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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폭 두목 정도하면 딱 맞을 사람... 대통령된 게 비극"



[이 사람, 10만인] 명진 스님(사단법인 '평화의길' 전 이사장)

24.03.11 06:55l최종 업데이트 24.03.11 06:55l

김병기(minif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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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진 스님이 지난 2월 29일 사단법인 ‘평화의길’ 이사회를 앞두고 <오마이TV> ‘이 사람, 10만인’과 인터뷰했다.

ⓒ 명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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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무식하고 용맹한 정권은 처음 봤어요. 수많은 사람의 죽음을 바탕으로 집권했던 전두환 정권도 이 정도로 무식하지 않았어요. (윤석열 대통령 후보자 시절) 기차 안에서 앞좌석에 구둣발을 올려놓는 꼴을 보면서 쓰레기 같은 인성을 가졌구나 하는 생각을 했는데, 그런 사람이 대통령이 됐습니다. 그 인성대로 쓰레기 같은 짓을 하고 있어요. 윤석열 정권을 하루빨리 정리해야 합니다."

 

명진 스님(전 평화의길 이사장)은 오는 4월 총선의 의미를 묻는 질문에 거침없이 윤석열 대통령을 향한 죽비소리부터 날렸다. 명진 스님은 이어 "무식한데 술을 잘 먹고 보스 기질은 있는 것 같은데, 조폭 두목 정도 하면 딱 맞을 사람이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된 게 비극"이라고 일갈했다.

 

명진 스님은 지난 2월 29일 사단법인 '평화의길' 이사회를 앞두고 <오마이TV> '이 사람, 10만인' 인터뷰에서 윤석열 대통령 만들기 1등 공신으로 불렸던 자승 전 원장의 미스터리한 자살의 원인과 윤석열 정부와 조계종단의 관계 전망, 오는 4월 총선의 의미 등에 대해 밝혔다. 이날 열린 이사회에서 명진 스님은 향후 수행에 정진하겠다는 뜻을 밝히면서 이사장직을 사임했다.

 

자승 전 총무원장의 자살, 100일 동안 침묵했던 까닭

▲ [이 사람, 10만인] “전두환보다 무식하고 용맹한 정권”... 명진 스님(사단법인 ‘평화의길’ 전 이사장) 인터뷰 #명진스님 #윤석열 #총선

ⓒ 김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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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날 명진 스님은 지난해 11월 29일, 자승 전 조계종 총무원장의 자살에 대한 이야기부터 꺼냈다.

 

"그 어떤 죽음 앞에서도 우리는 경건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더군다나 자살이라는 죽음 앞에서는... 지난 100일 동안, 나는 부끄럽지 않게 살았는가? 그런 회한 같은 게 많이 있었습니다."

 

그간 조계종단 내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면서 윤석열 정권과 밀월관계를 가져왔던 자승 전 원장의 대척점에 있던 명진 스님이 100여 일간의 침묵 끝에 처음으로 내비친 소회다.

 

명진 스님은 "권력을 갖고 있었던 자승의 죽음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자승의 죽음, 생명 소멸, 생과 사... 이런 것들이 저의 삶과 죽음을 반조(反照)하게 되는 계기가 됐다"면서도 자승 전 원장의 자살을 '이유 없는 죽음' '미스터리한 죽음'으로 규정했다.

 

그 첫 번째 이유는 자승 전 원장이 "선원에서 공부하는 스님들까지 다 장악해서 자기 마음대로 종단 권력을 휘둘렀고,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을 붙잡아서 두드려 패고, 저항하면 실제로 똥물을 끼얹었으며, 당동벌이라고 해서 자기 측근들은 아무리 죄가 있어도 고위직에 앉혔다"는 것이다. 죽기 직전까지 그 권력의 정점에 서 있었던 자승 전 원장의 갑작스런 죽음이 믿기지 않았다는 뜻이다.

 

미스터리한 죽음이 소신공양? "방화 자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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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진 스님이 지난 2월 29일 사단법인 ‘평화의길’ 이사회를 앞두고 <오마이TV> ‘이 사람, 10만인’과 인터뷰했다.

ⓒ 명진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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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진 스님이 '이유 없는 죽음'의 또 다른 사례로 든 것은 자승 전 원장 사망 이틀 전인 11월 27일, 불교계 언론과의 간담회에서 한 발언이었다.

 

자승 전 원장은 그 자리에서 "지금의 정치는 역대 독재정권 때보다도 더 치졸해졌어, 그리고 더 저질스러워졌어. 옳고 그름이 없이 여야를 막론하고 니편 내편 갈라서 내편이 파렴치한 행위를 했어도 두둔하고 보호하는데 앞장서, 그러면서 부끄러워하지를 않아"라고 말하면서 사실상 윤석열 정부와 대립각을 세웠다. 조계종 중앙신도회도 일주일 전인 11월 22일 발표한 성명을 통해 정부의 인사 차별, 불교 차별을 성토했다.

 

명진 스님은 "(자승 전 원장이) 죽기 이틀 전만 해도 윤석열 정권이 역대 정권 독재 정권보다 더 치졸하고 저질스러워졌다고 공격했다. 윤석열 대통령과 겸상을 하는 사이면서 전혀 생뚱맞은 이야기를 한 것이다"라면서 정권에 대한 태도가 사납게 돌변한 이유는 무리한 인사 청탁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데 기인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그렇다면 윤석열 정부는 자승 전 원장을 위시한 조계종단의 이런 도발에 어떻게 대응을 했을까? 명진 스님은 "윤석열 정권이 가만히 있었겠어요?"라고 반문한 뒤 이같이 말했다.

 

"어떤 식으로든지 한 번쯤은 서로 의사소통을 했을 겁니다. 그 과정에서 자승 정도 되면 윤석열 정권에 대한 약점 같은 것들을 갖고 있었지 않겠는가? 그걸 다시 내놨을 것이고, (윤석열 정권은) 자승을 둘러싼 여러 가지 의혹들로 (자승 전 원장을) 겁박하지 않았을까요? 그런 상황 속에서 절에 불까지 지르면서 '나는 억울해서 죽는 거야'라는 것을 보여주려 했던 건 아닐까요? 자승의 방화 자살은 일종의 메시지로 봅니다."

 

자승의 사망 소식이 전해진 직후에 조계종단이 '소신공양'이라고 서둘러 발표한 것에 대해서도 명진 스님은 "이건 절에 불을 지르고 죽은 방화자살일 뿐"이라면서 "그런데도 윤석열 정부는 (자승 전 원장에게)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주어 그의 죽음을 거룩한 것으로 포장해 버렸다, 너무 냄새나는 죽음을 그냥 묻어버렸다"고 말했다.

 

이어 명진 스님은 자승 전 원장의 사망 이후 조계종단의 전망을 묻는 질문에 "완전히 무너지고 이제 쑥대밭이 되고 더 이상 국민들이 바랄 것도 없는 그런 집단이 되면 거기서 새로운 싹이 안 올라오겠습니까"라고 반문한 뒤 "이제 썩을 만큼 썩었으니까 앞으로 조금 좀 지켜보자"고 말했다.

 

"국내 정치도 외교도 모르는 무식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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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진 스님이 지난 2월 29일 사단법인 ‘평화의길’ 이사회를 앞두고 <오마이TV> ‘이 사람, 10만인’과 인터뷰했다.

ⓒ 명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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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진 스님은 그간 종교와 사회원로로서 조계종단 개혁의 문제뿐만 아니라 10·29 이태원참사와 '채 상병 순직' 사건 등을 비롯한 각종 사회 현안과 윤석열 정부의 대북정책 등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해왔다. 명진 스님은 4월 총선의 의미를 묻는 말에 긴 한숨부터 내쉰 뒤 이렇게 말했다.

 

"얼마 전에 이재명 대표의 부인에 대한 법인카드 사적 유용 문제를 검찰이 기소했습니다. 10만 원입니다. 한 푼이라도 잘못 쓰면 벌을 받아야겠지요. 하지만 이렇게 엄격하게 법을 적용하면서, 윤석열 대통령의 처가는 어떤가요? 디올백, 대통령 부인이 사람들 뒤에서도 아니고 그 앞에서 그런거나 받고 있는 게 말이 되나요? 양평고속도로는 또 어떻습니까? '채 상병' 사건도 해병대 1사단장과의 관계 때문에 덮으려 했던 게 아닌가요? 대통령이 돼서는 절대로 안 될 사람이 대통령이 됐습니다."

 

명진 스님은 또 "윤석열 대통령이 북한을 선제 타격한다고 주장했을 때 '그 입을 꿰매 버려야 한다'고 했는데... 미국의 허락이 떨어지기 전에는 그렇게 할 수도 없고, 어떠한 경우에도 전쟁을 한다면 우리도 몰살을 당한다"면서 "국내 정치도 모르는 무식한 사람이 술은 잘 먹고 보스 기질이 있는 것 같은데...조폭 두목 정도 하면 딱 맞을 사람이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된 게 비극"이라고 일갈했다.

 

한동훈의 운동권 청산? "그런 당신은 무엇을 했나"

 

명진 스님은 이명박 정권 때 '좌파, 종북 운동권 스님'으로 몰려 강남의 봉은사 주지에서 쫓겨났다. 조계종단으로부터 승적도 박탈당했다. 당시 명진 스님을 불법 미행하고, 자승 전 원장과 사실상 공모해서 불교계 퇴출을 위해 공작했던 국정원의 불법 문건들이 지난 2020년 국정원을 상대로 한 행정 소송 등을 통해 공개된 바 있다.

 

명진 스님은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운동권 청산론'을 들고 나온 것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았다. 명진 스님은 한 비대위원장을 향해 "뚫린 입으로 무슨 말을 못하겠냐"고 이같이 말했다.

 

"한국 사회가 변혁 운동을 통해 인권과 평등, 자유를 쟁취해 왔고, 그 과정에서 희생된 분들이 많습니다. 노동자의 권리를 위해 자기 몸을 불태웠던 전태일 열사 같은 경우는 소신공양이라고 얘기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도 외세에 의해 지배를 받고 있는데, 부당한 지배를 벗어나기 위해 자민투니, 민민투, 학생운동을 했던 사람들을 운동권으로 통칭할 수 있습니다. 그런 분들의 희생으로 한국 사회가 조금씩 개선돼 왔습니다."

 

명진 스님은 "운동권 인사 중에 정치권력에 취해서 자기의 안위와 권력 욕심을 채우려고 일신의 영달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도 있긴 하지만, 그럼에도 '운동권'이라는 말을 쓰면서 심판하겠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면서 "그렇다면 한동훈 당신은 그동안 무엇을 했는데? 어떻게 살았는데라는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평화의길 이사장직 사임... "선원에서 수행 정진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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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진 스님이 지난 2월 29일 사단법인 ‘평화의길’ 이사회를 앞두고 <오마이TV> ‘이 사람, 10만인’과 인터뷰했다.

ⓒ 명진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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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진 스님은 마지막으로 이번 총선에 임하는 유권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당부했다.

 

"최소한 주식을 가지고 장난을 쳐서 돈을 버는 거, 미국에서는 몇십 년 형을 받습니다. 김건희 일가는 어떤가요? 그리고 윤석열 대통령은 거짓말했어요. 지난 선거 때 장모가 이익 본 거 없다고 이야기 했는데, 이는 사실과 다른 내용으로 선거법 위반 소지가 있어요. 또 무도한 정권이잖아요. 김건희와 함께 해외 순방을 다니면서 벌이는 천박한 행태를 두 눈 뜨고 볼 수가 없습니다. 미국, 일본과 딱 붙어서 외교적으로 무시를 당하면서 중국 수출 시장 막히고..."

 

명진 스님은 "이런 무도한 정권을 빨리 끌어내지 않으면 대한민국은 망하기 일보 직전으로 갈 것"이라면서 "윤석열 정권을 끝장내는 총선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명진 스님은 이날 열린 '평화의길' 이사회에서 이사장직을 사임했다. 이에 대해 명진 스님은 "남북관계가 파탄이 난 상황에서 민간 차원의 통일운동을 더 이상 길이 막혔고, 내 나이 75세면, 죽음의 문제를 바라보면서 노후 대책이 아니라 '사후 대책'을 준비해야 할 때"라면서 "이후에는 선원 생활을 하면서 수행에 정진하겠다"고 밝혔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태그:#명진스님, #자승, #윤석열, #한동훈, #조계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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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시스템 공천' 자랑한 국민의힘, 막상 뚜껑 열어보니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24/03/10 09:54
  • 수정일
    2024/03/10 09:54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돈 봉투 정우택' 이의제기 기각

여당, 지역구 13명 추가 확정

정치자금법 위반에도 후보 공천

민주화운동은 당헌, 위반해도 공천

정영환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장이 29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국민의힘 중앙당사에서 열린 공천관리위원회 제14차 회의 결과를 발표하며 취재진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 뉴시스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회가 9일 13명의 후보를 추가로 공천했다. '돈봉투 수수 의혹'이 제기된 정우택 의원 공천에 대한 이의제기는 기각했다.

정영환 공천관리위원장은 “객관성이 없는, 부족한 것으로 봐서 이의를 기각하는 것으로 결론을 냈다”고 밝혔다.

정 의원은 CCTV 바깥 장소에서 내용물을 확인도 하지 않고 돌려줬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정 의원에게 돈 봉투를 건넨 카페 사장 A씨는 “돈 봉투를 직접 건넸고 돌려받지 못했다”고 반박했다.

A씨는 정 의원과 주고 받은 카카오톡 대화내용까지 공개했다. 대화내용에는 돈봉투 수수 정황이 담겼다.

한편, 이날 확정한 13명의 후보 중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를 받거나, 형이 확정된 인물이 포함돼 공천 논란이 커질 전망이다.

노원구 갑 후보로 선출된 현경병 후보는 18대 총선에서도 노원구에서 당선됐다가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국회의원직을 상실한 인물이다.

강동구 갑에 공천된 전주혜 후보도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경찰 조사를 받고 있다. 강동농협이 과장급 이상 직원 49명에게서 동의 없이 10만 원씩 공제해 전주혜 의원 후원회에 전달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먼저 받아야 할 정치기부 신청서도 받지 않고 공제해, 뒤늦게 본점 총무계 직원들이 지점을 돌며 신청서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친일, 민주화운동 폄하 발언도 도마 위에 올랐다. 한동훈 비대위원장은 총선 공천을 두고 “국민 눈높이”를 강조했다. 그러나 후보 신청자 중 친일, 민주화운동 폄하 발언을 일삼은 것이 드러나 논란이 커진다.

한국대학생진보연합(대진연) 회원들이 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중앙당사에서 '이토히로부미 인재 발언, 성일종 사퇴 촉구', '한동훈 비대위원장 면담' 등을 요구하며 기습시위를 하고 있다 ⓒ 뉴시스

서산·태안에 공천을 받은 성일종 후보자는 인재 육성에 대한 예시로 ‘이토 히로부미’를 언급해 친일 공천이란 비판을 받았다. 이에 한국대학생진보연합(대진연) 회원들이 9일 국민의힘 중앙당사에서 '이토히로부미 인재 발언, 성일종 사퇴 촉구', '한동훈 비대위원장 면담' 등을 요구하며 기습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대구 달서갑에 공천받은 도태우 후보도 민주화 운동 폄하 발언으로 비판을 받았다. 도 후보는 “5·18에 북 개입을 조사해야 한다”는 극우적 발언을 일삼고 박근혜 탄핵 촛불 집회를 북한의 사주를 받은 반란이라고 표현한 바 있다. 해당 발언이 담긴 영상은 아직도 도 후보의 유튜브 채널에 남아있는 상태다.

5·18 민주화운동은 국민의힘 당헌에도 들어가 있는 내용이다. 도 후보의 경우 당헌을 위반했음에도 여당의 텃밭은 대구에 공천을 받은 셈이다.

이에 대해 정영환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장은 “후보가 되면 당의 전체 가치를 중요시해서 해나갈 거니까 문제없다고 본다”고 밝혔다.

한편 공천 탈락에 반발해 국민의힘 당사 앞에서 이틀 연속 분신을 시도한 장일 전 국민의힘 서울 노원을 당협위원장에 대해 경찰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법원이 도주 위험이 없다고 판단해 구속은 피했지만, 공천 잡음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국민의힘은 '조용한 공천', '시스템 공천'을 자랑해 왔다. 그런데 정작 뚜껑을 열어보니 '돈봉투 공천', '친일 공천', '극우 공천', '분신 공천' 등으로 시끄럽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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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아 국가를 갉아먹은 제국주의라는 거대한 괴물



[도쿄 야스쿠니에서 칸차나부리 죽음의 철도까지] ②대동아 공영권에 환호한 사람들과 태국의 밤부 외교

박흥수 사회공공연구원 철도전문위원 | 기사입력 2024.03.10. 07:06:47 최종수정 2024.03.10. 07:07:04

 

<달리는 기차에서 본 세상> 을 연재 하고 있는 자칭·타칭 '철도 덕후' 사회공공연구원 박흥수 철도 전문위원은 지난 1월 말에서 2월 초까지 태국 철도 답사를 다녀왔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죽음의 철도 노선으로 불렸던 시암 – 버마 철도 구간 중 현재 남아 있는 방콕 – 남톡 구간을 달리며 일본 제국주의의 대동아 공영이라는 미명 아래 벌어진 역사의 한 부분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대동아공영권의 울타리를 철도로 달린 그 이야기를 <도쿄 야스쿠니에서 칸차나부리 죽음의 철도까지>라는 부제로 몇 차례에 나누어 소개한다.

