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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수준조차 못 받아들이니, 어떻게 성교육하란 말인가”

2020.09.12 06:00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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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가족부가 ‘나다움 어린이책’ 사업에서 회수한 책 7종. 맨 앞에 펼쳐진 책이 <아기는 어떻게 태어날까?>이다. 강윤중 기자
■보수 세력 항의에 아예 접은 성교육
 

‘나다움 어린이책’ 회수 논란  지난해 말, 5개 초등학교 도서관에 책 134종이 들어왔다. 아동문학 작가와 평론가, 초등학교 교사가 1년간 기획·심사해 뽑은 책들이다. 몸과 성장에 관한 이해를 높이고, 사회적 약자를 존중하며, 차별과 편견을 깨는 내용이다. 134종은 여성가족부가 지원하는 어린이 성평등교육문화사업인 ‘나다움 어린이책’에 선정됐다. 최고 권위의 아동도서상인 볼로냐 라가치상 수상작도 들어갔다.


1년이 채 지나지 않았다. 책 134종 가운데 7종이 사라졌다. 뒤늦게 문제 있는 책으로 밝혀져서일까? 너무 늦게 ‘문제’가 되긴 했다. 도서관에서 자취를 감춘 책엔 1971년 덴마크에서 출간된 <아기는 어떻게 태어날까?>도 포함됐다. 덴마크 문화부 아동도서상을 받았다. 해외에서 유아 성교육 자료로 지금도 널리 쓰인다.
 

한국에서 이 책은 ‘회수’됐다. 보수정당과 개신교 세력이 책을 두고 “선정적이다” “조기성애화를 야기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반세기 전 덴마크에서 비슷한 장면이 연출됐다. 보수 개신교 성향의 국회의원들이 이 책을 공공도서관에서 회수하라고 했다.

하지만 국회의원 다수는 이들의 주장이 터무니없다고 반박했고, 이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 사건은 책이 유아 성교육 도서로 세계적 사랑을 받는 기회로 이어졌다.

2020년 한국에선 달랐다. 김병욱 국민의힘 의원이 <아기는 어떻게 태어날까?> 등 ‘나다움 어린이책’ 7종이 “조기성애화, 동성애 조장 우려가 있다”고 말한 건 지난달 25일이다. 1년의 준비 과정을 거쳐 선정된 책들이 사라지는 데 걸린 시간은? 단 하루다. 다음날 여성가족부는 부처 지원 사업 결과물인 7종 모두를 회수하기로 결정한다.

한국과 덴마크 사이에 50년의 ‘시차’가 존재한다. 여전히 한국 교육에서 성은 비밀스러운 영역이다. 공적인 논의를 금기시한다. 학교 안팎에서 온갖 성폭력 문제가 터져나온다. 텔레그램 ‘n번방 사건’ 최연소 가해자는 12세이다. 지난 7월 초 경찰 발표를 보면 n번방 성착취 불법 영상 구매자 131명 중 20대가 104명(79.4%), 10대가 7명(5.4%)이었다. ‘성교육의 실패’란 비판이 나온다. 이런 현실 앞에서 유아용 성교육 도서를 두고 제기된 ‘조기성애화’ 우려나 주장은 퇴행적이다.

한국 성교육의 시간은 거꾸로 흐른다. 시간을 가로막는 이들 맨 앞에 보수 개신교 단체가 있다. ‘나다움 어린이책’을 문제 삼기 시작한 단체는 ‘나쁜 교육에 분노한 학부모 연합’(분학연)이다. 지난 총선 때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이끄는 기독자유통일당을 지지했다. 보수 개신교 세력은 한국 성교육을 번번이 발목 잡았다.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한 현실은 고스란히 독이 되어 교육 현장으로, 청소년들의 삶으로 퍼져나간다.


 

지난해 7월 서울시내 한 도서관 갤러리에서 ‘나다움 어린이책 전시회’가 열렸다. 여성가족부가 지원한 ‘나다움 어린이책’ 사업은 지난해 자기긍정·다양성·공존을 주제로 한 국내외 우수 어린이책 134종을 선정해 5개 초등학교에 지원했다. 쌍투창작소 제공. 그래픽 | 성덕환 기자

지난해 7월 서울시내 한 도서관 갤러리에서 ‘나다움 어린이책 전시회’가 열렸다. 여성가족부가 지원한 ‘나다움 어린이책’ 사업은 지난해 자기긍정·다양성·공존을 주제로 한 국내외 우수 어린이책 134종을 선정해 5개 초등학교에 지원했다. 쌍투창작소 제공. 그래픽 | 성덕환 기자

■초등교사들이 본 ‘나다움 어린이책’ 논란과 성교육 현실

선정적·자극적으로 가해진 공격
정부, 하루 만에 정책 철회·회수
정치적 부담 피하려 ‘회피’ 결정

‘나다움 어린이책’ 회수는 책 7종이 다섯 개 초등학교 도서관에서 사라지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정부가 추진한 사업이 보수단체의 항의에 순식간에 취소·후퇴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 이정옥 여성가족부 장관은 회수 배경을 두고 “코로나19로 갈등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다른 갈등을 유발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정부의 회수 결정 전후 현장 학교에서 갈등과 혼란이 증폭됐다.

책 회수 결정은 보수단체의 공격에 ‘기름’을 부었다. 이들 단체는 책을 지원받은 학교엔 항의를 쏟아냈다.

 장기적이고 큰 피해는 따로 있다. 한국 사회가 올바른 성교육을 논의하며 한 걸음 더 나아갈 기회를 놓친 것이다. 그 피해는 지금 학교에서 배우고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돌아갈 것이다.

“정부가 할 일은 사회적 논의를 통해 합의를 이끌어내는 게 아닐까요. <아기는 어떻게 태어날까?>라는 책이 받아들이기 힘들다면, 다른 대안을 모색할 수 있겠죠. 하지만 정치적 부담을 피하려고 회피하는 결정을 내렸어요. 길을 막아버린 거죠.”(A교사)

지난 3일 어린이책 연구회 소속 초등학교 교사 2명과 인터뷰했다. ‘나다움 어린이책’ 회수 사태와 학교 성교육 현실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코로나19의 확산에 따른 물리적(사회적) 거리 두기가 ‘강화된 2단계’여서 화상회의 플랫폼 ‘줌(Zoom)’을 이용해 원격 인터뷰를 진행했다.

■취지·맥락 제거, 선정적 프레임으로 공격

가장 논란이 된 ‘아기는 어떻게…’
정작 아이들은 태아 모습에 집중
어른들만 성관계 적나라하게 봐

 - ‘나다움 어린이책’ 회수 사태를 어떻게 바라보셨나요.

B교사 = <아기는 어떻게 태어날까?>란 책을 3년 전 도서관에서 봤어요. 처음 보면 놀랄 수도 있겠죠. 여러 교사나 학부모들한테는 좋은 성교육 교재로 검증된 책들입니다.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방식으로 가해진 공격에 여성가족부가 하루 만에 정책을 철회하고 회수하는 식으로 해결한다면 앞으로 뭘 할 수 있을까요.

- ‘나다움 어린이책’에 선정된 책들을 보셨나요.

A교사 = 성인지 감수성·다양성 측면에서 빼어나면서도 어린이들이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책들이에요. 아이들 반응이 무척 좋아요. 어른으로서 ‘좋은 어린이책 리스트’를 구하는 게 쉽지 않은데, 하나의 참고 리스트가 된 거죠. 항의나 반대 가능성을 의식해서인지 해외에서 권위 있는 상을 수상하거나 검증된 유명한 책들 위주로 구성했더라고요.

- 가장 논란이 된 책이 성관계를 설명한 <아기는 어떻게 태어날까?>인데요.

A교사 = 저학년들에게 적합한 책이에요. 아이들은 태아 모습에 집중해서 봐요. “태아가 이렇게 작았어?” “아기가 어떻게 이렇게 커져?” 이런 걸 궁금해하죠. 어른들 눈에는 성관계 장면이 너무 적나라하게 보이는 거예요. 고학년 성교육으로 쓰기에 저는 이 책이 ‘올드’하다고 생각해요. 남성 중심으로 섹스를 설명하죠. 남자가 발기해도 여성이 원치 않으면 거절할 수 있어야 해요. 또 정상가족을 중심으로 썼어요. 한부모가정 같은 다양한 가족이 있잖아요. 제가 한부모가정 아이라면 이 책은 다른 의미로 상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이미 섹스가 뭔지 생각하고, 남자친구의 성관계 요구에 어떻게 대처할지 모르는 아이들에게 이 책으로 성교육을 하면 잘못된 정보를 줄 수 있는 거예요. 1970년대 책이잖아요. 더 나아간 성교육을 고민할 시기인데, 이 책조차 받아들이지 못하고 논의도 어려운 상황이에요.

회수 대상 책 가운데엔 국제앰네스티 추천 도서 <우리 가족 인권 선언> 시리즈 4권도 들어갔다. 이 시리즈는 전통적 성역할 구분 없이 자유로울 수 있는 권리를 설명한다. <딸 인권 선언>은 “헝클어진 머리를 해도 될 권리, 마음껏 까불 수 있는 권리” “대통령, 조각가, 외과 의사 등 원하는 직업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 등으로 구성된다. 권리 선언 중 “남자든 여자든 좋아하는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권리”가 문제 됐다. 보수 개신교단체와 보수 정당은 “동성애를 조장·미화한다”고 했다.

또 다른 책 <나는 토펭이!>는 토끼와 펭귄 사이에 태어난 토펭이가 따돌림을 당하지만 토끼의 장점과 펭귄의 장점을 살려 늑대를 물리치는 내용을 담았다. 누가 봐도 다문화시대 다른 인종·민족에 대한 차별·편견을 깨는 내용을 담았지만, 나쁜교육에분노한학부모연합(분학연) 등은 이 책이 “수간을 정상적으로 생각하게 한다”고 비난했다.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지만, 논란이 됐다는 이유만으로 회수됐다.

B교사 = “조기성애화, 동성애, 수간” 등 자극적인 워딩으로 프레임을 만들어 공격했어요. 실제 학교 도서관에는 더 이상한 책이 많아요. 한 학생이 <키다리 아저씨> 같은 성인 남성이 여학생에게 엄청 잘해주는 내용의 책을 가리키며 “이상하다”고 한 적이 있어요. 최근 문제가 되는 ‘그루밍(길들이기) 성범죄’를 연상시키는 책이었죠. 그런 책들도 학교 도서관에 들어가는 게 현실이에요. 그런 것들은 문제 삼지 않으면서 이미 선정 과정을 통해 검증된 책들을 ‘프레임’을 씌워 공격했죠.

A교사 = 이미 학교에선 자신의 성정체성과 성적지향을 고민하는 친구들이 있어요. ‘동성애’가 나온다는 이유로 회수하는 건 그 친구들을 지워버리는 조치예요. 인권 침해라고 봐요.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2018년 중학생 4065명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성정체성 또는 성적지향으로 고민해본 학생은 각각 26.1%, 30.7%로 나타났어요.

■성 금기시가 ‘과잉 성애화’ 부른다

비밀스러운 영역에 갇혀버린 성
인터넷 속 온갖 성지식 접하는데
학교가 정확한 정보 제공해야

- 학교 성교육 현실이 궁금합니다.

A교사 = 학교마다 달라요. 보건교사를 둔 학교도 있고, 담임교사가 성교육을 하는 학교도 있죠. 안전, 인권, 진로교육 등 10개의 범교과 과정 중 안전교육에 성교육이 들어가요. 단독 성교육 시간도 정말 짧고, 이 시간에 실제 성교육이 이뤄지지 않는 경우도 많아요. 외부강사가 오면 1~6학년에 다 같은 내용을 방송으로 틀어주는 식이죠.

B교사 = 담임교사로서 고학년 아이들과 성 이야기를 나누는 것에 무리가 있어요. 아이들은 교사 말을 교사의 행동과 일치시켜요. 선생님이 “섹스”란 단어를 말하면, “어머, 선생님이 섹스라고 했어” 이런 식이죠. 고학년 학생들이 이렇게 반응하는 건 어른이 아이에게 성에 관해 말하는 사례가 없기 때문이에요.

A교사 = 실제 아이들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하고 싶은 체위’ 설문조사를 올리기도 해요. 또 포르노에 자주 나오는 체위가 선호된다고도 해요. 성적인 이야기에 관심이 없을 수도 있는데, 남자아이면 그런 자신이 이상하다고 여기기도 해요. 이런 문제를 두고 학교가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면서 가르치는 게 마땅해요. 성교육을 이수하고, 시험도 봐야 한다면 아이들이 과잉성애화되진 않을 거예요. 성이 비밀스러운 영역에 갇혔어요. 그걸 깨려 시도하면 더러운 존재 취급을 받거나 영웅시되는 상황이에요. 아무도 아이들이 몸과 마음이 성숙하기 전 일찍 성관계를 하고, 동의 없는 성관계를 하거나 원치 않는 임신을 하길 바라지 않아요. 아이들이 자라면서 성에 대한 올바른 지식과 태도를 갖고 건강한 관계를 맺길 바라죠. 해외에선 성공한 성교육 사례가 나와요. 한국에선 이(성교육)를 ‘선정적’ ‘동성애’ 등 프레임을 짜서 막는 거죠.

2018년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청소년 성교육 수요 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 가운데 34.1%는 ‘학교 성교육이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답했다. 51.1%는 ‘학교 밖에서 성지식과 정보를 얻고 있다’고 답했다. 주 경로는 SNS·유튜브 등 인터넷(22.5%)이었다. 온갖 성지식이 인터넷을 통해 아이들에게 흘러들어간다. 그 결과 중 하나가 ‘n번방’ 사건이다. ‘디지털 성범죄’에 무분별하게 노출된 청소년들의 존재가 드러났다. 가해자들은 미성년자 등 여성을 성착취해 만든 영상을 판매·유포했다. 가해자 가운데 가장 어린 나이는 12세였다.

■n번방 사건…터질 게 터진 것

정부, 책 회수부터 하기보다는
어떻게 수업하고 담론 만들어 갈지
논의하고 사회 분위기 이끌었어야
결국 학교·교사 부담으로 남게 돼

- n번방 사건은 참혹하고 충격적이었습니다. 한국 사회 성교육은 실패했다는 걸 보여주는 듯했어요.

A교사 = 터질 일이 터졌다고 생각했어요. 학교에선 끊임없이 산발적으로 터져왔던 사건이죠. 누구 사진을 찍어서 단톡방에 몰래 돌리고, 헛소문을 퍼뜨리며, 원격으로 뭘 시키는 행위들이 이어졌어요. 유튜브에 뜬 ‘참교육’ 시리즈엔 잘못한 사람을 응징하고 처벌하는 내용이 나오는데, 보통 힘 있는 남성이 권력을 휘두르고 약자가 당하는 형식이에요. 따로따로 벌어진 일이 다 연결된 게 디지털 성범죄예요. n번방 사건을 보면서 개인적으로 가장 충격적이었던 부분은 가해자가 피해자를 협박하면서 “학교에 알리겠다”고 한 점이에요. 학교가 한 번도 이런 일들을 제대로 제재한 적이 없어요. 학교에는 디지털 성범죄 관련 가이드라인이 전혀 없어요. 사이버·언어 폭력으로 다룰 수도 있지만, 이것도 학교장 선에서 종결이 가능해요. 불법촬영해서 카카오톡으로 돌려보는 명백한 디지털 성범죄가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고 종결될 수 있는 거죠. 학교 현장엔 가해자를 교육하거나 피해자를 보호할 수 있는 장치가 없어요. 오히려 면죄부를 주는 거죠.

B교사 = 교사들 중엔 n번방 사건을 바라보면서 “피해자들이 왜 일탈계정을 운영했나” “피해자는 왜 그런 행동을 했나”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어요. 취약계층 아이들이 피해에 노출되는 경우가 많은데, 교사들 시선도 ‘이상한 애인가 봐’라고 바라보는 거죠. 이런 문제들을 두고 사회나 정부기관이 제대로 된 교육을 하는 게 아니라 개인에게 미뤄놓기만 하니 너무 지쳐요. ‘나다움 어린이책’ 사건도 마찬가지예요. 정부가 책을 선정해 사업을 했으면, 이 책들로 어떤 수업을 하고 담론을 만들어갈지 나서서 논의하고, 사회적 분위기를 이끌어야 하잖아요. 그렇지 못하니 각 학교와 교사의 부담으로 돌아가는 거죠.

A교사는 인터뷰 말미에 “첫 번째 사람”을 언급했다. “아이들이 위기에 처했을 때 말할 수 있는 첫 번째 사람이 되라”는 말이다. 그는 “우리 사회엔 ‘첫 번째 사람’이 없다. 부모에게 말하면 혼나겠지, 교사에게 말하면 나를 이상하게 보겠지. 이런 상황에서 피해가 더 커진다. 어른들이 섹스의 ‘섹’자도 말 못하게 하는데 도움을 요청할 수 없다”고 말했다.

