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2월 24일 러시아의 침공으로 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됐다. 보름 뒤 치러진 한국 대선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당선됐다. 5월 21일, 윤 대통령은 취임 열흘 만에 방한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첫 정상회담을 가졌다. 중국은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소그룹을 만들지 말라"고 미국을 견제했다.
대통령 취임사에서 윤 대통령은 "보편적 가치 공유", "자유의 가치 재발견"을 강조했다. 한미동맹을 외교의 근간으로 삼는 한국 정부가 미국이 주도하는 '가치동맹'을 거부하기 어려운 현실을 반영했다. 미중 경쟁과 우크라이나 전쟁이 표상하는 신냉전의 먹구름 속에 출범한 보수 정부의 불가피한 선택으로 인정받았다.
곧바로 한미동맹, 한미일 공조 강화로 직진했다. 올해 4월 핵 기반 동맹 관계로 다가선 한미 '워싱턴 선언', 한미일 안보 협력 제도화의 발판을 마련한 9월 '캠프 데이비드' 합의는 윤 대통령이 올라탄 가치동맹의 소산이다. 이전 정부에서 최악으로 치달았던 한일관계는 "미래지향적 관계"로 전환했다.
대신 한중 관계에 기회비용을 초래했다. 북한과 러시아의 '위험한 거래'도 대가로 돌아오고 있다. 한일관계 개선의 비용도 만만찮았다. 강제징용 문제에서 일본은 배상을 거부하고 사죄도 유보했다.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로 한국 정부에 난처한 상황을 안기기도 했다.
윤 대통령은 처음부터 내치와 외치의 경계를 허물고 국정에 임했다. 취임사에서 "우리나라는 국내 문제와 국제 문제를 분리할 수 없다"면서 "국제사회가 우리에게 기대하는 역할을 주도적으로 수행할 때 국내 문제도 올바른 해결 방향을 찾을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그 예고에 따라 신냉전적 국제 질서에는 모호성을 폐기하고 대응 기조를 잡았다. 동시에 내전에 가까운 국내 갈등도 전면화했다. 화물연대, 건설노조, 민주노총, 시민단체를 몰아붙인 '이권 카르텔' 척결,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을 향한 흑백 논리가 이념 전쟁으로 거칠어졌다.
지난 6월 자유총연맹을 찾은 윤 대통령은 "왜곡된 역사의식, 무책임한 국가관을 가진 반국가 세력들은 핵무장을 고도화하는 북한 공산집단에 대해 유엔 안보리 제재를 풀어달라고 읍소하고, 유엔사를 해체하는 종전선언을 노래 부르고 다녔다"고 했다.
8.15 광복절 경축사에선 '공산전체주의'라는 생경한 용어를 반국가 세력의 정체를 지칭하는 의미로 썼다. "공산전체주의를 맹종하며 조작 선동으로 여론을 왜곡하고 사회를 교란하는 반국가 세력들이 여전히 활개 치고 있다."
9월 국립외교원을 방문해선 "공산전체주의 세력과 그 기회주의적 추종 세력, 그리고 반국가 세력은 반일 감정을 선동하고, 캠프 데이비드에서 도출된 한미일 협력 체계가 대한민국과 국민을 위험에 빠뜨릴 것처럼 호도하고 있다"고 했다.
이념 갈라치기는 육군사관학교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 논란을 정치 한복판에 끌어올렸다. 급기야 국민의힘 연찬회에서 윤 대통령은 "이념보다는 실용이라고 하는데 기본적으로 분명한 철학과 방향성 없이는 실용이 없다"며 "제일 중요한 게 이념"이라고까지 했다.
"이념적으로 극과 극이라 싸우지 않을 수 없다. 장관들이 적극적으로 싸우라"고 다그친 내각도 흡사 '전시 내각'을 방불케하는 진용으로 구성했다. 극렬한 반대론을 무릅쓰고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 김영호 통일부 장관을 임명한 데 이어 신원식 국방부,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를 발탁한 인사 기조는 '이념 투사' 전진배치다.
▲윤석열 대통령이 9월 9일(현지시간) 인도 뉴델리 바라트 만다팜 국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갈라 만찬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나란히 옆자리에 앉아 현안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연합뉴스
총선과 美 대선, 尹 앞에 놓인 두 번의 고비
가장 공격적인 방식으로 냉전과 내전을 병행하고 있는 윤석열 정부에 대한 중간 결산은 내년에 이뤄진다.
첫 번째 고비는 4월 총선이다. 적어도 그때까지 윤 대통령은 '이념 전쟁'을 누그러뜨릴 기색이 없다. 지지층을 강화하고, 중간층을 끌어당기고, 반대층을 약화시키는 선거공학에 어긋나더라도 윤 대통령 스타일상 후퇴하지 않을 거란 관측이다.
최창렬 용인대 특임교수는 "윤 대통령의 인식은 내면화돼 있다"며 "보수층을 결집하려는 의도도 있겠지만, 역사인식, 국제질서 인식에서 의외로 강경보수적인 윤 대통령의 면모가 드러났다"고 했다.
최 교수는 "특히 미국, 일본과 가까워지면서 본능적인 미일 친화적 의식이 국내 정치에도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 시대와 맞지 않는 '공산전체주의', '반국가세력' 같은 표현들은 그래서 나온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윤 대통령의 이념 전쟁으로) 보수층은 결집하겠지만, 수도권을 중심으로 하는 중도층에게는 선거공학적으로 득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국제질서의 분기점이 될 내년 11월 미국 대선은 국내외를 관통해 윤 대통령이 뛰어든 '체제 전쟁'의 지속 가능성을 결정할 최대 변수다.
바이든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하면 '가치동맹'의 핵심 파트너인 윤 대통령의 국제적 위상도 높아진다. 한미일 군사협력 제도화, 인도태평양 전략 추진의 동력이 채워지는 동시에 국정방향 설정의 정당성을 인정받게 될 전망이다.
반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집권하면 바이든 정부와 전혀 다른 미중 관계, 미러 관계 설정이 예상된다. 공화당 대선 주자들을 압도하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최근 바이든 대통령마저 오차범위 밖인 9%포인트 차이로 제쳤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와 술렁이고 있다.
윤석열 정부 국가안보실장을 지낸 김성한 교수는 최근 학술대회에서 "미 대선 예비주자 중에는 미국 우선주의와 동맹 경시적 사고를 가진 인사들이 있다"며 "앞으로 1년 반 정도가 우리에게 주어진 골든타임"이라고 했다.
트럼프 재집권이 현실이 될 경우 '워싱턴 선언'과 '캠프 데이비드 합의' 등 윤 대통령이 공들인 외교적 성과가 한꺼번에 초기화될 수 있어 서둘러 '핵우산' 정책의 불변성을 완성해야 한다는 뜻으로 해석됐다.
동맹 정부의 성격과 이념을 구분하지 않고 청구서를 내밀던 트럼프 전 대통령의 고립주의는 한국 정부도 방위비 분담금 대폭 인상과 '주한미군 철수' 압박으로 경험한 바 있다.
최창렬 교수는 "만약 트럼프가 당선되면 윤 대통령의 인식의 기초가 무너지는 것"이라며 "최근 중국 시진핑 주석과의 정상회담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지만, 한중, 한러 관계가 관리돼 있지 않은 윤석열 정부가 국제정세를 너무 낙관적으로 해석하는 게 아닌지 우려된다"고 했다.
임경구 기자
2001년에 입사한 첫 직장 프레시안에 뼈를 묻는 중입니다. 국회와 청와대를 전전하며 정치팀을 주로 담당했습니다. 잠시 편집국장도 했습니다. 2015년 협동조합팀에서 일했고 현재 국제한반도팀장을 맡고 있습니다.
'힘' 좀 써야 한다는 노동 현장, 그곳에도 여자가 있습니다. 웬만한 체력으로는 버티기 힘들다는 노동 현장에서 차별과 배제마저도 이겨낸 이들이죠. 남성 비율이 압도적으로 큰 블루칼라 노동 현장에서 살아남은 '기술직 여성들'이 바로 그들입니다.
남성중심적 문화가 지배적인 현장에서 이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차별과 배제를 버텼습니다. 여자 화장실이 없는 현장,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당해야만 했던 무시와 젠더폭력 속에서도 자신만의 기술을 터득해 당당하게 '기술직 여성'으로서 커리어를 이어 나간 이들을 <프레시안>이 만났습니다.
자신이 흘리는 땀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이 여성들은 건설 현장에서도 공장에서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건설 현장에서 도면을 그리는 먹매김 노동자, 건물 뼈대를 이어 거푸집을 만드는 형틀 목수, 자동차 제조 공장에서 부품을 염색하는 도장노동자 등 <프레시안>이 만난 블루칼라 여성들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편집자
중력을 거슬러 솟아오른 콘크리트 건물들은 '형틀목수'에 의해 쌓아 올려진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먹노동자가 설계 도면을, 철근노동자가 뼈대를 잡으면 그 위에 폼이라 불리는 합판으로 촘촘하게 거푸집을 만들어 올리는 게 형틀목수의 일이다. 그 거푸집 안으로 콘크리트가 타설 되고 양생이 완료되면 한 층의 건물이 우뚝 서게 된다. 형틀목수는 재차 그 위를 딛고 또 다른 기둥과 보를 세우며 층을 쌓아 간다. 그렇게 층들이 켜켜이 쌓여 하나의 건물이 완성된다.
<프레시안>은 지난 21일 경기도의 한 건설현장을 찾아 형틀목수 기능공으로 6년 째 일하고 있는 신연옥 씨를 만났다. 신 씨는 핀(폼을 고정시킬 때 사용하는 연장)이 들어 있는 못주머니를 차고 망치와 시노(손지레)를 숟가락과 젓가락처럼 자유자재로 사용했다. 15킬로그램이 넘는 폼을 거뜬히 들어 옮겨 그 폼을 허벅지에 대고 2단으로 올려 고정시키기도 했다.
▲<프레시안>은 지난 21일 경기도의 한 건설현장을 찾아 형틀목수 기능공으로 6년째 일하고 있는 신연옥 씨를 만났다. ⓒ황지현
형틀목수로 일하기 전 연옥 씨는 아이들 키우고 돈이 필요할 때는 마트나 물류센터에서 단기간으로 알바하는 "'아줌마'의 삶을 살았다." 공장 아르바이트에서 만난 언니로부터 건설현장에 '여자가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건설현장에서 여자가 일할 수 있다는 사실은 연옥 씨에게 도전할 용기를 주었다. 그는 건설 현장에서 일하기 위해 건설기능학교에 들어가 기술을 배웠고 형틀목수 일을 시작하게 됐다.
"2017년 안산에서 아파트 지하 주차장을 만드는 일이 첫 현장이었다. 한 명 빼고는 다 남자들이었고 제가 그런 현장을 처음 가봤으니 당황하고 겁도 나고 그랬다. 처음에는 남자들이 저를 원숭이보듯 했다. 여자가 없는 현장에 들어오니 신기해서 제 사진을 찍는 남자들도 있었다. '니 남편은 뭐하느냐'고 물어보는 이도 있었다. 심지어 저희 팀 현장 반장이 '아줌마가 왜 여기 와 있느나. 집에 가서 설거지하고 그러지 왜 여길 왔느냐'며 깜짝 놀랐다. 식당가면 더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데 왜 여기 왔느냐고 저를 걱정했다. 저도 현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고민이 많았다."
동물원의 '원숭이' 보듯 여자를 볼 정도로, 여성 형틀목수가 적은 건설현장이었다. 건설노동자의 절대 다수가 남성인 문화에도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다. '손 한번 잡자', '방 얻을까' 하는 성희롱 발언도 들어야 했다. 그래도 연옥 씨는 건설노조 소속인 '노조팀'이라 안전하게 일했다고 말했다. 노조에 막연히 부정적인 인상이 강했던 연옥 씨는 일하면서 노조는 "어려운 사람들이 모여서 함께 싸우는 집단"으로 인식하게 됐다고 말했다.
"노조 안에서는 동지라는 생각에 함부로 대하지 않고 일도 자세하게 가르쳐준다. 한 번은 노조팀 소속이지만 일반팀의 먹차장과 먹줄을 놓은 적이 있는데, 그 차장이 '손 잡고 가자' 거나, '방 얻어 줄까', '방 얻을까' 뭐 이런 얘기도 하고 그랬다. 상처를 많이 받았다. 그래서 그때 '저 노조팀인데, 함부로 말씀하시면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대응 했다. 이런 성희롱이 발생한 상황을 노조에 공유하니 그 뒤로부터는 그 먹차장과 함께 일하지 않을 수 있도록 했다. 만약 내가 일반팀이었으면 당장 밥줄이 걸려있는데, 그렇게 단호한 조치를 취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
▲<프레시안>은 지난 21일 경기도의 한 건설현장을 찾아 형틀목수 기능공으로 6년째 일하고 있는 신연옥 씨를 만났다. ⓒ황지현
자기 몸보다 큰 폼을 옮기는 일이 힘에 부쳐 운 적도 있었지만 힘들다고 안 해버리면 아예 못 한다는 생각에 연옥 씨는 하루 하루를 버텼다. 그러다 보니 일이 몸에 익었다. 스트레스도 덜 받게 됐다. 하지만 그를 따라오는 편견섞인 시선과 여성이라는 압박에 연옥 씨는 더 열심히 일했다.
"출근시간이 7시이지만 저는 4시 30분에 출근해서 2시간 일찍 현장 근처에서 대기하고 있는다. 남자들은 담배피고 쉬는데 저는 그 시간에도 계속 일한다. 남자보다 힘있게 하긴 어려우니 쉬지 않고 일했다. 제 체력의 한계 끝까지 무거운 것을 들기도 했다. 긴 파이프인 동바리를 어깨에 두 개씩 들고 다녔는데, 다른 남자 동료들이 '너가 두 개 들면 우리는 세 개 들어야 하니까 하나만 들어'라고 농담식으로 이야기 하기도 했다. 진짜 악바리로 동바리 두 개를 드는 거다. 나도 할 수 있다. 나도 이 일을 성실하게 하고 있고 진심을 다해 노력을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무거운 폼도 들어낸 연옥 씨지만 편견은 쉽게 극복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었다. 그래서 연옥 씨는 '악바리'가 됐다. 그는 "원래는 폼을 붙이는 일도 1단 폼 위에 또 폼을 쌓아올려 2단을 만들어야 하는데, 여자라는 이유로 1단만 붙이는 일을 줬다"며 "이렇게 배려만 받다가는 내가 2단을 쌓아보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20킬로그램 가까이 하는 폼을 2단으로 쌓기 위해 머리로도 받치고 별짓을 다 해봤지만 너무 위험하고 무거웠다. 그렇게 수백번 시도한 끝에 폼을 앞 허벅지에 받치고 안정적으로 쌓을 수 있게 됐다. 허벅지에는 새파란 멍이 훈장처럼 남았다.
그렇게 하루하루 버티다보니 6년이란 세월이 지났다. 15만5000원이던 첫 일당은 어느새 25만 원으로 올랐다. 양성공에서 준기능공을 거쳐 기능공으로서 숙련공 인정을 받았다. 그는 형틀목수로 일하면서 "새로 태어난 것 같다"고 표현했다. 연옥 씨는 망치와 시노(끝이 굽은 철 막대)를 어루만지며 "일은 저를 당당하게 살아가게 해주는 힘"이라며 "어디가서 '나 목수예요'라고 말할 수 있는 자부심이 있다"고 말했다.
"일을 시작하기 전의 저는 아파서 집에 있는 사람처럼 집안에서 위축되어 있었는데, 일을 하다 보니 자신감이 생겨서 공부도 하고 그림도 그리게 되고 뭔가 자꾸 하고 싶어졌다. 일을 하면서 제가 새로 태어난 것 같다. 항상 주눅 들어 살다가 스스로 돈을 벌면서 집에서 큰소리도 칠 수 있게 되었다. 또 집안일이 나만의 일이 아니게 되었다. 우리 신랑이 빨래 해주고, 아이들이 설거지도 하고 집안일도 서로 나눠서 하면서 집안도 평등해졌다. 일하는 제 모습이 너무 좋다. 제가 좀 당당해지는 것 같다. 뭔가를 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좋다. "
예순이 넘을 때까지 일하고 싶다고 밝힌 연옥 씨는 "더 정확하게 도면을 보고 더 배워서 형틀목수팀의 여자 반장이 되어보고 싶다"며 웃어 보였다. 그의 뒤에는 그와 동료들이 세운 거푸집들이 중력을 거슬러 우뚝 서있었다. 아래는 신연옥 씨와 나눈 주요 인터뷰 일문 일답.
▲<프레시안>은 지난 21일 경기도의 한 건설현장을 찾아 형틀목수 기능공으로 6년째 일하고 있는 신연옥 씨를 만났다. ⓒ황지현
프레시안 : 본인과 하는 일을 소개해달라.
신연옥 : 이름은 신연옥. 나이는 51세다. 건설 현장에서 6년째 형틀목수로 일하고 있다. 콘크리트 타설을 위해 유로폼, 알루미늄폼 등을 이용해 거푸집을 만든다. 콘크리트가 타설되면서 터지지 않도록 수평과 수직을 맞춰 견고하게 거푸집을 만든다. 저는 주로 아파트의 지하주차장과 상가를 짓는다.
프레시안 : 하루 일과가 어떻게 되나. 하루 보통 얼만큼의 일을 하는 지 알려줄 수 있나.
신연옥 : 보통 오전 7시에 작업을 시작해서 오후 5시까지 일한다. 그런데 공사 현장 주변에 주차할 곳이 마땅치 않아서 일찍 와서 주차해야 하다 보니 새벽 4시 30분쯤 출발해 미리 도착한다. 차를 근처 공터에 주차해놓고 2시간 정도 잔 뒤 출근한다. 그래서 밤에 활동할 수가 없다. 수면시간이 무조건 확보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루 작업시간은 8시간 정도다. 폼으로 거푸집을 만드는 공정을 하루종일 한다고 하면 한 40개는 넘게 붙일 것 같다. 그런데 하루에 한 가지 일만 하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에 얼만큼의 일을 한다고 딱 잘라 말하긴 어렵다.
프레시안 : 콘크리트를 타설할 공간, 틀을 만든다고 이해된다. 형틀목수가 하는 일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부탁드린다. 일의 장단점도 설명해달라.
신연옥 : 주된 업무는 먹(설계도면을 콘크리트 위에 그려둔 선)을 보고 폼이라는 합판을 이용해 콘크리트를 타설할 거푸집을 만드는 일이다. 폼 규격과 거푸집 크기가 딱 맞지 않는 경우 목재를 깎고 조립해 위에 댈 수 있는 추가 거푸집(가와)을 만들기도 한다. 형틀목수는 폼만 설치하는 것이 아니라 기둥도 만들고 기둥 사이에 보(하리)도 만들고, 그 보를 받치는 서포트와 슬라브도 설치한다.
