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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가 망가지니, 정부도 망가졌고, 청년들이 죽었다"

[인터뷰] <정부가 없다> 펴낸 정혜승 작가

이명선 기자  |  기사입력 2023.11.07. 05:27:56

 

<정부가 없다>(정혜승 지음, 메디치미디어 펴냄)는 서울 이태원에서 159명의 청년들이 목숨을 잃은 이태원 참사 1주년에 발간됐다.

 

전직 기자 출신이자 청와대와 기업에서 홍보를 담당했던 정혜승 작가가 이 사건에 천착하게 된 것은 그의 이력 때문이 아니라 이태원 참사 피해자들과 동년배인 자녀를 뒀기 때문이다. 참사가 일어난 당일 대학생인 아들이 밤늦도록 연락이 안 됐고, 불안한 마음에 이태원 참사 현장을 남편과 함께 찾았다.

 

아들과 뒤늦게 연락이 닿았지만 참사 현장을 직접 목격하면서 마음을 졸이던 정 작가는 "우리 아이만 안전하고 안녕하다는 게 이렇게 끔찍할 수 있구나"라는 생각에 눈물이 쏟아졌다고 한다. 

 

이태원 참사를 둘러싼 수많은 '왜?'라는 질문을 따라가다 보니, '정부가 없다'는 책 제목이 나올 수 밖에 없었다는 정 작가를 지난 3일 프레시안 사무실에서 만났다. 다음은 전홍기혜 프레시안 이사장이 진행한 인터뷰의 주요 내용이다.

 

 

 

"내 아들만, 우리 아이만 안전하다는 게 끔찍했다"

프레시안 : 책의 첫 문장이 "나는 용산구 주민이다"다. 언론인, 청와대 비서관 등의 직함 다 떼고, 용산구 주민이 기록한 '10월 29일 그날의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 <정부가 없다>를 쓰게 된 계기가 있다면?

 

정혜승 : 2022년 10월 29일 밤, 집에 있는데 '이태원 해밀턴 호텔 주변이 혼잡하니 오지 말라'는 재난 경보 메시지가 계속 왔다. '사고가 난 모양이구나' 생각했다. 그런데 카카오톡 대화방에 '집단 실신 사태'라는 속보가 떴다. 트위터(현 'X')에는 이미 엄청난 사진들이 올라오고 있었다. 심상치 않았다. 그날 아들이 늦는다고 했었다. 전화하고 카톡 남기고, 또 몇 분 있다 다시 하고… 전화는 받지 않았고 카톡 메시지 숫자 1은 없어지지 않았다. 피가 말랐다.

 

일단 이태원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녹사평역 부근에 경찰 통제선이 있었지만, 어영부영 들어갔다. '아이를 찾으러 왔다'고 하니까 경찰도 당황한 눈치였다. 도대체 무슨 일이 생긴 건지, 알 수 없었다. 너무 정신이 없었다. 해밀턴 호텔 쪽으로 조금 더 들어가 헤매던 중 아들과 연락이 닿았다. 같이 간 남편이 아들에게 '너 왜 전화를 안 받아?' 하고 소리를 지르는데, 그때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그날 밤 아들을 찾아 이태원 일대를 헤매면서 무슨 생각이 들었느냐면, '그럴 일은 절대 없겠지만, 혹시 혹시 내가 내일 이 거리를 다르게 보게 되면 어떻게 하지? 그럴 일은 없겠지만, 혹시 혹시 일이 생긴다면 그 다음 일은 어떻게 감당해야 하지?'라는 생각에 공포가 밀려왔다. 그런데 아들이 괜찮다는 걸 알고는 더 끔찍해졌다. 공포가 한층 더 크게 밀려오면서 내 아들만, 우리 아이만 안전하고 안녕하다는 게 이렇게 끔찍할 수 있구나.(눈물) 

 

프레시안 : 10월 29일 밤 현장은 '이태원 압사 사고' 해시태그를 타고 트위터뿐 아니라 인스타그램, 유튜브 등에서 '날 것' 그대로 유통됐다. 그로 인한 2차 피해를 호소하는 이들도 있었는데…. 

 

정혜승 : SNS와 TV 등으로 속보를 계속 지켜봤다. 너무 비현실적인 상황이라 멘탈도 점점 안 좋아졌다. 그래도 사망자가 159명에 달하는 큰, 대형 압사 사고라는 생각은 못 했다. 날이 밝으면서 멘탈은 점점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게 일요일이었다. 그렇게 화요일이 됐고, 관련 보도가 하나둘 전해지면서 이것은 명백히 막을 수 있는 사건이었다는 사실에 고통과 절망이 분노로 바뀌었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기록하기로 마음먹었다. 

 

▲ 2022년 10월 30일 새벽 서울 용산구 이태원 현장. ⓒ연합뉴스

 

"정치가 망가지니 정부도 같이 망가졌다" 

 

프레시안 :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의 "경찰이나 소방 인력을 미리 배치함으로써 해결될 수 있었던 문제는 아니었다"(2022년 10월 30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긴급회의 결과 브리핑)는 말은, 그야말로 많은 이들의 분노를 샀다.

 

정혜승 : 청와대 비서관으로 공무원 생활을 해봤는데, 한국 공무원들은 일을 정말 잘한다. 특히 코로나19를 겪으면서 '우리 정부는 진짜 일을 잘한다. 공무원들이 최고다' 이런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런데 이태원 참사 이후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진 거지? 일 잘하던 '일잘러' 공무원들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거지? 공무원이 일을 제대로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와 같은 의문이 들었다. 게다가 이상민 장관의 말처럼 '정부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고 한다면, '대체 정부는 왜 존재하는 거지? 정부의 역할은 뭐지?' 질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그만큼 10월 29일 그날의 일은, 저로서는 납득하기 어려웠다. 

 

프레시안 : 대통령실에서 새 정부 출범 초기 때부터 일한 L, 서울시 어느 구청에서 일했던 '어공' N, 이상민 장관 판사 시절 동료, 이진석 전 청와대 국정상황실장, 윤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전 국정상황실장), 여준성 전 청와대 사회정책비서관 등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정혜승 : 인터뷰를 하면서 깨달은 것 중 하나는 '정치가 망가지니까 정부도 같이 망가지는구나'였다. 정치와 정부의 상관관계, 그 시너지가 엄청났다. 

 

지난 대선은 국론 분열이 가속화된 와중에 치러졌다. 윤석열 대통령이 0.73%포인트 차로 당선된 이후 국론 분열은 더 심화했다. 말하자면, 공무원 입장에서는 지난 몇 년은 일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상황이었다. 공직에 있든 기업에 있든 기자를 하던 사람은 다 똑같다. 사회에, 또는 조직에 좋은 변화를 가져올 때 신이 난다. 신이 나서 일할 수 있도록 끌어주는 것, 그게 리더십이다. 내 일이 쓸모없고 가치가 없다면, 그냥 대충 일하게 된다. 

 

청와대에서는 아침마다 '현안 점검 회의'라는 걸 했다. 국정상황실장이 회의에서 현안 하나하나를 점검한 뒤, 대통령에게 보고한다. 코로나19 이후 처음 맞는 핼러윈 축제였고, 사람들이 몰릴 것이 뻔히 예상되는 일이었기 때문에 대응 방안에 대한 얘기가 나올 수밖에 없다. 그래서 문재인 정부 국정상황실장을 지낸 윤건영·이진석 두 사람 얘기는 꼭 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진석 전 실장도 '내가 지금 국정상황실장이었다면 어떻게 대응했을 것인가'를 생각해 봤다고 했다. 이 전 실장은 핼러윈 축제가 대통령 보고 사항은 아니지만 코로나19 이후 3년 만에 열리는 첫 축제이기 때문에 현안 회의에서 점검을 했을 것이라고 했다. '국정상황실 혹은 비서실장 아니면 하다못해 용산구청장, 용산경찰서장 중 한 명이라도 '어떻게 대응하기로 했어?'라고, 묻기만 했어도 결과는 달라졌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왜 질문하지 않고, 왜 챙기지 않았는지 모르겠다'고 답답해했다. 

 

윤건영·이진석 두 사람 모두 공무원들은 매뉴얼대로 하는 일상 업무를 굉장히 잘한다는 했다. 위에서 점검만 하면, 매뉴얼대로 정확하게 한다고 했다. 그래서 다음 질문이 '대응 매뉴얼이 있었을 텐데, 왜 이렇게 됐을까?'였다. 그랬더니 두 사람은 '리더의 관심사의 문제'라고 했다. 

 

▲ 159명이 압사당한 현장은 폭 3m 남짓의 좁고 가파른 내리막 골목길이었다. 현장 CCTV와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시뮬레이션 분석 결과, 해당 골목의 군중 밀도는 오후 10시 15분께 ㎡당 7.72∼8.39명에서 5분 뒤 ㎡당 8.06∼9.40명으로 증가했다. 오후 10시25분께는 ㎡당 9.07∼10.74명까지 늘었다. ⓒ연합뉴스

 

"리더의 관심사에 정부의 말초신경까지 달라진다" 

 

프레시안 : 당시 대통령의 관심 사안은 '마약'이었다. 주말 핼러윈 축제를 앞둔 상황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한덕수 국무총리와의 주례회에서 "마약이 관리 가능한 임계치를 넘어 국가적 리스크로 확산되기 전에 전 사회적으로 마약과의 전쟁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정혜승 : 경찰은 대통령실 앞 집회 대응과 '마약과의 전쟁', 이 두 개에 굉장히 집중하고 있었다. 참사의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리더의 관심사가 실제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알 수 있다. 리더의 관심사가 무엇인지에 따라 정부의 말초신경까지 달라지기 때문이다. 

 

서울 용산경찰서 '핼러윈 축제 클럽 마약류 집중단속 계획 추진 개요'에 따르면, 용산서는 10월 28~30일까지 이태원 유흥업소 밀집 지역 마약 단속을 계획하고 용산서 강력 4개팀, 형사 1개팀, 생활질서계 수사관들이 마약 단속을 위해 배치됐다. 

 

29일 참사 당일 이태원에 13만 명의 인파가 몰렸지만 현장에 배치된 경찰은 137명에 불과했다. 인파를 관리하는 '혼잡경비' 업무를 맡은 경찰도 없었다. 저녁 6시 34분부터 해밀턴 호텔 주변에서 11건의 위험 신고가 접수됐지만, 현장을 통제한 경찰은 아무도 없었다. 

 

반면, 이날 대통령실 경호를 위한 집회 대응에 62개 부대(51개 경찰관기동대·3개 의경부대·지방청 8개 기동대)가 배치됐다. 

 

프레시안 : 정부의 수사본부 설치와 국회의 국정조사 합의는 비교적 빨리 이뤄졌다. 

 

정혜승 : 사건 발생 사흘 만에 특별수사본부의 수사가 시작됐지만, 경찰과 소방관이 서로 거짓말 했다고 책임을 떠넘기느라 급급했다. 수사는 법적 책임을 묻는 과정이기 때문에, 참사와 재난을 수사로 단죄한다는 것은 하수 중의 하수다. 최악이라고 할 수 있다. 세월호 참사 때도 겪어봤지만, 정말로 책임을 져야 할 사람들에게 책임을 묻지 못한다. 그리고는 사소한 실수를 꼬투리 잡아 하위직이 처벌된다. 따라서 수사로는, 그 어떤 것도 밝혀지지 않는다.

 

국정조사는 수사보다 나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지만,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는 시작부터 '파행'이라는 기사가 나왔다. 내년 예산안을 먼저 처리한다며 골든타임을 놓쳤고, 정부와 여당은 책임회피와 비협조로 일관했다. 유가족들이 책임자들에게 '왜 그런 지시를 했느냐?'라고 묻는 작업이 필요했지만, 공청회에서 발언 기회를 얻는 게 고작이었다. 

 

"참사를 대하는 사회적 태도를 보면 알 수 있다" 

 

프레시안 : 오세훈 서울시장이 참사 발생 사흘 만에 '무한 책임'을 느낀다며 눈물의 기자회견을 했지만, 오 시장 책임 또한 적지 않다. 

 

정혜승 : 결국 이태원 참사는 각각의 책임에 구멍이 생기면서 벌어진 일이다. 국정상황실 혹은 서울시에서 대응 회의를 했다면? 경찰이 일선 구청과 한 번이라도 대응을 논의했으면? 

 

재난과 참사는 사건이 발생하게 된 원인을 규명하는 일도 필요하지만, 사건이 발생한 후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도 중요하다. 책을 쓴 이유 중 하나는 세월호 이후 이런 일을 또다시 반복하고 싶지 않았던 것도 있다. 세월호 때 그 생떼 같은 아이들을 보낸 것이 얼마나 힘들었나. 그런데 우리는 그 힘든 일을 또 반복하고 있다. 그 다음에, 피해자들. '피해자 우선주의' 굉장히 중요한데, 피해자들을 어떻게 보호하고 구제하고 살필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누군가 이런 얘기를 했다. '사회가 잘못되고 있다는 신호 중 하나는 사건이 발생하고 난 뒤 이를 대하는 사회적 태도를 보면 알 수 있다'고. 참사와 재난에 대한 사회적 태도는 누군가 책임을 지고 사과하고 피해자를 위로하며 희생자를 함께 애도를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같은 사회적 태도가 사회의 시스템 안에서 처음으로 작동하지 않은 것이 세월호 때라고 한다. 돌이켜보면, 희생자 애도는커녕 유가족들을 조롱했다. 그리고 세월호 참사의 원인을 규명하는 것 자체를 '반정부 행위'로 규정했다. 

 

▲ 지난해 11월 5일 시청역 인근에서 이태원 참사 희생자 추모 및 정부 규탄 촛불집회. ⓒ연합뉴스

 

"참사를 쫓아가는 과정은 정치적인 과정이다"

프레시안 : 정부여당은 이태원 참사 이후 야권과 시민단체를 향해 '참사를 정치적으로 이용한다'(참사의 정치화)고 비난했다. 그런데 참사 1주기에 윤 대통령은 교회에 가서 예배를 봤다. 정부가 참사의 정치화를 몸소 보여주는 사례가 아닐까. 

 

정혜승 : 윤 대통령은 1주기 시민추모대회를 '정치 집회'라며 불참을 선언하더니, 오히려 참사를 정치적으로 이용한 아이러니의 주인공이 됐다. 어떻게 대통령도, 총리도, 장관도 한 명 안 오나. '내가 하는 것은 정치가 아니고 너희들이 하는 것은 정치다'라는 논리인데, 정치를 피하고자 하는 행동이야말로 가장 정치적인 행위다. 

 

'참사를, 재난을 쫓아가는 과정은 정치적인 과정이다'라는 학자의 얘기를 책에도 썼다. 참사가 왜 일어났으며 누구의 책임인지, 그리고 이를 복구하기 위해 국가의 재원을 어떻게 분배해야 하는지 등 모든 것이 다 정치적인 결정이다. 모든 것이 정치적으로 같이 움직여야 하는 일이다. 그런데 우리는 언제부터인지 정치를 무슨 오물 대하듯 하면서 '정치적'이라는 이유로 미루거나 기피하는 경향이 생겼다. 

 

세월호 참사 이후 애도하고 추모하는 일, 원인을 규명하는 일 자체를 마치 정치적 행위 또는 반정부 행위인 것처럼 비난하지만, 정부가 진짜 책임을 지는 자세를 보이려면 사회 구성원들에 대한 위로를 해야 한다. 수학여행을 간 학생들이 탄 배가 가라앉은 걸 실시간으로 보고, 축제에서 사람들이 압사당하는 걸 여과 없이 접했다. 이런 집단 트라우마를 위로받는 과정이 필요하다. 

 

▲ 지난 10월 30일 서울광장에서 열린 이태원 참사 1주기 추모미사. ⓒ연합뉴스

 

'검찰 정부'의 '공포 통치'에 최선은 아무것도 안 하는 것? 

 

프레시안 : 정치가 오히려 참사의 문제 해결을 막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정혜승 : 한국 사회가 분열됐다고 하지만, 양극단을 제외하면 60% 정도, 절반 이상의 사람들은 합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상대라고 생각한다. 사회 구성원 모두가 극단적인 것은 아니다. 다만, 극단적인 사람들의 목소리가 커서 그렇지 국민 대다수는 극단적이지 않다고 생각한다. 

 

유가족들은 시민 100명 중 한두 명을 빼고는 손을 잡아주거나 포옹해 준다고 한다. 그럴 때마다 감사한 마음이라고 했다. 아픔에 공감하며 같이 고민해 주는 것 자체가 감사한 일 아닌가. 서로가 서로를 위로하지 못하는 사회가 되면, 그 과업은 고스란히 우리에게 돌아올 것이다. 

 

프레시안 : 책에서 '검찰 정부'의 한계를 지적했다. 사실 검찰이 제일 많이 대하는 사람은 죄지은 사람들이다. 죄지은 사람을 잡는 일이 업인데, 노동자나 정부에 반하는 목소리를 내는 시민을 그런 시각으로 보는 게 아닐까 하는 우려가 든다.

 

정혜승 : 용산 대통령실에서 일했던 사람이 '검찰 정부'에 큰 두려움을 갖고 있었다. 최근 만난 몇몇 사람들도 '검찰 정부가 무서워서 일을 할 수가 없다'고 말하더라. 감사원에 털리고 검찰에 털리다 보니, 결국 '아무것도 안 하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검찰 엘리트들은 적을 선별해 타깃으로 만들고 '때려잡자'는 식이다. 국정 운영을 하는데 온갖 '카르텔'을 언급하며 때려잡자는 식인데, 과연 오래 갈 수 있을까? 검찰이 검찰 방식으로 정부를 운영하며 '공포 통치'가 되면, 책임은 회피하고 복지부동하는 것이 최선의 전략이 될 수밖에 없다. 이것은 문제가 있다. 

 

이 정부의 또다른 특징이라고 하면, '곳간지기의 전성시대'를 들 수 있다. 기획재정부, 그중에서도 예산실에서만 일하던 사람들이 대통령 비서실장(김대기)도 복지부 장관(조규홍)도 하고 있다. 그러면서 '건전 재정'을 얘기하는데, 예산을 줄이는 데에만 관심을 갖고 있다. 

 

▲ 10.29 이태원 참사 특별법은 지난해 8월 31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야당 단독으로 처리됐다. 회의 후 한 유가족이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에게 항의하는 모습. ⓒ연합뉴스

 

"아무도 사과하지 않고 아무도 책임지지 않았다" 

 

프레시안 :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지 1년이 지났고, 이상민 장관은 여전히 건재하다. 

 

정혜승 : 굉장히 안 좋은 시그널이다. 책을 감싼 띠에 쓰인 '아무도 사과하지 않고 아무도 책임지지 않았다'라는 문장은 유가족의 말이다. 

 

재난과 참사가 일어나면 '내가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라고 생각해서, 대개는 장관 하나 정도는 물러난다. 책임을 다한다는 것은 목을 거는 일이다. '꼭 그렇게 사람을 자르고 가야 해? 그러면 살아남을 장관이 누가 있어?'라는 말을 하기도 하지만, 책임을 진다는 것이 그만큼 무거운 일이라는 걸 알아야 하기 때문에 사퇴로 그 책임을 지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냥 묻고 지나가는 방식이 된다. 그게 어떤 건지 우리는 지금 확인하고 있다. 

 

이태원 참사 유가족에게 들었는데, 지난 8월 말 이태원 참사 특별법이 국회 행정안전위원회를 통과할 때 이상민 장관은 바로 옆에 있는 유가족을 투명인간 취급하면서 지나쳤다고 한다. 유가족 중에는 대선에서 윤 대통령을 지지한 사람도 있을 텐데, 그들이 무슨 죄가 있다고 그런 대우를 받아야 하나.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159명의 희생자가 발생했지만 아무도 책임지지 않고 있다. 정부가 책임지지 않아서 국회의원들이 이상민 장관 탄핵을 추진했지만, 이마저도 헌법재판소에서 기각됐다. 

 

한 헌법학자가 장관 탄핵소추가 아닌 국가가 국민을 보호해야 되는 책무를 다하지 않았다는 헌법 정신 위배로 소를 제기했다면, 결과는 달라졌을 것이라고 하더라. 헌법 제34조 제6항은 '국가는 재해를 예방하고 그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태원 추모비, 행안부 건물에 있어야 한다"

 

프레시안 : 올해 핼러윈 데이는 정말 조용하게 지나갔다. 정치권은 외면하고 있지만, 온 국민은 이렇게 애도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혜승 : 조용하게 넘어간 것도 공감하고 위로를 전하는 방식일 수 있다. 하지만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다시는 이런 참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제대로 된 애도가 필요하다. 기억하고 추모하는 것이 너무 중요하다.

 

유가족 요구사항 중 이뤄진 게 하나도 없다. △진정한 사과, △성역 없는, 엄격한, 철저한 책임규명, △피해자들의 참여를 보장하는 진상 및 책임규명, △참사 피해자의 소통 보장, 인도적 조치 등 적극적인 지원, △희생자들에 대한 온전한 기억과 추모를 위한 적극적 조치, △2차 가해를 방지하기 위한 입장 표명과 구체적 대책의 마련 등. 이와 함께 유가족들이 국회 통과를 원하는 특별법의 핵심은 독립적 조사기구다. 

 

지금 시청 앞 서울광장 한편에 있는 분향소는 점거 형태다. 지인의 초등학생 딸이 지나가다가 보고, '엄마 분향소는 원래 임시 건물이야? 천막으로만 돼 있어? 그렇게 만들게 되어 있어?'라고 묻더라는 것이다. 언제부터 분향소가 천막 치고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인가. 그게 자연스러운 건 이상한 일 아닌가. 

 

유가족 중 한 분이 '어디에 추모비가 들어가면 좋겠느냐?'고 물어서 '이태원이요?'라고 했더니, '이태원에도 필요하겠지만 희생자 이름으로 벽 한 면을 가득 채워야 할 곳은 행안부 건물'이라고 하더라. '안전을 지켜야 하는 사람들이 일할 때 희생자들의 이름을 보면서 더 정신 차리고 일해야 한다'는 얘기다. 너무 와 닿았다. 

 

▲10.29 이태원참사 1주기를 맞은 10월 29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 마련된 합동분향소. ⓒ연합뉴스

 

무기력해진 1년, 무엇을 해야 할까 

 

프레시안 : 정부가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은 1년이었다면, 시민 입장에서는 더욱 무기력해진 1년이다.

 

정혜승 : 1년이 지나고 보니, 구멍은 더 명확해졌다. 그런데 어디가 문제인지 알면서도 바꿀 수 없어 무기력해진다면, '이런 시대를 살아가는 시민으로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 거지?'라는 질문을 할 수밖에 없다.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지만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논의하는 과정은 분명 의미가 있다. 한 명 한 명 개인은 무기력하지만, 모이면 무기력하지 않다는 사실을 계속 확인해야 한다. 

 

혹자는 이걸 '정치'라고 말하겠지만, '세월호나 이태원 참사가 반복되지 않고 아이들에게 조금 더 나은 미래를 남겨주고 싶다'고 생각하는 시민이라면, 같이 고민하고 떠들어야 한다. 뉴스를 멀리하는 마음은 이해하지만, '왜 이런 일이 벌어졌지? 우리가 무엇을 놓치고 있지?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지?'와 같은 질문을 얘기하다 보면 관심을 갖게 되지 않을까? 어떤 일도 저절로 해결되거나 공무원이나 정치인들이 알아서 해결해 주는 법은 없다. 불신한다고 외면할 일은 아니다.

 

최근 MBC에서 이태원 참사 수사기관의 보고서 161건, 169명의 진술조서 등 모두 1만2000쪽 분량을 공개했다. 정부가 국민 세금으로 수사한 결과인데, 공개가 맞는 것 아닌가. 그러나 수사 기록은 조사 기간이 끝나면 대게 그냥 캐비넷에 들어간다. 경험이 자산이 돼야 하는데, 자산은커녕 수사 한 번에 기록 공개도 없이 정치권 공방으로 끝난다. 그럼, 우리에게 남는 것은 무엇인가. 

 

따라서 민간에서도 할 수 있도록 정부가 지원하고 법적으로 뒷받침하는 '펜박(FENVAC)' 같은 단체는 굉장히 의미 있다고 본다. 펜박은 프랑스 재난 참사 테러 피해자 협회로, 재난이 계속 발생하면서 생긴 피해자와 유가족 연대체다. 이 연대체가 법적 기구로 인정받으면서 조사 권한까지 갖게 됐다. 이런 게 가능하더라. 

 

왜 다정함인가 

 

프레시안 : 책 마지막에 '다정함'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어떤 의미인가. 

 

정혜승 : '왜 다정함이 결론이야?'라고 생각할 수 있다. 분열을 조장하고 극단주의를 부채질하는 정치적 위기도 외로움 탓이다. 외로움이 우파 포퓰리즘과 긴밀하고 광범위한 관계가 있다는 연구도 나와 있다. 

 

외로움을 극복하고 분노와 절망을 근절하기 위한 근본적인 방법은 소통과 공감이다.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원 올앳원스>의 여주인공은 "혼란스럽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모를 때일수록, 서로에게 다정해야 한다"고 말하는데, 기왕이면 정부가 또 우리 모두가 좀 더 다정했으면 좋겠다. 

 

 

▲ <정부가 없다>(정혜승 지음, 메디치미디어 펴냄) ⓒ메디치미디어
이명선

프레시안 이명선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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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주의적 질서에 거대한 변화 조짐"

한설 전 육군군사연구소 소장, '北은 지정학적·전략적 요충'..협력 강조

  • 기자명 이승현 기자 
  •  
  •  입력 2023.11.07 03: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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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설 전 육군군사연구소 소장이 17일 저녁 '우크라이나 전쟁 평가 및 북러관계 전망'주제의 '2023년 10월 [통일뉴스] 월례강좌'에서 기존 제국주의적 질서에 거대한 변화 조짐이 보인다며 이에 대한 객관적 인식을 바탕으로 능동적인 대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사진-조천현]
한설 전 육군군사연구소 소장이 17일 저녁 '우크라이나 전쟁 평가 및 북러관계 전망'주제의 '2023년 10월 [통일뉴스] 월례강좌'에서 기존 제국주의적 질서에 거대한 변화 조짐이 보인다며 이에 대한 객관적 인식을 바탕으로 능동적인 대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사진-조천현]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크게 변화하고 있는 국제 관계에서 가장 두드러진 현상은 기존에 우리가 알고 있던 국제질서가 완전 해체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17일 저녁 서울 종로구 전태일기념관에서 열린 '우크라이나 전쟁 평가 및 북러관계 전망'주제의 '2023년 10월 [통일뉴스] 월례강좌'

소셜미디어를 통해 복잡한 국제관계에 대한 입체적인 분석과 식견을 펼쳐 온 한설 전 육군군사연구소 소장은 먼저 "우리가 제대로 살펴보지 못했던 지역이지만 중동과 아프리카 지역에서 그동안 구축되어 아직까지 변하지 않던 기존 자본주의 질서, 형식적으론 독립했지만 실질적으로는 식민지상태였던 제국주의적 질서에 뭔가 거대한 변화가 생겼다는 것을 감지할 수 있다"고 운을 뗐다.

거대한 변화의 대표적인 특징은 유엔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고 유명무실한 존재가 됐다는 것.

중동사태를 계기로 유엔안전보장이사회의 논의가 시작되고 있지만 사실은 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되면서 안보리를 비롯해 유엔총회도 이미 기능이 거의 정지된 상태라는 것이 그의 진단이다.

그 다음 눈여겨 볼 일은 유럽의 안보구도에서 역할이 커져왔던 나토(NATO)의 역할이다. "만일 우크라이나전쟁에서 러시아가 이기게 되면 나토는 붕괴와 다름없는 해체로 귀결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런 상황은 불을 보듯 분명하다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특징은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공격하면서 미국이 세계를 지배해 온 가장 중요한 축의 하나인 중동 질서가 무너지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은 세계 지배 과정에서 각종 층위별로 다양한 체제를 구축해 왔는데, 그런 것들이 일거에 형식만 남고 그 가치나 의미는 없어지는 상황에 처하게 됐다"고 짚었다. 

국제관계의 모든 건 힘의 관계를 통해 결정되는데, 브릭스(BRICS,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남아프리카공화국)와 G7(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일본, 캐나다, 유럽연합간 협의체)의 격차를 보면 분명한 흐름을 읽을 수 있다고 했다.

기존 체제의 붕괴 징후에서 무엇보다 주목해야 하는 일은 아프리카의 변화이다. 제국과 기존 체제의 붕괴는 중심부보다 주변부에서 일어나는 경우가 더 많기 때문이다.  

2023년을 경과하면서 브릭스 국가의 총생산 규모(GDP)가 G7을 넘어서고 있다는 걸 볼 수 있다. [사진출처-IMF]

아프리카에서 싹트는 반제국주의 혁명

먼저 아프리카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필두로 과거 민족주의 투쟁이 격화되던 곳도 아니었는데 느닷없이 2020년 8월 말리를 시작으로 '사헬(Sahel)지대'(세네갈 북부에서 수단남부까지 동서 약 6,400km 폭의 사막화가 진행중인 점이지대)의 최빈국들인 브루키나 파소, 니제르, 기니 등에서 잇달아 '군대가 주도한 사회주의혁명'과 같은 현상이 벌어졌다.

2020년 말리에서 시작해 2~3년 사이에 집중적으로 벌어진 이런 현상에는 어떤 이유가 있을까? 단정해서 말하긴 어렵지만 특히 지난해부터 이들 나라에서 무슨 문제가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중요한 건 역시 이 지역 사람들의 각성이다.

그는 경제적으로 프랑스에 완전히 예속돼 있던 이들 나라에서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각성이 시작되었는데, 그 폭발적 계기가 바로 우크라이나 전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짚었다.

이들에게 우크라이나 전쟁은 미국이나 서구 유럽과도 '한번 해볼만 하겠다'는 자신감(?)을 심어 준 그런 배경이 되지 않았을까? 라는 것이다. 

러시아는 2020년 이전부터 민간 용병기업 '바그너그룹'을 이곳에 보내서 영향력 확대를 위한 사전 작업을 해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 나라들은 쿠데타 성공 이후 이슬람원리주의 세력에 의한 치안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수십년간 영향력을 행사하던 프랑스의 철군을 요구하고 대신 바그너그룹과 손잡기로 하는 등 친러행보를 가속화하고 있는데, 내용을 살펴보면 '반제국주의 혁명'으로 볼만하다는 것이 그의 진단이다.

제국주의적 지배질서의 붕괴-사헬 지대 쿠데타 벨트의 확대 [사진-한설 제공]

미국과 이스라엘을 향한 중동의 반격

다음은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간 무력충돌로 시작해 확전 일로에 있는 중동사태.  

지난 10월 7일 하마스의 기습공격으로 촉발된 중동사태의 배경으로 이 지역을 놓고 벌이는 미국과 중국의 치열한 주도권 경쟁에 주목했다.

두 나라 모두 중동지역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목적이지만 경로가 달랐다. 중국은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의 관계 정상화를, 미국은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스라엘의 수교를 꾀했다.

그런 점에서 사우디아라비아가 이스라엘과 손잡는 순간 더 이상 존립근거와 희망이 사라지는 하마스는 초기 공격만으로 1차적 전략목표를 달성하는 성과를 거두었고, 이스라엘은 '진퇴양난'의 국면에 접어들었다고 평가했다.

왕정수호와 국가안보가 핵심 관심사인 사우디아라비아로서는 아랍 세계로부터 배척받지 않기 위해서 이스라엘과의 수교를 포기할 수 밖에 없었고, 아랍 세계와 타협하지 않고서는 존속 가능성이 없는 이스라엘은 당장의 기세와 달리 중동 전체 전쟁으로 비화할 수 있는 상황이 여전히 부담스러울 수 밖에 없다.

