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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먹는 문제 해결부터 첨단과학기술 발전까지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21/02/09 09:49
  • 수정일
    2021/02/09 09:49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화제의 책] 유영구의 『김정은의 경제발전전략』

  • 기자명 김치관 기자 
  •  
  •  입력 2021.02.09 09:26
  •  
  •  수정 2021.02.09 09:27
  •  
  •  댓글 0
 

연초 내외의 관심 속에 8일간 개최된 북한의 제8차 노동당대회를 마무리하며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사회주의경제건설은 오늘 우리가 총력을 집중하여야 할 가장 중요한 혁명과업”이라며 “국가경제발전의 새로운 5개년계획을 반드시 수행하기 위한 결사적인 투쟁을 벌려야 한다”고 ‘결론’지었다.

8차 당대회를 생중계하다시피 하던 언론의 관심은 이미 다른 곳들로 돌려진지 오래고, 북한이 과연 당 대회에서 마련한 ‘국가경제발전 5개년계획’을 대외적인 제재가 계속되는 가운데 어떻게 실현해 나갈지는 더 이상 거론되지 않고 있다. 새로 등장한 미국 바이든 정부의 대북정책 만이 ‘뉴스’일 따름이다.

과연 북미관계 개선이나 제재 해제라는 외부적 여건의 변화 없이 북한의 경제발전이 가능할까? 여기에 답이라도 하듯, 우리로서는 종잡기 어려운 북한 경제를 김일성 주석 -김정일 국방위원장 -김정은 국무위원장으로 일관되게 ‘계승’되는 맥락과 그 속에서도 새로운 변화를 추구하는 ‘혁신’의 방향을 짚어주는 길라잡이 책이 출간됐다.

1,400쪽 역작, 내재적 접근과 도표화가 특색

유영구, 『김정은의 경제발전전략』, 경인문화사, 2020.12. [자료사진 - 통일뉴스]
유영구, 『김정은의 경제발전전략1,2』, 경인문화사, 2020.12. [자료사진 - 통일뉴스]

유영구 전 현대사연구소 이사장의 『김정은의 경제발전전략1,2』가 그것이다. 경인문화사에서 출판한 이 역저는 1,2권이 각각 700쪽 분량으로 총 1,400여 쪽에 이른다. 한 마디로 북한경제의 이론적 기초와 현실적 과제, 기본부문과 혁신부문,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까지를 모두 아우르는 팩트북이자 백과전서인 셈이다.

저자는 중앙일보 북한문제 전문기자를 거쳐 월간 민족21 편집기획위원을 지낸 언론인이자 『박병엽증언록2-김일성과 박헌영 그리고 여운형』(공저) 등을 쓴 연구자로서 “아카데미즘과 저널리즘을 모두 활용”해 “사실의 힘에 천착하고자 했”다고 서문에 밝혔고 실제로 그러하다. 많은 도표와 원문 인용에도 불구하고 쉽게 읽히면서도 1,2권 각각 900여 개의 미주가 깨알같이 따라붙어 전문서적으로도 손색이 없기 때문이다.

특히 ‘내재적 접근법’을 활용해 ‘있는 그대로의 북한 바로보기’를 시도한 점이야말로 이 책이 다른 책들과 다른 점이고, 충실한 북한 원문자료 분석이 돋보인다. 김정은 위원장의 신년사를 비롯해 현지지도 행보와 지침들을 가감없이 다루고 한발 나아가 이를 도표로 일목요연하게 제시한 대목은 저자만의 특기랄 수 있다.

예를 들어 김정은 위원장이 삼지연군을 현지지도한 내용의 경우 7건의 북측 보도기사 원문 중 상당량을 그대로 싣고 있다. 김정은 위원장의 ‘인민경제 선행부문과 중요공업부문의 현지지도 등’(표 3-26) 도표에는 2012년 1월부터 2019년 6월까지 69건의 현지지도 일자와 활동내역, 보도 일자가 정리돼 있다.

무엇보다도 북측 주요 법률이나 김정은 위원장의 발언, 문건을 도표로 분석해 제시한 대목은 저자의 독특한 장기다. 북한의 ‘사회주의헌법’과 ‘토지법’에서 소유권의 법적 근거를 찾아 도표로 보여준다든지(표 1-17) 김정은 위원장의 ‘5.30담화’의 주요 내용을 원칙과 실리, 혁신성, 사회주의기업 책임관리제로 내용을 나누어 도표화 해(표 1-30) 제시하는 식이다.

먹는 문제 해결부터 첨단과학기술 발전까지

이 책 제1권은 북한의 경제발전전략의 중요성과 정신적 기초, 정치적 기초, 경제적 기초를 살피고, 김일성 시대, 김정일 시대, 김정은 시대로 이어지는 ‘북한 경제발전 전략노선의 변천과정’을 짚어보고 있다. 북한 경제가 놓인 기초와 역사를 종횡으로 위치짓는 것으로, 김정은 시대의 북한 경제를 이해하기 위한 기초작업을 충실히 다진 셈이다. 무려 700쪽에 걸쳐.

제2권은 김정은 시대의 경제발전 전략의 방향과 과제를 김정은 위원장의 신년사와 현지지도 분석에서 출발해 기본부문과 혁신부문으로 나누어 다루고 있다.

기본부문은 △먹는 문제 해결 △인민생활의 획기적 향상 △인민경제 선행부문과 중요공업부문 발전 △국토관리와 환경사업 개선 △지방경제 살리기 △자력자강과 대외경제협력 확대 등 6개 분야로, 혁신부문은 △재정은행사업의 변화 모색 △첨단과학기술의 발전 △군수-민간경제의 결합 등 3개 주제로 나누어 상세히 살피고 있다.

특히 혁신부문에서 다룬 재정은행이나 군수-민간경제 결합은 다른 책들에서 찾아보기 힘든 내용들이며, 첨단과학기술 분야도 인공위성과 로켓부문부터 보건의료부문까지 원문에 기초해 폭넓게 다루고 있다.

외부 전문가들을 인용한 북한의 식량배분 체계(그림 3-1)나 북한의 유일적 군수산업 지도체계(그림 3-6)와 북한의 군수공업 관리체계(그림 3-7) 등은 들여다보기 어려운 북한 내부 체계를 한눈에 보여준다.

“북 경제정책, 일관성과 합리성 확인할 수 있다”

북한 경제에 관한 한 팩트북으로 손색이 없는 이 책의 백미는 역시 저자의 시각과 전망을 27 꼭지에 담은 ‘제4장 결론: 예측과 단상’이다.

저자는 “북한이라는 공이 어디로 튈지 모른다는 식의 불가측성을 문제 삼는 의견을 접할 때가 많다”며 “북한의 전략적 노선을 체계적으로 검토한 이 책은 북한의 노선과 정책의 발향에서 불가측성이 그리 높지 않음을 보여준다. 북한의 경제정책 담론을 지속적으로 접하면 그 나름의 일관성과 합리성을 확인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또한 “김일성-김정일주의의 해석권자인 김정은 위원장이 변화하는 현실에 발맞추어 이론의 변화를 시도할 수 있는 점이 북한의 사상이론전선의 특성”이라고 규정하고 “세계를 지향하고 지식경제시대에 필요한 경험을 넓히는 과정에서 설령 부작용이 일부 있더라도 긍정적 파급효과는 그 부작용을 상쇄하고 남을 것”이라며 “변화와 혁신에 앞장서서 ‘총대’를 매는 고위 정책당국자와 경제하자들이 더 늘어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희망사항까지 내놓고 있다.

나아가 보다 구체적으로 “해외유학도 필요하지만 그보다는 산업시찰과 현장연수(산업연수)를 정기적으로 빈번히 조직하는 편이 나을 수 있다”거나 “해외의 석학·전문가·기술자들을 평양에 초청해 강연회와 토론회를 조직하면 다양한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방안 제시는 물론 “북한이 추구하는 혁신과 관련하여 아마존의 ‘끊임없는 혁신’을 탐구하는 것에서 좋은 착상을 얻을 수 있다”는 조언도 아끼지 않는다.

이같은 저자의 예측과 단상들이 원리적이면서도 구체적인 것은 그만큼 그의 연구와 고민이 깊을 뿐만 아니라 지적 세계가 풍성하기 때문일 것이다. 각 장이나 절 도입부에 인용하는 고금의 명저들이나 본문에 인용되는 전문가들의 세세한 자료들까지, 전업 연구가가 아닌 저자가 얼마나 폭넓은 지적 영토를 구축하고 있고 얼마나 치열하게 저술에 임했는지 엿볼 수 있다.

물론 이 책도 어디까지나 북한의 공식 보도나 문건을 기준으로 북한 경제를 분석하고 있다는 구조적 한계를 안고 있다. 직접 가서 확인해 볼 수 없는 탓에 북한 주민들의 실제 경제생활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는 저자도 상세히 알 길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최근 김정은 위원장이 현지지도에서 솔직하게 드러내는 문제점들을 통해 현장의 분위기를 접할 수 있는 것은 그나마 중요한 실마리가 된다. 

남북 당국자들, 저자의 제안에 귀기울여 보길

김정은 위원장은 8차 당대회 ‘결론’에서 “오늘 우리 혁명의 외부적환경은 의연 준엄하고 첨예하며 앞으로도 우리의 혁명사업은 순탄하게 이루어지지 않을것”이라고 전제하고, “우리의 내부적힘을 전면적으로 정리정돈하고 재편성하며 그에 토대하여 모든 난관을 정면돌파하면서 새로운 전진의 길을 열어나가야 한다”고 제시했다.

2018년 12월 당 전원회의에서 ‘정면돌파전’ 승부수를 던진 뒤 다시 한 번 정면돌파로 새로운 전진의 길을 찾아가는 북한의 미래는 과연 어떻게 펼쳐질까. 이 책을 곁에 두고 언제든 펼쳐 볼 수 있다면, 북한 경제 관련 이슈들을 점검할 수 있고 북한경제에 대한 큰틀을 세워 접근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어마어마한 분량에 겁먹었다면, 저자의 지혜가 압축적으로 녹아 있는 4장 결론 27꼭지부터 읽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 남과 북 당국자들까지 나란히 『김정은의 경제발전전략』을 통해 한 번쯤 북한 경제의 맥락을 짚어보고 저자의 제안에 귀기울여 보는 것도 유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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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신문 솎아보기] 홍보 기사에 덮혀버린 노동자 사망 사고

노동자 사망 포스코, CEO ‘소통’ 행보로 도배
보수·경제신문 산재 청문회에 ‘기업 고충’ 부각... 여야 선심성 공약에 조선 ‘여당’ 비판·한겨레 ‘야당’ 비판
 
 

 

오늘의 1면 : 김명수, 미얀마, 설.

9일 아침신문이 주목한 키워드는 ‘김명수’ ‘미얀아’, 그리고 ‘설’이다. 한겨레와 동아일보는 1면 사진기사를 통해 미얀마 쿠데타 이후 시민들이 저항하는 가운데 경찰이 물대포 등 공권력을 동원해 진압하는 모습을 담았다.

보수신문은 김명수에 주목했다. 동아일보는 1면 톱 기사를 통해 최근 대법원이 단행한 법원 법관 인사를 두고 판사들 사이의 비판을 전했다. 조선일보는 김명수 대법원장이 본인 임명동의안에 대한 국회 인준 표결을 앞두고 임성근 부장판사에게 직접 야당 의원을 상대로 한 로비를 부탁하는 등 조직적으로 움직였다는 소식을 1면 톱 기사로 다뤘다.

▲ 9일 아침신문 1면 모음.
▲ 9일 아침신문 1면 모음.

설을 앞두고 설 관련 기사도 1면에 나왔다. 경향신문은 “님아, 동해 망상 IC를 건너지 마오” 문구가 담긴 설연휴 고향방문 자제 현수막을 1면 사진으로 썼다. 국민일보 1면 사진은 부산에서 설 구호품을 전달하는 대한적십자사 봉사자들의 모습을 담았다.

한겨레는 ‘최숙현 사건 그 후’ 기획기사를 통해 스포츠계의 성적 지상주의와 인권 침해 문제를 조명했다. 한국일보는 “건당 12분 심사...벽돌 찍듯 날림 법안 찍어낸 국회” 기사를 내고 법안 발의 현황을 분석했다. 지난해 발의된 법안이 7164건으로 역대 최다를 기록했지만 정작 발의한 의원들조차 법안을 제대로 모른다는 지적을 담았다. 또한 아침신문들은 코로나19로 인한 자영업자들의 고충과 백신 문제를 꾸준히 주목하고 있었다.

포스코 노동자 또 사망, 홍보 기사에 덮였다

포스코 포항제철소에서 또 다시 하청업체 소속 노동자가 사망했다. 8일 오전 9시34분께 포항제철소에서 협력업체 직원이 기계에 몸이 끼였고, 병원에 옮겨졌지만 오전 11시께 숨졌다. 그는 철광석 등 원료를 옮기는 언로더의 컨베이어벨트 설비를 교체하는 작업을 하던 중 언로더가 갑자기 작동하면서 사고를 당했다. 

포스코 노동자 사망 사고는 끊이지 않고 있다. 한겨레는 “최근 두 달 새 포스코 포항제철소에서 노동자 2명이, 광양제철소에서 노동자 3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설명했다. 한국일보는 사고가 발생한 언로더와 장치를 조작하는 운전실이 멀리 떨어진 곳에 있고 현장 상황을 모니터로 볼 수 있는 CCTV도 설치되지 않은 점 등을 지적하며 “김용균 판박이 사고” “가장 기본적인 안전관리 대책조차 등한시했음이 드러났다”고 했다.

▲ 9일 한겨레 기사.
▲ 9일 한겨레 기사.

그러나 이날 노동자의 사망 소식은 보수언론과 지역신문에선 찾아보기 힘들었다. 오히려 ‘포스코 홍보’ 기사로 덮였다. 

9일 서울지역 종합일간지 가운데 경향신문, 한겨레, 세계일보, 한국일보, 서울신문 등 5개 일간지가 관련 사안을 보도했다. 반면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국민일보, 매일경제, 서울경제, 한국경제 등 다수의 일간지와 경제 신문에서는 사고 소식을 찾아볼 수 없었다.

▲ 9일 포스코 회장의 사내 소통 행보를 담은 지역신문 보도. 다수 경북지역 신문이 이 소식을 보도했다.
▲ 9일 포스코 회장의 사내 소통 행보를 담은 지역신문 보도. 다수 경북지역 신문이 이 소식을 보도했다.

오히려 포스코가 위치한 지역 신문에서도 사고에 주목한 언론을 찾기 힘들었다. 대경일보, 경상매일, 대구신문, 경북도민일보, 경북매일, 경북신문 등은 포스코가 사내 MZ세대의 혁신 아이디어를 듣는 등 젊은 세대와 소통에 나선 소식을 다뤘다. 서울 지역 언론 가운데는 동아일보, 한국경제, 서울경제, 매일경제가 이 소식을 다뤘다. 다수의 기사는 최정우 포스코회장이 젊은 직원들과 환하게 웃으며 사진을 찍는 모습의 사진을 썼다. 포털 네이버에서 해당 기사는 60건이 넘게 올라왔다.

지역 언론 가운데 매일신문은 1단 단신 기사로 사고 소식을 다뤘다. 다만. 포스코에서 사고가 반복되고 있다거나, 안전 관리 부실 문제가 대두된다는 점은 언급하지 않았다.

▲ 9일 매일신문 보도. 산재 사고 소식을 다뤘지만, 안전 문제에 대한 지적이 없다.
▲ 9일 매일신문 보도. 산재 사고 소식을 다뤘지만, 안전 문제에 대한 지적이 없다.

 

 산재 청문회에 기업 고충 전한 신문들

이런 가운데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오는 22일 산재 청문회를 개최한다. 포스코를 비롯해 현대중공업, LG디스플레이, 쿠팡 등 9개 기업 대표이사를 소환할 계획이다. 

보수신문은 산재 청문회를 비판적으로 다뤘다. 매일경제는 1면에 “국회 산재청문회, CEO 무더기 소환” 기사를 내고 “재보궐 선거를 앞두고 여야가 기업인들을 불러세워 표심을 자극하려는 셈법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며 “당장 코로나19 대응으로 정신없는데 국회에서 최고경영자를 중심으로 소환해 공개적으로 면박을 주겠다는 시도 아니냐”는 익명의 재계 입장을 전했다. “또 다시 기업인 망신주기에 나섰다는 비판이 나왔다”(한국경제) “CEO를 무더기로 불러 청문회를 하자는 건 지나치다는 반발이 나와 논란이 예상된다”(동아일보) 등 비슷한 지적이 이어졌다. 

재보선 선심성 공약 비슷한 듯 상반된 기사

서울시장 보궐선거 여야 후보자들이 선심성 공약을 잇따라 발표한 가운데 언론의 성향에 따라 이 문제를 다루는 ‘초점’에 차이를 보였다. 

이날 조선일보와 한겨레는 ‘같은 사실’을 다뤘다. 야권의 서울시장 후보자들이 앞다퉈 선심성 공약을 발표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표적으로 ‘나경영’(나경원+허경영) 논란을 부른 나경원 예비후보의 1억원대 결혼출산 지원공약이 논란이 됐다. 그러자 박영선 예비후보가 “국민들은 아무 근거 없이 국가가 돈을 퍼주는 것을 그렇게 썩 좋아하지 않으신다”고 비판했다.

▲ 같은 사실을 전하면서 각각 여야 비판에 초점을 맞춘 한겨레와 조선일보의 기사.
▲ 같은 사실을 전하면서 각각 여야 비판에 초점을 맞춘 한겨레와 조선일보의 기사.

한겨레는 ‘“퍼주기’ 비판하던 야 서울시장 후보들, 앞다퉈 현금복지 공약” 기살를 내고 “그동안 선거용 예산 뿌리기라며 현금 지원에 비판적인 태도를 보여온 기존 야당 입장과 사뭇 다른 풍경”이라고 꼬집었다. 그간 복지 공약을 비판해온 야권의 이중적 태도를 지적한 것이다. 

반면 조선일보는 “선심공약 쏟아낸 여, 야 공약엔 ‘퍼주기’” 기사를 내고 “선심성 공약은 여당이 더 많고 후보 단일화도 여당이 원조” “민주당이 내로남불을 하다 못해 이젠 자기부정까지 하고 있다”는 야당의 반발을 부각했다. 한겨레와는 반대로 야당 예비후보자들의 선심성 공약을 비판하는 대신, ‘퍼주기’ 비판을 한 여당이 이중적이라고 본 것이다.

경향신문은 사설을 내고 여야 모두를 비판하기도 했다. 경향신문은 “시중에서는 이번 보궐선거 양상을 두고 1년 임기에 공약은 대선 후보급이라는 비아냥이 나온다”며 “오로지 이기기만 하면 된다는 식으로 허황된 공약만 쏟아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황희 청문회, ‘60만원 발언 역공’ ‘해외여행’ 등 도마에

황희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온갖 의혹이 불거지고 있다. 

조선일보는 황희 장관 후보자가 최근까지 46개 계좌를 개설한 점을 부각해 지적했다. 국민의힘 김승수 의원실 자료를 인용한 기사로 황 후보자 30개, 배우자 14새, 딸 1개의 은행계좌 개설 사실을 지적했다. 황 후보자가 월 60만원을 쓴다고 발언한 데 대한 반박성 정황으로 조선일보는 “야당은 황 후보자 일가족이 월 60만원 생활비로 해마다 해외여행을 즐기고 자녀가 한 학기 학비가 2100만원에 이르는 외국인학교에 진학한 것은 앞뒤고 맞지 않는다고 지적하고 있다”고 했다.

▲ 황희 후보자 의혹을 다룬 경향신문, 조선일보 기사.
▲ 황희 후보자 의혹을 다룬 경향신문, 조선일보 기사.

이 외에도 언론은 2019년 말 출판기념회를 통해 모금한 7000만원으로 아파트 전세대출금을 갚은 점, 2017년 7월 국회 본회의 당시 병가를 사유로 본회의에 빠진 뒤 가족들과 스페인 여행을 다녀온 사실, 공교육 중심 교육 평준화를 강조한 후보자가 딸을 1년에 4300만원 드는 외국인 학교에 보낸 점 등을 지적했다.

동아일보는 사설을 내고 “전문성과 행정 역량, 도덕성 중 어느 것 하나라도 제대로 갖추고 잇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경향신문 역시 “제기된 논란에 대해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게 설명해야 할 것”이라며 “그러지 않는다면 문재인 대통령과 가까워서 기용됐다는 세간의 비판을 입증하면서 국정운영에 짐만 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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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닮은 꼴 핀란드, 복지국가 핀란드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

[복지국가SOCIETY] ‘복지국가4.0 시대’를 서둘러 준비하자

미국 자본주의와 노르딕 자본주의

 

한국에서 복지국가를 말하면 철지난 노랫가락처럼 듣는 사람들이 많다. 지난 김대중 정부 때부터 들어왔던 지겨운 레퍼토리라는 식이다. 그런데 자본주의 종주국 미국에 살고 있는 세계적인 석학이 바로 몇 달 전에 –몇 년 전이 아닌- 미국이 살아남으려면 노르딕 자본주의, 다시 말해 복지국가로 변신해야 한다고 설파했다. 세계적 석학인 그에게 복지국가는 철지난 노랫가락이 아니다. 생생하게 살아 있는 현실이다. 저성장과 불평등의 심화로 시달리는 자본주의 세계의 치료제이며 백신이라는 것이다. 필립 코틀러의 말을 더 들어보자.


 

그는 신자유주의 학자들이 신봉하는 낙수효과(trickle down), 즉 부자가 돈을 많이 벌면 부의 일부가 가난한 자들에게 낙숫물처럼 떨어져 빈곤에서 벗어나고 경제가 성장한다는 주장은 틀렸다고 말한다. 가장 부유한 세 명의 미국인이 하위 50%보다 더 많은 부를 보유하고 있고, 2018년 기준으로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2,200명의 억만장자는 재산이 12%나 증가했지만, 최빈곤층은 오히려 11% 감소했다. 이런 사실을 들며, 그는 낙수효과인 trickle down이 아닌 정반대, 즉 가난한 사람들의 푼돈까지 부자들에게 거꾸로 올라가는 “줄어들기(trickle up)” 세상이 되었다고 비판했다.

 

코틀러는 신자유주의가 세계적 불황과 저성장 수렁에서 회복 불능의 상황을 만들었고, 신자유주의가 시작된 이래 “자본주의는 지난 40년 동안 서서히 자살하고 있다”는 말을 인용하기도 했다. 설상가상으로 코로나19라는 글로벌 감염병 위기까지 겹쳤다. 그는 ‘미국 자본주의가 노르딕 자본주의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면 미국 국민들은 혜택을 받을 것이다’라고 결론을 내렸다.


 

필립 코틀러 뿐만 아니다. 매년 초 세계 정상들과 유명 기업인들이 모이는 세계경제포럼(World Economic Forum)의 창립자이며 주최자인 클라우스 슈밥(Klaus Schwab)도 같은 맥락으로 복지국가 체제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작년 7월에 그가 발표한 책 <코로나19/거대한 리셋(COVID-19/Greate Reset)>에서 인류는 코로나19 이전 세계로 절대 돌아갈 수 없으며 리셋(Reset), 즉 체제를 재설정할 수밖에 없다고 설파했다. 슈밥이 말한 리셋은 컴퓨터가 멈추었을 때 리부팅하면 다시 작동되는 식의 단순한 복귀가 아니다.