형틀목수는 현장에서 기능공으로 인정받을 수 있기 때문에 단가가 높다. 여성도 목수 일에 어느 정도 숙련되면 기능공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그 과정이 매우 힘들다. 폼을 이용해서 거푸집을 만든다고 했는데, 가벼운 폼 10킬로그램부터 무거운 폼은 20킬로그램이 넘어간다. 크기에 맞는 다양한 폼을 직접 들어 옮겨야 하니 체력적으로 힘이 들 수밖에 없다. 동바리라고 불리는 아주 긴 쇠파이프도 날라야 하는데 힘에 부칠 때도 있다.
▲<프레시안>은 지난 21일 경기도의 한 건설현장을 찾아 형틀목수 기능공으로 6년째 일하고 있는 신연옥 씨를 만났다. ⓒ황지현
프레시안 : 먹반장이 콘크리트 바닥에 설계도를 튕긴 다음 철근이 올라가고 그 다음 형틀목수들이 폼을 이어붙여 거푸집을 만들면, 콘크리트가 타설되는 체계다. 연옥 씨는 형틀목수 기능공이기 때문에 처음 일했던 일당과 지금의 일당의 차이가 크겠다.
신연옥 : 6년 전 15만5000원으로 시작해서 지금은 25만 원을 받는다. 남자 기능공하고 똑같은 단가를 받고 있다. 2017년 건설기능학교를 졸업하고 건설노조 양성공으로 일하면서 처음 받은 돈이 15만5000원이었다. 준기능공이 되어 18만5000원으로 올랐고, 기능공이 되어서 25만 원을 받게 됐다. 기능공이 될수록 더 많은 일을 하니까 그만큼의 보수를 준다. 건설현장의 다른 일보다 강도가 세다보니 단가도 높다.
프레시안 : 이 연재를 시작하면서 만난 건설현장의 여성 노동자 중 가장 많은 일당을 받고 계신다. 무거운 폼과 동바리를 이고 다니시기도 하더라. 그런 육체적 노동과 또 숙련된 경험이 반영된 일당이라고 생각한다. 형틀목수 일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
신연옥 : 결혼하기 전에는 제약회사를 다녔는데 신랑과 결혼하면서 아이를 갖게 되니 자연스레 일을 그만두게 되었다. 그러면서 마트나 물류센터에서 단순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살았다. 아이들 키우고 돈이 필요할 때는 알바하는 '아줌마'의 삶을 살았다. 공장에서 아르바이트하다 남편이 목수인 언니를 만났다. 그 분이 거기도(건설현장) 여자가 있다는 얘기를 해줬다. 알고보니 그 여성이 건설노조에서 일하던 1호 여성 노동자였다. 그 언니 남편을 통해 '건설기능학교'를 알았다. 당시 아르바이트만 하고 고정된 일이 없으니 아이들 대학 등록금 고민이 큰 시기였다. 그래서 그 언니와 함께 건설기능학교에 들어가서 목수일을 배웠다.
프레시안 : 형틀목수를 한다고 했을 때 가족들 반응은 어땠는지 궁금하다.
신연옥 : 우리 신랑은 '니가 얼만큼 꾸준히 할 수 있겠느냐. 밥하고 청소하다가 너가 목수를 할 수 있겠느냐'고 했다. 건설노조 조합원이 됐다고 하니까 '빨갱이'라고 놀리기도 했다. 그래서 오기로 더 오래 다닌 것 같다. 제가 6년 동안 일하니까 이제 놀라기도 하고 대견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일을 시작하고 처음에는 집안일도 하고 목수일도 했는데 이제는 신랑이 집안일을 많이 도와준다. 많이 변했다. 우리 아들은 직장생활을 하니까 '엄마 힘들면 그만둬'라고 하는데 제가 아직은 못 내려놓겠다. 나이 60 넘을 때까지 일하는 게 소원이다. 여성 건설노동자 1호 언니가 68세에 정년퇴직했는데 올해까지 일했다. 그 언니만큼은 못해도 60 넘어서까지는 해봐야지 하는 생각으로 일하고 있다.
프레시안 : 연옥 씨처럼 형틀목수 시작하려는 여성이나 청년들은 건설기능학교를 통해서 일을 배우고 시작할 수 있나.
신연옥 : 그렇다. 기능학교를 통해서 일을 배울 수 있다. 기능학교는 내국인들을 위한 곳이라 학교를 통해 기능을 배우면 현장에 투입될 수 있다.
프레시안 : 형틀목수팀에 여성 노동자 수는 얼마나 되는가. 비율이 궁금하다.
신연옥 : 보통 15명~20명이 한 팀을 이루는데 여성 노동자는 1명이다. 팀마다 여성이 포함되어 있는 게 아니라 몇몇 팀에만 여성 목수가 있다. 그렇게 많지 않지만 있긴 있다. 하지만 여성 관리직은 한 명도 없다.
프레시안 : 건설노동자들의 화장실 수가 적은 것이 건설현장의 고질적인 문제인데, 여성화장실은 충분하게 있나.
신연옥 : 현장마다 다르지만 여기는 그래도 화장실이 두 개 있다. 멀어서 그렇지 부족하지는 않다. 현장에서 화장실이 멀리 있기 때문에 아침에 한 번, 점심에 한 번 가고 일과 중에는 특별한 일이 없으면 가지 않고 참는다. 옛날 어떤 현장에는 더 많은 여성 노동자가 있었는데 여자 화장실이 두 칸밖에 없는 경우도 있었다. 그마저도 한 칸은 원청 사무실 노동자들만 쓰겠다고 자물쇠로 잠가두어서 한 칸만 사용하느라 불편했다.
프레시안 : 6년동안 일하면서 겪고 보셨는데, 왜 여성이 건설현장에 적다고 생각하나.
신연옥 : 일이 힘들다. 솔직히 일이 힘에 부칠 때가 많다. 처음에는 많이 울기도 했다. 남자들이 던진 말 한마디가 상처가 되어서 집에 간 적도 있다. 그런데 힘들다고 안 해버리면 아예 못 하는 거니까. 그래서 그냥 하루하루 버텼다. 자꾸 하다 보니 일이 몸에 익기도 하고 스트레스도 덜 받게 됐다. 그러면서 버티게 되더라. 그러다보니 6년 동안 일을 했다.
프레시안 : 한국건설산업연구원 통계에 의하면 건설현장 노동자 열명 중 하나는 여성이라고 한다. 여성 노동자가 앞으로 건설현장에 더 늘어날 수 있을까.
신연옥 : 실제로 많이 늘어났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의 건설노조 탄압이 거세지니까 도로 제자리로 돌아가는 것 같다. 건설노조를 쓰려고 하는 현장이 없다. 그러다보니 남자들도 놀아서 일반팀(비조합원으로 구성된 건설 노동자들팀)으로 가는데, 여자가 갈 곳은 더욱 없다. 저는 정말 운 좋게 일할 수 있는 현장이 있다. 저도 이 현장이 마지막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프레시안 : 건설노조 조합원들이 모여 일하는 노조팀과 비조합원들이 모여 일하는 일반팀의 노동 분위기가 다르다는 이야기는 들었다. 여성 노동자가 일반팀에 소속되어 일할 수도 있지 않나.
신연옥 : 그렇다. 그렇지만 노조팀이 여자가 일하기에는 더 안전하다. 밖(일반팀)에서 일하면 남자들이 짓궂게 굴고 성희롱한다. 그런데 노조 안에서는 동지라는 생각에 함부로 대하지 않고 일도 자세하게 가르쳐준다. 한 번은 노조팀 소속이지만 일반팀의 먹차장과 먹줄을 놓은 적이 있는데, 그 차장이 '손 잡고 가자', '방 얻을까' 뭐 이런 얘기를 했다. 상처를 많이 받았다. 그때 '저 노조팀인데, 함부로 말씀하시면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대응했다. 이런 성희롱이 발생한 상황을 노조에 공유하니 그 뒤로부터는 그 먹차장과 함께 일하지 않을 수 있게 됐다. 만약 내가 일반팀이었으면 당장 밥줄이 걸려있는데, 그렇게 단호한 조치를 취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저는 사실 건설현장에 와서 노조를 처음 제대로 알게 되었다. 노조에 막연히 부정적인 인식이 있었다. 티비에서 보는 싸우는 사람들이 노조라고 생각했다. 신문에서 민주노총은 '귀족노조'라고 하는데 괜찮은 건가 생각했다. 기능학교를 졸업하고 일하기 위해 노조에 가입한 건데, 처음에는 건설노조도 이상한 곳이 아닌가 의심했다. 그런데 안에 와서 보니 어려운 사람들이 모여서 함께 싸우는 집단이었다. 저는 회사 다닐 때 힘들고 부당해도 참고 다니는 스타일이었는데, 건설노조로 일하면서 내가 부당한 상황을 이야기하면 들어주는 곳이 있다는 든든한 느낌이 들었다.
프레시안 : 윤석열 정부가 '건설노조'를 '건폭'이라는 프레임으로 탄압하고 있는데.
신연옥 : 억울하다. 우리는 건폭이 아니다. 우리는 부당한 것을 부당하다고 이야기할 뿐인데, '건폭'이라고 이름 붙여서 압박하니 무슨 말을 할 수가 없다. 현장에서도 조용히 일만하라는 식이다. 분하고 속상하다. 사측에 화장실이 없다는 요구를 해도 그것이 노조의 요구이기 때문에 들어주지 않는다. 탈의실이 없어서 땀과 먼지에 절은 채로 아침에 출근한 옷을 입고 퇴근하고, 휴게실이 없어서 차에서 쉰다. 건설노조를 쓰려는 현장이 없다. 그러다보니 건설노조 소속의 여성 노동자들이 대부분 놀고 있다. 일 할 곳이 없다. 여성만 아니라 남성도 놀고 있다. 그나마 남성은 일반팀이라도 가는데, 여성은 알고 있는 팀장이 데려가지 않으면 일반팀에서 일하기 쉽지 않다.
프레시안 : 남성이 절대다수인 상황에서 적응하는게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처음 현장에서 일했던 날을 기억하나.
신연옥 : 2017년 안산에서 아파트 지하 주차장을 만드는 일이 첫 현장이었다. 한 명 빼고는 다 남자들이었고 제가 그런 현장을 처음 가봤으니 당황하고 겁도 났다. 처음에는 남자들이 저를 원숭이보듯 했다. 여자가 없는 현장에 들어오니 신기해서 사진을 찍는 남자들도 있었다. '니 남편은 뭐하느냐'고 물어보는 이도 있었다. 심지어 저희 팀 현장 반장님이 '아줌마가 왜 여기 와있느냐. 집에 가서 설거지하지 왜 여길 왔느냐'며 깜짝 놀랐다. 식당가면 더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데 왜 위험한 여기 왔느냐고 저를 걱정한 거였다. 저도 현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고민이 많았다. 첫 현장에서 만난 그 반장님한테 혼나며 일을 배웠다. 반장님은 멀리서도 망치질 소리만 듣고 절 찾아와 그렇게 치면 손 다친다고 기초를 정확하게 할 수 있도록 알려주었다. 그렇게 하면 어디가서도 못 버틴다면서 겁을 많이 줬지만 조언도 해준덕에 제가 일하면서 다치지 않고 여기까지 온 것 같다. 처음엔 말 한마디에 상처받고 그랬는데 이제는 세월이 약이 되었다.
▲<프레시안>은 지난 21일 경기도의 한 건설현장을 찾아 형틀목수 기능공으로 6년째 일하고 있는 신연옥 씨를 만났다. ⓒ황지현
프레시안 : 첫 현장의 반장님은 걱정하는 마음에 '설거지하지 왜 왔느냐'고 할 수 있지만, 그런 시선은 형틀목수로서의 성장에 걸림돌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신연옥 : 슬라브공사라고 1층에서는 천장인데 위에서는 바닥인, 사람이 딛고 서는 판을 까는 일이 쉽지 않은 일로 꼽힌다. 보에 올라서 슬라브를 깔아야 하는데 현장에서는 그 일을 제게는 안 주려고 한다. 저도 슬라브 까는 일을 더 잘 할 수 있도록 많이 해보고 싶은데 '배려'로 인해서 배제되는 경우도 있다. 나는 그 일이 힘들더라도 분명히 올라가서 일하고 싶다. 그래야 내 기술이 얼마나 늘었는지 일하면서 느낄 수 있다. 기회를 주면 더 잘할 수 있는데 그런 일은 시켜주지 않으니까 서운한 마음이 들 때도 있다.
그래도 계속 해보면 된다. 원래는 폼을 붙이는 일에서도 차별 받았다. 1단 폼 위에 또 폼을 쌓아올려 2단을 만들어야 하는데, 예전에는 여자라는 이유로 내게 1단만 붙이는 일을 줬다. 이렇게 배려만 받다가는 2단을 쌓아보지 못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2단에 폼을 그냥 쌓아봤다. 20킬로그램 가까이 하는 폼을 1단 폼 위에 쌓으려고 올려 봤는데 폼의 무게 때문에 올라가질 않았다. 머리로도 받치고 별짓을 다 해봤는데 너무 위험했다. 그러다가 앞 허벅지에 받치고 올렸더니 무거웠지만 안정적으로 올릴 수 있게 되었다. 그날 저녁 앞 허벅지가 새파랗게 멍으로 물 들었더라. 그래도 한 번 감을 잡으니까 이제는 2단 폼을 붙일 수 있게 되었다.
프레시안 : 20킬로그램 가까이 되는 폼을 옮기려면 체력적으로 정말 힘들 것 같다. 일하면서 가장 힘든 점은 무엇인가.
신연옥 : 혼자 일하는 것이 힘들다. 저는 여자라서 파트너가 없이 혼자 일한다. 일할 때 같이 의논할 사람이 없는 게 가장 힘들다. 남자 형틀목수들은 둘이 짝을 이뤄 일을 한다. 한 사람은 자재를 올려주거나 받쳐주고 한 사람은 작업하는 식이다. 타일에 핀을 끼어 고정하는데 그 일도 혼자 하기 때문에 힘들다. 2인 1조로 하는 일 중에 위험한 일이 많은데 결국 나는 그런 일에 투입되지 못한다. 그러다보니 눈치를 보게 된다. 어려운 일도 해보고 싶지만 그런 경험을 쌓을 기회가 적다.
프레시안 : 여자를 배려한다는 동료들의 '선의'에도 계속 어려운 일에 도전해서 더 성장하고 싶은 욕구가 이해된다. 여성이 적다보니 연옥 씨가 하는 작은 실수들도 '여자의 실수'가 되어서 연옥 씨에게 압박처럼 다가왔을 수도 있겠다. 그런 압박과 혹은 여성을 향한 편견 섞인 시선에 어떻게 대응했나.
신연옥 : 더 열심히 일했다. 출근시간이 7시이지만 저는 4시 30분에 출근해서 2시간 일찍 현장 근처에서 대기한다. 남자들은 담배를 피고 쉬기도 하는데 나는 그 시간에도 계속 일한다. 남자보다 힘있게 하긴 어려우니 쉬지 않고 일했다. 내 체력의 한계까지 무거운 것을 들기도 했다. 긴 파이프인 동바리를 어깨에 두 개씩 들고 다녔는데, 다른 남자 동료들이 '너가 두 개 들면 우리는 세 개 들어야 하니까 하나만 들어'라고 농담식으로 이야기하기도 했다. 진짜 악바리로 동바리 두 개를 드는 거다. 나도 할 수 있다. 나도 이 일을 성실하게 하고 있고 진심을 다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프레시안>은 지난 21일 경기도의 한 건설현장을 찾아 형틀목수 기능공으로 6년째 일하고 있는 신연옥 씨를 만났다. ⓒ황지현
프레시안 : 현장에서 신연옥 씨를 부르는 호칭은 뭔가.
신연옥 : 노조팀에서는 저를 동지라고 부른다. 가끔 여사님이나 목수님이라고 부르는 분들도 있고, 젊은 애들은 누나라고 부르기도 한다. '아줌마'라는 소리도 많이 듣는다. 사측에서 저를 '아줌마'나 '여사님'이라고 부를 때는 친한 사람들이 부르는 것과는 다른 뉘앙스를 주기 때문에 '반장'이라고 불러달라고 요청한다. 대체로 남자들이 여자는 자기보다 아랫사람이라고 생각하니까 함부로 부르고 싶은 마음이 있는 것 같다. 그런 호칭을 들을 때 바로 지적해야 다음부터 그렇게 부르지 않는다.
프레시안 : 연옥 씨가 형틀목수로서 계속 도전하고 일하게 만든 동기는 무엇인가.
신연옥 : 시작은 아이들 때문이었다. 아이 둘 대학교도 보내고 결혼도 시켜야 하는데 신랑 혼자 벌이로는 힘들었다. 돈의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래서 일을 시작했는데 일이 힘들었다. 그래도 임금이 세니까 놓지 못하면서 하루하루 버텼다. 하다보니 체력적으로는 힘들어도 스트레스는 덜 받고, 노조 소속으로 안전하다는 느낌을 받으면서 일 하니까 오래 할 수 있었다.
프레시안 : 무거운 폼을 번쩍 들고 능숙하게 연장을 다루는 모습이 멋있었다. 자부심을 느끼는 순간도 있었을 것 같다.
신연옥 : 한국에 몇 안 되는 여성 목수다. 처음에 제가 시작할 때는 여성 목수가 열 명도 안됐다. 그러다 여성 목수가 20명, 30명으로 늘어나면서 우리가 대단해지는 느낌이 들고 자부심이 생겼다. 일을 시작하기 전의 저는 아파서 집에 있는 사람처럼 집안에서 위축되어 있는 사람이었는데, 일하다 보니 자신감이 생겨서 공부도 하고 그림도 그리게 되고 뭔가 자꾸 하고 싶어졌다. 일하면서 제가 새로 태어난 것 같다. 항상 주눅 들어 살다가 스스로 돈을 벌면서 집에서 큰소리도 칠 수 있게 되었다. 또 집안일이 나만의 일이 아니게 되었다. 우리 신랑이 빨래해주고, 아이들이 설거지하는 등 집안일도 서로 나눠서 하면서 집안이 더 평등해졌다. 일하는 내 모습이 너무 좋다. 더 당당해지는 것 같다. 뭔가를 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좋다.
프레시안 : 형틀목수가 하는 많은 일 중에 이 일 만큼은 자신있다는 게 있나.
신연옥 : 목재 거푸집을 짜서 문과 창문의 틀을 잘 만든다. 특히 폼으로 떼울 수 없는 빈 공간을 잘 채운다. 나는 디테일을 정확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반생을 잘 묶는다. 이걸 잘못 묶으면 굳을 때 밀리는데 이제 손에 익어서 빠르게 잘 하는 일 중에 하나다.
