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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같은 'OO분 도시', 박영선·박형준에겐 없는 이것

[주장] 기후위기 고려않고 '부동산·신공항' 역설하는후보들... 철학 없이 돈 냄새만

21.02.12 19:58l최종 업데이트 21.02.12 20:51l


 대한민국 거대도시, 서울과 부산에서 있을 보궐선거를 앞두고 몇몇 정당과 정치인들은 앞 다퉈 공약을 발표하고 있다. 그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더불어민주당 박영선 서울시장 예비후보의 '21분 컴팩트 도시 서울'과 국민의힘 박형준 부산시장 예비후보의 '살기 좋은 15분 도시 부산'이다. 박영선 후보의 '21분 서울'은 21분 이내 교통거리에 방점이, 박형준 후보의 '15분 부산'은 교통시설 개선을 통한 15분 내 생활권 조성이 중점이다. '교통'이 핵심인 셈이다.
나는 풀뿌리민주주의·생태주의 등을 근간으로 하는 청년녹색당의 공동운영위원장으로 일해왔다(2020년 2월 8일~2021년 2월 7일). 결론부터 말하면 이 예비후보들의 15분, 21분 도시는 틀렸다고 본다. 애초 프랑스 수도 파리에서 출발한 '15분 도시'는 이들처럼 도시와 도시를 잇겠다는 것도 아니었다. 게다가 길거리에 나뒹구는 전단 속 '역세권 앞 15분!'과는 개념 자체가 다른 것이기 때문이다.

프랑스에서 시작된 15분 도시, 거기엔 '환경·공동체' 철학이 있다
   

 국토연구원 측이 소개한 프랑스 안 이달고(Anne Hidalgo) 파리시장의 '내일의 도시 파리' 정책공약 내용.
▲  국토연구원 측이 소개한 프랑스 안 이달고(Anne Hidalgo) 파리시장의 "내일의 도시 파리" 정책공약 내용.
ⓒ 국토연구원 이슈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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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후보가 아이디어를 얻은 것으로 보이는, 안 이달고(Anne Hidalgo) 프랑스 파리시장의 15분 도시의 철학은 사실 이렇다(노동법 및 남녀평등, 사회관계 분야 전문인 안 이달고는 2014년 최초 여성 파리시장 당선 뒤 2020년 재선기존 도로·교차로였던 곳에 공유텃밭을 만들고, 학교와 같은 공공시설 일부에 공원을 조성하여 시민들이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든다. 그렇게 마을을 걷거나 자전거·휠체어를 통해 누구나 쉽게 이동할 수 있으며, 출퇴근뿐만 아니라 '배우고' '운동하고' '돌볼 수 있는' 도시를 형성해나가는 것이다. 동네 주민끼리 공동체를 만들어나가는 도시 지향이 핵심인 것이다.


안 이달고 파리 시장의 15분 도시는 '생태'를 중심으로 한 공동체 가치 형성이 우선이다(안 이달고 공식홈페이지). 이는 특히 최근의 기후위기와 잦은 재난에 대응하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기후위기에 따라 삶의 방식을 변화시키는 모습은 세계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가까운 예로 얼마 전 바이든 대통령 취임식에 편안한 차림으로 나타나 화제가 됐던 버니 샌더스의 외투는 본인 지역구인 버몬트 지역기업에서 만들어진 옷이었다고 한다(관련기사 보기). 
  
 생태,환경 기반 15분 도시를 공약해 재선에 성공한 프랑스 안 이달고(Anne Hidalgo) 파리시장.
▲  생태,환경 기반 15분 도시를 공약해 재선에 성공한 프랑스 안 이달고(Anne Hidalgo) 파리시장.
ⓒ 유튜브화면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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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과도하거나 불필요한 이동으로 발생하는 탄소배출을 절감하고, 필요한 만큼만 소비하며 지역문화와 복지를 누리는 공간이 되는 것을 프랑스 파리에선 '15분 도시'라고 부른다. 코로나19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중요해지고, 생활권 내에서 누구나 평등한 삶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란 것이 드러나면서 일어나는 지각변동이다.

'15분 도시' 철학에 따르면, 이는 사회적 경제를 활성화 시키고, 물건이 순환하는 순환 경제를 지역사회에 스며들게 하며 이것이 가능하게끔 지역주민들 인식개선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렇기에 정치의 영역인 것이다. 그간 편리하다고 여겨왔던 많은 것들과 이별해야 할지도 모르는, 만족스러웠던 기존 삶의 기준을 재구성해야 한다는 것을 정책적으로, 또 정치적으로 설득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박영선·박형준의 'OO분 도시', 토건·경제 성장이 핵심 아닌가 
   
 박형준 국민의힘 부산시장 예비후보는 부산시장에 당선된다면 “가덕신공항과 부산·울산·경남 통합에 주력하겠다”고 다짐했다.
▲  박형준 국민의힘 부산시장 예비후보는 부산시장에 당선된다면 “가덕신공항과 부산·울산·경남 통합에 주력하겠다”고 다짐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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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박영선의 '21분 도시'와 박형준의 '15분 도시'는, 기후위기 등 환경적 고려보다는 토건과 경제성장 정책으로 둔갑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새로울 것도 없는, 매우 뻔한 서사다. 지역분권이나 지방자치를 강조하니 지역간 과열 경쟁이 벌어지던 것, '국토 균형 개발'이라는 허울 좋은 명분 아래 난개발·과잉관광을 기획하던 것과도 다르지 않아 보인다.

봄날 같고 살기 좋은 도시는 꼭 비행기를 탈 수 있어야 하며 번쩍이는 쇼핑센터가 집 근처에 있어야만 가능한 걸까. 내가 사는 지역 땅값이 서울 강남만큼 치솟아야만 행복한 걸까. 그들의 공약을 보고 있자면 이런 질문이 계속된다. 늘 변화에 민감하다면서도 인간의 생활방식과 경향은 변하지 않는다. 결국 다른 방식으로 욕망을 추구해본 경험이 없는, 상상력이 부족한 사회에서 살고 있기에 벌어지는 일이 아닐까.
  
와 인터뷰에서 포부를 밝히고 있다. " class="photo_boder" style="border: 1px solid rgb(153, 153, 153); display: block; text-align: center; max-width: 600px; width: 600px;">
▲  서울시장 보궐선거 출마를 선언한 더불어민주당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자료사진).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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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생도, 미래도, 현실도 직시하지 않고 '신공항'과 '부동산'에만 심혈을 기울이는 양극화 된 정치지형에서 뭉개진 '15분 도시'의 탄생은 놀라울 것도 없다. 그러나 참 씁쓸하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이는 기후위기 대응 정책들이 탈탄소 전략에만 매몰돼 우려를 낳던 것과는 또 다른 차원의 문제다. 기후위기를 맞설 '기후정의' 비전을 가진 15분 도시의 목적과는 달리 복합쇼핑타운과 공항을 짓는 그들의 정책은 철학도, 정치도 없이 돈 냄새만 고약하게 난다. 더 이상의 성장 중독 사회는 장기적 관점에서 지속가능하지 않다. 우리에게도 '기후정의를 위한 재구성'을 전제로 한 도시에서 살 권리, '도시권'이 필요한 때다.

☞국토연구원 측이 소개한 국토이슈리포트 '프랑스 안 이달고(Anne Hidalgo) 파리시장 정책공약' 자료 보기(링크)

덧붙이는 글 | 기사를 쓴 김혜미씨는 청년녹색당 전 공동운영위원장입니다.

태그:#보궐선거, #기후위기, #박형준, #박영선, #15분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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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전원회의 종료..'인민들이 개변된 실상을 느끼도록 해야'

당 경제부장 김두일에서 오수용으로 전격 교체...리선권 정치국 위원 보선 등

  • 기자명 이승현 기자 
  •  
  •  입력 2021.02.12 09:14
  •  
  •  수정 2021.02.12 09:15
  •  
  •  댓글 0
 
북한은 지난 8일부터 11일까지 나흘간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2차전원회의를 진행했다. [사진-노동신문 갈무리] 
북한은 지난 8일부터 11일까지 나흘간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2차전원회의를 진행했다. [사진-노동신문 갈무리] 

북한은 지난 8일부터 11일까지 나흘간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2차 전원회의를 진행해 '새로운 국가경제발전 5개년 계획의 첫해 과업'을 비롯한 의정(안건)을 채택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2일 보도했다.

통신은 전원회의에서 △첫째 의정에 대한 결정서 '당 제8차대회가 제시한 5개년계획의 첫해 과업을 철저히 관철할데 대하여'를 만장일치로 채택하고 △둘째 의정에 대한 결정서 '전사회적으로 반사회주의, 비사회주의와의 투쟁을 더욱 강도높이 벌릴데 대하여'를 전원일치로 채택했다고 전했다.

또 △당이 항구적으로 들고나가야 할 노선과 전략전술, 정치이념을 집약적으로 반영한 정치적 구호로 수정된 구호집을 당 중앙위의 구호집으로 하는 결정을 채택하고 △당규약해설집 초안을 조선노동당 규약 해설집으로 하는 결정을 채택했다.

다섯번째 의정인 '조직문제'를 심의하여 △리선권 외무상을 당 정치국 위원으로 보선 △김성남 당 부장을 정치국 후보위원으로 보선 △오수용 제2경제위원장을 당 비서 겸 경제부장으로 선출 △김동일·김영남·김철수를 당 중앙위 후보위원에서 위원으로 보선 △홍혁철·리경호·최영진·룡군철·정서철을 당 중앙위원회 후보위원으로 보선했다.

지난 8차당대회에서 당 비서 겸 경제부장으로 선출한 김두일을 한달만에 오수용으로 전격 교체한 것이 눈에 띈다.

김정은 총비서는 이번 전원회의를 통해 당면과업에 대한 인식을 공유하고 뚜렷한 방향을 확정했다고 하면서 당 중앙위는 결정된 과업을 정확히 지도하고 철저히 집행함으로써 인민들이 개변된 실상을 느끼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진-노동신문 갈무리]
김정은 총비서는 이번 전원회의를 통해 당면과업에 대한 인식을 공유하고 뚜렷한 방향을 확정했다고 하면서 당 중앙위는 결정된 과업을 정확히 지도하고 철저히 집행함으로써 인민들이 개변된 실상을 느끼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진-노동신문 갈무리]

4일간 전원회의를 주재한 김정은 총비서는 "당중앙위원회 제8기 제2차전원회의는 상정된 모든 의정들에 대한 토의를 성과적으로 마쳤다"며 "이번에 중요하고도 절박한 우리의 당면과업에 대한 명백한 인식들을 공유하고 뚜렷한 방향을 확정하였다"고 총평했다.

또 "당대회가 결정한 변혁적 과업들을 반드시 현실로 전환시키려는 제8기 당중앙위원회의 강력한 의지를 구체적인 실천계획으로 보여주었다는데도 의의가 있다"고 평가했다.

이어 "지난 4일동안 매일 매 순간 지도기관 성원들이 긴장되고 동원된 속에서 당과 국가사업 토의에 진지하게 참가해준데 대하여 감사히 여기며 이는 자기 인민

앞에 다진 서약을 엄숙히, 철저히 이행하여 시대와 혁명이 부여한 무거운 임무를 다하려는 의지의 발현이고 표출"이라고 하면서 "당중앙위원회는 결정된 과업들에 대한 정확한 지도와 철저한 집행으로써 혁명사업을 전진시키고 인민들이 개변된 실상을 느끼도록 하여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특히 김 총비서는 올해 사업에서 비상방역사업을 완벽하게 보장하는 것이 제11순위 과업이라며 "국가비상방역사령부가 최대의 긴장성과 경각심을 견지하고 전국에 강한 방역규율을 세우도록 하기 위한 새로운 조치"를 취했다.

이번 전원회의에서는 첫번째 의정에 대한 결정서  '당 제8차대회가 제시한 5개년계획의 첫해 과업을 철저히 관철할데 대하여'를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사진-노동신문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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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숙의 '겨울 부채'

[포토스케치] 한 겨울, 김진숙의 고집스런 400km 행진


지난해 12월 30일 부산을 출발한 김진숙의 희망뚜벅이 행렬이 400여km, 40여일 만에 7일 청와대에 닿았다. 걸은 날만 34일. 암투병 중이던 그의 행진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동참했다. 걸음이 멈추는 곳마다 그와 사진을 찍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이 줄을 섰다. 그의 웃음은 사람들의 마음을 달랬다.

청와대 앞에 도착하자 웃음기는 싹 가셨다. 해고... 차별... 멸시... 죽음... 배반... 아프고 섬뜩한 말들과 함께 해고자와 희생자들의 이름이 한참이나 열거됐다. 정권 초기 기대를 모았던 약속들이 미완과 퇴보, 실종에 이르렀다는 비판이 쉬운 말로 또박또박 쓰여 있었다. 그는 "박창수, 김주익을 변론했던 노동인권 변호사가... 최강서의 빈소를 찾아와 미안하다고 말한 분이 대통령이 된 나라에서 왜 노동자들은 여전히 죽어가는가" 라고 물었다. 
 
겨울의 부채는 본래 시절에 맞지 않고 쓸모 없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어찌 보면 여름엔 요긴하게 쓰이지만 겨울엔 외면당하는 존재 같기도 하다.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 한 겨울의 부채를 손에 꼭 쥐고 그는 멀고 먼 길을 걷고 또 걸어 고집스레 결국 목적지에 닿았다.


 

▲ 청와대 분수대 앞에 놓인 김진숙의 옛 사진. 왼쪽은 그의 동기 박창수다. 과거 문재인 변호사는 박창수를 변호하기도 했다. ⓒ프레시안(최형락)
▲ 한진중공업 해고노동자 김진숙은 1986년 노동조합의 어용성을 폭로하는 유인물을 배포했다는 혐의로 검거돼 고문을 받았다. 회사는 무단결근을 이유로 징계 해고했고 그는 35년째 복직투쟁 중이다. ⓒ프레시안(최형락)
▲ 지난해 12월 30일 출발한 도보행렬은 2월 7일 청와대에 닿았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의 걸음에 동참했다. ⓒ프레시안(최형락)
▲ 김진숙의 걸음은 많은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었다. ⓒ프레시안(최형락)
▲ 아사히글라스 노동자 ⓒ프레시안(최형락)
▲ 대우버스 노동자 ⓒ프레시안(최형락)
▲ 한진중공업 노동자 ⓒ프레시안(최형락)
▲ 한국게이츠 노동자 ⓒ프레시안(최형락)

▲ 김진숙은 2011년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사태에서 309일간의 크레인 고공농성을 벌이기도 했다. 암 투병 중인 그는 '웃으면서 끝까지 함께 투쟁'하자고 말했다. ⓒ프레시안(최형락)
▲ 김진숙의 복직은 당시 국가 권력이 폭력적으로 행사됐고, 해고가 부당했다는 것을 인정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2009년 민주화운동보상심의위원회가 김진숙의 복직을 권고했지만 회사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지난해에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가 복직촉구특별결의안을 발의하기도 했지만 바뀐 것은 없다. 국가가 직접 나서서 해결해야 한다는 주장이 여기서 나온다. ⓒ프레시안(최형락)

 
▲ 청와대 앞. 김진숙의 복직을 위해 송경동 시인 등 7명이 이곳에서 단식을 했다. ⓒ프레시안(최형락)
▲ ''노동존중사회'는 어디로 갔습니까?'라고 쓴 부채를 손에 쥐고 웃는 김진숙 지도위원. ⓒ프레시안(최형락)
 
 
최형락

2009년 입사. 사진기자로 일한다. 취재 중 보고 겪는 많은 사건들에서 어떤 규칙성을 발견하며 놀라곤 한다. 전시 <두 마을 이야기>(2015), 책 <사진, 강을 기억하다>(2011, 공저).

 


출처: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1020923523144140#0DKU 프레시안(http://www.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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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통한 대게에, 수묵화 뺨치는 풍경... 이게 연휴지

  • 분류
    아하~
  • 등록일
    2021/02/12 09:25
  • 수정일
    2021/02/12 09:25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설날 언택트 여행지] 경주 감포항 송대말등대와 보문관광단지 호반길

21.02.11 19:13l최종 업데이트 21.02.11 19:13l


봄의 시작을 알리는 입춘도 지나고 곧 민족 최대의 명절 설날이 다가온다. 그동안 잔뜩 움츠렸던 추위가 서서히 풀리면서 제법 따뜻한 기운마저 감돈다. 날씨마저 화창하다. 봄은 왔건만 아직은 겨우내 꽁꽁 언 마음들이 언제 녹아, 따뜻한 봄날을 마음껏 즐길 수 있을지 알 수가 없다.
코로나19로 인해 집에서만 생활한 지도 꽤나 오래되었다. 방콕만이 정답이라는 현실에서 잠시라도 벗어나고 싶다. 산과 바다가 그리워진다. 동서남북 산으로 둘러싸인 천년고도 경주, 거기다 동쪽 토함산만 넘으면 동해바다가 눈 앞에 펼쳐진다.

만물이 소생하는 봄날, 코로나 시대 어디를 갈지 몰라 망설이는 분들을 위해 먹거리, 즐길거리, 볼거리가 많은 경주의 비대면 여행지를 찾아 나섰다.
  

