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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평] 국민통합=촛불 국민 고립?

연두 | 기사입력 2021/01/07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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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두

 

이낙연 대표의 이명박근혜 사면 발언으로

면담 요청을 하러 갔던 청년학생들이

3일이 넘도록 민주당사에서 기다리고 있어요.

 

10분만 기다리라던 민주당 관계자는

기다리는 청년학생들을 뒤로하고 퇴근 후

다음날부터는 층을 통째로 폐쇄했어요.

 

농성이 아닌 그저 면담 요청을 하러 갔던 사람들은

칫솔, 양말과 같은 생필품은커녕

피켓 하나 가져간 게 없어서

들고 갔던 서류봉투의 뒷면에 볼펜으로 글을 써

피켓을 만들었어요.

 

그런데 기다리는 이낙연 대표는 오지 않고

경찰들이 와 이들을 고립시키고

음식물과 방한용품, 생필품의 반입을 막기까지 했습니다.

 

이 청년학생들은

2016년 겨울 박근혜 퇴진 촛불 때

매주 묵묵히 자원봉사를 하며

적폐들이 없는 세상을 앞당기기 위해 노력했던 이들이에요.

 

이런 촛불 민심은 저버리면서

무슨 국민 통합을 말할 수 있나요?

국민이 만들어준 거여 당 대표의 이중적인 모습,

정말 기가 막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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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지지자, 미 의사당 난입... 1명 사망, 권총 대치 등 사상 초유의 사태

신원 미상 여성 총격 사망, 워싱턴 일대 통금령... 바이든, ”시위가 아니라 반란“ 규탄

김원식 전문기자
발행 2021-01-07 09:29:19
수정 2021-01-07 09:29:19
이 기사는 번 공유됐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지지자들이 6일(현지 시간) 미 의회 의사당에 난입해 저지하는 경찰과 대치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지지자들이 6일(현지 시간) 미 의회 의사당에 난입해 저지하는 경찰과 대치하고 있다.ⓒ뉴시스/AP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지지하는 시위대들이 미국 의회 의사당을 난입해 수 시간 점거하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트럼프 지지 시위대 수천 명은 6일(현지 시간) 워싱턴DC 일대에서 시위를 벌이던 도중 인근 의사당 건물에 난입했다. 이 과정에서 의회 경찰 등과 충돌해 수 명이 부상을 당하고 총격을 받은 한 명은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미 연방의회는 상·하원 합동회의를 열고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을 인준하는 회의를 진행 중이었지만, 초유의 난입 사태로 회의는 중단됐다. 난입 과정에서 상원 회의를 주재하던 마이크 펜스 부통령과 일부 상원의원들은 회의장에서 대피했다.

다른 상원의원들은 의자 밑으로 몸을 숨기거나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방독면을 착용하기도 했다. 일부 유리창 파편이 깨지고 최루탄이 발사됐으며, 이 과정에서 의회 경찰들은 권총을 겨눈 채 시위대들과 대치했다.

 

대치 과정에서 신원이 밝혀지지 않은 한 여성은 가슴에 총탄을 맞아 중상을 입고 병원에 후송됐으나, 사망했다고 주요 외신들은 전했다. 다른 부상자들의 경중은 아직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뮤리얼 바우저 워싱턴DC 시장은 이날 오후 6시부터 전격 통행 금지를 명령했다. 미 국방부도 워싱턴D.C 일대 주방위군을 전원 동원시켰다고 현지 매체들이 보도했다. 현지 경찰 당국은 의사당 내에서 사제 폭탄도 발견해 해체한 것으로 알려졌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지지 시위대들이 6일(현지 시간) 위싱턴DC 의사당 건물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날 일부 시위대들이 의사당 안으로 난입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지지 시위대들이 6일(현지 시간) 위싱턴DC 의사당 건물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날 일부 시위대들이 의사당 안으로 난입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뉴시스/AP

바이든 당선인은 이날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이번 난입 사태는 “시위가 아니라 반란 사태”라며 “현재 우리의 민주주의가 현대사에서 본 적이 없는 전례 없는 공격을 당하고 있다”고 규탄했다. 그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이 사태를 끝내야 한다고 요구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난입 사태 발생 후 영상 메시지를 통해 “여러분의 고통과 상처를 안다”면서 “하지만 여러분은 지금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촉구했다. 하지만 그는 “여러분은 매우 특별하다”면서 “우리는 도둑맞은 선거가 있다”고 대선 사기 주장은 고수했다.

미 주요 언론들은 시위대가 의사당에 난입한 지 4시간여 만에 일단 의사당에서 퇴거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일부 시위대들은 현지 시간 오후 6시에 발효된 통금령에도 불구하고 경찰 등과 대치를 이어가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에 따라 이번 사태가 추가 불상사 없이 마무리될지도 주목된다.

 

김원식 전문기자

국제전문 기자입니다. 외교, 안보, 통일 문제에 관심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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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이 진짜 원하는 것은 한국의 코로나 백신 대리 구매?

등록 :2021-01-06 09:39수정 :2021-01-06 10:24
 
 
이란 당국자 자국 언론에
“한국과 백신을 ‘바터’하는 것은 어떤가” 의견
이란 혁명수비대가 4일(현지시각) 중동 산유국의 주요 원유 수송로인 호르무즈해협에서 한국 국적 선박 ‘한국케미호’(1만7426t급)를 나포하는 과정을 찍은 영상을 공개했다. 헬기에서 촬영한 것으로 추정되는 영상에는 이란 혁명수비대 소속 소형 고속정이 한국케미에 가까이 접근하는 장면 등이 담겼다. 파르스(FARS) 뉴스 동영상 갈무리
이란 혁명수비대가 4일(현지시각) 중동 산유국의 주요 원유 수송로인 호르무즈해협에서 한국 국적 선박 ‘한국케미호’(1만7426t급)를 나포하는 과정을 찍은 영상을 공개했다. 헬기에서 촬영한 것으로 추정되는 영상에는 이란 혁명수비대 소속 소형 고속정이 한국케미에 가까이 접근하는 장면 등이 담겼다. 파르스(FARS) 뉴스 동영상 갈무리
혹시 이란의 진짜 의도는 한국의 코로나19 백신 ‘대리 구매’?

이란이 6일 한국 선박 억류 문제가 해양 오염과 관련된 “완전히 기술적 문제”임을 재차 강조하며, 한국의 방문 계획에 “필요 없다”는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하지만 이란의 표면적 주장대로 이 문제가 완전히 ‘기술적 문제’라고 하기엔, 억류 시점이 너무 미묘하고 대응 또한 지나치게 거칠어 이란의 ‘진짜 속내’가 뭘지 정부의 고심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이와 관련해 한국에서 큰 관심을 모은 사실은 이란이 한국이 보관 중인 원유 대금 약 70억달러(7조6000여억원) 중 일부를 활용해 코로나19 백신을 구매하려 했다는 것이다. 한국과 이란은 2010년부터 한국에 개설된 이란중앙은행의 계좌를 통해 원화로 무역 결제를 해왔다. 하지만 미국이 2019년 9월 이란을 특별지정 국제테러조직(SDGT)으로 선정하며 양국 간 교역이 사실상 중단됐다. 그에 따라 이란 돈 약 70억~80억달러(약 7조7600억~8조7000억원)가 한국에 묶여 있는 상태다. 미국의 경제제재로 큰 고통을 받고 있는 이란은 지난해 7월 “국제사법재판소(ICJ)에 한국 정부를 제소할 수 있다”고 호소하는 등 자금 반환을 강력히 요청해 왔다. 세계보건기구(WHO)의 5일 자료에 따르면 지금까지 이란의 코로나19 확진자는 124만9507명이고 이 가운데 5만5605명이 사망했다. 백신 구입이 시급한 국가적 과제일 수밖에 없다.외교부는 5일 한국과 이란 사이에 관련 논의가 진행돼 왔음을 시인했다. 외교부 당국자는 “이란 정부가 (코로나19 백신 공동구매 국제 프로젝트인) ‘코벡스 퍼실리티’를 통해 백신을 확보하려고 했다. 대금 납입을 하는데 한국 원화 자금을 이용해 납부하는 문제로 미국 재무부와 우리가 다방면으로 협의했다. 미국 재무부의 특별승인을 받았고 그에 따라 우리가 대금을 지불하려고 했었는데 이란 측이 송금 과정에서 달러로 바꾸면 미국 은행으로 돈이 들어가는데 미국 정부에서 혹시 이 돈을 어떻게 할지 하는 우려 때문에 아직 결정이 안 내려진 상황”이라고 말했다. 즉, 이란이 한국이 보관 중인 동결자금으로 인도적 물품인 코로나19 백신을 사려했고 그에 대해 미국의 승인까지 떨어졌지만, 미국을 믿지 못해 최종 결정을 못 내렸다는 것이다. 그랬다면 이란 역시 한국이 선의에 기초해 이 문제를 풀기 위해 상당한 외교적 노력을 기울였음을 알고 있다는 얘기가 된다. 백신 확보를 이유로 선박 억류와 같은 거친 압박을 해야 할 이유가 없다.
이란이 한국과 동결 자금과 코로나19 백신을 교환(바터)하는 협상을 추진할 계획임을 알리는 3일치 &lt;테헤란 타임스&gt; 기사
이란이 한국과 동결 자금과 코로나19 백신을 교환(바터)하는 협상을 추진할 계획임을 알리는 3일치 <테헤란 타임스> 기사
이 지점에서 곰곰이 음미해 봐야 할 이란 당국자의 발언이 있다. 이란의 영자 언론 <테헤란 타임스>는 지난 3일 에스하그 자항기리 이란 제1부통령과 호세인 탄하이 한-이란 상공회의소 회장이 전날 만나 “한국 은행에 있는 석유 수출 동결 자금과 코비드19 백신과 다른 물품을 교환(barter)”하도록 협상을 진행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여기서 주의를 기울여야 할 점은 이란이 ‘물물교환’을 뜻하는 바터(barter)란 표현을 쓰고 있다는 점이다. 탄하이 회장은 “한국에 있는 우리 돈과 코로나 백신을 어떻게 교환할지 제안할 것이다. 우리는 우리 리스트에 있는 특정한 물품들을 바터하는데 한국인들이 얼마나 협조할 의사가 있는지 지켜볼 것”이라고 말했다고 이 기사는 전했다. 이어 <테헤란 타임스>는 당국자를 인용해 이란이 원하는 구체적 물품으로 코로나19 백신 외에 원자재, 약품, 석유화학제품, 자동차 부품, 가정용 전자제품 등을 제시했다.한국 정부 당국자의 발언과 <테헤란 타임스>에 나온 이란 당국자들의 발언을 묶어 보면, 다음과 같은 추정이 가능하다. 이란은 자국 내 늘어나는 코로나19 확진자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서둘러 백신 구매에 나섰으며, 미국의 심각한 경제제재 아래 있는 이란은 한국이 보관 중인 7조원에 달하는 막대한 돈을 재원으로 활용하려고 했다. 1차 계획은 코벡스 퍼실리티를 통해 이란이 직접 구매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란 자금이 미국 은행을 거치는 과정에서 미국이 이 돈을 재차 압류할 위험을 인식했고, 결국 결단을 내리지 못한 것 아니냐는 것이다.그렇다면, 한국이 백신을 대리 구매해 이를 한국 내 동결 자금과 바꿔주는 것(바터)은 어떨까. 그러나 각국이 백신 확보를 위해 혈안이 되어 있는 현재 상황에서 한국이 협조해 줄 것인지 이란은 확신하지 못했다. 탄하이 회장 역시 “지켜볼 것”이라 말하고 있다. 결국 한국 정부를 움직일 수 있을만한 ‘외교적 지렛대’가 필요했을 수 있다. 물론 외교부 당국자가 거듭 밝혔듯 “예단은 금물”이며 다양한 시나리오를 갖고 사태에 대응해야 함은 물론이다.현재 이란은 이번 선박 억류 문제가 철저한 기술적 문제라고 거듭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살벌한 중동의 국제 정치판에서 ‘철천지 원수’ 미국, ‘숙적’ 이스라엘, 그에 못지 않게 미운 ‘라이벌’ 사우디아라비아 등과 대치하며 생존해 온 이란의 고된 역사를 생각해 볼 때 그 말을 그대로 믿기 어려운 측면도 있다. 한-미 동맹 아래서 ‘온실 속 외교’를 해 온 한국과 외교적 기질이 다를 수밖에 없다. 백신과 선박 억류는 아무 관계가 없다며 직접 교섭을 피해가며 협상력을 높인 뒤, 단숨에 코로나19 백신의 교환(바터) 등의 요구를 쏟아낼 가능성도 있다.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politics/diplomacy/977480.html?_fr=mt1#csidxabe7dd83b6957ac96fab4cb6779605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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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낙연, 사면론 불발에도 '국민통합' 카드 계속 낸다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21/01/06 10:44
  • 수정일
    2021/01/06 10:44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분석] 이재명과 차별화 행보... 당대표이면서 대선주자라는 이중적 지위

21.01.06 07:22l최종 업데이트 21.01.06 07:22l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대표가 4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청년미래연석회의 출범식에서 회의자료를 살펴보고 있다.
▲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대표가 4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청년미래연석회의 출범식에서 회의자료를 살펴보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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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인 출신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기자들에게 친화적인 편이다. 4일 오후에도 그는 국회 본청 당대표실 앞에서 '뻗치기'하는 취재진과 눈이 마주칠 때마다 "추운데 고생한다"고 인사를 건넸다. 이때 한 기자가 "질문하면 받아주시나요"라고 조심스레 묻자, 이 대표는 '말해보라'는 표정으로 발걸음을 멈췄다.