프레시안 : 인터뷰 중에도 망치와 시노를 가져왔다. 망치와 시노는 신연옥 씨에게 어떤 의미인가.
신연옥 : 저를 현장에서 살아가게 해주는 힘이다. 이 도구들이 아니었다면 내가 어디가서 이만큼의 돈을 벌고 당당하게 일할 수 있었겠나. 내게 자신감을 주는 도구들이다. 어디가서 '나 목수예요' 할 수 있는 힘이 된다.
프레시안 : 일터에서 이루고 싶은 목표나 꿈이 있나.
신연옥 : 나이 60이 넘을 때까지 일하고 싶다. 기회가 된다면 작업 반장도 해보고 싶다. 팀장도 해보고 싶지만 거기까지는 바라지 않고, 더 정확하게 도면을 보고 더 배워서 형틀목수팀의 여자 반장이 되어보고 싶다.
프레시안 : 동시대를 살아가는 일하는 사람들에게 해주실 말씀이 있다면.
신연옥 : 포기하지 않는다면 자신감을 갖고 일할 수 있는 때가 올 것이다. 힘들다고 주저앉아 버리면 아무것도 되지 않는다. 주저앉지 말고 움직여서 뭐라도 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여성 노동자들이 위축되지 않고 계속 배웠으면 좋겠다. 그러다보면 좋은 날도 오겠지.
▲<프레시안>은 지난 21일 경기도의 한 건설현장을 찾아 형틀목수 기능공으로 6년째 일하고 있는 신연옥 씨를 만났다. ⓒ황지현
“국가별, 지역별로 한민족 네트워크 또는 한인 네트워크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한민족 네트워크에서 국가별, 지역별로 한민족 공동체를 만들어야 한다.”
오는 10월 5일, 재외동포청이 설립되고 처음으로 맞는 ‘세계 한인의 날’을 앞두고 조성렬 전 오사카 총영사는 “재일동포, 재중동포, 재러동포, 재미동포 다 성격이 다르다”며 ‘세계 한인 네트워크’ 보다는 국가별, 지역별 네트워크 구축이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조성렬 전 오사카 총영사는 지난 12일 오후 서울 전태일기념관 2층 공연장에서 열린 ‘2023년 9월 통일뉴스 월례강좌’에서 “국가와 민족, 그리고 재외동포 -한민족공동체 네트워크의 모색”을 주제로 강연했다.
조성렬 전 오사카 총영사는 지난 12일 오후 서울 전태일기념관 2층 공연장에서 열린 ‘2023년 9월 통일뉴스 월례강좌’에서 “국가와 민족, 그리고 재외동포 -한민족공동체 네트워크의 모색”을 주제로 강연했다. [사진 - 조천현]
조성렬 전 총영사는 “10월 5일 ‘세계 한인대회’를 하고 있다”며 “옛날에는 한민족이라고 했다가 최근에는 한인으로 이름이 바뀌는 추세”라고 전했다. 한국인, 한인, 한민족, 한인계의 개념 구분이 필요하다는 것.
또한 “한국을 중심으로 해서 글로벌을 하다 보니까 한국 정부의 입김이 굉장히 강하게 작용한다”며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이런 네트워크의 책임자들이 바뀌고 그래서 내부 파벌들이 많다”고 짚었다. 구체적으로 “임기가 남았음에도 불구하고 미주평통 부의장을 강제로 직위 해제를 했는데 재판이 벌어지고 있는 걸로 알고 있다”고 예시하기도 했다.
조성렬 전 오사카 총영사는 '미스터 션샤인' 드라마로 강연의 실마리를 풀어갔다. [사진 - 조천현]
나아가 재외동포들의 참정권에 대해 “항상 야당 지지가 많아서 지금 국힘당이나 이런 데서는 재외동포들을 선거에서 투표권이 있기 때문에 이걸 어떻게든 간에 성향을 바꾸려고 하고 개입을 하려고 하는데 현실적으로는 쉽지가 않다”고 진단하고 오히려 “재외동포들의 투표율이 너무 저조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아울러 외국인 참정권의 경우는 지방선거에만 허용되고 있으며, 영주권이 있고 3년 이상 체류한 18세 이상의 외국인만 해당돼 전체 유권자의 1%도 안 된다고 적시하고, 일본의 경우 우리 재외동포들에게는 참정권을 주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갈무리 사진 - 통일뉴스]
그는 특히 ‘세계 한인 네트워크’에 대해 각국 재외동포 실상이 다르다며 “성격이 너무 달라서 네트워크를 엮는다는 것 자체가 무리”라며 “올드 커머인 조선적(일본)이나 고려인(러시아)들은 거기 네트워크에 들어오지도 못한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2001년 헌법재판소에서 재외동포법(1948년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전에 해외로 이주한 자 및 그 직계비속을 재외동포의 범주에서 제외)이 위헌 판결을 받고서야 재중 조선족, 재일 조선적이나 재러 고려인이 재외동포에 포함됐고, 지금은 혈통만 확인되면 다 재외동포로 인정하고 있지만 아직도 ‘세계 한인 네트워크’는 사실상 이들을 배제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는 국가별 차이는 물론, 한 국가 내에서의 차이 역시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본의 경우 민단(재일본대한민국민단)과 총련(재일조선인총연합회)의 갈등은 물론 올드 커머와 뉴 커머(일본 정부는 1980년대 이후 일본으로 들어온 외국인을 뉴 커머로 규정), 한인회와 민단과의 차이도 있다는 것.
조성령 전 총영사는 일본에서 총영사로 재직한 경험을 토대로 재일동포 현황을 짚고 방향을 제시했다. [사진 - 조천현]
그는 “지금 오사카에서는 민단 건물 내에 한인회가 들어가 있고 한인회 중에 한 명이 민단 부의장을 맡고 있다”며 “일단 지역별로 통합을 하는 움직임, 그 다음에 이게 좀 더 나아가서 도쿄라든지 다른 데를 묶는 국가별 조직으로 만드는 이런 작업이 필요하다고 본다”고 제시했다.
아울러 “뉴 커머와 올드 커머 간의 약간 차이는 있지만 올드 커머 끼리 뉴 커머 끼리의 동질성이 강하기 때문에 이것을 이제 묶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와 달리 재미동포들은 내부 파벌은 있지만 ‘미주한인회총연합회’로 묶여 있다고.
정부조직법에 따라 외교부 산하에 지난 6월 5일 재외동포청이 출범한데 이어 지난 5월 9일 제정된 ‘재외동포기본법’이 오는 11월 10일부로 시행됨으로써 재외동포 정책의 일대 전기를 맞고 있다.
특히 재외동포기본법은 제3조 ‘재외동포정책의 기본 방향’에서 “① 국가는 재외동포가 거주국에서 모범적 구성원으로서 정착하고 그 지위를 향상시킬 수 있도록 지원하는 등 재외동포사회의 안정적인 발전을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 ② 국가는 재외동포가 한인으로서의 정체성을 함양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재외동포의 대한민국에 대한 이해와 신뢰 증진활동 장려 등 대한민국과의 유대감 강화를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질문 시간에 정수일 한국문명교류연구소 소장은 재외동포기본법에 대해 날카로운 지적을 내놨다. [사진 - 조천현]
이에 대해 정수일 한국문명교류연구소 소장은 강연에 이어진 질문에서 재외동포기법이 “국가는 재외동포가 거주국에서 모범적 구성원으로서 정착하고 그 지위를 향상시킬 수 있도록 지원”한다고 돼 있지만 윤석열 정부가 최근 홍범도 장군과 정율성 음악가의 전력을 문제삼고 있는 점이 모순된다고 지적했다. 홍범도 장군이 소련에서 공산당원이 되고 정율성 음악가가 ‘중국인민해방군 군가’를 작곡한 것이야말로 ‘거주국 모범적 구성원’ 아니냐는 것.
조성렬 전 총영사는 “우리가 740만으로 규모로 보면은 화교 다음으로 해외 거주자가 많고 본국 인구 대비 재외동포, 해외 거주자 비율로 하면 유태인 다음으로 두 번째”라며 “영토를 못 늘린다고 한다면 결국은 현재의 영토 내에서 결국 재외동포의 역량을 최대한 활용하고 또 지역별 기능별 역량도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번 통일뉴스 월례강좌는 21세기민족주의포럼이 공동주최했고, 평화3000이 후원했으며, 10월 월례강좌는 “우크라이나 전쟁 평가 및 북러관계 전망”을 주제로 예비역 육군 준장 한설 전 육군군사연구소 소장이 10월 17일 오후 6시 30분 전태일기념관 2층 교육장에서 강연할 예정이다.
▲ 1948년 5월 10이 모진교에 위치한 23전초중대 로이드 스탠클리프 중위가 38 경계표시 위에서 찍은 사진 ⓒ 자료사진
대양 건너 남의 땅의 지도에 자를 대고 간편하게 '찌익' 그은 선이 38선이다. 바다와 섬과 강과 산을 넘어가며 남과 북을 깔끔하게 갈랐다. 그 가운데 북한강 다리 하나의 바로 북쪽을 지났다. 남쪽을 점령하기로 한 미군은 다리 북단의 공간이 초소를 만들기에는 너무 밭아서 다리 남단에 초소를 세웠다. 다리 중간에 38이란 숫자를 페인트로 큼직하게 써놨다.
이 다리는 모진교. 이곳의 북한강은 오래도록 모진강으로 불려왔기 때문에 1930년대에 세워진 이 다리는 모진교라고 명명했다. 춘천댐에서 물길을 따라 5킬로미터 정도 올라간 지점이다. 현재의 행정구역으로는 춘천시 사북면이다. 다리의 북단은 사북면 원평리 산70-5 이고, 남단은 인람리 산56-2이다.
모진교는 지금은 지상에나 공중에서는 보이지는 않는다. 춘천댐이 물을 가두자 수몰된 것이다. 모진교의 북쪽에는 말고개가 있다. 지금은 말고개 터널이 뚫려 대부분의 차량은 터널로 통행하고 말고개 산길은 한적한 옛길로 남아 서서히 잊혀가고 있다.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북한은 5시), 운명의 그날 그 시각, 북한 인민군의 개전포격은 말고개 후방에서 시작됐다. 모진교 남쪽에는 국군 6사단 7연대 3대대 9중대가 배치돼 있었다. 포격 목표의 하나는 모진교 남쪽의 372고지의 관측소. 한 시간 가까이 포격이 계속됐다. 관측소 대원들은 전원이 전사했다. 대기하고 있던 인민군 보병이 자주포를 앞세우고 모진교를 건넜다.
그날 그 시각,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동족상잔의 전면전은 이렇게 시작됐다.
압도적 전력의 인민군, 모진교를 건너다
▲ 모진교 기사연재 그래프 ⓒ 박종현
내 평생 쌓여온 기억에서 한국전쟁 개전 초기의 서사는 대략 이렇다. 적화야욕에 불타는 소련의 사주를 받은 북한 괴뢰 김일성은 불법적으로 기습적으로 남침을 했다. 우리 국군은 조국을 지키기 위해 폭탄을 안고 적의 탱크에 뛰어들어 산화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화력과 병력에서 절대적으로 열세였기 때문에 눈물을 머금고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하나하나 짚어 봐도 틀린 것이 없다. 참담하다. 그들이 희생한 땅에서 우리가 이렇게 살고 있으니 고개가 숙여지지 않을 수가 없다. 고개를 들면서 그들을 희생시킨 인민군과 국군의 절대적인 전력 차이의 안팎을 짚어볼 필요가 있다.
전쟁의 승패를 가르는 것은 병력이다. 개인의 싸움이든 정규군의 전쟁이든 병력의 차이는 승패를 가른다. 당시에 국군은 8개 사단으로 병력은 9만5천 수준이었다. 인민군은 10개 보병 사단을 비롯하여 탱크와 자주포로 무장한 105기갑여단, 포병연대, 706기계화연대, 공병연대, 유격연대 등을 포함해 총 18만여 명이었다. 남북에 정부가 각각 수립된 이후 확군의 속도와 성과는 북한이 두 배가 될 정도로 우세했다.
가장 중요한 차이는 1949~1950년에 이루어진 만주 조선인부대의 대거 입북이었다. 앞의 글에서 살펴본 대로 3개 사단(9개 연대)과 별도의 1개 연대가 무장한 그대로 입북하여 인민군에 편제됐다. 인민군 5사단, 6사단, 12사단과 4사단 18연대가 바로 그들이다. 이들은 남북을 통틀어 가장 최근의 실전 경험을, 그것도 승전 경험을 갖고 있었다. 장제스의 중화민국이 중국 공산당과의 화평을 깨고 시작한 내전, 곧 제2차 국공내전에 깊숙이 참전했고 승전했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독소전을 포함해 소련군에서 활약한 조선인들도 소련군과 함께 또는 그 이후에 입북해서 북한 인민군으로 편입됐다.
남한의 국군은 어떠했을까. 단적으로 말하자면 교육훈련과 실전 경험에서 정규군으로서 현대전을 수행할 최저 수준에도 미치지 못했다. 중국과 소련이 북한에 보냈듯이 실전 경험을 갖고 있는 조선인들을 보내줄 동맹국도 없었다. 패전국의 군인이었던 조선인들은 애초에 계급도 낮았고 지휘관도 거의 없었다.
중국에서 일본군을 탈출했던 조선인들은 다수가 공산당 쪽으로 갔다. 일제 패망 이후 광복군은 만주로 가서 확군을 시도했으나 실패한 채 귀국해야 했다. 뒤늦게 귀국해보니 국방경비대는 일본군과 만주군 출신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중화민국 국민당 군대 출신도 일부 있었으나 역시 실전 경험은 거의 없었고 숫자도 적었다.
'미들급' 인민군을 상대한 '플라이급' 국군... 예상됐던 KO패
▲ 모진교 전투 전적지 ⓒ 윤태옥
사정이 이러하니 건군 초기에는 일본에서 군사교육을 받았거나 약간의 군대 경력이 있는 사람들이 국방경비대 장교가 되었고 이들이 곧 국군의 핵심 간부가 됐다. 경력으로 보면 중대장이나 대대장급이었으나 연대장이나 사단장에 보임됐다. 지휘관부터 병사들까지 실전 경험은 물론 기본적인 교육 훈련조차 제대로 받지 못했다. 실전 경험이라야 제주도와 지리산에서의 반정부 무장대를 토벌하거나 38선에서 소규모 충돌을 감당한 정도였다.
결과적으로 국군의 사단장급 지휘관으로서 정규전에서 소총 중대급 이상의 부대를 실전에서 지휘해본 경력자는 한 명도 없었다. 총참모장인 채병덕부터 병기병과 출신으로 작전지휘에는 부적합하다는 평가가 따라 붙었다. 남한에서는 말로 하는 정치 지도자는 많았으나, 몸으로 전쟁을 감당할 군사지도자는 전무하다시피 했던 것이다.
교육훈련도 차이가 심했다. 국군에게 무기를 제공하며 교육훈련을 담당하던 주한 미군은 1949년 철수하면서 마지막으로 한국군에게 대대작전 시범훈련을 보여 주었을 뿐이었다. 이에 비해 인민군의 교육훈련은 다양했고 나름 체계적이었다. 북한군은 사단 단위의 야외 기동훈련을 마치고, 각 부대별로 남한의 목표 지역에 대한 지형 분석과 도상 연습까지 실시했다.
국군은 1950년 6월 15일에 가서야 수도경비사와 7사단과 8사단의 일부만이 대대훈련을 완료했고, 대개의 경우 중대급 훈련에 그쳤다. 심지어는 소대급 훈련도 안 된 부대도 있었다. 국군은 장갑차 운전병, 통신병 등 특과병 교육과정을 설치하지도 못하고 있었다. 신병 기초교육을 이수한 특과병들을 실무현장에서 가르치는 수준이었다. 인민군은 1948년부터 1년 동안 걸쳐 1만여 명의 청년을 선발하여 소련의 극동군사학교에 파견하여 전차, 항공, 통신교육을 받게 했다.
병력뿐 아니라 부대의 배치에서도 남한은 불리했다. 국군은 8개 사단 가운데 4개 사단만이 38선에 배치됐고, 나머지 4개 사단은 후방에서 반정부 게릴라를 상대해야 했다.
무기 역시 말하기가 민망할 정도였다. 국군의 장갑차는 총 27대였다. 이에 대응하는 인민군의 무기는 T-34 전차 242대, SU-76 자주포 168대, 장갑차 59대, 모터사이클 500대 정도다. 소련이 잉여 군수물자를 북한에게 적극 지원한 것과 대조적으로 미국은 남한에게 무기를 충분히 제공하지 않았다.
이 정도가 링에 올라가기 전에 계체량에 나선 두 선수의 간략한 비교다. 북한이 미들급이라면 남한은 미들급보다 네댓 급은 떨어지는 플라이급 정도랄까. 경기를 해봐야 미들급 선수가 플라이급 선수를 일방적으로 두드리다가 1라운드도 끝나기 전에 KO패 또는 몰수패로 끝날 형국이었다.
실제 한국전쟁 초기의 양상이 그랬다. 38선에서부터 낙동강 전선까지 후퇴에 후퇴를 거듭하고, 적지 않은 부대는 대오가 흩어져 말로는 작전상 후퇴이지만 패잔병과 다를 바 없이 지리멸렬하기까지 했다. 다만 미국이란 헤비급 선수가 서둘러 개입하여 완전한 패전으로 끝나지 않았을 뿐이다.
'신성모 간첩설'이 푸념 반 의심 반으로 떠돌았던 이유
▲ 말고개 옛길의 38선 표지 ⓒ 윤태옥
선수의 승패는 곧 구단의 성패다. 선수인 국군이 패퇴를 거듭하자 국가의 존망은 휘청거렸고 백성들은 전후방 어디든 커다란 고통의 나락에 빠지고 말았다. 그러나 한국전쟁 역사를 돌이켜보면서 음미할 것의 하나는, 선수의 체급 문제는 선수가 아니라 구단과 구단주의 문제란 것이다. 미들급 선수와 맞붙는데 플라이급 선수를 내밀 수밖에 없는 구단이라니.
대한민국 군번 1번으로 유명한 이형근(1920~2002)은 그의 회고록에서 다음과 같이 지적하면서 군지휘부에 통비(通匪)분자가 있었던 게 아니냐고 탄식할 정도였다. 기습남침 직전의 모든 상황은 그나마 갖고 있는 국군의 방어력을 스스로 가장 낮은 수준까지 끌어내렸다는 것이다.
1950년 4월말 총참모장으로 다시 부임한 채병덕은 전방부대와 후방부대를 대대적으로 교체했다. 작전지역에 익숙해진 부대를 뒤로 빼고 낯선 부대를 투입했으니 북한의 기습공격을 알아서 도운 꼴이 됐다. 지휘관도 전부 교체하고 육군 지휘부도 새로 구성했다. 정보국장과 군수국장을 제외한 모든 참모와 사단장들이 바뀐 것이다.