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를 포함한 인도차이나를 장악한 프랑스는 태국에도 욕심을 냈다. 태국은 인도와 버마를 점령한 영국과 인도차이나반도를 식민지로 삼은 프랑스 양쪽으로부터 압박을 받았다. 오랜 기간 앙숙이었던 영국과 프랑스는 태국이 일방적으로 상대국에게 넘어가는 것을 경계했다. 또한 태국이 벌인 특유의 외교가 독립을 유지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이런 가운데에서도 프랑스는 태국과 계속 충돌하면서 동쪽의 태국 영토를 조금씩 손에 넣었다.

제국주의는 거대한 괴물처럼 동남아시아 국가들을 갉아먹었다. 폭식으로 몸이 터질 듯 했지만 설령 몸이 뒤뚱거릴지라도 아랑곳하지 않고 식탐을 부렸다. 프랑스는 인도차이나반도만으로도 숨이 차고 있었다. 베트남을 비롯해 인도차이나반도 곳곳에서 벌어지는 독립운동을 감당하기에도 어려운 실정이었다. 프랑스는 몇 번씩이나 인도차이나반도를 적당한 가격에 일본에 넘기려다 포기하기도 했다. 2차대전 유럽 전선에서 독일의 프랑스 점령은 일본에 자신감을 주었다. 일본군은 독일의 괴뢰정부가 된 비시 프랑스 관할 동아시아 식민지를 좋은 먹이감으로 삼았다. 인도차이나 북부를 점령한 일본군은 내친김에 인도차이나반도 전체를 점령하기로 했다.

1941년 6월 25일 일본군 수뇌부는 대본영 회의를 통해 프랑스령 인도차이나 남부 장악을 결정했고 7월 2일 어전회의는 군의 결정을 허가했다. 일본군은 속전속결로 7월 28일 인도차이나 남부를 점령했다. 태평양 전쟁의 트리거가 당겨지는 순간이었다. 미국과 영국은 일본군이 인도차이나 남부로 진주할 경우 일본에 대해 경제제재를 하기로 합의했었다. 미국은 8월 1일 모든 침략국에 대한 석유 수출 금지를 발표했다. 석유 소비량의 80%를 미국으로부터 수입하던 일본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일본군 전쟁 수행을 위한 비축 석유는 1년 6개월치에 불과했다. 일본군 수뇌부에서 미국과의 개전론이 급부상했다.

▲인도차이나 반도와 태국을 포함하는 1941년 일본군의 점령지를 나타내는 지도 - 싱가포르 국립박물관 ⓒ박흥수

▲1942년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자 말레이반도와 싱가포르는 일본군의 수중으로 떨어졌다 - 싱가포르 국립박물관 ⓒ박흥수

1941년 12월 7일, 하와이 진주만 상공에는 붉은 원을 날개에 새긴 전투기 400여대가 하늘을 뒤덮었다. 태평양전쟁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실제 전쟁은 동남아시아 전선에서 먼저 시작됐다. 진주만 공습 1시간 전 일본 남방군 제25군은 말레이반도 코타바루(Kota Bharu)에 상륙했다. 가볍게 영국군 수비대를 제압한 일본군은 12월 25일 홍콩, 1942년 1월 2일 마닐라, 2월 15일 싱가포르, 3월 8일 버마 랑군까지 거침없이 밀어붙였다.

일본군이 싱가포르를 함락하자 일본 열도는 승리의 기쁨으로 들썩였다. 태평양 전쟁에 비판적이었던 지식인들조차 싱가포르 점령을 역사적 쾌거라고 주장하며 흥분했다. 조선의 지식인들도 마찬가지였다. 대국 미국을 기습해 전과를 올리고 동남아시아를 파죽지세로 평정하는 일본을 보고 조선의 많은 지식인들은 대일본제국의 천년왕국을 확신했다. 주저하던 이들이 앞다투어 친일의 길로 뛰어들었다. 조선의 주요 도시에서는 동원된 초중학생들을 앞세워 "우리 일본"의 싱가포르 함락 축하 대중 집회가 열렸다.

작가들도 나섰다. 노천명은 재빠르게 시를 지어 일본군의 싱가포르 함락을 칭송했다.

아세아의 세기적인 여명은 왔다

영미(英米)의 독아에서

일본군은 마침내 신가파를 뺏아내고야 말았다

.....................

일본의 태양이 한번 밝게 비치니

.....................

대동아 공영권이 건설되는 이날

.....................

젖과 꿀이 흐르는 이 땅에

일장기가 나부끼고 있는 한

너희는 평화스러우리 영원히 자유스러우리

.....................

우리 이날을 유쾌히 기념하자

일본과 그 추종세력의 환호와 달리 싱가포르 곳곳에서는 일본군에 의한 학살이 자행됐다. 항일 세력을 소탕한다는 명분 아래 화교나 중국계 싱가포르인들을 모아 총검으로 찔러 죽였다. 1959년 봄 일본 기업이 싱가포르에 공장을 세우는 건설 현장에서 백골이 무더기로 발견되면서 묻혀있던 학살 증거가 드러났다. 공장 조성을 위해 택지를 개발할 때마다 쏟아져 나오는 백골들은 싱가포르인들에게 지난 전쟁의 고통과 상처를 떠올리게 했다. 싱가포르 정부는 1962년 4월 일본 정부에 보상을 요구했다. 5년간의 협상 끝에 1967년 9월, 일본 정부는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 정부에 5000만 싱가포르 달러(약 29억엔)을 보상했다. 일본은 유독 한국에 대해서만 사죄와 보상을 외면하고 식민지 침략의 과오를 인정하지 않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일본의 침략이 축복이었다고 거침없이 이야기하는 한국 사람들을 보는 것은 슬픈 일이다.

▲싱가포르 점령기 일본의 선전포스터-이미지와 달리 싱가포르에서는 학살이 자행됐다 - 싱가포르 국립박물관 ⓒ박흥수

▲싱가포르 진격에 사용된 일본군 전차 - 싱가포르 국립박물관 ⓒ박흥수

▲싱가포르 함락을 다룬 일본의 선전 영화 포스터 - 싱가포르 국립 박물관 ⓒ박흥수

태국으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에릭 로맥스의 <레일웨이 맨>을 다시 펼쳤다. 나는 1942년 태평양 전쟁의 한가운데로 들어갔다. 멀쩡해 보이는 군대 조직도 공세를 받게 되면 홍수에 무너지는 둑처럼 속절없이 붕괴된다. 장군들은 우유부단에 빠지고 부대들은 고립되며 전투 의지는 소멸된다. 홍콩, 필리핀, 인도네시아, 말레시아, 싱가포르에 주둔하던 수만 명의 영국군, 오스트리아군, 미군들은 고스란히 일본군의 포로가 됐다. 이들 포로들은 아시아 전역에 급조된 연합군 포로수용소에 수감되었다. 비교적 운이 좋았던 일부 영국과 오스트리아 군 포로들은 조선으로 이송돼 본소인 경성 포로수용소와 분소인 인천, 흥남의 세 곳으로 분산 수용됐다.

경성으로 배정된 포로들은 430여 명에 이르렀는데 이중 360여 명은 싱가포르에서 온 군인들이었다. 포로들은 서울역과 남영역 사이 철길 옆 현재 신광여중고 자리에 마련된 수용소로 이송되었다. 포로들은 연합군이 경성 폭격을 시도할 경우 수용소 인근 일본군 사령부를 보호하기 위한 인간방패용 인질이었다. 연합군 포로들은 일본군 육군 창고에서 노역을 하거나 경성(서울)역이나 한강 다리로 불려 나가 강제노동을 했다. 1945년 8월 15일 조선해방은 용산 연합군 포로수용소의 문도 열었다. 3년간의 포로 생활을 마친 연합군 수감자들은 해방의 기운이 가득한 경성 거리로 나올 수 있었다.

방콕 주변으로 이송된 연합군 포로들은 운이 나빴던 축에 속한다. 조선과 달리 태국은 남방전선 최전방 지역의 허브였기 때문이었다. 에릭 로맥스의 증언을 들어보자.

"다른 포로 24명과 함께 기차 화물칸에 올랐다. 열린 창을 통해 스쳐 지나가는 푸른 들판과 진흙탕이 눈에 들어왔다. 이따금 일렬로 심어놓은 고무나무들이 수십 킬로미터씩 질리도록 이어졌다......기차가 잠깐 멈춘 사이 나는 밖으로 얼른 뛰어나가 엔진부터 살펴보았다. C56이었다. 내가 아는 한, 원래 오사카에서 만들어진 기관차지만 말라야-시암 트랙 운행을 위해 더 협소한 미터 게이지로 변경한 게 틀림없다. 기차를 식민지까지 옮겨온 것으로 보아 이곳에 오래 머물 의도가 분명했다. 갑자기 화장실이 급해졌다. '기본생리 해결'문제가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을 때 나는 옆 동료에게 마지못해 도움을 청했다. 양동이로 쓸만한 물건도 없어 결국 네 명이 달리는 화차 문간에서 나를 붙잡아주는 동안 겨우겨우 일을 볼 수 있었다. 신체 접촉을 꺼리는 나로서는, 더군다나 이 공개적인 '친밀함'이 무척이나 당혹스러웠다. 나는 아직까지도 이 일을 내 생애 가장 수치스러운 경험으로 기억하고 있다....싱가포르에서 1,600킬로미터 이상 달린 끝에 드디어 반퐁역에 도착했다. 하차 명령을 받고 내려서는 순간 나는 뻣뻣하게 굳어버렸다. 이제 원하든 원치 않든 철도노동자가 된 것이다."

싱가포르를 출발해 말레이반도를 종단, 방콕 서쪽 외곽 반풍역까지 이동한 여정이 담겨있다. 연합군 포로들은 반퐁역과 농플라독, 칸차나부리, 남톡 등 버마로 향하는 철도 노선 곳곳에 배치되었다.

한겨울 추위를 뒤로하고 6시간 비행 끝에 도착한 방콕의 공기는 방문자를 뜨겁게 감쌌다. 80여 년 전 전략적 요충지였던 태국은 이제 세계적 관광지로 탈바꿈했음을 보여주듯 입국심사대 앞으로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을 줄 세웠다. 공항에서 예약한 유심을 찾아 갈아 끼우고 숙소로 향하는 차량을 기다리는 중에도 세계 곳곳의 언어가 대기를 채웠다. 오후 4시가 안 돼 공항에 착륙했지만 숙소에 도착했을 때는 어둠이 깔렸다. 체크인을 마치고 방콕의 유명한 여행자거리 카오산로드를 목적지로 택시 서비스 그랩을 호출했다.

한때 배낭여행자들의 성지로 유명했던 카오산로드는 밤이면 뜨거운 유흥가로 변신하는 곳이다. 300미터도 채 되지 않는 짧은 거리에 방콕의 밤을 압축해놨다. 마사지샾, 기념품점, 주점이 들어서 있고 길을 따라 온갖 물건과 음식을 파는 노점 수레가 이어져있다. 길을 걷다 보면 한국어, 중국어, 일본어, 영어, 스페인어, 독일어, 러시아어가 태국어와 뒤섞여 돌림노래처럼 울린다. 아마도 이토록 짧은 거리에 다양한 국적과 인종을 모아 놓은 국제적 용광로는 전 세계를 통틀어 몇 군데 되지 않을 듯싶다. 어쩌면 태국의 근대사를 생각하며 걷기에 적합한 장소는 국제거리 카오산로드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베트남 사람들이 세계 최강 미국 군대와 싸워 이겼다는 자부심을 갖는다면 태국은 역사상 한 번도 외세의 식민지가 되지 않고 독립을 유지했다는 긍지를 갖고 있다. 태국이 자랑하는 독립의 역사는 고도로 복잡한 국제정치가 만들어 낸 산물이었다. 태국의 외교는 밤부(Bamboo) 외교, 즉 대나무 외교로 불린다. 태국은 국제 정치 역학에 따라 대나무처럼 극단적으로 휘어지는 외교전략을 펼쳤다. 물론 전략의 기준은 국익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열린 파리의 승전 퍼레이드에 시암 정부가 파병한 태국군 병사들도 참가했다. 영국과 프랑스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려 했던 시암 정부는 제1차 세계대전에서 영국, 프랑스와 함께 독일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 맞서 싸웠다. 덕분에 베르사유 평화회의의 한 자리를 차지한 시암 정부는 시암의 완전한 주권 회복을 주장했다. 19세기 영국과 프랑스 등 서구 열강들과 맺은 불평등 조약을 폐기해야 한다는 의미였다.

1939년 국호를 시암에서 태국으로 바꾼 정부는 1942년 12월 그동안의 중립 정책을 포기했다. 일본이 진주만을 공격하고 말레이반도를 장악하자 태국 정부는 일본을 선택했다. 태국은 일본과 군사동맹을 맺음으로서 2차 대전 추축국의 일원으로 합류했다. 일본은 말레이반도와 버마 침략의 근거지로 삼을 태국이 필요했다. 일본군은 태국 곳곳에 군사 기지를 두고 버마로 향하는 태국 서부 종단 철도 건설에 나섰다. 태국은 자국 내 일본군의 자유로운 활동을 보장했다.

▲야스쿠니 신사에 설치된 가미가제 특공용사 동상과 같은 포즈로 서있는 전투기 조종사를 표지로한 애창가요집 - 싱가포르 국립박물관 ⓒ박흥수

일본이 무너지자 태국은 미국을 선택했다. 1950년 발발한 한국전쟁은 제2차대전 이후 벌어진 대규모 국제전이 되었다. 태국은 재빨리 남한에 파병을 했다. 파시즘 대 반파시즘이었던 세계의 전선은 자본주의 대 공산주의의 싸움으로 변했다. 태국은 향후 국제정치를 주도할 미국의 편에 서는 길을 택했다. 미국은 일본을 동아시아에서 소련과 중국에 대응하는 하위 전략 파트너로 삼았고 동남아시아에서는 필리핀과 태국을 선택했다. 베트남과 캄보디아, 라오스에 차례로 공산주의 정부가 들어서자 태국은 동남아시아에서 미국의 이해를 관철시키는 핵심 국가가 되었다.

태국의 대나무 외교 정책은 현재 진행형이다. 미국과의 동맹을 과시하면서도 중국과의 협력도 놓지지 않고 있다. 미중대결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일방적으로 미국의 어깨에 기대지 않고 있다. 2023년 7월에도 태국은 자국으로 중국군을 초청해 합동 연합군사훈련을 실시했다.

동남아시아의 많은 나라들이 항일 투쟁을 벌였고 일본에 전쟁 책임을 물었지만 태국만큼은 일본과 갈등을 벌이지 않는 이유는 동맹국이었기 때문이다. 태평양 전쟁 이전에도 태국은 일본에 우호적이었다. 프랑스의 영토 분쟁에서 일본이 태국편을 들어줬기 때문이다. 1931년 관동군이 전격작전을 벌여 만주를 장악한 만주사변 당시에도 태국은 일본 편에 섰다. 1933년 만주사변에 관한 국제연맹 총회의 장에서 태국 정부는 일본 규탄 안에 홀로 기권표를 던지고 1941년 8월에는 만주국을 정식 승인했다.

일본이 버리고 간 C5631호 증기기관차를 운행하던 태국 정부가 일본으로 기관차를 보낸 것은 태국-일본 우호의 증표였다. 전후 경제 부흥기에 일본은 태국에 대규모 투자를 했다. 그 결과 C56계열 증기기관차 대신 도요타를 비롯한 수많은 일본산 자동차가 태국 땅을 달린다. 인프라, 전자 회사들이 태국에 깊게 뿌리 내렸다. 현재도 태국 사람들이 제일 선호하는 동아시아 국가는 일본이다. 2023년 U17 아시안컵 남자축구 결승전에서 한국과 일본이 만났다. 두 팀은 공방을 벌였지만 전반전 막판 태국 심판의 석연치 않은 판정으로 한국 선수가 퇴장을 당했고 승패의 추는 급격히 일본으로 기울었다. 일본은 아시아의 강팀으로 여겨지는 호주와 우주벡과의 경기에도 태국 심판이 배정됐고 이때도 판정 논란이 있었다. 한국과 일본의 축구 국가대항전이 열릴 때 태국 심판이 선정된다면 한국 선수들은 훨씬 더 열심히 뛸 각오를 해야 할지도 모른다.

▲C5623호 기관차가 견인하는 열차에 탑승하기 위해 모여선 연합군 포로들 - 야스쿠니 전쟁박물관 ⓒ박흥수

▲칸차나부리 콰이강의 다리 역에 전시되어 있는 연합군 포로 수송에 쓰인 C5623호 증기기관차 ⓒ박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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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당선 2년, 국민에겐 좌절과 비극의 시간"

각계 시민사회, '윤석열 정권 심판대회'..전국 동시다발 진행

  • 기자명 이승현 기자 
  •  
  •  입력 2024.03.09 22:46
  •  
  •  수정 2024.03.09 23:45
  •  
  •  댓글 1
 
'윤석열 정권 심판대회'가 9일 오후 서울 세종대로 프레스센터 앞에서 진행됐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윤석열 정권 심판대회'가 9일 오후 서울 세종대로 프레스센터 앞에서 진행됐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지난 2022년 3월 9일 실시된 제20대 대통령선거에서 윤석열 당시 국민의힘 후보가 48.56% 득표로 당선되면서 대한민국은 불과 1년 전까지 문재인 정부의 검찰총장이었던 윤석열 후보를 제20대 대통령으로 선출했다.

