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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들, 왜 떨어져 죽었나” 사과 한마디 없는 건설사서 울부짖은 노모

노동시민사회, 시민대책위 구성…중대재해처벌법 시행 후 사망자만 8명 나온 DL이앤씨에 진상규명 및 공개 사과 요구

지난 8월 부산의 한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추락해 숨진 고 강보경 이십대 노동자의 어머니가 4일 서울 종로구 DL이앤씨 본사 앞에서 열린 디엘이앤씨 중대재해 근절 및 고 강보경 일용직 하청노동자 사망 시민대책위원회 발족 및 투쟁 선포 기자회견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 2023.10.04 ⓒ민중의소리
지난 8월 11일 부산 연제구 한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일하던 일용직 하청노동자 고 강보경(29) 씨가 거실 창호 유리를 교체하는 작업 중 아파트 6층(높이 20m) 아래로 떨어져 숨졌지만, 사건 발생 후 두 달이 다 되어가도록 사측은 유가족에게 사과조차 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4일 드러났다.

이 현장의 원청 건설사는 ‘e편한세상’ 건설사로 잘 알려진 DL이앤씨다. DL이앤씨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부터 1년 반 동안 사망자만 8명이 나온 건설사로, 강 씨는 그중 8번째 희생자였다. 고인의 노모는 회사 본사를 찾아가 “DL이앤씨는 지금이라도 사과하라”며 억울한 심경을 토해냈다.

민주노총 건설노조, 김용균재단,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등 28개 노동시민사회단체는 이날 서울 종로구 DL이앤씨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DL이앤씨 중대재해 근절 및 고 강보경 일용직 하청노동자 사망 시민대책위원회(시민대책위)’ 출범을 선언했다. 이들은 DL이앤씨를 향해 진상 규명과 공개 사과, 재발방지책 등을 촉구하며 이를 위한 활동을 이어 나가겠다고 예고했다. 기자회견에는 고인의 유가족도 함께했다.

유가족에 따르면, 사측은 강 씨의 사고 경위에 대해 어떠한 설명도 하지 않았다. 빈소에는 원청은 물론 하청업체 책임자도 찾아오지 않았고, 사측 노무사는 경황이 없는 유족에게 위로금을 운운하며 합의를 종용하기에 급급했다. 유가족은 여전히 강 씨가 왜 목숨을 잃게 됐는지, 수사는 제대로 되고 있는지 알지 못하는 상황이다.

강 씨의 친누나인 강지선 씨는 동생의 죽음을 감추기에 급급했던 사측의 태도를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지선 씨는 “동생이 하늘나라로 떠난 뒤 현장 답사를 갔다. 아파트 6층 사고 장소를 직접 보고 싶다고 했으나 잠금장치를 걸어두고 보여주지 않으려고 했고, 현장을 둘러보며 사진을 찍고 싶다고 했으나 정당한 이유 없이 찍지 못하도록 제지당했다”며 “(당시 현장은) 3인 1조라는 말에 동료들을 만나고 싶다고 했으나 연락처를 알려줄 수 없다고 했고, 근로계약서상 기초안전보건교육을 8시간 받았던 이수증 사본이 있다고 했지만 이수증 사본은 주지 않았고, 경찰도 이수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고 전했다.

또한 “(사측은) 안전모, 안전벨트 등 안전 장비를 지급했지만, 본인이 장비를 착용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사고 장소 6층에는 안전벨트를 걸 고리조차 없었고 안전망 하나도 없었으며 착용했던 안전모를 보여달라는 말에 (사측은) 찾기 힘들다고 했다. 경찰도 가지고 있지 않다고 했다”며 “사측과 처음 만났을 때 친인척은 몇 명 오는지, 친인척이 어떤 일을 하는지 물어보면서 필요한 서류부터 요구한 것이 매우 불쾌했다. 동생 사고 상황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답답한 마음에 간 현장 답사였는데 경찰의 말과는 너무 달라서 화가 났다. 사고를 작게 덮기 위해 유가족에게 거짓말을 늘어놓은 것”이라고 분노했다.

지선 씨는 “6층 사고 장소는 누가 올라가더라도 죽을 수 있는 위험한 장소였다. 안전장치 하나 없었다”며 “DL이앤씨 마창민 대표는 얼마나 멀길래, 얼마나 바쁘길래 장례식장에 오지 못했나. 전화 한 통 못했나. 어머니에게 직접 죄송하다고 사과하길 바란다”고 호소했다. 

고인의 어머니인 이숙련 씨는 “매일매일 현관만 바라보면 아들의 모습이 아른거린다. 이 세상 모든 것들이 내 자식의 얼굴로 보인다”며 “아들은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같이 전화해 어머님은 무엇을 잡수셨는지, 오늘 하루는 어떠셨는지 물었다. ‘엄마, 사랑해요’라는 음성이 매일 같이 생각나 우리 집은 울음바다가 된다”고 통곡했다.

숙련 씨는 “엄마는 가슴을 치고 또 친다. 너무 가슴이 아프다”며 “회사의 잘못이 많으니, 엄마 앞에 와서 꼭 무릎 꿇고 빌길 바란다. 두 달 넘도록 전화 한 통 하지 않지만, 지금이라도 죄송하다고 빌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후 숙련 씨는 DL이앤씨에 유가족 입장문을 전달하기 위해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아들의 영정을 꼭 끌어안은 숙련 씨는 이렇게 외쳤다.

“내 아들 살려내세요. 내 아들 살려내세요. 안전고리도 하지 않고, 밑에 그물도 설치 않고, 너무나 억울하게 갔습니다. 여기 회사의 잘못으로 우리 아이는 영영 가고, 이젠 음성도 들을 수 없습니다. 매일 하루에 한 번씩 전화하던 내 아들을 왜 이렇게 억울하게 죽게 만들었는지 정말 알고 싶어요. (중략) 이 엄마의 가슴은 찢어지도록 아픕니다. 이 억울한 심정을…지금이라도 와서 무릎 꿇고 비세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후 1년 반 동안 사망자만 8명
강 씨 유족들, 5일부터 DL이앤씨 앞에서 1인 시위

 

지난 8월 부산의 한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추락해 숨진 고 강보경 이십대 노동자의 유족들과 시민사회 관계자들이 4일 서울 종로구 DL이앤씨 본사 앞에서 디엘이앤씨 중대재해 근절 및 고 강보경 일용직 하청노동자 사망 시민대책위원회 발족 및 투쟁 선포 기자회견을 마친 뒤 진상규명과 재발 방지대책을 요구하는 입장문을 전달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2023.10.04 ⓒ민중의소리

강 씨의 죽음 이전에도 DL이앤씨 현장에서는 6번의 사고로, 7명의 노동자가 숨졌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에 벌어진 일만 따져도 이 정도다.

지난해 3월에는 서울 종로구 건설현장에서 전선을 내리는 작업을 하던 중 전선을 감아두는 전선 드럼에 맞아 노동자가 사망하는 일이 있었고, 불과 한 달 뒤 경기도 과천에서는 굴착기와 철골 기둥 사이에 끼이는 사고로 노동자가 숨졌다. 같은 해 8월에는 경기도 안양시 건설현장에서 펌프카 작업대가 부러져 이에 맞은 노동자 2명이 깔려 숨졌고, 10월에는 광주시에서 크레인 붐대에서 미끄러져 추락한 노동자가 숨졌다.

올해 7월에는 경기도 의정부시에서 콘크리트가 무너지는 사고가 발생해, 노동자가 건설장비에 깔리는 사고로 숨졌다. 강 씨 사고 직전에는 철거업체 소속 노동자가 지하 전기실 양수 작업 중 물에 빠져 숨졌다.

반복되는 중대재해에 고용노동부는 지난 7월 DL이앤씨의 전국 모든 시공 현장을 일제 감독했다. 그 결과 DL이앤씨의 61개 건설현장에서 209건의 위반 사항이 적발됐고, 약 3억 8천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하는 조치를 취했다. 하지만 이후에도 사망사고는 계속 이어졌다. 시민대책위는 제대로 된 책임자 처벌이 이뤄지지 않은 것을 원인 중 하나로 지목했다.

시민대책위는 “DL이앤씨는 7건의 사망사고와 관련해 아직 한 건도 송치되지 않았고 관련 기관은 여전히 수사 중이라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며 “노동현장에서 연이어 사망사고가 발생하는데도 불구하고 늑장 수사와 늑장 기소로 책임자가 처벌받지 않는 환경을 조성하고 있다. 연쇄 사망사고에도 처벌하지 않는 수사당국의 태도가 DL이앤씨에서 중대산업재해가 끊이지 않는 이유”라고 지적했다.

시민대책위는 “DL이앤씨의 반복적인 중대재해 발생에 대해 DL그룹 차원의 실효성 있는 근본 대책을 수립하고 공개하라”며 “고용노동부는 7건의 중대재해에 대한 수사 진행 및 송치 관련 상황을 밝히고 최고 책임자를 수사, 처벌해야 한다. 검찰 역시 7건의 중대재해에 대한 수사 지휘 및 기소 관련 상황을 밝히고 최고 책임자를 기소, 처벌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한편, 유가족과 시민대책위는 5일부터 DL이앤씨 앞에서 1인 시위를 이어갈 예정이다. 고용노동부 국정감사가 예정된 내주에는 국회 기자회견과 추모 문화제 등을 계획하고 있다. DL이앤씨 마창민 대표이사도 국정감사 증인으로 채택돼 있어, 반복되는 중대재해에 대한 질의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8월 부산의 한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추락해 숨진 고 강보경 이십대 노동자의 유족들과 시민사회 관계자들이 4일 서울 종로구 DL이앤씨 본사 앞에서 열린 디엘이앤씨 중대재해 근절 및 고 강보경 일용직 하청노동자 사망 시민대책위원회 발족 및 투쟁 선포 기자회견애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3.10.04 ⓒ민중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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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안게임 남자축구 중국 응원, 여론조작 의혹 얼마나 될까

  •  노지민 기자 
  •  
  •  입력 2023.10.04 07:56
  •  
  •  댓글 1



 

[아침신문 솎아보기] 중국 축구팀 응원 많았던 포털 ‘여론조작’ 주장한 속내?

잇따른 김행 여가부장관 후보 논란, 여당 ‘청문회 불참’ 선언

항저우아시안게임 남자축구 한중전이 열린 1일, 포털사이트 다음에서 중국 응원 비율이 압도적으로 많게 나타난 것을 두고 여권이 ‘여론조작’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3일엔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국민의힘 간사인 박성중 의원이 “중국 인터넷주소(IP)를 우회해 사용하는 북한의 개입까지 의심해볼 수 있는 상황”이라며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했고, 대통령실 관계자도 출입기자들과 만나 “그런 우려에 타당성이 있다”고 힘을 실었다.

▲2023년 10월4일자 주요 종합일간지 1면

한국 포털 서비스에서 상대국 응원 비율이 압도적인 현상은 인위적으로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있지만, 이를 ‘중국발 여론조작’으로 몰아가는 것은 무리라는 분석이 나온다. 국민일보는 상대국 응원 비율이 높았던 사례는 이전에도 있었다며 이번 사례도 그 연장선에서 봐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고 했다. 실제 다음이 2일 클릭응원 서비스를 중단하기 직전 집계된 응원 비율을 보면 △9월13일 한국-사우디아라비아 친선 축구경기 당시 한국 48%(사우디아라비아 52%) △9월28일 한국-키르기스스탄의 아시안게임 남자축구 16강전 한국 15% △지난해 9월 한국-카메룬 친선 축구 경기 때 카메룬 응원 비율이 80%대 △10월4일 예정인 한국-우즈베키스탄 아시안게임 남자축구 4강전 응원 비율은 지난 2일 기준 우스베키스탄 96%, 한국 4% 등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국민일보는 다만 “이번 사태로 다음의 클릭 응원 서비스가 지닌 허점이 고스란히 노출”됐고, “급격한 클릭수 증가는 매크로 프로그램을 사용하지 않고서는 힘들다는 게 IT업계의 진단”이라고 했다.

현재까지 여권도 중국 등이 ‘여론’을 흔들고자 조작에 나섰다는 근거나 정황은 제시하지 못하고 있지만, 공세 수위는 높아질 전망이다. 동아일보에 따르면 방통위 핵심 관계자가 “방통위는 다음 측에 자료 제출을 요구했으며, 필요하면 현장 실사도 검토할 수 있다”고 밝혔고, 대통령실 관계자는 “친중 여론을 조성해 선거에 영향을 끼치려는 시도가 있다면 이는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이라고 말했다. 동아일보를 비롯해 세계일보, 조선일보 등 다수 언론도 여권 주장에 기반해 이번 논란을 전하고 있다.

▲2023년 10월4일자 국민일보 기사

다만 서울신문의 경우 “국민의힘이 ‘포털 목줄 잡기’에 나섰다는 시선도 있다”는 지적을, 한국일보는 “국민의힘의 이 같은 행보는 11일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와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형성될 여론 지형을 의식한 것으로 풀이된다”는 해석을 더했다.

그러나 정작 두 신문의 사설도 ‘여론조작’ 대응을 촉구하고 나섰다. 서울신문 사설(포털 ‘다음’ 장악한 중국 응원, 예사로 볼 일 아니다)은 다음의 클릭응원 서비스 중단이 “여론 조작을 인정한 셈”이라며 진상규명을 주장했다. 한국일보 사설(여론개입 시도 위험 보여준 중국응원 국내 포털)은 “조작된 인터넷 반응이 다수 여론인 것처럼 포장돼 공적 판단력을 왜곡시키는 것보다 위험한 민주주의 파괴는 없다. 그 사안이 국익과 관련됐을 경우 문제의 심각성은 치명적”이라며 실태 점검과 제도 개선을 요구했다.

조선일보 사설(92%가 中 축구 응원하는 포털 여론, 조작 방지 대책 시급)은 한 발 더 나아가 북한의 조직적 여론조작 가능성을 제기하면서 “국회에 발의된 인터넷 댓글에 국적이나 접속 국가 표시를 의무화하는 법안을 포함해 인터넷 실명제 강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잇따른 김행 여가부장관 후보 논란, 여당 ‘청문회 불참’ 선언

▲2023년 10월4일자 중앙일보 기사

국민의힘이 3일 김행 여성가족부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 참석하겠다던 기존 입장을 바꾸고 청문회에 불참하겠다고 밝혔다. 지난달 27일 민주당 등 야당 의원들이 참석한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회의에서 5일 김행 후보자 청문회 일정을 의결했고, 국민의힘은 이에 대한 사과와 재발방지를 요구하고 있다.

경향신문은 “여당이 불참으로 입장을 선회한 것은 오는 11일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김 후보자에 대한 의혹이 청문회를 통해 증폭되는 걸 방지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 된다”며 “민주당은 청문회 일정을 예정대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고 했다. 중앙일보의 경우 “여야가 5일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김행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격돌한다”면서 이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체포동의안 가결 여파로 ‘친명계’로 재편된 민주당 원내지도부와 국민의힘 원내지도부 간 첫 맞대결”로 규정했다.

한겨레는 <김행, 국외연수 3년간 급여 최소 1억6천만원 챙겨> 기사에서 “김행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가 “연수중일 때라 소셜뉴스(위키트리 운영사)와 관련이 없었다”고 밝힌 3년 동안 자신이 창업한 소셜 뉴스로부터 최소 1억6000여만 원의 급여를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경향신문 <김행 재직 기간 위키트리, 출산 휴가·육아휴직 관련 취업규칙 누락> 기사는 “(김 후보자가) 창업한 인터넷 매체 위키트리가 출산 전후 휴가, 육아휴직 등 노동자의 일 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사항을 취업규칙에 명기하지 않아 고용노동부의 시정지시를 받았던 것으로 3일 확인됐다”며 “성평등 및 일 가정 양립제도 마련과 문화 확산의 핵심 부서인 여가부와는 결이 맞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고 보도했다.

 

이재명 대표 영수회담 요구에 대통령실 “입장 없다”

 

▲2023년 10월4일자 경향신문, 국민일보, 조선일보 사설 제목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영수회담 제안을 둘러싼 정치권 공방이 추석 연휴 내내 이어졌지만 대통령실은 3일 “입장이 없다”고 대응했다. 윤 대통령은 취임 이래 이재명 대표를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 4일자 주요 일간지 사설의 경우 대부분 협치가 복원돼야 한다는 점에선 이견이 없지만, 영수회담 제안에 대한 평가나 제시하는 해법에는 온도차가 있다.

한겨레 사설(윤 대통령, 이재명 민주당 대표 만나라)은 “(대통령은) 그간 국회에서 통과시킨 법안에 윤 대통령이 두 차례나 거부권을 행사하고, 국무위원들에게는 야당과 맞서 싸울 것을 주문했다”며 “여권이 진정으로 민생을 염려하고 정치 복원을 바란다면, 더 이상 윤 대통령과 이 대표의 만남을 피하거나 훼방 놓아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경향신문 사설(정치·민생 힘 쏟자는 영수회담, 윤 대통령도 응답해야)은 “윤 대통령과 야당 대표 간 만남이 소통과 협치의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촉구했다.

서울신문(여야 4자회담 열고 민생해결 머리 맞대라), 세계일보(‘이재명 공방’ 벗어나 민생정치 복원하라는 게 추석 민심), 국민일보(여야, 민생정치 복원 위해 말보다 행동에 나서야 할 때) 사설은 여야 회담부터 추진하라고 주문했다. 세계일보와 국민일보의 경우 “반사이익”을 노리는 정치권 행태를 공통적으로 비판했다.

조선일보 사설(영수회담 요구 앞서 이 대표가 마비시킨 국회부터 정상화해야)의 경우 “대통령실이 응하지 않을 것을 뻔히 알면서 영수회담을 거듭 제안하는 것 자체가 정쟁적인 발상”이라며 “이 대표 때문에 왜곡된 여야 관계와 마비된 국회를 먼저 정상화하는 것이 도리”라고 민주당을 향한 비판을 높였다.

 

유명인 딥페이크 광고 성행, 빅테크는 AI 서비스 경쟁

▲2023년 10월4일자 동아일보 기사

미국 유명 배우인 톰 행크스가 미국 현지 시간으로 1일 본인 인스타그램 계정을 통해 “(온라인에) 떠도는 치과 보험 광고 영상 속 ‘나’는 나와 아무 상관이 없다”고 밝히면서 AI를 활용한 딥페이크 영상 우려가 다시금 높아졌다. 미국 CBS 앵커 게일 킹도 2일 “누군가 내 영상을 조작해 체중 감량 홍보 영상으로 바꿨다”며 조작 영상이 유포되고 있다고 알렸다. 동아일보 <톰 행크스 “AI로 만든 가짜 나 등장” 허위광고 경고> 기사는 관련 소식과 함께 “AI로 배우의 이미지와 목소리를 재현해 실제 영상에 등장하게 하는 ‘가상배우(virtual actor)’는 할리우드 배우 파업의 핵심 이슈”라며 “미국 배우·방송인 노조(SAG-AFTRA)는“영화 제작사가 AI로 정당한 보상 없이 배역을 ‘가상배우’로 대체해 연기 일자리를 없애려 한다”고 주장하며 파업에 돌입한 상태”라고 했다.

