장 야비한 짓은 종미우익정권에 유리하게 사실을 왜곡한 헛소문을 무더기로 조작, 유포하는 것이다. 그런 왜곡선전에 앞장선 미국 연방정부 고위관리들 가운데는 국방장관 로이드 오스틴(Lloyd J. Austin)도 있다. 그는 2022년 4월 7일 연방상원 군사위원회 청문회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울라지미르 뿌찐 로씨야 대통령이 최근 끼예브 점령을 포기했다. 그는 로씨야군이 우크라이나군에 크게 패하는 것을 보면서 끼예브 점령을 포기하기로 결정했다. 뿌찐은 애초에 우크라이나 수도를 매우 신속하게 점령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그런 예상은 빗나갔다.”

 

위에 인용한 것처럼, 오스틴 국방장관은 로씨야군이 우크라이나 수도 끼예브를 점령하려고 했으나, 우크라이나군과 격돌한 끼예브공방전에서 크게 패하는 바람에 끼예브를 점령하려던 작전을 중지하고 뒤로 물러섰다고 주장했다. 이런 주장은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왜곡인가?  

 

결론부터 말하면, 오스틴 국방장관의 주장은 왜곡발언이다. 로씨야-우크라이나전쟁이 시작된 이후 지금까지 6주가 지나는 동안 그가 전쟁과 관련하여 심심치 않게 쏟아낸 발언들은 거의 모두 실상을 이러저러하게 곡해한 왜곡선전의 연속이었다. 미국을 대표하는 대통령, 국무장관, 국방장관이 공식석상에서 로씨야-우크라이나전쟁에 대해 몇 마디 언급하면, 세계 각국의 종미우익언론매체들은 그 발언내용이 사실인지 아닌지 전혀 검토하지 않은 채 기정사실로 단정해버리고, 수 십 억 인류에게 왜곡된 전쟁정보를 전파한다. 로씨야-우크라이나전쟁과 관련하여 미국이 쏟아내는 허위, 왜곡, 모략은 종미우익언론의 전파경로를 통해 수 십 억 인류의 두뇌 속에 시시각각 주입된다. 

 

미국과 종미우익세력이 퍼뜨리는 허위, 왜곡, 모략을 적출하고, 진실을 찾으려는 문제의식을 날카롭게 벼리면서, 오스틴 국방장관의 왜곡발언을 해부학적으로 분석해보자. 

 

오스틴 국방장관은 로씨야-우크라이나전쟁에서 로씨야군이 달성하려는 목적이 끼예브를 점령하려는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그것은 사실왜곡이다. 지금으로부터 불과 몇 주 전까지만 해도 로씨야의 전쟁목적이 무엇인지 정확히 파악하지 못했던 나 자신도 로씨야군이 끼예브 외곽지대로 집결한 것을 보고 그들의 전쟁목적이 끼예브를 점령하는 것으로 착오했었다. 나만이 아니라, 세계 각국의 정세분석가들도 모두 그런 착오를 범했다.

 

그러나 놀랍게도, 로씨야의 전쟁목적은 끼예브를 점령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로씨야의 전쟁목적이 중간에 바뀐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로씨야의 전쟁목적은 끼예브를 점령하는 것이 아니었다. 이 중요한 문제를 심층적으로 고찰하려면, 다음과 같은 전쟁정보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2022년 4월 7일 로씨야 국방부가 발표한 바에 따르면, 지난 2월 24일 전쟁의 첫 포성이 울린 이후 로씨야군은 총 1,450발이 넘는 각종 미사일을 발사하여 우크라이나군의 전략거점들과 전투부대들을 타격했다고 한다. 이튿날 익명을 요구한 미국 국방부 고위관리는 로씨야군이 개전 이후 총 1,500발 이상 각종 미사일을 발사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이런 사정을 보면, 개전 이후 42일 동안 로씨야군이 미사일을 매일 평균 35발 이상 발사하여 우크라이나군의 전략거점들과 전투부대들을 맹타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의아한 현상이 나타났다. 로씨야군이 미사일을 매일 평균 35발 이상 계속 발사하여 42일 동안 우크라이나를 맹타했는데도, 우크라이나 대통령 볼로지미르 젤렌스끼(Volodymyr O. Zelenskyy)는 여전히 언론에 얼굴을 내밀고 전쟁과 관련한 헛소문을 퍼뜨리고 있다. 젤렌스끼의 그런 모습은 그가 머무는 대통령 관저 마린스끼궁전(Mariinskyi Palace)이 로씨야군의 미사일공격을 받지 않았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우크라이나 수도 끼예브 중심부에 있는 마린스끼궁전은 1744년 로씨야제국 황제 엘리자베따 뻬뜨로브나(Elizabeta Petrovna)의 칙령으로 건설된 유서 깊은 건물이다. 우크라이나가 마린스끼궁전을 건설한 것이 아니라, 로씨야제국이 마린스끼궁전을 건설하였다는 역사적 사실은, 로씨야제국이 멸망한 1917년까지 우크라이나가 독립국가가 아니라 로씨야제국에 복속된 변방이었음을 말해준다. 마린스끼궁전 자체가 로씨야와 우크라이나의 특수관계를 증언해주는 역사유적이다.   

 

이번 전쟁 중에 마린스끼궁전이 파괴되지 않은 까닭은, 로씨야군이 소중한 역사유적을 파괴하지 않으려고 세심히 배려했기 때문이 아니다. 마린스끼궁전이 파괴되지 않은 까닭은, 끼예브 상공을 방어하는 우크라이나군의 반항공망이 매우 강력해서 로씨야군이 마린스끼궁전으로 발사한 미사일을 전부 요격했기 때문이 아니다. 마린스끼궁전이 로씨야군의 미사일 공격을 받지 않은 까닭은, 로씨야의 전쟁목적이 끼예브를 점령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마린스끼궁전이 전쟁의 불길 속에서 온전히 보존된 것이야말로 로씨야의 전쟁목적이 끼예브 점령이 아니라는 것을 웅변적으로 말해준다. 

 

만일 개전시각에 로씨야군이 우크라이나군의 반항공망을 뚫고 들어가는 이스칸데르(Iskander) 저고도변칙비행미사일이나 킨잘 극초음속미사일(Kinzhal hypersonic missile)을 더도 말고 딱 두 발만 발사했더라면, 마린스끼궁전에 머무는 젤렌스끼와 전쟁지휘성원들은 제거되었을 것이다. 마린스끼궁전에는 미사일공격을 막아줄 지하방호시설이 없다. 그러므로 만일 개전시각에 로씨야군이 마린스끼궁전을 미사일로 공격했더라면, 종미우익정권도 무너지고, 끼예브도 함락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로씨야군은 지난 42일 동안 미사일을 1,500발 이상 집중발사하여 우크라이나의 전략거점들을 무수히 파괴했고, 우크라이나 국방부 청사도 개전 첫날 파괴했는데, 정작 가장 먼저 공격했어야 할 마린스끼궁전은 그대로 놔두었다. 이것은 로씨야가 끼예브를 점령하려는 작전계획을 애초에 갖지 않았다는 것을 말해준다. 

 

개전의 첫 포성이 울린 직후 국경선을 돌파하고, 끼예브를 향해 파죽지세로 진격한 로씨야군은 2022년 3월 3일부터 끼예브 중심부에서 약 30km 떨어진 시외도로에서 갑자기 진격을 멈추고 대기상태에 들어갔다. 전차, 장갑차, 방사포, 견인포, 지원차량들로 이루어진 로씨야군 작전행렬은 날로 늘어났고, 끼예브 시외도로에 64km 길이로 길게 늘어서 있었다. 끼예브 시외도로에서 3월 3일부터 1개월 동안 대기하던 로씨야군은 4월 3월부터 갑자기 철수하기 시작하더니, 철수작전을 4월 5일에 끝마쳤다.  

 

로씨야군이 끼예브 시외도로에서 1개월 동안 대기하다가 갑자기 철수한 것을 두고 미국 국방부는 끼예브를 방어하는 우크라이나군이 매우 강하게 저항했기 때문에 로씨야군이 끼예브를 점령하려던 계획을 포기하고 철수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끼예브 시외도로에 대기하던 로씨야군은 끼예브로 진격하려는 작전징후를 전혀 보이지 않았다. 만일 로씨야군이 끼예브를 몇 차례 공격했지만, 끼예브 방어에 나선 우크라이나군이 매우 강하게 저항해서 더 이상 공격하지 못하고, 결국 시외도로에서 후방지대로 철수했다면, 미국 국방부가 주장한 것처럼, 로씨야군이 끼예브를 점령하려던 계획을 포기하고 철수했다고 보아야 한다. 하지만 끼예브 시외도로에 대기하던 로씨야군은 끼예브를 공격하기는커녕 끼예브를 공격할 징후조차 보이지 않고, 그냥 대기상태에 있다가 갑자기 철수한 것이다. 

 

최신 전투장비로 무장한 15만 대군이 교전국 수도의 외곽으로 진격하여 한 달 동안 대기하다가 갑자기 철수한 것은 세계전쟁사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는 매우 특이한 일이다. 그래서 의문이 더 커진다. 로씨야군이 끼예브를 공격하지 않고, 대기상태에 있다가 갑자기 철수한 이유는 무엇일까? 

 

 

2. 정권이 교체될 가망은 없다

 

위에 인용한 오스틴 국방장관의 발언에 따르면, 이번 전쟁에서 로씨야군이 크게 패하자 뿌찐 대통령은 로씨야군을 끼예브 시외도로에서 후방으로 철수시켰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로씨야군이 대패하여 퇴각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오스틴 국방장관이 주장한 로씨야군의 대패-퇴각설은 사실을 엄청나게 왜곡한 거짓말 중의 거짓말이다. 

오스틴 국방장관의 발언내용과 정반대로, 이번 전쟁에서 로씨야군은 대승했고, 우크라이나군은 대패했다. 이것이 실상이다. 로씨야군이 거둔 수많은 전과들은 전쟁의 실상을 웅변적으로 말해준다. 로씨야 국방부가 발표한 로씨야군의 전과는 다음과 같다. 

 

2월 24일 (개전 첫날) - 공군기지 11개소, 작전통제지휘소 3개소, 해군기지 1개소, 반항공미사일기지 18개소를 포함하여 각종 군사시설 83개소 파괴. 우크라이나 국방부 청사 파괴. 

2월 25일 - 공군기지 2개소, 작전통제지휘소 10개소, 반항공미사일기지 14개소를 포함하여 각종 군사시설 118개소 파괴. 우크라이나군 150명이 무기를 버리고 투항. 

2월 26일 - 각종 군사시설 211개소 파괴. 전차와 장갑차 67대, 방사포 16문, 작전차량 87대 파괴. 전투기 6대, 작전헬기 5대 격추. 

2월 28일 - 각종 군사시설 702개소 파괴.  

3월 1~7일 - 각종 군사시설 1,368개소 파괴. 전차와 장갑차 866대, 작전차량 634대, 야포와 박격포 317문 파괴. 무인항공기 81대 격추.  

3월 8~11일 - 각종 군사시설 1,845개소 파괴. 전차와 장갑차 175대, 작전차량 843대, 방사포 113문, 야포와 박격포 389문 파괴. 작전기 98대, 무인항공기 118대 격추.  

3월 12일 - 각종 군사시설 474개소 파괴. 전차와 장갑차 153대, 야포와 박격포 54문 파괴. 작전기 1대 격추.

3월 19일 - 각종 군사시설 62개소 파괴.

3월 20일 - 각종 군사시설 89개소 파괴.

3월 25일 - 우크라이나군 공군사령부 파괴. 

3월 27일 - 각종 군사시설 67개소 파괴.

 

이번 전쟁에서 발생한 전투원 인명손실은 로씨야군이 대승하고, 우크라이나군이 대패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2022년 3월 30일 로씨야 언론매체 <따스통신> 보도에 따르면, 이고르 코나셴꼬브(Igor Y. Konashenkov) 로씨야 국방부 대변인은 취재기자들에게 3월 30일 현재 로씨야군 전사자는 1,351명, 부상자는 3,825명이고, 우크라이나군 전사자는 약 14,000명, 부상자는 약 16,000명이라고 밝혔다. 인명손실현황을 보면, 우크라이나군 전사자가 로씨야군 전사자에 비해 10배 이상 많고, 우크라이나군 부상자는 로씨야군 부상자에 비해 4배 이상 많다. 

 

이번 전쟁에서 로씨야는 우크라이나에 막대한 물적 피해를 입혔다. 2022년 4월 5일 영국 언론매체 <이코노미스트> 보도에 따르면, 이번 전쟁에서 지난 4월 1일까지 우크라이나가 입은 물적 피해는 860억 달러를 훌쩍 넘어선다고 한다. 이를테면, 도로파괴로 발생한 물적 피해는 280억 달러, 도로 이외의 사회간접시설파괴로 발생한 물적 피해는 580억 달러에 이른다는 것이다. 2020년도 우크라이나 국내총생산(GDP)은 1,555억 달러였는데, 우크라이나는 이번 전쟁에서 대패하여 국내총생산의 절반이 넘는 막대한 물적 피해를 입었다. 