특히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75년간 국가를 유지하는데 가장 큰 힘이 되었던 미국의 패권적 지위가 흔들리는 상황에서 아랍과의 공존을 모색하지 못하면 이번 전쟁에서 이기든 지든 상관없이 국가의 소멸을 염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반면, 결정적 순간에 그에 걸맞는 결정을 할 준비가 되어있는 이란은 전쟁을 회피할 생각이 없을 뿐만 아니라 사전에 하마스의 공격을 지원하기도 했고 이번 기회를 통해 중동에서 미국을 몰아내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란이 보유한 미사일 전력이나 드론의 공격력은 저비용에 강력한 타격력을 갖추고 있어 동지중해에 배치된 미국의 항공모함에도 불의의 습격을 가할 수 있다고 했다.

전선이 가자지구를 넘으면 이란은 물론 이라크와 시리아도 참전할 것이기 때문에 미군은 더 이상 그곳에 주둔하기 어렵게 된다.

무엇보다 전 세계 이슬람사회로 확대되는 반이스라엘 시위는 미국으로서도 견딜 수 있는 상황을 넘을 것이기 때문에 적절한 수준에서 타협하고 중요한 순간에 물러설 수 있어야 하지만, 지금 미국은 그걸 못하기 때문에 붕괴의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미국이 이 지역에서 영향력을 유지하고 이스라엘이 살아남을 수 있는 해법은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를 비롯한  호전적 시오니스트들이 퇴진하고 그 이후 아랍 세계와 관계 정상화를 도모해야 한다는 것.

하지만 지금 이 시기를 놓치면 이스라엘은 지도상에서 사라질 가능성이 더 높고 미국은 향후 5~10년 후 지금과는 전혀 다른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

앞으로 국제질서는 어떻게 형성될까?

그렇게 미국의 패권이 붕괴되면 어떤 새로운 질서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까?

다극적 질서의 도래를 예상하는 견해가 많다. 다극화라면 최소한 다양한 정치제도와 종교, 이념이 두루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이어야 하지 않을까? 그저 현재와 같은 시스템에서 미국이 행사하던 패권을 여러개로 나누는 것에 그친다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질문이 많아진다.

그는 세계를 운영하는 근본 시스템 자체가 바뀌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향후 세계가 집단서방과 글로벌사우스로 분리되는 것은 이미 정해진 방향이며, 글로벌사우스는 러시아, 중국을 중심으로 새로운 세계질서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브릭스는 2020년 중반 이후 사우디아라이비아, 아르헨티나, 이란, 이집트, 에디오피아, 아랍에미레이트 등이 가세하며 이미 G7을 추월하기 시작해서 2030~40년대에 들어서는 G7이 따라갈 수 없는 역전이 기정사실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브릭스와 G7의 향후 예상 GDP 격차 [사진-스탠스베리리서치 갈무리]  
브릭스와 G7의 향후 예상 GDP 격차 [사진-스탠스베리리서치 갈무리]  

다시 말하지만, 국제정치에선 옳고 그르고의 문제가 아니라 상황을 얼마나 왜곡하지 않고 정확하게 보느냐가 초점이고 그 이후에 무엇을 선택할 것인지를 결정하자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중국과 러시아, 미국의 경쟁은 우리를 둘러싼 환경에서도 벌어지고 있고 이에 대해 우리는 나름의 방향을 모색해 나가야 한다.

북한, 지정학적·전략적 요충 

그런 점에서 북한과 러시아의 향후 전략적 관계가 어떻게 발전할 것인지를 살피는 것은 중요하다.

먼저 기존 해양 질서 중심 세계에서 유라시아 대륙 중심 세계로 넘어가는 변화의 과정을 이해하거나 최소한 그 가능성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각국이 추구하는 이익의 배경이 되기 때문이다.

가장 상징적인 사건은 러시아가 작년부터 수송을 시작한 '국제남북운송회랑'(INSTC: International North-South Transport Corridor)과 중국의 일대일로(One belt, One Road), 북극항로(Polar route) 개척 등이다. 

INSTC는 상트베테르부르크와 모스크바에서 이란의 테헤란, 인도 뭄바이까지 연결하는 운송망으로, 유라시아 대륙 횡단 회랑과 종단 회랑이 교차하고 페르시아만의 항만을 아우르며 국제 물류의 중심으로 성장 가능성이 주목되는 프로젝트이다.

일대일로는 유라시아 지역에서 대륙내 소통이 형성된다는 의미이다. 중국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가까워졌지만 이 두 나라가 힘을 합치지 않고서는 유라시아 세계에서 제대로 된 가치를 만들어낼 수가 없다.

INSTC와 일대일로가 완성되면 고대 유라시아 대륙의 중심지를 무대로 활동하던 스키타이인들과 같이 자유로운 공간 이동이 가능하지 않을까?

해양세력이라는 것도 결국 빠르고 제한이 없는 수송을 위해 바다를 이용하면서 만들어 진 것 아닌가.
 
또 하나 생각해 볼 건 대서양에서 태평양으로 가는 길을 기존 수에즈운하가 아니라 북극을 경유하려는 북극항로이다. 로테르담을 기준으로 수에즈운하를 통과하는 기존항로(2만100km)를 이용하면 부산항에서 24일이 소요되지만 북극항로(1만2,700km)를 이용하면 열흘을 줄일 수 있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호기롭게 부산을 그 출발점으로 그리고 있지만 실제로 그 항로를 이용할 중국의 이익을 계산하면 북한의 나진·선봉이나 블라디보스토크가 될 가능성이 훨씬 높다. 

그 중에서도 중국과 가까운 나진·선봉이 될 가능성이 더 높을 수 있다.

국제남북운송회랑 개념도 [사진-한설 제공]
국제남북운송회랑 개념도 [사진-한설 제공]

결국 INSTC와 일대일로, 북극항로를 실현하는데서 중국과 러시아는 손을 잡을 수 밖에 없다는 것. 그렇게 되면 지중해 시대는 끝난다고 볼 수 있다. 

여기서 북한은 우리가 유라시아로 진입해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통로가 된다. 분단된 한국은 지금 섬나라인데 북을 거치지 않고 어떻게 유라시아로 진출하겠냐는 것이다.

여기서 북한의 지정학적·전략적 중요성을 다시 살펴보자.

북한은 지리적으로 중국의 베이징, 다렌, 옌타이 등 중요 산업시설이 밀집해 있는 발해만(보하이만)과 러시아가 가장 취약한 극동 연해주를 보호할 수 있는 요충지에 자리잡고 있다.

또 핵보유국이라는 국제정치적 위상으로 인해 북한은 자신의 선택에 따라 어느 한쪽이 압도적 우위를 점할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중러관계에서 적극적인 균형자 역할을 할 수 있다.

과거 중소분쟁때 거중조정을 하며 생존을 위한 등거리외교를 할 때와는 달라진 상황이다. 

한마디로 북한의 전략적 중요성은 미국보다는 중국이나 러시아 입장에서 훨씬 더 커졌다는 것. 만약 미국이 북한과 손을 잡았다면 어떻게 됐을까를 상상해보면, 미국은 '북한'이라는 전략적 요충지를 상실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런 점에서 미국이 패권을 유지하는데 실패한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북한을 놓친 것이라고까지 지적했다.

미중 경쟁 상황에서 북한이 중립적인 위치에만 있어도 중국은 위협으로 느낄텐데, 더 나아가서 미군이 북한 지역에 주둔하는 사태까지 진척이 있었다면 훨씬 유리한 상황이었으테니 말이다. 

반제국주의, 새로운 세계질서 위한 북러의 협력

한설 전 소장은 복잡한 정세를 냉철하게 분석하고 새로운 질서의 향방을 살피면서 나름의 방향을 모색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사진-조천현]
한설 전 소장은 복잡한 정세를 냉철하게 분석하고 새로운 질서의 향방을 살피면서 나름의 방향을 모색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사진-조천현]

이제 한국과 북한의 상황을 국제정치의 관점에서 보자.

그는 북한은 중국, 러시아와 수평적 관계라고 설명했다. 세 나라 모두 핵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한국은 미국이 선두에 있고 일본이 그 다음에 있는 질서의 끝에 있는 수직적, 계서(階序) 관계에 있다고 했다.  한국 정부가 스스로 머리 숙이고 그 체제로 들어갔기 때문이다.

그래서 북한은 이제 절대로 한국하고 이야기하지 않으려 할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한국은 북한의 대화 상대가 되기 어렵다고 그는 진단했다. 현실적으로 북한의 정책결정권자가 아무런 자율권도 없는 한국과 무슨 이야기를 하겠냐는 것.

그는 지난 9월 13일 러시아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만난 김정은-푸틴 정상회담에서 가장 인상적인 이야기는 '반제국주의 공동전선에서 힘을 합치겠다'는 것이었다고 하면서, 그저 '레토릭'으로만 나온 건 아니라고 판단했다.

니제르의 쿠데타 지지시위 현장에 북한 국기가 등장하고 부르키노파스에 북한군이 들어가 있다는 보도에 대해서도 그저 가볍게 볼 일은 아니라며, 앞으로 북한은 새로운 국제질서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할 가능성이 있다고 짚었다.

미국이 중요한 나라라고 해서 군사주권마저 다 내주거나 무조건 나가라고 주장하는 일, 경제적 의존이 높은 중국을 배척하는 일,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보내는 자해행위 등.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은 과연 누구의 이익을 위한 것일까? 

결론은, 복잡한 정세를 냉철하게 분석하고 새로운 질서의 향방을 살피면서 나름의 방향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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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윤석열 보도’ 수사 뒤엔 상위법 초월한 대검 예규 있었다

한겨레, 수사 근거된 비공개 예규 입수
수사권 제한 검찰청법 시행 직전
대검 내부지침 예규에 ‘~등’ 넣어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연합뉴스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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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이 경향신문 등 5개 언론사의 대통령 선거 당시 ‘윤석열 검증 보도’를 수사 중인 가운데 대검찰청이 지난해 9월 검찰청법 시행 직전 자의적으로 수사 범위를 확대할 수 있도록 ‘검사의 수사개시에 대한 지침’(예규)을 개정한 것으로 확인됐다. 검찰청법은 검찰의 수사개시 범위를 부패·경제범죄로 제한하고 있지만, 지난해 법무부는 상위법 취지를 거스르는 시행령(대통령령)을 입법예고해 ‘시행령 쿠데타’라는 비판을 받았다. 그때 대검 역시 수사 범위를 넓힐 수 있게 내부 지침을 개정한 것이다. 검찰의 ‘윤석열 검증 보도’ 수사에 적법성 논란이 일 것으로 예상된다.

 

5일 한겨레가 입수한 이 예규의 ‘직접관련성 판단 기준’을 보면 “(검찰청법이 정한 범죄 등과) 범인·범죄사실·증거 중 어느 하나 이상을 공통으로 하는 등 합리적 관련성이 있는 범죄의 경우 직접관련성이 있는 범죄로 보아 수사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런 내용을 뼈대로 한 조항은 지난해 8월 한동훈 법무부가 검찰청법을 무력화하는 대통령령을 입법예고할 때 처음 등장했다. 검경 수사권 조정 뒤인 2021년 1월1일 이후 사건의 직접관련성은 ‘사실상 동일 범죄나 수사 중인 범죄와 관련한 재산은닉·무고·범인도피 등’으로 엄격하게 제한돼 왔는데, 지난해 8월 법무부는 ‘범인·범죄사실·증거 중 어느 하나 이상을 공통으로 하는 사건’은 직접관련성이 있는 사건으로 본다는 수사개시 규정을 입법예고했다.

 

이후 공포 과정에서 직접관련 조항은 삭제됐지만, 조항은 더욱 느슨한 형태로 비공개 대검 예규인 ‘수사개시 지침’으로 자리 잡았다. 시행령 쿠데타 때와 마찬가지로 ‘~등’ 한 글자를 넣어 범인과 범죄사실, 증거 중 어느 하나가 겹치지 않아도 기존에 수사하던 사건과 관련됐다는 검찰의 판단만 있으면 어떤 사건도 수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법학 교수는 “법은 직접관련성이 없으면 검찰이 수사를 시작하지 못하게 했는데, (예규를 통해) 관련성 범위가 넓어져 직접 수사를 못 할 범죄가 없어지게 됐다”고 말했다. 조기영 전북대 교수(법학전문대학원) 역시 “형사 절차는 법률에 근거해야 한다. 수사개시 역시 형사 절차인데, 이런 내용을 실무 업무 처리 지침에 불과한 예규에 넣어놓고 그것을 근거로 수사하는 것은 법률에 어긋나는 일이다”라고 했다.

 

검찰은 ‘범인·범죄사실·증거’가 공통되지 않더라도 검찰이 직접 수사를 개시할 필요가 있는 사건을 대비하는 차원에서 ‘~등’을 넣었다고 설명한다. 대검 관계자는 “법률이 정한 직접관련성 의미는 향후 법원 결정, 판례 등을 통해 결정될 것으로 생각된다”고 말했다.

 

전광준 기자 ligh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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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미콘 차를 여자가 몬다고? "하면 어떤데요"

[나, 블루칼라 여자] ⑥ 레미콘 운전기사 정정숙씨

박정연 기자  |  기사입력 2023.11.06. 05:01:47

 

'힘' 좀 써야 한다는 노동 현장, 그곳에도 여자가 있습니다. 웬만한 체력으로는 버티기 힘들다는 노동 현장에서 차별과 배제마저도 이겨낸 이들이죠. 남성 비율이 압도적으로 큰 블루칼라 노동 현장에서 살아남은 '기술직 여성들'이 바로 그들입니다.

 

남성중심적 문화가 지배적인 현장에서 이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차별과 배제를 버텼습니다. 여자 화장실이 없는 현장,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당해야만 했던 무시와 젠더폭력 속에서도 자신만의 기술을 터득해 당당하게 '기술직 여성'으로서 커리어를 이어 나간 이들을 <프레시안>이 만났습니다.

 

자신이 흘리는 땀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이 여성들은 건설 현장에서도 공장에서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건설 현장에서 도면을 그리는 먹매김 노동자, 건물 뼈대를 이어 거푸집을 만드는 형틀 목수, 자동차 제조 공장에서 부품을 염색하는 도장노동자 등 <프레시안>이 만난 블루칼라 여성들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편집자 

 

건설 현장은 다양한 팀이 동시다발적으로 일하는 공간이다. 포크레인부터 화물트럭과 지게차까지 자재를 운반하는 다양한 건설 중장비들도 서로 뒤엉킨다. 그 중에서도 건설현장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화물차가 있다. '통'이 빙글빙글 돌아가는 레미콘 차다. 

 

레미콘은 'Ready Mixed Concrete'를 줄여 만든 말로 굳지 않은 상태의 콘크리트를 말한다. 액체상태의 콘크리트를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레미콘을 운반하는 차의 동그란 적재통은 운반중에도 빙글빙글 돌아간다. 건설현장에서 형틀목수가 거푸집을 만들면 그 위에 레미콘 기사가 운반한 콘크리트가 타설되고, 콘크리트가 굳으면 단단한 건물이 세워진다.

 

<프레시안>은 지난달 24일 부산 기장군의 한 건설현장을 찾아 레미콘 기사로 25년째 일하고 있는 정정숙 씨를 만났다. 취재진은 정숙씨의 레미콘 차를 타고 두 탕을 함께 뛰며 인터뷰를 진행했다. 정숙 씨는 자신의 몸집보다 50배가 족히 넘어보이는 레미콘 차를 능수능란하게 운전했다. 그는 레미콘 회사로부터 레미콘을 받아 싣고, 타설이 필요한 건설현장으로 레미콘을 운반해 부었다. 레미콘을 운반하자마자 레미콘이 흐른 자리에 붙어 굳지 않도록 통로를 긁어냈다. 그러고는 레미콘 회사로 돌아와 적재통을 세척하고, 레미콘을 받아 또 다른 건설 현장으로 향했다.

 

 

 

 

정숙씨는 이 일을 시작하기 전 부산에서 택시를 몰았다. 배 타던 남편을 만나 아이 셋을 낳은 정숙 씨는 아이를 데리고 다닐 때 도움이 될 것 같다는 막연한 생각으로 택시 운전을 시작했다. 그렇게 4년 동안 밤낮으로 택시 운전을 하면서 부산 지리에 익숙해졌다. 지리에 훤해졌다는 이유로 레미콘 기사를 선택한 건 아니었다. 정숙 씨는 "처음엔 이렇게 큰 차를 몰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고 1998년도를 회상했다

상선을 오래 탔던 정숙 씨의 남편이 중고 레미콘차를 4500만 원에 사서 기사 일을 시작했다. 하지만 1997년 12월 외환위기가 와서 건설업에 타격을 입자 레미콘 운전으로 월 300만 원을 벌던 남편의 수입이 3분의 1로 줄게 됐다. 남편은 상선을 타고 '달러'를 받았는데, 달러는 가치가 떨어지지 않는다는 생각에 남편은 다시 상선을 타러 나갔다. 구매했던 레미콘 차가 골칫거리가 됐다. 다시 중고로 팔려니 4500만 원이던 차 값이 1200만 원으로 떨어졌다. 도무지 그 가격에는 팔 수가 없었다. 정숙 씨는 본인이 레미콘 기사가 되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남편이 배를 타러 가기 전 일주일 연수를 해줬고, 다른 레미콘 기사 동료에게 이틀 정도 연수 받은 게 다였다. 첫 현장으로 한 터널의 공사 현장을 갔던 그는 오르막길에 레미콘 차가 멈출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다리가 덜덜 떨렸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무사히 첫 현장을 다녀온 그는 이후 레미콘 차를 안정감있게 운전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하지만 가족들의 반응은 싸늘했다. '여자가 왜 그런 '험한 일'을 하느냐"는 것이었다. 

 

레미콘 기사를 한다고 했을 때 오빠가 '하이고 가문에 없는 중생'이라고 말했다. 전부 다 부정적이었다. 긍정적인 사람들은 없었다. 남자가 하는 일을 여자가 왜 하려고 하느냐고 핀잔을 줬다. 여자가 왜 그런 '험한 일'을 하느냐고 했다. 남편도 많이 걱정했다. 이제는 나를 인정해주지만 그때는 그렇지 않았다. 하지만 내 자식들만은 '우리 엄마는 할 수 있다'고 했다. 차도 없이 불편하게 다니다가 택시 운전을 하면서 아이들과 함께 다닌 기억이 남아있는 듯 했다. 아이들에게 나는 대단한 엄마였다. 집에 차가 없어도 우리를 불편하지 않게 택시 운전을 해준 엄마였다. 

 

▲<프레시안>은 지난달 24일 부산 기장군의 한 건설현장을 찾아 레미콘 기사로 25년째 일하고 있는 정정숙 씨를 만났다. ⓒ황지현

 

정숙 씨는 가족들의 부당한 '참견' 뿐 아니라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일터에서 차별을 겪었다. "남자 하는 일을 여자가 하면 남자들은 어디 가서 먹고 사느냐"는 남성 동료의 황당한 투정도 들어야 했다. 

 

레미콘을 싣고 건설회사에 가서 조금만 운전 실수를 하면 '여자라서 그렇다'라는 소리를 숱하게 들었다. 또 한 번은 '왜 이런 일을 하느냐'고 하기에 "하면 어떤데요" 라고 따졌다. 그랬더니 '남자 하는 일을 여자가 하면 남자들은 어디가서 먹고 사느냐'고 말하더라. 그래서 "(남자들이) 지 하기 나름이지 내보고 왜 그런 말을 하는데요"라고 받아쳤다. 그럼 나는 어디 가서 일하란 말이냐. 하도 그런 말을 많이 듣다보니까 생각한 게 어떤 이들은 '여자라서 그렇다'는 둥의 말을 해서 내가 주눅 드는지 반응을 보는 것 같다. 

 

하지만 정숙 씨는 그런 상황에도 주눅 들지 않았다. 마초적인 문화가 지배적인 이 바닥에서 어떻게 주눅 들지 않을 수 있었냐는 질문에 그는 "아이들이 나를 응원해줬고, 이 일을 해야 한다, 하면 된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그냥 자신 있게 살면 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차별적 상황에 주눅 들지 않고 오히려 부당한 상황에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이었다. 그렇게 부당한 업계 관행을 바꾼 적도 있었다. 

 

법인 기사로 일할 때 부산 문현동 한 현장에 들어갔는데 바퀴가 빠졌다. 여기 바퀴가 빠져서 못 들어가겠다고 하니까 건설회사의 젊은 직원이 와서 '여자가 운전을 X같이 해서 못 들어가는 거지' 이렇게 말하더라. 그 사람은 다른 레미콘 기사들한테도 다 그런 식으로 말을 하는 유명한 사람이었다. 그럼 "니가 한 번 해봐라"하고 차 시동을 끄고 나와 버렸다.

 

그랬더니 레미콘 영업부에서도 난리가 나고, 건설회사에서도 소란이 일어났다. 건설회사 직원들이 와서 '말실수가 있었다'고 기분을 풀라고 하길래 그 쪽 현장 바닥에서 바퀴가 빠지니 포크레인이 와서 레미콘을 받아가지 않으면 운전을 않겠다고 했다. 그래서 바퀴가 빠지는 지점까지 포크레인이 와서 레미콘을 받아갔다. 그리고 회사로 돌아가니 다른 기사들이 '아줌마 최고'라고 그러더라. 다른 레미콘 기사들도 바퀴가 빠지고 그 직원으로부터 막말을 들었는데 말 한마디 못하고 왔다더라. 그 뒤로부터는 그 현장에선 차가 들어갈 수 있는 데까지만 들어가고 포크레인이 와서 레미콘을 받아가는 형식으로 바뀌었다. 

 

▲<프레시안>은 지난달 24일 부산 기장군의 한 건설현장을 찾아 레미콘 기사로 25년째 일하고 있는 정정숙씨를 만났다. 레미콘을 운반하자마자 레미콘이 흐른 자리에 붙어 굳지 않도록 통로를 긁어내는 정숙씨. ⓒ황지현

 

이날 취재진은 정숙 씨가 레미콘을 운반하는 과정에 동행했다. 해운대의 현장에서 만난 펌프차 기사는 가파른 경사에서 조심스럽게 운전하는 정숙 씨를 향해 '여자라서 운전을 못한다', '그렇게 할거면 운전하지 말라'고 원색적인 비난을 했다. 정숙 씨는 그 펌프기사를 향해 "경사가 이리 가파른데 안전하게 운전해야하지 않겠나", "사고 나면 책임질끼가"라고 소리를 지르며 맞받아쳤다. 

 

정숙 씨는 갑작스레 마주한 갈등 상황에 "할 일을 제대로 하는 게 첫 번째"고 "주눅 들지 말고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펌프기사가 비난했던 건 내가 백미러를 보고 후진을 하기 때문에 한 소리를 한 거다. 하지만 나는 여자 중에서도 체격이 작기 때문에 허리가 짧으니 고개를 돌리거나 머리를 빼면 내 시야에선 보이질 않는다. 그런 어려움을 자기가 겪어보지 않으면 모른다. 다 자기 개념에 갇혀서 다른 사람의 사정을 모르는 것이다. 그럴 때 알려주면 받아들이는 사람은 받아 들인다"고 말했다. 정숙 씨는 안전 문제에는 특히 엄격하게 행동했다. 안전과 관련된 문제는 자신만의 문제가 아니라고도 말했다. 

 

"일이 정말 억세다"고 말하면서도 웃어 보인 정숙 씨는 "'남자 하는 일'이라고 하더라도 여자가 할 수 있으면 좋은 거 아니냐. 나는 그냥 먹고 살아야 하는 일이니까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25년동안 일을 했는데, 다른 사람들이 인정해주니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에게 일터에서의 목표를 묻자 지금 몰고 있는 차가 버텨줄 때까지 일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정숙 씨는 "어릴 때는 당돌하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어른이 되고 생활하면서 당당하게 사는 방법을 알게 된 것 같다. 각자의 자리에서 주눅들지 말고 당당하게 일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레미콘 차는 자신의 몸과 일심동체나 다름없다던 정숙 씨는 다음 목적지를 향해 레미콘 차만큼이나 큰 핸들을 온몸으로 안아서 돌렸다. 

 

아래는 정정숙 씨와 나눈 인터뷰 주요 내용이다. 인터뷰이의 일부 표현은 의미를 살리기 위해 사투리를 그대로 옮겼다.

 

프레시안 : 본인과 하는 일을 소개해달라. 

 

정정숙 : 부산에서 레미콘 기사로 일하고 있는 정정숙이다. 나이는 69세고 일 한 지는 25년이 되었다. 레미콘 공장으로부터 레미콘을 받아 차에 싣고 건설현장으로 나르는 일을 하고 있다. 건설 현장의 펌프카에 레미콘을 옮겨 주거나, 타설이 필요한 곳에 직접 레미콘을 붓기도 한다. 

 

프레시안 : 수도권 레미콘 기사의 경우 아침 8시부터 오후 5시까지만 일하는 8.5제를 시행하고 있는데 부산은 어떤가. 하루 일과가 어떻게 되는지, 보통 하루 '몇 탕'을 뛰시나. 

 

정정숙 : 부산에도 8.5제가 정착되는 분위기이지만 나는 용차로 일하기 때문에 새벽 3시 반에 일어나서 아침 운동을 한 시간 하고 6시 쯤 집에서 나선다. 8시까지 출근이면 조금 더 여유있게 준비한다. 저같은 경우 '탕'으로 수당을 받지 않고 시간제로 수당을 받는다. 

 

프레시안 : 레미콘 기사들은 회사에 소속된 법인기사거나, 개인 사업자로 회사와 위탁계약을 맺거나, 물량 변동에 따라 일시적으로 고용하는 용차 기사 등으로 나눠지는 것 같다. 정숙 씨는 어떤 계약 형태로 일을 하고 있나.

 

정정숙 : 용차 기사로 일하고 있다. 회사에 계약되어 있는 차가 대부분인데 월말이나 물량이 갑자기 많으면 용차를 불러서 하루 물량을 해결한다. 회사 소유 차거나 회사 소속으로 일한다기 보다는 하루 용역으로 나를 쓰는 거다. 그래서 물량이 몰릴 때 일이 있고, 물량이 없으면 일이 없을 때도 있다. 

 

프레시안 : 시간제로 수당을 받는다는 점은 신기한 것 같다. 보통은 '탕' 별로 운반비를 받는데, 시간제로 임금 계산을 하나. 운반비로 얼마 정도를 받는가. 

 

정정숙 : 회사에 소속된 레미콘 기사들은 '탕' 별로 계산을 하는데 나는 용차기사라서 4시간을 기준으로 22만 원을 받고 4시간 이후 초과하는 1시간 마다 수당이 붙는다. 하루에 4시간만 일할 때도 있고, 6-7시간을 일할 때도 있다. 오늘은 8시간 정도를 일 한 것 같다. 처음 일을 시작 할 때는 회사에 소속되어 10년 정도 있었는데, 한 탕에 2만 9천원부터 시작해서 3만 5천원까지 벌고 나와 지금은 용차기사로 일하고 있다. 한 달에 보름 정도 일하면 400만 원 정도를 번다.

 

프레시안 : 레미콘 차 할부, 차량 정비비, 타이어와 같은 부속 용품, 자동차 보험비 등을 계산하면 순수익은 많지 않을 것 같다. 

 

정정숙 : 레미콘 차량 가격과 생활비를 생각하면 실제로 들어오는 수입은 적은 편이다. 매달 차 값 할부 빠져나가고 한 달 생활하면 월 400만 원은 적다. 요새는 차 값이 비싸서 1년 총 수입이 6천만원은 넘어야 레미콘 차량 감가상각비를 제외하고 여유가 생긴다. 월 300만 원 ~ 400만 원을 벌어서는 빠듯한 편이다. 회사에 소속된 차들은 그 정도를 벌 수 있지만, 용차는 일이 들쑥 날쑥하기 때문에 그렇게는 못 번다. 스스로 차를 정비할 줄 아는 사람은 돈이 덜 드는데, 정비하는 사람에게 모든 걸 맡겨야 하는 나같은 입장은 돈이 더 많이 든다. 

 

프레시안 : 레미콘 차량 가격은 얼마인가. 

 

정정숙 : 새 차를 사려면 1억 5천만원이 조금 넘는 것 같다. 중고는 6000만 원 ~7000만 원 정도가 되어야 일하는 데 지장이 없이 일할 수 있는 차를 구할 수 있다. 

 

프레시안 : 레미콘 기사가 하는 일에 대한 좀 더 자세한 설명을 부탁드린다. 일의 장단점도 설명해주실 수 있나.

 

정정숙 : 우리는 현장에서나 사회의 여러 면으로 보나 운전기사라기보다, 뭐라고 할까 심부름꾼에 가깝다. 레미콘 기사가 레미콘 회사에 가서 물량을 받아서 건설회사에 배달해주는 것만 하면 참 쉽고 간단한 일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예를 들어 레미콘 회사에서 건설 현장에서 쓸 용도와 맞지 않는 레미콘을 주면 우리의 책임인 것처럼 이야기 하는 경우도 있다. 건설현장에서 남은 레미콘들을 우리가 수거해서 분리 배출해주기도 한다. 건설 현장에서 레미콘이 필요해서 우리를 부른 것인데 레미콘 차가 크기 때문인지 거추장스러운 존재처럼 대하기도 한다. 하루종일 운전하면 현장에서 대기 시간에 땅을 디디고 서있을 수도 있는 건데 운전석에 타있거나, 레미콘을 내려줘야 하니 차량 뒤편에 올라 타있기만 한다. 또한 안전 문제도 있다. 용차로 일하는 경우 시간제로 일하니까 안정감 있게 운전할 수 있지만, 회사에 소속되어 일하게 되면 '탕' 별로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에 많이 다니는 게 중요해서 위험하게 운전을 하는 경우가 있다. 운전을 하며 다양한 곳을 다닐 수 있다는 좋은 점도 있다. 이전에 작은 공간에서 수선일을 했는데, 운전은 바깥 온 군데를 다니면서 사계절을 느낄 수 있다. 특별히 경치 구경을 안 가더라도, 산에 갈 수도 있고 바다에 갈 수도 있다. 그래서 봄 꽃이 피면 그걸 보고, 예쁜 구름이 있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프레시안>은 지난달 24일 부산 기장군의 한 건설현장을 찾아 레미콘 기사로 25년째 일하고 있는 정정숙씨를 만났다. 레미콘을 운반하자마자 레미콘이 흐른 자리에 붙어 굳지 않도록 통로를 긁어내는 정숙씨. ⓒ황지현

 

프레시안 : 일을 한 지 25년 되셨다고 했으니 1998년부터 일을 시작하신 건가. 레미콘 기사 일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나. 

 

정정숙 : 처음엔 이렇게 큰 차를 몰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남편은 배를 오래 타다가 중고 레미콘차를 4500만 원에 사서 기사 일을 시작했다. 그게 1997년 즈음이었는데 12월 외환위기가 와서 그때부터 건설업에 타격이 있었다. 남편이 레미콘 운전으로 300만 원을 벌다가 IMF 위기 이후 100만 원을 벌게 됐다. 아이가 셋이 있는데 생활하기 턱없이 모자란 돈이었다. 남편은 상선을 타고 '달러'를 받았는데, 달러는 가치가 떨어지지 않으니까 남편은 다시 상선을 타기로 했다. 남편이 다시 배를 타기로 한 뒤 구매했던 레미콘 차가 골칫거리였다. 다시 중고로 팔려니 4500만 원에 샀던 차를 1200만 원에 팔라고 했다. 도무지 그 가격에는 팔 수가 없어서 내가 운전을 할 줄 아니까 레미콘 기사를 해봐야겠다고 단순하게 생각을 했다. 남편이 배를 타러 가기 전 일주일 연수를 해줬고, 다른 레미콘 기사 동료에게 이틀 정도 연수를 받은 게 다였다. 차의 넓이와 길이를 주의하라고 했던 이야기가 아직도 생생하다. 