빅테크 업계에선 AI 챗봇 서비스 경쟁이 치열하다. 국민일보는 <보고 듣고 더 사람같이 말한다...빅테크, AI서비스 무한 경쟁> 기사에서 “오픈 AI는 지난달 25일(현지시간)공식 홈페이지에“이제챗 GPT는 보고, 듣고, 말할 수 있다”는 제목의 공지를 올렸다. 앞으로 챗 GPT와 사람이 음성으로 대화하는 게 가능해진다. 챗GPT에 이미지를 올리고 관련 질문을 던지면, 챗GPT가 답하는 기능도 추가 된다”며 “메타는 지난달 27일(현지시간)연례 개발자 콘퍼런스에서 제각각 성격을 갖춘 AI챗봇 28개의 베타 서비스를 선보인다고 발표했다”고 전했다. 10대를 주요 사용층으로 둔 스냅챗은 지난 3월 챗GPT를 기반으로 한 챗봇 ‘마이 AI’를 공개했고, 구글 AI 챗봇 ‘바드’ 확장판은 구글의 지메일, 드라이브, 지도, 유튜브 등과 실시간 연동되는 기능을 추가했다. 한국에선 네이버가 ‘한국어맞춤’ 생성형 AI챗봇인‘클로바 X’, 챗봇과 유사하게 작동되는 생성형 AI검색 서비스 ‘큐(Cue):’의 베타 서비스 등을 선보인 상태다.

 

중앙일보, 박근혜 전 대통령 회고록 유료 연재

중앙일보가 2017년 3월 탄핵된 박근혜 전 대통령의 회고록 연재를 시작했다. 중앙일보는 지난 4월부터 박 전 대통령과 중앙일보 회고록팀이 집필해온 내용을 4일부터 유료 구독서비스 ‘더중앙플러스(The Joongang Plus)’로 공개했다. 2011년 한나라당 비대위원장을 맡았을 때부터 2021년 특별사면으로 출소할 때까지의 약 10년을 배경으로 ‘최순실 사태’의 전말과 특검 수사·재판을 비롯해 북한 핵실험, 공무원연금 개혁, 세월호 참사, 한·일 위안부 합의, 사드 배치, 당·청 갈등 등 재임 중의 주요 이슈들에 대한 소회를 밝힌다는 설명이다.

 노지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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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제1차 도,시군인민위원장 강습회..'시군 강화 원칙·과제·역할' 제시

김덕훈 총리, 리일환·김재룡·오수용 당 비서 등 '시군강화노선 집중강의'

  • 기자명 이승현 기자 
  •  
  •  입력 2023.10.03 12:28
  •  
  •  댓글 2
 
지난해 6월 지방공업의 새로운 도약을 위한 본보기공장으로 준공한 강원도 김화군 지방공업공장. [통일뉴스 자료사진]
지난해 6월 지방공업의 새로운 도약을 위한 본보기공장으로 준공한 강원도 김화군 지방공업공장. [통일뉴스 자료사진]

시군강화노선을 앞세우고 있는 북한에서 도,시,군 인민위원장을 대상으로 한 첫번째 강습회가 진행됐다.

[조선중앙통신]은 3일 "제1차 도,시,군인민위원장강습회가 9월 29일부터 10월 2일까지 당 중앙위원회 회의실에서 진행되였다"고 보도했다.

강습회는 "모든 시,군들을 사회주의강국건설의 전략적 거점으로, 자기 고유의 특색을 가진 발전된 지역으로 만드는데서 인민위원장들이 해당 지역의 자립적이며 다각적인 발전을 이끌어나가는 견인기, 인민생활을 책임진 호주로서의 책임과 역할을 원만히 수행해나가도록 하기 위해 소집되였다"고 통신은 전했다.

2021년 1월 8차당대회에서 밝힌 '2030년대 중반까지 사회주의강국건설 목표에 도달'하려는 장기구상의 핵심인 시군강화노선에 대한 집중강의와 실무학습이 진행됐다.

도,시,군 인민위원장들과 도인민위원회 행정국장들, 내각사무국 간부들이 참가한 가운데 조용원 당 조직비서가 개강사를 하고 김덕훈 내각총리와 리일환·김재룡·오수용 당 비서들, 리히용 당 제1부부장, 김금철 내각사무장이 강의에 나섰다.

강의에서는 도,시,군인민위원장들이 나라의 지역적 거점이자 사회주의건설의 전략적 보루를 책임진 사명에 맞게 △사업기풍과 일본새의 근본적 개선  △당결정에 대한 철저한 집행기풍 확립 △시,군경제사업의 전망적 관리 실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모든 시,군을 자체로 살아나가는 시,군으로, 강국의 위상에 어울리는 힘있고 부유하며 문명한 고장으로 전변시키는데서 나서는 근본방략"으로 '창성연석회의정신'을 언급하고는, △자체의 힘으로 일떠서고 제 발로 걸어나가는 원칙 △자기 지방의 실정에 맞게 경제와 문화를 발전시키며 모든 면에서 지역의 특색을 옳게 살려나가는 원칙 △모든 사업을 새시대의 요구에 맞게 혁신적으로 하며 끊임없이 새로운 높은 단계에로 비약하도록 하는 원칙을 확고히 견지해 나가야 한다고 주문했다.

구체적으로는 △김화군 지방공업공장을 본보기로 삼아 생산단위 개건 현대화와 인민소비품생산을 늘려 주민 수요 충족 △농촌살림집건설을 비롯한 지방건설 힘있게 전개 △교육사업을 항구적이며 전략적인 과업으로 파악해 교육조건과 환경을 근본적으로 혁신 △시,군병원과 리병원, 진료소들을 의료봉사거점답게 변모 △고려약을 비롯한 의약품생산을 정상화하여 인민들의 건강보호증진 △장기적으로 도시경영사업과 국토관리사업 추진 등의 과제를 제시했다.

시,군 발전의 성패가 달려있는 시,군 경제사업의 전망적 관리를 위해서는 △과학적 경제발전 전망계획 수립 △경제적 조건과 법률적 환경 보장 △지역 경제발전속도와 균형의 원활한 조정이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밖에 시,군인민위원회 기능과 역할을 높이기 위해서는 "당정책과 그 구현인 국가의 법규범과 규정, 시,군인민회의 결정이 정확히 집행되도록 주권적지도를 강화"해야 하며, "사회주의 법무생활이 법이 인민을 지키고 인민이 법을 지키는 과정으로 되도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통신은 이번 제1차 도,시,군인민위원장 강습회를 통해 "인민위원장들이 성스러운 사명감을 다시금 깊이 자각하고 전면적 국가부흥을 위한 총진군의 기수, 견인기가 되여 지방이 변하는 새시대를 앞장에서 열어나갈 비상한 각오와 분발심을 배가하는 의의깊은 계기로 되였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한편, 북이 제시한 시군 강화노선은 '모든 시와 군을 문명부강한 사회주의 국가의 전략적 거점, 고유의 특색을 갖춘 지역으로 발전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며, △지역적 특성과 현실성을 반영한 전망 목표 수립 △새로운 농촌혁명 강령 관철 △지역내 원자재 활용한 지방공업 발전 등을 주요 정책으로 정하고 세부과제로는 △지방공업발전 △농촌경리발전을 제시하고 있다.

2021년 1월 8차당대회에서 당규약 개정을 통해 조선로동당의 당면목적을 '부강하고 문명한 사회주의 사회 건설'로 규정하고 '앞으로의 5년을 강국건설을 위해 다음 단계의 거창한 투쟁을 연속적으로 전개하기 위한 토대 구축기간으로 삼아 2030년대 중반까지 사회주의 강국건설에 도달하겠다'고 한 장기 구상의 초점이 시군 강화노선에 담겨 있다.

경제 영역에서 계급(도농격차 해소), 산업(금속·화학의 선도적 발전으로 다른 산업분야의 발전 견인), 지역(시·군강화)간 격차를 없애 균형적으로, 동시적으로 발전해야 전면적 발전을 실현할 수 있다는데 중점이 있다. 

시·군강화 정책은 우선 당차원에서 직접 관리한다는 측면에서 정책의 위상이 높아진 것으로 보이고 지방 특성에 맞게 발전해야 하기 때문에 각 지역 단위 간부들이 자기 지방의 특성을 정확히 파악하고 현재 역량을 확인한 뒤 발전정책을 수립하고 그에 맞춰서 단계적으로 추진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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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 대통령 한마디에 '졸속' 삭감된 국가 연구개발 예산의 이면

[시민건강논평] 긴축 재정 넘어 긴축사회, 민영화의 신호탄인가

시민건강연구소  |  기사입력 2023.10.04. 08:38:28

 

사상 최초로 국가 연구개발(R&D) 예산을 줄인다고 한다. 비판과 반발이 이어지는 중에도 예상보다는 강도가 약한 것 같다. 해당 분야에서는 신진 연구자와 대학원생 지원이 끊긴다고 난리지만, 공적 재원으로 겨우 버티던 다른 분야 사업 중에는 아예 없어지는 것도 한둘이 아니다. 다들 곁을 돌아볼 여력이 없으니 저항의 연대도 쉽지 않은, 뼈아픈 모멸의 시대다.

 

관심은 누가 의도한 것처럼 좋지 않은 경제 사정으로 향한다. 연구개발 예산을 줄일 만큼 국가 재정 사정이 좋지 않나? 재정을 통한 '통치'는 여기부터 시작한다. 재정 건전성을 두고, 코로나, 복지 지출, 중국 경제 핑계에 전 정권 탓도 빠지지 않는다.

 

경제가 나쁘니 세금을 걷을 기반이 취약하다는 것이 핵심 논리다. 이미 오류로 밝혀진 여러 경제 이론이 등장한다. 하지만 번지수가 틀렸다. 무엇을 설명하든, 지금 국가 재정 이야기는 정책과 경제가 아니라 정치이자 통치이다. 복잡하고 방대한 숫자와 지표가 등장하지만, 이것부터 '과학'이라는 인상을 심기 위한 정치적 행위다.

 

재정 건전성이 진짜 문제라면 이럴 수가 없다. 세금을 거두기 어렵다면서 뻔뻔하고도 담대하게 세금을 깎아 주는 이율배반이 어떻게 가능한가. 이 정권의 감세는 아예 특정인이나 특정 세력의 민원을 해결하려는 목적이 아닐까 의심할 정도다. 법인세, 소득세, 종부세, 가업상속공제 등을 통한 감세 기조는 급기야 자녀 결혼 자금에 매기는 증여세까지 완화하려 한다. 전형적인 부자 감세와 계급 감세다. 

 

결국 재정 그 자체는 초점이 아니다.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국가 연구개발 예산안은 '긴축 재정'을 넘어 '긴축 경제', 나아가 '긴축 사회'로 가기 위한 정치적 정지 작업이라는 것이 우리의 해석이다. 1990년대 말 IMF 경제 위기 이후 국가 연구개발 투자는 한국 경제의 성장 전략이자 한국민의 발전과 성장 욕망에 부응하는 통치 전략의 핵심이었다. 그런 연구개발 투자를 줄인다는 정책에 정치적 고려가 없다면 그것이 더 이상하다. 

 

대다수 국민이 지지했고 지금도 그런(이 또한 그동안의 국가 통치이자 그 결과라 할 수 있다) 연구개발 투자에 손을 대는 일대 '사건'의 효과는 무엇일까? 첫째, 다른 무엇보다 큰 정치적 효과는 그 어떤 예산 항목도 절대성을 주장하기 어렵게 되었다는 점이다. 재정 당국은 국가 재정에 대한 권력 독점을 완성하게 되었다. 

 

국가 경제의 앞날을 좌우할 국가 연구개발 예산도 '낭비'와 '비효율'을 줄이고 집중하겠다는데, 어떤 예산이 칼날을 피할 수 있다고 생각하겠는가. 예를 들어, 공공병원을 확충하는 데 예산을 달라? 지금까지도 그랬지만 앞으로 이런 예산을 확보하는 일은 더 힘들어질 것이다. 기존 예산을 '과감하게' 삭감하는 일도 마찬가지, 전에 볼 수 없던 후퇴와 위축이 빈번해질 것이다. 

 

 

 

 

 

재정을 명분 삼아 여러 형태의 민영화를 시도하고 촉진할 가능성도 크다. 가장 직접적으로는 국가 재산을 매각하는 것부터, 민간 위탁이나 공공-민간 협력과 같은 '은밀한 민영화' '사실상 민영화' '준 민영화' '수동적 민영화'까지. 국가 재정이 개입해 민영화를 밀고 가는 가장 큰 기회가 바로 긴축이다.

세 번째 '효과'는 복지 비용 등 사회적 지출의 감축으로 이어질 가능성이다. 그 어떤 나라의 예산이든 재정 건전성을 앞세우는 한, 사실상 초점은 사회적 지출의 축소에 맞춰질 수밖에 없다. 정부의 재정 지출을 줄이는 것이 긴축의 목표라면, 보건, 복지, 교육, 문화 등 공적 지출을 빼고 무엇을 줄일 수 있다는 말인가. 

 

모두가 아는 공공연한 사실 한 가지. 연금과 건강보험 등 공적, 사회적 지출을 줄이는 것이 한국 자본주의 체제의 '숙원'이라는 점. 고령화가 진전됨에 따라 자본, 그리고 자본을 대변하는 국가권력의 불안은 이제 공포로 바뀌는 단계인 것처럼 보인다. 노인 소득과 돌봄 등에 필요한 사회적 지출을 어떻게 할 것인가? 긴축은 사회적 지출을 줄이는 데에 가장 중요한 기회일 수 있다. 

 

아마도 국가는 이제, 그리고 앞으로 긴축 기조를 정당화하고 이에 따른 재정 운용을 당연한 책임으로 '자연화'할 것이다. 세계 금융위기와 경제 위기 이후 서구 나라들에서 나타났던 '긴축 체제'를 구축하려 할 가능성이 크다. 공적 지출의 증감과 그 폭은 영역별로 들쭉날쭉하겠지만, '일반적' 경향은 장담하건대 축소와 정체, 그리고 이에 따른 민간 이전이라는 길을 갈 것이다. 

 

다만, 어떤 사회가 사회적 지출 축소, 더 크게는 긴축에 대응하는 방향은 외길이 아니라는 점을 되새기고 싶다(☞ 관련 기사 : '긴축은 죽음의 처방전인가') 그 때문에 다시 통치와 재정 정치, 그것에 대한 대응으로서의 시민정치를 생각한다. 그것은 권력의 관계이며, 어떤 정치공동체가 어디로 갈 것인지를 둘러싼 경쟁과 투쟁이다. 

 

적어도 지금은 경제 논리를 벗어난 사회적 지출이 설 자리는 그리 넓어 보이지 않는다. 안타깝게도 사회권력의 힘이 그만큼 약하다는 뜻일 것이다. 단기간으로는, 그나마 조금 진전했던 사회적 지출이 정체하거나 일부 후퇴하고, 그만큼 공간은 민영보험 등 시장과 시장 원리가 채울 공산이 크다. 

 

위험하고도 좁은 길이 길게 남았다. 스스로 다짐하자면, 국가 연구개발 투자와 긴축을 둘러싼 국가 재정 문제를 특정 정치세력이나 개인 차원의 일로 보지 않으려 한다. 우연한 사건도 아니다. 사건에서 '국면(conjuncture)'으로, 지금 우리는 가능한 미래로서 긴축의 정치를 읽어내야 한다. 물론, 대대적 준비와 대항으로 연결하기 위해서다.

 

ⓒ시민건강연구소

시민건강연구소

(사)시민건강연구소는 "모두가 건강한 사회"를 지향하는 건강과 보건의료 분야의 싱크탱크이자, 진보적 연구자와 활동가를 배출하는 비영리독립연구기관입니다. <프레시안>은 시민건강연구소가 발표하는 '시민건강논평'과 '서리풀 연구通'을 동시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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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옹호 위해 자국 국민과 싸우는 윤석열 정부

[어쩌다 한국이] 30년 전 페놀보다 더 독한 게 지금 뿌려지고 있다

23.10.04 07:16최종 업데이트 23.10.04 07:16
영화나 책, 인물, 역사 등 국내외 다양한 사건과 지금의 한국 사회를 비교합니다. [편집자말]
지난 8월 24일, 일본 도쿄전력이 2011년 3월 원전 폭발 사고 이후 발생한 방사성 오염수(134만 톤)를 바다로 방류하기 시작했습니다. 방사성 오염수가 바다로 흘러가는 동안 바닷물 색이 변하는 걸 보면서 2020년에 개봉한 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이 생각났습니다. 지금 상황과 비슷한 대목이 꽤 많거든요.
 

▲ 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메인 포스터 ⓒ 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의 배경은 지금부터 약 30년 전인 1995년, 주인공 이자영(고아성)은 '커리어 우먼'을 꿈꾸며 삼진그룹에서 일하지만 실상은 입사 8년차임에도 불구하고 사무실 재떨이를 비우고, 실내화를 가지런히 정리한 후 다른 직원들의 커피를 타는 일로 하루를 시작하는 말단 사원입니다.

대졸 남성인 같은 부서 대리에게 조언을 해 주고, 보고서도 대신 써 줄 정도로 뛰어난 업무능력을 보여 주지만 고졸 여성이기 때문에 아무리 오래 일해도 진급이 안 됩니다. 그러던 차에 회사에서 진급을 위한 조건을 내겁니다. 토익 600점. 공고를 보고 말도 안 되는 점수라며 불평을 하는 것도 잠시, 8년 만에 찾아온 진급의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자영과 같은 처지의 친구들은 함께 영어 수업을 듣게 됩니다.

그런 어느 날, 새로 온 상무의 짐을 대신 정리해 주기 위해 공장을 찾은 자영은 공장에서 몰래 폐수를 방류하는 장면을 목격하게 되고 함께 간 대리를 설득하여 보고서를 올립니다. 그로 인해 회사에서는 팀을 꾸려서 대책을 마련하기 시작하죠. 그런데 그 대책이라는 게 방류된 폐수에 문제가 없다는 가짜 보고서를 만들어 주민들을 입막음하는 것뿐임을 알게 된 자영은 친구들과 함께 회사의 비리를 파헤치고 고발하는 일에 나섭니다.
영화는 회사측의 악랄한 방해 속에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자영과 친구들이 끝내 승리하고, 폐수 방류를 지시하고 은폐한 이들이 벌을 받는 해피엔딩으로 끝을 맺습니다.

1991년, 두산의 낙동강 페놀 유출사건을 모티브로 삼은 이 영화는 문제 해결 과정을 판타지스럽게 만들어 버리긴 했지만, 1990년대를 제대로 그려낸 미술과 주연배우의 맞춤 연기, 그리고 젊은 여성들의 연대로 사회 부조리를 이겨내는 모습을 경쾌하게 담은 장점들로 인해 호평을 받았습니다. 제57회 백상예술대상에서 영화부문 작품상도 받았습니다.

낙동강 페놀 유출사건

이 영화의 실제 사건, 낙동강 페놀 유출사건 (이하 '페놀 사태')에 대해 조금 살펴보겠습니다. 오래된 사건이지만 <대구시 수돗물사태 시민단체 대책회의 진상조사 위원회>에서 '대구시 수돗물 페놀 오염사태 백서'를 발간해 둔 덕에 당시 상황을 누구나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때는 1991년 3월 14일, 경상북도 구미시의 두산전자에서 파이프 파열로 인해 페놀 원액 30톤이 대구시의 상수원인 낙동강으로 흘러 들어갔습니다. 1984년 영국 리버풀 근처의 디 강 (Dee River)에서 페놀 1톤이 유출되어 근처 주민들이 위장 장애를 호소한 적이 있을 정도로 페놀은 독성물질인데 낙동강에는 그 30배에 달하는 페놀이 유출된 겁니다.
 