 경주 최대의 항구로 자리매김한 감포항의 모습
▲  경주 최대의 항구로 자리매김한 감포항의 모습
ⓒ 한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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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게잡이 준비에 바쁜 감포항

해마다 이맘때쯤이면 동해 바다 감포항을 자주 찾는다. 수평선이 훤히 보이는 확 트인 바다도 좋지만, 하얀 속살이 가득한 싱싱한 대게의 맛을 잊지 못해서다. 경주 시내에서 1시간 거리의 감포항은 바다가 그리울 때면 언제든지 마음 편하게 갈 수 있어 좋다. 겨울이 지나고 따뜻한 온기가 느껴지는 바다는 아직은 겨울 기분이 조금 남아 스산한 느낌도 든다.

감포항 주변으로 대게잡이를 위해 그물 손질에 바쁜 어부들의 모습이 보인다. 예년 같으면 관광객들과 출항을 앞두고 바쁘게 움직이는 선원들의 모습으로 시끌벅적했던 곳이다. 그런데 작년부터 코로나19가 발목을 잡아 그런지 인적이 별로 없다.
  

 살이 오동통한 싱싱한 대게의 모습
▲  살이 오동통한 싱싱한 대게의 모습
ⓒ 한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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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먹거리가 즐비한 감포 활어위판장을 찾았다. 늦은 오후, 평소 같으면 인파들로 넘쳐 활력이 넘치던 시장이었지만 오늘은 다르다. 손님이 뜸한 탓인지 입구부터 반갑게 우리 일행들을 맞이한다.

하얀 속살에 군침 도는 박달대게의 유혹 대게 하면 영덕이나 울진을 제일 먼저 떠올린다. 얼마 전만 하더라도 영덕과 울진이 서로 대게의 원조라고 신경전을 벌이기도 했다. 전국 대게 유통량의 절반 이상을 거래하는 포항 구룡포도 목소리를 높인다. 그런데 요즘은 다르다.


동해안 전역에 대게가 잡히다 보니 동해안 항구 어디에서나 대게잡이 어선들이 있어 각 지역마다 신선한 대게가 즐비하다. 경주 감포항도 마찬가지이다. 감포 활어위판장 바로 앞에 정박 중인 어선들이 바로 대게잡이 배들이다. 그래서인지 싱싱한 대게를 멀리 가지 않고도 시식할 수 있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작년 개항 100주년을 맞이했던 경주 최대의 항구가 감포항이다. 살이 꽉 찬 대게가 붉은 큰 통에 가득 담겨 있어 식도락가들의 구미를 당긴다. 활어위판장 방문 첫 느낌이 바로 대게 철임을 실감할 정도로 대게가 많다. 바로 옆에 싱싱한 활어들도 있었지만 대게 때문인지 눈길이 가지 않는다.
  
 먹기 좋게 손질한 하얀 속살이 가득한 대게의  모습
▲  먹기 좋게 손질한 하얀 속살이 가득한 대게의 모습
ⓒ 한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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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게 산지 직송 가격보다 더 저렴하게 구매했다. 활어위판장에서 1Kg 무게의 박달대게 3마리를 샀다. 바로 소금물을 빼고 손질해서 쪄준다. 대게는 바로 쪄서 따뜻할 때 먹는 게 최고의 맛이 난다. 구매한 곳에서 서비스로 쪄주고 먹기 좋게 손질도 해준다.

대게를 먹을 때 쓰는 가위 형태의 도구도 필요 없다. 위생장갑을 끼고 바로 대게 다리를 부러뜨려 살짝 당기면 하얀 속살이 쏙 빠져나온다. 살이 오동통한 대게는 봄의 시작을 알리는 시기가 최고로 깊은 맛을 낸다. 짜지도 않고 달콤하며 쫀득한 맛이다. 맛을 음미하다 보면 붉은 대게 한입에 반할 정도이다.

대게는 몸통에서 뻗어 나온 다리가 대나무처럼 생겨 붙여진 이름이다. 대게는 무기질과 단백질 그리고 아미노산 성분이 들어 있어 스태미나 식품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대게에 들어 있는 키틴 성분은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춰 성인병 예방에도 도움을 준다.

대게는 코로나19로 인해 가격이 저렴해진 탓에 요즘 많이들 찾는다. 실제 산지 직송 가격보다 30% 정도 싼값으로 현장에서 따끈한 대게를 맛볼 수 있다. 감포항 주변으로는 먹거리뿐만 아니라 볼거리도 많다.
 
 감포항 방파제에서 바라다 본 송대말등대의  모습
▲  감포항 방파제에서 바라다 본 송대말등대의 모습
ⓒ 한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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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묵화 같은 풍경을 연출하는 송대말등대

감포항 주변 언택트 여행지로 송대말등대를 빼놓을 수 없다. 송대말등대는 감포 활어위판장 바로 옆에 위치해 있다. 도보로 걸어가면 5분 거리이다. 코로나 시대 비대면 힐링 명소로 최근에 각광을 받고 있는 송대말등대는 한국관광공사가 선정한 '사진 찍기 좋은 녹색명소'로 유명하다.

송대말(松臺末)은 소나무가 펼쳐진 끝자락이란 뜻이다. 수령 300~400년 된 아름드리 해송림이 하얀 등대와 어우러져 색다른 볼거리를 제공한다. 검은 갯바위가 많아 수묵화 같은 풍경도 연출한다. 동해안 일출 스팟의 한 곳으로 입소문을 타고 사진동호회 회원들의 발길도 잦다. 거기다 감포 앞바다를 조망할 수 있는 목재테크 전망대도 설치해 놓아 동해의 푸른 바다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다.

송대말등대 바로 앞에는 노란색 등대도 세워져 있다. 노란색 등대는 주변에 암초 등 장애물이 있으니 주의하라는 의미이다. 감포항 주변으로 암초가 많아 잦은 해상사고가 발생하자 이를 방지하기 위해 1955년 무인등대를 설치했다.

처음 세워진 둥근 형태의 무인등대가 바로 송대말등대이다. 바로 옆에는 감은사지 삼층석탑을 본떠 만든 새로운 등대가 2001년에 세워져 현재 운영 중이다.
 
 한 폭의 수묵화를 연상케하는 송대말등대 앞 동해 바다 모습
▲  한 폭의 수묵화를 연상케하는 송대말등대 앞 동해 바다 모습
ⓒ 한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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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망대에서 바라다 보면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밀려오는 파도가 갯바위에 부딪쳐 부서지는 모습과 하늘을 배경으로 날아가는 갈매기들의 춤사위가 어우러져 멋진 경관을 연출한다. 거기다 동해 특유의 맑고 푸른 바다와 붉게 물들어가는 일몰의 모습은 외국 유명 해변과 비교해도 전혀 부족함이 없어, 최근에 관광객들의 발길이 잦은 곳이다.

*찾아가는 길
주소 : 경주시 감포읍 척사길 18-94(송대말등대)
주차료 및 입장료 : 무료

낮보다 밤이 더 반전의 매력이 있는 보문호반길

대한민국 관광의 역사가 처음으로 시작된 곳이 바로 경주 보문관광단지이다. 경주 여행에서 보문관광단지를 빼고는 논할 수 없을 정도로 인기 있는 필수 여행코스이다. 보문관광단지에는 165만㎡(50만 평)에 이르는 보문 인공호수가 조성되어 있다. 호수 주변으로 7Km에 이르는 둘레길이 조성되어 있는데, 야간에는 경관조명을 넣어 아름다움을 더한다.
  
 경주 보문관광단지 내 보문호반길 야경 모습
▲  경주 보문관광단지 내 보문호반길 야경 모습
ⓒ 한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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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관광 100선에도 선정된 보문호 둘레길 중 가장 많이 관광객들이 이용하는 구간은 물너울교에서 라한호텔을 거쳐 호반 1교에 이르는 구간이다. 산책코스에는 잔잔한 음악이 흐르고, 야간에는 수초 간격으로 조명이 바뀌면서 환상적인 모습을 연출한다.

보문호반길은 코로나 시대 비대면 여행지로 안성맞춤이다. 보문호반길은 이런 매력 때문에 낮과 밤 구분없이 사계절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다. 특히 은은한 조명이 비치는 호수 위에 설치된 호반 1교를 지나면 수령 30년이 넘는 벚나무들이 관광객들을 반긴다. 벚꽃 철은 아니지만 여기도 야간경관조명을 넣어 두었다. 경주의 숨은 야간 산책코스 중 하나이다.

은은한 밤, 운치 있는 호반길을 가족, 연인들과 함께 거닐어 보는 것도 경주 여행의 색다른 묘미가 아닐까 생각된다. 보문호반길은 낮보다 경관조명이 들어오는 밤이 더 반전의 매력으로 다가오는 곳이다.
  
 미국 CNN에서 ‘한국에 가면 꼭 가보아야 할 장소 중 11위’에 선정된 경주 보문정 모습
▲  미국 CNN에서 ‘한국에 가면 꼭 가보아야 할 장소 중 11위’에 선정된 경주 보문정 모습
ⓒ 한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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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문관광단지에는 또 하나의 숨은 비경이 있다. 힐튼호텔 바로 앞 하이코 건물 북쪽에 위치한 보문정이다. 보문정은 우리나라보다 미국 CNN에서 먼저 '한국에 가면 꼭 가보아야 할 장소 중 11위'에 선정될 정도로 주변 경관이 아름다운 곳이다. 두 곳의 아담한 연못과 정자 그리고 초가집과 물레방아가 있어 계절별로 독특한 아름다움을 뽐낸다.

특히 봄에는 수양버들처럼 축 늘어진 벚꽃 잎이 연못 위로 흩날리는 모습을 보면 마치 흰 눈송이가 떨어지는 모습 같아 환상적인 모습을 연출한다. 보문정은 전국의 사진동호회 회원들의 꾸준한 사랑과 인기를 끌고 있는 유명 사진 스팟 중의 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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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영화 참고삼아…설날 ‘배려의 아이콘’ 돼볼까요

등록 :2021-02-11 07:59수정 :2021-02-11 09:15

 

TV로 배우는 명절 가족 배려법
<며느라기> 명절 노동은 다함께
<크리스마스…> 결혼 안하냐 잔소리 그만
<엑시트> 언제 취업해? 구박 마세요!
남자는 놀고, 여자는 일하고? 이번 명절부턴 일도 쉼도 함께! &lt;며느라기&gt;
남자는 놀고, 여자는 일하고? 이번 명절부턴 일도 쉼도 함께! <며느라기>
‘5인 이상 모임 금지’ 수칙이 유지되는 이번 설엔 ‘집콕’이 대세다. 구인·구직 사이트 ‘사람인’ 조사를 보면 ‘설 연휴 고향을 방문하지 않겠다’는 응답이 63.4%에 달했다. 대부분 집에 있거나(74%·복수응답), 여가 및 문화생활(16%)을 계획 중이다. 이왕 ‘집콕 명절’을 결심했다면 가족을 생각하는 ‘배려의 아이콘’이 돼보자. 성인남녀 1313명 중 88.3%(인크루트 2020년 조사)가 명절 때마다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전업주부(94.7%)와 구직자(92.2%)의 명절증후군이 제일 심각하다. 자, 드라마나 영화를 참고 삼아 노력해보자.
■ 명절 때마다 부엌엔 얼씬도 안 하는 남편
 
스트레스 중엔 명절노동과 양가 방문 등 주부와 관련된 것이 많다. 기혼 남성(5.9%)보다 약 3배 더 많은 기혼 여성(16.2%)이 ‘명절노동’ 탓에 스트레스 지수가 높아진다. 내 아내도 그중 하나일까? 명절에 내가 음식을 한 적 있나? 가슴 한켠 찌릿하다면 지금 당장 <며느라기>를 틀자. 오티티(OTT) <카카오티브이>에서 지난해 11월21일 시작했는데, 아내의 평소 생각을 간접적으로나마 알 수있다.
 
주인공 민사린(박하선)의 명절은 현실적이다. 여자들은 주방을 분주히 오가고, 남자들은 모여 티브이를 보거나 술을 마시며 ‘이거 달라, 저거 달라’는 요구를 해댄다. 이런 풍경이 이상하다는 생각조차 못한다. 무구영(권율)도 그랬다. 하지만 여동생의 시가 스트레스 하소연을 들으며 아내를 이해하게 된다.여기서 중요한 포인트! 선심 쓰듯 “도와줄게”라는 말은 삼가자. “너희 할아버지 제사에 내가 일하는데, 네가 도와준다는 말은 이상하지 않냐”는 4화 민사린의 대사가 정답이다. ‘내 일을 아내가 돕는 것’이란 점을 명심하면 자세가 달라진다. 변하지 않으면 영화 <큰엄마의 미친봉고> 속 남편이 당신의 모습이 될 수도. 이 영화에선 음식 준비만 줄곧 하던 며느리들이 베짱이 같은 남편을 두고 볼 수 없다며 봉고차를 타고 가출한다.
“결혼 하라”는 잔소리에 괴로워하는 ‘솔로’의 마음을 엿볼 수 있는 &lt;크리스마스에 집에 가려면&gt;
“결혼 하라”는 잔소리에 괴로워하는 ‘솔로’의 마음을 엿볼 수 있는 <크리스마스에 집에 가려면>
■ 시집 안 가냐? 자꾸 묻는 친척
솔로에겐 잔소리가 괴롭다. 명절 스트레스 2위는 취업과 결혼 관련한 친인척 잔소리(17.3%)다. 성토를 한몸에 받는 친인척은 되지 말자. 노르웨이 드라마 <크리스마스에 집에 가려면>이 도움이 되겠다. 30살 간호사 요한네가 크리스마스 가족 모임에서 온갖 잔소리를 듣고 느끼는 설움을 사실적으로 담았다. 결혼을 안 했단 이유로 부모·형제·자매의 잔소리 폭격이 시작된다. ‘일하느라 바쁘고, 혼자가 편하고, 연애를 쉬는 것뿐인데, 나는 괜찮은데 왜 다들 난리?’라는 요한네의 생각은 미혼인 당신 조카의 생각이다.잔소리가 듣기 싫다면 요령껏 피하자. 간단하다. <사랑과 전쟁>(한국방송)을 틀어라. 1시간 분량을 10~15분으로 편집한 유튜브 영상이 20~30대에게 인기다. 조회 수 100만을 넘긴 영상이 허다하다. “불륜과 시가 갈등 등 이혼을 부르는 사유가 이렇게 많은데, 굳이 결혼을 해야 하나?”라는 반박에 모두 입을 다물 수밖에. 안 통한다고? 그냥 <결혼작사 이혼작곡>(티브이조선)을 보며 혼잣말을 해라. “남자들은 정말 죄다 불륜을 저지르나. 이래서 무서워서 결혼하겠나.”
“취업했냐?” “왜 못했냐” 제발 취준생의 마음을 헤아려주세요. 영화 &lt;엑시트&gt;
“취업했냐?” “왜 못했냐” 제발 취준생의 마음을 헤아려주세요. 영화 <엑시트>
■ 언제 취업하냐고? 나도 그것이 궁금하다!
영화 <엑시트>의 용남(조정석)은 수년째 취업을 못 해 누나와 엄마의 구박을 당한다. 엄마 회갑잔치에서 만난 친척들은 하나같이 “어디 다니냐”고 묻는다. 취업하는 게 그리 쉬우면 취준생이란 말이 왜 나왔을까. 드라마 <이번 생은 처음이라>(티브이엔)에서 지호(정소민) 역시 졸업과 동시에 취업을 못 해 실패자가 된 기분이다.가족·친인척이 나서지 않아도 취준생은 충분히 힘들다. 코로나19 3차 유행에 취업문은 더 좁아졌다. 지난해 국내 기업 3곳 중 1곳은 신입 공채를 하지 않았다. 지난달 고용보험 가입자 증가 폭은 17년 만에 가장 적었다. 안 그래도 힘든 마음에 생채기 내지 말고 이렇게 말해보면 어떨까. “넌 코스모스야. 아직 봄이잖아. 찬찬히 기다리면 가을에 가장 예쁘게 필 거야. 그러니 너무 초조해하지 마.”(드라마 <스타트업> 김해숙)어른들이 계속 아픈 말로 찌른다면, 드라마 <치즈인더트랩>(티브이엔)을 함께 보자. 장학금 타려고 학점 관리하고 자기소개서 잘 쓰려고 안간힘을 쓰는 등 취업 준비에 골몰하는 대학생 홍설(김고은)의 현실에 놀랄 수밖에 없다. 드라마 <복수가 돌아왔다>(에스비에스)의 수정(조보아)은 임용고시 4수 끝에 교사가 됐다. 드라마 <자체발광 오피스>(문화방송)에서 호원(고아성)은 101번째 도전 끝에 3개월 계약직에 합격했다.
■ 명절 잔소리 대처법은?
웹툰 <우리 집 아재>는 이런 상황의 총집합체다. 명절에 남자들은 모여서 놀고, 여자들만 일한다. 시어머니는 며느리에게 술상을 보게 하고, 손녀에게 갖다주라고 시킨다. 성차별적 발언이나 송곳 같은 발언으로 가족끼리 상처를 준다. 부엌에서 전을 부치는 온조에게 친척들은 “요조숙녀 다 됐다. 지금 딱 결혼하면 되겠다”는 망언을 한다. 온조는 생각한다. 요조숙녀와 결혼이 무슨 관계?하지현 건국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네이버 오디오 클립 ‘하지현의 하트: 마음 이야기’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략 몇살 때 무엇을 해야 한다는 기준이 있다. 제때 제 길을 가지 않으면 문제가 있다고 느낀다. 세상은 바뀌었고, 취업하고 공부하고 아이 낳는 것까지 모든 것은 개인의 선택”이라고 말한다. 주변의 잔소리가 괴로울 땐 “마음에 들지 않는 질문은 대답하지 말고 내가 물어보고 싶은 것을 물어보라”고 조언한다. 이번 명절엔 역지사지해보자. 내가 듣기 싫은 말은 남들도 듣기 싫다.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982710.html?_fr=mt1#csidx7cc266bb51a3bf9a8934d0e09ca652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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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리면 끝장” 여야 모두 4·7 보선 이겨야 사는 이유 있다