 

위에 열거한 로씨야군의 전과를 보면, 이번 전쟁에서 연전련패한 우크라이나군이 거의 궤멸상태에 빠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만일 미국을 우두머리로 하는 제국주의련합세력이 우크라이나에 막대한 분량의 무기와 전쟁물자를 보내주지 않았다면, 우크라이나군은 지금쯤 완전히 궤멸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우크라이나군은 외부지원으로 겨우 연명하고 있다. 이런 사정을 살펴보면, 로씨야군이 크게 패하는 바람에 끼예브를 점령하려던 작전을 포기하고 철수했다는 오스틴 국방장관의 말은 전혀 가당치 않은 소리다. 

 

그렇다면 로씨야군이 끼예브 외곽도로에서 한 달 동안 대기하다가 갑자기 철수한 이유는 무엇인가? 이 물음의 해답을 찾으려면, 정치적 측면과 군사적 측면으로 나누어 고찰해야 한다. 우선 정치적 측면에서 로씨야군의 대기-철수현상을 고찰해보자.      

 

만일 로씨야군이 마린스끼궁전을 미사일로 공격하여 우크라이나 전쟁지휘부를 제거했더라면, 우크라이나군의 지휘통제체계는 마비되었을 것이다. 지휘통제는 군대의 생명이므로, 지휘통제능력을 상실한 군대는 생명이 없는 허수아비 같은 존재다. 지휘통제능력을 상실하고 우왕좌왕하는 우크라이나군은 로씨야군의 집중공격을 받고 궤멸되었을 것이며, 젤렌스끼 종미우익정권은 무너졌을 것이다. 

 

하지만 로씨야는 이번 전쟁에서 젤렌스끼 종미우익정권을 무너뜨릴 수 있었는데도 그렇게 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그 정권을 협상상대로 인정하고 정치협상까지 진행했다. 로씨야가 젤렌스끼 종미우익정권을 무너뜨리지 않은 까닭은, 그 정권이 무너진 뒤에 새로운 반미좌익정권이 수립될 정권교체가망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만일 종미우익정권이 무너졌는데도, 새로운 반미좌익정권이 수립되지 못하면, 로씨야군은 우크라이나를 점령하고 반미좌익세력이 장성하여 집권하는 날까지 군정을 실시해야 하는데, 로씨야가 우크라이나에서 군정을 실시할 가능성은 전혀 없다. 왜냐하면, 로씨야를 반대하는 제국주의련합세력의 도발을 물리치고, 우크라이나 종미우익세력을 진압하면서 반미좌익세력이 집권세력으로 장성할 때까지 얼마나 오랫동안 군정이 실시해야 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군정이 10년으로 늘어날지 20년으로 늘어날지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다. 

 

고찰의 시선을 우크라이나의 정치정세로 돌려보자. 만일 젤렌스끼 종미우익정권이 무너지면, 새로운 반미좌익정권을 세우는 정치적 임무는 반미좌익정당에 의해 수행되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 우크라이나에 반미좌익정당이 존재하기나 하는가? 우크라이나에서 반미좌익정당의 대표자라고 할 수 있는 우크라이나공산당의 소재를 추적해보자. 

 

지난 시기 우크라이나공산당은 소련의 자치공화국인 우크라이나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의 집권당이었다. 1991년 12월 소련이 해체될 때, 우크라이나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이 무너지자 우크라이나공산당도 무너졌다. 그런 정치적 소용돌이 속에서 우크라이나 종미우익세력은 오늘의 우크라이나를 건설했다. 

 

종미우익국가로 변질된 우크라이나에서 우크라이나공산당은 무너졌지만, 그 당을 이끌었던 반미좌익인사들은 살아남았다. 그들은 1993년 6월 19일 우크라이나공산당을 재건하였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난 1998년에 놀라운 정치격변이 일어났다. 재건된지 불과 5년 만에 우크라이나공산당이 의회선거에서 24.65%의 득표률을 올리며 최대 정당으로 일어선 것이다. 뻬뜨로 씨모넨꼬(Petro Symonenko) 우크라이나공산당 제1비서는 1999년 대통령선거에 출마하여 제1차 투표에서 23.1%, 제2차 투표에서 38.8%를 득표함으로써 대중의 지지를 받는 유력한 정치지도자로 올라섰다.  

 

이처럼 우크라이나공산당이 대중적 지지기반을 급속히 확장하면서 정치권을 주름잡게 되자, 미국은 우크라이나 종미우익세력을 배후에서 조종하고, 자금을 지원하여 판세를 뒤집어버리려고 음흉하게 책동했다. 미국의 배후조종과 자금지원을 받은 우크라이나 종미우익세력은 2004년에 중도성향의 정권을 전복시킨 우익정변을 일으켰다. 그것이 ‘오렌지혁명(Orange Revolution)’이다. 2004년 11월 25일 영국 언론매체 <가디언> 보도에 따르면, 당시 미국은 우크라이나에서 ‘오렌지혁명’을 일으킨 종미우익세력에 비밀자금 14,000만 달러를 대주었다고 한다.  

 

‘오렌지혁명’으로 정치적 주도권을 장악한 종미우익세력은 차츰 강해졌고, 그에 반비례하여 우크라이나공산당은 점차 약해졌다. 하지만 당의 정치력량이 약화되었다고 해도, 2012년 당시 우크라이나공산당 당원수는 115,000명 선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종미우익정권은 2019년에 공산당을 불법화하는 탄압을 감행하면서 우크라이나공산당을 말살하려고 미쳐 날뛰었다.  

 

2022년 2월 24일 전쟁의 첫 포성이 울린 날, 젤렌스끼 종미우익정권은 전시계엄령을 선포했다. 전시계엄령도 성에 차지 않은 젤렌스끼는 2022년 3월 20일 반미좌익성향을 가진 11개 정당의 정치활동을 전면 금지시켰다. 그렇게 되자 우크라이나공산당, 우크라이나진보사회당, 우크라이나사회당, 사회당, 좌익세력련합 등은 치명적인 탄압을 받고 존폐위기에 놓였다. 전시계엄령이 선포되고, 정당활동을 금지시킨 탄압이 자행되는 속에서 신나찌무장대가 반미좌익인사를 체포하면 로씨야를 지지하는 반역자로 몰아 즉결처분으로 살해할 수 있다. 뻬뜨로 씨모넨꼬 우크라이나공산당 제1비서와 우크라이나공산당 핵심당원들은 피살위험에서 벗어나기 위해 피란대렬 속에 들어가 이웃 나라로 피신했거나 지하에 숨어있을 것이다. 

 

우크라이나의 정치상황이 이처럼 엄혹해졌으므로, 로씨야군이 끼예브를 점령하더라도, 우크라이나공산당이 집권할 가망은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로씨야군이 우크라이나에서 군정을 실시할 수도 없다. 이런 사정을 보면, 로씨야군은 끼예브점령계획을 애초부터 가지고 있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3. 빼앗긴 영토를 수복하기 위한 제2단계 해방작전

 

2022년 3월 25일 세르게이 루드스꼬이(Sergey Rudskoy) 로씨야군 총참모부 제1부참모장은 취재기자들에게 중요한 정보를 알려주었다. 그것은 이번 전쟁이 시작되기 전, 로씨야군 지휘부가 검토한 작전계획에 관한 정보다. 로씨야군이 끼예브를 점령하지 않고 철수한 이유가 그 작전계획에 들어있다. 루드스꼬이 제1부참모장이 밝힌 바에 따르면, 로씨야군이 끼예브를 점령하지 않고 철수한 이유는 우크라이나가 점령한 로씨야 영토를 수복하기 위한 해방작전을 수행해야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우크라이나가 점령한 로씨야의 영토, 다시 말해서 로씨야가 해방하려는 영토는 도대체 어디를 말하는 것인가? 이 의문을 풀기 위해 로씨야의 영토귀속문제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크라이나 한복판을 북에서 남으로 비스듬히 종단하여 흑해로 흘러드는 드네쁘르강이 있다. 예로부터 그 강의 동쪽은 말로로씨야(Malorossiya)로 일컬었고, 그 강의 서쪽과 남쪽은 노보로씨야(NovoRossiya)로 일컬었다. 말로로씨야는 작은 로씨야(Little Rossiya)라는 뜻이고, 노보로씨야는 새로운 로씨야(New Rossiya)라는 뜻이다. 이런 흥미로운 지명은 오늘 우크라이나 영토가 중세기 이후 줄곧 로씨야제국의 변방이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말해준다. 

 

주민구성을 보면, 말로로씨야는 우크라이나인들이 주를 이룬 로씨야제국의 변방이었고, 노보로씨야는 로씨야인들이 주를 이룬 로씨야제국의 변방이었다. 로씨야제국은 1917년 두 차례 혁명을 거치면서 무너졌다. 국가적 혼란기에 분리독립세력은 반란을 일으켜 말로로씨야와 노보로씨야를 합한 광활한 땅에 우크라이나인민공화국을 건설했다. 레닌이 영도한 소련은 반란으로 급조된 우크라이나인민공화국을 무력으로 해체하여 로씨야제국의 영토였던 말로로씨야와 노보로씨야를 수복하였고, 그 땅에 우크라이나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을 건설했다. 1964년부터 1982년까지 소련공산당 총서기를 역임한 레오니드 브레즈네브(Leonid Brezhnev)가 노보로씨야 출신이다. 그런데 1991년 12월 26일 소련이 해체되는 국가적 혼란기에 분리독립세력이 다시 득세하여 우크라이나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을 무너뜨리고 종미우익국가 우크라이나를 건설했다. 

 

위와 같은 역사적 사실을 보면, 소련이 해체되는 국가적 혼란기에 반란을 일으킨 분리독립세력이 지난 시기 로씨야제국의 영토였고, 그 이후에는 소련의 영토였던 말로로씨야와 노보로씨야를 불법적으로 점령하였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오늘 로씨야의 시각에서 바라보면, 주민구성에서 우크라이나인들이 주를 이루는 말로로씨야가 우크라이나로 분리독립한 것은 불가피한 귀결로 인정할 수 있으나, 주민구성에서 로씨야인들이 주를 이루는 노보로씨야를 분리독립세력이 우크라이나로 흡수통합한 것은 용인할 수 없는 일이다. 

 

1991년 분리독립한 우크라이나에게 빼앗긴 노보로씨야를 되찾아야 할 역사적 임무가 로씨야에 주어졌다. 하지만 소련이 해체된 직후 국력이 약해진 로씨야는 노보로씨야를 수복할 힘을 갖지 못했다. 그러던 차에 우크라이나에서 우익정변이 또 다시 일어나 중도성향의 정권이 전복되는 대혼란이 일어난 2014년에 노보로씨야 인민들이 우크라이나의 노보로씨야 점령을 반대하는 투쟁에 나섰다. 노보로씨야 남부의 크림반도에서 점령반대투쟁에 나선 노보로씨야 인민들은 크림반도를 로씨야 영토로 귀속시켰고, 노보로씨야 북부의 돈바스(Donbas)에서 점령반대투쟁에 나선 노보로씨야 인민들은 도네츠끄인민공화국과 루한스끄인민공화국을 각각 건설했다. 

 

그렇게 되자 우크라이나는 크림반도를 다시 점령하고, 두 인민공화국을 무너뜨리기 위한 무력침공을 도발했다. 이것이 지난 8년 동안 노보로씨야에서 해방군과 점령군이 충돌한 돈바스전쟁이다. 돈바스전쟁 중에 로씨야의 지원을 받은 두 인민공화국은 돈바스의 약 40%를 해방했고, 신나찌무장세력인 아조브련대를 주축으로 편성된 우크라이나군은 돈바스의 약 60%를 점령했다.  

 

해방군과 점령군이 충돌한 돈바스전쟁 중에 로씨야군은 우크라이나군이 점령한 돈바스의 약 60%, 다시 말해서 도네츠끄인민공화국의 미해방지구와 루한스끄인민공화국의 미해방지구를 해방하는 작전계획을 세웠다. 그에 대항하여 우크라이나도 그 두 공화국을 무너뜨리고 해방지구를 다시 점령하려고 집요하게 책동했다. 2022년 3월 9일 로씨야 국방부가 발표한 바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종미우익정권이 돈바스(노보로씨야 서북부지역)를 공격하는 계획을 수립하였다는 것을 보여주는 비밀문서가 전투 중에 로씨야군에 의해 노획되었다고 한다. 여섯 페이지로 된 이 노획문서는 우크라이나어로 작성되었는데, 돈바스 전역을 점령하기 위한 작전계획을 검토한 내용이 들어있다고 한다. 