“책을 통해 이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요. 그루밍 성범죄에 대해서, 성폭력에 대해서도 책을 통해 더 쉽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죠. 성교육을 하기 좋은 하나의 교재들인데, 사용하지 말라면 어떤 식으로 문제를 해결할 건가요. 그럼 어떻게 성교육을 하란 말인가요.”

이 질문에 관한 답을 찾으려는 논의를 다시 시작해야 한다.

 

그래픽 | 성덕환 기자

그래픽 | 성덕환 기자

■보수 개신교 공격, 방관하는 교육부…학교 성교육 11년째 제자리
 

“교과서에서 성기 삽화·콘돔 삭제”
6억원 들여 만든 교육부 표준안엔
순결 강조·성소수자 등 빠져 ‘후퇴’


“제가 학교를 다닌 11년, 참 긴 시간입니다. 그동안 저는 키가 50㎝나 크고, 2차 성징도 시작하였습니다. 하지만 11년 동안의 학교 성교육은 조금도 발전하지 않았습니다. 어떤 교육이든 그것은 시대에 맞춰서 바뀌어나가야 합니다. 그런데 학교 성교육은 계속해서 동그란 트랙을 돌고 있습니다.” 아하서울시립청소년성문화센터 주최로 지난 6월 열린 ‘2020 성평등 문화 만들기 연설 대전’ 영상에 나온 한 청소년 참가자 발언이다.

한국 성교육이 같은 트랙을 뱅뱅 도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성가족부의 ‘나다움 어린이책’ 회수 사태는 지속된 학교 성교육 후퇴의 연장선에 있다. 보수 개신교 세력이 후퇴와 퇴보의 중심에 섰다.

여성가족부 ‘나다움 어린이책’ 7종을 문제 삼은 곳은 나쁜교육에분노한학부모연합(분학연) 등 보수 개신교 성향 단체들다. 반동성애기독시민연대, 안티페미협회, 바른성문화를위한국민연합(바성연), 우리아이지킴이학부모연대 같은 단체가 들어갔다.

이들은 이전에도 성교육이 포함된 보건교과서 삽화와 내용 삭제를 요구하고 불매운동을 벌였다. 시작은 2007년이다. 그해 학교보건법 개정으로 보건교육이 의무화되면서 2009년 처음 보건교과서를 이용한 보건교육이 시작됐다. 보수단체는 보건교과서를 공격했다.

김대유 경기대 교육대학원 교수는 “극우 종교단체 등이 지속적으로 보건교과서를 제작한 출판사와 저자들을 압박했다. ‘교과서에 나오는 성기 삽화를 가려라, 콘돔이란 말은 쓰지 말라’고 요구했다. 결국 삽화가 축소되거나 삭제됐다. 전문가들이 원하는 수준의 성교육 자료를 게시하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당시 보건교과서 공격에 앞장선 단체 중엔 ‘나다움 어린이책’을 비판한 바성연, 우리아이지킴이학부모연대도 포함됐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보건교과서는 11년 동안 한 차례도 개정되지 못했다. 최근에야 겨우 한 종만 개정됐다. 디지털 성폭력·기후변화와 코로나19 같은 전염병 등 최신 이슈들을 반영했다. 이 교과서도 보수단체 공격에 시달리고 있다.

법 개정에 따른 성교육이 공격받는 동안 교육부는 뭘 했을까? 수수방관했다. 김 교수는 “교육부는 문제를 단위학교로 미루며 강 건너 불구경하듯 방임했다. 그 결과 현재까지 성교육이 위축되거나 지장받고 있다”고 말했다.

교육부가 2015년 만든 성교육 표준안 또한 성교육을 둘러싼 문제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2년간 6억원을 들여 만든 성교육 표준안엔 “이성친구와 단둘이 있는 상황을 만들지 않는다” “남성의 성에 대한 욕망은 때와 장소에 관계없이 충동적으로 급격하게 나타난다” 같은 내용이 들어갔다. “데이트 비용을 많이 사용하게 되는 남성의 입장에서 여성에게 그에 상응하는 보답을 원하게 마련이다. 이 과정에서 원치 않는 데이트성폭력이 발생할 수 있다”고도 썼다. 김 교수는 “표준안을 제작하면서 보수성향 단체와 기독교 단체 위주로 의견을 수렴하고, 내용도 종교적 순결인식을 강요하고 여성에게 불리한 측면으로 서술했다”며 “기존 보건교육에서 시행되는 성교육 내용을 외면하고 후퇴했다”고 지적했다. 여성단체 비판으로 문제가 된 내용 일부는 삭제했지만, 성소수자·자위·성적자기결정권에 관한 내용이 빠졌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 초등학교 교사 C씨는 “표준안이 오히려 아이들에게 제대로 된 성교육을 할 수 없는 근거로 작용한다”고 말했다.

멈춰선 성교육은 빠르게 흐르는 아이들의 시간을 따라잡지 못한다. 질병관리본부의 2019년 ‘청소년건강행태조사’를 보면 성관계 경험을 한 중·고등학생 비율은 해마다 증가한다. 성관계 경험이 있다고 응답한 학생은 2017년 5.2%, 2018년 5.7%, 2019년 5.9%였다.

과연 <아기는 어떻게 태어날까?>와 같은 사실적 교육은 아이들의 ‘조기성애화’를 불러올까. 연구 결과를 보면 반대다. 유네스코의 ‘국제 성교육 가이드’를 보면 5~12세 아동을 위한 교육 내용으로 “다양한 결혼 방법, 생물학적 성과 젠더의 차이, 성 및 재생산 건강과 관련한 몸의 부분 묘사하기, 성기가 질 속에 사정하는 성관계의 결과로 임신할 수 있음을 알기, 신체적 접촉을 통해 쾌락을 느끼는 방식 설명하기” 등을 제시한다. 유네스코는 2016년 옥스퍼드대학 연구 결과 성교육을 통해 성행위 시작 시기 지연, 성행위 빈도 감소, 성 파트너 수 감소, 피임 증가 등 효과가 나타났다고 밝혔다.

유럽 여러 나라에선 유아 시절부터 체계적인 성교육을 실시한다. 스웨덴은 만 4세부터 성교육을 시작한다. 스웨덴 10대 임신율은 전 세계 최저 수준이다. 독일에선 초등학교 3학년부터 학교에서 성교육을 받는다. 성관계에 대해 숨기는 것 없이 구체적이고 분명하게 설명한다.

이명화 아하청소년성문화센터장은 “조기성애화라는 말 자체가 순결주의, 금욕주의적 이데올로기를 담고 있다”면서 “성에 대한 갈증과 호기심을 갖고 있는 아이들은 음담패설·음란물이 아니라 진지한 교육 텍스트로 성교육을 받아야 한다”며 “인간에 대한 존중과 성평등에 기반한 성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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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이름으로, ‘시스템에 숨은’ 어른들을 고발한다

등록 :2020-09-12 09:13수정 :2020-09-12 09:22

 