이와 함께 6월 24일 비상령도 해제됐다. 토요일 아침에 비상령이 해제되자 자연스레 병력의 반 정도에게는 휴가·외출·외박이 주어졌다. 농번기인데다가 가뭄 끝에 비가 오자 농사일을 거들려고 귀가한 것이다. 상황이 이러하니 북한 인민군의 남침에 맞춰 적들에게 가장 유리한 상황을 만들어서 바친 꼴이라는 비난을 피할 수 없었다. 물론 하나하나는 다 나름의 이유는 있다. 그러나 지휘관이 해야 할 종합적인 판단은 어디에도 없었다.
가장 큰 문제는 38선의 일선부대는 북한의 남침 징후를 계속 보고했는데 군 수뇌부는 이를 묵살 내지 무시했거나, 대단히 안이하게 대처했다는 것이다. 적이 기습을 한다고 해도 그에 대비하고 있으면 기습의 효과가 반감할뿐더러 역습의 기회까지 잡을 수 있는 법이다. 그러나 남한의 정부와 국군 수뇌부는 이를 충분히 알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도 제대로 대비하지 않았다.
그 가운데 어처구니없는 사건은 6월 24일 저녁 용산의 장교클럽에서 전군의 주요 지휘관들이 모여 파티를 열었다는 것이다. 남침 징후가 곳곳에서 보고되고 있는데 겨우 육군 장교클럽 오픈기념이란 이유로 댄스파티 술자리를 열었다니. 이것은 몇몇 장교들의 사적인 모임이 아니라 국방장관 신성모가 호스트가 되어 전방의 사단장들과 주요 간부들을 전부 호출한 자리였다.
채병덕 총참모장은 술자리가 길어져 2차까지 하고는 새벽 2시에 귀가했다. 그는 새벽 5시 술기운이 가시지 않은 시간에 육군본부 상황실 근무자의 보고를 받고서 전군에 비상조치를 발동했다. 비상시국의 핵심보직인 육본 작전국장 장창국 대령은 이사한 지 며칠 되지 않아 전화연락도 되질 않았다.
채병덕은 신성모 국방장관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영국 경험이 있는 신성모는 자신의 휴무에 충실한 것으로 유명했다. 긴급한 전화였으나 일요일 새벽이라서 그랬을까, 연결조차 되지 않았다. 채병덕이 신성모의 비서와 함께 지프를 타고 집으로 달려간 것이 오전 7시 정도. 나라가 침략을 당하고 있는데 전화연락도 되지 않는 국방장관이라니.
대통령이라고 다를 바가 없었다. 이날 아침부터 비원에서 낚시를 즐기던 이승만은 오전 10시쯤에야 경찰 보고를 받고 경무대로 돌아왔다.
인민군은 38선 후방에서 38선으로 발소리를 죽이며 조용히 접근하여 개전포격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데, 남한의 국방장관은 전방의 주요 사단장들을 전부 불러 댄스파티를 벌였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상황 때문에 '신성모 간첩설'이 푸념 반 의심 반으로 떠돌았던 것이다.
"점심은 평양에서, 저녁은 신의주에서"... 허언 일삼은 권력 엘리트들
▲ 모진교가 수몰된 지점 ⓒ 윤태옥
전쟁은 양쪽의 총사령관이 일대 일로 링 위에서 싸우거나, 양쪽의 사단장들이 미식축구를 하듯이 스크럼을 짜고 일렬로 맞붙는 게임은 아니다. 그러나 운명의 6월 25일 새벽, 숙취에 젖어 있다가 부대도 아닌 서울의 집에서 비상령을 전달받은 국군 사단장들과, 두 눈을 부라리고 일격에 적을 제압하려고 기습공격을 감행해온 인민군 사단장들의 표정을 비교해서 상상해보라.
플라이급밖에 되지 않는 국군이 링에 끌려 올라가 피투성이가 되고 수많은 젊은이들을 쓰러지게 한 이승만이, 신성모가, 채병덕이, 그들로 대표되는 당시의 권력 엘리트들이 부끄럽다.
이승만은 대통령으로서 국가를 안전하게 지킬 모든 방책을 사전사후에 강구해내야 했다. 선제공격을 하든, 미국이나 중국 소련을 상대로 외교적 술수를 쓰든, 김일성을 구워삶든, 무슨 수단을 쓰든 그는 그것을 해내야 하는 자리에 앉아있지 않았는가. 어떤 방법이든 북진 이전에 남침을 막아낼 병력과 무기를 끌어다 군에 공급해야 하는 게 그의 의무였다.
이승만이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초대 국무령이었으나 1925년 탄핵당한 것보다, 대한민국의 대통령으로서 1960년 또 다시 국민들의 피를 보고서야 하야한 것보다, 북진통일을 외치면서도 북한의 무모한 남침을 막아낼 준비를 하지 못한 것이, 그래서 수많은 장병들이 죽었고 훨씬 더 많은 국민들이 극악한 고통에 빠진 것이, 나는 더 부끄럽다.
"점심은 평양에서, 저녁은 신의주에서"라는 어처구니없는 허언으로 요약되는 무능한 국방장관 신성모가 부끄럽다. 총참모장으로서의 책임은커녕 급박한 상황에 후들대면서 성급하게 한강다리를 폭파시켜 국군 3개 사단을 적 앞에 고립시키고 수많은 서울시민을 적군 치하에서 고통을 당하게 한 채병덕이 부끄럽다. 그가 일본군 장교 출신이란 사실보다 더 부끄럽다.
술 파티 참석 거부... 부대 지킨 단 한사람
그런데 그날, 남침 징후가 있다고 보고를 했을 뿐더러 장교클럽 파티에 참석하라는 호출을 무시하고 자리를 지킨 사단장이 딱 한 사람 있었다. 춘천의 6사단장 김종오(대령)였다. 다른 사단들이 기습공격에 무너지고 뚫릴 때, 6사단만은 춘천을 통해 수원으로 진공하려는 인민군 2군단을 3일 동안 완강하게 저지했다.
이승만이 공급한 병력과 무기는 빈약했으나 자신의 방어선을 지켜냈고 거꾸로 인민군에게 상당한 피해까지 안겨줬다.
이로 인해 인민군이 서울을 점령하고도 한강도하를 3일이나 지연하게끔 만들었다. 6월 25일 운명의 그날에 인민군에게 뚫리지 않은 유일한 전선이 바로 춘천이었고 그래서 나는 모진교부터 찾아온 것이다. 이제 모진교에서 춘천시내의 치열한 전장으로 갈 차례다.
더불어민주당 홍익표 원내대표와 정청래, 고민정 최고위원 등이 지난 27일 서울 용산구 용산역에서 추석 귀성객들에게 인사하는 모습. (자료사진) 2023.09.27. ⓒ뉴시스
추석 직전 진행된 여러 여론조사에서, 현 정부 견제를 위해 다가오는 내년 총선에서 ‘야당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응답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여론조사 기관 한국리서치가 KBS 의뢰로 지난 25~27일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천 명에게 물은 결과에 따르면, 내년 총선 인식에 관한 물음에 ‘현 정부를 견제하기 위해 야당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응답이 52%에 달했다. ‘현 정부를 지원하기 위해 여당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응답은 39.1%에 그쳤다.
코리아리서치가 MBC 의뢰로 지난 25~26일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천 10명에게 물은 결과에서도 총선에 관해 응답자 53.4%가 ‘현 정부를 견제하기 위해 야당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고 답해 ‘정권 심판론’이 우세한 추이를 보였다. ‘현 정부를 지원하기 위해 여당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응답은 38.9%였다.
엠브레인퍼블릭이 YTN 의뢰로 지난 25~26일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천 2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여론조사에서도 비슷한 응답 경향이 드러났다. ‘내년 총선의 성격을 어떻게 보느냐’는 물음에 ‘야당에 더 힘을 실어주는 선거’라는 응답이 48%로 나타났고, ‘여당에 더 힘을 싣는 선거’라는 응답은 그보다 적은 34.5%였다.
같은 조사에서 다음 달 11일 치르는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가 내년 총선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냐는 물음에 응답자 21.1%는 ‘매우 영향이 있을 것’, 40.6%는 ‘어느 정도 영향이 있을 것’이라고 답했다. ‘영향이 없을 것’이라는 응답은 27%에 그쳤다.
인용한 세 개의 여론조사 모두 표본 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누리집을 참조하면 된다.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와 윤재옥 원내대표 등 의원들이 지난 27일 서울 용산구 서울역에서 추석 귀성객들에게 인사 하는 모습. (자료사진) 2023.09.27. ⓒ뉴시스
6개월 후면 22대 총선입니다. 민주당의 압승으로 끝났던 21대 총선, 0.7%p 차로 갈린 20대 대선, 국민의힘의 압승으로 끝난 2022년 지방선거까지. 지난 4년, 민심은 끊임없이 요동쳤습니다. 윤석열 정부에 대한 중간평가가 될 이번 총선에서 유권자들은 과연 어떤 선택을 할까요? <오마이뉴스>는 대표적인 '스윙보터'이자 전체 의석수의 3분의 2를 차지하는 수도권을 시작으로 각 지역구를 가로지르는 이슈와 인물을 살펴봅니다. [편집자말]
경기 고양갑. 선거구로 획정된 2000년 이후 18대 총선만 빼고 모두 보수 정당 후보들이 패배한 지역이다. 16대 곽치영(새천년민주당)·유시민(개혁국민정당), 17대 유시민(열린우리당), 18대 손범규(한나라당) 당선 후 2012년 19대 총선부터 지금까지 심상정 정의당 의원이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심 의원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한국 진보정치의 '대표선수'다. 진보정당 소속 유일한 4선 국회의원이자 19대·20대 대선주자다. 그만큼 진보정당 소속 정치인 중 가장 높은 대중적 인지도와 영향력을 확보하고 있고 이는 '진보 초강세 지역'인 고양갑과 좋은 궁합을 보였다. 하지만 22대 총선은 다르다. 심 의원의 '5선 달성'이 위태롭다는 얘기가 돈다.
당 지지율은 한국갤럽 조사기준 5% 안팎을 못 벗어나고 있다. 특히 정의당을 향한 지역민심이 변했다. 2022년 6.1 지방선거 때 덕양구(고양갑은 덕양구 북부 일대) 소속 정의당 소속 시의원들이 모두 낙선했다. 민주당과 국민의힘이 그 자리를 모두 차지했다. 정의당이 2018년 6.13 지방선거 때 3명의 시의원을 배출했던 것과 다른 결과다.
여기에 '대선주자 심상정'에 대한 지역민의 피로도도 일부 드러나고 있다. 전체 정국을 가로지르는 이슈에 대해 목소리를 내는 국회의원보다 지역현안에 천착하는 국회의원이 더 필요하다는 정서다. <오마이뉴스>는 지난 14일 경기 고양갑을 찾았다.
심상정 지지했던 이들, 변했다?
▲ 심상정 정의당 의원이 지난 7월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위성정당 방지를 위한 공직선거법과 정치자금법 개정안 발의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심상정 의원 지역 사무소가 위치한 덕양구 화정동에서 만난 지역민들은 여전히 심 의원에 대한 지지 의사를 밝혔다. 화정동 야채가게에서 일하는 박지수(29)씨는 "심 의원이 한번 더 국회의원이 돼 다시 대통령에 도전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화정역 인근에서 토스트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이아무개(60)씨도 "민주당 후보보다는 심 의원이 더 낫다. 더 많은 커리어와 힘이 있기 때문"이라고 봤다.
하지만 마음을 바꾼 지지자들도 있었다. 고양시청 앞 세탁소를 운영해온 이아무개(60)씨는 19·20·21대 총선과 20대 대선에서 모두 심 의원에게 투표한 지지자였다. 그런데도 '다음 총선에서 어떤 후보에게 투표하겠냐'는 질문에 다음과 같이 말했다.
"심상정을 향한 마음은 이미 많이 떠났어요. 생계가 걸려 있다 보니 생각이 달라지더라고요. 민주당 한심하죠. 그런데 이번 총선에서는 민주당을 뽑아야 할 것 같아요. 국민의힘이 설쳐대게 놔둘 수는 없잖아요."
그는 지역 현안 중 하나인 고양시청 이전 논란을 '변심'의 이유로 꼽았다. 고양시청 이전 논란은 지역에서 해묵은 숙제이자 당면한 지역 현안이다. 시청 청사를 중심으로 상권이 활성화 돼 있는 만큼 청사 이전 소문이 돌 때면 부동산 가격까지 들썩이곤 했다. 게다가 국민의힘 소속 이동환 고양특례시장이 지난 1월 주교동 현 청사 옆 새 청사를 짓기로 결정하고 절차를 밟고 있던 것을 뒤집었다. 돌연 새 청사를 백석동으로 이전하겠다고 밝힌 것. 이 때문에 덕양구민들은 몇 차례 궐기대회까지 열기도 했다. 하지만 이때 심 의원의 '부재'를 느꼈다는 게 이씨의 설명이다.
"여기(고양시청 인근) 있는 자영업자들은 시청이 이사가면 다 죽는 거예요. 손님 대부분이 시청 직원들이라서요. 그런데 심 의원님은 특이하게 한창 (시청 이전이) 문제가 됐을 때 인천 전세사기 현장으로 가더라고요."
주교동에서 카페를 운영하고 있는 양아무개(39)씨도 비슷했다. 그는 19·20대 총선에서 심 의원에게 표를 던졌지만 21대 총선 때는 다른 선택을 했다고 했다. 그는 "고양시청 이전 문제뿐만이 아니다"며 "(심 의원이) 3선을 하는 동안 (지역에서) 어떤 변화도 느끼지 못했다. '고인 물'이란 인식이 있다"고 평가했다.
이러한 지역민들의 표심 변화는 20·21대 총선 득표율 비교를 통해서도 확인 가능하다. 심 의원은 20대 총선 당시 더불어민주당 박준 후보와 야권연대를 하지 않은 상황에서도 52.97%란 압도적 득표율로 손범규 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 후보를 16.17%p 차로 꺾었다. 하지만 4년 뒤 21대 총선에서는 득표율 39.38%로 이경환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 후보를 6.64%p 차이로 이겼다.
이는 민주·진보계열 정당에 우호적이면서도 이왕이면 심 의원을 지지했던 지역민 중 일부가 태도를 바꾼 결과로 추정된다. 참고로 20대 총선 때 민주당 박준 후보의 득표율은 8.74%, 21대 총선 때 민주당 문명순 후보의 득표율은 27.36%였다.
심 의원은 아직 총선 출마 여부를 확정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오마이뉴스>에 "(저의) 출마는 당의 전략과 함께 가야 한다. 조금 더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하지만 지역 정가 안팎에선 그의 출마 가능성을 여전히 높게 보고 있다. 심 의원이 고양시청 이전이나 신규 소각장 추진 등 지역 현안 관련 행사에 참석하면서 지역 밀착도를 높이고 있는 중이기 때문이다.
신발끈 고쳐매는 민주당 후보들, '심상정 교체론' 앞세워
▲ 지난 14일 문명순 후보가 고양시 덕양구 화정동에 위치한 심상정 의원의 지역사무소 앞에서 일본 정부의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를 규탄하는 피켓 시위를 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 속에 출마를 준비 중인 민주당 후보들은 '심상정 교체론'을 들고 신발끈을 동여매고 있다.
지난 총선 때 심 의원과 맞붙었던 문명순 민주당 고양갑 지역위원장의 전략은 '현장 행보'다. <오마이뉴스>가 지역을 찾은 14일 오전 8시, 그는 화정역 역사 내에서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를 규탄하는 피켓을 들고 서 있었다. 문 위원장은 지지자로부터 받은 문자 메시지를 보여주면서 "매일 이곳에서 지지자들과 만난다. 내년 총선 때 심상정이 아닌 문명순을 선택하겠다는 응원도 받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고양갑은 일반적인 험지와 성격이 다르다. (민주당 후보는) 4년간 열심히 시험공부를 해도 (심 의원에 막혀서) 시험장에 입장도 못한다"며 "그런데 심 의원은 자기 정치만 해 왔다. 지역이 이렇게 피폐해지도록 무엇을 했냐"고 지적했다. 또 "중앙당에서 돌린 여론조사에서는 제가 벌써 심 의원을 2배 앞서고 있다"고도 주장했다.
이재준 전 고양시장 역시 "(심 의원은) 중량감 있는 정치인이지만 정작 지역에서는 제대로 활동하지 못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며 "지역 자치분권을 실현하고 지역사람들과 함께 해온 내가 적임자"라고 강조했다.
열린민주당(21대 총선 당시 민주당 비례정당) 대변인을 지낸 김성회 정치연구소 '씽크와이' 소장도 고양갑 출마를 준비 중인 민주당 후보 중 하나다. 그는 최근 고양시 화정동에 자신의 촬영 스튜디오를 옮기면서 본격적인 총선 행보에 돌입했다. 그는 "심 의원이 지난 20년간 대한민국 진보 정치를 위해 열심히 해 온 역할이 분명히 있었다"면서도 "이제는 다음 세대들이 진보 개혁 정치를 구현해낼 때"라고 말했다.
의사 출신 신현영 민주당 의원(비례대표)도 출마 가능성이 있다. 그가 근무했던 명지병원 소재지가 고양시 덕양구이기 때문이다. 그는 출마 여부에 대해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주어진 소임에 충실할 것"이라고 말했다.
권순영 국민의힘 고양갑 당협위원장은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지난 8월 예비타당성조사에서 탈락한 '신분당선 서북부연장' 사업을 언급했다. 그는 "가장 큰 지역현안 중 하나는 교통불편"이라며 "그런데 국회 국토위 소속인 심 의원은 이러한 지역의 숙원사업을 왜 해결 못하냐는 성토가 지역에서 나오는 중"이라고 말했다.
그는 '원희룡 차출설'은 일축했다. 여권 일각에선 일산·평촌·산본·분당 등 노후 신도시 정비 지원 특별법인 '1기 신도시 특별법' 성과 등을 앞세워 원희룡 국토교통부장관이 '험지'인 고양갑에 차출될 것이란 얘기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심 의원은 지난 6월 국토위 전체회의 때 원 장관에게 고양갑 출마여부를 묻기도 했다. 원 장관은 이 때 "심 의원과의 대결이면 영광"이라고 답했다.
하지만 권 당협위원장은 "(원 장관이) 고양갑 출마 의사가 없다는 이야기, 그리고 1기 신도시 특별법과 관련해 이미 (고양갑이 아닌) 경기도 각지에서 러브콜을 받고 있다고 전해 들었다"며 "(원 장관이) 출마를 하더라도 서울 종로 같은 정치 1번지나 1기 신도시가 위치한 고양시 병이나 정일 것"이라고 점쳤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은 '인물 경쟁력'을 22대 고양갑 총선의 주요 변수로 꼽았다. 그는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심상정 위기론'과 관련 "각 당에서 어떤 인물이 나오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고 평가했다.
