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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정 첫 법관 탄핵, 사법부 개혁 상징? 치욕?

 

[아침신문 솎아보기] 첫 법관 탄핵과 대법원장 녹취록, 신문들 ‘치욕의 날’
도심 공공개발 47만호, 이익환수 면제 등 ‘당근’…‘제2뉴타운?’
 
 

 

국회가 ‘사법농단’에 연루된 임성근 부산고법 부장판사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어제(4일) 여당 주도로 가결했다. 헌정사상 첫 법관 탄핵이다. 이날 의결 직전에 김명수 대법원장이 임 부장판사 사표를 반려하며 ‘탄핵’ 기류를 언급한 녹취록이 공개되며 또다른 파장을 낳고 있다. 오늘 아침신문들이 이 사안을 1면에 다룬 가운데, 신문 강조점은 법관 첫 탄핵의 의미와 김 대법원장의 처신 사이에서 갈렸다.

국회는 출석 의원 288명 중 179명 찬성으로 탄핵소추안을 통과시켰다. 야권은 ‘법원 길들이기’라고 비판했다. 임 판사의 최종 탄핵 여부는 헌법재판소가 결정한다.

▲5일자 아침신문 1면 갈무리
▲5일자 아침신문 1면 갈무리

‘지연된 정의’ 또는 ‘치욕의 날’

임 부장판사는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 시절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의 박근혜 전 대통령 명예훼손 사건에 개입해 재판장인 이동근 부장판사에게 판결문 수정을 지시했다. 그러나 1심은 임 부장판사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법관 독립 침해는 맞지만 직권남용으로 처벌할 수 없다는 논리다.

앞서 임 부장판사는 지난해 5월 건강상의 이유로 사표를 냈으나 김 대법원장이 국회의 탄핵 논의를 막는다는 비난을 받을 수 있다며 사표를 반려했다고 폭로했다. 김 대법원장은 전날 ‘탄핵’을 언급하지 않았다고 반박했으나 임 판사가 “지금 뭐 탄핵하자고 저렇게 설치고 있는데 내가 사표 수리했다 하면 국회에서 무슨 얘기를 듣겠냐 말이야”라고 말한 녹취록을 공개했다. 김 대법원장은 4일 “약 9개월 전의 불분명한 기억에 의존해 답변한 일에 대하여 송구하다”고 했다.

▲5일 경향신문 1면
▲5일 경향신문 1면
▲5일 서울신문 4면
▲5일 서울신문 4면

한국일보와 중앙일보(1면)은 김 대법원장이 사법농단 후속 조치에는 미온적이면서 ‘여당 눈치보기’ 태도를 드러낸 데 초점을 뒀다.

한국일보는 “정치권 눈치 ‘기억 안나’ 김 리더십 추락…‘물타기’ 임성근 비판도” 기사에서 “사법농단 사태의 책임 문책엔 소극적이었던 그가 정치권 움직임에만 신경 썼다는 ‘민낯’이 드러난 셈”이라며 “임 부장판사 역시 ‘법관 신분’을 의심케할 정도로 대법원장의 대화를 몰래 녹음한 데 이어 자신에 대한 탄핵소추안 표결을 앞두고 이를 공개해 사태 본질을 흐리려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고 했다.

▲5일 한국일보 3면
▲5일 한국일보 3면

한국일보는 사설에서 “헌법재판소 결정이 남았지만 국회에서 처음으로 법관 탄핵안이 통과됐다는 것만으로도 사법부로는 치욕스러운 일이다. 이 역시 사법농단 사건 당시 김 대법원장이 판사 징계 등의 조치를 방기한 책임이 없지 않다”고 했다. 김명수 대법원장의 대법원이 양승태 사법부의 사법농단에 가벼운 징계를 내리고 사법농단 연루 판사 대부분이 확정 판결이 나기도 전에 재판 업무에 복귀한 점 등을 가리킨 말이다.

중앙일보는 이날 권석천 칼럼니스트의 해설을 “대한민국 대법원장, 그 참담한 수준”이라는 제목으로 1면 머리에 배치했다. 권석천 칼럼니스트는 김 대법원장의 녹취록 발언에 “지난해 4·15 총선에서 여당이 압승한 직후 ‘여러 영향’과 ‘정치적 상황’을 저울질하는 듯한 태도”라며 “그뿐인가. 대법원장은 탄핵 자체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면서도 ‘오늘 그냥 수리해 버리면 탄핵 얘기를 못 하잖아. 그런 비난을 받는 것은 굉장히 적절하지 않아’라고 했다. 법 원칙을 고민하기보다 입법부, 특히 여권의 눈치 보기에 더 신경을 쓰는 모습”이라고 했다.

▲5일 중앙일보 1면 머리기사
▲5일 중앙일보 1면 머리기사

권 칼럼니스트는 “김 대법원장은 취임 후 양승태 대법원장 재임 시절의 ‘사법농단’, 즉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에 대해 책임지고 정리하는 자세를 보이지 않았다. 그 결과 법원 내부에서 1차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기회를 놓치고, ‘검찰 수사’라는 거친 손에 전적으로 맡겨야 했다”며 “지금 국민이 목격하고 있는 것은 참담하게도 30년씩 재판을 했다는 대법원장과 부장판사의 수준”이라고 했다.

중앙일보는 사설에선 “삼권분립 훼손하고 국민 속인 대법원장 사퇴해야”에서 “(임 판사가 받는) 의혹은 비록 1심 무죄를 받았지만 비난 받을 행위다. 만약 탄핵을 추진한다면 무죄 판결 이후라도 면밀하게 절차를 밟았어야 옳다”며 “하지만 이번 탄핵안은 임 판사의 자진 사퇴를 앞두고 급작스럽게 추진됐다”고 했다. 그러면서 “최근 윤석열 검찰총장 징계 무효화 결정과 최강욱 열린민주당 대표 유죄 판결 등 정권의 심기를 건드리는 판단을 내놓은 법원을 길들이려는 취지라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라고 했다.

서울신문과 조선일보, 한국일보는 이날 1면에 ‘치욕의 날’이라는 표현을 썼다. 서울신문은 “탄핵 표결 전 여당 일각에서도 ‘과도한 힘자랑’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다”며 “임 부장판사가 임기 말을 앞둔 상태에서 법관 탄핵을 밀어붙였다는 점에서 헌법재판소가 이후 탄핵심판 청구를 각하 또는 기각하면 민주당이 정치적 역풍을 맞게 될 것”이라고 풀이했다. 박주민 민주당 의원은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판결을 정치 거래 대상으로 삼으려던 사람에 대한 단죄다. 사법의 정치화가 아닌 그 반대”라고 했다.

경향신문과 한겨레는 법관 탄핵소추안 가결에 대해 ‘뒤늦었지만 사법부 신뢰를 세우는 데 상징적 의미가 있다’고 풀이했다. 경향신문은 “여당, 사법개혁 신호탄…개인 탄핵 머물 땐 개혁 본질 퇴색” 기사에서 “이번 법관 탄핵소추로 사법개혁의 방향이 흔들려서는 안 된다”며 “법관 단 한 명에 대한 탄핵이 사법개혁으로 인식된다면 ‘사법행정권 남용’을 주도한 법원행정처 등 제도 개혁의 본질이 희석될 수 있다”고 했다. “뒤늦은 탄핵 추진으로 탄핵의 정당성이 빛바랬다”고도 했다.

▲5일 경향신문 4면
▲5일 경향신문 4면

경향신문은 이날 사법농단에 연루돼 재판에 넘겨진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이 1심에 이어 항소심에서도 무죄를 선고 받았다는 기사를 나란히 배치했다. 유 전 연구관은 다른 연구관에게 전직 대통령 박근혜씨의 ‘비선 의료진’ 특허소송 관련 자료를 문건으로 만들도록 한 뒤 청와대로 유출한 혐의를 받았다.

경향신문은 사설에서 “김명수 대법원장과 임 부장판사 간 사의 표명과 탄핵 추진을 둘러싼 공방으로 탄핵의 본질이 희석되는 점은 유감스럽다”고 했다. 경향신문은 “김 대법원장이 당시 임 부장판사의 사표를 반려한 것은 문제시할 일이 아니다. 징계 절차를 위해 인사권자가 해야 할 일이다. 김 대법원장이 사의를 표명하는 임 부장판사에게 국회 탄핵 기류를 언급한 것은 사법부 수장으로서 부적절한 언행”이라고 했다.

▲5일 경향신문 4면
▲5일 경향신문 4면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등은 사법농단보다 김 대법원장의 거짓 해명에 무게를 뒀다. 조선일보는 이날 김현 전 대한변호사협회장과 강일원 전 헌법재판관, 하창우 전 대한변협 회장, A 전 법무부 장관 등을 인터뷰해 김 대법원장의 ‘탄핵’ 언급에 대해 “안타까운 심정” “정권 눈치보기” “사법부 독립성 무너뜨렸다” 는 발언을 전했다.

해설 기사에선 “다수 법조인들은 ‘헌재 결정 전에 임 부장판사가 퇴직하면 헌재로선 탄핵 심판을 각하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며 “헌재 공보관 출신 배보윤 변호사는 ‘법률 취지상 탄핵의 주 목적은 공무원을 공직에서 추방하는 것’이라며 ‘퇴직 시엔 기본적 탄핵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고 보고 각하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했다”고 했다.

▲5일 조선일보 1면
▲5일 조선일보 1면

사설에선 “지금까지 이른바 ‘사법 농단’에 연루된 판사 14명 중 6명은 1심에서 무죄를 받았고, 그중 3명은 2심에서도 무죄였다. 나머지는 1심 재판이 진행 중이지만 유죄를 선고받은 사람이 1명도 없다. 처음부터 정치적 억지 소동”이라며 “민주당은 작년 김경수 경남지사가 드루킹 여론 조작으로 유죄판결을 받자 ‘판사 탄핵’을 본격적으로 외쳤다. 그리고 윤석열 검찰총장 징계 중지, 조국 전 장관 아내 정경심씨 유죄판결, 최강욱 의원직 상실형 등이 이어지자 실제 행동에 옮긴 것”이라고 했다.

도심 공공개발 47만호, 층수 높이고 이익환수 면제

정부가 4일 서울 32만가구를 포함해 전국에 총 83만가구를 공급하는 주택물량 공세 정책을 발표했다. 대도시권 노후 도심에 50만여가구를 공급한다. 공공이 주도하는 개발에는 재건축초과이익부담금과 2년 거주 의무 등을 아예 면제하고 용적률을 완화하는 등의 ‘당근’을 부여하기로 했다.

정부가 오는 2025년까지 확보하겠다고 밝힌 83만 6000가구는 연간 전국 주택 공급량의 2배에 달한다. 이 가운데 절반을 웃도는 47만2000호가량을 공공이 노후 도심을 직접 개발해 공공주택으로 공급한다. 토지주나 민간기업, 지자체가 제안하면 한국토지주택공사(LH)와 서울도시주택공사(SH) 같은 공공기관이 부지를 확보해 개발하는 방식이다.

▲5일 한겨레 1면 머리기사
▲5일 한겨레 1면 머리기사

한국일보는 “그간 규제 일변도에서 방향을 튼 공급 정책에 시장은 일단 반색하는 분위기지만 민간 참여가 전제돼야 가능한 목표라는 불안 요인도 여전하다”고 했다. 한겨레는 “도심에 공공주택이 대규모 공급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민간 주도 도심 개발 방식을 공공 주도로 전환해 주택시장의 공공성을 제고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고 했다.

경향신문은 “서울 32만가구 동시다발 개발…‘제2 뉴타운 광풍’ 우려” 기사에서 “서울에 32만가구가 넘는 대규모 개발사업이 펼쳐지면 집값 상승이라는 부작용이 따를 수 있다. ‘신속 공급’에 방점이 찍히면서 원주민 및 세입자들이 주거지를 떠나야 할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2002년 뉴타운 사업은 단기간 내 26개에 이르는 지구를 지정하며 집값 폭등을 낳았다. 경향신문은 “정부는 이런 부작용을 막기 위해 규제를 완화하는 대신, 개발이익을 생활 사회간접자본(SOC) 확충 등으로 공유하고 투기수요 차단 대책을 포함했다. 그러나 공공 정비사업이 시장에서 ‘개발 호재’로 받아들여지는 상황에서 도심 내 30만가구 공급은 과거와 비슷한 문제를 되풀이할 위험이 있다”고 했다.

실제 정부가 지난달 서울지역 공공재개발 사업 후보지 8곳을 발표한 뒤 빌라 가격 상승률이 10년 만에 최고치를 찍었다.

▲5일 경향신문 3면
▲5일 경향신문 3면

경향신문은 개발지역 세입자의 주거불안과 용적률 상향으로 인한 과밀화 우려도 문제라고 했다. 정부는 순환정비 형식으로 개발에 나서고, 세입자를 대상으로 인근 매입임대나 수도권 공공임대 주택을 임시 거주지로 제공하겠다는 방침이다. 전체 공급물량 70~80%는 공공분양, 나머지는 공공자가·공공임대 혼합으로 공급하기로 해 세입자 지원 물량은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주민 동의율은 3분의2로 낮아졌고, 공공재 성격이 있는 용적률을 높이면서 생활기반 시설 부족이나 교통 문제가 나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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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권 단일화 관심 없다, 서울을 가능성의 도시로"

[인터뷰] '첫 여성 서울시장' 꿈꾸는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21.02.05 07:12l최종 업데이트 21.02.05 07:56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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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시장 보궐선거 출마를 선언한 더불어민주당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3일 오후 <오마이뉴스>와 인터뷰에서 포부를 밝히고 있다. ⓒ 남소연

웃고, 차분하고, 단호했다가 다시 웃고, 진지하고, 적극적이고... 1시간가량의 인터뷰 내내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의 표정은 변화무쌍했다. 다양한 표정의 원천은 '서울'이라는 도시를 그리는 꿈 때문이었다.

3일 오후 국회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난 박영선 전 장관 역시 "여성이 행복한 서울시정이 이번 시장의 사명감"이라며 "최초의 여성 시장을 만드는 것 자체가 하나의 상징이 된다. 서울이 가능성의 도시가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 전 장관이 말하는 '가능성의 도시, 서울'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는 "지금은 비전을 갖고 싸워야 한다"며 '21분 컴팩트 도시'를 제안한다. 

현재 서울은 종로·여의도는 사무지구로, 명동·신촌 등은 상업지구로, 창동·은평 등은 주거지구(베드타운)로 나뉘어 있다. 박 전 장관은 이런 구분을 허물어 21분 생활권 안에서 일·생활·여가까지 가능하도록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또 그는 생활권마다 주거공간과 스마트팜, 공원 등이 한 곳에 모여 있는 '수직정원도시'를 만들어 서울의 새로운 브랜드로 키워내겠다고 자신했다.

보궐선거 책임에, 집권 5년 차 상황이라 더불어민주당 내에서도 이번 선거가 쉽지 않은 싸움이라는 전망이 대다수다. 하지만 박 전 장관은 "여론조사를 보면 아직 (지지) 후보를 결정하지 못했다는 유보층이 굉장히 많다"며 "저는 그들이 공감할 수 있는 정책, '좋네~'라며 신뢰할 수 있는 정책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같은 맥락에서 야권이 주장하는 '여권 심판론'도 "낡은 구도"라고 평가했다. 국민의힘과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간 단일화 논의를 바라보는 시각도 비슷했다.

"저는 별로 관심 없다. 지금 국민의힘과 안철수 후보의 단일화는 시민들이 원하는 단일화가 아니라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을 위한 단일화다. 그런 단일화는 사실 오래가지 못한다. 철학이 다르다."

"이번 시장의 사명감이 '여성 행복 서울'... 제가 상징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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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시장 보궐선거 출마를 선언한 더불어민주당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3일 오후 <오마이뉴스>와 인터뷰에서 포부를 밝히고 있다. ⓒ 남소연
   
- 오랫동안 고심하다가 등판했다.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에게 직접 서울시장 선거 출마를 권유했다고도 들었는데, 고민을 많이 한 이유가 궁금하다.

"중기부 상황 때문이었다. 설 전에 버팀목 자금을 차질없이 지급해야 했고, 코로나19 백신 접종용 주사기 공장을 찾아서 매달 1000만 개씩 생산할 수 있는 '스마트 공장'을 만드는 일이 다급했다. 또 미국 제약회사 모더나의 바이오혁신공장 투자 초기작업을 진행했다. 그러다보니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는 (다른) 후보가 있다면, 제가 중기부 장관을 계속 하는 것도 생각했다. 

하지만 1월 초 (정당 지지율) 여론조사 같은 게 나빠졌다. 또 김동연 부총리가 사회 혁신은 많이 생각해봤는데, 서울 문제로 국한해선 그렇지 않다는 점을 (스스로) 마음에 걸려하는 것 같았다. 이런 상황들이 겹치면서 '더 이상 다른 선택은 없겠구나' 싶었다. 제가 잘못하다가는 (김 부총리한테 선거에) 나가시라고 했다가 미안해지는 일이 있을 수도 있겠더라. 결국 제가 당을 위해 출마하기로 했다." 

- 박원순 시장의 갑작스러운 유고로 치르는 선거다. 다른 인터뷰에서는 '피해자에게 사과가 필요하면 더 해야 한다'고도 했고, 일각에선 이번 선거가 (성인지 감수성이 강조되는) '젠더 선거'라며 여성 후보가 강점이 있다고도 말한다. 동의하는가.

"제가 만 22살부터 지금까지 직장생활을 했는데, 마음의 상처가 있으면서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생활하는 여성이 아직도 많다고 생각한다. 그 자체가 외로움이고, 마음의 고통이다. 다시는 이런 일이 있어선 안 되고, 또 '여성이 행복한 서울'을 만드는 게 이번 시장의 사명감 중 하나라고 본다. 그럼 그 사명감을 무엇으로 표현할까? 최초의 여성 시장을 만드는 것 자체가 하나의 상징이 될 수 있지 않을까."

- 선거판의 또 다른 프레임이 야당에서 제기하는 '여권 심판론'이다.

"심판론 자체가 굉장히 낡은 구도다. 지금은 누가 누구를 심판할 때가 아니고 거의 100년마다 한 번씩 찾아오는 기술 대전환 시대, 사회변혁의 대전환 시대다. 비전을 갖고 싸워야 한다. 100년 전 마차에서 자동차로 기술이 바뀌면서 도시 자체가 자동차 중심 도시가 됐다. 지금은 자동차가 자율주행차로 변화하는 시대다. 또 5년 안에 플라잉카 시대가 온다고 한다. 이 대변혁을 준비하는 것이 지금 대한민국과 수도 서울을 위해 해야 할 일이다. 심판한다고 무엇이 되나.

중기부 장관 하면서 2020년도 예산심사 때 스마트 상점 예산을 많이 반영했다. 그런데 당시 나경원 (옛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시절인데, 야당에서 예산의 절반 이상을 깎았다. 이유를 물었더니 '소상공인들이 무슨 스마트 상점을 하냐'더라. 또 '선거가 있으니 소상공인에게 예산을 주면 안 된다'고 했다. 이것과 '여권 심판론'이 뭐가 다를까. 말로는 소상공인을 위한다면서 실질적인 것은 하지 않는다. (여권 심판론도) 프레임 자체가 낡고 비전이 없지 않은가. 맨날 옛날 얘기만 하고, 뻑하면 색깔론, 그건 아니지 않은가. 1980년대식이지 않나."

생활과 미래가 만나는 21분 도시 서울... "이거,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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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시장 보궐선거 출마를 선언한 더불어민주당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3일 오후 <오마이뉴스>와 인터뷰에서 포부를 밝히고 있다. ⓒ 남소연
 
- 서울시정 얘기로 들어가면, 어쨌든 박원순 시장이 오랫동안 일했다. 이어갈 점과 개선할 점들이 있을 텐데.

"박원순 시장은 생활형 시장이었다. 복지문제나 따릉이 등 생활에 밀착된, 아기자기한 정책들을 굉장히 많이 펼쳤고 시민들이 호응했다. 하지만 3기에서는 좀 더 미래 비전을 제시하는 대형 프로젝트를 펼치려고 하다가 거기서 멈췄다. 지금은 대전환 시기이고, 그게 필요하다. 제가 이를 관통하는 여섯 글자, '서울시 대전환'을 출마의 변으로 삼은 이유다. 그럼 어떻게? '21분 컴팩트 도시'로 하겠다."