기자 : "(이명박·박근혜 두 전직 대통령) 사면 관련해서..."
이낙연 대표 : "추가로 할 얘기는 없는데... 어제 다 (얘기) 했잖아요?"


곧이어 열린 당 고위전략회의 뒤 최인호 수석대변인은, 사면 관련 질문에 다시 한 번 "어제 최고위원회 간담회 입장문에 다 담겨 있다"며 답을 피했다. 실제로 민주당 지도부는 3일 긴급 회동으로 입장문을 발표한 뒤 사면 관련 얘기에는 말을 아끼고 있다(관련 기사 : 이틀 만에 봉합된 이낙연의 '이명박·박근혜 사면론', 그러나...). 

당원들은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4일 당대표실에는 연신 항의 전화가 왔고, 민주당 의원들도 언론 인터뷰, 페이스북 글 등으로 공개 반대를 표명했다. 5일에도 '클리앙' 등 민주당 지지 성향이 강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이낙연 대표를 비판하는 글이 계속 올라오고 있다. 당내 분란으로까지 번져나간 건 아니지만, 아예 없던 일로 보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대표 이낙연 vs 후보 이낙연 '대선주자' 이낙연은 다르다. 그는 같은 날 KBS <9시 뉴스>에 출연해 거듭 "(사면 건의는) 절박한 심정에서 말씀을 드렸다"라고 밝혔다. 그는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이 전쟁을 치르러가는데, 국민의 마음을 둘·셋으로 갈라지게 한 채 그대로 갈 수 있을까 하는 절박한 충정에서 말씀드렸다"며 "유·불리만 생각했으면 말 안 했을 것"이라고도 했다.


이낙연 대표와 함께 김대중 전 대통령과 가까웠던 '동교동계'로 꼽히는 김한정 의원은 "이낙연 대표가 해야 될 일을 했다"고 평가했다. 그는 5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인터뷰에서 "(코로나19) 국난 극복을 위한 에너지를 모으기 위해서는 여야 모두 좀 양보를 해야 한다"며 "그중 가장 뜨거운 감자 내지는 참 곤혹스러운 과거사가 바로 두 전직 대통령 문제"라고 짚었다. 

김 의원은 또 이 대표가 먼저 사면이란 화두를 꺼낸 것이 문재인 대통령의 정치적 부담을 덜어준다고 했다. 그는 청와대 1부속실장으로서 김대중 대통령 임기 말을 지켰던 경험에 빗대어, "문 대통령께서 (관련해) 참 답답하고 억울한 면이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부동산, 빈부격차, (아동)학대, 방역 대응 등 얼마나 일이 많냐"며 "대통령이 좀 편하게, 정파적 이해를 떠나서 일할 수 있도록 정치권도 (여건을) 만들어 드려야 한다"고 했다.

한 민주당 관계자도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이낙연 대표가 손해를 감수하고 문 대통령의 '안전판 역할'을 했다"고 봤다. 그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농단 최종판결이 나오는) 14일이 지나면, 여기저기서 (사면) 얘기가 나올 것"이라며 "그러면 대통령은 사면하든 안 하든 선택을 해야 하는데, (그걸 위해서) 민심과 당심을 읽는 데에 상당히 도움을 드린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그는 이 대표가 '대선주자'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사면 주장을 유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관계자는 "민주당은 당 최고위에서 (논의가) 정리됐지만, 이낙연은 대표이면서 대선주자"라며 "자신이 신념이라고 말한 것을 철회한다면 대선주자로서의 지위가 흔들린다"고 말했다. 또 "이낙연 대표에게는 위기이면서 기회일 수 있다"며 "이걸 잘 풀어내면 정치력으로 인정받는다"라고 했다.

이낙연 vs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의원과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30일 오전 경기 수원시 경기도청에서 만나 악수하고 있다.
▲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의원과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30일 오전 경기 수원시 경기도청에서 만나 악수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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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낙연 대표는 "저의 이익만 생각했다면 이런 이야기는 안 했다"(4일, KBS 9시 뉴스)고도 말했다. 그러나 이번 일은 '대선주자' 이낙연의 승부수가 될 수밖에 없다. 강력한 경쟁자, 이재명 경기도지사와 입장이 갈리는 대목이기 때문이다.

이재명 지사는 사면 논란을 두고 "나까지 입장을 밝히는 것은 대통령께 부담을 드린다"며 명확히 의견을 드러내지 않았다. 다만 3일 페이스북에서 다큐 <위기의 민주주의– 룰라에서 탄핵까지>를 언급하며 "남의 나라 이야기라고 하기엔 기시감이 든다"고 했다. 그는 "기득권 카르텔(담합)을 개혁하는 것이 곧 민생이며, 이들을 내버려 두고는 그 어떤 민생개혁도 쉽게 물거품이 될 수 있다"며 더 선명한 개혁을 강조했다. 

이낙연 대표로선 차별화를 위해서라도 국민 통합에 더욱 힘을 실어야 한다. 이 대표 쪽 관계자는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사면은 통합의 부분적 카드일 뿐"이라며 "국민 통합 이슈는 더 정리하고 강화하는 측면으로 간다"고 했다. 그는 "(이 대표 메시지는) 이념과 갈등, 냉소와 조롱을 넘어서겠다는 의제이고, 정치뿐 아니라 모든 분야의 의제가 되지 않을까 싶다"며 "만사가 정쟁으로 치달으면 아무 것도 진전이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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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조선노동당 제8차 대회 5일 개막

박한균 기자 | 기사입력 2021/01/06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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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중앙통신은 “온 나라 전체 당원들과 인민들, 인민군 장병들의 커다란 관심과 기대, 뜨거운 열망 속에 조선노동당 제8차 대회가 2021년 1월 5일 혁명의 수도 평양에서 개막되었다”라고 6일 보도했다.  

 

▲ 조선중앙통신은 6일 조선노동당 제8차 대회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개회를 선언했으며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의 위임에 따라 김재룡 당 중앙위 부위원장이 대회 사회를 보았다고 전했다.  


북 조선노동당 제8차 대회가 5일 개막했다.

 

조선중앙통신은 “온 나라 전체 당원들과 인민들, 인민군 장병들의 커다란 관심과 기대, 뜨거운 열망 속에 조선노동당 제8차 대회가 2021년 1월 5일 혁명의 수도 평양에서 개막되었다”라고 6일 보도했다.

 

통신은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는 우리 혁명 발전의 새로운 고조기, 장엄한 격변기가 도래한 시대적 요구에 맞게 당 중앙위원회의 사업을 전면적으로 엄정히 총화하고 사회주의 위업의 보다 큰 승리를 쟁취하기 위한 정확한 투쟁 방향과 임무를 명백히 재확정하며 실제적인 개선대책을 마련하기 위하여 우리 당의 성스러운 역사에서 여덟 번째로 되는 당 대회를 소집하였다”라고 밝혔다.

 

통신은 “조선 혁명의 새로운 투쟁의 앞길을 밝힐 당 제8차 대회의 소집은 사회주의 위업을 승리의 다음 단계로 이행해나가려는 우리 당의 확고한 자신심의 표출인 동시에 영광스러운 조선노동당의 전투적 행로에서 커다란 의의를 가지는 특기할 정치적 사변으로 된다”라고 의미를 강조했다.

 

이어 통신은 “조선노동당 제8차 대회는 혁명 발전의 추이와 조성된 주·객관적 정세의 요구를 과학적으로 분석한 데 기초하여 당의 강화발전과 사회주의 건설에서 획기적인 도약을 일으키기 위한 새로운 투쟁노선과 전략 전술적 방침들을 토의 결정하게 된다”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통신은 대회에 제7기 당 중앙지도기관 성원들과 전 당의 각급 조직에서 선출된 대표자들이 참가했다고 전했다.

 

이날 대회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개회를 선언했으며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의 위임에 따라 김재룡 당 중앙위 부위원장이 대회 사회를 보았다.

 

통신은 당 대회에서 ▲당 중앙위원회 사업총화 ▲당 중앙검사위원회 사업총화 ▲당 규약 개정 ▲당 중앙지도기관 선거 등의 의제를 승인했으며 김정은 위원장이 당 중앙위원회 7기 사업총화 보고를 했다고 전했다.

 

대회 집행부로 김정은 위원장을 비롯해 최룡해·리병철·김덕훈·박봉주·박정천·김재룡·리일환·최휘·박태덕·김영철·최부일·김수길·태형철·오수용·김형준·허철만·박명순·조용원·김여정·김정관·정경택·김일철·임철웅·리룡남·김영환·박정남·양승호·리주오·동정호·고인호·김형식·최상건·오일정·김용수·리상원·리영길·김명길·강윤석 등이 선출됐다.

 

박용일 조선사회민주당 중앙위원회 위원장, 리명철 천도교청우당 중앙위원회 위원장, 박수철 반제민족민주전선 평양지부 대표가 주석단에 초대됐다.

 

대회 서기부로 신룡만·함룡철·서경남·김봉철·강종관·김정민·리형진 등이 선출됐다.

 

당 대회에는 제7기 당 중앙지도기관 성원 250명과 전 당의 각 조직에서 선출된 대표자 4천750명, 방청자 2천 명이 참석했다.

 

통신은 김정은 위원장이 첫째 의제로 당 중앙위 사업총화를 했다며 “대회는 계속된다”라고 전했다.

 

▲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개회사를 하고 있다.  

 

 

 

▲ 조선노동당 제8차 대회에는 제7기 당 중앙지도기관 성원 250명과 전 당의 각 조직에서 선출된 대표자 4천750명, 방청자 2천 명이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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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가 알고도 안 막은 45cm 틈…하청 노동자를 죽였다

“생산 라인 세우면 누가 책임지나” 위험 감수하며 작업하던 외주업체 직원 협착사...전형적인 ‘위험의 외주화’

홍민철·강석영 기자
발행 2021-01-05 18:28:20
수정 2021-01-06 08:0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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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자동차 생산 라인을 정비하던 외주업체 노동자가 압축 기계에 상반신이 끼여 목숨을 잃었다. 압착 사고 위험이 상존하는 ‘A급 위험작업’이었지만, ‘라인을 멈추면 손해가 막심하다’는 경제 논리 앞에 위험을 감수하던 50대 하청 노동자는 결국 지난 3일 세상을 떠났다.

사고는 어디서 발생했나

사고가 발생한 곳은 철판을 압축해 차체 부품을 만드는 프레스 공정이다. 넓은 철판을 필요한 모양으로 눌러 구부리고 필요 없는 부분은 잘라낸다. 잘린 철판 찌꺼기는 3~4m 아래에 있는 컨베이어벨트로 떨어진다. 철판 찌꺼기 크기는 다양하다. 손바닥만 한 철판이 있는가 하면 폭 5cm 길이 1m 이상 되는 대형 조각도 있다. ‘타당’ ‘우당탕’ 컨베이어벨트에 쉼없이 떨어지는 쇠붙이 소리에, 고함을 쳐도 바로 옆 사람과 대화하기 힘들다는 것이 현장 노동자들의 설명이다.

컨베이어벨트를 따라 이동한 철판 찌꺼기는 베일러머신이라 불리는 압축기에 들어간다. 압축기는 모인 철판을 블록 형태로 압착해 배출한다. 대형 압축기가 위에서 아래로 내려와 철판 찌꺼기 부피를 줄인다. 전면에는 압축기가 과도하게 내려오지 않도록 막는 원기둥 두개가 있다. 압축기와 원기동 사이에는 40~50cm가량의 틈이 있는데 이 틈에 완전히 압축되지 않은 철판 찌꺼기가 쌓이곤 한다. 고인은 이 찌꺼기를 제거하려다 압축기와 원기둥 사이에 몸이 끼이면서 사고를 당한 것으로 추정된다. 사고 현장을 처음 목격한 동료는 “압축기 스토퍼(원기둥) 옆에 고인이 쓰러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압축기 전면에 설치된 안전 철문. 문이 열리면 전원이 차단되면서 압축기가 멈춘다.
압축기 전면에 설치된 안전 철문. 문이 열리면 전원이 차단되면서 압축기가 멈춘다.ⓒ민중의소리
압축기 안전 문 뒷편 45cm 가량의 공간. 현대차 하청 노동자 사망 사고가 발생한 곳이다
압축기 안전 문 뒷편 45cm 가량의 공간. 현대차 하청 노동자 사망 사고가 발생한 곳이다ⓒ민중의소리
압축된 철판 찌꺼기들이 큐브 형태로 배출되고 있다.
압축된 철판 찌꺼기들이 큐브 형태로 배출되고 있다.ⓒ민중의소리

안전조치, 제대로 진행됐나

 

원청인 현대자동차도 위험한 작업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현대차가 외주업체에 발급한 ‘안전작업허가서’를 보면, 사고가 발생한 작업은 최고 위험 등급인 A등급이었다. 허가서엔 추락·누전 등과 함께 협착이 주요 위험요인이라고 명시됐다. 현대차가 작성한 ‘위험성평가표’에도 ‘보수·점검시 동력차단을 하지 않을 경우 협착·충돌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다. 평가표는 안전 대책으로 ‘동력을 차단하고 조작 스위치를 잠가야 한다(Lock out/tag out)’고 권고했으나 현장에선 지켜지지 않았다.