 

이번 전쟁에서 로씨야가 달성하려는 목적은 우크라이나에 빼앗긴 노보로씨야를 되찾아 영토를 수복하고, 우크라이나의 지배를 받는 노보로씨야 인민을 해방하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번 전쟁은 로씨야의 영토수복전쟁이며, 노보로씨야해방전쟁이다. 이런 객관적 사실을 알지 못한 사람들이 거짓선동에 귀가 솔깃해서 젤렌스끼 종미우익정권을 지지하고 동정하는 것은 무지몽매와 경거망동 이외에 다른 게 아니다.  

 

미국과 젤렌스끼 종미우익정권은 로씨야군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고 주장하면서, 우크라이나 점령지에서 로씨야군이 철수해야 전쟁이 끝날 것이라고 떠들어대지만, 그것은 새빨간 거짓말이다. 로씨야군이 우크라이나 영토를 침공하여 전쟁이 일어난 것이 아니라, 우크라이나군이 로씨야 영토인 노보로씨야를 침공하여 전쟁이 일어났다는 것, 바로 이것이 진실이다. 그러므로 철수해야 하는 쪽은 노보로씨야를 침공한 우크라이나군이다. 

 

노보로씨야해방전쟁이 끝나려면, 로씨야군이 노보로씨야 미해방지구에서 우크라이나군을 몰아내고 영토를 수복하는 길밖에 다른 길은 없는데, 지난 5년 동안 우크라이나군은 노보로씨야 점령지에 견고한 방어선을 구축했다. 그러므로 만일 로씨야군이 이번 전쟁에서 작전범위를 노보로씨야로 한정하면, 우크라이나군이 노보로씨야전선으로 집결하여 방어선을 더욱 증강할 것이고, 따라서 로씨야군은 더욱 증강된 우크라이나군 방어선을 돌파하기 위해 장기간 격전을 벌여야 할 것으로 예상되었다. 그래서 2022년 3월 25일 세르게이 루드스꼬이 로씨야군 총참모부 제1부참모장이 밝힌 바에 따르면, 로씨야군은 우크라이나군이 노보로씨야전선으로 집결하지 못하도록 우크라이나 북부에 대규모 전투부대를 집결시켜서 그 부대들이 마치 끼예브로 진격할 것처럼 기만전술을 펴는 사이에, 우크라이나 전역에서 군사시설들과 전투부대들을 계속 파괴하여 우크라이나군의 전투력을 결정적으로 약화시켰다는 것이다. 루드스꼬이 제1부참모장은 그로써 로씨야군의 제1단계 작전계획이 완수되었다고 말했다. 그처럼 로씨야군이 제1단계 작전을 수행하는 동안, 루한스끄인민공화국은 자국 영토의 93%를 해방했고, 도네츠끄인민공화국은 자국 영토의 54%를 해방했다. 

 

2022년 3월 30일 <따스통신> 보도에 따르면, 이고르 코나셴꼬브 로씨야 국방부 대변인은 로씨야군이 우크라이나 북부전선에서 모든 과업을 수행했으므로 북부전선에 배치했던 로씨야군을 해방작전(노보로씨야해방작전)을 위해 재편성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것은 제1단계 작전계획을 완수한 로씨야군이 제2단계 작전에 돌입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제부터 로씨야군은 우크라이나군을 점령지에서 몰아내고, 노보로씨야 미해방지구를 해방하는 제2단계 작전을 수행하게 된다. 그래서 우크라이나 북부전선에 배치되었던 로씨야군 주력부대는 지금 노보로씨야전선으로 대거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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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 끌고가는 일본군 피해왔더니..." 특명, 집을 지켜라

옥천 청산면 상예곡리 3대고택 '김진사댁' 일궈온 93세 정헌애씨 이야기

22.04.09 20:03l최종 업데이트 22.04.09 20:03l
큰사진보기충북 옥천군 청산면 상예곡리 '김진사댁'의 정헌애씨
▲  충북 옥천군 청산면 상예곡리 "김진사댁"의 정헌애씨
ⓒ 월간 옥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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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옥천군 청산면 상예곡리에는 고택이 세 개 있다. 김광로 선생이 우암 송시열 선생과 함께 후학을 양성했다던 예곡정사, 광산 김씨 문중의 제사를 지낼 때 집안 사람들이 모인다는 김씨 종갓집 그리고 바로 '김진사댁'이다.

고조할아버지 대에 지어졌다는 김진사댁에는 놀랍게도 지금까지 사람이 살고 있다. 이 집을 자신의 세상처럼 여기며 살아왔다는 정헌애(93)씨다. 그는 이 집에서 겪은 모든 일이 마치 어제 꾼 꿈처럼 아득하고도 생생하다며 묻어둔 옛이야기를 시작했다. 다음은 정헌애씨의 시점에서 내러티브 형식으로 재구성한 사연이다.

진사댁에 시집온 새각시의 임무

김 진사가 누구냐고? 우리 시아버지야. 그런데 시할아버지 때부터 진사댁이라 불렸다고 그래. 시할아버지는 참봉, 시아버지는 진사를 달았다지. 이 집에 시할아버지를 모시던 사당이 있었는데, 지금은 관리가 어려워 죄 없애버렸어.

없어진 게 사당뿐인가. 광채며 사랑채, 행랑채도 관리가 어려워 전부 없앴지. 외양간이며 가매채(가마채), 목욕간, 사랑채, 사당, 행랑채, 안채 하다못해 방앗간도 있었어. 지금은 시어머님이 지내던 안채만 남겨놓고 나 홀로 생활한다오.

이 집에 대한 첫 기억이라... 나 새각시 시절에는 해가 뜨기도 전에 눈을 떠야만 했어. 어른들 기침 전에 세수도 하고 곱게 분칠도 하고 옷도 단정하게 차려입었어.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내 몸단장이 아냐. 이 집 삽짝문을 활짝 열어 놓는 일이야. 해가 뜨기 전에 문을 열고, 해가 지는 찰나 문을 걸어야 하는 게 새각시의 일이었지. 이게 이 집에 대한 내 첫 번째 기억이라오.

우리 시아버지는 형제간에 우애가 참 좋았어. 집성촌인 이 마을에선 여기 사는 사람들이 죄다 형제였지. 집에 손님들이 엄청나게 드나들었다오. 이 집 관리는 시어머니와 내게 맡겨놓은 한량이었지. 술을 어찌나 좋아하시는지 내가 놋그릇에 술을 떠다가 20분에 한 번씩 술을 날랐어. 버선이 남아날 일이 없을 정도였지. 시어머니는 매일 술을 담았어. 누룩, 찹쌀, 멥쌀 그 냄새가 아직도 코끝을 스치네. 지금은 술이라면 그저 바라보기도 싫은 정도야.

내가 시집오던 때는 일제강점기였다오. 16살 정도가 되면 군인들이 처녀를 끌구 갔지. 철도에서 처녀들을 가로채서 기차에 태워 마구잡이로 끌고 가는 거야. 당시 어른들 말로 신세 조지는 거라고 그래.

우리 집 어른들은 나를 각별히 아꼈어. 특히 아버지와 오라버니가 나를 많이 아꼈다오. 내 이름이 헌애잖아. 울 아버지 눈에 내가 하도 귀여우니, 평생 사랑받고 살라고 '사랑 애(愛)' 자를 이름에 붙여주신 거야. 그러니 일본 놈들이 나를 훔쳐 갈까 얼마나 노심초사했겠어? 시집 자리를 서둘러 알아본 게지. 그렇게 이 집으로 시집을 왔다오.

시집을 와서 3년간 아침 저녁으로 바삐 시집살이시키더니, 얼마간 쉬다 오라며 나를 친정에 보내더라구. 가을이었어. 친정 가는 길이 참 좋았어. 콩닥콩닥 가슴이 다 설레더라고. 내 고향이 영동 심천인데, 거기까지 가는 길이 어찌나 멀게만 느껴졌는지 몰라. 눈앞에 집이 아른거렸어. 친정에서 시간을 보내는데 어느 날 시댁에서 편지를 한 통 부쳐 온 거야. 집에서 살림을 봐주던 할매가 돌아가셨으니, 날 더러 다시 돌아오라더군. 내참, 출가외인인데 별수가 있어? 돌아가야지.

나를 예뻐하던 울 아버지가 나를 이 동네까지 데려다줬어. 그때가 음력 4월이야. 아버지가 모시 두루마기를 점잖이 차려입고 친정서 직접 만든 귀한 엿 한 광주리를 들고, 자갈밭이며 흙탕길을 자신의 몸을 앞세워 나를 이끌고 왔어. 혹시 길에서 나를 놓칠까 돌아보며 노심초사 걱정하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오.

청산에 도착하니 시댁 일꾼 몇 명이 나를 데리러 나와 있더라고. 아버지께서는 나를 앞에 두고 '앞으로도 시부모님 잘 받들고 살거라' 하시더니, 못내 아쉬운지 몇 번이고 뒤를 돌아봐. 그러더니 내 손을 잡고 '얘야, 헌애야. 내가 곧 회갑이니 너도 그날 집에 꼭 오너라' 당부하셨지. '보고 싶어도 꾹 참고 그때 필히 오너라' 다정히 말씀하셨어. 이 애비 회갑 때 꼭 오너라. 그때 다시 만나자... 그 말이 내 기억 속 울 아버지 마지막 말씀이야.
 
전쟁통에도 떠날 수 없던 집

 
큰사진보기충북 옥천군 청산면 상예곡리 3대고택인 '김진사댁'
▲  충북 옥천군 청산면 상예곡리 3대고택인 "김진사댁"
ⓒ 월간 옥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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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지나지 않아 6.25가 터지더군. 쿵쿵 소리가 나고 인민군이 총을 차고 돌아다닌다고 하대. 그래도 나는 이 마을에만 있으니 전쟁이 얼마나 무서운 건지 잘 몰랐다, 이거야. 인민군이 마을에 오기는 왔어. 학교가 있으니 거기서 밥도 먹고 모여있기도 하더라고.

어느 날 내가 하늘을 올려 보니, 울 친정이 있는 심천 방향에 불이 번쩍번쩍하는 거야. 나중에 알고 보니 6.25 난리 통에 마을이 절단이 났다 하대. 마을 사람들이 다 죽거나 객지로 피난을 나간 게지. 마을에 폭탄이 떨어졌는데, 감나무에 묶어둔 소가 그 소리만 듣고도 며칠을 날뛰다 놀라서 죽어버리더랴. 그 소를 땅에 묻으니 이듬해 주먹 두 개만한 감이 주렁주렁 열렸다고 그래.

근데 문제는 그 폭탄에 우리 오라버니가 죽었다고 마을에 거짓 소문이 났더라는 거야. 우리 아버지가 그 소식을 듣고 놀라 그길로 며칠간 시름시름 앓더니 일어나지 못하고 돌아가셨다더구먼. 우리 오라버니는 집에 돌아와 이 소식을 알고 그 애통함에 가슴을 쳤대지.

우리 외할아버지가 내게 울 아버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알리려고 며칠을 걸어 걸어 청산엘 오려는데, 전쟁통에 길이 막혀 다시 돌아가야만 했다더라고. 며칠 뒤에 다시 출발하려는데, 울 엄니 꿈에 울 아버지가 나와서 그러더랴. 헌애한텐 알리지 말라고. 그때도 나는 아무것도 모른채 하염없이 이 집을 지키고만 있었다오.

우리 바깥양반? 이 집엘랑 관심이라곤 하나도 없었어. 외양간이며 가매채, 목욕간, 사랑채, 사당, 행랑채, 안채, 방앗간... 어휴 그걸 다 말해 뭐해. 400평에 이르는 큰 집을 그저 나와 시어머니께 맡겨놓고 객지 생활을 했다오. 바깥양반은 아무것도 할 줄 몰랐어. 그냥 이 세상에 없다고 일찍이 단념했지. 덕분에 이 집을 내가 도맡아 살림을 보는데, 혼자 이 거대한 집을 관리하는 것이 어디 편하겠남? 주먹을 꼭 쥐고 아침마다 마음을 굳게 먹었지.

새마을 운동할 때인가, 마을 초가집 지붕을 죄다 뜯겠다고 그러대. 그 찰나에 우리 집 지붕도 서까래가 무너지고 골이 지더군. 영동에서 기술자를 어렵사리 수소문해 그 양반을 불러다 마당에서 한 계절 내내 내둥 기와를 구워 올렸다오. 근데 어째 내가 속은 것 같아. 기와가 무거워서 집이 휘더구먼. 이건 아니다 싶걸래 다시 알아봐서 대전에서 대목이라 불리는 유명한 목수를 불렀어. 새마을 기와라는 게 있는데 그게 가볍다고 그걸 써보랴. 얹었지. 괜찮겠다 싶어 한숨 돌리는 순간 비가 새.