[토요판] 커버스토리
아동학대, 현장을 고발한다

병원·경찰·아보전 학대 의심에도
고립된 아이 준호 구출에 소극적
경찰은 현장 출동 없이, 훈계·조사
그사이 상처 아물고 멍 지워져

아보전 “준호는 분리 의사 없었다”
전문가 “피해아동이 늘 구석에서
울고만 있는 것은 아냐” 지적
모호한 격리 척도표 산정으로
아이의 목숨을 구할 기회 잃어
지난 9일 ‘정치하는엄마들’이 천안 아동학대 사망사건 책임자를 고발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 장철규 선임기자 chang21@hani.co.kr
지난 9일 ‘정치하는엄마들’이 천안 아동학대 사망사건 책임자를 고발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 장철규 선임기자 chang21@hani.co.kr
▶지난 6월 충남 천안에서 부모의 학대로 숨진 준호(가명)의 비극을 취재하면서 5년 전 취재 자료를 다시 뒤적였다. 당시 한겨레 탐사보도팀은 ‘부끄러운 기록, 아동학대’ 시리즈 기사를 보도했다. 취재를 하면서 준호가 당시 사망 사례로 보도한 연수(가명)의 사례와 매우 닮았단 사실을 알았다. 5년 전 연수의 죽음은 의사, 어린이집 교사 등 어른들의 침묵이 원인이었다. 그때 아동보호전문기관과 경찰은 연수가 죽은 뒤에야 학대를 확인했다. 당시 ‘병원이, 교사가 한발만 더 나서줬더라면…’ 하는 생각이 끓어올라 견디기 힘들었다. 이후 의료진, 교사 등 신고의무자 제도는 정비됐다. 아동보호 인력도, 예산도 충분치 않지만 보강됐다. 그런데 준호 사례는 ‘사람’이라는 또 다른 교훈을 남긴다. 연수와 달리 준호를 본 의사는 조금 에두른 방법이었지만 경찰에 학대 의심 신고를 했다. 아동보호전문기관과 경찰이 움직였다. 준호는 아동보호의 시스템 안에 들어왔다. 원래대로라면 준호는 그 안에서 ‘살아남아야’ 했다. 그런데 결국 우리는 그 죽음을 막지 못했다. 시스템이 문제가 아니었다. 결국 사람이 문제였다. 그 책임을 묻는다. 글 하어영 기자 haha@hani.co.kr, 최예린 기자 floye@hani.co.kr, 사진 장철규 선임기자 chang21@hani.co.kr
지난 6월 초 충남 천안에서 새엄마가 아홉살짜리 아이를 여행가방에 가둬 숨진 사건이 알려졌다. 여론은 들끓었다. 특히 아이가 다쳐 병원 응급실을 찾은 한달 전으로 시계를 돌려보니 아이를 학대로부터 구출할 기회가 여러번 있었다는 비판이 나왔다. 이번에도 국회 등에서 제도 보완을 위한 입법을 외쳤다. ‘정치하는엄마들’이 보는 시선은 달랐다. 아동보호를 책임질 어른들이 제 몫을 다했다면 아이는 살 수 있었다. ‘그들’을 고발하기로 한 이유다.보다 못한 엄마들이 나섰다. 지난 9일 대법원과 대검찰청 등이 위치한 서울 서초동에서 시민단체 ‘정치하는엄마들’이 펼침막을 들었다. “그 아이는 살 수 있었다”는 외침이 담겨 있었다. 지난 6월3일 충남 천안에서 엄마의 학대로 9살 준호(가명)가 세상을 뜬 지 99일 만이었다. 엄마들은 대전지검 천안지청에 제출할 ‘고발장’도 손에 들었다.“정치하는엄마들은 박상돈 천안시장을 직무유기와 아동복지법 위반으로, 주진관 충남아동보호전문기관장을 아동복지법 위반으로, 박종혁 충남천안서북경찰서장 및 성명불상인(담당 경찰)을 직무유기로 고발하니 이를 조사하여 엄벌에 처해주시기 바랍니다.”고발장은 두달간 엄마들이 머리를 맞댄 고민의 결과였다. 엄마들은 괴로워도 두 눈 부릅뜨고 준호를 죽음으로 이끈 책임자를 찾아내는 것이 애도하는 길이며, 또 다른 준호의 죽음을 막는 길이라고 의견을 모았다. 학대 의혹으로 국가의 ‘보호 시스템’ 안에 들어왔음에도 한달 동안 준호를 방치해 숨지도록 내버려둔 게 누군지를 따지는 게 우선이라고 봤다. 그리고 그들을 고발해 심판대에 세우기로 했다.정치하는엄마들이 나서면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의 아동인권위원회가 힘을 보탰다. 김영주 변호사는 “천안 사건을 보면서 법률가 단체가 입법에 함께 참여하는 것으로는 한계를 느끼는 중이었다. 정치하는엄마들이 나서는 것을 보면서 함께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움직이는 청소년센터 엑시트(EXIT)’의 이윤경 활동가도 결합했다. 이윤경 활동가가 전달한 아동학대 피해자들의 목소리는 “문제는 시스템이 아니라 시스템을 움직이는 어른들”이라는 사실을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이들은 국회 더불어민주당 김상희 의원을 통해 관련 자료를 확보해 경찰과 아동보호전문기관(아보전)의 대응이 적절했는지 따졌다. 곳곳에서 준호를 구출할 수 있었던 순간을 발견했다.고발 전 <한겨레>는 정치하는엄마들과 고발을 준비하는 이들을 미리 만났다. 지난 3일 서울 관악구의 엑시트 사무실에서 김정덕·장하나 정치하는엄마들 활동가, 이윤경 엑시트 활동가와 민변 아동인권위의 김영주·소라미 변호사가 모였다. 기자를 포함한 여섯명의 어른들은 대전지검 천안지청의 공소장, 김상희 의원실에 제출된 아보전 및 경찰의 질의응답 자료 등을 토대로 준호의 학대가 외부에 드러난 5월5일부터 구조를 받지 못하고 숨져간 6월3일까지의 30일을 복기했다._______
준호의 생사를 가른 응급성 판단
시작은 5월4일로 거슬러 간다. 그날 아빠와 엄마(새엄마), 누나, 형 등 식구 넷은 준호만 집에 두고 1박2일 여행을 떠났다. 준호가 말을 듣지 않고 거짓말을 한다는 이유였다. 준호는 어린이날을 혼자 맞았다. 부모는 9살 소년에게 하룻밤을 홀로 견디도록 벌을 내렸다. 방임은 학대다. 지난해 벌어진 아동학대로 확인된 3만45건 중 방임은 2885건(9.6%)에 이른다.이튿날 오후 가족여행에서 돌아온 엄마 성아무개씨는 몇시간 남지 않은 어린이날조차 준호를 그냥 두지 않았다. 이날도 준호가 돈을 훔쳤다고 의심해 한뼘이나 될까 한 크기의 쇠막대를 들었다. 도망치는 준호를 뒤쫓아 정수리를 때렸다. 찢어진 머리에서 피가 흘렀다. 성씨가 준호를 데리고 천안 순천향대학교병원 응급실로 향한 건 밤 10시가 넘은 시각이었다. 엄마는 병원에서 “세수를 하다가 넘어져 생긴 상처”라고 거짓말했다. 아이가 세수하다가 넘어져 정수리를 다치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 게다가 준호의 손과 발, 엉덩이에 멍의 흔적과 부기가 진료기록에 남아 있어 긴급한 구조가 필요한 상태로 판단해 경찰에 곧바로 신고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의료진은 학대 의심으로 병원 사회사업실에 신고를 맡겼다.의료진에게 법적 책임을 묻기는 어렵지만 머리의 상처를 무겁게 받아들이지 않은 것은 뼈아프다. 지난 3월 발표된 논문 ‘아동보호 공적책임 강화를 위한 아동학대 사망 사례연구’를 보면, 미국에서는 의학적으로 머리의 외상을 질식·중독·방치와 함께 재학대로 인한 결과일 확률이 가장 높은 사례로 꼽는다. 성씨는 나중에 검찰 조사에서 23㎝ 길이의 요가링과 옷걸이 등으로 구타했음을 자백했다. 그날 의사가 직접 신고했다면 아보전과 경찰이 곧바로 병원으로 출동했을 것이다. 준호를 구할 수 있었던 첫번째 기회는 이렇게 사라졌다. 순천향대병원이 경찰 112에 신고한 것은 이틀 뒤인 5월7일이었다.“머리를 다쳐서 응급실에 왔는데 손과 엉덩이에 멍자국이 있어 아동학대가 의심되고, 피해아동의 어머니는 아버지가 아이를 때려 멍이 들었다며 학대 사실을 인정했다. 관련자들은 귀가한 상태이고 상처는 심하지 않으며 학대 때문인지 훈육 때문인지 잘 모르겠다.”(112 신고 내용)지각 신고 뒤 경찰은 확인에 들어갔다. 하지만 충남천안서북경찰서는 피해자나 가해자 대면조사가 아닌 신고자를 먼저 접촉했고, 증거를 문의했다. 아동을 사회가 적극 보호하고 (신고된 경우) 잠정적인 피해자로 보는 태도가 경찰 등에 부족했던 것이다. 아동에게 먼저 피해를 물어보는 일종의 피해자 중심주의가 요구되는 대목이다. 신고자의 태도는 담당 경찰과의 통화에서 112 신고 때보다 더 모호해졌다. “체벌로 인한 상흔으로 내원했던 것은 아니다”라고 한 것이다. 경찰은 이를 근거로 사건 해결에 긴급함을 요하지 않는다는 판단을 내린다. 준호가 몸으로 발신한 에스오에스(SOS)는 재차 무시됐다.5월8일 경찰서 내 학대예방경찰관은 엄마인 성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경찰관은 “더 이상의 학대는 없어야 하고, 훈육 목적 체벌 행위도 잘못된 행위임을 경고”했다. 이 “더 이상의 학대”라는 말만으로도 경찰이 이미 학대를 인지하고 상습성을 의심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곧바로 수사를 진행하는 대신 성씨에게 “수사 담당자의 연락이 갈 것임을 안내”하는 데 그쳤다. 장하나 정치하는엄마들 활동가는 “누가 경찰에게 학대가 있음을 알면서도 곧바로 조사에 나서지 않고 그저 수사 담당자가 연락을 할 것이라는 등 안이한 대처를 할 수 있도록 하는 권한을 줬느냐”고 반문했다. 엑시트의 이윤경 활동가는 “경찰이 아동학대 신고를 받은 뒤 섣부른 판단을 하게 되면 한 생명을 죽음에 이르게 할 수도 있다. 제도적으로 신고받은 경찰이 공식적인 수사 개시 없이 학대냐 아니냐를 결정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치하는엄마들은 이러한 조치를 한 경찰 관계자들을 고발하기로 했다. 대상은 사건을 맡고도 현장에 출동해 준호를 보호하거나 조사하지 않은 성명불상의 사법경찰관과 이를 방치한 박종혁 전 충남천안서북경찰서장이다.
9살 아이를 가방에 가둬 숨지게 만든 엄마 성아무개씨가 지난 6월3일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경찰서를 나서고 있다.연합뉴스
9살 아이를 가방에 가둬 숨지게 만든 엄마 성아무개씨가 지난 6월3일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경찰서를 나서고 있다.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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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피해자 조사도, 현장조사도 없었다
아보전 담당자가 준호의 집을 찾은 것은 경찰이 성씨에게 훈계를 늘어놓고 아보전에 전화와 국가아동학대정보시스템을 통해 알린 지 5일 만(5월13일)이었다. 아보전은 경찰에 현장조사 동행을 요구했지만 일정이 맞지 않는다는 통보를 받았다. 결국 아보전만 현장에 나갔다. 아동학대 의심신고가 112로 접수되면, 경찰은 ‘응급’의 경우 신고 접수와 동시에 아보전에 동행을 요청한 뒤 관내 학대예방경찰관과 여성청소년수사팀에 통보해 출동을 요청하거나 지구대 현장 경찰관에게 출동 및 (아동)분리조사를 통보한다. 아보전은 주로 현장에 나가 피해아동 및 가족, 아동학대 행위자를 위한 상담 및 관리를 맡는다.(조사 업무는 올 10월부터 지방자치단체 이관) 준호의 경우도 의사가 직접 신고하고 ‘응급’으로 판단했다면 경찰과 아보전이 현장에 출동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응급성에 대한 판단이다. 원래대로라면 머리에 상해를 입은 경우이니 곧바로 현장에 출동했어야 한다. 하지만 아보전은 국회에 낸 자료를 통해 ‘응급 상황이면 병원에서 신고했을 것이지만 그렇지 않았다’ 등을 출동 지연 이유로 설명했다. 경찰은 같은 자료에서 응급 사례로 분류하지 않은 이유로 “현장에 관련자가 없었고, 신고자의 내용 등을 종합했다”고 했다. 결국 아보전, 경찰 모두 병원의 신고만 믿고 따로 조사하지 않은 채 응급성을 판단했다는 것이다. 아보전 담당자는 결국 경찰 없이 13일 준호의 집에 방문해 준호 가족을 면담한 뒤 보고서를 작성했다. 다음은 해당 보고서 내용이다.“아동과 행위자를 분리해 거실에서 아동을 단독조사할 때 부모가 있는 방을 쳐다보며 경계하거나 말을 머뭇거리는 모습이 없었고, 진술 과정에서 불안한 모습이 관찰되지 않은 점, 어려움을 호소하지 않고 분리 의사가 없다는 점을 확인함.”준호는 이날 아보전 관계자에게 “잘 지내고 있고, 가족과 떨어지지 않고 싶다”고 했다. 아보전은 현장 방문을 토대로 준호를 ‘저위험 사례’로 분류한 뒤 준호를 부모로부터 분리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이렇게 목숨을 구할 결정적 기회를 다시 놓쳤다. 당시 작성된 아동학대위험도 평가척도표를 보면 △신체 손상, 정서적 피해 등이 의심 △2회 이상 학대 △아동 스스로 보호능력 미약 등이 인정됐음에도 위험 문항 1개가 모자라 격리 조치를 하지 않았다.“준호가 원하지 않았다”는 말로 아보전은 책임을 다한 것일까. 법무부 여성아동인권과장을 지낸 김영주 변호사는 “학대의 현장에 있는 아이들이 언론에 등장하는 피해아동처럼 인형을 안고 방구석에 앉아 울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그들은 평상시에는 보통의 아이들과 다를 바 없다”며 “좀 더 정밀하게 준호를 들여다봤어야 했다”고 했다. 김 변호사는 “아보전 등이 인력이나 예산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는 것을 모르는 바가 아니다. 하지만 역량을 쌓아야 하는 전문기관이 언제까지 시스템 보완만 주장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정치하는엄마들은 고발장에 “법령상 규정된 사실상 보호자로서의 학대 피해아동에 대한 기본적인 보호 의무를 방임한” 주진관 충남아동보호전문기관장과 “피해아동 보호를 위한 조치를 행하여야 할 직무가 있음에도 안전 확보를 위한 보호 조치, 친권 관련 조치, 담당 아동보호전문기관을 통한 피해아동 보호 등의 업무를 전혀 하지 아니하여 피해아동을 사망에 이르게 한” 박상돈 천안시장을 포함했다. 이들은 사회적 부모로 세번의 기회를 놓친 책임자들이다.
충남 천안 아동학대 사망사건을 막지 못한 어른들의 책임을 묻기 위해 ‘정치하는엄마들’이 나섰다. 지난 3일 장하나 정치하는엄마들 활동가(왼쪽부터), 소라미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아동인권위원회 변호사, 김정덕 정치하는엄마들 활동가, 김영주 민변 아동인권위원회 변호사, 이윤경 ‘움직이는 청소년센터 엑시트’ 활동가가 카메라 앞에 섰다. 장철규 선임기자 chang21@hani.co.kr
충남 천안 아동학대 사망사건을 막지 못한 어른들의 책임을 묻기 위해 ‘정치하는엄마들’이 나섰다. 지난 3일 장하나 정치하는엄마들 활동가(왼쪽부터), 소라미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아동인권위원회 변호사, 김정덕 정치하는엄마들 활동가, 김영주 민변 아동인권위원회 변호사, 이윤경 ‘움직이는 청소년센터 엑시트’ 활동가가 카메라 앞에 섰다. 장철규 선임기자 chang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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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리만 이뤄졌더라면
가정방문 닷새 뒤인 5월18일 아보전은 경찰에 방문 보고서와 함께 “별도의 사건 처리보다는 가족 기능 강화를 위해 (상담 등) 서비스 제공이 필요할 것으로 판단한다”는 내용을 전달했다. 경찰은 이를 토대로 준호 부모를 소환조사하기로 한다. 문제는 피해자 조사였다. 천안서북서 관계자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부모의 혐의 특정을 위해서는) 아이의 진술이 결정적인 증거”라고 하면서도 “경찰 쪽에서 접근하지 않고 아보전 조사관들이 나가 조사했고, 그 결과를 갖고 혐의 입증을 위해 부모를 조사했다”고 했다. 피해자 조사를 아보전의 현장방문으로 대체했다는 것이다.하지만 아보전은 오히려 경찰의 책임으로 돌렸다. 천안 사건을 잘 아는 충남 아보전 관계자는 지난 6월 사망 사건이 발생한 직후 <한겨레>와 만난 자리에서 경찰이 준호를 조사하지 않은 사실을 아느냐고 묻자 “정말 한번도 하지 않았느냐”고 되물었다. 아보전도 준호가 숨지기까지 경찰의 직접조사 여부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관계자는 “경찰이 대부분 피해아동을 경찰서나 해바라기센터로 불러 피해 정황을 확인하고 진술조사를 한다”며 “경찰 입장에서 학대라고 특정하기 애매모호하더라도 아이를 직접 만나 확인해야 하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 의견은 참고자료일 뿐이다. 아동복지법에 의해 광의적인 해석을 하(기 위한 자료를 만드)는 것일 뿐 실제 조사는 경찰의 몫”이라고 했다. 경찰이 준호를 불러 조사했다면 결과는 달라졌을까. 할 일을 하지 않아 네번째 기회를 놓친 것만은 분명하다.준호의 죽음 15일 전, 기회는 여전히 있었다. 준호는 ‘학대우려아동’으로 지정돼 있었기 때문이다. 아보전 관계자는 가정방문 일주일 뒤인 5월20일 성씨에게 전화를 걸어 상담을 권유했다. 성씨는 가정방문 당시 협조적인 태도가 아니었다. “노력해보겠다”는 말과 함께 상담을 거부했다. 부모의 비협조는 학대를 의심할 수 있는 방증이었다. 하지만 아보전은 즉각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아보전이 감지한 엄마의 비협조는 경찰과 공유되지도 않았다.경찰은 뒤늦게 준호의 부모만 불러 조사했다. 5월21일과 24일 엄마와 아빠를 따로 불러 조사한 과정에서 학대의 심각성도 인지했다. 부모 모두 체벌을 인정했고, 학대가 지난해 10월부터 있어왔다고 했다. 그럼에도 긴급성을 판단하는 경찰의 기조는 변하지 않았다. 현장조사는 물론이고 준호와 면담도 이뤄지지 않았다. 국가 아동학대 보호 시스템 안에 들어와 있던 준호는 그렇게 방치됐다. 소라미 변호사는 “2014년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정 이후로 시스템은 어느 정도 갖춰졌다. 하지만 법 안에 아이를 살려야 한다는 ‘의지’를 담을 수는 없다. 그 의지는 현장 당사자, 그리고 현장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이 변화돼야 단단해질 수 있다”며 “이번 천안 사건에서도 현장의 주체들이 준호를 보호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면 아마 죽음을 막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고 했다.어른들이 책임을 다하지 않는 사이 학대는 계속됐다. 준호가 여행가방에 갇힌 채 사망하기 며칠 전이다. 이즈음 경찰은 부모를 아동학대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하기로 하고, 아보전은 준호를 다시 한번 직접 만나보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곧바로 실행에 옮겨지지 않았다. 그 틈에 성씨는 “가족들의 칫솔로 욕실 바닥을 닦았다고 여겨 쪼그려 앉아 있는 준호의 등을 발로 차 준호가 넘어지면서 욕조에 눈을 부딪치게 했”다. 또래보다 작은 키(132㎝)에 체구(23㎏)도 작은 준호는 발에 차여 어디로 구른 것일까. 준호가 다친 눈(망막)은 깨진 머리와 함께 아동학대에서 등장하는 대표적 피해 부위다. 제대로 조사돼 제때 격리만 됐다면 일주일 뒤의 참극은 막을 수 있었다.그리고 6월1일, 둘째인 형이 자신의 게임기를 준호가 손댔다며 나무랐다. 준호는 엄마의 강압에 못 이겨 여행가방 안으로 들어갔다. 그 안에서 무려 7시간을 보냈다. 그동안 엄마는 집 밖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돌아왔다. 친구와 전화 통화를 했고, 바깥의 누나와 형의 저녁밥을 챙겼다. 그사이 가방 안의 준호는 가방에 들어간 지 3시간 만에 “엄마, 숨이 안 쉬어져요”라고 말했다. 엄마는 ‘숨을 쉴 수 없다는 말이 정말이냐. 거짓말 아니냐’며 추궁했고, 주눅 든 준호는 “거짓말”이라고 답했다. 가방 속 6시간 만에 준호는 “숨”, “숨”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준호는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119 신고로 병원으로 옮겨진 준호가 세상을 떠난 것은 6월3일이다. 학대가 어른들에게 인지된 지 30일이 되었을 때였다.아동보호 시스템 정비 못지않게관계자 적극적인 구조 의지 중요사회적 부모로 국가 역할 찾아야“학대 사건 끝까지 책임 묻겠다”_______
막을 수 있었던 죽음
대담자들은 내내 “막을 수 있었던 죽음”에 “한이 맺힌다”고 했다. ‘2019 아동학대 연차보고서’를 보면 재학대에 대해 주요하게 언급하고 있다. 재학대는 최근 5년 동안 아동보호전문기관 및 경찰에 신고·접수된 사례 중 아동학대로 판단된 사례가 다시 해당 연도에 신고·접수돼 아동학대로 판단된 사례를 뜻한다. 재학대는 2019년 3431건이다. 전체 학대 행위 3만45건 중 11.4%에 이른다. 3431건 안에 포함된 아이들의 수는 2776명이다. 이 숫자를 내년에 또 봐야 하는 것일까.
장하나 활동가는 “학대 자체를 100% 없앨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준호의 죽음은 막을 수 있었다. 재학대도 마찬가지다. 다만 그중 50%까지만 막아도 우리는 억울하게 학대당하는 1천명이 넘는 아이들을 구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정덕 활동가도 “고발은 이제 시작”이라며 “학대 사건 하나하나를 끝까지 추적해 고발할 것”이라고 했다. “그 아이들 한명 한명에게 너희를 기억하고 애도하는 어른들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려고 한다”고도 했다.천안 아동학대 사건을 계기로 시스템 정비 움직임이 다시 활발해졌다. 이종성 국민의힘 의원이 아동보호전문기관의 아동학대 재발 여부 확인 요청을 거부하거나 방해한 보호자를 1년 이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처벌하도록 하는 ‘아동복지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아동학대 피해아동이 아동보호전문기관의 보호를 받다가 가정으로 돌아간 이후 재학대가 발생하는 것을 막기 위한 목적이다. 천안 사건 직후인 지난 6월 전용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아동학대 상습 범죄자의 신상 공개와 자녀 살인에 대한 처벌 강화, 민법상 자녀 징계권 삭제 및 체벌 금지 등을 담은 개정안을 발의했다.
천안 아동학대 사망사건을 해결해보자며 모인 이들이 9월3일 대담을 마친 뒤 함께 사진을 찍으며 뒷얘기를 나누고 있다. 장철규 선임기자 chang21@hani.co.kr
천안 아동학대 사망사건을 해결해보자며 모인 이들이 9월3일 대담을 마친 뒤 함께 사진을 찍으며 뒷얘기를 나누고 있다. 장철규 선임기자 chang21@hani.co.kr
하어영 기자 haha@hani.co.kr, 최예린 기자 floye@hani.co.kr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961866.html?_fr=mt1#csidx7e77a3a0f444464b6385b0f76089ef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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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도 주민들에게 태풍보다 더한 고통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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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
    2020/09/12 09:50
  • 수정일
    2020/09/12 09:50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문성혁 해수부 장관께 드리는 편지] 여객선은 그들의 목숨 줄, 대형여객선 운항 빨리 결론내야

20.09.11 16:40l최종 업데이트 20.09.11 17:02l
페이스북에 실린 강제윤 섬연구소 소장의 글을 필자의 동의를 받아 싣습니다.  [편집자말]
 육지에서 마이삭 태풍의 피해가 예상보다 크지 않다고 안도하고 있을 때 울릉도는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하지만 언론들은 울릉도 피해의 심각성을 제대로 보도 하지 않았다.
▲  육지에서 마이삭 태풍의 피해가 예상보다 크지 않다고 안도하고 있을 때 울릉도는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하지만 언론들은 울릉도 피해의 심각성을 제대로 보도 하지 않았다.
ⓒ 김윤배 박사 외 울릉도 주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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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하는 장관님!

울릉도 태풍 피해 현장을 방문해 주시고 신속한 피해 복구를 약속해 주신 데 대해 감사드립니다. 저는 울릉도 주민은 아니지만 울릉도 태풍 피해 보도를 도외시한 언론들의 보도 태도에 문제를 제기해 보도 방향을 바꾸었고, 울릉도를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하라는 성명을 발표해 정부의 관심을 이끌어낸 (사)섬연구소의 활동가입니다.

울릉도를 강타해 사상 초유의 피해를 입힌 태풍이 지나갔고 국무총리님과 장관님까지 현장을 방문해 피해 복구를 약속했지만 울릉도 주민들에게는 이제 또 태풍보다 더한 고통의 시간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다가오는 겨울은 울릉도 주민과 울릉도 방문자들에게 동토의 시간이 될 것입니다. 혹시 그 이야기를 이번 울릉도 방문 길에 들으셨는지요? 

섬사람들의 생명줄인 여객선의 결항 문제 때문입니다. 지난 2월 말 포항∼울릉 항로를 운항하던 대형 여객선 썬플라워호(2394톤, 정원 920명)가 선령 25년이 차서 운항이 중단했는데 투입되기로 약속됐던 동급의 대체 여객선은 아직 오리무중입니다.