현재 출마를 준비 중인 민주당 후보들의 인물 경쟁력이 심 의원에 비해 약하다는 것. 그는 이에 따라 야권 성향 표심이 분열될 수 있고, 어부지리로 국민의힘 후보가 승리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원희룡 장관이 실제 등판한다면 "팽팽한 접전이 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정전 70년 한반도 평화행동’(아래 평화행동)이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과 각국 대표부에 ‘한반도 전쟁 반대 평화 실현 서명’(아래 서명)을 전달한다.
평화행동 대표단은 유엔에서 군축 및 국제 안보 관련한 의제를 다루는 유엔 총회 1위원회가 열리는 시기에 뉴욕을 방문하고 있으며, 구테흐스 총장에게 30일 (아래 미국 현지 시각) 서명을 전달할 계획이다.
평화행동 대표단은 서명 전달에 앞서 이날 오후 2시 ‘정전 70년 한반도 평화 대행진’을 유엔 본부 인근 함마슐드 광장에서 개최한다.
대행진 참가자들은 “적대를 멈추고, 지금 평화로!”, “전쟁을 끝내고, 지금 평화로!”, “한미, 한·미·일 연합훈련 중단!” 등의 구호를 한국어와 영어로 외친다. 대표단을 비롯해 미국에서 한반도 평화를 위해 활동해 온 한인 동포 단체, 종교계, 미국 평화단체, 국제 평화단체들이 대행진에 참여한다.
평화행동은 한국전쟁 발발 70년인 지난 2020년부터 전 세계 곳곳에서 서명을 진행했으며, 약 20만 명의 사람이 참여했다.
서명에는 ‘▲적대를 멈추고 남북·북미 관계를 개선하자 ▲한국전쟁을 끝내고 평화협정을 체결하자 ▲핵무기도 핵위협도 없는 한반도와 세계를 만들자 ▲제재와 군사 위협이 아닌 대화와 협력으로 갈등을 해결하자 ▲한·미·일 군사협력 중단하고 한반도·아시아 평화공존 실현하자▲군비 경쟁의 악순환에서 벗어나 시민 안전과 환경을 위해 투자하자’ 등의 내용이 담겼다.
평화행동은 “올해는 한국전쟁 정전협정 체결 70년이다. 불안한 휴전이 끝나지 않은 가운데, 다시 유례없는 전쟁 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대규모 한미, 한·미·일 연합훈련, 북한 미사일 시험 발사 등 강 대 강 대치의 악순환 속에 언제 무력 충돌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은 위태로운 상황”이라며 현 정세를 걱정했다.
평화행동은 “대표단은 유엔 대표부에 한반도 전쟁 위기의 심각성을 환기하고 무력 충돌 예방과 대화 여건 조성을 위한 각국 정부의 적극적인 행동을 촉구할 것”이라고 취지를 밝혔다.
평화행동 대표단은 미국 국무부와 상·하원 의원 면담을 통해 한반도 평화를 원하는 목소리를 전달할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평화행동 대표단은 미국 백악관 앞에서 한반도 평화를 위한 행동을 진행한다. 오는 10월 8일 오후 3시 ‘한반도 평화 집회’가 열린다.
한편 750여 개의 국내단체, 7대 종단, 80여 개의 국제단체가 평화행동에 참여하고 있다.
일본 동북부 후쿠시마현 소재 후쿠시마 다이이치(제일) 원자력 발전소의 2월 14일 전경. 2021. 2. 22. ⓒ사진 = AP 일본은 오는 2051년까지 후쿠시마 사고원전 폐로를 완료하겠다는 계획이다. 주변국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올해 8월부터 134만t에 이르는 오염수 해양방류를 강행한 이유도 이 계획의 일환이다. 일본은 오염수를 30년간 수백 배의 바닷물로 희석하여 방류한다는 입장이다.
‘2051년까지 폐로 계획’은 당초부터 불가능하다는 비판이 많았다. 현재의 과학기술로는 녹아내린 핵연료와 주변 구조물이 뒤섞인 ‘데브리’를 제거하는 게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오염수는 바닷물·지하수·빗물·냉각수 등이 데브리에 닿아 생성되기 때문에, 데브리 제거 또는 특단의 조치 없이는 오염수 추가 생성도 막기 어렵다. 미야노 히로시 일본원자력학회 폐로검토위원장은 지난 19일 아사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2051년까지 폐로를 완료하겠다는 일본의 계획에 대해 “있을 수 없는 이야기”라며, 오염수 생성 문제도 해결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올해 5월에 방한했던 반 히데유키 일본 원자력정보자료실 대표도 “일본 학회에서도 100년 혹은 300년 이상 걸릴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2019년 9월에 운전을 종료한 미국의 스리마일 원전조차 후쿠시마 원전처럼 폭발한 것도 아닌데 폐로까지 60년 계획을 세웠다. 이대로라면, 오염수 방류와 폐로가 30년 안에 끝날지, 50~100년 동안 이루어질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현재도 매일 90t 이상의 오염수가 생성되고 있다는 점만 고려해도, 일본의 계획은 그대로 지켜지기 어렵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추가로 탱크를 짓지 않아도 된다는 점 외에 실익도 별로 없다. 그런데도, 일본이 오염수 해양방류를 서두른 이유는 무엇일까?
주오사카대한민국총영사관 총영사였던 오태규 서울대 일본연구소 객원연구원은 지난 9월 26일 민중의소리와의 통화에서 인류사적 재난을 겪었음에도 일본이 다시 ‘친원전 정책’을 재추진하고 있는 점 등을 짚으며, 오염수 해양방류가 일종의 “제례”처럼 치러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3·11(후쿠시마 원전사고) 충격에서 벗어나기 위한 제례를 치러야 하는데, 폐로는 너무 먼 미래”라고 덧붙였다. 또 “로카쇼무라 재처리시설 등에서 발생할 여러 문제에 대비해 선례를 만들어 처리하면 안전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추정했다.
① 부활하는 일본 원전산업
40년 넘은 노후원전도 재가동
원전제로였던 일본, 10여기 가동
오염수 방류...“제례의식 같아”
노후원전 다카하마원전 가동을 알리는 간사이전력 보도자료. ⓒ간사이전력
일본은 후쿠시마 원전 폐로와 오염수 해양방류만 서두르는 게 아니다. 이와 함께 ‘원전산업의 부활’을 서둘렀다.
2011년 3월 11일 후쿠시마 원전 폭발사고를 겪은 일본은 2014년에 모든 원전의 가동을 멈춰 세웠다. 하지만 이듬해인 2015년 8월 주식회사 규슈전력(九州電力)이 가고시마현에 있는 가와우치 원전(川内原発)을 재가동하면서 일본의 ‘원전제로 시대’는 23개월 만에 끝났다. ‘마이니치신문’이 2015년 8월 12일 사설로 “가와우치 원전 재가동을 원전 회귀의 발판으로 삼으면 안 된다”고 호소했지만, 이후 다른 원전들도 하나둘 가동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최근에는 50년 가까이 된 노후원전까지 재가동하기에 이르렀다. 주식회사 간사이전력(関西電力)에 따르면, 다카하마 발전소(高浜発電所) 1호기는 올해 9월 23일 오전 9시30분부터 운전을 개시했다. 일본 혼슈 중부 후쿠이현(福井縣)에 위치한 다카하마원전 1호기는 1974년 11월에 완공된 대표적인 노후원전이다.
일본은 후쿠시마 원전 폭발을 겪은 후 “발전용 원전의 가동 기간은 40년으로 한다”는 내용으로 원자력규제법을 개정했다. 이는 후쿠시마 참사를 교훈 삼아 세운 원칙이었다. 하지만 일본은 슬쩍 “한차례 20년 연장이 가능하다”는 조항을 끼워 넣더니, 올해에는 아예 60년까지 가동할 수 있다는 ‘그린 트랜스포메이션’(GX) 법안을 마련하고, 실제 40년 이상 된 노후 원전을 재가동한 것이다. 일본은 원전 수명 연장 인가 기관도 원자력규제위원회에서 경제산업성으로 바꿨다. 다시 안전보다 경제를 우선하겠다는 의도다.
2022년 3월 세계원자력협회(WNA)가 취합한 일본의 가동 원전 수가 10기였다는 점, 일본이 올해 9월부터 재가동한 노후원전 등을 고려하면, 이제 일본에서 가동하는 원전은 11기가 된 것으로 보인다. 한때 ‘원전제로’까지 도달했던 일본이 과거의 ‘원전 신화’로 회귀하기 위한 작업을 착착 진행하고 있는 것이다. 에너지정보문화재단에 따르면, 일본 원전업계 고용도 올해 들어 대폭 확대되는 추세다.
이 과정에서 오염수 탱크와 사고원전이 상흔처럼 남은 후쿠시마는 가장 큰 걸림돌일 수밖에 없다. 후쿠시마 원전사고는 일본이 그토록 자랑했던 “원자력 안전 신화”를 무너뜨렸기 때문이다. 후쿠시마 원전사고 직후 일본 언론이 쏟아낸 비평 또한 “정부는 그간 일본 원전이 안전하다고 강조해 왔으나 이번 후쿠시마 원전 폭발로 ‘안전 신화’가 무너졌다”였다.
그래서 일본이 취한 행보는 재난을 온전히 인정하지 않고 지우는 일이었다.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10여 년 동안 매해 후쿠시마를 찾아 다큐사진을 찍은 정주하 사진작가는 “일본이 후쿠시마 사고를 없었던 일처럼 만들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올해 6월 (사)마당이 주최한 강연에서 이같이 말했다.
2016 리우 올림픽 폐막식에서 모습을 드러낸 아베 신조 일본 총리 자료사진. ⓒIOC
2013년 9월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에서 아베 신조 당시 일본 총리의 현실을 부정하는 말은 두고두고 논란이 됐다. 아베 총리는 당시 오염수 문제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자 “상황이 통제되고 있다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같은 해 10월 중의원 본회의에서도 아베 총리는 오염수 문제가 “통제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오염수 발생 문제는 전혀 해소된 상황이 아니었다. 당시에는 매일 수백t의 오염수가 생성되고 있었고, 세계 최대 얼음벽을 설치한 뒤에도 매일 90t의 오염수가 생성되고 있기 때문이다. 2016년에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가 아베 총리 발언에 대해 “거짓말”이라고 비판한 이유다. 수습되지 않은 후쿠시마 문제를 해결된 것처럼 치부하려는 아베 총리의 기행도 이어졌다. 2019년 6월에는 아무런 방호장비 없이 정장 차림으로 후쿠시마 사고원전에서 100m 떨어진 곳에 서서 “드디어 방호복과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고 평상복만 입고 풍경을 볼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이때 아사히신문은 “아마도 허세”라고 촌평하며 “아베 총리의 점검은 6분 만에 끝났다”고 전했다.
도쿄올림픽이 열리던 시기에도 후쿠시마 문제를 지우려는 일본의 노력은 계속됐다. 마치 후쿠시마 위험이 완전히 상쇄된 것처럼, 올림픽 선수단 식탁에 후쿠시마 농수산물을 제공하겠다고 하여 논란이 됐다. 후쿠시마 성화봉송과 후쿠시마에서의 일부 경기를 계획하며 '부흥'의 의미를 부여했다.
무엇보다, 한차례 연기된 도쿄올림픽이 열린 2021년 그해 4월 일본은 후쿠시마 사고원전 부지에 쌓인 오염수를 바다에 방류하겠다고 공표했다. 원전 폐로 계획에 맞춰 오염수도 방류하여 처리하겠다는 게 골자였다. 가장 큰 반발이 예상되는 어민들에게는 “풍문” 피해 보상을 해주겠다며 달랬다.
그런데 현재의 과학기술 한계와 계속 생성되는 오염수 문제를 생각하면 이는 장담하기 힘든 계획이다. 30년 안에 방류가 끝날 가능성은 별로 없다. 일본의 오염수 해양방류가 ‘원전 부활’을 위한 상징의식으로 보이는 이유다. 오태규 객원연구원은 “후쿠시마 원전사고는 문명사적 충격이었다. 독일의 경우에는 원전을 전부 폐로 하겠다고 했고, 일본 역시 그랬다. 이게 아베 정권에 들어서면서 슬금슬금 바뀌었다. 원자력 이권 세력의 힘이 세진 것”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후쿠시마를 처리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하지 않겠나. 일본 국민에게 원자력은 가장 안전하다는 그런 신화를 많이 심어줬었기 때문에 그래야만 한다. 후쿠시마 문제를 그냥 넘어가서는 원전의 부활은 심리적으로 사회적으로 힘들다. 그래서 (오염수 방류를 통해) 이 (심리적·사회적) 압력을 빼려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② 내년 오염수보다 더 큰 게 온다
26번 연기된 재처리시설 완공
방사성물질 배출 규모 “‘라 아그’의 15배”
“오염수 방류, 선례로 안전판 마련”
일본이 이번에 오염수 방류를 강행한 이유를 추정할 때, 가장 많이 언급되는 게 로카쇼무라 핵연료재처리 시설이다. 일본은 내년 2024년 9월까지 이 시설을 완공할 계획이다.
로카쇼무라 재처리시설 주요 공정과 위험성 ⓒCNIC
원자력발전으로 사용이 끝난 ‘사용후핵연료’에는 우라늄과 플루토늄 등 재사용이 가능한 핵물질이 포함돼 있다. 이 핵물질을 꺼내 다시 연료로 가공하는 공정을 “핵연료재처리”라고 부른다. 일본이 내년까지 아오모리현에 완공하겠다는 것은 이 공정을 수행하는 대규모 시설이다. 아오모리현청에 따르면 아오모리현 카미키타군에 들어서는 이 시설의 규모는 재처리공장과 우라늄 농축공장만 합쳐서 730만 평방미터에 이르고, 추가로 규모를 알 수 없는 고준위방사성폐기물 저장관리센터와 저준위방사성폐기물 매설센터 그리고 MOX 연료공장이 들어설 예정이다. 당초 이 시설은 1993년 착공해 1997년부터 가동할 예정이었지만, 26번이나 완공이 미루어졌다. 지역주민과의 분쟁 등 여러 문제가 발생하면서다. (▷ 아오모리현청 설명)
일본의 원자력자료정보실(CNIC)은 이 재처리시설에서 기존 원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양의 방사성물질이 바다와 대기 중으로 방출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사용후핵연료를 다시 사용할 수 있는 연료로 가공하는 과정에서 방사성폐기물이 발생하는데, 이게 기체나 액체 형태로 대기와 바다로 방출되기 때문이다. CNIC는 그 양이 “원전 1기가 1년 동안 배출하는 양을 하루 만에 배출”하는 정도이며 “프랑스 라 아그 재처리시설의 15배”에 이를 것으로 예상한다. (▷ CNIC 비평)
핵연료재처리시설의 악명은 익히 프랑스 라 아그 재처리시설과 ‘살아있는 체르노빌’이라 불리는 영국 셀라필드 재처리시설로 잘 알려져 있다.
로카쇼무라 재처리시설 역시 완공되면 방사성물질 배출로 논란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일본 정부는 이에 대해서도 대량의 바닷물로 희석할 것이기 때문에 안전하다고 설명하고 있는데, 이는 일본 정부가 후쿠시마 오염수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키고자 할 때 꺼내는 설명과 동일하다. 오염수 논란은 재처리 시설 논란의 예고편인 셈이다.
국내에서는 이 문제를 가장 먼저 공식 제기한 강정민 전 원자력안전위원장은 지난 2021년 4월 경향신문 기고 글에서 “일본이 오염수의 해양 방출을 결정한 것은 2023년 롯카쇼무라 재처리시설 가동을 염두에 두고 삼중수소는 안전하다는 인식을 국내외에 심어주려는 의도”라며 “로카쇼무라 재처리공장은 사용후핵연료를 연간 800t 처리하며 매년 약 9700조베크렐(Bq)의 삼중수소를 해양으로, 약 1000조Bq의 삼중수소를 대기 중으로 방출하게 된다. 또 매년 50조Bq의 탄소14와 500억Bq의 요오드129를 방출한다”고 지적했다.
오태규 객원연구원도 로카쇼무라 재처리시설 등을 언급하며 “(오염수 방류를 통해) 선례를 만들어서 처리해 주면 앞으로 안전판이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최근 들어 방사성폐기물 투기 문제는 ‘우리도 줄일 테니 함께 줄이자’는 식의 접근법이 아니라 ‘너희도 버리니 우리도 버린다’는 식의 접근법으로 투기 허용범위가 넓어지는 추세다. 후쿠시마 오염수 문제 관련해서도, 일본은 다른 나라 방사성액체폐기물 총량을 언급하며 오염수 해양투기의 정당성을 주장한 바 있다. 우리나라 정부여당 관계자와 일부 언론도 이 같은 일본의 주장을 그대로 갖고 와서 오염수 방류를 옹호한 바 있다. 일본의 행보가 방사성폐기물 처리의 문턱을 계속 낮추고 있다는 점에서, 이는 방사성폐기물 처리에 골머리를 앓고 있는 친원전국가들 입장에서는 반가울 수 있는 측면도 있어 보인다.
세수결손이 59조 원에 이른다. 들어와야할 세금이 59조 원이나 덜 걷혔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국채발행은 하지 않는다고 한다. 세수가 감소되었는데 국채를 추가 발행하지 않고 어떻게 세수결손을 메울수 있을까?
정부는 허리띠를 졸라매고 추경없이 세수결손 문제를 해결한다고 한다. 언론들도 세수결손에 따라 “정부가 허리띠 졸라매고 견뎌야” 한다는 한덕수 총리의 말을 전한다. 그러나 기획재정부는 한덕수 총리의 말을 부정한다. 기획재정부는 정부가 억지로 허리띠를 졸라매지는 않을 것이라고 한다. 즉, 불용을 종용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한다. 다만,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불용을 활용하는 한편, 내국세 감소에 따라 자동으로 줄어드는 지방 교부세 및 교부금 23조 원을 줄인다고 한다. 그럼 한덕수 총리말이 맞을까 아니면 기획재정부 말이 맞을까? 안타깝게도 둘 다 틀렸다. 그것도 심각하게 틀렸다.
일단, 한덕수 총리의 발언은 내용적으로도 틀렸지만, 형식적으로는 심각한 문제가 있는 발언이다. 가정살림은 수입이 줄면 허리띠를 졸라매고, 수입이 늘면 지출을 확대하곤 한다. 그러나 국가재정의 원칙은 가정살림과 정반대다. 내수가 좋지않아 세수입이 줄면, 내수를 부양하고자 지출을 확대하는 게 원칙이다. 반대로 경기과열로 세수입이 늘면, 오히려 지출을 축소해야 해야 한다. 경기조정이 정부의 기능이기 때문이다.