- 미래 비전이라는 개선할 점, 생활형이라는 이어갈 점이 연결되는 걸 '21분 컴팩트 도시'로 이해하면 될까.

"저는 서울을 21개의 거점으로 나눠서 재편하는 것을 구상하고 있다. 사람이 21분 걸으면 약 2km다. 이 기준으로 서울을 나눠보니 21개의 핵을 만들면 되겠더라. 박원순 시장 시절에 '10분 동네' 사업을 했는데 이건 너무 많은 핵을 만들어야 해서 확산이 잘 안 됐다. 그런데 '21분 도시'를 만들면 이 안에 병원, 일자리, 집도 있고 출퇴근, 통학, 여가생활 등이 다 해결된다. 이 다핵화가 결국 환경문제를 해결하고, 부동산도 해결하고, 소상공인 상권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

여기에 하나 더, '파리 하면 에펠탑' 같은 도시의 상징을 무엇으로 할까? 바로 '수직정원도시(Vertical garden city)'다. 하늘을 향해서 빌딩을 세우고, 거길 돌면서 올라가는 동안 운동도 하고, 1인 가구 또는 2인 가구가 살고, 스마트팜도 만들면 어떨까? 나무도 심으면 5천 그루 정도 들어간다. 탄소제로로 가는 단추도 채우는 셈이다. 이걸 서울 곳곳에다 만들어서 '서울 하면 수직정원도시'로 브랜드화하고 싶다."

- 제법 오랜 시간 구상한 내용 같은데.

"저만의 아이디어는 아니다. 다보스 포럼에서 만난 한국인 건축가의 구상이었다. 이분이 수직정원도시로 바람길을 만들어서 서울의 공기를 바꾸고 싶은데, (여러 곳에서) 현실성이 없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했다. 제가 여기에 주거공간을 넣어보자, 스마트팜을 넣어보자 아이디어를 내서 완성된 형태가 지금 이 그림이다. 저는 이거, 가능성 있다고 본다. 

오늘(3일) 서울시 환경미화원 노조 가서 설명드렸더니 눈이 반짝반짝 빛나더라. 도로 청소하는 분들인데, 미세먼지가 없어지잖나. 본인들 작업환경과 직결되는 문제다. 또 '무주택자 대상으로 토지임대부 방식으로 평당 1000만 원씩 2억 원에 공공 분양할 테니 들어와서 사세요'라고 했더니 다들 좋아했다. 

누군가는 화려하다는데, 아니 서민은 화려한 곳 살면 안 되나? 저는 디자인도 젊은 분들 좋아하는 형태로 충분히 할 수 있다고 본다. 물론 건축비는 좀 더 들어간다. 하지만 그 비용으로 거기 사람들에게 즐거움, 산뜻함을 주면서 얻는 가치가 훨씬 크다. 즐거운 도시가 성공한다."

- 미래 비전말고 당장 시급한 문제가 코로나 상황이다. 최근 정치권에서 소상공인 피해보상 문제가 다뤄지고 있는데, 서울시장 후보 중에서도 우상호 의원은 당선되자마자 100만 원씩 지급, 나경원 전 의원은 초저금리의 '숨통트임론' 공약을 내놨다. 박영선만의 대책은 무엇인가.

"제가 왜 그렇게 얘기를 안 하냐면, 빅데이터에 답이 있다. 지난해 전국민 재난지원금을 할 당시 소상공인 매출이 (평소의) 60% 밑으로 떨어졌다. 8.15 집회 후 새희망 자금을 지급했을 때는 75%선이었고. 그걸 재난지원금, 대한민국 동행세일 등으로 95%까지 회복했는데 (3차 대유행으로) 75~80%까지 떨어졌다. 저는 이 정도 선에서는 선별지급이 맞고, 60%대까지 떨어지면 보편지급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책은 데이터를 보고 하면 된다. 구호처럼 외친다고 되지 않는다.

또 어제는 (코로나 이후를 대비한) 소상공인 구독경제 구축 공약을 발표했다. 시민들은 싸게 구입하고, 소상공인은 안정적인 매출을 확보한다. 꽃배달, 반찬, 밀키트 등 다양한 구독경제가 가능하다. 우리집은 세탁물 서비스를 한 달에 일정금액 내면 와이셔츠 몇 벌씩 해주는 구독경제를 이용하고 있다. 굉장히 편하다. 또 소상공인들은 배달이나 1인가구 맞춤형 포장 등을 하려고 해도 힘들다. 공유식품공장, 배송 등 플랫폼을 시에서 구축, 생태계를 만들려고 한다."

- '여성 시장'이란 상징성말고 어떤 성평등 공약을 고민하고 있나.

"제가 처음으로 여성 시장이 된다면, 서울도 가능성의 도시가 된다. 여성들이 꿈꾸면 현실이 된다는. 또 그걸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자산 2조 원 이상 주권상장법인의 이사회 전원을 특정 성별로 구성하지 않도록 한 자본시장법 개정안처럼 서울시 각 분야에서도 (일종의 할당제를 운영해) 여성 리더가 많이 나오게끔 해야 한다. 그렇게 될 수 있다."

"저처럼 선명한 사람, 재벌·검찰개혁 이룬 사람 있나"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한 더불어민주당 소속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29일 서울 종로구 전국 특산물 지역상생 거점공간인 상생상회에서 시장바구니를 들고 농산물을 구매하고 있다.
▲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한 더불어민주당 소속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29일 서울 종로구 전국 특산물 지역상생 거점공간인 상생상회에서 시장바구니를 들고 농산물을 구매하고 있다. ⓒ 국회사진취재단
 
- 당내 경선부터 치러야 한다. 한 인터뷰에선 "원조 친문"이라고도 했는데, '친문 경쟁'이 지나친 것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

"그건 제가 질문에, 있는 그대로 사실을 얘기한 건데(웃음). 저는 2012년 대선과 2017년 대선 때 문재인 후보를 모시고 다녔고, 또 국무위원으로서 문재인 대통령을 보좌한 유일한 후보다."

- 경쟁자 우상호 후보는 개혁·진보 성향을 강조하는 반면 박 후보는 '더 품이 큰 민주당'을 말하고 있다. 2일 "금태섭 전 의원과 대화하고 싶다"는 것도 같은 맥락인데, '확장성'을 '보수화'로 보는 시각도 있다. 일부 지지자들은 당이 더 선명해져야 한다고 요구하고.

"저처럼 개혁에 선명한 사람이 있을까요? 그러니까 선명하게 개혁하면서 품을 수 있으면, 제일 좋다. 제가 금산분리법 통과시키고, 경찰에 수사개시권 부여하고, '경찰은 검사의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는 법조문에서 '명령, 복종'을 뺀 사람이다. 이렇게 확실하게 재벌개혁, 검찰개혁 이룬 사람이 많지 않을 것이다. 저는 그런 실적이 있는 사람이다. 

또 민주당 출신의 어떤 후보와 대화하는 건 할 수 있지 않은가? 예를 들면 안철수 후보는 민주당 출신은 아니다. 민주당에 잠깐 놀러왔던 분이다. 김종인 위원장도 아니다. 그분도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위해 때때로 이 집 저 집 방문하는 분이지, 누가 그분을 민주당 출신이라고 얘기할까? 하지만 조정훈 의원은 민주당 출신이라고 생각한다. 2016년에 입당도 했고, 세계은행 근무할 때부터 알았다. 기본소득에 관한 의견도 교환했다."

- '21분 컴팩트 도시' 같은 대형 프로젝트를 하려면 적어도 5년 이상 필요하지 않을까.

"서울 전체를 하려면 그렇다. 하지만 여의도를 하는 건 1년 남짓이면 된다. 이미 공원이 있고, 주변 도로 막고, 지하도로 올라오는 차선을 조정하면 된다."

- 그게 되고 나면, 2022년 지방선거는 안 나갈 수도 있다는 이야기인가.

"나간다(웃음). 이번 시장은 5년짜리 시장이다."

- 지난 1일 민주당 국민면접에서 '무티(Mutti·독일어로 엄마) 리더십'을 얘기하기도 했는데, 여성 리더십 중 롤모델을 꼽는다면?

"제가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를 무척 좋아한다. 2017년 12월에 독일에서 만났는데 당시 메르켈 총리 보좌진들이 '다음번 서울 시장이 될 확률이 높다' 이렇게 써줬나 봐요. 메르켈 총리가 저를 보자마자 '넥스트 메이어, 우먼 파워(Next mayor, Women power)!'라고. 그분이 우먼 파워를 굉장히 중요시 여겼다. 그때 참 많은 걸 배웠다. 굉장히 따뜻한 사람이었다. 처음 만났는데도 마치 오랫동안 만난 사람처럼 대해 주더라. '아 저게 메르켈 총리가 롱런하게 했던 무티 리더십이구나'를 많이 느꼈다."

- 한국의 메르켈이 되겠다?

"글쎄, 그건 저도 잘 모르겠네요(웃음)."
 
와 인터뷰에서 포부를 밝히고 있다. " style="border: 0px; max-width: 970px;">
▲ 서울시장 보궐선거 출마를 선언한 더불어민주당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3일 오후 <오마이뉴스>와 인터뷰에서 포부를 밝히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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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근 탄핵은 정권과 대법원장 합작’이란 국민의힘 논리가 무지한 것인 이유

강경훈 기자 qa@vop.co.kr
발행 2021-02-04 18:40:43
수정 2021-02-05 08:2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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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
국민의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정의철 기자/공동취재사진 
 
사법농단’ 연루자인 임성근 부산고법 부장판사 탄핵 절차가 진행되자 국민의힘은 김명수 대법원장 사퇴론을 꺼내 들며 전방위적인 맞불을 놓았다. 임 부장판사 탄핵이 문재인 정권 차원에서 조직적으로 이뤄지는 것이며, 김 대법원장이 지난해 임 부장판사의 사표를 반려하면서 정권의 탄핵 기획에 편승해 사법부 독립성과 정치적 중립성을 위반했다는 것이 국민의힘이 내세우는 핵심 논리다.

국민의힘은 애초 ‘작년 4.15 총선에서 부정이 발생했고, 김 대법원장이 이와 관련해 넘겨진 재판을 고의적으로 지연시키고 있다’는 주장에 기초해 김 대법원장 탄핵 및 사퇴론을 폈다. 하지만 부정선거 프레임이 여론의 지지를 받지 못하자, 탄핵 심판대에 오른 임 부장판사를 발판 삼은 공세로 전환했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4일 오전 비대위 회의에서 “김 대법원장은 취임 후 정권 하수인 노릇을 하며 무려 100명 넘는 판사를 검찰 조사로 넘겼고, 안타깝게도 80여명 판사들이 법복을 벗었다”며 “이후에도 김 대법원장은 정권의 판사 길들이기에 비겁한 침묵으로 일관하고, 임 부장판사의 사표 수리를 하지 않으며 후배를 탄핵의 골로 떠미는 모습까지 보였다”고 말했다.

김기현 국민의힘 의원도 이날 오후 임 부장판사 탄핵안 본회의 표결을 앞두고 의사진행 발언에서 “김 대법원장은 ‘사표를 수리하면 국회에서 탄핵 논의를 할 수 없게 돼 비난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며 “임 판사를 국회 탄핵소추에 희생 제물로 넘겨주기로 ‘탄핵거래’를 한 것이라는 논란에 휩싸여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국민의힘 논리는 임 부장판사 탄핵안에 대한 더불어민주당 지도부의 모호한 태도나 김 대법원장이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벌어진 사법농단 문제와 관련해 보여온 보수적이고 조직중심주의적 행보, 임 부장판사와의 대화에서 탄핵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드러낸 것에 비춰봤을 때 상황 인식이 결여된 ‘무지한’ 주장에 가깝다.

 

정부는 무대응 원칙에 여당 지도부는 당론 채택도 못했는데 ‘탄핵 거래’라니

우선 민주당 지도부는 이탄희 의원 등의 탄핵 주장에 다소 회의적인 입장이었고, 문재인 정부 역시 탄핵과 관련한 별도의 공식 입장을 내놓은 적이 없다.

정부가 판사 탄핵과 관련해 입장을 보이지 않은 건 삼권분립 원칙을 훼손할 수 있다는 원론적인 기조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이는 애초 문제의 시발점이었던 사법농단 사태를 대한 태도와도 동일하다.

‘탄핵소추’를 제기할 권한이 있는 민주당의 경우, 오히려 지도부가 탄핵안에 회의적이었다. 이는 사법농단 사태에서 드러난 고법 부장판사 등 고참판사 중심 법관 사회 전반의 조직보신주의적 태도 등을 고려했을 때 자칫 사법부와의 갈등으로 비화될 수 있는 상황을 우려했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검찰개혁과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의 지휘권 발동에 대한 윤석열 검찰총장의 저항 국면에서 추 전 장관과 윤 총장을 필두로 한 검찰 조직 간 갈등 과정에 대중들이 피로감을 느꼈던 선례를 교훈 삼아, 재보궐 선거를 앞두고 굳이 갈등 이슈를 만들지 않겠다는 의중이었다. 결국 민주당 지도부는 공식적으로 임 부장판사 탄핵을 ‘당론’으로 채택하지 않고 ‘탄핵 추진을 허용한다’는 모호한 표현으로 ‘거리두기’를 했다.

‘탄핵 반대론자’가 탄핵 추진을 왜 하나?

김 대법원장은 오히려 탄핵 반대론자에 가까우며, 사법농단 문제에 대한 모호하고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해 결과적으로 사법부 수장이 사법농단 연루자들을 비호하는 듯한 효과를 초래했다. 그는 ‘양승태 사법농단’이 표면화됐을 때부터 조직주의에 기반해 문제를 키우는 것을 원하지 않았으며, 검찰 수사 과정에서 이뤄진 무더기 영장 기각 등 판사들이 사실상 조직적이고 전방위적으로 수사를 틀어막는 행위에 침묵으로 일관했다.

김명수 대법원장
김명수 대법원장ⓒ사진공동취재단

김 대법원장의 지시로 이뤄진 법원의 자체조사에서는 ‘문제는 있지만 죄가 되지는 않는다’는 식으로 사법농단의 위헌성이 축소됐고, 김 대법원장 역시 검찰 수사에 협조한다고 밝혀놓고 “특별조사단이 확보한 인적·물적 자료를 적법한 절차에 따라 제공할 것”이라며 사실상 ‘조사단이 조사한 사안에 한해서만 자료를 제공하겠다’는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이러한 태도는 자체조사 범위를 벗어난 수사나 이와 관련한 압수수색 등이 이뤄질 경우 ‘사법부 독립 훼손’을 명목으로 수사를 거부할 수 있다는 여지를 남겨둔 것이기도 했다. 이는 결과적으로 영장 판사들의 무더기 영장 기각과 판사들의 집단적 수사 저항 사태로 이어졌다.

따라서 김종인 위원장이 “김 대법원장은 취임 후 정권 하수인 노릇을 하며 무려 100명 넘는 판사를 검찰 조사로 넘겼다”고 한 말과, 국민의힘 법제사법위원회 위원들이 지난 3일 낸 성명 입장문에서 “김 대법원장은 ‘사법부 블랙리스트’ 사태와 관련한 검찰 수사에 적극 협조하겠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사건과 관계없는 법관들이 조사를 받고 억울한 기소와 연이은 무죄 판결로 법원을 들쑤시게 하며 내부 갈등을 조장했다”고 한 것은 사실상 틀린 말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김 대법원장은 ‘사법농단의 진원지인 법원이 사법농단 재판을 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문제의식에서 촉발된 특별재판부 도입 주장도 배척했다. 민주당 의원들을 중심으로 특별재판부 도입 법안이 논의되자 대법원은 국회에 의견서를 내 위헌론을 폈고, 결국 해당 법안 도입 논의는 흐지부지됐다.

또한 2018년 11월 전국법관대표회의가 우여곡절 끝에 사법농단에 대해 “징계 절차 외에 탄핵소추 절차까지 함께 검토돼야 할 중대한 헌법 위반 행위”라는 의결 사항을 김 대법원장에 전달했으나, 이를 국회에 전달하는 등의 조치가 취해지지 않았다. 이에 따라 사법부 내 회의체에서 나온 ‘판사 탄핵이 필요하다’는 사상 초유의 의결 내용은 ‘일부 젊은 판사들의 의견’ 정도로 남게 됐다.

김 대법원장이 작년 5월 사표를 수리해달라고 요청한 임 부장판사와 나눈 대화 녹취록을 근거로 김 대법원장이 정권 차원의 탄핵 추진에 협조하려고 임 부장판사의 사표를 반려했다는 주장이 나온다.

그러나 오히려 해당 녹취록에는 김 대법원장이 ‘탄핵’ 자체에 매우 부정적인 인식을 갖고 있다는 점이 분명히 드러난다.

“툭 까놓고 얘기하면 지금 뭐 탄핵하자고 저렇게 설치고 있는데, 내가 사표 수리했다 하면 국회에서 무슨 얘기를 듣겠냐 말이야.”

“탄핵이라는 제도 있지. 나도 현실성이 있다고 생각하거나 탄핵이 되어야 한다는 그런 생각을 갖고 있지 않은데, 오늘 그냥 수리해버리면 탄핵 얘기를 못하잖아. 그런 비난을 받는 것은 굉장히 적절하지 않아.”

이상은 녹취록에서 김 대법원장이 임 부장판사에게 ‘탄핵’을 언급한 대목이다. “탄핵하자고 저렇게 설치고 있는데”라는 표현이 탄핵을 거래하고자 하는 사람의 입에서 나올 수 있는 말일까? 오히려 탄핵이 거론되는 데 대한 신경질적인 반응에 가깝다. 심지어 “탄핵이 현실성 없고, 탄핵돼야 한다고 생각 안 한다”며 탄핵 논의 자체에 부정적인 인식을 직접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결국 이 녹취록에서 드러난 문제의 본질은 김 대법원장이 임 부장판사 탄핵 논의에 동조하는 게 아니라, 사표를 수리했을 때 받을 법원 조직의 도덕성 훼손을 우려하는 조직보신주의적 태도다.

김명수는 정권과 친할 수 없는 인물

종합하면 김 대법원장은 정권이나 여당과 유별나게 친하게 지내거나 무언가를 결탁하는 게 불가능한 인물이라고 보는 게 자연스럽다. 그간 김 대법원장과 정부 및 여당 지도부가 사법농단 문제에서 보여준 스탠스 등 맥락을 조금만 들여다본다면, 정권과 여당이 김 대법원장과 합작해 임 부장판사를 탄핵으로 이끈다는 주장은 성립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심지어 김 대법원장은 여권 핵심 인물이자 미래 대권주자로 거론되던 김경수 경남지사의 ‘드루킹 사건’ 1심 유죄 판결을 내린 성창호 부장판사를 겨냥한 여권의 비판이 이어지자 “재판독립의 원칙이나 법치주의 원칙에 비춰 적절하지 않다”며 불편한 심기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기도 했다. 법원 내부에서 발생했던 중대한 헌법 위반 사안들을 두고 지나칠 정도로 말을 아껴왔던 모습과 비교했을 때 이례적으로 강도 높은 수위의 발언이었다.

성 부장판사는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로 재직하던 시절 정운호 게이트 사건 영장 검토 시 취득한 수사기밀을 신광렬 판사에게 누설해 결국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에게 보고되도록 했다는 의혹을 받던 사법농단 연루자로 재판을 받고 있다.

 

강경훈 기자

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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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터 차의 북 붕괴론이 노리는 것은?

[기고] 김광수 정치학 박사

  • 기자명 김광수 
  •  
  •  입력 2021.02.04 23:50
  •  
  •  댓글 1
 

김광수: 정치학(북한정치) 박사/‘수령국가’ 저자/평화통일센터 하나 이사장

 

최근 또 다시 세기의 박물관으로 사라져야 할 낡은 유물이 부활했다. 미국발 ‘가짜’ 뉴스였다.

주범은 나름 미 정계에 대북정책과 관련해 꽤 큰 영향력을 줄 수 있는 인물 중의 한 명인 빅터 차(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 석좌교수)다. 그가 지난달 16일(현지시각) <워싱턴 포스트>에 글 하나를 기고하면서 바이든 행정부가 “코로나19, 핵무기, 붕괴하는 경제가 혼재한 재앙적인 상황을 맞고 있는 북한의 위기를 경계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이른바 북 붕괴론을 빅터 차가 다시 끄집어 낸 것이다.