 

프레시안 : 일주일 정도 연수 받고 레미콘 기사로 일을 시작한 건데, 불안한 마음이 앞섰을 것 같다. 처음 일했던 현장이 기억나나. 

 

정정숙 : 백양터널 공사현장이다. 가는 길이 약간 오르막인데 올라가다가 중간에 서면 오도 가도 못한다. 승용차는 움찔 했다가도 가는데 레미콘 차가 멈추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에 긴장되고 초조했다. 차가 뒤로 밀리면 큰일이니까. 지금 레미콘 차들은 오토가 되니까 그런 걱정이 없는데, 옛날 레미콘 차들은 사이드 브레이크 살짝 당기고 출발해야 하는 그런 요령들이 필요 했다. 그 현장을 무사히 다녀왔지만 다리가 덜덜 떨릴 정도로 긴장을 한 기억이 생생하다. 지금이야 길들이 다 좋아져서 괜찮지만 비포장 도로도 많고 쉽지 않았다. 

 

프레시안 : 레미콘 기사로 일을 하기 전에 무슨 일을 했나. 

 

정정숙 : 중학교를 졸업하고 수선 일을 배워 공장에서 일했고, 수선집에서 일하기도 했다. 그러다 남편을 만났고 아이 셋을 낳고 10년 동안 주부로 아이들을 키우다가 택시기사로 일을 했다. 내가 몸이 약했는데 혼자서 아이들 3명을 데리고 다니기가 너무 힘들었다. 친정에 갈 때도 누구 차를 얻어 타다 보니까, 아이들을 데리고 다닐 때도 도움이 된다는 막연한 생각으로 택시 운전을 시작했다. 그렇게 4년 동안 밤낮으로 택시 운전을 하면서 부산 지리에 익숙하게 된 게 레미콘 운전을 하면서도 많은 도움이 된 것 같다.

정정숙 : 레미콘 기사를 한다고 했을 때 오빠가 '하이고 가문에 없는 중생'이라고 말했다. 전부 다 부정적이었다. 긍정적인 사람들은 없었다. 남자가 하는 일을 여자가 왜 하려고 하냐고 핀잔을 줬다. 여자가 왜 그런 '험한 일'을 하냐고 했다. 남편도 많이 걱정했다. 이제는 나를 인정해주지만 그때는 그렇지 않았다. 하지만 내 자식들은 '우리 엄마는 할 수 있다'고 했다. 차도 없이 불편하게 다니다가 택시 운전을 하면서 아이들과 함께 다닌 기억이 남아있는 듯 했다. 아이들에게 나는 대단한 엄마였다. 집에 차가 없어도 우리를 불편하지 않게 택시 운전을 해준 엄마였다. 

 

▲<프레시안>은 지난달 24일 부산 기장군의 한 건설현장을 찾아 레미콘 기사로 25년째 일하고 있는 정정숙씨를 만났다. 무전기를 통해 동료와 소통하고 있는 정숙씨. ⓒ황지현

 

프레시안 : 레미콘 기사 중 여성 노동자 수는 얼마나 되는가. 비율이 궁금하다. 

 

정정숙 : 정확한 비율은 모르겠지만 부산에 레미콘 기사들이 1000명 정도 있으면 여자는 2명 정도밖에 안된다.

 

프레시안 : 여성이 건설현장에 적은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정정숙 : 일보다는 인간관계다. 아무래도 남자들이 많은 환경 속에서 어려움이 있다. 일이야 레미콘 공장에서 레미콘을 실어주고 차가 운전을 하는 일이니까. 일 자체로는 그다지 힘들지 않다. 하지만 여성을 무시하는 문화가 남아있어서 그런 부분이 힘들 것이다. 

 

프레시안 : 레미콘 기사의 경우 화장실은 어떻게 이용하나. 레미콘 회사나 건설현장에는 여자 화장실이 충분하게 있나.

 

정정숙 : 예전과 다르게, 요즘 건설 현장에는 여자 화장실이 대부분 설치되어 있다. 그런데 레미콘 회사에서 여자 화장실을 못 쓰는 경우가 있다. 여자 화장실이 있지만 남성 레미콘 기사들이 여자 화장실을 사용하는 일이 있어서 사무직 직원들이 여자 화장실 자체를 잠가 놓으니까, 나같은 사람은 사용할 수가 없다. 그래서 레미콘 회사에서는 남자 화장실을 사용해야 하는 상황이다. 

 

프레시안 : 현장에서 정정숙님을 부르는 호칭은 뭔가. 건설현장에서 다른 여성들 중 일부는 '못아줌마', '핀아줌마' 이런 식으로 자재 + 아줌마라고 불리는 것 같다. 

 

정정숙 : 기사님이나 사장님이라고도 불리지만 여자가 불릴 수 있는 호칭은 '고모' 빼고 다 들어봤다. 아줌마, 아지매, 여사님, 이모, 누나 등등. 여자를 부를 때 남자들 자기 인격이 드러나는 것 같다. 

 

프레시안 : 정숙 씨와 인터뷰 일정 잡기가 힘들었다. 다음주, 혹은 이틀 뒤에 일이 있을지 없을지 확신을 하지 못하시고, 전날이 되어야 알 수 있다고 말씀을 하셨다. 일감이 대중이 없나. 

 

정정숙 : 내가 법인 소속이 아니고 용차이기 때문에 그렇다. 저녁 6시 쯤에 회사에서 내일 할 일을 알려준다. 항상 같은 회사에 가는 것도 아니고, 내일 아침 몇 시에 어느 회사로 가라고 알려준다. 만약 저녁 6시에 문자가 안 오면 내일 일은 없다. 내 평일의 일정이 어찌 될지 모르니 평일에는 약속을 못 잡는다. 그게 용차의 삶이다. 처음에는 대중이 없어 불안했다. 어느 정도 세월이 지나다보니 월초에 일이 없으면 월말에 있고, 월초에 일이 많으면 월말에 일이 없다. 한달의 반은 일하고 한 달의 반은 논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하다. 욕심을 부리면 끝이 없다. 

 

프레시안 : 부산 신항에서 화물차 기사로 일하시는 여성 노동자를 인터뷰 한 적이 있다. 그 분은 처음 일을 시작할 때 초보이기도 한데 여성이라서 일을 구하기 더 힘들었다고 했다. 같은 초보여도 남자를 쓴다는 말을 했다.

 

정정숙 : 용차 회사나 법인 소속일 때는 내 상사가 나도 공정하게 일감을 받을 수 있도록 많이 배려를 해줬다. 그래서 그런 어려움은 생각보다 적었다. 다만, 레미콘을 싣고 건설회사에 가서 조금만 운전 실수를 하면 '여자라서 그렇다'라는 소리를 숱하게 들었다. 또 한 번은 '왜 이런 일을 하느냐'고 하길래 "하면 어떤데요" 라고 따졌다. 그랬더니 '남자 하는 일을 여자가 하면 남자들은 어디가서 먹고 사느냐'고 말하더라. 그래서 "(남자들이) 지 하기 나름이지 내보고 왜 그런 말을 하는데요"라고 받아쳤다. 그럼 나는 어디가서 일하란 말이냐. 하도 그런 말을 많이 듣다보니까 생각한 게 어떤이들은 '여자라서 그렇다'는 둥의 말을 해서 내가 주눅드는지 반응을 보는 것 같다. 

 

▲<프레시안>은 지난달 24일 부산 기장군의 한 건설현장을 찾아 레미콘 기사로 25년째 일하고 있는 정정숙씨를 만났다. ⓒ황지현

 

프레시안 : 그런 말에 주눅드신 적 있나. 

 

정정숙 : 내 기억으로는 주눅들었다는 느낌을 한 번도 못 받아본 것 같다. 

 

프레시안 : 어떻게 주눅들지 않을 수 있었나. 가족들도 레미콘 기사 일을 하는 것에 부정적이었고, 회사에서도 '여자라서 어떻다'는 소리를 했다. 솔직히 불편하고 부당한 참견들이지 않나. 

 

정정숙 : 내가 엄마라서 그런가. 아이들이 나를 응원해줬고, 이 일을 해야 한다, 하면 된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그냥 자신 있게 살면 된다고 생각했다. 장애를 가진 이들도 용기를 가지고 사는데, '여자로 사는 게 뭐 어때서 주눅 들겠노' 하는 생각을 하면서 용기를 얻었던 것 같다. 

 

프레시안 : 오늘 정숙 씨가 레미콘을 운반하는 과정에 동행하다 보니 펌프기사가 '여자라서 운전을 못한다', '그렇게 할거면 운전하지 말라'고 비난하는 상황을 목격했다. 남성이 다수인 상황에서 여성이라는 이유로 차별적인 이야기를 듣거나 하는 마초적인 문화에 적응하는 게 쉽지 않았을 것 같다. 그런 상황을 어떻게 이겨냈나. 

 

정정숙 할 일을 제대로 하는 게 첫 번째다. 그리고 주눅 들지 말고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해야 한다. 펌프기사가 비난했던 건 내가 백미러를 보고 후진을 하기 때문에 한 소리를 한 거다. 후진을 할 때 고개를 돌리거나, 창문 밖으로 머리를 빼고 운전을 하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나는 여자 중에서도 체격이 작기 때문에 허리가 짧으니 고개를 돌리거나 머리를 빼면 내 시야에선 보이질 않는다. 가뜩이나 레미콘 차는 크지 않나. 그래서 나는 앉은 자세에서 양쪽 사이드미러와 룸미러를 통해 최대한 정확하게 후진을 하는 방법을 연구하고 터득했다. 허리가 짧아서 직접 보면서 후진을 하지 못하는 어려움을 극복했다. 근데 지금도 내보고 고개를 안 내밀고 운전한다고 한 소리 하는 아저씨가 있다. 그럴 때는 이야기를 해서 알려준다. 모르는 소리 하지 말라고, 나는 허리가 짧아서 고개를 내밀면 안 보인다고 알려주는 거다. 그런 어려움을 자기가 겪어보지 않으면 모른다. 다 자기 개념에 갇혀서 다른 사람의 사정을 모르는 것이다. 그럴 때 알려주면 받아들이는 사람은 받아들인다. 

 

프레시안 : 부당한 상황이 오면 이런 말을 해야지 하고 머릿속에서 여러 번 시뮬레이션을 해본다. 하지만 막상 그런 상황이 오면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할 말을 하는 게 참 쉽지 않다. 

 

정정숙 : 나도 내 한 사람이 여자라고 무시하는 것까지는 받아 줄 수가 있다. 하지만 내로 인해 다른 사람한테까지 피해를 보는 건 용서가 안 된다. 법인 기사로 일할 때 부산 문현동 한 현장에 들어갔는데 바퀴가 빠졌다. 여기 바퀴가 빠져서 못 들어가겠다고 하니까 건설회사의 젊은 직원이 와서 '여자가 운전을 X같이 해서 못 들어 가는 거지' 이렇게 말하더라. 그 사람은 다른 레미콘 기사들한테도 다 그런 식으로 말을 하는 유명한 사람이었다. 그럼 "니가 한 번 해봐라"하고 차 시동을 끄고 나와 버렸다. 그랬더니 레미콘 영업부에서도 난리가 나고, 건설회사에서도 소란이 일어났다. 건설회사 직원들이 와서 '말 실수가 있었다'고 기분을 풀라고 하길래 그 쪽 현장 바닥에서 바퀴가 빠지니 포크레인이 와서 레미콘을 받아가지 않으면 운전을 않겠다고 했다. 그래서 바퀴가 빠지는 지점까지 포크레인이 와서 레미콘을 받아갔다. 그리고 회사로 돌아가니 다른 기사들이 '아지매 최고'라고 그러더라. 다른 레미콘 기사들도 바퀴가 빠지고 그 직원으로부터 막말을 들었는데 말 한마디 못하고 왔다더라. 그 뒤로부터는 그 현장에선 차가 들어갈 수 있는 데까지만 들어가고 포크레인이 와서 레미콘을 받아가는 형식으로 바뀌었다. 

 

프레시안 : 정숙 씨는 길을 만드시는 군요. 

 

정정숙 : 내는 그래요. 내 혼자 불이익은 당하는데, 내로 인해 다른 사람한테까지 피해를 줄 수 없다. 그리고 레미콘 기사는 현장에서 사람이 아니다. 완전한 '을'로 취급한다. 지금은 많이 좋아졌지만, 예전은 길이 좁고 오만 장애물이 있는데 결국 욕먹는 건 레미콘 기사였다. 만만한 게 레미콘 기사라고 할 정도로 어려웠다. 조금 더 안전하게 주차하고 싶어서 시간이 걸리면 운전을 못한다고 욕 먹고, 그러다가 사고라도 나면 모든 게 내 책임이 된다. 그래서 나는 안전은 확실히 따집니다. 내 안전은 내가 제일 잘 알고, 내가 책임져야 하거든. 

 

프레시안 : 일을 하면서 가장 힘든 점은 무엇인가. 

 

정정숙 : 오늘처럼 펌프기사가 내게 '여자라서 못한다'는 식으로 몇 마디 오고가는 경우가 힘들다. 그냥 몇 마디 정도에서 끝나면 그래도 내가 소화를 시키는데, 거기서 계속 내게 비난을 할 경우 사람들끼리 부딪히게 되고 그런 부분이 힘들다. 사람이 사람에 대한 이해가 조금 부족해서 그렇다. 

 

프레시안 : 일을 그만두고 싶었던 적도 있나. 

 

정정숙 : 그런 생각은 안 해봤다. 내가 체력이 딸릴 때는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은 해봤지만, 체력을 어느정도 관리하고부터는 그런 생각은 안 했다. 갈등 상황으로 힘들다고 해서 내가 자기네들 때문에 그만둬야 하나. 그건 아니었다. 

 

▲<프레시안>은 지난달 24일 부산 기장군의 한 건설현장을 찾아 레미콘 기사로 25년째 일하고 있는 정정숙씨를 만났다. 레미콘이 담겨있던 적재통을 세척하는 정숙씨. ⓒ황지현

 

프레시안 : 정숙 씨를 일하게 만들었던 동기는 무엇인가. 

 

정정숙 : 가정에 도움이 되려고 일을 시작했다. 아이가 셋이 있었고 홑벌이로는 키우기 힘들었다. 아이 아빠가 배를 타더라도 10개월은 일하고 2개월은 논다. 남편에게 계속 일하라고 할 수도 없는 것이고, 2개월 비는 기간이 있으니 내가 좀 나서봐야 되겠다 싶었다. 그러다보니 여기까지 와서 이렇게 일을 하게 됐다. 

 

프레시안 : 자부심을 느끼는 순간도 있었을 것 같다. 

 

정정숙 : '남자 하는 일'이라고 하더라도 여자가 할 수 있으면 좋은 거 아닌가.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내가 하는 일에 대한 인정을 해주더라. 나는 그냥 사람이 먹고 살아야 하는 일이니까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25년동안 일을 했는데, 다른 사람들이 인정해주니 자부심을 느낀다. 그리고 가정 형편이 쪼들리면 싸우게 되는데 일을 하면서 돈을 벌어서 그런 점들을 극복했다. 애들도 다 키워냈고 손주들도 7명이나 된다. 지금이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하다.

 

프레시안 : 정숙 씨에게 레미콘 차는 어떤 의미인가. 

 

정정숙 : 내 몸이다. 차는 내 몸하고 일심동체라고 생각한다. 매일 그 차 덕분에 돈도 벌고 안전하게 운전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감사하다. 

 

프레시안 : 일터에서 이루고 싶은 목표나 꿈이 있나. 

 

정정숙 : 운전만 하는 사람이 꿈이 있나. 진급을 하고 싶거나, 돈을 더 벌어야 겠다는 생각은 없다. 그런 직업도 아니고. 다만, 이 차가 버텨줄 때까지 일을 하고 싶다. 이 차를 폐차 시킬 때까지는 일을 할 생각이다. 건강을 유지하면서 하는 데까지 일을 하고 싶다. 

 

프레시안 : 동시대를 살아가는 일하는 사람들에게 해주실 말씀이 있다면. 

 

정정숙 : 어릴 때는 당돌하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어른이 되고 생활하면서 당당하게 사는 방법을 알게 된 것 같다. 각자의 자리에서 주눅들지 말고 당당하게 일 했으면 좋겠다. 

 

▲<프레시안>은 지난달 24일 부산 기장군의 한 건설현장을 찾아 레미콘 기사로 25년째 일하고 있는 정정숙씨를 만났다. ⓒ황지현
박정연

프레시안 박정연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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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명예훼손’ 언론·기자수사 위법성 논란

  • 김예리 기자 
  •  
  •  입력 2023.11.06 07:52
  •  
  •  댓글 1
  •  

    [아침신문 솎아보기] 경향·한겨레, ‘검찰청법 위배한 수사’ 1면

    종편에 선거심의위 추천한 방통심의위…이스라엘에 휴전 촉구 시위물결

    검찰이 대선 당시 ‘윤석열 검증 보도’를 낸 언론을 상대로 수사를 벌인 지 두 달이 지났다. 특별수사팀을 구성해 ‘대선개입 여론조작 사건’이라고 이름 붙이고, 지난해 대선 직전까지 보도된 부산저축은행 부실수사 의혹 관련 기사로 ‘윤석열 대통령이 명예훼손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면서다. 검찰은 지난 두 달간 언론사 5곳, 전·현직 기자 7명을 압수수색했다.

    한겨레와 경향신문은 1면에서 검찰 수사의 검찰청법을 위반해 이뤄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수사권 조정 이후로 검찰은 명예훼손죄에 직접수사를 개시할 수 없음에도 대검찰청이 자의적으로 비공개 예규를 개정해 수사를 벌인다는 것이다. 최고권력자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검찰이 대대적으로 언론사와 기자를 수사하는 경우는 형사사법체계가 안착된 국가에서 유례를 찾기 어렵다고도 했다.

    ▲6일 아침신문

    ▲6일 경향신문

     

    ‘대통령 명예훼손죄’ 언론 수사 두달, 적법성 논란

    대검찰청은 지난해 9월 검찰청법 시행 직전 ‘검사의 수사개시에 대한 지침’(예규)을 개정해 자의적으로 수사 범위를 넓혔다. 한겨레 1면 보도다. 한겨레는 검찰의 예규가 “(검찰청법이 정한 범죄 등과) 범인·범죄사실·증거 중 어느 하나 이상을 공통으로 하는 등 합리적 관련성이 있는 범죄의 경우 직접관련성이 있는 범죄로 보아 수사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고 했다.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2021년 1월1일 이후 사건의 직접관련성은 ‘사실상 동일 범죄나 수사 중인 범죄와 관련한 재산은닉·무고·범인도피 등’으로 엄격하게 제한돼 왔다. 그런데 비공개 대검 예규는 ‘수사개시 지침’에서 이를 무력화하는 내용을 명시해, ‘기존에 수사하던 사건과 관련됐다는 검찰의 판단만 있으면 어떤 사건도 수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6일 한겨레

    한겨레는 “검찰이 상위법(검찰청법)의 취지를 거스르는 비공개 대검찰청 예규를 근거로 지난 대통령 선거 당시 ‘윤석열 검증보도’를 수사하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이번 수사의 정당성을 둘러싼 논란은 더욱 커질 전망”이라고 했다.

     

    앞서 서울중앙지검 관계자는 경향신문, 뉴스버스 등을 검찰이 직접 수사개시를 할 수 없는 명예훼손 혐의로 수사하면서 “내부 지침”(예규)을 근거로 들었다.

    한겨레는 법무부와 검찰의 자의적 수사권 확대 논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고 했다. 지난해 8월 검찰의 직접수사 범위를 2대 범죄(부패·경제)로 축소한 검찰청법 시행 직전 법무부가 대통령령·시행령 규정을 입법예고했다. ‘한동훈 법무부’는 검찰청법 개정안이 검찰 수사개시 범위를 “부패 범죄, 경제 범죄 등 중요 범죄”로 규정했다며 ‘~등’을 확대 해석해 검찰이 공직자·선거 범죄를 비롯한 여러 사건을 수사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이에 맞춰 대통령령을 개정하겠다고 밝혔다.

    ▲6일 한겨레

    한겨레는 “하위 법령으로 국회가 만든 상위법을 무력화하는 법치주의 근간을 흔드는 ‘시행령 쿠데타’라고 비판을 받았다”고 했다. 대통령령은 ‘직접관련성 있는 범죄’ 판단 기준도 느슨하게 풀었다. 기존 대통령령에는 사실상 동일 범죄이거나 범죄수익은닉·무고·범인도피 등 직접 파생된 사건으로 한정돼 있었지만, ‘범인·범죄사실·증거 중 어느 하나 이상을 공통’으로 할 경우 검찰이 직접 수사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한겨레는 “‘위법한 예규’를 근거로 진행하고 있는 윤석열 검증보도 수사 역시 위법한 수사라는 지적이 나온다”며 “검찰은 이른바 ‘대선개입 여론조작’ 사건을 수사한다며 정보통신망법의 명예훼손 혐의로 뉴스타파, 제이티비시(JTBC), 리포액트, 경향신문, 뉴스버스 등 다섯개 언론사의 회사나 전·현직 기자의 주거지를 압수수색했다. 이 가운데 검찰이 직접 수사할 수 있는 언론사는 배임수재 혐의가 적용된 뉴스타파뿐”이라고 했다.

    ▲6일 경향신문

    경향신문은 검찰이 ‘명예훼손죄’에 직접수사를 개시할 수 없음에도 이에 반해 언론사들을 ‘윤석열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대대적으로 수사하고 있다고 했다. 경향신문은 “검찰이 ‘직접관련성’을 자의적으로 해석해 수사 범위를 확장하고 있다”고 했다.

    서울중앙지검 대선개입 여론조작 특별수사팀(부장검사 강백신)은 신학림 전 언론노조 위원장과 화천대유자산관리 대주주 김만배씨가 금전을 대가로 허위 인터뷰를 하고, 뉴스타파를 통해 이를 보도한 혐의(배임수재·청탁금지법 위반)가 있다며 수사에 착수했다.

    검찰은 그러면서 신 전 위원장과 김씨, 뉴스타파, 리포액트, 경향신문, 뉴스버스 전·현직 기자들이 윤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하는 허위 보도를 했다며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 혐의를 적용해 수사하고 있다.

    ▲6일 경향신문

    그러나 검찰이 이들 기자에게 적용한 명예훼손죄는 검찰청법상 검찰이 직접 수사개시할 수 없다. 경향신문은 “검찰청법은 검찰 수사권 축소를 위해 검사의 수사개시 범위를 ‘부패·경제범죄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중요범죄’로 제한한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 취임 후 법무부가 시행령을 개정해 이 범위를 대폭 넓혔지만 여기에 명예훼손죄는 포함되지 않는다”며 “배임수재·청탁금지법 위반죄만 검찰청법 제4조에 1항1호가 정하는 검사의 직접 수사 범위에 들어간다”고 했다.

    검찰은 신 전 위원장 및 김씨 혐의와 전·현직 기자들의 혐의가 ‘직접 관련성’이 있어 검찰이 수사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근거는 제시하지 않고 있다. 경향신문에 따르면 검찰 관계자는 지난 2일 기자들과 만나 “큰 틀에서 대장동 관련 수사 과정에서 허위 인터뷰 의혹 수사를 시작했고, 관련 증거나 증인들, 범죄사실이 직접 관련성이 인정되기 때문에 정통망법 명예훼손이 수사 대상이 되는 것은 명백하다”며 “이 사건이 김만배·신학림 배임수재랑 계속 연결되기 때문에 정통망법(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 혐의)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라고 했다.

    경향신문은 “검찰은 경향신문 등의 보도가 이른바 김만배·신학림 배임수재 혐의와 어떤 점에서 범인·범죄사실·증거가 공통된다는 것인지 구체적인 근거를 제시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경향신문은 검찰이 공직선거법 사건의 공소시효(6개월)가 지났음에도 이 사건을 수사하기 위해 정통망법상 명예훼손 혐의를 적용한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고 전했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경향신문에 “검찰이 수사권이 없는 상황에 억지로 (신 전 위원장과 김만배씨의) 배임수재 혐의와 (명예훼손을) 연관지어 압수수색을 하고 있다”고 했다.

    경향신문은 1면에서 “명예훼손을 형사처벌하는 나라도 드물지만 최고권력자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검찰이 대대적으로 언론사와 기자를 수사하는 경우는 형사사법체계가 제도적으로 안착된 국가에서는 유례를 찾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고 보도했다.

    경향신문은 “검찰은 보도 내용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전제로 수사하고 있다. 그러나 십여년 전 검찰 내부 상황에 대한 의혹 제기를 검찰이 스스로 사실이 아니라고 결론내린 뒤 직접 수사에 나선 것을 두고 ‘이해충돌’이라는 지적”이라고 했다.

    김동찬 언론개혁시민연대 정책위원장은 경향신문에 “‘검찰 수사가 잘못됐을 수 있다’는 의혹 보도를 허위로 몰아서 오히려 이해당사자인 검찰이 수사를 하고 있다”며 “의혹이 거짓이라면 투명하게 의혹을 해소하고 해명하면 될 일이지, 합리적인 정황과 근거를 통해 나온 보도가 허위라며 형사처벌하겠다고 달려드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했다.

    경향신문은 “정부와 국가기관은 명예훼손죄의 피해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이 법원 판례”라며 “문제는 검찰의 수사 착수 자체만으로도 언론 자유가 침해될 수 있다는 것이다. 언론에 대한 검찰의 광범위한 압수수색은 기자의 취재원 비닉권(신분을 비공개할 권리)을 정면으로 침해한다”고 했다. 미국은 취재원을 밝히기 위한 언론 압수수색을 금지하고 부득이하게 언론을 압수수색하더라도 범위를 제한해야 한다는 제도를 갖고 있다. 그러나 한국은 그런 제도가 없어 언론사와 기자는 수사기관의 압수수색에 무방비 상태라고 했다.

     

    방통심의위, 종편에 선거심의위 추천 의뢰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내년 4월 총선 선거방송심의위원회 구성에 앞서 TV조선과 채널A 등 종합편성채널과 친정부 성향을 보이는 일부 보수 단체·학회 등에 심의위원 추천을 의뢰했다. 선거방송심의위는 선거방송의 공정성 여부를 심의하는 독립기구다.

    한겨레는 1면에서 방심위가 방송사 몫의 심의위원 추천을 한국방송협회와 한국케이블티브이방송협회에 더해 TV조선·JTBC·채널A·MBN 등 종편 4사에 의뢰했다고 보도했다. 그동안 방송사 추천 심의위원은 개별 방송사가 아니라 대표성을 띄는 방송협회와 케이블티브이방송협회가 번갈아 추천했는데 이번에는 종편 4사를 추천 단체에 포함시켰다는 것이다. 한겨레는 심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개별 방송사에 심의위원 추천 권한을 쥐여 준 셈이라고 지적했다.

    ▲6일 한겨레

     

    ▲6일 한겨레 보도 갈무리

    방송학계 몫 심의위원을 한국미디어정책학회라는 신생 학회에 추천해달라고 단독 의뢰한 것도 부적절하다고 한겨레는 보도했다. 방송학계 몫은 일반적으로 한국언론학회나 한국언론정보학회가 추천해왔다. 한국미디어정책학회는 2019년 6월 출범했고 윤석열 정부의 미디어·콘텐츠산업융합발전위원회에서 민간위원으로 활동 중인 박천일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교수가 회장이다.

    한겨레는 방통심의위가 언론인단체 추천위원을 방송기자연합회나 한국기자협회가 아니라 이에 비해 대표성이 떨어지는 한국방송기자클럽에 추천해달라고 의뢰했고, 윤 정부 출범 직후인 2022년 6월에 설립된 보수 언론단체인 공정언론국민연대를 시민단체라며 여기에 심의위원 추천을 의뢰했다고도 했다.

     

    이스라엘 전쟁 선포 한 달, 거세지는 시위 물결

    이스라엘이 하마스 박멸을 명분으로 가자지구에 민간인 거주 지역을 포함해 무차별 공습에 나선 지 6일로 한 달이 된다. 이스라엘에 의한 가자지구 내 팔레스타인 희생자는 갈수록 늘어 4일 기준 9400명을 넘었다. 이 중 어린이는 41%가량이다.

    이날 아침신문들은 이스라엘의 무차별 공습으로 가자지구 내 어린이가 살상되고 식량과 의약품, 식수가 바닥나는 최악의 상황에 놓였다고 보도했다. 한국을 포함해 세계 곳곳에서는 즉각 휴전을 촉구하는 시위 물결이 거세지고 있다.

    ▲6일 세계일보

    ▲6일 경향신문

    ▲6일 경향신문

    ▲6일 한국일보

    ▲6일 한겨레

    ▲6일 경향신문

    ▲6일 동아일보

    동아일보는 아키바 토르 주한 이스라엘 대사 인터뷰에 이어 6일 사이드 쿠제치 주한 이란대사인터뷰를 내놨다. 쿠제치 대사는 인터뷰에서 “이스라엘이 피란민이 몰려 있는 가자지구의 자발리야 난민촌을 거듭 공습한 것은 명백한 전쟁범죄”라고 말했다.

    동아일보는 쿠제치 대사가 ‘하마스가 선거로 가자지구 제1당에 올랐음에도 이스라엘이 하마스를 부정하고 2007년부터 16년간 가자지구를 봉쇄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쿠제치 대사는 이스라엘이 국제법을 위반하고 요르단강 서안지구 곳곳에 유대인 정착촌을 건설하고 있는 점도 비판하며 “제2의 가자지구가 될 여지가 농후하다”고 우려했다.

    ▲6일 동아일보

    쿠제치 대사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비판하는 서방 언론이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탄압은 용인한다”며 가자지구의 인도주의적 위기 또한 실상에 비해 적게 보도되고 있다고 했다. 이번 사태를 미국과 이란의 ‘대리전’으로 보는 시각은 팔레스타인에 ‘결례’라고도 했다.

    조선일보 정철환 유럽 특파원은 오피니언면에서 ‘팔레스타인인이 죽어나가는 비극’의 주범으로 하마스를 지목하는 칼럼을 냈다. “매일 취재 현장에서 전쟁을 목도하며 참담함을 금할 수 없다”며 “특히 하마스가 전장이 된 가자 북부의 주민들을 일부러 피란시키지 않고 ‘인간 방패’로 쓴다는 사실은 이제 의심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가자의 하마스 정부가 민간인을 대피시키려고 애쓰고 있다는 이야기는 그 어디서도 듣지 못했다”고 했다.

    ▲6일 조선일보

    이스라엘은 지난 13일부터 지속적으로 가자 주민들에게 북부지역을 떠나라고 명령해왔다. 그러나 남부와 중부 난민촌과 거주지역을 포함한 가자 전역을 무차별 공습하면서 북부에서 대피자를 포함한 민간인 사망자가 늘어나고 있다. 이집트 국경 부근인 칸 유니스와 가자 중부 난민촌 등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이스라엘의 대피령을 ‘사형선고’라고 우려했고,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이스라엘 공습이 전쟁범죄에 해당한다고 성명을 냈다.