▲ 한덕수 국무총리가 9월1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사진=국무총리비서실 홈페이지
형식적으로는 더 큰 문제가 있다. 정부의 예산지출은 국민의 대표인 국회가 이미 확정했다. 근대국가의 시작은 국민의 대표가 정한 예산사업에 정부가 지출하는 것이다. 정부가 임의대로 허리띠를 줄여가면서 지출을 줄이는 것은 전근대 국가로 돌아가자는 것이다. 만약 지출을 줄이고자 한다면 감액 추경안을 국회에 제출해야 한다. 그러나 정부는 추경은 없다고 단언한다. 그래서 기획재정부는 한덕수 총리 말을 부정한다. 억지로 지출을 줄이는 대신 자연스럽게 줄어드는 불용을 활용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이도 눈가리고 아웅이다.
[관련기사 : 이상민의 경제기사비평-국가재정을 이해하는데 가장 큰 적은?]
기획재정부는 억지로 지출을 줄이지는 않을 것이라면서도 지방정부에 주는 교부세, 교부금 23조 원은 줄일 것이라고 한다. 지방교부세 등 23조 원 삭감으로 정부는 추가 국채를 발행하지 않을 수 있다고 한다. 즉, 세수가 줄어도 국채를 추가발행하지 않을 수 있는 마법은 세수결손의 40%를 지방정부에 떠 넘기는 방법이다. 기재부가 지방교부세 23조 원을 줄일 수 있다는 논리는 지방교부세가 내국세 규모에 자동으로 연동되기 때문이다. 그 결과 내국세에 연동되어 자동으로 줄어드는 지방교부세 23조 원을 올해 덜 지급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면 올해 지방정부에 23조 원을 덜 주면 안 된다. 지방교부세법에 따라 세수결손을 반영하는 시점은 올해가 아니라 내후년이 되는 것이 옳다. 내국세가 예산보다 줄어들거나 증가하면 지방정부에 주어야 할 지방교부세 금액을 정산해야 하는 것은 맞다. 그러나 올해 지방정부는 이미 중앙정부가 교부세를 주겠다고 약속한 금액에 맞춰 지출계획을 세우고 이미 집행하고 있다. 중앙정부는 경제상황에 따라 적자재정, 흑자재정을 넘나들면서 국채를 자유롭게 발행할 수 있다. 그러나 지방정부는 균형재정이 원칙이다. 중앙정부가 주기로 약속한 교부세액만큼 지출사업을 편성하고 이미 집행중이다. 한참 지출을 하는 상황에서 중앙정부가 약속한 돈을 주지 못한다고 하면 지방정부는 예산을 정상적으로 집행할 수 없다. 지방정부는 돈이 모자르다는 이유로 지방채를 발행하는 것은 균형재정 원칙에 맞지 않다. 지방정부의 지방채는 마치 프로젝트 파이낸싱(PF대출) 처럼 특정 사업의 재원을 조달하는 수단으로 지방채를 발행한다. 부족한 재원을 메우기 위해 지방채를 발행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래서 지방교부세법에 따라 올해 발생한 세수결손은 올해 인식하지 않고 내후년(2025년)에 인식할 수 있게끔 지난 2014년 지방교부세법이 개정되었다. 내국세 감소를 지방정부에 바로 반영하지 않고 지방정부의 재정 평탄화를 이루기 위함이다. 내국세 감소와 증가에 따라 찬물, 뜨거운물 수도꼭지를 급격하게 변동시키는 것은 재정의 예측가능성을 저해한다. 이에 올해 내국세 감소분은 2025년도에 반영하는 것이 입법취지에도 맞고 재정운용원칙에도 부합한다. 그럼에도 기획재정부는 올해 발생한 세수결손의 책임을 지방정부에 23조 원을 떠넘기면서 국채 추가발행을 피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언론은 왜 25년도가 아니라 올해 세수부족분을 지방에 떠넘겨야 하는지 질문하는 것이 옳다. 그러나 “허리띠를 졸라매고 견뎌야”한다는 한덕수 총리의 잘못된 발언을 비판없이 전한다. 그리고 23조 원의 교부세 등을 지방에 떠넘기는 것으로 국채발행을 피하고자한다는 기재부의 입장을 비판없이 전한다.
▲ 한덕수 국무총리와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7월28일 오전 서울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열린 고위당정협의회에 앞서 대화하고 있다. ⓒ 연합뉴스
결국, 언론은 한덕수 총리에게 이런 질문을 던져야 한다. “국회가 정한 세출 규모를 행정부가 마음대로 줄일수 있는지”를 물어야 한다. 또한, “만약 지출을 줄여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국회에 감액 추경안을 제출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지”를 물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세수결손을 23조 원 지방정부에 올해 떠넘기겠다는 기획재정부에게는 이런 질문을 던져야 한다. “왜 세수결손 반영 시점을 이미 예산을 편성하고 집행하고 올해 반영해야 하는지, 지방교부세법에 따란 2025년도 반영하는 것이 법과 원칙에 맞지 않는지”를 물어봐야 한다.
사실 이런 질문에 대해 기획재정부는 실체적 진실을 말을 할리가 없다. 왜냐면 높은 분의 명령을 수행하고자 추가국채발행을 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을 할수는 없기 때문이다. 재정의 예측가능성을 높이고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훼손하더라도 단순히 추가 국채발행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높은 분의 의지만을 받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재정건전성 ‘지표’만을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것이다.
북한 김정은과 러시아의 푸틴의 만남을 보면서, 윤석열 대통령과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내건 '가치 외교'의 계산서를 생각한다. 미국은 김정은과 푸틴의 만남을 "악마의 거래"(민주당 크리스 쿤스 상원의원), "왕따의 구걸(매슈 밀러 미 국무부 대변인)" 등의 표현으로 맹비난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비난을 먹고 사는 게 김정은이다. 비난이 거세질수록 김정은은 푸틴과 한 '악마의 거래'는 더 돋보이고 변방의 김정은은 세계 무대에서 계속 호명된다. 북한이 가진 달콤한 '지정학적 이점'을 시진핑과 푸틴에게 전시하고 어필할 수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입버릇처럼 말하는 건 "힘에 의한 평화"다. 김정은은 이런 발언도 먹고 산다. 한국이 '힘'을 강조할 때마다 북한 역시 '힘'을 강조하고 핵무장을 강화하며 미사일을 쏴댄다.
세상은 어쩌면 윤석열 대통령이 바라는대로 돌아가지 않고 있을 수 있다. 김정은이 바라는대로 돌아가는 것일 수 있다.
이제 계산서를 받아 보자.
▲제78차 유엔 총회 참석과 세계 각국 정상들과의 양자회담 일정을 소화한 윤석열 대통령이 23일 성남 서울공항을 통해 귀국, 공군 1호기에서 내린 뒤 김건희 여사와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의 '가치 외교'로 북한은 핵 포기에 다가서고 있는가?
대선을 14개월 앞둔 미국은 이제 본격적인 권력 교체기에 돌입할 채비를 갖추고 있다. '바이든 시즌 1'이 종료되는 시점에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질 차례다. 윤석열 정부가 해 온 '가치 외교'는 성과를 냈는가? 북한은 핵 포기에 다가서고 있는가?
북한과 러시아가 '악마의 거래'를 할 때 우리가 취할 수 있는, 혹은 취한 액션은, 안타깝게도 없다. 대통령의 대국민 설명도 없었다. 윤 대통령은 국내 언론도 아니고 외신(AP통신)과 서면으로 진행한 인터뷰에서 "북한과 러시아의 군사 협력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과 다른 국제 제재를 위반하는 불법적이고 부당한 행위"라고 규정했을 뿐이다. '윤리적 우위'를 강조했을 뿐 '불법적이고 부당한 행위'를 차단할 뾰족한 방법은 현재로서 없는 것 같다. 모두가 이런 현실을 잘 알고 있다. 이를테면, 우린 북한에 대한 제재는 가능하나, 러시아나 중국에 대한 제재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윤 대통령은 인터뷰에서 "국제사회의 강력한 대북 제재는 북한 핵, 미사일 능력의 고도화를 막는 효과를 발휘할 것"이라고 했지만, 지금껏 이어진 수많은 대북 제재 조치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군사 능력을 고도화하고 있다. 최근엔 원자력을 추진 동력으로 하는 '핵추진잠수함' 개발 의지를 노골화했다. 윤 대통령은 또 "나토 회원국과 파트너 국가들과 함께 북한의 핵, 미사일 위협 대처 방안을 논의하고, 북한의 불법 행위에 대한 국제사회의 단호하고 단합된 공조를 강조하고자 한다"고 했지만, 구체적인 청사진은 없다. 검찰을 앞세워 북한을 압수수색할 수도 없는 일이다. 국제 사회와 '우려'를 공유하는 건 이미 충분히 되고 있는 일들이다.
이 교착상태를 즐기는 건 김정은이다. 북한이 탄약 소모품과 재래식 무기를 러시아에 지원하고, 러시아가 북한에 핵추진잠수함과 정찰위성 등 군사기술을 제공하는 시나리오는 점점 가시화되고 있다. '적'과 '아군'의 선명성이 도드라지자 재빠르게 북한은 양분된 세계의 반대 진영에 온 몸을 던져 올라 탔다. 한미의 '가치외교'가 북한을 중국과 러시아에 밀착하도록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게임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출구 없는 제재'의 함정에 빠진 모양새다. 제재 자체가 목적이자 수단이 되어버렸다. 그 틈바구니에서 김정은은 오히려 기회를 잡았다.
반면 미국의 바이든 대통령은 점점 궁지에 몰리고 있다. 내년 11월 5일로 예정된 미국 대선 캠페인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시점을 감안하면 바이든 대통령의 실질적 임기는 이제 1년 남짓 남았다. 미국 내 분위기는 바이든에게 우호적이지 않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지난 10일 "민주당이 바이든에 대해 패닉에 빠지기 시작했다"는 제목의 사설을 통해 암울한 전망을 내 놓았다. 요컨대 미국 유권자의 73%가 바이든 대통령이 재출마하기에 너무 나이가 많다고 답했다는 여론조사와 바이든 직무 수행 지지율이 42%에 불과하다는 여론조사를 인용하며 민주당이 바이든을 밀어붙이기도, 그에게 후보직을 내려놓으라고 하기도 어려운 딜레마 상태에 빠졌다는 지적이다.
지난 25일, <워싱턴포스트>와 <ABC> 뉴스가 공동으로 여론 조사를 실시했더니, 트럼프가 52% 바이든이 42%를 기록해 트럼프가 오차범위 밖(10%포인트)에서 이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윤석열 대통령이 26일 성남 서울공항에서 열린 건군 제75주년 국군의날 기념식에서 분열을 지켜보며 김건희 여사와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정부 외교 정책으로 우리가 얻은 것은 무엇인가?
한미 동맹 70주년을 수식하는 화려한 미사여구들 틈바구니에서 윤석열 정부의 '외교 정책'을 냉정하게 평가해 볼 때가 왔다.
첫째, 우리가 '더 강한 힘'을 원할수록 똑같이 '더 강한 힘'을 원하는 북한에 대항하는 국내 보수 진영의 마지막 보루는 '핵무장'이었지만, 윤석열 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이 합의한 지난 4월 '워싱턴 선언'은 한국의 핵무기 보유 가능성을 원천 차단했다. "사실상 핵공유"가 최대의 성과인데, 그마저도 "사실상 핵공유가 아니다"라고 못박은 미국 관료들에 의해 부정당했다.
둘째, 경제적 차원. 윤석열 정부가 바이든 행정부의 외교 정책에 적극 호응하면서 얻은 것이 무엇인지도 분명치 않다. 삼성, SK, LG, 현대자동차 등 한국 대기업들은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후 약 2500억 달러의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그러나 미국의 인플레이션감소법(IRA)과 반도체법(CHIPS and Science Act)에서 한국에 대한 배려는 여전히 불확실성으로 남아 있다. 미국 내에서도 "미국은 무역 정책을 수립할 때 동맹국의 관점을 고려하지 않았다", "미국에 진심인 한국을 홀대해선 안된다"는 목소리가 나올 정도다. 미국 상무부는 22일 반도체법 '가드레일' 규정을 공개하며 미국에서 반도체 생산 보조금을 받는 기업에 대해 향후 중국에서 확대할 수 있는 반도체 생산능력을 5% 미만으로 묶어두기로 확정했다. 한국 정부가 기준을 완화해달라고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진 건 사실상 없다.
셋째, 미국의 외교 정책에 적극 동조한 결과는? 윤석열 정부는 우크라이나 전쟁에 발을 더 깊숙히 담그기로 했지만, 정작 최근 미국을 방문한 우크라이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은 환대를 받지 못했다. 최근 <월스트리트저널> 여론조사에서 공화당 유권자 62%가 "우크라이나 지원이 과하다"고 답했다. 바이든 대통령도 출구전략을 고민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 정부가 러시아와 관계 파탄을 담보로 '설거지'에 동원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올만 하다.
넷째, 국내 정치의 경우. 외교적 파워는 국내 유권자의 지지 속에서 나온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는 '친일 논란'에 휩싸이며 중도층의 '국가 정체성'을 건드려버렸다. 결과는 허약한 지지율 토대 위 위태한 외교 정책이다. 국가를 이루는 건 국민이고, 국민이 가진 '정체성 문제'가 때때로 경제적 이익을 압도하는 경우는 드물지 않다. '한미일 공조'를 위해 윤석열 대통령은 일제강제 징용 피해 보상을 포기하고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를 묵인했지만, 이 리스크를 상쇄할 '반대 급부'는 제대로 챙긴 것이 없다는 평가다. 일본과 군사 훈련이나, 미국의 '확산 억제'는 일본과 미국이 더 좋아할 일이다. 오히려 중국의 양안 문제에 개입하는 듯한 제스처로 관리해야 할 리스크만 계속 확장되고 있다. '친일 논란'을 감수하고 국내 정치를 포기한 대가가 겨우 이 정도였던가?
사실 윤석열 대통령에게 외교 안보 전문성이 있다고 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수능 문제 처럼 수사를 통해 '전문가'가 될 기회도 없었다. 모든 외교 기획의 '브레인'이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김태효 차장의 '외교 구상'에 윤석열 대통령이 완전히 빨려들어간 모양새다. 하지만 정치적 책임을 지는 건 선출직인 윤 대통령이지, 일개 참모인 김태효 차장이 아니다. 지금 윤 대통령은 국내 정치에서 지지율을 잃고 있다. 대미, 대일 관계에서 '실리'보다 '이념'을 앞세웠고 한미일 공조(동맹이 아닌)라는 가역적인(불가역적이지 않은) '상징 자본'을 획득했을 뿐이다.
윤 대통령은 지금 유형의 실리보다 무형의 성과를 추구하고 있다. 그 사이 북한 군사력은 고도화되고, '북중러 공조'는 실질적 형태로 가시화되고 있다. 대체 윤석열 정부의 외교로 우리가 얻은 것은 대체 무엇인가?
윤석열 대통령은 국내 정치하듯 국제 정치를 한다. 하지만 국내 정치엔 선거라는 공정한 심판 기준이 있고, '지지율'과 '득표'라는 보상이 있을 수 있지만, 국제 정치에선 그런 게 없다. 심판이 없는 무대에선 실리가 가장 중요시된다. 윤 대통령이 핸들링하는 한국 정치의 여야 관계처럼, 출구 없는 교착상태는 남과 북 사이에서도 고착화되고 있다. 하지만 대통령은 출구 없는 터널 속에서 '나만 옳으면 돼'라며 고집을 피운다. 대체 세계 정세라는 걸 제대로 인식하고 있는지 지켜보는 사람은 불안하지만 눈가리개를 한 경주마처럼 '좋빠가(좋아, 빠르게 가)'만 외치고 있다. 어쩌면 한참 가다 뒤를 돌아봤을 땐 아무도 없을 수 있다.
둘로 쪼개진 세계, 명징한 이분법에 몸 담은 자의 역설. 어쩌면 세계는 윤석열 대통령이 바라는 대로가 아니라, 북한이 바라는 바대로 돌아가고 있는 것일 수 있다. '윤석열식 외교'에 대한 성찰이 윤석열 대통령에게 필요할 때다.
▲윤석열 대통령이 26일 경기도 성남 서울공항에서 열린 건군 제75주년 국군의 날 기념식에서 차량에 올라 열병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세열 기자
정치부 정당 출입, 청와대 출입, 기획취재팀, 협동조합팀 등을 거쳤습니다. 현재 '젊은 프레시안'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쿠바와 남미에 관심이 많고 <너는 쿠바에 갔다>를 출간하기도 했습니다.
테크미디어기업 퍼플리시의 퍼블리시뉴스와기술연구소가 마켓링크의 뉴스인덱스 서비스 트래픽 데이터를 활용해 지난 1일 발표한 ‘한국 모바일 인터넷 뉴스 이용 트래픽 분석 리포트’에 따르면 주요 언론사의 2023년 2분기(4~6월) 모바일 뉴스 이용이 전년 대비 눈에 띄게 감소했다.
극적인 감소세는 포털 사이트에서 그치지 않는다. 언론사 웹사이트 모바일 이용 순 방문자 감소 폭은 전년 같은 분기(2022년 2분기) 대비 JTBC(-51.3%), 뉴시스(-37.1%), KBS(-33.7%), 조선일보(-28.1%), 뉴스1(-26.5%), 중앙일보(-24.0%), MBC(-21.6%), 경향신문(-17.5%), 연합뉴스(-17.5%), 한국일보(-15.3%), MBN(-14.6%), SBS(-13.6%), TV조선(-13.5%), 채널A(-12.7%) 순이었다.
페이지뷰 감소 폭은 JTBC(-79.6%), 한국일보(-47.6%), 뉴시스(-35.9%), 한겨레(-27.6%), 뉴스1(-27.0%), 연합뉴스(-26.3%), MBC(-22.0%), MBN(-21.3%), 중앙일보(-18.9%), 조선일보(-17.0%), 경향신문(-17.0%), SBS(-9.2%), KBS(-4.2%) 순이었다. 체류시간 감소 폭은 JTBC(-78.4%), 한국일보(-56.9%), 뉴시스(-52.4%), 뉴스1(-29.9%), SBS(-24.8%), 한겨레(-24.7%), 연합뉴스(-24.4%), 중앙일보(-19.6%), 경향신문(-8.8%), 조선일보(-8.2%) 순이었다. 특히 웹사이트에선 JTBC의 하락 폭이 컸다.
모바일 트래픽은 포털사이트의 뉴스 관련 정책 및 서비스 변경, 언론사의 유료화 정책, 동영상 플랫폼 활용, 애플리케이션 운용 등 다양한 요인이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이 같은 감소 폭을 두고 OTT와 유튜브 등 영상 플랫폼에 익숙해진 미디어 이용 습관, 포털 사이트의 검색점유율 하락, 뉴스 신뢰도 하락 또는 뉴스 기피 현상 등이 반영된 결과란 해석도 가능해 보인다.