▲ 대구시 수돗물 페놀 오염사태 백서에 포함된 당시 영남일보의 보도. ⓒ 영남일보

 
페놀이 섞인 수돗물에서 심한 악취가 나고 대구 시민들의 신고가 이어졌지만 취수장 측은 원인 규명 대신 여름철에 흔히 나는 악취로 여기고 염소를 추가로 투입했습니다. 페놀이 염소와 화학반응을 일으켜 악취와 독성은 오히려 더 악화되었습니다. 낙동강을 따라 퍼져 나간 페놀은 부산의 상수원에서도 검출이 되어 영남지역 전체에 피해를 입혔습니다.

두산전자는 이 사건으로 30일 영업정치 처분을 받았으나, 고의성이 없다는 이유로 20일만에 조업 재개가 허용됐습니다. 그로부터 2주 후 같은 공장에서 2차 유출이 발생해 페놀 1.3톤이 추가로 낙동강으로 흘러 갔습니다.

이 사건은 그동안 감춰져 있던 우리 기업들의 탐욕과 공무원들의 무사안일한 일처리, 그리고 수돗물 하나 제대로 관리 못하는 무능을 모두 드러낸 사건이었습니다.

검찰의 수사 결과, 두산전자는 1차 유출사고 발생 이전에도 페놀이 다량 함유된 악성폐수 325톤을 무려 5개월 동안 무단 방류해 온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이를 단속해야 할 환경처 직원들은 현장 단속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허위로 단속서류를 작성했고, 대구시 상수도 당국은 수돗물에서 악취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도 부족한 시설과 인원을 핑계로 조사를 제대로 하지 않아 페놀 유출을 잡아내지 못했습니다.

기본적으로 매일 이뤄져야 하는 수질검사를 실제로는 평일에만 형식적으로 했고, 주말과 공휴일에는 생략했습니다. 페놀에 대한 검사는 한달에 한 번만 실시했는데 그것도 취수 단계가 아니라 정수 단계에서 이뤄져 페놀이 유출되더라도 정상적으로 발견하기가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사고 발생 이후 대구시는 정확한 원인 파악과 신속한 대응 대신 가장 적게 측정된 페놀 농도만을 공개하며 '페놀 농도가 음용수 기준치 이하로 악취가 나지만 인체에 무해'하다는 주장만 반복했습니다. 시청 직원은 하지도 않은 비상근무 지시를 한 것으로 일지를 조작하여 직무유기를 감추려 했다가 이후 기소되기도 했습니다. 정부는 두산전자에게 내려진 조업정지 조치가 수출에 지장을 준다는 이유로 조업정지 기간을 줄여 주기도 했습니다.
 

▲ 유출사고 당시 측정한 페놀 농도. 3월 17일 옥계천 하류 하수에서는 0.8659ppm이 검출됐는데, 대구시는 다사수원지 원수에서 측정한 0.0035ppm을 근거로 기준치 이하라고 발표를 했습니다. ⓒ 대구시 수돗물 페놀 오염사태 백서

 
이러한 행태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는 두산 제품에 대한 불매와 정부에 대한 비판 시위로 표출됐고 정부는 뒤늦게 환경처 장관을 경질하는 것으로 민심을 달래야 했습니다. 이 사건으로 대구지방환경청 공무원 7명, 두산전자 관계자 6명이 구속됐고, 관계공무원 11명이 징계를 받았습니다. 두산전자에 대해서는 64일의 영업정지 처분이 내려졌습니다. 두산그룹 박용곤 회장도 이 사건으로 사임했습니다.

이 사건은 환경문제가 시민의 삶에 직접적인 문제를 준다는 경각심을 일깨운 사건으로 녹색연합에서는 1999년 "50년대 이후 발생한 대한민국 환경 10대 사건" 중 낙동강 페놀 오염 사건을 1위로 선정했습니다. 이 사건 이후 유해물질을 고의로 배출한 경우 최고 무기징역까지 처할 수 있도록 하는 '환경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별조치법'과 '환경개선비용부담금법' 등이 제정됐으며, 공장 설립 시의 환경 기준도 강화됐습니다.

페놀 사태 이후 30년이 더 지난 지금, 기업들의 폐수 무단 방류 사건은 더 이상 없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지난해 1월 29일, <블룸버그 통신>은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에 있는 삼성 반도체 공장에서 몇 달간 산성 폐수가 유출돼 강으로 흘러가서 물고기가 폐사하는 등의 환경 피해가 발생했다고 보도했습니다.
 

▲ 미국 오스틴에 위치한 삼성전자 반도체 팹에서 산성 폐수가 유출돼 인근 지류에서 물고기가 폐사하는 등 환경 피해가 발생했다고 보도했습니다. ⓒ Bloomberg 보도 화면

 
또한 올해 3월 16일, <뉴스타파>는 삼성전자가 베트남 박닌 공장에서 휴대전화 제조공정에 사용된 각종 유해물질을 대기로 무단 방출하고 공장에서 사용된 폐수를 적절한 처리를 거치지 않은 채 무단 방류한 정황이 확인됐다고 보도했습니다. 폐수 무단 방류와 같은 환경 오염 행위가 근절되지 않고 다만 감시가 느슨한 곳으로 이전된 건 아닌지 의심되는 부분입니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삼성의 환경을 대하는 태도가 이 정도이니 다른 기업들의 경우는 찾아볼 것도 없을 것 같습니다. 지금도 비만 오면 중금속이 섞인 폐수를 무단방류하다 적발되는 기업들에 대한 뉴스를 종종 접할 수가 있습니다.

폐수 방류 최대 빌런 도쿄전력

누가 뭐래도 오늘날 폐수 방류의 최대 빌런은 일본 도쿄전력입니다. 일본 도쿄전력은 방사성 오염수 134만톤을 지난 8월 24일부터 바다로 방류하기 시작했습니다. 두산도, 삼성도, 낙동강변의 영세기업들도 폐수를 몰래 방류하거나 사고로 인해 실수로 방류를 하긴 했지만, 일본 도쿄전력은 방사성 오염수를 과학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며 당당히 드러내며 방류를 시작한 게 다른 점입니다.

태평양으로 방류된 방사성 오염수가 해류를 타고 우리 바다로 흘러드는 건 시간 문제일 뿐입니다. 이건 두산의 낙동강 페놀 방류 사건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심각한 문제입니다. 두산의 경우 공장을 멈추고, 페놀 정화 시설을 갖춘 뒤 더이상 추가 방류를 하지 않았지만, 일본의 경우는 앞으로 30년간 계속 방류할 계획이고, 그 이후에도 방류는 계속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국민들은 이웃나라 일본에서 방류하는 방사성 오염수가 인체와 생태계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오염수 방류 과정에서 방사능 제거에 대한 검사는 제대로 하고 있는지, 방류 과정에 제3의 기관에 의한 감시는 이뤄지는지, 우리 정부는 거기에 얼마나 참여하고 있는지, 후쿠시마 이외의 일본 근해에서 잡힌 수산물은 먹어도 안전한지…… 등을 계속 묻고 있습니다.
 

▲ 지난 9월 7일 서울역에서 출발 대기 중인 KTX 열차 내에 정부가 배포한 '후쿠시마 오염수 10가지 괴담' 책자 홍보물이 비치돼 있다. ⓒ 연합뉴스


여기에 대한 윤석열 정부의 대응은 '후쿠시마 오염수 10가지 괴담'을 펴내고 국민들의 우려를 '괴담'이라 몰아붙이는 방식입니다. 정부는 "삼중수소 오염수를 배출 기준에 맞게 희석해 방류하는 것은 국제적으로 사용되는 처리방식"이라며 일본의 결정을 옹호합니다.

그건 정상 원전일 경우고 일본의 경우는 폭파되어 사람이 근처에 가지도 못하는 원전이지 않느냐는 물음에도 희석이 중요하지 어디서 나온 건지는 상관없다고 답을 합니다. 30년 전 두산이 이 발언을 들었다면 페놀을 그냥 방류하지 않고 낙동강물로 희석해서 버리지 않았을까요? 장마철에 공장 폐수를 무단 방류하면서 그게 곧 빗물에 의한 희석이라는 주장도 나올 법합니다.

일본의 방사성 오염수 방류를 옹호하고 국민의 우려를 괴담으로 치부하려는 윤석열 정부의 노력이 지나쳐서 우리가 일본보다 더 많은 삼중수소를 배출하고 있다고 말하는 자해마저 서슴지 않고 있습니다. 정부가 배포한 자료에 포함된 도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삼중수소 연간배출량은 214조 베크렐(TBq), 일본은 175조 베크렐로 그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우리나라는 기준 연도가 2022년이고, 일본은 2019년입니다. 같은 해 자료로 일대 일 비교가 안 되면 통계로서 의미가 없어서 하지 말아야 합니다. 게다가 일본은 파괴된 원자로고 다른 모든 나라는 정상 가동중인 원자로라는 차이도 있습니다. 
 

▲ 여섯번째 괴담을 소개하면서 국가별 연간 삼중수소 배출량을 표시하면서 한국은 2022년 수치를, 일본은 2019년 수치를 이용하여 한국이 더 많은 삼중수소를 배출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 대한민국정부

 
30년 전 페놀로 인해 오염된 낙동강물에 대한 불신으로 인해 사람들이 생수를 사서 먹기 시작했습니다. 세월이 흘러 수돗물의 수질이 제대로 관리가 된 이후에도 수돗물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에 아직도 많은 이들이 생수를 찾고 있습니다. 페놀 방류가 없었다면 굳이 지출하지 않아도 될 추가 비용입니다. 일본의 방사성 오염수 방류로 인해 향후 우리가 지불해야 할 비용은 가늠조차 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중국은 일본의 방사성 오염수 방류가 시작되자마자 일본산 수산물에 대한 전면 수입 금지를 선언했습니다. 이 정도는 해야 국내에 유통되는 수산물에 대한 불안을 가라앉힐 수 있을 텐데, 책임질 위치에 있는 우리 공직자들은 카메라 앞에서 수산물을 먹는 쇼만 하고 있을 뿐입니다. 우리 국민들의 분노를 등에 업고 일본에게 방류 중단 및 피해 배상을 요구해도 부족할 판에 도리어 "괴담"이니 "선동"이니 "반국가 행위"니 하는 말로 우리 국민하고만 싸우려 들고 있습니다.

영화 이야기로 시작했으니 영화 속 대사로 마무리할까 합니다. 회사에서 커리어우먼이 되겠다던 이자영이 회사의 비리를 알게 된 후 이런 말을 합니다.

"저는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저희 회사가, 제가 하는 일이 사람들에게 피해를 준다면 저는 하고 싶지 않아요.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서, 먹고 살기 위해서 일을 하고 싶지는 않아요."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30년 전 두산에서 페놀을 방류할 때 있어야 했습니다. 지금 평택이든, 오스틴이든, 베트남이든 삼성전자의 폐수를 담당하는 직원들도 이런 생각을 해야 합니다. 지금도 바다에 방사성 오염수를 계속 방류하고 있는 도쿄전력의 직원 중에도 이런 생각을 하는 이가 꼭 나타나 더 이상의 파국을 막을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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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등한 한미관계? 더 큰 문제는 종속성

  • 장창준 객원기자
  •  
  •  승인 2023.10.03 10: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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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상호방위조약 70년]지구상에 이런 동맹은 없었다 ②

불평등한 한미관계, 누구나 하는 이야기다. 최소한 87년 6월 항쟁 결과 민주화가 진척되면서 정치인이라면, 지식인이라면 한미관계의 불평등성을 지적하지 않은 사람이 없다.

한국과 미국의 힘이 같지 않은 상황에서 한미 관계의 불평등성은 불가피하다는 주장이 불변의 진리처럼 받아들여져 왔다. 이 논리를 좇아가면 완전히 평등한 관계는 가능하지 않으니, 불평등성을 최소화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모든 나라의 힘은 균등하지 않다. 강대국도 있고, 약소국도 있고, 중진국이라는 용어도 등장한다. 나라의 힘이 불균등하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용어들이다. 한국과 미국의 힘의 격차는 더할 나위 없이 크다. 한국과 미국은 아주 불균등하다.

그러나 불균등과 불평등은 다르다. 한국과 영국, 한국과 중국, 한국과 러시아의 힘의 격차 역시 크다. 한영 관계, 한중 관계, 한러 사이의 힘은 불균등하지만, 그 관계는 평등하다. 불균등함이 불평등을 초래하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한국과 미국의 관계가 불평등한 것은 엄연한 현실이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은 불평등하다. 주한미군지위협정(일명 소파협정)도 불평등하다. 그 외 한미 사이의 모든 협정은 불평등한 조항으로 가득 차 있다.

그러나 이런 불평등성은 불가피한 것은 아니다. 불균등한 힘의 문제가 불평등한 관계를 자동적으로 만들어내지는 않는다. 정치인, 지식인들이 그렇게 주장하고 있을 뿐이다.

또 하나 중요한 사실이 있다. 불평등성만을 강조하면 종속성이 은폐된다. 불평등한 조약과 협정은 주종 관계를 형성한다. 유리한 조약과 협정을 가진 나라는 ‘주’의 위치를 갖고, 불리한 조약과 협정을 가진 나라는 ‘종’의 위치를 갖는다.

불평등 정도에 따라 주종 관계의 강도는 결정된다. 주종 관계의 강도가 세지만 불평등도 심화된다. 모두가 알고 있듯이 한미 관계는 다른 어떤 나라의 관계보다 불평등 정도가 심하다. 따라서 주종 관계 역시 가장 강력하다.

미국은 결정하고, 우리는 따른다. 아주 부분적으로 그렇지 않은 현상들이 존재하지만 중요한 정책에서 우리는 항상 ‘종’의 위치에 있을 뿐이다. 한국은 정치적으로, 군사적으로 그리고 경제적으로 미국에 종속되어 있다.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은 정치적 주권이 결국 경제적 주권 상실을 초래한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한미상호방위조약과 함께 한미합의의사록이 체결되었다. 한미합의의사록의 6번째 조항은 “(한국의) 경제계획을 유효히 실시함에 필요한 조치를 취한다”라고 적고 있다.

이미 1952년 5월 24일 미국은 “대한민국과 통합군 사령부와의 경제조정에 관한 협정”(일명 마이어 협정)을 통해 한국 경제 정책에 깊숙이 개입해 왔다. 따라서 합의의사록의 ‘필요한 조치’는 미국이 한국에 요구하는 조치이다. 한국은 그 요구를 따라야 하는 ‘종’의 위치에 있다. 이 과정을 통해 미국은 한국 경제 정책의 결정권을 행사해 왔다.

▲ 1966년 7월 9일, 한미 SOFA가 조인되었다.

사법 주권은 어떤가? 1991년, 2001년 두 차례 개정을 통해 일부 개선되었다고 평가를 받고 있지만, 소파협정은 한국의 사법 체계를 농락하는 내용으로 가득하다. 공무 중에 발생한 한국인에 대한 미군의 범죄는 여전히 미국이 재판권을 행사한다. 2015년 주한미군이 세균전에 사용되는 탄저균을 밀반입했다는 사실이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정부는 단 한 차례도 미군 기지를 조사하지 못했다.

환경 주권은 어떤가? 반환된 미군 기지를 정화하는 비용이 기지별로 수십억, 수백억 원에 달한다. 그러나 우리 정부가 그 비용을 미국에 청구했다는 소식도, 미국이 그 비용을 지불했다는 소식도 없다.

군사 주권, 정치 주권, 경제 주권, 사법 주권, 환경 주권을 빼앗겨 미국에 종속된 채로 70년을 살아왔다. 미국과 동맹을 맺고 있는 어떤 나라도 우리처럼 종속 관계를 유지하는 나라는 없다. 지구상에 이런 동맹은 없었다.

불평등함을 넘어 종속성을 직시했을 때 주종 관계에서 탈피할 수 있는 사고가 가능해진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이 70년을 맞았다. 이제라도 한미 종속성을 전면적으로 제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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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주기 민주경찰 안병하 치안감 추모식

 
경찰은 시민을 향해 총을 겨눌 수 없다
 
이주연 | 2023-10-02 08:32:17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제35주기 민주경찰 안병하 치안감 추모식

【군번 14562】

1949년 5월, 안병하는 22세 때 육사(8기)를 졸업하고, 육군 소위로 임관하면서 전방에 배치됐다. 육사 8기 중 4개의 특별반이 있었으며, 그들은 광복군과 독립군 출신들이었다.

1950년 6•25전쟁이 발발했다. 안병하 중위와 육사8기 동기생들은 소대장, 중대부관, 대대참모 등으로 최전방에서 전투에 참여했다. 육사8기 졸업생 중 3분의 1인 367명이 전사하고, 35명이 실종되었다. 육사8기는 6•25전쟁을 온몸으로 겪었다.

전쟁은 영웅을 탄생시킨다. 23세 청년 안병하는 6사단(청성부대) 7연대 16포병대대 소속이었다. 사단장은 한국전쟁 4대 영웅 중 한 분인 김종오 장군이고, 연대장은 임부택 중령이었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부터 북한군의 포화가 집중됐다. 6사단 7연대는 춘천에 지휘소를 두고 교전했다. 북한군의 전략은 서부전선을 돌파하는 동시에 춘천과 홍천의 동부전선을 돌파하여 수원 이남으로 진출해서 수도권을 포위하는 것이었다.

서부전선 국군 1사단과 7사단이 무너졌다. 동해안 강릉의 8사단도 대관령으로 밀렸다. 동부전선 춘천과 홍천의 6사단은 사단장 김종오 장군의 뛰어난 지휘로 전투에 대비할 시간이 있었다.

북한군 2군단은 2사단과 7사단 등을 앞세워 2만4천 명이 물밀듯 밀려왔다. 국군 6사단은 열악한 상황에서 치열한 방어전을 펼쳤다. 이 전투에서 안병하 중위가 자청했다. 무전병 한 명만 대동하고 적진에 침투하여 정확한 정보를 탐색했다.

적진 깊숙이 침투한 안병하 중위는 적의 화력과 배치상황을 상세하게 본부에 타전했다. 6사단은 상대적으로 화력이 열악한 상황이었지만, 안 중위가 제공한 정보를 효과적으로 활용하여 북한군의 남진을 지연시켰다.

춘천•홍천전투 결과 국군 6사단 사상자는 407명, 북한군 2군단 사상자는 6,900여 명(6사단 집계)이었다. 북한군 2군단장 김광협, 2사단장 이청송, 12사단장 전우가 해임되었다.

1950년 7월 5일, 미군이 투입됐지만 죽미령 전투에서 패배했다. 국군 6사단도 8사단과 더불어 방어선을 구축하며 철수를 거듭했다. 국군과 미군은 낙동강을 방어선으로 지연전을 펼쳤다.

이때 충북 음성 동락리 전투가 벌어졌다. 1950년 7월 7일 북한군 15사단이 장호원을 점령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김종오 6사단장은 안병하 중위가 소속된 7연대를 장호원에 급파했다. 북한군은 이미 장호원을 지나서 충북 음성 방면으로 남하 중이었다.