지난 5월15일부터 현재까지는 썬플라워호 대체 선박으로 소형선박인 엘도라도호(668톤, 정원 414명)가 운항되고 있습니다. 지금도 파도가 조금만 있으면 멀미 때문에 소형 선박 탑승객들은 비닐봉지와 쓰레기통을 끌어안고 토사곽란을 해가며 서너 시간 동안 배를 타고 가야 합니다. 이때는 여객선이 아니라 지옥선입니다. 그런데 지금보다 파도가 더욱 거세지는 겨울이면 어떻겠습니까. 바다를 건너다 다들 중환자가 될 지경에 이릅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소형 여객선으로는 이 험한 뱃길마저 수시로 끊기게 된다는 점입니다. 겨울이면 소형 여객선이 울릉도로 갈 수 있는 날이 잘해야 한 달 1~2번에 불과합니다. 지난 수십 년간의 결항률이 이를 증명합니다. 대형 여객선이 다닐 때도 울릉도의 연평균 여객선 결항률은 100~120일쯤 됐습니다. 유배지도 이런 유배지가 없습니다. 울릉도 주민들은 감옥보다 더한 감옥살이를 했던 것입니다. 육지라면 폭동이라도 났을 테지만 울릉도 주민들은 묵묵히 참고 살아왔습니다.

대형 여객선 썬플라워호 퇴역 후 새롭게 취항할 대형 여객선 우선협상대상자로 대저해운이 선정됐습니다. 하지만 새로 취항할 대저해운의 2125톤급 쌍동형 선박은 새로 건조해야 하는 까닭에 1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새 여객선은 2021년 8월쯤에나 취항할 예정입니다. 그래서 포항 해수청은 대형여객선 취항 시까지 대체여객선으로 (주)대저해운의 소형 선박 엘도라도호(668톤)에 대한 운항을 인가했습니다. 포항 해수청은 인가하면서 '5개월 이내에 썬플라워호(2394톤)와 동급 또는 울릉주민 다수가 동의하는 대형선으로 교체해야 한다'는 조건을 달았습니다.

울릉도 주민들은 당초부터 소형인 엘도라도호의 대체 선박 투입을 반대했습니다. 잦은 결항과 택배, 생필품 등의 공급 난항을 우려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포항 해수청이 엘도라도호 취항 5개월 이내에 썬플라워호와 동급이나 대형선으로 교체한다는 인가조건을 달자 주민들은 어려움을 감수하면서 받아들였습니다. 하지만 우려는 생각보다 더 심각했습니다.

썬플라워호가 운항할 때는 매일 택배, 우편, 신선식품들이 오갔지만 지금은 매주 2차례만 화물선을 이용해야 합니다. 기상악화 시에는 7~10일씩이나 걸려 물건을 보내고 받을 수 있어 엄청난 고통을 감내하고 있습니다. 어떤 주민은 육지에서 보낸 복숭아 택배를 기상 악화로 열흘 만에 겨우 받았는데 복숭아가 모두 다 썩어 있었다고도 합니다.

여객선은 목숨줄입니다
 
 육지에서 마이삭 태풍의 피해가 예상보다 크지 않다고 안도하고 있을 때 울릉도는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하지만 언론들은 울릉도 피해의 심각성을 제대로 보도 하지 않았다.
ⓒ 김윤배 박사 외 울릉도 주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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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고통 때문에 지난 7월 26일에는 울릉 주민 40여 명이 군청 회의실에서 김병수 군수와 대형여객선 투입에 관한 면담을 하다 김 군수가 명쾌한 답변을 제시하지 않자, 전격 농성을 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엘도라도호 취항 4개월이 다 되어 가는데도 대저해운은 아직 대형 여객선을 취항계획을 내놓지 않고 있습니다.

포항 해수청도 약속했던 것처럼 이에 대한 대책을 세워줘야 하지만 손을 놓고 있습니다. 더구나 포항 해수청은 울릉도 독도 해운이 지난 6월 포항~울릉 도동항 간에 대형여객선인 비스타호(2292톤급. 승선 502명)의 해상여객운송사업 면허를 신청했지만 계류시설 부족을 이유로 반려 시켜 버리기까지 했습니다. 지난 2월까지도 더 큰 여객선인 썬플라워호(2394톤)가 계류하던 도동항 계류 시설 부족으로 허가가 반려됐다는 것은 납득할 수 없는 조치입니다.

울릉독도 해운은 지난 8월 28일 다시 포항 해수청에 대형여객선 비스타호(2천292톤급) 운항 인가를 신청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포항 해수청은 답이 없습니다. 정작 취항하겠다는 대형 여객선은 운항 허가도 반려한 포항 해수청이 대저해운의 대형 여객선 미취항에는 수수방관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대저 해운이 대형 여객선으로 대체할 의사가 없다면 비스타호의 운항을 인가해주는 것이 맞습니다. 어느 쪽이든 울릉도 주민들의 뱃길 고통을 덜어주는 쪽으로 결정되어야 마땅합니다.

존경하는 문성혁 장관님! 여객선은 섬사람들의 목숨줄입니다. 지난해 8월 6일에는 심정지로 쓰러진 50대의 울릉도 주민 한 분이 8호 태풍 프란시스코 북상으로 헬기 운항이 어렵게 되자 오후에 출항한 여객선으로 이송 중 배 안에서 사망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더 큰 배가 있어서 조금만 더 일찍 떴다면 살았을 수도 있을 목숨입니다. 섬사람들에게 이런 일은 부지기수입니다. 여객선이 목숨 줄인 것은 그 때문입니다. 울릉도 태풍 피해 현장을 몸소 둘러보시고 섬 주민들의 고통을 목격하신 장관님께서 울릉도 주민의 여객선으로 인한 고통도 함께 덜어 주신다면 더할 나위 없이 고맙겠습니다. 장관님의 도움을 간곡히 요청드립니다. 고맙습니다.

2020년 9월 11일 (사)섬연구소 소장 강제윤 드림

태그:#울릉도, #해수부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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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 만의 귀향, 부당한 ‘임시귀국조치’ 철회하고 영구귀국 보장하라”

일심회 사건의 장민호 선생 고국방문
김래곤 통신원  |  tongil@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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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9.11  14:3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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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보안법으로 7년 동안의 옥살이를 마치고 미국으로 추방당해 7년 동안 고국에 돌아오지 못했던 장민호 선생과 부인 김은경 선생이 비록 임시귀국이지만 (사)양심수후원회의 뜨거운 입국환영을 받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김래곤 통신원]

(사)정의평화인권을위한양심수후원회(이하 양심수후원회)는 9일 낙성대 ‘만남의 집’에서 어머님과 누님의 병문안 차 임시 귀국한 장민호 선생과 부인 김은경 선생(미주양심수후원회)의 입국을 환영하는 모임을 가졌다. 하지만 당국의 입국조건의 부당성과 결과적으로 ‘일시적 입국금지 해제조치’였다는 데에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장민호 선생은 2006년 이른바 ‘일심회’ 사건으로 국가보안법상 이적단체 구성, 일부 간첩죄, 회합통신죄 등 혐의로 구속기소 되었으나 대법원 최종심에서 대부분의 혐의는 무죄판결을 받고 다만 디지털장치에서 출력한 일부만이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적용돼 7년형을 선고받았다.  

2013년 10월 23일 만기출소 하였으나 당국은 또다시 장민호 선생이 미국 시민권을 가졌다는 점과 특히 국가보안법을 어겼다는 이유로 당시 82살 늙으신 어머님 얼굴 한번 못보고 미국으로 강제 퇴거시켰다. 또한 입국불허 5년의 조건이 뒤따랐다. 법무당국의 일방적 연장으로 5년이 지났어도 귀국이 쉽지 않았다. 그러나 어머님 병환이 악화되고 간병하던 누님조차 쓰러지고서야 장민호 선생은 법부무의 부당한 조치 ‘30일간의 일시적 입국금지해제’라는 입국사증을 발급받게 되었다.  

그러면서도 조건이 있었다. 어머님의 병원진단서, 신원보증서, 체류기간 활동계획서(어머님 간병일별, 장소별 만남 대상, 개인 및 단체를 상술하는 등 예비검열)를 요구했다. 이렇게 어렵사리 귀국해 어머님과 누님을 찾아뵌 장민호 선생 내외가 만남의 집을 찾은 것이다. 그래서 양심수후원회는 안타까운 심정으로 반갑게 맞을 수만은 없었다. 

   
▲ 권오헌 명예회장이 입국환영 인사말을 통하여 부당한 임시귀국 조치에 대하여 분노를 금할 수 없다고 밝혔다. [사진-통일뉴스 김래곤 통신원]

김호현 전 회장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환영식은 코로나19로 인하여 제한된 인원만이 참석하여 발열체크를 마치고 마스크를 착용한 채로 진행되었다. 

권오헌 명예회장은 환영사에서 “양심수후원회는 비전향 장기수의 석방과 후원을 목표로 모인 단체이다. 수십 년 감옥을 살면서도 조국통일에 대한 정치적 신념과 양심을 지켜온 이분들을 양심수로 규정하고 이를 토대로 전원석방과 2000년 9월 2일 63명의 1차 비전향장기수 송환을 이루어냈다. 또한 양심수후원회는 이를 바탕으로 어느 누구도 국가보안법으로 탄압받는 데 반대하고 석방운동을 했으며 어느 누구도 조국통일운동을 하는 이유와 그 일환으로 ‘이북바로알기운동’ 등으로 구속탄압 받는 데 반대하고 석방과 사면복권 운동을 펄쳐 왔다"고 말했다.

이어 권 명예회장은 "감옥 안에서 뿐만 아니라 출소 후의 국가보안법과 관련 불이익을 받는 데 반대하여 국가보안법, 보안관찰법 폐지 투쟁과 그 관련 불이익을 당하는 사람들 편에서 활동하고 있다"고는 "장민호 선생이 국가보안법으로 옥고를 치렀다는 이유로 가해지는 부당한 조치에 반대하고 자유인으로 원상회복되기 위해 투쟁할 것이다.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위한 또 인권과 인도주의 측면에서 적극 나설 것이다”라고 밝혔다.   

   
▲ 2차 송환 희망자 양원진 선생이 환영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김래곤 통신원]

2차송환 희망자 양원진 선생은 “아무리 권력도 좋고 이념도 좋지만은 사람이 인정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데 인정을 베풀 수 없는 비정한 사회, 한쪽이 인정을 베풀면 그 사회가 무너진다는 그런 비정하고 냉혈동물들과 같은 그러한 세상을 보면서 정말 참담하기가 그지없었다”고 하면서 당국의 임시귀국 조치를 규탄하였다.

   
▲ 김혜순 회장이 장민호 선생 내외분의 귀국환영 인사를 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김래곤 통신원]

김혜순 회장은 장민호 선생의 험난한 입국과정을 설명하며 어렵게 입국한 장민호 선생 내외분의 귀국을 열렬히 환영한다면서 앞으로 자유로운 고국방문이 될 수 있도록 투쟁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 장민호 선생이 7년 만의 귀향에 대하여 감회 깊이 답례의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김래곤 통신원]

한편, 장민호 선생 부부는 지난 8월 24일 임시귀국 하여 코로나19로 인한 14일 동안의 자가격리 끝에 병석에 계시는 어머니와 누님을 찾아뵙고 이날 양심수후원회의 귀국환영식에 참석하였다. 그러나 또다시 언제 고국으로 돌아올지 모르는 상태에서, 9월 22일 기약 없이 미국으로 출국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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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토박이의 네 번째 단식 "제주 온 섬이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인터뷰] 네 번째 단식에 들어간 제주도 주민 김경배 씨

10일 새벽, 제주도에서 올라온 김경배 씨가 환경부 앞에 자리를 잡았다. 이날이 김 씨의 네 번째 단식 시작일이었다.

 

김 씨는 제주 제2공항의 활주로가 들어설 예정인 성산읍 난산리에 살고 있다. 그가 사는 곳 근처는 매년 여름마다 천연기념물인 두견새가 찾아온다. 장마철이면 멸종위기 2급 맹꽁이가 울어댄다. 가끔은 멸종위기 1급 송골매도 날아온다. 모두 환경부가 지정한 법정 보호종이다.

 

지난 2015년 제주 제2공항 계획이 발표된 후 지난 5년간 그는 그의 삶의 터전과 함께 생태계 보호를 위해 싸워왔다.

 

▲제주 제2공항 환경영향평가에 환경부의 '부동의'를 촉구하며 김경배 씨가 10일 단식투쟁이 들어갔다. 지난 2017년과 2018년, 2019년에 이은 네 번째 단식 투쟁이다. ⓒ김경배 씨 페이스북 갈무리

'여름'이 통째로 빠진 환경영향평가


 

국가가 대규모 도시개발이나 공항·철도·도로·항만 등을 건설할 때는 부지를 선정하면서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미리 조사하고 예측해 그 피해를 최소화하도록 환경영향평가를 실시한다. 환경부가 환경영향평가에 '동의'하면 건설은 계획대로 진행되고 '부동의'하면 사업은 재검토 단계로 돌아간다.


 

제주 제2공항 건설을 계획하면서 국토부도 환경영향평가를 진행했다. 김 씨가 문제 삼는 부분은 국토부의 환경영향평가에서 여름철인 6, 7, 8월의 조사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여름철새나 여름에 활동하는 동식물의 생태가 통째로 빠졌다.


 

그는 "여름철을 피해 조사를 하고 서식이 확인되지 않았다고 평가서에 명시한 건 명백한 허위·거짓조사"라며 "환경영항평가법 제17조 4항에 따라 평가서 반려사유"라고 했다.


 

"처음 조사가 2월과 9월에 두 차례 이뤄졌어요. 6, 7, 8월, 여름 양서류나 철새의 활동기, 번식기가 빠진 겁니다. 환경영향평가를 하는 전문가들이 이걸 몰라서 그렇게 했을까요? 법정 보호종이 서식하고 있다는 게 알려지면 무조건 부동의 해야 하니까 의도적으로 이 동물들이 출몰하는 여름을 빼놨다는 생각이 들어요."

 

김 씨는 직접 두견새 등의 사진과 영상 증거물을 포함한 의견서를 환경부에 제출했다. 김 씨의 의견을 받아들여 재조사가 이뤄졌지만 재조사는 8월 말에나 이뤄졌다. 8월 말이면 철새는 이미 남쪽으로 떠난 뒤다.

 

환경부는 국토부의 '민원처리부서'인가


 

김 씨뿐만이 아니었다. 총리실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KEI)도 법정 보호종 조사 누락문제와 철새도래지 훼손 문제 등을 제기하며 "제2공항 건설계획은 입지타당성이 매우 낮은 계획"이라는 의견을 냈다.

 

2019년 12월, 김 씨의 세 번째 단식 끝에 환경부는 국토부에 '재보완'을 요구하기로 결정했다. 환경부가 보완요구를 할 수 있는 건 단 두 번이다. 마지막 기회였다. 조명래 환경부 장관과 면담까지 하며 '4계절 조사를 하겠다'는 약속을 받았지만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재보완에서도 조사는 5월까지만 이뤄졌다. 이대로라면 환경부는 환경영향평가에 동의하고 국토부의 계획대로 10월에 제2공항 확정고시가 이뤄지게 된다. 건설 실행 단계로 들어간다는 의미다.


 

"환경영향평가를 하는 건 법정 보호종인 천연기념물이나 멸종 위기종의 서식지를 보호하기 위해서에요. 법정 보호종을 지정하는 주체도 환경부에요. 그런데 이제와서 법정 보호종 서식지를 무시하고 학살에 앞장서고 있어요. 환경부가 자신의 책임와 역할을 뒤로하고 국토부의 민원처리부서로 전락해버렸다고 볼 수밖에 없어요. 직무유기죠."


 

▲"나는 제2공항 예정부지 성산읍 난산리 주민 김경배입니다" ⓒ김경배

이미 난개발 심각한 제주도...제주는 이미 '포화상태'


 

2017년 10월 첫 번째 단식 이후 2018년 12월 두 번째 단식이 있었다. 앞선 세 번의 단식으로 그의 몸은 많이 망가졌다. 특히 폐가 많이 상해 일상적인 대화에도 숨이 턱턱 막히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럼에도 물러설 수가 없었다. 15일 재보완서 제출을 앞두고 그는 전날 밤 제주도에서 배를 타고 급하게 환경부가 위치한 세종시로 왔다.

 

그는 "제주를 찾는 사람들은 때묻지 않은 제주만의 자연을 보기 위해 오는 건데 난개발로 제주다운 모습을 잃어가고 있다"고 했다. 

한 해 제주를 찾는 관광객은 1500만 명 정도다. 2006년 특별자치도로 선정된 후 500만 명 정도였던 관광객이 빠르게 증가했다. 때문에 지하수 고갈문제부터 하수처리 용량 문제, 교통문제까지 그는 제주도가 이미 '포화상태'라고 설명했다.