무엇보다 포털의 하락세가 뉴스이용 감소에 영향을 주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지난해 4분기 국내 네이버 이용자는 전년 대비 18% 감소했으며, 네이버 검색 점유율도 2017년 80%대에서 2023년 56.5%(5월 기준)로 줄어든 상황이다. 네이버에 의존하던 국내 언론의 수익모델이 더는 지속가능성이 없다는 전망도 가능해 보인다. 이런 가운데 유튜브를 통한 뉴스 이용은 늘어나고 있지만 다수 언론은 유튜브에서 큰 수익을 내지 못하는 상황이다.
이번 조사에서 주요 언론사는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한겨레, 경향신문, 한국일보, 매일경제, 한국경제, 연합뉴스, 뉴스1, 뉴시스, KBS, MBC, SBS, TV조선, JTBC, 채널A, MBN, YTN, 연합뉴스TV 등 20곳이었다. 조사에 활용된 마켓링크 뉴스인덱스는 20세~69세 모바일 인터넷 이용자 2000명을 표본으로 한 통계적 추정치로,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2.2%p다.
"가짜뉴스 잡는다면서 팩트체크는 왜 압박해?"(네이버 뉴스 댓글 slaw****)
"가짜뉴스 척결한다더니 팩트체크 서비스는 없애버리네."(네이버 뉴스 댓글 iame****)
네이버가 6년 만에 'SNU 팩트체크' 서비스를 중단한다는 소식에 네이버 뉴스 이용자들 반응은 한결 같았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연일 "가짜뉴스가 자유민주주의를 위협한다"며 '가짜뉴스 근절'을 외치고 있는데, 왜 네이버가 그동안 허위정보 차단에 앞장서온 'SNU 팩트체크' 서비스를 중단하는지 이해가 안 간다는 것이죠.(관련 기사 : 네이버, SNU팩트체크 서비스 중단... 여당 '외압' 논란 https://omn.kr/25sb2)
SNU 팩트체크는 네이버와 한국언론학회, 서울대, 언론사의 '산·학·언' 협력으로 어렵게 자리잡은 국내 유일의 민간 팩트체크 플랫폼입니다. 네이버는 지난 2017년부터 팩트체크 보도 활성화를 위해 매년 10억 원을 한국언론학회와 서울대를 통해 SNU팩트체크에 기부했습니다. SNU팩트체크는 지난 6년간 각종 팩트체크 보도 지원 사업을 진행하는 한편, 32개 제휴 언론사에서 자발적으로 올린 4700여 건의 팩트체크 콘텐츠를 모아 네이버에도 올렸습니다.
특히 이같은 활동은 지난 2017년 대선과 2022년 대선 등 주요 선거 국면에서 후보들의 발언을 검증해 허위정보 확산을 막는 데 큰 효과를 발휘했습니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는 내년 총선을 앞두고 민간 플랫폼을 고사시키고 행정기관을 앞세워 직접 '가짜뉴스'를 척결하겠다고 나섰습니다.
문패만 남은 '네이버 팩트체크', 정부여당은 책임 없나
▲ 박성중 국민의힘 의원은 1월 3일 SNU팩트체크센터의 최근 1년간(2022.1.1.~12.24) 팩트체크 검증 결과를 조사한 결과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에 대한 검증 건수가 162건인 반면, 민주당 정치인에 대한 검증은 81건으로 절반에 불과했다고 주장했다.
박성중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1월 3일 정부여당 주장에 대한 '거짓' 판정 비율이 80%에 이른다는 이유로 SNU팩트체크를 '좌편향'으로 규정하고 네이버의 재정 지원을 문제 삼았습니다. 하지만 SNU팩트체크 제휴사 32개 가운데 <조선> <중앙> 등 보수 언론 비중이 훨씬 높은 걸 감안하면, 그만큼 정부여당에서 '허위정보'를 더 많이 퍼트렸다는 의미입니다.(관련기사 : 팩트체크 공격 박성중의 자폭? '정부여당 부정비율 79%' 공개 https://omn.kr/22903)
그런데도 박 의원은 지난 7월 네이버 뉴스 알고리즘을 보수 언론에 불리하게 만들었다는 의혹을 제기하며 네이버 압박했고, 방송통신위원회가 실태 점검에 나섰습니다. 방통위가 지난 25일 네이버의 실정법 위반 여부에 대한 사실 조사에 착수한다고 발표한 다음날 네이버는 뉴스 서비스 개편을 통해 'SNU 팩트체크' 서비스를 중단했습니다. SNU 팩트체크 자체 홈페이지(https://factcheck.snu.ac.kr)만으로는, 포털이나 SNS로 급속히 확산되는 허위 정보를 막기 어렵습니다.
네이버는 자체적으로 '팩트체크' 코너를 계속 유지하고 있지만, 기존 언론사에서 전송한 팩트체크 기사들을 시간순으로 모아놓았을 뿐 차별적인 콘텐츠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SNU 팩트체크의 경우 검증 대상과 검증 방법, 근거 자료 출처 등 팩트체크 관련 자료를 투명하게 공개하는 게 원칙이기 때문에 같은 언론사가 포털에 올린 기사보다 더 충실한 정보를 담고 있습니다.
특히 언론사에서 포털에 보낸 '팩트체크' 기사에는 판정 등급을 넣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SNU 팩트체크에 올리는 콘텐츠에는 '전혀 사실 아님(거짓)', '대체로 사실 아님', '절반의 사실', '대체로 사실', '사실' 같은 판정 등급을 반드시 넣어야 합니다. 누가 어떤 거짓말을 했는지 명확하게 가려 허위정보 확산을 막자는 팩트체크 취지지만, '거짓' 판정을 많이 받은 정치인이나 정당에게는 그만큼 눈엣가시일 수밖에 없습니다.
실제 지난 2017년 제19대 대통령선거 당시 홍준표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후보의 '거짓' 판정 비율이 다른 후보보다 높게 나오자, 네이버와 서울대를 허위사실공표 등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고발했지만, 검찰은 무혐의 처분했습니다. 더구나 19대 대선 팩트체크에 참여한 12개 언론사도 대부분 조선일보, 중앙일보, SBS 같은 보수 성향 매체였습니다.
2022년 5월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국민의힘의 압박은 더 거셌습니다. 박성중 의원은 지난해 12월 네이버의 SNU 팩트체크 재정 지원을 문제 삼으면서 "좌파 생태계 유지를 위해 쓰이고 보수진영을 공격하는 자금"이라고 매도했습니다. 결국 네이버는 재계약 시점인 지난 8월 말 석연치 않은 이유로 SNU팩트체크에 대한 재정 지원을 전면 중단했습니다.
글로벌 팩트체크 행사까지 치른 SNU팩트체크가 좌편향이라고?
민간 팩트체크 플랫폼을 무력화한 다음 수순은 정부가 직접 주도하는 '가짜뉴스 팩트체크'인 듯 합니다.
방통위가 지난 6일 언론사 퇴출까지 시킬 수 있는 '원스트라이크 아웃' 조치를 포함한 '가짜뉴스 근절 TF' 구성 계획을 밝힌 데 이어,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는 26일부터 '가짜뉴스 심의전담센터'를 본격 가동했습니다. 기존 방송사뿐 아니라 인터넷언론 동영상 등 온라인 콘텐츠를 모니터링하고 '가짜뉴스' 신고를 받아 직접 심의까지 하겠다고 합니다. 네이버 등 포털사업자로 하여금, 심의중인 콘텐츠에 '심의중'이라고 표시하는 방안까지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쯤 되면 현 정부에서 뿌리 뽑겠다는 '가짜뉴스'가 진짜 '허위조작정보'를 말하는 것인지, 현 정부에 비판적인 언론 보도를 말하는 것인지 헷갈립니다. 어느 쪽이든 정부가 '팩트체크 주체'가 될 수는 없습니다.
▲ 6월 28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글로벌 팩트10' 첫날 한국 팩트체크의 발자취를 돌아보는 세션이 진행되고 있다. 국제팩트체킹네트워크(IFCN)와 SNU팩트체크가 공동 주최한 이번 행사에는 75개 국에서 550여 명의 팩트체커와 언론인, 학자 등이 참여했다.
전 세계 120여 개 팩트체크 매체가 속한 '국제팩트체킹네트워크(IFCN)'에서 정한 첫 번째 팩트체크 원칙이 바로 '불편부당성'과 '비당파성'입니다. SNU 팩트체크도 "팩트체크를 하는 주체는 이해관계가 얽힌 사안을 다룸에 있어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다"면서 "팩트체크 주체들은 정당이나 이해관계가 있는 단체의 구성원이어서는 안 된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SNU팩트체크는 지난 6월 서울에서 IFCN와 함께 세계 최대 팩트체크 컨퍼런스인 '글로벌팩트10' 행사도 훌륭히 치렀습니다. 이런 민간 팩트체크 기관마저 '좌편향'으로 규정했던 정부여당이 자신들에게 비판적인 언론 보도의 진위 여부를 불편부당하게 가릴 자격을 갖고 있는지 의문입니다.
"팩트체커들은 숱한 정치적 오해와 공격을 버텨내며 저널리즘의 중심을 잡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우리는 보수를 지향하지도, 진보를 지향하지도 않는다. 우리는 팩트를 지향한다. 진실에 복무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다. 우리는 그렇게 하겠다. 네이버가 답해야 할 차례다."(9월 25일 SNU 팩트체크 제휴사 팩트체커 일동 '네이버 <팩트체크> 종료에 대한 입장' 가운데)
'가짜뉴스'를 잡겠다면서 왜 '팩트체크'부터 없애려 하는지,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이 먼저 답해야 합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8월 11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 농협 하나로마트 양재점에서 채소 물가 상황을 점검하고 있다.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2022.08.11. ⓒ뉴시스 고물가 상황이 이어지는 가운데 정부가 식품·외식 기업을 여러번 불러 가격인상 자제를 압박하고 있다. 입만 열면 자유·시장경제를 강조하는 모습과 대비된다. 더 큰 문제는 효과다. 철저한 원인 분석에 기반한 대책은 보이지 않는다. 기업 쪼인트만 까다 보니 가격 안정화 효과가 일부 제품에만 한정되고, 다른 제품 가격이 오히려 급등하는 등 부작용이 나타난다.
윤석열 정부의 기업에 대한 가격인상 자제 압박은 연초부터 나타났다. 올해 2월 맥주에 대한 세율이 1ℓ당 30.5원, 탁주 세율이 1.5원 오르면서 업계가 주류 가격을 큰 폭으로 올릴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소주 또한 물류비와 재료비 상승분 등이 반영돼 출고가가 인상될 것이라는 예상도 나왔다.
이에 서민들이 주로 찾는 소주·맥주의 식당 판매 가격이 6,000원을 넘길 것이란 우려가 나왔다. 그러자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직접 나섰다. 추 부총리는 당시 "소주 등 국민이 정말 가까이 즐기는 그런 품목(의 가격 인상)에 대해서는 업계의 적극적인 협조를 부탁드린다"며 업계에 가격인상 자제를 요청했다. 이후 기재부는 주류에 대한 인상 요인을 집중 점검했고, 주무 관청인 국세청까지 나서 주류업체들과 비공개로 접촉하는 등 전방위로 압박을 가했다.
결국 하이트진로, 오비맥주 등 주류업계는 추 부총리가 공개적으로 가격인상 자제를 언급한 지 일주일여 만에 소주, 맥주 등 가격을 당분간 동결하겠다고 발표했다.
다음 타깃은 라면이었다. 지난 6월 18일 추 부총리가 방송에 출연해 "지난해 9~10월 (라면값이) 많이 인상됐는데 현재 국제 밀 가격이 1년 전보다 약 50% 내려갔다. 기업들이 밀 가격 하락에 맞춰 적정하게 판매가를 내렸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공개적으로 가격 인하를 요구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한덕수 국무총리도 "공정거래위원회가 담합 가능성을 더 열심히 들여다봐야 한다"며 압박 수위를 높였다.
이후 정부는 기업들을 불러 모아 직접 가격 인하를 압박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추 부총리의 '라면 발언'이 나온 지 일주일여만인 지난 6월 26일 CJ제일제당, 대한제분, 삼양사 등 한국제분협회 회원사 7곳을 불러 간담회를 열고, 밀가루 가격 조정을 요청했다.
정부의 압박에 결국 라면 업계는 '백기'를 들었다. 라면 업계 1위인 농심은 지난 6월 27일 신라면과 새우깡의 출고가를 인하하기로 했다. 삼양식품 역시 삼양라면 등 12개 대표 상품 가격을 평균 4.7% 인하하기로 했다. 추 부총리의 '라면 발언'이 나온 지 열흘이 채 되지 않은 시기였다.
이에 제분업계도 역으로 압박을 받는 모양새가 되면서 밀가루 가격을 인하했다. 라면업계의 가격인하 발표 뒤 대한제분은 밀가루 주요 제품에 대해 가격을 평균 6.4% 내린다고 밝혔다. CJ제일제당도 농심 등과의 거래에서 판매장려금을 지급하는 방식으로 사실상 밀가루 인하에 해당하는 조치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7월 원윳값 인상에 따른 '밀크플레이션'(밀크+인플레이션) 우려가 나오자 정부가 이번에는 우유업체들을 불러모았다. 낙농진흥회는 지난 7월 29일 흰우유 등 음용유용 원유의 기본 가격를 ℓ당 88원 오른 1,084원으로 결정했다. 지난 2013년(106원 인상) 이후 10년 만에 가장 큰 인상 폭으로 오르면서 흰우유 1ℓ 제품의 가격이 3천원을 넘길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이에 농식품부는 원윳값 인상이 결정되기 전날 우유업계를 모아 간담회를 열고 가격 인상 자제를 요청했다. 이에 서울우유는 오는 대형마트에 납품하는 서울우유 '나100%우유' 1ℓ 제품의 출고가 인상률을 3% 수준으로 하겠다고 밝혔다. 소비자 가격은 2,900원 후반대로 겨우 3천원을 넘지 않는 수준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원윳값이 ℓ당 49원 올랐을 때 우유업계가 흰우유 가격을 10%가량 인상했던 것에 비해 낮은 수준이다. 매일유업과 남양유업도 서울우유와 비슷한 수준으로 흰우유 가격을 인상할 예정이다.
정부는 이달에는 외식업계를 불러 모았다. 지난 4월 주요 외식기업들과 간담회를 가진 후 5개월여 만이다. 농식품부는 지난 8일 식품·외식업체들을 모아 간담회를 열고 가격인상 자제를 요청했다. 간담회에는 국내를 대표하는 20여개 식품업계와 외식 프랜차이즈 업계가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농식품부는 구체적으로 가격 부담 완화에 동참해 줄 수 있는지 물었고, 기업들도 최대한 가격 인상을 억제하겠다는 뜻을 나타낸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간담회에 참석한 교촌, BBQ, bhc 등 치킨프랜차이즈들은 언론 인터뷰에서 가격인상 계획이 없다고 밝히기도 했다.
정부가 기업에 대해 가격인상 자제를 요청하는 모습 자체가 이전 정부에서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올해 윤석열 정부에서는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올해 2월 주류업계로 시작해 6월 라면·제분업계, 7월 우유업계, 9월 식품·외식업계 등 거의 분기별로 기업들을 직접 만나 가격인상 자제를 직접적으로 요청하는 모습이다.
식품 관련 업계에서는 정부의 요청에 대체로 응하는 모습이지만, 이 같은 요청에 계속 응하기는 쉽지 않다는 반응도 나온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하반기 들어 국제 유가도 오르고 있어서 원가 상승 압박이 전과 다름없거나, 더 심해지고 있어서 난감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대형마트에 진열된 맥주들 ⓒ뉴시스
"윤석열 정부의 시장 개입...시장에만 맡길 수 없다는 걸 인정한 것"
정부의 요청으로 소비자들이 자주 찾는 일부 제품의 가격이 동결되거나 인하됐지만, 나머지 제품의 가격은 더 크게 오르는 '풍선효과'가 발견되기도 한다.
맥주의 경우, 국내 주류업체가 유통하는 수입맥주의 가격 인상은 막지 못했다. 하이트진로는 지난 6월말 자사가 수입·유통하는 기린이치방, 크로넨버그 1664 시리즈, 써머스비 등 맥주의 편의점 가격을 평균 9.6% 인상했다. 오비맥주도 지난 3월 자사 수입 맥주인 버드와이저, 스텔라아르투아, 호가든, 코로나 등 맥주의 출고가를 평균 9.1% 인상했다.
라면 업계에서도 신라면, 삼양라면 등 주요제품은 인하됐지만, 신제품들의 가격이 기존 제품에 비해 높게 정해졌다. 농심이 지난달 한정 판매한 '신라면 더 레드'의 가격은 1,500원으로 기존 신라면(950원)보다 57.9%나 비싸다. 비슷한 시기 오뚜기가 내놓은 '마열라면' 역시 1,500원으로, 기존 열라면(950원)보다 57.9% 오른 가격이다. 삼양식품의 신제품 '맵탱'의 가격은 1,300원으로, 기존 삼양라면 매운맛(910원)보다 42.9% 가격이 상승했다.
우유제품도 흰우유의 대형마트 가격은 3천원대를 넘기지 않았지만, 다른 유통라인이나 가공유, 유가공제품 등 다른 제품의 가격이 크게 올랐다. 서울우유는 편의점에 출고되는 흰우유 1ℓ 제품 가격을 종전 3,050원에서 3,200원으로 4.9% 올릴 예정이다. 대형마트 판매 가격을 약 3% 인상한 것보다 인상 폭이 크다. 특히 요거트 제품인 '비요뜨'의 편의점 판매 가격을 기존 1,800원에서 2,300원으로 27.8% 인상한다. '꼼수인상'이라는 비판이 나오자 서울우유는 비요뜨에 대한 인상 폭을 300원으로 축소하기로 했다.
매일유업, 남양유업의 사정도 비슷하다. 두 곳 모두 흰우유 1ℓ 제품의 인상 폭은 4%대로 정했지만, 가공유, 유가공제품의 인상 폭은 더 크게 잡았다. 매일유업은 가공유 제품은 5∼6%, 발효유·치즈 제품 가격은 6∼9% 각각 인상할 예정이다. 남양유업은 다른 유제품의 출고가를 평균 7% 인상할 계획이다. 편의점에 진열된 우유 제품(자료사진) ⓒ뉴시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정부의 가격인상 자제 압박이 부작용을 가져올 수 있다고 지적한다. 정세은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는 "이런 식으로 정부가 시장의 개입하는 것은 왜곡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면서 "정부가 구조적으로 접근하지 않고 일부에만 개입하는 방식은 기업들이 가격은 낮추면서도 양을 줄인다든가, 납품업체의 팔을 비튼다든가 다른 쪽으로 부작용을 만들게 된다"고 지적했다.