아, 날 더러 하라는 계시구나 싶더라. 사다리를 놓고 지붕에 올라가 닭의 눈처럼 뽕뽕 뚫린 구멍 수백여 개를 하나씩 땜질을 했어. 남자들이 나를 보고 혀를 내두르더라. 아, 그래도 온전치 않은 거야, 집이. 정확히 2년이 지나니 비가 도루 새더구먼. 비니루 공장엘 찾아가서 거대한 비니루를 몇 장 얻어왔지. 다시 지붕에 올라가 돌멩이루 비닐을 꾹 눌러 놓구 매일 같이 지붕에 올라가 땜질을 했어. 나는 여자래두 지붕에 올라가 살았어.

어느 날 관광으로 강원도 인제 백담사엘 갔는데 거기 가서 보니 내 눈에 기와가 달리 보이더라구. 물어보니 그게 동기와래. 재질이 동판이고 묵직하면서도 얹으면 우아하다는 거지. 집에 돌아와서 마을에 좀 배웠다는 공학 박사를 시켜

동기와 회사를 알아봤어. 수소문 끝에 청주에서 사람을 불러 동기와를 얹었지. 지금 집 기와가 그 기와야. 그저 이 집을 건사하겠다는 일념으로 할 수 있는 건 다 했지. 일꾼들이 여자라 우습게 보지 못하도록 정신을 똑똑히 하자. 일꾼 여덟 밥을 섭섭지 않게 다 해주고, 금전을 관리하고 지붕엘 따라 올라가 지시하면서 엄하게 했지.

내 대에서 이 집 기둥을 살리지 않으면 모든 게 다 무너진다. 오직 그것만 생각했어. 집이 없으면 가문이 없어지는 거나 마찬가지잖아. 그 정신으로 세 번이나 이 집 기와를 갈았다 이거야.

매일매일이 어제 꾼 꿈같아. 생생하지만 아득해. 내가 어떻게 그렇게 살았을까. 지금은 물 한 꾸러미도 못 드는데 말야. 마을 사람들이 남자가 사는 집도 이렇겐 관리 못 할 거라고 날 추켜세우면 앞에서는 수줍어했지만, 사실 속으론 당당한 마음이었어. 우리 마을에서도 유명한 집이 됐지.

세월이 흘러도 변치 않은 것
 
충북 옥천군 청산면 상예곡리 '김진사댁'의 정헌애씨
▲  충북 옥천군 청산면 상예곡리 "김진사댁"의 정헌애씨
ⓒ 월간 옥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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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어린 시절 얘기도 이 집을 유지해온 얘기만큼 흥미롭다오. 내가 아홉 살 적에 또래 사촌이랑 나물을 뜯으러 간 거야. 나물이 뭔지도 모르면서 사촌이 가자니 철모르고 따라간 거지. 그런데 까마귀 두 마리가 나랑 사촌 머리 위를 빙글빙글 도는 거라. 그러더니 둘 다 머리가 깨질 듯 아프기 시작해.

그날 저녁부터 둘이 똑같이 병상에 드러눕더니 죽는시늉을 하면서 아무것도 먹덜 못해. 자꾸 뭐가 먹고 싶다고 부르짖는데 사다 주면 입을 딱 다물고 먹덜 안 햐. 그렇게 다섯 달을 내내 앓아누웠어. 사람들은 죽을 거라고 했지. 자꾸 뭘 먹고 싶다고 하는데 구해다 주면 입을 열질 않는 거야.

동네 어른들 말을 들어보니 마귀가 붙었다더구먼. 뭘 얻어먹으려고 걸신 같은 마귀가 붙은 거야. 다섯 달을 드러누워선 먹지는 않고 죽지도 않고 계속 요구만 하더래. 그러던 어느 날 내가 누워서 창밖을 딱 보는데, 햇살이 환하게 느껴져. 따뜻하고, 어째 일어날 수 있을 것만 같더라고. 그러더니 양지를 향해 머리를 먼저 들고 몸을 일으켰어. 그런데 그때 마침 내 사촌도 똑같이 머리를 들고 일어났다는 거야. 그날로 마귀가 떨어진 거지.

한번 죽었다 깨어나서 그런가? 내가 어릴 땐 꽤나 영명하고 총명했다오. 시집을 와서도 불을 때면서 책을 읽었지. 그때 그 총기를 이 집 유지하는 데 다 보탠 게야. 누구는 방이 줄고 집에 뭐가 많이 없어졌다고 아쉬운 소리를 하지만, 나는 내 선에서 정리한 것들을 절대 후회하지 않는다오. 그 거대한 집채를 다 두고 있었으면, 이 늙은이 어깨는 더 무겁고 후손들은 그걸 돌보느라 버거웠을 게지.

텔레비전을 보면 세상이 참 많이 변했다 싶다가도, 이 집 바깥을 슬슬 걸어보면 많이 변하지 않은 것도 같다오. 마을 사람들 무해하고, 무득하고 인심 좋은 건 그대로구나, 늘상 고맙게 생각해.

그래 맞아, 그래도 세월은 많이도 변했어. 지금은 유행 따라 살아간다지만 예전엔 그렇지 않았어. 그저 진득하게 사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라 여겼던 거지.

젊은 시절엔 어딜 놀러 가도 집들이 그렇게 눈에 들어오더군. 내가 집을 세상이라 생각하고 살았던 거야. 100살이 다 되어가는 지금에야 내 눈에도 조금씩 다른 것이 들어오기 시작한다오. 세상엔 보고 살만한 것들이 실은 무수히 많았던 게지. 그래서 내 집에 쏟아지는 관심이 그저 어리둥절해.

내 소원은 내가 아는 모든 사람 건강하게 잘 지내고 무탈하게 사는 것. 지금까지는 내 복을 이 집 건사하고 내가 살아오는 데 다 써버린 것만 같아. 그래도 내게 나눠줄 수 있는 복이 남았다면, 이 마을 누구든 가리지 않고 똑같이 나눠 주고 싶어. 이건 아주 옛날부터 영원히 변치 않을 나의 유일한 소원이라오.
 
월간옥이네 통권 57호(2022년 3월호)
글·사진 서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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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옥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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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앤장-진보·보수 정권 넘나든 한덕수의 달콤쌉싸름한 인생

등록 :2022-04-10 07:29수정 :2022-04-10 09:01

 
[한겨레S] 성한용 선임기자의 정치 막전막후 423
총리 후보자의 ‘화려한 스펙’


정권 넘나든 처세-김앤장 들락날락
MB정부 초대 한승수 총리 데자뷔
‘공정과 상식’에 어울리는지 의문
내각의 자율과 책임 확대도 난망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가 4월 3일 오후 서울 종로구 통의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기자회견장에서 한덕수 국무총리 후보자 인선을 직접 발표한 후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가 4월 3일 오후 서울 종로구 통의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기자회견장에서 한덕수 국무총리 후보자 인선을 직접 발표한 후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대통령제 국가인 미국에는 국무총리가 없습니다. 우리나라는 대통령제 국가인데도 총리가 있습니다. 헌법에 의원내각제 요소가 섞여 있기 때문입니다.1948년 정부 수립 때부터 총리가 있었습니다. 대한민국 최초의 국무총리는 이범석 총리였습니다. 국방부 장관을 겸임했습니다. 대통령·부통령에 이어 3인자였습니다. 총리는 대통령과 함께 국책 의결 합의체 국무원의 구성원이었습니다. 대통령이 임명하고 국회의 승인을 얻어야 했습니다. 총리의 국무위원 임명 제청권은 1952년 개헌 때 들어갔습니다.1960년 4·19 혁명으로 의원내각제가 되면서 국무총리는 행정부 수장으로 올라섰습니다. 장면 총리가 그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1963년 3공화국 헌법이 다시 대통령제를 채택하면서 총리는 행정부 2인자가 됐습니다. 대통령이 임명했지만 국회의 승인은 받지 않았습니다. 국무위원 제청권, 해임건의권이 있었습니다. 1972년 유신헌법에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는 조항이 들어갔습니다.

 

 총리는 대통령 유고라는 특별한 상황에서 오히려 빛나는 특이한 자리입니다. 1960년 4·19 혁명 뒤 허정 총리 겸 외무부 장관, 1979년 박정희 대통령 서거 뒤 최규하 총리,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 뒤 고건 총리, 2006년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 뒤 황교안 총리가 대통령의 권한을 대행했습니다. 일시적이지만 국가의 원수요, 행정부 수반이요, 군통수권자라는 권좌에 올랐습니다.

 

1인자 없어야 빛나는 2인자 숙명

평상시에는 총리가 별로 빛이 나지 않습니다. 권력이 대통령에게 집중돼 있기 때문입니다. 과거에는 대통령의 메시지를 대신 읽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대독 총리라는 말 들어보셨지요? 대통령 대신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하므로 민심 수습을 위해 언제든 물러날 각오로 일해야 했습니다. 쉽게 말해서 서열은 높지만, 권력은 약한 자리가 총리입니다.그렇다 보니 대통령이 총리 인선을 할 때도 능력과 함께 정치적 상징성을 고려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특히 임명권자인 대통령의 약점을 보충해주는 보완재 인선이 많았습니다. 1987년 대통령직선제 개헌 이후 첫 번째 총리 인사를 보면 그런 특징이 잘 드러납니다.군 출신 노태우 대통령의 첫 번째 총리는 이현재 전 서울대 총장이었습니다.“마침내 총리 후보가 3~4명으로 압축되었다. 올라온 자료들을 검토해 보니 모두 훌륭한 분들이었다. 나는 여기서 원칙 하나를 정했다. 안타깝더라도 내 고향인 대구·경북 출신은 배제한다는 것이었다. 최종적으로 제6공화국의 초대 총리로 이현재 전 서울대 총장을 내정하고 나와 홍(성철) 실장이 그를 만나 승낙을 얻어 냈다.”“총리 인선에는 능력과 출신지도 고려했지만, 중후한 인품과 덕성을 따진 결과 몇 분의 후보가 나왔다. 그 가운데는 총리직을 고사한 분도 있었다. 결국 이현재 씨를 국무총리로 선정했는데 퍽 만족스러웠다. ‘우(遇) 대통령에 현(賢) 재상’이라 궁합이 꼭 맞는 셈이었다.”(2011, 노태우 회고록)김영삼 대통령의 첫 번째 총리는 호남 지역구의 황인성 국회의원이었습니다. 영호남 지역 갈등을 고려한 인선이었습니다.김대중 대통령은 좀 특이한 경우입니다. 디제이피 연합으로 ‘김대중 대통령-김종필 국무총리’를 공약하고 대통령에 당선됐습니다. 그런데도 거대 야당 한나라당은 국회에서 오랫동안 임명 동의를 거부했습니다.“3월 2일 국무총리 임명동의안 표결을 위해 국회가 열렸다. 나와 조순 한나라당 총재는 지난 2월 27일 오찬 회동을 갖고 표결 처리에 합의한 바 있었다. 조 총재는 거듭 김종필 총리의 지명 철회를 요구했다. 내가 분명하게 선을 그었다.‘자민련과의 연합은 국민과의 약속이었고, 자민련과의 합의를 깨는 것은 배신행위입니다. 김 총리 지명이 부당하다고 생각하면 투표에 참여해서 반대하는 것이 마땅합니다.’마음은 온통 국회에 있었다. 나는 특별한 일정도 잡지 않고 국회 쪽을 살폈지만 비관적인 상황 보고만 올라왔다. 한나라당 의원들이 표결에는 참여했지만 이번에는 백지 투표를 했다. 이를 감지한 여권 의원들이 강력하게 항의하는 소동이 벌어져 끝내 투표가 중단되고 말았다. 나는 매우 상심했다. 이것은 대통령 선거 결과에 승복하지 못하겠다는 정치적인 의사 표시였다.결국 나는 결심해야 했다. 거대 야당에 떠밀려 다닐 수는 없었다. 3월 3일 김종필 총리서리 체제를 출범시켰다. 퇴임을 하루 앞둔 고건 총리의 제청으로 17개 부처의 조각을 마무리 지었다. 고 총리가 진정 고마웠다.”(2010, 김대중 자서전)노무현 대통령은 김영삼 대통령의 마지막 총리였던 고건 전 총리를 발탁했습니다. 그 이유를 노무현 대통령의 참모였던 문재인 대통령은 이렇게 기록했습니다.“내각에서 파격적 발탁이 많다 보니, 국무총리 인사는 선택폭이 좁아졌다. 당선인은 조각의 파격성 자체에 대한 염려는 없었지만, 그로 인한 언론이나 한나라당으로부터의 공격을 염려했다. 그 때문에 총리는 일종의 안전판 역할을 해 줄 인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당시 김원기 전 의원 등이 유력하게 거론됐으나, 당선인은 의외로 고건 전 총리를 선택했다. 물론 내부에서도 반대가 많았다. 아무리 그래도 참여정부 정체성과 너무 맞지 않는다는 의견이 참모들 사이에 많았다. 그러나 당선인은 선택의 문제라고 말했다. 만약 총리를 그런 방향으로 하지 않으려면, 조각의 파격성을 완화하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2011, 문재인의 운명)여기서 잠깐 고건 총리 얘기를 하고 넘어가겠습니다. 고건 총리는 김영삼 대통령의 마지막 총리였습니다. 김영삼 대통령의 마지막 개각 때 제청권과 해임건의권을 행사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 취임 뒤에는 김종필 총리 후보자가 국회 임명동의를 받지 못하자 김대중 대통령의 요청으로 김대중 정부의 새로운 장관들을 제청해줬습니다. 2002년 노무현 대통령의 첫 번째 총리로서 제청권을 행사했습니다. 2004년에는 노무현 대통령이 탄핵소추로 인한 직무정지에서 돌아와 장관 제청을 요청했지만 “물러가는 총리가 제청권을 행사하는 것은 옳지 않다”며 거부했습니다. 참 특이한 이력입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한승수 총리를 기용했습니다. 인선 이유를 이렇게 밝혔습니다.“누구보다 글로벌 마인드를 갖고 있고 다양한 국내외 경험이 있다. 국제적 경험과 인적네트워크를 통해 우리가 지향하는 경제를 살리고 통상과 자원 외교를 할 수 있는 가장 적격자로 생각했다. 새 정권이 지향하는 국민화합 차원에서도 매우 적합한 인물이다.”한승수 총리는 강원도 춘천 출신으로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를 하다가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정부에서 상공부 장관, 주미대사, 대통령 비서실장, 부총리 겸 재정경제원 장관, 외교통상부 장관을 지냈습니다. 13·15·16대 국회의원도 했습니다. 화려하지요?박근혜 대통령의 선택은 헌법재판소장을 지낸 김용준 인수위원장이었습니다. 박근혜 당선자가 직접 밝힌 인선의 이유는 이러했습니다.“헌법재판소장을 역임하는 등 평생 법관으로서 국가의 법과 질서를 바로 세우고, 확고한 소신과 원칙에 앞장서온 분이다. 나라의 법치와 원칙을 바로 세우고 무너져내린 사회 안전과 불안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을 해소하고 사회적 약자가 보호받는 국민 행복시대를 열어갈 적임자다.”