 

"제주도 온 섬이 지금 난개발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제주시를 지나서 서쪽으로 가면 한라산 중턱까지 관광서비스 산업 시설이 들어서 있어요. 제주다운 모습을 간직한 곳이 제가 있는 동부지역과 성산이에요. 그런데 이곳마저 제2공항이 들어선다니까 땅값이 엄청 올랐습니다. 확정고시까지 되면 개발 붐이 일어날 거에요. 제주다운 마지막 모습이 완전히 사라질 겁니다."


 

제2공항, 제2의 '강정 사태' 될 수도


 

그가 제2공항을 극구 반대하는 데에는 생태계 보호에만 있지 않다. 김 씨는 "이미 공항이 있는 제주도에 제2공항이 들어설 이유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지금 제주공항의 노후화된 관제탑과 활주로를 고치면 제주공항에 오가는 비행기를 늘릴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제2공항은 공군기지 건설로도 이어질 수 있는 심각한 문제"라고 했다.

 

제주도의 공군기지 건설 계획은 198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본과도 가깝고 중국과도 가깝다는 제주도만의 독특한 위치 때문이었다. 정부는 1987년 송악산 일대 170만 평의 공군기지 건설 계획을 추진했다. 그러나 제주도민의 반대로 백지화한 후 대신 1992년 민·군 겸용 공항건설을 추진한다. 

 

김 씨는 "당시 관광객이 연간 200만 명이 안 됐을 때였다. 민간 공항을 늘릴 이유가 없었는데 '민군 겸용 공항'을 짓겠다 한 거다"라며 "89년에 도민들의 반대로 무산된 공군기지를 짓기 위한 말장난"이라고 설명했다.

 

"민군 겸용 공항도 지지부진하자 정부는 제주공항 한 쪽에 '탐색구조부대'를 설치합니다. 2017년에 정경두 당시 참모총장이 탐색구조부대의 유력 후보지가 제2공항이라고 실토해요. 이상한 거죠. 탐색구조부대는 90만 평 정도의 현 제주공항의 일부를 사용하고 있는데 제2공항은 170만 평이나 되거든요. 민간공항으로 만들어놓고 결국 공군기지로 사용하려는 거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듭니다."


 

김 씨는 그 근거로 제주도 특별자치도법 제235조와 제236조를 들었다. 두 조항을 종합하면 서귀포시에 소재한 국유지 일부를 제주도가 이양 받고 그 대체부지를 제공할 수 있다.


 

김 씨는 "활주로가 짧아 공군기지로 사용할 수 없는 알뜨르 비행장을 제주도가 가져오는 대신 제2공항을 공군에 대체부지로 제공할 수 있게 된다"고 설명했다.


 

"제주도에 강정해군기지가 아주 폭력적인 방식으로 들어왔습니다. 80명이 구속되고 700명이 사법처리를 받았어요. 그 해군기지를 완성하려면 공군기지가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항공모함 하나를 받으려 해도 그 전투기들을 내릴 공항이 필요하잖아요. 제2공항이 확정고시되면 공군기지가 들어서는 건 시간문제입니다. 그럼 해군기지가 들어설 때보다 더 큰 투쟁과 폭력이 반복될 겁니다."


 

15일 마지막 재보완서가 제출되고 10월 환경영향평가 마무리까지 남은 시간은 대략 40일. 김 씨는 "법정 보호종 보호 문제 외에도 철새도래지문제, 숨골문제, 항공기-조류충돌문제, 동굴문제, 주민소음피해대책문제 등등 환경부가 부동의를 해야 할 이유는 차고 넘친다"며 "환경부가 본연의 역할에 충실해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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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금수납원들의 직고용 투쟁 2차전, 민자고속도로 곳곳서도 소송 시작

창원지법, 신대구부산고속도로 불법파견 선고...“직고용 해야”

이승훈 기자 lsh@vop.co.kr
발행 2020-09-10 18:47:34
수정 2020-09-10 19: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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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연휴를 하루 앞둔 지난 2019년 9월 11일 오후 서울톨게이트에서 귀성길에 오른 차량들이 지나가는 가운데 톨게이트 수납노동자들이 농성을 계속하고 있다.  2019.09.11  (항공촬영 협조:서울지방경찰청 항공대 이용길 경감, 경기북부지방경찰청 경위 박형식)
추석 연휴를 하루 앞둔 지난 2019년 9월 11일 오후 서울톨게이트에서 귀성길에 오른 차량들이 지나가는 가운데 톨게이트 수납노동자들이 농성을 계속하고 있다. 2019.09.11 (항공촬영 협조:서울지방경찰청 항공대 이용길 경감, 경기북부지방경찰청 경위 박형식)ⓒ김철수 기자  
 
공공기관 한국도로공사 요금수납원들에 이어 민간투자고속도로에서 일하는 요금수납원들도 직접고용을 요구하는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을 전개하고 있다.

10일 민주노총 전국민주일반노동조합연맹(민주일반연맹) 경남일반노조는 원청 신대구부산고속도로㈜를 상대로 지난 2018년 11월 제기한 근로자지위소송에서 ‘원청이 직접고용 해야 한다’는 취지의 판결을 받아냈다고 밝혔다.

한국노총 전국공공산업노동조합연맹(공공노련) 공공산업희망노동조합(희망노조) 측도 오는 11일 원청 ㈜서울고속도로를 상대로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을 전개할 계획이다.

민간투자고속도로는 국가나 공기업이 운영하는 고속도로와는 달리 수익형 민자사업 방식으로 운영되는 고속도로다. 서울고속도로, 신대구부산고속도로, 경기고속도로, 인천김포고속도로, 천안논산고속도로 등이 이에 해당한다.

이미 도로공사 요금수납원들의 끈질긴 법정투쟁으로 불법파견이 명백해진 사안이지만, 민자고속도로 원청과 대주주 등은 직고용에 대한 별다른 입장을 보이지 않고 있는 것으로 노조는 보고 있다.

2019년 12월 노동부 “직고용 해야”
법적 대응 나선 원청, 1차 소송서 패

이날 창원지방법원 제4민사부는 용역업체 소속 130여 명의 요금수납원(민주일반연맹 경남일반노조)이 원청 신대구부산고속도로를 상대로 제기한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에 대해 원청이 직접고용 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판결했다. 이는 지난 2018년 11월 수납원들이 소송을 제기한 지 1년 하고도 10개월가량이 걸려 나온 판결이다.

해당 사업장에서의 불법파견은 이미 2019년 12월 고용노동부의 감독으로 드러난 바 있다. 경남일반노조 등에 따르면, 관련 민원을 접수한 고용노동부가 2019년 초부터 약 1년 가까이 근로감독을 진행해 불법파견이 있다고 보고 220명을 직고용하라고 시정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신대구부산고속도로는 시정명령을 이행하지 않았고, 노동부는 1명당 1000만원씩 22억원 상당의 과태료를 부과했다고 한다.

신대구부산고속도로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법적 대응에 나선 상황이다. 회사는 고용노동부를 상대로 불법파견 시정명령 취소 행정소송, 과태료 부과 처분 취소 소송 등을 전개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대주주인 국민연금관리공단도 불법파견 문제를 해결할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경남일반노조 관계자는 “소송을 제기하는 과정에서 원청의 대주주인 국민연금관리공단에도 가봤지만, ‘상대 주주를 설득하기 어렵고, 원청이 알아서 할 일’이라는 등 발뺌하기 바빴다”라고 전했다.

서울고속도로 7개 영업소(고양·통일로·송추·양주·호원·별내·불암산)에서 일하는 용역업체 수납원 및 시설관리 노동자 170여 명(공공노련 희망노조)도 원청을 상대로 오는 11일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을 시작한다.

공공노련 희망노조 측 관계자는 “원청 측에 소송을 진행한다고 전달하긴 했다”며 “직접 만나서 직고용 관련해서 얘기를 하고 싶었으나, 굳이 만날 필요가 있겠느냐는 입장이어서 만나진 못했다”라고 했다.

한편, 도로공사가 운영하는 토게이트에서 용역회사 소속으로 일하던 요금수납원들은 2013년 처음 원청인 도로공사를 상대로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을 제기해 2015년 1심과 2017년 2심에 이어 2019년 8월 대법원에서 승소했다. 모두 원청이 직고용해야 한다는 취지의 판결이었다.

하지만 이후에도 도로공사는 2015년 이후부턴 불법파견 요소를 없앴기 때문에 따져봐야 한다며 2015년 이후 입사자에 대해선 직고용을 미뤘지만, 이후 재판에서도 “2015년 이후 입사 수납원도 불법파견이 맞다”는 판결이 나오면서 사실상 논란은 끝났다.

이승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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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방·PC방·커피숍·교습소에 100~200만원... 초등생 이하 1인당 20만원

4차 추경 7조8000억 발표] 소상공인과 저소득층에 지원 집중... 통신비는 사실상 전국민 대상

20.09.10 16:03l최종 업데이트 20.09.10 17:56l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0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비상경제중앙대책본부 회의 결과 합동브리핑에서 추석 민생안정 대책 등을 브리핑하고 있다. 2020.9.10
▲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0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비상경제중앙대책본부 회의 결과 합동브리핑에서 추석 민생안정 대책 등을 브리핑하고 있다. 2020.9.10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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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코로나19 재확산 사태에 대응하기 위해 7조8000억원 규모의 4차 추경을 편성하고, 소상공인과 저소득층에 대한 지원에 나선다.

코로나19에 의한 영업 중단과 매출 감소로 어려움을 겪는 소상공인들에게 100만~200만원을 차등 지원하고, 만 13세 이상 국민들에게는 통신비도 2만원씩 지원한다.

정부는 10일 제8차 비상경제회의에서 이런 내용을 담은 긴급민생·경제 종합 대책을 확정, 발표했다. 정부는 코로나 사태로 피해를 입은 소상공인과 자영업자, 고용취약계층, 저소득층을 선별·지원하기로 했다.

[소상공인] 노래방·PC방 등 집합금지업종에 200만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수도권 지역 내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가 시행되고 있는 10일 오후 서울 종로구 한 노래방에 집합금지 행정명령으로 인해 휴업한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수도권 지역 내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가 시행되고 있는 10일 오후 서울 종로구 한 노래방에 집합금지 행정명령으로 인해 휴업한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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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소상공인과 중소기업 긴급 피해 지원을 위해 총 3조8000억원을 쓰기로 했다. 이중 '소상공인 새희망자금'으로 3조2000억원이 쓰인다. 소상공인 새희망자금은 소상공인들을 직접 지원하는 자금이다. 매출 수준과 집합제한, 집합금지 여부에 따라 금액은 달라진다.  노래방과 PC방 등 코로나 사태로 영업이 정지된 업종(집합금지업종)에 종사하는 소상공인들에게는 200만원이 지원된다. 프랜차이즈형 커피전문점, 교습소 등 집합 제한 업종인 소상공인에 대해선 150만원, 전년 대비 매출이 감소한 소상공인(매출 4억 이하)에 대해서는 100만원이 지급된다. 총 291만명의 자영업자가 새희망자금을 받게 된다. 


코로나로 폐업한 소상공인에 대해서는 취업·재창업 준비금으로 50만원을 지급하기로 했다. 또 소상공인 금융 대출 지원의 한도액을 1000만원에서 2000만원으로 상향 조정하기로 했다. 중소기업 지원을 위해 코로나 특례 신용대출 2조5000억원을 추가 공급하고, 집합금지업종에 대해서는 1.5%대의 초저금리 긴급경영안정자금을 대출해준다.

[긴급돌봄지원] 초등학생 이하 아동에 20만원

긴급돌봄 지원에도 모두 2조1000억원이 쓰인다. 만 13세 이상 모든 국민을 대상으로는 2만원의 통신비가 한 차례 지원된다. 통신비 지원은 이동통신사가 가입자에게 통신비를 청구할 때 2만원 감액해 청구하는 방식으로 이뤄질 예정이다. 4640만명이 혜택을 볼 예정이다.

학교에 가지 않는 아동과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1인당 20만원의 특별돌봄비가 지원된다. 가족돌봄휴가 비용 지원 기간도 최대 10일에서 15일로 확대하고, 유연근무제를 시행하는 사업주에게는 간접 노무비(노동자 1인당 10만원)를 지원한다.
 
 정부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경제 타격 대응을 위해 4차 추가경정예산안을 통해 2차 긴급재난지원금 지급을 추진 중이다. 9일 서울 서대문구 영천시장 한 점포에 긴급재난지원금 사용 가능 안내문이 걸려있다.
▲  정부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경제 타격 대응을 위해 4차 추가경정예산안을 통해 2차 긴급재난지원금 지급을 추진 중이다. 9일 서울 서대문구 영천시장 한 점포에 긴급재난지원금 사용 가능 안내문이 걸려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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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안정] 특고노동자와 프리랜서에 50~150만원

긴급고용안정을 위해 투입하는 예산은 총 1조4000억원이다. 소득이 감소한 특수고용직 노동자와 프리랜서 70만명에게는 제2차 긴급고용안정지원금이 지급된다. 기존 1차 지원을 받았던 노동자에게는 50만원이 추석 전에 지급될 예정이다. 새롭게 지원 대상이 되는 20만명에게는 석달간 150만원(매달 50만원)을 지원한다. 청년 취업을 지원하기 위해 특별구직지원금 50만원도 지급한다.

이와 함께 저소득층 긴급 생계 지원에도 모두 4000억원을 배정했다. 소득이 급감한 중위소득 75% 이하의 가구(88만)에 대해서는 월 100만원(4인 가구)을 지원하고, 근로능력이 있는 중위 소득 50~75% 계층에 대한 자활 일자리도 만들기로 했다.

정부는 추경 외에 정부 자체 노력으로 확보한 4조6000억원을 코로나 방역과 경기 보강에 집중 투입하기로 헀다. 코로나 진단검사비와 치료비, 의료기관 손실 보상 등을 위해 6000억원, 신속한 재정 집행과 투자 확대를 통한 경기 부양에는 4조원 이상이 투입될 예정이다.

내수 활성화를 위해, 이번 추석(9월 10일~10월 4일)에 구입하는 선물은 김영란법이 한시적으로 완화된다. 이에 따라 농수산물품 선물 구입 한도는 10만원에서 20만원으로 늘어난다.  또 전통시장과 중소마트 활성화를 위해 최대 1만원 한도에서 농수산물 가격을 20% 할인받을 수 있는 쿠폰을 110억원어치를 배포한다. 

정부는 이번 대책의 핵심인 4차 추경안을 11일 국회에 제출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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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강점 75년, 이제는 끝장내자!”

범민련 부산연합 등 ‘미군철수부산공동행동’ 실천활동 진행
부산=이기영 통신원  |  tongil@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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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9.10  15:3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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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군강점 75년, 미군철수’ 내용의 다양한 웹포스터 [사진제공-부산경남주권연대]

미군정과 함께 사라진 자주독립 통일국가수립의 꿈

지난 9월 8일은 미군강점 75년이 되는 날이다. 1945년 인천상륙을 단행한 미군은 ‘금일 북위 38도 이남의 조선영토를 점령한다’는 맥아더 포고령 1호를 발표하고 스스로 점령군임을 선포했다. 환영 나온 조선 사람들을 무참히 학살한 미군은 일제의 폭압장치와 제도를 그대로 유지한 채 친일파를 대거 등용하며 미군정을 본격화했다. 

미군정은 1948년 단선단정반대와 통일국가수립, 외국군철수를 외쳤던 4.3제주항쟁과 무고한 양민학살에 반대한 여수순천항쟁을 무참히 짓밟았다. 또한 ‘조선임시정부와 협약을 거쳐 5년 이내의 협력신탁통치 이후 통일정부를 수립한다’는 모스크바 3상회의를 마치 자주독립을 포기한 것처럼 왜곡 조작하여 기어이 이남에 이승만 친미단독정부를 조작해냈다. 

결국 미군정과 함께 우리 민족의 자주독립의 꿈, 통일국가수립의 꿈도 함께 사라졌고, 분단과 전쟁의 서막이 올랐다. 지난 75년간 미군에 의한 분단과 전쟁, 독재와 억압, 범죄와 불의, 대결과 긴장, 분열과 대립이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 범민련 부산연합 회원들의 ‘미군철수 릴레이 인증샷’ [사진제공-범민련부산연합]

“미국놈들은 노동자가 잡는다!”

이러한 만악의 근원 주한미군을 철수시키기 위해 최근 부산에서는 범민련 부산연합, 평화통일센터 ‘하나’, 부산경남 주권연대, 노동자실천연대 ‘줏대’ 단체들이 모여 ‘미군철수부산공동행동’(이하 부산공동행동)을 결성하고 공동실천을 진행하고 있다.  