등록 :2021-02-11 07:59수정 :2021-02-11 09:02
 
 
성한용 선임기자의 정치풍향계

폭풍 몰고 올 재·보선 성적표
서울에서 패배하는 쪽은
대선가도에 치명상 불가피
일러스트 하재욱 작가
일러스트 하재욱 작가
시대정신이 선거를 좌우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선거 결과는 시대정신을 만든다. 어려운가? 이렇게 바꾸면 좀 쉽다. 선거는 수많은 우연적 요소에 의해 승패가 결정된다. 그러나 선거 결과는 국가의 역사와 운명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1997년 12월 김대중 대통령 당선은 수많은 우연적 요소가 겹쳐서 일어난 정치적 사건이었다. 그러나 선거 결과는 사상 최초의 정권교체와 사상 최초의 남북정상회담이라는 역사적 사건과 시대정신을 만들어냈다.2022년 3월9일은 대한민국 20대 대통령을 선출하는 날이다. 1년1개월밖에 안 남았다. 역대 모든 대통령선거가 그랬듯이 이번 대선도 건곤일척의 승부다. 여야 모두 반드시 이겨야 하는 이유가 있다.여당은 문재인 대통령의 개혁 과제를 이어가기 위해 재집권이 필요하다. 임기가 없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이제 막 임기를 시작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함께 대한민국 대통령이 한반도 평화의 문을 활짝 열어젖히기 위해서도 재집권이 절박하다. 문재인 대통령의 남은 임기는 한반도 문제를 해결하기에 너무 짧다.보수 야당은 이번 대선에서 지면, 2016년 총선, 2017년 대선, 2018년 지방선거, 2020년 총선에 이어 전국 선거 5연패의 구렁텅이에 빠진다. 분단과 자본 기득권이라는 보수 세력의 기반 자체가 무너지면서 상당 기간 집권이 어려워질 수 있다. 야당보다 이른바 보수 성향 언론과 논객들이 더 악을 쓰는 이유다.이번 대선은 기본적으로 더불어민주당 재집권 가능성이 큰 선거였다. 1987년 임기 5년 대통령 직선제 개헌 이후 노태우-김영삼 정부 10년,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 이명박-박근혜 정부 10년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의 뒤를 잇는 대통령도 여권에서 나오는 게 자연스럽다.그런데 2021년 4월7일로 예정되어 있던 재보궐선거 일정에 서울시장과 부산시장 보궐선거가 포함되면서 분위기가 바뀌었다. 이번 4·7 재보선은 여당이 불리하다. 세가지 이유다. 첫째, 보궐선거 귀책사유를 여당이 제공했다. 둘째, 대통령 임기 말이라서 정권심판론이 작동하기 쉽다. 셋째, 전국 선거 못지않은 큰 규모로 판이 커졌다.야당으로서는 2022년 3·9 대선에서 별로 희망이 없던 차에 4·7 재보선이라는 대선 디딤돌이 저절로 굴러들어온 셈이다. 게다가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오세훈 전 서울시장 등 대선주자들이 서울시장 후보로 체급을 낮춰 출전하면서 4·7 재보선의 판이 더 커졌다. ‘정권 10년 주기설’이 흔들리게 된 연유다.물론 4·7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이긴다고 내년 3월 대선에서 자동으로 이기는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 대통령선거는 선거 전날, 심지어 투표 당일에도 결과를 예측하기 어려울 정도로 변화무쌍하다. 1997년 12월 김대중 대통령, 2002년 12월 노무현 대통령 당선 때 그랬다.하지만 4·7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패배하는 쪽은 치명상이 불가피하다. 여야가 벌써 스크럼을 짜고 팽팽하게 대치하며 한 발짝도 밀리지 않겠다고 안간힘을 쓰는 배경이다.설 연휴가 지나면 서울시장·부산시장 보궐선거 후보자 선출 경선에 속도가 붙을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서울시장 후보자를 3월1일, 부산시장 후보자를 3월6일 발표한다. 서울시장은 박영선 전 장관이, 부산시장은 김영춘 전 의원이 앞서 있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다.국민의힘은 3월4일 서울시장과 부산시장 후보자를 한꺼번에 발표한다. 서울시장은 나경원 전 의원과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부산시장은 박형준 전 의원이 앞서 있다는 것이 대체적인 분석이다. 이른바 ‘제3지대 후보 단일화’에 나선 안철수 대표와 금태섭 전 의원은 3월1일 단일 후보를 결정한다. 안철수 대표가 우세하다.서울시장은 국민의힘과 ‘제3지대’의 야권 후보 단일화가 예정되어 있다. 재보선 후보 등록 신청일은 3월18일과 19일이다. 야권 후보 단일화가 쉽지 않다는 전망도 있지만, 된다고 보는 것이 상식적이다. 야권 지지 유권자들의 절박감이 워낙 강하기 때문이다.더불어민주당과 야권의 맞대결에서 누가 이길 것인지는 예측하기 어렵다. 여론조사 가상대결을 섣불리 믿으면 안 된다. 여론조사에는 표본오차와 언론사의 작위적 선정이라는 두개의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 가상대결에서 격차가 5~6%포인트라면 실제 선거에서 누가 이길지 알 수 없다.
4·7 재보선은 결과가 어떻든 정가에 폭풍을 몰고 온다. 특히 서울시장 선거에서 패배하는 쪽은 태풍을 정면으로 맞는 정도의 충격을 받을 것이다.여당이 지면 문재인 대통령이 레임덕에 빠질 위험이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국정 운영을 등산에 비유할 때도 ‘정상까지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것’이 아니라, ‘계속 올라가서 정상에서 마무리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레임덕은 없다는 자신감이다. 그런데 서울시장 선거에서 패배하면 투지가 꺾일 수 있다.문재인 대통령이 흔들리면 이낙연 대표, 정세균 국무총리, 이재명 경기지사 등 여권의 차기 주자들도 함께 흔들릴 수밖에 없다. 지금 여당 차기 주자 선호도가 야권보다 훨씬 높은 것은 인물 경쟁력이 앞선 이유도 있지만, 문재인 대통령 평가가 40% 안팎에서 견고하게 받쳐주기 때문이다.문재인 대통령 평가가 낮아진다고 해서 여권 차기 주자들이 섣불리 문재인 대통령과 차별화에 나설 수도 없다. 더불어민주당 지지자들은 체질적으로 배신자를 싫어한다.야권이 지면 후유증은 훨씬 더 심각하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선거 결과와 관계없이 집으로 돌아갈 것이다. 안철수 대표도 큰 손해는 아니다. 본래 가진 것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민의힘은 정치적 파산 선고를 면하기 어려울 것 같다.우리나라 보수 정당은 ‘여당 체질’이다. 정치는 청와대에, 정책은 행정부에 100% 의존하던 관행이 몸에 밴 탓이다. 여당 체질로 야당을 하니 자생력이 없는 것은 당연하다.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으로 물러났을 때 아예 정당의 문을 닫거나 해산하는 게 옳은 선택이었다. 그런 정당을 살려보겠다고 지금까지 홍준표, 인명진, 김병준, 황교안, 김종인이 차례차례 나섰다. 서울시장 선거 패배는 그런 노력이 물거품이었다는 확인사살이 될 수밖에 없다.특히 김종인 위원장의 실패는 국민의힘에 깊은 내상을 남길 것 같다. 강령 전면 개정, 광주 국립 5·18 민주묘지 무릎 사과,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사과가 의미 없어지기 때문이다. 김종인 위원장은 최근 문재인 정부의 원전 정책을 비판하면서 “이적행위”라고 색깔론까지 제기하는 무리수를 뒀다.국민의힘은 5~6월에 대표와 원내대표를 새로 뽑아야 한다. 서울시장 패배의 후유증은 당내 선거의 갈등을 증폭시킬 것이다. 결국은 당을 무너뜨리고 다시 세울 것이냐, 대선에서 이길 가능성이 없는 ‘티케이 자민련’으로 남을 것이냐를 의원과 당원들이 선택해야 한다. 후자 가능성이 커 보인다.분열의 시대다. 선동가가 득세한다. 정치도 분노와 증오를 먹고 산다. 통합은 인기가 없다. 슬프지만 현실이다.성한용 선임기자 shy99@hani.co.kr


원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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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귀천의 일과 법] 해고의 법리와 인간에 대한 예의

박귀천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발행 2021-02-11 07:41:40
수정 2021-02-11 07:4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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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지방노동위원회를 포함하여 약 8년째 노동위원회 공익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수많은 해고 사건을 다뤄봤다. 인간사가 다양하고 복잡한 만큼이나 해고 사건들은 여러 사연들을 담고 있다. 노동위원회에 가기 전에 미리 검토하는 서류상의 내용은 법리적으로 복잡한 쟁점이 별로 없어서 간단한 사건이라고 생각하고 심문회의에 들어갔다가 심문과정에서 생각보다 복잡한 상황, 노동자들이 입은 인간적 상처들을 발견하게 되는 경우도 많다. 한 명의 노동자가 채용되어 일을 하다가 해고되는 일련의 과정에는 그 사람의 삶과 역사가 담겨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간단한 사건이라고 생각했던 것을 반성하기도 했다.

노동위원회에서는 기본적으로 해고에 관해 사유와 절차상 정당성이 있는지에 관해 법적 판단을 하는 것이 주요 임무이기 때문에 법리적인 검토를 꼼꼼하게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런데 관련 서류를 검토하고 심문회의를 통해 당사자들의 진술을 듣다보면 당사자들 상호간에 인간적인 섭섭함이나 분노가 법리와 관계없이 문제를 더 어렵고 복잡하게 만드는 경우들도 있다. 사용자가 노동자를 해고하면서 어떠한 말로 어떻게 표현을 해도 듣기 좋을 수는 없지만, 꼭 이런 방식으로 해고할 수밖에 없었을까하는 안타까운 생각이 드는 경우들이 있다.

법봉
법봉ⓒpixabay

노동위원회에 구제신청이 들어온 해고 사건 중에는 ‘사용자가 노동자를 해고했는가’, 즉, 사용자가 노동자에게 해고의 의사표시를 했는가, 혹은 노동자가 사직의 의사표시를 했는가가 다투어지는 경우가 대단히 많다. 도대체 해고 사실 자체가 있었는지부터 불분명한 것이다. 예를 들어, 대표이사가 아닌 중간관리자나 상사가 노동자에게 “우리는 인연이 아닌 것 같다. 다른 직장을 알아보면 좋겠다.”라고 말하는 것은 법적으로 해고의 의사표시일까, 아닐까. 상사가 노동자의 업무태도를 질책하자 노동자가 “내가 그만두면 되지 않냐”라고 말한 것은 사직의 의사표시일까, 아닐까. 이러한 쟁점들이 실제 소송에서 다퉈진다. 이 말 한마디로 판단을 내릴 수는 없고 전후 사정과 여러 정황을 통해 추론해서 결론을 내리게 된다. 그래서 사용자도 노동자도 해고나 사직을 염두에 두고 말을 할 때에는 보다 신중하고 정확하게, 상대방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를 지키면서 의사표시를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이러한 면에서 해고는 남녀간의 이별이나 이혼과 유사한 면도 있다. 인간관계에서는 잘 만나는 것만큼이나 잘 헤어지는 것도 중요하다. 노동관계는 법률관계이면서 인간관계이기도 하다는 점을 도외시해서는 안 된다.

노동관계는 법률관계이면서 인간관계
노사 간 늘 다툼의 대상이 되는 해고 사유
인간관계처럼 잘 헤어지는 것이 중요

해고 사유는 항상 첨예한 다툼의 대상이다. 근로기준법은 사용자가 노동자를 해고하는 경우 정당한 사유가 있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그 정당한 사유가 무엇인지는 결국 단체협약, 취업규칙, 근로계약 등에 규정된 사유와 해고와 관련된 여러 정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하게 된다. 노동자의 행위 등 노동자측의 사유가 문제된 해고의 정당성 판단에 관한 판례의 일관된 입장에 따르면 해고는 “사회통념상 고용관계를 계속할 수 없을 정도로 근로자에게 책임 있는 사유가 있는 경우”에 행하여져야 그 정당성이 인정될 수 있다. 2015년 당시 정부는 노동자의 저성과를 해고의 사유로 삼을 수 있도록 하는 이른바 ‘일반해고’의 법제화를 추진하고자 하여 노동계를 중심으로 엄청난 저항을 불러일으킨바 있다. 특히 성과를 판단하는 기준이 남용되거나 악용될 수 있는 위험성이 문제되었다. 당시 일반해고가 이른바 저성과자를 해고시키기 위한 새로운 유형의 해고 개념인 것처럼 알려지면서 논란을 불러일으켰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현행법 하에서 사용자는 노동자를 ‘정당한 이유’ 없이 해고할 수 없다. 그리고 실제 사건에서는 하나의 해고사유만 문제되는 경우보다는 여러 사유가 복합적, 반복적으로 문제되어 해고에 이르는 경우가 많고, 그 과정에서 사용자가 해고하기에 앞서 적절한 경고조치나 가벼운 수준의 징계 등의 조치를 통해 당해 노동자가 개선할 기회를 부여했는지도 해고의 정당성 판단에서 고려될 수 있다.

 

해고의 사유만큼 해고의 절차도 중요하다. 해고절차는 단순한 절차가 아니라 해고에 대한 사전적 구제수단의 성격을 갖기 때문이다. 사용자는 해고의 구체적인 사유와 해고의 시기를 서면으로 기재하여 노동자에게 통보해야 한다. 이는 노동자가 아무리 큰 잘못을 했더라도 예외 없이 준수되어야 하는 원칙이고 이를 지키지 않으면 해고는 법적으로 무효가 된다. 이 제도는 노동자 입장에서는 해고 사유를 분명히 인지한 후 자신의 입장을 소명할 기회를 가질 수 있어야 한다는 취지를 담고 있고, 사용자는 서면으로 해고 사유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해고를 보다 신중하게 결정하게 하려는 취지도 있다. 향후 법적 분쟁이 발생되는 경우 이 서면은 중요한 증거자료가 된다는 의미도 있다. 또한 사용자는 법에 규정된 예외적인 경우에 해당되지 않는 한 해고대상 근로자에게 적어도 30일전에 예고를 해야 하고 30일 전에 예고하지 않은 경우에는 30일분 이상의 통상임금을 지급해야 한다. 이는 노동자가 다른 직장을 구하는 동안 최소한의 생존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려는 취지이다.

위에서 말한 해고에 관한 법리는 최소한으로 지켜야 하는 기본적인 법적 문제에 관한 것이지만 그 안에는 인간에 대한 기본적 예의에 관한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어느 회사에서 노동자들을 해고하면서 이를 문자로 통보했던 사건에 대해 설명하면서 “예를 들어 사귀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문자로 이별을 통보한다면 어떤 생각이 들까요? 생존의 문제가 걸린 해고의 통보를 문자로 받는다면 인간적 상처와 배신감이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겠지요?”라고 말했더니 학생들이 격하게 수긍했던 기억이 난다. 법은 결국 사람을 위한 것이고, 특히 노동법은 사람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과 예의를 담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모습 (자료사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모습 (자료사진)ⓒ뉴스1

국회의원 비서 해고 사건 보며 안타까운 심정
법리와 별도로 인간적 존중과 예의 더 생각했으면
국회노동자 처우 개선 논의 계기 되길

필자가 평소 긍정적인 시각으로 지켜보고 있던 젊은 정치인이 비서 해고 사건으로 인해 며칠째 뉴스에 오르내리는 것을 보면서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해고 사건은 겉으로만 봐서는 알기 어려운 복잡한 사정들이 담겨 있는 경우가 많고 특히 고용계약서나 관련 규정들을 모두 살펴보지 않고서는 함부로 말할 수 없기에 이 사건에 대해 지금 뭐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다만, 관련 법리와는 별도로 해고를 둘러싼 일련의 과정에서 인간적인 존중과 예의라는 측면을 조금 더 세심하게 생각하고, 소속 정당의 상징성과 일반인들이 갖고 있는 기대에 대해 좀 더 생각해 준다면 좋겠다는 의견을 조심스럽게 말하고 싶다. 그리고 이번 기회에 노동법적 보호의 사각지대에 있는 국회 노동자들에 대한 처우 개선의 문제를 논의하는 계기도 되면 좋겠다.

해고 사건의 당사자가 되어 노동위원회에 출석한 사용자들이 간혹 사람 하나 쓰는 게 왜 이렇게 힘드냐고 말하는 경우가 있다. 특히 소규모 사업체를 운영하는 사업주들이 고군분투하는 사정에 대해 이해가 가는 측면도 당연히 있다. 그렇지만 “사람”을 “쓰는” 것이기 때문에 때로는 힘들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닐까. 하나의 사람은 하나의 우주라는 말이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람을 “사용”하여 돈을 번다는 것은 그 자체로 이미 비인간적인 속성을 내포하고 있다. 이윤추구를 최고의 목적으로 하는 자본주의시스템 자체가 인간적이지 못하기 때문에 노동관계에서 여러 문제가 발생한다. 그럼에도 그 속에서 조금이라도 인간적이고자 하는 생각, 말, 활동이 모여 우리 사회를 조금이라도 인간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이 아닐까.