매우 다행인 것은, 국내 대북 전문연구자들이 이를 적극 반박해내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해서 본 글은 '북 붕괴론의 오류와 허구'에 대해서 논의하기보다는, 국내의 대북 전문연구자들이 보지 못했던 그 이면에 숨어있는 의도를 한걸음 더 깊숙이 들어가 심층적으로 짚어보고자 한다.

그래도 아쉬움은 남아 사족 하나를 달아본다. 북 붕괴론과 관련해 더 이상 논하지 않는 것이 아래의 두 가지 이유 때문임을 밝히고 싶다.

하나는, 북(조선) 붕괴론이 논할 가치도 없거니와, 기간 김일성 주석 서거 이후, 그것보다 더 이전으로 거슬려 올라가보면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 이후부터 지금까지 수십 차례의 북 붕괴론이 있었지만, 그런 소망적 기대(wishful expectations)와는 상관없이 왜 북이 붕괴되지 않았는지? 그 물음으로 충분히 대체가 가능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또 다른 하나는, 필자가 <통일뉴스>, 2021.1.26.일자 기고 글, “북미·남북관계에 대한 ‘본질적’ 분석과 전망을 중심으로”에서 이미 언급하고 있듯이 기간 북미대결에서 북이 승리해온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증명은 이렇다.

먼저, 미국은 북정권 수립 이후부터 매우 일관되게 북을 붕괴시키는 전략을 갖고 있었는데, 북은 이에 사회주의 강성국가전략으로 맞받아쳐왔고, 결과, 붕괴는커녕 자신들이 설정한 사회주의 강성국가 건설의 마지막 단계 경제강국 건설 진입이 눈앞에 와 있다. 이번 제8차 당대회가 그 마지막 남은 관문, 경제강국 건설에 강한 자신감을 드려내 보이며 신(新)국가발전 5개년 계획을 결의해내었다. 미국의 간담이 서늘해지는 순간이었다.

다음으로는, 북이 핵을 가지지 못하게 하는 것이었는데, 결과적으로 북은 지금 핵 보유를 넘어 미 본토까지를 공격할 수 있는 ICBM 등 전략무기를 보유한 전략국가의 반열에 당당히 들어섰다.(2017.11.29. 국가핵무력 완성선언)

이렇듯 북과 미국의 대결은 미국의 명백하고도 완벽한(완전한) 패배로 점철되어온 역사이자 시간이다. 단지, 그걸 미국 자신이 여러 가지 이유들로 인해, 그 중에서는 특히 세계유일 패권국가로서의 자존심과 체면 때문에 인정하고 있지 못할 뿐이다.

하지만, 너무나도 명백하고 분명하지 않는가. 북은 그렇게 미국을 상대로 승리해온 것이다. 그런데 그런 국가가 망한다? 소도 웃을 일이다.

해서 북 붕괴론은 논의할 가치조차 없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가 주목해야 될 것은 북 붕괴론 그 자체에 있다기보다는, 그 숨은 뜻, 즉 음흉한 그들의-네오콘과 딥 스테이트 세력들의 정치적 속내를 한번 짚어내 보는 것이 훨씬 더 의미 있고, 생산적인 시각을 정립할 수 있다.

왜 그런지는 아래와 같은 근본물음으로부터 한번 시작할까한다.

빅터 차의 시각은 비단 빅터 차만의 시각으로 볼 수 없다. 미국 정·관·학계에 광범위하게 퍼져있는 ‘북 붕괴 신화’에 다름 아니다. 단지, 빅터 차는 이를 북이 제8차 당대회를 끝내자마자 먼저 정치적으로 선점한 것일 뿐이다. 비례해 절대 새삼스러운 주장이 아니다.

그럼 왜 빅터 차는 이런 주장을 들고 나왔을까? 그 속내의 꿍꿍이 속으로 한번 들어가 보자. 세 가지 정도, 정치적 의도가 읽혀진다.

하나는, 바이든 행정부가 국내적 요인과 중국, 이란 등 국제적 요인으로 인해 당장 ‘새로운’ 대북정책을 입안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해서 빅터 차는 그런 바이든 행정부를 향해 구원의 손길을 보낸 준 것이다.

이름 하여 바이든 행정부가 ‘새로운’ 대북정책을 입안할 때까지 최대한 시간을 벌어주기 위한 고도의 계산된 전략적 고려라는 측면이다.(동맹국과 국제사회의 비난과 질책을 피하기 위해)

둘째는, 위 ‘첫째는’이 아주 1차원적인 전략적 고려라면, 보다 본질적으로는 바이든 행정부가 네오콘과 딥 스테이트(deep state) 세력들의 대북정책 집합체인 ‘전략적 인내’를 ver.2로 계속 가동시켜 내기 위한 고도의 계산된 정치적 술수라는 측면이다.

근거는 지금 바이든 행정부가 북과 대화와 협상을 통해서도, 그렇다고 전략핵을 보유해 미국 자국에 대한 보복대응능력을 극대화한 북에다 군사적 선제공격을 가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모른 척 하면서 시간벌기를 통해 최대한 미국적 이익을 창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의 정치·외교적 표현이 ‘전략적 인내’이다.

빅터 차는 바로 이 상황을 예견해 바이든 행정부로 하여금 위와 같이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그런 ‘철지난’ 주장을 (네오콘과 딥 스테이트 세력의 충견임을 자처하며) 총대매고 나선 것이다.

셋째는, 결국 최종적인 것으로서의 그들의 의도는 ‘첫째는’과 ‘둘째는’의 합을 통해서만 확인할 수 있는데, 이렇다. ‘붕괴할 북과 무슨 외교이며, 무슨 대화와 협상이 필요하냐?’는 당연한 문제의식을 정치적으로 확장해 네오콘과 딥 스테이트 세력이 노리고자 하는 것은 북을 계속 고립과 압박으로 몰아붙여야 한다는 정치적 목적이고, 이 행렬에 문재인 정부가 이탈하지 않게끔 잘 관리하는 것이다.

어떻게?

한미동맹이라는 절대적 가치로 문재인 정부를 묶고, 한미 합동군사훈련, 방위비 인상문제, 주한미군철수 문제, 전략자산 무기판매 등을 꽃놀이패로 삼아 중국의 부상을 적극 견제하며 그때까지 충분히 시간을 벌어놓으려는 속셈인 것이다.

결론이다.

빅터 차의 북 붕괴론은 북 붕괴 그 자체에 있지 않다. 그럼? 북 붕괴론을 통해 네오콘과 딥 스테이트 세력이 갖고 있는 그들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을 바이든의 행정부에 관철시켜 내기 위한 고도의 계산된 술수라는 측면이다.

해서 바이든 행정부에게 주어진 과제는 이 네오콘과 딥 스테이트 세력의 북 붕괴론에 숨어 있는 ‘실질적인’ 의미의 체제전복과 군사적 도발 유혹 등과 같은 압력을 이겨내고, 북의 대북 적대정책 철회 메시지에 응할 수 있는가, 없는가가 관건적인 문제가 되었다.

다음과 같은 잠정 결론이 가능하다. 바이든의 행정부는 네오콘과 딥 스테이트 세력에 굴복해 전임 오바마 행정부가 그러하였듯이 그 어떤 대북정책으로 포장하든 돌고 돌아 결국에는 기-승-전 ‘전략적 인내’라는 버전(ver.)으로 되돌이표 될 것이다.

즉, 그렇게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으로 버티다가 북의 강력한 선제공세, 여기서 북의 강력한 선제공세라 함은 북이 이미 밝혀놓은 새로운 길의 실제모습일 텐데, 다름 아닌 이미 당 창건 열병식 때 선보여 ‘괴물’로 표현되어졌던 새로운 ICBM의 전략무기 전격 성능 증명, 미뤄놓고 있었던 괌 포위사격, 이미 완성되어 있는 SLBM 발사, 지극히 정상적인 전략국가의 일상적 군사 활동인 정찰위성 발사 등이 그 예에 해당된다.

그러면 결국 바이든 행정부는 그때 가서야, 즉 북의 불벼락을 그렇게 맞고 나서야 북의 요구를 수용해 자신들의 꽃놀이패인 대북 적대정책을 철회하는 숙명을 맞이하게 된다.

틀림없이, 북미시간은 그렇게 흘러 갈 것으로 예측된다. 왜냐하면 이제까지 북의 창이 미국의 방패를 능히 뚫어 내온 북 승리의 역사가 만들어져 왔음으로.

 

김광수 필자 약력

저서로는 『수령국가』(2015) 외에도 『사상강국: 북한의 선군사상』(2012), 『세습은 없다: 주체의 후계자론과의 대화』(2008)가 있다.

강의 경력으로는 인제대 통일학부 겸임교수와 부산가톨릭대 교양학부 외래교수를 역임했다. 그리고 현재는 부경대 기초교양교육원 외래교수로 출강한다.

주요 활동으로는 전 한총련(2기) 정책위원장/전 부산연합 정책국장/전 부산시민연대 운영위원장/전 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 사무처장·상임이사/전 민주공원 관장/전 하얄리아부대 되찾기 범시민운동본부 공동운영위원장/전 해외동포 민족문화·교육네트워크 운영위원/전 부산겨레하나 운영위원/전 6.15부산본부 정책위원장·공동집행위원장·공동대표/전 국가인권위원회 ‘북한인권포럼’위원/현 대한불교조계종 민족공동체추진본부 부산지역본부 운영위원(재가)/현 사)청춘멘토 자문위원/6.15부산본부 자문위원/전 통일부 통일교육위원 / 평화통일센터 하나 이사장/(사)한반도 평화와 번영을 위한 협력 자문위원 외 다수가 있다.

 김광수 no-ultari@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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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정치인 3대 컴맹’… 누군가 봤더니

 

 
 
임병도 | 2021-02-04 08:28:30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오세훈 국민의힘 서울시장 예비후보가 산업부가 공개한 파일명에 있는 v가 대통령을 뜻하는 vip라는 주장을 펼쳤다가 컴맹이라는 소릴 들었습니다.

얼마 후 자신의 주장을 철회했지만, 온라인에서는 오 예비후보처럼 컴맹이라는 지적을 받은 정치인 관련 게시글들이 올라왔습니다. 누가 컴맹으로 선정됐는지 알아봤습니다.

오세훈, v는  ‘버전’(version) 대신, 대통령을 뜻하는 ‘브이아이피’(vip)

오세훈 국민의힘 서울시장 예비후보는 2일 페이스북에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해명해야만 하는 이유>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습니다.

오 예비후보는 산업부 내부 문건 ‘180514_북한지역원전건설추진방안_v1.1.hwp’을 거론하며 “문건 제목의 ‘v'라는 이니셜에 주목할 수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이어 “ ‘v’가 의미하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요?우리는 흔히 대통령을 vip라고도 칭해 왔음을 알고 있다”며 v가 문재인 대통령을 뜻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문서 파일명에 나오는 ‘v’는 보통 ‘버전’(version)을 말합니다. 컴퓨터로 문서를 작업해본 사람은 누구나 아는 상식이지만, 오 예비후보는 잘 몰랐던 모양입니다.

(v 관련 패러디 댓글 중에서)
◇ V3: 안철수의 대권 도전 3번을 의미?
◇ VIPS: 대통령이 가는 식당
◇ V Live: 대통령 라이브 방송
◇ V-Log: 대통령 기록물

오 예비후보가 페이스북에 글을 올린 뒤 v 관련 패러디 댓글과 컴맹이라는 지적이 계속됐습니다. 결국, 오 예비후보는 <‘V’에 대하여>라는 제목의 글을 올리고 “(V는 VIP가 아니라) 버전(VERSION)으로 보는 게 맞다는 의견들을 많이 받았다”며 “그 부분은 유감으로 생각한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오 예비후보는 “문제의 본질이 달라지지는 않는다”면서 “대통령께서 직접 사실관계를 명확히 밝혀 달라”고 끝까지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이은재, “MS오피스를 왜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샀나”

정치인 중에서 컴맹으로 가장 유명한 정치인은 이은재 전 새누리당 의원입니다.

2016년 10월 서울시교육청 국감에서 이은재 새누리당 의원은 교육청이 MS 오피스와 아래아한글 프로그램을 일괄구매한 것을 문제 삼았습니다.

당시 이 의원은 조희연 교육감과의 설전을 통해 “MS오피스를 MS에서 샀다”고 문제제기 하는 컴맹으로 알려졌습니다.

사실 이 전 의원 입장에서도 조금 억울한 면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프로그램 관련 질문이 아니라 MS오피스와 아래아한글 중 아래아한글 프로그램 수의계약을 문제 삼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전 의원이 제대로 알지 못하고 질의한 것은 분명합니다. MS오피스는 총판뿐만 아니라 파트너사가 있어 공개 입찰이 가능했지만, 한컴은 총판 단 한 곳뿐이라 입찰 자체가 불가능했습니다.

이 전 의원이 제대로 질의를 하려면 산자위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에서 한컴이 아래아한글 프로그램을 독점 판매하고 있는 한컴을 문제 삼았어야 합니다.

‘MS오피스’사건으로 이 전 의원은 기자회견까지 열어 해명했지만 여전히 ‘컴맹’의 대명사로 남아 있게 됐습니다.

미래통합당에서 컷오프 된 이 전 의원은 집사로 활동한 경력을 내세워 기독자유통일당에 입당했지만, 불교 생활이 드러나면서 또 컷오프 됐습니다. 나중에 천주교에서 세례를 받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삼중종교인으로 밝혀졌습니다. 

이 전 의원은 대검찰청 앞에서 혈서로 ‘윤석렬 사수’를 쓰는 행사를 열었지만, 알고 보니 자신의 피가 아닌 포비돈 요오드였습니다. 결국, 이 사건을 계기로 이 전 의원은 정치인으로 사실상 퇴출됐습니다.

정형근, 증거 자료로 디스켓이 복사된 종이를 선보이다

2003년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한나라당 정형근 의원은 송두율 교수가 간첩이라며 새로운 증거로 디스켓 사본을 제시하겠다고 했습니다.

당시 열린우리당 의원들과 기자들이 증거를 보여달라고 요구하자, 정 의원은 디스켓을 종이에 인쇄한 사진을 보여줬습니다.

정 의원은 디스켓을 복사해오라니 진짜 종이에 복사해 온 전형적인 컴맹의 모습을 보여준 셈입니다.

정형근의 디스켓 복사 소동은 단순한 해프닝으로 보기 어렵습니다. 그는 검사 출신으로 안기부 대공수사국장을 역임한 인물이자 고문 혐의 피소만 10건을 받은 인물입니다.

정형근은 노덕술, 이근안에 이어 3대 고문왕으로 불릴 정도로 고문과 강압수사로 허위자백을 받아내는 데 탁월했습니다. 조작 간첩 사건의 대명사였습니다.

고문으로 간첩을 조작해내던 안기부 요원이 국회의원으로 변신해 국회에서 간첩 증거라며 디스켓이 복사된 종이를 내미는 모습은 한국의 정치인이 비상식적이며 반헌법적인 사고 방식을 갖고 있는지 잘 보여주는 사례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본글주소: http://www.poweroftruth.net/m/mainView.php?kcat=2013&table=impeter&uid=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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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위주의 정권도 금지한 '중간착취', 관행으로 자리잡다

[간접고용 노동자의 눈물 下] 파견법 제정 23년, 간접고용 부작용 없애려면

([간접고용 노동자의 눈물 上] 노조 만들고 부당한 일에 목소리 내니 돌아온 건 대량해고)

 

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들은 고용이 불안한 상황에서 최저임금과 관리자의 갑질을 감내하며 길게는 10년을 일했다. 이 같은 상황을 바꿔보고자 노동조합을 만들었더니 용역업체와의 계약해지를 통한 해고가 돌아왔다.

 

노동자의 '고용불안'은 기업 입장에서는 '마음에 들지 않는 노동자를 언제든 자를 수 있다'는 말도 된다. 그런 고용불안을 가속화하는 장치가 간접고용이다. 노동자에게는 재앙이고 기업에게는 선물인 셈이다. 

이러한 간접고용은 애초 한국사회에서 일반적인 고용구조가 아니었다.

 

 

권위주의 정권도 금지했던 '중간착취' 허용한 외환위기 당시 파견법 제정


 

기업이 타인에게 고용된 노동자에게서 노무를 제공받는 것으로 정의되는 간접고용은 크게 둘로 나뉜다. '용역(하도급, 위탁 등으로도 표현)'과 '파견'이다.
 

 

둘은 원청 사용자의 업무지시 여부를 중심으로 구분된다. 용역은 기업이 타인에게 업무의 일부를 완전히 맡기는 것이다. 따라서 원청 사용자의 용역 노동자에 대한 업무 지시는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 파견은 기업이 타인에게 업무를 맡기지 않고 사람만 제공받는 것이다. 원청 사용자는 파견 노동자에게 업무 지시를 할 수 있다.


 

한국사회에서 간접고용의 확산은 이 중 파견 고용을 1998년 외환위기 때 합법화한 뒤 본격화됐다.

 

외환위기 전까지 파견 고용을 규율하는 별도의 법은 없었다. 이 시기의 법은 오히려 파견 고용을 금지하는 쪽에 가까웠다. 1961년 제정된 직업안정법 9조(유료 직업소개사업의 금지)의 "누구든지 유료의 직업소개사업을 행하지 못한다"는 조항이 이를 보여준다. 일자리를 미끼로 돈을 챙기는 '중간착취'를 규제하기 위한 것이었다.

 

1998년 7월 국회는 IMF가 금융지원 조건으로 내건 노동시장 유연성 확대를 이유로 '파견근로자의 보호 등을 위한 법률'을 제정했다. 주 내용은 청소, 주차장 관리, 조리, 경비, 수금 등 26개 업종의 파견을 허용한다는 것이었다. 파견 고용 기간을 2년 이내로 제한하고, 불법파견이 적발될 경우 원청에 고용의무를 부여하는 조항도 있었다.

 

파견법 시행 한 달여 뒤 한국사회 간접고용 확산의 신호탄이 된 상징적 사건이 일어났다. 1998년 8월 울산 현대자동차 공장 구내식당노동자들의 해고다. 당시 정규직노조는 현대차의 정리해고 시도에 맞서 36일 파업을 벌인 뒤 '277명 정리해고안'에 동의했다. 여기에는 구내식당 노동자와 133명 전원이 포함되어 있었다.

 

 

구내식당 노동자들은 이 같은 결정에 항의하며 다섯 달 동안 단식과 삭발, 알몸 시위까지 벌였지만 노사 결정을 되돌리지 못했다. 이후 현대차 공장 구내식당은 외주화됐다. 현재 현대차공장의 구내식당 노동자들은 현대백화점그룹 계열사인 현대그린푸드 소속이다.


 

정년퇴직한 직접고용 노동자의 일자리를 간접고용 노동자로 채운 경우도 있었다. 일례로, 성공회대에는 2016년까지도 직접고용 청소 노동자가 있었다. 그들이 모두 퇴직한 지금 성공회대의 청소 일자리는 모두 용역 노동자로 채워져 있다.

 

파견법 시행 이후 이 같은 일은 한국사회 전반에서 일어났다. 경총, 전경련 등 사용자 단체는 간접고용 등 비정규직의 활용을 통한 '수량적 유연성 확보', 즉 '노동자 해고 요건의 실질적 완화'를 새로운 경영전략으로 홍보하며 이 같은 흐름을 부추겼다.

 

 

▲ 집단해고가 있기 전 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가 건물 내 화장실을 청소하고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외환위기는 3년만에 지나갔지만...당연한 고용관행 돼버린 간접고용


 

그 결과 간접고용은 일부 업종에서 점점 당연한 고용관행이 되어갔다. 파견 고용은 2010년경 대법원에서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에 대한 불법파견 대법원 판결이 나오기 전까지 꾸준히 증가 추세를 보였다. 별도의 노동법적 규제가 없는 용역 고용도 빠르게 증가했다.


 

통계청의 '경제활동인구 부가조사'를 보면, 2001년 45만여 명(임금 노동자의 3.4%)이던 파견, 용역 노동자 수는 2017년 87만여 명(4.4%)까지 늘었다.