부산공동행동은 미군강점 75년에 즈음하여 9월 1일부터 9월 8일까지 코로나19 상황에서 대면 집회나 모임, 집합 대신 온라인 공간에서 ‘미군철수 릴레이 인증샷’, ‘웹포스터’, ‘웹격문’ 등을 만드는 공동실천을 진행하고 SNS를 이용 적극 알려냈다.

특히, ‘미군놈들은 우리 노동자가 잡는다’며 노동자실천연대 ‘줏대’ 소속의 금속, 건설, 보건 노동자들이 각자의 현장에서 릴레이 인증샷에 동참, 미군철수, 미국반대 문제가 이제는 노동자들의 생존권문제 만큼이나 중요하다는 점을 부각시켰다.  

   
▲ 노동자실천연대 ‘줏대’ 소속 노동자들 [사진제공-노동자실천연대‘줏대’]

“촛불국민의 힘으로 미군을 철수시키자!”

   
▲ ‘미군강점 75년, 이제는 끝장내자!’ 부산미영사관 앞 릴레이 1인시위 [사진제공-범민련부산연합]

또한 8일 당일에는 부산미영사관 앞에서 미영사관 직원들이 근무하는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부산공동행동 차원으로 릴레이 1인시위를 진행했다. 1인시위에는 학생, 주부, 직장인, 취준생, 활동가 등 다양한 사람들이 참여했으며 △촛불국민의 미군철수 투쟁으로 미군강점 75년, 이제는 끝장내자! △코로나 치외법권 미군추방! △한반도 전쟁위기 조장 미군철수! 등의 내용이 적힌 피켓을 들고 부산시민들에게 내용을 적극 알려냈다. 

한편 이날 오후에는 부산지역 민주노총, 진보당, 여성회, 청년단체 등이 참여하고 있는 ‘부산민중연대’에서도 9.8을 맞이하여 ‘미군강점 75년,‘미군철수 릴레이 인증샷’ 실천행동에 동참, 미군철수 투쟁의 힘을 모았다.

   
▲ ‘부산민중연대’, 미군철수 릴레이 인증샷 [사진제공-부산민중연대]
   
▲ 미군강점 75년에 즈음한 격문 [사진제공-평화통일센터‘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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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형 “제2의 효순·미선이 사건, 포천 미군장갑차 사건 진상규명해야”

김영란 기자 | 기사입력 2020/09/11 [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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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천 미군장갑차 사건은 제2의 효순이·미선이 사건이다.”

 

▲ 지난 8일 동두천 캠프 케이시 앞에서 진행한 진상규명단 발대식 [사진출처-진상규명단 페이스북 페이지] 

 

▲ 캠프 케이시 앞, 진상규명단의 농성 모습 [사진출처-진상규명단 페이스북 페이지]  

 

 

김수형 ‘대진 미군 장갑차 추돌사망사건 진상규명단(이하 진상규명단)’ 단장은 지난 8월 30일 포천에서 발생한 미군장갑차와 SUV 차량 추돌 사건을 이처럼 규정했다. 

 

지난 8일부터 미군장갑차 추돌사망사건의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동두천 캠프 케이시 앞에서 노숙 농성을 하는 김수형 단장과 서면 대담을 나눴다. 

 

김 단장은 진상규명단을 만들게 된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이번 사건은 단순한 사망사고가 아니라 분명 미군장갑차가 한미 당국이 과거 서명했던 합의 사항들을 이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했습니다. 미군 측의 과실로 인해 벌어진 제2의 효순이 미선이 사건입니다. 따라서 미군장갑차가 왜 합의에 따라 안전조치를 하지 않았는지, 왜 주변 주민들에게 차량 이동 사실을 알리지 않았는지 등을 명명백백히 밝히고 그 책임자를 처벌할 것을 강력하게 요구하기 위해 이번에 진상규명단을 꾸리게 되었습니다.” 

 

김 단장은 이번 사건의 가장 큰 문제점을 주한미군이 약속을 지키지 않은 것이라고 밝혔다. 

 

2002년 효순·미선이 사망 사건 발생 후에 한미 당국은 장갑차 운행과 관련한 ‘훈련안전조치 합의서’에 서명했다. 이 합의서에 따르면 모든 전술 차량은 이동할 때 선두 및 후미에 불빛 등으로 이동 사실을 표시하는 호위 차량을 동반해야 한다. 그러나 미군 측은 사고 당시 호위 차량을 동반하지 않았다. 또한 차량 1대 이상 이동 시 해당 지역 주민들에게 전달하게 돼 있으나, 포천시와 주민들은 해당 장갑차 운행과 관련해 그 어떤 통보도 받지 못했다. 

 

김 단장은 “우리 국민 4명이 사망한 참극을 만들었던 주한미군의 안전조치 미이행이 이번 사건에서 가장 큰 문제점”이라고 지적했다. 

 

사건이 발생하고 초반에는 SUV 차량 운전자의 과실이라는 견해가 있었지만, 주한미군 측이 합의서를 이행하지 않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본질적으로 미군의 책임이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포천의 시민단체들도 주한미군에게 사건 재발 방지 대책을 세우라고 요구하고 있다.  

 

김 단장은 진상규명단의 요구사항을 ▲철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사건이 진상규명될 때까지 미군기지 폐쇄라고 밝혔다. 

 

▲ 포천의 사고 현장 [사진출처-진상규명단 페이스북 페이지]  

 

▲ 진상규명단의 1인시위 [사진출처-진상규명단 페이스북 페이지]  

 

진상규명단은 8일부터 동두천 캠프 케이시 앞에서 노숙 농성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9일 오후에 동두천시가 갑자기 코로나19 방역이라는 이유로 실외에서도 5인 이상 집합을 금지하는 행정명령을 내렸다. 

 

김 단장은 진상규명단 활동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진상규명단 활동은 미2사단 앞을 중심으로 미 대사관, 용산 미군기지 등지에서 지난 8일부터 19일까지 약 11일간 진행됩니다. 진상규명단은 매일 아침 8시부터 기자회견과 면담 요청, 1인시위, 거리공연, 문화제 등 다양한 방식으로 이번 사건에 대한 규탄과 진상규명·책임자처벌에 대한 목소리를 이어나가고 있는데요. 사실 현재 매일매일 관할 당국이 행정명령을 내리면서 저희 농성장 철거를 압박하고 상인연합회 측에서는 생존권을 이야기하며 집회 자체를 막아서려고 하는 상황이에요. 적잖은 난관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유동적으로 일정을 진행하려고 노력 중입니다. 현재는 4명이 농성장에 남아 진상규명단 활동을 벌이고 있어요. 그리고 온라인을 통해 이번 사건을 널리 알리고 국민들의 생명과 안전이 위협받는 제3의, 제4의 효순이 미선이 사건이 벌어지지 않도록 미군장갑차 추돌사망사건의 명확한 진상규명과 책임자처벌이 이뤄질 때까지 끝까지 투쟁을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진상규명단은 10일 오후 3시에 기자회견을 미 대사관 앞에서 열고 서울에서도 활동하겠다고 밝혔다.  

 

김 단장은 미군기지 주변에서 상가를 운영하는 분들의 모습을 통해 미국의 모습을 볼 수 있다고 밝혔다. 

 

김 단장은 “미군기지가 위치한 지역 어딜 가든 마찬가지로 이곳 상인연합회 분들 또한 생존권을 이야기하시며 우리의 농성에 대해 여러 불만을 표출하셨어요. ‘미군이 나가면 못 산다’는 문장을 신념처럼 되새기는 우리 국민의 모습 속에는 수십 년간 우리 민중의 삶을 침탈해온 미국의 더럽고 추악한 그림자가 투영된 것이죠. 미국에 의존하지 않고서는 살지 못하게끔, 우리 국민이 자주성을 상실하는 구조를 미국이 만든 것으로 생각해요. 상인들의 모습을 통해 문제의 책임은 오롯이 미국에 있다는 걸 느끼니 더 열심히 투쟁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됐어요”라고 밝혔다. 

 

김 단장은 진상규명단의 활동을 지지해주는 시민들도 많다는 것을 강조했다. 

 

김 단장은 “감사하게도 저희를 향해 멋지다고 격려해주시고 먹을 건 괜찮은지 필요한 건 없는지 계속 물어봐 주시는 시민 분들도 많으셨어요. 농성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지만 시민들의 모습을 통해 투쟁의 힘을 얻었어요”라고 말했다.

 

▲ 지지 방문온 시민과 함께 [사진출처-진상규명단 페이스북 페이지]  

 

김 단장은 국민께 다음과 같이 호소했다. 

 

“2002년 6월 두 명의 여중생이 미군 장갑차에 깔려 목숨을 잃은 지 20년 가까이 세월이 흐른 지금, 과연 주한미군은 변했을까요? 아무리 재발 방지를 약속하고 안전조치 합의서에 서명한들, 우리 국민 목숨을 파리 목숨만도 못하게 바라보는 그들의 속성은 변하질 않았어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반드시 맞서 싸워야 합니다. 우리 국민이 더 이상 이유 없이 죽지 않을 권리를 챙기기 위해선 직접 행동하고 목소리 내며 투쟁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저희 진상규명단은 앞으로 이번 미군장갑차 추돌사망사건에 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처벌이 제대로 이뤄질 때까지 계속해서 투쟁을 전개해 나갈 예정입니다. 앞으로도 진상규명단 활동에 많은 관심과 격려 부탁드리겠습니다!”

 

2002년 효순·미선이 사건을 통해 국민은 주한미군 범죄 그리고 SOFA의 심각성을 알게 되었다. 

 

우리 국민은 촛불을 들면서 억울한 죽임을 당한 효순·미선이의 한을 풀고자 투쟁했다. 2002년 효순·미선이 촛불집회는 대중적인 반미투쟁의 포문을 열었다. 

 

이번 미군 장갑차 추돌 사건이 벌어진 것을 보고 국민은 18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어도 변한 것이 없다고 말한다.

 

김 단장이 말한 것처럼 이번 사건의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되어야만 제3의, 제4의 효순·미선이 사건이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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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 강조하던 문 정부의 ‘불공정’

임지선 기자 visi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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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 추미애 아들 ‘특혜 논란’에 “김치찌개 청탁” “야당 미필 더 많아”
시민 정서와 동떨어진 대응…‘공정 문제’ 예민한 2030 지지율 하락

‘공정’ 강조하던 문 정부의 ‘불공정’
 

“조국으로 끝내야 하는데 추미애가 연장시켰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아들 특혜 의혹이 위법 문제를 넘어 불공정 이슈로 확산하고 있다. 제2의 ‘조국 사태’로 불리는 배경이다. 촛불정당을 자처한 더불어민주당을 향해 ‘이름만 다른 기득권’이라는 비판이 쏟아진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아빠 찬스’ 논란이 가라앉기도 전 이번엔 추 장관의 ‘엄마 찬스’ 문제가 교육과 병역이라는 민심의 역린을 건드렸다. 뻣뻣한 대응도 문제가 되고 있다. 추 장관은 “소설 쓰시네”라며 비아냥대는 말투를 썼고 민주당 내에선 ‘김치찌개 청탁’ ‘국민의힘에 군 미필자 더 많다’는 물타기성 발언이 나왔다. 여권의 강고한 지지세력이었던 2030세대가 싸늘하게 등을 돌리고 있다.

조 전 장관과 추 장관 관련 의혹은 20~30대들이 가장 민감하게 여기는 대학 입시와 취업, 군입대에 관한 영역이다.

‘조국 사태’는 딸의 의학전문대학원 장학금 특혜 의혹에서 시작돼 고교 재학 시절 논문 1저자에 등재된 대목에서 논란에 불이 붙었다. 추 장관 이슈도 아들의 휴가 미복귀 당시 추 장관의 보좌관이 군에 전화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파장이 커졌다. 특히 평창 올림픽 통역병 파견에 관한 ‘절차 문의 의혹’도 위법 여부를 떠나 전화 한 통 걸어줄 ‘뒷배경’이 없는 보통 사람들에겐 납득이 되지 않는 부분이다.

추 장관 아들 의혹은 조 전 장관 사태보다 파장이 더 커질 수 있다. 대부분 추 장관이 2017~2018년 민주당 대표로 재임하던 시절 발생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반칙과 특권이 없다고 강조한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무렵이다. ‘진보정권인 줄 알았는데 보수와 다를 것 없는 기득권’이라는 절망감이 나오는 이유다.

박성민 정치컨설턴트는 9일 통화에서 “조국 전 장관과 관련된 의혹은 대부분 문재인 정부 이전 시절 이야기였으나 추미애 장관 의혹은 현 정부 집권 이후 발생해 폭발성이 더욱 크다”면서 “시기상으로 따지면 공정성과 관련해 여론이 더 안 좋을 수 있다”고 말했다.

특혜 의혹에 대응하는 추 장관과 여당 일각의 태도도 민심 이반을 부채질하고 있다. 정청래 민주당 의원은 추 장관 보좌관의 군부대 전화 논란에 “식당에서 김치찌개 시킨 것을 빨리 달라고 한 게 청탁이냐”고 말했다. 김남국 의원은 국민의힘에 군 미필자가 더 많다고 발언했다. 군 미필자 숫자는 사실과도 다르지만 제2의 ‘조국 대전’으로 비화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 상황에서도 국민 정서와 동떨어진 대응을 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20대의 표심은 흔들리고 있다. 지난 7일 리얼미터가 YTN 의뢰로 진행한 조사에서 20대의 문 대통령 지지율은 전주보다 7%포인트 감소했다. 한국갤럽의 5일 조사에서는 20대의 문 대통령 국정수행 평가가 긍정 30%, 부정 54%로 역전됐다. 특히 20대 남성의 긍정률이 28%에서 18%로 급감했고, 부정률은 61%에서 68%로 증가했다. 20대 여성의 긍정률도 53%에서 43%로 감소했고 부정률은 27%에서 39%로 급증했다. 이번주 초반부터 추 장관 관련 의혹이 집중 제기됐기 때문에 주말쯤 발표될 여론조사 결과는 더 나빠질 가능성이 있다.

박권일 사회평론가는 통화에서 “젊은 세대들에게 민주당은 보수와 차이가 없는 집단으로 인식되고 있다”며 “20대가 사회화되는 시점에 민주당은 이미 기득권 정당이 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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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년 차 농민의 한숨 "작물 괴사로 올해 폭망, 기후 위기는 농업 위기"

[스팟인터뷰] 김정열 국제농민단체 '비아 캄페시나' 국제조정위원

20.09.09 18:59l최종 업데이트 20.09.09 18:59l
 8월 2일, 밤사이 많은 비가 내린 2일 오후 경기도 안성시 일죽면 청미천 일대 농경지가 물에 잠겨 있다.
▲  8월 2일, 밤사이 많은 비가 내린 2일 오후 경기도 안성시 일죽면 청미천 일대 농경지가 물에 잠겨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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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여름 이상 기후는 논밭에 흔적을 남겼다. 긴 장마와 태풍에 논두렁이 무너지고, 밭고랑이 파헤쳐졌다. 농작물도 부서지거나 깨져 농토에서 썩어갔다. 이상 기후는 생명이 자라던 땅을 무덤으로 바꿔 놓았다.

세계 최대 농민조직인 비아 캄페시나(La Via Campesia)의 김정열(54) 국제조정위원의 말을 압축하면 이렇다.

김 위원은 29년 차 농민이다. 논밭을 합해 약 1만 2천 평(4만㎡) 규모의 농사를 짓고 있다. 하지만 그는 올해 농사를 완전히 망쳤다고 했다. 올여름 이상 기후가 농업에도 막대한 영향을 끼친 것이다.

농작물의 작황은 값으로 알 수 있다. 농산물유통정보(KAMIS)에 따르면, 8일 기준 배추 1포기의 소매 가격은 9783원으로 1년 전 4890원보다 2배 이상 올랐다. 사과 가격(10개)도 2만 4921원에서 3만 321원으로 5400원 뛰었다.
  
8일 기후 위기에 달라진 농업 환경의 변화에 대해 듣고자 김 위원에게 연락했다. 그는 지난 2일 환경단체가 주최한 '기후위기시대, 생존을 모색하다'란 토론회에서 이상 기후로 변해가는 농업 환경을 증언했다. 김 위원과 '왜, 기후 위기는 농업의 위기인가?'란 주제로 전화 인터뷰를 진행했다.

"모든 작물 탄저병 걸려... 자포자기 상태"
 

 경상북도 상주시에서 29년째 농사를 짓고 있는 김정열(54) 비아 캄페시나 국제조정위원은 "기후 위기가 농업의 위기라는 말은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다"라고 했다.
▲  경상북도 상주시에서 29년째 농사를 짓고 있는 김정열(54) 비아 캄페시나 국제조정위원은 "기후 위기가 농업의 위기라는 말은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다"라고 했다.
ⓒ 김정열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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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 농사를 지었나?
"경상북도 상주시에서 29년째 농민으로 살고 있다. 1991년대 농민운동을 시작하면서 농사를 시작했다. 지금은 논밭 합해 1만 2천 평 규모의 농사를 짓고 있다. 벼농사를 주로 짓지만 900평(약 3000㎡)가량의 밭에서 고추와 양파, 생강 등도 키우고 있다." 