 

그러나 김용준 후보자는 부동산 투기 의혹 등이 불거지며 5일 만에 낙마했습니다. 박근혜 당선자는 며칠 뒤 정홍원 전 법률구조공단 이사장을 총리 후보자로 지명했습니다. 이번에는 진영 인수위 부위원장이 발표했습니다.“그간 공직자로서 높은 신망과 창의 행정 구현의 경험, 그리고 바른 사회를 위한 다양한 공헌을 고려했다.”박근혜 대통령은 확실히 법조인들을 좋아했던 것 같습니다.문재인 대통령의 선택은 호남 출신으로 정치 경험이 풍부한 이낙연 총리였습니다. 역시 보완재로 볼 수 있습니다.이번에 윤석열 당선자가 노무현 정부 마지막 총리를 지낸 한덕수 전 총리를 선택한 이유는 뭘까요?“정파와 무관하게 오로지 실력과 전문성을 인정받아 국정의 핵심 보직을 두루 역임하신 분이다. 민관을 아우르는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내각을 총괄하고 조정하면서 국정 과제를 수행해 나갈 적임자다.”

 

‘고스펙’에도 불가론 나온 까닭

한덕수 후보자는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서 특허청장, 통상산업부 차관,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 오이시디 대사, 청와대 정책기획수석·경제수석, 산업연구원장, 국무조정실장,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 한-미 에프티에이 체결지원위원장, 국무총리, 주미대사, 무역협회장, 기후변화센터 이사장을 지낸 사람입니다. 어마어마하지요?윤석열 당선자로서는 한덕수 후보자가 전북 출신으로 김대중 노무현 정부에서도 고위 공직을 맡았던 사람이기 때문에 더불어민주당이 국회 임명동의를 반대할 수 없을 것이라는 정무적 판단을 했을 것입니다.그런데 더불어민주당 사람들에게 한덕수 후보자에 대한 평판을 물어보면 좀처럼 긍정적인 대답을 듣기 어렵습니다. 왜 그럴까요?김대중 정부 청와대 비서관을 지낸 김기만 전 방송광고진흥공사 사장이 최근 자신의 페이스북에 한덕수 불가론을 여러 차례 썼습니다. 너무 길어서 내용을 소개하지는 않겠습니다.흥미로운 것은 한덕수 후보자가 과거 이명박 정부 초대 국무총리였던 한승수 총리와 무척 많이 닮았다는 점입니다. 이름만 비슷한 것이 아닙니다.한승수 총리는 경제와 통상 분야 전문가였습니다. 한덕수 후보자도 그렇습니다. 한승수 총리는 역대 정권을 넘나들며 고위 공직을 섭렵했습니다. 한덕수 후보자도 그렇습니다. 한승수 총리는 “나라가 어려울 때마다 정부에 들어가 국가 이익을 위해 노력했다”고 했습니다. 한덕수 후보자는 “국가가 원한다면 봉사해야 한다”고 했습니다.김앤장이라는 치명적 공통점도 있습니다. 한승수 총리는 총리를 하기 전에 김앤장 고문을 했고 총리를 마친 뒤에도 다시 김앤장 고문을 했습니다. 한덕수 후보자도 그렇습니다. 2017년 12월부터 최근까지 4년 4개월 동안 김앤장에서 19억7748만원을 받았습니다.이번에 다시 총리를 하고 난 뒤에는 또다시 김앤장 고문으로 돌아갈까요? 무척 궁금합니다. 고위 공직과 로펌 로비스트를 오가는 대한민국 공직 사회의 도덕적 파탄을 우리가 도대체 언제까지 지켜봐야 할까요?2008년 7월 저는 ‘한승수 총리의 달콤한 인생’이라는 제목으로 칼럼을 쓴 일이 있습니다. 칼럼을 읽은 한승수 총리가 전화로 “내 인생이 그렇게 달콤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라고 이의를 제기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한덕수 후보자의 인생도 한승수 총리 못지않게 달콤하고 화려한 것 같습니다.

 

이번 한덕수 후보자 인선은 윤석열 당선자에게 우호적인 이른바 보수 언론도 탐탁지 않게 보는 것 같습니다. <조선일보> 4월 4일 치 사설에는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한 후보자의 선택을 마냥 흡족해하는 반응만 있는 것은 아니다. 새 정부의 첫 인선인 만큼 윤 당선인이 새 시대를 알리는 신선한 인물을 발탁해주길 바라는 국민의 변화 욕구와는 거리가 있다는 것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한국 사회의 도약을 주도하는 20·30세대와 교감하며 정책을 총괄하기엔 시대 감각이 맞겠느냐는 말도 나온다.”<동아일보> 4월 5일 치 사설에는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윤석열 새 정부의 한덕수 국무총리 카드를 놓고 한편에선 ‘올드보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검찰 외엔 국정 경험이 부족한 윤 당선인을 도와 초대 내각을 안정적으로 이끌 풍부한 경륜과 역량을 갖췄지만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대응할 진취적 리더십과는 거리가 있지 않느냐는 얘기다. 이는 73세의 나이 문제만은 아니다. 오랜 공직 생활을 통해 굳어진 관리형 이미지 탓도 있다.”

 

한 후보자에게 확실한 두 가지

어쨌든 한덕수 후보자가 윤석열 정부의 초대 국무총리를 할만한 사람인지 아닌지는 앞으로 언론의 검증과 국회 인사청문회 등을 거치면서 차차 드러날 것입니다. 하지만 최소한 두 가지는 확실한 것 같습니다.첫째, 한덕수 후보자가 윤석열 정부의 ‘공정과 상식’이라는 가치에 걸맞은 인물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최근 쏟아져 나오는 의혹만 봐도 추가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둘째, 한덕수 후보자가 국무총리가 되면 윤석열 당선자의 중요한 대선 공약인 ‘총리 및 장관 자율성-책임성 확대’는 지키기 어려워질 것이라는 점입니다.총리나 장관의 자율성과 책임성은 관료 출신이 아니라 정권 내부의 지분을 가진 실세 정치인이 할 때 훨씬 강해집니다. 김대중 정부의 김종필 총리, 노무현 장관이 그랬고, 노무현 정부의 이해찬 총리, 유시민 장관이 그랬습니다.저는 윤석열 당선자가 안철수 인수위원장, 권영세 부위원장, 원희룡 기획위원장, 권성동 장제원 의원 같은 정치인을 국무총리로 발탁했더라면 훨씬 더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무척 아쉽습니다.

 

정치부 선임기자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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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8주기 노랗게 물든 서울..."당신에게 세월호는 어떤 의미인가요?"

[현장] 416연대 세월호참사 8주기 국민대회에 참여한 시민들

이상현 기자  |  기사입력 2022.04.09. 23:43:58 

 

"4월이 되면 항상 바쁘죠. 오늘은 오랜만에 시민들이랑도 많이 만났어요. 이렇게 같이 서울 시내를 걸은 건 2년 만인 것 같아요. 다음 주에는 안산에 가려고요."

단원고 2학년 8반 안주현 군의 어머니 박정해 씨는 행진 대열의 맨 앞에 있었다. 세월호 참사 8주기의 일주일 전인 9일 4.16연대 주최로 진행한 세월호참사 8주기 국민대회의 '노란 물결 행진'이었다. 참여한 이들은 노란색 마스크를 쓰고 바람개비와 함께 서울 동대문성곽공원에서 서울시의회 앞 세월호 기억공간으로 걸어갔다. 

다양한 이들이 거리로 모였다. 지난 8년 가까이 거리에서 싸워 온 유가족들을 비롯해 다른 참사로 세월호와 연결된 이들, 움직이지 않는 정치인들에게 분노한 이들이 다시 거리에 모였다. 자녀의 손을 잡고 나온 부모와 미래의 자녀를 위해 힘을 낸 젊은이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이들의 목소리를 담았다.  
 
세월호는 부채감 

이동준(27)씨는 우연히 행진 포스터를 보고 친구와 함께 했다. 대학교에 다닐 때는 '세월호 진상규명 촉구'와 관련된 활동을 했었다. 그에게 세월호는 '부채감'이었다. 

"항상 부채감이 있죠. 4월이라는 기억할 수 있는 날짜가 있다는 사실이 좋기도 한데 그 시기가 아니면 관심이 없어지니까요. 유가족들은 매 순간 사투고, 힘든 순간일 수 있는데 저는 4월이 되어서야 세월호를 떠올리죠. 한 달 말고 나머지 11개월 동안은 잊고 사는 거잖아요." 

▲세월호 8주기 1주일 전인 9일, 시민들은 동대문성곽공원을 시작으로 서울시의회 세월호 기억공간까지 노란색 마스크를 쓰고 걸어갔다. ⓒ프레시안(이상현)

'경험과 상상' 극단에 소속되어 있는 연극배우 고권령 씨도 오랜만에 나왔다. 그는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면서 기대가 있어서 관심이 조금 덜했었다"라며 "이제는 정권도 바뀌고 계속 바라만 봐서는 안 될 것 같아서 나왔다"라고 말했다. 고 씨에게 세월호는 '억울함'이었다.  

"인간이 느끼는 가장 강렬한 감정이 억울함이거든요. 직접적인 연관은 없는 사람이라도, 억울함에는 크게 공감할 수 있는 것 같아요. 구할 수 있었는데 못 구했던 참사니 이렇게 세월이 흘렀는데도 아직 진상규명을 외치는 유가족들을 보면 같이 억울함을 느끼는 것 같아요." 

행진에 참여한 이들 중에 가장 어렸던 이는 김수근(50)씨의 7살 아들이었다. 8년 전 세월호 참사 때는 태어나기 전이었다. 김 씨는 아들과 함께 매년 세월호 기억 주간 행사에 참여했다. 그는 아들에게 "희생되는 사람이 없도록 만드는 과정을 보여주고 싶다"라고 말했다. 

"세월호라는 배가 침몰했고, 고등학교 형 누나들이 돌아가셔서 다시는 희생되는 일이 없도록 부모님들이 나와서 진실을 밝히려고 하고 있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초등대안학교인 광명YMCA 볍씨학교 학생들도 교사들과 참여했다. 이희연 볍씨학교 교사는 "매년 세월호 주기에는 유가족들 만나서 이야기도 듣고, 박래군 선생님이 쓴 책도 읽고, 세월호뿐만 아니라 성수대교 붕괴 등 안전과 관련한 의제를 계속 이야기하고 있다"라며 "오늘 행진에 먼저 같이 가고 싶다고 한 학생들과 함께 참여했다"라고 말했다.