 

통계청 조사는 간접고용 노동자 확산 추세를 보여주기는 하지만 규모를 드러내지는 못한다. 연구자들은 '통계청 조사에서 간접고용 노동자 수가 과소집계되어 있다'고 본다. 통계청은 사내하청 노동자를 따로 조사하지 않는다. 조사가 설문 형태로 이뤄지기 때문에 파견, 용역 노동자가 파견회사, 용역회사의 정규직 혹은 계약직이라고 응답하는 경우도 있다. 다단계 하도급이 만연한 건설 분야 노동자들이 기간제 노동자로만 분류되기도 한다.


 

과소집계를 바로 잡으려는 시도도 있었다. 이를 보면 한국사회에서 최소 6명 중 1명의 임금 노동자는 간접고용 노동자인 것으로 나타난다. 국가인권위원회가 2018년 발표한 연구용역보고서 <간접고용 노동자 노동인권 실태조사(간고 노동자 실태조사)>에는 간접고용 노동자의 수가 347만여 명으로 추정되어 있다. 전체 임금 노동자의 17.5%에 달하는 비율이다.

 

고용형태 공시제를 바탕으로 매년 300인 이상 기업의 간접고용 노동자 수를 발표하고 있는 한국노동사회연구소도 2020년 300인 이상 기업 간접고용 노동자를 91만 명(300인 이상 기업 노동자의 18.3%)으로 집계했다. 300인 이상 기업이 자체 보고한 간접고용 노동자 수만도 통계청이 집계한 파견, 용역 노동자 수를 넘는다.


 

특히 간접고용이 만연한 산업은 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가 포함되는 시설관리 및 사업지원서비스업이다. <실태조사>를 보면, 전체 파견 노동자의 43% 가량, 전체 용역 노동자의 87% 가량이 이 업종에서 일한다.

 

해당 산업은 대표적인 고령 직종이기도 하다. '경제활동인구 부가조사'에 따른 파견, 용역 등 간접고용 노동자의 연령별 비율은 2020년 기준 60대 31.4%(27만 6000명), 50대 25.8%(22만 7000명) 순으로 나타난다.

 

▲ 통계청 '경제활동인구 부가조사'로 본 2001년 이후 파견, 용역 노동자 규모 변화. ⓒ국가인권위원회

간접고용 노동자에게도 인간다운 삶 가능하게 하려면


 

파견법 제정 이후 간접고용 확산 흐름을 되돌리려는 노력이 없지는 않았다. 현대차, GM대우 등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불법파견 소송 및 직접고용 요구 투쟁이 대표적이다.


 

가장 최근의 정책적 시도는 문재인 정부가 2017년 발표한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 정책이다. 2020년 '경제활동인구 부가조사'를 보면, 파견, 용역 노동자의 수는 72만여 명(3.5%)으로 다소 감소한 것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이 같은 노력이 민간 영역으로까지 확산되지는 않았다. 해당 기간 감소한 파견, 용역 노동자의 수는 15만여 명이다. 공공부문에서 직접고용된 간접고용 노동자의 수는 13만 7000여 명과 거의 일치한다.

 

정부가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 방안의 하나로 공공기관, 공기업 등에서 자회사 고용을 포함시켜 간접고용 관행을 근본적으로 바꾸겠다는 의지와 메시지를 보이지 못했다는 점도 한계로 지적된다.



 

노동계에서는 직접고용 확산 노력은 물론 △ 용역업체 변경 시 고용승계 의무화 법률 제정 △ 원청 사용자성 인정 등을 통해 간접고용 노동자가 겪는 극심한 고용불안이나 노조할 권리에서의 차별을 없애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 중 '용역업체 변경 시 고용승계 의무화'는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다. 원청 사용자성 인정은 ILO 기본협약 비준과 연계된 사안으로 2019년 국가인권위원회가 이를 위한 법 개정을 권고한 바도 있다.

 

남우근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정책연구위원은 "실제 간접고용 노동자는 용역 노동자로 계약하고 일하더라도 상당수가 원청의 지휘 명령을 받는 파견 형태로 일한다"며 "간접고용 남용을 방지하려면 고용노동부 훈령 형태로만 되어 있는 '근로자 파견 판단 지침'을 법제화해 용역 분야에 만연한 파견 고용을 잡아내고 이들에 대해서도 고용의무를 부여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남 위원은 "그래도 남는 간접고용 노동자에 대한 고용과 노동3권 보호 조치가 필요하다"며 "한국노총과 송옥주 국회 환경노동위원장이 간접고용 노동자의 고용, 노동조건, 단체협약 승계 등에 대한 논의를 했는데 이런 입법 논의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조혁진 한국노동연구원 부연구위원도 "용역근로자 보호지침에서는 용역업체 변경 시 고용승계 의무화를 권고하고 있지만 강제하지는 않고 있는데 강제할 필요가 있다"며 "법 개정이 쉽지는 않겠지만 이에 대한 우리 사회의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원청 사용자성 인정과 관련해 조 위원은 "현행 법상 단체교섭 의무가 성립하지 않지만 현재 수준에서 간접고용 노동자의 노동인권 보호를 위해서는 다양한 방면으로 원청과 간접고용 노동자 사이의 대화 채널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출처: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1020307533658382#0DKU 프레시안(http://www.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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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시간에 6.3km, 시민 2백명과 함께 걸은 김진숙의 희망뚜벅이

  • 분류
    아하~
  • 등록일
    2021/02/04 11:28
  • 수정일
    2021/02/04 11:28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동행 취재] 복직 요구하며 30일째 걷기, 7일 청와대 도착... "문 정부, '최선 다한다' 말 뿐" 21.02.03 22:27l최종 업데이트 21.02.03 23:32l글: 김종훈(moviekjh)사진·영상: 유성호(hoyah35)

큰사진보기 한진중공업에서 일하다 해고당한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과 그의 복직을 위해 ‘희망 뚜벅이’ 30일차 행진에 함께한 시민들이 3일 경기도 평택 진위역을 출발해 병점역까지 도보행진을 벌이고 있다.
▲  한진중공업에서 일하다 해고당한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과 그의 복직을 위해 ‘희망 뚜벅이’ 30일차 행진에 함께한 시민들이 3일 경기도 평택 진위역을 출발해 병점역까지 도보행진을 벌이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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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춘인 3일, '희망뚜벅이' 30일차를 맞은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 지도위원의 걸음은 무척 빨랐다. 이날 김 지도위원은 경기도 평택시 진위역을 출발한 지 불과 1시간여 만에 6.3km 떨어진 경기도 오산시 수청공원에 도달했다. 참고로 성인 남성이 평균 보폭 70cm기준으로 1시간을 걸었을 때 약 4km 정도 이동이 가능하다.


- 왜 이렇게 걸음이 빠르냐. 
"청와대 앞에서 단식농성하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바쁘다. 걸음을 빨리할 수밖에 없다." 
 
그의 말대로 청와대 앞에선 김 지도위원의 쾌유와 복직을 바라며 송경동 시인과 정홍형 전국금속노조 부산양산 수석부지부장, 김우 권리찾기유니온 활동가 등이 이날 기준으로 44일째 단식을 이어가고 있다. 앞서 지난 1월 30일, 40일 동안 단식을 진행했던 성미선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은 급격한 건강악화로 병원에 긴급 이송된 바 있다.

그러나 김 지도위원은 이날 걷는 속도를 조절할 수밖에 없었다. 그와 함께 걷기 위해 전국에서 200여 명의 노동자와 시민들이 모여들었기 때문이다. 김 지도위원은 "함께 걷는 대부분이 해고자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라면서 "그래서 마음이 더 아프다"라고 말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함께한다는 것은 그만큼 문재인 정권의 노동정책에 문제 의식을 느끼는 사람이 많다는 거다. 이 많은 사람들이 다 나 때문에 왔다고 보기는 힘들다. 다들 자기 아픔이 있고 자기가 내고 싶은 목소리가 있어서 몸자보까지 직접 만들어온 거 아니겠느냐. 어쩌면 이 현장이 '노동을 존중한다'라고 밝힌 이 정권의 실체가 아닌가 싶다."

전날인 2일 오후 최영애 국가인권위원장은 청와대 앞 단식농성장을 찾아 "할 수 있는 일은 하겠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지난 1월 28일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들을 만나 '구체적 해법을 찾아보겠다'라는 의지를 밝혔다.

그러나 이날까지 김 지도위원은 정부로부터 확답을 듣지 못한 채 푸른색 한진중공업 작업복 차림에 파란색 목도리를 두르고 분주히 걸음만 재촉했다. 평택에서 오산, 오산에서 화성으로 가는 길목마다 경찰은 '감염병 예방'을 이유로 인도로 걷는 행진단의 걸음을 막았다. 

김 지도위원이 "국가인권위원장이나 정부 관계자, 총리, 여당대표, 경사노위 위원장 모두 최선을 다한다는 말을 하지만 정해진 결과가 없다"면서 "이는 곧 그들이 무능하거나 립서비스만 했다는 의미 아니겠나. 이 정권에 대해 기다리고 기대했던 한 사람으로서 그저 안타깝다"라고 평가한 이유다. 민주노총 금속노조는 한진중공업의 최대주주인 산업은행이 김진숙 지도위원의 복직 요구에 응하지 않으면서 회사 매각만 시도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시민들에게 미안하고 고맙다"
 
 한진중공업에서 일하다 해고당한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과 그의 복직을 위해 ‘희망 뚜벅이’ 30일차 행진에 함께한 시민들이 3일 경기도 평택 진위역을 출발해 병점역까지 도보행진을 벌이고 있다.
▲  한진중공업에서 일하다 해고당한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과 그의 복직을 위해 ‘희망 뚜벅이’ 30일차 행진에 함께한 시민들이 3일 경기도 평택 진위역을 출발해 병점역까지 도보행진을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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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진중공업에서 일하다 해고당한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과 그의 복직을 위해 ‘희망 뚜벅이’ 30일차 행진에 함께한 시민들이 3일 경기도 평택 진위역을 출발해 병점역까지 도보행진을 벌이고 있다.
▲  한진중공업에서 일하다 해고당한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과 그의 복직을 위해 ‘희망 뚜벅이’ 30일차 행진에 함께한 시민들이 3일 경기도 평택 진위역을 출발해 병점역까지 도보행진을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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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숙 "문재인 정권은 왜 계속 '최선 다한다'는 말만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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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김진숙 희망뚜벅이 행진에는 서울에서 내려온 시민 정지현씨도 함께 했다.정씨는 <오마이뉴스>를 만나 "김 지도위원의 얼굴이 너무 수척해 보이더라" 면서 그를 향한 걱정부터 쏟아냈다. 

그러면서도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함께 걷는 이유가 무엇이겠나. 나 혼자 잘 살자고 이러는 게 아니다. 김 지도위원의 복직은 그만큼 상징적인 의미를 갖는다. 그 자체로 우리사회에서 여성들이 차별받지 않고 한걸음 나아가는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1981년 김진숙은 대한민국 최초로 조선소 여성 용접공 출신이 된다. 그러나 불과 5년 뒤인 1986년 김진숙은 한진중공업으로부터 '무단결근'을 이유로 해고를 당한다. 당시 스물여섯 나이에 노조 대의원이 된 그는 집행부의 어용성을 폭로하는 전단을 배포했다. 한진중공업은 김진숙이 노조활동을 할 수 없는 직업훈련소로 발령을 냈다. 그는 이를 거부했고 회사는 해고 통보를 했다. 당시 경찰은 김진숙을 검은색 보자기에 씌운 채 대공분실로 끌고 가 고문을 했다. 

이에 대해 김 지도위원은 자신의 책 <소금꽃나무>에 "벽도 빨갛고 천장도 빨갛고 욕조 변기 세면기가 다 빨간 방에서 나를 빙 둘러선 사내들의 눈빛마저 붉은 이곳에서 시커먼 보자기에 덮여 싸인 채 끌려왔다. 그곳에서 생사조차 몰랐던 삼촌의 이름을 처음 들었다"면서 "(고문을 한) 저들이 인간이라는 사실이, 인간이 인간한테 이렇게까지 할 수 있다는 그 몸서리쳐지는 사실이, 무엇보다 내가 여기에온 걸 아무도 모른다는 사실이 절망이었다"라고 고백했다. 

당시 김진숙을 끌고간 경찰은 김 지도위원의 아버지가 이북 출신이라는 이유로 그를 빨갱이로 몰았다. 이후 김 지도위원은 해고 36년의 기간 동안 대공분실에 세 번 끌려가고, 두 번의 징역살이를 하며 수배생활 5년을 하는 고초를 겪었다. 

하지만 김 지도위원은 이날 행진 중 밝은 표정으로 "함께 걷는 시민들과 노동자들에게 고맙고 미안하다"면서 "(2011년) 크레인 농성 때도 그랬지만 계속 빚지는 느낌이다. 그래도 이렇게 함께 걸으니 희망도 생기는 것 같고 기분이 좋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는 "복직하는 그날까지 웃으면서 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날 김 지도위원의 희망뚜벅이 걸음에는 경북 구미 아사히글라스 비정규직 해고노동자들과 울산 대우버스(자일대우상용차) 해고노동자들, 쌍용자동차 노동자들,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이 각자 만든 자보를 몸에 걸친 채 함께 했다. 

한편 암 투병 중인 김 지도위원은 항암 치료도 중단한 채, 지난해 12월 30일부터 뚜벅이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31일차인 4일은 병점역, 32일차인 5일은 수원역, 33일차인 6일은 인덕원역, 희망뚜벅이 마지막날인 7일은 흑석역을 출발해 최종목적지인 청와대에 닿을 예정이다.
 
 한진중공업에서 일하다 해고당한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과 그의 복직을 위해 ‘희망 뚜벅이’ 30일차 행진에 함께한 시민들이 3일 경기도 평택 진위역을 출발해 병점역까지 도보행진을 벌이고 있다.
▲  한진중공업에서 일하다 해고당한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과 그의 복직을 위해 ‘희망 뚜벅이’ 30일차 행진에 함께한 시민들이 3일 경기도 평택 진위역을 출발해 병점역까지 도보행진을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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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진중공업에서 일하다 해고당한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과 그의 복직을 위해 ‘희망 뚜벅이’ 30일차 행진에 함께한 시민들이 3일 경기도 평택 진위역을 출발해 병점역까지 도보행진을 벌이고 있다.
▲  한진중공업에서 일하다 해고당한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과 그의 복직을 위해 ‘희망 뚜벅이’ 30일차 행진에 함께한 시민들이 3일 경기도 평택 진위역을 출발해 병점역까지 도보행진을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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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출한 이조훈 감독(맨 오른쪽)이 3일 경기도 오산 수청근린공원에서 한진중공업에서 일하다 해고당한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의 복직을 위한 ‘희망 뚜벅이’ 30일차 도보행진에 함께한 시민들을 위해 자비로 마련한 도시락을 나눠주고 있다. " class="photo_boder" style="border: 1px solid rgb(153, 153, 153); display: block; text-align: center; max-width: 600px; width: 600px;">
▲  영화 <광주비디오:사라진4시간> 연출한 이조훈 감독(맨 오른쪽)이 3일 경기도 오산 수청근린공원에서 한진중공업에서 일하다 해고당한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의 복직을 위한 ‘희망 뚜벅이’ 30일차 도보행진에 함께한 시민들을 위해 자비로 마련한 도시락을 나눠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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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진중공업에서 일하다 해고당한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과 그의 복직을 위해 ‘희망 뚜벅이’ 30일차 행진에 함께한 시민들이 3일 경기도 오산 수청근린공원에서 도보행진을 진행하자, 경찰이 이를 막고 제지하고 있다.
▲  한진중공업에서 일하다 해고당한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과 그의 복직을 위해 ‘희망 뚜벅이’ 30일차 행진에 함께한 시민들이 3일 경기도 오산 수청근린공원에서 도보행진을 진행하자, 경찰이 이를 막고 제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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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진중공업에서 일하다 해고당한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이 3일 경기도 진위역에서 출발해 병점역으로 도보행진 도중 그의 복직을 위해 ’희망 뚜벅이’ 30일차 행진에 참가한 시민들을 경찰이 가로막자 바닥에 앉아 허탈해하고 있다.
▲  한진중공업에서 일하다 해고당한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이 3일 경기도 진위역에서 출발해 병점역으로 도보행진 도중 그의 복직을 위해 ’희망 뚜벅이’ 30일차 행진에 참가한 시민들을 경찰이 가로막자 바닥에 앉아 허탈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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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진중공업에서 일하다 해고당한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의 복직을 위해 ‘희망 뚜벅이’ 30일차 행진에 함께한 철도노조 조합원이 3일 경기도 화성 병점역에서 김 지도위원에게 격려금을 전달하며 복직을 기원하고 있다.
▲  한진중공업에서 일하다 해고당한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의 복직을 위해 ‘희망 뚜벅이’ 30일차 행진에 함께한 철도노조 조합원이 3일 경기도 화성 병점역에서 김 지도위원에게 격려금을 전달하며 복직을 기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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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진중공업에서 일하다 해고당한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과 그의 복직을 위해 ‘희망 뚜벅이’ 30일차 행진에 함께한 한국게이츠, 대우버스 노동자들이 3일 경기도 평택 진위역을 출발해 병점역까지 도보행진을 마친 뒤 복직을 기원하며 화이팅을 외치고 있다.
▲  한진중공업에서 일하다 해고당한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과 그의 복직을 위해 ‘희망 뚜벅이’ 30일차 행진에 함께한 한국게이츠, 대우버스 노동자들이 3일 경기도 평택 진위역을 출발해 병점역까지 도보행진을 마친 뒤 복직을 기원하며 화이팅을 외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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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진중공업에서 일하다 해고당한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과 그의 복직을 위해 ‘희망 뚜벅이’ 30일차 행진에 함께한 시민들이 3일 경기도 진위역에서 출발해 병점역까지 도보행진을 마친 뒤 복직을 기원하며 화이팅을 외치고 있다.
▲  한진중공업에서 일하다 해고당한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과 그의 복직을 위해 ‘희망 뚜벅이’ 30일차 행진에 함께한 시민들이 3일 경기도 진위역에서 출발해 병점역까지 도보행진을 마친 뒤 복직을 기원하며 화이팅을 외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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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못넘는 여성 필진…성소수자는 소수점 아래

필진 남성 편중 ‘중앙일보’ 87.6% 최다…한겨레가 가장 적어
남성·여성 아닌 성소수자 필진은 0.1%…1117건 중에 단 2건
 
 

 

국내 ‘중앙일간지’로 꼽히는 9개 신문 가운데 성소수자 필진은 단 2명으로 나타났다. 남성과 여성 성비는 ‘7대3’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사회를 비추는 언론이 여전히 특정 집단을 과잉 대표한다는 지적이다.

신문의 필진 구성은 해당 매체가 지향하는 가치를 반영하는 창구 중 하나다. 세계일보는 지난달 27일 15명의 기명·테마 칼럼 필진을 공개하며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 출범 이후 한반도를 비롯한 국제 정세와 한국 정치·경제·사회의 도전적 과제에 대한 통찰력 있는 분석”을 강조했다. 지난해 12월엔 중앙일보가 “진보, 보수, 중도의 대표적 학자·연구자가 대거 합류한다”고 알렸다. 비슷한 시기 경향신문은 “노동·여성·인권·청년 분야”를 강화했다고 밝혔다.

미디어오늘은 주요 신문의 필진 구성이 변화하는 연말과 연초에 걸쳐 외부 필진 구성을 분석했다. 지난해 12월28일부터 올해 1월30일까지 5주 동안 9개 아침신문(경향신문·국민일보·동아일보·서울신문·세계일보·조선일보·중앙일보·한겨레·한국일보)이 대상이다. 고정 필진 뿐 아니라 시론 등 일회성 외부 기고를 함께 살펴봤다. 해당 기간 필자가 중복되더라도 한 건의 글을 개별 횟수로 측정했다.

▲2020년 12월28일부터 2021년 1월30일까지 5주 동안 주요 일간지의 외고 필자 성별 분류
▲2020년 12월28일부터 2021년 1월30일까지 5주 동안 주요 일간지의 외고 필자 성별 분류

전체 신문 필진의 성비는 ‘76대24’로 나타났다. 성별 편중이 가장 심한 곳은 중앙일보로 대략 10명 중 9명이 남성이다. 113건의 기고 중 남성 필자는 87.6%(99건), 여성 필자는 12.3%(14명)로 집계됐다. 중앙일보에 고정적으로 글을 쓰고 있는 전속 칼럼니스트 대부분을 남성으로 꾸린 점이 영향을 미쳤다.