 

 하드디스크를 포맷하고 새로운 프로그램을 설치해야 된다는 뜻이다. 그는 신자유주의의 ‘주주 자본주의’ 시대에서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로 전환해야 한다(shifting from shareholder capitalism to stakeholder capitalism)는 점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


 

미국의 제46대 대통령 조 바이든도 작년 7월 유세에서 신자유주의 교주 밀턴 프리드먼(Milton Friedman)이 주장했던, 이윤만을 추구하는 주주 자본주의 시대는 일찌감치 끝내야 했고, 이제 노동자와 지역사회와 국가에 대한 책임을 포함하는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로 가야하며, 그것은 새롭고 급진적인 개념이 아니라고 역설했다.

 

이해관계자라는 개념은 1984년 미국 학자인 에드워드 프리먼(Edward Freeman)에 의해 처음 주창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프리먼 본인이 2013년 자신의 논문에서 이 개념을 스웨덴 경제대학의 에릭 렌만(Eric Rhenman)이 1964년에 처음 사용했다며, 자기가 만들었다는 것은 오류라며 바로 잡았다. 에릭 렌만은 스웨덴 경제 모델, 즉 노르딕 자본주의의 핵심은 기업의 발전은 주주와 경영자의 이익뿐만 아니라 공급자와 소비자, 지역사회, 지방정부, 그리고 국가 등 모든 이해관계자들이 공동의 목표를 갖고 실현하는 의존적 관계에 있다고 했다.


 

핀란드 출신 저널리스트 아누 파르타넨(Anu Partanen) 역시 <뉴욕 타임스> 칼럼(2019. 12. 7)에서 세계는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라는 바퀴를 다시 발명할 필요는 없으며, 핀란드에서 노르딕 복지국가를 보면 된다고 조언한 적 있다.

 

새로운 복지국가 버전이 중요한 이유

 

 

코로나19로 전 세계가 위기에 빠진 지금 새로운 복지국가, 즉 복지국가4.0 시대를 준비해야 한다. 우리 인류는 근현대사에서 복지국가1.0 버전부터 노르딕 자본주의로 상징되는 복지국가3.0 버전까지 진행해왔다.

 

1880년대 독일의 철혈재상 비스마르크가 근대 복지국가의 출발인 복지국가1.0을 시작했다. 1930년대 미국을 대공황에서 벗어나게 한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의 뉴딜 정책은 복지국가2.0 버전이다. 루즈벨트의 뉴딜정책은 소득세, 상속세 등 세율인상으로 국가재정을 확충했고, 노동 3권을 보장하고 최저임금법을 시행했으며 빈곤퇴치를 위해 실업보험, 장애자 급여, 은퇴자 연금 같은 사회보장제도의 기틀을 마련했다. 이를 기초로 미국은 1980년대 신자유주의 광풍이 일어나기 직전까지 40년 넘게 아메리칸 드림(American dream)이란 역사를 써갔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 미국의 레이거노믹스와 영국의 대처리즘으로 상징되는 쌍두마차가 이끄는 신자유주의 광풍 속에 복지국가2.0은 영미식 자본주의 국가들에서 무참히 무너졌다. 지난 40년은 나오미 클라인(Naomi Klein)이 ‘재난적 자본주의(disaster capitalism)’라고 압축적으로 표현했던 시간이었다. 신자유주의와 주주 자본주의가 전 세계를 휩쓸면서 복지국가는 크게 훼손된 채 역사의 흔적으로만 남을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유럽 북쪽의 노르딕 국가들이 1930년 대공황 이후 자신들만의 사민주의 복지국가 모델을 소중히 가꾸고 있었다. 1970년대 석유위기를 전 세계와 함께 겪고, 신자유주의와 세계화 광풍의 영향으로 1990년대 금융위기 등 많은 어려움이 닥쳤어도 그들 나름의 버전인 노르딕 자본주의를 다듬어 갔다. 노르딕 자본주의는 무상의료와 무상교육, 노후보장연금, 유급휴가 등의 보편적 복지를 기초로, 사회적 대타협과 함께 높은 투명성과 신뢰도를 바탕으로 기후변화에 대응하면서 지속가능한 발전 공식을 찾아냈다. 바로 복지국가3.0 버전이다. 노르딕 자본주의는 기존 선진국이 급격한 기술발전과 세계화로 인해 중국과 동남아 등 저임금 국가들과 치열하게 경쟁하는 시대에서도 북유럽 국가의 꾸준한 경제성장과 일자리 창출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포스트코로나 시대 인류는 노르딕 자본주의의 새로운 버전인 복지국가4.0을 요구하고 있다. 그것은 코로나19라는 팬더믹 이후 모든 것을 재설정해야 한다는 클라우드 슈밥의 통찰처럼 어쩔 수 없는 선택이 되고 있다. 복지국가4.0은 미국의 제43대 대통령 조 바이든의 당선과 함께 자본주의의 핵심 거점인 월가(Wall Street)에서부터 태풍의 눈처럼 조용하게 일어나고 있다. 월가의 제왕이라고 불리는 자산운용회사 블랙락(BlackRock)은 운용자산 규모가 7조8000억 달러(8600조 원)규모로 세계 1위이다. 올해 1월 블래락의 최고경영자(CEO) 래리 핑크(Larry Fink)는 투자한 기업 CEO들에게 편지를 보내 ESG(환경(E), 사회(S), 거버넌스(G)) 경영을 다시 강조하면서, 특히 기후변화 대응을 강력하게 요구했다. 온실가스를 배출하며 탄소중립을 소홀히 한 기업에 대한 투자를 거둬들이겠다는 경고도 우회적으로 전달했다.

 

코로나19 위기는 몇 년 전 빌 게이츠도 경고했듯이 환경 파괴로 인해 정글 속 깊이 잠들어 있던 바이러스들이 인간과 접촉하며 시작되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기후위기와 코로나19 사태를 떼어놓을 수 없다. 블랙락의 래리 핑크도 올해 CEO 편지에서 탄소중립을 뜻하는 ‘제로 (zero)’라는 단어를 19번이나 언급하며 투자 기업들에게 기후변화 대응과 온실가스 배출을 경계했듯이, 새로운 위기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은 돌이킬 수 없는 세계적 흐름으로 강고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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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국가3.0을 완성한 노르딕 복지국가들은 기후변화 대응에 선도적이다. 기후변화 대응의 강력한 무기인 재생에너지 비율이 스웨덴은 50%에 이르렀고, 핀란드 역시 41%로 2018년 목표인 38%를 초과 달성했다. 기후변화 대응에 적극적인 유럽연합(EU) 국가들의 평균은 18%로 노르딕 국가들의 성취에 미치지 못하지만, 그마저도 한국의 5.8%와 비교하면 멀찌감치 앞서 달리고 있다. 온실가스 배출 제품에 세금을 매겨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탄소세는 핀란드가 세계 최초인 1990년 시작해 30년 가까이 실시하고 있다. 핀란드는 2029년 화석연료 완전 퇴출과 함께 2035년 탄소중립 달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새로운 복지국가=노르딕 경험+포스트코로나를 대비한 추가적 2%


 

앞서 핀란드 저널리스트 아누 파르타넨이 비슷하게 언급했듯이, 우리는 복지국가4.0을 처음부터 발명할 필요가 없다. 핀란드 등 노르딕 국가가 완성한 복지국가3.0을 갖고 와서 거기에 포스트코로나 시대 대비를 위해 필요한 2%만 더하면 된다. 특히, 나는 핀란드를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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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소련을 비롯한 동구권이 무너진 후 한국 진보진영 일부에서 대안으로 노르딕 모델을 잠깐 주목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때는 사민주의 복지국가 모델의 원조 국가인 스웨덴만 보았다. 스웨덴은 역사적으로 북유럽 강국이었고 사민주의의 토대가 강력해서 우리의 현실과 맞지 않았다. 그렇지만 바로 옆 나라인 핀란드는 다르다.

 

핀란드는 우리와 쌍둥이라고 착각할 만큼 많이 닮았다. 오랜 가난과 피지배 역사(스웨덴 650년, 러시아 108년)를 갖고 있다. 이웃 노르딕 나라들과 달리 혈통에 아시아 유전자가 섞여 있고, 언어체계도 우리와 같은 우랄알타이어계다. 한국전쟁과 같은 동족상잔의 이념 전쟁을 1918년에 겪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공산대국 소련과 두 번에 걸친 전쟁을 치렀고, 이후 폐허 위에서 수출주도형 초고속 성장으로 종전 7년 만인 1952년 헬싱키 올림픽을 성공리에 개최해 세계를 놀라게 했다. 한국의 한강의 기적과 1988년 서울 올림픽과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다. 핀란드 역시 강력한 반공주의와 국가보안법 같은 반공법으로 좌파를 탄압한 역사를 갖고 있고, 박정희 18년 독재보다 한 수 위로 26년 동안 권좌를 지킨 대통령도 있는 등 닮은 점이 헤아릴 수 없이 많다.


 

핀란드도 코로나19 대응 방역에 성공했다. 핀란드는 유럽 국가들 중에서 상대적으로 월등히 적은 확진자와 희생자 수(2월 8일 월도미터 기준 누적 확진자 4만7000여 명, 사망자 688명)를 유지하며 방역에 성공하고 있다. 물론 복지국가 특유의 사회안전망으로 소상공인 등 취약계층 보호에도 문제가 없다. 통행 제한과 같은 국가적 통제 없이도 높은 시민의식으로 손소독과 마스크 착용 등을 개인의 자율에 맡기고 있다. 이것 역시 우리나라와 많이 닮았다.

 

한국과 차이는 복지 수준이다. 핀란드는 복지 혁신 성장, 그리고 다시 복지라는 선순환에 힘입어 세계 행복지수 1위를 3년 연속 누릴 정도로 높은 국가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다. 그들에게 복지는 부자의 주머니를 털어 가난한 자에게 나눠주는 단순한 분배나 시혜가 아니다. 누구나 과감하게 도전할 수 있게끔 하는 촘촘한 안전망인 동시에 혁신을 위한 점프대이다.


 
 

다시 강조하지만, 핀란드는 대한민국과 너무나 많이 닮았다. 단 하나 빠졌다면 복지뿐이다. 핀란드 복지국가3.0을 우리에게 이식하고, 포스트코로나 시대를 대비하기 위한 나머지 2%를 더해 복지국가4.0 대한민국을 만들어야 한다.

 

※강충경은 1960년 부산 출생으로 서울대학교를 졸업하고, KAIST에서 생명공학 박사를 취득했다. 호서대 교수, 바이오융합연구소 소장, 충청남도 정책자문위원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핀란드기업 Labmaster 기술고문 및 등기이사, ㈜바이오메트로 CTO와 ㈜펩스젠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출처: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1020810211316699#0DKU 프레시안(http://www.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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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낙연 “홍남기 반발 이유 짐작 가지만 말하기 적절치 않다”

등록 :2021-02-08 08:13수정 :2021-02-08 09:49 
 
재난지원금 선별·보편 둘다 논의…예측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것
홍남기 부총리 공개적 반발 이유…짐작은 가지만 말하기엔 부적절
사회연대기금 기업 참여 늘리려 출연한만큼 세액공제 상향 검토
당대표가 총리보다 훨씬 힘들어…한일 해저터널? 일본선 관심없어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5일 국회에서 &lt;한겨레&gt;와 인터뷰하며 생각에 잠겨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5일 국회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며 생각에 잠겨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대표 임기 종료를 한 달 앞두고 최근 ‘신복지체계’ 구상을 내놓는 등 대권 도전을 겨냥한 본격적인 행보를 시작했다.

 

그는 5일 국회에서 진행한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당 대표로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으로 노동계와 재계 양쪽으로부터 모두 공격받았던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처리 과정을 꼽았다. 또한 4차 재난지원금에 선별과 보편 지급 방식을 모두 협의하자는 자신의 제안에 대해 “예측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익공유제’의 자발적 참여를 높이기 위해선 사회연대기금에 출연금이 클수록 법인세 세액공제율을 높이고 이를 지속가능성 지수인 이에스지(ESG·환경사회지배구조) 평가와 연동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재난지원금 선별지급을 주장해왔는데, 전 국민 지급도 함께 논의하자고 했다. 입장을 바꾼 것인가?

“입장 변화 아니다. 전 국민 대상은 코로나 추이를 살피며 지급 시기를 살피겠다고 했다. 큰 틀에서 변화는 아니다.”

―추가경정(추경) 예산에 선별지급용, 전 국민 지급용을 모두 편성하고 지급 시기만 다르게 한다는 뜻인가?

“그것도 논의해봐야 한다. 세 덩어리다. 첫째, 가장 긴급한 재난지원을 어떻게 할 건가. 둘째, (영업)손실보상제가 (법적으로) 수립되면 그에 따른 보상 내지 지원을 어떻게 할 것인가. 셋째, 코로나가 진정된 뒤 내수진작을 위해 전 국민 지원금을 어떻게 할 것인가. 추경에 전부 담을 수도 있고, 일부만 담을 수도 있다. 열어놓고 협의하자는 것이다.

―선별지원을 먼저 하고, 전 국민 지급은 나중에 할 수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동시에 이뤄진다면 바람직하지만 코로나 상황은 누구도 예측하기 어렵다. 세 덩어리를 한 번에 올려놓고 논의해서 국민께 한꺼번에 보고드린다면 예측 가능성이 더 높아질 것 같다.”

―비상한 재원조달 방법이 필요할 것 같다.

“재원조달 방안은 국채발행과 세출 구조조정 두 가지다. 두 가지를 어떻게 배합할지는 협의해야 한다.”

―재난지원금 관련해 홍남기 부총리가 왜 공개 반발했다고 보나?

“속까지 들여다보진 못했는데, 대통령도 국민 위로 차원에서 전 국민 지원도 생각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머릿속에 짐작이 없진 않지만 말하기는 적절치 않다.”

―홍 부총리와 가까운 사이로 아는데 최근 이야기를 나눴나?

“통화를 두 번 했다. 제 이야기를 말씀드렸고 홍 부총리도 저에게 말씀하셨다. 사적 통화 내용을 소개하는 건 예의가 아니다.”

―코로나19 불평등 해소 목적으로 제안한 사회연대기금 관련해 기금 출연 의사를 밝혔거나, 염두에 둔 업종이 있나?

“업종을 지목해 강제할 생각은 없다. 금융권과 이야기하고 있진 않지만 자체적으로 논의가 있는 걸로 안다.”

―참여를 끌어내려면 인센티브가 필요할 텐데?

“두 가지를 우선 생각한다. 하나는 세액공제 확대다. 또 하나는 이에스지 투자다. 법인세 세액공제의 경우 공제율을 20%로 올리고, 기여가 많아지면 (계단식으로) 인센티브를 올리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전남지사 시절 해저터널을 공약했다. 국민의힘이 한-일 해저터널을 공약한 걸 두고 민주당에서 ‘친일’, ‘이적행위’라고 비판한 것이 과하다는 지적도 있다.

“우선 일본은 한-일 해저터널에 관심이 없다. 한쪽은 관심도 없는데 왜 우리만 이런 문제를 꺼내기를 반복하는지 모르겠다. (친일 논란을 제기한 것은) 아마 선거 앞에 두고 그런 반응을 보인 것 같다.”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야당 후보가 단일화하면 민주당이 어렵다는 전망이 나온다.

“처음부터 조심스러운 선거였다. 단일화는 선거판 변화니까 저희가 버거워질 것 같다. 매력적 비전을 놓고 한판 대결을 벌이겠다.”

―국무총리와 당 대표 중 뭐가 더 힘든가?

“대표가 훨씬 힘들다. 정치란 늘 예상하지 못한 일들이 있고 고려사항이 매우 많다. 말하고 싶은 것만 말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 그리고 기자들은 말하기 어려운 것만 골라 물어본다. ”

―다음 달이면 대표직이 끝난다. 가장 힘들었던 일은?

“중대재해처벌법 같은 게 힘들다. 양쪽 모두로부터 얻어맞으니까. 그나마 여야가 합의 처리해서 새 제도가 출범한 건 보람으로 느낀다. 처음엔 아쉬워한 분들도 개인적으로 만나면 다행이라며 고맙다고도 하신다. 이제 채워가야 한다. 우리가 산업안전보건청 신설을 발 빠르게 내놨고 여야가 합의할 수 있으리라 본다.”

이낙연 대표의 항변…“언론은 너무 서둘러 결론을 요구한다”
기자 출신에다가 대변 생활로 언론의 생리에 누구보다도 밝은 이 대표지만, 그에게 ‘대선 주자로서 또는 여당 대표로서’ 대안과 입장을 내놓으라’는 언론의 요구엔 부담이 큰 듯했다. 40여분간의 인터뷰 곳곳에서 언론에 대한 불만을 내비쳤다.막대한 추경 재원 조달 방법으로 국채발행과 세출 구조조정 등 구체적 방법을 묻자 “협의를 해 봐야 한다”면서 “멀리뛰기 경기로 비유하자면 도움닫기 시작하기 전인데 골인 지점에 서 계신다”고 답했다. 총리와 당 대표 중 뭐가 더 힘드냐고 물었더니 “당 대표다. 정치란 늘 예상하지 못한 일들이 많고 고려 사항이 굉장히 많다”고 했다. 그러면서 “말하고 싶은 것만 말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 기자들이 그걸 허용해주지 않고, 말하기 어려운 것만 골라서 물어본다. 대답을 안 하면 (말 안 한다고) 프레임 씌운다”고 했다.‘정치인 이낙연’의 리더십 강점이 무엇이냐는 물음에 대해선 “무슨 강점이 있겠나. 많이 배워가고 있고 부족함이 많다. 그러나 일상적인 많은 일에 대해 끝까지 듣는다”고 답한 뒤 다시 한번 언론의 조급함을 지적했다.“언론은 논의가 시작되기 전에 저의 결론을 요구하곤, 결론을 안 내면 답답하다고 한다. 그러나 모든 문제에서 결론부터 말하라고 하면 그건 민주적이지 않다.”

김원철 이지혜 기자 wonchul@hani.co.kr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politics/assembly/982253.html?_fr=mt1#csidx54dba57fd3d4e9ba6d893bbc6de8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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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신문 솎아보기] 청와대 앞 김진숙보다 검찰 인사에 10배 큰 관심

  • 분류
    아하~
  • 등록일
    2021/02/08 10:04
  • 수정일
    2021/02/08 10:04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검찰 인사 2면씩 할애, 400km 도보 행진한 ‘36년 복직 투쟁자’ 무보도·통신기사 대체… 검찰 인사에 “친정권 인사” 비판
 
 

 

36년 전 한진중공업에서 부당해고된 후에도 줄곧 노동운동에 투신했던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이 7일, 34일 동안 복직을 주장하는 도보 행진을 끝내고 청와대에 도착했다. 암 투병 중인 그는 지난해 12월30일 부산을 출발해 청와대 앞까지 총 400여km를 걸었다. 김 지도위원에 연대하기 위해 48일 동안 단식한 이들도 단식 농성을 풀었다.

김 지도위원은 7일 청와대 앞 기자회견을 열고 “민주주의는 어디로 갔는가”라며 “LG트윈타워 똥물 튄 변기를 빛나게 닦다가 잘렸는가. 아니면 인천공항 대걸레만도 못한 하청에 하청노동자로 살다가 잘린 김계월(해고자)이 됐는가. 그도 아니면 20년째 최저임금 코레일 네트웍스의 해고자가 돼 서울역 찬 바닥에 앉아 김밥을 먹는가”라고 물었다. 언급된 세 곳 모두 부당해고 문제로 해고자들이 싸우고 있는 현장이다.

▲8일 전국단위 아침종합일간지 9곳 1면.
▲8일 전국단위 아침종합일간지 9곳 1면.

 

김 지도위원은 또 “왜 청년들은 비정규직으로 차별과 멸시부터 배워야 하며 페미니스트 정권에서 왜 여성들은 가장 먼저 짤리며 가장 많이 죽어가는가” “일자리를 최우선으로 지키겠다는 정권에서 대우버스, 한국게이츠, 이스타 노동자들은 왜 무더기로 짤렸으며 쌍차와 한진 노동자들은 왜 여전히 고용불안에 시달리는가” “이주노동자들은 왜 비닐하우스에서 살다 얼어 죽어야 하는가”라고도 물었다.

이어 “함께 싸워왔던 당신이 촛불의 힘으로 대통령이 된 후에도 여전히 해고자인 내가 보이십니까”라며 “최저임금에 멸시의 대명사인 청소 일자리를 지키겠다고 울며 싸우는 이 노동자들이 보이십니까. ‘아빠 왜 안와’라고 묻는 세 살짜리 아이에게 ‘아빠는 농성장이야’라는 말을 어떻게 설명할지 모르겠다는 이 노동자들이 보이십니까”라고 말했다.

▲8일 경향신문 1면
▲8일 경향신문 1면
▲8일 한국일보 12면
▲8일 한국일보 12면

 

김 지도위원은 “민주주의는 싸우는 사람들이 만들어 왔다”며 “과거를 배반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입술로만 민주주의를 말하는 자들이 아니라 저 혼자 강을 건너고 뗏목을 버리는 자들이 아니라 싸우는 우리가 피 흘리며 여기까지 온 게 이 나라 민주주의”라고도 말했다.

8일 김 지도위원의 400km 도보 행진 마무리를 다룬 신문 보도 비중은 적었다. 전국단위 아침 종합일간지 9곳 중 조선일보, 중앙일보는 기사를 싣지 않았다. 동아일보, 세계일보 등은 통신사에서 받은 사진기사로 보도했다. 대부분 2면에 걸쳐 7일 검찰 인사 기사를 낸 지면 비중의 10분의 1도 되지 않는다.

▲동아일보 14면
▲동아일보 14면
▲세계일보 10면
▲세계일보 10면

 

경향신문, 한겨레 등은 한진중공업 노사의 교섭 결렬 상황을 전했다. 지난 4일 김 지도위원 복직을 두고 노사가 12시간 가까이 교섭했으나 양측은 이견만 확인했고 8일 교섭을 재개한다. 사측인 김 지도위원의 해고 부당성을 부인하면서 복직시 대표이사가 배임 혐의를 살 수 있다고 주장한다. 복직이 아닌 재입사 처리를 제안하며 위로금을 줄 수 있다는 입장이다.

검찰 간부 소폭 개각, 이성윤 유임… ‘추라인’ ‘친정권’ 비판 거세

8일 9개 신문 1면 머리기사는 검찰 인사 분석이다. 법무부가 검사장급 고위 검찰 간부의 소폭 전보 인사를 단행하자 언론은 ‘추 라인’ 혹은 ‘친정권 인사’라고 비판적으로 분석했다.

법무부는 7일 이정수 서울남부지검장을 신임 법무부 검찰국장으로, 심재철 전 검찰국장은 서울남부지검장으로 전보했다. 대검 기획조정부장에는 조종태 춘천지검 검사장이, 춘천지검장에는 김지용 서울고검차장이 이동했다. 이번 인사로 자리를 옮긴 검사장은 이들 4명뿐이다.

▲8일 국민 1면
▲8일 국민 1면
▲8일 조선 1면
▲8일 조선 1면
▲8일 중앙 3면
▲8일 중앙 3면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과 한동훈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은 유임됐다. 윤석열 검찰총장과 갈등을 빚었던 대검의 이종근 형사부장과 이정현 공공수사부장, 신성식 반부패·강력부장 및. 윤 총장 징계 국면 당시 윤 총장 입장에 섰던 조남관 대검 차장도 유임됐다. 법무부는 월성 원전 1호기 경제성 평가 조작 의혹을 수사하는 이두봉 대전지검장도 유임했다.

동아일보는 “검찰 내부에서는 ‘윤석열 검찰총장의 의견이 형식과 실질 모두 반영되지 못한, 추미애 전 장관의 ‘윤석열 고립시키기’가 반복된 인사‘라는 비판이 나온다”며 “박범계 법무부 장관은 검찰 고위 인사를 두고 윤 총장과 여권이 극심한 온도차를 보이자 인사 규모 최소화로 가닥을 잡았다”고 분석했다.