볍씨학교 조승호(14) 씨는 오전에 초졸 검정고시를 마치고 바로 행진에 참여했다. 조 씨는 "세월호에 대해 들을 때마다 '진실을 놓치고 있다'라고 생각했다"라며 "제가 그런 상황에 놓이게 되면 너무 억울할 것 같고 유가족분들을 응원도 해주고 싶어서 참여했다"라고 말했다. 

▲세월호참사 유가족들은 "성역없는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말했다. ⓒ프레시안(이상현)

"문재인 대통령은 사과하고 윤석열 당선인은 노력해달라" 

세월호참사 유가족들은 "진상규명은 여전히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박정해 씨는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에게 후보 시절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과 안전사회 건설 정책 과제'를 제시하고 정책 과제 제시를 요구했지만 답변이 없었다"라며 "2024년 생명안전공원 완공을 추진하고 있는데 아이들한테 엄마아빠가 이거라도 했다고 얘기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윤 당선인은 지난 2월 대선 후보 시절 세월호 단체들이 보낸 '세월호 6대 과제' 질의서에 주요 대선 후보 중 유일하게 답변하지 않았다. 6대 과제에는 세월호 참사와 국가 폭력에 대한 공식 사과·진상규명 및 책임자 처벌, 국가 보유 세월호 참사 기록물 공개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박승렬 4.16연대 공동대표는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되고 진상이 규명되고 생명이 존중받는 새로운 사회가 만들어질 것을 기대했지만 그 기대는 무너졌다"라며 "새 정부를 담당할 윤 당선인은 416연대 가족들이 생명 존중 사회를 만들자고 해도 약속을 하지 않았다"라고 지적했다. 또한 윤 당선인의 정책이 "새로운 생명 존중 사회를 만들기 위해 어떤 정책을 만드는지 보이지 않는다"라고 비판했다. 

박래군 4.16재단 상임이사 또한 "대통령의 권한을 가지고 문 대통령이 5년 동안 뭐 했는지 묻고 싶다"라며 "지금이라도 유가족 사찰, 국가 폭력 등 국가가 인정하고 사과해달라"라고 말했다. 또한 윤 당선인의 세월호 6대 과제 무응답을 비판하면서 "국정과제에 생명 안전과 관련한 약속 찾아볼 수 없다"라며 "또다시 '세월호 참사'가 계속되는 대한민국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달라"라고 말했다. 

김종기 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은 "아픈 4월이지만 현실은 아파할 상황이 아니다"라며 "세월호 참사는 정치적인 문제가 아닌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해 국가가 반드시 해결할 의무이지만 정부는 제대로 나서지 않고 있다"라고 비판했다. 

▲9일 서울시의회 세월호 기억공간 앞에서 진행된 '세월호참사 8주기 국민대회'에 참석한 이들이 행사 시작 전 묵념을 진행하고 있다. ⓒ프레시안(이상현)

산업재해피해가족네트워크 '다시는'에서 활동하고 있는 유가족들도 국민대회에 참석해 "생명안전사회 건설"을 촉구했다. 고 이한빛 PD의 아버지 이용관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이사장은 "세월호 참사 이전과 이후는 달라져야 하지만 달라진 게 없었다"라며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은 생명안전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시금석이지만 아직도 진상규명이 안 되고 있다"라고 말했다. 

또한 "재난참사와 산재처벌을 위한 중대재해처벌법이 제정되었지만 여전히 기업의 이윤이 더 중요하다고 여겨진다"라며 "일터와 사회 곳곳에서 노동자와 시민은 여전히 죽어간다"라며 '생명안전기본법' 제정을 주장했다. 시민사회에서 주장하는 생명안전기본법은 국민의 ‘안전권’과 국가의 책무, 재난 피해자의 법적 정의와 권리, 조사 참여권과 알 권리, 피해자 지원에 대한 구체적 규정 등의 내용이다. 

서울시의회 세월호 기억공간 앞에서 진행된 '국민대회'에는 정부 방역 지침인 300명보다 넘는 사람들이 참여해 경찰이 출입을 통제하기도 했다. 세월호 참사 8주기인 16일에는 안산 화랑유원지에서 '8주기 기억식'이 진행될 예정이다.

▲세월호 8주기 국민대회에 참여한 싱어송라이터 이랑은 "제가 하는 노래들은 사회인이 되면서 느낀 당황스러운 기분"이라며 "당황스러운 것들에 대해 어떤 분들이 공감하시기 때문에 이 자리에 오게 된 것 같다"라고 말했다. ⓒ프레시안(이상현)
▲'세월호 참사 8주기'에 참여한 이들은 "생명안전 존중사회 건설하자", "세월호참사 성역없는 진상규명" 등 구호를 외쳤다. ⓒ프레시안(이상현)
ⓒ프레시안(이상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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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그레시브 천문학자'와 함께 '이상한 우주' 탐험을

[프레시안 books] <성시완의 음악이 흐르는 밤에>

 

 

1982년 크리스마스 새벽, 낯선 이탈리아 밴드의 LP 앨범에 담긴 전곡이 MBC FM 라디오 음악 프로그램을 통해 통째로 흘러나왔다. 총 40분에 달하는 라테 에 미엘레(Lat̤t̤e̤ e Miele)의 1972년 데뷔 앨범 'Passio Secun̤d̤ṳm̤ Mattheum(마태수난곡)'.

최후의 만찬, 유다의 배신,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오른 예수의 고행, 부활 등을 테마로 한 12곡이 밀도 높게 이어지는 음반이다. 곡마다 장엄한 파이프오르간, 날카로운 기타음, 난타하는 드럼, 음울한 나레이션 같은 목소리가 기묘하게 엇물려 진행된다. 종교적 색채가 담겼어도 성탄절에 익숙한 캐럴과는 거리가 한참 멀다.

장르를 알 수 없는 이 생경하고 실험적인 음반을 성탄절 새벽 청취자들 귀에 도발하듯 꽂은 이는 방송 진행 경력이 8개월에 불과한 풋내기 대학생이었다. 당시 미군방송 AFKN 외에 유일하게 새벽 1시에 방송되던 라디오 프로그램 <음악이 흐르는 밤에> 진행자 성시완 씨. 이듬해인 1983년 성탄절에 성 씨는 또 한 번 이 앨범 전곡을 턴테이블에 걸고 이탈리아어 사전을 뒤져 직접 가사까지 해석해 소개했다. 

성 씨가 2년 동안 진행한 이 프로그램에 빠져들었던 젊은이들은 40년이 지나 중장년기에 접어든 지금까지도 '성시완'을 기억에서 지우지 못한다. 낯선 아티스트들의 20분이 넘는 곡을 예사로 틀어댄 DJ, 한 시간 내내 특정 아티스트의 곡만 내보내거나 진행자 멘트 한마디 없이 금지곡들만 방송하기도 했던 DJ. 

음악이 자극하는 원초적인 충격을 받긴 했는데 너무 난해해 뭐라 설명할 방법이 없고, 따라 부르거나 흥얼거리기도 어렵고, 다른 방송 프로그램에선 좀처럼 들려주지 않고, 음반 가게를 구석구석 뒤져도 찾을 수 없는 곡들. 클래식인가? 재즈인가? 로큰롤인가? 

그 종잡을 수 없는 '빨간맛'의 정체를 쫓아 성 씨가 안내하는 세계로 접어든 이들이 꽤 있다. 유럽에선 1960~70년대에 이미 황금기를 맞은 '프로그레시브록', 혹은 '아트록'이 그렇게 '성시완 효과'를 매개로 비로소 한국에 상륙했다. 1986년부터 KBS 심야 음악 프로그램을 진행한 전영혁 씨, 유학 후 1989년에 MBC <성시완의 디스크쇼>로 컴백한 성 씨를 길라잡이로 프로그레시브 매니아들이 조금씩 자리를 넓혀갔다. 

당시 주력 청취부대이던 중고등학생들은 성시완, 전영혁 방송을 통째로 카세트테이프에 녹음해 '공부하듯' 듣고 또 들었다. 산삼 캐듯 건져 올린 프로그레시브 음반 속에 깨알만한 글씨로 빼곡하게 해설지를 쓴 필자 이름도 대개 '성시완' 혹은 '전영혁'이었다. 영미권 주류 팝과 가요가 독차지한 방송과 음반 시장에 갇혀있던 청취자들에게 성 씨는 해방의 기수였다. 

지독한 음반수집가이자 독보적인 아트록 DJ, 1989년 음반사 '시완레코드'를 직접 차려 재평가될만한 음반들을 국내에 발매한 프로그레시브 음반사업가, 2000년대 들어선 PFM, 라테 에 미엘레, 뉴 트롤스 내한 공연까지 성사시킨 장본인….

신간도서 제목만 보고 망설임 없이 <성시완의 음악이 흐르는 밤에>(목선재 펴냄)를 집어들었다. 자신을 '성시완의 아이들 중 하나'라고 소개한 지승호 씨가 여러 차례 성 씨를 만나 나눈 이야기를 인터뷰 형식으로 엮은 책이다.

▲ 성시완의 음악이 흐르는 밤에 ⓒ목선재

'음악이 흐르는 밤에' 프로그램이 끝나면 "방송이 이상하다, 무섭다, 귀신 나오는 소리다"는 항의를 받았단다. 방송국 부장으로부터 "너 지금 마스터베이션 하는 거야"라는 핀잔도 들었다. 36일 동안 '핑크 플로이드' 특집을 했더니 "너네 집에서 하지 왜 방송에서 하냐"는 욕이 날아왔다고 한다. 

그래도 시종일관 자신의 고집대로 방송했던 까닭은 "그렇게 안 하면 내 존재 이유가 없으니까요"란다. 아트록 DJ로서, "선구자적인 일을 했다는 것에 대해 나름대로 자부심이 있다"는 자평에 동의한다. 

"DJ는 천문학자와 같아서 새로운 별들이나 숨어 있는 별들을 찾아서 알려주는 거잖아요. 그 별들 중에서 기가 막힌 별들이 있을 수도 있고 중요한 별들이 있을 수도 있고, 그런 걸 소개해주고 싶은 거죠." 

돈 안 되는 음반들만 냈으니, 음반사업가로서도 사서 고생을 했다.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매니아들에게 오아시스 역할을 톡톡히 했던 '시완레코드'는 지난해 6월 문을 닫았다. "워낙 층이 얇으니까 버틸 수가 없었다"고 한다.

"100장만 팔려도 그걸 듣는 사람들이 행복하기만 하면 되는 거죠. 시완레코드가 실패한 건 사실인데, 그래도 좀 족적을 남겼다는 자부심은 있어요." 

이탈리아 현지에선 1600장 판매에 그쳤던 라테 에 미엘레 앨범이 시완레코드 발매로 국내에서 무려 2만 장이 팔려나간 일화, 파이프오르간이 있는 서울역 인근 성당을 라테 에 미엘레 내한 공연장으로 섭외하려고 신부에게 개종 다짐까지 담아 서한을 보낸 뒷이야기, 매니아들의 바이블이던 <언더그라운드 파피루스>, <ART ROCK> 매거진을 만들던 성 씨의 회고담도 아련하게 담겨있다. 

지난 40년간 아트록 DJ, 음반사업가로서 성 씨가 걸어온 길을 돌아보는 데는 손색이 없다. 그래도 거대한 우주에서 별을 찾아 아직까지 헤매는 이들이 솔깃할만한 '프로그레시브 천문학자'의 메시지가 빈약한 점은 다소 아쉽다. 마침 성 씨는 올해 '음악이 흐르는 밤에' 40주년, <ART ROCK> 창간 30주년을 맞아 기록물들을 엮은 책을 낼 계획이 있다고 하니 잠시 기다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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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국민 안전 책임지지 않으면, 우리가 나섭니다

환경운동연합 모금 운동 '낙동강 녹조에서 발생하는 독소, 우리의 식탁이 위험해요'

22.04.09 11:05l최종 업데이트 22.04.09 11:05l
3월 22일 환경운동연합 마당에서 "낙동강 쌀, 녹조 독성 마이크로시스틴 검출" 관련 기자회견이 열렸다.
▲  3월 22일 환경운동연합 마당에서 "낙동강 쌀, 녹조 독성 마이크로시스틴 검출" 관련 기자회견이 열렸다.
ⓒ 환경운동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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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작물 녹조 독소 발표까지 오는 데 만 2년이 걸렸습니다."

지난 2월 8일 낙동강·금강 노지 재배 쌀·배추·무에서 마이크로시스틴(Microcystin) 축적 결과 발표 기자회견이 있었습니다. 이어 3월 22일엔 낙동강 노지 재배 쌀에서 축적된 마이크로시스틴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위에 말은 기자회견에서 사회를 본 제가 한 말입니다. 저는 환경운동연합 생명의 강 특별위원회 부위원장으로 농작물 녹조 독소 조사를 처음으로 기획했습니다.