후보자에서 대통령 당선자로 신분이 바뀐 윤석열 대통령이 3월 10일 밝힌 당선 첫 소감은 "헌법 정신을 존중하고 의회를 존중하고 야당과 협치하면서 국민을 잘 모시겠다"는 것이었다.

2년이 지난 지금 국민들은 그렇게 되고 있다고 생각할까? 사표를 던진 검찰총장 윤석열을 대통령으로 만든 원동력이 '돌아선 민심'이었다면, 그로부터 2년의 시간이 지난 한국사회에도 그때 이상으로 '돌아선 민심'이 자리잡고 있다. 

'윤석열 당선 2년'동안 △민생파탄 △역사왜곡 △평화파괴 △참사외면 △거부권남발로 한국사회는 처참히 망가지고, 국민들은 좌절과 비극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윤석열 정권 심판대회'가 9일 오후 서울 세종대로 프레스센터 앞에서 진행됐다.

강원(강원도청 앞), 충북(오송참사시민분향소 앞), 세종·충남(천안역), 경북(3.8 구미 한국옵티갈 하이테크), 대구(CGV한일 앞), 부산(서면 태화 앞), 경남(경남도청 앞), 전북(전주시청광장), 대전(2.29, 이마트 둔산점 건너편)에서도 전국 동시다발 대회가 진행됐다.

전국민중행동, 거부권을 거부하는 전국비상행동, 전국비상시국회의, 10.29이태원참사 시민대책회의, 10.29이태원참사 유가족협의회, 한일역사정의평화행동, 윤석열정권퇴진운동본부 등이 망라되어 진행한 서울 대회에서는 "퇴행정치에 고통받는 국민들의 아우성이 끊이질 않고 있다"는 규탄의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각 단체 대표자들이 윤석열정권 심판 결의문을 낭독했다. 오른쪽부터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 하원오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 이경민 빈민해방실천연대 공동대표, 이영헌 진보대학생넷 서울인천지부 대표, 이은정 전국여성연대 집행위원장, 이나영 정의기억연대 이사장, 송성영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공동대표, 김준용 전국여성비상시국회의 집행위원장, 박석운 전국민중행동 공동대표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대회 참가자들은 "윤석열 당선 2년, 국민들에게는 좌절과 비극의 시간이었다"고 하면서 △고금리 물가폭등, 전세사기 피해, 복지예산 및 최저임금 삭감, 부자감세, 각종 부동산규제 완화 등 민생파탄 △양곡법, 간호법, 노조법 2.3조(노조할권리), 방송3법, 쌍특검, 이태원참사 특별법에 대한 거부권 남발과 검찰독재 행태 등 민주파괴 △북한 붕괴정책 선언, 한미연합군사훈련 강화, 대북전단살포 등 접경지역 충돌 조장을 비롯한 전쟁위협과 평화파괴 행위 △한미일 3각동맹을 앞세워 중러 적대정책 전면화, 강제동원 제3자변제안, 일본군 '위안부'피해자 손해배상청구소송 승소판결 무시, 후쿠시마 핵오염수 해양투기 방조, 홍범도장군 흉상 철거 등 역사왜곡, 굴욕외교 △KBS 세월호 10주기 다큐방영 폐지, 국민생명과 안전 무시 등 참사외면 등을 열거하고는 "퇴행의 정치, 역주행 정치, 거부권 통지 2년에 맞서 결연히 싸우자"고 밝혔다.

대회 결의문은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 하원오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 이경민 빈민해방실천연대 공동대표, 이영헌 진보대학생넷 서울인천지부 대표, 이은정 전국여성연대 집행위원장, 이나영 정의기억연대 이사장, 송성영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공동대표, 김준용 전국여성비상시국회의 집행위원장, 박석운 전국민중행동 공동대표가 낭독했다.

고미경 민주노총 사무총장의 사회로 진행된 대회에서 △안상미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 공동위원장 △양회선 양회동 열사 유가족 △강성원 언론노조 KBS본부 비상대책위원장 △이정민 10.29 이태원참사 유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 등이 각계를 대표해 규탄 연설에 나섰고 △이재희 6.15남측위 고양파주본부 집행위원장 △김종기 4.16세월호참사 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이 영상 발언을 보내왔다.

안상미 위원장은 "피해자가 되기 전 정치에 관심이 없었을 때는 뉴스에서 알려주는 텍스트가 전부인 줄 알았다. 그래도 전문가들이니 잘 알아서 최선을 다하겠지 했다. 이렇게까지 이해할 수 없는 상황, 상식적이지 않은 불평등한 상황들이 만연한 줄 몰랐다"며, "소리내지 않으면 당할 수 밖에 없고, 소리내지 않으면 그 누구도 진실을 알지 못하며 나의 편이 되어줄 수 없다는 것을 절실히 알았다. 국민이 없이는 대통령이 없다는 것을, 정부가 없다는 것을 새길 수 있도록 같이 소리치겠다"고 말했다.

양회선 님은 "윤석열 정권의 조기종식이 우리의 노동권, 생존권을 회복하는 길이고 동생의 명예회복을 앞당기는 길일 것이다. 동지들과 그리고 시민들과 함께 투쟁하겠다"고 했다.

전쟁반대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전쟁반대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이정민 운영위원장은 "막중한 책임감을 가지고 대한민국을 이끌어 가야할 대통령의 자리를 본인과 본인의 가족을 위해 그 권력을 행사하는 이기적이고 오만한 대통령, 국민의 눈에 피눈물을 쏟게 하고도 반성 한번 없는 뻔뻔한 대통령, 우리는 이렇듯 무도하고 악랄한 윤석역정부에 반드시 회초리를 들어야 하며 대통령이 국민위에 군림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윤석열 정부에 대한 심판을 통해 뼛속깊게 느끼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유가족협의회와 시민대책회의는 이날 대회 이후 서울광장 분향소 앞에서 10.29이태원 참사 500일 추모제 '진실을 찾아 다시 떠나는 길-3월에 태어난 별들을 기억하며'를 개최했다.

이재희 집행위원장은 "탈북자단체들이 대북전단을 날리고 유튜브 생중계까지 하며 북한은 물론 파주시민들까지 자극하고 있다. 며칠전부터 시작된 한미연합군사훈련으로 9.19남북군사합의에 따라 포사격금지구역인 임진강 민통선 안까지 자주포 전차들이 진입하기 시작했다"고 하면서 "모든 걸 뒤엎어 평화를 위협하는 존재가 바로 윤석열 대통령"이라고 비판했다. 그래서 "평화적 일상을 회복하고 싶은 접경지역 주민들은 한마음으로 윤석열 대통령을 반대한다"고 강조했다.

김종기 운영위원장은 "세월호참사 가족들이 지난 10년간 포기하지 않고 싸울 수 있었던 힘은 시민 여러분들이 함께 해주었기 때문"이라며 "이 개탄스러운 현실도 우리가 손잡고 함께 한다면 반드시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고 다짐을 밝혔다.

오는 16일에는 세월호참사 10주기를 맞아 '진실 책임 생명 안전을 위한 전국시민행진과 기억과 약속의 달 선포 기억문화제'가 경기도 광명시청을 출발해 서울시의회에서 진행된다. 

이수진 가수의 공연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이수진 가수의 공연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극단 경험과 상상의 공연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극단 경험과 상상의 공연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전쟁을 부르는 윤석열은 퇴진하라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결의문] (전문)

윤석열 당선 2 년, 국민들에게는 좌절과 비극의 시간이었다.

오늘 우리는 윤석열 정권의 끝없는 퇴행정치에 맞서 심판의 결의를 다진다.


1. 민생파탄! 윤석열 정권 심판하자!

고금리 물가 폭등으로 서민들의 생계는 한계에 다다랐다. 전국 곳곳에서 전세사기 피해 등 민생 문제가 끊이질 않고 있는데 윤석열 정권은 복지예산은 삭감시키고 부자감세를 추진하고 있으며 엎친데 덮친격으로 최저임금은 물가상승 대비 삭감 수준이 되었다.

그런데도 윤석열 정권은 각종 부동산 규제를 완화하며 집값 정상화보다투기를 부추기는 등 재벌과 자본에 퍼주기를 지속하고 있다.

또한 집권 초기부터 건설노조를 탄압하고 양회동 열사를 죽음으로 내몰더니, 노조할 권리가 담긴 노조법 2.3 조 개정안을 끝내 거부했다. 덩달아 노동자의 핏값으로 만들어진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완화하겠다며 기승을 부리는 것이 바로 윤석열 정권이다.


2. 민주파괴, 거부권 남발하는 윤석열 정권 심판하자!

윤석열의 총 아홉번째거부권남발중가장맨앞에서 피해를 입은건바로이 땅의 먹거리를 책임지는 농민들이다. 윤석열 정권은 농민들의 최소한의 쌀값 보장을 위한 양곡법을 시작으로 간호법, 노조법, 방송 3 법, 쌍특검, 이태원 참사 특별법마저 거부했다. 국회의 입법권한을 침해함과 동시에 국민의 뜻을 무시한 것이다. 이런 정권이 어떻게 국민을 대변하고, 국민을 대표할 수 있단 말인가.

윤석열 정권이 들어서고 빈곤계층은 무려 25 만 명이 증가했다고 한다. 경제위기 속에 불법이란 이름의 낙인으로 생계를 탄압하면서 어불성설로 이 와중에 윤석열 대통령은 재벌들과 민생을 돌보겠다며 시장에 가서 떡볶이 먹방쇼를 하며 총선 공세를 펼치고 있다. 진정성도, 신뢰성도 없는 빈 껍데기 뿐인 말에 정녕 국민들이 속아주리라 생각하는 것인가.

이 뿐인가. 윤석열 정권은 각 행정부처, 공직에 검찰인사들을 앉히는 검찰독재 행태를 벌이고 있다. 그리고 자신들을 비판하는 국민의 목소리를 '반국가세력'으로 규정하고 온갖 색깔론과 이념갈등을 뒤집어 씌우고 있다. 게다가 방통위원장 마저 검사로 앉히고 공영방송 이사진을 물갈이하며 방송언론을 장악하려는 행태 역시 벌어지고 있다. 21 세기에 도저히 벌어져서는 안될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3. 전쟁위협! 평화파괴! 윤석열 정권 심판하자!

지구 상 유일한 분단국인 한반도에서 우크라이나 팔레스타인에서의 전쟁이 절대 남의 일같지 않다. 윤석열 정권은 북한 붕괴정책을 선언하고 한미연합군사훈련을 작년 한 해만 수백차례 전개했다. 대북전단 살포 등 접경지역 충돌을 조장하는 행동도 일삼고 있다.

남북은 더 이상의 대화도, 협상도, 합작도 이룰 수 없는 조건에 놓이게 되었다. 언제까지 국민들은 평생 전쟁의 불안을 겪으며 살아야 하는가.


4. 역사왜곡! 굴욕외교! 윤석열정권 심판하자!

윤석열 정권은 미국이 바라는 한미일 삼각동맹으로 중,러에 대한 대결구도를 부추기는 적대정책을 전면에 내걸고 있다

한미일동맹을 위해 정부가 제시한 강제동원 제 3 자 변제안은 일본의 식민지배 역사를 면책하는 도구가 되었고,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국을 상대로 30 여년 투장 끝에 쟁취한 손해배상청구 소송 승소 판결을 무시로 일관하고 있다. 또 일본의 후쿠시마 핵오염수해양투기를 방조하여 국민의 건강과 생명안전의 권리마저 위험에 빠뜨렸다. 국민 80%가 반대했음에도 이를 묵살하고 일본 정부가 제시한거짓 자료를 옹호하며 한일관계의 가장 큰 현안들을 굴욕적으로 처리하는 사대매국 정책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하루 아침에 멀쩡히 있는 홍범도장군 흉상 철거로 철지난 색깔론 이념전쟁을 부추기는가 하면 3.1 절기념사에서는 '자위대' 앞에서 버젓이 한일수교60 주년 정상화를 언급하며 새로운 을사늑약 체결을 암시하고 있다.


5. 참사외면! 국민 갈라치는 윤석열 정권 심판하자!

세월호 참사이후 10년이란시간이 흘렀음에도사회적 재난참사는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다.

아직도 진상규명이 제대로 되지 않고 있으며 KBS 세월호 10 주기 다큐 방영 폐지와 같이 참사를 지우려는 시도는 지금도 판박이처럼 계속되고 있다. 그 아픔을 이태원 참사의 유가족들이, 오송 참사의 유가족, 이 땅의 국민들에게만 떠안기며 국민 생명과 안전을 무시한 정권의 말로가 어떠했는지 똑똑히 기억해야할 것이다.

대통령 거부권이 행사된 이태원 참사 특별법에 대해 정쟁법안이라며 국민을 갈라치고 왜곡하고 호도할 뿐만 아니라 유가족의 대통령 면담요청마저 외면하는 윤석열 정권의 비양심적 행태에 국민들은 개탄스러울 뿐이다.


6. 극악무도한 윤석열 정권에 맞서 우리는 결의한다!

국민들은 윤석열 정권단2년 만에 처참히 망가져가는 한국사회를 두 눈으로 지켜봐 왔다.

윤석열 정권이 지속될수록 국민들은 도탄에 더 깊게 빠질 것이 불을 보듯 자명하다.

이제는 퇴행의 정치, 역주행 정치, 거부권 통치2 년에 맞서 결연히 싸우자.우리는 2024년 올해, 반드시 윤석열 정권을 심판하고 지난 암흑에서 벗어나는 해로 만들 것이다.

국민을 위한 세상을 향해, 함께 앞으로 나아가자.

민생파탄, 민주주의 유린하는 윤석열 정권 심판하자!

역사왜곡 평화파괴하는 윤석열 정권 심판하자!

참사외면, 거부권남발하는 윤석열 정권 심판하자!


2024 년3월9일

윤석열 당선2 년, 민생파탄, 역사왜곡, 평화파괴, 참사외면,거부권 남발! 윤석열 정권 심판대회 참가자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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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당’으로 주류 바뀐 민주당…“본선서 ‘친명횡사’ 걱정”

‘자객공천’ 현실화된 민주당…“공천혁명” 상찬-‘총선 적신호’ 여론 혼재

기자엄지원
  • 수정 2024-03-08 12:47
  • 등록 2024-03-08 05:00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7일 경기도 양평군청 앞에 마련된 서울·양평 고속도로 국정농단 진상규명 촉구 농성장에서 열린 양평고속도로 특혜의혹 규탄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7일 경기도 양평군청 앞에 마련된 서울·양평 고속도로 국정농단 진상규명 촉구 농성장에서 열린 양평고속도로 특혜의혹 규탄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더불어민주당이 7일까지 4·10 총선 전국 254개 지역구 가운데 202곳의 공천을 확정한 가운데, 당 안에서 ‘이재명 사당으로 형질 전환이 마무리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낙천자가 비이재명계(비명계)에 집중되는 한편, 당내 경선에서 ‘자객 출마’를 자처한 친이재명계(친명계) 원외 도전자가 대거 승기를 쥔 까닭이다. 이를 “공천 혁명”이라고 했지만, 당 안에선 총선 판세에 적신호란 우려가 작지 않다.

6일 밤 발표한 지역구 후보 경선 결과 비명계 6명(강병원·김한정·박광온·윤영찬·전혜숙·정춘숙 의원)이 무더기로 패배하면서, 경선에서 탈락한 비명계 현역 의원은 8명(기존 이병훈·조오섭 의원 포함)으로 늘었다. 애초에 공천에서 배제(컷오프)된 이들(기동민·노웅래·홍영표·이상헌·김민철·변재일 의원)까지 포함하면 비명계 낙천자는 14명이 된다. 아직 경선이 남은 지역도 있지만, 송갑석(광주 서갑, 재선)·전해철(경기 안산갑, 3선) 의원 등 또다른 비명계의 승리도 장담하기 어려워 비명계 낙천자 규모는 더 커질 수 있다.

서울의 한 초선 의원은 7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어제 직전 원내대표를 지낸 3선의 박광온 의원까지 무명의 신인(김준혁 한신대 교수)에게 패배하는 걸 보고 충격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나조차 잘 모르는 후보들이 쟁쟁한 현역들을 꺾고 올라오는 걸 보니 당원 구조가 정말 크게 바뀐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경선에서 이겨 공천이 확정된 원외 친명계 중엔 ‘비명계 청산’을 내걸었던 이들도 적지 않다.

비명계는 긴장감과 참담함을 동시에 호소하고 있다. 경선 승부 자체가 불투명할 뿐 아니라, 승리 이후도 장담할 수 없는 까닭이다. 한 비주류 의원은 “일단 총선에서 생환하면, 이후 선거 평가 과정에서 이재명 대표를 비롯한 지도부의 책임을 물을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당장 공천조차 장담할 수 없게 된 것”이라며 “살아돌아오더라도 당내에서 완전히 소수파가 된다면 (이 대표 체제였던) 지난 2년보다 더 나은 4년을 만들어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번 공천으로 4월 총선 이후 민주당의 당내 역학구도는 크게 변할 것으로 보인다. 친명계에선 이 대표가 대권과 당권을 모두 쥔 당내 ‘원톱’임에도 여전히 ‘오래된 주류’인 친노무현·친문재인계와 86그룹에 밀려 ‘진정한 주류’로 서지 못했다고 봐왔다. 이 때문에 비명계와 친명계 모두 이 대표가 차기 총선을 통해 주류 교체에 나설 거라고 전망해왔다.