조선일보도 법조계와 검찰 안팎의 여론이라며 “박범계 장관 체제는 결국 ‘추미애 시즌 2’”라거나 “이미 중용된 친정권 검찰 간부들에게 임기 종반을 맞는 문재인 정부의 ‘방패막이’ 역할을 또다시 맡긴 것”이란 평가를 전했다.

▲8일 한겨레 3면
▲8일 한겨레 3면

 

한겨레는 “심재철 서울남부지검장과 이정후 검찰국장이 자리를 맞바꾼 것도 씁쓸한 뒷맛을 남겼다”며 “검찰 인사와 예산을 쥐고 있는 검찰국장뿐 아니라 서울남부지검장도 라임 정관계 로비 의혹 등 주요 사건이 있어 매우 중요한 보직이다. 결국 정권이 믿고 맡길 수 있는 검찰 간부는 극소수인 현실을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김명수 거짓말’만큼 중요한 ‘위헌 판사’들

재판 개입, 사법행정권 남용 등의 사법농단 혐의로 기소됐던 임성근 부산고법 부장판사가 헌정 사상 처음으로 헌법재판소의 법관 탄핵 심리를 앞두고 있다. 이 가운데 임 부장판사가 김명수 대법원장과의 대화 녹취록을 공개하며 여론의 관심이 김 대법원장의 ‘거짓 해명’ 의혹에도 쏠린다.

임 부장판사는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판사로 재직하던 2015년 가토 다쓰야 산케이신문 전 서울지국장의 재판에 개입한 혐의 등으로 2019년 3월 기소됐다. 이 사건 1심 재판부는 혐의에 대해선 무죄 선고했으나 “재판관여 행위는 법관의 독립을 침해하는 위헌적 행위”라고 판단을 내렸다.

▲8일 서울 5면
▲8일 서울 5면
▲8일 세계 3면
▲8일 세계 3면

 

임 부장판사는 지난해 두 차례에 걸쳐 김 대법원장에 사표를 냈으나 불분명한 이유로 수리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당시 김 대법원장이 ‘내가 사표를 받으면 (임 부장판사가) 탄핵이 안 되지 않느냐’는 취지로 말한 녹음파일을 언론 등에 공개했다.

이를 시작으로 7일 법치주의 바로 세우기 행동연대는 국가인권위원회에 김 대법원장이 임 부장판사의 인권을 침해했다는 진정서를 냈다. 국민의 힘 등 야권을 중심으로 여권과의 탄핵 교감 의혹도 나온다.

서울신문은 “일각에선 손가락(거짓말)이 아닌 달(사법농단 판사 탄핵)을 바라봐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지만 동시에 정작 사법개혁을 위해 김 대법원장이 한 게 무엇이냐는 반문도 나온다”고 비판했다. 김 대법원장이 사법농단과 관련한 법원 내부 개혁에 미온적이었다는 지적이다.

▲8일 한겨레 8면
▲8일 한겨레 8면

 

9개 신문 대부분이 김 대법원장 해명과 처신의 부적절성에 집중한 가운데 한겨레는 헌법재판소가 임 부장판사의 탄핵 심리에 돌입했다고 조명했다. 한겨레는 “헌재는 임 부장판사의 1심 재판 과정에서 확인된 내용을 우선적으로 살펴보고 있다”고 전했다. “사법부 스스로 헌법위반 행위자라고 인정한 법관에 대해 탄핵소추 절차를 진행하지 않는 것은 국회의 직무유기”라고 국회가 탄핵소추안을 통과시킨 이유를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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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km 도보행진 마친 김진숙 “문재인 대통령님 내가 보이십니까. 싸우는 이 노동자들이 보이십니까.”

‘김진숙 복직 촉구’ 희망 뚜벅이 400㎞ 도보행진 34일만에 마무리

윤정헌 기자 yjh@vop.co.kr
발행 2021-02-07 20:01:23
수정 2021-02-08 08:4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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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 부산본부 김진숙 지도위원이 7일 서울 흑석역에서 노동자들과 전국에서 달려온 희망뚜벅이와 청와대까지 한진중공업 복직을 위한 희망뚜벅이 40일차 행진을 하고 있다.  김진숙 희망뚜벅이는 지난해 12월 30일 부산도시철도 호포역에서 출발했다.  2021.02.07
민주노총 부산본부 김진숙 지도위원이 7일 서울 흑석역에서 노동자들과 전국에서 달려온 희망뚜벅이와 청와대까지 한진중공업 복직을 위한 희망뚜벅이 40일차 행진을 하고 있다. 김진숙 희망뚜벅이는 지난해 12월 30일 부산도시철도 호포역에서 출발했다. 2021.02.07ⓒ김철수 기자
 
 34일간에 걸친 '김진숙 희망 뚜벅이(희망 뚜벅이)' 행진이 끝났다. 행렬은 청와대에 닿았지만, 대답은 없었다. 400km를 걸어 청와대 앞에 선 김진숙 지도위원은 그 옛날 자신의 처지와 전혀 다르지 않은 오늘의 노동자들을 청와대 앞에서 불렀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님 내가 보이십니까.” “싸우는 이 노동자들이 보이십니까.”

7일 오전 11시께 서울시 동작구 흑석역에서 출발한 희망 뚜벅이는 한강대교, 한진중공업 본사, 서울역, 광화문 등을 거쳐 오후 2시 40분께 청와대 앞에 도착했다.

이날 행진에는 코레일네트웍스, 아시아나KO, LG트윈타워, 아사히글라스, 쌍용자동차, 대우버스, 한국게이츠 등 해고노동자들과 시민들 1,300여명이 함께했다. 행진 출발 당시 700여명 정도였던 행진 인원은 청와대에 도착할 당시엔 2배 가까이 늘었다. 이들의 손에는 '복직 없는 정년 없다', '김진숙 복직' 등 김 지도위원의 복직을 촉구하는 손 피켓이 들려 있었다.

다만 흑석역부터 서울역까지만 행진 허가가 났던 만큼 김 지도위원을 비롯한 행진 참가자들은 뿔뿔이 흩어져 청와대까지 걸어야 했다.

청와대에 도착한 김 지도위원은 가장 먼저 청와대 사랑채 분수대에 있는 단식농성장을 찾았다. 송경동 시인, 신영섭 신부 등 7명으로 구성된 '리멤버 희망버스 단식단'은 지난해 12월 22일 김 지도위원의 복직을 촉구하며 무기한 단식에 돌입했다.

 
복직 기원 희망뚜벅 행진 마지막 날인 7일 오후 민주노총 부산본부 김진숙 지도위원이 서울 청와대 앞 분수광장에 도착하여 47일째 단식 투쟁을 이어가고 있는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2021.02.07
복직 기원 희망뚜벅 행진 마지막 날인 7일 오후 민주노총 부산본부 김진숙 지도위원이 서울 청와대 앞 분수광장에 도착하여 47일째 단식 투쟁을 이어가고 있는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2021.02.07ⓒ김철수 기자
복직 기원 희망뚜벅 행진 마지막 날인 7일 오후 민주노총 부산본부 김진숙 지도위원이 서울 청와대 앞 분수광장에 도착하여 관계자들 및 48일째 단식 투쟁을 이어가고 있는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며 눈물 짓고 있다.  2021.03.07
복직 기원 희망뚜벅 행진 마지막 날인 7일 오후 민주노총 부산본부 김진숙 지도위원이 서울 청와대 앞 분수광장에 도착하여 관계자들 및 48일째 단식 투쟁을 이어가고 있는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며 눈물 짓고 있다. 2021.03.07ⓒ김철수 기자

“지난 36년간 나는 자본에게 권력에게만 보이지 않는 유령이었다”

단식단 한명 한명과 뜨거운 포옹을 나눈 김 지도위원은 34일간 도보행진을 마치는 기자회견에 단식단과 함께 나섰다.

김 지도위원은 "일자리를 최우선으로 지키겠다는 정권에서 대우버스, 한국게이츠, 이스타노동자들은 왜 무더기로 잘렸으며, 쌍차와 한진노동자들은 왜 여전히 고용불안에 시달리는가"라며 "그 대답을 듣고 싶어 34일을 걸어 여기까지 왔다. 그 약속들이 왜 지켜지지 않는지 묻고 싶어 천릿길을 걸어 여기에 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지난 36년간 나는 유령이었다. 자본에게 권력에게만 보이지 않는 나는 유령이었다"며 "문재인 대통령님 내가 보이십니까. 함께 싸워왔던 당신이 촛불의 힘으로 대통령이 된 이후에도 여전히 해고자인 이 김진숙이 보이십니까"라고 성토했다.

그러면서 김 지도위원은 "과거를 배반한 자들이 아니라 입술로만 민주주의를 말하는 자들이 아니라 저 혼자 강을 건너고 뗏목을 태워버린 자들이 아니라 싸우는 우리가 피 흘리며 여기까지 온 게 민주주의"라며 "뼈를 깎고 살을 태우며 단식하신 동지들 고생 많으셨다. 앞으로 얼마나 더 먼 길을 가야 할지 모르는 우리들 포기하지 말다"고 당부했다.

민주노총 부산본부 김진숙 지도위원이 7일 서울 흑석역에서 노동자들과 전국에서 달려온 희망뚜벅이와 청와대까지 한진중공업 복직을 위한 희망뚜벅이 40일차 마지막 행진을 마친뒤 발언을. 하고 있다.  김진숙 희망뚜벅이는 지난해 12월 30일 부산도시철도 호포역에서 출발했다.  2021.02.07
민주노총 부산본부 김진숙 지도위원이 7일 서울 흑석역에서 노동자들과 전국에서 달려온 희망뚜벅이와 청와대까지 한진중공업 복직을 위한 희망뚜벅이 40일차 마지막 행진을 마친뒤 발언을. 하고 있다. 김진숙 희망뚜벅이는 지난해 12월 30일 부산도시철도 호포역에서 출발했다. 2021.02.07ⓒ김철수 기자

김 지도위원은 지난 1986년 노조 집행부의 어용성을 폭로하는 안내 글을 제작·배포했다는 이유로 대공분실에 3차례 끌려가 고문을 당했다. 당시 회사는 이를 무단결근이라고 주장하며 김 지도위원을 해고했다.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는 2009년 11월 김 지도위원의 해고가 민주화운동으로 인한 것임을 인정하고 회사에 복직을 권고했다. 하지만 한진중공업은 아직도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지난 4일 한진중공업 노사는 김 지도위원 복직을 두고 첫 교섭을 벌였지만, 사측이 복직 대신 재입사 뒤 임원들이 모은 위로금을 전달하는 방식을 고수하면서 협상은 결렬됐다.

복직 기원 희망뚜벅 행진 마지막 날인 7일 오후 민주노총 부산본부 김진숙 지도위원이 서울 청와대 앞 분수광장에 도착하여 관계자들 및 48일째 단식 투쟁을 이어가고 있는 사람들을 데리고 나서고 있다.  2021.02.07
복직 기원 희망뚜벅 행진 마지막 날인 7일 오후 민주노총 부산본부 김진숙 지도위원이 서울 청와대 앞 분수광장에 도착하여 관계자들 및 48일째 단식 투쟁을 이어가고 있는 사람들을 데리고 나서고 있다. 2021.02.07ⓒ김철수 기자
단식농성 노동자 배웅하는 김진숙 지도위원
단식농성 노동자 배웅하는 김진숙 지도위원ⓒ뉴시스

“김진숙 노동자의 인간적 존엄과 복직 위해 끝까지 함께 하겠다”

리멤버 단식단을 대표해 마이크를 잡은 김우 권리찾기유니온 활동가는 "단식농성의 하루하루가 보람이고 기쁨이었다. 연대자들이 말하는 빚진 부채감에 미안한 마음, 헌신하는 이들에게 더없이 고마운 마음, 딱 제 마음이었다"며 "굴복과 굴종을 모르는 삶, 패배와 후퇴를 모르는 삶, 자신의 온 삶으로 연대의 소중함 일깨우는 김진숙 동지에 고맙다"고 전했다.

이어 "우리 속에 있는 모든 편견과 우리 속에 있는 모든 색깔을 하나로 통합하고 하나로 만들어갈 때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우리가 바라는 세상을 만들 수 있겠다는 희망을 이번 투쟁 속에서 깨달았다"며 "동지 여러분 절망하지도 포기하지도 맙시다. 힘차게 전진하고 투쟁하자"고 강조했다.

노동종교시민사회를 대표해 참석한 송경용 신부는 김 지도위원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했다. 송 신부는 "오늘 이 자리에 서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김진숙 지도위원의 명예회복, 복직 위해 금속노조 대표자들과 정말 혼신의 힘을 다해 노력하고 협상했다"면서 "최소한 김 지도위원이 경기도 입성하기 전에 끝내자고, 그리고 마지막엔 서울 입성하기 전에 끝내자고 혼신의 힘 다했지만 부족했다. 죄송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종교노동시민사회는 김진숙 노동자의 인간적 존엄과 복직 통한 명예회복을 위해 끝까지 국가공권력의 폭력에 의한 인권유린에 대한 사과, 복직, 그에 합당한 보상 위해 끝까지 함께 하겠다"며 "앞으로 전 김진숙 지도위원이 36년은 더 건강하게 걷고 싸우고 활동할 거로 믿는다. 오늘의 미안함이 내일의 승리로 귀결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34일간 행진을 마무리하는 기자회견은 최대한 신속하게 마무리됐다. 단식단은 이 날을 끝으로 단식농성을 마무리하기로 했다. 앞서 농성장을 찾은 김 지도위원은 단식단에게 단식을 멈춰줄 것을 간곡히 부탁했고, 단식단은 이를 받아들였다. 단식단은 기자회견 종료와 함께 김 지도위원의 배웅을 받으며 구급차를 통해 병원으로 옮겨졌다.

다음은 김진숙 지도위원 발언 전문이다.

민주주의는 어디로 갔는가.
전태일이 풀빵을 사주었던 여공들은 어디서 굳은살 배긴 손으로 침침한 눈을 비비며 아직도 미싱을 돌리고 있는가.
아니면 LG틔윈타워 똥물 튄 변기를 빛나게 닦다가 짤렸는가.
아니면 인천공항의 대걸레만도 못한 하청에 하청노동자로 살다가 짤린 김계월이 됐는가.
그도아니면 20년째 최저임금 코레일 네트웩스의 해고자가 되어 서울역 찬바닥에 앉아 김밥을 먹는가.
노동존중 사회에서 차헌호는 김수억은 변주현은 왜 아직도 비정규직인가.
왜 청년들은 비정규직으로 차별과 멸시부터 배워야 하며
페미니스트 정권에서 왜 여성들은 가장 먼저 짤리며 가장 많이 죽어가는가.
일자리를 최우선으로 지키겠다는 정권에서 대우버스, 한국게이츠, 이스타 노동자들은 왜 무더기로 짤렸으며 쌍차와 한진 노동자들은 왜 여전히 고용불안에 시달리는가.
박창수, 김주익을 변론했던 노동인권 변호사가 대통령인 나라에서 왜 아직도 노동자들은 굶고 해고되고 싸워야 하는가.
최강서의 빈소를 찾아와 미안하다고 말한 분이 대통령이 된 나라에서 왜 아직도 노동자들은 여전히 죽어가는가.
김용균, 김태규, 정순규, 이한빛, 김동준, 홍수연은 왜 오늘도 죽어가는가.
세월호, 스텔라데이지호는 왜 아직도 가라앉아 있으며 유가족들이 언제까지 싸워야 하는가.
이주노동자들은 왜 비닐하우스에서 살다 얼어 죽어야 하는가.
왜 문정현 신부님은 백기완 선생님은 박정희 정권에서 시작한 싸움을 아직도 멈추지 못하는가.
전두환 정권에서 해고된 김진숙은 왜 36년째 해고자인가.
그 대답을 듣고 싶어 34일을 걸어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 약속들이 왜 지켜지지 않는지 묻고 싶어 한발 한발 천리길을 걸어 여기까지 왔습니다.
36년간 나는 유령이었습니다. 자본에게 권력에게만 보이지 않는 유령이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님 내가 보이십니까.
함께 싸워왔던 당신이 촛불의 힘으로 대통령이 된 후에도 여전히 해고자인 내가 보이십니까.
보자기 덮어쓴 채 끌려가 온몸이 피떡이 되도록 맞고 그 상처를 몸에 사슬처럼 지닌채 36년을 살아온 내가 보이십니까.
최저임금에 멸시의 대명사인 청소 일자리를 지키겠다고 울며 싸우는 이 노동자들이 보이십니까.
“아빠 왜 안와”라고 묻는 세 살짜리 아이에게 “아빠는 농성장이야”라는 말을 어떻게 설명할지 모르겠다는 이 노동자들이 보이십니까.
동지여러분, 민주주의는 싸우는 사람들이 만들어 왔습니다.
과거를 배반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입술로만 민주주의를 말하는 자들이 아니라 저 혼자 강을 건너고 뗏목을 버리는 자들이 아니라 싸우는 우리가 피 흘리며 여기까지 온게 이 나라 민주주의입니다.
먼길 함께 걸어와주셔서 고맙습니다.
살을 깎고 뼈를 태우며 단식 하신 동지들 너무 고생하셨습니다.
앞으로 얼마나 더 먼 길을 가야 할지 모를 우리들.
포기하지 맙시다. 쓰러지지도 맙시다. 저도 그러겠습니다.
웃으면서 끝까지 함께 투쟁!!!

윤정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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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 대의원대회 “110만 총파업으로 새 시대를 개척하자!”

김영란 기자 | 기사입력 2021/02/06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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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노총이 5일 72차 정기대의원대회를 열고 11월 총파업 투쟁을 결의했다. [사진출처-민플러스]  

 

▲ 민주노총 대의원대회는 서울을 비롯한 전국 41개 장소에서 열렸다.   © 김영란 기자

 

▲ 민주노총 대의원대회 모습  © 김영란 기자

 

민주노총이 정기대의원대회에서 11월 총파업 투쟁을 결의했다.

 

민주노총은 5일 오후 2시 서울 홍대 웨스트브리지 라이브홀을 비롯한 전국 41개 장소에서 ‘거침없는 민주노총! 110만의 총파업!’ 2021년 72차 정기대의원대회를 열었다.

 

대의원대회는 직선 3기 출범을 선포함과 동시에 2021년 사업과 투쟁을 결의하는 자리였다. 동시에 부위원장과 회계감사 선출로 민주노총 10기 지도부 구성을 마무리했다.

 

양경수 위원장은 “노동조합을 갖지 못한 2천만 노동자들이 민주노총과 함께 하도록 적극적인 조직사업에 나서야 한다”라며 “청년노동자들이 민주노총을 통해 자신들의 이해와 요구를 실현할 수 있도록 산별과 지역본부가 씨줄과 낱줄로 촘촘히 자기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체계와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양 위원장은 “우리는 민주노총의 이름으로 세상을 바꾸자는 사람들”이라며 “투쟁하는 민주노총은 외면당하지 않는다는 확신으로 노동자·민중 앞에 부끄럽지 않은 모습으로 투쟁하자”라고 호소했다.

 

민주노총은 대의원대회에서 결의문과 기후위기 대응에 관한 특별결의문을 채택했다. 한미연합군사훈련 중단에 관한 특별결의문은 민주노총 사업계획에 반영하기로 했다.

 

민주노총은 결의문에서 “새로운 세상을 위한 거침없는 투쟁, 이제 110만의 힘을 제대로 보여줘야 할 때”라며 “대선을 앞둔 11월, 불평등한 세상을 근본적으로 바꾸기 위한 110만 조합원의 총파업으로 한국 사회를 크게 뒤흔들자”라고 호소했다.  

 

민주노총은 오는 3월 9일 2021년 1차 중앙위원회에서 2021년 세부 사업계획을 최종 확정한다. 

 

아래는 민주노총 대의원대회 결의문 전문이다.

 

--------아래-------------

 

[제72차 민주노총 정기대의원대회 결의문]

 

110만 총파업으로 새로운 시대를 개척하자!

 

2020년 우리는 또 하나의 역사를 썼다. 생때같은 자식들의 억울한 죽음이 되풀이되는 걸 막기 위해 목숨을 걸고 투쟁했던 유족들과 함께 우리는 기어이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만들어냈다. 전태일3법 10만 입법청원을 단숨에 이뤄냈고, 민주노총 3기 임원선거도 역대 최고의 투표율로 치러냈다. 어려운 조건에서도 그 어느 때보다 두 배 세 배 헌신했던 간부, 조합원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전 세계를 멈춰버린 코로나19, 재앙은 만인에게 평등하지 않음을 우리는 똑똑히 확인했다. 코로나19 감염 위험에도 불구하고 일하지 않으면 하루하루 생계를 유지할 수 없는 노동자들은 그야말로 방역과 생존 전쟁에 내몰릴 수밖에 없고, 고용보험에 가입조차 되어있지 못한 사각지대 노동자들은 해고와 생계위협의 고통 속에 살아가고 있다.

 

사회 양극화는 도무지 해소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자고 나면 수억 원이 오르는 집값 때문에 한순간에 거지가 되어버렸다는 뜻의 ‘벼락 거지’라는 웃지 못할 말도 생겨났다. 아빠 찬스, 엄마 찬스로 우리와는 전혀 다른 세상의 사람들을 보면서 평등하지 못한 출발선에 서 있을 수밖에 없는 불평등의 사슬을 우리는 똑똑히 확인했다.

 

2021년, 촛불로 당선된 문재인 대통령의 임기가 끝나가고 있다. 불평등이 대물림되는 대한민국에 과연 희망이 있는가? 공공보다 이윤을 좇는 자본주의의 민낯,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틀렸다는 것이 세계 곳곳에서 확인되고 있는 상황에서 과연 우리는 어떤 세상을 만들어야 하는가? 이제는 민주노총이 답해야 한다. 이것이 민주노총에게 주어진 시대적 과제다!

 

촛불혁명 이후 생애 처음으로 민주노총 조끼를 선택한 노동자들이 30만 명을 넘었고, 민주노총은 역사상 처음으로 100만 조합원 시대를 열어냈다. 새로운 세상을 위한 거침없는 투쟁, 이제 110만의 힘을 제대로 보여줘야 할 때다. 대선을 앞둔 11월, 불평등한 세상을 근본적으로 바꾸기 위한 110만 조합원의 총파업으로 한국사회를 크게 뒤흔들어 내자.

 

- 거침없는 민주노총! 11월 110만 총파업투쟁 반드시 성사시키자!

- 불평등이 대물림되는 세상을 근본적으로 바꾸기 위한 투쟁에 적극 나서자!

 

2021년 2월 5일

제72차 민주노총 정기대의원대회 참가자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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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단독선두, 언제까지 지속될까

입력 : 2021.02.06 13:33
 
 여권 양강구도·윤석열 야권대안론 대신 떠오른 이재명 독주

 

지난 1월 29일 광주를 방문한 이재명 경기지사가 광주시청 입구에서 지지자와 인사하고 있다. / 연합

지난 1월 29일 광주를 방문한 이재명 경기지사가 광주시청 입구에서 지지자와 인사하고 있다. / 연합

 

‘이재명의 시간’이 왔다. 독주다. 지난해 11월 말부터 반짝 있었던 ‘윤석열의 시간’은 일단 수그러들었다.

그러나 대선까지의 시간은 아직 많이 남았다. 앞으로도 몇 번 더 출렁거릴 것이다.

주요 대권주자의 지지율에 영향을 미칠 것은 4월 서울·부산 재보궐선거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대선에 출마하려면 3월 9일 이전에 당대표를 사퇴해야 한다. 민주당의 경우 당대표 없이 치러지는 선거지만 선거결과에 대한 책임은 현 대표인 이낙연에게 있다.

어떤 성적을 받느냐에 따라 대권주자 이낙연의 부침이 엇갈릴 것이다. 여야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그러나 더 물어야 할 것이 남았다.