국민일보(80.8%), 조선일보(79.8%)는 필진 10명 중 8명이 남성이었다. 국민일보의 외부 기고 73건 중 59건은 남성, 14건은 여성 필자가 작성했다. 조선일보의 경우 134건 중 107건이 남성, 27건이 여성 필자다. 조선일보가 지난달 28일 새해를 앞두고 추가한 필진 8명 중 여성은 단 한명, 그마저도 시(時)를 소개하는 연재 코너였다.

한국일보(75.2%)·서울신문(74.5%)은 남성 필진이 70% 중반대로 나타났다. 서울신문은 지난해 7월 “여성 필진 30%로 늘렸습니다”라는 제목으로 사고를 낸 바 있다. 창간 116주년을 맞아 필진 구성에 변화를 주면서 “남성 지배적 사회에서 남녀 균형을 이루는 디딤돌이 되고자 한다”는 메시지였다. 그러나 최근 한달 동안에는 여성 필진 비율이 25.4%에 그쳤다. 다음은 동아일보(72.3%)와 세계일보(72.1%) 순이다.

▲연말연시를 기점으로 대부분 신문이 필진을 새로 꾸린다. 사진은 왼쪽부터 조선일보, 서울신문, 중앙일보. 서울신문은 지난해 7월 여성 필진 30% 구성을 알려 함께 배치했다.
▲연말연시를 기점으로 대부분 신문이 필진을 새로 꾸린다. 사진은 왼쪽부터 조선일보, 서울신문, 중앙일보. 서울신문은 지난해 7월 여성 필진 30% 구성을 알려 함께 배치했다.

‘7대3’은 신문에만 국한되는 비율이 아니다. 최근 서울YWCA와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이 지난해 9월 22개 시사·보도 프로그램 출연자를 조사한 결과 남성이 78.2%, 여성이 21.3%로 나타났다. 특히 공영방송 KBS의 ‘생방송 심야토론’은 조사 기간 여성이 단 한명도 등장하지 않았다. KBS ‘시사직격’ ‘더 라이브’, SBS ‘그것이 알고싶다’, JTBS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 등은 남녀 성비가 10배 이상으로 나타났다.

다만 경향신문과 한겨레는 상대적으로 여성 필자 비중이 높게 나타났다. 그중에서도 한겨레는 아슬아슬하게나마 남성 필진 비중이 60%대(69.2%)로 나타났다. ‘부부 건축가’로 한겨레에 기고 중인 노은주·임형남 건축가의 경우 기타 성별로 분류했다. 경향신문은 남성 71.5%, 여성 27.9% 수준이다.

특히 이들 신문은 유일하게 성소수자 필진을 두고 있다. 경향신문엔 국내 최초 트랜스젠더 변호사로 알려진 박한희 변호사(희망법), 한겨레에는 본인을 레즈비언으로 밝힌 한 채윤 비온뒤무지개재단 상임이사가 글을 연재하고 있다. 다만 이 두 인물이 전부다. 결과적으로 분석 기간 9개 신문에 실린 1117건의 글 가운데 성소수자 필진의 글은 단 2건, 0.17%다. 한국은 성소수자 인구통계조차 없는 나라지만, 흔히 해외 사례에 비춰 전체 인구 3~7% 정도를 성소수자로 추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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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보] ‘2·4공급대책’ 사업지,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 등…“투기 막을 것”

홍민철 기자 plusjr0512@vop.co.kr
발행 2021-02-04 10:08:01
수정 2021-02-04 10: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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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송파구 일대에 위치한 아파트
서울 송파구 일대에 위치한 아파트ⓒ김슬찬 기자  
 
정부가 수도권 32만호, 전국 83만호 주택 부지를 추가 공급하는 ‘공공주도 3080+, 대도시권 주택공급 확대방안’을 4일 발표했다.

도심내 주택을 공급하기 위해 용적률, 층수 등 도시·건축규제를 완화한다. 공공이 참여하는 재건축·재개발은 기부채납 완화, 재건축 초과이익 부담금 면제 등의 혜택을 준다. 통상 13년이 걸리는 사업 기간도 5년내로 단축한다.

투기 방지 대책도 포함됐다. 사업 예정 지역은 토지거래허가구역을 지정한다. 이 경우 실거주 실경영 목적이 아닌 부동산 매입은 관련 자치단체에 허가를 받아야 한다. 사업 지역의 가격동향 점검을 강화해 가격에 급격한 변동이 발생하면 사업 대상에서 제외하거나 지구지정을 중단한다. 거래가격 또는 거래량이 전에 비해 10~30% 상승하면 대상지역에서 제외한다.

입주권 개념의 우선공급권은 1세대 1주택 공급을 원칙으로 한다. 대책 발표일 이후 사업구역 내에서 기존 부동산을 신규 매입 계약 체결하면 우선공급권이 부여되지 않는다. 대책 발표일 이후 사업 구역 내에서 신규 매입한 주택은 현금청산 대상이 된다.

대책 발표 이후 지분 변동이나 다세대 신축 등을 통해 토지주가 추가 지분을 확보할 경우 우선 공급권을 미부여하고, 1채 건물이나 1개 필지를 다수가 공유하더라도 우선공급권은 1개만 허용할 계획이다. 우선공급권은 소유권이정 등기시까지 전매가 제한된다.

 

우선공급 대상자는 개인이 아니라 세대를 구분으로 하고 우선공급 대상자로 선정되면 우선공급계약일로부터 5년내 투기 과열지구 우선공급 및 정비사업 조합원 분양이 불가능해진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불안한 징후가 감지되거나, 과열 확산 시에는 관계부처 협의 등을 거쳐 보다 강도 높은 시장안정 대책을 즉시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홍민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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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 킬러 문항 탓 사교육 성행…서술형·논술형 시험 도입 고민할 때”

[논설위원의 단도직입]“수능 킬러 문항 탓 사교육 성행…서술형·논술형 시험 도입 고민할 때”

오창민 논설위원 riski@kyunghyang.com

입력 : 2021.02.03 06:00 수정 : 2021.02.03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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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경 국가교육회의 의장

김진경 국가교육회의 의장이 1일 서울 세종대로 정부서울청사에서 국가교육위원회 설립과 교육·사범대학 구조조정, 코로나19 이후의 학교 교육 방향 등 각종 현안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우철훈 선임기자 photowoo@kyunghyang.com

김진경 국가교육회의 의장이 1일 서울 세종대로 정부서울청사에서 국가교육위원회 설립과 교육·사범대학 구조조정, 코로나19 이후의 학교 교육 방향 등 각종 현안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우철훈 선임기자 photowoo@kyunghyang.com

 
고교 국어교사 출신으로 1985년 ‘민중교육지’ 사건으로 옥고를 치렀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초대 정책실장과 참여정부 청와대 교육문화비서관 등을 지냈다. 2018년 12월부터 국가교육회의 의장을 맡고 있다. 시인 및 동화작가로 활동하며 <고양이 학교> <거울 옷을 입은 아이들> <그림자 전쟁> 등의 책을 펴냈다.
 

교대 정원은 왜 제자리

이해관계 복잡하게 얽혀있지만
더 이상 결정 미룰 수는 없어
양성 인원 줄이기로 결론 내
확정된 것 없지만 예산 지원 땐
국립 사범·교육대 통합 논의 가능

한국 사회에서 교육만큼 어려운 분야도 없다. 서울대를 정점으로 하는 대학 서열화는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다. 지방 대학들은 학생을 유치하지 못해 존폐 위기에 몰린 지 오래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입시제도에 손을 대보지만 그 순간 학생과 학부모들은 지옥에 빠진다. 교육은 국가 예산이 70조원이나 투입되는 최고의 공공재이지만 대치동과 목동으로 대표되는 20조원의 사교육시장에 휘둘려 기를 펴지 못한다. 많은 사람들이 교육개혁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상당수는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자신에게 유리한 말만 한다. 학부모는 학교와 정부를 비난하고, 학교는 교육부와 학부모에 책임을 넘긴다. 교육부는 사회의 고질적인 학벌 탓을 한다. 정치인들은 교육 문제는 골치가 아프다며 회피하거나 다음으로 넘긴다. 현 정부는 책임을 이전 정부에 돌리고, 차기 정부는 지금 정부를 탓할 것이 불 보듯 뻔하다.

지난 1일 오후 서울 세종대로 정부서울청사에서 김진경 국가교육회의 의장(68)을 만났다. 장관급인 김 의장은 이처럼 답이 보이지 않는 교육 난제를 풀기 위해 공개토론회를 열고 여론을 하나로 모으는 일을 한다. 국가교육회의는 교육혁신 및 중장기 교육정책 논의를 주도하기 위해 2017년 12월 설립된 대통령 직속 민관합동 자문기구다. 한국 교육의 밑그림을 그리면서 장차 국가교육위원회로 발전적 해체를 하는 것이 조직의 목표다. 학생 수 감소에 따른 교육대학과 사범대학 등 교원양성기관 구조조정 문제로 김 의장과 대화를 시작했다.

- 신생아 수가 급감하고, 학령인구도 많이 줄었다. 지금대로라면 올해 교육대학 입학생들은 4~5년 뒤 임용이 불가능하다는 얘기가 있다.

“국가교육회의는 지난해 교원양성체제 개편 방향에 대해 논의를 진행했다. 핵심 당사자 집중 숙의를 통해 초등은 임용 규모에 맞게 정부가 양성규모를 관리하고, 중등은 양성규모의 축소가 필요하다는 데 합의했다. 교육부가 올해 구체적인 방법과 추진 일정을 제시할 예정이다.”

- 교육대학과 사범대학 정원을 줄여야 한다는 얘기는 이전부터 제기됐는데 왜 안 된 것인가.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의 이해관계가 걸려 있다. 결정하지 않고 떠넘긴 것도 있고….”

- 교수들이 반발하나.

“교수들도 그렇고, 지역 국회의원들도 그렇고.”

- 구체적인 방안이 올해는 확실히 나오는 것인가.

“더는 미룰 수 없다. 교육부 의뢰를 받아 국가교육회의가 공론화작업을 벌여 양성 인원을 줄여야 한다는 결론을 냈다.”

- 예를 들어 서울대 사범대와 서울교대, 부산대 사범대와 부산교대 등의 통합 같은 방안도 나올 수 있나.

“확정된 것은 없다. 대학 이름을 거론할 수도 없다. 하지만 예산이 지원되면 국립 사범대와 교육대 통합도 논의가 가능할 것이다. 2~3개 교육대가 한곳으로 통합될 수도 있다. 중등 분야는 교원자격증 배출을 줄이는 것이 급선무다. 사범대가 설치된 대학교는 교육대학원을 없애거나 축소하는 식이다.”

- 대입 합격자 발표 기간이다. 미충원·미등록자가 나오면 서울대의 빈자리는 연세·고려대 합격생이, 고려·연세대의 빈자리는 다른 서울지역 인기대학들의 합격생들이 채우면서 대규모 연쇄 이동을 한다.

“대학 서열화가 여전하다. 그러나 달라진 것이 있다. 1970~1980년대에는 명문대를 졸업하면 대부분 좋은 직장에 갈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명문대를 나오더라도 선망하는 직장이나 직업을 가질 수 없다. 서울대와 연·고대 취업률이 50%가 안 된다. 학생들에게 다양한 발전 경로를 보장하고, 분야마다 다양한 정점이 만들어져야 한다. 서울대에서 제공하는 교육도 마찬가지다. 고등·직업교육 개혁이 필수적이다.”

국가교육위원회 꼭 있어야 하나

대학 구조조정·등록금 인상 등
답 알면서도 말 못하는 교육 문제
밀어붙이기식 해결은 안 되지만
교육부·교육감 이끌 기속력 필요
공론화 거친다면 정치적 중립 가능

- 정권마다 입시 제도를 바꾼다. 문재인 정부도 국가교육회의를 통해 2년 전 대입제도를 개편했다. 대학수학능력시험 중심의 정시모집 인원을 늘리는 것으로 결론을 냈지만 여론은 호의적이지 않다.

“시민들의 의견을 수렴한 결과다. 다만 당시 수능 문항 분석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이 아쉽다. 이른바 킬러 문항이라 불리는 어려운 문제들은 학교수업만으로는 학생들이 해결할 수 없다. 이런 문항들 때문에 사교육이 성행하고 입시가 불공정해진다. 국가교육위원회가 출범하면 대입제도 개편을 다시 의제로 올려 검토하게 될 것이다.”

- 유은혜 교육부 장관이 올해 초등학교 6학년이 치를 2028학년도 수능은 객관식 체제를 바꾸겠다고 했는데 이게 그건가.

“대입 시험에서 서술형·논술형 문항 도입은 국제적 추세다. 우리도 고민해야 할 때가 됐다.”

- 서술형·논술형 수능은 채점 과정에서 공정성 시비가 생길 수 있다. 그 많은 답안지를 제 시간 안에 채점할 수 있을지도 걱정스럽다.

“비판적 사고력과 창의력, 문제해결력을 선다형·단답형으로 측정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미국의 SAT나 ACT, 프랑스의 바칼로레아, 중국의 가오카오(高考) 등이 모두 서술·논술형이다. 우리나라도 채점 능력은 충분하다. 대입 수험생 자체가 많이 줄었고 논술을 치르지 않는 학생들도 있으니 실제 채점 인원은 더 줄어든다. 1차 채점은 국가에서 하고, 2차 채점은 각 대학에서 한 뒤 두 곳의 평균 점수로 합격자를 뽑으면 공정성 논란도 줄일 수 있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 등에서도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물론 도입하려면 국민 동의가 전제돼야 한다.”

- 코로나19로 인해 교육 양극화가 더욱 커져 걱정이다.

“한국뿐 아니라 코로나19 방역을 위해 온라인교육을 진행하고 있는 국가들이 모두 교육격차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온라인교육은 디지털시대에 피할 수 없는 측면이 있다. 기초 학력이 부족한 학생들에게 개별적으로 접근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 온라인수업에 적응한 아이들은 지금 상태가 더 좋다고 한다. 학교 선생님보다 잘 가르치는 유명 강사의 수업을 들을 수 있고, 집에서 밥 먹으면서 편하게 수업도 들을 수 있는데 왜 굳이 학교에 가야 하느냐고 한다.

“학교는 단순한 지식전수 기관이 아니다. 학생들이 자기정체성을 형성하고 살아가는 능력을 길러주는 역할도 한다.”

- 반대로 코로나19를 겪으면서 학교에 관해 새롭게 생각하게 됐다는 학부모들도 있다. 학교가 그동안 참 많은 일을 해왔다는 것이다.

“학교의 돌봄 기능이나 사회성 개발 기능 등을 코로나19 때문에 돌아보는 계기가 된 것도 사실이다. 학교가 문을 닫지 않아 정상적으로 대면교육이 이뤄지고 급식도 주어졌다면 인천 초등생 형제 화재 사고 같은 불행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학교는 앞으로 코로나19뿐만 아니라 기후위기, 대량실업, 인구절벽, 가족형태 변화가 야기하는 성장 환경의 위험, 지능정보사회의 삶에서 소외될 위험 등에 안전판 역할도 해야 한다.”

미래 교사의 역할은

아이들에게 길러줘야 할 것은
학력이 아닌 살아가는 능력
교사는 ‘학생 성장 지원자’ 돼야
사회가 그런 의제 생각할 때다

- 그렇다면 미래의 학교와 교사는 어떤 일을 해야 하나.

“아이들에게 학력이 아닌 ‘살아가는 능력’을 길러줘야 한다. 교사는 지식 전달자에서 학습안내자, 학생 성장지원 전문가, 상담가가 돼야 한다. 또 학생과 지역을 연계하는 네트워커이자 평생학습자로서 그 역할을 확대해야 한다. 그런 의제들을 놓고 사회구성원들이 고민해야 할 때다.”

- 지난 1월 문재인 대통령 신년 기자회견에서 국가교육위원회(도표 참조) 설립 얘기가 나왔다.

“국가교육위원회 설치는 문 대통령 공약이다. 백년대계의 방향과 정책을 논의하고 결정하는 역할을 하는 기구다. 법률안이 국회에서 통과돼 연내 출범하는 것이 목표이다.”

- 국가교육위원회가 꼭 있어야 하나. 국가교육회의나 교육부, 교육청으로는 안 되나.

“교육 분야는 정리해야 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의 이해관계가 걸려 있다. 뻔히 답을 알면서 말을 못하는 것도 많다. 대학 구조조정을 하려면 법을 바꿔 사립대의 땅과 건물을 정부가 사줘야 한다. 10년째 동결된 대학 등록금도 인상을 검토해야 한다. 교대·사범대 구조조정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밀어붙이기 식으로 해서는 안 된다.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국가교육위원회가 출범하면 3년 정도는 우선 이런 현안 처리에 매달려야 할 것이다. 국가교육회의의 결정은 기속력이 없다. 국가교육위원회의 결정은 기속력이 있으므로 교육부나 교육감이 따라야 한다.”

- 국가교육위원회 위원들은 대통령과 여야가 임명하게 될 텐데 정치적 중립이 보장될지 의문이다.

“위원회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본회의 참여자들은 정치색을 띨 수밖에 없다. 야당이 정권을 잡고 국가교육위원회를 만들어도 마찬가지다. 진보·보수 어느 쪽이 만들든 시비와 논란이 생길 수 있다. 하지만 위원회의 일하는 방식을 시스템으로 정착시키면 정치적 중립을 이룰 수 있다고 본다. 예컨대 공론화를 거쳐 사회적으로 충분히 합의된 것만 안건으로 상정해 논의·결정하는 것이다. 올해 국가교육회의는 2022 교육과정 개편을 위해 시민 10만명(목표)을 상대로 교육과정 총론에 담을 미래적·시대적 가치에 관한 토론과 여론 수렴 작업을 하고 있다. 이렇게 해서 큰 방향이 결정되면 국민의 동의와 승복을 얻어낼 수 있다. 국가교육위원회가 일하는 방식은 이래야 한다. 사회적으로 합의가 이뤄진 안건을 논의하면 국가교육위원회의 중립성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물론 중립적이고 합리적인 인사를 임명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국가교육위원회 위원이라면 자신이 아닌 국가와 국민 전체의 이익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초대 정책실장을 역임했다. 교원노조운동의 지향점이 과거와 달라진 것 같다.

“교원노조가 조합원인 교사들의 권익을 신장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당연하다. 요즘처럼 큰 변화가 올 때는 교사들도 위기의식을 가질 수밖에 없고, 전교조도 권익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는 측면이 있다. 다만 아쉬움은 있다. 사회적 흐름으로 보면 교원노조가 단순히 임금 문제에 집중하는 것은 좀 그렇다. 사회적 역할도 확대해야 한다.”

- 급식 노동자 등 학교 공간에 교사 아닌 분들도 많이 있다. 전교조가 이런 분들과도 연대를 잘하는지 의문이 든다.

“그 부분도 풀어야 한다. 원래 ‘교직원노조’다. ‘교원노조’가 아니다. 학교에 비정규직 교사, 급식 노동자, 공무직 등이 많아지다보니 교사들과 갈등이 생긴다. 교원단체도 학교의 역할에 대한 인식 변화가 필요하다. 학교의 역할을 지식 전수 기관으로만 보면 현실과 너무 맞지 않다. 현실변화를 읽는 시야와 조정력, 유연성이 필요하다. 그래야 국민을 설득할 수 있다. (전교조가) 건강한 권익단체가 됐으면 한다.”

- 아이들에게 민주시민 교육, 노동인권 교육을 정규 교육과정에 포함시켜 가르치자고 최근 시·도 교육감들이 제안했다.

“민주시민 교육과 노동인권 교육이 필요하다는 주장에 공감한다. 그러나 특정 과목으로 설정해 교육하는 것이 적절한지에 관해서는 이견이 있다. 교과목 만드는 게 능사는 아니다. 새 교육과정에 편성하는 문제는 학생들이 배워야 할 학습의 양과 직결되기 때문에 종합적인 검토가 필요하다.”