외주업체 관계자는 “동력을 차단한다는 말은 라인을 세운다는 뜻인데, 지금껏 단 한 번도 우리 작업 때문에 라인을 세운 적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1분 50초마다 차가 한 대씩 생산되는데, 우리가 보수한다고 라인을 20분 멈추면 그 손해를 누가 어떻게 감당하나. 라인 정지 요청은 엄두도 못 낼 일”이라고 토로했다. 손해를 우려해 인명 피해를 강요하는 전형적인 ‘위험의 외주화’다.

사고가 발생한 압축기계 앞에도 긴급 안전장치는 있었다. 수리를 위해 작업자가 진입하는 노란 철문에는 감지기가 달려 있다. 작업자가 문을 열면 전원이 자동으로 차단되면서 동작을 멈춘다. 혹시나 모를 압착 사고에 대비하기 위한 장치다. 하지만 장치는 작동하지 않았다. 전원이 차단되면 라인이 멈추고 손해가 발생한다는 사실을 노동자들은 알고 있었다.

노동자들은 안전장치가 달린 문으로 출입하지 못했다. 대신 문 옆에 난 45cm 틈 사이로 비집고 들어가 작업했다. 작업 내내 압축기는 쉴새 없이 오르내렸다. 위험을 알고 있었지만 라인을 정지시킬 수 있는 권한은 작업자도 외주업체에도 없었다. 죽음을 무릅쓰고 작업했다. 사고가 난 김모씨는 이 틈에서 작업 하다 상반신이 기계에 끼어 변을 당했다.

외주업체에선 안전 펜스로 틈을 막아야 한다고 여러차례 건의했다. 원청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외주업체 관계자는 “이번 사건이 개인 과실로 묻히면 안된다”고 강조했다.

경제적인 이유로 2인1조 작업이 지켜지지 않았다는 주장도 나왔다. 현대차 울산비정규직지회 관계자는 “2017년 외주화 이전에는 2인 1조로 했던 업무였는데, 외주화 되면서 비용 때문에 수칙이 지켜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금속노조는 “안전 의무를 지키지 않은 채 위험천만한 작업으로 노동자를 내몬 현대차의 살인행위”라고 비판했다.

금속노조가 공개한 현대자동차의 안전 작업허가서. 위험등급이 A등급이고 추락, 협착 등의 주요 위험요인이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금속노조가 공개한 현대자동차의 안전 작업허가서. 위험등급이 A등급이고 추락, 협착 등의 주요 위험요인이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제공 : 금속노조

작업은 왜 시작됐나

작업이 시작된 이유도 석연치 않다. ‘민중의소리’가 확보한 통화 녹음에 따르면 사고 당일 오후 12시40분께 외주업체 간부는 “안전쪽 중역들(현대자동차 울산공장소속 임원)이 작업 확인을 나온다고 하네, 그 전에 지저분한거 정리좀 해달라”고 지시한다. 작업자는 “어제 엄청 치워 놓았다”고 말했지만 관리자는 “다시 한 번 확인해보고, 사람들 오기 전에 정리 부탁한다”고 재차 강조한다. 지시를 받은 작업자들은 오후 1시경 현장으로 향했고, 30분 뒤 고인은 쓰러진 채 발견됐다. 현대차 비정규직지회 관계자는 “대대장 온다니 닦았던 곳 또 닦으려다 끔직한 사고가 발생한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차와 정규직 노동조합은 안전교육실시, 재해예방 전문 요원 배치, 관련 임원 징계 등 재발방지 대책에 합의했지만, 안전펜스 설치가 합의에 포함 됐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현대차그룹 정의선 회장은 지난 4일 신년사에서 “진심으로 깊은 애도를 표하며, 고인의 명복을 빈다”며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안전한 환경조성과 안전사고 예방에 총력을 기울이겠다”는 짤막한 입장을 내놨다.

홍민철·강석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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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이란 긴장 고조 와중에 한국 선박 이란 혁명수비대에 나포

외교부 "청해부대 즉각 출동...이란에 조기 억류 해제 요청 중"

아랍에미리트(UAE)로 향하던 한국 국적의 케미컬 운반선(석유 화학제품 운반선)이 호르무즈 해협 인근에서 이란의 혁명수비대에 의해 나포됐다. 정부는 사실을 확인하고 선박의 조기 억류 해제를 이란 측에 요청하고 있다고 밝혔다.

 

4일 외교부는 "이날 오후(현지 시각) 호르무즈 해협의 오만 인근 해역에서 항해 중이던 우리 국적 선박(케미컬 운반선) 1척이 이란 당국의 조사 요청에 따라 이란 해역으로 이동 중인 것으로 확인했다"고 밝혔다.

 

외교부에 따르면 해당 선박에는 20명의 선원이 탑승하고 있었다. 이 중 한국 국적 선원은 5명이며 나머지는 각각 미얀마 11명, 인도네시아 2명, 베트남 2명의 선원이 탑승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란 현지 언론에 따르면 이들은 이란 남부의 항구 도시인 반다르아바스에 구금된 것으로 전해졌다.

 

외교부는 "외교부와 주이란 대사관은 선박 억류 관련 상세 상황 파악과 함께 선원 안전을 확인하고 선박 조기 억류 해제를 요청 중"이라며 "현재 청해부대(최영함)가 사고 해역으로 이동 중이며 인근 해역을 항해 중인 우리 선박에 대해 안전조치를 취했다"고 전했다.


 

이와 관련 국방부는 "이란에 의한 우리 선박 억류 상황을 접수한 직후 청해부대를 즉각 호르무즈 해협 인근 해역으로 출동시켰다"며 "외교부, 해수부 등 유관부서 및 다국적군과 긴밀히 협조하여 대응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최영함은 5일 오전 작전 해상에 도착할 것으로 보인다.


 

▲ 한국 국적 케미컬 운반선이 4일(현지 시각) 호르무즈 해협 오만 인근 해역에서 이란 혁명수비대에 의해 나포됐다. ⓒ연합뉴스

앞서 이란 혁명수비대 측은 성명을 통해 이날 오전 10시경(현지 시각) 걸프해역(페르시아만)에서 한국 선박을 나포했다며, 해당 선박이 해양 환경 규제를 반복적으로 어긴 데에 따른 조치를 취한 것이라고 밝혔다.

 

혁명수비대는 "선박 나포는 호르무즈 주 검찰과 항만청의 요구에 의한 것이며 이번 사건은 사법 당국이 다루게 될 것"이라고 예고했다. 이들은 또 해당 선박에 7200톤의 화학 물질이 담겨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해당 선박의 선사인 디엠쉽핑(DM Shipping)은 선박과 혁명수비대가 접촉했던 해역은 공해상이었다면서, 소속 선박은 환경오염을 일으키지 않았다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양측의 주장이 엇갈리는 가운데 이번 선박 나포가 이란과 미국 간 군사적 긴장이 높아지는 상황 속에 발생함에 따라, 향후 사건 추이를 두고 긴장감이 높아질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최근 이란 내부에서는 미군의 공격으로 숨진 거셈 솔레이마니 전 쿠드스군(혁명수비대 정예군) 사령관의 1주기를 맞아 반미 분위기가 강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호세인 살라미 혁명수비대 총사령관은 지난 2일(현지 시각) 군에 강력하고 단호한 대응을 주문했으며 이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은 핵 추진 항공모함과 핵 잠수함 등을 페르시아만 인근에 배치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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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님, “적대를 청산하는 큰 뜻은 작은 일부터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요?”

21년 수형생활 장기수 오기태의 망향곡

  • 기자명 민병래 작가
  •  
  •  승인 2021.01.04 12:39
  •  
  •  댓글 0
    •  
  • <h4 class="subheading" style="box-sizing: inherit; margin: 0px 0px 1.875rem; padding: 0px 0px 0px 0.75rem; font-weight: bolder; text-rendering: optimizelegibility; line-height: 1.25; font-size: 1.25rem; letter-spacing: -0.075em; border-left: 3px solid rgb(174, 174, 174); word-break: normal; overflow-wrap: break-word;">21년 수형생활 장기수 오기태의 망향곡</h4>
 
 
 
▲ 오기태 선생

오기태는 잠을 설치다가 몸을 일으켰다. 새벽 2시, 사방이 깜깜하다. 동생 조상이는 어제 일이 고되었는지 이불을 저만치 밀어내고 곤하게 잔다. 오기태는 이불을 덮어주고 그의 손을 잡아보았다. 거칠고 팍팍하다.
 
오기태가 1930년생이고 조상이가 50년생이니 올해 90세와 70세, 두 사람은 북에서 남파되었다가 전주교도소에서 처음 만났다. 1989년 12월 24일 같이 출소했고 2000년부터는 전주 평화동 주공아파트에서 20년을 함께 살고 있으니 특별한 인연이다.
 
오기태는 오른쪽으로 굽은 허리를 일으켜 책상에 앉았다. 대통령에게 청원서를 쓰겠다고 마음 먹은 지 벌써 한 달. 눈은 컴컴하고 손마디는 힘이 없어 글씨는 엉망이었다. 컴퓨터를 들여 자판 연습을 해보다가 하루 만에 포기했다. 그리고 다시 볼펜을 잡고 여러 날 동안 썼다 지웠다를 반복했다. 오늘은 어떻게든 마무리 지을 참이다. 갑자기 새된 기침이 나온다. 그는 조상이의 잠을 깨우지 않으려고 소리를 낮추고 휴지를 입에 갔다 댔다. 그리고 첫 줄을 적었다.

 대통령님께 부탁드립니다. 제 나이 올해 구십입니다. 살 날이 얼마 안 남았습니다. 죽기 전에 북녘땅, 아내와 자식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게 해 주십시오.

오기태는 노동당 문화부의 소환을 받고 남파되었다. 1969년 7월 황해도 해주에서 달빛을 안고 내려와 전남 장흥의 수문리 해안가에 닿았다. 그날 밤은 야산에서 남해 바다 파도소리를 들으며 몸을 뉘였다. 다음 날 일찍, 전남대 출신의 조장 이봉로와 함께 기차를 타고 광주로 향했다. 그곳에서 두 달간 노동자와 학생들의 동향을 파악하는 것이 임무였다.
 
오기태는 광주 대인동 근처 여인숙에 숙소를 잡고 일당 잡부로 건설 현장에 나갔다. 노동자들과 담배를 나눠 피며 "내 고향은 신안군 임자도요"라고 통성명을 했고 국밥집에서 대포 잔을 기울이기도 했다. 일요일에는 이봉로 조장과 전남대 앞 서점에 들러 책도 사고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금세 다가온 9월 하순의 귀환 날, 오기태는 해가 졌을 때 장흥군 월암리 바닷가에서 땅굴을 팠다. 무전기를 켜고 접선을 시도하려는 참에 "동무, 마을에 가서 담배 한 갑 싸게 사 오겠소"하며 조장이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검은 바닷가에는 달빛을 실은 파도가 밀려왔다가 잔 물방울을 뿌려댔다. 사위는 물소리와 간혹 꾸룩대는 기러기 소리뿐이었다. 무전을 쳐야 할 시간이 넘었는데 조장의 발자국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오기태가 마을 쪽 어둠을 근심스레 바라볼 때 정적을 깨는 총성이 한 발, 곧이어 대여섯 발이 '드드드' 울렸다. 비명 소리와 고함 소리가 바닷가 마을을 뒤흔들었다. 오기태는 무전기를 집어 들고 땅굴에서 솟구쳐 나왔다. 지금 가까운 보성역으로 서둘러 가면 경전선 새벽 첫차를 탈 수 있다. 만일에 대비했던 계획이 현실이 될 줄이야...
 
오기태가 가까스로 순천행 기차에 올랐을 때에서야 역전 마당에 호루라기가 울리고 경찰이 경계망을 펼쳤다. 그는 순천에서 기차를 갈아타고 2차 접선지인 부산 형제 바위로 갔다. 여기서도 접선에 실패한 그는 3차 장소인 광주로 되돌아왔다.
 