     

    김예리 기자ykim@media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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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이 문제라는 이준석·유승민, ‘당만 패는’ 인요한

  • 분류
    아하~
  • 등록일
    2023/11/06 09:30
  • 수정일
    2023/11/06 09:30
  • 글쓴이
    이필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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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요한 국민의힘 혁신위원장은 4일 오후 부산 경성대 중앙도서관에서 열린 ‘이준석&이언주 톡!톡! 콘서트’ 현장을 찾았다. ⓒ뉴스1
‘환자는 서울에’, 부산까지 찾아온 인요한 국민의힘 혁신위원장에게 던진 이준석 전 대표의 발언이다. ‘서울’은 용산 대통령실, 더 정확히는 윤석열 대통령을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 전 대표는 기회 있을 때마다 정부여당의 위기가 국정기조 때문에 발생한 것이며 그 핵심은 윤 대통령이라고 직격했다.

이 전 대표는 최근 국민일보와 인터뷰에서도 “윤석열 정부를 비판하면서도 ‘왜 저렇게 하지’ 하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이른바 협상의 조건에 대해서도 “그쪽에서 연구할 사안이다. 나는 어떠한 조건도 제시할 생각이 없다”며 “지금 국민의힘을 이끄는 세력들을 시한부로 보고 있다. 선거를 통해 사라질 것이다”라고 질타했다. 윤 대통령과 집권세력이 확실히 변하는 모습을 국민에게 보여주지 않으면 총선 참패를 피할 수 없고, 자신 역시 12월 말에 다른 길을 갈 것이라고 재삼 확인하고 있다.

국민의힘 비윤계를 대표하는 또 다른 축인 유승민 전 의원도 ‘용산 책임론’을 분명히 하고 있다. 유 전 의원은 최근 방송 인터뷰를 통해 인요한 위원장과의 면담 내용을 전하며 “딱 세 가지를 이야기했다”고 밝혔다. 유 전 의원이 밝힌 세 가지는 민심 이반에 대한 윤 대통령의 반성과 당 개입 중단, 대통령실과 당과의 수직적 관계 청산, 김기현 체제 개편 또는 전면 쇄신으로 요약할 수 있다. 유 전 의원은 “혁신위원장이 확답은 없었다”고 말했다.

탈당은 물론 신당 창당의 주체로 부상한 이 전 대표와 유 전 의원의 지적은 결국 윤 대통령의 반성과 변화다. 대선 출마 당시의 초심으로 돌아가라는 주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인 위원장의 행보는 이와 동떨어져 있다. 인요한 혁신안 1호는 엉뚱하게 ‘대사면령’이었다. 당의 통합을 위해 이 전 대표와 홍준표 대구시장 등에 대한 징계를 취소하자는 제안은 곧바로 최고위에서 의결했다. 그러나 징계가 잘못됐다거나 당이 사과하는 것은 아니었다. 이로 인해 당사자인 이 전 대표와 홍 시장은 ‘두 번 모욕을 준다’며 격하게 반발했다.

1호가 당내 통합을 위한 상징적 조치라면, 2호는 본격적인 혁신안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역시 기대와 동떨어졌다. 당 지도부와 친윤, 다선 중진을 향해 불출마나 수도권 출마를 강력 권고하고, 국회의원 정수와 세비 등을 감축하는 제안이었다. 이른바 험지 출마론은 대통령실이나 검찰 출신 인사들의 출마 움직임이 잇따르면서 당선이 편한 텃밭에서 기존 인물을 뽑아내고 대통령의 측근을 꽂기 위한 명분으로 변색됐다는 지적이 많다. ‘험지 출마론’이 아니라 ‘양지 비우기’ 시도인 셈이다. 국회의원 정수 10% 축소는 대통령을 견제할 국회의 권한을 축소하는 데다 국회의원 1인당 권한은 늘려 그간의 정치개혁과도 정반대의 제안이다. 세비 삭감이나 불체포 특권 포기 등은 이미 여러 차례 약속된 지엽적 사안이라는 평가가 많다.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와 김태우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후보가 5일 오후 서울 강서구 모아타운 통합추진위 사무실에서 열린 '통합추진위 사무실 개소식'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2023.10.5. ⓒ뉴스1
이런 인요한 혁신위의 초반 행보는 애초 발족 취지와 시점에 비춰 보면 ‘곁가지’라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10월 11일 강서구청장 보궐선거는 대통령실과 여당에게 예상보다 격차가 큰 참패를 안겨줬다. 윤 대통령이 밀어붙인 특별사면과 안팎의 우려와 경고에도 감행한 초유의 보궐선거 원인제공자 공천에 대한 심판이었다. 아울러 임기 1년 반을 맞는 윤 대통령의 국정에 대한 국민의 분노가 표출된 것이었다. 그동안 비주류의 엄살로 치부되던 ‘수도권 위기론’의 실체가 드러났고, 당 안에서는 ‘이대로는 과반은커녕 100석도 힘들다’는 공포가 팽배해졌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구원투수로 등판한 것이 인요한 혁신위다. 그런데 윤 대통령의 국정이나 당정 관계 등 위기를 부른 핵심사안은 빠진 채 통합과 험지 출마라는 당내 사안이 간판으로 부상한 것이다. 아울러 국민의 분노를 부른 것은 대통령인데 국회를 수술하는 혁신안을 내놓았다.

이와 관련 인 위원장은 기회가 있으면 말하겠다는 뜻을 밝히면서 “대통령과 당 대표 일에 관여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자신의 역할에 선을 그은 바 있다. 앞서 유 전 의원과의 면담 사실을 밝히면서도 대화 내용은 감춘 채 “만나보니 ‘코리안 젠틀맨’이고 애국자더라”라고 딴소리를 한 것도 이런 한계를 드러낸 셈이다. R&D 예산과 지방교부세 삭감 등 정부가 비판받는 주요 이슈에 대해 인요한 혁신위가 아무 발언을 하지 않는 것 역시 이런 한계에서 기인한다. 대통령의 뜻을 받들어 강서구청장 선거를 주도하다 참패의 책임을 안고 사퇴한 이철규 전 사무총장이 19일 만에 인재영입위원장으로 다시 총선 전면에 나선 것도 용산의 뜻이 관철된 것으로 분석된다. 결국 용산은 제 갈 길 가는 상황에서 혁신위가 당과 국회만 뜯어고치겠다고 나서는 형국이다.

민주당 권칠승 수석대변인도 4일 “인요한 혁신위는 왜 혁신위가 출범했는지 되짚어보고, 대통령에게 제대로 말한마디도말 한마디도 못 할 혁신위라면 존재 이유가 없다는 것을 명심하기 바란다”고 지적했다.

“와이프, 자식 빼고 다 바꿔야 한다”고 혁신위 포문을 열었는데, 알고 보니 와이프와 자식 즉, 용산을 어떻게 할 것인지가 정작 문제의 핵심이다. 의사로서 쓴 약을 조제해 먹이겠다고 호언장담했지만, 인요한 혁신위가 진료하고 투약할 대상이 누군지 근본적인 질문이 다시 앞에 놓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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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전선에서 연속 발생하는 위험한 사건들

[개벽예감 561] 제3전선에서 연속 발생하는 위험한 사건들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 기사입력 2023/11/06 [08:18]

 

<차례>

1. 미 제국의 9개 항모타격단 배치상황

2. 동해에 집결한 3개 항모타격단

3. 항모타격단 격파 전술이 완성되었다

4. 남중국해에서 확대된 전쟁위험

5. 미 제국의 항모타격단 운용지침

6. 연속적으로 발생하는 위험한 사건들

 

 

1. 미 제국의 9개 항모타격단 배치상황

 

 

동유럽의 제1전선에서 로씨야-우크라이나 전쟁이 일어났고, 중동의 제2전선에서 하마스-이스라엘 전쟁이 일어났고, 동아시아의 제3전선에서 조선, 중국, 로씨야가 연대하는 반제공동전선과 미 제국을 수괴로 하는 제국주의 연합세력의 대결이 계속되고 있다. 복잡다단하게 뒤엉킨 오늘의 국제정세를 3개 전선 구도로 인식해야 정세의 본질에 접근할 수 있다.

 

조선, 중국, 로씨야의 반제공동전선에 맞서는 미 제국의 전략자산은 항모타격단(Carrier Strike Group)이다. 미 제국의 항모타격단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정보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미 제국이 보유한 1개 항모타격단의 가격은 약 140억 달러(18조 3,061억 원)다. 1개 항모타격단의 1일 운영비는 5,600만 달러(732억 원)이고, 연간 운영비는 21억 달러(2조 7,460억 원)다.

 

미 제국은 이처럼 엄청난 비용을 말아먹는 항모타격단을 9개나 운용하고 있다. 미 제국이 보유한 항공모함은 11척인데, 미 제국이 운용하는 항모타격단은 9개다. 미 제국은 항공모함을 11척 보유했지만, 항모타격단 운용에 천문학적인 재정을 지출해야 하므로 항모타격단은 9개만 보유하였다.

 

누구나 아는 것처럼, 미 제국이 9개 항모타격단을 운용하는 목적은 자기를 방어하려는 것이 아니다. 미 제국은 전 세계를 힘으로 지배하고 강압하고, 자기에게 고분고분하지 않은 약소국들을 무력 침공으로 짓밟으려는 범죄적 악의를 품고 9개 항모타격단을 운용하는 것이다.

 

그런데 미 제국의 올해 재정적자는 1조6,950억 달러(약 2,290조 원)에 이르렀고, 부채 이자는 올해 6,590억 달러(약 891조 5,000억 원)가 추가되었다. 이런 추세로 나가면, 앞으로 10년 뒤에 미 제국의 이자는 10조 6,000억 달러로 폭증해 국가체제가 재정파탄으로 붕괴될 수 있다. 사정이 이처럼 심각한데도, 미 제국은 9개 항모타격단을 운용하는 데 천문학적인 비용을 탕진하며 매일 같이 도발 광기를 부리고 있다. 미 제국은 도발 광기에 미쳐 날뛰고, 그런 미 제국을 지극정성으로 섬기는 윤석열 종미우익 정권은 맹종 광기에 미쳐 버렸다.

 

평시에 미 제국은 항공모함 1척을 지휘함, 주력함으로 하고, 미사일순양함과 미사일구축함 6척, 공격 핵잠수함 1척, 군수보급함 1척을 배속시킨 항모타격단을 작전 수역에 출동시켜 순찰하게 한다.

 

그런데 세계 어느 지역에서 국지전이 일어나는 경우, 또는 국지전이 일어날 긴박한 상황이 발생한 경우, 미 제국은 위험수역에 2개 항모타격단을 급파한다. 미 제국이 위험수역에 급파하는 2개 항모타격단은 항공모함 2척, 미사일순양함 4척, 미사일구축함 8척, 공격 핵잠수함 2~4척, 군수보급함 1척으로 편성된다.

 

만일 세계 어느 지역에서 전면전이 일어나는 경우, 또는 전면전이 일어날 급박하고 엄중한 위험이 발생한 경우, 미 제국은 전쟁 수역에 3개 항모타격단을 급파한다. 미 제국이 전쟁 수역에 급파하는 3개 항모타격단은 항공모함 3척, 미사일순양함 9척, 미사일구축함 14척, 공격 핵잠수함 5~6척, 군수보급함 1~2척으로 편성된다. 미 제국이 2003년 3월 20일 이라크 침략전쟁을 도발하였을 때, 3개 항모타격단을 걸프해역에 급파했었고, 2개 항모타격단을 지중해에 예비로 배치했었다.

 

미 제국 해군의 ‘함대대응계획(Fleet Response Plan)’에 의하면, 미 제국이 보유한 9개 항모타격단 중에서 6개 항모타격단은 유사시 30일 안에 전선에 출동할 준비를 갖추었고, 다른 2개 항모타격단은 유사시 90일 안에 전선에 출동할 수 있다고 한다. 현대전은 분초 단위로 급박하게 수행되는데, 미 제국 항모타격단은 굼벵이처럼 느린 속도로 출동을 준비한다.

 

미 제국의 9개 항모타격단 중에서 5개는 태평양에 배치되었고, 4개는 대서양에 배치되었다. 9개 항모타격단 배치상황은 다음과 같다.

 

1) 태평양에 배치된 5개 항모타격단

 

제1항모타격단 - 핵추진 항공모함 칼 빈슨호(USS Carl Vinson)를 지휘함, 주력함으로 하여 편성되었다.

제3항모타격단 - 핵추진 항공모함 에이브러햄 링컨호(USS Abraham Lincoln)를 지휘함, 주력함으로 하여 편성되었다.

제5항모타격단 - 핵추진 항공모함 로널드 레이건호(USS Ronald Reagan)를 지휘함, 주력함으로 하여 편성되었다. 제5항모타격단은 9개 항모타격단 중에서 일본에 고정 배치된 유일한 해외 배치 항모타격단이다.

제9항모타격단 - 핵추진 항공모함 시어도어 루스벨트호(USS Theodore Roosevelt)를 지휘함, 주력함으로 하여 편성되었다.

제11항모타격단 - 핵추진 항공모함 니미츠호(USS Nimitz)를 지휘함, 주력함으로 하여 편성되었다.

 

2) 대서양에 배치된 4개 항모타격단

 

제2항모타격단 - 핵추진 항공모함 드와잇 아이젠하워호(Dwight D. Eisenhower)를 지휘함, 주력함으로 하여 편성되었다.

제8항모타격단 - 핵추진 항공모함 해리 트르먼호(USS Harry S. Truman)를 지휘함, 주력함으로 하여 편성되었다.

제10항모타격단 - 핵추진 항공모함 조지 부쉬호(George H. W. Bush)를 지휘함, 주력함으로 하여 편성되었다.

제12항모타격단 - 핵추진 항공모함 제럴드 포드호(USS Gerald R. Ford)를 지휘함, 주력함으로 하여 편성되었다.

 

얼마 전 화재 사고가 발생한 항공모함 에이브러햄 링컨호는 현재 후방에서 화재 원인에 대한 조사를 받고 있으므로, 제3항모타격단은 당분간 전선에 출동하지 못한다. 따라서 2023년 11월 현재 미 제국이 전선에 즉각 출동시킬 수 있는 항모타격단은 태평양에 배치된 4개 항모타격단과 대서양에 배치된 4개 항모타격단이다.

 

 

2. 동해에 집결한 3개 항모타격단

 

 

만일 동아시아의 제3전선에서 전면전이 일어나면, 미 제국은 태평양에 배치한 4개 항모타격단 중에서 1개 항모타격단으로 태평양 연안을 방어하고, 나머지 3개 항모타격단을 전선에 투입하게 된다. 만일 중동의 제2전선에서 전면전이 일어나면, 미 제국은 대서양에 배치한 4개 항모타격단 중에서 1개 항모타격단으로 대서양 연안을 방어하고, 나머지 3개 항모타격단을 전선에 투입하게 된다.

 

그런데 중국의 내정 문제인 대만 문제에 대한 미 제국의 불법적인 간섭 망동이 지금보다 더 악화되고, 내정 간섭을 배격하는 중국과 정면으로 충돌해 중미전쟁이 일어나면, 미 제국은 5개 항모타격단을 투입해야 한다.

 

미 제국이 다른 약소국을 침공할 때는 이전에 그러했던 것처럼 3개 항모타격단만 투입해도 되지만, 2개 항모타격단을 운용하는 중국에 맞서려면 3개 항모타격단으로는 안 되고, 5개 항모타격단을 투입해야 한다. 다시 말해서, 미 제국은 동중국해에 2개 항모타격단을, 남중국해에 2개 항모타격단을 각각 출동시키고, 대만 동부 해역에 나머지 1개 항모타격단을 출동시켜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미 제국의 고민거리는 태평양에 항모타격단을 4개밖에 배치하지 못했다는 데 있다. 중국과의 전쟁에 대비하려면 항모타격단 5개를 태평양에 배치해야 마음이 놓이는데, 1개가 부족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은 2022년 6월 17일 세 번째 항공모함 푸젠호(福建號)를 진수하였다. 2024년에 푸젠호 시험항해가 끝나면, 해군에 인도된다. 그러면 중국은 푸젠호를 지휘함, 주력함으로 하는 세 번째 항모타격단을 2027~2028년 기간에 실전 배치할 것이다.

 

미 제국도 항공모함 존 에프 케네디호(USS John F. Kennedy)를 건조하는 데 박차를 가하고 있는데, 2025년에 이 최신형 항공모함을 진수하게 된다. 그러면 3년 동안 시험항해를 마친 2028년에 해군에 인도될 것이다.

 

미 제국이 존 에프 케네디호를 실전 배치해도, 항모타격단을 9개에서 10개로 증가시키지는 못한다. 왜냐하면, 국가재정 파탄으로 붕괴 위기에 몰린 미 제국이 항모타격단을 1개 더 조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주목되는 것은, 미 제국의 해군력 증강속도가 중국을 따라가지 못하고 한참 뒤졌다는 사실이다. 이를테면, 2023년 현재 중국의 전투함은 356척이고, 미 제국의 전투함은 296척에 불과하다. 2025년에 가면, 중국의 전투함은 400척으로 급증하는데, 미 제국의 전투함은 287척으로 되레 감소한다. 중국의 선박 건조 능력은 미 제국의 233배에 이른다. 이런 격차는 미 제국이 쇠락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라크 침략전쟁 이후 오늘까지 20년 동안 미 제국이 해외 작전 수역에 3개 항모타격단을 급파한 상황은 딱 한 차례밖에 발생하지 않았다. 2017년 11월 11일 미 제국 제5항모타격단, 제9항모타격단, 제11항모타격단은 한국 해군 함대와 일본 해상자위대 함대의 호위를 받으며 동해 작전수역에 출동하더니 ‘동해해상경계선(NLL)’ 남쪽 90km 수역까지 바짝 접근하였다.

 

항공모함 1척은 함재기를 약 80대 싣고 다니므로, 3개 항모타격단이 동해 작전 수역에 출동하였으면 함재기 약 240대가 동해로 출동한 것이다. 함재기 240대가 출격하면, 동해를 까마귀 떼처럼 뒤덮을 수 있다.

 

당시 동해에 출동한 3개 항모타격단에는 ‘경계 명령(WARNO)’이 하달되었는데, ‘경계 명령’을 받은 항모타격단 전투함들은 토마호크 순항미사일을 즉각 발사할 준비를 갖추었고, ‘경계 명령’을 받은 항모타격단 함재기들은 합동직격탄(JDAM)을 장착하고 출격을 대기하였다.

 

미 제국의 3개 항모타격단은 2017년 11월 11일부터 나흘 동안 위와 같은 즉응 타격준비를 갖추고 동해를 휘젓고 다니면서 북침 도발 위협에 미쳐 날뛰었다.

 

미 제국이 동해에 집결시킨 3개 항모타격단의 광란적인 북침 도발 위협을 목격한 조선은 항모타격단을 일거에 격침시킬 결정적인 수중핵전략무기를 가져야 했다. 그 무기가 바로 핵무인수중공격정 ‘해일’이다. 조선의 언론보도에 의하면, 수중핵전략무기 ‘해일’은 “은밀하게 작전 수역에로 잠항하여 수중 폭발로 초강력적인 방사능 해일을 일으켜 적의 함선 집단들과 주요 작전항을 파괴, 소멸”할 수 있다고 한다. 여기서 말하는 ‘적의 함선 집단들’은 미 제국의 항모타격단들을 지칭한다.

조선은 2023년 3월 21일부터 25일까지 톱날 침로, 타원형 침로, 8자형 침로를 자유자재로 잠항하는 핵무인수중공격정 ‘해일’의 운항 시험을 진행하였고, 수중 폭발시험도 성공적으로 완료한 후 곧바로 실전 배치하였다. 수중 소음이 적은 디젤-전동식 잠수함의 은밀한 잠항력, 장거리 순항미사일의 정밀한 타격력, 전술핵무기의 엄청난 파괴력을 하나로 통합해놓은 절묘한 무기가 핵무인수중공격정 ‘해일’이다.

 

핵무인수중공격정 ‘해일’의 가공할 위력 앞에서 주눅이 든 미 제국 제5항모타격단은 하는 수 없이 동해 작전 수역을 포기하고, 동해에서 남쪽으로 멀리 떨어진 동중국해까지만 북상한다.

 

 

3. 항모타격단 격파 전술이 완성되었다

 

 

미 제국은 항모타격단이 없으면 전쟁을 하지 못한다. 항모타격단은 미 제국이 무력침공을 감행할 때 결정적인 작전 임무를 수행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근 80년 동안 미 제국은 항모타격단을 앞세우고 약소국들을 침공하여 잔악한 전쟁범죄를 저질러왔다.

 

항모타격단을 앞세운 미 제국의 무력 침공을 막아내는 것은, 평화와 진보를 염원하는 인류에게 가장 절실하고 중대한 문제로 되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도는 항모타격단 격파 능력을 갖는 것밖에 없다. 항모타격단이 격파당하면, 미 제국은 등뼈가 부러진 야수처럼 일어서지 못하고 맥없이 엉금엉금 기어야 한다.

 

그래서 반미자주 3대 핵열강인 조선, 중국, 로씨야는 항모타격단 격파 전술을 개발하기 위해 오랜 기간 힘써왔다. 그 결과, 오늘 조선, 중국, 로씨야는 미 제국 항모타격단을 일거에 수장시킬 고도의 격파 전술을 보유하였다. 조선, 중국, 로씨야는 제각기 독자적으로 항모타격단 격파 전술을 개발하였기 때문에, 서로 다른 격파 전술을 가지고 있다.

 

그와 달리 미 제국은 항모타격단 격파 전술을 갖지 않았다. 9개 항모타격단을 운용하는 핵제국에 감히 덤벼들 적수가 있겠느냐는 오만한 생각에 빠져있었으므로, 항모타격단 격파 전술을 구태여 개발할 필요를 느끼지 않았던 것이다.

 

반미자주 3대 핵열강인 조선, 중국, 로씨야의 항모타격단 격파 전술은 항모타격단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핵제국을 곤경에 빠뜨렸다. 그렇다고 지금에 와서 미 제국이 낡은 항모타격단 방어 전술을 폐기하고, 조선, 중국, 로씨야의 항모타격단 격파 전술에 맞서는 새로운 항모타격단 방어 전술을 개발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미 제국의 구태의연한 항모타격단 방어 전술은 항모타격단에 배속된 미사일순양함과 미사일구축함에서 요격미사일을 발사해 항모타격단을 향해 날아오는 적의 미사일을 격추하는 것인데, 조선, 중국, 로씨야가 보유한 항모타격단 격파 전술은 항모타격단 반항공망을 뚫고 들어가는 살벌한 첨입력을 발휘한다.

 

미 제국이 지난 냉전 시기에 개발한 또 다른 항모타격단 방어 전술은 항모타격단에 배속된 공격 핵잠수함들이 항모타격단을 향해 돌진하는 적의 어뢰를 수중에서 요격하는 것인데, 조선, 중국, 로씨야가 보유한 항모타격단 격파 전술은 항모타격단 수중 요격망을 뚫고 들어가는 살벌한 첨입력을 발휘한다.

 

미 제국의 구태의연한 항모타격단 방어 전술이 이처럼 쇠퇴하자, 미 제국은 항모타격단을 계속 이동시키면서 항모타격단의 위치가 적에게 탐지되지 않게 하는 회피기동에 의존하는 수밖에 없다.

 

전선에 배치된 미 제국 항모타격단은 회피기동을 계속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적의 정찰위성이 미 제국 항모타격단의 위치를 포착해도, 포착 시각으로부터 30분 정도 지나면, 그 항모타격단을 찾아내기 위해 1,800㎢의 드넓은 바다를 다시 탐색해야 하고, 90분 정도 지나면, 15,500㎢의 광대무변한 바다를 다시 탐색해야 한다.

 

정찰위성은 자기가 탐색한 수역을 다시 탐색하려면 지구를 한 바퀴 돌아와야 하는데, 그렇게 하려면 약 90분 걸린다. 90분 동안에 정찰위성 감시를 피해 어디론가 빠져나간 항모타격단을 계속 추적하기 위해 개발된 것이 전략 무인정찰기다. 그러므로 항모타격단 격파 전술에는 정찰위성과 전략 무인정찰기가 필수적으로 동반된다.

 

조선은 올해 전략 무인정찰기 새별-4형을 실전배치하였고, 정찰위성 만리경-1호도 개발하였다. 조선은 정찰위성 만리경-1호를 며칠 안에 쏘아 올릴 것이다. 정찰위성 만리경-1호의 지구궤도 진입은 조선의 항모타격단 격파 전술이 가장 높은 수준에서 완성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4. 남중국해에서 확대된 전쟁위험

 

 

2023년 11월 현재, 세계적 범위에서 발생한 각이한 군사 대결과 무력 충돌을 살펴보면, 제1전선과 제2전선에서 각각 국지전이 일어났고, 제3전선에서 전면전 위험이 발생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제1전선의 국지전(로씨야-우크라이나전쟁)과 제2전선의 국지전(하마스-이스라엘전쟁)은 직접적으로 연관되지 않지만, 제1전선의 국지전과 제2전선의 국지전은 각각 제3전선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다시 말해서, 제1전선의 국지전과 제2전선의 국지전 중에서 어느 한 국지전이 급속히 확전되어 동유럽이나 중동에서 전면전이 일어나면, 동아시아의 제3전선에 조성된 전쟁위험은 대전(大戰)으로 폭발할 것이다. 최근 남중국해에서 증대되고 있는 전쟁위험을 서술하면 다음과 같다.

 

1) 공중강습훈련

 

2023년 10월 14일부터 31일까지 미 제국 해병대와 일본 육상자위대는 수직이착륙기를 동원해 오끼나와(沖繩)에서 이시가끼지마(石垣島)까지 전투원을 신속히 수송하는 합동군사훈련을 실시했다. 이것은 미일 동맹군이 공중강습훈련을 실시하였다는 것을 말해준다. 미일 동맹군이 대만에서 약 240km 떨어진 일본 열도 최남단의 이시가끼지마에서 공중강습훈련을 실시한 것은 중국을 공격하려는 도발 광기를 부린 것이다.

 

2) 다국적 해상전투훈련

 

2023년 10월 2일부터 13일까지 미 제국 해군은 일본 해상자위대, 영국 해군, 캐나다 해군, 필리핀 해군이 각각 파견한 각종 전투함들을 거느리고 남중국해에서 ‘싸마싸마(Sama Sama)’라는 작전명을 내건 다국적 해상전투훈련을 실시했다. 남중국해에서 벌어진 ‘싸마싸마’ 다국적 해상전투훈련이 중국을 침공하려는 해상전투훈련이라는 것은 명백하다.

 

3) 항모타격단 출동

 

미 제국은 2023년 10월 12일 제1항모타격단을 캘리포니아주 쌘디에고 해군기지에서 남중국해로 급파하였다. 시속 60km로 내달리는 미 제국 항공모함이 전속력으로 24시간 항행하면, 8~9일 만에 태평양을 건널 수 있다. 그러므로 제1항모타격단은 2023년 10월 20일 또는 10월 21일에 대만과 필리핀 사이에 있는 바시해협(Bashi Channel)을 지나 남중국해에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주목할 만한 일이 벌어졌다. 항공모함 산둥호(山東號)를 지휘함, 주력함으로 하여 편성된 중국인민해방군 항모타격단은 2023년 10월 26일 바시해협을 통과하여 대만 동부 해역으로 진입한 것이다. 산둥호 항모타격단은 남중국해에 있는 하이난다오(海南島) 싼야(三亞) 해군기지에서 출항해 남중국해를 가로질러 바쉬해협을 통과했다.

 

싼야 해군기지에서 출항한 산둥호 항모타격단이 남중국해를 항행하고 있었던 2023년 10월 24일 밤, 미 제국이 위험한 불장난을 저질렀다. B-52H 전략폭격기를 남중국해 상공에 들이밀었던 것이다. 이 불장난은 산둥호 항모타격단의 항행을 방해하려는 도발 망동이었다. 산둥호 항모타격단과 B-52H 전략폭격기가 남중국해 한복판에서 조우하는 급박한 정황이 발생하였다.

 

그런 정황 속에서 중국인민해방군은 기민하게 대처했다. B-52H 전략폭격기의 항로를 차단하기 위해 J-11 전투기 2대를 긴급 출격시킨 것이다.

 

원래 B-52H 전략폭격기는 적기의 내습을 우려해 홀로 날아다니지 않고, 언제나 호위기들을 좌우에 거느리고 날아다닌다. 급박한 정황이 발생한 2023년 10월 24일 밤에도 B-52H 전략폭격기는 호위기를 좌우에 2대씩 거느리고 남중국해 상공에 나타났다.

 

남중국해 상공에서 B-52H 전략폭격기의 위치를 탐색하던 중국인민해방군 J-11 전투기들은 호위기 4대를 거느리고 날아가는 B-52H 전략폭격기를 마침내 발견했다. 그 순간, J-11 전투기들은 평소에 연마해온 고도의 공중기동전술로 호위기 4대를 따돌리고, B-52H 전략폭격기 곁으로 재빨리 접근해 약 3m 거리까지 바싹 다가갔다.

 

고속으로 날아가는 전투기와 전략폭격기가 3m까지 바짝 접근하면, 양측 조종사들이 서로 얼굴표정을 식별할 수 있다. 상상을 초월한 이 전투행동은 최후의 순간에 공중충돌전술(aerial ramming tactics)을 결행하여 B-52H 전략폭격기의 항로를 차단하려는 초근접 비행이었다. 공중 충돌을 각오한 중국인민해방군 전투기들의 용맹한 비행술을 보고 식겁한 B-52H 전략폭격기는 기수를 돌려 황망히 꽁무니를 내뺐다.

 

미 제국에서 유명한 연구기관인 랜드연구소(RAND Corporation)가 작성한 보고서에 의하면, 전투기가 전략폭격기를 격추할 무기를 갖지 못한 정황에서 마지막 선택으로 기체에 충돌하여 공중 핵타격을 저지하는 공중충돌전술은 현대전에서 능히 사용될 수 있다고 한다.

 

그 무슨 ‘하늘의 제왕’이라고 떵떵거리던 B-52H 전략폭격기가 중국 전투기의 용맹한 비행술 앞에서 맥을 추지 못하자, 약이 바짝 오른 미 제국은 제5항모타격단을 남중국해로 긴급 출동시키면서 한층 더 심술궂게 놀아댔다. 2023년 10월 26일 산둥호 항모타격단이 바시해협을 지나 대만 동부 해역에 들어간 바로 그날 미 제국 제5항모타격단도 바시해협을 지나 남중국해로 들어갔다.

 

그렇게 되자, 2023년 10월 26일 이후 남중국해의 작전상황은 시시각각 위태롭게 전변되기 시작했다. 산둥호 항모타격단은 대만 동부 해역에서 해상전투훈련을 실시하였고, 미 제국 제1항모타격단과 제5항모타격단은 남중국해에서 산둥호 항모타격단의 해상전투훈련을 방해하기 위한 즉응 전투태세를 갖추었다.

 

B-52H 전략폭격기가 남중국해에서 산둥호 항모타격단의 항행을 방해하려 하고, 제1항모타격단과 제5항모타격단이 남중국해에서 산둥호 항모타격단의 해상전투훈련을 방해하려 한 것은 미 제국군이 중국인민해방군에 무모한 도발 위협을 가한 것이다.

 

 

5. 미 제국의 항모타격단 운용지침

 

 

바로 이 지점에서 주목해야 하는 것은, 무력 충돌 위험이 고조된 제3전선에서 미 제국의 전쟁교리(doctrine of war)가 어떻게 작동되는가 하는 문제이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미 제국의 전쟁교리는 B-52H 전략폭격기 3개 편대와 3개 항모타격단을 전선에 동시에 급파해 무력침공을 도발하는 것인데, 그런 무력 침공의 전투행동조법은 항모타격단 운용지침에 서술되어 있다.