[논설위원의 단도직입]“수능 킬러 문항 탓 사교육 성행…서술형·논술형 시험 도입 고민할 때”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102030600005&code=940401#csidxecdd1cfe9195551be80d8f742363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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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로 만든 공룡' 위를 달려 세워진 도시, 서울

[세상을 잇는 다리] 무거운 역사의 무게를 묵묵히 떠안고 있는 한강철교

21.02.03 07:52l최종 업데이트 21.02.03 07:52l


한강에 최초로 만들어진 현대식 다리가 한강철교다. 기다란 쇠를 조립해 만든 트러스교다. 흔히 트러스교를 '쇠로 만든 공룡'이라고 부른다. 쇠를 조립해 하천이나, 계곡, 바다를 횡단하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큰 아픔으로 남아있는 성수대교가 트러스교다.
게르버 구간 힌지 시공 불량으로, 게르버 트러스가 끊어져 사고가 일어났다. 한강철교는 4개 철도교량이다. A선은 1900년 7월에, B선은 1912년 9월에, C선은 1944년 8월에, 1994년 12월에 D선을 건설하였다. 서에서 동측으로 차례대로 C-D-A-B선 순으로 놓여있다.
  

한강철교 서측 모습 맨 좌측 C선 모습이 뚜렷하다. 교각 모양도 각기 다른 모양이다. 4개 철교는 운행하는 열차가 도시철도, 광역철도, 간선철도, KTX 등 각 노선별로 분리되어 있다.
▲ 한강철교 서측 모습 맨 좌측 C선 모습이 뚜렷하다. 교각 모양도 각기 다른 모양이다. 4개 철교는 운행하는 열차가 도시철도, 광역철도, 간선철도, KTX 등 각 노선별로 분리되어 있다.
ⓒ 이영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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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인 모스, 경인철도부설권을 얻다

1883년에 인천(제물포)이 개항한다. 한강 조운(漕運)에 의존하던 한양으로의 물류흐름을, 육상으로 돌릴 계획이 구상된다. 바로 철도다. 산업화와 근대화에, 뒤늦었지만 비로소 눈을 뜬 것이다. 철도부설권은 수탈은 물론 막대한 이권이 걸린 사업이다. 따라서 열강들은 후진국 철도부설권을 얻거나 빼앗으려 혈안이었다. 일본이 호시탐탐 조선 철도부설권을 노린다. 여기에 경쟁자가 등장한다. 바로 미국인 모스(James R. Morse)다. 모스는 '주조선 미국 전권공사' 직책을 갖고 있는 기업인이다. 미국 공사관 알렌(Horace N. Allen)을 통해 조선조정에 지속적으로 철도부설권을 타진한다. 1891년 모스는 드디어 조선과 '철도창설조약'을 체결하게 된다.


하지만 일본의 방해와 책략이 끈질기다. 청일전쟁이 빌미가 된다. 일본은 1894년 8월 조선과 '조일잠정합동조관'을 통해 경인선과 경부선 철도부설권을 차지하게 된다. 조선이 가난해 돈이 없어, 일본 자본력과 기술력을 빌려 써야 한다는 명분이다.

이 해에 동학혁명과 청일전쟁이 동시에 일어난다.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이 지나친 전쟁보상을 요구한다. 1895년 '삼국간섭(일본이 얻은 요동반도를 러시아·독일·프랑스가 개입, 요동반도 반환요구를 관철시킨 사건)'이 일어난다. 이 사건으로 일본은 울며 겨자 먹기로 철도부설권을 포기해야만 했다. 아관파천이 일어난 50일 후(1896년 3월 29일), 경인선 철도부설권을 모스가 얻게 된다. 당시 고종을 보호하던 러시아 공사관 베베르의 지원도 한몫 한다. 어부지리인 셈이다.
 
한강철교 건설장면 교각 사이에 임시가설물(벤트)을 올리고 그 위에서 곡형 와렌 트러스를 강결시키는 장면이 뚜렷하다. 1899~1900년 사이로 추정되는 모습이다.
▲ 한강철교 건설장면 교각 사이에 임시가설물(벤트)을 올리고 그 위에서 곡형 와렌 트러스를 강결시키는 장면이 뚜렷하다. 1899~1900년 사이로 추정되는 모습이다.
ⓒ 서울역사아카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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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와 조선 조정은 '경인철도특허조관'을 체결한다. 조관은 '미국 자본을 유치하고, 1년 내 기공과 3년 내 준공, 한강에 인도교 설치, 다리 중앙으로 배가 다닐 수 있게 가동교를 만들거나 형하고를 높게 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조관 내용대로, 1897년 3월 22일 경인가도가 있는 우각현(牛角峴, 현재 도원역 인근)에서 기공식을 치르고, 착공에 들어간다.

다시 일본에게

하지만 일본은 음흉하고 악랄하며, 끈질기다. 미국인 투자자들을 상대로 조선 정치가 매우 불안정하다는 악의적인 소문을 흘린다. 이에 미국 투자자들이 투자를 멈추고, 투입한 자본 회수에 나선다. 모스는 극심한 자금부족에 시달려야 했다. 진퇴양난이다. 설상가상으로 난공사 구간을 만나, 기술력 한계까지 보이기 시작한다.

모스는 방법이 없었다. 급기야 1898년 5월 10일 부설권을 일본에 1백만 불에 넘기고 만다. 하부구조인 노반공사가 어느 정도 완성된 상태다. 경인선 부설권을 얻은 일본은 '경인철도합자회사'를 세운다. 전면에 시부사와 에이이치라는 인물을 내세워 공사를 진행시킨다. 1899년 9월 18일 인천역∼노량진역까지 33km, 7개역으로 경인선이 1차 개통된다.
  
큰사진보기1900년대 한강철교 현재 노량진 수산시장 부근에서 촬영한 것으로 추정되는 한강철교 모습이다. 강 위에 나룻배들이 유유히 떠 다니고, 반대편으론 남산 자락이 어렴풋하다. 단선으로 놓인 한강철교 A선으로 보아 1912년 이전 모습이다.
▲ 1900년대 한강철교 현재 노량진 수산시장 부근에서 촬영한 것으로 추정되는 한강철교 모습이다. 강 위에 나룻배들이 유유히 떠 다니고, 반대편으론 남산 자락이 어렴풋하다. 단선으로 놓인 한강철교 A선으로 보아 1912년 이전 모습이다.
ⓒ 서울역사아카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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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일본은 한강철교에 투입할 기술력이 절대 부족했다. 차일피일 시간을 끌면서, 경인선이 개통된 지 10개월을 더 허비한다. 이후 한강철교 공사는 우여곡절 끝에 1900년 7월 5일에야 끝이 난다. 일본은 인도교를 설치할 수 없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한다. 전체 공사비도 늘어났다며 생떼를 쓰기도 한다. '눈 가리고 아웅'이다. 비로소 노량진역∼용산역∼서울(경성)역 구간이 완성된 것이다.

한국전쟁 때 끊어진 다리

1950년 6월 25일, 민족 최대 비극인 한국전쟁이 일어난다. 권력을 잡고 있던 이승만 일파는 서울시민들에게 '끝까지 서울을 사수할 것이니, 안심하고 생업에 종사하라'는 방송을 한다. 하지만 이는 녹음된 음성으로, 방송이 나오던 시점에 이승만을 비롯한 권력집단은 이미 한강을 건너 남쪽으로 피난 중이다.

임진왜란 때 도성을 버리고 신의주로 도망친 선조보다 더 비열하다. 그리곤 6월 28일 새벽 2시 30분, 한강철교와 한강인도교를 폭파시켜 버린다. 북한군 남진을 제지한다는 명분이다. 800여 명의 시민들이 그 자리에서 목숨을 잃는다.

시민들은 물론이고 많은 군인들마저 퇴로가 끊겨버린다. 군인들은 중장비와 무거운 무기를 부득이 버려야만 했다. 후퇴 할 수밖에 없었다. 퇴로도 만만치 않았다. 한강 이북의 수많은 시민들은 북한군이 점령한 곳에서 버티거나 견뎌내고 있어야만 했다.
 
큰사진보기한강철교 A, B선 1912년에 B선이 완공된다. 따라서 1912년 이후 모습이다. 사진에서 곡형 와렌 트러스와 벽돌로 쌓은 교각 모습이 뚜렷하다. 1944년에 만들어진 C선과 함께 1950년 6월 28일 3개 철교가 폭파된다.
▲ 한강철교 A, B선 1912년에 B선이 완공된다. 따라서 1912년 이후 모습이다. 사진에서 곡형 와렌 트러스와 벽돌로 쌓은 교각 모습이 뚜렷하다. 1944년에 만들어진 C선과 함께 1950년 6월 28일 3개 철교가 폭파된다.
ⓒ 서울역사아카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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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탄을 투하한 한강철교 3개 중 1개는 불완전하게 끊어진다. 북한군은 1개 철교를 급하게 임시복구하고, 기차를 통해 군수품을 실어 나른다. 결과적으로 한강다리 폭파는 실패한 작전이었다. 남한지역의 신속한 점령이 이뤄진다. 낙동강을 경계로 전장이 굳어진다. 피아간에 엄청난 소모전이 전개되었다.

연합군 인천상륙작전이 9월에 이뤄진다. 반도 허리를 가르는 전략이다. 28일 서울이 수복되고 전장은 북으로 밀려가기 시작한다. 서울을 위시한 주변 도시에선, 부역자 색출작업이 진행된다. 그들의 입으로 피난길을 막았다. 서울을 사수할 것이니 안심하고 생업에 종사하라 말했다. 그리곤 없는 죄를 묻는다. 이율배반이다.

다리를 끊어 피난길을 막아 놓고선, 이제 적에게 협력했다는 죄목을 덧씌운다. 무자비한 공포와 만행이 휩쓸고 지나간다. 수많은 사람들이 억울한 죽음을 당한다. 고양시 '금정굴 민간인 학살사건'이 대표적이다. 수복지역에서 1950년 10월부터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했다.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수많은 학살사건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전쟁 때 끊어진 한강철교 C선은, 수평 더블 와렌 트러스로 1957년 7월에 복구된다. 전쟁이 끝나고 4년 만이다. A, B선은 1969년 6월에 복구된다. 일제 때 곡형 와렌 트러스로 만든 구조물을, 복구하면서 수평 와렌 트러스로 바꾸었다. 1994년 12월에 완공된 D선은 수직재가 있는 수평 와렌 트러스로 만들었다. 현재 한강철교의 트러스 구조는 한강의 남측 중간부분까지다. 예전 한강 폭이다. 북측 교량부분은 거더교로 이어져 있다.

아픈 한강의 얼굴

서울역과 용산역에서 한강 이남을 잇는 모든 철도는 한강철교를 지난다. 철도를 통한 관문으로, 한강과 서울의 얼굴이다. 한강철교 역사는 민족 수난의 역사 그대로다. 식민지 수탈의 상징이다. 철도부설권을 매개로 한 침략의 상징이기도 하다. 한반도를 전쟁기지로 만들려는 그네들의 좋은 먹잇감이 철도였다. 그들은 일본∼부산∼서울∼평양∼신의주라는 대륙진출의 길을 철도로 만들어낸 것이다.

한강철교는 또한 민족상잔의 비극과 비겁한 권력집단의 치부를 드러내 보여주는 상징이기도 하다. 한국전쟁의 참상을 말할 때 수많은 민간인 학살과 함께 한강다리 폭파장면이 등장한다. 한강철교는 식민지 수탈과 더불어, 전쟁이라는 극한을 감내해야 했던 민족사의 처참한 비극을 끌어안고 있다. 전쟁의 참화를 피하지 못한 시민들은 억울한 누명과 탄압에 비명을 지르며 신음해야 했고, 재산은 물론 목숨까지 앗기어야 했다.
  
큰사진보기1939년 서울(경성)역 모습 경인선이 1900년 7월 한강철교를 완공하면서 인천~남대문역까지 철차를 운행하기에 이른다. 이 구간 개통과 함께 1900년 염천교 아래에 10평짜리 목조건물인 남대문 정거장을 세운 것이 서울(경성)역 시초다. 사진에 보이는 서울(경성)역은 1925년에 완공되었다.
▲ 1939년 서울(경성)역 모습 경인선이 1900년 7월 한강철교를 완공하면서 인천~남대문역까지 철차를 운행하기에 이른다. 이 구간 개통과 함께 1900년 염천교 아래에 10평짜리 목조건물인 남대문 정거장을 세운 것이 서울(경성)역 시초다. 사진에 보이는 서울(경성)역은 1925년에 완공되었다.
ⓒ 서울역사아카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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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년 전에 검은 연기를 내뿜는 철차와 함께 근대화의 물결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우리 힘으로 일궈야 하는 자주적인 근대화는 식민지 침략 앞에서 길을 잃었다. 수탈적인 근대화가 이식되었다. 그마저도 남의 손으로 얻은 해방은 곧장 한국전쟁이라는 비극으로 이어져, 쓰라린 아픔을 감내해야 했다.

오래된 우리

철교는 또한 산업화와 경제발전의 상징이기도 하다. 가난한 시골에서 짐 싸들고 모두가 서울로 몰려든다. 먹고사는 문제 해결이 최고 덕목이다. 혹은 공부하기 위해 기차를 타야만 했다. 서울로 몰려든 사람들은 간절하다. 모두가 땀을 흘렸고, 부지런히 일했다. 무능한 권력은 독재의 길로 나아갔고, 국민들의 힘으로 얻은 자유는 쿠데타 총칼에 무너지고 말았다.
  
한강철교 모습 총 4개의 트러스교로 이뤄진 한강철교 모습이다. 서울역과 용산역을 지나는 모든 철도가 이 다리를 건너 한강 이남으로 뻗어 나간다. 서럽고 쓰린 우리 근현대사를 오롯하게 껴안고 있는 다리다.
▲ 한강철교 모습 총 4개의 트러스교로 이뤄진 한강철교 모습이다. 서울역과 용산역을 지나는 모든 철도가 이 다리를 건너 한강 이남으로 뻗어 나간다. 서럽고 쓰린 우리 근현대사를 오롯하게 껴안고 있는 다리다.
ⓒ 이영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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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군사독재 터널에서 신음해야 했다. 하지만 독재 권력에 끈질기게 저항한다. 긴 암흑기를 이겨내고 민주화의 길로 접어든다. 이런 근면함과 민주주의를 열망하는 의식변화가 눈부신 산업화와 경제발전을 견인해 낸 원동력이다. 어느 독재자가 경제를 살려냈다는 말을 결코 신뢰하지 않는다. 시민들의 열망과 땀에 의해, 그리고 변화하고 진화한 시민의식이 경제발전의 바탕이었다. 시민들의 땀과 열정이 경제를 일구고 살려낸 진짜 주인공이다.
  
한강철교 하부 모습 좌로부터 C, D, A, B선이다. C와 D선은 더블 와렌 트러스로, A와 B는 수평 와렌 트러스로 만들어졌다. 하현재와 상현재, 그리고 트러스를 구성하는 각 부재와 브레이싱을 잘 보여주고 있다.
▲ 한강철교 하부 모습 좌로부터 C, D, A, B선이다. C와 D선은 더블 와렌 트러스로, A와 B는 수평 와렌 트러스로 만들어졌다. 하현재와 상현재, 그리고 트러스를 구성하는 각 부재와 브레이싱을 잘 보여주고 있다.
ⓒ 이영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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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에서야 비로소 형식적인 민주주의를 얻어냈을 뿐이다. 그마저 몇 번 반동의 길을 걸으며 현재에 이르고 있다.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은 끊임없이 나아가야만 하는 열차의 길을 닮았다. 한강철교는 모든 것을 지켜냈다. 철교 밑을 흐르는 강물은 유유하다.

철교 위를 빠르게 지나는 철차는, 묵직한 힘으로 가야만 하는 길을 가고 있을 뿐이다. 철교는 무거운 역사의 무게를 묵묵히 떠안고 있다. 잘 짜인 트러스교의 운명인가? 철교 위를 지나며, 마음속으로 되묻는다. 우리는 지금 반드시 가야만 하는 길로 나아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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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장 일으킨 한겨레 성명사태 어떻게 볼 것인가

현장 소통과 리더십 부재, ‘민주당=진보’? 86세대 인식 차이 여러 견해도
저변에 ‘검찰발’ 기대는 법조출입 시스템도… 치열한 논쟁에 “수평적 조직” 평가
 
 

 

한겨레 현장 취재기자 41명이 낸 성명이 한겨레 안팎 토론으로 이어지고 있다. 구성원들은 이른바 ‘조국 사태’ 보도를 둘러싼 논쟁이 내부에서 해결점을 찾지 못했다는 문제의식이 크다. 언론사 내 86세대와 그렇지 않은 취재기자 사이 인식 차가 벌어져온 가운데 줄곧 첨예한 법조 분야에 현장 소통 문제가 겹치며 부인할 수 없는 오보 사태에 이르렀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른바 범진보진영 내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인식 차이라는 해석도 있다.

한겨레 21~27기 현장 취재기자 41명은 지난달 26일 한겨레 국·부장단에 이메일로 성명을 보냈다. 현장 기자들은 “국장단의 어설픈 감싸기와 모호한 판단으로 ‘좋은 저널리즘’의 가치가 훼손되고 있다”며 “한겨레의 법조 기사들은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쓰여지고 있다”고 했다. 햇수로는 3년~11년차 기자가 연명했다. 성명은 이후 전 구성원에 공유됐다.

성명은 한겨레의 최근 법조 보도 사례를 언급하며 ‘현장 목소리를 배제한 채 무리한 편들기’가 지속됐다고 했다. 이용구 법무부 차관의 택시기사 폭행을 감싸는 보도가 오보로 이어졌고, 추미애 장관의 틀린 주장을 그대로 보도했으며, 법원이 윤석열 검찰총장 직무배제 집행정지 신청을 인용한 다음날 편집회의에서 현장 취재 내용과 정반대인 제목이 지면 배치됐다고 했다. 기자들은 국장단과 사회부 데스크가 공식 사과하고 재발 방지책을 마련할 것을 요구했다.

[관련기사 : 한겨레 기자 “정치적 이해 따라 법조기사 작성” 집단 성명]

임석규 편집국장은 28일 사내 구성원에게 메일을 보내 사과 뜻을 밝혔다. 임 국장은 “지난해 유독 법조 관련 이슈들이 많았다. 민감한 사안들이었으니 현장 목소리에 귀 기울여 팩트가 뭔지 더욱 엄밀하게 점검하고 꼼꼼하게 짚어봐야 했으나 부족한 점이 많았다. 무엇보다 개선할 기회가 있었는데도 이를 놓친 점이 뼈아프다”고 했다. 이춘재 사회부장과 김태규 법조팀장은 같은 날 보직 사퇴했다. 한겨레는 이틀 뒤 웹사이트에 이용구 차관 보도 관련 사과문을 올렸다.

▲1월29일 한겨레 2면 ‘이용구 차관 관련 보도’ 사과문
▲1월29일 한겨레 2면 ‘이용구 차관 관련 보도’ 사과문

성명은 사내 여러 반응을 이끌어내며 토론으로 이어지고 있다. 익명의 한 한겨레 구성원은 “젊은 기자들의 성찰을 바랍니다”라는 제목으로 성명을 비판하는 글을 올렸다. 게시자는 “거시적이고 신중한 고려가 없는 ‘성역 없는 비판의 칼날’은 어떤 경우엔 망나니의 미친 칼날이 될 수 있다”며 “기사의 방향은 현장의 보고와 데스크(부장과 팀장)의 판단을 토대로 해서 편집위원회가 결정하는 것”이라고 했다.

게시자는 이어 “한겨레 기자로 일한다면 언제나 진보적 가치를 추구하고 큰 진실을 고려하면서 취재하고 보도해야 한다”며 “가치와 방향에도 공정한 잣대를 들이대고 싶다면 한국일보처럼 중도 성향의 매체로 옮기기를 바란다”고 했다. 이어 현장 기자 성명을 두고 “조선일보를 비롯한 보수 매체들은 신이 나서 기사를 쓰고 있다”며 “선의가 나쁜 결과로 이어진다면 과연 그것을 선의라고 말할 수 있을까”라고 했다.