이 대표는 이런 결과가 “공천 혁명”이라고 상찬했다. 그는 이날 경기 양평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민주당은 당원의 당이고 국민이 당의 주인이라는 사실을 경선을 통해 증명했다”며 “(앞으로 국민들께서) ‘민주당이 역시 공천 잘하는구나, 혁신 공천했구나’ 판단하며 저희들에 대한 기대도 다시 되살아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친명계 의원들마저 “(지역구에) 아침 인사를 나가면 민주당은 지지하지만 이재명 때문에 찍기 싫다는 말을 듣는다”고 토로하는 것과는 다른 인식이다. 민주당의 한 당직자는 “수도권에 나선 친명 원외 후보들 대다수가 민주당 지지층에서만 알려진 이들이라 본선 경쟁력이 약하다”며 “경선의 ‘비명횡사’(비명계가 대거 낙선한 상황을 비유한 말)가 본선에서 ‘친명횡사’로 이어지지 않을까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엄지원 기자 umki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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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심판'으로 모인 힘...지역구 1:1 구도 급물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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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권 심판'을 위해 뭉친 민주진보 선거연합의 야권연대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과 진보당, 새진보연합 등은 ‘더불어민주연합’을 통해 비례대표 선거를 공동으로 치른다.

아울러 지역구에서도 국민의힘을 상대하는 여야 1대 1 구도를 만들기 위한 과정이 속도를 내고 있다.

지역구 단일화는 여론조사 방식의 단일화를 합의했으나, 협의를 통해 경선없이 정책단일화를 이룬 곳도 상당수 존재한다.

특히 대구는 후보단일화 예외지역이었음에도 최근 협의를 통해 '1대1 구도 만들기'에 성공했다.

 

협의 통한 정책단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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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단일화의 대표적인 사례는 서대문을 지역구에서 찾을 수 있다. 지난달 29일 서대문을 지역구 진보당 전진희 후보는 사퇴 입장을 밝히며 더불어민주당 김영호 후보와 정책단일화를 완료했다.

이날 김영호 후보는 전진희 후보 측이 주민 3천 명을 대상으로 추진했던 ‘주권자 정책제안’의 내용을 자신의 공약 사항으로 적극 받아들이기로 했다.

또한 이들은 서대문구 주민들의 당면 현안인 교통문제(서부경전철, 강북횡단선)와 가재울 도서관 건립 건과 관련해 일상적 협력을 약속하기도 했다.

단순 사퇴에 그치지 않고 정책적 공통지점을 숙의한 것이다.

전진희 후보는 “이태원 참사에서 보인 무책임과 민생 파괴, 인권 후퇴, 파탄난 남북관계가 윤석열 정권 2년의 기록”이라며 “국정기조를 바꿔야 한다는 국민의 부르짖음은 입이 틀어막힌 채 끌려나갔고 김건희 여사의 주가조작혐의와 명품백수수는 감히 입에 담을 수 없는 치외법권 영역이 됐다”고 규탄했다.

이어 “서대문에서부터 민주와 진보를 향한 길을 열어가겠다”며 “이번 총선을 반드시 윤석열 정권 심판으로 만들어 달라”고 덧붙였다.

진보당 울산시당은 29일 시의회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지역 출마 후보 4명 중 3명이 사퇴한다고 밝혔다. 울산시의회 제공

한편 울산 북구가 진보당 후보로 단일화를 결정하자, 울산에 출마한 진보당 후보는 야권 단결을 위해 경선 없이 모두 사퇴했다.

이들은 "노동자 도시 울산 북구에서 단일후보로 윤종오 후보가 된 것은 진보당과 민주당의 고뇌에 찬 결정"이라면서 “국민의힘에게 단 한 석도 내어줄 수 없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부산, 울산, 경남에서 윤석열 심판 돌풍이 불어야 총선에서 이길 수 있다"며 "사퇴한 3명의 후보는 총선 승리를 위해, 민주진보 단일후보의 당선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각오를 밝혔다.

울산 남구을 조남애 후보는 3선 구의원 출신이고, 중구 천병태 후보는 재선 광역의원을 지냈다. 울주군 윤장혁 후보는 20만 금속노조를 이끌던 위원장 출신이다. 모두 경쟁력을 갖춘 후보였지만, 윤석열 심판 총선에 힘을 모으기 위해 결단한 것이다.

이외에도 전국에서 협의를 통한 단일화는 속속 완료되고 있다. 현재 서울(서대문갑), 경기(부평구갑, 단원구을), 인천(계양을), 경남(양산을), 제주(제주시을) 등에서 후보 단일화가 완료된 상황이다.

 

여론조사를 통한 단일화

합의대로 여론조사 방식을 통한 단일화도 진행되고 있다.

부산 연제는 민주당 이성문 후보와 진보당 노정현 후보가 오는 15일-16일 여론조사를 치른다. 경남 창원의창은 민주당 김지수 후보와 진보당 정혜경 후보, 충청 홍성·예산은 민주당 양승조 후보와 진보당 김영호 후보가 오는 16일-17일 각각 여론조사가 예정되어 있다.

수도권은 김재연 전 의원이 출사표를 던진 경기도 의정부와 전·현직 의원이 맞붙게 될 서울 관악을에 관심이 집중될 전망이다. 민주당 후보가 확정되는 대로 경선일정이 발표될 것으로 보인다.

진보당이 전국 86개 지역에 후보를 낸 만큼, 이외에도 전국 수십 개 지역에서 단일화 방식과 일정이 논의되고 있다.

 

후보단일화 예외지역, 대구...야권단일화 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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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선거연합 합의에서 호남과 더불어 후보단일화 예외지역으로 남겨졌던 대구는 지역 자체 움직임을 통해 야권단일화에 성공했다.

지난 6일 야3당은 “윤석열 정부를 심판하고 더 다양한 시민의 뜻이 반영되는 대구를 만들기 위해 이 자리에 나섰다”며 “선거연합을 통해 뭉쳐 윤석열 정권 심판에 매진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대구 12개 선거구 가운데 서구를 제외한 모든 선거구에 후보자가 나서게 됐다.

민주당에서는 강민구(수성구갑)·신효철(동구갑)·허소(중·남구)·박정희(북구갑)·신동환(북구을)·권택흥(달서구갑)·김성태(달서구을)·박형룡(달성군) 등 8명이 출마한다.

진보당에서는 황순규(동구을)와 최영오(달서구병) 등 2명이, 새진보연합은 수성구을 선거구에 후보 1명을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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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나 말지...검찰총장 출신 대통령의 엉터리 법치주의



[取중眞담] '피의자' 호주대사 임명, 방심위 법원 결정은 모르쇠...전공의 압박 땐 '법치' 강조

24.03.08 20:32l최종 업데이트 24.03.08 20:32l

안홍기(anongi)

 

 

[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기자들이 취재 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롭게 쓰는 코너입니다.[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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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종섭 전 국방부장관 호주 대사 임명 철회 촉구 해병대 고 채 상병 순직 사건 수사 외압 의혹과 관련, 임태훈 전 군인권센터 소장이 7일 오전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서 이종섭 전 국방부장관의 호주 대사 임명 철회를 촉구하는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 이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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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대사를 임명했는데, 출국금지 대상자였다. 대통령실은 해병대원 순직 사건 수사에 외압을 행사한 의혹이 제기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직권남용 혐의로 입건한 이종섭 전 국방부장관이 호주대사로 임명됐다. 대통령실은 출국금지 사실을 몰랐다고 한다.

 

"특히 출국 금지 같은 경우에는 본인조차도 대부분의 경우에는 출국을 하려고 공항에 갔다가 알게 되는 경우가 많을 정도로 본인에게도 고지가 되지 않습니다. 더더구나 대통령실이나 대통령께서 공수처의 수사 상황에 대해서는 물을 수도 없고 답해 주지도 않는, 법적으로 금지된 사안이기 때문에, 저희로서는 알 길이 없었을 것이 너무나 당연하고, 관련된 후속 조치들은 공수처에서 알아서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7일 대통령실 관계자

 

그럼 법무부는? 출국금지는 법무부 소관인데 법무부는 정부가 아니란 말인가. 더구나 법무부는 고위공무원단에 대한 인사검증도 맡고 있다. 국방부장관 후보자가 되면서 인사검증을 거쳤다는 이유로 2년 여 뒤 호주대사 임용에 대한 인사검증을 생략했다면, 법무부가 할 일을 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밖에 되지 않는다.

 

지금 상황만 놓고 보면,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법무부장관 시절 미국 FBI의 인사검증시스템을 배우겠다며 출장까지 갔다 와서 만든 인사검증시스템은 외국 대사로 나갈 인물에 대한 검증은커녕, 출국금지 된 사람이 주요국 주재 대사로 임명되는 걸 눈뜨고 바라볼 수밖에 없는 상태라는 게 드러났다.

 

출국금지를 모르고 임명했든 알고서도 임명했든, 법무부는 출국금지를 해제했고 호주대사가 된 이종섭 전 국방부장관은 결국 한국을 떠날 것이다. 피의자가 한국을 떠나면 이후의 수사는 차질을 빚을 것이 명백하다. 고위 공직자의 범죄를 수사하는 기관의 힘을 빼는 일에 정부가 일조하는 이상한 상황인 것이다.

 

방송통신위법은 무시, 의사 집단행동엔 이중잣대

 

하지만 윤 대통령은 법치주의를 부르짖는다. 지난 6일 윤석열 대통령은 "의사들의 집단행동은 스스로 책무를 저버리는 일이며, 자유주의와 법치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것"이라며 강경 대응 방침을 밝혔다.

 

반면 "진료지원 간호사 PA는 시범 사업을 통해 이분들이 전공의의 업무 공백을 메우고 법적으로 확실하게 보호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의료법은 간호사가 진료하는 것을 금하고 있다. 그래서 정부는 '시범사업'이라고 해서 숙련된 간호사가 의사 없이 진료하는 걸 법적으로 보호하겠다고 한 것이다.

 

의사 늘리기에 반대한 의사들의 직무방기에는 법치주의 잣대로 대응하면서, 의료진 공백을 메우기 위해 의료법 위반을 눈감아 주겠다고 한다. 처음부터 법치주의를 내세우지나 않았다면 조금은 덜 모순적으로 느껴졌을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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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3월 4일 대구 북구 경북대학교에서 '첨단 신산업으로 우뚝 솟는 대구'를 주제로 열린 열여섯 번째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 대통령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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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부는 법원의 결정도 무시되기 일쑤다. 법원은 방송통신심의위원회 김유진 심의위원 해촉처분의 집행정지를 결정했고, 이에 따라 지난 5일 김 위원은 방송심의소위원회에 복귀하고자 했지만 류희림 위원장이 참석을 막았다.

 

법원 결정대로 김 위원 해촉 사유는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힘들었는데도, 앞서 윤 대통령은 위원회가 올린 김 위원 해촉안을 결재하고, 재깍 후임 위원을 위촉했다. 법원 결정으로 김 위원이 복귀하게 되면서 대통령 추천 방심위원이 '4명'이 됐다. 대통령 추천 방심위원을 3명으로 제한한 방송통신위원회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을 위반하는 상황이 초래된 것이다.

 

김 위원 해촉이 무효라면, 법을 지키기 위해 김 위원 후임으로 위촉한 위원을 해촉하는 것이 상식적인 수순일 텐데, 윤 대통령은 방관할 뿐이다. 김진표 국회의장이 지난해 10~11월 야권 몫 방심위원 2명을 추천했지만, 윤 대통령은 현재까지 이들을 위촉하지 않고 있다. 대통령은 법을 무시하고 있다.

 

산업현장에서 죽거나 다치는 이들이 너무 많아서 지난 2021년 1월 중대재해처벌법을 제정했다. 시행은 1년 뒤이고, 50인 미만의 중소 사업장에 대한 적용은 3년을 유예했다. 중소 사업장도 이 법을 잘 지켜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이 유지되도록 유예기간 동안 예산을 써서 지원하고 지도하는 게 정부의 의무다. 하지만 유예기간이 끝나가자 정부는 다시 2년을 유예해 달라고 국회에 요청했다.

 

법을 고쳐달라고 하기 전에 3년이라는 시간 동안 정부가 뭘 했길래 법 시행 대비가 안 됐는지 반성하고 사과를 해도 모자랄 판에, 윤 대통령은 "야당의 무책임한 행위에 강력한 유감"을 표명했다.

 

수사를 받는 피의자는 출국금지를 풀어 외국으로 보내고, 위법 상황을 방치하며 방송통신심의위에서 야권 인사를 배제하고, 전공의가 없는 병원에선 간호사들을 상대로 의료법을 어겨 달라고 하고, 맘에 들지 않는 법을 고쳐주지 않으면 안 좋은 감정을 드러내는 것이, 평생 법을 공부하고 집행한 대통령의 법치주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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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윤석열, #이종섭, #류희림, #중대재해, #의료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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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00명 모인 여성의 날 “여성 파업은 여성 혐오 부수는 힘”



[현장] 2024년 3·8 여성파업, 3·8 세계 여성의날 정신계승 전국노동자대회

 

기자명윤유경 기자

  • 입력 2024.03.08 21:05

  • 수정 2024.03.08 21:47

 

  • 언론자유를 지키는 힘, 미디어오늘을 지지해 주세요

▲ 8일 낮 12시 한국에서 처음으로 여성파업을 조직한 ‘2024 3·8 여성파업’ 참가자들은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 모였다. 사진=윤유경 기자.

“차별을 넘어 평등의 봄으로!” 3·8 세계 여성의날 정신계승 전국노동자대회에 각기 다른 상황에서 다른 요구를 하는 3500여 명(주최측 추산)이 성평등 사회를 위해 한 자리에 모였다. 여성, 남성, 논바이너리(여성과 남성 중 하나에 속하지 않는다고 규정한 이들)와 같은 성소수자, 노년과 중년, 청년 등 성별과 나이에 관계없이 다양했다. 이들은 모두 “구조적 성차별과 여성혐오를 부수자”고 외쳤다.

8일 낮 12시 한국에서 처음으로 여성파업을 조직한 ‘2024 3·8 여성파업’ 참가자들은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 모였다. 연차, 휴가, 조퇴를 통해 700여 명, 41개 단체가 여성파업 현장을 찾았다. 성차별적 승진승급을 문제로 투쟁해 온 금속노조 KEC지회와 해고 없는 소속기관 전원 전환을 위해 투쟁을 진행 중인 공공운수노조 건보고객센터지부는 쟁의권을 갖고 집회에 참여했다.

▲ 8일 낮 12시 한국에서 처음으로 여성파업을 조직한 ‘2024 3·8 여성파업’ 참가자들은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 모였다. 사진=윤유경 기자.

이날 집회에선 엄마의 이력서 작성을 도운 경험이 공유됐다. 신혜정 한국여성민우회 활동가는 발언에 나서 “엄마는 아이를 키우면서도 할 수 있다 여겨지는 마트 캐셔나 화장품 방문 판매 일을 해왔다”며 “엄마는 평생 여러 일을 해왔음에도 막상 이력서를 마주했을 때 무엇을 써야 하는지 난감해했다”고 했다. 신 활동가는 “경력으로 인정될 만큼 길게 일하지 못했거니와, 엄마가 평생 큰 책임을 가졌을 가사노동과 돌봄노동은 노동으로 인정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여성이 무급으로 해왔던 노동의 가치가 인정받아 앞으로는 여성 노동자의 이력서에 다채로운 경력이 기재될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는 정부의 퇴행·여성혐오 정책에 대한 비판도 나왔다. 이들은 이러한 현실을 반영해 2024년 여성파업의 구호를 “역행하는 시대, 돌파하는 우리의 투쟁”으로 내걸었다. 이들은 “여성 노동자들의 멈춤으로, 파업으로, 여성 노동자들의 힘으로, 연대의 힘으로 불평등의 사회에 균열을 낼 것”이라며 “여성파업은 구조적 성차별, 여성혐오를 부수는 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역·장애인·성소수자·돌봄노동자의 연대

▲ 8일 낮 12시 한국에서 처음으로 여성파업을 조직한 ‘2024 3·8 여성파업’ 참가자들은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 모였다. 사진=윤유경 기자.

공장폐쇄와 정리해고에 맞서 옥상 고공농성 투쟁을 진행 중인 금속노조 구미지부 한국옵티칼하이테크지회는 통화 연결로 연대의 뜻을 보탰다. 소현숙 지회 조직2부장은 “권리를 제한하고 임금의 격차를 둬 차별하는 건 나쁜 일인데 당연한 듯 일어나 참고만 살았다. 나중엔 바꾸려는 생각도 하지 못할 정도로 변해버렸다”며 “여성들에게 가해지는 교묘하고도 직접적인 차별을 막아내고 목소리 내야 한다. 지금의 나를 위해, 앞으로 살아갈 여성들을 위해 포기 말고 나아가자”고 했다.

 

오세훈 서울시장의 예산 중단으로 인해 서울시 ‘권리중심 중증장애인 맞춤형 공공일자리’에서 해고당한 이수미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개인 대의원도 “모든 차별과 배제는 연결돼 있다. 중증장애인들도 수많은 차별과 배제 속에 살아왔다”며 “여성을, 장애인을 차별하는 사회적 구조를 바꾸자. 같이 연대하며 지지하며 앞으로 나아가자”고 말했다.

▲ 8일 ‘2024 3·8 여성파업’에서 발언하는 이수미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개인 대의원. 사진=윤유경 기자.