여러 여론조사에서 단독 1위로 올라선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독주는 언제까지 지속될까.

출마 선언을 하지도 않았지만, 야권 대선주자 적합도에서 1위를 기록하고 있는 ‘윤석열 현상’ 역시 앞으로도 계속될까. ‘사면 발언’으로 타격을 입은 이낙연 민주당 대표의 지지율 회복은 가능할까.

현재의 ‘빅3’를 넘어 제3후보가 나올 수 있을까.

여권의 정세균 총리나 야권의 원희룡 제주도지사와 같은 잠재적 대선후보군이 급부상할 가능성은?
 

■여권 13잠룡 등판론, 실현가능할까
 

지난 1월 정치권에서는 흥미로운 이야기가 돌았다.

양정철 전 민주정책연구원 원장 및 친문그룹의 역할론이다.

여권에서 주요 인사들을 만나 기존의 이낙연·이재명·정세균 이외에 각 권역을 대표하는 차기주자 10명을 띄우자는 제안을 했다는 것이다. 이 3+10, ‘13룡’ 등판론에서 거론한 ‘잠룡’ 정치인은 임종석·이광재·김두관·박용진·추미애·이인영·최문순·김경수·양승조·김부겸이다.

이중 현재까지 출마 의사를 밝힌 이는 박용진 의원밖에 없다. 이 ‘설’은 사실일까.

양 전 원장은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객원 선임연구원으로 출국할 예정이지만, 아직까지 출국했다는 이야기는 없다.

“유력인사들을 적극 발굴하고 모두 뛸 기회를 줘 정치력을 발휘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은 양 전 원장의 지론이다.

과거 사석에서 그는 당시까지 민주당 내의 차기 유력주자들에 대한 하마평을 언급한 적이 있다. 양 전 원장이 제일 먼저 주목한 이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었다.

“13룡 등판론은 현실 가능성이 없다. 과거 15대 대선 당시 YS 쪽의 후계자로 ‘9룡’을 거론한 것을 흉내낸 것으로 보이는데, 사실상 불가능하다. 민주당 대선 룰을 보면 전당대회는 7명 후보로 뛰게 돼 있다.”

민주당 당직자의 말이다.

아직 확정되지 않은 안이지만 ‘민주당 대선 경선 주요일정표’를 보면 대선이 치러지는 1년 전인 3월 9일 출마자는 당대표를 사퇴하게 돼 있고 이날부터 예비후보 등록이 시작된다.

6월 21일과 22일 예비경선이 시작되며 6월 30일부터 7월 2일 선거인단 모집, 7월 3일부터 한달간 1·2차 경선이 진행된다.

8월부터는 권역별 또는 시도별 순회경선이 시작된다. 권역별로 치러지는 경우 7회, 시도별로 하는 경우 13회 경선이 이뤄진다.

대략적으로 여권 대권레이스가 본격화되는 것은 7월부터다. 일정 안대로라면 4월 7일 열릴 서울과 부산 보궐선거는 당대표 없이 치러진다.

주요 대권주자인 이낙연 대표가 물러나기 때문이다.

당 관계자는 “대권 시간표 때문에 사퇴한다고 하더라도 선거대책위원회 위원장의 신분으로 재보궐을 치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여하튼 이낙연 대표 주도의 선거라는 것이다.

선거컨설턴트를 역임한 신철우 시사평론가는 “보궐선거는 이낙연으로선 지난해 8월 이후 당대표 성적표의 최종결과를 확정지을 바로미터”라며 “현실적으로 부산은 아니더라도 서울시장의 경우 무조건 지켜야 할 보루”라고 말했다.

서울이나 부산에서 한군데 이상을 지켜내지 못할 경우 책임론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 경우 더 이상의 반등기회를 못 가지고 대선후보군에서 탈락하는 최악의 결과도 나올 수 있을 것이라는 게 정치권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박병석 국회의장과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월 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백봉신사상 시상식 도중 대화를 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박병석 국회의장과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월 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백봉신사상 시상식 도중 대화를 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2년간 양분한 검찰 이슈의 전망은
 

대권레이스에서 무엇보다 두드러지는 것은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독주다.

최근 대부분의 여론조사에서 거의 더블스코어에 가까울 정도로 단독선두에 나섰다. 독주는 언제까지 계속될까.

윤태곤 더모아 정치분석실장은 “프로야구에 비유한다면 한국시리즈의 3강, 4강에 진출한 것과 다름없다”라며 “(이재명 독주는) 4월 보선 때까지 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동안 이 지사와 함께 2강을 형성했던 이낙연 대표와 야권 지지자들이 주목했던 윤석열 검찰총장의 지지율이 빠지면서 다른 대안적 인물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유창선 시사평론가는 “이 지사 지지층에는 문재인 정부에 대해 비판적인 층도 일부 포함돼 있으며, 현재 그의 지지율이 높게 나오는 것은 야권주자가 변변치 않기 때문”이라며 “그런 사람들은 현재 지지부진한 야권후보군이 정리되면 다시 야권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올해 1월을 경과하면서 두드러지는 변화는 또 있다.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지지율이 빠지고 있는 것이다. 장성철 공감과 논쟁 정책센터 소장은 “그동안 윤석열 총장에 대한 높은 지지율은 추미애가 공격하면서 그에 대한 반사작용으로 국민이 인정해주는 면이 없지 않았다”고 말했다. 추미애라는 ‘특급도우미’가 퇴장하면서 자연스럽게 주목도가 떨어진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제는 모멘텀을 스스로 만들어내야 하는 상황인데다 또 하나 중요하게 확인해야 하는 것은 본인의 권력의지다. ‘과연 저 사람이 대선에 나올 사람이냐’는 것은 아직도 확정되지 않았다. 만약 본인이 출마하지 않는다면 지지율이 올라가기 어렵다. 임기만료일(7월)이 다가오는데 만약 정말 정치에 뜻이 있다면 임기 후에 어떤 구도를 가지고 정치를 할 것인지, 구조와 로드맵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이슈의 중심에 서 있는 검찰총장이 대권주자로 거론하는 것 자체가 검찰에 대한 국민의 인식에 혼선을 주는 것이 아닌가.”

안일원 리서치뷰 대표의 말이다. 리서치뷰의 대권주자 여론조사를 보면 다른 여론조사와 다른 특이한 점이 있다.

윤석열을 야권후보군에 포함시키지 않는다. 지난 2월 2일 발표된 리서치뷰와 미디어오늘의 ‘1월 말 대권주자 적합도 정기조사통계표’를 보면 범보수 대권주자 적합도는 현재 서울시장 후보로 뛰고 있는 안철수(12%), 홍준표(11%), 유승민(9%) 순이다.

안일원 대표에 따르면 리서치뷰의 조사에서는 한 번도 윤석열을 대권주자로 넣어 조사한 적은 없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일단 지난해 본인이 연초쯤 대권주자 여론조사에서 제외해달라는 요청을 했고, 2019년 가을부터 현재까지 검찰의 중립성 여부를 둘러싼 논란이 계속되는 와중에 여론조사 기관마저 그를 대권주자로 넣어 조사한다면 인식의 혼란을 거드는 것이 아닌가 판단했다.”

최근 윤 총장에 대한 지지율이 빠지는 상황과 관련해 그는 “보수진영에서 윤석열 신드롬이 상당 기간 이어졌던 것은 그쪽의 다른 유력정치인들이 두각을 나타내는 사람이 없으니 반문진영의 대표성 내지는 상징적 위치에 있는 사람에 몰릴 수밖에 없었고, 지난 2년간 보수진영이 윤석열을 주목해온 것”이라며 “대립각을 형성해온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퇴진도 있지만 지난 신년기자회견에서 윤석열 총장은 문재인 정부의 검찰총장이라는 대통령의 발언도 그런 상징효과 내지는 효용가치가 끝나가는 시점으로 돌아서는 추세의 분기점이 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정치전문가들은 4월 재보궐을 기점으로 선거일정이 본격 궤도에 올라가면서 정국의 중심을 형성했던 검찰이슈가 빠질 것으로 내다봤다.

안 대표는 “사실 지난 2년간 검찰이슈가 엄청난 국론분열 당파전쟁 수준까지 와버린 것은 사실”이라며 “공수처도 출범하고 재보궐선거가 끝난 뒤 여야 정당의 대선레이스가 본격화되면 7월 윤 총장이 퇴임 후 출마 선언을 하더라도 이미 영역이 달라지는 만큼 더 이상 검찰이슈가 다른 정치이슈를 압도하는 일은 없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1월 4일 윤석열 검찰총장이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을 찾아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 / 권호욱 선임기자

지난 1월 4일 윤석열 검찰총장이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을 찾아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 / 권호욱 선임기자

■이재명, 친문 ‘비토’ 넘어설까
 

4월 재보궐선거 결과에 따라 이낙연 대표의 운명을 갈리겠지만, 현재 단독선두를 기록하고 있는 이재명 지사의 경우, 지지율 관리의 모멘텀을 만들기 쉽지 않다.

단독선두로 올라선 만큼 지난 2017년 대선을 거치면서 벌어진 이른바 친문세력의 ‘비토’정서를 어떻게 넘어설 것인가도 과제로 제기되고 있다.

김관옥 계명대 교수(공공인재학부 정치외교학전공)는 “이재명 지사로서는 그게 제일 큰 아킬레스건에 해당하는 것은 사실”이라며 “지지율과 별도로 먼저 넘어야 할 당내 경선에서 친문의 비토를 받으면 어렵다는 것은 대부분 알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 지사로서는 최소한 자신의 편은 아니더라도 비토하지 않도록 노력을 해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그 부분 관리에 가장 역점을 둘 것”이라고 말했다.

자신의 소년공 경력을 알리면서 ‘리틀 노무현’으로 이미지메이킹하는 것이나, 광주 5·18기념공원 방문 등의 일정이 대권 정치행보로 읽히는 까닭이다.

최진봉 성공회대 교수(신문방송학과)는 “4차 재난지원금과 관련해서도 이낙연 당대표가 할 수 있는 것은 기획재정부에 대한 경고 이상 없다. 그러나 이재명 지사는 상황이 다르다. 과감한 정책적 대안을 내놓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지사를 맡고 있는 경기도에서 실행해 그 결과를 보여주는 것으로 지속적으로 국민에게 어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치적 기회의 측면에서도 이낙연 당대표는 4월 재보궐선거라는 하나의 빅이벤트에 의해 결정될 운명이라면, 경기도라는 지속적인 정책 실험무대를 가진 이재명 지사에게 유리한 상황이라는 것이다.

이낙연 측인 남평오 연대와 공생 사무총장은 “최근 수도권과 호남 일부에서 이재명 지사에 대한 지지율이 늘어난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는 이낙연 당대표가 보다 진보적 의제를 가지라는 의미로 해석하고 있다”라며 “아직 대선시간표까지 남은 시간은 많다. 우리도 불과 6개월 전까지 40%대의 지지를 받은 적이 있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누가 최종 승자가 될 것이냐는 것은 레이스를 완주해봐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102061333001&code=940100#csidx543d670f6c1dc79b13925dd66461f1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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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까지 한걸음 남은 ‘김진숙 희망 뚜벅이’…“국가폭력 35년, 대통령 어디에 있나?”

강석영 기자 getout@vop.co.kr
발행 2021-02-06 17:52:27
수정 2021-02-06 17:5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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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년간의 복직 투쟁을 끝장내러 부산부터 청와대까지 한 달 넘게 걷고 있는 한진중공업 마지막 해고 노동자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 지도위원이 6일 서울에 진입했다.

청와대에 가까워질수록 김 지도위원과 함께 걷는 시민들이 늘어나 이날 참가자 수는 역대 최고인 500여 명을 기록했다. 내일이면 청와대 앞 농성장에 도착하는 이들은 “국가폭력 35년, 단식 46일! 대통령은 어디에 있나”라고 따져 물었다.

민주노총 부산본부 김진숙 지도위원이 6일 경기 안양시 인덕원역에서 노동자들과 전국에서 달려온 희망뚜벅이와 서울 흑석역까지 현대중공업 복직을 위한 희망뚜벅이 39일차 행진을 하고 있다.  김진숙 희망뚜벅이는 지난해 12월 30일 부산도시철도 호포역에서 출발해 청와대 도착 하루를 남기고 있다.  2021.02.06
민주노총 부산본부 김진숙 지도위원이 6일 경기 안양시 인덕원역에서 노동자들과 전국에서 달려온 희망뚜벅이와 서울 흑석역까지 현대중공업 복직을 위한 희망뚜벅이 39일차 행진을 하고 있다. 김진숙 희망뚜벅이는 지난해 12월 30일 부산도시철도 호포역에서 출발해 청와대 도착 하루를 남기고 있다. 2021.02.06ⓒ김철수 기자  김진숙과 함께 걷는 해고 노동자들

‘김진숙 희망 뚜벅이’는 이날 오전 11시 인덕원역을 출발해 남태령역, 사당역을 지나서 오후 3시 흑석역에 도착했다. 암 투병 중인 김 지도위원은 정년을 하루 앞둔 지난해 30일 부산 호포역에서 복직 촉구를 위한 도보 행진에 나섰다.

김 지도위원을 선두로 해고 노동자들이 뒤따랐다. 김 지도위원의 아픔에 누구보다 공감하며, 도보 행진 출발 때부터 함께했던 이들이다. 이날은 코레일네트웍스, 아시아나KO, LG트윈타워, 아사히글라스, 쌍용자동차, 대우버스, 한국게이츠 노동자들이 참가했다.

 

새해 LG트윈타워에서 집단해고돼 농성을 벌이고 있는 청소노동자 A 씨는 “김 지도위원 복직시켜달라고 빌면서 걸었다”라고 소회를 전했다. 그는 “35년간 세월을 어떻게 견뎠는지…김 지도위원이 오래 힘들게 투쟁하는 게 마음이 아팠다”라고 말했다.

투쟁하며 “사 측이 교섭을 거부하고 꼼짝도 안 하는 게 제일 힘들다”라던 A 씨는 한진중공업에서 김 지도위원에게 해고 기간 밀린 임금 대신 위로금을 제시한 데 대해 “해고 노동자들은 거기서 일하고 싶다는 것이다. 그런 돈 필요 없다”라고 목소리 높였다.

그는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인 고용 승계를 언급하며 “김 지도위원 복직에 국가가 나서야 한다. 노동자를 위한다는 대통령이 어떻게 그럴 수 있나. 김 지도와 문 대통령은 옛날 동지라고 하더라. 지금 상황이 너무 안타깝다”라고 말했다.

민주노총 부산본부 김진숙 지도위원이 6일 경기 안양시 인덕원역에서 노동자들과 전국에서 달려온 희망뚜벅이와 서울 흑석역까지 현대중공업 복직을 위한 희망뚜벅이 39일차 행진을 하고 있다.  김진숙 희망뚜벅이는 지난해 12월 30일 부산도시철도 호포역에서 출발해 청와대 도착 하루를 남기고 있다.  2021.02.06
민주노총 부산본부 김진숙 지도위원이 6일 경기 안양시 인덕원역에서 노동자들과 전국에서 달려온 희망뚜벅이와 서울 흑석역까지 현대중공업 복직을 위한 희망뚜벅이 39일차 행진을 하고 있다. 김진숙 희망뚜벅이는 지난해 12월 30일 부산도시철도 호포역에서 출발해 청와대 도착 하루를 남기고 있다. 2021.02.06ⓒ김철수 기자

“김진숙이 가는 길, 그냥 따라 걷고 싶었다”

개개인의 시민들도 김 지도위원의 복직을 염원하며 함께 걸었다. 강릉에서 왔다는 50대 초반 이 씨는 “김 지도위원이 병원을 나와 부산에서 걷기 시작할 때부터 마음이 덜컹했다. 엄동설한에 하루라도 함께 걸어야겠다는 생각에 서울까지 오게 됐다. 저는 힘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서 머릿수라도 보태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이어 “김 지도위원이 2011년 85호 크레인에 올라갔을 때 처음 그를 알게 됐다. 한평생 정의로움과 옳다는 것에 자신의 삶을 받치지 않았나. 평소 함께 할 수 없지만, 그 마음과 뜻에 동조하고 연대한다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 왔다”라고 말했다.

50대 중반인 B 씨는 “김 지도위원이 한 달 넘게 걷는 모습을 보며 마음이 아팠는데, 김 지도위원은 씩씩하게 걷고 있더라. 그냥 그의 길을 따라서 걷고 싶었다”라며 “보통은 정부든 기업이든 거대 권력에 좌절하지 않나. 하지만 김 지도위원은 35년째 투쟁하고 있다. 늘 이래저래 눌려 사는 사람들에게 힘이 된다”라고 말했다.

참가 이유를 묻자 “김 지도위원 일인데 당연하다”라는 30대 중반 장 씨는 “그가 연대한 게 한두 번이 아니지 않나. 각종 투쟁 사업장 이외에도 모든 소수자 의제까지 결합했다. 그렇다면 김 지도위원 복직에 우리가 똑같이 결합해야 하는 거 아닌가”라고 말했다.

민주노총 부산본부 김진숙 지도위원이 6일 경기 안양시 인덕원역에서 노동자들과 전국에서 달려온 희망뚜벅이와 서울 흑석역까지 현대중공업 복직을 위한 희망뚜벅이 39일차 행진을 하고 있다.  김진숙 희망뚜벅이는 지난해 12월 30일 부산도시철도 호포역에서 출발해 청와대 도착 하루를 남기고 있다.  2021.02.06
민주노총 부산본부 김진숙 지도위원이 6일 경기 안양시 인덕원역에서 노동자들과 전국에서 달려온 희망뚜벅이와 서울 흑석역까지 현대중공업 복직을 위한 희망뚜벅이 39일차 행진을 하고 있다. 김진숙 희망뚜벅이는 지난해 12월 30일 부산도시철도 호포역에서 출발해 청와대 도착 하루를 남기고 있다. 2021.02.06ⓒ김철수 기자

“노조했다고 빨갱이로 고문…국가가 나서야”

김 지도위원이 복직을 촉구하며 청와대까지 걷는 이유는 국가가 그의 부당해고에 개입했기 때문이다. 그는 1986년 2월 노조 집행부의 어용성을 폭로하는 안내 글을 제작·배포했다는 이유로 대공분실에 3차례 끌려가 고문을 당했다. 사 측은 이 기간 무단결근했다는 이유로 그해 7월 그를 해고했다.

김 지도위원의 복직을 촉구하며 단식 농성을 벌이던 이들이 병원에 실려 가고, 김 지도위원을 비롯한 희망 뚜벅이가 청와대 코앞까지 왔지만, 정부는 여전히 ‘나 몰라라’ 하고 있다. 노사 문제에 개입할 수 없다는 태도인데,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은 한진중공업의 주채권자로 사실상 정부가 사 측인 상황이다.

국가가 김 지도위원 복직에 나서야 한다고 참가자들은 입을 모았다. B 씨는 “김 지도위원 해고에 남북 대립상황이 작용했다. 노조 대의원을 했다는 이유로 빨갱이라고 고문당한 뒤 해고되지 않았나”라고 말했다.

40대 양 씨는 “잘못된 부분엔 정부가 개입해야 한다. 그래서 국가가 있는 것이다. 알아서 해결하라는 것은 책임 회피”라고 지적했다. 40대 박 씨는 “김 지도위원 복직을 손 놓고 구경하는 정부의 태도는 친기업 반노동이 확실하다. 김 지도위원이 선례로 남을까 봐 두려운 것”이라고 말했다.

김 지도위원 복직의 의미에 대해 양 씨는 “우리 모두 노동자다. 누구는 안 당하고 누구는 당하는 게 아니다. 해고는 우리 모두의 일”이라며 “김 지도위원이 복직하면 큰 선례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민주노총 부산본부 김진숙 지도위원이 6일 경기 안양시 인덕원역에서 노동자들과 전국에서 달려온 희망뚜벅이와 서울 흑석역까지 현대중공업 복직을 위한 희망뚜벅이 39일차 행진을 하고 있다.  김진숙 희망뚜벅이는 지난해 12월 30일 부산도시철도 호포역에서 출발해 청와대 도착 하루를 남기고 있다.  2021.02.06
민주노총 부산본부 김진숙 지도위원이 6일 경기 안양시 인덕원역에서 노동자들과 전국에서 달려온 희망뚜벅이와 서울 흑석역까지 현대중공업 복직을 위한 희망뚜벅이 39일차 행진을 하고 있다. 김진숙 희망뚜벅이는 지난해 12월 30일 부산도시철도 호포역에서 출발해 청와대 도착 하루를 남기고 있다. 2021.02.06ⓒ김철수 기자

이날 보도 행진은 오후 2시 사당역에서 잠시 중단되기도 했다. 희망 뚜벅이 관계자들에 따르면, 경기에서 서울로 넘어오면서부터 경찰이 대오를 둘러쌌기 때문이다.

희망 뚜벅이는 감염병 예방수칙을 지키며 9명씩 10m 간격으로 이동했는데, 경찰들이 앞뒤로 따라붙으면서 간격이 4~50m가량 벌어졌다. 이 때문에 보도 행진이 한 줄로 연결되지 못하고 참가자들이 산발적으로 걷는 모양새였다.

현장을 통제하던 금속노조 관계자는 “참가자들이 옆으로 이탈하면 그만이다. 경찰의 의미 없는 조처 때문에 힘을 못 받고 있다”라고 토로했다. 다른 관계자 역시 “경찰의 보호를 요청하지 않았다. 합법적으로 행진 신고했는데, 범법자 취급하며 빙 둘러싸서 시민들이 이상하게 생각한다”라고 지적했다.

경찰 관계자는 인력을 배치한 이유에 대해 “안전상의 문제”라고 해명했다. 한 참가자는 “경찰 때문에 걷기가 멈춰져서 우리가 무엇인가를 하고 있다는 게 안 느껴져서 속상하다”라고 말했다.

흑석역에 도착한 참가자들은 김 지도위원과 기념사진을 찍고 내일 다시 만나자는 약속을 하며 헤어졌다.

희망 뚜벅이는 오는 7일 11시 흑석역에서 출발해 남영역의 한진중공업 본사를 지나 오후 3시 청와대 농성장에 도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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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부당한 소송이었나. 정부의 처사는 정당한가"

[기자수첩] 5.24 소송 패소한 민간에 독촉장 보낸 통일부 유감

  • 기자명 이승현 기자 
  •  
  •  입력 2021.02.07 00:50
  •  
  •  수정 2021.02.07 01:00
  •  
  •  댓글 1
 

설 명절을 앞둔 지난 1월26일 정범진 (주)겨레사랑 대표는 통일부로부터 채납액을 납부하라는 독촉장을 받았다. 

(주)겨레사랑 대표이사를 수신인으로 하여 통일부 운영지원과에서 보낸 이 독촉장에는 2016년 6월 7일 265만여원, 2017년 11월 20일 1,373만여원을 비롯해 총 1.639만여원의 채납액을 조속히 납부하라는 내용이 적혀 있다.

형편상 일시납부가 어려운 경우 분납 관련 문의를 해달라는 친절한(?) 안내와 함께 15일 내에 납부하지 않을 경우 '국가채권관리법' 제15조에 의거해 소유재산에 대한 압류조치를 취하겠다는 숨막히는 압력도 담겨있다.

채무의 내용을 짐작할 수 있는 비고란에는 2015년 서울고등법원 판결 번호가 적혀 있다.

통일부에서 (주)겨레사랑에 보낸 독촉장. [사진-겨레사랑 제공]
통일부에서 (주)겨레사랑에 보낸 독촉장. [사진-겨레사랑 제공]

간단히 경위를 말하자면 이렇다.

개성공업지구 입주가 예정되어 있던 경협사업자인 (주)겨레사랑 정 대표는 LH공사로부터 토지를 분양받고 입주가 예정되어 있는 상황에서 2010년 5.24조치로 일방적인 사업중단 통보를 받았다.