국군 6사단 7연대는 음성 북쪽에 매복했다. 그날 오후 5시, 국군 6사단 7연대는 기습 공격을 했다. 방심하던 북한군 15사단 48연대는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전투는 다음날 7월 8일 오전 8시까지 15시간이나 지속됐다.

북한군 전사자 1천 명, 포로 97명, 차량 80대, 소총 2,050정, 155mm 박격포 6문 등을 노획했다. 국군 6사단 7연대는 한국전쟁 개전 이래 최대의 전과를 올렸다. 당시 동락리 전투를 주도했던 국군 6사단 7연대 2대대는 병력 400명, 81mm 박격포 1문, 중기관총 1정뿐이었다. 놀라운 전과였다.

이승만 대통령은 크게 기뻐했다. 1950년 9월 29일, 국군 6사단에 표창장을 수여했다. 7연대 모든 장병들은 1계급 특진했다. 안병하 중위도 대위로 진급했다.

국군 창설 이후 최초로 거둔 가장 큰 규모의 전과였다. 노획한 무기를 유엔으로 보냈다. 소련의 한국전쟁 도발 입증 증거로 제시했다. 이후 국군은 평택, 안성, 충주, 울진을 잇는 저지선을 구축했다. 동부전선은 국군이 서부전선은 유엔군이 담당하는 전선이 재정비되었다.

유엔군의 참전으로 전세가 역전됐다. 1950년 10월 24일, 국군 8군사령관과 10군단장에게 38선을 넘어서 국경을 향해 진격하라는 수정명령이 하달됐다. 모든 부대들이 일제히 압록강의 국경선을 향해 질주했다.

안병하 대위가 소속된 6사단은 선두에서 평양을 우회하여 평안남도 순천에 가장 먼저 진출했다. 노획한 북한군 차량 150대를 이용하여 북진 속도를 빠르게 했다. 북진 중 추가로 노획한 북한군 차량 300대에 탑승하여 가장 빠르게 압록강에 도착했다.

1950년 10월 26일, 아침 7시에 국군 6사단 7연대는 압록강을 향해 마지막 진격작전을 개시했다. 초산 남쪽 6Km 지점에서 북한군 8사단 패잔병을 제압했다. 안병하 대위의 7연대 1대대(대대장 김용주 중령)는 오후 2시 15분 압록강 남단의 만주 국경선까지 진출했다.

국군 최초로 압록강에 도착한 것이었다. 안병하 대위와 국군 6사단 7연대 1대대 장병들은 강변에 태극기를 꽂고 압록강 물을 수통에 가득 채웠다. 가슴 벅찬 흥분의 순간이었다. 이 부대는 ‘초산부대’로 불리기도 했다.

감격의 순간은 짧았다. 다음날 10월 27일, 7연대장 임부택 대령이 압록강변 초소를 방문했다. 2연대가 중공군의 매복으로 고전 중이라고 했다. 28일, 오후 5시 중공군이 1대대 퇴로를 차단했다. 철수명령이 떨어졌다. 29일, 7연대는 포위망을 뚫는데 실패했다. 30일, 자정에 중공군 제38군 예하 3개 사단과 제40군 예하 3개 사단이 국군 7연대의 퇴로를 차단하면서 공격했다. 7연대 병력 76%가 전사하고 생존자는 대부분 포로가 되었다. 부대 자체가 붕괴되었다.

안병하 대위는 야음을 틈타 깊은 산 속으로 피신했다. 낙엽 속에 몸을 숨긴 채 3일을 버텼다. 9일 후에야 포위망을 뚫고 아군 지역으로 간신히 복귀할 수 있었다.

안병하 대위는 1957년 5월 7일, 보병 6사단 소속으로 무공훈장을 수훈했다.

“멸공전선에서 제반 애로를 극복하고 헌신 분투하여 발군의 무공을 수립하였으므로 그 애국지성과 혁혁한 공적을 가상하여 대통령내훈 제2호에 의거 부여된 국방부장관의 권한에 의하여 이에 무성화랑 무공훈장을 수여”

안병하는 6•25전쟁을 통해 화랑무공훈장 2개, 상이기장, 6•25참전기장 등을 수훈했다. 전쟁영웅이 된 것이다.

잠이 오지 않아 안병하 평전을 펼쳤다. 문득 보고싶은 내용을 찾았다. 스마트폰으로 정리하며 타이핑했다. 어느덧 새벽의 한 가운데에 들어섰다. 추모식 준비를 해야 하는데.

민주경찰 안병하 치안감에 대한 평가는 청렴한 원칙주의자다. 그의 민주, 인권, 위민정신 또한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최우선해야 하는 경찰관으로서의 원칙을 고수한 것이지 않았을까?
헌법 제7조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로서 헌법정신을 실현한 참공직자.

안병하 평전 저자 이재의 박사는 안병하 비망록을 ‘경찰의 5•18 권리장전’이라고 칭한다. 동의한다. 대한민국 경찰이라면 안병하 비망록 원본을 탐독하시기를 권유드린다. 볼 수 없다면 사본이라도 탐독을 권유드린다. 참고로 원본은 광주 금남로 소재 5.18민주화운동기록관에 있다.

대한민국 경찰 영웅 1호 안병하 치안감이 생의 마지막 혼신의 힘을 다해 전하고 싶은 경찰에 대한 진심이 전해질 듯싶어서다.

♪국립경찰가♪ 마지막 가사 ♥민주경찰♥

그날이 오면 안병하 치안감은 또다시 새롭게 부활하지 않을까?

1980년 5월 시민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전라남도 경찰국 안병하 국장과 혼연일체가 되어 권력의 부당한 명령에 저항했던 2천 명의 참경찰들과 함께」

 
본글주소: http://www.poweroftruth.net/m/mainView.php?kcat=2038&table=c_juyoun&uid=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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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은 왜 2030 청년을 비난할까

[문 대통령께 드리지 못한 고언] 민주당 지지자='깨시민'이라는 생각의 함정

황두영 작가  |  기사입력 2023.10.03. 05:02:00

 

유시민 작가의 2030세대 청년 비하 발언이 논란이다. 유시민은 지난 22일 노무현재단 유튜브에서 전날 국회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국회에서 가결된 것에 책임을 물으며 2030 남성 유권자들을 비판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당선되어 이재명 대표가 탄압받게 된 이유가 2030 남성 유권자들의 잘못된 선택 탓이라는 맥락이었다.

 

유시민은 윤석열 후보가 청년들의 사회‧경제적 지위 향상을 위해 아무런 정책을 내지 않는데도 청년 남성 유권자들이 윤석열 후보를 뽑았다고 비판했다. 여성가족부 폐지 등 옳지 않은 공약을 사회‧경제적 불만의 해결책을 잘못 이해했다는 맥락이었다. 유시민은 결국 윤석열 정부는 여성가족부 폐지도 하지 않고, 오히려 군 복무기간 연장 등 남성들의 권익을 더 침해하는 방안만 논의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군 복무기간 연장은 현재 국방부장관 후보자인 신원식 국회의원이 지난 5월 주최한 토론회에서 한 발제자가 제시한 의견으로, 정부는 공식 입장이 아니라고 해명한 바 있다.) 

 

유시민은 청년 남성들에게 "불만을 합리적인 방법으로 제시하고, 그래도 기성세대가 부당하게 안 들어주면 돌 들고, 화염병 들고 정부종합청사, 민주당사에 던지라"고 충고했다. 이어 "우리도 다 돌 들고 화염병 들어 세상이 바뀐 것이고, 그렇게 해서 세상은 자꾸 나아가는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뒤이어 민주당에 대한 부정적 의견이 많은 일부 인터넷 커뮤니티는 "문이 달려 있지 않은 쓰레기통 또는 재래식 화장실"이라며 그 커뮤니티 유저들은 "쓰레기"라고 비난했다.

 

유시민의 발언에 정치권이 청년들의 요구를 더 잘 수용하려고 하지 않고 유권자 탓을 한다는 맥락의 비판이 여야를 가리지 않고 나왔다. 이준석 등 여당 인사 뿐 아니라 박성민 전 청와대 청년비서관, 권지웅 전 민주당 비대위원 등 민주당 청년정치인들도 유시민의 발언을 비판했다. 당연히 비판이다. 하지만 유시민 발언에 대해 남탓 정치를 그만두라는 맥락에서 더 책임감 있고 겸손하게 정치하라는 말로 되받아치는 건 너무 약소한 반박이다. 

 

현직 정치인도 아닌 유시민의 발언이 주목을 받는 건, 그가 민주당 주류의 현역 정치인들이 차마 직접 꺼내 얘기하지 못하는 무의식적 전제들을 말로 꺼내놓기 때문일 것이다. 유시민의 발언은 주로 86세대인 민주당 주류가 유권자를 어떻게 나눠 등급을 매기는지, 그리고 그러한 분류가 어떤 정치적 왜곡을 낳는지를 보여준다. 

 

 

 

 이 발언의 진짜 문제는 특정한 세대 혹은 세대간 갈등의 문제가 아니다. 제대로 된 유권자, 또는 '깨어있는 시민'과 그렇지 않은, 즉 '깨어있지 않은' 유권자의 구별이 핵심이다. 그렇기에 이 문제는 잊을 만하면 터지는 노인이나 특정 지역 비하, 또는 소위 '국개론'과 연결되어 있다. 민주당이 자신을 지지하지 않는 유권자 집단을 어떻게 인식하는지에 대한 문제다. 유시민에 비해 '겸손한' 현역 정치인들은 이렇게까지 직접적으로 표현할 수 없겠지만, 유시민의 이 솔직한 발언 덕에 우리는 이 특이한 정치적 사고방식의 구조와 한계를 들여다 볼 기회를 갖게 되었다

유시민의 발언에서 가장 주목을 끄는 부분은 "2030 여성 유권자는 지난 대선 때 충분히 자기 몫을 했다"며 "여자들이 나라를 구하지 않으면 진짜 위험하다"고 말한 부분이다. 여기서 투표는 단순히 자신의 이해관계나 선호를 표현하는 것을 넘어, '나라 구하기'의 문제와 연관된다. 반대로 2030 남성을 비롯해 민주당을 지지하지 않는 투표를 나라를 위기에 빠트리는 문제가 된다. 이 인식에서 유권자는 정당과 후보를 선택할 '권리'를 가진 자가 아니라, 나라를 구하기 위한 역할을 해야 할 '의무'를 가진 자가 된다. 그렇기에 여성 유권자는 '충분히 자기 몫을 했다'는 평가가 가능해진다.

 

'나라 구하기'가 필요한 상황인지, 민주당이 제시한 방법으로 가능한지를 판단한 권리를 가진 주체는 유권자가 아니다. 그것은 먼저 깨닫고 가장 선두에 나서 있는 민주당 정치인들이 결정할 문제다. 나라 구하기는 지극히 당연히 모든 국민이 동의해야 하는 문제로, '찬-반'의 문제가 아니라 '깨달음'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유시민은 2030 남성들을 향해 "이제는 깨어나야 한다. 지금부터라도 제대로 하라"고 비판한다. 윤석열 정부가 양고기를 걸어놓고 개고기를 파는 '양두구육'이라며 "개고기를 구입한 사람들이 속았다는 것을 알면 이제는 (현 정권을) 응징해야 하지 않나"는 맥락에서 나온 말이다. 민주당을 지지하지 않는 것은 아직 깨닫지 못한, 발달하지 못하고 등급이 낮은 판단력의 문제가 된다.

 

유시민은 이미 '깨어 있는 시민'과 그렇지 못한 자의 우열을 여러 차례 주장한 바 있다. 

 

"노 대통령 묘의 비석 아래 철판에 새겨진 글이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 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입니다'죠. 저는 이게 답이라고 생각해요. 기본적으로 우리 시대의 의 또는 올바름, 가치를 추구하기 위해서는 우선 그 가치를 인식하는 사람들이 있어야죠. (중략) 

여러분, 국민은 그냥 주어지는 거죠. 대한민국에 태어나면 여권 국적란에 '대한민국, Republic of Korea'라고 그냥 주어지는 겁니다. 자기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국민이에요. 시민은 뭔가요? 자기의 권리가 무엇인지 알고 그 권리를 행사하려고 하는 각성된 국민이 시민이죠. 지금 벌어지는 이 모든 사회적 갈등을 보면 그 기저에는 우리가 보통 말하는 국민과 권리의 주체인 시민 사이의 갈등이 있습니다. 국민은 대개 한나라당 편, 시민은 우리 편이라고 볼 수도 있겠죠. 그러니까 깨어 있는 의식을 가진 시민이 많아지도록 하는 일이 노무현 정신을 계승하는 방법 중 첫 번째 단계에 또는 늘 해야 하는 기본적인 일입니다. (중략)

 

'깨어있는 시민'은 권력을 견제하기 위한 시민 의식을 갖춰야 한다는 보편적 경구이지만, 유시민은 '시민'의 상대항에 '국민'을 두고 두 항목을 재정의함으로써 차등적인 이분법 구도를 끌어낸다. 사실 모든 국민이 참정권을 갖는 현대 민주주의에서 국민과 시민은 개념적으로 같은범위를 지칭하지만, 여기서 시민은 어떤 자격을 갖춘 존재, 자격이 있기에 '국민'보다 더 큰 정치적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당위가 있는 자들이 된다. '국민'과 '시민'의 관계는 이해관계의 대립이 아니라, 아직 진정한 이해를 깨닫지 못한 '국민'과 그들을 위해 진짜 이익을 대변해 줄 수 있는 '시민'사이의 계몽적 관계가 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시민'이 될 수 있는가? 구체적 실천이 필요하다. 올바름을 추구해야 한다. 올바름과 이로움이 충돌할 때 올바름을 추구해야 한다. 많은 투쟁과 고민 끝에 현대 민주주의는 특정한 조건이나 자격 없이도 모든 국민이 같은 주권을 가진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하지만 이러한 인식 하에선 우리가 진정한 주권을 갖기 위해선 굳이 깨어 있기까지 해야 한다. 대한민국에 그냥 태어나서 사는 것만으로도 꽤나 피곤한 일인데 말이다. 이런 민주주의관은 이후 '이로움' 즉,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민주주의 문제를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한계로 이어진다. 

 

이러한 인식은 80년대 학생운동의 '품성론'의 업데이트된 재현이다. 품성론은 혁명가가 되기 위한 방법이다. 혁명가가 민중을 닮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거지, 민중이 어떤 행동을 하든 민중에서 탈락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반면 '시민'이 되어야 한다는 품성론적 요구는 혁명가가 아니라 유권자 일반의 자격에 대한 요구다. 결국 시민이 되지 못한 유권자의 목소리는 무시해도 되거나, 혹은 더 적극적으로 무시되어야 할 것이 된다. 품성론이 대의 민주주의와 만나면서 유권자 사이의 차등을 주는 담론이 된다. 

 

또한 '민중'이 '시민'이 되면서, 모호하게나마 존재했던 계층성은 완전히 사라졌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문제일 수도 있겠지만, 1980년대 대학 교육을 받고 중산층 이상이 된 86 집단의 경제적 계층 변화와도 무관하진 않을 것이다. 이제 누구라도 특정한 방식으로 행동하는 것만으로 '시민', 즉 우리 편이 될 수 있다. 그런데 이 실천 과제는 매우 어려우면서도 쉽다. 최단 경로는 그냥 민주당을 지지하는 것이다. 당신이 이로움보다 의로움을 추구하는 시민이라면 민주당을 지지할 것이라는 가정은, 손쉽게 민주당을 지지하면 깨어있는 시민이라는 역 명제로 전환된다.

 

이런 구도에서 민주당을 지지하지 않는 전제 하의 정치적 요구는 모두 비합리적이고 어리석은 것이 된다. 유시민은 2030 남성들이 "불만을 합리적인 방법으로 제시"하지 못한다고 얘기한다. 민주당 정부에 대해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회고적 투표는 합리적 방식이 아니란 것이다. 유시민은 이어 "기성세대가 부당하게 안 들어주면 돌 들고, 화염병 들고 정부종합청사, 민주당사에 던지라", "우리도 다 돌 들고 화염병 들어 세상이 바뀐 것이고, 그렇게 해서 세상은 자꾸 나아가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유시민이 비판한 에펨코리아 등의 커뮤니티에서는 유시민의 발언에 대해 이미 충분히 불만을 제시했는데 무엇을 더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반응이 많았다. 그리고 불만을 투표로 충분히 표시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2030 청년들은 젠더 갈등의 양상으로나, 실제 투표 결과로나 이미 충분히 불만을 드러냈다. 그 불만이 이기적이거나 여성 등 다른 집단을 차별하는 것이라는 비판은 가능하겠지만, 불만은 제대로 드러내지 못했다는 지적은 이해하기 어렵다.

 

집회결사의 자유와 저항권은 민주주의를 유지하는 데 필수적인 가치이긴 하지만, 유시민의 발언에 따르면 여당에 대한 불만으로 야당에 투표하는 민주주의의 일상적 표현 방식은 비합리적인 것이 되고, 화염병과 돌을 던지는 예외적인 방식은 오히려 권할만한 것이 된다. 이러한 정치적 상상도에서는 정치의 가장 깊은 내핵인 제도 정치 영역에는 민주당과 그 지지자들이 마땅히 있다. 그리고 그 다음 결에는 민주당이 미처 다 챙기지 못한 잠재적 과제로서의 민중의 불만이 예외적으로 존재한다. 여기까지가 민주당이 생각하는 정당한 정치의 영역이다. 

 

국민의힘은 이 예외적 영역에서도 밀려난 다른 세계, '악'의 세계에 존재한다. 이렇게 이해할 때 2023년 대한민국의 정치는 악의 세력에 의해 무단으로 점령된 전시 상태가 된다. 이 구도에서 악의 세력인 국민의힘에 동조하는 행위는 민주당에 돌과 화염병을 던지는 것보다 더 잘못된, 아둔하고 깨닫지 못한 이들이나 할 수 있는 행위가 된다.

 

가장 큰 문제는 투표로 표출한 불만이 정치세력에 가닿지 못한다는 것이다. 특정 집단의 요구가 이기적인 건 사실 민주주의 전체에서 문제는 아니다. 어차피 대부분의 요구는 이기적이다. 이기적 요구들만으론 사회가 유지될 수 없다는 걸, 결국은 우리가 평등한 대안을 찾는 것이 우리 사회의 장기적 존속과 발전을 위해 필요하다는 걸 설득하는 건 정치인과 정당의 역할이다. 그 역할을 잘 해 다수의 지지를 모아낼 수 있는 이들이 결국은 집권한다. 민주당에 어떠한 요구를 해도 튕겨나오기만 할 때, 더 이상 유권자들은 민주당에 요구도, 기대도 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보다 확실하게 민주당을 망가뜨리고 집권을 방해하는 방법을 없을 것이다.