 

박귀천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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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아침 이 책을 들고 평양에 갑니다”

  • 기자명 오인동 박사(재미동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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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1.02.10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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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동포의 평양-서울 나들이(3) : 2010-2011

2010년 6월, 무릎과 엉덩이관절수술을 번갈아 가며 했다. 수술하기 전에 정형외과 수련의들을 위해 과장 선생들은 환자의 X-Ray Film을 함께 보며 수술의 적절성과 관절기 선택, 수술기법 등에 대한 토론을 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수련의들의 교육이 잘 이뤄진다. 이에 나도 참여해 도왔는데, 북과 남 그리고 영어 용어가 서로 달라서 말이 끊기는 등 재미난 웃음거리도 생기곤 했다.

▲ 2010년 6월, 수술대상 환자의 관절염 상태와 수술에 사용될 관절기의 선택, 수술기법 등에 대한 토론회가 과장 선생들의 선도로 정형외과 수련의들을 위해 진행된다. 나도 참여해 도왔는데. 문제는 의학 용어의 차이로 소통의 문제가 생겨 웃음바다가 되기도 했다.
▲ 2010년 6월, 수술대상 환자의 관절염 상태와 수술에 사용될 관절기의 선택, 수술기법 등에 대한 토론회가 과장 선생들의 선도로 정형외과 수련의들을 위해 진행된다. 나도 참여해 도왔는데. 문제는 의학 용어의 차이로 소통의 문제가 생겨 웃음바다가 되기도 했다.

수술을 끝낸 한 오후, 화일 동무를 따라 조국해방전쟁(6.25전쟁)시기 김일성 장군의 최고사령부에 갔더니 나무와 숲으로 둘러싸인 조용한 곳이었다. 은퇴 노병 따라 지하로 계속 내려가며 방들도 살펴보니 무시무시한 생각도 들었다. 한참 만에 위로 나오니 밝은 햇살과 여군의 미소가 반가웠다. 그녀가 이상한 모습의 큰 나무로 안내했다. 한 뿌리가 둘로 갈라졌다 다시 하나로 합쳐진 것 같은 게 오늘의 남과 북 같기도 해 화일 동무에게 사진을 찍어달라 했더니 여군이 다가와 내 팔짱을 끼었다.

나중에 보니 걸작 사진 둘이 내 눈에 들었다.

▲ 2010년 6월, 1950년 전쟁 시기 최고사령부 뜰에 있는 ‘이상한 나무’ 앞에선 인민군 여전사. 한 뿌리가 두 나무로 갈라졌나? 두 뿌리가 하나로 합쳐졌나? 그럼 언제 한 나무로 될 건가? 마치 한 나라가 둘로 갈라져 있는 우리 조국의 모습 같기도 했다.
▲ 2010년 6월, 1950년 전쟁 시기 최고사령부 뜰에 있는 ‘이상한 나무’ 앞에선 인민군 여전사. 한 뿌리가 두 나무로 갈라졌나? 두 뿌리가 하나로 합쳐졌나? 그럼 언제 한 나무로 될 건가? 마치 한 나라가 둘로 갈라져 있는 우리 조국의 모습 같기도 했다.
▲ 2010년, 1950년 전쟁 시기 인민군 최고사령부에서 북과 남 군인이 서로 웃다. 나는 군의관이었다.
▲ 2010년, 1950년 전쟁 시기 인민군 최고사령부에서 북과 남 군인이 서로 웃다. 나는 군의관이었다.

남에서는 인민군의 얼굴은 언제나 고약한 표정의 모습인데 이 노병은 파안대소하고 예쁜 여군은 박수를 치고 있다. “세상에 인민군도 웃을 줄 아나?”로 제목을 달았다. 여러분들 보기엔 어느 사진이 더 멋진지 궁금하다.

마지막 날 저녁, 2006년 광주에서 만났던 안경호 6.15북측위원장, 그리고 김관기 국장, 박철 아태위원과 함께 평양교외 초대소에서 6.15해외위원의 활동에 대해 논의했다. 오래전 재미동포 선우학원, 김동수, 김현환 등이 1981년 봄, 워싱톤 [해외동포 민족통일회의]에서 유럽동포들과 분단극복을 위해 북 동포들과 만나야 한다는 의견에 따라 11월, 비엔나에서 [조국통일을 위한 북과 해외동포기독자대화]를 했다. 그때 북의 안경호 박사 등 15명의 학자, 관료들과 토론했던 얘기를 들려줬다. 남북왕래가 없던 북과 남을 방문할 수 있는 해외동포들의 역할은 참으로 다행이었다.

▲ 2010년, (왼쪽부터) 해외동포위원회 김관기 국장, 오인동, 6.15선언실천 북측 안경호 위원장. 안 위원장과는 1981년 비엔나에서 통일 관련 교수와 전문가들, 미국과 유럽의 해외동포 학자와 통일 운동가들이 함께한 통일강연과 토론이 첫 역사적 만남이었다. 김관기 국장은 1996년 영국 런던에서 열린 북과 해외동포와의 회의에서 강연도 했다.
▲ 2010년, (왼쪽부터) 해외동포위원회 김관기 국장, 오인동, 6.15선언실천 북측 안경호 위원장. 안 위원장과는 1981년 비엔나에서 통일 관련 교수와 전문가들, 미국과 유럽의 해외동포 학자와 통일 운동가들이 함께한 통일강연과 토론이 첫 역사적 만남이었다. 김관기 국장은 1996년 영국 런던에서 열린 북과 해외동포와의 회의에서 강연도 했다.

평양서 북 관료들과 만나고, 서울로 가서는 대학과 시민단체들에서 강연하며 북의 현실도 알려주며 남북관계 복원을 위해 해야 할 일들에 대해 서로의 생각을 토론하고 언론과 대담하고 글들도 발표했다. 그러다 보니 2010년 영문·국문 글을 묶은 나의 <통일의 날이 참다운 광복의 날이다>와 <평양에 두고 온 수술가방>을 출판했다.

그래서 2008년 출판한 <꼬레아, 코리아>와 함께 서울 프레스클럽에서 출판잔치를 했다. 강만길, 임동원. 한완상, 김상근, 백낙청, 이재정, 임헌영, 문정인 등 통일 관련 관료, 학자, 운동가 인사들 90여 명이 함께했다. 참석해 준 김영동의 전통음악과 공연일정으로 참석하지 못한 소리꾼 장사익이 보내준 그의 노래를 들으면서, 저자인 내가 파격적으로 사회를 보며 참석자들을 소개하는 등 재미난 시간을 가졌다.

▲ 2010년 10월, 서울 광화문 프레스클럽에서 열린 나의 세 개의 책 출간기념 잔치. 저자가 귀한 참가자 모두를 소개하고 사회도 본 파격적인 잔치마당이었다.
▲ 2010년 10월, 서울 광화문 프레스클럽에서 열린 나의 세 개의 책 출간기념 잔치. 저자가 귀한 참가자 모두를 소개하고 사회도 본 파격적인 잔치마당이었다.
▲ 강만길, 임동원, 한완상, 백낙청, 김상근, 이재정, 문정인 등 중에서 6.15위원장 김상근 목사에 건배사를 부탁하니 술 축배는 못하겠다기에 성공회 사제 이재정 통일장관이 고역의 건배를 하는 등 처음부터 끝까지 웃음바다의 파격적 잔치였다.
▲ 강만길, 임동원, 한완상, 백낙청, 김상근, 이재정, 문정인 등 중에서 6.15위원장 김상근 목사에 건배사를 부탁하니 술 축배는 못하겠다기에 성공회 사제 이재정 통일장관이 고역의 건배를 하는 등 처음부터 끝까지 웃음바다의 파격적 잔치였다.

끝판에 ‘내일 아침 나는 이 세 책을 들고 평양에 간다’하니 모두 놀랐다. 남북왕래가 금지된 때였다. 평양에서 김관기 국장과 만나 김정일 총비서에 드리는 책에 서명하고 관료와 학자와 의사들에도 전했다.

▲ 2010년 10월, 2008년 'Corea, Korea'와 2010년 출간 두 개의 책에 서명한 뒤 김정일 총비서에, 그리고 1992년부터 북에서 만난 관료들과 의사선생들에게 드렸다.
▲ 2010년 10월, 2008년 'Corea, Korea'와 2010년 출간 두 개의 책에 서명한 뒤 김정일 총비서에, 그리고 1992년부터 북에서 만난 관료들과 의사선생들에게 드렸다.

2011년 6월 주말, 고려호텔에서 우연히 LA의 발 전문의 강모세 선생과 재미동포 박찬모 평양과학기술대학 명예총장을 만났다. 며칠 뒤 수술을 끝내고 과기대에 갔더니 강 선생은 의무실장으로, 박 총장은 대학운영, 그리고 재미동포들과 여러나라 교수들의 도움으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실정도 알려줬다. 학생들은 수재급으로 교내에서는 영어회화로 모든 게 진행되고 있어 놀랐다. 재미동포 김필주 농학 교수님은 황해도 여러 농장에서 품종개량 사업을 도우며 과기대에서도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었다. 박 총장은 교직원의 의료문제를 평양의대 병원과 연계되기를 바라기도 했다. 해외동포들의 활약이 다양한 것을 알게 된 것이 매우 기뻤다.

▲ 2011년, 평양과학기술대학 박찬모 명예총장은 남이나 해외 여러나라의 교수를 모셨다. 학생들은 모두 수재급이라 했고 교내에서의 대화는 영어였다. 왼쪽부터 장용진 외사국장, 박찬모 총장과 오인동.
▲ 2011년, 평양과학기술대학 박찬모 명예총장은 남이나 해외 여러나라의 교수를 모셨다. 학생들은 모두 수재급이라 했고 교내에서의 대화는 영어였다. 왼쪽부터 장용진 외사국장, 박찬모 총장과 오인동.
▲ 2011년 6월, 평양과학기술대학에서 박찬모 명예총장과 강모세 의무실장과 대화. 남의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에 남측 교수들도 많이 참여해 강연했다. 나의 세 개의 책도 드렸다.
▲ 2011년 6월, 평양과학기술대학에서 박찬모 명예총장과 강모세 의무실장과 대화. 남의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에 남측 교수들도 많이 참여해 강연했다. 나의 세 개의 책도 드렸다.

Corea연구 이래 국호에 관심을 갖게 된 나는 <조선력대국호>에 대해 연구한 사회과학원 공명성 민속연구소장을 만나봤다. 그는 옛 왕조 이름들의 의미에 대해 연구했다. 생각지도 못했던 나라 이름들에 대한 얘기들도 들었다.

▲ 2011년, 북의 출중한 역사학자 공명성 박사(오른쪽). 그는 우리나라 고대 왕조 이름들의 의미 연구해 왔다. 나는 ‘통일국호 조국의 이름’에 관심을 가져 왔다.
▲ 2011년, 북의 출중한 역사학자 공명성 박사(오른쪽). 그는 우리나라 고대 왕조 이름들의 의미 연구해 왔다. 나는 ‘통일국호 조국의 이름’에 관심을 가져 왔다.

병원 의사들의 관절수술도 익숙해져 가던 중, 보리 밥알도 젓가락 끝으로 집어먹는 우리겨레의 손재주는 똑같이 뛰어나서 북 의사들은 수술을 잘 소화해 냈다. 수술 뒤 점심은 수술복을 입은 채 옆방에서 함께 하는데, 박송철 과장이 느닷없이 내게 다가와 손을 내밀며 ‘내년에도 꼭 오신다는 약속을 하자’며 손깍지를 마주치니 박수에 따라 축배도 들었다. 어깨 비벼가며 전기톱의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단단한 뼈를 자르고 망치로 두들기며 금속관절기를 뼈에 고정시키는, 대장간쟁이들 같은 정형외과의사들의 본태다.

▲ 2011년, ‘내년에도 꼭 평양의대병원에 온다는 약속을 하자’고 덤빈 박송철 외상외과장과 손깍지 계약(약속). 이걸 하지 않으면 박 과장에게 납치될 것 같아 약속을 안 할 수 없었다.
▲ 2011년, ‘내년에도 꼭 평양의대병원에 온다는 약속을 하자’고 덤빈 박송철 외상외과장과 손깍지 계약(약속). 이걸 하지 않으면 박 과장에게 납치될 것 같아 약속을 안 할 수 없었다.
▲ 2010년, 수술일정 마치고 병원 앞 뜰에서 석별의 정을 나누는 문상민 병원장, 박송철, 우성훈 과장. 
▲ 2010년, 수술일정 마치고 병원 앞 뜰에서 석별의 정을 나누는 문상민 병원장, 박송철, 우성훈 과장. 

인공관절수술을 잘 해내 신이 난 문 병원장이 수술 끝내고 평양근교 룡악산에서 야외불고기판을 벌리기로 했단다. 난 늘 대접만 받는 게 마음에 걸려 마침 중국공항에서 큰 꼬냑 한 병을 사 왔었다. 먼저 도착한 과장선생들, 간호원장과 화일 동무가 함께 준비하고 있었다. 초여름 야외에서 고기들이 익어가는 냄새가 좋았다. 정형외과팀이 모두 자리에 앉자 문 원장이 나에 대한 감사의 건배사를 하고, 나는 답례로 ‘형제 의사선생들과 함께하는 보람은 세계 여러 나라들에서의 어느 강연이나 수술들과도 비교할 수 없는 감명’이라며 꼬냑 잔을 함께 들었다.

주식 뒤 단고기 국밥이 나왔다. 문 원장이 원래 ‘개국장’이라 불렀는데 수령께서 ‘단고기’로 부르게 했단다. 우리 조상들은 개고기가 유난히 몸에 좋아 “오뉴월 복골에는 단고기 국물이 발등에만 떨어져도 약이 된다”하니, 박송철 과장은 “남정네들에게 제일 좋은 거야 개신료리죠”라 했다. ‘개신료리? 그게 뭐야...’, ‘오 선생은 그것도 모르나?’는 말에야 짐작이 가기에 내년엔 그 맛을 꼭 보게 해달라며 술잔을 들었다. 즐거운 오후였다. 그것도 모두 우리 ‘빨갱이’ 형제들과….

▲ 2011년, 수술을 끝내고 평양 교외 룡악산 야외 불고기판에 꼬냑 건배. ‘단고기 국밥’ 맛도 봤다. ‘개신 료리’는 남정네들에 좋다는데?… 내년 여름엔 꼭 맛 봐야지.
▲ 2011년, 수술을 끝내고 평양 교외 룡악산 야외 불고기판에 꼬냑 건배. ‘단고기 국밥’ 맛도 봤다. ‘개신 료리’는 남정네들에 좋다는데?… 내년 여름엔 꼭 맛 봐야지.

수술을 마친 오후, 내 세 책을 받아본 리창덕 6.15부위원장이 초록 옷의 예쁜 여인과 함께 찾아 왔기에 곧, “북에선 이런 미녀들과 통일사업을 하는 모양인데 일이 잘 되느냐?” 물으니… 언론담당 김성혜 위원이란다. 2008년 이명박 정부에서 남북왕래조차 끊겨버려 북과의 소통이 단절된 상태에서 6.15북·남·해외측위원들이 이를 극복해 나가야 할 바에 대한 얘기를 나눴다. 마침 서울에 가면 <한겨레통일문화상>을 받게 돼 있어 준비한 수상기념 강연원고를 건네며 ‘북에 쓴소리도 썼으니 읽어보고 다시 만나자’고 했다. 이틀 뒤 둘이 찾아 왔다.

▲ 2011년 6월, 고려호텔로 찾아온 6.15북측위 리창덕 부위원장과 언론담당 김성혜 위원(초록색 옷).
▲ 2011년 6월, 고려호텔로 찾아온 6.15북측위 리창덕 부위원장과 언론담당 김성혜 위원(초록색 옷).

‘좋은 내용들이 많은데 우리공화국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고 했다. ‘그거야 당연한 지적이라며 그래서 내가 북에 더 자주 오려 한다’고 전했다. 그리고 ‘욕심 같아선 이렇게 7~10일 머무는 게 아니라 한 달쯤 묵고 싶다’ 했더니 곧 ‘얼마든지 그러시라’고 한다. 실은 내가 그럴 수는 없는 처지여서 한 발을 뺐다. 뒤에 김성혜가 누군가 찾아봤더니 남의 통일부 차관과 판문점에서 북측 대표로 대좌해온 여장부였다. 그리고 7년 뒤 ‘2018년 남녘 동계올림픽 때 그녀가 김여정 부부장과 청와대에서도 함께 했다. 그리고 6월, 그녀가 김영철 통일전선부장과 백악관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함께한 모습도 보았다. 초록 옷의 그녀가 여전히 예쁘고 또 대견했다.

▲ 7년 뒤인 2018년 6월, 북 김영철 통전부장과 김성혜가 백악관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함께 했다.
▲ 7년 뒤인 2018년 6월, 북 김영철 통전부장과 김성혜가 백악관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함께 했다.