정 대표는 5·24조치로 인해 발생한 피해구제에 나서지 않는 정부를 상대로 손실보상을 청구했으나, 대법원은 △5·24조치는 적법한 조치이며, 기업이 입은 피해는 특별한 희생이 아니다 △보상에 관한 근거 법률이 없는 이상 헌법 제23조 제3항에 의하여 직접 손실보상청구권이 발생하지 않는다라는 이유로 패소결정을 내렸다.

이번 독촉장은 한마디로 패소에 대한 책임을 지고 원고인 정 대표가 진행한 소송으로 인해 발생한 비용을 내라는 것이다. 

5.24조치에 대해 국가를 상대로 손해보상청구를 한 개인은 정 대표를 비롯해 3명 이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먼저 통일부 당국자에게 물었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느냐고.

소송 남발을 방지하기 위해 패소자가 소송비용을 부담해야 하는 원칙이 있고, 통일부는 법적 절차에 따른 조치를 취했을 뿐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정부의 조치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으며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가 패소한 사람은 마땅히 감수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당국자는 지난해 5.24조치 10주년에 즈음해 '역대 정부에서 유연화와 예외조치를 거치면서 실효성이 상당 부분 상실되었다'고 발표한 통일부의 입장을 '5.24 무효화'로 오해하면 안된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지난해부터 정부가 남북교류협력법 개정안을 마련하면서 남북교류협력 사업 중단시 국무회의 심의를 거치도록 하고, 그 경우에도 경영정상화를 위해 재정지원 등 필요한 조치가 취해지도록 한 것은 과거 5.24조치와 개성공단 전면중단 등 정부 조치의 문제를 인정한 것 아니냐고 따졌다. 

그렇지만 독촉장 발송 등 법적용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는 입장은 강경했다.

지난 4일 변호사 출신 서동용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 순천·광양·곡성·구례 을)에게 물어 보았다.

서 의원은 "과연 국가가 당사자인 원고에게 소송제기가 부당했다고 자신있게 이야기할 수 있는 사안인가라는 측면에서 소송비용까지 부담하라고 한 것은 국가가 너무한 처사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엄청난 피해를 당한 국민이 피해를 회복할 방법이 없어서 국가로부터 보상받을 수 없는지를 검토해달라는 취지로 제기한 소송에 대해 국가가 법리적으로 승소했다고 해서 소송비용에 대한 책임까지를 국민에게 떠넘기면 과연 국가는 정당한 것이냐"는 것이다.

서 의원은 "원칙적으로 소송의 패소자가 소송비용을 부담하도록 한 것은 정당하게 보일 수 있고 승소한 정부측으로서는 소송비용을 받을 수 있는데 그 절차를 밟지 않아 결국 국고에 손실을 입힌 것 아니냐는 문제가 나중에 있을 수는 있다. 그렇지만 패소자 부담의 원칙을 기계적으로 적용할 사안은 아니지 않나"라고 되물었다.

패소자 부담 원칙이란 먼저, 누구를 상대로 하건 소송 패소에 대한 부담을 져야 하기 때문에 부당한 소를 제기하지 말라는 취지이고 특히 사인간의 관계에서 권리 없는 자가 부당하게 권리 당사자인 것처럼 나서 소송을 제기했을 때 변호사 보수 등 최소한의 소송비용을 패소한 측에서 부담하도록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런데 "이 경우 국가를 상대로 부당한 소를 제기한 것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사안은 아니지 않느냐"는 근본적 물음을 제기한 것이다.

특히 5.24조치나 개성공단 폐쇄 조치를 통치행위로 합리화했던 기존 관행을 개선하기 위해 최근 정부가 남북교류협력법을 개정하려고 하는 것은 국가 차원의 반성적 고려가 있는 것이라는 점을 감안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서 의원은 "우선 소송비용을 원고인 패소자에게 전액 부담시키는 것이 적절한 것인지에 대해 판단해달라는 신청을 법원에 제기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국가가 피해를 입은 국민들에게 아무런 손해보상을 하지 않는 것은 잘못된 일'이라는 것은 너무나 분명한 상식이다.

다가오는 2월 10일 개성공단 폐쇄 5년을 맞이하는 입주기업의 하소연도 이와 다르지 않다. 이미 (주)겨레사랑을 비롯해 2010년 5.24조치로 인해 졸지에 생업을 잃은 경협 및 교역사업자들이 오랜 세월 국가가 국민에게 해야 할 의무를 묻고 있다.

코로나19 방역지침에 협력하다 어려움에 직면한 많은 자영업자들이 '경영정상화를 위한 지원'이 아니라 국가가 책임을 지는 손실 보상을 촉구하고 있지 않나.

이제 국가는 고지서 보내듯 독촉장을 보낼 일이 아니라 국민의 독촉에 답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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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 청소년 위한 단 하나의 천막, 설에도 쉬지 않는다

등록 :2021-02-06 04:59수정 :2021-02-06 10:50
 

[토요판] 커버스토리
거리 청소년 아웃리치 현장

전국 13곳 청소년 아웃리치 중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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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가 교육 뒤 현장 투입돼보니
정부 외면 속 밥·잠자리·돈 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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앱 배달 라이더 늘어도 불리한 조건
오토바이 리스비 1년 1천만원 넘어
여성 청소년은 일 구하기 더 험난

작년 거리청소년 5천명 넘게 방문
‘방역지침’만 있고 현장지원 ‘뚝’
전체 7만명 추정…실태 파악 못해
“코로나로 심리적 위기도 빨간불”
‘움직이는 청소년 센터 엑시트’ 활동가들이 1월22일 저녁 서울 신림사거리 봉림교 옆에서 청소년 지원 활동을 준비하고 있다. 코로나19 1년, 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는 13곳의 이동형 아웃리치 버스가 비대면으로 전환한 뒤로 대면 방식으로는 유일하게 남은 거리 청소년 아웃리치 현장이다. 장철규 선임기자 chang21@hani.co.kr
‘움직이는 청소년 센터 엑시트’ 활동가들이 1월22일 저녁 서울 신림사거리 봉림교 옆에서 청소년 지원 활동을 준비하고 있다. 코로나19 1년, 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는 13곳의 이동형 아웃리치 버스가 비대면으로 전환한 뒤로 대면 방식으로는 유일하게 남은 거리 청소년 아웃리치 현장이다. 장철규 선임기자 chang21@hani.co.kr
▶ 코로나19 1년, 거리 청소년은 ‘없는’ 존재로 여겨졌다. 실종신고된 2만명(경찰 추산)과 27만명(여성가족부 추산) 사이 어딘가에 이들은 여전히 있었다. 숫자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 존재는 때론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여겨진다. 코로나는 그들에게 질병 이전에 배고픔과 추위였다. 코로나가 덮친 긴 겨울 밤, 잠시 의탁할 찜질방도 피시방도 문을 닫았다. 2020년 공공기관이 운영하는 전국 13곳 거리 청소년 아웃리치 버스는 비대면으로 전환했다. ‘아웃리치’라는 말이 무색하다. 유일하게 남은 단체가 매주 금요일 저녁 8시 서울 신림사거리 봉림교 인근에 자리잡은 ‘움직이는 청소년센터 엑시트’다. 이곳에서 활동가 교육을 받고 1월22일, 29일 현장에서 거리 청소년을 만났다. 엑시트는 지난 10년 동안 그래왔던 것처럼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 속에서도 꿋꿋하게 거리 청소년들의 밥을 지켰다. 그들의 생각은 간명했다. ‘최소한 굶도록 내버려둬서는 안 된다. 혹한 속 한뎃잠 자게 둬서는 안 된다.’ 엑시트의 천막은 설에도 쉬지 않는다.
이번 겨울을 코로나19와 함께 보낸 우리는 기억할 것이다. 밤 9시면 거리에 불이 꺼지고, 사람들은 일제히 집으로 향했다고. 하지만 불 꺼진 서울 신림사거리 디스코 팡팡에도, 그 빌딩 뒤편 텅 빈 골목에도, 그 너머 도림천을 따라 들어선 공중화장실 옆과 그 앞 정자에도 남은 사람들이 있었다. 코로나19로 하루 확진자가 1천명이 넘을 때도, 체감온도가 영하 20도라고 하는 밤에도 ‘5명이 모이면 안 된다는데’ 그들은 거기에 있었다. 11만명(경찰)이라고도, 27만명(여성가족부)이라고도 하는데 누구도 그 수를 장담하지 못한다. 누구도 그들이 거기에 있는 이유를 단정 짓지 못한다. 열 중 일곱은 부모 등 가족과의 갈등 때문이라는 정도가 그들을 설명하는 최소한이다. 그들을 만나고 싶었다.활동가가 되기로 했다. ‘움직이는 청소년 센터 엑시트’ 버스에 타기 위해서다. 코로나19 1년, 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는 13곳의 이동형 아웃리치 버스가 비대면으로 전환한 뒤로 대면 방식으로는 유일하게 남은 거리 청소년 아웃리치 현장이다. 2.5단계 거리두기, 5인 이상 집합금지가 내려진 서울에서 그들은 밥통 두개에 밥 30인분을 담아 신림사거리 인근 봉림교 한편을 지켜왔다. 이유는 간명했다. “청소년들이 원해서”다. 2011년부터 일관되게 지켜온 엑시트의 구호처럼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추석에나 설날에나” 버스가 정차했고, 그 세월을 믿고 찾아오는 청소년들이 있었다. 활동가들은 이들을 ‘엑시터’로 불렀다.1월22일 활동가 교육을 받았다. 교육은 엑시트 소개, 2019년 7934명(신림 지역 엑시트 버스 이용 연인원)으로 집계된 엑시터들의 위기 상황, 주거, 질병, 법률 등 사례 지원, 활동가의 원칙(제1 원칙 ‘인권 보장과 현장 안전을 위해 청소년의 비밀을 지킨다’ 등)으로 이어졌다. 지난겨울에도 10여차례 있었던 자원활동가 약식교육이었다. 엑시트에서는 활동가가 하는 일을 “배제된 청소년을 찾는 것, 그들의 욕구를 파악하고 함께 해결하는 것, 위기 상황에 개입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초짜 활동가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교육 뒤 만난 한 청소년이 답을 내놨다. “어차피 공기계(서비스 중단 휴대전화)에 딱 3천원 들고 노상까봐야 안다”고 했다. 밥 한끼도 해결하기 힘든 돈과 정지된 휴대전화만 들고 거리에서 직접 겪어봐야 안다는 말이다. 당신은 그걸 할 수 없으니 평생 모를 것이라는 삐딱한 진심을 담고 있다. 그래도 부딪쳐보기로 했다.
활동가들이 소시지야채볶음, 불고기, 달걀부침, 오징어진미채, 김치 등을 도시락에 담고 있다. 불고기와 소시지야채볶음과 달걀부침 등은 따로 담았다. 장철규 선임기자 chang21@hani.co.kr
활동가들이 소시지야채볶음, 불고기, 달걀부침, 오징어진미채, 김치 등을 도시락에 담고 있다. 불고기와 소시지야채볶음과 달걀부침 등은 따로 담았다. 장철규 선임기자 chang21@hani.co.kr
“오늘 한끼도 못 먹었어요”
“밥이 제일 중요하죠.”(박유리 활동가)교육을 마친 뒤 첫번째 업무는 도시락을 싸는 일이었다. 교육 동기 “마미님”(사단법인 두루 마한얼 변호사 별칭)과 함께 소시지야채볶음, 불고기, 달걀부침, 오징어진미채, 김치 등을 도시락에 담았다. 25인분 반찬통 말고도, 손바닥만한 반찬통에 불고기와 소시지야채볶음과 달걀부침 등은 따로 담았다. 반찬만 포장해 가는 청소년들을 위해서다. 엑시트 버스를 찾은 청소년은 신림 지역에서만 지난 한해 5176명(연인원)이다. 이들이 엑시트에서 먹은 밥은 985끼니다. 활동가들이 밥, 밥 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엑시트가 공개한 자료를 보면, 청소년들이 탈가정 이후 어려움을 호소하는 대표적인 항목은 배고픔, 잠잘 곳, 돈이 없어 생기는 고통 등이다. 이 본능의 영역에서 결핍이 적절하게 채워지지 못할 때 이는 범죄의 이유가 되기도 한다. 엑시트와 인연을 맺고 있는 청소년들이라고 다를 것 없다. 자원활동가로 일하고 있는 서유진 변호사(사단법인 나눔과 이음)는 “법률 지원 사례 중에 잘 곳이 없어서, 배가 고파서 저지르는 생계형 범죄가 가장 많다. 올해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신림 지역에서 서 변호사가 중심이 된 법률 지원을 포함해 의료 지원, 정서 지원 등 이른바 ‘위기 지원’은 1841건이었다. 지난겨울(2400건)에 비하면 4분의 1 정도가 줄었다. 하지만 엑시트가 4주간은 아예 활동을 접었고, 확진자 발생 추이에 따라 활동의 범위를 조정해왔다는 점을 고려하면 청소년의 곤궁함이 줄었다고 볼 수 없다. 지원 사례들을 보면 오히려 상황이 심각해졌다는 평가도 나온다. 이윤경 활동가는 “지난해만 해도 일상적 접점이 유지되고 있어 일이 커지기 전에 와서 해결책을 찾는 경우가 많았다면 최근에는 해결하기 힘든 지경까지 안고 있다가 찾아오는 경우가 늘었다”고 했다.아웃리치 현장으로 가는 길, 이 활동가의 휴대전화가 울린다. 익숙한 듯 “거리두기도 방역도 잘하고 있다. 걱정 안 되도록 하겠다”고 통화를 마무리한다. 경찰이다. 민원 때문이다. 지난해 12월 말 하루 확진자가 전국 1천명을 넘어서고, 거리두기 2.5단계가 지속되면서 엑시트를 향한 항의는 계속되고 있다. 1월 중순에는 청와대 게시판에도 민원이 등장했다. 민원인은 버스 주변의 상인이었다. 사무실에서 차로 5분이 될까, 봉림교 옆에 밥을 내려놓고 베이스캠프인 천막을 쳤다. 천막은 도림천변에 설치돼, 상권과 동선이 직접 겹치지는 않는다. 건너편 길가로 음식점, 미용실, 노래방 등이 어깨를 맞댄 듯 빼곡하다. 어느 곳 할 것 없이 몇걸음 둘러봐도 똑같다. 마스크를 쓴 사장, 종업원 한둘이 멍하니 앉아 있다. 그들도 안다. 금요일 저녁 8시 주린 배를 채우려 엑시트를 찾는 청소년들이 자신들의 손님이 될 확률이 높지 않을 것이다. 한 음식점 사장은 “좋은 일 하는 건 알겠고 아이들 힘든 것도 알겠는데 코로나(방역)도 걱정되고, 나도 힘들다”고 했다. 결국 며칠 뒤 엑시트에서는 민원인을 직접 만나 이해를 구했다. ‘인성 좋은’ 황인성 활동가가 나섰다. “처음에는 많이 격앙돼 있었지만 (청소년들) 사정을 얘기하니 많이 누그러졌다”고 했다. 그럼에도 민원은 계속된다.저녁 8시, 첫 활동이 시작됐다. 천막 전체는 안내데스크와 주방이 있는 본채, 식당 두채, 별채로 돼 있다. 주방을 맡았다. 청소년과 눈을 마주치고 자기소개 하기가 좋아 첫 활동으로 좋다는 조언 때문이었다. 천막 앞에서 10분 전부터 기다리던 네댓명이 한꺼번에 들이닥쳤다. 잿빛 방한복과 조끼에서 겨울 냄새가 났다. 청소년 라이더들이었다. 엑시트를 찾는 라이더 수는 지난 연말부터 급증하고 있었다. 배달업은 청소년들의 주된 아르바이트 직종이 됐다. 여성가족부 자료를 보면, 탈가정 청소년 열 중 셋이 음식점·식당·레스토랑에서 아르바이트 자리를 얻는다. 그다음이 배달·운전이다. 코로나19가 거리 청소년 직업 선택의 지형을 바꿔놓은 것일까. 라이더유니온의 구교현 기획팀장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코로나19로 인해 식당 등 요식업계가 타격을 입으면서 청소년들의 일자리도 줄어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앱을 통한 배달이 늘면서 라이더의 수도 따라 증가한 것 같다”고 했다. 방역을 위해 한자리씩 떨어져 앉은 라이더들은 묵묵히 밥을 입에 몰아넣었다. 배고픈 것인지 바쁜 것인지 그 둘 다인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그들의 긴장과 조급함이 궁금했다. 주방을 잠깐 벗어나니 문지기 역할을 하는 천막 밖 자원활동가에게 몇몇이 하루 고생담을 털어놓고 있었다. 다가가니 침묵이 흐른다. 초짜 활동가에게는 곁을 주지 않으려는 듯했다.밤 10시가 넘어서면서 밥을 찾는 청소년이 뜸해졌다. “제제(활동가 별칭), 오늘 나 한끼도 못 먹었어”라며 천막으로 들어서는 청소년이 마지막이었다.
저녁 8시, 첫 활동이 시작됐다. 천막 전체는 안내데스크와 주방이 있는 본채, 식당 두채, 별채로 돼 있다. 주방을 맡았다. 청소년과 눈을 마주치고 자기소개 하기가 좋아 첫 활동으로 좋다는 조언 때문이었다. 장철규 선임기자 chang21@hani.co.kr
저녁 8시, 첫 활동이 시작됐다. 천막 전체는 안내데스크와 주방이 있는 본채, 식당 두채, 별채로 돼 있다. 주방을 맡았다. 청소년과 눈을 마주치고 자기소개 하기가 좋아 첫 활동으로 좋다는 조언 때문이었다. 장철규 선임기자 chang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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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쓰고 쉽게 자르는
주방을 지켜서일까. 두시간 넘도록 들은 것은 밥과 반찬 얘기뿐이었다. 밥 얘기가 시작인 줄, 그게 엑시트 10년의 비결인 줄 그때는 몰랐다. 무엇이든 잘하고 싶었던 초짜 활동가의 마음은 타들어갔다. 2019년 상담 내용에는 주거 문제가 400건이 넘고, 질병이 185건, 금융 문제가 146건이었다. 법률 지원이나 성폭력, 심리 상담만 해도 각각 수십건이다. 상담 수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절실한 문제라는 방증이다. 상담 중 가장 많은 사례인 주거는 엑시트에서도 당장 어찌해볼 수 없어 늘 고민거리다. 코로나19 상황에서는 쉼터에 입소하도록 연계하는 것조차 쉽지 않아졌다. 한 청소년의 경우 지난해 여름부터 쉼터를 알아보다 결국 포기했다. 물론 지난해부터 주거 문제에 희망의 단초도 있다. 엑시터 중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임대주택에 당첨된 경우가 나왔다. 복지정책에 따라 청소년 등 취약계층의 삶이 어떻게 변할 수 있는지, 그 가능성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물론 현재로서 이는 매우 이례적인 사례일 뿐 갈 길은 멀다. 특히 거리에 나온 여성 청소년의 삶은 주거와 결부될 때 수시로 궁지에 놓인다. 엑시트가 제공한 자료를 보면, 여성 청소년의 경우 탈가정 뒤 경험하는 위기 열 중 셋 가까이는 잠자리를 해결하지 못해서 생기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조건만남과 성폭력 등의 문제를 야기해온 ‘가출팸’은 집에서 나온 여성 청소년이 에스엔에스(SNS)를 검색하면 어렵지 않게 접근이 가능하다. 하지만 안전은 담보되지 못한다. 지난 1일 기자와 만난 여성 청소년 우삼(가명)은 “가출팸을 누가 가고 싶어서 가나. 갈 곳이 없으니까 가게 된다”고 했다. 결국 여성 청소년은 위기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성매매라는 선택지로 내몰리기도 한다. 2016년 국가인권위원회 자료를 보면, 성매매 여성들이 처음 성매매를 경험한 나이는 14~16살이 절반을 넘는다. 잘 곳이 없어서(35%), 다른 일자리가 없어서(26.2%), 배가 고파서(25.2%) 등의 사연들은 탈가정 뒤 겪는 어려움과 고스란히 겹쳐진다.밤 12시. 천막 곳곳이 유난히 더 버석거렸다. 무릎 아래 높이로 말려 있는 천막 아랫단에서 나는 소리였다. 기상청은 1월22일의 최저기온을 영상으로 기록했다. 하지만 관악산을 타고 도림천을 내달리다 들이치는 바람은 매서웠다. 발바닥에 핫팩을 붙이는 한 활동가에게 “저온화상을 조심하라”고 어쭙잖은 충고를 날린 것도 금세 잊었다. 한가한 틈에 뒤늦게 발바닥 앞꿈치와 뒤꿈치 모두 핫팩을 둘러 싸맸다. 시간은 다 돼가는데 아쉬움만 남았다. 하루 종일 교육자료의 설문 결과 하나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엑시트에는 어떤 활동가가 필요한가요?” 1위는 “재치 있고 유머러스한 활동가”였다. 기회가 없진 않았다. 멍하니 혼자 밥통을 지키고 있는데 한 청소년이 다가왔다. “어영님 머리요. 쥐가 파먹은 거 같아요. 까르르. 까르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멈칫하는 사이 그는 자리를 떴다. 그래도 고마웠다.새벽 1시, 박수를 끝으로 첫 활동이 마무리됐다. 활동가의 업무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다시 모여 아웃리치의 결과를 보고하고 정리한다. 이날 찾은 청소년이 32명. 코로나가 오기 전 2월의 평균치에 가깝다. 엑시트에서는 코로나19 상황이라고 해서 이들에게 특별히 달라진 점은 없는 것으로 본다. 코로나19의 영향을 더 받은 것은 오히려 엑시트다. 지난해 2월부터 4월까지는 규모를 줄여 버스 없이 천막에서 청소년들을 만났고, 방역을 이유로 4월부터 8월 중순까지는 천막도 접은 채로 작은 승합차에서 생필품과 간편식을 나눠 주는 식으로 활동했다.
“밥 좀 줘, 버스에서 좀 쉬자”
규모를 줄인 영향 때문인지 찾아오는 청소년도 줄었다. 2019년 같은 기간 엑시트를 찾은 청소년은 986명인데 2020년에는 366명으로 절반이 되지 않았다. 8월15일 광화문집회 이후 서울에서 집단감염의 조짐이 보이면서 엑시트는 아웃리치 활동을 전면 중지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때 “밥 좀 줘. 버스에서 좀 쉬자”는 청소년들의 항의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들에게 ‘밥’은 버스에 더해진 세월의 더께처럼 포기할 수 없는 권리처럼 보였다. 활동가들은 이 모습에 오히려 고무됐다. 4주 만에 활동 전면 재개를 결정할 명분이 됐다. 천막 활동부터 재개했다. 반응은 뜨거웠다. 엑시트를 찾아 밥을 먹은 거리 청소년은 9월 30명까지 줄었다가 10월에 169명으로 늘었다. 이는 코로나19 이전인 2018년부터 따져도 가장 많은 수다. 만약 9월 이전에도 활동을 그대로 유지했다면 역대 최대 수의 청소년이 다녀갔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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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자원활동 경험 이후로 한가지 궁금증이 떠나지 않았다. 거리 청소년 중 남성들이 식당에서 라이더로 일을 갈아타는 동안 여성 청소년들은 무얼 하고 있을까. 엿새 뒤인 1월28일 엑시트 사무실에서 보라(가명)를 만나 경험담을 들었다. 그는 지난해 9월부터 100일을 “엄마와의 갈등”으로 거리에서 보냈다. “처음에는 운이 좋았다”고 했다. 이유가 있었다. 지난 한해 내내 코로나19로 힘겹기만 하던 거리가 반짝하던 시기가 있었다. 8월15일 광화문집회 뒤 확진자 추세가 꺾이면서다. 그때 잠깐 거리는 불을 밝혔다. 보라가 거리에 나선 게 그때다. 10월에는 사회적 거리두기가 1단계로 조정되기도 했다. 집을 나온 당일부터 “마침 자리가 났다”며 연락을 받은 것은 그래서였을 것이다. 덮밥집에서 코인노래방으로, 웨딩홀로 서빙을 “하루 세 탕” 뛰기도 했다. 선릉역, 잠실에서 다시 강북으로 서울을 가로질렀다. 어림잡아 하루 12시간을 넘게 일한 날도 있었다. 그래도 한달 뒤 급여는 200만원에서 한참 모자랐다. “어른들은 예상했던 것보다 치사했”다. 하루는 가게에 들어서는데 사장이 “열 한번 재보자”고 했다. 37도가 조금 넘었다. “원래 열이 많은 체질이에요. 몸이 하나도 아프지 않은데 그 자리에서 쫓겨났어요.” 급히 찾은 병원에서는 별문제가 아니라고 했다. 그런데 사장은 결과적으로는 결근이니 벌금 5만원을 내라고 했다. 지금도 분이 풀리지 않는다. “학교 안 다닌다고 하니까. 만만해 보이니까 이용해먹기 쉽고, 제대로 항의도 못 하고, 잠깐 쓰다가 버려도 누가 뭐라고 하는 사람이 없고….” 그 사장은 가게가 어렵다면서 결국 십몇만원을 떼고 건넸다.문제는 그다음이다. 한달여가 지났을까. 3차 유행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구할 때보다 더 쉽게 잘렸”다. 시급 1만원을 받았던 코인노래방은 11월 중순도 되기 전 확진자가 늘어날 기미를 보이자 문을 닫았다. 부정기적이었지만 부를 때마다 한번도 빠지지 않았던 웨딩홀에선 더 이상 전화가 오지 않았다. 덮밥집과 고깃집은 차례로 “내일부터 나오지 말라”는 말 한마디로 사실상 끝이었다. “일하는 언니가 있으니 어린 사람이 양보해라”(덮밥집), “제일 늦게 들어왔으니 먼저 그만두는 건 당연하다”(고깃집) 등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를 댔다. 만 16살인 보라는 계약서를 쓰지 못했다. 법적 미성년이 일을 하려면 부모 동의를 얻어야 한다. 집을 나온 마당에 불가능한 일이다. 일단 구두로 계약하고 현금으로 받는다. 이게 거리의 질서다.하루 확진자가 1천명이 넘어가고 3차 유행의 한복판에 들어서자 거리는 다시 불이 꺼졌다. 순식간에 일을 잃은 건 보라만이 아니다. 그 뒤로 거리에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보라가 보기에 절반만 진실이다. 아르바이트를 구하려는 청소년들은 어디를 가도 넘쳐났다. 한 유명 햄버거 체인점에서 알바를 뽑는다는 말을 들었다. 알고 보니 거기는 뽑힌다고 곧바로 일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일하는 것을 보고 정식으로 뽑는다고 했다. 말하자면 ‘알바 아래 알바’였다.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하는 청소년 중 대기 인력을 뽑아 더 저렴한 비용으로 일을 시키는 듯했다. “알바 알바라고 해야 하나? 알바 인턴이라고 해야 하나.” 보라는 그 일조차 구하지 못했다. “(여성 청소년에겐) 일이 없는 것 같다”고 했다. 다른 여성 청소년 우삼은 “라이더를 해볼까도 생각했다. 하지만 면허도 없고…”라며 “요즘 들어 일이 없어도 너무 없다”고 보라와 똑같은 이야기를 했다. “알바 자리가 났다는 공고를 보고 전화하면 거의 대부분 마감됐거나 시간이 맞지 않았”다. 그는 엑시트와 같은 법인이 운영하는 청소년 대안 주거공간인 자립팸 ‘청소년자립팸 이상한 나라’에 살지만 최근 일자리를 꼭 구해야 할 일이 생겼다. 당장 다음달부터 자립팸을 통해 지급받던 기본소득 30만원이 예산 부족으로 중단된다. 자립팸에서 살기 시작한 2020년 2월부터 1년을 받은 셈이다. 이 30만원은 자립팸에 사는 모든 개인에게 증빙 없이 쓰도록 했다. 이는 청소년이 공동체의 주인으로 살아가기 위해 그 존재만으로 존중받는 경험과 최소한의 경제적 안정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취지에서 시작한 것이었다. 우삼과 함께 만난 알로에(가명)는 30만원의 의미를 묻는 질문에 “100분의 100”이라고 했다. 정기적인 소득이 없던 우삼, 알로에에게는 자신의 삶을 꾸리는 계기가 됐다는 면에서는 성공적으로 보였다.
지난해 8월15일 광화문 집회 이후 서울에서 집단감염의 조짐이 보이면서 엑시트는 아웃리치 활동을 전면 중지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때 “밥 좀 줘. 버스에서 좀 쉬자”는 청소년들의 항의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활동가들은 이 모습에 오히려 고무됐다. 4주 만에 활동 전면 재개를 결정할 명분이 됐다. 천막에서 체온 측정을 하는 모습. 장철규 선임기자 chang21@hani.co.kr
지난해 8월15일 광화문 집회 이후 서울에서 집단감염의 조짐이 보이면서 엑시트는 아웃리치 활동을 전면 중지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때 “밥 좀 줘. 버스에서 좀 쉬자”는 청소년들의 항의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활동가들은 이 모습에 오히려 고무됐다. 4주 만에 활동 전면 재개를 결정할 명분이 됐다. 천막에서 체온 측정을 하는 모습. 장철규 선임기자 chang21@hani.co.kr
코로나19 속 거리 청소년, 깜깜한 정부
1월29일, 두번째 활동에서는 주방이 아닌 안내를 맡기로 했다. “엑시터를 환대하고 메뉴판을 받는 일”이다. 들어오자마자 건네는 메뉴판에는 △네가 골라(밥 먹기, 간식, 토큰, 생리대, 옷(속옷), 생필품 등) △도움이 될까(고민 나누기, 친구 되기, 수다 떨기 등) △이건 어때(영화, 보드게임, 충전 등) △한번쯤은(치료, 병원, 콘돔, 임신테스트기 등) 등이 있다. 이 중에 무엇이든 선택한다. 대체로 밥 먹기와 수다 떨기, 친구 되기가 많았다. 안내의 주 임무는 메뉴판 받기 말고도 ‘버스 이용을 돕고 대화 속에서 사례를 발견하는 일’까지를 아우른다. 마스크 착용 확인, 거리두기 고지와 함께 체온 측정도 주요 임무다. 저녁 8시가 됐다. 기다리던 청소년들이 체온을 서둘러 재고 들어서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단체에서 확인한 바로는 지난해 찾아온 1177명 중 확진자는 없었다. 전체 거리 청소년을 11만명으로 추정한다면 그 1% 남짓이다. 하지만 이를 가지고 전체 거리 청소년의 코로나19 감염 여부 현황을 짐작하기는 어렵다.코로나19 상황이라고 해서 거리 청소년 문제가 어디로 사라지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들의 생존과 안전에 대한 우려가 커진 상태다. 하지만 정부 차원의 실태조사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거리 청소년 수를 추산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 여성가족부는 2020년 쉼터 등 시설에서 보호한 거리 청소년 수가 2019년(3만명)에 비해 3분의 1 정도 줄었으니 실제 거리 청소년도 그에 준해 감소하지 않았을까 추정한다. 이런 거친 계산법으로 따져도 최소한 7만명 이상이다.안내를 시작한 지 한시간 정도 됐을까. 2인분 도시락을 포장해달라고 주문한 이가 눈에 띄었다. 활동가 입장에서는 반가운 요구다. 이날 체감온도는 영하 20도, 천변의 바람은 더 찼다. 방역을 위해 한번에 밥을 먹을 수 있는 수는 7명 안팎으로, 길게는 20여분을 밖에서 기다려야 한다. 그래서 포장이 용이해 보이지만 방문한 청소년 대부분은 밥을 먹고 가기를 원했다. 이유는 복합적이다. 고민 상담을 원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주거가 불안정해 먹을 장소가 마땅치 않은 경우도 있다. 엑시터 중 탈가정을 한 청소년은 열 중 여덟이다. 그런데 2인분이라니 무슨 영문인가 싶었다. “ㄱ이 자가격리 중”이라고 했다. 엑시트의 활동가들은 그 ‘ㄱ’ 또한 익숙한 인물인 듯 안부를 물었다. 두 손 가득 음식을 들고 나서며 친구가 음식을 제대로 먹고 있지 못한다고 걱정했다. 그 이상 어떤 상황인지 물어볼 수 없었다. 그는 음식을 어떻게 전달해줄지, 스스로 안전을 어떻게 확보할지 궁금했다.거리 청소년들의 상황에 대한 면밀한 조사가 필요한 이유는 또 있다. 청소년들의 수요는 밥에만 있지 않다. 메뉴에 생필품을 체크하고 받아간 수는 2019년 376건에서 2020년 691건으로 두배 가까이 증가했다. 생필품은 즉석식품, 세면도구, 양말을 포함한 기타 내의류 등이다. 생필품 수요 증가는 마스크와 관련이 있어 보인다. 마스크 대란이 있던 3월부터 3개월 정도 꾸준히 유지되다가 6월 이후 줄어든다. 그러다가 11월부터 급증했다. 이는 청소년들이 일자리를 잃거나 또 새롭게 구하려고 해도 구해지지 않은 3차 유행 시기와도 겹친다. 박유리 활동가는 “한부모 가정, 저소득층 등 동사무소에서 파악하고 있는 경우에는 개별 연락해 마스크를 지급하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경우 돈이 없어 마스크를 구매하는 것 자체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했다.이날은 의외의 ‘성과’도 있었다. 라이더들과의 대화다. 별채에서 식사 중인 라이더 ㄱ에게 말을 걸었다. 라이더 복장이었던 지난주와 달리 평상복인 점이 눈에 띄었다. 기다렸다는 듯 “지난주 사거리를 건너는데 차가 갑자기 덮쳤다”며 사진을 한장 내민다. 형체를 알아보기 어렵다. 바퀴인 듯 아예 반원으로 접혀 엉킨 고철 덩어리다. “그런데 신기하죠. 몸은 멀쩡해요. 흐흐.” 일어서는 그를 붙들고 맥락 없이 “합의는요?”라고 물었다. 주춤하다가 웃는다. “30만원 받기로 했다. 그 정도면 됐다”고 했다. 상대가 보험 처리 대신 현금 보상을 원했던 것 같다. 진단은 받지 않았다. “그건 말도 안 되는 합의금”이라고 말하고 싶었다. 머뭇거리는 사이 다시 발길을 돌린다. 천막으로 돌아오니 다른 라이더 ㄴ이 있었다. 그는 “나는 사고가 안 난다. 사거리를 건널 때 사고가 많이 나는데 속도를 줄이면서 사방을 살피다가 한번에 건너면 된다”고 자랑삼아 말한다. 위기에 놓인 이들이 궁여지책으로 택한 일자리다. 대화가 길어질수록 부조리는 불쑥불쑥 고개를 들었다. 쉼터를 전전한 청소년이 수백만원짜리 오토바이를 살 돈이 있을 리 없다. 답은 리스다. ㄴ의 경우 리스비를 배달업체에 하루 3만5천원씩 낸다. 옆에서 ‘마미’ 활동가가 “하루치면 말이 안 된다”며 휴대전화 계산기를 두드린다. “1년에 50일을 제해도 1천만원이 넘잖아!” 마미가 흥분한다. ㄴ은 오히려 “우리 사장님은 좋은 사람”이라고 한다.
코로나19 3차 유행의 불길을 잡아가던 1월22일, 29일 서울 신림사거리 봉림교 옆에서 ‘움직이는 청소년 센터 엑시트’와 함께했다. 10년째 신림사거리 ‘거리 청소년’의 밥을 챙기는 아웃리치 활동이다. 전국 13곳의 공공기관 현장 아웃리치가 코로나19를 이유로 비대면으로 전환한 사이 엑시트의 천막은 코로나19를 뚫고 유일하게 살아남은 아웃리치 전진기지가 됐다. 장철규 선임기자 chang21@hani.co.kr
코로나19 3차 유행의 불길을 잡아가던 1월22일, 29일 서울 신림사거리 봉림교 옆에서 ‘움직이는 청소년 센터 엑시트’와 함께했다. 10년째 신림사거리 ‘거리 청소년’의 밥을 챙기는 아웃리치 활동이다. 전국 13곳의 공공기관 현장 아웃리치가 코로나19를 이유로 비대면으로 전환한 사이 엑시트의 천막은 코로나19를 뚫고 유일하게 살아남은 아웃리치 전진기지가 됐다. 장철규 선임기자 chang21@hani.co.kr
고립감과 상처는 늘어가는데…
밤 11시가 넘어갈 무렵, 박유리 활동가가 갑자기 습윤밴드와 연고를 찾았다. “자해”라고 했다. 표정이 좋지 않다. 더 물어보지 않았다. 자해는 지난해 코로나19를 겪으며 등장하기 시작한 새로운 문제 중 하나로 꼽힌다. 엑시트의 ‘청소년 개별 위기 지원 현황’에는 “2020년은 정신건강, 자해 등의 이슈가 두드러졌던 해”로 기록하고 있다. “청소년의 자해를 알게 되는 경우 엑시트는 청소년과 만나 치료나 상담을 권하기도 하고 본인이 동의하면 이와 연계하는 일을 해왔다”고 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본인이 동의하면’이다. 본인이 납득하기 전까지 개입은 하지 않는다. “청소년 스스로가 거리 문제 해결의 주역”이라는 관점을 놓치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혼자 선택하도록 내버려두지는 않는다. 스스로 살아갈 힘을 낼 때까지 곁을 지킨다는 것 또한 원칙이다. 이와 관련해 메뉴판 항목에서도 2019년과 비교했을 때 눈에 띄는 대목이 있었다. ‘친구 되기’다. 지난해 394건에서 올해 588건으로 두배 가까이 늘었다. 이용 청소년 수가 절반 정도인 점을 고려하면 의미를 둘 만한 숫자다. 이윤경 활동가는 이와 관련해 “코로나19가 거리 청소년의 기본적인 심리적 건강, 특히 고립감에 크게 영향을 미쳤음을 유추해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코로나는 올 한해도 계속될 텐데…엑시트마저 사라지면
올해도 어쩔 수 없다. 코로나19 속에서 살아야 한다. 거리 청소년은 여전할 테고, 그들도 밥을 먹어야 한다. 그런데 한가지 문제가 생겼다. 활동 10년을 맞는 ‘움직이는청소년센터 엑시트'와 ‘청소년자립팸 이상한나라'가 올해를 끝으로 사라질 위기에 놓였다. 2022년의 예산이 확보되지 않은 상태로 올 한해를 버티고 있다. 이대로라면 엑시트 버스가 거리 청소년과 밥을 나눌 수 있는 건 올해 10월까지다. 이마저 예산을 확보하지 못해 긴축 운영 중이다.청소년의 가난에, 조직의 가난이 겹쳤다. 대부분이 인건비다. 청소년들에겐 곁을 지킬 사람이 제일 필요한데, 여러 공모사업은 인건비 제한 규정이 있어 예산 확보가 사실상 어려운 현실이다.버스는 계속 달릴 수 있을까.
후원 계좌 : 399-039279-04-014 기업은행 들꽃청소년세상 (입금 시 보내는 사람 이름 뒤에 엑시트라고 적어야 엑시트가 후원 당사자가 됨. 기부금 영수증 발급은 전화 및 이메일 문의 02-863-8346, wahahabus@hanmail.net)
하어영 기자 haha@hani.co.kr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982099.html?_fr=mt1#csidx023529993d7d008b88219055b0549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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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들이 죽었다... TV에선 사망 장면 생중계