황두영

정치학을 공부하고 정치권 노동자로 온갖 실무를 해왔다. 국회인턴부터 시작해 국회의원 보좌관, 청와대 정무수석실 행정관, 더불어민주당 공동비대위원장 정무조정실장까지 열심히 일했다. 정치권 안에서 도무지 풀리지 않는 질문들을 던지고 합리적인 대답을 찾기 위해 글을 쓴다. 단행본 <<외롭지 않을 권리>>, <<후보단일화 게임>>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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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유값에 교통비까지...추석 이후 생활물가 또 줄줄이 인상

  • 분류
    아하~
  • 등록일
    2023/10/03 09:36
  • 수정일
    2023/10/03 09:36
  • 글쓴이
    이필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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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에 진열된 우유 제품(자료사진) ⓒ뉴시스
10월 들어 식품, 에너지, 교통비 등 생활물가가 줄줄이 인상되면서 서민 부담이 더욱 커지고 있다.

낙농진흥회는 1일부터 원유 기본가격을 ℓ(리터)당 88원(8.8%) 올리기로 했다. 이에 따라 서울우유협동조합과 매일유업, 남양유업 등의 흰 우유 제품을 비롯한 유제품 가격이 이날 일제히 올랐다.

다만 우유제조업계는 제반 가격 상승 요인을 자체적으로 흡수해 흰 우유 1ℓ(또는 900㎖) 제품 가격을 대형마트 기준 3000원 미만으로 하기로 정했다.

이번 원유 가격 인상으로 우유가 들어가는 빵과 커피, 아이스크림 등 가격도 한꺼번에 오르는 이른바 ‘밀크플레이션’ 조짐도 보이고 있다. 작년에도 원유 가격 인상 여파로 우유 제품가격이 약 10% 오를 때 빵 가격은 6%대, 아이스크림 가격은 20%대 오른 바 있다.

식품뿐만 아니라 대중교통 요금도 이번 달부터 줄줄이 오를 예정이다. 서울 등 지하철 기본요금은 오는 7일부터 인상된다. 지하철 성인 기본요금이 오르는 건 2015년 이후 8년 만이고, 청소년·어린이 요금이 오르는 건 2007년 이후 16년 만이다.
기본요금은 교통카드 기준으로 성인 기본요금은 1250원에서 1400원으로 12% 오르며, 청소년(중학생·고등학생)은 720원에서 800원으로, 어린이(초등학생)는 450원에서 500원으로 각각 11%가량 인상된다. 이는 서울, 인천, 경기 지역과 코레일 운영 노선 등 수도권 전역에 일제히 적용된다.

가파른 국제유가 상승에 따라 기름값도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 서비스인 ‘오피넷’에 따르면 2일 전국 평균 휘발유 가격은 리터당 1796.19원으로, 1800원을 눈앞에 두고 있다. 경유 가격은 리터당 1699.63원이다.

이런 가운데 이달 말까지로 연장된 유류세 인하 조치가 종료되면 휘발유와 경유 가격이 더 오를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이에 정부는 평균 가격보다 비싸게 파는 주유소를 찾아 점검하는 한편, 유류세 인하 조치 연장 등을 검토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전기요금 인상 조짐도 보이고 있어 서민 부담 가중이 예상된다. 정부는 이달 중으로 올해 4분기 전기요금 인상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한전이 200조 원이 넘는 대규모 부채를 떠안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전기요금이 인상될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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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항공 858편 실종 사건의 풀리지 않는 의문점 세 가지

[기고] 방요한 고려신학대학원 전도사

  • 기자명 방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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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10.02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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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의 작은 나라 대한민국은 1945년 분단 아래 수많은 단일 민족의 아픔을 겪었다. 그리고 정부의 안일한 대처로 여러 참사를 겪었다. 그러함에도 우리나라 국민은 과거를 망각하는 방법으로 현재 사회를 영위했다.

불과 작년에 발생했던 ‘이태원 참사’는 벌써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지워졌다. 정의는 사라지고, 유가족의 눈물은 끊임없이 흐르고 있다. 그렇지만 그 누구도 유족의 슬픔을 닦아주려 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1987년 11월 29일 발생한 ‘대한항공(KAL) 858편 실종 사건(폭파 사건)’도 40년이 다 되어가는 시간 속에서 진실이 점점 희미해졌다.

사실 사건의 진실을 파악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대한항공 858편의 폭파범으로 지목된 두 명의 의문의 남녀. ‘김승일(金勝一)’과 ‘김현희(金賢姬)’의 정체. 그리고 항공사고 조사의 기본인 ‘CVR(음성 녹음 장치)’, ‘FDR(비행 기록 장치)’의 회수 및 기체 잔해 수거. 마지막으로 정확한 폭탄과 폭약 종류에 관한 조사. 삼위일체와 같이 기본적인 세 가지 조사만 이루어진다면, ‘대한항공 858편 실종 사건’의 실체는 규명될 수 있다.

하지만 불운하게도 이 세 가지 의혹 중 어느 하나 명확하게 규명된 것이 없다. 이 점은 2006년 ‘국정원 과거사 진실위원회’도 400쪽의 조사보고서에서 인정한 대목이다. 그러므로 대한항공 858편 실종 사건의 원인은 불명확하다. 아래 의혹을 살펴보면 쉽게 대한항공 858편 실종 사건의 주범이 북한으로 추정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1. 대한항공 858편의 탑승객 ‘김승일’은 누구인가?

1987년 11월 29일에 사건이 발생한 이래, ‘KAL858기 가족회’는 끊임없이 김현희의 정체에 관한 의문을 제시했다. “그녀가 과연 북한의 공작원이 맞는가?” 김현희의 다양한 의문점에 대해서는 여러 언론, 학자들이 정리하였으므로, 본 소고는 김승일의 정체에 관한 의혹을 간략히 정리하고자 한다.

1) 김승일의 언어 구사에 관한 의혹

현재 외교부는 생산 30년이 지난 문서들은 정리 후 공개하고 있다. 외교부 문서에 따르면 김승일은 일본의 위조여권(성명: 蜂谷 真一, 여권번호: MG 5741632)을 통해 일본-동유럽을 거쳐 중동으로 향했다.

김승일은 김현희와 함께 바그다드 공항에서 대한항공 858편을 탑승하고, 중간 기착지인 아부다비 공항에서 하기를 한 후, 난데없이 이탈리아 로마로 향하는 항공편을 발권했다. 그러나 모종의 이유로 바레인 암만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김승일이 김정기 대리대사와의 필담 시 남긴 필적(주소와 이름). [자료 사진 - 통일뉴스]
김승일이 김정기 대리대사와의 필담 시 남긴 필적(주소와 이름). [자료 사진 - 통일뉴스]

이때 김승일의 행적은 수상한 측면이 많다. 국가안전기획부의 발표와 외교부 전문과 모순적인 부분이 많다. 가령 국가안전기획부는 김승일을 4개 국어에 능통한 인물로 소개했다(영어, 일본어, 중국어, 러시아어). 하지만 유시야 참사관의 지시에 따라 김승일의 정체를 파악한 김정기 대리대사의 전문에 따르면, 리젠시 호텔(Regency Hotel)에서 김승일을 만났을 때, 그는 영어를 하지 못하는 일본인이라 한자 필담으로 겨우 대화를 나누었다고 보고했다.

또한 바그다드와 암만에서는 엉터리 영어(Broken English)를 구사했으며, 러시아어나 중국어를 구사했다는 외교부 전문 보고는 거의 없다. 그렇다면 김현희의 진술 외에는 김승일이 4개 국어를 능숙하게 할 수 있었다는 증거는 전혀 없는 상태인 셈이다.

2) 김승일은 과연 폭약 전문가인가?

이제 김승일이 국가안전기획부의 언론 발표와 같이, 북한의 능숙한 폭탄 전문가인지 따져봐야 한다. 김승일이 장갑을 끼고 화약을 만졌을 수는 있다. 그렇다고 해도 그의 손톱에 화약의 흔적이 전혀 없다는 것은 의아하다. 1987년 12월 28일. 국가안전기획부장 앞으로 회보된 국립과학수사연구소(현: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국과수) 감정서에 따르면, 김승일의 손톱에서는 화약이 전혀 검출되지 않았다.

과거 50~80년대는 종종 총기 사건이 발생하여 국과수 화학과에서 총기 사건을 감정했었다. 화학에 일가견이 있는 화학과가 김승일의 손톱에서 폭약의 흔적을 발견하지 못한 점은, 과연 김승일이 폭약을 만진 적이 있는지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다. 과연 김승일은 폭약 전문가였는가? 과학적으로만 따지면, 그는 화약을 만진 적이 없다. 단지 국가안전기획부에 의해 조작된 정체불명의 테러범에 불과하다.

3) 김승일의 담배 필터 의혹

국가안전기획부 언론 발표문에 따르면 김승일이 청산가리 작은 유리병(aempeul)이 든 담배 필터를 깨물어 자살한 것은 명백한 북한 공작원의 자살 수법과 같다. 그러나 2006년 국정원 과거사 진실위원회에 의해 부정된 사실이다.

또한 황적준 박사, 이정빈 교수에 의해 이뤄진 김승일의 부검에 따르면 담배 필터와 유리 파편들이 폐와 기관지 모두에서 발견되었다. 그리고 감정서 결론부에서는 청산가리에 의해 정신을 잃어 바닥에 쓰러져, 일직선의 골절이 발생했다고 기술했다. 또한 강제로 약물을 주입했거나, 타격했다는 증거로는 활용될 수 없다는 내용을 첨부했다.

하지만 이는 최소 10일이 지난 시신을 부검한 것이며, 당시 현장 사진을 보거나 방문하지 않고 오로지 국가안전기획부의 진술을 바탕으로 부검한 결과다. 반증하듯 부검의 이유 자체가 ‘하치야 신이치’의 진짜 정체를 밝혀, 국가안전기획부의 수사에 도움이 되도록 하는 것이다.

하지만 동양인의 노인을 부검한다고 해서, 그의 신원이 밝혀질 리가 없다. 또한 법의학자가 현장을 방문하지 않고, 수사기관의 정보만을 듣고 부검했다가 패착을 본 사례가 많다. 공교롭게도 김승일을 부검했던 두 명의 법의학자가 ‘치과의사 모녀 살인사건(1995)’에서 현장을 방문하지 않고, 수사기관의 정보만을 듣고서는, 피해자의 시반을 잘못 파악하여 사망 시간을 오판했다.

그렇다면 김승일의 폐와 기관지에서 담배 필터와 유리 파편, 청산가리가 검출되었다고 해서 그가 북한의 공작원이라는 사실이 될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하다.

4) 김승일의 시신 처리와 부검감정서의 행방

2002년 국립과학수사연구소가 통일뉴스의 정보공개 청구를 받아들여 공개한 김승일 부검감정서 일부. [자료 사진 - 통일뉴스]
2002년 국립과학수사연구소가 통일뉴스의 정보공개 청구를 받아들여 공개한 김승일 부검감정서 일부. [자료 사진 - 통일뉴스]

그렇다면 현재 진실을 명백히 밝혀 줄 김승일의 시신과 부검감정서는 어디 있을까? 김승일의 시신은 사진과 영상을 모두 촬영한 후, 가치가 없다고 판단하여 화장 처리를 하여 경기도 파주의 북한군/중공군 묘지에 안장했다. 따라서 김승일의 시신이라는 주요 자료가 영원히 사라지고 말았다.

그렇다면 김승일의 시체를 촬영한 영상(VTR)은 어디 있는 걸까? 대한항공 858편을 주제로 석사-박사 학위를 받은 박강성주 박사는 정보공개 청구를 통해 김승일의 사진과 영상의 존재를 확인했다. 하지만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다른 답변을 했다.

“저희는 부검할 때, 따로 영상을 촬영하지 않습니다(2022년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법의학부).”

국가안전기획부가 작성한 김승일의 시체 처리 문서의 내용과 전혀 대비된다. 당시 국가안전기획부, 현재 국가정보원 또한 김승일의 부검 및 시체를 촬영한 영상을 보유하고 있지 않다고 했다(2022년). 하지만 간혹 노태우 정권 때 의문사를 당한 대학생의 부검 영상들이 있다는 사례를 볼 때, 과거나 현재나 따로 부검 영상을 촬영하지 않는다는 답변은 여러 의혹을 부른다.

김승일의 부검감정서는 현재 나라기록관에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문서로 소장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부분 공개’에서 ‘비공개’로 전환됨). 그러나 2022년 만 해도 나라기록관은 김승일의 감정서를 ‘부존재 문서’로 인지했다. 왜 문서를 찾는데, 무려 1년이나 걸렸을까? 이에 대해 국가 기록관의 직원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으로부터 문서 이관에 대해 다음과 같이 증언했다.

“국과수 감정서 문서가 어떻게 등록이 되냐면, ‘감정서 회보’ 딱 다섯 글자로 나가요. 그걸로 저희는 못 찾아요. 날짜도 없고, 문서 번호도 없고…(2023년 국가 기록관).”

2. 대한항공 858편 기체 잔해는 어디 있는가?

당국이 KAL858기 잔해물이라고 발표한 비행기 잔해. 국과수 감정결과 폭발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감정을 의뢰한 안기부가 잔해를 회수해가지 않아서 국과수는 폐기처분한 것으로 알려졌다. [자료 사진 - 통일뉴스]
당국이 KAL858기 잔해물이라고 발표한 비행기 잔해. 국과수 감정결과 폭발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감정을 의뢰한 안기부가 잔해를 회수해가지 않아서 국과수는 폐기처분한 것으로 알려졌다. [자료 사진 - 통일뉴스]

항공사고 조사의 가장 기본적인 원칙은 사고 항공기의 상황을 알 수 있는 ‘CVR’과 ‘FDR’의 회수. 그리고 기체 잔해의 수거다. 하지만 대한민국 정부는 기체가 수장된 안다만해 수색을 게을리했다. 더불어 1990년대 발견된 일부 기체 잔해는 태국의 어부가 그물에서 건져 올린 것이다. 그것도 1988년 서울 올림픽 특수 도장이 아니었다면, 대한항공 858편의 잔해인지 판단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당시 태국에서 촬영한 기체 잔해 사진은 국가정보원에서 소유하고 있다. 의아한 점은 기체 잔해 원본 사진들이 ‘비밀정보 2급’으로 분류되어, 열람만 가능한 상태다. 더불어 국가정보원이 2020년 11월에 국토교통부 산하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로 대여했으나, 2023년에 다시 국가정보원으로 회수되었다는 사실이다. 이 점은 놀랍지 않다. 정작 놀라운 것은 1990년도에 국가안전기획부가 국립과학수사연구소로 감정 의뢰한 기체 잔해들이 모두 폐기 처분됐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미얀마 정국이 안정되어, 안다만해에서 나머지 기체 잔해를 수거하기 전까지는 영원히 그날의 진실을 알 수 없게 되었다. 생각해 볼 점은 기체 잔해 사진이 정확하게 대한항공 858편의 잔해이며, 어느 부분인지 알 수 없다는 점이다. 또한 기체를 감정한 감정서는 현재 위치가 묘연하다는 점이다.

“그쪽에서(국가정보원) 보내준 사진이 몇 개 있는데, 707기…손상된 사진이 858편 동체하고 관련된 게 있는데…기체 잔해가 폭파되어서…우리가 가지고 있는 사진은 기체 도면하고 CVR. 이런 사진들이 몇 개 있어요…이것일 것이다. 기체를 안다만해서 꺼내지도 못했어. 몇 개는 이럴 것으로 추정되는 사진이 몇 개가 있는데…(2023년 국가교통부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

“국과수에 지금 요구해도 국과수에 그 시스템을 담당하는 담당자도 그 감정서에 접근을 못해요. 기체 감정서 때문에, 혹시 문서 번호라도 확인할 수 있는지 요청했는데 접근조차 안 돼요(2023년 국가 기록관).”

3. 대한항공 858편을 추락시킨 요인은 무엇인가?

1987년 11월 29일, 미얀마 안다만 상공에서 대한항공 858편이 추락한 이후, 여러 가설이 나왔다. 첫 번째 가설은 기체 결함으로 인한 비상착륙 시도다.

1971년 대한항공에 도입된 보잉 707(HL-7406)은 구형 기체로서 1977년, 1987년 랜딩 기어 문제로 김포국제공항에 두 번이나 동체착륙을 한 사례가 있다. 1977년은 항공기관사의 조작 실수, 1987년은 기체 결함으로 인해 앞의 기어가 나오지 않아, 뒷부분의 기어만으로 동체가 활주로에 미끄러지듯이 착륙을 강행했고, 다행히 두 사건 모두 사상자가 나오지 않았다.

1987년 교통부 항공국에서 조사한 조사보고서는 현재 국가 기록관과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에서 보관하고 있다. 그러나 의아하게도 국가 기록관은 수사가 현재도 진행되고 있다는 이유로 ‘비공개 문서’로 처리하고 있다. 두 달 뒤 발생한 대한항공 858편의 기체 상태를 알 수 있는 주요 문서임에도 불구하고, 일부를 제외하고는 전체 기록이 비공개 상태인 것은 의미심장하다.

어쩌면 정말 기체 결함으로 인해, 미얀마와 교신을 하지 못하는 상태에 놓인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정확한 사실은 알 수 없다. 단지 구형 보잉 기체이며, 미국에서 수리받은 사실만을 알 수 있을 뿐이다.

두 번째 가설은 폭탄테러 설이다. 1988년 1월. 국가안전기획부는 대한항공 858편이 라디오로 가장한 폭탄에 의해 추락된 것으로 공식 발표했다. 그러나 그녀의 자서전 『이제 여자가 되고 싶어요』 1-2권에서 폭약에 관한 황당한 진술로 인해 여러 의혹이 나왔다.

그중 특기할 진술은 김승일이 이라크 바그다드 국제공항에서 TNT가 든 배터리를 복대에 숨기고 보안검색대를 통과했다는 것. 그러나 외교사료관을 통해 공개된 국가안전기획부의 언론 보도문에 따르면, 일제 ‘파나소닉 라디오 RF-085’에 은닉된 폭약은 분명 ‘컴포지션 C-4’다. 이는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감정 결과(1987년 12월 회보)에 따라, 김현희의 진술서에서 폭약이 컴포지션 C-4에서 급하게 TNT로 변경된 것으로 이해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TNT 배터리는 세상에 존재할 수 없다. 2006년 국방과학연구소도 이에 부정적인 회신을 보냈다.

또한 2006년 국정원 과거사 진실위원회의 조사보고서의 부록에 국가안전기획부-외교부의 전문이 실려 있는데, 김승일과 김현희가 대한항공 858편을 탑승하기 전 받은 보안검사에서 ‘양주병’으로 가장한 ‘PLX’ 액체 폭탄이 발견되지 않았다. 국가안전기획부는 이 사실을 알고도 라디오와 양주병으로 가장한 폭탄으로 대한항공 858편이 추락했다는 허위 사실을 발표했다.