리 부위원장, 김성혜 위원과 악수를 나눴다. 내일 남으로 가야 했다. 미국시민인 내가 평양에서 일을 마치고 판문점을 거쳐 직접 서울로 갈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남녘 여러 대학과 시민 단체들에서의 강연 약속으로 인해 매번 번거롭게 중국 심양이나 북경을 거쳐 남으로 가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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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파 한단에 2만6800원... 계속 이러면 더 비싸집니다

[슬기로운 코로나 명절] 기후 위기로 인한 고물가 시대, '냉장고 파먹기'로 맞섭니다

21.02.10 07:33l최종 업데이트 21.02.10 07:33l
'가족이라도 주민등록상 거주지가 다르면 5인 이상 집합 금지', 2021년 설의 특징입니다. 감염의 위험을 줄이려면 덜 모이고 적게 모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에따라 명절 문화에도 변화가 시작되고 있습니다. 온라인으로 성묘를 하고, 영상통화로 안부를 묻고, 온라인으로 새뱃돈을 준다는데요. 전통적인 명절의 변화에 슬기롭게 대처하는 시민기자들의 목소리를 들어봅니다. [편집자말]

3850원. 대파가 너무 비쌌다. 심했다. 파 끝이 시들었는데도 저렇게 비싸다니. 다행히 쪽파는 쌌다. 한 단에 2700원 즈음했다. 아쉽지만 대파든 쪽파든 괜찮았다. 한 푼이라도 아낄 수 있다면 그 정도는 대수롭지 않다. 문제는 계산대에서 생겼다.

'2만6800원' 포스기에 엉뚱한 돈이 찍혔다. 계산대 직원에게 물었다. 

"어? 쪽파 가격이 잘못 찍혔어요. 확인 부탁드릴게요."
"2만6800원. 맞아요. 쪽파, 2만6800원."

 

 판매자의 실수가 아니고서야 쪽파가 2만6800원일 수는 없다고 생각한 건데, 그 가격은 진짜였다.
▲  판매자의 실수가 아니고서야 쪽파가 2만6800원일 수는 없다고 생각한 건데, 그 가격은 진짜였다.
ⓒ elements.enva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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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원은 쪽파에 붙은 가격표를 눈앞에서 보여주셨다. 판매자의 실수가 아니고서야 쪽파가 2만6800원일 수는 없다고 생각한 건데, 그 가격은 진짜였다. 쪽파에 비하면 대파는 비싼 것도 아니었다. 나는 다시 한 푼이라도 아끼기 위해 대파를 집어들 수밖에 없었다.  

깜깜한 저녁, 집으로 돌아가는데 절약 의욕이 솟았다. 대파 한 단도 귀하게 여겨 알뜰하게 잘해 먹고 싶어졌다. 단지 돈을 아끼려는 게 아니었다. 기후 위기가 비로소 우리에게서 먹을 것을 앗아가기 시작했음을 직감했기 때문이었다.

이 가격, 기후 위기의 징후라면

2월 2일, 통계청은 소비자 물가 동향을 발표했다. 여기에 팟값의 정체가 있었다. 파는 작년 1월 대비 값이 76.9% 뛴 품목이다. 파뿐만 아니다. 양파는 60.3%, 사과는 45.5% 올랐다. 축산물은 11.5% 뛰었다.

사과 같은 저장 과일은 태풍과 장마 때문에, 쪽파나 양파처럼 생산 직후 출하하는 채소는 북극 한파와 폭설 때문에 농사가 잘 안 됐다. 기후 변화 때문에 농산물 값이 오른 것이다. 축산물은? 공장식 축산으로 AI가 순식간에 퍼졌기 때문이다. 결국 건강한 닭들마저 예방 차원에서 도살당했으니 공급이 줄어 값이 올랐다.  올 겨울이 지나면 2000원대 대파를 살 수 있을까? 대파 값은 예측하기 어렵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바로 기후 위기와 공장식 축산 관행은 단숨에 해결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우리가 많이 먹고 많이 버리는 걸 당연하게 생각하는 한 말이다.


농축산물의 과잉 생산은 기후 위기의 원인 중 하나다. 특히 2014년 유엔 총회 보고서에 따르면 가축이 대기 중 온난화 가스에 미치는 비율은 최대 51%까지 추정되기도 한다. 우리는 그동안 먹거리를 차고 넘치게 재배했다. 얼마만큼 과잉 생산 했냐 하면, 먹다 남아 쓰레기로 버릴 만큼이다.

농담 같은 쪽파 가격에 적응해야 하는 건 나였다. 동시에 기후 위기 해결에 힘을 보탤 수 있는 것 또한 나였다. 방법은 간단하다. 냉장고 파먹기다. 냉장고 파먹기란, 냉장고 속 식재료를 다 먹기 전까지, 다음 식재료를 구매하지 않는 일을 말한다.

양파 한 알, 달걀 한 알, 허투루 낭비하지 않는 냉장고 파먹기 훈련이야말로, 기후 위기에 적응하고 해결하기 위한 방식이다. 값비싼 식재료를 아껴 먹으니 절약도 되고, 과잉 생산에 일조하지 않을 수 있다. 먹을 만큼 먹기. 이것은 기후 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 작은 일 중 하나다.

쓰레기통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쓰레기가 아니다
 
 가족이 모이면 밥상이 넉넉해진다.
▲  가족이 모이면 밥상이 넉넉해진다.
ⓒ 최다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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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설날이다. 적당히 먹고 덜 버리려면, 애초에 음식을 적당히 준비해야 한다. 하지만 설날은 그게 잘 안 된다. 명절 음식을 대하는 가족의 마음이 다 다르기 때문이다.

먼저 먹고 싶은 음식만 준비할 수가 없다. 손이 잘 가지 않더라도 제사상에 올릴 하얀 생선찜은 삼 단으로 올려야 하는 의무감과 치킨에 맥주면 어떠냐는 입장이 상충한다. 먹을 만큼 준비하기도 어렵다. 오랜만의 명절이니 모자라지 않게 푸짐하게 준비하자는 마음과 적게 먹어야 건강에도 좋으니 조금만 준비하자는 마음이 다르다.

여기에 틀린 마음은 없다. 결국, 명절에는 음식이 자주 남게 됐다. 그래서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는 만큼만 하기로 했다. '냉장고 파먹기'다. 우리집 냉장고에 있는 한, 우리집 귀한 식재료로 대접해주면 된다. 아무리 남은 음식이라 할지라도 쓰레기통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쓰레기가 아니다.

명절 전, 냉장고 지도부터 그렸다. 냉장고 지도란, 종이 한 장에 냉장고와 찬장 속 식재료를 모두 적은 것이다. 그리고 각각의 식재료로 할 수 있는 메뉴까지 적으면 냉장고 속 식재료를 살뜰하게 먹기 쉽다.
 
 냉장고를 다 비운 후(좌) 필요한 식재료를 들였다(우). 모자 쓰고 모자 사러 가지 않기, 냉장고 버전이다.
▲  냉장고를 다 비운 후(좌) 필요한 식재료를 들였다(우). 모자 쓰고 모자 사러 가지 않기, 냉장고 버전이다.
ⓒ 최다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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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 후, 한결 널찍해진 냉장고에 명절 후 남은 음식들을 채워 넣는다. 그리고 명절 음식들을 소진하기 전까지는 새 음식을 탐내지 않는다. 동그랑땡이 있으면 만두 사러 가지 않으면 되는 일이다. 식비를 절약할 수 있을 뿐더러, 음식 쓰레기도 줄일 수 있다.
 
중요한 살림 기술은 전날 먹고 남은 것으로 다음 날 근사하고 풍요로운 식탁을 만드는 것이다. - <헬렌 니어링의 소박한 밥상> 중, 헬렌 니어링 지음
 
20세기, 헬렌 니어링은 경제 대공황에 맞서 소박한 밥상으로 경제적 자립을 일군 인물이다. 그녀는 밥 짓는 시간을 줄이고, 남는 시간에 책을 읽고 시를 썼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 시까지 쓸 수 있던 비결은 간단했다. 물가가 두 배로 올랐다면? 두 배로 절약하면 된다. 그녀는 우아하고 용감하게 절약했다.

헬렌 니어링이 100년 전 경제 대공황으로 인한 물가 상승에 절약으로 맞섰다면, 우리도 기후 위기로 인한 2만6800원짜리 쪽파에 절약으로 맞서면 된다. 우리의 냉장고 문에 냉장고 지도가 붙어 있고, 낭비하는 음식 없이 살뜰하다면, 기후 위기와 우리 지갑의 위기에 우리 몫을 다 할 수 있을 것이다.
  
 냉장고 지도
▲  냉장고 지도
ⓒ 최다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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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동 KBS 사장 “국민 초청 숙의민주주의로 수신료 설득”

수신료 비판 여론에 “자구 노력 확실히 하라는 외침”… 5년 만의 대하드라마 등 “시청자에게 공적 책무 다할 것”
 
 
 
 
 

 

KBS 이사회는 지난달 27일 ‘수신료 조정안’을 상정했다. 현재 월 2500원 수신료를 3840원으로 인상하는 내용이다. 안건 상정 후 KBS의 고임금 문제와 보도 공정성 논란 등 이슈가 불거지며 여론이 악화했다. KBS가 공적 책무를 제대로 하고 있느냐는 의문도 제기됐다.

미디어오늘은 지난 8일 오후 양승동 KBS 사장을 만났다. 서울 여의도 KBS 본관에서 90분여 진행된 인터뷰에서 양 사장은 “수신료 조정안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이기보다 현재 KBS 재정 상황과 그동안의 자구 노력을 소상히 밝히고, 앞으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을 국민들에게 제시해 합의를 이끄는 숙의 민주주의 방식으로 설득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 수신료 조정안 상정 후 최근 논란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나?

“KBS가 자구 노력을 확실히 마련해야 한다는 시청자들의 회초리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사회에서도 말씀드렸지만, 국민 여러분께 굉장히 송구하다는 말씀을 거듭 드리고 싶다. 코로나19로 누가 봐도 어려운 시기다. 우리가 수신료 인상을 밀어붙이려 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앞으로 수신료 조정안 심의 과정 등 굉장히 긴 여정이 될 것이다. 사회적 합의를 위한 논의를 시작한다는 의미로 봐주시면 감사하겠다.

영국의 공영방송 BBC도 수신료 여론조사를 하면, 국민 저항에 부닥치곤 한다. 수신료는 준조세 성격을 가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영국은 사회적 합의를 계속해왔고 국민 동의를 얻어 수신료를 현실화해왔다. KBS 수신료는 현재 40년 동안 동결돼 있다. KBS도 BBC와 같은 과정을 거치겠다는 의미로 이번 안건을 상정했다고 다시 한번 말씀드리고 싶다.”

▲ 양승동 KBS 사장이 8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본관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양 사장이 사진 촬영을 위해 잠시 마스크를 벗은 모습. 사진=김도연 기자.
▲ 양승동 KBS 사장이 8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본관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양 사장이 사진 촬영을 위해 잠시 마스크를 벗은 모습. 사진=김도연 기자.

- 여전히 자구 노력이 부족하다는 평이 나온다.

“지난 10여년, 짧게는 제 취임 후 KBS는 여러 효율화 조치를 단행했다. 덜 알려진 면도 있지만 국민 눈높이에 충분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1분기 내 직무재설계 문제를 포함해 경영 효율화 방안을 구체적으로 마련한 뒤 이사회 심의 과정을 거칠 것이다. 이 과정에서 KBS가 어떻게 효율화할지 자세히 설명하려 한다.

또 KBS 평균 연봉이 높다는 비판이 정치적 논란으로 확대되고 있다. 내부에선 그런 공세에 대응하지 말자는 여론도 있었지만 내가 대응하자고 했다. KBS 직원 가운데 억대 연봉자 비율은 46%로 줄었고, 앞으로 이 비율은 크게 줄어들 것이다. 현 KBS 직원들의 평균 근속연수가 18년인데, 88올림픽 당시 채용된 인력이 대거 나갈 것이고 추가 명예퇴직도 시행할 예정이다. 반면 신규 채용은 최대한 늘려 KBS를 더 젊게 만들 것이다. 평균 연봉도 크게 줄어들 것이다. 작년부터 직무재설계를 추진하는 등 KBS를 ‘리모델링’하고 있다. 직무재설계안에 아직 내부 반발이 있는데 곧 접점을 찾을 것이다. 이런 부분들을 앞으로도 계속 설명드리도록 하겠다.”

- 그럼에도 인위적 구조조정이나 인력 축소가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이 있다.

“어려움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직무재설계를 통해 조직을 슬림화하고, BBC 구조조정에 버금가는 혁신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를 위해 내부 합의를 이끌어야 한다. 마땅히 해야 할 공적 책무를 다하지 못하는 영역도 많고, 코로나19 시대 새롭게 부여된 공적 책무도 막중하다. 우리에게 부여된 공적 책무를 수행하기 위해선 상당한 정도의 인력이 유지돼야 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방만하거나 비효율이 있는 부분은 최대한 효율화할 것이다. KBS는 감사원의 감사, 국회의 결산 심사 등을 통해 재정과 인력이 투명하게 밝혀져 있다. 모자란 부분을 찾아 개선하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 양승동 KBS 사장이 8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본관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양 사장이 사진 촬영을 위해 잠시 마스크를 벗은 모습. 사진=김도연 기자.
▲ 양승동 KBS 사장이 8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본관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양 사장이 사진 촬영을 위해 잠시 마스크를 벗은 모습. 사진=김도연 기자.

- 시청자들은 KBS보다 새 플랫폼, 특히 넷플릭스나 유튜브 콘텐츠 소비를 선호한다. 시청자들은 ‘공영방송이 우리에게 왜 필요한 것인가’를 KBS에 묻고 있다.

“이와 관련 전 세계 공영방송들이 공통적으로 깊은 고민에 빠졌다. 이 과제를 함께 풀기 위해 작년 유럽, 캐나다 등 공영방송 수장들과 화상회의로 고민을 나누기도 했다. 넷플릭스에 이어 디즈니플러스, 애플에서 만든 스트리밍 서비스 등이 미디어 생태계를 주도하면서 각국 공영방송들이 큰 타격을 받았다. 그러나 해외의 거대 상업 자본에 미디어 생태계를 맡겨둘 수는 없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서라도 공영방송의 공적재원 확충이 필요하다.

공영방송은 상업방송이나 민영방송처럼 광고 영업을 치열하게 다투는 방향으로 나아가서는 안 된다. 공영방송은 공적재원을 중심으로 운영돼야 한다. 수신료가 재원의 최소 50~60%는 돼야 한다. 그래야 광고주나 상업 자본에 흔들리지 않는 콘텐츠를 만들 수 있다.

한 가지 더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KBS 콘텐츠는 지상파뿐 아니라 다양한 디지털 플랫폼에서 소비되고 있다는 점이다. TV를 통해서만 KBS 콘텐츠가 소비되는 것은 아니다. 넷플릭스나 웨이브 등 OTT에도 KBS 콘텐츠들이 들어가 있다. 해외의 경우 TV가 아닌 디바이스에도 수신료를 부과한다. 현재 우리는 법으로 TV를 소지할 때만 수신료를 내고 있는데 언젠가는 변화가 필요한 부분이다. 오늘(8일) 임원회의에서 KBS 콘텐츠가 각 플랫폼에서 어떻게 이용되고 있는지 파악하고, KBS의 무료 보편서비스 활용 실태를 조사해보자고 했다. 자료가 확보되면 이 부분에 대해 상세한 답을 내놓을 예정이다.”

- 코로나19 국면에서 KBS는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보나?

“미국에선 뉴욕타임스가 코로나19 국면에서 뛰어난 보도를 했다고 평가받는다. 우리도 코로나19 관련 최고의 첨단 정보를 전달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지난해 1월 국내에서 첫 확진자가 나온 후 1년 넘게 코로나19 재난방송을 해왔다. 지난해 2월 말 감염병 확산이 본격화하면서 ‘코로나19 통합뉴스룸’으로 상시 특보 체제로 전환했다. 9개 지역총국도 수시로 특보를 전했다. 앞으로 24시간 뉴스 스트리밍 채널을 재난 대응형으로 내실화할 것이다. 이는 수신료 조정안 가운데 중요한 대목이다. 설사 수신료 조정이 되지 않더라도 올해 예산을 확보해 이 부분을 강화할 것이다.

이 밖에도 상생과 연대 차원에서 ‘함께 이겨냅시다’와 같은 ‘착한 소비’ 캠페인을 펼쳤고, 지난 1월 연속 방영된 ‘코로노믹스 3부작’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변화에 발 맞춰 KBS는 재난방송 주관방송사로서 ‘공론장’ 역할을 해야 한다. 이를 위한 제작비와 연구비가 한계에 와있는 게 사실이다. (수신료 인상 시기를) 더 넘기면 안 된다.”

▲지난해 KBS 추석특집 ‘대한민국 어게인 나훈아’. 사진=KBS.
▲지난해 KBS 추석특집 ‘대한민국 어게인 나훈아’. 사진=KBS.

- 제2의 나훈아쇼, 대하드라마 등 대형 프로젝트를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시청자와 학계 전문가들에게 공영성 강화를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물었다. 그에 대한 답으로 대형 프로젝트를 해달라는 요청이 많았다. 가깝게는 이번 설 특집 ‘조선팝 어게인’을 선보인다. 대하드라마도 제작할 것이다. 명품 다큐멘터리도 상당수 준비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우주체험 다큐멘터리쇼 ‘키스더유니버스’는 2년 전부터 준비했다. 올 10월 방영 예정이다. 3월에는 KBS 환경 다큐 ‘환경스페셜’이 부활한다. ‘역사저널 그날’은 4월까지 하고 정통 역사 다큐멘터리로 강화한다. 그중 하나로 ‘정조의 리더십’에 관한 역사 다큐를 5부작으로 기획 중이다.