- 올여름 기록적인 장마에 이어 태풍도 잇따라 발생했다. 농사 피해는 없는가?
"수해로 논밭이 잠긴 지역보다는 덜 하지만 장마와 태풍으로 작황이 좋지 않다. 특히 습한 날씨 때문에 병충해가 심각하다. 겨울에 추워야 벌레가 죽어 이듬해 농사가 잘되는데, 지난해 겨울이 따뜻하고 습했다. 특히 탄저병으로 인한 농산물 피해가 심각하다. 거의 모든 작물이 탄저병에 걸려 제대로 수확을 못했다.

고추 농사는 탄저병으로 '폭망'(폭삭 망하다의 준말)했다. 고추는 비가 적게 와야 잘 자라는데, 올해는 긴 장마와 태풍으로 해가 드는 날이 거의 없었다. 주위에서 농사를 짓는 사람들도 거의 수확을 못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상주의 경우 고춧값이 작년보다 50% 가량 상승했다. 지난해 건고추(마른 고추) 600g 기준 1만 2천 원 했던 고춧값이 지금은 2만 원 정도다. 게다가 태풍에 벼가 죄다 쓰러져 올가을 수확량도 예년에 비해 크게 떨어질 것 같다. 기후변화로 농업도 위기를 맞았다."
     
- 예년보다 수확량과 수익의 변화가 있는가?
"사실상 올해는 수확량과 수익을 포기한 상태다. 주변 농민들도 마찬가지다. 자포자기한 상태다. 날씨 변화로 발생한 피해라 인간의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없지 않은가."

- 정부가 2차 긴급재난지원금을 지급한다고 발표했다. 농민들에 대한 지원도 있는가?
"없다. 자영업자들에겐 2차 재난지원금을 지급한다고 하는데, 농민들에게 아무 말도 없다. 농민들이 농사를 게을리해서 피해를 봤다면, 지원금 받을 자격이 없다. 하지만 기후 변화로 엄청난 피해를 보았는데, 농민들을 지원대상에서 제외하는 게 웬 말인가."

"기후 변화로 농민만의 노하우 통하지 않게 됐다"
    
 2017년 7월 16일 집중호우로 충북 보은군 내북면의 한 고추밭이 쓸려 내려가고 있다.
▲  집중호우로 쓸려내려가는 고추밭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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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후변화로 달라진 농촌 풍경이 있다면?
"생강 농사를 작게 하고 있다. 생강은 5월에 심어서 여름이 지나 10월에 수확한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여름 폭염을 견디지 못하고 죽어버렸다. 그래서 요즘은 생강 위에 차광막을 설치하는 농가가 늘고 있다. 그만큼 여름 기온이 점점 오르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무 파종 시기도 달라졌다. 상주는 무씨앗 파종을 말복 지나서 하는데 그때가 보통 8월 15일경이다. 이때 하면 발아도 잘 되고 무난히 잘 자란다. 그런데 올해는 그 무렵에 파종한 사람들은 다시 재파종을 해야 했다. 발아도 안 되었고, 발아돼 싹이 올라와도 말라 죽어버렸기 때문이다. 그 원인을 폭염으로 보고 있다. 이 시기 기온이 높아졌다는 뜻이다. 무 파종을 예년보다 1주일 정도는 늦게 해야 할 정도로 기후의 변동이 크다.

농민마다 자신만의 노하우로 농사를 짓는다. 하지만 기후 변화로 노하우가 통하지 않게 됐다. 앞으로 어떻게 농사를 지어야 할지, 어떤 작물을 심어야 할지 고민이 크다."

- 국제적인 농민단체에서 활동하고 있다. 지난 7월 14일 정부가 그린뉴딜 정책을 발표하며, 농업 분야 지원도 계획을 밝혔는데, 어떻게 평가하는가?
"웃음이 나왔다. 농촌 마을에 초고속 인터넷망을 설치하고, 스마트 물류체계를 구축하는 게 '그린뉴딜'은 아니다. 농업 분야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이기 위한 구체적인 수치와 목표가 있어야 하는데 없었다. 농산물의 생산부터 식탁까지 이산화탄소를 줄이기 위한 구체적인 정책이 나왔어야 한다. 기존의 방식이 아닌 농업의 전환을 이룰 수 있는 정책이어야 하는데, '녹색'이란 이름으로 포장된 성장 정책이었다. EU(유럽연합)의 '그린 딜'과 차이가 크다."

- EU와 한국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가장 큰 차이점은 농업 분야도 이산화탄소를 줄이기 위한 구체적인 목표가 있느냐다. EU는 오는 2030년까지 농약과 화학비료, 항생제 사용 등을 지금보다 50% 줄이겠다는 구체적인 수치가 있다. 유기농법으로 농사를 짓는 농가의 비율도 현재 6.5%에서 25%까지 유기농업화하고, 농지의 10%는 멸종위기종을 포함한 다양한 생물이 살아가는 환경이 되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EU 그린 딜의 핵심은 '농장에서 식탁까지'이다. EU는 온실가스 배출의 10.3%가 농업에서 나온다고 보고 있다. 농산물의 생산단계에서 유통과 판매 과정을 거쳐 음식물 쓰레기로 폐기되는 과정까지 따져보니 이렇다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은 농업 분야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2.9%라고 밝히고 있다. 우리 농업 분야에서 적게 배출하는 게 아니라 좁은 범위에서 이산화탄소배출량을 산출해서 그렇다."

- 왜 농민들이 기후 변화를 고려해 농사를 지어야 하나.
"기후 위기로 농사가 안되면 식량 생산이 불안전해진다. 그러면 식량 문제가 불거진다. 농민들도 먹고사는 일에 직접 피해를 본다. 그래서 이산화탄소를 줄이고 땅을 살리는 방식으로 농사도 전환되어야 한다.

정부는 농업 분야에도 탈탄소정책을 도입하고 이걸 구체적으로 어떻게 실현할지 계획을 내놔야 한다. 이게 기후위기 시대 식량문제를 해결하는 것이고, 농민들의 지속가능한 삶을 위한 길이기도 하다."

-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기후위기가 농업 위기라는 말은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 당장 눈앞에 닥친 상황이다. 그리고 (인류의) 생존이 걸린 문제다."

태그:#기후위기, #그린뉴딜, #탈탄소정책, #농업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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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학 비리 제보한 교사 해임·임용취소...“학교 내 민주주의 작동돼야”

김민주 기자 kmj@vop.co.kr
발행 2020-09-09 19:56:15
수정 2020-09-09 21:12:24
이 기사는 번 공유됐습니다
9일 오후 강민정 열린민주당 의원과 이은주 정의당 의원의 공동 주최로 서울시 종로구 징검다리교육공동체에서 열린 ‘사립학교 공익제보 교원의 현실과 사립학교법 개정을 위한 입법과제’ 토론회에서 곽노현 전 서울시교육감이 발언하고 있다. 이날 토론회는 코로나19 확산으로 유튜브 생중계했다.
9일 오후 강민정 열린민주당 의원과 이은주 정의당 의원의 공동 주최로 서울시 종로구 징검다리교육공동체에서 열린 ‘사립학교 공익제보 교원의 현실과 사립학교법 개정을 위한 입법과제’ 토론회에서 곽노현 전 서울시교육감이 발언하고 있다. 이날 토론회는 코로나19 확산으로 유튜브 생중계했다.ⓒ강민정TV 유튜브 채널 갈무리  
 
 
 
 
 
 
“제발 죽어야만 법이 바뀌는 세상이 아니었으면 좋겠습니다. 사립학교법도 ‘민식이법’과 같이 누군가의 이름이 붙어 개정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지난 5월 해임 통보를 받은 한 사립 고등학교 교사가 호소했다. 지난 2018년 명진고등학교(도연학원)에서 교사 생활을 시작한 손규대 교사는 2년 2개월 만에 해임됐다. 1학년 담임을 맡던 그는 학생들 곁을 떠나야 했다. 3개월 뒤인 지난 8월엔 손 교사에게 아예 임용취소를 통보했다. 임용취소는 임용 사실 자체를 없던 일로 하는 조치로 임용 계약 해지를 의미한다. 재단은 손 교사의 업무 미숙 등을 징계 사유로 삼았다.

그러나 손 교사와 광주교사노동조합은 손 교사의 공익제보에 대한 보복 징계라고 규정했다. 손 교사는 2017년 2차 면접대기실에서 함께 있던 1차 합격자 4명에게 자신이 채용을 대가로 금품 요구를 제안받았으나 거절했다고 폭로했다. 결과적으로 손 교사가 채용되자 한 익명 제보자가 광주시교육청에 이를 채용비리로 신고했다. 손 교사는 “재단 관계자로부터 금품을 요구받았으나 거절했다”는 내용을 교육청 감사와 검찰 수사에서 참고인으로 진술했다. 이후 최모 전 재단 이사장은 배임수재 미수 혐의로 지난해 4월 항소심에서 징역 6월이 확정됐다.

9일 오후 강민정 열린민주당 의원과 이은주 정의당 의원의 공동 주최로 서울시 종로구 징검다리교육공동체에서 열린 ‘사립학교 공익제보 교원의 현실과 사립학교법 개정을 위한 입법과제’ 토론회에서 손 교사는 이같이 설명했다.

손 교사는 자신에 대한 징계뿐만 아니라 명진고와 재단 내 여러 비리가 있었다고 폭로했다. 대표적으로는 재단의 ‘족벌 경영’으로 재단의 주요 자리를 이사장의 친인척들이 맡고 있다고 말했다. 현 이사장은 최 전 이사장의 남편이며 행정실장과 행정실 직원, 이사 등도 이사장의 친인척이라고 손 교사는 말했다. 최 전 이사장의 두 딸도 교사로 채용했는데 당시 면접 점수를 다른 경쟁자보다 최대 22점이나 높게 줬다는 언론 보도가 있었다.

 지난해 9월 해임된 권종현 우신중(우천학원) 교사도 사립학교 내 공익제보의 어려움을 털어놨다.

재단은 내부 비판과 재단 비리를 거리낌없이 이야기한 권 교사를 복종의무·품위유지의무 위반 등의 이유로 해임했다. 권 교사는 지난 2009년 당시 재단이 자율형사립고(자사고) 전환을 추진할 때 언론에 자사고 정책 비판 글을 언론매체에 기고하는 등 자신의 목소리를 내왔다. 2011년엔 재단 비리를 공익제보해 서울시교육청 행정사무감사와 특별감사를 이끌어냈다. 2012년 감사 결과 50여 건이 적발돼 재단은 교장 파면과 교감 정직을 요구받았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도 재단 비리와 사립학교 제도의 문제점·개혁 방안 등에 대한 글을 여러 편 올렸다.

권 교사는 이처럼 사립학교 내 자유로운 의견 표현 등 민주주의가 작동하지 않는 가장 큰 원인으로 교원 인사권이 재단 이사장에게 집중된 점을 꼽았다. 그는 “현재 사립학교 징계위원회는 징계의결 요구, 징계심의 및 의결, 징계처분 모두 재단 이사회의 권한”이라며 “검사가 수사하고 기소하고 재판하고 집행까지 하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러한 시스템에서 괘씸죄에 걸린 사람은 징계를 피할 방법이 없고, 반대로 이사장에게 충성한 사람은 징계할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손 교사는 징계의결 요구 전 조사에 대한 객관성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손 교사는 “내 사례만 보더라도 이사장 딸 김모씨가 직접 비위 사실을 조사하고 법인에 공문을 기안했다. 이는 객관적인 징계사유에 대한 조사가 이뤄진다고 볼 수 없다”며 “조사를 위한 별도의 위원회를 구성하고 구성원에는 교육청 및 객관적인 외부 인사가 참여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들은 공익제보자에 대한 실질적 보호 필요성도 제기했다. 권 교사는 “괘씸죄에 걸려 징계가 진행되는 동안 법정 다툼 등으로 긴 시간을 싸우며 견뎌야 하지만 그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행정청은 적극적 조치를 취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공익제보에 대한 보복으로 의심할 여지가 많고 다툼 중이라면 선제적으로 대상자를 보호하는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손 교사는 공익신고자를 보호할 수 있는 교육청 내 별도 부서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언급했다.

이날 토론을 맡은 박흥식 중앙대 공공인재학부 교수는 “공익제보는 교육 가치 등을 위한 것이나 사립학교 교원과 학교 설립자, 법인 간에는 심각한 권력 비대칭이 존재한다”며 보호 필요성을 강조했다.

박 교수는 학교법인과 학교장에게 공익제보자 보호책임을 부과하고 보호에 실패하는 경우 처벌과 불이익을 규정하는 조항을 마련할 것을 제안했다.

아울러 사립학교 내 공익신고를 아예 의무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노인·장애인·아동 관련 시설 종사자와 전담 공무원, 교직원, 상담교사 등 24개 직군에 공익제보를 법으로 의무화한 것과 같이 사립학교법에도 공익을 침해하는 행위의 신고 의무 규정을 마련하자고 주장했다.

이날 좌장을 맡은 곽노현 전 서울시교육감은 “왜 사학비리가 동일한 패턴으로 계속되느냐. 그것은 학교 거버넌스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기 때문이고 학교 거버넌스를 구성하는 사립학교법령에 문제가 있는 게 틀림없다. 공익 관련 보호법제의 한계가 작동하는 것도 틀림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사립학교법을 개정해 학생들에게 올바른 민주성 훈련을 학교에서부터 시작해야하고 학교 선생님들이 결코 부당한 일을 겪지 않아야 한다”며 “학교가 민주주의의 체험 학습장이 돼야지 비리 체험학습장이 돼선 안된다”고 지적했다.

김민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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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장의 사진] 한반도 점령군이라고 스스로 인정한 주한미군

김영란 기자 | 기사입력 2020/09/09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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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한 미8군이 9일 페이스북을 통해 공개한 사진. 일장기가 내려가고 성조기가 조선총독부에 게양되고 있다. [사진출처-주한 미8군 페이스북]  

 

주한 미8군이 9일 페이스북을 통해 1945년 9월 9일 조선총독부 국기 게양대에 걸린 일장기가 성조기로 교체되는 사진을 공개했다.

 

주한 미8군은 이날 페이스북에 "한국 남부에 주둔 중인 일본군이 서울에서 항복했다"라며 “한국에서 30년간의 일본 통치가 막을 내리고, 항복문서 서명식이 서울의 조선총독부 건물에서 열렸다"며 "기념식 중 일장기가 내려지고, 성조기가 게양됐다”라고 설명했다.

 

주한 미8군이 공개한 사진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진이다.

 

이 사진을 통해 국민들은 “1945년 일본으로부터 해방이 되었지만, 우리는 다시 미국에 식민지가 되었다”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실제로 미군이 한국에 주둔하기 하루 전날인 1945년 9월 7일 맥아더는 ‘태평양 방면 미군 육군부대 총사령부 포고 제1호, 조선인민에게 고함’에서 “나의 지휘하에 있는 승리에 빛나는 군대는 금일 북위 38도 이남의 조선영토를 점령한다”라고 밝혔다.

 

그리고 포고령 제1호 1조에서 북위 38도 이남의 조선 영토와 조선 인민에 대한 통치의 전 권한은 당분간 본관(맥아더)의 권한 하에서 시행된다고 적시했다. 즉, 당시에 미군은 38도 이남을 점령한 것이다. 

  

미군이 우리 땅에 들어오고 미군정이 실시되면서 대한민국은 미국의 입김에서 자유롭지 못한 나라가 되었다. 그 시간이 75년이나 된 것이다.

 

75년 간 미국과 미군은 한국을 해방시킨 해방자의 이미지를 그리고 피로써 맺어진 한미동맹을 강조해오며 점령군의 이미지를 지우려 애써왔다.

 

하지만 미국과 미군에 대한 우리 국민의 감정은 그다지 좋지 않다. 최근에는 연이은 미국과 미군의 모습으로 국민들의 반미감정이 높아지고 있다.  

 

미국의 무리한 방위비분담금 대폭 인상 요구, 한미워킹그룹을 통해 남북관계에 사사건건 방해하는 모습, 일제강점기 시절 총독을 연상시키는 해리 해리스 대사의 망언, 코로나19 감염 위기에도 한국의 방역을 비웃듯이 협조하지 않는 미군, 해운대에서 폭죽을 난사한 주한미군들, 새벽에 길거리에서 병을 던져 한국인 여성에게 부상을 입힌 주한미군, 훈련안전조치 합의서를 지키지 않은 채 운행한 미군 장갑차 추돌 사건까지...

 

그런데 주한 미8군은 이런 상황에서 왜 이 사진을 공개한 것일까.