1988년 유엔 안보리에 제출한 외교부 문서 그 어디에도 PLX 액체 폭탄의 실험 결과가 없다. 단지 컴포지션 C-4의 실험 결과만이 실려 있을 뿐이다(350g). 이러한 내용만으로는 대한항공 858편의 추락 원인이 폭탄인지, 기체 결함인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정부는 노태우 대통령 당선을 위한 비밀 작전인 “무지개 공작(1987. 12월 2일 작성)”에 따라 북한의 소행으로 서둘러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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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충돌 불사하는 듯한 윤 정부... 위험 신호 3가지

극우 장관 지명에 남북 군사합의 무력화, 국지적 충돌 가능성 높아졌다

23.10.02 18:44l최종 업데이트 23.10.02 18:44l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26일 오전 경기 성남시 서울공항에서 열린 '건군 75주년 국군의 날 기념식'에서 열병하고 있다.
▲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26일 오전 경기 성남시 서울공항에서 열린 '건군 75주년 국군의 날 기념식'에서 열병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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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윤석열 정부의 대북 전략이 심상치 않다. 윤석열 대통령이 그 단어조차 생소한 '공산주의'와의 전쟁을 '선언(?)'한 상황에서 극우·강성 장관들이 통일, 안보 수장으로 등장하며 남북 간 충돌 가능성이 높아지는 방향으로 대북 전략이 세팅되고 있다. 내년 4월 총선이 다가오는 상황에서 윤석열 정부의 대북 강경 폭주는 남북의 충돌을 불사하는 듯하다. 이 기사에서는 윤 정부의 한반도 '포석'이 어디로 향하는지, 왜 위험한지 그 속내를 분석해 보겠다. 

첫 번째 포석, 극우 통일부 장관과 강성 국방부 장관의 지명

윤석열 대통령은 국민이 반대하는 극우 통일부 장관, 강성 국방부 장관을 왜 지명했을까?

윤석열 정부 출범과 함께 지명된 권영세 통일부 장관은 정권교체와 상관없이 이전 정부의 남북 합의를 존중하는 등 이어달리기를 강조했다. 그가 통일부 수장으로서 대북정책을 조율하는 동안 남북관계는 그나마 최소한의 '관리'가 가능했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지 1년이 넘어선 상황에서 분위기가 급변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 2기 통일부 장관은 전임 권영세 통일부 장관과 연속성을 찾기 어려운 극우 인사이다. 김영호 장관은 "북핵 문제의 근본적 해결책은 북한 전체주의 체제 파괴에 의해서만 가능하다는 점을 인식하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북한이 안고 있는 이런 문제의 해결책이라고 하는 것은 김정은이가 정권에서 쫓겨나는 그 길밖에 없다"(김영호 교수의 세상읽기)고 주장한 바 있다.(관련 기사: 대통령은 통일부를 없애고 싶은 건가 https://omn.kr/24mah)
 
신원식 국방부장관 후보자가 지난달 2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  신원식 국방부장관 후보자가 지난달 2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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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청문회를 거친 신원식 국방부 장관 후보자는 과거 현직 대통령에게 내란 선동에 가까운 극우적 발언을 하고, 대결적 대북관을 숨김없이 드러낸 인사이다. 국방부 장관으로 너무나도 부적절한 신원식 후보자에 대해, 우리 국민은 부적절하다는 여론(48.3%)이 적절하다는 의견(30.6%)보다 우세하다(코리아리서치, 2023.9.28). 앞서 언급한 김영호 통일부 장관 또한 우리 국민에게 부적격( 52.7%) 판정을 받은 바 있다(미디어토마토, 2023.7.28).

윤석열 대통령의 철 지난 이념 논쟁을 제1선에서 지휘할 극우·강성 장관의 인선, 그렇게 첫 번째 포석이 놓여졌다. 

두 번째 포석, 남북 군사합의 무력화

두 번째 포석은 남북 군사합의 무력화로 연결된다. 윤석열 정부는 2018년 9월 평양정상회담에서 체결한 9.19 남북 군사합의를 무력화하려는 의지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김영호 통일부 장관은 9월 21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 출석해 "만약 (북한이) 중대 도발을 하게 되면 9.19 합의 정신을 명백히 어긴 것으로 봐야 한다"며 "그런 상황에 대응해 적절한 조치를 내놔야 한다"고 말해 남북 군사합의 무력화 가능성을 열었다. 여기에 신원식 국방부 장관 후보자는 9월 27일 개최된 청문회에서 9.19 군사합의를 "최대한 빠른 시간 내에 효력을 정지시킬 정도로 최선을 다하겠다"며 군사합의 폐기를 공언했다.
 
김영호 통일부 장관이 9월 5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정치분야 대정부질문에서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  김영호 통일부 장관이 9월 5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정치분야 대정부질문에서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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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할 수 없는 점은 북한의 9.19 군사합의 위반에 대해 합의 이행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합의 폐기를 추진한다는 점이다. 사실 9.19 남북 군사합의는 북한의 도발, 특히 국지 도발을 상당 부분 억제해 온 것으로 파악된다. 설훈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2010년부터 2018년까지 북한이 침투하거나 국지 도발한 사례가 265건이나 되지만, 2020년과 2021년에는 국지 도발이 1건씩"에 그쳤다. 특히 접경지역의 우리 국민들에게 9.19 군사합의는 반드시 필요한 안전장치이다. 반대로 9.19 합의의 폐기는 남북 접경지역에서 국지적 충돌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그렇다면 윤석열 정부는 왜 9.19 군사합의를 스스로 폐기하려 하는가? 이제 다음 포석으로 가보자. 

세 번째 포석, 대북 심리전의 재개

윤석열 정부는 대북 심리전 재개를 서두르고 있다. 신원식 국방부 장관 후보자는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대북 심리전을 재개해서 북한을 억제하는 데 적극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북 심리전'을 통해 '북한을 억제'하겠다는 주장은 매우 위험한 도박이다. 우리 군이 김정은 체제를 비방하는 확성기를 다시 켠다면 휴전선의 긴장은 극대화될 것이며 국지 도발의 가능성도 높아질 것이다. 특히 9.19 군사합의가 무력화된 상황에서 대북 심리전이 재개된다면 그 위험은 배가된다.

관련하여 우리 헌법재판소가 대북 전단 살포 금지법을 위헌(표현의 자유 침해)으로 판결하며 논란이 되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2020년 개정된 남북관계발전에 관한 법률 제24조 1항 3호(전단등 살포) 및 제25조(벌칙)에 대해 헌법 위반 결정을 내렸다. 해당 판결에 대해 헌법재판소 공보관실은 "입법자는 향후 전단 등 살포가 이루어지는 양상을 고찰해 접경지역 주민의 안전보장을 위한 경찰 등의 대응 조치가 용이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전단 등 살포' 이전에 관련 기관에 대한 신고 의무를 부과하는 등의 입법적 조치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헌법재판소의 판결은 존중되어야 한다. 다만 대북 전단의 내용이 북한 김정은 체제를 원색적으로 비난하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는 점에서 대북 확성기 재개와 함께 대북 전단이 접경지역의 긴장을 고조시킬 가능성이 높다. 무엇보다도 정부가 9.19 군사합의 폐기를 추진하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체제의 전복'을 주장한 바 있는 김영호 통일부 장관이 접경지역 주민의 안전을 위해 대북 전단 살포를 얼마나 적극적으로 통제할지 걱정이 앞서는 것 또한 사실이다.

최근 윤석열 정부가 둔 포석은 매우 우려스럽다. 극우 통일부 장관과 대북 강경 국방부 장관의 지명, 그리고 진행될 9.19 군사합의의 폐기 시도, 마지막으로 대북 심리전의 재개가 한 수, 한 수, 점에서 선으로 이어지고 있다. 필자 또한 이런 주장이 하나의 '시나리오'로 남길 바란다. 다만 최근 윤석열 정부의 포석은 북한의 도발을 억제하기보다는 남북 접경지역의 긴장을 고조시키는 방향으로 두어지고 있다.

국회는 10월 10일부터 27일까지 18일간 국정감사를 앞두고 있다. 국회는 윤석열 정부의 위험한 도박을 막고 한반도 평화를 위한 안전장치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시민사회도 정부와 국회가 한반도 평화를 위해 주권자가 부여한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철저히 검증해야 한다.

* 여론조사 관련
- 코리아리서치, 2023. 9.28. 25-26일 전화 면접, 전국 1010명 대상, 응답률 12.4%, 신뢰 수준 95% 표본오차 ±3.1%P
- 미디어토마토, 2023.7.28. 전국 1032명, 응답률 2.6%, 오차범위 ±3.0%P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정일영씨는 서강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 연구교수입니다. 관심분야는 북한 사회통제체제, 남북관계 제도화, 한반도 평화체제 등으로, <한반도 오디세이>, <한반도 스케치北>, <북한 사회통제체제의 기원> 등 집필에 참여했습니다.

 

태그:#윤석열, #국방부, #통일부, #북풍, #남북군사합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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깡통 조약 맹신하는 우매한 정권

 

[개벽예감 557] 깡통 조약 맹신하는 우매한 정권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 기사입력 2023/10/02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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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 

1. 왜 깡통 조약을 만들어 놓았을까?

2. 1953년 패전 위험에 빠진 미 제국

3. 깡통 조약은 미 제국의 유인책

4. 최후통첩이 장애물 치웠다 

5. 깡통 조약 제3조는 패전으로 직행하는 길

 

 

1. 왜 깡통 조약을 만들어 놓았을까?

 

2023년 10월 1일은 한미상호방위조약이 체결된 때로부터 70년이 되는 날이다. 1953년 10월 1일 워싱턴에서 미 제국 국무부 장관 존 포스터 덜레스(John Foster Dulles, 1888~1959)와 한국 외무부 장관 변영태(1892~1969)가 조약문에 서명했다. 이 조약은 1954년 11월 18일에 발효되었고, 그로써 한미동맹 관계가 성립되었다. 조약은 6개 조항으로 이루어졌다. 

 

▲ 변영태 장관과 덜레스 장관의 조약 체결 장면.     

 

 

한미상호방위조약 제2조에는 “당사국 중 어느 일방의 정치적 독립 또는 안전이 외부로부터의 무력 침공에 의하여 위협을 받고 있다고 어느 당사국이든 인정할 때는 언제든지 당사국은 서로 협의한다”라고 명기되었다. 이 조항은 어느 일방이 무력 침공을 받는 경우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서로 협의하는 것을 의무화한 조항이다.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한미상호방위조약에는 어느 일방이 무력 침공을 받는 경우 군사행동을 의무화한 조항이 없다. 그 조약에는 상호협의를 의무화한 조항만 있고, 마땅히 있어야 할, 군사행동을 의무화한 조항은 없는 것이다.  

 

1949년 4월 4일 워싱턴에서 조인된 북대서양조약(North Atlantic Treaty)에는 상호협의를 의무화한 조항과 군사행동을 의무화한 조항이 모두 들어있다. 1960년 1월 19일 워싱턴에서 조인된 미일안보조약에도 상호협의를 의무화한 조항과 군사행동을 의무화한 조항이 모두 들어있다.  

 

이런 사정을 살펴보면, 한반도에서 전쟁이 재발하는 경우, 미 제국은 한미상호방위조약 제2조에 의거하여 전쟁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를 한국과 협의하는 의무만 이행하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전시에 미 제국이 한국에 군대를 파병할 의무도 없고, 공동의 군사행동으로 전쟁에 대처할 의무도 없는 것이다. 

 

명색은 ‘상호방위조약’인데도, 전시에 군대를 파병할 의무와 공동의 군사행동으로 전쟁에 대처할 의무가 모두 빠져있는 것을 보면, 한미상호방위조약이야말로 알맹이 없는 깡통 조약에 불과하다.  

 

의문이 생긴다. 미 제국은 왜 알맹이 없는 깡통 조약을 만들어 놓았을까? 이 의문을 풀기 위해, 70년 전 깡통 조약을 체결하기 전후의 복잡한 상황을 추적할 필요가 있다.

 

1953년 5월 30일 당시 대통령 이승만(1875~1965)은 미 제국 대통령 드와잇 아이젠하워(Dwight D. Eisenhower, 1890~1969)에게 보낸 서한에서 적국이 한국을 침공하는 경우 미 제국이 즉각 군사원조와 비상 지원을 한국에 제공해 준다는 내용을 한미상호방위조약 초안에 명기해달라고 간청했다.

 

그러나 미 제국은 이승만의 간곡한 요청을 외면했다. 1953년 7월 7일 이승만은 미 제국 국무부 차관보 월터 로벗슨(Walter S. Robertson, 1893~1970)에게 보낸 서한에서 어느 일방이 침공을 받는 경우 다른 일방이 군사 지원을 제공하는 조항이 한미상호방위조약 초안에 명기되지 않아서 매우 실망했다고 썼다. 

 

위에 서술한 사정을 보면, 미 제국이 한국을 방어하기 위한 군사행동을 의무화한 조항을 한미상호방위조약에 고의적으로 넣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 다시 말해서, 미 제국은 한반도에서 전쟁이 재발해도 한국을 방어하기 위한 군사행동을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왜 그랬을까? 그 이유를 밝혀내기 위해 격전이 벌어지고 있었던 1953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2. 1953년 패전 위험에 빠진 미 제국

 

1953년 4월 3일에 작성된 미 제국 국가정보보고서(National Intelligence Estimates)가 기밀 해제되어 공개되었다. 국가정보보고서는 미 제국의 여러 국가정보기관들이 수집, 분석한 정보를 최종적으로 종합한 기밀문서다. 1953년 4월 3일 국가정보보고서에 다음과 같은 놀라운 정보가 담겼다.

 

“1951년 중순 정전협상이 시작된 이후, 한반도에서 공산 측 군사력이 꾸준히 증강되어 왔다. (여기서 말하는 ‘공산 측 군사력’은 조선인민군과 중국인민지원군의 군사력을 의미한다 - 옮긴이) 그들의 군사력은 두 배 이상 증가되었고, 병참도 충분히 증가되었다. 전투기는 세 배 이상 증가되었다. 만주 지역에서 전폭기 100대가 생산된 것으로 판단된다. 대폭 향상된 공산 측 군대의 전투력은 양호한 수준을 넘어선 것으로 판단된다. 잘 조직되고 충분히 통합된 그들의 방어지대는 교전지대에서 후방으로 15~20마일(24~32km - 옮긴이) 정도 더 넓어졌다. 방어지대에 요새가 많이 건설되었고, 현재 더욱 증가되고 확장되는 중이다.”

 

위에 인용한 미 제국 국가정보보고서는 1953년 초에 조선인민군과 중국인민지원군의 전쟁수행력이 대폭 증강되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그러면 같은 시기에 미 제국군의 전쟁수행력은 어떠했을까? 

 

1953년 3월 5일 제임스 밴 플리트(James A. Van Fleet, 1892~1992)가 미 제국 연방 상원 군사위원회 청문회에서 증언했다는 보도기사가 1953년 3월 6일부 동아일보에 실렸다. 미 제국 8군 사령관 겸 유엔군 총사령관으로 임명된 육군 대장 밴 플리트는 미 제국이 유엔기 아래 긁어모아 전선에 동원한 미 제국군, 한국군, 그 밖의 추종국가 군대들을 1951년 4월부터 1953년 2월까지 지휘했다. 그런 밴 플리트가 1953년 3월 5일 청문회에서 중요한 정보를 공개했다. 그의 증언에 의하면, 1953년 초에 미 제국은 전쟁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군사지휘관을 50%밖에 확보하지 못했고, 전차부대 하사관은 30%밖에 확보하지 못했으며, 전투원도 80%만 확보했다는 것이다. 100%를 확보해도 이길 수 없는 전쟁에서 군사지휘관과 전투원이 그처럼 턱없이 부족했으니 미 제국의 패색이 짙어진 것은 당연하였다. 당시 미 제국이 군사지휘관과 전투원을 충원하지 못한 이유는 전쟁을 2년 이상 계속해 오면서 사상자가 너무 많아져 충원 증가추세가 사상자 증가추세를 따라잡지 못했기 때문이다.      

 

위에 서술한 두 가지 정보는 미 제국이 1953년 당시 전쟁을 더 이상 계속할 수 없을 정도로 패전 위험에 빠졌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그런 위급한 상황에서 미 제국의 선택은 한 가지밖에 없었다. 정전협정을 하루빨리 체결하는 것이었다. 

 

 

3. 깡통 조약은 미 제국의 유인책

 

패전 위험에 빠져 위급해진 미 제국이 정전협상을 서두르고 있는 판에 뜻밖의 장애물이 나타났다. 그 장애물이 바로 이승만이다. 이승만은 정전을 완강히 반대했다. 왜 그랬을까? 정전이 실현되면, 미 제국군이 대폭 감축되지 않을까 우려했기 때문이다. 조선인민군과 중국인민지원군의 전투력이 대폭 증강된 상황에서 미 제국군이 대폭 감축되면, 전쟁이 재발하는 것은 불을 보듯 명확한 일이었다. 미 제국군이 대폭 감축된 상태에서 전쟁이 재발하면, 이승만 종미우익정권과 한국군은 조선인민군과 중국인민지원군의 압도적인 공격을 받고 전멸할 것이라는 불안과 공포가 이승만의 심경을 심하게 자극했다. 극도로 불안해진 이승만은 ‘정전반대 국민대회’라는 간판을 내걸고, 정전협상을 반대하는 관제 시위로 군중들을 내몰았다. 

 

1975년 8월 4일 뉴욕타임스는 기밀 해제된 극비문서들을 폭로하는 기사를 실었다. 폭로기사에 의하면, 1953년 5월 29일 미 제국 국무부 고위 관리들과 국방부 고위 관리들이 국방부 청사에 모여 회의를 진행했다고 한다. 6.25전쟁 시기 전선을 지킨 미 제국 육군 참모총장 로튼 콜린스(J. Lawton Collins, 1896~1987)가 회의에서 전시 상황을 보고했다. 회의에서는 세 가지 방안이 논의되었다. 그것은 생떼를 부리면서 정전협상을 가로막은, 골치 아픈 장애물 이승만을 처리하기 위한 방안들이었다.

 

제1방안은 이승만에게 안보조약을 유인책으로 제공해 그가 정전협상을 반대하지 않게 만드는 것이고, 제2방안은 미 제국의 뜻을 거역하는 이승만과 한국군 고위지휘관들을 체포, 구금하는 것이고, 제3방안은 미 제국군이 철수할 때까지 미 제국에 협력한다는 약속을 이승만에게서 받아내는 것이다. 

 

회의에서 국무부 부장관 프리먼 매튜스(H. Freeman Matthews, 1988~1986)와 국무부 차관보 월터 로벗슨은 미 제국의 뜻을 거역하는 이승만을 방치해서는 안 된다고 했고, 육군 참모총장 로튼 콜린스는 이승만을 체포해야 한다고 했다. 미 제국 해군 참모차장 도널드 던컨(Donald B. Duncun, 1896~1975)은 이승만에게 유인책으로 안보조약을 제공하자고 주장했으나, 콜린스는 이승만을 체포해야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고 맞섰다. 오랜 시간 설왕설래한 끝에 이승만이 정전협상을 반대하지 않는 조건으로 미 제국이 이승만과 안보조약 체결을 위한 협상을 할 수 있다는 잠정적인 결론에 도달했다. 그들은 자기들이 논의한 세 가지 방도를 비망록에 담아 아이젠하워에게 상신했다. 아이젠하워는 국무장관 존 포스터 덜레스의 의견을 받아들여 이승만이 정전협상을 반대하지 않게 만드는 유인책으로 안보조약을 체결하는 방안을 승인했다. 

 

1953년 5월 30일 미 제국 합참본부는 전선에 파견된 유엔군 총사령관 마크 클라크(Mark W. Clark, 1896~1984)에게 1급 비밀전문을 보냈다. 비밀전문에는 유엔군 총사령관 마크 클라크와 당시 주한 미 제국 대사 엘리스 브릭스(Ellis O. Briggs, 1899~1976)가 미 제국이 안보조약 체결 협상을 시작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을 이승만에게 통보해 주고,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요구조건을 이승만에게 제시하라는 내용이 담겼다. 세 가지 요구조건은 다음과 같다.