예전 여인숙에 행장을 풀었을 때, 그는 월암리 바닷가에서부터 일주일이나 옷을 갈아입지 못해 상거지 꼴이었다. 몇 시간 뒤 나타난 경찰 서너 명이 그를 에워쌌고 그날로 그는 서울 대방동 미군첩보부대로 이송되었다. 총상을 입고 치료받던 이봉로 조장도 거기서 다시 만났다. 그때는 몰랐다. 이 날이 길고 긴 징역생활의 첫째 날이 될 줄은...

▲ 오기태 선생
▲ 오기태 선생

오기태는 눈을 비비며 다음 문장을 썼다.

 광주교도소에 수감되어 89년 12월 24일 전주교도소에서 출소할 때까지 21년간 옥살이를 했습니다. 일본놈 앞잡이처럼 민족을 팔아먹지 않았습니다. 살인을 한 흉악범도 아닙니다. 나는 분단된 땅이 통일되어야 한다는 신념으로 내려왔을 뿐입니다. 남쪽에 와서 노동자와 학생들을 만나 조직사업을 했으나 불과 2개월, 그저 이름 석자 주고 받고 친분을 나눈 정도입니다. 과연 20년 넘게 징역을 살아야 할 정도로 큰 잘못을 한 건가요? 설령 그렇다하더라도 충분한 댓가를 치루지 않았나요? 

어렵게 한 자 한 자 써가던 오기태의 어깨가 들썩거렸다. 그는 2005년 급성폐렴에 걸려 중환자실에서 두 달이나 있었다. 가까스로 회복이 되었지만 그 후 목소리는 새되졌고 마른 기침을 달고 살았다. 창문에는 한밤중의 한기가 달라붙어 성에를 수놓았고 그 위로 달빛이 실눈처럼 쌓이고 있었다. 오기태는 기침을 억누르고 다시 펜을 들었다.

 2000년 9월 장기수들이 송환될 때, 이 사람은 ‘전향’을 했다고 제외되었습니다. 정녕 그 실상을 모르는 겁니까? 전주교도소에서 있을 때 간수들은 한 겨울에 열두 명을 한 평도 안 되는 방에 몰아넣고 찬물을 끼얹었습니다. 얼음칼이 옆구리를 찌르고 등 뒤로는 무수한 바늘이 파고드는 듯했습니다. 입이 쩍쩍 벌어지고 우리는 “살려달라”고 부르짖었습니다. 돌아온 건 비웃음과 찬물세례, 구두발자국이었습니다. 이것만이 아닙니다. 내 허벅지에 전선줄이 감겼고 땅바닥에 내평개쳐진 물고기 마냥 살점이 퍼덕거렸습니다. 전주교도소의 전향은 이런 고문에 따라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미 수없이 증언한 이야기들이고 나는 2001년 내 양심에 따라 ‘강제전향무효’ 선언을 한 바 있습니다.

오기태는 다시 옆구리를 쥐었다. 급성폐렴으로 사경을 헤맨 지 얼마 안되어 2008년 대장암이 발견되었다. 나이 팔순이 가까워 얻은 큰 병이었다. 가까스로 치료는 되었지만 그 후로 설사와 변비가 되풀이 되었다. 지난 해까지만 해도 동네 학산을 오르내렸건만, 올해는 설사기가 심해져 이마저 그만두었다. 새벽이면 통증이 찾아오는 횟수가 늘었다. 오기태는 배를 어루만지며 잠시 책상에 얼굴을 묻었다. 창가에는 여전히 어둠이 웅크리고 새벽 햇살을 가로막았다.  

오기태의 집은 9평 임대주택, 방·거실·부엌이 모두 하나다. 부엌 옆에는 손마디 같은 복도와 손뼘 같은 화장실이 전부다. 그나마 요런 임대주택이라도 있었기에 오기태와 조상이는 숨 쉬고 살았다.

89년 출소 후 오기태는 신원보증을 섰던 전주 남문화방 사장 밑에서 먹고 자며 일을 했다. 교도소 목공반에 있었던 그는 표구와 액자 일을 잘했다. 주변에서 “어떻게 저런 사람이 들어왔냐”“할 정도로 성실하게 일을 했고 상점과 창고 등 열쇠 다섯 개를 도맡아서 관리했다.

하지만 IMF로 남문화방은 문을 닫았고 오기태는 성공회에서 운영하는 노숙인 쉼터 ‘나눔의 집’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여기서 살면서 그는 영세민들과 노숙자를 위해서 밥 짓는 일을 하고 상담 일을 맡았다. 어떤 신용불량자는 오기태에게 ”회장님 저 100만 원만 빌려주세요”라고 손을 벌렸다. 주방 아주머니도 “삼촌 30만 원만 꿔주세요”하고 도움을 요청했다. 오기태는 쉼터에서 받은 월급으로 이런 부탁들을 외면하지 않았다.

당시 전주에는 열 명 정도의 출소장기수들이 있었다. 오기태가 있는 쉼터는 이들에게 사랑방이었다. 와서 점심도 먹고, 안부도 물을 수 있는...그 무렵, 다행히 임대아파트가 배정되었고 쉼터를 나와 평화동으로 오게 된 것이다. 출소 후 두 번이나 결혼사기를 당했던 조상이도 오기태의 임대아파트로 들어왔고 그때부터 두 장기수의 동거가 시작되었다. 다행히 조상이가 교도소에서 건축 1급 메달을 딸 정도로 실력이 있어 생활비를 벌 수 있었다. 임대아파트 관리비래야 한 달 5만 원 안쪽이었고 두 노인네 쓰임새는 담배 한 갑 정도였다. 

▲ 오기태 선생
▲ 오기태 선생

오기태는 책상에 묻었던 얼굴을 들고 다시 볼펜을 잡았다. 

 저는 89년 12월 24일 출소해서 제일 먼저 고향 임자도엘 갔습니다. 아버지는 총살당하고 형님은 조계산 어느 골짜기에선가 숨졌다고 누이 동생이 일러주더군요. 고맙게도 임자도 초등학교 동창들이 아버지 장례를 치러주었습니다. 저는 선산에 가서 아버님께 술잔을 올리고 용서를 빌었습니다. 자식들 때문에 총 맞아 돌아가신 그 한이 눈을 감으시고서라도 풀렸을까요? 
아버님 눈에 임자도 푸른 물이 핏빛으로 일렁거렸을 것이고 바다 갈매기는 시체 위를 떠도는 독수리 떼처럼 보였을 겁니다. 분단은 우리 가족에게 큰 한과 아픔을 주었습니다. 상처를 삭히기 쉽지 않았습니다. 

오기태는 1950년 전쟁이 일어나면서 빨치산이었던 형의 권유로 인민군에 입대했다. 목포에서 남해여단에 편입되어 낙동간 전선으로 가려던 차에 맥아더가 인천에 상륙했다. 그는 여단을 따라 목포, 장흥, 지리산, 오대산을 거쳐 강원도 양양으로 후퇴했다. 여기서 인민군 2군단 9사단 32연대로 소속이 바뀌었다. 이때가 10월 말이었다. 당시 32연대는 국군 대대장 출신으로 대대병력 전체를 데리고 월북한 강태무였다. 32연대의 주요임무는 금강산 일대에서 미군의 남쪽 퇴로를 막는 것이었다. 

50년 10월 27일, 원산에 상륙한 미 제1해병사단이 개마고원의 장진호까지 전진했다. 10월 25일 참전한 중국인민지원군 제 9병단의 3개 군단이 장진호 일대에 집결해서 이들에 대한 포위 공격에 들어가자 미군은 수세에 처하게 되었다. 전황은 압록강 방면도 마찬가지여서 11월 30일 맥아더는 모든 전선에서 철수할 것을 명령했다. 오기태가 속한 32연대는 이들의 퇴각 길목을 막으며 원산으로 진공했다. 원산항이 막히자 미군은 흥남항을 택해 12월 15일부터 ‘흥남 철수’를 시작했다. 

오기태는 참전 후 이곳에서 처음으로 전투를 치렀다. 51년 여름에는 장티푸스에 걸려 큰 고생을 했다. 고열에 시달리며 6개월간 생사를 넘나들었다. 어렵게 회복한 그는 전방에 있을 때 노동당에 화선입당을 했다. 1953년 7월 27일 그는 강원도 철원군 오성산에서 정전협정을 맞았다. 이후 4년간 복무를 더하고 1957년 중사로 제대해 함경북도 온성에 있는 탄광으로 가게 되었다. 당시 북은 1차 5개년계획(1957~1961)에 따라 중공업 부문에 청년들을 집중배치했었다. 

그는 온성 탄광에서 근무한 지 얼마 안 되어 탄광지도원으로 승진했다. 1959년 초에는 청진 공산대학에 입학해 당의 정강 정책, 항일유격투쟁사들을 배웠다. 대학을 졸업하고는 온성군 인민위원회 상업 검열국으로 배치받아 상점들의 부정행위들을 단속했다. 그 후 국토청 토지관리지도위원이 되어 온성군 내 토지, 산림 실태를 조사했다. 

이래저래 온성에서 일을 하던 오기태는 1959년, 군수방직공장에 다니던 김외식을 만나 혼례를 치렀다. 3남매를 낳고 막내가 아내 뱃속에 있을 때 문화부의 소환을 받았다. 그 후 6개월간 야간행군, 태권도, 무전기 사용법을 훈련받고 이봉로 조장과 함께 내려 왔다 귀환 길에 체포된 것이다.

▲ 오기태 선생
▲ 오기태 선생

새벽 4시에 예약 취사를 한 전기밥솥에서 쉬쉬 김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새벽일 나가는 조상이의 아침상을 차려줘야 한다. 오기태는 잠시 글쓰기를 멈추고 일어났다. 청국장을 끓이고 겨울 시금치를 무쳤다. 후라이팬을 달궈 꽁치도 올렸다. 맛나게 먹이고 싶은데 나이가 들어선가 간을 맞추는 게 힘들어져 속상할 때가 많다. 요즘 들어 그를 보면 안쓰럽다. 칠십이 넘은 나인데 공사장 일을 나가고 전주에서 대전 유성까지 그 먼 길을 다니니... 오기태는 그를 깨우려다 조금 더 자게 놔뒀다. 밥상 준비를 얼추 마친 그는 책상에 앉아 다시 펜을 잡았다.

 대통령님, 2018년 평양 능라동 경기장에서 하셨던 감동적인 연설을 기억합니다. 온 겨레가 가슴 벅차게 들었습니다. 저는 누구보다 더 감격해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특히 “우리는 5000년을 함께 살고 70년을 헤어져 살았습니다. 나는 오늘 이 자리에서 지난 70년 적대를 완전히 청산하고 다시 하나가 되기 위한 평화의 큰 걸음을 내딛자고 제안합니다.”라는 구절이 마음에 사무치게 와 닿았습니다. 

오기태는 ‘닿았습니다’에 구두점을 찍고 다시 쿨럭쿨럭 기침을 했다. 사실 오기태는 1차 송환이 좌절되자 혼자 온성으로 넘어갈 수 있는 길을 찾아 나섰다. 2004년부터 여러 번 연변 조선족 자치구로 넘어가서 온성군이 마주 보이는 도문(圖們)시 쪽으로 이동했다. 어찌어찌 중국 공안과도 선을 연결해 가족들의 생사를 알아봐달라고 부탁했다. 그런데 신통한 결과가 없자 그는 두만강을 그냥 건너가려 했다. 강만 건너면 바로 온성이고 그는 10여 년 이상 그곳에 근무했기에 배를 타지 않고도 건너갈 수 있는 길목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오기태는 발걸음을 거두었다. 그는 판문점을 통해서 동료 장기수들과 함께 당당히 돌아가고 싶었다. 그게 올바른 길이고 다른 장기수들에 대한 도리라고 여겨졌다. 포기하고 연변에서 전주로 돌아오는 길 내내 눈물이 안개비처럼 고이고 가슴에는 검은 비가 흘렀다. 그러면서 늙은 몸은 오른 쪽으로 구부러지기 시작했다. 
 
오기태의 기침이 더욱 심해지더니 오장육부를 게워낼 듯 소리마저 커졌다. 휴지를 급히 뜯어 입을 막았는데도 피가 한 움큼 쏟아진다. 기침을 할 때마다 오줌이 조금씩 새어 나와 속옷 마저 축축하다. 오기태는 옷을 갈아입고 다시 책상에 앉았다. 이제 몇 줄만 더 쓰면 된다. 얼른 마무리하고 새벽밥 먹여서 조상이를 출근시켜야 한다. 

쿡 쿡 찌르는 배를 움켜잡고 기침을 억누르며 다시 볼펜을 꽉 쥐었다. 

 저는 부탁드립니다. 적대를 청산하는 큰 뜻은 작은 일부터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요? 2차 송환을 간절히 바라는 어느덧 구순을 넘나드는 노인들이 있습니다. 이제는 하나둘 죽어가고 있습니다. 지난 7월에도 강담선생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두화 선생을 비롯 여러 동지들이 요양원 신세를 지고 있습니다. 올해 구십 살인 나도 오늘, 내일을 알 수 없습니다. 