또 도쿄올림픽 등 대형 스포츠 이벤트도 있다. 사실 타 방송사들은 올림픽이나 월드컵 중계에 곤혹스러워한다. 과거 올림픽 중계 때 100억원 이상의 손해를 보곤 했는데 그럼에도 KBS는 중계해야 할 책임이 있다. KBS는 소외되는 비인기 종목의 경기를 외면할 수 없다.”

- 대하사극이 지금 시대 유효한 전략인지 의문이 들기도 하는데?

“2018년 4월 사장이 된 후 가장 많이 들은 이야기 중 하나가 ‘KBS가 대하드라마 사극을 해야 한다’는 말이었다. 시대는 달라졌지만 수요가 많다. 퓨전 사극이나 역사 다큐멘터리도 있지만 이들이 채울 수 없는 ‘정통 역사물’이라는 영역이 있다.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말이 있듯 우리 민족 정체성을 깨닫고, 국민적 사기를 고취하는 것도 공영방송의 역할이다. ‘용의 눈물’, ‘정도전’과 같은 정통 역사물이 필요한 이유다. 수백억 원이 들어가는 대하사극을 5년 만에 부활하려다 보니 제작단가가 굉장히 높았다. 올 1월 작가를 섭외한 상태다. 현재 아이템 두세 개를 놓고 고민 중이다. 조만간 시놉시스가 나온다.”

- 대하드라마 주인공에 대한 힌트를 준다면?

“태종 이방원, 조선시대 임금 정조, 고려시대 현종 등이 후보다. 시대적 메시지를 담을 수 있는 인물을 고르려 한다. 제작비 문제로 올해 연말부터 내년 초에 걸친 2년 동안의 예산으로 제작비를 나눠 잡았다. 올 연말이면 인사를 드리지 않을까 기대한다.”

- 대형 프로젝트를 위한 재원 마련 상황은?

“2020년 결산을 통해 수지 상황이 정리됐다. 오는 2월 마지막 주 정기 이사회에서 결산을 승인받으면 (결산안이) 국회로 가게 된다. 결론부터 말하면 ‘불황형 흑자’다. 애초 지난해 사업손익은 759억원 적자를 예상했지만 140억원으로 그 폭이 줄었다. 지난해 제작비 절감 노력과 유휴자산 매각, 간부 임금 20% 삭감과 직원 임금 동결 등 긴축 예산을 펼쳤다. 긴축을 통해 당기손익 300억원 흑자를 봤지만, 올해 방송을 정상적으로 진행하면 다시 적자가 나는 구조다. 긴축 예산으로 생긴 이익은 올해 콘텐츠에 집중 투자한다. KBS가 자구노력을 통해 긴축 재정을 펼쳤고, 이를 시청자들을 위한 콘텐츠를 만드는 데 사용하겠다고 약속드린다.”

▲양승동 KBS 사장이 8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본관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양 사장이 사진 촬영을 위해 잠시 마스크를 벗은 모습. 사진=김도연 기자.
▲양승동 KBS 사장이 8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본관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양 사장이 사진 촬영을 위해 잠시 마스크를 벗은 모습. 사진=김도연 기자.

- 내부적으로는 자구 노력을 하고 있지만, 외부에서 외면하는 시청자들을 설득할 방안은?

“우리 노력을 어떻게 알릴지 TF를 구성한 상태다. 수신료 조정을 설득하기 위해선 ‘숙의 민주주의’(투표를 넘어 숙의를 통해 의사를 결정하는 민주주의) 방식이 필요하다는 한 이사님 제안이 있었는데 좋은 제안이라고 생각했다.

이번 수신료 조정안 이사회 심의 과정에서 두 이사님이 조정안 상정에 반대했다. 그러나 이사장께서 이들을 설득해 합의를 끌어내셨다. 단순 표결이 아니라 서로 논의하고 토론해 합의를 만들었다. 수신료 조정에 대해서도 시청자들께 KBS가 하는 일, 하려고 하는 일을 투명하게 밝혀 공영방송 미래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긴 호흡으로 가져가면서 설득하겠다.”

-숙의 민주주의 방식이라면?

“제가 사장에 선임되는 과정에서도 시민 자문단 제도가 있었다. 국민 200~300명을 표본으로 해서 그분들에게 직접 KBS 재정 문제와 수신료 인상 필요성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콘텐츠 차별화를 위해 얼마가 필요한지 설득하는 방식을 생각하고 있다. 이렇게 투명하게 밝히고 시민들 의견을 모으면 국민의 상식 수준에서 판단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시민 의견을 토대로 방통위와 국회를 설득할 수 있다고 전망한다.”

-KBS 출신 정필모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포함한 다수 민주당 의원들도 야당과 같이 ‘수신료 인상 반대’에 의견을 냈다.

“다양한 반응을 확인했다. ‘여권도 반대하는 수신료 인상’이라는 기사들도 있었다. 한편으로는 ‘KBS 수신료 인상이 여당과 짜고 하는 일은 아니다’라는 걸 입증한다고도 생각한다. 숙의 민주주의 방식으로 공론장을 열고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할 것이다. 묵묵히 설득하면 국민께서 상식적 판단을 해주실 것이라고 본다. 우리는 여론을 존중한다. 비판을 받으면 그때그때 대응하고 답도 드릴 것이다. 그러나 근거 없이 왜곡하거나 정치적 공세를 펼친다면 단호하게 대응할 것이다.”

-과거 KBS 경영진은 간부는 물론 기자들까지 수신료 인상을 위한 국회 로비에 동원해 물의를 빚었다.

“KBS 기자들을 동원해서 로비하는 방식, 나는 결코 동의하지 않는다. 그런다고 될 사안이 아니다. 사장과 경영진이 직접 국민 앞에 나서서 진정성 있게 설명하고 공론화하는 과정을 가질 것이다.”

▲ ‘코로나19 통합뉴스룸’ 체제로 전환 KBS 뉴스9.
▲ ‘코로나19 통합뉴스룸’ 체제로 전환 KBS 뉴스9.

-KBS 보도에 여전히 공정성 시비가 제기되고 있다.

“KBS는 공정성 보장을 위해 다양하고 중층적 제도 장치를 갖고 있다. 편성규약, 방송제작가이드라인, 취재 보도준칙을 통해 규범과 원칙을 제시하고 있다. 부문별 편성위원회, TV위원회, 공정방송위원회, 심의실, 시청자위원회 등을 운영하고 있다. 일부 공정성 논란이 제기되는 이슈들을 보면 실수로 빚어진 것이 대다수다. 그런 사고들이 정치적 공방의 대상이 되고 공정성 논란으로 비화되는 게 안타깝다.

과거 KBS에는 제작 거부에 이은 파업이 있었다. 방송 제작이나 취재에 경영진이 간섭하고 개입해 벌어진 일이었다. 제가 사장에 취임하고서 그런 일은 없었다. 한편으로 공정성은 주관적 평가 영역이기도 하다. 본인이 어떤 정치적 입장을 갖느냐에 따라 편향적으로, 또는 불공정하게 보이는 면도 있다.”

-KBS 보도와 시사는 어때야 한다고 보나?

“‘신뢰의 기준’이 돼야 한다. 콘텐츠가 쏟아지면서 허위조작정보가 많아지는 콘텐츠의 역설이 벌어지고 있다. 이럴 때 신뢰 기준은 매우 중요하다. 정치적으로는 중립성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 현재 KBS 뉴스가 그렇다고 본다. 이와 함께 인권,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와 민생 문제는 더 깊이 들어가야 한다. 창의적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 현장에 밀착해 진실을 추구하고 깊은 분석이 이뤄져야 한다.”

-KBS 내부 구성원인 KBS 노동조합(소수노조)에서도 비판이 끊이지 않는다.

“수신료 인상은 KBS 노동조합도 원칙적으로 동의하는 사안이다. 접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계속 소통하면서 관계를 만들어갈 것이다.”

-EBS는 KBS가 내놓은 수신료안(3%에서 5%로 조정)에 더 높은 배분 비율을 요구하고 있다.

“EBS와 상정 전 두 차례 정도 논의했다. EBS에 수신료 3%를 배분하고 있다고 하지만, 송신 지원까지 포함하면 7% 정도다. 수신료를 조정하면 3%에서 5%로 올린다는 것인데, 실제적으로는 대략 10% 정도라 추산한다. EBS도 교육방송으로서 공적 책무를 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EBS와의 협의는 계속 열어놓고 갈 것이다.”

▲ 양승동 KBS 사장이 8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본관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김도연 기자.
▲ 양승동 KBS 사장이 8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본관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김도연 기자.

-양 사장의 임기는 올해가 마지막이다. 지난 3년여 무엇을 잘했고, 무엇이 아쉬운지?

“취임 후 논란이 증폭된 방송사고들이 있었다. 산불 관련 재난방송, 정당 로고가 잘못 나간 실수, 독도 헬기 추락 영상 논란 등 해서는 안 되는 실수였다. KBS 신뢰도가 과거에 비해 높아지고 있지만 이런 일이 없었다면, 더 높은 신뢰를 받았을 텐데 아쉬움이 남는다. 실수를 반복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고 있다.

또 하나 아쉬운 것은 수신료 조정안 상정이 너무 늦어진 것이다. 공영방송의 공적재원이 절반도 안 되는 구조적 문제를 해소하지 않고서는 미래로 갈 수 없다. 2019년 6월부터 수신료 조정안을 준비했다. 작년 1월 최종 보고서가 나왔고 수신료 조정을 추진해보려 했지만, 코로나19로 인해 계획 연기가 거듭됐다. 코로나 상황이 좋지 않아 여론도 좋지 않다. ‘코로나가 없었다면’이라는 생각에 여러모로 아쉽다. 그러나 역사에 가정이란 없기 때문에 현실을 딛고 나아갈 것이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KBS 미래, 공영방송 미래는 시청자와 KBS 구성원들이 함께 만드는 것이다. 공론화 과정을 거쳐 사회적 합의가 이뤄져야 한다. 또 국민을 설득하려면 KBS 내부가 변해야 한다. 수신료 조정 과정을 내부 혁신 동력으로 삼을 생각이다. 시대가 변하며 공영방송이 계속 위축되고 있다. 단순히 한 방송사의 재정위기가 아니다. 공영성의 위기이자 공적 서비스 위축이다. 이번 수신료 조정안에 코로나19 시대 KBS가 해야 할 공적책무가 무엇인지 그 고민을 담았다. KBS가 제대로 된 공영방송이기 위한 설계도다. 국민 부담을 최소화하는 인상액을 포함했다는 말씀도 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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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짜노동’ 택배 분류, 환산하면 연 9,300억…이젠 누가 책임져야 하나

 

분류작업 정상화 위해 정부·택배사·대리점·화주·소비자 등 역할 필수

윤정헌 기자 yjh@vop.co.kr
발행 2021-02-09 16:38:22
수정 2021-02-09 16:5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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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브터미널 한 편에 쌓여있는 택배물량
서브터미널 한 편에 쌓여있는 택배물량ⓒ김철수 기자 
 

28년간 ‘공짜노동’으로 택배기사가 떠안았던 ‘분류작업’이 택배사로 옮겨갔다. 분류는 택배사 책임이라는 사회적 합의가 나왔다.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파업 선언과 정부의 중재, 번복과 합의 과정이 지난하게 반복됐다. 여진은 끝나지 않았다. 대리점이 ‘합의 원천 무효’를 외치고 있다.

갈등이 ‘사회적 합의문’ 한 장으로 쉽게 조절 될 것 같지 않다. 택배기사가 감내한 분류작업을 경제가치로 단순 계산하면 연간 1조원에 육박한다. 1조원의 돈을 누군가가 대신 지불해야 하는데, 과연 누가, 얼마나 책임져야 하는 것일까.

‘공짜노동’ 분류작업 돈으로 환산하면 연 9,300억원대 규모

지난해 국토교통부와 고용노동부가 공개한 ‘지난 5년간 택배 물류 통계 및 택배기사 산업재해 현황’을 살펴보면 택배기사의 주간 평균 노동시간은 71.3시간에 달한다. 71.3시간 중 43%에 달하는 30.7시간을 분류작업에 할애하고 있다. 하루 평균 5시간 넘게 분류작업을 한다.

현재 택배업계가 분류인력에 지급하는 돈은 시간당 1만원 정도다. 분류작업에 드는 시간은 짧게는 5시간에서 많게는 7시간이다. 평균 6시간이라고 보면 택배기사 1명이 분류작업으로 받을 수 있는 하루 인건비는 약 6만원이다. 주 6일을 일하는 택배기사가 한 달(4주)간 분류작업의 대가로 받을 수 있는 금액은 144만원 정도인 셈이다.

 

실제 분류지원인력을 직접 고용해 운영 중인 택배대리점연합 관계자는 “현재 고용해 운용 중인 분류인력 1명당 월 140~150만원 정도의 인건비를 지불하고 있다”고 밝혔다.

통합물류협회에 따르면 올해 1월 기준 전국의 택배기사는 총 5만4천여명 수준이다. 이들 택배기사가 해 온 분류작업의 노동 가치는 연간 9,331억2천만원(144만원x12개월x5만4천명)에 달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사회적 합의를 통해 택배 분류작업에 대한 책임이 택배사에 있다는 것이 명확해진 만큼 앞으로 분류작업에 대한 노동의 대가가 지급돼야 하는 상황이다.

CJ대한통운, 한진택배, 롯데택배 로고
CJ대한통운, 한진택배, 롯데택배 로고ⓒ기타

분류인력 비용 지불 핵심 택배사와 대리점
... 택배기사 공짜노동 바탕으로 빠르게 성장

택배사와 대리점은 분류작업에 대한 책임을 가장 많은 부담해야 할 주체다. 택배기사들의 희생이 아니었다면 현재와 같은 구조로의 운영이 불가능했을 뿐만 아니라 성장 역시 지금에 미치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분류업무에 대한 책임이 있는 택배사와 인력을 직접 고용해야 하는 대리점은 관련 비용을 지급해야 하는 주체이기도 하다.

국내 택배산업은 택배기사의 ‘공짜노동’을 바탕으로 빠르게 성장해왔다. 택배사업이 처음 시작될 당시엔 물량이 많지 않았던 만큼 별도의 분류인력이 필요하지 않았지만, 택배시장이 성장할수록 분류작업에 투여되는 노동강도도 점점 높아졌다.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본격화됨에 따라 택배물량이 급증하면서 택배기사들은 하루 평균 6시간 이상을 공짜노동인 분류작업에 매달리고 있다.

한국통합물류협회의 ‘연간 발표’를 살펴보면 최근 8년 동안 국내 택배시장 물동량은 매년 평균 10.02%의 성장률을 보였다. 2012년 14억598만 박스였던 택배 물량은 2019년 27억8,980만 박스까지 늘어났다. 하루 평균 800만 박스에 달하는 택배물량이 발생하는 셈이다. 매출액도 크게 늘었다. 2012년 3조5,232억원 규모였던 국내 택배시장 매출은 2019년 6조3,303억원으로 8년 새 79.7%나 증가했다.

특히 대형 택배사들의 성장세가 두드러졌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국내 택배시장 점유율 50%에 육박하는 CJ대한통운은 최근 6년간 평균 18.8%에 달하는 매출 상승을 이뤘다. 대한통운이 CJ그룹에 본격 편입된 2013년 CJ대한통운의 택배사업부문 매출은 9,016억원 수준이었다. 그리고 2014년엔 1조2,486억원으로 처음 매출 1조원을 돌파한 데 이어 5년 만인 2018년 매출 2조2,619억원을 기록하며 2조원의 벽 넘었다. 2019년 CJ대한통운의 택배사업부문 매출액은 2조5,024억원을 기록했다.

택배업계 2, 3위인 한진택배와 롯데로지스틱스(롯데택배)도 빠르게 성장했다. 2016년 나란히 5000억원대를 기록했던 롯데와 한진의 택배부문 매출은 2019년 기준 각각 8327억원, 8147억원까지 늘었다. 이 기간 한진택배와 롯대택배는 연평균 15%대 성장을 지속했다.

택배기사와 직접 계약을 맺는 대리점들도 택배기사의 손을 떠난 분류작업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동안 대리점은 택배기사가 배송하는 택배물량에서 건당 수수료를 떼면서도 분류작업에 대해 대가는 지불하지 않았다. 공짜노동인 분류작업을 택배기사가 떠안음으로써 발생한 이익을 택배사와 함께 대리점도 취한 셈이다.

실제 택배기사를 직접 고용하는 대리점들도 택배시장의 성장과 함께 덩치를 키웠다. 택배기사는 전체 99% 이상이 대리점 소속이다. 택배기사의 숫자가 늘어난 만큼 택배대리점의 규모 역시 커지는 셈이다. 통합물류협회에 따르면 2014년 3만8천여명 규모였던 택배기사는 2019년 5만4천여명까지 늘었다. 택배기사가 배송하는 택배물량의 건당 수수료가 주수입원인 대리점으로서는 택배기사가 늘어난 만큼 더 많은 수수료를 챙길 수 있게 된 것이다.

현재 대리점은 분류인력 비용을 택배사와 나눠서 분담하고 있다. 분담률도 낮지 않다. CJ대한통운은 분류인력 투입으로 예상했던 비용의 50%를 대리점에 전가했다.

사업 규모에 비해 과중한 부담이 전가됐지만, 대리점은 택배사의 이 같은 요청을 거부하지 못했다. 택배기사와의 관계에서 ‘갑’인 대리점이지만, 택배사와의 관계에서는 ‘을’이기 때문이다.