이연수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트랜스인권팀 활동가도 “나는 태어났을 때 남성으로 지정받았지만 지금은 여성이란 정체성으로 살아가고 있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의 노동이 노동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것처럼 트랜스여성은 끊임없이 여성 범주에서 배제되며 존재를 부정당했다”며 “다양한 정체성을 가지고 다양한 노동을 하고 있는 우리가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이 지금의 가부장적 자본주의 체제에 균열을 일으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민간 요양보호센터에서 일하던 요양보호사 김춘심씨는 2019년 돌봄노동자들의 고용 안정과 공공성 강화를 위해 설립된 ‘서울시사회서비스원(서사원)’에 입사했다. 그러나 서울시는 서사원 예산을 100억 원 넘게 삭감했고, 김씨는 2023년 6월 계약만료로 해고됐다. 김씨는 현재 실업급여 기간을 마친 후 현재 민간센터에서 시급제 노동자로 일하고 있다.

▲ 8일 ‘2024 3·8 여성파업’에 참여한 돌봄노동자 김춘심씨(오른쪽). 사진=윤유경 기자.

김씨는 시민단체 ‘다른몸들’에서 돌봄 노동자 글쓰기 모임을 하며 돌봄 노동자가 받은 차별에 대해 공론화하고 있다. 김씨는 “우리가 겪는 차별에 대해 말해야 한다. 나는 계속해서 돌봄노동자의 차별받는 현실에 대해 글로 쓰고 세상에 발표할 것”이라며 “여성들이 힘을 모아 우리의 노동을 정당하게 대우하라고 외친다면 조금씩 사회가 변할 것이라 믿는다”고 말했다.

3·8 여성파업 조직위원회는 이날 5개의 요구안으로 △성별임금격차 해소 △돌봄 공공성 강화 △일하는 모두의 노동권 보장-고용안정과 비정규직 철폐 △임신중지에 건강보험 적용, 유산유도제 도입 △최저임금 인상을 내걸었다.

 

집회 참가자들의 참가 이유 “차별과 불평등 해소”

▲ 8일 집회 현장 부스에서 만난 명숙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상임활동가. 페미니스트 디자이너 소셜클럽 디자이너들이 여성파업 조직위에 동참하며 직접 디자인한 로고를 참가자들의 티셔츠에 인쇄해주는 부스다. 사진=윤유경 기자.

집회 시작 전부터 참가 단체들은 보신각 주변에 부스를 설치했다. 참가자들의 티셔츠에 여성파업 기념 로고를 인쇄해주는 부스엔 사람들이 붐볐다. 페미니스트 디자이너 소셜클럽 디자이너들이 여성파업 조직위에 동참하며 직접 디자인한 로고다. “너무 멋지지 않나요?” 웃으며 말하는 명숙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상임활동가는 “(디자이너들이) 한국에서 처음 진행되는 여성파업에 맞춰 ‘여성들이 세상을 바꾼다’, 역행하는 시대에 돌파하는 느낌으로 만들어줬다”고 설명했다.

▲ 8일 집회 현장에서 만난 동성결혼 법제화 캠페인을 진행하는 ‘모두의 결혼’ 부스 참가자들. 사진=윤유경 기자.

‘모두의 결혼’이라는 이름이 붙은 부스도 눈에 띄었다. 성소수자 평등과 동성 부부들의 삶을 위한 동성결혼 법제화 캠페인을 진행하는 부스다. 이호림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활동가는 “동성혼을 법제화한다는 것 자체가 가족제도에 남아있는 성별에 의한 차별을 제거하는 것”이라며 “성평등에 대한 요구에 당연히 동성혼법제화 요구가 들어간다고 생각해 관련 캠페인을 알리기 위해 3·8 여성의날을 맞아 나왔다”고 말했다.

미디어오늘은 참가자들에게 집회 참여 이유를 물었다. 집회 현장에서 만난 임용현 사회주의를향한전진 활동가는 “한국사회가 성별임금격차가 OECD 국가에서 27년째 1위”라며 “불평등한 구조를 바꾸기 위해선 여성 노동자들이 실제 현장을 멈추는 투쟁을 해야한단 취지에 공감해서 나왔다”고 말했다. 정유미 페미니스트 디자이너 소셜클럽 소속 디자이너는 “디자인계에서도 여성과 남성이 느끼는 노동의 차이가 있고, 불평등이 있다”며 “이러한 불평등이 해소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결혼이주여성의 임금차별 철폐연대에 함께하는 이남수 공공운수노조 사회조직지부 전략조직국장은 “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 결혼이주여성만 뽑는 직군이 있는데, 이분들만 한국인과 다르게 호봉제 임금을 적용하지 않고 최저임금보다 조금 높은 수준에서 기본급을 주고 있다”며 “10년이 넘게 일해도 최저임금 언저리의 임금을 받게 되는 거다. 이러한 차별을 없애야 해서 집회에 참여했다”고 말했다.

 

집회 후 행진, 전국노동자대회에서 3500명까지 참석자 늘어

▲ 8일 보신각에서 출발해 혜화까지 각기 다른 색깔과 모양으로 꾸민 피켓과 깃발, 현수막을 들고 모여 행진하는 사람들의 얼굴엔 웃음이 가득했다. 사진=윤유경 기자.

집회가 끝난 후 참가자들은 민주노총 주최의 ‘2024년 3.8 세계 여성의날 정신계승 전국노동자대회’ 참가자들과 함께 보신각에서 출발해 혜화로 행진했다. 오후 3시 혜화 마로니에 공원 앞에 도착해 진행된 전국노동자대회엔 총 3500여 명의 참가자들이 모였다.

▲ 혜화로 향하는 행진 중엔 “여성이 멈추면 세상이 멈춘다”는 구호와 함께 도로에 눕는 퍼포먼스도 진행됐다. 사진=윤유경 기자.

사회를 맡은 권수정 민주노총 여성위원회 위원장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면접에서 탈락하고 머리가 짧다고 폭행당하고 페미니스트로 의심받으면 징계받는 나라, 장애인 이주민 난민 소수자들의 권리는 비용으로 환산돼 생존을 위협하는 나라에서 지난 한 해에도 힘들었다”며 “그러나 성별에 따른 차별을 철폐해야 한다고 함께 소리 높여 투쟁해 주신 동지들이 있어 숨 쉬며 살았다”고 말했다.

▲ 오후 3시 혜화 마로니에 공원 앞에 도착해 진행된 전국노동자대회엔 총 3500여 명의 참가자들이 모였다. 사진=윤유경 기자.

여성 농민들에 대한 뿌리깊은 차별을 규탄하는 발언도 나왔다. 양옥희 전국여성농민회(전여농) 총연합회장은 “여성 농민의 투쟁은 이름을 얻기 위한 것이었다. 여성 농민들은 그저 누군가의 어머니였고 아내였으며 농사일에 전력을 다해도 농민이 아니었다”며 “세대주 남성이 아닌 여성에게도 농민의 이름을 달라고 싸우고 있으며 여성의 노동력이 마을 단위에서 무급으로 활용되는 사회의 인식과 싸우고 있다”고 말했다.

집회엔 성평등을 실천한 조직과 개인에 대한 시상식이 있었다. 서울 지하철 성추행 사건 피해자와 함께 투쟁해 가해자를 처벌한 전국민주여성노동조합 서울메트로지부, 건설 현장 여성 노동자들이 당하는 차별을 해소하기 위해 성평등 고용 사업 활동을 하고 있는 건설산업연맹 전국건설노동조합 타워크레인 분과위원회 등이 수상했다.

▲ 8일 보신각에서 출발해 혜화까지 각기 다른 색깔과 모양으로 꾸민 피켓과 깃발, 현수막을 들고 모여 행진하는 사람들의 얼굴엔 웃음이 가득했다. 사진=윤유경 기자.

입사 후 당한 성추행 및 최저임금법 위반을 폭로한 금속노조 대구지부 성서공단지회 무티아라 차흐얀다와 디아나 알리파흐 엘리는 대표 수상소감을 맡았다. 이들은 “울면서 보냈던 우리가 이제 Strong woman(강한 여성)이 되었다”며 “한국에서 여성 노동자로 살아가기 위해 더 힘을 내야겠다고 생각한다. 여성이란 이유로, 이주노동자라는 이유로 성폭력을 당하거나 차별받지 않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오늘 하루도 당당하게 살아가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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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여성단체연합, 성평등 걸림돌에 X(트위터)·넥슨 선정

▲ 8일 금속노조 대구지부 성서공단지회 무티아라 차흐얀다와 디아나 알리파흐 엘리는 대표 수상소감을 맡았다. 사진=윤유경 기자.

여성노동자들의 총선 요구안 발표도 이어졌다. 이들은 △성인지적 노동환경 개선 △성별임금격차 해소 △안전과 재생산에 미치는 노동환경의 성별 영향 점검 △12세 미만 아동양육자에 대한 노동시간 단축 우선적용 △성평등단협의무 법제화를 요구했다.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은 “우리의 노력으로 조금씩 줄여왔던 성별, 임금 격차는 윤석열 정권에서 또다시 확대됐다”며 “정부의 정책이 차별을 재생산하고 확대하는 현실에서 우리는 단호히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했다. 이어 “성차별은 비정규직 차별을, 인종차별을, 학력차별을, 장애인 차별을 정당화하는 수단이 된다”며 “가정에서, 일터에서 사회 곳곳에서 화석처럼 뿌리내린 성차별의 고리를 끊어내는 투쟁은 여성들만의 몫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과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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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초’ 회사 승진 차별 맞선 여성노동자, 변화 끌어냈다

“아무도 안하면 변화 없어 용기내”

육아휴직 뒤 잇단 불이익 구제신청
재심 끝 중노위서 ‘차별’ 인정받아
새 승진기준·재심사까지 이끌어내

기자오세진
  • 수정 2024-03-08 07:08
  • 등록 2024-03-08 05:00
지난해 3월8일 오후, 서울 종로구 보신각 인근에서 열린 ‘세계 여성의 날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전국노동자대회’에서 참가자들이 행진 중에 차별의 벽을 부수는 행위 연출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3월8일 오후, 서울 종로구 보신각 인근에서 열린 ‘세계 여성의 날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전국노동자대회’에서 참가자들이 행진 중에 차별의 벽을 부수는 행위 연출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변화도 없기에, 다시 한번 용기를 냈습니다.”

농기계 제조 및 판매 회사에서 18년째 일하고 있는 조아무개씨는 요 몇년 사이 가슴앓이를 해왔다. 전체 임직원 10명 중 9명이 남성인 ‘남초’ 회사에서, 2017년 ‘출산전후휴가’(90일)를 사용한 게 ‘화근’이 됐다. 회사는 평소에도 출산휴가·육아휴직을 신청하는 여성 직원에게 ‘네가 자리를 비우면 대체 인력이 없다. 차라리 그만두라’고 압박하는 분위기였고, 사내 노동조합도 여성 직원들의 고충을 외면했다.

따가운 눈총을 무릅쓰고 휴가를 썼지만, 무늬만 출산휴가였다. 조씨는 아이를 낳은 지 나흘 만에 산후조리원에서 노트북을 펴고 일을 해야 했다. 산후조리원을 나온 뒤에도 내내 재택근무를 했다. “(회사에서) 요구하니 일을 하긴 했지만, 그땐 정말 ‘이게 맞는 걸까’ 싶었어요.” 석달 뒤 복직한 조씨가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근무’를 신청하자 ‘다른 지역으로 발령내겠다’는 압박이 들어왔다. 조씨는 굽히지 않았다.

“누군가는 (빼앗긴 권리를 되찾기 위한) 시작을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버텼어요.”

‘세계 여성의 날’을 하루 앞둔 7일 조씨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 ‘대가’는 생각보다 컸다. 조씨가 복직한 직후인 2018년 회사는 여성 직원 전원을 진급에서 누락시켰다. 신규 여성 직원은 모두 정규직이 아닌 계약직으로 채용했다. “후배 (여성) 직원들도 (저를) 이해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저를) 원망하더라고요. 저한테 ‘너무하다’고…. 그래서 실은, 이번 성차별 시정 신고도 시작하기가 두려웠어요.”

회사는 지난해 3월 승진심사에서 여성 직원들이 충족할 수 없는 기준을 적용했다. 대리점(딜러점)에서 직접적인 영업 활동을 하지 않는 ‘영업지원직’(전원 여성)은 충족할 수 없는 매출점유율·채권점유율 등을 승진 기준으로 삼은 것이다. 승진 대상 중 영업관리직 남성 4명 중 3명은 승진했지만, 조씨를 비롯한 여성 2명은 모두 탈락했다.

두 사람은 ‘회사가 여성 직원을 승진에서 차별했다’며 지난해 5월 지방노동위원회(지노위)에 구제신청을 했다. 하지만 지노위는 “인사에서 상당한 재량을 인정해야 한다”며 성차별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판정이 나기도 전, 한 공익위원으로부터 “이건 이길 수 없는 싸움이다. 계속 일하고 싶으면 이 정도에서 멈추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조씨는 “‘아, 이게 현실이구나’, ‘현실이 이래서 다들 참는구나’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두 사람은 포기하지 않았다. 서울여성노동자회와 전북여성노동자회의 도움으로 지난해 10월 중앙노동위원회(중노위)에 재심을 신청했다. 중노위는 지난해 12월 “(회사가) 여성 직원들이 충족할 수 없는 기준을 적용하여 간접 차별이 발생했다”고 판정했다. “너무 기뻐서 눈물이 나더라고요. 20년 가까이 일하면서도 회사에서 인정받지 못했던 제 일의 가치를 인정받은 느낌이었어요.”

회사는 중노위 판정에 불복하는 소송을 따로 제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승진심사 기준을 새로 마련해, 지난달부터 조씨 등 두 사람에 대한 승진심사를 다시 진행하고 있다. 공교롭게도 그 결과가 나오는 날이 8일이다.

“여성이 조금 더 목소리를 낼 수 있고, 기업들은 관행처럼 행한 성차별을 해결하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이렇게 하나둘 용기를 내다보면 우리 다음 세대, 그다음 세대에는 진정한 성평등 사회가 될 수 있다고 믿어요.” 조씨가 담담하게 말했다.

오세진 기자 5sj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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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창으로 밸류업?…주주 보호 강화 없이 변죽만 울리는 윤 정부

  • 분류
    아하~
  • 등록일
    2024/03/08 09:03
  • 수정일
    2024/03/08 09:03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윤석열 당선 2주년, 초라한 경제 성적표]①기대 못 미친 밸류업 정책에 주가 부진…‘코리아 디스카운트’ 핵심 재벌 문제 배제돼

윤석열 대통령이 2일 서울 영등포구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2024 증권·파생상품시장 개장식에서 축사하고 있다. (사진=대통령실 제공) 2024.01.02. ⓒ뉴시스
정부의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 정책이 변죽만 울린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단기 주가 상승 재료가 됐던 밸류업 프로그램의 효과는 금세 사그라들었다. 한국 증시의 신뢰를 저해하는 재벌 지배구조 개선 방안 없이는 장기적인 기업가치 제고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7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정부가 밸류업 프로그램을 발표한 지난달 26일 이후 코스피 지수는 지지부진한 모습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 6일 종가 2,641.49는 정부의 밸류업 프로그램 발표 전날보다 26.21포인트 하락한 수치다. 정부 발표 당일에는 전장 대비 20.62포인트 하락했고, 이튿날에는 27.03포인트가 추가로 빠졌다.

최근 주가 흐름은 밸류업 프로그램이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시장 평가를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밸류업 프로그램에는 기업지배구조보고서에 기업가치 제고 계획을 기재하도록 하는 방안이 담겼다. 다만, 기업이 밝힌 계획에 강제성을 부여하지는 않는다.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주주의 비판이 뒤따르겠지만, 당국의 제재만큼 강제력을 갖기는 어렵다. 계획을 공시하는 것조차 의무가 아니다. 기업 자율에 맡긴다. 자발적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방안이 제시됐다. 우수 기업에는 표창을 수여하고, 모범납세자 선정 우대와 R&D 세액공제 사전심사 우대 등 세정 지원 혜택을 준다. 감세라는 당근만 있고, 채찍은 없다.

기업가치 제고 계획 공시 관련 가이드라인 발표는 오는 6월로 미뤄졌다. 정부는 올해 하반기부터 공시가 이뤄지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증권가는 ‘부족하다’고 입을 모았다. 대신증권은 “시장에서 기대했던 밸류업 프로그램의 세부 내용은 없었다”며 “기대와 현실 간 간극은 우려했던 것보다 크다”고 짚었다. 키움증권은 “기업들로 하여금 실행 의지를 높일 만한 구체적인 지원 방안은 추후 후속대책으로 미뤄 놓았다는 점이 주가 약세를 유발했다”고 풀이했고, 신한투자증권은 “가치주는 밸류업 기대를 발판으로 질주 중이었지만 정책발 불확실성에 직면했다”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연초부터 주가 부양에 대한 의지를 강하게 드러냈다. 올해 첫 장이 열린 지난 1월 2일, 역대 대통령 최초로 한국거래소 개장식에 참석해 “글로벌 증시 수준으로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할 것”이라고 천명했다.

당시 제시된 대책은 기업가치 제고 의지를 의심케 한다. 주식 양도차익 5천만원 이상의 주식부자에게 부과하는 금융투자소득세가 오는 2025년 시행될 예정이었는데, 돌연 폐지 추진 방침을 밝혔다. 금융상품 투자 이익에 대한 세금을 감면해 주는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 혜택도 확대한다. 세금 때문에 주식 투자가 늘지 않는다는 인식이다. 윤 대통령은 상속세를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주범으로 지목하며 완화하겠다고도 했다. 상속세가 주가 상승에 따른 재벌 총수일가의 세 부담을 가중시켜, 기업의 주가 부양 의지를 저해한다는 인식이다.