 

미 제국의 항모타격단 운용지침에 의하면, 미 제국이 무력침공을 도발할 때, 가장 먼저 B-52H 전략폭격기 3개 편대가 전선에 접근해 토마호크 순항미사일을 공중에서 발사하는 선제타격으로 적국의 공군 기지들, 미사일 기지들, 반항공망을 속속 파괴하여 항공작전능력부터 먼저 제거한다는 것이다. 또한 무력 침공에 동원된 3개 항모타격단은 적국의 반격 위험을 피하기 위해 B-52H 전략폭격기 편대들이 적국의 항공작전능력을 제거할 때까지 전선에 가까이 접근하지 않고, 해안선으로부터 약 370km 떨어진 해역에서 회피기동을 계속하면서 적에 자기 위치를 노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전쟁교리를 보면, B-52H 전략폭격기와 항모타격단이 동시에 전선에 출동하면 그것이 곧 무력 침공의 결정적인 징후로 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결정적인 징후와 관련하여 두 가지 사례를 비교해볼 필요가 있다.

 

위에서 서술한 것처럼, 2017년 11월 11일 미 제국은 3개 항모타격단을 동해에 출동시켰으나, B-52H 전략폭격기는 한반도 상공에 출동시키지 않았다. 만일 미 제국이 3개 항모타격단과 B-52H 전략폭격기를 동시에 한반도에 출동시켰다면, 북침 전쟁을 도발하였을 것이다.

 

그와 대비해보면, 2023년 10월 24일 야음을 틈타 동중국해 상공에 나타난 B-52H 전략폭격기가 산둥호 항모타격단의 항행을 방해하려 하고, 남중국해에 들어간 제1항모타격단과 제5항모타격단이 산둥호 항모타격단의 해상전투훈련을 방해하기 위해 즉응 전투태세를 갖춘 것은 2017년 11월 11일 한반도에 조성되었던 북침전쟁 도발위험보다 훨씬 더 엄중한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6. 연속적으로 발생하는 위험한 사건들

 

 

세계 각지에서 크고 작은 군사 대결을 날마다 격화시키면서 무력 침공을 도발해보려고 미쳐 날뛰는 미 제국은 남중국해에서만 도발 망동을 자행하는 게 아니라, 동중국해와 한반도 근해에서도 도발 망동을 계속 자행하고 있다. 이것은 미 제국의 도발 망동이 한반도에서 남중국해까지 동아시아 전역으로 확장되었음을 보여준다. 미 제국이 말하는 ‘확장억제’는 확장된 도발 망동을 뜻한다.

 

미 제국의 확장된 도발 망동은 동아시아에 형성된 제3전선을 끝없는 전쟁위험에 몰아넣고 있다. 최근에 연속적으로 발생한 다음과 같은 사건들을 주시할 필요가 있다.

 

1) 미 제국은 2023년 10월 6일부터 22일까지 ‘싸일런트 샤크(Silent Shark)’라는 작전명을 내걸고 괌 근해에서 한미연합군 대잠수함훈련을 실시하였다. 원래 대잠수함훈련은 아무 바다에서나 실시하는 게 아니라, 해저 지형을 파악한 바다에서만 실시한다. 그러므로 한미연합군이 괌 근해에서 대잠수함훈련을 실시한 것은, 전시에 괌으로 접근하는 중국인민해방군 잠수함들을 저지하기 위한 실전연습이었다. 한국군을 중미전쟁에 끌어들이려는 미 제국의 흉계가 여기서도 엿보인다.

 

2) 미 제국은 2023년 10월 9일부터 10일까지 항공모함 로널드 레이건호를 지휘함, 주력함으로 하여 편성된 제5항모타격단을 동중국해 북부 해역에 출동시켜 일본 해상자위대 구축함과 한국 해군 구축함 및 군수보급함을 거느리고 3자 합동 해상전투훈련을 실시하였다. 제5항모타격단은 3자 합동 해상전투훈련을 마치고, 10월 12일 부산작전기지에 입항하였다. 제5항모타격단은 2023년 10월 16일 부산작전기지를 출항해 남중국해로 떠났다.

 

3) 미 제국은 2023년 10월 17일 B-52H 전략폭격기 1대를 한반도 중부 상공에 진입시켜 위협 비행을 감행하고, 청주공군기지에 착륙시켰다. 청주 공군 기지에 착륙한 B-52H 전략폭격기는 2023년 10월 22일 한국 공군 전투기, 미 제국 공군 전투기, 일본 항공자위대 전투기들을 호위기로 거느리고 동중국해 북부 해역 상공으로 날아가 3자 합동 공중전투훈련을 실시하였다.

 

4) 미 제국은 2023년 10월 19일부터 27일까지 자국 해군, 한국 해군, 캐나다 해군, 필리핀 해군, 뉴질랜드 해군, 벨지끄(Belgique) 해군을 끌어들인 다국적 기뢰전훈련을 동중국해 북부 해역에서 실시하였다.

 

5) 미 제국은 2023년 10월 24일부터 28일까지 한미연합군 해군력과 공군력을 동원해 충청남도 태안반도 서쪽 해역에서 대규모 연합전투훈련을 실시하였다.

 

6) 미 제국은 2023년 10월 30일부터 11월 3일까지 한미연합군 공군력을 동원해 ‘비질런트 디펜스 24(Vigilant Defence 24)’라는 작전명을 내걸고 한반도 동서공역을 오가는 대규모 연합전투훈련을 실시하였다.

 

위에 열거한 연속적인 사건들은 미 제국이 한국과 일본을 거느리고 조선과 중국을 노리는 무력 침공 준비에 얼마나 미쳐 날뛰는지를 직관적으로 보여준다. 미 제국은 한반도, 동중국해, 오끼나와, 대만, 남중국해, 필리핀해를 연결하는 동아시아 제3전선 곳곳에서 하루에도 몇 차례씩 무력 침공의 북소리를 울리고 있다.

 

제1전선과 제2전선에서 치솟은 국지전 화염이 증폭되어 전면전이 일어나는 날, 제3전선에서 대전이 일어나는 것은 아무도 피할 수 없다. 미 제국이 이처럼 세계적 범위에서 엄중한 전쟁위험을 조성하고 도발 망동을 자행하는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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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장 아닌 노조 뒤지는 근로감독관, 국가와 자본의 '시다바리'인가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23/11/05 06:58
  • 수정일
    2023/11/05 06:59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윤효원의 '노동과 세계'] 노조 통제하려는 한국의 '근로감독', ILO협약 위반

.윤효원 아시아노사관계 컨설턴트  |  기사입력 2023.11.05. 05:22:47

 

우리나라에서는 '근로감독'이라 불리지만, 국제연합(UN) 산하 노동 전문기구인 국제노동기구(ILO)의 원래 용어는 '노동감독'(labour inspection)이다. 사실 감독이란 말도 정확한 번역은 아니다. 일본 번역을 따라 하다 보니 우리나라도 감독이라 쓰지만, Inspection의 원래 뜻은 감독보다는 감찰이나 사열에 가깝다.

 

일본에는 근로감독이라는 말을 쓰지 않고, '노동기준감독'이라는 말을 쓴다. 공장과 사무실, 즉 사업장에서 노동기준이 제대로 지켜지는지를 감독한다는 뜻으로 '근로감독' 제도의 원래 취지를 잘 살린 표현이다. 그래서 일본에서는 근로감독관이라 하지 않고, 노동기준감독관이라 한다. 참고로 일본에서 근로라는 표현은 2차 대전의 패망과 더불어 종적을 감췄다. 노동자에 대한 '파쇼 통치'의 이데올로기적 구호가 근로였기 때문이다.

 

요즘 우리나라에서 '새끼 변호사'처럼 취급되는 공인노무사가 전문직이 되려는 대학생들의 선호 직업이 되고 있는데, 일본에서는 비슷한 열망을 가진 젊은이들이 국가 시험을 통해 국가공무원이 노동기준감독관이 된다.

 

노동력 통제수단으로 도입된 한국의 '근로감독' 

 

우리나라에서 '근로감독' 제도가 본격화된 것은 1960년대 박정희 정권 때다. 급속한 산업화로 인해 공장에서 터져 나오던 노동문제를 관리하려 도입된 '근로감독' 제도는 노동기준의 감찰과 사열을 통해 노동자를 보호하려고 도입된 것이 아니었다. 우리나라에서 '근로감독' 제도는 노동자의 '근로'(work)를 감시하고 노동조합 활동을 억제하는 역할을 떠맡으면서 국가권력이 사용자의 노무관리를 대행해주는 통제수단으로 기능해왔다. 

 

1980년대 후반 미국과 소련의 공동 노력으로 냉전체제가 해체되자 노태우 정권은 '북방정책'을 천명하고 1990년 9월 30일 소련과 국교를 수립했다. 그리고 1991년 8월 8일 국제연합 안전보장이사회는 남북한의 유엔 동시가입을 결의했고, 동년 9월 17일 국제연합 총회는 이를 승인했다. 이러한 지정학적 정세 하에서 대한민국은 1991년 12월 9일 ILO에 정식으로 가입하게 되었다. 안타깝게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ILO에 가입하지 않았다. 

 

ILO 가입 이후 노태우 정권은 임기 말인 1992년 12월 9일 ILO 협약 두 개를 비준했다. 1964년 채택된 '고용정책' 협약 122호와 1947년 채택된 '근로감독'(labour inspection) 협약 81호가 그것이다. 두 협약의 비준은 국회 동의 없이 국무회의 결의를 통해 이뤄졌다. 두 협약의 입법적 요구를 대한민국의 법제도가 이미 충족하고 있다는 정치적 판단 때문이었다. 

 

하지만, 진짜로 ''근로감독'과 관련된 국내의 법제도가 ILO 협약 81호를 충족시키고 있을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아니올시다'가 될 수밖에 없다. 

 

 

 

일본은 '노동기준감독', 한국은 '근로감독'

다시 일본의 노동기준감독관 제도로 돌아가보자. 이름 그대로 일본의 노동기준감독관은 노동기준을 감독한다. 우리나라의 근로감독관과 비교할 때 가장 큰 차이점은 일본의 노동기준감독관은 개별 노동자들의 노동기준 문제를 주로 다루지, 노사관계나 노동조합 문제 같은 집단적 노동관계를 다루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일본의 노동기준감독관은 노동기준법(우리나라의 근로기준법)과 노동안전위생법(우리나라의 산업안전보건법)이 일터에서 제대로 지켜지는지 여부를 감찰하고 사열한다. 사업장 안팎에서 개별 노동자의 근로조건과 근로환경이 법률적 조건을 충족시키는지를 감찰하는 것이다. 

 

이에 반해, 우리나라의 근로감독관은 노동기준과 산업안전이라는 본래의 업무는 뒤로 미룬 채 노동조합법, 노사관계법, 공무원노조법, 교원노조법, 근로자참여촉진법(노사협의회) 등 집단적 노동관계 사안에 광범위하게 개입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집단적 노동관계 법률은 노동조합의 활동을 보장하고 지원하기 위한 조항보다는 노동조합의 활동을 억압하고 규제하려는 조항들로 가득하다. 그 결과, 우리나라의 근로감독관은 노동기준의 확보를 통한 노동자 보호라는 '노동감독제도'(labour inspection system) 본연의 취지를 내팽개친 채 노동자단체인 노동조합을 지배하고 통제하려는 국가와 자본의 '시다바리(下張り)'로 기능하고 있다. 

 

이는 ILO '근로감독' 협약 81호를 정면으로 위반하는 것이다. 문제는 ILO '근로감독' 협약 81호 어디를 읽어봐도 재정이나 전임자 같은 노동조합 활동이나 집단적인 노동관계(노사관계) 문제에 대해 감독관의 개입을 허용하는 조항은 없다는 점이다. 

 

협약 81호 3조는 "근로조건과 노동자의 보호와 관련된 법률 조항의 집행을 보장하는 것"이라고 '근로감독'의 기능을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감독관이 챙겨야 할 근로조건(conditions of work)으로 "시간, 임금, 안전, 보건, 복지, 아동고용, 청소년 고용" 등을 명시하고 있다(3조). 일본의 노동기준감독관이 맡은 임무 바로 그것이다.

 

지금 윤석열 정권의 고용노동부가 '노동조합 회계공시'와 '근로시간면제제도'(노조전임자 억제제도)를 활용해 노동조합운동을 억압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자본과 강자와 부자를 위한 대한민국을 만들려는 윤석열 정권의 속성상 자신의 최대 걸림돌로 노동조합운동을 찍고 이를 탄압하는 것은 어찌 보면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안타까운 점은 노동조합운동 탄압을 위한 정권의 돌격대로 노동조합 밖의 미조직 노동자를 챙기는 임무를 맡고 있는 근로감독관을 동원하는 현실이다. 

 

문재인 정권의 실책과 한계 

 

문재인 정권 때 1000명을 추가로 채용하여 지금 근로감독관의 수는 3000명에 육박한다. 문재인 정권은 공장과 사무실에서 노동기준을 확보하고 노동자를 보호하라는 취지로 증원했겠지만, 현실에서 늘어난 근로감독관들은 일터에 가지 않고 노조 사무실에 와서 노조 장부나 뒤지고 있다. 문재인 정권 때 이뤄진 여러 정책들이 그랬듯이, 근로감독관의 수를 늘리는데 급급했지 그들의 질, 즉 기능과 역할을 정비하고 향상하는 데는 별다른 관심을 기울이지 못했던 것이다.

 

ILO는 노동자 1만 명당 감독관 1명을 권고한다. 우리나라 노동자 수는 약 2500만 명으로, 근로감독관 3000명은 ILO 기준을 훨씬 상회한다. 그리고 이 수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서 최고 수준에 속한다. 일본의 경우 노동자 수는 우리보다 2배나 많은 6000만 명인데 감독관 수는 우리와 같은 3000명이다. 

 

'근로감독'의 질이 일본보다 떨어지는 이유 

 

노동자 수에 대비한 감독관 수가 일본보다 2배 이상 많음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의 공장과 사무실에서는 '근로감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일본의 16~17배에 달하는 체불임금건수 문제가 좋은 예다. 가야할 공장에는 가지 않고, 가지 말아야할 노조 사무실에 가는 근로감독관의 현실에서 보자면 대한민국 '근로감독'의 질이 떨어지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노동조합 회계에 부정부패가 있다면, 검찰과 경찰이 판사한테서 영장을 발부 받아 노조 사무실을 뒤지면 된다. 그런데 부정부패에 관련된 혐의나 증거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노조의 내부규약으로 풀어야 할 사안인 노동조합 회계공시에 대해 국가권력자의 입장을 강제하려 근로감독관이 노조 사무실을 찾아와 압박하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노사가 자율적 교섭을 통해 임의로(voluntarily) 정할 노조전임자 문제에 국가권력이 개입하고, 이 문제를 뒤지겠다고 '근로감독' 제도를 동원하는 행위는 '결사의 자유와 단체교섭권'을 보장한 ILO 협약 87호와 98호에 대한 위반이자, '근로감독'의 기능과 목적을 규정한 협약 81호에 대한 위반이다. 

 

'규칙에 기반한 국제질서' 훼손하는 윤석열 정권 

 

윤석열 대통령이 좋아하는 말 가운데 '규칙에 기반한 국제질서'(a rule-based international order)가 있다. 가장 대표적인 국제질서의 규칙이 ILO 협약이다. 그리고 ILO 협약 81호, 87호, 98호는 대한민국 정부가 이미 비준을 마쳐서 국내법적 효력이 발생한 지 오래다. 

 

 

택시노련 기획교선 간사,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사무국장, 민주노동당 국제담당, 천영세 의원 보좌관으로 일했다. 근로기준법을 일터에 실현하고 노동자가 기업 경영과 정치에 공평하게 참여하는 사회를 만들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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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정부에 경고' 교대생들, "또 기다릴 수 없다" 총선공약 요구

[현장] 교대련 등 '예비교사 행동의 날' 집회... 5대 요구안 발표하며 각 정당에 정책 협약 제안

23.11.04 16:12l최종 업데이트 23.11.04 16:12l
4일 오후 1시 서울 중구 서울시청 인근에서 열린 '11.04 예비교사 행동의 날' 집회 후 참석자들이 서울시청~을지로입구역~보신각~광화문역 일대를 행진하고 있다.
▲  4일 오후 1시 서울 중구 서울시청 인근에서 열린 '11.04 예비교사 행동의 날' 집회 후 참석자들이 서울시청~을지로입구역~보신각~광화문역 일대를 행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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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못 바꾸면 또 4년을 기다려야 합니다."
 
전국에서 모인 교육대학 학생들이 내년 총선을 앞두고 '예비교사 5대 요구안'을 발표하며 모든 정당에 정책 협약식을 제안했다.
 
전국교육대학생연합(교대련)을 비롯한 400여 명 학생들은 4일 오후 1시 서울 중구 서울시청 인근에서 '11.04 예비교사 행동의 날' 집회를 열고 ▲ 민원 처리 방식, 과중 업무 개선으로 교사들을 폭언·폭력에서 보호 ▲ 교사의 안전하게 일할 권리 보장 ▲ 교사 정원 확대 ▲ 교육대학 구조조정 방지법 제정 ▲ 등록금 인상 시도 중단 및 대학 지원 OECD 평균으로 확대 등 5대 요구안을 내놨다.
 
4일 오후 1시 서울 중구 서울시청 인근에서 열린 '11.04 예비교사 행동의 날' 집회.
▲  4일 오후 1시 서울 중구 서울시청 인근에서 열린 '11.04 예비교사 행동의 날' 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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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집회 사회를 맡은 성예림 교대련 의장(서울교대 총학생회장)은 "올해 교대련은 총 두 차례의 설문조사와 스무 차례의 기자회견을 통해 5대 요구안을 마련했고 교사와 시민 총 3500명이 서명에 동참했다"라며 "오늘 이 자리에서 5대 요구안을 힘차게 외쳐 22대 국회에서 변화를 만들어내자"라고 말했다.
 
이어 "윤석열 정부는 3대 개혁 중 하나로 교육을 꼽았지만 교육 개혁에 정작 전문가인 교육계 목소리는 빠졌다. 올해 초 (윤석열 대통령이) '교육부는 경제부처'라고 말한 후 (정부는) 1월엔 교육전문대학원을, 4월엔 교사를 대폭 줄이는 중장기 교원수급계획을, 5월엔 대학이 구조조정을 택할 수밖에 없는 '글로컬대학30' 추진을 발표했다"라며 "모든 발표에 혁신, 개혁이란 말이 붙었지만 (이 정책들은) 무엇을 위한 혁신이고 누구를 위한 개혁인가"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교사의 안전하게 일할 권리가 보장받지 못하는 동안 지난 7월부터 죽음의 행렬이 이어졌다. 서이초 사건 이후 재발 방지 대책에 대한 교사 의견조사 결과, 필요한 과제 1위로 학급당 학생 수 감축과 수업시간·초과근무 감축이 꼽혔다"라며 "교사가 교단을 떠나고 예비교사는 교직을 포기하는 위기를 해결해야 한다. 교육대학이 안정적으로 운영되도록 교육대학 구조조정 방지법과 대학 재정 지원예산 확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성예림 전국교육대학생연합 의장(서울교대 총학생회장)이 4일 오후 1시 서울 중구 서울시청 인근에서 열린 '11.04 예비교사 행동의 날' 집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  성예림 전국교육대학생연합 의장(서울교대 총학생회장)이 4일 오후 1시 서울 중구 서울시청 인근에서 열린 '11.04 예비교사 행동의 날' 집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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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회 후 행진도... "안전하게 일할 권리"
 
이들을 대표해 선포문을 낭독한 김나영 서울교대 총학생회장 당선인, 임민경 춘천교대 총학생회장 당선인, 최재우 진주교대 부총학생회장은 "예비교사들의 목소리가 반영되도록 우리는 22대 총선을 준비하는 모든 정당에 정책 협약식을 제안하고 행동을 이어갈 것"이라며 "정부가 제대로 하지 않아 예비교사들은 다시 한 번 거리에 나섰다. (내년 총선 이후) 앞으로 4년 간 교육정책은 이전과 달라야 한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발언에 나선 윤세진 경인교대 총학생회장도 "(그 동안) 정부는 예비교사의 목소리를 듣지 않고 교육이 아닌 경제 논리로 예산감축 정책을 추진해왔다"라며 "우리는 누구보다 당당하게 돈이 아닌 교육으로, 효율이 아닌 교육으로 응답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4일 오후 1시 서울 중구 서울시청 인근에서 열린 '11.04 예비교사 행동의 날' 집회에서 참석자들이 대형 모니터에 나오고 있는 윤석열 대통령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
▲  4일 오후 1시 서울 중구 서울시청 인근에서 열린 '11.04 예비교사 행동의 날' 집회에서 참석자들이 대형 모니터에 나오고 있는 윤석열 대통령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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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집회에는 현직 교사 100여 명도 참석해 힘을 보탰다. 장은정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초등위원장은 무대에 올라 "늘어난 수업시간과 업무량으로 교사들은 그야말로 지독하게 버티며 견디고 있다. 줄어드는 교원정원 문제는 예비교사의 생존권 문제"라며 "예비교사의 투쟁에 함께 하기 위해 전국에서 자발적으로 현장교사들이 이 자리에 함께 하고 있다. 개인을 넘어 교사공동체로, 생존권과 공교육을 지키는 동지로 다시 만나겠다"라고 말했다.
 
집회를 마친 이들은 서울시청~을지로입구역~보신각~광화문역 인근을 약 1시간 동안 행진했다. 행진 중 이들은 "교사들을 보호하라", "안전하게 일할 권리 보장하라", "교사정원 확대하라", "교육대학 구조조정 방지법 제정하라", "대학 재정 지원예산 확대하라" 등의 구호를 외쳤다.
 
이날 집회 및 행진에는 경인교대·공주교대·광주교대·부산교대·서울교대·전주교대·제주교대·진주교대·춘천교대·한국교원대(이상 교대련 소속)·대구교대·청주교대 총학생회와 전북대 사범대 학생회,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초등교사노동조합,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등이 참여했다.
 
4일 오후 1시 서울 중구 서울시청 인근에서 열린 '11.04 예비교사 행동의 날' 집회.
▲  4일 오후 1시 서울 중구 서울시청 인근에서 열린 '11.04 예비교사 행동의 날' 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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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영 서울교대 총학생회장 당선인, 임민경 춘천교대 총학생회장 당선인, 최재우 진주교대 부총학생회장(오른쪽부터)이 4일 오후 1시 서울 중구 서울시청 인근에서 열린 '11.04 예비교사 행동의 날' 집회에서 선포문을 낭독하고 있다.
▲  김나영 서울교대 총학생회장 당선인, 임민경 춘천교대 총학생회장 당선인, 최재우 진주교대 부총학생회장(오른쪽부터)이 4일 오후 1시 서울 중구 서울시청 인근에서 열린 '11.04 예비교사 행동의 날' 집회에서 선포문을 낭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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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오후 1시 서울 중구 서울시청 인근에서 열린 '11.04 예비교사 행동의 날' 집회 후 참석자들이 서울시청~을지로입구역~보신각~광화문역 일대를 행진하고 있다.
▲  4일 오후 1시 서울 중구 서울시청 인근에서 열린 '11.04 예비교사 행동의 날' 집회 후 참석자들이 서울시청~을지로입구역~보신각~광화문역 일대를 행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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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오후 1시 서울 중구 서울시청 인근에서 열린 '11.04 예비교사 행동의 날' 집회 후 참석자들이 서울시청~을지로입구역~보신각~광화문역 일대를 행진하고 있다.
▲  4일 오후 1시 서울 중구 서울시청 인근에서 열린 '11.04 예비교사 행동의 날' 집회 후 참석자들이 서울시청~을지로입구역~보신각~광화문역 일대를 행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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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가자지구 병원 구급차 공습...교전 일시 중단 거부

팔레스타인 여성이 가자지구 북부 베이트 하눈에서 이스라엘의 공격에 파괴된 집의 잔해 속에서 소지품을 들고 나오고 있는 모습. 자료사진. ⓒ뉴시스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인 하마스가 통치하는 가자지구 보건부는 3일(현지시각) 가자지구 병원 앞에서 구급차가 공습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이스라엘군은 미국의 교전 일시 중단 제안을 거부하며 이날도 하마스를 상대로 공세를 계속하고 있다.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가자지구 보건부는 최대 의료기관인 알시파 병원 입구에서 구급차 행렬이 공습을 받아 15명이 숨지고 60여명이 다쳤다고 밝혔다.

팔레스타인 적신월사(PRCS)는 소속 구급차 한 대가 알시파 병원 입구 2m 앞에서, 보건부 소속 구급차는 약 1㎞ 떨어진 곳에서 미사일 공격을 받았다고 주장하면서, “제네바 협약을 중대하게 위반한 전쟁 범죄”라고 비판했다.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이 엑스(X)에 남긴 글. ⓒX 캡쳐

이 소식을 접한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은 이날 자신의 엑스(X) 계정을 통해 “가자지구 병원 근처에서 환자를 대피시키던 구급차가 공습을 받아 사망자와 부상자가 발생했다”며 “완전히 충격받았다”고 말했다.

 

이어 “환자와 의료진, 의료시설, 구급차는 언제나 보호받아야 한다는 점을 거듭 강조한다”며 “지금 당장 휴전하라”고 촉구했다.

이에 대해 이스라엘군은 폭격을 인정하면서도, 하마스 조직원들이 사용하던 구급차를 식별하고 공격한 것이지 민간인을 향한 공격이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한편 미국은 인도적 목적의 일시 교전 중단을 제안했지만, 이스라엘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은 이스라엘을 방문해 “인질들이 풀려날 수 있도록 더 나은 환경을 만들겠다”며 이스라엘을 설득했다고 기자회견을 통해 밝혔다. 하지만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우리 인질들의 귀환을 포함하지 않는 ‘일시적인 휴전’을 거부한다”고 맞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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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사”후방기지, 요시다-애치슨교환공문의 불법성

[기고] 일본과 “유엔사” 2 / 이시우

  • 기자명 이시우 
  •  
  •  입력 2023.11.04 03:09
  •  
  •  수정 2023.11.04 03:26
  •  
  •  댓글 0
 

이시우 / 사진가

 

목 차

1. 배경
1) 평화조약과 교환공문의 관계
2) 안보조약과 교환공문의 관계

2. 요시다-애치슨 교환공문 비판
1) 유엔헌장상 의무의 부존재      7)사후입법
2) 무력침략의 부존재                   8) 미래
3) 유엔조치의 부존재                   9) 극동
4) 유엔통합사령부의 부존재       10) 주변
5) 총회결의의 헌장위반               11) 비용
6) 승인                                          12) 초과

3. 요시다-애치슨 교환공문에 관한 교환공문 비판

4. 결론

5. 자료 「요시다-애치슨교환공문」 번역문

 

1. 배경

시게루 요시다 일본 총리가 1951년 9월 8일 샌프란시스코 전쟁기념 공연예술 센터에서 샌프란치스코 조약에 서명하고 있다. [사진 출처 - 위키피디아]
요시다 시게루 일본 총리가 1951년 9월 8일 샌프란시스코 전쟁기념 공연예술 센터에서 샌프란치스코 조약에 서명하고 있다. [사진 출처 - 위키피디아]

1951년 9월 8일 샌프란시스코에서는 일본평화조약과 그에 따른 요시다-애치슨교환공문(이하 교환공문)과 미일안보조약이 체결되었다. 이로서 일본점령이 종료되고 54년 체제가 시작되었다. 요시다-애치슨교환공문은 한국에서 전쟁 중인 “유엔군”에 시설과 용역을 제공하기로 함으로서 이미 존재하던 “유엔사”후방기지의 법적근거를 제공하였다. “유엔사”후방기지의 법적근거인 요시다-애치슨교환공문을 분석하기에 앞서 평화조약과 안보조약이 추진된 배경과 교환공문과의 관계를 살펴보자.

일본점령정책의 변화필요성을 느끼며 미국무부, 미국방부, 일본점령사령관 맥아더 간에는 각각의 구상을 발전시키기 시작했다. 미국방부는 일본에 미군을 주둔시키는 것을 절대조건으로 하고 일본의 자위능력부여와 친서방화가 달성될 때까지 강화연기를 주장하며 일본의 기지를 가능한 한 장기간 자유롭게 이용하고자 하였다.

국무부는 강화연기에 반대하였다. 국무부의 케넌은 소련에 대한 불신을 전제로 일본의 안보는 우선 미일안보조약에 의해 보장하고 조속한 강화 후 일본 스스로 안보를 유지하도록 하고자 했다.(주1)

맥아더는 국무부의 조기강화는 지지하지만 가능하면 소련을 포함한 전면강화와 일본의 비무장중립화를 목표로 하였다.

국무부, 국방부, 맥아더 간에는 첨예한 의견대립을 보였고 때문에 한국전쟁 이전까지는 일본강화에 대한 논쟁이 유보될 수밖에 없었다.(주2)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자 미국은 일본의 가치를 재평가하게 된다. 후방기지로서의 일본이 없었더라면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유엔사”의 전쟁수행은 불가능함이 드러났고, 일본의 군사전략적 가치는 구체적으로 실증되기에 이르렀다. 덜레스(John F. Dulles)는 한국전쟁의 발발이 일본을 재군비할 기회라고 봤고 이 기회를 이용하여 신속하게 강화교섭을 진행시켜야 한다고 국무장관 애치슨(George Acheson)에게 권고하였다. 애치슨은 이 권고를 받아들였다. 그리고 국방부를 설득했다. 미국이 필요한 만큼의 군대를 바라는 곳이 어디건, 원하는 시간만큼 유지하는 권리를 부여하는 미일안보조약을 맺자는 제안으로 국방부와의 조율을 마쳤다.

요시다수상의 구상은 미국측의 요구에 부응하여 군비를 추진해가면서 무군비나 완만한 재군비노선을 채택하면서 헌법은 개정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주3)

미국 측은 일본이 구상한 핵심부분인 미군주둔의 범위를 유엔의 범위 내에서 설정한다는 내용에 반발하여 일본안의 수정을 요구한다.(주4)

요시다수상은 결국 유엔을 통한 안전보장안을 포기하고 미국을 통한 안전보장만이 일본의 안보를 확보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로서 유엔을 통한 안전보장에서 의도했던 미국과의 대등한 관계도 포기가 불가피했고 그에 따른 불평등관계를 감당하기로 했다.

대일강화조약교섭 당시, 냉전과 한국전쟁이라는 국제정세가 주는 압박감 속에서 일본은 ‘조기강화’를, 미국은 ‘미군의 일본주둔’을 최우선 목표로 설정하고 있었다. 그러나 미국의 입장에서 ‘미군의 일본주둔’이라는 목표와 함께 군사전략적 관점에서 ‘일본의 재군비’도 포기할 수 없는 문제였다. 결론적으로 일본은 급진적이든 점진적이든 재군비에 동의하는 형식을 취하며 대일강화조약과 미일안보조약을 체결하였다.(주5)

일본은 유엔헌장107조가 규정한 헌장 서명국의 적이었다. 평화조약은 유엔회원국의 적에서 유엔회원국이 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것이었다. 그러나 소련과 중국 등이 제외된 평화조약이기에 이들 국가에 있어서 일본은 여전히, 지금까지도 유엔회원국의 적이다. 따라서 미국을 중심으로 한 국가들과 평화조약을 체결한다는 것은 적국지위가 유지되고 있는 안보리상임이사국의 2/5인 소련, 중국으로부터의 안전을 보장받아야하는 결론으로 귀결되고 이를 위한 대안이 미국과의 안보동맹이었다.