 2차 송환을 바라는 우리들을 보내주는 일은 평화를 위한 중요한 걸음입니다. 615선언을 실천하는 길입니다. 미국놈들 눈치 볼 필요도 없는 일입니다. 할 수 있는 일, 대통령님이 결심하면 할 수 있는 일조차 늦추면 안됩니다. 우리들에게는 이제 더 이상 시간이 없습니다. 

창문으로 슬그머니 어둠을 뚫고 달빛이 들어왔다. 조각같은 그 빛은 오기태가 벽에 붙여놓은 두 장의 사진을 비췄다. 한 장은 2000년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위원장이 평양순안공항에서 악수하는 장면이고 나머지 한 장은 2018년 백두산 천지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위원장이 두 손을 잡고 하늘로 치켜올린 장면이다. 

오기태는 두 사진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기침이 계속되었다. 고개가 자꾸 떨궈지고 눈마저  감긴다. 일어나 세수를 하고 나니 몸이 바르르 떨렸다. 그는 쓰러질 듯 다시 책상에 앉았다.  감기는 눈을 치뜨고 떨궈지는 고개를 가누며 마지막 줄을 써내려갔다. 

 죽기 전에 아내 김외숙과 춘자, 정자, 성일 그리고 이름조차 모르는 막내를 죽기 전에. 죽기 전에...

마지막 구절을 남겨두고 그의 손에서 볼펜이 툭 떨어졌다. 동시에 고개가 푹 책상으로 떨궈졌다. 기침과 숨이 가느다랗게 몇 번 이어지더니 이내 잦아들었다. 오기태의 눈은 어느새 감겨버렸다. 시계는 3시 56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 오기태 선생 추도식 [사진 : 통일뉴스]
▲ 오기태 선생 추도식 [사진 : 통일뉴스]

<못다한 이야기> 

⓵ 오기태선생은 2020년 12월 4일 필자에게 생애를 들려주었습니다. 그날 힘주어 문대통령에게 청원서를 올릴 것이고 그 요지를 설명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청원서를 올렸는데도 2021년까지 송환이 안 되면 연변을 통해 온성으로 가서, 죽기 전에 가족을 만나겠다고 의지를 밝혔습니다. 그는 생애 구술 삼일 후인 새벽 4시에 숨졌습니다. 

⓶ 이 글에서 흥남철수 부분은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전쟁」(현실문화 간)을 참고했습니다. 

③ 아래 추모시는 정충식_전농 전북도연맹 정책위원장이 오기태 선생을 추모하며 남긴 시다. 

오기태 선생님을 추모하며

새벽 4시에
당신은 
북녘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농사짓던 땅
아이들의 살 내음
부인이 초가 살 밖에서 부르던 소리 담아오면
잠 못 이루고 일어났지
간수가 휘두르면 살덩이 떨어져 나오던 매질
의지를 꺾으려 육신을 가두었던 
독방의 쇠창살도 막지 못했지

버스 타면 한나절
기차 타면 반나절
갈 수만 있다면 기어서라도 갔을 
그러나 기어이 당신의 걸음으로 
녹슨 철조망을 걷어내고 
의연히 걸어가고자 했던
해가 갈수록 사무치게 잠을 깨우던 그 시간

당신의 몸이 
북녘에 있을 때도 
그리움은 남녘의 바다 고향
회귀하는 민어를 품은 임자도 너른 물결따라 
뜨겁게 심장이 뛰었으니 
처자식을 뒤로 하고 내려왔었을 당신
당신이 사랑했던 조국은
당신에게 얼마나 무거운 짐을 안겼는지
이제
누구에게 물어보고 대답하지 못해도 돌아보리다

남아있는 자들이
슬픔을 머금고 
모여
오늘 이제야 북녘으로 
마지막 통일의 배 띄우네

철새의 날갯짓이 부러워 한참이나 눈을 떼지 못했을
당신의 숨결을 싣고
얼어붙은 통일광장의 매운 먼지마저 삭삭 털어 담아
미련하도록 깊고 컸던 조국 사랑의 의지까지 
남김없이

영원히 안기고 싶었던
새벽 한기마저 따습게 데우는 아궁이 연기 피어오르는
꿈에 그리던 당신의 땅으로 훨훨
세상에 나온 것은 천명이었지만
기꺼이 고난의 운명을 선택하여
깃발처럼 펄럭이며
살았던 시대마저 태우고

님이여

당신이 떠났던 자리 뒤로
한겨울 추위를 물리며 꽃이 필 것이외다
통일의 꽃
해방의 꽃

눈물 대신에
뜨거운 심장으로 오늘을 사는 사람마다
다시는 마르거나 시들지 않을 꽃이 되어
남녘의 한라부터 북녘 백두산 골짜기까지
해마다 계절 구분 없이 
되살아나 필 것이외다
당신의 걸음마다 뿌린
씨앗이 
뿌리를 뻗고 땅의 숨통을 틔웠으니 
본디 
하나였던 반도
하나의 하늘 아래서
당신이
부르면 달려갈
민중의 땅에서 영영 필 것이외다

                                                                                                                     

민병래 작가

1999년에 광고대행사 ‘황소와 나비’를 창업하여 현재까지 운영중이다. 1998년부터 문해교실과 다문화도서관을 운영하는 시민단체 ‘푸른’의 이사를 맡고 있고 2000년에 <호암미술관에 있는 아름다운 우리 문화재>(파란자전거 출판)을 썼다. 2015년부터 군함도의 작가 이재갑 사진가와 함께 생각하는 사진모임 '포피엔스'에서 활동하고 있고 2017년 공동전시 ‘마포, 사진을 품다’에 참여한 바 있다. '오마이뉴스에 사진과 수필로 쓰는 만인보' <사수만보>를 2019년부터 연재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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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여정은 2인자인가, 후계자인가

[역사로 보는 오늘의 이슈] 북한의 후계자 세습 공식에 대입해 보면

21.01.04 21:57l최종 업데이트 21.01.04 21:57l
김정은 국무위원장 방명록 작성 돕는 김여정 2018 남북정상회담이 열린 27일 오전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지켜보는 가운데,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방명록을 작성하고 있다. 김 위원장 동생인 김여정 부부장이 준비해온 펜을 전달하고 있다.
▲ 김정은 국무위원장 방명록 작성 돕는 김여정 2018년 4월 27일 2018 남북정상회 당시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지켜보는 가운데,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방명록을 작성하고 있는 모습. 김 위원장 동생인 김여정 부부장이 준비해온 펜을 전달하고 있다.
ⓒ 한국공동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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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여정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후계자가 될 가능성이 연이어 보도되고 있다. 1월 초로 예정돼 있는 노동당 제8차 당대회에서 김여정의 입지 변화가 생기지 않을까 하는 관측도 제기된다. 

김여정은 노동당 제1부부장과 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을 훨씬 뛰어넘는 위치에 이미 도달했다. 그가 행사하는 권한이 그의 실질적 위상을 증명하고 있다.

지난해 3월 3일에는 김여정 명의의 대남 담화가 나왔다. 담화에서 그는 "불에 놀라면 부지깽이만 보아도 놀란다고 하였다"며 "어제 진행된 인민군 전선 포병들의 화력전투훈련에 대한 남조선 청와대의 반응이 그렇다"고 한 뒤 '나는'이란 표현을 사용했다.  "나는 남측도 합동군사연습을 꽤 즐기는 편으로 알고 있으며 첨단 군사장비를 사오는데도 열을 올리는 등 꼴보기 싫은 놀음은 다 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같은 달 22일엔 김여정 명의로 대미 담화도 발표됐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에게 친서를 보내 코로나19 방역과 관련된 협력 의사를 밝혔다는 점 등을 언급한 뒤 그는 '개인적인 생각'을 거론했다.

그는 "개인적인 생각을 말한다면 두 수뇌들 사이의 친서가 아니라 두 나라 사이에 력학적으로나 도덕적으로 평형이 유지되고 공정성이 보장되여야 두 나라 관계와 그를 위한 대화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식 담화에 '나는' '개인적인 생각을 말한다면'
 
 북측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이 10일 오후 강원도 강릉 관동하키센터에서 2018 평창동계올림픽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 대 스위스 관전을 마치고 자리를 떠나고 있다.
▲  북측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 사진은 2018년 2월 10일 오후 강원도 강릉 관동하키센터에서 2018 평창동계올림픽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 대 스위스 관전을 마치고 자리를 떠나고 있는 모습.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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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자 1인의 권위가 절대적인 북한 체제에서, 김여정은 '나는' '개인적인 생각을 말한다면'과 같은 표현을 공식 문건에 사용했다. 이는 김정은의 신임이 매우 두터움을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의 지위가 김정은으로부터 어느 정도 독립돼 있음을 반영하는 것일 수도 있다.

최고 권력이 동일 혈통에서 2대나 3대째 승계되면, 그 가문은 남다른 정치적·사회적 지위를 갖게 된다. 이런 경우에는 공식적인 정권 핵심부와 더불어 지도자의 가족이나 친인척이 권력 분배에 간여할 여지가 넓어진다. 그래서 김일성 가문 사람들이 김정은의 건강이나 자녀 나이 등을 고려해 김여정에게도 힘을 실어준 결과로 '나는' '개인적인 생각' 같은 표현이 나왔을 가능성도 있다.

김여정은 김정은과의 공식 동행을 통해서도 위상을 드러낸다. 2019년 8월에는 초대형 방사포 시험발사 현장에서 김정은을 수행했고, 2020년 3월에는 전술유도무기 시범사격 현장에서 김정은을 수행했다. 정치국 후보위원이나 노동당 제1부부장 같은 공식 직함과 관계없이 이미 2인자 지위를 확보했음을 보여주는 징표다.

그런데 그의 2인자 지위가 곧바로 후계자 지위로 연결되는 건 아니다. 2인자에 더해 후계자 지위까지 확보했는지를 판단할 때는 두 가지 선례를 참고할 만하다.

그동안 북한이 후계자를 띄운 방식

북한은 세습이 사실상 두 번이나 일어났지만 '공식적'으로는 세습이 용인되지 않는 국가다. 북한 헌법과 노동당 규약 내에서 김일성·김정일이 특별한 위상을 차지한 것은 사실이지만, 북한은 공식적으로 인민공화국의 국체를 띠고 있다. 2019년 8월 개정된 북한 헌법 제4조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주권은 로동자, 농민, 군인, 지식인을 비롯한 근로인민에게 있다"고 선언했다.

그래서 지금까지 일어난 두 차례 권력 승계는 그런 구도를 반영했다. '법적으로 세습 불허, 사실상 세습 허용'이라는 이 구도에 맞게 김일성의 권력이 김정일에게 승계되고 김정일의 권력이 김정은에게 승계됐다.

세습이 법적으로 허용되는 국가에서는 후계자에게 태자나 세자 같은 지위를 부여한다. 이런 지위를 받은 후계자들은 국정에 개입하지 않고 공부나 자기수양에만 전념해도 된다. 이런 유형의 후계자들은 실질적 권력을 행사하지 않는 경우가 잦다. 세습이 인정되는 국가에서는 그렇게 하고도 후계자 지위를 안정시킬 수 있다.

하지만, 북한은 그런 방법으로는 후계자 지위를 안정시키기 힘들다. '내 후계자로 인정한다'는 지도자의 언명만으로는 불충분하다. 법적인 후계자 지위가 없기 때문에, 그런 언명만 갖고는 지도자의 사후에 후계자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

그래서 북한이 그동안 사용해온 방식은 후계자에게 실질적 국가권력의 상당부분이 넘어갔음을 명시적으로 보여주는 것이었다. 누구도 되돌리기 힘들 정도로 후계자의 양 어깨에 실질적 권력을 얹어주는 방식을 사용했다.

남한에서 박정희 유신체제가 등장한 1972년 4사분기에 북한에서는 김일성 유일체제가 확립됐다. 그런 뒤에 북에서는 김정일을 후계자로 만드는 작업이 전개됐다. 1972년 10월에는 김정일이 노동당 중앙위원이 되고 1973년 7월에는 당 중앙위원회 부장이 됐다. 같은 해 9월엔 중앙위원회 비서국 비서가 됐다. 그리고 1974년 2월 중앙위원회 정치위원이 되면서 '김심'이 김정일에게 있음이 확인됐다.

하지만 그것은 내부적인 후계자 공인에 그쳤다. 북한은 그후 6년간 김정일의 존재를 국제적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그때문에 1974년 11월 남한에서는 도쿄 국제의원연맹(IPU) 총회에 김정일이 참석했다는 오보까지 나왔다. 1974년 11월 18일 치 <경향신문> 기사 '북괴 김정일 동경에'는 김정일이 이종혁이란 가명으로 총회에 참석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기사 사진 속의 이종혁은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낸 외교관 리종혁과 비슷했다. 리종혁이 IPU 총회에 참석했을 가능성이 높은데도, 당시에는 김정일의 얼굴이 알려지지 않아 오보가 나왔다.