기업가치 제고를 가장한 부자·재벌 감세가 쏟아지는 가운데, 밸류업 프로그램이 거론됐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1월 17일 윤 대통령이 주재한 민생토론회에서 주주가치 제고 일환으로 밸류업 프로그램을 운영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구체적인 내용이 발표되기까지 한 달여간 주가순자산비율(PBR)이 낮은 기업을 중심으로 주가가 반등했다. 정부의 밸류업 프로그램이 시행되면 저PBR 기업의 주가가 오를 수 있다는 기대감이었다. 밸류업 프로그램이 단기 주가 부양책 수준에 그친 가운데, 보다 근본적인 기업가치 제고 방안을 추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진다.

 

 

 

밸류업 프로그램이 발표된 지난달 26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에서 딜러들이 업무를 하고 있다. 이날 코스피는 전 거래일(2667.70)보다 20.62포인트(0.77%) 내린 2647.08에, 코스닥지수는 전 거래일(868.57)보다 1.17포인트(0.13%) 하락한 867.40에 거래를 종료했다. ⓒ뉴시스

어설픈 일본 베끼기에 재벌 문제는 배제

밸류업 프로그램은 일본 정책에서 가져왔다. 도쿄증권거래소는 2022년 증시를 프라임(글로벌기업), 스탠다드(중견기업), 그로스(신흥기업) 등 3개 시장으로 재편하고, 프라임과 스탠다드 시장 상장사 중 PBR 1배 미만 기업에 대해 개선 방안을 제시하도록 했다. PBR이 1배 미만이면 회사 자산을 모두 매각한 가치보다 주가가 낮다는 의미다.

한국과 일본은 증시 환경이 다르다. 한국의 기업가치 제고 핵심 과제는 기업 지배구조 개선이라는 진단이 나온다. 재벌 총수일가의 지분 유지·상속을 위해 다른 주주 이익을 침해하는 행태는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주된 요인으로 꼽힌다. 밸류업 프로그램이 벤치마킹한 일본은 재벌 문제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정부가 한국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일본 정책을 일부 차용하는 데 그쳤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배경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을 자신에게 유리한 합병비율로 성사시키기 위해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 씨에게 뇌물을 건넨 건 한국 자본시장의 신뢰에 큰 타격을 준 대표적인 사건이다. 합병비율 산정 시 기업가치가 낮게 매겨진 삼성물산 주주는 이 회장 승계 과정에서 손해를 봐야 했다. 경영진 의사결정이 기업가치 제고에 반하는 방향으로 이뤄질 수 있다는 점은 한국 증시에 대한 외국 자본 투자를 저해한다.

CNBC는 최근 기사에서 “한국의 일본식 기업지배구조 개선 조치로는 저평가된 주식시장을 살리고 이른바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기에는 역부족일 수 있다”고 평가하면서, 그 배경으로 재벌 기업의 지배구조를 꼽았다. 보도는 “재벌은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원인 중 하나”라며 “가족 소유 구조에서는 소수 이해관계자가 전략적 결정에 거의 영향력을 미치지 않기 때문”이라고 짚었다.

행동주의 펀드 헤르메스의 아시아 수석 포트폴리오 매니저인 조나선 파인스는 지난달 글에서 한국과 일본이 저평가되는 배경의 차이를 설명했다. 그는 “일본 주가가 낮았던 이유는 지나치게 보수적인 경영으로 재무구조가 최적화되지 못한 문제에서 비롯됐다”면서 “지배주주가 과도한 이익을 독점하거나 주가를 낮게 유지하려는 잘못된 의도로 인한 시장 우려 때문이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반면 한국에 대해서는 “지배주주가 합법적으로 소액주주를 희생시키며 이익을 얻는 것이 가능한데 어떻게 이들 패밀리를 설득할 수 있나”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지배주주들은 거버넌스 관련 근본적인 변화에 계속 반발하고 있다”면서 “최근 몇 년 동안 시행된 정부 정책 개정은 마치 지배주주들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는 것이 목표인 것처럼 보인다”고 꼬집었다.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최우선 과제로 이사의 충실의무 강화가 지목된다. 현행 상법상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은 회사로 한정된다. 주주 이익을 훼손하더라도 회사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결정에 대해서는 이사가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다.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주주로 확대하는 상법 개정안이 국회에 계류 중이지만, 사실상 이번 국회에서는 처리가 무산됐다. 파인스는 “한국 당국은 이사가 단지 회사에 충성하는 것이 아니라 주주 이익 향상에 대한 책임을 갖도록 요구하는 법률을 시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회장이 삼성물산-제일모직 부당합병 관련 혐의로 유죄를 선고받았지만, 주주 피해는 회복되지 않았다. 합병 당시 삼성물산 주식 1주의 가치는 제일모직 0.35주로 산정됐다. 이 회장이 지분을 가진 제일모직 기업가치를 높게 책정하면서 상대적으로 삼성물산이 저평가됐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삼성물산 최대주주인 국민연금 찬성표가 필요했던 이 회장이 박 전 대통령 측에 뇌물을 줬다는 건, 합병비율이 삼성물산에 불리했다는 것을 방증한다. 그럼에도 합병비율에 따른 주주 피해에 대해 삼성물산 이사는 책임을 지지 않았다. 삼성물산 주주가 제기한 합병 무효 소송에서 재판부는 이사가 주주의 득실을 고려해야 할 의무는 없으므로, 충실 의무 위반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윤 대통령은 한국거래소 개장식에서 “이사회가 의사결정 과정에서 소액주주 이익을 책임 있게 반영할 수 있도록 하는 상법 개정을 추진할 것”이라고 공언했지만, 구체적인 일정은 제시하지 않고 있다.

일본에서는 도쿄증권거래소가 2015년 기업 지배구조 모범규준에 이사의 소액주주에 대한 충실 의무를 도입했다. 모범규준은 강제성을 갖지 않지만, 원칙을 지키지 않을 경우 투자자에게 설명할 의무를 부여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6일 부산 중구 깡통시장을 방문해 기업인들과 떡볶이를 맛보고 있다. 왼쪽부터 최재원 SK 수석부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조현준 효성 그룹 회장, 윤 대통령, 구광모 LG그룹 회장,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 정기선 HD현대 부회장.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2023.12.06. ⓒ뉴시스

자사주 통한 총수 지배력 강화, 글로벌 스탠다드와 동떨어져

자사주를 총수일가 지배력 강화 수단으로 쓰는 행태도 국제적인 기준에 어긋난다. 한국에서는 자사주를 매입한 후 소각하지 않아도 된다. 자사주 매입 후 소각은 대표적인 주주환원 정책이다. 주식 수가 줄어들면 나머지 주식의 가치가 높아지는 효과가 있다. 다만, 자사주를 소각하지 않고 기업이 보유하면 주식 가치 상승 효과가 나타나지 않고, 지배주주의 영향력만 커지게 된다. 또한, 자사주를 우호 세력에 매각해 총수일가 경영권을 방어하는 데 악용되기도 한다.

일례로 금호석유화학은 지난 6일 자사주 50%를 3년간 소각하겠다고 공시했는데, 이는 반대로 말하면 나머지 절반은 남겨두겠다는 의미이기다. 행동주의펀드 차파트너스자산운용은 “나머지 50%의 자사주를 남겨두는 결정을 한 것은 우호적인 제3자에 대한 처분을 위한 것으로 보인다”며 “총수일가의 경영권 방어를 위해 나머지 자사주가 제3자에게 매각될 수 있다는 시장과 주주의 우려는 여전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주요 선진국에서는 자사주를 매입과 동시에 소각해야 하거나, 자사주 보유가 일정 수준 이하로 제한된다. 미국 마이크로소프트(MS) 본사가 위치한 워싱턴주는 자사주 보유가 불법이다.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은 최근 논평에서 자사주 소각 의무화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회삿돈을 들여 특정 주주의 경영권 방어를 위해 쓰면 불법이라는 건 전 세계에서 예외 없이 공통”이라고 강조했다.

지난해 5월 금융위원회 자문기구인 금융발전심의회가 자사주 소각 의무화를 제안했으나 무산된 데 이어, 정부의 이번 밸류업 프로그램에서도 배제됐다. 기업이 자사주 매입·소각 관련 공시에 참여하도록 상장기업 간담회를 개최하겠다는 극히 낮은 강도의 대책이 제시됐을 뿐이다.

자사주 소각은 기업가치 제고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국투자증권에 따르면, 지난해 2월 기준 한국 상장기업의 미소각 자사주는 총 34억주로, 금액으로는 74조원에 달한다. 이들 자사주를 3년에 걸쳐 소각할 경우 코스피는 3620까지 오를 것으로 추산됐다.

재벌 지배구조 문제를 외면한 밸류업 프로그램에 대한 기업 대응은 소극적인 수준에 그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이창민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는 “지배주주의 사익추구에 따라 기업이 돈을 비효율적으로 쓰는 문제와 관련해, 지배주주의 절대적인 권한을 제한하고 이사 충실 의무를 강화해 경영진에 대한 견제가 작동하도록 해야 하는데, 정부 발표에는 해결 방안이 하나도 제시되지 않았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향후 나올 기업가치 제고 공시는 배당을 일부 확대하고, 자사주를 매입하되 소각은 하지 않는 등 총수 지배력과 관련 없이 생색 내기 좋은 내용에 집중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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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 부정’ 박근혜 측근 공천에 한국일보 “한동훈 모순”



[아침신문 솎아보기] 국민의힘 공천 과정에도 연일 ‘친윤불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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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트럼프’ 리턴매치 확정, 한반도에 미칠 영향은

 

기자명박재령 기자

  • 입력 2024.03.08 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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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하 변호사가 지난달 5일 오후 대구 수성구 호텔인터불고에서 열린 도서 '박근혜 회고록 : 어둠을 지나 미래로1·2' 출간기념회에서 발언하며 눈시울을 붉히고 있다.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에 이어 국민의힘도 당 주류가 공천을 ‘독식’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특히 탄핵을 당했던 박근혜 전 대통령의 측근이 공천받은 것을 놓고 동아일보는 “대통령의 뜻이 반영되는 흐름”이라 했고 한국일보는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이 적극 해명에 나서고 있지만 모순적인 부분도 적잖다”고 했다.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회는 지난 5일 박근혜 전 대통령의 측근 유영하 변호사를 대구 달서갑에 단수 공천했다. 최서원(최순실) ‘태블릿PC 조작설’을 제기하며, 윤석열 당시 서울중앙지검장과 각을 세웠던 도태우 변호사도 대구 중남구에 공천을 받았다. 윤석열 대통령과 국정농단 수사를 주도했던 한동훈 비대위원장은 관련 질문에 “(탄핵은) 굉장히 오래된 얘기”라고 했다.

▲ 8일자 한국일보 4면 기사.

한국일보는 8일 4면 톱에 <비윤 내치고 탄핵부정 세력엔 꽃길… 與도 ‘비호감 공천’> 기사를 내고 “공천이 곧 당선인 대구라는 점을 감안하면, 박근혜 탄핵의 상징과도 같은 인사들이 22대 국회에 나란히 입성하게 된다”며 “한 위원장은 이날 최고위 회의에서 더불어민주당의 음주운전 경력자 공천을 겨냥해 ‘그렇게 공천을 운영하면 안 된다’고 비판했다. 같은 논리를 적용하면 민주당 후보들의 음주운전 처벌은 2017년 박 전 대통령 탄핵보다 더 오래됐다”고 지적했다.

한국일보는 “한 위원장이 거론한 이재명 대표 음주운전은 20년 전 일이다. 논란이 있는 공천을 합리화시키다 보니 앞뒤가 안 맞는 발언이 나오고 있는 셈”이라며 “3선 이상 32명 중 24명(75%)이 공천을 받았다. 이뿐만 아니라 30명에 가까운 전직 의원을 공천해, 경력직이 사실상 대세를 이뤘다. 4년 전 총선에서 참패했기 때문에 탈환할 지역이 많은 국민의힘 상황을 고려하면, 새로운 얼굴을 발굴하는 데 실패했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고 했다.

동아일보도 8일 사설 <‘비명 배제’ ‘친윤 불패’… 권력 쥔 쪽이 다 가졌다>에서 “국민의힘도 주류의 공천 압도라는 점에선 다를 게 없다. 출마 의사를 밝힌 현역 의원 96명 가운데 66명이 공천장을 받았다”며 “인요한 전 혁신위원장이 ‘와이프와 아이만 빼고 다 바꾸자’던 친윤·영남 중진 교체 요구가 오래전 일로 여겨질 정도”라고 했다.

동아일보는 “박근혜 전 대통령 측근 2명이 공천을 받고, 유승민 전 의원 측이 고전하는 등 대통령의 뜻이 반영되는 흐름도 있다”며 “여든 야든 공천을 주도하는 세력은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상식의 틀을 벗어날 때는 역풍을 맞곤 했다”고 우려했다.

 

여성의날 특집… “여성에게 더 가혹한 ‘노동시장 이중구조’”

‘세계 여성의 날’(8일)을 맞아 경향신문, 한겨레, 한국일보가 1면에 특집 기사를 냈다.

▲ 8일자 경향신문 1면 사진기사.

▲ 8일자 경향신문 1면 기사.

경향신문 1면 제목은 <지금, 2030 여성에게 ‘일은 시민권이다’>이다. 경향신문 플랫팀은 각기 특성이 다른 대기업·공공기관 소속의 정규직 여성 노동자 6명과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 7명을 대상으로 지난달 15~16일 4시간씩 초점집단면접(FGI)를 실시했다고 밝혔다. FGI는 심층 집단 인터뷰를 통해 개인별 의견을 넘어 참여자들의 공통적 특징을 발견해내는 질적 연구방법이다.

경향신문은 8면 <불안하다, 출산하는 순간 영영 출근하지 못할까봐>, 9면 <포기했다, 커리어 위해 돈이나 시간 혹은 성취감을> 등에서 열악한 여성의 노동 환경을 짚었다. 8면은 비정규직, 9면은 정규직 여성의 목소리가 담겨있다.

한겨레는 ‘남초’ 회사에서 육아휴직 뒤 잇따른 불이익을 받고도 끝까지 싸워 ‘차별’을 인정 받은 조아무개씨의 이야기를 담았다. 회사는 조씨가 2018년 복직한 직후 여성 직원 전원을 진급 누락시켰다. 조아무개씨는 1면 한겨레 <승진 차별 맞선 여성노동자, 변화 끌어냈다> 기사에서 “누군가는 (빼앗긴 권리를 되찾기 위한) 시작을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버텼어요”라고 말했다.

▲ 8일자 한겨레 2면 사진기사.

한국일보도 1면에 <‘경력단절 피하려 무자녀’… 저출생 낳는 ‘성차별 노동시장’> 기사를 냈다. 한국일보는 “1996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 이래 27년째 ‘성별 임금 격차’ 1위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그 배경에는 여성에게 더 가혹한 ‘노동시장 이중구조’ 문제가 존재한다”며 “소수의 안정된 고임금·정규직을 뜻하는 1차 노동시장과 다수의 불안정한 저임금·비정규직인 2차 노동시장으로 일자리 양극화가 진행되는 가운데, 여성은 상대적으로 2차 노동시장에 더 많이 편입되는 양상을 보인다는 얘기”라고 했다.

바이든, 트럼프 누가 되도… ‘한반도 리스크’ 커진다

미국 공화당 대선 주자 니키 헤일리 전 유엔대사가 경선 중단을 선언하면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공화당 대선 후보로 확정됐다. ‘바이든 트럼프’ 리턴매치가 확정되면서 누가 되든 ‘한반도 리스크’가 커진다는 우려가 나오는 가운데 트럼프 전 대통령의 지지 선언을 하지 않은 헤일리 전 대사의 지지층이 어디로 향할지도 관심사다.

▲ 8일자 동아일보 18면 기사.

동아일보는 8일 국제면 <트럼프 지지 거부한 헤일리… 지지자 표심, 美대선 캐스팅보트로>에서 “공화당 소속이지만 52세 인도계 여성으로서 중도보수층의 지지를 받아왔다. 이에 바이든 대통령과 트럼프 전 대통령 중 갈 길을 잃은 헤일리 전 대사의 지지자를 더 많이 포섭하는 사람이 11월 대선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며 “최근 퀴니피액대의 여론조사에서도 헤일리 전 대사의 지지자 중 37%가 ‘그가 사퇴하면 트럼프 대신 바이든을 찍겠다’고 할 정도”라고 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소셜미디어로 “모든 헤일리 지지자들을 위대한 운동에 초대한다”면서도 “어젯밤 헤일리는 기록적 방식으로 완파를 당했다”며 “그에게 투표한 많은 사람들처럼 그의 돈(선거자금)도 거의 50%가 민주당 급진 좌파한테 나왔다”고 헤일리에 조롱과 비난을 쏟아부었다. 한겨레는 “통상적이라면 그가 소속된 공화당 후보로 사실상 확정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많이 흡수하겠지만 이번에는 상황이 다르다”고 했다.

‘바이든’과 ‘트럼프’ 둘 중 누가 미국 대통령이 되든 한국에는 좋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한국일보는 사설 <결국 바이든과 재대결 트럼프… 한반도 리스크 커졌다>을 내고 “누가 되든 지금 국제사회가 직면한 ‘미국 문제’를 지속·악화시킬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우리에게도 큰 과제를 던지고 있다”고 했다.