 

1) 한국 정부는 정전협상을 반대하지 않고, 정전협상을 반대하는 선동에 군중을 동원하지 않는다.  

2) 한국은 정전협정 이행에 협력한다.  

3) 한국군은 미 제국과 한국의 상호방위조약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게 될 때까지 유엔군 총사령관의 작전통제를 받는다. 

 

그러나 상황을 오판한 이승만은 위에 열거한 세 가지 요구조건을 받아들이지 않고 정전협상을 계속 반대했다. 이승만은 1953년 6월 18일 자정을 기해 미 제국을 격분하게 만든 매우 위험한 망동을 저질렀는데, 그것이 바로 전쟁포로 집단탈출 사건이다. 이승만의 비밀지령을 받은 한국군은 1953년 6월 18일부터 닷새 동안 여러 수용소들에 갇혀있던 전쟁포로들 중에서 26,900여 명을 탈출시키는 대탈주극을 감행했다. 수용소 경비부대는 탈출하는 포로들에게 무차별 총격을 가해 61명을 현장에서 사살했고, 116명에 부상을 입혔으며, 8,200여 명의 탈출을 저지했다. 

 

이 사건은 미 제국에 격앙과 분노를 안겨주었다. 대통령 아이젠하워는 전쟁포로 집단탈출 사건으로 미 제국이 “우방을 잃고 적을 얻었다”라고 격분했고, 국무장관 존 포스터 덜레스는 전쟁포로 집단탈출 사건은 “미국의 등에 칼을 꽂는 짓”이라고 맹비난했으며, 유엔군 총사령관 마크 클라크는 전쟁포로 집단탈출 사건으로 “지옥문이 열렸다”라고 개탄했다. 

 

이승만이 전쟁포로 집단탈출 사건을 감행한 1953년 6월 18일 백악관에서 국가안보회의 제150차 회의가 소집되었다. 회의에서 아이젠하워는 이승만이 감행한 전쟁포로 집단탈출 사건으로 정전협상이 파탄될 위험이 조성되었다고 탄식하면서 “그 위험을 종식시킬 수 있는 유일하고 신속한 방도는 군사정변”이라고 말했다. 아이젠하워가 언급한 “유일하고 신속한 방도”는 국무부 고위 관리들과 국방부 고위 관리들이 1953년 5월 29일 회의에서 논의한 세 가지 방안들 중에서 제2방안, 즉 미 제국군이 이승만과 한국군 고위지휘관들을 체포, 구금하는 것을 의미한다. 

 

 

4. 최후통첩이 장애물 치웠다 

 

1953년 6월 초 아이젠하워는 이승만에게 최후통첩을 보냈다. 아이젠하워는 최후통첩에서 “당신이 미 제국에 협력하지 않으면 우리는 다른 조치를 실행할 것”이라면서 “유엔군 총사령관은 당신의 결정에 상응하는 어떤 조치를 실행할 승인을 이미 받아놓았다”라고 노골적인 협박을 들이댔다.

 

아이젠하워가 최후통첩에서 언급한 조치는 1952년 7월 5일 유엔군 총사령관 마크 클라크가 미 제국 합참본부에 보낸 비밀보고서에 구체적으로 서술되었다. 비밀보고서에 의하면, 유엔사령부는 미 제국의 뜻에 복종하지 않는 이승만과 그 일파를 제거하고 과도정부를 수립한다는 실로 충격적인 내용이 들어있다. 유엔군 총사령관 마크 클라크가 그런 비밀보고서를 작성한 이유는 이승만의 폭압 만행으로 전선 후방에서 대혼란이 일어날 것으로 우려했기 때문이다. 1952년 이승만이 저지른 폭압 만행은 다음과 같다. 

 

서울을 빼앗기고 임시수도 부산에 내려가 피난살이를 하던 이승만은 1952년 5월 25일 느닷없이 전시계엄령을 선포하고, 야당 국회의원 50여 명을 북과 내통한다는 혐의로 체포, 연행했으며, 7월 4일에는 군대와 경찰을 내몰아 국회의사당을 포위하고 자신이 대통령에 재선되기 위한 이른바 ‘발췌 개헌안’이라는 것을 협박 분위기 속에서 통과시키는 만행을 저질렀다. 

 

미 제국은 근심에 빠졌다. 폭압 만행을 당한 야당과 지지자들이 반이승만 투쟁을 각지에서 일으키면 이승만은 전시계엄령에 따라 유혈진압을 감행할 것이고, 그런 유혈사태가 일어나면 전선 후방이 대혼란에 빠져 가뜩이나 불리한 전세가 더 불리해질 것으로 우려했다. 그래서 유엔군 총사령관 마크 클라크는 이승만을 제거하기 위한 ‘에버레디 작전계획(Operation Plan Everready)’을 수립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임시수도 부산에 있는 이승만을 다른 곳으로 유인한다.

2) 미 제국군 전투부대를 임시수도 부산에 출동시켜 이승만을 추종하는 한국군 고위지휘관 5~10명을 체포하고, 유엔군 시설들과 한국군 시설들을 경비하고, 한국군의 전시 계엄통제권을 장악한다. 

3) 이승만에게 위와 같은 조치가 이미 시행되었음을 통보하고, 그가 전시계엄령을 해제하게 하고, 국회에서 행동의 자유를 허용하게 하며,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게 한다. 

4) 만일 이승만이 미 제국의 지시에 복종하지 않으면 그를 독방에 감금하고 국무총리 장택상이 전시계엄령을 해제하게 한다.

5) 만일 국무총리 장택상마저 미 제국의 지시에 복종하지 않으면, 유엔사령부가 이승만 정부를 해산하고 과도정부를 세운다.

6) 유엔군에 참여한 나라들의 요청에 따라 유엔사령부는 자기 임무를 거스르는 불법행위를 감행하는 자들을 제거하는 군사행동을 하였다는 성명을 발표한다.

 

아이젠하워는 이승만에게 최후통첩을 보낸 직후인 1953년 6월 초 국무부 차관보 월터 로벗슨을 특사로 서울에 파견해 미 제국의 지시에 복종할 것을 이승만에게 요구했다. 이승만은 자신이 미 제국의 지시에 복종하지 않으면 목숨마저 위태로워질 수 있을 것으로 직감하고 머리를 숙였다. 그런 우여곡절 끝에 1953년 7월 27일 판문점에서 마침내 정전협정이 체결되었다. 

 

정전협정이 체결된 날로부터 며칠 뒤 아이젠하워는 국무장관 존 포스터 덜레스를 서울에 급파해 방위조약을 체결하기 위한 협상을 시작했다. 미 제국의 시각에서 보면, 한미상호방위조약은 정전협상을 반대하며 거역 소동을 일으킨 이승만을 복종시키기 위한 유인책에 불과했으므로, 그 조약은 알맹이 없는 깡통 조약으로 될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미 제국이 한미상호방위조약을 깡통 조약으로 만들어 놓았는데도, 윤석열 정권은 “한미동맹 70주년 만세!”를 목청껏 외쳐대면서 맹신의 길을 가고 있다. 

 

 

5. 깡통 조약 제3조는 패전으로 직행하는 길

 

2023년 9월 28일 미 제국 국방부가 「대량파괴무기에 대응하는 전략 2023(Strategy for Countering Weapons of Mass Destruction 2023)」이라는 제목의 군사전략문서를 발표했다. 미 제국 국방부는 그 문서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미국 본토와 역내 동맹국들 및 우호국들을 위험에 처하게 하는 단거리, 중거리, 대륙간 사거리의 이동식 핵능력을 개발, 배치하고 있다”라고 지적하면서 “(이러한 핵)능력 개발은 갈등의 어느 단계에서도(at any stage of conflict)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는 선택권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제공한다”라고 기술하였다.   

 

▲ 「대량파괴무기에 대응하는 전략 2023」표지.     © 미 국방부

 

위의 인용문에서 주목되는 것은, 조선인민군이 임의의 시각에 미 제국 본토에 치명적인 핵타격을 가할 수 있을 만큼 핵전투 능력을 고도화했다는 사실을 미 제국 국방부가 공식적으로 인정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조선인민군 전략핵 타격부대가 기습적으로 발사한 화성-18형 대륙간 탄도미사일이 미 제국 본토를 강타할 것이고, 그로써 미 제국은 파멸 위험에 빠지게 될 것이라는 점을 비교적 솔직하게 공인한 것이다. 

 

미 제국 국방부가 미 제국 본토를 강타당하고 파멸의 위험에 빠지게 될 것이라는 점을 공인한 것은 무슨 뜻인가? 거기에는 미 제국이 자국 본토에 화성-18형 대륙간 탄도미사일이 떨어지는 파멸 위험을 감수하면서 한국을 방어해 주려고 하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다시 말해서, 미 제국 본토를 치명적으로 위협하는 조선의 핵공격 능력 앞에서 미 제국은 한미동맹을 포기할 것이라는 뜻이다. 백악관은 서울을 방어해 주기 위해 워싱턴을 핵피격 파멸 위험에 빠뜨릴 정도로 우매한 집단이 아니다.  

 

미 제국은 자국 본토를 방어하고, 역외 영토인 하와이, 알래스카, 괌을 방어하기 위해 일본에 외곽 군사기지를 설치했고, 일본 주위에 2개의 부속 방어망을 구축했다. 그것이 바로 한국과 대만이다. 그런데 최근 중미대결이 격화되면서 대만의 군사전략적 가치가 한국의 군사전략적 가치보다 훨씬 더 커졌다. 이것은 미 제국이 한국을 포기할 수 있어도 대만은 포기할 수 없는 특이한 상황 속에 놓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미 제국은 자국 본토와 영외 영토가 조선의 핵타격 위협을 받을 경우, 한국과의 군사동맹을 포기하는 대신 일본과의 군사동맹과 대만 방어에 군사력을 집중하게 될 것이 분명하다.  

 

놀라운 사실은, 미 제국이 미 제국 본토와 역외 영토가 조선의 핵타격 위험에 직면하는 경우 한미동맹을 포기할 ‘함정조항’을 깡통 조약에 들여놓았다는 점이다. 깡통 조약 제3조가 바로 그 함정조항이다. 깡통 조약 제3조에는 “공동의 위험에 대처하기 위해 각자 헌법 절차에 따라 행동할 것을 선언한다”라고 명기되었다. 이 조항을 “공동의 위험에 대처하기 위해 행동할 것을 선언한다”라고 명기한 미일상호안보조약 제5조와 대조하면 격차가 커 보인다. 각자 헌법 절차에 따라 군사행동을 하는 것과 그런 복잡한 절차를 거치지 않고 즉시 군사행동을 하는 것은 엄청나게 다른 결과를 가져온다.  

 

깡통 조약 제3조에 의하면, 한반도에서 전쟁이 재발하는 경우 미 제국은 자국의 헌법 절차에 따라 그 전쟁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를 결정할 것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미 제국 연방헌법에 명기된, 전쟁을 결정하는 절차가 번거롭기 짝이 없다는 점이다. 

 

미 제국 연방헌법 제1조 8항에는 연방의회가 선전포고권을 행사한다고 명기되었다. 이 조항에 대한 법리 해석에 의하면, 전쟁을 선포하는 권한(선전포고권)은 미 제국 연방의회가 행사하고, 전쟁을 시작하는 권한(개전권)은 미 제국 총사령관인 대통령이 행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연방의회에서 선전포고를 의결해야, 다시 말해서 연방의회가 전쟁을 승인해야 미 제국 대통령이 전쟁을 시작할 수 있다. 실제로 제2차 세계대전 중에 미 제국 연방의회는 서로 다른 적대국들을 상대로 여섯 차례의 선전포고를 각각 의결한 바 있다. 

 

그런데 그러한 전통이 미 제국 제33대 대통령 해리 트루먼(Harry S. Truman, 1884~1972)의 독단과 전횡에 의해 깨졌다. 그는 연방의회가 선전포고를 의결하지 않았는데도 1950년 코리아 전쟁을 결정했다. 미 제국 제36대 대통령 린든 존슨(Lyndon B. Johnson, 1908~1973)도 연방의회가 선전포고를 의결하지 않았는데도 1964년 윁남[베트남] 전쟁을 결정했다. 

 

트루먼과 존슨의 독단과 전횡에 의해 깨진 전통은 1990년대에 복구되었다. 미 제국 제41대 대통령 조지 부쉬(George H. W. Bush, 1924~2018)는 1991년 연방의회의 승인을 받고 걸프 전쟁을 일으켰다. 미 제국 제43대 대통령 조지 부쉬(George W. Bush, 1946 출생, 2023년 현재 생존)도 연방의회의 승인을 받고 2001년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2003년 이라크 전쟁을 일으켰다.  

 

위에 서술한 내용을 보면, 만일 한반도에서 전쟁이 재발하는 경우 미 제국은 깡통 조약 제3조에 의거해 연방의회에서 전쟁 승인을 받으려 할 것이 분명하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다음의 사실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1) 1991년 걸프 전쟁을 일으키기 위해 연방의회에서 전쟁 승인을 받은 절차를 보면, 하원에서 찬성 250표, 반대 183표로 전쟁을 승인했고, 상원에서 찬성 52표, 반대 47표를 전쟁을 승인했음을 알 수 있다. 

2) 2001년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일으키기 위해 연방의회에서 전쟁 승인을 받았을 때는, 미 제국 전체가 9.11 사태의 엄청난 충격을 받았던 시기였으므로 하원에서 찬성 420표, 반대 1표라는 압도적인 표차로 전쟁을 승인했고, 상원에서 찬성 98표, 반대 0표라는 만장일치로 전쟁을 승인했다.  

3) 2003년 이라크 전쟁을 일으키기 위해 연방의회에서 전쟁 승인을 받았을 때는 하원에서 찬성 296표, 반대 133표로 전쟁을 승인했고, 상원에서 찬성 77표, 반대 23표로 전쟁을 승인했다. 

 

위에 열거한 표결 상황은 연방의회에 존재하는 전쟁 반대 세력이 만만치 않은 표결력을 쥐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미 제국은 연방의회의 승인을 받고 일으킨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이라크 전쟁에서 각각 패했다. 이 두 차례의 패전은 연방의회가 우크라이나 전쟁이 일어난 뒤에 무력 개입이라는 말조차 꺼내지 못하게 만들었고, 그로써 젤린스끼 종미우익정권에 미국산 무기를 지원하지 못하게 가로막으려는 분위기가 연방의회에 조성되었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면, 한반도에서 전쟁이 재발하는 경우 미 제국 연방의회는 군사력을 사용하는 문제를 놓고 찬반으로 갈려 격론을 벌일 것으로 예상된다.  

 

주목되는 것은, 분초를 다투는 현대전에서 군사력을 사용하는 문제를 놓고 논쟁을 벌이면 패전으로 직행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미 제국 연방의회의 전쟁 승인 절차를 명기한 깡통 조약 제3조는 한미연합군이 패전으로 직행하는 길을 예시한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70년 전 미 제국은 한미상호방위조약을 깡통 조약으로 만들어 놓았을 뿐 아니라, 그 조약 제3조에 패전으로 직행하는 길을 예시했는데도, 이번에 윤석열 정권은 “한미동맹 70주년 만세!”를 열심히 외쳐댔다. 우매한 정권이 깡통 조약을 맹신하면, 전쟁에서 패하는 것을 피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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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희, 김행, 한동훈’ 언급한 조국 “윤석열 ‘살권수’는 개소리”

  •  김도연 기자 
  •  
  •  입력 2023.10.01 18:03
  •  
  •  댓글 0



 

 

조국, 연일 윤석열 정권과 검찰 비판 메시지

요직에 검사 출신 임명하는 정권에 “신검부”

검찰수사 비판할수록 그의 위법행위도 부각

자녀 입시 비리 혐의로 1심서 징역형을 받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김건희 여사의 주가 조작 및 양평 고속도로 변경 의혹을 수사하라”고 검찰을 질타했다. 이원석 검찰총장과 검사들이 윤석열 정권 사조직이 아니라면, 현 정권 인사에 대한 수사도 엄격해야 한다는 취지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목소리를 키우는 조 전 장관에 여러 해석이 나온다.

조 전 장관은 1일 페이스북에 “이원석 검찰총장 및 휘하 검사들이 단지 ‘윤석열·한동훈 사조직’의 부하가 아니라면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며 다음과 같이 적었다.

“△문재인 대통령,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및 관계인을 수사하듯, 김건희 여사의 주가 조작 의혹 및 양평 고속도로 변경 의혹을 수사하는 것. △‘국정농단 사건’을 수사하듯, 해병대 박정훈 대령에게 압박을 가한 용산 대통령실 및 군 관계자들을 수사하는 것. △조국 장관 후보자 배우자의 차명주식 의혹을 수사하듯, 김행 장관 후보자 및 그 배우자, 친인척을 수사하는 것 △조국 장관 및 그 자녀를 수사하듯, 언론에 여러 차례 보도된 한동훈 장관을 비롯한 여러 부처 장관(후보자) 자녀의 인턴 증명서의 진위 및 과장(엄밀한 시간 확인)을 수사하는 것.”

조 전 장관은 “최소 이상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검찰도 법치도 ‘사유화’된 것”이라며 “그리고 윤석열의 ‘살아있는 권력 수사론’은 완전 개소리”라고 비난했다.

▲ 조국 전 법무부장관. ⓒ연합뉴스

조 전 장관은 연일 윤석열 정권 검찰에 각을 세우고 있다. 지난달 27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구속영장이 기각되자 “대선 경쟁자이자 야당 대표를 향한 영장실질심사 전까지 727일 동안 세 개의 청(서울중앙지검, 수원지검, 성남지청), 70여명의 검사가 376회 압수수색과 여섯 번의 소환조사를 벌인 결과가 구속영장 기각”이라고 꼬집었다.

지난달 15일 노무현재단 유튜브 방송 ‘알릴레오북스’에선 “윤석열 대통령 처가 사람들을 변호했던 변호사들은 대부분 한자리 하고 있다. 이렇게 노골적으로 자리를 챙겨줄 수 있는가 의문이 있다”며 “윤 대통령은 촛불혁명 시기 국정농단 수사를 했던 사람이다. 정권을 잡고 나니까 간첩조작을 했던 검사도 중용하고, 박근혜 탄핵이 잘못됐다고 비판하는 검사 출신 변호사를 정부 외곽기관 주요 자리에 배치했다”고 지적했다. 조 전 장관은 최근 출간한 책 ‘디케의 눈물’에서 정부 요직에 검사 출신을 임명하고 있는 윤 대통령 인사를 ‘신검부’로 표현하며 비판했다.

조 전 장관은 지난달 22일 친민주당 스피커 김어준씨의 유튜브 방송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서 “나와 내 가족 명예를 회복해야 하는 면이 있다”며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서 극우로 달리고 있는데 문재인 정부 고위 공직자로서 책임이 있다. 이 폭주를 어떻게 막아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조 전 장관이 내년 총선 출마를 염두에 두고 있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뒤따랐다.