대일평화조약은 유엔헌장에 스며있는 4개의 국제체계(주6) 중 세 개의 국제체계를 반영하였다. 첫째는 주권체계이고, 둘째는 집단안보체계로서의 유엔체계이고, 셋째는 미국일극패권체계로서의 집단적 자위권‧동맹체계이다. 이를 위해 평화조약이 인용한 헌장조항은 2조5항과 51조이다. 헌장2조의 대표조항은 무력행사금지, 내정불간섭조항 등이지만 2조5항은 회원국의 의무조항이다. 회원국의 의무는 헌장2조2항에 의해 권리를 보장받기 위한 것이지만 당시 일본은 회원국이 아니었기에 법적지위와 권리가 없었으므로 의무조항만을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당시 유엔에 대한 의무의 강조는 사실상 유엔을 주도하던 미국의 국익을 반영한 것이었다.

그러나 노골적인 미국패권체계로의 편입은 헌장51조, 그 중에서도 집단적 자위권의 강조에 의해 표현된다. 이 조항 자체가 1945년 유엔헌장제정회의 당시 대다수 참여국들의 반대를 받아가며 미국이 억지로 관철시킨 것이었다. 유엔조치이전에 안보리상임이사국과 그의 동맹국들이 자위권을 행사하는 것이 인정되면, 그들은 자위권행사를 방해받지 않기 위해 유엔조치를 지연시킬 수 있고 그럼 유엔체계는 가동되지 않을 것이 명약관화했다. 그리고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동맹을 가진 미국에게 51조는 특권을 부여해주는 유엔헌장의 예외조항이나 마찬가지였다.

이제 대일평화조약에서 미국은 집단안보체계와 일극패권체계를 통합하는 외교기술을 보여주게 된 것이다. 2조5항의 집단안보체계에 관한 부분은 일본정부가 “유엔사”를 원조하도록 하는 요시다-애치슨교환공문으로 구체화되었고, 51조 집단적 자위체계에 관한 부분은 일미안보조약으로 구체화 되었다.

1) 평화조약과 교환공문의 관계

평화조약 전문은 ‘일본은 유엔가입을 신청하고 모든 상황에서 유엔헌장의 원칙을 준수하겠다는 의사’를 선언하였다.’ 주권회복 다음 순서로 강조된 문장이 바로 유엔가입이다.

미국은 자국의 외교적 발명품인 집단안보체계에 일본을 구속시키고자 했다. 그러나 평화조약이 발효되기 전까지 주권은 미회복된 것이며 주권회복 후에야 유엔가입신청이 가능하므로 당시 일본은 유엔회원국으로서의 법적지위가 부존재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화조약5조(a)항(주7)은 ‘일본은 유엔헌장 제2조에 명시된 의무를 수락’하며 ‘유엔이 취하는 모든 조치에 대해 유엔에 모든 지원을 제공’한다고 했다.

그러나 헌장2조5항의 주어는 ‘회원국’이다. 비회원국은 권리가 없기에 의무도 지울 수 없다. 그런데 평화조약은 헌장2조5항의 주어 ‘회원국’의 자리에 비회원국인 ‘일본’을 바꿔치기 해 넣은 것이다. 비회원국이 목적어인 헌장2조6항의 주어는 ‘유엔기구’이다. 즉 비회원국이 유엔의 원칙을 따르도록 노력하는 것은 유엔기구이다. 비회원국인 일본은 유엔기구가 행할 노력의 대상일 뿐이다.

조약법에 대한 비엔나협약 제35조에 의하면 ‘조약의 당사국이, 조약규정을 제3국에 대하여 의무를 설정하는 수단으로 의도하며 또한 그 제3국이 서면으로 그 의무를 명시적으로 수락하는 경우에는, 그 조약의 규정으로부터 그 제3국에 대하여 의무가’ 발생한다. 그러나 유엔헌장은 제3국인 비회원국에 대해 의무를 설정하는 수단으로 의도하지 않았다.

유엔헌장의 원칙을 준수하는 것과 헌장상의 의무를 부담하는 것은 다른 것이다. 원칙의 준수는 권리의무관계를 창설하지 않지만 헌장상의 의무를 부담하는 것은 회원국으로서의 법적지위 즉 권리가 전제되어야 한다.

따라서 1950년 7월 15일, 요시다 총리는 유엔에 대한 협력은 어떤 것이냐는 질문에 대해서 유엔의 목적이 달성될 수 있도록 ‘정신적으로 협력’하는 것이라고 한 답변(주8)이 비회원국인 일본입장에선 최선이었다.

당시 유엔회원국이 아닌 일본이 유엔의무를 자발적 수락했다고 해서 회원국으로서의 권리가 생긴다고 할 수 없다. 평화조약 5조a항에서 말한 의무는 권리없는 의무이고, 권리없는 의무란, 의무가 아니라 자선, 짝사랑, 동정, 맹목적 헌신, 혹은 굴종이다.

권리 없는 의무만의 세계가 가져오는 폐해를 파인버그는 ‘청구 없는 세계’인 Nowheresville라는 가상세계의 실험을 통하여 지적한다. 그리하여 권리가 없는 의무만의 세계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확인한다.

“아무리 자비롭고 의무에 충실한 세계라 할지라도, 청구-권리가 없다면 그 세계는 극심한 도덕적 빈곤을 겪게 될 것이다. 그런 세계에서 사람들은 미덕을 토대로 해서 적절한 대우를 바랄 수 없게 될 것이다”(주9)

파인버그에 의하면 이러한 권리에 대한 사유는 주권적 권리의 독점(a sovereign monopoly of rights)을 통하여 표현된다고 한다. 법실증주의적 법적 청구(권리)는 법적 의무에 다름 아니다. 법적 권리와 법적 의무는 다른 관점에서 본 동일현상이다. 법적 권리라고 말하는 것은 잠재적 희생자의 관점에서 형벌을 묘사한 것이고, 법적 의무라고 말하는 것은 잠재적인 행위자의 관점에서 형벌을 묘사한 것이다.(주10)

비회원국에 의한 유엔조치는 헌장에 의해서도 문제가 된다.

헌장48조1항은 ‘안전보장이사회의 결정을 이행하는데 필요한 조치는 안전보장이사회가 정하는 바에 따라 유엔회원국’에 의하여 취하여진다.

헌장53조1항에 의하면 ‘안전보장이사회의 허가없이는 어떠한 강제조치도 지역적 약정 또는 지역적 기관에 의하여 취하여져서는 안된다.’

안보리가 ‘정하는 바’나 ‘허가’에 의해 취해지지 않은 회원국의 조치조차 의무가 아니라 불법이 된다. 모든 조치에 대한 원조는 의무이자 권리이다. 만약 법적지위도 없고 권리도 없는 비회원국이 자발적으로 조치를 취하면 그 비회원국에 대해서는 안보리가 통제할 수 없고 그럼 헌장48조, 53조의 위반이 된다. 즉 불법이다. 따라서 당시 비회원국인 일본에 대한 평화조약 전문과 5조는 유엔헌장의 위반이 의심된다.

대일평화조약 전문과 5조의 a,b항에 근거해 요시다-애치슨간 서한이 교환된 것이므로 이 교환공문의 유엔헌장 위반도 당연히 연결된다.

2) 안보조약과 교환공문의 관계

평화조약 5조c항에서는 헌장51조의 자위권을 승인한다. 평화조약에서의 유엔헌장 51조를 인용한 자위권 운운은 사실은 연합군에 의한 일본 점령 종결 이후에도 일본에 미군이 주둔 할 수 있는 근거를 만들기 위한 측면이 강하였다.(주11) 그래서 안보조약은 미군을 ‘일본국 및 그 주변에 배치하는 권리’를 허용했다. 그리고 일본은 미합중국의 사전동의 없이 기지사용권을 제3국에 허용하지 않기로 했다. 그러나 거꾸로 말하면 미국이 사전동의하면 제3국도 함께 사용할 수 있게 된다. 즉 미군은 일본이 제공한 기지에 대해 배타적 사용권을 가지는 것이다.

교환공문에서는 미군사령관인 연합군사령관의 ‘승인’에 의해 일본은 시설 및 용역을 “유엔군”에게 이미 제공해왔음을 확인한다. 기지의 공여는 일본이 하지만 기지사용은 미군의 승인에 의하므로 “유엔군”에 대해 배타적 권리를 갖는 것은 일본이 아닌 미군이 되는 것이다.

일‧미안보조약에서 자위권행사를 미국에게 위임함으로서 미국은 집단적자위권행사라는 미명하에 유엔보다 동맹을 앞세워 유엔내에서의 패권과 극동에서의 군사적 패권을 유지할 수 있는 구조를 완성한 것이다.
 

2. 요시다-애치슨 교환공문 비판

이제 교환공문의 문장을 구체적으로 분석해 보자. 상자글 안에 있는 교환공문의 문장을 그 아래에서 분석하는 방식으로 한다.

1) 유엔헌장상 의무의 부존재

‘금일 서명한 평화조약 효력발생과 동시에 일본은 “유엔이 이 헌장에 따라 행하는 모든 조치에 대한 모든 원조”를 유엔에 제공해 줄 것을 요구하는 「유엔헌장」제2조에 표현된 의무를 진다.’

교환공문은 기본적으로 평화조약에 수반된 것이다. 즉 양자조약인 안보조약에 수반된 것이 아니라 다자조약인 평화조약에 수반된 것이다. 교환공문은 평화조약5조 a,b항을 좀 더 구체화시킨다. 평화조약이 “유엔의 모든 조치에 모든 원조”를 한다는 언급만 했다면 교환공문에는 이러한 원조가 유엔이 요구하는 원조라는 사실이 추가된 것이다. 그렇다면 당시 비회원국인 일본에 유엔이 이러한 원조를 요구할 수 있는가가 문제된다.

평화조약의 발효로 일본주권이 회복되어 유엔가입신청자격이 생기나, 유엔회원국이 바로 되는 것은 아니다. 평화조약서명과 일본의 유엔회원국지위획득까지는 5년이라는 격차가 존재한다. 그런데 ‘유엔이 부과하기를 요구하는 헌장2조의 의무’는 모두 회원국에게 요구하는 의무이다. 비회원국에 대해서 유엔은 헌장의 원칙에 따르도록 노력할 수 있을 뿐이다. 즉 비회원국에 대해 유엔은 어떤 권리도 창출한 바 없기에 의무도 구성되지 않는다. 이는 두 가지로 살펴볼 수 있다.

첫째, 유엔을 일미조약에 있어서 제3자로 보는 경우이다. 평화조약과 교환공문은 유엔에 권리를 부여할 의도를 가진 조약이다. 유엔이 동의하지 않았지만 반대하지도 않았으므로 이 경우 동의하는 것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권리를 행사하는 3자는 조약에 규정된 권리행사조건을 따라야 한다. 하지만 유엔헌장은 비회원국에 의무를 부과하는 조항이 없으므로 유엔은 이 조건을 따를 수 없다.(주12) 따라서 일본이 유엔회원국이 되기 전까지 조약의 이 부분은 부존재하는 것이 된다.

그렇다면 회원국이 되기까지 조약을 잠정적으로 적용하면 될 것이다. 이는 조약자체에 그런 규정이 있거나 다른 방법으로 당사국끼리 합의하면 가능하다.(주13) 그러나 평화조약자체에 그런 규정이 없고 다른 방법으로 합의했는지도 확인되지 않는다.

둘째, 유엔헌장을 일반국제법의 절대규범(강행규범)으로 보는 경우이다. 유엔헌장이 일반국제법인지에 대한 논란을 유보하더라도, 조약법에 관한 비엔나협약 제53조에 따르면 이는 절대규범(강행규범)과 충돌하는 조약이다. 헌장이 비회원국에 의무를 부여하지 않는데 평화조약은 의무를 진다고 했기 때문이다. 절대규범과 충돌하는 조약은 무효이다.

요시다-애치슨교환공문에서 추가시킨 이 문장에 의해, 그 의미가 명확해짐에 따라 평화조약에서 합의한 유엔조치의 원조의무도 무효로 해석됨이 타당하다.(주14) 요시다-애치슨교환공문의 대전제인 일본이 자임한 유엔의무는 부존재하거나 무효이다.

그렇다면 일본이 유엔회원국이 된 1956년 이후에는 조약의 무효성이 해결되는 것일까? 그렇지 않은 것이 문제다.

2) 무력침략의 부존재

‘주지의 사실대로 무력침략이 한반도에서 발생했다.’

일반적인 상식에 따라 한국에서의 사태를 한국전쟁이라 칭할 수도 있고 한국내전이라 칭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들은 유엔헌장에 의해 안보리에서 결의한 개념과는 무관하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나 유엔헌장은 1928년 부전조약으로 알려진 켈로그-브리앙조약을 계승하였기에 전쟁이란 단어를 아예 사용하지 않았다. 유엔헌장 제39조가 사용하는 단어는 세 가지이다. 평화의 위협, 평화의 파괴, 침략이다. 우선 이 세 가지 중 하나를 결정해야지 평화적 해결을 ‘권고’할지 군사적 ‘조치’를 할지 정할 수 있다. 1950년 6월 25일 한국사태 직후 유엔안보리에서 미국의 인쇄되지 않은 결의안은 “침략행위”란 표현을 준비했다.(주15) 회의 전 미국 결의안을 영국, 프랑스, 인도, 이집트, 노르웨이 대표에게 보여줬을 때 이들은 대체로 침략행위란 단어의 사용에 대해 거부하는 반응을 보였다. 이집트와 노르웨이는 한국이 내란상태에 있으므로 한 국가가 다른 국가를 침략했다고 암시하는 침략이란 단어의 사용에 반대했다. 왜냐하면 침략행위는 국가 간에만 야기될 수 있고 국내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주16) 즉 침략이란 단어를 사용하면 북한을 국가로 인정해야 하는 문제가 생긴 것이다. 미국은 결국 ‘침략행위’라는 표현을 포기하고 ‘평화의 파괴’라는 표현에 합의했다. 평화가 파괴된다면 평화는 ‘유지’될 수 없고 오직 ‘회복’할 수만 있다.(주17) 평화는 침략의 진압이 아닌 평화의 위협에 대한 제거와 진압으로서 ‘유지’될 수 있다.(주18) 따라서 “침략”과 “평화의 파괴”, “평화의 위협”은 서로 다른 것이다. 만약 ‘평화의 파괴’가 ‘침략행위’를 포함하는 광의의 개념이라면 39조의 표현은 명백히 틀린 것이 되기 때문이다.(주19) 그런데 미국은 일본에게 유엔헌장의 원칙에 따르고 유엔의 모든 조치에 모든 원조를 하도록 의무를 부과하면서 정작 안보리결의를 노골적으로 왜곡했다. 한반도에서는 ‘무력침략’이 발생하지 않았고 ‘평화의 파괴’가 발생했다. 따라서 교환공문이 유엔원칙과 그에 따른 유엔안보리결의를 따르고 있는지는 의심된다.

3) 유엔조치의 부존재

‘이에 대해 유엔 및 그 회원국은 조치를 취하고 있다.’

한국사태에 대해 유엔의 조치는 없었다.(주20) 유엔의 조치가 없었다면 유엔회원국의 조치는 있었을까? 1994년 유엔법률국이 명확히 정리했듯이 “주한 통합사령부는 유엔의 지휘와 통제하에 있는 강제조치라기보다는 개별국가에 의해 허가된 무력사용이라는 점에서 걸프전에서 설립된 연합군사연대와 유사하다.”(주21)

유엔법률국은 유엔조치가 아님을 확인할 뿐 아니라 그 조치가 ‘개별국가’의 조치라고 함으로서 유엔회원국으로서의 조치도 아님을 확인하고 있다. 위에서 비교한 걸프전 당시의 다국적군은 미국이 강력히 주장했듯이 유엔과 무관한 군대였기 때문이다. 유엔법률국의 성명에 따르면 한국사태에서 이루어진 군사강제조치는 유엔이나 유엔회원국과 관계없이 개별국가가 취한 조치일 뿐이다. 따라서 이 문장 역시 미국과 일본의 자의적 해석일 뿐 유엔의 공식성명과는 불일치한다. 한국전쟁에서의 유엔조치는 부존재 한다.

4) 유엔통합사령부의 부존재

‘1950년 7월 7일 안전보장이사회결의에 따라 미국하에 유엔통합사령부가 설치되고’

1950년 7월 7일 안전보장이사회결의는 미국 통합사령부의 창설을 권고했다. 유엔의 기구로 만들자는 유엔사무총장과 다른 안보리 회원국들의 요청을 단호히 거절한 것은 다름 아닌 미합참이었고 미국정부는 미합참의 의견을 수용하였다. 노르웨이의 순대(Arne Sunde)안보리 의장은 미국의 결의 초안(주22) 3항의 끝에 “유엔을 위한 기구로서”란 단어를 추가할 것을 요청했다. 미국은 그조차 반대한다고 분명히 밝혔다.(주23) 그런데 7월 25일 도쿄에서의 사령부창설식에서 통합사령부 대신 “유엔사령부”라는 명칭을 사용했고 이는 지금까지 혼란을 일으키고 있다.

“유엔사”라는 명칭에 대해 앞서 언급한 유엔법률국은 ‘잘못된 이름(misnomer)’임을 명확히 했다. “유엔사”는 유엔명칭을 도용한 것이다. 그런데 이 교환공문에서는 “유엔사령부”도 아니고 통합사령부도 아닌 “유엔통합사령부”라는 새로운 이름을 명시했다. 일상이나 관행적인 단어로 사용되는 것도 문제인데 법적 지위와 효력을 창출하는 조약문에 이런 이름을 사용하는 것은 치명적인 착오이다. 조약상의 착오는 동의의 본질적 기초 구성한 것에 관한 경우에, 그 조약에 대한 동의를 부적법화할 수 있다.(주24) 단순한 자구상의 착오라면 정정하여 다시 서명하면 될 텐데 정정하지도 않았다.(주25) 이 교환공문은 “유엔통합사령부”라는 존재하지 않는 이름의 기구를 위해 체결된 조약으로서 무효가 의심된다.

5) 총회결의의 헌장위반

총회는 1951년 2월 1일 결의에 따라 모든 국가 및 당국에 대해 유엔의 조치에 대해 여러 원조를 부여하고 또 침략자에 어떠한 원조도 자제할 것을 요청했다.’

헌장24조1항은 안보리에 국제평화와 안전의 유지를 위한 일차적 책임을 부여했다. 그리고 헌장12조는 유엔총회에 안보리가 부여된 일차적 책임을 수행하는 동안에는 어떤 권고도 하지 못하도록 규정했다.

만약 1950년 6월과 7월의 안보리의 임무가 계속 수행되고 있다고 주장한다면 총회는 어떤 권고도 할 수 없다. 안보리에 불참하던 소련이 8월 1일 안보리 의장으로 복귀하자 소련의 거부권에 의해 어떤 임무도 수행할 수 없게 되자 미국은 10월 7일 총회를 움직여 유엔한국통일부흥위원단의 창설권고를 결의하였다. 그리고 이의 불법성을 조각하기 위해 11월 ‘단결의 위한 결의’에서 총회가 2차적 책임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하자는 안을 통과시켰다. 전형적인 사후입법이다. 헌장24조1항 규정이 개정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관행으로 굳혀가려는 중에 통과된 결의가 51년 2월 1일 총회결의이다. 아직 총회의 2차 책임이라는 개념이 합의되지도, 정착되지도 않았고, 헌장조항의 개정으로 이어지지도 않은 상황에서 비회원국인 일본에게 원조의무를 부여하면서 총회권고사항을 인용하는 것은 헌장의 위반이 의심된다.

6) 승인

연합군최고사령관의 승인을 얻어 일본은 시설 및 용역을 유엔회원국의 군대가 유엔조치에 참가하는데 있어 필요한 원조를 이제까지 해왔다. 현재도 마찬가지다.’

“유엔군”은 “유엔사령관”의 작전통제를 받는다. 그러나 “유엔군”에 시설과 용역을 제공하는 일본은 유엔회원국이 아니었기에 지휘계통으로는 “유엔사령관”이 통제할 수 없었다. 따라서 일본점령사령관인 연합군최고사령관의 통제를 받았을 것이다. “유엔사령관”과 연합군최고사령관은 동일인물인 맥아더였다. 일본의 불법참전은 일본정부가 승인을 요청한 것이 아니라 맥아더사령관의 명령에 요시다정부가 굴복한 것이었다. 특히 용역의 경우 원산소해작전에 차출된 특별소해대는 요시다정부가 승인을 요청하거나 연합군사령관이 승인한 사실이 알려질 수 없는 기밀이었기에 공식승인이 있을 수 없었다. 이는 일본의 불법참전이 맥아더사령관의 통제하에 이루어졌다는 자백인 셈이다.

평화조약체결전인 피점령국일 때 일본은 법적근거도 없이 연합사령관의 명령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유엔군”에게 시설과 용역을 제공해야 했다. 그러나 평화조약으로 주권이 회복된 일본은 같은 주권국인 미국과 대등한 관계가 되었다. 그럼에도 일미안보조약 2조에는 미국의 사전 동의 없이 제3국에 기지사용을 허용할 수 없도록 했다. 이는 거꾸로 말하면 미국이 동의하면 제3국인 참전국들에게도 일본은 기지사용을 허용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점령기간에는 미군의 승인이, 일본주권회복 후에는 동의로 바뀌었다. 일본을 주권국으로 대우해주는 외양을 갖춘 것이다. 그러나 외양과 달리 내용상 승인과 동의는 구별되기 힘들었다. “유엔군”은 미군기지를 사용했으므로 이는 미국의 승인에 의해서만 가능한 것이다. 결국 “유엔군”의 기지사용권은 일본이 아닌 미국에 있었던 것이다. 일본은 미국과 안보조약을 체결했지만 다른 참전국들과는 조약의 체결도 없이 미국의 승인만으로 기지와 용역의 사용을 허용해야 했다. 평화헌법이 외국군대에 안보를 의탁할 권리까지 포기한 것은 아니라는 해석으로 미군주둔을 합리화한다 해도 “유엔군”은 일본의 승인이 아닌 미군의 승인에 의해 주둔하는 것이므로 그런 해석으로도 설명되기 어렵다.

이 문장은 이러한 원조를 ‘이제까지 해왔고’ 지금도 하고 있다고 했다. 피점령국시기와 주권국시기의 구분을 전혀 하고 있지 않은 것이다. 피점령국시기는 연합군사령관이자 “유엔사령관”의 일방적인 명령을 받을 수밖에 없는 지위였다면, 점령이 종료되고 주권국이 된 상황에서 점령사령관인 연합군사령관의 명령이나 통제는 더 이상 가능하지 않게 되었다. 그런데 유엔회원국이 아닌 일본이 “유엔참전국”이 될 수도 없고, 유엔조치도 아닌 참전각국의 조치에 “유엔사령관”의 승인만으로 기지사용을 허용한다는 것은 유엔과 무관한 것으로 그것은 미국에의 굴종이었다.

또한 유엔조치가 아닌 각 참전국의 조치라면 참전국들과 상호안보조약을 체결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상호안보조약은 조약당사국의 국내 안보위기에 대한 것이지 한국과 같은 제3국의 안보위기에 대한 것일 수 없다. 그것은 나토와 같은 지역안보조약을 따로 체결해야 한다. 따라서 후속으로 체결된 유엔군지위협정은 유엔조치에 의한 것도 지역안보협정도 아닌 기이하기 그지없는 협정이 되는 것이다. 이처럼 한국에서의 유엔조치가 존재한다는 잘못된 전제가 무너지면 요시다-애치슨교환공문의 법적근거 역시 붕괴한다.

소위 “유엔군”들에게 아무 조건도, 권리관계도, 법적지위설정도 없이 일방적으로 기지사용을 허용한다는 것은 주권국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일본도 처음부터 미국의 일방적 승인에 의한 불평등관계를 희망한 것은 아니었다.

1950년 9월 미국의 국방성과 국무성 간의 의견조정에 관한 사항<NSC 60/1>을 신문 등을 통해 본 요시다수상과 외무성은 전문가와 군부원로를 모집하여 강화 후 일본의 안보에 관한 협의(주26)를 하고 「일미안전보장조약안」을 작성한다.(주27) 여기에서 미군의 기지사용에 관해서는 미일양국의 ‘사전협의’를 필요로 하며 이를 위한 미일공동협의회를 구성하자는 안을 제시했다. 1960년 기시정부의 신안보조약의 핵심요구사항인 ‘사전협의’는 이미 10년 전 요시다정부의 요구였다. 요시다 정부는 미국으로부터 안전보장을 받되 대등한 관계를 설정하고자했던 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평화조약, 상호방위조약, 교환공문이 체결되기 전 점령군인 연합국최고사령관의 승인만으로 시설과 용역의 자유사용이 보장되던 관행을 변경할 의사가 전혀 없었다. 1951년 2월 1일 요시다는 교섭의 본질적인 의제인 안전보장에 관하여 미리 작성해 둔 「일미안전보장조약안」을 토대로 한 ‘일미안전보장협정’을 제안했다. 하지만 미국은 군비를 갖추지 않고 자위수단조차 없는 일본과 상호안보조약을 체결할 수 없다고 반론하며 일본의 제안을 거절했다.(주28) 이때 기지사용에 대한 일본의 ‘사전협의’구상도 폐기되었다. 1960년 기시 노부스케 정부에서 신안보조약 개정을 통해 ‘사전협의’구상을 관철시켰지만 다시 「조선의사록」의 비밀합의를 통해 사전협의 조항을 포기했다. 신안보조약에서도 미국과의 불평등관계가 해결되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교환공문에 의해 일본은 미군만이 아니라 “유엔군”과의 불평등관계도 노정한다. 안보조약의 기지자유사용조항이 미국으로부터 안전보장을 받는 것에 대한 대가라면, 교환공문의 그것은 있지도 않은 유엔 원조의무수행을 위한 것으로 유엔으로부터 어떤 대가도 받을 수 없는 것이란 점에서 일본에겐 일미안보조약에 더해 배가된 불평등조항인 셈이다.

7) 사후입법

이제까지 해왔다.

교환공문에서 미국은 유엔조치에 필요한 원조를 ‘이제까지 해왔다’는 표현을 관철시켰다. 이는 한국사태 발발 후 “유엔사”에 의한 일본의 한국참전이 불법이었음을 당사자들이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음을 반증한다. ‘이제까지 해왔다’는 이전까지의 위법행위를 사후추인받기 위한 목적으로 보인다. 이는 전형적인 사후입법 혹은 소급입법이다. 이같은 사후입법관행은 한국전쟁에서 이미 미국이 보여준 전형적인 수법이었다.(주29) 예를들면 1950년 7월 7일 안보리결의에서 통합사령부의 보고서제출 조항을 통해 결의이전에 있었던 미국의 불법참전을 사후합리화하려 했던 시도와 같다.

보고서 문제에 관심을 집중했던 것은 국무성이었다. 그 계기는 1950년 6월 30일에 트루먼 대통령이 승인하고 3일 후 모든 선박에 대해 공개 경고한 북한에 대한 해상봉쇄 조치였다.(주30) 유엔헌장상 봉쇄는 제42조에 의한 안보리 결정이 있을 때 가능한 것이었다. 그러나 6월 25일과 27일 안보리 결의는 그런 내용을 담고 있지 않았다. 국무성 스스로도 이들 결의만으로 봉쇄 조치에 충분한 근거가 되는지 의심했다. 국무성은 모든 의구심을 불식하기 위해서는 대통령 성명에 담긴 의도가 안보리에서 관심을 불러일으키길 희망했다. 7월 7일 안보리 결의에 의해 요청된 최초의 통합사령부 보고서는 봉쇄에 관한 사항을 전달하기 위한 적절한 수단처럼 생각되었다. 그것은 안보리 회원국에게 그 봉쇄조치에 반대할 기회를 부여하게 된다. 그런데 만일 그들이 반대하지 않으면 그들은 그것의 적법성을 묵시적으로 확인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미국의 의도대로 보고서문제는 다른 의제에 가려져 거의 논의되지 않았고 미국의 불법참전은 합리화된 셈이 되었다. 미국이 보여 온 전형적인 사후입법, 소급입법 시도다. 그러나 교환공문으로 1951년 9월 이전 일본의 불법참전이 정당화되거나 해소되진 않는다.

8) 미래

미래는 규정되어 있지 않고 불행히도 유엔조치를 지원하기 위한 일본의 시설 및 용역의 필요성이 계속해서 제기될 수 있으므로’

이 문장부터 교환공문은 논조가 급변한다. 과거와 현재까지의 일본의 유엔조치에 대한 원조에서 미래에 있을 유엔조치에 대한 원조문제로 비약한다. 이 문장은 두 가지 점에서 문제가 있다. 한국에서의 유엔조치의 경우 안보리결의가 계속 유효한가의 문제와, 한국이 아닌 다른 지역에서의 유엔조치와 “유엔사”의 관계문제이다. 우선 전자의 문제를 검토해보자.

한국전쟁처럼 유엔안보리의 무력사용 결의에 무력사용의 종료조항이 따로 없을 때는 어떻게 종료하는가가 문제될 것이다. 이에는 두 개의 해석이 있을 수 있다.

첫째는 새로이 종료결의를 하는 것이고, 둘째는 결의가 요청한 내용이 충족되면 종료된다고 해석하는 것이다.

첫째 경우는 안보리가 부지런하면 된다. 그러나 안보리가 고의적으로 종료결의를 막으면 대책이 없다. 한국전쟁에서 미국처럼 유엔의 군사력사용허락을 받은 국가들 중에 안보리상임이사국이 포함되어 있는 경우, 결의내용충족이나 정전협정에 의한 결의종료논리가 적용되지 않는다면 미국은 무력사용 종료 결의안에 거부권을 행사함으로써 자국이 원하는 동안까지 유엔결의를 근거로 군사력을 행사하게 될 것이다. 지금 “유엔사”가 주장하는 논리 그대로이다.

둘째는 결의내용을 충실하게 해석하는 경우이다.

1950년 6월 27일 안보리결의는 6월 25일 무력공격이 평화의 파괴가 된다는 것을 결의한 바 있고, 북한 당국에게 38선까지 그들의 군대를 당장 철수시키라고 요청했으나 실행하지 않아 추진되었다. 27일 결의의 최종목적은 무력공격을 격퇴시키고 국제평화와 안전을 회복하는 것이었다. 평화의 파괴가 구성되었으므로 파괴된 평화는 회복되어야 하고 그래서 결의의 목표도 회복이었다. 그럼 어디까지가 회복인가가 문제된다. 38선 이북으로의 철수가 애초 요청사항이었으므로 38선 이남으로의 무력공격을 격퇴하는 것이 회복의 내용이었다고 봄이 타당하다. 38선 이북으로의 무력진격이 아닌 38선 이남에 대한 무력공격의 격퇴였다. 파괴된 평화의 회복으로서의 무력공격의 격퇴는 인천상륙작전을 통해 10월 1일 이전에 달성되었다. 따라서 미국이 유엔총회 의제로 “유엔사”의 38이북으로의 진격과 북한에 대한 점령통치기구설치를 제안했을 때 영국이 이를 극구반대하며 이는 새로운 안보리결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그러나 안보리에서 소련의 거부권행사로 새로운 결의가 불가능해지자 권한이 없는 총회를 동원한 것이었다. 따라서 국제평화와 안전에 일차적 책임을 지는 한국전쟁 안보리결의는 10월 1일경에 종료되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한편 로벨과 라트너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안보리의 군사력사용권한은 안보리에 의하여 명시적으로 그리고 만장일치로 지속적 효력을 갖는다는 결의를 하지 않는 한 정전협정의 체결로 종료된다.’(주31) 이들의 주장은 한국전쟁의 경우를 특정한 것이 아닌 일반적인 이론이다.

안보리가 정전협정을 반대하거나 무시하여, 무력사용을 결의하지 않는 한, 정전협정에 의해 안보리의 무력사용결의는 종료된다는 것이다. 이들의 논리를 따르더라도 한국전에서의 안보리결의의 효력은 정전협정과 함께 종료되었다고 봄이 타당하다. 물론 정전협정을 반대하거나 무시한다면 이는 안보리가 유엔헌장의 평화적 해결 원칙을 위반하는 결과가 될 것이다.