[림수진의 안에서 보는 멕시코] 무너진 체계, 코로나 빈부격차

 

▲ 당일 24시간 동안 1803명 사망, 2만2339명 확진을 알리면서 방송이 시작된다. 지난 12월 한 달 동안 1만9867명이 사망하였고, 1월 21일 1월 중 사망자가 전 달의 사망자 수치를 뛰어 넘어 2만367명에 이른 날이다. ⓒ IMAGEN 화면캡처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코로나바이러스가 이 세상에 출현하지 않았다면 뉴스는 어떤 소식들로 채워질까?

 

1년 가까이 방송사 메인 뉴스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시종일관 코로나바이러스 소식 일색이다. 대략 30여 분 동안 진행되는 뉴스 포맷은 이제 눈을 감고도 훤히 꿰뚫을 정도다.

첫 뉴스는 어김없이 그날 하루 코로나바이러스 관련 '가장 놀랄 만한' 소식이고, 그 다음엔 지난 24시간 동안 발생한 사망자와 확진자 숫자가 그래프와 함께 설명된다. 2020년 3월 18일 첫 사망자가 발생했을 때 곧 세상이 망할 것 같이 호들갑스러웠던 앵커의 목소리는 요즘 들어 하루 2000명에 가까운 사망자가 나오는 동안 오히려 차분해졌다.

그 다음엔 세계 TOP3 혹은 TOP4 국가들의 비교가 이어진다. 물론, 확진자와 사망자 기준이다. 언제나 부동의 1위는 미국, 그리고 2위는 브라질이다. 멕시코는 3위에 머물다 밑에서부터 치고 올라오는 인도에 잠시 3위 자리를 내준 채 4위에 머무는 듯했으나, 최근 다시 3위로 올라섰다. 미국, 브라질, 인도 모두 멕시코보다 인구수가 많은 나라다. 1억 3천만 명의 인구를 가진 멕시코가 적게는 두 배, 많게는 열 배 이상의 인구를 가진 나라들과 사망자 순위를 다툰다.

코로나 확진자 사망 순간 그대로 방송

어김없이 이어지는 그 다음 순서는,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으로 인해 죽어가는 환자들이다. 멕시코 뉴스에서는 모자이크 처리 없이 사망하는 그 순간을 그대로 보여준다. 방송에 노출되는 죽음 대부분은 병원 밖에서 이루어진다. 집 혹은 여러 병원을 전전하는 길 어디쯤이다. 이미 16만 명을 넘어선 사망자 중 53%는 죽음의 순간까지 병원에 들지 못했다. 죽음을 목전에 둔 사람을 향해 인터뷰를 청하고 그대로 방송에 내보내는 것이 잔인하게 느껴지지만, 어쩌면 시민들에게 경각심을 고취시키는 하나의 방편인 듯하다. 문제는, 이제 더 이상 시민들이 그런 장면에 경각심을 갖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어쩌면 사람들은 여과 없이 지켜보는 타인의 죽음 앞에 무덤덤해진 듯하다.

이어 경제와 스포츠 이슈가 다뤄지지만, 이 또한 코로나바이러스 관련 소식과 무관하지 않다. 경제 관련 소식은 1년 내 코로나바이러스가 가져온 마이너스 성장 일편이고 스포츠 또한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한 취소 소식이 대부분이다.

뉴스가 호들갑스러워질 때는 당일 하루 사망자 숫자가 역사적 기록을 깬 날 뿐이다. 그마저 며칠 후면 평범의 범주에 드는 기록이 된다. 그렇게 매일의 뉴스는 코로나바이러스로 시작해서 코로나바이러스로 끝난다. 태곳적부터 코로나바이러스가 있었던 것 같은 느낌이 들고 오히려 코로나바이러스 출현 이전의 세상이 어떠하였는지 사뭇 궁금해진다. 그 시절, 시시콜콜했을 것 같은 뉴스가 그리워진다.

늘 그날이 그날 같이 오직 코로나바이러스 관련 소식만이 백색소음처럼 깔리는 뉴스에 최근 다시 한 번 초미의 관심이 집중되었다. 지난주 멕시코 정치, 경제, 종교 수장들이 일시에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되었다는 소식이었다.   
 

▲ 노르베르토 리베라 추기경은 감염 이후 한때 위중하여 인공호흡기를 달고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았으나, 2월 4일 현재 인공호흡기는 뗀 상태다. 교황 후보로 거론될 만큼 가톨릭계의 유력 인사다. ⓒ MILENIO 화면캡처

 
정치에서는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 (Andrés Manuel López Obrador) 대통령이었고, 경제에서는 멕시코 최고 부호인 카를로스 슬림(Carlos Slim)이었고, 종교에서는 노르베르토 리베라(Norberto Rivera) 추기경이었다. 리베라 추기경은 상태가 위중하여 인공호흡기를 단 채 중환자실에 입원하였고 AMLO 대통령은 대통령궁에서, 그리고 카를로스 슬림은 자택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공교롭게도 세 명의 확진 소식이 한 주 사이에 전해졌다.
 

▲ 지난 1월 29일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치료 중이던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 멕시코 대통령이 항간에 떠도는 건강악화설을 잠재우기 위해 대통령궁에서 대국민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여전히 코로나바이러스 양성 반응을 보이는 상황이지만, 업무를 보고 있음을 피력했다. ⓒ IMAGEN 화면캡처

 
대통령·재벌1위·추기경 감염에 놀란 이유

대통령의 코로나바이러스 감염 소식은 그간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았던 대통령 행보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졌다. 항간에는 대통령이 코로나바이러스 방역에서 마스크 대신 부적을 더 신뢰했다는 소문까지 돈다. 대통령이 감염되었지만, 그가 어디에서 감염되었는지 이후 어떤 동선으로 이동하였는지에 대한 발표는 전혀 없었다. 보안 차원이 아니라 현실의 반영이다. 멕시코에서 단 한 번도 동선 공개 혹은 동선 추적에 대한 뉴스를 들은 바 없고, 밀접 접촉자라는 말도 들어본 적이 없다. 동선을 확보하거나 밀접 접촉자를 가려낼 수 있는 상황이 아니고 여력 또한 없다.

그간 활발한 지방 순회를 이어가면서 단 한 번도 마스크를 쓰지 않았던 사실과 유난히 시민들과의 물리적 접촉을 강조하던 대통령이었기에 언제 걸려도 이상할 상황은 아니었다. 이미 수차례 그와 함께 있었던 사람들이 확진 판정을 받는 와중에 아슬아슬하게 감염을 피해가는 것 같았으나 이번엔 피치 못한 셈이다. 확진 판정을 받던 당일 지방을 순회하면서 마스크를 쓰지 않은 채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일반 여객기에 탑승하여 수도로 돌아왔지만, 그에 대한 우려는 뉴스 축에 들지 못하였다.
 

▲ 카를로스 슬림. 2010년대 초반 빌 게이츠를 앞질러 세계 최대 부호로 등극했으나 2016년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되면서 세계 부호 순위에서 밀리기 시작했다. 2016년 포브스가 선정한 세계 부호 순위 4위를 점했으나 2020년에는 10위권 밖으로 밀렸다. 멕시코에 기반을 둔 다국적 기업 '카르소 그룹'을 통해 의료, 미디어, 에너지, 부동산, 소매업과 같은 산업 분야에 포진하고 있다. 1940년 생으로 코로나바이러스 고위험군에 속하지만, 무사히 회복했다. 부친이 레바논계 이민자이며, 그는 멕시코시티에서 출생하였다. ⓒ 위키커먼스

 
이와 달리 카를로스 슬림의 감염 사실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적이 놀라워하는 눈치다. 무엇보다도 큰 놀라움은 '그 정도의 부를 가지고 있는 사람도 과연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이 되는구나'라는 것이었다. 카를로스 슬림은 한때 세계 재력 1위까지 올라갔다가 다시 10위권 안팎에 머물고 있지만, 그가 가진 부는 일반 서민들의 상상 밖에 존재한다. 그러니 그간 개인 방역에 엄청난 돈을 쏟아 부었을 것인데 막상 그가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되었다니 사람들은 그제야 다시 한 번 코로나바이러스의 실재와 그 위력을 실감하는 것 같았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쓸데없는 걱정이 망한 연예인 걱정이라더니, 근자에 멕시코 국내외 언론이 빅3라 불리는 정치, 경제, 종교 수장들의 감염 사실을 전하면서 호들갑을 떨었지만, 서민들에겐 그야말로 쓸데없는 걱정에 다름 아니었다. 이 세 명이야 말로 멕시코에서 받을 수 있는 최고 수준의 의료 서비스를 받을 것이었다. 그러니 설령 감염이 되었다 한들, 서민의 상황과는 감히 비교조차 할 수 없다.