조 전 장관이 윤 대통령과 검찰을 비판할수록 그의 위법 행위와 부도덕도 함께 입길에 오르내릴 수밖에 없다. 그는 자녀 입시 비리와 감찰 무마 등 혐의로 지난 2월 1심에서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 받았다. 법원은 딸 조민씨의 ‘7대 스펙’ 창조 과정에 조 전 장관이 관여했다고 판단했다. 특히 서울대 공익인권법센터 인턴십 확인서와 부산 아쿠아펠리스 호텔 인턴십 확인서의 경우 조 전 장관이 직접 위조했다고 했다.

언론도 조 전 장관 발언과 행보를 주목했다. 김윤덕 조선일보 선임기자는 지난달 26일 칼럼에서 “조국은 검찰이 국민들 공포의 대상이 됐다고 했지만, 검찰이 무서워 못 살겠다는 사람을 나는 아직 본 적이 없다. 공포로 치자면, 검찰보다 백주 대낮의 묻지 마 폭행범과 스토킹 살해범들이 훨씬 무섭다”면서 “신검부, 대한검국이라는 얄팍한 조어 선동에도 더는 속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조 전 장관이 “총선 정국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반검찰, 반독재 감정을 부추기고 있다”는 게 김윤덕 기자 생각이다.

위지혜 매일경제 기자는 “조 전 장관 일가는 최근 잇따라 책을 출간하는 등 정치 행보를 보이고 있다”며 “조 전 장관 일가는 최근 이재명 대표 체제에 대한 야권 내 위기론이 불거지자 친문 세력의 대안으로 언급되며 주목을 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김도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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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토를 빼앗긴 주권 국가가 있는가

  •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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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
    2023/10/02 08:47
  • 수정일
    2023/10/02 08:50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 장창준 객원기자
  •  
  •  승인 2023.10.01 08:4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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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상호방위조약 70년]지구상에 이런 동맹은 없었다 ①

▶ 1953년 10월 1일 워싱턴 D.C에서 미국의 덜레스 국무장관과 한국의 변영태 외무장관이 한미상호방위조약에 서명하고 있다.

70년 전 오늘, 그러니까 1953년 10월 1일 한미상호방위조약이 체결되었다. ‘상호’라는 말은 장식에 불과했다. 당시 대한민국은 미국의 방위를 지원할 어떤 역량도, 자격도 없었다. 미국의 원조에 기대해 나라를 운영하고 있었다. 그런 나라가 어떻게 미국을 지원하겠는가. 게다가 1950년 7월 14일 한국군에 대한 작전통제권도 미국이 거머쥐고 있었다. 작전통제권을 상실한 나라가 작전통제권을 거머쥐고 있는 나라의 안보를 지원할 자격이나 있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미‘상호’방위조약은 체결되었다. 마치 동등한 자격을 갖춘 국가들 사이에서 체결된 것처럼, 마치 한국과 미국이 대등하고 수평적인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것처럼 그렇게 한미‘상호’방위조약은 체결되었다.

1953년 10월 1일 이승만 정부는 동맹을 체결할 자격조차도 갖지 못했다. 동맹은 자신의 군사력을 동맹국을 위해 사용하기로 약속하는 정치적 행위이다. 따라서 자기 나라 군대에 대한 작전권과 통제권을 갖고 있어야 동맹할 자격이 생긴다.

그런데 미국은 이미 한국전쟁 시기 한국군에 대한 작전통제권을 앗아갔다. 한국 군대에 대한 작전통제권을 거머쥔 미국이 한국과 동맹을 체결한다는 것은 언어도단이다. 작전통제권은 군사 주권의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군사 주권을 상실한 나라는 동맹을 체결할 자격 자체가 없다.

이승만을 ‘국부(國父)’로 여기는 사람들은 이승만이 결단과 지략으로 한미동맹조약을 체결하지 않으려는 미국을 설득했고, 그 결과 대한민국이 유지될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한미동맹조약은 우리의 영토를 미국 맘대로 사용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했을 뿐이다. 이승만은 미국에 우리의 영토 주권을 넘겨준 사람일 뿐이다.

냉전이 격화되는 시기, 미국은 동북아시아에서 대소전진 군사기지가 필요했다. 미국이 원하는 곳에 원하는 군대를 원하는 만큼 주둔시킬 수 있는 권리, 즉 ‘주병권’을 대한민국에서 확보하고자 했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역사적인’ 한미상호방위조약 제4조이다.

제4조

상호합의에 의하여 결정된 바에 따라 미합중국의 육군, 해군과 공군을 대한민국의 영토 내와 그 주변에 배치하는 권리를 대한민국은 이를 허여(許與)하고 미합중국은 이를 수락한다.

이승만 정부는 주병권을 미국에 ‘허여’하고, 미국은 ‘수락’했다. 이로써 미국은 대한민국 영토와 그 주변에 미군 병력을 주둔시킬 수 있는 권리를 완벽하게 확보했다. 한미상호방위조약 4조가 ‘역사적인’ 이유는 어느 동맹조약도 이런 내용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미일동맹조약만 하더라도 "미국은 그의 육군, 공군 및 해군에 의한 일본 국내의 시설 및 구역의 사용권을 허가받는다"라고 규정되어 있다. 미국은 미군을 일본에 주둔시킬 때는 매번 일본 정부의 허가를 받게 되어 있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이 체결됨으로써 미국은 한국에 대한 군사 주권뿐 아니라 영토 주권마저 완벽하게 장악하게 되었다.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 70년을 맞는 오늘, 빼앗긴 우리의 군사 주권과 영토 주권은 여전히 미국의 손아귀에 있다. 대한민국이 주권 국가라고? 군사 주권과 영토 주권을 빼앗긴 주권 국가가 있었던가? 그런 경우를 식민지라고 부른다.

장창준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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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보는 보수? 홍범도 논란, 수사 외압에 ‘일베’급 장관 후보자까지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9월 26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 마련된 단상에서 건군 75주년 국군의 날 시가행진을 지켜보며 장병들을 향해 박수 보내고 있다. ⓒ뉴시스
10월 1일 국군의 날을 닷새 앞두고 성남 서울공항에서 기념식과 함께 육해공군 장병 6,700여 명이 참여한 열병이 진행됐다. 비닉 무기인 고위력 탄도미사일, 최신형 ‘현무’ 등 일반에 최초 공개되는 장비부대 행진도 이어졌다. 곧이어 10년 만에 서울 도심에서 군 시가행진이 실시됐다. 주한미군 전투부대원도 성조기를 휘날리며 처음으로 시가행진에 참여했다. 역대 최대 규모로 열린 국군의 날 기념식이었다.

현직 대통령으로서 처음으로 직접 시가행진에 참여한 윤석열 대통령은 “국민들이 위풍당당한 개선 행진을 보고, 여러분을 신뢰하고 우리 안보에 대해 확고한 믿음을 가지셨을 것”이라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대북 강경대응을 천명하면서 ‘힘에 의한 평화’를 강조했다. 이날 시가행진이 대북 무력시위 성격임을 드러낸 셈이다.

그러면서 “안보도 경제도 보수정부가 낫다는 조작된 신화에서 벗어날 때가 됐다”는 문재인 전 대통령의 말에 ‘보수정부’인 윤석열 정부와 여당은 콧방귀를 끼고 있다. 하지만 안보는 무력뿐만 아니라 국가의 안녕과 국민의 안전에 대한 대비 시스템 전반을 포괄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안보는 보수정부가 낫다’는 증거를 윤석열 정부에서 찾아보기가 힘들다. 안보에 있어서는 소모적인 이념전쟁만 불사르면서, 정작 병사 하나 지키지 못하는 무능함만 내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국방부가 육군사관학교 내에 설치된 고(故) 홍범도 장군 흉상을 포함한 국방부 청사 앞에 설치된 흉상도 필요시 이전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뉴시스

 

‘항일 영웅’을 한순간에 ‘빨갱이’로 만드는 국방부


윤석열 정부의 이념전쟁은 육군사관학교 충무관 앞에 설치된 홍범도 장군 흉상 철거 추진으로 촉발됐다. 국방부가 홍범도 장군이 1927년 소련공산당에 입당한 것을 문제 삼으면서 홍범도 장군 흉상을 철거하겠다고 나서면서다. 앞서 육군은 문재인 정부 때인 2018년 3월 1일 우리 군 장병이 훈련으로 사용한 실탄의 탄피 300kg을 녹여 홍범도 장군 등 독립운동가 5명의 흉상을 제작해 육사 교내에 세웠다.

국방부는 홍범도 장군의 전력이 “공산주의 북한의 침략에 대비하여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을 수호하기 위한 호국간성을 양성하는 기관”인 육군사관학교와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홍범도 장관 흉상 철거를 밀어붙이고 있다.

국방부의 이런 방침에 독립군 부대를 이끌고 봉오동전투에서 일본군을 무찔렀던 ‘항일 영웅’이 갑자기 ‘빨갱이’로 몰리게 됐다. 항일무장투쟁의 업적을 인정받아 1962년 정부로부터 건국훈장을 받았고, 카자흐스탄에 있던 유해는 2021년 대한민국 공군의 호위를 받으며 송환됐으며, 여러 독립운동가와 함께 육군사관학교 교정에 흉상이 세워졌던 인물이 바로 홍범도 장군이다. 그런 홍범도 장군을 갑자기 윤석열 정권이 지우려 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두고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국방부의 조치가 과도하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홍범도 장군을 사상의 잣대로 평가하고 배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1945년 해방 이전까지 사회주의, 공산주의적 이념을 갖거나 소련 등의 도움을 받아 독립운동을 한 세력은 적지 않았다는 게 역사학계의 중론이다. 이제 와서 이들의 당시 사상을 문제삼아 배척한다는 건, 일제라는 외세의 침략에 맞서 싸운 독립운동을 정부가 스스로 부정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는 보수세력이 중시하던 안보의 핵심 근간을 뒤흔드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안보를 무엇보다 중시하는 보수진영에서도 비판적인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철 지난 해묵은 공산주의 이념전쟁”이라며 “홍범도 장군을 존경하는 것은 독립전쟁 영웅이었기 때문이지 불가피했던 소련 공산당원 홍범도는 아니다”라고 꼬집었다.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도 “민생의 문제는 절대 아니고 심지어 이건 보수진영의 보편적인 지향점이라기보다는 그저 일부의 뉴라이트적인 사관에 따른 행동”이라며 “과거 무장독립운동에 나섰던 사람들 간에 크고 작은 알력이 있었을망정 이념에 따라서 그 평가가 달라져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역사학계에서도 집단적인 반발이 터져 나왔다. 한국역사연구회 등 51개 역사단체는 “정부의 왜곡으로 대한민국 국민의 자랑인 평민 의병장, 대한독립군 대장, 북로정일제일군 사령관 홍범도가 부관참시당했다”며 홍범도 장군 흉상 철거 추진 계획을 철회하라고 촉구했다.

 

 

 

해병대 사관 제81기 동기회는 지난 8월 26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 이순신 장군 동상 앞에서 ‘고 채 상병 순직에 대한 공정수사 촉구를 위한 해병대 총행동’을 가졌다. 이날 자리에는 동기뿐 아니라 여러 선후배들이 함께 했다. ⓒ뉴시스

군에 입대했더니 돌아온 건 허무한 죽음, 그리고 진실 은폐


해병대 1사단 포병여단 소속 채 모 상병의 사망 사건은 윤석열 정부가 강조하던 안보의 허점을 그대로 드러낸 사건이다.

올해 여름, 채 상병은 경북 예천 내성천 일대에서 호우 피해 실종자를 수색하다가 급류에 휩쓸려 사망했다. 당시 일병이던 채 상병은 해병대를 상징하는 빨간색 티셔츠를 입고 있었지만 구명조끼를 비롯한 안전장치 하나 제대로 갖추지 않았고, 일명 ‘인간띠’ 수색을 하다가 변을 당했다. 설령 구명조끼와 같은 안전장치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도보 수색을 담당하는 포병이던 채 상병이 허리까지 물이 차오르는 강에 들어가 수색을 해야 하거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윗선’의 지시가 없었다면 말이다.

이 사건이 알려지자 ‘군인이 소모품이냐’는 비판이 쏟아졌다. 국가의 안보를 지키는 의무를 다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군에 입대했더니, 돌아온 것은 허무한 죽음이었다는 것이다. 군에 대한 신뢰는 추락했다.

더 큰 문제는 채 상병의 죽음에 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당초 채 상병 사망 사건에 대한 수사는 해병대 수사단이 맡았다. 그런데 경찰로 이를 이첩하는 과정에서 ‘윗선’으로부터 외압을 당했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해병대 수사단장이었던 박정훈 대령의 폭로를 통해 ‘윗선’의 수사 외압 정황이 속속 드러났다.

그 핵심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기록에서 사건 현장 지휘 책임자로 꼽히는 임성근 해병대 1사단장의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를 빼고, 수사기록의 경찰 이첩도 보류하라는 것이었다. 수사단장이던 박 대령은 임성근 1사단장 등 8명에게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가 있다는 수사 결과를 내리고, 이를 이종섭 국방부 장관에게 보고하고 결재를 받은 상태였다. 현행 법에 따라 박 대령은 이 수사기록을 경찰로 이첩하려고 하는데 거기서 ‘윗선’에 의해 제동이 걸렸던 셈이다. 이 과정에서 대통령실의 개입이 있었다는 정황도 나오고 있다.

이후 박 대령은 수사단장 보직에서 해임될 뿐만 아니라 ‘항명죄’로 기소돼 국방부 검찰단의 수사를 받고 있다. ‘윗선’의 지시를 무시하고 경찰로 수사기록을 이첩했다는 혐의다. 박 대령은 수사 외압을 주장하며 계속 법적 다툼을 이어나가고 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도 수사 외압 의혹과 관련해 관련자들을 조사하고 있다. 채 상병 사망 사건은 현재 경찰이 수사 중이지만 그 진실은 여전히 안갯속이고, 박 대령의 항명 사건으로 비화한 형국이다.

안보의 핵심 축이라고 불리는 군대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 혼돈은 보수세력의 지지층도 혀를 내두르게 하고 있다. 전국의 해병대 예비역과 박 대령의 해병대 사관 동기들은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서 집회를 열고 채 상병 사망 사건과 이와 관련한 수사 외압 사건에 대한 진상규명과 공정수사를 촉구하기도 했다. 당시 해병대 사령관을 역임한 전도봉(80) 예비역 중장은 “부하는 상관의 지시에 따라 임무를 수행하다 죽음으로 충성했는데 이제는 상관이 죽음으로 보답해야 한다. 즉 현실의 해병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지휘관이 희생해야 한다”고 압박했다.

 

 

 

신원식 국방부 장관 후보자가 지난 9월 2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 출석해 의원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2023.09.27. ⓒ뉴시스

 

군사 쿠데타 옹호 논란 휩싸인 ‘극우’ 국방부 장관 후보자


이 일로 벼랑 끝에 내몰린 이종섭 국방부 장관은 결국 윤석열 대통령에게 사의를 밝혔다. 야당이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실 은폐와 수사 외압의 책임을 물으며 탄핵소추를 추진하자 선제적으로 자리에서 물러난 것이다. 윤 대통령은 하루 만에 서둘러 이 장관의 사표를 수리했다. 이는 수사 외압 의혹의 진상규명을 막아선 결과나 다름없었다.

게다가 윤 대통령이 신임 국방부 장관 후보자로 신원식 국민의힘 의원을 지명한 것은 안보의 추락한 신뢰를 더 이상 회복할 생각이 없음을 단적으로 보여줬다. 신원식 후보자는 대표적인 친일반민족행위자인 이완용, 쿠데타와 민간인 학살을 일으킨 전두환을 옹호하거나 ‘군 사이버사령부 댓글 공작’ 사건이 날조된 것이라고 왜곡 주장을 하는 등 부적절한 언사와 극우적인 성향으로 수차례 구설수에 올랐던 인물이기 때문이다.

2019년 자유한국당 주최 집회에 예비역 장군 신분으로 연단에 올랐던 신 후보자는 “이완용이 비록 매국노였지만 한편으론 어쩔 수 없는 측면도 있었던 것이 사실”이라며 이완용을 옹호하는 반면, “이완용과 비교도 되지 않는 오천 년 민족사의 가장 악질적인 매국노가 문재인”이라며 문재인 당시 대통령을 힐난했다.

또한 신 후보자는 같은 해 유튜브 채널 ‘신인균의 국방TF’에 출연해 전두환 씨에 대해 “뭐 사람들은 독재자라는데, 박정희 대통령 돌아가신 그 공백기에 서울의봄 일어나고 그래서 저는 그때 당시 (전두환이) 나라 구하겠다 나왔다고 본다”며 “그런데 광주에서 사격명령, 방문한 적도 없는 전 대통령 불러서 저 망신을 주는데 누구 하나 보호해 주는 사람 있나”라고 성토했다. 국방부 장관 후보자가 군사 쿠데타를 옹호하는 시각을 보인 셈이다.

그는 같은 해 극우 성향의 전광훈 목사 집회에 참석해서는 “2016년 박근혜 대통령을 파멸로 이끌었던 촛불은 거짓이고, 지금 태극기는 진실”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한 문재인 당시 대통령에 대해 “내려오지 않으면 쳐들어가서 끌어내리고 다윗이 골리앗의 검을 뺀 것처럼 목을 날려야 한다”고 막말을 하며 춤을 추기도 했다. 아울러 “문재인은 취임하자마자 한국군의 정신을 파괴시킨다”며 “공관병 갑질, (군) 사이버사 댓글, 계엄령 모의 날조 이런 것”이라고 주장했다.

신 후보자는 2020년 미래통합당 비례대표로 정치에 입문한 뒤로도 국회에서 여러 발언으로 논란이 됐다. 올해 4월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오염수”라는 단어를 쓰면 “특정 이념에 매몰된 것”이라고 주장하는가 하면, 해병대원 사망사건 조사 및 이첩 과정에서 국방부 윗선의 외압이 있었다는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에 대해서도 “3류 저질 정치인 망동”이라고 비난했다.

최근 국방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선 “북한 공산주의와 싸워서 나라를 지킨 육사에서 홍 장군의 졸업장을 준 그 자체가 잘못됐다고 생각한다”며 독립운동가인 홍범도 장군의 육군사관학교 명예졸업증서 회수를 검토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이렇다 보니 신 후보자가 육군 중장 출신이라고는 하지만, 군을 지휘하는 국방부 장관으로서 자격이 있느냐는 의문이 뒤따른다. 논란이 커지자 신 후보자는 뒤늦게 자신의 과거 발언에 대해 바짝 자세를 낮추는 모습을 보였다. 신 후보자는 인사청문회에서 “쿠데타는 절대 있어서는 안 되고 있을 수도 없는 일”이라고 해명하거나 ‘문 전 대통령의 목을 날려야 한다’는 발언에 대해선 “적절치 않았다”고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그가 자신의 발언을 주워 담기에는 이미 늦었다. 국회 다수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철 지난 종북, 공산주의 타령이나 하는 신 후보자가 있을 곳은 국방부가 아닌 아스팔트 우파의 집회 현장”이라며 윤 대통령에게 지명 철회를 촉구했다. 수사 외압으로 물러나는 국방부 장관은 물론이고, ‘일베’(극우 성향 커뮤니티) 성향의 국방부 장관도 절대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다. 
 

“ 최지현 기자 ” 응원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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