북이 김정일 후계 작업을 내부적으로뿐 아니라 대외적으로도 명시한 시점은 1980년 10월 제6차 당대회 때였다. 김정일의 얼굴이 남한과 국제사회에 알려진 것은 이때부터다. 이 해에 김정일은 묵직한 포스트를 받았다. 그는 노동당 정치국 상무위원, 노동당 비서국 비서, 노동당 군사위원회 군사위원이었다.

이종석 통일부장관이 쓴 <북한의 역사 2>는 "조선노동당 총비서인 수령 김일성을 제외하고는 유일하게 정치국·비서국·군사위원회라는 당내 3대 권력기구에 모두 선출된 것"이라며 "당시 김정일의 당 중앙위원회 공식 서열은 김일성·김일·오진우에 이은 4위였지만, 실질적으로는 그가 2인자임이 확실했다"라고 짚었다.

1974년에는 정치위원에 임명되면서 '김심'의 향방이 확인됐고, 1980년에는 노동당 3대 기구 지도부에 진입함에 따라 국가권력의 상당부분이 김정일에게 넘어갔다는 점이 확인됐다. 김정일이 군사위원 직까지 차지하면서 그의 후계자 지위는 국내외적으로 공고해졌다.

국가권력을 넘기는 방식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17일 오전 8시30분 과로로 열차에서 사망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9일 보도했다. 사진은 지난 9월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한 노농적위대 열병식 모습. 김 위원장과 김정은이 열병식을 지켜보고 있다. 2011.12.19
▲  2011년 9월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한 노농적위대 열병식 모습. 김정일-김정은 부자가 열병식을 지켜보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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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이 세상을 떠나기 2년 전인 2009년부터 김정은 후계 작업이 진행될 때도 유사 현상이 나타났다. 그해 1월 후계자로 지명된 김정은은 2010년 9월 인민군 대장과 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이 되면서 명확한 후계자 지위에 올랐다. 군사권을 비롯한 국가권력 상당부분을 김정은에게 넘기는 방법으로 지위를 명백히 했던 것이다.

1980년에 김정일이 차지한 포스트보다 2010년에 김정은이 차지한 포스트가 훨씬 묵직했던 것은 상황의 긴급성이 각기 달랐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1980년의 김일성 건강과 2010년의 김정일 건강이 확연히 달랐다는 점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

이 같은 두 가지 선례는 김정은의 후계자를 공식화할 때도 되풀이 될 수 있다. 김정은의 권력이 새로운 인물에게 넘어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인사 조치가 그 신호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현재의 김여정은 2인자 지위는 분명히 확보했지만, 1980년 김정일이나 2010년 김정은에는 아직 근접하지 못했다. 1974년 김정일에도 접근했다고 보기 힘들다. 국가권력의 상당부분이 김여정에게 넘어가고 있다는 증표는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그래서 그의 현재 지위는 2인자일 뿐, 후계자는 아니다. 

현재는 2인자일 뿐
 
김여정, 김일성 사망 25주기 중앙추모대회서 주석단 착석 조선중앙TV는 8일 평양체육관에서 이날 열린 김일성 주석 사망 25주기 중앙추모대회를 녹화중계했다. 사진은 중앙TV가 공개한 것으로 김여정 당 제1부부장(가운데)이 리수용 부위원장(왼쪽), 최휘 부위원장(오른쪽)과 함께 주석단에 앉아있다.
▲  2019년 7월 8일 조선중앙TV가 방영한 김일성 주석 사망 25주기 중앙추모대회 당시 모습. 김여정 당 제1부부장(가운데)이 리수용 부위원장(왼쪽), 최휘 부위원장(오른쪽)과 함께 주석단에 앉아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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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후 김여정이 2인자에 이어 후계자 지위에 도달할 경우에도, 영속적인 지위일지 아니면 한시적인 지위일지를 따져볼 필요가 있다. 이와 관련해서도 선례들이 있기 때문이다.

1974년에 김정일의 후계자 지위가 내부적으로 확정되기 직전까지는, 김일성 동생인 김영주가 후계자가 될지 모른다는 관측이 많았다. 1974년 2월 16일 치 <동아일보> 기사 '김일성 후계로 부각'은 김영주가 부총리에 임명된 사실을 보도하면서 "김일성이 실제(實弟)인 김영주를 이 자리에 앉힌 것은 김영주에게 노동당과 행정부의 실권을 모두 장악시켜 그의 후계자로 삼으려는 저의를 드러낸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렇게까지 주목을 받았던 김영주는 그해에 김정일이 후계자로 내정되면서 자연스럽게 2선으로 밀려났다.

김정일 집권기에는 동생 김경희가 한때 주목을 받았다. 김정일이 "김경희는 곧 나이고, 김경희의 말은 곧 나의 말이다"라고 발언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졌을 정도다. 하지만 김경희의 지위는 노동당 경공업부장 이상으로 올라가지 못했다.

김일성과 김정일이 자기 자녀에게 권력을 넘기기 전에 형제들에게 힘을 실어준 적이 있었다는 선례가 김정은-김여정 관계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향후 김여정이 후계자가 된다 해도, 김정은이 살아 있는 한 한시적인 것이 될 가능성이 있다. 

김정은 정권 하에서 김여정의 존재를 더욱 더 부각시키는 요인 중 하나는 김정은의 자녀가 아직 장성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따라서 자녀가 장성하게 되면 김여정의 위상에 변화가 일어날 가능성이 생길 수도 있다.

설령 김여정이 후계자가 된다 해도 그가 피델 카스트로의 동생인 라울 카스트로 전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처럼 될지 아니면, 일시적인 후계자로 그칠지를 판단해야 한다. 한시적인 후계자에 그친다면, 한국의 국무총리나 미국의 부통령처럼 최고지도자의 유고 및 궐위에 대비하는 대타일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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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신] “이낙연 대표가 올 때까지 기다린다”... 10시간째 면담 요청 중

김영란 기자 | 기사입력 2021/01/04 [2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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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들과 대학생들이 민주당 중앙당사민주당 경기도당사송갑석 민주당 광주시당 위원장 사무실민주당 부산시당사를 찾아 윤석열 탄핵과 이명박박근혜 사면 완전 철회를 요구했다

 

먼저 광화문촛불연대 회원들은 4일 이낙연 민주당 대표와 면담하기 위해 중앙당사를 찾았다.

 

하지만 이 대표는 면담에 응하고 있지 않다.

 

이 대표를 만나러 간 광화문촛불연대 회원들은 면담이 성사될 때까지 당사에 있겠다는 입장이다면담을 요청한 지 벌써 10시간이 다 되고 있다.

 

▲ 이낙연 대표가 올때까지 민주당사에 있겠다는 광화문촛불연대 회원들, 유튜브로 면담요청 상황이 생중계되고 있다. [사진출처-주권방송 생중계 화면 갈무리]  

 

 

이 대표의 이명박·박근혜 사면론에 대해 국민은 촛불 혁명의 배신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이들의 면담 요청 상황은 유튜브 생중계로 시시각각 알려지고 있다시민들은 유튜브 대화창을 통해 이들의 투쟁을 응원하고 있다.

 

이 대표가 면담에 응하지 않자많은 시민이 민주당에 항의 전화를 하고 있다.

 

광화문촛불연대 회원들은 민주당에 시민들의 항의가 빗발치자 뒤늦게 식사가 반입되었고방한 용품이 제공되었다고 알렸다. 

 

▲ 민주당 경기도당 사무실을 찾아 면담 후에 “윤석열 탄핵과 이명박, 박근혜 사면 완전 철회”요구서를 제출하는 최승재 경기주권연대 대표   © 김영란 기자

 

경기주권연대와 경인대진연도 이날 오후 1시 민주당 경기도당사를 찾아 면담을 했다.

 

민주당 경기도당 사무처장이 경기주권연대와 경인대진연 회원들과 면담을 했다.

 

이들은 민주당에 적폐 청산과 검찰개혁의 최대 걸림돌, 윤석열 검찰총장 탄핵에 앞장설 것 이명박· 박근혜 사면논의 완전히 철회할 것 적폐 청산에 앞장설 것을 요구했다.

 

이에 민주당 경기도당 사무처장은 국민적 분노를 알고 있다며 경기도당 위원장과 중앙당에 의견을 전달하겠다고 밝혔다.

 

▲ 민주당 광주광역시당 사무처장과 면담하는 광주전남주권연대, 광전대진연 회원  © 김영란 기자

 

▲ 면담 후에 기자회견을 하는 광전주권연대와 광전대진연 회원들  © 김영란 기자

 

광주전남주권연대와 광전대진연 회원은 송갑석 민주당 광주광역시당 위원장 사무실을 찾아 면담을 했다.

 

민주당 광주광역시당 사무처장은 이 대표의 사면론 발언에 대해 당황스럽다고 밝혔다또한 그는 윤석열 검찰총장 탄핵에 대해서 공감한다면서도 구체적인 답변은 메일로 주겠다고 답했다.

 

면담을 마치고 나온 광주전남주권연대광전대진연 회원은 더불어민주당은 국민의 염원인 검찰개혁과 적폐 청산을 완수하는 사명을 다하고 가장 우선으로 개혁의 걸림돌인 윤석열 검찰총장을 파면하는데 나서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 부경주권연대, 부경대진연과 면담하는 정경원 민주당 부산시당 사무처장, 박화국 정책실장.  © 김영란 기자

 

▲ 부경주권연대 대표와 부경대진연 대표가 민주당 부산시당 당직자와 면담 후에 “윤석열 탄핵과 이명박, 박근혜 사면 완전 철회”요청서를 제출하고 있다.   © 김영란 기자

 

부경주권연대와 부경대진연 회원도 이날 오후 1시 민주당 부산시당사를 찾아 면담을 했다.

 

정경원 민주당 부산시당 사무처장박화국 정책실장은 시민들과 면담에서 윤석열 탄핵과 이명박박근혜 사면 완전철회에 대해 아직 논의를 해보지 않아 입장을 밝히기 조심스럽다라며 이후 부산시당 회의를 통해 대책 및 입장 정리를 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에 부경주권연대와 부경대진연은 국민들이 민주당에 180석 의석수라는 권력을 준 이유는 이를 누리는 것이 아닌 적폐 청산을 위해 싸우라고 준 것이라며 혹자는 이번 이낙연 대표의 발언을 중도층의 지지를 얻기 위해서라고 말하지만이는 완전히 잘못된 것이다권모술수가 아닌 정공법으로 적폐 청산에 나설 때 국민이 지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면담에 참여한 민주당 부산시당 인사는 이낙연 대표의 사면 발언에 대해서는 개인의 의견"이라고 밝혔다.

 

아래는 면담요청서 전문이다.

 

-------------아래---------------------

 

윤석열 탄핵과 이명박근혜 사면 완전철회를 요구하는 면담 요청서

 

"이낙연 대표님께 호소드립니다"

 

지난 24일, 윤석열 검찰총장의 ‘정직 2개월’ 징계처분 집행정지 신청이 받아들여졌고 윤 총장은 검찰총장 업무에 복귀했습니다. 국민들은 ‘대통령이 재가한 징계를 뒤집은 사법쿠데타’라며 분노했고, 검찰개혁과 사법적폐 청산 여론은 더욱 거세게 타오르고 있습니다. 

 

이제 국회가 윤석열 검찰총장을 탄핵해야 합니다.

 

촛불국민의 염원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입니다. ‘나라다운 나라,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겠다’고 약속하신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사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국민들은 적폐를 완전히 청산하라고 집권여당에 압도적인 180석 의석을 몰아주었습니다. 적폐청산과 검찰개혁을 바라는 국민들의 간절한 외침에 이제 국회가 과감하게 나서야 합니다. 

 

윤석열 검찰총장은 적폐청산의 최대 걸림돌이자 검찰개혁 저지의 선봉장입니다. 

 

윤석열이 검찰총장 자리에 있는 한 개혁은 온갖 방해에 직면하게 됩니다. 윤석열을 중심으로 검찰과 사법적폐, 보수언론과 수구세력은 더더욱 기승을 부릴 것이고, 각종 개혁조치들은 저항에 부딪힐 것입니다. 윤석열 정치검찰은 보궐선거와 대선에 개입해 반개혁 반정부 동맹을 형성해 민주개혁을 뒤엎으려 할 것입니다.

 

윤석열 검찰총장 탄핵 요건은 이미 차고 넘칩니다. 

 

국민을 위해, 새로운 대한민국을 위해 윤석열을 탄핵해주십시오. 

 

지금 윤석열을 끌어내리지 못하면 적폐청산과 검찰개혁은 숱한 방해와 반대 속에 좌절되고 대한민국 민주주의는 또 다시 후퇴하게 될 수 있는 절체절명의 위기입니다. 또 누군가를 잃고 피눈물을 흘리는 슬픈 역사를 반복해서는 안 됩니다. 

 

또한 이명박, 박근혜 두 전직 대통령 사면논의는 즉각 중단되어야 합니다. 