한국일보는 “우선 트럼프 정부 이래 미국은 인류 보편 가치를 수호해온 글로벌 리더국 전통 대신 자국 이기주의로 퇴행했다. ‘아메리카 퍼스트’ 깃발을 든 건 트럼프 전 정부였지만, 바이든 정부 역시 자국 중심의 글로벌 무역·투자정책, 공급망 재편 정책을 통해 ‘미국 우선주의’ 기조를 유지했다”며 “두 사람 중 누가 차기 대통령이 되든 미국 우선주의는 지속될 공산이 크고, 특히 트럼프 집권 땐 더 극단화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진보당 비례 참여에 “국정원 대공수사권 복원하라”는 언론

매일경제와 세계일보가 진보당 등이 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 정당에 참여하기로 한 것을 놓고 친북 세력이 국회 입성을 앞두고 있다며 국정원에 간첩수사권을 돌려줘야 한다는 사설을 냈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은 총선에서 승리하면 국가정보원의 대공수사권을 복원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 8일자 매일경제 사설.

매일경제는 사설 <종북세력 대거 국회 입성 눈앞, 국정원 대공수사 복원 서둘러야>에서 “민주당은 진보당 등과 함께 비례대표 정당을 만들어 이들 중 10명의 후보를 내기로 했다. 진보당은 '이석기 내란음모 사건'을 계기로 헌법재판소가 강제 해산 결정을 내린 통합진보당 후신으로, 중립적 통일국가를 강령으로 내세우고 있다”며 “국회는 경찰·검찰·국정원·국방부의 핵심·기밀자료를 요구하고 열람할 수 있다는 점에서 친북 인사들이 국회의원이 되는 것은 국가 안보에 큰 위협이 될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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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는 사설 <통진당 계열 국회 입성 계기 국정원 수사권 공론화 필요하다>에서 “국회가 자칫 종북세력의 온상으로 변모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괜히 나오는 게 아니”라며 “지난 수년간 국정원의 대공수사가 소홀해진 사이 간첩들은 우리 사회 곳곳에 침투해 활개 치고 있다. 잇따르는 북한의 전방위 해킹과 미래 사이버 보안 강화를 위해서라도 국정원 대공수사권 복원을 공론화할 때”라고 했다.

한국경제도 사설 <‘비명횡사’ 넘어 친북 지원 민주당, 정체성부터 제대로 밝혀라>에서 “종북 인사들이 의원이 돼 첨단 무기 체계와 작전계획 등 국가 안보와 대북 기밀을 다루는 국회 국방위원회, 외교통일위원회, 정보위원회에 들어간다면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며 “민주당은 선거 전 정체성부터 제대로 밝혀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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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연합 후보 속속 선출‥'윤석열 정권·검찰 심판' 청사진



 

 

거부권 견제 위한 200석 연대

시민단체 추천 후보 12명 명단 발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비롯한 참석자들이 3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더불어민주연합 중앙당 창당대회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왼쪽부터 윤희숙 진보당 대표, 이 대표, 윤영덕·백승아 더불어민주연합 공동대표, 용혜인 새진보연합 상임대표. ⓒ뉴시스

윤석열 정권 심판을 위한 힘이 모인다. 더불어민주당과 새진보연합, 진보당과 시민사회가 함께하는 더불어민주연합의 청사진이 서서히 완성돼가는 모양새다.

민주연합은 ‘윤석열 정권·검찰 심판’을 기치로 내걸고 연합 200석을 목표로 두고 있다.

대통령이 거부권과 시행령 정치를 이어가는 현시점, 국회는 식물로 전락한 상황이다. 노란봉투법, 간호법, 이태원특별법, 쌍특검법 등 국회에서의 입법 활동은 대통령의 거부권에 번번이 막히고 있다. 반면 대통령은 시행령 개정을 통해 검수원복, 인사검증관리단, 경찰국 신설 등 말 그대로 무소불위의 정치를 이어가고 있다.

이에 거부권을 견제할 야권 연합 200석이 절실한 상황, 민주연합의 야권 연대 200석을 위한 명단이 정리되고 있다.

구성은 진보당과 새진보연합이 각 3명씩, 시민사회가 4명, 민주당이 후순위로 20명을 선출할 예정이다. 진보당과 새진보연합에서 선출된 6명과 시민단체 추천 인사 4명은 당선 가능성이 큰 20번 안에 배치될 전망이다. 1번은 시민단체 추천 인사가 배정받고 이후로는 번갈아 배치될 예정이다.

 

4명의 후보를 배정받은 시민단체는 국민후보 추천 심사위원회 준비위원회를 꾸리고 7일, 12명의 후보를 추렸다. 이들은 윤 정부의 폭정을 심판하고 정치·민생 개혁의 희망을 만들기 위해 민주개혁진보선거연합의 필요성과 당위성에 공감한다며 총 44명의 지원자가 신청서를 제출했다고 밝혔다.

이후 서면 심사를 진행한 준비위는 12명으로 후보를 추렸다. 여성 후보는 서미화 한국장애인자립생활텐터협의회 이사, 서정란 전국농민회총연맹 장흥군농민회 사무국장, 이주희 변호사, 전지예 금융정의연대 운영위원, 정영이 전국농민회총연맹 구례군농민회 회장, 정혜선 카톨릭대학 교수가 정해졌다.

남성으로는 워낭소리 등 다큐를 제작한 고영재 감독, 김영훈 전 민주노총 위원장, 김윤 서울대 의료관리학교실 교수, 김형수 장애물없는생활환경기민연대 이사, 박창진 바른선거시민모임중앙회 회장, 임태훈 인권위 군인권 전문위원이 선발됐다.

진보당 추천 후보 (왼쪽부터) 장진숙 현 진보당 공동대표, 전종덕 전 민주노총 사무총장, 손솔 현 진보당 대변인.

앞서 진보당은 5일, 당원투표를 통해 비례후보 3명을 선출했다. 장진숙 현 진보당 공동대표, 전종덕 전 민주노총 사무총장, 손솔 현 진보당 대변인이 차례로 비례 1, 2, 3번을 배정받았다.

새진보연합 추천 후보 (왼쪽부터) 한창민 사회민주당 공동대표, 용혜인 기본소득당 상임대표, 최혁진 전 청와대 사회경제비서관.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열린민주당이 연대한 새진보연합도 3명의 비례대표 후보를 선출했다. 용혜인 기본소득당 상임대표, 한창민 사회민주당 공동대표, 최혁진 전 청와대 사회경제비서관이 선출됐다.

민주당도 조만간 후보자 명단을 정리할 예정이다. 비례대표 국회의원 추천분과 위원장을 맡은 김성환 의원은 “오는 11일까지 1차 추천 명부를 확정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민주당은 야권 200석 연대를 위해 현재 원내에 진입해있는 진보당, 새진보연합과 연합정당을 꾸렸다. 지난 3일 창당대회를 통해 당명을 ‘더불어민주연합’으로 확정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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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적 물가, 경제 폭망...해결책은 이것



[유권자의 DM] '소득세 물가연동제' 공약 필요...'부자감세' 완화시킬 대안

 

24.03.08 07:10최종 업데이트 24.03.08 07:10

 

DM'을 아시나요? 다이렉트 메시지(Direct Message)의 약자인 디엠은 인스타그램 등에서 유저들이 1대 1로 보내는 메시지를 의미합니다. 4월 10일 22대 총선을 앞두고 민심을 대변하기 위해 국회로 가겠다는 후보들에게, 유권자들이 DM 보내듯 원하는 바를 '다이렉트로' 전달할 수 있다면 어떨까요. <오마이뉴스>는 시민들이 22대 국회에 바라는 점을 진솔하게 담은 DM을 소개해보려 합니다. 관심 있는 분들의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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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생경제를 살리는 방법은 하나... 야당에 보내는 DM ⓒ 오마이뉴스

 

현재 우리나라 민생경제는 금융위기에 준하는 비상 상황에 직면해 있다. 내수경제엔 코로나 사태 때보다도 더 무서운 장기 불황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내수와 수출의 동반 부진으로 성장률은 1%대로 주저앉고, 민생경제는 고물가·고금리 충격으로 실질소득 감소가 소비 부진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에 빠진 상태다. 정부가 졸속 대책을 들고나와 민생을 외칠수록 중산층과 서민경제는 더 어려워지고, 건전재정을 외칠수록 재정이 더 불건전해지는 역설적인 상황에 봉착했다.

 

민생경제는 그야말로 백약이 무효인 총체적 난국에 빠졌다. 더 심각한 문제는 국회가 정부의 이념 편향을 견제하거나 정책 대안을 제시하고 제도로 뒷받침하는 본연의 역할을 다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정부의 고질병인 '경제 위에 정치' 폭주를 저지할 방법은 야당이 유능한 경제 정당, 대안을 제시하는 민생정당으로 거듭나는 길뿐이다. 그 시발점은 과도한 정치와 철 지난 이념에 희생된 민생과 경제를 위기의 본질을 관통하는 실사구시 대책으로 살려내는 것이다.

 

중산층 경제를 복원하는 방법

 

국회는 민생경제에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하는 건전재정의 친기업 편향을 제어하지 못한 책임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다. 가짜 건전재정이 중산층과 서민경제에 미친 영향이 너무나도 참담하기 때문이다. 건전재정의 본질은 '부자감세·서민증세'에 뿌리 내린 기업 확장재정과 민생 긴축재정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재정 운영의 주체인 기재부는 작년에 -56.4조 원이라는 사상 최악의 세수펑크를 냈는데, 이 중 법인세 펑크가 절반 가까이 차지한다. 법인세는 2022년 104조 원에서 2023년 80조 원으로 -22% 이상 감소했지만, 같은 기간 유리 지갑인 근로소득세는 57조 원에서 59조 원으로 오히려 3% 증가했다.

 

유례없는 경기 불황으로 거의 모든 세수가 감소했음에도, 2800만 취업자의 근로소득세는 작년에도 견조한 증가 추세를 유지했다. 이는 민생곳간을 털어 세수 공백을 메운 것이나 다름없다. 더욱 가관인 것은 재정파탄의 주범인 기재부가 재정건전성 공적을 인정받아 정부업무평가에서 최고등급인 A등급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윤 대통령은 돈을 풀면 물가 때문에 서민이 다 죽는다며 민생 긴축재정을 강요하더니, 재정이 불건전해지자 최근에는 건전재정이라는 용어조차 언급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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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대출 한도 확 줄어든다 2월 25일 서울 시내 한 은행에 걸린 주택담보대출 관련 현수막. ⓒ 연합뉴스

 

민주당도 재정파탄을 초래한 쌀집 수준의 재정 운영을 견제하지 못한 책임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일례로, 이재명 대표가 민생대란 위기를 타파하기 위해 '35조 민생회복 추경안'을 제안했지만, 다수 야당이 이조차도 관철시키지 못하는 무기력한 모습을 보였다. 더욱이, 정부는 나라 살림이 거덜 나 추경이 어렵다고 일축했고, 여당은 국가부채를 운운하며 민생추경 제안을 조롱거리로 삼았고, 보수 언론들은 나랏빚 때문에 미래세대가 망한다고 호들갑을 떤 바 있다. 물론, 더 큰 문제는 민주당이 이런 저급한 수준의 비판을 실력으로 돌파하지 못한 데 있다. 이제는 법인세발 세수펑크로 재정 여력이 완전히 소진돼 민생 추경을 추진하기도 어려운 게 작금의 현실이다.

 

그렇다면, 정부의 건전재정 중독을 확장적 민생재정으로 돌파할 정책 수단이 남아 있는가? 답은 민생 확장재정 수단으로 '소득세 물가연동제'를 도입하는 것이다. 그 이유는 고물가·고금리 충격으로 실질소득이 감소했음에도, 근로소득세만큼은 폭발적인 증가 추세를 보였기 때문이다.

 

근로소득세는 2013년 이후 지난 10년간 169% 급증했지만, 법인세는 불과 83% 증가하는 데 그쳤다. 현행 소득세법 체제가 기업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기울어진 운동장임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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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두한

 

현행 근로소득세의 가장 큰 문제는, 소득세율 구간이 물가를 반영하지 못해 세율을 올리지 않아도 세금이 늘어나는 자연증세가 일어나는 구조다. 즉, 물가상승으로 인해 실질소득은 그대로인데, 명목소득이 늘어 더 높은 세율이 적용되는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당연히, 미국, 캐나다 등 대부분의 선진국은 물가와 연동해 소득세 세율체계를 운영하고 있다. 근로자의 숙원사업과도 같은 '소득세 물가연동제'를 중산층과 서민을 위한 물가대책인 동시에 소득대책으로 인식해야 하는 이유다.

 

정부의 긴축 민생재정에 대한 민주당의 대응도 실망스럽기는 마찬가지다. 민주당은 법인세 감세로 인한 세수펑크 충격이나 법인세 공백을 서민증세로 메우는 행태를 수도 없이 비판하고 있지만, 이에 대한 정책 대안을 제시했던 기억이 없다. 지금이라도 소득세 물가연동제를 총선 공약으로 채택해 '부자를 뺀 건전재정'이 민생곳간을 터는 악순환을 차단해야 한다.

 

유능한 민생정당의 길

 

지금처럼 국회가 정부의 정책 실패를 입법으로 견제하지 못하면, 민생경제는 파국의 길을 걷게 된다. 정부가 봇물 터지듯 쏟아내는 민생대책은 대부분 '보편'으로 충격을 가하고 '선별'로 구제하는 이념 편향적 정책들이다. 민생위기 국면에서 정부가 병 주고 약 주는 졸속 대책을 남발하게 되면, 결국 중산층이 서민이 되고 가난한 자는 더 가난해지는 양극화 함정에 빠지게 된다.

 

더 큰 문제는 이처럼 민생과 경제의 근간이 무너지고 있음에도, 국회가 정책과 제도로 견제와 균형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여당은 정부의 졸속 대책을 홍보하는 들러리를 전락해 버렸고, 야당은 대안 없는 비판으로 일관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제1야당이 민생 대안 정당으로 평가받지 못하는 사례들을 살펴보자.

 

민생위기의 주범인 '공공발 물가대란'에 대한 대응이 첫 번째 사례다. 정부가 공공요금 인상을 단행해 민생물가 대란 사태를 초래했지만, 민주당은 정부의 공공요금 시장화 폭주를 정책과 제도로 막아내지 못했다. 그 사이 민생경제는 공공적자는 무조건 가격 인상으로 전가해 해소해야 한다는 철 지난 시장주의 이념에 속절없이 무너져 내렸다. 소비자물가가 3% 정도인데 전기·가스·수도 물가가 20% 이상인 말도 안 되는 상황에 직면해 있다. 민주당이 물가충격의 위험을 조기에 감지하고, 공공요금 인상을 소비자물가나 성장률 등과 연계해 관리하는 방안을 추진했다면 민생물가 대란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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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년 7월 11일 오후 서울 마포구의 한 다세대주택 우편함에 전기요금 청구서가 꽂혀 있다. ⓒ 연합뉴스

 

코로나 부채 대책에 대한 대응도 마찬가지다. 정부가 팬데믹 이자폭리를 방치하는 사이 부채발 민생위기가 경제를 위협하는 시스템 리스크로 진화했다. 2019년 이후 발생한 코로나 부채(가계부채, 자영업자대출, 중소기업대출) 증분만 무려 1000조 원에 육박하지만, 정부 대책이라고 해 봤자 일부 취약 자영업자의 이자를 감면해 주는 상생금융 패키지가 전부다. 중산층과 서민은 고금리 충격에 신음하는 지금도 보편으로 금리 충격을 가하고 선별로 구제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근본대책은 금리구조의 경기대응력을 높여 금융기관의 횡재가 발생하지 않는 금리환경을 제도적으로 정착시키는 것이다. 민주당이 정책 정당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다가오는 부채발 경제위기에 본질을 관통하는 근본 대책으로 대응하는 실력을 보여야 한다.

 

민생경제는 금융위기에 준하는 비상경제 상황에 직면해 각자도생의 바다를 표류하고 있다. 내수경제는 코로나 때보다도 상황이 더 좋지 않다. 설령, 경제 상황에 좋아진다 해도 코로나 이전의 성장 균형으로 돌아간다는 보장도 없다. 경제가 어려울수록 국회 무용론이 확산되는 이유다. 유례없는 경제위기는 전례 없는 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민주당이 민생위기에 대안을 제시하는 유능한 경제 정당의 길을 가야 하는 이유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 송두한은 KDI 경제정책 자문위원(전 민주연구원 부원장)입니다.

 

#유권자의DM #총선 #국회의원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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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의대 교육은 '좋은 의사'를 양성하는 데 실패했다



[기고] 한국사회는 의사들을 너무 모른다

정영인 부산대 의대 명예교수, 경암교육문화재단 이사 | 기사입력 2024.03.07. 05:06:03

 

의대 증원 문제로 대한의사협회(의협)와 정부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그 와중에 의대생들과 전공의들이 각각 동맹휴학과 사직으로 의협 투쟁의 전면에 나서고 있다. 그들은 의대 증원이 필요 없다는 명확한 논거를 갖고 투쟁의 전면에 나서는 것일까? 의대 증원이 정권이 아닌 국가 차원의 문제라는 점을 인식하고는 있을까? 미래의 의료를 담당할 학생들과 전공의들의 교육현장 이탈을 막지 않고 오히려 방조하는 의협과 의대교수들의 행태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이제는 낯설지 않은 마치 의협의 행동전위대 같은 이들의 집단투쟁 행태를 보면서 드는 의문들이다.