정전협정에 의해 안보리결의가 종료된다면, 종료를 위해서 결의를 따로 할 필요도, 해서도 안된다. 이 논리는 상임이사국에 의한 종료결의안의 거부권을 막기 위한 논리이기 때문이다. 결국 정전협정체결 이후에 전쟁이 발생할 경우 안보리가 추가적인 군사력 사용을 원한다면 반드시 새로운 안보리결의를 통해서만 유엔조치를 결정할 수 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한국전쟁의 당사자 일방에 의한 심각한 정전협정의 위반이 있는 경우 유엔회원국은 지금이라도 1950년 안보리결의에 근거하여 북한에 대한 무력공격이 가능하다는 결론에 이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1950년 안보리결의 자체가 권고일 뿐 무력사용을 결의한 것이 아니지만 설령 이들 결의를 통상 해석하듯이 무력사용결의라 해도 최소한 정전협정에 의해 이들 결의는 종료된다고 봄이 적절하다.

따라서 교환공문에서 한국에서의 유엔조치가 이미 종료되었거나 정전을 통해 종료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미래의 유엔조치를 언급하는 것 자체가 부적절하다. 더구나 한국사태의 연장선에서 미래를 언급하는 것을 넘어 전혀 다른 사태에 대한 유엔조치로 확대되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다음 문장은 그런 심각성을 표현한다.

9) 극동

‘본 장관은 평화조약효력 발생 후에 1개국 혹은 2개국 이상의 유엔회원국의 군대가 극동에서의 유엔조치를 할 때’

이는 주일유엔군지위협정에도 그대로 사용된 문장이다. 이 문장은 문맥상 앞 문장에서 이어오던 한국전쟁의 “유엔사”와 전혀 무관한, 새로운 지역, 새로운 사태, 새로운 유엔결의, 새로운 유엔조치를 전제하고 있다. 그런데 마치 “유엔사”의 활동범위가 극동의 유엔조치로도 확대될 수 있을 것 같은 착오를 일으킬 수 있다. 한반도가 아닌 극동에서의 유엔조치는 한국전관련 안보리결의와 무관하며 극동에 대한 결의는 당시로서는 부존재 했다.

유엔은 창설 당시 유엔상비군을 의도했고 이들 군대를 지휘할 유엔군사참모위원회도 헌장조항에 명기했다. 그러나 결국 미‧소의 견해차이로 유엔상비군을 창설하는데 실패했다.

유엔안보리에서 헌장7장 42조의 군사적강제조치를 결정할 때만, 유엔과 회원국 간의 특별협정을 맺을 때만, 해당사안에 대해서 유엔군을 구성할 수 있다. 한국전쟁에서는 유엔조치도 없었고, 유엔과 특별협정을 맺은 나라도 없었고, 유엔군이 구성되지도 않았다. 그러므로 이들 군대를 “유엔군”으로 부르는 것도 불법이다. 또한 안보리결의의 효력도 종료되었다고 봄이 타당하다.

그런데 “유엔사”가 한국과 무관한 극동에서의 사태를 대비하여 “유엔군”이란 이름으로 일본의 “유엔사”후방기지를 항시 사용한다는 것은 가짜 유엔기구인 “유엔사”를 사실상의 유엔상비군이라고 참칭하는 셈이 된다. 이는 헌장의 노골적 위반이 될 수 있다.

그런데도 2018년 이후 캐나다를 중심으로 한 몇몇 “유엔사”회원국이 유엔의 대북제재결의안을 이행한다는 명목으로 엄청난 예산을 투입하여 북한선박에 대한 감시‧임검을 실시하는 주둔지로 일본의 “유엔사”후방기지를 사용해오고 있다. 대북제재결의는 한국전쟁시 안보리결의와 전혀 무관한 별도의 결의이다. 이들의 활동을 “유엔사”와 연결시키는 것은 북한이란 대상의 동일성을 핑계로 한 고의적 혼란조장일 뿐이다. 더구나 유엔조치의 대상이 북한도 아닌 러시아, 중국, 필리핀, 태국 등 극동국가들일 때 한국전쟁 때문에 구성된 “유엔사”를 유엔군으로 그대로 사용하자는 새로운 결의가 채택될 리 없다. 안보리상임이사국인 러시아나 중국이 이런 결의에 찬성할 리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유엔사”가 유엔상비군처럼 활동한다면 당연히 유엔헌장 위반이 될 것이다. 만약 이같은 조치를 원한다면 “유엔사”가 아니라 유엔상비군을 따로 만들어야 할 것이다.

필리핀에서의 한‧미‧일‧필 군사연습이나, 대만에서의 한‧미‧대‧호‧뉴 군사연습이 “유엔사”의 이름으로 행해진다면 “유엔사”가 아시아판 나토라는 말이 비유가 아닌 사실이 된다. 그러나 유엔상비군이 집단안보체계의 산물이라면 나토 등 군사동맹기구는 세력균형체계의 산물이란 점에서 둘은 구성원리가 전혀 다른 것이다. 따라서 미래의 유엔조치를 가정하여 세력균형적 동맹군을 “유엔군”으로 혹은 “유엔사”로 둔갑시키는 것은 유엔헌장의 심각한 위반이 의심된다.

10) 주변

‘그 군대를 일본 국내 및 그 주변에서 지원하는 것을 일본이 허용하고 용이하게 하며’

평화조약1조(b)항 ‘연합국은 일본과 그 영해에 대한 일본 국민의 완전한 주권을 인정한다.’고하여 주권의 바다영역을 영해라고 분명히 명시했다. 영해까지가 국내라면 그 주변은 당연히 영해 밖을 의미한다. 교환공문의 영어본은 주변에 대해 about을 사용하고 있다. around가 막연한 주변이라면 about은 꽤 한정된 주변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영해 밖이지만 배타적경계수역이나 비행정보구역 정도의 제한된 주변이어야 할 것이다. 예를들면 영해와 그 주변에 설치하는 등대나 항로지시기나 부표 같은 것이 이런 경우에 해당할 것이다. 그런데 미군에 대한 일본국내 및 그 주변에서의 주둔‧배치를 다룬 ‘미일안보조약3조에 따른 행정협정’ 3조1항(주32)에서는 ‘영역 밖에서의 권한행사에 있어서는 양국 정부 간에 협의’할 수 있다고 했다. 즉 양국이 협의하면 영토 밖 ‘주변’의 개념이 얼마든지 확장될 수 있는 것이다. 1999년 ‘주변사태법’에서는 ‘주변’이 한반도와 대만으로 확장되었다.(주33) 안보조약과 행정협정은 미군이 일본 주변에서까지 주둔시설 및 지역에 대한 권리‧권한을 갖는다는 데에 초점이 있다. 이에 비해 교환공문은 일본이 주변지역에서 “유엔군”을 지원하는 의무를 진다는 것에 초점이 있다.

주변사태시 미군을 후방지원(주34)하는 것이 주변사태법이라면, 미래의 “유엔군”을 후방지원하는 것이 교환공문이다. 따라서 ‘주변’문제의 핵심은 유엔조치에 대한 일본의 후방지원에 있다. 모든 후방지원의 핵심은 병참이기에 교전상대국은 병참기지를 우선 공격할 것이고 “유엔사”후방기지와 기지주변이 공격받으면 일본은 자위권에 따라 무력공격에 나설 것이다. 바로 이런 예정된 수순 때문에 안보리의 통제가 요구되는 것이다. 즉 유엔조치에 대한 이같은 자의적, 세력균형적 후방지원은, “안보리조치는 안보리가 정하는 바에 따라야 한다”는 헌장48조1항과 지역동맹에 의한 어떤 강제조치도 “안보리의 허가없이는 안된다”는 헌장53조1항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것이다.

11) 비용

‘일본의 시설 및 용역사용에 수반되는 비용이 현재처럼 일본과 해당 유엔회원국과의 사이에 별도로 합의되어진 바대로 부담되는 것을 일본정부를 대신해 확인 할 수 있다면 좋겠다.’

비용은 유엔으로부터 단 한 푼도 지급되지 않는다. “유엔군”의 비용은 각 회원국이 지불한다. 유엔과 참전국간의 특별협정에 의해 각국이 비용을 부담한다는 것이 아니라 아예 유엔과의 협정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이는 “유엔군”이 유엔의 이름만 도용했을 뿐 각국의 연합군에 불과하다는 것의 증거이다.

12) 초과

‘미국에 관한 한 미국과 일본 사이의 안보조약의 실시 세목을 규정한 행정협정에 따라 미국에 공여되어지는 것을 초과하는 시설 및 용역사용은 현재대로 미국의 부담으로 하겠다.’

일미행정협정 3조1항에 의하면 미국은 일본이 공여한 ‘시설 및 구역 내에서 필요하거나 적절한 권리, 권한, 권력’을 갖는다. 즉 공여지를 초과하는 시설에 대해서는 권한을 갖지 않는다. 그런데 교환공문에 의해서는 공여지를 초과하는 시설에 대한 권한을 비용만 내면 가질 수 있게 규정하고 있다.

주일미공군기지 이자 “유엔사”후방기지였던 다치가와(立川)공군기지를 확장하려다 발생한 스나가와(砂川)사건이 이에 해당한다. 이 사건은 1957년 7월 8일 도쿄 서부 다치가와(立川)지역에 있는 미군비행장을 인근 스나가와 지역까지 확장하려는 정부의 강제측량에 반대하는 시민 7명이 미군비행장 철조망을 넘어 들어가고, 이들을 일본 정부가 일미행정협정에 따른 형사특별법 위반으로 기소한 사건이다. 1심 법원은 주일미군이 비무장평화주의를 규정한 일본헌법에 반하는 존재이며, 주일미군으로 인해 무력분쟁에 휩쓸릴 가능성이 높다는 요지의 판결을 하였다.(주35) 그러자 주일미대사인 맥아더2세가 적극 개입하여 최고재판소에서 유죄판결을 내림으로서 사실상 미일안보조약을 헌법보다 상위에 둔 것이란 비판을 받았다.(주36)

이 사건에서 새로이 주목할 것은 미일행정협정은 공여지내의 권한만을 인정하는데 행정협정상 공여된 것을 초과하여 기지를 확장하려 했다는 점이다. 즉 시설과 용역의 초과사용은 미일행정협정이 아니라 교환공문에 의한 것이란 점을 알 수 있다. 확장공사가 시작된 1957년 7월 1일 미공군작전기지였던 다치가와 공군기지가 “유엔사”후방기지로 지정된 것도 이와 무관치 않은 것으로 보인다. 20년 뒤인 1977년 8월 “유엔합동회의”를 통해 일본정부에 다치가와 공군기지는 반환되었다.(주37)

이처럼 교환공문은 미군이 “유엔군”의 이름으로 공여지를 초과사용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는데 용이한 수단으로 이용될 수 있는 것이다. 스나가와 사건 재판은 기지세력의 승리로 끝났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유엔사”에 의한 기지초과사용이 큰 정치적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것과 확장은커녕 결국 축소‧반환될 수밖에 없음을 확인하게 되었다. 스나가와 사건은 평화헌법의 가치를 확인하고 “유엔사”후방기지를 철폐시킨 투쟁이 된 셈이다.

3. 요시다-애치슨 교환공문에 관한 교환공문 비판

스나가와사건으로 촉발된 일미안보조약개정과정에서 이에 대한 미국내 논의와 그 결과 개정된「교환공문에 관한 교환공문」을 살펴보자.

1958년 9월 9일 미국 내에서 협상준비를 위한 회의가 열려 주일대사관이 기안하고 국무부가 수정한 신안보조약안을 둘러싸고 논의가 이루어진다. 이 과정에서 다음과 같은 대화가 오갔다.

국방: 한반도에서 전투작전행동을 하는데 일본을 사용할 수 있는가?

대사: 그 문제는 1951년 9월 8일 있었던 요시다-애치슨교환공문으로 처리되었고 안보조약 이 바뀌어도 유효하다.

국방: 교환공문은 대만해협에서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대사: 유엔에 의한 조치가 아니면 도움이 되지 않는다.
국방: 일본이 대만에 대해 전투폭격기를 파견하기를 바랄 경우에는 어떻게 되는가?
대사: 그것은 배치이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일본기지에서 공격을 개시 하는 경우다.(주38)

미국은 한반도전투작전이 교환공문에 의하기 때문에 안보조약과 무관하다는 입장이고, 대만에서의 작전을 위해서는 유엔결의에 의한 군사강제조치가 새로이 결정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는 교환공문의 효력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즉 한반도는 이미 취해온 유엔결의에 의한 조치가 유효하다고 본 것이다. 그에 비해 대 중국전투작전, 즉 일본기지에서 공격을 개시하는 것은 교환공문에 더해 새로운 유엔결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대만이라도 단순 배치하는 것은 문제가 안된다고 했다. 이는 교환공문이 아닌 미일안보조약에서 일본국내와 그 주변에 미군을 배치하는 규정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안보조약과 교환공문에서 명시한 ‘주변’이 대만까지 포함됨을 당연한 것으로 인식하고 있음이 확인된다.

또한 현재 유엔사강화와 관련 “유엔사”후방기지가 전력증원만 하고 전투는 연합사가 하는 것으로 역할분담이 고정된 것처럼 주장하는 경우가 많으나 1958년 당시 이 회의록에 의하면 오히려 배치 등 전력증원은 미일안보조약만으로도 가능하지만 전투를 위해서는 교환공문이 필요함을 내부적으로 결론내리고 있음이 확인된다. 즉 “유엔사”는 병참이나 증원이 아닌 전투‧작전 때문에 필요한 것이다. 이는 1983년 1월 19일 미합참의장이 명령한 「유엔사령관을 위한 위임사항」에서도 명확히 확인된다.

“연합사령관은 필요시 전투부대를 제공하는 등 유엔군사령관을 지원할 것”
“유엔사로 예속된 모든 부대에 대하여 작전통제권을 행사함”
“전쟁이 재발할 경우 유엔사 및 연합사는 별개의 법적 군사적 체제로 유지하면서 유엔사 부대를 운용함”(주39)

이 공문에는 “유엔사”가 한미연합사를 지원하는 게 아니라 연합사가 “유엔사”를 지원하는 것으로 명시되어 있다. 또 “유엔사령관”이 모든 “유엔사”소속부대에 작전통제권을 행사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같은 “유엔사”의 임무와 기능은 오래전부터 정립되어 있었던 것이다.

1958년 10월 4일 조약개정을 위한 제1차 회합이 도쿄에서 열린다. 덜레스는 회합 직전에 주일미대사인 맥아더2세에게 조약개정에 대한 정식협상권한을 주었다. 맥아더대사는 한국전쟁에서 “유엔군”의 조치를 지원하는 ‘애치슨-요시다 교환공문’은 강화조약에 관련된 것으로, 신안보조약이 그 효력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일본 외무성은 ‘요시다-애치슨교환공문’이 안보조약과도 관련되고, 특히 한국전쟁을 염두에 두고 교환되었다는 입장을 취했다. 또한 이 교환공문이 전투작전행동에도 적용된다면, 일본의 최대요구인 ‘사전협의’제도와 모순된다는 점을 지적했다. 미국측에 있어 사전협의제도는 교환공문을 존속시켜서 자유로운 기지사용의 제약을 줄이는데 있어 골치 아픈 문제였다.(주40) 이것을 해결한 것이 「조선의사록」이라는 안보밀약이었다. 이중계약을 한 것이다. 공식적으로는 사전협의제가 합의된 것처럼 발표하고 비밀협약을 통해서는 사전협의 없는 자유사용을 이전처럼 유지해가는 것이었다.

신안보조약(「일미간 상호협력 및 안전보장조약」)의 개정문 만으로는 무엇이 변화된 것인지 알 수 없다. 같은 날 체결된 「미일안보조약 제6조 실시에 관한 교환공문」에서 그 구체적 내용이 등장한다.

미군의 일본배치에 관한 중요변경, 미군의 장비에 대한 중요변경 및 일본이 실시하는 전투작전행동(전기 조약 제5조 규정에 따라 실시하는 것을 제외)을 위한 기지로서 일본 내 시설 및 구역 사용은 일본정부와의 사전협의 주제이다.

미군의 일본배치에 관한 중요변경은 미군의 승인에 의한 유엔군의 기지사용 등이고 미군 장비의 중요변경은 핵무기배치 등을 염두에 둔 것이다. 일본으로부터의 전투작전행동은 일본이 후방기지에서 전쟁발진기지가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러한 경우의 기지사용은 일본정부와 사전협의한다는 것이 골자이다. 달리 말하면 사전협의만 되면 극동전체에 대한 전투작전행동에 아무 장애가 없어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조선의사록」의 밀약에 의해 사전협의는 무시되었다.

미국은 1975년 12월에 “유엔사”후방기지인 후츄 항공기지를 일본에 반환했다. 일본정부에 더 이상 일본과 한국의 “유엔군”을 지원할 수요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1976년 초까지 기지사용을 철회한다고 공표한 것이다. 일본정부는 유엔합동위원회를 통하여 그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주41) 미군배치에 대한 중요변경에 있어 사전협의 따위는 없었다. 베트남으로의 전투작전행동기지로 사용될 때도 사전협의는 없었다.

이 조항은 조약 제5조 규정에 따라 실시하는 전투작전행동은 제외한다고 단서를 달고 있다. 신안보조약 5조는 다음과 같다.

각 체약국은 일본의 시정하에 있는 영역에서의 어느 한쪽에 대한 무력공격이 자국 평화 및 안전을 위태롭게 한다는 것을 인정하고 자국 헌법상 규정 및 절차에 따라 공동의 위험에 대처할 수 있도록 행동하는 것을 선언한다. 앞서 언급한 무력공격 및 그 결과로 나타나는 모든 조치는 「유엔헌장」제51조의 규정에 따라 즉시 유엔안전보장이사회에 보고해야만 한다. 그 조치는 안전보장이사회가 국제평화 및 안전을 회복하고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를 취할 경우 종료해야 한다.

즉 5조는 집단적자위권조항이다. 일본국내에 있는 자위대나 미군에 대한 무력공격에 대해 집단적자위권 차원에서 행하는 전투는 즉각적일 것이기에 사전협의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선조치 후보고 한다는 것이다. 이 예외조항을 이용하면 일‧미간 안보밀약을 들춰내지 않아도, 즉 현재의 공식적인 신안보조약만으로도 충분히 “유엔사”지휘체계가 가동될 수 있게 된다. 「교환공문에 관한 교환공문」에 의해 「교환공문」이 실질적으로 바뀐 것은 없다.

4. 결론

「요시다-애치슨교환공문」에서 ‘극동에서의 유엔조치’는 설령 한국전쟁시 안보리결의를 인정해준다 해도 그 결의와도 무관한 것이다. 더구나 앞서 언급했듯이 한국전쟁에서 유엔조치는 없었다. 각국의 조치가 있었을 뿐이다. 따라서 「교환공문」의 일부분은 조약으로서 성립이 불가능하여 법적지위가 부존재하거나 존재하더라도 대부분 그 효력을 상실하여 무효이다. 한‧미‧일동맹과 “유엔사”를 일치시켜 “유엔사”후방기지를 한국을 포함한 극동전체의 병참전투기지로 만들려는 계획의 법적토대인 「요시다-애치슨 교환공문」의 합법적 지위는 그 자체로 의심된다고 하겠다.

5. 자료

요시다 내각 총리대신과 애치슨 국무장관 사이에 교환된 공문
                                                                    (번역: 이시우)

1951년 9월 8일 샌프란시스코시에서 서명
1952년 4월 28일 효력발생
1952년 4월 28일 공포(조약 제6호)

미합중국 국무장관으로부터 내각 총리대신에 보낸 서간

서간으로 인사 올립니다. 금일 서명한 평화조약 효력발생과 동시에 일본은 ‘유엔이 이 헌장에 따라 행하는 어떠한 조치에 대해서도 모든 원조를’ 유엔에 부과하기를 요구하는 「유엔헌장」제2조의 의무를 지게 됩니다.

주지의 사실대로 무력침략이 한반도에서 발생했습니다. 이에 대해 유엔 및 그 가입국은 조치를 취하고 있습니다. 1950년 7월 7일 안전보장이사회결의에 따라 합중국하에 유엔통합사령부가 설치되고 총회는 1951년 2월 1일 결의에 따라 모든 국가 및 당국에 대해 유엔의 조치에 대해 여러 원조를 부여하고 또 침략자에 어떠한 원조도 자제할 것을 요청했습니다. 연합국 최고사령관의 승인을 얻어 일본은 시설 및 용역을 유엔회원국의 군대가 유엔조치에 참가하는데 있어 필요한 원조를 이제까지 해왔습니다. 현재도 마찬가지입니다.

미래는 규정되어 있지 않고 불행히도 유엔조치를 지원하기 위한 일본의 시설 및 용역의 필요성이 계속해서 제기될 수 있으므로 본 장관은 평화조약효력 발생 후에 1개국 혹은 2개국 이상의 유엔회원국의 군대가 극동에서의 유엔조치를 할 때 그 군대를 일본 국내 및 그 주변에서 지원하는 것을 일본이 허용하고 용이하게 할 것, 또한 일본의 시설 및 용역사용에 수반되는 비용이 현재처럼 일본과 해당 유엔회원국과의 사이에 별도로 합의되어진 바대로 부담되는 것을 일본정부를 대신해 확인 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미합중국에 관한 한 미합중국과 일본 사이의 안전보장조약의 실시 세목을 규정한 행정협정에 따라 합중국에 공여되어지는 것을 초과하는 시설 및 용역 사용은 현재대로 미합중국의 부담으로 하겠습니다. 본 장관은 귀 장관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1951년 9월 8일
딘 애치슨
일본국 내각 총리대신 요시다 시게루 귀하

내각총리대신으로부터 합중국 국무장관에 보낸 서간

사간으로 인사 올립니다. 본 대신은 귀 장관이 다음과 같이 통보한 오늘 날자의 서간을 수령했음을 확인 할 수 있어 영광입니다.

(미측 공문 생략)

본 대신은 서간 내용을 충분히 이해한 다음 정부를 대신해 평화조약 효력발생 후에 1개국 혹은 2개국 이상의 회원국이 이러한 유엔조치를 하는 군대를 일본 국내 및 그 주변에서 지원하는 것을 일본이 허용하고 용이하게 할 것, 또는 일본의 시설 및 용역에 수반한 비용이 현재대로 또는 일본과 해당 유엔회원국 간에 별도로 합의 되는 대로 부담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어 영광입니다. 미합중국에 관한 일본과 미합중국 사이의 안전보장조약의 실시 세목을 규정한 행정협정에 따라 합중국에 부여하는 것을 초과하는 시설 및 용역 사용은 현재대로 합중국의 부담으로 하겠습니다.

본 대신은 귀 장관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1951년 9월 8일
일본 내각 총리대신 외무장관 요시다 시게루
미합중국 국무장관 딘 애치슨 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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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1) 나충렬, 「조지캐넌George Frost Kennan)과 트루먼행정부의 외교정책(1946-1949)」, 『충남사학』Vol.7, (대전충남대학교 1995), p.145.

2) 五百旗頭眞外, 『戰後日本外交史』, (2000)/조양욱역, 『일본외교 어제와 오늘』, (서울: 다락원 2002), p.85.

3) 김태한, 「요시다 시게루의 외교정책에 관한 연구; 미군점령기 그의 인식과 실천을 중심으로」, (한서대학교국제관계학과석사논문, 2009), pp.60-61

4) 미국의 요구에 의해 수정된 안보조약은 일본이 희망하는 헌장에 의거한 집단자위의 관계가 설정될 수 있을 때까지 미국은 일본에 군대를 주둔시켜 지켜준다는 내용이었다. 이는 미군주둔의 목적이 극동에서의 국제평화와 안전의 유지 및 일본의 안전에 기여하기 위한 것임을 의미하는 것으로 일본방위의 확실성이 사라짐을 의미하였다. 나아가 행정협정(미일간상호안전보장협정에 있어 일본은 국민들이 부담을 느끼지 않게 간결하게 조문을 작성하고 미군주둔의세세한 협정은 행정협정을 통해 정할 것을 미국에 요청하고 미국이 이를 받아들인다)을 통해서는 미군주둔의 세세한 규정이 행해짐으로써 주둔미군에 대한 온갖 특권부여로 인하여 미일간 상호안전보장은 형식적인 대등성이 사라지고 주둔군의 색채만 강하게 되었다. 五百旗頭眞外, 『戰後日本外交史』, (2000)/조양욱역, 『일본외교 어제와오늘』, (서울: 다락원 2002), pp.88-89.; 김태한, 「요시다 시게루의 외교정책에 관한 연구; 미군점령기 그의 인식과 실천을 중심으로」, (한서대학교국제관계학과석사논문, 2009), p.62

5) 유지아, 「전후 대일강화조약과 미일안보조약 과정에 나타난 미군의 일본주둔과 일본재군비 논의」, 일본학연구제41집, (2014.1)

6) 1648년 베스팔렌조약에 의한 주권체계(헌장1장), 1815년 비엔나협약에 의한 세력균형체계(안보리), 1915년 국제연맹규약, 1945년 유엔헌장에 의한 집단안보체계(총회), 1945 유엔헌장 51조에 의한 미국패권체계이다.

7) 5조(a) 일본은 유엔헌장 제2조에 명시된 의무, 특히 다음 의무를 수락한다.(i) 국제평화와 안보, 정의가 위협받지 않는 방식으로 평화적인 수단으로 국제분쟁을 해결한다. (ii) 국제관계에서 타국가의 영토보전이나 정치적 독립에 반하는 무력의 위협이나 무력사용을 삼가고 유엔의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 기타 방식을 삼간다. (iii) 헌장에 따라 UN이 취하는 모든 조치에 대해 UN에 모든 지원을 제공하고 UN이 방지조치 또는 강제조치를 취할 수 있는 모든 국가에 대한 지원의 제공을 삼간다.
(b) 연합국은 일본과의 관계에서 유엔헌장 제2조의 원칙을 따를 것임을 확인한다.

8) 山崎静雄, 『史実で語る朝鮮戦争協力の全容』 (東京: 本の泉社,1998), pp.270-272.; 이종판, 「韓國戰爭당시 日本의 役割에 관한 연구; 日本의 對美協力活動을 中心으로」, (한양대학교 국제학대학원박사논문 2007), p.121

9) 파인버그/문창옥 역, 사회철학, (종로서적, 1992), p96; 김연미, 「청구권으로서의 인권 권리-의무 상관성 테제와 수반이론」, 『공익과 인권』Vol1 No1, (2004), p.48

10) 김연미, 「청구권으로서의 인권 권리-의무 상관성 테제와 수반이론」, 『공익과 인권』Vol1 No1, (2004), pp.52-53

11) 이경주, 「일본 안보관련법의 위헌성과 한반도 평화」, 『안암법학』No.49, (안암법학회 2016), pp.8-9

12) 조약법에 관한 비엔나협약 제36조 (제3국에 대하여 권리를 규정하는 조약) ① 조약의 당사국이 제3국 또는 제3국이 속하는 국가의 그룹 또는 모든 국가에 대하여 권리를 부여하는 조약규정을 의도하며 또한 그 제3국이 이에 동의하는 경우에는, 그 조약의 규정으로부터 그 제3국에 대하여 권리가 발생한다. 조약이 달리 규정하지 아니하는 한 제3국의 동의는 반대의 표시가 없는 동안 있은 것으로 추정된다. ② 상기 1항에 의거하여 권리를 행사하는 국가는 조약에 규정되어 있거나 또는 조약에 의거하여 확정되는 그 권리행사의 조건에 따라야 한다.

13) 조약법에 관한 비엔나협약 제25조 (잠정적 적용) ① 다음의 경우에 조약 또는 조약의 일부는 그 발효 시까지 잠정적으로 적용된다. (a) 조약자체가 그렇게 규정하는 경우, 또는 (b) 교섭국이 다른 방법으로 그렇게 합의한 경우

14) 조약의 해석에 있어 평화조약의 추가합의라 할 수 있는 요시다-애치슨교환공문에 구체화된 내용을 참조하는 것은 조약법에 관한 비엔나협약, 제31조(해석의 일반규칙)에 의한 것이다. 참조한 조항은 다음과 같다. ② 조약의 해석 목적상 문맥은 조약문에 추가하여 조약의 전문 및 부속서와 함께 다음의 것을 포함한다. (a) 조약의 체결에 관련하여 모든 당사국간에 이루어진 그 조약에 관한 합의 (b) 조약의 체결에 관련하여, 1 또는 그 이상의 당사국이 작성하고 또한 다른 당사국이 그 조약에 관련되는 문서로서 수락한 문서.

15) Dean Acheson, Present at the Creation: My Years in the State Department (New York: W. W. Norton & Company, Inc., 1969), p.404. 이 단어는 안보리회의에서 그로스 대사에 의해 읽혀지기 전 미국 초안에서 변경되었다(U.N. Document S/1497; U. S. Department of State, Foreign Relations of the United States Vol.Ⅶ Korea (Washington, D.C.: U. S. Government Printing Office, 1976), p.144).

16) Rosalyn Higgins, United Nations Peace Keeping, 1946-1967, Documents and Commentary Ⅱ, Asia (London: Oxford University Press, 1970), p.161

17) Hans Kelsen, The Law of The United Nations A Critical Analysis of Its Fundamental Problems (New York: Frederick A. Praeger, 1950), p.13

18) Hans Kelsen, The Law of The United Nations A Critical Analysis of Its Fundamental Problems (New York: Frederick A. Praeger, 1950), pp.13-14 참조. 평화 ‘유지’의 예방적 기능은 유엔의 목적으로 규정된 1조 1항에 의해 성립되었다. ‘평화의 파괴로 치달을 우려가 있는 국제적 분쟁이나 사태의 조정, 해결을 평화적 수단에 의하여 또한 정의와 국제법의 원칙에 따라 실현한다.’ 유엔의 이러한 목적은 총회, 안보리, 국제사법재판소에 의해 수행되는 기구의 기능을 구성한다. 이런 기구의 기능은 2조 3항에 ‘원칙’으로 나타난 회원국의 의무와 일치한다. ‘모든 회원국은 그들의 국제분쟁을 국제평화와 안전 그리고 정의를 위태롭게 하지 아니하는 방식으로 평화적 수단에 의하여 해결한다(Hans Kelsen, The Law of The United Nations A Critical Analysis of Its Fundamental Problems (New York: Frederick A. Praeger, 1950), p.15 인용).

19) Hans Kelsen, The Law of The United Nations A Critical Analysis of Its Fundamental Problems, (New York: Frederick A. Praeger, 1950), pp.13-14

20) 이에 대한 자세한 논의는 다음을 참조. 이시우, 「“유엔사”에 의한 일본의 불법참전」, 『통일뉴스』(2023.10.24.)/ http:tongi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09259

21) UN Office of Legal Affairs, UN Juridical Yearbook, 1994, Chapter VI, pp.501-502

22) 뉴욕에 보낸 Telegram No.15, July 4, 4 p.m., Foreign Relations of the United States 1950, Vol.VII (Washington, D.C.: U. S. Government Printing Office, 1976), p.300

23) U. S. Department of State, “Memorandum of Telephone Conversation, by the Deputy Director of the Office of United Nations Political and Security Affairs (Wainhouse)” (Washington July 6, 1950), Foreign Relations of the United States 1950, Vol.VII (Washington, D.C.: U. S. Government Printing Office, 1976), pp.318-319

24) 「조약법에 관한 비엔나협약」 제48조 ① 조약상의 착오는, 그 조약이 체결된 당시에 존재한 것으로 국가가 추정한 사실 또는 사태로서, 그 조약에 대한 국가의 기속적 동의의 본질적 기초를 구성한 것에 관한 경우에, 국가는 그 조약에 대한 그 기속적 동의를 부적법화하는 것으로 그 착오를 원용할 수 있다.