특히 기업에 대한 규제 철폐를 추진하면서도 한편에서는 가격인상 자제를 압박하며 시장에 개입하는 윤석열 정부의 태도가 모순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윤석열 정부의 '엇박자'에 대한 지적은 여권 내에서도 나온다. 김병준 전국경제인연합회 고문은 지난달 국민의힘 연찬회에서 "대통령은 규제를 철폐하고 시장자유를 키워야 한다고 말하는데 내각은 규제를 더 강화하는 걸 내놓는다"며 "(경제부처는) 라면값을 내리라고 하고, 금리를 제한한다"고 꼬집었다.
이에 대해 정 교수는 "정부가 규제 완화를 외치면서도 가격 결정에 개입하는 식으로 시장 개입하는 것은 모순되는 모습"이라며 "결국 윤석열 정부도 시장에만 맡기면 (기업이) 가격을 과도하게 올린다는 걸 인정한 것 아니겠느냐"라고 강조했다.
2023년 9월 현재 미국의 정부 부채는 33조 달러(4경 4,550억 원)에 이르러 GDP 대비 129%를 기록했는데, 재정 부족으로 하반기 다시 1조 달러의 국채 발행이 예고된다.
▲미국 정부 부채 추이 (단위 : 달러) 자료 : 미국 재무성
의회예산국은 부채 이자 증가와 사회안전망 프로그램 지출로 10년 이내 미국 정부 부채가 50조 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정부 부채인 국채의 증가는 이자 비용을 높이고 인플레이션과 차입 비용 상승의 악순환을 불러와 경제성장을 저하하고 재정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
미국 정부 부채 급증은 무역수지 적자와 국방비, 노인 의료비 등의 급증으로 재정 적자가 눈덩이처럼 커졌기 때문이다.
미국은 달러 패권을 이용하여 거대한 재정 적자를 종잇조각으로 메워 왔다. 중국·일본·한국 등 미국에 수출해 달러를 번 나라들은 그 달러로 미국 국채를 매입한다. 따라서 미국은 달러를 찍어 해외 상품을 마음대로 사고, 국채를 발행하여 다시 그 달러를 회수할 수 있다.
미국에서 돈을 많이 번 나라들이 미국에 다시 돈을 빌려주는 구조는, 과거 소국이 대국에 조공을 바치는 것과 비슷하다. 소국이 미국에 달러를 빌려주고 달러 채권을 보유하면 자국 통화가치는 상대적으로 하락한다. 소국은 이로써 외환시장 안정과 저가 수출이 용이하고, 이렇게 풀린 달러는 전 세계에 유통되어 미국은 기축통화 지위를 유지할 수 있다.(김원장 KBS뉴스 2023.5.8.)
그러나 한국이 미국처럼 과도한 국채를 발행하면, 이는 전 세계에 유통되지 못하므로 매입자가 없다. 결국 국채 가격이 하락하고 국채 금리는 폭등하여 통화가치 하락으로 초인플레이션이 발생할 수 있다.
작년에 영국이 감세안을 추진하면서 재원을 국채 발행으로 조달하기로 발표하자, 투자자들이 인플레이션 우려로 파운드화를 매도하여 영국 국채 가격이 급락하면서 총리가 45일 만에 사임한 바 있다.
따라서 기축통화 국가인 미국만이 달러와 국채를 무한대로 발행할 수 있었다. 그러나 미국도 정부 부채 규모가 사상 최대치로 커지면서 달러 패권이 언제까지 지속 가능할 것인지가 우려되고 있다.
2. 국채 가격 하락과 은행 위기
2022년부터 공급발 인플레이션이 본격화되면서, 연준은 2023년 7월 기준금리를 5.5%까지 인상하여 15년 만에 금리가 최고치를 기록하면서 국채 가격이 크게 하락하고 있다. 이에 연준은 다양한 조치로 국채 가격 하락을 예방하고 있다.
먼저 기준금리 인상으로 장단기 금리가 역전되어 경기침체를 예고하고 있다. 장단기 금리 역전은, 단기국채는 기준금리의 영향을 받지만 중장기국채는 국제 채권시장에서 수요와 공급으로 결정되기 때문이다.
기준금리가 5.5%로 고착된 이후 단기국채 금리는 변하지 않고 있으나 10년물 국채 금리는 7월 이후에도 계속 상승하고 있다. 비중이 큰 미국 중장기국채의 가격이 폭락하면 달러에 대한 신뢰도가 무너진다. 재정 적자가 지속되는 미국은, 국채를 계속 발행해야 하므로 국채 가격 폭락을 막아야 한다. 이에 연준은 역레포(연준은 국채를 시장에 공급하고 돈을 회수)를 중단하고, 국채에 투자하던 시중의 유동성이 MMF(단기 금융펀드)에 투자되도록 유도했다.
다음으로 국채 가격 하락으로 실리콘밸리와 시그니처은행 등이 파산하면서 시스템 위기가 우려되었다. 은행은 단기(낮은 이자)로 자금을 빌려, 장기(높은 이자)로 빌려주면서 금리 차이로 이익을 얻는다. 그래서 미국 은행들은 고객 예금으로 이자가 높은 장기국채를 대거 보유하고 있었는데, 장기국채 가격 하락과 장단기 금리 역전 등으로 커다란 손실을 보았다. 은행 대차대조표가 단기로는 부채, 장기로는 자산으로 구성되는데, 국채 가격 하락으로 자산가치가 부채보다 작아졌다. 은행은 장기국채 매도 또는 보유한 국채의 미실현 손실로 인해 뱅크런이 발생하였다. 연준은 위기의 확산을 막기 위해 예금 전액에 대한 지급보장을 선언하여 유동성 지원프로그램(BTPF)으로 국채 액면가 기준으로 대출하여 장기국채 매각을 예방하였다.
또한 미국 국채에 대한 신뢰가 저하되면서 해외국가들의 미국 국채 보유가 감소하고 있다. IMF에 의하면 세계 각국의 외환보유고에서 달러 비중이 2000년 70%에서 2022년 58%로 하락하여 20년 동안 10%p 이상 하락하였다. 미국 국채 해외 보유는 그동안 계속 증가하였는데 2022년에는 중국, 일본, 한국 등이 미국 국채를 매도하여 해외 보유 증가율이 최초로 –5.8%를 기록하였다. 최근 연준도 긴축으로 전환하여 시중의 돈을 흡수하기 위해 보유 국채를 매도하고 있다.
3. 미국 재정 적자와 부채 누적의 종착지
해외국가들이 종잇조각인 미국 국채를 매입하는 것은, 정부가 세금을 거두어 부채를 갚을 것이라는 신뢰가 있기 때문이다. 즉 미국 정부의 조세권과 경제력에 대한 신뢰로 금으로 담보되지 않는 달러가 국채(정부 보증)를 담보로 거래되고 있다. 그러나 아래와 같이 투자자들의 신뢰가 무너져 미국 국채에 대한 수요가 없다면 달러 패권이 무너질 수 있다.
첫째 세금보다 지출이 훨씬 많은 미국의 재정 적자가 사상 최대치를 갱신하고 있고, 생산한 것보다 더 많이 소비하는 미국의 경상수지도 적자가 지속되고 있다. 재정 적자와 부채 누적이 미국 정부가 통제할 수 없을 수준으로 악화하고 있다.
둘째 미국 우선주의에 반발하여 탈달러 추세가 확산되고 있는데, 최근 브릭스를 위시로 국제 무역에서 달러 대신 지역통화 사용이 늘어나고 있다.
셋째 미국의 경제력이 저하되고 있는데, 세계 GDP에서 미국의 비중이 2001년 31.3%에서 2022년 25.4%로 하락하였는데, 동기간 중국은 3.9%에서 18.3%로 증가하였다. 다음으로 2001~2022년 사이 연평균 경제성장률은 미국이 1.9%인데 중국은 8.4%를 기록하였다. 또한 GDP 대비 연방정부 부채는 2001년 54.5%에서 2022년 129%로 증가하였다.
넷째 미국은 지난 1년간 2조 달러 수준의 국채 발행에 이어, 올해 하반기 재정 적자를 메우기 위해 다시 1조 달러의 국채 발행을 예고하고 있다. 연방정부의 과잉 공급과 수요 부족으로 국채 가격은 계속 하락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미국 정부는 수요공급의 영향을 받는 중장기채보다 기준금리 영향을 받는 단기채를 많이 발행할 예정이나, 중장기 금리 역전으로 단기채에 대한 이자 부담이 증가하므로 위기 발생은 미래로 연기될 뿐이다. 특히 고금리로 인해 정부 부채에 대해 1년에 1조 달러 수준의 이자를 부담하는데, 정부 부채의 천문학적 증가는 통제 불능의 상황을 초래할 수 있다.
윤석열 정권 출범 이후, 문화예술계에는 검열 등 '표현의 자유' 탄압 논란이 꾸준히 이어져 왔다. 이런 와중에 최근 국민의힘 김승수 국회의원(대구 북구을)은 윤석열 대통령을 풍자한 작가들만 겨냥해 정부 지원금 내역을 뒤져 또 다른 논란을 낳았다.
김 의원은 한국만화진흥원에 <2023 굿바이전 in 서울>(이하 굿바이전) 참여 작가들의 정부 지원금 내역 자료를 요구했다. <굿바이전>은 윤석열 대통령과 부인 김건희 여사를 풍자한 것으로 논란이 된 전시다.
김 의원은 진흥원 측에 <굿바이전> 참여 작가들이 그동안 정부 지원금을 얼마나 받았는지 상세히 물었다.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간사로 활동 중인 김 의원의 '표적 자료 요구'다. 해당 기관 임직원도 아닌 '민간인'인 작가들을 특정해 자료를 요구했다. 단순한 '확인' 차원으로 보기엔 부적절하다. (관련기사 ☞ 국민의힘, '윤석열 풍자' 작가들만 콕 집어 지원금 내역 뒤졌다)
▲지난 20일부터 문화예술인들은 서울 국립현대미술관 앞에서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의 지명 철회를 요구하는 릴레이 1인시위를 진행하고 있다. ⓒ블랙리스트 이후
작가들은 과거 이명박·박근혜 정부 당시의 '블랙리스트' 악몽을 떠올렸다.
이명박·박근혜 정부는 정권에 비판적인 성향을 보인 작가 혹은 집단의 작품 활동 및 사회 활동을 조사해 이를 목록화한 문건을 제작했다. 두 정권은 문화예술인들을 사찰·감시·검열해 입맛에 맞지 않는 예술인들을 여러 정부 지원사업에서 배제하고, 작품 활동을 사전에 검열했다.
이번 김승수 의원실의 자료 요구도 '특정 작가'를 대상으로 이뤄졌다는 점에서 과거 사건과 유사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블랙리스트 피해 법률 대응을 맡아온 강신하 변호사는 "특정 전시에 참여한 특정 작가를 콕 집어 자료를 요구한 건 블랙리스트 색채가 굉장히 짙다"고 지적했다.
다만 예술인들이 블랙리스트의 악몽을 떠올리고 있는 건 비단 이 사건 하나 때문만이 아니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문화예술계에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은 '블랙리스트 부활'에 대한 불안을 부추기고 있다. 특히 만화계가 그 불안을 피부로 느끼고 있는 데는 지난 1년간 이어져온 맥락이 있기 때문이다. <셜록>은 윤 정부 출범 이후 1년 이상 이어지고 있는 '블랙리스트 부활의 맥락'을 시간 순으로 정리했다.
▲'2022~2023 윤석열 정부 문화예술계 논란' 인포그래픽 ⓒ셜록
[2022. 9. ~ 10.] 부천국제만화축제 '윤석열차' 전시 논란
지난해 9월 30일부터 10월 3일까지 열린 부천국제만화축제에 전시된 '윤석열차'는 그해 7 ~ 8월 한국만화진흥원이 주최한 전국학생만화공모전 카툰 부문 금상을 거머쥔 작품이다. 작품 속 달리는 열차 정면에는 윤 대통령 얼굴이 그려졌다. 열차 첫 칸에는 김건희 여사, 나머지 칸에는 검사복을 입은 남성 4명이 칼을 들고 열차에 타고 있다.
당시 '윤석열차' 작품이 논란이 되자, 문화체육관광부는 "주최 측인 한국만화영상진흥원에 유감을 표하며 엄중히 경고한다"고 밝혔다.
▲2022년 전국학생만화공모전 금상 수상작인 '윤석열차' 작품 사진 ⓒ이정헌 작가 제공
[2023. 1.] 국회사무처, 윤석열 대통령 풍자 전시 '강제 철거'
<굿바이전>은 윤석열 대통령과 부인 김건희 여사, 10·29 이태원 참사 등을 풍자한 작품 80여 점으로 기획됐다. 서울민족예술단체총연합 등이 주최하고 더불어민주당과 무소속 의원 12명이 공동 주관한 전시로, 국회사무처 허가를 받은 상태였다.
해당 전시는 지난 1월 9일부터 닷새간 국회 의원회관 2층 로비에서 열릴 예정이었다. 그러나 국회사무처는 "특정 개인 또는 단체를 비방하는 등 타인의 권리, 공중도덕, 사회윤리를 침해할 수 있는 회의 또는 행사로 판단되는 경우"라고 판단해 돌연 허가 결정을 번복했다.
전시를 주관한 의원들이 취소 공문을 받아들이지 않자 국회사무처는 전시 당일 새벽 국회 의원회관 2층 로비에 설치된 작품들을 기습 철거했다.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 등을 풍자한 '굿바이전'은 본래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릴 예정이었다. 당초 지난 1월 9일에 공개될 예정이었던 전시는 국회사무처에 의해 그날 새벽 기습 철거됐다 ⓒ서울민족예술단체총연합
[2023. 4.] 국회사무처, 전시 작품 '사전 검열' 조항 신설
국회사무처는 이후 국회 의원회관 2층 로비 사용규정을 강화했다. 사무처가 신설한 조항에는 '전시회 개최를 위해 로비 사용 신청을 할 때 국회 시설물 예약시스템에 전시할 작품의 사진을 2달 전에 제출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기존에는 행사명과 행사 목적, 주최·주관 등의 간단한 정보만 입력하면 자유롭게 로비를 사용할 수 있었다.
국회 사무처는 전시회 허가를 위한 미술 및 법률전문가 위주의 별도 자문위원회(9명)를 구성하는 조항도 만들었다. 이제 국회 사무총장이 전시회를 위한 로비 사용신청 허가의 객관성·공정성 등을 확보하기 위해 자문이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자문위를 구성할 수 있다.
[2023. 7.] 문체부·경기도교육청, '윤석열차' 나온 공모전 후원 불허
'윤석열차' 논란이 있고 1년 뒤, 전국학생만화공모전이 다시 열렸다. 올해는 문체부와 경기도교육청이 공모전 후원 명칭 사용을 불허했다.
한국만화진흥원이 개최하는 이 공모전에 문체부와 경기도교육청은 후원단체에 이름을 올리고 상 수여자 역할을 해왔다. 대상 수여자는 문체부 장관, 금상 수여자는 경기도교육청이었다. 올해 문체부와 경기도교육청은 나란히 공모전 후원단체 명단에서 빠졌다. 그러면서 대상 수여자는 경기도지사, 금상 수여자는 부천시장으로 변경됐다.
▲윤석열 대통령과 유인촌 문화특보 ⓒ대통령실
[2023. 7.] 윤석열 대통령, 유인촌 전 문체부 장관을 특보로 임명
이명박 정부 당시 블랙리스트 사업에 연루됐다는 의혹을 받는 유인촌 전 장관이 돌아왔다. 이명박 정권 시절 3년 동안 문체부 장관을 지낸 그를, 윤석열 대통령이 문화특별보좌관으로 임명했다.
[2023. 9.] 윤석열 대통령,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 지명
유인촌 특보는 문화특보 발령 두 달 만에 새 문체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됐다. 유인촌 후보자의 인사청문회는 다음 달 5일 열린다.
유 후보자는 지난달 28일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속칭 좌파 예술인들도 이념의 굴레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정부 예산을 요구해선 안 된다, 나랏돈으로 국가 이익에 반하는 작품을 만드는 게 말이 되나"라고 밝혔다.
한편 한국독립영화협회, 한국작가회의 등 문화예술인 단체들은 지난 15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유인촌 장관 지명을 철회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은 기자회견에서 "지난 블랙리스트 사건을 통해 우리 사회는 무엇을 얻었나, 오히려 그 시대 이전으로 퇴보하려는 현실을 보인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지난 20일부터는 유인촌 장관 후보자의 지명 철회를 요구하는 릴레이 1인시위를 진행하고 있다.
[2023. 9.] 문체부, 내년 한국만화진흥원 국고보조금 48% 삭감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의 내년 국고보조금 예산이 절반 가까이 삭감됐다. 내년 문체부의 만화 관련 국고보조금 예산은 60억 3000만 원이다. 올해 예산 116억 4000만 원과 비교해 48% 감액됐다. 진흥원의 17개 예산 항목 중 7개 항목은 전액 삭감됐다.
▲2017년 박근혜 정부 당시 열린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대응 집단소송 제안 원고모집' 기자회견 ⓒ연합뉴스
모두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고 나서 최근 1년간 만화계가 겪은 일이다. '윤석열차'를 향한 문체부의 "엄중 경고"는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의 예산 삭감으로 돌아왔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이명박 정권의 블랙리스트 사건 당시 문체부 장관을 지낸 유인촌을 다시 불러들였다.
이런 '맥락' 속에서 여당인 국민의힘 소속 김승수 의원은 <굿바이전> 참여 작가들의 정부 지원금 내역을 들췄다. 이명박·박근혜 정권 블랙리스트에 두 차례 이름을 올린 김신 작가는 김승수 의원실의 이런 행동이 문화예술계를 '위축'시키는 일이라고 말했다.
"(과거) 블랙리스트를 경험했음에도 다시 노골적으로 그런 모습들이 보인다. 실질적으로 더 중요한 건 작가들이 위축된다는 거다. 정부와 다른 생각을 하는 작가들에게만 영향을 미치는 게 아니라, 그런 현상들을 보면서 (다른 작가들도) 자기검열을 하게 되지 않느냐. 그런 사회는 결코 경쟁력을 가질 수 없다." -김신 작가
<굿바이전>에 참여한 백영욱 작가는 "내가 정부 예산으로 떳떳하지 못한 활동을 한 적이 없음에도 불안하다, 내 이름을 알아다가 나한테 어떤 불이익을 줄지 모른다는 막연한 불안감이 있다, 나를 괴롭히려고 하지는 않을까"라며 불안감을 내비쳤다.
윤석열 정권 1년. 대통령 풍자 만화를 중심으로 논란이 된 사건들 외에도 다양한 예술 영역에서 검열은 일어났다. 문화예술계 전반에 뻗친 '블랙리스트 부활'의 그림자는 더 이상 단순한 우려가 아닐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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