의대 증원은 필수의료 인력의 부족 때문이 아니더라도 필요하다. 그 근거로 첫째, 의사 1인당 진료 환자수가 너무 많다. 낮은 진료수가로 환자가 많아야 수익성이 보장되고, 지나치게 용이한 의료접근성으로 의료의 가수요도 많기 때문이다. 적절한 진료수가의 보장과 엄격한 의료전달체계의 확립 및 의사가 진료할 수 있는 환자의 상한선 설정은 그래서 필요하다. 환자의 상한선 설정은 과잉진료와 의료의 가수요를 줄이는데도 효과적이다. 둘째, 의사들은 거의 대부분 임상 분야에 종사해서 전문성을 요하는 보건정책 분야에는 의사들이 희귀하다. 일례로 정신건강정책을 입안하는 보건복지부에 정신과 전문의가 한 명도 없다. 셋째, 기초의학 연구와 제약 분야에 종사하는 의료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다. 넷째, 급격히 성장하는 의생명 바이오산업에서 의료인력의 수요가 증가할 가능성이 높다.

한국사회에서 의사가 절대적으로 모자라던 1970년대 초반까지 그나마 배출된 의사의 상당수는 안락한 생활을 꿈꾸며 미국으로 건너가 정착했다. 그래도 국민은 그들을 비난하지 않았다. 엄혹했던 독재 시절 의대생들은 독재에 항거하는 민주화 투쟁 대열에서 늘 비켜 있었다. 그래도 누구 하나 그들을 탓하지 않았다. 의료는 인류애를 바탕으로 이념과 계급을 초월하는 보편적인 공공재라는 인식 때문이었다. 그러한 사회적 인식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의사들은 열악한 의료환경에서 희소성이라는 존재 가치로 특권적 지위를 향유한 부르조아의 상징이었다. 오죽하면 의사는 '허가 받은 도둑'이라는 오명까지 나왔을까.

의료보험도 없던 시절 서민들은 비싼 의료비 때문에 1차진료를 의료인이 아닌 약사들에게 거의 의존했다. 의약분업의 당위성은 그런 배경에서 나왔고, 시작 단계에서 의사들의 엄청난 저항에 부딪혔다. 현재의 기형적인 의약분업은 의사와 약사 간의 직능 갈등, 병원과 의원 간의 이해 갈등의 산물이다. 의약분업 파동은 대체 인력이 없는 집단의 특성에 힘입어 의사들이 정부를 굴복시킬 수 있을 정도의 힘을 처음으로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한편, 국민들은 이해관계 앞에서는 생명의 존엄성에 대한 직업윤리도 뒷전으로 밀려날 수 있음을 뼈아프게 실감하였다. 힘을 가진 의사들의 집단행동에 속수무책인 힘없는 국민들은 오로지 그들의 직업윤리에 호소할 도리 밖에 없다.

질병의 고통과 생명의 보존은 시간과의 싸움이라는 점에서 의사들의 집단행동은 일반노동자들의 집단행동과는 그 결을 달리해야 한다. 도움이 필요한 시기를 놓치면 되돌릴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에 진료 현장을 떠나는 의사들의 집단행동은 어떠한 이유에서라도 용인되어서는 안 된다.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심신의 고통이고 가장 두려운 것은 죽음의 공포다. 심신의 고통과 죽음의 공포를 투쟁 수단으로 삼는다는 것은 너무나 직업윤리에 반하는 행위다.

의협에 묻는다. 의대 증원이 국민의 건강을 오히려 저해한다는 당신들의 설익은 논리를 뒤받침할 수 있는 정확한 논거를 제시할 수 있는가? 전공의들에게 묻는다. 당신들의 열악한 근무 여건은 일차적으로 당신들을 지도하는 교수사회의 비민주적이고 권위적인 문화에서 상당 부분 기인하지 않는가? 단순히 열악한 근무 여건에서 고생한 만큼 보상받지 못하는 저임금 때문에 집단행동에 나섰는가? 마지막으로 교수들에게 묻는다. 미래의 의료를 책임질 학생들과 전공의들의 교육현장 이탈을 방조하고, 그들에게 불이익이 가해질 경우 좌시하지 않겠다는 당신들의 겁박은 교육자로서 바람직한 태도라고 생각하는가?

한국 의사들의 엘리트주의와 특권 의식은 유별나다. 자신은 열심히 공부해서 우수한 성적으로 대학에 들어갔고, 누구보다도 힘든 교육과정과 훈련을 장기간 받았기에 당연히 그에 합당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여긴다. 자신의 능력에 걸맞은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것을 탓할 일은 아니다. 문제는 자신보다 못하다고 느끼는 사람들보다 특별한 대우를 받아야 마땅하다는 특권 의식이다.

능력자들에게 요구되는 가장 중요한 덕목은 겸손함과 연대감이다. 겸손함은 능력이 자신의 노력만으로 이루어진 게 아니라는 부채 의식과 책임 의식에서 나온다. 연대감은 누구나 자신의 일에 대해 정당한 대우를 받도록 서로 노력하는 것이다. 그래서 전교 1등을 하던 능력 있는 사람이 그렇지 못한 사람들보다 더 특별한 대우를 받는 것이 마땅하다는 의대생의 외침은 공허하다. '좋은 의사'란 뛰어난 능력을 갖춘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능력 내에서 환자와 공감하고 의사소통할 수 있는 사람이다.

"현재의 의대 교육은 '좋은 의사'를 양성하는 데 실패했다."

모 의대 교수의 탄식이다. 그런 교수들이 있기에 오늘의 사태에 절망하지 않는다.

▲정부가 의대 정원 증원 정책에 반대해 근무지를 이탈한 전공의 7천여명에 대해 면허 정지 등 행정처분 사전통지서를 발송한 5일 서울의 한 대형 병원에서 한 의사가 응급실 앞을 지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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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 큰소리 치더니 결국... 이러니 윤 대통령을 못 믿는 거다



[대통령을 위한 반도체 특별과외] 한국이 밀려난 자리에 일본, 싱가포르, 독일, 콩고...가 들어갔다

 

24.03.07 07:06최종 업데이트 24.03.07 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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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월 14일 네덜란드의 반도체 장비업체 ASML이 발표한 2023 연차보고서 ⓒ ASML

 

지난 기사(윤 대통령, 반도체산업 죽일 건가? 외국 보고서에 담긴 진실 https://omn.kr/27ngu)에서 대통령님께 ASML 2023 연차보고서에 담긴 내용을 설명했습니다. ASML이 한국의 재생에너지 부족으로 인해 자사의 사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고, 계속 이러다간 우리 반도체 기업들이 ASML 장비를 사지 못하는 어처구니없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오늘은 그 보고서에 있는 다른 내용을 더 살펴보려고 합니다.

 

ASML은 세계에서 가장 큰 반도체 장비 제조사이자, 노광장비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준독점기업입니다. 노광공정이 반도체 생산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고, 거기서 ASML 장비가 필수적이라, ASML의 장비 판매 대수만 가지고도 각국 반도체 업체의 투자 진행 상황을 파악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예를 들어 ASML의 최신 장비인 하이 NA-EUV 다섯 대가 인텔의 팹 하나에 설치되었을 경우 다른 공정의 장비는 몇 대가 필요하고 그 팹의 전체적인 생산량이 얼마일지 예측 가능하다는 식입니다.

 

한국 뛰어넘어 ASML의 두 번째 고객이 된 중국

 

그럼 2023년 한 해, ASML은 어느 나라에 가장 많은 장비를 팔았을까요? 항상 가장 많은 장비를 사고 있는 대만? 대통령이 세계 최대의 시스템반도체 클러스터를 만들겠다고 공언한 한국? 아시아에 맡긴 반도체 제조를 다시 본국으로 끌어오겠다는 미국?

 

저마다 다른 나라를 짐작할 수 있겠지만 중국을 제일 먼저 떠올릴 사람은 많이 없을 겁니다. 미·중 반도체 갈등 이후 첨단공정에 사용되는 EUV는 아예 중국에 팔지 못하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보고서에 뜻밖의 결과가 나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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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년 이후 ASML의 지역별 연간 매출액 변화. 반도체 갈등과 상관없이 중국향 수출은 매년 늘었습니다. 특히 2023년 매출은 크게 뛰었습니다. ⓒ 이봉렬

 

1위는 언제나 그랬듯 80억 유로(11조 5617억 원)의 장비를 구매한 대만입니다. 2위는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72억 유로(10조 4055억 원)의 중국입니다. 한국은 69억 유로(9조 9719억 원)로 3위, 미국은 우리의 절반도 안 되는 31억 유로(4조 4801억 원)로 4위, 요즘 우리 언론으로부터 반도체로 부활한다는 칭찬을 듣고 있는 일본은 우리의 10분의 1도 안 되는 6억 유로(8671억 원)로 5위입니다.

 

최근 몇 년간 중국은 ASML에 늘 세 번째로 큰 고객이었습니다. 미·중 반도체 갈등과 상관없이 중국의 ASML 장비 구매액은 2020년 이후 매년 증가했습니다. 최신 노광장비인 EUV는 미국의 압력으로 사지 못하고 있지만, 그 전 세대인 DUV 장비는 생산되는 대로 매집을 했습니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까지는 공급 물량이 충분하지 못해 중국이 달라는 대로 다 공급하지 못했지만 2023년에는 DUV 장비 생산이 늘어 중국으로의 수출이 크게 늘었다고 합니다. ASML은 중국 덕분에 장사를 제대로 잘했습니다. 2022년 대중국 수출액이 29억 유로(4조 1911억 원)였는데 2023년 72억 유로(10조 4055억 원)로 250%나 증가해 이제는 한국을 제치고 두 번째로 큰 고객이 되었습니다. 같은 기간 한국은 조금 느는 데 그쳤고, 대만은 오히려 조금 줄었습니다.

 

그럼, 미국이나 일본의 반도체 장비 기업들은 어떨까요? 미국의 대표적인 반도체 장비 기업인 AMAT의 최대 고객은 중국입니다. 한국이나 대만보다 중국에 더 많은 장비를 판매합니다. 2022년 대비 대중국 반도체 장비 수출액은 거의 변함이 없습니다. 지난해 7월 떠들썩하게 대중국 반도체 장비 수출 규제를 발표한 일본의 경우 대표적인 반도체 장비 기업인 TEL도 중국이 가장 큰 고객입니다. 일본 정부의 수출 규제 중에도 2022년 대비 판매가 6.9% 줄어드는 데 그쳤습니다.

 

대통령님은 미국, 일본, 네덜란드 등과 반도체 동맹을 맺었다고 하지 않았나요? 동맹이라는 건 그 반대편에 적국을 상정한 것이고, 대통령님은 틈나는 대로 그 적국이 중국이라고 밝히지 않았습니까? 반도체 전쟁 중에도 우리 반도체 동맹의 대표적인 반도체장비 업체들은 대중국 수출을 크게 늘리거나, 변함없거나, 줄어도 조금 줄었을 뿐입니다.

 

그럼 우리나라는 어떨까요? 우리나라는 앞서 소개한 동맹국 회사 규모의 반도체 장비 기업이 없으니, 반도체 장비 전체 수출액을 살펴보죠. 한국무역협회 중국무역통계를 보면 우리나라 대중국 반도체 장비 수출은 전년 대비 23.9%가 줄어서 중국 내 시장점유율이 3.2%포인트나 줄었습니다. 반도체 동맹국 중 우리 기업의 타격이 가장 심각한 겁니다.

 

여기서 하나 더 눈여겨봐야 할 게 있습니다. 중국 세관의 통계에 따르면, 2023년 반도체 장비의 수입액은 전년 대비 14%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중국의 수입이 줄어 우리의 수출이 따라 줄어든 게 아니라 중국이 수입을 늘렸음에도 우리나라의 대중국 반도체 장비 수출은 오히려 줄어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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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년에는 대중국 흑자를 기록 중인 10대 품목들이 하나도 빠짐없이 무역수지가 악화됐습니다 ⓒ 한국무역협회 보고서

 

우리가 중국과 대립하는 동안 중국 점유율 높인 나라들

 

이런 사례는 또 있습니다. 지난 2월, 무역협회가 내놓은 "최근 대(對)중국 무역수지 적자 원인 진단과 평가"라는 제목의 보고서에 따르면 "반도체 장비, 석유제품, 컴퓨터 등 3개 품목은 중국의 대(對)세계 수입이 증가한 반면, 우리의 대(對)중국 수출과 시장 점유율은 모두 하락"한 걸로 나타났습니다. "우리 주요 수출품목 중 중국의 수입이 증가하면서 동시에 한국의 점유율이 상승한 품목은 전무"하다는 게 무역협회의 분석입니다.

 

우리 정부는 지난해 내내 우리 수출이 회복되지 않는 이유가 중국의 경기가 좋지 않아서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중국이 수입을 늘려도 우리나라 제품에 대한 수입은 비례해서 늘지 않았다고 보고서는 이야기합니다.

 

보고서 내용을 조금 더 볼까요? "대(對)중국 무역수지를 주도하는 20개 품목(흑자 10+적자 10) 중 15개 품목의 수지가 감소"했으며, 특히 흑자를 기록 중인 10대 품목의 경우에는 하나도 빠짐없이 무역수지가 악화됐습니다. 무역수지 악화는 반도체, 합성수지, 비누 치약 및 화장품, 무선통신기기 등 특정 분야를 가리지도 않았습니다.

 

무역수지 악화는 우리가 수출한 것보다 더 많이 수입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그럼 이건 어떨까요? 중국이 수입하는 상위 20대 품목 중에서 13개 품목이 중국 수입시장에서 점유율이 하락했다고 합니다. 한국의 점유율이 하락한 품목에서 아세안, 일본, 미국, 대만 등의 점유율이 상승해 우리 몫을 차지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반도체 동맹이라며 중국과 대립하는 동안 아래에서 보듯 전 세계 여러 나라가 우리 대신 중국에서 점유율을 높여가고 있습니다.

 

"점유율 상승국가 : 석유제품(말련), 반도체장비(네덜란드, 싱가포르), 컴퓨터(베트남, 대만), 반도체(일본, 대만), 합성수지(미국, 일본), 기초유분(미국, 말련), 디스플레이(대만, 독일), 화장품(프랑스, 이태리), 기구부품(독일,태국), 철강(인니), 광학기기(태국,일본), 계측제어기(미국,독일), 동제품(콩고, 러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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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의 대중국 주력 수출 제품의 점유율이 떨어지고 그 자리를 다른 나라가 차지하고 있다는 보고서 내용 ⓒ 무역협회

 

중국 벗어나니 2년 연속 무역적자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요? 보고서는 우리 기업들의 수출경쟁력이 약화 돼서 그렇다고 합니다. 수십 년간 중국에서 연간 100억 달러에서 400억 달러의 흑자를 내며 승승장구하던 우리 기업들의 수출경쟁력이 왜 하필이면 대통령님 취임 직후부터 이렇게 바닥으로 떨어지게 된 걸까요?

 

대통령님이 한미일 반도체 동맹국의 일원으로 탈중국 선언을 하고, 중국의 역린인 양안 관계에 개입하면서 모든 관계에서 중국과 멀어졌습니다. <조선일보>는 대통령님과 보조를 맞춰 "중국 벗어나니 세계가 보이더라, 중(中)의 압박이 부른 반전" 같은 기사로 탈중국을 부추겼습니다. 그 결과가 바로 1992년, 중국과의 수교 이후 31년 만의 첫 무역수지 적자라는 충격적인 성적표 아닐까요? 2년 연속 연간무역수지 적자는 도대체 얼마 만인지 기억도 나지 않습니다.

 

미국과 일본이 반도체 분야에서 대중국 규제를 선언하며 크게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것 같지만, 이처럼 실제로는 예전과 별단 다르지 않게 반도체 장비 무역을 하고 있습니다. 미국, 일본, 네덜란드의 반도체 장비 기업들에게 중국은 전체 매출의 30% 이상을 차지하는 세계 최대의 고객이기 때문에 정부의 규제 속에서 다양한 방법을 찾아 수출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중국 입장에서도 이 세 나라로부터 반도체 장비를 사고 싶지 않아도 기술적으로 대체 불가능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수입합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반도체 장비 기업들은 상황이 다릅니다. 중국은 우리 반도체 장비 수출의 50% 이상을 차지하는 최대 고객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반도체 장비는 각 분야에서 대체 불가능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한국산 장비가 아니더라도 다른 나라 장비로 대체가 가능합니다. 우리가 잃은 반도체 장비 시장점유율을 네덜란드와 싱가포르가 벌써 가져가고 있습니다.

 

미국과 일본 정부가 중국을 향해 규제의 목소리를 높여도 그 나라 기업들은 방법이 있지만, 우리 정부가 중국과 다툼을 벌이면 우리 기업들은 방법이 없다는 말입니다. 제조업 경쟁국인 중국과 반도체 가치사슬을 두고 머리를 맞대면 서로에게 도움이 될 방법이 있을 텐데 왜 그렇게 중국에 적대적이기만 한지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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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월 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가진 KBS '특별대담 대통령실을 가다'에서 박장범 KBS 앵커와 대담을 하고 있다. ⓒ 대통령실

 

대통령님은 지난 2월 4일 KBS와의 특별대담에서 중국과의 새로운 관계 설정을 묻는 앵커의 질문에 "한중관계 문제에 대해서 그렇게 크게 우려할 거는 저는 아니라고 봅니다"라고 답했습니다. 수교 후 31년 만에 처음으로 대중국 무역적자를 낸 상황에서도 한중관계를 우려하지 않는 대통령님을 보면서 저런 정치가 과연 우리에게 무슨 소용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정치가 국민을 걱정하는 게 아니라 국민이 정치를 걱정하는 상황이 길어진다면, 정치를 바꿔야겠단 생각을 하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전 그렇게 될 날이 그리 멀게만 느껴지지는 않습니다.

 

#ASML #반도체

프리미엄 대통령을 위한 반도체 특별과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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