다만 최근 실제 분류인력 투입 비용이 예상보다 많다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택배사가 30%를 대리점이 70%를 부담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그러자 CJ대한통운 대리점연합은 거세게 반발했고 결국 CJ대한통운과 CJ대한통운 대리점연합은 ‘분류인력 투입구조와 비용’을 원점에서 재논의하기로 했다.

택배종사자 과로대책 사회적 합의기구 합의문 발표
택배종사자 과로대책 사회적 합의기구 합의문 발표ⓒ뉴시스

사회적 합의 주도한 정부의 역할... 아직 끝나지 않았다

정부도 지켜보고만 있을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가파른 성장으로 인해 발생한 분류작업 문제 해결을 위해선 사업자와 종사자, 대리점, 화주, 소비자 등이 힘을 합쳐야 하는데 이를 중재해 줄 정부의 역할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 정부 주도하에 사회적 합의기구가 꾸려진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정부부처와 국회, 택배사, 대리점, 대형화주, 소비자 등으로 꾸려진 합의기구는 지난달 21일 ‘1차 합의안’을 발표한 바 있다. 하지만 합의안 이행과 관련해 택배노사간의 갈등이 빚어지면서 재논의가 이뤄졌고, 다시 한번 잠정 합의안이 마련됐다.

잠정 합의안에는 ▲1차 사회적 합의에 따른 분류작업 인력(CJ 4,000명, 롯데 1,000명, 한진 1,000명)은 2월 4일까지 투입 ▲투입인력 현황을 점검하기 위한 조사단을 구성 ▲롯데·한진의 경우, 투입인력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시범사업장 운영 ▲택배요금 및 택배비 거래구조개선을 가능한 5월 말까지 완료 등의 내용이 담겼다.

잠정 합의안까지 도출됐지만, 아직 정부의 역할이 끝난 건 아니다. 택배업계 노동구조가 정상화하기까지 막대한 비용이 예상되는 만큼 정부 차원의 지원이 계획돼 있다. 정부는 1차 합의안을 통해 택배사업자가 분류작업 설비 자동화 추진계획을 수립하면 국회와 정부가 2021년부터 예산·세제 등을 통해 지원을 추진하고, 계획수립 및 이행상황을 점검·관리하기로 했다.

이미 국내 유통구조에서 혈관과 같은 역할을 담당하는 ‘택배산업’은 이제 정부로써도 관심 있게 지켜봐야 할 주요 산업 중 하나다. 올해 초 택배 관련 법인 생활물류서비스산업발전법안(생활물류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할 수 있었던 것도 이 같은 공감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생활물류법은 △택배사업 등록제 도입 △택배사업자와 종사자간 안정적 계약 유도 △택배용 화물차의 기타 화물 운송 제한 △표준계약서 및 서비스약관 근거마련 △종사자 보호, 안전운행, 서비스 개선조치 등의 내용이 담겨있다.

학계에서도 정부의 역할을 강조했다. 추후 사회적 합의기구 내에서 택배비 인상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가 이뤄질 예정인 만큼 정부의 역할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택배비 인상시 택배사들이 일괄적으로 가격을 올리는 과정에서도 자칫 ‘담합’ 논란이 있을 수도 있다”면서 “합의기구를 만든 정부가 그런 부분들까지 고민해 해결해 줄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물류센터에서 택배 노동자들이 분류작업을 하고 있다.
물류센터에서 택배 노동자들이 분류작업을 하고 있다.ⓒ뉴시스

택배사-화주간 백마진 문제 해결 중요성 커져
... “택배비 인상, 택배사 가격 경쟁력 향상 용도 악용될 우려 높아”

택배사와 화주간에 발생하는 백마진 문제 해결의 필요성도 제기됐다.

백마진은 상품을 판매하는 업체가 소비자들로부터 받은 배송비보다 더 낮은 단가에 택배 계약을 맺고, 마진을 챙기는 것을 말한다.

2017년 국토교통부가 국무회의에서 발표한 ‘택배서비스 발전방안’에 따르면 소비자는 온라인쇼핑업체에 2,500원의 배송비를 지불하고 있지만, 온라인쇼핑업체와 택배사가 계약하는 평균 단가는 1,730원이다. 택배 계약 과정에서 770원의 백마진이 발생하는 셈이다.

백마진은 택배사가 화주(생산자 혹은 유통업체)와 계약하는 과정에서 발생한다. 택배사나 택배대리점들은 더 많은 물량을 확보하기 위해 타사보다 더 낮은 단가를 제안하는 방식으로 계약을 따낸다. 물량 확보를 위해 경쟁적으로 단가를 낮추는 ‘치킨게임’이 백마진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리베이트 형태로 발생하는 백마진도 있다. 택배 대리점과 소속 택배기사들은 개별 영업을 통해 온라인쇼핑업체와 계약을 맺는다. 이때 타사 대리점들과 경쟁을 벌이면서 택배 단가가 낮아진다. 택배사는 대리점과 기사가 ‘최저 가격’ 이하로 내리지 못하게 하는데, 정해진 가이드라인보다 더 낮은 금액을 제시하기 위해 리베이트를 제공하는 식이다.

이렇다 보니 사회적 합의기구 내에서도 분류작업 문제 해결을 위한 최우선 해결 과제로 백마진 해결의 필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한 택배대리점 관계자는 “백마진 문제가 해결돼 제값에 택배 계약을 맺을 수 있다면 비용적인 측면에서 상당 부분 해결될 수도 있을 것”이라면서 “백마진 관행이 남아 있는 이상 택배비가 인상되더라도 인상된 금액이 택배노동자에게 돌아가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통상 소비자가 물건을 구매할 때 택배비는 택배사에 직접 지급되지 않는다. 소비자로부터 배송비를 받는 건 상품을 판매하는 유통업체다. 이후 유통업체와 택배업체간의 택배단가 계약이 이뤄지는 만큼 백마진 문제가 지속할 경우 택배비 인상 의도와 달리 택배사들의 가격 경쟁력을 높이는 용도로 사용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분류한 짐을 싣고 있는 택배기사
분류한 짐을 싣고 있는 택배기사ⓒ민중의소리

택배업계 문제 해결에 택배비 인상 동반돼야... 선진국 1/4 수준

공짜노동으로 인한 수혜자에는 소비자도 포함된다. 소비자들은 그동안 택배기사들이 공짜노동인 분류작업을 떠안음으로써 저렴한 가격에 택배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었다.

국내 택배시장은 지난 20년간 폭발적으로 성장했지만, 택배요금은 30%가량 떨어졌다. 택배물량 급증으로 당연히 발생했어야 할 ‘분류작업’ 비용을 택배기사들이 떠안았다. 여기에 택배업계의 저가 경쟁까지 더해지며, 택배비가 오히려 낮아졌다.

소비자들은 더 싼값에 택배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었으나, 그 부담은 고스란히 택배기사에게로 향했다. 2012년 2,506원이었던 평균 택배비는 2019년 2,229원이 됐다. 해외 선진국들과 비교해도 현격히 낮다. 미국 페덱스는 8달러90센트(1만88원), UPS는 8달러60센트(9750원)로 한국보다 최대 4.4배 비싸다. 일본 야마토 익스프레스 택배비도 676엔(7,353원)으로 3배 가 넘는다.

학계에서도 이번 택배업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택배비 인상’이 동반돼야 할 것으로 봤다. 하헌구 인하대 물류전문대학원 교수는 “충분히 빠른 속도와 높은 서비스를 받아 온 데 비해 택배비가 낮았던 것은 사실”이라며 “그동안 고생해 온 택배기사들을 위해서라도 소비자들이 어느 정도 택배비 인상에 동참하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그렇게 인상된 비용이 택배기사에게 갈 것이냐는 문제 남는다”며 “그런 부분에서도 추가적인 논의가 필요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윤정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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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공단 폐쇄 5년, 즉각 재개 선언하라"

개성공단비대위, "못할거면 차라리 청산하라" 항의·요구 (전문)

  • 기자명 이승현 기자 
  •  
  •  입력 2021.02.09 14:15
  •  
  •  댓글 0
 
개성공단 폐쇄 5년에 즈음해 개성공단비대위는 9일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개성공단 재개를 즉각 선언하라. 못할거면 청산하고 보장하라'고 항의하고 요구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개성공단 폐쇄 5년에 즈음해 개성공단비대위는 9일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개성공단 재개를 즉각 선언하라. 못할거면 청산하고 보장하라'고 항의하고 요구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개성공단 재개 즉각 선언하라. 못할거면 청산하고 보상하라."

폐쇄 5년이 되었지만 재개 전망이 불투명한 개성공단 입주기업인들이 정부를 향해 더 이상 희망고문을 하지 말고 개성공단 재개 선언을 하던지, 못한다면 차라리 청산절차를 밟자고, 항의하고 요구했다.

개성공단기업비상대책위원회(개성공단비대위, 대표 공동위원장 정기섭)는 9일 청와대 분수대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개성공단 폐쇄 5년, 개성공단비대위 입장문'을 통해 "지금까지 정부는 개성공단 재개를 선언하지 않고 있다"며, "정부가 자주적으로 개성공단 재개선언 조차 하지 못한다면 이제는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개성공단의 청산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기업인들이 바라는 바는 "정부가 개성공단을 재개할 의지가 확고함을 분명히 밝혀달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정부는 보상법률이 없다는 이유로 지금까지 보상을 하지 않고 있지만, 공공필요에 의한 재산권 제한의 경우에도 정당한 보상을 해야 한다는 헌법 제23조에 따라 개성공단기업들의 피해보상을 위한 정부입법의 특법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들은 이날 문재인 대통령에게 전달한 서한에서도 "정부의 위법한 공단폐쇄로 인해 입은 막대한 피해에 대해 정당한 보상을 받지 못했고 실제 피해에 비해 턱없이 모자란 보험금 위주의 대출성 지원을 받았지만 곧 개성공단이 열릴 것이란 희망으로 버티고 기다려왔다"며 지난 5년의 어려움을 호소했다.

"개성공단 재개에 미국의 동의를 구해야만 하는 우리 정부의 어려움을 안다"고 하면서 "그러나 지난 정부의 위법한 공단폐쇄 조치로 유발된 피해를 떠안고 하루 하루, 한해 한해 힘겹게 버티고 견뎌 온 개성기업들에게 기약없이 기다리라고만 할 게 아니라 우리 정부의 공단재개 의지라도 밝혀주셔야 한다고 믿는다"고 거듭 공단 재개 선언을 촉구했다.

개성공단비대위는 재겅공단 재개 즉각 선언 등 요구사항을 담아 청와대에 전달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개성공단비대위는 재겅공단 재개 즉각 선언 등 요구사항을 담아 청와대에 전달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이날 통일부는 개성공단 중단 5년 정부 입장을 묻는 기자단 질문에 "정부는 그간 개성공단 재개 여건을 만들어 나가기 위해 나름의 노력을 기울여 왔으나, 실질적 성과를 만들어 내는데 어려움도 있었고, 부족한 부분도 있었다"며 "개성공단이 중단된지 5년이 도래한 것에 대해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면서 "개성공단 재개는 2018년 평양공동선언에서 남북 정상이 합의한 사항인 만큼, 남북이 함께 공단 재개의 여건을 마련하여 합의가 이행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며 "남북대화와 교류·협력이 복원되는 가운데, 개성공단 재개를 논의할 수 있는 날이 조속히 오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통일부의 이날 입장은 △2016년 2월 10일 일방적 공단 폐쇄에 대한 정부의 책임 △관련 기업인들의 재산상 손실에 대한 보상 △공단 재개에 대한 정부의 적극적인 의지와 계획 등 개성공단비대위가 묻고 요구한 핵심은 다 빠진 것이어서 매우 아쉽다.

개성공단비대위는 특히 "2018년 초 유동자산 피해에 대해 추가지원을 무기삼아 입주기업들의 의사에 반해 개성기업들이 투자자산 및 유동자산 피해에 대한 정부지원에 대해 이후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는 확인서를 받고 마치 기업피해지원을 원만히 마무리한 것처럼 포장"했다며, 이는 기획재정부와 통일부의 횡포였다고 지적했다.

공단재개 못할거면 청산하고 피해보상하라! 코로나19 방역 지침에 따라 9대로 제한된 차량이 임진각 통일대교까지 차량시위를 벌였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이날 개성공단비대위는 개성공단 재개선언을 촉구하는 현수막을 매단 차량 9대로 인근 종로구 효자공영주차장을 출발해 서대문사거리, 합정역, 자유로를 거쳐 경기도 파주시 통일대교 남단까지 이동하는 차량 시위를 진행한다.

이후 임진각 디엠지생태관광지원센터에서 열리는 '개성공단재개선언 범국민연대회의' 출범식에 개성공단 재개선언을 지지하는 각계 시민사회단체들과 함께 참여할 예정이다.

개성공단 폐쇄 5년, 개성공단기업 비상대책위원회 입장문(전문)

개성공단 폐쇄 5년, 우리 기업들은 절망적인 상황에 처해 있다.

촛불혁명으로 정권이 교체됐지만 공단 재개는 기약이 없고 납북교류협력은 모두 닫혔다. 5년 동안 우리 개성기업인들은 하나둘씩 쓰러져갔지만 위법한 공단 폐쇄에 대해 정부의 어느 누구도 사과하거나 책임지지 않았고 우리는 잊혀진 존재가 됐다.

정부정책 변경으로 발생한 국민의 재산권 제한손실에 대해 헌법23조는 법률에 따라 정당한 보상을 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보상법률이 없어서 정부는 보상하지 않았다. 5년 동안 우리는 하루하루, 한 해 한 해 힙겹게 버티며 참고 기다렸다. 정부는 결단을 내려야 한다.

정부가 개성공단 재개를 즉각 선언하고 실질적으로 공단이 재가동 할 때까지 기업이 생존할 수 있도록 지원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지금까지 정부는 개성공단 재개를 선언하지 않고 있다. 우리 기업인들이 바라는 것은 정부가 개성공단을 재개할 의지가 확고함을 분명히 밝혀달라는 것이다.

정부가 미국의 지나친 관여로 자주적으로 개성공단 재개 선언조차 하지 못한다면 이제는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개성공단의 청산을 요구한다. 정부는 개성공단을 청산하고 개성공단기업 피해보상을 위한 특별법을 정부입법으로 제정해야 한다. 

정부의 정책과 보장약속을 믿고 투자한 우리에게 지난 정부 위정자의 갑작스런 정책변경과 강제적 폐쇄조치로 발생한 피해에 대해 정부는 마땅히 정당한 보상을 해야 한다.

 

이에 우리는 다음과 같이 요구한다.


1. 정부는 개성공단 재개를 즉각 선언하라.

2. 정부는 기업이 생존할 수 있도록 지원대책을 마련하라.

3. 잘못된 판단으로 개성공단을 폐쇄한 책임자를 처벌하라.

4. 위 요구사항을 정부가 수용하지 못한다면 정부는 개성공단을 청산하라.

5. 지난 정부의 중대한 판단실책과 돌발적인 정책변경으로 발생한 기업피해에 대해 정당한 보상을 요구한다.

 

2021년 2월 9일

개성공단비상대책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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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손소독제 제품들서 '독성물질' 메탄올 검출 첫 확인

김기범 기자 holjjak@kyunghyang.com

입력 : 2021.02.09 06:00 수정 : 2021.02.09 09:39

 

코로나19 확산 이후 시민들이 자주 사용하는 손소독제 다수에 실명, 신경계 손상 등을 일으킬 수 있는 독성물질 메탄올이 포함됐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어린이에게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수있는 손소독제 제조공정을 철저히 관리하는 동시에 시민들의 오남용을 막기 위한 가이드라인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을지대 보건환경안전학과 고영림 교수 등 연구진은 시중에 유통 중인 손소독제 34종을 구매해 성분을 분석한 결과, 33개 제품에서 메탄올이 확인됐다는 내용의 논문을 지난달 한국환경보건학회지에 발표했다. 해외에서는 지난해 메탄올이 포함된 손소독제가 판매 중지되는 사례가 있었지만, 국내에서 다수의 손소독제에 메탄올이 함유됐다고 확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해 3월 한 건물의 엘리베이터에 비치돼 있는 손소독제의 모습. 김영민기자.

지난해 3월 한 건물의 엘리베이터에 비치돼 있는 손소독제의 모습. 김영민기자.

 

33개 제품 중 식품의약품안전처의 물티슈 내 메탄올 함량 기준치인 20ppm이 넘는 메탄올이 검출된 제품은 14개로 집계됐다. 메탄올 농도가 가장 높은 제품의 경우 기준치의 28배가 넘는 567.02ppm이 나왔다. 연구진이 이번 분석 결과를 물티슈 기준치와 비교한 것은 국내에 손소독제 메탄올 함량에 대한 기준치가 마련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앞서 2017년 식약처는 이 기준치를 넘은 메탄올을 함유한 물티슈를 판매 중지하고 회수 명령을 내렸다.

손소독제에 든 메탄올 성분은 눈이나 입, 피부로 흡수되거나 강한 휘발성으로 인해 코로 흡입될 수 있다. 연구진은 엘리베이터 같은 좁은 공간에서 손소독제를 반복적으로 수십회 사용할 경우 미국 정부산업위생전문가협의회(ACGIH)의 단시간 노출허용기준(STEL)인 250ppm의 10% 정도의 메탄올에 노출된다고 밝혔다. 이는 체중이 적고 호흡량이 많은 유·소아들에게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충분한 양이라고 설명했다. 장기적, 반복적으로 노출될 경우 만성 영향을 받을 가능성도 있다.