사설 병원 코로나 치료비 5500만원

도무지 믿을 수 없는 보건 당국과 의료시스템으로부터 보호받지 못한 채 불안과 공포 속에 각개 전투를 치르며 한 해를 살아온 서민들의 사정은 오히려 해가 바뀌면서 더욱 힘들어졌다. '산소 순례(peregrinación de oxígeno)'라는 말이 생겼고 산소를 사 담을 산소통을 구하지 못한 사람들은 이때를 노려 값을 대폭 상승시킨 폭리 앞에 속수무책이다.

정부에서는 집 안에 더 이상 사용치 않는 산소통이 있거든 당장 필요한 사람들에게 기부하라고 방송을 통해 종용하지만 이 시기 멕시코에서 정치, 경제, 종교의 수장들마저 피하지 못한 코로나바이러스로부터 자유롭다 장담할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을 것이다. 그러니 산소통은 기존 있던 곳에 더 깊이 숨어들고 가격은 갈수록 비현실적이 되어간다.
 

▲ 지난 연말부터 시작된 산소 순례를 다룬 IMAGEN 12월 27일 뉴스. 멕시코시티에서는 산소를 구입하려는 사람들에게 전 날 미리 번호표를 나눠주고 하루에 50명 씩에게만 산소를 팔고 있다. ⓒ IMAGEN 화면캡처

 
산소 순례자라 불리는 이들 대부분은 집 안에 확진자 가족을 둔 경우지만, 환자를 별도로 격리할 수 있는 여건이 되지 않는 이상 가족 감염은 면키 어렵다. 그럼에도 이들은 연일 SNS에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산소를 충전할 수 있는 가게들을 찾아 빈 산소통을 들고 거리를 전전한다. 산소를 기다리며 몇 시간씩 줄을 서도 산소를 구할 수 있다는 보장은 없다. 그렇게 수 시간 줄을 섰던 산소 가게에 더 이상 산소가 없다는 소리가 전해질 때 절망하는 사람들의 얼굴을 보는 것은 차라리 고문에 가깝다. 멕시코에 왜 이토록 많은 확진자와 사망자가 나올 수밖에 없는지 이해할 수 있는 한 대목이다.

더 슬픈 사실은 공공병원의 병상이 이미 포화에 이르러 수많은 환자들이 병원에 들지도 못한 채 죽어가는 와중임에도 사설 병원은 병상의 여유를 확보하고 있다는 것이다. 서민들이 죽음을 목전에 두고도 사설 병원에 가지 못하는 이유는 돈 때문이다. 통상적으로 중증 코로나바이러스 감염 치료의 경우 사설 병원 치료비는 백만 페소(한화 5500만원) 이상이다. 하루 최저임금이 6천 원 정도이고 고급 사무직이나 연구직이라도 매달 2백만 원 이상의 급여를 받기 어려운 멕시코 상황을 감안한다면, 게다가 문화적으로 저축 개념이 없는 이들에게 사설병원이란 선택은 아예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는 셈이다.

지난주부터 뉴스에서는 두 종류 사망 통계를 동시에 전한다. 그간의 보건부 수치에 통계청 수치가 더해졌다. 애석하게도 통계청에서 전하는 숫자는 보건부의 것보다 더 심각하다. 2021년 2월 3일 현재 보건부 사망자 숫자는 16만1240명이고 통계청에서 낸 사망자 숫자는 19만4881명이다. 둘 사이 차이를 보이는 이유는, 여전히 사망자 중 50% 이상이 병원에 가지 못한 채 집에서 죽기 때문이다. 이들과는 별개로 이미 오래 전부터 유력 외신들이 전하는 멕시코 사망자 숫자는 이 두 통계를 훌쩍 뛰어 넘는다.

지난 연말, 이 나라 최대 명절이라 할 수 있는 크리스마스와 신년을 보내면서 많은 사람들이 모이지 말라는 국가의 권고보다 모여야 하는 가족을 택했다. 그리고 지난 1월 한 달 사이 3만 2797명(보건부 통계)이 사망했다. 그 사망의 광풍을 내가 사는 작은 소읍이라고 피해갈 수는 없었던지, 지난 1월 중순 이후 여섯 명의 이웃이 목숨을 잃었다. 감염자는 훨씬 더 많겠지만 확인은 애당초 불가능하다.
 

▲ 늦은 밤까지 90명 이상이 산소를 구하기 위해 줄을 서고 있는 장면. 산소가 떨어져간다는 직원의 말에 사람들이 절망했다. ⓒ IMAGEN 화면캡처

 
멀쩡하던 이웃도 하나둘 사망

불똥은 읍사무소로 튀었다. 죽은 사람들 중 두 명이 읍사무소 직원이었고 상당수가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되었다는 소문이 무성하다. 지난 1월 중순, 몇 날에 걸쳐 읍사무소를 수차례 드나들었던 기억과 함께 순간 불안해졌지만, '여긴 멕시코니까'라는 생각과 함께 안도했다. 밀접 접촉자는 물론이요 동선 공개를 통해 혹시 모를 근거리 접촉자까지 찾아내고 직장에서 한 명이 확진되면 직장인 전원이 검사를 받는 그런 한국식 방역 수준을 생각한다면, 이곳에선 단 하루도 살 수가 없다.

지난 주말엔, 바로 우리 집 건너편 이웃이 돌아가셨다. 며칠 전 길에서 만났을 때 너무 멀쩡했기에 무슨 일인가 싶었는데 역시나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이라고 했다. 그 댁 가족들과도 오며 가며 수시로 마주치고 길에 서서 이야길 했으니 다시 한 번 불안이 몰려왔다. 불편하게도 슬픔보다 불안이 먼저 밀려왔다. 역시나 '여긴 멕시코니까'라는 생각과 함께 슬픔 위에 얹힌 불안을 끄집어 내렸다.

이상한 것은 체념에서 나온 '여긴 멕시코니까'라는 주문이 어쩌면 마법의 효과를 내는 것 같기도 하다. 1년 가까이 마을 밖을 나가지 못한 채 살아가지만, 급여가 밀리다 결국 삭감되기도 하지만, 시시로 코로나바이러스가 내 옆을 습자지 한 장 차이로 스쳐 지나가는 것 같지만, 혹시 감염이 된다면 어디서부터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아득하지만, 극단적으론 나 역시 병원에 가지 못한 채 죽어가는 53%의 사망자 가운데 한 명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하지만, '여긴 멕시코니까'라는 주문을 외우는 순간 누군가를 향한 미움이나 원망이 사라진다. 거기에 덤으로 불안과 공포가 주는 스트레스도 한결 완화된다.

불과 보름 사이 여섯 명이 죽고 보이지 않는 숱한 감염자들이 생겨났겠지만 마을은 비교적 평화롭다. 사람들은 여전히 누군가를 미워하지 않고, 원망하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으며 살아간다. 페스트가 프랑스령 알제리 해안도시 오랑을 덮쳤을 때 그곳의 의사 리유가 '아마 비웃음을 자아낼 만한 생각인지도 모르겠으나, 페스트와 싸우는 유일한 방법은 성실성이다'라는 말을 했다고 하던데, 어쩌면 우리 마을 사람들도 그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습관처럼 입에 붙은 '신이 원하신다면(Si Dios quiera)', 그 말로 모든 말의 마침표를 대신하면서 말이다.

미워하지 않기 위해, 원망하지 않기 위해, 그리고 두려워하지 않기 위해 코로나 시대의 매 순간을 성실하게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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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취리히와 제네바가 될 수 있는 북한의 청진과 나진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21/02/06 10:48
  • 수정일
    2021/02/06 10:48
  • 글쓴이
    이필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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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번도약, 북조선] 영세중립국과 생명평화특구

먼 산이었다. 원산(遠山)이라 일렀다. 가는 길은 멀고 설었다. 첩첩산중, 가파른 산길을 오르고 험준한 산맥을 에둘러야 했다. 오죽하면 말도 거친 숨을 몰아쉬며 한고비 쉬어간다 하여 마식(馬息)령이라고 불렀다. 마침내 당도한 동쪽 땅끝 마을에서는 망망대해, 깊고 푸른 바다가 펼쳐졌다. 행차했던 나랏님이 원산의 꼴이 꼭 삼봉산을 축으로 마늘 꼭지처럼 생겼다고 하셨단다. 원산(元山)으로 이름을 바꾸게 된 사정이다. 이름 따라 간다. 네이밍과 브랜딩, 개명은 운명도 바꾸었다. 으뜸도시, 개항의 파고가 가장 먼저 미치는 원조도시가 되었다.

 

반만년 반도에서 문명의 젖줄은 늘 대륙이었다. 평양과 개성과 한양 등 수도의 거개가 서쪽에 치우친 까닭이다. 반면 원산은 평양에서는 150㎞, 서울에서는 180㎞ 떨어진 외지이다. 거리는 물론이요 높이도 복병이다. 동고서저(東高西低), 서쪽은 평야요 동쪽은 산야인바, 동쪽 바다는 반도에서 오래 소외된 변방이었다. 일만이천봉, 볼수록 아름답고 신기한 산, 철따라 고운 옷 갈아입는 산, 이름도 아름다운 금강산을 찾는 이조차 구태여 산 너머 원산까지 이를 연유가 없었다. <금강전도>의 겸재 정선도, 방랑시인 김삿갓도 바람과 물이 깎아 만든 층암절벽과 괴암괴석의 찬란한 만물상을 찬탄했을 뿐이다. 해금강까지는 그리지도 노래하지도 않았다. 원산은 내내 한적하고 한가한 어촌이었다.

 

오천년만의 대반전은 남방에서, 바다에서 불어 닥쳤다. 섬나라 일본이 굴기했다. 서세동점의 파고에 재빨리 올라타서 ‘아시아의 악우(惡友)’이길 망설이지 않았다. 1868년 메이지유신과 함께 가장 먼저 단행한 사업이 홋카이도 병합이다. 다음으로는 류큐 병합(1879)에 나섰으며, 그 연장선상에서 1876년 강화도조약도 체결되었다. 아이누가 살아가던 에조치는 단숨에 식민지화했으며, 중국과 일본 사이 균형외교를 하던 류큐 왕국은 차근차근 병합했다면, 조숙한 중앙집권국가조선은 야금야금 잠식해가는 방책을 취한 것이다. 그때 부산과 인천과 더불어 개항장이 된 곳이 바로 원산이었다. 부산은 오래 일본과의 연결망이 작동했으며, 인천은 황해 건너 중국과의 네트워크가 역력했던 장소이다. 반면 원산이야말로 ‘일본의 충격’이 빚어낸 식민지 근대성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적막하던 바닷가에 바글바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외지인도 드물던 마을에 외국인들이 집결하였다. 정박한 상선을 보노라면 일본이 가장 많았고, 러시아가 그 다음 순이었다. 오사카만큼이나 블라디보스토크와도 돈독했다. 여기서 왜 원산이었는지가 확연히 드러난다. 남하하는 신흥세력 러시아를 견제하는 항구도시가 필요했던 것이다. 1860년 베이징조약, 만주의 3분의 1이 연해주가 되어 러시아로 귀속되었다. 키릴문자를 쓰고 동방정교를 따르는 낯선 나라가 동아시아의 일원이 된 것이다. 조선은 졸지에 두 나라와 국경을 접하게 되었고, 함경도는 연해주와 맞닿는 접경지대가 되었다. 함경도와 연해주를 바라보는 곳에 에조치가 자리했다. 일본이 메이지유신 직후에 홋카이도 병합을 단행한 것 또한 명명백백 북방의 신흥제국, 러시아 때문이었다.


 

20세기 초 원산은 서해의 인천에 부럽지 않을 만큼 국제도시로 비상했다. 1916년 조선 최초의 수영 강습회가 열린 바다가 원산이었다. 1929년 만해 한용운이 원산 일대를 기행하며 남긴 <명사십리>를 읽노라면, 전망 좋은 바닷가에 외국인들의 별장이 스무여 채 줄지어 서 있다는 기록이 나온다. 당대 동북아시아의 대표적인 휴양도시, 레저타운이 조성된 것이다. 1930-40년대에는 캘리포니아의 유행이 실시간으로 전파되어 이국적인 해안 풍경을 연출했다고도 한다. 송도원 유원지, 송도원해수욕장, 명사십리해수욕장은 흡사 서핑 족들로 가득한 LA의 베니스 비치, 롱 비치, 말리부 비치를 연상시켰다.


 

아시아와 아메리카가 만나는 허브였던 원산의 풍경이 극적으로 뒤바뀐 것은 1945년 해방이다. 일본이 물러난 공백을 다시 북방세력, 소련이 채웠다. 행정구역도 재편했다. 1946년 함경남도에서 강원도로 편입시킨 것이다. 이제 원산은 강릉과 원주, 강원도의 남쪽으로 진출하는 전초기지가 되었다. 1950년 한국전쟁 발발 이후 복마전이 전개되는 복선이 되었다. UN군이 점령했다가 중공군이 탈환하는 등 북조선과 남한이 남방과 북방이 엎치락뒤치락 일진일퇴 공방을 거듭했다. 1860년 이래 대륙세력과 해양세력, 유라시아와 아메리카가 경합하던 연장전이었다. 앵글로색슨은 대항해시대를 열었고, 슬라브족들은 시베리아의 4대 강을 따라 동진(東進)하는 대항하시대를 개창했던 바, 대항하시대와 대항해시대가 원산에서 합류하여 대폭발의 대결장으로 변했던 것이다. 결정타는 역시 원산폭격이다. 무차별적인 B29 폭격으로 20세기 초 아메리카풍 국제도시 원산의 흔적은 깨끗하게 지워진다. 시베리아풍 소련의 김서린 입김이 물씬 미치는 군사도시로 전변한 것이다. 냉전기 노동당 고위 간부나 인민군 고급 장교들만이 천혜의 풍경을 감상하는 예외적 특혜를 누릴 수 있었다.


 

▲쿠바 바라데로 해변. ⓒwikimedia

아버지 김정일이 가장 공을 들인 곳이 개성공단이었다면, 아들 김정은은 원산에 집중하고 있다. 왕년의 개항도시를 미래의 개혁개방도시로 탈바꿈시키려고 한다. 외세에 의한 개항에서 주체에 의거한 개혁과 개방으로 반전시키려 든다. 아웃오브사이트 아웃오브마인드(out of sight, out of mind).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지는 법, 김정은 위원장은 수시로 원산을 찾고 있고, 무시로 갈마를 드나들고 있다. 총력전과 속도전, 갈마해안지구를 세계적인 관광특구로 조성코자 한다.

 

갈마반도는 21세기 원산의 히든카드이다. 원산시 동쪽에서 북쪽으로 비죽이 튀어나왔다. 갈마반도의 위쪽에는 호도반도도 있다. 이 두 반도가 영흥만을 호위하듯 감싸고 있다. 그리고 스무여 개의 섬이 천연 방파제를 이룬다. 그 유명한 명사십리 해수욕장이 이곳 갈마반도의 기다란 등짝에 터하고 있다. 이 일대로 송도원, 울림폭포, 석왕사, 초석정, 삼일포에 금강산까지 명승지가 줄을 잇는다. 그리고 그 정점에 마식령 스키장이 있다. 이미 북조선은 최대 규모였던 갈마의 공군 전용 비행장을 민간 공항으로 전환시켰다. 기왕의 금강산 관광과 연동하여 세계적 해안관광지구로 만들겠다는 최고 지도자의 확고한 의지가 반영된 결정이다.


 

스위스 알프스를 참조했을 것임은 두말할 나위 없다. 미국의 제재로 차질을 빚고는 있으나, 애당초 리프트를 비롯한 마식령 스키장의 시설과 장비부터 스위스와 이탈리아 등 알프스 일대에서 공수할 계획이었다. 2017년 11월에 준공한 세포등판 축산단지 또한 알프스 풍이 완연하다. 강원도 세포군과 평강군, 이천군 일대 고원지대에 약 5만 정보(495㎢) 규모로 세계 최대의 축산농장을 조성한 것이다. 목초지와 방풍림, 저수지뿐만이 아니라 방역 시설, 메탄가스 처리시설, 육가공 공장과 주택단지, 휴양시설까지도 스위스의 삼림 축산업을 벤치마킹했다.


 

▲마식령 스키장 지도. ⓒwiki

다시금 강조컨대 강원도가 알프스보다 유리한 점은 산과 강과 호수는 물론이요, 바다도 겸하고 있다는 점이다. 스위스만 일방으로 참조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태평양 건너 아메리카도 참고한다. 다만 20세기 초와는 달리 캘리포니아가 아니라 카리브해의 쿠바와 한결 도탑다. 1945년 이래 사회주의 형제국으로 돈독한 우애를 쌓아온 것이다. 쿠바의 국제관광특구로는 바라데로(Varadero)가 유명하다. 갈마와 지형 조건이 몹시 흡사하다. 바라데로 또한 반도인바, 외국인 관광객을 격리하기에 쉽고 내국인의 접근도 통제하기 유리하다. 반도 일대에 산재하는 숱한 무인도들에 유원지를 꾸며둔 것도 따라해 봄직하다. 갈마 앞 스무여 개의 무인도 또한 바라데로처럼 섬 하나를 통째로 빌려주는 초호화 휴양지로 만들어 볼 수 있을 것이다. 같은 동해라고 해도 북쪽 바다의 색감은 부산이나 포항, 속초와도 또 다르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요트를 타볼 기회가 있었는데, 그 깊고 푸른 북양(北洋)의 절경이 원산에 더 가까울 법하다.


 

물론 원산이 품고 있는 잠재력을 극대화하는 지름길은 남북뉴딜이다. 원산부터 속초까지 바닷길로, 금강부터 설악까지 산길과 숲길로, 남북강원도 그랜드 투어 프로그램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공히 동해로 흘러나가는 설악과 금강이 만나야 백두대간의 허리가 곧추서고, 속초와 원산을 아울러야 구구절절 한반도의 서사도 완성된다. 서핑과 스키와 스파까지 압도적인 액티비티 경험을 제공하고, 비무장지대(DMZ)를 사이로 분단에서 통일이라는 감동적인 (히)스토리까지 제시하면 원산은 20세기 초의 영광을 재현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니 업그레이드하고 업데이트할 수도 있다. 유라시아 특급 열차와 환태평양 크루즈가 만나는 환상적인 휴양도시로 진화시킬 수도 있다. 대륙과 대양을 잇는 세계일주 여행상품도 개발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하면 원산은 유라시아와 아메리카가 만나는 지구의 허브/허파가 될 수도 있다. 첩첩산중과 망망대해의 융복합으로 세계 최고의 아웃도어 시티, 으뜸도시로 도약하는 것이다. 원산에서 나서 알프스에서 자란 김정은 위원장이라면 일생의 과업으로 추진해봄직하다.


 

▲식민지 시대 청진항 엽서. ⓒ이병한

2. 청진과 나선 : 청해 도시 네트워크


 

원산에서 동해안을 따라 더 올라가면 청진에 닿는다. 원산이 김정은의 고향이라면 청진은 그의 반려, 리설주가 나고 자란 곳이다. 북조선 제3의 도시이자, 으뜸의 패션 도시이기도 하다. 평양보다도 유행 속도가 빠르다. 평양의 아녀자들이 감히 엄두도 못 내던 스키니진이나 나팔바지, 미니스커트도 앞장서 용감하게 먼저 입은 이들이 청진의 아가씨들이었다. 청진이 핫플레이스, 힙한 도시가 된 것은 바다 건너편 일본의 영향 탓이다. 일본 상품을 가장 먼저 수입하는 도시가 청진이다. 일본의 재고상품이 청진에서 먼저 풀린다. 북조선 기준으로는 최첨단 패션이다. 정치적 중심지가 아닌 고로 당의 눈치도 훨씬 덜 본다. 근엄한 권력과 멀수록 심신은 자유로운 법이다. 패션산업을 비롯해 문화와 예술에 특화될 수 있다.

 

본디는 공업도시로 출발했다. 일제는 청진을 제철도시와 항만도시로 키웠다. 미쓰비시 광업과 일본제철이 합작 운영을 시작한 때가 1935년이다. 훗날 박정희 정권 포항 발전 전략의 원조라고 함직하다. 1940년대 청진의 위상은 독보적이었다. 원산이나 함흥은 비할 데 없었고, 부산까지 위협할 정도였다. 대동아공영권, 대륙 진출에 사활을 걸던 시절이다. 제국의 본토 일본열도에서 제국의 프런티어 만주국으로 가는 허브시티였다. 동경(東京, 도쿄)과 신경(新京, 장춘)을 청진항이 이었던 것이다. 일본의 서쪽 도시들, 복으로는 홋카이도의 삿포로와 하코다테부터 니가타, 시모노세키, 오사카까지 청진의 환동해 네트워크는 부챗살처럼 활짝 펼쳐져 있었다.


 

역시나 그 흔적은 당시의 엽서로 고스란히 남아있다. 1930년대 중반 청진상공회의소에서 발행한 ‘약진도상의 청진항’이다. 세이신(SEISIN)은 청진의 일본식 발음이다. 북선(北鮮, 함경도)에서 가장 큰 도시, 약진하는 청진이라 했다. 1940년대 그림도 흥미롭다. 연안 매립을 통한 계획도시였다. 항만 배후 주택가에는 유럽풍 건물들이 즐비했다. 반도와 열도를 잇는 북쪽 항구도시의 관성은 해방 이후에도 지속되었다. 1959년 재일교토 북송사업도 니가타와 청진을 통해 이루어졌다. 1970년대 일본인 납치사건을 주도한 공작선들이 출항했던 항구 또한 청진이었다.


 

고로 북-일 국교 정상화가 이루어지면 가장 큰 수혜를 입을 가능성이 높다. 다만 포항제철 만들 듯이 얼렁뚱땅 식민지 배상문제를 퉁치고 갈수는 없는 노릇이다. 철저한 배상금 청구를 종잣돈으로 삼아 반도와 열도의 새로운 관계, 단번도약을 실험하는 공간으로 청진을 새로이 디자인해야 한다. 백년 구업은 풀되, 구습에 얽매여서도 아니 될 것이다. 현재처럼 북도 남도 일본과 소원한 국면은 동아시아의 장래를 위해서도 전혀 바람직하지 않다. 방치하면 심히 곤란하다. 관여해서 관리해야 한다. 이미 두 번이나 반도를 친 나라이다. 운명공동체로 튼튼하게 엮어 두어야 한다. 저 위로는 오오츠크해 지나 북극해까지, 더 아래로는 오키나와 지나 인도양까지 동해는 유라시아의 북쪽 바다와 남쪽 바다가 합수하는 미래해가 될 수 있다. 청해 도시네트워크의 허브도시로 청진의 청사진을 그려본다.


 

청진 위로는 또 나선이 있다. 나진과 선봉을 아울러 나선특별시가 되었다. 경제특구이기도 하다. 선봉이 선봉인 것 또한 북풍 때문이다. 소련이 아시아 전선에 개입하여 식민지 조선에 상륙해서 가장 먼저 해방시킨 지역을 ‘선봉’이라 일컬었다. 식민지 근대성으로 휘황한 청진과 원산으로 치고 나아가는 길목에 선봉이 터했던 것이다. 블라디보스토크의 지척, 연해주와 함경도를 잇는 길목이었다. 지금도 ‘조선-러시아 우정의 다리’가 나선과 하산을 연결한다. 북중러 3국이 국경을 맞대고 있는 동북아시아의 특별한 공간이다.