이 글은 성명 내용을 반박하기보다 논의를 희석하는 면이 있다. 현장 기자 성명이 한겨레가 낸 오보와 이를 발견하고도 시정하지 못하는 취재 보도 시스템을 언급했는데, 게시글은 이에 ‘진보 가치’로 답했다. 한겨레가 발표한 사과문 취지에도 반하는 성명이다. 복수의 15년차 이상 한겨레 구성원이 글을 SNS에 공유하거나 ‘좋아요’를 눌러 공감을 표했다.

단순 ‘신구·세대갈등’ 아냐, ‘민주당’에 대한 오랜 시각차

다수 언론이 한겨레 성명 사태를 ‘신구갈등’으로 규정하는 모양새다. 그러나 한겨레 기자들은 편집국 내 86세대 기자와 현장 기자들의 시각 차이가 오랜 문제라면서도 단지 ‘세대 차이’로만 봐선 곤란하다고 말한다.

한겨레 기자들은 두 성명이 사내 고‧저연차 집단의 의견을 단순 대변하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한겨레 A 기자는 “연차 높은 기자 가운데 현장 기자 성명에 동의하는 분들도 있다고 들었다. 그러나 책임지는 위치인 탓에 연명할 기회는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B 기자는 “성명 뒤 높은 선배 기자들로부터 ‘기자들이 맘고생을 많이 했겠다, 해결하도록 노력하겠다’는 반응을 들었다”고 했다. C 기자는 “여러 고연차 선배들이 유사한 얘길 한다는 말을 다수에게 전해 들었다”면서도 “단순화하긴 어렵다. 성명에 참여하지 않은 젊은 기자도 있고 이른바 ‘문파’도 있을 수 있다”고 했다.

▲서울 마포구 한겨레 사옥. 사진=미디어오늘
▲서울 마포구 한겨레 사옥. 사진=미디어오늘

현장 기자 성명 취지에 공감하는 기자들은 데스크가 정부 편향적으로 기사를 판단해온 데다 조직 내 소통 부재가 복합적으로 작용했다고 말한다. 성명을 낸 기수보다 높은 연차의 한 기자는 지난달 31일 사내 게시글을 올려 “(이번 사안은) 조국 사태 이후 계속되는 편집국의 편향과 무능이 겹쳐진 문제”라고 했다. 이 기자는 “법조의 문제는 지난 1년여간 사회 전체를 달구는, 나아가 한겨레 편집국 전체의 정체성을 표하는 이슈가 된 상황에서도 전혀 개선되지 않았다”며 “부장과 부서원의 소통을 넘어서는 편집국장을 비롯한 지도부의 능력 문제”라고 했다.

이 기자는 “‘검찰 개혁’에 동의하지 않는 기자는 아무도 없으리라고 생각하고, 그에 대한 열망 또한 시니어들과 차이가 없으리라고 생각한다”며 “(성명은) 민주당 정권이 ‘명분’만 앞세우며 무리하게 추진하고 있는 일에 대해 ‘명분’을 감싸느라 ‘사실’에 눈감지 말자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기자들은 민주당을 대하는 한겨레 내 인식 차는 오랜 문제라고 지적한다. 한겨레 D 기자는 “조국 사태 이후 반복되는 건, 오랫동안 86세대의 장기 집권 체제다. 현 편집국 지도부는 (아래 세대와 비교해) 민주당에 대한 인식이 다르다. 젊은 기자들은 정권을 잡는 순간 권력이라고 인식하지만 그 위 구성원은 민주당이 같은 편이라는 정서가 있다”고 했다.

C 기자도 “단순화하긴 어려우나 박원순 시장 사망 등 국면에서 윗 기수들이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 인사들과 동료의식이 강하다는 느낌을 받는다”며 “젊은 세대도 선배들이 만들어놓은 한겨레의 가치를 지향해 여기 모였지만, 민주당이나 문재인 정부와 동질감을 느끼느냐 측면에서 다르다. 그래서 현장 기자가 문재인 정부를 비판하는 기사를 썼을 때 갈등이 생기거나 위 기수 선배들이 번뇌하는 것을 느낀다”고 했다.

법조 취재 특성에 조직내 소통 문제 겹쳐

성명을 쓴 기자들은 해당 성명이 이른바 조국 사태 이후 두 번째지만, 무력감 끝에 나왔다고 말한다. E 기자는 “조국 사태 뒤 현장 기자들은 더 큰 무기력과 열패감에 빠졌다. 사장과 국장이 바뀐다고 해서 달라질 수 없는 근본적 문제라고 보기 때문”이라며 “성명을 보면 오보나 편집부원의 비판 글 등 앞서 문제를 제기할 사건들도 몇 건 있었다”고 했다.

복수 기자는 이 문제가 기본적으로 법조 출입처 시스템 풍토 탓에 불거졌다고 지적했다. F 기자는 “(한겨레 법조 보도 문제는) 검찰 대 정부의 싸움이 아니라 검찰 안의 싸움에 가깝다. 이용구 차관 폭행 보도는 윤석열 라인이 출처다. 이 사안이 불기소 처분될 사안이라는 보도는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 라인에서 나왔다. 요약하면, 검사들 싸움에 기자들이 놀아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D 기자는 “타 부서에 비해 출처를 묻지 않는 법조 출입처 시스템이 오보를 부른 면이 있다. 일선 기자와 법조팀장, 법조를 오래 한 선임기자가 만나는 검사 ‘레벨’이 다르다 보니 선배가 가져온 정보가 고급정보로 신뢰받는 관행이 자리잡았다”고 했다.

▲서울 공덕동 한겨레 사옥. 사진=미디어오늘
▲서울 공덕동 한겨레 사옥. 사진=미디어오늘

성명이 언급하는 내용이 편집국의 논조 편향이 아닌 법조팀 내 문제라는 시각도 있다. G 기자는 “법조나 사회부 커뮤니케이션 문제로 보인다”며 “임석규 편집국장 체제의 편집인들은 널널한 사람이다. 솔직하게 말하면 나는 기사를 쓰며 (이번 편집국) 데스크에 의해 내용이 주제의식에 안 맞게 흔들린 경험이 거의 없다”고 했다.

한 한겨레 기자는 사내 게시글을 올려 “시간 제약 등 여러 문제로 데스크가 판단을 하고 기사 방향을 잡아갈 수밖에 없다”며 “‘검찰 개혁’에 대한 한겨레 스탠스는 매우 논쟁적이다. 선후배와 부서, 사람마다 의견이 다르고 논쟁이 끝이 없다. 내 의견이 100% 맞다고 확신하지 않는 이상 어느 정도는 서로 견뎌줘야 한다”고 했다.

이에 대해 기자들은 현장과 소통 부재가 법조 보도에서 특히 두드러졌지만 편집국 전체에 퍼졌다고 반박했다. 한 기자는 답글로 “정당팀이라고 왜 기사 방향에 (일선 기자의) 불만이 없겠느냐. 현장에는 다 있다. 다만 중간 관리자들이 법조보다 훨씬 섬세하게 관련 문제를 조율하고 판단하고 있으니 그나마 나은 것”이라고 반박했다. C 기자도 “(여타 부서는) 법조팀처럼 현재 치열하고 뜨거운 주제를 다루진 않아 비교할 바 아니다. 부장 재량에 따라 달랐지만 부서마다 소통이 되지 않는다는 느낌은 켜켜이 쌓여왔다고 본다”고 했다. 이 기자는 현 편집국장이 공약으로 내세운 ‘토론단위 확대’나 ‘보도 점검 자리’, ‘현장 기자 비상구’ 등이 현실화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기자들은 편집국 조직 구조도 현장 기자의 문제 제기를 가로막는다고 했다. D 기자는 “핵심은 중간 과정의 커뮤니케이션이 거의 사라졌다는 점”이라며 “한겨레의 현 부장제는 부장-차장-팀장-팀원으로 이어지는 구조다. 모든 편집회의는 국·부장단이 하는데, 단계가 여럿인 데다가 부장과 팀원은 코로나19로 거의 마주칠 일이 없다. 현장 기자들이 발제해도 내용이 깎이는 데다가 기자들의 일이 너무 많은 탓에 자신의 발제를 관철하기까지 업무 흐름이 복잡해졌다. 부장단은 이 과정을 겪지 않으니 ‘우리는 현장 기자들이 쓰겠다고 하는 거 못 쓰게 한 적 없다’고 말한다. 그만큼 조직이 권위적으로 변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편집국 내 열린 토론이 필요하다는 데에 다수 기자가 입을 모았다. 이번 성명 사태를 ‘정권 편향’으로 규정할 수 없다고 말한 F 기자는 “예민한 사안이 있으면 편집위원들이 의견을 개진하고 토론해야 한다. 국장이 주도하고 다른 의견이 없는지 물어야 한다. 그런데 그런 토론이 거의 없다”고 했다. B 기자는 “‘한겨레 신구갈등’으로 보도되거나 익명게시판 글이 자극적으로 기사화됐지만 사실 구성원들은 이 문제를 소통으로 풀어야 한다고 공감한다”고 했다.

한겨레가 수평적 조직이기 때문에 이 같은 논쟁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도 안팎에서 나온다. 한겨레 저널리즘책무위원회 외부위원을 맡고 있는 심석태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대학원 교수는 “오히려 건강하다고 보는 부분은 현장 기자들의 문제 제기에 내부가 반응하면서 토론이 이뤄지고 있다는 점”이라고 했다. 한겨레는 3일 편집국 간담회를 열어 이 문제를 토론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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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 만들고 부당한 일에 목소리 내니 돌아온 건 대량해고

[간접고용 노동자의 눈물 上] 고용 불안, 무노조에 저임금, 갑질도 참을 수밖에

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결성하기 전, 그리고 노조 결성 이후 겪은 일들 속에는 한국사회 간접고용 노동자들이 겪는 어려움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15년 간 최저임금을 받고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아온 노동자들이 노조를 만들자 용역업체 변경을 통한 집단해고 시도와 '다른 곳에 가서 일하라'는 회사 입장이 돌아왔다. 청소노동자들이 이를 되돌리기 위해 50일째(3일) LG트윈타워 로비 농성 및 선전전을 하고 있지만 LG그룹은 이들 요구에 답하지 않고 있다.


 

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들이 겪은 일을 토대로 간겁고용 노동자의 삶을 돌아봤다.


 

근로기준법에는 '해고 제한' 조항 있지만...간접고용 노동자에게는 무용지물


 

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 집단해고 사태를 볼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간접고용 노동자의 고용 불안이다.

 

LG그룹이 청소노동자를 직접고용하고 있었다면, 한 직종에서 일하는 노동자 전원의 해고를 시도하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직접고용 노동자는 '정당한 이유 없이 해고할 수 없다'는 근로기준법상 해고 제한 조항의 보호를 받기 때문이다.


 

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는 재하청 구조에서 일하는 간접고용 노동자다. 구체적으로는LG트윈타워 건물관리를 수행하는 에스앤아이코퍼레이션(에스앤아이)과 청소·시설 용역 계약을 맺은 지수아이앤씨(지수) 소속이다. LG트윈타워를 쓸고 닦는데 이 건물에 입주한 LG그룹 본사 및 계열사와 청소노동자 사이에는 법적 고용 관계가 없다. 이런 구조에서는 원청인 LG그룹이 하청업체와의 계약을 해지하는 것만으로 노동자를 내쫓을 수 있다.


 

실제로 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 '집단해고' 사태는 에스앤아이가 지수와 청소 용역 계약을 해지하고 백상기업(백상)에 새로 청소 용역을 맡기면서 발생했다. 백상이 기존 청소노동자 고용승계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11월에는 지수가 '사직서에 서명하면 250~500만 원의 위로금을 주겠다'며 청소노동자들에게 사직서 서명을 종용한 일도 있었다. 청소노동자들이 이를 거부하자 지수는 '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를 다른 사업장으로 분산배치하겠다'는 입장을 냈다. 청소노동자들은 마찬가지로 이를 거부했다. '일하던 곳을 떠나 다른 곳에서 일하라는 것을 고용승계로 볼 수는 없고 실제 노동자들이 다른 건물로 가면 계속 일하는 것이 가능할지 알 수 없다'는 것이 노조 입장이다.

 

실제 취재 과정에서 만난 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들은 "지수가 제안한 대로 다른 곳에 갔지만 관리자의 갑질을 견디지 못해 결국 퇴사한 청소노동자가 있다"고 했다.


 

▲ LG트윈타워 화장실 바닥을 닦고 있는 청소노동자. ⓒ프레시안(최형락)

헌법에는 노조할 권리 있지만, 간접고용 노동자에게는 무용지물

 

간접고용 구조는 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의 노조 활동도 가로막았다. 헌법에 보장된 '노조할 권리'는 간접고용 노동자들에게는 해고까지 감내해야 겨우 행사할 수 있는 권리였다.


 

2019년 10월 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들은 노조를 만든 뒤 지수와 교섭을 해야 했다. 인건비에 대한 사실상의 결정 권한을 갖고 있는 '진짜 사장' LG그룹는커녕 1차 하청업체인 에스앤아이와도 교섭할 수 없었다. 이같은 상황은 에스앤아이와 지수의 용역 계약이 종료되기 직전인 지난해 11월까지도 마찬가지였다.


 

지수와의 교섭이 결렬돼 노조가 LG트윈타워 로비에서 선전활동을 하자 LG그룹 자회사 에스앤아이에서 가장 먼저 한 일은 법원에 '로비 선전 1회당 200만 원을 내게 해달라'는 내용의 가처분 신청을 낸 것이었다. 자신들은 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의 법적 사용자가 아니므로 청소노동자들이 LG트윈타워에서 노조활동을 하면 안 된다는 논리였다.

 

법원은 에스앤아이가 낸 세 번의 가처분 모두 "LG그룹은 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들의 쟁의행위를 수인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단, 용역업체 변경 이후 로비 농성이 한창이던 지난 19일 나온 가처분 결정에서 '밤 10시부터 다음날 아침 8시 사이의 농성'을 금지했다. 청소노동자들은 제한적이나마 LG트윈타워로비에서 선전활동을 할 수 있게 됐지만 소송 과정의 불안감과 부담은 그대로 감내해야 했다.

 

 

청소노동자들은 10년 간 유지되던 에스앤아이와 지수의 청소 용역 계약이 해지된 것과 뒤이은 사직 종용, 분산배치 시도 역시 노조 활동을 막기 위한 것이라고 본다. 박소영 LG트윈타워분회장은 "노조를 만들고 그간 참아왔던 부당한 일에 대해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니 그게 보기 싫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노조는 LG트윈타워에서 일어난 용역업체 변경 등은 "노동조합 파괴를 위해 원하청이 공모해 일어난 부당노동행위"라며 지난 6일 서울지방고용청 남부지방지청에 에스앤아이, 지수, 청소노동자들의 고용승계를 거부하고 있는 백상을 고소했다.


 

간접고용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만들면, 원청이 기존 하청과 계약을 해지하고 새 업체와 계약한다. 그리고 새 업체는 노조를 만든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고용승계를 거부하는 도식은 LG트윈타워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멀게는 2012년 홍익대학교가 똑같은 일을 했고, 가깝게는 울산 동강병원에서 비슷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 울산 동강병원은 지난달 조리 하청업체를 바꿨고, 새 하청업체는 조리원 16명 중 12명의 고용승계를 거부하고 있다. 울산 동강병원에서는 지난해 7월 조리원 노조가 생겼다.


 

▲ LG트윈타워 로비에서 선전전을 하고 있는 청소노동자들. ⓒ프레시안(최용락)

고용불안, 노조활동 어려워 저임금도 갑질도 참으며 일할 수밖에 없는 간접고용 노동자


 

고용이 불안하고 노동조합도 하기 어려운 간접고용 노동자가 계속 일하려면 철저하게 '을'이 될 수밖에 없다. 노조를 만들기 전 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들도 '을'이었다.


 

LG트윈타워 청소용역업무를 수행한 10여 년간 청소노동자들이 받은 임금은 최저임금이었다. 5년을 일해도 10년을 일해도 마찬가지였다. 이윤을 늘리기 위한 불법과 편법도 동원됐다. 지수는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임금 인상 시기를 4월로 맞춰 1~3월 임금인상분을 떼먹었다. 평일 휴게시간을 30분 더 잡는 '근무시간 꺾기'를 통해 격주 토요일 근무를 시키기도 했다.


 

지수는 이렇게 아낀 돈으로 이윤을 챙겼다. 지수는 LG그룹 계열의 건물을 중심으로 용역계약을 맺어 2019년 기준 2500여 명의 노동자를 고용해 45억여 원의 순이익을 남겼다. 같은 해에 지수의 지분을 50%씩 나눠 소유하고 있던 구광모 LG그룹 회장의 두 고모 구미정, 구훤미 씨는 각각 30억 원씩을 배당받았다.


 

관리자의 갑질도 있었다. 청소노동자 김정순 씨는 "관리자가 '주머니에 손 넣지 마라', '웃지 마라'와 같은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며 "재계약 시기가 다가오면 관리자의 갑질이 한층 심했다"고 증언했다. 조장 수당을 현금으로 걷어가 관리자가 챙기기도 했다. 김 씨와 동료들은 부당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쫓겨날까 두려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관리자의 갑질을 막을 책임을 지고 있는 지수는 이런 상황을 아예 모르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김정순 LG트윈타워분회 조합원은 "노조가 만들어지고 나서야 지수 본사 직원이 처음으로 우리를 찾았다"고 말했다.

 

많은 간접고용 노동자가 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와 비슷한 상황에 처한다. 간접고용 노동자를 쓸 때 원청은 일반적으로 낮은 금액으로 용역계약을 맺으려 한다. 상대적으로 높은 금액으로 계약을 맺더라도 하청업체는 이윤을 늘리기 위해 지수와 같이 갖가지 방법으로 인건비를 줄인다.


 

국가인권위원회가 2019년 발표한 연구용역보고서 <간접고용 노동자 노동인권 실태조사>를 보면, 2017년 기준 파견노동자의 평균임금은 정규직의 57%인 175만 원, 용역노동자의 평균임금은 정규직의 51%인 156만 원이었다.

 

고용이 불안정하고 노조를 만들기도 어려워 갑질에 저항하지 못하는 것도 간접고용 노동자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상황이다. 지난해 5월 최희석 경비 노동자가 입주민의 갑질을 견디지 못해 세상을 등졌을 당시에도 고용불안 등 간접고용 노동자의 열악한 위치가 사건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됐다.



출처: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1012910434503514#0DKU 프레시안(http://www.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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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원전’이 ‘원전 폐쇄’와 무슨 관계?...‘엉터리 공소장’으로 논란만 일으킨 검찰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21/02/03 09:36
  • 수정일
    2021/02/03 09:36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검찰, 혐의 관련 없는 ‘국회회의록’·‘언론기사’ 삭제까지 범죄일람표에 포함

김백겸 기자 kbg@vop.co.kr
발행 2021-02-02 17:10:22
수정 2021-02-02 20: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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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성원자력발전소(자료사진)
월성원자력발전소(자료사진)ⓒ김철수 기자  
 
'북한 원전 극비 추진 의혹'을 일으킨 검찰의 '월성 원전 폐쇄 의혹' 사건 공소장에는 '북한원전' 파일과 같이 공소사실과 관련 없어 보이는 내용까지 포함된 것으로 나타났다.

감사 방해 혐의와 직접 관련 없을 것으로 보이는 파일들을 삭제한 사실도 공소사실에 포함해 '공소장 일본주의' 원칙을 위반한 것은 물론, 결과적으로 필요 없는 논란까지 만들어냈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전지방검찰청은 지난해 12월 23일 법원에 제출한 '월성 원전 폐쇄 의혹' 사건 공소장을 통해 산업통상자원부 국장인 A씨 등 공무원 3명을 감사원법 위반, 공용전자기록등손상, 방실침입 등 혐의로 기소했다.

애초 이 사건은 지난 2019년 10월 국회로부터 월성 원전 1호기 조기 폐쇄 결정의 타당성 및 한국수력원자력 이사회 이사들의 배임행위 여부에 대한 감사 요청을 받은 감사원이 감사를 진행한 결과 "산업부 직원들이 관련 자료를 폐기했다"는 내용을 발표하면서 시작됐다.

해당 사건과 관련해 청와대 관여 의혹까지 제기됐으며, 윤석열 검찰총장이 직접 해당사건을 지휘하는 등 관심을 보인 사건이기도 하다.