일반적으로 어떤 물질의 위험성은 해당 물질이 지닌 유해성(독성)과 얼마큼 자주 해당 물질에 노출되는지에 따라 결정된다. 손소독제에 든 메탄올의 함량이 매우 낮더라도 메탄올의 독성이 매우 높고 많은 시민들이 빈번히 손소독제를 사용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만큼 많은 이들이 메탄올로 인한 건강 악영향에 노출될 수 있다. 특히 어린이들은 낮은 농도에서도 어른보다 큰 영향을 받을 수 있다.

무색의 액체인 메탄올은 매우 독성이 강한 물질로 식약처는 지난해 9월 배포한 ‘손소독제 안전사용을 위한 질의응답’ 자료에서 메탄올에 오염된 손소독제를 사용할 경우 중독 위험이 있으며, 삼키는 경우 더 위험하다고 경고했다. 식약처는 이 자료에서 “메탄올에 노출되는 경우 구토, 시력 흐림, 실명, 발작, 신경계 손상 및 사망 등을 초래할 수 있다”고 밝혔다. 에탄올과 비슷한 성질을 지닌 메탄올은 다른 물질을 녹일 때 사용하는 유기용매로 자동차 워셔액, 부동액, 향수, 포름알데히드 용액, 페인트 제거제, 세제, 살균제, 소독제 및 공업용매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이용된다.

지난해 미국에서는 식품의약국(FDA)의 메탄올 성분이 확인된 손소독제 77종을 회수 조치했고, 메탄올이 든 손소독제를 마시고 최소 7명이 사망했다. 또 3명은 중태, 3명은 시력 감퇴, 1명이 영구실명하기도 했다. 국내에서는 지난해 한 가정에서 소독을 위해 메탄올 희석액을 실내에 분무했다가 가족 전체가 구토, 어지럼증을 호소해 병원으로 실려가는 사건이 발생했다. 또 2016년에는 인천의 한 사업장에서 파견노동자들이 메탄올에 노출돼 실명했다.

앞서 지난달 20일 한국소비자원은 보도자료를 통해 국내 유통되는 15종의 손소독제를 분석한 결과 메탄올이 검출되지 않았다고 밝혔지만, 당시에도 메탄올이 전혀 나오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소비자원 관계자는 경향신문과의 통화에서 “정량한계 미만의 메탄올만 검출되었기 때문에 검출되지 않았다고 밝힌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량한계란 어떤 물질에 포함된 성분의 양을 분석할 때 신뢰할 수 있는 최저의 양이나 농도다. 학계에서는 정량한계 미만으로 검출되었을 경우 신뢰성을 확보하기 어려운 수준의 낮은 수치라고 여겨 검출되지 않았다고 설명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원료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제품의 경우 같은 제품 내에서도 특정 물질의 농도가 크게 차이나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지난 5일 현재 1627명 이상의 사망자를 발생시킨 것으로 확인된 가습기살균제의 경우 유독물질 농도가 같은 제품끼리도 최대 19~32배가량 차이가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다만, 이번 손소독제에서 검출된 메탄올은 업체들이 에탄올 대신 고의로 넣은 것이 아니라 제조공정에서 생긴 불순물인 것으로 추정된다. 메탄올이 검출된 모든 제품에서 함량은 1% 미만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을지대 연구진은 논문에서 정부는 손소독제의 메탄올 함량 기준을 마련하고, 제조업체들도 메탄올이 함유되지 않도록 원료 관리를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또 연구진은 소비자들이 손소독제를 오남용하지 않도록, 특히 어린이들에게 적절한 사용방법을 지도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공공장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손 소독제 용기. 어른이 쓰기 쉽도록 대개 지면에서 1m 높이에 설치되다보니 아동들의 눈에 소독제가 들어가는 사고가 잇따르고 있다.   미국 텍사스대 제공

공공장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손 소독제 용기. 어른이 쓰기 쉽도록 대개 지면에서 1m 높이에 설치되다보니 아동들의 눈에 소독제가 들어가는 사고가 잇따르고 있다. 미국 텍사스대 제공

국내외 전문가들은 메탄올이 든 손소독제뿐 아니라 에탄올만 포함된 제품도 오남용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경고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국내에서는 빌딩이나 상점 입구, 심지어는 가정에서도 손소독제를 비치해 놓고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지만 FDA는 물과 비누를 사용할 수 없는 경우에만 사용하는 것을 권장하고 있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가 지난해 6월 배포한 메탄올 함유 손소독제 관련 주간리포트에도 알코올을 기반으로 한 손소독제의 섭취를 방지하도록 지속적으로 경고할 필요가 있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포함돼 있다.

어린이들의 경우 에탄올만 들어있는 손소독제 역시 어른의 보호하에 사용해야할 필요가 있다. 프랑스 연구진은 지난달 말 자국의 독성물질통제센터(PCC) 자료를 분석해 손 소독제에 의한 아동의 안구 손상사고 비율이 한 해 사이 7배나 늘었다고 밝혔다. 로스차일드 재단병원 등 연구진은 손 소독제에 의한 아동의 안구 손상이 늘어난 건 공공장소에 손 소독제가 비치되는 일이 증가했기 때문이라고 연구진은 분석했다. 논문에 따르면 지난해 프랑스 공공장소에서 손 소독제 때문에 아동이 안구를 다친 사례는 모두 63건이었는데, 2019년에는 한 건도 없었다.

국내에서도 지난해 6월 대구의 한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비치된 손 소독제로 인해 5세 아동이 눈에 부상을 입는 사건이 발생했다. 공공장소에서 손 소독제가 어른이 쓰기 편한 위치에 비치되는 일이 많아 이를 사용하던 아이들의 눈에 튀는 사고 위험이 있다. 손 소독제에는 에탄올이 60% 이상 들어가는데 에탄올이 안구에 접촉하면 각막의 상피가 벗겨지고, 극심한 고통을 유발한다. 적절히 대처하지 않으면 시력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

식약처는 “어린이는 소량의 손소독제를 마셔도 알코올 중독이 발생할 수 있으므로 손소독제를 어린이의 손에 닿지 않는 곳에 보관하고 어린이가 사용 시 보호자가 주의 관찰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식약처는 또한 “유아는 피부가 약하고 민감하기 때문에 알코올 제제인 일반적인 손소독제 사용 시 피부에 자극을 줄 수 있어 사용을 권장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102090600011&code=610103#csidx7bcdb17c05ce87a86783d170bb733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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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랫줄에 홍어 너는 집, 올해는 구경도 힘듭니다

[슬기로운 코로나 명절] '차례상' 대신 '언택트' 택한 사람들... 영상통화에 적응하는 시골마을 21.02.09 07:56l최종 업데이트 21.02.09 07:56l오창경(och0290) 

'가족이라도 주민등록상 거주지가 다르면 5인 이상 집합 금지', 2021년 설의 특징입니다. 감염의 위험을 줄이려면 덜 모이고 적게 모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에따라 명절 문화에도 변화가 시작되고 있습니다. 온라인으로 성묘를 하고, 영상통화로 안부를 묻고, 온라인으로 새뱃돈을 준다는데요. 전통적인 명절의 변화에 슬기롭게 대처하는 시민기자들의 목소리를 들어봅니다. [편집자말]
지난 추석 차례상 풍성한 명절 차례상이 언제 우리 곁에서 사라지고 새로운 문화가 자리잡게 될지 모르겠다.
▲ 지난 추석 차례상 풍성한 명절 차례상이 언제 우리 곁에서 사라지고 새로운 문화가 자리잡게 될지 모르겠다.
ⓒ 오창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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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 날씨는 여전히 춥다. 바람이 불어 어깨가 더 움츠러든다. 그 바람 속에 봄이 미세하게 묻어나고 있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는 말을 여기서 써먹어야 할지 잠시 망설여본다. 전염병 상황이 일상이 되어버린 지 1년을 훌쩍 넘어서더니 코로나와 함께 맞이하는 세 번째 명절을 앞두고 있다. 감염병의 확산 위기 상황에서 또 다시 맞이하는 시골 마을의 명절 분위기는 더 이상 가라앉을 바닥이 없을 정도다.

시골 마을 마당 빨랫줄에 난데없이 홍어가 걸리기 시작하면 명절이 임박했다는 징조다. 홍어는 우리 고장 제례에서는 반드시 있어야 하는 생선이다. 홍어찜은 명절이나 제례가 돌아오기 전에 미리 꾸들꾸들하게 말려놓았다가 양념을 끼얹어 제사상에 올리는 음식이다. 올해는 집집마다 담 너머로 서로 큰 홍어를 장만한 것을 자랑하듯 말리던 흔한 풍경이 보이지 않았다.

마을 사람들과 함께 나이가 들어가는 골목에 모처럼 생기가 흐르고 여인네들의 발걸음 소리가 경쾌해지는 때가 명절을 앞둔 즈음이다. 외지로 흩어졌던 자식들이 다 모여 한 상에서 밥 먹고 떠들썩하게 지내는, 1년에 몇 안 되는 날 중에 하나인 날이 다가오고 있다. 

 

며느리들은 시댁을 향한 발걸음이 무겁겠지만 시골의 부모들은 자식들에게 손수 장만한 음식들을 조금이라도 더 먹이고 싶고, 커나가는 손주들 모습을 보며 흐뭇한 시간을 보내기 위해 이날을 기다린다. 전염병의 상황이 종료되지 않는 한, 앞으로 이런 평범한 명절을 앞둔 일상을 잃어버릴 위기에 처했다.

이번 설 연휴에 거주지가 다른 가족이 5명 이상 모일 경우 방역수칙 위반에 해당돼 10만 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강도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1총괄조정관(보건복지부 차관)은 지난달 31일 "5인 이상 사적 모임 금지는 설 연휴 기간에도 예외 없이 적용한다"며 "직계 가족도 거주지가 다른 경우에는 5인 이상 모임을 가질 수 없다"고 밝혔다.

"조상님 뵙는 것보다 병원 신세 안 지는 게 더 중하지"
 
 지난 2일 부여군 홍산면 장날 풍경. 평소대로라면 대목장이 되었을 홍산장날 모습이 스산하다 못해 참담하다.
▲  지난 2일 부여군 홍산면 장날 풍경. 평소대로라면 대목장이 되었을 홍산장날 모습이 스산하다 못해 참담하다.
ⓒ 오창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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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부여군 홍산면의 홍산장을 찾아가 보았다. 코로나 팬데믹 상황 이후 시골 마을의 5일 장터는 더 빠르게 쇠락의 길을 걷고 있는 중이다. 그래도 어제까지 하품을 하던 장꾼들의 눈빛이 잠시나마 초롱초롱해지고 좌판의 과일들이 윤기가 돌기 시작하면 시골 장터에 '대목장'이 돌아오고 있다는 뜻이다.

설 대목을 앞두고 있기에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장으로 향했다. 슬픈 예감은 적중한다더니 명절 대목을 앞둔 장날 풍경은 스산하다 못해 참담했다. 시골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시그니처 이미지 중에 하나인 5일 장날 풍경이 무너지는 현장만 확인한 셈이 되었다.

외지에서 온 장사꾼들은 일찌감치 자리를 떠났고 현지 상인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지만 물건을 사려는 사람보다 장사치들이 더 많았다. IMF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고 한숨을 쉬는 상인들을 두고 사진만 찍어대는 마음이 더 안타까웠다.

단골 정육점에도 들러보았다.

"명절에는 소를 4~5마리씩 잡아도 모자랐는데 이번에는 겨우 한 마리밖에 못 잡았당께유. 아예 사람들이 안 돌아 댕겨유. 사람들이 고기 맛을 싹 잃어버렸나 봐유. 굶어 죽게 생겼슈."

정육점 사장은 그나마 자영업자로서 코로나 직격탄을 맞은 하소연을 충청도 사람 특유의 완곡함과 익살로 풀어내고 있었다. 재난 지원금이 지급됐던 지난 추석에는 고기를 사러오는 사람들이 제법 있었다. 하지만 사회적 거리두기가 강화되고 외부인들의 출입을 꺼리는 분위기 속에서 고기를 찾는 사람들도 줄어들고 있다고 했다.

"지금이 어느 때인데 애들을 내려오라고 한디야. 즈이덜이 온다고 해도 우리가 못 오게 했당게. 괜히 동네사람들꺼정 민폐를 끼치는 일일랑 아예 허덜 말어야지. 우리 애들이 무증상 확진자일지도 모르는 일이잖여."
 
큰사진보기IMF 때에도 홍산 장날은 이렇지 않았다. 전염병의 상황 속에  시골 5일장터는  점점 쇠락의 길을 걷고 있다.
▲ IMF 때에도 홍산 장날은 이렇지 않았다. 전염병의 상황 속에 시골 5일장터는 점점 쇠락의 길을 걷고 있다.
ⓒ 오창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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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군은 17번째 확진자 이후 확진자 발생이 주춤한 상태이다. 군의 철저한 방역도 한몫했겠지만 군민들의 방역 의식이 높다는 뜻이다. 그만큼 외출도 삼가고 외지인들에 대한 경각심도 높아 자발적으로 자녀들의 방문을 일찌감치 자제시키고 있는 집들이 많았다.

코로나 초기에는 보육시설의 휴원으로 부모님 댁으로 아이들을 내려보내서 시골마을이 모처럼 아이들로 넘쳐나는 보기 드문 현상이 벌어지기도 했었다. 재택근무가 정착된 최근, 시골은 아이들은커녕 유령도 살지 않을 것 같은 마을로 변해가고 있는 것 같다.

"조상님 뵙는 일이 중하기는 허지만 혹시라도 전염병에 걸려서 식구대로 격리되고 병원 신세를 지거나 하는 것보다 더 중한 일이 어디 있겠어."

우리 동네에서 다복하기로 소문이 난 창녕 조씨 종갓집 종손도 이런 유연한 사고로 전염병의 위기에 대처하고 있었다.

동네 사람들은 이미 설 명절의 차례상 마련도 대폭 축소하고 자녀들의 고향 방문은 5인 이상 집합금지 방역 수칙이 나오기 전부터 막고 있었다. 노령 인구가 많은 시골에서 전염병의 유행은 치명적이었다. 부여군과 이웃한 서천군에서는 벌써 74번째 확진자가 발생한 나비 효과인지 부여 군민들은 방역의식이 더 투철해진 것 같았다.

명절을 외지에서 오는 자녀들이 없이 지내기로 일찌감치 결정한 집들이 많아지자 명절을 앞두고 가래떡을 수십 가마니씩 빼던 떡집들이 유례 없던 불황을 맞이했다. 그동안 명절 특수를 누렸던 모든 업종들의 매출이 주춤해지고 장터의 대목장 풍경이 사라진 것이었다.

시골 부모님도 '영통'으로 차례 지내요 

"우리 캠핑장은 명절 연휴기간에 예약이 다 끝났어요. 명절 연휴에 해외로 떠나던 사람들이 캠핑장으로 눈을 돌리고 있는 것 같아요."

옆 동네에서 캠핑장을 운영하는 지인에게는 이런 소식을 들었다. 명절에 여러 가지 사정으로 고향을 찾지 못하는 사람들이 캠핑장을 찾는다고 하더니 하늘 길이 막히자 낚시 등 혼자 즐기는 레저 산업은 명절 특수를 누릴 모양이다. 가라앉는 직종이 있으면 새롭게 부상하는 업종도 생기기 마련이다. 코로나 팬데믹은 이미 시골마을의 명절 풍속도는 물론 사회 전반에 깊은 영향을 끼치고 있는 중이다.
 
큰사진보기 고향에 내려오지 못하는 상황을 자주 영상 통화를 통해 해소하다 보니 시골 사람들의 스마트폰 사용 범위가 날로 확장되는 중이다.
▲  고향에 내려오지 못하는 상황을 자주 영상 통화를 통해 해소하다 보니 시골 사람들의 스마트폰 사용 범위가 날로 확장되는 중이다.
ⓒ 오창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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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관찰한 시골마을의 코로나 시대의 새 풍속도 중에 하나는 시골 마을 사람들의 영상통화 사용이 급속도로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음식점 등에서 밥을 먹다가 자녀들의 영상통화 요청을 받기도 하고 새롭고 맛있는 음식을 발견하면 자녀들에게 영상 통화를 거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됐다. 이런 추세라면 시골마을에서 차례를 지내는 모습도 비대면 앱을 사용하거나 영상통화로 중계를 할 수 있지 않을까.

기기의 급격한 발달에서 소외되었던 계층인 시골 사람들이 코로나 팬데믹 세상이 불러온 비대면 세상에 오히려 빨리 적응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런 현상은 씨족공동체 문화와 제례를 통해 끈끈하게 이어져 내려온 가족 문화가 바탕이 되었기에 가능한 것이다.

"괜찮아유. 우리에겐 영상 통화가 있으니께. 우리 새끼들이 보고 싶을 때는 이 손 안에서 다 볼 수 있는데 뭔 걱정이래유. 코로나가 빨리 끝나는 게 우선이잖어유."

딸에게 영상 통화하는 법을 배운 지인은 코로나 상황 이후 친정에 자주 오지 못하는 자녀들과 수시로 영상 통화를 하는 것으로 안부를 묻고 가족애를 달래고 있다고 한다. 전염병의 시대가 시골마을 사람들을 빠르게 스마트한 세상으로 빠져들게 하는 의외의 효과를 거두게 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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