 

주한미군은 ‘75년 전 미군이 일본을 몰아냈기에 대한민국이 태어났으니 대한민국 국민은 미국을 고맙게 여겨야 한다. 대한민국은 반미시위를 하면 안 된다’라는 메시지를 주려는 것일까.

 

하지만 주한 미8군이 공식적으로 공개한 이 사진으로 미군이 일본을 대신한 점령군이었다는 것만 스스로 인정한 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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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에서 함께하는 1456차 수요시위.. 비대면 온라인으로 개최

전북지역 대학생겨레하나 주최, 페이스북 페이지에서 라이브 방송
전주=이소현 통신원  |  tongil@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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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9.09  18:3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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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북지역대학생겨레하나가 주관하는 1456차 수요시위가 9일 전주 풍남문 평화의 소녀상 앞에서 진행됐다. [사진-통일뉴스 이소현 통신원]

전북지역대학생겨레하나가 주관하는 1456차 수요시위가 9일 오후 12시, 전주 풍남문 평화의 소녀상 앞에서 진행됐다.

이번 수요시위는 코로나19 상황으로 인해 온라인 수요시위로 진행되었으며 주최단체인 대학생겨레하나의 최소 인원만 참석했다.

   
▲ 수요시위를 상징하는 노래 ‘바위처럼’으로 행사의 시작을 알렸다. [사진-통일뉴스 이소현 통신원]

전북지역대학생겨레하나는 수요시위를 상징하는 노래 ‘바위처럼’에 맞춰 율동을 선보이며 행사의 시작을 알렸다.

   
▲ 정종혁 회장은 "한국 정부는 일본 정부의 사죄와 진상 규명을 촉구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발언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소현 통신원]

대학생겨레하나 정종혁 회장은 전주에서 진행하는 1456차 수요시위의 인사말에서 지난 8월 29일 부산에서 별세하신 이막달 할머니 (97세)의 부고를 전하며 위로의 뜻을 밝혔다.

정 회장은 "현재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는 16분만이 생존해 계신다”며 "한국 정부는 일본 정부의 사죄와 진상 규명을 촉구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발언했다.

   
▲ 정의기억연대에서 지난 9월 1일 발표한 입장문 낭독. [사진-통일뉴스 이소현 통신원]

전북지역 대학생겨레하나 신유정, 박지영 학생이 정의기억연대에서 지난 9월 1일 발표한 입장문을 낭독했다.

입장문에서는 아베 정부가 막을 내리게 되었으며 일본 정부는 새로운 해결의 길로 나와야 함을 강조하며 사회에 인권과 평화의 가치가 실현되기를 소망하는 뜻을 밝혔다.

   
▲ 30분 평화의 침묵시위. [사진-통일뉴스 이소현 통신원]

이후 일본 정부의 사죄와 진상규명을 요구하고 할머니들을 위로하는 30분 평화의 침묵시위가 진행되었다.

인권과 평화의 날갯짓을 염원하는 우산을 펼치고 평화의 소녀상의 곁을 지키며, 대학생겨레하나는 다시 한 번 수요시위의 의미를 기렸다.

한편, 이날 행사는 온라인 수요시위로 진행된 만큼 전북지역대학생겨레하나 페이스북 페이지에서 라이브 방송을 통해 현장에 함께 참석하지 못한 시민들도 뜻을 함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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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명의 피해자를 위한 공연, 객석에서 울음이 쏟아졌다

[인터뷰] '무용계 최초 미투 고발 대법원 승소' 기념 공연 현장에 가다

20.09.09 08:07l최종 업데이트 20.09.09 09:49l
공연 장면의 일부다. 위 공연과 관련해 예술공방 측은 "최근 몇 년 동안 적나라하게 드러난 문화예술계의 미투 사건과 n번방 사건을 통해 우리 사회에 만연한 여성 혐오의 민낯을 마주했다"면서 "여성 무용인들의 선언적 움직임을 통해 대한민국 여성들의 신체 주권을 되돌아보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class="photo_boder" style="border: 1px solid rgb(153, 153, 153); display: block; text-align: center; max-width: 600px; width: 600px;">
▲  예술단체 "감성스터디살롱 오후의 예술공방(아래 예술공방)"에서 기획한 <아직 가닿지 못한 그곳, 당신과 "나의 찬란한 벌판"> 공연 장면의 일부다. 위 공연과 관련해 예술공방 측은 "최근 몇 년 동안 적나라하게 드러난 문화예술계의 미투 사건과 n번방 사건을 통해 우리 사회에 만연한 여성 혐오의 민낯을 마주했다"면서 "여성 무용인들의 선언적 움직임을 통해 대한민국 여성들의 신체 주권을 되돌아보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 감성스터디살롱 오후의 예술공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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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이 자리에는 특별한 분이 참석했습니다. 그는 권위적인 무용계 구조 속에서도 용기있게 가해자와 맞서 싸웠고, 1년여의 소송 과정을 훌륭히 견뎌냈습니다. 그리고 2020년 8월 18일 대법원은 가해자의 항소(상고)를 최종 기각했습니다. 지난 1년 동안 수고하셨고, 고맙습니다."

무용인들의 뒤편으로 짧은 편지 형식의 글 하나가 띄워졌다. "당신이 바로 우리가 꿈꿔온 변화의 시작입니다"라는 문장을 끝으로 무대에 있던 출연진이 꽃다발을 들고서 객석으로 향했다. 꽃다발을 건넨 사람도, 받은 사람도 한동안 울음을 멈추지 못했다. 공연은 웃음 섞인 울음으로 막을 내렸다.

사건이 떠난 자리, 연대가 남았다  지난 5일 오후, 서울 서교동의 한 공연장에서 진행됐던 <아직 가닿지 못한 그곳, 찬란한 벌판> 공연의 한 장면이다. '감성스터디살롱-오후의 예술공방'(아래 예술공방)의 주관으로 기획된 공연은 코로나19 상황상 정부의 방역 수칙에 따라 비공개 형태로 진행됐다. 


이날 꽃다발을 건네받은 사람은 2019년 6월 무용계에서 처음으로 '미투(#Me Too-나도 피해자다)'를 고발한 피해자다. 유명 현대무용가 류아무개(50, 당시 45)씨는 당시 19세였던 피해자를 자신의 연습실에서 여러 차례 성추행하고 강제 성관계까지 시도했던 사건이다. (관련 기사 : 무용계 미투 1년 "예술계 위력 성범죄 인정, 가슴 뛰는 결과" http://omn.kr/1o275)

이제 이 사건은 법원에서 무용계 최초로 '위력에 의한 추행'을 인정받은 선례가 됐다. 지난 8월 18일 대법원은 가해자의 상고를 기각하고 최종 2년 형을 확정했다. '피해자의 자유의사를 제한한 무형의 위력'을 성폭력 수단으로 인정한 하급심 판결을 유지한 결과다. 피해가 발생한 지 6여 년, 소송이 진행된 지 1년이 넘은 후에야 피해자는 비로소 웃음 섞인 얼굴로 꽃다발을 건네받을 수 있게 됐다.

공연 직후 <오마이뉴스>는 이날 무대에 올랐던 김하람, 천샘, 권이은정 등 예술공방 회원들과 인터뷰를 나눴다. 이 가운데 천샘 예술공방 대표와 권이은정 아프리칸 댄스컴퍼니 따그 대표는 피해자의 고발 직후부터 사건 공론화에 함께 힘 써온 '오롯 위드유(아래 위드유)' 활동가들이다. 이날 천샘 대표는 공연의 안무를 기획하면서 피해자에게 전해졌으면 하는 메시지가 있었다고 했다.

"당신이 달리다 쓰러져도 곁에 있는 다른 사람이 이를 받아서 또 앞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행여 좋지 않은 결과가 있더라도 변화를 위해 계속 나아가려는 사람은 있을 것이라고. 안무가이자 무용가로서, 이 메시지가 잘 전달됐길 진심으로 바란다."

일상을 바친 싸움... 피해자는 무용계를 떠났다
 
공연 장면의 일부다. 위 공연과 관련해 예술공방 측은 "최근 몇 년 동안 적나라하게 드러난 문화예술계의 미투 사건과 n번방 사건을 통해 우리 사회에 만연한 여성 혐오의 민낯을 마주했다"면서 "여성 무용인들의 선언적 움직임을 통해 대한민국 여성들의 신체 주권을 되돌아보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class="photo_boder" style="border: 1px solid rgb(153, 153, 153); display: block; text-align: center; max-width: 600px; width: 600px;">
▲  예술단체 "감성스터디살롱 오후의 예술공방(아래 예술공방)"에서 기획한 <아직 가닿지 못한 그곳, 당신과 "나의 찬란한 벌판"> 공연 장면의 일부다. 위 공연과 관련해 예술공방 측은 "최근 몇 년 동안 적나라하게 드러난 문화예술계의 미투 사건과 n번방 사건을 통해 우리 사회에 만연한 여성 혐오의 민낯을 마주했다"면서 "여성 무용인들의 선언적 움직임을 통해 대한민국 여성들의 신체 주권을 되돌아보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 감성스터디살롱 오후의 예술공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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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8월 18일 대법원판결 이후 오랜 싸움에 끝이 났다. 소감이 어떤가.
천샘 : "판결이 9월 1~2주 정도에 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일찍 나왔다. 이것도 고무적이라고 생각한다. 예상보다 빠르고 명쾌한 결론이 나 감동적이었다. 지금에서야 말하는 거지만 1·2심 판결을 진행하면서 제가 가장 바랐던 것은 일상의 회복이었다. 내 일을 하면서 판결 결과를 통보받길 바랐다. 어쩌면 이번 대법원판결로 소원을 이룬 셈이다. 안무를 짜고, 춤추는 내 일상을 해나가는 과정에서 소식을 들었던 게 개인적으로는 참 좋았다."

권이은정 : "좋았지만 한 편으론 괘씸했다. 대법원까지 왔다는 건 가해자가 하급심 판결을 끝까지 받아들이지 않고 피해자를 괴롭게 한 셈이기 때문이다. 피해자는 4~5년의 세월을 창살 없는 감옥 속에서 살아왔다. 그런데도 가해자는 본인에게 내려진 2년 형을 피하기 위해 피해자와 연대 관계자들 모두의 일상을 철저하게 깨뜨렸다. 이렇게 끝장을 보려 한 가해자의 심보가 너무 괘씸했다. 우리가 이렇게 화가 날 정도인데 피해자는 얼마나 지쳤을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 피해자 사건을 계기로 나온 공연이라 했다. 기획 시점은 언제인가.
천샘 : "2019년 6월부터 기획했다. 1심 결과가 나오기 전부터 기획됐다. 만일 우리가 법정 싸움에서 진다면 결과에 불복하겠다는 마음으로, 정말 굿판이라도 벌이겠다는 마음으로 만들게 됐다. 그런데 다행히 1심부터 크게 승소했다. 원래 1심 결과가 나온 뒤에 공연을 올리려 했는데 코로나19 문제로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지금 상황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결국 눈물을 머금고 전부 환불한 뒤 비공개로 진행하게 됐다."

- 공연 현장에 피해자도 왔다.
권이은정 : "공연 도중에 관객들에게 질문을 던지는 문항들이 있었다. 그중에 '(성희롱·성폭행) 피해를 입은 사람이 본인인 경우, 미친 듯이 뛰어라'라는 질문이 있었다. 사실 이 질문이 행여 피해자의 트라우마를 자극하지는 않을까 조심스러웠다. 그래서 여느 때보다 진심을 담아서 춤을 췄다. 내가 그 피해 경험이 있는 사람으로서 이 춤에 분노를 담았다는 걸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공연이 다 끝난 후 피해자가 내게 되레 고맙다면서 위로가 됐다는 말을 건네줬다."

- 공연 중에 가해자와 피해자의 위치를 오가는 역할도 있었는데.
김하람 : "여성이지만 방관할 수 있고, 때론 무관심으로 폭력을 가할 수도 있고, 혹은 연대할 수도 있지 않나. 여러 모습이 섞였던 제 역할이 이런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다만 제가 나쁜 역할을 많이 맡았다 보니 걱정되는 부분도 있었다. 대표적으로 불법 촬영 장면이었는데, 이걸 표현할 때 최대한 조심하려 했다. 혹여 이 장면이나 여기서 나오는 단어들이 피해자를 비롯해 관객들에게 부정적인 자극을 주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다."

"변화를 위해 함께 나아가는 누군가가 있다"
 
 공연의 출연진 및 제작진 모습이다." class="photo_boder" style="border: 1px solid rgb(153, 153, 153); display: block; text-align: center; max-width: 600px; width: 600px;">
▲  예술단체 "감성스터디살롱 오후의 예술공방"에서 기획한 <아직 가닿지 못한 그곳, 당신과 나의 "찬란한 벌판> 공연의 출연진 및 제작진 모습이다. 우측부터 권이은정, 이륜화, 김하람, 천샘, 서경선 예술가, 채미정 무대총괄 감독.
ⓒ 감성스터디살롱 오후의 예술공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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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연을 마친 직후 피해자를 비롯한 모두가 눈물을 흘렸다.
권이은정 : "공연 마지막에 서아프리카 전통북 소리와 우리들의 춤이 어우러지는 장면이 나온다. 어떤 궂은 일이 있어도 함께, 계속 앞으로 전진하겠다는 의미를 담은 건데, 그때 춤을 추면서 평소보다 더 감정이 울컥하고 올라왔다. 그때부터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다른 분들도 마찬가지일 것 같은데, 아무래도 피해자분이 공연장에 오신 것 때문에 더 감정이 폭발했던 것 같다."

김하람 : "공연이 끝나고 피해자에게 보내는 편지가 무대 뒤쪽 화면에서 떴다. 그 내용을 보면서 작품과 삶이 명확하게 연결됐다는 느낌을 받았다. 동시에 이 작품이 선물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저도 그 자막을 보는데 순간적으로 눈물이 밀려왔다."

- 이번 공연을 통해 전달하고 싶었던 메시지는 무엇인가. 
천샘 : "당신이 아무리 작은 소리를 내더라도 누군가는 당신의 목소리를 듣고 함께 나아갈 것이라고, 당신이 달리다 쓰러져도 다른 사람이 이를 받아서 또 앞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이 말을 꼭 전하고 싶었다. 춤출 때 이 말을 계속 되새기면서 췄다. 이게 피해자에게 잘 전달되길 바라는 마음에 피해자 좌석도 내 앞으로 배치했다. 

이 메시지는 피해자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여성들에게 전달하고 싶은 말이기도 하다. 지금도 무용·예술계에선 성폭력 사건이 고발되고 있다. 무용계에는 이런 좋은 결과가 왔지만, 행여 좋지 않은 결과가 있더라도 변화를 위해 계속 앞으로 나아가려는 사람은 있다는 거다. 안무가이자 무용가로서, 이 메시지가 잘 전달됐길 진심으로 바란다."

- 현재 피해자의 상태나 근황은 어떤가.
천샘 : "우리랑 얘기 나눌 때 보면 많이 회복한 상태인 것 같다. 다만 우리가 그 속까지 알 수는 없다. 오늘 피해자가 공연장에 직접 왔다는 것 자체가 '괜찮다'는 안부를 대신한 거라고 본다."

- 피해자는 이 사건 이후로 무용계를 떠났다고 했다.
천샘 : "그렇다. 피해자는 이제 다른 자격증을 준비하면서 열심히 앞으로 나아가려는 중이다. 우리는 이제 피해자의 근황 체크를 하지 않는다. 이 사건을 거쳐오면서 서로가 서로에게 든든한 동지가 되어줬지만, 이제는 그 친구가 일상 속에서 제 이름을 덜 마주하게 하는 것이 좋다고 본다. 어떤 안부조차 묻지 않는 것이 그 친구가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데 도움을 주는 것 같다. 다시 새로운 길을 열심히 달려가는 와중에 혹여나 멈춰 돌아오면 안 되지 않겠나."

- 향후 어떤 계획을 갖고 있나?
천샘 : "건강한 무용계를 만들기 위해 여러 활동을 진행할 예정이다. 우선 저희는 지금 판결문 세미나를 진행하고 있다. 또, 건강한 무용 생태계를 만들기 위한 자치 규약을 만들기 위한 활동도 하고 있다. 지금 3회차까지 진행된 상태인데 반응들이 좋다. 마지막 4회차에서는 (무용예술) 기관 내 성폭력 대응 시스템을 점검하는, 그런 세미나를 만들 예정이다. 공연을 통해서는 여성·동물·환경에 대해 얘기해 볼 생각이다. 중심이 아니었던 것에 관심을 갖고 그 의미를 다시 생각해볼 수 있도록 계기를 만드는, 그런 공연을 만들 예정이다."

덧붙이는 글 | 위 공연은 정부의 코로나19 방역 수칙을 모두 준수한 상태에서 비공개 형식으로 진행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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