 

적폐청산과제는 산처럼 쌓여있고 검찰개혁의 상징인 공수처 출범은 이제 걸음마를 뗀 상태입니다. “적폐를 청산하자!”, “새로운 대한민국을 건설하자”는 촛불국민의 염원은 지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아직도 잘못을 뉘우치지 않고, 고개 숙여 사과 한 마디 하지 않는 두 전직 대통령을 어떻게 용서할 수 있겠습니까? 이명박근혜 사면은 있을 수 없으며 사면논의는 즉각 중단, 완전 철회되어야 합니다.

 

‘다시는 지지 않겠다’며 촛불을 들고 일어선 국민과 함께 해주십시오. 철저한 적폐청산, 중단 없는 사회대개혁의 길에 이낙연 대표님과 더불어민주당이 함께 하리라 기대하고 희망합니다. 

 

민주당은 윤석열을 탄핵해주십시오!

 

윤석열 처벌, 철저한 검찰개혁 반드시 실현합시다!

 

이명박근혜 사면 결사반대합니다! 사면논의 즉각중단, 완전철회 해주십시오.

 

촛불은 계속됩니다. 범죄자 윤석열을 국민들의 힘으로 끌어내리겠습니다! 

 

2021년 1월 4일

윤석열 응징을 위한 범국민운동본부, 광화문촛불연대, 21C조선의열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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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노동자 해고사태에 분노한 LG 애용자의 불매선언...“더는 구매 않겠다”

  • 분류
    아하~
  • 등록일
    2021/01/05 07:54
  • 수정일
    2021/01/05 07:54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공대위, 청소노동자 집단해고 LG제품 불매운동 선포

이승훈 기자 lsh@vop.co.kr
발행 2021-01-04 15:59:28
수정 2021-01-04 16:11:51
이 기사는 번 공유됐습니다
공공운수노조 엘지트윈타워분회와 노동시민사회 공동대책위원회가 4일 여의도 트윈타워 앞에서 열린 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들 집단해고 LG 제품 불매 선포 기자회견에서 고용승계를 촉구하며 손피켓을 들고 있다. 2021.01.04
공공운수노조 엘지트윈타워분회와 노동시민사회 공동대책위원회가 4일 여의도 트윈타워 앞에서 열린 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들 집단해고 LG 제품 불매 선포 기자회견에서 고용승계를 촉구하며 손피켓을 들고 있다. 2021.01.04ⓒ김철수 기자  
 
“제가 지금 들고 있는 휴대전화가 LG 제품이고, 제가 이 발언문을 준비하면서 썼던 노트북이 LG그램입니다. 10년 넘게 셀룰러폰, 5G 시대에 이르기까지 LG(제품)를 썼고, LG그램이 생기기 전부터 LG 노트북을 썼습니다. 불매할 제품이 많아서 씁쓸합니다. 디오스, 휘센, 트롬, 코드제로, 퓨리케어 등은 더 이상 구매하지 않겠습니다. LG생활건강도 …”

4일, 한 시민이 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 집단해고 사태를 비판하며 한 말이다. 그동안 LG 제품을 주로 애용해 왔던 김희연 서울서부비정규노동센터 상임활동가는 이날 LG 불매운동을 선언하며 이같이 말했다.

‘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 집단해고 사태해결을 위한 노동시민사회단체 공동대책위원회’(이하, 공대위)는 이날 여의도 LG트윈타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LG트윈타워에서 일하다가 연말에 일자리를 잃은 80여 명의 청소노동자가 다시 일을 할 수 있을 때까지 LG 불매운동을 벌이겠다고 선언했다.

일 여의도 트윈타워 앞에서 열린 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들 집단해고 규탄 고용승계를 촉구하며 손피켓을 들고 있다. 2021.01.04
일 여의도 트윈타워 앞에서 열린 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들 집단해고 규탄 고용승계를 촉구하며 손피켓을 들고 있다. 2021.01.04ⓒ김철수 기자

공대위가 불매운동 시작한 이유

앞서 지수Inc 소속 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 80여 명은 지난해 11월 말 계약 해지를 통보받았다. LG트윈타워 건물 관리 업체인 S&I코퍼레이션이 용역업체인 지수Inc와의 계약을 종료하면서다.

 

지수Inc 측은 건물 관리 업체인 S&I코퍼레이션과의 계약이 종료돼 어쩔 수 없다고 하고 LG는 자신들과 관련 없다고 하지만, 공대위 등은 LG가 노동조합을 조직해 생활임금 및 정년연장을 요구하는 청소노동자들을 표적 삼아 해고한 것이라고 보고 있다. S&I코퍼레이션은 LG가 지분 100%를 갖고 있는 LG 자회사이고, 지수Inc 또한 구광모 LG그룹 회장의 고모인 구미정 씨와 구훤미 씨가 지분 50%씩 나눠 소유한 회사이기 때문이다. 또 S&I코퍼레이션은 미화 부문만 계약해지하고 시설 부문은 지수Inc와 계약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 업체는 고용승계를 통해 청소노동자들의 고용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고용승계를 하지 않고 있다.

청소노동자 30여 명은 지난해 12월 16일부터 LG트윈타워 건물 로비에서 고용승계를 요구하며 농성을 시작했다. 그러자, 임금 60원 인상만 가능하다던 회사는 경비용역을 동원해 청소노동자들의 이동을 제한하고 전기·난방까지 끊었다. 심지어 가족들이 들고 온 음식 반입까지 차단했다. 이런 이유로 새해 첫날인 지난 1월 1일 농성 중이던 청소노동자들은 온종일 밥도 못 먹고 굶어야만 했다.

새해 첫날부터 이 같은 소식을 접한 일부 누리꾼들은 트위터 등 온라인에서 “LG가 어떻게 이럴 수 있나”라며 불매운동을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냈다. 이런 분위기를 타고 공대위도 이날 기자회견을 통해 LG 불매운동을 선포한 것이다.

공대위는 LG 계열사 중 생활 밀착형 소비재를 주로 생산하는 LG전자, LG생활건강, LG유플러스 등을 불매운동 대상으로 삼았다. 또 공대위는 공공운수노조 조합원을 시작으로 100만 민주노총 조합원 불매운동으로 확산, 광범위한 시민사회 연명 받아 불매 선언 발표, 청년학생이 주로 쓰는 제품으로 LG 불매 5대 제품 선정 및 온라인 홍보 등 영역별로 구체적인 불매운동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공공운수노조 엘지트윈타워분회와 노동시민사회 공동대책위원회가 4일 여의도 트윈타워 앞에서 열린 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들 집단해고 LG 제품 불매 선포 기자회견에서 고용승계를 촉구하며 손피켓을 들고 있다. 2021.01.04
공공운수노조 엘지트윈타워분회와 노동시민사회 공동대책위원회가 4일 여의도 트윈타워 앞에서 열린 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들 집단해고 LG 제품 불매 선포 기자회견에서 고용승계를 촉구하며 손피켓을 들고 있다. 2021.01.04ⓒ김철수 기자

기자회견문에서, 공대위는 “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들은 무시당하지 않고 사람대접을 받고 싶어서 노조에 가입했다. 그뿐이다. 그것이 코로나가 맹위를 떨치는 한겨울에 일터에서 쫓겨나야 할 이유가 되는가”라며 LG를 비판했다.

공대위는 “지금 LG는 그동안 쌓아온 ‘윤리경영에 신경 쓰는 착한 기업’, ‘좋은 제품 만들고 선행을 하면서 홍보도 잘 못 하는 안타까운 기업’이라는 이미지가 허구에 불과하다는 걸 스스로 입증하고 있다”라며 “이웃사랑 성금은 120억을 내지만 10년 일한 청소노동자들은 쫓아내는 LG의 위선적인 행태를 멈출 방법은 불매운동을 포함한 사회적 압력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우리는 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들이 제자리에 돌아갈 수 있을 때까지, 당분간 LG 제품들을 자리에서 치워주시길 모든 시민들께 호소한다. LG가 30% 이상 지분을 가지고 있는 세 개 회사 LG전자, LG생활건강, LG유플러스 제품을 우선 불매하고자 한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LG가 청소노동자 집단해고를 철회하고 고용승계를 약속할 때까지 LG 생활건강이 만드는 엘라스틴, 페리오, 샤프란, 더페이스샵 등 제품의 구매를 잠시 멈춰주시길 부탁드린다. LG전자의 TV나 냉장고 등 가전제품, LG그램이나 LG스마트폰 구매를 고려한다면 청소노동자들이 돌아갈 때까지만 기다려달라. 통신사를 고르고 있다면, 가급적 LG유플러스는 피해 주길 바란다”라고 호소했다.

이승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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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장으로 향할 시간…죽음의 풍경도 달라졌다

등록 :2021-01-04 04:59수정 :2021-01-04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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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 숨지면 염습 없이 소독…수의 대신 비닐백에 밀봉해 입관
코로나 사망자 입관·발인 현장
감염 막으려 ‘선 화장 후 장례’
유족에겐 비닐백 속 모습만 공개
장례지도사 “힘들어도 할 수밖에”
국립중앙의료원에서 코로나19로 희생된 환자의 주검이 운구되고 있다. 박승화 &lt;한겨레21&gt; 기자 eyeshoot@hani.co.kr
국립중앙의료원에서 코로나19로 희생된 환자의 주검이 운구되고 있다. 박승화 <한겨레21> 기자 eyeshoot@hani.co.kr

2020년 12월26일 오후 3시30분 국립중앙의료원 장례식장 앞에서 두 관이 운구차에 오른다. 화장장으로 향할 시간이다. 관을 따르던 한 여성은 휴대전화를 들고 떠나는 장면을 촬영한다. 죽음의 장면이 낯선지, 한 학생은 조금 멀찍이 떨어져 있다.

 국립중앙의료원 장례식장에서 일하는 손진희(34) 장례지도사는 이날 코로나19에 확진된 뒤 유명을 달리한 두명의 입관과 발인을 진행했다. 코로나19 환자가 숨지면 ‘선 화장, 후 장례’가 원칙이다. 음압격리병동에서 사망자가 생겼다는 연락이 오면, 관을 준비해 일명 ‘우주복’이라고 하는 전신보호복을 챙겨 입는다. 병동까진 이송차량으로 이동해 주검을 확인한다. 그러나 염습은 불가능하다. 주검이 두차례 소독 뒤 밀봉되기 때문이다. 수의 대신 입던 옷 그대로 주검을 담는 비닐백에 안치한다. 유족이 고인 얼굴을 확인하고 싶다면, 입관 직전 병실 안에서 비닐백에 싸인 모습을 유리창문으로 볼 수 있다. 이후 결관(운반을 위해 관을 묶는 것)한 뒤 다시 이송차량으로 장례식장에 돌아와 안치실에 모신다. 결관한 뒤엔, 고인 이름만 확인할 수 있다.

“예전엔 (고인) 사진을 찍는 걸 꺼렸는데, 코로나19 유행 초기엔 (가족이) 입관 과정을 사진이나 영상으로 찍기도 했어요. 하루이틀 새 갑자기 안 좋아져서 (숨지면) 가족이 늦게 오시거나 외국에 있어서 (병원에) 못 오니까 그렇게도 하시더라고요.”손씨는 최근엔 이마저도 잘 안된다고 했다. 사망자 가족까지 격리되는 경우가 늘어나면서다. “가족이 같이 코로나19에 확진됐는데 한분은 일반 격리병실에 있고 다른 분은 중환자 병실에 있다가 돌아가신 사례도 있었어요.”
 