기자회견이 진행되는 동안 지난 2년이 파노라마처럼 머릿속에서 맴돌았습니다. 시작은 2020년 2월이었습니다. 부산, 경남 창원, 공주를 돌아다니며 제안하고 의견을 모았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비용 마련과 대표적인 녹조 독소인 마이크로시스틴을 분석할 전문가를 찾는 일이었습니다. MB표 4대강 사업을 강력히 비판하고 4대강 재자연화를 100대 국정과제로 선정한 문재인 정부였습니다. 부족하지만 금강·영산강 보 수문을 개방하고 모니터링을 통해 보 해체 등을 결정했습니다. 그러나 녹조 독소 평가와 측정에 있어 문재인 정부 행정관료와 전문가의 태도는 이명박·박근혜 시대와 크게 차이가 없었습니다.


박근혜 정부 시절 녹조 독소 전문가인 충북대 교수는 "우리 국민이 '녹조'에 대한 근거 없는 공포감에 휩싸여 있다"라고 했습니다. 이런 태도가 적어도 문재인 정부에선 다를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문재인 정부는 4대강 사업을 이전 시대 대표적인 적폐로 규정했기에 말입니다. 하지만 예상밖의 일이 벌어졌습니다.

문재인 정부 초기인 2017년 9월 환경부 회의에 참여했습니다. '환경정책개선TF'라는 명칭이지만, '환경부 적폐청산TF' 성격이었습니다. 이 자리에 참석한 서울대 교수는 "우리나라 녹조는 해외보다 독성이 낮아 큰 문제가 안 된다. 우리나라 물 문제가 녹조 독소만 있는 게 아닌데, 여기에 국력을 집중하면 다른 일을 못 한다"라고 당당히 말했습니다.

녹조 위해성 의도적으로 낮게 인식하는 전문가들

국내 주류 전문가 태도가 이랬습니다. 이들 전문가는 녹조 관련해 새롭게 문제를 만들지 않으려는 행정관료와 결합해 녹조 독성을 저평가하도록 채수와 분석 방법 등 관련 제도를 만들었습니다. 그런 의미로 저는 현행 녹조 독소 측정과 분석 방식을 '제도화된 사기극'으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국내에서 농산물 내 녹조 독소 축적을 분석해줄 전문가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결국 2015년 4대강에서 마이크로시스틴을 분석한 일본 신슈대 박호동 교수님께 부탁을 드렸습니다. 농작물 샘플을 일본으로 보낼 방법이 난제였지만, 일단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다행히 분석비는 사단법인 '세상과 함께'에서 지원을 해줬습니다.

2020년 여름 전에 준비를 끝냈지만, 하늘이 도와주지 않았습니다. 여름 내내 너무 많은 비가 장기간 내려 녹조를 뜨기 어려웠습니다.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2021년 초부터 다시 모여 준비했습니다. 감사하게도 '세상과 함께'에서 다시 지원을 해줬습니다.

<뉴스타파> 최승호 PD님을 통해서 미국 오하이오주립대에서 10년 넘게 녹조 독소를 분석했던 국립 부경대 이승준 교수님을 소개받았습니다. 월 100여만 원 수입의 개인 활동가로서 교통비가 부담돼 서울역에서 가장 저렴한 열차를 탔고 그에 따라 시간이 오래 걸렸지만, 기회가 될 때마다 부산에 있는 부경대를 찾아갔습니다.

이승준 교수님은 해외에서 농작물은 물론 과실류, 어패류에서 마이크로시스틴 축적 사례가 다수 보고 되고 있다고 했습니다. 또 친수성 마이크로시스틴은 미세한 액체 미립자, 즉 에어로졸을 타고 확산한다는 연구 결과도 확인해 줬습니다. 미국에선 녹조 면적이 1% 증가할 때 비알콜성 간질환 사망자가 0.3% 증가한다는 연구도 있습니다.

이렇게 이승준 교수님과 함께 조사를 시작했습니다. 금강 하굿둑 지역은 <오마이뉴스> 김종술 시민기자가 담당했습니다. 낙동강은 대구환경운동연합 곽상수 운영위원장과 정수근 국장, 임희자 낙동강 네트워크공동집행위원장이 맡았습니다. 지난해 7~8월 뙤약볕 속에서 주 2회 낙동강·금강 녹조를 채수해 당일 부산 부경대로 전달했습니다.

녹조 독소 농작물 축적, 민간단체가 처음으로 밝혀내
 
2021년 7월 26일 낙동강 자모2양수장 쪽에서 촬영한 녹조.
▲  2021년 7월 26일 낙동강 자모2양수장 쪽에서 촬영한 녹조.
ⓒ 곽상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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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강·금강 녹조 독소 분석 결과 미국 환경보호청(EPA) 물놀이 금지 기준의 875배가 넘는 최대 7000 ppb의 마이크로시스틴이 검출됐습니다. "이렇게 높은 마이크로시스틴 농도는 처음 봅니다"라는 게 이승준 교수의 말이었습니다.

녹조 물로 상추 재배 실험도 했습니다. 부경대 이상길 교수님의 분석 결과 국내에서 처음으로 농작물에 마이크로시스틴이 축적된다는 사실을 밝혔습니다. 30kg 어린이는 상추잎 3장만 먹어도 세계보건기구(WHO) 기준을 초과하는 수준이었습니다.

그때까지 환경부는 "녹조 독소는 식물 흡수가 어려워 농작물에 미치는 영향은 거의 없을 것"이라 했습니다. 심지어 농작물에 "녹조가 생긴 물을 줘도 된다"라고도 밝혀왔습니다. 환경운동연합, 시민환경연구소 등이 주도한 연구를 통해 정부의 주장이 사실과 다르다는 것을 처음으로 밝혔습니다.

지난해 11~12월 낙동강·금강 노지 재배 쌀·배추·무를 구입해 지난 2월과 3월 각각 분석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녹조 전문가인 미국 오하이오주립대 이지영 교수를 통해서 마이크로시스틴의 악영향이 간독성, 뇌 질환만이 아니라는 걸 알았습니다.

프랑스와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마이크로시스틴이 남성 정자수 감소, 여성 난소 악영향 등 생식 독성까지 영향을 줄 수 있기에 기준치를 매우 엄격히 관리하고 있다는 걸 확인했습니다. 생식 독성 기준을 프랑스는 0.001,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0.0064µg/kg을 하루 허용량으로 정하고 있습니다.

이 기준을 낙동강·금강 농작물 축적 마이크로시스틴을 비교했습니다. 쌀은 우리 국민의 주식이고, 배추·무는 우리 밥상의 기본 반찬입니다. 이들을 같이 먹는다고 했을 때 프랑스 생식 독성 기준의 최대 20배 이상 초과하는 것으로 나왔습니다. WHO 하루 허용량 기준(0.4 µg/kg)으로 보면 50% 수준입니다만, 밥상 위 다른 농산물에서도 검출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안전을 장담하기 어렵습니다.

국민 먹거리 안전 위해 계속 조사해야 

우리는 정부에 요구했습니다. '한국인의 밥상'에서 맹독성 녹조 독소가 검출된 만큼 정부가 나서서 신속하고 체계적인 조사를 하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이에 대해 정부는 묵묵부답이었습니다. 더불어민주당 이수진(비례) 의원실을 통해 환경부, 식약처 관계자와 간담회를 했습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국민신문고를 통해 질의를 했습니다.

이들 부처는 하나 같이 "자기 소관 영역이 아니다"라고 강조했습니다. 식약처가 평가 기준을 세우고 환경부가 수질 대책을 세워야 농림부가 할 수 있다는 기계적인 답변만 계속했습니다. 낙동강에선 벌써 녹조가 올라오고 있습니다. 날이 더 풀리면 올해도 어김없이 녹조라떼가 보게 될 것입니다. 이 물로 농사지으면 또다시 마이크로시스틴이 검출될 것입니다.

한심합니다. 녹조라떼라는 말이 나온 지 올해로 만 10년째입니다. 해외 다른 나라에선 실질적인 녹조 독소 예보제를 통해 국민건강과 먹거리 안전에 대책을 세우는데, 대한민국에선 후진국에서나 볼 수 있는 책임 방기가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기에 말입니다. 세계 경제 순위 10위 권의 대한민국이 돈이 없어 못 하는 게 아닙니다. 정부 부처 행정관료가 책임지기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정부가 국민 안전을 책임지지 않는다면, 민간단체들이 다시 나설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현실은 어렵습니다. 마이크로시스틴 분석은 EPA 공인 효소면역측정 장비인 일라이저 키트(ELISA kit)를 사용했는데, 지난해 구매한 걸 다 소진했습니다. 미국에서 수입해야 하기에 비용이 상당히 나갑니다.

올해 분석 비용은 마련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일라이저 키트 구매 비용 마련을 위해서 환경운동연합에서 네이버 해피빈에 모금 계좌를 열었습니다. 해피빈에서 '녹조'를 검색해 접속할 수 있으며, 환경운동연합 누리집(바로 가기)을 통해서도 접속할 수 있습니다.

올해도 계속 현장 모니터링과 분석을 할 수 있도록 시민이 함께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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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우성 간첩조작’ 진실 밝혔더니 제재했던 ‘이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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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
    2022/04/09 11:36
  • 수정일
    2022/04/09 11:36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 기자명 금준경 기자 
  •  
  •  입력 2022.04.09 09:22
  •  
  •  댓글 1
 
 

장낙인 전 상임위원, 저서 통해 MB·박근혜 시절 방송심의 복기
“정치 변화 계절 맞아 심의와 상반된 재판 결과 되새길 때”

출범 이후 ‘편파 심의’ 논란이 끊이지 않은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전직 상임위원이 과거 잘못된 심의 사례를 복기하고 사과했다. 그는 정치적 변화의 계절을 맞아 과거  심의를 복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당시 야권(민주당) 추천으로 2~3기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상임위원을 지낸 장낙인 우석대 언론홍보학과 교수가 2기 방통심의위 회의 내용을 기록한 책 ‘막장 방송? 막장 심의?’를 냈다. 500 페이지가 넘는 분량의 책을 통해 2기 방통심의위에서 문제가 된 심의 사례를 자세하게 기록했다. 

“잘못된 제재 사과, 지금 의미 되새길 때”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위원 9명 가운데 6명을 정부 여당이 추천하는 구조다. 방송을 통제하려 한 이명박 정부는 방통심의위를 ‘방송장악 수단’으로 썼다는 지적을 받았다. 방송사가 방통심의위로부터 제재를 받게 되면 방송사 재허가 재승인에 감점을 받는 등 불이익이 따르는 상황에서 표적 심의에 나섰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에 걸쳤던 2기 방통심의위의 ‘무리한 심의’는 법원에서 패소하는 일이 반복됐다. 그러나 방통심의위원들 임기 내에 소송이 끝나지 않은 경우가 많았고, 패소 이후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았다.

▲ CBS '김현정의 뉴스쇼' 심의에 항의하는 전국언론노동조합, 한국PD연합회 등 언론단체 기자회견
▲ CBS '김현정의 뉴스쇼' 심의에 항의하는 전국언론노동조합, 한국PD연합회 등 언론단체 기자회견

장낙인 전 위원은 ‘머리말’을 통해 사과했다. “잘못된 제재 조치 때문에 오랜 시간 마음 고생을 했을 방송인들께 필자를 비롯한 어느 누구도 사과를 한 바가 없다. 필자에게 그럴 자격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당시의 방통심의위 위원으로서, 늦었지만 이 책의 지면을 통해 그분들께 사과의 말씀 드린다.”

20대 대선 결과 국민의힘이 집권하면서 같은 문제가 반복될 수 있다. 문재인 정부에서도 6대3 구조는 바뀌지 않았고, 논란이 되는 심의가 있었다. 대선 국면에서 책을 집필했던 장낙인 전 위원은 과거 심의를 지금 짚어야 하는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관련된 재판 결과들이 말해주고 있는 의미를 되새겨야 할 가장 적절한 시점이 바로 지금이라고 생각한다. 또다시 찾아오는 정치적 변화의 계절을 맞아 앞으로 어떤 정권이 들어서든 몇 년 후 또 이런 책이 나오지 않도록 방송심의 시스템을 올바로 작동시켜달라는 염원을 담아 이 책을 출간한다.”

재판에서 엎어진 ‘표적’ 심의

책의 적지 않은 분량이 방통심의위가 중징계를 결정했으나 사법부가 제재 처분을 취소하거나, 혹은 관련 사안을 다룬 재판에서 제재와 상반된 판단이 나온 사례에 주목했다.

저자는 CBS ‘김미화의 여러분’, ‘김현정의 뉴스쇼’, KBS 2TV ‘추적 60분’, RTV ‘백년전쟁’ 등은 방통심의위 제재를 취소하는 판결이 나왔다고 설명했다. 보도에 등장한 당사자가 방송사를 상대로 ‘정정보도 및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해 승소하면서 봐주기 심의를 드러낸 MBC ‘뉴스데스크’의 ‘신경민 의원 관련 보도’ 등도 다뤘다.