25) 「조약법에 관한 비엔나협약」 제79조 참조

26) 당시 일본에서는 강화에 있어 단독강화냐 전면강화냐에 대한 국민들의 의견이 양분되어 있었는데 일본국민은 미국의 장기점령으로 단독강화라도 이루어져 하루빨리 독립을 회복해야 한다는 쪽으로 기울어져 갔다. 요시다 수상 역시 전면강화를 하여 비무장중립화 하는 것보다는 단독강화를 하여 미국과의 연계를 통해 일본의 독립을 보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단한다. 하지만 단독강화 시에 일본의 안전보장에 관한 사항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가 요시다 수상에게 가장 큰 과제였다. (김태한, 「요시다 시게루의 외교정책에 관한 연구; 미군점령기 그의 인식과 실천을 중심으로」, (한서대학교국제관계학과석사논문, 2009), p.61)

27) <미일안전보장조약안>은 다음의 5가지로 요약이 된다. ① 미일 양국사이에 조인되는 안보협정은 유엔헌장의 틀 안에서 성립된 것으로 한다. ② 미국은 제 국가의 침략으로부터 일본의 안전을 보장한다는 것을 명확히 약속한다. ③ 일본의 방위문제와 미군의 기지사용에 관해서는 미일양국의 사전협의를 필요로 하며 이를 위한 미일공동협의회를 구성한다. ④ 양국 사이에 조인되는 안보조약은 상호공동방위조약으로 한다. ⑤ 대외안전과 국내치안을 분리하는 이원적 방위정책을 고수한다. (한상일, 「전후 일본의 방위정책-미일안보조약을 중심으로」, 『한국정치학회보』Vol.15, No.1. (서울: 한국국제정치학회 1976), p.207.)

28) 五百旗頭眞外, 『戰後日本外交史』, (2000)/조양욱역, 『일본외교 어제와오늘』, (서울: 다락원 2002), p.88.

29) 유엔안보리결의나 미국정부의 공식참전결정 이전에 이미 미군은 한국전선에 투입되어 있었으며 미공군은 일본 다치가와 등의 기지에서 발진하고 있었다. 유엔결의는 사후입법행위에 불과했다.

30) (U) Msg, JCS 84885 to CINCFE, 3 July, 1950; James F. Schnabel, Robert J. Watson, The History of The Joint Chiefs of Staff, The Joint Chief of Staff and National Policy Vol.Ⅲ The Korean War PartⅠ (Historical Division Joint Secretariat Joint Chiefs of Staff, 1978)/ 국방부전사편찬위원회, 『미국합동참모본부사 한국전쟁(상)』 (국방부전사편찬위원회, 1990), p.113 n486

31) Jules Lobel, Michael Ratner, “Bypassing the Security Council: Ambiguous Authorizations to Use Force, Cease-Fires and the Iraq Inspection Regime”, AJIL, vol.93(1999), p.144.

32) 일미행정협정 3조1항. 미국은 시설 및 지역 내에서 시설의 설립, 사용, 운영, 방어 또는 통제에 필요하거나 적절한 권리, 권한 및 권한을 갖는다. 미국은 또한 지원, 방어 및 통제를 위해 해당 시설 및 지역에 대한 접근을 제공하는 데 필요한 해당 시설 및 지역에 인접하거나 인근에 있는 토지, 영해 및 영공에 대한 권리, 권한 및 권한을 보유한다. 본 조에 부여된 권리, 권한 및 권한의 시설 및 영역 밖에서의 행사에 있어서는 경우에 따라 합동위원회를 통해 양국 정부 간에 협의가 이루어져야 한다.

33) 이경주, 「일본 안보관련법의 위헌성과 한반도 평화」, 『안암법학』No.49, (안암법학회 2016), p.12참조

34) 미군에 대한 보급 운송 수리 등의 후방지원활동은 가능하지만, 탄약 등의 보급은 불가능하다. 또한 전투지역에서의 후방활동은 가능하지 않고 비전투지역 즉 현재 전투행위가 일어나지 않고, 자위대의 활동기간 동안 전투행위가 일어나지 않을 것으로 인정되는 지역을 대상으로 하였는바, 사실상 ‘공해’등에서의 후방지원활동이 주된 임무가 되었다. 前田哲男, 「後方地域支援」, 山内敏弘, 日米新ガイドラインと周辺事態法, (法律文化社, 1999年), p.51이하.; 이경주, 「일본 안보관련법의 위헌성과 한반도 평화」, 『안암법학』No.49, (안암법학회 2016), p.13

35) 右崎正博外, 『基本判例憲法』, (法学書院, 1999年), p.7; 이경주, 『평화권의 이해』, (사회평론사, 2014년), p.331; 이경주, 「일본 안보관련법의 위헌성과 한반도 평화」, 『안암법학』No.49, (안암법학회 2016), p.19

36) 2008년 미국공립문서관 자료가 공개되면서 스나가와 사건에 미국이 간섭한 전모가 드러났다. 일본외무성은 2010년 4월 재판 생존자들에게 공개했다. 2014년 4명의 재판생존자들은 도쿄 지방재판소에 재심을 청구했다. 개번 매코맥‧노리마쯔 사또꼬/정영신 역, 『저항하는 섬 오끼나와』, (창비, 2014),

37) Headquarters UNC/USFK/EUSA Command Historian, UNC 1974 Annual Historical Report, (Headquarters UNC/USFK/EUSA), p.16

38) UNC/USFK/EUSA Disposition Form, 20 Dec 75, Subj: UNC Status of Fuchu Air Station, Japan; Headquarters UNC/USFK/EUSA Command Historian, 1975 Annual Historical Report (RCS CINCPAC 5000.4),(UNC/USFK/EUSA,17 June 1976), p.17

39) US CJCS Terms of Reference for Commander UNC, 19 January 1983

40) 外岡秀俊.本田優.三浦俊章, 『日米同盟半世紀:安保と 密約』, (朝日新聞社, 2001)/소토카 히데토시, 혼다 마사루, 미우라 도시아키, 미일동맹:안보와 밀약의 역사, (한울, 2006), pp.194-195

41) UNC/USFK/EUSA Disposition Form, 20 Dec 75, Subj: UNC Status of Fuchu Air Station, Japan; Headquarters UNC/USFK/EUSA Command Historian, 1975 Annual Historical Report (RCS CINCPAC 5000.4),(UNC/USFK/EUSA,17 June 1976), p.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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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등 조짐 보이는 반도체…국제 갈등 고조에 불확실성도 커져

감산 효과·기술 고도화로 메모리 단가 상승…수요 확대 전망은 불확실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자료사진. ⓒ삼성전자
반도체 시장이 꿈틀거린다. 반등에 대한 기대감이 커진다. D램 단가가 2년여 만에 상승 전환하면서 회복론에 무게가 쏠린다. 업계의 감산 공조가 효과를 내기 시작했고, 기술 고도화에 따른 고사양 칩 수요가 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다만, 회복이 더디게 이뤄질 것이라는 시각이 많다. 지정학적 갈등이 고조되면서 국제 정세 불안이 커지고 등 불확실성이 상존하고 있다.

2일 삼성전자 주가는 전날보다 1,100원(1.60%) 오른 6만 9,700원에 거래를 마쳤다. 장중 한때 7만원까지 올랐다. SK하이닉스는 5천원(4.16%) 오른 12만 5,300원에 장을 마쳤다. 반도체 업황이 회복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반도체 기업은 아직 적자를 벗어나지 못한 가운데서도, 적자 폭을 줄여가고 있다. 삼성전자는 올해 3분기 반도체 부문에서 3조 7,500억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상반기에 이어 3개 분기 연속 적자다. 올해 총 적자 규모는 12조 6,900억원에 달한다. 다만, 적자 폭은 1분기 4조 5,800억원, 2분기 4조 3,600억원에서 축소됐다. SK하이닉스의 올해 3분기 적자 규모는 1조 7,920억원으로, 전 분기 2조 8,821억원보다 38% 감소했다.

양사는 공히 실적 개선 배경으로 고부가가치 제품 판매 확대를 꼽았다. 빅데이터 기반 인공지능(AI) 연산이 고도화하면서 고대역폭 메모리(HBM) 수요가 늘고 있다. HBM은 여러 개의 D램을 수직으로 연결해 데이터 처리 속도를 끌어올린 제품이다. 대규모 서버를 운영하는 구글과 아마존웹서비스(AWS) 등이 주요 고객사로 있다. DDR5도 고성능 D램을 대표한다. 기존 DDR4보다 성능을 높인 차세대 제품이다.

다만, 고부가 제품은 상대적으로 시장 규모가 크지 않다. D램 시장에서 HBM 비중은 물량 기준 한 자릿수에 불과하다. 매출 기준으로는 10% 수준으로 추산된다. 시장조사업체 옴디아는 올해 DDR5의 매출 기준 비중을 20%로 전망한다. 아직 주류는 DDR4라는 얘기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D램 평균판매단가(ASP) 상승도 적자 감소에 주효했다고 전했다.

기업들은 반도체 업황이 저점을 지나 4분기, 내년까지 회복세를 이어갈 것으로 기대한다. 삼성전자는 4분기 전망에 대해 “메모리 시장 회복 추세가 가속화하고, 전 분기 대비 가격 상승 폭이 확대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SK하이닉스도 “D램은 생성형 AI 붐과 함께 시황이 지속해서 호전될 전망이고, 낸드도 시황이 나아지는 조짐이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면서 “재고가 줄어든 고객사 중심으로 메모리 구매 수요가 창출되고, 가격도 안정세에 접어들고 있다”고 했다.

DDR4 가격 상승이 반도체 업황 개선 전망에 힘을 싣는다. 시장조사업체 D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PC용 D램 범용 제품인 DDR4 4Gb의 10월 평균 고정거래가격은 전월 대비 15.38% 오른 1.5달러를 기록했다. D램 고정 거래가격이 상승한 건 2021년 7월 이후 2년 3개월 만이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는 4분기 DDR4와 DDR5 가격 상승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했다.

실제 정부 통계에서도 반도체 반등 조짐이 보인다. 전날 산업통상자원부가 발표한 수출입 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반도체 수출액은 전년 동월 대비 3.1% 감소한 89억 4천만 달러로 집계됐다. 감소세가 시작된 지난해 8월 이후 가장 낮은 감소율이다. 올해 1분기 저점 이후 점차 회복하는 추세다. 반도체 수출 감소율은 지난해 4분기 25.8%, 올해 1분기 40%, 2분기 34.8%, 3분기 22.6%를 기록했다.

정부는 반도체 수급 상황이 개선되고 있다고 보는 근거로 업계의 감산 확대와 AI 서버용 고부가 제품 수요 확대, 스마트폰 신제품 출시를 들었다.

증권가도 업황 개선을 점친다. 키움증권은 삼성전자가 4분기 D램에서 흑자 전환하고, 낸드도 적자 폭이 축소될 것으로 내다봤다. 스마트폰과 PC용 메모리 가격 상승세를 전망하면서 “메모리 업황이 회복세에 접어들면서 공급자 우위의 가격 협상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한화투자증권은 SK하이닉스가 4분기 흑자 전환할 것으로 예측했다.

 

 

 

SK하이닉스 HBM3 자료사진. ⓒSK하이닉스

지정학적 갈등·세계 경기 회복은 여전히 불확실

업황 반등을 공급과 수요로 나눠서 볼 필요가 있다. 공급 측면에 기인한 메모리 가격 상승 전망에는 대체로 의견이 모인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마이크론 등은 이르면 지난해, 늦어도 올해 4월부터 감산에 돌입했다. 수요 감소에 따른 가격 하락을 방어하기 위해서다. 최근의 가격 상승은 주요 기업 감산이 상당 부분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된다. 하나증권은 전날 보고서에서 “공급 업체의 강도 높은 감산과 낮아진 가격이 고객사 재고 확보를 자극했을 것으로 추정된다”면서 “향후에도 해당 기조가 유지될 것으로 전망되는 만큼 메모리 업황의 방향성과 업체들의 실적 개선 가시성은 확보됐다고 판단한다”고 밝혔다. 유안타증권도 “메모리 공급 업체의 감산으로 4분기부터 재고 감소세가 확대될 것이라는 점은 가격 상승 탄력도를 높여 나갈 것”이라고 했다.

기업들은 감산 기조를 이어갈 방침이다. 김재준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 부사장은 3분기 실적 컨퍼런스콜에서 “내년에도 업계의 일부 선별적인 감산이 이어질 것”이라며 “지난해 하반기부터 이어진 시설투자 축소 현상을 감안하면 업계 비트그로스(비트 단위로 환산한 생산량 증가율) 성장률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삼성전자는) 빠른 시간 내 재고 정상화를 구현하기 위해 추가 선별적인 생산 조정 등 필요한 조치를 지속적으로 실행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SK하이닉스도 “감산 원복은 재고 수준과 시장 상황에 맞춰 점진적으로 진행될 예정”이라며 당분간 감산 기조를 유지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문제는 수요다. 서버와 스마트폰, PC 고객사가 재고 소진에 대응하는 측면 외에 추가적인 수요가 얼마나 늘어날지가 관건이다. 빅데이터와 AI 기술이 발달하고 스마트폰과 PC 성능이 높아지면서 고부가 제품 수요가 증가하는 건 긍정적이다.

다만, 불확실성이 상존하고 있다는 시각이 많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전날 ‘호황과 불황을 지나 다시 활력을 되찾고 있는 반도체 산업’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업황 회복 조짐을 전하면서도 “2020년의 광란(반도체 슈퍼사이클)으로 즉시 복귀할 것이라고 보는 경영진은 거의 없다”고 전했다. 트렌드포스도 “공급 업체가 4분기에 공격적으로 가격을 인상하는 반면, 내년 상반기 수요 전망은 보수적이고 불확실하다”고 진단했다.

지정학적 갈등이 고조되는 상황이 회복을 더디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미국과 중국은 기술 패권 경쟁 속에 상호 경제 제재를 강화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이어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전쟁으로 중동 정세도 불안하다. 한국 반도체 수출 주요 시장인 중국의 경기 반등도 기대와 달리 미진하다. 스마트폰 교체 주기가 길어지고 있는 점도 부담이다. 업황 회복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업계의 감산 공조가 전제돼야 한다는 분석이 나오는 배경이다.

유진투자증권은 SK하이닉스 실적 관련 보고서에서 “지정학적 불확실성 속에 메타·스냅·월풀·마스터카드 등 기업의 4분기 소비 둔화 경고를 감안할 때, 리스크 관리가 필요한 국면”이라고 했다.

반도체 업황이 다시 고꾸라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하이투자증권은 전날 보고서에서 삼성전자 목표 주가를 기존 9만 5천원에서 7만 7천원으로 낮추면서 “경기선행지표 하락에 따라 주가순자산비율(PBR)이 조만간 하향할 것으로 판단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6개월 이후의 반도체 업황을 알려주는 경기선행지표가 곧 떨어질 것으로 보인다는 게 하이투자증권 설명이다. 하이투자증권은 “경기선행지표가 조만간 하락세로 전환한다면, 이는 내년 중순경 반도체 수요와 업황이 둔화할 것이라는 강력한 신호인 것으로 해석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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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의 메가서울'이 '신의 망수'가 될 수도 있는 이유

[박세열 칼럼] 행정수도·뉴타운은 盧·李 '새인물'과 등장해 성공…윤석열은?

박세열 기자  |  기사입력 2023.11.04. 05:02:04

 

대통령의 국정 기조를 바꾸는 게 총선 필승 전략이라고 모두가 친절하게 조언하는데, 쉬운 길을 가지 않고 새 전략이라고 내놓은 게 경기도 김포시 서울 편입이다. 답안지가 틀렸다. 서울 확장 전략은 2002년 충청 수도 이전과도, 2008년 뉴타운 개발 광풍과도 다르다.

 

'부울경 메가시티'를 보면 간단하다. 부산, 울산, 경남 3개 시도는 부울경 메가시티를 내세운 민주당에 표를 주지 않았다. 작년 6월 지방선거 이후 들어선 부울경 국민의힘 지방 정부 세 곳은 같은 해 10월 부울경 초광역 경제동맹을 결성하기로 합의하면서 '메가시티'를 좌초시켰다. 그래도 부울경 시민들은 잘 살고 있다.

 

'서울'이란 이름값은 다를 거라 생각하는 모양이다. 과연 그럴까? 행정구역 변경은 뉴타운이나, 수도 이전보다 더 쉽다고 국민의힘 스스로 설명하고 있다. 왜 쉬울까? 뉴타운이나 수도 이전처럼, 대규모 자원이 투입되는 도심 개발도, 신도시 건설도 아니기 때문이다. '서울' 레테르를 붙이면 집값이 오른다? 지도에서 김포시의 모양과 위치를 확인하자. 집값은 서울 도심과의 물리적 거리로 결정된다. 물리적 거리를 상쇄할 수 있는 유일한 조건은 '교통'이다. 서울로 편입된다는 '기대감'으로 집값 상승 효과는 일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교통 인프라가 획기적으로 변하지 않는다면, 우린 이런 걸 '거품'이라고 부른다. 

 

남는 건 집값 욕망을 부추기는 정부와 집권 여당의 철지난 레파토리다. 물론 선거에서 '파괴력'은 있을 것이다. 아파트값(상승 기대감을 포함해)과 선거 득표수는 여의도 정치공학의 검증된 팩트이자, 오래된 격언이니까.

 

그럼에도불구하고, 이런 '선거 공학'이 효과를 발휘하려면, 집권 세력의(특히 대통령의) '변화'에 대한 기대감이 수반돼야 한다. 2002년 행정수도 이전은 노무현이라는 새 인물과 함께 등장했고, 2008년 뉴타운 광풍은 이명박이라는 새 인물과 함께 등장했다. 지금 '메가시티 서울'과 함게 등장할 '새 인물'은 있나? '심판론'과 '지원론' 사이에 낀 집권(당선) 3년차(내년 총선 기준) 대통령이 있을 뿐이다. 

 

이명박이 노무현의 행정수도 이전을 뒤집으려던 게 집권 2년차였다. 그걸 막고 '세종시 원안 플러스 알파론'을 내세워 '세종시 개발론'으로 받아친 건 새로운 주자 박근혜였다. 문재인 정부가 추진한 부울경 메가시티가 좌초한 것은 '새 인물' 윤석열의 등장과 함께였다는 것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단순히 '개발 공약=득표'로 보기에, 선거공학이란 건 생각보다 복잡한 방정식이다. 

 

 

 

김포가 서울 되면 출퇴근 거리가 줄어드나?

게다가 너무 앙상하다. 김기현 대표가 지난 30일 김포 서울 편입 발언을 한 장소는 김포골드라인을 관리하는 김포한강차량기지에서 연 수도권 신도시 교통대책 마련 간담회에서였다. 수도권 교통대책 마련을 위한 자리인데, 갑자기 "이 도시(김포)에서 출퇴근하는 인구의 85% 정도가 서울로 출퇴근을 한다"(유의동 정책위의장)는 발언이 나오더니, 김포 서울 편입론으로 단번에 도약한다. 

 

팩트부터 틀렸다. 85%라는 숫자는 김포골드라인 탑승객의 서울 하차 인원 비율이다. 이용객은 대부분 출퇴근 목적이겠지만, 김포 전체 출퇴근자의 85%가 마치 서울에 출퇴근하는 것처럼 사안을 교묘하게 비틀었다. 그러자 서울 편입론의 근본 원인이 교통 문제인 듯, 대부분의 언론이 '김포 출퇴근 인구의 85%가 서울로 출퇴근한다'는 말에 주목했다. <조선일보>마저 사설에 "김포시 주민의 85%가 서울로 출근하는 등 위성도시와 서울은 단일한 생활권을 형성하고 있다"고 오보를 냈다. 실제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김포시 인구 중 서울로 출퇴근(통학 포함)하는 비율은 12.7%다. 48만 명 중 약 6만 명이다. 

 

85%가 서울로 출퇴근한다는 게 김포를 서울로 만드는 근거가 될 수도 없다. 김포가 서울이 되면 출퇴근 거리가 줄어드나? '서울이 된 김포'에서 서울로 이동하는 것과 '경기도 김포'에서 서울로 이동하는 것은 다른 일인가? 서울대학교에 입학하는 방법이 있다. 모든 대학의 이름을 '서울대'로 바꾸면 된다. 

 

논란이 일자 김병수 김포시장은 "서울 편입은 경기북부특별자치도의 설립준비 과정과 발맞춰서 준비한 것이기 때문에 교통 문제랑 관계없다"(YTN 인터뷰)고 간단히 부인해버린다. 자, 우여곡절 끝에 교통 문제를 제하고 나니 '정략'만 남는다. 

 

두 가지다. 첫째, 집값 상승 부추기기. "서울 편입을 통한 집값 상승 기대심리를 자극해 반전을 꾀하겠다"(동아일보, 여권 관계자), "메가 서울 이슈는 경계 도시 사람들의 (집값 상등의) 오래된 욕망, 니즈를 읽은 것"(같은 신문, 국민의힘 관계자)이라고 흥분한다. 둘째, 민주당 소속 김동연 경기도지사의 '경기북도 구상'에 제동 걸기. 김병수 시장은 "북도와 남도로 나누어지면, 남도로 가도 그렇고 북도로 가도 그렇고 사실상 또다시 고립되는 섬 지역이 된다. 실제로 지금도 남도나 북도 쪽 교류보다는 서울로 교류를 많이 하고 있다. 그래서 지리적으로 인접해 있는 서울로 편입하는 게 김포시민들의 편익을 더 높이는 데 도움이 되겠다"고 했다. 민주당과 민주당 소속 광역단체장에 날린 견제구다.

윤석열 대통령의 입장은 무엇인가? 

 

그렇다면 우선 많은 질문들에 대해 답해야 한다. 

 

먼저 김포의 서울 편입인가, 서울의 김포 흡수인가? 희한하게도 서울시장이 아니라, 김포시장이 서울이 가질 수 있는 '메리트'를 세일즈하고 있다. 국민의힘은 서울이 바다를 품고, 서울에 항구를 만든다고 하는 원대한 계획을 말하면서 '김포가 서울에 편입된다'고 주체를 뒤집어 놓는다. 하지만 이런 논리는 서울이 김포를 흡수하는 걸 전제로 한다.

 

'흡수'가 아니라면 '편입'을 말하며 서울 '메가시티론'을 운운하면 안된다. 보수, 진보 정부를 막론하고 민주화 이후 모든 정권이 추구한 '지방 균형 발전'의 당위성과 대전략을 어떻게 수정할지 일언반구 없으면서 서울을 '메가시티'로 만들겠다고 한다면 최소한 대통령의 대국민 설명이 필요한 일이다. 

 

서울에 항구를 만든다는 구상은 어떤가. 이미 인천항이 존재하는데, 북한 바로 밑에 '서울항'을 조성하는 게 효율적인가? 김포의 바다는 북한과 맞닿아 있다. 그 끝자락엔 북한과 1.2Km 떨어진 '애기봉'이 있다. 지난 2010년엔 북한의 타격 1순위로 예상됐던 곳이다. 만약 북한이 도발하며 '서울시 애기봉'을 때리면 어떻게 할 것인가? 김포를 서울로 편입하고자 한다면, 최소한 접경지역에서 상호 적대적 군사 행위를 자제하자는 남북간 9.19군사합의를 뒤집으면 안된다.

 

'서울 공화국' 논란도 피할 수 없다. 당장 대구시장 홍준표는 "윤석열 대통령이 지방화 시대 국토균형발전을 가장 중요한 정책으로 삼고 연일 회의를 열고 있는 마당에 이미 메가시티가 된 서울을 더욱 비대화 시키고 수도권 집중 심화만 초래하는 서울 확대 정책이 맞느냐?"라고 반발했다. 김포 뿐 아니라, 광명, 과천, 구리, 하남 등을 포함해 서울을 '메가시티'로 만들자고 하면서 대통령이 "지방에 기업이 오면 파격적 인센티브를 주겠다"고 말하는 건 모순이다.

 

메가시티 논의는 부울경 메가시티처럼 서울 일극화의 한반도에서 '다극화'를 통해 지역을 살리자는 취지로 나온 개념이다. 그런 '메가시티' 논의를 서울을 확장시키자는 데 갖다 붙이는 건 염치의 문제다. 

 

남는 건 김포의 넓은 부지를 '서울처럼' 개발하자는 개발업자들의 논리, 그리고 '김포의 땅값과 집값이 서울처럼 오를 것'이라는 망국적 부동산 투기업자들의 욕망이다. 다른 무엇보다도, 집값 상승의 욕망을 부추겨 시민들을 갈라치기 하고 지방을 소외시키는 정책을 집권 여당이 추진하는 게 대체 맞는 일인가? 

 

보수 논객들과 국민의힘은 이를 '신의 한수', '김기현의 승부수'라고 극찬하며 민주당에 '김포 서울 편입론과 메가시티 서울에 대한 입장이 뭐냐'고 묻고 있지만, 그보다 먼저 물어야 할 대상이 있다. '지방 시대'를 선언한 용산과 윤석열 대통령이다. 서울 메가시티 구상에 대한 윤석열 대통령의 입장은 무엇인가? 

 

▲윤석열 대통령이 2일 대전시 유성구 대전컨벤션센터에서 열린 2023 지방시대 엑스포 및 지방자치·균형발전의 날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세열

정치부 정당 출입, 청와대 출입, 기획취재팀, 협동조합팀 등을 거쳤습니다. 현재 '젊은 프레시안'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쿠바와 남미에 관심이 많고 <너는 쿠바에 갔다>를 출간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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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총선, 탄핵선거 자초한 윤석열‥진짜 ‘탄핵 총선’될까?

  • 강호석 기자
  •  
  •  승인 2023.11.03 18:22
  •  
  •  댓글 0
 

▲윤석열 대통령이 1일 서울 마포구 한 카페에서 열린 제21차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이 본인 입으로 ‘내년 선거에서 자신을 탄핵하려면 하라’고 말했다. 21차 비상경제민생회의 모두 발언에서 건전재정 기조를 설명하면서다.

3일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회에서 정청래 의원은 역대급 실언이라며 “내년 선거 때 ‘윤석열 탄핵’이라는 말을 품고 투표장에 나가지 않을까”라고 비꼬았다.

서영교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도 자신이 걱정되는 모양”이라며, “우리(민주당)는 제 입으로는 이야기하지 않았는데, 윤 대통령이 한 말을 되뇌는 것”이라고 ‘탄핵 총선’을 언급했다.

손솔 진보당 대변인은 윤 대통령의 탄핵 발언을 언급하며 국민의 인내심이 한계치에 다다랐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이 말한 ‘탄핵 총선’이 되려면 범야권이 200석 이상을 확보해야 한다. 이렇게만 되면 대통령 탄핵소추와 개헌이 가능해진다.

양곡관리법, 간호법 등에 대한 대통령 거부권도 이제 의미가 없어진다. 대통령이 특정 법안에 거부권을 행사하더라도 국회의원 3분의 2(200명) 이상이 찬성해 재의결하면 법률로서 확정되기 때문이다.

탄핵 총선은 가능할까?

수도권에서 퇴진투쟁이 고조되고, 국민 의사를 제대로 반영하는 선거제도만 마련되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실제 여론조사에서 윤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대해 줄곧 60% 이상이 부정평가를 내리고 있다. 긍정 평가는 겨우 30% 수준이다.

‘병립형 비례대표제’와 위성정당 도입을 반드시 막겠다고 공언한 이탄희 민주당 의원은 지난 1일 MBC 라디오에서 “우리 당 최대 목표는 (국민의힘을) 100석 이하로 최대한 내리는 것”이라고 했다. 민주당을 비롯한 범야권이 200석 이상을 얻겠다는 말이다.

같은 날 정동영 민주당 상임고문도 KBC광주방송에 출연해 “수도권을 석권하면 200석 못 하리라는 법도 없다”며 “수도권도 준비돼 있다는 걸 강서에서 보여준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윤희숙 진보당 상임대표는 “내년 22대 총선은 윤석열 정권을 심판하고 완전히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드는 선거”라며 개헌 총선을 시사한 바 있다.

특히 노조법 2,3조 개정안 국회 통과를 앞둔 250만 양대노총 조합원과 양곡관리법 개정이 절박한 농민에게 총선에서 ‘거부권 행사’ 저지선을 확보하는 문제는 무엇보다 절실해진 시점이다.

 강호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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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탄핵 범국민운동부’ 결성 초읽기···종교·시민단체, 정당 뜻 모아

  • 분류
    아하~
  • 등록일
    2023/11/03 09:57
  • 수정일
    2023/11/03 09:57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윤석열 탄핵 범국민운동부’ 결성 초읽기···종교·시민단체, 정당 뜻 모아

 

김영란 기자 | 기사입력 2023/11/02 [18:38]
  •  
 

  © 촛불행동

 

종교·시민단체와 정당이 ‘윤석열 탄핵 범국민운동본부’(탄핵운동본부) 결성에 뜻을 모았다.

 

지난 1일 오후 2시 국회의원회관 제2간담회실에서 탄핵운동본부 결성을 위한 간담회가 열렸다.

 

간담회에는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촛불행동, 열린민주당, 국민주권당(준), 사회민주당(준)이 참석했으며, 투명사회를 만드는 시민들의 모임, 더 좋은 민주당을 만들기 위해 당원의 권리를 실천하는 당원 모임(더민실), 더민주혁신회의, 기본소득당 등이 참관했다.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과 촛불행동은 윤석열 퇴진 투쟁을 완강하게 전개하고 있으며, 국민주권당(준)과 사회민주당(준)은 ‘윤석열 탄핵’을 전면에 내걸고 있다. 

 

김용민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도 이날 간담회를 찾아와 윤석열 탄핵에 공감을 표했다.

 

  © 촛불행동

 

간담회에 참석한 단체와 정당은 오는 18일 촛불행동이 주최하는 전국 집중 ‘윤석열 퇴진! 김건희 특검! 촛불대행진’에서 탄핵운동본부 발족 행사를 열기로 결의했다.

 

 

참가자들은 ▲‘윤석열 탄핵 100만 범국민선언’ 진행(현재 32만 9천여 명 참여) ▲국회의원 전원에게 ‘윤석열 탄핵에 관한 입장을 묻는 공개질의서’ 발송 ▲윤석열 탄핵의 정치 여론 확산을 위한 대토론회 개최 ▲촛불대행진에서 시민들에게 ‘탄핵 추진 사업 경과보고’ 등을 탄핵운동본부의 사업으로 결정했다.

 

그리고 이날 간담회에서는 탄핵운동본부 구성과 관련한 논의가 있었다.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과 촛불행동의 대표가 상임본부장을 맡고, 참가단체의 대표가 공동본부장을 맡는 것으로 윤곽을 잡았다, 현재 참가 의사를 밝힌 국민주권당(준)·사회민주당(준)·열린민주당의 대표가 공동본부장이며, 이후 공동본부장은 더 늘어날 전망이다.

 

권오혁 촛불행동 공동대표는 2일 본지와 전화 통화에서 탄핵운동본부를 만드는 이유를 “각계각층의 힘을 모아 윤석열 탄핵 운동을 벌이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이어 “윤석열 탄핵에 공감하는 단체나 정당 모두 함께 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이어 11월 둘째 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탄핵운동본부 결성 취지와 사업 등을 발표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동안 단체와 정당이 각각 윤석열 심판·퇴진·탄핵 투쟁을 벌여왔는데, 탄핵운동본부가 이런 투쟁을 하나로 모아내는 데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 촛불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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