 

나진선봉을 북조선 최초의 경제특구로 지정한 해가 1991년이다. 탈냉전의 선봉이기도 했던 것이다. 황금평/위화도 경제특구, 개성공업지구, 원산금강산 관광지구, 신의주 국제무역지대 보다도 먼저 가장 앞자리를 차지했다. 이미 몰락한 소련과 동유럽에 견주어 중국의 개혁개방이 성과를 거두고 있던 시절이다. 북조선 또한 나선을 홍콩처럼 발전시키고 싶어 했다. 이른바 ‘일국양제’를 모방하여 나선에서만큼은 외자를 유치하고 기업 합작도 허용키로 한 것이다. 자본주의를 껴안은 신사회주의, 외세를 품은 새 주체의 선봉적 실험장으로 나선을 구상한 것이다. 두만강을 경계로 러시아와 중국이라는 오래된 뒷배가 있었기에 더욱 과감한 결단을 취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조선-러시아 우정의 다리. ⓒwiki

훈춘과 블라디보스토크와 나선. 세 국경도시 가운데 단연 치고 나가는 쪽은 훈춘이다. 이미 다언어, 다문자 국제도시로 환골탈태했다.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프런티어 도시다. 블라디보스토크도 2014년부터 동방경제포럼을 주최하면서 해마다 달마다 날마다 거듭나고 있다. 러시아와 아시아가 만나고, 시베리아의 강과 태평양의 바다가 합수하는 허브도시로 진화하고 있다. 훈춘은 나선을 통해서만 동해로 나아갈 수 있다. 블라디보스토크는 나선을 지나야만 시베리아 철도가 한반도까지 연결될 수 있다. 북방의 해운과 철도, 물길과 철길이 교차하는 장소에 나선이 떡하고 버티고 있는 것이다. 나선만 잠시 멈춤, 주춤하고 있다 하겠다. 달리 말하면 나선까지 단번도약에 합류한다면 동북아시아의 지각변동이 동북지역에서 촉발된다. 한반도 신경제지도, 동해북부선이 시베리아 횡단 철도와 만나기 위해서도 나선이 선봉이 되어야 한다.

 

청진은 취리히를, 나선은 제네바를 연상시킨다. 취리히도 제네바도 공히 국경도시이다. 스위스 제1도시 취리히는 독일과 접하고 있으며, 스위스 제2도시 제네바는 프랑스와 면하고 있다. 독일에서 취리히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페리를 타고 호수를 건넜고, 프랑스로 나오기 위해서는 버스를 타고 제네바를 떠났다. 응당 취리히에서는 독일어가 제1언어이며, 제네바에서는 프랑스어가 가장 많이 사용된다.


 

취리히는 스위스 최고의 메트로폴리탄 시티이다. 경제와 문화에서 스위스를 선도한다. 세련되고 멋스럽고 교양이 높으며 품격도 넘친다. 화려한 반호브 거리에는 세계적인 대형은행들이 줄줄이 자리하고 있다. 아인슈타인을 필부로 여러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취리히 연방공대(ETH)는 세계적인 명문대학이다. 제네바는 전형적인 글로벌 시티이다. 거주자의 4할이 외국인이다. 토박이와 외지인을 분별하지 않는다. 먼저 온 사람과 나중에 온 사람이 세계시민으로 어울어진다. UN의 유럽본부가 괜히 터하고 있음이 아닌 것이다. 제네바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광대한 아리아나 공원 내에 UN 건물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곳에 모여 국제회의를 갖는 각국의 대표만 매년 2만5000명을 헤아린다.

 

취리히와 제네바는 모두 호반도시이기도 하다. 반면 나선과 청진은 해양도시이다. 제네바와 취리히를 통하여 유럽의 양강이자 앙숙, 독일과 프랑스가 화해하는 통로를 만들어 낸 것처럼, 청진과 나선을 연결해서 일본과 러시아를 화목으로 이끄는 혈로를 뚫어낼 수 있을까. 혹자는 러일전쟁(1905)을 ‘제0차 세계대전’에 빗대기도 한다. 대륙과 해양의 지정학적 전쟁이자 유럽과 아시아의 문명사적 전쟁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한반도 분단체제와 동아시아 냉전체제의 출발이라고도 할 수 있다. 백년전쟁의 서막에 러일전쟁이 있었던 것이다. 20세기 스위스가 영세중립을 자랑했다면, 21세기는 한반도는 영구평화를 자긍할 수 있을까?
 

 

모름지기 만사에는 천시가 있는 법이다. 때가 맞아야 뜻도 이루어내고 일도 이루어진다. 마침 태평양을 사이로 미국과 중국이 다툰다. G2의 패권 경쟁에 남과 북은 물론이요, 러와 일도 곤혹스럽다. 처지가 비슷하면 협력할 여지도 커진다. 미-중의 원심력이 강해질수록, 북과 남이 갈등할수록 일본과 러시아 또한 소원해진다. 러일이 협동하는 촉매가 남북협력이 될 수 있다. 환동해를 지중해로 삼고 있는 네 나라, 북남과 일러가 합심하야 ‘청해 이니셔티브’를 발동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좌로는 유라시아를 우로는 아메리카도 품는 영구평화의 바다, 원산과 청진과 나선을 잇는 북조선의 동해안 벨트를 주시하는 까닭이다.


 

3. 남북 고성 : 어스벨리(Earth Valley)


 

원산도 청진도 나선도 가볼 수 없는 땅이었다. 옛 엽서를 뒤지거나 구글 어스의 도움을 얻어 간접체험만 할 뿐이다. 그나마 육안으로 금강산을 저 멀리 바라볼 수 있는 곳이 있었다. 동해안 해파랑 길을 따라 최북단, 고성의 통일전망대이다. DMZ 너머 금강산의 자태가 또렷하게 눈에 든다. 백두산과 한라산이 장엄하다면, 금강산과 설악산은 찬란하다. 백두산의 천지가 헨델의 메시아에 어울린다면, 금강산의 만물상은 모차르트의 미뉴에트를 연상시킨다. 헌데 DMZ 너머 저곳 또한 고성이라 한다. 강원도만 남북으로 갈리어 있는 것이 아니다. 고성군도 남과 북으로 나뉘어 있다. 유일무이 남북이 함께하는 군 단위 지자체가 고성이다. 북고선과 남고성은 면적 또한 거의 흡사하다. 북고성의 끝자락에는 금강산이 터하고 있고, 남고성의 밑자락에는 설악산이 자리하는바, 북방의 동해와 남녘의 동해를 잇는 연결고리가 고성인 것이다. 동해북부선 개통식 또한 고성의 제진역에서 열렸던 바이다. 산길과 물길과 철길이 고성에서 합류한다. 동해물과 백두대간과 남북철도가 고성에서 합일한다.


 

우로는 바다요, 좌로는 산이라. 남북고성의 형세를 살피노라니 자연스레 뉴질랜드의 뉴플리머스가 떠올랐다. 작년 이맘때 한 달 살이 지긋하게 머물렀던 곳이다. 산으로서는 세계 최초로 법인 자격을 취득한 타라나키도 자리하는 곳이다. 뫼도 가람도 사람과 동등한 권리를 누리기 시작한 천지개벽국가의 상징 같은 곳이다. 뉴질랜드에서는 세계적인 실험도 전개되고 있다. 목하 인류가 직면한 최대의 과제는 기후재앙인바, 이 문제를 해결할 의지가 있고 능력이 있고 기술이 있다면 3년짜리 비자를 내어주고 잠잘 곳과 일할 곳을 제공하는 ‘임팩트 비자’가 운영되고 있다. 개성공단은 남북합작, ‘우리 민족끼리’ 정신의 발로였다. 남한의 자본과 기술에 북조선의 저임금 노동력을 결합하여 세계 시장에 상품을 수출하자는 발상이었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이고 획기적인 발상이었으되, 지금은 또 다른 파격과 혁신이 요청되는 시점이다. 남북고성을 산업문명 너머 생명문명의 허브/허파로 탈바꿈해가면 좋겠다. 남북은 물론이요 주변 4강과 UN이 함께하는 지구촌 모델로 가꾸어 가면 더더욱 좋겠다. 디지털 산업의 메카, 실리콘 벨리를 넘어서는 생명산업의 숨통, ‘어스 벨리’(Earth Valley)에 대한 상상력을 지피는 땅이다.


 

이미 세계 도처에 ‘국제평화대학’의 꼴을 취한 학교는 적지 않은 바, 기왕이면 남북고성에는 인간의 평화, 국가 간 평화 너머의 큰 배움을 지향하는 지구생명대학이 들어서면 좋겠다. 하늘 아래 새 것 없다고, 여기저기 리서치를 해보니 이미 “지구대학”(Earth University)이 코스타리카에 있음을 알게 되었다. 벌써 30년 넘게 운영 중이란다. 단번에 결심했다. 내년 이맘때에는 카리브해에 있을 것이다. 새해 첫날부터 스페인어 공부도 시작했다. 태평양 건너 카리브해의 지구대학을 연구하여 동해를 끼고 있는 고성에 들어서면 딱 좋을 지구대학 2.0을 구상해볼 작정이다. 금강산의 만물상은 다시금 지구적 영감을 제공한다. 우리 민족끼리로는 더 이상 충분치 않다. 우리 인간끼리도 이제는 미진하다. 삼라만상, 생물(DNA)과 활물(DATA)까지 아울러 만물의 그물을 탐구하고 수양하는 미래대학이 되어야 할 것이다. 만인과 만국 사이의 영세중립을 넘어서, 만물과 만상과 만사의 영구평화, 생명평화를 염원한다.


 

코스타리카는 군대 없는 나라이기도 하다. 어설피 군대 없는 한반도를 말하지는 않겠다. 이상을 꿈꾸되 현실주의자가 되고자 한다. 상상을 지피되 몽상에 빠지지도 않는다. 영세중립 스위스에도 군대는 여전한 바이다. 러시아와 일본 사이, 미국과 중국 사이, 남과 북에서 군대 없는 나라를 상상함은 백일몽에 그칠 따름이다. 그러나 국지라면 어떠할까? 군대 없는 생명특구 조성도 요원한 일일까? 남북고성군은 어떠할까? 군대 없는 고성군, 생명평화의 실험군으로 남북고성을 리브랜딩할 수는 없는 것일까?


 

그것 역시 불가하다면 군대의 성격만이라도 혁신적으로 바꾸어보면 어떠할까? 애당초 군대의 목적이 무엇인가.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보호하는 것이다. 21세기 국민의 생명은 적국과의 경쟁과 전쟁에 달려 있지 않다. 제1순위가 기후재앙이다. 전쟁에서 죽어가는 숫자보다 지구가열화(global heating) 때문에 희생되는 사람들(과 동물들과 식물들)의 숫자가 월등하게 많아진 다. 시대가 바뀌었다면 군대의 역할 또한 진화해야 할 것이다. 우리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위해서라도 ‘기후부대’ 내지 ‘기후특공대’ 창설은 시급한 과제이다. 기후는 땅과 하늘과 바다를 가리지 않는다. 전면적이고 전방위적이다. 고로 육해공군이 합작하는 최정예 전천후 부대가 되어야 할 것이다. 국방부와 환경부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긴밀히 협력해야 한다. 또 기후재난은 북과 남을 가리지도 않는바, 역사상 최초의 남북합동군사훈련을 펼쳐보기에도 최적의 과제이다. 더 나아가 기후위기는 한반도에 국한되지도 않는다. 일본과 러시아, 중국과 미국까지도 끌어들일 수 있다. 남북고성이, 남북강원도가 남북한이 주도하는 미래형 6자회담도 만들어 볼 수 있는 것이다. 판갈이가 도통 어렵다면 패러다임 전환, 아예 새판을 짜는 것이다.


 

▲통일전망대에서 보이는 금강산과 동해. ⓒ고성군

하나님이 보우하사, 미국에서 바이든이 대통령이 되었다. 교양미 넘치는 엘리트 외교통인바 기후위기 대응을 새 정부의 가장 중요한 과제로 삼고 있다. 취임 직후 파리기후협정에 복귀했음은 물론이요, 앞으로 그린뉴딜에 어마어마한 자금과 자원이 투입될 전망이다. 바이든 행정부와 찰떡궁합을 맞추는 데에도 ‘기후부대’ 창설은 요긴한 접근이 될 수 있다. 2022년 5월, 강원도에서 세계 최초의 산림 엑스포가 열린다고 했다. 금강산과 설악산, 그리고 DMZ에서 3차례 연달아 남북정상회담이 열리면 좋겠다는 바람도 피력했다. 마지막 DMZ 정상회담에 바이든 대통령까지 초청하면 최상일 것이다. 남북미가 선도하여 지구 최초의 기후부대를 의제로 삼는다면 최고일 것이다. 기후부대가 남북고성 어느 매에 국제연합군의 형태로 만들어진다면 그야말로 새로운 21세기형 군산학 복합체가 될 수도 있다. 기후부대와 그린테크와 환경공학이 상호진화하는 모델을 만들어 볼 수도 있다. 30년이 가깝도록 지루하고 지지부진한 북핵 협상도 기왕의 군사외교 전문가들의 관성적이고 타성적인 접근법에 맡겨둘 일이 아니다. 착상과 구상과 상상과 이상 또한 단번에 단박에 단숨에 일대 도약해야 한다. 룬샷(Loon Shot)과 문샷(Moon Shot)은 기업 CEO만이 아니라 국가의 수장들에게도 절실한 발상의 전환이다.


 

아버지 김정일도 개성공단을 착공하기 위하여 DMZ 일대 최전선 부대를 뒤로 물리는 통 큰 결단을 내린 적이 있다. 아들 김정은은 더 파격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어야 한다. 항일무장투쟁 이래 ‘유격대 국가’로 출발하여 항상적인 전시상태, 백년 전쟁을 그치기 위해서라도 북조선 거버넌스의 축이 되어버린 군부를 과감하게 개혁해가야 한다. 허나 이미 과대 성장한 군대를 적폐 청산하듯 일방으로 몰아가면 반발을 사기 십상이다. 반동이 아니라 반전을 꾀해야 한다. 군부의 출로와 퇴로를 슬그머니 열어주어야 한다. 국가와 일체화된 군대를 떼어내서 산업과 밀접하게 연계시켜주어야 한다. 권력을 대신하여 금력과 만날 수 있도록 새 길과 살 길을 열어주는 것이다. 군사국가에서 군산복합체로 진화시키는 것이다. 그래야 북조선 역시도 정상국가를 넘어서 미래국가로 단번에 도약할 수 있다. 알프스의 소년/소녀 김정은과 김여정이 반드시 가보아야 할 나라가 있다. 21세기 판 신사유람단을 꾸려서라도 필히 견문해야 할 나라이다. 중동의 밀리테크 선진국, 이스라엘로 이동한다.

 

 

이병한

20대는 사회과학도였다. 서방을 선망했고, 새로운 이론의 습득에 골몰했다. 30대는 역사학자였다. 동방을 천착하고, 오랜 문명의 유산을 되새겼다. 자연스레 동/서의 회통과 고/금의 융합을 골똘히 고민했다. 그 소산으로 1000일 <유라시아 견문>을 마무리 짓고 40대를 맞이했다. 개벽학자이자 지구학자이며 미래학자를 지향한다. 인간 이전의 자연적 진화는 물론이요, 인간 이후의 자율적 진화에, 인간만의 자각적 진화를 두루 아울러야, 지구의 진화에 일조할 수 있는 미래학자의 자격이 갖추어진다고 생각한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공진화, 하늘과 땅과 사람의 공진화, 생물과 활물과 인물의 공진화, 만인과 만물과 만사의 공진화, 개벽학과 지구학과 미래학의 공진화, 이 모든 것을 아울러 깊은 미래(DEEP FUTURE)를 탐구하는 깊은 사람(Deep Self), 무궁아(無窮我)이고 싶다. www.byeonghan.com



출처: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1020510463841832#0DKU 프레시안(http://www.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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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시가 주민시민들 투표 서명용지 받을 때까지 이 자리에 있겠다"

[2신] "부산시가 주민시민들 투표 서명용지 받을 때까지 이 자리에 있겠다"

 
조윤영 통신원 | 기사입력 2021/02/06 [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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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시청 로비 농성장 모습 [사진출처:부산항 미군 세균실험실폐쇄부산시 주민투표 추진위원회]  © 조윤영 통신원

 

부산시가 ‘부산시민 19만 7천 명의 ’부산항 미세균무기실험실폐쇄 찬반 주민투표 요구 서명‘ 수령을 하지 않고 있다.

 

주민투표법 제9조에 따르면 부산 시민 1/20의 서명이 있을시, 주민은 부산시장에게 주민 투표를 요구할 수 있다. 19만 7천명의 서명은 이 요건을 충족한다. 

 

‘부산항 미세균무기실험실폐쇄 찬반 주민투표 서명운동 추진위원회(이하 추진위)’는 5일 오늘 낮 12시 30분 부산시청 로비에서 서명용지를 제출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러나 이병진 부산시장 권한대행을 비롯한 부산시는 기자회견장에 경찰병력을 배치한 것 외에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아 추진위와 기자회견 참가자는 시청 로비에서 부산시의 답변을 기다리며 농성을 하게 되었다. 

 

부산시는 지난해 10월 해당 주민투표의 대표자 증명서 교부를 ‘국가사무’를 이유로 거부하였으며 이에 추진위는 부산시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진행한 상태이다.

 

추진위는 5일 오후 7시 시청 로비에서 ‘19만 서명 외면하는 이병진 권한대행 규탄! 주민투표 촉구 결의대회’를 열었다.

 

추진위는 “19만 명의 민원보다 중요한 일이 무엇인가. 그동안 부산시장 권한대행에 여러 차례 면담요구를 했다. 그리고 담당자들과 면담을 했지만 미군의 시설이기 때문에 권한이 없다는 말 외에 제대로 답변을 들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부산시가 서명을 받아들일 때까지 농성할 것이다”라고 밝혔다.

 

이기윤 남구추진위원은 “(미세균실험실)과 가까운 감만동, 우암동 주민들은 오래전부터 민원부터 집회까지 꾸준히 활동해왔다. 여기 쌓인 20만 명의 서명용지는 시민들과의 약속이다. 우리는 반드시 그 약속을 지킬 것이다”라고 발언했다.

 

조석제 민주노총부산본부 수석부본장은 “현 부산시의 대응은 부산시민들을 무시하는 행위이다. 미세균실험실을 폐쇄하기 위한 골든타임은 바로 지금이다. 부산시는 당장 서명용지를 수령하고 미세균실험실 폐쇄 주민투표를 즉각 실행해야 한다”라고 발언했다.

 

이은혜 자주자주TV유투버는 “전국의 모든 국민들이 이 사안을 주목하고 있다. 주민투표는 이 땅의 주인은 우리 국민이며 부산시의 주인은 부산시민이라는 것을 되새기는 일이었다. 시민들이 지금처럼 한목소리를 낸다면 반드시 미세균실험실을 폐쇄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발언했다.

 

용당동주민 김희정 씨는 “한 아파트 입주자 대표자는 한 명의 입주자도 누락되지 않도록 관리비 영수증에 서명용지를 붙여 서명을 받았다. 20만 명의 마음이 물거품이 되지 않도록 주민투표는 반드시 실행되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대학생 김영신 씨는 노래 ‘이 땅의 주인은 우리’를 불러 농성장의 분위기를 달궜다.

 

현재까지 부산시는 공식적인 답변을 내놓지 않는 상황이며 추진위는 6일 오후 3시 ‘부산항 미세균실험실 폐쇄 찬반 주민투표 서명운동 달성 온라인 보고대회’를 시청 로비에서 생중계할 예정이다. 

 

▲ 노정현 진보당 부산시장 후보가 농성에 참여하고 있는 모습. 그는 이번 부산시장 보궐선거 공약으로 '미세균무기실험실폐쇄'를 걸었다.[사진출처:부산항 미군 세균실험실폐쇄부산시 주민투표 추진위원회]  © 조윤영 통신원

 

▲ [사진출처:부산항 미군 세균실험실폐쇄부산시 주민투표 추진위원회]  © 조윤영 통신원

 

▲ 대학생 김영신씨가 공연하는 모습[사진출처:부산항 미군 세균실험실폐쇄부산시 주민투표 추진위원회]  © 조윤영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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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보]코로나19 신규 확진자 370명…“설 연휴 이동·여행 자제”

탁지영 기자 g0g0@kyunghyang.com

입력 : 2021.02.05 09:35 수정 : 2021.02.05 09:36

 

지난 4일 서울 광진구 건대입구역 인근 포차 문이 닫혀 있다. 연합뉴스

지난 4일 서울 광진구 건대입구역 인근 포차 문이 닫혀 있다. 연합뉴스

 

질병관리청 중앙방역대책본부는 5일 0시 기준 코로나19 신규 확진자가 370명 발생했다고 밝혔다. 사흘 만에 일일 확진자 수가 300명대로 내려왔다. 누적 확진자 수는 8만131명이다.

신규 확진자의 감염 경로를 보면 국내 지역발생이 351명, 해외유입이 19명이다.

지역별로는 서울 122명, 경기 110명, 인천 25명으로 수도권이 257명이었다.

수도권 외 지역에서는 부산 33명, 대구 14명, 광주 14명, 강원 5명, 충북 3명, 충남 11명, 경북 6명, 경남 6명, 제주 2명씩 추가 확진됐다.

이날 코로나19로 인한 사망자는 11명 늘어 현재까지 누적 사망자는 총 1459명(치명률 1.82%)이다.

새로 격리 해제된 환자는 413명이다. 이날까지 모두 7만117명이 격리해제됐다. 현재 8555명이 격리 중이다. 위·중증 환자는 200명이다.

정세균 국무총리가 5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코로나19 대응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세균 국무총리가 5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코로나19 대응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세균 국무총리는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주재한 코로나19 대응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회의에서 “아직 3차 유행이 끝나지 않았다”며 “이번 설 연휴에 이동과 여행을 최대한 자제해줄 것을 국민 여러분께 다시 한 번 간곡히 요청드린다”고 말했다.

정 총리는 “오늘까지 누적 확진자가 8만명을 넘어섰다”며 “대규모 집단감염은 줄어든 반면 일상생활에서 전파되는 사례가 늘면서 하루 400명 내외의 답답한 정체국면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변이 바이러스 국내 유입이 확인되면서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고 했다.

다만 “주요 관광지의 숙박시설은 이미 예약이 다 찼을 정도로 적지 않은 분들이 고향 방문 대신 여행을 계획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제주도만 해도 이번 설 연휴에 관광객을 포함해서 약 14만명이 찾을 것으로 예상된다. 예년에 비하면 많은 숫자가 아니지만 벌써 제주도민들께서 코로나 확산을 걱정하고 있다고 한다”고 했다. 이어 “가족 모두의 안전을 위해 5인 이상 모임 금지 수칙을 꼭 지켜주시고 가급적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은 피해달라”고 당부했다.

정 총리는 “이틀 전 코백스 퍼실리티를 통해 공급될 예정인 화이자 백신의 특례수입이 승인된 데 이어 오늘은 국산 1호 코로나19 항체치료제에 대한 허가 여부가 결정된다”며 “그러나 치료제와 백신 접종에 대한 기대감으로 인해 코로나19를 경계하는 긴장감이 이완돼서는 곤란하다. 미국, 영국 등 주요 국가에서 백신 접종 초기에 오히려 확진자가 급격히 증가한 경향을 보였다는 사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102050935001&code=940100#csidx580cf81ea2f472eb519dc171d361be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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