▲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심의 결정과 엇갈린 판결 리스트. 디자인=이우림 기자
▲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심의 결정과 엇갈린 판결 리스트. 디자인=이우림 기자

2012년 ‘김미화의 여러분’은 팟캐스트 ‘나는꼽사리다’ 진행자인 선대인 경제전략연구소장과 우석훈 내가꿈꾸는나라 공동대표를 초청해 이명박 정부 정책을 비판하는 내용을 담았다. 이 방송은 법정제재 ‘주의’라는 중징계를 받았다.

장낙인 전 위원은 “’김미화의 여러분‘이 법정제재 주의 제재를 받기 2주 전인 2012년 2월 명진스님이 출연했던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와 SBS 라디오 ‘김소원의 SBS전망대-김용민의 뉴스브리핑 코너’가 법정제재인 주의 조치를 받은 바 있다”며 정부에 비판적인 인사들을 향한 ‘표적’ 심의 가능성을 제기했다.

정부 정책을 비판했다는 이유만으로 중징계 결정을 한 건 ‘무리수’였고 재판에서 입증됐다. 장낙인 전 위원은 당시를 떠올리며 “1심 판결이 있은 직후에 열린 전체회의 때 필자가 이 판결 결과에 대해 거론한 바 있는데 이때 복수의 여권 추천위원들로부터 나온 발언이 ‘재판은 재판, 심의는 심의’라는 것이었다”고 전했다.

▲ '유우성 간첩조작사건'을 다룬 KBS 추적60분 불방 이후 언론노조 KBS본부의 노보를 읽는 조합원
▲ '유우성 간첩조작사건'을 다룬 KBS 추적60분 불방 이후 언론노조 KBS본부의 노보를 읽는 조합원

방통심의위는 ‘유우성 간첩조작 사건’ 진실을 가리는 역할도 했다. 당시 KBS ‘추적60분’ 제작진은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의 전말’ 방송을 통해 국가정보원이 제시한 ‘간첩 증거’가 허술하다는 점을 조명하려 했다. 그러나 KBS 사측이 방송 불가 결정을 내렸고, 내부 반발 끝에 가까스로 방송이 나갔다. 시련은 끝이 아니었다. 방통심의위가 이 방송에 ‘경고’ 중징계를 결정했다. 

책에 따르면 당시 심의에서 권혁부 부위원장(당시 여권 추천)은 “우리나라에 들어와 법적 혜택을 받으며 간첩 활동을 한 사건”이라며 ‘간첩’을 단정했다. 박만 위원장은 “추적60분은 한쪽의 주장만 사실로 인정해버려 왜곡된 여론을 형성했다”고 주장했다. 재판으로 인해 국정원 주장이 허위이고, 추적60분 보도가 진실이라는 점이 드러났지만 역시 사과는 없었다. 장낙인 전 위원은 “방통심의위의 역사에 또 하나의 국가가 공인한 부끄러운 과거로 기록되게 되었다”고 했다.

전례 없는 종편 ‘막장 시사’ “방송심의 행태 바꿨다”

장낙인 전 위원은 2기 재임 기간 중 내용이 과했던 방송을 ‘막장 방송’으로 규정하고 관련 심의 사례를 소개했다. 

그는 “방송심의의 행태와 내용을 확연하게 바꿔놓은 것은 바로 종편 방송의 시작이었다”며 “2012년 초부터 방송심의와 관련해 종편 이전과 종편 이후라는 말을 쓰기 시작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심의 건수를 엄청나게 증가시켰을 뿐 아니라 종일 편파방송을 하던 일부 종편에 대한 여권 추천위원들의 지극적 편애와 정성스러운 보살핌으로 심의 업무를 합의 중심이 아닌 쟁투 중심으로 전환시켰으며 이러한 양상은 3기 방통심의위까지 이어진 바 있다”고 했다.

▲ 방송통신심의위원회 관제실 모습. 사진=방송통신심의위원회 제공
▲ 방송통신심의위원회 관제실 모습. 사진=방송통신심의위원회 제공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정무특보에 최근 임명된 장성민씨가 진행했던 TV조선 ‘장성민의 시사탱크’ 사례가 대표적이다. 장성민 앵커는 5·18 민주화운동 북한군 침투설을 다루며 “북한의 특수 게릴라들이 어디까지 광주민주화운동에 관련돼 있는지 그 실체적 진실은 반드시 밝혀져야 합니다”라는 발언까지 했다.

당시 심의에서 오동선 TV조선 보도본부 전문위원은 ‘확인되지 않은 내용이 유포돼 이를 바로잡는 취지’라고 해명했다. 그러자 장낙인 전 상임위원은 “이것이 방송입니까. 제도권 방송에서 할 수 있는 이야기입니까. 인터넷 1인 방송에서 하는 것과 똑같지 않습니까”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채널A ‘이언경의 직언직설’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김일성이 심은 간첩’이라는 취지의 탈북자 주장을 여과 없이 방영해 중징계를 받았으나 5·18 민주화운동 북한군 침투설 방송보다 제재 수위가 낮았다.

TV조선 ‘뉴스쇼판’의 경우 정미홍 전 아나운서가 출연해 박원순 시장 등을 종북으로 규정한 발언이 가장 수위가 낮은 경징계(행정지도)인 ‘의견제시’에 그쳤다. 장낙인 전 위원은 이 같은 봐주기 심의가 종편의 문제적 방송이 확산되는 데 기여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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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에서 중국까지 전투기로 15분, 한반도가 미군의 전초기지가 되고 있다

[2022 자주평화원정단-5일차] 확장되고 있는 군산미군기지

  • 기자명 군산=전지예 통신원 
  •  
  •  입력 2022.04.09 09:08
  •  
  •  댓글 0
 
2022 자주평화원정단은 5일차인 8일, 군산 미 공군기지 앞에서 기자회견을 가졌다. [사진제공 - 자주평화원정단]
2022 자주평화원정단은 5일차인 8일, 군산 미 공군기지 앞에서 기자회견을 가졌다. [사진제공 - 자주평화원정단]

원정 5일차에 접어든 8일, 2022 전국 미군기지 자주평화원정단은 수많은 전략적 자산이 모여 있는 군산을 방문해 미 공군기지와 하제마을 답사를 진행했다.

새만금 수라갯벌 없애고 미군기지 확장하는 새만금신공항 반대한다

원정단은 전북지역 노동자, 농민, 시민사회 활동가들과 함께 진행한 ‘새만금신공항 반대 기자회견’으로 군산에서의 활동을 시작했다.

원정단은 지속적으로 미군기지가 확장되면서 삶터를 빼앗긴 군산 주민들과 전국의 미군기지 때문에 고통받고 있는 민중들과 함께 투쟁하겠다는 다짐을 밝히면서 참가자들의 함성으로 기자회견을 열었다.

김재한 자주평화원정단 단장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제공 - 자주평화원정단]
김재한 자주평화원정단 단장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제공 - 자주평화원정단]
기자회견 참가자들은 평화의 띠에 마음과 결의를 적어 기지 철조망에 걸어놓는 상징의식을 진행했다. [사진제공 - 자주평화원정단]
기자회견 참가자들은 평화의 띠에 마음과 결의를 적어 기지 철조망에 걸어놓는 상징의식을 진행했다. [사진제공 - 자주평화원정단]

기자회견에서 원정단 공동단장인 한국진보연대 김재하 상임대표는 “전국 미군기지의 공통점은 환경오염, 미군범죄 등 헤아릴 수 없는 고통을 주민들에게 안겨주고 있다는 점”이라고 지적하고 “어느 한 지역, 계층의 힘만으로 이 땅의 평화와 안전을 담보할 수 없다. 모든 사람들의 힘을 모으고자 한다”라면서 투쟁의 첫 걸음을 원정단이 시작하겠다는 결의를 밝혔다.

이어서 군산미군기지우리땅찾기시민모임 김연태 대표는 “군산 미군기지 뿐만 아니라 서해안 전쟁벨트가 계속 확장되고 있는 것으로 보아 군산 미군기지가 세계에서 가장 넓은 미군기지로 올라설 것 같다”며 “군산은 중국과 가장 가깝기 때문에 미군이 가장 눈독을 들이고 있는 곳이다”라고 밝혔다.

이날 참가자들은 평화의 띠에 마음과 결의를 적어 기지 철조망에 걸어놓는 상징의식을 진행했다.

군산 땅을 차지하고 있는 미군 격납고와 탄약고

자주평화원정단은 군산 미군기지 답사를 진행했다. [사진제공 - 자주평화원정단]
자주평화원정단은 군산 미군기지 답사를 진행했다. [사진제공 - 자주평화원정단]

원정단은 김연태 대표와 함께 군산 미군기지 답사를 진행했다. 답사 초반에 드넓은 벌판에서 목격한 격납고와 탄약고에 참가자들은 일제히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격납고 위를 날아오르는 전투기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안 들릴 정도로 무서운 소리를 내며 하늘로 날아오르고 있었다. 원정단이 답사를 진행하는 동안에도 수 십대의 전투기가 엄청난 소음과 함께 지나다니기도 했다.

군산 미군기지에는 전투기를 보관하기 위해 최근에 신형격납고 20개를 만들었다. 그 가격은 무려 격납고 1채당 70억이다. 기존의 격납고를 합치면 총 60~70개에 달한다. 이곳 주민들은 격납고 앞 15만평에 달하는 논밭을 국방부에게 헐값으로 빼앗겼고, 곧바로 미군에게 넘어갔다.

김연태 대표는 “전투기로 군산에서 중국까지 약 15분이 걸린다”면서 세계 최대의 규모로 준비되고 있는 군산 미군기지가 확장되고 있는 이유는 중국을 겨냥하기 좋은 위치이기 때문이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하제마을 팽나무마저 빼앗길 수 없다

군산 미군기지는 규모가 클 뿐만 아니라 계속 확장되고 있다. [사진제공 - 자주평화원정단]
군산 미군기지는 규모가 클 뿐만 아니라 계속 확장되고 있다. [사진제공 - 자주평화원정단]
원정단은 풀숲 너머에 있는 패트리엇미사일을 목격했다. [사진제공 - 자주평화원정단]
원정단은 풀숲 너머에 있는 패트리엇미사일을 목격했다. [사진제공 - 자주평화원정단]

원정단은 끝없이 펼쳐진 미군기지를 걷다가 하제마을 팽나무로 이동했다. 600년 된 팽나무는 군산지역 주민들과 활동가들이 미군으로부터 끝까지 지켜내야 할 보호수였다.

제주 강정마을에 구럼비가 있다면 군산 하제마을에는 팽나무가 있는 셈이다. 주민들에게 하제마을의 팽나무마저 미군 땅으로 넘어간다면 군산의 모든 곳이 미군 기지화되는 것과 다름없다.

팽나무에 이어 200년 된 소나무가 있는 언덕으로 올라간 원정단은 풀숲 너머에 있는 패트리엇미사일을 목격했다. 광활한 군산 땅에 전쟁을 위한 격납고와 탄약고, 미사일까지 직접 확인한 원정대는 이 땅에서 실제로 전쟁준비가 진행되고 있다는 점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오로지 미군을 위해 변해버린 땅, 우리 힘으로 되찾아야

자주평화원정단은 새마금신공항 부지를 둘러봤다. [사진제공 - 자주평화원정대]
자주평화원정단은 새마금신공항 부지를 둘러봤다. [사진제공 - 자주평화원정대]

이후 원정단은 새만금신공항 백지화 공동행동 오동필 공동집행위원장과 함께 새만금신공항 부지로 이동했다.

지금도 군산공항은 제주노선을 간신히 운영할 정도로 이용자 수가 매우 적다. 하지만 주민들의 삶터이자 아름다운 생태환경을 보존하던 수라갯벌은 사라지고 이곳에 국제허브항, 신공항이 들어설 예정이다.

새만금이 국제공항으로서 역할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항공 활주로를 3.5km로 계획됐어야 했지만, 새만금신공항 부지는 2.5km로 계획됐다. 겨우 동남아시아행 비행기까지만 이용할 수 있는 새만금의 본래 목적은 미군에 기지로 넘겨주는 것이었다.

즉, 미군기지를 위해 ‘신공항’이라는 이유를 만들어냈다는 것이 오동필 집행위원장의 해설이다. 이어서 활주로를 사용하는데 민항기는 사용료를 내고 미군은 아무 비용도 지불하지 않고 있다고 덧붙였다.

전국의 미군기지 때문에 고통 받고 우리의 삶터를 빼앗기는 처참한 모습들을 전국 곳곳에서 목격한 원정단은 세계 최대의 미군기지로 확장되고 있는 군산기지를 돌아본 후,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미군기지 철수를 위한 투쟁을 이어나가겠다는 다짐을 했다.

6일차인 내일, 원정단은 평택으로 이동하여 해외주둔 최대 미군기지를 답사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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