손진희 장례지도사가 장례식장 지하의 안치실 문을 열고 있다. 안에는 코로나19 확진 사망자와 비확진 사망자가 머무는 안치냉장고가 구분돼 있다. 박승화 &lt;한겨레21&gt; 기자 eyeshoot@hani.co.kr
손진희 장례지도사가 장례식장 지하의 안치실 문을 열고 있다. 안에는 코로나19 확진 사망자와 비확진 사망자가 머무는 안치냉장고가 구분돼 있다. 박승화 <한겨레21> 기자 eyeshoot@hani.co.kr

코로나19 사망자를 향한 낙인과 두려움이 장례 절차도 바꾸었다. 보통 코로나19로 숨진 이들은 서울 서초구 서울추모공원과 경기도 고양시 서울시립승화원에서 화장 절차를 거치는데, 다른 사망자(코로나19 비확진자)가 다 끝난 오후 5시가 넘어서야 화장이 가능하다. 장례도 3일장을 다 채우지 않거나, 아예 빈소를 차리지 않고 유족이 유골만 인수해 납골당에 가는 일이 종종 있다. 한달 평균 110∼120건씩 이뤄지던 장례가 지금은 40∼50건으로 절반 넘게 뚝 떨어진 이유다.반대로 화장장은 평소보다 바빠졌다. 장례지도학과를 졸업한 뒤 2007년 국립중앙의료원에 입사해 2015년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도 겪은 손씨는 8월 말을 기점으로 사망자가 조금씩 늘어나는 걸 실감한다. 이날까지 그가 동료(7명)와 함께 이곳에서 보낸 코로나19 사망자는 어림잡아 34명.“메르스 땐 몇달만 고생하면 나아지겠지 했는데 계속되니까 다들 지쳐 있죠.” 손씨는 덤덤하게 말한다. “그래도 계속 가는 거예요. 힘들어도 어쩔 수 없으니까.” 이날 전국에서 18명의 코로나19 확진자가 숨졌다.관련 기사 보기 

목엔 파스 두 장, ‘코로나 중환자’ 병상으로 무전기 들고 뛴다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977061.html 

중증외상 환자에게 서울은 ‘지옥’…“외면할 순 없잖아요”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977073.html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977080.html?_fr=mt1#csidxaa3d6db6b4d2d8c99dfcb6aab5dff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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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과 집, 무소불위의 한국의 재벌과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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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1.01.02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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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5000만 인구에서 1.3%의 재벌이 전체 민유지 65% 차지한 나라로 일제시대 일인이 차지한 토지의 65%(1928년 통계) 만큼 극소수 특권층에 토지가 집중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재벌들은 개발예정지나 대도시 주변에 토지소유를 편중하고 있다. 재벌들은 축산업, 골프장, 스키장, 레저타운을 통한 방법으로 농지를 소유한다. 이에 헌법에서 경자유전이 무너졌다. 나아가 증권회사. 보험회사, 건설업체 통하여 토지를 소유하기도 한다. 또한 연수원, 체육관, 축구장, 야구장, 직원훈련장을 짓는 목적으로 각종 땅 투기를 한다.
재벌들의 땅 투기로 인하여 땅값폭등이 집값폭등을 부르고 물가상승에 따라서 대부분 국민들 99%가 생존에 곤란을 겪는다.
한국이 현재 일본제국주의 식민지시대도 아니고 정부는 부동산 대책은 물론이고 만악의 근원 <재벌이 재산이 불어나면 불어 날수록 중산층이 무너지고 노동자, 농민, 서민들은 가난하다.> 재벌개혁을 왜 하지 못하고 이 나라를 지옥화 하는 것일까?
휴전선 이남에서 독도만 제외하고 전 국토는 무소불위 재벌과 미국<점령군>이 독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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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 아이가 마주한 지옥 같던 2년 6개월

[아주 오래된 n번방, 미성년자 성매매 ①] '조건만남'게시물이 자발적이라는 당신에게

21.01.04 07:07l최종 업데이트 21.01.04 10:28l

 

<오마이뉴스>는 '미성년자 성매매' 판결문 219개를 분석했다. 또 피해 여성 5명을 인터뷰했다. 오늘부터 아홉 차례에 걸쳐 그 실태를 해부한다. 이 기사는 그 첫 번째다.  [편집자말]

그건 매매가 아니다. 착취다.

우리가 흔히 '미성년자 성매매' 혹은 '조건만남'이라고 부르는 그 사건들. <오마이뉴스>는 피해자 5명을 어렵게 만났고, 판결문 219개를 검토했다. 그리고 위와 같은 결론을 내렸다.

박주영 울산지법 부장판사는 지난 10월 판결문에 "자발적 성매매는 없다"고 썼다. 비슷한 맥락이다. 한 청소년 쉼터 관계자는 "많은 사람들이 소위 '까진 애들', '불량 학생'을 떠올리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라고 말했다. 그는 "먹이사슬 맨 아래의 아이들이 피해를 입는다"라고 말했다.  지난 11월 조주빈에게 징역 40년 형이 내려졌다. 수사기관은 조주빈 일당을 때려잡았고 그의 얼굴을 만천하에 공개했다. '조주빈의 n번방'은 그렇게 사라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발전된 기술을 이용한 다양한 방법의 성착취는 현재진행형이다. 수사기관은 범죄 기술로부터 한없이 뒤처져 있고, 처벌을 내리는 사법기관은 여전히 관대하다. 우리가 그것을 '매매'라고 부르는 사이, 다른 얼굴을 한 '조주빈들'이 대한민국 곳곳을 서성이고 있다.

그 남자의 일
     
 남성은 채팅 어플을 통해 열일곱살 한 아이와 만남을 가졌다. 이후 그는 아이를 가둔 채 24시간 감시했다.
▲  남성은 채팅 어플을 통해 열일곱살 한 아이와 만남을 가졌다. 이후 그는 아이를 가둔 채 24시간 감시했다.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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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자는 30대 남성이다. 마땅히 하는 일 없이 매일 채팅 어플을 켠다. 오늘은 앙톡이다. 앙톡에서의 성과가 시원찮아도 괜찮다. 즐톡, 영톡, 텐톡, 스윗톡, 심톡, 심팅, 채팅몬, 국민어장... 어플은 널려 있다. 그에겐 그게 일이다. 그날도 열일곱살 한 아이가 걸려들었다.

'성매매를 한다'는 아이지만 남자는 너무도 잘 안다. 아이는 집을 나왔을 것이고, 돈 한 푼 없을 것이며, 본인의 의지로 그 어플을 깐 게 아닐 것이다.

역시, 맞았다. 가출 후 남자친구라고 사귄 오빠가 몇몇 언니들을 소개해줬단다. 지낼 곳을 마련해주고, 먹을 것을 챙겨주던 그들이 어느 날 갑자기 "돈을 벌어오라"며 성매매를 시켰단다. 의지할 데 없이 잔뜩 겁먹은 아이, 그가 찾던 '돈벌이' 수단이었다.

남자와 아이가 만났다. 아이는 그를 '성매수남'으로 알고 있었다. 그가 "휴대폰을 꺼달라"고 부탁했다. 아이는 당연히 그래야 하는 줄 알았다. 휴대폰을 끄니 그가 돌변했다. 아이는 골목으로 끌려갔다.

"내가 일을 좀 해야 돼. 근데 여자가 필요해. 그걸 네가 해줘야겠어."
"네?"
"골목 뒤에 동생들 대기하고 있다. 도망칠 생각은 마. 할 거지?"
"네? 네..."
 

차에 올랐다. 얼마나 갔을까. 휴게소에 내려 그는 '형님'이란 사람에게 전활 걸었다. 이런저런 이야길 나누더니 그는 휴대폰을 아이에게 넘겼다. 형님이 말했다.

"어, 이야긴 들었다. 근데 정말 원치 않으면 굳이 안 해도 돼."
"네? 네, 그럼 저 안 할래요."


옆에서 듣고 있던 남자의 표정이 굳어졌다. 남자는 차를 돌리며 "네가 날 가지고 논 거야. 친구들, 가족들 다리를 다 부러뜨려 바닥을 기어 다니게 할 거다"라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아이는 울면서 "살려 주세요"라고 빌었다. 남자가 다시 말했다.

"그럼 다시 하겠다고 해."
"네. 제발 살려주세요."


다시 차를 돌렸다. 아이는 남자와 함께 그 형님이란 사람을 만났다. 그들은 아이의 이름, 주민등록번호, 주소, 가족관계 등을 받아 적었다. 휴대폰도 빼앗았다. 형님이 남자에게 돈뭉치를 쥐어줬다. 남자는 그 돈으로 1.5룸을 구했고, 그곳에 아이를 가둔 채 24시간 감시했다.

며칠 후 남자는 아이를 데리고 형님이란 사람을 다시 찾아갔다. 형님은 다른 여자들도 데리고 나왔다. 그녀들도 아이와 비슷한 처지인 듯했다. 형님은 '여행'을 간다고 했다. 그렇게 며칠을 이곳저곳 다녔다.

참혹한 숫자
  
 남자는 아이에게 성매매를 시켰다. 자신이 아이인 척 채팅 어플을 켜서 '일'을 잡았다. 최소 네 번, 많을 땐 여덟 번. 아이가 기억하는 '하루'의 숫자는 그렇게 참혹했다.
▲  남자는 아이에게 성매매를 시켰다. 자신이 아이인 척 채팅 어플을 켜서 "일"을 잡았다. 최소 네 번, 많을 땐 여덟 번. 아이가 기억하는 "하루"의 숫자는 그렇게 참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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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남자는 다시 아이를 1.5룸으로 데리고 왔다. 남자는 아이에게 성매매를 시켰다. 자신이 아이인 척 채팅 어플을 켜서 '일'을 잡았다. 아이를 차에 태워 '약속 장소'로 데려다준 뒤, 근처에 대기하다 다시 아이를 태워 다음 약속 장소로 이동하길 반복했다.

최소 네 번, 많을 땐 여덟 번. 아이가 기억하는 '하루'의 숫자는 그렇게 참혹했다. 돈은 모두 남자가 가져갔다. 아이의 몸이 망가져갔다. 고통을 이야기해도 병원에 갈 수 없었다.

식사는 인스턴트뿐이었다. 집안일도 아이의 몫이었다. 아이의 호소에 남자는 폭력으로 대응했다. 머리와 뺨을 때리는 건 일상이었고, 배를 발로 찬적도 많았다. 칼이나 드라이버를 들고 "눈깔을 파버리겠다"는 말도 자주했다.

그렇게 두 달 쯤 지났다. 그날의 약속 장소는 어느 자동차였다. 아이가 차에 올랐다. 차 안에 있던 사람은 경찰이었다. 이른바 '위장수사'로 아이는 구조됐다. 하지만 아이를 집에 돌려보내는 것 외에 경찰의 별다른 조치는 없었다.

집에 왔지만 아이는 여전히 불안했다. 이전부터 남자는 "네가 아무리 도망쳐도 소용없다"고 말해왔다. 남자는 아이의 모든 것을 알지만, 아이는 남자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다. 돌이켜보면 남자는 이름도, 나이도 알려주지 않았다. 아이는 지나가듯 들은 '○○이'라는 남자의 별명만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었다.

'그가 집 앞에서 기다리진 않을까?', '통학길에 어린 동생을 납치하면 어떡하지?' 등의 생각이 아이의 머리를 뒤덮었다. 가족들에게 이야기할 수 없을 정도로 두려움에 시달렸다. 극한의 공포심은 남자에게 다시 전화를 거는 것으로 이어졌다.

남자는 "일단 만나자"고 했다. 아이를 만난 그는 "네가 여기서 그만두면 나와 적이 되는 것"이라며 협박했다. 형님이란 사람도 전화로 "널 납치해 어디에 가둬둬야 하나, 그런 생각까지 했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렇게 아이는 다시 납치됐다. 가족들의 실종신고도 소용없었다. 이전엔 두 달이었지만, 이번엔 2년 4개월이 걸렸다. 고통의 시간을 보낸 아이는 다시 경찰의 위장수사로 구조됐다. 하지만 이번에도 아이를 집으로 돌려보내는 것 외에 별다른 조치가 없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 아이는 결국 가족에게 모든 걸 털어놨다. "괜찮아. 이렇게 살아 돌아온 것만으로도 다행이야"라는 말이 돌아왔다. 고민 끝에 아이는 주변의 도움을 얻어 경찰에 피해 사실을 신고했다. 그제야 경찰이 수사에 나섰지만, 남자의 행방은 묘연하다.

착취자, 이용자, 방관자

지난 12월 이 피해자를 만났다. 그녀는 "두 번째 구조돼 집에 오는 길에도 너무 무서워서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대로 살다간 죽어버릴 것 같았다"라며 눈물을 쏟았다.

이 피해자를 포함해 5명의 피해자가 용기를 내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모두의 이야기가 마찬가지였다. '판결서 인터넷 열람서비스'를 통해 확보한 판결문 219개에도 참혹한, 하지만 우리가 잘 모르거나 외면했던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2020년 1월~10월 선고, '대법원 판결문 검색 서비스' 통해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중 성매수·강요행위·알선영업행위 등 키워드 검색).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지난 5년(2015~2019년)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12조(성을 사는 행위 또는 성착취물을 제작하는 행위의 대상이 될 것을 알면서 아동·청소년을 매매), 14조(폭행·협박 등으로 아동·청소년이 성매수 상대방이 되게 한 행위 등), 15조(아동·청소년 성매수를 알선한 행위 등) 혐의로 기소된 사건만 1682건에 달했다. 미성년자를 성매매 대상으로 내몬 사건 중 검거돼 재판을 받은 건만 이 정도다. 

이러한 일이 가능하도록 만든 '수요자', 즉 성매수범(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13조) 또한 지난 5년 1711건이나 재판에 넘겨졌다. 하지만 성매수 사건의 판결문을 분석해보니 처벌은 대부분 벌금 혹은 집행유예에 그쳤다. 

다시 말하지만 이건 매매가 아니다. 이 구조 속에 매매는 존재하지 않았다. 착취의 가해자, 그리고 이를 이용하는 자와 방관하는 자만 있을 뿐이다. 그 사이에서 피해자는 몸과 마음이 무너져갔다.

<오마이뉴스>는 오늘부터 총 아홉 차례에 걸쳐 '미성년자 성매매'의 실태를 해부한다. 더 나아가 이 기획을 통해 그것을 '매매'를 넘어 '착취'로 부를 것을 제안한다.

n번방은 사라지지 않았다. 대한민국 곳곳에 n번방이 살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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