 

공소장에서 검찰은 감사원이 산업부에 '월성1호기 조기 폐쇄 및 즉시 가동중단과 관련한 의사결정이나 보고자료, 산업부·한수원·청와대 등과의 협의자료' 등을 요구했으나, 2019년 11월께 A씨가 "월성1호기 관련 자료를 주말에 삭제하라"고 지시를 내리고 이에 다른 2명의 공무원이 자신이 사용하는 컴퓨터에서 자료를 삭제했다고 혐의 사실을 적시했다.

공소장의 범죄일람표에는 디지털포렌식을 통해 찾아낸 530여개 삭제 파일의 목록이 그대로 담겨있다. 그러나 이 중에는 파일 제목만 봐도 '월성1호기 조기 폐쇄'와 크게 관련이 없어 보이는 파일까지 포함돼 있다.

우선 '북한원전 극비 추진' 의혹을 일으킨 'Pohjois'(북쪽을 뜻하는 폴란드어) 폴더에 담긴 자료 17건만 해도 월성1호기 폐쇄와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어 보인다.

특히 의혹의 핵심 근거가 됐던 '북한지역 원전건설 추진방안'이라는 제목의 자료의 경우, 산업부가 직접 파일을 공개하면서 "아이디어 검토 차원의 문서"라고 밝힌 바 있다. 그 파일 또한 산업부 전산망에 그대로 보관돼 있어 감사원법 위반, 공용전자기록등손상 등 혐의를 적용하기 어려워 보인다.

'Pohjois' 폴더 내의 다른 파일도 지난 1995년 북한의 경수로 지원을 위해 설립된 KEDO(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 관련 업무경험자 명단, '에너지분야 남북경협 전문가', '관련 전문가 목록' 등으로 감사원이 원한 자료와는 거리가 있다.

심지어 현재 일반인도 열람할 수 있는 '경수로백서'와 백서의 표지 이미지 파일까지 범죄일람표에 포함돼 있다.

또한 범죄일람표에는 '국회회의록_장하나 의원 원전중단 결의안', '검토보고서_원자력발전소 신규건설 추진포기와 수명연장 중단여부에 대한 국민투표와 공론조사실시 촉구 결의안' 등 제목의 파일도 포함됐다.

지난 2014년 1월 19대 국회의원이었던 장하나 전 민주당 의원은 신규원전 건설 포기와 노후원전 수명연장 중단에 대한 국민투표 실시를 촉구하는 내용의 결의안을 발의한 바 있다. 당시 박근혜 정부가 원전을 확대한다는 내용의 2차 에너지기본계획을 내놓자 이에 대응한 것이다. 해당 자료가 생성된 시기나 내용, 일반인도 쉽게 열람할 수 있는 자료의 성격 등을 고려하면 혐의와 직접적인 관련은 없어 보인다.

이외에도 일반에 배포된 자료로 보이는 '탈핵공청회 자료집'이나 '차질없는 신규원전 건설로 신기후체제 대비해야'라는 제목의 언론 기사 등 언뜻 봐도 관련 없는 자료들도 범죄일람표에 포함돼 있다.

검찰 자료사진
검찰 자료사진ⓒ뉴시스

이같이 혐의와 직접 관련이 없는 자료들을 공소장에 포함시키는 것은 형사소송 원칙 중 하나인 '공소장 일본주의'를 위배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공소장 일본주의는 혐의 외의 자료를 첨부해서는 안 된다는 것으로, 재판부의 예단을 막고 피고인의 방어권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다.

이에 대해 변호사 출신인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공소장 일본주의를 도입한 취지에 비춰본다면 (해당 공소장에서) 관련 없는 증거와 행위 쓰는 것 자체가 예단을 줄 수도 있다"면서 "(검찰이) 필요도 없는 것에 대해 언급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조영관 변호사(법무법인 덕수)도 "검찰이 공소장에 적는 것을 피고는 막을 방법이 없기 때문에 공소장에 예단을 갖게 하는 불필요한 것을 제기해서는 안 된다는 판결도 있었다"면서 "검찰의 기획수사에서는 이런 식의 공소장이 유지되는 경우가 많은데 적절치 않다"고 비판했다.

혐의와 관련 없는 내용이 공소장에 적시될 경우 실제 재판 진행에도 영향을 줄 수도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실제로 김경수 경남지사의 '드루킹 사건' 재판의 경우에도 문재인 정부에 비판적인 내용의 '역작업'이 공소사실에 포함돼 재판 과정에서 쟁점이 되기도 했으며, 당시 재판부가 '역작업'을 분류할 것을 특검 측에 강하게 요구하기도 했다.

조 변호사는 "공소사실 자체가 광범위해진다는 문제가 생긴다"면서 "검사가 제기하는 공소장은 범죄혐의를 분명히 확정해야 피고가 방어권을 제대로 행사할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서 (해당 공소장은) 피고가 예측하기 힘든 혐의사실에 대해 책임지게 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검찰이 공소장에 혐의와 관련 없는 부분까지 넣은 것은 검찰이 의지를 가지고 진행한 기획수사인 탓도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하나만 걸려라'는 식의 검찰의 '투망식 기소'가 결과적으로 불필요한 논란으로 이어졌다는 지적이다.

조 변호사는 "이런 식의 투망식 기소가 이뤄진 것이 검찰의 일반적 기소라고 볼 수는 없다"면서 "적법절차의 원칙, 공소장 일본주의를 위배할 수 있는 의혹을 주면서 공소하는 것은 적절치 않고 오히려 불필요한 오해를 만들어 낸다"고 강조했다.

김백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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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에 기댄 보복이 아닌 ‘진실·치유·통합’…그는 약속을 지켰다

[여성, 정치를 하다](20)분노에 기댄 보복이 아닌 ‘진실·치유·통합’…그는 약속을 지켰다

장영은

입력 : 2021.02.02 06:00 수정 : 2021.02.02 08:55

 

미첼 바첼레트 

칠레의 첫 여성 대통령을 지낸 미첼 바첼레트는 험난한 여정을 두려워하지 않는 정치인이었다. 피노체트 정권의 고문 피해자 가족으로 자신도 고문 피해를 입었지만, 분노에 기댄 보복이 아닌 진실규명과 배상을 일관된 의지로 추진했다.

칠레의 첫 여성 대통령을 지낸 미첼 바첼레트는 험난한 여정을 두려워하지 않는 정치인이었다. 피노체트 정권의 고문 피해자 가족으로 자신도 고문 피해를 입었지만, 분노에 기댄 보복이 아닌 진실규명과 배상을 일관된 의지로 추진했다.

 

피노체트 정권의 고문 피해자 가족으로 자신도 비밀경찰에 피해
망명 귀국 후 복지부·국방부 장관 거쳐 칠레 첫 여성 대통령으로
국가폭력 진실 규명·배상 “분노·원한의 개입 없이” 일관된 추진
유엔여성기구 총재 → 재선 → 유엔인권 대표 ‘용기있는 여정’ 계속
 

“고문 후유증은 개인이 혼자서 감당하거나 극복해야 할 문제가 아닙니다. 정부는 진실과 정의를 회복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가지고 국가폭력의 피해자들에게 배상을 추진 중입니다. 이 중대한 원칙은 앞으로도 변함없이 지켜질 것입니다.”

2006년, 칠레 최초의 여성 대통령으로 세계 최초의 남녀 동수 내각 장관을 출범시켰던 미첼 바첼레트는 국가폭력 트라우마 치유와 관련해 분명한 소신을 밝혔다. 사실 그녀 자신도 국가폭력 생존자였다. “저는 분노와 원한이 제 삶을 통째로 잡아먹지 못하도록 안간힘을 썼습니다.” 칠레의 굴곡진 현대사는 미첼 바첼레트 가족사와도 밀착되어 있다.
 

1973년 9월11일, 칠레에서 군사 쿠데타가 일어났다. 아우구스토 피노체트는 군 총사령관에 부임한 지 한달 만에 권력을 탈취한다. 쿠데타 세력들은 살바도르 아옌데 대통령에게 투항을 명령했다. 아옌데 대통령은 군부의 손을 잡지 않았다. 그는 라디오 연설로 국민들에게 ‘작별인사’를 건넨다. 살바도르 아옌데는 자신을 대통령으로 선출해 준 칠레 국민들에게 끝까지 신의를 지켰다. “저는 결코 사임하지 않을 것입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분명하게 드릴 수 있는 말씀은 그것뿐입니다. 국민들께서 제게 주신 충정에 제 목숨을 바쳐 보답하고자 합니다.” 그는 의연하게 최후를 맞았다. “여러분께 간곡히 호소합니다. 믿음을 잃지 마십시오. 우리는 이 암울하고 고통스러운 시기를 반드시 극복해낼 것입니다. (…) 머지않아 드넓은 가로수길이 열릴 것입니다. 자유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보다 나은 사회를 향해 위대한 길을 만들어갈 것이라고 저는 굳건히 믿습니다.” 대통령 관저인 모네다궁에 폭탄이 투하되었다.

아옌데 대통령의 자리를 차지한 피노체트는 1973년부터 1990년까지 17년 동안 독재자로 칠레 국민들을 탄압했다. 반정부 인사들을 무자비하게 숙청했다. 양심적인 군인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공군 준장이었던 미첼의 아버지 알베르토 바첼레트는 아옌데 정부에서 물가관리위원 등 중책을 맡은 바 있었다. 알베르토 바첼레트 장군은 군인으로서의 자존심을 끝까지 지켰다. 그는 피노체트 정권의 회유를 단호하게 거절했다. 군사독재 정권은 공포정치 이외에는 권력을 운용할 방법을 알지 못했던 것일까? 그들은 알베르토 바첼레트에게 반역죄를 뒤집어씌웠다. 알베르토 바첼레트는 공군사관학교에 감금된다. 모욕적인 수사와 처참한 고문이 이어졌다. 1974년 3월 알베르토 바첼레트는 목숨을 잃게 된다. 비극은 고문치사 사건으로 끝나지 않았다. 피노체트 정권은 유족들을 철저하게 감시하는 것으로도 부족해 그들을 궁지로 몰아갔다. 고인의 은행 계좌를 동결시켰다. 남은 가족들은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렸지만, 정치적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젊은 시절의 미첼 바첼레트. 의대에 진학해 칠레 학생운동의 주역으로 활동해온 그는 비밀경찰로부터 고문 피해를 입고 1975년 망명을 결정했다. 독일에서 의학 공부를 한 뒤 1979년 칠레로 돌아왔다.

젊은 시절의 미첼 바첼레트. 의대에 진학해 칠레 학생운동의 주역으로 활동해온 그는 비밀경찰로부터 고문 피해를 입고 1975년 망명을 결정했다. 독일에서 의학 공부를 한 뒤 1979년 칠레로 돌아왔다.

미첼 바첼레트는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와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아버지는 정의감이 투철한 딸이 칠레의 의료 기술과 보건 정책 발전에 기여하는 인재로 성장하길 원했다. 딸에게 의과대학 진학을 적극적으로 권유했다. 1970년 칠레대학교 의과대학에 입학한 미첼 바첼레트는 의학과 사회학을 열심히 공부했다. 아버지를 국가폭력으로 잃고 난 뒤부터 미첼은 사회 모순에 더욱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된다. 사상범으로 수배 중이던 운동가들을 조직적으로 돕기 시작했다. 학생운동의 주역으로 활약한다.

1975년 1월, 미첼 바첼레트의 집에 정체불명의 사람들이 들이닥쳤다. 피노체트 정권 유지에 앞장섰던 비밀경찰은 칠레의 아우슈비츠라고 불리는 ‘비야 그리말디(Villa Grimaldi)’로 미첼 바첼레트 모녀를 끌고 갔다. 한 사람씩 고문을 당했다. 미첼 바첼레트는 어머니와 함께 망명길에 오르기로 한다. 1975년 2월 칠레를 떠났다. 호주를 거쳐 독일에 정착했다. 미첼은 베를린 훔볼트 대학에서 의학 공부를 했지만, 칠레의 미래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 미첼 바첼레트는 1979년에 고국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칠레의 정치적 상황은 더욱 악화되어 있었다. 1980년 피노체트는 헌법까지 고쳐가며 군부의 장기 집권을 획책했다.

미첼 바첼레트는 군부 독재 정권과 제대로 싸우기 위해서라도 전문성부터 쌓기로 결심한다. 그녀는 1970년에 입학했던 칠레 의과대학을 12년 만에 졸업한다. 1982년에 외과의사 자격을 취득했다. 환자들에게 문턱이 낮은 병원을 운영하고 싶었다. 피노체트 정권은 연좌제와 반(反)정부 시위 경력을 문제 삼아 그녀의 개업을 막았다. 미첼 바첼레트는 1983년부터 스웨덴 정부가 운영하는 로베르토 어린이병원에서 소아과 전문의 과정을 이수하는 한편 수도 산티아고 및 칠레 전역에서 고문을 받거나 실종된 사람들의 자녀들을 돕는 비정부기구인 ‘국가 비상사태에 의한 피해아동 보호센터’에서도 열정적으로 활동한다. 이 기구에서 미첼 바첼레트는 1990년까지 의료 담당 책임자로 근무했다.

칠레의 민주화 열기는 점차 높아졌지만, 피노체트 정권은 공고했다. 폭정을 끝내기 위해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다. 범(汎) 진보진영은 단일화를 결정한다. 기민당, 사회당, 민주사회당, 사회민주급진당 등 진보정당들은 1988년에 피노체트의 집권연장을 막기 위해 뭉쳤다. 서광이 비쳤다. 1989년 12월 총선에서 진보연합은 승리했다. 칠레는 1990년 평화적인 방법으로 정권교체를 이뤘다. 아옌데의 예언은 적중했다. “자유를 갈망하는” 칠레인들은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전력을 다했다. 1990년에 새롭게 출범한 칠레 정부는 각 분야의 우수한 인재들을 적극적으로 찾아 나섰다. 미첼 바첼레트는 보건복지부에 발탁되었다. 국가에이즈위원회에서 활동하는 한편 세계보건기구 자문역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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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이자 시민운동가, 보건행정 전문가로 보폭을 넓힌 미첼 바첼레트는 1996년 새로운 도전에 나선다. 45세의 나이로 칠레 국립정치전략 아카데미에 입학해서 군사학 공부를 시작했다. 최우수 성적으로 국립정치전략 아카데미를 졸업한 미첼은 1997년에 정부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미국 워싱턴DC의 안보대학(Inter American Defense College)에서 유학했다.

미첼의 전문성과 실무 능력은 칠레 사회에서 점차 큰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2000년, 칠레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한 리카르도 라고스는 미첼을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임명한다. 공공 보건의료 제도의 재정비가 시급했다. 미첼 바첼레트는 의료 시설의 개방성과 접근성 제고(提高)에 사활을 걸었다. 그녀는 칠레의 공공 보건의료 체제를 전면적으로 개편하고자 했다. 주말은 물론이고 24시간 운영되는 의료 서비스를 구축해서, 칠레 국민들이 언제라도 병원을 찾아갈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했다. 국민들의 만족도가 높았다. 리카르도 라고스 대통령은 또 한 번 파격적인 인사를 단행한다.

2002년, 미첼 바첼레트는 국방부 장관에 취임한다. 리카르도 라고스 대통령은 그녀가 칠레의 역사를 새롭게 써 내려갈 정치인이라고 확신했다. 그러나 임명권자의 결정은 존중받지 못했다. 51세의 여성, 게다가 군 외부 출신인 미첼 바첼레트를 ‘최고 사령관’으로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며 완강하게 버티는 세력이 많았다. 고문치사 사건의 피해자 유족인 미첼 바첼레트가 사건 관련자들을 찾아내 그들에게 보복할 것이 분명하다고 주장하며 그녀의 장관 임명을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리카르도 라고스 대통령은 장관 임명을 강행한다. 미첼 바첼레트는 국방부 장관 취임 전 자신에게 제기되었던 모든 논란을 이내 잠재웠다.

국내 안보전략, 무기 구입 및 군대 연금제도와 신규 군대 설비 구축 등 중요한 사안들을 신중하게 처리해갔다. 공적인 업무에 사적인 원한을 조금도 섞지 않았다. 그녀가 최우선적으로 생각한 국방부 장관의 임무는 군사력 강화였다. 칠레 군의 현대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미첼 바첼레트는 군과 민간 사이를 이을 수 있는 유일한 정치인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녀는 국가 화합의 상징이 되었다.

대선 주자로 껑충 뛰어올랐다. 미첼 바첼레트가 사회당의 대통령 후보가 되어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되었다. 2004년 9월, 그녀는 국방부 장관직을 사임한다. 대통령 선거에 출사표를 던졌다. 미첼 바첼레트는 “교육의 평등, 삶의 질 향상, 의료 복지”를 주요 공약으로 채택했다. 대통령이 되고 싶은 이유가 분명했기 때문이다. 칠레 국민들이 “꿈을 펼칠 수 있는 사회”를 만들고 싶었다. 미첼 바첼레트의 당선이 유력해지자, 그녀의 사생활을 캐내 공격하는 무리들이 등장한다. 미첼 바첼레트는 끄떡도 하지 않았다. “저는 이혼녀입니다. 종교에 회의적입니다. 불가지론자에 가깝습니다. 그리고 저는 사회주의자입니다. 이 모든 조건들이 칠레의 대통령 후보자인 저에게 불리하다 못해 치명적인 약점이 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 자신을 속이고 싶지 않습니다. 저를 숨기고 싶지도 않습니다.” 미첼 바첼레트는 여성 정치인으로서 하고 싶은 말도 당당하게 밝혔다. “칠레는 여성을 오랜 시간 내팽개쳐 왔습니다. 이제 달라져야 합니다. 칠레 여성들은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칠레가 여성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부여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2006년 1월 결선 투표에서 승리한 미첼 바첼레트는 2006년 3월11일 칠레 대통령으로 취임한다. 그녀는 남녀 동수로 구성된 내각 장관들과 함께 칠레의 번영을 모색했다. 그리고 군부 독재 정권 시절 자행되었던 국가폭력 피해자들에게 정부 차원의 ‘배상’과 ‘진실 규명’을 일관된 의지로 추진했다. “칠레가 당신과 함께한다.” 대통령 선거를 치르는 동안 자신이 외쳤던 구호를 잊지 않았다. 그녀의 진심이 국가폭력 희생자들에게 전해졌다. 경제 성장에도 박차를 가했다. 실용주의 정책을 적극 채택했다. 2010년 1월, 칠레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한다. 두 달 뒤, 그녀는 임기를 마치고 명예롭게 대통령직에서 물러났다. 국제기구가 그녀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미첼 바첼레트는 퇴임 직후인 2010년부터 2013년까지 양성평등과 여성 권익 증진을 위한 유엔 여성기구 총재로 공직 활동을 이어나갔다.

한편 칠레 국민들은 미첼 바첼레트가 정계로 복귀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미첼 바첼레트, 2014년에 다시 만나요!” 그녀는 재선(再選)에 성공했다. 미첼 바첼레트는 2014년 3월부터 2018년 3월까지 두 번째 대통령직을 수행했다. 유엔도 그녀를 다시 찾았다. 2018년 대통령직 퇴임 후부터 2021년 현재까지 미첼 바첼레트는 유엔 인권최고대표로 재직 중이다. 미첼 바첼레트는 유엔 인권최고대표로 사형제도 폐지와 대북 경제제재 완화, 북한 인권 개선, 차별 혐오 금지 등의 정치적 메시지를 꾸준히 발표하고 있다. 험난한 여정을 두려워하지 않는 여성 정치인의 용기를 예찬한다.

■장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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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균관대학교에서 논문 ‘근대 여성 지식인의 자기서사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성균관대 비교문화연계전공 초빙교수로 재직 중이다. <나혜석, 글 쓰는 여자의 탄생>을 엮고, <문학을 부수는 문학들> <촛불의 눈으로 3·1운동을 보다>를 함께 쓰고, <쓰고 싸우고 살아남다>를 썼다. 자신의 삶을 스스로 이야기하는 여성들에게 관심이 많다. 세상을 바꾸기 위해 분투해온 여성들의 생애를 복원하고, 그들의 말과 글을 차근차근 모아 널리 전하고자 한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102020600005&code=910100#csidx6bd0b40592aeddea3dd4fd13211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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